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럽

이민, 난민, 계급구성, -식민지적 자본주의


** <말과 활> 11호(2016 가을 혁신호)에 수록된 대담의 <전문>을 공개한다. 

 

 이 글의 원제는 危機のヨーロッパ 移民難民階級構成ポストコロニアル資本主義산드로 메차드라(Sandro Mezzadra)와 기타가와 신야(北川眞也)의 2016년 2월 15일자 인터뷰이다일본의 진분쇼잉(人文書院)』 등의 허락을 받아 번역 게재한다.

산드로 메차드라는 볼로냐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웨스턴시드니대학교 문화사회학연구소의 연구원(adjunct fellow)이다지난 10여 년 동안 그는 특히 전지구화이민시민권-식민이론비평 등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인 작업을 해 왔다그는 포스트오페라이스모’ 논쟁의 적극적 참여자이며 «유로노마드프로젝트(Euronomade project)»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주요 저서로는 다음이 있다도주의 권리(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ombre corte, 2006) ; -식민지적 조건 전지구적 현재에 있어서 역사와 정치(La condizione postcoloniale. Storia e politica nel presente globale)(ombre corte, 2008) ; 맑스적 작업장에서 주체와 그 생산(Nei cantieri marxiani. Il soggetto e la sua produzione)(Manifestolibri, 2014). 브렛 넬슨(Brett Neilson)과 방법으로서의 경계선혹은 노동의 증식(Border as Method, or, the Multiplication of Labor)(Duke University Press, 2013)을 공저했다.

기타가와 신야는 1979년 오사카부에서 태어났다간사이가쿠잉대학대학원(関西学院大学大学院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지리학 박사이다현재 미에대학(三重大学인문학부 조교수번역서로는 프랑코 베라르디(비포)의 NO FUTURE :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 운동사(ノー・フューチャー イタリア・アウトノミア運動史)(廣瀬純과 공역洛北出版, 2010). 논문으로 이동=운동=존재로서의 이민 유럽의 입구로서의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의 수용소(移動運動存在としての移民ヨーロッパの入口としてのイタリア・ランペドゥーザ収容所)(VOL』 4, 2010), 유럽지중해를 흔들고 있는 후-식민지적 경계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서의 이민의 감금의 형태들(ヨーロッパ・地中海くポストコロニアルな境界 イタリア・ランペドゥーザにおける移民諸形態)(境界研究』 3, 2012), 대도시를 지금 여기서 멈춰세워라 밀라노 교외에서의 사회적 장소에 대한 욕구(大都市をいまここでスクウォットせよ ミラノ郊外における社会的場所への欲求)(社会文化研究』 17, 2015), 이민의 무덤이 된 지중해 유럽에 요구되는 응답책임(移民墓場地中海ヨーロッパにめられる応答責任)(竹中克行 編전지구화 시대의 문화의 경계 다양성을 관리하는 유럽의 도전(グローバル化時代文化境界 多様性をマネジメントするヨーロッパの挑戦)(昭和堂, 2015등이 있다.


 

기타가와 신야(北川眞也, 이하 기타가와’) : 오늘은 이민자들의 이동이나 운동을 통해, 나아가 -식민(postcolonial)’이라는 관점에 입각하면서, 유럽의 현황에 관해 듣겠습니다. 이때 당신의 연구 내용이나 입장을 언급하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맨 먼저 시민권(citizenship)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유럽에 관해 생각할 때, 이 패러다임이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지, 제게는 다소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유럽의 경계지대든, 대도시든, 거기서 이민자들에게 다양하게 행사되는 폭력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사태를 고려한다면, 국민국가의 시민권, 나아가 과거에 자주 논의된 유럽 시민권에 관해 여전히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시민권 개념을 아주 중시하면서 이론적정치적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96년에 상파피에들의 투쟁이 일어났습니다.[주1] 이후 이민 관련 운동에서는 운동으로서의 시민권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수많은 논의나 연구,[주2]그리고 수많은 실천이 전개됐습니다(합법화정규화에 관한 투쟁, 이민자 구금 센터에 반대하는 투쟁, 이민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이 구금 공간 내부에서의 투쟁을 의미했습니다. 나아가 이민자들의 파업. 또한 교외[방리유]의 폭동, 매일매일 이민자들의 국경넘기 운동도 그렇죠).

[주1] 상파피에(sans papier)란 체류허가증이 없는 이민자들을 가리킨다. 시민에게 부여된 권리를 갖지 못한 채 항상 강제 송환의 가능성에 노출된 이민자들. 이들은 1996년 파리에서 체류의 정규화를 요구하면서 처음에는 상탕브로와교회, 마지막에는 상베르나르교회를 점거했다. 크게 주목 받은 이 사건은 상파피에라는 존재를 명시하여 프랑스사회에 인지시켰다

[주2] Sandro Mezzadra, 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 Ombre Corte, 2002, 특히 3, 8

    거기에서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은, 대충 말하면, 이런 운동이 기존의 제도로서의 시민권에 도전하고 긴장을 부과하며, 이를 더 평등주의적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도식이었습니다. 특히 국적으로부터 시민권을 떼어낼 가능성이 바로 유럽 시민권이라는 틀 아래에서 최소한 다양하게 기대되고 검토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민 운동의 결과, ‘유럽 시민권에서는 제도적 수준에서도 이민자들이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운동으로서의 시민권에 관해 생각하는 가운데, 유럽 시민권의 가능성이 나름대로 느껴졌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최근 일인데, 당신은 2013년의 정세에 준거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시민권 개념에 관해 이뤄진 작업은 유럽에서 비판적 사고와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을 여전히 구성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시민권의 제도적 틀 자체의 심대한 변형을 배경으로 삼아 이 작업이 시험에 부쳐질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주3]

[주3]  Sandro Mezzadra, Seizing Europe. Crisis management, constitutional transformations, constituent movements, 2013, http://www.euronomade.info/?p=462

지금도 수많은 난민들, 이민자들이 도주의 권리를 행사 유럽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고 들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서의 시민권(구성하는 권력, 제헌권력)과 제도로서의 시민권(구성된 권력, 제정권력)의 관계가 전혀 기능하지 않는 듯 보이는 현재,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삶과 투쟁에 관해 여전히 시민권 개념에 의거하여 사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유럽 시민권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드로 메차드라 : 글쎄요, 너무 단순하지만 상당히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죠. 그것은 약 3년 전에 쓴, [당신이 방금 언급한] 텍스트 유럽을 붙잡다[장악하다]에서 어떤 식으로든 논의되고 있습니다. 유럽 시민권이 오늘날 심각한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90년대 전반기의 상황과 매우 다릅니다. 당시에는 역사적 계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 거기에서는 유럽에서 후-국민적(post-national) 시민권의 구성이 그 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기준점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몇몇 중요한 사회운동, 특히 이민자들의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확실히 이민자들은 법학자가 말하는 두 급()의 시민권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한 유럽 시민권과 마주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시민권에 가입하려면 EU회원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시민권이 전개되는 후-국민적 지평의 존재란 바로 이민자들의 운동에 어떤 긍정적인 것에 상당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민자들은 국가 수준에서는 엄격한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니까요. 분명히 계속되는 세월 동안, 연방주의자들이 말하는 유럽 시민권이라는 개념의 내부에 암암리에 내포된 잠재성(virtualità) 새로운 전개를 보이지 못했어요. 그러나 몇 년 동안 이민자들의 운동, 적어도 몇몇 이민자들의 운동은 유럽 시민권이라는 차원을 긍정적인 기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00대 중반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유럽헌법조약 국민투표[주4]와 함께 이미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죠. 이것들은 EU의 형식적 구성의 형성(costituzionalizzazione formale) 과정을 동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전지구적 경제 위기가 채무 위기라는 형태로 유럽에 도착했을 때 특히 근원적으로 변화했다고 봅니다. , 2010년 무렵의 일입니다. 이때 유럽 통합 과정의 모종의 방향전환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분명히 금융에 기초를 둔명령의 몇 가지 계기가 유럽통합과정에 대해 결정화(結晶化)되고 고정화되는 상황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분명해진 것이 점차 판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유럽통합과정의 위기가 유럽 시민권의 위기에도 상당한다는 것입니다.

[주4]  2005529일 프랑스에서, 같은 해 6월 네덜란드에서 유럽헌법조약의 비준에 관한 국민투표가 이루어졌는데, 두 나라에서 모두 부결됐다.

현재 우리는 이 위기가 훨씬 더 심각해진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는데요, 2015년에 대해 고찰해 봅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다수의 위기들 사이 연쇄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특히 그리스 위기와 이민 위기로 정의된 그것과의 사이에서입니다.

간단하게 분석해봅시다. 그리스 위기는 다시 한 번 긴축정책을 계속한다는 위로부터의 권위적인 강요를 초래했습니다. 그 경향에 있어서 이들 정책은 사회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민권과 그 내용을 텅 비게 하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위기가 유럽의 성립(establishment)에 있어서 해결된 바로 그 방식을 통해, 바로 긴축정책이라는 규범, 금융재정의 엄정함에 기초하여, 유럽통합과정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창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일어난 것은 이른바 이민 위기입니다. 즉 대량의 이민운동, 전쟁이 전개되는 지역으로부터의 대량의 도망운동, 시리아만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시리아로부터의 도망운동이 유럽공간을 전체적으로 격렬하게 급습했니다. 그들은 20년 전부터 “EU의 역외 경계의 통제 체제(regime)”로 정의되고 있는 것을 위기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리하면, 우리는 긴축정책의 지속에 의해 규정된 조건들로부터는 통합 과정을 정치적으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 곧바로 실증된 상황에 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의 앙겔라 메르켈의 역할을 생각해보세요. 아주 분명한데요, 이 상황에서 메르켈은 일이 유럽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위기에 대한 독일의 입장을 특징짓는 그것과는 부분적으로 다른 몸짓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민자, 특히 시리아로부터의 대량의 도망에 대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주5]에 기초하여, 유럽에서 독일의 지도적 역할을 일정하게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5]  201593, 시리아에서 벗어나는 도중에 사망한, 터키의 해안가에 누워 있는 세 살짜리 유아의 시신 사진이 크게 보도됐다. 다음날 메르켈은 국경을 개방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메르켈, 또 독일정부의 일부 인물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다음의 것을 확실하게 강조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기, 경제위기가 출현하면서 경계[국경선]를 통제하는 유럽의 여러 정책, 이민통제가 근래에는 더욱 제한적이고 훨씬 닫힌 특징을 띠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사항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이민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메르켈은 한편으로는 유럽에서 독일의 지도적 역할을 주장하고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는 다른 기반에 토대를 두고 독일의 이민정책, 더 일반적으로는 유럽의 이민정책을 제출하는 시도를 결합시키기 위한 기회를 포착하려 한 것은 아닐까요?

 다만 그리스 위기가 한창일 때 독일이 주장한 입장에 근거하여 이뤄진 이 모든 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메르켈의 이니셔티브는 유럽 수준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매우 간단하고 신속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긴축정책, 금융재정의 엄정함을 기반으로 해서는, 또한 기본적으로는 유로라는 통화를 기반으로 해서는 유럽 공간을 정치공간으로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15년 여름 이후, 우리는 유럽통합과정 자체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지리적인 수준에서도 언표되고 있습니다. 유럽통합은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 이후 25동안 독특한 방식을 하고 항상 가변적인 지리(地理)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다양한 공간적 좌표 사이의 교차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로의 유럽은 솅겐(Schengen)의 유럽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물류의 유럽 통합 공간도 존재합니다. 아직도 다른 지리가 존재할 것이고, 아마 이 지리에 대한 언급은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25년 동안 유럽 통합의 특수성이란, 엘리트들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만, 이런 다양한 유럽사이의 접합부, 교차점에서 교묘하고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일종의 역량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그것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 위기의 주변에서는 유럽의 북과 남의 골이 극적인 형태로 깊어졌습니다. 이른바 이민위기에 관해서는 유럽의 동과 서의 골이 비극적인 형태, 새로운 형태로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유럽과 영국의 관계가 지닌 역사적 곤란,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이 곤란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유럽 통합 과정의 전체 위기, 무엇보다 마비를 일으킬 것입니다. 이 마비, 위기는 상당수 유럽 엘리트들에게도 성가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 위기, 마비의 표시 아래에서 유럽에서 생기는 것은 정치의 재국민국가화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죠. 국민국가가 EU의 물질적 구성(costituzione materiale)[주6]의 내부에서, 난폭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국가가 재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신구의 우익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의 온건한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성장은 크게 불안을 야기합니다.

[주6]  물질적 구성(costituzione materiale)’이란 법이나 규범에 기초한 형식적 구성(costituzione formale)’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혹은 간접적으로만 승인되는, 사회적 계급들의 갈등이 갖는 헌법-구성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사이의 균형을 확립한다. 그것은 법권리와 운동의 관계가 우연적인 것이라는 점도 나타낸다

 그래서 다음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의 재국민국가화가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것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기획, EU라는 기획을 위기에 빠뜨리고 바로 국가 수준에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간을 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연결의 등장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국가가 중심적 역할을 맡으려고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구성체의 기본적 요소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저는 국민국가가 주역으로서 재차 등장한다면, 그것은 그저 신구의 우익을 위한 공간을 여는 것일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세계의 이 장소, 즉 유럽의 새로운 좌파에게 급진적이고 저항력 있는 변혁을 위한 정치 전략은 아직도 유럽이라는 전략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공간을 움켜쥔다(장악한다, seize)는 전략입니다.

 

기타가와 : 한편으로는 유럽에 도착하더라도,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처음 발을 내디딘 유럽 국가에 보호신청을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는 더블린조약에 항거하는 이민자들, 난민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도착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이민자들, 난민들은 재국민국가화의 현황을 감안하면, 그것에 항거하고, 유럽공간을 움켜쥐려고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으로 설령 유럽에서 재국민국가화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국민과 시민이 통합되어야 할 공간이 충분하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 재국민국가화가 과거의 국민국가, 이른바 국민사회국가로 이끌려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수한 투쟁을 통해, 또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를 통해 갈등을 매개하고 그것을 국민사회국가로 포섭하는 물질적인 구조는 분쇄됐습니다. 당신이 논하고 있습니다만, 유럽에서 국민사회국가는 자유로운임노동자-남성-백인을 시민의 중심적형상으로 삼아 왔습니다.[주7]국민사회국가는 생산의 중심적형상이기도 한 그들을 어떤 형태로 정치적 대표제의 제도적 회로에 포섭함으로써 갈등, 계급투쟁을 중성화하고, 복지의 확대를 통해 자본축적을 유지해온 것입니다.

[주7]Sandro Mezzadra, S.2002. Soggettività e modelli di cittadinanza. In N.Montagna, a cura di, Controimpero:per un lessico dei movimenti globali, Roma:Manifestolibri, pp.81-100.

그러나 이런 주체 위치는 다양한 운동을 통해 거부되었으며, 현대의 전지구적 자본에 있어서도 더 이상 [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이렇다면, 사회통합의 공간, 이른바 시민권의 공간 자체가 기능 장애에 빠집니다. 이민자들을 통합하는 것은 물론, 원래 국민이나 시민을 통합하고 이들을 나름대로 보호하는 동시에 관리해온 공간 자체가 물질적으로 극복 혹은 크게 개편되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통합되는 공간 자체의 이러한 과정을 감안하면, 현재 유럽의 물질적 구성의 한복판에서 이런 재국민국가화는 대체로 어려우며, 새로운 반동적 폭력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됩니다.

 

메차드라 :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유럽에서 정치의 재국민국가화는 시민권의 재국민국가화를 이끌 것입니다. 현재의 조건들, 당신이 지금 언급한 과정들에 의해 특징지어진 조건에 있어서는, 그것은 그저 사회의 위계화의 과정들, 노동의 불안정화(프레카리아트화)의 과정들, 사회적 분단의 과정들, 결국에는 유럽에서의 여러 국민사회의 인종주의를 토대로 한 위계화의 과정들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민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유럽에서 정치의 재국민국가화라는 관점은 확실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큰 불안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관점이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프랑스의 국민전선,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독일의 독일을 위한 선택 같은 정치세력(다른 것도 여기에 보탤 수 있겠죠)의 말본새[레토릭]를 본다면, 적어도 항상 이런 정치세력들의 목적은 이들이 활동하는 나라에서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태가 이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린 르펜, 살비니 같은 정치인들[주8]도 우리네 도시의 이민자들의 존재감이 구조 수준의 요소라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시의 내부에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으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의 이른바 후-식민지적 특징이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구조 수준의 요소를 체현하는 것입니다.

[주8] 마리 르펜은 프랑스 국민전선의 당수. 마테오 살비니는 이탈리아 북부동맹의 서기장.

사태가 이렇다면, 그러면 전망은 어떨까요? 전망은 이른바 시민권의 편성 전체의 한복판에서 이민자들을 종속시키는 여러 가지 과정의 여러 가지 요소가 더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망은 이민자들의 대량추방이 아닙니다. 전망은 오히려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시민권,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유럽 시민권의 내부로 그들이 포섭될 때, 가혹하고 폭력적인 종속이라는 특징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기타가와 : 이것과 관련됩니다만, 당신은 유럽과 이민노동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차적 포섭(inclusione differenziale[차이적 포함])이라는 개념[주9]을 이용했습니다. 그것은 통합이 더 이상 우선시되지 않는 현재의 유럽의 이민, 난민에 대한 통치성을 생각할 때, 당신이 매우 중시했던 개념이라고 이해합니다. 유럽은 이민을 모두 추방하고 싶지는 않아 합니다. 다양한 차이를 시간적공간적 경계에 구겨 넣으면서 이민자들의 노동만을 포섭[포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9] 예를 들어,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302.

그러나 당신은 20156월 히로세 준(廣瀬純)과 한 인터뷰[주10]에서, 바로 현재의 유럽에서는 이 시차적 포섭조차 기능 장애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요? 이것은 유럽의 정치적 구성에 대해 아주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민자들, 난민들이 계속하고 있는 대량 운동을 눈앞에서 보노라면, 인상적입니다만, 비정규적이면서 일시적인 형태라고 해도,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 포섭되는 것 같다고는 좀체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유럽 시민권의 틀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산업예비군만도 못하는, 과거의 제3세계에서 현저한 과잉인류[주11]가 유럽 내부에서 급습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주10] 히로세 준 편저, 廣瀬純 編著, 資本専制, 奴隷叛乱 : 南欧先鋭思想家8くヨーロッパ情勢徹底分析, 航思社, 2015, 18-19.

[주11] 풍요로운 국가로의 대규모 이주를 막는 첨단 국경선의 강제가 문자 그대로 거대한 벽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슬럼만이 금세기의 과잉 인류를 수용한다는 문제 해결을 도맡아 왔다. 안전하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토지의 최전선의 도처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도시의 틈새로 신참자는 주변 중의 주변목숨을 걸수밖에 없는 존재조건에 직면하고 있다.” Mike Davis, Planets of Slums, Verso, 2006.

 

메차드라 : 글쎄요. 시차적 포섭이라는 개념은 최근 제가 가다듬어온 개념입니다. 특히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한 오스트리아의 브렛 넬슨과 함께 한 작업에서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개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나 넬슨은 이 개념에 대해 어떤 종류의 저작권도 요구하지 않습니다(웃음). 이 개념은 널리 유통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또한 유럽뿐 아니라 이민이나 경계에 관한 작업에 씨름하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퍼졌습니다. 게다가 이 개념의 계보는 페미니즘, 인종주의의 비판적 연구에 속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길게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만.

그건 그렇고, 유럽에서 이 개념의 사용은 이른바 EU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regime)의 변형에 관한 논의의 내부에서 특히 중요했습니다. 최근 20, 25년 사이에, 많은 성공을 거둔 표현,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새 유럽(Fortezza Europa)”이라는 겁니다. 모종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가 초래하는 여러 가지 효과와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저도, 우리도 이것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만,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류언론에도 널리 보급된 이 개념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지 않을까? 혹은 이 개념은 필연적으로 유럽의 경계들을 통제하는 이민정책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만, 그것은 이민자들을 유럽공간의 완전한 외부에 담아 두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위상이 커지고 있는 모양과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유럽은 이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우리의 확신도 있고, EU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가 기능하는 방식을 기술하려면 시차적 포섭 같은 개념이 더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시차적 포섭이라는 개념은, 이미지라는 점에 있어서도 벽이나 요새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댐과 필터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언급합니다. 우리가 경계와 이민을 통제하는 유럽의 정책들의 이런 선별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입니다.

또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이런 정책들이 한편으로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인 효과들, 그것은 바로 요새 유럽의 이미지에 의해 부각되었던 효과들입니다만, EU의 역외경계에서 무수한 사망자를 산출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다른 한편, 이것은 새로운 측면입니다만, 시차적 포섭에 대해 논하는 것은 경계라는 장치가 그 총체에 있어서는 어떻게 EU의 개별 가맹국의 내부에서도 작동하는지, 시민권의 공간을 계층화하는 위계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몇 달 전에, 시차적 포섭이라는 이 범주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 같지 않다고 제가 말했다면, 저는 다름 아닌 앙겔라 메르켈의 태도에 대해 아까 말한 의미에서 그것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4-5년 새, 경계 통제의 정책들에 근원적 경직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최근 몇 달 사이에 보여졌듯이, 모든 선별적 통제의 가능성에 비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민자들의 이동에 직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유럽의 무슬림 이민자들의 일부에 급진화의 과정들이 엄습해 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련의 [테러] 공격이 있고, 그 후 이것들은 EU의 역외경계의 관리 운영에 있어서 안전에 대한 불안을 현저하게 부각시키게 됐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주 밝혔던 것은 유럽에서 경계 통제 체제가 최근의 이른바 다양한 우려, 다양한 논리를 조합시켜왔다는 것입니다. 경계 통제가 어떻게 기능해 왔는지를 고찰한다면, 우리는 이 안전에 대한 우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민의 경제적 유용성에 대한 우려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이른바 이민관리의 이론과 실천으로 번역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논리, 예를 들어 인권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논리가 단순히 이데올로기와 수사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지만, 물질적 수준에서 유럽의 경계 통제 체제의 하나의 구성적인 요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다양한 논리들 사이의 이른바 균형, 이런 다양한 논리들의 효과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최근 몇 개월, 아니 몇 년일까요, 이 안전의 물음이 경계에서 활동하는 제반 행위자들과 발맞춰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것과 동시에, 많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 아래서는 훨씬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민정책을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향하게끔 하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덧붙일 수 있는데, 이런 요인들 사이의 조합이 시차적 포섭의 이런 장치들의 동결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엘리트, 유럽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전에는, 시차적 포섭은 아무튼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관점이 아닙니다. 저는 이 시차적 포섭의 장치들에 대해 근원적인 비판을 전개하려 해왔으며, 시차적 포섭의 장치들에 맞서는 이민자들의 운동과 투쟁을 분명히 하려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장치들의 효력, 이것은 기술적인 의미에 있어서입니다만, 이 효력이 기능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에는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많은 정부들, 경제, 특히 노동, 복지에 씨름하는 정부부처 중에는 이 위기에 대한 확실한 의식, 이것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는 모종의 의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 말합니다만, 유럽은 이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타가와 : 그렇군요. ‘테러와 안전화(securitization)의 나선운동이 강화되고, 솅겐 공간의 재검토가 논의되고, 이민자들의 이동에 대한 벽의 이미지가 훨씬 강조되는 가운데에서도, 유럽의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이민 운동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은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민자들의 이동이나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유럽의 운동에서는 당신도 깊이 관여했던 것인데,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 이민의 자율성(autonomia delle migrazioni)이라는 아이디어가 가다듬어지게 됐습니다.[주12] 이민자들의 이동은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나, 경계 통제 체제의 합리성으로는 절대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과잉적 요소가 있으며, 그것에 의해 모종의 예상 밖의 이동, ‘난류로서의 이동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자율적인 이동을 가능케 하는 이민자들의 욕망과 기대, 국경 넘기의 전략과 전술, 결국 주체 형성 과정을 주시하는 시각이었습니다.

[주12]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8.

이민의 자율성은 이민자들의 이동을, 현실을 바꾸는 사회적 힘들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이민자들의 이동이 자율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면, 이런 경계 통제 체제는 오히려 이 자율적인 이동을 추종하는 형태로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이동이 유럽의 경계 통제 체제를 어떤 의미에서는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의 이동을 더 역사적지리적으로 맥락화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주의 권리4장에도 썼습니다만,[주13] 당신은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이동을 제3세계의 반식민지투쟁과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양자가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현대세계의 정치적 배치의 전지구적 변동, 심지어 운동이라는 것의 이미지를 부풀리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테제인 것 같습니다.

[주13]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115-116.

그것은 첫째, 이민자들의 이동 자체의 정치성을 금세 환기시키고, 그것에 대해 사고하라고 강제합니다. 또한 유럽의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 통제 체제의 식민지성, 혹은 유럽 공간 자체의 불가피한 식민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 유럽의 식민지성이라는 것은 유럽 내부에서, 프란츠 파농의 이런 폭력, 또한 폭력의 물음이 지닌 현대성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주14]

[주14] 北川眞也, -식민지 유럽에 시민은 한 명도 없다(ポストコロニアル・ヨーロッパに市民はひとりもいない), 現代思想, 43-20, 2015, 70-80

이것은 현대의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의 이동을 생각하면, 더 중요해지고 있는 테제라고 봅니다만, 어느 정도 과감한 내용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테제에 대해 조금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메차드라 : 그렇군요. 당연히 이런 종류의 주장에는 어떤 도발적인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고찰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열겠다는 의도죠. 새로운 고찰을 위한 공간을 열 때는 일방적으로 소정의 주장을 강조하는 것도 역시 필요합니다.

전체적으로 유럽에서 우리가 이제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이민자들의 이동은 후-식민지적인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 그 장() 혹은 다른 곳에서 제가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종주국과 식민지 사이의 일종의 메타 경계의 존재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이 이동이 역사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 질서의 파괴는 무엇보다 먼저 수많은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야기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의 이민자들의 이동은 반식민지 운동의 여러 행위와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지리를 묘사하고 있다고 말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민자들의 이동이 그것 자체로,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봐서, 주체성의 수준에서 반식민지 운동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몇몇 기본적인 차이점, 이민자들의 이동과 반식민지 운동 사이의 근본적인 비연속성을 뭔가 밝힐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결론과도 같은 유명한 텍스트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의 반식민지 운동의 훌륭한 선언문입니다. 거기서 파농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지여, 형제여, 이 유럽을 뒤로 합시다. 이슬람, 세계의 거리에서 인간을 살육하면서 인간에 관해 말하는 이 유럽을 등등.[주15] 이 텍스트는 꽤 강력합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 반식민지 투쟁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그 당시까지 유럽을 특징짓던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형태들을 구축한다는 반식민지 투쟁의 결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주15] 해당 대목은 다음이다. “유럽의 모든 거리에서, 세계 도처에서, 인간을 만날 때마다 유럽은 인간을 살육하면서, 더욱이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유럽과 결별하자.” フランツ・ファノン鈴木道彦浦野衣子訳)『われたるみすず書房1969181.

반식민지 투쟁에서 탄생한 정치체제의 역사가 프란츠 파농 같은 사상가활동가에 의해 이미지화된 것에서 보면, 약간 다른 방향성을 가진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력한 계기, 반식민지주의의 정치적 상상력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이 상상력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파기함으로써 그때까지 유럽에서 계승되어 온 것과 비교해서, 근원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경험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유럽을 떠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식민지 지배하에 놓인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무수한 약탈당한 인간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유럽을 뒤로 한 채 떠난다기보다는 오히려 유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말의 일인데요, 난민들, 이민자들에 의해 조직된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멋진 행진을 담은 영상을 보셨습니까? 행진의 선두에는 아마도 시리아에서 온 듯한 이민자 남자가 있는데, 그는 EU의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주16] 

[주16] 이 행진은 아마 201594일에 일어난 것 같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부터 오스트리아의 국경, 심지어 빈을 목표로 이민자들, 난민들이 고속도로를 걸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즉 파농 같은 매우 중요한 반식민지주의의 이론가에 의해 적어도 상상되고 기술된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민자들의 이동에 매우 견고한 후-식민지적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유럽에 관해 말하면, 그들의 후-식민지적 규정을 통해 유럽과 그 밖의 공간들,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준비할 긴급성이 끊임없이 다시 제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특히 제2차 대전 후의 다양한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강력하게 던져진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이민자들의 이동은 특히 역시 시리아의 상황, 그러나 또한 더 일반적으로는, 예를 들어 마리 같은 아프리카의 여러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략 노골적이고 심플한 힘으로, 이 문제를 다시 던지는 운동에 다름없습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이것은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유럽 속에, 유럽으로 던져진 본질적인 문제였어요.

 

기타가와 : 이로부터 많은 것을 재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식민지 운동이 비록 국가 공간의 주권으로 회수되어 버렸다고 해도, 이 투쟁을 가능케 한 해방의 욕구, 그리고 이민자들의 이동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평등에 대한 욕구는 역시 재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차드라 : 그렇죠. 물론 거기에는 직선적인 연속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들, 역사적 운동, 시대의 전환의 이른바 배치는 있습니다. 그 안쪽에서는 다양한 요소의 연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타가와 : 말씀하고 계신 것은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운동이, 설령 어떻게 형언되더라도, 유럽과 그 외부의 지역들을 무매개적으로 접속하고, EU와 그 외부의 국가들(예를 들어 터키) 사이의 관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유럽은 확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민자, 난민들의 이동이 EU를 인구학적 의미에서도 확대시켰고, 그것이 EU회원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최근의 글[주17]이 생각났습니다.

[주17] Étienne Balibar, Europe and the refugees:a demographic enlargement, 2015, https://www.opendemocracy.net/can-europe-make-it/etienne-balibar/europe-and-refugees-demographic-enlargement

그런데 이제 당신이 말하는 지구 규모의 역사적지리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경계를 넘어서는 이민자들의 이동은 그들의 주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또한, 현대라는 맥락에서 역시 얼마간의 정치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저는 자크 랑시에르의 어떤 인터뷰[주18]를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이른바 환승이민자, 예를 들어 칼레(Calais), 또한 아마 벤티밀리아(Ventimiglia), 람페두사 섬(Isola di Lampedusa), 레스보스(Lesvos) [주19]에 있는 유형의 주체는 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정치를 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의 여러 도시들에서 생활노동하고 있으나 체류 허가증이 없는 불법이민혹은 비정규 이민, 이른바 상파피에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이민자들에게는 몫 없는 자의 몫을 요구하는 정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18] 정글[프랑스 카레에 있다. 영국으로 가고자 하는 이민자들이 일시적으로 집단 거주하는 야외 점거 공간]의 사람들은 통과하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과의 관계만 해도 앞길을 막고 있는 철조망을 앞에 두고도, 전체 상황 속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주체로서 거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체류 허가증을 취득할 수 없는 채 5년이나 10년 정도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과는 다른 셈이죠. 이쪽은 바로 정치적 상황입니다.”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市田良彦上尾正道信友建志箱田徹訳)『平等方法航思社2014295-296

[주19] 벤티밀리아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에 있는 이탈리아의 도시이다. 20156,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이의 국경 심사를 부활시킴으로써 경계를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벤티밀리아 해안의 바위섬에 캠프를 차리게 됐다. 람페두사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튀니지에 가까운 지중해의 작은 섬이다. 최근 2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탄 배가 도착하는 장소로 자리잡았다. 레스보스는 터키의 코앞에 있는 그리스의 섬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오는 이민자, 난민들의 배가 도착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신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이민자들의 정치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민자들, 방금 화제가 된 EU의 깃발을 흔드는 이민자들, 벤티밀리아 등의 유럽의 다양한 경계에 있는 이민자들은 바로 환승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죠.

당신은 정치에 관한 랑시에르의 사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부족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가령 자본주의, 이민, 사회투쟁 : 이민의 자율성 이론을 위한 메모[주20]라는 2004년의 텍스트에서 당신은 코뮤니즘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코뮤니즘은 랑시에르의 논의, 이렇게 말해도 좋으면, 급진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네요.

[주20] Sandro Mezzadra, Capitalismo, migrazione e lotte sociali:appunti per una teoria dell’autonomia delle migrazioni. In S.Mezzadra, a cura di, I confini della libertà : per un’analisi politica delle migrazioni contemporanee, Roma: DeriveApprodi, pp.7-19[サンドロ・メッツァードラ北川眞也訳)「社会運動として移民をイメージせよ: 移民自律性思考するための理論ノート, 空間社会地理思想12, 2008, 73-85].

저는 일전에 교토에서 도주의 권리에 대해 발표했을 때,[주21] 히로세 준 등과 이 점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이 정치의 사고, 특히 히로세 준이 거듭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랑시에르, 라클라우와 무페, 바디우는 1968년 이후 기본적으로 계속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동시대를 살아온 이탈리아 오페라이스타들은 계급구성(composizione di classe),[주22] 또한 자본주의의 변형을 고찰하면서, 논의와 투쟁을 반복하면서, 항상 아이디어나 이론을 변경했습니다. 오페라이스타들은 역사적 정세 하에서, 역사 하에서 사고하고 조사합니다. 그런 연유에서, 정치를 사고하는 데 있어서 새삼스레 계급구성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 이민자들의 정치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주21] 2016129, 계급 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히로세 준(廣瀬純), 하코다 테츠(箱田徹), 우에오 마사미치(上尾真道)와 했다. 행사는 히로세 준의 편저한 자본의 전제, 노예의 반란(資本専制, 奴隷叛乱)도주의 권리(逃走権利)의 출판을 기념해 열렸다. 자본의 전제, 노예의 반란에는 메차드라의 인터뷰와 텍스트 브뤼셀의 일방적 명령과 시리자의 딜레마(에티엔 발리바르, 프리다 오트 볼프와 공저)가 수록되어 있다

[주22] 계급구성(composizione di classe)은 오페라이스모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 그것은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의 노동자계급이 내재화하는 행동이나 규범의 조직체이다. 계급구성은 노동의 기술적 구조, 계급의 욕구나 욕망의 패턴, 정치적사회적 활동이 생길 때의 제도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자의 효과적인 조직화와 활동을 산출하려면 계급구성을 경험적 연구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이 개념은 계급의 기술적 구성(composizione tecnica di classe)과 정치적 구성(composizione politica di classe)으로 구별되어 왔다. 기술적 구성은 노동력으로 이해된 노동자 계급. 자본주의의 분업, 생산의 기술적 조직, 기술과 산 노동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정해진다. 정치적 구성은 노동자 계급의 주체 형성의 차원. 문화, 사고 양식, 욕구, 욕망 등에 관련되며, 의식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그것은 무엇보다 투쟁으로 향하는 주체 형성 과정에 관계한다.

 

메차드라 : 커다란 질문입니다. 꽤 복잡한 질문이네요. 일단 환승의 주체에 대한 질문부터 대답하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그래요, 우리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장소인 독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합시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독일에는 많은 수의 난민들, 이민자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환승하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도래는, 정치적 논의와 대립의 조건들을 완전히 변용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소간 급진적인 우익 세력이 성장해 온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특히 독일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열은 단지 우익이 새로 형성됐을 뿐 아니라, 수십 만 명의 독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개된, 난민들, 이민자들에 대한 남다른 연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서도 야기됐습니다. 단순한 실용적물질적 연대는 난민들, 이민자들에 대해서라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니셔티브는 이러한 연대를 훌쩍 뛰어넘는 질문을 곧바로 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베를린 같은 도시에서 오늘날 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단순한 일격 이상의 것입니다. 난민들, 이민자들의 대량운동, 당연히 독자적인 규정성을 가진 조건에 있는 것인데, 매우 일반적인 얘기를 한다면 이 운동이 경향에 있어서는 소정의 사회 내부에서 권력관계가 조직되는 방식에 의문을 던졌기 때문에, 긴장을 주었기 때문에 다름 아닙니다. 이 운동은 랑시에르에 의해 정의된, 치안이라는 독자적인 체제 내부에서의 몫의 고려/계산의 배분에 의문을 던지는 것 아닌가요.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운동의 전통적인 정의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운동에 대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야말로 그 근저에서는 사회운동으로서, 하나의 구체적인 사회, 이 경우라면, 독일사회처럼 매우 중요하고, 얼핏 보면 매우 안정되게 보이는 사회의 한복판에서, 권력관계들이 조직되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제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점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독자적인 사항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본질적으로 정치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복잡하게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정치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의 경계들을 의문에 부치도록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나 다름 아닙니다.

   제게는 이것이 매우 인상 깊으며, 몇 개월에 걸쳐 논문이나 책, 또 다른 사람과 공개한 논문에서 누차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언급한 바디우, 라클라우와 무페, 또한 랑시에르의 입장의 배후에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순수성(purezza della politica)이라는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지금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슬라보예 지젝이 이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 정치의 순수성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그 자체로 정치운동으로서 분명히 특징지어지는 운동의 형성으로 통하는 조건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입니다. 반복해서 말합시다. 이런 입장에 의해 사고 가능한 지평의 외부에 위치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적인 것으로서 모습을 보이는 운동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다양한 실천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관계들의 물질성의 한복판에 정치운동이 뿌리를 내렸고, 정치의 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정치적 본성의 내부에서는 대체로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푸코식 표현을 쓰고 싶다면, 그것은 주체성의 생산에 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죠. 제게 이것은 기본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주23]

[주23] 이 정치의 순수성 비판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이하의 논문을 참조. Sandro Chignola e Sandro Mezzadra, Fuori dalla pura politica.Laboratori globali della soggettività, 2012, http://www.uninomade.org/fuori-dalla-pura-politica

   또한 방금 당신이 언급했듯이 코뮤니즘의 물음, 제게 계속해서 매우 중요한 공산주의의 물음이 있습니다. 코뮤니즘은 바디우가 말한 의미에서의 관념으로 감축되어 버릴 수는 없으며, 그저 사건의 시간적 지평에 있어서만 생각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중국의 문화혁명, 19685, 파리코뮌에 관한 바디우의 저작의 풍부한 시사가 담긴 테마가 있습니다만.

  코뮤니즘의 문제란 착취당하고 지배당한 주체성의 운동들의 근원적인 과잉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제도 수준에서의 정치의 주어진 틀과 비교한 과잉성이나 다름없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말해봅시다. 이 틀의 내부에서 장소를 갖지 않는 것, 그것은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의 사고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이것은 이민에 대해서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이민은 변증법”, 승인과 과잉성 사이의 변증법을 필수작인 정치문제로서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습니다. , 일련의 다양한 운동이나 주체적 행동의 한복판에서 표현되는 온갖 요구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제도적 시스템 내부에서 승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법권리의 관점에서도, 시민권 개념의 변형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승인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 아니며, 이 승인 요구의 주변에서 표현되는 민주주의운동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거꾸로입니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민은 이 승인의 변증법에 비해 항상 과잉인 채로 머물러 있는 요소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승인의 변증법”, 그리고 과잉성의 다양한 요소에 내기를 거는 것을 통해 코뮤니즘의 물음을, 이민자가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코뮤니즘의 물음은 아마 각각의 이민자들이 품고 있는 기대의 지평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민자들의 요구들에 대해, 이 물음을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물론 거의 의미 없습니다. 다만 그 한편으로, 이민자들의 요구들, 일상의 대립에서 동떨어진 이론적 성찰의 관점에서 보면, 이민자들의 운동은 코뮤니즘의 물음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재검토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타가와 : 과잉성, 그리고 코뮤니즘의 물음은 역시 너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물음인 동시에 이민, 정확하게는 이민노동, 이민노동의 정치, 즉 계급투쟁이라는 테마에 관해 사고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당신도 주장하듯이 이제 계급구성 속의 얼마간의 주체에서 정치적 중심성을 찾아내는 것은 유용한 작업이 아니며, 아마 그것은 불가능하겠죠. 도주의 권리에서도 그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당신이 이민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도, 계급구성에 있어서의 중심성이라기보다는 오늘날 노동의 모범성으로서의 이민노동, 혹은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은 그 주역 속에 이민자들을 넣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네요.

   그러나 다분히 낡은 얘기라 미안합니다만, 잡지 데리베 아프로디(Derive Approdi)2002년에 발표된 마리오 피치니니와 함께 쓴 짧은 논문에서 당신은 이민노동의 정치적 중심성을 언급했었죠? 다만 지금은 이런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도, 당신의 최근 작업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역시 이민노동이 흥미롭습니다. 도발적으로 말하면, 경향으로서는 유럽 시민도 또핱 이민자처럼 되어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까요? 결국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람들은 다양하게 이동하고 있으며, 다시 이민자가 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 등은 이제 EU의 식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전지구적 공간뿐 아니라, 유럽 공간의 한복판에서 -식민지적 자본주의(capitalismo postcoloniale)”의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경우는 물론이고, 이민노동이 놓인 위치, 계급적 위치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메차드라 : 브렛 넬슨과 공저한 책에서 후-식민지적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에 관해 약간 기술했습니다. 아무튼 질문은 복잡하고, 다양한 영역에 관한 사고를 요하네요.

   예를 들어 당신은 피치니니와 함께 쓴 글을 언급했습니다. 지금부터 대략 15년 전에 쓴 글 같네요. 당시는 한편으로 이민노동의 운동, 투쟁, 요구에 대해 정치적으로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 제게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 내부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가 지닌 중요한 특징은 여전히 계급구성 내부에서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1990년대에 비물질적노동, 인지노동, 일반지성과 관련해 부각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거기에 참여했습니다만, 이 논의는 물론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에 의해 노동구성, 계급구성의 내부에서 생겨난 중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니까. 그것은 자본주의가 기능하는 양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포드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탈리아, 또한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이탈리아인 망명자들이 있던 프랑스에서 전개되었습니다. 90년대 초까지 저도 관여한 상투어(Luogo Comune), 프랑스의 전미래(Futur Antérieur)같은 잡지에서 말이죠.

   이민이라는 물음에 관해서, 제가 90년대 초부터 하고 있는 정치적 작업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논의의 내부에서 모종의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한다는 것이 문제 아니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짧게 설명한다면, 제가 후-식민지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후-식민지 연구자에 의해 이 역사적 시간의 직선성이라는 관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의 직선성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한다는 오페라이스모의 자세의 배후에 존재합니다.

   아무튼 이민은 90년대 초 이탈리아의 도시들의 생활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킨 운동들의 중요성에 저를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민에 관한 제 작업은 다분히 이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아시다시피, 이탈리아는 이민으로의 이행을 80년대, 90년대에 매우 빠른 속도로 겪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를 이민을 떠나는 나라에서 이민이 들어오는 나라로 이르게 한 이행입니다. 저는 제노바에서 자랐는데, 80년대에는 도시였습니다. 90년대 들어 어느 시점에 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관점은 시골 근성이 팽배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우리의 논의,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에서는, 이 측면이 완전히 외부에 위치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덧붙여서, 이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는 80년대 말에야 되찾아졌습니다. , 많은 동료가 감옥에 있거나 망명해 있었기 때문에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겨웠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되살아난 뒤에야 이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민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아니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전체의 경험이기도 한데요, 저도 관여되어 있는 이런 담론 속에서는 이에 대해 그 어떤 종류의 고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말을 하거나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토록 중대한 사항에 대해 고찰하기 위한 공간이 [이론이나 입장, 노선 안에] 없다면, 그것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거죠.

   이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만일 계급구성, 노동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민을 고찰한다면, 이민은 바로 인지노동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노동형태를 우리더러 고찰하게 만드는 것임이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지노동에 종사하는 이민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며, 이민자의 인지노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이민은 인지노동, 비물질적 노동 등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일련의 노동형태들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의 물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노동은 바로 인지적 능력을 꽤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름 아닌 비물질적 노동이라고 정의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돌봄노동, 이민자들의 돌봄노동은 다양한 행위주체성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긴장에 처하게 하고, 의문에 처하게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 사항에 대해 우리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논의는, 이미 90년대 말에 크리스티나 모리니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 논의에 대해 중요한 것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말하면, 이민은 저를 다음의 것에 대치하게끔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민의 자율성, 이로부터 꽤 지난 후에, 특히 브렛 닐슨과의 작업에서 제가 정의하려고 한 몇 가지는 정식화된 것인데, ‘노동의 이질화와 다양체화’(eterogeneizzazione e moltiplicazione del lavoro)에 대해서입니다. 제게 이것은 이민의 한복판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자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동관계들의 전체를 표준형(standard)의 주위에서, 표준형에 기초한 관계의 주위에서 조직된 것으로 표상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 이것은 이제 그다지 규범이 아닙니다. 포드주의의 노동자, 포드주의의 공장노동자, 그리고 포드주의의 남성. 이것은 계약법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동관계를 조직하기 위한 표준형의 틀입니다. 이것의 주위에서 그 다양한 제도, 규칙 등과 더불어 제반 노동시장의 총체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표준형에 관해 전혀 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분석적 관점에서도, 정치적 관점에서도, 노동세계의 한복판에서 차이의 증식에 대해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른바 노동구성의 주체성의 규정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렇고, 계약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노동관계들의 조직화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근대자본주의의 역사를 검토한다면, 그 시작부터 유럽뿐 아니라 전지구적 역사로서 그것을 검토한다면, 이 상황은 식민지 세계, 식민지 자본주의(capitalismo coloniale)를 오랫동안 특징지었던 그것에 다름 아닙니다. 제게는 오늘날 어느 정도는 세계 도처에서, 식민지 자본주의의 이런 경험의 모종의 뒤통수 때리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관계들의 이런 이질성을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파농도 인용했죠. 주식, 금융은 강제노동 등의 조건들과 공존한다. 산업임금노동은 비공식적 노동 등의 다수의 형태와 공존한다. 거듭 말합니다만, 물론 오늘날에는 이것은 다른 조건들 아래서 생기고 있습니다.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해 논함으로써 이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정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후-식민지 자본주의에서, 제게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요소로서 금융이 작동하는 장소, 금융자본의 장소가 있습니다. 많은 동료들, 특히 친애하는 크리스티안 마라찌가 이 점에 대해 작업을 했습니다. 이들은 제게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작업은 이 금융화 과정의 새로운 성질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바로 문제는 이것들의 이노베이션의 관점에서, 즉 오늘날의 사회적 협동, 생산적 협동이 조직되고 명령을 받고 착취되는 방식의 관점에서, 금융화의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거듭 말합니다만, 이 요소가 이질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덧붙이겠습니다. 이민은 기본이 되는 렌즈입니다. 이민은 계급구성을 변형시키는, 또한 착취의 조건들을 변형시키는 데 있어서의 기본적 힘일 뿐만이 아닙니다. 이민은 당신이 앞서 잘 설명해준 것처럼 이민자들에게 독자적인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행동, 동태, 경험, 새로운 이동성의 경험을 미리 독해한다는 것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노동의 프레카리아화의 형태를, ‘토착의 노동에 대해 뭔가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언급했듯이, 유럽 내부의 이민 문제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무시하기 아주 어려운 현실입니다. 베를린에서 어딘가로 먹으러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타가와 : -식민지 자본주의의 이런 특징은 이른바 본원적 축적의 현대성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논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자본주의의 비판적 분석에서는 본원적 축적의 현대성이 꽤 주장됐습니다. 예컨대 이에 관해서는 약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개념을 이용해 데이비드 하비도 매우 중요한 논의를 했습니다.

   당신도 언급했듯이, 하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표준형’, 즉 한쪽의 확대재생산과 다른 쪽의 약탈에 의한 축적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시작될 때부터의 식민지성이라는 앞의 논의를 감안하면, 이 둘의 구별은 전자의 중심성을 적어도 이론적 전제로서 보존한 다음에 이뤄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약탈은 식민지 또는 구식민지에서는 항상계속해서 자본주의의 주요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요즘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더라도, 거기에서는 본원적 축적의 폭력에 의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더라도, ‘표준형의 세계로 나아갈 문이 닫힌 채 약탈당하는 사람들, 생존유지를 위해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 이동하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경우에 따라서는 유럽으로)이 대거 있는 것입니다.

   하비가 말하는 확대재생산약탈에 의한 축적유기적 연결’, 또는 변증법적 관계라는 틀에서는 당신이 논하는 표준형을 무표화하는 생산양식의 이질화와 다수화라는 추세, 심지어 중심성없는 노동의 이질화와 다수화라는 추세를 충분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계급투쟁의 이질화와 다수화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메차드라 : 생각건대, 데이비드 하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약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명명한 형태가 오늘날 갖고 있는 중요성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공적이나 활동을 의문시할 필요는 없죠.

   그러나 최근 들어, 하비의 입장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남미의 맥락에서 제가 작업을 하면서 항상 논의해온 것은 약탈과 착취 사이의 구별이 대립, 이항대립으로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것에는 착취의 새로운 성질을 우리가 놓쳐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 오늘날의 자본의 축적과 가치증식의 체제(regime)를 규정할 때, 착취와 약탈이 조합되는 방식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채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남미, 또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채굴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두고 오늘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는 원주민의 공동체에 대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초래합니다.

   남미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채굴활동의 이런 강화가 이 지역에서의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암호, 상징으로서 채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테제에 관한 경험적 논증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채굴활동의 강화에 맞서는 수많은 매우 중요한 사회투쟁이 부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투쟁들에는 그저 광물의 채굴활동뿐 아니라, 예를 들어 콩의 재배처럼 농업을 급습해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채굴활동에 저항하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특히 친구이자 동지인 아르헨티나 사람인 베로니카 가고와 함께 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려 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이론적 입장은, 간략하게 말한다면, 신채굴주의(新採掘主義, neo-estrattivismo)라는 정식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지나치게 치우친 방식으로, 글자 그대로 채굴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한 비판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며, 시골과 도시 사이의 대립을 재생산하는 것 아닌가. 이런 대립은 이론적으로도 이견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정치적으로는 그저 불안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채굴의 범주는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문자 그대로 채굴활동과는 관계없는 형태로도,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한 뭔가를 밝혀주는 것인가 아닌가. 저는 특히 베로니카와의 작업에서 그것을 탐구하려고 해 왔습니다. 브렛과 지속하고 있는 작업도 그렇습니다. 그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만 채굴이라는 범주를 독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금융이 사회적 협동과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해보려 한 것입니다.

 

기타가와 : 그것이 채굴주의라기보다 당신이 말하는 신채굴주의라는 것이죠?

 

메차드라 : 그렇습니다. 채굴주의라는 정식은 남미로부터 널리 보급된 것이죠. 이제는 신채굴주의에 대해 더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채굴주의는 16세기 이후, 항상 남미의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이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신채굴주의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금융에 관해 다뤄 봅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 큰 질문이네요(웃음). 여기서 충분한 말, 해답을 줄 수는 없겠죠. 그러나 맑스의 자본3권에서 매우 시사적인 지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맑스 시대의 금융은 오늘날의 금융과는 거의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그의 이론을 금융파생상품, 신용파산스왑, 극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 등에 적용하기 위해 끄집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맑스는 매우 일반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금융자본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 미래에서 생산되어야만 하는 부에 대한 막대한 유가증권, 청구권의 축적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날 유가증권을 갖고 있다면, 제 이윤은 어디서 파생될까요? 그것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에서 파생됩니다. 그것은 곧 나의 유가증권을 통해서, 나는 미래에서 전개되어야만 하는 생산과정을 저당잡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유가증권을 통해 위대한 자본가, 주주로서의 저는 지금, 미래에 대한 일종의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생산과정에 대한 명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빚을 안고 있는 빈곤한 노동자, 빚을 갚을 의무를 지고 있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빚은 미래의 생산에 대해 제가 보유하고 있는 권리와의 상호 거래의 재료가 되는 겁니다. 결국 이 채무, 의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갚기 위해서 미래에 일해야만 한다는 의무에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저를 거대한 금융자본가라고 합시다. 당신은 주택계약 때문에 빚을 진, 제게 채무가 있는 가난뱅이라고 칩시다. 내일 당신이 무엇을 할지, 저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스스로 일하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든, 운동복 매장에서 일하든, 길거리에서 헤로인을 팔든 광고대리점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든, 제게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은 확실히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회적 협동의 편성에 진입하게 됩니다. 모레가 되면, 저는 바로 그로부터 가치를 추출합니다. 당신의 노동을 조직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산업자본가와 맺은 관계와의 근본적 차이이죠. 산업자본가는 노동을 조직했고, 이로부터 가치를 추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노동의 협동은 산업자본가가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금융자본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가 그로부터 가치를 끌어내는 사회적 협동의 외부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금융자본가는 이 사회적 협동으로부터 가치를 채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은유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광산에서 대지로부터 귀중한 광물을 채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인 거죠.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보면, 조금 멈춰 서서 고찰해야 할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제가 얘기한, 이렇게 단순하고 단순화되고 대체로 진부한 예로부터, 다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현대자본주의의 모든 편성의 한복판에 있는 금융자본의 우위성에 노동의 이질화의 과정들이 얼마나 호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당신은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고, 다른 사람은 광고대리점에서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빈민굴에서 마약 밀매업을 하는 등등의 상황이 있기 때문이죠. 동질화, 즉 이런 종류의 관계에 건설적인 방식으로 계속 대응하는 동질화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말한다면, 저도 그렇습니다만, 다음의 사항을 재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이고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간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노동과 자본의 관계의 정치적 주체화에 관한 조건들을 재고하는 것, 더 단순한 용어로 말한다면 오늘날의 계급투쟁의 장소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공장에 일하러 간다면, 거기에는 독자적인 적대성의 원천이 되는 공장 고용주와의 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와의 관계, 금융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유형의 적대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금융자본에 적대하는 조직의 정치적 가능성을 사고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시다시피, 이민자들 안에도 이런 유형의 논리가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입니다. 이것들은 종종 사전계약의 조건들, 즉 이민자들이 빚을 갚아야 할 조건들을 제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논리는 이민자에 의한 송금의 유통을 통해서도 침투하고 있죠. 그것은 이민 경험의 금융화와 대응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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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text of "Sandro Mezzadra 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1712-1778 : 장 자크 루소, 혹은 고독한 사상가의 예견

장 자크 루소의 사유의 정치적 관건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와 크리스틴 고에메(Christine Goémé)의 인터뷰


* 이 글의 한국어 번역본은 진보평론2016년 여름호 (제68호), 2016.7, 113-126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 이 블로그에는 나중에 공개할 예정임. 

* 프랑스어판은 여기를 클릭

http://www.entretemps.asso.fr/Badiou/Rousseau.htm


이 글은 Alain Badiou, «1712-1778 : Jean-Jacques Rousseau, ou les visions d’un penseur solitaire : enjeux politiques de la pensée de J-.J Rousseau», (France Culture, “les Chemins de la connaissances,” 1988, Notes d’Aimé Thiault et transcription de François Duvert)의 번역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내용을 문자로 옮긴 것으로, 약어, 누락, 구어체로 인한 통사법적인 모호함이 더러 있고, 이 때문에 몇몇 대목은 불가피하게 의역했다. 오류, 착오, 오해 등이 있을 수 있다. 독자의 조언을 기다린다(http://www.entretemps.asso.fr/Badiou/Rousseau.htm).

이 인터뷰가 진행된 1988년에는 바디우의 주저인 존재와 사건이 출판됐으며, 이듬해인 1989년에는 소련이 붕괴되고 텐안먼 사태가 일어났다. 존재와 사건에서 바디우는 한 장을 루소에 할애해서 논의하고 있는데, 그 논의의 일부가 이 인터뷰에 압축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정치적 공간의 비시간적 또는 반시대적 특징 및 그 수립(사회계약)에서 생기는 순환구조, 정치에 있어서의 성명의 중요성, 정치적 공간을 여는 사건으로서의 사회계약 및 일반의지에 대한 인내력과 용기를 수반하는 충실성, 정치적 공간에서의 객체 없는 주체, 그리고 이것들을 떠받치는 루소의 단호한 문체의 율동 등이다. 이런 논점들은 냉전 봉기와 2001911일의 이른바 동시다발 테러 이후, 정치적 계기(繼起)들 사이의 단절성, 정치적 공간의 탈역사주의적 성질, 국가와의 간극에 있어서의 정치조직의 모색 등으로, 최근 바디우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사고하고 있는 금융위기 이후의 공산주의의 이념이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시켜 전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바디우가 프랑스 혁명과 문화대혁명을 언급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자코뱅파 및 마오쩌둥의 정치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루소를 애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회계약의 존립을 문화대혁명의 정치적 계기에서 본다는 점에 바디우의 사유의 특이성과 활동가로서의 행보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바디우가 1970년대에 쓴 텍스트들(공동 집필도 포함) 중 세 개를 골라 수록한 Alain Badiou, Les années rouges, Paris : Les prairies ordinaries, 2012를 참조. ‘모순’(마오쩌둥) ’(경향, 사건, 진리)장소’(구조, 존재, 지식)의 조합(헤겔)으로부터 관념형태의 독자적인 존립양태의 고찰을 거쳐 정치적 주체와 과학(주체 없는 객체)이라는 이율배반의 구체적인 해결이 모색된다. 한편, 위의 책에 수록된 바디우의 친구인 브루노 보스틸스의 해석은 활동가로서의 바디우의 경력을 그의 철학·이론에 비추어 자세하게 추적하는 동시에 향후 그의 모습까지도 전망하고 있는, 설득력과 우정으로 넘쳐나는 유익하고 자극적인 논문이다. 



Alain Badiou

 

1712-1778 : Jean-Jacques Rousseau, ou les visions d’un penseur solitaire

Enjeux politiques de la pensée de J-J Rousseau.

(France Culture, les Chemins de la connaissance, 1988)

 

 

(Notes d’Aimé Thiault et transcription de François Duvert)

 

- Christine Goémé : c’est vers l’âge de 40, donc vers 1750, que JJ Rousseau écrira et publiera les grands textes qui font aujourd’hui encore sa célébrité. Au cœur de sa pensée, les écrits politiques, nombreux, dont certains extrêmement pragmatiques. Pour donner une idée de l’ampleur de l’entreprise, voici les grands textes politiques :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Discours sur l’Origine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le Discours sur l’économie politique, le CS, beaucoup de textes éparpillés, les écrits sur l’abbé de St Pierrele projet constitution sur la Corseconsidérations sur le gouvernement de Pologne, liste à laquelle on pourrait ajouterl’Emile et le reste de l’œuvre, et même les Confessions. Au fond, Alain Badiou, on pourrait relire tout Rousseau sous l’angle de la politique comme si la  pensée politique de Rousseau en était la cohérence.


- Alain Badiou : je crois que s’agissant  du problème de l’unité de l’œuvre de Rousseau, ou de la cohérence de l’œuvre de Rousseau, la politique est un bon fil conducteur. Ce n’est peut-être pas absolument le seul, on pourrait peut-être aussi tenter d’entrer dans Rousseau à partir d’une catégorie encore plus général que celle de la politique, que je dirais être celle de subjectivité : qu’est-ce que le subjectif ? Il y a sur ce point une anticipation de Rousseau extraordinaire : l’accent serait cette fois plutôt sur Confessions et la Nouvelle Héloïse, mais on y inclurait ou on retrouverait la politique, car au fond la gde question de Rousseau c’est : qu’est-ce que c’est que le sujet politique, y a t-il un sujet politique, quelle en est l’origine et la constitution ? Ce n’est pas une originalité, il a des prédécesseurs évidemment, mais c’est une radicalité que ce qui l’intéresse dans la politique est moins la question classique ou traditionnelle de l’équilibre du bon gouvernement, ou la conformité de l’Etat à une idée abstraite ou philosophique de la politique, mais la constitution et la figure interne du sujet de la souveraineté. C’est pour ça que en définitive que la grande question de Rousseau est : qu’est-ce qu’un peuple, qu’est-ce qu’un peuple politique ?


- Christine Goémé : Auscultons quelques mots clés de Rousseau, Alain Badiou, je vous laisse le choix.

 

- Alain Badiou :  je crois qu’on peut peut-être partir de 2 mots, contrat social d’un côté (c’est un titre) et volonté générale de l’autre, et peut-être plus encore de tenter de penser la corrélation des 2, ce qui est le cœur du propos et somme toute une idée forte, ie un peu complexe en même temps.

D’abord s’agissant du contrat social, ce que je retiens moi de la figure du contrat chez Rousseau (étant entendu que la théorie contractualiste concernant sur le fondement de la souveraineté, il n’en est pas le détenteur exclusif), c’est l’idée suivante : la politique de manière générale suppose un événement. Le contrat social, c’est quelque chose qui se passe. Naturellement on dira aussitôt : justement il ne se passe pas, car il est absolument impossible de lui donner une densité historique. Quand a-t-il eu lieu ? Impossible de le savoir. A-t-il encore lieu ? Ce n’est pas sûr, car Rousseau soutient que tous les Etats actuels, les Etats empiriques, sont des Etats sont dissous, qui ne sont plus sous la loi du contrat ou de la volonté générale. Aura-t-il lieu ? C’est également incertain, il peut difficilement être un programme, il ne peut être un programme car tout programme suppose un contrat. On entre alors dans une circularité. Justement avec sa thématique du contrat, Rousseau touche à une dimension des événements fondateurs de la politique qui leur est essentielle : ce ne sont pas en réalité des événement empiriques ou historiques ou anecdotique, ce sont des événements qui, car ils sont fondateurs, créent leur propre temps. Ils ne sont pas hors du temps ils sont ce qu’on pourrait t appeler un acte qui quoique dans le temps exprime une intemporalité du temps

 

- Christine Goémé : vous mettez le doigt d’un caractère de Rousseau, qui est d’être anti-historiciste.

 

- Alain Badiou : exactement, ce n’est pas du biais de l’histoire qu’on peut aborder les questions fondamentales de la politique, c’est le début célèbre écartons tous les faits. C’est la méthode : commençons par les écarter. On ne saurait mieux dire l’opposition de Jean-Jacques Rousseau à toute vision journalistique ou anecdotique de la politique : la politique, dans son fondement essentiel, si on veut la penser, ce n’est pas du côté des faits qu’on va trouver la réponse.


- Christine Goémé : rappelons les termes du contrat

 

- Alain Badiou : la question du contrat est la question de cette événementialité suspendue, justement, intemporellement temporelle, si l’on peut dire, par lequel un peuple va se rapporter à lui-même, de lui-même à lui-même en totalité, en déclarant (selon une codification qui restera toujours implicite mais qui est fondatrice), que en définitive chacun va se placer sous la loi de la volonté générale, et donc abdiquer entièrement dans l’espace politique sa propre volonté, pour ne faire plus que un ou une composante de la volonté générale. Donc la volonté générale est ce qui va surgir de ce contrat par lequel le peuple se rapporte tout entier à lui-même pour se constituer comme souverain. Alors que, évidemment, dans l’état de nature, là or il n’y a pas encore l’homme - mais seulement l’animal humain - il n’ y a que des individus gouvernés par des passions singulières qui se rencontrent, s’affrontent ou s’isolent, sans que le corps politique soit constitué.

Le contrat c’est un moment d’équilibre, et en même temps c’est un moment de bascule radicale. Rousseau tient que cet événement fait passer la vie des hommes d’un état à un autre qui en un certain sens n’ont rien de commun, il y a l’état de nature,  l’état civil, et entre les 2, il y a le contrat, événement singulier. Ce que je voudrais souligner, c’est que cet événement contient bien ce qui, pour moi, est un signe ou stigmate de tout événement véritable :

1° il est intransitif, ou incalculable, ie rien dans l’état de nature ne génère ou ne permet de trouver une causalité quelconque, il est un surgir, c’est pour ça qu’il n’est pas exactement dans le temps ou dans la chaîne du temps,

2° et d’un autre côté cet événement en quelque manière se contient lui-même, il est son propre élément ou sa propre composante, puisque il ne va y avoir de peuple que car il y a eu contrat, et en même temps le sujet du contrat est le peuple qu’on suppose  rassemblé dans la possibilité de passer contrat avec lui-même. On a souvent objecté ce caractère circulaire, ou tautologique du contrat, j’y vois autre chose : j’y vois que dans toute événementialité véritable on a cette structure, l’événement est toujours en quelque manière à lui-même sa propre marque, à lui-même sa propre multiplicité, et c’est la seule manière de penser qu’il ne soit pas purement et simplement un effet de ce qui se précède.


- Christine Goémé : Rousseau est un critique du progrès.

 

- Alain Badiou : voilà un 2ème point sur lequel Rousseau se bat et combat : c’est le point du progrès, après le contrat il n’y a pas de progrès possible. Le but n’est pas d’établir un certain nombre de choses mais il est de faire en sorte que l’événement reste événementiel.

 

- Christine Goémé :


- Alain Badiou : absolument, c’est ce que j’appellerais dans mon propre jargon la fidélité : il n’y a pas d’autre rapport au contrat que de se maintenir dans l’élément politique que le contrat, que l’événement a constitué, ie de rester sous le règne de la volonté générale. Rousseau n’est pas d’ailleurs d’un optimisme essentiel là dessus. Puisque je le rappelais tout à l’heure il considère que la monarchie française est un Etat dissous, Etat infidèle à la fondation événementielle de la politique, ce qui si on le prend en toute rigueur, cela signifie que à ses yeux il n’y a plus de politique dans ces Etats. Il faut mettre en évidence ce point : les conditions pour qu’il y ait de la politique sont aux yeux de Rousseau très définies et très rigoureuses. Il y a à ses yeux de la politique, ie de la légitimité politique minimale si réellement on est sous le règne de la volonté générale, le règne de la volonté générale autorise éventuellement des constitutions un peu différentes, il ne prescrit pas le détail des choses, puisque comme on sait il faut l’intervention d’un perso intermédiaire, somme toute mystérieuse, qui est le législateur, pour mettre en forme, en forme exécutive la contrainte événementielle du contrat. Il y a des possibilités différentes bien que il est clair que la constitution démocratique est la meilleure, il peut y avoir des dispositions dans l’organisation de la puissance publique qui soient très variées, mais cette variété doit exprimer en tout cas ce qui est donné dans les termes du contrat ie que la souveraineté populaire dans la dimension de la souveraineté générale Mais des Etats comme la monarchie française, y compris le constitutionnaliste anglais, ne représentent en rien pour Rousseau des figures de cette fidélité et donc sont à proprement parler des Etats non politiques.

 

- Christine Goémé : J’ai sous les yeux le CS II, 2, que la souveraineté est indivisible. « pour la même raison que la souveraineté est inaliénable elle est indivisible : car la v est générale ou ne l’est pas, elle est celle du corps ou  seulement d’une partie, dans le 1er cas c’est un acte de souveraineté et fait loi, dans le 2nd ce qu’une volonté particulière ou un acte de magistrature c’est un décret tout au plus ».

 

- Alain Badiou : cette opposition de la loi et du décret est une opposition qui est celle du général et du particulier, qui est au fond la grande question de savoir si l’espace politique renvoie à la souveraineté populaire en son sens générique ou renvoie en réalité à des intérêts particuliers camouflés, est une question décisive pour Rousseau. Evidemment, il n’y a politique au sens fort que quand il y a des lois, mais ce n’est pas n’importe quoi, un texte écrit promulgué par un gouvernement quelconque : une loi c’est ce qui met en forme sur un point particulier, sur un point déterminé la volonté générale. On pourrait aussi bien dire que pour Rousseau, les Etats empiriques sont des Etats sans loi, où il n’y a que des décrets, où - pour parler moderne - il n’y a que de la gestion gouvernementale par décret, exprimant en réalité de façon inéluctable selon Rousseau des volontés particulière. Ce problème est à mon avis d’une grande actualité : la question de savoir si nos Etat représentatifs actuels sont des Etats où il  y a de la politique, où il y a autre chose que des contraintes gestionnaires renvoyant elle-même en définitive à des intérêts particuliers, est une question politique moderne, et Rousseau l’a posée avec une grande clarté, y compris avec un point qui articule sa critique du système anglais, fascinant les progressistes du 18ème, et qui pour nos contemporains est très rude, qui est que la représentation, le mécanisme de la représentation, le mécanisme qui consiste à faire reposer le pouvoir de décision dans une assemblée de représentant eux-mêmes structurés par des partis annule pour lui structurellement l’efficace de la volonté générale.

 

- Christine Goémé : le but du Contrat Social c’est la liberté, c’est la radicalité de la liberté. Mais l’objection d’Althusser, c’est de dire que ce qui est difficile c’est que l’homme est à la fois objet et sujet du contrat. Peut-il être libre s’il est à la fois sujet et objet ? Comment répondre ?

 

- Alain Badiou : c’est évidemment la question centrale, et l’objection d’Althusser est une objection concernant en fait la catégorie de liberté, une objection aussi de provenance marxiste dans la vision, la vision créatrice, qu’en avait Althusser qui est qu’en définitive à ses yeux les catégories d’objet et de sujet sont elles-mêmes des dérivée idéologiques d’un certain état de la politique : elles ne peuvent être fondatrices car elles en sont des effets. L’interpellation en sujet exprime aux yeux de Althusser le juridisme bourgeois. C’est une catégorie juridique, et donc ça ne peut être une catégorie fondatrice. A l’arrière-plan, le réel de la politique est le réel des classes, qui interdit de se représenter le corps populaire comme un corps intégralement unifié, c’est le principe de contradiction d’opposition et de division qui est constitutive de la situation. Nous pouvons entendre ces objections. Si on transforme un tout petit peu les termes, je pense que l’objection ou se déplace ou s’atténue, et que nous avons encore à retenir qch de la conception de Rousseau.

Le fait que dans un rapport politique quelconque, laissons de côté même le contrat, pour l’instant, le fait que dans un rapport quelconque, on soit à la fois sujet et objet de l’action me paraît au contraire une idée extrêmement profonde, dont je dirais que tout militant politique véritable a absolument l’expérience. Et que pendant la révolution culturelle en Chine, on avait trouvée reprise sous la forme métaphorique qu’adore les chinois l’idée que dans l’action révolutionnaire, on est toujours à la fois la flèche et la cible. Toujours à la fois la flèche et la cible pourquoi ? car il serait vain d’imaginer que l’amplitude des transformations politiques engagées au nom de la liberté laisse intacte y compris votre id de sujet dans l’espace collectif. On sait très bien que toute transformation du collectif est une transformation de vous-même dans le collectif, y compris en tant agent de cette transformation. Si on prend objet comme partie ancienne ou morte ou passée de nous même me paraît une caractéristique de l’action politique que Rousseau a parfaitement perçu : il a perçu que une politique véritable travaille nécessairement contre notre v particulière. Il n’y a Pas de raison qu’elle lui soit de part en part homogène. La volonté générale transcende les vol part, chaque sujet politique a une volonté parti nous avons des intérêts et volontés particulières. Il est clair que espérer que la vol en tant que volonté universelle en général, soit de part en part homogène nous ramènerait à quoi ? nous ramènerait à cette idée gestionnaire et antipolitique que la politique est d’organiser vaille que vaille les intérêts. C’est une idée anti-R.

 

- Christine Goémé : ce qui est un but et une tension vers qch, c’est que cette volonté générale ne peut être constitutive et avoir des effets de liberté que si elle est pensée par des sujets libres. Radicalité très profonde qui néanmoins me paraît utopiste.


- Alain Badiou : oui et non, car au fond Rousseau savait parfaitement ce qu’il en était de la réalité, et il savait bien que sa recherche radicale d’un fondement renouvelé de la politique ne coïncidait pas du tout avec l’expérience et la réalité des choses. Quand il s’occupait de la réalité des choses, comme dans le projet de constitution de Corse ou considérations sur la Pologne, c’est un analyste précis et tenant parfaitement compte de la situation concrète. Si on lui dit : faites nous un programme, il essaie de faire un programme adéquat aux circonstances. La question de savoir s’il est conforme aux principes d’existence mêmes de la politique pure, ça c’est une autre question. Pour revenir à l’objection, c’est toujours un peu la même, c’est une objection de circularité : pour obtenir la liberté il faut déjà être libre, pour qu’il y ait création du peuple par le contrat il faut que le peuple soit déjà en état de passer contrat, donc soit déjà politique. Ça enseigne que il est bien vrai que la liberté a pour condition la liberté. Ceux qui font avancer la possibilité de la liberté ce sont ceux là qu’on appellera des esprits ou des agents libres. Cet effet que le trajet de la liberté politique est en quelque manière libérateur en même temps qu’il est libéré demeure me semble-t-il une caractéristique de la liberté politique. Sa condition subjective est relativement circulaire et paradoxale. Prenons cette circularité comme un paradoxe. Mais il se peut que dans bien des domaines la loi de l’être soit le paradoxe : j’aime mieux être un homme à paradoxe qu’à préjugés disait-il. Mieux vaut le paradoxe de cette liberté apparemment circulaire où la libération est obtenue par la liberté, que le préjugé d’opinion qui est somme toute qu’il n’y a que la nécessité. C’est vrai, la liberté est une entité paradoxale. Et à vrai dire n’importe quel exemple concret le montre, ils auraient certainement passionné Rousseau : prenez par exemple la lutte de libération d’un peuple colonisé. Exemple banal et ordinaire, que nous avons connu historiquement. Tout le monde voit bien qu’il faut en un certain sens que ceux qui organisent les insurrections libératrices soient déjà en eux-mêmes suffisamment libérés de la situation oppressive pour pouvoir le faire. Il est clair que la libération présuppose une degré de liberté Je crois que en touchant à ce paradoxe de la liberté politique, Rousseau en a exprimé non pas du tout l’impasse mais le réel. C’est ça le point de réel. Il ajoutait en plus avec un grand génie que ce point de réel, ce paradoxe réel, on ne peut pas en faire une loi de l’Etat, de la structure des choses, ce serait contradictoire, mais on peut en faire une csq d’un pur surgir, ie d’un événement incalculable.

 

- Christine Goémé : je vous entraîne sur un autre terrain, pour conclure, celui de l’écriture politique de Rousseau, il y a là quelque chose de contemporain qui est l’art d’écrire du politique. D’habitude, les traités politique d’un ennui mortel - d’habitude. Ici il y a un clivage qui saute…

 

- Alain Badiou : la question de la politique est profondément liée à la question de la langue. On ne le souligne jamais assez. La poésie est liée à la langue, on le sait. Mais la politique aussi. Conception politique nouvelle langue nouvelle. Je voudrais dire en passant, puisque nous parlons du  style de Rousseau, le rapport de Rousseau à la langue est absolument prodigieux : ça va depuis cette espèce de style impérieux tranchant rigoureux des écrits politiques proprement dits, avec ces attaques admirables : l’homme est né libre, tout le monde est dans les fers, des choses de cet ordre, où la maxime concentre la pensée, chose dont évidemment les dirigeant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se souviendront, ça va jusqu’au contraire cette espèce de style qui invente une fluidité inconnue, dans les Rêveries, où la langue est quasiment au bord de sa dissipation. Avoir tenu non seulement un style reconnaissable mais dans une variété considérable est prodigieux, sans équivalent en France. S’agissant de la langue politique, je crois qu’elle a 2 caractéristique, car c’est une langue de fondation, une langue de principe :

1° c’est une langue économique, ie une langue qui est extrêmement resserrée sur l’essentiel de ce qu’elle a à dire, elle est extraordinairement peu bavarde. On peut le dire autrement : ce n’est d’aucune façon une langue du commentaire, c’est une langue de la déclaration et non du commentaire. Rousseau est celui qui a montré qu’il n’y a de politique véritable que de déclaration, et non pas de politique de plainte ou de commentaire.

2° 2ème caractère, c’est son extrême volonté de cohérence aux principes, et ça c’est comme l’équivalent dans la langue de la pensée politique elle-même, de même que la politique est fidélité à ses événements fondateurs, de même le texte politique doit montrer sa csq avec les principes qu’il organise. Et la langue, dans sa fermeté pressante, dans sa volonté d’arracher le lecteur à son opinion bavarde implicite, c’est une grande langue politique.

 

- Christine Goémé : Rousseau est devant nous

 

- Alain Badiou : Absolument, je pense que lire Rousseau, même pour le déplacer, le transposer, le requalifier pour nos besoins essentiels fait de Rousseau notre contemporain.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tienne Balibar, Sandro Mezzadra, Frieder Otto Wolf

: Le Diktat de Bruxelles et le dilemme de Syriza



Le diktat de Bruxelles et le dilemme de Syriza

Par Etienne BALIBAR, Sandro MEZZADRA, Frieder Otto WOLF[1]

* https://blogs.mediapart.fr/ebalibar/blog/190715/etienne-balibar-sandro-mezzadra-frieder-otto-wolf-le-diktat-de-bruxelles-et-le-dilemme-de-syriza 

 Les « accords » léonins qui viennent d’être passés sous la menace, entre le gouvernement grec (à charge pour lui de les faire entériner par les députés de la Vouli) et les autres Etats de l’Union Européenne (qui n’ont pas tous besoin d’une telle sanction) marquent-ils la fin d’une époque et le commencement d’une autre ? Oui, à plusieurs égards, mais certainement pas dans le sens qui nous est indiqué par le communiqué du « sommet ». Ces accords, en effet, sont fondamentalement inapplicables, économiquement, socialement, politiquement, et pourtant ils vont faire l’objet d’un « passage en force » qui promet d’être aussi violent, et plus conflictuel encore, que ce qui a précédé depuis 5 ans – où pourtant l’on a déjà atteint des extrémités.

Il faut donc essayer d’en comprendre les implications, et d’en discuter les conséquences, en évitant toute rhétorique mais non pas tout engagement et toute passion. Pour cela il faut revenir, même schématiquement, sur le déroulement des « négociations » ouvertes  par le retour à Bruxelles d’Alexis Tsipras, en position de demandeur au lendemain de son « triomphe » dans le referendum du 5 juillet (ce qui, aujourd’hui encore, et on le comprend, ne cesse d’alimenter l’incompréhension et les critiques au sein de ses partisans, en Grèce et à l’étranger), et sur la disposition des « forces » que ces tractations ont révélée. Il faut définir le point atteint par la crise de l’Union européenne (dont la situation désespérée de la Grèce est à la fois le symptôme et la conséquence), dans les trois domaines stratégiques que sont : l’état de la dette et l’effet des politiques d’austérité, la division de l’Europe entre zones d’inégale prospérité et de souveraineté plus ou moins limitée, enfin l’effondrement des mécanismes démocratiques et la montée corrélative des nationalismes populistes. Mais auparavant, un bilan provisoire du contenu des « accords de Bruxelles » est indispensable, à la fois au point de vue de la situation du peuple grec, donc « vus d’Athènes », et « vus d’Europe » (ce qui, bien entendu, ne veut pas dire au point de vue de Bruxelles, car s’il est une chose bien claire désormais, c’est que dans les bureaux de Bruxelles on n’a aucune perception de l’état de l’Europe).


Les « accords » vus de Grèce

Vus de Grèce, les accords apparaissent bel et bien comme un diktat. Varoufakis est allé jusqu’à parler de « Versailles », une allusion provocante aux traités de 1918 qui ont eu les conséquences que l’on sait sur l’histoire intérieure de l’Allemagne et sur le sort du monde, et l’imputation a paru suffisamment grave et crédible pour que Merkel, aussitôt, proclame qu’elle est indifférente aux « comparaisons historiques »… La dramatisation se justifie, pour deux raisons étroitement liées entre elles.

La première c’est que, même si les propositions avec lesquelles Tsipras est arrivé à Bruxelles le 7 juillet n’avaient pas représenté de sa part un recul considérable (puisqu’elles reprenaient, pour l’essentiel, les mesures d’austérité budgétaire et économique qu’il avait précédemment refusées, en particulier pour ce qui concerne les retraites et les impôts), ces propositions étaient encore intégrées à un projet (pour ne pas dire un « plan ») de redressement de l’économie et des finances grecques dont le gouvernement grec avait l’initiative, et au sein duquel, dans des conditions certes beaucoup plus difficiles que souhaitable, il pouvait espérer développer une politique propre dans l’intérêt de son peuple. C’est pourquoi d’ailleurs elles faisaient corps avec la demande réitérée d’un aménagement de la dette (auquel entre temps des économistes de renom, jusqu’au sein du FMI et indépendamment de leurs orientations, avaient apporté un soutien de plus en plus clair et unanime). Mais c’est précisément cette ultime tentative de rationalité et de cohérence que, sous l’impulsion du Ministre des finances allemand et par la bouche du Président de l’Eurogroupe qui lui servait de porte-parole, les « interlocuteurs » de la Grèce s’employaient à ruiner d’emblée, en arguant de leur « perte de confiance » dans le gouvernement grec (donc d’un argument purement moral) et en réclamant des mesures punitives sans aucune rationalité économique. Le résultat est un anti-plan de redressement, qui s’apparente à une « saignée » des ressources subsistantes de la population grecque (et notamment de ses couches les plus pauvres, celles qui ont déjà un pied dans la catastrophe humanitaire) et à un dépeçage de l’économie nationale en vue de privatisations « idéologiques » tout à fait aléatoires. Particulièrement significatives sont, à cet égard, des mesures comme le recul de l’âge de la retraite, absurde sinon criminel dans une économie où le chômage des jeunes atteint 60%, et la « saisie » préventive des actifs grecs, à la manière d’un usurier qui prend des gages (même si in extremis Tsipras a réussi à éviter la localisation de cette nouvelle Treuhandanstalt au Luxembourg, dans un établissement dont … le ministre Schäuble est administrateur !). 

L’Europe se comporte ici vis-à-vis de la Grèce à la fois comme un usurier et comme un prédateur dont l’objectif n’est pas d’entretenir la viabilité ou la croissance de ses ressources, mais d’opérer leur drainage jusqu’à épuisement. Que cette antipolitique soit, aux yeux de certains (peut-être de bonne foi), justifiée par les dogmes d’une orthodoxie monétariste inscrite en « lettres d’or » dans les Traités européens depuis Maastricht et renforcée par le « pacte budgétaire » de 2012, ne constitue en rien, évidemment, une justification. Nous ne sommes plus, en effet, au début de la crise, et tous les dirigeants européens (y compris allemands) ont eu le loisir d’observer in vivo les effets récessifs de la politique qu’ils ont imposée. Ils savent parfaitement que la dette publique grecque, ayant pratiquement doublé en dix ans, atteint 180 % du PIB non pas en raison de l’accroissement de sa masse (largement dépassée, même proportionnellement à la population, dans d’autres pays européens), mais en raison de l’effondrement de la production et de la consommation. Il ne s’agit donc pas de rationalité, ni même d’intérêts bien compris des créanciers, mais de vengeance politique et d’humiliation d’un « ennemi intérieur ». Ce qui est confirmé quand on voit que chacune des mesures imposées correspond point par point à l’inversion d’une mesure sociale ou économique sur laquelle le gouvernement Tsipras s’était engagé dans son programme électoral et lors de son arrivée au pouvoir.

Par où l’on passe à la seconde raison qui autorise à parler de diktat, plus grave encore peut-être, en tout cas destinée à verrouiller la précédente : nous voulons parler de l’ensemble des mesures de « mise en tutelle », équivalentes à la constitution d’un protectorat au sein même de l’Union européenne, sur le modèle d’anciennes pratiques coloniales, mais appliqué cette fois à l’un de ses membres (et dont on lui demande ainsi d’être ainsi symboliquement « co-responsable »). La plus voyante sans doute est celle qui touche à la souveraineté du parlement, c’est-à-dire l’obligation de soumettre au préalable au contrôle et à l’autorisation des « institutions » les projets de loi dans les domaines économiquement et socialement sensibles (non spécifiés), sans préjudice naturellement de la « vérification » par les mêmes institutions, dont le résultat commandera l’octroi des crédits européens. D’ores et déjà, pour illustrer le fonctionnement de ce mécanisme, le « Memorandum of Understanding » impose à échéance rapprochée (conditionnant la mise en œuvre de l’accord) une série d’actes législatifs prédéterminés, annulant les législations existantes et les remplaçant par d’autres. Leur ensemble constitue un programme de transformation néo-libérale extrême (sans équivalent à ce jour en Europe) du droit du travail et de l’administration (ce qui ne manque pas d’ironie quand on voit que l’un des principes proclamés est la « dépolitisation de l’administration » !). Notons aussi l’exigence (venant après la réalisation par les autorités grecques, à l’initiative du Parlement, d’un « audit » de leur endettement et de son degré de légitimité) d’une « indépendance » de l’appareil statistique… garantie par le retour à Athènes des experts de la troika (dont l’indépendance personnelle, évidemment, ne fait pas de doute). Ajoutons enfin que, d’ores et déjà, l’exigence d’un remaniement du gouvernement, de façon à y faire entrer les partis anti-Syriza et à en expulser les « radicaux », est formulée comme une évidence dans les couloirs de la Commission de Bruxelles. Tout ceci veut dire que, matériellement, l’austérité forcée et la mise en tutelle se renforcent l’une l’autre, et que la Grèce n’est plus (ou plus du tout, car ce processus avait commencé il y a plusieurs années, et seule l’arrivée au pouvoir de Syriza lui avait porté un coup d’arrêt) une nation souveraine : non pas malheureusement au sens de l’entrée dans un régime de souveraineté partagée, juridiquement égalitaire et politiquement organisé, tel que l’impliquerait un progrès vers le fédéralisme européen, mais au sens d’un assujettissement au pouvoir du Maître. De quel « Maître » cependant s’agit-il ? C’est ici qu’il faut se tourner vers l’autre face de la situation : celle qui concerne l’Union Européenne.


La nouvelle « constitution » de l’Europe

Il faut le faire dans la même modalité que précédemment : celle des faits et de leur signification historique. Plus profondément, celle d’une définition de la constitution matérielle qui régit désormais l’Europe : division des pouvoirs, ensemble de glissements institutionnels inscrits et non-inscrits dans les Traités et dans leur mise en œuvre, rapports de force économiques, politiques (et géo-politiques) insérés les uns dans les autres, hiérarchie des intérêts codifiée dans des « règles » ou des « principes » auxquels doivent se plier les Etats membres et leurs populations, procédures de décision (ou comme on dit désormais, de « gouvernance »), inégalité des possibilités d’accéder au pouvoir réel et de l’influencer pour les différents groupes sociaux et nationaux, etc. Bref, il faut se demander  quel est maintenant le « régime » de l’Europe ?

Ne revenons pas sur ce qui, désormais, devrait être évident, c’est-à-dire l’institutionnalisation du néo-libéralisme depuis le tournant de 1990, dans la forme du dogme de la « concurrence libre et non-faussée », équivalent pour l’UE de ce que fut le socialisme d’Etat pour l’Union soviétique, et dont on voit aujourd’hui les effets de transformation « révolutionnaire » qu’elle engendre dans toute la société. Si ce n’est pour marquer ceci, que la boucle est désormais bouclée : la « liberté » du néo-libéralisme est une liberté essentiellement coercitive, elle implique en permanence, partout où des « écarts », des « manquements » sont repérables (donc avant tout chez les « faibles », les « débiteurs »), de forcer les citoyens d’être libres (comme aurait dit Rousseau, qui ne pouvait soupçonner cette application sinistre de sa formule). Bien évidemment, le degré de coercition varie énormément suivant la place qu’on occupe dans l’échelle du pouvoir réel. Mais plus précisément : la « révolution par en haut » qui s’est initiée dès le début de la crise des budgets publics et l’arbitrage en faveur des banques, lorsque les gouvernements grec et italien ont été remplacés au moyen d’une manipulation constitutionnelle (2011) et le précédent referendum grec interdit, est désormais un fait accompli. Habermas a parlé de postdemokratischer Exekutiv-föderalismus, formule très éclairante. Mais cet « exécutif postdémocratique » agissant au niveau (quasi)fédéral - car le fédéralisme qui se construit en Europe, sur des bases extraordinairement fragiles, vient entièrement d’en haut - a la propriété remarquable d’être en partie seulement visible et institutionnellement légitimé. Pour une part essentielle il est occulte et informel. On vient d’en avoir l’illustration flagrante : la « Commission européenne » n’a plus ni pouvoir d’initiative politique ni capacité de médiation entre les intérêts des Etats membres. Son président Jean-Claude Juncker a jeté l’éponge, après avoir dû déjà se résigner à une retraite humiliante, il ya quelques semaines, dans la question capitale pour l’avenir de l’Europe de l’accueil des réfugiés et de la solidarité entre Etats devant la catastrophe humanitaire méditerranéenne. La Commission n’étant plus qu’une structure de réglementation (proliférante) et une courroie de transmission, le pouvoir de négocier est passé à l’Eurogroupe, dont l’existence ne résulte d’aucun traité et qui donc n’obéit à aucune loi, dont le Président « élu » par ses pairs sert en fait de porte-parole au plus puissant et au plus influent des Etats membres – en l’occurrence l’Allemagne.

Une structure de pouvoir en cache donc une autre, mais il ne faudrait pas se hâter d’en conclure que la constitution matérielle de l’Europe est simplement le masque d’un « impérialisme allemand », même si celui-ci est bien réel. Car d’une part l’hégémonie allemande s’exerçant aujourd’hui en Europe ne peut être qu’indirecte, favorisée ou défavorisée par la conjoncture (dans le cas de la « punition grecque », elle a bénéficié d’un maximum de conditions favorables). Et d’autre part elle est partielle, exposée à la contestation de plusieurs adversaires, qui participent aussi à des degrés divers au « bloc de pouvoir » et le traversent de divisions dont certaines peuvent être profondes. Parmi ces adversaires il y a, sans doute, d’autres pays européens ou groupes de pays européens (dont la coalition pourrait éventuellement équilibrer l’hégémonie allemande, à ceci près, on l’a bien vu ces temps-ci, qu’ils en sont empêchés intérieurement et extérieurement, par leur dépendance financière et – de plus en plus – idéologique), mais il y a aussi, nous en sommes convaincus, la Banque Centrale Européenne. Il serait tout à fait erroné de croire qu’il y ait harmonie préétablie entre Berlin et Francfort, car l’intérêt de l’économie allemande, qui veut conquérir et sécuriser une position privilégiée sur le marché mondial, n’est pas le même que celui du système bancaire, dont la BCE dirigée par un ancien de Goldmann et Sachs, est la clé de voûte (de même que le moralisme agressif de M. Schäuble n’est pas identique au pragmatisme spéculatif de l’institution monétaire, comme on le voit aux frictions périodiques entre M. Draghi et M. Weidmann). C’est pourquoi d’ailleurs il vaut mieux se méfier des généralités sur le « néo-libéralisme » répandues à l’extrême gauche, car un cadre idéologique commun ne dicte pas une seule politique et ne résout pas les conflits d’intérêts. Sans doute, dans l’épisode qui vient de se dérouler, la BCE a joué un rôle déterminant, qu’on a pu qualifier de « terroriste » : c’est elle qui, en coupant les liquidités aux banques grecques, a forcé le gouvernement à les fermer et à instaurer le contrôle des capitaux, plaçant l’économie du pays au bord de l’asphyxie et par conséquent contraignant Tsipras à choisir entre la reddition ou le chaos, et c’est ce chantage que Schäuble et Dijsselbloom ont mis à profit. Mais cela ne veut pas dire que la concertation fonctionne à tout coup. Draghi ne voulait certainement pas de la sortie de la Grèce de l’euro (alors que Schäuble n’en avait cure et peut-être même la souhaitait pour « resserrer » la zone autour de l’Allemagne) : il a pris le risque et il a (provisoirement) gagné. A long terme c’est une autre histoire. Cette division au sein de « l’exécutif » composite européen fait elle aussi partie de sa « constitution matérielle ».

A ce point on peut commencer à nuancer le diagnostic que nous avons porté plus haut : un diktat fondamentalement inapplicable (« réformes irréalistes et irréalisables », écrit dans son éditorial du 14.07.2015 le journal Le Monde, qui n’a pourtant cessé de pousser de toutes ses forces à leur adoption), mais qui sera mis en œuvre de force, jusqu’à l’absurde. Cela dépendra bien évidemment des résistances qu’il suscitera à l’intérieur et, espérons-le, de plus en plus aussi à l’extérieur de la Grèce (car c’est toute l’Europe – ce sont tous les citoyens européens qui sont concernés), et ces résistances elles-mêmes augmenteront et se feront plus crédibles à mesure que les contradictions et les effets destructeurs de la mise en œuvre se révéleront au grand jour. Mais ces effets sont surdéterminés par les réactions divergentes et les stratégies de moins en moins conciliables qu’ils engendrent parmi les Etats européens, de façon relativement indépendante de la « couleur » politique des gouvernements. A ce point un détour n’est pas inutile par l’examen de ce qu’ont révélé les tractations ayant conduit à l’accord de Bruxelles dans la nuit du 12 au 13 juillet, avant d’en venir au cœur des contradictions actuelles.


La nuit de Bruxelles révèle une fracture du « couple » franco-allemand

Les observateurs politiques s’accordent à répartir les Etats européens en quatre groupes approximatifs au regard de la « crise grecque » et de la solution à lui apporter (laissant de côté la Grande Bretagne, qui dans cette affaire ne compte pas, d’autant qu’elle est occupée à discuter intérieurement de son éventuel « Brexit ») : l’Allemagne et les pays plus ou moins « satellisés » qui s’alignent sur sa politique ou la « précèdent » (et lui servent ainsi de prête-noms pour avancer ses exigences les plus « impitoyables » - dixit encore Le Monde), les « pays pauvres » du Nord et de l’Est européens qui ont « consenti des sacrifices » importants pour accéder à la zone euro, et ne veulent pas que les Grecs en « profitent », les « pays endettés » du Sud et de l’Ouest qui ont accepté les politiques d’austérité refusées par les Grecs et s’en sont tirés plus ou moins bien, enfin la France (et dans une certaine mesure l’Italie), qui ne respectent pas vraiment les normes du pacte de rigueur budgétaire, mais veulent toujours être considérés comme membres incontournables du « directoire » européen. En réalité cette typologie se ramène à deux groupes, car dans l’affaire grecque (où la « ligne Schäuble » l’a nettement emporté sur la « ligne Merkel » dans la politique allemande), les surenchères anti-grecques des différents pays européens autres que la France et l’Italie (« nous ne pouvons plus avoir confiance », « nous n’acceptons plus de payer ») ont été directement instrumentalisées (sinon orchestrées) par l’Allemagne, et la France implicitement soutenue par l’Italie a seule représenté une position (modérément) divergente (en particulier sur la question du Grexit). L’essentiel est  donc de savoir ce qui a séparé les Français des Allemands. Et c’est au fond assez décisif, mais évidemment pas pour les raisons dont se prévaut la Présidence française.

Pour ce qui concerne le gouvernement allemand, nous pensons que les raisons idéologiques et politiques de son « intransigeance » ont toujours été plus fondamentales que les raisons économiques (même s’il est vrai que les banques allemandes, aujourd’hui encore, ont une grosse exposition en valeurs grecques et que le budget allemand fournit presque un tiers des ressources du Mécanisme européen de solidarité). Elles relèvent de la politique intérieure autant que de l’objectif de création d’une hégémonie continentale – cette « Europe allemande » que Ulrich Beck, dans son livre désormais fameux, avait décrit non pas tant comme un objectif de « conquête » que comme un programme de « maître d’école ». Les deux schémas élaborés par le Bundesfinanzministerium et opportunément « fuités » (leaked) avant la reprise des travaux de l’Eurogroupe : sortie « provisoire » de la Grèce de l’euro (un provisoire dont tout le monde a aussitôt compris qu’il deviendrait automatiquement définitif), ou bien réduction de la Grèce à l’état de protectorat et expropriation de ses ressources nationales, étaient au fond équivalents du point de vue politique, surtout si on pense que dans les deux cas l’objectif ultime était en fait la chute du gouvernement Tsipras. Le second schéma l’a emporté, en raison des difficultés « de principe » soulevés par le premier : reste à voir s’il conduira jusqu’à son but (dont il semble bien proche).

En contrepartie, que s’est-il passé du côté français ? On peut d’abord faire l’hypothèse que, contrairement aux allemands, Hollande s’est convaincu à un certain moment que la seule façon de « faire passer » le surcroît d’austérité dans la population grecque était de le faire endosser par Syriza en « conseillant » Tsipras (ce qu’évidemment l’extrémisme des conditions et des mesures imposées par le sommet européen va rendre de plus en plus difficile, pour ne pas dire impossible). Le referendum lui-même (qui a exaspéré les Allemands et les a renforcés dans l’intention de « casser » le gouvernement grec) a dû jouer dans ce sens. Après tout Hollande a lui-même une certaine expérience du renversement des promesses électorales, et doit penser que d’autres que lui peuvent faire de même… Deux autres facteurs ont pu encore peser pour lui faire jouer son va-tout contre le Grexit : les répercussions de l’expulsion de la Grèce au sein de l’opinion de gauche française, assez nettement favorable à Syriza, et le poids des prises de position américaines, très explicitement hostiles au Grexit en raison des dangers qu’il fait courir au système financier et monétaire international – depuis 2008 les USA ont  l’obsession du « risque systémique ». Mais l’essentiel est sans doute la préoccupation qu’a pointée Varoufakis dans son article du Guardian du 10-07-2015 : l’Allemagne se sert de la situation grecque pour « discipliner la France », c’est-à-dire lui imposer définitivement la discipline budgétaire qu’elle est, en fait, incapable d’appliquer, et préparer l’opinion aux « sanctions » qui devraient s’ensuivre. A nouveau donc l’enjeu est politique, il porte sur la distribution du pouvoir en Europe autant que sur le contrôle du discours dominant. On peut dire que, dans la nuit fatidique, Hollande (peut-être aidé de Merkel contre son propre ministre) a « gagné » sur le maintien de la Grèce dans l’euro, rétablissant son prestige de « médiateur européen », mais il a incontestablement « perdu » sur le contenu des conditions qui y sont posées, et comme ce sont elles qui vont déterminer la suite, on peut aussi penser que sa « victoire » sur le premier point ne le mènera pas loin…

Les problèmes non résolus et même aggravés par l’issue des affrontements de la semaine dernière sont indissolublement des problèmes « grecs » et des problèmes « européens », ce qui veut dire qu’en réalité même quand on doit les examiner à tour de rôle sous les deux angles, ils manifestent une fois de plus à quel point le sort de l’Europe entière se joue dans la question grecque, et à quel point l’action des Grecs (leur résistance, leurs propositions, éventuellement leurs erreurs et leurs échecs) entraînent aujourd’hui des conséquences pour toute l’Europe. Trois questions générales figurent plus que jamais au premier plan : la dette et la politique économique, les inégalités structurelles et les nouveaux rapports de domination, la démocratie et le danger d’extrême droite.


Une dette européenne incontrôlable, une monnaie toujours instable

Commençons par la dette. Il semble bon de rappeler une évidence : la dette européenne cumulée, à la fois publique et privée, continue d’augmenter et d’engendrer ses propres produits dérivés plus ou moins toxiques, donc de mettre en danger la stabilité de l’euro. Comme elle ne dispose pas – à la différence des Etats-Unis – d’un mécanisme de compensation dans la forme d’une monnaie de réserve universellement acceptée et thésaurisée, ni d’une banque centrale habilitée à « prêter en dernier ressort », elle comporte à la fois des risques spéculatifs et des risques de stagnation économique telle qu’on l’observe en ce moment. Parce que les Etats sont entrés massivement, depuis les années 1880, dans la dépendance institutionnelle par rapport aux marchés financiers, parce que les renflouements et fournitures de liquidités aux banques privées pratiquées par la BCE (sauf quand il s’agit de faire pression sur le gouvernement grec) ont pour résultat de transférer continument le risque des opérations spéculatives sur les citoyens en tant que contribuables, enfin parce que le discours politique néo-libéral ne cesse de fustiger les Etats « dépensiers » (au gré de critères largement discutables et manipulables), l’attention générale est focalisée sur les dettes publiques. Mais le gros de l’endettement, ce sont les dettes privées, et ce sont elles qui font osciller les économies entre le Charybde du surendettement et le Scylla des politiques d’austérité. Ce problème vaut pour toute l’Europe (même si la monnaie commune n’est pas adoptée à l’heure actuelle par la totalité des pays membres, et sans doute ne le sera pas). La dette grecque représente sans doute un risque systémique particulier (qu’on ne diminuera pas en étranglant son économie, c’est-à-dire ses possibilités de remboursement !), mais c’est l’ensemble du système qui est engagé sur une voie malsaine, appelant une solution d’ensemble – en clair une restructuration dans le cadre d’une transformation de la zone euro en espace économique cohérent, non seulement intégré ou « discipliné » mais orienté par une perspective de développement et de transformation industrielle collective. D’où la pertinence de la proposition du gouvernement grec d’examiner les conditions de son désendettement et de sa relance dans le cadre d’une « conférence européenne sur les dettes », prenant en compte toutes les données du problème et toutes les parties prenantes, proposition écartée d’un revers de main par les « institutions » sans même avoir été écoutées par leurs représentants… Elle allait d’ailleurs dans le même sens que les analyses du FMI depuis qu’il a découvert « l’erreur de calcul » inhérente à son plan d’austérité pour la Grèce (sans pour autant en tirer toutes les conséquences pratiques). De sorte qu’on peut se demander quels sont les intérêts qui forment toujours un obstacle insurmontable à ce que l’Europe affronte rationnellement son problème financier au niveau pertinent, et ne cesse de la pousser à trouver des boucs émissaires : le nationalisme et l’égoïsme à courte vue, sans doute, ainsi que les obsessions idéologiques évoquées ci-dessus, mais aussi des intérêts bancaires, et pour finir une fois de plus le comportement anti-communautaire d’un pays (l’Allemagne), qui ne cesse de dégager des excédents budgétaires au détriment de ses voisins, et sur le long terme a bénéficié de « transferts » considérables à partir des pays endettés en mettant à profit le spread des taux d’intérêts nationaux sur les marchés financiers. On comprend qu’elle ne soit pas pressée de contribuer à une lutte efficace contre la corruption ou l’évasion fiscale de ses voisins du Sud, tout en la réclamant à cor et à cris pour justifier leur mise en tutelle. Mais de ce fait même elle ne cesse de mettre en danger la valeur et la stabilité d’une monnaie dont elle a pourtant proclamé le caractère sacro-saint.


Europe des inégalités, des dominations

La question de la dette, et le défaut de son traitement rationnel, qui supposerait la volonté politique d’une solidarité continentale, communiquent donc directement avec le second problème, encore plus préoccupant pour l’avenir de l’Europe : le développement de ses inégalités internes. Elles n’ont pas une figure simple, parce qu’elles relèvent à la fois de causes sociales et politiques plongeant dans toute l’histoire du continent, de ses divisions et de ses réunifications (laissons de côté la rhétorique des « différences de culture », affectionnée par les mass media et par certains politologues, qui fleure bon le racisme intra-européen). Mais on peut dire quand même qu’après avoir tendu à se disposer suivant un axe Est-Ouest, renforcé par la division politique de l’Europe et l’hétérogénéité de ses systèmes économiques à l’époque de la guerre froide, elles se disposent maintenant majoritairement, à l’intérieur et sur les bords de la zone euro, suivant un axe Nord-Sud. Les conditions du pseudo-dénouement de la crise grecque, venant après les « solutions » appliquées en Espagne et au Portugal (où les comptes publics et surtout la solidité des banques ont été rétablis au prix d’une explosion du chômage), illustrent dramatiquement la profondeur du fossé qui se creuse à l’intérieur d’une Europe « unie » dont le projet initial, réaffirmé à l’occasion des successifs élargissements de la communauté, associait la réduction des inimitiés causées par la guerre entre les peuples avec l’ouverture d’une perspective de prospérité et de complémentarité.

C’est, bien entendu, la logique du libéralisme économique fanatique, tel que sacralisé par la dernière génération des Traités, que de transformer les avantages comparatifs en inégalités de développement, et les inégalités de développement en relations de domination. Certains analystes de la gauche radicale, inspirés par l’histoire des relations entre le « Nord » et le « Sud » de la planète, voient se profiler ici une relation de type colonial, déjà plus qu’avancée, à l’intérieur du continent européen, y compris sous la forme d’une « spécialisation » des régions méditerranéennes dans le tourisme et l’offre de main-d’œuvre éduquée aux régions du Nord. Dans cette perspective, la France en déclin industriel, dont les taux de chômage n’arrivent toujours pas à diminuer, occuperait une position intermédiaire, très difficile à gérer en dépit de sa taille, cependant que les nouveaux Etats membres de la Mitteleuropa, passés par l’épreuve du « socialisme réel » et convertis à l’idéologie du marché sous sa forme la plus extrême, se spécialiseraient dans la sous-traitance au profit de la région dominante. Cette présentation est simplificatrice, en particulier parce qu’elle tend à négliger les inégalités sociales et territoriales internes à chaque « région » et à chaque nation, elles aussi maximisées par la logique néo-libérale. Mais elle a l’intérêt d’attirer l’attention  sur le caractère à la fois structurel et tendanciellement antagonique des polarisations en cours. Il convient, selon nous, de lui ajouter une considération plus concrète et plus immédiatement liée à la conjoncture : c’est que le Sud de l’Europe (dont, au premier chef, la Grèce et l’Italie) n’est pas seulement en train de reproduire en son sein des formes de dépendance et de domination analogues à une colonisation, en partie « constructive » et en partie « destructive », il est aussi, par l’intermédiaire de l’espace méditerranéen auquel il appartient autant qu’à l’Europe continentale, en relation organique avec un autre « Sud » de plus en plus déstabilisé et déstabilisant, qu’il sera impossible de contenir derrière des murs ou des opérations de police des frontières. Nous voulons parler du « Sud » des migrations de la misère et du refuge, en proie aux guerres civiles et aux contrecoups des interventions occidentales dont les conséquences n’avaient jamais été calculées par ceux qui les ont lancées. Là encore, il n’est pas exclu qu’une autre partie de l’Europe veuille désormais s’en « couper ».

On voit donc où nous voulons en venir : s’il est manifestement illusoire de penser qu’on poursuivra, ou même qu’on maintiendra, la « construction européenne » dans les conditions d’une polarisation et d’un conflit d’intérêts de plus en plus accentué entre ses nations et ses régions, il l’est tout autant, sinon plus, de croire que l’Europe puisse exister comme un corps politique en « neutralisant » et rendant « invisibles » les flux liés à la mondialisation dont elle est à la fois l’une des origines et la terre d’accueil. Ce qui vaut pour l’intervention du FMI - organisme en principe chargé de la restructuration des économies dont la monnaie s’effondre - dans le règlement d’un différend budgétaire entre membres de la zone euro, vaut aussi bien pour la gestion des flux migratoires et l’affrontement des nouveaux conflits armés aux « marches » de l’Europe. L’Europe de plus en plus divisée n’est pas entièrement « dans l’Europe ». Avant de disparaître de la scène, M. Juncker a eu le temps de lancer un cri de colère contre « l’égoïsme » des Etats européens qui refusent de se « partager » les réfugiés : que n’a-t-il poussé la lucidité jusqu’à dénoncer l’aberration consistant à enfoncer la tête sous l’eau à l’un des deux Etats qui font face quotidiennement à leur arrivée ? Il sera bien temps ensuite de construire des murs, au sein des Balkans ou sur les bords du Danube…


En l’absence de démocratie européenne, un populisme d’Etat

Le troisième problème dont le monstre du 13 juillet 2015 fait ressortir la gravité, c’est évidemment le problème démocratique (et donc la crise de légitimité institutionnelle). Chacun le répète à l’envi : le « déficit » se creuse... Mais il convient de l’aborder dans toutes ses composantes, et dans son actualité immédiate, en sortant de l’abstraction qui se contente d’en évoquer surtout les aspects formels, si réels et importants soient-ils.

Le plus puissant, en apparence au moins, des arguments qui ont été invoqués par les gouvernements européens pour disqualifier les demandes de négociation du gouvernement grec (sur la dette, sur l’économie, sur l’avenir du pays dans la construction européenne), avant et a fortiori après le referendum du 5 juillet, c’est celui qui a consisté à répéter que la « volonté » d’un seul peuple ou pays membre de l’UE (ou de l’eurozone) ne pouvait prévaloir contre celle des 18 autres (dont on tenait pour acquis qu’elle était exprimée par leurs gouvernements respectifs, puisqu’issus d’élections régulières). Il s’agit là manifestement d’un « élément de communication » construit à Bruxelles, et qui a été répété à satiété par les correspondants des journaux auprès de la Commission (en particulier en France Le Monde, mais aussi Libération). Il contient quelque chose d’incontestable : la partie ne peut pas décider pour le tout (pas plus, à vrai dire, que le « tout » ne peut imposer à une « partie » le sacrifice de son existence même, sauf dans un régime totalitaire). Cependant, ceci ne vaut que si, indépendamment du détail des procédures représentatives, une discussion contradictoire a effectivement lieu dans laquelle le « peuple » au sens démocratique du terme, c’est-à-dire l’ensemble des citoyens qui seront représentés et concernés par la décision finale, a été effectivement convié à en discuter. La technostructure européenne et les classes politiques des différents pays (qui protègent jalousement leur monopole de « médiation » entre le niveau national et le niveau européen) ne veulent même pas en entendre parler. On en était à peine aux balbutiements lors des referendums conduits par certains pays en 2005 à propos du projet de « Constitution européenne », malgré certains vrais moments de discussion et de participation collectives. Mais les votes négatifs obtenus en France et aux Pays-Bas (quelle que soit la complexité de leur interprétation) ont été aussitôt instrumentalisés pour disqualifier l’idée même de consultation populaire et faire annuler ses résultats : un procédé dont les effets de désagrégation sur l’esprit civique en Europe ont été massifs et qui explique en partie la violence des réactions produites par le referendum grec du 5 juillet.

Un spectre hante l’Europe, celui de la voix du peuple, voire même de son pouvoir. Mais comme la montée des exigences démocratiques va de pair avec le malaise grandissant, et parfois la colère, qu’engendre le déplacement des décisions de l’Etat-nation vers les institutions supranationales et les organismes occultes qui ne font l’objet d’aucun contrôle populaire, on a mis en place un dispositif de « compensation » dont les effets sont désastreux dans l’immédiat et terriblement inquiétants pour l’avenir. Profitant du fait qu’une grande partie des dettes souveraines douteuses ont été rachetées par des organismes « publics » européens, on a martelé sans relâche auprès des « contribuables » des différents pays l’idée qu’ils ne cessent de « payer pour les Grecs » (lesquels ne feraient rien d’autre que dilapider l’argent qu’on leur « donne », alors qu’en fait l’essentiel de ces sommes va aux intérêts de prêts antérieurs), et qu’ils « perdraient » individuellement des sommes considérables si les Grecs faisaient défaut sans offrir de garanties (alors que ces pertes sont des sommes virtuelles dont l’impact réel sur les finances de chaque pays dépend entièrement de la conjoncture économique).

La mise en place de cette propagande d’Etat, tenant lieu d’opinion publique, engendre un populisme, voire un extrémisme « du centre » (suivant l’expression du sociologue Ulrich Bielefeld), particulièrement puissant en Allemagne, mais aussi en France ou aux Pays-Bas, et officialisé dans des pays comme la Finlande où l’on peut observer à l’œil nu sa convergence avec la xénophobie. Il en résulte que la crise démocratique se développe bien en tant que déficit de représentation, lié au fait qu’aucune possibilité institutionnelle n’existe pour les citoyens européens, soit individuellement, soit en tant qu’ils appartiennent à des territoires, à des communautés locales, nationales ou transnationales, de contrôler effectivement les décisions prises en leur nom - le Parlement Européen n’étant qu’une pauvre coquille vide, dont on a bien vu qu’elle ne jouait aucun rôle dans l’examen du défaut grec et de ses conséquences générales, sauf par les déclarations provocatrices et méprisantes du président Schulz. Mais la crise prend aussi, de plus en plus, la forme d’une revanche des nationalismes agressifs (anti-grecs, anti-allemands) et xénophobes, à la fois contre leurs « minorités » internes et contre les « concurrents » externes, allant de pair avec le développement de forces organisées, de passions collectives et de discours anti-européens et antipolitiques. Ce sont les gouvernements eux-mêmes, quelle que soit leur « couleur » politique, qui sont les initiateurs de ce populisme massif (rarement désigné comme tel), ou les partis de la « grande coalition » se partageant aujourd’hui le pouvoir politique en Europe, en étroite collaboration avec la technocratie et la finance. Mais ce sont des mouvements néo-fascistes qui, à des degrés divers, se préparent à en tirer les bénéfices et s’en servent déjà pour peser de tout leur poids dans la vie de chaque pays. On est déjà allé très loin dans ce sens, que ce soit sous couvert de protection de « l’identité nationale » ou de « défense » contre les migrations et les minorités. 

Il en résulte aussi que l’invention démocratique dont (pour parler comme Claude Lefort) l’Europe a besoin aujourd’hui, doit se faire à la fois sous la forme d’une création institutionnelle, instituant la représentation et la délibération aux échelons de pouvoir réel dont elle est complètement absente, et sous la forme d’une citoyenneté active, c’est-à-dire d’une mobilisation de masses de citoyens (qu’on pourrait appeler un « contre-populisme ») sur tous les sujets qui appellent une responsabilité transnationale (de la liberté de l’information à l’environnement, en passant par les droits des travailleurs, les mobilisations des migrants, précaires et chômeurs, et la lutte contre la corruption et l’évasion fiscale). Il n’est pas exagéré de dire que Syriza, avant et après son accès au gouvernement, de même que d’autres mouvements en Europe (Indignados, Podemos), avait suscité de grand espoirs dans la fraction la plus avancée de la gauche européenne, précisément parce qu’elle allait dans ce sens : cela non plus, sans doute, n’est pas étranger à l’acharnement dont elle a fait l’objet avec le résultat que l’on voit. C’est pourquoi, en conclusion provisoire de ces réflexions sur le diktat de Bruxelles et ses lendemains, nous en viendrons – avec la prudence qui convient quand on ne s’exprime pas de l’intérieur d’un pays ou d’un mouvement – à quelques réflexions et hypothèses sur les acquis de la gauche grecque, ainsi que sur la situation critique dans laquelle elle se trouve en ce moment.


Le dilemme stratégique de Syriza

Le Parlement grec vient d’adopter le Memorandum de Bruxelles dans les termes prescrits (condition pour le déblocage des premiers fonds d’urgence et la réouverture des banques). L’adoption s’est faite à une nette majorité, parce que les anciens partis de gouvernement ont voté en sa faveur, mais avec une forte minorité d’opposants, dans laquelle figurent une trentaine de députés de Syriza (après que le Comité central du parti ait lui-même rejeté l’accord à une courte majorité). Le Premier ministre Tsipras, dans une formule qui a fait le tour du monde, a déclaré qu’il ne « croyait pas » dans les vertus économiques du plan de Bruxelles, mais qu’il fallait l’accepter pour éviter un « désastre », à la fois pour la Grèce et pour l’Europe. Il a pris ses responsabilités et réclamé la solidarité. Des grèves et des manifestations ont eu lieu. Quelle est la leçon de ces derniers développements ? Quelles propositions en tirer sur l’avenir immédiat et à plus long terme ?

La première constatation, c’est que la discussion sur la valeur et les termes du « paquet » de Bruxelles commence avant sa mise en œuvre même. Ceci est vrai en Grèce, bien entendu, mais aussi à l’étranger – y compris dans l’opinion publique et les organes de presse qui se posent la question de savoir si, en allant ainsi « trop loin », l’Allemagne et l’Union européenne en général n’ont pas sapé les conditions de leur autorité. Si cette tendance se confirmait, cela voudrait dire que la « question de confiance » a changé de côté… Mais pour cela, il faudra attendre de voir comment se présente l’application. Une fois absorbé le choc des mesures d’austérité renforcée par la société grecque, si elle le peut (première incertitude majeure), le gouvernement Tsipras de son côté, s’il reste au pouvoir (deuxième incertitude), promet une lutte obstinée pour exploiter chaque possibilité d’autonomie laissée par les textes signés (un bon exemple étant la gestion du « fonds de garantie » réunissant les avoirs grecs), une résistance systématique à ce que les charges, notamment fiscales, soient supportées par les catégories sociales les plus pauvres, une offensive déterminée contre la corruption, et une insistance renouvelée sur la question des causes structurelles de l’endettement. Rien de tout cela n’ira sans conflit (naguère on aurait dit « sans lutte de classe »…), mais tout cela peut faire bouger les lignes.

Paradoxalement, le principal appui « externe » dont il dispose pour l’instant dans ce combat vient des prises de position du FMI, qui refuse de jouer le rôle assigné par l’accord de Bruxelles, en rendant publique son analyse radicalement pessimiste de la « soutenabilité » de la dette grecque et en appelant les Européens à faire plus pour l’alléger. Il serait difficile de sous-estimer l’importance de cette prise de position, au moment où elle intervient. Elle signifie que le FMI, naguère inclus dans le dispositif d’assujettissement de la Grèce précisément pour l’aligner sur les normes appliquées au « Tiers-Monde » (comme dans le cas de l’Argentine, qui a su s’y soustraire partiellement en se fondant sur son poids économique et géopolitique), peut aussi devenir l’agent d’une contradiction interne au système, en faisant fonctionner la courroie de transmission à l’envers. Cela correspond à un rééquilibrage du rapport entre les intérêts financiers internationaux et les objectifs politiques intra-européens. On peut penser (ou espérer) que ceci marque le début d’une « renégociation » rampante, même si dans l’immédiat tous les gouvernements et l’Eurogroupe vont s’arc-bouter sur le « respect des engagements pris ». Et Schäuble, qui ne craint jamais de jouer sur les deux tableaux, en a immédiatement tiré argument pour relancer l’idée du « Grexit temporaire ».

Un deuxième élément bien plus important encore du dilemme stratégique concerne la situation intérieure grecque, en tant que situation sociale, morale, politique. La société grecque est épuisée, tout en étant riche de multiples solidarités au moyen desquelles, depuis des mois, elle se défend contre l’appauvrissement et le désespoir. Elle est aussi divisée, suivant des lignes de classe et des lignes idéologiques qui peuvent se déplacer, peut-être brutalement. Cela dépendra du cours des événements, mais beaucoup aussi de la façon dont sera perçue l’action du gouvernement : comme une « trahison » ou comme une « résistance ». Il est capital à nos yeux que Tsipras (hier encore dans son discours à la Vouli et dans sa lettre aux députés de Syriza) - adoptant une posture typiquement parrèsiastique dans la tradition de la démocratie grecque - ait persévéré dans sa résolution de « dire vrai » sur la situation, les contraintes, les perspectives et les intentions de son gouvernement. Il est non moins capital que, soumise à de très fortes tensions (qui pourraient l’emporter demain), l’unité de Syriza résiste encore « au bord du gouffre » (non sans quelques appels ou prophéties auto-réalisatrices, de l’intérieur, pour la faire éclater). Mais il a fallu remanier le gouvernement, et annoncer des élections à haut risque. Essayons d’éclairer les données de cet équilibre extrêmement fragile, qui pourrait basculer d’un instant à l’autre.

Le premier point en débat, c’est de savoir si Tsipras a eu raison de convoquer le referendum quand il l’a fait et comme il l’a fait, en prenant le double risque, d’abord de « provoquer » la colère des puissances européennes qui voulaient continuer de manœuvrer behind closed doors, ensuite de produire une immense désillusion et une autre colère dans la population (en particulier dans la jeunesse), confrontée brutalement au rapport des forces extérieures et au déni de démocratie. Tout bien réfléchi, nous pensons que oui, parce que – suivant les termes de Chantal Mouffe repris par Ulrike Guerot dans Die Zeit – le referendum a dérangé la « gouvernance » occulte et engendré un véritable « retour du politique » dans la crise européenne qui est, d’une certaine façon, irréversible. La question des intérêts et de la voix du peuple, ainsi que celle de la publicité des décisions qui concernent l’intérêt commun, ont été clairement posées. Mieux, un affrontement idéologique a eu lieu, le camp dominant des adversaires de la Grèce (Schäuble, Juncker, Dijsselbloom…) prétendant que l’objet du « non » au referendum était la sortie de l’euro, alors que Tsipras maintenait que son mandat, et la proposition qu’il soumettait au vote, était à la fois le maintien dans l’eurozone et le refus de l’austérité, donc la revendication d’une autre Europe. Notre sentiment est qu’il a gagné la bataille sur cette question de principe, même s’il a perdu la suivante en raison d’un écrasant rapport de forces et de l’utilisation d’une arme « terroriste » : l’assèchement des liquidités bancaires et l’organisation de la fuite des capitaux.

Cela nous conduit directement à une deuxième question : Tsipras a-t-il eu raison de parler d’un « désastre » imminent, devant lequel la seule attitude responsable consistait à plier, sans céder pour autant sur les principes ? Sur ce point la réponse nous semble encore plus manifestement affirmative. Car d’un côté l’effondrement des finances publiques et des possibilités de financement de la vie économique et de la vie quotidienne en Grèce était une réalité incontournable (dont le rapport du FMI vient encore de noircir le tableau), et en ce sens le chantage a effectivement fonctionné, cependant que de l’autre côté les perspectives d’utilisation positive (et même conquérante) du « Grexit », agitées par des représentants de l’aile « marxiste » de Syriza ainsi que par des théoriciens d’extrême droite et d’extrême gauche en Europe, n’ont jamais eu la moindre pertinence ni la moindre chance de succès. Quand elles n’exprimaient pas tout simplement une opposition de principe à l’idée de construction européenne, elles se fondaient sur une conception archaïque de l’autonomie des (petites) nations dans l’économie mondialisée, sur des conceptions autoritaires et inapplicables du « contrôle » de la politique monétaire et de la circulation des capitaux (une sorte de réactualisation du « communisme de guerre »), et sur une profonde inconscience des effets de la dévaluation sauvage et de la compétitivité à tout prix sur les conditions de vie des classes populaires. Il est vrai qu’on peut rétorquer que l’austérité est déjà insupportable et promet de s’aggraver, mais cela nous ramène au problème précédent : celui des conditions d’application (et de non-application) de l’accord. En tout état de cause la politique du pire n’a pas de sens.

L’unité de Syriza, comme parti de « gouvernement » et surtout comme mouvement, nous semble alors constituer l’élément le plus difficile et le plus décisif. Le plus difficile, parce que les clivages sont bien réels, et parce qu’une unité ne se décrète pas : elle dépend de conditions dans la société autant que d’une volonté politique. Le plus décisif, parce qu’en ce moment il est clair que la poussée est maximale en provenance du « centre » européen, pour aboutir à un éclatement. La presse allemande (Süddeutsche Zeitung) s’étend complaisamment sur la « schizophrénie » de Syriza, qui voudrait à la fois maintenir ses critiques contre le contenu de l’accord et à rester au pouvoir pour l’appliquer à sa façon... Elle enjoint à Tsipras de « clarifier » ses intentions en incorporant à sa majorité, à la place des dissidents, des ministres de droite et du centre, renouant ainsi avec le discours du « manque de confiance ». Quant aux partis grecs disqualifiés par leur politique passée, qui viennent de le « soutenir » au Parlement, ils sont en embuscade pour le remplacer. La « rébellion » des députés de Syriza qui ont voté contre l’accord nous paraît donc absolument légitime, et faire partie de l’expérience démocratique conduite au milieu même de la crise. Mais elle ne devrait pas, sans risques mortels, conduire à faire le jeu de l’adversaire. Elle n’est d’ailleurs pas idéologiquement homogène, car seule une partie des opposants est motivée par une hostilité de principe à la construction européenne, d’autres (dont des figures de premier plan comme Varoufakis ou Zoe Konstantopoulou) ont démontré en paroles et en actes leur engagement dans le combat pour une « autre Europe », passant par une « autre Grèce ». Si l’unité tient en dépit des tensions internes (qui reflètent les conflits mêmes au sein du peuple grec et de l’opinion publique), le gouvernement même remanié pourra lui-même tenir, maintenir le dialogue avec ses critiques « de gauche », résister aux pressions de la droite et de l’extrême droite. La dialectique d’application et de résistance pourra s’engager. Si elle ne tient pas, enterrant définitivement l’espoir que ce mouvement avait fait lever en Grèce, en Europe et même au-delà, on entrera dans l’inconnu. Le lecteur comprend bien où vont nos espérances, qui ne s’accompagnent cependant d’aucune certitude.


« Longue Marche » pour l’Europe : nos solidarités

Dans son discours à la Vouli, Tsipras a dit clairement : la solution que nous avons dû choisir n’était pas la meilleure, c’était seulement la moins désastreuse. Et il a précisé : pour la Grèce, mais aussi pour l’Europe. C’est une constante des positions qu’il a défendues depuis son arrivée au pouvoir, et notamment au moment du referendum : « notre mandat  n’est pas la sortie de l’Europe » dont ne veut pas, dans son immense majorité, le peuple grec. Et implicitement notre mandat est de lutter sans relâche pour l’émergence d’une autre Europe, une Europe dans laquelle la Grèce, débarrassée de ses privilèges oligarchiques et de la corruption que les créanciers eux-mêmes ont encouragée, ait toute sa place et puisse même constituer un modèle pour d’autres. C’était le thème de l’article publié en mai 2015 dans Le Monde : « L’Europe est à la croisée des chemins » (31.05.2015). Cet engagement sans faille nous rend à tous un immense service, il nous crée aussi des responsabilités, si ce n’est des obligations.

Il s’avère désormais que l’alternative européenne à la construction néo-libérale de l’Europe, en route depuis Maastricht au moins, avec ses effets destructeurs et ses contradictions insurmontables, se présente comme une tâche plus difficile, semée de bien plus d’obstacles que certains d’entre nous ne l’avaient cru. L’Europe est entrée dans une longue marche pour sortir « par le haut » ou « par le bas » de sa crise constitutionnelle, inventer les conditions de sa citoyenneté, rassembler les forces de son renouveau culturel. La Grèce est et restera au cœur des affrontements et des enjeux. En lui témoignant une solidarité sans faille, à la mesure des nécessités quotidiennes, fondée sur une appréciation libre et critique des vicissitudes qu’elle traverse, c’est nous-mêmes aussi que nous aidons. Il faut trouver les formes de cette solidarité, et les rendre efficaces. Il faut se souvenir aussi que ce qui a placé Syriza dans la situation où elle se trouve aujourd’hui, ce qui a contribué au déséquilibre du rapport des forces et permis le diktat, c’est aussi, dans une grande mesure, l’insuffisance de cette solidarité, ou ce qui revient au même, son inefficacité.

Aux efforts des Grecs pour maintenir en vie l’extraordinaire puissance démocratique qui s’était manifestée dans les assemblées populaires de Syntagma ou dans la campagne du « non » au referendum, et pour lui trouver de nouveaux points d’application, doit répondre, en se coordonnant avec elle, notre propre capacité d’organiser les mouvements et les campagnes qui élargissent le soutien à sa cause dans l’opinion publique, ou qui, à terme, convergent avec ses objectifs. Il faut que ces mouvements et ces campagnes soient sans exclusives, faisant une large place à la discussion ou même à la contradiction interne, incarnant ainsi le renouveau de la politique sans lequel il n’y aura pas de « moment constituant » en Europe. Il faut qu’ils traversent les frontières, se gardant par-dessus tout du nationalisme et de l’émulation « populiste » avec les courants nationalistes anti-européens en plein développement (comme le Front National français), même quand il peut sembler que la dénonciation des mêmes « maux » (la technocratie, la corruption des élites, le mépris du peuple, la pression fiscale) fournit un terrain commun pour des rhétoriques parallèles. Quoi de mieux, précisément, pour favoriser ce nouvel internationalisme intra-Européen que de se retrouver à Athènes, aux côtés du peuple grec ? Mais nous ajouterions aussi volontiers : en Allemagne, au cœur de ce qui paraît être la « forteresse » du néo-capitalisme, et qui est en fait, elle aussi, chargée de contradictions et riche de possibilités alternatives ; en Espagne, aux côtés de Podemos, à qui incombe désormais la tâche de porter un nouveau défi au système ; en France, où la social-démocratie achève de se convertir au patriotisme « républicain », aux « destructions compétitives » et à la commercialisation de la culture ; en Italie, où se livre la bataille contre la « fortification » et la « militarisation » des frontières de l’Europe ; en Angleterre, où va s’engager le débat pour ou contre l’isolationnisme, sur fond de financiarisation de tous les services sociaux… Enfin et surtout, il faut des mots d’ordre autour desquels la solidarité des différentes régions du continent, l’étroite imbrication des objectifs de rénovation démocratique et de résistance à l’austérité, soient mis en pleine lumière. L’audit de la dette, que le Parlement grec avait réalisé pour son propre compte, donnant  ainsi un contenu à l’idée d’une autre économie et d’une autre politique monétaire, tel que le proposent des mouvements comme ATTAC, en est un exemple. Il converge avec toutes les luttes pour une nouvelle organisation du travail, de nouveaux droits et systèmes d’assurance sociale, qu’appellent le capitalisme financier actuel et la généralisation du « précariat ». La résistance aux politiques sécuritaires, la défense de la liberté d’information et de circulation, en est un autre. Ce ne sont pas les seuls.

Comme l’écrivait Alexis Tsipras en 2015 : il y a deux voies. Si difficile qu’il soit de s’opposer aux politiques dominantes, nous pensons que le choix est toujours là, plus incontournable que jamais. Il faut en construire la possibilité. Cela prendra le temps qu’il faudra. Mais cela ne doit pas attendre.

 

15-19 juillet 2015               

 


[1] La version anglaise de ce texte paraît dans openDemocracy. Une version abrégée paraît dans Libération.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자크 데리다 사후 10

 

0. 들어가며 

........................................................................................................................................西山雄二


1. 민주주의의 항상성과 일관성 (Constance et consistance de la démocratie) 

................................................................................... Jérôme LÈBRE (일역 松田智裕横田祐美子)


2. 데리다와 랑시에르에게서의 민주주의와 타자의 물음 (La démocratie et la question de l’autre chez Derrida et Rancière)

................................................................................................................................. 亀井大輔


3. 들뢰즈와 데리다두 사람의 운동은 같지 않다 (Deleuze et Derrida, ce n’est pas le même mouvement)

................................................................................ Jean-Clet MARTIN (일역 大江倫子西山雄二)


4. 최후의 유대인’ : 데리다유대교와 아브라함적인 것 (« Le dernier des juifs » : Derrida, le judaïsme et l’abrahamique)

....................................................................................... Gisèle BERKMAN (일역 佐藤香織)


5. 희생된 동물의 두 개의 신체 자크 데리다의 철학에 있어서 동물-정치 개념에 대한 고찰 (Les deux corps sacrifiés de l’animal. Réflexions sur le concept de zoopolitique dans la philosophie de Jacques Derrida)

.................................................................................................... Patrick LLORED (일역 吉松覚)


6. 자크 데리다동물성의 시학 무인간적인 것에 관해 (Jacques Derrida. Une poétique de l’animalité. Sur l’anhumain)

......................................................................................... Gérard BENSUSSAN (일역 桐谷慧)


7. 고양이눈빛그리고 죽음 (The Cat, the Look, and Death)

.............................................................................................. Darin TENEV (일역 南谷奉良)


8. 대린 테네브고양이눈빛그리고 죽음에 대한 응답 (1/3)

...................................................................................................... 大杉重男南谷奉良山本潤


9. 데리다에게서의 증여와 교환 (Gift and Exchange in Derrida (Derridative)

....................................................... Darin TENEV (일역 横田祐美子松田智裕亀井大輔)

 

이하 몇 편의 글이 더 있으나 생략.





대린 테네브의 「고양이, 눈빛,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응답 (1/3) 


ダリン・テネフ「猫、眼差し、そして死」への応答

글쓴이 : 大杉重男, 南谷奉良, 山本潤




1. 大杉重男의 응답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일본근대문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데리다를 기점으로 하는 동시에 종점으로도 하고 있는 ‘고양이’를 둘러싼 세계문학적 계보학 속에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자리매김 되는 것은 매우 많은 것을 자극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하신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으나, 고양이의 관점에서 쓴다는 몇 겹이나 불가능한 행위에 대한 테네브 씨의 분석을 듣고서, 소세키의 텍스트에서 ‘고양이’와 ‘눈빛’과 ‘죽음’의 주제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다만 이번에 발표하신 것에서는 데리다론이 중심이고, 소세키에 대해서는 필요 최소한의 언급에 그치셨다고 생각하기에, 보충적으로 소세키의 텍스트에서 고양이가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고 확인하면서 코멘트하고 싶습니다.

 우선 오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상기한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7장에서, 고양이가 공중목욕탕을 들여다보는[覗く]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테네브 씨도 읽으신 것 같은데요, 여기서 고양이는 남탕을 들여다보고 “그림도 되지 않은 대량의 아담들”이 알몸으로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오늘의 테마의 기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알몸을 고양이에게 보인다는 데리다의 에피소드와 비교하면 여러 가지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공중목욕탕을 들여다볼 때 고양이는 옷을 입음으로써 복장의 동물이 되고, 인간은 거꾸로 알몸이 되면 “고양이에 못지않은 짐승”이 된다고 말합니다. 반면 고양이 자신은 벗지도 못하는 ‘털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알몸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짐승’도 될 수 없습니다. ‘동믈’보다 ‘인간’이 ‘짐승’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털옷’이라는 기묘한 형상이 제시되는데, 이 ‘털옷’이 알몸도 옷도 아니라 ‘눈빛’을 교란하는 매우 애매한 옵스큐어(obscure)인 것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9장 말미에서, 고양이는 ‘독심술’을 발휘하여 주인의 마음을 읽는데요, 그 방법은 육안으로 읽는 게 아니라, 털옷을 주인의 배에 비벼댐으로써 ‘심안(心眼)’에 주인의 마음이 비친다는 것이며, 여기서는 ‘털옷’ 그 자체가 ‘눈빛’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에피소드도 오늘 말씀하신 ‘보기’의 불가능성으로서의 맹목과 인식 사이의 관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데리다의 고양이는 암코양이이며, 고양이와 여성은 전통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됐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는 수고양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무르(Murr)도 수고양이이고, 블랑쇼의 고양이도 수컷처럼 보입니다만, 말하는 고양이는 수컷이고, 침묵하는 고양이는 암컷이라는 식으로 일반화할 수 있을까요?

 다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는, 무르(Murr)들과도 다른 특이한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첫머리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라는 문장입니다. 테네브 씨는 이 문장 뒤에 이어진, 인간이 고양이에 의해서 처음 보이게 되는 장면을 아주 상징적인 것으로서도 거론하고 계십니다만, “이름은 아직 없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인용하실 뿐 특별히 해석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의 ‘자(서)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고양이에게 이름이 아직 없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것이 아닐까요? 이름이 없다면 고양이는 자신이 쓴 이 자(서)전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명이 없는 ‘자(서)전’이란 무엇일까요? 더욱이 이 고양이는 단순히 이름이 없는 것만이 아니고, 이름이 없는 것에 자각적인 고양이이며, 이름이 없는 데 유명해져버린 것에 자각적인 고양이입니다. 『동물을 쫓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동물이다]』의 일본어판이 나왔기에 재빨리 사서 읽었는데요, 거기서 데리다는 창세기를 인용하고, 동물이라는 것의 비애, 상실, 멜랑콜리를, 이름이 부여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보고 있습니다만, 이름이 붙지 않은 소세키의 고양이 이야기에도, 그 유머의 그림자에 항상 멜랑콜리가 뒤따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이렇게 이름이 없다는 것을 소세키의 문화적 정체성의 분열과 결부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오늘 하신 발표에서 소세키 문학은 명예롭게도 서구문학의 전통의 일부에 보태지고 있습니다만, 이름 없는 고양이는 과연 정말로 그 전통에 충분히 속하는가?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중단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그것이 ‘카테르 무르[E. T. A. 호프만의 Lebensansichten des Katers Murr = The Life and Opinions of the Tomcat Murr]’의 모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적이 있다고도 말합니다. 실증적으로 어떻든 간에, 이 고양이는 무르(murr)보다 자신을 열등한 존재라고 자기 정의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며, 그리고 고양이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은 이 열등의식의 상징이 아닌가. 이 고양이는 이름이 없음으로써, 옵스큐어(obscure)적, 그늘에 사는 사람 같은 존재이며, 그것은 서구 문학의 전통에 대한 일본 근대문학의 옵스큐어(obscure)적인, 그늘에 사는 사람과도 같은 위상을 나타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나[吾輩]’ 이외의 고양이는, 미케코[三毛子; 백색·흑색·갈색이 섞인 털을 가진 고양이], 쿠로[黒]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그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만담[落語]에 나오는 듯한 전통적인 일본문화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름 없는 ‘나[吾輩]’는 서구문학의 전통에 대해서도 일본문화의 전통에 대해서도 옵스큐어(obscure)적인, 잘 보이지 않고 확실치 않은 존재라고는 말할 수 없죠.

 이 옵스큐어(obscure)적인 성격은, 고양이의 성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는 ‘나[吾輩]’라고 자신을 부릅니다. 테네브 씨는 ‘humble I’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나[吾輩]’는 영어로는 I라고 번역되는 것이 통상적인 것 같아요.1) 그러나 일본어의 ‘나[吾輩]’는 결코 humble한 I가 아니라, 일본어의 수많은 1인칭 중에서도 가장 남성적인 1인칭 중 하나입니다. 그것을 남성적이 아니라 소심한 고양이가 사용한다는 것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최초의 유머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고양이는 ‘나[吾輩]’라는 과도하게 남성적인 1인칭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서구적 의미에서도 일본적 의미에서도 ‘수컷’답지 않은 본질을 은폐하는 동시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고양이의 성적인 모호함은 고양이가 알몸의 남자들을 쳐다보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그것은 알몸의 남자들이 설령 이 고양이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거울상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는 것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컷 고양이가 알몸의 남자들을 ‘쳐다보다’라는 행위를, 성적 도착과 무관한 부끄러운 것이 조금도 없는 건전함에 있어서 묘사하는 것은, 소세키에게 알몸을 보거나 보여주거나 하는 것이, 데리다의 수치의 체험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일면에서는 당시 일본의 검열제도와의 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양이가 여탕을 들여다보는(『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발표보다 조금 뒤에 체포된 ‘데바카메(出歯亀, 뻐드렁니를 한 술꾼)’라는 유명한 성범죄자는, 여탕을 들여다본 상습범이었기에 ‘자연주의’에 비유됐습니다) 장면을 쓰는 것을 소세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소세키적인 고유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나중의 『풀베개(草枕)』에서 여주인공 나미(那美) 씨가 목욕탕에 들어오는 장면을 쓰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도 수치의 감정은 ‘몰인정’의 이름 아래 배제되고 있습니다).

* 위키피디아 번역出歯亀(데바가메 또는 데바카메)는 메이지시대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남성의 별명. 혹은 이 별명이 바뀌어 관음증과 이를 취미로 하는 것, 관음증처럼 병적인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이 대체로 이것에 해당된다.

 또한 이번에는 소세키에 있어서의 웅변적으로 말하는 고양이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소세키는 또다른 유형의 고양이, 즉 포나 보들레르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바라보는 존재로서의 고양이에 대해서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긴 봄날의 소품[永日小品]』 속의 ‘고양이의 무덤’이라는 에세이로, 여기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모델이 된 고양이가 병으로 죽는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 에세이는 바로 ‘고양이’와 ‘눈빛’과 ‘죽음’의 이야기[서사]입니다. 여기서는 고양이는 이야기하는 고양이가 아니라, 침묵하고 자신 속에 틀어박힌 고양이이며, 더욱이 그 ‘눈빛’은 매우 옵스큐어(obscure)한, 불투명하고 탁한 것이라고 써져 있습니다. 즉, “그 눈알은, 어떤 때든 정원의 숲을 보고 있으나, 그는 아마 나뭇잎도 줄기의 형태도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성귀가 달린 노란 눈동자를, 멍하니 한곳에 가라앉히고 있을 뿐이다その眼付きは、何時でも庭の植込みを見てゐるが、彼は恐らく木の葉も、幹の形も意識してゐなかつたのだらう、青味がかつた黄色い瞳子を、ぼんやりと一と所に落ち着けてゐるのみである”라고 써져 있는데요, 이 고양이는, 세계를 볼 수 없게 되며, 아이들이나 아내도 고양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는, 보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는 존재로서, 소세키에 의해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 세 개의 시선의 엇갈림은 흥미롭습니다. 고양이를 보지 않는 아이들은 고양이가 죽자, 부재하게 된 고양이에게서 눈을 돌려서[관심을 돌려서], 무덤을 만들고 애도의 몸짓을 한다. 소세키 자신은 애도하지도 않고 그 모습을 싸늘하게 보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말년의 에세이 『유리문 안에서(硝子戸の中)』 28장에 따르면, 나쓰메가(家)에서는 세 번째 고양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양이의 무덤」에서 자세하게 그 죽음의 모습이 묘사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모델이 된 고양이인데요, 두 번째는 새끼 고양이 중에 집안사람이 완쾌됐을 때 밟아서 죽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눈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밟아 죽은 고양이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검은 고양이로, 피부병에 걸려 털이 빠지고 벌거숭이가 되어버립니다. 소세키는 안락사시키는 편이 좋다고 가족에게 말하지만, 실행되지 않은 와중에 소세키 자신이 병들어 누워버리고, 회복해서 고양이를 보자, 고양이도 피부병이 치유되어 원래대로 검은 고양이가 되고 있습니다. 소세키는 자신과 고양이의 병의 경과에서 인연을 보게 됩니다.

 이런 고양이들은 아마 모두 수컷 고양이로, 여성적인 것과는 관련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인 가족들은 무시되고 매몰차게 밀려난 존재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집안에서 고립된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을 소세키 자신의 위상과 겹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세키 자신도 그 고양이들에게 상냥했던 것은 아닙니다. 소세키는 그저 보고 있을 뿐입니다. 소세키의 이런 위상은 『마작 유랑기(満漢ところどころ)』(소세키가 제국주의·식민지주의에 대한 헌신commitment을 무방비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좋든 나쁘든 유명한 텍스트입니다)에서 소세키가 길거리에서 부당을 당한 중국인 노인(거기서 소세키가 주목하는 노인의 “우울하다기보다는 땅바닥을 보고 있는曇よりと地面の上を見てゐた” “눈”은 ‘고양이의 무덤’에서의 고양이의 눈빛과 유사합니다)을 다른 중국인이 에워싸고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을 잔인하다고 말하면서, 자신도 잠자코 그 자리를 떠나는 위상과 겹칩니다.

 소세키의 텍스트에서 보는 권한을 갖는 것은 소세키뿐이고, 고양이도, 제3자도 보이는 존재이며, 소세키를 되쳐다보는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소세키가, 데리다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양이에 대해 쓰면서, 데리다가 고양이의 눈빛, 불가능한 맹목의 그 눈빛과 만나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를 열었던 반면, 소세키는 고양이의 시선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데리다가 보여져서는 안 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면, 소세키는 (아브라함처럼인지는 차치하고) 타자가 자신을 보는 것을 죄로서 금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강연에서 분석하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고양이의 그림에 눈빛이 그려져 있지 않은 에피소드는, 그것과 관련되는 것처럼 제게는 보입니다. 소세키는 고양이의 눈빛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쓰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요? 소세키의 후기 작품인 『마음』에는 그 주인공 ‘선생’이 ‘연구적인 눈’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특징적인 묘사가 있습니다만, 이 ‘연구적인 눈’이란 고양이의 눈빛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일찍이 ‘선생’은 친구 K를 ‘다른 유사 사람과의 무술 시합[他流試合]’ 같은 (‘연구적’이라는 것과 같은 뜻의 비유)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배신한 것이며, 그리고 그 K의 자살 현장을 목격한 ‘선생’의 ‘눈’은 “유리로 만든 의안(義眼)처럼 움직이는 능력을 잃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알고 스스로 두 눈을 으깨버린 오이디푸스처럼 ‘선생’은 ‘연구적인 눈’으로 K를 관찰하고 자살로 몰아간 죄에 의해 상징적으로 장님이 된다는 벌을 받는 것이며(‘아내’가 된 ‘아가씨’에 대해서 불능이 된 ‘선생’은 ‘거세’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이 교훈을 자신에게 있어서의 유일한 타자로서 택한 ‘나’에게 전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타자는, 단독적으로 보이면서, 독자의 누구나 (‘사모님’을 제외한) 그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을 가짐으로써, 전적인 타자로 회수되는 것처럼 보인다. 테네브 씨의 말씀으로는 데리다는, 말년이 되어 전적인 타자·일반적인 타자를, 단독적인 타자로 탈구축해가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소세키는 오히려 말년이 되어 단독적인 타자를 전적인 타자·일반적인 타자로 탈구축해가는 것(「측천거사(則天去私)」?)으로 기울었던 것은 아닌가. 이것은 소세키에 대해 네거티브적인, 비판적인 생각일지도 모릅니다만, 일본의 국민작가인 소세키가 끌어안은 사각(死角)이며, 맹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오늘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고양이’와 ‘눈빛’과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소세키의 텍스트를 해석해봤습니다. 강연의 주제에서 크게 일탈한 엉뚱한 해석이 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번에 말씀하신 것은, 제가 소세키를 읽는 데 있어서 매우 시사적인 힌트로 가득 차 있었기에 감사드립니다.

(大杉重男=首都大学東京教授)


1) 소세키는 1908년 5월 17일이라는 날짜가 붙은 [영에게 보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ハ猫デアル] 헌사]에서, 영이라는 인물(미국인이라고 추측되고 있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Herein, a cat speaks in the first person plural, we. Whether regal or editorial, it is beyond the ken of the auther to see. Gargantua, Quixote and Tristram Shandy, each has had his day. It is high time this feline King lay in peace upon a shelf in Mr Youngʼ s library. And may all his catspaw-philosophy as well as his quaint language, ever remain hieroglyphic in the eyes of the occidentals!”(『소세키전집(漱石全集)』 26권). 이 헌사는 소세키가 ‘나[吾輩]’라는 말을 1인칭 복수인 ‘we’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we’는 왕의 자기칭호로, 신문의 논설문의 1인칭이기도 하다(Whether regal or editorial, it is beyond the ken of the auther to see). 그러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영역자들은, 소세키의 의도를 무시하고 ‘나[吾輩]’를 ‘I’로 번역해왔다. 그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화자인 고양이를 가르강튀아(Gargantua)나 돈키호테, 트리스트람 샌디(Tristram Shandy)와 동격의 ‘고양이의 왕’(feline King)으로 진단한 소세키의 유머(와 동시에 서구문학에 대한 일본인으로서의 내셔널리스틱한 프라이드)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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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시몽동

―개체화의 작용에서 아나키한 초월론적 원리로


* 출  처 : 『情況』 제3기 제4권 제3호

* 글쓴이 : 히로세 코지(廣瀬浩司)

* 서지정보 : http://iss.ndl.go.jp/books/R000000004-I6564888-00


들어가며

“주체 뒤에 누가 올 것인가?”―이 물음에 답하는 형태로 쓰인 소론 「철학적 개념」에서 질 들뢰즈는 여태까지의 주체의 기능은 ‘보편화’와 ‘개체화’였다고 말한다.1) 보편적인 ‘나’(je)와 개체적인 ‘자기’(moi)라는 고전적 주체의 두 측면이 항상 결합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나, 흄에서 칸트를 경유해 후설에 이르는 주체의 철학은 이 두 가지 측면의 갈등과 그에 대한 해결책 제시의 역사였다.

들뢰즈는 이 ‘나’의 보편성을 ‘전개체적인 특이성’으로, ‘자기’의 개체성을 ‘비인칭적인 개체화’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이 개념들의 의미에 관한 일단(一端)을 명확하게 할 것인데,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개체화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탐구가 있다.

물론 개체화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나온 ‘질료형상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개체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논의를 단서로 삼아 ‘개체화 원리’에 대한 물음, 즉 개체적인 실체를 개체이게 하는 원리에 대한 물음이 어떻게 하여 둔스 스코투스의 ‘존재의 일의성’,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 스피노자의 ‘양태론’, 그리고 니체의 ‘영원회귀’로 계승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존재론적 논의가 들뢰즈의 초기 사상의 핵심을 형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2)

하지만 여기에서 검토하고 싶은 것은 철학사적인 계보에서의 개체화론이 아니라 들뢰즈에게 직접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질베르 시몽동의 개체화의 사유와 들뢰즈가 맺는 관계이다. 1924년에 태어난 질베르 시몽동은 ‘기계학’mechanology을 전개한 기술론의 고전인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태에 관하여』(1964)로 알려져 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출판되었던 『개체와 그 물리적․생물적 발생』(1964)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질료형상론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개체화의 작용opération’을 기술성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사고했다.3)

이 중에서도 들뢰즈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후자의 개체화론이다. 들뢰즈는 대부분의 저작, 특히 『차이와 반복』,4) 『의미의 논리』에서 시몽동의 개체화론을 참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미의 논리』에서 시몽동은 ‘비인칭적이고 전개체적인 특이성’의 이론가로, 또 ‘초월론적인 것’에 관한 사고를 쇄신한 사상가로 소개되고 있다.5) 그리고 위에서 서술한 ‘개체화’나 ‘특이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들뢰즈가 자신의 것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문제적인 것’problématique, ‘변조’modulation, ‘잠재적인 것virtual의 현재화(顯在化, actualization)’라는 중요한 주제는 모두 시몽동의 것이며, 또 『시네마』 2권에서 제시된 ‘결정(結晶) 이미지’에 이르러 전개된 ‘결정’의 생성에 관한 고찰, 게다가 ‘막(膜)’이라는 ‘위상학적 표면’에 관한 고찰 등도 시몽동에게서 대개 그대로 차용된 것이다.

『차이와 반복』(1968)이 출판되기 약간 전인 1966년, 들뢰즈는 위에서 언급한 시몽동의 개체화론에 대한 서평을 썼다.6) 이 글에서는 이 서평을 실마리로 하여 시몽동과 들뢰즈 이 두 사람의 공통 테마를 확인한 후에, 『차이와 반복』의 들뢰즈가 그것을 ‘가역적이고, 아나키적이며, 노마드적인 원리’로 첨예화/급진화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의미를 검토한다.


질료형상론 비판

시몽동은 개체의 실재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두 개의 전통적 입장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원자론적 실체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질료형상론이다. 하지만 시몽동에 따르면 두 입장은 모두 ‘이미 구성되어 있는 개체’에 존재론적인 우위를 부여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고 말한다.(IG, Introduction)

원자론적 실체주의는 복합체의 성립을 설명하기 위해서, 복합체를 결합하는 확고한 원리로서 개체화의 원리를 요청한다. 다른 한편, 질료형상론도 그것이 질료든 형상이든 간에, 이 둘에 개체화의 원리를 놓지만, 개체화는 단순히 이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두 입장 모두 ‘이미 구성된 개체’로부터 출발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개체화의 원리’를 탐구한다. 그리고 이 원리를 개체화의 ‘이후’(원자론적 실체주의)나 ‘이전’(질료형상론)에 상정하기 때문에 이 두 입장은 개체의 ‘생성’의 작동을 파악하는데 실패해 버리고 만다.

반면 시몽동은 이미 구성된 개체로부터 출발하는 대신 ‘선(先)개체적인 것’으로부터 ‘개체’를 생성시키는 ‘개체화의 작용’에서 출발할 것을 제창한다. 이 개체화의 작용은 질료와 형상의 대립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공통의 작업으로서만 서술된다.

우선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시몽동이 특히 질료형상론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거론하고 있는 예는 벽돌의 제작이다.(IG, 38~43) 벽돌이라는 ‘개체’의 성립을 주형이라는 ‘형상’과 점토라는 ‘질료’의 결합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전적인 사고를 내부로부터 해체하기 위해 시몽동은 이 기술적인 모델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 질료와 형상 사이에 있는 매개적인 작용을 명확하게 하고자 한다. 이 예는 시몽동의 기술론 중에서도 가장 소박한 것이자, 이른바 ‘질료형상론’과 타협했던 논의이지만, 들뢰즈=가타리가 나중에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 것이기에7)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자.

시몽동에 따르면, 벽돌이라는 하나의 개체를 순수한 형상(주형)과 순수한 질료(점토)의 결합의 결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실제로는 주형이든 점토든 둘 다 세심한 정성을 들여 준비된 것이며, 이 두 가지 계열이 어떻게 하면 잘 매개되게끔 할 것인가에서 ‘기술성’이 발휘된다. 우선 점토의 경우, 틀에 넣어 잘 굳게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균질과 습기 등이 갖추어져야만 한다. 질료는 단순히 형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인 형상’으로서, 개체의 성립을 능동적으로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준비를 가능케 하는 것이 질료에 축적되어 있는 ‘잠재적 에너지’potential energy라고 불리는 것이다.

다른 한편, 형상인 주형의 경우, 이 점토에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를 잘 ‘현실화’actualiser시키게끔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를 위해서 바깥으로부터 형상을 내리누르는 것이 아니라, 점토가 품고 있는 잠재적 에너지를 잘 ‘한계짓고’limiter, ‘내적인 공명’이 생겨나게끔 해야만 한다고 시몽동은 말한다. 점토의 내부에서 서로 다투듯이 경합하고 있는 에너지를 평형상태로 변환시키는 것처럼 ‘경계’limite를 수립하는 것이 주형의 역할이다. 바꿔 말하면, 형상이란 질료의 수준을 변환시키는 것이며, 그 수준 변환 자체가 개체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개체의 성립을 질료와 형상이라는 두 항의 결합으로 간주하는 대신, 에너지적 조건과 위상학적 조건의 교환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전통적으로 질료라고 불리는 것은 에너지적 조건이다. 그것은 여러 힘들이 서로 다투는 과잉의 상태로서, 잠재적으로 개체의 생성을 준비한다. 그에 반하여 형상이란 질료에 의한 형상의 선취를 재차 받아들여 에너지를 현재화시키고, 거기에 일반적인 평형상태를 성립시키는 ‘위상학적 경계’이다. 그 경계는 질료를 어떤 틀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잠재적 에너지를 ‘변조’시킨다.8) 질료와 형상간의 차원을 변조하는 것이 개체화의 작용인 것이다.



준안정적인 시스템과 그 ‘경계’

시몽동에 따르면 질료형상론을 비롯하여 여태까지의 사유가 개체화의 작용을 충분히 사고할 수 없었던 것은 평형상태를 사고하려고 할 때조차도 ‘준안정’métastable이라는 개념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안정’이란 에너지 확립이 이미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겨우겨우 이전의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과포화 상태를 말한다. 종래의 사유는 안정과 불안정, 평형과 비평형을 양자택일적으로 사고해 왔기 때문에 개체화의 작용을 포착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질료형상론과 타협했던 벽돌의 예가 아니라, 역시 들뢰즈가 자주 차용하고 있는 ‘결정화(結晶化)’의 예를 검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결정이 처음으로 생겨나기 전의 용액은 에너지론적으로는 과포화상태, 즉 준안정상태에 있다. 하지만 결정의 생성은 이 에너지론적인 조건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따라서 ‘핵’이 도입되어야만 한다. 이 최초의 불연속성의 도입이 기점(起點)이 되어 결정이라는 개체가 서서히 생겨나게 된다. 개체화는 개체와 그 매체의 끝없는 교환으로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결정이라는 개체의 생성은, 항상 그 ‘경계’에서 행해진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시몽동은 개체란 ‘유한한 존재’étre limité(IG, 91)이라고 말한다. ‘유한한 존재’란 내부에 잠재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한정시켜 버리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질료형상론에 따르면, 개체의 성립은 질료와 형상의 순간적인 마주침으로서 설명되며, 질료는 형상 속에 밀어넣어져 버린다.

이에 반하여 ‘한계지어진 존재’로서의 개체화의 작용에는 원리적으로 끝이 없다.9) 예를 들어 결정의 무제한적인 성장에 있어서는, 생성의 결과가 다음 생성의 핵으로 된다. 이것은 중계relay처럼 연결되어 있고, 더욱 더 많은 양의 부정형적인 에너지를 동화시켜 간다. 이처럼 개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이른바 ‘구성적’이고 ‘능동적’인 관계 자체이다. 그것은 외부를 한없이 개체화하는 동시에 그 부분적인 성과로서 내부를 점점 더 복잡화하게 된다. 개체란 연속적인 에너지론적인 조건(용액)과 불연속에서 생성하는 시스템(결정)의 무한한 교환의 장인 것이다.10)

이것을 시몽동은, 개체는 ‘그 자체의 경계에서 구성되며, 그 자체의 경계에서 존재한다’고 표현한다. 개체는 ‘질료’와 ‘형상’이라는 두 항의 결합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자의 경계가 우선 능동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개체는 그 작동의 매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개체화란 경계의 활동 자체인 것이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개체화란 단독적인 개체의 성립이 아니라, 오히려 개체와 그 ‘환경’의 짝짓기couple의 성립이다. 이러한 환경을 시몽동은 ‘연합환경’11)이라고 부른다. 연합환경이란 어떤 개체가 성립할 때, 동시에 그 개체에 포함되어 있는 전개체적인 분야인 것이다.

이 전개체적인 분야는, 한편으로는 개체화의 조건 자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체에 선행하여 미리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체에 의해 발명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의 관계는 순환적이지만, 바로 이러한 자기순환을 매개로 개체는 자신의 환경을 갱신하고 외부와의 새로운 관계를 창설한다. 개체의 그 자신에 대한 관계가 동시에 새로운 외부와의 관계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체화의 작용이란, 개체가 자신의 조건이나 규범을 스스로 창출하는 것과 같은, 자기매개적인 동시에 발명적인 작용으로 간주된다. 이것을 시몽동은 개체란 이러한 능동적인 관계의 ‘무대’에서도 ‘동작주(動作主)’이기도 하다고 표현한다.(IG, 60) 개체화의 작용이란 전개체적인 지평과 이미 개체화된 지평을 내적으로 매개하고 그리하여 개체화라는 ‘사건’을 일으키게 하는 작용인 것이다.



불균등성disparité의 근원성

결정(結晶)이란 준안정적인 시스템이다. 이 준안정적인 시스템의 특징에 관해 들뢰즈는 시몽동을 따라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 번째로는 ‘불균등성disparité’의 근원성이라는 문제이다. ‘불균등성disparité’, ‘불균등화disparation’, ‘불균등을 초래하는 것[계속되는 불일치, dispars]’라는 일련의 용어는 『차이와 반복』의 기본용어 중 하나이다.

시몽동에 따르면 개체화는 시스템 내의 ‘불균등성’을 실마리로 발동한다. 준안정적인 시스템은 적어도 두 개의 커다란 차원이나 수준 사이의 ‘불균등화’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이것이 개체화의 동력이 된다. 이 ‘불균등화’를 들뢰즈는 ‘그 자체에 있어서 차이’[즉자적 차이, différence en soi]라고 다시 취급한다. ‘그 자체에 있어서 차이’란 시스템이 품고 있는 잠재적 에너지라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잠재력의 내적인 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들뢰즈는 이 ‘즉자적 차이’를 ‘내포량’ 개념과 관련짓는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보자.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의 5장에서 시몽동 등을 의식하면서 자세히 논하고 있는 ‘심화’profondeur의 예. 원래 ‘불균등성’이라는 시몽동의 용어 자체는 이른바 ‘심원한 지각’이라는 심리학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IG, 221, n. 30) 가령 좌우의 눈에 비친 부조화의 망막상이 통합되어 부조relief가 입체적으로 지각되는 예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심화란 지각 영역의 불균등성이 해소될 때 보여지는 것이다.

고전적으로는, 심화된 지각은 대상과의 ‘거리’, 그 외관상의 크기, 좌우의 눈에서 본 각도의 차이, 지각 분야의 질감의 차이로부터 ‘설명’된다. 하지만 들뢰즈에 따르면 그러한 설명에서는 ‘심화’가 연장으로 환원되어 버린다.

이것에 대해 들뢰즈는 일찍이 메를로-퐁티가 『눈과 정신』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심화를 연장과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첫 번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 번째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연장의 매트릭스[matrix, 모체(母體)]’이며, 이로부터 연장이 출현하는 궁극적인 차원이다.

이미 메를로-퐁티가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우리들이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는 사물을 지각할 때, 그 사물은 일정한 크기로 지각되지만, 그때 우리들은 ‘외관상의 크기’의 변화 등으로부터 거리의 변화를 계측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선 깊이와 두께를 지닌 공간이 있고, 거기에서 사물은 측량가능한 ‘외관상의 크기’를 초월한 ‘절대적인 크기’로 우리 앞에 다가오거나 멀어지기도 한다. ‘거리’나 ‘크기’는 그 추상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세잔이야말로 이러한 ‘절대적인 크기’의 캔버스에서의 공존을 그린 화가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들뢰즈는 깊이는 외관상의 크기로부터 계산될 수 있는 대상과의 ‘거리’로부터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선 깊이 자체가 내부에 여러 가지 ‘거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혀진’(impliqué) 거리가 ‘외관상의 크기’로서 펼쳐지기도(expliqué) 하며, 공간의 ‘질’로서 지각되기도 하며, 연장으로서 전개된다고 들뢰즈는 생각하는 것이다.(DR, 297/346)

깊이의 공간이란 이러한 여러 가지 거리나 관점이 경합하고 ‘불균등한disparité’ 장이다. 이 상호간에 불균등한 것이 내적으로 공명하며, ‘연장’으로서 스스로를 펼치게 될 때, 어떤 하나의 깊이가 지각된다. 이런 의미에서는 불균등이란 ‘출현’의 감추어진 조건이다.


“우리들이 <불균등>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한하게 이중화하고 무한하게 공명하는 차이의 상태이다. 불균등성, 즉 차이 또는 내포성=강도(내포성=강도의 차이)는 현상의 충족이유이며, 출현하는 것의 조건이다.”(DR, 287/334)


불균등이라는 내포성은 ‘출현하는 것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는 경험적으로는 확실하게 지각될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감추면서도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깊이란 ‘지각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것 자체는 결코 그것으로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들은 지각을 통해서만 깊이를 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깊이나 내포량은 ‘감성에 고유한 한계’(DR, 305/354-355)를 형성한다. 이 ‘감성의 한계’가 어떠한 ‘초월론적인’ 의미를 지니는가는 7절에서 검토하게 될 것인데, 그 전에 준안정적인 시스템의 두 번째 특징을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전개체적인 특이성

준안정적인 시스템의 두 번째 특징은 전개체적이면서도 특이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개체적이지는 않으나 특이하다는 것, 이것이 전개체적인 존재이다.

시몽동에 따르면 이 ‘전개체적인 특이성’은 준안정적인 시스템의 내적 변환과 관련된다. 원래 잠재적 에너지라는 것은 실체로서 선재(先在)하는 카오스가 아니다. 그것이 준안정적인 시스템에 있어서 현재화하는 것은 시스템 전체의 수준이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임계점에 있어서만 그럴 뿐이다.

바꿔 말하면, 잠재적 에너지의 ‘현재화’라는 사건은, 그것이 시스템의 어떤 특이한 점에 있어서 국지화localise되는 것과 동시적이다. ‘개체는 특이성으로부터 출현한다.’(IG, 60) 따라서 진정한 개체화의 원리는 ‘지금 여기’에 있어서의 특이성 자체인 것이다.

동일한 것을 ‘전개체적인 것’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개체란 전개체적인 것이 이중화하며, 이것에 대한 비틀기를 산출하며, 이른바 자기 자신을 내부로 말려들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변용시키는 특이한 매개적 장에 다름 아니다. 개체화라는 ‘사건’이 산출하는 불연속성은 시스템 내부의 균열을 낳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이면인 전개체적인 것을 현재화시키며 시스템 전체를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개체화란 시스템의 ‘내적 차이’를 전개체적인 지평으로 매개하는 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전개체적인 지평은 항상 특이성과 결합되어서만 나타난다. 이것이 ‘전개체적인 특이성’이라고 불리는 것이리라.

이것을 받아들여 들뢰즈는 여러 곳에서, 잠재적인 것은 ‘차이화=미분화(différentié)이지만, 이화=분화(différencié)하는 것’(DR, 276/323)이라는 명제를 반복한다. 베르그송의 독해에서 말해진, 이처럼 잘 알려진 명제에 관해 여기에서 깊게 파고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12)

그 대신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들뢰즈의 잠재적인 것의 사유에서는 전개체적인 것의 존재론적 탐구와 시스템론적인 발상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전개체적인 것은 실체로서 선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변환과의 관계에서만 특이성으로서 현재화한다.

거기에서는 이 ‘전개체적인 것’에 어떠한 위치를 부여하면 좋을까? 여기에서 시몽동이 도입하고 『차이와 반복』이나 『의미의 논리』의 들뢰즈가 자신의 것으로서 상세하게 전개하는 것이 ‘문제적인 것’이라는 개념이다.


문제적인 것problomatique과 기호

들뢰즈에 따르면 ‘문제적인 것’이란 인식이 중단된 상태에서도 그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념의 고유한 대상’이자 객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13) 이 절에서는 이것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시몽동에게 이 개념이 도입된 것은, 예를 들어 생물이 외부 세계의 갖가지 문제에 직면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신체를 통합과 분화를 반복하면서 행동을 변용시켜 나가는 과정을 기술하기 위해서이다. 시몽동에 따르면 이것은 ‘적응’이나 ‘학습’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오히려 그것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불균등성disparité’을 출발점으로 하여 생물이 불균등성을 해결하는 새로운 수준을 창설하고 내부와 외부에 ‘내적인 공명’을 수립하려는 과정으로 생각되어만 한다. 이것은 적응이나 학습이 아니라 ‘삶이라는 구조적인 개체화에 참가하는 것’(IG, 207)이다. 개체화 자체가 생물의 신체나 행동의 통치와 분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오히려 개체화란 통합과 분화가 동시에 행해지는 역접적인 작용이다.

여기에서 시몽동이 배격하는 것은, 예를 들어 게슈탈트 심리학의 ‘좋은 형태’라는 개념이 전제하는 긴장 완화에 의한 평형상태의 확립이라는 모델이다. 개체화 과정에서는 긴장이 결코 해소되지 않으며, ‘불균등’은 결코 ‘종합’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지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좌우의 망막상의 ‘불균등’은 지각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깊은 지각의 성립은 이러한 좌우 망막상의 ‘종합’이 아니라 양자가 상호 계속 어긋나면서 내적으로 공명하는 새로운 준안정적인 시스템의 창설에 다름 아니다.(IG, 203-9) 마찬가지로 생물의 발달과정에서도 불균등이나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행동이 가능한 긴장의 시스템을 발명하게끔 동기를 부여한다.14) 이런 의미에서 ‘문제적인 것’은 주체적인 정지상태가 아니라 개체화의 ‘객관적인’ 조건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적인 것’이 ‘객관적인 의미’의 출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적인 것의 개념은 새로운 의미의 이론을 요구한다.

시몽동에게 ‘의미’의 문제는 당시의 사이버네틱스의 정보이론을 채용하여 고찰되었다. 오늘날 이것을 자세히 검토할 필요는 없지만, 여기에서도 시몽동은 ‘불균등’의 개념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불균등이란 예를 들어 신호를 기계로 수신할 때, 보내진 신호와 수신기에 이미 포함된 형식(=형상)과의 불균등이다. 정보란 서로 불균등한 두 개의 요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수립하는 특이성이다. 주형과 점토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주형을 갖춘 형상과 점토의 분자가 어긋난 결과,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생성할 때, 거기에 정보가 개입한다. 또한 깊이 있는 지각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좌우 망막상의 불균등의 해결로서, 어떤 깊이의 지각이라는 정보가 지각 공간의 의미로서 확정된다.

따라서 정보란 특이성 자체이며,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의 변환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시스템 내의 이질적이고 과잉된 요소로서 나타난다. 또한 그것은 ‘관계적’인 것이기도 하며, 시스템 내의 계열들의 ‘사이’에서 출현하며, 그 사이에는 ‘내적인 공명’을 수립하여 시스템을 재조직함으로써 ‘의미’로서 고정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들뢰즈가 ‘기호’라고 부르는 것은 확실히 시몽동의 의미의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도입된다. 그것은 시스템 내의 계열 간에 ‘내적인 공명’을 수립하는 것인 동시에, 전개체적인 것이 특이한 장에 있어서 현재화할 때에 일어나는 ‘섬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은 ‘신호=기호’의 시스템에 있어서 번득인다. 우리들이 신호라고 부르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이질적인 계열,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두 가지 불균등한 차원에 의해 구성되며, 치장되는 시스템이다. 현상이란 하나의 기호의 것, 즉 불균등한 것의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시스템에 있어서 번득이는 것이다.”(DR, 286/333)


‘기호’란 관계적인 것으로서 현상하는 특이성이다. 그것은 상호 이질적인 계열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설립인 동시에, 전개체적인 것이 섬광처럼 반짝이고 나서 꺼져간다는 ‘사건’의 기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개체적인 것은 특이성을 기호로서 발신함으로써 시스템을 변환한다.


바닥-없음(sans-fond)과 추상적인 선

들뢰즈는 지금까지의 서술에서, 기본적으로 시몽동의 개체화론을 뒤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시몽동 이상으로 불균등의 작용의 존재론적인 근원성을 강조하며, 그것을 ‘개체화 과정과 동시적인’ ‘초월론적 원리’로까지 끌어올린다.(DR, 56/72) 그것은 개체화의 작용을 모든 ‘유사’나 ‘유비’로부터 분리하여 “모든 것이 불균등에 토대를 둔 세계, 모든 것이 무한으로 울려 퍼지는 여러 차이의 차이에 토대를 둔 세계”(DR, 311/361)를 해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학적 관점으로 기운 시몽동의 사상에는 부재하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깊이 있는 지각의 예로 돌아가자. 내포량으로서의 깊이란 ‘지각될 수 없는 것’임과 동시에 ‘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감성에 고유한 ‘한계’를 형성하는 현상의 근거였다. 들뢰즈는 이 경험적으로는 볼 수 없는 한계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감각될 수 있는 것의 존재’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 때문에 필요한 것은 이 ‘한계’로서의 ‘내포량’을, 이른바 그 장소에서 직접 파악하는 초월론적 관점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 때 ‘경험론’은 ‘초월론적이 된다.’ 여기에서 도입되는 것이 유명한 ‘초월론적 경험론’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의 입장이라기보다는 불균형으로 촉진된 사유의 운동으로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에 주의를 해야만 한다. 경험론은 이른바 그 현장에 있어서 초월론적인 것으로 생성한다.


“감각될 수밖에 없는 것, 감각될 수 있는 것의 존재 자체, 즉 차이, 포텐셜이라는 차이, 질적으로 잡다한 것의 이유로서의 내포량=강도라는 차이, 이것을 우리들이 감각될 수 있는 것 속에서 직접 파악할 때, 분명히 경험론은 초월론적으로 되며, 감성론은 필연-당연한 학문 분야가 된다. 현상이 번뜩이고, 기호로서 전개되는 것은 … 확실히 차이에 있어서이다.”(DR, 80/99-100)


경험론이 초월론적인 것으로 될 때, ‘깊이’ 자체가 ‘그것 자체로서 전개한다’(DR, 367/425)고 들뢰즈는 말한다. 한편으로는 깊이는 단순히 ‘연장’의 배후에 있고 ‘출현’을 가능하게 한 감추어진 원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것 자체로서 전개’할 때, 그것은 모든 개체성을 해체해 버릴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바탕’(fond)이 아니라 ‘바탕-없음’(sans-fond)으로서 나타난다.

‘바탕-없음’이 그것 자체로서 전개할 때, 그것은 결코 ‘형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개체화하는 것 사이에 미끄러져 들어가며, 우리들의 지각 시스템을 파괴한다. “그것은 거기에 있으며, 우리들을 응시하지만, 눈을 갖고 있지 않다.”(DR, 197/236)고 들뢰즈는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초월론적 원리’는 더 이상 단순히 ‘출현하는 것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조형적이며 아나키적이며, 노마드적인 원리’(DR, 56/72)로 된다. 그것은 개체화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파괴한다. ‘바탕-없음’이 전개될 때, 그것은 질료와 형상이라는 가면을 쓰면서 모든 수준을 횡단하여 그것을 결합시키면서 재편성한다.

그 때 ‘불균형’이라는 ‘그것 자신에게 있어서의 차이’는 ‘감성의 한계’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감각해야만 할 것을 부여하며 과거 자체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더욱이 사고를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원리가 된다. 바로 그렇기에 특이성 자체로서의 ‘정보’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해석을 재촉하면서 항상 스스로를 변용시켜 가는 ‘기호’로 바뀐다.

이것은 중대한 귀결점을 포함하고 있다. 앞의 논의에서는 개체화는 어디까지나 질료와 형상 사이, 또는 상이한 수준이나 계열 사이에서 작동하는 것으로서 기술되어 왔다. 마치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개체화의 분야 일반이, 여러 가지 수준이나 종에서 작동하고 있는 듯이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수준 사이의 계층구조를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개체적인 것’에서 ‘개체적인 것’을 경유하여 ‘초개체적인 것’에 이르는, 새로운 계층구조를 날조해 버릴 위험을 품고 있다.15)

하지만 오늘날 ‘바탕-없음’이 그것으로서 전개할 때, ‘초월론적 원리’는 여러 가지 수준에서 개체화의 작용을 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 여러 가지 수준에서의 개체화의 작용 등은 메아리처럼 서로 번갈아가며 부르며, 모든 수준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Evénement)으로 수렴한다.16) 그 때 ‘초월론적 원리’는 단순히 수준의 ‘사이’에서 작동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그 때마다 ‘전체적이고 전체화하는 것’(totale et totalisant)으로 된다.

마찬가지로 ‘특이성’이나 ‘문제적인 것’도 그 의미를 변용시킨다. ‘바탕-없음’이 그 자체로서 전개할 때, ‘문제적인 것’은 단순히 특이성이나 그 계열 사이에 ‘내적인 공명’을 촉진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다. 각각의 특이성의 계열은 다른 특이성의 계열에 있어서 ‘반복’되며, 각각이 ‘상호 간 응축된다.’

이리하여 ‘그것 자체에 있어서의 차이’는 들뢰즈의 다른 하나의 테마인 ‘반복’과 접속한다.


“반복이란 무수한 특이성을, 항상 반향 속으로, 공명 속으로 투척하는 것이다. 이 반향, 이 공명에 있어서 각각의 특이성은 서로 다른 분신이 된다.”(DR, 257/304-305)


이 ‘반향’에 있어서 ‘특이성’은 더 이상 하나의 ‘문제적인 것’으로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물음’(question)에 있어서 공존한다. ‘물음’이란 유일한 사건에 있어서 갖가지 문제 속에 어떤 것을 배분하는 ‘존재론적인’ 것이며, 항상 새로운 문제화의 분야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들뢰즈는 확실히 ‘반복’의 테마를 도입함으로써 ‘깊이’를 ‘바탕-없음’에, ‘정보’를 ‘기호’에, ‘문제’를 ‘물음’에 접속한다. 그리하여 그는 시몽동의 ‘휴머니즘’에 잔존해 있는 계층론적인 발상마저 내던지고, “일체가 불균형에 토대를 둔 세계”를 구상하게 된다.17)

앞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주체 이후에 누가 올 것인가?” ― 들뢰즈가 ‘표상 = 재현전화’라고 부른 전통적인 주체(‘보편성’과 ‘개체성’)는 이 ‘바탕-없음’을 단순히 ‘차이 없는 보편’, ‘차이 없는 암흑의 문턱’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바탕-없음’의 ‘공포와 매력’을 통제하기 위해서 ‘나’라는 형상과 ‘자아’라는 질료에 개체화의 작용을 얽어매고자 한다. 이리하여 ‘인칭적 개체성’과 ‘개체적 특이성’이 필요하게 된다.(DR, 354/411)

“주체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인가?” ― 이 물음에 들뢰즈가 ‘비인칭적 개체화’와 ‘전개체적인 특이성’이라고 답할 때, 그가 목표로 한 것은 ‘자기를 다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약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 ‘더 이상 자기도 나도 없는 별종의 영역’에 이르는 것이다. 거기에 있어서 ‘개체화의 카오스적인 지배가 시작된다.’(DR, 332/385) ‘자기’와 ‘나’란 개체화에 의해서, 그리고 개체화에 있어서 그때마다 새로운 ‘개체화하는 요인factor’(아나키적인 초월론적 원리)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사유는 이 ‘바탕-없음’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질료형상론의 비판의 철저화의 끝에서 들뢰즈가 발견한 것은 ‘추상적인 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질료와 형상의 커플couple은 한정의 메커니즘을 기술하기에는 대체로 불충분하다. … 형상, 질료와 그 결합의 충족이유로서 힘과 토대의 상보성을 끄집어내는 것은 이미 하나의 진보이다. 하지만 더욱이 깊이 놀라야 할 것은 추상적인 선과 바탕-없음의 커플이다. 바탕-없음은 질료를 해소하고, 살이 붙은 형상을 해체한다. 사유는 순수한 한정으로서, 추상적인 선으로서, 이 비한정적인 ‘바탕-없음’에 직면하야만 한다.”(DR, 353/409)


‘바탕-없음’에 직면한 ‘추상적인 선’이 왜 ‘선’이라 불리는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은 ‘능동적인 경계’(시몽동)가 ‘조형적이고 아나키적이며, 노마드적인 원리’로 변화했다는 것이 어쩌면 확실할 것이다. 들뢰즈는 이후 이 ‘추상적인 선’을 여러 가지로 변용시키는데, 예를 들어 『푸코』론에서는 권력에 선행하고 그것을 변동시키는 ‘저항의 선’이나 ‘야생의 특이성’으로서의 ‘생명의 선’ 등에 관해서 말하게 된다.18)


마치며 ― 들뢰즈의 기술론을 향하여

지금까지 들뢰즈의 시몽동의 개체론의 해석을 검토함으로서 명백하게 된 것은 들뢰즈가 시몽동의 ‘전개체적인 특이성’의 현재화로서의 ‘개체화의 작용’이라는 사고방식을 기본적으로 이어받으면서 개체화를 가능하게 한 초월론적 원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니체=클로소프스키적인 ‘반복’의 사고에 접속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물어야만 할 것은 이러한 방향만이 유일하게 해방적인 방향인가 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시몽동 독해의 최대 특징은 그 개체론에서도 이미 명백하게 읽혀질 수 있었던 기술론적 측면을 어쩌면 의도적으로 사상시켜버리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이미 1958년에 출판되었던 『기술적 대상의 존재 양태에 관하여』는 내가 아는 한 초기 들뢰즈의 작품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것이 언급 된것은 1980년의 『천개의 고원』의 「유목론 ― 전쟁 기계론」에서이다. 하지만 시몽동의 이 저작은 ‘개체화의 작용’의 문제를 ‘기술성’의 문제로서 구체적으로 재파악한 것이며 개체화론과는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사유에서 폭력적으로 작동되는 ‘차이’나 ‘기호’의 문제는 이른바 사유의 ‘근원적인 기술성’이라고도 말해야 할 문제로 들뢰즈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19) 하지만 들뢰즈의 초기 조작에서는 기술성의 문제가 클로소프스키적인 ‘시뮬라크르’의 개념하에 감추어져 버린다. 그리고 ‘아나키적인 초월론적 원리’의 해방의 방향은 기술보다는 오히려 협의의 예술작품이나 병리학적인 것으로 수렴되어 간다고 생각한다.(DR, 371-6/430-4)

들뢰즈의 개체화론이 기술론으로서 전개되기 위해서는 『기계적 무의식』의 저자 가타리와의 마주침을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일까?20) 시뮬라크르 개념의 폐기는 여기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들이 씨름해야만 하는 것은 초기 들뢰즈의 개체화론(및 시몽동에 대한 거리)의 연장선상에서 들뢰즈적인 기술론을 구상해 보는 것일 게다. 사유에서 폭력적으로 작동되는 ‘그 자신에 있어서의 차이’를 기술성의 문제로 재파악하는 것, 그것은 어떤 논자가 말하듯이 사유를 ‘물질성’에 있어서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일까?21)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시몽동적인 질료형상론의 비판 바로 앞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들이 물어야만 하는 것은 시몽동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전개체적인 것’을 ‘바탕-없음’으로서 전개했을 때 인간과 기계의 ‘내적인 공명’에 어떻게 새로운 불균형이 생기고, 그가 이상화한 기술자 집단의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일 것이다.22) 이 기술적 집단성의 문제에 『천개의 고원』이 어떻게 답하는가, 그것은 다시금 검토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1) Gilles Deleuze, “Un concpet philosophique”, in Cahiers Configuration, no 20, hiver 1989, Aubier, pp. 80-90. 원래 텍스트는 영어로 1988년에 출판되었다.

2) 들뢰즈에게 있어서 ‘개체론’을 ‘개체과정론’으로 재독해하려는 시도로서는 이미 田中敏彦씨의 견실한 작업이 있다. 다나카 토시히코(田中敏彦), 「個体論 (1)․(2)」, 『고베외대논총』 제40권 제2호, 제51권 제5호.

3) 시몽동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 Aubier, 1958, 1969, 1989.

   L’Individu et sa genèse physico-biologique, PUF, 1964.; Millon, 1995. (이하 IG로 약칭. 이 책은 들뢰즈가 인용한 1964년 파리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앞의 것의 증보판이기도 하다.)

   L’Individuation psychique et collective, Aubier, 1989. (박사논문의 미간행 2부)

   시몽동 사상 자체에 대한 평가에 관해서 필자는 『現代思想』 1996년 7월호 및 『外國語科硏究紀要』(동경대학 교양학부 제42권 제2호 및 제43권 제2호)에서 고찰하고 있으며, 졸고와 내용적으로 일부 중복되고 있다는 것도 밝혀둔다.

4) Gilles Deleuze, Différence et Répitition, PUF, 1969. (이하 DR로 약칭하고 앞은 불어판, 뒤는 한국어판 쪽수를 표기)

5) Gilles Deleuze, Logique de sens, Minuit, 1969, p. 126, n. 3.

6) “Gilbert Simondon, L'individu et sa genése physico-biologique”, Revue philosophique de la France et l'etranger, vol. CLVI, n01-3, janvier-mars, 1966, p. 115-8; repris dand L'Ile déserte et autres textes, Minuit, 2002, pp. 120-4. [이 글은 김상운․양창렬 옮김, 「『개체와 그 물리적·생물적 발생』에 대한 들뢰즈의 서평」이라는 제목으로 ≪자율평론≫ 14호(2005)에 수록되었다.]

7) Deleuze et Guattari, Mille Plateaux, Minuit, 1980, p. 507과 이하. 또한 이 책의 「도덕의 지질학」은 언어학의 이중분절 이론과 시몽동의 질료형상론 비판을 결합시킨 것을 그 주된 이론적 틀로 삼고 있다. 이 장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으로는 河本英夫, 『メタモルフォーゼ』, 靑土社, 2002년, 제4장을 참조.

8) 이 ‘변조’ 개념은 들뢰즈의 여러 저작에서 활용되는데, 특히 흥미로운 것으로는 프랜시스 베이컨론에서 색채에 관한 분석을 참조. Cf. Logique de la sensation, Ed. de la différence, 1981, pp. 76-8.

9) 용어상으로는 간단하지만, ‘한계지어진 존재’라고 불리는 것은 들뢰즈가 ‘완결되었으나 한계를 갖지 않는’(achevé et illimité)다고 불리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리라.(DR, 80/100) 영겁회귀란 ‘완결된 것’의 ‘한계성’에 다름 아니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10) 『시네마』 제2권의 「결정(結晶) 이미지」의 분석에 있어서 들뢰즈는 이것을 ‘현실적인 것’l'actuel과 ‘잠재적인 것’의 교환의 장으로서 서술한다. 경계로서의 개체란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이 ‘식별불가능’(indiscernible)하게 되면서, ‘구별되고’(distinct) 있다는 점이다. Cf. Cinema 2 (L'Image-temps), Paris, Minuit, 1985, pp. 93과 그 이하.

11)  IG, 61. De mode d'excistence des objets technique, p. 57. 기술론적 맥락에서는 ‘연합환경’이란 ‘기술적인 존재가 자기 자신의 주변에 창조하는’ 환경이며, ‘기술적 존재에 의해 조건지어지는’ 동시에 ‘그것을 조건짓는다.’ 그것은 기술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순환적 매개이다. 이 개념은 특히 『천 개의 고원』에서 다시 끄집어내어진다. Cf. Mille Plateaux, p. 67.

12) 이 점에 관해서는 檜垣立哉, 『ベルグソンの哲學』, 勁草書房, 2000년을 참조.

13) Logique du sens, p. 70.

14) 들뢰즈는 ‘학습’을 ‘문제적인 영역’의 형성이라고 생각하고, 『차이와 반복』에서는 수영 배우기의 예를 들고 있다. “헤엄치는 것을 배운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 신체의 여러 가지 특별한 점을, 객관적인 <이념>의 여러 가지 특이점과 결합시키고, 문제적인 영역을 형성하는 것이다.”(DR, 214/55. 또한 248/292를 참조.) 들뢰즈에 따르면 이것은 학습에서의 ‘무의식의 역할’과 관련된다고 한다.

15) 이자벨 스탄제르는 시몽동의 ‘개체화’ 개념과 들뢰즈+가타리의 ‘배치agancement’ 개념을 비교하면서, 전자는 충분히 ‘추상적이지 않은’ 결과일 경우 계층론적인 논의를 온존시키고 일종의 사명감으로 충만한 휴머니즘에 빠지기 쉬운 반면에, ‘배치’는 계층화 불가능한 다양체들을 하나의 평면에 놓는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을 ‘초월론적 경험론’과 관련짓는다. Isabelle Stengers, “Comment heriter de Simondon”, in Gilbert Simondon: Une pensée opérative, coordoné par J. Roux, Publications de l'Université de Saint-Etienne, 2002, pp. 309-313.

16) 『의미의 논리』, 「제9 세리」를 참조.

17) 들뢰즈 철학의 이 전개가 ‘차이의 개념과 반복의 본질의 조우’에 있으며, ‘개체화의 자유로운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의 ‘형식적인 틀’의 ‘실효적인 실현’이 클로소프스키의 니체 해석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鈴木泉, 「들뢰즈 철학의 생성」(『현대사상』 2002년 8월호, 139~140쪽)의 세밀하고 정확한 분석을 참조.

18) G. Deleuze, Foucault, Minuit, 1986, p. 130.

19) 시몽동론도 집필한 브루노 파라디는 들뢰즈의 초월론적인 도식론과 기술성의 밀접한 관계를 부각시켰다. Bruno Paradis, “Schemas du temps et philosophie transcendantale”, in Philosophie, n° 47, 1995, Minuit, pp. 10-27. Cf. 또한 B. Paradis, “Technique et temporalité”, in Gilbert Simondon: Une Pensée de l'individuation et de la technique, Albin Michel, 1994, p. 233-6.

20) 필자가 알고 있기로는 『차이와 반복』에서는 한 곳에서만 ‘기계’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확실히 차이야말로, 또는 규정된 것의 형식이야말로 사유를, 즉 미규정적인 것과 규정작용과의 기계 전체를 기능시키는 것이다.”(DR, 354/410) 하지만 바로 그 뒤에서 이 사고 기계는 예술적 <혁명>과 결합되게 될 것이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이 기계는 아직 충분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21) 이 점에 관해서는 Logique du sens, p. 259, n. 3을 참조. 시몽동의 뇌에 관한 언급을 거론하면서 들뢰즈는 “우리들은 뇌의 표면과 형이상학적인 표면을 동일시할 수 있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표면을 물질화하는 것이 아니라 뇌 자체의 투영과 전개와 도출을 추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2) 이 점에 관해서는 졸고, 「생성하는 기계의 신체」(『현대사상』, 1996년 7월호)를 참조. 또한 시몽동과 메를로-퐁티의 관계도 놓쳐선 안 된다. 1964년의 개체화론은 메를로-퐁티에게 바쳐졌다. 이것은 1958년에 심사를 받은 박사학위논문의 일부인데, 1961년에 사망한 메를로-퐁티도 시몽동에 관해 말년의 미간행 원고에서 비판적인 논평을 남겼다. Cf. Stéphanie Ménase, Passivité et création, Merleau-Ponty et l'art moderne, PUF, 2003, p. 151.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시몽동의 지각론은 ‘초지각적’(transperceptif), 즉 ‘초개체적’이며, 진정한 ‘집단적인 것’(le collectif)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발언과 시몽동이나 들뢰즈의 ‘집단적인 것’에 관한 사유를 맞부딪쳐 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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