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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17

공개성의 근원 (5) : 위장과 은폐의 바로크 공개성의 근원 (5) : 위장과 은폐의 바로크글쓴이 : 大竹弘二출처 : AT플러스 15 : 2013년 2월, 96-114쪽. 1. 현인과 대중근대정치의 출발점에는 종교전쟁이라는 일종의 예외상태가 있었다. 이런 아노미상태를 통치하기 위해 요청된 것이 자주 통상적인 법이나 도덕을 훌쩍 뛰어넘는 국가이성이다. 규범에 어긋나는 이런 비상수단은 근대초기에는 특히 정치 지배자에 의한 ‘위장’의 문제로서 제기됐다. ‘위장(simulatio)’과 ‘은폐(dissimulatio)’는 바로크시기에 특히 선호된 정치적 주제 중 하나이다. 그것은 비난받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지배자가 지녀야 하는 ‘사려(prudence)’1)로 생각됐던 것이다. 정치학자 유스투스 립시우스(Justus Lipsius, 1547∼1606)는 저서 .. 2015. 11. 2.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첫 번째 부분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김상운 옮김 http://nomadist.tistory.com/423 * 仲正昌樹, 『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 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첫 번째 부분 들어가며과연 어둡고 위험한가?칼 슈미트는 ‘결정을 못하는 정치’를 뭐라고 하는가? 2012년 봄 무렵부터 매스컴의 정치보도에서 ‘결정을 못하는 정치’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됐다. 구체적으로는 여당인 민주당의 내분과 중의원 및 참의원의 갈등 때문에, 정권이 중요한 정책에 관해 방침을 결정할 수 없고, ‘정치가 정체되게’ 됐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정을 못하는 정치’를 비판하는 저널리스트들이나 평론가들은 ‘결단할 수 있는 정치가’에 대한 기대를 입에 올린다. 평소에는 자유주의적·좌파적인.. 2015. 11. 1.
처벌과 정상성 ― 예외상태 속의 사법과 범죄통제 처벌과 정상성 ― 예외상태 속의 사법과 범죄통제 * ≪現代思想≫, 2008년 10월호 / 오오다케 코우지(大竹弘二) * sanggels@gmail.com, 2009년 1월 16일.(초역인지라 때가 되면 손을 볼 예정임. 참고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자료집(?)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다고 인터넷 검색결과는 보여주는데, 입수한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떤 죄에 어떠한 처벌을 내릴 것인가의 결정은 항상 곤란한 일이다. 이것은 일반시민이든 직업법률가이든 마찬가지이다. “눈에는 눈을”이라는 태고 이래의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리를 따를 경우, 어떤 죄에 대해 어떤 벌을 내리면 똑같이[等價] 갚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여기에는 겉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곤란이 포함되어 있다. 저지른 죄로부터 .. 2009. 2. 26.
칼 슈미트의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지위>에 관한 낙서 의회가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논거로는 대략 다음의 두 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첫째로, 모든 인간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 즉 법의 수립(제정)을 목표로 공개적인/열린 토론을 행하는 장소. 의원은 자신의 양식만을 따라 정신에 있어서도, 실제 활동에 있어서도 독립된 입장에 서 있어야만 한다.(면책특권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둘째로, 이해조정을 위한 교섭과 타협의 장소. 이 경우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다수파를 형성하는 것으로, '진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어 버린다. 의회정치의 현실태는 어쩌면 후자일 것인데, 이해조정의 기술적 문제만이 필요하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반드시 의회제도여야만 한다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용적인 동시에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인민을 대신하.. 2009. 2. 18.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대한 낙서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자를 일컫는다." 칼 슈미트의 유명한 테제이다. 우리는 보통 "주권이란 국가의 최고 권력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친다. 교과서적이며 관습적인 사고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동어반복에 불과할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그런 점에서 최고의 슬로건이다.) 그래서 슈미트는 "자연법적인 확실성으로 기능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한 최고의, 즉 최대의 권력 따위란 정치적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령 국민주권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라는 허구적인 체제에 정통성을 임시로 부여하기 위한, 정통성을 임시로 구축하기 위한 용어법일 뿐, 정치적 현상의 실제적 양상들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기존의 법 체계가 전혀 예상치 .. 2009. 2. 18.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서재에서]민주주의 추동력 ‘다원주의’ 김학순 선임기자 hskim@kyunghyang.comㅣ경향신문 나치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자부하는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제전범재판소 심문과정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돌프 히틀러가 하나의 국가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당신 역시 하나의 민족사회주의를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히틀러보다 내가 우월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신이 진정 그렇게 느꼈다는 말인가요? “정신적으로 무한히 우월합니다.” 이런 슈미트가 학문적으로, 그것도 전 세계에서 부활하고 있다면 일단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서구 정치사상 연구에서 슈미트의 지적 영향력은 가히 세계화 수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 2009. 1. 28.
[생정치/삶정치] 아렌트와 낭시를 생각하며...(짧은 낙서) 근 몇 년 동안 생/삶-정치bio-politique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잘 알겠지만 이것은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생기는 문제들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류의 해석은, 푸코를 활용하여 논하기에는 그다지 정합적이지 않다. 장-뤽 낭시를 따라 말하자면, “생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되고 그 통제에 전념하는 정치질서”가 이 말의 본래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너무 막연하다. 따라서 푸코를 다양한 선분들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 푸코와 들뢰즈, 푸코와 네그리, 푸코와 아감벤, 푸코와 낭시, 푸코와 아렌트 등등. 앞의 세 쌍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 간략하게 서술할 것이기 때문에 푸코와 낭시, 특히 아렌트를 매개로 한 이 둘의.. 2008.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