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성의 근원 

1. 주권 vs 통치

오오타케 코지(大竹弘二)



1. 민주주의와 통치능력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조용히 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의 이념을 공공연하게 부정하기란 확실히 여전히 쑥쓰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근대민주주의의 기초인 인민의 의지라는 것에는, 지금까지 없던 불신의 시선이 향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때 염두에 놓인 것은 어떤 때는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민의이며, 어떤 때는 특정한 지역이나 단체에 의한 (종종 이익유도를 수반하는) 공공투자 혹은 행정급부의 요구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회의는 분명히 세계나 일본에서의 최근의 정치상황에 의해 깊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 공통되는 병리현상으로서는, 정부의 공공지출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가 선진국들의 재정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얘기되고, 일본 국내에 한정하면, 바뀌기 쉬운 여론이 작금의 일본정치의 불안정성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도 보인다. 이처럼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대부분이 민주주의의 결함에서 찾아지고 있다. , 의심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통치능력(governability)”이나 다름없다. 무책임한 민중(demos)의 지배가 통치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극히 고전적인 문제가, 오늘날의 정치정세 속에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과 안정적인 통치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이리하여 현재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통치의 안정을 헤치는 곳에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적인 가치들과 친화성을 지닌 자유의 이념에 비해, 작금의 민주주의의 이념은 반드시 형세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지금에서야 시작된 것이 전혀 아니다. 고도경제성장의 종언과 더불어 복지국가의 위기가 의식되게 됐던 1970년대에 신보수주의적인 통치불능론이 등장한 이래, 민주주의의 가치 절하는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 이른바 정부에 대해 지나친 요구를 부과하는 민주주의의 하중 초과통치능력의 저하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사무엘 P. 헌팅턴 등이 집필한 미일유럽 삼극위원회의 보고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시정일관 이런 어조로 관통되고 있다. 이리하여 국민의 요구들의 부하를 가능한 한 경감한 작은 정부가 지향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의 전지구화에 의해, 이런 담론은 점점 더 유력해지는 듯하다. “신중상주의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전지구적 경제 경쟁 속에서, 각국은 파이로서의 국민총소득의 확대를 지상명제로 삼는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국가전략에 있어서 우선 중시되는 것은, 특정한 성장산업혹은 성장분야를 늘리는 것이다. 이런 성장전략에 있어서는, 국민에 대한 소득재분배는 부차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소득의 공평성이나 평등을 요구하는 국민의 근시안적인 관점은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국민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며 배척된다. 전지구적인 경쟁의 시대에, 민주주의의 하중 초과에 대한 비판은 더욱 공고해지며, 민주주의의 위기는 가속화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근대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정당성은 주권개념에 의해 담보되었다. , 16세기의 유럽에서 탄생한 이 역사적지리적으로 고유한 개념이, 18세기 이후의 인민주권론의 기초가 됐다. 근대의 절대주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봐서 어떤 경위를 거쳐서 탄생했든, 주권의 개념 자체는 결코 단순한 사실적인 폭력 독점에 기초한 절대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댕, 홉스, 루소 모두, 주권의 본질적 정의는, 그것이 입법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모든 실정법의 규범 근거이며, 통치에 규범성을 가져다주는 정당화 원천이다. 확실히 입법자에 의한 근원적인 법정립은, 결국 힘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라는 문제는 있다. 그러나 주권 개념이 원래 목표로 했던 것은, 중세적인 종교 규범이 붕괴하고, 종파 내전에 시달리던 근대 초기에, 정치의 규범성을 더 세속화된 형태로 되찾는 것이었다. 주권이라는 근본 규범이 없으면 정치는 단순한 권력 조작의 기술로 추락해버릴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위기가 단순히 민주주의나 인민주권의 위기인 게 아니라, 주권의 위기, 혹은 이 말이 너무 진부하다면, 근대의 발명품인 주권 개념이 목표로 했던 것의 위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통치, 법이나 주권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은 주권의 소재가 인격화된 군주에 있는가, 국민 내지 인민에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또한 기준의 민주주의가 국민국가의 틀 내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문제시하는 논의도, 여기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문제로 삼는 것은, 내셔널이든, 전지구적이든, 원래 통치 행위가 규범에서부터 자립하고, 정당화의 절차를 무용지물로 삼고 있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통치의 이런 변질을 앞에 두고, 주권의 최고 발현인 헌법제정권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확실히 오래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사회학의 맥락에서는, 이미 전후의 이른 시기부터, 헬무트 셸스키(Helmut Schelsky) 같은 보수파든 하버마스 같은 좌파든 불문하고, “산업사회에서는 테크노크라시적인 기술관리가 정치적 정당화를 대체한다는 진단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정당화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통치는 점점 더 기술조작으로서의 그 성격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제, 반드시 전문가 집단을 수반한 행정관료기구의 테크노크라시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통치가 국가의 외부에 민간 위탁됨으로써, 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 이행함으로써 초래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수십 년 전부터 지적되었던 낡은 문제라고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근대 주권 국가에 있어서는, 그것이 탄생 초기부터 마주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장 근원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혹은 오히려, 주권 개념은 바로 통치의 기술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의 주권 이론의 이런 의의는, 세속화의 기능(, 중세적인 교회권력으로부터의 정치권력의 자립화)라는 의의에 비하면, 고려되는 경우가 너무도 적다. 근대 국가는 주권 개념에 의해, 기술로서의 통치 행위를 길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주권통치사이의 이런 접합은 절단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은, 알기 쉽지만, 그러나 오해를 사는 사고방식이다. 통치라는 것은, 주권에 의한 제어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닐까?

바로 통치행위를 규범에 의해 구속하는 것이 근대 초기에서의 정치이론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창출된 주권 개념이었지만, 그것이 절대 왕정 하에서 확고한 것으로 될 때까지, 당분간은 통치의 자립성에 시달리게 된다. 이것은 16-17세기의 정치 혹은 문학의 담론들 속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거듭 문제가 되는 것은, 주권자를 괴롭히는 어떤 아포리아에 다름 아니다. 주권이론의 이런 걸림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를 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2. 주권자의 전락 : 칸토로비츠와 셰익스피어

주권자에게 들러붙어 다니는 특유의 아포리아. 이 고찰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역사가 에른스트 H. 칸토로비츠의 유명한 저작 왕의 두 신체(1957)의 논의이다. , 왕의 신체는 항상 정치적 신체와 자연적 신체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 왕의 신체에는 상징적의례적인 측면과 가사(可死)의 개인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른바 거기에는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저작은 중세정치신학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칸토로비츠는 이 개념 장치를 사용해 중세 유럽 왕권의 상세한 분석에 매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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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왕의 신체의 이중성은 중세 왕권에 고유한 것인가? 칸토로비츠 자신이 말하듯이, 원래 왕의 두 개의 신체라는 교설은, 에드문드 프라우든을 시작으로 하는 16-17세기의 엘리자베스 왕조 및 스튜어트왕조 시대의 잉글랜드 법학자들 속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을 중세 왕권 전체의 분석에까지 부연해 들어간 것은 칸토로비츠의 특유한 역사 이해이며, 따라서 이 교설의 발단은 어디까지나 근대 초기에서 찾아져야 한다. 실제로 왕의 두 신체의 첫머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엘리자베스 왕조를 살았던 작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차드 2의 분석이다. 칸토로비츠는 1600년 전후에 성립된 이 극 속에서, “왕의 두 신체라는 사상이 전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조의 마지막 왕인 리차드 2세의 폐위를 그린 이 사극이 무대로 삼는 것은, 14세기 말의 잉글랜드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중세에 일어난 이 사건 속에, 종교내전이 격해지고 있고, 아직 절대왕권이 확립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그 자신의 시대의 잉글랜드를 투영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랭카스터 왕조의 시조가 되는 헨리 볼링브로크(나중의 헨리4)에 의해 폐위되는 리차드2세는, 영광이 있는 전능한 왕에서 약하고 비참한 한 개인으로 전락한다. 칸토로비츠에 따르면, 이 극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왕의 두 신체의 일체성[통일성]이라는 픽션의 해체이다. 거기에서는 왕은 그 정치적 신체를 벗겨내지고, 불쌍하고 자연적인 신체를 노출당하게 됐다. 이중적 신체를 가진 왕에게는, 성스러운 존재와 비천한 존재가 항상 반전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왕의 보석을 내놓고 수도승의 염주나 차고

궁전을 내놓고 은둔자의 움막으로 가야지

어의는 벗고 거지의 누더기를 입어야지

황금 장식 새겨진 술잔은 내려놓고 나무 잔이나 들어야지

왕홀은 지팡이와 바꾸고 수많은 신하들 대신 나무로 만든 성자의 조각상 두 개만 곁에 두어야지

광대한 왕국은 버려두고 작은 무덤으로 가야지. 작고 작아서 땅 위로 솟아오르지도 못한 무덤으로.

 

그 어떤 왕이라 해도, 불사이자 영원한 정치적 신체를 완전히 떠맡을 수는 없다. 그 자신은 결국, 일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모두가 살해되었는데 -- 죽을 수밖에 없는 왕의 관자놀이를 둘러싼 텅 빈 왕관 안에는 

죽음의 신이 궁전을 차려놓고 있고, 거기에는 죽음이라는 광대가 앉아서,

왕의 권위를 조소하고 왕의 영화에 냉소를 보낸단 말이다. 

All murdered. For within the hollow crown

That rounds the mortal temples of a king

Keeps Death his court, and there the antic sits,

Scoffing his state and grinning at his pomp, (3.2.151-59)

* 이 두 번째 구절의 번역본과 영문은 모두 정선영, <에른스트 칸토로비츠,  리차드 2』, 정치신학과 정신분석>, 453쪽에서 재인용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대부분은, 왕좌에서 전락하는 군주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유한한 존재자가 무한한 권능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데에서 오는 비극이다. 이미 칸토로비츠에 앞서서 발터 벤야민은 독일비극의 근원[각주:1](논문 제출은 1925)에서, 바로 이 점에 바로크 시대의 비극의 특징을 봤다. 지배자로 인정받은 절대적 권한과 지배자 개인의 통치능력 사이의 어긋남이 근대 비극에서의 군주의 우울(멜랑콜리)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신과도 비슷한 위계를 수여받으면서 그 자신은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군주는, 주권자로서 기대되는 절대적 결단을 담당할 수 없다. 주권자는 그 이중의 신체 때문에, 전능한 주권자로서의 스스로의 역할을 맡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17세기 독일의 바로크 연극의 주인공은, 이런 무력감에 휩싸여 몰락하는 군주들에 다름 아니다. 벤야민에게서는 특히, 행동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햄릿이야말로 이런 근대 비극의 주인공의 범형이다. 이렇게 이중의 신체에 시달리는 주권자라는 것은, 근대 초기의 비극에서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따라서 왕의 이중의 신체라는 교설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비극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칸토로비츠가 특히 리차드 2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근대 초기의 잉글랜드의 정치상황 속에서 특히 정치성을 띤 극이었기 때문이다. 리차드 2세와 볼링브로크와의 싸움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 유력한 신하였던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빌과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리차드 216012월에 일어난 에섹스 백작에 의한 봉기의 실패와 그 처형의 전후에, 셰익스피어 자신이 그것에 가까운 곳에 있던 에섹스 파의 사람들에 의해 반복해서 상연됐다고 얘기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내가 리차드 2세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리차드 2에 혐오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 극에 대한 그녀의 거부 반응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어리 스튜어트와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의 기억도 생생하고 종교 내전도 완전히 수습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정치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시대의 왕권은 아직 취약하며, 항상 폐위의 가능성에 떨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후 리차드 217세기 후반에는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2세의 치세 하에서 상연 금지됐다고 한다. 이렇게 퓨리턴 혁명 이후 왕정복고기에 셰익스피어의 이 연극이 미움을 받은 것은, 퓨리턴 혁명에서 처형된 순교자 왕찰스 1세의 운명이 사람들의 의식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토로비츠는 혁명기에 퓨리턴 진영이 국왕에 적대하며 내걸었다고 간주된 슬로건을 언급하고 있다. , “(King)을 지키기 위해 왕(king)과 싸운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왕의 두 신체의 통일성은 파괴되고, 그 폭력적 분리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왕의 정치적 신체의 이름 아래에서 왕의 자연적 신체가 희생에 처해지고, 찰스 1세는 그 순교자가 된다. 특히 왕당파 사람들에게는 리차드 2는 찰스 1세에게 닥쳐온 비극을 상기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의 두 신체라는 교설이 바로 이 시기의 잉글랜드 법학자에 의해 유포됐다는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주권자에 의한 통치의 확립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 어려움에 직면했던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주권 이론이 갖는 비극적 성격, 혹은 그 실현 불가능성은, 이 시대의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두 개의 정치신학 : 슈미트에 맞선 칸토로비츠

왕의 두 신체는 중세의 정치신학연구로 간주됨에도 불구하고, 거기서는 칼 슈미트가 완전히 묵살되고 있다. 두 사람이 다루는 주제의 친근성에도 불구하고, 칸토로비츠의 저작에서 슈미트가 언급되는 일은 전무하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30년대에 사망할 때까지 독일의 지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독일계 유대인인 칸토로비츠가 슈미트를 무지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50년대에 왕의 두 신체에 앞서서 쓴 칸토로비츠의 논문을 보면, “정치신학에 관해서 “1930년대의 독일에서 활발하게 논의된문제와의 주석이 이뤄지고 있다. 칸토로비츠의 전기를 쓴 역사가 앨런 브로에 따르면, 이것은 과거 신학자 에릭 페터존이 정치적 문제로서의 일신교(원저 1935)에서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제출한 격렬한 비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칸토로비츠가 슈미트의 논의를 전혀 몰랐다는 일은 있을 수 없고, 그가 거의 슈미트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30년대의 독일에서의 정치신학에 관한 논의는 슈미트와 페터존 사이의 논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신학의 친파시즘적 경향은, 슈미트뿐 아니라 나치의 권력탈취 전후의 시기에 독일에서 유행한 라이히 신학이라고 불리는 사상 조류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담론에서는 세상의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인 기대가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을 괴롭히던 핍곤 상태의 극복에 대한 기대와 결부됐다. 그리고 이런 민족주의적 기대의 성취를 나치 정권 속에서 찾아내려고 한 라이히 신학자들도 적잖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페터존의 저작은 무엇보다 우선, 이런 독일 민족주의적인 정치신학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종말론적인 국가구원자를 찾는 독일의 민족주의 신화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잠들어 있는 황제의 전설이다. , 어디선가 계속 잠을 자는 과거의 신성 로마 제국의 영웅적인 황제가 국난(國難)일 때에 되살아나 독일을 구원한다는 민간전승 설화이다. 잠들어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 이 황제가 누구인가에 대해 설들이 난무하지만, 이 전설은 20세기 초의 독일에서 새로운 리바이어던을 보여주었고, 라이히 신학의 동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때 큰 역할을 한 것이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서클이다. 게오르게 등은 언젠가 현실의 독일 국가를 넘어서 부활할 터인 숨어 있는 독일을 탐지해내고, 13세기의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잠들어 있는 황제의 임무를 맡기려고 했다. 이리하여 이슬람교도에 대한 종교적 관용으로 알려진 시칠리아 출신의 이 이단자 황제가 게오르게 서클 속에서 하나의 신화적 인물상으로까지 드높여질 수 있었다.

바로 이 게오르게 서클의 가장 열성적인 구성원 중 한 명이 젊은 날의 칸토로비츠였다. 이를 착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증언이 되는 것이 그의 1929년의 최초의 저작이다. , 황제 프리드리히 2. 2차 세계대전 전에 출판된 이 초판의 서언(緖言)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창설된 나폴리대학이 700주년을 맞이한 1924, 칸토로비츠는 서클의 동료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에 있는 황제의 무덤으로 순례 여행을 하고, “우리 황제들, 영웅들에게 / 숨어 있는 독일이라고 새겨진 비명(碑銘)을 두었다고 한다. 게오르게파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2세가 자라난 지중해이탈리아 남부에서 독일의 재생을 가져다줄 비밀의 지하수맥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젊은 칸토로비츠의 황제 프리드리히 2의 독일 민족주의적 함의는 명백하다. 예를 들어 게오르게 자신이 나치와 거리를 두었다고 해도, 혹은 게오르게파 내부로부터 나치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왔다고 해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게오르게 서클의 구성원 중에, 1944720일 히틀러 암살계획을 지휘하게 된 크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있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암살계획이 실패하고, 총살되기 직전에 슈타우펜베르크가 외쳤다고 하는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숨어 있는 독일 만세!” , 그는 현실의 나치국가에 대한 저항의 거점으로서 도래할 숨어 있는 독일의 이념에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종류의 보수 엘리트주의적인 반히틀러 운동을 과도하게 찬양할 필요는 없다. 게오르게파에서 보이는 종말론적인 민족주의가 파시즘과 일정한 친화성을 가진 것은 부정될 수 없는 것이다.

훗날의 칸토로비츠는 황제 프리드리히 2의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의식한 것 같다. 실제로 전후의 그는 황제 프리드리히 2의 재판을 찍는 일을 오랫동안 주저했다고 한다. 브로의 전기에 따르면, 칸토로비츠는 숨어 있는 독일의 승리와 독일 민족 재생에 대한 바람을 담아 쓴 20년대의 이 책이, 시대착오의 국가주의를 고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전후의 저작인 왕의 두 신체에는 과거의 황제 프리드리히 2에 대한 자기비판이 표현되어 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세속적 세계 속에서 초월을 실현하는 것의 불가능성이다. 왕의 신체의 이중성, 주권자에 있어서의 신과 인간의 공존은, 결코 그러한 차이의 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칸토로비츠 자신이 말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리차드 2의 독해로부터 분명히 밝혀지는 것은, 주권자의 경험적 신체는 초월적 신체를 결코 떠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왕의 두 신체는 그 일체성[통일성]이라는 픽션의 배후에서, 항상 대립과 분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한에서 왕의 두 신체는 독일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요구하는 과거의 게오르게파적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을 증언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칸토로비츠가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대한 참조를 주의 깊게 기피하는 이유도, 이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세에서의 초월의 개입과도 비슷한 결단을 내리는 슈미트의 주권자는, 신성을 담지하면서도 동시에 애처로운 한 개인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칸토로비츠의 주권자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슈미트는 설령 법의 내부에 있는 동시에 법의 외부에 있다고 하는 주권의 역설”(아감벤)을 의식했다고 하더라도, 주권자가 법의 바깥으로 유기됨으로써 따르게 되는 애처로운 한 개인으로서의 운명을 고려하지 않는다. 칸토로비츠는 바로 주권자가 벗어날 수 없는 이런 양의성을 밝히고 있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브로가 말하듯이, 칸토로비츠는 정치신학에 대한 슈미트의 테제를 역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훗날의 슈미트가 왕의 두 신체라는 저작을 알았는지 여부는 불명료하다. 하지만 칸토로비츠에 대한 있음직한 반론은 이미 그 직전에 출판된 슈미트의 후기 저작 햄릿 혹은 헤쿠바(원저 1956)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슈미트는 벤야민의 독일비극의 근원에 대한 반론을 시도한다. 벤야민은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은근히 비판하고, 결단하는 주권자라는 바로크 절대왕권의 이미지를 역전시켜,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주권자라는 반대상을 제출했다. 그 범례로서 햄릿을 들먹이는 벤야민에 대해, 슈미트는 이런 우울한 군주는 단순히 근대주권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상황을 비춘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아직 국가적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조야한혹는 야만적인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주권자에 따라다니는 특유한 무력함은, 국가주권이 확립하는 것과 더불어 해소될 것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런 비판은, 칸토로비츠에 대해서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가 분열하는 두 개의 신체로 찢겨진다고 하는 비극적 문제는, 근대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의 바람을 배반하듯이, 근대의 주권 개념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상 주권자를 괴롭히는 이런 아포리아는, 칸토로비츠의 연구가 관심을 기울인 중세 주권, 혹은 국가주권이 아직 생성 도상에 있던 근대 초기의 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말한다면, 인민주권의 정착에 앞선 18세기까지의 절대주의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능한 주권자가 스스로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비틀거린다는 이 문제는, 원래 주권국가에 있어서의 권리상의 권능과 사실상의 능력 사이의 어긋남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정립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다고 간주된 주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통치 능력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주권과 통치 사이의 이런 간극은 결코 메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주권자에게 기대되는 권능이 절대적일수록 더욱 확대된다. 주권이 그 초월의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르는 만큼, 구체적인 통치행위의 실천은 이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이것은 군주제 하에서든 민주제 하에서든 다를 바 없다. 주권을 한 명의 인격에 의해 떠맡았던 과거의 국왕뿐 아니라, 근대 정치의 주권자인 우리 인민도 벗어날 수 없는 곤란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의 군주의 우울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의 우울이기도 하다. 통치에 관련된 모든 정치적 결정을 주권이라는 하나의 규범 근거에 의해 집권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는 근대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이 물음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는 과연 통치할 수 있는가?

 

4. 주권을 넘어선 통치 : 집행권력의 계보학을 위해

근대의 주권 개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아포리아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이런 주권의 아포리아를 문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법의 최고 근거인 동시에 법의 외부로 유기된다는 주권의 역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한, 그것은 단순한 사고의 폐색밖에는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왕의 두 신체라는 분석은 출발점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서는 주권 개념을 급진적으로 재고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신체의 이중화에 시달리는 주권자의 비극 이야기 속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눈을 돌려야 할 것은 초월과 경험의 이런 이중성에 의해 열린 새로운 공간에 다름 아니다. 그것에 의해 우리는 비극 속에서 머뭇거리는 주권자를 넘어선 지평으로까지 이끌리게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사고의 지평은, 사실 근대 초기의 비극 작품에서도 그 모습을 간파할 수 있다.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주권자의 전능성에 대한 그 통치능력의 절대적 부족을 보완하는, 혹은 그 약점을 틈타서 이를 이용하는 인물상들이다. 주권자의 주위에는 여러 인물상들이 배회한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리어왕을 따라다니는 광대이며, 코르네유나 라신의 프랑스 고전비극에서는 왕이나 황제의 궁정신하들이, 독일 바로크 비극에서는 책략을 부리는 궁정의 음모가들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바로 주권자의 통치 무능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권자의 권능은 종종 그들에 의해 횡령된다. 현실의 통치 권력이 주권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군주를 지탱하는 궁정이란, 이런 양의성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미셸 푸코는 이렇게 지적한다. 프랑스 고전 비극의 행하는 것은, 군주를 주권 대표자로서 현전시키는 궁정의 의례와 전례를 반대 방향으로하는 것이다. , 거기서 궁정은 오히려 주권을 비극적으로 해체하는 장소로서 묘사되는 것이다.

통치 권력이라는 것은 주권자를 기초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배후에 있는 이런 공간 속에서 자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권력의 공간이야말로 이른바 주권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루는 게 아닐까? 이런 새로운 지평에 관심을 다시 기울일 때, 주권의 초월성은, 권력의 내재성의 평면으로 완전히 해소된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이 내재 평면과의 벗어나기 힘든 의존관계 속에서 상대화된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일 뿐 아니라, 통치행위의 효과로서 주권이 생산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서는 주권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통치가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근대 초기의 정치적 저작가들이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문제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제 중세적인 종교 규범은 붕괴했으나 아직 근대적인 주권 개념은 확립되지 않은 이 시기의 정치적 담론에 있어서, 아무런 법규점에도 의거하지 않는 통치의 모습과 그 귀결에 대한 순수한 사유가 전개됐다고 간주할 수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정치규범을 탐색했던 당시의 정치이론가들에게, 이렇게 단순히 기술화된 통치의 모습은 오로지 비난받아야 할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와 타키투스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이런 통치의 기술을, 공언할 수 없는 이국적인(esoteric)” 기법으로 내몰았다. 통치가 가진 이런 비밀스런 성격은 절대주의의 대표적(repräsentativ) 공공성”(하버마스)이 세련되어감에 따라, 서서히 정치이론의 주제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정치는 바로 공개성을 근본 원칙으로 하게 되며, 그것은 법의 최고 근거인 주권자의 공적 현전에 의해 담보된다. 통치는 주권 하에 속하며, 공개성의 빛 아래에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이처럼 공개성 하에서만 통치에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것은, 절대주의의 대표적 공공성하에서든, 더 민주적인 시민적 공공성하에서든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근대의 정치적 공개성이 기능 장애에 빠지고 있다는 것의 징후가 아닐까? 통치로부터 민주주의의 부담을 경감시키려고 하는 최근의 풍조에서 엿보이는 것은, 통치가 정치적 공개성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립화한다는 사태 아닐까? 그것을 오늘날 일으키는 것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든, 경제합리성의 추구이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주권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의 상황의 회귀이다. , 근대 초기의 정치적 저작가들에 의해 기밀”(아르카나)이라고 불렸던 권력 공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정치상황과 현재의 그것 사이의 안이한 동일시는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일 현재, 통치의 규범적 정당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 바로 똑같은 종류의 위기가 문제이게 된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생을 향한 새로운 사고를 찾기 위해서도, 공개성으로부터 물러서 숨은 이 통치공간, 공개성의 근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가주권을 전제로 한 고전적인 근대 민주주의이든, 그 민족주의적인 한계를 비난하는 급진적인 민주주의이든, 단순히 주권 개념에서 문제의 소재를 보고 있는 한, 민주주의의 이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 역할에 여전히 기대를 하는 것이든, 그 위험성을 비난하는 것이든, 주권에 오늘날의 정치학의 궁극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정치적 위기는 주권 개념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효력 상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가령 근대적인 국가주권의 부흥을 꾀하는 것이 이 위기에 대한 잘못된 응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것이 시대착오의 무기력한 해결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로 주권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 통치의 지평을 고려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재생을 향한 그 어떤 시도도 불충분한 채로 그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근대정치학에서의 주권 개념의 중심성에 의해 은폐되어버린 이 통치공간이 통치성이라고 명명한 것을 규명하기 위한 작은 기여이기도 하다.

주권에 대한 통치의 양의성으로 가득 찬 관계. 이것은 바로 조르조 아감벤이 왕국과 영광(원저 2007)에서 중심적 주제로서 다뤘던 것이다. 이 저작이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왕국(regno)”통치사이의 상호의존성인 동시에, 이것들의 필연적인 분할이다. 통치는 왕국혹은 영광이라는 주권적 권위에 의한 정당화의 계기를 불가결하게 한다. 그러나 통치는 또한, 항상 그로부터 자립하여 활동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주권의 행사일 터인 통치행위는 해당 주권을 무위 속으로 몰아넣고 말소할 수도 있다. 거꾸로 말하면, 주권은 스스로를 실효적으로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집행되는 것을 필요로 하지만, 바로 그 집행속에서 스스로가 무력해진다는 역설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집행으로서의 통치행위는 결코 단순히 주권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초월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립성을 갖는 독자적인 내재성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력이 항상 초월과 내재로 분열한다는 것이야말로 근대 주권 국가의 이론이 직면한 근본 문제의 하나이다.

게다가 아감벤은 이 고찰을, 신과 그 세계 통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개한다. , 근대국가에서의 주권(‘왕국’)과 통치(‘오이코노미아’)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이미 그 이전에 신학적 패러다임 속에서 논의됐던 무위의 신활동하는 신”, 물러서 숨은 신과 피조물, 신의 원리와 그 잠재력, ‘1원인2원인등등의 관계가 세속화된 것이라는 얘기이다. 거기까지에도 사상사적으로 사정거리를 확대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논고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근대 국가가 신학적인 통치 기계가 내포한 아포리아를 계승하고 있다는 아감벤의 통찰이다. , 입법권력 또는 주권권력과 집행권력 또는 통치권력 사이의 구별이 초래할 초월과 내재의 이중구조이다. 근대 국가에서의 입법권과 행정권의 역할 분담은 겉보기만큼 알기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배후에는 주권과 통치의 관계가 내포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아감벤도 인용하는 홉스의 시민론의 한 구절. “최고명령권[주권]에 속하는 권리와 그 집행은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둘은 떼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고명령권에 속하는 권리와 그 집행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 국가의 통치는, 만물의 제1동인인 신이, 2원인의 질서를 통해 자연스런 결과를 산출하는 통상적인 세계통치와 비슷하다.”

통치의 집행자는 주권자에 의한 입법을 단순히 적용할 뿐만이 아니다. 칼 슈미트가 지적했듯이, 법의 집행은 자신이 적용하려고 하는 바로 그 법 자체를 넘어서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예외상태라고 불렀다. 이를 더욱 파고들어감으로써 왕은 군림(regno)하나 통치(guberno)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의 급진적인 함의를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집행이란 그것이 의거하고 있는 바로 그 주권자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근대 초기의 정치적 담론에서는, 이렇게 통치가 규범성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더욱 강하게 의식됐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확립된 근대 주권 국가에서의 삼권분리 하에서는 은폐된다. 집행권력은 주권적 결정의 장소인 입법부에 종속하는 행정부로 길들여진다. 이것이 근대정치학에서 주권과 통치 사이의 분리라는 문제가 보이기 어렵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주권 하에서 통치가 행해진다는 것은, 근대 주권 개념에 의해 구축된 모종의 픽션이다. 아감벤은 왕국과 영광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치를 단순한 집행권력으로서 이해한다는 오해는, 서양 정치의 역사에 있어서의 가장 중대한 잘못 중 하나이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되는 끝이, 근대의 정치적 고찰이, , 일반의지, 인민주권 등과 같은 공허한 추상물의 배후에서 길을 잃고, 모든 관점에서 볼 때 결정적인 문제, 즉 통치 및 통치와 주권 사이의 접합이라는 문제를 방치한다는 사태이다. 최근작[왕국과 영광]에서 나는 정치의 중심적인 수수께끼는 주권이 아니라 통치, 신이 아니라 천사, 왕이 아니라 장관, 법이 아니라 경찰임을, 더 정확하게는 이것들이 형성하고 계속 움직이는, 이중의 통치기계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거듭 말하지만, 통치는 주권자의 입법을 단순히 적용할 뿐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에 길들여진 행정활동으로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통치는 본질적으로, 법과 주권으로부터 분리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열리는 것은, 군주를 에워싼 장관의, 법률을 지배하는 관료와 경찰의, 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천사의 세계이다. 통치의 공간은 이른바 주권의 매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근대 초기의 공개성의 근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탐색하려고 한 것은, 이런 매체로서의 권력공간이다. 근대 주권 개념 하에서 구축되어 온 민주적 공개성의 제도들이 신뢰를 잃고 있는 가운데, 근대정치학의 이런 지하 계보에 눈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적 통치의 재생에 있어서 불가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민주적 합의를 위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반민주적인 정치적 공개성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통치 불능때문에 부담이 된 민주주의가, 이제 자꾸만 갈망되고 있는 리더십이라는 것의 단순한 보완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 통치가 스스로의 정당화, 영광, 나중에는 또 포퓰리즘적인 박수갈채로서만 필요로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 [옮긴이] 일본에서도 책 제목의 번역이 분분하다. 옮긴이는 '애도극'으로 옮기는 게 좋다고 현재로서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3/3)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III. 생명권력론과 근대

근대의 외부는 있는가

히가키 : 아까 이치노카와 씨가 왜 푸코는 생명정치를 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말하려 했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근대의 문제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생명권력의 외부는 없잖아요. 그때 자유인격이나 주체같은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우리는 아직 근대가 아닌가, 다시 근대가 아닌가, 아니면 근대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투르는 우리는 아직 근대인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카스가 :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죠.

히가키 : 근대와 비근대를 나누지만, 이것들을 나누는 인간은 모두 근대입니다.

카스가 : 그래서 과학(science)의 힘은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에 의한 지식은 계속 증식하면서 진리가 사회를 바꿔갑니다.

이치노카와 : 그 과학의 힘을 에워싸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생명정치일지도 모릅니다.

카스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아니, 그것은 미묘하고, 과학의 힘을 해방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카스가 : 섹슈얼리티나 퀴어 등은 바로 신화적 사고와 관련된 것이죠.

히가키 : 레비스트로스의 세계군요.

카스가 : 바로 그렇습니다. 서로 죽이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기도 하고, 너무 성행위를 많이 하고 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벌어집니다. 그런 원초적인 사고에는 섹슈얼리티나 퀴어적인 것이 표면화하는가? 레비스트로스는 거기에도 논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문제는 그 전입니다. 야생의 과학이라는 것을 다시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빼고 생명권력을 생각할 수는 없겠죠. 이 문제를 저는 아직 뚜렷하게 다루진 않았으나, 한 가지만 말한다면, 서두에서 히가키 씨가 말했듯이, 푸코가 말하는 생명권력은 개인을 향하는 해부-정치학과 인구나 종에 정위된 생명정치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섹슈얼리티는 이 두 가지 극을 가교하는 것입니다. , 개체는 언젠가 죽지만 생식으로 이어지는 섹슈얼리티를 통해 종으로서 계속 살아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푸코가 말하는 섹슈얼리티의 장치는, 생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잡다한 성적 욕망, 프로이트를 좇아 말한다면, 다형도착을 발견하거나 증식시키거나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또한 일종의 생산입니다. 생식을 통해 개체와 종은 서로 결부되지만, 그런 식으로는 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탈선하는 다양한 욕망 또한 섹슈얼리티의 장치에 의해 산출됩니다. 그것들을 일탈이나 병리라며 관리하거나 배제하거는 움직임이 섹슈얼리티 장치의 내부에서, 예를 들어 정신의학으로서 형성됐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아닙니다. 권력을 단순히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푸코의 지적을 여기서 떠올릴 필요가 있으며, 아까의 히르쉬펠트의 성과학이 일례입니다만, 그것은 틀림없이 섹슈얼리티의 장치 중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독일제국형법 175조의 철폐를 향한 길을 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단순히 해방’이라고 일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푸코는 비판했지만, 거기에 저항의 계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을 간과하면 푸코가 말하는 억압의 가설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혹은 그저 냉소주의가 될 뿐입니다. 생명권력이나 섹슈얼리티의 장치는 175조를 산출하는 것인 동시에, 히르쉬펠트의 성과학을 산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는 없습니다.

히가키 :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이 이라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잘 알고 있으나, 푸코는 고대로 옮겨갔습니다. 푸코는 그것들을 연결하는 선을 탐색하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치노카와 : 확실히 성의 역사2권과 3권에서는 주체(개인)의 문제에 화제가 집중되어 있으며, 종으로서의 신체나 인구에 정위된 생명정치의 문제는 어디로 갔어, 이런 생각이 들지만, 섹슈얼리티를 두 개의 극 사이에 둔다고 하는 1권의 문제설정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저는 푸코는 자세히 모르지만, ‘해부-정치학은 일단 빼버리려는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히가키 : 그런 것 같습니다. 

이치노카와 : ‘해부정치학에 관해서는 감시와 처벌에서 썼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성의 역사2권과 3권에서는 감시와 처벌과는 다른 형태로 주체(개인)의 문제가 재사고됩니다.

 

근대라는 인식틀들

이치노카와 : 미안합니다. 제가 화두를 탈선시킨 탓에 섹슈얼리티 문제로 조금 파고들어간 꼴이 됐네요. 히가키 씨가 제기한 근대라는 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말한다면,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근대, 정확하게는 서양 근대는, 역사와 시간의 인식틀 자체를 바꾼 것으로, 그렇게 하면, 근대가 끝났는지 여부는, 그 근대가 수립한 역사와 시간의 인식틀 자체가 끝났는가 아닌가라는 형태로 논의해야겠네요. ‘포스트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빼어나게 근대적인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죠.

히가키 : 그렇죠.

이치노카와 : 라인하르트 코젤렉(1923-2006) 등의 개념사 연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만(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r Zeiten, Suhrkamp, 1979, S.300ff), ‘modernus’라는 라틴어의 형용사는 이미 중세에 존재했습니다. 5세기 말경부터 존재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antiquus’(옛날의)와 대비되는 말로, 단순히 지금(오늘)’이라는 거죠.

Vergangene Zukunft 

히가키 : ‘현대라는 의미로 이해되더라도, 단순히 지금’이라는 의미죠.

이치노카와 : 우리는 지금부터 수백 년 전의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에서 시작해 근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중세의 ‘modernus’에서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세의 ‘modernus’에 따른다면, 우리에게서의 ‘modernus’2012[2016]인 것이며, 1512년이나 1612년일 수 없어요. 중세의 ‘modernus’ 개념이 우리를 훨씬 현재에 가깝게 하며, 반대로 근대적인 ‘modern’이나 ‘modernity’가 우리를 훨씬 현재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수백 년 전의 과거로 향하게 한다는 기묘한 전도가 있네요.

   또 한 가지. ‘Renaissance’(르네상스)‘Reformation’(종교개혁), 이것들은 ‘Re-’라는 문자에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본래 원점으로 회귀하는 운동, 일종의 반복인 것이지, 옛날의 것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운동이 원래 아니었습니다. 그 원점(고대)과 지금(modernus) 사이에 가로놓인 기간이 중세’(‘media tempestas’ )라고 부르기 시작하기도,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걸쳐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우리로 이어지는 새 시대의 개막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위치시킵니다. 그것들을 당시 추진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중세보다 더 옛날의) 과거에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쪽으로, 즉 그들한테는 미래에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전도가 있습니다.

   하나 더. 아렌트가 혁명에 대해서(1963)에서 지적했듯이, ‘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원래 천체의 회전 운동을 의미하며, 17세기의 영국에서 이 말은 크롬웰이 최초의 혁명적 독재를 수립한 때가 아니라, 1660년에 왕정이 복고됐을 때 사용됐습니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을 중시하는 시간의식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아직 그랬으며, 루소도 사회계약론(1762)에서 대의제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표자라는 생각은 최근의(moderne)것이다. 그것은 봉건정치에, 즉 인간이 타락하고, 인간이라는 이름이 치욕 속에 있었던, 그 부정의하고 어리석은 정치에서 유래한다. 고대의(ancien) 공화국에서 인민은 결코 대표자를 갖지 않았다”(315). 루소는 여기서도 ‘moderne’이라는 말을 중세의 ‘modernus’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마찬가지로, 이상으로 삼아야 할 것을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찾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또한 현재보다 미래가 뛰어나다는 진보의 이념이 확립되고, 동시에 ‘moderne’라는 말이 근대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르네상스 및 종교개혁이라는 과거는 소급적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 1800년경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것을 코젤렉은 집합 단수형으로서의 역사의 탄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달리 말하면 세계사의 탄생이며, ‘문명()’라는 도식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훌륭히 체현하는 것이 콩도르세의 인간정신 진보사(1793-94)이죠. 콩트의 사회학도 1800년 무렵에 확립됐습니다. 그런 근대적인 시간의식역사의식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버려서 얘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근대적인 시간의식, 역사의식은, 그런 의식들에 의해 소급적으로 근대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무렵이 아니라, 훨씬 뒤인 1800년 무렵이 되어야 처음으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히가키 : 푸코는 말년에 칸트의 계몽에 대해 썼는데요, 칸트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유년시대가 끝나고 비로소 처음으로 성숙한 근대에 이르렀다는 식의 매우 근대주의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푸코는 부정하기는커녕,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푸코는 인간은 소멸한다고 말했지만, 소멸하는 축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것에 계속 천착한 것이며, 푸코는 근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 같거든요.

이치노카와 : 사회학에서도, 예를 들면 미타 무네스케(見田宗介, 真木悠介) 선생이, 인류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시간의 비교사회학(이와나미쇼텐, 1981)에서 근대적 시간의식과는 상이한 시간의식을 열고자 했습니다만, 근대와는 상이한 시간의식이 거기서 재발견되고, 근대적인 시간의식이 상대화됐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시간의식이나 역사의식 자체는 그렇게 간단하게 깨지지 않으며, 미타 선생 자신이 근대적인 시간의식역사의식의 안쪽으로부터 이 책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서양 근대 이외의 것을 보는 시선 자체가 서양 근대의 틀에 내속해 있는 듯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듯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제게 근대라는 것은 그다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

히가키 : 인류학에서는 그렇겠네요.

이치노카와 : 히가키 씨는 아직 근대가 아닌가, 또 다시 근대가 아닌가, 아니면 근대 이외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만, 제 대답은 지금으로서는 마지막 것에 가장 가깝습니다. 정확하게는 아직 근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만.

히가키 : 제 대답도 그렇습니다. 푸코-들뢰즈주의라고 오해되는 것은 그것입니다. , ‘내재입니다. 내부밖에는 있을 수 없으며, 내부로부터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외부를 요구하니까, 이상한 독해 방식이 됩니다. 특히, 들뢰즈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들뢰즈가 후기에 썼던 것은 영화(1983, 1985)이죠. 영화나 영상은 근대의 으뜸가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영화나 영상에 의해 처음으로 생명의 자연에 접하는, 우리는 진화적 신체에 의해 보는 것이 아닌 생생한 세계를 근대적 테크놀로지를 개입시킴으로써 처음 봤다고 들뢰즈는 쓰고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그렇군요.

히가키 : 그것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외부라고 하면 초월이 되어버립니다. 들뢰즈는 철저하게 내재적입니다.

카스가 : 그것은 알겠지만, 세간의 일반인들은 대부분 외재적입니다.

히가키 : 그건 그렇습니다만 .

카스가 : 인간을 주제로 삼는다면, 그것은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요? 외재랄까, 초월에 예탁하는 것이 끝없이, 겹겹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는 내재에 투철한 쪽이 제대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러면 결국, 갇혀버린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경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히가키 : 철학자에게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결론으로(웃음). 철학자는 원래 경험이 부족한 인종이니까요. 현장(field)이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치노카와 : 그건 사회학도 마찬가지이고, 인류학을 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카스가 : 그 대신 [인류학은] 제대로 된 것을 말하지 못한다구요. 그야말로 들뢰즈적 사고로 완결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며

마지막으로 오늘의 논의를 거친 뒤의 감상이나 포부 등을 듣고 싶습니다.

히가키 : 철학에는 경험이 부족한 건가라고.

이치노카와 : 그것은 사회학도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사회조사를 많이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는 안 되겠죠. 푸코도 벤야민도 아감벤도, 어떤 경험을 배경으로 삼아 읽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과학자가 생각하고 있는 정도로 깊이 있는 것은 아니며, 연구대상도 포함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푸코나 아감벤의 독해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카스가 씨의 외재에 관한 얘기를 듣고서,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벤야민의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그 말도, 저는 아직 근대의 내부에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 아직 인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스가 씨가 벤야민의 어디에 매료되고 있는지도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카스가 : 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 ‘수평적 반향이라는 것이 두 분과 제 자신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내재적인 논리 전개는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아까 얘기한 스트라썬의 감성도 결국 거기서 유래합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사고양식으로는 세 명 모두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뭐랄까 이 반향을 소중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히가키 : 공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죠.

카스가 : ‘생명권력이라는 게 이론적으로도 세 사람을 결부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그렇군요. 20년 전, 30년 전에도 후기 푸코를 읽다라는 테마로 특집을 짰다면, 벤야민이나 레비-스트로스를 결부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비베이로스  카스트로처럼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에 연결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영역의 확장이 진행되고 있고, 그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 점점 크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인 이치노카와 씨가 구축주의를 매우 싫어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끌어낸 것도 아주 컸습니다(웃음).

이치노카와 : 저는 전부터 줄곧 공언했습니다만(웃음).

히가키 : 철학에서도 자연주의로의 회귀가 보이지만, ‘다자연(多自然)’이라고 말하면 소박한 실재론으로 돌아가버리는 부분이 있고, 물론 이에 대한 의구심은 있습니다. 다만, 큰 흐름으로서 말하면, ‘자연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것이 큰 주제가 됩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결론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도 자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치노카와 : 그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 자신은 못할 수도 있지만.

히가키 : 거대이론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커다란 의미에서의 이론은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역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생명권력생명정치같은 개념을 계속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인류학에도 요구하고 싶은 것으로, 제가 젊었을 때는 야마구치 마사오(山口昌男)처럼 제 자신이 트릭스터(trickster; 신화나 이야기 속에서 신이나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자를 가리킨다)가 되어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움직임은 정말로 적죠.

카스가 : 학문으로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재의 시대라고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설프게 학문이 됐으니까 수재만 되어 버렸습니다.

히가키 : 온통 수재만이 있는 가운데 다양한 영역을 연결해나가기 위해서도 생명권력생명정치같은 개념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특집이 그 계기가 된다면 좋겠네요.

(2012918, 이와나미쇼텐)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목차

사상의 말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2/3)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II. 생명권력론의 최전선

아감벤을 어떻게 생각할까

* 지금 아감벤의 이름이 나왔는데요, ‘생명권력론의 최전선을 생각할 경우에는, 특히 2000년대 이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아감벤의 논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감벤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上村忠男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르조 아감벤


히가키 : 아감벤 같은 존재가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은 솔직히 말해서 의외였습니다. 확실히 이탈리아에는 네그리 같은 사람이 있지만, [네그리는] 들뢰즈나 가타리의 동료였으며 프랑스의 현대사상이나 좌익사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도 잔니 바티모(1936년 생)약한 사고(1983)가 번역되었듯이, 우에무라 타다오(上村忠男) 씨나 오카다 아츠시(岡田溫司) 씨의 정력적인 소개도 있지만, 철학 영역에서 이탈리아가 이 정도로 주목을 받은 것은 처음인 듯 싶습니다.

上村忠男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hoto

우에무라 타다오(@tadao_uemura)                    오카다 아츠시

이치노카와 : 왜 아감벤이 부상한 걸까요?

히가키 :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1998)이 잘 팔렸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일본만의 현상일까 생각해보니, 파리의 서점에도 아감벤코너에 책이 산처럼 쌓여 있더군요. 시기적으로도 그렇게 일본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을 거예요.

카스가 : 난민 문제를 포함해 현지 조사를 하는 사람들도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히가키 : 그렇군요. 다만, 아감벤은 어떻게 해석할지가 어려워요.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1929)나 한스 요나스(1903-93)에게 [공격과 비판의] 칼날을 향하고 있습니다. 후안무치한 일을 저지른 독일인 무리들은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다니 놀랍네, 이런 식의 격렬한 독일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해서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감벤이 처음 주목받은 것은 호모 사케르아우슈비츠의 남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푸코의 논의를 넘어서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드는 사람인가 싶더니, 실상은 다른 것 같아요(웃음). 졸업논문에서는 시몬 베유(1909-43)를 다루고, 1960년대가 되면 하이데거의 강의에 참석하고 이탈리아어판 벤야민 전집』을 감수했습니다. 2000년대가 되면 로마세계의 종교론에 생명정치의 문제를 접목시키고, 기독교 세계로부터 뭔가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는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형태로 세계의 주요 장면에 나온 이탈리아인은 꽤 드물 겁니다. 특히 철학의 영역은 고대그리스, 중세를 별도로 치면, 영미계와 프랑스계와 독일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강좌에 대한 인사를 보더라도 확연합니다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제국주의이죠. 그런 상황을 아감벤 같은 존재가 교란시킨다는 것은 매우 큽니다.

카스가 : 과연 그렇죠.

히가키 : 제 선생이었던 사카베 메구미(坂部恵) 씨가 말년에 일본철학회에서, 전지구화 등을 얘기하면서도 왜 일본의 철학과에서는 영미계와 프랑스계와 독일계라는 세 가지에서 선택을 하게 만들까, 이런 시시한 짓은 이제 그만두는 편이 좋다, 논문은 어느 나라 말로 써도 좋고, 베트남 철학이어도 좋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두에서도 조금 언급했습니다만, 이것을 아감벤은 실현해버렸습니다. 이것은 향후 철학자의 모델이 되며, 아마 지금부터 앞으로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으로부터도 아감벤 같은 역할을 맡는 철학자가 나오겠죠.

   그리고 오늘의 화두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아감벤이 생명정치와 종교를 강하게 연관시켰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푸코는 사목권력(pouvoir pastora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아주 큰 문제이고, 요컨대 유럽의 권력은 유대-기독교적 권력이라고 합니다. 이 개념은 푸코가 1978년에 두 번째 일본방문을 했을 때의 강연에서 다뤄지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굉장히 유명하지만, 실제의 푸코는 그 후 거의 전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아감벤은 진지하게 씨름하고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제가 아감벤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다자키 히데아키(田崎英明) 씨한테서였습니다. ‘벌거벗은 생명개념도 다자키 히데아키 씨에게 배웠다고 기억합니다. 이후 번역으로 아우슈비츠의 남은 것, 목적 없는 수단, 호모 사케르를 읽었고, 서평도 두개 정도 썼습니다만, 아감벤은 사회학자가 사용하기는 매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오오츠 마사키(大津真幸) 씨 등을 제외하면, 사회학에서 아감벤에 의거해서 뭔가를 말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라면 근대가 문제였고, 그것에 걸터앉아 사회학에서 뭔가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만, 앞에서도 얘기가 있었듯이, 아감벤은 로마에서 시작하기에, 결국은 19세기 이후에 생겨났을 뿐인 사회학적 상상력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푸코의 경우도, 어떻게 생각되든 국민국가, 에티엔 발리바르(1942)가 말한 바의 국민적이고 사회적인 국가”(복지국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히가키 :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이치노카와 :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2002년에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고, 이후에도 다른 저작들이 속속들이 번역되고 있습니다만, [독일이]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일에서는 아우슈비츠의 문제를 말하는 이상, 아감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감벤의 나치즘 해석 방식에는 저조차도 실증적 수준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대목이 꽤 있으며, 조금 허풍을 떨고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히가키 : 확실히 철학자 특유의 허풍을 떨고 논리가 성긴 대목이 있습니다(웃음).

이치노카와 : 그리고 칼 슈미트를 그렇게 원용하고 있는 것도, 독일에서는 좀처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버마스가 전형입니다만, 슈미트에 맞서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스가 : 저는 최근 피지에서 일종의 노인 홈(home) 같은 특이한 시설에서 조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말이 편리해서 몇 번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이치노카와 씨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한 가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할까, 인류학자에게는 지금 한 가지의 리얼리티가 없네요. 예쁜 허구를 만들고 있지만, 환기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권자를 권력에 외부는 없다고 선언하는 인간으로 제시한 것은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는 외부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감벤은 사이라고 함으로써 외부를 보여주고, 필연적으로 법치국가의 역설을 제시합니다. 인간들의 편에서 보면, 역설이 있습니다만, 신이 주권자라면 그런 역설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감벤의 외부에는 처음부터 인간이 들어 있으며, 인간화된 외부를 초월적인 것으로서 말합니다. 그런 사이밖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것은 이것으로 알기 쉽습니다만, 그것이 아감벤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가키 : 굳이 아감벤을 추켜세운다면, 주권권력의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이 컸습니다. 푸코는 이제 주권권력은 없어진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을 말했지만, 실제로 주권국가는 있으며, 전구화되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없어질지 여부는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권권력을 다시 다룬 것은 역시 크다=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사이인 것이죠. 삶과의 역설로 주권권력을 내고, 동물과의 역설로 인간을 냅니다. 그 제기방식이 멋지지만, 실증연구로서는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문학적 비유에 불과한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이야기만 하더라도 나치즘에 대한 실증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종교 얘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는 종교 얘기로서의 리얼리티가 있고, 나치즘도 1000, 2000년도 지난 후에는 종교 얘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스가 : 종교 얘기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히가키 : 그런 점은 아감벤에게 일관되게 보인다고 생각해요.

이치노카와 : 일본에서도 예를 들어 홈리스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할 때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말에는 강한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예를 들어 사회학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증적으로 파고들어갈수록,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인류학의 현장에서도,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대로 취급받는다면 벌거벗은 생명이란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확실히 의미가 있으며 비오스가 있다는 게 됩니다.

이치노카와 : 제 감각도 그것에 가깝습니다.

 

벌거벗은 생명과 벤야민

히가키 :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nuda vita)”이라는 개념을 발터 벤야민(1892-1940)폭력 비판을 위하여에 있는 단순한 생명(das blosse Leben)”이라는 표현에서 빌려 왔다죠?

이치노카와 : 그렇습니다.

히가키 : 그런데 벤야민은 단순한 생명에 관해 부정적으로 쓰고 있고, 그것을 중요한 개념으로 채용한 아감벤의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더 말하면, 이 저작에서 취급되고 있는 신적 폭력자체, 상식적으로 읽으면, 그것에 의해 벤야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모르겠고,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어요. 적어도 일본에서 신적 폭력은 아나키스틱한 폭력으로 이해되고, 그렇기에 1960=70년대의 일본에서는 국가의 철폐 등을 향한 논의로서, 좌파적 맥락에서도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치노카와 씨의 독해는 다르던데요?

이치노카와 : 다릅니다.

히가키 : 우선 폭력 비판을 위하여」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 추도문이라고 보시는군요.

이치노카와 : 그 점에 관해서는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벤야민은, 물론 로자 룩셈부크르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가 게르숌 숄렘(1897-1982)에게 보낸 편지(19201229)에 비춰봐도,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 때의 벤야민의 염두에 없었다는 것은 절대로 없어요.

히가키 : 또 하나는 신적 폭력에 대해서, 이치노카와 씨는 자크 데리다(1930-2004)를 비판하면서, 이는 의회제 민주주의를 구하는 폭력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이치노카와 : 굳이 말한다면 그렇습니다.

히가키 : 이것은 꽤나 아슬아슬한 독해 아닙니까?

이치노카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줄타기 곡예를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줄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겠지만(웃음).

히가키 : 일반적으로 신적 폭력은 메시아적 폭력, 즉 세계를 모조리 망가뜨린다고 일컬어지는 폭력이라고 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화적 폭력은 피 냄새를 풍기는 폭력이기는 하지만, 신적 폭력은 피 냄새가 나지 않는 폭력이라고 얘기됩니다. 그리고 단순한 생명은 서양근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논의에 지나지 않지만, 신적 폭력은 모든 생명에 있어서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벤야민은 조르주 소렐(1847-1922)을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보통 소렐은 아나키즘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치노카와 씨는 소렐과 달리,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이 의회제 민주주의를 잇는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이치노카와 :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자 룩셈부르크도 비판한 유일-의회주의(-議会主義)”를 제창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건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더러 말하라 한다면, 소렐이 폭력론(1908)에서 자신의 생디칼리즘을 분명히 신화(mythe)’라고 표현하고 있고, 다른 한편, 벤야민은 신화적(mysthisch)’이 아니라, 일부러 이것과 구별해서 신적(göttlich)’이라고 말하고 있기에, 그것을 무시하고 벤야민과 소렐의 생각을 그대로 같다고 풀이하는 것은 소박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히가키 : 다만 역사의 개념에 대해서를 읽으면, 우리가 살아온 역사 등은 지구의 역사로부터 보면 단 몇 초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간의 막대기가 균형을 이뤄 현재시(Jetztzeit)”가 되며, 모든 시간이 수평이 되는 곳에서, 모든 과거의 것이 일어나서 구제된다. 이것은 엄청나게 종교적이고 메시아적인 비전입니다. 이것과 신적 폭력이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그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첫째로, 벤야민이 Zur Kritik der Gewalt(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논하는 ‘Gewalt’라는 독일어에는, 예를 들어 ‘Gewaltenteilung’삼권 분립을 의미하듯이, “정당성을 갖춘 권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벤야민은 ‘Gewalt’라는 말에 폭력뿐 아니라, ‘정당성을 갖춘 권력’, 라틴어로는 ‘potestas’라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의 아렌트 얘기에서 히가키 씨는, 철학은 권력도 자연력도 똑같이 으로 이해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때의 potestas’가 아니라 ‘potentia’(독일어로 말하면 ‘Macht’), 즉 정당성 같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인간적인 노모스의 옷을 입은 것을 모조리 벌거벗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potestas’ 대신 ‘potentia’가 전경화됐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만, 아무튼 벤야민의 주제는 ‘Macht’(‘potentia’)가 아니라 ‘Gewalt’ (‘potestas’)입니다. 이로부터 두 번째로,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gouvernementalitaté)’과 결부시켜 말한다면, ‘Gewalt’의 원형 동사인 ‘walten’통치하다라는 의미라는 것. 셋째로, 벤야민은 이 논고에서 ‘Gewalt’의 폐절을 역설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벤야민은 ‘göttliche Gewalt’(‘신적 폭력혹은 통치’)를 긍정하고 있으며, 이 논고는 ‘waltende Gewalt’(통치하는 통치)라는, 어떤 의미에서 동어반복적인 것의 희구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논고의 마지막 단락에는 ‘Entsetzung des Rechts samt den Gewalten’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Entsetzung’은 지금까지 폐절이나 비정립’, ‘탈정립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Entsetzung’이 법을 정립하는(rechtssetzend) 폭력과의 대비에서 나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entsetzen’이라는 독일어는 놀라게 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솔직하게 생각하면, 갇혀 있거나 파묻혀 있거나 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뭔가를 거기에서 빼내거나 풀어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군사용어에서는 적에게 포위된 아군을 구출할 때 ‘entsetzen’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문제의 말은 “Gewalt를 포함한 Recht(법적 권리)의 구출이라는 의미로도 될 수 있습니다.

히가키 : 다른 곳으로 낸다는 것이죠.

이치노카와 : 그렇습니다. 아감벤의 해석에는 부정신학적인 대목이 있는데, ‘Recht’(법적 권리)‘Gerechtigkeit’(정의), 희망도 갖지 않는 듯이 논의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벤야민의 생각은 더 밝다고나 할까,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벤야민이 이 논문의 주석 10에서 언급하는 쿠르트 힐러(1885-1972)와 대비시키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쿠르트 힐러는 이 주석에서 언급되는 ()-카인(1919)이라는 소론에서, ‘행복(Glück)’이나 정의(Gerechtigkeit)’보다 고귀한 것이 있다, 그것은 (Dasein)자체다,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나 정의의 실현이라는 이름 아래서 생존[실존]을 부정하는 폭력이나 테러리즘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힐러의 주장입니다만, 이것은 뒤집어보면 행복이나 정의에 관한 허무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힐러의 이런 생각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이 논고를 썼습니다. ‘단순한 생명이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또 하나, 이것은 아감벤이 빠뜨린 채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는 단순한(bloss)’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두 번, 상이한 형태로 나옵니다. 하나는 힐러의 생각을 비판하는 형태로 나오는 단순한 생명(das blosse Leben)’으로, 아감벤이 주목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 몇 줄 뒤에 정의를 갖춘 인간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das blosse Nochnichtsein)’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의보다도 단순한 생명이 고귀한 거야, 정의란 무엇인가를 첫 번째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야, 라는 힐러의 비관주의에 대해, 벤야민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정의는 와야 할 것으로서 확실하게 있다고, 정의는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벤야민은 이 두 번째의 ‘bloss’절대로(unbedingt)’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벤야민은 정의가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로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가키 : ‘bloss’가 두 번 나온다는 거네요. 정말로.

이치노카와 : 아감벤은 그 중 하나에만 주목하고 있을 뿐입니다. 벤야민은 이 논고를 19211월에 탈고했습니다. 2010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보면, 그것은 1989년 이후에 붕괴하는 것의 시작, 끝의 시작이라고 아무래도 보이지만, 벤야민뿐 아니라 1921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시작의 시작으로 보였던 것 같네요. 위대한 가능성을 감춘 무엇인가가 지금 막 시작됐다고나 할까.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겁을 먹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만. 그런 감각 속에서 벤야민은 ‘Gerechtigkeit’(정의)‘Gewalt’(통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며, ‘정의라는 이념을 벤야민은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히가키 : 그때 정의를 믿었다는 것은 ‘waltende Gewalt’가 지시하는 것은 도래할 공산주의였다는 것입니까?

이치노카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좌절된 독일혁명의 저편에 있어서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인 공산주의. 이와 똑같은 것을 2010년대의 우리가 일본에서 생각해도 좋다고 봅니다. 현존한 사회주의와 결별하면서 말입니다.

카스가 : 저는 오늘을 위해 벤야민을 다시 읽어보고 꽤 흥분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감벤은 주권자를 거론하더라도, 결국은 인간화한 것입니다만, 벤야민은 인간을 다시 한 번, 신 쪽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근대란 인간이 초월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며, 이에 대해 푸코는 시점(視點)을 분산시켰습니다. 그러나 벤야민에 따르면, 초월자의 관점은 인간에게는 다다르지 않는 것이며, 폭력 비판을 위하여는 인간에게 더 신성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도 손에 넣지 못했던 비근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치노카와 : 맞아요. 신적 폭력은 인간의 눈에는 감춰져 있다고 벤야민은 말하더군요.

카스가 : 인간적 허무주의. 인간으로서 읽기 때문에, 더욱 허무주의가 된다는 하이퍼-세계.

이치노카와 : 제 해석도 아직 너무 인간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쓸 무렵, 벤야민은 이미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와 친했습니다.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1918)도 출판된 직후에 읽었고, 당시의 편지를 보더라도, 벤야민이 이 책에 상당히 촉발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의 생각은 소렐의 그것과 동일시할 수 없듯이, 블로흐의 그것과도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유토피아’, 그리고 블로흐의 나중의 주제인 희망같은 것과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연결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말한다면, 블로흐를 통해서 저는 벤야민과 루디 두츠케(Alfred Willi Rudi Dutschke, 1940-79)를 연결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츠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늘날의 독일의 녹색당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 노선(line)은 일본에서는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힘을 가질 수 없었고, 일본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는 한 요인도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단순히 아직 존재하지 않을 뿐인 것에 대한 강한 신념이, 적어도 폭력 비판을 위하여의 벤야민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이 아감벤에게서는 사라집니다. 아마 이 두 번째의 ‘bloss’를 빠뜨리고 읽기 때문입니다.

히가키 :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비오스조에

히가키 : 아감벤이라고 하면, 또 하나, ‘비오스조에의 구별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최근의 뇌신경계적 자기라든가, DNA 수준에서의 사체에 있어서의 생명의 파악 같은 얘기를 보면, 비오스로서의 나의 이 신체로는 다뤄질 수 없습니다. 나의 면역계, 나의 뇌신경계의 움직임, 나의 세포 속의 DNA라는 것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조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치노카와 : 확실히, 개체로서의 비오스라는 리얼리티는 약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카스가 : 조에의 일부이기 때문에.

히가키 : 그래요. 다만, 난민이라든가, 양로원 등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단순히 살아 있는 사람에 관한 장면에서 얘기되는 조에와, 나의 뇌신경계를 나는 어찌할 수가 없으나, 그것이 무엇인가를 산출하고 있다는 장면에서 얘기되는 조에, 이렇게 둘 다가 있으며, 논의가 분분합니다.

카스가 : 후자의 논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수상쩍은 얘기라고나 할까, SF적인 이야기도 많잖아요. 극히 일부만을 다루고 페티쉬해버립니다. 예를 들어, 심해에 있는 혐기성 미생물 등은 유전자의 구조가 점점 바뀌고 있는데요, 그것만을 갖고 생명을 말해버립니다.

히가키 : 철학에서도 한때, 뇌신경 윤리가 유행했지만, 이런 뇌파가 생기면 이런 이미지가 나타난다는 식의 단순한 것을 사용해 프라이버시에 관해 논의하는 정도일 뿐, 그 다음부터는 더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술이 진전되어 정교하고 치밀해졌을 때 어떻게 될지는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카스가 : 다만 정말로 급진적인 것은 나오지 않았네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하나의 신체라든가, 두 개의 신체를 지닌 하나의 머리 같은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고 해도, 그런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죠. 비교적 상상하기 쉬운, 조금 괴이한 테크놀로지만이 나옵니다.

이치노카와 : 개체로서의 비오스의 윤곽을 무너뜨리는 얘기입니다만, 게놈연구 등은 오히려 사적 소유의 논리로 진행되고 있지요. 지적 재산권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생명이 조에로서 보이는 장면이 늘고 있지만, 경제와 사회의 논리로부터 보면, 이전보다 더 사적 소유의 틀이 강해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히가키 : 거꾸로 강해지고 있군요. 이것은 나의 유전자이다, 라고 말이죠.

이치노카와 : 혹은 내가 발견한 유전자라는 식이죠. 지적 재산권이라는 의미에서의 사적 소유의 논리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카스가 : 마릴린 스트라썬(Marilyn Strathern, 1941~)도 쓰고 있습니다만, 간염 항체를 만들 때, 그 소유권은 최초로 세포를 제공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논의가 이뤄집니다.

Marilyn Strather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마릴린 스트라썬

이치노카와 : 개체로서의 생명은 끝나더라도, 사적 소유의 논리는 계속 살아 있습니다. 계속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해지고 있잖아요.

히가키 : 정말 그렇군요. 근대를 넘어서는 것이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근대의 논리 밖에는 없습니다.

카스가 : 그때 생명권력은 강력한 것으로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결국 자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생명권력론에 있어서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점을 분명히 전면화하는 것은 네그리로, 거기서는 아감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카스가 : 생명권력론의 장점은 인간이 생물학적인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과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 이 두 가지를 함께 파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특집에 기고한 논문에도 썼지만, 우리의 사유는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혹은 법칙과 가치라는 두 가지의 것을 조합시킴으로써 작동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생명권력론에서 제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명권력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라는 논의는 많은데, 왜 이렇게 간단하게 생명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우리 내부에 그런 사유의 이분화 기계가 제대로 들어 있는데도, 그것을 묻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묻고자 하는 것이 서두에서 이름이 나온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가 반자연주의를 존재론으로서 가져왔다는 곳에서, 인식론으로서 가질 수 있다면 단순히 다문화주의의 하나가 되어버리지만, 존재론으로서 가지고 옴으로써 우리의 사유양식 자체를 다시 묻는 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의 최전선

사회학에서의 생명권력론의 최전선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되고 있나요?

 

이치노카와 : 저한테 사회학을 대표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는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을 모방한 역사연구는 아닐 겁니다. 이것은 실제로 늘고 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겁니다. 실제로 의료나 복지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연구는 늘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저보다 훨씬 훌륭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역사연구는 생명권력이라든가 생명정치라고는 말할 필요가 없네요. 제 자신이, 요네모토 씨 등과 우생학과 인간사회 : 생명과학의 세기는 어디로 향하는가(優生学人間社会──生命科学世紀はどこへかうのか)(講談社現代新書, 2000)를 썼을 때에는,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개념을 쓰지 않고도 역사는 쓸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연구들에 의해 묘사되는 사실 자체가 생명권력생명정치라는 개념의 외연을 자동적으로 점차 메워준다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내포가 공허하고, 그 공허한 그릇이 실증적 역사연구에 의해 메워진다고 생각합니다.

優生学と人間社会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른 하나는 요네모토 쇼우헤이 씨 식의 바이오폴리틱스연구로, 저는 이것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이런 연구는 향후에도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도 감안한 가유카와 준지(粥川準二) 씨의 바이오화하는 사회 : ‘핵시대의 생명과 신체(バイオする社会──「核時代生命身体)(青土社, 2012) 같은 작업입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바이오폴리틱스(Biopolotik)’라는 말을 제목으로 내걸고 출판되고 있는 책이나 논문은, 물론 푸코나 아감벤을 논한 것도 절반 정도가 있습니다만, 나머지 절반은 요네모토 씨 식의 바이오폴리틱스’, 즉 생명과학의 문제들에 관해 어떤 정치적 결정을 할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착상 전 진단, 배아연구, ES세포연구 등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인정한다면 어떤 조건에서 인정할 것이냐 등의 얘기입니다. 2001년에 독일에서는 주로 생명과학에 관한 국민윤리평의회(Nationaler Ethikrat)라는 것이 설립되고, 2008년에 독일윤리평의회(Deutscher Ethikrat)로 개칭됐는데, 이런 식으로 바이오폴리틱스가 이른바 제도화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독일에서는 특히 생명의 시작에 관한 것에 얘기가 집중되고 있네요. 일본에서 문제가 되는 뇌사를 비롯한 생명의 끝에 관한 것은 그다지 열띠게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バイオ化する社会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히가키 : 그건 기독교의 맥락과도 관계되어 있습니까?

이치노카와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끝에 관한 얘기보다도, 예를 들어 배아(체외수정란)를 실험에 사용해도 좋은가 같은 것이 아주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히가키 : 위화감이 드는군요.

이치노카와 : 일본의 우리라면 그렇게까지 진지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좋은가라는 문제를 포함해서, 이것들에 관한 논의에는 기독교적인 것이 상당히 농밀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프랑스 같은 라이시테(정교분리)의 원리로는 움직이지 않으며, 예를 들어 기독교민주동맹이라고 당당히 이름을 내걸고 있기에, 바이오폴리틱스를 포함해 정치 일반에 종교(기독교)가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생명윤리의 문제들에 관해서, 나치라는 과거가 있기에, 타국보다도 신중하고 엄격한 대응이 이뤄진다고 자주 듣곤 합니다. 확실히 그런 부분도 있지만, 나치라는 지나가지 않는 과거는 사실상 표면적인 것이며, 그 이면에는 기독교 도덕이 무의식에 가까운 형태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게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히가키 : 반대로 일본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발상이 있는데, 어째서 뇌사의 얘기가 되면, 그렇게까지 죽음의 기준이 문제가 되는가?

이치노카와 :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확실한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만, “일본()에는 정신을 신체보다 우월하게 하는 서양근대의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과는 다른 독자적인 신체관생명관이 있었다고 운운하는,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비교문화론에는 별 근거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柳田園男장례제도 연혁 사료(葬制沿革史料)(1934) 등에서 써서 남긴 넋을 부름[魂呼ばい]”, 즉 죽기 직전의 사람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혼이 육체로부터 떠나는 것을 불러 세운다는 풍습은 심신이원론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서양 근대의학은 정신을 신체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것 등은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까 나온 비샤의 텍스트를 읽으면,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비샤는 정신에 상당하는 동물적 생명보다도 신체에 상당하는 유기적 생명을 중시하며, 후자가 소멸할 때까지는 의학적으로 봐서 사람이 죽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신체/생명참조). 서양 근대의학이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의거하고 있다면, 비샤는 정반대의 것을 말해야 할 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비샤는 분명히 오늘날의 뇌사와는 다릅니다만, “뇌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미 제시하고 있고, “뇌의 죽음을 갖고서 사람의 죽음으로 하는 것은 너무 이른다고도 말하는 겁니다.

  이로부터 또 하나, 일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라는 신체, 가족이라는 경계의 강함입니다. ‘身内[친척]이라는 일본어가 상징적입니다만, 자신의 身内[친척]의 장기를 身内[친척]도 아무것도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한 강한 저항감이 있으며, 그것이 뇌사상태의 사람으로부터의 장기적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 많은 사람들은 身内[친척]이 제공자가 되는 생체장기이식, 특히 생체간이식은 일본에서 구미국가들보다 훨씬 많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구 비율로 보면, 생체간이식은 일본보다도 한국에서 많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생체간이식에 대한 저항감이 약하지만, 히포크라테스에게서 유래한 해를 끼치지 말라(non nocere)”를 의료윤리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구미에서는, 아주 건강한 사람의 신체에 메스를 집어넣고, 게다가 간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에 의사들이 강한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장기기증자에 대해서는 해를 입힌다는 것 이외의 것이 없으니까. 일본에서는 가족이라는 경계의 내부에서 장기가 이동하는 생체간이식에 대해 저항감이 약하고,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장기가 이동하는 뇌사상태의 사람으로부터의 장기이식에 대해서는 거꾸로 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만, 나의 이 가설은, 2009년의 장기이식법개정 때에 도입된 친족 우선 제공으로 부분적으로 뒷받침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규정이 있는 것은, 현재의 일본과 일본의 것과는 다르지만 한국 정도입니다.

  푸코의 텍스트에 적혀 있는 우아한 철학적 논의는 아니지만, 이런 것도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의 한 측면으로서, 적어도 사회학적으로는 생각하면 좋다고, 아니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테이와 신야(立岩真也) 씨가 그동안 주도해 왔던 생존학이나, 다테이와 씨나 제가 거의 10년 정도 관계해온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장애학에서는 “disability”라는 말을 가능성 박탈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 물리적신체적 상태를 이유로 다양한 가능성을 빼앗기고 있는 사회의 구조나 짜임새를 문제 삼으면서, 장애학은 그 개혁을 요구합니다. 푸코가 말하는 죽음 속으로의 폐기라는 것은 이 가능성 박탈의 극한 형태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박탈의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은 삶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증식시킨다는 것이기도 하며, 그래서 생명권력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저항은 권력에 대해 외부에 위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푸코는 말했습니다만(지식의 의지), 그것은 장애학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나 제가 말한 바의 사회적인 것은 확실히 생명권력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을 안이하게 파괴할 수는 없으며, 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관련시켜 더 말하면, 푸코가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다룬 ()자유주의는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왜 푸코는 생명정치를 자유주의라는 맥락에서 말하려고 했는가?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는 생명권력의 한복판에서 저항이라는 주름을 다양하게 산출해내는 것인가? 아니면 저항을 빼뜨리고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를 더욱 매끈하게 확장하고 비대화시켜가는 것인가? 푸코가 정말로 무엇을 생각했는가, 내게는 아직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류학의 최전선

이치노카와 : 인류학에서 생명권력론의 최전선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되나요?

카스가 : 하나는 모든 것에 행위자(agency)를 배분해간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은 라투르에게도 통하며,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도 스트라썬도 그렇습니다만, 들뢰즈에 겹쳐지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라썬은 영국 경험주의에서 출발해, 동일성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은 곳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프랑스의 사상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녀는 우선 경험주의자로부터의 반론에 대해 자신 나름대로 방어벽을 치면서, 안쪽으로 생성하는 간극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눈으로부터의 간극이, 자신이 알려고 하는 대상과 반향하며, “lateral reflection”(수평적 반향)을 초래하며 타자로 연결되어 간다. 이것은 매우 들뢰즈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명정치생명권력을 생각해보면, 이치노카와 씨가 말한 게놈의 사적 소유의 얘기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과 물건을 나눠서 소유자로서의 주체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방식이 얼마나 특수한지를 잘 알게 됩니다. 증여론이 좋은 예인데요, 인격이라는 것은 물건에 나타나며, 얼마든지 분할되며, 멜라네시아에서는 누군가가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먹으면 인격이 사라진다. 그런 인간의 존재방식에 주목하여 분석의 수법을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까지의 과학기술론의 일부를 빼면 그다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둘째, 아나키스트 인류학을 위한 단장(アナーキスト人類学のための断章)(2004)을 쓴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처럼, 증여론이 점점 짓눌러지고, 근대에 대한 전근대적인 것을 이항대립적으로 나오게 되는 논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 전근대적인 것이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피지에서는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 부활에 대해 얘기하는데요, 피지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관념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아까 얘기가 나온 아폴로시 나와이도 그렇습니다만, 불사성이랄까, 아무리 저주받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느냐 하면, 그것은 있으며, 그러나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생기가 사라졌다고 함으로써, 병을 포함해, 쓸 수 있는 것이 못쓰게 되는 사태를 똑같이 생기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런 생명의 시각을 감안하면, 생명권력의 외부에는 실로 다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논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관점이라는 것에 주목하는 것으로, 재규어와 인간이 다른 것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신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입니다. 그리하여 유럽적 보편주의나 일원적 자연주의에 대해, 다문화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자연주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다문화주의가 하나의 자연, 많은 문화라는 문제 기제라고 한다면, 다자연주의는 하나의 문화, 많은 자연이라는 말인가요?

카스가 : 문화라기보다는 인간이네요. 모든 인간. 관점은 모두 마찬가지이고, 인간도 재규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치노카와 : 다만, 그것도 하나의 문화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만.

카스가 : 그런 반론은 시종일관 당하고 있습니다.

이치노카와 : 아까 카스가 씨는 다자연주의를 인식론으로서가 아니라 존재론으로서 갖고 온 곳에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의 중요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식론이 아니라 존재론으로서, 라는 것은 단순한 문화로 이야기를 회수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중요한 거네요.

카스가 : 거기서 큰 것은 역시 사이언스입니다. 사이언스의 힘은 리얼리티가 대단하다. 실제로, 생명과학은 하드 사이언스화하고 있으며, 그 힘에는 대단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푸코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문계 사람은 상대주의적인 이해를 하기 쉽죠?

히가키 : 생명에 대해서요.

카스가 : 인문계 사람이 생명이라고 말할 경우, 19세기에 말하는 것과 지금 말하는 것에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데, 자연과학계 사람들은 동일한 의미에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것을 인문계 사람이 어떻게 읽는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일어나는 것인데요, 최종적으로는 사이언스의 힘이 이긴다.

히가키 : 젠더론 등에서 구축주의가 너무 강한 것 아닌가요? 그래도 소박하게 생각하면, 퀴어적인 것은 자연이 산출하고 있는 거죠? 그것을 남녀로 나눠서 고정화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이라는 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자연은 일의적으로 정하고 있지만, 문화는 다양한 독해를 한다는 예전의 사회학적 말투가 있었잖아요? 니콜라스 로스도 쓰고 있는데요, 인종 문제도 마찬가지죠. 어떤 인종인지는 문화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자연본질주의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만, 자연을 유전자 수준에서 보면, 인종은 뒤범벅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하면 인종문제에 대한 관점도 바뀌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이 다자연주의의 한 가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치노카와 : 지금 얘기에 촉발되어 말하자면, 사회학적 사고의 대명사 같은 구축주의로는 전혀 불충분하다고 제 자신은 생각합니다. 구축주의가 말하는 것은 옳지만, 지나치게 옳아서 무의미한 곳이 있다. 특히 실천적으로는.

카스가 : 처음부터 답이 나오고 말았다.

이치노카와 : “문화는 자의적으로 구축된다고 말하지만, 그 자의적인 문화를 막상 바꾸기 위해서는, 카스가 씨가 말씀하신 사이언스에 의해 보편적인 것, 불변적인 것을 열고,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 일례로, 남성동성애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한 독일제국형법(1871)175조를 둘러싼 투쟁을 들 수 있습니다. 175조의 철폐를 목표로 한 게이 해방의 주도자의 한 사람은, 자신도 게이였던 성과학자 마그누스 히르쉬펠트(Magnus Hirschfeld, 1868-1935), 그들은 과학적-인도적 위원회(Wissenschaftlich-humanitäres Komitee)”라는 조직을 1897년에 꾸리고, 175조의 철폐운동을 전개했다. 여기에는 실은 벤야민을 얘기한 대목에서 언급한 쿠르트 힐러도 가담하고 있습니다. 힐러는 조금 다른 이유로 이 운동에 가담했습니다만, 히르쉬펠트[허쉬펠드]의 입론은 이러했습니다. 동성애자는 옛날에도 지금에도 일정한 비율로 반드시 생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동성애에는 선천적인 기초가 있다. 자연(퓌시스)이 산출하는 그런 존재를 법률(노모스)에 의해 부정하고 처벌하고 박해하는 것이 과연 인도적인 것인가라고. 베를린에 있을 때, 히르쉬펠트[허쉬펠드]와 그의 성과학연구소의 기념비를 독일인 지인이 알려줘서 보러 갔는데요, 거기에는 처음에 “per scientiam ad justitiam”(과학에 의해 정의로)라는 히르쉬펠트[허쉬펠드]의 신조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었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히르쉬펠트[허쉬펠드] 등은 자연, 그리고 과학으로 향해야 했다. 175조가 자연에 대치되는 문화, 존재에 대치되는 당위, 즉 인간의 구축물인 것은, 이 조문의 철폐를 완강하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 것을 지적한 곳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문화라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바꾸기 위해 히르쉬펠트[허쉬펠드] 등은 자연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푸코를 인용하면서 과거의 성과학은 본질주의적이기 때문에 천박하고, 구축주의에 서 있는 우리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얘기가 자주 이뤄집니다. 성과학을 무조건 긍정할 생각은 내게도 없지만, 적어도 성과학에 관한 구축주의자의 얘기에 대해서는 그래?”, “정말로 그럴까?”, “천박한 것은 당신들 아닐까?”라는 생각을 금치 못하겠다. 자연의 논리에 의해 문화가 고쳐 쓰여진[변조된] 후에야, 구축주의는 그러니까 문화는 가변적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구축주의 그 자체는 문화를 실제로 바꾸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 구축주의가 말하는 바는 옳지만, 그것은 추수[뒤쫓기]의 논리일 뿐이다.

   아까의 장애학도 구축주의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도 자연과 신체입니다. 예를 들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연적 신체를 기반으로 삼아,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만들어나갈 것인가가 문제이며, 장애라는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구축된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나는 생각합니다.

히가키 :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청취 능력이 3배에서 4배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이치노카와 :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히가키 : 뇌과학이 진전되고 그런 것이 밝혀지게 되면, 장애학에서의 해방으로도 연결된다. 

이치노카와 : 확실히 그런 부분은 있다. 인지뇌과학의 사카이 구니요시(酒井邦嘉) 씨가 씨름하고 있는 수화의 뇌연구도(언어의 뇌과학 : 뇌는 어떻게 말을 산출하는가(言語脳科学──はどのようにことばをみだすか)(中公新書, 2002), 귀머거리 문화에서는 환영하는 사람이 많으며, 그것이 조금씩 밝히고 있는 수화의 뇌에서의 처리는 기본적으로 음성언어와 다를 바 없다라는 지식은, 구화주의口話主義 속에서 항상 덜떨어진 것으로 간주된 수화를 다른 것과 대비해 아무런 손색도 없는 언어로서 재위치시키는 하나의 근거를 주고 있다.

酒井邦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言語の脳科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과거의 일본의 장애인운동은 기술에 대해 강하게 염려한 적이 있으며, 전동 휠체어도 비장애인이 간호의 손길을 떼기 위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 비판에는 지금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술에 의해 새로운 신체와 문화가 열린다는 모멘트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2012] 런던 올림픽의 광고는 휠체어나 의족으로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는데, 장애인의 신체가 비장애인에 가까워지고 있다기보다는, 휠체어나 의족에 의해 새로운 다른 신체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느껴졌습니다. 문자가 전자 정보화됨으로써 시각 장애인이 얻거나 발신하거나 하는 정보량도 현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자연이나 과학, 기술에 의거함으로써 문화가 바뀌거나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다자연주의와의 관련에서 나 자신, 잊지 않고 싶습니다.

카스가 : 제 세미나에는 발달장애 학생이 있는데요, 다양한 능력을 계산하면, 보통은 복수의 능력이 평균적으로 되고 있는데, 그 학생의 경우는 분명한 편향[쏠림]이 있다. 그것이 장애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것은 재능 아닌가 싶네요.

이치노카와 : 확실히 그렇네요. 다만 그 재능도 측정에 의해 가시화된다는 부분이 있겠네요. 그런 가시화도 사이언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제2부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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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목차

사상의 말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좌담회)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

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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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키 타츠야(槍垣立哉)                           스가 나오키(春日直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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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


들어가며

히가키 타츠야(檜垣立哉) : 오늘은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특집의 일환으로 기획된 좌담회를 위해 인류학의 카스가 나오키(春日直樹)씨와 사회학의 이치노카와 야스타카(市野川容孝)씨를 초빙했습니다. 이치노카와 씨는 대학의 동급생으로 둘 다 아는 친구도 많이 있지만 장시간 얘기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카스가 씨는 오사카 대학에서 10년 정도 동료였습니다만, 강좌가 달라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장에서 얘기를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은 인류학, 사회학, 그리고 제가 전공한 철학이라는 세 개의 상이한 영역에 속하는 세 명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학이라는 개념을 앞에 두었을 때, 상이한 분과학문discipline에서 견해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할 테지만, 한편으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원래 복수의 분과학문에서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개념 등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좌담회에서는 세 사람이 각각의 입장에서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개념을 검토하고, 그 차이와 공통점[중복]을 부각시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개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I. ‘생명권력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생명권력개념의 연원

히가키 :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생명권력(bio-politique)’이나 생명정치(bio-politique)’는 미셸 푸코(1926~84)1970년대에 제시한 개념입니다. 다만, 푸코가 이 개념을 사용한 것은 아주 짧은 시기에 불과합니다. 저작을 살펴보면, ‘해부정치[](anatomo-politique)’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것은 감시와 처벌(1975)성의 역사 I(1976)의 일부이며, ‘생명정치에 관해서는 성의 역사의 마지막에서 인구의 생명정치학을 건드릴 뿐입니다.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에는 생명정치의 탄생(1978~1979)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도 있고, 가장 관련이 깊은 것으로는 안전, 영토, 인구(1977~1978)가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특별하게 얘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우생학이나 인종주의도 성의 역사에 나오지만, 이것도 그런 화제를 건드린다는 정도이며, 명확하게 논의되는 것은 아닙니다. , 푸코는 이 개념을 거의 전개하지 않았으며, 도대체 푸코가 이 개념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그 자체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때로는 철학적 개념으로 보입니다만, 그런 사실과는 무관하게, 푸코 사후에야 여러 분야에서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 푸코가 1984년에 사망한 후, 뇌사나 게놈 문제, 분자생물학의 문제가 나타나고, ‘생명이 아주 거대한 지식의 대상이 되며, 정치적·윤리적 대상이 되었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푸코 자신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와 관련되고, 여러 가지 형태로 퍼졌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아주 현실적인actual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권력론의 세 시기/위상

히가키 :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던 셈입니다만, 그 변천을 다시 돌이켜보면, 거기에는 세 가지 시기 또는 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 시기 또는 첫 번째 위상으로, 사회학적 변용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성의 역사1권도 그랬습니다만, 여기서는 사회구축주의적인 독해방식이 이뤄지고, 앞에서 얘기했듯이 푸코가 아주 조금밖에 건들지 않았던 우생학이나 인종주의 같은 생명적인 것을 다루고 문제로 삼았습니다. 일본에서 말하자면, 이치노카와 씨나 바이오폴리틱스 : 인체를 관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中公新書, 2006)를 썼던 요네모토 쇼우헤이(米本昌平) 씨가 대표로, 생명윤리를 포함한 생명을 둘러싼 사회적 이론으로서 논의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米本昌平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어서 두 번째 시기 혹은 두 번째 위상인데, 원리적으로 철학으로서 생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저명인사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화제로 삼는 조르조 아감벤(1942~)이나 안토니오 네그리(1933~), 주디스 버틀러(1956~)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을 둘러싼 논의로 지적인 관심을 자극했으며, 네그리가 마이클 하트(1960~)와 함께 제국(2000)을 썼던 때에는 넘어서야 할 대상으로 푸코가 있었습니다. 버틀러 역시 푸코를 상당히 의식합니다. 이들의 특징을 강하게 한 마디로 한다면, 푸코를 따르면서 푸코에 반한다는 것입니다. 아감벤이라면 법에 구애됩니다. 네그리라면 국가에 구애됩니다. 버틀러라면 정신분석에 구애됩니다. ‘이나 정신분석은 중기 이후의 푸코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개념에 다름 아닙니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1995)의 서두에서 한나 아렌트(1906~75)와 푸코가 유사한 것을 생각했으나 서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교차하고 있다는 식으로 썼습니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프랑스나 독일의 철학자라는 일종의 영토주의가 있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죠. 아감벤과 네그리는 이탈리아인이며, 버틀러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 철학이나 독일 철학과는 무관한 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1990년대의 일본에서는 그런 사상이 생겨나지 않았느냐며 윗세대한테 불평을 터뜨리고 싶네요(웃음).

   그런데 21세기가 되면 세 번째 시기 혹은 세 번째 위상을 인식할 수 있는데, 영역의 확산이 더욱 가속화됩니다. 이 조류에 관해서는 이 특집호에도 몇 개 소개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니콜라스 로즈(1947년 생)는 최근까지 런던정경대학(LSE)BIOS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 신설된 의학·건강사회과학부의 학부장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는 저작 생명 그 자체의 정치학(2007)에서 현상태의 의학에서는 신체가 파트(part)로 분리되는 게 아니라, 유전자나 분자수준에서 파악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뇌신경계적 자기분자적 신체같은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조금 뒤에 카스가 씨의 말씀을 듣고 싶은데요, 인류학에서도 아주 주목할 만한 흐름이 생기고 있습니다. 브뤼노 라투르(1947년 생)가 큰 중계점이 되어서, 브라질의 에두아르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1951년 생)나 프랑스의 젊은 세대에 속한 프레데릭 켁(1974년 생) 같은 사람들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정치라는 것에 상당히 마음을 쓰고 있고, 이로부터 새로운 인류학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다문화주의를 부르짖었던 인류학에 대해서 다자연주의를 부르짖습니다. 거기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독해되며, 인류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존속할 수 있는 걸까라는 위험한 생각이 들 정도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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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Viveiros de Castro)

카스가 : ‘인간의 용해라고 불리기 때문이죠.

히가키 : 인간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되는 셈인데, 이로부터 돌이켜보면, 네그리나 아감벤은 거대이론grand theorie이랄까, 빈틈없는 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후 세대는 그렇지 않고 개별 분야에서 얘기가 점점 더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조류 중에서 푸코의 독해방식이나 사용방식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수습하려고 해봤자 의미가 없, “이것은 잘못된 독해방식이고, 이것이 올바른 독해방식이다라거나, “이것은 옛날 독해방식이고 이것이 새로운 독해방식이다라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확산되는 궤적 속에서부터 무엇을 낚아채는 것이 유효한가를 논의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 개의 분과학문

히가키 : 이런 의미에서 여기에 사회학과 인류학과 철학에 속하는 세 사람이 모였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치노카와(市野川) 씨는 최신작 사회학(社会学)(岩波書店, 2012)에서 오귀스트 콩트(1798-1857)에 관해 쓰셨는데요, 사회학의 선조는 일반적으로 에밀 뒤르켐(1858-1916)과 가브리엘 타르드(1843-1904)라고 일컬어집니다. 사회에 관해 논하는 일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줄곧 이루어져 왔습니다만, 분과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은 19세기의 프랑스에서 생겨난 비교적 새로운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치노카와 씨도 포함해서, 사회학은 현대사회를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제3부에서 다루는 근대의 문제만 해도, 근대가 있는가 없는가 따위는 철학의 얘기이며, 근대가 있든 없든 사회학은 눈앞의 문제로 향해야 한다고 당연한 듯 생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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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인류학인데요, 카스가 씨는 인류학의 탄생을 19세기라고 부르고 있고, 푸코는 말과 사물(1966)에서 20세기적인, 더 새로운 것으로서 인류학(구조인류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학이 보고 있는 인간은 사회학이 보고 있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됐습니다. 신석기 시대에서 시작해, 근친상간금지나 식인풍습(카니발리즘)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죠. 다만 아까 거론한 에두아르드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나 켁을 비롯하여,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신화론(1964-71)을 높이 평가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집니다. , 구조주의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과 동물의 교착상태에 주목합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 관계하지 않았을 리가 없죠.

   그러면 철학은 어떤가? 철학자는 필드연구가 책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더라도, “그것은 공리공론이다라는 말을 들을 운명에 있습니다. 다만, 바로 그렇기에 철학은 시대에 침을 뱉고, 일부러 반시대적인 행동을 하고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푸코라는 인물은 어떤 분과학문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본인에게 물었다면, 초기라면 자신은 과학인식론학자라고 말했겠지만, 후기가 되면 그렇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역사학자는 저런 것은 역사학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사회학자는 저런 것은 사회학이 아니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렇다고 인류학자도 철학자도 아닙니다. , 푸코 자신은 설 자리가 없는 인물로, 그렇기에 세 개의 학문이 푸코의 어느 부분에서 교차하는가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철학은 권력이나 정치에 관해 말할 수 있는가?

히가키 : 지금까지 제가 도입부를 했으니까, 두 분께 자신과 생명권력론의 관계에 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이치노카와 씨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치노카와 : 우선 히가키 씨한테 트집을 잡자면(웃음), 시대구분이라는 말씀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1, 2, 3기로 나눈다면, 1기가 끝난 후 제2기가 오고 이어서 제3기가 온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히가키 : 그 말씀에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시기라고 말한 것은 읽기 방식과 수용 방식의 시대별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인 것일 뿐이며, 1기나 제2기는 이제 끝났고 지금은 제3기이다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치노카와 : 세 가지의 방향이나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푸코가 생명권력이라고 말했을 때, 잠재적으로는 이미 세 가지 방향이 열려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학과 인류학과 철학이라는 세 개의 분과학문에 대해서입니다만, 사회학이 실제로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이나 사회는 고작 2백년 정도의 것입니다. 그런 근대사회나 현대사회를 고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사회학은 다른 영역에 손을 대면서 비대해졌습니다. 그것은 콩트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실제의 고찰대상은 한정된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말하는 내용은 어떤 의미에서 상궤를 벗어나 있을 정도로 큽니다. 이렇게 도착적인 것이 사회학에는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를 들어 마르셀 모스(1872-1950) 등으로 이어지고 분야를 넓혀서 인류학에 접근하고, 이론의 부분에서도 웅장한 것을 만들어내고 철학에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회학이 왜 생명권력이나 생명정치에 관심을 냐 하면, 푸코는 단순한 생명론이나 생명철학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생명권력이라고 말하고 생명정치라고 말했으니, “권력이나 정치라고 얘기하면 사회학자는 거의 자동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생명과 권력의 철학(権力哲学)(ちくま新書, 2006)을 쓰신 히가키 씨께 물어보고 싶은데요, 철학자가 권력이나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제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의외입니다. 예를 들어 아까 이름이 나온 아렌트인데요, 그녀는 1964년에 독일의 그 사람을 안다(Zur Persons)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그 내용은 활자화되어 있습니다(Hannah Arendt, Ich will verstehen. Selbstauskünfte zu Leben und Werk, Piper, 1996, S.46ff). 지금은 인터넷에서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첫머리에서 사회자가 그녀를 철학자라고 소개하는데요, 곧바로 아렌트는 철학을 공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제 작업은 정치이론(politische Theorie)입니다”, “나는 정치철학이라고 표현하지도 않습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는 철학에 영원히 작별을 고했습니다라고도 말합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철학과 정치 사이에는 뿌리 깊은 긴장관계가 있습니다. 자연철학에 있어서, 철학자는 전체 인류의 이름으로 자연에 마주대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결코 중립적으로 될 수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철학자에게서는 모든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보이지만, “나는 그런 혐오를 공유할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아렌트는 말하고, “그것은 곧 철학에 의해 흐릿해지지 않는 눈으로 정치를 본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보통은 거꾸로, “정치에 의해 흐릿해지지 않는 눈으로 사물을 보라(철학하라)”고 하지만, 아렌트는 철학에 의해 흐릿해지지 않은 눈으로 정치를 본다고 말한다.

生と権力の哲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https://youtu.be/dsoImQfVsO4



   프로그램은 그 후, 아렌트의 반편생을 반추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사회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아렌트는, 자신이 철학에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정치에 눈을 뜬 것은 1933년이라고 말한다. ‘철학이라든가 정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