퀑탱 메이야수 인터뷰
Interview with Quentin Meillassoux
이 글은 Rick Dolphjjn and Iris van der Tuin (eds.), New Materialism : Interviews & Cartographies. University of Michigan librarv, 2012의 4장에 수록된 “Interview with Quentin Meillassoux”를 번역한 것이다.
이 인터뷰가 수록된 위의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변적 실재론”이 아닌 “신유물론”을 다룬 논문 모음집이다. 그래서 인터뷰어는 “신유물론”의 입장에서 메이야수에게 질문한다. 첫머리에서 인터뷰어는 메이야수가 제창하는 “사변적 유물론”과 자신이 속한 “신유물론”의 유사성을 인터뷰의 동기로 꼽고 있지만, 그 외관상의 유사성과는 달리, 인터뷰 전체를 통해 떠오르는 것은 둘의 통약 불가능성을 시사하는 낯설음이다. 여기에서는 이런 낯설음이 무엇에서 기인하는가를 간략하게 개괄한다.
“신유물론”의 입장에서 인터뷰어는 메이야수의 “사변적 유물론”이 후기 하이데거와 어떻게 다른지, 또 “인간의 종언”을 선언한 푸코의 접근법과의 연장선상에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질문을 거듭 제시하는데, 메이야수는 이 둘 다에 대해 전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런 질문에 대한 메이야수의 답변에 공통적인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접근법은 여전히 “상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메이야수와 인터뷰어 사이의 비-인간=사물에 관한 자세의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질문5에 대한 메이야수의 대답이다. 거기서 메이야수는 푸코의 “인간의 종언” 선언에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과학”의 하나의 대상일 뿐이며, 그의 논의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그림자를 없애려고 한들 “상관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의에서 부각되는 생각의 차이는, 약간 억지스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둘의 사고 이전에 존재하는 비-인간=사물의 파악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메이야수가 역설하는 “사변적 유물론”에서는, 사고(주관)로부터 독립한 사고 이전의 존재가 인간과는 철저하게 관계없이 존재하는 반면, “신유물론”에서는 그 발전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를 사물로서 재파악하는 데 역점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상정되는 인간의 사고 이전이라는 관점도 또한 의식 이전에 있는 것인 인간의 신체라는 차원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즉 “신유물론”이 인간 신체로부터 사물로 향함으로써 (또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중심성을 무효화하고, 그렇게 탈중심화된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존재자의 대등한 관계성의 풍부함을 다시 생각함으로써) 논의를 발전시킨 반면, 메이야수는 처음부터 그 어떤 인간과도 전적으로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 (물론 메이야수의 논의에서도 사물로서의 신체는 초월론적 주체의 발생의 조건으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 인터뷰 전체가 포함하는 둘의 의견교환의 미묘한 낯섦 혹은 어긋남의 한 가지 원인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대략적이기는 하지만 “사변적 유물론”과 “신유물론”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데서 시작하는 인터뷰가, 이와 동시에 양자의 차이를 이해하려 들 때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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