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중요한 심리적 행위이며, 언제나 그 원동력은 성취되어야 하는 소원이다. 소원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특성, 많은 기이한 것들과 부조리는 꿈-형성에서 겪는 심리적 검열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검열에서 벗어나야 하는 압박 이외에 심리적 재료를 압축해야 하는 압박, 감각적 형상으로의 묘사 가능성에 대한 고려, 그리고―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꿈-형성물의 합리적 이해 가능한 외양을 위한 고려가 꿈-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모든 명제에서 심리학적 가설과 추측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네 가지 조건들 사이의 상호 관계와 이것들과 소원 동기의 관계가 우리의 연구 과제이다. 꿈을 정신생활의 맥락 속에 배열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장의 서두에서 우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를 상기하기 위해 꿈 사례를 하나 들었다. 불에 타고 있는 아이에 관한 꿈의 해석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왜 잠에서 깨어나는 대신 꿈을 꾸었는지 질문을 제기했고, 아이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소원이 꿈을 꾸게 된 한 동기라고 인식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소원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좀 더 논의한 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수면 중의 생각이 꿈으로 변화된 동기는 생전의 아이 모습을 보고 싶은 소원 성취이다.
이 소원 성취를 제거하면, 심리적 사건의 두 종류를 구별하는 한 가지 특성만이 남는다. 꿈-사고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에서 불빛이 보인다. 혹시 촛불이 넘어져 아이가 불에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꿈은 이러한 생각의 결과를 그대로 재현하지만, 깨어 있을 때의 체험처럼 감각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꿈의 가장 보편적이고 두드러진 심리적 특성이다. 사고,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소원하는 사고는 꿈에서 객관화되어 장면으로 묘사되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체험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꿈-작업 고유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는― 겸손하게 표현하여―심리적 과정의 맥락 속에 어떻게 끼워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중략>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관념은 ‘심리적 소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문제되는 정신기관이 해부학의 표본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심리적 소재를 해부학적으로 규정하려는 유혹을 신중하게 피하려 한다. 우리는 심리학적 토대를 고수하면서, 정신 활동에 봉사하는 기구를 조립된 현미경이나 사진기, 또는 이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라는 요구만을 따를 생각이다. 심리적 소재는 영상이 형성되기 이전의 한 단계가 성사되는 기구 내부의 한 장소에 상응한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미경이나 망원경에서 이것은 부분적으로 관념적인 장소, 눈으로 볼 수 있는 기계 성분은 전혀 없는 장소이다. 나는 이것이나 이와 유사한 비유들의 불완전함을 양해해 달라고 당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유들은 심리적 기능을 분해하여 세부적인 기능들을 기관의 세부적인 구성 성분에 할당하면서 기능의 복잡함을 이해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내가 알기로 정신 기구의 구성을 그런 식으로 분해하려 헤아려 보려는 시도를 한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 그러한 시도는 별다른 위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우리가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고 골조를 건물로 오인하지만 않으면, 자유롭게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지의 것에 첫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도움이 되는 표상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아주 조야하지만 구체적인 가정들을 해보기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 기관을 조립된 기구로 생각하고, 그 구성 성분들을 ‘심급(instanz)’ 아니면 알기 쉽게 ‘조직(system)’이라고 부르려 한다. 그런 다음 망원경의 여러 렌즈 조직들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듯이, 이 조직들이 공간적으로 서로 일정한 방향을 취하고 있다고 예상해보자.
엄격히 말해 심리적 조직들이 실제로 ‘공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임의의 심리적 과정에서 조직들이 ‘시간적으로’ 차례차례 흥분되는 것에 의해 확고한 순서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순서는 심리적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그러한 가능성은 체쳐 두기로 한다. 정신 기관의 구성 성분들을 이제부터는 간단히 ‘ψ-조직’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ψ-조직들로 구성된 이러한 기관이 어떠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모든 심리적 활동은 (내적이나 외적) 자극에서 출발하여 신경 감응으로 끝난다. 따라서 정신 기관에서 감각적 말초 조직과 운동성 말초 조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감각적 말초 조직에는 지각을 수용하는 조직이 있고, 운동성 말초 조직에는 운동 기능의 수문을 여는 또 다른 조직이 있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과정은 지각 조직의 끝에서 운동성 말초 조직으로 진행한다. 따라서 정신 기관의 가장 보편적인 도식은 다음과 같이 보일 것이다.

지각 조직 → … → 운동성 조직

그러나 이것은 정신 기관이 반사 장치처럼 구성되어 있다고 우리가 오래 전부터 내세운 주장을 성취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사 과정은 모든 심리적 기능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감각적 말초 조직에서 처음으로 분화가 일어난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우리에게 이르는 지각들은 우리의 정신 기관에 ‘기억 흔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이 기억 흔적과 관련된 기능을 ‘기억력’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진지하게 심리적 과정을 조직들과 연결시키려 한다면, 기억 흔적은 조직의 여러 요소들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다른 관점에서 설명했듯이 조직이 자체 요소들의 변화를 충실히 보존하면서 또한 언제나 수용하려는 신선한 태도로 변화의 새로운 계기들을 대하는 경우 명백히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우리 시도의 중심 원칙에 따라 이 두가지 기능을 상이한 조직에 분배하고자 한다. 우리는 정신 기관의 전면에 있는 조직은 감각 자극을 받아들이지만 그 자극들의 흔적을 보존하지 못하여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첫 번째 조직의 순간적인 흥분을 지속적인 흔적으로 변환시키는 두 번째 조직이 그 뒤에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의 정신 기관의 모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각 조직 → 기억 조직 → 기억 조직 1 → 기억 조직 2 → … → 운동성 조직 <중략>

중요한 의미를 시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의견을 여기에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보존할 능력인 기억력이 없는 지각 조직은 아주 다양한 감각적 특질을 우리의 의식에 제공한다. 반대로 깊이 아로새겨진 것을 포함하여 우리의 기억들은 그 자체로 무의식적이다. 그것들은 의식화될 수 있지만, 무의식 상태에서 완전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성격이라고 불리는 것은 인상이 남긴 기억 흔적에 기초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청소년기의 인상들은 거의 의식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다시 의식되는 경우, 기억들은 감각적인 특질을 전혀 보이지 않거나 아니면 지각과 비교해 아주 미미한 특질만을 지닌다. ‘ψ-조직에서 기억과 의식을 위한 특질이 서로 배타적’이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신경 흥분의 조건들을 인식할 수 있는 유망한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감각적 말초 조직에서 정신 기관의 구성에 대해 가정하면서, 꿈과 꿈에서 추론할 수 있는 심리학적 해명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 기관의 다른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꿈을 증거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두 개의 심리적 심급을 가정하지 않을 경우, 꿈-형성의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두 심급 중 하나는 다른 심급의 활동에 비판을 가함으로써, 그 결과 의식할 수 없게 한다. 우리는 비판하는 심급이 비판받는 심급보다 의식과 더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추론하였다. 비판하는 심급은 비판받는 심급과 의식 사이에서 마치 병풍처럼 버티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의 생활을 주도하며 자의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을 결정짓는 것과 비판하는 심급을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했다. 우리가 가정한 의미에서 이러한 심급들을 조직들로 대체하면, 비판하는 조직은 앞에서 논의한 인식을 근거로 운동성 끝에 자리하게 된다. 이제 두 조직을 도식에 끼워 넣고, 의식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명칭을 부여할 것이다.

지각 조직 → 기억 조직 → 기억 조직1 → … → 무의식 조직 → 전의식 조직 → 운동성 조직

우리는 운동성 말초 조직의 마지막 조직을 ‘전의식 조직’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흥분 과정들이 예들 들어 어느 정도의 강도에 이르고 주의력이라 부를 수 있는 기능을 배분하는 등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는 경우 지체없이 의식에 이를 수 있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그것은 자의적인 운동성에 이르는 열쇠를 쥐고 있는 조직이다. 그 뒤의 조직은 ‘전의식을 통하는 것 이외에는’ 의식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 조직’이라고 부른다. 이 조직들 가운데 어느 것에 꿈-형성의 동인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 무의식의 조직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며, 꿈-형성은 전의식 조직에 속하는 꿈-사고와 불가피하게 연관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나중에 꿈의 소원을 다루는 자리에서 꿈의 원동력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의식 조직을 꿈-형성의 출발점으로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꿈-자극은 다른 모든 사고들이 형성될 때처럼 전의식 안으로 진행하여, 여기에서부터 의식에 이르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전의식에서 의식에 이르는 이러한 통로가 낮 동안에는 저항이 부과한 검열 때문에 꿈-사고에 차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밤이 되면 꿈-사고는 의식으로 가는 통로는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떤 길을 경유하고 어떤 변화를 겪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밤에는 무의식과 전의식 사이의 경계에서 저항의 감시 활동이 약화되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현재 우리의 관심 대상인 환각적 특성을 보이지 않는 표상들을 재료로 하여 꿈을 꿀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과 전의식, 두 조직 사이에서 검열이 약화되는 것에 의해 ‘아우토디다스커’와 같은 꿈-형성은 밝혀 낼 수 있지만, 우리가 이 장의 서두에서 문제로 제기하였던 ‘불에 타는 아이’ 꿈은 해명할 수 없다.
우리가 환각적인 꿈에서 일어나는 것을 묘사하려면, 감정이 ‘퇴행하는’ 길을 간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감정은 정신 기관의 운동성 말초 조직 대신 감각적 말초 조직을 향해 나아가며, 결국 지각 조직에 도달한다. 깨어 있을 때 무의식에서 출발한 심리적 과정이 진행하는 방향을 ‘전진하는’ 방향이라 부른다면, 꿈은 ‘퇴행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꿈에서 표상이 언젠가 유래한 감각적 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퇴행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에도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명칭을 부여한단 말인가? ‘퇴행’이라는 명칭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한 방향을 갖춘 정신 기관의 도식과 연결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러한 도식을 만든 보람이 있다. 새삼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오로지 도식에 의해 꿈-형성의 또 다른 특성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꿈-과정을 우리가 추정한 정신 기관 안에서의 퇴행이라고 보면, 꿈-사고의 모든 논리적 관계가 꿈-작업 중 사라지거나 간신히 표현된다는 분명한 사실이 즉시 해명된다. 우리의 도식에 따르면 이러한 논리적 관계들은 첫 번째 기억 조직이 아니라 더 앞쪽의 기억 조직에 포함되어 있으며, 퇴행하는 과정에서 지각 형상을 제외하고는 모든 표현을 상실한다. ‘꿈-사고의 구조는 퇴행에서 원재료로 해체된다.’ <중략>
히스테리와 편집증의 환각이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환영은 실제로 퇴행에 해당한다. 즉 그것들은 형상으로 바뀐 사고이며, 억압되었거나 무의식적인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고들만이 그러한 변화를 겪는다고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히스테리 환자 중 가장 나이 어린 축에 드는 한 12세 소년은 ‘붉은 눈의 초록색 얼굴’이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현상의 근원은 현재 억압되었지만 한때 뚜렷이 의식하고 있던 어느 소년에 대한 기억이다. 4년 전 환자가 자주 만났던 그 소년은 뒤늦게 자책을 하게 만든 자위행위를 비롯하여 많은 불량스런 행동의 무서운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당시 어머니는 그 못된 소년이 ‘초록색’ 얼굴과 ‘붉은’(즉 ‘붉게 충혈된’) 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령 같은 무서운 형상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그런 아이는 바보가 되어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는 어머니의 또 다른 예언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어린 환자는 학교에서 유급되어 예언의 일부를 실현시켰다. 그리고는 분석에서 떠오른 원하지 않는 생각들이 드러내듯이, 예언의 나머지 일부도 무척 두려워했다. 물론 치료는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는 두려움을 잊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성적으로 학교를 마쳤다. <중략>
나는 퇴행적 사고 변화의 이러한 사례들에서 억압되었거나 무의식적이고 대부분 유아기에서 비롯된 기억의 영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 환각에 시달리는 한 여성 편집증 환자에 대한 분석과 정신 신경증의 심리학에 관한 내 미발표 연구결과들을 참고로 언급한다. 그러한 기억은 자신과 결합되어 있으며 검열 때문에 표현이 제한된 사고들을 묘사 형식으로 퇴행에 끌어들인다.
기억 자체는 이러한 묘사 형식 속에 심리적으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나는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 결과로서, 유아기의 사건들은(기억이든 공상이든) 일단 의식화되면 환각으로 나타나며,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환각의 성격이 없어진다고 인용한다. 또한 평소에는 시각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유년 시절의 일들만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알려져 있다.
꿈-사고에서 유아기 체험이나 이 체험에 근거한 공산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러한 체험이나 공상의 일부가 꿈-내용에 얼마나 자주 나타나며, 직접 그것들에서 꿈-소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상기한다면, 사고의 시각적 형상으로의 변화는 되살아나기 위해 애쓰며 시각적으로 묘사된 기억이 의식에서 단절되어 표현될 길을 찾는 사고에 행사하는 ‘흡인력’의 결과일 가능성을 꿈에 대해서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또한 꿈은 ‘전이를 통해 최근의 것으로 변화한 유아기 사건의 대체’라고 볼 수 있다. 유아기의 사건은 원래대로 부활할 수 없다. 그것은 꿈으로 재현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중략>
표상 내용을 감각적 형상으로 개조하는 꿈의 특성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요약해보자. 우리는 꿈-작업의 이러한 성격을 설명하거나 심리학의 기존 법칙에 맞추려 하지 않고, 미지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끄집어내어 ‘퇴행적’ 성격이라는 명칭으로 특징지었다. 또한 어디에서 나타나든지 이러한 퇴행은 사고가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의식에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저항의 결과이며, 동시에 강한 감각성을 지닌 기억들이 사고에 발휘하는 흡입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꿈에서는 낮 동안의 전진적인 감각 기관의 흐름이 중단되어 퇴행이 쉽게 일어난다. 이러한 보조 요인은 다른 형태의 퇴행에서는 퇴행의 다른 동기들이 강화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또한 우리는 꿈이나 병적인 퇴행 사례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전이 과정이 정상적인 정신생활의 퇴행에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에너지 전이 과정을 통해 지각 조직들이 완전히 환각적으로 리비도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작업 분석에서 ‘묘사 가능성에 대한 고려’라고 표현한 것은, 꿈-사고와 접촉되어 시각적으로 회상된 장면들이 ‘선택적으로 행사하는 흡인력’과 관련지을 수 있다.
나는 퇴행이 신경증 증상의 발생에 관한 이론에서 꿈-이론에서 담당했던 것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 또한 꿈에서의 퇴행이라는 주제를 떠나기 전에, 지금까지 반복해서 여러 번 떠올랐고 정신 신경증을 깊이 연구할수록 새삼 강하게 되살아나는 인상에 대해 한마디 언급하고자 한다. 꿈을 꾼다는 것은 꿈꾼 사람의 아득한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퇴행이고, 어린시절과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충동과 당시 사용했던 표현 방식의 재생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유년기의 배후에서 계통발생학적인 유년기, 즉 인류의 발전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 열린다. 실제로 개인의 발전은 우연한 생활환경에 영향받고 축약된 인류 발전의 반복이다. 꿈에서 ‘직접 도달할 수 없는 태고적 인간 본성의 부분이 작용한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지 가늠할 수 있다. 동시에 꿈-분석을 통해 인류의 태곳적 유산과 인간의 타고난 정신적인 근원을 인식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꿈과 신경증은 우리가 추측하는 것 이상으로 고대의 정신적인 것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신분석은 아득한 먼 옛날 인류가 태동했을 무렵의 상황을 어둠 속에서 밝혀내고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들 사이에서 높은 위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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