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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현대예술과 미학의 정치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pp.31-50.


저는 감각의 공동체라는 문구를 몇몇 공통의 감정에 의해 형성된 집단성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구를 사물이나 실천을 똑같은 의미 아래에서 묶어내는 가시성과 이해 가능성의 틀[프레임]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어떤 감각을 형성하는 것 말입니다. 감각의 공동체는 가시성의 실천들, 형태들과 이해 가능성의 패턴들을 함께 묶는 공간과 시간을 오려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오려내기와 이런 연결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고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무수한 기술의 산물들이 가시성의 특정한[종별적] 형태로 파악되는 한에서(이 형태는 이런 기술들을 공통에 집어넣으며, 이런 연결로부터 공동체의 특정한[종별적] 의미를 틀짓습니다), 예술이 존재합니다. 인류는 수천년 동안 조각가, 댄서, 음악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단수이자 대문자 예술자체를 알게 된 것은 고작 2세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공간의 어떤 분할로 알려졌습니다. 먼저 예술은 회화, , 멜로디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극장, 기념물, 혹은 박물관 같은 어떤 공간적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예술에 관한 논의는 노동의 비교가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논의들은 모두 공간화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 그림을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뿌려진 아이템들의 잡동사니나 조각을 대신해 비디오 모니터들을 설치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 논의는 그림의 프레임이 전달하는 현전의 의미에 관한 것이자 그 자리를 대신하는 스크린이 전달하는 부재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그 논의는 벽이나 바닥, 프레임이나 스크린에서의 사물들의 분배를 다룹니다. 그것은 하나의 공간설정과 다른 공간설정, 혹은 현전과 부재 사이의 그런 변동에서 관건인 공통적인 것의 의미를 다룹니다.

물질적인 분할은 언제나 동시에 상징적인 분할이기도 합니다. 극장이나 미술관[박물관]은 주어진 어떤 것과 주어지지 않은 어떤 것 사이의 공존과 양립 가능성의 형태들을 형성합니다. 이것들은 가시적인 것과 이해 가능한 것 사이의, 혹은 공동체의 형태들이기도 한 현전과 부재 사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또한 그 공간에서 세워진 공동체의 의미와 다른 경험 영역들에서 틀지어진 공동체의 다른 의미 사이의 공동체의 형태들을 형성합니다. 예술과 정치공동체들(polities) 사이의 관계는 의미의 두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예술과 정치가,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관해 우리가 논의해야만 하는 두 개의 영구적인 리얼리티들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예술과 정치는 둘 중 어떤 것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공통적인 것의 우발적인 배치입니다. [대문자] 예술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듯이(비록 항상 음악, 조각, 춤 등등이 있겠지만), 정치공동체들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비록 항상 권력과 합의의 형태들이 있겠지만). 정치는 의미의 특정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그것은 인간 군집의 다른 형태들에 대한 불화적 대체보충으로서, 대상과 주체의, 자리와 정체성들의, 공간과 시간의, 가시성과 의미의 논쟁적 재분배로서 존재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미적[감성적] 활동(aesthetic activity)’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때의 미적 활동은 국가 권력이 집합적 예술작품에 체내화incorporation되는 것, 발터 벤야민이 정치의 심미화(aestheticization)라고 불렀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감각적인 것의 두 가지 나눔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두 용어가 그 자체로 동일시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예술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술은 가시성의 실천, 형태와 이해 가능성의 패턴들을 함께 묶는 특정한 식별 체제 내에서 식별되어야만 합니다. 예술이 그 체제 아래에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이 식별 체제는 하나의 이름을 갖습니다. 2세기 동안 그것은 미학이라고 불렸습니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더 정확하게는 정치의 미학과 미학의 정치 사이의 관계입니다. 미학의 정치라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앞의 질문에 의존합니다. ,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는가?

미학이라는 이 용어는 어떤 종류의 의미의 공동체를 정의할까요? 이 화두에 관해서는 저명한 주인 서사(master narrative)가 있습니다. 그 주인 서사에 따르면,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으로 알려진 미학은 자율성의 영역의 구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술작품들이 다른 경험 영역들에는 이질적인 제 나름의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계에서 예술작품들은 형식, , 혹은 진리에서 매체에 이르기까지 타당성(validity)의 내적 규범에 의해 가치 평가됩니다. 이로부터 예술의 정치성에 관해 다양한 결론들이 끌려나올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술작품들은 순수 미의 세계를 형성하며, 이것은 아무런 정치적 관련성(relevance)도 갖고 있지 않다. 둘째, 예술작품들은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설정된 의미의 공동체들이라는 공상적인 꿈을 키우면서 일종의 이상적 공동체를 틀짓는다. 셋째, 예술작품들은 제 나름의 영역에서 근대적 기획의 핵심에 있는 것이자 민주적 혹은 혁명적 정치들에서 추구되는 것과 똑같은 자율성을 성취한다.

이런 서사에 따르면, 예술, 자율성, 근대성 사이의 식별(identification)20세기의 지난 몇 십년 동안 붕괴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삶과 상품문화의 새로운 형태들이, 제작·재생산·의사소통의 새로운 테크닉들과 더불어, 예술적 제작과 테크놀로지적 복제, 자율적 예술작품과 상품문화의 형태,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경계선을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붕괴했습니다. 경계선을 이렇게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미학의 종언에 해당되어야만 합니다. 그 종언은 예를 들어 80년대에 핼 포스터(Hal Foster)가 편집한 반미학(현대미학사, 2002)이라는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중요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쓴 미술관의 폐허에 관하여(On the Museum’s Ruins)라는 논문도 있습니다. 여기서 폐허가 된 미술관은 앙드레 말로의 벽 없는 미술관(museum without walls)’을 가리킵니다. 크림프는 말로의 미술관에서 사진이 이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분석에 의존해 논증을 펼칩니다. 한편으로, ‘벽 없는 미술관은 사진 복제에 의해서만 가능해졌습니다. 사진만이 카메오[바탕색과 다른 색깔로 보통 사람의 얼굴을 양각한 장신구]가 원형 그림과 돋을새김 무늬의 다음 페이지에 자리를 잡게 해줍니다Photography alone allowed a cameo to take up residence on the page next to a painted tondo and a sculpted relief[사진술에 의한 재생에 의해서 카메오’[보석이나 조가비 등에 새기는 양각]는 색칠한 톤도’[원형 그림]와 조각한 부조의 다음 페이지에 자리잡게 된다, 92]. 혹은 사진만이 말로가 앤트워프에 있는 루벤스의 디테일을 로마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디테일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진은 예술의 정신을 현전시킴으로써 작품의 경험성을 대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불행하게도 크림프는 말로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로는 책의 끝부분에서 사진이 더 이상 예술작품의 복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로는 미술관의 동질성을 구성했던 동질화하는 장치를 그 이질성으로 다시 던져버렸습니다. 미술관의 핵심부에서 이질성이 재수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감춰진 비밀은 열림 속에서 전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몇 년 후에 했던 것입니다. 라우센버그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Rokeby Venus를 모기와 트럭 그림을 담은 캔버스의 표면에다, 혹은 헬리콥터 무리나 물기둥에다, 혹은 심지어 조지 워싱턴의 동상의 꼭대기와 자동차 열쇠에다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라우센버그의 모든 작품의 표면 위로 미술관이 퍼져나갔습니다. 말로의 꿈은 라우센버그의 농담이 되었습니다. 약간 충격적인[골치 아픈] 것은 라우센버그 자신이 분명히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으며 «인간»의 의식이라는 보고(寶庫, treasury)에 대한 말로의 케케묵은 구식 믿음을 도리어 긍정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Just a bit disturbing was the fact that Rauschenberg himself apparently did not get the joke and affirmed, in turn, Malraux's old-fashioned faith in the treasury of the conscience of Man.

 

<벨라스케스, Rokeby Venus>


<Robert Rauschenberg: Persimmon, 1964.

크림프의 글에 수록된 도판>


<Robert Rauschenberg: Break-Through, 1964.

크림프의 글에 수록된 도판>



저는 우리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방해[교란, 골치 아픔disturbance]에 대해 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논증이 증명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만일 말로의 꿈이 라우센버그의 농담이 될 수 있다면, 왜 그 반대는 안 될까요? , 라우센버그의 농담은 말로의 꿈이 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런 역전turnaround은 몇 년 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 80년대 말에, 저명한 우상파괴자이자 영화감독인 장-뤽 고다르는 포스트모던적 실천의 원형을 격찬했으며, 모든 것을 아무거나와 혼합했습니다. 그가 영화의 역사()에서 했던 것은 말로의 종이 미술관의 정확한 등가물이었습니다.

요점을 말하겠습니다. , ‘상상의 미술관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미술관이 동질성(homogeneity)과 등가를 이루는 것이라고, 미술관이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함에 바쳐진 사원이라고 여러분이 우선 가정할 때에만 그 모순은 포스트모던적 단절에 대한 증언입니다. 둘째, 이와 반대로 사진은 이질성(heterogeneity)을 뜻한다고, 사진은 무한한 복제의 사소함triviality[무한한 복제가 사소한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 모순은 포스트모던적 단절에 대한 증언입니다. 셋째, 사진만이 우리가 카메오를, 스키타이식 명판(Scythian plaques), 미켈란젤로를 똑같은 페이지에 집어넣고 Rokeby Venus를 자동차 열쇠나 급수탑(water tower)과 더불어 캔버스에 놓을 수 있게 해준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렇습니다. 만일 이 세 진술이 참이라고 입증된다면, 여러분은 사진술을 통한 상상의 미술관의 실현이 미술관 자체의 붕괴를 뜻한다고, 이런 실현이란 미학적 동질성을 산산조각 내는 이질성의 승리를 표시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점들이 모두 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우선 미술관이 동질성을 뜻한다는 것을, 미술관이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함과 아우라적 고독에 바쳐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이 아우라적 고독이 19세기와 20세기에 예술관을 길러냈다는 것을 어찌 알까요? 이 문제를 고급 [대문자] ‘예술에 대한 최고의 찬양의 시대인 대략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 봅시다. 그 당시에 헤겔의 제자들은 그의 미학강의를 출판했습니다. 동시에 프랑스에서는 <마가쟁 피토레스크> 같은 대중잡지들이 세계 예술의 보물들을 더 넓은 독자층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석판인쇄술에 의한 복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동시에 오노레 드 발자크는 그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소설 야생 나귀 가죽(The Wild Ass’s Skin)을 출판했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인 라파엘은 골동품 상점의 전시실에 들어가는데, 그가 본 것은 이런 것입니다.


악어, 원숭이, 배가 잔뜩 부른 보아뱀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것들은 조각된 반신상에 막 달려들고 옻칠한 제품을 쫓아다니거나 샹들리에로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Jaquetot 부인이 나폴레옹을 그려 넣은 세브르의 꽃병은 세소스트리스[Sesostris, 그리스 전설에서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집트 제12왕조의 왕]에게 바친 스핑크스 옆에 세워져 있었다. 라투르는 드 바리 부인을 머리 위에 별이 있고 벌거벗은 채 구름에 감싸여 있는 것으로 그렸는데, 인디언의 긴 담뱃대를 욕정에 휩싸여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같았다. 위풍당당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눈앞에 공기 기계가 쑥 내밀어졌다. 평생 동안 무감각한 잉글랜드 부시장과 네덜란드 시장의 몇몇 초상화들은 이토록 엄청나게 많은 골동품들에 굴하지 않고, 이것들을 냉담하고 탐탁찮게 쳐다봤다.

Crocodiles, apes and stuffed boas grinned at stained glass-windows, seemed to be about to snap at carved busts, to be running after lacquer-ware or to be clambering up chandeliers. A Sevres vase on which Madame Jaquetot had painted Napoleon was standing next to a sphinx dedicated to Sesostris.... Madame du Barry painted by Latour, with a star on her head, nude and enveloped in cloud, seemed to be concupiscently contemplating an Indian chibouk. . . . A pneumatic machine was poking out the eye of the Emperor Augustus, who remained majestic and unmoved. Several portraits of aldermen and Dutch burgomasters, insensible now as during their life-time, rose above this chaos of antiques and cast a cold and disapproving glance at them.'1


이 서술은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s을 완벽하게 예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서술은 상점과 미술관, 민속학적 박물관과 예술적 미술관, 예술작품과 일상적 소재들 사이의 비구별의 공간을 틀짓습니다. 그 모든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어떤 포스트모던적 단절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에 의해 산산조각 나기는커녕, 미학은 정확하게 이런 흐릿함을 의미합니다. 만일 사진이 문학으로 하여금 상상의 미술관을 성취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면, 그것은 문학이 이미 그 페이지 위에서 사진이 나중에 캔버스 위에서 섞었던 것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의 이 문자적 과거야말로 사진과 회화의 결합이 캔버스를 인쇄로 전환시켰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요점입니다. , 사진이 이질성, 무한한 복제 가능성, 아우라의 상실과 등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크림프가 논문을 발표했던 같은 해에는 사진에 관한 중요한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이 그것입니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주류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뒤집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유일무이함에 대한 증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사진은 포스트모던 콜라주에 가장 적합한 인공물로 받아들여진 후에, 일종의 성 베로니카의 상징으로, 순수하고 유일무이한 현전의 아이콘으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논점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술관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사진은 복제 가능성과 유일무이함을 모두 의미합니다. 사진적 복제 가능성은 제 나름의 힘에 의해 의미의 새로운 공동체로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넓은 가시성의 형태 안에서, 더 넓은 이해 가능성의 플롯 안에서 파악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 가능성을 현전의 한 형태나 의미의 한 절차의 증강이나 가치 저하에 적합하게 해야 합니다. 라우센버그의 사진 활용은 예술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평평함을 자율적 예술과 동일시하는 모더니즘적 동일시에 맞서는, 회화의 자족성에 맞서는 부가적인 증거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것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순수시의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 평평함은 매체의 종별성[특정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은 교환의 표면을, 시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선긋기 사이의, 행위와 형식 사이의, 텍스트와 드로잉이나 춤 사이의, 순수 예술과 장식 예술 사이의, 예술 작품과 오브제 사이의, 혹은 개인적 삶이나 집단적 삶에 속하는 퍼포먼스 사이의 교환을 뜻합니다.

 그린버그 식의 평평함의 패러다임에 맞선 새로운 증거의 산출이 한 시대의 종결로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또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런 형식적패러다임 속에서 미학의 명확한[한정된] 정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치는 미학의 또 다른 정치에 의해 타협된 정치적 자유의 평등의 약속을 자율적인 작동에 맡겼습니다. 미학의 또 다른 정치는 집단적 삶의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 있어서 스스로를 억누르라는 과제를 예술에 주었습니다.

 요점은 예술적 자율성의 급진성이 미학적 자율성을 공동체의 모종의 정치적, 아니 오히려 메타정치적 실행implementation과 연결하려는 더 넓은 플롯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미학이라는 말은 제게 [대문자] ‘예술의 미학적 식별 체제를 의미하는 것인데요, 아무튼 미학은 제 나름의 정치를 수반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스스로를 두 개의 경쟁하는 가능성들로 분할한다는 것, 미학의 두 개의 정치로 분할한다는 것은 또한 의미의 두 공동체들을 뜻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학은 프랑스혁명의 시대에 태어났으며, 처음부터 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점은 미학이 평등의 두 개의 경쟁하는 형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의 재현적 체제를 구성했던 구속과 위계의 시스템의 붕괴를 뜻합니다. 미학은 예술의 영역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오브제나 그럴 가치가 없는 오브제를 분리시키는, 고급 장르와 천한 장르를 분리시키는 주제, 장르, 표현형식의 위계가 와해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술 분야의 무한한 개방을 함축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비-예술, 예술적 창조와 익명적 삶 사이의 경계선의 삭제를 뜻했습니다.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 많은 이론가들이 여전히 주장하는 것처럼  ― 유일무이한 예술작품을 산출하는 유일무이한 천재의 찬양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18세기에, 원형적 시인인 호메로스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고 그의 시는 예술작품이 아니며, 예술적 경전의 실현도 아니며, 여전히 유치한 인민의 느낌과 사고방식을 표현한 덕지덕지 깁어놓은 우화 모음집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미학은 프랑스 왕의 머리 자르기와 인민의 주권에 동조하는 그런 종류의 평등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런 종류의 평등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삶의 식별 불가능성을 뜻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작품이 그 자체로 경험의 특정한 영역에서 포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칸트의 용어로 하면, 이 영역에서 예술작품은 지식의 대상이든 아니면 욕망의 대상이든 간에 이것들에 고유한 감각적sensory 연결의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예술작품은 그저 지적인 능력과 감각적sensory 능력 사이의 비위계적 관계를 뜻하고 무제한의 활동에 응답하는 자유로운 등장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그런 탈위계화의 정치적 귀결을 끌어냈습니다. ‘미학적 국가는 감각적 평등의 영역을 정의했는데, 여기서 수동적인 감각 가능성[감수성sensibility]보다 능동적인 이해[지성]가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두 인류를 분리함으로써 지배에 그 정당성을 전통으로 부여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이것이 와해시켰다는 것입니다. 고위 계급들의 권력은 수동성에 대한 능동성의 권력, 감각sensation에 대한 지성understanding의 권력, 날것의 의미에 대한 교양 있는 의미의 권력 등등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권력을 폐기함relinquishing으로써 미학적 경험은 지배의 역전일 수 있는 평등을 틀지었습니다. 실러는 프랑스 혁명에서 실행되었던 정치적 혁명에 그런 감각적 혁명을 대립시켰습니다. 정치적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바로 혁명권력이 (대중들을 의미하는) 감각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법을 부과하는 (국가를 의미하는) 지성의 전통적인 몫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진정한 혁명은 수동적 감각 가능성[감수성sensibility]에 대한 능동적인 지성의 힘을, 수동성과 미완성inchoateness의 계급에 대한 지능intelligence과 능동성의 계급의 힘을 전복시키는 혁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학은 예술의 경계선들의 진압suppression을 뜻하기 때문에, 미학은 평등을 뜻합니다. 그리고 미학은 인간 경험의 별개의 분리된 형태separate form로서의 [대문자] 예술의 구성을 뜻하기 때문에, 미학은 평등을 뜻합니다. 이 두 개의 평등은 대립되지만, 또한 함께 묶여 있습니다. 실러의 편지에서 그리스 여신의 조각상은 해방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여신은 게으르고’ ‘자족적이기 때문입니다. 조각상은 바로 이 분리성과 이용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욕망에 이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각상은 그 자유’, 혹은 무관심이 다른 자유나 무관심을, 즉 그것을 창조했던 그리스 인민의 자유를 구현하기 때문에 이것을 약속합니다. 이제 이 자유는 첫 번째 자유의 대립물을 뜻합니다. 실러에 따르면, 한 삶의 자유는 스스로를 실존의 별개의, 미분화된 형태로 찢어발기지 않으며, 한 인민의 자유를 뜻합니다. 이들에게 예술은 종교와 똑같은 것이고, 정치와 똑같은 것이며, 윤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즉 함께 있기의 방식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술작품의 분리성separateness은 대립물을 약속합니다. , 예술을 경험의 별개의 분리된 실천과 영역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미학의 정치는 이런 원초적인 역설에 의존합니다. 두 개의 대립된 평등들의 역설적 연결은 정치의 두 가지 주요 형태들로 향하며 또한 역사적으로도 이것으로 향했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두 개의 평등들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므로 의미의 공동체는 미학적 경험에서 경험된 평등과 자유의 종류가 공동체의 실존 형태 자체로 전환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집단적 실존의 형태는 형태와 외양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닐 것이고, 오히려 살아 있는 태도, 일상적인 감각적 경험의 물질성 속에 구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공통적인 것은 산 세계의 구조로 엮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학적 평등과 자유의 분리성이 이것의 자기-억제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예술과 정치, 노동과 여가, 공적 삶과 사적 삶이 똑같은 것인 공통적 삶의 미분리된 형태 속에서 성취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 불화와 미학적 향유가 외양 속에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실생활에서 성취하는, 미학적 혁명의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2세기 전에 독일관념론의 가장 오래된 체계 프로그램(The Oldest System Programme of German Idealism)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국가권력의 죽은 메커니즘을 신화학으로 전환된 철학에 의해 생기가 불어넣어진 인민의 산 신체로 대체하자는 제안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억압을 뜻하는 '인간 혁명으로서 인식된 혁명과 스스로를 분리된 실천으로 억누르고 스스로를 새로운 삶의 형태의 정립과 동일시하는 예술 모두의 기획에 있어서 계속 부활되었습니다. 그것은 19세기 영국에서 아츠 앤 크래프츠의 고딕적 꿈만이 아니라 20세기 독일에서 공작연맹이나 바우하우스의 테크놀로지적 성취물에도, ‘미래의 축제를 준비하는시라는 말라르메의 꿈만이 아니라 소비에트 혁명에 초현실주의적, 미래주의적, 구성주의적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참여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것은 상황주의적 건축물의 기획만이 아니라 기 드보르의 표류dériveJoseph Beuys‘social plastic’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국의 경계선들을 폭파하는 전지구적 네트워크의 거스를 수 없는 역량을 통해 시행된 다중의 프란체스코적 꼬뮤니즘이라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현대적 비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정치와 예술은 비분리적 삶의 새로운 형태에 도움이 되도록 그들의 자기-억제를 성취해야만 합니다.

 이와 반대로 두 번째 형태는 두 개의 평등들을 분리접속시킵니다. 이것은 미학적 경험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을 예술과 삶의 무한한 등가성의 장으로부터 분리접속시킵니다. 이것은 의미의 공통성들이라는 쟁점을 의미의 두 공통성들 사이의 환원 불가능한 대립으로서 무대에 올립니다. , 접속의 공통성들인 동시에 분리접속의 공통성들을 말입니다. 한편으로, 산 경험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외된 삶의 공통성을 뜻합니다. 이 공통성은 의미(감각)와 의미()의 원초적 분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서사에서, 이것은 세이렌의 노래와 항해 노동 둘 다로부터의 율리시스의 이성의 분리입니다. 소외된 삶의 그런 공통성은 그 대립물의 기만적인 외양appearance속에서 성취됩니다. 그것은 미학화된 삶과 상품 문화의 동질적인 외양 속에서 성취됩니다가짜 평등과 가짜 의미 공통성은 미학적 경험의 자율성에 의해, 경험의 모든 다른 형태들에 대한 그 이질성에 의해 틀지어진 공통성과 대조를 이룹니다. 표준적인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은 그런 공통성에 관한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그 정치적 내용을 망각한 채로 말입니다. 예술의 정치적 행위는 예술의 자율성과 그 해방의 역량의 핵심인 이질적인 감각적인 것을 구해내는 것입니다. 미학의 그런 정치에서 작동하는 의미 공통성은 의미와 의미의 접속과 탈접속 둘 다에 기초한 공통성입니다. 그 분리성은, 그것이 순수 형태의 거부가 아닌 한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감각할 수 있습니다makes sense.’ 오히려 그것은 분리성과 비분리성의 관계 자체를 무대에 올립니다. 작품의 자율적 완전성은 자신의 고유한 모순을 탈은폐해야만 합니다. 소외의 표식이 화해의 외양 속에 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율리시스의 이성을 세이렌의 노래와 화해시키고, 그것들을 동시에 화해 불가능한 채로 유지합니다.

 이 정치에서 관건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혹은 대중예술 사이의 경계선을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의미자체의 두 세계들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적 논박가들은, 라우센버그가 벨라스케스의 모사물과 자동차 열쇠를 똑같은 캔버스에 담자, 모더니즘적 정치성패러다임이 붕괴했다고 이들이 생각했을 때, 그 목표물을 잃어버립니다. 패러다임은 의미의 두 세계들을 분리시키는 경계선이 붕괴할 때에만 위협받습니다. 아도르노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놀라운tremendous 주장을 했습니다. , 우리는 19세기 살롱 음악의 몇 가지 화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사기가 아닌 한에서, 라고 말입니다. -프랑수와 리오타르는 당신이 하나의 캔버스 안에 조형적인 모티프와 추상적인 모티프를 섞을 수 없다고, 이런 혼합을 느끼고 가치 평가하는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듯이, 때때로 그런 화음이 여전히 들릴 수 있고, 여러분이 똑같은 캔버스 위에 혼합된 조형적인 모티프와 추상적인 모티프를 여전히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공예품artifacts을 빌려와 이것들을 재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성에서 포스트근대성으로의 어떠한 급진적 이행도 표시하지 않습니다. 패러다임은 그런 계시revelation에 의해 산산조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황급한 도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모든 의미 공통성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의 자율성을 억누르고 예술을 순진한 윤리적 증거로 변형시키는 것을 대가로 하여 감각 경험의 근본적 이질성을 재천명해야 합니다. 이런 변동은 80년대의 프랑스 미학 사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롤랑 바르트는 죽은 어머니의 사진의 유일무이함을 기호학자의 해석적 실천만이 아니라 사진술 자체의 예술적 치장pretension에도 대립시킵니다. 고다르는 낡은 서사적 플롯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자율성 자체를 와해시키는 것을 대가로 이미지의 아이콘적 힘이나 문장/구절의 리듬을 강조합니다. 리오타르에게 붓질이나 음색은 타자의 힘에 의한 정신의 노예화enslavement에 대한 순전한 증거가 됩니다. 타자의 첫 번째 이름은 아이스테톤aistheton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법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치와 미학은 둘 다 윤리 속으로 사라집니다. 예술의 정치성이라는 이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이 같은 역전은 정치적 불화성을 예외와 테러의 아르케정치 속으로 해소하는 사유의 전체 조류와 조화를 이룹니다. 오직 하이데거적 신만이 우리를 이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의미 공통성들을 아주 빨리 개괄했습니다. , 정치화하는 예술이라는[예술을 정치화하는, politicizing art] 기획(가령, 비판적 예술의 형태로)은 언제나 예술을 그 자체로 식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가시성과 가지성의 형태로 수반된 정치성의 형태에 의해 예견됩니다. 우리는 그 분리성과 그 비분리성에 부착된 두 형태의 평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예술을 식별합니다. 우리는 예술을 그 자율성과 그 타율성의 변증법을 통해 식별합니다. 그런 뒤에 정치적 예술이나 비판적 예술을 한다는 것은, 혹은 정치적 예술관을 취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것은 그 힘을 평등의 두 가지 미학적 형태들 사이의 관계의 특정한 협상 속에 위치짓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비판적 예술은 미학의 두 정치 사이의 일종의 제3의 길입니다.

 이 협상은 미학적 경험을 집단적 삶의 재배치로 향하게 떠미는 어떤 긴장을, 다른 경험 영역으로부터 미학적 감각 가능성sensoriality의 힘을 빼내는 어떤 긴장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예술과 삶의 비구별의 지대로부터 그것은 정치적 이해 가능성[가지성]을 유발하는 접속을 빌려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술작품의 분리성으로부터 그것은 정치적 에너지들을 증대시키는 감각적 외래성foreignness의 의미를 빌려와야만 합니다. 정치적 예술은 이런 대립물들의 일종의 콜라주여야만 합니다. 이 말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콜라주는 비판적 예술의 주요 절차입니다. 미학의 두 정치들 사이에서 그 길을 내야만 하는 3의 정치의 주요 절차인 것입니다. 벨라스케스와 자동차 열쇠를 뒤섞기 전에, 콜라주는 미학의 대안적 정치를 뒤섞으며, 그 협상의 산물을 이해 가능성의 흔들리는 형태들에 부여합니다. 정치성의 흔들리는 형태들을 길러내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이질적 영역에서 빌려왔던 요소들의 공통성을, 의미의 공통성들을 거의 틀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이한 경험 영역으로부터 요소를 취함으로써, 상이한 예술들이나 테크닉들에서 몽타주의 형태들을 취함으로써 특정한 이질성의 형태들을 수립합니다. 만일 브레히트가 20세기의 정치적 예술의 일종의 원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공산주의에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정치적 교육의 스콜라적 형태를 음악적인 것이나 무도회적인 것의 향락과 섞으면서, 혹은 꽃양배추에 관한 운문에서 나치 권력의 알레고리들을 논의하면서, 이 대립들 사이의 관계를 항해/협상한 방식 때문에 말입니다. 정치적 혹은 비판적 예술의 주요 절차는 이질적 요소들의 마주침을 설정하고 가능한 충돌을 설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이질적 요소들의 충돌은 우리의 지각에 단절을 초래하고, 일상적 리얼리트 뒤에 숨겨진 사물들의 모종의 비밀스런 접속을 탈은폐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감추어진 리얼리티는 부르주아적 삶의 산문에 의해 은폐된 꿈과 욕망의 절대적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적 시학에서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이상 뒤에 은폐된 자본주적 권력과 계급 전쟁의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 하트필드의 사진몽타주의 전투적 실천에서처럼, 예를 들어 우리에게 아돌프 히틀러의 식도에 있는 자본주의적 황금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예술은 이질적 요소들만이 아니라 감각 가능성의 두 정치를 함께 두는 변증법적 충돌이나 불화의 형태들을 창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질적 요소들은 하나의 충돌을 도발하기 위해서 함께 놓입니다. 이제 충돌은 동시에 두 가지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람들을] 깨우치는enlightens 섬광입니다. 이질적 요소들의 접속은 그 가독성에 대해 토로합니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의 어떤 비밀을 가리킵니다. 브레히트의 Arturo Ui에서 채소와 미사여구high rhetorics의 접속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충돌은 요소들의 이질성이 의미의 동질성에 저항하는 한에서 산출됩니다. 꽃양배추는 미사여구와 병치된 꽃양배추로 남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싣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불투명함opaqueness 자체로부터 정치적 에너지를 증강시킬 터입니다. 궁극적으로, 불규칙하게 변화하는heteroclite 요소들의 단순한 병치는 정치권력을 타고 납니다. 고다르의 영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월트 디즈니 영화에서, 그러니까 정치적 영화에서 큰 인상을 받았어.” 불규칙적 요소들의 단순한 관계는 그러므로 갈등의 정치적 리얼리티를 증언하는 변증법적 충돌로서 나타납니다.

 정치적 예술은 정치와 예술 사이가 아니라 미학의 두 개의 정치 사이의 일종의 협상입니다. 이 제3의 길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 및 경계선의 부재 위에서 계속해서 놂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알레고리와 알레고리의 폭로의 브레히트적 동일성은 당신이 예술과 꽃양배추, 정치와 꽃양배추 사이의 접속과 분리접속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런 놀이는 채소 자체가 이중의 실존을 갖는다는 것을 추정합니다. 하나는 이것들이 예술 및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들이 이미 정치와 예술 둘 다와 강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 예술, 채소의 관계는 브레히트 전부터 실존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전통을 부활시키면서 인상주의적 정물화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문학에서도 말입니다. 에밀 졸라의 소설 파리의 배는 이것들을 정치적 상징인 동시에 예술적 상징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설은 두 등장인물들의 양극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국외추방을 당했다가 파리의 새로운 중앙시장으로 돌아온 가난하고 늙은 혁명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소비의 범람을 의미하는 양배추의 범람에 압도당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양배추의 서사시를, 모더니티의 서사시를, 중앙시장의 유리와 철로 된 건물을, 채소 더미들을 노래하는 인상파 화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근처에 있는 고딕식 교회가 상징하는 낡은/옛날의 애처로운 미와 대조되는 근대적 미를 우화화했습니다. 꽃양배추의 정치적 알레고리는 예술, 정치, 채소의 접속이(다시 말해서 정치, 예술, 소비의 접속이) 이미 일군의 움직이고 있는 경계선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것들은 예술가가 경계를 가로지르게 하며, 이질적 요소들의 접속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그 타율성의 감각적 힘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의 혼합, 혹은 예술과 상품의 혼합이 60년대, 즉 근대예술과 그 정치적 역량을 실현한 동시에 무너뜨렸던 60년대의 발견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정치적 예술은 이미 그런 혼합에 의해,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예술과 상품 사이의 경계선 가로지르기의 연속적 과정에 의해서 이미 가능해졌습니다. 이 과정은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과거로 돌아가게 합니다당신은 고급 예술을 찬양하던 시대를 고급 예술이 진부해지거나 패러디되는 시대와 대립시킬 수 없습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예술이 특정한 존재영역으로 구성되자마자, 그 산물들은 재생산, 교역, 상품의 진부함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산물들이 그렇게 하자마자, 상품들 자체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역량은 졸라의 양배추 서사시에서 일어났듯이, 근대적 삶의 압도적인 역량과 미와 직접적으로 동일시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소비에 대해 한물간 것이자 소비에 이용될 수 없게 됨으로써 예술의 영역에 빠져들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미학적(이해관심이 없는disinterested) 오브제를 쾌나 친숙한 낯섦의 유희excitement로 전환시켰습니다thereby turned into objects of aesthetic-disinterested-pleasure or uncanny excitement. 벤야민의 알레고리 이론이나 브레히트의 서사극만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의 시학도 이러한 경계선 가로지르기를 잘 해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현대 설치미술과 곧바로 연결되는 예술과 교역의 애매한 관계를 이용했던 비판적 예술의 모든 형태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들은 고급예술이나 정치가 자본주의적 지배와 맺는 접속을 드러내기[탈은폐하기] 위해서 예술적 전통, 정치적 수사학, 상업 문화, 상업 광고 등등에서 빌려온 이질적 재료들을 섞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이 경계선들을 지웠던 점증적인 과정들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비판적 예술은 이런 연속적인 경계선 가로지르기를, 시적인 것의 산문화와 산문적인 것의 시화(詩化)라는 이 이중적 과정을 잘 해냈습니다.

 만일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좀 더 확고한 뿌리 위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에 연루된 정치적 쟁점들을 다시 틀짓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현대예술에서 관건은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운명이 아닙니다. 그 타당성은 전보다 더 약하지도 더 강하지도 않습니다. 제 견해로는, 그것은 항상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변증법에 대한 아주 제한적인 해석이었습니다. 관건은 미학의 제3의 정치의 운명입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여전히 모던하고 이미 포스트모던하고, 혹은 심지어 포스트-포스트모던한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 변증법적 충돌에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비판적 예술의 공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저는 불과 몇 년 전에 60년대 혹은 70년대의 예술과의 비교점을 제공했던 전시회들을 참조하면서 가능한 답변을 위한 몇몇 요소들을, 따라서 변동의 중대한 몇몇 표시자들을 제공했습니다.

 첫 번째 예. 3년 전[2000년]에 파리 국립사진센터는 배경음/잡음Bruit de fond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는 최근 작품들과 60년대의 작품들을 병치시켰습니다. 60년대의 작품들에는 마사 로슬러의 <Bringing the War Home> 시리즈가 있었는데요, 이 작품은 미국 가정의 행복을 담은 광고 이미지들과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합친 사진몽타주들입니다. 이 작품 부근에는 미국의 정치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요소들의 대면/대결이라는 똑같은 형태를 취했습니다. 왕 뒤가 만든 세계의 시간(Les temps du monde)이라는 작품은 두 개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왼쪽에는 밀랍 인형관의 한 쌍의 형상들처럼 팝아트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클린턴 부부가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쿠르베(Courbet)의 세계의 기원(Origine du monde)이라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는데요, 잘 알다시피 이것은 여성의 성을 재현합니다. 그래서 두 사례 모두에서 미국식 행복의 이미지는 그 감추어진 비밀과 병치됩니다. , 마사 로슬러의 경우에는 전쟁과 경제적 폭력이, 왕 뒤의 경우에는 성과 신성모독profanity이 말입니다. 하지만 왕 뒤의 사례에서는 정치적 갈등성과 낯섦의 의미가 모두 사라집니다. 남았던 것은 탈정당화의 자동기계적 효과였습니다. , 성적인 신성모독은 정치를 탈정당화하고, 왁스의 형상은 고급 예술을 탈정당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 탈정당화해야 할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메커니즘은 자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확 돌아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이중의 놀이를 작동시켰습니다. 탈정당화하는 효과의 자동기계성과 자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휙 돌아서는 것을 깨닫는 것.

Bringing the War Home 200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Bringing the War Home 200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Wang Du, Les Temps du Monde (1998)


 두 번째 예. 여기 : 머릿속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3년 전(2000년)에 파리에서 열린 또 다른 전시회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상이한 설치작품들을 통해서 한 세기를 기록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작품들 중에는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설치작품인 Les abonnés du telephone가 있었습니다. 이 설치작품의 원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 화랑의 양 편에 있는 두 개의 선반에는 세계 각지의 전화번호부가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는 두 개의 탁자가 있는데, 여기에 앉아서 당신이 좋아하는 그 어떤 전화번호부든 정독할 수 있습니다. 이 설치작품은 90년대의 또 다른 정치적 작품인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작품 The Other Vietnam Memorial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 기념비란 물론 무명씨인[익명의] 베트남인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입니다. 크리스 버든은 전화번호부에서 베트남식 이름을 무작위적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기념비에 쓰여진 이름들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율성은 논쟁적인 플롯에 더 나아가 탑재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승리자들이 무명인 채로 남겨두었던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명씨들[익명인 자]의 이름들은 볼탄스키가 말하듯이, ‘인류의 견본이 됩니다.

   

Christian Boltanski, <Les abonnes du telephone>

Chris Burden, <The Other Vietnam Memorial>




 세 번째 예. 2003년에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동영상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목적은 현대예술에서 재생산 가능한 미디어의 광범위한 사용이 어떻게 60년대와 70년대의 비판적 예술 실천에 뿌리를 두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류의 사회적 혹은 성적 스테레오타입들과 예술적 자율성 둘 다를 의문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형 홀rotunda을 둘러싸고 전시된 작품들은 그런 직선으로부터의 중대한 변동을 조명했습니다. 가령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의 비디오는 미술관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벌거벗은 여성들을 보여주는데요, 이 작품은 예술에 있어서 여성적 스테레오타입들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 벌거벗고 무언의 신체들은 또 다른 방향을 따랐습니다. 모든 의미 작용으로부터 도주하는, 혹은 의미작용의 갈등으로부터 도주하는 것입니다. 또 이 작품은 그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적 비판보다 훨씬 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형이상학적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겐하임의 둥그런 경사면을 올라가 보면, 많은 비디오, 사진, 설치작품, 그리고 비디오 설치물들이 일상생활의 진부한 재현에 수반된 새로운 종류의 낯섦을, 신비의 의미를 비판하기보다는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애매한 10대들을 찍은 리네케 데익스트라Rineke Dijkstra의 사진들은 물론이고, 일상적 사건들의 낯섦을 영화처럼 재현한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의 작품들, 혹은 거기에 포함된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작품들에서 이것을 감지했습니다. 볼탄스키의 작품은 사진들, 전기조명, 전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작품에 따르면 아마도 홀로코스트의 죽은 자들이나 유년기의 덧없음[손쌀 같이 지나가는 유년기]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전시회의 꼭대기에는 충돌의 변증법적 예술에서 신비의 상징주의적 예술로의 일종의 되돌아가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빌 비올라가 만든 비디오 설치물인 <매일 앞으로 나아가기Going Forth by Day>에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비올라의 작품은 탄생과 삶과 죽음과 부활의 순환만이 아니라 불과 공기와 흙과 물의 순환을 포괄하는 프레스코화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Giorgio de Chiric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Giorgio de Chiric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들

관련 이미지

리네케 데익스트라Rineke Dijkstra의 사진들 [구글에서 더 보기]

Gregory Crewds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의 작품들 [구글에서 더 보기]



Bill Viola, <Going Forth by Day>


 많은 가능한 다른 것들 중에서 선택된 이 세 가지 예들로부터, 우리는 오늘날 미학의 정치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설명[소묘]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예술의 불화적 형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물음 말입니다. 저는 미학적 불화의 변증법적 형태가 네 가지 주요 형태로 쪼개졌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농담일 것입니다. 농담에서, 이질적 요소들의 통합접속conjunction은 여전히 긴장이나 양극성으로서 상연됩니다. 이것은 몇몇 비밀을 지적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비밀은 없습니다. 변증법적 긴장이 한편으로는 권력의 비밀을 벗겨내는 절차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 상업적 오락이나 광고에 의해 권력 그 자체에 의해 산출된 탈정당화의 절차들 사이의 식별 불가능성 자체를 이용하는 게임으로서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왕 뒤의 작품의 사례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전시회가 똑같은 결정 불가능성을 이용합니다. 가령, 파리에서 상황주의적 제목인 <스펙터클을 넘어서>로 재활용되기 전에 팝아트식popesque의 제목인 <즐기자>라는 제목으로 어떤 전시회가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는 세 가지 수준들을 이용합니다. 고급예술에 대한 팝아트적 조롱, 자본주의적 오락에 대한 비판적 비난, 그리고 스펙터클의 대립물로서의 놀이라는 드보르 식의 관념을 말입니다.

 두 번째 형태는 콜렉션일 것입니다. 콜렉션에서 이질적 요소들은 여전히 똑같이 취급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비판적 충돌을 촉발[도발]하기 위해서나, 심지어 그 비판적 힘의 미결정성을 이용하기 위해서 모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어떤 공통의 세계와 공통의 역사의 흔적과 증거를 콜렉션하는[수집하는] 긍정적인 시도가 됩니다. 콜렉션은 또한 리콜렉션이기도 합니다. 모든 아이템(예술작품, 사적인 사진, 사용된 오브제, 광고, 상업 비디오)의 평등은 그러니까 한 공동체의 삶의 문서고적 흔적들의 평등으로 바뀝니다. 저는 여기 : 머리 속의 세계라는 전시회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한 세기를 재수집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신이 볼탄스키의 방을 떠나면, 예를 들어 Hans-Peter Feldmann이 찍은 백여장의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한 살에서 100살까지 각각의 나이별로 한 명씩을 재현합니다. 그와 같은 많은 다른 설치작품들은 공통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런 조류의 많은 다른 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오늘날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는 어떤 모토와 장단이 잘 맞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사회적 유대는 깨졌으며, 예술가들은 공유된 인간성을 증언하고 있는 모든 흔적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회적 유대나 사회적 구조를 수선하려는 투쟁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형태는 초대invitation일 것입니다. 저는 Les abonnés du telephone가 어떻게 방문자들더러 선반 위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집어들어서 그것을 무작위적으로 열어보게끔 초대했는지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시회의 다른 곳에서도 관람자들은 책더미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카펫 위에 앉도록 초대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들의 동화 속 섬을 재현합니다. 다른 전시회에서 관람자들은 수프를 먹고 다른 이들과 접촉하도록, 새로운 형태의 관계에 참여하도록 초대됩니다. 그런 시도는 전에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적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체계화되었습니다. , 예술은 더 이상 작품이나 오브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재촉하는 다소 단명하는 상황을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듯이, 어떤 소소한 서비스를 함으로써 예술가는 사회적 유대의 간극을 메우는 임무에 기여합니다.

 네 번째 형태는 신비일 것입니다. 신비는 수수께끼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신비로움mysticness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라르메 시대 이래, 신비는 이질적 요소들을 함께 두는 특정한 방식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말라르메의 경우, 시인의 사유, 댄서의 스텝, 부채의 펼침, 혹은 담배 연기 등. 적대에 의해 틀지어진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 요소들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충돌과는 대립되게, 신비는 유비를 산출합니다. 기묘한 것의 친숙함을, 공통의 세계에 대한 증언을 말입니다. 여기서 이질적인 리얼리티들은 똑같은 구조로 엮이며, 은유의 우애에 의해 서로 항상 관련될 수 있습니다.

 ‘신비은유의 우애는 장-뤽 고다르가 <영화사()>에서 사용한 두 용어입니다. 이 작품은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고다르가 이질적 요소들의 콜라주를 자신이 항상 해 왔던 것처럼 사용하기 때문이지만, 그는 그것들이 20년 전에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산출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사>의 어떤 놀라운 구절에서 고다르는 세 개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융합합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태양 아래>에 나오는 샷입니다. 이 영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분한 젊고 부유한 연인의 행복을 보여줍니다. 일광욕을 하고 있는 그녀 옆에는 연인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바로 이 조지 스티븐스가 몇 년 전에 찍은 영화인, 라벤스브리크에서 죽은 자들의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미지는 파두아에 있는 지오토의 프레스코화에서 따온 마리아 막달렌입니다. 만일 20년 전에 만들어졌다면, 이 콜라주는 고급 예술과 미국인의 행복의 뒤에 감추어진 죽음의 비밀을 비난하는 변증법적 충돌로만 이해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사>에서 비난의 이미지는 구원의 이미지로 전환됩니다. 나치의 절멸, 미국인의 행복, 지오토의 비역사적인'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의 결합conjunction은 이미지들의 구원의 역량을 증거합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세계 속의 자리'를 부여하는 그런 구원의 역량 말입니다. 변증법적 충돌은 공현존의 신비가 됩니다. 신비는 상징주의의 핵심 개념입니다. 상징주의의 회귀는 분명히 의제에서 드러납니다. 제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저는 상징주의적 신화의 부활이라는 스펙터클한 형태를, 매튜 버니의 작품에서처럼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의 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비올라의 작품과 같은 상징주의의 효과적인 사용만을 지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좀 더 겸손하고 거의 지각 불가능한 방식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에서 우리의 미술관과 화랑에 모이게 된 오브제, 이미지, 기호의 콜렉션은 점점 더 불화의 논리에서 신비의 논리로, -현전의 증거로 변동하고 있습니다.

 변증법에서 상징주의로의 변동은 분명히 제가 정치의 미학이라고 불렀던 것에서의 현대적 변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치의 미학이란 정치가 공통의 무대를 틀짓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변동은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합의입니다. 합의는 단순히 공동체의 공통적 이해관계에 관한 정치정당들의 동의나 사회적 파트너들의 동의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재배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집단적 상황의 소여들이 더 이상 논박에, 주어진 세계 안에서의 논쟁적 세계의 논전(論戰)적 프레이밍에 스스로를 적합하게 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객관화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방식에서 합의는 정치의 미학을 내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무대와 불화의 정치적 개입의 그런 삭제 혹은 약화는 미학의 정치에 대해 모순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실천에 새로운 가시성을 줍니다.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실천이란, 공간과 시간,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형태, 사물들과 이미지들과 의미들 사이의 접속의 형태의 재분배의 실천들을 뜻합니다. 예술적 퍼포먼스는 불화적 무대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의 대체물로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합의는 정치적 장소를 빈 채로 단순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 대상의 영역을 틀짓습니다. 또한 그것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적 실천의 공간과 임무를 형성합니다. 가령, 계급갈등의 문제를 포함과 배제의 문제로 대체함으로써, 그것은 '사회적 유대의 상실'을 걱정하게 만들며, ‘벌거벗은 인류에 관해 고심하게 만들며, 혹은 정치적 관심의 자리에서 위협받은 정체성들의 힘을 키우는 것에 열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술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틀짓고 사회적 유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 정치적 역량이 작동할 수 있게 소환됩니다. 제 견해로는, 비판적 패러다임에서 농담, 콜렉션, 초대, 신비의 형태로의 변동은 정치적인 것이 윤리적인 것의 형태로 재배치된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술에 있어서 정치를 이렇게 윤리로 대체하는 것에 맞서서, 오늘날 어떤 기획들은 예술에서 정치적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이것들은 공간의 분배라는 문제를, 상황의 재서술이라는 쟁점을 제기합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정치에 속했던 문제에 관한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은 예술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만들려는 새도운 시도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지들을 생산하거나 재순환하기보다는 리얼한 오브제를 만드는, 혹은 단순한 '예술적' 설치작품보다는 실생활에서 실제 행동에 착수하는 예술의 기획을 부활시키는 데 착수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참여[헌신]은 실재적인 것에 대한 탐구와 등치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은 예술이 도달해야만 할 '실재''외부'가 아닙니다. '바깥'은 항상 ''의 다른 면입니다. 그 차이를 산출하는 것은 유형론입니다. 그 유형론에서 안과 바깥을 틀짓는 것이 협상됩니다. 실재적인 것 자체는 단순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리얼리티의 틀짓기나 허구[픽션]입니다. 예술은 실재계에 도달함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재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의 현존하는 분배에 도전하는 허구를 발명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허구[픽션]를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를 한다[꾸며낸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리얼리티의 현존적 의미를 틀짓는 기호와 이미지, 이미지와 시간, 혹은 기호와 시간 사이의 접속을 해제하고 재분절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허구는 의미의 새로운 공통성들을 발명합니다. 달리 말해서, 보여질 수 있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새로운 궤적들을 발명합니다. 그것은 자리와 능력의 배분을 흐릿하게 만들며, 이것은 또한 그것이 그 고유한 활동을 정의하는 경계선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에술을 한다는 것은 예술의 경계선을 자리바꿈한다는 것을 뜻하며, 마찬가지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영역으로서 인정되는 것의 경계선들을 자리바꿈한다[이동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몇몇 예술작품들이 영토들과 경계선들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미학의 정치가 지닌 궁극적 역설일 수 있는 것은 미학적 거리나 무관심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명함으로써 오늘날 예술이 합의에 맞서서 의미의 새로운 정치적 공통성들을 틀짓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은 단순히 정치적 갈등의 약화로 인해 남겨진 공간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자신의 고유한 정치의 한계를 검증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재형성해야만 합니다.


Notes

1. Balzac, The Wild Ass's Skin,15.

2. Schiller,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109.

3. Horkheimer and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4. Bourriaud, Relational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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