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 민주주의의 위기와 예외상태

: 데리다, 아감벤, 벤야민, 슈미트와 유령의 회귀

사토 요시유키(佐藤嘉幸)

 

* 원문 : http://www.jimbunshoin.co.jp/files/satoyoshiyuki_democracy.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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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리는 바야흐로 벤야민이 말하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각주:1] 속에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후 일본의 통치 시스템의 문제점(전원電源3법에 기초한 막대한 보조금과 맞바꿔서 원전을 지방에 떠넘기는 희생의 시스템’,[각주:2] 그리고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열도에 54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운영해온 핵에너지 정책의 취약성)을 노정시켰는데, 그 약점은 지진 후에 선전된 유대라는 이름의 내셔널리즘과, 중국한국러시아와의 영토문제라는 이름의 국경분쟁, 북한의 핵무장이 야기한 배외주의적 내셔널리즘에 의해 덮어 감춰지고, 외부의 적과 전쟁을 할 실재적 가능성으로 변환됐다. 그런 변환을 배경으로 하여, 20147, 2차 아베정권은 헌법해석을 변경함으로써 집단적 자위권, 나아가 집단안전보장의 행사도 가능케 하는 해석개헌을 실현했다. 해석 개헌에 의해, 평화헌법을 기초로 하는 입헌민주주의의 체제는 파괴되고, 대외전쟁을 가능케 하는 2의 구조물을 헌법의 곁에 둔다고 하는 예외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예외상태의 형성은 의회에서의 논의를 거친 입법 행위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는 게 아니라, 내각의 각의결정이라는 행정적 수단에 의해, 기존 헌법의 옆에 그것과는 다른 2의 구조물을 두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극히 위험한 행위이다. 그런 행위는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키는 위험을 품고 있다.

정치를 전쟁으로부터, 예외상태로부터 정의함으로써, 평화헌법을 기초로 삼은 입헌민주주의의 체제를 정지시키고, 거기에 완전히 다른 체제, 즉 대외전쟁을 가능케 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입헌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은 관동대지진이나 세계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 후에 식민지주의와 전시체제의 구축으로 치닫고, 15년 전쟁의 수렁에 빠진 전전(戰前)의 일본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의 상황은 마치 관동대지진 이후의 상황의 유령이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황 인식에서 출발해 본고에서 우리는 데리다와 아감벤의 슈미트 및 벤야민 해석을 독해하고, ‘예외상태에 관한 이들의 이론에 입각해 우리가 놓여 있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의 현황을 조사하려 시도한다.

 

1.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로서의 전쟁

데리다는 주권권력을 비판할 때 반드시 슈미트의 주권이론을 참조한다. 예를 들어 2004년 그가 사망한 탓에 마지막 강의가 되어 버린 짐승과 주권자2(2002-2003)에서 데리다는 주권자란 슈미트가 말하듯이 예외에 관해 결정하고 법권리를 중지하는, 예외적 권리를 지닌 예외적 존재이다[각주:3]라고 말한다. 그가 슈미트 이론을 가장 자세하게 분석한 저작은 우정의 정치(1994년 출판. 또 이 책은 1988-1989년 강의에 바탕을 뒀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우정의 정치를 자세하게 독해하고, 데리다의 슈미트 해석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과 전쟁의 관계에 관해 고찰하자.

정치신학(1922)의 슈미트에게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자[각주:4]이다. 이런 예외상태는 이 책보다 10년 뒤에 쓰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1932)[각주:5]에서는 친구와 적의 구별”, 전쟁으로서 나타난다. 데리다는 슈미트를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적 행위나 동기의 기본원인으로 생각되는 특종(特種) 정치적 구별(die spenzifisch politische Unterscheidung)이란 친구이라는 구별(die Unterscheidung von Freund und Feind)이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26/15).

만일 차이적 구별 혹은 각인(刻印, Unterscheidung), 정치적인 것의 규정이, ‘정치적 차이자체(die politische Unterscheidung)가 친구와 적 사이의 차별(Unterscheidung)로 귀착된다면, 그런 분리는 하나의 단순한 차이로는 환원되지 않는다. 이것은 한정된 대립, 대립 자체이다. 이 규정이 전제하는 것, 그것은 바로 대립이다. 이 대립이, 그것과 더불어 전쟁이 말소되면, ‘정치적이라 불리는 경계는, 그 경계 혹은 종차성을 잃어버린다.[각주:6]

 

친구와 적이라는 구별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의 정의인데, 이는 달리 말하면, 친구와 적의 대립이다. 그리고 이 대립이 함의하는 것은 다음에서 인용된 슈미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잠재성혹은 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 자체이다.

 

그 기대나 교육적 노력에 공명하든 하지 않든, 국민들은 친구-적의 대립을 따라 결속하는 것이며, 이 대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며, 또한 정치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실재적인 가능성으로서(als reale Möglichkeit) 주어져 있다는 것은 이치상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적이란 경쟁상대나 상대방 일반이 아니다. 또한 반감을 품고 증오하고 있는 사적인 상대방도 아니다. 적이란 다만 적어도 잠재적으로,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쟁하고 있는 인간의 총체 다른 마찬가지의 총체와 대결하고 있다 이다(Feind ist nur eine wenigstens eventuell, d. h. der realen Möglichkeit nach kämpfende Gesamtheit von Menschen. die einer ebensolchen Gesamtheit gegenübersteht)[정치적인 것의 개념, 29/18-19][각주:7]

 

데리다는 슈미트의 이 말을 해석하면서 적이란 다만 적어도 잠재적으로,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쟁하고 있는 인간의 총체이다라는 대목에 주목한다. “그것은 가능성에서 우발성(여기서는 최소한의 우발성으로서 종차화되어 있다)으로의, 그리고 우발성에서 현실성(여기서는 실재적 가능성, «reale Möglichkeit»이라고 불린다)으로의 이행이다[각주:8]고 데리다가 말하듯이, 여기서 슈미트는 적과의 항쟁, 즉 전쟁을, 적어도 잠재성, ‘실재적 가능성’, 나아가 현실성으로서 파악한다. , 정치적인 것은 슈미트에게서 잠재적 혹은 현실적 전쟁의 가능성에 있어서 파악되는 것이다.

이때 친구와 적의 대립이란 공적(公的)’이며, 국민을 단위로 하는 것이며, 적이란 사적인 적이 아니다. “적은 공적인 적일 수밖에 없다(nur der öffentliche Feind). 왜냐하면 이런 인간의 총체, 특히 전 국민에 관계하는 것은 모두 공적(公的)이게 되기 때문이다. 적이란 호스티스hostis[공적公敵]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이니미쿠스inimicus[사적私敵]가 아니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29/19).[각주:9] 그런 적과의 대립은 적이 내적(内敵)이라면 내란, 외적(外敵)이라면 전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런 공적인 대립은, 잠재성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 무력에 의한 전투를 의미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슈미트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현실성의 영역에서의, 어떤 전투의 우발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im Bereich des Realen ligende Eventualität eines Kampfes). 역사적 변화에 의존하는 무기와 전쟁의 기술의 일정하지 않는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이 말을 검토해야 한다. 전쟁은 조직화된 정치적 통일체 사이에서의 무력에 의한 전투이다. 내전이란 하나의 (하지만 이것에 의해 위태롭게 되는) 정치적 통일체의 한복판에서의 무력에 의한 전투이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3/25).

어떤 경우든 이 전투는 무력에 의한 것이다. 치사(致死)를 목표로 하는 것 말이다. ‘무기는 여기서 그 본질적인 개념에 있어서, 인간의 치사로서의, ‘신체적=물리적치사를 목표로 하는 수단(ein Mittel physischer Tötung von Menschen)이다. 인간의 죽음은 이 적의 개념에 의해 이렇게 함의[내포]되며, 즉 대외전쟁이든 내전이든 일체의 전쟁에 함의[내포]된다.[각주:10]

 

, 전쟁은 슈미트가 다음에서 말하듯이, 적의 신체적=물리적 치사를 목표로 한 무력에 의한 전투이다. “친구, , 전투 같은 개념은, 그 실재적인 의미를(ihren realen Sinn) 신체적 치사의 실재적 가능성에 대한(auf die reale Möglichkeit der physischen Tötung) 항상적인 관계로부터 끌어낸다. 전쟁은 적대로부터 생겨난다. 왜냐하면 적대는 다른 존재의 존재론적 부정(seinsmäßige Negierung eines anderen Seins)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은 적대의 극한적 실재화(die äußerste Realisierung der Feindschaft)일 뿐이다. 전쟁은 평범한 일상이나 정상적인 것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이상처럼, 혹은 원할 값어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필요가 없으나, 적의 개념이 그 의미를 보존하는 한,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현전하기를 계속하지(als reale Möglichkeit vorhanden bleiben) 않으면 안 된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3/25).[각주:11] 따라서 친구와 적의 대립, 즉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전쟁이라는, 적의 신체적 치사의 실재적 가능성에 대한 관계로부터, 그 실재적 의미를 끌어낸다. 그렇다면 슈미트는 단순한 사고 대상으로서의 전쟁으로부터가 아니라, 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쟁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게 된다. 슈미트에 따르면, 전쟁이 그런 구체성을 결여한 경우, 그 개념은 유령적인 추상이 된다.” “정치적 관계들의 본질이 주어지는 것은, 바로 이 구체적 대항(konkrete Gegensätzlichkeit)이 환기되는 경우이다. 모든 정치적 개념, 표상 및 말에는 어떤 항쟁적 의미가 있다. 이것들은 어떤 구체적인 항쟁(eine konkrete Gegensätzlichkeit)을 조준하고 있으며, 그 궁극적인 논리가 친구-적의 배치(그것은 전쟁 혹은 혁명이라는 형태 아래서 바깥에서 나타난다)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an eine konkrete Situation gebunden), 이런 상황이 부재하면, 그런 개념들, 표상 및 말들은 공허하고 유령적인 추상이 된다(werde zu leeren und gespenstischen Abstraktion)”(정치적인 것의 개념, 31/22).[각주:12] 그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쟁상태를 예외상태라고 명명할 수 있다. 실제로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라는 사태는 긴급사태(Ernstfall)’이다. 이 경우에도 다른 경우에도, 예외적 사태(Ausnahmefall)야말로 특별히 규정적인, 사물의 핵심을 분명히 하는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친구와 적의 정치적 배치의 극한적 귀결이 두드러지는 것은 현실적 전투에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극한적 가능성에서 출발해서 인간들의 삶은 특수 정치적인 긴장을 획득한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5/30).[각주:13] 데리다는 슈미트의 이 구절을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리라.

 

예외가 규칙이다, 이것이 아마도, 실재적 가능성의 이런 사유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예외가 일어나는 것의 규칙이다, 사건의 법이다, 그 실재적 가능성의 실재적 가능성이다. 사태 혹은 우발성에 관한 결단을 정초하는 것은 예외이다. 이 사태, 이 상황(diesser Fall)은 예외적인 방식으로만(nur aisnahmsweise) 도래한다. 그것은 그 결단적 성격을 중단시키지도 않고 지양시키지도 않고 무효화하지도 않는다(hebt nicht auf). 이 예외성이 반대로, 사건의 우발성을 정초짓는다(begründet). 어떤 사건이 사건이며,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예외적인 경우뿐이다. 그 자체로서의 사건은 예외적이다.[각주:14]

 

전쟁의 실재적 가능성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곧 예외상태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정치가 전쟁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규정할 때, 우리는 바야흐로 벤야민이 말한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속에 놓이게 된다. 이로부터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슈미트를 염두에 두면서, 전쟁이란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이다고 말할 것이다. “가장 극한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모든 정치적 개념의 기초에, 이 친구와 적의 구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이 구별이 윤리 사이에 실재적으로 현전하고 있는 한, 혹은 적어도 실재적으로 가능한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6/31).

 

세 가지 기준(실재성, 가능성, 현전)이 여기서는 같은 우발성의 핵심에서 얽히고설킨다. 사건의, 하나이자 동일한 사건성의 핵심에서. 친구/적의 배치는 어떻게 개시되는가? 어떻게 현전하는가? 이런 실재적 가능성은 현전하는가, 아니면 실현하는가, 가능적인 것으로서, 혹은 실재적인 것으로서. 이 실재성은 어떻게, 어떤 경우에는 현전을, 어떤 경우에는 가능성 자체를 강조하는가. 전쟁에 있어서이다. 극한으로서의, 전쟁상태의 극한적 경계로서의, ‘극한적 우발성’(als extreme Eventualität)으로서의 전쟁에 있어서다. 전쟁이 개시적인 것은 이 자격에 있어서다. 그것은 그 위에서 하나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을 구성한다. 정말로 그러하지만, 그 본질은 우선 비통상적인, 비경험적인, 어떤 목적론적인(téléologique)(극한적 경계로서의 텔로스[목적=귀결]) 의미에서 범례적이고 모범적인, 하나의 사실에서 곧바로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개시되는 실재적 가능성의 현전’(Vorhandenheit), 실재적 혹은 가능적인 이 현전은, 사실이나 사례의 현전이 아니다. 그것은 텔로스의 현전이다. 정치적 텔로스의, 이러저러한 정치적 목적의, 이러저러한 정책의 현전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 의 현전이다. ‘가장 극한적인(extremste)’ 정치적 수단으로서, 일체의 정치적 표상을 정초짓는전쟁은, 친구/적의 이 차별의 가능성을 현현한다(offenbart). 그리고 이 표상에 의미가 있는 것은, «sinnvoll»인 것은, 이 차별이 실재적으로 현전하고 있는’(real vorhanden) 한에서이며, 혹은 적어도 현실[실재]적으로 가능한(oder wenigstens real möglich) 한에서이다.[각주:15]

 

따라서 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이란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목적)이다.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란 친구/적의 구별, 친구-적의 항쟁이며, 그것은 전쟁이다. “전쟁에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어떤 정치도, 정치적인 유대로서의 어떤 사회적 유대도, 전쟁 없이는, 그 실재적 가능성 없이는 의미가 없다.”[각주:16] 달리 말하면, ‘예외상태에서는 어떤 정치이든, 어떤 정치적 유대이든, 전쟁의 실재적 가능성에 의해 정초지어진 것이다. 다음의 슈미트의 말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전쟁은 결코 정치의 목표, 목적, 내용이 아니며, 전쟁은 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사고하는 것을 특수한 방식으로 규정하며,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특수 정치적 행태를 산출하는,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상 현전하고 있는 저 전제(die als reale Möglichkeit immer vorhandene Voraissentzung)이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4-35/27).[각주:17] 여기서 슈미트는 전쟁은 정치적인 것의 전제라고 말하며, ‘목적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예외상태에서 전쟁은 바로 정치적인 것의 전제인 동시에 그 목적이며, 귀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 첫째, 친구/적 관계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은 절대적 적대로서의 전쟁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둘째, 적이란 적어도 잠재적으로,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쟁하고 있는 인간의 총체인데, 그것은 정치 시스템으로 통합 불가능한 내부의 적이기도 할 것이며(즉 내전), 다른 국민국가라는 외부의 적이기도 할 것이다(즉 대외전쟁).

셋째, 친구/적 관계, 즉 전쟁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이 정치의 전제’(슈미트), 정치의 텔로스’(목적)(데리다)가 되는 경우, 우리는 예외상태혹은 더 정확하게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상태화, 일상화]’ 속에 있게 된다. 우리는 제2차 아베정권의 해석개헌이 제시한 일련의 안전보장(‘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에 관한 논의를 계기로 하여, 바로 이런 예외상태의 규칙화[상태화, 일상화]’ 속에 놓여 있다.

 

2. ‘예외상태의 규칙화[상태화, 일상화]’법률의 힘

이제 다음으로 해석개헌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점에 관해 데리다와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관한 분석에 입각해 생각해보자.[각주:18]해석개헌이란 피구성적 권력(헌법에 의해 구성된 권력[pouvoir constitué])인 내각이 구성적 권력=헌법제정권력(헌법을 구성하는 권력[pouvoir constituant])임을 선언하지 않고, 즉 입법적 수단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각의결정[국무회의결정]이라는 행정적 수단에 의해 헌법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구성적 권력이란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내는 권력이며, 기존의 헌법 혹은 법체계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무한정한 권력이다. 반대로 피구성적 권력이란 기존의 헌법에 의해 구성된 권력이며, 이것에 의해 구속되는 한정된 권력이다. 이로부터 예외상태란 바로 헌법을 중지하고 그 곁에 헌법과는 다른 2의 구조물을 구축한다는 상태를 가리키게 된다.

달리 말하면, 예외상태란 피구성적 권력과 구성적 권력이 구별할 수 없게 된 상태를 지시한다. 이런 예외상태에 관해 해석하기 위해 데리다의 =법률의 힘(1994)[각주:19]을 참조하자. 우정의 정치에 관한 강의(1988-1989)와 같은 시기인 198910월에 카도조 로스쿨(뉴욕)에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되고 역시 우정의 정치와 같은 시기인 1994년에 출판된 =법률의 힘(따라서 우정의 정치=법률의 힘은 내용적으로도 극히 긴밀하게 연결되며,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있다)에서 데리다는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1921)를 매우 밀도 높게 독해하고 있다. 벤야민이 이 논문에서 법정립적 폭력[Rechtsetzende Gewalt]”(새로운 법체계를 정립하는 폭력=권력[Gewalt])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구성적 권력에 상당하며, “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Rechtserhaltende Gewalt]”(기존의 법체계에 의해 구속되고 그것을 유지하는 폭력=권력[Gewalt])라 부르는 것은 피구성적 권력에 상당한다.[각주:20] 데리다는 =법률의 힘에서 구성적 권력은 피구성적 권력에 의해 반복되고, 때로는 (예외상태에서는) 그것에 의해 대리된다고 말한다.

 

두 개의 폭력, 즉 법정립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을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하면서 벤야민은 어떤 때 다음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한 쪽의 폭력은 다른 쪽의 폭력과 그다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른바 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 폭력에 의해 때로 대리되고반드시 반복되는 이 말의 강한 의미에서 것이기 때문이다.[각주:21]

 

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 폭력에 의해 반복되고 대리된다. 실제로 벤야민은 폭력 비판을 위하여의 결론 부분에서 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 폭력에 있어서 대리된다(repräsentiert)’고 명확하게 말한다.[각주:22] 달리 말하면, 구성적 권력은 피구성적 권력에 의해 반복되고 대리된다. 이 단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벤야민이 제시하듯이, 그 폭력[법정립적 폭력]은 확실히 독해 가능하며, 더욱이 이해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폭력은 법권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폴레모스와 엘리스가 디케가 취하는 모든 형식이나 의미작용과 무관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폭력은 법권리 속에 있으며, 법권리를 중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법권리를 중단하고 다른 법권리를 창설한다. 법권리를 중지하는 이 순간, 이 에포케, 법권리를 창설하는 이 순간, 혹은 혁명적 순간은, 법권리 속에 있으며[있으면서도] 법권리가 아닌 심급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법권리의 전체 역사이기도 하다. 이 순간은 항상 생겨나고 있지만, 어떤 현전이라는 형태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법권리의 창설이, 공허 속에서, 혹은 심연 위에서 중지되어 있는 순간이며, 누구에게도, 그리고 누구 앞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수행적 행위(acte performatif)로 중지되어 있는 순간이다.[각주:23]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은 법권리 속에 있으며 법권리를 중단하고 중지하는 것, 달리 말하면 예외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법권리=입헌적 시스템을 정립한 후에도,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은 법유지적 폭력 혹은 피구성적 권력에 있어서 비현전적인 방식으로 (“이 순간은 항상 생겨나고 있으나 어떤 현전이라는 형태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반복되고 대리된다.’ 이로부터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벤야민의 명시적인 의도를 넘어서 내가 제출하려는 해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 법권리를 창설하는, 혹은 정립하는 폭력(Rechtsetzende Gewalt[법정립적 폭력])은 그것 자체, 법권리를 유지하는 폭력(Rechtserhaltende Gewalt[법유지적 폭력])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법정립적 폭력은 자기의 반복(répétition)을 요구하고 유지해야 할 것, 유지할 수 있는 것, 유산이나 전통이 될 것을 약속받고, 분유되는 것을 약속받는 것을 창설한다는 것, 이것은 법정립적 폭력의 구조에 속해 있는 것이다. 창설이란 약속이다. 모든 정립(Setzung)은 용인하고 앞에 둔다. 모든 정립은 놓고, 약속함으로써 정립한다. 그리고 설령 어떤 약속이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더라도, 반복 가능성(itérabilité), 창설의 가장 침입적인 순간에, 보호의 약속을 기입한다. 이처럼 반복 가능성은 원초적인 것의 중심에 반복의 가능성을 기입하는 것이다. 더 잘 말하면, 혹은 더 나쁘게 말하면, 반복 가능성은 이 반복 가능성의 법칙 속에 기입되며, 그 법칙 아래서, 혹은 그 법칙 앞에,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권리를 순수하게 창설하는, 혹은 정립할 정도의 작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순수한 법정립적 폭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순수한 법유지적 폭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립 작용이란 이미 반복 가능성이며, 자기를 유지하는 반복을 요구한다. 유지 작용도, 그것이 창설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또한 다시 창설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립 작용과 유지 작용 사이에는 엄밀한 대립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둘 사이의 차연적 오염이라고 내가 부르는 것(그리고 벤야민은 그렇게 명명하지 않는다)만이, 이것이 이끌 수 있는 모든 역설을 수반하여 존재한다.[각주:24]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은, 그것이 어떤 법체계를 정립하는 순간에, 따라서 어떤 입헌적 시스템을 창설하는 순간에, 스스로의 반복 가능성을 법권리의 구조 속에 기입한다. , 어떤 입헌적 시스템이 창설된 후에 그것을 유지하는, 법유지적 폭력 혹은 피구성적 권력에 있어서,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이 비현전적인 방식으로 반복되고 대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외상태에서 구성적 권력은, 피구성적 권력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행사한다. 그것은 법률이 아니지만 법률의 힘을 지닌 행정적 수단(예를 들어 정부명령, 행정명령 등)에 의해, 입헌적 수단을 매개하지 않고 법체계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법정립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 사이의, 구성적 권력과 피구성적 권력 사이의 이 양의성, 혹은 양자 사이의 차연적 오염, 데리다는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유령적(gespenstisch) 혼합체라고 부르고, “비열하고 천시해야 할 것이며,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한다.[각주:25] 데리다가 구성적 권력과 피구성적 권력의 양의성을 유령적이라고 부른 것은, 피구성적 권력에 있어서 구성적 권력이 반복되고 대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리성이 결코 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령성이란 어떤 신체가 그것 자체에 대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결코 현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래한다. 그 신체는 사라짐으로써 나타나며, 혹은 그것이 대리하고 있음에도 사라짐으로써 나타난다. , 그 신체는 자신과는 다른 것을 위해 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이처럼 두 개의 폭력 사이에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창설 작용과 유지 작용이 서로 오염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비열한 것이다.”[각주:26] 따라서 피구성적 권력이 구성적 권력을 반복하고 대리하면서도 구성적 권력임을 분명히 선언하지 않고 있는 사태는, 구성적 권력의 비현전성에 있어서 유령적이며, 그 때문에 극히 비열한 사태이다. 이런 사태가 제2차 아베정권이 행한 해석 개헌헌법 개정을 행하는 구성적 권력임을 선언하지 않고 각의결정이라는 행정적 조치에 의해 헌법을 실질적으로 개정해버리는 것 에 고스란히 들어맞는다는 것은 더 이상 덧붙일 필요도 없다.

이런 예외상태에 관해 더 나아가 고찰하기 위해 아감벤의 예외상태를 참조하자. 아감벤은 이 책에서 데리다의 =법률의 힘을 언급하면서, 이 텍스트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법률의 힘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관해 논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정적인 것은 기술적인 의미에서 법률의 힘(force-de-loi)’이라는 어구는 근대의 학설에서도 고대의 학설에서도 법률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권력이 몇 가지 경우에, 특히 예외상태에서 포고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듯한, 바로, 이른바 법률의 힘을 지닌 정부명령(décrets)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 법의 전문 용어로서의 법률의 힘이라는 개념은, 규범의 구속력(vis obligandi) 혹은 적용 가능성을 그 형식적 본질로부터 분리하고, 형식적으로는 법률이 아닌 정부명령이나 조치나 방책이 그대로 여전히 법률의 을 획득한다는 것을 정의하고 있다.[각주:27]

 

아감벤에 따르면, 법학에서 법률의 힘(force de loi)’이라는 개념은 법률 자체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예외상태에서 집행권력이 포고하는 정부명령, 행정명령 등의 행정적 수단을 의미한다. , ‘법률의 힘이란, 집행권력이 법률의 힘을 지닌 법률 이외의 수단(행정적 수단)에 의해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로 데리다가 =법률의 힘에서 말했던, 피구성적 권력이 구성적 권력을 대리한다는 것, 혹은 양자의 유령적 혼합체에 상당한다. 이로부터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외상태에 관해 논의하고 연구해 온 가운데, 우리는 집행 권력에 의한 법적 결정들과 입법권력에 의한 법적 결정들 사이의 이런 혼동의 수많은 예와 마주쳤다. 이런 혼동이야말로 이미 봤듯이, 예외상태의 본질적 성격의 하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예외상태에 고유한 능력은, 지금까지 너무도 강조되었던 권력들의 혼동에 있다기보다는 법률의 힘을 법률로부터 분리하는 데 있다. 그 고유한 능력은 한편으로 규범이 효력을 지니나 적용되지 못하고(‘을 지니지 못하고) 다른 한편으로 법률의 가치를 갖지 않는 행위들이 법률의 을 획득하는, ‘법률의 상태를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상시의 경우에 법률의 힘은 무규정의 요소로서 부유하는 것이며, 그것은 (위임독재로서 처신하는) 국가 당국에 의해서도, (주권독재로서 처신하는) 혁명조직에 의해서도 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예외상태란 법률 없는 법률의 힘(따라서 이것은 법률의 힘(force-de-loi)이라고 써야 할 것이다)이 관건이 되고 있는 아노미적 공간이다.[각주:28]

 

, ‘예외상태법률의 힘을 법률로부터 분리하고 법률의 가치를 갖지 않는 행위들(행정적 수단)법률의 힘을 획득하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통치권력이 기존의 법체계를 무화하고, 법률 없는 법률의 힘’(아감벤은 이것을 법률의 힘(force-de-loi)’이라고 고쳐 말한다)이 통치하는 무질서한 통치를 의미한다.

이로부터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독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법권리의 중지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외상태는 독재의 모델을 따라 권력의 완전함, 법이 충만한 상태[자주 예외상태를 특징짓는 말로서 사용되는 전권[pleins pouvoirs]’이라는 표현을 참조]로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법권리가 공허한 상태, 법권리의 공백과 중지로서 정의된다.”[각주:29] 예를 들어 슈미트는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와 같은 1921년에 출판된 독재론에서 예외상태를 위임독재주권독재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려 했다. ‘위임독재란 헌법 혹은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 혹은 법질서를 중지하는 것, 즉 피구성적 권력이 법권리를 중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주권독재란 기존의 헌법에 구속되지 않고, 새로운 헌법을 구성하는 권력, 즉 구성적 권력을 가리킨다.[각주:30] 이런 개념들은 예외상태에서의 통치의 두 가지 양상을 거의 정확하게 기술한다. 그렇지만 예외상태를 독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가령 독재자로 간주되는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법률적으로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총리였음을 간과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예외상태를 슈미트처럼 독재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합법적 헌법의 중지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 점에 관해 아감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공법학에서는 제1차 대전 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위기에서 생겨난 전체주의적 국가들을 독재라고 정의하는 것이 관습으로 정착됐다. 이리하여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프랑코도 스탈린도, 모두 한결같이 독재자로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무솔리니든 히틀러든 법기술적으로는 그들을 독재자라고 정의할 수 없다. 무솔리니는 국왕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임명된 총리였으며, 마찬가지로 히틀러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당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라이히의 재상이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든, 독일의 나치즘 체제든, 이것들을 특징짓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이것들이 현행의 헌법(각각 알베르토 헌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존속시킨 채로, 날카롭게도 이중국가라고 정의된 하나의 패러다임에 근거하며, 자주 법적으로는 정식화되지 않았으나 예외상태 덕분에 합법적 헌법과 나란히 존재할 수 있었던 두 번째의 구조물을 합법적인 헌법의 곁에 두었다는 것이다. 법학적 관점에서 이런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는 독재라는 용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게다가 오늘날 지배적이 되고 있는 통치 패러다임의 분석에 있어서도,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앙상한 대립도식은 길을 잘못 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각주:31]

 

현대적인 통치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에 관해 분석할 때, 예외상태를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버리면 오히려 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의 본질을 놓쳐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예외상태를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도식으로부터 분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합법적 헌법의 중지, 그리고 이것과는 다른 두 번째 구조물을 합법적 헌법의 옆에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예외상태에 의해 합법적 헌법을 중지하고 집행권력이 행정적 수단에 의해 입법권력을 대리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의한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 상태를 파괴하고,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붕괴를 귀결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전간기[양차대전 사이의] 독일에서의 바이마르 체제를 생각해보자. 당시의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헌법이라고 여겨진 바이마르 헌법은 그 48조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중지한다고도 형용해야 할 예외상태의 규정을 뒀다. 그 조문은 다음과 같다. “독일 제국 안에서 안전과 공공의 질서가 중대한 정도로 교란되거나 위협받은 경우에는, 라이히 대통령은 군대의 힘을 빌려서라도 안전과 공공의 질서의 재건에 필요한 수단을 취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해 라이히 대통령은 헌법 114, 115, 117, 123, 124, 153조에서 정해진 기본적 권리들을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중지할 수 있다.” 이 조항에 의거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대 내각은 250회 이상에 걸쳐 예외상태를 선언하고 긴급정부명령을 발포했다. 헌법 48는 수천 명의 공산당 활동가를 투옥하고 그들에게 극형을 내리기 위한 특별 법정을 설립하기 위해 이용된 동시에, 또한 많은 경우에는 독일 마르크의 하락에 대처하고 경제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도 이용됐다. 이런 예외상태의 사용은 정치적-군사적 긴급사태와 경제적 위기를 합치시키려 하는 현대의 경향에도 합치한다고 아감벤은 말한다(예를 들어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일본에서, 경제적-군사적 위기를 정치적 예외상태로 변환하는 통치수법 에너지=경제에서의 위기와 군사적 위기해석 개헌으로 변환하는 통치수법 을 참조하라).[각주:32] 더욱이 1930년대 이후, 독일은 항상적으로, 48조를 발동한 대통령 독재의 상태에 있으며, 최종적으로 1933, 나치 체제가 의회에서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키자, 바이마르 헌법은 그것이 존재한 채로 완전히 중지된다.[각주:33] 이처럼 바이마르 헌법 48조의 예외상태의 규정은, 바이마르 헌법이라는 당시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붕괴시키고, 전간기 독일의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일본으로 시점(視點)을 옮기고, 자민당의 헌법개정초안에 있는 긴급사태조항이 바이마르 헌법 48조와 완전히 같은 성질의 규정이라는 것에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조항을 아래에서 인용한다.

 

98(긴급사태의 선언) : 내각총리대신은 우리나라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의 자연재해, 기타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서,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를 통해 긴급사태를 선언할 수 있다.

99(긴급사태의 선언의 효과) : 긴급사태가 선언됐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내각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정부명령을 제정할 수 있는 것 외에, 내각총리대신은 재정상 필요한 지출, 기타 처분을 행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

3 : 긴급사태가 선언됐을 경우에는, 누구라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선언과 관련된 사태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조치에 관해서 발포되는 지역, 기타 공공기관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제14, 18, 19, 21, 기타 기본적 인권에 관한 규정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조항들이 긴급사태’(=예외상태)에 있어서 내각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정부명령을 제정할 수 있다”(‘법률의 힘혹은 법률의 힘에 의한 통치를 가능케 할 수 있는)고 한 다음, “긴급사태가 선언됐을 경우에는, 누구라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선언과 관련된 사태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조치에 관해서 발포되는 지역, 기타 공공기관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우리는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조문에서는, 그 후에 기본적 인권에 관한 규정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자민당 헌법초안을 보충하는 Q&A에는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이라는 커다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이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보다 작은 인권이 어쩔 수 없이 제한될 수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긴급사태에서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이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이라는 커다란 인권을 지키기 위해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각주:34]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예외상태규정을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헌법을 무화하는 헌법개정(현행 헌법에 대한 긴급사태 조항의 부가도 포함한)을 절대로 거부해야 한다.

그렇지만 법률의 힘에 의한 기존 헌법의 중지라는 통치 수법은 이런 긴급사태조항에 의하지 않더라도, 이미 해석 개헌이라는 수법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외상태는 더는 예외적 조치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통치기술로서 항상 등장하게 됐을 뿐 아니라, 법질서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이라는 그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다.”[각주:35] 아감벤이 벤야민을 참조하면서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라고 형언하는 것은 예외상태”(법체계를 중단, 정지시키고 그것과는 다른 구축물을 그 곁에 두는 것)시큐리티(security)’(넓은 의미에서의 안전뿐 아니라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안전보장도 의미하는)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고, 일반적인 통치에서의 통치기술로서 받아들여지고 행사되는 것이다. ‘예외상태의 유령은 전전(戰前)과 같은 형태로는 회귀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번째에는 모습을 바꾸며, 시큐리티 확보라는 미명 아래서의 법체계의 중지 혹은 법률의 힘으로서, 일반적인 통치기술로서 회귀한다. ‘해석 개헌[각주:36]이 출현시키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는 기존 헌법의 곁에 그것과는 다른 구축물을 두고, 행정적 수단에 의해 헌법을 공백으로 만듦으로써[헌법에 공백을 창출함으로써] 입헌 민주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붕괴를 귀결시킬 뿐인, 극히 위험한 통치기술인 것이다.

 

 

  1. Walter Benjamin,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in Gesammelte Schriften, Bd. I-2, Suhrkamp, 1999, S.697. “비억압자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규칙[常態]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Die Tradition der Unterdrückten belehrt uns darüber, daß der »Ausnahmezustand«, im dem wir leben, die Regel ist].” [옮긴이] 일본어로는 예외상태의 ‘상태화’로 표기되었으나 사전적 의미에는 ‘규칙화’가 가장 충실하지만, 일상적인 의미를 담아내려면 이를 ‘일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법과의 관계라는 측면이 지워져버릴 위험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규칙화[일상화, 상태화]’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2. 다음을 참조. 高橋哲哉, 『犠牲のシステム──福島・沖縄』, 集英社新書, 2012년. [본문으로]
  3. Jacques Derrida, Séminaire La bête et le souverain. Volume II (2003-2004), Galilée 2010, p.30. [본문으로]
  4.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Duncker & Humblot, 1922, 8. Auflage, 2004, S.13. [본문으로]
  5.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Duncker & Humblot, 1932, 3. Auflage, 1963. 본서에서 인용할 때에는, 데리다의 슈미트 해석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독일어 원서를 참조하면서도 주로 『우정의 정치』에서 데리다가 한 프랑스어 번역본에서 인용했다. 출전은 본문 속에 독일어 원서를 표기한다. [본문으로]
  6. Jacques Derrida, Politiques de l’amitié, Galilée, 1994, p.104. [본문으로]
  7. 다음에서 인용. Ibid., p.105. [본문으로]
  8. Ibid., p.105. [본문으로]
  9. 다음에서 인용. Ibid., p.108. [옮긴이] 공적과 사적의 희랍어는 각각 ‘polemios’과 ‘echthros’이다. [본문으로]
  10. Ibid., pp.142-143. [본문으로]
  11. 다음에서 인용. Ibid., p.147. [본문으로]
  12. 다음에서 인용. Ibid., pp.138-139. [본문으로]
  13. 다음에서 부분적으로 인용. Ibid., p.152. [본문으로]
  14. Ibid., p.156. [본문으로]
  15. Ibid., p.155. [본문으로]
  16. Ibid., p.156. [본문으로]
  17. Ibid., p.149. [본문으로]
  18. 우리는 데리다와 아감벤의 ‘예외상태’ 개념에 관해, 상이한 관점에서 논한 적이 있다. 『新自由主義と権力──ブーコーから現在性の哲学へ』人文書院, 2009년, 第三章 「主権権力の強化と例外状態の常態化」[사토 요시유키, 3장. 「주권권력의 강화와 예외상태의 일상화」, 『신자유주의와 권력』, 김상운 옮김, 후마니타스, 2014]를 참조. [본문으로]
  19. Jacques Derrida, Force de loi, Galilée, 1994. 본서의 제목은 『법의 힘』으로 정착되어 있으나, 본고에서는 «force de loi»라는 법학적 개념을 “법률의 힘”으로 번역할 필요 때문에, 본서의 제목을 『법의 힘=법률의 힘』으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20. 우리는 다음의 데리다의 지적에 의거하면서, Gewalt라는 단어를 폭력=권력으로 번역하고, 법정립적 폭력을 구성적 권력과, 법유지적 폭력을 피구성적 권력과 거의 동등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Gewalt란 ‘폭력’이지만, 또한 ‘정당한 힘(force légitime)’, 즉 권위지어진=인가된 폭력(violence autorisée), 합법적 권력(pouvoir légal)이기도 하다. Staatsgewalt, 즉 국가권력이라는 표현할 때가 이것에 해당된다”(Ibid., p.74). [본문으로]
  21. Ibid., pp.69-70. [본문으로]
  22.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Gesammelte Schriften, Bd. II-1, Suhrkamp, 1999, S.129. “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은 반드시 그 지속의 과정에서, 제반 적대하는 대항폭력을 억압하는 것을 통해, 자신에게 있어서 대리되는(repräsentiert) 법정립적 폭력도, 자신으로부터 간접적인 방식으로 약화시켜 버린다.” [본문으로]
  23. Jacques Derrida, Force de loi, p.89. [본문으로]
  24. Ibid., pp.93-94. [본문으로]
  25. 데리다가 들고 있는 것은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좇아 근대 경찰의 예이다. “한계의 부재라는 성격을 근대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감시와 단속의 테크놀로지 ― 그것은 이미 1921년에는, 섬뜩한 방식으로 공사(公私)의 생활 전체와 서로 포개지고, 그것에 신들리게 됐다(오늘날 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관해 우리는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 뿐이 아니다. 이 성격을 근대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또한 경찰이란 국가라는 것, 경찰이란 국가의 유령이며, 경찰을 강력하게 비난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의 질서에 선전포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찰은 오늘날에는 법률을 힘에 의해 적용하는(enforce) 것만으로는, 따라서 법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법률을 발명하고, 행정 명령(ordonnance)을 공표하고 법적 상황이 명백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 개입하고 시큐리티를 보증하려 하기 때문이다. 법적 상황이 확실하지 않을 때란, 오늘날에는 거의 항상 있는 것이다. 경찰은 법률의 힘(force de loi)이며, 법률의 힘을 지닌다. 경찰이 비열한 것은, 그 권위에 있어서, ‘법정립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 사이의 분리가 중지되기(혹은 지양되기[aufgehoben])’ 때문이다. 이 지양(Aufhebung)이라는, 경찰 자체가 의미하는 것에 있어서, 경찰은 법을 발명하고 스스로를 «rechtsetzende»인 것, 즉 입법하는 것으로 만든다. 경찰은 법권리에 미확정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법권리를 부당하게 찬탈한다. 설령 경찰이 법률을 발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대에서의 입법자의 하나로서 ― 현대의 [유일한] 입법자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 행동한다. 경찰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즉 어디서나, 그리고 바로 여기서도, 이제 두 개의 폭력, 즉 법유지적 폭력과 법정립적 폭력을 구별지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양의성이 비열하고 천시해야 할 것이며, 언어도단인 것이다”(Ibid., pp.102-103). 다음도 참조.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Gesammelte Schriften, Bd, II-1, S.189. [본문으로]
  26. Jacques Derrida, Force de loi, p.102. [본문으로]
  27.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Seuil, 2003, pp.66-67. [본문으로]
  28. Ibid., pp.67-68. [옮긴이] 원래 ‘법률’에 X표를 해야 하나, 프로그램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 표기했다. [본문으로]
  29. Ibid., p.82. [본문으로]
  30. Carl Schmitt, Die Diktatur, Duncker & Humblot, 1921, 7, Auflage, 2006, S.133-134. [본문으로]
  31.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p.82. [본문으로]
  32. 이런 경제적-군사적 ‘위기’의 정치적 ‘예외상태’로의 변환을 배경으로 하여 제2차 아베정권은 경제계로부터의 요망에 부응해, 무기수출의 원칙적 금지를 정했던 “무기 수출의 3원칙”을 폐지하여 “방위 장비 이전 3원칙”(‘방위 장비’라는 익숙하게 들은 말은 ‘무기’를 바꿔 말한 것)을 각의에서 결정하고, 무기수출을 해금했다. 그것은 군사적 ‘위기’를, 군수산업의 수출 확대(그것은 원전의 수출 확대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같은 재벌계 기업이 그 주체이기 때문이다)에 의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극복으로 변환하는 시도이다. ‘해석 개헌’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시도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수산업이 동원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집단적 자위권 집단적 안전보장이 해금된다는 군사-자본주의적 논리에는 특단의 유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 점에 관해서 히로세 준 씨의 트위터에서의 발언(http://twitter.com/flux_de_merde/status/496847829445259264)에서 시사를 얻었다. [본문으로]
  33.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pp.30-32. [본문으로]
  34. 현행 헌법과 자민당 헌법초안을 비교하고, 후자의 문제점을 자세하게 해설한 아래의 사이트의 서술은, 극히 유익하다. 「자민당 헌법초안의 조문 해설」 http://satlaws.web.fc2.com/92html. 또한 「일본국 헌법개정초안 Q&A」는 다음에서 관람 가능. http://www.jimin.jp/policy/pamphlet/pdf/kenpou_qa.pdf. [본문으로]
  35.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p.18. [본문으로]
  36. 마지막으로 ‘해석 개헌’의 헌법 해석(데리다적 의미에서의 ‘텍스트 해석’)의 문제에 관해 데리다의 사상에 의거하면서 부연하고 싶다. 진부해진 탈구축 개념의 설명으로서, 텍스트 해석은 원본의 문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따라서 반드시 역사적 문맥에 의해 규정될 필요는 없다고 하는 변종이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전혀 데리다적이지 않으며, 그런 극단적인 ‘텍스트주의’가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도 부담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설명은 데리다의 사상을 완전히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사실적인 헌법해석으로서, 1972년의 정부 견해(「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사이의 관계에 관한 정부 자료」)에 기반을 두고 “안전보장환경의 변화”를 따라 집단적 자위권과 집단적 안전보장의 행사를 인정한다는 제2차 아베정권이 행한 해석은, 1972년의 정부견해가 집단적 자위권의 보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행사는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결론짓고 있는 이상, 완전히 파탄 났다. 더욱이 철학적인 문맥에서는, 데리다 자신이 『법=법률의 힘』에서 “탈구축은 정의이다”라고 단언함으로써, 탈구축이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모종의 ‘정의’, 즉 급진민주주의(‘도래할 민주주의’)의 이념에 다가서는 것임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평화주의, 즉 전쟁의 기피는 바로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의 이념에 따른 것이다. 또한 이 점에 관해, 히로세 준과의 개인적인 대화로부터 시사를 얻었음을 밝히고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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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과 정상성

― 예외상태 속의 사법과 범죄통제

* ≪現代思想≫, 2008년 10월호 / 오오다케 코우지(大竹弘二)

* sanggels@gmail.com, 2009년 1월 16일.(초역인지라 때가 되면 손을 볼 예정임. 참고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자료집(?)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다고 인터넷 검색결과는 보여주는데, 입수한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떤 죄에 어떠한 처벌을 내릴 것인가의 결정은 항상 곤란한 일이다. 이것은 일반시민이든 직업법률가이든 마찬가지이다. “눈에는 눈을”이라는 태고 이래의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리를 따를 경우, 어떤 죄에 대해 어떤 벌을 내리면 똑같이[等價] 갚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여기에는 겉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곤란이 포함되어 있다. 저지른 죄로부터 곧바로 이와 등가의 벌을 자동적으로 연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량의 결정은 본질적으로 어려움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처벌은 저지른 죄에 대한 결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그 때문에, 내려져야 할 처벌은 그것에 선행하는 죄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을 뿐이며, 그것 이외의 것에 의해서는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죄와 벌 사이의 이러한 필연적 연계가 꼭 자명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처벌이 응보원리를 근원으로 한 법적 범주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처벌이란 단순히 법적용으로 재단될 수는 없으며, 법의 이론으로부터 자립된 사회적 실천의 분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죄에 대한 처벌의 존재방식에는 법 영역을 넘어선 사회적인 관계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 게오르그 뤼세와 오토 키르히하이머의 고전적 저작 ≪처벌과 사회구조≫(1939)이다. 이른바 “범죄와 처벌 사이에 있다고 상정되고 있는 균열”은 “차단되어야만 한다.”1) 그들에게 처벌의 실천은 결코 법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시대마다의 경제적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된 구체적인 사회제도로 고찰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1975)이었다. 이 저작을 필두로 하여 푸코의 70년대 연구는 감옥에서 정신의학에 이르는 범죄자 처우의 방법이 결코 법제도적인 문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규율훈육권력이 만들어낸 사회관계의 테크놀로지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 속에서, 예를 들어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18/19세기의 처벌제도가 생성기의 자본주의적 권력과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가를 규명했으며,2) 앤드류 스칼 역시 구금화나 탈구금화라는 그때마다의 처벌실천의 양태는 경제사회구조의 변용에 대응한 국가 전략의 문제였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3) 보다 최근에는 사회학자 데이비드 갤런드가 이미 뒤르켐, 파쉬카니스, 뤼세=키르히하이머 등에 의해 선구적으로 제기되었던 처벌에 관한 사회적 분석에 주목하고, 자신도 푸코의 주제를 이어받아 자유주의에서 복지국가에 이르는 19/20세기의 통치구조의 변화에 따른 처벌 전략의 변천을 추적했다.

단순한 법해석기술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처벌은 법의 논리만으로는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질서 그 자체의 ‘정상화’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벌에서는 질서의 ‘정상성’(normality, Normalität)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이다. 칼 슈미트는 법질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것에 선행하여 “정상적인(normal) 상태”가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4) 법만으로 질서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 지켜져야 할 ‘정상적인’ 질서란 어떠한 상태인가가 확정되지 않으면, 법은 그때마다 자의적인 해석 속에서 운용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것은 질서가 법이 아닌 정상성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귀결이다. 이것은 슈미트에 한정되지 않고, 19세기 말 이래의 체자레 롬브로조Cesare Lombroso나 엔리코 페리 등 신파형법학의 사회방위론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던 것이기도 했다. 형법의 임무는 저지른 처벌에 대한 응보보다도 죄를 범한 자를 사회적 정상성에 적합하게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기에서는 어떠한 인물이나 상태가 사회적으로 정상이라고 간주되는가가 처벌의 존재방식을 좌우하게 된다. 정상성에 관한 결정이 법을 적용하는 작업에 선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에 기초를 두고 처벌을 내리는 경우에도, 거기에는 항상 법 이상의 것이 전제되어 있다. 법과 처벌을 통해 유지되어야 할 정상적 질서란 단순한 법학적 문제를 뛰어넘은 일정한 사회적 합의에 속하는 사태이다. “법에 따른” 판결이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수용될 수 있는 판결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일반적으로 질서의 정상적인 상태로 간주되고 있는가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사법에는 법률가의 전문적 판결에 머물지 않고, 일반 시민의 ‘건전한 사회상식’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나오게 된다. 그렇지만 ‘정상성이라는 것’이 사법판결을 신뢰할 수 있는 기준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정상적인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법을 지킨다는 것과 괴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예외상태의 문제이다. 법과 질서의 관계는 사실상 상극(相剋)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다시 물을 때, 사법과정에 일반시민이 관여한다는 것[국민배심원제도]의 의미도 분명해질 것이다.


1. 합법성과 구체적인 질서 ― 나치의 예외상태

오토 키르히하이머는 1920년대 후반의 베를린에서 교수를 맡았던 슈미트 아래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나 나치 정권이 성립함에 따라 미국으로 망명하여 거기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연구소에 참여한 경력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일반적으로는 ‘좌익 슈미트주의자’로 불리는 사상가이다. 그와 사회학자 게오르그 뤼세가 공저하여 사회연구소의 연구성과로 39년에 출판된 ≪처벌과 사회구조≫5)는 70년대 이래, 처벌과 권력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 비판적 연구자에 의해 재발견되기에 이르렀다.6) 이 책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보다 앞서, 처벌이 법적 체계의 외부에서 일어난 고유한 권력 테크놀로지라는 것을 보여준 선구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맑스주의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이 처벌사 연구에는 처벌을 결코 순수 법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된 실천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관철되어 있다. 이미 30년대 전반부터 동일한 연구를 해 왔던 뤼세는 호르크하이머가 편집하여 33년에 발행된 ≪사회연구잡지≫ 창간호에 「노동시장과 행형(行刑)」에 관한 논문을 게재하고, 벌금형, 신체형, 자유형(징역․금고) 등의 행형 제도의 변천이 각 시대의 경제구조 하에서 필요하다고 간주된 노동력의 수급관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7)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처벌과 사회구조≫는 각 시대의 처벌제도가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과 관련되어 있는가를 추적한 것이다.

뤼세=키르히하이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볼 때, 범죄자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가는 처벌통제라는 동기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각 시대의 노동시장의 상황과 상관되어 있는데, 도시로의 인구유입으로 인해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과잉된 근대 초기에는 잔혹형이, 식민지 확대의 시기에는 선상(船上)이나 식민지에서의 노동력 확보의 필요성 때문에 갤리선 노역이나 유배형이 채택되었으며, 중상주의 시대가 되자 범죄자나 빈민을 국내의 산업진흥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근대적인 감옥의 초기형태인 ‘교정원’(the House of Correction)에서 노역을 통해 교정을 하는 방식이 출현했다. 이리하여 18세기 계몽기에는 잔혹형이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주로 경제적 동기에 의해 규정된 것이며, 베카리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19세기 산업혁명이 빈민층의 확대와 더불어 범죄율의 증가를 초래하게 되자, 이번에는 범죄자를 노동력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주로 고통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감옥으로의 구금형이 일반화한다. 그 때문에 뤼세=키르히하이머에게 각 시대마다 채택된 형사정책은 경제사회적 하부구조와 관련지어 관찰되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이 저작에는 동시대의 나치 형법을 분석한 장(章)도 포함되어 있다. 키르히하이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그 장에서 그는 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친 나치의 일련의 법질서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나치 형법의 특질을 법과 도덕의 고전적 구별이 해소되는 것에서 찾고 있다.8) 나치 정권 하에서 형법의 이러한 변질을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 35년의 형법개정에 의한 신제2안(新第2案)이다. 이른바 “형벌법규의 기본 사상 및 건전한 민족감정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한 자는 처벌된다. 그 행위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형벌규정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그 행위는 이것에 대한 가장 적당한 기본 사상을 지닌 법규에 의해 처벌된다.” 이것은 “법률 없이 형벌 없다”(nulla poena sine lege)라는 근대형법원리의 폐기이며, 형법학자도 자주 언급했던 “죄형법정주의의 해소”9)에 다름 아니다. 이제는 법률을 위반한 행위가 처벌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위는, 설령 그것을 금지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건전한 민족감정”에 걸맞지 않다고 간주되면 처벌된다. ‘건전한 민족감정’이라는 직접적으로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 전(前)-법학적 개념이 성문화된 법률을 대체한다. 이것은 이미 키르히하이머가 바이마르 말기에 진단했던 ‘2단계 합법성(zweistufige Legaltät)’의 징후라고 말해도 좋다. 즉, ‘건전한 민족감정’이 통상의 합법성 체계의 상위에 선 ‘초합법성’(Superlegalität)(프랑스의 법학자 모리스 오리우Maurice-Jean-Claude-Eugène Hauriou10)의 용어) 또는 ‘정상성’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키르히하이머가 ‘2단계 합법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했던 것은 32년의 논문 ≪합법성과 정통성≫에서이다. 이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29년의 세계대공황이 수반한 정치적․사회적 혼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그 유명한 헌법 제48조에 기초한 대통령 긴급명령이 빈번하게 이용되었다. 입법 권력을 초월한 강력한 법운용의 권한을 집행 권력이 행사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키르히하이머는 이제 행정관료기구가 통상적인 합법성 체계보다 우월한 ‘초합법성’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긴급명령권 ― 및 입법부와 정부의 통일 ― 은 합법성 특유의 본질, 즉 법률을 기준으로 한 행정의 심사에 어떠한 여지도 인정하지 않는 영속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버렸다.”11) 키르히하이머가 보기에 행정, 사법의 테크노크라트는 위기의 항상화와 더불어 그 재량을 점점 더 막대하게 만들면서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 체계를 침식하고 있었다. ‘초합법성’이란 이른바, 법률의 운용을 통해 해당 법률을 공동화(空洞化)한 심급에 불과했으며, 이리하여 입법권에서 연원한 합법성을 자신에게 종속시켜 버렸다. 키르히하이머가 ‘2단계 합법성’이라는 진단을 통해 밝히고자 한 것은 법질서의 안정성이 추구되는 가운데 일찍이 법을 희생양으로 삼은 질서 원리가 강화된다는 논리이다.

바이마르 말기의 슈미트도 이와 마찬가지로 법의 도구화․기능화에 대해 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키르히하이머의 논문 직후에 발표된 같은 제목의 저작 ≪합법성과 정통성≫(1932)에서 단순한 중립적 도구로 되어 버린 자유주의적 법체계가 질서의 ‘정상성’ 유지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종을 울렸다. 즉, 법규범의 전제인 질서의 ‘정상성’을 놓치게 되면, 법은 제반 당파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해 정치에 이용하는 전술적 무기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중립화된 합법성은 그 운용을 수중에 넣은 세력에 의해 ‘합법적으로’ 공동화되며, 나아가 전복될 수밖에 없다. 슈미트는 나치 정권 성립 후인 34년의 저작 ≪법학적 사고의 세 종류≫에서, 법규범은 “정상적인 상황이나 정상적인 유형”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12) 그리고 이른바 ‘구체적 질서 사상’을 명시적으로 내세웠던 저작에서는 법규범의 전제인 ‘정상성’이 ‘구체적 질서’로 치환되어 언급된다. 실정법을 초월한 질서원리를 인정하지 않는 법실증주의가 일찍이 법운용을 결단주의적 자의에 맡겨버리는 것에 반하여, 구체적 질서에 근거한 법체계야말로 법적 안정성을 지킬 수 있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슈미트에게 이러한 구체적 질서를 체현한 것이 다름 아니라 나치 체제이다. 그렇지만 키르히하이머가 보기에, 확실히 이러한 ‘구체적 질서 사상’ 속에서 법의 자의적인 도구화가 완전히 실현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법운용을 안정화하기 위한 질서 원리의 추구가 일찍이 법의 지배를 실질적으로 폐지하는데 이르렀다는 역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나치 시기의 슈미트가 적대시했던 것은 법실증주의를 특징으로 내세운 19세기 이래의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였는데, 이 때 특히 ‘법률 없이 형벌 없다’라는 ‘죄형법정주의’에 공격의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형식주의적 원칙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거기에는 법운용의 ‘정상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실질적인 정의(正義)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의 극복으로서의 ‘나치 국가’가 ‘정의의 국가’라고 언명한다.13) 그리고 그는 자유주의적인 죄형법정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정의의 원리’를 대치시킨다. 즉, ‘형벌 없이 범죄 없다.’(nullum crimen sine peona)14) 이 원리에 따르면, 범죄란 이제 단순히 실정화된 법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 오히려 실질적인 정의의 내용을 이루는 구체적 질서에 대한 침해로 규정된다. 슈미트는 구체적 질서 사상에 기초한 이러한 ‘정의의 원리’를 나치에 의한 공산당 탄압의 구실이 된 1933년 2월의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의 재판 당시 강하게 내세웠다. 같은 해 3월,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공산당원 마리누스 판 데어 루페15)에게 소급적으로 사형을 적용하기 위한 법률(이른바 ‘판 데아 룻베법’)이 제정되었을 때, 나치 독일에는 국내외로부터의 적지 않은 비난이 퍼부어졌는데, 슈미트는 이러한 사후법(事後法)을 단순한 실정법을 넘어선 구체적․실질적 질서 원리의 침해에 대한 처벌이라며 정당화한다.

그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저 법률위반자에게만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형식적으로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더라도 구체적 질서의 정상성을 위협한다고 간주된다면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제 법질서를 안정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오로지 구체적 질서를 정상으로 지키는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부터 귀결되는 것은 합법성의 공동화에 다름 아니다. 키르히하이머가 슈미트의 구체적 질서 사상에서 보았던 나치의 법질서는 결국 합법성의 도구화, 기능화라는 바이마르공화국 말기 이래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그리하여 결국 법은 자립성을 잃고 자의적인 나치적 세계관에 종속되게 된다. 슈미트가 구체적 질서에 착안한 법적 안정성의 확립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나치 체제를 키르히하이머는 합법성 체계의 전면적 해체를 대가로 한 질서의 안정화 추구라며 비난했다.

나치의 법질서는 자유주의적 합법성 체계를 ‘건전한 민족감정’ 따위의 애매한 도덕적 가치개념으로 양도함으로써, 법의 해석과 운용에 있어서 자의가 작동할 여지를 확대시켰다. 이로부터 생겨난 것은 무제한의 재량을 허용받은 행정집행권력에 의한 법의 도구화이다. 이리하여 키르히하이머는, 나치 체제에서는 사법이 ‘행정관료제’에, 형법이 ‘행정기술’로 전화한다는 진단을 내리게 된다.16) 달리 말하면, 법은 이제 그 자체로서 준수되어야 할 규범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이른바 ‘기술적 합리성’으로 해소되어 버린다.17) 그리고 나치 체제를 독점 자본주의의 가장 발달한 형태로 파악한 키르히하이머에게 이러한 나치 법질서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경제구조의 ‘정상성’의 유지에 다름 아니다. 행정관료기구는 여려 경제적 권력 집단과의 결탁 하에서 법을 무한히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고 부르주아 지배의 안정화에만 관심을 두는 강력한 사회간섭 국가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리하여 나치에 있어서는 법이 그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의 안정화의 도구가 된다는 이해는, 키르히하이머뿐만 아니라, 같은 독일에서 망명한 후에 사회연구소에 가담하여 고전적 나치분석 ≪비히모스≫(1942)를 저술한 좌파 슈미트주의의 프란츠 노이만, 나아가 잉게보르크 마우스나 포르카 노이만 등 근래의 좌익 슈미트주의자들도 공유하고 있으며, 이 경우 슈미트의 ‘구체적 질서 사상’ 역시 ‘부르주아적 안정성’의 추구를 목표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18) 이러한 안정성 요구가 충족되는 것은 일반적 법률보다 우위에 있는 집행권력의 행정명령 또는 ‘조치’에 의해서이다. 이리하여 행정집행권력의 무제한적 확대는 이른바 법운용이 법을 초월한다고, 혹은 법현실이 해당 법규범을 초월한다고 슈미트가 정의한 의미에서의 ‘예외상태’로 불릴 수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때문에 좌파 슈미트 이론가들은 나치 체제 및 ‘구체적 질서 사상’을 ‘예외상태의 상태화(常態化)’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19) 그들에게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질서의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통상의 법규범을 뛰어넘어 법의 중지 상태가 영속화하는 체제에 다름 아니다.

법은 자기 자신이 전제로 삼는 정상성에 의해 뛰어넘어지게 된다. 여기에서는 법 그 자체에 내재하는 법의 침범가능성이 법과 정상성 사이의 긴장관계로써 나타난다. 법이 그 자체만으로 질서를 구성할 수는 없으며 질서 그 자체의 정상화에 관한 실천의 계기를 불가피하게 수반한다고 한다면, 그러한 긴장관계를 법으로부터 일소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이것은 1900년 전후의 이른바 ‘형법학파의 논쟁’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안젤름 포이에르바하가 내세웠던 자유주의적 고전파 형법학(이른바 구파)이 실증과학적 담론에 기초한 사회방위론(이른바 신파)으로부터의 도전을 받았던 이 형법논쟁에는 법학과 제반 사회적인 정당화 권력과의 상극이 계기로 되어 나타났다. 정상화의 실천이 법을 추월한다는 나치적 예외상태는 이미 19세기 말 이래 문제가 되어 왔던 것의 급진적인 귀결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2. 정상화에 의한 사회방위 ― 형법학파의 싸움과 통치 패러다임의 변용

형법학자 안제름 포이에르바흐(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의 아버지)에 와서 확립되었다고 간주되는 근대 형법학의 최고 성과는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에 있다.20) 그 현저한 표현인 “법률 없이 범죄 없다.”(nulla poena sine lege)라는 라틴어 정식은 1801년에 초판이 간행되고 이후 1847년까지 14회에 걸쳐 판을 거듭한 그의 저작 ≪독일 보통 형법 개요≫에서 처음 나타났다.21) 이것은 일반적으로 동세대의 형법학자 칼 그롤만Karl Wilhelm Georg von Grolmann에 의한 절대주의적인 ‘경찰(폴리차이)국가’ 사상에 대항하여 제기된 ‘법치국가’ 사상의 출현으로 간주된다.22) 그롤만에 따르면, 형법의 본질은 그 구체적인 집행에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의 행형을 통해 범죄자에게 영향을 주고, 다시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며(이른바 ‘특별예방’), 법률에 어떠한 처벌규정이 포함되어 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확실히 여기에는 국가의 본질을 법질서보다는 행정통치에서 찾아내는 18세기 절대주의의 폴리차이(내무행정=경찰) 사상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포이에르바흐가 비판한 것은 그롤만의 이러한 형법이론이 정부든 재판관이든 행형을 결정하는 심급이 자의가 작동할 여지를 산출해 버린다는 점이다. 포이에르바흐에 따르면, 범죄와 그것에 대응하는 처벌이란 미리 법률에 의해 정해져야만 하며, 그 위협효과에 의해, 범죄가 현재 행해지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 형법의 역할이라는 것이다.(이른바 ‘일반 예방’.)

그 때문에 포이에르바흐는 범죄통제를 법의 운용에서가 아니라 법 그 자체의 수준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범죄나 처벌을 순전히 법률상의 개념으로서 규정하고자 한 법중심적 패러다임이 고전적 근대형법학의 특징을 이룩한 바 있다. 그것이 전제로 한 것은 자유로운 이성적 존재자라는 칸트적 인간이해이다. 즉, 법질서는 원리적으로 자유로운 의지를 지닌 인간들의 계약으로 간주되는 것이며, 그 때문에 법을 침해한 자는 자유의지에 기초하여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처벌된다. 이른바 모든 인간은 법적인 계약 주체로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승인된다는 계몽주의적인 인간이해가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의 형법의 기초인 것이다. (원래 포이에르바흐 자신은 칸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만, 법적 위협에 의한 범죄 억지라는 ‘심리강제설’을 채택함으로써, 인간의 행위란 불쾌․유쾌의 공리적 판단에 의해 인과적으로 규정된다는 심리주의도 따르고 있다.) 범죄나 처벌이 이성적 계약으로써의 법을 척도로 하여 규정되게 되었다는 점에,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의 승리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후의 형법학사의 전개는, 결코 포이에르바흐적인 ‘법치국가’ 이념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게 된다. 말하자면, 형법의 본질을 실제의 집행에서 찾는 그롤만의 ‘경찰(폴리치아)국가’적으로도 보였던 사상은, 19세기 말에 새로이 대두된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 등의 신파형법학 속에서 부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23) 신파에게 중요했던 것은, 법을 배타적인 기준으로 삼아 처벌을 내리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범죄원인의 근절을 목표로 한 사회정책적인 조치에 다름 아니었다. 형법은 범죄원인의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롬브로조, 페리Enrico Ferri, 라파엘레 가로팔로Raffael Garofalo 등 이탈리아의 실증주의적 신파의 운동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리스트는 1882년의 유명한 마르부르크 대학취임강연 ≪형법에서의 목적 사상≫(이른바 ‘마르부르크 강령’)에서, 처벌은 단순한 ‘응보형’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인 ‘목적형’이어야만 한다고 언명한다. 즉,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형벌은 단순히 죄를 저지른 자를 책임능력이 있는 자유로운 행위주체로서 처벌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야기한 사회적 조건을 대상으로 삼은 정책과학이 일정한 역할을 맡도록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형벌이 법익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한다는 효과를, 과학적 정확함으로 결정하려고 생각한다면, 범죄를 사회적 현상으로 연구하고, 형벌을 사회적 기능으로 연구해야만 한다.”24) 범죄는 더 이상 단순한 법학상의 개념이 아니라 형사․사회정책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 특정한 사회적 원인에서 유래한다고 간주된다. 과거의 법률중심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 때문에, 1889년에는 리스트가 벨기에의 형법학자 아돌프 프린스 등과 더불어 ‘국제형사학 협회’를 설립하고, (페리가 사용하기 시작한, 프린스가 정착시킨 용어로 말하는 바의) ‘사회방위’를 표어로 삼고, 사회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 형사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파형법학의 중심 거점이 된다. 이리하여 구파와 신파 사이에서 형법학사상 유명한 ‘형법학파의 논쟁’이 생기게 된다.25)

구파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파의 사회방위론의 차이를 단적으로 말하면, 법개념으로써의 범죄로부터,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에 대한 대처로 그 중점이 바뀌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26) 구파의 법중심적 패러다임 하에서 개별 인간은 책임능력이 있는 자유로운 추상적 주체로 간주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 경우 법이 침해되면 생기는 ‘범죄’가 있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범죄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신파의 경우에는 특정한 원인에 의해 범죄로까지 이른 구체적 인간으로서의 ‘범죄자’야말로 중요하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누구든 책임능력이 있는 주체로서 대등하게 처벌이 내려진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구파에 대해, 신파는 각각의 범죄자의 개별 사례에 입각하여 대처방안을 강구하는 ‘처벌의 개별화’indivisualisation를 특징으로 한다. ‘사회방위’라고 말할 경우의 ‘사회’는 법을 기초로 삼는 개인주의적 시민사회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19세기 말에는 단순한 법학 영역을 넘어서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을 연구하는 ‘범죄학’(criminology)이 탄생하게 된다. 롬브로조C. Lombroso의 경우 이것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초하여 ‘범죄인’uomo delinquente을 유형화하려는 시도로 귀착되는 반면, 페리나 리스트가 요구한 것은 범죄자를 낳는 사회학적 배경에 대한 해명, 또한 그것을 고치기 위한 형사정책에 다름 아니다. 1899년의 베를린 대학취임강연에서 리스트는 이렇게 정식화한다. “범죄는 행위의 순간에 행위자의 특성으로부터 생기는 산물이며, 그 순간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 관계의 산물이다.”27) 따라서 이 신파형법학에서 사회방위란 일반적 법규범에 기초한 처벌보다는 개별 범죄자의 특성에 따라 특별 예방적 조치를 정하는 형사정책, 그리고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제거하는 사회정책에 의해서야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신파의 사회방위론에 대해 구파형법학자들은 이것이 형법 그 자체를 무용하게 하는 논의라고 비판을 하게 되었다. 구파의 칼 폰 비르크마이어가 리스트에 대한 반박서 ≪리스트는 형법에 무엇을 남기는가≫(1909)에서 말하듯이, 그렇게 되면 법학이 사회정책의 실천으로 대체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확실히 신파형법학은 범죄에 대해 처벌을 할 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교정이나 치료를 위한 ‘보안처분’을 새로운 법률개념으로 도입했다고 하는 형법학에 기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 뿌리를 지닌 범죄원인의 근절이 근본 목적이라면, 사회방위론은 이미 일어난 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에 머물지 않고, 사회정책에 의한 범죄의 예방에서 그것의 결정적인 의미를 찾게 된다. 그 때문에 이 사회방위론에 기초한 형법은 원리적으로 생각하면, “궁극적으로 ‘형법’이기를 그친다”.28)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법의 지배가 아니라 제반 실증과학에 기초를 둔 사회방어의 실천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러한 도식은 두 파의 대립을 극단적인 형태로 노정한 것이며, 현대 형법학 체계의 기본 패러다임은, 구파와 신파의 타협 때문에 성립될 수 있었다.29) 그러나 이 ‘형법학파의 논쟁’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일어난 사법적 권력 그 자체의 지위의 근본적 변질이 표현되고 있다. 즉, 이 역사적 시기에서 법을 대신하여 사회의 ‘정상성’이 질서의 안정성의 기준으로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사회방위론에서 문제로 되었던 것은 단순히 법을 침해하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정상으로 간주되는 유형에 합치하지 않는 자, ‘비정상인’ 자이다. 사회방위론이 추구한 형사․사회정책은 범죄자에 머물지 않고 ‘비정상인들’의 교정도 목표로 삼은 것이며, 그 때문에 어떠한 인간이나 사회가 정상인가의 결정이 법을 넘어선 기준으로서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사법적 권력의 지위의 침식을 초래한 것이다. 법학을 대신하여 새롭게 힘을 지닌 것은 어떤 전문적 앎을 지닌 실증과학의 테크노크라트이다. 질서의 유지가 정상성의 유지를 의미하게 된다면, 사법은 이제 법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이 때 사법은 생물학, 의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여러 가지 실증과학적 담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는 20세기의 사법에서 ‘정신감정’이 맡게 되었던 역할을 거론하며, 그것이 범죄성의 기준으로서, 법률에 의해 규정된 위반행위에 덧붙여, 생물학적, 심리학적, 도덕적으로 일탈한 존재양식을 도입하는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정신감정의 역할로서 본질적인 것, 그것은 처벌권력을 위법행위와는 다른 것에 적용한다는 것을, 과학적 인식이라는 형태 하에서 정상당하는 것이다.”30) 푸코는 이것을 사법적 권력을 대신한 ‘정상화’norminalisation의 기술 또는 ‘정상화의 권력’의 출현으로 진단한다. 사법은 이제 정상화를 위한 제반 실증과학적 기술에의 의존을 강화시켜 나간다. 이른바 ‘정상화의 절차가 점점 더 법의 절차를 식민지화’해 가는 ‘정상화 사회’의 출현이다.31)

인간이나 사회의 정상적인 유형은 사법 판단의 기초를 이룰 뿐만 아니라, 지속되어야 할 질서 그 자체의 본질로서 실체화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성을 기준으로 한 사회방위의 사상은 통상적인 법규범의 틀을 넘어선 실천을 요구하게 되기도 한다. 법률 그 자체가 아니라 형사․사회정책을 통해 수행되는 정상화가 문제로 될 때에는, 위법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실정법규는 부차적인 중요성밖에는 갖지 않는다. 신파형법학이 근본적으로는 죄형법정주의와 어긋나게 된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게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에서 구파의 타키가와 유키토키(瀧川幸辰)와 신파의 마키노 에이이치(牧野英一) 사이에서 보여진 형법학상의 대립은 그 일례를 제공한다. 마키노 에이이치는 사회방위론의 입장에서 처벌의 이념을 ‘교육’에서 찾는 ‘문화국의 이념’(이것은 법학자 요제프 코라의 말을 빌린 것이다)을 제기하고, 종래의 ‘법치국의 이념’과 더불어 죄형법정주의까지도 극복할 것을 주장하지만,32) 타키가와 유키토키가 보기에 행형의 이러한 패러다임적 확장은 근대 법치국가 하에서 획득된 개인의 권리의 보장을 폐기할 위험을 품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니었다.33) 이 차이가 더욱 현저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나치가 1935년의 형법개정에서 수행한 죄형법정주의의 해소에 대한 양자의 평가에서이다. 이것은 나치적 권위국가에 의한 인권 무시의 증거라며 비판하는 타키가와 유키토키에 반하여,34) 마키노 에이이치는 (전후의 형법교과서에서도) 그러한 죄형법정주의나 그것에 수반되는 유추금지원칙을 재검토함으로써 이해를 보여준다. “우리들이 보면, 나치 독일의 형법 신제2조는 형법에 대한 해석의 방법으로서, 우리가 다년간 주장해 왔던 바를 문명에 출현시켰을 뿐이며, 그러므로 견해에 따르면, 우리 판례 및 현재의 프랑스의 판례 등의 현실에서 실행되어 왔던 것이다. … 즉, 위의 규정[형법신제2조]은 한편으로는 건전한 국민감상[건전한 민족감정]을 기초로 하며, (이것은 우리 판례의 용어를 따른다면 <사회의 통념>이라는 것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성립되어 있는 법규의 기초 관념을 궁리해 내고, 이렇게 하여 형법의 운용을 진척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35) 실정법규를 뛰어넘어 사회방위의 확장을 요구하는 신파가 보기에 나치 하에서 행해진 형법의 변질에는 인정해야 할 점도 있었던 셈이다.36)

이러한 사실은 결코 신파형법학이 나치적인 형법사상과 필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치 형법은 구파의 영향을 받은 가열찬 응과응보사상을 특징으로 삼았다.) 확실히 사회정책을 통한 범죄통제를 강조했던 사회주의자 페리가 파시즘으로 전향하고, 그의 1921년의 형법초안이 파시즘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범죄법정주의를 철폐한 전체주의 국가인 소련의 26년 형법전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다.37) 그렇지만 오히려 보다 주시해야 할 문제는, 자유주의적 법치국가 원리를 해체하고자 한 이러한 법체계가 신파형법학의 등장이 그 징후였던 19세기 말 이래의 통치 패러다임의 전환의 지평 위에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에 다름 아니다. 즉, 통치에 있어서 법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대신, 정당성을 기준으로 삼아 법의 운용을 결정하는 전문기술적인 실천의 지배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비대화한 집행권력에 의한 통상의 법규범의 폐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약간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나치 체제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법치국가’에 대한 ‘경찰국가’의 역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전환과 더불어 정상화권력이 사법권력의 지평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70년대의 푸코가 사법절차로의 규율훈련권력의 침투로 간주하고 있는 이 상황을, 사회학자 데이비드 갤런드는 ‘처벌복지주의’라고 부른다.38) 사후적인 처벌보다는 교정․예방․교육을 중시한 신파형법학의 등장은 자유주의 국가의 ‘자유방임’laissez-faire으로부터 사회복지국가적 간섭주의로의 역사적 이행에 대응했던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갤런드의 저작 ≪처벌과 복지≫(1985)는 확실히 푸코의 분석을 토대로, 19세기 말의 복지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범죄통제가 ‘법적인 금지 또는 처벌의 형태들’로부터 ‘정상화라는 새로운 양태’로 변화하는 경위를 그리고 있다.39) 이것에 의해 처벌의 전제로 간주된 개인은 책임이 있는 자유로운 개인으로부터 사회적․생물학적으로 비정상으로 간주된 개인으로, 바꿔 말하면 ‘법적 주체’로부터 ‘수정, 재적응, 사회복귀, 교정 등에 관한 기술과 앎에 있어서의 객체’로 바뀐다.40) 이와 더불어 범죄자의 처벌은 ‘법학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행정관리적’인 기술상의 전략 문제로 된다.41)

이리하여 정상성을 판단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간주된 테크노크라트들이 사법의 장에 등장한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범죄학과 병리학의 결합으로,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의사, 교육자,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자Social Power 등의 전문가가 범죄자를 정상화하는 사회방위의 실천에서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범죄자의 처우에 관한 결정은 어떤 사람이든 내릴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게 된다. 어쩌면 프랑스 혁명 이래 채용되어 왔던 배심제도의 폐지론이 19세기 말부터 나오게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동등하게 이성을 갖춘 자유로운 주체라는 계몽주의의 고전적 전제가 상실됨으로써 신파형법학에서는 사법판단을 테크노크라시적인 결정에 위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되었다.42) 푸코식으로 말하면, ‘진리’의 언표가 ‘정의’의 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해 온, 이른바 ‘초합법성’으로서 사법판단을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렀다.43) 이리하여 ‘처벌복지주의’ 하에서 ‘법률 없이 범죄 없다’ 및 ‘범죄 없이 처벌 없다’ 등의 고전적 원칙은 ‘진찰 없이 치료 없다’ 혹은 ‘전문적 조언 없이 형벌 없다’의 원칙으로 대체된다.44)

이상과 같은 법에서 정상성으로의 통치구조의 전환을 키르히하이머 등의 좌익 슈미트주의자는 슈미트의 예외상태론의 급진적 귀결로 간주하고, 그것이 나치 체제 속에서 현저하게 되었다고 파악했지만, 푸코나 갤런드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그 시기에 일어났던 통치 패러다임의 변용의 본질적 표현으로 위치지지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상성에 의한 법의 치환이 19세기 말에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인 것도, 나치 체제에만 고유한 현상인 것도 아니다. 법과 정상성 사이의 긴장관계는 모든 법질서가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동일한 문제는 전후 독일의 맥락에서도 다시 한 번, 특히 70년대 위기의 시대에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3. 위기 시대의 법과 질서 ― 전후 독일을 범형으로 삼아

전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은 그 건국 당시부터 단순히 법의 준수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이것의 기초인 질서의 정상성의 보호를 향하여 동기부여 되었다. 그것은 전전(戰前)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중립화된 형식적 합법성이 나치에 의한 합법적 권력 획득에 대해 무기력했다는 역사적 경위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법질서가 완전히 합법적인 절차를 따라 전복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헌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근본가치’ 그 자체를 무효로 하려는 헌법 개정을 막기 위한 ‘헌법의 파수꾼’이라는 슈미트적인 과제가 1948년부터 1949년에 걸쳐 헌법에 상당하는 독일의 기본법이 기초(起草)될 때 다시 문제로 되었다. 이것은 나치의 합법적 혁명에 대한 반성 때문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격렬한 독서대립의 한 복판에서 서구적 민주주의 나라들 속에서 공산주의의 합법적 세력 확장을 배제한다는 관심에 의해 규정된 것이기도 했다. 합법성의 문을 빠져 나갔던 헌법의 적에게서 헌법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전후 서독의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리하여 전후 독일은 자주 그 법적․정치적 실천 속에서, 자신을 이른바 ‘싸우는 민주주의’로서 자인하게 된다. 만일 형식적으로는 헌법을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 가치’ 또는 정상성을 위협한다고 간주된 자에 대해서는 헌법상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정상성 또는 ‘근본가치’의 핵심은 기본법 21조에 의해 규정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에 있다고 간주된다. (이것은 이윽고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비판하는 좌파계 논자들에 의해 ‘FDGO’라는 생략형으로 야유받게 된다.) 법적 안정성의 확보는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초합법성’으로서 기능하는 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의 보호로 집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상적 질서가 위협받고 있는가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의 파수꾼’ 역할은, 49년에 제정된 기본법에서는, 칼스루에Karlsruhe에 설치된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탁된다. 52년 10월에는 나치의 흐름을 조직한 극우정당․사회주의제국당(SRP)에 대해 활동금지판결을 내리는 등, 그 당초에는 ‘헌법의 파수꾼’으로서의 신뢰에 값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헌법재판소였으나, 전후에는 당세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이미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있던 독일공산당(KPD)에 대해 56년 8월에 내려진 활동금지판결은 키르히하이머가 말한 ‘정치적 사법’을 의심하게 하는 것으로서 적지 않게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로 표현된 질서의 정상성의 이러한 정치적 성격은 60/70년대의 반체제 운동을 거치는 와중에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60년대 독일의 학생이나 노동자에 의한 ‘저항운동’은 유사법제정비를 위한 비상사태법이 직접적인 구실이 되어 일어났다. 볼프강 아벤트로트,45)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46) 한스 엔첸스베르거47) 등의 반체제파는 ‘민주주의의 비상사태’를 표어로 비상사태법제에 저항했지만, 이 저항운동의 격화와 더불어 이번에는 체제 측에서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의 위기가 선전되게 되었다. 그리고 68년 5월 비상사태법안이 가결되고, 70년대 초의 ‘독일적군파’(RAF)에 의한 테러 횡행과 더불어 시대의 분위기가 ‘흐름의 전환’(Tendenzwende)으로도 불린 보수화로 기우는 가운데, 정부는 비상사태의 법제화를 더욱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유사법제정비의 중점은 60년대의 논의 속에서 상정되었던 대외적 위기에 대한 대처로부터 ‘대내적 안전’의 유지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것은 비상사태에서의 안전과 질서의 확보를 위한 방책이, 보다 일상적 수준으로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 전형이 72년 1월의 ‘과격파 조령’이다. 그 비판자들에 의해 ‘직업금지’라고 불린 이 조치는 ‘헌법에 적대적’이라고 판단된 자가 공직에 취임하는 것을 금지하고, 모든 공무원에게 ‘기본법의 의미에서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어느 때든 옹호’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했다.48) 명목상 모든 과격파가 대상이 된 이 조령(條令)은 사실상 압도적으로 좌파세력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특히 교육현장에서, 학생운동 참여를 이유로 교직채용을 거부당한 자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된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도 75년 5월 판결에서, 과격파 조령의 정당성을 확인한다. “국가가 … 자유롭고 민주적인 법치국가적․사회국가적 기본질서를 거부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도 한 지원자를 국가공무원으로서 인정하여 그러한 시민을 국가공무원으로 남겨두는” 것은 “싸우는 민주주의”라는 “헌법의 기본결단” 때문에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49)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초합법성”이 헌법상의 권리보장을 뛰어넘은 것이다.

70년대의 이러한 우경화를 초래했던 사회적 위기는, 단순히 좌익 테러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브레튼 우즈 체제의 해체와 석유위기에 의한 전후의 고도경제성장의 종언이다. 이러한 후기자본주의의 위기에 의해 사회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통치의 중심은 단순한 합법성의 수준으로부터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사회적 안정성의 확보로 이행하게 된다. 실정적 합법성의 준수 대신에, 그러한 합법성의 기초로 간주된 근본가치의 보호가 전면화된 것이다. 좌익 슈미트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법학자 울리히 K. 프로이스는, 70년대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기본가치가 일상적 수준에서 남용되는 것 속에서 ‘합법성’과 ‘기본질서’라는 두 수준이 키르히하이머가 말한 ‘2단계 합법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징후를 간파했다.50) 즉,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라는 ‘전투적인 실존적 가치결단’과 ‘실정적 헌법률’의 병존이다.51) 전자는 이른바 비상사태에서 후자를 중지시키더라도 준수되어야 할 실체화된 가치질서이다. 이것은, 통상의 법률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행기관의 유연한 운용에 맡겨진 ‘조치’에 의해 확보된다. 그리고 질서의 위기가 일상적이라고 인정되었던 70년대의 정세 속에서, 비상사태에 의해 제한된 대내적 안전의 확보도, “예방적인”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일상화하고 “초합법성”으로서의 ‘기본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에 의해 헌법의 ‘합법성’은 공동화(空洞化)되며, 질서의 ‘정상성’의 확립이 통치실천을 직접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맑스주의 정치학자 요하임 히르쉬는 이러한 70년대의 상황에서, “권위주의적으로 경직된 안전국가[Sticherheitsstaat]를 향한 국가의 기능전환”52)의 징후를 보았다. 그는 확실히 동시기의 푸코에 의한 통치성의 전환에 관한 진단을 토대로, 그 본질이 일상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정상화의 권력에 있음을 간파했다. “정상화 사회의 윤리에는 과거의 법치국가적 규범이나 절차 원칙이 서서히 공동화(空洞化)되어 간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정치적 예외상태는 정상화 사회에 있어서의 정상성의 분위기를 풍기면서, 이 사회에서는 국가제도의 위헌행위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상적인 사례가 된다.”53) 이러한 사회에서 문제거리는 법률에 기초한 정의-부정의보다는 정상성이라는 관점에서 본 경우에 ‘안전의 위험’으로 될 수 있는가와 같은 ‘일탈자’이다.54) 각자의 행위가 정상인가 여부는 그것의 법적합성과는 관계가 없다. 합법적으로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질서가 정상을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화의 실천은 법권리의 “분명히 합법적이나, 그러나 명확하게 기능에 반하는 이용”55)을 저지하기 위해 행해진다. 안전은 위법행위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미리 비정상적인 편차를 올바르게 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상성이라는 무장에 의한 예외상태의 예방”56)에 다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법률의 준수가 아니라 정상으로 간주된 사회상태에의 적합이다.

프로이스는 어떤 공무원 지원자의 임관을 과격파 조령에 기초하여 거부한 상급행정재판소의 다음과 같은 판결을 인용한다. “독일연방공화국은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거꾸로, 기본법의 자유로운 질서를 위해 투쟁하기 위해 기본권의 남용을 감수하지 않는 민주주의이다. 그것은 오히려 시민에게 이 질서의 보호를 기대하고, 이 기본질서의 적에 관해서는 설령 이 적이 형식상은 합법성의 틀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용하지 않는 민주주의이다.”(강조는 인용자.)57) 여기에서는 질서의 정상성에 적합한가 아닌가는 합법성을 따르는가 아닌가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된다. 모든 사람은 법을 준수하든 아니든,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로 표현된 사회적 정상성의 잠재적인 <교란자>, 나아가 동시에 잠재적인 <헌법의 적>”58)으로서, 정상화를 위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여기에서는 정상화의 실천이 법을 추월하여, 합법성을 공동화하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른바 예외상태의 영속화이다. 나치 체제 속에서 두드러졌던 슈미트의 예외상태론의 급진적 귀결은 이처럼 70년대에 다시 표면화되었다. 마우스나 프로이스 등의 좌파이론가가 이 시기에 슈미트에게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확실히 이러한 시대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외상태와 정상성이란 그 첫인상과는 정반대로 결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예외상태에서는 통상의 법규범의 특성 위에, 정상성이 직접적인 통치원리로서 출현하게 된다.

법에 대한 정상성의 이러한 돌출은 70년대의 위기의 시대가 되자, 독일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에서 공통의 현상으로 보여지게 된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코엔은 72년의 유명한 저작 ≪포크 데빌즈와 모랄 패닉≫에서 <포크 데빌즈>라는 명칭으로 요약할 수 있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사회적 일탈자들의 이미지(청년문화, 빈곤층, 他인종)이 매스미디어 등의 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범죄통제가 오로지 그들에 대한 도덕적 분격/격노, 이른바 ‘모랄 패닉’으로 나타나게 된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동일한 분석은 스튜어트 홀을 소장으로 한 버밍검 대학 현대문화연구센터(CCCS)가 행한 공동연구 프로젝트의 보고 ≪위기를 단속하기≫(1978)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연구에서 70년대 전반의 영국에서 ‘노상강도mugging’라 불리며 화제가 되었던 범죄현상의 분석으로부터 범죄는 더 이상 단순한 위법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정상성으로부터의 일탈로 간주되었다고 진단한다. “범죄는 ― 이 이데올로기(‘영국식 삶의 방식english way of life’)를 통해 ― ‘악’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 ‘악’은 ‘영국다움’이라는 정상성의 반면(反面)이며, 만일 이를 간과한다면 정상성이라는 안정된 질서를 부패하게 만들 것이다.”59) 범죄의 단속 기준은 법률이 아니라 사회의 합의로서 통용되는 정상성이 된다. 그것에 의해 자연법으로부터의 독립에 기초한 근대법은 “신고전주의적 수정”을 겪게 된다. 즉, “범죄와 악의 연결, ‘법률’과 사람들의 전통적․관습적인 ‘존재방식’의 결합, 일탈에 대한 제재로서의 처벌이라는 관념”을 통해 법에 고유한 영역은 일상적 수준에서의 정상화의 실천에 의해 침식되게 된다.60) 일탈자에 대한 이런 종류의 도덕적 십자군의 분위기는 전통적 가치들의 회복을 염원한 신보수주의의 대두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80년대의 대처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70년대에 등장한 이안 테일러Ian Tayler나 조크 영Jock Young 등의 “새로운 범죄학”(급진적 범죄학)은 분명히 이러한 동향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었으며, 코엔이나 갤런드 등의 범죄 연구 역시 정상성의 이데올로기적 작용과 그에 기초한 종래의 범죄학을 겨냥한 이른바 “반범죄학”의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61)


4. 정상화의 사법, 정통화의 사법

자주 지적되는 것에 따르면, 19세기 말 이래의 사회복지국가적인 범죄통치의 실천은 70년대 무렵부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형법신파의 사회방위론에 의해 지지되어 왔던 교정주의의 위기이다. “nothing works(아무런 효과도 없다)”라는 표어로 제시되듯이, 다양한 전문 스탭이나 갱생시설에 의한 범죄자의 사회복귀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인간의 개선을 목표로 한 ‘형벌복지’적 이념 자체가 의문시되게 되었다.62) 70년대의 사회복지국가로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에 대응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이 변화에 따라, 국가는 교정이라는 복지주의적 임무로부터 물러나게 된다.

그 대신에 등장한 것은 코엔이 ‘신행동주의’라고 불렀던, 새로운 범죄 통제의 실천이다. 이것이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전구파처럼 법적 개념으로서의 범죄도, 신파의 사회방위론처럼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범죄자도 아니다. 거기에서는 오히려 어떤 환경에서 일정한 확률로 불가피하게 산출될 수 있는 우연적 편차로서의 ‘범죄의 사건’63)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때 범죄통제의 주된 실천은 범죄발생 확률이 최소화되게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규정하는 환경 디자인에서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설계와도 무관하게 출현한 범죄자는, 단지 응보적 처벌의 대상으로서만 간주되었다. 이와 더불어 일반시민의 도덕 감정 등 사회적 정상성의 관념도, 그 기능의 변화를 겪게 된다. 즉, 그것은 범죄자를 교정하기 위한 기준이라기보다는 엄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기준이 된다.

근래에 범죄의 ‘피해자’가 점점 더 사회적 위력presence을 증대시켜 왔다는 것은 징후적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의 범죄학자 한스 폰 헨티그Hans von Hentig가 1948년에 그 저서에서 “피해자학”(victimology)을 제창한 이래, 특히 60년대부터는 범죄피해자의 권리회복운동이나 피해자 지원조직이 각국에서 확대된다.64) 이러한 피해자의 전경화는 전적으로 범죄 또는 범죄자와 그 처벌의 관계로부터만 성립되었던 종래의 국가의 법체계의 변질을 함의한다. 이전의 법체계에서는 거의 무시되어 왔던 피해자의 권리가 범죄자의 권리와 나란히, 또는 그 이상으로 중시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사법의 장에서도, 피해자의 권리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었으며, 이것이 하나의 진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오늘날 예로 제시되는 ‘피해자’란 주로 현실의 피해자와는 무관하게 구성된 피해자의 ‘정치화된 이미지’에 불과하다.65)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스테레오타입화된 피해자의 이미지가 산출되고, 범죄자에 대한 일반시민의 도덕적 분개를 대서특필하는 ‘피해자 감정’이 강조되고 있다. 이 경우 자주 전제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제로섬’ 관계에 다름 아니다.66) 즉, 가해자의 인권존중은 피해자에 대한 모멸(侮蔑)이며, 거꾸로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는 엄벌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어떤 속죄를 구하는가는 개별 사례마다 다양하고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 응보감정뿐이다. 피해자의 지위향상은 때때로 피해자의 이미지의 이러한 포퓰리즘적 동원으로 슬쩍 바꿔치기 된다. 이때 피해자는 그저 범죄자나 일탈자에 대한 일반시민의 도덕적 반발을 재확인하고 강화하기 위해 예로 거론될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시민의 이른바 ‘건전한 사회상식’에 대해 전문가가 품고 있는 염려를 확인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포퓰리즘에 대한 염려가 있다고 해서, 사법을 완전히 법률전문가나 전문과학들의 전문가expert에게 맡겨버리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또한 고유의 방식으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문적 기술이나 앎을 통해 사법판결의 기준으로 된 정상성을 확립할 것이다. 어쩌면 사법에 대한 국민참여에 관한 진정한 문제의 소재는 일반시민의 상식이냐 사법 테크노크라트의 전문적 앎이냐로 통상 이해되고 있는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국민감정”에 기초를 둔 것이든, 테크노크라시적으로 정해진 것이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어떤 사회적 정상성의 관념 그 자체이다. 사법의 과정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정상적 사회상태가 유지될 수 있는 판결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상성 그 자체의 반성적 검증을 포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반성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은 질서의 ‘정상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통성’이다. 법질서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한다면, 자주 이데올로기화의 작용을 지닌 ‘정상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리상 만인이 대등하게 행동할 수 있는 기존의 정상성에 대한 이의제기를 내재시킨 반성적 결정과정으로서의 ‘정통화’에 의해서이다. 사법의 임무는 단순한 법적 안정성의 유지나 사회적 정상성의 재확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법의 결정도 공개성에 의한 검증에 기초를 둔 정통화 과정이라는 성격을 불가피하게 띨 수밖에 없으며, 시민의 사법참여의 의의는 이 점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끝)



1) Georg Rusche/Otto Kirchheimer, Punishment and Social Structure, New York, 1939, p. 5.


2) Michael Ignatieff, A Just Measure of Pain, London, 1978.


3) Andrew Scull, Decarceration, Englewood Cliffs 1977: Museums of Madness, New York 1979.


4) 칼 슈미트, ≪정치신학≫


5) 이 경위에 관해서는 마틴 제이, ≪변증법적 상상력≫ 참조.


6) 예를 들어 David Garland, “The Political Economy of Punishment : Rusche and Kirchheimer and the Marxist Tradition,” in Punishment and Modern Society, Chicago, 1990, pp. 83-110.


7) Georg Rusche, “Arbeitmarkt und Strafvollzug,” in : Zeitschrift für Sozialforschung, 2(1933). S. 71 이하.


8) Georg Rusche/Otto Kirchheimer, Punishment and Social Structure, New York, 1939, pp. 179-180; Otto Kirchheimer, “Criminal Law in National Socialist Germany,” in William E. Scheuerman, (ed.), The Rule of Law under Siege, Berkeley 1996, pp. 173-4; Otto Kirchheimer, “The legal Order of National Socialism,” in Politics, Law and Social Change, New York/London, 1969, p. 88.


9) 牧野英一, 「罪刑法定主義の解消」, ≪刑法硏究≫, 제6권, 1939년, 90쪽 이하.


10) 옮긴이 ― “국가를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체로 정의하는 제도론적 국가론을 주장했다. 사기업과 사유재산에 대한 ‘개인주의적 규제’를 옹호했으며, 부당한 행정적 조처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입안했다.”(엠파스 사전에서 복제)


11) Otto Kirchheimer, “Legalität und Legitimität,” in: ders., Politische Herrschaft, Frankfurt a. M. 1967, S. 13.


12) 칼 슈미트, 「법학적 사유의 세 종류」, ***


13) Carl Schmitt, “Neue Leisätze für die Rechtspraxis,” in : Juristische Wochenschrift, 62(1933), S. 2794.


14) 칼 슈미트, 「나치즘과 법치국가」, ****


15) http://ko.wikipedia.org/wiki/ 에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검색.


16) Otto Kirchheimer, “Criminal Law in National Socialist Germany,” p. 185.


17) Otto Kirchheimer, “The legal Order of National Socialism,” pp. 99, 108 이하.


18) 예를 들어, 잉게보르크 마우스, ≪칼 슈미트의 법사상≫, 今共弘道 외 옮김, 風行社, 1993 참조.


19) 포르카 노이만, 「결단사상에서 질서사상으로」, 후베르토 롯토로이토나 편, ≪법, 법철학과 나치즘」, みすず書房, 1987년 232쪽.


20) 안젤름 포이에르바흐(Anselm Feuerbach)의 형법사상의 간명한 소개는 瀧川幸辰, 「심리강제주의와 의사의 자유 ― 포이에르바흐의 형벌론의 근본적 견지에 관하여」, ≪瀧川幸辰刑法著作集 제4권≫, 世界思想社, 1981년, 651-653쪽 및 같은 책, 「刑法學者 포이에르바흐」, ≪瀧川幸辰刑法著作集 제5권≫, 世界思想社, 1981, 273-299쪽.


21) 안젤름 포이에르바흐, 「ドイツ普通刑法綱要」, 「近代刑法學の遺産(中)≫, 西村克彦 옮김, 信山社, 1998, 57쪽.


22) 포이에르바흐와 그롤만의 논쟁에 관해서는 구스타프 라드부르흐, ≪一法律家の生涯 ― アンゼルム フォン・フォイエルバッハ傳 라드부르흐 著作集 제7권≫, 菊池榮一․宮澤浩一 옮김, 東京大學出版會, 1963년, 65-73쪽 및 瀧川幸辰, 「刑法講話」, ≪瀧川幸辰刑法著作集 제2권≫, 世界思想社, 1981, 560-572쪽. 


23) 구스타프 라드부르흐, ≪一法律家の生涯 ― アンゼルム フォン・フォイエルバッハ傳 라드부르흐 著作集 제7권≫, 앞의 책, 67쪽 및 瀧川幸辰, 앞의 책, 564쪽.


24) Franz von Liszt, “Der Zweckgedanke im Strafrecht,” in ders., Strafrechliche Aufsätze und Vorträge, Bd.I, Berlin 1905, S. 162. [「刑法いおける目的思想」, ≪近代刑法學の遺産 (下)≫, 西村克彦 옮김, 信山社, 1998, 224-5쪽.]


25) 이 대립을 일본에서의 사정도 포함하여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형법의 교과서로는 平野龍一, ≪刑法 總論 I≫, 有斐閣, 1972년, 3-18쪽. 특히 독일에서의 전개에 관해서는 瀧川幸辰, 「刑法學派の爭」, ≪瀧川幸辰刑法著作集 제5권≫, 앞의 책, 300-313쪽.


26) Pasquale Pasquino, “Criminology: the birth of a special knowledge,” in Graham Burchell et al. (ed.),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uvernmentality, London, 1991, pp. 237-8; David Garland, Punishment and Welfare, Aldershot 1985, pp. 18, 84-87, 103-105.


27) Franz von Liszt, “Die Aufgaben und die Methode der Strafrechtswisse nschaft,” in ders., Strafrechliche Aufsätze und Vorträge, Bd.2, Berlin 1905, S. 290.


28) 구스타프 라드부르흐, 「法哲學 라드부르흐 著作集 제1권≫, 田中耕太郞 옮김, 東京大學出版會, 1961년, 345쪽.


29) 平野龍一, ≪刑法 總論 I≫, 앞의 책, 16-7쪽.


30)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21쪽.


31)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41쪽.


32) 牧野英一, 「刑法改正の諸問題≫, 良書普及會, 1934년, 29-36, 48-56.


33) 瀧川幸辰, 「罪刑法定主義の再認識」, ≪瀧川幸辰刑法著作集 제5권≫, 앞의 책, 48-9쪽.


34) 같은 책, 34-6쪽.


35) 牧野英一, 「刑法總論≫, 有斐閣, 1957년, 139-140쪽.


36) 형법학자 木村龜二도 또한 신파와 나치스 형법의 관계에 관한 동일한 확인을 하고 있다. “나치 형법 원리로까지 추앙된 바의 죄형법정주의의 제한, 관습형법의 시인, 유추해석의 긍정은 결코 나치 특유의 사상이 아니라, 그것에 기인하여 비난받고 있는 바의 신파형법이론의 귀결로서 이미 논해져 왔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木村龜二, 「ナチスの刑法」, 杉村章三郞 공저, ≪ナチスの法律≫, 日本評論社, 1934년, 196쪽.)


37) 구스타프 라트부르흐, ≪法學入門 라트부르흐 著作集 제3권≫, 碧海純一 옮김, 東京大學出版會, 1961년, 159-160쪽 및 Pasquale Pasquino, “Criminology : the birth of a special knowledge,” pp. 245-6쪽.


38)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pp. 38-9.


39) David Garland, Punishment and Welfare, pp. 38-9. 마찬가지로 19세기 말의 신파형법학과 범죄학의 발생을 푸코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은 Pasquale Pasquino, “Criminology : the birth of a special knowledge.”


40)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 24쪽.


41) David Garland, Punishment and Welfare, pp. 109-2, 252.


42)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 23-4쪽. 일본에서도 또한 20세기 초반에 牧野英一에 의해, 이러한 신파의 과학주의적인 입장에서의 배심제도 반대론이 제창했다. 이른바, “배심이라고 운운되는 것이 어떻게 과학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여부로 운운되는 것에 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43)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앞의 책, 13쪽.


44)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p. 36.


45) 볼프강 아벤트로트, ≪1968년 이전의 유럽 좌파≫, 신금호 옮김, 책벌레, 2001. “http://ko.wikipedia.org/wiki/볼프강_아벤트로트” 참조.


46) 하인리히 뵐의 작품은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유언≫(정음사, 1988) ; ≪어느 어릿광대의 고백≫(안인길 옮김, 문덕사, 1990) ; ≪상처입은 사람들≫(안인길 옮김, 문덕사, 1992) ; ≪닫힌 시절의 사랑≫(서용좌 옮김, 삼문, 1994) ;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곽복록 옮김, 학원사, 1994 /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외≫, 홍경호 옮김, 범우사, 1999) ;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학원사, 1994 / 시사영어사, 2000) ; ≪천사는 말이 없었다≫(안인길 옮김, 대학출판사, 1995)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려원, 1996) ;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사랑의학교, 1997 / 김연수 옮김, 민음사, 2008) ; ≪창백한 개≫(정인모 옮김, 작가정신, 1999) ;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 -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문예창작이론 강의≫(안인길 옮김, 미래의창, 2001) ; ≪운전 임무를 마치고≫(정찬종 옮김, 책세상, 2002) ; ≪상상동화 - 상상, 할수록 커지는 무한의 힘≫(김재혁 옮김, 하늘연못, 2007). “http://ko.wikipedia.org/wiki/하인리히_뵐” 참조.


47)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의 작품들 중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양들을 노리는 늑대들 물리치기≫(우삼, 1997) ;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변상출 옮김, 실천문학사, 1999) ;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이매진, 2006) 등.



48) “Beschluß der Regierungschefs des Bundes und der Länder vom 28. Januar 1972,” in : Erhard Denninger (Hg.).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Frankfurt a. M. 1977, S. 518.


49) “Beschluß des Zweiten Senats des Bundesverfassungsgerichts vom 22. Mai 1975,” in : ebd. S. 525 이하.


50) Ulrich K. Preuß, Legalität und Pluralismus, Frankfurt a. M. 1973, S. 9 이하.


51) Ebd., S. 26.


52) Joachim Hirsch, Der Sicherheitsstaat, Frankfurt a. M. 1980, S. 118.


53) Ebd., S. 112.


54) Ebd., S. 118.


55) Ulrich K. Preuß, “Die Aufrüstung der Normalität,” in : Kursbuch, 56 (1979), S. 28.


56) Ebd., S. 35.


57) Ulrich K. Preuß, Legalität und Pluralismus, Frankfurt a.a.O., S. 9.


58) Joachim Hirsch, Der Sicherheitsstaat, Frankfurt a.a.O., S. 113.


59) Stuart Hall et al.m Policing the Crisis, New York, 2002, S. 150. [Stuart Hall, Chas Critcher, Tony Jefferson, John Clarke and Brian Roberts. 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London: Macmillan, 1978.]


60) Ibid., S. 171 이하.


61) 처벌연구의 이러한 이론동향을 보여주는 논집은 데이비드 갤런드/피터 영, ≪처벌하는 권력  ― 오늘날의 형벌성과 사회적 분석≫, 小野板弘 감수 및 옮김, 西村書店, 1986년[Power to Punish: Contemporary Penalty and Social Analysis, Heinemann Educational Publishers, 1983]. 이 저작은 처벌을 통한 규율훈련화에 관한 푸코의 분석에 의거하는 동시에,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친 안전관리형 권력의 출현에 대응했던 새로운 범죄통제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포함한다.


62) 스탠리 코엔, 「사회통제의 대화」, 데이비드 갤런드/조크 영, ≪처벌하는 권력≫, 앞의 책, 171-2쪽 및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pp. 8, 53-73.


63)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p. 16.


64) 현대에서의 ‘피해자의 출현’에 관해서는 미셸 비비오르카, ≪폭력≫, 田川光照 옮김, 新評論, 2007년, 82-107쪽.


65)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pp. 11-2, 143-4.


66) Ibid., p. 11, 143.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자를 일컫는다." 칼 슈미트의 유명한 테제이다. 우리는 보통 "주권이란 국가의 최고 권력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친다. 교과서적이며 관습적인 사고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동어반복에 불과할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그런 점에서 최고의 슬로건이다.) 그래서 슈미트는 "자연법적인 확실성으로 기능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한 최고의, 즉 최대의 권력 따위란 정치적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령 국민주권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라는 허구적인 체제에 정통성을 임시로 부여하기 위한, 정통성을 임시로 구축하기 위한 용어법일 뿐, 정치적 현상의 실제적 양상들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기존의 법 체계가 전혀 예상치 못했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긴급사태에 직면했을 때, 당연히 법의 틀 바깥에서부터의 신속한 결정이 요청된다. 이 시점에서 무엇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구체적인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주권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슈미트는 이렇게 말한다. "법 생활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이다. 내용의 올바름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결정권의 소재를 물을 필요가 있다."

"예외는 보통/통상의 사례보다 흥미롭다. 정상상태는 그 무엇도 설명하지 못하며, 예외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예외는 통례/규칙에 의해 뒷받침될 뿐만 아니라 통례/규칙은 원래 예외에 의해서만 산출된다. 예외에서야말로 현실 생활의 힘이, 반복되어 경직된 관습적인 것의 껍질을 부셔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예외상황에 직면한 주권자의 결정은, 마치 신학에서 말하는 신의 '기적'과 닮았다고 슈미트는 지적한다. "현대 국가 이론의 중요한 개념들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

그런데 한스 켈젠을 필두로 한 규범주의적 법학은 이러한 '기적'을 배제하려고 한다고 슈미트는 비판한다. 켈젠의 논의는 법적 현상으로부터 인간의 자의성을 철저하게 제거함으로써 이러한 법적 현상을 자연과학처럼 순수한 통일성과 정합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하려고 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순수법학>)
슈미트가 보기에 이것은 구축된 체계와 모순되는 것을 모조리 무시함으로써 겨우 성립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본래의 아포리아와 대결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는 안이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 모든 정치이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며,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한 것인지, <선천적으로 악>하게 된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전제로 한다."
루소만 하더라도, 또는 아나키스트만 하더라도 성선설을 전제로 하여 예정조화적인 이상사회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 그러한 인간의 본래적 성질을 국가권력이 왜곡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것이다. (루소나 아나키스트와 성선설의 연결은 슈미트의 생각일 뿐, 나의 생각은 아니다.)

한편 카톨릭시즘에 입각한 드노소 코르테스나 드 메이스톨 등은 원죄를 진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을 무서워하면서 그러한 '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신의 '기적'뿐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무오류성을 본질로 한 교회적 질서에 대한 명령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악을 억누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간관에서는 서로 정반대되는 두 견해는, 질서를 산출하는 계기로서의 결정자를 어떤 권위자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즉 "바뵈프에서 시작하여 바쿠닌, 크로포트킨, 오토 그로스에 이르는 아나키스트의 독트린은 모두 <민중은 올바르며, 당국은 부패할 것>이라는 공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반면에 드 메이스톨은 그와는 정반대로, <그것이 존속하기만 한다면, 당국은 그 자체로 선이다>라고 언명한다." 즉, 전자에서는 '민중'이, 후자에서는 신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를 부정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라는 것은 정치적 문제 하나하나를 모두 토론하고, 교섭/합의의 재료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진리마저도 토론으로 해소해 버리고자 한다. 그 본질은 합의/교섭이며, 결정적 대결, 유혈이 낭자한 결절을 어떻게든 의회의 토론으로 바꾸어 영원한 토론에 의해 영원히 정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토론의 정반대는 독재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극단적인 사례를 상정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 코르테스와 같은 정신에서의 결정주의에는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코르테스는,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자를 경멸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아나키스트적 사회주의가 그의 불구대천의 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존중하고 거기에 악마적인 위대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외상태라는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국면에서의 결단은 절대적이다. 끝없는 논의에 의해 문제를 재고하거나 이해대립하고 있는 조건을 서로 제시하여 타협하는 일 따위는 전혀 없다. 드노소 코르테스는 신의 기적을 바랬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신의 권위도, 왕권신수설의 군주제가 지닌 정통성 역시 이미 무너져 버렸고, 민중의 의지가 왕좌에 오르려고 하고 있기는 하다. 결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에서 만들어진 절대적인 결단, 즉 독재밖에는 없다." 슈미트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 슈미트는 결정이라는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나, 결정되는 정치적 내용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결정이라는 작용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정치체제는 파시즘이든,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든, 그 어디에도 존재한다. 어떻게 하든 간에 대체가능한, 즉 가치적인 우열을 벗겨낸 수준에서 슈미트는 정치적 현상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분명히 이것은 허무주의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근 몇 년 동안 생/삶-정치bio-politique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잘 알겠지만 이것은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생기는 문제들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류의 해석은, 푸코를 활용하여 논하기에는 그다지 정합적이지 않다. 장-뤽 낭시를 따라 말하자면, “생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되고 그 통제에 전념하는 정치질서”가 이 말의 본래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너무 막연하다. 따라서 푸코를 다양한 선분들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 푸코와 들뢰즈, 푸코와 네그리, 푸코와 아감벤, 푸코와 낭시, 푸코와 아렌트 등등. 앞의 세 쌍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 간략하게 서술할 것이기 때문에 푸코와 낭시, 특히 아렌트를 매개로 한 이 둘의 관계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렌트는 근대란 인간적 생과 동물적 생명이 뒤섞여 버린 시대라고 말한다. 즉, 종교의 쇠퇴에 의해 피안/초월적 세계를 상실한 인간은 가능한 한 좋은 조건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의 생을 향유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되었다. 그러한 인간이 바로 “노동하는 동물”이다. 이때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는 동물종의 자기 관리/통제로서의 법이다.

이러한 아렌트의 논의에 관해 낭시는 “과연 생이라는 말을 과거와 동일한 의미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미 자연적인 생은 소멸했으며, 생명은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의해 관리/통제되게 되었다. 낭시는 그것을 에코테크니ecotechnie라는 개념을 사용해 설명한다. 일체의 생명이 에코테크니 속에서 발생하며, 인간은 이제 자신의 생의 주권을 쥐지 못하게 되었다. 주권은 에코테크니 그 자체 속에 포함되며, 생과 권력은 목적성을 갖지 않은 채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생-정치학이란 이러한, 인간이 노동하는 동물로 되고 나아가 그 생이 기술적으로 관리되는 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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