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로젝트 1 : 생명정치와 통치성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6장. 생명권력 : 프랑스의 중상주의 모델 2절. 규율권력과 생명권력

by 상겔스 상겔스 2017. 5. 6.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6. 생명권력 : 프랑스의 중상주의 모델

2. 규율권력과 생명권력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장치의 차이

이처럼 생명권력은 완전히 새로운 인구라는 대상에, 독자적인 안전장치를 사용해 작동을 거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생명권력의 안전장치는 그때까지의 규율권력이 전개했던 규율장치와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새로움을 갖춘 것일까? 여기서 이 두 개의 권력장치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 차이는 각각의 메커니즘이 향하는 방향이다. 우선 규율장치의 메커니즘은 구심적이지만, 안전장치의 메커니즘은 원심적이다. 규율장치의 메커니즘은 어떤 공간을 분리하고 어떤 절편을 정함으로써 기능하는 것이며, 이 공간 속에서 규율권력이나 규율의 권력 메커니즘이 충분하게, 한계없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안전장치의 메커니즘은 밖을 향해서 확대하려고 한다. “생산자매수자소비자수입업자수출업자가 행하는 생산심리학행동거지행동의 방식이 통합되고, 세계시장이 통합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메커니즘의 기능이다. 규율권력의 메커니즘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며, 가장 사소한 사항도 방치하지 않는다. “규율에 대한 위반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규율은 세부의 움직임을 방해함으로써 기능한다. 이에 반해 생명권력의 안전장치는 세부에 의거하면서도, 세부는 선악에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다뤄지고, 자연적인 과정으로 다뤄진다. “하도록 내버려둔다(laissez-faire)”가 그 기능의 원칙인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메커니즘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느냐, 부정적으로 작동하느냐의 차이이다. 규율장치는, 허가와 금지라는 법적인 절차를 따른다. 허가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의 영역의 내부에서, “금지되는 것이나 허가되는 것, 오히려 의무로 간주되는 것이 정확하게 특정되고, 규정되는 것이다. 법이 정하는 것은 주로 금지이며, 이것을 하라, 저것은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질서란 금지되어 있는 것을 모두 방해했을 때 남는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규율권력은 인간이 본래 나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금지에 의해 막으려 한다. 인간의 악을 다양한 규율이나 규칙에 의해 포획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규율장치의 메커니즘은 부정적인 사고이며, 부정적인 기술이다. 이에 반해 안전장치는 법처럼 금지도 하지 않고 규율처럼 명령도 하지 않는다. 이 메커니즘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물의 본성에 어울리는 형태로 제한하고 제동을 걸고 조정함으로써, 목적을 실현하려고 한다. 안전장치는 인간의 사고를 선이라고도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농주의(피지오크라시)란 인간이나 자연의 본성(퓌시스)에 작동을 거는 물리학이다. “정치학이란 하나의 물리학이며, 경제학이란 하나의 물리학이다는 것이다. 중농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간에게 자유롭게 행동하게 함으로써,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다음 장에서 고찰할 자유주의와 가까운 성질을 갖추고 있다. 조정은 각자의 자유를 통해, 각자의 자유에 의거해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공간에서는, 이 장치는 잘 기능하지 못한다. 이처럼 안전장치가 목표로 하는 통치성은 내치가 목표로 하는 통치성과는 거의 잣구 하나까지도 대립하는 것이다.

 

권력의 작동방법의 차이

이렇게 규율권력의 장치와 생명권력의 안전장치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은 규율의 권력과 생명권력 자체의 작동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이 두 종류의 상이한 장치를 작동시키는 두 개의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음의 네 가지 측면, (1) 두 개의 권력의 주체는 무엇인가, (2) 객체는 무엇인가, (3) 권력의 작동 공간은 어디인가, (4) 어떻게 작동되는가에 대해 검토해보자.

우선 규율권력에 대해 이 네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보자.

(1) 규율권력의 주체는 국가이성의 주체이며, 기본적으로 주권자로서의 군주이며, 내치의 통치를 행하는 관료기구이다. 군주는 때로 자의적으로 보이는 어두운 법”(루이14)을 구사해서 법의 외부에서 권력을 행사한다.왕의 신비로부터 그 힘을 얻은 국가이성은, 주권자인 왕의 모든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한다. 설령 아무리 자의적으로 보이더라도.” 내치의 통치를 행하는 관료기구는 또한 사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예외상황에서 국민을 통치한다. 내치는 경찰이며, 경찰은 법에 따라 행동하더라도, 사실은 법의 외부에서 기능하고 있다. “내치란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행하는 직접적인 통치성이며, “항상적인 쿠데타이다. 내치의 지배는 법의 지배와는 전혀 공통되는 것이 없다.

(2) 규율권력의 객체는 물론 신민이다. 이 신민은 통치의 대상이 되면서, 규율을 겪는 주체로서 내치의 공간 속에 등장한다. 이 신민은 통치자에게는 국가의 힘을 형성하는 인구로 보인다. 중상주의의 원칙은 낮은 비용으로 제조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국가의 부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국민이 존재하고, 노동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내치의 객체이자 신하로서의 주체인 국민은 “순종적인 다수의 노동자인 것이 바람직하다.

(3) 규율권력의 작동 공간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이 권력이 작동하는 특권적인 장은 도시였음을 상기하자. 판옵티콘적인 도시가 다수 꿈꿔지고, 실제로 몇 개나 건조된 것에서도 드러났듯이, 규율권력은 닫힌 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내치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도시적 대상이다. “도로, 광장, 건조물, 시장, 통상, 수공업, 공예 등이 주된 타깃이 된다. 내치는 도시의 통제이며, “인간들의 공존, 상품의 유통”, 더 나아가 인간들의 유통의 문제로서의 부랑자 등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 도시는 도로망을 통해 영토의 전체에 연결된다. 왕국을 일종의 대도시로 보고 조정하고 관리하고 규율을 가하는 것이 내치의 [기]술이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모든 도시의 모든 판사가 파리를 본보기로서 내치를 행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를 확대한 것으로 생각됐던 왕국은 유럽 속에서 서로 세력 균형을 이루면서 존재했다. 그래서 유럽이란, 도시를 연장한 국가가, 어떤 지역 속에 각각이 하나의 도시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됐던 것이다. 유럽이 하나의 시장처럼 되며, 국가는 통상[교역]의 그물망에 의해 묶여졌다. 이리하여 시장 도시가 인간들의 삶에 대한 국가 개입의 모델이 된다.

(4) 이 규율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라는 문제를, 기존의 장치의 기능과 관련시키면서 생각해보자. 내치의 권력은 대도시의 내부에서 기능하지만, 그 작동방식은 단 하나였다고 푸코는 지적한다. 항상적인 쿠데타인 내치는 통제, 칙령, 금지령, 지령이라는 형태로만 기능한 것이다. 사법의 장치에 기대며, 법적인 권위를 가장하면서 명령한다.

러시아의 절대군주인 에카테리나 2세는 “내치는 법보다 통제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한 법을 따르게 하기보다는, 개개의 인간에게 지휘하고 명령하고 금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는 개개의 신체에 대한 규율의 기술을 도시 전체에 적용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공장이나 군대 막사나 학교에서 전개된 규율의 행위를 왕국의 영토 전체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치는 어떤 의미에서, 개별 양을 배려하는 사목의 기술과 유사해진다. 내치의 꿈, 그것은 도시를 수도원으로 하는 것에 있다. “도시를 수도원 같은 것으로 하는 것, 왕국을 도시 같은 것으로 하는 것, 이것이 내정의 배경에 있는 위대한 규율의 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규율권력의 모습과 비교해서 생명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1) 권력의 주체에 대해서는, 생명권력에서는 군주와 신민 사이의 대립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왜냐하면 통치자는 국민에게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것이며, 주체로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정의 시스템이 존재함으로써, 국민이 통치의 객체로서가 아니라,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서 등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자유로운 존재일 것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행동하는 것, “서로 경합하는 각자가 자신의 이윤을 최대로 하는 개인의 이익의 움직임에 의해서 국가도 최대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생명권력의 객체는 이른바 주체 속에 동화되어 소멸하는 것이다. 국가는 권위를 내세우고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자유로운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국가의 목적은 더 이상 각자의 행복을 만인의 행복으로 변형하는 초월적이고 종합적인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자유롭게 행동했을 때, 각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는 18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국가의 기능의 본질적인 요점이 된다.

(3) 생명권력의 작동 공간에 대해서는, 이 권력은 더 이상 도시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중농주의에서는 부의 생산장소가 더 이상 도시에 있는 공장이 아니라 농촌이다. 가치의 원천은 농업노동자에 있다. 중농주의자인 튀르고의 말에 따르면, “생산하는 농업노동자는 가공하는 공업노동자를 이긴다. 농업노동자는 노동순환의 최초의 원동력이며, 그가 바로 모든 공업노동자의 임금을 토지로부터 생산시키는 것이다.” 이 농업중심주의 때문에 탈도시화가 발생하게 된다. 다만 권력의 공간이 농촌으로 이행한다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특권은 부정됐으나, 소비자의 자리로서의 도시의 기능은 농촌에 못지않게 중시된다. 도시와 농촌을 포함한 영토 전체에서의 상품의 유통이 중요한 것이며, 도시에서 생산한 상품의 매각 이익을 중요하게 여길 수 없게 된 것이다.

(4) 생명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해서는, 규율권력처럼 전반화된 규율에 의지하지 않는다. 국민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 물론 생명권력도 규율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권력은 사물을 구부리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곡물의 유통 같은 현상을 수정하려고 하면, 바로 악화시켜버리는 것에 있다. 이미 검토했듯이, 곡물의 가격을 통제하여 내리려고 하면, 곡물은 더욱 부족해지고 가격이 급등한다. 정반대의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내치에 의한 통제는 무익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흐름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흐름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규율권력과 생명권력은 그 주체나 객체에 대해서도, 작동하는 공간에 대해서도, 그 작동방식에 대해서도 매우 대조적이다. 18세기의 중농주의 시대에 자유무역과 유통의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통치적 이성이 탄생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국가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 속에서 우주론적 신학의 세계의 크기로부터 생각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초에 등장해 새로운 통치성을 확립한 것이 규율권력이었다. 이 권력은 국가이성이라는 어두운 기술을 구사하는 군주의 권력이며, 군주는 정치가로서, “통치술에 특유한 합리적인 원칙과 계산 형식이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가를 정확하게 확정하는 자로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통치성이 탄생한다. 이 생명권력의 통치술은 정치가의 국가이성을 비판하면서 시장사회의 경제적인 이성을 추구하는 경제학자의 기술이다. 국민을 규율의 객체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라고 봄으로써 국가의 더 좋은 통치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국가이성을 대신해 경제적 이성이 내세워진 것이다.

이런 경제적 이성은 국가이성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조정하고 보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우리는 여전히 국가이성 속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규율사회의 잔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근대적 주체의 탄생에 있어서 순종적인 신체를 확립한 규율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권력의 특징 : 결론으로서

여기서 결론으로서, 중농주의라는 이론적 치장 아래서 등장한 생명권력의 특징을 재확인해두자.

첫째, 생명권력의 특징은 그 자연성에 있다. 국가이성의 권력은 중세의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관계와, 우주의 자연성에 의거한 국가의 사상을 절단하는 형태로 등장했다. 내치의 통치성은 절대적인 인공성에 있었다. 그런데 생명권력과 함께 다시금 자연성이 중시된다. 케네는 사회의 자연적인 행위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해 나감으로써, 사회가 번영하고 인간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 자연성은 중세적 우주론적 자연성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만 성립하는 자연성이다. 사회의 자연성이란 개념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성이며, “인간들이 함께 살고 한데 모이고 교환하거나 근로하거나 생산하거나 할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특유한 자연성이다. 이것이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국가와는 이질적인 차원으로서 시민사회가 발견된 것이다. “신민의 집합에만 관련되는 국가이성과 내치적 합리성과 비교하면, 여기에는 물론 근본적인 변동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중농주의를 창시한 케네는 자연법이라는 논문을 쓰는데, 이 논문은 시민사회에서 시민이 소유해야 할 자연권을 명확하게 내세운다. 자연권은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을 향유할 권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각자가 이렇게 자유롭게 소유물을 이용하고 향유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인 상태가 되도록 노력하고 협력하게 된다고 중농주의자들은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의 특징은 중농주의에 있어서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필요성이 주장된 것이다. “자연의 질서는 단지 이성의 빛에 의지하기만 하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을 인식함으로써 사회의 조정이 처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상주의에서는 과학적 합리성이 추구되는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힘의 계산이었지만, 중농주의에서는 사회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 사회의 과학은 경제학이며, 이 학문은 통치의 기술과는 독립된 것이다. 푸코는 과학이기도 하며 결정이기도 하다는 통치술이 점차 웃물과 아랫물로 분리된다고 하는 인상적인 표현을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통치술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독립해 있으며, 위정자가 아닌 자도 종사할 수 있는 학이 된다. 그러나 위정자는 이 경제학이라는 학문 없이는 사회를 적절히 조정할 수 없는 것이며, 통치는 이 학문에 의존하게 된다. 경제학은 [기]술이 아니라 학문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사회에 있어서의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의 특징은 인구 문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중상주의 시대에 소중한 것은 인구의 변동이 아니라 다수의 온순한 노동자의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권력에 있어서 인구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정치경제학의 모든 사고에서 근본적으로 중심적인 것은 역시 이 인구 문제인 것이다.

이 인구 문제에는 중요한 특징이 두 개 있었다. 첫째, 인구에는 고유한 변화와 변동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구는 사회의 자연적인 과정이며, 인구에는 자연성이 내속한다.” 둘째, 이것은 다양한 개인 사이에서의 상호작용, 순환효과, 전파효과를 낳는 것이다. 국가는 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현상을 떠맡는 것을 요구받는 것이며, 사회의학이 탄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권력의 네 번째 특징은, 더 이상 사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자연적인 흐름을 존중하면서, 그것을 조정한다는 형태로 개입하는 데 있다. 그것은 부주의한 개입에 의해 사회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을 알아채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과정이나 인구에 내재하는 과정인 자연 현상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본질적인 기능이 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 속에서 시민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며, 이런 자유가 결여되면 사회는 적절하게 통치할 수 없게 된다. 통치술에 있어서는 시민의 자유가 필요 불가결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가부장적이고 과잉 개입과 규율을 행하는 내치의 제도는 해체되고, “단순한 부정적인 기능을 가진 근대적 의미에서의 폴리스(경찰) 제도가 탄생한다.” 경찰은 혼란을 소거한다는 위험 방지적인 의미밖에는 갖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생명권력 시대, 그것은 규율권력의 과잉적인 사목적인 배려를 부정하고 사회를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시민들을 자유로운 국민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자연스러운 경제적 변화를 조정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조치와 경찰, 외교, 군사 등의 위험방지 제도를 확립한 시대인 것이다.

 

중농주의의 제약

다만 중농주의는 다음 장에서 검토하는 자유주의와 비교하면 몇 가지 시대적 제약을 갖췄다. 이 번 장의 마지막에서 검토하는 프랑스의 도시의 의학이 독일의 국가의 의학과 영국의 노동력의 의학의 중간에 머물고 있듯이, 경제이론으로서의 중농주의에는 아직 국가이성의 잔재 같은 것이 모반母斑처럼 남아 있다.

첫 번째 한계는, 중농주의에서는 농업 활동만을 중시하고 공업 활동을 보충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있어서 집약적 농업 활동의 중요성은 원시적 축적을 초래하는 유일한 요인으로서 중요한 것임은 맑스가 분명히 밝힌 대로이며, 농업을 집약적인 것으로 하기 때문에 농산물의 자유로운 유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가치의 발생을 농업에만 한정하는 것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잉여가치를 지주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며, “토지 소유의 지배를 의미하게 된다.

두 번째 한계는, 상품의 완전히 자유로운 유통을 주장하면서, 주권자에게 토지의 공유권을 승인한 데 있었다. “부의 유일한 원천인 토지의 과실의 몫에 대해서, 본원적인 권리를 소유하는 것은 신하(sujet)의 소유권을 보증하는 군주의 주권뿐이다고 케네는 주장한다. 이로부터 군주는 지주에게 단일 세금을 부과할 근거를 갖게 된다. 군주는 유통을 완전히 자유화하면서도 그 과실을 가로채는 것이다. 이는 절대왕정의 기반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다름없다. 맑스의 말처럼 케네는 절대왕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한계는 시민의 자유를 요청하면서도 군주의 개입을 요구한다는 역설적인 성격이다. 케네는 경제표를 경제의 완전한 순환 체계라고 생각했다. 이 표를 이해함으로써 주권자는 경제 과정의 전체를 분석하는 원리와 투명성의 원리를 확보할 수 있으며, 경제를 투명한 시선으로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주권자는 신민에게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허락하지만, 그것은 주권자가 경제표 덕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완전히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절대 군주에게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며, 조정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중농주의는 절대 군주의 개입을 정통화하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농주의는 절대군주의 통치와 모순되지 않고, 그것을 요청한다. 경제를 자립된 영역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배후에 절대군주의 통치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점에 대해서, 이윽고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게 된다.

 

도시공간의 차이

이 중농주의와 이것이 목표로 한 생명권력 아래서, 독일의 국가의 의학과는 다른 도시의 의학이 발전했다. 이 도시의 의학은 기존의 군주의 권력 아래서의 도시나, 규율권력 아래서의 도시와는 다른 형태로 도시의 환경에 작동함으로써 도시의 주민의 건강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 의학의 특징을 조사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도시가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듯이 유럽의 도시들이) 우선 군주권력 아래서, 다음으로 규율권력 아래서, 그리고 생명권력 아래서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알아보자. 프랑스의 도시의 의학은 생명권력의 도시의 네 가지 주요한 특징을 타겟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군주의 권력 하에서의 도시

맨 처음으로 절대주의 군주의 지배하에 있던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생각해보자. “파리는 세속의 사람들, 가톨릭교회, 종교단체, 동업조합 등이 보유한 영주적인 권력이 모여 구성된 것이며, 이런 권력들은 고유한 재판권을 지닌 자율적 권력이었다.” 이 때문에 권력의 지배가 중층적으로 겹치며, 다양한 권력이 어수선하게 서로 경합을 벌였다.

이 파리라는 수도는 군주의 주권국가의 수도인 동시에, 프랑스라는 영토국가의 수도이며, 더욱이 경제적인 유통의 수도였다. 거기서 어수선한 형태로 권력이 경합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는 행정국가에 있어서, 수도뿐 아니라, 각지의 도시가 농촌에서 독립한 형태로 법적인 특유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곤란한 문제가 발생했다. 둘째로, 통상이 확대되고 도시 인구가 증대함과 더불어, 도시가 답답하게 됐다. “닫힌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면, 풍속이 문란해지고, 건강이 쇠약해진다18세기 말의 철학자 카바니스는 지적했다. 그리고 도시에 새롭게 건설된 공장에 대한 불안과, 과밀한 주민에 대한 불안이 생겨난다. “마을에 대한 공포, 도시에 대한 불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매우 기묘한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셋째로 농촌과 도시 사이의 식량의 교환과 멀리 떨어진 도시와의 통상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교환이나 통상을 원활하게 하려면, 도시의 개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과제가 된 것은 도시를 이 공간적법적행정적경제적 틀에 끼워넣는 것에서부터 해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개혁안이 제시됐다. 푸코는 르 메트르라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帝侯의 기사장技師長의 수도 개혁안을 일례로 들고 있다. 이 개혁안이 목표한 것은 수도를 다양한 의미에서 군주국의 상징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개혁안에서는, 국가를 세 개의 영역으로 분할한다 전원, 소도시, 수도이다. 전원에는 농민들이 거주하며 농경에 힘쓴다. 소도시에는 장인이 거주하며 수공업에 힘쓴다. 수도에는 주권자와 그 신하가 거주하고 지배한다. 수도는 국토의 중앙에 존재하고, 주권을 상징할 필요가 있다. “수도는 영토의 장식 그 자체이다.”

또한 수도는 정치적 상징이며, 왕국의 그 어떤 부분도 수도로 정해진 주권자의 법과 왕령王令의 네트워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수도는 또한 도덕적인 상징이어야만 한다. “영토의 구석구석까지 품행이나 행동거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부과해야 할 모든 것을 넓힐 필요가 있다. 더욱이 수도는 학문의 자리이며, 경제의 중심으로서, “상품이 모여야 할 사치의 장이지 않으면 안 된다.

수도를 주권의 자리로 하는 동시에 정치적통상적 유통의 중심점으로 하는 형태로, 영토를 수도의 지배 아래에 두면서, 국가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제안인데, 이 주권의 시대의 도시는 무엇보다도 주권과 영토의 관계로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영토라는 대우주를 통해서 도시라는 소우주의 사고가 시도된다.” 도시는 영토라는 큰 것에서 출발하여 생각됐던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며, “이 대우주와 소우주의 모든 놀이가 도시주권영토의 관계를 관통했던 것이다. 그 배후에 있는 것은 국가이성의 이론과 그것을 발전시킨 관방학이다. 요약하면, 군주권력의 시대의 주권은 영토를 수도화하고 통치의 자리라는 주요한 문제를 세우게 된다.

 

── 규율권력 아래서의 도시

반면 규율권력의 시대의 도시를 대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건설된 지방의 소도시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건설하는 경우에 모델로 간주된 것은, 로마 군대의 야영지의 방식이었다. 로마군은 원정을 가면, 병사들이 거주하는 진영을 건설한다. 막사에 맞는 장소를 큰 담으로 둘러치고, 그 주위에 깊은 해자를 만들어 방어하고, 내부는 부대의 훈련과 병사의 관리에 걸맞게 구분했다.

이것은 완전한 감시권력의 판옵티콘적 도시이며, 통로는 기하학적으로 배치되며, “텐트의 수와 배치, 텐트의 입구 방향의 설정, 종렬과 횡렬의 배치 등이 정확하게 규정되고, 서로 감시하는 시선의 그물망이 묘사되는 것이었다. “야영지란 전역에 걸친 가시성의 효과에 의해 작용하는 권력의 도해였다.

이를 모델로 한 새로운 도시로서, 푸코는 투렌 지방과 보와투 지방의 경계에 해당되는 곳에 건설된 리슐리외의 마을을 들고 있다. 이 마을은 전체가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에는 큰 도로를 통해, 이것과 평행한 도로와 수직적 도로로, 거주 공간을 구분한다. 유통의 장소, 중앙시장의 장소는 별도로 설치한다. 군주권력의 도시와는 반대로, 영토라는 도시보다 큰 것에서부터가 아니라, “도시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구상되는 것이다. 군주권력 아래서의 수도의 개혁이, 영토로부터 도시를 바라본다고 하는 광학의 시선 아래에 놓인다고 한다면, 규율권력 아래서 새롭게 건설되는 도시에는 빛에 대해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삽입[끼워넣기]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 도시의 건설에 있어서는, “공허한 닫힌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도시의 내부에서 어떻게 인공적인 사람들의 무리를 구축하는가가 과제가 된다. 그때의 원칙은 첫째로 계층화, 둘째로 권력관계의 정확한 교류, 셋째로 그 배분에 특유한 기능의 효과이다. 이 규열의 도시의 과제는 공간을 건축화하고, 요소들의 계층적기능적 배분을 본질적인 문제로서 세우는 것에 있다.

 

── 생명권력의 도시

생명권력의 도시의 실례로서, 푸코는 낭트의 거리에 대해, 비니에 드 비니이라는 건축가가 제시한 정비계획을 들고 있다. 이 계획에서는, 도시를 횡단하는 축과 큰 길을 몇 개 관통시키고, 다음의 네 가지 기능을 확보하는 것을 시도했다. 첫째는 위생기능이며, 인구밀도가 높은 지구에서 질병의 바탕이 되는 장기[독기瘴気]가 고이는 공기가 모여드는 곳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시도했다. 두 번째는 도시의 내부의 유통 기능이며, 도시 내부에서의 통상이 원활하게 행해지도록 했다. 셋째는 도시의 외부와의 유통 기능이며, 새로운 도로망을 건설하고 외부로부터 도시가 필요로 하는 상품이 제대로 배달되도록 했다.

네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감시였다. 도시가 발달했기 때문에 벽을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되고, “야간에 도시를 폐쇄하는 것도, 대낮에 왕래를 제래도 감시할 수도 없게 됐다.” 그 때문에 농촌에서 거지, 부랑자, 비행자, 범죄자, 도둑, 살인범 등 모든 유랑 인구가 유입되고 도시의 안전이 낮아졌기 때문에, 이것을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 계획에서는 도시의 향후의 발전을 미리 내다봤다. 그때까지의 문제점을 해결할 뿐 아니라, “지금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사항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려했던 것이다. 이 미래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Loire 강의 한쪽에 긴 부두가 건설됐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를 연장해간다. 그리고 강에 다리를 놓고, 맞은 편 지구도 마찬가지로 발전시키는 것이 계획됐다.

이 도시계획의 특징은 첫째로 이 도시가 규율권력의 도시처럼 전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건설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소여에 작동을 건다는 것에 있다. 규율권력은 공허하고 인공적인 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그 공간은 원점에서 구축된다.” 그러나 생명권력의 도시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적인 소여를 이용하고 부지, 물의 흐름, , 공기 등을 실마리로, 도시의 신체에 작동을 거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규율적 도시처럼 주어진 것을 재구축하고 완벽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선호하는 요소를 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을 취하는 데 있다. 위험성을 제로로 할 수는 없으며, 개연성의 계산을 이용하게 된다.

세 번째 특징은, 이 정비계획에서는 도시의 다양한 요소가 다수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도로는 장기[독기瘴気]와 질병의 통로인 동시에, 주민에게 불가결한 공기를 통하게 하는 기능을 맡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둑이 통행하는 거리인 동시에 상품이 유통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플러스의 요소와 마이너스의 요소를 계산하고 정비하는 것이다.

네 번째 특징은 미래를 향해 열린 것이라는 데 있다. 도로를 어느 정도의 수레가 통행하게 되는가, 어느 정도의 통행인이 이용하는가, 현재에는 아직 예측할 수 없는 불특정 요인에 대해 개연성에 누적에 의해서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생명권력의 도시는 사건이나 해야 할 요소들에 응해 환경을 정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 환경이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환경이란 하천늪지언덕 같은 자연적 소여의 총체, 개인이나 집의 밀집 같은 인공적인 소여의 총체이다. 환경이란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된 일군의 효과이다. 그것은 결과와 원인의 순환이 만들어지는 경위[요소]이다.” 인간의 신체를 통해 개입하는 규율권력과는 달리, 생명권력은 이 환경을 통해 개입한다. 권력은 이것으로부터는 물리적인 요소들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이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에 간섭하는 결절점에 있어서, 그리고 환경이 자연에 있어서의 규정력을 갖게 되는 결절점에 있어서 행사된다고 푸코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권력은 공간에 배치된 개인의 신체의 모임보다는 환경과 주민의 상호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그 두 측면 각각에 개입의 장소를 찾아내게 된다. “규율에 있어서의 조직들의 무리로서의 개인들이 아니라, 환경 속에 거주하는 주민(인구)을 개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 환경이라는 장에 있어서, “개인인구집단에 의해 생산되는 다양한 사건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권력은 인구와 환경에 작동되는 것이다.

 

도시의 의학

이런 생명권력 시대의 도시를 타겟으로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시의 의학이 등장했다. 국가의 의학과는 다른 도시의 의학의 목적은, 생명권력의 도시의 앞서 말한 네 가지 특징에 맞춘 것이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은 이미 존재하는 소여에 작동을 건다”(첫 번째 특징)는 것이며, 더욱이 도시의 신체에 작동을 건다”(두 번째 특징)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기존의 도시에 존재하는 위험한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도시의 내부의 위험한 장소를 확인하고, 이것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 의학의 세 번째 목적은 도시의 내부의 다양한 물질의 순환을 규제하고(세 번째 특징) 조정하는 데 있었다. 대기는 장기(瘴気[질병을 옮기거나 그 원인이 되는 것])를 옮긴다고 생각되었고, 인간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졌다. 거기서 적절한 대기의 순환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가 건설되고 도시의 개조가 행해지게 됐다. 또한 물의 순환을 조정하기 위해 센 강의 연안, 섬의 위치의 조정이 검토됐다. 이 의학은 도시의 장기瘴気의 지리학을 꾀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도시계획이 의학적 실천으로서 추진된다. 푸코는 의학은 개인의 질환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우선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도시의 의학으로서 확립됨으로써 과학적 지식과 담론의 일반적 기능 속에 편입됐다고 지적한다.

이 도시의학의 네 번째 목적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도시의 환경(네 번째의 특징)을 정비하는 데 있었다. 신체와 생명체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대기와 물과 부패물과 발효물 등,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이며, 생존환경에 있어서의 생활조건에 대한 의학이었다. 생명권력이 자연을 조정하듯이, 이 도시의 의학은 도시의 내부의 물질의 흐름을 조정함으로써, 건강한 조건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적용된 개념이 건강 적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한 뛰어난 건강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및 물질적 토대이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초기에 탄생한 공중위생이라는 학문은, 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정치과학적으로 관리하는 행위로서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사유재산이 성스러운 권리로서 인정되었기 때문에, 독일의 의학 같은 강한 감시권력 아래서의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관찰의 예리함과 과학적 시각에서는, 국가의 의학보다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 의학은 영국형의 노동력의 의학과 독일의 내치 국가의 의학 사이의 중간적 의학이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