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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10. 환[경]세계

 

그 어떤 동물도 물자체와의 관계에 들어설 수 없다.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

 

오늘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동물학자 중 한 명이자 생태학의 시조들 중 한 명으로 간주되는 야콥 폰 윅스퀼 남작이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파산하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확실히,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이미, 먼저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다음에는 나폴리의 동물학 연구소에서 그는 독립연구자로서, 무척추동물들의 생리학과 신경계[생리학 및 무척추동물의 신경계통에 관한] 연구로 꽤 훌륭한 과학적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상속재산을 잃자마자 그는 남부 이탈리아의 햇빛을 뒤로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그렇지만 카프리 섬에 있는 별장은 계속 갖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1944년에 거뒀으며, 1926년에는 발터 벤야민이 몇 개월 동안 머물렀다), 함부르크대학으로 전속하고, 이곳에서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환세계연구소(Institut für Umweltforschung)를 설립했다.

동물의 환경에 관한 윅스퀼의 조사는 양자물리학과 아방가르드 예술의 등장과 동시대적이다. 이런 것들과 마찬가지로, 윅스퀼의 조사도 생명과학에 있어서 모든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의 유보 없는 폐기를, 그리고 자연의 이미지의 근본적인 탈인간화를 표현했다(따라서 이것들이[윅스퀼의 연구가] 다른 누구보다도 인간을 생명 존재[생물 일반]the living being로부터 분리하려고 애를 쓴 20세기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뿐 아니라, 인간을 절대적으로 비의인화적인nonanthropomorphic 방식으로 동물을 사고하려 노력한 질 들뢰즈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결코 놀랍지 않다). 고전적 과학이 바라본 세계가 가장 단순한 원소 형태부터 더 고등한 유기체[생물]organisms에 이르기까지 위계적으로 배열될 수 있는 모든 생물 종들all living species을 그 내부에 포괄하고 있는 단일한single 세계였다면, 윅스퀼은 오히려 무한하게 다양한 지각 세계들을 전제한다. 이 지각 세계들은 마치 거대한 악보에서처럼 한결같이 완벽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나 서로 교통하고 있지 않고 서로 배타적이다. 이런 세계의 중심에는 나팔성게[Echinus esculentus], 아메바 테리콜라[Amoeba terricola], 배럴 해파리[Rhizostoma pulmo], 성구동물[별벌레][Sipunculus], 아네모니아 술가타[말미잘][Anemonia sulcata], 익소데스 리시누스 진드기[Ixodes ricinus] 등등의 친숙한 동시에 약간 소원한 작은 동물들beings이 놓여 있다. 따라서 윅스퀼은 성게, 아메바, 해파리, 별벌레, 말미잘, 진드기(이것들은 위에서 적은 생물들being의 보통명사이다)와 자신이 특별히 좋아한 다른 작은 유기체의 환경을 재구성하는 것을 미지의 세계들로 향한 짧은 여행excursions in unknowable worlds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런 피조물들[작은 생물들]에서 볼 수 있는 환경과의 기능적 통일[일치]은 인간 및 이른바 고등동물들의 그것과는 꽤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어떤 특정한 동물적 주체가 자신의 환경에 있어서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는 우리를 우리네 인간 세계에 있어서 대상들과 묶고 있는 관계들과 똑같은 공간과 똑같은 시간 속에서 발생한다고 우리는 너무도 자주 상상한다. [그러나] 이런 착각illusion은 모든 생명 존재들all living beings이 하나의 단일한single 세계에 위치되어 있다는 믿음에 입각해 있다. 윅스퀼이 보여주는 것은 그런 일원론적unitary 세계는 실존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 존재들에게 등질적인equal 공간과 시간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낮에 우리 곁에서 날고 있다고 우리가 관찰하는 파리, 잠자리, 벌은 우리가 이것들을 관찰하고 있는 세계와 똑같은 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이것들은 우리와 혹은 이런 곤충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윅스퀼은 우리가 어떤 생명 존재[생물]living being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객관적 공간인 환경(Umgebung)’을 다소간 넓은[크고 작은 풍부한] 일련의 요소들에 의해 구성되는 환경-세계인 환세계(Umwelt)’와 신중하게 구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동물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것들인 이런 요소들을 의미[작용]의 담지자(Bedeutungsträger)’ 또는 지각 표식의 담지자(Merkmalträger)’라고 부른다. 실제로 환경(Umgebung)’은 우리 인간에게 고유한 환세계(Umwelt)’인데, 윅스퀼은 이것에 어떤 특별한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세계는 이것을 관찰하는 관점이 취하는 방식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정해진 환경으로서의 숲이 실존하는 게 아니다. , 실존하는 것은 삼림감독관에게서의-, 사냥꾼에게서의-, 식물학자에게서의-, 나그네[산책자]wayfarer에게서의-, 자연애호가에게서의-, 나무꾼carpenter에게서의-, 그리고 빨간 모자를 쓴 아이Little Red Riding Hood가 길을 잃은 동화의 숲이다. 의미의 담지자로 간주된 가장 작은 세부사항(예를 들어 가령 들꽃의 줄기)조차도, 이것이 상이한 환경에 놓여 있을 때마다 매번, 때로는 그것이 관찰되는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다른 요소를 구성한다. 가령 꽃을 꺾어 작은 꽃다발로 엮은 소녀의 환경에서 줄기는 코르셋에 핀을 꽂아 꽃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며, 개미의 환경에서 줄기는 꽃받침calyx에 있는 영양분에 도달하기 위한 이상적인 경로이다. 또 매미 유충의 환경에서 줄기는 폭신폭신한 누에고치의 액체부분을 만들기 위해 줄기의 수관[髄管]medullary canal에 구멍을 뚫어 이를 펌프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젖소의 환경에서 줄기는 그저 되새김질을 해서 먹이로서 삼키는 것일 뿐이다.

모든 환경은 그 자체에 있어서[그 자체 안에] 닫힌 통일체이다a closed unity in itself. 이 통일체는 바로 인간의 환경에 다름 아닌 환경(Umgebung)’에서부터 일련의 요소들이나 지각 표식을 선택적으로 추출한 결과로부터 생겨난다. 동물을 관찰하는 연구자의 첫 번째 과제는 동물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의미[작용]의 담지자들을 판별하는recognize 것이다. 그러나 의미의 담지자들은 객관적이고 현사실적으로 떼어내지는isolated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물의 수용 기관들과의 긴밀한 기능적 혹은 윅스퀼이 좋아하는 표현을 쓴다면 음악적 통일성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런 수용 기관들은 표식을 지각하는 것(지각기관, Merkorgan)과 이 표식에 반작용하는 것(작용기관, Wirkorgan)에 할당되어 있다. 의미[작용]의 외부적 담지자와 동물의 신체에서의 이것의 수용은 마치 단일한 악보에 있는 두 개의 요소들, 건반 위의 두 개의 음표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도 같은 식으로 모든 게 일어난다. 이 건반 위에서, 자연은 의미[작용]의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런 의미작용이 없다면] 이다지도 이질적인 두 개의 요소들이 어떻게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말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그 이유를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거미집에 대해 고찰해보자. 거미는 파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또 파리는 양복장이가 고객의 옷을 만들기 전에 치수를 재는 것처럼 파리의 치수를 잴 수도 없다. 그렇지만 거미는 파리의 몸집에 맞춰서 거미집의 방사망 길이를 결정하며, 날고 있는 파리의 몸체의 충격력에 대해 정확한 비율로 줄의 저항을 조정한다. 더욱이 방사선 모양의 줄은 원형 모양의 줄보다 더 튼튼하다. 왜냐하면 방사선 모양의 줄과 달리 점착성 액체가 발라져 있는 원형 모양의 줄은 파리를 가둬서 날아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충분히 탄력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방사선 모양의 줄의 경우, 이런 거미집은 부드럽고 건조하다. 왜냐하면 거미는 먹잇감을 향해 덤벼들기 위한 지름길로 줄을 사용하고 마침내 먹잇감을 보이지 않는 감옥 안에 감아두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경탄을 금치 못하는 사실은 거미집의 줄이 파리의 눈의 시각적 능력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파리는 줄을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깨닫지도 못한 채 죽음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다. 파리와 거미라는 두 개의 지각적 세계들은 전혀 교류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파리라는 원본 악보 원본 이미지나 원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 거미가 짓는 거미집을 파리에 안성맞춤인거미집이라고 형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미의 악보에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거미는 파리의 환세계를 결코 볼 수 없지만(윅스퀼은 몇 가지 성공을 거두게 될 하나의 원리를 정식화하면서 이렇게 단언한다. “어떤 동물도 그 자체로서의 대상[물자체]과의 관계에 들어설 수 없다”, 동물의 고유한 의미[작용]의 담지자와의 관계에만 들어설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거미집은 이런 [거미와 파리 둘 다의] 상호적인 맹목성[눈이 멂]의 역설적 일치를 표현한다.

생태학의 창시자인 윅스퀼의 연구는 20세기의 인문지리학human geography을 심대하게 뒤엎어버린profoundly revolutionize 폴 비달 드 라 블라슈의 인구와 그 환경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프랑스 지리지Tableau de la géographie de la France1903년에 나왔다)프리드리히 라첼의 국민peoples생존 공간(vital space)’에 관한 연구(정치지리학Politische Geographie1897년에 나왔다)가 나온 지 불과 몇 년 후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핵심 테제, 즉 인간의 근본적인 구조로서의 세계-안에-있음(in-der-Welt-Sein)에 관한 테제를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문제적 영역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읽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20세기 초반에 이 문제적 영역은 생명 존재[생물 일반]the living being와 그 환경-세계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본질적으로 수정한[전환시킨]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모든 국민peoples은 이들의 본질적인 차원으로서 이들의 생존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라첼의 테제는 나치의 지정학geopolitics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둘 사이의] 이런 근접성proximity은 윅스퀼의 지적 일대기에 나오는 어떤 흥미로운 에피소드에 표시되어 있다. 나치즘이 대두하기 5년 전인 1928년에, 온건하기 그지없는 이 과학자는 오늘날 나치즘의 선도자[흑막]precursors 중 한 명으로 지목되는 휴스턴 체임벌린19세기의 기초(Die Grundlagen des neunzehnten Jahrhunderts)에 서문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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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Vidal de la Blache(1845-1918). 프랑스의 지리학자. 뤼시앙 갈로와와 더불어 지리학연보(1893)의 창간자이며, 프랑스 지리학파의 창시자. 프랑스 역사가 에르네스트 라비스, 프랑스사에 대한 서설로서 쓴 프랑스지리지(1903)의 저자로서 알려져 있다. 다른 저작으로서, 인문지리학원리(1922)가 있다.

Friedrich Ratzel(1844-1904). “국가란 토착의 유기체이다(Der Staat ist ein bodenständiger Organismus)”라는, 이른바 국가유기체설로 유명한 독일의 지리학자. 1896정치지리학(Politische Geographie)을 출판했기에 지정학의 시조 중 한 명이라 불린다. 헥켈과 다윈의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인간 활동의 결정 요인으로서의 물리적 환경(공간, raum)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경은 국가의 동화력의 경계선이며, 성장력 있는 국가의 국경은 확대된다는 이념을 내놓았다. 이런 생각은 지리적 환경결정론에 의거한 것이며, 민족이나 국민에 대한 생활공간의 확립을 생태학적으로 파악한 것이었다. 라첼의 이런 사상은 나중에 독일의 지리학자 칼 하우스호퍼(루돌프 헤스의 스승이기도 했던)생존권(生存圈)” 개념으로 계승되며, 나치 정권을 뒷받침한 이론적 이데올로기에 편입됐다. 이 밖에 인문지리학(1882-91) 등의 저작이 있다

Houston Chamberlain(1855-1927). 영국 출신의 작가. 일찍부터 독일에서 살았으며, 1882년에 바이로트에서 바그너와 만나고, 평생 동안 바그너 신봉자가 된다. 바그너의 둘째 딸 에파 마리아와 결혼했다. 이후 고비노와 바그너 등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고, 19세기의 기초(1899), 마리아의 세계관(1918), 인종과 민족(1918), 인종과 인격(1925) 등 인종주의적 경향이 강한 저작을 차례로 발표한다. 특히 19세기의 기초는 나치의 공인 어용철학자인 알프레트 로젠베르크가 쓴 20세기의 신화와 나란히, 나치의 인종정책에 있어서의 최대의 이론적 지주가 된다. 또한 본문에도 있듯이, 윅스퀼은 체임벌린(Chamberlain)의 친구이며, 그의 미완의 원고를 편집하기도 하고, 그에 관한 에세이를 몇 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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