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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5 :: 피히테, <독일 국민에게 고함>
  2. 2008.04.04 :: 한스 켈젠, <민주주의의 본질과 가치>
  3. 2008.04.04 :: 헤겔의 <법철학>에서 의회의 역할과 기능

독일 민족에 대하여
독일 사람의 운명과 근원을 같이 하는 다른 국민의 운명과의 우선적이고 직접적인 차이로 독일 사람이 기간 민족의 원거주지에 살고 있으나 다른 국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것, 또한 독일 사람은 기간 민족 원래의 언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있으나 다른 국민들은 외국어를 받아들여 원래의 언어를 점차로 외국어식으로 개조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최초의 차이로부터 그 후에 생긴 차이, 예컨대 원래의 조국에서는 게르만의 원관습(原慣習)에 따라 한 사람의 한정된 원수 밑에 국가연합이 있으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오히려 종래의 로마식에 따라 국가 조직이 왕국으로 변했다든지 또는 이와 비슷한 일을 설명할 수 있으나, 그 역(逆)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지금 말한 변화 중에서 첫 번째 거주지의 변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어떠한 지역에서든 쉽게 적응하고 민족의 특성은 거주 장소에 의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족의 특성이 거주지를 지배하며 자기 의지대로 변화시킨다. 또한 게르만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자연적 영향의 차이가 그리 큰 것도 아니다. 한편 정복 지역에서 게르만 민족이 원주민과 혼혈한 사정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승리자도 지배자도 혼혈에 의해 성립한 새로운 민족의 형성자도 모두 게르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에서 갈리아 사람, 칸타브리아 사람 등의 사이에서 일어난 혼혈은 모국의 경우에도 슬라브 민족과의 사이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따라서 오늘날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나온 민족 중에서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더욱 순수하다고 쉽게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은 없다.
더욱 중요하고, 내가 믿기로는 독일 사람과 게르만 계통의 다른 국민들을 완전히 대조시킬 만한 근거가 되는 것은 두 번째 변화, 곧 언어의 변화이다. 여기에서 내가 첫째로 단언하고 싶은 것은 독일 사람들에 의해 보존된 언어의 특수한 성질이나 다른 게르만 계통의 국민들이 받아들인 언어의 특수한 성질이 문제가 아니라 저기서는 고유한 언어가 보존되었으나 여기서는 외국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문제이고, 또한 원래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국민의 선조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 이 원래의 언어가 중단됨이 없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점이다. 언어가 인간에 의해 형성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언어에 의해 형성된다고 하는 것이 훨씬 옳기 때문이다.
발성 기관에 미치는 동일한 외적 영향 밑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계속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언어를 발달시키는 사람들을 한 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민족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현재와 같을 수밖에 없었으며, 원래 이 민족이 그 민족적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인식 자체가 민족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동일한 사정에 의해 언어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는 끊임없는 법칙성이 존재하고, 사실상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법칙성이 존재하며, 각 개인이 하는 새로운 말이 만인의 귀에 도달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하나의 법칙성이 있는 것이다.
언어의 성질이 그 민족의 전체적인 인간적 발전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언어는 사고하고 의욕할 때에 그 민족 개개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서 제한을 하거나 또는 비약을 하게 하며, 또한 언어는 이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 통용 범위 내에서 유일하고 공통된 오성에 결합한다. 따라서 언어는 감각세계와 정신세계의 참된 교류점이며 이 두 세계의 끝에서는 언어 자체가 두 세계의 어디에 속하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서로 융합되어 있다.

새로운 교육론
독일 국민에 대한 새로운 교육은 이와 같이 확고하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의지를 확실하고 예외없는 규칙에 따라 확립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교육은 스스로 필연성을 가지고 의도하고 있는 필연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제까지 개선된 사람은 그의 자연적 성향으로 나쁜 환경의 영향을 극복한 것이지 교육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개선되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타락한 사람 또한 이러한 교육 때문에 타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자연적 성향 때문에 타락한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교육을 받은 사람 모두가 타락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종래의 교육은 타락시킨 일도 없으며, 한 일이 하나도 없다. 앞으로의 인간 형성은 이와 같이 막연하고 믿을 수 없는 힘의 손으로부터 신중히 숙고된 기술의 지배 밑으로 옮겨져야 하고, 이러한 기술은 그 기술에 맡겨진 사람들에 대해 예외 없이 그 목적을 확실하게 달성해야 할 것이며, 또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적어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교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확고하고 틀림없는 선한 의지를 형성해주는 확실하고 신중히 숙고된 기술이야말로 내가 제안한 교육이고 이러한 의지의 형성이 이 교육의 목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선량한 인간을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독일 국민은 선량한 인간으로서만 존속할 수 있는 반면 악한 인간이 되면 필연적으로 외국과 합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경우, 선한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러한 자기애 대신에 이와는 다른 사랑, 다시 말하면 선(善) 그 자체와 직접 관계하고 우리들 자신을 위하는 것인 사랑을 우리가 독일 국민으로서 신뢰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심고 그 기초를 다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종래의 교육과 반대되는 새로운 교육을 보다 깊이 설명할 자리에 이르렀다. 새로운 교육은 본래 직접적이고 규칙적으로 발달하는 정신적 활동의 자극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은,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부수적이기는 해도 외부에 머무는 결과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이 장차 어른이 된 다음에 진지한 활동을 하도록 자극하게 될 현실 생활의 상은 이러한 인식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도달해야 할 교육의 본질적 구성 요소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교육이 이러한 인식을 직접 목적으로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인식은 새로운 교육에 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발달은 이기심을 생활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도덕적 의지를 형성시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가 도덕적 의지는 아니다. 새로운 교육이 말하는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은 학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자유 활동에 의해 현실 생활의 도덕적 질서의 상(象)을 자유로이 그리고 이러한 상을 이미 그의 마음속에 발달되어 있는 사랑에 의해 파악하고 그 사랑에 의해 이러한 상이 자신의 생활 속에 그리고 자신의 생활을 통해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전개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지금 우리는 국민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제가 국민 교육에 이르게 되면 교육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어린이들은 다시금 일터에 내보내고 싶다는 빈약한 소망은 더 이상 숨쉴 자리가 없으며, 이러한 소망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앞서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내 생각에 의하면 국민 교육은 별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학교는 비용의 대부분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으며 어린이의 노동에 조금도 지장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린이는 교육이 완성되고 완성될 수 있을 때까지는 무조건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중도에 끝나고 마는 교육은 전혀 교육을 받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런 구태의연한 교육을 바란다면 차라리 중도에 그만두는 교육조차도 아깝게 생각하고 미리 인류를 돕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국민 교육에서 단순한 읽기와 쓰기는 아무 소용없고 오히려 몹시 해로울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직접적 직관으로부터 단순한 기호로, 다시 말하면 직관에 의해 당장 파악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주의로부터 필기에서 위안을 찾고 아마도 직관에 의해서는 배우지 못할 것을 종이 위에서 배우려고 하는 방심(放心)으로, 다시 말하면 문자와의 교섭에 흔히 따르게 되는 몽상으로 오도되기 쉽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사실상 그러했기 때문이다. 교육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비로소 교육의 마지막 선물로서 이러한 기술을 나누어 주면 될 것이다. 학생은 이미 오래 전에 완전히 몸에 익힌 언어의 해부에 의해 문자를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이미 읽기와 쓰기 이외의 교육을 받은 학생에게는 유희와 같은 것이다.
우선 감각을, 다음에 직관을 명석하게 하고 동시에 신체의, 계통적인 기능 교육을 병행해야 하는 아동의 지도는 독일 국민 교육의 첫 번째 주요 부분이다. 직관의 교육에 대해서 우리는 페스탈로치로부터 유용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감각 능력 훈련에 대해서는 페스탈로치도, 또한 이 문제의 해결을 과제로 한 그의 협력작도 안이하고 불충분한 제안을 했을 뿐이다. 신체적 힘의 체계적인 단련에 대한 지시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과제의 해결에 필요한 것은 제시되어 있다. 국민에게 이 과제를 해결하려는 열의만 있다면 해결책은 스스로 발견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교육 전체는 그 두 번째 부분인 시민적 및 종교적 교육을 위한 수단과 예비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적 및 종교적 교육의 기술에 대해 분명한 지시를 하는 것은 독일 국민 교육 일반을 제안하는 철학의 임무다. 그리고 이 철학은 교육의 첫 번째 부분의 완전한 실시 후 이러한 지시가 필요하게 될 때, 비로소 이러한 지시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출생 계급이 사실상 인간의 소질에 어떠한 차이를 유발시키는 것은 아니므로 가장 낮은 계급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여러 대상에 대한 수업, 곧 원한다면 가장 심원한 형이상학을 내용으로 하고 가장 추상적인 사변(思辨)의 산물이어서 학자들뿐만 아니라 사변적인 사람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수업을 모든 학생이 이해한다는 것, 그것도 쉽게 이해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제1단계를 향해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 후에는 경험이 가르쳐 줄 것이다. 이러한 시민적 및 종교적 교육은 끝나고 학생은 해방된다.
지금까지 한정된 교육은 이른바 교양계급이라는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실시되고 협동체 본래의 기반인 대다수, 곧 민중은 이러한 교육 기술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되어 맹목적인 우연에 맡겨져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을 통해 독일 국민을 하나의 전체로, 다시 말하면 하나의 관심을 통해 그 모든 구성원에 의해 움직여지고 고무되는 전체로 만들고자 한다. 새로운 교육은 특수한 계급의 교육이 아니라 단적으로 말해 국민으로서의 국민 교육,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국민 각자에게 실시되는 교육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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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마치 의회주의에서도 민주주의적 자유의 이념이, 그리고 이 이념만이 파탄 없이 표현되기라도 하는 듯한 겉모양을 환기하려고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대표의 의제(擬制)가 도움이 된다. 즉 그것은 의회만이 국민의 대표자이고 국민은 그 의사를 의회에서만, 또 의회에 의해서만 발표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의회주의 원리는 모든 헌법에서 예외 없이 의원은 그 선거인으로부터 아무런 구속적인 지령을 받아서는 안 되고, 따라서 의회는 그 기능에서 국민과 법률상 독립해 있는 것이라는 규정과 결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근대 의회는 바로 이 국민에 대한 의회의 독립 선언으로서 처음으로 성립한 것이고, 다 아는 것처럼 의회가 명령적 위임(Imperative Mandate, 선거인단의 지도)에 구속당하여,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던 예전의 신분대표 의회와 명확하게 분리된다. 대표의 의제는 국민주권의 견지에서 합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자유의 원리가 의회주의에 의해 경험하게 되는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침해를 은폐하기 위해 정해진 이 공공연한 의제는, 데모크라시가 명백한 허위 위에 건설되었다는 형편 좋은 논란을 반대자의 손에 부여했다.

― 한스 켈젠, <민주주의의 본질과 가치>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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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의 프로이센 의회에서는] 국가의 최고 관리들이 국가의 여러 기구나 요구의 본성에 대해 아주 깊고 포괄적인 통찰을 필연적으로 갖추고 있다. 동시에 그 직무에 대한 한층 뛰어난 기능과 습관도 필연적으로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의회가 없어도 최선의 것을 이룰 수가 있다.…<중략>…

의회의 지위는 조직된 통치권과 협동하여 다음과 같은 매개 작용을 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군주권이나 하나의 극으로서 고립된 형태로 나타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이에 따라 군주권이 단순한 지배권이나 자의로서 나타나는 일이 없도록 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여러 지방자치체나 직업단체, 개인의 특수한 이익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고, 더구나 개개인이 다수의 군중과 무리의 모습을 취하고 나타나 비유기적인 사견(私見)과 의지를 품고 비유기적인 국가에 거스르는 단순한 집단적 폭력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매개 작용이다.…<중략>…

보편적 요건인 공사(公事)에 관해, 의회의 특징인 사명은 오히려 의회가 함께 알고 함께 결의하는 형태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시민사회의 성원을 위해 형식적 자유의 계기인 정당한 권리가 성취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그렇기 때문에 우선 첫째로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계기가 의회의 토론을 공개함으로써 확장되는 것이다.…<중략>…

지식을 갖추기 위한 이러한 기회를 공중(公衆)에게 부여하는 일에는 더욱 일반적인 면이 있다. 즉 이렇게 하여 여론이 비로소 진실의 사상(捨象)에 도달하고 국가의 상태와 개념, 그리고 요건을 통찰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비로소 이것들에 대해 한층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음과 동시에, 또 다음으로는 관청이나 관리의 직무, 재능, 덕, 기능을 잘 알고 이것을 존중하게 된다. 이렇게 의회가 공개됨으로써 사람들의 재능쪽도 그 힘을 키우는 유력한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대단한 명성을 펼칠 기회를 얻는 것인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공개는 또 개개인이나 다수 군중의 자만심에 대한 교정 수단이며 그 사람들을 위한 도야 수단, 그것도 최대의 도야 수단 중 하나인 것이다.

― 헤겔, <법철학>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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