자코뱅주의와 시민사회

: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제 :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十九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研究の現状と課題

저자 :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

출처 : 社会思想史学会, 『社会思想史研究』, 31권, 2007, 108-117.

http://dspace.lib.niigata-u.ac.jp/dspace/bitstream/10191/6613/1/31_108-117.pdf






1. 들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사의 고전을 쓴 막심 르루아(Maxime Leroy, 1873-1957)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89년 이후의 모든 역사는 …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립으로 귀결된다.”[각주:1] 르루아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1789년의 원리, 즉 개인적 자유와 소유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 구성의 원리이며, “사회적인 것”이란 평등과 관련된 것이면서 개인의 불행을 집합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노동이나 분배와 관련된 1793년의 원리이다.[각주:2]

르루아가 지적하듯이, 19세기의 프랑스 역사는 1789년에 선언된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대혁명 시기에 제창됐던 ‘정치적’원리는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조건에 입각한 ‘사회적’인 질서 원리에 의해 항상 비판되며 수정을 겪었다. 양자의 상극과 조정이 반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기 이후의 사상사를 구성한다.

다만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논자마다 매우 다양하다. 크게 말해서, 1960년대까지 19세기 사상사를 해석하는 틀은 경제구조에 기인하는 계급대립에 의해 주어졌다. 생디칼리즘을 대표하는 이론가 르루아가 양자의 대립을 자유주의적 권력구성원리와 노동자의 사상·운동과의 대립으로 파악했던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런 해석 도식은 크게 변경된다. 역사학·정치사상사·철학 등의 분야들에서 지적인 쇄신이 일어나고, 오히려 일원적 통합원리(정치적인 것)와 다원성 원리(사회적인 것)의 긴장관계가 논자의 주된 관심 대상이 된다(다만, 나중에 다루는 르포르와 고셰는 양자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 혹은 일원적 통합원리와 다원성 원리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최근까지의 연구사를 재정리하고, 그 현황과 과제에 관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2. 일원적 통합원리에 대한 비판

1) 자코뱅주의의 유산

196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타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간주한 정통사학을 비판했던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 등이 혁명기의 정치적 담론에 주목한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했다.[각주:3] 퓌레에 따르면, 단일한 ‘인민’이라는 허구의 집합을 통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하는 문학자, 철학가의 담론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혁명의 급진화와 자코뱅 지배가 초래됐다. 19세기 이후의 사상적 과제는 ‘자코뱅주의’를 극복하고 ‘혁명을 끝내게 하는’것에 있었다고 간주된다.[각주:4]

퓌레의 연구는 정치사상사 분야에서 ‘정치문화’론이라 불려야 할 새로운 연구사조를 산출했다.[각주:5] 그것은 경제구조로부터의 정치적 담론의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동시대의 정치적 담론의 배치, 그 내재적 논리를 탐구하는 역사연구로의 길을 개척했다.[각주:6] 여기서는 퓌레의 문제관심을 계승하는 한 명으로서 뤼시앙 좀(Lucian Jaume, 1946~)의 연구를 다뤄보고 싶다.

좀은 퓌레의 담론분석 방법에 의거하면서, 대혁명에서 비롯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의 특징을 탐구한다. 『자코뱅파의 담론과 민주주의』(1989)에서는 혁명기의 클럽과 의회에서의 자코뱅파의 담론을 검토하고, 당(parti)에 의한 도덕적 혁명운동이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의 일체성을 산출하며, 주권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정치관의 성립을 지적했다.[각주:7] 이런 정치관은 나폴레옹 제정기의 집권론,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의 이성주권론으로 계승된다. 그는 이어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의 사조들을 검토하고, 거기서 일관된 특징을 ‘삭제된 개인’(individu effacé)라고 평했다.[각주:8] 대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는 세 개의 사조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항하고 개인의 내면적 자유의 불가침성과 입헌주의에 의한 권력억제를 주창한 스탈 부인, 콩스탕, 프레보스트-파라돌(Prevost-Paradol) 등의 사조이다. 둘째는 개인보다 ‘사회’를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의지[의사]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으로의 집권화에 의해 더 고차적인 자유가 실현된다고 파악한 르와이에-코라르, 레뮈제, 기조 등 독트리네르의 사조이다. 셋째는 개인적 자유에 대해 종교적 ‘진리’를 우위에 두고 신적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라므네, 몽타랑베르, 세기말의 자유주의 가톨릭 등의 사조이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사조가 프랑스 자유주의의 주류를 두고 다투며, 두 번째 사조가 1875년 이후에 체제원리가 되며, 자유주의와 양립하는 공화체제를 이끌게 됐다고 한다.[각주:9]

2)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

퓌레나 좀의 연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을 ‘자코뱅주의’적인 일원적 통합원리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1970년 이후의 정치철학에서는, 이런 사상적 전통을 근대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조가 있다. 이하에서는 클로드 르포르, 마르셀 고셰를 중심으로 그런 19세기론을 다뤄보고 싶다.[각주:10]

르포르(Claude Lefort, 1924~)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다. 1949년부터 60년까지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를 간행한 그는, 6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토크빌과 아렌트의 사유에 의해 촉발되고, 근대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정치인식의 문제성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권’의 역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개념의 분석이라는 두 가지 점에 집중해서 그의 연구를 일별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회가 ‘외부’에서 질서의 일체성을 보장하는 참조점(신, 자연, 왕의 신체)을 갖고 있었던 반면, 근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런 참조점들을 거부하고(가령 프랑스혁명에 의한 왕의 신체의 폐절), ‘내부’에서만 질서의 입각점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각주:11] 그 입각점은 ‘인간’(homme)이라 칭해지며, ‘인간의 권리’의 실현이 근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된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공통성을 추상화한 집합을 가리키는데, 외부의 지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언급[참조, 지시]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확정성을 갖는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권’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로서 확대를 거듭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권력도 ‘복지국가’(État-providence)로서 비대화를 계속했다.[각주:12]

여기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루고 싶다. 르포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특히 자코뱅주의와 20세기의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것은 모든 다원성이나 차이를 배제한 ‘일자-인민(Peuple-Un)’이라는 표상이 통치의 기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인민’은 개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며, 개인을 초월한 집합으로서 관념되며, ‘사회적 권력’이라고도 일컬어진다. 19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콩스탕이나 기조가 아니라 토크빌이야말로 이런 단일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제(專制)’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각주:13] ‘인권’은 이 ‘사회적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전제’를 억지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인간’관념은 개별 인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재시킨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전체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는 구별될 수 없다.[각주:14]

르포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국가권력의 행사)를 일상생활의 곳곳에 침투시키는 논리를 내재시킨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나누는 것은 권리·정치제도 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차원’, 즉 자유로운 언론에 의해 통치권력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제약하는 ‘공적 영역’의 존재뿐이다.[각주:15] 이 공적 영역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권리·정치제도나 공/사의 구분을 다시 묻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운동’뿐이라고 한다.

르포르가 탐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셰(Marcel Gauchet, 1946~)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적 조건’아래에서 더욱 탐구됐다.[각주:16] 고셰는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의 곤란의 출발점을 대혁명에 둔다. 기독교의 성립과 세속화는 개인이 세계의 의미를 자기 해석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는 것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혁명은 탈종교화와 왕의 부정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을 초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연대가 모든 외부성이나 내적 다원성을 갖지 않는 단일한 집합(‘사회’)으로 관념됨으로써, 개개인을 초월하는 ‘사회’에 의한 새로운 전제(專制)나 억압을 초래할 가능성도 일어났다.[각주:17] 고셰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입법부로의 중앙집권화, 자코뱅주의에서의 ‘단일한 집합체’관념의 성립에서 개인의 자율과 양립할 질서의 형성 실패의 요인을 찾아낸다. 혁명기의 시에예스에 의한 의회감시의 ‘제3의 권력’도입론, 콩스탕의 중립적 권력론, 대의제론 등은 ‘사회’의 관념에 기초한 일원적 통치상을 비판하고 다원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로 독해된다.[각주:18]

고셰에 의한 19세기 이후의 역사상을 일별해두자.[각주:19] 19세기 전반기에는 좌우 당파의 대립, 국왕·정부·의회의 분리, 대표제 등, 일정한 ‘다원성’원리의 도입이 꾀해진다. 제3공화정 시기의 양원제의 도입은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분업의 진전이나 계급대립에 의해 간과된 ‘사회’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희구가 현재화하고, ‘단일한 인류(Une humanité)’라는 종교적 관념이 부상한다.[각주:20] 이것은 민족·국민 등으로 모습을 바꿔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치를 석권한다. 고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정당이나 결사의 다원성, 대의제는 행정기구에 의한 리스크의 예측이나 불확실성의 제거·통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의 ‘지배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해지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문화적 획일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매몰·함몰에 의해 단일한 ‘사회’의 논리에 기초한 일원적 지배로 전화될 가능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고셰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외부’의 삭제라는 문제로 되돌아가, 탈종교화의 역사를 정치사상의 문제로서 연구하게 됐다.[각주:21]

3) 생명정치의 확산

1970년대의 지적 쇄신 속에서 생겨난 두 번째 사조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이후의 19세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조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각주:22] 푸코는 1977-78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18세기 이후의 통치권력의 성질변화를 주제로 삼는다.[각주:23] 그에 따르면, 상업과 도시의 발전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국가(내치)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통치의 효율화(économie)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치경제학(économie politique)의 내실은 18세기 후반기에 치안유지에서 ‘인구’의 학(學)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사람들의 생물학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을 ‘생명정치’(biopolitique)라고 칭하고, 이런 권력실천이 공중위생·인구정책·의료·식량정책으로서 전개됐다는 것, 그 담지자가 국가관료뿐 아니라 ‘사회적’영역에서의 병원·공장·교육기관·경제학자·위생학자 등으로 학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푸코에게 ‘시민사회’란 이런 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영역에 다름 아니며, ‘자유주의’란 새로운 통치의 방식을 정당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다.[각주:24] 푸코의 ‘생명정치’, ‘사회적인 것’, ‘자유주의’등의 개념은 이후 19세기 연구에서 비교·대조되는 틀이 되며, 빈곤문제나 감옥, 공중위생, 가족, 의료 등과 관련된 많은 역사연구를 산출했다.[각주:25]

위에서 다뤘던 두 개의 사조는 각각 상이한 관심에서,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의 일원적 통치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퓌레와 좀은 자코뱅주의의 유산이 19세기 이후에도 잔존하며, 영국식 자유주의나 입헌주의가 정착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르포르나 고셰는 ‘인간’이라는 자기언급적 개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단일한 집합체(‘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그리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이끌 위험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논했다. 푸코주의자는 18세기 이후의 개개인이 단일한 생물학적 집합(‘인구’)로 파악됨으로써 집합적 생명의 효율적 유지·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사회적’영역으로 확산되고 개개인의 생명의 관리·규율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각자는 이런 일원적 통치원리에 대항하는 다원적 질서구성원리의 추구 ― 퓌레와 좀에게서의 대의제와 경쟁적 정당제, 르포르와 고셰에게서의 운동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외부’의 탐구, 말년의 푸코에게서의 ‘자기에의 배려’에 기초한 고대 그리스의 주체상과 자기-타자관계 ― 를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이런 연구사조들과 교착되면서도,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거기서 긍정적인 발전사를 독해해내려는 것이 다음에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다.

3. 일원적 통치원리로의 회귀 : 로장발롱의 19세기론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1948~)은 중도노조인 CFDT의 고문이라는 사상사 연구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말에 푸코의 세미나에 출석했으며, 최초의 사상사 연구서인 『유토피아적 자본주의』를 출판했다. 80년대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소속되어 퓌레, 르포르, 고셰, 마넹 등과 교류하면서 역사연구·현대정치연구를 행했다.[각주:26] 90년대에 들어서자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3부작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정치사상사 연구의 제일인자가 된다.[각주:27] 2002년부터는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로장발롱의 19세기 연구상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기에 성립된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이 거듭 비판에 처해지면서도 수정되어 회귀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 발전사로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인식(‘일반성의 정치문화’라고 일컬어진다)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를 거의 답습하고 있다.[각주:28] 혁명기에는 전통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끄집어내어 동질적·추상적 개인으로 구성된 단일한 집합체(‘개인으로 구성된 사회sociétéd’individus’)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랑스의 특징은 헤겔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변증법이 상정되지 않고,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강조된 것이다. 개별 이익을 추상화하는 ‘대표’라는 메커니즘이 중시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에는 ‘특수이익’에서 ‘일반이익의 창출’이라는 비약이 상정된다. 양자를 매개하는 정치적 결사는 부정되고, 직업단체, 지역성, 남녀의 성차 등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 일반성을 체현하는 것은 ‘법’뿐이며, 대표자에 의한 입법행위가 신성시된다.

둘째로,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이런 정치인식은 거듭 비판에 처해졌다.[각주:29] 르 샤플리에법에서 볼 수 있는 중간단체의 부정은 개인의 원자화, 국가의 비대화,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19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7월 왕정기에 재생한다. 기조, 티에르 등의 자유주의자는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구별을 도입한다.[각주:30]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 집권화에 의해 전통적인 특권들(libertés)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liberté)가 실현된다. 자코뱅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확대와 자유의 실현은 상보적이라고 파악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으로는 언론·집회활동의 자유나 행정적 분권화가 허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다원성은 사회에 분산된 엘리트의 의견을 통치기구로 집약하고, 일원화하기 위한 매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적/사회적 영역의 구분과 상호보완으로 구성된 그들의 질서관은 제2제정기의 정치적 결사 금지와 직업적 결사 승인(1864년법)으로 계승되며, 제3공화정기의 ‘수정 자코뱅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셋째로, 제3공화정기에 자코뱅주의의 쇄신이 완수된다.[각주:31] 여기서 로장발롱이 중시하는 것은 유기체적 질서관을 따라 자코뱅주의적인 국가-개인의 이원적 질서관을 비판하고 중간단체 재건을 제창한 사회학자(Fouillée, Durkheim, Ferneuil, Duguit 등)의 사상이 아니라,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양극화(polarisation)’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화파 정치가(Waldeck-Rousseau, Léon Bourgeois, Paul-Boncour 등)의 질서관이다. 후자는 1884년법(직업조합 자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결사가 질서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승인한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통한 의사집약과 일반이익의 일원적 ‘대표’라는 시각을 유지한다. 정치적 결사는 1901년법까지 자유화되지 않으며, 이 법에서도 결사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제도적 제약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가 제창한 직능대표론이나 생디칼리스트가 주창한 생산자의 공화국론(M. Leroy), 코포라티즘론은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는 시도였다. 다른 한편, 공화파 정치가의 질서관에 따르면, ‘사회적’다원성은 ‘정치적’집권성과 명료하게 구별되며, 그 통제 아래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야말로 20세기의 프랑스 정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위와 같이 로장발롱에 따르면, 혁명기의 자코뱅주의는 몇 번이나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오늘날의 정치사상적 과제는 이제 자코뱅주의의 극복이나 토크빌적인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의 옹호가 아니다. ‘사회적’영역에서 중간단체가 다양한 발전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즉 ‘일반이익’이나 통합의 공통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라고 한다.[각주:32]

4. 마치며

지금까지 달음박질치듯이 30년 동안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뒤쫓았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과제를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서이다. 퓌레 이후의 19세기 사상사 연구는 담론사, 사회사, 심성사 등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고전적 사상가의 텍스트를 넘어선 폭넓은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 기존의 일본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사상가의 주요 텍스트를 ‘점’과 ‘점’으로 묶음으로써 사상사가 구성된 것이 적지 않았다. 향후에는 프랑스에서의 역사 연구의 진전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담론 상황을 ‘면’으로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대상의 확장이 요구된다.

둘째는 분석 틀에 관해서이다. 본고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이라는 도식을 사용해서 본 것처럼, 19세기에 정치사상의 대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자코뱅 주의의 영향,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회로의 권력의 확산, 사회 문제의 출현 등에 의해 분석 틀도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대립이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일원성과 다원성, 정치적 질서의 내부와 외부, 규율과 자율, 중간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역할 등, 논자에 따라서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로 ‘정치적인 것’자체가 논쟁적 개념이 되며, 그 개념 규정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과제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이런 문맥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깊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주도하는 로장발롱의 틀에 내포된 일정한 편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로장발롱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있던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고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런 관심의 전환의 배후에는 현대 프랑스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논의 상황이 있다. 즉, 한편으로는 전지구화, 유럽화에 의한 프랑스 국가의 자율성의 흔들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회적 분단(이민자·청년·배제문제 등)의 심각화와 대의제의 기능장애이며, 이런 것들로부터 귀결되는 ‘프랑스 모델’의 전환이라는 논의이다.[각주:33] 이런 문맥 속에서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과 대의제를 옹호하고 국민(naion)의 재구축을 호소하는 등, 현대정치에 대해 활발한 제언을 계속하고 있다.[각주:34]

그러나 위와 같은 실천적 관심을 배후에 지닌 19세기 연구는 대상에 본래 내포된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훼손하고 이것들을 정태적인 역사관으로 회수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하고 ‘정치적인 것’(일원적 통합원리)의 일관된 우위를 상정한다는 틀로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Constant, Madame de Stäel, C. Dunoyer), 중반기의 사회주의자,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등 ‘사회적인 것’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묻고자 한 사상가들의 상당수가 곁가지에 자리매김 된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상이 ‘자코뱅주의’와 대립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재구축을 모색하고, 사회주의에서 보수주의까지 폭넓은 사상 투쟁을 벌였다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의 지속성을 축으로 삼은 그의 역사관에 대해 복수(複數)의 ‘사회적인 것’의 경합 속에 새로운 질서 구성 원리를 찾아내려는 사상사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은 향후의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 본고는 제31회 사회사상사학회(2006년 10월 22일)의 섹션 「프랑스형 『시민사회』 모델의 가능성 : 피에르 로장발롱을 둘러싸고(フランス型『市民社会』モデルの可能性──P. ロザンヴアロンをめぐって」를 조직한 北垣徹(西南学院大学), 高村学人(立命館大学) 두 사람과의 공동토의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집필에 있어서는 아래의 연구조성의 일부를 활용했다. 平成十七─十八年度文部科学省科学研究費補助金(若手研究B), 平成十八年度新潟大学プロジェクト推進経費(若手研究者奨励研究費).


  1.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1, Paris, Gallimard, 1946, p.13. [본문으로]
  2.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2, Paris, Gallimard, 1950, pp.11-13 ; t. 3, 1954, pp.27-38. [본문으로]
  3.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1978. [본문으로]
  4.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au 19 siècle,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reation of modern political culture, 4 vol., New York, Pergamon Press, 1987-1994. [본문으로]
  6.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서는 다음의 것이 있다. Claude Nicolet, L’idée républicaine en France, 1789-1924, Paris, Gallimard, 1995는 ‘과학’, ‘사회’ 등 19세기의 주요 사상 개념의 배치 속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의 생성과정을 상술하고, 정치사적 서술에 머무는 다른 연구(가령 Pamela Pilbeam, Republicanis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1814-1871, Basingstoke, Macmillan, 1995)와 비교해서 출중하다. Sudhir Hazareesingh, From Subject to Citizen : the Second Empir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French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은 제2제정기의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가톨릭의 담론을 망라하여 검토하고, 그 연방·분권론에 자코뱅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할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생성을 찾아낸다. Laurent Mucchielli, La découverte du social : naissance de la sociologie en France (1870-1914), Paris, Découverte, 1998은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과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착에서부터 당시의 담론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7. 그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첫째, 제도로서의 대표가 부정되는 한편, 혁명운동에 의한 ‘인민’의 대표라는 관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도덕적 일체성에 기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인민’이 대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에 의해 ‘인민’이 창출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이 운동에서 당이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Lucien Jaume, Le discours jacobin et la démocratie, Paris, Fayard, 1989, pp.387-403). [본문으로]
  8. Lucien Jaume, L’individu effacé, ou le paradoxe du liberalisme français, Paris, Fayard, 1997. 또한 좀의 관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저작으로 Lucien Jaume, Echec au liberalisme : les jacobins et l’État, Paris, Kimé, 1990이 있다. [본문으로]
  9. Jaume, L’individu effacé, op.cit., pp.19-21, pp.59-117, pp.124-148, p.340 et s. 독트리네르의 사상이 제3공화정의 체제원리가 됐다는 이해는 후술하는 로장발롱의 기조론에서도 볼 수 있다. Pierre Rosanvallon,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p.358 et s. [본문으로]
  10. 그들을 포함해 최근의 프랑스 논의 상황을 정리한 문헌으로 宇野重規, 『フランス政治哲学』, 東京大学出版会, 2004가 있다. [본문으로]
  11.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94, pp.63-66. [본문으로]
  12.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p.32. [본문으로]
  13. Ibid., p.38. 르포르의 논의는 피에르 마넹(Pierre Manent, 1949~)의 다음의 논의에도 빚지고 있다. Pierre Manent, «Démocratie et totalitarisme : à propos de Claude Lefort», Commentaire, t. 16, 1981-1982, pp.574-583. [본문으로]
  14.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op.cit., pp.171 et s. [본문으로]
  15.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op.cit., p.55. [본문으로]
  16. 고셰의 지적 배경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인류학, 정신분석 등 다양하다. 르포르와의 관계에 관해 고셰는 1966-67년에 그의 강의에 참여하여 ‘선열한 충격을 받고’ 르포르와의 대화로부터 연구 테마를 찾아냈다고 회고했다(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Paris, Gallimard, 2003, p.29). 또한 난해한 고셰의 사상의 도입으로 다음이 편리하다. Marc-Olivier Padis, Marcel Gauchet : la genèse de la démocratie, Paris, Michalon, 1996. [본문으로]
  17. March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pp.1-26. [본문으로]
  18. M.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Paris, Gallimard, 1995. ; «Benjamin Constant : l’illusion lucide du libéralisme», dans Benjamin Constant, Ecrits politiques, Paris, Gallimard, 1997, pp.1-110. [본문으로]
  19.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op.cit., pp.27-35. [본문으로]
  20. M. Gauchet, La condition politique, Paris, Gallimard, 2005, p.371. [본문으로]
  21. M. Gauchet, La religion dans la démocratie, Paris, Gallimard, 1998. [본문으로]
  22. 田中拓道『貧困と共和国』人文書院、二〇〇六年、第四章 ; 同「フランス福祉国家論の思想的考察──『連帯』のアクチュアリテイ」『社会思想史研究』二人巻、二〇〇四年、53-68頁. [본문으로]
  23. Michel Foucault, Se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Paris, Gallimard/Seuil, 2004. [본문으로]
  24. Ibid., p.357. ;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Paris, Seuil/Gallimard, 2004. [본문으로]
  25. 대표적인 예로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Paris, Fayard, 1984 ; François Ewald, L’État-providence, Paris, Grasset, 1986 ; Giovanna Procacci, Gouverner la misère, Paris, Gallimard, 1995 ; Andrew R. Aisenberg, Contagion : Disease, Government, and the ‘Social Question’ in Nineteenth-Century Fra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푸코의 도식과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의 사상사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중요한 연구로는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26. Pierre Rosanvallon, Le libéralisme économique, Paris, Seuil, 1979. 그 내용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론과 근본적으로 겹친다. 18세기의 ‘시장의 발견’을 효율적인 통치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원리로서 위치짓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세미나의 요약에서 이 연구를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op.cit., p.326). [본문으로]
  27. P. Rosanvallon,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2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8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2000. [본문으로]
  28. P. Rosanvallon,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2004, pp.25-105. [본문으로]
  29. Ibid., pp.131-195. [본문으로]
  30. Ibid., pp.218-227. [본문으로]
  31. Ibid., pp.343-360. [본문으로]
  32. Ibid., p.434.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로장발롱이 편집한 La République des Idées 시리즈의 한 권인 La nouvelle critique sociale, Paris, Seuil, 2006. 혹은 P. Culpepper et al. dir., La France en mutation, 1980-2005, Paris, Presses de la Fo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2006. [본문으로]
  34. 로장발롱은 최근 저작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그 불신을 조장하고 키워왔던 기존의 정치사상 연구를 비판한다. P. Rosanvallon,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2006, pp.24 et s. 국민의 재구축에 관해 로장발롱의 「일본어판 서문」, 『연대의 새로운 철학』, 北垣徹訳)「日本ヒ語への序文」『連帯の新たなる哲学』勁草書房, 2006, v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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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느 말라부와의 대담

A CONVERSATION WITH CATHERINE MALABOU


CATHERINE MALABOU(University of Paris X-Nanterre)

NOËLLE VAHANIAN(Lebanon Valley College)


* 인터뷰 원문 PDF 파일(영어)

The questions of the following interview are aimed at introducing Catherine Malabou’s work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 to an audience who may have never heard of her, or who knows only that she was a student of Derrida. What I hope that this interview reveals, however, is that Malabou “follows” deconstruction in a timely, and also useful way. For one of the common charges levied against deconstruction, at least by American critics, is that by opening texts to infinite interpretations, deconstruction unfortunately does away with more than the master narratives; it mires political agency in identity politics and offers no way out the socio-historical and political constructs of textuality other than the hope anchored in faith at best, but otherwise simply in the will to believe that the stance of openness to the other will let the other become part of the major discourses without thereby marginalizing or homogenizing them.

아래에 수록한 인터뷰의 질문은 카트린 말라부의 작업과 철학적 관점을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거나 그녀가 데리다의 학생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인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인터뷰로 드러내고 싶은 것은 말라부가 탈구축을 어떻게 시의적절하게, 또한 유용한 방식으로 "따라가는가[추종하는가]"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은 어찌됐든] 적어도 미국의 비평가들이 탈구축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부과하는 혐의 중 하나는 탈구축이 텍스트를 무한한 해석에 열어버림으로써 안타깝게도 주인 서사들을 없애는 것 이상의 짓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즉, 탈구축은 정치적 행위[political agency]를 정체성 정치의 진창에 빠뜨렸으며, 텍스트성의 사회-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축물에서[사회, 역사, 정치가 텍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구축물이라고 보는 길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잘해 봤자 믿음에 닻을 내린 희망 말고는[믿음 말고는 아무 것에도 기댈 수 없는 희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타자에 대한 개방성의 자세가 주요[다수자적] 담론들을 주변화하거나 동종화하지 않고서 타자를 이런 담론들의 일부가 되게 할 것이라고 믿으려는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How does Malabou “follow” deconstruction? Indeed, she does not disavow her affiliation with Derrida; she, too, readily acknowledges that there is nothing outside the text. But, by the same token, she also affirms Hegel’s deep influence on her philosophy. From Hegel, she borrows the central concept of her philosophy, namely, the concept of plasticity; the subject is plastic—not elastic, it never springs back into its original form—it is malleable, but it can explode and create itself anew. In this way, there is nothing outside the text, but the text is no less natural than it is cultural, it is no less biological than it is spiritual (or mental), it is no less material than it is historical. That is, the subject is not merely and ineluctably the social-historical-economic construct of an age (at the peak of modernity, a rational autonomous subject; in a post-industrial and global world, a highly adaptable, flexible, and disciplined subject). Instead, the subject can resist hopeless determinism by virtue of a dialectic inscribed at the heart of her own origination. So Malabou is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in that she affirms inventionalism, and in so doing, she is able to transcend the limit of deconstruction –différance—with “plasticity.”

말라부는 어떻게 탈구축을 '따라가고' 있을까요? 실제로 그녀는 데리다와의 연계[affiliation]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그녀 또한 텍스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텍스트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흔쾌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징표에 의해, 그녀는 자신의 철학에 헤겔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긍정[확언]합니다. 그녀는 헤겔에게서 자신의 철학의 중심이 되는 개념인 유연성[plasticity, 가소성可塑性] 개념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즉, 주체는 유연적인 것이며(신축자재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원래 형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주체는 주변으로 떠내려가기 쉬운 것이기는 하지만, 주체로부터 바깥으로 뛰쳐나오거나, 스스로를 새로 만들고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텍스트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텍스트는 자연의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의 것, 생물학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것(혹은 심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라기보다 역사적인 것이게 됩니다. 즉, 주체는, 피할 수 없게, 어떤 시대의 사회-역사-경제적인 구축물(모더니티의 절정에서는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주체, 포스트산업화・전지구적 세계화에서는 고도로 순응적이고, 유순하고 규율 잡힌 주체)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체는 꼼짝할 수 없는 결정론에 대해, 그녀의 독창성의 중심에 명기銘記된 어떤 변증법 덕분에 저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부가 탈구축의 "추종자"인 것은, 그녀가 ≪창발주의[주]를 긍정하고, 그 위에서 그 긍정에 의해 탈구축(≪차연)의 한계를 '유연성[가소성]'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입니다. 

[창발주의] inventionism인데, 영어에서는 emergentism으로 통용된다. 창발은 복잡계의 용어인데, 여기서는 구조의 구성요소로 구조가 환원된다는 것이(환원주의) 아니라, 구성요소가 구조의 형태를 바꿔간다는 정도의 이해로 아래 인터뷰를 읽으면 될 것이다



But even this oxymoronic characterization of Malabou as a “follower” of Derrida and Hegel is improper; to be fair, one could add that she is also a “follower” of neurobiology and neuroscience. She will claim that the subject is a neuronal subject, and, in agreement with recent neuroscientific research, that such a subject is plastic; she will claim that capitalistic society mirrors the neuronal organization of the brain, and that the brain mirrors capitalistic society in that both are de-centralized and highly adaptable and flexible; she will anchor the origin of the self in a biologically determined brain. At the same time, however, she will also be aware of the reductionistic tendencies of scientific discourse to deny its own ideological paradigm and to bracket out the genius of plasticity: the neuronal subject is docile, pliable, and adaptable, but, she emphasizes, it is also capable of resistance and rebellion. And so the program of Malabou’s philosophy, unlike that of much of typical philosophy of mind and neuroscience, is not about promoting a capitalistic ideological paradigm by seeking ways to enhance the docile and disciplined neuronal subject; instead, it is about inciting us to take charge of our own brain, of our own subjectivity, and thereby, of our society. We can do this, not by denying that there is continuity between our brain and our thoughts, between the neuronal and the mental, between the natural and the cultural, but by recognizing that this continuity is not without contradiction, by recognizing that the passage from the neuronal to the mental is the site of contestation whereby freedom is established precisely because the brain is naturally plastic.

 그러나 말라부를 데리다와 헤겔의 '추종자'라고 보는 이런 모순어법[자가당착]적인 규정도 부적합합니다. 공평을 기한다면, 그녀가 신경생물학과 신경과학의 '추종자'이기도 하다고 덧붙일 수 있을 테죠. 그녀는 주체가 뉴런적 주체라고, 그리고 최근의 신경과학연구에 보조를 맞추면서 그런 주체가 유연적[가소적]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또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가 뇌의 뉴런적 조직화를 [거울처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뇌와 자본주의 사회 둘 다 탈-중심화되어 있고 고도로 적응적이며 유연(flexible)하다는 점에서 뇌가 자본주의 사회를 베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녀는 자기(the self)의 기원을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뇌에 정박시킬 겁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는 과학적 담론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하는, 그리고 유연성[가소성]의 진수(genius)를 괄호치려고 하는 과학적 담론의 환원주의적 경향들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즉, 뉴런적 주체는 유순하고 고분고분하고 적응적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뉴런적 주체가 또한 저항과 반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말라부 철학의 프로그램은, 마음과 신경과학의 전형적인[틀에 박힌] 철학의 대다수의 프로그램과는 달리, 유순하고 규율 잡힌 뉴런적 주체를 증강시키는 길을 찾아냄으로써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을 홍보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말라부 철학의 프로그램은 우리 자신의 뇌를,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그에 따라 우리 사회를 떠맡아 책임지도록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와 사고, 뉴런적인 것과 심적인(mental) 것,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이런 연속성이 모순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뉴런적인 것에서 심적인 것으로의 이행이 논박의 장소라는 것을, 따라서 뇌가 본디 가소적[유연적]이기 때문에 자유가 수립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이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The interview was conducted at Professor Malabou’s apartment in Paris in July 2007.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Professor Malabou for her hospitality and to Carissa Devine for her assistance with the transcription.

 이 인터뷰는 2007년 7월, 파리에 있는 말라부 교수의 아파트에서 이뤄졌습니다. 말라부 교수의 환대에 대해, 그리고 대담을 글로 옮기는 것을 거들어준 카리사 데빈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Noëlle Vahanian : You are a philosopher, professor of philosophy, author of the Future of Hegel, Counterpath, Le Change Heidegger, Que faire de notre cerveau?. You were a close student of the late Jacques Derrida. But you’re not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for that, of course, would go against deconstruction itself. How did you come to be a philosopher, and how did you come to work with Derrida?

노엘 바하니안 : 당신은 철학자이며 철학교수이고, 『헤겔의 미래』, 『샛길』, 『하이데거 변화(Le Change Heidegger)』『우리의 뇌를 어찌할까(Que faire de notre cerveau?)』의 저서도 있죠? 당신은 후기 자크 데리다의 가까운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탈구축의 추종자가 아닙니다. 그 때문에 물론 탈구축 자체에 반대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철학자가 됐고 어떻게 데리다와 작업하게 됐습니까?

   

Catherine Malabou : I think the way I became a philosopher and the way I happened to work with Derrida are about the same thing. I would say that I wasn’t a philosopher before I met him. I used to be just a student in philosophy, and things really started when I met him. At the same time, you’re right, I wouldn’t define myself as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unless we define the word to follow, what “to follow” means. The issue of “following” constitutes one of the leading threads of Derrida’s book The Post Card. 1 In this book, Derrida undermines the classical order of filiation: first comes the father, then the son or the daughter. He undermines this order and shows that “to follow” may sometimes (or perhaps always) means “to precede.” Let us think of this extraordinary postcard showing Socrates writing under Plato’s dictation: “I have not yet recovered from this revelatory catastrophe: Plato behind Socrates. Me, I always knew it, and they did too, those two I mean. What a couple. Socrates turns his back to Plato, who has made him write whatever he wanted while pretending to receive it from him” (12).

카트린 말라부 : 저는 제가 철학자가 된 방식도, 데리다와 우연히 작업을 하게 된 방식도 똑같은 것에 관해서[똑같은 것]라고 생각합니다. 데리다와 만나기 전에 저는 철학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저 철학을 하는 한 명의 학생일 뿐이었고, 제가 그와 만났을 때 모든 것이 실제로 시작됐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제 자신을 탈구축의 추종자라고 정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신 말이 옳습니다. 우리가 추종하다라는 단어를, '따라간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정의하지 않는 한에서는 말입니다. '따라가기[추종하기]'라는 쟁점은 데리다의 책인 『우편엽서 : 소크라테스에서 프로이트와 그 너머로(The Post Card: From Socrates to Freud and Beyond)』의 안내실 중 하나를 구성합니다. 이 책에서 데리다는 부자관계[filiation]라는 고전적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오고, 그 다음에는 아들이나 딸이 오죠. 그는 이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따라간다[추종하기]'가 때로 (혹은 아마 항상) '앞선다'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구술하고 있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받아 적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비범한 우편엽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나는 아직 소크라테스의 뒤에 플라톤이 있다는 계시적인 파국으로부터 회복되지 못했다. 나는 말하자면, 그것을 항상 알았고, 그들도 알았습니다, 네, 두 사람 모두가 말이죠. 커플인거죠.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에게 ≪등≫을 돌리고[플라톤의 배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자신이 원한 것은 무엇이든 소크라테스더러 적게 만들면서도 마치 소크라테스에게서 받아 적고 있는 척하고 있는 겁니다."(12)

Then if to follow does not always mean to come after, or to imitate or to copy, if following implies a certain dimension of anticipation, then in this case, I would accept to define myself as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그렇다면 따라간다[추종한다]라는 것이 반드시 뒤에서 따라간다는 것, 모방하거나 복제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따라간다는 것이 뭔지 모르게 선취[anticipation]의 차원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조건이라면, 제 자신을 탈구축의 추종자라고 정의하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겁니다.[주]

[주] 앞에서도 나온 용어와 관련된 것인데, filiation이 아니라 affiliation이라면 수용한다는 뜻이다. 이 두 개념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등에서 비평 용어로 사용했다. 

      derrida socrates plat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NV: Derrida once said in a film interview something to the effect that no philosopher could be his mother. I am paraphrasing here. He hoped that deconstruction would change or disrupt the patriarchal alignment of philosophy, reason, and thought. And this being the case, a philosopher could, if I am remembering correctly, perhaps be his daughter. So what would the philosopher look like, think like, write like who could be your mother as opposed to you father?

NV : 데리다는 언젠가 영화 인터뷰에서 그 어떤 철학자도 자신의 어머니일 수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데리다의 말을 쉽고 고쳐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탈구축이 철학, 이성, 그리고 사유의 부권적인 동맹관계를 바꾸기를, 혹은 파열시키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이기에,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한 철학자는 아마 철학자의 딸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철학자는 어떤 인물일까요? 어떤 것을 생각할까요? 어떤 것을 쓸까요? 그 철학자는 당신의 아버지와 대립하는 어머니일 수 있을까요?[주]

[주] 데리다와 말라부의 관계를 은근히 물어보고 있는 것 같다. 


CM: A mother-like philosopher would of course be a figure of exclusion. As you know, I’ve always worked on major philosophers, who occupy a central position in history of metaphysics (as well as in its deconstruction). A mother philosopher would on the contrary come from a secluded site, a repressed locus. Such a maternity, if there is one, implies that exists a mode of transmission, of inheritance, of genealogy which exceeds the traditional definitions of these terms within the history of philosophy. Which exceeds also, by the same token,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the mother. The woman philosopher who says the most accurate things on this point is no doubt Luce Irigaray when she shows that the mother is traditionally seen as “matter” or “materiality” as opposed to “form”. 

CM : 물론 어머니 같은 철학자는 배제의 한 형상[a figure]일 테죠. 아시다시피 저는 항상 중요한 철학자들에 관해 작업했습니다. 그들은 형이상학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그 탈구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머니인 철학자는 차단된[남들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은] 장소, 억압된 현장[locus]에서 유래했을 겁니다. 그런 모성은, 만일 이런 게 있다면 하는 얘깁니다만, 전달[전승]의 양식, 상속의 양식, 계보[유전]의 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런 양식은 철학사 내부에서 [이뤄진] 이런 용어들에 관한 전통적 정의를 초과합니다. 또한, 똑같은 징표에 의해, 어머니에 대한 전통적 이해도 초과합니다. 이 점에 관해 가장 날카로운 것을 말한 여성 철학자는 틀림없이 뤼스 이리가레입니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어머니가 '형상'과 대립되는 '질료', 혹은 '물질성'으로 간주된다고 보여주니까요. 

She in fact thinks the feminine as what is excluded by this binary opposition itself, as what also exceeds such an opposition. In Bodies that Matter, Judith Butler writes: “Irigaray’s task is to reconcile neither the form/matter distinction nor the distinctions between bodies and souls (…). Rather, her effort is to show that these binary oppositions are formulated through the exclusion of a field of disruptive possibilities. (…) Irigaray’s intervention in the history of the form/matter distinction underscores ‘matter’ as the site at which the feminine is excluded from philosophical binaries” (35). 2

 사실 그녀는 여성적인 것이 이런 이항대립 그 자체에 의해 배제된다고, 또한 이런 대립관계를 초과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질료인 신체』(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 (Routledge Classics))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이렇게 씁니다. "이리가레의 과제는 형상/질료의 구별을 화해시키는 것도, 신체와 혼의 구별을 화해시키는 것도 아니다. ... 오히려 그녀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이런 이항대립이 파열적 가능성들의 장의 배제를[방해가 될 가능성들이 있는 분야를 배제하는 것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형상/질료의 구별의 역사에 대한 이리가레의 개입은, 여성적인 것이 철학적 이항성으로부터 배제되는 장소로서의 '질료'를 강조한다"(35). 

My mother philosopher would then certainly belong to this “constitutive outside” or to this excessive materiality.

 그래서 저의 어머니 철학자는 이런 "구성적 외부", 혹은 초과적 물질성에 확실히 속할 겁니다.  



NV: With that in mind, does your philosophy envision a kind of subjectivity that allows a legitimate philosophical voice to a woman?

NV: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당신의 철학은 여성에게 정당한 철학적 목소리를 허용하는 일종의 주체성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인가요?


CM: The problem is that there is no “essence” of feminity. This statement is something on which most women philosophers or writers agree (Beauvoir, Kristeva, Wittig, Butler…). The excessive materiality I just mentioned cannot be said to be something, otherwise it wouldn’t be able to transgress the limits of ontology. It is then somehow impossible to create or imagine what a “femininephilosophical” subjectivity might be…

 CM:문제는 여성성의 '본질'이라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진술은 대부분의 여성 철학자나 저술가들(보봐르, 크리스테바, 위티그, 버틀러 ...)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방금 언급한 초과적 물질성은 어떤 것이라고[무엇인가로서 ≪존재한다≫고] 말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존재론의 한계를 위반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튼 "여성적-철학적" 주체성일 수도 있을 것을 창조하거나 상상하는 것은 다소 불가능합니다.  


NV: Why not? 

NV : 왜 불가능할까요?


CM: Again, an ontology of the feminine would no doubt bear all the symptoms of the traditional ontology — that is, an exclusion of the feminine itself. As we know, the discourse of and on property, propriety or subjectivity is precisely the discourse which has excluded women from the domain of Being (and perhaps even of beings). I will refer to Irigaray again on this point : “Woman neither is nor has an essence.”

CM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성적인 것의 존재론은 전통적인 존재론의 모든 징후를 틀림없이 담지할 것입니다. 즉, 여성적인 것 그 자체의 배제입니다. 알다시피, 재산, 예절, 주체성의 담론 및 이것들에 대한 담론은, <존재>의 (아마 심지어 존재자들의) 영역으로부터 여성들을 배제한 담론 바로 그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또 다시 이리가레를 언급할 것입니다. "여성은 본질도 아니고 본질을 가진 것도 아니다."

At the same time, Heidegger’s definition of the subject as Da-sein, that is, an instance which is neither man nor woman, but Da-sein, or Es, as in the German neutral gender, is not quite satisfactory either. It would still be too ontologically rigid to characterize the feminine. Woman has no essence, but that doesn’t mean that woman is neutral either. I refer to Derrida’s decisive analysis concerning the motif of gender in Heidegger (Geschlecht, in Psyché).3

 이와 동시에, 주체를 ≪현-존재[거기-있음]≫라고 한 하이데거의 정의, 즉 여성도 남성도 아닌 심급이 있는데요, 독일어의 중성어인 ≪현-존재≫든 ≪에스[이드]≫이든, 꽤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현존재≫는 여전히 존재론적으로 너무 경직된 것이기에, 여성적인 것을 특징지을 수 없습니다. 여성에게는 본질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중성적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하이데거에게서의 젠더의 모티프에 관한 데리다의 결정적인 분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주]

[주] Jacques Derrida, “Geschlecht: Sexual Différence, Ontological Différence,” trans. Ruben Berezdivin, Research in Phenomenology, vol. 13, 1983, pp.65-83.


NV : When you write philosophically though, especially about what it means to be a subject or an individual, do you think that this is representative of what you understand is a feminine voice, or a feminine philosophical voice? Or is it representative of what some men might say is a feminine philosophical voice?

NV:당신이 철학적으로 글을 쓸 때, 특히 주체나 개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쓸 때, 당신은 당신이 이해한 것이 여성의 목소리, 혹은 철학적인[철학에 있어서의]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몇몇 남자들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 철학적인[철학에 있어서의]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시나요?    


CM: I wish to say a word about my own conception of the matter/form problem in relation to the feminine. If we consider, as I do too, that the feminine is a kind of materiality which is produced as the outside of the matter/form opposition, then a feminine philosophical voice may be heard either from within this opposition (as what has always been repressed in it), or from a total exteriority. As we know, Irigaray made up her mind to mime the philosophical tone as well as the philosophical rationality in her writings. This mimicry was supposed to be a way of subverting the metaphysical discourse. I myself chose to settle my thinking at the very heart of this discourse, to dwell within it. This a very classical way of doing, and there is nothing original in this gesture.

CM : 여성적인 것과 관련된 질료/형상 문제에 관한 제 자신의 개념화[이해]에 관해 조금 말하고 싶네요. 만일 우리가, 아니 저도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여성적인 것이 질료/형상이라는 [이항] 대립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산출되는 일종의 물질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철학적인[철학에 있어서의] 여성의 목소리는 이런 대립 내부로부터 (이런 대립 안에서 항상 억압되어 있던 것으로서) 들리거나, 아니면 전적인 외부성[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성]으로부터 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알다시피, 이리가레는 철학의 어조[기저]를, 철학적 합리성을 자신의 저술에서 ≪몸짓으로 흉내 내기로≫(mime) 마음을 먹었습니다[굳게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런 흉내 내기[의태, 擬態]는 형이상학적 담론을 전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꼽히는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은 제 사고를 바로 이 담론의 핵심부 자체에 정착시키자고, 그 내부에 거주하자[자리 잡고 살자]고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고전적인 행동 방식으로, 이런 몸짓에는 독창적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That said, I am investing the concept of plasticity which, in Hegel, means less the interplay between matter and form than the interplay between form and itself, t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form and form. In the Phenomenology of SpiritHegel show that the subject is plastic in the sense that she or he is able to receive form (passivity) and to give form (activity). I certainly do not intend to show that these modes of being of the subject represent the masculine/feminine relationship. I am interested in showing that this relationship between form and itself is not founded on a difference. The two modes of being of the subject are not different from one another, but each of them transforms itself into the other. With plasticity, we are not facing a pre-given difference, but a process of metamorphosis. In other words, the Hegelian subjects trans-subjects itself constantly. Its form is its matter.

 제가 유연성[가소성] 개념에 내기를 걸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 그것은 헤겔에 있어서는 질료와 형상의 상호작용이라기보다도 형상과 형상 그 자체의 상호작용, 즉 형상과 형상의 관계입니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증명한 것은, 주체는 유연적[가소적]이라는 것입니다만, 그것이 유연적[가소적]인 것은 그/녀가 형상을 받아들일(수동성) 수 있고 또한 형상을 줄(능동성) 수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이런 주체의 존재양식이 남성/여성 사이의 관계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흥미를 갖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이 형상과 형상 자체 사이의 관계가 어떤 ≪차이≫에 정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두 개의 주체의 존재양식은 서로 상이한 것이 아닙니다만, 한 쪽은 자신의 형상을 다른 쪽의 형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유연성[가소성]에 의해, 우리는 주어진 차이에 마주대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 변성의 과정에 마주대하는 것입니다. 즉, 헤겔의 주체는 끊임없이 그 자체로 관-주체들≫입니다. 주체의 형상은 그 질료입니다. 

We know that Deleuze’s very strong critique of Hegel lays a foundation on the fact that dialectics is a logic which supersedes difference. According to Deleuze, the sublation of difference by contradiction amounts to an erasure of nondialectical differential relationships. Working on plasticity allows me to present an other version of the superseding of difference. To give up difference may mean that “difference” is not the right word to characteriz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modes of being of the subject.

 아시다시피, 헤겔에 대한 들뢰즈의 통렬한 비판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변증법이 차이를 없애는 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들뢰즈가 생각한 바에 따르면, 모순에 의해 차이가 없어지게 되면, 변증법과는 무관한 차이에 의한 관계를 말소해버리게 됩니다. 유연성[가소성]에 매달리고 있는 저라면, 차이를 대신하는 다른 안을 제시할 겁니다. 차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두 개의 주체의 존재양식 사이의 관계를 특징짓는 데 '차이'는 적절한 말이 아니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If we relate this inadequacy of difference to the gender binary problem, then we may state that the concept of “sexual difference” is not accurate. I would like to turn towards Foucault on this point. In The Hermeneutics of the subject,4 he insists upon what he calls the process of transsubjectivation (214), which consists in a trajectory within the self. This transsubjectivation doesn’t mean that you become different from what you used to be, nor that you are able to absorb the other’s difference, but that you open a space within yourself between two forms of yourself. That you oppose two forms of yourself within yourself.

 이런 차이의 부적절함을 젠더를 둘러싼 이원론적 문제로 끌어들인다면, '성적 차이'의 개념은 엄밀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여기서는 푸코로 화제를 바꾸고 싶습니다. 『주체의 해석학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81-1982』[주]에서, 푸코는 이른바 '관주체화[초월론적 주체화, transsubjectivation]'의 과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14). 그것은 자기의 ≪내부에 있는≫ [주체화의] 궤적에 그 본질이 있습니다. 이 관주체화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차이≫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관주체화란 자기의 내부에서 두 개의 자기의 형태 사이에 [차이가 아니라] 여백(a space)을 여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내부에서 당신의[당신이 취하는] 두 가지 형태입니다. 

[주] Michel Foucault, The Hermeneutics of the Subject, New York: Picador, 2004.

Foucault writes: “Clear a space around the self and do not let yourself be carried away and distracted by all the sounds, faces, and people around you. (…) All your attention should be concentrated on this trajectory from self to self. Presence of self to self, precisely on account of the distance still remaining between self and self (…)” (222-223). This transsubjectivation, conceived as a journey within oneself, is the product of a transformation. Foucault underscores the Greek word ethopoiein: “Ethopoiein means making ethos, producing ethos, changing, transforming ethos, the individual’s way of being, his mode of existence” (237).

 푸코는 이렇게 씁니다. "자기의 주위에 여백을 열고주위를 둘러싼 모든 소리들, 얼굴들, 당신을 에워싼 사람들에 휩쓸려가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라. 자기에게서 자기에 이르는 이러한 궤적에 온통 집중해야 한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현전(presence)에. 다름 아닌 자기와 자기 사이에 아직 남아 있을 거리에 기인하는 현전에."(222-23) 자기 내부에서의 여행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관주체화변형의 산물입니다. 푸코는 그리스어 에토포이에인(ethopoiein)을 강조합니다. "Ethopoien은 에토스를 만들기, 에토스를 생산하기, 에토스를 바꾸기, 변형하기, 개인의 존재 방식, 개인의 실존 양식을 바꾸고 변형하는 것이다."(237)

There would then be a kind of transformation which would sublate the difference between the self and itself, which would create, produce a new self as a result of the opposition between two forms at work in the self.

 그렇다면 자기와 자기 사이에 있는 [심적] 차이를 지양할지도 모르는 일종의 변형, 즉 자기의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두 가지 형식들 사이의 대립의 결과로서 새로운 자기를 창출하거나 생산하는 일종의 변형도 있을 수 있죠. 

Plasticity might be the name of this transsubjectivation. We would find in Hegel the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dialectics as a process of “ethopoiein.” A plastic subject would be able to transform its way of being. This plastic ontology implies of course a plasticity of gender itself.

 유연성[가소성]이란 이 관주체화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헤겔에게서 변증법을 'ethopoiein'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유연적[가소적]인 주체는 그 존재방식을 변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유연적[가소적]인 존재론은 당연히 젠더 자체의 유연성[가소성]을 내포합니다. 

Such is my interpretation of the relationship matter/form in Hegel.

이런 게 헤겔에게서 질료/형상 관계에 대한 제 해석입니다. 


NV: Did you ever run into prejudice?

 NV : 지금까지 편견에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까?

CM: Yes. It started very early when I was a student in what we call in France “les classes préparatoires,” and I was preparing for the Ecole Normale Supérieure. My teacher said, you will never succeed because you’re a woman. I have been told that philosophy was a masculine domain or field. And, ever since, I am always introduced in reference to deconstruction, even today, even if it is at a distance with deconstruction or by the question of my being a student of Derrida. People associate my name to a man’s name all the time, I am thought of as a specialist of Hegel or as a specialist of Derrida; I’m never myself.

CM : 있습니다. 아주 일찍이 시작됐는데요, 제가 프랑스에서 말하는 '입시준비반' 학생이었을 때입니다. 저는 고등사범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 담임교사가 얘기하더군요, 너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야, 네가 여자니까. 저는 철학이 남성의 영역이나 장이라는 얘기를 계속 들었죠. 그 이후에도 저는 탈구축을 참조할 때 항상 소개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설령 제가 얘기하는 것이 탈구축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혹은 제가 데리다의 학생이었다는 것에 대해 질문받을 때도 그래요. 사람들은 제 이름을 언제나 한 남자의 이름에 연결시켜 버립니다. 저는 헤겔 전문가나 데리다 전문가로 생각되는 거예요. 저는 결코 제 자신이 아닌 거죠. 

I would like to add that I suffer greatly from social exclusion. I am still a Maître de conférences in Paris (and not a full professor even if I have written much more than all my colleagues). I do not find any support in the United States either and I discovered that the so called “feminine” or “feminist community” was a myth.

덧붙이고 싶은데요, 저는 사회적 배제 때문에 몹시 괴롭습니다. 저는 파리에서 아직도 조교수를 하고 있어요(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썼을 썼다고 해도 정교수가 아닌 겁니다). 저는 미국에서 전혀 지지를 찾지[도움을 얻지] 못했고, 이른바 '여성적' 혹은 '여성주의적 공동체'는 신화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NV: Let’s move on to that concept of plasticity, if you will, because it does have a prominent place in your work. Can you explain what it entails, what is its origin?

NV : 괜찮으시다면 유연성[가소성, plasticity] 개념으로 옮겨갈까요? 이 개념이 당신의 작업에서 두드러진 장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그 기원은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CM: I found it for the first time in Hegel. He uses it when he defines subjectivity in the preface to the Phenomenology of Spirit. The subject is not supple and soft, and it is not rigid either; it is something in between. The subject is “plastic.” Plastic, if you look in the dictionary, means the quality of a matter, which is at the same time fluid but also resisting. Once formed, it cannot go back to its previous state. For example, when the sculptor is working on the marble, the marble, once sculpted, cannot be brought back to its original state. So, plasticity is a very interesting concept because it means, at once, both openness to all kinds of influences, and resistance.

CM : 저는 이 개념을 헤겔에게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는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주체성을 정의할 때 이 개념을 사용합니다. 주체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것도 아니고, 딱딱한 것도 아니다, 주체는 이것들 사이에 있는 무엇인가이다. 주체는 '유연적[가소적]'입니다. 유연적[가소적]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질(matter)의 질을 뜻합니다만, 어떤 질이냐면, 유동적(fluid)인 동시에 저항하는(resisting) 질입니다. 일단 형태를 얻으면[형성되면], 물질은 이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조각가가 대리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칩시다. 일단 조각되면 대리석은 원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연성[가소성]이 아주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이 개념이 모든 종류의 영향에 열려 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저항을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NV : The notion of plasticity has its origin in Hegel, but it is also a corruption of Hegel. And you achieve this corruption through the incorporation of neurobiology into your philosophy. Could you tell me why this interest in neurobiology, what does it offer?

NV : 유연성[가소성]이라는 통념은 헤겔에게서 기원합니다만, 그것은 헤겔의 변형곡해(corruption)이기도 하죠. 그리고 당신은 신경생물학을 당신의 철학에 체내화함으로써 이 변형곡해를 얻습니다. 신경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이유,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제공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CM: “Plasticity” is not a corruption of Hegel. It may be the locus for a thought of transsubjectivation, as I said previously, but it is not a corruption. Neurobiology and Hegelian philosophy may seem very remote at first sight. In fact, the concept of “plasticity,” which plays a major role within both of them, has the same meaning: it characterizes a certain kind of organization, the system’s one. Between the system of absolute knowledge or of absolute subjectivity in Hegel and the nervous system in neurobiology, the difference is not so dramatic. It is the same mode of being, the same functioning, the same economy. I allow myself to refer on that point to my book What Should We Do With Our Brains? (translation of Que faire de notre cerveau? (Paris: Bayard, 2004), by Sebastian Rand - Forthcoming from Fordham). In this book, I am insisting upon the community between different kinds of systematic plastic organizations.

CM: "유연성[가소성]"은 헤겔의 변형곡해가 아닙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유연성[가소성]은 관주체화를 사고하기 위한 자리일 수도 있지만, 이 개념은 곡해가 아닙니다. 신경생물학과 헤겔 철학은 언뜻 보기에 멀리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가소성" 개념은 이 두 연구 영역에서 주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똑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가소성 개념은 어떤 종류의 조직화를 특징짓습니다. ≪시스템의≫ 가소성인 것입니다. 헤겔에게서의 절대지나 절대적 주체성의 시스템과 신경생물학에서의 신경 시스템 사이의 차이는 그리 극적인[요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똑같은 존재양식, 똑같은 기능, 똑같은 에코노미인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제 책인 『우리의 뇌를 어떻게 할까』를 참조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 책에서 상이한 종류의 시스템적인 가소적인 조직화들 사이에 공동성(community)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It is also clear that neurobiology today offers a new perspective on subjectivity. Continental philosophers have always despised this field. They say: “No. It doesn’t concern us. It’s for analytical philosophers. It’s for Anglo-American philosophers.” Even Derrida has very harsh words against it. He says that the concept of “promise” is alien to neurobiology, which can only be concerned by the notion of “program.” This opposition between promise and program has to be deconstructed, because it marks the limits of deconstruction itself.

그리고 이것도 분명한데요, 오늘날의 신경생물학은 주체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전망]을 제공합니다. 대륙 철학자들은 항상 이 영역을 경멸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죠. "아니. 그것은 우리와 상관없다. 그것은 분석철학자들의 관심사이다. 앵글로-미국의 철학자들의 관심사이다." 데리다조차 이 영역에 대해 매우 가혹한 말을 쏟아 냈어요. 그가 말하기를 "약속" 개념[주]은 신경생물학에 생소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은 "프로그램"이라는 통념에만 관심을 둘 뿐이라고요. 약속과 프로그램의 이런 대립은 탈구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탈구축 자체의 한계점을 표시하는(mark) 것이니까.

[주] 가장 유명한 것은 데리다와 썰의 논쟁일 것이다. '사실 확인적'(constative)과 '행위 수행적'(performative)을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썰에 반박하면서 데리다가 일례로 꼽고 있는 것이 '약속'이다. '맹세합니다'의 언명에는, 맹세하고 있는 사실을 단순히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입밖에 냄으로써 맹세하는 행위도 동거하고 있다. 


NV: So you think that deconstruction would be resistant or closed to neurobiology or neuroscience?

NV : 그럼 탈구축은 신경생물학이나 신경과학에 저항하거나 닫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CM: There was a time when continental philosophers or psychoanalysts were right to fight against a hard reductionist tendency which at work in neurosciences in general. Neurobiology was a field that was completely unto itself and refractory to continental theory, structuralism, and post-structuralism. But about fifty years ago, things totally changed. I would like to refer here to scientists like Mark Solms, Oliver Sacks, Antonio Damasio, Eric Kandel… In his preface to Mark Solms’ and Oliver Turnbull’s The Brain and the Inner World, An Introduction to the Neuroscience of Subjective Experience, Oliver Sacks reminds us that according to Solms, psychoanalysis would have been for Freud a “moment of transition” (Solms’s first book, coedited with Michael Saling, was entitledMoment of Transition : Two Neuroscientific Articles by Sigmund Freud): “The reason for this was the very inadequate state of neurological (and physiological) at the time, not any turning against neurological explanation in principle. Freud knew that any attempt to bring together psychoanalysis and neurology would be premature (…). Neurology itself had to evolve, from a mechanical science that thought in terms of fixed ‘functions’ and centers, a sort of successor of phrenology, through much more sophisticated clinical approaches and deeper understandings, to a more dynamic analysis of neurological difficulties in terms of functional systems, often distributed widely through the brain and in constant interaction with each other.” (viii). Further, Neurology has now “entered the age of subtility.” Sacks adds that “Solm’s approach, then, is a double one: to make the most detailed neuropsychological examination of patients with brain damage and then to submit them to a model psychoanalysis, and, in so doing, hopefully, (…) to bring the mechanisms of the brain and the inner world of the patient together” (ix).

CM : 대륙 철학자들이나 정신분석가들이 신경과학 일반에 작동하는 견고한 환원주의적 경향과 싸우는 것이 옳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신경생물학은 완전히 자폐적이었으며, 대륙철학의 이론,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로도 다루기 힘든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50년 정도 전에 사태는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기서 Mark Solms, Oliver Sacks, Antonio Damasio, Eric Kandel 같은 과학자들을 언급하고 싶네요. Mark Solms과 Oliver Sacks의 『뇌와 내부 세계 : 주관적 경험의 신경과학 입문(The Brain and the Inner World, An Introduction to the Neuroscience of Subjective Experience)』의 서문에서 Oliver Sacks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상기시킵니다. 즉, Solms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에게 "이행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Solms의 첫 번째 책이자 Michael Saling과 공동 편집한 책의 제목은 『이행의 순간 :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쓴 두 개의 신경과학 논문(A Moment of Transition:Two Neuroscientific Articles by Sigmund Freud)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신경학적(그리고 생리학적) [설명에는] 매우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신경생물학적 설명에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과 신경학을 한데 묶으려는 여하한 시도도 시기상조임을 알았던 것이다. ... 신경학은 자력으로 기계론적 과학에서 벗어나고 진보해야 한다. '기능'과 중심 같은 틀에 박힌 말을 사용한 사상, 골상학의 후계 학문 같은 것에서 벗어나, 임상적 접근법을 더욱 더 세련되게 하고, 논리적 사고력을 더욱 깊게 하고, 종종 뇌에 널리 분포하며 항상 서로 작용을 가하는 기능들의 시스템에 비추어 보았을 경우에 신경학적인 아포리아가 되는 것을 더 역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viii) 게다가 신경학은 이제 "미시(微視, subtility)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Sacks는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Solms의 접근법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는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즉,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를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신경 정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그래서 그 성과를 모델이 되는 정신분석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 뇌의 메커니즘들과 환자의 내면 세계를 통합할 수 있다."(ix)

   A Moment of Transition: Two Neuroscientific Articles by Sigmund Freud by [Freud, Sigmund]

It is then very difficult to criticize such an open definition of neurology. Besides, many of the advocates of the “neuro-psychoanalytical” trend acknowledge a philosophical tradition in order to do what they’re doing. For example, Damasio’s famous books like Descartes’ Error or Looking For Spinoza very explicitly claim to belong somehow to the continental philosophical tradition. I think that Derrida didn’t have time to become really conscious of that.

그렇다면 신경학에 관한 이런 열린 정의를 비판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신경-정신분석적" 조류의 주창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철학적 전통을 승인합니다[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다마지오의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스피노자의 뇌(Looking For Spinoza) 같은 유명한 책들은, 아무튼 대륙철학의 전통에 얼마간 속해 있다고 아주 명확하게 주장합니다. 저는 데리다가 그런 것을 실제로 의식할 수 있게 될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Once again, the difference Derrida used to make between the program and the promise is a distinction in which we can’t believe anymore. A machine—and I think that Pascal was the first to say this—can also promise. You remember this passage in Pascal’s Pensées when somebody says, “Yes, but what if I don’t believe in God?” And Pascal answers “You just have to kneel down and mechanically repeat your prayer, and God will come:” that’s the promise inside the machine. You can’t really draw a line between the mechanical and the messianic. This is also what is very interesting in the brain, and in the computer: somebody like Daniel Dennett now shows that a computer may be said to be plastic.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데리다가 프로그램과 약속 사이에서 만든 차이는 우리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구별입니다. 기계 ―― 이렇게 말한 것은 파스칼이 처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팡세』의 이 구절을 기억하실 겁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죠. "그래요, 하지만 제가 신을 믿지 않는다면요?" 파스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저 무릎을 꿇고 기계적으로 기도의 말을 반복하라. 그러면 신이 찾아올 것이다." 이것이 기계 안에 있는[기계에 내장된] 약속입니다. 기계적인 것과 메시아적인 것 사이에 실제로 선을 그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또한 뇌에서의, 그리고 컴퓨터에서의 아주 흥미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같은 이들은 컴퓨터가 가소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NV: For the sake of those who are not familiar with your recent work on the brain, when you distinguish the blind brain from the Freudian unconscious, why is this important? Doesn’t the notion of a biologically determined unconscious—the blind brain— as opposed to a Freudian, imaginary unconscious, threaten the subject’s freedom by foreshadowing a certain natural determinism?

NV : 뇌에 관한 당신의 최근 작업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여쭙는데요], 맹목적인 뇌(the blind brain)를 프로이트적 무의식으로부터 구별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프로이트적인, 상상적인 무의식에 대립된 것으로서의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무의식이라는 통념 ―― 맹목적인 뇌 ―― 은 어떤 자연적[본성적] 결정론을 예고함으로써[전조가 됨으로써] 주체의 자유를 위협하는 게 아닐까요? 


CM: This was a very important discovery that the brain wasn’t entirely determined. Some anatomic structures of the brain are, of course, genetically programmed, but a significant part of the neural organization is open to outside influences and develop itself consequently to these influences or interactions. It means an important part in the structure of your brain depends on the way you’re living and on your experience. History is inscribed within the biological. That is what “plastic” means when applied to the brain.

CM : 뇌가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뇌의 해부학적 구조들 중 몇몇은 물론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으나, 신경 조직[화]의 중요한 부분은 외부의 영향에 열려 있으며 이런 영향이나 상호작용으로 결과적으로 발전됩니다. 이것은 뇌의 구조에서 중요한 부분이 살아가는 방식에, 경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역사는 생물학적인 것의 내부에 기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뇌에 응용됐을 때 '가소적'이 뜻하는 바입니다. 


NV: Please describe your latest work on Freud?

NV : 프로이트에 관한 당신의 최근 작업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CM: The French title of my latest work is Les nouveaux blessés. I think it would need a little bit of translation. Perhaps “the new injuries,” or “new wounds” (rather than “the new wounded” or the Newly Wounded?). So let’s call it The New Wounds. It’s about the kind of injuries or wounds or brain damage that psychoanalysis never took into account. It’s a reflection on brain lesion or pathology (Alzheimer’s or Parkinson’s disease) but also on trauma in general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all kinds of what I call “social-political” traumas). To what extent neurology today helps us to enlarge the Freudian conception of the trauma and of the psychic suffering: such is the issue. It seems that in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Freud fails to define what might exceed the pleasure principle, what this “beyond” may exactly mean. Neurological traumas go beyond this principle, and discover something that has nothing to do with pleasure, but with every kind of serious trauma. This book is a reflection on those wounds that love and hatred or internal conflict simply cannot explain.

CM : 최근작의 프랑스어 제목은 Les nouveaux blessés입니다. 약간 번역을 해야겠네요. ("새로운 상처입은 자들"이나 "새로운 부상을 입은 자들"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상처들", "새롭게 부상들"이랄까요? 그래서 『새로운 부상을 입은 자들』(The New Wounded : From Neurosis to Brain Damage(Forms of Living)이라고 부릅시다. 정신분석이 결코 설명하지 못한 것이 상처들이나 부상들, 뇌 손상 같은 것입니다. 그것[제 책]은 뇌 병변이나 뇌 병리학(알츠하이머 병이나 파킨슨 병)에 관한 성찰일 뿐 아니라 트라우마 일반(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제가 "사회-정치적" 트라우마라고 제가 부르는 모든 종류의 것)에 관한 성찰입니다. 어떤 한도에서 오늘날 신경학은 트라우마와 심적 고통에 관한 프로이트적 개념화를 우리가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까요? 『쾌락원리를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쾌락원리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 이 '너머'가 정확하게 의미할 것을 정의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경학적 트라우마는 이 원리를 넘어서며, 쾌락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나 중증 트라우마의 모든 종류와 관계가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합니다. 이 책은 사랑과 증오, 혹은 내적 갈등이 설명할 수 없는 상처입은 것에 관한 성찰입니다. 


NV: So, the wounds of trauma are material wounds rather than merely psychic?

NV : 그려면 트라우마의 상처는 단순히 심적인 상처라기보다는 물질적인 상처인가요?

CM: If we are able to admit that the difference between “material” and “psychic” is very thin and even perhaps non-existing, if we agree on the absurdity of regarding the brain and the psyche as too separate and distinct instances, then we will have moved forward a great deal…

CM : "물질적"과 "심적"의 차이가 매우 얕고 심지어 실존하지 않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즉 뇌와 심적인 것을 너무 동떨어지고 너무 판명하게 나눠진 심급으로 보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면, 진전된 것이 될까요, 대단히....

We know today that every kind of serious shock--it may be a wound on the battlefield, a shell shock, but it also can be domestic trauma or moral abuse without any physical injury--we know that every kind of serious trauma causes destruction in what is now called the ‘emotional brain,’ which is located in the frontal cortex. This material destruction obviously and undoubtedly implies psychic alterations or modifications. It’s the end of the frontier, the borderline between psychic diseases as such and neurological diseases.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종류의 중증 충격, 음,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 전쟁 신경증(shell shock)도 그렇지만, 신체적인 부상이 전혀 없는 가정 내의 트라우마나도덕적 학대[예의범절을 가르친다면 행해지는 학대, moral abuse]일 수도 있는데요, 그러한 모든 종류의 중증 트라우마는 전두엽에 위치한 "감정적인 뇌"라고 요새 부르는 것의 내부에 파괴를 야기하지요. 이 물질적인 파괴에 의해, 누가 봐도 분명할 정도로, 마음의 일부가 바뀌거나 혹은 마음이 돌변하게 됩니다. 마음의 병과 신경학적인 병 사이의 프런티어, 경계선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NV: Fascinating.

NV: 재미있네요. 

CM: Fascinating, true. I’ve read many interesting books on military psychiatry. It’s very interesting that what happens with Vietnam vets or people who go in Iraq today, or what happens on the battlefield, but also, when you’re a hostage, or you’re caught in a bomb attack, or when you’re quietly at home and suddenly there is a gas explosion, for example, that what happens in all kinds of apparently different situations has a common point, which is the shock as such, and the way it alters your psyche.

CM : 재미 있어요, 정말. 저는 군대의 정신요법에 관한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매우 재미 있는데요, 베트남의 퇴역 군인에게 일어나는 것이나, 지금 이라크에 간 군인들, 즉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인질이 됐을 때, 폭격을 받았을 때, 예를 들어 집에 있다가 갑자기 가스 폭발이 일어났을 때, 뭐 그런 모든 외관상 상이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에도 공통점이 있어요. 이것들은 다르게 보여도 똑같은 충격이며, 똑같이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NV: Perhaps going back or linking this to the concept of plasticity again, or even going back to what you said about finding hope or promise in the program; how does neuroscience or this concept of plasticity, how do they help you to rethink the dynamics of subjectivity such that the singular individual isn’t always already under erasure, but is produced and affirmed instead; is made public without contradiction, without alienation, without being lost to the public realm. Or are this loss and conflict inevitable?

NV : 어쩌면 가소성 개념으로 얘기를 되돌리는 게 될지도 모르고, 그것은 뇌 손상 얘기와 연결될지도 모르고, 프로그램 속에 희망 또는 약속이 있다는 같은 이야기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경과학, 가소성의 개념, 그런 일은 어떻게 주체성의 역학을 재고하는 데 기여할까요? 즉, 특이한[단독적인] 개인(the singular indivisual)은 항상 이미 말소 아래에[말소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고 확인되고 있는, 즉 모순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공적 영역에 운산 무소하지 않고 단독적 개인이 공적인 개인이 된다는 얘기죠. 그렇지 않다면 단독의 개인의 상실, 또는 그것과 공적인 개인의 갈등은 불가피할까요?

CM: Reading neurological or neurobiological books helped me to become aware of a certain change in the philosophical thought of death. A transformation of the Heideggerian notion of “being-toward-death” in particular. Heidegger says that death is at every moment possible. Neurobiologists make us conscious of the fact that my own metamorphosis after brain damage is at every moment possible; there is something like a break of the subject which is not death, which is another kind of possibility. To be destroyed as a subject when you suffer from a concussion, for example, means that you become someone else. The possibility of becoming someone else at every moment and for everybody equally--for even if we know that certain people are more likely to be the victims of such damage, we also know that everybody may undergo this kind of destruction at any moment--this possibility alters how we conceive of the subject. The fact of being mortal is one thing, and the fact of being plastic means being able to be totally transformed and become somebody else. For example, Damasio will say of one of his patients: “Elliot was no longer Elliot.” So, subjectivity must be confronted to the risk of the loss of itself at every moment, and this loss is not death; it is something different.

CM : 신경학, 신경생물학 책을 읽은 덕분에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에 약간 변화가 있음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특히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을-향한-존재"(being-toward-death)의 관념의 모양이 변했습니다(A transformation). 하이데거가 말하기를, 죽음은 모든 계기에 가능한(possible) 것입니다. 신경생물학이 우리에게 의식시키는 것은 뇌에 손상을 입고 나 자신의 형태변성(metamorphosis)이 모든 계기에 일어날 수 있다(possible)는 사실입니다. 즉 주체의 파손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른 식의 ≪가능성≫(possibility)입니다. 예를 들면 뇌에 충격을 입고 하나의 주체로서 손상을 겪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딴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계기에 있어서 딴사람이 될 가능성, 그것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그렇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만약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이러한 손상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어떤 계기에서도 이러한 손상을 남에게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기도 하죠. 그러면 이 가능성에 의해 우리의 주체의 사고방식도 달라집니다. 죽어야 할 존재라는 사실과 별도로, 유연한[가소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한 존재가 되어 딴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마지오라면, 자신의 환자 중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엘리엇은 더 이상 엘리엇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주체성이 모든 계기에 스스로를 상실할 리스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 상실은 죽음이 아닙니다. 뭔가가 다릅니다. 


NV: Frightening.

NV : 끔찍하네요. 

CM: It is very frightening, yes. But at the same time, because we don’t want to get prepared for it, we’re always disarmed when someone we know suffers from Alzheimer’s or any kind of disease. We don’t know what to do, yet this is a constant existential possibility: Kafka’s Metamorphosis, it’s something like that when you become, when you wake up as somebody different. This, then, is according to me the great metaphysical teaching of neurobiology today: not to consider brain damage as an isolated possibility, rare things that happen in hospitals, but to consider them as a constant possibility.

CM : 네, 너무 끔찍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에 대비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알츠하이머 등의 병을 앓을 것이라고 알 경우에도, 우리는 언제나 무방비한 거예요. 음,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이것은 부단한 실존적 가능성입니다. 카프카의 『변신』 등이 좋은 예입니다. 딴사람이 되는 것, 다른 누군가로서 아침에 깨어나는 거죠. 제가 보기에, 이것은 으늘날 신경생물학의 중대한 형이상학적 교훈입니다. 뇌 손상을 [자신과는 무관한] 고립된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일어나는 드문 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a constant possibility)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NV: Since you broached the subject of this constant existential possibility, let me ask what is the self?

NV : 이 부단한 실존적 가능성을 지닌 주체 얘기가 나왔으니까, 자기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CM: The self? This is a very interesting question because there is a total redefinition of the self. Damasio, for example, says that the self is at the same time everything and nothing. It is the elementary process of self-dialogue: “How are you doing?” “I’m alright.” “How are you doing?” “I’m alright”--like the beating of the heart. It is the self-information of the vital processes, life itself, the very elementary dialogue between the body and the soul. And this very fragile instance may at every moment be modified or wounded. And while this is a selfdialogue, at the same time, as I said to start with, this self-dialogue doesn’t reflect itself. It is not a speculative instance, because there is no mirroring of it. You can’t see it really. It cannot see itself.

CM : 자기요?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완전히 재정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다마지오는 자기는 모든 것인 동시에 무라고 말합니다. 자기와 대화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 "잘 있었나?" "잘 지냈어" "잘 있었나?" "잘 지냈어" 같은, 심장 박동 같은 거죠. 그런 것이 삶의 다양한 과정을, 자기의 형태를 통해서 아는 것(self-information), 즉 신체와 영혼의 사이의 극히 초보적인 대화입니다. 모든 계기에, 이 덧없는 대화의 심급은 변용하거나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대화인 한편으로, 동시에 이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말씀드렸듯이, 자기-대화는 자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변적 심급이 아닙니다[주: 실존적 심급이라는 의미]. 자기를 거울상으로서 비출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는 자기를 볼 수는 없습니다. 자기는 자기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NV: And what do you make of this reading of the self offered by Damasio--is this a good thing?

NV : 그러면 다마지오가 제공한 이런 식의 자아 독해에서 무엇을 끌어냅니까? 이것은 좋은 건가요?

CM: Well, it’s deconstruction inscribed within us. It is the biological deconstruction of subjectivity. In this sense, it is what you call “a good thing”.

CM : 네, 즉 우리의 내부에 기입된 탈구축입니다. 주체성의 생물학적 탈구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당신 말대로 "좋은 것"입니다.


NV: Say it again in other words maybe. What then constitutes the self? Is there a true singular identity or subjectivity? Or, is the self always a public phenomenon?

NV : 아마 달리 말하는 게 되겠지만, [다시 한번 부탁 드립니다.] 그럼 무엇이 자기를 구성하고 있나요? 참된 특이한 정체성이나 주체성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란 언제든지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CM: Of course the general process of self-information is common to everybody, so in this sense it is a universal structure. But, if we take for granted that at the same time the way your brain builds itself it departs from this structure, on the ground of this structure, then auto-affection, the way we keep ourselves informed about ourselves, is always individual. It’s impossible to draw a line between universal and singular here, you know. There is a common structure, but at the same time the way it takes place in you and the way it takes place in me is not the same. The self is clearly not a substance.

CM : 물론 자기의 형태에 의해 자기를 아는(self-information) 일반적인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자기는 보편적인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뇌는 자기를 창조하면서 이 보편적인 구조를 빠져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렇다면 보편적인 구조를 기초로 한 자기-변용(auto-affection), 즉 우리가 자기의 형태를 자기에 대해서 알리는(informed) 방식은 언제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보편과 단독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이곳에서는 무리죠. 공통의 구조는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구조가 발생하는 방법은 저와 당신에게 똑같지 않습니다. 자기는 실체가 전혀 없습니다.


NV: Can you say something about the relationship of the individual to the public realm? 

NV :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영역과의 관계에 대해서 뭔가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CM: The most recent and current research in neurobiology reveals a new kind of brain organization that may work as a model to understand all kinds of organization today: society, for example. On this point, I’m very close to what Žizek tries to think when he says that he’s looking for a new materialism, which implies this concept of society as a whole, as a closed totality without any kind of transcendence. That is also something he develops in The Parallax View in particular.

CM : 신경생물학에서의 최신이자 주류의 연구가 드러내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뇌 구조인데요, 그것은 모든 오늘의 유기적 조직체, 음, 예를 들어 사회인데요, 그런 것을 이해하는 데 모델로서 작동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지젝이 생각하려고 하는 것에 매우 가깝네요. 그는 새로운 유물론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유물론은 그 한 가지로, 어떤 초월도 아니며 폐쇄적인 전체성으로서의 사회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에서 그가 전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네요.

I don’t believe in transcendence at all. I don’t believe in something like the absolute Other, or in any kind of transcendence or openness to the other. So in this sense, as a Hegelian, I am quite convinced with Žizek that we’re living in some kind of closed organizational structure, and that society is the main closed structure. But at the same time, this structure is plastic. So it means that inside of it, we have all kinds of possibilities to wiggle and escape from the rigidity of the structure. What happens in the brain is the paradigm to figure out what happens in society as such. We are living in a neuronic social organization. And I’m not the only one to say it. The neuronic has become the paradigm to think what the social is, to think society and social relationships. So it is clearly a closed organization; if by closed we understand without transcendence, without any exit to the absolute Other. But, at the same time, this closed structure is not contrary to freedom or any kind of personal achievements or resistance. So I think that in such a structure, all individuals have their part to play.

나는 초월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적인 타자 같은 것, 어떤 초월, 타자에게 털어놓기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즉, 헤겔주의자로서의 제가 지젝과 함께 확신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모종의, 폐쇄적인 유기조직체적 구조 속에 살고 있고, 사회는 주요한 폐쇄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구조는 가소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구조의 내부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 구조가 지닌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온갖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뇌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런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범형입니다. 우리는 뉴런처럼 조성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만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뉴런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회와 사회적 관계를 생각하는 범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문의 여지없이, 사회라는 것은 닫힌 유기체입니다. 이 때, "닫힌"을 초월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에 이르는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닫힌 구조가 자유, 모든 개인의 하는 것, 저항 같은 것에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구조 속에 있는 개개인 모두에게는 각각의 배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NV: You speak of this neuronal structure; what if I said there is no hors-texte?

NV : 뉴런적 구조 얘기인데요, ≪텍스트의 외부≫(hors-texte)는 없다고 해도 괜찮나요?

CM: Yes and no. In Derrida, there is no hors-texte, and at the same time, there is something, in this very thought, like an outside. A totally open space. That of the “utterly other”, or of the “arrivant absolu”.

CM : 없는 동시에 있습니다. 데리다의 경우 ≪텍스트의 외부≫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데리다의 사상에는 외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전체로서 열린 공간이. 전적인 타자(utterly other), 혹은 "절대적인 도래자"(arrivant absolu)의 공간이.


NV: With this in mind, both this notion for you of neuronal structure and there is no hors-texte, how would you respond to those critics who see in deconstruction the end of political agency? Some people might ask how this sort of totality does not lead to quietism or relativism? Or what would you say to those for whom this closed structure must be opened up by way of a soteriological gesture of love and desire for a radical, unforseeable other? Or, how would you address those who might view this closed, albeit plastic, structure as a new kind of fundamentalism?

NV : 그러면 즉, 당신이 말하는 뉴런적 구조의 관념과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둔 경우, 탈구축에 정치적인 행위[자유](political agency)의 종언을 보는 비평가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답변합니까? 이런 종류의 전체성['텍스트의 외부는 없다', 뉴런적 폐쇄 구조를 가리킴]이 수수 방관의 태도, 혹은 상대주의로는 이어지지 않을까, 의문을 품은 사람도 있겠죠? 근원적이고 예견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나 욕망 같은 구원론적인 몸짓(a soteriological gesture)이 이러한 폐쇄 구조를 틀림없이 열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합니까? 혹은, 비록 가소적이긴 해도 닫힌 구조를 새로운 종류의 원리주의로 보는 듯한 사람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얘기하나요?

CM: Well, we have to admit that there is no alternative to capitalism; this is something that is, I think, inescapable today. So we clearly live in the absence of an alternative if we compare our situation with the one of our fathers fifty or sixty years ago. It’s very different because we can’t work out a different social or economical model. So it’s very likely that we have to stay inside capitalism. Does it imply fundamentalism? I don’t think so because although the general structure is given and unchangeable as such in that it cannot be transformed into another model, although we take for granted that the form is given, that the structure is given, once and for all--which seems to be true with capitalism--at the same time, all moves within this form are allowed. For example, if you consider today, capitalism in the USA and in Europe, and capitalism in the Far East, like in China, if you take into account that the most achieved form of capitalism occurs in a Marxist country, then you discover that capitalism is multiple. And I think that when people say that they’re afraid of China, what they’re afraid of is to see that a Marxist country is able to demonstrate what capitalism is to us. But this may help us to think how a single form is able to differentiate itself almost infinitely. I think that we can use the little gaps within the form--the way in which the same form is not always the same--to build resistance. I am very influenced by structuralism, here. What I mean is akin to what Lévi-Strauss says with respect to the various ways in which gods are represented; from country to country, you always find the same pattern, but inside of this general frame, you also find many little differences which forbid us to consider the structure as the same. So the sameness is the difference. I know this is very abstract, but from this general pattern we can evolve toward much more concrete social determinations.

CM : 글쎄요, 자본주의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제 생각에 오늘날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분명히 대안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50-60년 전 아버지들의 세대가 처한 상황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지금과 그 때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가 상이한 사회적 혹은 경제적 모델을 산출할[가다듬어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자본주의 내부에 머물러야 있어야만 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근본주의를 내포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일반적 구조[자본주의]를 다른 모델로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 구조는 주어져 있고 바꿀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형태가 주어진 것, 이 구조가 주어진 것임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음, 그것은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정말이겠죠, 그래도,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형태 내부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현대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미국의 자본주의, 유럽의 자본주의, 극동의 자본주의, 글쎄요, 중국이 좋을까요, 맑스주의 국가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자본주의는 여럿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게다가 중국이 무섭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하는 힘이 맑스주의 국가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단일한 형태가 그 자체를 무한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차이화하는 방법을 사고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동일한 형태가 줄곧 동일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에서 판단하면요, 우리는 형태의 내부에 있는 작은 간극을 이용해서 저항을 조립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프랑스에서 구조주의로부터 상당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제 얘기는 신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상되는 것에 대해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국가는 달라도, 같은 패턴에 언제나 만나겠지만, 일반적인 수준에 있는 틀 내부에서는 구조와 구조가 동일하다고는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와도 만날 꺼에요. 그래서 동일성은 차이이기도 합니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패턴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더욱 더 구체적인 사회를 결정하는 사물로 향해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NV: Can we establish a hierarchy of values? What does this do for ethics?

NV : 가치의 위계를 수립할 수 있을까요? 이 얘기는 윤리와 어떻게 관련될까요?

CM: Well, it’s true that it clearly opposes Lévinas’ vision of ethics as defined by some radical other. It seems that a genuine ethical vision of the social implies a kind of openness to change, and if we understand by change the way in which the other is susceptible to come at any moment. On the contrary, my definition of structure might seem very violent. And it’s true that it is very close to the Hegelian one, and we know that it implies fight and struggle and everything.

CM : 글쎄요, 제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모종의 근본적 타자에 의해 정의된 레비나스의 윤리관과 대립하는 것은 틀림없겠죠. 사회적인 것의 진정으로 윤리적 비전은 변화에 대한 일종의 개방성을 내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변화를 타자가 어떤 순간에든 도래하기 쉬울 수 있는[도래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구조에 대한 제 정의는 매우 폭력적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정의가 헤겔적 정의와 매우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며, 우리는 이것이 싸움, 투쟁, 그리고 모든 것을 내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But, at the same time, it also implies that in this kind of structure, everybody is equal to everybody; and to be responsible for the other allows you to do something for him. If you read Lévinas closely, sometimes he seems to say, and Derrida says the same thing, that the other is so remote that it is impossible to act in his or her place. You can’t decide for him or her. For example if you have a child, or it is his or her decision, there’s nothing I can do for him and for her. This is the way in which this ethical vision is not so pure. The other is so remote that it creates a sort of loneliness of the other as such. My vision of things is much more based on reciprocal and mutual relationships. I think that you can do something for the other, and sometimes I’m not bothered to know that I can act in your place if you’re not able to do so yourself. You know, I don’t feel guilty because sometimes I’ll say my son will do this. So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conceptions relies on a sort of horizontal schema. Lévinas was very much against the Heideggerian notion of Mitsein, the fact of being with the other. He says that’s not ethical. I’m not so sure. I like this idea of being with the other.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것은 이런 종류의 구조에서 만인은 만인과 평등하다는 것도 내포합니다. 그리고 타자에 대해 책임을 가진다는 것은 여러분이 타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신이 레비나스를 매우 꼼꼼하게 읽으면, 때때로 그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데리다가 말하는 것이 똑같게 보이겠지만, 타자가 너무도 멀어져 있기에 타자[그 혹은 그녀]의 장소에서 행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타자[그 혹은 그녀]를 위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면, 혹은 그것이 그 혹은 그녀의 결단이고, 제가 그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업습니다[당신이 아이를 갖고 있다면, 아니 [아이를 갖겠다는 것이] 그 혹은 그녀의 결단이라면, 제가 그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런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윤리적 비판은 그렇게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타자는 너무 멀어져 있기에 그것은 일종의 타자의 외로움 자체를 창출합니다. 사물에 대한 제 비전은 호혜적이고 상호적인 관계에 훨씬 더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타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당신이 당신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제가 당신의 자리에서 [대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때때로 제 아들이 이것을 할 것이라고 제가 말할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두 개의 [윤리] 개념화는 일종의 수평적인 도식(horizontal schema[수평적 관계를 규정하는 도식])에 달려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Mitsein이라는 통념, 타자와 함께 있음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타자와 함께 있음이라는 관념을 좋아합니다. 


NV: There’s a notion of reciprocity there.

NV : 거기에는 호혜성의 통념이 있죠. 

CM: Yes, and also of course the old problem of recognition and of reciprocity in recognition. And I think that if there should be an ethical value, the notion of recognition would be the one for me, and, of course, this notion implies fight and struggle.

CM :  그렇습니다. 게다가 물론 인정과 인정에 있어서의 호혜성이라는 오래된 문제도 있죠. 그리고 생각건대, 윤리적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면, 인정이라는 통념이 제게 윤리적인 것이 되겠죠. 물론 이 통념은 싸움과 투쟁을 포함합니다.


NV: Very good. So no radical Other?

NV : 그렇군요. 그러면 근원적인 <타자>는 없다?

CM: No, unless you admit that you can be readily other to yourself. As when I was talking about brain damage.

CM : 없어요.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쉽사리 타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에서라면 별개이지만. 제가 뇌 손상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처럼 말이죠.


NV: So this is frightening.

NV : 그래서 뇌의 손상은 무서운 것이죠.

CM: This is monstrous.

CM : 터무니 없는 거죠.


NV: This is monstrous, yes. Well, incidentally, in the United States, there are some theological moves toward claiming a radical other who’s not omnipotent but weak. I am thinking of Gianni Vattimo, John Caputo, Catherine Keller. This notion of the weakening of being or something like that could be frightening as well. Weak because the claim to power leads to visions of this world that are apocalyptic, for instance, or violent visions. Weak because, people say, this is the only world, and so, if this is the kingdom, we have here a realization of God, of the weakness of God. So, I think that in that notion you have an attempt to say that this is it; this world is it. It’s a notion that does away with transcendence. This is it. And yet that notion for some might hold a kind of promise, however impossible or unforeseeable.

NV : 네, 터무니 없죠. 그럼 얘기를 대충 바꿔서, 미국 얘기인데요, 전능이 아니라 약한 근원적 타자를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신학적 동향이 몇 가지 있죠. 잔니 바티모, 존 카푸토, 캐서린 켈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관념, 존재가 약해져가고 있다는 것도 무서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약하다는 것은, 힘(power)을 추구한다는 것이, 예를 들어 묵시록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되는 현세의 비전(visions)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죠. 약하다는 것은 듣기에는, 이것이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것이 유일한 왕국이라면, 현세에서 신을, 신의 약함을 깨달았으니까(have a realization)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관념을 믿는 사람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세상에서 충분하다, 라고 어떻게든 타이르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초월을 멀리하는 관념입니다. 바로 이제 충분하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 덕분에 아무리 불가능한 혹은 예측할 수 없더라도, 모종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도 있겠지요.

CM: And here we have messianism?

CM : 여기에 메시아주의가 있다는 겁니까?


NV: Yes, well something like that. So you’re more of a pragmatist.

NV : 네 그렇습니다,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좀 더 실용주의적(pragmatist)예요.

CM: I think so, yes.

CM : 네, 실용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NV: Which brings us back to the earlier discussion about determinism and materialism.

NV : 이것은 우리를 결정론과 [지젝이 제창하고 있는 새로운] 유물론의 논의로 되돌아가게 하는군요.

CM: I believe in determinism to a certain extent because I believe that the structure is given once and for all. And when you read Marx you know that determinism is inescapable. But, I believe in dialectics, and it’s true to me that Hegel was right to say that freedom was always a struggle between determinism and its opposite. There’s no pure freedom and no pure determinism; they’re always sort of a negative transformation of both of their mutual relations. And that’s what plasticity’s about.

CM : 나는 어떤 한도에서는[적당하게] 결정론을 믿어요 왜냐하면, 구조는 한번 주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게다가 맑스를 읽으면 결정론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증법을 믿고 있으며, 자유는 줄곧 결정론과 그 대립물의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한 헤겔은 옳았다는 것이 제 본심입니다. 순수한 자유도 순수한 결정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도 결정론도 언제든지 양자의 상호 관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형태를 바꾸어 갈 수밖에 없는 운동(a negative transformation) 같은 것입니다.그리고 가소성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것입니다.


NV: To conclude our discussion then, tell me a bit about what you anticipate for the future.

NV : 그러면 논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당신이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있는 것을 조금 말씀해 주세요. 

CM: I’m very curious to know what will happen in China. I’m very fascinated by this conjunction of Marxism and capitalism. So I’m sure that one day or the other we’ll know more about the kind of achievement of social freedom-- well, so called social freedom and individual achievement--in liberalism. This is the first organization in my vision of the future. What will happen? Second, I am very curious about what will happen in the neurological field. I’m sure that there will be many more discoveries that will change the vision we have of ourselves. And third, I think that philosophy will be totally transformed by these two: economical and political promise on the one hand, and on the other, this new way of defining subjectivity. So I’m not really optimistic, but at the same time I’m very excited by what happens today.

CM : 저는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무지무지 알고 싶습니다. 맑스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합에 매우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속에서, 사회적 의미에서의 자유의 달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글쎄요, 사회적 의미에서의 자유와 개인적 성취 같은 것일까요,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말한다면 말이죠. 이것은 미래에 대한 제 비전에 있는 첫번째 조직화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둘째로, 신경생물학의 장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 많은 발견이 있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품고 있는 [미래의] 비전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저는 철학이 앞의 두 가지에 의해 전적으로 변형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약속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주체성을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실제로는 낙관주의적이지 않으나, 동시에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매우 설레고 있습니다. 


CATHERINE MALABOU is Maître de conférences at the University of Paris X-Nanterre. Her publications in English include The Future of Hegel (Routledge, 2004), Counterpath (with Jacques Derrid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4), What Should We Do With Our Brains? (forthcoming from Fordham University Press in 2008) and Plasticity at the Eve of Writing (forthcoming from Columbia University Press). Her latest book in French is Les nouveaux blessés: De Freud à la neurologie: penser les traumatismes contemporains (Bayard, 2007).

NOËLLE VAHANIAN is Assistant Professor of Religion and Philosophy at Lebanon Valley College. She is the author of Language, Desire, and Theology: A Geneology of the Will to Speak (Routledge,2003). She has been contributing to the JCRT since April 2000.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현대예술과 미학의 정치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pp.31-50.


저는 감각의 공동체라는 문구를 몇몇 공통의 감정에 의해 형성된 집단성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구를 사물이나 실천을 똑같은 의미 아래에서 묶어내는 가시성과 이해 가능성의 틀[프레임]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어떤 감각을 형성하는 것 말입니다. 감각의 공동체는 가시성의 실천들, 형태들과 이해 가능성의 패턴들을 함께 묶는 공간과 시간을 오려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오려내기와 이런 연결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고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무수한 기술의 산물들이 가시성의 특정한[종별적] 형태로 파악되는 한에서(이 형태는 이런 기술들을 공통에 집어넣으며, 이런 연결로부터 공동체의 특정한[종별적] 의미를 틀짓습니다), 예술이 존재합니다. 인류는 수천년 동안 조각가, 댄서, 음악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단수이자 대문자 예술자체를 알게 된 것은 고작 2세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공간의 어떤 분할로 알려졌습니다. 먼저 예술은 회화, , 멜로디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극장, 기념물, 혹은 박물관 같은 어떤 공간적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예술에 관한 논의는 노동의 비교가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논의들은 모두 공간화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 그림을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뿌려진 아이템들의 잡동사니나 조각을 대신해 비디오 모니터들을 설치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 논의는 그림의 프레임이 전달하는 현전의 의미에 관한 것이자 그 자리를 대신하는 스크린이 전달하는 부재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그 논의는 벽이나 바닥, 프레임이나 스크린에서의 사물들의 분배를 다룹니다. 그것은 하나의 공간설정과 다른 공간설정, 혹은 현전과 부재 사이의 그런 변동에서 관건인 공통적인 것의 의미를 다룹니다.

물질적인 분할은 언제나 동시에 상징적인 분할이기도 합니다. 극장이나 미술관[박물관]은 주어진 어떤 것과 주어지지 않은 어떤 것 사이의 공존과 양립 가능성의 형태들을 형성합니다. 이것들은 가시적인 것과 이해 가능한 것 사이의, 혹은 공동체의 형태들이기도 한 현전과 부재 사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또한 그 공간에서 세워진 공동체의 의미와 다른 경험 영역들에서 틀지어진 공동체의 다른 의미 사이의 공동체의 형태들을 형성합니다. 예술과 정치공동체들(polities) 사이의 관계는 의미의 두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예술과 정치가,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관해 우리가 논의해야만 하는 두 개의 영구적인 리얼리티들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예술과 정치는 둘 중 어떤 것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공통적인 것의 우발적인 배치입니다. [대문자] 예술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듯이(비록 항상 음악, 조각, 춤 등등이 있겠지만), 정치공동체들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비록 항상 권력과 합의의 형태들이 있겠지만). 정치는 의미의 특정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그것은 인간 군집의 다른 형태들에 대한 불화적 대체보충으로서, 대상과 주체의, 자리와 정체성들의, 공간과 시간의, 가시성과 의미의 논쟁적 재분배로서 존재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미적[감성적] 활동(aesthetic activity)’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때의 미적 활동은 국가 권력이 집합적 예술작품에 체내화incorporation되는 것, 발터 벤야민이 정치의 심미화(aestheticization)라고 불렀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감각적인 것의 두 가지 나눔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두 용어가 그 자체로 동일시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예술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술은 가시성의 실천, 형태와 이해 가능성의 패턴들을 함께 묶는 특정한 식별 체제 내에서 식별되어야만 합니다. 예술이 그 체제 아래에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이 식별 체제는 하나의 이름을 갖습니다. 2세기 동안 그것은 미학이라고 불렸습니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더 정확하게는 정치의 미학과 미학의 정치 사이의 관계입니다. 미학의 정치라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앞의 질문에 의존합니다. ,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는가?

미학이라는 이 용어는 어떤 종류의 의미의 공동체를 정의할까요? 이 화두에 관해서는 저명한 주인 서사(master narrative)가 있습니다. 그 주인 서사에 따르면,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으로 알려진 미학은 자율성의 영역의 구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술작품들이 다른 경험 영역들에는 이질적인 제 나름의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계에서 예술작품들은 형식, , 혹은 진리에서 매체에 이르기까지 타당성(validity)의 내적 규범에 의해 가치 평가됩니다. 이로부터 예술의 정치성에 관해 다양한 결론들이 끌려나올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술작품들은 순수 미의 세계를 형성하며, 이것은 아무런 정치적 관련성(relevance)도 갖고 있지 않다. 둘째, 예술작품들은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설정된 의미의 공동체들이라는 공상적인 꿈을 키우면서 일종의 이상적 공동체를 틀짓는다. 셋째, 예술작품들은 제 나름의 영역에서 근대적 기획의 핵심에 있는 것이자 민주적 혹은 혁명적 정치들에서 추구되는 것과 똑같은 자율성을 성취한다.

이런 서사에 따르면, 예술, 자율성, 근대성 사이의 식별(identification)20세기의 지난 몇 십년 동안 붕괴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삶과 상품문화의 새로운 형태들이, 제작·재생산·의사소통의 새로운 테크닉들과 더불어, 예술적 제작과 테크놀로지적 복제, 자율적 예술작품과 상품문화의 형태,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경계선을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붕괴했습니다. 경계선을 이렇게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미학의 종언에 해당되어야만 합니다. 그 종언은 예를 들어 80년대에 핼 포스터(Hal Foster)가 편집한 반미학(현대미학사, 2002)이라는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중요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쓴 미술관의 폐허에 관하여(On the Museum’s Ruins)라는 논문도 있습니다. 여기서 폐허가 된 미술관은 앙드레 말로의 벽 없는 미술관(museum without walls)’을 가리킵니다. 크림프는 말로의 미술관에서 사진이 이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분석에 의존해 논증을 펼칩니다. 한편으로, ‘벽 없는 미술관은 사진 복제에 의해서만 가능해졌습니다. 사진만이 카메오[바탕색과 다른 색깔로 보통 사람의 얼굴을 양각한 장신구]가 원형 그림과 돋을새김 무늬의 다음 페이지에 자리를 잡게 해줍니다Photography alone allowed a cameo to take up residence on the page next to a painted tondo and a sculpted relief[사진술에 의한 재생에 의해서 카메오’[보석이나 조가비 등에 새기는 양각]는 색칠한 톤도’[원형 그림]와 조각한 부조의 다음 페이지에 자리잡게 된다, 92]. 혹은 사진만이 말로가 앤트워프에 있는 루벤스의 디테일을 로마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디테일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진은 예술의 정신을 현전시킴으로써 작품의 경험성을 대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불행하게도 크림프는 말로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로는 책의 끝부분에서 사진이 더 이상 예술작품의 복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로는 미술관의 동질성을 구성했던 동질화하는 장치를 그 이질성으로 다시 던져버렸습니다. 미술관의 핵심부에서 이질성이 재수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감춰진 비밀은 열림 속에서 전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몇 년 후에 했던 것입니다. 라우센버그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Rokeby Venus를 모기와 트럭 그림을 담은 캔버스의 표면에다, 혹은 헬리콥터 무리나 물기둥에다, 혹은 심지어 조지 워싱턴의 동상의 꼭대기와 자동차 열쇠에다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라우센버그의 모든 작품의 표면 위로 미술관이 퍼져나갔습니다. 말로의 꿈은 라우센버그의 농담이 되었습니다. 약간 충격적인[골치 아픈] 것은 라우센버그 자신이 분명히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으며 «인간»의 의식이라는 보고(寶庫, treasury)에 대한 말로의 케케묵은 구식 믿음을 도리어 긍정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Just a bit disturbing was the fact that Rauschenberg himself apparently did not get the joke and affirmed, in turn, Malraux's old-fashioned faith in the treasury of the conscience of Man.

 

<벨라스케스, Rokeby Venus>


<Robert Rauschenberg: Persimmon, 1964.

크림프의 글에 수록된 도판>


<Robert Rauschenberg: Break-Through, 1964.

크림프의 글에 수록된 도판>



저는 우리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방해[교란, 골치 아픔disturbance]에 대해 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논증이 증명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만일 말로의 꿈이 라우센버그의 농담이 될 수 있다면, 왜 그 반대는 안 될까요? , 라우센버그의 농담은 말로의 꿈이 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런 역전turnaround은 몇 년 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 80년대 말에, 저명한 우상파괴자이자 영화감독인 장-뤽 고다르는 포스트모던적 실천의 원형을 격찬했으며, 모든 것을 아무거나와 혼합했습니다. 그가 영화의 역사()에서 했던 것은 말로의 종이 미술관의 정확한 등가물이었습니다.

요점을 말하겠습니다. , ‘상상의 미술관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미술관이 동질성(homogeneity)과 등가를 이루는 것이라고, 미술관이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함에 바쳐진 사원이라고 여러분이 우선 가정할 때에만 그 모순은 포스트모던적 단절에 대한 증언입니다. 둘째, 이와 반대로 사진은 이질성(heterogeneity)을 뜻한다고, 사진은 무한한 복제의 사소함triviality[무한한 복제가 사소한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 모순은 포스트모던적 단절에 대한 증언입니다. 셋째, 사진만이 우리가 카메오를, 스키타이식 명판(Scythian plaques), 미켈란젤로를 똑같은 페이지에 집어넣고 Rokeby Venus를 자동차 열쇠나 급수탑(water tower)과 더불어 캔버스에 놓을 수 있게 해준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렇습니다. 만일 이 세 진술이 참이라고 입증된다면, 여러분은 사진술을 통한 상상의 미술관의 실현이 미술관 자체의 붕괴를 뜻한다고, 이런 실현이란 미학적 동질성을 산산조각 내는 이질성의 승리를 표시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점들이 모두 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우선 미술관이 동질성을 뜻한다는 것을, 미술관이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함과 아우라적 고독에 바쳐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이 아우라적 고독이 19세기와 20세기에 예술관을 길러냈다는 것을 어찌 알까요? 이 문제를 고급 [대문자] ‘예술에 대한 최고의 찬양의 시대인 대략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 봅시다. 그 당시에 헤겔의 제자들은 그의 미학강의를 출판했습니다. 동시에 프랑스에서는 <마가쟁 피토레스크> 같은 대중잡지들이 세계 예술의 보물들을 더 넓은 독자층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석판인쇄술에 의한 복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동시에 오노레 드 발자크는 그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소설 야생 나귀 가죽(The Wild Ass’s Skin)을 출판했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인 라파엘은 골동품 상점의 전시실에 들어가는데, 그가 본 것은 이런 것입니다.


악어, 원숭이, 배가 잔뜩 부른 보아뱀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것들은 조각된 반신상에 막 달려들고 옻칠한 제품을 쫓아다니거나 샹들리에로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Jaquetot 부인이 나폴레옹을 그려 넣은 세브르의 꽃병은 세소스트리스[Sesostris, 그리스 전설에서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집트 제12왕조의 왕]에게 바친 스핑크스 옆에 세워져 있었다. 라투르는 드 바리 부인을 머리 위에 별이 있고 벌거벗은 채 구름에 감싸여 있는 것으로 그렸는데, 인디언의 긴 담뱃대를 욕정에 휩싸여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같았다. 위풍당당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눈앞에 공기 기계가 쑥 내밀어졌다. 평생 동안 무감각한 잉글랜드 부시장과 네덜란드 시장의 몇몇 초상화들은 이토록 엄청나게 많은 골동품들에 굴하지 않고, 이것들을 냉담하고 탐탁찮게 쳐다봤다.

Crocodiles, apes and stuffed boas grinned at stained glass-windows, seemed to be about to snap at carved busts, to be running after lacquer-ware or to be clambering up chandeliers. A Sevres vase on which Madame Jaquetot had painted Napoleon was standing next to a sphinx dedicated to Sesostris.... Madame du Barry painted by Latour, with a star on her head, nude and enveloped in cloud, seemed to be concupiscently contemplating an Indian chibouk. . . . A pneumatic machine was poking out the eye of the Emperor Augustus, who remained majestic and unmoved. Several portraits of aldermen and Dutch burgomasters, insensible now as during their life-time, rose above this chaos of antiques and cast a cold and disapproving glance at them.'1


이 서술은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s을 완벽하게 예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서술은 상점과 미술관, 민속학적 박물관과 예술적 미술관, 예술작품과 일상적 소재들 사이의 비구별의 공간을 틀짓습니다. 그 모든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어떤 포스트모던적 단절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에 의해 산산조각 나기는커녕, 미학은 정확하게 이런 흐릿함을 의미합니다. 만일 사진이 문학으로 하여금 상상의 미술관을 성취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면, 그것은 문학이 이미 그 페이지 위에서 사진이 나중에 캔버스 위에서 섞었던 것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의 이 문자적 과거야말로 사진과 회화의 결합이 캔버스를 인쇄로 전환시켰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요점입니다. , 사진이 이질성, 무한한 복제 가능성, 아우라의 상실과 등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크림프가 논문을 발표했던 같은 해에는 사진에 관한 중요한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이 그것입니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주류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뒤집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유일무이함에 대한 증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사진은 포스트모던 콜라주에 가장 적합한 인공물로 받아들여진 후에, 일종의 성 베로니카의 상징으로, 순수하고 유일무이한 현전의 아이콘으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논점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술관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사진은 복제 가능성과 유일무이함을 모두 의미합니다. 사진적 복제 가능성은 제 나름의 힘에 의해 의미의 새로운 공동체로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넓은 가시성의 형태 안에서, 더 넓은 이해 가능성의 플롯 안에서 파악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 가능성을 현전의 한 형태나 의미의 한 절차의 증강이나 가치 저하에 적합하게 해야 합니다. 라우센버그의 사진 활용은 예술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평평함을 자율적 예술과 동일시하는 모더니즘적 동일시에 맞서는, 회화의 자족성에 맞서는 부가적인 증거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것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순수시의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 평평함은 매체의 종별성[특정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은 교환의 표면을, 시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선긋기 사이의, 행위와 형식 사이의, 텍스트와 드로잉이나 춤 사이의, 순수 예술과 장식 예술 사이의, 예술 작품과 오브제 사이의, 혹은 개인적 삶이나 집단적 삶에 속하는 퍼포먼스 사이의 교환을 뜻합니다.

 그린버그 식의 평평함의 패러다임에 맞선 새로운 증거의 산출이 한 시대의 종결로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또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런 형식적패러다임 속에서 미학의 명확한[한정된] 정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치는 미학의 또 다른 정치에 의해 타협된 정치적 자유의 평등의 약속을 자율적인 작동에 맡겼습니다. 미학의 또 다른 정치는 집단적 삶의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 있어서 스스로를 억누르라는 과제를 예술에 주었습니다.

 요점은 예술적 자율성의 급진성이 미학적 자율성을 공동체의 모종의 정치적, 아니 오히려 메타정치적 실행implementation과 연결하려는 더 넓은 플롯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미학이라는 말은 제게 [대문자] ‘예술의 미학적 식별 체제를 의미하는 것인데요, 아무튼 미학은 제 나름의 정치를 수반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스스로를 두 개의 경쟁하는 가능성들로 분할한다는 것, 미학의 두 개의 정치로 분할한다는 것은 또한 의미의 두 공동체들을 뜻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학은 프랑스혁명의 시대에 태어났으며, 처음부터 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점은 미학이 평등의 두 개의 경쟁하는 형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의 재현적 체제를 구성했던 구속과 위계의 시스템의 붕괴를 뜻합니다. 미학은 예술의 영역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오브제나 그럴 가치가 없는 오브제를 분리시키는, 고급 장르와 천한 장르를 분리시키는 주제, 장르, 표현형식의 위계가 와해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술 분야의 무한한 개방을 함축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비-예술, 예술적 창조와 익명적 삶 사이의 경계선의 삭제를 뜻했습니다.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 많은 이론가들이 여전히 주장하는 것처럼  ― 유일무이한 예술작품을 산출하는 유일무이한 천재의 찬양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18세기에, 원형적 시인인 호메로스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고 그의 시는 예술작품이 아니며, 예술적 경전의 실현도 아니며, 여전히 유치한 인민의 느낌과 사고방식을 표현한 덕지덕지 깁어놓은 우화 모음집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미학은 프랑스 왕의 머리 자르기와 인민의 주권에 동조하는 그런 종류의 평등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런 종류의 평등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삶의 식별 불가능성을 뜻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작품이 그 자체로 경험의 특정한 영역에서 포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칸트의 용어로 하면, 이 영역에서 예술작품은 지식의 대상이든 아니면 욕망의 대상이든 간에 이것들에 고유한 감각적sensory 연결의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예술작품은 그저 지적인 능력과 감각적sensory 능력 사이의 비위계적 관계를 뜻하고 무제한의 활동에 응답하는 자유로운 등장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그런 탈위계화의 정치적 귀결을 끌어냈습니다. ‘미학적 국가는 감각적 평등의 영역을 정의했는데, 여기서 수동적인 감각 가능성[감수성sensibility]보다 능동적인 이해[지성]가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두 인류를 분리함으로써 지배에 그 정당성을 전통으로 부여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이것이 와해시켰다는 것입니다. 고위 계급들의 권력은 수동성에 대한 능동성의 권력, 감각sensation에 대한 지성understanding의 권력, 날것의 의미에 대한 교양 있는 의미의 권력 등등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권력을 폐기함relinquishing으로써 미학적 경험은 지배의 역전일 수 있는 평등을 틀지었습니다. 실러는 프랑스 혁명에서 실행되었던 정치적 혁명에 그런 감각적 혁명을 대립시켰습니다. 정치적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바로 혁명권력이 (대중들을 의미하는) 감각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법을 부과하는 (국가를 의미하는) 지성의 전통적인 몫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진정한 혁명은 수동적 감각 가능성[감수성sensibility]에 대한 능동적인 지성의 힘을, 수동성과 미완성inchoateness의 계급에 대한 지능intelligence과 능동성의 계급의 힘을 전복시키는 혁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학은 예술의 경계선들의 진압suppression을 뜻하기 때문에, 미학은 평등을 뜻합니다. 그리고 미학은 인간 경험의 별개의 분리된 형태separate form로서의 [대문자] 예술의 구성을 뜻하기 때문에, 미학은 평등을 뜻합니다. 이 두 개의 평등은 대립되지만, 또한 함께 묶여 있습니다. 실러의 편지에서 그리스 여신의 조각상은 해방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여신은 게으르고’ ‘자족적이기 때문입니다. 조각상은 바로 이 분리성과 이용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욕망에 이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각상은 그 자유’, 혹은 무관심이 다른 자유나 무관심을, 즉 그것을 창조했던 그리스 인민의 자유를 구현하기 때문에 이것을 약속합니다. 이제 이 자유는 첫 번째 자유의 대립물을 뜻합니다. 실러에 따르면, 한 삶의 자유는 스스로를 실존의 별개의, 미분화된 형태로 찢어발기지 않으며, 한 인민의 자유를 뜻합니다. 이들에게 예술은 종교와 똑같은 것이고, 정치와 똑같은 것이며, 윤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즉 함께 있기의 방식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술작품의 분리성separateness은 대립물을 약속합니다. , 예술을 경험의 별개의 분리된 실천과 영역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미학의 정치는 이런 원초적인 역설에 의존합니다. 두 개의 대립된 평등들의 역설적 연결은 정치의 두 가지 주요 형태들로 향하며 또한 역사적으로도 이것으로 향했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두 개의 평등들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므로 의미의 공동체는 미학적 경험에서 경험된 평등과 자유의 종류가 공동체의 실존 형태 자체로 전환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집단적 실존의 형태는 형태와 외양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닐 것이고, 오히려 살아 있는 태도, 일상적인 감각적 경험의 물질성 속에 구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공통적인 것은 산 세계의 구조로 엮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학적 평등과 자유의 분리성이 이것의 자기-억제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예술과 정치, 노동과 여가, 공적 삶과 사적 삶이 똑같은 것인 공통적 삶의 미분리된 형태 속에서 성취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 불화와 미학적 향유가 외양 속에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실생활에서 성취하는, 미학적 혁명의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2세기 전에 독일관념론의 가장 오래된 체계 프로그램(The Oldest System Programme of German Idealism)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국가권력의 죽은 메커니즘을 신화학으로 전환된 철학에 의해 생기가 불어넣어진 인민의 산 신체로 대체하자는 제안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억압을 뜻하는 '인간 혁명으로서 인식된 혁명과 스스로를 분리된 실천으로 억누르고 스스로를 새로운 삶의 형태의 정립과 동일시하는 예술 모두의 기획에 있어서 계속 부활되었습니다. 그것은 19세기 영국에서 아츠 앤 크래프츠의 고딕적 꿈만이 아니라 20세기 독일에서 공작연맹이나 바우하우스의 테크놀로지적 성취물에도, ‘미래의 축제를 준비하는시라는 말라르메의 꿈만이 아니라 소비에트 혁명에 초현실주의적, 미래주의적, 구성주의적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참여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것은 상황주의적 건축물의 기획만이 아니라 기 드보르의 표류dériveJoseph Beuys‘social plastic’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국의 경계선들을 폭파하는 전지구적 네트워크의 거스를 수 없는 역량을 통해 시행된 다중의 프란체스코적 꼬뮤니즘이라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현대적 비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정치와 예술은 비분리적 삶의 새로운 형태에 도움이 되도록 그들의 자기-억제를 성취해야만 합니다.

 이와 반대로 두 번째 형태는 두 개의 평등들을 분리접속시킵니다. 이것은 미학적 경험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을 예술과 삶의 무한한 등가성의 장으로부터 분리접속시킵니다. 이것은 의미의 공통성들이라는 쟁점을 의미의 두 공통성들 사이의 환원 불가능한 대립으로서 무대에 올립니다. , 접속의 공통성들인 동시에 분리접속의 공통성들을 말입니다. 한편으로, 산 경험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외된 삶의 공통성을 뜻합니다. 이 공통성은 의미(감각)와 의미()의 원초적 분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서사에서, 이것은 세이렌의 노래와 항해 노동 둘 다로부터의 율리시스의 이성의 분리입니다. 소외된 삶의 그런 공통성은 그 대립물의 기만적인 외양appearance속에서 성취됩니다. 그것은 미학화된 삶과 상품 문화의 동질적인 외양 속에서 성취됩니다가짜 평등과 가짜 의미 공통성은 미학적 경험의 자율성에 의해, 경험의 모든 다른 형태들에 대한 그 이질성에 의해 틀지어진 공통성과 대조를 이룹니다. 표준적인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은 그런 공통성에 관한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그 정치적 내용을 망각한 채로 말입니다. 예술의 정치적 행위는 예술의 자율성과 그 해방의 역량의 핵심인 이질적인 감각적인 것을 구해내는 것입니다. 미학의 그런 정치에서 작동하는 의미 공통성은 의미와 의미의 접속과 탈접속 둘 다에 기초한 공통성입니다. 그 분리성은, 그것이 순수 형태의 거부가 아닌 한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감각할 수 있습니다makes sense.’ 오히려 그것은 분리성과 비분리성의 관계 자체를 무대에 올립니다. 작품의 자율적 완전성은 자신의 고유한 모순을 탈은폐해야만 합니다. 소외의 표식이 화해의 외양 속에 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율리시스의 이성을 세이렌의 노래와 화해시키고, 그것들을 동시에 화해 불가능한 채로 유지합니다.

 이 정치에서 관건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혹은 대중예술 사이의 경계선을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의미자체의 두 세계들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적 논박가들은, 라우센버그가 벨라스케스의 모사물과 자동차 열쇠를 똑같은 캔버스에 담자, 모더니즘적 정치성패러다임이 붕괴했다고 이들이 생각했을 때, 그 목표물을 잃어버립니다. 패러다임은 의미의 두 세계들을 분리시키는 경계선이 붕괴할 때에만 위협받습니다. 아도르노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놀라운tremendous 주장을 했습니다. , 우리는 19세기 살롱 음악의 몇 가지 화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사기가 아닌 한에서, 라고 말입니다. -프랑수와 리오타르는 당신이 하나의 캔버스 안에 조형적인 모티프와 추상적인 모티프를 섞을 수 없다고, 이런 혼합을 느끼고 가치 평가하는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듯이, 때때로 그런 화음이 여전히 들릴 수 있고, 여러분이 똑같은 캔버스 위에 혼합된 조형적인 모티프와 추상적인 모티프를 여전히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공예품artifacts을 빌려와 이것들을 재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성에서 포스트근대성으로의 어떠한 급진적 이행도 표시하지 않습니다. 패러다임은 그런 계시revelation에 의해 산산조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황급한 도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모든 의미 공통성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의 자율성을 억누르고 예술을 순진한 윤리적 증거로 변형시키는 것을 대가로 하여 감각 경험의 근본적 이질성을 재천명해야 합니다. 이런 변동은 80년대의 프랑스 미학 사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롤랑 바르트는 죽은 어머니의 사진의 유일무이함을 기호학자의 해석적 실천만이 아니라 사진술 자체의 예술적 치장pretension에도 대립시킵니다. 고다르는 낡은 서사적 플롯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자율성 자체를 와해시키는 것을 대가로 이미지의 아이콘적 힘이나 문장/구절의 리듬을 강조합니다. 리오타르에게 붓질이나 음색은 타자의 힘에 의한 정신의 노예화enslavement에 대한 순전한 증거가 됩니다. 타자의 첫 번째 이름은 아이스테톤aistheton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법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치와 미학은 둘 다 윤리 속으로 사라집니다. 예술의 정치성이라는 이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이 같은 역전은 정치적 불화성을 예외와 테러의 아르케정치 속으로 해소하는 사유의 전체 조류와 조화를 이룹니다. 오직 하이데거적 신만이 우리를 이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의미 공통성들을 아주 빨리 개괄했습니다. , 정치화하는 예술이라는[예술을 정치화하는, politicizing art] 기획(가령, 비판적 예술의 형태로)은 언제나 예술을 그 자체로 식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가시성과 가지성의 형태로 수반된 정치성의 형태에 의해 예견됩니다. 우리는 그 분리성과 그 비분리성에 부착된 두 형태의 평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예술을 식별합니다. 우리는 예술을 그 자율성과 그 타율성의 변증법을 통해 식별합니다. 그런 뒤에 정치적 예술이나 비판적 예술을 한다는 것은, 혹은 정치적 예술관을 취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것은 그 힘을 평등의 두 가지 미학적 형태들 사이의 관계의 특정한 협상 속에 위치짓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비판적 예술은 미학의 두 정치 사이의 일종의 제3의 길입니다.

 이 협상은 미학적 경험을 집단적 삶의 재배치로 향하게 떠미는 어떤 긴장을, 다른 경험 영역으로부터 미학적 감각 가능성sensoriality의 힘을 빼내는 어떤 긴장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예술과 삶의 비구별의 지대로부터 그것은 정치적 이해 가능성[가지성]을 유발하는 접속을 빌려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술작품의 분리성으로부터 그것은 정치적 에너지들을 증대시키는 감각적 외래성foreignness의 의미를 빌려와야만 합니다. 정치적 예술은 이런 대립물들의 일종의 콜라주여야만 합니다. 이 말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콜라주는 비판적 예술의 주요 절차입니다. 미학의 두 정치들 사이에서 그 길을 내야만 하는 3의 정치의 주요 절차인 것입니다. 벨라스케스와 자동차 열쇠를 뒤섞기 전에, 콜라주는 미학의 대안적 정치를 뒤섞으며, 그 협상의 산물을 이해 가능성의 흔들리는 형태들에 부여합니다. 정치성의 흔들리는 형태들을 길러내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이질적 영역에서 빌려왔던 요소들의 공통성을, 의미의 공통성들을 거의 틀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이한 경험 영역으로부터 요소를 취함으로써, 상이한 예술들이나 테크닉들에서 몽타주의 형태들을 취함으로써 특정한 이질성의 형태들을 수립합니다. 만일 브레히트가 20세기의 정치적 예술의 일종의 원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공산주의에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정치적 교육의 스콜라적 형태를 음악적인 것이나 무도회적인 것의 향락과 섞으면서, 혹은 꽃양배추에 관한 운문에서 나치 권력의 알레고리들을 논의하면서, 이 대립들 사이의 관계를 항해/협상한 방식 때문에 말입니다. 정치적 혹은 비판적 예술의 주요 절차는 이질적 요소들의 마주침을 설정하고 가능한 충돌을 설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이질적 요소들의 충돌은 우리의 지각에 단절을 초래하고, 일상적 리얼리트 뒤에 숨겨진 사물들의 모종의 비밀스런 접속을 탈은폐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감추어진 리얼리티는 부르주아적 삶의 산문에 의해 은폐된 꿈과 욕망의 절대적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적 시학에서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이상 뒤에 은폐된 자본주적 권력과 계급 전쟁의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 하트필드의 사진몽타주의 전투적 실천에서처럼, 예를 들어 우리에게 아돌프 히틀러의 식도에 있는 자본주의적 황금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예술은 이질적 요소들만이 아니라 감각 가능성의 두 정치를 함께 두는 변증법적 충돌이나 불화의 형태들을 창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질적 요소들은 하나의 충돌을 도발하기 위해서 함께 놓입니다. 이제 충돌은 동시에 두 가지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람들을] 깨우치는enlightens 섬광입니다. 이질적 요소들의 접속은 그 가독성에 대해 토로합니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의 어떤 비밀을 가리킵니다. 브레히트의 Arturo Ui에서 채소와 미사여구high rhetorics의 접속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충돌은 요소들의 이질성이 의미의 동질성에 저항하는 한에서 산출됩니다. 꽃양배추는 미사여구와 병치된 꽃양배추로 남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싣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불투명함opaqueness 자체로부터 정치적 에너지를 증강시킬 터입니다. 궁극적으로, 불규칙하게 변화하는heteroclite 요소들의 단순한 병치는 정치권력을 타고 납니다. 고다르의 영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월트 디즈니 영화에서, 그러니까 정치적 영화에서 큰 인상을 받았어.” 불규칙적 요소들의 단순한 관계는 그러므로 갈등의 정치적 리얼리티를 증언하는 변증법적 충돌로서 나타납니다.

 정치적 예술은 정치와 예술 사이가 아니라 미학의 두 개의 정치 사이의 일종의 협상입니다. 이 제3의 길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 및 경계선의 부재 위에서 계속해서 놂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알레고리와 알레고리의 폭로의 브레히트적 동일성은 당신이 예술과 꽃양배추, 정치와 꽃양배추 사이의 접속과 분리접속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런 놀이는 채소 자체가 이중의 실존을 갖는다는 것을 추정합니다. 하나는 이것들이 예술 및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들이 이미 정치와 예술 둘 다와 강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 예술, 채소의 관계는 브레히트 전부터 실존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전통을 부활시키면서 인상주의적 정물화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문학에서도 말입니다. 에밀 졸라의 소설 파리의 배는 이것들을 정치적 상징인 동시에 예술적 상징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설은 두 등장인물들의 양극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국외추방을 당했다가 파리의 새로운 중앙시장으로 돌아온 가난하고 늙은 혁명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소비의 범람을 의미하는 양배추의 범람에 압도당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양배추의 서사시를, 모더니티의 서사시를, 중앙시장의 유리와 철로 된 건물을, 채소 더미들을 노래하는 인상파 화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근처에 있는 고딕식 교회가 상징하는 낡은/옛날의 애처로운 미와 대조되는 근대적 미를 우화화했습니다. 꽃양배추의 정치적 알레고리는 예술, 정치, 채소의 접속이(다시 말해서 정치, 예술, 소비의 접속이) 이미 일군의 움직이고 있는 경계선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것들은 예술가가 경계를 가로지르게 하며, 이질적 요소들의 접속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그 타율성의 감각적 힘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의 혼합, 혹은 예술과 상품의 혼합이 60년대, 즉 근대예술과 그 정치적 역량을 실현한 동시에 무너뜨렸던 60년대의 발견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정치적 예술은 이미 그런 혼합에 의해,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예술과 상품 사이의 경계선 가로지르기의 연속적 과정에 의해서 이미 가능해졌습니다. 이 과정은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과거로 돌아가게 합니다당신은 고급 예술을 찬양하던 시대를 고급 예술이 진부해지거나 패러디되는 시대와 대립시킬 수 없습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예술이 특정한 존재영역으로 구성되자마자, 그 산물들은 재생산, 교역, 상품의 진부함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산물들이 그렇게 하자마자, 상품들 자체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역량은 졸라의 양배추 서사시에서 일어났듯이, 근대적 삶의 압도적인 역량과 미와 직접적으로 동일시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소비에 대해 한물간 것이자 소비에 이용될 수 없게 됨으로써 예술의 영역에 빠져들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미학적(이해관심이 없는disinterested) 오브제를 쾌나 친숙한 낯섦의 유희excitement로 전환시켰습니다thereby turned into objects of aesthetic-disinterested-pleasure or uncanny excitement. 벤야민의 알레고리 이론이나 브레히트의 서사극만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의 시학도 이러한 경계선 가로지르기를 잘 해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현대 설치미술과 곧바로 연결되는 예술과 교역의 애매한 관계를 이용했던 비판적 예술의 모든 형태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들은 고급예술이나 정치가 자본주의적 지배와 맺는 접속을 드러내기[탈은폐하기] 위해서 예술적 전통, 정치적 수사학, 상업 문화, 상업 광고 등등에서 빌려온 이질적 재료들을 섞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이 경계선들을 지웠던 점증적인 과정들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비판적 예술은 이런 연속적인 경계선 가로지르기를, 시적인 것의 산문화와 산문적인 것의 시화(詩化)라는 이 이중적 과정을 잘 해냈습니다.

 만일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좀 더 확고한 뿌리 위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에 연루된 정치적 쟁점들을 다시 틀짓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현대예술에서 관건은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운명이 아닙니다. 그 타당성은 전보다 더 약하지도 더 강하지도 않습니다. 제 견해로는, 그것은 항상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변증법에 대한 아주 제한적인 해석이었습니다. 관건은 미학의 제3의 정치의 운명입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여전히 모던하고 이미 포스트모던하고, 혹은 심지어 포스트-포스트모던한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 변증법적 충돌에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비판적 예술의 공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저는 불과 몇 년 전에 60년대 혹은 70년대의 예술과의 비교점을 제공했던 전시회들을 참조하면서 가능한 답변을 위한 몇몇 요소들을, 따라서 변동의 중대한 몇몇 표시자들을 제공했습니다.

 첫 번째 예. 3년 전[2000년]에 파리 국립사진센터는 배경음/잡음Bruit de fond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는 최근 작품들과 60년대의 작품들을 병치시켰습니다. 60년대의 작품들에는 마사 로슬러의 <Bringing the War Home> 시리즈가 있었는데요, 이 작품은 미국 가정의 행복을 담은 광고 이미지들과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합친 사진몽타주들입니다. 이 작품 부근에는 미국의 정치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요소들의 대면/대결이라는 똑같은 형태를 취했습니다. 왕 뒤가 만든 세계의 시간(Les temps du monde)이라는 작품은 두 개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왼쪽에는 밀랍 인형관의 한 쌍의 형상들처럼 팝아트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클린턴 부부가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쿠르베(Courbet)의 세계의 기원(Origine du monde)이라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는데요, 잘 알다시피 이것은 여성의 성을 재현합니다. 그래서 두 사례 모두에서 미국식 행복의 이미지는 그 감추어진 비밀과 병치됩니다. , 마사 로슬러의 경우에는 전쟁과 경제적 폭력이, 왕 뒤의 경우에는 성과 신성모독profanity이 말입니다. 하지만 왕 뒤의 사례에서는 정치적 갈등성과 낯섦의 의미가 모두 사라집니다. 남았던 것은 탈정당화의 자동기계적 효과였습니다. , 성적인 신성모독은 정치를 탈정당화하고, 왁스의 형상은 고급 예술을 탈정당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 탈정당화해야 할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메커니즘은 자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확 돌아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이중의 놀이를 작동시켰습니다. 탈정당화하는 효과의 자동기계성과 자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휙 돌아서는 것을 깨닫는 것.

Bringing the War Home 200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Bringing the War Home 200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Wang Du, Les Temps du Monde (1998)


 두 번째 예. 여기 : 머릿속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3년 전(2000년)에 파리에서 열린 또 다른 전시회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상이한 설치작품들을 통해서 한 세기를 기록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작품들 중에는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설치작품인 Les abonnés du telephone가 있었습니다. 이 설치작품의 원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 화랑의 양 편에 있는 두 개의 선반에는 세계 각지의 전화번호부가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는 두 개의 탁자가 있는데, 여기에 앉아서 당신이 좋아하는 그 어떤 전화번호부든 정독할 수 있습니다. 이 설치작품은 90년대의 또 다른 정치적 작품인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작품 The Other Vietnam Memorial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 기념비란 물론 무명씨인[익명의] 베트남인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입니다. 크리스 버든은 전화번호부에서 베트남식 이름을 무작위적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기념비에 쓰여진 이름들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율성은 논쟁적인 플롯에 더 나아가 탑재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승리자들이 무명인 채로 남겨두었던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명씨들[익명인 자]의 이름들은 볼탄스키가 말하듯이, ‘인류의 견본이 됩니다.

   

Christian Boltanski, <Les abonnes du telephone>

Chris Burden, <The Other Vietnam Memorial>




 세 번째 예. 2003년에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동영상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목적은 현대예술에서 재생산 가능한 미디어의 광범위한 사용이 어떻게 60년대와 70년대의 비판적 예술 실천에 뿌리를 두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류의 사회적 혹은 성적 스테레오타입들과 예술적 자율성 둘 다를 의문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형 홀rotunda을 둘러싸고 전시된 작품들은 그런 직선으로부터의 중대한 변동을 조명했습니다. 가령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의 비디오는 미술관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벌거벗은 여성들을 보여주는데요, 이 작품은 예술에 있어서 여성적 스테레오타입들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 벌거벗고 무언의 신체들은 또 다른 방향을 따랐습니다. 모든 의미 작용으로부터 도주하는, 혹은 의미작용의 갈등으로부터 도주하는 것입니다. 또 이 작품은 그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적 비판보다 훨씬 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형이상학적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겐하임의 둥그런 경사면을 올라가 보면, 많은 비디오, 사진, 설치작품, 그리고 비디오 설치물들이 일상생활의 진부한 재현에 수반된 새로운 종류의 낯섦을, 신비의 의미를 비판하기보다는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애매한 10대들을 찍은 리네케 데익스트라Rineke Dijkstra의 사진들은 물론이고, 일상적 사건들의 낯섦을 영화처럼 재현한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의 작품들, 혹은 거기에 포함된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작품들에서 이것을 감지했습니다. 볼탄스키의 작품은 사진들, 전기조명, 전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작품에 따르면 아마도 홀로코스트의 죽은 자들이나 유년기의 덧없음[손쌀 같이 지나가는 유년기]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전시회의 꼭대기에는 충돌의 변증법적 예술에서 신비의 상징주의적 예술로의 일종의 되돌아가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빌 비올라가 만든 비디오 설치물인 <매일 앞으로 나아가기Going Forth by Day>에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비올라의 작품은 탄생과 삶과 죽음과 부활의 순환만이 아니라 불과 공기와 흙과 물의 순환을 포괄하는 프레스코화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Giorgio de Chiric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Giorgio de Chiric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들

관련 이미지

리네케 데익스트라Rineke Dijkstra의 사진들 [구글에서 더 보기]

Gregory Crewds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의 작품들 [구글에서 더 보기]



Bill Viola, <Going Forth by Day>


 많은 가능한 다른 것들 중에서 선택된 이 세 가지 예들로부터, 우리는 오늘날 미학의 정치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설명[소묘]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예술의 불화적 형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물음 말입니다. 저는 미학적 불화의 변증법적 형태가 네 가지 주요 형태로 쪼개졌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농담일 것입니다. 농담에서, 이질적 요소들의 통합접속conjunction은 여전히 긴장이나 양극성으로서 상연됩니다. 이것은 몇몇 비밀을 지적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비밀은 없습니다. 변증법적 긴장이 한편으로는 권력의 비밀을 벗겨내는 절차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 상업적 오락이나 광고에 의해 권력 그 자체에 의해 산출된 탈정당화의 절차들 사이의 식별 불가능성 자체를 이용하는 게임으로서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왕 뒤의 작품의 사례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전시회가 똑같은 결정 불가능성을 이용합니다. 가령, 파리에서 상황주의적 제목인 <스펙터클을 넘어서>로 재활용되기 전에 팝아트식popesque의 제목인 <즐기자>라는 제목으로 어떤 전시회가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는 세 가지 수준들을 이용합니다. 고급예술에 대한 팝아트적 조롱, 자본주의적 오락에 대한 비판적 비난, 그리고 스펙터클의 대립물로서의 놀이라는 드보르 식의 관념을 말입니다.

 두 번째 형태는 콜렉션일 것입니다. 콜렉션에서 이질적 요소들은 여전히 똑같이 취급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비판적 충돌을 촉발[도발]하기 위해서나, 심지어 그 비판적 힘의 미결정성을 이용하기 위해서 모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어떤 공통의 세계와 공통의 역사의 흔적과 증거를 콜렉션하는[수집하는] 긍정적인 시도가 됩니다. 콜렉션은 또한 리콜렉션이기도 합니다. 모든 아이템(예술작품, 사적인 사진, 사용된 오브제, 광고, 상업 비디오)의 평등은 그러니까 한 공동체의 삶의 문서고적 흔적들의 평등으로 바뀝니다. 저는 여기 : 머리 속의 세계라는 전시회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한 세기를 재수집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신이 볼탄스키의 방을 떠나면, 예를 들어 Hans-Peter Feldmann이 찍은 백여장의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한 살에서 100살까지 각각의 나이별로 한 명씩을 재현합니다. 그와 같은 많은 다른 설치작품들은 공통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런 조류의 많은 다른 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오늘날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는 어떤 모토와 장단이 잘 맞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사회적 유대는 깨졌으며, 예술가들은 공유된 인간성을 증언하고 있는 모든 흔적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회적 유대나 사회적 구조를 수선하려는 투쟁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형태는 초대invitation일 것입니다. 저는 Les abonnés du telephone가 어떻게 방문자들더러 선반 위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집어들어서 그것을 무작위적으로 열어보게끔 초대했는지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시회의 다른 곳에서도 관람자들은 책더미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카펫 위에 앉도록 초대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들의 동화 속 섬을 재현합니다. 다른 전시회에서 관람자들은 수프를 먹고 다른 이들과 접촉하도록, 새로운 형태의 관계에 참여하도록 초대됩니다. 그런 시도는 전에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적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체계화되었습니다. , 예술은 더 이상 작품이나 오브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재촉하는 다소 단명하는 상황을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듯이, 어떤 소소한 서비스를 함으로써 예술가는 사회적 유대의 간극을 메우는 임무에 기여합니다.

 네 번째 형태는 신비일 것입니다. 신비는 수수께끼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신비로움mysticness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라르메 시대 이래, 신비는 이질적 요소들을 함께 두는 특정한 방식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말라르메의 경우, 시인의 사유, 댄서의 스텝, 부채의 펼침, 혹은 담배 연기 등. 적대에 의해 틀지어진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 요소들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충돌과는 대립되게, 신비는 유비를 산출합니다. 기묘한 것의 친숙함을, 공통의 세계에 대한 증언을 말입니다. 여기서 이질적인 리얼리티들은 똑같은 구조로 엮이며, 은유의 우애에 의해 서로 항상 관련될 수 있습니다.

 ‘신비은유의 우애는 장-뤽 고다르가 <영화사()>에서 사용한 두 용어입니다. 이 작품은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고다르가 이질적 요소들의 콜라주를 자신이 항상 해 왔던 것처럼 사용하기 때문이지만, 그는 그것들이 20년 전에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산출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사>의 어떤 놀라운 구절에서 고다르는 세 개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융합합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태양 아래>에 나오는 샷입니다. 이 영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분한 젊고 부유한 연인의 행복을 보여줍니다. 일광욕을 하고 있는 그녀 옆에는 연인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바로 이 조지 스티븐스가 몇 년 전에 찍은 영화인, 라벤스브리크에서 죽은 자들의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미지는 파두아에 있는 지오토의 프레스코화에서 따온 마리아 막달렌입니다. 만일 20년 전에 만들어졌다면, 이 콜라주는 고급 예술과 미국인의 행복의 뒤에 감추어진 죽음의 비밀을 비난하는 변증법적 충돌로만 이해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사>에서 비난의 이미지는 구원의 이미지로 전환됩니다. 나치의 절멸, 미국인의 행복, 지오토의 비역사적인'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의 결합conjunction은 이미지들의 구원의 역량을 증거합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세계 속의 자리'를 부여하는 그런 구원의 역량 말입니다. 변증법적 충돌은 공현존의 신비가 됩니다. 신비는 상징주의의 핵심 개념입니다. 상징주의의 회귀는 분명히 의제에서 드러납니다. 제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저는 상징주의적 신화의 부활이라는 스펙터클한 형태를, 매튜 버니의 작품에서처럼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의 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비올라의 작품과 같은 상징주의의 효과적인 사용만을 지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좀 더 겸손하고 거의 지각 불가능한 방식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에서 우리의 미술관과 화랑에 모이게 된 오브제, 이미지, 기호의 콜렉션은 점점 더 불화의 논리에서 신비의 논리로, -현전의 증거로 변동하고 있습니다.

 변증법에서 상징주의로의 변동은 분명히 제가 정치의 미학이라고 불렀던 것에서의 현대적 변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치의 미학이란 정치가 공통의 무대를 틀짓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변동은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합의입니다. 합의는 단순히 공동체의 공통적 이해관계에 관한 정치정당들의 동의나 사회적 파트너들의 동의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재배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집단적 상황의 소여들이 더 이상 논박에, 주어진 세계 안에서의 논쟁적 세계의 논전(論戰)적 프레이밍에 스스로를 적합하게 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객관화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방식에서 합의는 정치의 미학을 내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무대와 불화의 정치적 개입의 그런 삭제 혹은 약화는 미학의 정치에 대해 모순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실천에 새로운 가시성을 줍니다.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실천이란, 공간과 시간,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형태, 사물들과 이미지들과 의미들 사이의 접속의 형태의 재분배의 실천들을 뜻합니다. 예술적 퍼포먼스는 불화적 무대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의 대체물로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합의는 정치적 장소를 빈 채로 단순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 대상의 영역을 틀짓습니다. 또한 그것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적 실천의 공간과 임무를 형성합니다. 가령, 계급갈등의 문제를 포함과 배제의 문제로 대체함으로써, 그것은 '사회적 유대의 상실'을 걱정하게 만들며, ‘벌거벗은 인류에 관해 고심하게 만들며, 혹은 정치적 관심의 자리에서 위협받은 정체성들의 힘을 키우는 것에 열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술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틀짓고 사회적 유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 정치적 역량이 작동할 수 있게 소환됩니다. 제 견해로는, 비판적 패러다임에서 농담, 콜렉션, 초대, 신비의 형태로의 변동은 정치적인 것이 윤리적인 것의 형태로 재배치된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술에 있어서 정치를 이렇게 윤리로 대체하는 것에 맞서서, 오늘날 어떤 기획들은 예술에서 정치적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이것들은 공간의 분배라는 문제를, 상황의 재서술이라는 쟁점을 제기합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정치에 속했던 문제에 관한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은 예술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만들려는 새도운 시도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지들을 생산하거나 재순환하기보다는 리얼한 오브제를 만드는, 혹은 단순한 '예술적' 설치작품보다는 실생활에서 실제 행동에 착수하는 예술의 기획을 부활시키는 데 착수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참여[헌신]은 실재적인 것에 대한 탐구와 등치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은 예술이 도달해야만 할 '실재''외부'가 아닙니다. '바깥'은 항상 ''의 다른 면입니다. 그 차이를 산출하는 것은 유형론입니다. 그 유형론에서 안과 바깥을 틀짓는 것이 협상됩니다. 실재적인 것 자체는 단순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리얼리티의 틀짓기나 허구[픽션]입니다. 예술은 실재계에 도달함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재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의 현존하는 분배에 도전하는 허구를 발명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허구[픽션]를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를 한다[꾸며낸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리얼리티의 현존적 의미를 틀짓는 기호와 이미지, 이미지와 시간, 혹은 기호와 시간 사이의 접속을 해제하고 재분절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허구는 의미의 새로운 공통성들을 발명합니다. 달리 말해서, 보여질 수 있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새로운 궤적들을 발명합니다. 그것은 자리와 능력의 배분을 흐릿하게 만들며, 이것은 또한 그것이 그 고유한 활동을 정의하는 경계선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에술을 한다는 것은 예술의 경계선을 자리바꿈한다는 것을 뜻하며, 마찬가지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영역으로서 인정되는 것의 경계선들을 자리바꿈한다[이동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몇몇 예술작품들이 영토들과 경계선들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미학의 정치가 지닌 궁극적 역설일 수 있는 것은 미학적 거리나 무관심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명함으로써 오늘날 예술이 합의에 맞서서 의미의 새로운 정치적 공통성들을 틀짓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은 단순히 정치적 갈등의 약화로 인해 남겨진 공간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자신의 고유한 정치의 한계를 검증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재형성해야만 합니다.


Notes

1. Balzac, The Wild Ass's Skin,15.

2. Schiller,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109.

3. Horkheimer and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4. Bourriaud, Relational Aesthetics.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http://web.mac.com/titpaul/Site/Phenomenology_of_Spirit_page.html

링크를 따라가서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 맨 아래에 그림이 있는데, 그걸 누르면 영어판만 있는 걸 받을 수 있다.
번역의 충실성이나 성실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검토해 보지 않았으므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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