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두 번째 부분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 번째 부분에 이어서)



(계속)



낭만파 사상의 철학적 배경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읽은 곳에서 약간 뒤의 대목을 봅시다. 슈미트는 모든 것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실재’를 해체하는 낭만파의 사고를 상당히 끈질기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96쪽을 살펴봅시다. 



개념의 전면적인 교체와 혼합, 터무니없는 말의 난혼 속에서는, 모든 것은 설명 가능하게도 되고 설명 불가능하게도 되며, 동일한 것도 반대되는 것도 되며, 모든 것이 모든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정치적 현실에 관한 문제와 논쟁에 “모든 것을 조피[Sophie]로 변화시키고 또한 그 반대를 행하는” 기교(kunst)가 적용되기에 이른다. 이 보편적인 “또한 그 반대”und umgekehrt는, 모든 썩은 흙[糞土]을 돈으로 바꾸는 위대한 말의 연금술에 있어서, 현자의 돌이 된다. 모든 개념은 하나의 나이며, 또한 거꾸로 모든 나는 하나의 개념, 모든 체계는 개체, 모든 개체는 체계, 국가는 인간, 인간은 국가가 된다. 혹은 뮐러의 대립 이념에서 말해지듯이, 만일 긍정과 부정이 객관과 주관처럼 대립물이라고 한다면, 긍정과 부정은 객관과 주관에 다름 아니며, 뿐만 아니라 또한, 공간과 시간, 자연과 예술, 과학과 종교,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적과 여성적, 화자와 청자도 마찬가지다. 

[* 개념들의 일반적 교체와 혼합(confusion), 말들의 엄청난 뒤범벅(promiscuity) 속에서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설명할 수 없고, 동일한 동시에 동일하지 않게 되며,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기예(art)는 “모든 것을 너무도 사랑하는 조피(Sophie)로 변형하고 또한 그 반대로 하기 위해” 정치적 현실의 문제와 토론에 적용됐다. 이런 일반적인 “또한 그 반대로”는 모든 배설물을 금으로 바꾸고 모든 금을 배설물로 바꿀 수 있는 말들의 위대한 연금술에 있어서 철학자의 돌덩이이다. 모든 개념은 자아(ego)이며 또한 그 반대이다. 모든 자아는 개념이며, 모든 체계는 개인이며, 개인은 체계이다. 국가는 사랑하는 연인이며 인간(person)이 된다. 인간(person)은 국가가 된다. 혹은 뮐러의 『대립론(Lehre vom Gegensatz)』에서처럼, 긍정과 부정이 객관과 주관 같은 대립물(antitheses)이라면, 긍정과 부정은 객관과 주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또한 공간과 시간, 자연과 예술, 과학과 종교,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과 부르주아지, 남편과 아내, 화자와 청자이기도 하다(p.77).]



‘조피’란 구체적으로는 15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노발리스의 약혼자 조피 폰 퀸(Sophie von Kühn, 1782-97)을 가리킵니다. 노발리스는 작품 속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신비화·이상화된 형태로 묘사합니다. ‘여성’의 이상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지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sophia〉에서 유래하니까, 우주의 궁극적 신비로 이끄는 여신이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90년대에 일본에서도 붐이 일었던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 1952~)의 『조피의 세계(Sofies verden)』(1991)의 주인공 ‘조피’라는 이름도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었죠.


* 옮긴이 : 독일어이기 때문에 ‘조피’로 읽어야 하지만, ‘소피’라고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요스타인 가아더는 요스테인 고르데르로 읽히기도 하며, 『조피의 세계(Sofies verden)』도 『소피의 세계』(장연은 옮김, 현암사, 1996)으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노발리스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조피’로 연결되며, ‘조피’에 의해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래서 ‘조피’를 경유함으로써,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상호 변환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조피’가 연금술의 ‘현자의 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물론 ‘조피’나 ‘현자의 돌’이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나’ 안에서, ‘나’의 상상력에 의해 그런 양 극단의 맞교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 전체가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며, “세계는 완벽하게 그것을 따라 순서지어지며”, “우주는 그것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은 세계나 우주가 아니라, 자그마한 인공적 도상(figure*)에 불과하다. 실재에의 의지는 외양Schein에의 의지로 끝난다. 그들은 세계의 현실을, 단번에 세계의 모든 것을, 우주의 전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 대신 그들이 얻은 것은, 투사와 흡수, 확장과 수축, 점, 원, 타원, 구(球), 영혼 있는, 즉 주관화된 거대한 공놀이 ludus globi였다. 그들은 사물의 실재성을 헤집고 나가는 데 성공했으나, 그 대신에 다름 아닌 사물도 그들을 헤집고 나갔으며, 그들이 그 저술이나 서신이나 일기에서 우주를 우롱하는 데 급급한 것을 보면, 스웨덴보르크가 묘사한 너무도 교활한 자들의 지옥에서 빠져 있는 저주 받은 사람들을 자주 상기시켜준다. 

[* 그것은 공식이다. 즉, “세계 전체가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다. 이 공식에 입각해 “세계가 모조리 배열되며”, 이 공식과 더불어 “우주는 증명된다.” 물론 그렇다. 다만 이것은 세계와 우주가 아니며, 오히려 예술의 작은 형상(figure)이다. 실재(reality)에의 의지는 외양에의 의지로 끝났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의 실재를, 세계 전체를, 우주의 총체성을 단숨에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것] 대신에 그들은 투사(projections)와 재흡수, 연장(elongations)과 축약을 얻었을 뿐이다. 점, 원, 타원, 아라베스크(arabesques), 혼이 불어넣어진(ensouled) ― 즉, 주관화된(subjectified) ― 우주적 게임. 낭만주의자들은 사물의 실재성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러나] 이어서 사물들이 그들을 탈출해 버렸다. 우리가 이들의 저술, 편지, 일기에서 우주의 조작에 이들이 열심인 것을 보았을 때, 이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스웨덴보르크의 지옥에서 너무도 교활한 자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떠올리게 한다(p.78).]



요란한 수사가 계속됩니다만, 아까의 [조피 → 현자의 돌 → 나]의 이야기의 계속으로, 포인트는 알 수 있네요. 낭만파 사람들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파악할 작정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말로 만들어낸 ‘외양’에 우롱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들은 사물들의 《실재성》을 넘어서, 궁극의 ‘실재성’을 추구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물들이 그들의 눈앞을 지나쳤을 뿐, 우주를 우롱할 것이고, 그 반대로 우주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 


“실재에의 의지는 외양 Schein에 대한 의지로 끝난다”는 원문에서는 〈Der Wille zur Realität ender im Willen zum Schein〉입니다. 독일어 〈Schein〉에는 ‘외양[외관]’, ‘가상’ 외에도 ‘빛’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의 동사형인 〈scheinen〉에 ‘바깥으로’라는 의미를 지니는 철자, 접두사 〈er-〉을 붙여서 〈erscheinen〉이라고 하면, ‘나타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물의 본질이 ‘빛을 내다’와 같은 포지티브한 뉘앙스와, 실체가 없는 단순한 ‘외양[외관]’이라는 네거티브한 뉘앙스 둘 다를 띠고 있는 말입니다. 낭만파는 ‘빛나는’ 본질을 포착한 셈이었지만, 슈미트가 보기에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낸 ‘외양[외관]’과 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관화된 거대한 공놀이”라는 비유는 조금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球]으로 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사물이 난무하고 중심점인 ‘소피[조피]’를 통과할 때 한쪽 극성에서 다른 쪽의 극성으로 변환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구체(球体)로서의 우주를 궁극적으로 파악할 작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주관으로 구체(球体)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자기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웨덴보르크(Emanuel Swedenborg, 1688-1771)는 스웨덴의 과학자·신비주의자로, 결정학(結晶學)의 영역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만,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고,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견문록을 썼습니다. 낭만파 사람들이 자신들이 ‘우주’라고 숭배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필사적으로 여러 가지 글을 쓴 것을 보면, 스웨덴보르크의 지옥에서, 너무 교활한 자들이 받고 있는 죄를 상기시킨다는 것이죠. 


그러면 낭만파의 사상의 철학적 배경에 관해 논한 2장 (2) 「낭만주의의 우인론적 구조(The Occasionalist Structure of Romanticism)」로 들어가죠. 



그 힘을 날마다 사실에 있어서 증명하고 있는 실재는 비합리이자 거대한 것으로서 암흑 속에 숨어 있다. 더 이상 존재론적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적 정신의 영향을 받은 그 세기의 모든 것은 특유한 기분으로 채워져 있었다. 체계적이든 감정적이든, 전제와 결과와 방법은 다종다양하더라도, 낙천[주의]과 비관[주의]의 차별[차이]을 초월하여 개별 개체의 고뇌가 들리게 되며, 기만을 당했다는 이들의 감정도 들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우롱하는 저 힘의 손아귀 속에 놓여 있다. 

[* 그 힘이 실제로 날마다 증명되고 있는 실재는 비합리적 양으로서 모호하게[암흑 속에] 남겨져 있다. 존재론적 사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적 정신의 영향을 받았던 세기 전체에는 특유의 기분(characteristic mood)이 [곳곳에] 침투해 있었다. 전제, 결과, 방법이 얼마나 다양하고 체계적이고 감정적인가와는 무관하게,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의 차이를 넘어서서, 한 개인의 불안과 속임을 당한다는 그의 감각도 귓가에 들려올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힘의 손아귀에서 속수무책이다(p.78).]



낭만파에게 ‘실재’의 본체는 어둠 속, 즉 이성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세계, 파악하기 힘든 무의식의 세계에 있다고 상정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피히테처럼 체계적인 ‘존재론’을 전개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감춰진 ‘실재’가 우리의 의식을 배후에서부터 움직인다, 혹은 뭔가의 계기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뭔지 모르지만, 우리는 미지의 비합리적인 힘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낭만주의뿐 아니라, 19세기는 특유의 기분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 뒤에 이어진 논의에 비춰 보면, 셸링의 ‘신화’라든가, 쇼펜하우어(1788-1860)의 “그저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라든가 니체(1844-1900)의 “힘에의 의지”, 프로이트(1856-1939)의 ‘무의식’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자신의 의식의 진정한 주인인가? 뭔가 다른 것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은 현대사상의 주요 테마인데요, 낭만주의 시대에 이미 그런 사고방식의 원형이 나오는 겁니다. 진보주의적인 합리주의의 진영에서 보면, 가톨릭 보수주의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신봉한 점에서, 낭만주의와 한패거리가 아니냐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뚜렷한 ‘존재론’을 지녔다는 점에서, 가톨릭 보수주의는 낭만주의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 인간과 세계에서 놀 수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폭풍우』 속의 프로스페로처럼 인간이 극의 ‘조종 장치’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로맨티카는 자유로운 주관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이런 상상을, 좋아하고 사랑해버렸다. 

[* 우리는 인간 존재 및 세계와 아이러니하게 노는 것을 즐긴다.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처럼 인간이 자신의 수중에 드라마의 ‘조종 장치(mechanical play)’를 쥐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주체성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그런 관념을 상상하길 아주 좋아한다(pp.78-79).]



“프로스페로 Prospero”란 셰익스피어의 희극 『폭풍우 The Tempest』의 주인공으로, 원래 밀라노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동생에게 배신당해 딸과 함께 섬으로 유배됩니다. 마술을 배운 그는 마술을 통해 섬의 요정과 괴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게 되며, 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어느 날 새로운 왕이 된 동생과 나폴리 국왕, 그 아들이 탄 배가 (프로스페로의 하수인이 된 요정이 일으킨)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섬으로 흘러듭니다. 프로스페로는 마술을 사용해 그들을 위협하고 복수하려 하지만, 자신의 딸과 나폴리 왕자가 사랑에 빠졌기에, 그의 진심을 시험한 후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로스페로는 얼핏 보면 마술이라는 ‘조종 장치 Maschinenspiel’에 의해 이야기의 진행을 조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원래 그가 동생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인 셈이니까, 프로스페로 자신도 운명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마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마술의 바탕이 되는 초자연적인 힘은 그가 산출한 것이 아닙니다. 한발 더 물러선 관점에서 보면, 프로스페로는 극중 인물이기 때문에, 작자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자도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것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낭만주의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힘 eine unsichtbare Macht”을 이용하는 것, 혹은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을 “자유로운 주관성 freie Subjektivität”의 행사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무의식에서 부상하게 되는 ‘상상력’이 낭만주의적인 창조의 원천입니다. 문학·예술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낭만주의 이전의 고전주의 시대, 괴테나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시대라면, 그런 비합리적 힘에서 생겨나는 정념을 이성에 의해 통제하고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예술의 본래 존재방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 : 비밀결사geheime Bünde와 음모론 


이후 다소 뜻밖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독일 문학사·문화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일본에서도 요즘 음모론이 붐을 이루고 있죠. 음모론이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어둠의 세력이 정치나 경제를 움직이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죠. 현대세계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어서,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가 9·11을 자작극으로 꾸몄다거나, 알카에다를 그림자로서 조종해서 군사개입의 구실을 꾸며냈다는 등의 얘기가 많습니다만, 그런 수준에 머물지 않고, CIA의 더 깊은 배후에 건국 당초부터 미국을 조종하고 있는 특정한 ‘비밀결사’가 있고, 그것이 진정한 흑막이라는 깊은 음모론이 있죠. 


‘프리메이슨’ 얘기는 꽤 옛날부터 있었죠. 미국의 대통령이나 민주, 공화 양당의 간부의 대다수가 프리메이슨이라든가, 러시아나 중국의 수뇌부에도 멤버가 꽤 있고, 세계의 정치를 그림자로서 움직이고 있다든가, 역사상의 거대 사건의 대부분은 모두 프리메이슨의 계획을 따라 이뤄졌다든가. ‘일루미나티’도 최근 듣게 됐습니다. 일단 다른 조직인 것 같아요. 


슈미트가 말하듯이,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등의 비밀결사는 18세기 말경부터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유럽의 많은 도시에 지부를 결성합니다. 그런 ‘비밀결사 geheime Bünde’가 서유럽국가들의 문학 테마가 됐습니다. 독일문학에서 특히 도드라집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그 속편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에는 프리메이슨을 모델로 했다고 생각되는 ‘탑의 결사 Turmgesellschaft’가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유령을 보는 자[환시자, 강신술사] Der Geisterseher』(1787-89)에서는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백작(1743-95)을 모티프로 삼은 듯한 수수께끼의 아르메니아인이나 영능력자, 비밀결사 부센타우루(Bucentauro) 등이 등장합니다. 호프만의 환상소설은 수상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만, 특히 『모래 사나이(Der Sandmann)』(1816)는 영적인 이야기와 음모론, 무의식론이 조합되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1강에서도 조금 소개한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는 슐레겔 등과 거의 동세대의 낭만파의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주로 베를린에서 활약했습니다.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의 『장화 신은 고양이』를 프랑스혁명의 패러디로 보이도록 번안한 희극 「장화 신은 고양이」(1797)이나 기사의 세계를 무대로 한 낭만주의적 소설 『충실한 에카르트 또는 탄호이저Der getreue Eckart oder Tannhäuser』(1799)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만 Roman’이란 장편소설을 가리킵니다. 독일문학에서는 그 길이를 이용해서 회상이라든가 서한이라든가 극중극 등을 집어넣어 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별개의 장르로 간주됩니다. 원문에서는 〈Romane〉라고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로벨 씨의 이야기Die Geschichte des Herrn William Lovell』(1795-96) 주변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98쪽에 로벨(Lovell)이라는 이름이 나오네요. 이 소설에서는 자신이 사랑한 여성이 월터 로벨이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외아들인 윌리엄을 출산할 때 사망해버린 것을 원망하는 워털루라는 노인이 이들 부모자식에 대해 복수하는 음모 이야기로서 구성되어 있고, 여러 등장인물이 그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며, 이들 부자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것을 워털루 자신이 이야기한다는 구성입니다. 98쪽에 로벨이 안드레아(Andrea)의 아이러니의 꼭두각시(Werkzeug)라는 얘기가 나옵니다만. 안드레아는 워털루가 이탈리아에서 쓴 가명입니다. 워털루=안드레아는 로벨을 우롱합니다만, 자기 자신도 ‘아이러니’에 의해 우롱당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밀결사’적인 문학이 테마로 자리 잡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독일문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우리가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무의식의 영역에 도사리고 있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강해진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18세기 말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있고, 계몽적 이성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 듯 보였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성의 이름 아래서의 진보의 마이너스 작용 ―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 당시의 테러라든가, 공동체의 파괴라든가 ― 도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역시 이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인간을 광기로 몰아가는 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식도 싹텄습니다. 계몽의 반동입니다. 그 반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호프만의 소설에서, 당시 유행했던 자기최면(磁氣催眠, mesmerism)을 주제로 한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의 알기 쉬운 상징으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결사’의 음모 같은 이미지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낭만파는 ‘아이러니’라는 형태로, 무의식의 차원에서 떠오르는 상상력을 포지티브하게 평가했던 것입니다만, 그것과 정반대로, 우리의 자아의식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들 수도 있는 무의식에 대한 불안도 있고, 그것이 ‘비밀결사’의 암약을 둘러싼 표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서도 나타납니다. 슈미트는 무의식적인 것을 원동력으로서 역사가 전개되는 모양을 탐구하는 ‘역사철학’의 동향에도 주의를 돌리고 있습니다. 99쪽에 몇 명인가 대표적인 사상가가 거론됩니다. 셸링은 개인의 의식된 의지를 초월하는 역사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루덴(Heinrich Luden, 1778-1847)은 인간, 민족, 세대 등을 매개로 하여 “삶의 정신 Geist des Lebens”이 자기를 현현한다는 견해를 보여줬습니다. 루덴은 예나대학의 교수를 역임한 역사학자로, 역사연구를 통해 독일의 국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정치체제로서는 인민주권을 이상으로 했습니다. 헤겔은 개인들을 우롱하는 ‘이성의 간지 List der Vernunft’를 시사했습니다. 맑스는 생산관계에 의해 역사가 움직인다는 유물사관을 정식화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를 이 세계의 본질로 간주하고, 역사상의 희비극은 그 의지에 의해 일어난다고 봤던 셈입니다. 


100쪽에서는 “무의식의 과정 unbewußte psychische Vorgänge”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하는 시도로서, ‘성욕’에 주목하는 프로이트의 이론, ‘권력에의 의지’에 주목하는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0) ― 독일어 이름(Alfred Alder)이니까 ‘알프레트 아들러’라고 표기하는 편이 좋겠죠 ― 의 이론 등이 언급되어 있네요. 아들러는 정신분석의 초기에 프로이트와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만, 나중에 ‘개인심리학’이라는 다른 그룹을 만든 인물로, 니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기관열등성에 기초한 열등감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우월성 추구의 메커니즘을 이론화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맑스주의나 정신분석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매혹되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나 쇼펜하우어로 통하는 것입니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첫 번째 부분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정치적 낭만주의』




슈미트와 수사학 


1강에서는 도입으로서 칼 슈미트가 어떤 사상가이고 어떤 식으로 평가받았는가라는 얘기와, 『정치적 낭만주의』의 전반부, 즉 낭만주의를 소개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 텍스트는 낭만주의론이기 때문에 법학자나 정치철학자보다 문학연구자의 주목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제 자신도 석사 시절에 낭만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슈미트와 문학의 관계에 관해 조금만 보충하겠습니다. 슈미트는 헌법학자이며, 법철학적·법제사적으로 법이나 정치의 본질을 독특한(unique) 형태로 논한 인물입니다. 그의 문체는 우리가 법학논문이라고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잘 모르는 추상적인 말을 늘어놓은,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느낌이 아닙니다. 상식을 뒤흔드는, 이상한 수사학이 효과를 발휘하는 문체를 구사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극단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도 그렇지만, 법학의 틀 안에 들지 않는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슈미트는 젊은 시절 법학자로서 배우면서도, 문예평론과 풍자문 같은 것을 썼습니다. 표현주의 계열의 시인인 도이블러(Theodor Däubler, 1876-1934)의 시집 『북극광(Nordlicht)』(1910)에 관해 자세하게 논평한 「테오도르 도이블러의 『북극광』에 관하여(Theodor Däublers ‘Nordlicht’: Drei Studien über die Elemente, den Geist und die Aktualität des Werkes)」(1916)나, 동시대 지식인의 생태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브리분켄(Die Buribunken)』(1917-18)이 알려져 있습니다. 전후에도 햄릿론인 『햄릿 혹은 헤쿠바(Hamlet oder Hekuba. Der Einbruch der Zeit in das Spiel)』(1956) 등을 썼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문예비평과 정치철학의 중간적 저작으로, 초기 낭만파의 비평이론에 관해 꽤 깊이 파고들어 논평하고 있기에 슈미트의 문학가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납니다만, 다음 번 강의 이후에 읽는 『정치신학』이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에서도 수사학이 상당히 효력을 발휘하는 문장으로 쓰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자신이 말하려 하는 책의 본질을 직관에 호소하며, 유무를 말하게 하지 않고 납득하게 만드는 강렬한 말로 표현하며, 이를 개념적으로 엄밀화해 가는 것이 훌륭합니다. 수사와 논리의 조합이 절묘하다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의 논문 대부분이 법학 자체라기보다는 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또는 법의 근저에 있는 신화적·신학적 차원을 문제 삼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논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사는 최대한 쓰지 않고, ‘법규범’ 상호의 논리적인 관계만으로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하려는 법실증주의의 입장인 한스 켈젠과는 대조적인 느낌이 듭니다. 두 사람은 쾰른 대학에서 한때 동료였기도 했고, 바이마르 시기 독일 법철학의 양대 거두로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켈젠의 ‘순수법학’은 도덕이나 정치, 종교, 예술 등에서 분리된 순수한 ‘법’의 논리를 추구합니다. 다만 켈젠도 법학 이외의 영역, 예를 들면, 신화나 종교 등에 대해 글도 썼으며, 그런 방면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슈미트 이상으로 문학적 수사를 구사하고 있으며,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トンデル感じさえします. 그것을 법학의 틀 속에 들여오지 않는 것이 켈젠입니다. 



‘예외상태’ 〈Ausnahmezustand〉


『정치신학』의 서두에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자극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서두에 갖고 오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오늘날의 일본에서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감이 오지 않지만, [슈미트가] 이 문장을 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예외상태’의 원어는 〈Ausnahmezustand〉로, 헌법이나 정치체제와 관련된 맥락에서는 ‘비상사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통상적인 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계엄령 등에 의해 치안유지를 꾀하려 하는 그 ‘비상사태’입니다.


제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에서는 제정(帝政)이 붕괴하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간주된 바이마르 공화제가 발족했습니다만,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짊어졌고, 극우와 극좌에 의한 체제 전복 시도가 번번이 있었으며, 많은 정당이 난립했고 정권이 자주 교체됐습니다. 국가가 여전히 매우 불안정했으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줄곧 ‘예외상황’이었습니다. 혹은 ‘예외상태’와 ‘보통상태’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에는 헌법=국가체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즉 ‘비상사태’에 처했을 때 헌법의 일부 규정을 중지하고, 특별한 명령을 냄으로써 혼란을 수습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주어졌습니다. 슈미트는 대통령이 대권을 발동할 수 있는 ‘비상사태’를 둘러싼 현실적인(actual) 문제를 국가의 존립이 걸린 ‘예외상태’, 다시 말하면 ‘법’의 ‘예외상태’, ‘인간존재’에게 있어서의 예외상태처럼 더 추상적·철학적인 차원의 문제로 파고들어 가는 형태로 논의를 전개한 것인데요, 그것을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셈입니다. 단순히 대통령이 비상사태 대권으로 혼란을 수습한다는 얘기에서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죠.


현실적인(actual) 헌법 해석의 문제를 논하면서 어느 샌가 법률적 개념의 근저에 있는 신학 혹은 신화적인 심층으로 논의 수준을 깊이 있게 해 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독자를 끌고 갔던 《깊은 차원》에 비춰서 당초의 문제를 재고하라고 촉구합니다. 법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나 문학가의 방식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  


그러면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특징을 슈미트 자신의 관점에서 매우 정확하고(pinpoint) 아이러니하게 묘사한 다음, 이것과 그가 인정하는 본래의 ‘보수주의’, 특히 가톨릭 보수주의와의 차이를 밝히고, 상대적으로 후자를 높이 평가하려는 노림수를 지닌 저작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의 대표로 드 메스트르와 보날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혁명 시대의 정치사상가로, 가톨릭의 교의와 결부된 국가관·민족관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도 신학자도 아니고, 중세의 신학을 그대로 부활시키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반드시 가톨릭 교리에서 나오는 얘기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가톨릭이 길러낸 계층구조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을 이론화한 인물들로, 슈미트는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드 메스트르는 일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 근대의 정치사상사에서는 꽤 중요 인물로 취급되고 있으며, 보수주의 계열의 사상사에서는 대개 이름이 나옵니다. 「두 개의 자유」론으로 유명한 이사야 벌린(1909-97)도 드 메스트르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도노소 코르테스



슈미트가 자주 이름을 들먹이는 가톨릭 보수주의의 사상가로는 다른 한 명, 다음 번 강의 이후에도 나오는, 19세기의 스페인 정치이론가이자 외교관인 도노소 코르테스(Juan Donoso Cortes, 1809-93)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2월 혁명 시기의 스페인에서 반혁명의 사상을 전개한 인물입니다. 슈미트가 이 세 명에게서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코가 케이타 씨(古賀敬太, 1952~)가 저서 『칼 슈미트와 가톨리시즘 : 정치적 종말론의 비극(カール・シュミットとカトリシズム──政治的終末論の悲劇)』(1999)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서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나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버크는 전통을 비합리적인 것이라며 파괴하고 영(zero)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영국국교회와 국가의 결부가 영국의 ‘국가=헌법체제constitution’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다른 개신교와 달리, 영국국교회는 신앙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가톨릭에서 이탈한 것이라서, 교리와 의례에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게다가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기에 국가와의 융합도가 가톨릭보다 높습니다.


낭만주의자 중에는 과거에 대한 동경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복고주의적 정치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그들은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무한한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민족’이나 ‘역사’를 말했을 뿐이며, 가톨릭 보수주의자처럼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를 튼실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자는 자신들이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 한정성 위에 자신들의 삶이 성립된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안정된 ‘질서’ 지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그런 ‘한정’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미화한 ‘민족’과 ‘역사’의 《이미지》와 무한하게 계속 놀려고 합니다. 그 《이미지》는 ‘실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기에, 계속 변용되며 안정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불성실한 불안정성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낭만파의 사고 


여기서 슈미트가 집요하리만치 계속 비난하고 있는 낭만파의 사고방식에 관해 조금만 긍정적인(positive) 관점에서 소개하겠습니다.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계열의 독일사상에서 낭만파를 재평가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의 ‘비평’ 개념을 ‘무한한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파악한 벤야민의 논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발터 벤야민,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3 ; Walter Benjamin, Der Begriff der Kunstkritik in der Deutschen Romantik, 1920]입니다. 벤야민이 이를 박사논문으로 쓴 것은 『정치적 낭만주의』가 간행된 것과 같은 해인 1919년입니다. 제 석사논문을 책으로 낸 『근대의 갈등(モデルネの葛藤)』에서도 벤야민의 이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은 합리적인 주체로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상정되는 [데카르트-칸트-피히테]적인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데카르트(1596-1650)는 방법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내’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반면, 슈레겔 등은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합니다.


“생각하고 있는 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다”에서 “내가 존재한다”를 도출시킨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낭만파에 강한 영향을 미친 피히테는 이것을 “나의 존재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나 자신에 의해 단적으로 정립(setzen)되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판단의 최종 근거는 나 자신이며, 이것 이상으로 소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낭만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관해 계속 생각하려 합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나’는…? 이렇게 계속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고 무한히 계속됩니다.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한다”는 반성의 구조가 무한하게 반복되는 셈입니다. 이 연쇄가 어디까지나 계속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의 진정한 근거가 결국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존재’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라는 무한한 연쇄의 단축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 - 칸트 - 피히테]적 자아

합리적인 입체로서의 실재한다고 상정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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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

방법론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를 전제로 하여 ‘나’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사고했다.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고 있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사고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


더구나 나 자신 속에서만 자기반성이 무한하게 연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의 ‘바깥’에까지 반성의 연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에 관해 ‘언어’에 의해 생각할 때, 언어를 통해서, 외부에서 다양한 관념이 《나》의 안으로 유입됩니다. 다른 《나》들이 사고한 것, 시적으로 창작·상상한 것이 언어를 매개로 ‘나’ 속에 수시로 들어오고, ‘나’라는 장 속에서 오토포이에시스(자기산출)를 계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종횡으로 연결된 반성의 연쇄를 통해, “우리의 세계”가 ― 항상 생성변화하면서 ― 구성됩니다. 그리고 ‘세계’ 속에 《있는(有る)》 다양한 《사물[物]》은 반성 운동 속에서의 ‘나’의 관점의 변화에 의해 다양하고 상이한 양상을 띱니다. 예술적 오브제가 보는 각도나 상황에 따라, 보는 주체의 관심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주듯이, 예술가는 그런 모든 것을 끌어넣으면서 오토포이에시스를 계속하는 ‘초월론적 포에지(Transzendentalpoesie)’의 운동에, 눈에 띄는 형태로 공헌한 인물입니다만, 우리들 개개인도 얼마간의 형태로 그것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비평Kritik’이란 당사자,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저자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 아래에서 진행되는 그런 반성의 연쇄를 여실히 드러내고, 다시금 창작으로 나설 자극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발상은 포스트 문제계의 현대사상에서 에크리튀르(=쓰인 것 + 쓰는 행위), 혹은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를 둘러싼 문제로서 논해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텍스트’ ― 어딘가에 적힌 문장뿐 아니라 예술작품, 건물, 상징적 기호 등, 의미의 체계를 이루는 것 일반이 포함됩니다 ― 를 매개로, 불특정 다수의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각종 텍스트화된 담론의 다발로서 《주체》로서의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이미 텍스트화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대상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대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는 사람들이 쓰는 행위(에크리튀르)에 의해 점점 증식되고, 또 그것에 뒤따라 새로운 의미의 연관을 산출하기 때문에, 텍스트 속에서 일어나는[벌어지는]  우리의 《주체성》도 계속 변용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에크리튀르의 무한한 놀이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체》를 텍스트의 연쇄=에크리튀르의 작용으로 보는 발상은 독일 낭만파와 포스트모던 사상에 공통적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정면》비판 


『정치적 낭만주의』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슈미트는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이런 발상을 하고 있음을 어떤 의미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다음에 그것을 ‘정치’에 응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러니’의 문제입니다. 아이러니는 ‘나’ 자신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재파악하고, ‘나’ 자신이나 주위의 타자, 여러 대상들에 관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을 발견하고, 《주체》와 《객체》 둘 다를 변용시키는 행위입니다. 아이러니는 모든 개념을 메타적 관점에서 상대화합니다. ‘민족’과 ‘역사’조차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A씨가 “민족의 본질은 ○○○이다”라고 파악했다고 합시다. 반면 B씨가 “A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A씨가 ▽▽▽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에서 입장이 다른 것으로 바뀌면 민족에 관해, 예를 들어 □□□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A씨와 B씨가 동일 인물인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C씨가 “B씨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라는 식으로 계속하려고 하면, ‘민족’의 《본질》은 무한한 반성의 연쇄 속에서 점점 변모합니다.


안정된 질서를 찾아내고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 보면, 이런 느낌으로 메타 사고를 계속하고, ‘실재’에 다다르지 않는 사고는 쓸모없으며 불성실합니다. 낭만파 입장에서 보면, 성실하게, 하나의 관점을 고집한 나머지, 사물의 다른 측면에 눈을 닫아버리는 《성실한 사상가》들보다는 반성=비평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점점 아이러니컬하게 변화시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불성실한》 자기네가 결과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는 성실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면, 곧바로 《성실한 사람들》은 더욱 더 화를 내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얘기네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비판이 진보적 합리주의자, 보수주의자, 맑스주의자 등에게서 낭만파에 대해 던져졌습니다. 이런 뜻에서 ‘성실/불성실’ 얘기만 나오면, 우와 좌의 공동투쟁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은 구도인지도 모릅니다. 슈미트는 그런 낭만주의에 대한 《성실한》 비판을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철저히 행하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아담 뮐러의 ‘정치적 낭만주의’도, 슐레겔의 아이러니의 응용편일 뿐이라고 봅니다. 일반적 이미지로서는, 뮐러는 메테르니히 아래서 정치적으로 활약하고, 국가유기체설을 내놓고, 애덤 스미스적인 자유주의 경제를 공동체적·전통적 관계성에 의해 보정하는 독자적인 국민경제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비평가·문헌학자일 뿐인 슐레겔과는 다르다고 생각되기 십상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할 겁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게, ‘정치적 낭만주의’를 가톨릭 보수주의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슈미트 자신의 사상적 결단이 겹쳐져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슈미트가 이렇게나 낭만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슈미트 자신 속에 낭만주의적인 체질, 사물을 메타적 관점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현실로부터 추상화된 관념에서부터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아이러니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슈미트 자신 속에 있는 낭만주의적인 부분을 떼어내, 실재하는 질서를 지향하는 보수주의를 철저히 하기 위한 선언문으로 『정치적 낭만주의』를 쓴 것은 아닐까요? 



포스트모던 보수주의 


최근에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만, 90년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포스트모던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사상 경향이 조금이나마 주목을 받았습니다. 본인이 그렇다고 인정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만, 프랑스의 파시즘 문학 연구에서 문예비평으로 들어간 후쿠다 가즈야 씨(福田和也, 1960~)가 그 대표로 여겼습니다. 포스트모던 보수의 사상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굳게 믿을 수 있는 게 없지만, 일단 사회를 통합하고 안정시키도록 기능하는 상징이 있는 쪽이 편리하다. 그 ‘상징’의 진정한 유래라든가 배후에 있는 전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천황제나 신도를 그다지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만, 옛 것이 상징으로서 기능하기 쉬우니까 옛 것, 혹은 옛날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용해서 하면 좋다. 자신은 별로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지만, 집착하고 있는 척 하는 편이 진심으로 집착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과 말을 통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뭔가에 헌신하는 것도, 아무것에도 헌신하지 않는 것도, 모두 결국에는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같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헌신하는 척하고, 임시의 ‘상징’ 아래서 안정해도 좋지 않은가…. 이런 느낌의 사고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칸트학파의 철학자 루돌프 파이힝거(Rudolf Vaihinger, 1852-1933)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인 듯이 Als-Ob”의 철학입니다. 


물론 그런 비뚤어진, 무늬(pose)만 보수주의와 진정한 보수주의를 정말로 구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드 메스트르와 보날은 프랑스혁명에 의해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을 일단 경험하고, 그 과정을 견디면서 실재하는 것으로서 ‘민족’과 ‘역사’에 의거하려 든 것인데요, 이것들이 그들이 바라는 바를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때까지 가톨릭의 정통파 신학에는 없었던 개념을 가톨릭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니까, 꽤 수상쩍습니다. 그들도 가톨릭교회의 이미지를 자기네 사상에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접한 보수의 대표적인 전형으로서의 정치적 낭만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가톨릭 보수주의를 구출해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좌파 혹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과 ‘역사’의 초월적 실재성을 실체적으로 믿는 것도, 놀이에 이용하는 것도, 근대화에 저항하려는 반동적 사고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니냐고 보이지만, 슈미트는 정말로 질서를 회복하려면 불순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기에 설령 ‘적’의 입장에 있을 법한 맑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정치’의 본질 ― 다음 번 강의와 그 다음 번 강의에서 읽는 『정치신학』에서는 그가 ‘정치’와 ‘신학’의 구조적 유사성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면, 즉 ‘정치’를 지배하는 신학적 논리야말로 자신들이 분쇄해야 할 최종 표적(target)이라고 짐작했다면, 그것은 제대로 평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프루동(1809-65), 바쿠닌(1814-76), 소렐을 뜻밖일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등장을 사상사적으로 중시합니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질의 응답 부분













질의응답 73




Q : ‘구체적 질서’란 어떤 이미지인가요? 


A : ‘구체적 질서’라는 것치고는 그다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전체 인류라든가 전체 세계에 똑같이 통용되는, 보편적 질서가 아니라, 그 민족이라든가 지역에 고유한 ‘질서’로, 법적인 제도들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종종 ‘질서’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이것은 매우 추상적인 의미밖에는 갖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거기에 대항해 ‘구체성’을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켈젠(1881-1973)이라면, 수학에서 최초로 공리가 설정·규정되고, 이로부터의 연역에서, 체계가 전개되는 것과 똑같이, 처음에 설정된 ‘근본규범 Grundnorm’으로부터 법질서가 논리적·단계적으로 도출된다는 식으로 상정합니다만, 슈미트는 그런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켈젠은 근본규범의 내용은 묻지 않는 셈인데, 슈미트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정치적 공동체를 만드는 ‘구체적 질서’에 맞지 않는 것은, ‘근본규범’이 될 수 없으며, 수학처럼 추상적 논리만으로 법이 체계화되고 안정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슈미트 연구자로부터 ‘구체적 질서’론은 경관법(景観法)의 문제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이나 강 등의 자연 경관에 어울린 시가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과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는 건물을 거기에 만드는 것은, 설령 민법상의 권리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허용되는가를 생각할 때, ‘구체적 질서’론이 살아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Q : 켈젠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모두가 사회계약적으로 합의해서 영(0)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군요. 


A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합의에 의해, 어떤 질서에서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논의의 대전제입니다. 


 아까 얘기한 낭만파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을 다시 뒤집은 것이, 슈미트 자신의 ‘질서’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낭만파는 ‘민족’과 ‘역사’를 버추얼화하고, 자신들의 시작(詩作)의 도구로서 자의적으로 이용합니다. 그에 반해 그 자신은 버크, 드 메스트르, 보날에 의거해, ‘실재하는 민족’, ‘실재의 역사’에 입각해 사고하려고 합니다. 그런 발상이 ‘구체적 질서’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일반적으로 ‘결단주의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단주의’라고 말하면, 영(0)에서 어떤 것에서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결단’한다는 듯이 다뤄지기에, 켈젠의 ‘근본규범’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말로 무(無) 속에서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질서’를 지향하는 결단인 것 같습니다. 



Q : 그런 흐름에서 듣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구체적 질서론과 결단주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상반되는 듯합니다. 구체적 질서론은 주체가 선택한다는 이미지가 아니죠. 


A : 슈미트 속에서도 ‘결단’과 ‘질서’의 관계는 꽤 변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만, 아마도 구체적 질서는 ‘있다’지만, 확실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있었다’지만, 무너져버렸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것을 재발견하고, “이것이 질서다!”라고 ‘결단’하고 ‘질서’를 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이데거와 같은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존재 자체로부터의 요청에 의해, 본래적 존재방식으로 [나아가려고] “각오하게 만드는 entschlossen” 상태에 있지만, 보통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기투 entwerfen’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입니다. 슈미트에게도 그와 같은, 스스로가 본래 속해 있는 ‘질서’를,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발상이 있으며, 그것을 몇 가지 상이한 수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하고 있기에, 신비적인 분위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슈미트가 좌파계열의 ‘결단주의’의 화신이라고 말해야 할 조르주 소렐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소렐은 기성의 부패한 질서를 파괴하는, ‘신화’에 이끌려진 ‘폭력’을 찬양한 것인데요, 슈미트는 신학적 차원으로까지 파고든 ‘결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렐처럼 좌파의 혁명론도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 메스트르, 보날은 가톨릭적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결단’한 반면, 그것을 일단 파괴하고 새로운 신화적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결단’하고자 했습니다.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적이지만 ‘앗, 들켜버렸네’라는 것입니다. 



Q : ‘구체적 질서’도 낭만주의의 세계관처럼 있지도 않은 이상이라는 건가요? 


A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슈미트 자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죠. 그는 가톨릭적 질서에 상당하는 것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인식했으며, 스스로가 의거하는 ‘질서’를, 적어도 가톨릭 → 독일민족 → 유럽공법공동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말로는, 구체적 질서 따위는 더 이상 없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억지를 부리는 사유의 경로를 밟았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텍스트가 재미있는 것은, 슈미트의 낭만주의에 대한 거센 비판을 보면, 같은 비판이 버크, 드 메스트르, 그리고 슈미트 자신에게도 되돌아오지 않느냐라는 의문이 솟구치는 대목입니다. 슈미트는 열심히, 보수주의자들의 ‘민족’이나 ‘역사’에는 실재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가톨릭 신자도, 낭만주의자도 아닌, 제3자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의 말도 수상쩍다고 생각되죠. 자신들도 한 패거리 아닌가라는 불안이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헐뜯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슈미트의 ‘결단’에도, 더 이상 의거해야 할 것이 정말로는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Q :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데거도 대상이, 신에서 민족 같은 것으로 옮겨간 것 아니냐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질서란, 하이데거의 ‘민족’과 가깝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지역적 한정성 같은 것인가요?


A : 30년대 중반 이후의 하이데거는 민족의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조국 Vaterland’에 매달리게 됩니다. 수립된 ‘조국’에 의해, 구체적으로는, 시인에 의해 발견된 본래의 ‘언어’에 의해, 사람들의 존재와의 관계맺음 방식이 규정되게 됩니다. 그의 발상은 확실히 ‘구체적 질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하이데거는 철학자이기에, 그가 의거한 기반으로서의 ‘조국’을, 횔덜린(1770-1834)의 이 또한 추상적인 시에 기대어 꽤 추상적으로밖에는 얘기하지 않았고, 현실의 독일과는 다른 것이라는 변명이 되지만, 법학자인 슈미트는 현실에 존재하는 법제도에 입각해 논의를 전개하기에, 그 나름의 구체성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 앞서 말씀드렸듯이, 슈미트의 ‘질서’의 기본단위는 시기에 따라 변동합니다. 



Q : 슈미트는 바이마르 시기에, 구체적인 법과 정치적으로 관련된 작업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은 지역적으로 문화의 변주(variation)가 크죠. 특히 북부와 남부에서. 이것을 묶은 총결산의 시기가 바이마르 시기라고 한다면, 슈미트도 너무 고생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구체적 질서’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A : 독일은 통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독일제국이 되어서도 복잡한 연방제를 채택했죠. 가톨릭은 전체 인구의 1/3 정도로, 2/3은 개신교 계열입니다. 가톨릭의 대부분은 남부에 살고 있습니다만, 슈미트 자신은 독일 북서쪽의 베스트팔렌 주의 외진 가톨릭 지역[플레텐베르크] 출신입니다. 가톨릭 계열의 정치신학자를 전체 독일적인 질서의 기반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산출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았으나, 처음부터 혼란의 연속으로, 불안정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로, 의회 내의 군소정당 난립과, 극좌 및 극우에 의한 공화국 전복의 시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대립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힌덴부르크(Paul Ludwig von Beneckendorf und von Hindenburg, 1847-1934) 아래에서 프란츠 폰 파펜(Franz von Papen, 1879-1969)이 총리를 지내던 1932년 7월, 중앙정부와 사민당 계열의 프로이센 주정부가 대립하고, 중앙정부가 군사력을 배경으로 삼아 프로이센 정부를 해체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일찍부터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대통령’의 (한정적인 의미에서의) ‘독재’를 기대하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법상 그런 역할이 부여됐던 ‘대통령’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에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치도 지지했습니다. 전후에는 유럽 전체에 있어서의 ‘대지의 노모스(법)’을 상정하고, 그것을 지키려 했습니다.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에 버금가는, 종교와 결탁된 법·정치적 질서가 있으면 수월했겠지만, 그것이 없었기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1강 끝)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다섯 번째 부분









<네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Volk〉의 버추얼(virtual)성, 유동성 


슈미트는 뮐러의 ‘민족’관은 그런 슐레겔의 아이러니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83쪽에서, 1819년에 쓴 뮐러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사계절의 변화와 신의 축복을 매일 받고 있는 단순한 마을사람이나, 공동체 생활의 수수한 일원인 차분한 장인이야말로 우리의 신분과 자유를 간직하며, 유럽을 위대하게 만든 지조를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귀족을 논하고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 정치적 이유로 그는 민중(Volk*)라는 말을 피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10년 전에 그가 『국가술 원리』에서 민중 대신에 국가라 부르고, 이를 모든 가능성의 근원이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낭만주의적 기능은 명백하다. [『원리』에서는] 민중의 의지는 그저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바로 진리에 있어서 법이며, 진리의 목소리라고 한다. … 그러나 새로운 실재로서의 ‘민족(Volk*)’과 낭만주의적 대상인 ‘민중(Volk*)’을 혼동하고, 낭만주의자를 새로운 민족 혹은 국민감정의 발견자로 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실재를 너무도 빨리 낭만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예의 뮐러의 말에서 민중(Volk*)이라는 단어가 기피되고 있는 것은 특징적이나, 여기에 이미 본질적인 차이가 포함되어 있다. 즉, 낭만주의적 대상[으로서의 민중]으로부터는 혁명적 신경이 끊겨있다. 그것은 그칠 줄 모르는 가능성의 원천이 된다는 사명을 지시하는 낭만주의적 주관을 섬기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그것은 사실상 계몽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것을 의무부여 한다. 왜냐하면 읽는 것과 쓰는 것, 또한 모든 근대적인 교양의 유혹은, 위대한 무의식이라는 것을 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 ‘사계절[의 변화]과 신의 축복을 매일 받고 있는 단순한 마을사람, 평화로운 장인, 공동체의 미미한 구성원, 바로 이들이 우리의 신분과 자유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럽을 위대하게 만든 감정을 보존하고 있다.’ 여기서 귀족은 심지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는 인민people이라는 말을 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낭만주의적 기능은 일찍이 10년 전에 그가 『국가술의 기초(Elemente der Staatskunst)』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명백하다. 이 책에서 그는 불가피하게도 인민 대신 국가라고 칭하고, 국가를 모든 가능성들의 궁극적 기반으로 격상시켰다. 인민의 의지는 단순히 법률적으로가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 법이며 진리의 목소리이다. … 그러나 ‘인민’이라는 새로운 실재를 낭만적 대상으로서의 ‘인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낭만주의자들은 새로운 인민적 혹은 국민적 감정의 발견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이 실재를 낭만화하려고 재빨리 시도했기 때문이다. 뮐러의 언급에서 인민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게도 기피되고 있다는 점에 본질적인 차이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즉, 혁명적 신경은 낭만적 대상으로부터 끊어져 있다. 이 대상은 지칠 줄 모르는 가능성들의 원천이라는 임무를 이 대상에 배정하는 낭만적 주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천적으로, 이것은 계몽주의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무를 갖는다. 읽기와 쓰기, 그리고 [근대적] 교양의 모든 사기술은 무의식의 방대한 영역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p.68).]



여기서 ‘국가’로 번역된 것은 〈Staat〉입니다. 1809년의 『국가술 원리 Die Elemente der Staatskunst』에서 본래 〈Volk〉라고 말해야 할 곳에서 〈Staat〉라는 말을 사용하고 그 〈Staat≒Volk〉를 아까의 의미에서의 ‘가능성’의 ‘근원 Urgrund’이라고 다뤘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것 같네요. 


〈Volk〉를 ‘가능성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간단하게 말하면, 〈Volk〉의 실제적 존재방식과 관계없이, 낭만주의적 이상을 내포한 집합체로 보는 것입니다. 〈Volk〉를 매체로 삼아 ≪커다란 연관≫이 무한하게 변용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합니다. 맨 처음의 인용 부분은 제법, 근대문명에 오염되지 않고, 농촌 공동체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는, 순수하고 소박한 〈Volk〉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그런 소박한 〈Volk〉가 내는 목소리 속에는 근대에 감염된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 Wahrheit’가 있다는 것입니다. 슐레겔도 이런 소박하고, 진리를 체감적으로 알고 있는 〈Volk〉를, 낭만주의적인 예술의 진정한 담지자라고 묘사합니다. 이런 식의 얘기는 현대일본의 문화보수적인 논의에서도 자주 나오죠. 


당연히 “그런 소박한 민중이 어디에 있어? 실제의 민중은 교활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매일의 생활에 급급하잖아!”라고 제동을 거는 사람이 나올 만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민중’은 어떤 특정한 시대, 지역에 속하는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무한하게 생성하는 ‘민중’이라는 이념이야”라고 슐레겔 식으로 응수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슈미트는, 뮐러의 〈Volk〉가 그런 버추얼(virtual)성, 유동성을 함의하고 있다고 보는 셈입니다. 


“새로운 실재로서의 ‘민족 Volk’”과 “낭만주의적인 대상인 ‘민중 Volk’”의 구별이라는 것도 좀 이해하기 힘들지만, 전자의 〈Volk〉는 보날이나 드 메스트르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민족’, 종교에 의해 뒷받침되어 몇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재하고 일정한 국민성과 공공도덕을 갖춘 ‘민족’이고, 후자의 〈Volk〉는 앞서 말했던, 낭만주의적이고 버추얼화된 ‘민중’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네요. 낭만주의적인 ‘민중’은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일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정치적 혁명으로 이어지는 짜릿짜릿한 긴장감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당연히 전자를 지지하고 후자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낭만주의적, 예술적인 동경의 대상으로서 〈Volk〉와 대비시킴으로써 (슈미트의) 진정한 보수주의 계열의 “실재하는 것으로서의 〈Volk〉”관이 특징지어지는 셈이죠. 



국가 〈Staat ≒ Volk〉

‘가능성의 근원’으로서 본다

실재의 존재방식이 아니라, 낭만주의적인 이상을 내포한 집합체


“새로운 실재로서의 ‘민족 Volk’”

 보날이나 드 메스트르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민족’, 종교에 의해 뒷받침되어 몇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재하고 일정한 민족성이나 공공도덕을 갖춘 ‘민족’


“낭만주의적 대상인 ‘민중 Volk’”

  낭만주의적으로 버추얼화된 ‘민중’, 문학적인 상상력의 원천일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정치적 혁명으로 이어지는 짜릿한 긴장감은 갖춰져 있지 않다. 



“계몽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무로 부과한다[계몽주의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무를 갖는다]”라는 것도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이는 곧바로 뒤에 나오는, ‘독해’ 등의 ‘교양 Bildung’을 익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지식을 익히지 않고, 계몽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관에 의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셈이기 때문에, 슐레겔이나 뮐러 등의 관점에서 보면, 그 순수함을 그대로 계속 유지하는 존재라고 상정하려 합니다. 다분히 제멋대로 만들어낸 이미지네요. 서양인이 ‘동양인’을 ≪순진무구한 미개인≫으로 표상하고 싶어 하는 것을, 현대의 포스트콜로니얼계열의 논의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는데, 낭만파도 ‘민중’에 대해 그런 이미지를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낭만주의는 ‘민중’과 마찬가지로 ‘아이’나 ‘미개 민족들 primitive Völker’도 버추얼화하여 표상합니다. 



아이들도 낭만주의자가 생각한 대로 다루는 이런 비합리로 넘쳐나는 지주(持主)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 ‘왜곡된, 유약한, 어리광부리는 아이들’이 아니라, 노발리스가 말하듯이 ‘어느 쪽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에 한정된다. … 아이와 같은 인류, 미개의 민족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무한한 가능성의 지주(持主)이다. 합리적인 피한국성(被限局性)과 비합리적인 가능 충일성(可能充溢性) 사이의 모순은 한정된 현실에 대해 다른 동일한 실재적(real)인, 그러나 아직 한정되지 않은 현실을 통해 대응함으로써 낭만주의적으로 제거된다. 즉, 합리적·기계화적 국가에 대해서는 아이와 같은 민중을 통해, 그 직업과 업적에 의해 이미 한계가 부여된 어른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과 시시덕거리는 아이를 통해, 고전적인 것의 명석한 윤곽에 대해서는 무한하게 다의적인 소박함을 통해 응하는 것이다. 한정이 있는 현실은 공허하며, 실현된 가능성은 꿈을 깨거나 환멸을 초래하고, 당첨되어 버린 복권이 지닌 빛바랜 우울을 수반한, ‘지나가버린 해의 달력’ 같은 것이다. 원시의 소박함은 소극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행복한 상태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내용에 의한 것이 아니다. 

[* 어린아이들도 낭만주의자가 자신의 마음대로 다루는 비합리로 풍부한 담지자이다. 심지어 모든 아이가 아니다. 노발리스가 말하듯이, ‘응석받이에다가 버르장머리 없고 칭얼대기만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저 ‘결정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일 뿐이다. … 어린아이와 같은 인류인 원시민족들도 이런 무제한적인 가능성들의 담지자이다. 합리적 한계설정과 비합리적 가능성들의 충만함 사이의 이런 모순은 또 다른 마찬가지로 실재적이나 여전히 무제한적인 실재[현실]가 제한된 실재[한정된 현실, die begrenzte Wirklicheit]와 서로 싸움이 붙게 되기 때문에 낭만주의적으로 제거된다. 즉, 합리주의적, 기계화된 상태에 대해 어린아이 같은 인민이 대립한다. 또 직업과 업적에 의해 이미 제한된 어른에 대해 모든 가능성들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대립한다. 그리고 고전적인 것의 명석한 노선에 대해 그 무한한 의미에 있어서 원시적인 것[무한하게 다의적인 소박성, die unendlich vieldeutige Primitivität]이 대립한다. 제한된 실재[한정된 현실, die begrenzte Wirklicheit]는 공허하며, 실현된 가능성, 결정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환멸을 느끼고 착각에서 깨어난 그것은 당첨된 후의 복권이 지닌 빛바랜 우울melancholy을 지녔다. 그것은 ‘지나가 버린 해의 달력’이다. 원시적 순박함은 가장 행복한 상태이지만, 소극적으로만 그럴 뿐이고, 적극적인 내용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p.69).]



사물을 합리적·기계적으로 파악하는 이성이 아직 작동하지 않은 ‘아이’와 ‘미개 민족들’을 죄를 모르는 존재로 아름답게 묘사하는 사상의 원점은 아마 루소(1712-78)일 거예요. 82쪽에서도, 루소가 ‘자연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진 비합리적·감정적인 공동체로서의 〈Volk〉를 표상했다고 언급되어 있네요.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1755)에서 ‘자연상태’에 있는 ‘야생인’을, 『에밀』(1761)에서 ‘아이’를 미적으로 이상화된 모습으로 묘사하며, 그런 이미지가 낭만파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낭만파는 ‘아이’나 ‘민중’을, 자신들의 이상인, ‘무한하게 다의적인 소박성 die unendlich vieldeutige Primitivität’의 보고(寶庫)로 보는 것입니다. 무한하게 다의적이기를 계속하는 것은, 사회의 ‘현실’에 의한 ‘한정’을 겪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정’되지 않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양한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 공동체로의 귀속에 의한 정체성, 교육, 직업규범 등을 익히고, ‘자기’를 고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정화된, 혹은 더 부정적인 말투로 하면, 경직된 ‘자기’의 존재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따분합니다. 하지만 어엿한 어른은 그 지루함을 참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낭만파는 ‘한정된 어떤 현실 die begrenzte Wirklicheit’은 공허하다고 단언합니다. 규정되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상황을 지향합니다. 그처럼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헤겔은 비판한 것이며, 슈미트도 그런 관점에서의 낭만파 비판을 계승한 것입니다. 


85쪽을 보십시오. ‘민중’과 나란히 또 다른 근대의 ‘데미우르고스’로서의 ‘역사’를 낭만주의가 어떻게 다뤘는가가 논해지고 있습니다. 



두 개의 데미우르고스의 또 다른 하나, 역사도, 마찬가지로 낭만적으로 이용된다. 순간순간에 시간은 인간을 한정하고, 가장 강대한 의지도 제약한다. 모든 순간은 이렇게 압도적인, 비합리적인, 유령 같은 현상이 된다. 그것은 죽어갈 무수한 가능성의 끊임없는 부정이다. 그 힘을 피해서 낭만주의자는 역사 속으로 도망친다. 

[* 두 개의 새로운 데미우르고스 중 두 번째인 역사는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매 순간마다 시간은 인간존재를 한정하며 가장 강력한 인간 의지도 제약한다. 그 결과 매 순간은 압도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유령과도 같은 사건이 된다. 그것은 그것이 파괴하는 무수한 가능성들의 항상-현재적이고 끊임없는 부정이다. 그 힘의 면전에서 낭만주의자는 역사에 굴복한다(p.69).] 



순간순간에 시간이 인간을 한정한다는 것은 알겠죠.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시간의 작용에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수한 가능성이 조금씩 소멸하고, 나는 한정된 존재가 되어갑니다. “압도적인, 비합리적인, 유령과도 같은”의 “유령과도 같은”의 원어는 〈gespenstig〉입니다. 독일어의 〈Gespenst〉에는 ‘유령’ 또는 ‘요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시가와 씨는 가능성이 부정된다는 것 때문에 ‘유령’이라는 말을 택한 것 같은데요, ‘압도적, 비합리 …’라는 연결을 놓고 보면, 오히려 ‘요괴’가 낫지 않은가 저는 생각합니다. 각 ‘순간’이 괴물처럼 문답무용으로, 저를 압도하고, 점점 제가 원치 않은 쪽으로 저를 몰고 간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라면 그런 시간의 작용을 받아들일 터지만, 낭만주의자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는 ‘역사’로 도피합니다. 



과거는 현재의 부정이다. 현재가 부정된 가능성이라 한다면, 과거에 있어서 이 부정은 다시 부정되고, 제약은 지양된다. 과거의 사실은 현실적인 것의 존재성Seinsqualität des Wirklichen을 띠고, 구체적·실재적이며, 변덕스러운 공상이 아니지만, 그래도 실존하는 개인으로서의 낭만주의자를 모든 순간에 압박하는 현재의 실재의 가열참은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런 한에서는 동시에 실재이기도 하며 비실재이기도 하며, 해석이나 종합이나 구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손안에서 빼앗을 수 있는 누락된 시간이다. 공간적으로 빨리 분리된 실재 또한, 현재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마찬가지로 이용된다. 

[* 과거는 현재의 부정이다. 현재가 부정된 가능성이었다면, 과거에 있어서 [이런] 부정은 또 다시 부정되고, 한계설정[제약]은 무화[지양]된다. 지나간 사실은 실재[현실]적인 것의 존재성Seinsqualität des Wirklichen을 띠고, 구체적·실재[현실]적이며, 변덕스러운 공상[capricious poetry]이 아니다. 그렇지만 매 순간에 낭만주의자를 실존하는 개인으로서 억누르는 현재적 실재의 주제넘음[가열참, obtrusiveness]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한에서 이것은 실재인 동시에 비실재이다. 또한 이것은 해석되고 결합되고 구성[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기막히게 형상화하는 데 착수할 수 있는 응고된 시간이다[It is congealed time with which one can undertake to make marvelous figures].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는 실재는 현재의 실재[현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길로 사용될 수 있다(pp.69-70).]



앞서 봤듯이, ‘현재 die Gegenwart’는 무한한 ‘가능성’의 ‘부정’인데, ‘과거 Vergangenheit’는 그 ‘현재’를 ‘부정’하고, ‘부정의 부정’이라는 형태로 ‘제약’을 ‘지양 aufheben’합니다. ‘지양’이란 헤겔의 용어로, 대립을 이 대립보다 높은 차원에서 해소한다는 것이죠. ‘과거’가 ‘현재’의 ‘부정’이라는 말은 조금 알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것은 ‘과거’에는 현재, 이미 부정되고 있는 ‘가능성’이 아직 ≪있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겁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가능성’이 늘어납니다. ‘아이’나 ‘미개민족’이 갖고 있는 듯한 것을, ≪우리≫도 ‘과거’에는 갖고 있었을 겁니다. 


낭만파는 이렇게 해서 ‘상상력’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과거’를 미화하는 것입니다. 뭔가 ‘공상’ 같지만, 낭만파도 전혀 근거 없는 ‘공상’을 하는 것이 아니며, 과거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에 의지하여 재현합니다. 〈Dichtung〉이라는 독일어는 구어로는 ‘만든 얘기’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만, 본래의 의미는 ‘시작(詩作)’입니다. ‘과거’의 ‘사실’은, 단순한 ‘허구’만이 아니라, 일정한 ‘현실성’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인 것의 존재성 Seinsqualität des Wirklichen”입니다. 〈Seinsqualität〉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존재의 질’입니다. ‘존재’의 방식에 강함 혹은 등급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어떤 사건 혹은 사물을 역사적인 ‘사실’로서 파악할 때에, “‘현실적인 것’으로서의 존재의 질”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는 나름대로의 ‘실재성’이 있지만, ‘현재’만큼의 압박감은 없으며, 주체에 의한 일정한 ‘해석 deuen’, ‘종합 kombinieren’, ‘구성 konstruieren’을 허용합니다. 거기에 낭만주의적 상상을 작동시킬, 새로 만들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렇게 ‘역사’를 이용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용 verwerten’인 것이지 역사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서, 실제로는 어떤지 분명히 확인할 수 없기에, 버추얼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86쪽의 마지막 단락부터 87쪽에 걸쳐, 그런 낭만주의적인 ≪떨어져 있는 것≫의 미화가 어떤 곳에 이르게 되는가가 상당히 신랄한 느낌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낭만주의자에게 원시적인 착한 인간에 관한 관념, 원-민족(原民族), 빛의 아이들, 진정한 사제직, 시원의 인류 및 고대의 높은 자연적 지혜 등에 관한 관념은 낭만주의자 자신의 것이었다. 또 그것은 현대에 관한 낭만주의적인 비판과 자주 결부되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낙원에 관한 신비주의적 관념과 낭만주의적 관념은 여전히 달랐다. 플라톤적 및 그노시스파적인 이념도, 전통주의적 논증도,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적인 시각을 위해 이용됐다. 과거는 현재의 보다 나은 기초로서 등장했으며, 현재는 또 다시 과거의 기생물(parasit, 파라지트)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보다 나은 시대의 과실에 의해 여전히 살고 있다’(노발리스), ‘우리는 우리의 조상의 자산을 탕진한다’(뮐러). 이 경우 낭만적이란 단순히 과거를 현실의 부정으로서, 구체적으로 실제로 있는 실재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출로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적인 느낌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낭만주의자는 허무로 달아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실재를 추구하지만, 그저 실제로 있는 것과는 다른 별개의 실재를 추구하는 것이다.

[* 낭만주의자가 자연적으로 선량한 인간이라는 관념, 원민족, 빛의 자손, 진정한 사제직, 최초의 인류, 고상하고 자연적인 고대적 지혜와 얼마나 친숙한가와는 무관하게, 그리고 이것이 현재에 관한 이들의 낭만적 비판[ihre romantische Kritik der Gegenwart]과 얼마나 종종 연결되는가와 무관하게,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종교적 혹은 신비적 관념은 낭만적 관념과 여전히 다르다. 종교적이고 신비적 관념들, 그노시스적 관념들, 뿐만 아니라 전통주의적 논점들도 낭만적 태도에 봉사하도록 끌어들여졌다. 과거는 현재의 더 나은 기반처럼 보인다. 심지어 현재는 과거의 기생물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시대의 과실로 먹고 산다’(노발리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자산을 탕진하고 있다’(뮐러). 이런 경우 낭만적인 것은 과거를 현재의 부정으로서 사용할 뿐이며, 구체적이고 현재적인[현존적인] 실재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로서 사용할 뿐이다. 이것은 불교적 방식으로 체험되지 않는다[This is not experienced in a Buddhist fashion]. 낭만주의자는 무(無)로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구체적 실재를 추구하지만, 그 실재는 그를 혼란에 빠뜨리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pp.70-71).]

[옮긴이 : 불교 관련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어판의 신뢰도도 떨어지는 편이다.]



여기서도 자세하게 말하면, ‘기생물 Parasit’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독일어의 발음으로 하면 ‘파라지트’라고 하는 편이 옳을 거예요. 


낭만파는 시원의 상태에서의 ‘원-민족 Urvolk’적인 사람들을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자랑한다는 것이네요. ‘참된 사제직 das reine Priestertum’이란 ‘신’과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네요. 


“그들의 현대에 관한 낭만주의적 비판”이라는 표현은 알기 어렵습니다만, 이것은 번역이 곤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어로는 〈ihre romantische Kritik der Gegenwart〉입니다. ‘현대’가 아니라 ‘현재 Gegenwart’이며, ‘그들의’는 ‘비판’에 걸립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그들의 현대’라는 시대가 상정되는 듯이 들리지만, 그렇지 않으며, ‘현재’를 그들(=낭만주의자들)이 ‘낭만주의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의한 낭만주의적인 ‘현재’ 비판”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좋겠죠. 


‘원민족’이라든가 ‘빛의 아이들’, ‘시원의 인류 die Menschheit’는 성서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네요. 다만, 이것들은 신비주의적인 ‘잃어버린 낙원’의 관념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신비주의가 그런 ‘잃어버린 낙원’을 신비적인 의례를 통해 부활시키려고 한 반면, 낭만파는 단순히 ‘현재’ 비판을 위해 ‘이용’하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노시스’란 3세기부터 4세기에 걸쳐 지중해지역에 퍼진, 물질과 영혼의 이원론을 특징으로 하고, 진정한 ‘자기’에 관한 인식(그노시스)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사상입니다. 낭만파는 ‘원민족’적인 것에 관한 플라톤, 그노시스, 혹은 전통주의의 논의 등, 다양하고 상이한 계보의 담론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표면적으로 이것들과 비슷한 대목은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다르다는 것을 슈미트는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낭만파가 그렇게 생생한 원천으로서 ‘과거’를 표상했던 것은 “구체적으로 실제로 있는 실재 die konkrete gegenwärtige Realität”를 감옥처럼 느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게 ‘현재’를 ‘감옥’처럼 보고 탈출하려 하는 태도는 불교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상당히 의문이 드네요. ‘해탈’ 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마도 불교를 제대로 공부한 후에 말한 것은 아닐 겁니다. 


88쪽부터 90쪽까지, 슐레겔의 사상의 핵심어인 ‘아이러니’에 대해 조금 자세하게 해설되어 있네요. 슈미트가, 90쪽에 나오는 자기풍자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사유의 대상을 제3자처럼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것이 ‘아이러니’의 본질이기에, 본래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사유의 주체인 ‘자기’(나) 자신을 아이러니하게 봐야 하지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낭만주의자는 실제로는 자기풍자(Selbstironie)를 피하고,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기풍자 속에 있는 객관화, 주관주의적 환상의 마지막 잔재의 포기라는 것은 낭만적인 입장을 위태롭게 할 것이며, 낭만주의자는 낭만주의자인 한에서 본능적으로 이런 포기는 피한다. 그 아이러니의 공격 목표는 주관에서는 더 이상 없고 주관에 관련되지 않는 객관적 실재였다. 다만 아이러니는 실재를 말살하는 게 아니라, 실재적인 존재의 성질을 보존하면서도 주관에 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이것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보다 높은 진정한 실재에 대한 요구는 이것에 의해 포기되는 것이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두 가지 뜻에 걸친 입장에 낭만주의적인 태도는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 자기-아이러니 속에 놓여 있는 객관화, 주관주의적 환상의 마지막 자취마저 포기하는 것은 낭만적인 상황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낭만주의자는 그가 낭만적인 한에서, 이를 본능적으로 피한다. 그의 아이러니의 표적은 분명히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객관적 실재이다. 주체를 보지 못하는 객관적 실재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실재를 파괴하기로 되어 있지 않다. 반대로 실재적 존재의 성질을 간직하면서 아이러니는 방책으로서의 주체에게 이용 가능하도록 실재를 만들기로 되어 있으며, 또한 주체가 그 어떤 명확한 태도(position)도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식으로 더 높고 진정한 실재에 대한 요구는 포기되지 않는다. 물론, 낭만주의적 주체는 이런 애매한 태도를 오랫동안 견지할 수 없다(p.73).]



“자기의 아이러니 속에 있는 객체화=주관주의적 환상의 마지막 잔재의 포기”라는 것은 조금 어렵겠지만, 이것은 자기 자신을 정말로 아이러니하게 바라본다면, 주관을 뺀 채 자기를 객관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자기를 객관시한다면, 주관주의적인 환상(subjektivistische Illusion)에 몸을 맡길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환상이라는 것을 ≪객관시≫한다면, 환상의 효과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아이러니는 피합니다. 


그래서 ‘주관=자기’가 아니라 ‘주관’에서 멀리 떨어진 객관적 실재, 예를 들어 ‘민족’이라든가 ‘역사’를 아이러니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다만, 아이러니가 너무 효과를 내게 한 나머지 (자신의 상상 속에서 구성된) ‘민족’이라든가 ‘역사’의 실재성마저도 부정해 버린다면, 이번에는 낭만주의적인 상상을 발휘할 대상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핵심들에 있을 터인 ‘실재적 존재의 (성)질 Qualität realen Seins’은 건드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러니’는 상상력을 발휘할 계기가 됩니다만, 아이러니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면, 상상력의 원천이 고갈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주관, 객관 둘 다, ≪스스로≫ 발판이 되지 않습니다. 낭만주의적인 아이러니는 그런 모순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주관주의적 유보가 귀결되는 곳은, 낭만주의는 그것이 추구하는 실재를 자기 안에서도, 공동체 안에서도, 세계사의 발전과정에서도, 그리고 또한 낭만주의적인 한에서, 낡은 형이상학의 신 안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에 대한 동경은 채워질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의 도움을 받아 그는 개별 실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관이 자기방어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했다. 실재 자체는 주관적으로는 획득할 수 없다. 

[* 주관주의적 유보의 결과는 낭만주의자가 추구하는 실재를 자기 자신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세계사의 전개 속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혹은 그가 낭만주의적인 채로 있는 한,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신 속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실재에 대한 갈망은 충족되어야 했다. 아이러니의 도움을 받아, 그는 유일한 실재에 맞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는 주체[주관]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무기에 불과했다. 실재 자체는 주관주의적 방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p.73).] 



즉, 아이러니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나’가, 모종의 ≪실재≫에 근접할 수 있고, 환멸하지 않도록 ‘나’를 방어하는 기능을 할 뿐, 모종의 ≪참된 실재≫에 이르는 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참된 실재≫에 대한 동경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아이러니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슈미트에 따르면, ≪참된 실재≫를 요구하면서도, 거기에서 정말로 도달하려 하지 않는 낭만주의는, 세계의 전부를, 비현실적인 ‘구성물 Konstruktion’,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 ‘형상 Figur’으로 다룹니다. 이 때문에 모든 ≪사물≫이 자의적으로 결부됩니다. 93쪽부터 94쪽까지의 대목을 보십시오. 



모든 것은 점으로 축소된다. 한계 혹은 한정을 의미한다고 해서, 낭만주의자가 그렇게도 거부하는 정의는, 여기서는 내용 없는 점이 된다. 정신이란 … 종교란 … 도덕이란 … 지식이란 … 감각이란 … 동물이란 … 식물이란 … 機智란 … 우아미란 … 초월적이란 … 소박함이란 … 아이러니란 … 모든 대상을 하나의 점으로 귀착시키려 하는 충동은, ‘~에 다름 아닌にほかならぬ’ nichts anderes als라는 말에 의한 무수한 설명이 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뭔가 특별하게 강조된 개념적 한정을 포함하는 게 아니라, 한 점에 응집되는 필연적 동일 판단 apodiktische Identifikation인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아담 뮐러는 모든 사람을 능가하고 있다. 최고의 미는 … ~에 다름 아니며 … 예술은 … ~에 다름 아니며 …화폐는 …~에 다름 아니며 … 통속이란 … ~에 다름 아니며 …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에 다름 아니며 … 적극과 소극은 …~에 다름 아니며 … 전체 세계는 다름 아니라 그것에 다름 아니다 Die ganze Welt ist nichts anderes als nichts anderes. 

[* 모든 것은 점으로 축소된다. 한계설정과 제한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낭만주의자들이 그토록 완벽하게 거부했던 정의는 실체 없는 구두점이 된다. 정신은 … 종교는 … 도덕은 … 지식은 … 감각은 … 동물은 … 식물은 … 재치는 … 매력은 … 초월론적인 것은 … 순박한 것은 … 아이러니는 …. 모든 대상을 하나의 점으로 환원시키려는 충동은 ‘~에 다름 아닌’nichts anderes als이라는 말처럼 사물에 대한 셀 수 없는 설명 속에서 강화된다. 그것은 특별하게 강조된 개념적 한정[한계설정]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점으로 결정화하는 필연적 동일판단 apodiktische Identifikation이다. 여기서 아담 뮐러는 다른 모든 이들을 능가한다. 가장 숭고한 미는 … 에 다름 아니다. 예술은 … 에 다름 아니다. 화폐는 …에 다름 아니다. 통속[인기]이란 … 에 다름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분리[괴리]는 …에 다름 아니다. 적극과 소극은 …에 다름 아니다. 전체 세계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다 Die ganze Welt ist nichts anderes als nichts anderes(pp.75-76)]



낭만파가 ‘정의’를 ‘제약[한계설정]’으로 보고 싫어한다는 얘기는 이미 나왔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사물을 말에 의해 ‘형상’화하고 미적으로 만지작거리려 합니다. 그래서 정의도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정신이란 … 종교란 …”과 “…”을 연결하고 있는 의미를 알기 어렵네요. 원문도 〈Geist ist … Religion ist …〉와 점을 연결하고 있을 뿐, 독일어를 읽어도, 낭만파의 말투를 어느 정도 모르면, 무순 말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은 ‘정의’라고는 말할 수 없는 막연한 형태로 ≪정의≫하는, 그런 사물의 특징이 되고 그런 말을 고를 수 있고 “…이다”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이라면, ‘정신이란 인간의 보다 본질적인 부분이다’라든가, ‘정신이란 진리를 구하는 것이다’라든가, ‘정신은 신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느낌으로, ‘정신’의 ≪본질≫의 기술합니다. 당연히 그런 느낌이라고, 거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거기서 말을 연결하게 됩니다. ‘정신이란 종교의 원천이다’라고 말한다면, 다음은 ‘종교란 …’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연상 게임처럼 “…”이 명확하지 않게 연결되어 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전개한다면, 어떤 곳으로 수렴되거나 어느 정도 예측이 되지만, 하나하나의 말이 독자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점처럼 되어 있고, 점과 점이 닥치는 대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고 수렴되지 않습니다. 〈apodiktisch〉는 처음부터 절대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의미의 형용사로, 철학용어로는 ‘필연·당연적[必当然的]’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뮐러는 그런 말투의 ≪명인≫으로, “~는 ~에 다름없다 nichts anderes als”라는 단언적 표현의 수사학적인 효과를 이용했다는 것이죠. 


낭만파는 그렇게 해서 “a는 b이고 … b는 c이고 …”라는 느낌으로 말을 이어나가고, “무한한 생성”을 상징적으로 연출합니다. 그것이 포스트모던계열의 논의에서는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헤겔이나 슈미트는 그것을 척박하다고 보는 셈입니다. 


97쪽부터 2장 2절이 시작됩니다. “낭만주의의 우인론[기회원인론]적 구조”라는 제목이 붙어 있네요. 다음 번에는 여기부터 시작합시다. 낭만주의는 이 세계가 필연성의 법칙에 의해 구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쇄로 계속 생성하고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는 얘깁니다. 이를 바탕으로 3장에서, 책 제목인 ‘정치적 낭만주의’란 무엇인가를 논하게 됩니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네 번째 부분









<세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국가’와 ‘국민’의 창조 


하시가와 씨는 〈Nation〉을 ‘국가’라고 번역합니다만, 현재에는 ‘국민’이라고 번역하거나, ‘네이션’이라고 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국가’는 〈Staat〉의 번역어로 한다는 것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Nation〉은 언어와 종교, 정치적 의식을 핵으로 하는 문화공동체이고, 〈Staat〉는 통치기구로서의 국가를 가리킵니다. 


“국민이라는 형태에 있어서의 새로운 실재의 용인(인식) die Anerkennung der neuen Realität in der Form der Nation”이 뭔 말인지 딱 하고 와 닿지 않을 수 있으나, 여기서 ‘국민’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것임을 상기해 주십시오. 근대 이전에는 ‘국민’이라는 의식은 명확하지 않았으며, 민중에게는 자신들을 지배하는 군주가 누구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국민’이라는 집합체에 속해 있음을 의식하게 돼서야 비로소 외국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을 깨닫게 되는 셈입니다. 유럽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국민’ 의식이 확산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라고 합니다.


보날은 앞서 말한 대응관계론을, 전통적인 왕제주의와 귀족정치를 잘 보여주기 위해 전개하는 것인데요, 거기에다 ‘국민’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민’이라는 실재를 직시해야 한다는 사상을 품었던 것입니다. 자코뱅파는 사회계약에 의해 결합된 ‘민중’을 실체로 간주하고 일ㄹ 신과 비슷한 위치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이런 것에 반대하는 보날도 ‘국민’을 실체로 간주했다는 것입니다. 



드 메스트르의 경우에도 이 실재의 승인은 마찬가지로 명확했다. 버크 및 보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거듭거듭 개개인이 아무것도 창출하지(schaffen) 못하고 단순히 뭔가를 ‘만들’(machen)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법이나 헌법이나 언어는 인간 공동체의 생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국민은 원래부터 신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의 논증을 더 정밀하게 본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요점이다. 블라카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논증의 진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종교 없이 공중도덕과 국민적 성격은 없고, 기독교 없이 유럽적 (!) 종교도 없다. 가톨리시즘 없이 기독교도 없으며, 교황 없이 가톨리시즘도 없다.’ … 기독교는 유럽적 종교로 간주되며 … 교황제는 국민적 성격에 있어서 결여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적법화되며, 가톨릭은 프랑스의 국민적 요소로 여겨지며, 또한 한 국가에 제한된 경우는 종교의 실제적 효과는 경험상 발견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국교로서는 부정된다. 국가(nation)는 가톨리시즘[교황권으로부터의 독립지향]을 방기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국민 자체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 드 메스트르의 경우에도 이런 실재의 승인은 마찬가지로 실정적이다. 버크 및 보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개개인이 아무것도 창출할(schaffen) 수 없고 그저 어떤 것을 ‘제조할’(machen) 수 있을 뿐인 반면, 법, 헌법, 언어는 인간사회의 산물임을 거듭 강조한다. 물론 국민은 신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의 논점을 좀 더 꼼꼼하게 검토하면, [다음과 같은] 이것이 결정적인 요점이다. 블라카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논점의 진수를 다음과 같은 용어로 요약했다. ‘종교 없이 공중도덕이나 국민적 성격은 없다. 기독교 없이 유럽적 (!) 종교도 없다. 가톨리시즘 없이 기독교도 없다. 교황 없이 가톨리시즘도 없다.’ … 기독교는 유럽적 종교가 된다. 교황제papacy는 국민적 성격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덕분에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가톨리시즘은 프랑스의 국민적 요소이며, 하나의 국가에 제한된다면 종교의 실천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이 보여주기 때문에 국가 종교로서는 부정될 뿐이다. 국민(nation)은 프랑스식 가톨리시즘Gallic Catholicism을 단념해야 하지만, 이는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pp.60-61).]



독일어의 일상적인 용법에서 〈schaffen〉과 〈machen〉은 둘 다 ‘만들다’라는 의미이며, 엄밀하게 구별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schaffen〉에는 ‘창조하다’나 ‘제작하다’ 같은 예술적 의미가 있으며,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라고 할 때 〈schaffen〉을 씁니다. 〈machen〉은 ‘만들다’라는 의미 말고도 영어의 〈do〉에 해당하는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의문문은 〈Was machen Sie?〉입니다. 그리고 인용부의 문장도 프랑스어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블라카 백작(Pierre Louis Jean Casimir de Blacas, 1771-1839)은 반혁명군에서 활동하고, 루이18세(1755-1824)의 왕정복고기에 장관과 외교관을 지낸 귀족입니다. 


‘법’, ‘국제=헌법 Verfassung’, ‘언어’는 인간 공동체 = ‘국민 Nation’의 산물이지만, 그 ‘국민’은 ‘신’에 의해 ‘창출’됐다는 것이 (슈미트가 기술하는) 드 메스트르의 논의의 요점입니다. 이 경우 “신에 의해 창출”됐다는 것은 신이 전체 인류의 창조주라는 함의뿐 아니라, 교황제를 수반한 교회의 영향·교화 아래서 각각의 ‘국민’의 ‘국민성 caractère national’이나 ‘공공 도덕 morale publique’이 형성된다고 하는 사회이론적인 것도 함의합니다. 드 메스트르 등은 ‘국민’이라는 새롭게 발견된 ‘실재’를 가톨릭적 관점에서 새롭게 의미부여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국민’ 형성에 불가결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내셔널리즘의 시대가 돼서 나온 새로운 주장입니다. 


‘갈리카니슴 gallicanisme’ ― 언어학적으로 세밀하게 말하면, 영어의 〈gallicanism〉은 〈~주의〉와 헷갈릴 수 있지만, 프랑스어의 〈gallicanisme〉은 헷갈리지 않습니다 ― 이란 프랑스 특유의 가톨릭교회 체제를 가리킵니다. 프랑스의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지도 아래에 있는 교회라기보다는 국왕을 섬기는 국가기관의 일부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국교화됐다고 합니다. 루이14세(1638-1715)의 궁정설교사로 ‘왕권신수설’을 설파한 장 보댕(1627-1704)에 의해 이 노선이 명확해졌다고 합니다. 


드 메스트르는 ‘갈리카니슴’이라고 하면, 가톨릭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교황제가 누락되기 때문에, 그래서 ‘프랑스 국민’을 위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갈리카니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한 거예요. 


74쪽에서 초월신을 대신한 (〈Gemeinschaft〉와 나란히) 또 다른 초개인적인 실재, 새로운 조물주(Demiurg)로서 ‘역사 Geschichte’가 상정되기에 이르렀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Demiurg〉란 그리스어의 ‘데미우르고스 demiurgos’의 독일어형으로, 원래는 ‘장인’의 의미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이데아계를 모방해 이 물질세계를 만든 조물주로서 등장합니다. 


‘역사’는 ‘진보’라는 관점에서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일도 있으나, 그 반대로 그때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오랜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했던 유기적 실체로서의 ‘민족 Volk’의 관점에서 ‘혁명’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일어의 〈Volk〉는 원래 단순히 ‘민중’이라는 의미밖에는 없었습니다만 ― 영어의 〈folk dance〉라든가 〈folklore〉의 〈folk〉와 어원이 같습니다 ― 19세기 이후 한편으로는 정치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민’,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인 문화·관습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이라는 양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말입니다. 


〈Volk〉와 〈Nation〉은 의미가 겹치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Nation〉이 라틴어 어원의 말로, 프랑스혁명-나폴레옹전쟁 당시 프랑스어의 〈nation〉이 프랑스인의 정치적 주체성, 자유로운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사용됐던 적도 있고, 민중의 정치적 의식의 존재방식을 강하게 함의하는,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뉘앙스가 강해졌던 반면, (‘민족’이라는 의미에서의) 〈Volk〉는 일반인들의 전통적 생활방식이라든가, 오랜 기간에 걸친 관습에 기반하여 ― 많은 경우 본인들이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히 몸에 붙인 ― 공동성이라는 뉘앙스로 사용됐습니다. 맑스주의적인 〈Volk(인민)〉도 어떤 의미에서는 생활의 실감에 기반한 ‘공동체’죠. 


75쪽부터 76쪽에 걸쳐 반혁명=보수진영에 의한 ‘민족=국민’의 의미부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지속을 따르려 하는 것이 그대로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논의이다. 지속적 존립만이 모든 사태에 이유를 부여하고, 장기성longum tempus이 그대로 궁극적 근거이다. 종교의 국가에 있어서의 의미는 귀족의 가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국가에 지속성을, 따라서 또한 처음으로 실재성을 부여한다는 것 속에 존재한다. 

[* 지속에 대한 호소는 수용된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논점이다. 연속적 지속의 조건만이 모든 사태를 정당화한다. 태곳적 시간 자체는 권리의 궁극적 토대이다. 국가의 경우, 종교와 귀족 가문이라는 양자의 중요성은, 이것들이 국가에 지속을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국가가 그 실재를 획득하기 때문이다(p.62).] 


보날은 ‘실재는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한다. 버크도 세대를 넘어서 지속하는 영속적 공동체로서의 국가의 성격을 재삼재사 논급하고, 분할세습 농지의 정당화의 근거를 그것이 국가 존속의 기초라는 것 속에서 발견하고, 수도원의 토지소유의 그것을 장기간의 전망을 요구하는 원대한 계획을 가능케 하는 것 속에서 본다. 

[* 그리고 보날은 실재가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한다. 버크도 세대를 넘어 확장되는 지속적인 공동체로서의 국민의 성격에 관해 거듭 암시했다. 버크는 국가의 지속이 세습entailments에 의존한다는 사실에서 세습의 정당화를 찾아낸다. 또 교회의 재산소유가 오랫동안 설명해야만 했던 선견지명이 있는 계획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에서 교회의 재산소유의 정당화를 찾아낸다(p.63).]



약간 헷갈립니다만, 처음의 ‘국가’는 〈Staat〉이고, 나중에 나오는 ‘국가’는 〈Nation〉입니다.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영속적 공동체”로서의 ‘국민=민족’이 정치에 지속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종교’가 뒷받침한다는 구도죠. 버크, 보날, 드 메스트르 같은 보수주의 진영의 논객들은 몇 세대에 걸쳐 지속된 공동체인 ‘국민=민족’이 그 지속성과 질서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종교’와의 결탁 덕분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와 전통을 파괴하는 ‘아나키’한 혁명세력에 이론적으로 대항하려 했던 셈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모든 사태에 이유를 부여하고”에서 “이유부여”의 원어는 영어의 〈justify〉에 해당하는 〈rechtfertigen〉이라는 동사로, 정확하게는 ‘정당화’라고 번역돼야 해요. 그 뒤의 ‘궁극의 근거’라는 대목은 〈der letzte Grund〉이며, ‘법’ 또는 ‘옳음’을 의미하는 〈Recht〉이 들어 있기에 ‘정당성의 궁극적 근거’ 혹은 ‘궁극적인 법적 근거’라고 번역하는 편이 좋습니다. 



슈미트의 낭만주의관 54


이렇게 해서 ‘공동체’와 ‘역사’가 보수주의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한 뒤, 이것들을 낭만주의자가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차이를 강조하는 형태로, 슈미트 식의 낭만주의관을 전개합니다. 80쪽을 보십시오. 



18세기 말, 이 낭만주의적 세대는 특히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들 앞에는 고전적인 업적을 이룩했던 한 세대가 있었는데, 그 대표자인 괴테에 대해 그들은 흥분한 경이의 열광을 바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창조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의 업적은 비평과 성격묘사(하라크테리스티크*)였다. 그것 이상의 것을 원한다고 했을 경우, 그것은 모두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돌한 계획과 대담한 예고를 행하고, 암시를 하거나 기대하게 하거나, 그 약속의 실현을 기대하면 다시 새로운 예고에 의해 응하고, 예술에서 철학으로, 역사로, 정치학으로, 신학으로 후퇴했으나, 그러나 그들이 현실에 대해 설정한 엄청난 가능성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이런 곤란을 낭만주의적으로 해결하려면 가능성을 더 높은 범주로 설정하면 된다. 세계를 창조하는 자아의 역할을 일상의 현실 속에서 수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원의 생성과 결코 완결하지 않은 가능성을, 그들은 구체적 현실의 제약성보다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현되는 것은 분명히 단순히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이며, 실현의 순간에 그 밖의 모든 무한한 가능성은 차단[除権]präkludieen되고, 하나의 세계가 편협한 현실 때문에 망가지며, ‘관념[이념]의 충만함’이 비참한 결정성의 희생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모든 말해진 말은 이 때문에 이미 진실이 아니며, 한계 없는 사상을 한계짓는 것이다. 모든 정의는 죽임의 기계론적인 것이며, 그것은 무한한 생명을 한정한다. 모든 논증은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유라는 것도 또한 한계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 18세기 말, 낭만주의적 세대는 특히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들은 고전적인 업적을 이룩한 한 세대와 대면했다. 이 세대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인 괴테에 대한 반응으로, 그들이 보여줬던 유일한 생산성이란 존경과 강렬한 열광뿐이었다. 이들의 산출물은 비평과 성격 묘사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이것 너머에 있다고 하는 이들의 모든 허세는 그저 가능성일 뿐이었다. 이들은 당돌한 계획과 대담한 약속을 했다. 넌지시 시사했고 전도유망하다고 했다. 이들이 한 약속이 실현되기를 한껏 기대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약속으로 응답했다. 이들은 예술에서 철학, 역사, 정치, 신학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들이 실재[현실]에 대립시켰던 엄청난 가능성들은 결코 실재[현실]가 되지 못했다. 이런 난점에 대한 낭만적 해법은 가능성을 더 높은 범주로 재현/표상하는 데 있다. 평범한 실재[현실]에서는,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창조하는 자아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들은 구체적 실재[현실]의 제약성으로 결코 소모되지 않는 영원한 생성과 가능성들의 상태를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무수한 가능성들 중 하나만이 실현될 뿐이기 때문이다. 실현의 순간에는, 다른 모든 무한한 가능성들이 미리 차단된다. 하나의 세계는 편협한 실재[현실] 때문에 파괴된다. ‘관념의 충만함’은 비참한 특정성[구체성]에 희생된다. 결국 모든 말해진 말은 이미 허위이다. 이는 무제약적 사유를 제한한다. 모든 정의는 생명이 없는, 기계적인 것이다. 이것은 무한정한 생명을 한정한다(define). 모든 정초는 거짓이다. 왜냐하면 정초와 더불어, 한계 또한 항상 주어지기 때문이다(p.66).]



처음에 자세하게 말해두면, ‘성격 묘사 Charakteristik’에 ‘하라크테리스티크’라고 적혀 있지만, 이것은 아마 실수일 것이며, ‘카라크테리스티크’라고 해야 할 곳입니다. 독일어에서는 〈-ch〉라는 철자는 기본적으로 ‘하’ 혹은 ‘히’로 들리는 마찰음으로 발음하지만, 독일어에서 〈Charakteristik〉는 프랑스를 경유해 들어온 외국어이기에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k〉음이 됩니다. 


독일문학·사상사를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요점은 괴테 등의 직전 세대, 고전주의의 세대가 독일문학의 기본적 스타일을 확립하고 대단한 작품을 많은 산출했으며, [낭만주의자들은*]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을 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피히테의 지식학을 넘어서는 것을 내놓기가 어려웠던 셈입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처럼 괴테의 작품에 ‘비평’을 가하고 ‘비평’을 독립된 장르로 삼고자 한 사람도 있었는데요, 짓궂은 시각에서 보면, ‘비평’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역시 ‘작품’ 본체에 기생하는 것이며, ‘위대한 작품’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격묘사’란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비평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도 그 등장인물을 재현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위대한 작품이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해도, 좀체 떠오르지 않기에, 일단은 “이런 대단한 일을 하겠어!”라는 선언을 내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전망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막연한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처음에는 기대를 모을지도 모르지만, 곧바로 “그건 어떻게 됐어?”라고 질문을 받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면, 공중을 실망시키고, 관심을 끌지 못하므로, “아니, 당신들이 기대하는 상식적인 방식으로 현실화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우리의 인식 방법을 근본부터 변혁하는 방식으로 …”라는 식으로, 더 새롭게 호언장담하는 선언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비평’의 대상영역도, “예술에서 철학으로, 역사로, 정치학으로, 신학으로”라는 식으로 바뀝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네요(웃음). 그보다는 논단의 세계에서 자주 듣는 얘기네요. 


물론 확신이 없는 데도 호언장담이나 일삼고, 나중에 얘기의 초점을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하고, 논점이 흔들리는 놈이라고 낙인 찍혀 버리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논단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 냅니다. ‘가능성’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로 현실화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넘어선 메타 수준에서 나타난다. 즉, 개별 구체적인 것만을 보고 있는 한, ≪현실을 초월한 것=무한한 것≫(=가능성)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사물 사이의 시간적 생성변화나 사물들 사이의 직접·간접의 무한한 다양한 수준의 연결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세계를 포괄하는 ≪커다란 연관≫이 보이게 된다. 그 연관 속에 ≪무한한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출현 방식은 무한하게 다양합니다.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항상 보이는, 그런 ≪커다란 연관≫의 일단을, 상상력을 구사해 파악하는 것을, 낭만주의적인 예술의 목표라고 설정하는 셈입니다. 각자의 자아는 그런 ≪커다란 연관≫을 쫓아다니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표상’하는 것을 통해, 세계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초기 낭만파 자신의 용어로는 ‘발전적 보편성 포에지 eine progressive Universalpoesie’라든가 ‘초월론적 포에지 Transzendentalpoesie’라고 말합니다. 이 경우의 〈Poesie〉는 보통의 의미에서의 ‘문학’, ‘시작(詩作)’뿐 아니라 포이에시스(창작 또는 산출) 작용 일반을 의미합니다. 그리스어의 〈poiesis〉의 원뜻은 ‘만들기’네요. 뭔가 초월론적인 이념을 중심으로 세계 전체를 휘감아 넣는 오토포이에시스(자기산출운동)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런 식으로 메타이론적인 설정을 해두면, “이것이야말로 이상이 현실화된 형태다!”라고 말하며,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어집니다. 오히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에 집착하고,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정하면, 무한한 것의 생성운동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 unzählige Möglichkeiten” 안의 하나만을 ‘실현 realisieren’한다면, 그 ‘실현의 순간 im Augenblick der Realisierung’, 그 밖의 다른 모든 가능성은 ‘차단[除権]=배제 präkludieren’되는 셈입니다. 달리 말하면, 말로 사물을 ‘정의 definieren’하려 들면, ‘한계 없는 사상’이 ‘한계지어’지며, 죽어버리게 됩니다. 〈definieren〉이라는 동사의 〈-fini-〉라는 부분은 프랑스어로 ‘유한한’이나 ‘끝나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바탕에 있는 명사 〈fin〉은 ‘끝’ 또는 ‘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의하다’라는 것은 마침표를 찍어 ‘끝을 내다’, ‘한계짓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슐레겔이나 노발리스는 사물을 한정=유한화하여 인식하는 게 아니라, 무한하게 생성하는 커다란 연관을 메타 수준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합니다. 무한한 것을 시야에 넣기 때문에,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이 슐레겔의 ‘아이러니’입니다. ‘아이러니’에 있어서는 주체와 객체 둘 다가 계속 변용하며, 어딘가에서 고정화되지 않습니다. 슐레겔의 [아이러니 → 무한한 생성]론은, 동시대인인 헤겔(1770-1831)의 변증법과 대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처음의 막연했던 무규정적인 것이 이성에 의한 규정=부정을 겪고, ‘현존재[定在] Dasein’가 되는 것, ‘정신’이 현실화해가는 것을 긍정적으로positive 평가하는 것인데, 슐레겔의 아이러니는 사물을 규정하고 왜소화시켜 버리는 이성의 작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무한정한 채로 계속 생성하는 오토포이에시스에 눈을 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의 고정화를 거부하고, 무한한 생성에 눈을 돌리는 초기 낭만파의 예술론은, 포스트모던계의 예술론, 특히 동일성으로 회수되지 않은 ‘차이 différence’의 운동을 축으로 전개하는 데리다와 들뢰즈(1925-95)의 그것과 통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데리다는 이런 관점에서 초기 낭만파를 평가했습니다. 이런 것은 『근대의 갈등(モデルネの葛藤)』에서 꽤 자세하게 논했습니다. 그런 포스트모던과의 친연성이 발견됐기에, 1980년대부터 독일 낭만파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된 것입니다. 다만,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포스트모던 사상이 겪고 있는 비판을 낭만파도 받기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낭만파의 운동이 시작된 이래, 동일한 비판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반복되고 있는 비판을 요약한다면, “당신은 무한의 생성이라든가 중지상태 등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런 비평을 하고 있는 당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딘가 특정한 지점에 서 있지 않으면, 원래 아무런 인식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건데? 당신 자신이 사물을 한정하고, 이성적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것, 쓰는 것에는 아무런 정당화의 근거도 없지 않은가? 당신은 자기 자신의 담론,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되겠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얘기네요. 좀 더 투박하게 요약하면,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슐레겔 등과 동시대에, 이런 수법을 사용해 비판을 전개한 선봉장이 헤겔입니다. 『정신현상학』(1807)에는 분명히 슐레겔이나 노발리스를 염두에 두고, 낭만파의 정신의 불안정성을 야유하는 대목이 있으며, 슈미트의 동시대인인 맑스주의 미학자 루카치(1885-1971)도 낭만파의 현실 이탈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도 헤겔=맑스적인 낭만주의 비판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그는 초기 낭만파의 예술론의 발상법을 적확하게 이해한 뒤에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지 못한 채로 현실 이탈이라는 딱지를 붙였던 것은 아닙니다. 


우연이지만, 포스트모던 계열의 초기 낭만파 재평가의 실마리가 된 벤야민의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비평의 개념』도 1919년에, 그의 박사논문으로 집필됐습니다. 책으로 간행된 것은 이듬해인 20년입니다. 벤야민은 초기 낭만파의 무한한 생성론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것을, 슈미트는 낭만파의 이론적 얄팍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180도 반대로 평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도 벤야민이 슈미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지닌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제1강의 세번째



낭만파 

약간의 예비지식으로 문학운동으로서의 낭만파에 관해 얘기하겠습니다. 초기 낭만파는 바이마르 근처의 예나에 모여든, 문학가의 동아리였습니다. 주요 멤버는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프리드리히의 형으로 셰익스피어(1564-1616) 등의 번역에 착수했던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1767-1845) 등입니다. 이 두 사람을 슐레겔 형제라고 칭합니다. 프리드리히는 작품의 ‘비평Kritik’이란 저자 자신도 깨닫지 못한 깊은 의미의 층을 발견하고 독해하는 철학적인 행위라고 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평’을 독립된 문학 장르로 확립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번역을 통해 독일어 문체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발리스도 철학적 문예비평가로,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마찬가지로 많은 철학적 ‘단편Fragment’을 남겼습니다. 노발리스는 괴테(1749-1832)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1796)를 의식하고, 안티 마이스터라고도 해야 할 환상소설인 『푸른 꽃』을 썼습니다. 노발리스가 요절한 탓에 미완으로 끝났습니다만. 이와나미 문고에 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원제는 ‘푸른 꽃’이 아니라 〈Heinrich von Ofterdingen〉입니다. 이것은 실재했는지 여부가 분명치 않은 시인의 이름으로, 이 하인리히가 환상적인 자기 찾기 여행을 한다는 설정입니다. 이밖에도 신화와 예술에 대한 철학을 전개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도 이 동아리의 중요 구성원이었습니다. 민화나 전승을 풍자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알려진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도 한때 이 그룹에 속했습니다. 

예나의 낭만파는 노발리스가 일찍 죽자마자, 프리드리히 슐레겔, 셸링 등 다른 구성원이 다른 토양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사실상 해산했습니다만, 방금 말한 브렌타노, 시인 루트비히 아힘 폰 아르님(Ludwig Achim von Arnim, 1781-1831) 등이 참가한 하이델베르크 낭만파, 『그림자 없는 사나이(페터 슈밀레르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1813)로 유명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 1781-1838)나 작곡가로서도 알려지고 자동인형이나 도펠강거(도플갱어, Doppelgänger) 등의 섬뜩한 모티프의 소설을 쓴 에른스트 T. A. 호프만(Ernst T. A. Hoffmann, 1778-1822) 등이 참가한 베를린 낭만파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빈으로 옮겨간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중심으로 빈 낭만파가 형성되고, 그 안에 정치적·보수주의적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슐레겔 등의 초기 낭만파들은 당초, 프랑스혁명에 열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0쪽을 보십시오. 

프랑스혁명, 피히테의 지식학 및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는 세기의 최대 사건이다. 만약 프랑스혁명이 국가들의 역사 속에서 최대이자 가장 주목해야 할 현상으로 봐도 좋다는 슐레겔의 유명한 말은, 그 정치적 의미에 있어서는 독일 부르주아지의 무수히 많은 다른 공감의 표명과 균등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경찰국가의 확고한 안식 속에 있으며 이 사건의 영향을 받아넘기며, 프랑스에서 행해진 추상적 이념의 거친 실현을 다시 [단순히] 관념적인 것의 범위로 되돌렸던 것이다. 그것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슐레겔도 곧장 그 열광을 극복했다. 곧장 그에게는 프랑스혁명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 그러나 낭만주의자 자신의 혁명은, 새로운 종교, 새로운 복음, 새로운 독창성, 새로운 보편예술의 예고였다. 그들의 선언의 대부분은 무엇 하나든, 일상적 현실에서 공개의 장소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행동은 정기간행물이었다. 
[* 슐레겔이 프랑스혁명, 피히테의 지식학,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가 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향이라고 주장할 때, 혹은 프랑스혁명이 민족국가들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값어치 있는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이 말의 정치적 유의미성은 독일 부르주아지의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공감의 표명과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독일 부르주아지는 경찰국가의 평온한 안전 속에서 [프랑스혁명이라는] 사건이 자신들을 침해하도록 허용했으며, 프랑스에서 발생한 추상적 관념의 조잡한 실현을 이상적인 것의 영역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것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는 것이었다. 슐레겔도 자신의 열광을 재빨리 극복했다. 머지않아 그에게 프랑스혁명은 더 이상 충분히 거창한 것이 아니게 됐다. … 그러나 낭만주의자들 자신의 혁명은 새로운 종교, 새로운 복음, 새로운 창조성, 새로운 보편예술을 약속하는 데 있었다. 평범한 현실에서 이들의 선언과 관련되어, 공적 광장에 속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낭만주의자들의 행동은 정기간행물이었다(p.36).]

『마이스터』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가리킵니다. 슐레겔 등과 같은 세대의 독일 지식인들은 정치적으로는 프랑스혁명, 철학적으로는 피히테의 지식학(Wissenschftslehre), 문학적으로는 괴테의 교양소설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인간 이성의 승리를 증명하는 듯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열광은 곧바로 식고, 그들은 더욱더 ≪다른 혁명≫을 모색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내면≫에서의 혁명입니다. 

여기서 쓰고 있는 모양새에서 알 수 있듯이, 슈미트는 그런 낭만주의자들의 열광을 표면적인 것으로 보고, 그다지 평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경멸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원래 표면적으로 이웃나라의 혁명에 열광했을 뿐인 사람들이 이미 식어버리고, 이번에는 뭔가 정신적 혁명 같은 것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는 식으로밖에는 보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느낌의 ≪사상사≫는 현대일본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비꼬는 슈미트의 말투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느낌이에요. 보수 혹은 좌파의 연배가 있는 논객이 “최신의 현대사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경박한 무리는 입으로는 ‘OO혁명’이라고 말하지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려는 의욕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도 비슷하네요. 이 문장을 쓴 당시의 그는 30세 전후의 젊은이이지만, 발상이 어쩐지 늙은이 같네요. 일부러 늙은이처럼 말하며 눈에 띠고자 하는 젊은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으며, 드문 일이 아닌지 모릅니다.  

이에 덧붙여, 뮐러, 슐레겔은 슈미트보다 100년 이상 전의 사상가이기에,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말했는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정말은 낭만파보다도 동시대의 얄팍한 보수주의자들을 풍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성으로부터 곧 멀어지고, 활자뿐인 세계에 자폐한 낭만주의자를 멍청이라고 놀리는 슈미트입니다만, 그는 결코 문학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자신도 문예비평을 했으며, 그의 문체는 법학자치고는 너무도 문학적이기로 유명합니다. 원래 문학을 싫어하는 사람이, 낭만주의자를 비판하기 위한 책을 일부러 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싫어하는 문학을 구태여 조사해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읽다보면 점점 알게 되는데, 슈미트는 낭만파의 비평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에 호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문학의 이론과 정치나 법의 이론은 [거리가*] 멀다고 하는 전제에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문학적 통찰력이나 비평이론 등을, 정치에 곧바로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슈미트는 그런 발상과는 선을 긋는 듯합니다. 그 자신이 문학 체질이라, 더욱 더 시각이 엄격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독일 낭만파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기에, 공통적 특징을 꼽기는 힘들지만, 다소 무리를 써서 요약하면, 칸트(1724-1804)나 피히테의 ‘자아’ 중심의 합리주의적 철학이나 괴테의 교양소설, 계몽주의적인 프랑스혁명의 세 기둥에 일찍이 매료됐던 것에 대한 반동에서 온다고 생각되는,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 자아를 미치게 하는 감성=미적인 것,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관심, 신화나 전승 등에 대한 집착, 정치적 복고주의를 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낭만파의 신봉자나 연구자는 이것을 높이 평가하고, 합리주의적 근대의 한계를 극복할 계기를 발견하려 드는 데, 슈미트는 그런 발상을 하지 않는다, 혹은 하려 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필가Schriftsteller’

슈미트는 ‘문필가Schriftsteller’가 정치에 대해 영향력을 갖거나 행사하는 것에 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냅니다. 

자기를 존경하게 할 줄 알고 있던 겐츠조차도 메테르니히로부터 자주 하인에 대한 주인의 친애감을 생각나게 하는 주정으로 취급되고 있다. 아담 뮐러가 사람들에게서 고려됐던 것은 그의 친구이자 열렬한 보호자였던 겐츠 덕분일 뿐이었다. 빈 궁정의 각료들이 뮐러 및 슐레겔에 대해 제멋대로 푸대접을 받았던 것에 관해서, 선량한 클린코프스트롬Klinkowström은 정당하게도 분노하고 있다. 
[* 자신에 대한 존경을 얻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겐츠마저도 메테르니히는 주인과 하인의 친숙함을 암시하는 우정에 때로 종속시켰다. 사람들이 아담 뮐러를 고려하게 됐던 것은 뮐러의 친구이자 열렬한 후견인인 겐츠 덕분일 뿐이었다. 비엔나 궁정의 각료들이 뭘러와 겐츠[일 : 슐레겔]를 ‘푸대접’한 것에 대해 착한 클린코프스트롬Klinkowström은 정당하게도 분노하고 있다(p.37).] 

듣기 거북하라고 하는 말이네요. 문학·사상사 연구자는 후기의 슐레겔이나 뮐러가 메테르니히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듯이 말하고 싶어 하지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그들의 후견인 같은 역할을 했던 겐츠마저도 메테르니히에게서 하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클린코프스트롬(Friedrich August von Klinkowström, 1778-1835)은 원래 프로이센의 군인이었지만, 군을 퇴직한 후에 화가가 됐습니다. 1811년에 빈으로 이주하면서 예술교사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1814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빈의 낭만파 동아리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문필가’에 속하는 인물이죠. 

33쪽부터 35쪽에 걸쳐, 슐레겔이 메테르니히 아래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애물단지로 취급됐다는 얘기가 주구장창 서술되고 있습니다. “뚱뚱하고 걸신들렸다korpulent und eßlustig”라든가, ‘뚱땡이Korpulenz’ 같은 심한 말을 하고 있죠. 게다가 그와 뮐러의 관계에 관해 적고 있습니다. 

더구나 누구도 진지하게 그를 정치가로서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교황제, 교회, 귀족에 관한 그의 이념이, 정치적으로도 또한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그는 결코 아담 뮐러에 비견될 수 없었다. 그는 평소 같으면 아담 뮐러를 자신의 정신적 수행자(随行者)로서 취급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그[뮐러]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그림자’라는 전반적인 판단이 행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1815년 이후 라이프치히 주재 오스트리아 총영사였던 뮐러는 기민하고 부지런하게 단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냈다. 
[* 더욱이 누구도 진지하게 그를 정치가로서 존중하지 않았음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교황제, 교회, 귀족에 관한 그의 이념이, 정치적으로도 또한 진지하게 고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만 이 점에 있어서 그는 결코 아담 뮐러에 필적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라면 아담 뮐러를 자신의 정신적 수행자로 취급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그[뮐러]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그림자’라는 전반적인 판단이 행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1815년 이후 라이프치히 주재 오스트리아 총영사였던 뮐러는 기민하고 열성적으로 단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냈다(pp.39-40).] 

사상적으로는 슐레겔이 빛이고 뮐러가 그림자이지만,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면에서는 뒤바뀌었다는 거죠. 뮐러는 나름의 지위를 획득했고, 귀족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뮐러라도 해도, 슈미트는 정치적 실천에 있어서는 ‘메테르니히의 무조건적 앞잡이’라고밖에는 평가하지 않습니다. 국가론이나 경제학에 의해 현실정치에 영향을 줬다고는 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제1장의 마지막 49쪽까지, 뮐러의 행보에 관해 꽤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죠. 그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eist, 1777-1811)와 함께 잡지를 간행했다든가, 프로이센의 재상 하르덴베르크(Karl August Fürst von Hardenberg, 1750-1822)에게 아첨하려 했으나 잘 안 됐다든가, 티롤(Tirol) 지방의 ‘오스트리아화Austriacisierung’를 위해 이 지역에 파견된 임시지방장관의 언론고문을 역임했다든가, 흥미로운 내용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49쪽의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이것이 뮐러의 생애를 오랫동안 추적한 뒤에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가 가톨릭이었다는 단순한 사실은, 그를 낭만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가톨릭교회가 낭만주의자의 관심거리가 됐다고 해도, 또한 그 예배 속에서 낭만주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다른 세계적 권력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의 주체 및 담지자인 적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 아무튼 그가 가톨릭이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를 낭만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이 통속적 개념규정은 낭만주의를 낭만화된 대상과 합체시키려는 호사가들의 결과로서만 설명된다. 가톨릭교는 낭만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자주 낭만주의자의 관심 대상이었는가와 무관하게, 또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주자 낭만주의적 경향을 사용했는가와 무관하게, [대문자] 교회 자체는 낭만주의의 주체와 담지자인 적이 없었다. 이는 다른 모든 세계권력의 경우와 마찬가지일 뿐이었다(pp.49-50).] 

낭만주의가 가톨릭교회의 예배 양식 등에서 신성한 것을 찾아내고 관심을 갖는 경우는 있었으나, 그것은 가톨릭 자체에 낭만주의적인 체질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교회 자체는 과거의 아름다운 세계에 관한 낭만주의적 몽상에 젖어들지 않는다. 슈미트는 낭만주의자가 가톨릭을 제멋대로 짝사랑하고, 교회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 낭만주의는 가톨릭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 일본에 무리하게 적용시켜 생각하면, 일본의 전통이라든가 잘 알지도 못하는 보수주의자가 황실이나 신도(神道) 등을 애니메이션의 세계관과 동일한 리듬으로 추켜세우고 있는ノリで持ち上げている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런 것이 나오면,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화를 내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는군요. 슈미트는 가톨릭으로, 드 메스트르나 보날처럼 가톨릭적 전통을 중시하고 있기에, 아무튼 신비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함으로써, 가톨릭교회를 그 본래적 전통과는 관계없이, 적당히 추켜세우는 낭만파를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앞으로 슈미트의 텍스트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이론이 반드시 가톨릭에 고유한 교의, 예를 들어 아무런 원죄도 없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이라든가 성인 숭배, 교황의 무오류성, 일곱가지 성사의 의미부여 등에 의거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톨릭교회가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모델로 삼아 근대국가의 법질서를 구상하려고 한 것에 특징이 있습니다. 교리보다 조직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국국교도이자 영국국교회와 국가의 결탁에 의한 영국의 국가체제=헌법(constitution)의 전통의 안정성을 강조한 버크를 평가하는 이유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질서’ 형성·유지력에 법학자로서 주목하는 슈미트로서는, 경박하게 가톨릭에 관심을 가진 낭만파와 도매급으로 취급되길 원치 않았던 거죠.

[* 옮긴이 : 일곱가지 성사. 1) 한 생명이 모태 속에 있다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세례성사). 2)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성장한다(견진성사). 3)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양 섭취가 필수적이다(성체성사). 4) 때가 되면 남녀가 한몸을 이루거나(혼인성사) 5) 특별한 불리움을 받기도 한다(신품성사). 6)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많은 잘못과 죄를 범하고 치유를 받는다(고해성사). 7) 어느덧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지며 병고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병자성사). http://www.kcincy.org/index.php?mid=Ecclesiae]


‘실재’ 개념 ― ‘리얼리티의 구축La recherche de la Realitié’

2장 「낭만주의 정신의 구조」에서는 슐레겔, 노발리스와 보날이나 드 메스트르의 이론 등을 소개하면서 양자의 차이에 관해 매우 자세하게 말합니다. 1절 제목은 “리얼리티의 추구 La recherche de la Realité”로군요. ‘실재’ 개념이 문제 되는 셈입니다. 

우선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초월적 신을 추방하고, ‘자아’ 중심의 세계관을 수립한 근대철학이 자신의 보루로서 새로운 초개인적인 실재를 추구하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자아’가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범위는 좁게 한정되기 때문에, 세계 전체를 파악하려 들면, 아무래도 그 실마리로서 ‘자아’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실재하는 것으로서 상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무엇인가≫와 자신(나)을 동일시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민족과 국민, 인류 같은 ‘공동사회(공동체) Gemeinschaft’ ― 2판에서는 ‘인간사회 die menschliche Gesellschaft’라는 표현으로 바뀝니다 ― 가 실체시됩니다. 

71쪽을 보시죠. 프랑스혁명을 지도한 자코뱅파의 국가관에서 그런 형이상학적 전제가 들어 있음을 보날이 간파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보날은 그의 기독교적 국가철학의 입장에서 1793년의 자코뱅주의 자체 속에서 무신론 철학의 발현을 인정했다. 그는 신에 관한 신학적·철학적 견해와 정치적 사회질서 사이의 유비관계를 논구하고 있으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해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우선 인격신에 관한 일신론적 관점에는 군주제의 원리가 대응한다. 즉, 그것은 가시적인 섭리로서의 인격적 군주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외적인 신에 관한 이신론적 가정에는 군주제적 민주주의의 憲制가 적합해야 할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의 국왕이 세계에 있어서의 이신론의 신과 마찬가지로 무력하다고 간주된 1791년의 헌법에 의한 憲制는 그것이다. 이것은 보날에게 있어서는 이신론이 숨겨진 무신론인 것과 마찬가지로, 숨겨진 반왕제주의였다. 그러나 1793년의 ‘데마고기쉬한 아나키’에 이르러서는 공공연한 무신론이며, 신도 없으면 국왕도 없었다. 이것이 그의 해답이다. 
[* 보날은 자신의 기독교적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1793년의 자코뱅주의를 무신론적 철학의 발현으로 봤다. 그는 신에 관한 신학적·철학적 관념과 정치적 사회질서 사이의 유비를 해명했다. 이는 군주제적 원리가 인격신이라는 일신론적 관념에 대응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시적인 섭리로서의 인격적 군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군주제적-민주적 구성constitution은 초월적 신이라는 이신론적 가정에 순응해야 한다. 1791년의 헌법Constitution이 하나의 예이다. 이것에 따르면, 국가에 있어서 왕은 이신론의 신이 세계에서 그러하듯이 무기력하다. 보날에게 이것은 이신론이 비밀스런 무신론crypto-atheism이듯이 비밀스런 반왕실주의cryptoantiroyalism이다. 하지만 1793년의 ‘데마고기적 아나키’는 무신론에 열려 있었다. 즉, 신도 없고 왕도 없는 것이다(p.60).]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조금만 보충 설명하겠습니다. 프랑스혁명은 1789년 7월 14일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과 그 뒤에 이어진 국민의회의 「인간 및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시작됐습니다. 1791년의 헌법이란 91년 6월, 국왕이 프랑스 국외로 도망을 꾀했으나 실패한 후 의회가 제정한 입헌군주제의 헌법으로, 왕제(王制)의 존속은 인정하나 왕은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 장관의 임명 등의 정해진 일을 하는 행정상의 직책으로 규정됐습니다. 이제 신성한 왕이 없어진 셈입니다. 이 헌법에 근거하여 10월 선거에서 입법의회가 선출되지만, 국내의 소요나 외국의 간섭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92년 9월에 이 의회와 헌법은 폐지되고, 새로운 선거법에 근거하여 국민공회가 선출됩니다. 이 국민공회가 왕제의 폐지와 공화제의 수립을 선언합니다. 93년 1월에는 국왕과 왕비가 처형되고, 6월에는 자코뱅파가 온건한 지롱드파를 국민공회에서 쫓아내고 공안위원회 등의 특수한 기관을 통한 자코뱅 독재정치가 시작됩니다. 그것을 ‘데마고기쉬(선동정치적) 아나키 demagogische Anarchie’라고 부르는 셈입니다. 

보날은 “신에 관한 철학적·신학적 견해”와 “정치적·사회적 질서” 사이에 대응관계가 있다고 보고, 프랑스혁명을 분석하고 있지요.

일신론의 인격신  - 인적 군주에 의한 통치
     ⇓                    ⇓
   이신론        - 군주제적 민주제의 헌제 (1791년 헌법)
     ⇓                    ⇓
   무신론        - 자코뱅주의의 민주제 

왼쪽의 그림 같은 대응입니다. ‘이신론 Deismus’이란 일단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신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적 인격신, 하나님 아버지 같은 것이 아니라 우주를 관통하는 이성적 법칙의 총체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신론의 신은 일단 우주가 만들어지면 그것에 기적이라는 형태로 개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날은 그와 같은, 자신이 만들어 낸 법칙에 묶여서 무기력해진 신과 실권을 빼앗긴 입헌군주제의 왕이 대응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1791년의 헌법 때 정부가 이신론을 신봉하고 있고, 93년의 정부가 무신론에 의해 지배됐다는 단순한 대응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코뱅파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94)는 정권을 장악하면서부터 이성숭배와 같은 의례, “최고 존재의 축제 la féte de l’être supréme”를 실시합니다. 보날이 말하는 것은 전체적 경향으로서, 인격신의 그림자가 옅어져 간다는 것과 급진적인 민주제로 이행하는 것이 평행적 관계에 있다는 거죠.

이 ‘종교사회와 정치사회라는 두 개의 사회의 원리에 있어서의 동일성’은 셀 수 없이 많은 신학적 개념과 법학적, 특히 국법학적 개념 사이의 방법론적 동일성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 라이프니츠에 의해 설파된 신학·법학 평행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 모든 다른 사항에 관해서도 갖가지 유비관계를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국가 및 사회에 관해서도 그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신지학적(神智学的) 및 자연철학적인 어린애 장난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 동일론은 왕제주의(royalismus*)와 귀족정치의 웅호를 행하려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국가(nation*)라는 형태에서의 새로운 실재의 용인을 포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날은 여기서도 그의 사상 전체, 감정 전체에 있어서 역시 프랑스인이며, 국가주의자(nationaliste)였기 때문이다. 
[* 이런 ‘종교사회와 정치사회라는 두 사회의 원리에 있어서의 동일성’은 무수한 신학적 개념과 법학적, 특히 헌법[학]적 개념의 방법론적 동일성 속에서 정당화된다. 이것은 ― 라이프니츠가 수립한 철학과 법률학jurisprudence 사이의 평행관계와 마찬가지로 ― 다른 모든 것에 관해서 다채로운 유비를 찾아내려고 하듯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도 다채로운 유비를 찾아내는 신지학theosophy과 자연철학의 천박함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동일성은 군주제와 귀족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됐다. 하지만 이것은 민족의 형태에 있어서 새로운 실재의 승인을 포함했다. 1796년 현재, 보날이 데카르트와 말브랑슈에 대해 퍼부은 비난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뤄진다. 즉, 그들은 본질적인 것, 즉 인간 사회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와 역사, 이것이 실재인 것이다(p.60).]

[옮긴이 : 영어판에는 마지막 구절인 “왜냐하면 보날은 여기서도 그의 사상 전체, 그의 감정 전체 있어서 여전히 프랑스인이며, 국가주의자였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없음에 유의하라.]

작은따옴표는 프랑스어에서 인용한 것으로, 〈identité dans les principes des deux sociétés, religieuse et politique〉입니다. “신에 관한 철학적·신학적 견해”와 “정치적·사회적 질서”의 대응관계는 학문적으로 말하면, 신학과 국법학[헌법학*]의 방법론적 동일성인 거죠. 이 점은 『정치신학』에서 슈미트 자신이 자세하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신학과 법학의 대응관계에는 역사적·구조적 필연성이 있다고 보는 셈입니다.

라이프니츠(1646-1716)는 알고 계시겠네요. 모나드(단자)론으로 유명한 철학자로, 미적분을 이론화한 수학자이기도 합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라이프니츠도 다른 자연철학과 마찬가지로, 신지학神智学과 마찬가지로 낮게 평가되어 있네요. 신지학(Theosophie)이란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영매사靈媒師로 활동했던 헬레나 블라바츠키 부인(Helena Petrovna Blavatsky, 1831-91)이 창설한 신지학협회에서 시작되는, 영적 세계와의 교신을 통해 참된 앎에 이르고자 하는 신비주의 사상운동입니다. 슈미트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만물 사이에 [마이크로코스모스-매크로코스모스]적인 조응관계, 예정조화가 있다고 처음부터 상정하고, 이를 ≪찾아내는 데≫ 만족하는 듯한 유치한 사상과, 보날이나 자신이 말하는 법학과 신학의 대응관계 얘기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법학과 신학의 방법론적 동일성에 대해 슈미트는 학문적인 확신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블라바츠키 부인




<계속>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http://nomadist.tistory.com/423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첫 번째 부분


들어가며

과연 어둡고 위험한가?

칼 슈미트는 결정을 못하는 정치를 뭐라고 하는가?

 

2012년 봄 무렵부터 매스컴의 정치보도에서 결정을 못하는 정치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구체적으로는 여당인 민주당의 내분과 중의원 및 참의원의 갈등 때문에정권이 중요한 정책에 관해 방침을 결정할 수 없고, ‘정치가 정체되게’ 됐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정을 못하는 정치를 비판하는 저널리스트들이나 평론가들은 결단할 수 있는 정치가에 대한 기대를 입에 올린다평소에는 자유주의적·좌파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애국심이나 공공심에 뿌리를 둔 국민의 생활이 으뜸 정치라고 역설하고보수파 정치인의 리더십이나 돌파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처럼 발언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런 지도자’ 대망(待望)론은 민주주의의 한계론과 자주 결부된다상이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의회에 모여 끝없이 이야기하는 곳에서는 본래적 의미에서 누구나 납득하는 합의를 형성하는 것 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민주주의라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결단력이 있는 지도자에게 맡겨서 위기를 극복하면 좋다는 논의이다이런 사고방식을 결단주의라고 한다다만, ‘결정해주는 지도자에 대한 기대를 막연하게 말하는 논객들은 결단주의가 정치철학정치사상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진심으로 생각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결단력 있는 정치가가 민중과 대화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낙관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 결단주의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부여함으로써 결단주의의 대명사가 된 사상가가 있었다헌법학자법철학자인 칼 슈미트이다역사상 처음으로 사회권을 헌법에 도입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조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바이마르 체제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음을 간파한 슈미트는 문제의 뿌리를 파고들었다고대의 공화제에서 유래한 독재론이나 가톨릭 보수주의계열의 정치신학프랑스혁명 이후의 헌법제정권력론맑스주의의 혁명론 등의 연구를 통해 그는 이나 정치의 근저에는 친구와 ’ 사이에 선을 긋고 통상=규범성을 산출하는 결단이라는 행위가 있음을 밝혔다.


가톨릭 보수주의를 기초로 하는 그의 질서사상은 나치식 민족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곳도 있었으나한때 나치정권을 옹호하는 법학자의 대표로 치켜세워졌기 때문에나치의 계관법학자로 불리게 되며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위험하다고 여겨졌다그러나 그의 이론적 영향을 받은 독일 안팎의 법학자나 정치철학자가 적지 않으며정치적으로 보면 슈미트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는 혁명적 좌파들도 그의 결단론이나 친구/론을 종종 참조한다마루야마 마사오도 천황제의 특수성을 논하는 맥락에서 슈미트의 국가론을 인용한다. 1990년대 이후는 데리다아감벤무페 등 포스트모던 좌파 논객들의 텍스트에서 슈미트의 이론이 거론되었다.


정치적인 것의 숨어 있는 배타적인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고 친구/’ 대립을 부각시키는 슈미트의 담론은 어디가 매력적인가여러 가지 입장의 슈미트 연구자해석자가 있기에, [이 질문에는*] 몇 가지 대답이 있을 것인데,내 관점에서 한마디로 정리한다면우리의 사회를 가장 깊은 곳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 어두운 측면(dark side)을 철저하게 해명하고보편적인 법의 이상이 지닌 모순을 차례차례 폭로하고이를 현실의 정치정세 분석에 응용한 곳에 그의 굉장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군사광적인 흥미착각 때문에 슈미트 팬이 된 사람도 있겠지만,그런 것은 무시해도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한계나 결단력을 쉽사리 입 밖에 내기 전에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20세기의 가장 위험한 법학자의 눈을 통해 제대로 다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2011년 10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총7(보강도 포함)에 걸쳐 연합설계사 이치가야 건축사무소에서 행했던 연속강의 칼 슈미트의 내용을 토대로적절하게 제목을 넣어 구분한 형태로 편집한 것이다.


문장으로 만들 때 정확을 기해야 할 대목에는 손을 댔지만강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구어체를 유지했다.또 질문도 강의 내용에 입각했을 경우에는 편집해서 수록했다.


강의에서 텍스트로 주로 참조됐던 것은 칼 슈미트 저작집(カール・シュミット著作集)(慈学社出版), 정치적 낭만주의(政治的口マン主義)(未来社), 정치적인 것의 개념(政治的なものの概念)(未来社), 정치신학(政治神学)(未来社), 육지와 바다()(慈学社出版)에 수록된 번역 및 해당 원문을 적절히 참조했다.


 

관람하신 회의장의 여러분협력해주신 연합설계사 이치가야 건축사무소 직원들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집부)



[옮긴이]


1. 이 책에서 슈미트의 글을 인용한 부분은 일본어 번역본을 그대로 따랐다일본어 번역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저자인 나카마사 마사키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이다다만 이런 경우에도 영어 등의 판본을 통해 새롭게 번역한 문장을 [* ] 안에 집어넣었다.


2. 정치적 낭만주의는 영어판을 참고했다. Carl Schmitt, Political Romanticism, trans., Guy Oakes, The MIT Press, 1986.


3. 본서의 원본에는 외국어가 ( ) 안에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있다따라서 이것은 옮긴이가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4. 또한 본서의 원본에는 [ ] 표시 안에 문장이나 단어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따라서 이것은 옮긴이의 것이 아니다옮긴이의 것에는 [ *]으로 표기해뒀다



목차


머리말 : 과연 어둡고(dark side) 위험한가!? 칼 슈미트는 ‘결정을 못하는 정치’를 뭐라고 하는가?


1강. 『정치적 낭만주의』 (1) : 질서 사상

진정 위험한 사상가 / 결단주의 / 왜 지금 슈미트인가? :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 일본인은 어떻게 슈미트를 읽어왔는가? / 칼 슈미트, 그의 사상의 변천 / 『정치적 낭만주의』를 읽다 : ‘정치적 낭만주의’란 무엇인가? / 낭만파 / ‘문필가Schriftsteller’ / ‘실재’ 개념 ― ‘리얼리티의 구축La recherche de la Realitié’ / ‘국가’와 ‘국민’의 창조 / 슈미트의 낭만주의관 / 〈Volk〉의 버추얼(virtual)성, 유동성 / 질의응답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슈미트와 수사학 / 예외상태〈Ausnahmezustand〉 / 가톨릭 보수주의 / ‘나’를 둘러싼 낭만파의 사고 /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정면≫비판 / 포스트모던 보수주의 / 낭만파 사상의 철학적 배경 / ‘눈에 보이지 않는 힘’ : 비밀결사geheime Bünde와 음모론 / ‘우인론Occasionalismus’ 또는 기회원인론 / 고차적인 제3자 / 스피노자주의 : 낭만주의적 ‘나’ / 헤겔주의와 〈über-listen〉 ‘이성의 간지’ / 낭만주의의 정신구조와 피터마이어적 속물성 / 낭만주의적 사고 vs ‘법’과 ‘정치’ / 버크와 낭만주의 / ‘무한한 대화’는 정치적 공론장으로 비약할 수 없다!? / ‘정치적 낭만주의자ein politischer Romantiler’ vs ‘낭만주의적 정치가ein romantischer Politiker’ / 국가와 신 / 낭만주의자의 ≪속임수≫ / 질의응답


3강. 『정치신학』 (1) : 주권자, 법-질서와 예외상태

바이마르 체제와 슈미트 / ‘독재 Diktautur’ / 슈미트의 ‘독재’ 해석 /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자를 가리킨다.’ / 법학적 사유의 세 종류 : ‘규범주의 Normativismus’, ‘결정주의 Dezionismus’, ‘제도적 유형 der institutionelle Typ’ / 슈미트의 삼위일체 사고 ― ‘국가 Staat’, ‘운동 Bewegung’, ‘민족 Volk’ / 법의 ‘중립성’ 비판 / ‘주권자’의 본질 / ‘극한영역 die äußerste Sphāre’ 혹은 ‘한계상황 Grenzfall’ / ‘최고로 (그것 이외의 것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 지배권력 höchste, nicht abgeleitete Herrschermacht’ / 아감벤 : 호모 사케르와 예외 / 보댕의 주권론 / ‘법-질서 Rechts-Ordnung’ / 결정 / ‘생명의 관계들에 있어서 정상성=질서’ / 주권이라는 이름의 ‘권력 Macht’ / 과연 ≪순수한 법의 논리≫는 현실의 질서와 일치할 수 있는가 / 단체론(Genossenchaftstheorie) / ‘최종심급’ / 법과 형식 / 질의응답


4강. 『정치신학』 (2) ― 누가 법을 만드는가? 혹은 ‘최후의 심판’

켈젠 비판 / ‘세계관 Weltanschauung’과 ‘국제법 Völkerrecht’ / ‘법적 결정 die rechtliche Entscheidung’ / 홉스와 슈미트 :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 / 누가 결정하는가? / 법과 자연법칙 / ‘법학 개념의 사회학’ / ‘유심론적 역사철학’과 ‘유물론적 역사철학’ / 세계관과 사회의 기본구조 / 신 없는 시대 : ‘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 〈Vox populi, vox Dei〉 / 하르마게든의 싸움 : 독재 vs 민주주의, 아나키 / 반신학적 독재론 / 질의응답


5강. 『정치적인 것의 개념』 (1) : ‘친구 Freund / 적 Feind’, 그리고 타자

‘제3제국의 계관법학자 Kronjurist des Dritten Reiches’ / ‘올바른 적 hostis justus’과 ‘유럽 공법 Jus publicum europaeum’ / ‘정치적 politisch’이란 무엇인가? / ‘국가 Staat’와 ‘사회 Gesellschaft’ / ‘판단기준 Kriterien’ / ‘친구/적’의 구별의 본질 / ‘적’ : ‘공적 öffentlich’ 전투상태에 있는 상대 / ‘국가정치적 staatspolitisch’ / ‘정치적 결정 die politische Entscheidung’ / ‘인류의 최종궁극전쟁 der endgültig letzte Krieg der Menschheit’ / ‘결단’ : ‘주권’과 ‘정치적인 것’ / 질의응답


6강. 『정치적인 것의 개념』 (2) : 정치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국가 ― 다원적 정치의 단위 / ‘결정적 단위’ / ‘교전권’ / 내적과 내란 / 정전론 / 세계평화는 가능한가? / ‘정치적인 것’ → 국제사회의 다원성 / ‘인류 Menschheit’는 전쟁할 수 없다!? / ‘동맹 League-Bund’ / 철학적 국제관계론 / 인간이란? / 자유주의는 ‘정치적인 것’을 길들일 수 있는가? / 참된 정치이론 : 인간의 본성이 ‘악’이며 ‘위험’ / 법과 정치 /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der individualistische Liberalismus’의 불가능성 / ‘비군사적․비정치적 개념들’로서의 자유주의 / 역사철학과 ‘산업사회 industrielle Gesellschaft’로의 전환 / 질의응답


7강(보강). 『땅과 바다 : 세계사적 일고찰』 : 공간혁명과 ‘인간존재 menschllche Existenz’

슈미트의 세계사관, 신화적 세계관 / 대지의 의미론 / 리바이어던과 비히모스의 싸움 : 땅과 바다의 근본적 대립 / ‘카테콘 Katechon’ : 신화적 상상력과 세계사의 관계 / 기술․포경․해적 : 바다라는 요소를 둘러싼 흥망사 / ‘공간혁명 Raumrevolution’ / ‘질서 Ordnung’로서의 ‘대지의 노모스 Nomos der Erde’ / 토지취득경쟁과 종교전쟁 / ‘땅’에서 ‘바다’로의 ‘기본요소’의 변동 : 영국의 해군력과 ‘기계 Maschine’ / 공중의 시대 : ‘지구의 노모스 Nomos der Erde’의 근본적 변화 / 공간무기 / 새로운 노모스와 ‘인간존재 menschliche Existenz’ / 질의응답 


맺음말 : ‘결단’에 관해 제대로 사고하라! 

 




1정치적 낭만주의』 (1) : 질서 사상

 

 

주관주의적 유보가 귀결되는 곳은낭만주의는 그것이 추구하는 실재를 자기 안에서도공동체 안에서도세계사의 발전과정에서도그리고 또한 낭만주의적인 한에서낡은 형이상학의 신 안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실재에 대한 동경은 채워질 필요가 있다아이러니의 도움을 받아 그는 개별 실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하지만 그것은 주관이 자기방어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했다실재 자체는 주관적으로는 획득할 수 없다.

[* 주관주의적 유보의 결과는 낭만주의자가 추구하는 실재를 자기 자신 속에서공동체 속에서세계사의 전개 속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혹은 그가 낭만주의적인 채로 있는 한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신 속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그렇지만 실재에 대한 갈망은 충족되어야 했다아이러니의 도움을 받아그는 유일한 실재에 맞서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는 주체[주관]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무기에 불과했다실재 자체는 주관주의적 방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p.73).]

― 『정치적 낭만주의

 


진정 위험한 사상가


 먼저 칼 슈미트(1888~1985)는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만 얘기하겠습니다주로 바이마르 시기에 활약한 독일 법학자로전공은 헌법학 혹은 법철학입니다. ‘정치의 본질에 관해 말한 저작이 많기에 정치철학자로 간주되기도 합니다그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동조했던 것은 아니나의회제 민주주의의 약점을 비판하고비상사태에서 대통령의 독재권을 명확히 할 것을 주장하는 등나치의 정권수립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논의를 전개하고나치 시대에는 베를린대학교의 법학부 교수에 취임한 것 외에도한때 나치의 법학부문의 리더 같은 역할을 맡았습니다전후(戰後)에는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됐지만 기소는 면했습니다.


나치시대에 나치에 협력한 법학자법률가는 많이 있습니다슈미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도 있습니다.가령 변호사·법학박사인 빌헬름 슈투카르트(Wilhelm Stuckart, 1902-53)는 인종주의적인 뉘른베르크 법의 작성에 관여하고내무차관까지 돼서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Endlösung’을 결정한 반제회의(1942년 1)에도 참여했습니다슈투카르트와 함께 뉘른베르크 법의 작성에 관여하고관련된 법률을 정비한내무관료 출신의 한스 그로프케ハンス・グロプケ(1898-1973)는 전후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정권의 총리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법학박사로 SS(친위대)에서 활동한 베르너 베스트(Karl Rudolf Werner Best, 1903-89)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Tristan Eugen Heydrich, 1904-42)가 이끄는 RSHA(국가보안본부)의 제1국장으로유대인의 강제수용소 이송에서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하이드리히



슈미트는 나치 정권 초기에는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1936년 무렵부터 SS 등에게서 기회주의라는 비판을 받고베를린대학교의 교수로 머무르긴 했지만정치의 겉 무대로는 나가지 않게 됐습니다이때 슈미트를 비판한 법률가법학교수가 꽤 많습니다이것만 봐도 슈미트가 나치에 경도되기는 했으나 나치와 완전히 동화됐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나치·반유대주의와 슈미트의 관계에 관해서는 사노 마코토(佐野誠)가 쓴근대계몽비판과 나치즘의 병리 칼 슈미트에게서의 법·국가·유대인(近代啓蒙批判とナチズムの病理──カール・シュミットにおける国家・ユダヤ)(創文社)에서 자세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바이마르 후기에 슈미트의 법학적 영향력이 결정적이며전후에도 의회제 민주주의나 보편주의에 대한 원리적 비판자로서독일을 필두로 한 서방국가들의 법률가법학자혹은 혁명가들에게 계속 영향을 줬기 때문에그와 나치의 연결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96)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하이데거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제2제정의 붕괴베르사유 체제에 의해 독일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사람들이 강한 불안을 품었던 때에 존재와 시간(1927)을 내고 한 세대를 풍미했습니다난해한 철학자입니다만군데군데서 존재’ 자체에 주어진 사명을 받아들이고 결의를 하라고 독자에게 촉구하는 듯한신비주의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이 총총 박혀 있기에철학적 내용은 잘 몰라도 감동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명성을 얻은 하이데거는 1933년 4월에 프라이부르크대학교의 총장에 취임하고나치의 당원이 됐습니다총장에 취임하면서 나치의 등장을 철학적으로 의미부여한 듯이 보이는독일대학의 자기주장Die Selbstbehauptung der deutschen Universität라는 악명 높은 연설을 했습니다또 그의 선생이자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철학강좌의 전임자이기도 한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출입을 금지했습니다유대인의 출입 금지는 나치의 방침이지 하이데거 개인의 판단은 아니었지만자기 스승이자 현상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위대한 철학자의 박해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인상이 나빠졌습니다.


다만 하이데거의 총장 취임 후 학내 분규가 계속됐으며, 1934년에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형태로 총장을 사임했습니다그 후에는 나치 이데올로기와는 직접 관계없이자신의 존재론에 기초하여 조국적인 존재론을 탐구하게 됩니다하이데거와 슈미트 사이에는 접점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슈미트는 하이데거의 권유에 답하는 형태로 나치에 입당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문제에 골몰했던 철학자이며나치의 정책입안 및 추진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어서 나치와의 관계는 그다지 깊게 추궁되지 않았습니다패전 후()의 문부장관 명령으로 대학에서 추방됐지만, 51년에는 명예교수로 대학에 복귀했습니다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이 사르트르(1905-80)나 데리다(1930-2004)를 경유하는 형태로현대사상의 본고장이 된 프랑스에서 강해졌던 것도 있고 해서세 차례에 걸쳐 그의 나치 관여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는데요그것 때문에 그의 사상이 금기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슈미트는 법학자·정치철학자의 입장에서 (보통의 의미에서의 독재와는 다르지만) ‘독재를 정당화하고 친구/적의 대립을 부추기는 듯한 논의를 하고 있기에정말 위험한 사상가라는 이미지가 끝까지 따라다녔고대학으로 복귀하는 것도 끝까지 인정받지 못했으며고향인 플레텐베르크(Plettenberg)에 틀어박혀 재야학자로서 집필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슈미트는 정치나 의 본질에 관해 아주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줬으며, 1990년대 이후 좁은 의미의 슈미트 연구자나 신봉자의 틀을 뛰어넘어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사상가특히 포스트모던 좌파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그가 원래 법학자이고 문학이나 신학의 지식도 구사하여 복잡하게 논의했기에법제사나 법철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소양이 없으면그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그 때문에 법학·정치사상사 영역이 아닌 사람은 슈미트 읽기를 약간 주저하게 됩니다또 법학·정치사상사 연구자나 전공자들이 보기에슈미트의 논의는 오늘날 법철학·정치철학에서 논해지고 있는 상식적인 주요 테마인 분배적 정의공통선법실증주의법의 통일성공화주의공공적 이성숙의민주주의온정주의(paternalism), 시민권(citizenship), 다문화주의승인 등과 같은 것에서 많이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과 신학의 관계라든가개개인의 가치와 선택을 넘어선 법질서를 문제 삼고 있기에 꽤 다루기 힘든 것 같습니다슈미트 연구 전문가들이 있는데요자유주의를 전제로 하는 통상적인 법·정치철학과의 궁합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결단주의


1990년대에는 서구에서 슈미트 르네상스가 있었고 그 여파로 일본에서도 약간의 슈미트 붐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 왜 슈미트가 중요하냐와 같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다지 전해지지 않았으며사상 업계 일반에 침투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부터 슈미트 사상의 핵심어인 결단주의가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논해지게 됐습니다논하는 사람들은 결단주의가 슈미트와 관련된 말이라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만.


평론가인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寛, 1978-) 씨의 제로년대의 상상력(ゼロ年代想像力)(2008)에서는 슈미트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결단주의라는 말이 21세기의 제로년대의 하위문화의 이야기성의 변화를 나타내는 핵심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하위문화 작품의 주인공들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이 전형적으로 그렇듯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정말 선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정신적으로 [자기 안에칩거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그것이 제로년대에 들어서자 옳은지는 몰라도아무튼 뭔가 가치에 헌신하겠다고 결단하고 그 방향으로 내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뚜렷해졌습니다그것을 우노 씨는 결단주의라고 부르는 셈이지요.


잘 생각해 보면, ‘결단주의는 묘한 말입니다어떤 것을 정할 때는어떤 형태로든 결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굳이 결단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에 관한 결정의 근거가 없을 때보통이라면 괴로워할 때에과감하게 정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특히 정치에서는 결단이 특별한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많은 사람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현대의 민주주의적인 정치에서는 갖가지 입장의 사람이 각기 그럴듯한 이유어떤 선택지를 고르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전체적으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결정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그런 가운데 결단합니다물론 만인이 무턱대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특정한 누군가가 최종적으로 결단하게 됩니다현대사상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중지상태’ 속의 결단입니다.


프랑스 현대사상의 대명사처럼 된 자크 데리다는, 90년대부터 정치와 법에 관해 적극적으로 말하게 됐습니다그런 가운데 결단이라는 테마가 강조됐으며, ‘결단의 사상가인 슈미트에게도 주목하게 됩니다. 93년에 맑스에게서의 유령의 문제계를 독해한 맑스의 유령들, 94년에 이 정립되는 순간, ‘결단의 순간에 발동하는 폭력을 문제 삼은 법의 힘이 나옵니다법의 힘은 1989년에 데리다가 미국의 카도조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한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이 저작에서는 발터 벤야민(1892-1940)의 폭력비판을 위하여(1921)를 데리다의 관점에서 파고들어 독해하는 것이 시도되었습니다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에 관해서는 졸저 발터 벤야민(ヴァルター・ベンヤミン)(作品社)에서 논했기에 관심 있으신 분은 참조하십시오슈미트와 벤야민은 거의 동년대의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 사상가이지만법학자이고 법제사적 관점에서 정치에 대해 논했던 슈미트와맑스주의에 관심을 보이고 유물론을 미학적으로 재해석한 좌파 문예비평가인 발터 벤야민 사이에는 거의 접점이 없는 듯 느껴지지만벤야민은 자신의 교수자격시험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기원(1928)을 슈미트에게 증정하고,거기에 곁들인 편지에서 슈미트의 저자 중 17세기의 주권론에 관한 서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그 학문적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습니다역사의 개념에 관하여(1940)에서도 슈미트의 예외상태’ 개념을 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르주 소렐(1847-1922)의 폭력론(1908)에 주목하고 높이 평가하는 점에서도 공통됩니다독일사상사에서는 벤야민과 슈미트의 연결이 꽤 전부터 지적됐습니다현대독일의 커뮤니케이션론의 기수로 알려지고벤야민 연구자이기도 한 노베르트 볼츠(Nobert Bolz, 1953-)는 탈주술화된 세계로부터 이탈Auszug aus der Entzauberten Welt(1989) ― 일본어 번역본 제목은 비판이론의 계보학으로 호세대학출판국에서 나왔습니다 ― 이라는 책에서 벤야민과 슈미트의 사상사적 관계에 관해 검토를 가합니다.


이야기를 데리다로 돌리면법의 힘과 같은 1994년에 후기 데리다의 또 다른 주요 저작 우정의 정치학Politiques de l’amitié이 나옵니다일본어로 우애라고 말하면한자가 주는 인상 때문에 애정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받지만프랑스어의 l’amitié에 반드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일본어에서도 사회적 연대라는 의미에서 우애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이 있는데오히려 이런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또 보통의 프랑스어의 용법과는 간극이 있습니다만, ‘우정[友性]’이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집니다이 책에서 데리다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1932)을 플라톤(기원전 427-327), 니체(1844-1900), 하이데거 등과 얽어매면서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친구/의 구별이라는 유명한 논의를 전개합니다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관해서는 이 연속 강의의 5, 6회에서 다룹니다우정의 정치학에서 데리다는 법의 힘에서의 벤야민론을 언급하며슈미트와 벤야민의 관계를 상당히 의식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지금 슈미트인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그러면슈미트가 다시 주목 받게 된 이유는 뭘까요우선하이데거의 경우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나치와 결탁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점차 옅어지는 가운데좌파포스트모던 좌파계의 사람들이 그의 텍스트를 고쳐 읽고좌우를 넘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제기를 재발견하고그것을 자신들의 이론 속에 포함시키게 됐다는 것입니다우파 혹은 좌파라고 생각되고경원시됐던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가열기가 식은 다음에, “이런 것을 말했던가!”라는 느낌으로 재평가되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데리다는 원래 하이데거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으나 90년대에 좌파로서의 자세stance를 드러내게 됐던 것은 하이데거와 나란히 슈미트의 재평가도 한몫을 거들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좌파적 맥락에서 슈미트 재평가에서 중요한 또 다른 사상가로서 샹탈 무페(Chantal Mouffe, 1943-)를 꼽을 수 있습니다벨기에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좌파계의 정치학자로헤게모니론으로 유명한 사람이에요.그녀는 슈미트의 친구/론을 참조하여, ‘정치의 본질을 재고하는 저작을 여러 권 냈습니다대표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의 복귀The Return of the Political(1993), 민주주의의 역설The Democratic Paradox(2000), 정치적인 것에 관해On The Political(2005) 세 편으로모두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슈미트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둘러싼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가치관을 존중하려는 사고방식이며민주주의는 모두가 사물을 결정하고 모두가 그것에 따르는 구조입니다모두의 가치관이 우연히 일치하면 좋지만큰 국가에서는 그건 무리입니다작은 국가에서도엄밀한 일치는 무리입니다마지막은 다수결로 정하게 되므로소수파의 의견은 억압됩니다토론한 끝에 다수결로 지는 것이라면오히려 나은 것인지도 모릅니다다른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의 가치관·세계관으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진 사람들의 의견은 논의의 무대 위에 끼워주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논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며우리의 타자 이해 능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페더러 말하게 한다면, ‘정치란 상이한 가치관을 지닌 집단들이 자기네의 주장을 밀어붙이려 하고 싸움을 벌이는 싸움의 무대(arena*)입니다무대의 크기는 유한하기에밀려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그렇다면밀려난 사람들은 무대의 모양을 바꾸고 자신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설정하려 듭니다이를 위해 싸움을 벌입니다그에 반해,실제로 무대 위에 있고 민주적 토론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모양을 지키려고 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그런 무대를 둘러싼 세력권 다툼입니다무페는 그런 자신의 민주주의관을 경합적 민주주의agonistic democracy’라고 부릅니다그녀의 관점에서 보면공적인 토의를 거듭 축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점점 충실해지고 사회적 정의에 대한 합의가 형성된다고 한 존 롤즈(1921-2004)나 위르겐 하버마스(1929-) 자유주의 좌파의 논의는 속임수입니다민주주의가 타자’ 배제 위에 수립되어 있음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이죠.


중요한 곳에서 속임수를 쓰고 있는 (듯이 무페에게 보이는자유주의 좌파를 비판하기 위해정반대 입장인 슈미트의 논의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일반적으로 급진좌파가 중도좌파를 비판할 경우혹은 그 반대로 급진우파가 중도우파를 비판할 경우좌우대칭의 급진주의즉 의 논의를 빌려 쓴다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간단하게 말하면극우와 극좌는 닮았습니다무페는 일단 민주주의라는 무대 자체는 인정하기에전형적인 급진좌파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슈미트는 여러 저작에서 자유민주주의 제도로서의 의회제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만특히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지위(1923)이라는 저작에서 체계적인 비판을 전개하고 있습니다현대의 의회제 민주주의는 가치관이 다르고 합의가 성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걸고 있다그것에는 의미가 없다민주주의의 본질은 그런 무한한 대화가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Identität’이라는 논의를 전개합니다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려지는 사람의 생각이 처음부터 일치하면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게다가 개인의 가치관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라는 이질적 요소를 들여왔기 때문에 모두가 합의에 이를 때까지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하게 됐습니다.


이런 독특한 민주주의관을 친구/’ 이론과 포개놓으면, ‘친구를 결집시키고 친구만으로 정치적 공동체를 창출하자라는 얘기도 되겠죠. ‘친구가 될 수 없는 존재는 입니다. “얘기를 나누면 알 수 있다고 말하고억지로을 친구’ 속에 집어넣으려 하기 때문에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하고 혼란이 생기게 된다경계선을 뚜렷하게 해야 한다.


무페는 좌파이기에경계선을 그음으로써 을 배제하자는 논의는 받아들이지 않지만슈미트의 민주주의’ 이해가 본질을 찌르고 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내부/외부의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기능한다는 리얼리티/현실에 눈을 돌리고 있음을 평가한 것입니다.


포스트모던 계열의 현대사상은 (이성의내부/외부의 경계선에 구애되며내부에 있는 우리들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은 타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문제 삼았습니다만인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이성적인 것을 추구하면이성적이지 않은 것을 추방하게 됩니다자유민주주의에 의해 만인의 권리를 보장하려 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구조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추방억압하게 됩니다이런 정의를 위한 이성적인 선긋기를 함으로써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되는 타자가 있다는 것을 집요하리만치 문제 삼았습입니다. ‘친구/의 경계선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슈미트의 이론은 타자’ 문제의 본질을 드러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데리다와 무페는 슈미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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