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에르 로장발롱이 <21세기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기조강연을 했나 봅니다. <아사히신문>에 실린 것을 옮겨둡니다. 아래의 링크는 원문입니다. 


https://www.asahi.com/articles/DA3S13162714.html


기조 강연 21세기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 

写真・図版


  현재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정치가의 태만이나 정치 부패도 있지만더 구조적인 원인은선거에 의한 의회제 민주주의가 더 이상 충분히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거는 사회의 다양한 집단을 대표한다, 통치자나 제도에 정당성을 제공한다, 의원을 견제한다는 세 가지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주의가 진척되고, 시민 개개인의 정체성이 부각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선거에서 다수파를 획득했다고 해도, 더 이상 사회 전체의 의사는 아닙니다. 이제 사회는 많은 소수파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는 정치에 반영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선거에서는 대표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선거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장이 아니라, 욕구 불만을 표현하는 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포퓰리즘은 그런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전 대통령이 나는 인민이다라고 말했듯이, 포퓰리즘에서는 지도자가 인민을 체현하고 있다고 표방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인이나 이민자를 배척하고, “진정한 인민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어 대립시키고, 일체감을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포퓰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사회의 의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대표의 채널을 늘리고 민주주의를 복잡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되지 않은 사람들은 공적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어둠 속에서 방치되면 편견이나 불신, 공포가 점점 심해집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공적 공간에서 가시화하고, 모든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 의한 대표제를 추진해야 합니다. “사회를 이야기하기때문에 문학이나 사진, 영화 등 다양한 대처에 의해, 있는 그대로를 서로 인정하는 상호 이해의 구조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한 임명의 순간뿐 아니라 선거와 선거 사이에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뿐 아니라, 권력에서 벗어나 감시나 규제를 담당하는 독립기관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헌법재판소도 그 중 하나겠죠. “사람들의 눈도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민에 의한 감시는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라는 이념을 지키는 데 불가결합니다. 시민 자신이 주체이며, 책임자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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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성의 근원 

1. 주권 vs 통치

오오타케 코지(大竹弘二)



1. 민주주의와 통치능력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조용히 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의 이념을 공공연하게 부정하기란 확실히 여전히 쑥쓰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근대민주주의의 기초인 인민의 의지라는 것에는, 지금까지 없던 불신의 시선이 향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때 염두에 놓인 것은 어떤 때는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민의이며, 어떤 때는 특정한 지역이나 단체에 의한 (종종 이익유도를 수반하는) 공공투자 혹은 행정급부의 요구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회의는 분명히 세계나 일본에서의 최근의 정치상황에 의해 깊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 공통되는 병리현상으로서는, 정부의 공공지출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가 선진국들의 재정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얘기되고, 일본 국내에 한정하면, 바뀌기 쉬운 여론이 작금의 일본정치의 불안정성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도 보인다. 이처럼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대부분이 민주주의의 결함에서 찾아지고 있다. , 의심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통치능력(governability)”이나 다름없다. 무책임한 민중(demos)의 지배가 통치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극히 고전적인 문제가, 오늘날의 정치정세 속에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안정적인 통치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이리하여 현재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통치의 안정을 헤치는 곳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적인 가치들과 친화성을 지닌 자유의 이념에 비해, 작금의 민주주의의 이념은 반드시 형세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지금에서야 시작된 것이 전혀 아니다. 고도경제성장의 종언과 더불어 복지국가의 위기가 의식되게 됐던 1970년대에 신보수주의적인 통치불능론이 등장한 이래, 민주주의의 가치 절하는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 이른바 정부에 대해 지나친 요구를 부과하는 민주주의의 하중 초과통치능력의 저하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사무엘 P. 헌팅턴 등이 집필한 미일유럽 삼극위원회의 보고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시정일관 이런 어조로 관통되고 있다. 이리하여 국민의 요구들의 부하를 가능한 한 경감한 작은 정부가 지향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의 전지구화에 의해, 이런 담론은 점점 더 유력해지는 듯하다. “신중상주의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전지구적 경제 경쟁 속에서, 각국은 파이로서의 국민총소득의 확대를 지상명제로 삼는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국가전략에 있어서 우선 중시되는 것은, 특정한 성장산업혹은 성장분야를 늘리는 것이다. 이런 성장전략에 있어서는, 국민에 대한 소득재분배는 부차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소득의 공평성이나 평등을 요구하는 국민의 근시안적인 관점은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국민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며 배척된다. 전지구적인 경쟁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하중 초과에 대한 비판은 더욱 공고해지며, 민주주의의 위기는 가속화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근대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정당성은 주권개념에 의해 담보되었다. , 16세기의 유럽에서 탄생한 이 역사적지리적으로 고유한 개념이, 18세기 이후의 인민주권론의 기초가 됐다. 근대의 절대주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봐서 어떤 경위를 거쳐서 탄생했든, 주권의 개념 자체는 결코 단순한 사실적인 폭력 독점에 기초한 절대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댕, 홉스, 루소 모두, 주권의 본질적 정의는, 그것이 입법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모든 실정법의 규범 근거이며, 통치에 규범성을 가져다주는 정당화 원천이다. 확실히 입법자에 의한 근원적인 법정립은, 결국 힘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라는 문제는 있다. 그러나 주권 개념이 원래 목표로 했던 것은, 중세적인 종교 규범이 붕괴하고, 종파 내전에 시달리던 근대 초기에, 정치의 규범성을 더 세속화된 형태로 되찾는 것이었다. 주권이라는 근본 규범이 없으면 정치는 단순한 권력 조작의 기술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위기가 단순히 민주주의나 인민주권의 위기인 게 아니라, 주권의 위기, 혹은 이 말이 너무 진부하다면, 근대의 발명품인 주권 개념이 목표로 했던 것의 위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통치, 법이나 주권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은 주권의 소재가 인격화된 군주에 있는가, 국민 내지 인민에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또한 기준의 민주주의가 국민국가의 틀 내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문제시하는 논의도, 여기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문제로 삼는 것은, 내셔널이든, 전지구적이든, 원래 통치 행위가 규범에서부터 자립하고, 정당화의 절차를 무용지물로 삼고 있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통치의 이런 변질을 앞에 두고, 주권의 최고 발현인 헌법제정권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확실히 오래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사회학의 맥락에서는, 이미 전후의 이른 시기부터, 헬무트 셸스키(Helmut Schelsky) 같은 보수파든 하버마스 같은 좌파든 불문하고, “산업사회에서는 테크노크라시적인 기술관리가 정치적 정당화를 대체한다는 진단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정당화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치는 점점 더 기술조작으로서의 그 성격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제, 반드시 전문가 집단을 수반한 행정관료기구의 테크노크라시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통치가 국가의 외부에 민간 위탁됨으로써, 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 이행함으로써 초래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수십 년 전부터 지적되었던 낡은 문제라고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근대 주권 국가에 있어서는, 그것이 탄생 초기부터 마주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장 근원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혹은 오히려, 주권 개념은 바로 통치의 기술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의 주권 이론의 이런 의의는, 세속화의 기능(, 중세적인 교회권력으로부터의 정치권력의 자립화)라는 의의에 비하면, 고려되는 경우가 너무도 적다. 근대 국가는 주권 개념에 의해, 기술로서의 통치 행위를 길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주권통치사이의 이런 접합은 절단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은, 알기 쉽지만, 그러나 오해를 사는 사고방식이다. 통치라는 것은, 주권에 의한 제어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닐까?

바로 통치행위를 규범에 의해 구속하는 것이 근대 초기에서의 정치이론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창출된 주권 개념이었지만, 그것이 절대 왕정 하에서 확고한 것으로 될 때까지, 당분간은 통치의 자립성에 시달리게 된다. 이것은 16-17세기의 정치 혹은 문학의 담론들 속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거듭 문제가 되는 것은, 주권자를 괴롭히는 어떤 아포리아에 다름 아니다. 주권이론의 이런 걸림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를 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2. 주권자의 전락 : 칸토로비츠와 셰익스피어

주권자에게 들러붙어 다니는 특유의 아포리아. 이 고찰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역사가 에른스트 H. 칸토로비츠의 유명한 저작 왕의 두 신체(1957)의 논의이다. , 왕의 신체는 항상 정치적 신체와 자연적 신체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 왕의 신체에는 상징적의례적인 측면과 가사(可死)의 개인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른바 거기에는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저작은 중세정치신학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칸토로비츠는 이 개념 장치를 사용해 중세 유럽 왕권의 상세한 분석에 매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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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왕의 신체의 이중성은 중세 왕권에 고유한 것인가? 칸토로비츠 자신이 말하듯이, 원래 왕의 두 개의 신체라는 교설은, 에드문드 프라우든을 시작으로 하는 16-17세기의 엘리자베스 왕조 및 스튜어트왕조 시대의 잉글랜드 법학자들 속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을 중세 왕권 전체의 분석에까지 부연해 들어간 것은 칸토로비츠의 특유한 역사 이해이며, 따라서 이 교설의 발단은 어디까지나 근대 초기에서 찾아져야 한다. 실제로 왕의 두 신체의 첫머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엘리자베스 왕조를 살았던 작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차드 2의 분석이다. 칸토로비츠는 1600년 전후에 성립된 이 극 속에서, “왕의 두 신체라는 사상이 전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조의 마지막 왕인 리차드 2세의 폐위를 그린 이 사극이 무대로 삼는 것은, 14세기 말의 잉글랜드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중세에 일어난 이 사건 속에, 종교내전이 격해지고 있고, 아직 절대왕권이 확립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그 자신의 시대의 잉글랜드를 투영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랭카스터 왕조의 시조가 되는 헨리 볼링브로크(나중의 헨리4)에 의해 폐위되는 리차드2세는, 영광이 있는 전능한 왕에서 약하고 비참한 한 개인으로 전락한다. 칸토로비츠에 따르면, 이 극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왕의 두 신체의 일체성[통일성]이라는 픽션의 해체이다. 거기에서는 왕은 그 정치적 신체를 벗겨내지고, 불쌍하고 자연적인 신체를 노출당하게 됐다. 이중적 신체를 가진 왕에게는, 성스러운 존재와 비천한 존재가 항상 반전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왕의 보석을 내놓고 수도승의 염주나 차고

궁전을 내놓고 은둔자의 움막으로 가야지

어의는 벗고 거지의 누더기를 입어야지

황금 장식 새겨진 술잔은 내려놓고 나무 잔이나 들어야지

왕홀은 지팡이와 바꾸고 수많은 신하들 대신 나무로 만든 성자의 조각상 두 개만 곁에 두어야지

광대한 왕국은 버려두고 작은 무덤으로 가야지. 작고 작아서 땅 위로 솟아오르지도 못한 무덤으로.

 

그 어떤 왕이라 해도, 불사이자 영원한 정치적 신체를 완전히 떠맡을 수는 없다. 그 자신은 결국, 일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모두가 살해되었는데 -- 죽을 수밖에 없는 왕의 관자놀이를 둘러싼 텅 빈 왕관 안에는 

죽음의 신이 궁전을 차려놓고 있고, 거기에는 죽음이라는 광대가 앉아서,

왕의 권위를 조소하고 왕의 영화에 냉소를 보낸단 말이다. 

All murdered. For within the hollow crown

That rounds the mortal temples of a king

Keeps Death his court, and there the antic sits,

Scoffing his state and grinning at his pomp, (3.2.151-59)

* 이 두 번째 구절의 번역본과 영문은 모두 정선영,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리차드 2』, 정치신학과 정신분석>, 453쪽에서 재인용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대부분은, 왕좌에서 전락하는 군주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유한한 존재자가 무한한 권능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데에서 오는 비극이다. 이미 칸토로비츠에 앞서서 발터 벤야민은 독일비극의 근원[각주:1](논문 제출은 1925)에서, 바로 이 점에 바로크 시대의 비극의 특징을 봤다. 지배자로 인정받은 절대적 권한과 지배자 개인의 통치능력 사이의 어긋남이 근대 비극에서의 군주의 우울(멜랑콜리)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신과도 비슷한 위계를 수여받으면서 그 자신은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군주는, 주권자로서 기대되는 절대적 결단을 담당할 수 없다. 주권자는 그 이중의 신체 때문에, 전능한 주권자로서의 스스로의 역할을 맡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17세기 독일의 바로크 연극의 주인공은, 이런 무력감에 휩싸여 몰락하는 군주들에 다름 아니다. 벤야민에게서는 특히, 행동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햄릿이야말로 이런 근대 비극의 주인공의 범형이다. 이렇게 이중의 신체에 시달리는 주권자라는 것은, 근대 초기의 비극에서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따라서 왕의 이중의 신체라는 교설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비극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칸토로비츠가 특히 리차드 2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근대 초기의 잉글랜드의 정치상황 속에서 특히 정치성을 띤 극이었기 때문이다. 리차드 2세와 볼링브로크와의 싸움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 유력한 신하였던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빌과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리차드 216012월에 일어난 에섹스 백작에 의한 봉기의 실패와 그 처형의 전후에, 셰익스피어 자신이 그것에 가까운 곳에 있던 에섹스 파의 사람들에 의해 반복해서 상연됐다고 얘기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내가 리차드 2세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리차드 2에 혐오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 극에 대한 그녀의 거부 반응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어리 스튜어트와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의 기억도 생생하고 종교 내전도 완전히 수습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정치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시대의 왕권은 아직 취약하며, 항상 폐위의 가능성에 떨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리차드 217세기 후반에는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2세의 치세 하에서 상연 금지됐다고 한다. 이렇게 퓨리턴 혁명 이후 왕정복고기에 셰익스피어의 이 연극이 미움을 받은 것은, 퓨리턴 혁명에서 처형된 순교자 왕찰스 1세의 운명이 사람들의 의식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토로비츠는 혁명기에 퓨리턴 진영이 국왕에 적대하며 내걸었다고 간주된 슬로건을 언급하고 있다. , “(King)을 지키기 위해 왕(king)과 싸운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왕의 두 신체의 통일성은 파괴되고, 그 폭력적 분리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왕의 정치적 신체의 이름 아래에서 왕의 자연적 신체가 희생에 처해지고, 찰스 1세는 그 순교자가 된다. 특히 왕당파 사람들에게는 리차드 2는 찰스 1세에게 닥쳐온 비극을 상기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의 두 신체라는 교설이 바로 이 시기의 잉글랜드 법학자에 의해 유포됐다는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주권자에 의한 통치의 확립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 어려움에 직면했던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주권 이론이 갖는 비극적 성격, 혹은 그 실현 불가능성은, 이 시대의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두 개의 정치신학 : 슈미트에 맞선 칸토로비츠

왕의 두 신체는 중세의 정치신학연구로 간주됨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는 칼 슈미트가 완전히 묵살되고 있다. 두 사람이 다루는 주제의 친근성에도 불구하고, 칸토로비츠의 저작에서 슈미트가 언급되는 일은 전무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30년대에 사망할 때까지 독일의 지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독일계 유대인인 칸토로비츠가 슈미트를 무지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50년대에 왕의 두 신체에 앞서서 쓴 칸토로비츠의 논문을 보면, “정치신학에 관해서 “1930년대의 독일에서 활발하게 논의된문제와의 주석이 이뤄지고 있다. 칸토로비츠의 전기를 쓴 역사가 앨런 브로에 따르면, 이것은 과거 신학자 에릭 페터존이 정치적 문제로서의 일신교(원저 1935)에서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제출한 격렬한 비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칸토로비츠가 슈미트의 논의를 전혀 몰랐다는 일은 있을 수 없고, 그가 거의 슈미트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30년대의 독일에서의 정치신학에 관한 논의는 슈미트와 페터존 사이의 논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신학의 친파시즘적 경향은, 슈미트뿐 아니라 나치의 권력탈취 전후의 시기에 독일에서 유행한 라이히 신학이라고 불리는 사상 조류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담론에서는 세상의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가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을 괴롭히던 핍곤 상태의 극복에 대한 기대와 결부됐다. 그리고 이런 민족주의적 기대의 성취를 나치 정권 속에서 찾아내려고 한 라이히 신학자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페터존의 저작은 무엇보다 우선, 이런 독일 민족주의적인 정치신학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종말론적인 국가구원자를 찾는 독일의 민족주의 신화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잠들어 있는 황제의 전설이다. , 어디선가 계속 잠을 자는 과거의 신성 로마 제국의 영웅적인 황제가 국난(國難)일 때에 되살아나 독일을 구원한다는 민간전승 설화이다. 잠들어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 이 황제가 누구인가에 대해 설들이 난무하지만, 이 전설은 20세기 초의 독일에서 새로운 리바이어던을 보여주었고, 라이히 신학의 동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때 큰 역할을 한 것이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서클이다. 게오르게 등은 언젠가 현실의 독일 국가를 넘어서 부활할 터인 숨어 있는 독일을 탐지해내고, 13세기의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잠들어 있는 황제의 임무를 맡기려고 했다. 이리하여 이슬람교도에 대한 종교적 관용으로 알려진 시칠리아 출신의 이 이단자 황제가 게오르게 서클 속에서 하나의 신화적 인물상으로까지 드높여질 수 있었다.

바로 이 게오르게 서클의 가장 열성적인 구성원 중 한 명이 젊은 날의 칸토로비츠였다. 이를 착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증언이 되는 것이 그의 1929년의 최초의 저작이다. , 황제 프리드리히 2. 2차 세계대전 전에 출판된 이 초판의 서언(緖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창설된 나폴리대학이 700주년을 맞이한 1924, 칸토로비츠는 서클의 동료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에 있는 황제의 무덤으로 순례 여행을 하고, “우리 황제들, 영웅들에게 / 숨어 있는 독일이라고 새겨진 비명(碑銘)을 두었다고 한다. 게오르게파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2세가 자라난 지중해이탈리아 남부에서 독일의 재생을 가져다줄 비밀의 지하수맥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젊은 칸토로비츠의 황제 프리드리히 2의 독일 민족주의적 함의는 명백하다. 예를 들어 게오르게 자신이 나치와 거리를 두었다고 해도, 혹은 게오르게파 내부로부터 나치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왔다고 해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게오르게 서클의 구성원 중에, 1944720일 히틀러 암살계획을 지휘하게 된 크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있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암살계획이 실패하고, 총살되기 직전에 슈타우펜베르크가 외쳤다고 하는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숨어 있는 독일 만세!” , 그는 현실의 나치국가에 대한 저항의 거점으로서 도래할 숨어 있는 독일의 이념에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종류의 보수 엘리트주의적인 반히틀러 운동을 과도하게 찬양할 필요는 없다. 게오르게파에서 보이는 종말론적인 민족주의가 파시즘과 일정한 친화성을 가진 것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훗날의 칸토로비츠는 황제 프리드리히 2의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의식한 것 같다. 실제로 전후의 그는 황제 프리드리히 2의 재판을 찍는 일을 오랫동안 주저했다고 한다. 브로의 전기에 따르면, 칸토로비츠는 숨어 있는 독일의 승리와 독일 민족 재생에 대한 바람을 담아 쓴 20년대의 이 책이, 시대착오의 국가주의를 고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전후의 저작인 왕의 두 신체에는 과거의 황제 프리드리히 2에 대한 자기비판이 표현되어 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세속적 세계 속에서 초월을 실현하는 것의 불가능성이다. 왕의 신체의 이중성, 주권자에 있어서의 신과 인간의 공존은, 결코 그러한 차이의 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칸토로비츠 자신이 말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리차드 2의 독해로부터 분명히 밝혀지는 것은, 주권자의 경험적 신체는 초월적 신체를 결코 떠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왕의 두 신체는 그 일체성[통일성]이라는 픽션의 배후에서, 항상 대립과 분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한에서 왕의 두 신체는 독일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요구하는 과거의 게오르게파적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을 증언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칸토로비츠가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대한 참조를 주의 깊게 기피하는 이유도, 이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세에서의 초월의 개입과도 비슷한 결단을 내리는 슈미트의 주권자는, 신성을 담지하면서도 동시에 애처로운 한 개인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칸토로비츠의 주권자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슈미트는 설령 법의 내부에 있는 동시에 법의 외부에 있다고 하는 주권의 역설”(아감벤)을 의식했다고 하더라도, 주권자가 법의 바깥으로 유기됨으로써 따르게 되는 애처로운 한 개인으로서의 운명을 고려하지 않는다. 칸토로비츠는 바로 주권자가 벗어날 수 없는 이런 양의성을 밝히고 있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브로가 말하듯이, 칸토로비츠는 정치신학에 대한 슈미트의 테제를 역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훗날의 슈미트가 왕의 두 신체라는 저작을 알았는지 여부는 불명료하다. 하지만 칸토로비츠에 대한 있음직한 반론은 이미 그 직전에 출판된 슈미트의 후기 저작 햄릿 혹은 헤쿠바(원저 1956)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슈미트는 벤야민의 독일비극의 근원에 대한 반론을 시도한다. 벤야민은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은근히 비판하고, 결단하는 주권자라는 바로크 절대왕권의 이미지를 역전시켜,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주권자라는 반대상을 제출했다. 그 범례로서 햄릿을 들먹이는 벤야민에 대해, 슈미트는 이런 우울한 군주는 단순히 근대주권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상황을 비춘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아직 국가적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조야한혹는 야만적인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주권자에 따라다니는 특유한 무력함은, 국가주권이 확립하는 것과 더불어 해소될 것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런 비판은, 칸토로비츠에 대해서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가 분열하는 두 개의 신체로 찢겨진다고 하는 비극적 문제는, 근대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의 바람을 배반하듯이, 근대의 주권 개념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상 주권자를 괴롭히는 이런 아포리아는, 칸토로비츠의 연구가 관심을 기울인 중세 주권, 혹은 국가주권이 아직 생성 도상에 있던 근대 초기의 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말한다면, 인민주권의 정착에 앞선 18세기까지의 절대주의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능한 주권자가 스스로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비틀거린다는 이 문제는, 원래 주권국가에 있어서의 권리상의 권능과 사실상의 능력 사이의 어긋남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립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다고 간주된 주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통치 능력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주권과 통치 사이의 이런 간극은 결코 메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주권자에게 기대되는 권능이 절대적일수록 더욱 확대된다. 주권이 그 초월의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르는 만큼, 구체적인 통치행위의 실천은 이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이것은 군주제 하에서든 민주제 하에서든 다를 바 없다. 주권을 한 명의 인격에 의해 떠맡았던 과거의 국왕뿐 아니라, 근대 정치의 주권자인 우리 인민도 벗어날 수 없는 곤란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의 군주의 우울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의 우울이기도 하다. 통치에 관련된 모든 정치적 결정을 주권이라는 하나의 규범 근거에 의해 집권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는 근대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이 물음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는 과연 통치할 수 있는가?

 

4. 주권을 넘어선 통치 : 집행권력의 계보학을 위해

근대의 주권 개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아포리아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런 주권의 아포리아를 문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법의 최고 근거인 동시에 법의 외부로 유기된다는 주권의 역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한, 그것은 단순한 사고의 폐색밖에는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왕의 두 신체라는 분석은 출발점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서는 주권 개념을 급진적으로 재고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신체의 이중화에 시달리는 주권자의 비극 이야기 속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눈을 돌려야 할 것은 초월과 경험의 이런 이중성에 의해 열린 새로운 공간에 다름 아니다. 그것에 의해 우리는 비극 속에서 머뭇거리는 주권자를 넘어선 지평으로까지 이끌리게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사고의 지평은, 사실 근대 초기의 비극 작품에서도 그 모습을 간파할 수 있다.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주권자의 전능성에 대한 그 통치능력의 절대적 부족을 보완하는, 혹은 그 약점을 틈타서 이를 이용하는 인물상들이다. 주권자의 주위에는 여러 인물상들이 배회한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리어왕을 따라다니는 광대이며, 코르네유나 라신의 프랑스 고전비극에서는 왕이나 황제의 궁정신하들이, 독일 바로크 비극에서는 책략을 부리는 궁정의 음모가들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바로 주권자의 통치 무능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권자의 권능은 종종 그들에 의해 횡령된다. 현실의 통치 권력이 주권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군주를 지탱하는 궁정이란, 이런 양의성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미셸 푸코는 이렇게 지적한다. 프랑스 고전 비극의 행하는 것은, 군주를 주권 대표자로서 현전시키는 궁정의 의례와 전례를 반대 방향으로하는 것이다. , 거기서 궁정은 오히려 주권을 비극적으로 해체하는 장소로서 묘사되는 것이다.

통치 권력이라는 것은 주권자를 기초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배후에 있는 이런 공간 속에서 자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권력의 공간이야말로 이른바 주권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루는 게 아닐까? 이런 새로운 지평에 관심을 다시 기울일 때, 주권의 초월성은, 권력의 내재성의 평면으로 완전히 해소된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이 내재 평면과의 벗어나기 힘든 의존관계 속에서 상대화된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일 뿐 아니라, 통치행위의 효과로서 주권이 생산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서는 주권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통치가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근대 초기의 정치적 저작가들이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문제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제 중세적인 종교 규범은 붕괴했으나 아직 근대적인 주권 개념은 확립되지 않은 이 시기의 정치적 담론에 있어서, 아무런 법규점에도 의거하지 않는 통치의 모습과 그 귀결에 대한 순수한 사유가 전개됐다고 간주할 수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정치규범을 탐색했던 당시의 정치이론가들에게, 이렇게 단순히 기술화된 통치의 모습은 오로지 비난받아야 할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와 타키투스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이런 통치의 기술을, 공언할 수 없는 이국적인(esoteric)” 기법으로 내몰았다. 통치가 가진 이런 비밀스런 성격은 절대주의의 대표적(repräsentativ) 공공성”(하버마스)이 세련되어감에 따라, 서서히 정치이론의 주제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정치는 바로 공개성을 근본 원칙으로 하게 되며, 그것은 법의 최고 근거인 주권자의 공적 현전에 의해 담보된다. 통치는 주권 하에 속하며, 공개성의 빛 아래에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이처럼 공개성 하에서만 통치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것은, 절대주의의 대표적 공공성하에서든, 더 민주적인 시민적 공공성하에서든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근대의 정치적 공개성이 기능 장애에 빠지고 있다는 것의 징후가 아닐까? 통치로부터 민주주의의 부담을 경감시키려고 하는 최근의 풍조에서 엿보이는 것은, 통치가 정치적 공개성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립화한다는 사태 아닐까? 그것을 오늘날 일으키는 것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든, 경제합리성의 추구이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주권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의 상황의 회귀이다. , 근대 초기의 정치적 저작가들에 의해 기밀”(아르카나)이라고 불렸던 권력 공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정치상황과 현재의 그것 사이의 안이한 동일시는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일 현재, 통치의 규범적 정당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 바로 똑같은 종류의 위기가 문제이게 된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생을 향한 새로운 사고를 찾기 위해서도, 공개성으로부터 물러서 숨은 이 통치공간, 공개성의 근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가주권을 전제로 한 고전적인 근대 민주주의이든, 그 민족주의적인 한계를 비난하는 급진적인 민주주의이든, 단순히 주권 개념에서 문제의 소재를 보고 있는 한, 민주주의의 이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 역할에 여전히 기대를 하는 것이든, 그 위험성을 비난하는 것이든, 주권에 오늘날의 정치학의 궁극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정치적 위기는 주권 개념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효력 상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가령 근대적인 국가주권의 부흥을 꾀하는 것이 이 위기에 대한 잘못된 응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것이 시대착오의 무기력한 해결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로 주권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통치의 지평을 고려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재생을 향한 그 어떤 시도도 불충분한 채로 그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근대정치학에서의 주권 개념의 중심성에 의해 은폐되어버린 이 통치공간이 통치성이라고 명명한 것을 규명하기 위한 작은 기여이기도 하다.

주권에 대한 통치의 양의성으로 가득 찬 관계. 이것은 바로 조르조 아감벤이 왕국과 영광(원저 2007)에서 중심적 주제로서 다뤘던 것이다. 이 저작이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왕국(regno)”통치사이의 상호의존성인 동시에, 이것들의 필연적인 분할이다. 통치는 왕국혹은 영광이라는 주권적 권위에 의한 정당화의 계기를 불가결하게 한다. 그러나 통치는 또한, 항상 그로부터 자립하여 활동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주권의 행사일 터인 통치행위는 해당 주권을 무위 속으로 몰아넣고 말소할 수도 있다. 거꾸로 말하면, 주권은 스스로를 실효적으로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집행되는 것을 필요로 하지만, 바로 그 집행속에서 스스로가 무력해진다는 역설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집행으로서의 통치행위는 결코 단순히 주권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초월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립성을 갖는 독자적인 내재성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력이 항상 초월과 내재로 분열한다는 것이야말로 근대 주권 국가의 이론이 직면한 근본 문제의 하나이다.

게다가 아감벤은 이 고찰을, 신과 그 세계 통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개한다. , 근대국가에서의 주권(‘왕국’)과 통치(‘오이코노미아’)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이미 그 이전에 신학적 패러다임 속에서 논의됐던 무위의 신활동하는 신”, 물러서 숨은 신과 피조물, 신의 원리와 그 잠재력, ‘1원인2원인등등의 관계가 세속화된 것이라는 얘기이다. 거기까지에도 사상사적으로 사정거리를 확대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논고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근대 국가가 신학적인 통치 기계가 내포한 아포리아를 계승하고 있다는 아감벤의 통찰이다. , 입법권력 또는 주권권력과 집행권력 또는 통치권력 사이의 구별이 초래할 초월과 내재의 이중구조이다. 근대 국가에서의 입법권과 행정권의 역할 분담은 겉보기만큼 알기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배후에는 주권과 통치의 관계가 내포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아감벤도 인용하는 홉스의 시민론의 한 구절. “최고명령권[주권]에 속하는 권리와 그 집행은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둘은 떼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고명령권에 속하는 권리와 그 집행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 국가의 통치는, 만물의 제1동인인 신이, 2원인의 질서를 통해 자연스런 결과를 산출하는 통상적인 세계통치와 비슷하다.”

통치의 집행자는 주권자에 의한 입법을 단순히 적용할 뿐만이 아니다. 칼 슈미트가 지적했듯이, 법의 집행은 자신이 적용하려고 하는 바로 그 법 자체를 넘어서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예외상태라고 불렀다. 이를 더욱 파고들어감으로써 왕은 군림(regno)하나 통치(guberno)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의 급진적인 함의를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집행이란 그것이 의거하고 있는 바로 그 주권자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에서는, 이렇게 통치가 규범성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더욱 강하게 의식됐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확립된 근대 주권 국가에서의 삼권분리 하에서는 은폐된다. 집행권력은 주권적 결정의 장소인 입법부에 종속하는 행정부로 길들여진다. 이것이 근대정치학에서 주권과 통치 사이의 분리라는 문제가 보이기 어렵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은, 근대 주권 개념에 의해 구축된 모종의 픽션이다.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치를 단순한 집행권력으로서 이해한다는 오해는, 서양 정치의 역사에 있어서의 가장 중대한 잘못 중 하나이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되는 끝이, 근대의 정치적 고찰이, , 일반의지, 인민주권 등과 같은 공허한 추상물의 배후에서 길을 잃고, 모든 관점에서 볼 때 결정적인 문제, 즉 통치 및 통치와 주권 사이의 접합이라는 문제를 방치한다는 사태이다. 최근작[왕국과 영광]에서 나는 정치의 중심적인 수수께끼는 주권이 아니라 통치, 신이 아니라 천사, 왕이 아니라 장관, 법이 아니라 경찰임을, 더 정확하게는 이것들이 형성하고 계속 움직이는, 이중의 통치기계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거듭 말하지만, 통치는 주권자의 입법을 단순히 적용할 뿐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에 길들여진 행정활동으로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는 본질적으로, 법과 주권으로부터 분리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열리는 것은, 군주를 에워싼 장관의, 법률을 지배하는 관료와 경찰의, 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천사의 세계이다. 통치의 공간은 이른바 주권의 매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근대 초기의 공개성의 근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탐색하려고 한 것은, 이런 매체로서의 권력공간이다. 근대 주권 개념 하에서 구축되어 온 민주적 공개성의 제도들이 신뢰를 잃고 있는 가운데, 근대정치학의 이런 지하 계보에 눈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적 통치의 재생에 있어서 불가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민주적 합의를 위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반민주적인 정치적 공개성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통치 불능때문에 부담이 된 민주주의가, 이제 자꾸만 갈망되고 있는 리더십이라는 것의 단순한 보완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 통치가 스스로의 정당화, 영광, 나중에는 또 포퓰리즘적인 박수갈채로서만 필요로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 [옮긴이] 일본에서도 책 제목의 번역이 분분하다. 옮긴이는 '애도극'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현재로서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라!보다 약 8년 전에, 하버마스는 유럽을 둘러싼 또 다른 인상 깊은 정치문서를 발표했다. 인상 깊음의 절반은 그가 초고를 쓴 그 우리의 전후 부흥 : 유럽의 재생(20035)에서, 그와 오랜 논적이었던 자크 데리다가 공저자로서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 있지만(데리다가 초안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로 건강문제에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의 눈에서 볼 때, 이 문서는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라!와의 거리에 있어서야말로 인상 깊다. 정치 문서의 안목으로서의 상황적 주장을 비교했을 때, 정반대의 것을 호소하고 있다. 2011년의 문서에 관해서는 이미 봤던 대로이다. 국민투표가 타국의 정치가의 압력에 의해 중지됐고, 그리스인은 주권을 행사할 기회를 빼앗겼다. , EU의 상황은 주권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다.

이에 대해 2003년의 문서는 주권이 EU를 재생이 필요할 정도로 빈사瀕死의 상태에 사로잡혔다는 진단을 기조로 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스페인의 총리가 독주하여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와 가담을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내심 전쟁에 흥미를 가지고 기웃거리던정부들의 등을 떠밀고, ‘불량배불량배의 전쟁에 EU 전체를 끌어들인 데에 있다. 그 표명은 유럽의 공동 외교를 좌절에 몰아넣고, 매파 미국과 비둘기기파 유럽, 신적인 칼과 인도주의의 윤리적으로 허용하기 힘든 일련의 분업체제를 완성시켰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했을 거라던) 주권, 미국의 (전쟁 개시 결단을 내린) 주권, 스페인의 (누구에게 정의가 있는가, 누구를 퇴장시켜야 하는가를 선택하고 그것을 표명하는) 주권을 앞두고, “차이들을 승인하는 것, 타자를 그 타자성에 있어서 서로 승인하는 것정체성/동일성이라고 해야 하며, “유럽적 공공성은 패배했다. “국가폭력의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수준에서도, 주권의 행동 범위를 상호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EU의 간주권적 통치원리는 일국의 총리의 배반 이것도 주권의 행사일 것이다 때문에 좌절한 것이다. 그래서 전후에 기대를 걸었던 재생의 호소이다.

데리다가 좀 더 살았더라면(2004년 사망), 이 대조contrast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가 서명한 2003년의 공동문서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거의 무게를 갖지 않았으나, 차이나 타자성을 승인하는 것, 그리고 간주권적 통치를 이 문서의 민주주의개념으로 간주한다고 본다면(그렇게 봐도 나쁜 이유가 데리다에게 있을까), 그 대답은 생전의 저작에서 충분하게 추측하여 헤아릴 수 있다. 2002년의 불량배들이다. 거기서는 민주주의가 깊은 자기면역성의 병을 앓고 있다고 간주됐다(앞의 책, 3. 민주제의 타자, 대신하다 : 대체와 교체). 이를 테면,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기 파괴적, 자살적이다 등등. 예를 들어,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의 승리를 눈앞에 둔 선거과정을 군부가 정지시킨 알제리. 정지시키지 않으면, 알제리의 민주주의는 확실하게 하나의 끝을 맞이했을 것이다. 정지는 실제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선거과정의 정지는 민주주의의 정지이다. 게다가 이라크. 불량국가를 쫓아내지 않으면 중동에 민주주의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력 공격을 받지도 않은 국가들이 하나의 주권국가에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주권국가 간의 민주주의에 반한다.

EU를 둘러싼 두 개의 정치문서를 염두에 두면서,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을 패러프레이즈해보자. 주권자를 실정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그 주권자가 누구든 민주주의이며, 데모스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는 지고적인 지배권으로서의 주권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만 하나의 통치 이념일 수 있다. , 주권이란 민주주의의 자기일 것이다. 그 주권이 민주주의의 타자가 되어 버린 사태를 두 개의 문서가 보여주는 대조contrast는 부각시키고 있다. 맨 먼저, 주권과의 일체성으로부터 우리를 주권적 공공성으로 조금 떼어낸 민주주의는 주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2003). 그 다음으로,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그 민주주의가, 바로 간주권적 공공성의 이름으로, 주권의 공격에 착수하는 것이다(2011). 하버마스적 어휘인 간주권적 통치나 그것에 일치하는 개념으로서 사용되는 공공성불량배들의 데리다는 이렇게 표현한다. “보편적인, 심지어 국민국가적 구조로부터 독립한 민주주의의 이런 세계정치적(=코스모폴리탄적인) 차원”(강조는 인용자). 두 사람의 어휘가 이렇게 상통한다고 상정해야만 2003년 문서에 데리다가 서명한 것을 납득할 수 있다(이 상통으로부터 무엇을 독해할 수 있는가는 나중에 보자). 아무튼 주권과 민주주의의 분리는 아무리 민주주의 개념을 주권 개념에 구속되지 않는 차이나 타자의 승인으로 확장하더라도 이는 자기자기의 분리에 다름 아니며, 그 확장 자체에 의해서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을 높여버릴 것이다. ‘민주주의의 타자란 우선 민주주의의 자기라는 것을 주권으로부터의 민주주의의 해방은 깨닫게 해줄 것이다. 시민사회의 수세기 동안의 역사적 성숙과, 홀로코스트를 정점으로 하는 그 비참한 이면(裏面)이 가능케 하고 또 요구하기도 한 민주주의 개념의 확장, 주권을 넘어선 지평으로의 그 이동이, 민주주의에, 스스로 뿌리치고 달아났을 터인 과거의 제약, 이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했을 터인 뿌리를 썩게 하고, 스스로를 공동화(空洞化)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2011년의 문서는 비통한 외침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자!” 에 의해 증언하고 있다. 불량배들의 논리는 이런 진단을 이 문서에 내린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도마에 올린 베니 레비(목자의 살해)나 장-클로드 밀네르(민주주의적 유럽의 범죄적 경향), 혹은 앞 절에서 우리가 거론한 레지스 드브레 등의 논자들의 프랑스적 공화주의(주권주의적 공화주의)는 이런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에 대한 바로 면역 반응일 수도 있다. ‘자기면역성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그 자체를 타자화해버리는 것이다. ‘공화국의 타자로 말이다. 그들은 전체주의자나 신권정치의 옹호자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본질적인 민주주의자로서, 공공정신을 시들게 하고 사적 개인의 사회생활의 양식으로 전락한 민주주의의 현재를 증오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본질적인 민주주의에 공화주의의 이름을 준다는 공통성에 의해 하나의 사상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토크빌 이후의 민주주의 비판을 프랑스 혁명의 옹호 요체는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의 옹호 와 공존시키는 특수한 프랑스적 이데올로기이다. 데리다에게 자기면역성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결함 본성적 역설paradox 에 불과하지만, ‘불량배이라크를 처벌하고 쫓아내려고 하는 미국도 불량배라고 간주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한에서, 역설은 자기파괴 경향뿐 아니라 재생의 계기도 포함했다. 두 사람의 불량배는 모두 민주주의의 자기라고 하는, 견딜 수 없는 현황 인식의 그 견딜 수 없음은 자기의 내부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전쟁은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허용하기 힘든 분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도 또한 자기면역적 반응이며(타인의 전쟁이라면 방치해두면 된다, 어처구니없다고 한탄할 뿐이어도 된다), 바로 그것이 정의의 계기이라고 데리다는 자기를 완전히 타자화하여 문제를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하는 공화주의자들을 나무랐을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 우리가 이용했던 공화주의 개념의 특성을 세 가지 차이를 통해 더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우선 프랑스 이데올로기로서의 공화주의는 국가주권과 민주주의의 괴리에 대한 거부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는데, 우리의 공화주의 개념에는 원래 공화국의 주권이 필요 없다. 그것은 이미 봤듯이, 군주에게도 귀족에게도 민중에게도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체제의 개념이며, 주권이 아닌 현실권력 (real power) 사이의 차이, 경합, 모순을 집합체의 권력의 확장으로 변환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헌법에 주권 규정을 포함하지 않고서도, 원리적으로 얼마든지 State(=국가)를 연방에 환영하며 맞아들일 수 있는 미국은,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의 한 가지 모델일 것이다. United States를 하나의 주권국가로 만드는 것은 국제관계’(하버마스의 간주권적지평)일 뿐이다. 공화국의 내적 구성에 주권은 필요 없으며, “자유의 구성 Constitutio Libertatis”으로서의 공화국 헌법은 사회계약이 아닌 개인 간 동맹이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국가 간 조약과 마찬가지로 간주권적인 맹약이며, 맹약에 의해 성립된 사회에 개인이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특히 주권은 넘겨주지 않는 특수한 사회계약 경제인(호모 에코노미쿠스)들의 사회설립계약 같은 이다. 아무튼 주권과는 다른 지평에 서서, 혹은 그 지평으로 나가려고 하는 정치적 의지에 있어서,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는 데리다-하버마스가 말하는 민주주의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이 공통성을 좀 더 뒤쫓아보자. 데리다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이란, 정체로서의 민주주의(의회제)를 특징짓는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정체의 밑바탕에 있으며, 특정한 현재의 정체(군주정, 귀족적, 민주정), 그것에 대한 면역 반응으로서/에 의해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이다. 게다가 정체의 창설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적 과정의 일부를 이룰 것이다. 어떤 새로운 정체도, 민주주의의 자기인 주권자(국가 그 자체여도 신이어도 상관없다)의 이름에 의해, 현재의 정체에 의한 이 자기에 대한 공격에 맞선 방어=대항공격으로서 수립된다. 쿠데타조차도 근본적으로 정확하게는 근본에 있어서만 민주주의적이다. 이런 자기면역성이란, 우리의 용어법으로는, 세 정체 모두가 품고 있는 부패로의 경향이며, 또한 그 부패에 맞서는 이며, 정체의 순환을 출현시키는 정체 일반의, 혹은 정치라는 것의 본성적 위기에 다름없다. 자기면역성은 우리가 말하는 공화정체의 특성이기도 하다[주].

[주] 우정의 정치(1988-89년도의 데리다 세미나 기록을 정리한 저작. 鵜飼哲大西雅一郎松葉祥一 訳, みすず書房, 2003)에는 민주주의와 정체들의 관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약간 뉘앙스가 다른 서술이 있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은 각각 부친적 관계, 남자와 아내의 관계, 형제 사이의 관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그런 한에서는, 세 개의 관계 사이에는, 파생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적으로 정치적’(이것은 많은 경우 민주제적이라고 번역된다)은 형제 사이의 관계이며, “정치적인 것 그 자체, 형제애, 민주주의, 이것들 사이에 있는 상호적 포함 관계, -속적 관계는, 거의 동어반복적=동일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2, 九頁)라고 말한다. , ‘정치적인 것 그 자체는 민주주의적이며, 세 정체의 구별은 (근원적?) 민주주의에 선행한다고도 읽을 수 있다. 데리다에게서, 이윽고 형제 간의 관계에, ‘자기면역성이 발견될 수 있을까? 형제들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혈육 간의 싸움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일까

그러나 데리다에게 자기면역성은 결코 그 자체의 정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자기면역적 과정차연의 운동의 하나로 여겨지며, ‘도래할 민주주의가 결코 미래의 현재의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신체 corps’를 갖는 것이 아니다. ‘자기면역성은 항상 도래할것에 머무는 민주주의()바닥 그 자체이며, 정치에 있어서의 시간(‘시대’)과 공간(각 정체)의 차이를 산출하면서, 그 차이 속에 ()장소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본질주의는, 근대에 있어서는 특히 마키아벨리가 정치 노선화한 현실의 공화주의를 무시하지 않을까? 또한 삼권분립의 사상조차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닐까? 마키아벨리는 데리다 식으로 바꿔 말한다면, 세 정체 각각의 부패경향을 상호적으로 공격시키는 자기면역시스템으로 공화국을 구상한 것이다. 그것은 로마에서조차 자기파괴했듯이, ‘자기면역성의 병인 부패로부터 쾌유할 수는 없으나,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이 재생의 계기를 간직하고 있었듯이, ‘부패에 맞서는 도 또한 갖추고 있으며(‘부패 부패에 다름 아니다), 그 혼합정체는 부패의 상호공격을 의 생산시스템으로 변환하려고 한다. 공화국의 확장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민주주의의 자기 면역 과정에 끝이 없듯이, 공화국은 지속한다. ‘도래할 민주주의가 결코 현실화되지 않듯이, 공화국의 확장에는 목적goal이 없으며, 확장의 지속 속에서만 부패를 능가한다. 목표goal가 없는 것은, 반드시 언젠가 우연의 앞을 가로막으며, 확장 과정을 어디선가 자기파괴 과정으로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키아벨리적 공화국은,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것을 받아들인, 뒤집어보면 도래할 민주주의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파괴’-‘부패재생’-‘의 균형 시스템이다. 근대의 삼권분립은 그 후계였을 것이다.

즉 우리의 공화주의는 데리다의 민주주의도래할 민주주의자기면역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둘 다 와 달리, 정체로서 실재한다. 뭐랄까, 우리는 어디까지나 실재하는 시스템을 공화주의의 이름에 의해 규정(identification)했다. 이것이 두 번째 차이이다. 이 공화주의는 그러므로, 그 점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데리다와 프랑스적 공화주의 둘 다에 대해 거리를 취하려고 하는 랑시에르의 제비뽑기노선과도 다르다. “아무나=누구든 좋은 누군가 le n’importe qui”가 정치를 담당하는, 이 플라톤에서 유래한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와도 다르다. 세 번째 차이이다. 플라톤은 그런 체제가 실현되면 자유와 존엄을 깨달은 말[]이나 당나귀가 길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닥치게 된다고 하는 이유로 그것을 배척했다. 즉 플라톤에게 제비뽑기민주주의는 단적으로 정치 질서 랑시에르는 그것을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라고 부르는데 의 부재이며, 랑시에르는 이 아나르시アナルシ=무질서를 하나의 긍정성으로 뒤집어버리고,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와 비슷한, 결코 미래의 현재의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 체제로 위치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는 어디까지나, 역사상 거의 어디에서도 있으며 그리고 언제든 있는 n’importe où et n’importe quand 체제의 호칭이다. 랑시에르의 제비뽑기민주주의는 주권의 거처를 둘러싼 고찰 끝에 주권을 삭제하지도 않고 특정한 어딘가에 존속시키지도 않는, 더 정확하게는 주권의 존재와 부재를 균형 혹은 일치시키는 체제이며, 그 있을 수 없는 도래 가능성에 의해 도래할 민주주의의 일종이며, 또한 그 부정적 보편성, 보편적 부정성에 의해, 민주주의와 주권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프랑스적 공화주의의 일종 또는 극한(limit)를 형성한다. 프랑스적 공화주의가 일치의 순수한 긍정성=실정성을 추구하는 반면, 랑시에르의 공화주의는 똑같은 일치를, 데리다의 자기면역성과 마찬가지로, 바닥 없는 바닥에 두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 이른바 그 평범함, 흔해빠진 착상에 있어서 강력한 사상이며, 주권 개념이 데리다-랑시에르-프랑스적 공화주의를 하나의 에피스테메로 결합시키고 있다고 한다면, 있는지 없는지를 포함해, 주권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온 또 다른 에피스테메를 이룬다. 그것은 주권을 아무래도 좋은것으로 한다는 문제 관심에 의해서 정체의 제도를 실제로 설계해온 에피스테메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정치적으로 봐서, 어디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일까? 어디까지나 주권을 자기로 하는 민주주의의 추구와, 주권의 보류에 의해 성립하는 공화주의를 가상의 적으로 하는 노선은 어디에서 갈라지는 것일까? 그것은 자명하지 않다. 그런 공화주의에 대해서, ‘도래할 민주주의노선에 더 저항한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콕이 꼼꼼하게 계보를 추적하고, 네그리가 그것을 전제로 그의 구성적 권력의 개념사를 그려낸, 근대의 공화주의는 마키아벨리적 계기로서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게다가 미국으로 계승되며, 지정학적으로는 오늘날 세계정치에 있어서 앵글로색슨 동맹의 확장을 요구하는 커먼웰스에 사상적 주형[거푸집]을 계속 제공하고 있으며, 전지구적 자본주의노선에 대해,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우고, EU에 기대를 걸면서 저항하는 자세는 현대의 양식을 거의 대표하고 있다는 감이 있다. 그것은, 얼마간의 효과를 낳는다고 하는 의미에서는 분명히 객관적인 대항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진행 중인 투쟁의 귀추를 전망하기에는 너무 빠른 감도 있다. 예를 들어 아랍의 봄에는 민주주의파의 승리라고 정리해버릴 수 없는 요인이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그것은 반란의 전지구화라고도 불러야 할 과정 속에 있으며, 과정을 가속시키고, ‘주권원리의 세계적 후퇴를 우리에게 고한 것이다. 그래도 이라크 전쟁과 그리스 위기 후에도 아직, 하버마스를 필두로 하여 EU간주권적 통치를 체념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이라크로부터의 철수를 단적인 특징으로 하는, 공화국의 군사적 확장노선의 분명한 후퇴 경향에 동반된 이 대립축은 점점 더 많은 기대를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물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민주주의공화주의에 대한 유효한 맞수(counter)가 될까? 대립축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효과들은 당사자가 기대하는 그대로일까? 우리가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자!”라는 정치 문서에서 간파한 것은, 채무 문제가 양자의 차이를 실질적으로 소거하고 있다는, 기대와는 거꾸로 나아가는 경향에 다름 아니다. 본서가 무엇보다도 경제를 문제 삼는 까닭도, 똑같은 질문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경제로 한걸음 더 내딛기 전에, 1993년에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도래할 민주주의노선이 어떻게 되어 왔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 선수로 하는 민주주의’ vs 영미가 인솔하는 공화주의라는 도식이 형태를 이루는 데에는 맑스의 유령들이 적잖은 역할을 해 왔을 터이다. “우리는 오늘날 모두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주류 언론이 말할 정도로. ‘도래할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주권국가를 광신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공화주의와 확장을 요구하는 커먼웰스”(전지구적 자본주의) 양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입장을 사상적으로 지목했을 것이다. ‘경제라는 바닥을 참조하여 그 파탄을 주장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유하게 정치적인 수준에서, 혹은 간주권적이고 세계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미 20년의 역사를 지닌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현재가 어떤지는 확인해 두어야 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자크 데리다 사후 10



 

0. 들어가며 

.....................................................................................................................................................西山雄二


1. 민주주의의 항상성과 일관성 (Constance et consistance de la démocratie) 

............................................................................................ Jérôme LÈBRE (일역 : 松田智裕, 横田祐美子)


2. 데리다와 랑시에르에게서의 민주주의와 타자의 물음 (La démocratie et la question de l’autre chez Derrida et Rancière)

.................................................................................................................... 亀井大輔


3. 들뢰즈와 데리다두 사람의 운동은 같지 않다 (Deleuze et Derrida, ce n’est pas le même mouvement)

.................................................................................................... Jean-Clet MARTIN (일역 大江倫子西山雄二)


4. 최후의 유대인’ : 데리다유대교와 아브라함적인 것 (« Le dernier des juifs » : Derrida, le judaïsme et l’abrahamique)

........................................................................................................................ Gisèle BERKMAN (일역 佐藤香織)


5. 희생된 동물의 두 개의 신체 자크 데리다의 철학에 있어서 동물-정치 개념에 대한 고찰 (Les deux corps sacrifiés de l’animal. Réflexions sur le concept de zoopolitique dans la philosophie de Jacques Derrida)

............................................................................................................................. Patrick LLORED (일역 吉松覚)


6. 자크 데리다동물성의 시학 무인간적인 것에 관해 (Jacques Derrida. Une poétique de l’animalité. Sur l’anhumain)

..................................................................................................................... Gérard BENSUSSAN (일역 桐谷慧)


7. 고양이눈빛그리고 죽음 (The Cat, the Look, and Death)

............................................................................................................................. Darin TENEV (일역 南谷奉良)


8. 대린 테네브고양이눈빛그리고 죽음에 대한 응답

..................................................................................................................................... 大杉重男南谷奉良山本潤



9. 데리다에게서의 증여와 교환 (Gift and Exchange in Derrida (Derridative)

............................................................................ Darin TENEV (일역 横田祐美子松田智裕亀井大輔)

 

이하 몇 편의 글이 더 있으나 생략.

 

 

首都大学東京人文科学研究科

2015년 6






자크 데리다 사후 10

 

데리다와 랑시에르에게서 민주주의와 타자의 물음

La démocratie et la question de lʼautre chez Derrida et Rancière

Daisuke Kamei (Université de Ritsumeikan)

 

 

** 이 글은 프랑스어로 출판됐다. 이를 감안해 프랑스어를 먼저 적고 그 아래에 번역본을 적어둔다(김상운 옮김).

 

20012-511-03 - 데리다와 랑시에르 - 프랑스어.pdf

20012-511-03 - 데리다와 랑시에르 - 번역.pdf

 

<요지>

데리다와 랑시에르에게서의 민주주의와 타자의 물음

 

자크 데리다는 그의 후기 사상에서 도래할 민주주의개념을 전개했다. 자크 랑시에르는 두 개의 데리다론에서 이 개념을 다뤘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데리다의 민주주의는 데모스 없는 민주주의이며, 데리다는 정치적 주체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본고는 이런 이해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우선 랑시에르는 정치의 윤리화로서 현대의 정치나 미학에서의 윤리적 전회를 비판하고, 데리다 사상에도 마찬가지의 동향이 있다고 인식하지만, 우리는 데리다에게 그런 전회는 없으며, 있는 것은 전회운동으로서의 차연의 사상임을 확인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민주주의도 차연의 운동에 기초를 둔 것이다. 이어서 랑시에르는 데리다의 정의의 논의를 절대적 타자로부터의 타율적 명령에 대한 주체의 복종으로 파악하지만, 우리는 데리다의 사상에서 묘사되는 것은, 주체의 자율적 결정 속에 들어서 있는 타율적 계기의 불가피성임을 밝힌다.

 

******************

Jacques Derrida a exposé un concept de la démocratie à venir qui est devenu lʼun des principaux enjeux de sa pensée dernière. Après la mort de Derrida, en 2004, Jacques Rancière a publié, en anglais, deux essais au sujet de son concept de la démocratie: “Does Democracy Mean Something?” et “Should Democracy Come? Ethics and Politics in Derrida.” Dans ces textes, il a développé une rélexion critique sur la question, et a distingué son propre concept de démocratie de celui de Derrida. Pour lui, la démocratie derridienne est une “démocratie sans demos” et Derrida nʼaurait pas saisi lʼimportance politique de son objet.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마지막 사유의 중요 관건 중 하나가 된 도래할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2004년 데리다가 사망한 후,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주제로 한 두 개의 글을 영어로 출판했다. 민주주의는 무엇을 뜻하는가?민주주의는 와야 하는가? : 데리다에게서의 윤리와 정치가 그것이다. 이 두 개의 텍스트들에서 랑시에르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전개하며, 자신의 민주주의 개념을 데리다의 그것과 구별한다. 그가 보기에 데리다의 민주주의는 데모스 없는 민주주의이며, 데리다는 자신의 대상이 갖고 있는 정치적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Nous tenterons dʼexaminer la critique que fait Rancière de Derrida, et dʼéclaircir la pensée de ce dernier par lʼentremise de cette critique. À cet effet, nous insisterons dʼabord tout particulièrement sur ce que Rancière appelle le « tournant éthique »(1), puis sur le rapport entre la démocratie et la pensé de la difféance chez Derrida (2), et enfin sur la signification de lʼhétéronomie dans la conception derridienne de la justice (3).

우리는 랑시에르가 데리다에게 가한 비판을 검토하고, 이 비판을 통해 데리다의 사유를 명확히 하려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랑시에르가 윤리적 전회라고 부른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1), 이어서 데리다에게서 차연의 사유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2), 마지막으로 정의에 관한 데리다의 개념규정에서 타율의 의미에 관해 검토한다(3).

 

 

1. « Tournant éhique » et question de l’autre selon Rancière

1. 랑시에르가 보는 데리다의 윤리적 전회와 타자의 물음

Dans les deux articles quʼil a consacrés à Derrida, Rancière montre en conclusion que la théorie derridienne de la démocratie est fondée sur la base dʼune éthique, et quʼil sʼagit là dʼune pensée qui appartient au « tournant éthique », tel que Rancière lʼidentifie dans des situations politique et esthétique contemporaines. Nous voudrions confirmer que cʼest bien le «droit de lʼautre » qui se trouve remis en question dans ce « tournant ».

랑시에르는 데리다에게 헌정한 위의 두 텍스트에서 데리다의 민주주의 이론이 윤리에 근거하여 정초되었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이것이 윤리적 전회에 속하는 사유와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윤리적 전회란 랑시에르가 현대의 정치적미학적[감성적] 상황과 동일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전회에서 의문에 부쳐지고 있는 것이 타자의 권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Dans son essai paru dans Malaise dans l’esthétique, “Le tournant éthique de lʼesthétique et de la politique”, Rancière met en évidence une signification de ce terme. Selon lui, lʼethos, qui est à lʼorigine du mot « éhique », signifie “le séjour” et “le manière dʼêtre, le mode de vie qui correspond à ce séjour”1. Lʼéthique est donc “la pensée qui établit lʼidentité entre un environnement, une manière dʼêtre et un principe dʼaction”2. Cʼest à partir de ce constat que Rancière peut faire la distinction entre la morale et lʼéthique de la façon suivante: lʼéthique signifie “la constitution dʼune sphère indistincte oùse dissolvent la spéifitédes pratiques politiques ou artistiques, mais aussi ce qui faisait le coeur même de la vieille morale: la distinction entre le fait et le droit, lʼêtre et le devoir-être.”3, alors que la « morale » implique “la séparation de la loi et du fait” et “la division des morales et des droits”4. Rancière constate que, dans la politique et lʼéthique contemporaines, la norme se dissout dans lʼaction et la distinction entre la loi et le fait disparaît. Cette remarque est importante car elle contribue à expliquer le fait que le monde actuel ait perdu son principe de régulation par rapport aux lois, et quʼil se soit mué par consequent, en une lutte de « la justice infinie » contre « le mal infini ». Rancière emprunte à George W. Bush une phrase qui, selon lui, constitue un réultat exemplaire du « tournant éthique »: “seule la justice infinie est appropriée à la lutte contre lʼaxe du mal”5.

미학 안의 불편함(Malaise dans l’esthétique)에 수록된 논문 미학과 정치의 윤리적 전회(Le tournant éthique de lʼesthétique et de la politique)에서 랑시에르는 이 용어의 의미를 강조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윤리(éthique)’라는 단어의 기원인 에토스체류(séjour, 거처)’이런 체류(거처)에 상응하는 존재방식,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그러니까 윤리는 환경, 존재방식, 행동원칙 사이에 동일성을 수립하는 사유인 것이다. 이런 조서(constat)에서 출발해, 랑시에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도덕과 윤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 윤리는 정치적 혹은 예술적 실천들의 특정성을 해소시키는 미구별의 영역의 구성을 뜻하지만, 이와 동시에 기존의 도덕의 핵심 자체를 이루는 것, [] 사실과 권리, 존재와 존재-의무 사이의 구별을 뜻한다. 반면 도덕법률과 사실의 분리도덕과 권리의 분할을 내포한다. 랑시에르는 현대의 정치와 윤리에서, 규범이 행동 속에서 해소되며 법률과 사실의 구별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런 언급은 중요하다. 현실 세계가 법칙들과 관련해서 조절의 원리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결과 무한한 악에 맞선 무한한 정의의 투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윤리적 전회의 전형적인 결과를 구성하는 한 문구를 조지 W. 부시에게서 빌려왔다. 부시에 따르면, “무한한 정의만이 악의 축에 맞선 투쟁에 적합하다.”

 

Pourquoi cela sʼest-il produit? Parce que, pour Rancière, lʼune des formes que prend le «tournant éthique » est “lʼaffirmation dʼun droit de lʼAutre qui vient fonder philosophiquement celui des armées dʼintervention”6. Rancière décrit la chose en détail en se livrant à une lecture critique de “The Otherʼs Right”, qui est un texte écrit par Jean-François Lyotard pour The Oxford Amnesty Lectures en 1993. Lyotard considère « the other » comme le fondement même du droit à être traité avec humanité, à partir du fait que “[w]hat makes human beings alike is the fact that every human being carries within him the figure of the other”7, selon une référence à Hannah Arendt. Lyotard considère “the capacity to speak to others” comme “the most fundamental human right”8 et insiste sur le fait que cʼest lʼaltérité dans le moi “inhumain”, par exemple lʼenfance, lʼinconscient, etc qui constitue la raison de ce droit. Rancière tient pour le point essentiel de lʼargument de Lyotard le respect de la loi de lʼAutre, cʼest-à-dire le principe de lʼhétéronomie. Puis il développe la démonstration suivante: reconnaître un droit à lʼAutre en tant quʼinhumain signifie donner un droit à ceux qui sont exclus de la communauté et qui ne peuvent pas parler, à savoir à ceux qui ne peuvent pas utiliser leur droit. Mais quand ce droit ne peut être exercé par celui qui devrait le détenir, alors, quelquʼun dʼautre doit en hériter. Rancière écrit en anglais que cela revient à la nécessité de “lʼinterférence internationale”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랑시에르가 보기에 윤리적 전회가 취한 형태들 중 하나가 개입의 군대의 그것을 철학적으로 정초한 <타자>의 권리를 주장하는것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1993년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옥스포드 앰네스티 강의를 위해 작성한 텍스트인 타자의 권리에 대한 비판적 독해에 참여하면서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다. 리오타르는 다음의 사실에서 출발해서, ‘타자를 인류(humanité)로서 다뤄져야 할 권리의 기반 자체라고 간주한다. 리오타르는 한나 아렌트를 참조해서 인간 존재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인간 존재가 자신 안에 타자의 형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주장한다. 리오타르는 타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가장 근본적인 인간 권리로 간주하며, 자기(moi) 안의 이타성(altérité) 비인간’, 예를 들어 어린아이, 무의식 등 이 이런 권리의 이유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랑시에르는 리오타르의 논점의 핵심 지점으로 <타자>의 법칙에 대한 존중에 관해, 다시 말해 타율의 원리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이후 그는 다음의 증명을 개진한다. 비인간인 한에서의 <타자>에게 권리를 승인한다는 것은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자들과 말할 수 없는 자들에게, 즉 자기네의 권리를 사용할 수 없는 자들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권리가 이 권리를 쥐고 있어야 할 자에 의해 행사될 수 없을 때, 그리 되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상속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국제적 간섭의 필요성을 가리키는 것에 관해 영어로 이렇게 썼다.

 

“() the Rights of Man become the rights of those who have no rights, the rights of bare human beings subjected to inhuman repression and inhuman conditions of existence.() if those who suffer inhuman repression are unable to enact the Human Rights that are their last recourse, then somebody else has to inherit their rights in order to enact them in their place. This is what is called the ʻʻright to humanitarian interferenceʼʼ—a right that some nations assume to the supposed benefit of victimized populations, and very often against the advice of the humanitarian organizations themselves.”9

인간의 권리는 아무 권리도 갖지 못한 자들의 권리, 비인간적 억압과 비인간적 실존 조건들에 종속된 벌거벗은 인간존재들의 권리가 된다. 비인간적 억압을 겪고 있는 자가 그들의 마지막 의지처인 인권을 실효하게enact 만들 수 없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대신해 그 권리들을 enact하기 위해서 그들의 권리를 계승해야 한다. 이것이 인도주의적 간섭의 원리라고 불리는 것이다. 몇몇 국민들이 제물이 된 인구의 추정상의 장점을 취하고, 아주 종종 인도주의적 조직 자체의 장치에 맞서 이를 취할 권리 말이다.”

 

Ainsi peut-il affirmer que “[a]s a result, the rights of the Other ultimately lead to the justification of the military campaigns against the axis of Evil”10 et que le respect de lʼAutre devient finalement lʼexclusion radicale de lʼAutre.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타자>의 권리들은 궁극적으로 <>의 축에 맞선 군사전쟁의 정당화로 이끈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존중은 결국 <타자>의 근본적 배제가 된다.

 

Il est possible dʼexpliquer ce processus dans les termes mêmes de Rancière: «dissensus» qui constitue la politique, versus « consensus ». Dans la communauté politique, les « exclus » sont ceux qui existent dans le conflit ou dissensus et qui peuvent se constituer comme sujet politique supplémentaire. À lʼinverse, le consensus signifie “the attempt to get rid of politics by ousting the surplus subjects and replacing them with real partners, social groups, identity groups, and so on”11. Dans la communauté éthique qui supppose que tout le monde y soit inclus12, un sujet politique supplémentaire ne fait pas son apparition, et les « exclus » sont, soit « radicalement Autres », soit mis hors-jeu dans telle ou telle circonstance. La phrase suivante de Rancière évoque lʼatmosphère de crise à la faveur de laquelle lʼexclusion de la communauté se radicalise, ce qui a pour résultat que “la communauté politique est ainsi tendanciellement transformée en communauté éthique”13.

랑시에르의 용어로 이 과정을 해명할 수 있다. 그 용어는 바로 불일치이다. ‘불일치합의와 반대되는 말로, 정치를 구성한다. 정치공동체에서 배제된 자들은 갈등이나 불일치 속에서 실존하며, 대체보충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구성할 수 있다. 거꾸로 합의는 잉여적/초과적 주체들을 축출하고 이들을 실제적 파트너들, 사회집단들, 동일성 집단들 등등으로 대체함으로써 정치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모두가 거기에 포함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윤리적 공동체에서, 대체보충적인 정치적 주체는 그 출현을 이루지 못하며, ‘배제된 자들은 이들이 급진적인 <타자들>’이든 아니든, 모든 주어진 상황circonstance 속에서 바깥에 놓여 있다. 랑시에르의 다음 문장은 위기의 분위기를 불러들이는데, 이 위기 덕분에 공동체의 배제는 급진화되며, 이는 정치적 공동체가 윤리적 공동체로 경향적으로 변형되는결과를 갖는다.

 

 

2 la démocratie et la différance chez Derrida

2. 데리다에게서의 민주주의와 차연(différance)

Ce jugement de Rancière est fondamental pour analyser de façon critique certaines situations politiques dʼaujourdʼhui. Toutefois, dans la mesure où il se réfère à lʼimplication éthique en jeu dans la conception de la démocratie chez Derrida, son propos nʼest pas sans poser problème. Cʼest ainsi quʼil dit, dans son entretien récent:

랑시에르의 이런 판단은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situations을 비판적 방식으로 분석하는 데 근본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데리다에게서 민주주의의 개념규정 속에 작동하는 윤리적 함의를 가리키는 한, 그의 발언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Et il[Derrida] est aussi celui qui carrément disjoint la politique, identifiée à la souveraineté et la figure de lʼautre, lʼhôte que lʼon accueille mais aussi celui dont on est lʼotage. En somme, il y a pour lui le même, qui est de lʼordre du sujet souverain, et le radicalement autre qui est lʼhumain habité par la puissance de lʼinhumain. Cela revient à exclure la figure même du sujet politique comme puissance dʼaltération de lʼordre identitaire.”14

그리고 그[데리다]는 주권 및 타자의 형상과 동일시된 정치를 분명하게 분리시킨다. 환영받는 주인이지만 그러나 또한 인질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에게는 동일자가 있다. 이 동일자는 주권적 주체의 질서에 속하며, 비인간의 역량에 의해 거주하게 된 인간인 근본적 타자이다. 이것은 동일성주의적 질서를 변경할 역량으로서의 정치적 주체의 형상 자체를 배제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Afin de vérifier si lʼon peut être en accord avec cette compréhension, il nous faut examiner la façon dont Rancière comprend la pensée de Derrida. Pour cela, nous distinguerons deux points: dʼune part, Rancière considère quʼil existe une affinité entre la pensée de Lyotard et celle de Derrida concernant le concept dʼéthique qui repose sur le rapport à lʼautre. Par conséquent, selon lui, la théorie derridienne de la démocratie “semble ainsi appartenir à la logique de ce tournant éthique ()”15. Dʼautre part, Rancière considère que Derrida se livre “à des interprétations très différentes [de Lyotard] de la relation entre éthique et politique”16. Selon lui, Derrida traverserait un « premier tournant », qui transformerait lʼhétérogénéité en hétéronomie, voire en une altérité divine, puis un «second tournant », qui transformerait cette altérité en lʼaltérité de tout autre, et enfin aboutirait au respect de lʼautre en tant que nʼimporte quel autre. Ce qui revient à la phrase de Derrida: « tout autre est tout autre »17. En somme, cʼest en passant par lʼ« éthique » de lʼhétéronomie que Derrida concevrait la « politique ». Dʼoù la question de Rancière: “Derrida nʼa-t-il pas délié la politique dʼune certaine théologie simplement pour la lier à une autre?”18 Rancière peut alors faire remarquer quʼun élément éthique est indispensable à la théorie derridienne de la démocratie.

이런 파악[이해]에 동의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랑시에르가 데리다의 사유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점을 구별한다. , 한편으로 랑시에르는 리오타르의 사유와 데리다의 사유 사이의 친화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타자와의 관계에 기초를 둔 윤리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랑시에르에 따르면, 데리다의 민주주의 이론은 이런 윤리적 전회의 논리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내가 윤리적 전회라고 부른 것의 논리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랑시에르는 데리다가 윤리와 정치 사이의 관계에 관한 [리오타르의] 매우 상이한 해석에매달렸다고 여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데리다는 첫 번째 전회를 가로질렀다. ‘첫 번째 전회는 이질성[이질발생성]을 타율성으로, 심지어 신적인 이타성으로 변형시킨다. 그런 후에 두 번째 전회로 나아간다. ‘두 번째 전회는 이런 이타성을 모든 타자의 이타성으로 변형시켰으며, 마침내 아무나 타자(nʼimporte quel autre)로서의 타자의 존중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데리다의 구절을 가리킨다. “모든 타자는 완전한 타자이다(tout autre est tout autre).” 간단히 말해서, 데리다는 타율성의 윤리를 통과함으로써 정치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랑시에르의 질문이 생겨난다. , “데리다는 어떤 신학의 정치를 다른 것과 연결하기 위해 이 정치를 탈연결한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랑시에르는 윤리적 요소가 데리다의 민주주의 이론에 불가결하다고 지적할 수 있게 된다.

 

Contre cette affirmation, nous voudrions préciser que, si lʼon met au jour la position éthique chez Derrida, la pensée de Derrida elle-même ne doit pas appartenir au « tournant éthique » tel que le pense Rancière. À cet effet, nous examinerons les deux points suivants: le premier consiste à considérer la pensée dernière de Derrida comme lʼune des formes de sa « pensée de la différance », le second consistera (ce sera lʼobjet dʼun prochain chapitre) à traiter de la question de lʼhétéronomie.

이런 주장과는 반대로, 우리는 데리다에게서 윤리적 입장을 드러낼 수 있다면, 데리다 자신의 사유는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것으로서의 윤리적 전회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검토할 것이다. 첫 번째 점은 데리다의 마지막 사유를 차연의 사유의 형태들 중 하나로 간주하는 데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점은 타율성의 물음을 추적하는 데 있을 것이다(이것은 다음 장의 대상일 것이다).

 

Tout dʼabord, on sait quʼil existe, dans les recherches anglophones, une conception généralement admise du « tournant éthique » de Derrida depuis les années 1980, conception que lʼon peut dater de la lecture de Simon Critchley19. Cʼest ainsi que tout récemment, un philosophe tel que Jacob Rogozinski a observé un certain tournant dans la pensée déconstructrice du dernier Derrida20. Mais, comme on sait, Derrida lui-même a nié avec force quʼil puisse exister un tel tournant dans sa pensée, en écrivant dans Voyous, en 2003:

우선 우리는 영어권 연구자들 안에, 1980년대 이후 데리다의 윤리적 전회라는 일반적으로 수용된 개념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개념규정은 사이먼 크리칠리(Simon Critchley)의 독해로 소급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야콥 로고진스키(Jacob Rogozinski) 같은 철학자는 말년의 데리다의 탈구축적 사유에서 어떤 전회를 연구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데리다 자신은 2003년에 불량배들에서 쓰고 있듯이, 그의 사유에서 전환점 같은 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 il nʼy a jamais eu, dans les années 1980 ou 1990, comme on le prétend parfois, de political turn ou de ethical turn de la « déconstruction » telle, du moins, que jʼen fais lʼexpérience. La pensée du politique a toujours été une pensée de la différance et la pensée de la différance toujours aussi une pensée du politique()”21.

사람들이 때때로 주장하는 것처럼 1980년대나 1990년대에는,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것처럼 탈구축의 정치적 전회나 윤리적 전회가 있었던 게 결코 아니다. 정치적인 것의 사유는 언제나 차연의 사유였으며, 차연의 사유는 언제나 정치적인 것의 사유였다.

* : 80년대나 90년대에는 사람들이 때때로 주장하는 것과 같은 해체(déconstruction)’의 정치적 변화(political turn)나 윤리적 변화(ethical turn)는 적어도 제가 경험했던 것과 같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유는 항상 차연의 사유였고, 차연의 사유는 특히 민주적인 것의 자가면역적 수수께끼나 이중 끈 주변에서 항상 정치적인 것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윤곽과 한계에 대한 사유였습니다. 99.

 

Selon Derrida, sa théorie de la démocratie est aussi une variation de sa pensée de la différance, cʼest-à-dire de la pensée philosophique que lʼon appelle la déconstruction de la métaphysique de la présence dans la première période de sa pensée. De fait, Derrida écrit que “[l]a démocratie nʼest ce quʼelle est que dans la différance par laquelle elle se diffère et diffère dʼelle-même”22. Mais dans quel sens la démocratie se trouve-t-elle identifiée à la différance? Pour examiner cela, nous montrerons que la pensée de la différance chez Derrida est à considerer strictement comme une variante de la pensée du mouvement « tournant ».

데리다에 따르면, 그의 민주주의 이론은 그의 차연의 사유의 변주, 즉 우리가 데리다의 사유의 첫 번째 시기에서 현전의 형이상학의 탈구축이라고 부르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변주이기도 하다. 사실상 데리다는 이렇게 쓴다. , “민주주의는 차연 속에서만 스스로 연기되고 자기 자신과 차이나는 그런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자신이 연기되고 자기 자신과 달라지는 차연 속에서만 자신인 바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차연과 동일시되는가? 이를 검토하기 위해, 우리는 데리다에게서 차연의 사유가 전회운동의 사유의 변이variante로 엄격하게 간주됐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Rappelons, ici, que Derrida décrit deux mouvements de la différance dans son fameux texte de 1968: « La différance ».

여기서 데리다가 1968년의 유명한 텍스트인 차연(La différance)에서 차연의 두 가지 운동에 관해 서술한 것을 떠올려보자.

 

“Comment penser à la fois la différance comme détour économique qui, dans lʼélément du même, vise toujours à retrouver le plaisir ou la présence différée par calcul () et dʼautre part la différance comme rapport à la présence impossible, comme dépense sans réserve, comme perte irréparable de la présence, usure irréversible de lʼénergie, voire comme pulsion de mort et rapport au tout-autre interrompant en apparence toute économie? Il est évident cʼest lʼévidence même quʼon ne peut penser ensemble lʼéconomique et le non-économique, le même et le tout-autre, etc.”23

동일자의 요소 속에서 항상 계산에 의해 지연된 쾌락이나 현전을 발견하려 드는 경제적 우회로서의 차연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불가능한 현전에 대한 관계로서, 유보없는 지출로서, 현전의 돌이킬 수 없는 상실로서, 에너지의 거스를 수 없는[역전 불가능한] 감퇴로서, 심지어 죽음충동으로서, 모든 경제를 겉보기에는 중단시키는 모든 다른 것(tout-autre)과의 관계에서 차연을 어떻게 사고하는가? 우리가 경제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것, 동일자와 다른-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증거 자체이다.

* 수정 : 차연을 다음의 두 가지로서 동시에 어떻게 사고하는가? 하나는 동일자의 요소 속에서 계산에 의해 항상 지연된 쾌락이나 현전을 찾아내려 하는 경제적 우회로서의 차연이다. 다른 하나는 불가능한 현전과 비교된 차연, 유보 없는 지출로서의, 현전의 돌이킬 수 없는 상실로서의, 에너지의 거스를 수 없는 감퇴로서의 차연이며, 심지어 죽음충동으로서의 차연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경제를 중단시키는 모든-다른 것과 관계된 것으로서의 차연이다. 우리가 경제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것, 동일자와 다른-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증거 자체이다.

 

Cet énoncé nous montre que le mouvement de la différance renvoie à deux mouvements contradictoires qui sont, dʼune part, le détour économique visant à retrouver la présence et, dʼautre part et en même temps, le rapport au tout-autre qui interrompt ce mouvement économique. Il sʼensuit que la différance est le double mouvement qui constitue le cercle de lʼidentité tout en le retardant, et qui, tout au contraire, le brise par la venue de lʼautre. Le mouvement de la démocratie comme différance est fondamentalement le même mouvement que celui décrit ci-dessus. Derrida met au jour dans la démocratie un « renvoi », animé dʼun double mouvement, renvoi de lʼautre par exclusion et renvoi vers lʼautre comme respect de son altérité de lʼautre. Selon lui, il sʼagit de “la différance comme sursis et tour du détour, voie détournée, ajournement dans lʼéconomie du même”, et, en même temps de “la différance comme renvoi à lʼautre, cʼest-à-dire comme expérience indéniable () de lʼaltérité de lʼautre, de lʼhétérogène, du singulier, du non-même, du différant, de la dissymétrie, de lʼhétéronomie”24. Il est évident que cette expression correspond rigoureusement à celle qui est présentée dans « La différance ». Ce mouvement de la démocratie prend des formes différentes, par exemple, celle de lʼalternance de lʼintégration et de lʼexclusion des immigrés, ou de la reproduction du mal par le fait de se défendre contre des attaques venues de lʼextérieur. Cʼest ce que Derrida nomme lʼauto-immunité, ce qui veut dire que la démocratie est ouverte à sa perfectibilité et sa “pervertibilité”, autrement dit, quʼelle est exposée à lʼautre comme chance mais aussi comme menace.

이 언표는 차연의 운동이 두 개의 모순적 운동을 가리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운동이란 한편으로는 현전을 찾아내려는 경제적 우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동시에, 이런 경제적 운동을 중단시키는 다른-모든 것과의 관계이다. 이로부터 차연이 이중의 운동이라는 것이 뒤따라 나온다. 이 운동은 지연시키면서 모든 동일성의 원을 구성하며, 또 이와 정반대로, 타자의 도래(venue)에 의해 이를 산산조각 낸다. 차연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운동은 위에서 서술된 운동과 근본적으로 같은 운동이다. 데리다는 이중의 운동에 의해 활기가 불어넣어진 반송’, 즉 배제에 의한 타자 반송과 타자의 이타성의 존중으로서 타자를 향한 반송을 민주주의 속에서 밝혀낸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것은 유예로서의, 우회의 선회로서의 차연, 우회로로서의 차연, 동일자의 경제 속에서의 연기ajournement[*: 보류와 우회의 회전, 게다가 우회된 회전, 동일함의 경제학 속에서의 연기로서의 차연, 97]”이며, 이와 동시에 타자로의 반송으로서의 차연, 다시 말해 타자의 이타성의 , 이질성의, 특이한 것의, -동일자의, 차이자의, 비대칭의, 타율성의 부인할 수 없는 경험으로서의 차연[*: 타자로의 반송, 즉 부인할 수 없는 타자의 타자성, 이질적인 것, 개별적인 것, 같지 않은 것, 다른 것, 비대칭, 타율성의 경험으로서의 차연, 97]”이다. 분명 이 표현은 차연에서 제시된 것과 엄격하게 일치[대응]한다. 민주주의의 이런 운동은 상이한 형태를 취하는데, 예를 들어, 이민자들의 포함과 배제의 번갈아 나타남의 운동, 혹은 외부에서 오는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사실에 의해 나쁜 것을 재생산하는 운동이 그렇다. 바로 이것이 데리다가 자기면역성이라고 부른 것인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자신의 개선 가능성(perfectibilité)도착 가능성(pervertibilité)’에 열려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서, 민주주의는 기회인 동시에 위협으로서의 타자에 노출되어 있다.

 

De plus, on peut voir, dans la figure de ce mouvement, lʼ« ellipse » dans laquelle, “[r]épétée, la même ligne nʼest plus tout à fait la même, la boucle nʼa plus tout à fait le même centre, l’origine a joué. Quelque chose manque pour que le cercle soit parfait.”25 Lʼellipse nous interdit, par conséquent, de former la clôture, et maintient ouverte la limite entre dedans et dehors. Cʼest la figure même du mouvement déconstructeur, et on peut donc dire que la différance est ce qui dessine un mouvement elliptique tournant. Au début de Voyous, Derrida décrit en ces termes la relation entre la démocratie et lʼellipse: “Entre le « moins un » et le « plus un », la déocratie a peut-êre quelque affinité essentielle avec ce tour ou ce trope quʼon appelle lʼellipse”26.

더욱이 우리는 이 운동의 형상 속에서 침식(ellipse)’을 볼 수 있다. “반복된이 침식 속에서 똑같은 선은 전혀 동일자가 아니며[똑같지 않으며], 고리는 전혀 중심적 동일자, 작동된 기원이 아니다. 원이 완벽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침식은 우리가 울타리를 형성하는 것을 금지시키며, 안과 바깥 사이의 경계선을 열게 한다. 이것은 탈구축주의적 운동의 형상 자체이며, 우리는 차연이 침식적인 선회 운동을 이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량배들의 서두에서 데리다는 민주주의와 침식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하나 이하하나 이상사이에서 민주주의는 아마도 침식이라고 불리는 이 선회(tour)나 비유(trope)와 어떤 본질적인 인접관계[친연성, affinité]를 갖고 있다.”

 

Or, comment lʼéthique se situe-t-elle par rapport à cette pensée? Derrida a écrit, en 1967: “Il nʼy a pas dʼéthique sans présence de l’autre mais aussi et par conséquent sans absence, dissimulation, détour, différance, écriture”27. Ce qui veut dire que lʼéthique pour Derrida signifie, certes, la relation àlʼautre, mais seulement à la condition que lʼautre ne sʼenracine que dans le mouvement de la différance, même si Rancière, pour sa part, pense que Derrida fait la distinction entre le même et lʼautre, Derrida nʼest-il pas ce philosophe qui explique que le même ne peut pas se dissocier de lʼautre? Dans La voix et le phénomène, par exemple, il affirme à propos de lʼauto-affection qui préfigure le concept de lʼauto-immunité quʼil sʼagit dʼ“une auto-affection pure dans laquelle le même nʼest le même quʼen sʼaffectant de lʼautre, en devenant lʼautre du même.”28 Cette logique de lʼidentité non-identique, ou “identité de lʼidentité et de la non-identité du même,”29 est cruciale pour saisir la pensée de la différance. En empruntant une phrase à un commentateur de Derrida, nous pouvons dire quʼ“affirmer la différence entre lʼidentité et la différence ne menacerait en rien lʼautonomie logique de lʼidentité; cʼest seulement en affirmant lʼidentité de lʼidentité et de la différence quʼon la menace.”30 En somme, nous pensons que Derrida est un philosophe qui pense lʼindissociabilité du même et de lʼautre. De même que lʼéthique nʼest quʼun des éléments qui constituent le mouvement de la différance chez Derrida, il ne « tourne » pas à lʼéthique, mais il pense constamment un mouvement « tournant » elliptique comme la présupposition de lʼéthique, voire des apories issues de ce mouvement même.

그러면 윤리는 이런 사유와 맺는 관계에 의해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 하는가? 데리다는 1967년에 이렇게 썼다. “타자의 현전 없이 윤리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또한, 그리고 결국, 부재, 은폐dissimulation, 우회, 차연, 기록 없이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데리다에게 윤리가 물론 타자와의 관계를 의미할 뿐 아니라, 타자가 차연의 운동 속에 뿌리내린다는 조건에서만 그렇다는 것을 뜻한다. 비록 랑시에르는 데리다가 동일자와 타자를 구별한다고 생각하지만, 데리다는 동일자가 타자로부터 절연될 수 없다고 말한 철학자가 아닐까? 예를 들어 목소리와 현상에서 데리다는 자기면역 개념을 예고하는 자기-감응(auto-affection)에 대해 말한다. 자기면역은 순수한 자기-감응으로, 이 속에서 동일자는 타자를 변용[감응]시키는 점에서만, 동일자의 타자 되기 속에서만, 동일자일 뿐이다.” -동일적인 동일성의 이런 논리, 혹은 동일성의 동일성과 동일자의 비동일성의 동일성은 차연의 사유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데리다에 대한 한 논평가의 문구를 빌려와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동일성과 차이 사이의 차이를 긍정하는 것은 결코 동일성의 논리적 자율성을 위협하지 않는다. 동일성의 동일성과 차이의 동일성을 긍정할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위협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데리다가 동일자와 타자의 분리 불가능성(indissociabilité)을 사고한 한 명의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데리다에게서 윤리가 차연의 운동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듯이, 데리다는 윤리로 전회한 것이 아니라, 윤리의 전제로서 침식적인 전회적운동을 끊임없이 사유했다. 심지어 이 운동 자체에서 생겨나는 아포리아들을 사유했다.

 

3. De l’hétéonomie de la justice chez Derrida

3. 데리다에게서 정의의 타율성에 관해

Nous voudrions à présent examiner lʼanalyse que fait Rancière de lʼhétéronomie comme caractéristique de la pensée derridienne de la « justice » et de lʼ«événement ». Rancière dit, en citant Derrida dans Voyous:

우리는 이제 랑시에르가 정의사건에 관한 데리다의 사유의 특징이라고 간주하는 타율성에 대한 분석을 검토하고 싶다. 랑시에르는 불량배들에서의 데리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Lʼouverture à lʼévénement est la soumission à un autre « plus grand et plus ancien que moi ». Ainsi la conciliation entre autonomie et hétéronomie repose-t-elle sur la puissance dʼune hétéronomie, dʼune loi et dʼune décision de lʼautre. Elle repose sur la puissance dʼune injonction qui « vient sur moi de haut ». La justice signifie alors une dissymétrie radicale, une pure hétéronomie.”31

사건으로의 [타자의] 열림은 나보다 더 거대하고 더 오래된타자에의 굴종이다[타자의 결정에 버금간다]. 그러므로 자율과 타율의 화해는 타율의 역량에, 타자의 법률과 결정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런 화해는 높은 곳에서 내게로 오는명령의 역량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정의는 근본적 비대칭, 순수한 타율[근본적 대체불가능성]을 뜻한다. ([ ] 안은 영어판을 참조한 것)

 

Nous introduirons ici deux considerations:

우리는 여기서 두 개의 고찰을 도입한다.

 

1/De ce point de vue, il sʼensuit que Derrida identifie lʼhétéronomie en tant que soumission à lʼautre de par un principe de justice. Certes, comme il le dit dans Force de loi, Derrida pense que toute décision est “la décision de lʼautre”, et il appelle justement ce rapport à lʼautre la « justice ». Mais la justice derridienne signifie-t-elle “une pure hétéronomie” comme le dit Rancière? Ne faut-il pas plutôt la comprendre à partir de la pensée de la différance? Derrida dit, à propos de la « décision de lʼautre », que la décision juste “garde quelque chose de passif, voire dʼinconscient”32, parce que la décision en tant quʼévénement doit non seulement obéir aux règles et au savoir, mais aussi convenir de la rupture avec des règles et un savoir, et cʼest lʼaporie même au coeur de la décision dʼun sujet prétendument libre. Si bien que « la décision de lʼautre » chez Derrida signifie lʼintervention inévitable de lʼhétéronomie dans lʼautonomie, et nʼimplique pas, par conséquent, une “pure hétéronomie” dans le sens dʼune hétéronomie dépourvue de toute autonomie. Ce que montre Derrida, cʼest lʼaporie selon laquelle “la justice incalcable commande de calculer”, et qui dérive du fait que “dans leur hétérogénéité même, ces deux ordres [la loi et la justice] sont indissociables: en fait et en droit”33, à savoir, selon lʼinséparabilité entre lʼautonomie et lʼhétéronomie.

1/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당연한 귀결로 따라나온다. , 데리다는 타율을 정의의 원칙에 의한 타자에의 굴종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법의 힘에서 말하듯이, 데리다는 모든 결정은 타자의 결정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는 타자와의 이런 관계를 정당하게도 정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데리다의 정의는 랑시에르가 말하는 순수 타율을 뜻하는 것일까? 차연의 사유에서 출발해서 이것을 파악[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타자의 결정과 관련해서 데리다는, 정의로운 결정이 어떤 것을 수동적으로,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지킨다 = 수동적인, 심지어 무의식적인 어떤 것을 간직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건으로서의 결정은 규칙과 지식을 준수해야=지식에 복종해야 할 뿐 아니라, 규칙들과 지식과의 단절을 시인해야=동의해야convenir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칭 자유로운 주체의 결정의 핵심부에는 똑같은 아포리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데리다에게서 타자의 결정은 자율성 속에 타율성의 불가피한 개입을 뜻하며, 결국 모든 자율성을 빼앗긴 타율성이라는 의미에서 순수한 타율성을 내포하는 게 아니다. 데리다가 보여주는 것은 아포리아이다. 이 아포리아 속에서 계산할 수 없는 정의는 계산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이 아포리아는 그 이질성/이질발생성 속에서도, 이 두 개의 질서들[법과 정의], 사실상으로나 법권리상에서나, 분리 불가능하다indissociables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 자율과 타율 사이의 분리 불가능성ʼinséparabilité에 따라서.

 

2/En outre, lʼexpression: “vient sur moi de haut”, employée par Derrida, ne renvoie pas à lʼimpératif ou à la puissance selon un ordre hiérarchique. Pour Derrida, la hauteur “veut dire que lʼévénement en tant quʼévénement, en tant que surprise absolue, doit me tomber dessus. Pourquoi? Parce que sʼil ne me tombe pas dessus, cela veut dire que je le vois venir, quʼil y a un horizon dʼattente.”34 Cette hauteur est donc la caractéristique de lʼévénement comme imprévisible.

2/ 덧붙이면, 데리다가 사용하는 위에서부터 내게로 온다는 표현은 위계적 질서에 따른 명령이나 역량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데리다에게 높은 곳(la hauteur)사건으로서의 사건, 절대적 놀람으로서의 사건이 내게 떨어질[닥쳐올] 것이라는 뜻이다. ? 사건이 내게 떨어지지[닥쳐오지] 않는다면, 이는 내가 사건이 오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고, 기다림의 지평이 있기 때문이다.” 이 높은 곳은 그러니까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사건의 성격인 것이다.

 

Pour conclure, revenons une fois encore à la phrase de Derrida: “tout autre est tout autre”. Rancière lʼinterprète comme une manifestation de lʼégalité de chaque autre. Pourtant, selon Derrida, cʼest lʼexpression de la singularité absolue de tout autre35. Cʼest pourquoi Derrida explique que lʼaporie du demos est “ la fois, d’une part, la singularité incalculable de n’mporte qui, avant tout « sujet », la possible déliaison sociale dʼun secret à respecter, audelà de toute citoyenneté et de tout « État », () et, d’autre part, lʼuniversalité du calcul rationnel, de lʼégalité des citoyens devant la loi, le lien social de lʼêtre-ensemble, avec ou sans contrat, etc.”36 Certes il nʼy a pas de demos au sens du sujet politique dans la théorie de Derrida, mais pour lui, le demos est lʼaporie même.

결론을 내리기 위해, 데리다의 문구로 다시 돌아가자. “모든 타자는 완전히 타자다(Tout autre est tout autre).” 랑시에르는 이 구절을 각각의 타자의 평등의 현시manifestation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이것은 모든 타자(완전한 타자)의 절대적 특이성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데모스의 아포리아가 동시에, 한편으로는, 아무나, 무엇보다도 주체의 계산할 수 없는 특이성, 모든 시민권과 모든 국가의 너머에서 존중해야 할 비밀의 가능한 사회적인 탈연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합리적 계산의 보편성, 법 앞에서의 시민들의 평등의 보편성, 함께-있음의 사회적 유대, 사회계약과 더불어 혹은 사회계약 없이 등등이라고 설명한다. 데리다의 이론에서 정치적 주체라는 의미에서의 데모스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데리다에게 데모스는 아포리아 자체이다.

 

Sa conception de la démocratie à venir est donc celle dʼune démocratie avec des apories ou dʼun demos aporétique. Elle continuera de tourner et de retourner à lʼinfini.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라는 개념규정은 그러므로 아포리아들을 지닌 민주주의의 개념규정이거나 아포리아적 데모스의 개념규정이다. 이 개념규정은 무한으로 전회하고 재전회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자크 데리다 사후 10


20012-511-00 표지 및 목차 - 번역.pdf


 

0. 들어가며 

...................................................................................................................................................................西山雄二


1. 민주주의의 항상성과 일관성 (Constance et consistance de la démocratie) 

....................................................................................................... Jérôme LÈBRE (일역 : 松田智裕, 横田祐美子)


2. 데리다와 랑시에르에게서의 민주주의와 타자의 물음 (La démocratie et la question de l’autre chez Derrida et Rancière)

.............................................................................................................................................................. 亀井大輔


3. 들뢰즈와 데리다, 두 사람의 운동은 같지 않다 (Deleuze et Derrida, ce n’est pas le même mouvement)

.................................................................................................... Jean-Clet MARTIN (일역 : 大江倫子, 西山雄二)


4. 최후의 유대인’ : 데리다, 유대교와 아브라함적인 것 (« Le dernier des juifs » : Derrida, le judaïsme et l’abrahamique)

........................................................................................................................ Gisèle BERKMAN (일역 : 佐藤香織)


5. 희생된 동물의 두 개의 신체 : 자크 데리다의 철학에 있어서 동물-정치 개념에 대한 고찰 (Les deux corps sacrifiés de l’animal. Réflexions sur le concept de zoopolitique dans la philosophie de Jacques Derrida)

............................................................................................................................. Patrick LLORED (일역 : 吉松覚)


6. 자크 데리다, 동물성의 시학 : 무인간적인 것에 관해 (Jacques Derrida. Une poétique de l’animalité. Sur l’anhumain)

..................................................................................................................... Gérard BENSUSSAN (일역 : 桐谷慧)


7. 고양이, 눈빛, 그리고 죽음 (The Cat, the Look, and Death)

............................................................................................................................. Darin TENEV (일역 : 南谷奉良)


8. 대린 테네브, 고양이, 눈빛,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응답

..................................................................................................................................... 大杉重男, 南谷奉良, 山本潤


9. 데리다에게서의 증여와 교환 (Gift and Exchange in Derrida (Derridative)

....................................................................................... Darin TENEV (일역 : 横田祐美子, 松田智裕, 亀井大輔)

 

* 이하 몇 편의 글이 더 있으나 생략.

 

 

首都大学東京人文科学研究科

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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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西山雄二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1930-2004)가 세상을 뜬 뒤 최근 10여 년 동안, 그 연구는 뚜렷하게 진전되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교 및 프랑스의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에서 귀중한 자료가 보존되어 공개됨으로써, 미공개의 중요 자료가 연구 대상이 됐다. 또한 데리다의 세미나 원고나 자세한 전기의 출판, 연구서의 발간 등, 출판물의 양도 늘고 있다. 그리고 국제회의인 DerridaToday가 격년으로 개최되고, 데리다 사상을 둘러싼 국제적인 연구활동이 활발하다. 일본에서의 상황에 관해서는 데리다의 사후, 오랫동안 번역되지 않았던 주저가 차례대로 번역됐다. 초기의 중요한 논집인 󰡔철학의 여백󰡕, 󰡔산종󰡕, 중기의 실천적 저작인 󰡔우편엽서󰡕, 그리고 탈구축의 정치적 개입이 나타나는 󰡔맑스의 유령들󰡕, 󰡔불량배들󰡕 등이다. 데리다를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더 충실해지고, 젊은 연구자들도 늘고 있다.

사후 10년째에 해당되는 2014년에는 세계 각지에서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간행물이나 번역, 잡지 특집이 다수 출판됐다. 필자는 2014년도(平成26年度) 首都大学東京傾斜的研究費学長裁量枠(ミニ研究環) 자크 데리다의 탈구축 사상의 국제적 공동연구(ジャック・デリダの脱構築思想国際的共同研究)의 조성을 받아, 각지에서의 행사에 참여하고, 연구 교류를 했다. 본 간행물은 데리다에 관한 일련의 논구는 이 傾斜的研究費의 연구성과이다. 필자가 해외에서 참가한 데리다 관련 행사는 다음과 같다.

 

1) 워크숍, 민주주의의 질문 : 데리다 / 랑시에르(Journée dʼétude: La question de la démocratie: Derrida / Rancière) 2014329Maison Heinrich Heine, Paris 주최 = 국제철학콜레주, 立命館大学

2) 4Derrida Today 회의 (4th Derrida Today Conference) 2014528-31Fordham University, New York

3) 국제심포지엄 자크 데리다 사후 10(International Conference: Commemorating the 10th anniversary of Jacques Derridaʼs death) 2014927上海交通大学(Shanghai Jiao Tong University), 상해 주최 = 上海交通大学哲学科 欧洲文化高等研究院

4) 국제심포지엄 도래할 데리다 : 열린 질문들(Colloque international : Derrida à venir, Questions ouvertes) 2014101-4일 고등사범학교, 파리 주최 = 파리고등사범학교, 현대출판자료연구소

5) 국제심포지엄 그가 어디에 있어도, 데리다와 함께 사고하다Colloque : Penser avec Derrida, où quʼ il soit 20141211-13일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 , 프랑스 주최 = 국제철학콜레주, 현대출판자료연구소

 

필자가 실제로 이런 행사에 참여하여 깊은 감명을 받은 발표원고, 필자가 교류한 연구자의 기 출판된 논고를 6편 골라 허가를 얻어 본 잡지에 번역했다.

또한 傾斜的研究費에 의한 기획으로서, 불가리아의 탁월한 데리다 연구자인 대린 테네브(소피아대학 조교수) 씨를 초빙하여 연속 세미나를 벌였다. 본 잡지에는 고양이, 눈빛, 그리고 죽음(2014123, 首都大学東京), 데리다에게서의 증여와 교환(Derridative)(2014125, 立命館大学)이 수록됐다. 전자의 강연에 대해서는, 大杉重男, 南谷奉良, 山本潤가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유익한 논평을 해주셨다. 대린 씨의 충실한 세미나를 기점으로 인문사회계의 전문분야의 울타리를 넘은, 비교문학적인 접근법의 매력이 반영된 것이었다.

번역에 관해서는 특히 젊은 연구자들에게 의뢰했는데, 모든 번역자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번역원고를 작성해주셨다. 매년 판에 박힌 대학의 잡지의 존재 의의는 때로 불분명하지만, 이렇게 젊고 청순한 공헌에 의해 잡지가 충실해지고, 또한 젊은이들에게 인센티브가 되는 것은 실로 이상적이다. 여러분의 참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西山雄二首都大学東京准教授)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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