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홀워드가 2015년 3월 15일부터 일본을 방문해서 두 번의 강연을 벌였다고 한다. 간단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 http://www2.gensha.hit-u.ac.jp/TransA/lecture20150315.html

* 이 두 번에 걸친 강연 내용이 최근 일본에서 발간된 잡지 『다양체』에 수록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목차를 볼 수 있다. 이것들을 독서의 습관으로 틈틈이 옮겨적을 예정이다. 우선 두 번째 강연에 해당되는 <들뢰즈 이후의 정치>부터 옮긴다. 일본에서 이 강연의 제목은 「ジル・ドゥルーズと政治(”Politics after Deleuze: Immanence and Transcendence Revisited”)」였으나, 아래의 잡지에는 다음의 제목으로 수록됐다. ドゥルーズ流の政治/ドゥルーズ後の政治|ピーター・ホルワード|小泉義之訳. 일본과 한국에서는 번역어, 문장 구사 등이 다르기 때문에 홀워드의 원문을 구해서 대조해야겠으나, 지금으로서는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 구태여 따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 아래의 본문을 보면 나오는 주라비슈빌리[주라비크빌리]의 글은 정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 게재하다가 중단한 이치다 요시히코의 <혁명론>에서도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를 홀워드와 교차하면서 읽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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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이후의 정치 : 내재성과 초월 재고 (1/2)

Peter Hallward, “Politics after Deleuze: Immanence and Transcendence Revisited”

 

최근 25년 동안, 아무래도 질 들뢰즈는 넓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대륙철학이나 프렌치 씨어리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들뢰즈 저작의 양상들을 둘러싸고, 이채로운 수의 책과 논문이 넘쳐나는 것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들뢰즈에 관한 전문연구서와 들뢰즈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책을 도서관의 빠른 검색으로 검색해보면, 이제 1200건 아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에딘버러대학에서 나오고 있는 시리즈 Deleuze Connections, 들뢰즈와 디자인, 들뢰즈와 건축, 들뢰즈와 교육, 들뢰즈와 인종, 들뢰즈와 공간, 들뢰즈와 그 밖에도 머리에 떠오르는 한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25권을 채웠고,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입니다.[각주:1]

* 각주1에 달려 있는 주소는 다음으로 변경되었다. https://edinburghuniversitypress.com/series-deleuze-connections.html

이 일련의 제목이 반영하고 있듯이 들뢰즈에 대한 관심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하지만, 그곳은 차치하더라도, 유럽과 앵글로색슨의 근처에서도 많은 독자가 들뢰즈에게 매료되어 온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정치사상가로서의 그 중요성임을 보여주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파리나 런던의 대학에서 현대유럽철학이나 비평이론의 어떤 연구과정을 전공하려고 해도, 어김없이 들뢰즈와 공저자인 펠릭스 가타리에 관련된 정치적 모티프의 한 쌍과 다소간 직접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제가 만나온 이론 지향의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이라고는 하지 않더라도, 그 상당수에게는 미시정치, 탈영토화, 노마돌로지, 도주선, 전쟁-기계, 소수자로의 생성변화[소수자-되기], 자연스레 입에서 나오는 정치적 어휘의 대부분을 이제 뒤덮고 있는 몇 안 되는 용어의 고작 몇 개의 예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많은 것에 대해 논합니다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치하는 바로는, 들뢰즈는, 정치활동의 현대적 형태와 그들이 직면한 속박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참조처이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둘러싸고 금세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들뢰즈 자신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명시하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그것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 평등, 자유, 해방 등과 같은 주요한 정치적 개념은 그의 고려 바깥에 있으며, 자본주의와 분열증[안티 오이디푸스천 개의 고원]에서 제출된 국가 비판을 별도로 하면, 별의별 정치제도, 통치의 기구, 입법대표정부의 기구에 대해 그는 그 이상의 논의를 거의 제시하지 않습니다. 거대 신문용으로 작성된 몇 개의 논설(유명한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관한 것입니다)을 빼면, 들뢰즈가 정치의 경위나 혁명에의 동원에 대해 일부러 자세하게 논의하는 것은 역시 드뭅니다. 들뢰즈나 들뢰지안이 정치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역시 전적으로 불분명하며, 현재 이용 가능한 들뢰즈 사전의 종류가 한결같이 소수자 정치”, “미시정치”, “혁명의 논의를 등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토픽에 대해 특별한 항목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각주:2]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제 자신의 정의를 부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오랫동안 전통에 맞춰서, “정치란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의 다음과 같은 집단적 차원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제안하겠습니다. , 1.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자연적인 조직이나 상호행위(예를 들어 친족, 민족, 지리, 언어에 기초를 둔 형태들)로 환원할 수 없는 집단적 차원이며, 2. 다른 것과 구별하여 정치적집단성이나 공민적집단성을 구성하는 참가자들은, 평등과 포함을 기초로 상호관계를 맺으며, 다른 생활영역으로부터 따온 계층성을 기초로 하여 (예를 들어 군사명령을 기초로 하거나, 가정경제종교 권위를 기초로 하여) 상호 관계를 맺는 일은 없다는 것을 원리 원칙으로서 전제로 하는 집단적 차원입니다.[각주:3] 더 한정해서 강조해 둡니다만, 데모크라시의 정치는 보통의 인민의 힘에, 즉 그 어떤 형태의 특권단체나 지배계급과도 싸워 이기는 인민 일반의 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논했는데요, 민주주의와 여러 가지 형태의 과두제나 재산제(plutocracy)(그 대부분은 ‘(다른) 민주주의라고 자칭합니다)를 가장 간편하고 명백하게 구별하는 방식은, 루소(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 등의 자코뱅파가 감복해서 계속 인용하는)가 주권의 기초를 인민의 의지에 둘 때의 논리, 일반의지 혹은 인민의지[의 논리]에 입각하면서, 인민주권의 우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각주:4] 이러한 집단의 실재의 기초는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에게 짐을 지우는 그 역량, 그렇게 해서 적대적이고 타율적인 결정의 형태들에 (단지 저항한다기보다는) 승리하는 그 역량에 직접적으로 놓여져야 합니다. 거꾸로, 이 일반 역량의 기초는, 서로 강화하는 집단적인 능력들과 역량들, 특히 집회·교육·정보·토의(deliberation)·조직화·결의·실행의 역량들에 놓입니다.

* 각주 4에 붙은 주소는 여기를 클릭. https://www.radicalphilosophyarchive.com/wp-content/files_mf/rp155_article1_willofthepeople_hallward.pdf

정치에 대한 위와 같은 노골적으로 주의주의적인 구상은 들뢰즈와의 정면충돌을 야기하는데요, 오늘 여기에서는, 바로 이 충돌을 저는 정밀조사하고 싶습니다. 들뢰즈의 저작에 인민이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출현하더라도, “도래할 인민[민중]”이라는 순수하게 잠재적인 형상으로서 출현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영적인 자동기계를 집단적 형태로 개조했던 것은 아닐까요?[각주:5] 무의식, 욕망의 기계적이고 사실은 자동기계적인 성질, 경험의 분자적 혹은 하위-개체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철학은 정치적 의지와 의지적 활동으로부터 가장 먼 것은 아닐까요? 저는 들뢰즈의 최초의 가장 열심인 독자의 한 명이었던 프랑수아 주라비슈빌리에게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그가 1996년의 중요한 논고에서 엄밀하게 강조했던 것처럼, 정치적 좌파는 일반적으로 주의주의를 참조축으로 하여 자기를 정의하지, “들뢰즈는 상상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주의주의적이지 않은 철학을 전개했다. 항상 들뢰즈는 진정한 사고와 생성하는 모든 근본적으로 의지적인 성격을 주장했다. 그리고 어떤 계획에 입각해 세계를 바꾼다거나,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를 바꾼다는 등의 일처럼 그에게는 인연이 먼 것은 없었던[각주:6] 것입니다.

들뢰즈적인 정치가 있다면, 물론 그것은 비주의주의적이라고 기술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널리 유럽철학에서 좌파현대정치분석으로서 통용되고 있는 것의 실로 상당수가 일반적으로 이런 의미에서 바로 들뢰즈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권과 그 동족어에 대한 유행의 산만한 비판을, 특히 그것이 무엇이든 지도 주체나 주권적 주체”(그런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괴물적인 혼란입니다!)에 대한 거절을 보세요. 자크 데리다에 의한, 무조건적인 윤리적 책임을, 적극적 자유의 그 어떤 구상으로부터도, “, 지배, 폭력으로서 규정되는 자유, 나아가 기능으로서, ‘나는 할 수 있다의 가능성으로서 규정되는 자유로부터도 분리하려고 하는 미수에 그친 기획을 계승하는 유산을 생각해 보세요.[각주:7] 조르조 아감벤을, 그리고 또한, 대륙-철학계에서는 최근 들어 일정한 견인력을 갖춘, 티쿤(Tiqqun), 보이지 않는 위원회(the invisible committee), 공산주의이론(Théorie communiste) , 다양한 공산화가속주의의 주장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들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이것들에 공유되고 있는 것은, 활동가와 그 현실적 정치 역량을 합병하는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아감벤에 의한 비판, 숙려[토의](deliberate) 단계와 스텝step을 밟아나가도록 틀이 부여될 수도 있는 활동의 전략적차원 모두에 대한 아감벤의 거절입니다. 모든 구성적권력[]의 거절에 의해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라면, 중지[허공에 매달림]와 외톨이로 틀어박히기라는 위로, 그저 결핍시키는힘에 의해 약속되는 저 순수한 비-잠재성의 림보뿐입니다.[각주:8]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그것은 20년 이상 전에 처음으로 학위논문의 1개 장에서 소묘했던 것인데요, 들뢰즈에 대한 저의 비판적 결론의 입장에 계속 서 있는 것입니다. 푸코가 21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건넨 것은 유명하지만, 그 정치적 의의에 관한 한, 그것은 금세기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기간이 계속된 것은 (혹은 시각에 따라서는 아직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 이름에 값하는 모든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인민의 의지, 그것에 대항하는 어떤 저항에도 불구하고, 우세한 것이어야 한다는 신-자코뱅적 주장으로부터, 정치적 사고가 철수하고 있는 동안뿐입니다. 달리 말하면, 들뢰즈가 정치적 사고에 있어서 중심적인 참조점으로서 부상한 것은, 어떤 기간, 대략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승리의 기간, 1970년대 초기에 시작되고 일련의 현저한 인민의 패배를 특징으로 하며, 19세기와 비교하고 싶어지는 불평등·항복·복종의 형태의 부활을 결과로 하는 기간에, 들뢰즈가 퇴각의 입장을 위해 부족함이 없는 철학적 견해를 제출한 한에서인 것입니다.

주의주의적정치구상과 비주의주의적정치구상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부딪칩니다. 한편으로, 정치활동가에 대한 구상, /녀의 의지적 활동의 역량에 관해서,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와 활동가가 살아가는 상황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해방식에 관해서입니다. 아래에서는 이런 두 가지 점을 순서대로 쫓습니다.

 

1. 루소와 로베스피에르에서부터 레닌과 그람시를 거쳐 프란츠 파농과 체 게바라에 이르는, 넓게 -자코뱅적인 전통은, 정치적 의지의 행사를 목표·의도·동기 등의 고전적인 심리적요인과 연합시키는 것을 늘상 해왔습니다만, 이와 동시에 의지의 실행과 행사를 단순한 소망과 변덕의 표현이 목적에 동의하는 자는 그 수단을 거부할 수 없다”(루소)라는 클리셰, 달리 말하면, “목적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자는 누구든 그 수단도 의지해야 한다”(그람시)라는 클리셰에 입각하고 있더라도, 단순한 소망이나 변덕의 표현과는 구별하고 있습니다.[각주:9] 루소 이후, 의지(vouloir)(pouvoir)은 서로 맞바꿀 수 있으며, 목적을 의지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획득하고 사용하는 활동가의 역량에 의해 매개되는 것입니다. 활동가의 역량이 높아질수록, 활동가가 교육되고 의식적이고 유덕해지고 단련될수록 그 활동의 영역이나 그 의지의 권역은 점점 더 일반적이게 되고 원대해지는 것입니다.

활동가[배우]에 대한 들뢰즈의 구상 일반에서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활동을 위한 본래적 역량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것, 즉 자신의 기획과 사업을 숙고하고 의식적으로 정식화하고 개시하기 위한 역량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들뢰즈가 전투의 사건을 고찰할 때, 그의 관심은,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하느냐에도, 군사적인 전략의 방식이나 이유에도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의 관심은, 활동가로서의 병사, 상황에 응답하여 결정을 내리고 개별 목표를 추구하는 개인에게도 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잠재적 사건 그 자체로서의 전투의 무차별적이고 익명적인 성질에, 활동이나 퇴각의 역량의 모든 것을 상실하고 포기한 자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성질에, 들뢰즈의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진정한 활동가, “더 이상 용감도 비겁도 아니고, 더 이상 승자도 아니고 패자도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 <사건>이 현전하는 그 장소에서, 그렇기에 그 가공할 정도의 비정함에 참여하는 치명상을 입은 병사”(LS, 100~101)인 것입니다. 전투의 위쪽으로, 전투를 넘어서, 전투를 통과하여 존재하는 자만이, 전투를 사건 또는 본질로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유로, 사무엘 베케트의 범례적인 등장인물이 사물의 잠재적 리얼리티에 대해 적격이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소진하고, 그저 가능적일 뿐인 것의 영역을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소진한 인물만이 가능적인 것을 소진할 수 있다. 모든 욕구need, 선호, 도달목표, 의의를 체념해버렸기 때문이다. 소진한 인물만이 충분히 이해관심을 떠나고 있다.” 소진한 인물만이 재차 올라가 돌아가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CC, 154-155). 그 조건 하에서 그/녀는, /녀가 그 일부인 리얼리티를 진정으로 수 있다. 소진한 인물은, 그들을 흡수하는 환경에 일체의 주도권을 버리고 맡겨버린다. “거친 대해를 떠다니는 코르크처럼,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는 경계 속에 존재한다”(CC, 26).

들뢰즈가 물색한 다수의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취하든, 숙고적이고 목적론적인 자유는 그저 반응적이고 제한적인 편견이라며 기각되고, “더 심층의 형태의 강제, 자동조작, 용해가 지지되고 있습니다. 주체 자신의 결정이 진정한 귀결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견지, 요컨대 전략의 견지는, 들뢰즈의 사고의 구상과는 철저하게 무관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 관한 그의 두 권의 책의 궤적을 아주 간단하게 대층 그려보면, 등장인물이 지각과 활동을 조절하는 역량을 계속 갖고 있는 (전쟁-전의) 상황으로부터, 감각-운동역량을 탈취당해 무엇인가에 홀려 있는 모양의 사람이 반응하지 못하고, 반응을 의지하지도 않는상황으로의 이행에 있게 됩니다. “감각-운동의 결합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구상공간은, 긴장과 그 해소에 따라서, 목표, 장벽, 수단, 우회에 따라서 조직화되기를 멈춘다.” 활동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각은, 압도적이고 환각적이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게 된다. 이러한 결정(結晶)을 통하는 듯한 직관을 통해서, 인물은 수동적인 보는 자가 되며, 무엇이든 현재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할지도 모르는 것에는 무관심해지며, 반사적 반응에 대해서조차 무감응해진다. “그토록 그 인물에게 있어서는, 정확하게는 무엇이 상황 속에 있는 것인가를 보는욕구need가 크다는 것이다”(C2, 126-128). 이런 통찰의 비용은 전적으로 명명백백합니다. 그것이 요청하는 것은, 활동가의 카타스트로피적인 마비이며, 유기체의 문자 그대로의 분해, 혹은 이것에 준하는 분해입니다. 전투를 지각하면서 죽어가는 병사를 철저하게 넘어서 사납게 날뛰는 전투처럼, 이제 사건은, 사건을 선동하고 사건에 반응하는 인격에 관계없이, “부동성, 석화작용, 반복”(C1, 207; C2, 103)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구도가, 들뢰즈가 문학을 참조할 때 특권적으로 끄집어내는 많은 점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 베케트의 소진시키는 자동기계, 카프카의 절대적인 분자적 탈영토화”(K, 58), 나아가 멜빌의 바틀비이며, 그 비타협적인 나는 하지 않고 싶은데요, 변함없이, “말과 활동을 절단하고, 더욱이 사물, 이유, 목표에의 지시를 언어로부터 분리한다는 것입니다.[각주:10] 이 점을 조금 자세하게 예를 들어 풀이하기 위해(또 다시 들뢰즈의 저작=신체corpus에 이어서는 통상적인 정치적 맥락이 그 관계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들뢰즈의 프루스트 독해를 간단하게 고찰해봅시다. 들뢰즈가 프루스트와 기호1972년판의 짧은 서문에서 요약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프루스트의 작품 전체가, 비의지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을 움직이는 기호의 경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PS, vii)는 것입니다. 프루스트의 화자가 학습하는 것은, “진리는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누설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의지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비의지적이다. 다시 얻어진 <시간>의 최대 테마는, 진리의 탐구는 비의지적인 것에 특징적인 모험이라는 것이다. 사유를 강제하고 사유에 폭력을 가하는 무엇인가가 없다면, 사유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얻어진 <시간>의 라이프모티프는 단어 강제력이다. 우리에게 보도록 강제하는 인상, 우리에게 해석하도록 강제하는 조우등등(PS, 61).

일반적으로, 들뢰즈가 논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의 지각, 기억, 상상, 지성, 사고 같은 능력들은, “의지적으로 행사되는 한에서는 우발적으로만 행사될 뿐이며,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는 것을, 그저 똑같이 우리는 기억하고 상상하고 인식하고, 그 반대도 그렇다.” 이것과 대비적으로,

 

어떤 능력이 그 비의지적인 형태를 걸칠 때마다, 그 능력은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곳에 도달하고, 초월적인 행사로까지 상승하고, 다른 것으로 치환 가능한 그 힘과 자신의 필연성을 이해한다. 능력은 교환 가능하기를 멈춘다. 비의지적인 행사는, 각 능력의 초월적인 한계이며 그 사명이다. 의지적인 사고를 대신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사고하도록 강제하며, 모든 것이 사고하기를 강제당한다. (PS, 62-63).

 

그때, 비의지적인 사고란, 필연성의 완전한 강제력과의 조우입니다. 혹은 오히려, 조우의 우발성을 필연성의 무심한 운명과 제휴시키는 경험입니다. 여기에서, 비의지적인 기억에 대한 프루스트의 유명한 몰두가 어떻게 되는가 하면, 활동가의 진행성 마비와 활동가의 세속적 기획과 낭만적인 기획 모두의 용해를 다시 요구하는 듯한 그런 내러티브의 도정, 그 최초의 열약(劣弱)한 단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자의 감각-운동 시스템은 소모시키고, 활동과 반응에 있어서의 그저 현실적인시간성에 대해 무관심한, 순수하게 수동적인 관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그가 학습하는 것은 말하자면, “순수상태의 시간에 입력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증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기관없는 신체이며 미소한 기호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관찰되지 않으며”, 그가 조우하는 다양한 인물을, “그 자신의 망상의 똑같은 수의 마리오네트에, 그의 기관없는 신체의 똑같은 수의 강도적인 힘에, 그 자신의 광기의 똑같의 수의 프로파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각주:11]

프루스트의 화자가 따라가는 궤적과 영화론이 끄는 궤적은, 대체로 비슷한 호[孤]를 그리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또한, 들뢰즈의 작품 전체를 통해 상이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 지도에 배치되는 것은, 활동가의 진행성의 무-능력화, -현실화, 대항-현실화, 활동가의 용해이며,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그런 리얼리티의 절대적 필연성과 충족성 안에서의 직접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침례[전신을 물에 담그는 세례](immersion) 때문입니다. 현실성에 대한 우리의 일상경험이 활동에 대한 관심에 의해 뒷받침되고, 감각-운동 메커니즘을 통해 감각과 활동을 결부시키는 신체에 의해 조절되고 있다면, 진정한 통찰을 위해서는 그런 관심의 정지와 그 메커니즘의 탈구가 요청될 겁니다. 현실적인 것은 유기체의 기능[함수]이라고 한다면, 잠재적인 것은 전반적인 탈-유기체화로 이끌 겁니다. , 글자 그대로 탈조직화된 신체, 그 생물로서의 통합성과 정합성을 박탈당한 신체, 들뢰즈와 가타리가 아르토를 좇아 부르는 바의 저 유명한 기관 없는 신체를 설정하도록 이끌 겁니다. 그런 신체는, 조우하는 사건에 의해 강제되는 것을, 이해, 목표, 계획의 매개 없이 즉석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가능한 미래로 향하는 모든 기획은, 존재하는 것, 존재할 터인 것의 내재적인 필연성 속에서 무너집니다. 이것이 운명애입니다.

프랑수아 주라비슈빌리는 이 비주의주의적궤적을 아주 잘 요약했습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그 궤적은, “가능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이 동일한 지점에, 의지가 허위 문제이게 될 뿐인 지점, 허위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의지가 사건의 자기-긍정으로서 사건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지점에 도달하는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기묘하고도 철저하게 스피노자적인 세계의 지각에 도달하고, “산소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었음을 마지막에 이해하게 되며, 산소 없이 호흡하려고 하는 지점에 손을 대는[노력을 기울이는][각주:12] 것입니다. 이렇게 제언해도 크게 과장이 되지는 않을 테죠. , 들뢰즈에게서는, 활동을 가능케 하는 활동가의 기운을 돋우는 것은 모두, 그대로, 우리가 그로부터 도주하려고 해야 할 억압이며, 동시에, 동일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우리를 바로 그 자유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우리가 필연성의 유일한 흐름의 지각할 수 없는양태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는 도주선을 물색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들뢰즈가 고찰하는 다양한 생성변화 혹은 되기”(예를 들어 여자-되기, 동물-되기, 노마드-되기)의 상대적인 가치가 어찌 될 것이냐 한다면, 그 가치는, 되기가 탈영토화한 형태 없는 질료를 위해활동하는 정도에 따라서, 또한, “지각할 수 없는 것은, 되기의 내재적인 목적이며, 그 우주의 공식이다라는 무자비한 텔로스에 입각하면서 활동하는 그 정도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입니다.[각주:13]

주라비슈빌리 같은 독자가 들뢰즈의 방향성에 있어서의 가차 없는 스피노자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가 들뢰즈의 이 방향성에 막연한 혁명적억양을 불어넣고자 하는 꽤 어설픈 시도는, 천박한 속임수가 되기 십상이고, 어떤 종류의 정치활동에도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실천적 곤란들에 대해 결단코 무관심해지기 십상입니다. 들뢰즈의 형이상학에 대해서 마찬가지의 스피노자주의적 이해에서 출발하면서도, -마오이스트의 철학자 기 라르드로는, 들뢰즈의 다른 독자에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impact)도 주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는 소책자에서, 들뢰즈의 형이상학의 정치적 함의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스토아학파로서, 그리하여 평화주의와 영적 달관[諦観]의 처방전으로 특징지어집니다.[각주:14]

  1. Harvard University Library system, HOLLIS search, 9 March 2015. ‘Deleuze Connections’, ed. Ian Buchanan, University of Edinburgh Press, http://www.euppublishing.com/series/delco [본문으로]
  2. Cf. Adrian Parr, ed. The Deleuze Dictionary (2010); Eugene Young, ed., The Deleuze and Guattari Dictionary(2013) ; François Zourabichvili, Le Vocabulaire de Deleuze (2003). [본문으로]
  3. 표준이 되는 참고문헌은 Aristotle의 Politics이다. [본문으로]
  4. Cf. Hallward, The Will of the People: Notes Towards a Dialectical Voluntarism, Radical Philosophy 155(May 2009), 17-29. online at https://www.radicalphilosophyarchive.com/wp-content/files_mf/rp155_article1_willofthepeople_hallward.pdf [본문으로]
  5. Cf. C2, 263 ; EP,131, 158, 160. [본문으로]
  6. François Zourabichvili, “Deleuze et le possible (de l’involontarisme en politique)”, in Eric Alliez et al, eds., Gilles Deleuze : Une vie philosophique (1996), 335. [본문으로]
  7. Derrida, Rouges[2002],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40. [본문으로]
  8. cf Agamben, “From the State of Control to a Praxis of Destituent power”, Athens, 16 November 2013 ; cf. Agamben, “From Limbo”, The Coming Community(1993) [본문으로]
  9. Rousseau, Discours sur l’économie politique, Œuvres complètes, vol. 3(Pléiade), 263; Gramsci, Worker’s Democracy (1919), Pre-prison Writings, 99; cf. Trotsky, Terrorism and Communism(1921), Verso ed., 25. [본문으로]
  10. CC, 73-74. 주라비슈빌리의 비주의주의적 독해에 있어서, 바틀비가 “들뢰즈적 정치의 상징적 인물”로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Zourabichvili, “Deleuze et le possible”, 349). Cf. Agamben, Bartleby, or on Contingency, in Potentialities (1999). [본문으로]
  11. PS, 117-118; AO, 69; PS, 181-182; cf. RF, 30-31, 38-39; NP, 103-110; DR, 147. [본문으로]
  12. Zouravichvili, “Deleuze et le possible”, 356-357. [본문으로]
  13. K, 13; TP, 279; Cf. DC, 45; C2, 190. [본문으로]
  14. Guy Lardreau, L’Exercice différé de la philosophie: à l’occasion de Deleuze(Verdier, 1999), 51. 특히 어떻게 최선의 방식으로 필연성에 적응하는가, 어떻게 “흐름을 타는”가, 혹은 상황의 내재적 “생성”에 따라서 자기를 방향짓는가를 탐구하는 사상가(스토아학파, 스피노자, 흄, 베르크손 …)에 이끌려서, 라르드로는 이렇게 논한다. “푸코와는 달리 … 이성의 존엄[을 지킬] 만한 것에 대항하여 들뢰즈가 떨쳐 일어난 것은 한 번도 없었다”(ED, 45; cf. 72). 물론 라르드로 자신은 중립적인 독자가 아니라, 과거, 이른바 “신철학” 논쟁 무렵, 드물게도 들뢰즈 자신이 비난을 폭발시켰을 때의 표적 중 한 명이었다. 다음을 보라. Deleuze, “A propos des nouveaux philosophes et d’un problème plus général”(1977), in RF; Guy Lardreau and Christian Jambet, Une derniere fois, contre «la nouvelle philosohie», La Nef 66(January 1978), 35-4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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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3부 1장. 

오늘날의 생명정치학 : 푸코와 레비스트로스 

La biopolitique aujourd’hui : Foucault et Lévi-Strauss

프레데릭 켁(Frédéric Keck)

Frédéric Keck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일역자 해제]

프레데릭 켁은 1974년에 태어난 프랑스 인류학자이다. 켁의 경력과 작업에 대해서는 사상(思想)의 레비스트로스 특집(200812월호)에 게재된 논고 레비스트로스에 있어서의 주체의 해체와 생태적 카타스트로피(レヴィ=ストロースにおける主体解体生態的カタストロフィー)에 붙어 있는 와타나베 고조(渡辺公三)의 자세한 해설이 있으니까, 그것도 참조.

켁은 프랑스의 고등사범학교와 파리3대학에서 철학을, 미국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교에서 인류학을 배웠다. 현재는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것은 2008년에 프랑스대학출판국(PUF)에서 간행된 베르크손의 종교와 도덕의 두 가지 원천의 교정판과, 같은 해 2008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된 레비스트로스의 플레이야드판 저작집의 편집자로서의 작업일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뒤르켐,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레비스트로스에 관한 저작을 많이 간행했으며, 현대의 인류학 연구를 이끄는 신진기예의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는 주로, BSESARS 등 동물의 질병과 인간사회의 위생위기 사이의 관계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로부터, 인간과 동물을 둘러싼 현대의 생명정치의 형식을 탐구하고 있다. 그 성과는 최근의 저작 Des hommes malades des animaux(L’Herne, 2012)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것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와타나베 씨의 번역해설에 의한 논고 외에, 레비스트로스와 조류인플루엔자 : 잠재적 카타스트로피의 구조인류학(レヴィ=ストロースとインフルエンザ──潜在的カタストロフィの機造人類学)(山崎吾郎 訳, 現代思想, 20101月号, 靑土社) 등이 있다.

現代思想 201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20081205_Keck_02.jpg

[프레데릭 켁의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강연 보고는 두 개가 있다. 1) <조류인플루엔자의 인류학>이라는 제목은 여기를 참조. 2) 도쿄대학에서 열린 <레비스트로스와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제목의 강연은 여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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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 오늘날의 생명정치학 : 푸코와 레비스트로스2012328오사카대학 최첨단 두근두근 연구소 추진사업(大阪大学最先端ときめき研究推進事業) 바이오사이언스 시대에서의 인간의 미래(バイオサイエンスの時代における人間未来)의 일환으로 행한 강연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본인의 허가를 얻어 여기에 번역수록했다. 이 글은 최신작인 Des hommes malades des animaux와 똑같은 문제의식에서, 푸코와 레비스트로스의 교차적 독해, 그리고 조류인플루엔자나 그 세계적 유행(pandemic)이라는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둘러싼 경험적 사태를 통해, 현대세계의 생명정치적 국면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Des hommes malades des animaux

본고는 생명정치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도 커다란 의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푸코에서 유래하는 생명정치학 개념은 적용의 폭이 매우 좁은 것이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생명정치학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대적으로는 18세기부터 19세기의 어떤 한 시기, 그것도 지역적으로는 서양사회의 어떤 일부에 대상을 한정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푸코에게서는 결함도 무엇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푸코는 최만년最晩年에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세계로 회귀하는 장면을 빼면, 거의 유럽 근대라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인간의 소멸이라는 테제만 해도, 거기서 소멸을 다시금 논해지는 인간이란, 서양사회에서의 근대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푸코가 행한 분석이란 바로 서양사회에 한정된 것인가, 그리고 푸코가 살던 당시와는 완전히 상이한 규모로 전지구화와 포스트콜로니얼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개념이 자주 사용되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급박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켁이 굳이, 아시아에서의 현대의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을 현장 연구하는 것에는 푸코의 자세에 대한 모종의 비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질문은 푸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리라. 인문과학이나 의학의 고고학을 논한 국면과는 달리, 계보학을 논하는 1970년대 이후의 푸코는, 니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으로부터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모종의 광역적인 역사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방법론적인 사태가 영향을 줬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푸코 자신은 생명정치학을 제기하고 인구의 생명성을 정치의 초점으로 삼은 후에, 그 시도를 직선적으로 밀고 나가지는 않았다. 거기에서는 그 개념의 적용범위나 영역 등에 많은 동요를 간파할 수 있다. 켁이 다루는 사목권력으로의 확장 등은 그 전형적인 예로, 푸코가 그 테마를 논한 것은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했지만, 기독교에서의 권력 시스템 전반과 유럽의 권력론의 존재방식을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는, 푸코로서는 이례적인 전개가 거기서는 기획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한편, 레비스트로스 등의 인류학과의 관련도, 푸코 자신의 시계에는 들어있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자로서 화려하게 지적 세계에 등장했을 때, 세대는 다르더라도, 레비스트로스와의 관계나 그 사고와의 평행성은 커다란 테마였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 자신이 전형적인 구조주의적 논의를 넘어서, 신화론(1964-7)에서 볼 수 있듯이 리좀적인 분석으로 나아갔을 때에(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이번 호에 수록된 논고 등을 참조), 역시 자연적인 생명과 정치의 논의가 관련되는 생명정치학이 거기에서 어떻게 묶여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이른바 불가피하게, 들뢰즈-가타리에 의한 레비스트로스 해석의 문제도(안티 오이디푸스천개의 고원사이의 자세의 차이도 포함해) 부상하게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나 들뢰즈-가타리가 논한, 이른바 세계창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인류의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논의와, 생명정치학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레비-브륄부터 베르크손, 그리고 레비스트로스라고 하는, 프랑스에서의 자연과 사회를 둘러싼 사고그 자체를 문헌적으로 연구해온 켁이, 특히 중국(홍콩)이나 대만을 필드로서, 조류인플루엔자나 모종의 역병의 전지구화와, 그 관리 시스템의 존재방식에 표적을 겨눈 독창적인 연구를 행하는 것은, 위와 같은 레비스트로스와 푸코의 교착(아니 오히려 인류학과 생명정치학의 교착), 이른바 학문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행보의 기반으로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인류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하나의 전개일 것이다.

이러한 켁의 자세는, 프랑스의 파트리스 마니글리에(Patrice Maniglier)나 혹은 브라질의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 의한 새로운 인류학 연구의 조류 중 하나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브루노 라투르 등의 과학인류학과의 연관 등과 더불어, 거기에는 푸코나 들뢰즈-가타리의 논의가, 자연과 문화를 둘러싼 논의의 기초로서 깊숙히 파고들어와 있다. 푸코의 생명정치학이 한편으로는 이탈리아계의 아감벤이나 네그리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영미권의 니콜라스 로스 등에게서의 바이오사이언스와 사회의 문제로 향하는 가운데, 프랑스의 인류학을 담당하는 젊은 브라질의 인류학자가, 이런 다른 계통의 전개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것이,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환경, 인간과 우주 등, 매우 소박하면서도 중요하며, 예전부터 질문되었으나,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계속 질문해야 할 문제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히가키 타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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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폴 래비노우니콜라스 로즈바이오 소사이어티지에 오늘날의 생명권력[각주:1]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미국의 인류학자와 영국의 사회학자는 거기서 생명권력과 생명정치를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에 착수하고, 현대의 분석에서 이것들이 지닌 유효성을 옹호하는것을 제안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사실 과거 20년 동안, 도덕의 형식들에 관련된 그들의 일련의 탐구를 이끌었던 장비중 일부를 이루었다. 그런 도덕의 형식들이란, 정신적인 장애 및 사회적인 장애의 관리에 있어서,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제약산업에 의해 산출된 것이다. 거기서 래비노우와 로즈는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이, 현대사회에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들의 진단을 가능케 하는 이종혼교적인 개념임을 제시하기 위해, ‘도구상자라는 푸코적인 은유를 매우 자연스럽게 다루게 된다.

은유에 은유를 거듭하면,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은 외과용 존데(Sonde)가 아니라, 오히려 농경에서 사용하는 콤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광대한 밭에서 막대한 양의 작물을 수확하고, 솜씨 좋게 정리된 꾸러미를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생명다양성을 찌부러뜨리고 토양을 소모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사회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더 간결하게 소박한 도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도구상자라는 푸코적인 은유보다도, 브리콜라주라는 레비스트로스적인 분석을 선택하고 싶다. 브리콜라주는 어떤 환경에서 적당한 방식으로 의미를 낳는, 감각 가능한 질의 총체를 가리킨다.

ゾンデ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외과용 존데

이 글의 제목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저작 오늘날의 토테미즘에서 차용한 것이다. 1962년에 출판된 이 저작은, 구조인류학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책 야생의 사고[각주:2]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고 싶다. ,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지난 세기에서의 토테미즘 개념의 성쇠와 마찬가지로, 인간과학에 있어서 성쇠를 뒤따르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사회의 현상들을 동질적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죽어버린 생명정치 개념의 잠재력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 개념을 탈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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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설을 설득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우선 토테미즘과 생명정치라는 두 개념의 계보를 대비해보자. 토테미즘 개념은 이미 1869년에 영국의 사회학자 맥레넌(John Ferguson McLennan)이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한 사람들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지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은, 프레이저와 뒤르켐의 정리된 저작으로부터였다(프레이저, 토테미즘과 족외혼(1910), 뒤르켐,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1912)). 그것에 의해 토테미즘 개념은, 학문적 공동체를 넘어선 논의의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통과의례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아놀드 반 게넵(Arnold van Gennep, ‘제네프라고도 함)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인류학자들의 떠들썩한 교류의 장이었던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지에 이 개념에 대해 한참이나 논의하고, 그것을 자신의 저작 토테미즘 개념의 현황(1920)에서 소개했다. 레비스트로스는 1962년에, 반 게넵의 이 저작을 토테미즘에 대한 사색에 관한 백조의 노래라고도 말해야 할 걸작[각주:3]이라고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생명정치 개념은, 푸코가 1976년에 성의 역사 1및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다루기 전에, 국가에 의한 국민의 인구의 생명에 대한 개입에 대한 논의 속에서, 루돌프 첼렌(Rudolf Kyellen)에 의해 191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생활형태로서의 국가(1916)). 알다시피, 푸코는 1978년의 강의에 생명정치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이 개념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에 이 개념은 다중(Multitudes)지에서 채택됐다. 이 잡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지식인들의 교류의 장으로, 2000년에 이 개념을 다룬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이 비교를 따른다면, 프레이저와 뒤르켐이 토테미즘 개념의 계보 속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은 역할을 푸코가 생명정치 개념의 계보 속에서 맡고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 그는 당시에는 아직 국지적인 사정거리를 가졌을 뿐인 이 개념을 일반화한 것이다. 로베르토 에스포지토가 보여주듯이, 푸코는, 그때까지는 불변의 소여로서 파악됐던 것을 역사적인 문제로 제시한다. 그는 당시에는 아직 사회의 쇄신에 대한 정치적 계획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삶과 권력의 연결을, 주체와 역사에 대한 철학적 반성으로서 묘사한 것이다.[각주:4] 그 뿐만 아니라, 이 비교는, 인류와 그 환경 사이의 관계를 기술할 때, 토테미즘 개념이 공백인 채로 있었던 장소를, 생명권력 개념이 떠맡고 있다는 것도 나타내고 있다. 토테미즘은, 인간과 생명 사이의 근접성을, 미개사회의 애매한 기원에 위치시킨 것인데, 생명정치는 그 근접성을, 진보와 묵시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묘사해내는 것이다.

이 비교에 의해서, 각각의 계보에 누락되어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프레이저와 뒤르켐은, 그 당시 토테미즘의 행위가 보고된 오스트레일리아나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며, 그래서 그들은, 아메리카에서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의 주변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던 것인 신화에 있어서의 자연 종의 분류에 대한 연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1910, 프레이저가 토테미즘에 관한 4권의 책을 썼을 때, 알렉산더 골덴와이저(Alexander Goldenweiser)아메리칸 앤트로폴로지스트(American Anthropologist)지에 발표한 논문은 이 문제를 언어학적으로 다루는 수법을 도입함으로써, 토테미즘 개념을 탈구축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오늘날의 토테미즘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프레이저가, 당시 알려진 사실을 모두 주워 모아서 발표하고, 토테미즘을 체계로서 만들어내고, 그 기원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과 똑같은 때, 골덴와이저는 다음의 세 가지 현상을 서로 포개는 것이 허용되는가라고 항의했다. , 씨족조직, 동식물의 이름 또는 표식의 각 씨족에의 배부, 씨족과 그 토테미즘 사이의 친족관계에 대한 신앙 등 세 가지 현상이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이것들의 윤곽이 합치하는 것은 매우 드물며, 그 중의 한 가지 현상이 인정되더라도, 다른 현상이 인정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다.”[각주:5]

이와 똑같이 푸코는, 새로이 출현한 감염증을 놓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형성되고 있던 사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메리카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 국가의 변용에, 즉 개인에 대해 자기 자신의 건강의 행위자actor가 되도록 요구하는 사회보장시스템의 역설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1976, 푸코가 권력의 테크놀로지 속으로의 생명의 편입[기입]을 기술한 그 해에, 윌리엄 맥네일(William Hardy McNeill)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의 질병의 역할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각주:6] 이 책은 새로이 출현한 감염증이라는 개념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됐다. 같은 해, 대니얼 칼턴 가이듀섹(Daniel Carleton Gajdusek)은 뉴기니아의 카니발리즘 실천에 의한 프리온(prion)[각주:7]의 전파에 관한 연구로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하고,[각주:8] 또한 같은 무렵, 환경 변화가 그 원인이 된 아프리카 삼림의 원숭이에게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했다(에볼라열병이나 HIV).[각주:9] 또한 같은 해에 덩샤오핑은, 특히 소비를 목적으로 동물의 수를 늘림으로써 중국을 자본주의에 개방하며, 또한 인간의 인구를 줄이려고 했다. 이렇게 덩샤오핑은, 지난 세기의 더욱 더 커다란 생명정치적 혁명의 하나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각주:10] 이때 이미 아메리카에 대한 고찰로부터 푸코가 만들어낸 생명정치 개념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성립되고 있던 생명과 테크놀로지와 권력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기술하는 데에는 불충분한 것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계보의 비교는, 세 번째 계획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그것은 계보의 기원의 변화나, 계보가 눈을 감아온 누락에 관한 계획이 더 이상 아니며, 그 변용의 애매함이나, 계보가 열어둔 채로 하는 문제에 관한 계획이다. 푸코에 의해 제시된 생명정치 개념은, 곧바로 신체의 해부정치(규율훈육)와 인구의 생명정치(감시)로 양분된다. 푸코가 이런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그가 관심을 가졌던 영역, 즉 섹슈얼리티와 진리의 관계의 영역을 기술하기 위해서, 이것이 유효했기 때문이다(섹슈얼리티는, 신체 사이의 관계인 동시에 인구의 변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과가 많은 긴장관계는, 생명정치에 관한 두 개의 해석 사이의, 양립할 수 없는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그 하나는 조르조 아감벤의 해석이며, 그것에 따르면, 주권권력이야말로 항상 벌거벗은 생명을 희생제의하는 생명정치의 대상이었다(즉 생명정치란 본질적으로 신체를 구속하는 권력이었다). 다른 하나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해석이며, 그것에 따르면, 생명정치란, <제국>과 다중 사이의 기생적인 관계를 엶으로써, 주권국가를 종언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생명정치란 본질적으로 가변적인 공동체에 대한 지식의 관계인 것이다).[각주:11]

토테미즘 개념도 또한, 항상 두 개의 해석 사이에서 흔들려왔다. 그 하나는, 살아 있는 것 사이의 관계를 다중화함으로써 토템 향연의 준비를 가능케 하는, 지적인 조작을 중시하는 것이다(뒤르켐, 모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들을 고정하기 위한 토템의 희생제의가 가진 신체적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것이다(로버트슨 스미스William Robertson Smith, 프레이저).[각주:12] 그래서 금세기 초반의 인류학자에게 있어서, 토테미즘의 문제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동일시를 대상으로 하는 신앙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수행하는 듯한 의례적인 실천을, 어떻게 연관시키느냐에 있었다.

아감벤과 네그리에 의한 생명정치 해석의 대립이 1세기 전의 프랑스 사회학파와 영국 인류학파 사이의 대립의 재연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명의 이탈리아 철학자는, 이러한 전통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섬세하고 엄밀한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두 가지 해석의 대립은, 토테미즘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이미 알려진 어떤 다른 문제의 재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희생제의 즉 신체에 대한 작동걸기와, 감시 즉 인구의 이해[포착]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오늘날 새로이 출현한 감염증에 의해 야기되는 공중위생의 대규모 위기 때에, 이 관계가 재차 연결되는 것이 목격되는데, 그때 우리는, 토테미즘 개념이 미해결인 채 방치한 여러 문제들을 실마리로 하면서, 생명정치 개념을 채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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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위생의 위기 그 자체나, 그것을 기술하기 위한 생명정치 개념의 타당성에 대해 논하기 전에, 푸코나 레비니스트로스 자신이, 희생제의와 감시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봐두어야 한다. 여태까지 내가 한 분석은 두 계보 사이에서 유비를 간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의 시선을 푸코의 개념에 적용한다는 방법을 취했다. 이제, 어떻게 푸코의 저작과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을 똑같은 문제가 관통하고 있는가를, 서로의 저작을 교차시킴으로써 검토해야 한다.

푸코는 항상, 레비스트로스에게 양의적인 관계를 표명했다.[각주:13] 푸코는 1960년대에 레비스트로스를, 초현실주의자들에 이어 인간의 형상을 언어활동의 게임으로 해체하는 구조주의적 혁명을 인간과학에 도입한 인물로 그렸다.[각주:14] 그러나 1970년대에 신체의 규율훈육과 저항의 전략을 향해 전회하는 장면에서, 레비스트로스가 형식주의적이라는 이유에 의해, 푸코는 그에게서 떠나간다. 아마 이 전회는, 1974년에 브라질 레비스트로스의 땅 에서 행한 진리와 법적 형태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분명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그로츠부터 주르네뒤메질을 통해 베르낭(Jean-Pierre Vernant)에 이르는 법권리에 대한 사회학의 전통을 증거로 삼는다. 그는 담론을 의례적인 것으로서, 실천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실천의 내부의 전략으로서연구하는 것을 제안하고, 그리고 도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구조주의는 언표의 총체 사이의 이행이나 변화나 동형성의 규칙을 탐구하면서, 담론의 총체를 다루며, 그것들을 언표로서만 다루는 것이다.”[각주:15]

푸코는 1970년의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를, 오이디푸스 신화를 재판의 이야기로 분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도전은 물론이고, 코드화를 다양화함으로써 이 신화를 다시 채택했던 레비스트로스 인류학에 대한 도전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각주:16] 1976년에 출판된 지식의 의지에서는, 혼인의 장치가 생명권력의 장치에 대립되고 있다. 혼인의 장치는 혈연 및 근친상간 금지를 둘러싼 것이며, 생명권력의 장치는 성 및 살아 있는 것의 규범을 둘러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묘사되는 것이다.[각주:17] 1975년의 강의에서, 이 대립의 의미가 명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것에 의하면, 인류학은 항상 괴물의 형상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인류학이 토테미즘의 관점, 즉 인육 먹기의 관점[각주:18]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은, 레비-브륄처럼 괴물을 더 멀리, 미개의 심성속으로 억지로 처넣거나, 혹은 레비스트로스처럼 괴물을 더 가까이, 친족의 기본구조에 기입하거나 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인류학은 근친상간에 대한, 즉 원초적인 희생제의에 대한 프로이트적 형상을 갖고서 장난질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푸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생명권력을 19세기 말의 범죄학자들에 대한 미시정치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치, 콜레주드프랑스의 교실에 있는 푸코가 다른 교실에 있는 레비스트로스에게 도전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도전 속에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1972)에서 라캉과 레비스트로스에게 한 비판의 반향을 들을 수 있다. 푸코의 1976년 강의는 불랭빌리에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레비스트로스가 불랭빌리에를 역사의 구조 변화에 대한 사상가로 파악했던 반면,[각주:19] 푸코는 그를 [레비스트로스의] 인종과 역사에서 기술된 제반 제휴의 반()이야기라고 해석되는 인종 간 전쟁(guerre des races)에 대해 사고하는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한다.[각주:20] 레비스트로스가 변환의 상호적 관계에서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구조를 사고하는 곳에서, 푸코는 도주선을 따라서 역사의 다양한 계열을 사고하는 것이다.[각주:21]

레비스트로스는, 푸코에 대해 항상 어떤 조바심을 드러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을 푸코, 라캉, 바르트와 함께, 똑같은 이국적인 묶음에 편입하려고 하는 구조주의적인 풍조에 관련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방브니스트나 뒤메질이나 베르낭의 지적 계보에 관련시킨다. “푸코가 그런 동일시를 거절한 것은 지당하다[각주:22]고 그는 잘라 말한다. 그는 또한, 디디에 에리봉에게 주의하라, 사물은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라고 신물이 날 정도로 거듭거듭 말한 푸코의 방식은 탐탁치 않다”, 그리고 푸코가 시대의 전후관계를 무시하고 있다고 느끼기에 견디기 어렵다[각주:23]고 털어 놨다. 요컨대, 구조인류학은 푸코의 실천적인 역사의 비판철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1970년대의 레비스트로스의 작업 속에서,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의 다른 교실로부터 그를 향한 비판에 대한 응답을 간파할 수 있다. 신화론의 마지막 권인 벌거벗은 사람에서, 레비스트로는 어떤 결론에 이른다. 그것에 따르면, 다양한 신화는 그것 자신의 실현의 조건을 주해(注解)하는 것이며, 따라서 거기서 인류학자가 제시하는 이론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신화라고 하는 것이다.[각주:24] 레비스트로스가 교환 속에서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인식하기 위한 모종의 시금석을 찾아내는 철학에서 보면, 다양한 모양의 고양이과 동물이 경제적 관계를 영위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각주:25]라고 쓸 때, 우리는 이따금, 레비스트로스를 구조주의의 구조적 역사 속에 위치시키려고 하는 푸코를 읽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혹은 레비스트로스가 각 신화는, 각각의 방식으로, 다양한 존재양식의 한복판에서부터, 하나의 존재양식에 대한 이론을 형성한다[각주:26]고 쓸 때, 우리는 푸코적인 윤리의 소묘를 간파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가 1974년부터 76년까지 행한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는 카니발리즘과 의례적 이성식異性装(Cannibalisme et travestissement rituel)(상징계의 창설에 있어서의 폭력적인 전도의 역할에 대해), 구두 전승의 질서와 무질서(Ordre et désordre dans la tradition orale), 이라는 개념(La Notion de maison)(유력한 귀족계급이 그들의 지배를 인정받기 위한 친족전략에 대해) 등을 다루었는데,[각주:27] 이것들도 마찬가지로, 푸코의 비판에 대한 응답인 것 같다. 

아득한[아주 멀리서 보는] 시선에 의해, 이 두 명의 사상가의 일화적인 교차의 건너편에서, 야생의 사고지식의 의지라는 두 권의 위대한 책의 유사성이 보인다. 콜레주드프랑스에 취임하자마자 레비스트로스와 푸코는, 첫 번째 강의에서 자신들의 작업의 방향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이 두 권의 책에서, 각각 자신들이 어떤 지적인 시도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를 작성한다. 친족 구조를 다루려고 생각했던 레비스트로스는, 다양한 신화의 변환을 탐구하고, 규율의 기법의 연구를 제안했던 푸코는 그것을 살아 있는 것의 통치로 확장한다. 두 사람 모두 대단치 않은 사건(혁명이나 투쟁)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서 그런 사건이, 그것들에 선행하는 권력 구조에 있어서 재구성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그들은, 역사의 필연성과 사건의 우연성 사이의 새로운 관계성을 찾아낸다. 그래서 그들은, 작동하고 있는 메커니즘의 다양성이나, 의미가 산출되는 수준을 놓쳐버리는 의식의 철학에 대립한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사르트르의 변증법은, 인간의 역사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함으로써, 자연 종(혹은 신화소)을 잘못 파악해버린다. 그리고 푸코에 따르면, 비판이론은, 억압적 권력이라는 가설에 의해, 성에 관한 담론의 수준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토테미즘 및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관계들의 새로운 영역을 해방하기 위해 문제화되어야 하는 이론적 장애물이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을, 종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교차하는 수평축과 수직축으로 분리한다. 푸코는 인구의 생명정치와 신체의 해부정치를, 성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교차하는 두 개의 축으로 구분한다.[각주:28]

이렇게 지식의 의지를 이중적 방식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우선 혈통의 장치에 통합된 것이 성의 장치로부터 분리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미개의 토테미즘/근친상간/카니발리즘의 관계로부터 현대의 생명정치/인구/신체의 관계로 이행할 수 있다. 이 가설에 의해 푸코는 레비스트로스에게 통합되어 있던 것을 복수로 나누는 것이다. 이어서 성에서 분리되는 것은 항상 조직에서 분리되는 것인데, 그것은 인종을 동질화하는 담론에 의해 덮어 감춰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가설에 의해 푸코는, 레비스트로스가 미개사회에 적용한 것과 똑같은 분석 격자를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푸코는 신체와 인구에 대한 지배를 확실한 것으로 하는 주권권력이라는 커다란 이야기에 숨어 있는, 살아 있는 것의 통치에 관한 하나의 담론으로서의 사목주의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행하듯이 주권권력에서 생명정치로 이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좌표계를 가진 온갖 사회에서, 동일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주권자 사이의 연결[묶임]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신체를 통제하는가, 그리고 인구의 건강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형을 정당화하는가라는 문제이다.

 

*

여기에서 레비스트로스와 푸코의 교차적 독해는 현대사회의 인류학과 결부된다. 그런 인류학은, 푸코가 주권권력으로부터 생명권력으로의 이행을 기술할 때의 유명한 말을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둔다는 낡은 권리를 대신해,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는 권력이 나타났다고 말해도 좋다. 주권권력을 상징한 낡은 죽음의 역능은, 이제 신체의 행정관리와 삶의 경영관리에 의해 주의 깊게 덮이고 말았다. 이리하여 생명권력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각주:29] 이 정식은 그 대칭성에 있어서, 레비스트로스가 어떤 신화에서 다른 신화로의 변환을 기술할 때의 표현을 상기시킨다. , 말미의 한 마디 가벼운 변경에 의해 어떤 체계가 다른 체계로 전환하도록 요소들이 체계적으로 전도된다는 표현이다.[각주:30]죽게 한다 / 살게 내버려둔다 살게 한다 /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 “~ 내버려둔다가 더 이상 아닌 이 폐기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삶과 죽음 사이의 관계들 속의 진정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이 폐기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것이 문제의 전부이다.

홍콩의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민족지적 조사에 의해, 이 수수께끼 같은 표현을, 필드에 기초한 연구의 관점에서 음미할 수 있다. 1997, 홍콩의 조류에서 “H5N1”이라고 불리는 신형 독감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감염된 18명 중 7명이 사망하고, 150만 마리의 가금류가 도살 처분됐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영국의 구식민지가 중국의 통치권에 반환된다고 하는 문맥에서이다. 그 스펙터클적인 성격은, 이런 정치적 틀에 있어서의 홍콩 사람들의 장래의 불안과, 질병의 동물을 근절함으로써 인간의 인구를 보호하려고 하는 새로운 주권권력의 의지를, 동시에 두드러지게 했다. 이 사건에 이어서, 조류로부터 인간에게로 H5N1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그리고 홍콩에서 유행(pandemic)이 시작될 가능성에 사람들을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 “바이오시큐리티의 조치가 홍콩 전역에 적용됐다.

이 사건을 주권권력에서 생명권력으로의 이행을 명시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가금류의 살처분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양계의 경제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희생 제의로 기술할 수 있다. 그리고 농가나 시장이나 세관에 부과된 바이오시큐리티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인간 사이에서 H5N1 바이러스의 전파가 임박했다는 것, 그리고 온갖 훈련에 의해 이 카타스트로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병원과 연구소의 관계자들에게 납득시켰다.[각주:31] 그러나 주권적인 살처분의 횡포로부터 시뮬레이션 훈련의 모나지 않음으로의 이행은, 폭력의 형식의 모든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H5N1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가금류에 확산되고, 홍콩에 적용된 바이오시큐리티의 규범이 국제위생기관에 의해 반복됐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 이런 바이러스 대책의 전지구적인 장치는 남반구의 말라리아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정부가 안티바이러스나 백신의 국제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국가의 사람들을 죽음 속으로 폐기하는것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각주:32]

내가 진행한 조사는, 이러한 이행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홍콩의 사례에서는, 그 어떤 점에 있어서 이 초근대적인 바이오 시큐리티의 조치가 위생상 및 미각상의 질을 보증하는 목적으로 영계를 산 채로 매매한다는 전통적인 실천이 증명하고 있듯이 대부분이 시대착오적인 가금류의 양계와 관련된 채로 있을 수 있었느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H5N1 바이러스가 농가나 시장에 들어가 이후 거급되는 가금류의 살처분은, 우리에게, 1997년의 대규모 살처분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침범되자마자 재현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내가 목격한 것은, 주권권력에서 생명권력으로의 이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특별행정구역에서 만들어진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들을 횡단하는 두 가지 권력의 끊임없는 교착이다.

그래서 나는, 내 연구에 있어서, 푸코의 표현 속에서 종종 그다지 주해되지 않은 어떤 점을 강조했다. 그것은 주권권력에 있어서 살게 한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이다. 홍콩에서의 동물에 결부된 다양한 실천들은, 이런 표현에 대한 놀라운 예증을 주었다. 중국의 불교도들은, 동물을 자연스럽게 풀어두고 공덕’(gongde)을 쌓기 위해서, 실제로 시장에서 동물을 산다. 이러한 실천은, 문자 그대로 삶을 해방한다혹은 살게 한다”(방생 fangsheng)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환경문제의 전문가 집단에 의해 비판받고 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해서 해방된 새들의 대다수는 죽는다. 왜냐하면 새들은 새장 속에서 바이러스를 교환하기 때문이며, 또한 친숙한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이동당하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의 전문가 집단은, 그것을 대신해서 과학적으로 해방하는”(과학방생 kaxuefangsheng) 것을 실천하라고 제안했다. 이것은, 해방된 이 동물들에게, 그 이동이나 건강 수준을 추적하는 가락지脚環GPS를 장착하자는, 미국의 동물보호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천을 모델로 한 것이다.[각주:33]

살게 한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벌어지는 이런 논의로부터는 배울 것이 많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푸코가 생명권력이라고 부르는 것과 사목권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새로운 교착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의 야생동물 길들이기 이후, 사목권력은 동물을 무리로 간주하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감시되어야 한다고 파악했다. 사목권력은 정신적 권력이며, 그 감시 능력에 의해 뛰어난 효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그것은 동물에 감시하는 권력을 둘러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동물과의 심적 연속성을 갖게 됐다.[각주:34] 이러한 심적 연속성이나 감시의 효력이, 전생(轉生)의 우주론이나 선긋기의 기술에 의해 행사된다는 것은, 사목권력 안에서의 문제 제기 방식에 비하면 이차적이다. H5N1 바이러스는, 인간, 동물, 그리고 감염인자인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기생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와의 항상 불안한 균형에 있어서, 야생동물의 길들이기라는 기원을 상기시킴으로써, 이런 구조를 전복시킨다. 사목권력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야생의 것과 길들여진 것 사이의 경계를 회복하는 몸짓으로서, 즉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몸짓으로서, 희생제의가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동물의 무리와 인간의 인구의 감시를 보증하는 통치자들은, 미생물학자들과,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의 변이의 지도 작성을 행하고, 이것들의 카타스트로피적 출현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바이러스 헌터들과 결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목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을, 진정한 탐구 영역을 여는 어떤 문제의 소묘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정신적인 권력이, 병에 걸린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새로운 병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구를 왕래하는 동물의 무리에도 관련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의 통치에 있어서 어떻게 기능할까? 이 권력은 어떤 형태의 진리를 산출하며, 그리고 이 진리는 현대사회에서 삶이 취하는 새로운 형상에 대해 무엇을 명시할까? 이런 물음에 비춰보면, 생명권력의 가설은, 좋은 경우에는 삶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나쁜 경우에는 가차 없이 뭉개버리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푸코 자신은, 그리스인 및 그들이 고안해낸 주체성으로 회귀했을 때, 현대사회를 순환하는 모든 흐름을 한데 모으는 생명정치라는 가설로부터 거리를 뒀다.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다네라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한 뒤메질의 주해를 다루면서 푸코는, 소크라테스가 여기에서 전통에 대한 자신의 애착과 삶에 대한 혐오를 표명하고 있다는 니체의 해석을 물리친다. 푸코가 말하기를,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윤리적 자세를 발명하고 있다. 그것은, 희생제의를 자기의 감시로의 끊임없는 관계맺음으로 변용시키는 윤리적 자세이다. “소크라테스는 피타고라스파의 격언을 인용한다. 그것에 따르면, ‘우리는 프로라(phroura) 속에 있다고 한다. 프로라는, 때로는 감시로 번역되고, 또한 울타리로 둘러싼 땅’이감시구역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면, ‘감시초소’(우리는 보초를 서고 있다’)라고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들의 배려[마음씀] 속에 있으며, 그리고 플라톤이 말하기를, 그래서 우리는 자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감시로부터가 아니라 이러한 신들의 동정심이나 배려[마음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각주:35] 이리하여 전문가가 다가올 전염병 대유행(pandemic)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공중위생의 보초 속에서, 푸코가 분석한 사목권력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난다 그러나 사목권력이 어떻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편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비스트로스의 도움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각주:36]

  1. Cf. Paul Rabinow et Nikolas Rose, «Biopower Today», BioSocieties, 1, 2006, pp.195-217; trad., fr, «La bio-pouvoir aujourd’hui», traduit par Frédéric Keck, Raison publique (à paraître). [본문으로]
  2. Cf. Claude Lévi-Strauss, Le totémisme aujourd’hui; La pensée sauvage, in Œuvres, Paris: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2008, pp.447-872(Notice et notes de Frédéric Keck, pp.1774-1848). [본문으로]
  3. Cf. ibid., p.452; Frederico Rosa, L’Àge d’or du totémisme. Histoire d’un débat anthropologique(1887-1929), Paris: CNRS Éditions, 2003. [본문으로]
  4. Cf. Robert Esposito, Bios. Biopolitica e filosofia, Turin: Einnaudi, 2004; Marie Gaille-Nikodimov, «Les deux voies de la “biopolitique”», Critique, no 703, 2005. [본문으로]
  5. Cf. Lévi-Strauss, op. cit., pp.452-453. [본문으로]
  6. Wiliam MacNeill, Plagues and Peoples, 1976, Garden City, N. Y.; Anchor Press / Doubleday; trad, fr.; Le temps de la peste. Essai sur les épidémies dans l’histoire, traduit par Claude Yelnick, Paris: Hachette, 1978. [본문으로]
  7. * 프리온은 단백질성 감염성 입자로 단백질을 뜻하는 ‘protein’에서 pr을, 감염성을 뜻하는 ‘infectious’에서 i를, 입자를 뜻하는 접미사-on을 붙여 만들었다. 아직까지 많이 알려진 것이 없는 이론상의 감염원으로, ‘protein only’ 가설에 따르면 단백질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프리온은 포유류에서 몇 종의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질환 중에는 흔히 광우병(mad cow disease)이라 부르는 소해면상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과 사람에 발생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등이 있다. [본문으로]
  8. Cf. Warwick Anderson, The Collectors of Lost Souls. Turning Kuru Scientists into Whilemen,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8. [본문으로]
  9. Cf. Maxime Schwartz et François Rodhain, Des microbes ou des hommes, qui va l’emporter?, Paris: Odile Jacob, 2008; Frédéric Keck, «Les hommes malades des animaux», Critique, no 747-748, 2009, pp.796-808. [본문으로]
  10. Cf. Susan Greenhalgh (avec Edwin Winckler), Governing China’s Population. From Leninist to Neoliberal Biopolitics,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id., Just One Child. Scoence and Policy in Deng’s Chin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 id., «The Chinese and Biopolitical Facing the Twenty-First Century», New Genetics and Society, Vol. 28, No. 3. 2009, pp.205-222. Cf. aussi Frank Dikötter, Imperfect conceptions. Medical Knowledge, Birth Defects, and Eugenics in China, 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본문으로]
  11. Cf. Giorgio Agamben, Homo Sacer, Le pouvoir souverain et la vie nue, traduit par Marilènè Raiola Paris, Seuil, 1997. ; Michael Hardt et Antonio Negri, Empire, traduit par Denis-Armand Canal, Paris: Exils, 2000. ; Frédéric Keck, «Les usages du biopolitique», L’Homme, Revue français d’anthropologie, no 187-188, 2008, pp.295-314. [본문으로]
  12. Cf. Frédéric Keck, «La participation au sacrifice comme moment originaire de la vie sociale, Robertson Smith, Durkheim, Lévy-Bruhl», Alter, Revue de Phénoménologie, 17, 2009, pp.137-152. [본문으로]
  13. Cf. Jean Zoungrana, Michel Foucault, un parcours croisé, Lévi-Strauss, Heidegger, Paris: L’Harmattan, 1998. [본문으로]
  14. Cf.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I. 1954-1969, Paris: Gallimard, 1994, pp.514-516 et 541-542. 일본어판, 367-369頁. ; Philippe Sabot, «Granger et et Foucault lecteurs de Lévi-Strauss. L’anthropologie structurale, entre épistémologie et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in Patrice Maniglier (dir.), Le moment philosophique des années 1960 en France, Paris: PUF, 2011. [본문으로]
  15.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II. 1970-1975, Paris: Gallimard, 1994, p.636. 일본어판, 204頁. [본문으로]
  16. Cf. Michel Foucault,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oir.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0-1971, Paris: Gallimard/Seuil (Hautes Etuds), 2011. [본문으로]
  17. Cf. Michel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I, La volonté de savoir, Paris, Gallimard, 1976, pp.140-141. 일본어판, 154-155頁. [본문으로]
  18. Cf. Michel Foucault, Les anormaux.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4-1975, Paris: Gallimard/Seuil/Hautes Etudes, 1999, p.96. 일본어판 113頁. [본문으로]
  19. Cf. Claude Lévi-Strauss, op. cit., p.840. [본문으로]
  20. Cf. Michel Foucault, «II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5-1976, Paris: Gallimard/Seuil (Hautes Etudes), 1997, p.112 sq. 일본어판 129頁 이하. [본문으로]
  21.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변환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레비스트로스를 다시 읽는데, 푸코가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한 재독해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의 독해에서 제시된 부정적 이미지를 수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Cf. Eduardo Viveiros de Castro, Métaphysiques cannibales, Lignes d’anthropologie post-structurale, traduit par Oiara Bonilla, Paris: PUF, 2009. [본문으로]
  22. Cf. Claude Lévi-Strauss et Didier Eribon, De près et de loin, Paris: Odile Jacob, 1990, p.105. [본문으로]
  23. Ibid. [본문으로]
  24. Cf. Frédéric Keck, «L’esprit humain chez Lévi-Strauss. De la parenté aux mythes. de la théorie à la pratique», Archives de philosophies, no 66, 2003, pp.9-32; id., Claude Lévi-Strauss, une introduction, Paris: Pocket (2005), 2011. [본문으로]
  25. Claude Lévi-Strauss, L’Homme nu, Paris: Plon, 1971. p265. [본문으로]
  26. Ibid., p.287. [본문으로]
  27. Cf. Claude Lévi-Strauss, Paroles données, Paris: Plon, 1984, pp.141-156 et 189-191. [본문으로]
  28. Cf. Frédéric Keck, Lévi-Strauss et la pensée sauvage, Paris: PUF. 2004. [본문으로]
  29.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I, op. cit., pp.181-184. 일역본 175-177頁. [본문으로]
  30. Cf. Lucien Scubla. Lire Lévi-Strauss. Le déploiement d’une intuition, Paris: Odile Jacob, 1998. [본문으로]
  31. Cf. Andrew Lakoff (avec Stephen Collier) (dir.), Biosecurity Interventions, New York: SSRC-Columbia University Press; id., «Preparing for the Next Emergency», Public Culture, 19, 2007; trad. fr., «Pour qu’un désastre ne tourne pas à la catastrophe, Jusqu’où sommes-nous prêts?», traudit par Nathalie Cunnington, Esprit, mars/avril 2008, pp.104-111. [본문으로]
  32. Cf. Didier Fassin, Quand les corps se souviennent. Experience et politiques du sida en Afrique du sud, Paris: La Découverte, 2006. [본문으로]
  33. Cf. Etienne Benson, Wired Wilderness. Technologies of Tracking and the Making of Modern Wildlif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0. [본문으로]
  34. Cf. André-Georges Haudricourt, «Domestication des animaux. culture des plantes et traitement d’autrui», L’Homme 2 (1), 1962, pp.40-50; Philippe Descola, Par-delà nature et culture, Paris: Gallimard, 2005, p.448. [본문으로]
  35. Michel Foucault, Le courage de la véri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3-1984. Paris: Gallimard/Seuil (Hautes Etudes), 2009, pp.91-92. 일본어판 123-124頁. [본문으로]
  36. Cf. Frédéric Keck, «Une sentinelle sanitaire aux frontières du vivant. Les experts de la grippe aviaire à Hong Kong», Terrain, no54, 2010, pp.26-41; id., Un monde grippé, Paris: Falmmarion, 20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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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혹은 우연성에 관하여

Bartleby o della contingenza

Giorgio Agamben  

 

Bartleby o della contingenza

Original Italian edition ⓒ 1993 by Giorgio Agamben.



1. 필경사 혹은 창조에 관하여


필경사로서의 바틀비는 어떤 문학의 성좌에 속해 있다. 이 성좌의 정반대에 있는 별은 아카키 아카키에비치Akaky Akakievich이며(“그에게 세계 전체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사본에 담겨 있었다. 그는 좋아하는 문자가 있었으며, 이 문자들과 만나기라도 할 때면 그는 거의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기뻐했다[이 필경사라는 작업에서 세계는 그에게 이른바 완벽하게 닫혀져 있었다. 몇 개의 문자를 마음에 들어했으며, 이것들과 마주치면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성좌의 중앙은 부바르Bouvard와 페퀴체Pécuchet라는 쌍둥이별로 이루어졌으며(“두 사람 모두에게 남모르게 좋은 생각이 싹텄다 필사복사가 그것이다”), 이것들의 반대 극은 지몬 탄나Simon Tanner(그가 요구한 유일한 정체성[신원]나는 필경사다이다), 그리고 어떤 필체handwriting도 가뿐하게 복제할 수 있는 미쉬킨 공작의 하얀 빛으로[빛이] 빛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소행성대()처럼 카프카의 [소송에 나온 이름 없는] 법정의 서기들이 있다. 그러나 바틀비는 또한 철학적 성좌에도 속한다. 바틀비라는 형상의 수수께끼를 풀 암호를 담고 있는 것은 그 성좌뿐이며, 문학적 성좌로는 그 암호를 충분하게 추적할 수 없을 것이다.

 

1. 수다Suda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후기 비잔틴 시대에 나온 사전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항목에 다음과 같은 정의를 담고 있다[특이한 정의를 전하고 있다]. Aristotelēs tēs physeōs grammateus ēn ton kalamon apobrekhōn eis noun,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펜을 사유 속에 담군 자연의 필경사였다.” 횔덜린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번역에 붙인 노트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데, 그때 그는 분명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약간의 정정을 가함으로써 이를 뒤엎어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호의적인 펜을 담군 자연의 필경사였다”(eis noun[사유 속에]eunoun[호의적인]으로 바꾼 것이다). 세빌랴의 성() 이시도루스[Isidore of Seville(c 570-636): 세빌랴의 대주교·학자·역사가]어원(Etymologies)은 똑같은 구절의 상이한 판본을 기록하는데, 이것은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에게서 연원한다. Aristoteles, quando perihermeneias scriptebat, calamum in mente tingebat,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르가논을 이루는 기초적 논리학의 작품 중 하나인 아감벤] 명제론을 썼을 때 그의 펜을 정신[*영문에는 사유라고 되어 있으나 원문을 보면 정신이다] 속에 담궜다. 어떤 경우든 결정적인 것은 자연의 필경사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런 이미지는 이미 앗티쿠스Atticus에게서도 발견된다) 누스nous, 즉 사유나 정신이 이 철학자가 펜을 담군 잉크병과 비교된다는 점이다. 쓰기 위해서 사고가 사용하는 잉크라는 이 어둠의 한 방울이 사유 자체인 것이다[펜이 쓰기 위해 사용하는 잉크라는 이 어둠의 한 방울이 바로 사유 자체인 것이다].

필경사라는 하찮은[볼품 없는] 복장[몰골]으로 [서양]철학전통의 근본적인 형상을 제시하는, 그리고 특별한 종류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라는 행위를 사유에 빗대는 이 정의의 기원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전체에는 이와 유사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텍스트가 딱 하나 있는데, 어쩌면 이것이 카시오도루스나 미지의 작가[은유가]에게 은유를 위한 토대[실마리, 단초]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구절은 논리학의 오르가논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에 속한다. 3권에 있는 구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누스, 즉 지성 또는 잠재적 사유[잠재적 지성 또는 사유]를 아직 거기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서판에 빗댄다. “누스란 그 위에는 아무것도 현실적으로 쓰여져 있지 않은 서판[grammateion]과도 같다[서판이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그러나 잠재적으로는 글자가 쓰여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것과 마찬가지가 누스에 관해서도 일어난다](영혼에 관하여, 430 a 1).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에서는 파피루스와 잉크가 기록의 유일한 수단이지는 않았다[파피루스 위에 잉크로 쓰는 것이 글쓰기의 유일한 수단인 것은 아니었다]. 밀랍을 엷게 바른 층으로 덮인 서판에 첨필stylus[문자를] 새겨넣음으로써 [글을] 쓰는 것이 훨씬 일반적이었고, 사적인 사용에서는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때는] 특히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논고에서 결정적인 지점, 즉 잠재적 지성[사유]의 본성을, 그리고 지성[사유]이 지성화[지성]의 현실성으로 이행하는 양식을 고찰하는 지점에 이르러서, 이런 종류의 대상을 지시한다. 그것은 필시 그가 자신의 사유들을 그 순간에 기록하고 있었던 바로 서판 자체였을 것이다. 훨씬 나중에, 펜과 잉크로 적는 것이 일단 지배적인 관행이 되었을 때,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가 사용하는] 이미지가 케케묵은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었을 때, 누군가가 나중에 수다에 기록된 의미로 이를 근대화했다[누군가가 이것을 시대에 맞게 새롭게 고쳤고 마침내 이 나중의 의미가 수다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2. 서양철학 전통에서 [] 이미지는 커다란 행운을 누렸다. ‘서판grammateion백지tabula rasa[처음으로 옮긴 영혼에 관하여] 라틴어 번역자는 이 이미지를 [새로운] 역사에 맡겼다. 이 역사는 [한편으로는] 로크의 백지에 이르렀고(“태초에 정신은 그 어떤 성격도, 그 어떤 이념도 없는 이른바 백지 같은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어에서 백지로 돌아가다깨끗하게 일소하다’(far tabula rasa)라는 여전히 존재하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에 이르렀다. 사실상 이미지는 애매했으며[애매함을 띨 가능성을 포함하며], 확실히 이 애매함이 이 이미지의 성공[이미지가 널리 퍼져 안착되는 데]에 기여했다. 아프로디시우스의 알렉산드로스Alexander of Aphrodisius는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grammateion서판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는 그것의 epitedeiotes, 즉 서판의 표면을 덮고 있는 엷은 밀랍 층에 관해 말해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바로 여기에다 첨필로 문자를 새겨넣는 것이다. (라틴어 번역자의 용어를 따른다면 ‘tabula rasa미끄러운 서판이 아니라 ‘rasura tabulae서판의 미끄러운 곳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렇게 주장할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었던 고찰은, 하지만 정확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서판의 이미지를 통해 피하려고 애쓴 어려움은 사유의 순수 잠재성이라는 어려움이며, 사유의 순수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이행하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였다. 왜냐하면 만일 사유가 그 자체에 있어서 어떤 한정적인determinate 형식을 지닌다면, (서판이 하나의 사물이듯이) 사유가 항상 이미 어떤 것이라면, 그것은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필연적으로 보일 것이며, 따라서 지성intellection을 방해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누스잠재적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본성을 갖지 않으며, 사고하기에 앞서서 그것은 절대적으로 무이다”(De anima, 429 a 21-22)라고 특정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므로 정신마음은 사물[정해진 어떤 것]이 아니라 순수 잠재성의 존재이며,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는 서판이라는 이미지는 순수 잠재성이 존재하는 양식을 표상하는 기능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을[어떤 것일] 수 있거나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잠재성은 항상 있지[어떤 것이지] 않을 수 있거나 어떤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성(dynamis mē einai, mē energein)이다. 이것이 없으면 잠재성은 항상 이미 현실성으로 이행할 것이며, 그리하여 현실성과 구별될 수 없게 될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9권에서 명확하게 논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메가라파의 테제이다). ‘~이지 않을 잠재성[-잠재성, potential not to]은 잠재성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설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다. 이 교설은 모든 잠재성 그 자체를 비잠재성으로 변형한다(tou autou kai kata to auto pasa dynamis adynamia모든 잠재성은 각각에 대응하는 비잠재성과 동일한 것에 속하며, 동일한 과정에 따른다)(형이상학, 1046 a 32). 건축가는 건축할 수 있는 잠재성을 현실화하지 않을 때에도 자신의 잠재성[잠재력]을 간직하고 있듯이, 그리고 기타라 연주자는 그가 기타라를 연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기타라 연주자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사유는 사고할 수 있는 잠재성과 사고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성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며,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밀랍으로 덮여 있는] 서판도 이와 마찬가지다(이것이 중세의 철학자들이 말한 잠재적 지성potential intellect이다). 민감한 밀랍 층이 필경사의 첨필에 의해 갑작스럽게 긁히게 되듯이, 사유의 잠재성은 그 자체에 있어서는[즉자적으로는] 무이지만[아무것도 아니지만], 지성intelligence의 현실성이 발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3. 메쉬나에서 1280년과 1290년 사이에, 아브라함 아불라피아Abraham Abulafia는 카발라주의적 논고들을 편찬했는데, 유럽 각지의 도서관에 초고의 형태로 수세기 동안 묻혀 있었던 이 논고들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게르숌 숄렘과 모쉐 이델Moshe Idel에 덕분에) 비전문가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 저작들에서 신적 창조는 글쓰기라는 행위[현실성]로 간주되는데, 이 글쓰기에서 문자는 «»의 창조적 말[신의 창조를 행하는 말] 자신의 펜을 끄적대는 필경사와 유사하다 이 피조물로 육화肉化되는 물질적 수단vehicle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얘기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의 기원에 있는 비밀은 알파벳 문자이며, 모든 문자는 창조를 지시하는 하나의 기호이다. 필경사가 펜을 손에 쥐고 자신이 물질에 부여하고 싶어 하는 형식을 마음속에서 생각하면서 펜을 사용해 잉크방울로 그려내듯이, 이와 유사한 행위가 창조라는 더 높은 영역과 더 낮은 영역에서도 수행된다(이 모든 몸짓에 있어서 필경사의 손은 물질과 형식의 지지체/담지자subject인 신체를 재현하는 잉크가 양피지로 흘러들도록 하는 도구로서 사용된 무생물인inanimate 펜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기관이다[이 모든 몸짓에 있어서 필경사의 손은 생명력 없는 펜을 움직이는 살아 있는 기관이다. 이때 펜은 물질과 형식의 지지체/담지자인 신체를 재현하는 양피지 위로 잉크가 흘러들도록 하는 도구로서 사용된다]). 이것은 지능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 이상의 것을 말하는 것은 금지되기 때문이다.”

아불라피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독자였으며, 당시의 모든 교양 있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아랍어 번역과 주석을 통해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를 잘 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에 관하여에서 약간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정리해버리는) 수동적 지성의 문제, 그리고 수동적 지성이 능동적 혹은 제작적 지성과 맺는 관계의 문제는 팔라시파falasifa(아리스토텔레스 신봉자들을 이슬람에서는 이렇게 불렀다)에 의해 예외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다뤄졌다. 그리고 [그 자신이] 팔라시파의 황태자인 아비첸나는 세계의 창조를 신적 지성이 스스로를 사고하는 현실태로서 인식했다[그리고 바로 팔라시파의 군주인 아비첸나는 세계의 창조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세계의 창조를 신 자신을 사고하는 신의 지성이 현실성으로 이행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따라서 달 아래 세상의 창조(아비첸나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유출론적 과정에 따르면, 이것은 최후의 천사인 지성의 작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능동적 지성agent intellect에 다름 아니다)는 스스로를 사고하는 사유의 모델을 따라서, 그리고 이런 식으로 피조물들의 복수성을 있게 하는 사유의 모델을 따라서 이해되었다. 창조의 모든 행위는[현실성은] (아비첸나의 천사들을 여성으로 바꿔버린 13세기의 연애시인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지성[지능]의 현실성[행위]이다. 그리고 거꾸로, 지성의 모든 현실성은 어떤 것을 존재하게 하는 창조의 현실성이다. 하지만 바로 영혼에 관하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재적 지성을 거기에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서판이라고 표상했다[제시했다]. 그 결과 중세인들이 자연학6권으로 알고 있었던 영혼에 관한 감탄할 만한 논고에서 아비첸나는 잠재적 지성의 다양한 종류나 수준을 묘사하기 위해 글쓰기라는 이미지를 사용한다. 언젠가는 쓰는 법을 틀림없이 배울 테지만 아직은 쓰기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조건과 닮은 잠재성이 있다(그는 이것을 물질적[질료적] 잠재성이라 부른다). 그 다음에는, 펜과 잉크로 쓰기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글자를 적는 방법을 알게 된 아이에게 속하는 잠재성이 있다(그는 이것을 [손쉬운 잠재성 또는] 가능적 잠재성이라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또는 완벽한 잠재성이 있는데, 이것은 쓰지 않는 순간에도 쓰기라는 기예를 완벽하게 소유한 필경사에게 속한다(potentia scriptoris perfecti in arte sua, cum non scripserit). 좀 더 나중에, 아랍의 전통에서 창조는 쓰기라는 현실성과 같은 것으로 간주됐다. , 수동적 지성을 조명하고[빛을 쪼이고] 이것을 현실성으로 이행시키는 능동적agent 지성 혹은 제작적 지성은, 따라서 ‘«»’(Qalam)이라는 이름의 천사와 동일시된다.

안달루시아의 위대한 수피인 이븐 아라비Ibn Arabi메카의 계시(The Illuminations of Mecca)라는, 죽을 때까지 헌신적으로 썼던 작업의 구상을 신성한 도시holy city에서 끌어왔을 때, 그가 2장을 문자의 학문ilm al-hurûf에 바치기로 결정한 것은 따라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학문은 모음과 자음의 위계적 수준들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신적인 이름들에 어떻게 조응하는가를 다루었다. 인식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문자의 학문은 표현할 수 없는 것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의 이행을 표시한다. 창조의 과정에서 이것은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의 이행을 가리킨다. 스콜라학파에게는 단순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던 실존과 순수 «존재»를 이븐 아라비는 네가 그 의미인 문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의 창조의 이행을 둑투스ductus라고 표상한다[창조가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이행하는 것이 둑투스라고 도해적으로 표상한다]. 이 둑투스는 알리프--alif-lâm-mîm이라는 세 개의 문자를 하나의 몸짓으로 묶는다. 이 서기소grapheme[書記素: 어떤 언어의 서기체계書記體系의 최소 단위, 영어 알파벳의 각 문자 따위]의 첫 번째 부분인 문자 알리프alif는 잠재적 «존재»가 속성으로 하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부분인 람lâm은 속성이 현실성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부분인 밈mîm은 현실성이 현시manifestation로 하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쓰기와 창조 과정의 등치[동일시]는 절대적이다. 쓰지 않는 필경사(바틀비는 이것의 마지막이자 소진된[쇠약해진] 형상이다)는 완전한 잠재성이며, 이것을 창조의 현실성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오로지 «»뿐이다.

 

4. 필경사의 손을 움직이게 하고, 그리하여 쓰기라는 현실성으로 이행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가능적인 것이 실제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것은 어떤 법칙을 따라서 이뤄지는가? 가능성이나 잠재성과 같은 어떤 게 있다고 한다면, 이 어떤 것 안에서 혹은 바깥에서 이 어떤 것을 존재하도록 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슬람에서 이 물음은 모테칼레밈motekallemim, 즉 수니파 신학자들과 팔라시파falasifa 사이의 분열의 주제를 구성했다[이슬람에서 모테칼레밈motekallemim이라 불리는 수니파 신학자들과 팔라시파falasifa 사이의 분열은 이런 의문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팔라시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가 말하는] 서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 마음정신이나 장인의 마음정신에 존재하는 가능적인 것이 창조적 현실성에 있어서 어떤 원칙과 법칙을 따라 발생하느냐 발생하지 않느냐를 탐구했다. 이들과는 반대로, 수니 정통파의 지배적 조류를 대표하는 아슈알리파Asharites는 원인, 법칙, 원칙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할 뿐 아니라, 가능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에 관한 모든 담론을 무효로 만들며, 그리하여 팔라시파의 탐구의 토대 자체를 무너뜨린다.

사실상 아슈알리파는 창조의 현실성을 기적과도 같은 사고(事故)를 끊임없이 순간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사고(事故)는 다른 사고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법칙과 인과관계로부터 독립적이다. 염색업자가 흰 천을 쪽빛 염료 통에 담글 때, 혹은 대장장이가 칼을 불에 달굴 때, 염료는 천을 색깔로 물들이기 위해 천에 침투하는 것이 아니며, 금속의 열은 칼날을 고온으로 발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금속의 열은 칼날을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 자신이 우연의 일치coincidence를 수립한다. 이 우연의 일치는 습관적인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순전히 기적과도 같다. 이런 우연의 일치에 의해 천이 쪽빛 염료 통에 담그어진 순간에 천에는 색깔이 산출되며, 칼날이 불로 달궈질 때마다 매번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그러므로 필경사가 펜을 움직일 때, 펜을 움직이는 것은 필경사가 아니다. 이 움직임은 신이 필경사의 손으로[손 안에서] 창조하는 사고(事故)일 뿐이다. 신은 손의 움직임이 펜의 움직임과 일치한다는 것을, 또 펜의 움직임이 쓰기의 산출과 일치한다는 것을 관습적인 것으로서 수립했다. 하지만 손은 이 과정에서 그게 무엇이 됐든 그 어떤 인과적 영향력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사고(事故)는 다른 사고에 대해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펜의 움직임의 경우, 신은 네 개의 사고(事故)를 창조한다. 이 네 가지 사고(事故)는 결코 다른 사고의 원인일 수가 없으며, 그저 서로 공존할 뿐이다. 첫 번째 사고(事故)는 펜을 움직이려는 나의 의지이다. 두 번째는 펜을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잠재력이다[펜을 움직이려는 나의 의지를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잠재력이다]. 세 번째는 내 손의 움직임 자체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펜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것을 원하고 이를 할 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첫째, 그의 의지가 그에게 창조되며, 그런 후에 움직이는 능력이 창조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동 자체가 창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제공한 창조적 현실성과는 다른 창조적 현실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단순히 철학자들이 구상한 것과는 다른 창조적 현실성의 구상이 아니다]. 신학자들이 원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판을 영원히 깨버리는 것, 세계로부터 가능성의 경험을 모조리 몰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성의 문제는 인간 존재의 영역에서 축출되자마자 곧바로 신에게서 재등장한다[신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 때문에 가잘리Ghazali는 바그다드에 있는 고등학교madrasa의 총명한 교수였을 때는 철학자들의 자기파괴(The SelfDestruction of the Philosophers)라는 책에서 아슈알리파의 입장을 집요하게 유지했으나, 이후 예루살렘의 바위의 모스크mosque of the Rock in Jerusalem에서부터 다마스쿠스의 미나레츠[minarets, 회교사원의 뾰족탑]에 이르기까지 방황을 하는 동안에, 필경사라는 형상을 또 다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종교학의 부활(Revival of the Religious Sciences)에서 신의 잠재력에 관한 교훈담apologue을 저술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신의 빛에 의해 계발된 사내가 검은 잉크가 묻은 종이 한 장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너는 아까 눈을 멀게 할 정도로 새하얗는데, 어째서 지금은 검은 표시로 덮여 있는가? 왜 네 얼굴이 거무스름해진 건가?’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종이는 대답한다. ‘내 얼굴을 검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지. 잉크에게 물어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잉크 단지에서 나와서는 내게 쏟아졌으니까.’ 그래서 사내는 설명을 기대하고 잉크에게 말을 걸지만, 잉크는 펜에게 들으라고 대답한다. 자신을 조용한 거처에서 떼어내서 종이 위로 추방한 것은 그 놈이라는 것이다. 다시 사내가 펜에게 물어보자, 펜은 손한테서 얘기를 들으라고 한다. 자신을 움켜쥔 다음에 잔인하게 끄트머리를 둘로 쪼개고 잉크 단지에 담근 것은 손이 아니냐는 것이다. 손이 말하길, 자신은 비참한 살과 뼈에 불과할 뿐이며, 따라서 자신을 움직인 «잠재성»에게 물어보면 어떻냐고 사내에게 얘기한다. 하지만 «잠재성»«의지»에게 들어보라 하고, «의지»«»에게 물어보라 하며, 마침내 원인에서 원인으로 움직이면서 이 계발된 사내는 신적 «잠재성»의 칠흑 같은impenetrable 장막에 이르렀다. 거기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내리꽂힌다. ‘신이 하는 일에 대해 신에게 이유를 묻지 마라. 네 행위에 대한 이유는 네게서 찾아라.’

 

그러므로 이슬람적 숙명론(강제수용소 수감자inhabitant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형상인 무젤만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의 뿌리는 체념의 태도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신의 기적이 끊임없이 작동되고 있다는 해맑은 신앙에 있다. 그러나 모테말레밈motekallemim의 세계에서는 [그리고 기독교 신학자들에게는 이들에 상당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가능성의 범주가 모조리 파괴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잠재성이 기반을 잃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이제] 신의 펜의 해명할 수 없는 움직임만이 있을 뿐으로, 그 움직임은 결코 예측될 수 없으며, 서판은 이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는 아무런 이유[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 세계의 이 절대적인 탈양태화demodalization 대립하여, 팔라시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에 여전히 충실한 채로 있다. [사실상] 철학은 가장 깊은 의도에 있어서 잠재성의 확고한 천명assertion이며, 가능적인 것 자체의 경험의 구축이다. 사유가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잠재력이야말로, 쓰기가 아니라 흰 종이야말로 철학이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잊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5. 하지만 잠재성은 사고하기가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잠재성이 항상 무언가를 하거나 뭔가일 수 있다는 잠재력일 뿐이라면, 우리는 잠재성을 결코 그 자체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가라학파가 주장하듯이, 잠재성은 현실성이 실현되는 그런 현실성에서만 존재할 뿐일 것이다. 잠재성 자체의 경험은 잠재성이 항상 또한 (어떤 것을 하거나 사고하지) 않을 잠재력일 때에만, 서판이 그 위에 적히지 않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모든 것은 훨씬 복잡해진다. 사고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력을 사고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고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력이 현실성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유의 본성이 잠재적이라 한다면, 사고는 무엇을 사고하게 될 것인가?

형이상학9권의 신의 정신을 다루는 대목(1074b 15-35)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이런 아포리아에 직면한다.

 

사고[누스]의 문제는 몇 가지 아포리아를 내포한다. 사고는 현상들 중에서도 가장 신적인 것 같기 때문에, 그 <존재>의 양태는 문제적인 것처럼 나타난다[문제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상 사유가 아무것도 사고하지 않는다면[, 사유가 사고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력을 유지한다면], 왜 사유는 존귀한 것일까? 사유는 잠자는 사람과 같은 것일 텐데. 그 반대로, 뭔가를 현실적으로 사고한다면, 사유의 <존재>가 현실성이 아니라 잠재성이기 때문에, 사유는 이 뭔가[현실성]에 종속될 것이다. 사유는 가장 고귀한 실재가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사유가 탁월한 것은 현실성이라는 상태에 있는 사유 때문이라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사유는 잠재적이라는 사유의 고유한 본질이 아닌 다른 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둘 중 어떤 경우든, 즉 사유의 본성이 잠재적 사유[nous]이든 현실적 사유[noēesis]이든, 사유는 무엇을 사고하는가? 사유 자신을 사유하는가, 아니면 사유 자신과는 다른 뭔가를 사고할 것이다. 만일 사유가 사유 자신과는 다른 뭔가를 사고한다면, 사유는 똑같은 것을 항상 사고하거나, 아니면 때로는 이것을 때로는 저것을 사고할 것이다. 그러나 고귀한 것을 사고하는 것과 우유적인[임의의] 뭔가[대상]를 사고하는 것을 차이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그러나 선을 사유하는 것과, 임의의 대상을 사유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인가?] 어떤 대상들을 사고하는 것은 부조리하지 않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유가 가장 신적이고 가장 존경할 만한 것을 변함없이 사유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 그리고 만일 사유가 [현실적인] 사고가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잠재성이라면, 그 사고의 연속성은 사유를 피곤하게 할 것이라는 게 [논리적으로] 뒤따라나올 것이다. 게다가 이 경우, 사유보다 더 고귀한[상위의] 뭔가, 즉 사유의 대상이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사고와 현실적 사유는 [둘 다] 심지어 최악의 [가장 저열한] 대상들을 사고하는 것에 속한다. 만일 이런 일이 기피되어야 한다면 (사실상 보는 것보다 보지 않는 게 더 나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 사유가 가장 좋은 것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유가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탁월하다면, 사유는 사유 자체를 사고한다. 사유는 사고의 사고이다.

 

여기서의 아포리아는 최고의 사유가 아무것도 사고하지 않을 수도 없고 어떤 것을 사고할 수도 없으며[무를 사고할 수도 없고 어떤 것을 사고할 수도 없으며], 잠재적인 채로 머물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될 수도 없으며, 쓸 수도 없고 쓰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아포리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유 자체를 사고하는 사유라는 그의 유명한 관념을 정식화한다. 이것은 아무것도 사고하지 않음과 어떤 것을 사고함 사이의,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의 일종의 중간이다. 사유 자체를 사고하는 사유는 어떤 대상을 사고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사고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고할 수 있는 잠재성과 사고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성이라는) 순수한 잠재성을 사고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잠재성을 사고하는 것은 가장 신적이고 행복하다blessed.

하지만 아포리아는 해결되자마자 다시 되돌아온다. 사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스스로를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순수한 잠재성을 현실성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순수한 잠재성은 어떻게 현실성에서 스스로를 사고하는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서판은 어떻게 서판 자체로 다시 향해가고 스스로를 각인할 수 있는가?

영혼에 관하여에 대한 주해에서 백지tabula rasa의 수수께끼에 대해, 그리고 사유 자체를 사고하는 사유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 the Great는 바로 이런 의문을 고찰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아베로에스와 완전히 견해가 일치한다고 선언하는데, 그 아베로에스는 잠재적 지성[사유]을 모든 인간 존재에 공통적인 하나의 실체로 만들면서, 이것에 최고의 특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아베로에스는 이 결정적인 점을 꽤 성급하게 다뤘다. 지성 자체가 가지적이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은 임의의 어떤 대상이 가지적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와는 똑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없었다. [사실상] 잠재적 지성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다[특정한 상태의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것thing이 그것을 통해 이해되는 지향intentio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인식된known 대상이 아니라 그저 순수한 인식 가능성knowability과 수용 가능성(pura receptibilitas)에 다름 아니다. 메타언어의 불가능성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테제를 선취하면서, 알베르투스는 어떤 이해 가능성intelligibility[맥락상 인식 가능성]이 이해 가능성intelligibility 자체를 포착한다[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 가능성을 메타-지성과 대상-지성으로 분할함으로써 이해 가능성을 사물화하는 것일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사유의 글쓰기는 부드러운 밀랍을 긁기 위해 첨필을 움직이는 외부적 손의 글쓰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유의 잠재성이 그 자신에게로 향해 돌아서는 지점, 순수한 수용성이 이른바 자신의 고유한 감각을 감각하는 지점에서, “마치 문자가 저절로, 서판 위에다 스스로를 쓰고 있는 것 같다”(et hoc simile est, sicut si diceremus quod litterae sciberent seipsas in tabula)고 알베르투스는 적었다.

 

6. 진부한 말이지만, 3대 일신교는 세계가 무에서 창조됐다고 설명하는 데서 일치한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자들은 무로부터의 제작operari ex nihilo인 창조를 장인의 현실성art에 대립시킨다. 장인의 현실성은 항상 물질로부터 만드는 것facere de materia이라고 간주된다. 다음과 같은 견해에 맞서서 랍비들과 모테칼레밈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에서도 이에 못지않게 결정적인 논점이 발견된다. 철학자들이 한 것으로 알려진 견해[억견]에 따르면, 신이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무에서는 무가 만들어지기[무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기]nihil ex nihil fit 때문이다. 각각의 경우에, 본질적인 것은 물질(즉 잠재적 «존재») 같은 어떤 것이 «»보다 앞서 존재할 수 있다는 관념 자체를 논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로부터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문제를 꼼꼼이 검토하자마자, 모든 것이 복잡해진다. , «»는 점점 더 어떤 것을 닮기 시작한다. 이 어떤 것이 어떤 특정한 종류의 어떤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이모니데스는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Guide for the Perplexed에서, 무로부터의 창조의 진실을 주장했는데[창조를 역설한다고 표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르케 랍비 엘리에젤Pirke Rabbi Eliezer의 이름으로 알려진 권위 있는 미드라슈midrash의 한 구절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미드라슈는 신학자와 학자의 신앙을 크게 흔들어버린다.” 창조의 물질 [질료] 같은 어떤 것이 실존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왜냐하면 거기에는 세계의 창조의 바탕이 된 물질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상한 뭔가가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드라슈에서 이런 걸 읽는 것이다. “천국[하늘]은 무엇으로 창조되었는가? 신은 자신의 옷에서 빛을 취하고, 이것을 시트처럼 쭉 폈다. 그리하여 천국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그는 옷에 감기듯이 빛에 몸을 감싸고 천국을 양탄자처럼 편다고 적혀 있는 것 그대로이다.” 게다가 코란의 시구에 따르면, 신은 우리는 네가 아무것도 아니었을[무였을](네가 하나의 무였을) 때, 너를 창조했다고 말하면서 피조물에게 말을 걸었다고 여겨지지만, 수피들에 따르면 이 시구는 신이 창조의 행위에서[현실성에 있어서] 있으라!”라고 말하면서 <무>를 전환했기[불러냈기] 때문에, 이무는 순수한 <무>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실은 이렇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관념을 정식화했을 때, 신플라톤주의는 그로부터 모든 것들이 생겨나는 <무>를 최고의 원리로 이미 인식했다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자[신학자]들이 이른바 위로부터 존재자들을 초월하는 <무>와 아래로부터 존재자들을 초과하는 <무>라는 두 개의 무를 구별하듯이,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두 개의 물질을 구별했다. 하나는 육체적 물질이고, 다른 하나는 비육체적 물질이다. 후자는 가지적인 존재자들의 어둡고 영원한 배경[밑바탕]이다. 카발라학자들과 신비가들은 이 테제를 극한으로 끌고가 이들의 특징적인 급진성으로, 이로부터 모든 창조가 생겨나는 <무>가 신 자체라고 명확하게 진술했다. 신적인 <존재>(심지어 초hyper-<존재>)이란 존재자들의 <무>이며, 오로지 신이 <무>에, 이른바 푹 빠져들었기[내려갔기]에 신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요하네스 엘리우게나John Scotus Eriugena『신적인 자연에 대해De divisione naturae에서 창세기의 시구인 “그리고 대지는 형태가 없고 공허하며, 어둠이 심연의 면[얼굴]에 있다(terra autem erat inanis et vacua et tenebrae erant super faciem abyssi)에 주석을 달면서, 이것이 신의 정신 속에서 영원히 만들어지는 존재자들의 제1이념 혹은 제1원인을 가리킨다고 한다. “오로지 이 어둠, 이 심연으로 내려감으로써만 신은 세계를 창조하며, 이와 동시에 신 자신도 창조한다(descendens vero in principiis rerum ac velut se ipsam creans in aliquo inchoat esse)는 것이다.

사실상 여기서 쟁점은 가능성이나 잠재성이 <신> 속에 실존하는가라는 문제이다. 모든 잠재성은 또한 비잠재성(있지 않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잠재성)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래, 신학자들은 신이 전능하다고 단언한 동시에 신에게서 있을[존재할] 수 있고 의욕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잠재성은 이미 이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잠재성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신학자들은 신이 전능하다고 단언함에도 불구하고 이것과 동시에, 신에 대해 존재할 수 있다는 잠재성, 의욕할 수 있다는 잠재성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신이 존재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신의 영원성과 모순될 것이다. 다른 한편, 만일 신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비-<존재>와 악을 원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니힐리즘의 원리를 신 속에 도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렇게 결론내린다. , 신이 자신 속에 무제한의 잠재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은 신 자신의 의지에 구속되며, 자신이 의지했던 것과는 다른 그 어떤 것을 할 수도, 원할 수도 없다. 신의 의지는 신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절대적으로 잠재성을 결여한다신의 의지는 신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잠재성이 없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비가들과 카발라학자들에 따르면, 창조가 전제하는 모호한 물질은 다름 아니라 신의 잠재성이다이와 반대로 신비가들과 카발라학자들이 창조에 선행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모호한 물질인 신적인 잠재성이다. 창조의 행위현실성는 신이 심연으로 하강하는 것인데, 이 심연은 신 자신의 잠재성과 비잠재성이며, 신의 있을 능력가능성과 있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이 심연은 신 자신의 잠재성과 비잠재성 사이의, 신이 행할 가능성과 행하지 않을 가능성 사이에 열려진 심연에 다름 아니다. 1210년에 이단이라고 선고를 받은 디낭의 다비드David of Dinant의 급진적 정식화에서는, 신과 사유와 물질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며, 이 무차이적인undifferentiated 심연은 이로부터 세계가 진행되는 <무>이며, 이것에 세계가 영원히 의존하는 <무>이다나아가 1210년에 교의가 이단선언을 받은 디낭의 다비드의 과격한 정식화에 따르면, 신과 사유와 물질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며, 이처럼 차이가 없는 심연이야말로 그로부터 세계가 생겨나는 무이며, 세계는 이 심연에 영원히 의존한다. 이런 맥락에서 심연은 은유가 아니다. 야콥 Jakob Böhme이 명확하게 진술하듯이, <무>가 영원히 산출되는 것은 <신>의 어둠의 삶이며, <지옥>의 신적 뿌리이다. 우리가 이 타르타루스[바닥 없는 지옥]에 빠져들고 우리 자신의 비잠재성을 경험하는 데 성공할 때에만, 우리는 창조할 수 있게 되며, 진정으로 시인이 된다. 그리고 이 경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는 <무>나 그 어둠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이 <무>를 무화할 수 있는 것, <무>로부터 뭔가를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븐 아라비Ibn Arabi는 메카 계시의 서두에서, “<무>로부터 사물들을 실존하게 만들고 무를 무화했기 때문에 신은 찬양된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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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혹은 우연성에 관하여

Bartleby o della contingenza

Giorgio Agamben  

 

Bartleby o della contingenza

Original Italian edition 1993 by Giorgio Agamben.



신은 자신의 왕관을 창조한 동시에 서판(書板)도 창조했다. 이 서판은 너무 커서 인간이 그 위를 걷는데 천년이 걸릴 정도였다. 서판은 새하얀 진주로 만들어졌으며, 귀퉁이는 루비로, 중앙은 에메랄드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쓰인 모든 것은 가장 순수한 빛이었다. 신은 하루에 몇 백번이나 이 서판을 봤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매번 신은 이것을 구축하고는 파괴했고, 창조하고는 살해했다. 이 서판을 창조한 것과 동시에 신은 빛의 펜도 창조했는데, 이 펜은 인간이 가로로 걷는데 오백년이 걸릴 정도로 길고, 세로로 걷는데도 마찬가지로 걸릴 정도로 넓었다. 이 펜을 창조한 후에, 신은 이것더러 쓰라고 명했다. ‘무엇을 쓸까요?’라고 펜이 말했다. ‘너는 이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의 지혜를, 또한 너희 모든 피조물들을 쓸 것이다라고 신이 대답했다.

무하마드의 모든 제자의 책[입문서] 20.

At the same time that he created his throne, God created a writing table so big that a man could walk on it for a thousand years. The table was made of the whitest pearl; its extremities were made of rubies, and its center was made of emerald. Everything that was written on it was of the purest light. God looked upon this table a hundred times a day, and every time he looked upon it he constructed and destroyed, creating and killing. . . . At the same time that he created this table, God also created a pen of light, which was so long and wide that a man could run along either its length or its width for five hundred years. After having created his pen, God ordered it to write. "What shall I write?," said the pen. "You will write my wisdom and all my creatures," God answered, "from the world's beginning to its end."

-- The Book of the Ladder,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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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11. 진드기

 

동물은 기억을 갖고 있으나 기록은 갖고 있지 않다.

하이만 슈타인탈

The animal has memory, but no memories.

Heymann Steinthal

 

 

윅스퀼의 책들은 때때로 도판들illustrations을 담고 있는데, 이것들은 고슴도치, 꿀벌, 파리, 개의 관점에서 인간 세계의 절편segment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려고 한다. 비인간[인간이 아닌 것]의 눈으로 가장 친숙한 장소들을 갑작스럽게 보도록 강제되면, 이것은 독자에게 편치 않은disorienting[방향상실의] 효과를 산출할 것인데, 실험은 이런 효과를 거두기에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편치 않음disorientation[방향 상실]은 윅스퀼이 진드기라는 이름으로 좀 더 널리 알려진 진드기류(Ixodes ricinus)의 환경을 묘사할 때 부여할 수 있었던 조형적인 힘figurative force[표현력]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윅스퀼의 서술은 확실히 위뷔 왕(Ubu roi)테스트 씨(Monsieur Teste)와 나란히 읽혀져야 할, 근대적 반인간주의의 극치를 이룬다.

서두는 목가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길들여진] 개를 데리고 자주 숲과 덤불을 돌아다니는 시골주민이라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한 마리의 작은 동물과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동물은 작은 가지에 매달려 인간인지 동물인지를 묻지 않고 먹잇감을 기다리며, 머리 위로 뛰어내려 그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알에서 막 부화한 시점에서는 이 작은 동물은 아직 완전히 성충이 되지 않는다. , 다리 한 쌍과 생식기가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이 단계에서 이 놈은 풀잎 끝에서 매복해 있으며, 도마뱀 같은 냉혈동물을 습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탈피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부족했던 기관을 얻게 되면, 오로지 온혈동물을 사냥감으로 삼아 사냥에 나서게 된다. 암컷은 산란기에 들어가면, 알맞은 높이에서 재빠르게 아주 작은 포유동물 위에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더 큰 대형 동물에 의해 부딪치게 되는 것, 여덟 개의 다리를 사용해 잔가지의 끝에까지 기어오르는 것이다(Uexküll, 85-86).

 

윅스퀼의 지시를 따르면서, 여름의 어떤 갠 오후에 덤불에 매달린 진드기를 상상해보자. 사방팔방이 형형색색의 들꽃이 내뿜는 향기, 꿀벌과 다른 곤충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에 둘러싸이면서 햇볕을 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목가(牧歌)는 이미 끝났다. 진드기는 이런 모든 것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없는 이 동물은 빛에 대한 껍질의 일반적인 감각만의 도움을 빌려 매복하는 방법을 찾아낸다[이 동물에는 눈이 없다. 그래서 매복하는 장소는 밝음에 대한 몸 껍질의 감각만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이 눈멀고 귀먹은 강도는 후각을 통해서만 사냥감이 접근하는 것을 알아챈다. 모든 포유류의 피지모낭sebaceous follicles에서 발산되는 낙산(酪酸)butyric acid 냄새가 진드기에게는 신호로서 작용하며, 그리하여 매복한 장소를 뒤로 한 채 먹잇감을 향해 운에 맡긴 채blindly 낙하하게끔 야기한다. 만일 (정확한 온도를 감각할 수 있는 기관에 입각해 진드기가 지각하는) 따뜻한 뭔가에 낙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운이 좋다면, 진드기는 먹잇감인 온혈동물에 착지했다는 것이며, 이후에는 촉각에만 의지하여 가급적 몸에 털이 없는 지점을 찾아내고 먹잇감의 피하조직에 머리부터 깊숙이 파고들어갈 수 있다. 이제 진드기는 따뜻한 피의 흐름을 천천히 빨아들일 수 있다(ibid., 86-87).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드기가 피 맛을 좋아한다고, 혹은 적어도 피 맛을 지각할 수 있는 감각을 소유한다고 당연하게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윅스퀼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연구실에서 모든 종류의 체액으로 채워진 인공적인 막membranes을 사용해 실험한 결과는 진드기가 모든 미각을 절대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드기는 적절한 온도를 갖고 있다면, 즉 포유류의 혈액 온도에 대응하는 섭씨 37도를 갖고 있다면, 어떤 체액이든 열심히 빨아들인다. 아무튼 진드기가 벌이는 피의 잔치는 장례의 만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제 진드기에게는 땅바닥에 내려와서 산란하고 죽는 것 말고는 해야 할 것이라고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드기의 예는 모든 동물들에게 고유한 환경이 지닌 일반적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이 경우 환세계는 세 가지 의미[작용]의 담지자 혹은 표식(Merkmalträger)’의 담지자로 환원될 뿐이다. (1) 모든 포유류의 땀에 포함된 낙산(酪酸)butyric acid 냄새. (2) 포유류의 혈액과 똑같은 섭씨 37도의 온도. (3) 일반적으로 체모를 갖추고 있고 모세혈관으로 뒤덮여 있는 포유류에 특징적인 껍질의 유형. 하지만 진드기는 이 세 가지 요소들과 강렬하고 열정적인passionate 관계로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불가분한 관계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세계가 외견상 아무리 풍요롭게 보이더라도, 그 세계와 인간을 묶는 관계는 아마도 이와 비슷하게 강렬한 관계일 수는 없을 것이다the likes of which we might never find in the relations that bind man to his apparently much richer world. 진드기는 이런 관계이다. 그리고 진드기는 이런 관계 속에서만, 이를 관계를 통해서만 살아갈 뿐이다she lives only in it and for it.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윅스퀼은 우리에게 다음의 얘기를 알려준다. 로스톡Rostock[발트해 연안의 독일의 한자도시]의 실험실에서는 18년 동안 먹이도 없이, 즉 환경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조건에서 진드기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다고 한다. 윅스퀼은 이 특이한 사실에 대해 전혀 설명을 제시하지 않으며, 진드기는 기다리는 기간 동안우리가 매일 체험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수면 비슷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윅스퀼은 살아 있는 주체 없이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without a living subject, time cannot exist는 유일한 결론을 끌어낸다(ibid, 98). 하지만 18년 동안 지속된 이런 중지상태에서 진드기와 그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세계에는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는가]? 환경과의 관계에만 전적으로 놓여 있는 생물a living being that consists entirely in its relationship with the environment이 그런 환경의 절대적인 결핍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시간도 없고 세계도 없이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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