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고유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2)

- 베르그손에서 들뢰즈로 : 유물론의 가능성

ドゥルーズ固有哲学とは()

ベルクソンからドゥルーズへ : 唯物論可能性

자이츠 오사무(財津理, 法政大学教授)

듣고 정리이부키 히로카즈(伊吹浩一)

정황347

 


들뢰즈 고유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2.pdf



―― 저번에는 흄의 경험론을 중심으로 하여 들뢰즈가 흄의 철학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형태로 자신의 사상 속에 섭취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인 이번에는 들뢰즈 안에서 그것도 특히 거대한 철학자로서 자리매김 되고 있는 베르그손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자이츠 : 저번에는 동시에 들뢰즈에게서의 유물론의 가능성이라는 테마를 주고 그것을 의식하면서 말씀드렸는데요, 이번에도 계속해서 이 테마를 내걸고 그것에 조준을 맞추면서 고찰을 전개하고 싶습니다. 이때 전제에 두고 싶은 것은 레닌은 고려 밖에 둔다는 것, 경제활동을 유물론적 하부구조로 간주하는 입장을 유보하고, 옆으로 치워둔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말하자면, 들뢰즈가 아카데믹한 철학적 전통 속에서, 어떻게 크리에이티브한 전망을 열고 있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그때 전통적인 철학과 대비하는 데 있어서 다시 데카르트의 철학을 거론하고 구체적으로 비교하기 위한 최적의 예로서 그 심신이원론, 즉 신체=물체와 정신 사이의 이원론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 대해, 베르그손이 어떻게 변경을 강요하고 있느냐라는 관점에서 들뢰즈-베르그손에게 있어서의 유물론에 바싹 다가서려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최근 신경 쓰이는 것이 있으므로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들뢰즈 읽기 방식, 이해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것이며, 우선 그것을 확인해두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첫째로 내재적 이해이며, 이것은 들뢰즈의 텍스트를 따라 들뢰즈를 이해한다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의 것은 들뢰즈에게서의 외부 텍스트에 대한 연락을 통해, 들뢰즈의 관점에서 그 외부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로부터 다시 들뢰즈로 돌아온다는 방식입니다. 들뢰즈는 수많은 사상가나 다른 학문 분야로 자신의 사색의 영역을 넓히고, 이것들과 함께 아장스망(agancement, 이종적인 것의 조합)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들뢰즈와 하이데거를 대비해보면, 제게는, 하이데거는 일종의 블랙홀처럼 보입니다. 하이데거는 들뢰즈처럼, 하이데거 이전의 다양한 철학이나 다른 학문영역과 아장스망을 만드는 일은 없습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이 말하는 바의 존재의 의미가 그 자신의 관점에서 밝혀질 때까지는, 다른 모든 학문적 내용에 대해 이른바 판단중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죽을 때까지 존재의 의미를 명언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그것을 명언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하겠죠. 결과적으로 하이데거의 신봉자는, 하이데거의 죽음에 의해 뒤쳐졌으며[고립됐으며], 그의 사후도 하이데거 철학의 암흑 속에 속박되었습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을 하이데거라는 블랙홀에 빨아들이는 듯한 «하이데거 교»라고 해야 할 경향이 보입니다. 독자의 모든 관심을, 하이데거 이외의

독자의 관심의 모두 하이데거 이외의 것으로 돌려지지 않도록 하고, 하이데거가 시사하는 존재의 의미에만 집중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대해, 또한 존재의 의미의 원리적 암흑에 대해, 만일 기회가 있다면 자세하게 논하고 싶습니다만, 하이데거에 대해서는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두죠.

반면 들뢰즈의 자세는 다르네요. 들뢰즈의 사상은,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 있으면서 바로 바깥으로 나옵니다. 거꾸로 보면, 바깥에 있으면서 안에 있다는 식입니다. 들뢰즈 자신의 서술의 구조는 마치 양파껍질 같은 것이며, 그의 사상은 무수한 사상가나 연구자들이 가졌던 것의 축적에 의해 성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뢰즈 사상의 고유성은, 들뢰즈 자신의 관점에 의한 이종적인 것의 조합의 방식에 있다고도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들뢰즈에게서의 외부 텍스트에 대한 연락에 의해, 들뢰즈가 외부로부터 끌어온 것을, 예를 들어 스피노자나 니체나 칸트나 베르그손을, 들뢰즈의 관점에서 다시 읽고, 동시에 그로부터 들뢰즈 사상을 이해해본다는 당연히 하나의 필요한 작업이 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방식은, 들뢰즈의 관점을 참고하여, 그러나 들뢰즈의 말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의 각각이 자신의 분야에서의 창조활동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분야는, 학문의 분야라도 좋고, 예술의 분야도 좋고, 일상생활이라도 좋고, 그것은 다양하죠.

이러한 읽기 방식, 이해 방식이 있다는 것을 제안한 뒤, 잠시 쓴 소리를 해야겠습니다. 제 자신은 젊은 연구자라고 계속 생각했습니다만, 어느덧 나이만 먹었습니다. , 저보다 물리적으로 젊다는 의미에서 현재의 젊은 들뢰즈 연구자가 활약하게 됐습니다만, 그 몇 사람에게 보이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지적해둡니다. 그것은 언뜻 보면, 두 개의 외부 텍스트에 대한 연결에 관련된 해석의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것이 행해지고 있다. , 들뢰즈가 인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혹은 관계가 있는 것 같은 것에 대한 «환원 작업»일 뿐인 것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종의 «환원주의»에 빠지는 젊은 연구자들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들뢰즈의 관점에서 외부 텍스트를 다시 읽고, 그로부터 들뢰즈를 고쳐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 언저리에 들뢰즈의 원료가 있다는 것만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들뢰즈 이외의 것으로 해소해버리고 있다. 이것은 들뢰즈를 일본적 아카데미즘의 한 가지 방식으로 처리하는 입장이네요. 그것은 결국, 들뢰즈의 사상을, 해당 연구자 동료의 수준으로 낮춰버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클로소브스키는 니체에 대해 들뢰즈보다도 더 대단한 것을 말했으며, 들뢰즈는 거기에서 배웠구나를 발견하고”, 일종의 아는 체 하는 얼굴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들뢰즈를 원료로 삼아, 자신이 공부한 성과를 연구자 동료에게 과시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들뢰즈의 내재적 이해를 멀리하게 되죠.

다소 격한 비판을 했습니다만, 이것을 읽으면 몇몇 젊은 연구자들로부터 제게 차이와 반복을 번역했다고 해서 권위자인 양 행세하지 말라는 욕설이 날아올 것 같습니다. 또한 들뢰즈 고유의 철학을 왜 자이츠(財津)가 말할 권리를 갖고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죠. 이 있어야 할 반론에 대해서는, 저는 들뢰즈 고유의 철학을 말할 권리는 없다고만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들뢰즈의 지시에 따라서 철학과 사상의 연구를, “도래할 민중을 생각하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도래할 민중이 구체적으로 어떤 민중인가는, 그 설계도는 업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은, 선동되고 싶어하거나 영합을 요구하는 한에서의 대중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게 훈고학자라는 고마운 칭호를 수여해주신 평론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로서는, 저를 사상 연구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배우는 민중의 한 명으로서, 또한 배우는 민중과 함께, 들뢰즈의 시네마의 번역과 연구를, 그리고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세미나의 번역과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성과는 조만간 인터넷에 무료 공개하겠습니다. 관련된 출판사의 양해를 얻었습니다. 다시, 젊은 연구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자네들은 자기 논문에, 무턱대고 외국어 원문의 이름이나 참고문헌을, 그것도 외국어인 채로, 마치 훈장을 붙인 것처럼 달고 있지만, 도대체 들뢰즈를 누구를 향해 연구하고 있느냐고. 그것은 도래할 민중을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독해 방식이나 이해 방법은?

자이츠 : 내재적 이해인 동시에 외재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배우는 민중의 하나로서, 제 나름의 단면 이번에는 유물론의 가능성이라는 테마로 에서 읽어나간다는 것이며, 이것은 환원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그렇군요. 바로 들뢰즈 자신의 관점에 의한 이종적인 조합, 들뢰즈 철학의 고유성의식하가”, 들뢰즈를 읽어나가는 것이니까요. 그런 전제가 되는 읽기 방식, 이해 방식을 확인해 둔 다음, 그러면 바로 본론에 들어가죠.

우선 처음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들뢰즈와 관련되는 한에서의 베르그손의 철학 자체, 거기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이츠 :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베르그손의 독창성을 확인하기 위해, 우선 그것과 대비하는 데에 최적인 데카르트를 등장시키겠습니다.

데카르트는 물체와 정신을, 본질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구별해두고, 더욱이 그런 관계 맺음들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옛날부터 이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에는 아포리아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데카르트의 입장에 머물러 있는 한 이 아포리아는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데카르트는 물체와 정신을 구별하고, 물체는 3차원적 공간에 자리매김 되는 ’, 3차원적인 양을 가지고 있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 정신은 3차원적인 양을 갖고 있지 않는 ’, 원리적으로 벡터 공간에 자리 잡을 수 없는 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정신 혹은 마음은 단지 의지하거나 이해하거나 상상하거나 감각하거나 등등, 뭉뚱그려 사고하는것을 본질로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전제를 인정한다면, 적어도 난문이 두 개 나옵니다. 우선 공간성 없는 정신의 작용인 의지가, 즉 비물체적=비신체적인 정신 작용이. 정신성이 전혀 없는 물체=신체에 어떻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과를 잡으려고 의지하면 손이라는 자신의 물체가 움직인다. 신체라는 물체는 자기(라는 애매한 것)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비물체적인 정신이 손이라는 자신의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면, 원리상, 그 밖의 어떤 물체도 움직이게 할 가능성이 나오는 것 아닌가. 합리주의자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우리는 그다지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오컬티즘이나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난문은 반영론입니다. 왜 정신적인 3차원적 물체가 공간성을 전혀 갖지 않는 정신 속에서 재현전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이상과 같이, 미리 물체와 정신을 원리적으로 구별해 놓고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해간다고 하는 입장을 넘어서려고 한 것이 바로 베르크손입니다. 그 해결책이 물질과 기억에서 제시된 이마주(이미지)’라는 개념입니다. ‘이마주라는 개념은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완화하고, ‘물질과 정신의 연속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제출된 것입니다. 데카르트적 물체가 아니라 베르그손적 물질의 총체가 이마주인데요, 이것은 영미의 연구자들로부터, 애매한 문학적 표현에 기대는 베르그손적 개념의 하나라며 혐오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앞에 보이는 사과는 이마주이며, 우리의 신체도 이마주이며, 따라서 뇌도 이마주이며, 기억의 내용도 이마주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베르그손은 물질이라는 말을 꽤 애매하게 쓰고 있으니, 더더욱 골치 아픕니다. 이마주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베르그손의 물질기억의 구별과 그 관계가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양자의 관계의 내용이 물질과 기억의 사상 전체를 구성해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제부터 풀어나갑시다.

여기서 몇 가지 프랑스어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프랑스어를 알지 못해도, 제 논지는 알게 될 겁니다. , ‘물질 matiére’이란 이완(느슨함), relâchement’이며, 그것에 대해 지속 durée’이 있고, 이것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파악되는 의식’(혹은 의식상태)이며, ‘응축 contraction’(기존에는 수축으로 번역되었다)이라고 합니다. 이 응축 contraction에 관해 들뢰즈는, ‘수축으로 번역하는 일면적이며, 근본적으로는 누적적으로 융합해가는 것이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순간적, 계기적 물질적 사건이 어떤 근원적인 주관성의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며, 보존되고 융합되어 간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저는 contraction축약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사실은 아직도 적절한 번역어를 못 찾았어요.

그러면 지속부터 살펴보죠.

 

―― 지속이란 의식의 작동의 가능 깊은 수준의 것이죠.

자이츠 : ,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베르그손의 지속이란 개념은, 우선 초기의 시간과 자유 :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한 시론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서의 베르그손은, 다소 데카르트를 닮았으며, 물질적 외부세계와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구별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격은, ‘표층적인 자아깊은 자아로 성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표층적인 자아는 외부세계와 하고 있습니다. 외부세계 그 자체는, 공간적인 것이며, 거기에서 생기는 계기(繼起)적인 현상은 수량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운동도 위치의 이동이라는 것이 됩니다. , 외부세계의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 수량적으로, 즉 숫자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표층적인 자아는, 그런 외부세계와 접하고 있다면, 그로부터의 영향이 아무래도 내면세계에 미치겠죠. 거기서 우리는 자아 혹은 순수의식에 있어서의 순수지속, 본래는 상호침투적 상태로서 살고 있을 것인데도, 수량적, 대상적으로 표상하게 된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그것으로는 자아의 진짜 모습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런 셈이어서, 진정한 지속은 내적으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하는 것이라고 주장됩니다. 아무튼 정신의 순수 지속은 결코 상호 외재적인 순간의 연속도 아니고, 공간적으로도, 수량적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것을 초기에는 말했던 것입니다만,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의 단계가 되면, 어떤 전환을 행합니다. 그는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어떻게든 연속시키고 싶다는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직관과 지각이라는 말이, 이른바 서로 뒤바뀌어버린다. 시간과 자유에서는 직관이 외적 세계에, 지각이 내적 세계에 대응했습니다만, 물질과 기억이 되면, 그것이 역전됩니다.

그런데 저는 물질과 기억의 세계는, 그 모든 것이 물()아 아니라 과정이라고 본다면, 꽤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베르그손이 말하는 순수지각이라는 과정을 기축으로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기억의 개재 없이 행해지는 지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베르그손은 꽤 애매하게 말합니다만, 문학적인 서술을 하고 있으며, 제 자신도 베르그손에 관해 이러하다고 단언하는 데에 꽤 망설임이 있습니다만, , 상당히 단순화해서 정리했습니다. 이하에서의 제 해설의 거북함을 참작해주십시오.

기억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우선 다음의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순수지각이란 물질로부터 직접적, 순간적인 비전을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수지각에 있어서의 이마주의 발생이 있습니다. 이 순수지각에 있어서의 이마주는 물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것입니다. 그런데, ‘순수지각의 내용은 한편으로는 이완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과학이 규정하고 있는 물질’, 혹은 물체의 규정이 가능해집니다. 베르그손에서 가장 애매한 것은 인간의 주관성이 일절 개재하지 않은 물질적 세계조차 수학적으로 표현되면서 감성적인 성질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관성이 삭제된 물질적 이마주란 무엇인가, 그 언저리는 어떻게 해석하면 좋은가, 확실히 문제가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지각기억의 개입에 의해 응축된다(기존의 번역어로 말하면 수축한다). 더구나 거기에 생활상의 이해관계가 개입하면, 순수지각은 구체적인 지각이 된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지각입니다. 이것도 또한 이마주입니다. ‘순수지각의 수준에서의 이마주가 있고, 또한 구체적인 지각의 수준에서의 이마주도 있습니다.

 

―― 얘기가 약간 복잡하니까,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십시오. 베르그손은 물질과 정신을 연속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라는 문제의식이 있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마주라는 개념이 있으며, 그리고 이 이마주에는 순수지각으로서의 이마주순수지각이 더 압축된 구체적인 지각으로서의 이마주의 두 종류가 있다는 거네요.

자이츠 :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물질과 지속(의식)”의 문제로 돌아가죠. 들뢰즈는 물질과 지속은 본성상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 “본성상의 차이입니다. 들뢰즈가 본성상의 차이라고 할 때는 일단 물질과 지속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두십시오. 그러나 곧장, 들뢰즈는 얘기를 밀고 나가, 물질과 지속의 차이는 표면적 차이일 뿐, 진짜 본성상의 차이지속그 자체라고 주장합니다.

 

―― 물질과 정신의 연속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이 발언의 배경에 있다고 .

자이츠 : 지속으로서의 본성상의 차이분할되면 본성을 바꿔버린다는 잠재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순수지각을 기축에 있어서 본다는 전제 아래서 얘기를 풀어왔습니다. 또한 시간과 자유에서는 심층의 자아와 표층의 자아의 구별이 있다고 말했어요. 이는 어찌 보면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라는 사고방식 같지만 사실은, 베르그손에게도 들뢰즈에게도 별로 친숙하지 않고 그들의 사상을 해석할 때에는 취해서는 안 되는 관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해되기 쉬운 이 도면을 편의적으로 채용해서 얘기를 진척시킵시다.

순수 지각을 완화하면, 훨씬 더 물질적인 것 쪽으로 나아가며, 순수 지각이 기억의 개입에 의해 응축되고 어떤 무게를 갖고 생활상의 이해가 들어옴으로써 구체적인 지각이 되며, 우리의 일상적인 지각이 된다. 제가 보기에 이런 논의의 수준이 차이와 반복2장에 있는 시간의 첫 번째 종합에서 고쳐 읽혀지고, 활용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 베르그손의 물질과 정신의 연속성이라는 문제의식이 들뢰즈에게 유입되고, 그것이 시간론으로서 전개된다는 것이군요.

자이츠 : 그렇습니다. 그럼, 들뢰즈의 시간의 첫 번째 종합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이것은 2장의 그것 자신을 향한 반복에서 얘기되고 있는데요, 제 자신, 이 제목의 번역이 좋은지 나쁜지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이 표제의 원어는 La répetition pour elle-même인데요, 이것은 헤겔의 말투를 닮았습니다. “그것 자신으로 향한다, 헤겔적인 혹은 사르트르적인 대자라고 번역됩니다. 과거 향자(向自)’라는 번역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것 자신으로 향한다라는 번역을 할당했습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주관성의 어떤 독특한 수준이 분석되고 있습니다. 들뢰즈에게서 시간의 종합에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세 가지가 있고, 첫 번째 종합은 살고 있는 현재”, 두 번째 종합은 순수과거”, 세 번째 종합은 미래가 되며, 각각 현재론, 과거론, 미래론이 되고 있다. 거기서 현재에 대한 시간의 첫 번째 종합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이 첫 번째 종합은 아주 재미있는 곳으로, 그 이면에는, 분명히 메를로-퐁티의 지각론을 넘어서는 기획이 숨겨져 있네요.

우선 앞서 말한, 물질적인, 순간적인 계기(繼起)를 거론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틱톡, 틱톡, 틱톡등의 시계소리, 이런 물질적 수준을 상정합니다. “이 울리고 그것이 소멸하고 다음의 에 울린다. 이렇게 물질계에서의 일종의 반복에는 자기 보존이 없습니다. 전의 순간적인 현상은 금방 사라지고, 다음의 순간적인 현상이 나타나며, 또한 금방 사라집니다.

들뢰즈는 더 나아가, 어떤 원초적인 생명적 감성을 상정하고, 이를 관조하는 정신이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관조하는 정신이란 흄과 마찬가지로 작용의 주체인 자아따위가 전혀 아니고, 그런 것이 없는 곳에서의 관조이며, 일종의 과정입니다. 들뢰즈는 이것을 수동적인 주관성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분명히 주관성이 아닙니다만, 의지라든가 이해, 지능의 수준의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가 아닙니다. 전혀 주관성이 개재하지 않는 물질적 수준의 틱톡, 원초적인 감성에 인상으로서 들어오면, 최초의 관조하는 정신에 보존되며, 다음의 이 오면, 이전의 과 이 이 누적적으로 포개진다. 이처럼 차례대로, 이전의 순간적인 인상이 보존되고, 새로운 인상으로 융합되어간다. 여기에 베르그손이 말하는 축약(응축, 수축)’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물질적 수준에서의 반복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다름=차이가 근원적인 주관성에 발생합니다. 들뢰즈는, 그것은 일반성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성이란, 차례대로 오는 인상들의 개별성, 특수성에는 구속되지 않는 일종의 효과=결과입니다. 단순한 물질적 수준의 특수한, 혹은 개별적, 구체적인 계기적 현상이, 관조라는 수준에서 인상으로서 거둬들여지고[받아들여지고], 그것이 누적적으로는 융합되어 가면, 새로운 것, 즉 변화, ‘차이가 생산된다. 차이가 우선은 일반성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일반성은 물질적 계기에는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시간 규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봅시다.

인상들은 순간마다 누적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항상 살아 있는 현재속에서 인상들이 과거라고 규정되어 보존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것은 후설의 내적 시간의 현상학에서의 과거론을 전제로 한 논의입니다. 근원적인 감성=주고나성은 항상 살아 있는 현재입니다. 차이와 반복2장의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의 수준에서는, 인간은 언제나 현재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것은 제 예로 설명해보면, 제가 수업의 시작 시간을 신경 쓰면서 교실에 들어갈 때, 그 교실을 객관화하고, 교실을 중심화하고 자신의 자릿수를 합니다만, 그러나 앉자마자, 설령 자신이 교실의 구석에 앉더라도, 그곳이 자신에게 여기이며 지금이며, 즉 자신이 교실의 시공의 중심이 됩니다. 이것을 가장 깊은 곳에서 생각해보면, 나 없는 주관성의 항상적인 살고 있는 현재’, ‘살고 있는 지금, 근저의 시간적인 장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산 현재속에, 점점 순간적인 인상을 보존하고, 그것이 과거라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산 현재의 내부에 성립하며, 그 외부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게다가 틱톡이 어느 정도 계속된 후, ‘에서 물질적 현상이 멈춥니다. 그러면 주관성 속에서도 에서 멈추는가. 멈추지 않습니다. 자동적(automatic)으로 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야구선수의 타격 같은 것으로, 직구만 던져지고 있다면, 직구가 점점 의식 속에 누적되어가고, 이번에는 커브를 던지게 되면, 직구를 예상하고 있기에, 칠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근원적인 감성의 수준에서 축약이 이뤄지면, 이해도 의지도 작동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미래를 기대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 현재의 내부에 과거의 차원과 미래의 차원이 성립된다. 여기서, 과거, 현재, 미래가 병렬해 있다거나,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는 일상적인 관념은 우선 제거됩니다. 그 대신, ‘산 현재속에 과거가 성립되며, 과거의 무게에 의해 미래를 예기/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이 주창됩니다. 이 수준에서는, 표층 수준에서의 지성이나, 상식적인 기억이나, 이로부터 의지적인 예상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삽입해봅시다. 이런 사고방식은 관념론인가, 아니면 유물론이가?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차이와 반복2장에 있는 아비투스, 수동적 종합, 축약, 관념이라는 절의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지각감각의 구별이 이뤄지고 있으며, 매우 복잡하지만 과감하게 단순화하겠습니다.

근저에 신체의 수준이 상정되고 있습니다. 신체의 수준에서, 축약의 과정, 즉 시간의 종합 과정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언뜻 황당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물, , , 공기를 재확인하고 표상=재현전화하기 전에, 게다가, 그것들을 감각하기 전에, 축약된 물이며, 땅이며, 공기이다. 모든 유기체는, 그 수용적 요소에 있어서도 지각적인 요소에 있어서도, 또한 그뿐만 아니라, 그 내장에 있어서도, 축약의, 과거 파악의, 그리고 기대의 총합인 것이다”(123). 인간은 축약된 물, 땅 등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야만적인, 혹은 신비적인 가설이 전혀 없다”(125)고 잘라 말하고 있듯이, 인간은 축약된 물 등이라는 것은 농담도, 단순한 비유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신체 외의 물질적인 과정이 신체 내의 과정에 거둬들여지는[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신체 자체를 원초적인 감성이라고 보면, 신체가 외부로부터 입력된 그 내용을 누적하는 것처럼, 근대철학이 생각했던 의식, 혹은 이해작용이나 기억이 작동하기 이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베르그손이 말하는 축약, 혹은 지금 말한 축약이 이미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의 신체는 외부와 교류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물질적인 것을 외부로부터 거둬들여 배출합니다만, 그런 생리적인 과정을, 베르그손에게서의 순수 의식의 축약의 과정과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과 동시에 이 신체적인 과정이, 즉 원초적인 감성이, 감각의 수준, 더 나아가 들뢰즈가 말하는 표상=재현전화 représentation라는 능동적 이해, 해석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체에 있어서의 원초적인 생명적 감성의 과정을 상정하나는 데에, 들뢰즈 철학의 모종의 유물론적인 출발점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 신체라는 이 정신(의식) 이전에 존재하고, 더욱이 이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이군요.

자이츠 : 그렇군요.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단순한 이 아니라 물질적인 과정이, 들뢰즈적 유물론의 이며, 그것은 일단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만, 정신 이전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과 동시적이며, 연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동물이 목이 말라서 물을 원하고 있다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 경우, 이미, 신체적=유기체적=물질적 수준에서, 원초적인 생명적 감성의 수준에서,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의 과정, 즉 축약, 즉 수동적 종합이 행해집니다. 들뢰즈는 거기서 축약되는 것은 signe가 된다고 말합니다. 해석을 위해 signe, 저는 이것을 표시라고 번역했습니다. 종래, 기호학에서는 기호라고 번역된 것입니다. 표시라고 번역했느냐 하면, 근거로서 니체를 들먹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요, 그 얘기는 다음번에 하죠. 어쨌든, 베르그손의 축약의 내용인 이마주, 들뢰즈에 있어서는 표시입니다. ‘표시감각되기도 하고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고, 결코 신호가 아닙니다. ‘해석은 지성의 수준에서 행해지며, 항상 능동적으로 행해집니다. 거듭 말하자면, 신체 수준에서의 과정은, 이미 수동적 주관성의 종합과 동형적 과정이며, 그 내용은, 베르그손적인 이마주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것이 표시를 이룬다. 그것이 감각되고 지각되고 더욱이 능동적으로 지성에 의해 해석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이 마른 동물이나 인간이 물을 원해서 찾으려고 할 때, ‘H2O’를 생각하고 찾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연과학적으로 H2O라고 표시되는 물질과, 목이 마른 동물들이 찾고 있는 물질은 닮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박한 유물론은, 자연과학적으로 H2O라고 표현되는 물질과, 목이 마른 동물이 원하는 표시혹은 이마주로서의 중에서 어느 쪽을 진짜 ()’이라고 해석합니까?

 

―― 혹은 둘 다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이츠 : 들뢰즈는 이 양자는 닮은 것도 닮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신체는 외부의 물질적 사건을 받아들이고, 신체 안에서의 축약 과정에 의해 이마주’=‘표시형성합니다만, 그것은 단순한 자연과학적 물질 그 자체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동물은, 표시감각하여 을 찾아내고, 고등동물일수록 그것을 해석하여 학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의 틱톡이라는 시계소리의 예로 말한 것은, 일견 관념론으로 보입니다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원초적으로는, 신체로서의 물체에서 생기는 유물론적 과정입니다. 이렇게 들뢰즈에 있어서는, 유물론은, 신체적 수준에서의, 혹은 생명적 감성의 수준에서의 과정으로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에, 베르그손에서 들뢰즈로 흐르고 있는, 유물론적으로 해석 가능한 사상 경향의 하나, 구체적으로는 베르그손에게서의 순서 지각의 사고방식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신체라는 물질적 수준에서의 과정이 기반이 되고, 감각이나 이해나 해석 등의 정신적 행위가 형성된다, 혹은 그것을 규정한다는 것이네요. ‘해석이라는 정신에 있어서의 독자성에 주목함으로써 거꾸로 물질적인 것(=신체)과의 연속성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역시 하부구조에 의한 상부구조의 결정이라는, 전통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이 반복되어 버리지 않나요?

자이츠 : 아니오. 들뢰즈는 신체=물체와 정신 사이의 관계를, 그런 변증법적 관계로서 파악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신체=생명적 감성이 하부구조로 보입니다만, 그러나 신체 수준의 과정이, 감각 수준, 지각 수준, 이해 수준, 욕구 수준 각각에서, 유사하지 않고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각각의 과정이 서로 간섭한다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이것은 알튀세르의 중층적 결정의 사고방식을 생각나게 합니다만, ‘변증법모순의 개념이 배제되고 있으니까, ‘중층적 결정과는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 그렇군요. 그러면 다시, 신체=물체의 수준에서의 수동적 종합과 시간론 사이의 연결을 설명해주실 수 없을까요?

자이츠 : 원초적인 생명적 감성에 있어서의 수동적 종합의 시간은, ‘산 현재입니다만, 여기서 또한, 데카르트를 등장시켜서,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의식과 매우 가깝고, 데카르트의 디지털적 시간론과 대비하면서 얘기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데카르트는, 시간은 순간=지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지금, 다음의 지금, 다음다음의 지금으로 계속된다. 그렇기에, 과거는 이전의 지금이며, 미래는 다가오는 지금이 된다. 그래서 시간을 인위적으로 멈춰보는, 예를 들어 시계를 보면 4413초가 됩니다만, 여기서 시간을 멈췄다고 합니다. 4413초는 1초 전의 과거, 4411초는 2초 전의 과거라는 식으로 소멸된 과거가, 염주알처럼 줄곧 옛날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은 역시 1초 후, 2초 후와 미래로 향해 염주알처럼 이어져 있다. 이처럼 지금이 가장 리얼리티가 있는 것입니다만, 과거는 소멸한 것, 미래는 이윽고 오는 것처럼, 이것들은 역시 지금을 중심으로 병렬된 직선적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것이 데카르트의 시간론,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의식입니다.

이 논의를 둘러싸고 철학 영역에서는 이상한 논의가 있었고, 순간이란 몇 분의 1초인가? 순간에는 시간적 양이 있는가? 전혀 시간적인 양이 없고, 나타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인가? 양이 없다면, 왜 존재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떻게 그것을 지각할 수 있는가? 등등. 이러저러하게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당한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당시, 데카르트의 반론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순간과 순간은 이어져 있는가, 아니면 끊어져 있는가? 혹은 1초 전의 세계는 지금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가, 아니면 끊어져 있는가? 세계는 시간적으로 연속인가, 단절인가? 이런 매우 혹독한 문제를 제출받은 데카르트는 단절 쪽을 취했다, 즉 일종의 디지털 이론을 취했던 것입니다. 각 순간은 나타나는 동시에 소멸하고, 더욱이 수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분개념의 선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철학사에서는 라이프니츠의 방향으로 가는 철학적 표현이죠.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약속되는가? 지금이라는 순간은 소멸한 채로는 안 되는가, 그리고 세계는 소멸한 채로는 안 되는가? 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거기서 데카르트는 신의 창조설을 제출합니다. 신은 무로부터 세계를 창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일회성이 아니라, 각 순간마다 창조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근대철학은 이처럼 때때로 어려울 때면 신을 찾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신화적인 설명입니다만, 그러나 변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단절을 넣지 않으면 변화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변화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것, 상이한 것입니다. 전면적으로 달라져버린다면, 거기에서 변화를 식별할 수는 없죠. 예를 들어 한 소년이 성인이 되고 늙어갈 때, 거기에는 어딘가 똑같은 것이 없으면, 똑같은 인물이 변화한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의 연속창조설은, 이런 의미에서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무척이나 편리한 것입니다. , 단절에 의해 차이를 설명하고 연속창조에 의해 동일성을 보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들뢰즈는 산 현재라는 장을 상정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움직이는 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런 현재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산 현재는 자신의 시간에 있어서 구성하는 과거에서 미래로, 그 때문에 바로 개별적인 것(과거)에서 일반적인 것(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120). “시간이 현재의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조금씩 겹쳐진 도약을 통해, 현재가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132).

움직이는 산 현재가 항상 성립하고, 과거도 미래도 이것의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 현재의 안쪽에 과거가 보존되고, 과거라는 차원이 성립한다. 축적된 과거의 무게에 의해, 산 현재의 내부에서 자동적으로automatic 미래가 기대된다. 모종의 심리학에서는, 과거는 요컨대 기억의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미래는 예기된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심리학적 설명에 대해, 들뢰즈는 후설의 시간론을 바탕으로, 앞서 말했듯이, 우선 근원적인 유기체의 수준으로까지 내려가고, ‘산 현재라는 장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방금 전에 말했습니다만, 들뢰즈는 물질과 지속의 차이는 표면적인 차이일 뿐이며, 진짜 본성상의 차이지속그 자체라고 주장합니다. 베르그손적 지속은 상호침투적은 변화하는 상태입니다. 의식의 지속은 결코 데카르트적인 상호외재적 순간의 연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와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신체의 수준에서의 원초적인 생명적 감성에 있어서의 산 현재는 또한 지속이며, ‘본성상의 차이이며, ‘자기와의 차이이며, 그것은 데카르트적인 변화의 논거와는 상이한 것의, 들뢰즈적인 변화의 논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들뢰즈의 시간의 세 가지 종합의 첫 번째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들뢰즈의 시간론 전부를 얘기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들뢰즈의 시간론은 첫 번째 종합에 있어서의 산 현재를 근저에 둔 시간론, 두 번째의 종합에 있어서의 베르그손의 순수과거를 근저에 둔 과거론, 그리고 세 번째의 종합으로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근저에 둔 미래론이 되고 있습니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이런 세 가지 시간론을 내놓은 다음, 정신분석의 무의식 이론에 의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의 시간론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이와 반복2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분석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라캉과 들뢰즈의 관계는, 제 번역에서도 주를 붙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라캉을 원문으로 다시 읽고 있기에 머지않아 자세한 분석을 하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의 첫 번째 종합에 대한 해설은, 아직 아무래도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만, 다음번에는 시간의 두 번째 종합의 이야기로 옮겨가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에 일러두고 싶은데요, 제 해설로 들뢰즈를 알았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제 얘기는 어디까지나 들뢰즈 자신의 책을 읽으라는 권유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다음번에는 지금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베르그손의 기억이라는 개념과 관련됩니다. 거기서 들뢰즈의 수수께끼 같은 과거론을 살펴봅시다.

 

―― 과연, 드디어 차이와 반복의 핵심 중의 핵심으로 들어가네요. 저번에는 흄, 그리고 이번에는 베르그손을 통해 들뢰즈의 사상의 고유성을 독해해냈습니다. 다음번은 또 다시 베르그손이 등장하고, 과거에 있어서의 반복론으로 돌입하겠네요. 어려운 영역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인데요, 너무 기대됩니다. 이번에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지금 알튀세르를 열다

アルチュセールを

마토바 아키히로(的場昭弘)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정황200312월호


지금 알튀세르를 열다 - 정황 2003년 1-2월호.pdf


 

1. 알튀세르 재부상의 의미

나카마사 : 알튀세르는 맑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혁신했다는 점으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습니다만, 데리다가 맑스의 유령들을 냈을 무렵부터, 기존의 맑스 연구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7, 8년 전에 갑자기 재부상하게 됐습니다. 데리다를 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의 문맥에서 맑스가 다시인기를 끌게 됐는데요, 그 열쇠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알튀세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데리다는 정치와 우정에서 자신의 탈구축적인 사상의 근원이 알튀세르에 있다고 말했으며, 알튀세르와 자신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리다 이외의 현대사상가들도 반드시 어디선가에서 알튀세르의 맑스 독해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 맑스의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등의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선 마토바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은, 알튀세르가 실제로(actual) 활약했던 당시, 맑스 프로파겐더(propaganda)를 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그때의 수용되는 방식이란, 주로 데리다를 경유해 수용되고 있는 현재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그런 간극에 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마토바 : 맑스를 위하여에는 헤겔 신화”(mythe)라는 흥미로운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맑스 연구자의 대부분은, 맑스가 헤겔을 열심히 읽고, 헤겔의 지평에서 헤겔을 넘어서고, 또한 포이어바흐를 넘어서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이라는 전제에 서 있습니다만, 이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맑스는 헤겔적이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알튀세르가 다른 논자를 비판할 때에도 볼 수 있습니다만, 맑스가 헤겔의 논리에 올라타 있다고 한다면, 왜 헤겔의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 가능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관념론인 헤겔을 물구나무 세워서, 그 방법론만을 받아들여 현실적인 문제를 추구한다고 해서는 헤겔을 넘어선 것이 되지 않는다. 헤겔을 넘어선다는 것은 변증법을 포함한 헤겔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맑스가 헤겔주의자였다면, 맑스가 헤겔의 방법론을 넘어선 논의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맑스는 사실상 헤겔의 방법론을 수용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문제 설정을 하는 것입니다. 맑스는 헤겔을 외부로부터 붕괴시키는 형태로 넘어섰다. 그것이 맑스의 새로움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포이어바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맑스는 포이어바흐주의자가 아니라, 포이어바흐를 넘어섰다.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 갈 때에는 이런 형태 밖에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맑스 연구자에게 헤겔 신화란 헤겔주의자 맑스의 신화이며, “포이어바흐 신화란 포이어바흐주의자 맑스의 신화입니다만, 이런 알튀세르적 관점에서는 우선 맑스에게서의 신화를 얘기하는 접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맑스에 대한 알튀세르의 연구 방법은 원래는 몽테스키외 연구의 방법에서 시작됩니다. 우선 왜 몽테스키외는 위대한가?”라고 묻습니다. 알튀세르에게는 문제틀(Problématiqu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만, “질문을 어떤 형태로 내는 것인가?”입니다. 알튀세르의 경우 그 패턴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을 말할 때, 그 인물이 그 시대에 얼마나 뛰어나고 그 뛰어난 방식의 패턴으로서 그 시대에 있어서 그 시대의 지평을 열어젖힌 인물이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몽테스키외가 위대했느냐 하면, 몽테스키외는 그의 시대에 일반적으로 말해졌던 법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제안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시대까지의 법은, 자연법 체계이든 무엇이든, 결국 권력자 쪽이 준 명령이나 도덕적 체계를 법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몽테스키외는 그런 명령으로서의 도덕 체계를 수행하기 위한 법을 산산조각 내어 분해하고, 그것과는 관계없는 일반적인 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몽테스키외는 세계 각지의 법을 분석했다. 중국, 독일 등에서도 각각의 법체계는 일반적인 법이 아니라 개별적인 법이었다. 그것은 권력자가 요구한 개별 도덕moral을 법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넘어서는 법체계를 몽테스키외 나름의 문제틀로서 내놨다. 이 문제야말로 새로운 지평으로, 법이 관습과 권력자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틀에 의해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몽테스키외의 위대함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의 것을 마키아벨리에 관해서도, 프로이트에 관해서도, 레닌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고 알튀세르는 주장하는데요,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의 분석은 알기 쉽다. 어떤 인물을 분석할 때 그 인물이 어떤 문제설정을 했는지, 그 문제설정이 새롭다면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게 되는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내는 그 제기방식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알튀세르 책의 번역은 맑스를 위하여가 인문서원(人文書院)에서 1968, 『『자본을 읽자가 합동출판(合同出版)에서 1974년에 출판됐는데요, 그때 우리가 문제 삼은 말은 인식론적 단절 coupure épistémologique”입니다. 1844년의 경제학철학수고45년부터 46년에 걸친 독일 이데올로기사이에는 단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무렵의 우리는 이 단절을 지금 말하는 것처럼 문제틀problematique로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제설정으로서 맑스는 문제를 냈다. 그 무렵 우리가 문제 삼았던 것은 문제를 낸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했다”, 45년 이후 맑스의 방법은 전부 바뀐 것이며, 거기에 이미 해결이 있다고 파악했습니다. 그렇게 파악했기에, 우리 맑스 연구자들 가운데 알튀세르의 위치는, 마침 그 무렵의 히로마츠 와타루 씨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만, “소외론에서 물상화론으로인지, 혹은 인식론적 단절인지는 별도로 하고, 단절 문제를 해결한 인물로서였다. , 맑스는 헤겔적 물구나무서기를 극복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재 문제인 것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알튀세르가 스케일이 꽤 크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입니다. 그 제기방식에 물음이 있었지만, 아마 그 당시의 우리는 그런 물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나카마사 : “인식론적 단절의 의의가 소외론과 물상화론의 상관관계와 엮여서 이해되고, “문제계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죠. “현대사상에 있어서는, 곧바로 대답을 내는 이론은 오히려 수상쩍어 보이며, 오히려 문제계를 찾아내는 것이 [높게] 평가받네요. 히로마츠 와타루 씨도 소외론에서 물상화론이라는 식으로, 맑스의 철학에서의 변화를 일종의 발전형으로 파악했습니다만, 반면 알튀세르는 단절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일본에서 그것을 수용한 사람들은 단절자체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를 위한 단절이라고 파악한 것 같습니다만.

 

마토바 : 맑스를 위하여에서 알튀세르가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당시 Recherche Internationale라는 프랑스 잡지에서 소비에트의 연구자가 한 초기 맑스 연구의 번역을 모은 특집이 편성됐는데요, 거기에는 나중에 경제학철학수고의 연구로 매우 유명해진 라핀이라는 인물의 논문 등도 들어 있습니다만, 그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비판의 최대 포인트는, 그들이 발전론적 이해로 초기 맑스, 후기 맑스를 이해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튀세르가 제기하고 있는 단절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맑스에게는 그때그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우연적(contingence)인 것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그는 후방적 회귀(retour en arrière)”라고 합니다. 연구할 때 앞을 향해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뒤를 향해 회귀한다. 앞으로 회귀하는 것은, 앞을 향해 발전한다는 것을 전제로 회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뒤로[뒤를 향해] 회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상가를 사상가답게 하는 것은 그의 이론사가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사상가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현실적 연구를 한편으로 진행함으로써, 맑스 안에서 경제학철학수고로부터 독일 이데올로기로 나아갈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다. 완전히 다른 것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런데 라핀 등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소련 사람들은 후기 맑스 쪽에 입장을 두고 있고, 반드시 자본에 도달한다는 것을 전제에 두고 초기 맑스를 읽어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알튀세르의 주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후기로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우발적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 시대에 구속되어 있는 이상, 그 인물이 오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때 맑스 전기를 쓴 오귀스트 코르뉘의 연구가 매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런 연구 스타일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스텝은 없다고. 코르뉘의 책을 읽으면, 맑스는 반드시 자본에 도달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우발적인 부분이 있다, 어쩌면 맑스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파헤치는 스타일로 쓰인 것이 오귀스트 코르뉘가 쓴 전기이다. 발전된 후기 맑스로부터 초기 맑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초기는 초기로서 독립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초기의 문제설정입니다. 맑스는 문제를 설정했는데도 풀리지 않지요. 그것은 그때까지의 철학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의 경제학으로는 어떤가 하면, 그 방법론으로도 안 됩니다. 기존의 19세기까지의 지식을 모아 봐도, 이런 도구들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거기에서 깊은 심연을 보아버린 맑스는 이로부터 새로운 지평에 들어간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 시대의 도구를 써서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지평에 있는데, 맑스만은 그 시대의 도구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지식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인식론적 단절이 찾아온다는 것이며, 그래서 답을 낼 수 없게 된다. 히로마츠 씨의 경우는, 물상화라는 형태로 후기가 전개된다고 합니다만, 거기서는 또한 물상화는 맑스에게 무엇인가?”, “물상화에 의해 무엇이 열리는가?”라는 물음이 생기며, 그것에 대해 대답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만, 실제로 대답해 보면 진부한 것이 될 가능성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알튀세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맑스는 새로운 방법론을 초조해하면서 만들어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 그 시대는 고독하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백년 후, 이백년 후에 처음으로 이해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을 당시의 우리는 그가 설정한 도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지금의 포스트모던이 제기한 방법론이나 도구를 사용하면 40년 전의 알튀세르의 물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당시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알튀세르도 반쯤은 맑스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2. 주체/객체 도식과 비가시의 구조

나카마사 : 인식론적 단절을 알기[이해하기] 힘든 이유에는, 맑스주의적인 주체/객체론과의 관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맑스는 인식론적 단절전에는 주체/객체의 틀 속에서 사고했습니다만, 단절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틀 속에서 사고하게 되며, 거기서 상부구조/하부구조의 얘기가 나옵니다. 기존의 맑스 이해에서는, 상부구조/하부구조가 주체/객체의 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고 있던 게 아닐까요?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 씨 등도 지적했듯이, 알튀세르는 주체/객체 관계가 구조속에서 생기는 것이지, 주체/객체 중 어느 쪽이 먼저냐 하는 문제의 제기방식으로는 구조를 둘러싼 문제계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맑스 이해에서는 하부구조 결정론이 제창되고, “하부구조라는 객체”, 저쪽에 의해 규정된다고 간주됐다. 역사적으로 봐서, 하부구조=객체결정론적인 맑스주의 이해는 언제 무렵부터 지배적이게 됐을까요?

 

마토바 : 19세기 말, 당시 사회민주당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엥겔스의 반뒤링론입니다만, 그것을 경유해서 맑스로 갔습니다. 반뒤링론을 읽게 된 것이냐 하면, 그것 이전에 다윈의 진화론을 읽고, 모두 공부모임을 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맑스가 읽혔습니다만, 맑스까지 도달한 사람은 적었다. 졸저 미완의 맑스(未完のマルクス)(2000)에서 언급했습니다만, 당시 사회민주당 안에서는 맑스 자신의 저작이 거의 읽히지 않았으며, 맑스에 관한 책, 특히 반뒤링론이 읽혀졌다. 그 즈음부터 그런 하구부조의 우위성이라는 생각이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물사관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식으로 이해되는 반면, 알튀세르는 중층적 결정(surdetermination[과잉결정])”이라는 개념을 냄으로써 새로운 사고방식을 열었습니다만, 그 알튀세르조차도 최종심급에서의 결정”(dernière instance)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급도 고육지책의 번역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경우의 경우라는 의미입니다. 이러저러한 경우가 있지만, 마지막 경우에서 정하는 것이 최종심급이라고 한다면, 뭐라 말하든 아무래도 최종심급은 경제적 하부구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종이라고. 맑스를 위하여에서 엥겔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엥겔스도 그 언저리에 관해 고민하고 있고, 하부구조가 결정하는 경우는 어떤 국면에 한정되어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다면적이라고. 우리는 오히려 엥겔스보다도 맑스의 경제학비판서설에 나오는 그리스시대는 그토록 생산력이 낮았는데도 왜 그토록 문화가 꽃피웠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냅니다. 그런 물음을 제기하면서, 그 한편으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이 의문은 사실 엥겔스도 갖고 있었다. 경우를 나누어 치밀하게 논의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우리가 이해한 알튀세르의 공헌은, 하부구조/상부구조라는 아주 대략적인 논의에 대해, 경우 경우에 따라 역전되는 경우도 있고 또 하부구조가 결정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 경우를 나눠서 전개한 것입니다. 역시 알튀세르가 알튀세르인 곳, 달리 말하면 그가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까닭은, 마지막에서는 경제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역시 그는 거기서 유물론자로서 논진을 펴고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전개된 프랑스의 사상은 당치도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베르그손부터 시작되어 이윽고 포스트모던으로 연결되는 철학은 직관 등등을 주장하는 관념론이기 때문이라고. 왜 유물론 철학은 발전하지 못했는가? “나는 그런 흐름에 대해 유물론 철학에서 노력한다고 말한다. 알튀세르는 대부분의 세밀한 논의 속에서는 유물론적 결정을 버리고 있지만, 최종심급을 주장하는 한에서 최후의 유물론자로서 그 성채를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까요?

 

나카마사 : 이렇게 생각하면, 맑스도 후기가 되어서도 주체/객체 도식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부분이 있다는 게 되죠. 맑스 자신이 주체/객체의 이미지를 상부구조/하부구조에 덧씌우고 있는 곳이 있으며, 그것을 알튀세르 자신도, 이마무라 씨는 완전히 분리하고 있는 듯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질질 끌고 있다는 것이네요.

 

마토바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베르그손에서 시작되어 사르트르까지 이어지는 프랑스의 철학의 흐름은 관념론적인 곳으로 갑니다. 반면,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유물론자로서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는 이 고고함이 없다면 아마 알튀세르는 알튀세르로서의 논진을 펴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포스트모던적인 논의 속에 끌려들어가는 것입니다만, 다만 자신의 위치를 유물론이라는 곳에 두고 있고 그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유물론은 최종심급(최후의 경우)에서의 그것이지, 그의 전체는 거기에는 없습니다.

 

나카마사 : 알튀세르는 구조라는 추상적인 말을 쓰고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역시 하부구조라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그의 구조이해를 살릴 수 있다고 한다면, “구조의 의미가 기존의 하부구조와는 꽤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맑스주의에서 이미지된 하부구조는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장에서의 노동에 종사하는 프롤레타리아트존재와 결부되어 있었습니다만, 알튀세르의 구조, 아무래도 그것으로만 수렴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자본을 읽자에서 제자 랑시에르가 있습니다만,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관계성은 비가시의 X”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부구조는 조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으로, 인간들이 보면 우연성을 포함한 것 같다. 그런 관점을 알튀세르가 냈다고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마토바 : 최근 유고집 번역이 조금씩 출판되고 있는데요, 그 안에 불확정적인 유물론(1988)이라는 번역서가 있습니다(또는 철학에 대해, 1994). 바로 그 제목이 그렇죠. 그가 살인사건을 일으켜 공개적으로 글을 내지 않을 때 멕시코의 여성 연구자 페르난다 나바로와 서신교환한 것이 편집, 출판된 것인데요, 이 안에서, 확정되고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유물론이 아니라, 사뿐사뿐[훨훨 날아] 움직이는 우발적인 것에 올라타는 유물론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나중에 바뀐 것이 아니고, 아마 60년대부터 줄곧 갖고 있고, 그저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여유가 없었고 [그럴] 도구도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는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appareils Idéologiques d’Eta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중층적 결정[과잉결정]을 하는 가운데, 문화적 이니셔티브를 국가 나름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의 사상 행동을 결정해간다. 이런 용어에 의해 당시는 유물론적 철학 속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을 잘 설명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개념은 60년대, 70년대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혁명운동이 쇠퇴하는 가운데, 그 원인을 묻고, 말이 궁색해졌을 때 이용하는 아주 편리한 말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개념에 대해 설명한 책이 니시카와(西川) 씨 등에 의해 번역된 것은 1975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에는 이 개념을 재생산에 대해(1995)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매우 자세하게 논의했던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 문화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문화가 어떻게 그 시대의 지배구조에 편입되는가, 단순히 편입된다고 말할 뿐이라면 그 자체로 결정론이 되는 것입니다만, 거기서 매우 자세하게 분석해야만 한다. 문화연구에서 하는 하위문화는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한 미공인의 문화입니다. 이 미공인의 문화가 하위문화인 것은, 정통적인 문화가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스튜어트 홀은 영국에 충분한 이론이 없기에 알튀세르를 열심히 읽고, 이론을 알튀세르로부터 빌려왔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나카마사 : 알튀세르는 구조를 통해 중층적으로[과잉]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생산력으로 전부 결정된다고 하는 스탈린주의적인 조잡한 논리와는 일단 거리를 둔다. 이와 동시에, “휴머니즘적인 맑스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알튀세르는 양동작전을 편 것입니다. 프랑스공산당의 주류파, 즉 유로코뮤니즘 중에서는 가장 소련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대항할 때는, “구조를 통한 중층적 결정[과잉결정]”을 주장하고, 그 반대의 극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는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마토바 : 알튀세르는 휴머니즘 비판을 했습니다만,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전후의 계몽의 흐름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맑스주의입니다. “맑스주의는 넘어설 수 없다고 사르트르는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휴머니즘입니다. 맑스주의와 휴머니즘은 68년 혁명까지는 전후 세계를 지배하던 기본 원리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 인권을 지킨다고 하는 게 휴머니즘이며, 그 공격 지점은 소련의 수용소이며, 혹은 나치 시대의 수용소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좀체 비판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맑스주의입니다. 근대주의는 잘못되지 않았다. 근대가 나치를 산출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치가 생겨난 것은 근대가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근대를 더욱 철저하게 하면 나치와 같은 체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근대를 가장 철저하게 한 것이 맑스주의이다, 맑스주의는 근대라는 전제 위에 서면 완성 형태로서 우리의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을 접목하고, 당시 지적 세계를 지배한 사르트르는 무적입니다. 그것에 대해 서서히 결함이 보이게 됐다.

알튀세르도 자신의 입장을 제시했다(포지션, 1976). 맑스주의가 갖고 있던 근대주의의 꿈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렸다. 근대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우리의 생활이 좋아지며, 이와 동시에 미래를 약속해준다는 사고방식을, 중층적 결정[과잉결정] 등의 개념을 제출함으로써 알튀세르는 뒤집어버렸다. 이것은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다른 하나는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입니다. 존 루이스에게 답함(1973)이라는 저작이 있습니다만, 존 루이스는 맑스 연구자 중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왜 알튀세르가 그를 거론했느냐 하면, 이런 속류적인 인물을 거론함으로써 맑스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알튀세르는 이 존 루이스에게 답함을 사용해 이듬해의 강의를 합니다만, 그 강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까도 이름을 거론한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교훈(1974)을 씁니다. 이 존 루이스가 맑스주의적 휴머니즘의 전형이며, “맑스주의는 휴머니즘이다고 주장한다. 반면 알튀세르는 맑스주의가 휴머니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일 맑스주의가 휴머니즘이었다면, 철저한 인간주의이고, 맑스의 자연관은 여기서 무너져버린다. 학위논문이나 경제학철학수고의 글을 잘 읽어보라고. 인간은 자연에 작동을 가하지만, 자연도 인간에게 작동을 가한다. 자연과 인간은 일체가 되어 있으며, 인간이 자연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인간주의일 뿐인 게 결코 아니라 서로 영향을 준다. 이를 맑스가 몰라서 인간주의에 빠졌다고 한다면, 맑스의 저작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잘 읽으면 그런 것을 알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휴머니즘이라는 말로 인권 등의 사상을 맑스주의 속에서 읽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휴머니즘을 극복하겠다는 더욱 큰 관점을 갖고 있으며, 자연 속에 인간을 두고 또한 인간을 자연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지금까지의 근대주의가 빠져 있었던 아포리아를 극복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약 맑스주의가 휴머니즘이었다면 이렇게 시시한 사상은 없는 것이라는 형태로 비판합니다.

이런 양동작전으로 전후의 사상을 만든 맑스주의와 휴머니즘이라는 양대 조류에 대해 한 방을 먹였다. 이것이 만약 완벽한 비판이 됐다면, 사르트르를 하나의 대표로 한 전후의 많은 사상이 결여하고 있고 이로부터 노도(怒濤)처럼 68년을 향해 새로운 사상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튀세르는 기본적인 부분에서 그런 방향으로 나갈 준비를 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 그 작업은 푸코나 데리다에게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3. 휴머니즘과 맑스에게서의 자연

나카마사 : 현재에는 데리다 등이 서구적인 인간성개념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성의 유형을 만든 뒤, 이를 지키려고 하는 논의를 전개하는 휴머니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데리다가 말하기때문에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대사상에 있어서는, 보통 얘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70년대 전후의 시기에 인권사상이나 인간성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체하는 방향을 노골적으로 내세웠다면, 아마 상당히 떴을 겁니다. 당시에는 이런 주장이 맑스주의의 맥락에서는 매우 통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알튀세르는 굳이 한 겁니다. 일본에서는 아마 그 면이 수용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마토바 : 그렇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나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다라고는 말하기 힘드네요. 마찬가지로 맑스주의 안에서 맑스주의는 휴머니즘이 아니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네요. 그것은 휴머니즘 안에는 보편적인 것이 있다는 환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환상이 깨지는 것은, 자연환경 문제에서 보이듯이, 자연에 대해 인간의 힘이 너무 커지는 가운데, 인간 자체가 지닌 자연성이 강조되기에 이른 시대, 구체적으로는 70년대 이후군요, 그런 시대가 되어서 처음 말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스탈린이 한 격렬한 탄압에 대해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소련인들은 인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비판이 있고, 그에 대해 소련인들은 자신들도 인간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고, 둘 다 인간주의가 기본이 됐으며, 그 안에서는 반인간주의를 말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인간을 넘어서 자연으로. 과거의 학위논문이나 초기논문의 독해에서는 인간주의가 암묵적인 전제가 되고 있으며, 맑스의 자연 개념을 슈미트가 써서 일본에서도 그것이 자주 읽히고 있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놀랍고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맑스의 인간 개념에 관한 책은 지천에 널려 있고, 그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맑스의 자연 개념이 이해되기에 이른 것은 7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가 현재의 맑스주의자 속에서 문제가 된다.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는지가 알튀세르의 문제틀problematique을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관건이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나카마사 : 그때의 자연이란 이른바 객체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적인 시야를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부분으로 회수될 수 없는, 대문자의 자연이죠. 그 부분도 여전히 그다지 이해되지 않았네요. “자연이라고 하면, “객체로서의 자연이라고 지레 짐작되고, 곧바로 노동과 결부됩니다. 인간이 자연으로서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자연이 아니며, 인식할 수 없는 외부에 있는 것이 자연이며, 그것과 어떤 식으로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 경철수고에서도 문제가 됩니다만, 그런 부분이 길다는 것, 그때까지도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눈여겨보고 있었다.

 

마토바 : 저는 그것을 부재”absence, 혹은 침묵”silence이라고 말합니다. 알튀세르가 확장한 영역의 하나는 정신분석입니다. 그는 정신분석에 흥미를 갖고 있고, 에콜 노르말을 나와 거기서 강사(사감, 비서)를 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폴리체르(Politzer)라는 정신분석학자입니다. 그리고 몽테스키외에 관한 책을 쓴 몇 년 후에 에콜 노르말에 라캉을 불러와서 정신분석 강의를 하게 합니다(1963-4). 알튀세르가 문제 삼은 것은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은 성립하느냐 아니냐?”라는 문제입니다. 정신분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부분, 즉 인간이 갖고 있는 우리가 전부 알고 있다라는 곳에서부터 누락된 부분, 즉 무의식을 문제 삼는다. 이 부재의 부분을 학문으로서 성립하게 만드는 것은 큰 일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오해됐다, 프로이트는 19세기에 그것을 예감했지만, 당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식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논의를 하고, 인식할 수 없는 학문은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이트가 쓴 것은 학문으로서 간주되지 않는다, 이른바 사이비학문이라고 생각됐다. 이 사이비라고 생각됐던 것을 학문으로서 인식할 수 있게 한 것은 라캉이며, 바로 라캉에 의해 부재 문제가 학문적인 것으로서 제기될 수 있게 됐다. 그런 곳에서 라캉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데, 또 다른 선구자로서의 프로이트에게도 의의가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문제로서 이 세계에는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홀로 뒹굴고 있을 뿐이다. 뒹굴고 있는 우리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우리의 알 수 없는 것이 자연이죠. 이런 사고방식이 알튀세르에게 떠올랐던 이유는 정신분석의 영향입니다. 그것은 푸코에게도 도착한 1950년대에 에콜 노르말에서 배웠던 사람들의 방향이었던 거죠. 다만 이런 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알튀세르의 책을 읽었을 때에는 이해 못했던 겁니다.

 

나카마사 : 마르쿠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꺼내들었습니다만, 마르쿠제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는지 여부는 별개로 치고, 마르쿠제를 경유한 맑스와 프로이트의 결부에 있어서는, “무의식이라는 것이 어느새 자연충동같은 것이 되어버려서, 자연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숨은 욕망으로 해석되었습니다. 프로이트 자신에게도, “무의식을 자연과학적으로 기술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프로이트 이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억압된 자연충동해방한다는 형태로, 맑스주의적 객체결정론의 맥락에 올라탄 것입니다. 이것이 독일, 미국을 경유해 일본에도 들어왔습니다. 알튀세르의, 라캉을 경유한 프로이트 이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아에게 있어서 완전히 이질적인 타자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면, 마르쿠제 경유의 이해와는 완전히 다르죠. 이것이 구조개념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마토바 : 그렇군요. 프로이트가 오해된 부분은 또한 프로이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리비도 즉 억압된 성, 잠재의식은 새로운 인간이 재구성되기 위한, 승화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러한 잠재의식을 극복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한다. 억압된 잠재의식을 해방한다는 방향을 향하는 프로이트 해석에 대해, 그런 것은 해방도 뭣도 아니고 마치 바다처럼 우리 속에 확산되고 있는 부재의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다. 그 부분이 스피노자와 관련되는 대목입니다. 인간이 모르는 지식은 많이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일부만을 알려고 한다. 그것에 의해 이 세계를 해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르는 영역이 많이 있다. 그런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여기에 알튀세르와 스피노자가 상통하는 대목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발상의 계기로서 프로이트가 있었던 것과 동시에 마키아벨리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고독(마키아벨리의 고독, 1998년 수록)이라는 논문이 있는데요, “왜 마키아벨리는 고독한가?” 문제설정으로서는 방금 전의 것과 같습니다만, 마키아벨리는 군주제 국가의 모습이 일반적인 국가의 모습이라고 생각됐던 시대에 군주제 국가를 넘어서는 일반적인 국가를, 군주제 국가도 잘 되고 있지 않은 이탈리아에서 생각하려고 했다. 군주는 국가를 만들었을 때, 거기에서 민주제를 실현하고, 마침내 군주는 그로부터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1400년대부터 1500년대에 걸쳐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이런 국가를 이해할 수 있는 군주는 없었다. 바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로부터도 포기되고 고독했다. 17세기의 스피노자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고독했다.

이런 분석 패턴은 알튀세르의 인물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입니다. 각각 그 시대의 획을 긋는 사상가의 사상은 그 시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썼기 때문에, 그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다. 그 사상가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그 시대의 말로는 표기할 수 없는 것, 즉 쓰이지 않은 것, 쓰고 있는 것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쓰고 있는 데도 그 시대에는 독파되지 못한 것이다. 행간 속에 있는 부재의 부분을 읽어내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의 작업이며, 이 독해를 한 손으로 받아들인 것이 알튀세르라는 그 사람 아닐까요.

 

4. 징후적 독해의 고독

마토바 : 알튀세르는 맑스 속에서, 맑스가 썼지만 읽히지 않았던 것을 오로지 읽고자 했다. Pour Marx(1965), 옛날의 일역본 제목은 되살아난 맑스(るマルクス)였습니다만 정확하게는 역시 맑스를 위하여이죠. 알튀세르는 바로 맑스를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선언하기 위해 이 책을 썼으니까요. 독파되지 못한 부분이 앞서 말한 부재의 부분입니다. 많은 사상가는 까닭 모를 것을 많이 남겼으며, 그 부분이 이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으로 맑스를 이해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넘쳐흐르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알튀세르의 문제틀입니다.

 

나카마사 : 맑스 자신도 보통의 주체의 의식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을 이데올로기라든가 하부구조라는 개념을 갖고 설명하려 했습니다. 다만 그런 맑스 자신도, “그의 시대의 문제계를 질질 끌고 있었기 때문에 딱 잘라 표현할 수 없었다. 표현할 수 없으며, 맑스 자신도 몰랐던 부분, 바로 무의식의 부분이, 그가 쓴 것=에크리튀르 속에 나오는 것을 알튀세르가 징후적 독해로 읽어낸다. 알튀세르는 맑스의 의도를 재구성한다는 맑스 이해는 부정합니다만, 그렇다면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것을 읽어낸다는 생각은 과연 있었을까? 데리다라면 읽어내야하는지 여부는 아무래도 좋고, 이쪽이 멋대로 읽어냈다는 것이 됩니다. 알튀세르는 거기까지는 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토바 : 징후적 독해(lecture symptomale)『『자본을 읽자(1965)의 서두에 있는데요, 이것은 지금도 사용하는 말로, 1960년대부터 활발해진 언어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징후적 독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것을 비판할 때, 그 사람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그 사람 자신이 알지 못하고 그것을 꺼내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한 것이나 말하고자 하지 않은 것도 포함해, 전혀 그것과는 관계가 없이, 요컨대 그 사람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것(그 사람에게 부재한 것)을 우리가 읽어 들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후자이며,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넘어가서 새로운 시대에 태어난 독자가 그 본질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장인의 기술입니다만, 문제는 알튀세르가 맑스의 작품에 관해 각각 세세하게 했느냐 하면, 의문입니다. 공산주의자 선언에 대해서도, 독일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징후적 독해를 한 것은 아니다. 유일하게 자본뿐입니다. 그것도 징후적 독해라는 추상적인 방법론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독일 이데올로기경철수고에 대해 징후적 독해를 하면 어찌 되느냐를 알고 싶습니다만, 결국 그 언저리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고 내용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알튀세르는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맑스의 개념들에 대한 그의 독해방식으로서는 징후적 독해를 살리지 못하고, 그 시대의 맑스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카마사 : 알튀세르는 사상적철학적 에크리튀르와, 문학이나 일반인이 쓴 것을 구별했습니다. 데리다는 공산주의자 선언속의 Gespenst요괴가 아니라 유령이라고 읽을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전개합니다만, 데리다가 하고 있는 것을 맑스 자신이 의식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데리다는 맑스의 시대에 Gespenst라는 말이 어떤 사회적 외연을 갖고 있었는가라는 곳까지 문맥을 넓혀가고, 그로부터 자기 나름의 독해를 확대해 간다. 그에 비해 알튀세르는 그런 독해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스스로는 그런 읽기를 실천할 수 없는 바가 있네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중요한 곳에서 해묵은 논의를 또 다시 꺼낸다. 가장 중요한 점이 이해되기가 어렵다는 것인 양 스스로 고안해내고 있는 부분이 있네요.

 

마토바 : 알튀세르는 맑스의 개별 저작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은 없습니다. 알튀세르는 맑스를 1845년까지의 초기 맑스, 그 이후 경제학비판까지의 성숙해지고 있는 맑스, 그리고 성숙한 맑스, 이렇게 셋으로 나눕니다. 이 나누는 방식은 매우 당연한 분류입니다. 만일 우리가 알튀세르를 위해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의 문제제기를 맑스의 세 가지 시기구분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세기의 맑스가, 19세기를 갑자기 뛰어넘어 21세기, 22세기까지 가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기하고 스스로도 까닭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을 발견한 알튀세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맑스주의자들이 논하기보다는 훨씬 더 넓게 철학자가 논의하는 편이 좋다. 세세한 부분에서 맑스의 저작에 대해 알튀세르가 새로운 전개를 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알튀세르를 위치시켜도 의미가 없다. 굳이 그의 인식론적 단절을 비약하여 해석하고, 인식론적 절단 이후의 맑스는 공산주의자 선언이나 자본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더욱 날아올라, 21세기나 22세기에 있어서 새로운 문제설정을 하고 있는 맑스라고 말해 본다면 어떨까? 이쪽이 더 살아있죠.

 

나카마사 : 그 부분이 좀체 이해되기 어렵네요. 알튀세르는 절반은 맑스 해석자의 틀을 넘어 새로운 문제계를 세우고 있지만, 기존의 맑스주의의 스타일을 채용한 탓에, “새로운부분이 좀체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자주 얘기되듯이, 그 자신이 공산당에 집착하고, 공산당 주류파와 그토록 대립했지만, 공산당에 계속 남았다. 68년 혁명 이후, 그토록 데데하고 시시하다고 말해지는 공산당에 힘썼기에 그가 스탈린주의적으로 이해되고 말았다. 반드시 실제의 정치적 행동이 스탈린주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당과의 관계에서 그렇게 파악되어 버렸다, 그렇게 처신해버립니다. 그가 당에 집착한 것은 그의 맑스주의관에서 도출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수준에서의 얘기가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인 인간관계인지, 그 언저리를 알기 어렵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토바 : 어려운 부분이네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1992)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얘기한다.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1940-5)을 보내며, 여기서 돌아와서 에콜 노르말에 복학하고, 거기서 엘렌느라는 여성과 서로 알게 됩니다. 그 전에 가톨릭의 어느 쪽이냐 하면 우파에 가까운 운동에 참여합니다. 1946년 로마로 가서 당시의 교황 피우스 12세를 알현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특별한 얘기가 아니고, 조금 전의 세대에게는 악시옹 프랑세즈같은 단체에 들어가면서, 오른쪽으로 가거나 왼쪽으로 가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 무렵 엘렌느에게 듣고서 공산당에 갑니다만, 꽤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 이 부근은 부땅의 알튀세르 전기(1992)에 자세하다. 그의 공산당 입당은 어느 정도 확신적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거꾸로 들어감으로써 그의 당에 대한 충성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 수준보다도 이론 수준에서 순화하고 있다. 이론 수준에서 귀의해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문제인 것은, 그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사람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입니다. 30년 전과 달리 현재에서는 알튀세르의 인생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예전에 저는 너무 강조했습니다만(알튀세르와 맑스アルチュセールとマルクス, 情況, 11월호, 1999), 그에게는 겉의 세계와 속[]의 세계가 있고, 속의 세계란 복잡한 여성의 문제이며 겉의 세계란 공산당의 문제입니다. 거기에 중층적인 구조가 있으며, 이 구조 속에서 알튀세르를 보면, 무엇하나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남녀관계를 보면, 기존의 도덕으로 보면 괘씸한 남자로, 흔들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당으로의 귀의라는 대목에서는 매우 성실하게 오랫동안 당원생활을 보낸다. 이 낙차이죠. 에콜 노르말의 수업도 할 때에는 확실히 하지만, 갑자기 정신병원에 들어가거나 애인한테 간다. 발리바르 등이 본 교사로서의 그는 뛰어난 교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하느냐 하면 갑자기 어딘가로 가버리는 변해버린 교사였다. 이런 이중성 속에서 그의 공산당을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본래는 떠나가고 있고, 흔들리고 있는 인간상에서 봐도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이겠고, 바로 그가 말하는 불확정적인 유물론, 불확정적인 요소이겠죠. 이 사람만큼 사후에 겉과 속이 사라지고, 모두 폭로되어 버린 학자는 없다고나 할까, 바로 불확정적인 부분이 없고, 유물론적인 결정을 할 수 없는 인물은 없다. 이상하게 표현하자면, 삶의 방식 자체가 포스트모던적입니다.

 

나카마사 : 알튀세르는 국가나 문화의 이데올로기성을 논하는 대신, “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적으로는 논하지 않고, 이것과는 별도의 틀에서 다루는 것 같아요. 이것이야말로 은 그에게 있어서 비가시적인 구조였는지도 모릅니다만, 당에 대해 종교적으로 귀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토바 : 그에게는 에콜 노르말에 있었을 때에 푸코 등을 공산당에 넣은 책임이 있습니다. 푸코 등은 나갑니다만, 알튀세르는 머물러 있었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는 책임을 다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동시에,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중국의 문화대학명이 있었습니다만, 소련은 안 되지만 중국에는 아직 미래가 있다고 함으로써 중국에 접근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중국에 지나치게 접근하면 공산당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급진적인 방향으로 향하면서, 중요한 부분에서는 당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불가해한 부분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알튀세르는, 육체를 초월한 지성이라는 세계가 있다고 믿고, 이 세계에 완전하게 살려고 한 인간이 아닌가라고. 지성의 세계 속에서는 현실을 일단 무시하고,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그가 쓴 것은 분명히 말하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몽테스키외도 마키아벨리도, 그 시대에 살면서도 그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을 머릿속에서 만들고, 이 머릿속에 게임 같은 완벽한 세계를 만들었다. 이 게임의 세계에 들어가면 좋습니다만, 들어가지 않는 인간으로부터 보면, 이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세계야말로 그에게 진짜 실재라고 한다면, 이 게임 속에 그가 생각한 공산당이나 공산주의가 있다면, 그에게는 만족이며, 현실과의 낙차는 없다. 보통의 인간은, 자신의 이론에 대해 현실이 다르다면 이상하다고 느낍니다만, 그에게는 머릿속으로 도망치는 핑계거리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독한 생활 속에서 점차 증식되는 머리의 세계가 있다. 보통의 인간도 그런 것은 있습니다만, 그의 경우, 지성은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멋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에 특화되어 간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5. 알튀세르의 신체

나카마사 : 그가 보고 있는 문제계가 너무 앞서 나가고, 실제의 그의 행동 형태와 괴리가 생기고, 행동면의 기반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층적 구조로서 분석할 수 없게 된다. 당초 나치즘에 존재자체의 발생을 봤던 하이데거가 현실의 나치즘이 자신이 생각한 나치즘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도 좀체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것도 비슷한 바가 있습니다. 마토바 씨가 말씀하신 것은, 알튀세르가 평가되는 면도 있습니다만, 비판되어야 할 면도 있습니다. 본인의 신체성에 대한 고찰이 분명히 결여되어 있다. 알튀세르 안에는 자신은 신체를 갖고 있고 세계 속에 편입되어 있다는 의식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현대사상이라면, 인식의 수준을 바꿔도 결국은 자신도 신체를 갖고 세계에 편입되어 있다, 그러한 자신의 신체성을 메타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가 곧바로 나옵니다. 그런 관점이 알튀세르로부터는 좀체 보이지 않고, 신체를 갖고 있지 않은 투명 인간처럼 현실 속에 있는 것 같군요.

 

마토바 : 그는 아내를 죽이고 그 재판에서 정신병이라고 함으로써 책임능력이 없게 되어 죄를 면합니다만, 그것에 대해 그 자신이 얘기한 대목에서, 자신은 책임능력이 없다non lieu, 세상의 것이 아니다가 됐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자기 정당화하기 위해, 나는 옛날부터 있지 않았던, “루이Louis”라는 자신의 이름도 옛날 자신의 어머니의 애인의 이름이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루이는 그lui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죽은 애인처럼 키웠다. 나는 어머니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non-lieu였다. 그런 나는 여성에 대해 줄곧 늦깎이이고, non lieu였다. 사귀는 여성에 대해서도 가벼운 형태로 흘러갔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현실은 신체성을 잃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자기정당화이며, 그런 인간은 이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최종심급이 실재라면, 실재란 그에게 있어서는 파리의 현실 생활입니다. Non-lieu라는 것은 그의 이론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혼처럼 존재할 뿐이라는 것은, 그의 바로 모든 학문 자체가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최종심급이라는 위태로운 곳에 접점은 있지만, 그 최종심급을 빼면 둥실둥실 날아가 버리게 된다. 그러나 날아가는 내용은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우리는 물려받는 바가 있지만. 이 이론은 화제는 제공합니다만,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없는 것은 지면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는 나름대로 맑스를 마음대로 읽은 것입니다만, 마음대로 읽는 것은 상관없으나, 알튀세르의 신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 언저리는 벤사이드가 절대적 사상의 세계에서 행했던 알튀세르 비판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논문집 アルチュセール, 1999).

 

나카마사 : 달리 말하면, 최종심급 자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울려 퍼질 뿐이며, 이쪽은 그것을 듣고 있을 뿐입니다만, 심급이니까 어떤 판결을 내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들렸을 뿐이다고 말한다고 생각하면 말해버린다. 그리하면 모든 것은 탁상공론이 될 수 있다. 알튀세르 자신은 제대로 전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최종심급을 심급답게 하려면, 개개인이 마음대로 듣고 있는 것만으로는 심급으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기능시키는 장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알튀세르에게 그런 장치로 통하는 뭔가의 아이디어가 있고, 그것을 우리가 징후적으로 독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양상을 띠는 것일까요?

 

마토바 : 알튀세르는 혁명에 대해 두 개의 서로 모순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최종심급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것을 혁명으로 끌고 가려면, 그것만으로는 할 수 없다, 어떤 주체의 작동이 필요하다고. 그 주체란 지식인의 지도, 이른바 전위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의해 민중을 이끌어 혁명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민중 쪽에서부터의 목소리가 있고, 그것에 지식인은 끌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 알튀세르처럼 자기 변호에 능한 인간들이 본다면, 인텔리에 대한 숭배가 있으며, 그것은 볼셰비키적 혁명으로 이어집니다만, 지식인이 혁명을 추진하고 민중은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면서 그것을 부정하고 있고, 자기 모순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냐? 그러나 어느 쪽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기모순은 어떤 사상가에게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다만 지식인이나 전위가 혁명을 수행한다는 방향에 내기를 걸었다는 면에, 오히려 그의 지성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가 레닌과 철학(1969)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레닌이 이탈리아로 망명했을 때, 이탈리아에 있는 러시아인이 카리브섬에서 의회를 하고 있으니까 그 장소로 와서 철학에 대해 떠들어달라고 고리키가 레닌에게 부탁합니다. 레닌은 거기로 가서 철학에 대해 지껄일지 고민합니다. 레닌은 자신은 철학을 실천하려 하고 있고, 그렇다면 철학에 대해 지껄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껄이는 수준을 넘어선 곳에 있는 철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철학이 있다면 묵과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레닌은 가지 않았습니다. 가지 않았던 것이 레닌의 뛰어난 부분입니다. 맑스주의에 있어서의 철학은 사실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라면 하나의 합리적인 논의로서 민중에게 이야기되는 일종의 게임이 된다. 그러나 맑스의 철학은 그런 것을 넘어선 현실을 바꾸는 뭔가이다. 철학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레닌은 철학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 그것을 레닌은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레닌은 뛰어나다는 게 됩니다.

이처럼 알튀세르의 사고 패턴은 항상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인간이 위대하다고 말할 때에는, 그 위대한 인간은 그 시대의 인간들의 사고의 지평을 뛰어넘어 역설적으로 물음을 역전시키는 인간인 것입니다. 이런 패턴은 알튀세르의 가장 알튀세르적인 부분입니다. 모든 뛰어난 인간들은 미래에 자신을 맞이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그를 돕는 것은 미래의 인간뿐이다. 살고 있는 시대에는 누구 하나 이해하는 친구를 갖지 못하고, 친구는 미래에만 있을 뿐이다. 이 미래의 친구와의 연관,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 등의 5세기에 걸친 이해의 우정 연합이 친구를 만들고, 그것 이외에는 전혀 친구가 아닌, 맑스도 마키아벨리도 스피노자도, 그리고 레닌도 그런 의미에서 고독하다.

 

나카마사 : 너무 고독해졌을 때, 어떻게 대중의 목소리를 듣나요? 어딘가에서 대중의 목소리를 들어두느냐면, 맑스주의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곳이 있네요.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이라는 것을 끈질기게 말하고 있습니다만, 지식인이나 혁명가가 자신의 머리로 구성하는 권력이 아니라 다중(multitude)으로부터 저절로 구성되는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진정한 혁명으로는 안 되니까요. 알튀세르의 최종심급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라고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외부로부터 끌고와야 할 것이 아닐까요? 알튀세르의 제자인 발리바르 등은, 스피노자의 다중의 얘기와 결부시키고, 대중적인 것으로부터 끌고 온다는 유형의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만, 알튀세르 자신은 그런 인식은 전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토바 : 알튀세르는 중세의 수도사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감으로서 에콜 노르말에 입주하면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이야기하고, 바로 현실과의 접점을 갖지 않은 곳에서 그는 우위성을 가진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일종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이치를 가득 채워 일을 밀고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의 접점이 상실되고 있다. 이 현실과의 연결을 어떻게 갖는가가 50년대부터 60년대에 전개하는 그의 여성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가 숨지고 전기가 나오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나오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다. 에른스트 만델이 제4인터내셔널의 대빵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으며, 그의 말투도 포함해 운동가로서의 카리스마성이 있다. 그러나 글쓰기로서의 카리스마성은 없다. 그에 반해 알튀세르는 오로지 글쓰기로서카리스마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희소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그런 자신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을 연기하고, 현실과의 접점을 갖지 않는 곳에 이지적인 곳에서 구축했다. 프랑스의 인구 5천만 명 중에 뛰어난 지성을 지닌 인간이 몇 명 있고, 그 몇 명만을 소중히 하고, 그 몇 명은 미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프랑스에는 있습니다. 그런 선택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연기하고, 모두에게 그것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카리스마성이 있다.

 

나카마사 : “철학으로서는 그 편이 철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알튀세르 이후의 세대가 되면 그것은 좀체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역시 알튀세르는 마토바 씨가 말씀하시듯이, 자신 이외의 타자로서, 눈에 보이는 현실의 인간을 설정하지 않는다. 그의 시야에 있는 것은, 아득한 옛날의 역사적 인물이라든가, 미래의 위대한 인물이네요. 위대한 지성 연합 속의 타자인 것이며, 이른바 아래로부터나타나는 타자라는 이미지에는 아무래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알튀세르의 좋은 부분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마토바 : 알튀세르는 초엘리트라는 것을 자인하고, 그것을 연기했습니다만,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프랑스의 국토가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는 대개 엘리트입니다. 베르그손도 프랑스에서 대대로 이어져온 엘리트이며, 사르트르도 엘리트이지만 베르그손보다 떨어진다. 알튀세르는 사르트르보다 더욱 떨어지는 셋째, 넷째의 엘리트입니다만, 삶의 방식으로서는 더욱 엘리트 같다. 알튀세르처럼 에콜 노르말의 조수가 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오히려 파리대학의 선생이 되고, 장차 콜레주드프랑스의 선생이 되어,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쪽이 좋은 것입니다. 확실히 우수한 인간은 에콜 노르말에 몰려듭니다만, 여기서는 교사로서의 지위는 오르지 않는다. 중세의 수도사처럼 여기에 있던 인간은 어딘가 어긋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긋난 태도를 승인해주는 지적인 분위기가 당시의 프랑스에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두 번째 부분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 번째 부분에 이어서)



(계속)



낭만파 사상의 철학적 배경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읽은 곳에서 약간 뒤의 대목을 봅시다. 슈미트는 모든 것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실재’를 해체하는 낭만파의 사고를 상당히 끈질기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96쪽을 살펴봅시다. 



개념의 전면적인 교체와 혼합, 터무니없는 말의 난혼 속에서는, 모든 것은 설명 가능하게도 되고 설명 불가능하게도 되며, 동일한 것도 반대되는 것도 되며, 모든 것이 모든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정치적 현실에 관한 문제와 논쟁에 “모든 것을 조피[Sophie]로 변화시키고 또한 그 반대를 행하는” 기교(kunst)가 적용되기에 이른다. 이 보편적인 “또한 그 반대”und umgekehrt는, 모든 썩은 흙[糞土]을 돈으로 바꾸는 위대한 말의 연금술에 있어서, 현자의 돌이 된다. 모든 개념은 하나의 나이며, 또한 거꾸로 모든 나는 하나의 개념, 모든 체계는 개체, 모든 개체는 체계, 국가는 인간, 인간은 국가가 된다. 혹은 뮐러의 대립 이념에서 말해지듯이, 만일 긍정과 부정이 객관과 주관처럼 대립물이라고 한다면, 긍정과 부정은 객관과 주관에 다름 아니며, 뿐만 아니라 또한, 공간과 시간, 자연과 예술, 과학과 종교,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적과 여성적, 화자와 청자도 마찬가지다. 

[* 개념들의 일반적 교체와 혼합(confusion), 말들의 엄청난 뒤범벅(promiscuity) 속에서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설명할 수 없고, 동일한 동시에 동일하지 않게 되며,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기예(art)는 “모든 것을 너무도 사랑하는 조피(Sophie)로 변형하고 또한 그 반대로 하기 위해” 정치적 현실의 문제와 토론에 적용됐다. 이런 일반적인 “또한 그 반대로”는 모든 배설물을 금으로 바꾸고 모든 금을 배설물로 바꿀 수 있는 말들의 위대한 연금술에 있어서 철학자의 돌덩이이다. 모든 개념은 자아(ego)이며 또한 그 반대이다. 모든 자아는 개념이며, 모든 체계는 개인이며, 개인은 체계이다. 국가는 사랑하는 연인이며 인간(person)이 된다. 인간(person)은 국가가 된다. 혹은 뮐러의 『대립론(Lehre vom Gegensatz)』에서처럼, 긍정과 부정이 객관과 주관 같은 대립물(antitheses)이라면, 긍정과 부정은 객관과 주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또한 공간과 시간, 자연과 예술, 과학과 종교,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과 부르주아지, 남편과 아내, 화자와 청자이기도 하다(p.77).]



‘조피’란 구체적으로는 15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노발리스의 약혼자 조피 폰 퀸(Sophie von Kühn, 1782-97)을 가리킵니다. 노발리스는 작품 속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신비화·이상화된 형태로 묘사합니다. ‘여성’의 이상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지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sophia〉에서 유래하니까, 우주의 궁극적 신비로 이끄는 여신이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90년대에 일본에서도 붐이 일었던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 1952~)의 『조피의 세계(Sofies verden)』(1991)의 주인공 ‘조피’라는 이름도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었죠.


* 옮긴이 : 독일어이기 때문에 ‘조피’로 읽어야 하지만, ‘소피’라고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요스타인 가아더는 요스테인 고르데르로 읽히기도 하며, 『조피의 세계(Sofies verden)』도 『소피의 세계』(장연은 옮김, 현암사, 1996)으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노발리스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조피’로 연결되며, ‘조피’에 의해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래서 ‘조피’를 경유함으로써,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상호 변환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조피’가 연금술의 ‘현자의 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물론 ‘조피’나 ‘현자의 돌’이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나’ 안에서, ‘나’의 상상력에 의해 그런 양 극단의 맞교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 전체가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며, “세계는 완벽하게 그것을 따라 순서지어지며”, “우주는 그것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은 세계나 우주가 아니라, 자그마한 인공적 도상(figure*)에 불과하다. 실재에의 의지는 외양Schein에의 의지로 끝난다. 그들은 세계의 현실을, 단번에 세계의 모든 것을, 우주의 전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 대신 그들이 얻은 것은, 투사와 흡수, 확장과 수축, 점, 원, 타원, 구(球), 영혼 있는, 즉 주관화된 거대한 공놀이 ludus globi였다. 그들은 사물의 실재성을 헤집고 나가는 데 성공했으나, 그 대신에 다름 아닌 사물도 그들을 헤집고 나갔으며, 그들이 그 저술이나 서신이나 일기에서 우주를 우롱하는 데 급급한 것을 보면, 스웨덴보르크가 묘사한 너무도 교활한 자들의 지옥에서 빠져 있는 저주 받은 사람들을 자주 상기시켜준다. 

[* 그것은 공식이다. 즉, “세계 전체가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다. 이 공식에 입각해 “세계가 모조리 배열되며”, 이 공식과 더불어 “우주는 증명된다.” 물론 그렇다. 다만 이것은 세계와 우주가 아니며, 오히려 예술의 작은 형상(figure)이다. 실재(reality)에의 의지는 외양에의 의지로 끝났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의 실재를, 세계 전체를, 우주의 총체성을 단숨에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것] 대신에 그들은 투사(projections)와 재흡수, 연장(elongations)과 축약을 얻었을 뿐이다. 점, 원, 타원, 아라베스크(arabesques), 혼이 불어넣어진(ensouled) ― 즉, 주관화된(subjectified) ― 우주적 게임. 낭만주의자들은 사물의 실재성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러나] 이어서 사물들이 그들을 탈출해 버렸다. 우리가 이들의 저술, 편지, 일기에서 우주의 조작에 이들이 열심인 것을 보았을 때, 이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스웨덴보르크의 지옥에서 너무도 교활한 자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떠올리게 한다(p.78).]



요란한 수사가 계속됩니다만, 아까의 [조피 → 현자의 돌 → 나]의 이야기의 계속으로, 포인트는 알 수 있네요. 낭만파 사람들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파악할 작정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말로 만들어낸 ‘외양’에 우롱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들은 사물들의 《실재성》을 넘어서, 궁극의 ‘실재성’을 추구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물들이 그들의 눈앞을 지나쳤을 뿐, 우주를 우롱할 것이고, 그 반대로 우주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 


“실재에의 의지는 외양 Schein에 대한 의지로 끝난다”는 원문에서는 〈Der Wille zur Realität ender im Willen zum Schein〉입니다. 독일어 〈Schein〉에는 ‘외양[외관]’, ‘가상’ 외에도 ‘빛’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의 동사형인 〈scheinen〉에 ‘바깥으로’라는 의미를 지니는 철자, 접두사 〈er-〉을 붙여서 〈erscheinen〉이라고 하면, ‘나타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물의 본질이 ‘빛을 내다’와 같은 포지티브한 뉘앙스와, 실체가 없는 단순한 ‘외양[외관]’이라는 네거티브한 뉘앙스 둘 다를 띠고 있는 말입니다. 낭만파는 ‘빛나는’ 본질을 포착한 셈이었지만, 슈미트가 보기에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낸 ‘외양[외관]’과 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관화된 거대한 공놀이”라는 비유는 조금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球]으로 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사물이 난무하고 중심점인 ‘소피[조피]’를 통과할 때 한쪽 극성에서 다른 쪽의 극성으로 변환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구체(球体)로서의 우주를 궁극적으로 파악할 작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주관으로 구체(球体)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자기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웨덴보르크(Emanuel Swedenborg, 1688-1771)는 스웨덴의 과학자·신비주의자로, 결정학(結晶學)의 영역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만,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고,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견문록을 썼습니다. 낭만파 사람들이 자신들이 ‘우주’라고 숭배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필사적으로 여러 가지 글을 쓴 것을 보면, 스웨덴보르크의 지옥에서, 너무 교활한 자들이 받고 있는 죄를 상기시킨다는 것이죠. 


그러면 낭만파의 사상의 철학적 배경에 관해 논한 2장 (2) 「낭만주의의 우인론적 구조(The Occasionalist Structure of Romanticism)」로 들어가죠. 



그 힘을 날마다 사실에 있어서 증명하고 있는 실재는 비합리이자 거대한 것으로서 암흑 속에 숨어 있다. 더 이상 존재론적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적 정신의 영향을 받은 그 세기의 모든 것은 특유한 기분으로 채워져 있었다. 체계적이든 감정적이든, 전제와 결과와 방법은 다종다양하더라도, 낙천[주의]과 비관[주의]의 차별[차이]을 초월하여 개별 개체의 고뇌가 들리게 되며, 기만을 당했다는 이들의 감정도 들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우롱하는 저 힘의 손아귀 속에 놓여 있다. 

[* 그 힘이 실제로 날마다 증명되고 있는 실재는 비합리적 양으로서 모호하게[암흑 속에] 남겨져 있다. 존재론적 사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적 정신의 영향을 받았던 세기 전체에는 특유의 기분(characteristic mood)이 [곳곳에] 침투해 있었다. 전제, 결과, 방법이 얼마나 다양하고 체계적이고 감정적인가와는 무관하게,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의 차이를 넘어서서, 한 개인의 불안과 속임을 당한다는 그의 감각도 귓가에 들려올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힘의 손아귀에서 속수무책이다(p.78).]



낭만파에게 ‘실재’의 본체는 어둠 속, 즉 이성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세계, 파악하기 힘든 무의식의 세계에 있다고 상정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피히테처럼 체계적인 ‘존재론’을 전개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감춰진 ‘실재’가 우리의 의식을 배후에서부터 움직인다, 혹은 뭔가의 계기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뭔지 모르지만, 우리는 미지의 비합리적인 힘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낭만주의뿐 아니라, 19세기는 특유의 기분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 뒤에 이어진 논의에 비춰 보면, 셸링의 ‘신화’라든가, 쇼펜하우어(1788-1860)의 “그저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라든가 니체(1844-1900)의 “힘에의 의지”, 프로이트(1856-1939)의 ‘무의식’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자신의 의식의 진정한 주인인가? 뭔가 다른 것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은 현대사상의 주요 테마인데요, 낭만주의 시대에 이미 그런 사고방식의 원형이 나오는 겁니다. 진보주의적인 합리주의의 진영에서 보면, 가톨릭 보수주의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신봉한 점에서, 낭만주의와 한패거리가 아니냐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뚜렷한 ‘존재론’을 지녔다는 점에서, 가톨릭 보수주의는 낭만주의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 인간과 세계에서 놀 수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폭풍우』 속의 프로스페로처럼 인간이 극의 ‘조종 장치’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로맨티카는 자유로운 주관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이런 상상을, 좋아하고 사랑해버렸다. 

[* 우리는 인간 존재 및 세계와 아이러니하게 노는 것을 즐긴다.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처럼 인간이 자신의 수중에 드라마의 ‘조종 장치(mechanical play)’를 쥐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주체성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그런 관념을 상상하길 아주 좋아한다(pp.78-79).]



“프로스페로 Prospero”란 셰익스피어의 희극 『폭풍우 The Tempest』의 주인공으로, 원래 밀라노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동생에게 배신당해 딸과 함께 섬으로 유배됩니다. 마술을 배운 그는 마술을 통해 섬의 요정과 괴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게 되며, 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어느 날 새로운 왕이 된 동생과 나폴리 국왕, 그 아들이 탄 배가 (프로스페로의 하수인이 된 요정이 일으킨)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섬으로 흘러듭니다. 프로스페로는 마술을 사용해 그들을 위협하고 복수하려 하지만, 자신의 딸과 나폴리 왕자가 사랑에 빠졌기에, 그의 진심을 시험한 후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로스페로는 얼핏 보면 마술이라는 ‘조종 장치 Maschinenspiel’에 의해 이야기의 진행을 조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원래 그가 동생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인 셈이니까, 프로스페로 자신도 운명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마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마술의 바탕이 되는 초자연적인 힘은 그가 산출한 것이 아닙니다. 한발 더 물러선 관점에서 보면, 프로스페로는 극중 인물이기 때문에, 작자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자도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것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낭만주의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힘 eine unsichtbare Macht”을 이용하는 것, 혹은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을 “자유로운 주관성 freie Subjektivität”의 행사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무의식에서 부상하게 되는 ‘상상력’이 낭만주의적인 창조의 원천입니다. 문학·예술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낭만주의 이전의 고전주의 시대, 괴테나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시대라면, 그런 비합리적 힘에서 생겨나는 정념을 이성에 의해 통제하고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예술의 본래 존재방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 : 비밀결사geheime Bünde와 음모론 


이후 다소 뜻밖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독일 문학사·문화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일본에서도 요즘 음모론이 붐을 이루고 있죠. 음모론이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어둠의 세력이 정치나 경제를 움직이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죠. 현대세계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어서,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가 9·11을 자작극으로 꾸몄다거나, 알카에다를 그림자로서 조종해서 군사개입의 구실을 꾸며냈다는 등의 얘기가 많습니다만, 그런 수준에 머물지 않고, CIA의 더 깊은 배후에 건국 당초부터 미국을 조종하고 있는 특정한 ‘비밀결사’가 있고, 그것이 진정한 흑막이라는 깊은 음모론이 있죠. 


‘프리메이슨’ 얘기는 꽤 옛날부터 있었죠. 미국의 대통령이나 민주, 공화 양당의 간부의 대다수가 프리메이슨이라든가, 러시아나 중국의 수뇌부에도 멤버가 꽤 있고, 세계의 정치를 그림자로서 움직이고 있다든가, 역사상의 거대 사건의 대부분은 모두 프리메이슨의 계획을 따라 이뤄졌다든가. ‘일루미나티’도 최근 듣게 됐습니다. 일단 다른 조직인 것 같아요. 


슈미트가 말하듯이,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등의 비밀결사는 18세기 말경부터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유럽의 많은 도시에 지부를 결성합니다. 그런 ‘비밀결사 geheime Bünde’가 서유럽국가들의 문학 테마가 됐습니다. 독일문학에서 특히 도드라집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그 속편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에는 프리메이슨을 모델로 했다고 생각되는 ‘탑의 결사 Turmgesellschaft’가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유령을 보는 자[환시자, 강신술사] Der Geisterseher』(1787-89)에서는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백작(1743-95)을 모티프로 삼은 듯한 수수께끼의 아르메니아인이나 영능력자, 비밀결사 부센타우루(Bucentauro) 등이 등장합니다. 호프만의 환상소설은 수상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만, 특히 『모래 사나이(Der Sandmann)』(1816)는 영적인 이야기와 음모론, 무의식론이 조합되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1강에서도 조금 소개한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는 슐레겔 등과 거의 동세대의 낭만파의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주로 베를린에서 활약했습니다.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의 『장화 신은 고양이』를 프랑스혁명의 패러디로 보이도록 번안한 희극 「장화 신은 고양이」(1797)이나 기사의 세계를 무대로 한 낭만주의적 소설 『충실한 에카르트 또는 탄호이저Der getreue Eckart oder Tannhäuser』(1799)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만 Roman’이란 장편소설을 가리킵니다. 독일문학에서는 그 길이를 이용해서 회상이라든가 서한이라든가 극중극 등을 집어넣어 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별개의 장르로 간주됩니다. 원문에서는 〈Romane〉라고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로벨 씨의 이야기Die Geschichte des Herrn William Lovell』(1795-96) 주변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98쪽에 로벨(Lovell)이라는 이름이 나오네요. 이 소설에서는 자신이 사랑한 여성이 월터 로벨이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외아들인 윌리엄을 출산할 때 사망해버린 것을 원망하는 워털루라는 노인이 이들 부모자식에 대해 복수하는 음모 이야기로서 구성되어 있고, 여러 등장인물이 그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며, 이들 부자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것을 워털루 자신이 이야기한다는 구성입니다. 98쪽에 로벨이 안드레아(Andrea)의 아이러니의 꼭두각시(Werkzeug)라는 얘기가 나옵니다만. 안드레아는 워털루가 이탈리아에서 쓴 가명입니다. 워털루=안드레아는 로벨을 우롱합니다만, 자기 자신도 ‘아이러니’에 의해 우롱당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밀결사’적인 문학이 테마로 자리 잡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독일문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우리가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무의식의 영역에 도사리고 있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강해진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18세기 말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있고, 계몽적 이성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 듯 보였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성의 이름 아래서의 진보의 마이너스 작용 ―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 당시의 테러라든가, 공동체의 파괴라든가 ― 도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역시 이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인간을 광기로 몰아가는 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식도 싹텄습니다. 계몽의 반동입니다. 그 반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호프만의 소설에서, 당시 유행했던 자기최면(磁氣催眠, mesmerism)을 주제로 한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의 알기 쉬운 상징으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결사’의 음모 같은 이미지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낭만파는 ‘아이러니’라는 형태로, 무의식의 차원에서 떠오르는 상상력을 포지티브하게 평가했던 것입니다만, 그것과 정반대로, 우리의 자아의식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들 수도 있는 무의식에 대한 불안도 있고, 그것이 ‘비밀결사’의 암약을 둘러싼 표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서도 나타납니다. 슈미트는 무의식적인 것을 원동력으로서 역사가 전개되는 모양을 탐구하는 ‘역사철학’의 동향에도 주의를 돌리고 있습니다. 99쪽에 몇 명인가 대표적인 사상가가 거론됩니다. 셸링은 개인의 의식된 의지를 초월하는 역사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루덴(Heinrich Luden, 1778-1847)은 인간, 민족, 세대 등을 매개로 하여 “삶의 정신 Geist des Lebens”이 자기를 현현한다는 견해를 보여줬습니다. 루덴은 예나대학의 교수를 역임한 역사학자로, 역사연구를 통해 독일의 국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정치체제로서는 인민주권을 이상으로 했습니다. 헤겔은 개인들을 우롱하는 ‘이성의 간지 List der Vernunft’를 시사했습니다. 맑스는 생산관계에 의해 역사가 움직인다는 유물사관을 정식화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를 이 세계의 본질로 간주하고, 역사상의 희비극은 그 의지에 의해 일어난다고 봤던 셈입니다. 


100쪽에서는 “무의식의 과정 unbewußte psychische Vorgänge”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하는 시도로서, ‘성욕’에 주목하는 프로이트의 이론, ‘권력에의 의지’에 주목하는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0) ― 독일어 이름(Alfred Alder)이니까 ‘알프레트 아들러’라고 표기하는 편이 좋겠죠 ― 의 이론 등이 언급되어 있네요. 아들러는 정신분석의 초기에 프로이트와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만, 나중에 ‘개인심리학’이라는 다른 그룹을 만든 인물로, 니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기관열등성에 기초한 열등감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우월성 추구의 메커니즘을 이론화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맑스주의나 정신분석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매혹되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나 쇼펜하우어로 통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첫 번째 부분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정치적 낭만주의』




슈미트와 수사학 


1강에서는 도입으로서 칼 슈미트가 어떤 사상가이고 어떤 식으로 평가받았는가라는 얘기와, 『정치적 낭만주의』의 전반부, 즉 낭만주의를 소개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 텍스트는 낭만주의론이기 때문에 법학자나 정치철학자보다 문학연구자의 주목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제 자신도 석사 시절에 낭만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슈미트와 문학의 관계에 관해 조금만 보충하겠습니다. 슈미트는 헌법학자이며, 법철학적·법제사적으로 법이나 정치의 본질을 독특한(unique) 형태로 논한 인물입니다. 그의 문체는 우리가 법학논문이라고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잘 모르는 추상적인 말을 늘어놓은,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느낌이 아닙니다. 상식을 뒤흔드는, 이상한 수사학이 효과를 발휘하는 문체를 구사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극단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도 그렇지만, 법학의 틀 안에 들지 않는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슈미트는 젊은 시절 법학자로서 배우면서도, 문예평론과 풍자문 같은 것을 썼습니다. 표현주의 계열의 시인인 도이블러(Theodor Däubler, 1876-1934)의 시집 『북극광(Nordlicht)』(1910)에 관해 자세하게 논평한 「테오도르 도이블러의 『북극광』에 관하여(Theodor Däublers ‘Nordlicht’: Drei Studien über die Elemente, den Geist und die Aktualität des Werkes)」(1916)나, 동시대 지식인의 생태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브리분켄(Die Buribunken)』(1917-18)이 알려져 있습니다. 전후에도 햄릿론인 『햄릿 혹은 헤쿠바(Hamlet oder Hekuba. Der Einbruch der Zeit in das Spiel)』(1956) 등을 썼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문예비평과 정치철학의 중간적 저작으로, 초기 낭만파의 비평이론에 관해 꽤 깊이 파고들어 논평하고 있기에 슈미트의 문학가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납니다만, 다음 번 강의 이후에 읽는 『정치신학』이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에서도 수사학이 상당히 효력을 발휘하는 문장으로 쓰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자신이 말하려 하는 책의 본질을 직관에 호소하며, 유무를 말하게 하지 않고 납득하게 만드는 강렬한 말로 표현하며, 이를 개념적으로 엄밀화해 가는 것이 훌륭합니다. 수사와 논리의 조합이 절묘하다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의 논문 대부분이 법학 자체라기보다는 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또는 법의 근저에 있는 신화적·신학적 차원을 문제 삼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논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사는 최대한 쓰지 않고, ‘법규범’ 상호의 논리적인 관계만으로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하려는 법실증주의의 입장인 한스 켈젠과는 대조적인 느낌이 듭니다. 두 사람은 쾰른 대학에서 한때 동료였기도 했고, 바이마르 시기 독일 법철학의 양대 거두로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켈젠의 ‘순수법학’은 도덕이나 정치, 종교, 예술 등에서 분리된 순수한 ‘법’의 논리를 추구합니다. 다만 켈젠도 법학 이외의 영역, 예를 들면, 신화나 종교 등에 대해 글도 썼으며, 그런 방면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슈미트 이상으로 문학적 수사를 구사하고 있으며,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トンデル感じさえします. 그것을 법학의 틀 속에 들여오지 않는 것이 켈젠입니다. 



‘예외상태’ 〈Ausnahmezustand〉


『정치신학』의 서두에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자극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서두에 갖고 오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오늘날의 일본에서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감이 오지 않지만, [슈미트가] 이 문장을 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예외상태’의 원어는 〈Ausnahmezustand〉로, 헌법이나 정치체제와 관련된 맥락에서는 ‘비상사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통상적인 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계엄령 등에 의해 치안유지를 꾀하려 하는 그 ‘비상사태’입니다.


제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에서는 제정(帝政)이 붕괴하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간주된 바이마르 공화제가 발족했습니다만,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짊어졌고, 극우와 극좌에 의한 체제 전복 시도가 번번이 있었으며, 많은 정당이 난립했고 정권이 자주 교체됐습니다. 국가가 여전히 매우 불안정했으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줄곧 ‘예외상황’이었습니다. 혹은 ‘예외상태’와 ‘보통상태’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에는 헌법=국가체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즉 ‘비상사태’에 처했을 때 헌법의 일부 규정을 중지하고, 특별한 명령을 냄으로써 혼란을 수습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주어졌습니다. 슈미트는 대통령이 대권을 발동할 수 있는 ‘비상사태’를 둘러싼 현실적인(actual) 문제를 국가의 존립이 걸린 ‘예외상태’, 다시 말하면 ‘법’의 ‘예외상태’, ‘인간존재’에게 있어서의 예외상태처럼 더 추상적·철학적인 차원의 문제로 파고들어 가는 형태로 논의를 전개한 것인데요, 그것을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셈입니다. 단순히 대통령이 비상사태 대권으로 혼란을 수습한다는 얘기에서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죠.


현실적인(actual) 헌법 해석의 문제를 논하면서 어느 샌가 법률적 개념의 근저에 있는 신학 혹은 신화적인 심층으로 논의 수준을 깊이 있게 해 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독자를 끌고 갔던 《깊은 차원》에 비춰서 당초의 문제를 재고하라고 촉구합니다. 법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나 문학가의 방식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  


그러면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특징을 슈미트 자신의 관점에서 매우 정확하고(pinpoint) 아이러니하게 묘사한 다음, 이것과 그가 인정하는 본래의 ‘보수주의’, 특히 가톨릭 보수주의와의 차이를 밝히고, 상대적으로 후자를 높이 평가하려는 노림수를 지닌 저작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의 대표로 드 메스트르와 보날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혁명 시대의 정치사상가로, 가톨릭의 교의와 결부된 국가관·민족관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도 신학자도 아니고, 중세의 신학을 그대로 부활시키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반드시 가톨릭 교리에서 나오는 얘기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가톨릭이 길러낸 계층구조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을 이론화한 인물들로, 슈미트는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드 메스트르는 일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 근대의 정치사상사에서는 꽤 중요 인물로 취급되고 있으며, 보수주의 계열의 사상사에서는 대개 이름이 나옵니다. 「두 개의 자유」론으로 유명한 이사야 벌린(1909-97)도 드 메스트르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도노소 코르테스



슈미트가 자주 이름을 들먹이는 가톨릭 보수주의의 사상가로는 다른 한 명, 다음 번 강의 이후에도 나오는, 19세기의 스페인 정치이론가이자 외교관인 도노소 코르테스(Juan Donoso Cortes, 1809-93)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2월 혁명 시기의 스페인에서 반혁명의 사상을 전개한 인물입니다. 슈미트가 이 세 명에게서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코가 케이타 씨(古賀敬太, 1952~)가 저서 『칼 슈미트와 가톨리시즘 : 정치적 종말론의 비극(カール・シュミットとカトリシズム──政治的終末論の悲劇)』(1999)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서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나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버크는 전통을 비합리적인 것이라며 파괴하고 영(zero)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영국국교회와 국가의 결부가 영국의 ‘국가=헌법체제constitution’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다른 개신교와 달리, 영국국교회는 신앙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가톨릭에서 이탈한 것이라서, 교리와 의례에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게다가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기에 국가와의 융합도가 가톨릭보다 높습니다.


낭만주의자 중에는 과거에 대한 동경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복고주의적 정치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그들은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무한한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민족’이나 ‘역사’를 말했을 뿐이며, 가톨릭 보수주의자처럼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를 튼실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자는 자신들이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 한정성 위에 자신들의 삶이 성립된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안정된 ‘질서’ 지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그런 ‘한정’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미화한 ‘민족’과 ‘역사’의 《이미지》와 무한하게 계속 놀려고 합니다. 그 《이미지》는 ‘실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기에, 계속 변용되며 안정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불성실한 불안정성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낭만파의 사고 


여기서 슈미트가 집요하리만치 계속 비난하고 있는 낭만파의 사고방식에 관해 조금만 긍정적인(positive) 관점에서 소개하겠습니다.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계열의 독일사상에서 낭만파를 재평가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의 ‘비평’ 개념을 ‘무한한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파악한 벤야민의 논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발터 벤야민,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3 ; Walter Benjamin, Der Begriff der Kunstkritik in der Deutschen Romantik, 1920]입니다. 벤야민이 이를 박사논문으로 쓴 것은 『정치적 낭만주의』가 간행된 것과 같은 해인 1919년입니다. 제 석사논문을 책으로 낸 『근대의 갈등(モデルネの葛藤)』에서도 벤야민의 이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은 합리적인 주체로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상정되는 [데카르트-칸트-피히테]적인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데카르트(1596-1650)는 방법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내’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반면, 슈레겔 등은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합니다.


“생각하고 있는 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다”에서 “내가 존재한다”를 도출시킨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낭만파에 강한 영향을 미친 피히테는 이것을 “나의 존재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나 자신에 의해 단적으로 정립(setzen)되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판단의 최종 근거는 나 자신이며, 이것 이상으로 소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낭만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관해 계속 생각하려 합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나’는…? 이렇게 계속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고 무한히 계속됩니다.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한다”는 반성의 구조가 무한하게 반복되는 셈입니다. 이 연쇄가 어디까지나 계속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의 진정한 근거가 결국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존재’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라는 무한한 연쇄의 단축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 - 칸트 - 피히테]적 자아

합리적인 입체로서의 실재한다고 상정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지향


                ↕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

방법론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를 전제로 하여 ‘나’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사고했다.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고 있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사고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


더구나 나 자신 속에서만 자기반성이 무한하게 연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의 ‘바깥’에까지 반성의 연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에 관해 ‘언어’에 의해 생각할 때, 언어를 통해서, 외부에서 다양한 관념이 《나》의 안으로 유입됩니다. 다른 《나》들이 사고한 것, 시적으로 창작·상상한 것이 언어를 매개로 ‘나’ 속에 수시로 들어오고, ‘나’라는 장 속에서 오토포이에시스(자기산출)를 계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종횡으로 연결된 반성의 연쇄를 통해, “우리의 세계”가 ― 항상 생성변화하면서 ― 구성됩니다. 그리고 ‘세계’ 속에 《있는(有る)》 다양한 《사물[物]》은 반성 운동 속에서의 ‘나’의 관점의 변화에 의해 다양하고 상이한 양상을 띱니다. 예술적 오브제가 보는 각도나 상황에 따라, 보는 주체의 관심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주듯이, 예술가는 그런 모든 것을 끌어넣으면서 오토포이에시스를 계속하는 ‘초월론적 포에지(Transzendentalpoesie)’의 운동에, 눈에 띄는 형태로 공헌한 인물입니다만, 우리들 개개인도 얼마간의 형태로 그것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비평Kritik’이란 당사자,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저자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 아래에서 진행되는 그런 반성의 연쇄를 여실히 드러내고, 다시금 창작으로 나설 자극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발상은 포스트 문제계의 현대사상에서 에크리튀르(=쓰인 것 + 쓰는 행위), 혹은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를 둘러싼 문제로서 논해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텍스트’ ― 어딘가에 적힌 문장뿐 아니라 예술작품, 건물, 상징적 기호 등, 의미의 체계를 이루는 것 일반이 포함됩니다 ― 를 매개로, 불특정 다수의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각종 텍스트화된 담론의 다발로서 《주체》로서의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이미 텍스트화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대상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대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는 사람들이 쓰는 행위(에크리튀르)에 의해 점점 증식되고, 또 그것에 뒤따라 새로운 의미의 연관을 산출하기 때문에, 텍스트 속에서 일어나는[벌어지는]  우리의 《주체성》도 계속 변용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에크리튀르의 무한한 놀이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체》를 텍스트의 연쇄=에크리튀르의 작용으로 보는 발상은 독일 낭만파와 포스트모던 사상에 공통적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정면》비판 


『정치적 낭만주의』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슈미트는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이런 발상을 하고 있음을 어떤 의미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다음에 그것을 ‘정치’에 응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러니’의 문제입니다. 아이러니는 ‘나’ 자신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재파악하고, ‘나’ 자신이나 주위의 타자, 여러 대상들에 관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을 발견하고, 《주체》와 《객체》 둘 다를 변용시키는 행위입니다. 아이러니는 모든 개념을 메타적 관점에서 상대화합니다. ‘민족’과 ‘역사’조차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A씨가 “민족의 본질은 ○○○이다”라고 파악했다고 합시다. 반면 B씨가 “A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A씨가 ▽▽▽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에서 입장이 다른 것으로 바뀌면 민족에 관해, 예를 들어 □□□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A씨와 B씨가 동일 인물인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C씨가 “B씨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라는 식으로 계속하려고 하면, ‘민족’의 《본질》은 무한한 반성의 연쇄 속에서 점점 변모합니다.


안정된 질서를 찾아내고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 보면, 이런 느낌으로 메타 사고를 계속하고, ‘실재’에 다다르지 않는 사고는 쓸모없으며 불성실합니다. 낭만파 입장에서 보면, 성실하게, 하나의 관점을 고집한 나머지, 사물의 다른 측면에 눈을 닫아버리는 《성실한 사상가》들보다는 반성=비평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점점 아이러니컬하게 변화시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불성실한》 자기네가 결과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는 성실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면, 곧바로 《성실한 사람들》은 더욱 더 화를 내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얘기네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비판이 진보적 합리주의자, 보수주의자, 맑스주의자 등에게서 낭만파에 대해 던져졌습니다. 이런 뜻에서 ‘성실/불성실’ 얘기만 나오면, 우와 좌의 공동투쟁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은 구도인지도 모릅니다. 슈미트는 그런 낭만주의에 대한 《성실한》 비판을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철저히 행하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아담 뮐러의 ‘정치적 낭만주의’도, 슐레겔의 아이러니의 응용편일 뿐이라고 봅니다. 일반적 이미지로서는, 뮐러는 메테르니히 아래서 정치적으로 활약하고, 국가유기체설을 내놓고, 애덤 스미스적인 자유주의 경제를 공동체적·전통적 관계성에 의해 보정하는 독자적인 국민경제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비평가·문헌학자일 뿐인 슐레겔과는 다르다고 생각되기 십상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할 겁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게, ‘정치적 낭만주의’를 가톨릭 보수주의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슈미트 자신의 사상적 결단이 겹쳐져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슈미트가 이렇게나 낭만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슈미트 자신 속에 낭만주의적인 체질, 사물을 메타적 관점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현실로부터 추상화된 관념에서부터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아이러니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슈미트 자신 속에 있는 낭만주의적인 부분을 떼어내, 실재하는 질서를 지향하는 보수주의를 철저히 하기 위한 선언문으로 『정치적 낭만주의』를 쓴 것은 아닐까요? 



포스트모던 보수주의 


최근에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만, 90년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포스트모던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사상 경향이 조금이나마 주목을 받았습니다. 본인이 그렇다고 인정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만, 프랑스의 파시즘 문학 연구에서 문예비평으로 들어간 후쿠다 가즈야 씨(福田和也, 1960~)가 그 대표로 여겼습니다. 포스트모던 보수의 사상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굳게 믿을 수 있는 게 없지만, 일단 사회를 통합하고 안정시키도록 기능하는 상징이 있는 쪽이 편리하다. 그 ‘상징’의 진정한 유래라든가 배후에 있는 전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천황제나 신도를 그다지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만, 옛 것이 상징으로서 기능하기 쉬우니까 옛 것, 혹은 옛날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용해서 하면 좋다. 자신은 별로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지만, 집착하고 있는 척 하는 편이 진심으로 집착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과 말을 통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뭔가에 헌신하는 것도, 아무것에도 헌신하지 않는 것도, 모두 결국에는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같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헌신하는 척하고, 임시의 ‘상징’ 아래서 안정해도 좋지 않은가…. 이런 느낌의 사고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칸트학파의 철학자 루돌프 파이힝거(Rudolf Vaihinger, 1852-1933)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인 듯이 Als-Ob”의 철학입니다. 


물론 그런 비뚤어진, 무늬(pose)만 보수주의와 진정한 보수주의를 정말로 구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드 메스트르와 보날은 프랑스혁명에 의해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을 일단 경험하고, 그 과정을 견디면서 실재하는 것으로서 ‘민족’과 ‘역사’에 의거하려 든 것인데요, 이것들이 그들이 바라는 바를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때까지 가톨릭의 정통파 신학에는 없었던 개념을 가톨릭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니까, 꽤 수상쩍습니다. 그들도 가톨릭교회의 이미지를 자기네 사상에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접한 보수의 대표적인 전형으로서의 정치적 낭만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가톨릭 보수주의를 구출해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좌파 혹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과 ‘역사’의 초월적 실재성을 실체적으로 믿는 것도, 놀이에 이용하는 것도, 근대화에 저항하려는 반동적 사고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니냐고 보이지만, 슈미트는 정말로 질서를 회복하려면 불순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기에 설령 ‘적’의 입장에 있을 법한 맑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정치’의 본질 ― 다음 번 강의와 그 다음 번 강의에서 읽는 『정치신학』에서는 그가 ‘정치’와 ‘신학’의 구조적 유사성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면, 즉 ‘정치’를 지배하는 신학적 논리야말로 자신들이 분쇄해야 할 최종 표적(target)이라고 짐작했다면, 그것은 제대로 평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프루동(1809-65), 바쿠닌(1814-76), 소렐을 뜻밖일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등장을 사상사적으로 중시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질의 응답 부분













질의응답 73




Q : ‘구체적 질서’란 어떤 이미지인가요? 


A : ‘구체적 질서’라는 것치고는 그다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전체 인류라든가 전체 세계에 똑같이 통용되는, 보편적 질서가 아니라, 그 민족이라든가 지역에 고유한 ‘질서’로, 법적인 제도들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종종 ‘질서’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이것은 매우 추상적인 의미밖에는 갖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거기에 대항해 ‘구체성’을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켈젠(1881-1973)이라면, 수학에서 최초로 공리가 설정·규정되고, 이로부터의 연역에서, 체계가 전개되는 것과 똑같이, 처음에 설정된 ‘근본규범 Grundnorm’으로부터 법질서가 논리적·단계적으로 도출된다는 식으로 상정합니다만, 슈미트는 그런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켈젠은 근본규범의 내용은 묻지 않는 셈인데, 슈미트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정치적 공동체를 만드는 ‘구체적 질서’에 맞지 않는 것은, ‘근본규범’이 될 수 없으며, 수학처럼 추상적 논리만으로 법이 체계화되고 안정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슈미트 연구자로부터 ‘구체적 질서’론은 경관법(景観法)의 문제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이나 강 등의 자연 경관에 어울린 시가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과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는 건물을 거기에 만드는 것은, 설령 민법상의 권리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허용되는가를 생각할 때, ‘구체적 질서’론이 살아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Q : 켈젠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모두가 사회계약적으로 합의해서 영(0)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군요. 


A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합의에 의해, 어떤 질서에서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논의의 대전제입니다. 


 아까 얘기한 낭만파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을 다시 뒤집은 것이, 슈미트 자신의 ‘질서’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낭만파는 ‘민족’과 ‘역사’를 버추얼화하고, 자신들의 시작(詩作)의 도구로서 자의적으로 이용합니다. 그에 반해 그 자신은 버크, 드 메스트르, 보날에 의거해, ‘실재하는 민족’, ‘실재의 역사’에 입각해 사고하려고 합니다. 그런 발상이 ‘구체적 질서’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일반적으로 ‘결단주의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단주의’라고 말하면, 영(0)에서 어떤 것에서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결단’한다는 듯이 다뤄지기에, 켈젠의 ‘근본규범’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말로 무(無) 속에서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질서’를 지향하는 결단인 것 같습니다. 



Q : 그런 흐름에서 듣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구체적 질서론과 결단주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상반되는 듯합니다. 구체적 질서론은 주체가 선택한다는 이미지가 아니죠. 


A : 슈미트 속에서도 ‘결단’과 ‘질서’의 관계는 꽤 변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만, 아마도 구체적 질서는 ‘있다’지만, 확실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있었다’지만, 무너져버렸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것을 재발견하고, “이것이 질서다!”라고 ‘결단’하고 ‘질서’를 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이데거와 같은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존재 자체로부터의 요청에 의해, 본래적 존재방식으로 [나아가려고] “각오하게 만드는 entschlossen” 상태에 있지만, 보통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기투 entwerfen’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입니다. 슈미트에게도 그와 같은, 스스로가 본래 속해 있는 ‘질서’를,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발상이 있으며, 그것을 몇 가지 상이한 수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하고 있기에, 신비적인 분위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슈미트가 좌파계열의 ‘결단주의’의 화신이라고 말해야 할 조르주 소렐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소렐은 기성의 부패한 질서를 파괴하는, ‘신화’에 이끌려진 ‘폭력’을 찬양한 것인데요, 슈미트는 신학적 차원으로까지 파고든 ‘결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렐처럼 좌파의 혁명론도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 메스트르, 보날은 가톨릭적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결단’한 반면, 그것을 일단 파괴하고 새로운 신화적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결단’하고자 했습니다.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적이지만 ‘앗, 들켜버렸네’라는 것입니다. 



Q : ‘구체적 질서’도 낭만주의의 세계관처럼 있지도 않은 이상이라는 건가요? 


A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슈미트 자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죠. 그는 가톨릭적 질서에 상당하는 것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인식했으며, 스스로가 의거하는 ‘질서’를, 적어도 가톨릭 → 독일민족 → 유럽공법공동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말로는, 구체적 질서 따위는 더 이상 없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억지를 부리는 사유의 경로를 밟았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텍스트가 재미있는 것은, 슈미트의 낭만주의에 대한 거센 비판을 보면, 같은 비판이 버크, 드 메스트르, 그리고 슈미트 자신에게도 되돌아오지 않느냐라는 의문이 솟구치는 대목입니다. 슈미트는 열심히, 보수주의자들의 ‘민족’이나 ‘역사’에는 실재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가톨릭 신자도, 낭만주의자도 아닌, 제3자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의 말도 수상쩍다고 생각되죠. 자신들도 한 패거리 아닌가라는 불안이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헐뜯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슈미트의 ‘결단’에도, 더 이상 의거해야 할 것이 정말로는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Q :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데거도 대상이, 신에서 민족 같은 것으로 옮겨간 것 아니냐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질서란, 하이데거의 ‘민족’과 가깝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지역적 한정성 같은 것인가요?


A : 30년대 중반 이후의 하이데거는 민족의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조국 Vaterland’에 매달리게 됩니다. 수립된 ‘조국’에 의해, 구체적으로는, 시인에 의해 발견된 본래의 ‘언어’에 의해, 사람들의 존재와의 관계맺음 방식이 규정되게 됩니다. 그의 발상은 확실히 ‘구체적 질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하이데거는 철학자이기에, 그가 의거한 기반으로서의 ‘조국’을, 횔덜린(1770-1834)의 이 또한 추상적인 시에 기대어 꽤 추상적으로밖에는 얘기하지 않았고, 현실의 독일과는 다른 것이라는 변명이 되지만, 법학자인 슈미트는 현실에 존재하는 법제도에 입각해 논의를 전개하기에, 그 나름의 구체성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 앞서 말씀드렸듯이, 슈미트의 ‘질서’의 기본단위는 시기에 따라 변동합니다. 



Q : 슈미트는 바이마르 시기에, 구체적인 법과 정치적으로 관련된 작업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은 지역적으로 문화의 변주(variation)가 크죠. 특히 북부와 남부에서. 이것을 묶은 총결산의 시기가 바이마르 시기라고 한다면, 슈미트도 너무 고생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구체적 질서’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A : 독일은 통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독일제국이 되어서도 복잡한 연방제를 채택했죠. 가톨릭은 전체 인구의 1/3 정도로, 2/3은 개신교 계열입니다. 가톨릭의 대부분은 남부에 살고 있습니다만, 슈미트 자신은 독일 북서쪽의 베스트팔렌 주의 외진 가톨릭 지역[플레텐베르크] 출신입니다. 가톨릭 계열의 정치신학자를 전체 독일적인 질서의 기반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산출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았으나, 처음부터 혼란의 연속으로, 불안정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로, 의회 내의 군소정당 난립과, 극좌 및 극우에 의한 공화국 전복의 시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대립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힌덴부르크(Paul Ludwig von Beneckendorf und von Hindenburg, 1847-1934) 아래에서 프란츠 폰 파펜(Franz von Papen, 1879-1969)이 총리를 지내던 1932년 7월, 중앙정부와 사민당 계열의 프로이센 주정부가 대립하고, 중앙정부가 군사력을 배경으로 삼아 프로이센 정부를 해체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일찍부터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대통령’의 (한정적인 의미에서의) ‘독재’를 기대하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법상 그런 역할이 부여됐던 ‘대통령’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에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치도 지지했습니다. 전후에는 유럽 전체에 있어서의 ‘대지의 노모스(법)’을 상정하고, 그것을 지키려 했습니다.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에 버금가는, 종교와 결탁된 법·정치적 질서가 있으면 수월했겠지만, 그것이 없었기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1강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