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7. 생명권력 : 영국의 자유주의 모델

4. 생명정치와 인종의 이론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계몽과 자립의 이념 

이렇게 18세기 후반에 시민사회의 이론이 수립됐다. 여기서 돌이켜보면, 이 시민사회의 이론은 무엇보다도 그때까지의 사목과 국가이성의 정신과 신체와 생활에 대한 과잉일 정도로까지의 개입에 대한 반감으로서 생긴 것이었다. 이미 말했듯이, 어떻게 해서 이런 방법으로 통치되지 않는 방법은 없는가, 이렇게 통치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중요한 물음이었다.

이 물음에 대한 중요한 응답 중 하나가 칸트의 계몽 개념이었다. 칸트는 독일의 국가이성의 시대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절대 계몽 전제 아래서 사색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정신과 생활의 지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를 모색했다. 사람들의 혼의 사항에 대해서는, 사목자에게 맡긴다. 신체의 사항에 대해서는 의사에게 맡긴다. 정신의 사항에 대해서는 학자에게 맡긴다. “자신의 이성을 작동시키는 대신에 책에 의존하고, 양심을 작동시키는 대신에 목사에게 의존하고, 스스로 식사를 절제하는 대신에 의사에게 식이 요법을 처방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인간은 타자의 지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마치 미성년 자녀 같은 게 아닌가? 칸트는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스스로 이성을 작동시키고, 자신에게서의 최선의 사항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목자와 국가에 의해 언제까지나 지도되며, 명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치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성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19세기 전반기의 헤겔의 시대까지, 국가이성과 내치의 지배가 계속되는데, 18세기 말의 칸트가 규율과 명령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는 것을, 인간이 성숙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로 제기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렇게까지 통치되지 않게 하려면, 아직 다른 길이 두 개 나눠져 있다. 하나는 시민사회의 이론 속에 내포된 국가와 사회의 분리라는 개념을 활용해서, 사회에 있어서 사람들이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국가를 개조한다는 혁명의 길이다. 사회는 자율적 생활의 장이며, 국가의 개입은 불필요한 것이며, 정부의 통치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영국 자유주의의 결론이며 직관적인 확신이었다. 이 결론을 연장하면, 사회의 선에 공헌하지 않은 국가는 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 혁명의 선동자이자 동반자였던 토머스 페인은 미국의 독립을 호소한 책인 커먼센스[상식]에서 사회는 어떤 상태에서도 기뻐해야 할 것이지만, 정부는 설령 최선의 상태에 있어서도 부득이한 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바람직한 정부는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가장 많이 안전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국의 현황을 보는 한, 국왕과 귀족정치(상원)는 세습이며, 인민으로부터 독립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내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헌법상의 의의로부터 보면, 이것들은 국가의 자유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인민의 생활의 복지와 안전이 정부의 목적이며,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는 정부는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당연히 평등한 것이며, “자기 자신을 통치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자에 의한 과잉 통치를 거부하기 위한 방법이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의 수립에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말해지고 있다.

과잉 통치를 거부하기 위한 두 번째 길은 시민사회의 이론에 있어서 보여진 역사의 개념을 이용하여 현황을 비판하고, 과잉 통치를 거부하는 방법이다. 퍼거슨은 시민사회가 미개에서 야만으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전하는 역사를 말했다. 루소는 자연인에서 미개인으로, 미개인에서 문명인에 이르는 역사적 변천을 말했다. “사회적 유대 위에 역사를 분절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에 있어서 자명하게 간주된 것을 뒤엎기 위한 중요한 시도였다. 이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이것이 현실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사고 실험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역사 이전의 자연적인 상태를 상정하는 것은 문명의 부패와 사회의 모습을 근본에서부터 비판하는 관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루소의 야생인 개념은 문명 사회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인간은 원래 선하며, 인간을 악하게 한 것은 사회임을 주장한다. 개혁되어야 할 것은 사회의 악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야생인의 개념에서 루소의 사회계약의 개념이 생겨난다. 인간이 자유로웠던 야생인에서 사회를 설립하고, 더욱이 자유를 잃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가, 루소의 사회계약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공동의 힘의 모든 것을 갖고, 각각의 구성원의 인격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결합의 형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결합에 있어서, 각자는 모든 사람들과 결부하면서, 더욱이 자신에게만 복종하지 않고,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것은 어떻게 하면 가능해질까?

이것은 우리 각자는 우리의 모든 인격과 모든 힘을, 일반의지의 최고의 지도 아래에 맡긴다는 방법으로 실현된다. 이 일반의지가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주권자와 다른 것은 그것이 시민 모두의 욕망의 잔재로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지는 상이하다. 그 상이한 의지로부터 일반의지를 끄집어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고 루소는 생각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떤 당파도 만들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순수하게 드러냄으로써이다.

만일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서 논의를 끝까지 다하고, 서로 미리 사전에 교섭해두지 않으면, 작은 의견 차이가 많이 모여서, 거기서 일반의지가 생겨나는 것이며, 그 결의는 항상 선한[좋은] 것이다.” 여기에는 스미스와 맨드빌도 포함해 영국의 사상적 전통 속에서 키워졌던 사적 이익을 중시하는 사상이 흥미로운 형태로 숨 쉬고 있다. 공적인 공화제를 구축하는 기초가 되는 것은 공적인 덕을 함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원래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각자는 각각이 전체의 이익과는 상이한 특수 이익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자는 그 특수이익을 그대로 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루소는 주장한다. 타자에게 지도되는 것도 아니고, 타자와 자신의 이익을 서로 전달하고 당파를 결성하는 것도 아니고, 사적 이익을 그대로 표명함으로써 타자의 사적 이익과의 충돌이 발생한다. 그때 사람들은 타자의 사적 이익과 자신의 사적 이익을 비교하면서 서로 대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바라보는 것을 배운다. 이리하여 일반의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루소는 일반의지가 항상 옳다고 이야기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제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권리의 평등과 앞으로 생겨날 정의라는 관념은 각자가 우선 자신을 우선시한다는 것, 즉 인간의 본성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처음으로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이라는 형태로, 일반의지가 생기는 것이며, 이 일반의지를 만드는 곳에 정치의 기술이 있다. 각자의 특수의지가 모두 동일하며, 그것이 일반의지가 되는 것은 천사의 나라이며, 정치는 불필요하다. 이 계약 아래서 맺어진 약속에는 커다란 역설이 있다. “사람이 이 약속을 따라 타인을 위해 일할 때,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도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빵집도 정육점도 타인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빵과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다는 스미스의 지적을, 경제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 뒤집어서 말한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계약을 체결한다. 그것이 법이라는 형태로 표명되면, 일반의지가 되며, 틀리지 않는 것이 된다. 당파나 외적 간섭을 방지하면 모든 사람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일반의지가 형성될 것이다. 여기서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만을 목적으로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것, 사람들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분명하다.

푸코는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미개인이라고 부른다. 사고 실험 속에서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 사회를 결성하려고 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약을 맺고 사회를 창설하기 위해 숲에서 나온 미개인이며, 또한 교환과 물물교환을 하게 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의 미개인이다. “18세기의 법사상에서의 이 미개인은 본질적으로 교환하는 인간이다. 법의 교환자 혹은 재화의 교환자이다. 즉 법의 교환자로서, 그는 사회와 주권을 창설한다. 재화의 교환자로서 그는 경제체로서의 사회를 교환한다는 푸코의 지적은 날카롭다.

또 한 가지 의미는 절대 군주가 지배하는 유럽의 정치적 논의 속에, 로마 이후의 시민적civic , 공화주의적 정신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푸코는 법적인 루소주의로부터 두 개의 큰 역사적 형성이 부활한다고 지적한다. 그 한 가지 형식은, “로마의 부활이며, “고결하고 고대적인 공화제 로마와 자유와 반영을 기술하는 갈리아 로마적 도시의 부활이다. 다른 하나는 프랑크적 자유와 갈리아 로마적 자유의 결절점으로서의 샤를마뉴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서 중요했던 것은 공화적인 로마의 도시 이미지였다.

 

자유주의의 문제점

이렇게 근대의 근본적 원리가 두 가지, 확립된 것처럼 생각됐다. 계몽, 즉 통치가 아니라, 자율적인 이성에 기초한 비판과, 시민적 및 경제적 자유이다. 계몽과 자유주의. 그러나 이 두 가지 원리는 기묘한 역설에 시달리게 된다. 우선 칸트의 계몽의 원리는 타자에 대한 의존을 배제할 터였다. 이 원리는 추상적으로 말해지는 한, 항상 옳은 것이다. 그리고 칸트는 실제로, 계몽 전제(專制)를 비판한다. 너무 통치하는 것이 초래하는 폐해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지배하듯이, 국민을 혜택의 원리에 기초하여 지배할 경우, 그것은 가부장적 지배라고 불린다. 이 지배 하에서는, 신민은 무엇이 자신에게 정말로 유익하며, 무엇이 정말로 유해한지를 분별할 수 없는 미성숙한 아이처럼, 그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강제된다. 이때 신민은, 자신들이 어떻게 행복해야 하는가를, 국가의 원수(元首)에게 판단해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원수가 신민의 행복도 바라게 되는 선량한 지배자이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지배는 생각되는 한에서 가장 강력한 전제정치, 신민의 모든 자유를 파기하고, 그리하여 신민은 그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아는 용기를 가진 신민은, 계몽 전제 군주 국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 속에, 군주가 정한 법률과 법을 내면화함으로써 자율적일 수밖에 없다. 칸트의 정언명법에서의 이 모순은 이미 헤겔이 지적하고 있다. 헤겔은 칸트의 정언명법에서는 도덕은 무조건 명한다. 그리고 모든 자연적 경향을 억압한다. 그렇게 도덕적 법칙을 보는 자는, 그것에 대해 노예로서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며, 노예라는 것은, 과연 인간이 소원(疎遠)한 것의 노예라는 상태보다도, 이점을 갖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자연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내적인 조화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지배자가 외부에 있는 소원한 것인 쪽이 아직 나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 바깥쪽에 폭군을 갖는 쪽이 안쪽에 폭군을 갖고 있는 것보다 낮지 않느냐는 것이 칸트에 대한 헤겔의 차가운 야유인 것이다. 장언명법이라는 형태로 도덕의 법을 내면화한 인간은, 얌전하게 국가의 질서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푸코는 이 역설을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의 자유가 내깃돈이 되고 있는 것이며, 타자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부터, 즉 자신의 지[과 그 한계]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자율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더 이상 복종하지 말라는 명령을 듣지 않고서도 충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복종하라는 명령이 자신의 자율에 근거될 수 있다고 말해야겠죠.

 

또 하나의 자유의 원리에도 고유한 역설이 있다. 영국도 프랑스도 이윽고, 내치의 원리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원리를 통치의 원칙으로서 채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어떻게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시장이 자유화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고,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서 활동하는 국가이다. 그러나 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야경국가로서, 치안만을 배려하면 좋을까?

실제로 탄생한 것은 야경국가가 아니었다. 시장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든다. 치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자유로운 거래가 행해질 수 있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신의 손이 일하고, 시장은 완전히 자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국가는 자유를 소비하는 국가이다. 자유를 소비한다는 것은, 이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유, 판매자와 구매자의 자유, 소유권의 자유로운 행사, 토론의 자유,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의 자유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 위에, 이런 자유들을 소비하지 않고서는, 이 국가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통치이성은 자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란 시민에 대해 자유로우라고 명령하는 통치가 아니라, 시민이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한 자유를 만들어내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관리하는 통치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국가는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자유를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과 관리와 강제와 위협에 기초한 의무 부과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이런 것 없이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푸코는 그 실례로서, 상업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점을 금지하기 위한 세밀한 규칙과 제약이 필요해진다는 것, 외국과의 불평등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 관세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노동자가 모여 조직을 만든다면 경쟁의 자유가 상실될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금지 혹은 제한되어야 한다.

두 번째 역설은, 국내에서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있으려면, 행동 공간의 안전성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측되는 다양한 위험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의 통치는 모든 개인에게 스스로 안전을 배려하게 하고, 스스로가 사회 전체의 위험이 되지 않도록 유의도록 요구한다. 이 위험성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직업병의 위험성, 범죄의 위험성, 질병에 걸릴 위험성, 성적 위험성(외적인 것과 내부에서 오는 것) , 다양한 위험성을 사람들이 날카롭게 느끼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위험의 도야 없이는, 자유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의 치안과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서, 어느 정도의 규제가 도입되는가는 현대 사회를 생각하면 분명할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의 개인적 안전성, 즉 사람들의 행동가 신체의 보호와, 사회 전체의 안전성 사이에서 뒤얽힌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의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안전해야만 하지만, 사실상 사회의 위험은 개별 시민들이 초래하는 것이며, 이런 시민의 위험성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는 사회의 보호를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사회가 이상으로 하는 것은 시민을 그 사상과 행동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감시하는 사회이다. 이것은 규율권력의 판옵티콘과는 상이한 배경과 이념에서 생긴 새로운 판옵티콘의 사회이다. “판옵티콘, 그것은 자유주의적 통치의 정식 그 자체이다.”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실상 생명정치와 생명권력이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자유로워짐으로써 규율을 받아들이고, 감시를 용인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규율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푸코의 간결한 표현을 인용하자. 푸코는 군주제라는 귀찮기 그지없는 권력을 없애고, 부르주아지에게 정치 참여와 자유를 인정했을 때, 어떤 대가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보상으로서, 대폭적인 훈육의 체제라고도 불러야 할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회계급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배계급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부르주아지는 이른바 자기 자신을 훈육하며, 그것에 걸맞은 개인의 종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다. 한쪽은 다른 쪽의 대가이며, 다른 쪽 없이는 성립하지 않았다. 모종의 부르주아적 자유주의가 제도의 차원에서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미시권력이라고 부르는 차원에서, 개개인을 더욱 엄중하게 포위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신체와 행동의 감시망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했다. 규율이라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동전의 다른 면인 것이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7. 생명권력 : 영국의 자유주의 모델

3. 영국의 노동력의 의학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노동력의 의학의 새로움

18세기 영국에서 발달한 사회의학이, 주민의 노동력에 타겟을 맞춘 의학이다. 독일에서는 국가의 차원에서 의학이 전개되고, 프랑스에서는 도시의 차원에서 의학이 전개됐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의학이 전개된 것이다.

프랑스 도시의 의학에서는 빈곤자를 특별 취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빈곤자는 우편을 배달하거나 쓰레기를 모으거나, 가구와 헌 옷이나 누더기를 모아 그것을 유통시키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맡았던 것이다. 빈자는 주택에 번지수가 붙어 있지 않은 도시의 파수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후부터 빈민은 도시에서 하나의 위협이 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우편 등 빈민이 그동안 해왔던 기능 대신에 근대적인 제도가 확립된 것, 도시의 폭동에 빈민이 참여한다는 정치적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역병[페스트]의 전염이라는 위생학적 공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이런 새로운 위험이 된 빈민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의학이 등장한다. 구빈법의 목적은 빈곤자에게 일자리를 줘서 일하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워크하우스가 건설되고, 빈민이 거기에 모였다. 최초의 워크하우스는 1696년에 브리스틀에서 개설됐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기능하지 않았다. 빈민은 거주하는 교구에서 나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장소에서 노동할 수 없는 것이 그 가장 큰 원인이었다.

1834년의 구빈법의 개혁에 의해 이 제한이 해제되고, 도시의 주민의 건강 문제가 중시됐다. 그리고 이 법률에서는, 곤궁자를 의학적으로 관리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빈민은 공적인 원조 시스템의 혜택을 입게 됐을 때부터, 다양한 의학 검사를 받도록 의무지어졌던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진전과 더불어, 도시는 더욱 과밀해지고, 빈곤자는 도심의 너저분한 지구에 거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부유한 자들은 교외나 전원지대로 옮겨가게 된다. 철도가 부설됐기 때문에, 도시로 다니기가 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이 나쁜 자들은, 도심에서 계속 살았다. 그 대다수는 비참한 슬럼지구에 거주했던 것이며, 도심부는 빈자의 식민지처럼 된 것이다. 이리하여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역병의 선이 그어지게 된다.

183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콜레라의 대유행이 구빈법에 있어서 빈자의 건강에 주목하게 만드는 큰 계기가 됐다. 빈자의 생활환경과 노동조건이 역병의 유행의 큰 원인임을 인식한 공중위생 전문가들은 세계 최초로 공중위생법을 제정한 에드윈 차드빅경(1800-90)을 중심으로 빈자의 건강의 유지와 질병의 방지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것임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토목공학의 힘으로, 비위생적인 환경을 없애는 것이 요구된 것이다. “물의 공급에 의한 도랑, 도로, 주택의 청소, 하수의 개선, 마을에서부터 모든 유해한 폐기물을 제거하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의 채용이 요구된 것이다.

 

사회의학의 탄생

1870년대가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국의 사회의학이 탄생하게 된다. 이 개혁에서는 구빈법의 시스템과 공중위생의 시스템을 통합하여 지방마다 의료를 담당하는 관청을 설치하게 된다. 이것이 1875년의 공중위생법이며, 이 법률 아래서 각지에서 보건소가 설치된다. 이리하여 지역의 공동체의 건강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지방 당국의 적절한 시스템,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시스템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이다.

이 의료시설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1) 다양한 주민 집단에 면역을 강제하기 위해, 예방접종을 관리한다. (2) 전염병이나 전염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질병의 기록 시스템을 조직하고, 위험한 질병의 신고를 의무화한다. (3) 건강을 망가뜨리는 장소를 특정하고, 가능하면 이런 이것의 온상지를 파괴한다.”

이렇게 확립된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도시의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의학 시스템, 빈곤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 부조 시스템, 부유자를 대상으로 하는 민간 의학 시스템이란느 세 가지 의학 시스템이 서로 보충하는 것이었다. 우선 콜레라 등의 전염병의 방지라는 도시의 주민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학의 시스템이 있다. 이것은 삶[생명]의 의학의 특권적 질병인 종두의 사례에서 밝혀졌듯이, 전체 주민의 예방 접종의 강제적인 실행을 포함하는 것이며, 생명권력의 의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박테리아학이 확립되자 의료 서비스는 그때까지처럼 도시의 불결한 환경을 개선한다는 수동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주민에게 예방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 그리고 특정한 박테리아를 매개하는 동물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더욱 합리적이고 정확하고 구체적인 기초에 기반하여 전염병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좋은 예는 모기가 매개하는 황열병이며, 이런 조치에 의해 이 질병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재발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구빈법의 흐름을 이어받아, 곤궁자만을 대상으로 공적 부조를 주는 의학이다. 이것은 동시에, 빈곤자의 질병을 연구재료로 하는 의학이며, 빈곤자의 신체를 이용하여 의학적 실험을 행한다는 측면을 갖고 있다. 이런 의학적 연구의 성과는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을 것이며, 공적 부조를 위한 세금은 이 측면으로부터 회수할 수 있었다. 셋째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민간 의학 시스템이며, 사립병원 등의 비용이 높은 병원은 부자들의 전용이었다.

이처럼 영국에서 탄생한 노동력의 의학은 빈곤자에 대한 의료 부조, 노동력의 건강관리, 공중의생에 관련된 전반적인 [신체의] 검사를 축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을 매우 큰 위험에서 지키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었던 것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강제적인 검사에 강한 반감을 품게 됐다. “가난한 주민에게 큰 부담이 되는 건강 진단에 대한 정치적 싸움은 현대에 있어서 하나의 대항-품행의 활동으로서 살아남은 것이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7. 생명권력 : 영국의 자유주의 모델

2.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시민사회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흄의 질문

이미 지적됐듯이, 시장에서 생산자도 소비자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시장의 진정한 모습이 나타나며, 통치가 개입할 필요는 없어진다. 이 자신의 이익만을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푸코는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 개념의 원천이 영국의 경험론 철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로크의 경험론 철학에서 묘사된 것은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백지상태]의 인간이었다. 이 인간은 백지상태로부터 경험에 의해서만 그 관념을 구축해가는 인간이다. 이 인간은 원죄도 모르고 도덕도 모른다. 신이라는 개념도 실체라는 개념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에는 그 어떤 생득적인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로크는 마음은, 말하자면 문자를 완전히 결여한 백지로, 관념은 조금도 없다고 가정해보자고 유혹한다. 인간의 관념은 모두 경험, 즉 감각 또는 반성[内省]에서 발생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감각 기관에 의해 외부의 것을 지각한다. 이리하여 인간에게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한편으로 인간이 반성[内省]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관찰할 때, 거기서 처음 만나는 것은 쾌락과 고통의 관념이다. 인간의 도덕성은 그로부터 생겨난다. 쾌락을 가져오는 것은 선이며, 고통을 가져오는 것은 악이다. “사물은 단지 쾌락과 고통과의 관련에서만 선 또는 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쾌락과 고통의 관념으로부터 인간의 다양한 정념이 생긴다. 그리고 자유인 인간이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이며, 행복이란 쾌락을 가져오는 선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현실에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의지하지만, 문제는 현실의 선과 현실이 아닌 선이 있다는 것이며, 이로부터 인간의 의지와 판단의 미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쾌락과 고통의 원칙에 기초하여 개인의 선택이 환원할 수 없는 것”, 게다가 양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본 점에 있다. 푸코는 로크의 뒤를 이어 영국의 경험론을 더욱 심화시킨 흄의 예를 취해 설명한다. 체조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체조를 왜 하는지를 물어보자. “건강하고 싶기 때문이야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건강이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아픈 것보다는 건강한 것이 좋으니까라고 답할 것이다. 왜 아픈 것보다 건강한 것이 좋냐고 물으면, “병에 걸리면 괴로우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왜 괴로운 것이 싫으냐고 질문을 거듭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들기 때문이다. 묻는 사람은 자신을 생각해보면, 물을 것도 없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선택은 그것 이외의 어떤 이유로도 환원할 수 없다. “이것은 궁극적인 목적이며, 다른 그 어떤 목표에도 결코 귀속되지 않는다.” 이것 이상으로는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다음으로 쾌고의 원칙에 기초한 개인의 선택이 양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푸코는 흄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 이 고통은 나의 고통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와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거나 나를 대신하게 할 수는 없다. 타인의 쾌락은 내게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흄은 자신의 손가락을 긁고 싶다는 기묘한 욕망을 예로 들어 말한다. “내 손가락 한 개를 긁기 위해 전 세계의 파괴를 선택하더라도,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새로운 인간상의 등장 : 세 가지 답변 방식

여기서 새로운 것은 영국의 경험론의 이런 원자적인 인간상으로부터, 지금까지 그 전례가 없는 주체상, 즉 자신의 쾌락과 고통의 이익만을 원칙으로 삼아 행동하고 선택하는 새로운 인간상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인간상은 도덕도 타자도 자신의 이익에 종속시킨다는 의미에서는 경제적인 것을 절대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이해관심이 처음으로 하나의 의지의 형식으로서, 직접적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의지의 형식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려운 손가락을 긁으려고 하는 욕망이 채워지기 위해서는 타자의 죽음은 물론 세계의 파괴까지도 용인할 것이라는 의지는, 그렇다면 타인과 어떻게 해서 서로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것일까? 자신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삼아 선택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어떻게 해서 사회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이처럼 원자적으로 이해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인간상은 뉴턴의 물리학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고찰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세계에 뉴턴의 물리학을 적용하는 것, 그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을 원자의 이미지로 이해하려고 한 홉스 이후의 근대의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흄도 뉴턴의 실험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이 자연계의 주제에 적용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한 세기를 사이에 두고서, 드디어 정신적인 주제에도 적용됐다는 것을 칭찬하고, “어디까지나 실험을 하고, 모든 결과를 매우 단순하고 소수의 원인으로부터 해명하고, 모든 원리를 할 수 있는 한 보편적인 것으로 하도록 노력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물리학의 실험의 방법으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어떻게 타자의 행복을 바라고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세 개의 대답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대답 방식은, 인간이 이웃에게 동정심을 품기 때문에, 이웃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익의 합치의 원칙 혹은 공감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타자에 대한 공감을 축으로 사회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스미스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의 본성에는 몇 가지 원리들이 있어서 이것이 그로 하여금 타인들의 복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타인들의 행복을 타인들에게 필수적이게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설령 그가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저 그것을 본다는 쾌락만을 얻을 뿐이라고 하더라도[원문 대조 후 수정함]고 지적하고, 그 원리를 연민 혹은 동정이라고 명명했다.

두 번째 사고방식은 동정과 공감이라는 애매하고 측정하기 힘든 정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주의를 그대로 긍정한 뒤, 사회의 형성 가능성을 생각하는 방법이다. 만일 인간의 이기주의와 욕망이 항상 타자의 이기주의와 욕망의 부정 위에 성립되는 것이라면, 만인은 만인의 적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는 원래 도덕은커녕 사회조차도 성립될 수 없으며, 인류는 이미 타자를 살육하고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인류가 존속하고 있으며, 사회 속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이기주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자동적으로 인간이라는 종에 선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익의 자연적인 동일성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맨드빌은 꿀벌의 우화에서, 사회 속에서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에 선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거짓말, 사치, 자랑은 역시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그리고 그 혜택은 우리가 받는다는 것이며, 악덕조차도 사회를 부유하게 한다. “이리하여 악덕은 巧知[교묘한 재지(才智)]를 기르며, 때와 노동에 결부되며, 빈민들조차도 옛날의 부자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셈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의 유명한 신의 손[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은 이 원칙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이론은 꽤 역설적이다. 맨드빌은 인간의 사적 이익 추구를 악덕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이 공적인 선을 가져다준다는 역설의 형태로 이 원칙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이 역설이 되지 않은 사고방식은 없을까? 그것은 외적인 강제를 들여옴으로써 가능해진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치료할 수 없다. 그래서 사회의 일반적인 이익에 적합하도록 인간을 행동시키기 위해서는 입법자가 법이나 규칙을 정하고 이것이 실현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이익의 인위적인 동일화의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흄은 인간이 눈앞의 이해에 현혹되어, 중요한 이해라 하더라도, 먼 장래에 관련된 이해는 외면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있어서의 불치의 약점이다. 그러므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정의의 집행책임자를 임명하고, 사람들에게 아무리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자신의 참된 영속적 이해를 숙고시킬 필요가 있다고 흄은 생각한다.

이 세 개의 대답들이 그 후의 영국의 정치철학의 흐름을 수놓게 된다. 공감을 중시하는 흐름은 스미스와 흄의 사회철학의 근본이 된다. 두 번째 대답은 사적 이익과 자기애를 중시하는 영국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의 큰 축이 된다. 밀과 벤담의 공리주의도 이 흐름 속에 있다. 세 번째의 대답은 벤담의 법철학의 기본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국가와는 다른 차원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시민사회라는 개념이다. 그때까지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는 의식되기는 했으나 명확하게 주장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로크의 시민정부론7장은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에 대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이 두 개념은 호환적인 것으로 생각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개념을 특히 역사적인 관점에서 명확하게 한 것이 아담 퍼거슨이며, 푸코는 생명정치의 탄생의 강의 마지막 회를 퍼거슨의 시민사회론에 할애한다. 푸코는 퍼거슨의 시민사회는 바로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기능하는 구체적인 요소이며, 구체적인 전체의 장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민사회의 첫 번째 특징

푸코는 퍼거슨의 시민사회 개념을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역사적이고 자연적인 상수로서, 자발적인 종합의 원칙으로서, 정치권력의 상실적 모체로서, 역사의 구동력으로서이다. 순서대로 보자. 첫 번째의 역사적이고 자연적인 상수란 퍼거슨의 시민사회가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자연에 갖춰져 있는 것을 체현했다는 얘기다. 이것은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자연상태론도, 홉스적인 자연상태론도 부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자연법에 따르면, 사람들에게는 사교성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이미 사회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가령] 홉스의 자연상태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연상태에서는 전쟁상태에 있으며, 사회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비로소 사회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퍼거슨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집단이나 동료로서 모여들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교성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자연법 이론과 다른 것은, 퍼거슨이 사교성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인간이 존재할 때에는 이미 사회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에게 날개가 있고, 사자에게 발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것을 기술할 때에는 이미 언어를 가지고 타자와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퍼거슨은 사회상태 이전에 자연상태가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력의 작동에 지나지 않는다며 홉스의 이론을 부정한다. 퍼거슨은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비판하면서, 인간을 생각할 때에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도 자연적으로도 상정해야 한다고 한다.

푸코는 이런 퍼거슨의 주장을 사회적인 유대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고, 사회를 구축하거나, 정초짓거나 하는 특별한 조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아무튼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사회적인 유대에 전사(前史)는 없다고 요약한다. 사회적인 것은 인간 개념 그 자체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다. 이것이 푸코가 지적하는 퍼거슨의 시민사회론의 첫 번째 특징이다.

 

시민사회의 두 번째 특징

두 번째의 자발적인 종합의 원칙이라는 관점은 사회계약과 관련된 것이다. 사회상태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상태를 부정하는 것의 당연한 귀결인데, 퍼거슨의 시민사회론은 사회계약론을 부정한다.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했을 때, 사회적 유대 속에서 자연스럽게 각 개인의 욕망이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로크처럼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홉스처럼 자연권을 타자에게 양도하는 것도,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불필요하다. 자연 속의 사람들의 욕망이 사회 속에서 종합되고 통합되는 것이다.

퍼거슨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독한 탐험가가 남긴 기록을 이용한다. 13개월 동안 고독 속에서 여행하던 탐험가는 타인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기쁨을 가져다주는지를 실감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퍼거슨은 지적한다. “서로의 관용을 발견하고 함께 참을성 있게 견뎌냄으로써, 우정의 열의가 두 배가 되고, 인간의 가슴에 불꽃이 지펴진다. 이것은 개인적 이익이나 안전성에 관한 배려가 끌 수 없는 불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이고, 서로 타자와의 사이에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집합체인 시민사회는 시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구를 추구함으로써 타자의 욕망도 또한 채우게 되는 장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기능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익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정열도 애착도, 대상에 이해관심(interest)을 갖게 한다고 말해지고, 인류는 인간의 복지에 이해관심을 보여준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이런 이해관심이라는 단어는 재산에 대해서만 얘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인류 전체의 이익과 그 행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퍼거슨은 인간의 열정이 자신의 이해를 초월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증오와 질투 등에 휘둘리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무시하고 행동해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미움은 이해관심 없는 정열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이해관심이 없는 관대함 같은 것이 있더라도 신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무시하고 타자에게 은총을 베푸는 기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민사회는 세계적 규모가 되는 시장과는 달리, 어떤 한정된 경계를 갖추고 있다. 지구는 대륙으로 분할되고, 대륙은 국가로 분할되며, 국가는 도시와 농촌으로 분할되며, 도시는 내부 집단으로 분할된다. 이 분할로 만들어지는 경계마다 사람들은 동포에 대한 애정과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기른다. 인간이라는 종은 조화를 향하는 경향이 있는 동시에 “서로 대립하는 경향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구별을 좋아한다. 우리는 어떤 중요한 대립점도 없이 대립하며, 당파나 계파의 이름으로 다툰다. 혐오는 애정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대상과 마주함으로써 조성醸成된다.”

인간은 집단을 결성하여 합치며, 서로 욕망을 채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대립이 불가결하다. 인간에게는 동포에 대한 공평무사한 감정이 있고, 인간성과 정의에 대한 선호도 있다. “그러나 대립하는 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인정하지 않고서, 대중이 자신들의 통일의 감각을 품는 것을 기대해 봤자 헛된 일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토대는 세계도 대륙도 아니고 국가이다.

여기에서 기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사적 이익의 추구에 있어서 사람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고독하다. 그런데 사회의 유대가 특히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타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거나, 조국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할 때이다. 그때까지의 사회계약설에서는, 사람들이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었거나(홉스), 또는 소유를 확실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로크)였다. 그러나 퍼거슨은 외적인 이득이 주어지지 않을 때일수록 사회의 유대가 강해진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사회를 그 외적인 편의를 위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편의가 가장 적은 때에 사람들은 사회에 애착을 품는다. 자신의 피로 사회에 충성을 바칠 때 사회에 가장 충실한 것이다. 정서는 최대의 난문에 직면했을 때 최대의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국가의 위기에 있어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때 가장 사회의 유대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상업적인 활동에서는, 사람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타자를 마치 이익을 가져오는 가축이나 토지와 똑같이 다룬다. 여기서는 타자에 대한 차갑고 싸늘한 관계가 지배한다. 따라서 경제적인 상태로 나아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유대는 약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를 자발적으로 형성하고, 이 사회 속에서 경제적 유대가 구축되지만, “경제적인 유대는 끊임없이 이 사회의 유대를 위협하게 된다.

이 사회 속에서 인간은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파거슨은 인간에게는 늘 이기적인 욕망과 이타적인 욕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기적인 욕망은 자신의 만족과 기쁨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고통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신의 배려가 높아지면 그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의 불안과 잔혹한 열정을 산출해내는 일이 있다. 그것이 탐욕에, 허영에, 교만高慢에 이르는 일이 있다. 그것이 질투와 시샘, 증오와 악의의 습관을 기르게 되면, 우리 스스로의 만족을 파괴하는 일이 있다. 인류의 복지에 적대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타적인 욕망을 만족시키면 타자에게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주게 되며, 자기는 그만큼 가난해진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얻어지는 만족은 이기적인 욕망의 충족을 넘어서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재산을 획득하는 것보다 타자를 위해 재산을 획득하고자 하는 쪽이 큰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욕망이 따라가는 복잡한 변증법이다. 경제적인 유대와 사회적인 유대는 상보적인 운동을 하기도, 대립적인 운동을 하기도 하며, 그 양쪽이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시민사회의 세 번째 특징

시민사회의 세 번째 특징은, 그것이 정치적 제도를 만들어내기 전의 원시적인 장이라는 것이다. “어떤 정치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들은 재능의 다양성, 혼의 상태의 차이, 열정의 격렬함 등의 성질에서 각각 달랐다. 사람들을 모으면, 각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냈다.” 각각의 기질과 재능에 맞게, 그 조직의 과제에 맞추어 각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지위를 차지한다. 어떤 자는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고, 그 리더를 사람들은 따라다닌다. 그리고 정치 제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지게 되는 것은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위정자와 신하의 능력에 있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른 뒤에야 비로소 통치 자체 규칙을 적용시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정치제도는 시민사회에 사후적으로, 뒤늦게, 권력의 사실 자체보다 나중에 발생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네 번째 특징

푸코가 시민사회의 네 번째 특징으로 드는 것은 그것이 역사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인간의 시민사회는 세 단계를 쫓아 발달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주 조야한 사회이다. 그 사회에서는 수렵과 물고기 사냥만으로 살고 있어서, 각자가 운반 도구와 가죽만을 소유한다. “내일의 식량은 아직 [야수로서] 숲 속에 있는 야생 상태에서 살아 있는 것이며, [물고기로서] 물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잡지 않았으면 아직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일부의 조야한 사회에서는 수렵에 조야한 농업이 보태진다. 수렵하는 장소는 부족의 소유물이라고 선언되지만, 그 구성원 사이에서 분할되지 않는다. 퍼거슨은 북미 인디언 사회를 검토하면서 아직 국가가 없는 야만적인 사회의 모습을 묘사한다. “(인디언들은)어떤 정해진 정부의 형식도 없고 통일된 유대도 없고, 이성의 발명이라기보다는 본능이 시사하는 바와 유사한 것의 힘으로, 국가의 조화와 힘을 갖고 행동했다. 외국인은 위정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할 수 없고, 장로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조약을 체결하는 위원회와 싸우는 전사 집단을 찾아냈을 뿐이었다.”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자연발생적인 균형과 자연발생적인 유대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북미 인디언들은 부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양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국가의 성립을 막기 위한 경제적인 시스템, ‘국가에 맞선 사회의 시스템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야만인은 그 재산이라고 하면 작은집과 피혁과 무기뿐이며, 자신이 입수할 수 있는 식량과 안전성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집단의 리더를 존경하고 그에게 복종하더라도 통치의 통일적인 규칙도 없고, 법체계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 속에서, 경제적 이기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농업이 탄생하고, 짐승의 무리가 재산이 되며, 정주를 시작한다. 이것이 야만적인 사회이다. 리더 아래 모이고, 명예를 요구하고, 야수의 사냥꾼이 아니라 인간의 사냥꾼으로서 타국으로 쳐들어간다. 모든 나라가 도적의 모임이며, 억제도 후회의 마음가짐도 없이 이웃을 약탈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미 국가의 싹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산이 축적되는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마침내 국가와 법이 필요해진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평의회의 구성원들이 선출되는 방법을 결정하고, 혼란을 시정하는 상설 권한을 평의회에 주고, 정의를 지키기 위한 몇 가지 법을 정하는 것만으로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약간의 단계step를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자신이 경작하고 있는 땅을 후손에게 남기려는 사람이 등장하고, 사람들을 복종시킬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보다도 타자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리하여 문명적인 사회가 찾아온다. 인간은 눈앞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또는 명백한 이익이나 우연히 손에 넣는 이익을 목표로, 상상밖에는 할 수 없었던 곳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다양한 사회는 어디에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처럼 인간의 역사 속에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형식은 철학이 발생한 날짜보다 전에, 인간의 사변으로부터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국가의 탄생은 인간의 디자인意匠을 실행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의 결과로서 성립한 것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회는, 그 필요성에 맞게 자발적으로 등장하며, 그것이 인간의 지금까지의 역사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은 누구의 디자인意匠에 의한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의 욕망의 총화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 역사관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결과로서,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그것이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사회는 맹목적인 발의, 이기적인 이해, 각자가 자신을 위해서만 행하는 계산의 결과로서 탄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차원의 등장

푸코는 퍼거슨의 시민사회론을 꽤 자세히 검토하고, 18세기 후반에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했음을 지적했다. 이것은 퍼거슨뿐 아니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흄의 시민정부론등에서도 엿보이는 새로운 경향이다. 이 새로운 경향에 대해 푸코는 다음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한다.

첫째, 여기서 등장한 새로운 사회관계의 이론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유대나,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단위나, 법적 유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서 열린 것이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도, 순수하게 법적인 것도 아니고, 계약의 구조에 겹치는 것도, 이양되거나 위탁되거나 양도되기도 하는 법권리의 작용의 구조에 겹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다.

둘째, 이 시민사회 개념에 의해 역사라는 것의 새로운 시각, 새로운 관점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역사는,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의 역사처럼, 처음에 어떤 법적인 구조가 결정되고, 그것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발전되는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혹은 그리스나 로마의 고대의 모델을 상정하고, 이로부터 근대까지 어떤 쇠퇴가 발생하는가, “부정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원초의 투명성이 어떻게 혼탁해지는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고대와 근대의 우월의 논쟁은 18세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퍼거슨의 역사관, 루소의 역사관, 이 시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단계적 역사관은, 고대로부터의 변천을 인간 사회의 경제적인 구조가 새로운 것이 되는 역사로서 이해하는 것이며, 법적 구조의 변화나, 쇠퇴의 역사로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셋째, 시민사회라는 차원을 고찰함으로써, 정부라는 형식에서의 권위와 사회적 유대 사이의 내적이고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는 관점이 생겨난 것이다. “시민사회에 의해, 사회적인 유대와, 통치라는 형태에서의 권위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 복잡하고 내적인 관계를 가리키고 밝힐 수 있게 된다. 풍토에 의해, 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의해, 어떤 통치가 걸맞고, 어떤 통치가 실패로 끝날지 등을 분석하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의 분석이 이 가능성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영국에서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야경국가 이론이 확립됐다. 이것은 유럽 중에서도 특히 이미 당시에 자본주의화를 추진한 영국에서 가장 현저하게 보일 것이다. 프랑스의 중농주의는 미라보 등을 대표자로 하면서, 그대로 프랑스 혁명으로 치닫게 되는데, 혁명 후의 프랑스는 이런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기초한 야경국가의 이념을 채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푸코가 이 책에서 고찰하고 있는 전후의 독일과 미국의 자유주의를 비롯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는 이 시민사회의 이론 속에서 결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과를 포함해, 남은 문제는 크지만,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근대의 반사목과 반[대항]품행의 운동이, 국가의 통치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의 이론으로서 결실한 것은 확실하며, 근대의 국가론의 중요한 틀의 하나가 여기서 확립된 것이다.

또한 푸코는 생명정치의 탄생에서는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개념이 현대사상에 초래한 세 가지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여기서 확인해두자. 첫째는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봄으로써, 하나으 중요한 이론적 격자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는 중층적이고 유기적인 모습을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라는 생물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할 수도, 아버지라는 사회적 존재로서 고찰할 수도,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개인으로서 고찰할 수도 있다. 그 착종된 얼굴을 지닌 인간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고찰하려고 하는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개념에 큰 제약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을 경제활동만으로 단순하게 잘라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인간의 복잡한 측면을 추상하고, 점과 같은 경제적 행위자로 간주하는 것에는, 다른 장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그 경제적 합리성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기의 이익을 최대로 하게끔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으나, 이 개념을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양식의 내적 합리성을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사고방법, 경제와 사회에 대한 하나의 분석격자를 거머쥘 수 있다. 경제학의 게임의 이론이나 심리학의 행동주의도 이런 개념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단순화인 동시에, 인간의 합리성을 고찰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내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롤스의 무지의 베일의 개념을 낳은 것도, 인간의 행동을 그 합리성으로만 고찰하려고 하는 이 관점일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 개념에 의해 맑스적 노동자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노동자 개념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맑스에게서 노동자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서 매각하고 자기를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획득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부정의한 것은, 자본주의가 노동자가 매각한 노동력에 걸맞은 대가를 노동자에게 주지 않고,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모 에코노미쿠스 개념 아래서의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에 의해 최대한의 소득을 획득하려고 하기 위해 자기의 적성이나 능력을 갈고 닦고, 이것을 가급적 높은 대가로 매각하려고 하는 자본이다. 노동자는 자기 능력을 개선하고, 그것을 비싸게 팔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인적 자본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업에 투자되는 자본에 대해 시장 가격에서 판매되어야 할 것으로서의 노동력이라는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반대극에 있다는 것이며, 현대의 노동이론은 완전히 이 개념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는 사람들이 자기를 자본으로 간주하기 시작함으로써, 자기의 자손도 또한 자본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최고의 결혼 상대를 획득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한다. “큰 자본을 갖고 있는 상대를 배우자로서, 혹은 미래의 인적 자본의 공동생산자로서 손에 넣는 것이 중시되는 것이다. 이런 결혼전략뿐 아니라, 평생교육의 가치, 노동자의 질의 높음과 국가의 경제성장의 밀접한 관계 등, 현대의 다양한 문제가 인적 자본이라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개념과 결부된 것은 확실할 것이다.

세 번째의 문제점은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론이 그때까지의 정치철학에서 상정된 주권이나 법과 권리의 주체의 개념과 전혀 다른 주체의 개념을 제기한 것이다.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미 말했듯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계의 파괴도 받아들이는 주체로서 생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통적인 정치철학의 주체는, 법과 권리의 주체라는 사고방식이었다. 루소나 칸트의 주체는,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법을 받아들이고, 그 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자기의 처벌을 받아들이는 주체였다. 법의 주체는 과거에 갖고 있던 자연권을 포기하는 것을 용인한 주체이며, “부정성을 받아들이는 주체, 자기 자신의 포기를 받아들이는 주체이다.

이에 대해 자기의 이익을 우선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주체는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익이 부합하다고 생각하는 주체이며, 자기의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는 주체이다. 그것은 개개인의 의지가 자연발생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될 수 없는 방식으로, 다른 개개의 의지 및 이해관심과 조화하는 메커니즘을 따르는 것이며, “법권리의 주체의 변증법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따르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주체는 타자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때, 가장 선하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사람들이 공공선 등을 배려하지 않을 때, 가장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에게 있어서는 불명료함, 맹목성이 절대로 필요하게 되며, “집단적 이익이 목표로 되지 않는 것이다. 루소가 집단적인 여론을 만들어내는 당파를 싫어한 것도, 롤스가 무지의 베일을 필요로 한 것도, 이 맹목성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와 호모 에코노미쿠스 개념은 전통적인 정치철학과 법철학의 틀을 넘어서 현대사상으로 이어지는 큰 원천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푸코는 동시대의 사상을 분석하는 것은 별로 하지 않았으나, 독일과 미국의 자유주의를 고찰한 이 생명정치의 탄생의 강의는 푸코의 고찰의 철저성과 그 분석력의 날카로움을 보여주기에,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고 있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7. 생명권력 : 영국의 자유주의 모델

1. 자유주의의 통치성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사목의 거부

이미 봤듯이, 국가이성과 규율권력 아래에서 사람들은 신하로서 엄격한 훈련과 감시의 대상이 됐다. 국가는 가부장적이고 참견하는 통치를 사람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그만큼 일거수일투족에 이르기까지 감시하고 명령하는 통치에 대해 어떻게 통치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대항품행의 물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미 41절에서, 국가이성이 사목의 기술을 어떤 형태로 역전시키면서, 한편으로 그것을 이어받았는지를 구원, 복종(), 진리라는 세 개의 축으로 고찰했다. 이 절에서는, 새롭게 형성된 자유로운 시민에 의한 시민사회의 원리인 자유주의가 어떤 형태로 사목에 의한 인도[품행]를 부정하는가에 대해 마찬가지로 사목의 세 가지 축, 즉 구원, 복종, 진리의 축에 대해 고찰해보자. 영국에서 탄생한 자유주의는 프랑스의 중농주의 아래서 몇 가지 결함을 시정하고, 사목과는 명확하게 다른 통치성의 원리를 확립했다.

우선 첫 번째인 구원의 축에 있어서는, 시민사회가 시민의 혼의 구원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시민의 구원은 피안에 있어서 혼의 구원으로서 실현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현세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시민의 생활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정치경제학의 과제이다. 중농주의에서도 이미 국가의 인위와 대비되어 사회의 자연성이 중시됐는데, 새로운 통치성을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는 사회의 자율성에 의해, 국가의 제한 없는 통치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시민사회가 국가의 제약과 후견을 극복할 수 있었을 때, “정치의 시간, 국가의 시간은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사회가 국가보다 우위에 서는 혁명적 종말론이다.

두 번째의 복종의 축에서는, 전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인도[품행]에 대해, 시민은 자율적인 집단으로서의 주민인구로서 대항하려고 한다. 주민은 인간의 집단으로서 자율적인 법칙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국가의 세세한 규율과 통제에 맞서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 칸트는 인간의 결혼, 그 후의 출산, 그리고 사망이라는 사건에 대해서도, 연간 통계를 조사해보면,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런 자율적 법칙을 갖추었기에 국가의 명령은 무효이며, 시민은 그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명령에 대한 복종의 의무의 부정이다. 이것은 모든 복종적 결합과의 단절이라는 형태에서의 절대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며, “혁명 자체의 권리이기도 하다.

세 번째 진리의 축에서는, 더 이상 국민에 대한 정보와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통계학이라는 형태로 <제국의 수수께끼>를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민이 무엇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리를 정확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국민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회는 스스로에 대해서 투명하고, 스스로의 진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 가지 축 모두에서 주체로서 등장한 것은 시민사회에서, 이 시민사회의 학이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이었다. 이 학문이 시민사회와 시민에 대해서, 내세에서의 구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생활을 향유하고 국가에 복종하기를 그만두고, 스스로에 대한 진리를 배우는 수단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개략적으로 돌이켜보면, 중세의 통치의 원칙은 신성한 신의 법에 입각해 지배하는 것이었다. 16세기와 17세기의 국가이성의 통치는 국가에 최대의 힘을 주기 위해, 충분히 강하고 깊고 세부에 이르기까지 통치하는 데 있었다. 18세기의 새로운 통치는, 최대의 통치와 최소의 통치의 한도 속에, 사태의 자연에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통치의 작업에 고유한 필요성을 따라서, 최대의 효과를 요구하여 통치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통치이다. 이것은 통치하지 않음으로써 통치하는 것을 요구하는 역설적인 권력, 통치적 이성이 자기 한정하는 권력, 레세 페르의 권력인 것이다. 이 권력이 생명정치의 일반적 틀이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권력의 공간

이제부터 이 권력이 작동되는 장은 상품이 유통되는 시장이 된다. 시장은 공정한 가격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장소이며, 상품의 진정한 가치가 제시되는 장소이다. 좋은 정부는 이 시장의 진리를 따라 기능하는 정부이다.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의미는, “통치가 스스로에게 고유한 통치실천의 진리의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 것에 있다고 푸코는 지적한다. 정부의 통치가 적절한지 여부, 그 목적을 채우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시장이 그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서양의 통치성 역사에서 절대적으로 기본이 되는 것은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시장이 갑자기 등장한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장 메커니즘의 중요성은 중농주의도 주장한 바였다. 그러나 중농주의는 프랑스의 절대군주와 그 정부에, 시장에 대한 미세한 조정과 개입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시장이 이렇게 진리를 이야기하고 정부의 통치의 효과를 명확하게 나타낸다고 생각함으로써, 군주의 개입을 정면으로 부정하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 후의 영국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요구하는 오스트리아 주도의 빈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 국가들의 세력균형을 요구하는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에는 이미 검토했던 두 개의 중요한 전제가 있었다. 유럽 내부에서의 제로섬 게임 속에서의 경합과, 역내의 내적 통합이다. 우선 중상주의에서는 세계의 (혹은 유럽의) 전체의 금과 은의 양이 일정하다는 것을 전제로, 국부를 통화의 양으로 측정한다. 그때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인 국가가 많은 통화를 획득할 수 있게 되며, 국부를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상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토마스 먼(Thomas Mun)타국민의 밑천으로부터 부를 얻는 것은 우리나라 자체의 재산을 꾸준히 증대시키는 것 못지않게, 명예이며 정당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 국가의 부의 확대는 유럽 내부의 다른 국가의 부의 감소를 의미한다. 부의 획득은 제로섬 게임의 원칙으로 행해지게 된다.

그런데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이웃나라가 풍요로워지는 것은, 자국이 풍요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의 첫머리에 있는 핀 제조에 있어서의 분업에 관한 서술은, 이 원칙을 역력하게 보여줬다. 타인과 협력하여 특정한 작업에만 특화함으로써, 작업 효율은 매우 높아지게 된다. 분업에서는, 나의 이익이 높아진다는 것은 동시에 타인의 이익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은 상호 이익을 가져온다. 스미스는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이나 술집이나 빵집 주인이 박애심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고 말할 것이다.

둘째로 중상주의에서는 유럽의 국가들의 균형을 중시하고, 경제적으로는 외부의 세계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관점에서는, 시장은 유럽의 내부에서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열려 있다. 경제는 세계적인 차원에 열려 있음으로써, 제로섬 게임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이리하여 지구적인 규모를 지닌 새로운 종류의 계산이, 유럽의 통치의 실천 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유럽의 내부이기도 하고 외부이기도 하는 자국의 위치를 이용하면서, 유럽의 세력균형의 개념과 실천을 타파하는 것에서 이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유주의적 통치는 어떻게 해서 영국에서 등장했을까? 이 문제는 이미 중농주의에서 등장했던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시민사회의 개념을 고찰함으로써 풀 수 있을 것이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6. 생명권력 : 프랑스의 중상주의 모델

2. 규율권력과 생명권력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장치의 차이

이처럼 생명권력은 완전히 새로운 인구라는 대상에, 독자적인 안전장치를 사용해 작동을 거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생명권력의 안전장치는 그때까지의 규율권력이 전개했던 규율장치와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새로움을 갖춘 것일까? 여기서 이 두 개의 권력장치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 차이는 각각의 메커니즘이 향하는 방향이다. 우선 규율장치의 메커니즘은 구심적이지만, 안전장치의 메커니즘은 원심적이다. 규율장치의 메커니즘은 어떤 공간을 분리하고 어떤 절편을 정함으로써 기능하는 것이며, 이 공간 속에서 규율권력이나 규율의 권력 메커니즘이 충분하게, 한계없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안전장치의 메커니즘은 밖을 향해서 확대하려고 한다. “생산자매수자소비자수입업자수출업자가 행하는 생산심리학행동거지행동의 방식이 통합되고, 세계시장이 통합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메커니즘의 기능이다. 규율권력의 메커니즘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며, 가장 사소한 사항도 방치하지 않는다. “규율에 대한 위반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규율은 세부의 움직임을 방해함으로써 기능한다. 이에 반해 생명권력의 안전장치는 세부에 의거하면서도, 세부는 선악에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다뤄지고, 자연적인 과정으로 다뤄진다. “하도록 내버려둔다(laissez-faire)”가 그 기능의 원칙인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메커니즘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느냐, 부정적으로 작동하느냐의 차이이다. 규율장치는, 허가와 금지라는 법적인 절차를 따른다. 허가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의 영역의 내부에서, “금지되는 것이나 허가되는 것, 오히려 의무로 간주되는 것이 정확하게 특정되고, 규정되는 것이다. 법이 정하는 것은 주로 금지이며, 이것을 하라, 저것은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질서란 금지되어 있는 것을 모두 방해했을 때 남는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규율권력은 인간이 본래 나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금지에 의해 막으려 한다. 인간의 악을 다양한 규율이나 규칙에 의해 포획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규율장치의 메커니즘은 부정적인 사고이며, 부정적인 기술이다. 이에 반해 안전장치는 법처럼 금지도 하지 않고 규율처럼 명령도 하지 않는다. 이 메커니즘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물의 본성에 어울리는 형태로 제한하고 제동을 걸고 조정함으로써, 목적을 실현하려고 한다. 안전장치는 인간의 사고를 선이라고도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중농주의(피지오크라시)란 인간이나 자연의 본성(퓌시스)에 작동을 거는 물리학이다. “정치학이란 하나의 물리학이며, 경제학이란 하나의 물리학이다는 것이다. 중농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간에게 자유롭게 행동하게 함으로써,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다음 장에서 고찰할 자유주의와 가까운 성질을 갖추고 있다. 조정은 각자의 자유를 통해, 각자의 자유에 의거해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공간에서는, 이 장치는 잘 기능하지 못한다. 이처럼 안전장치가 목표로 하는 통치성은 내치가 목표로 하는 통치성과는 거의 잣구 하나까지도 대립하는 것이다.

 

권력의 작동방법의 차이

이렇게 규율권력의 장치와 생명권력의 안전장치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은 규율의 권력과 생명권력 자체의 작동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이 두 종류의 상이한 장치를 작동시키는 두 개의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음의 네 가지 측면, (1) 두 개의 권력의 주체는 무엇인가, (2) 객체는 무엇인가, (3) 권력의 작동 공간은 어디인가, (4) 어떻게 작동되는가에 대해 검토해보자.

우선 규율권력에 대해 이 네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보자.

(1) 규율권력의 주체는 국가이성의 주체이며, 기본적으로 주권자로서의 군주이며, 내치의 통치를 행하는 관료기구이다. 군주는 때로 자의적으로 보이는 어두운 법”(루이14)을 구사해서 법의 외부에서 권력을 행사한다.왕의 신비로부터 그 힘을 얻은 국가이성은, 주권자인 왕의 모든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한다. 설령 아무리 자의적으로 보이더라도.” 내치의 통치를 행하는 관료기구는 또한 사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예외상황에서 국민을 통치한다. 내치는 경찰이며, 경찰은 법에 따라 행동하더라도, 사실은 법의 외부에서 기능하고 있다. “내치란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행하는 직접적인 통치성이며, “항상적인 쿠데타이다. 내치의 지배는 법의 지배와는 전혀 공통되는 것이 없다.

(2) 규율권력의 객체는 물론 신민이다. 이 신민은 통치의 대상이 되면서, 규율을 겪는 주체로서 내치의 공간 속에 등장한다. 이 신민은 통치자에게는 국가의 힘을 형성하는 인구로 보인다. 중상주의의 원칙은 낮은 비용으로 제조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국가의 부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국민이 존재하고, 노동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내치의 객체이자 신하로서의 주체인 국민은 “순종적인 다수의 노동자인 것이 바람직하다.

(3) 규율권력의 작동 공간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이 권력이 작동하는 특권적인 장은 도시였음을 상기하자. 판옵티콘적인 도시가 다수 꿈꿔지고, 실제로 몇 개나 건조된 것에서도 드러났듯이, 규율권력은 닫힌 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내치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도시적 대상이다. “도로, 광장, 건조물, 시장, 통상, 수공업, 공예 등이 주된 타깃이 된다. 내치는 도시의 통제이며, “인간들의 공존, 상품의 유통”, 더 나아가 인간들의 유통의 문제로서의 부랑자 등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 도시는 도로망을 통해 영토의 전체에 연결된다. 왕국을 일종의 대도시로 보고 조정하고 관리하고 규율을 가하는 것이 내치의 [기]술이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모든 도시의 모든 판사가 파리를 본보기로서 내치를 행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를 확대한 것으로 생각됐던 왕국은 유럽 속에서 서로 세력 균형을 이루면서 존재했다. 그래서 유럽이란, 도시를 연장한 국가가, 어떤 지역 속에 각각이 하나의 도시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됐던 것이다. 유럽이 하나의 시장처럼 되며, 국가는 통상[교역]의 그물망에 의해 묶여졌다. 이리하여 시장 도시가 인간들의 삶에 대한 국가 개입의 모델이 된다.

(4) 이 규율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라는 문제를, 기존의 장치의 기능과 관련시키면서 생각해보자. 내치의 권력은 대도시의 내부에서 기능하지만, 그 작동방식은 단 하나였다고 푸코는 지적한다. 항상적인 쿠데타인 내치는 통제, 칙령, 금지령, 지령이라는 형태로만 기능한 것이다. 사법의 장치에 기대며, 법적인 권위를 가장하면서 명령한다.

러시아의 절대군주인 에카테리나 2세는 “내치는 법보다 통제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한 법을 따르게 하기보다는, 개개의 인간에게 지휘하고 명령하고 금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는 개개의 신체에 대한 규율의 기술을 도시 전체에 적용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공장이나 군대 막사나 학교에서 전개된 규율의 행위를 왕국의 영토 전체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치는 어떤 의미에서, 개별 양을 배려하는 사목의 기술과 유사해진다. 내치의 꿈, 그것은 도시를 수도원으로 하는 것에 있다. “도시를 수도원 같은 것으로 하는 것, 왕국을 도시 같은 것으로 하는 것, 이것이 내정의 배경에 있는 위대한 규율의 꿈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규율권력의 모습과 비교해서 생명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1) 권력의 주체에 대해서는, 생명권력에서는 군주와 신민 사이의 대립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왜냐하면 통치자는 국민에게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것이며, 주체로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정의 시스템이 존재함으로써, 국민이 통치의 객체로서가 아니라,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서 등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자유로운 존재일 것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행동하는 것, “서로 경합하는 각자가 자신의 이윤을 최대로 하는 개인의 이익의 움직임에 의해서 국가도 최대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생명권력의 객체는 이른바 주체 속에 동화되어 소멸하는 것이다. 국가는 권위를 내세우고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자유로운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국가의 목적은 더 이상 각자의 행복을 만인의 행복으로 변형하는 초월적이고 종합적인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자유롭게 행동했을 때, 각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는 18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국가의 기능의 본질적인 요점이 된다.

(3) 생명권력의 작동 공간에 대해서는, 이 권력은 더 이상 도시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중농주의에서는 부의 생산장소가 더 이상 도시에 있는 공장이 아니라 농촌이다. 가치의 원천은 농업노동자에 있다. 중농주의자인 튀르고의 말에 따르면, “생산하는 농업노동자는 가공하는 공업노동자를 이긴다. 농업노동자는 노동순환의 최초의 원동력이며, 그가 바로 모든 공업노동자의 임금을 토지로부터 생산시키는 것이다.” 이 농업중심주의 때문에 탈도시화가 발생하게 된다. 다만 권력의 공간이 농촌으로 이행한다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특권은 부정됐으나, 소비자의 자리로서의 도시의 기능은 농촌에 못지않게 중시된다. 도시와 농촌을 포함한 영토 전체에서의 상품의 유통이 중요한 것이며, 도시에서 생산한 상품의 매각 이익을 중요하게 여길 수 없게 된 것이다.

(4) 생명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해서는, 규율권력처럼 전반화된 규율에 의지하지 않는다. 국민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 물론 생명권력도 규율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권력은 사물을 구부리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곡물의 유통 같은 현상을 수정하려고 하면, 바로 악화시켜버리는 것에 있다. 이미 검토했듯이, 곡물의 가격을 통제하여 내리려고 하면, 곡물은 더욱 부족해지고 가격이 급등한다. 정반대의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내치에 의한 통제는 무익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흐름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흐름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규율권력과 생명권력은 그 주체나 객체에 대해서도, 작동하는 공간에 대해서도, 그 작동방식에 대해서도 매우 대조적이다. 18세기의 중농주의 시대에 자유무역과 유통의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통치적 이성이 탄생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국가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 속에서 우주론적 신학의 세계의 크기로부터 생각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초에 등장해 새로운 통치성을 확립한 것이 규율권력이었다. 이 권력은 국가이성이라는 어두운 기술을 구사하는 군주의 권력이며, 군주는 정치가로서, “통치술에 특유한 합리적인 원칙과 계산 형식이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가를 정확하게 확정하는 자로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통치성이 탄생한다. 이 생명권력의 통치술은 정치가의 국가이성을 비판하면서 시장사회의 경제적인 이성을 추구하는 경제학자의 기술이다. 국민을 규율의 객체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라고 봄으로써 국가의 더 좋은 통치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국가이성을 대신해 경제적 이성이 내세워진 것이다.

이런 경제적 이성은 국가이성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조정하고 보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우리는 여전히 국가이성 속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규율사회의 잔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근대적 주체의 탄생에 있어서 순종적인 신체를 확립한 규율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권력의 특징 : 결론으로서

여기서 결론으로서, 중농주의라는 이론적 치장 아래서 등장한 생명권력의 특징을 재확인해두자.

첫째, 생명권력의 특징은 그 자연성에 있다. 국가이성의 권력은 중세의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관계와, 우주의 자연성에 의거한 국가의 사상을 절단하는 형태로 등장했다. 내치의 통치성은 절대적인 인공성에 있었다. 그런데 생명권력과 함께 다시금 자연성이 중시된다. 케네는 사회의 자연적인 행위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해 나감으로써, 사회가 번영하고 인간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 자연성은 중세적 우주론적 자연성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만 성립하는 자연성이다. 사회의 자연성이란 개념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성이며, “인간들이 함께 살고 한데 모이고 교환하거나 근로하거나 생산하거나 할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특유한 자연성이다. 이것이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국가와는 이질적인 차원으로서 시민사회가 발견된 것이다. “신민의 집합에만 관련되는 국가이성과 내치적 합리성과 비교하면, 여기에는 물론 근본적인 변동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중농주의를 창시한 케네는 자연법이라는 논문을 쓰는데, 이 논문은 시민사회에서 시민이 소유해야 할 자연권을 명확하게 내세운다. 자연권은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을 향유할 권리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각자가 이렇게 자유롭게 소유물을 이용하고 향유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인 상태가 되도록 노력하고 협력하게 된다고 중농주의자들은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의 특징은 중농주의에 있어서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필요성이 주장된 것이다. “자연의 질서는 단지 이성의 빛에 의지하기만 하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을 인식함으로써 사회의 조정이 처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상주의에서는 과학적 합리성이 추구되는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힘의 계산이었지만, 중농주의에서는 사회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 사회의 과학은 경제학이며, 이 학문은 통치의 기술과는 독립된 것이다. 푸코는 과학이기도 하며 결정이기도 하다는 통치술이 점차 웃물과 아랫물로 분리된다고 하는 인상적인 표현을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통치술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독립해 있으며, 위정자가 아닌 자도 종사할 수 있는 학이 된다. 그러나 위정자는 이 경제학이라는 학문 없이는 사회를 적절히 조정할 수 없는 것이며, 통치는 이 학문에 의존하게 된다. 경제학은 [기]술이 아니라 학문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사회에 있어서의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의 특징은 인구 문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중상주의 시대에 소중한 것은 인구의 변동이 아니라 다수의 온순한 노동자의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권력에 있어서 인구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정치경제학의 모든 사고에서 근본적으로 중심적인 것은 역시 이 인구 문제인 것이다.

이 인구 문제에는 중요한 특징이 두 개 있었다. 첫째, 인구에는 고유한 변화와 변동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구는 사회의 자연적인 과정이며, 인구에는 자연성이 내속한다.” 둘째, 이것은 다양한 개인 사이에서의 상호작용, 순환효과, 전파효과를 낳는 것이다. 국가는 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현상을 떠맡는 것을 요구받는 것이며, 사회의학이 탄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권력의 네 번째 특징은, 더 이상 사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자연적인 흐름을 존중하면서, 그것을 조정한다는 형태로 개입하는 데 있다. 그것은 부주의한 개입에 의해 사회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을 알아채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과정이나 인구에 내재하는 과정인 자연 현상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본질적인 기능이 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 속에서 시민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며, 이런 자유가 결여되면 사회는 적절하게 통치할 수 없게 된다. 통치술에 있어서는 시민의 자유가 필요 불가결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가부장적이고 과잉 개입과 규율을 행하는 내치의 제도는 해체되고, “단순한 부정적인 기능을 가진 근대적 의미에서의 폴리스(경찰) 제도가 탄생한다.” 경찰은 혼란을 소거한다는 위험 방지적인 의미밖에는 갖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생명권력 시대, 그것은 규율권력의 과잉적인 사목적인 배려를 부정하고 사회를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시민들을 자유로운 국민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자연스러운 경제적 변화를 조정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조치와 경찰, 외교, 군사 등의 위험방지 제도를 확립한 시대인 것이다.

 

중농주의의 제약

다만 중농주의는 다음 장에서 검토하는 자유주의와 비교하면 몇 가지 시대적 제약을 갖췄다. 이 번 장의 마지막에서 검토하는 프랑스의 도시의 의학이 독일의 국가의 의학과 영국의 노동력의 의학의 중간에 머물고 있듯이, 경제이론으로서의 중농주의에는 아직 국가이성의 잔재 같은 것이 모반母斑처럼 남아 있다.

첫 번째 한계는, 중농주의에서는 농업 활동만을 중시하고 공업 활동을 보충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달에 있어서 집약적 농업 활동의 중요성은 원시적 축적을 초래하는 유일한 요인으로서 중요한 것임은 맑스가 분명히 밝힌 대로이며, 농업을 집약적인 것으로 하기 때문에 농산물의 자유로운 유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가치의 발생을 농업에만 한정하는 것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잉여가치를 지주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며, “토지 소유의 지배를 의미하게 된다.

두 번째 한계는, 상품의 완전히 자유로운 유통을 주장하면서, 주권자에게 토지의 공유권을 승인한 데 있었다. “부의 유일한 원천인 토지의 과실의 몫에 대해서, 본원적인 권리를 소유하는 것은 신하(sujet)의 소유권을 보증하는 군주의 주권뿐이다고 케네는 주장한다. 이로부터 군주는 지주에게 단일 세금을 부과할 근거를 갖게 된다. 군주는 유통을 완전히 자유화하면서도 그 과실을 가로채는 것이다. 이는 절대왕정의 기반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다름없다. 맑스의 말처럼 케네는 절대왕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한계는 시민의 자유를 요청하면서도 군주의 개입을 요구한다는 역설적인 성격이다. 케네는 경제표를 경제의 완전한 순환 체계라고 생각했다. 이 표를 이해함으로써 주권자는 경제 과정의 전체를 분석하는 원리와 투명성의 원리를 확보할 수 있으며, 경제를 투명한 시선으로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주권자는 신민에게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허락하지만, 그것은 주권자가 경제표 덕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완전히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절대 군주에게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며, 조정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중농주의는 절대 군주의 개입을 정통화하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농주의는 절대군주의 통치와 모순되지 않고, 그것을 요청한다. 경제를 자립된 영역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배후에 절대군주의 통치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점에 대해서, 이윽고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게 된다.

 

도시공간의 차이

이 중농주의와 이것이 목표로 한 생명권력 아래서, 독일의 국가의 의학과는 다른 도시의 의학이 발전했다. 이 도시의 의학은 기존의 군주의 권력 아래서의 도시나, 규율권력 아래서의 도시와는 다른 형태로 도시의 환경에 작동함으로써 도시의 주민의 건강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 의학의 특징을 조사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도시가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듯이 유럽의 도시들이) 우선 군주권력 아래서, 다음으로 규율권력 아래서, 그리고 생명권력 아래서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알아보자. 프랑스의 도시의 의학은 생명권력의 도시의 네 가지 주요한 특징을 타겟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군주의 권력 하에서의 도시

맨 처음으로 절대주의 군주의 지배하에 있던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생각해보자. “파리는 세속의 사람들, 가톨릭교회, 종교단체, 동업조합 등이 보유한 영주적인 권력이 모여 구성된 것이며, 이런 권력들은 고유한 재판권을 지닌 자율적 권력이었다.” 이 때문에 권력의 지배가 중층적으로 겹치며, 다양한 권력이 어수선하게 서로 경합을 벌였다.

이 파리라는 수도는 군주의 주권국가의 수도인 동시에, 프랑스라는 영토국가의 수도이며, 더욱이 경제적인 유통의 수도였다. 거기서 어수선한 형태로 권력이 경합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는 행정국가에 있어서, 수도뿐 아니라, 각지의 도시가 농촌에서 독립한 형태로 법적인 특유성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곤란한 문제가 발생했다. 둘째로, 통상이 확대되고 도시 인구가 증대함과 더불어, 도시가 답답하게 됐다. “닫힌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면, 풍속이 문란해지고, 건강이 쇠약해진다18세기 말의 철학자 카바니스는 지적했다. 그리고 도시에 새롭게 건설된 공장에 대한 불안과, 과밀한 주민에 대한 불안이 생겨난다. “마을에 대한 공포, 도시에 대한 불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매우 기묘한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셋째로 농촌과 도시 사이의 식량의 교환과 멀리 떨어진 도시와의 통상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교환이나 통상을 원활하게 하려면, 도시의 개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과제가 된 것은 도시를 이 공간적법적행정적경제적 틀에 끼워넣는 것에서부터 해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개혁안이 제시됐다. 푸코는 르 메트르라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帝侯의 기사장技師長의 수도 개혁안을 일례로 들고 있다. 이 개혁안이 목표한 것은 수도를 다양한 의미에서 군주국의 상징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개혁안에서는, 국가를 세 개의 영역으로 분할한다 전원, 소도시, 수도이다. 전원에는 농민들이 거주하며 농경에 힘쓴다. 소도시에는 장인이 거주하며 수공업에 힘쓴다. 수도에는 주권자와 그 신하가 거주하고 지배한다. 수도는 국토의 중앙에 존재하고, 주권을 상징할 필요가 있다. “수도는 영토의 장식 그 자체이다.”

또한 수도는 정치적 상징이며, 왕국의 그 어떤 부분도 수도로 정해진 주권자의 법과 왕령王令의 네트워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수도는 또한 도덕적인 상징이어야만 한다. “영토의 구석구석까지 품행이나 행동거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부과해야 할 모든 것을 넓힐 필요가 있다. 더욱이 수도는 학문의 자리이며, 경제의 중심으로서, “상품이 모여야 할 사치의 장이지 않으면 안 된다.

수도를 주권의 자리로 하는 동시에 정치적통상적 유통의 중심점으로 하는 형태로, 영토를 수도의 지배 아래에 두면서, 국가를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제안인데, 이 주권의 시대의 도시는 무엇보다도 주권과 영토의 관계로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영토라는 대우주를 통해서 도시라는 소우주의 사고가 시도된다.” 도시는 영토라는 큰 것에서 출발하여 생각됐던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며, “이 대우주와 소우주의 모든 놀이가 도시주권영토의 관계를 관통했던 것이다. 그 배후에 있는 것은 국가이성의 이론과 그것을 발전시킨 관방학이다. 요약하면, 군주권력의 시대의 주권은 영토를 수도화하고 통치의 자리라는 주요한 문제를 세우게 된다.

 

── 규율권력 아래서의 도시

반면 규율권력의 시대의 도시를 대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건설된 지방의 소도시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건설하는 경우에 모델로 간주된 것은, 로마 군대의 야영지의 방식이었다. 로마군은 원정을 가면, 병사들이 거주하는 진영을 건설한다. 막사에 맞는 장소를 큰 담으로 둘러치고, 그 주위에 깊은 해자를 만들어 방어하고, 내부는 부대의 훈련과 병사의 관리에 걸맞게 구분했다.

이것은 완전한 감시권력의 판옵티콘적 도시이며, 통로는 기하학적으로 배치되며, “텐트의 수와 배치, 텐트의 입구 방향의 설정, 종렬과 횡렬의 배치 등이 정확하게 규정되고, 서로 감시하는 시선의 그물망이 묘사되는 것이었다. “야영지란 전역에 걸친 가시성의 효과에 의해 작용하는 권력의 도해였다.

이를 모델로 한 새로운 도시로서, 푸코는 투렌 지방과 보와투 지방의 경계에 해당되는 곳에 건설된 리슐리외의 마을을 들고 있다. 이 마을은 전체가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에는 큰 도로를 통해, 이것과 평행한 도로와 수직적 도로로, 거주 공간을 구분한다. 유통의 장소, 중앙시장의 장소는 별도로 설치한다. 군주권력의 도시와는 반대로, 영토라는 도시보다 큰 것에서부터가 아니라, “도시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구상되는 것이다. 군주권력 아래서의 수도의 개혁이, 영토로부터 도시를 바라본다고 하는 광학의 시선 아래에 놓인다고 한다면, 규율권력 아래서 새롭게 건설되는 도시에는 빛에 대해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삽입[끼워넣기]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 도시의 건설에 있어서는, “공허한 닫힌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도시의 내부에서 어떻게 인공적인 사람들의 무리를 구축하는가가 과제가 된다. 그때의 원칙은 첫째로 계층화, 둘째로 권력관계의 정확한 교류, 셋째로 그 배분에 특유한 기능의 효과이다. 이 규열의 도시의 과제는 공간을 건축화하고, 요소들의 계층적기능적 배분을 본질적인 문제로서 세우는 것에 있다.

 

── 생명권력의 도시

생명권력의 도시의 실례로서, 푸코는 낭트의 거리에 대해, 비니에 드 비니이라는 건축가가 제시한 정비계획을 들고 있다. 이 계획에서는, 도시를 횡단하는 축과 큰 길을 몇 개 관통시키고, 다음의 네 가지 기능을 확보하는 것을 시도했다. 첫째는 위생기능이며, 인구밀도가 높은 지구에서 질병의 바탕이 되는 장기[독기瘴気]가 고이는 공기가 모여드는 곳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시도했다. 두 번째는 도시의 내부의 유통 기능이며, 도시 내부에서의 통상이 원활하게 행해지도록 했다. 셋째는 도시의 외부와의 유통 기능이며, 새로운 도로망을 건설하고 외부로부터 도시가 필요로 하는 상품이 제대로 배달되도록 했다.

네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감시였다. 도시가 발달했기 때문에 벽을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되고, “야간에 도시를 폐쇄하는 것도, 대낮에 왕래를 제래도 감시할 수도 없게 됐다.” 그 때문에 농촌에서 거지, 부랑자, 비행자, 범죄자, 도둑, 살인범 등 모든 유랑 인구가 유입되고 도시의 안전이 낮아졌기 때문에, 이것을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 계획에서는 도시의 향후의 발전을 미리 내다봤다. 그때까지의 문제점을 해결할 뿐 아니라, “지금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사항에 미리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려했던 것이다. 이 미래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Loire 강의 한쪽에 긴 부두가 건설됐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이를 연장해간다. 그리고 강에 다리를 놓고, 맞은 편 지구도 마찬가지로 발전시키는 것이 계획됐다.

이 도시계획의 특징은 첫째로 이 도시가 규율권력의 도시처럼 전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건설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소여에 작동을 건다는 것에 있다. 규율권력은 공허하고 인공적인 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그 공간은 원점에서 구축된다.” 그러나 생명권력의 도시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적인 소여를 이용하고 부지, 물의 흐름, , 공기 등을 실마리로, 도시의 신체에 작동을 거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규율적 도시처럼 주어진 것을 재구축하고 완벽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선호하는 요소를 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을 취하는 데 있다. 위험성을 제로로 할 수는 없으며, 개연성의 계산을 이용하게 된다.

세 번째 특징은, 이 정비계획에서는 도시의 다양한 요소가 다수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도로는 장기[독기瘴気]와 질병의 통로인 동시에, 주민에게 불가결한 공기를 통하게 하는 기능을 맡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둑이 통행하는 거리인 동시에 상품이 유통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플러스의 요소와 마이너스의 요소를 계산하고 정비하는 것이다.

네 번째 특징은 미래를 향해 열린 것이라는 데 있다. 도로를 어느 정도의 수레가 통행하게 되는가, 어느 정도의 통행인이 이용하는가, 현재에는 아직 예측할 수 없는 불특정 요인에 대해 개연성에 누적에 의해서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생명권력의 도시는 사건이나 해야 할 요소들에 응해 환경을 정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이 환경이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환경이란 하천늪지언덕 같은 자연적 소여의 총체, 개인이나 집의 밀집 같은 인공적인 소여의 총체이다. 환경이란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된 일군의 효과이다. 그것은 결과와 원인의 순환이 만들어지는 경위[요소]이다.” 인간의 신체를 통해 개입하는 규율권력과는 달리, 생명권력은 이 환경을 통해 개입한다. 권력은 이것으로부터는 물리적인 요소들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이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에 간섭하는 결절점에 있어서, 그리고 환경이 자연에 있어서의 규정력을 갖게 되는 결절점에 있어서 행사된다고 푸코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권력은 공간에 배치된 개인의 신체의 모임보다는 환경과 주민의 상호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그 두 측면 각각에 개입의 장소를 찾아내게 된다. “규율에 있어서의 조직들의 무리로서의 개인들이 아니라, 환경 속에 거주하는 주민(인구)을 개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 환경이라는 장에 있어서, “개인인구집단에 의해 생산되는 다양한 사건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권력은 인구와 환경에 작동되는 것이다.

 

도시의 의학

이런 생명권력 시대의 도시를 타겟으로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시의 의학이 등장했다. 국가의 의학과는 다른 도시의 의학의 목적은, 생명권력의 도시의 앞서 말한 네 가지 특징에 맞춘 것이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은 이미 존재하는 소여에 작동을 건다”(첫 번째 특징)는 것이며, 더욱이 도시의 신체에 작동을 건다”(두 번째 특징)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기존의 도시에 존재하는 위험한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도시의 내부의 위험한 장소를 확인하고, 이것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 의학의 세 번째 목적은 도시의 내부의 다양한 물질의 순환을 규제하고(세 번째 특징) 조정하는 데 있었다. 대기는 장기(瘴気[질병을 옮기거나 그 원인이 되는 것])를 옮긴다고 생각되었고, 인간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졌다. 거기서 적절한 대기의 순환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가 건설되고 도시의 개조가 행해지게 됐다. 또한 물의 순환을 조정하기 위해 센 강의 연안, 섬의 위치의 조정이 검토됐다. 이 의학은 도시의 장기瘴気의 지리학을 꾀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도시계획이 의학적 실천으로서 추진된다. 푸코는 의학은 개인의 질환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우선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도시의 의학으로서 확립됨으로써 과학적 지식과 담론의 일반적 기능 속에 편입됐다고 지적한다.

이 도시의학의 네 번째 목적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도시의 환경(네 번째의 특징)을 정비하는 데 있었다. 신체와 생명체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대기와 물과 부패물과 발효물 등,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이며, 생존환경에 있어서의 생활조건에 대한 의학이었다. 생명권력이 자연을 조정하듯이, 이 도시의 의학은 도시의 내부의 물질의 흐름을 조정함으로써, 건강한 조건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적용된 개념이 건강 적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이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한 뛰어난 건강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및 물질적 토대이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초기에 탄생한 공중위생이라는 학문은, 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정치과학적으로 관리하는 행위로서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사유재산이 성스러운 권리로서 인정되었기 때문에, 독일의 의학 같은 강한 감시권력 아래서의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관찰의 예리함과 과학적 시각에서는, 국가의 의학보다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 의학은 영국형의 노동력의 의학과 독일의 내치 국가의 의학 사이의 중간적 의학이었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6. 생명권력 : 프랑스의 중상주의 모델

1. 생명권력의 등장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중농주의의 새로움 

국가이성의 개념이 가장 활용된 것은 17세기부터 18세기의 프랑스에서였다. 그 상징은 재상 리슐리외와 루이 14세이다. 루이 13세를 모시던 리슐리외는 1624년에 권력을 잡고 프랑스 절대왕정의 확립에 기여했다. 리슐리외는 국가이성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사적인 이익보다 우선시하기 위해, 군주도 신하도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루이 14세는 국가이성을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첫 번째 법이지만, 통치하지 않는 자에게는 가장 어두컴컴하고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고, “아무리 자의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주권자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 14세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쳤다. 혁명 전의 이 태양왕 시대의 중요한 난제 중 하나가 식량부족으로 인한 평민 반란의 가능성이었다. “식량난은 도시 환경에서 출현하고, 그리고 그 직후에 반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된 것이 식량난의 문제였다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명한 말로 상징된다.

이에 대해 정부가 의거한 것은 법과 규율에 의한 중상주의적 시스템이었다. 곡물의 가격을 제한하고, [곡물을] 비축하는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농민은 수확한 곡물을 비축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정된 가격에 곧바로 매각하도록 의무가 부과되었다. 더욱이 최저량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의무로 여겨지고, 특정한 작물의 재배는 금지됐다. “처음의 수확에서부터 이미 대대적인 감시 시스템이 구축되고, 재고의 통제가 가능해지며, 국가 간 유통이나 지방 유통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파탄 났다. 그 이유는 첫째로 농민의 파산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풍년이 든 해에 농민들은 염가로 곡물을 매각하도록 강제되어 생산 비용을 회수할 수 없었다. 농민이 충분한 수입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이듬해에 뿌릴 씨는 필연적으로 적어진다. 그러면 기후 악화 등의 작은 원인으로도 식량난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에 대처하기 위해 1764년까지, 중농주의의 원칙 아래서 곡물 통상과 곡물 유통의 자유의 원칙이 채용된다. 그런데 1764년에는 귀엔느(Guyenne)에서 흉작이 일어나고, 완전한 자유를 유지했기 때문에 곡물 가격이 천문학적인 속도로 상승”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그래도 중농주의자들은 이 자유화를 옹호했다. 중농주의자들은 우선 [중상주의의] 법과 규율의 시스템에서는 으로 간주된 곡물의 부족과 가격의 인상을 도덕적인 사태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현상으로서 파악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식량난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곡물 가격의 변동이라는 자연의 현상을 방해하지 않고 조금씩 보정하고 제동을 걸고 최종적으로는 제한하고 최종단계에서 취소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는 어떻게 하는가? 우선 곡물의 가격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인가하고 우대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완전히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 수단에 의해 가격의 상승을 꾀하는 것도 허용된다. 예를 들어 수출을 장려금으로 조성하거나, 수입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풍작인 해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진다. 그러면 경작지가 확대된다. 농민은 전년도의 수확으로부터 충분한 이익을 확보했기 때문에 경작지를 확대하고 경작을 늘릴 수 있다. 그렇다면 기상 조건이 조금쯤 나쁘더라도 식량난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전보다 다량의 곡물이 시장에 공급되기 때문에, 이듬해는 가격이 떨어진다.

혹은 이듬해에 흉작이 예상된다면, 곧바로 가격이 상승한다. 하지만 이 가격상승은 방치해둘 수 있다. 그것은 국내의 통상도 외국의 무역도 자유롭기 때문에 풍작인 지역이나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증대하며, 가격을 인하할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가격을 내려서라도 판매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중농주의의 자유화 정책의 특징은 단순히 시장에서의 곡물의 양과 가격의 관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에 의한 경작의 때와 매각의 때의 계산, 수입 상인의 계산, 소비자의 계산까지 고려해서 사람들을 순수하게 이익을 획득하려고 하는 주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다루는 데 있다. 이 정책은 생산의 계기를 통합하고 세계시장을 통합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민생산자소비자의 경제적인 행동을 통합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체의 등장 : 주민·인구

푸코는 중농주의가 채용한 이 수단의 전체를 안전장치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안전이라고 불리는 것은 외부로부터 규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전체에 있어서 작동하는 내적인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주권은 영토의 경계 내에서 행사되고 규율은 개개인의 신체에 행사됐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전은 주민 전체에 행사되는 것이다.

이 장치가 대상으로 하는 것은 주민인구라는 총체이며, 이것이 전체로서 정치적 주체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주민인구는 그 이전의 수세기 동안의 법사상정치사상에 있어서는 완전히 이질적인 새로운 집단적 주체이며, 이 새로운 주체가 여기에 등장한 것이다. 이 주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술은 규율을 가하고 조작해야 할 주체를 향한 기술과는 명확히 다른 수준에 있다.

중농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생명권력이다. 이것은 개인들의 행동의 극히 세부까지 통치를 행했던규율권력과는 꽤 성질이 다른 것이다. 생명권력은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주민인구라는 새로운 정치적 인물에 작동을 거는 것이다. 푸코는 이 정치적인 인물이 18세기에 놀라운 등장을 이루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인구라는 요소를 처음으로 주목힌 것은 아니다. 중상주의 시대의 영국에서 인구를 주목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잉글랜드의 존 그라운트의 대위 존 그라운트에 의한 런던시의 정치, 종교, 상업, 발달, 공기, 질병 등에 주로 관련하여 이루어진 자연적 및 정치적 관찰들(1661)을 단서로 할 것이다. 이 관찰은 페스트에 의한 런던의 인구 감소와 재증가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1603년과 1625년 페스트의 해에는, 거의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사망했으나, “페스트에 의해 생긴 런던시의 인구의 균열은 보통 2년 동안 채워진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런 그라운트의 관찰에 이어서 윌리엄 페티는 1681년에 더블린의 사망표에 관한 관찰들을 발표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질병에 의한 사망률에 주목했다. 같은 해의 정치산술은 런던과 파리 등의 도시와 인구를 비교하면서, 국가에 있어서 인구가 지닌 중요성을 강조했다. 4장에서는 잉글랜드 국왕의 인민 및 영토들은 그 부 및 힘에 관해서, 프랑스의 그것들과 자연적으로 거의 같은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27만 명이나 되는 프랑스의 성직자가 얼마나 국부를 줄이고 선원과 해병이 얼마나 잉글랜드의 국부를 늘리는가를 대비하면서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라운트와 페티의 사망표는 역병에 의한 도시인구의 증감을 고찰하는 것임에 틀림없었지만, 정치산술은 중상주의적 관점에서, “국가권력의 근육과 신경을 감독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서, 그 후의 본보기가 됐다. 17세기에는 인구를 국가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힘의 원천으로 간주하게 됐다. 중상주의에서는 인구를 이른바 국력과 국부의 근간으로 간주하고, 이 인구가 적절한 방식, 장소, 목적으로 작동하는[일하는] 것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상주의에서는 인구주민을 주권자의 신하로 간주한 것이며, 이것에 규제를 가함으로써, 국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법권리의 주체, 법에 복종하는 신민, 통제적 틀을 부여받을 수 있는 신민으로서 거기에 있던 것이다.

이에 대해 18세기의 중농주의로부터는, 인구에 대한 시선이 중상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인구는 그것만으로는 국력이 되지 않는다. “주민이 소비하는 것 이상으로 생산하고, 식료품에 국외의 매수자가 지불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가격을 지불하는 경우에 한해서 국부를 만들어낸다.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를 하고, 수출가격보다 더 싸게 식량을 구입한 것으로는 국력이 감퇴한다. 그러나 농업수입을 증대시키면 그것은 풍요가 되며, 자연스럽게 인구를 증대시킨다.

우선 토지의 산물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인구 자체를 늘리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중농주의는 생각한다. “케네나 그 제자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인간은 대지와 부를 잇는 본질적인 매개이다. 인구가 증대하면, “산업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고, 그것이 원가를 낮추고, 생산과 상업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하로서 주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노동하게 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중농주의에서 이 인구는 자연에 맡겨야 할 것으로서 등장한다. 인구가 자연성으로서, “법에 의지한 주권자의 의지에 맡기는 것에 대해, 이른바 <두께>로서, 본성적인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곳에, 중상주의의 인구 개념과 큰 차이가 있다고 푸코는 생각한다.

 

인구의 자연성

푸코에 따르면 인구의 이런 자연성은 세 개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첫째로, 인구는 주권자가 조작할 수 있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동하는 것이며, 어떤 불투명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인구는 풍토에 의해서, 통상의 크기나 부의 크기에 의해서, 사람들의 습관에 의해서, 도덕적인 가치나 종교적 가치에 의해서, 식량의 상태에 의해서 변동한다. 이런 변수들은 서로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법에 의해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권자는 법을 정해서 신민을 지배할 수 있으며, 신민은 법을 거부함으로써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에 의해 인구를 원하는 대로 지배할 수는 없으며, 주민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인구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주권자에 대해 인구는 어떤 불투명한 <두께>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는 이런 자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정책에 의해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정책에서는, 국내를 순환하는 통화의 흐름을 제어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고 수입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통화가 원활하게 또한 구석구석까지 흐르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증가하면 노동의 가능성이 커지며, 부가 커지며, 인구도 증대한다. 수입이 증가하면 국내의 노동을 빼앗기지만, 식량이 증가함으로써 인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구에는 이런 자연성이 있기 때문에, 중상주의에서 생각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이 필요해진다. 신민을 복종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에 작동을 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인구를 증가시키는 기술이 요구된 것이다.

둘째로, 인구의 자연성은, 사람들의 욕망의 자연성에 의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익이 있는 곳에 모인다. “인간은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곳,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 자연의 노동근면에 의해 손에 넣을 수 있는 부를 확실하게 제 것으로서 소유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모이며, 증식하는 것이며, 이것을 막아서는 안 되며, 막을 수도 없다.

이 중농주의의 욕망 개념은 중요하다.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부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놀이에 의해 집단적 이익이 생긴다는 것이 인구의 자연성의 커다란 특징이다. 그래서 욕망을 잘 불러일으키고, 잘 이용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에 의해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며, 규율사회처럼 사람들의 욕망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이 자유주의로 통하는 욕망의 사상은, 17세기까지의 통치나 주권의 행사에 관한 과거의 윤리적법적인 구상과는 정반대의 극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권자는 개인의 욕망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런데 18세기의 이 욕망의 사상은 이것은 완전히 역전시켜 버린다. 이제 문제는 이 욕망에 어떻게 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이다. 푸코는 이 욕망의 긍정의 이론, “자기애욕망을 자극하고 우대하고”, 그것이 생기는 효과를 활용한다는 사고방식을 공리주의 철학의 원형이라고 부르고 높이 평가한다.

세 번째 차원으로, 인구의 자연성은 기묘할 정도의 규칙성을 나타낸다는 것이 지적된다. 이미 런던의 사망표를 관찰한 그라운트는 런던의 인구에서 보이는 균일성을 지적했다. “남아의 출생은 항상 여아의 그것을 웃돈다. 더욱이 지금 거론한 자료에 따르면, 14 13의 비율이다.” 양성의 비율이 수적으로 거의 균형을 이룬 것은, 이 관찰에서 처음 확인됐다고 한다. “인구의 자연성은 현상들의 항상성에서 나타났다.”

이런 인구의 자연성이 확인된 것은 통치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된다. “권력의 기술들의 영역에 하나의 자연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류라는 이념적인 ()” 개념 아래서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나란히 인간이라는 ()” 개념으로 생각되게 됐다. “인간이 모든 생물의 종의 규정이라는 영역 속에 하나의 종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통치가 생물학의 영역과 깊은 관계를 갖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5국가에 의한 통치 독일의 내치[폴리차이] 모델

2. 독일의 모델 : 중상주의 유형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외교와 내치[폴리차이]의 관계

국가이성의 시대는 유럽의 균형의 시대이며, 항상적인 외교와 상설 군대에 의해 다양한 국가들이 대립하고 경합하는 시대였다. 이는 대외적 경합을 목표로 하는 기술이다. 이에 대해서 국내에서의 국력을 증강하는 기술이 있으며, 이미 말했듯이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폴리스, 독일에서는 내치[폴리차이]로 불린 것이었다. 이 기술이 가장 커진 것은 독일에서였다. 5장부터 7장까지 군주권력의 국가이성의 시대부터, 규율권력의 시대, 그리고 생명권력의 시대로 이르는 유럽의 정치적 이성에 대해서, 독일, 영국, 프랑스의 세 가지 모델을 검토하면서 각각의 방식을 비교하고 싶다.

독일에서 내치의 학은 관방학으로서 치밀하게 구축됐다. 푸코는 독일에서 이 학이 발달한 이유로,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많은 작은 영방국가가 탄생하고 각국이 독립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봉건적 구조와도 거대 국가와도 다른 국가적 실험에 있어서 특권적인 공간이 됐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는 프랑스와는 달리 국가행정의 스태프[인력]가 부재하며, 이 때문에 대학에서 인력[스태프]을 조달하게 되어, 대학에서 관방학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경제면에서는 그다지 활동할 수 없던 부르주아지가 끊임없이 [이웃 국가와의] 항쟁에 직면했던 군주의 편에 서서, 국가의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인재, 능력, 부 등을 제공했다.” 이 관방학은 독일의 특산품으로서 유럽의 각지에 전해졌다.

내치는 좋은 통치의 기술이며, 신민의 복지를 개선하는 기술로서, 사목의 기술과 공통된 곳이 있다. 작동되는 대상이 영토로서의 국토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 그리고 목적으로 하는 바가 국민의 복지라는 것은, 사목의 기술과 내치의 기술에 공통된 바임은 이미 확인했던 대로이다. 독일의 관방학의 이론적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폰 유스티는 국가의 자산은 영방 내에 존재하고, 가신에 속하든, 국가가 직접 소유하든, 모든 종류의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질 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에 속하는 사람의 모든 능력과 숙달로부터도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 자체도 시각에 따라서는 국가의 자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내치는 국내 질서와 국력 증강 사이에 동적인,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계산과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내치가 신민의 복지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고 외치면서, 실은 국가의 장려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이라는 것이다. 당시부터 내치에 대해 국가 전체의 장려함과 전체 시민의 행복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의 총체라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유럽의 세력균형에서의 외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국의 장려함을 과시하는 것은 해부학에 열중하는 관찰자들에게 자국의 힘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푸코는 내치와 세력균형의 관계를 국력, 타국을 주시하는 권리, 통계학, 통상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우선 세력균형은 발전하고 있는 국가의 힘의 균형을 취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에서 내치와 깊은 관계에 있다. 내치는 좋은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시키고 더욱이 유럽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세력균형의 상태 아래서, 영구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한 칸트는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칸트는 유럽의 현상황이 사회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인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며,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법의 이념은 서로 독립된 국가가 인접하면서도 분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이미 전쟁상태이다.”

그러나 이 전쟁상태는 전쟁의 폐절로 향하는 싹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두 개의 경향에 있어서이다. 하나는 어떤 국가도 타국을 정복하고 스스로 제국 아래로 통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타민족을 미워하는 경향을 낳는데, 한편으로는 자국의 문화를 향상시키고, 타국을 이해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 이 평화는 자유의 무덤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힘을 서로 경합하게 하고, 그 균형을 취함으로써 생겨나고 확보되는 것이다.” 칸트는 좋은 국가체제야말로 민족의 좋은 도덕성을 기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차이 속에 서로 동떨어져 있는 국가가 국내에서 좋은 국가체제를 구축하고, 서로 힘을 균형시킴으로써, 평화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력균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국가들에 패하지 않을 정도의 외교능력과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국가가 국력을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의 국가가 타국보다 국력의 증강에서 뒤떨어지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의 국력의 증강을 주시하는 권리를 소유하는 것처럼 된다. 그리고 타국의 국력을 주시[감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 것은, 하나의 국가의 인구군대천연자연생산통상통화유통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통계학이 성립된 것이다.

칸트는 이 타국을 주시[감시]하는 권리에 대해 국력의 증강이라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법적인 체제의 확립과 자국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지적한다. 만약 국내에 법률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서로 이웃해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민족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민족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이웃 국가가 국제적인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것, “거기서 스스로의 권리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을 다른 민족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요구해야 한다.”

또한 통상관계에 대해서는, 이 시대는 중상주의의 시대, 즉 통상의 시대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푸코의 간략한 요약에 따르면, 중상주의는 각국에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첫째로 각국이 되도록 많은 인구를 가지려고 할 것, 둘째로 그 인구 전체가 노동에 대해 있을 것, 셋째로 그 인구에 주어지는 임금이 최대한 낮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품의 원가가 최대한 낮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으며, 군주가 소유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이처럼 통화의 수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만큼 국내의 국력의 충실이라는 내치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칸트는 이 시대에 각국이 밀접한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전쟁을 방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지적한다. 각국은 서로의 이기심을 통해서민족들과 결합한다. 이것이 상업의 정신이며, “세계의 어디에서도,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다가오면, 국가들은 마치 영속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양 중재에 의해 전쟁을 방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치의 실무

그렇다면 이 내치라는 학과 기술은 어떻게 적용될까? 푸코는 들라마르의 『내치』으로부터, 내치가 국가의 내부에서 관리해야 할 것을 11개 항목을 꼽고 있다. 종교, 도덕성, 건강, 물품의 공급, 도로토목공공건축물, 공안(公安), 자유학예, 상업, 작업장, 하인과 육체노동자, 빈민이다.

이것으로는 국가의 내정의 거의 모든 분야를 꿰찬다. 내치가 종교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진리로서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내치는 사목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신민의 혼의 건강을 배려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건강과 식량의 공급에 신경을 씀으로써, 내치삶을 보호한다.” 내치는 생명을 배려하는 것이다. 도로토목공공건축물, 상업, 작업장, 육체노동자, 빈민, 공안[치안]을 배려함으로써내치생활의 쾌적함, 정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학예를 배려함으로써 인생의 기쁨 그 자체”에 신경을 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고, 더 한층 잘 사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내치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다내치가 현재의 경찰처럼, 사회의 복지와 행복의 촉진의 배려가 아니라, 장래의 악의 방지의 배려를 목표로 하게 된 것은, 1770년대 이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푸코는 튀르케 드 마이엘느귀족민주주의적 군주제라는 내치론을 인용하면서, 내치의 활동 분야를 크게 넷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분야는 아이와 젊은이의 교육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은 경건한 신앙을 갖고, 무기 취급에 익숙해지며, 직업을 습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은 25세가 되면 내치 사무국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는지를 보고하도록 요구된다. 보고를 거부하는 자는 “건달로, 명예를 결여한 인민의 쓰레기로 간주된다.

두 번째 분야는 빈민을 대상으로 한다. 건강한 빈민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병자나 장애자에게는 수당을 준다. 더욱이 공중위생을 배려하고, 일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대준다. 세 번째 분야는 상인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을 규제하고 조성한다. 네 번째 분야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고, 상속을 기록하고, 도로하천공공건축물삼림을 주시[감시]한다.

이 네 가지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국력의 구성요소로서의 인간의 활동이다. 우선 인간의 수를 대상으로 한다. 17세기에 국력은 주민의 수와 비례한다고 여겨지게 됐지만내치학에서는 단순히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은 영토에서도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어서 생활필수품을 규제한다. 주민의 수가 많더라도, 먹일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것은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농업정책이며, 생산된 곡물의 질을 유지하고 비축하고 공급하는 곡물 내정(內政)이다. 더욱이 건강을 배려한다. 역병의 방지는 물론이고, “만인의 일상적인 건강이 중시된다. 도시에서는 공기, 환기, 통풍이 중시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일대 정책이 전개되는 것이다. 더 건강한 인간들의 활동을 감시[주시]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활동에서 생겨나는 상품이나 생산물의 유통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든 것을 배려하는 내치의 학이 사목적 시선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근대국가의 거의 가부장적인 배려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도 확실할 것이다. “내치의 목적은 시민이 전체적으로도 개별적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에 관련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저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라, “더 잘 사는 것, 공존하는 것, 교류하는 것이 실제로 국력의 증대로서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이 도입되기 때문에 이런 내치의 학은 이윽고 생명령을 잃어가지만, 제국이 존속한 오스트리아에서는 1840년대까지 이 학에 의한 국가과학의 강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적어도 18세기 전체를 통해 내치의 학은 독일인의 <신성로마제국>에서의 유일한 지배적 재정론(財政論)이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국가의 의학

내치학은 유럽의 국가들에 전파됐으나, 독일에서 집대성되고, 실제로 활용됐다. 내치학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는지를 18세기 독일의 의학의 방식과 프랑스나 영국의 의학의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검토해보자. 독일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로 의료가 전개됐다. 1764년에는 프로이센에서 의료행정(메디치니셰 폴리차이)”이라고 불리는 것이 탄생했다. 이것은 대학에서 배운 의사에게만 의료면허증을 수여함으로써 국내의 의료 상담자의 실천과 지식을 규범화하고, 각지의 의사나 의료기관으로부터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출산율과 사망률의 단순한 통계표가 이미 작성되고 있었으나, 전염병이나 풍토병의 관찰 등에 의한 훨씬 완전힌 발병률의 관찰 시스템”은 독일에서 확립됐다.

또한 중앙에는 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관공서가 설립되고, 그 아래에 계층구조적으로 지역의 의사를 배속했다. 이리하여 모든 의사는 국가에 의해 면허를 수여받고, 행정적 지도 아래서 의료에 종사하고, 의학적 정보를 중앙에 집중시키는 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극한까지 국가화된 의학의 시스템이 됐다.

이 의학이 중시한 것은 국력의 토대가 되는 국민의 신체와 생명이었다. “공적인 위생 행정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자의 신체가 아니라 개인 그 자체의 신체이며, 이런 개인들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했다는 것이며, 프로이센은 중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근 국가와 경합하기 위해서도, 국내의 주민의 건강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뒤에 평화가 회복되자, 이 국가의 의학의 이념은 공동화된다. 독일에서도 공업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이 가부장적인 시스템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절대주의와 중상주의를 엄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전환되어 갔다. 공업화의 시대에는 새로운 의학이 요구됐던 것이며, 프랑스와 영국이 그 임무를 맡게 된다

카트린 말라부와의 대담

A CONVERSATION WITH CATHERINE MALABOU


CATHERINE MALABOU(University of Paris X-Nanterre)

NOËLLE VAHANIAN(Lebanon Valley College)


* 인터뷰 원문 PDF 파일(영어)

The questions of the following interview are aimed at introducing Catherine Malabou’s work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 to an audience who may have never heard of her, or who knows only that she was a student of Derrida. What I hope that this interview reveals, however, is that Malabou “follows” deconstruction in a timely, and also useful way. For one of the common charges levied against deconstruction, at least by American critics, is that by opening texts to infinite interpretations, deconstruction unfortunately does away with more than the master narratives; it mires political agency in identity politics and offers no way out the socio-historical and political constructs of textuality other than the hope anchored in faith at best, but otherwise simply in the will to believe that the stance of openness to the other will let the other become part of the major discourses without thereby marginalizing or homogenizing them.

아래에 수록한 인터뷰의 질문은 카트린 말라부의 작업과 철학적 관점을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거나 그녀가 데리다의 학생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인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인터뷰로 드러내고 싶은 것은 말라부가 탈구축을 어떻게 시의적절하게, 또한 유용한 방식으로 "따라가는가[추종하는가]"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은 어찌됐든] 적어도 미국의 비평가들이 탈구축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부과하는 혐의 중 하나는 탈구축이 텍스트를 무한한 해석에 열어버림으로써 안타깝게도 주인 서사들을 없애는 것 이상의 짓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즉, 탈구축은 정치적 행위[political agency]를 정체성 정치의 진창에 빠뜨렸으며, 텍스트성의 사회-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축물에서[사회, 역사, 정치가 텍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구축물이라고 보는 길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잘해 봤자 믿음에 닻을 내린 희망 말고는[믿음 말고는 아무 것에도 기댈 수 없는 희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타자에 대한 개방성의 자세가 주요[다수자적] 담론들을 주변화하거나 동종화하지 않고서 타자를 이런 담론들의 일부가 되게 할 것이라고 믿으려는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How does Malabou “follow” deconstruction? Indeed, she does not disavow her affiliation with Derrida; she, too, readily acknowledges that there is nothing outside the text. But, by the same token, she also affirms Hegel’s deep influ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