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뱅주의와 시민사회

: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제 :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十九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研究の現状と課題

저자 :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

출처 : 社会思想史学会, 『社会思想史研究』, 31권, 2007, 108-117.

http://dspace.lib.niigata-u.ac.jp/dspace/bitstream/10191/6613/1/31_108-117.pdf






1. 들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사의 고전을 쓴 막심 르루아(Maxime Leroy, 1873-1957)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89년 이후의 모든 역사는 …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립으로 귀결된다.”[각주:1] 르루아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1789년의 원리, 즉 개인적 자유와 소유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 구성의 원리이며, “사회적인 것”이란 평등과 관련된 것이면서 개인의 불행을 집합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노동이나 분배와 관련된 1793년의 원리이다.[각주:2]

르루아가 지적하듯이, 19세기의 프랑스 역사는 1789년에 선언된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대혁명 시기에 제창됐던 ‘정치적’원리는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조건에 입각한 ‘사회적’인 질서 원리에 의해 항상 비판되며 수정을 겪었다. 양자의 상극과 조정이 반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기 이후의 사상사를 구성한다.

다만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논자마다 매우 다양하다. 크게 말해서, 1960년대까지 19세기 사상사를 해석하는 틀은 경제구조에 기인하는 계급대립에 의해 주어졌다. 생디칼리즘을 대표하는 이론가 르루아가 양자의 대립을 자유주의적 권력구성원리와 노동자의 사상·운동과의 대립으로 파악했던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런 해석 도식은 크게 변경된다. 역사학·정치사상사·철학 등의 분야들에서 지적인 쇄신이 일어나고, 오히려 일원적 통합원리(정치적인 것)와 다원성 원리(사회적인 것)의 긴장관계가 논자의 주된 관심 대상이 된다(다만, 나중에 다루는 르포르와 고셰는 양자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 혹은 일원적 통합원리와 다원성 원리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최근까지의 연구사를 재정리하고, 그 현황과 과제에 관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2. 일원적 통합원리에 대한 비판

1) 자코뱅주의의 유산

196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타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간주한 정통사학을 비판했던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 등이 혁명기의 정치적 담론에 주목한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했다.[각주:3] 퓌레에 따르면, 단일한 ‘인민’이라는 허구의 집합을 통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하는 문학자, 철학가의 담론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혁명의 급진화와 자코뱅 지배가 초래됐다. 19세기 이후의 사상적 과제는 ‘자코뱅주의’를 극복하고 ‘혁명을 끝내게 하는’것에 있었다고 간주된다.[각주:4]

퓌레의 연구는 정치사상사 분야에서 ‘정치문화’론이라 불려야 할 새로운 연구사조를 산출했다.[각주:5] 그것은 경제구조로부터의 정치적 담론의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동시대의 정치적 담론의 배치, 그 내재적 논리를 탐구하는 역사연구로의 길을 개척했다.[각주:6] 여기서는 퓌레의 문제관심을 계승하는 한 명으로서 뤼시앙 좀(Lucian Jaume, 1946~)의 연구를 다뤄보고 싶다.

좀은 퓌레의 담론분석 방법에 의거하면서, 대혁명에서 비롯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의 특징을 탐구한다. 『자코뱅파의 담론과 민주주의』(1989)에서는 혁명기의 클럽과 의회에서의 자코뱅파의 담론을 검토하고, 당(parti)에 의한 도덕적 혁명운동이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의 일체성을 산출하며, 주권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정치관의 성립을 지적했다.[각주:7] 이런 정치관은 나폴레옹 제정기의 집권론,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의 이성주권론으로 계승된다. 그는 이어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의 사조들을 검토하고, 거기서 일관된 특징을 ‘삭제된 개인’(individu effacé)라고 평했다.[각주:8] 대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는 세 개의 사조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항하고 개인의 내면적 자유의 불가침성과 입헌주의에 의한 권력억제를 주창한 스탈 부인, 콩스탕, 프레보스트-파라돌(Prevost-Paradol) 등의 사조이다. 둘째는 개인보다 ‘사회’를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의지[의사]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으로의 집권화에 의해 더 고차적인 자유가 실현된다고 파악한 르와이에-코라르, 레뮈제, 기조 등 독트리네르의 사조이다. 셋째는 개인적 자유에 대해 종교적 ‘진리’를 우위에 두고 신적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라므네, 몽타랑베르, 세기말의 자유주의 가톨릭 등의 사조이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사조가 프랑스 자유주의의 주류를 두고 다투며, 두 번째 사조가 1875년 이후에 체제원리가 되며, 자유주의와 양립하는 공화체제를 이끌게 됐다고 한다.[각주:9]

2)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

퓌레나 좀의 연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을 ‘자코뱅주의’적인 일원적 통합원리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1970년 이후의 정치철학에서는, 이런 사상적 전통을 근대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조가 있다. 이하에서는 클로드 르포르, 마르셀 고셰를 중심으로 그런 19세기론을 다뤄보고 싶다.[각주:10]

르포르(Claude Lefort, 1924~)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다. 1949년부터 60년까지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를 간행한 그는, 6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토크빌과 아렌트의 사유에 의해 촉발되고, 근대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정치인식의 문제성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권’의 역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개념의 분석이라는 두 가지 점에 집중해서 그의 연구를 일별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회가 ‘외부’에서 질서의 일체성을 보장하는 참조점(신, 자연, 왕의 신체)을 갖고 있었던 반면, 근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런 참조점들을 거부하고(가령 프랑스혁명에 의한 왕의 신체의 폐절), ‘내부’에서만 질서의 입각점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각주:11] 그 입각점은 ‘인간’(homme)이라 칭해지며, ‘인간의 권리’의 실현이 근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된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공통성을 추상화한 집합을 가리키는데, 외부의 지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언급[참조, 지시]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확정성을 갖는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권’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로서 확대를 거듭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권력도 ‘복지국가’(État-providence)로서 비대화를 계속했다.[각주:12]

여기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루고 싶다. 르포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특히 자코뱅주의와 20세기의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것은 모든 다원성이나 차이를 배제한 ‘일자-인민(Peuple-Un)’이라는 표상이 통치의 기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인민’은 개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며, 개인을 초월한 집합으로서 관념되며, ‘사회적 권력’이라고도 일컬어진다. 19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콩스탕이나 기조가 아니라 토크빌이야말로 이런 단일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제(專制)’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각주:13] ‘인권’은 이 ‘사회적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전제’를 억지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인간’관념은 개별 인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재시킨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전체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는 구별될 수 없다.[각주:14]

르포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국가권력의 행사)를 일상생활의 곳곳에 침투시키는 논리를 내재시킨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나누는 것은 권리·정치제도 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차원’, 즉 자유로운 언론에 의해 통치권력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제약하는 ‘공적 영역’의 존재뿐이다.[각주:15] 이 공적 영역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권리·정치제도나 공/사의 구분을 다시 묻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운동’뿐이라고 한다.

르포르가 탐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셰(Marcel Gauchet, 1946~)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적 조건’아래에서 더욱 탐구됐다.[각주:16] 고셰는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의 곤란의 출발점을 대혁명에 둔다. 기독교의 성립과 세속화는 개인이 세계의 의미를 자기 해석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는 것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혁명은 탈종교화와 왕의 부정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을 초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연대가 모든 외부성이나 내적 다원성을 갖지 않는 단일한 집합(‘사회’)으로 관념됨으로써, 개개인을 초월하는 ‘사회’에 의한 새로운 전제(專制)나 억압을 초래할 가능성도 일어났다.[각주:17] 고셰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입법부로의 중앙집권화, 자코뱅주의에서의 ‘단일한 집합체’관념의 성립에서 개인의 자율과 양립할 질서의 형성 실패의 요인을 찾아낸다. 혁명기의 시에예스에 의한 의회감시의 ‘제3의 권력’도입론, 콩스탕의 중립적 권력론, 대의제론 등은 ‘사회’의 관념에 기초한 일원적 통치상을 비판하고 다원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로 독해된다.[각주:18]

고셰에 의한 19세기 이후의 역사상을 일별해두자.[각주:19] 19세기 전반기에는 좌우 당파의 대립, 국왕·정부·의회의 분리, 대표제 등, 일정한 ‘다원성’원리의 도입이 꾀해진다. 제3공화정 시기의 양원제의 도입은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분업의 진전이나 계급대립에 의해 간과된 ‘사회’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희구가 현재화하고, ‘단일한 인류(Une humanité)’라는 종교적 관념이 부상한다.[각주:20] 이것은 민족·국민 등으로 모습을 바꿔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치를 석권한다. 고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정당이나 결사의 다원성, 대의제는 행정기구에 의한 리스크의 예측이나 불확실성의 제거·통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의 ‘지배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해지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문화적 획일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매몰·함몰에 의해 단일한 ‘사회’의 논리에 기초한 일원적 지배로 전화될 가능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고셰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외부’의 삭제라는 문제로 되돌아가, 탈종교화의 역사를 정치사상의 문제로서 연구하게 됐다.[각주:21]

3) 생명정치의 확산

1970년대의 지적 쇄신 속에서 생겨난 두 번째 사조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이후의 19세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조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각주:22] 푸코는 1977-78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18세기 이후의 통치권력의 성질변화를 주제로 삼는다.[각주:23] 그에 따르면, 상업과 도시의 발전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국가(내치)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통치의 효율화(économie)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치경제학(économie politique)의 내실은 18세기 후반기에 치안유지에서 ‘인구’의 학(學)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사람들의 생물학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을 ‘생명정치’(biopolitique)라고 칭하고, 이런 권력실천이 공중위생·인구정책·의료·식량정책으로서 전개됐다는 것, 그 담지자가 국가관료뿐 아니라 ‘사회적’영역에서의 병원·공장·교육기관·경제학자·위생학자 등으로 학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푸코에게 ‘시민사회’란 이런 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영역에 다름 아니며, ‘자유주의’란 새로운 통치의 방식을 정당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다.[각주:24] 푸코의 ‘생명정치’, ‘사회적인 것’, ‘자유주의’등의 개념은 이후 19세기 연구에서 비교·대조되는 틀이 되며, 빈곤문제나 감옥, 공중위생, 가족, 의료 등과 관련된 많은 역사연구를 산출했다.[각주:25]

위에서 다뤘던 두 개의 사조는 각각 상이한 관심에서,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의 일원적 통치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퓌레와 좀은 자코뱅주의의 유산이 19세기 이후에도 잔존하며, 영국식 자유주의나 입헌주의가 정착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르포르나 고셰는 ‘인간’이라는 자기언급적 개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단일한 집합체(‘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그리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이끌 위험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논했다. 푸코주의자는 18세기 이후의 개개인이 단일한 생물학적 집합(‘인구’)로 파악됨으로써 집합적 생명의 효율적 유지·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사회적’영역으로 확산되고 개개인의 생명의 관리·규율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각자는 이런 일원적 통치원리에 대항하는 다원적 질서구성원리의 추구 ― 퓌레와 좀에게서의 대의제와 경쟁적 정당제, 르포르와 고셰에게서의 운동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외부’의 탐구, 말년의 푸코에게서의 ‘자기에의 배려’에 기초한 고대 그리스의 주체상과 자기-타자관계 ― 를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이런 연구사조들과 교착되면서도,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거기서 긍정적인 발전사를 독해해내려는 것이 다음에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다.

3. 일원적 통치원리로의 회귀 : 로장발롱의 19세기론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1948~)은 중도노조인 CFDT의 고문이라는 사상사 연구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말에 푸코의 세미나에 출석했으며, 최초의 사상사 연구서인 『유토피아적 자본주의』를 출판했다. 80년대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소속되어 퓌레, 르포르, 고셰, 마넹 등과 교류하면서 역사연구·현대정치연구를 행했다.[각주:26] 90년대에 들어서자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3부작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정치사상사 연구의 제일인자가 된다.[각주:27] 2002년부터는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로장발롱의 19세기 연구상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기에 성립된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이 거듭 비판에 처해지면서도 수정되어 회귀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 발전사로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인식(‘일반성의 정치문화’라고 일컬어진다)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를 거의 답습하고 있다.[각주:28] 혁명기에는 전통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끄집어내어 동질적·추상적 개인으로 구성된 단일한 집합체(‘개인으로 구성된 사회sociétéd’individus’)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랑스의 특징은 헤겔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변증법이 상정되지 않고,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강조된 것이다. 개별 이익을 추상화하는 ‘대표’라는 메커니즘이 중시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에는 ‘특수이익’에서 ‘일반이익의 창출’이라는 비약이 상정된다. 양자를 매개하는 정치적 결사는 부정되고, 직업단체, 지역성, 남녀의 성차 등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 일반성을 체현하는 것은 ‘법’뿐이며, 대표자에 의한 입법행위가 신성시된다.

둘째로,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이런 정치인식은 거듭 비판에 처해졌다.[각주:29] 르 샤플리에법에서 볼 수 있는 중간단체의 부정은 개인의 원자화, 국가의 비대화,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19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7월 왕정기에 재생한다. 기조, 티에르 등의 자유주의자는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구별을 도입한다.[각주:30]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 집권화에 의해 전통적인 특권들(libertés)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liberté)가 실현된다. 자코뱅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확대와 자유의 실현은 상보적이라고 파악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으로는 언론·집회활동의 자유나 행정적 분권화가 허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다원성은 사회에 분산된 엘리트의 의견을 통치기구로 집약하고, 일원화하기 위한 매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적/사회적 영역의 구분과 상호보완으로 구성된 그들의 질서관은 제2제정기의 정치적 결사 금지와 직업적 결사 승인(1864년법)으로 계승되며, 제3공화정기의 ‘수정 자코뱅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셋째로, 제3공화정기에 자코뱅주의의 쇄신이 완수된다.[각주:31] 여기서 로장발롱이 중시하는 것은 유기체적 질서관을 따라 자코뱅주의적인 국가-개인의 이원적 질서관을 비판하고 중간단체 재건을 제창한 사회학자(Fouillée, Durkheim, Ferneuil, Duguit 등)의 사상이 아니라,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양극화(polarisation)’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화파 정치가(Waldeck-Rousseau, Léon Bourgeois, Paul-Boncour 등)의 질서관이다. 후자는 1884년법(직업조합 자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결사가 질서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승인한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통한 의사집약과 일반이익의 일원적 ‘대표’라는 시각을 유지한다. 정치적 결사는 1901년법까지 자유화되지 않으며, 이 법에서도 결사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제도적 제약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가 제창한 직능대표론이나 생디칼리스트가 주창한 생산자의 공화국론(M. Leroy), 코포라티즘론은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는 시도였다. 다른 한편, 공화파 정치가의 질서관에 따르면, ‘사회적’다원성은 ‘정치적’집권성과 명료하게 구별되며, 그 통제 아래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야말로 20세기의 프랑스 정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위와 같이 로장발롱에 따르면, 혁명기의 자코뱅주의는 몇 번이나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오늘날의 정치사상적 과제는 이제 자코뱅주의의 극복이나 토크빌적인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의 옹호가 아니다. ‘사회적’영역에서 중간단체가 다양한 발전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즉 ‘일반이익’이나 통합의 공통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라고 한다.[각주:32]

4. 마치며

지금까지 달음박질치듯이 30년 동안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뒤쫓았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과제를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서이다. 퓌레 이후의 19세기 사상사 연구는 담론사, 사회사, 심성사 등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고전적 사상가의 텍스트를 넘어선 폭넓은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 기존의 일본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사상가의 주요 텍스트를 ‘점’과 ‘점’으로 묶음으로써 사상사가 구성된 것이 적지 않았다. 향후에는 프랑스에서의 역사 연구의 진전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담론 상황을 ‘면’으로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대상의 확장이 요구된다.

둘째는 분석 틀에 관해서이다. 본고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이라는 도식을 사용해서 본 것처럼, 19세기에 정치사상의 대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자코뱅 주의의 영향,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회로의 권력의 확산, 사회 문제의 출현 등에 의해 분석 틀도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대립이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일원성과 다원성, 정치적 질서의 내부와 외부, 규율과 자율, 중간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역할 등, 논자에 따라서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로 ‘정치적인 것’자체가 논쟁적 개념이 되며, 그 개념 규정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과제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이런 문맥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깊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주도하는 로장발롱의 틀에 내포된 일정한 편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로장발롱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있던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고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런 관심의 전환의 배후에는 현대 프랑스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논의 상황이 있다. 즉, 한편으로는 전지구화, 유럽화에 의한 프랑스 국가의 자율성의 흔들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회적 분단(이민자·청년·배제문제 등)의 심각화와 대의제의 기능장애이며, 이런 것들로부터 귀결되는 ‘프랑스 모델’의 전환이라는 논의이다.[각주:33] 이런 문맥 속에서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과 대의제를 옹호하고 국민(naion)의 재구축을 호소하는 등, 현대정치에 대해 활발한 제언을 계속하고 있다.[각주:34]

그러나 위와 같은 실천적 관심을 배후에 지닌 19세기 연구는 대상에 본래 내포된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훼손하고 이것들을 정태적인 역사관으로 회수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하고 ‘정치적인 것’(일원적 통합원리)의 일관된 우위를 상정한다는 틀로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Constant, Madame de Stäel, C. Dunoyer), 중반기의 사회주의자,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등 ‘사회적인 것’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묻고자 한 사상가들의 상당수가 곁가지에 자리매김 된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상이 ‘자코뱅주의’와 대립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재구축을 모색하고, 사회주의에서 보수주의까지 폭넓은 사상 투쟁을 벌였다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의 지속성을 축으로 삼은 그의 역사관에 대해 복수(複數)의 ‘사회적인 것’의 경합 속에 새로운 질서 구성 원리를 찾아내려는 사상사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은 향후의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 본고는 제31회 사회사상사학회(2006년 10월 22일)의 섹션 「프랑스형 『시민사회』 모델의 가능성 : 피에르 로장발롱을 둘러싸고(フランス型『市民社会』モデルの可能性──P. ロザンヴアロンをめぐって」를 조직한 北垣徹(西南学院大学), 高村学人(立命館大学) 두 사람과의 공동토의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집필에 있어서는 아래의 연구조성의 일부를 활용했다. 平成十七─十八年度文部科学省科学研究費補助金(若手研究B), 平成十八年度新潟大学プロジェクト推進経費(若手研究者奨励研究費).


  1.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1, Paris, Gallimard, 1946, p.13. [본문으로]
  2.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2, Paris, Gallimard, 1950, pp.11-13 ; t. 3, 1954, pp.27-38. [본문으로]
  3.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1978. [본문으로]
  4.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au 19 siècle,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reation of modern political culture, 4 vol., New York, Pergamon Press, 1987-1994. [본문으로]
  6.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서는 다음의 것이 있다. Claude Nicolet, L’idée républicaine en France, 1789-1924, Paris, Gallimard, 1995는 ‘과학’, ‘사회’ 등 19세기의 주요 사상 개념의 배치 속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의 생성과정을 상술하고, 정치사적 서술에 머무는 다른 연구(가령 Pamela Pilbeam, Republicanis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1814-1871, Basingstoke, Macmillan, 1995)와 비교해서 출중하다. Sudhir Hazareesingh, From Subject to Citizen : the Second Empir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French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은 제2제정기의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가톨릭의 담론을 망라하여 검토하고, 그 연방·분권론에 자코뱅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할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생성을 찾아낸다. Laurent Mucchielli, La découverte du social : naissance de la sociologie en France (1870-1914), Paris, Découverte, 1998은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과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착에서부터 당시의 담론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7. 그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첫째, 제도로서의 대표가 부정되는 한편, 혁명운동에 의한 ‘인민’의 대표라는 관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도덕적 일체성에 기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인민’이 대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에 의해 ‘인민’이 창출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이 운동에서 당이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Lucien Jaume, Le discours jacobin et la démocratie, Paris, Fayard, 1989, pp.387-403). [본문으로]
  8. Lucien Jaume, L’individu effacé, ou le paradoxe du liberalisme français, Paris, Fayard, 1997. 또한 좀의 관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저작으로 Lucien Jaume, Echec au liberalisme : les jacobins et l’État, Paris, Kimé, 1990이 있다. [본문으로]
  9. Jaume, L’individu effacé, op.cit., pp.19-21, pp.59-117, pp.124-148, p.340 et s. 독트리네르의 사상이 제3공화정의 체제원리가 됐다는 이해는 후술하는 로장발롱의 기조론에서도 볼 수 있다. Pierre Rosanvallon,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p.358 et s. [본문으로]
  10. 그들을 포함해 최근의 프랑스 논의 상황을 정리한 문헌으로 宇野重規, 『フランス政治哲学』, 東京大学出版会, 2004가 있다. [본문으로]
  11.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94, pp.63-66. [본문으로]
  12.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p.32. [본문으로]
  13. Ibid., p.38. 르포르의 논의는 피에르 마넹(Pierre Manent, 1949~)의 다음의 논의에도 빚지고 있다. Pierre Manent, «Démocratie et totalitarisme : à propos de Claude Lefort», Commentaire, t. 16, 1981-1982, pp.574-583. [본문으로]
  14.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op.cit., pp.171 et s. [본문으로]
  15.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op.cit., p.55. [본문으로]
  16. 고셰의 지적 배경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인류학, 정신분석 등 다양하다. 르포르와의 관계에 관해 고셰는 1966-67년에 그의 강의에 참여하여 ‘선열한 충격을 받고’ 르포르와의 대화로부터 연구 테마를 찾아냈다고 회고했다(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Paris, Gallimard, 2003, p.29). 또한 난해한 고셰의 사상의 도입으로 다음이 편리하다. Marc-Olivier Padis, Marcel Gauchet : la genèse de la démocratie, Paris, Michalon, 1996. [본문으로]
  17. March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pp.1-26. [본문으로]
  18. M.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Paris, Gallimard, 1995. ; «Benjamin Constant : l’illusion lucide du libéralisme», dans Benjamin Constant, Ecrits politiques, Paris, Gallimard, 1997, pp.1-110. [본문으로]
  19.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op.cit., pp.27-35. [본문으로]
  20. M. Gauchet, La condition politique, Paris, Gallimard, 2005, p.371. [본문으로]
  21. M. Gauchet, La religion dans la démocratie, Paris, Gallimard, 1998. [본문으로]
  22. 田中拓道『貧困と共和国』人文書院、二〇〇六年、第四章 ; 同「フランス福祉国家論の思想的考察──『連帯』のアクチュアリテイ」『社会思想史研究』二人巻、二〇〇四年、53-68頁. [본문으로]
  23. Michel Foucault, Se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Paris, Gallimard/Seuil, 2004. [본문으로]
  24. Ibid., p.357. ;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Paris, Seuil/Gallimard, 2004. [본문으로]
  25. 대표적인 예로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Paris, Fayard, 1984 ; François Ewald, L’État-providence, Paris, Grasset, 1986 ; Giovanna Procacci, Gouverner la misère, Paris, Gallimard, 1995 ; Andrew R. Aisenberg, Contagion : Disease, Government, and the ‘Social Question’ in Nineteenth-Century Fra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푸코의 도식과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의 사상사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중요한 연구로는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26. Pierre Rosanvallon, Le libéralisme économique, Paris, Seuil, 1979. 그 내용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론과 근본적으로 겹친다. 18세기의 ‘시장의 발견’을 효율적인 통치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원리로서 위치짓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세미나의 요약에서 이 연구를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op.cit., p.326). [본문으로]
  27. P. Rosanvallon,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2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8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2000. [본문으로]
  28. P. Rosanvallon,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2004, pp.25-105. [본문으로]
  29. Ibid., pp.131-195. [본문으로]
  30. Ibid., pp.218-227. [본문으로]
  31. Ibid., pp.343-360. [본문으로]
  32. Ibid., p.434.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로장발롱이 편집한 La République des Idées 시리즈의 한 권인 La nouvelle critique sociale, Paris, Seuil, 2006. 혹은 P. Culpepper et al. dir., La France en mutation, 1980-2005, Paris, Presses de la Fo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2006. [본문으로]
  34. 로장발롱은 최근 저작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그 불신을 조장하고 키워왔던 기존의 정치사상 연구를 비판한다. P. Rosanvallon,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2006, pp.24 et s. 국민의 재구축에 관해 로장발롱의 「일본어판 서문」, 『연대의 새로운 철학』, 北垣徹訳)「日本ヒ語への序文」『連帯の新たなる哲学』勁草書房, 2006, v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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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1부 1장. 

생명정치학적 고찰

우노 쿠니이치(字野邦一)

 å­—野邦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각주는 모두 뺐으며, 프랑스 및 영어 원본 등과의 대조를 통한 번역 수정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에서 어떻게 번역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1. 묵시록적인 한 구절

지식의 의지(1976)에서 미셸 푸코가 쓴 한 구절(‘죽게 만들 것인가 살게 내버려 둘 것인가라는 고대의 권리를 대신하여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이 초래한 기묘한 충격을 돌이켜봐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on pourrait dire ~)”고 가설처럼 말했던 것은, 이 발언이 품고 있는 매우 중대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내용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것은 불길한 죽음의 고지를 충분히 포함했다. 그저 죽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이중으로 가혹하게 죽음을 하게 만드는 권력은 더 이상 결코 우연도 예외도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규칙[常態]이며 원리이기도 하다고 지적된다.

Histoire de la sexualité, tome 1 : La Volonté de savoir

 푸코는 권리(droit)’권력(pouvoir)’이라는 말을,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엄밀하게 나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죽게 만드는 권리란 군주의 권리였지만, 살게 만드는 권력이란 더 이상 특정한 인격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행정 등의 기관들에 의해서 분절되고 오히려 익명의 권력으로서 분산되고 국민의 생명에 대한 관리, 통제, 조절을 면밀하게 실천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군주는 눈에 보이는 노골적인 힘을 행사하여 사람을 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명백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근대의 사회가 원리적으로 보다 잔혹하게, 음험하게 생명을 말살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말살해 왔다는 것을 푸코는 지적했던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 결코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중추적 원리로서 작동하는 아포리아를 똑바로 가리켰던 것이다.

 “대량학살은 사활의 문제가 된다.” 전쟁의 결정은 살아남는가 아닌가라는 노골적인 물음을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핵무기 하의 상황은 이런 과정의 도달점에 서 있다.”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인 인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 푸코는 몇 쪽에 걸쳐, 이렇게 암흑의 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묵시록적 기술을 재빠르고 민첩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나치즘의 우생학적 재편성에 관해서, 또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의 학살에 관해서도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생명정치’, ‘생명권력이라고 부른 것은 엄밀하게 서양의 18세기 중엽에 출현했던 것으로 간주되고,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을 뒷받침하는 신체가 그 초점이 되었다. 또한 생물학적 과정이란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이며,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조건이라고 푸코는 설명한다. 생명정치는 이전에 그가 감시와 처벌(1975)에서 정밀하게 묘사했던 신체를 둘러싼 훈육[調敎], 규율의 시스템과 연동하여, 더 이상 군주의 권리로서도, 모든 주권이나 법권리의 형태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권력의 그물망을 세계로 뻗쳐나간다.

 그리고 지식의 의지성의 역사1권으로 썼기 때문에, 바로 생명/의 정치는 의 정치로서, 신체의 훈육·규율이라는 측면과 생식을 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제·관리라는 또 다른 측면을 연동시킨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과 더불어 분절되는 을 여전히 법에 의한 단속이나 검열이나 금기, 그리고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은, 새로운 생명권력 그 자체에도 깊이 침투되어, 이것에 편입[기입]됐던 생명과 성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푸코는 바로 이것에 역점을 두고 지식의 의지를 마무리했지만, 오히려 이 책을 둘러싼 논의도 자주, 성은 과연 억압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욕망이나 성적 억압은 오랫동안 정치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에서도 쟁점이었기 때문에, 푸코는 여기서도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성을 둘러싼 권력은 강대한, 눈에 보이는 중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도처에 분산되어 있는, 무수한 점을 통해서, 내재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이 권력은 일정한 중심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분할할 수 없다. 이 전제에 관해서도, 만일 권력이 그렇게 비집권적이고, 거의 실체를 결여한 것이라면, 반권력의 투쟁은 더 이상 불가능한가라는 의문도 항의도 나왔다(“권력은 도처에 있다. 모든 것을 아우르기 때문이 아니라 도처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푸코가 조금 묵시록적인 어조로 재빨리 말했던 생명정치학, 지식의 의지가 간행되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논의를 야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게 만들거나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이라는 무서운 지적은 내 머리 속에도 내려앉아 사악하게 맴돌면서 불길한 인상을 계속 내뿜었다. 푸코는 극히 엄밀한 저자인데, 누구나 아는 인간의 종언이라는 도발을 포함한 주요 저서도 있으니, 결코 묵시록적인 발언을 스스로에게 금지해 왔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종언은 엄밀하게 서양의 담론형성체가 어떻게 인간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내고 변경해 왔는가라는 고찰의 한 결론이며, 그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한정된 문제계 속에서 엄밀하게 말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관한 그 담론의 종언이란, 그대로 인간의 종언이라는 묵시록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푸코는 충분히 진지하고 노골적이며 도발적이기도 하며, [실제로] 훌륭하게 도발에 성공했다. 담론 형성체[편성]에 관한 엄밀한 분석과 더불어 인간의 종언에 관해 말했기 때문에, 그것은 사상사적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또한 인간의 종언에 못지않게 묵시록적인 시사였다. 이것도 또한 서양 근대의 어떤 시점에 위치지어질 수 있는 역사적, 제도적인 권력기구의 엄밀한 고찰에서 나온 제안이긴 했지만, 푸코는 순식간에, 몇 쪽에서, 20세기의 강제수용소나 핵무기의 위기까지 생명정치의 정의를 확장하고 있다. 미증유의 규모로 냉혹한 죽음을 초래하는 생명정치론은 또 다른 인간의 종언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가능성이 바로 폭발하듯이 현실화하는 것이 20세기의 전쟁과 수용소였다고 한다면, 푸코는 그 조짐을 이미 수세기 전의 서양에서 발견하고, 이 세계의 체제가 점점 더 생명정치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다.

 환경파괴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아직 지구적 규모의 위협이 되기도 전에 인간은 이미 생명정치에 의해서 위기적 상황을 척척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환경과 인구에 대해서조차 이미 생명정치는 다양한 작용을 끼쳐왔음에 틀림없다. 생명과 죽음의 권력을 둘러싼 푸코의 도식은 극히 간략하며 간단할 뿐으로, 충격적이지만, 면밀한 논증을 결여하고 있으며, 반드시 진실을 알리는 언표로서 독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튼 밑도 끝도 없는 규모에 걸친 심각한 문제제기였다.

 

2. 정치의 과제는 생명이 아닌가?

푸코는 한나 아렌트의 책을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내 머리 속에서 생명정치학은 아렌트가 물었던 정치와 생명이라는 문제에 직결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렌트의 정치학은 공공성개념과 한 몸을 이루며, ‘공공성이란 어디까지나 복수성을 존중하고, 상이한 의견을 격렬하게 주고받으며 겨루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공공성과 이것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행동이 그녀에게 그대로 정치의 내용이 됐다.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이상을 외골수로 계속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의 비판적 사색은 공공성을 단순한 이념으로 폄하하는 현실의 정치적 과정을 겨누었다. 그리고 공공성의 창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는 역사의 다양한 과정에서 실현되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 정치의 앞에, 바로 커다란 위험으로서 가로막고 있는 것은 생명의 위기라는 사태였다. 아렌트는 단적으로 이렇게 쓴다.

 “만일 정치가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생존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정말이라면, 실제로는 정치는 스스로를 말소해 왔던 것이 된다.” 아렌트에게서 현대세계가 손에 넣은 절멸전쟁의 가능성을 앞에 둔 정치란, 더 이상 정치의 기본적 요건(공공성, 자유)을 결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이기도 하며, 인간이나 어쩌면 이 세상의 생명체 전체가 더 생존할 수 있는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문제는 모든 정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며, 현대의 조건 아래에서는, 정치와 생명의 유지가 서로 조화한다는 것이 의심스럽게 보이게 된다.”

政治とは何か

 이런 사고에 있어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이라는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원래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생명의 유지(살게 만드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활동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아직 생명정치학적 문제가 출현하기 전의 고전적 정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곧 통치가 아니며, 생명유지를 도모하는 체제도 아니라고 계속 말하면서, 아렌트는 한결같이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계속 주목했다. 이 정치에 있어서 궁극적인 적(반대물)으로 전체주의를 상세하게 연구하는 책을 썼다. 또한 공공성의 사고를 칸트의 세 번째 비판서(판단력비판)의 미학적 판단에 비춰서 더욱 심화시키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생명정치학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과 비춰봄으로써,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명정치는 생명을 배려하고 통제하는 정치로서 출현하지만, 이때 생명정치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며, 이 둘 사이에도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는 것임은 틀림없다. 아렌트는 생명을 목표로 하는 정치그 자체에 강한 부정을 피력하고, 그리스의 폴리스나 미국의 독립혁명을 재평가하며, 거기서 실현된 공공성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저 회고적으로가 아니라, 새롭게 실현하고 구성해야 할 정치로서도 그것을 말했다.

푸코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다시금, 오늘의 세계에서 정치가 생명과 어떻게 마주대하고, 생명을 어떻게 다루고, 조작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정치는 무엇을 하는가를 재차 묻게 된다. 정치가 생명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인 듯 싶지만, 그것은 꼭 자명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치가 아닌데도 그래도 똑같이 정치라는 말이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시대부터, 특히 생명을 배려하게 됐다고 얘기되는 정치는 도대체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표현하며 무엇을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없었는가? 아렌트의 비판은 단순히 정치는 무엇을 잃었다가 아니라, 생명정치 이전의, 혹은 생명정치 이상의 정치를 눈여겨보면서, 생명정치에 에워싸이게 된 정치를 재고하기 위한 시사로서 독해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의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라는 정식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8세기 중엽에 출현하여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등을 치밀하게 배려하게 되는 살게 만드는 권력이 왜, 어떻게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일 수 있었는가, 삶의 권력이 어떻게 죽음의 권력으로 변형할 수 있었는가, 그것에 관해서도 사실은 푸코는 그렇게 설득력 있게 쓰지 않았다.

 절멸전쟁의 가능성과 더불어 있고, 절멸인가 아닌가라는 선택에 몰입하는 정치에 관해 아렌트뿐만 아니라 푸코도 절멸수용소와 핵무기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문제 삼았다. 그리고 환경파괴나 인구폭발은 또 다른 생사에 관련되는 정치의 과제를, 명백하게 들이댔다. 이것들은 어느 정도 생명정치학적 문제이며, 또한 적지 않게 생명정치적인 변화가 산출했던 결과이기도 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들을 그저 묵시록적인 비전으로 용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다른 차원, 다른 수준의 문제로서 재고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정치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각각으로 풀어 헤쳐져 고유한 수준에서 생각해야 할 상이한 물음이, 모두 빠짐없이 거기에 한꺼번에 밀어닥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묵시록은 도처에서, 영화 속에서도, 철학 속에서도, 특히 미디어 속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3. 생명정치인가, 구성적 정치인가

그리고 생명과 정치의 맥락에, 설령 절멸전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요인이 개입함으로써 질문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아무튼 전쟁은 생명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를 전제로 한다. 적의 생명은 말살해도 상관없는 최저의 가치밖에 갖고 있지 않다. 위협 받고 있는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쟁의 이유라 해도, 이를 위해 자국민(의 일부)도 희생시키는 것 전쟁의 전제이며, 어디까지나 국민보다 국가가 소중한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폭력비판론(1921)에서 정치적 폭력을 둘러싼 아포리아에 관해 쓰고 있다. ‘인간이란 인간의 생명과도, 인격과도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도그마는 결코 자명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깊이 있게 이 도그마의 유래를 추구하기보다도, 벤야민의 관심은, 법과 더불어 있는 폭력의 양의성으로 향했다. 법을 유지하기 위해, 법에 의해 한정되고 규제되는 폭력(예를 들어 경찰), 법의 바깥에 있어서 법의 규제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정립하는 폭력(예를 들어 혁명)과 자주 구별되기 어렵다. 그러한 불분명한 폭력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생명도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즉 법적 질서의 주변에 놓이게 된다. 문학, 언어, 이데아를 예리하게 비평하는 새로운 유물론을 전개한 벤야민의 사고의 근저에는 구성적인 정치 또는 정치의 구성적 차원에 관해 그토록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는 것은 잊기 힘들다.

 나치즘이 출현한 시대에 구성적 권력을 둘러싸고 이토록 눈부신 사유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명정치()’라는 말을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말이 가리키는 정치의 급변은, 생산과 금융과 기술을 통해 가속화된 자본주의와 연동하여 세계를 크게 뒤흔들고, 그러한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게 되었다. 벤야민의 폭력론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도, 그리고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의 정치학도, 그런 역사적 동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론마저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존재자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외는 통상의[정상적인] 사례보다 흥미롭다.” “법률학에서 예외상태는 신학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도발적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슈미트는, 역시 정치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고, 때로는 바로 도착적인 신학과 닮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생활의 철학은 바로 예외나 극단적인 사례에 대해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최고도로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 생활의 철학에 있어서는, 통상[정상]보다 예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역설을 좋아하는 낭만주의적 아이러니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되풀이되는 사례의 명백한 일반화 이상으로 핵심부로 파고드는 통찰이 지닌, 철저하고 고지식함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이렇게 쓴 그는 확실히 아주 진지하게 법적 사고의 극한에서 사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통례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통례는 원래 예외에 의해서만 살아간다. 예외에 있어서야 현실생활의 힘이, 반복으로서 경직된 관습적인 것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라고까지 결론을 내리는 법학자는, 한 개인의 자질을 넘어서, “예외적인시대의 예외적인 정치적 압력에 실로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아마 슈미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사고 형태가 나치즘의 추진력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구성적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물음은 슈미트의 경우처럼 예외상태에 대한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는 아렌트가 계속했던 공공성의 창출에 초점을 맞춘 사고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마도 공통의 배경을 가지면서도 또한 정반대의 사상을 형성했던 것이다.

 얼핏 보면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학은 그러한 구성적 차원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푸코는 특히 정치적 실천에 관해서는, ‘대표대의[재현, 표상]’에 이끌리는 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정당정치와도 맑스주의와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 정신병원이나 감옥의 탄생에 관해 정밀한 역사학적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다른 정치를 제안한 것이며, 지식의 의지에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에 대해 저항하는 힘에 관해, 약간이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서술을 남기고 있다. “요구되고, 목표의 역할을 하는 것은, 근원적인 욕구이자 인간의 구체적인 본질로서, 그의 잠재적인 힘의 성취이며, 가능한 것의 충만으로서 이해된 생명이다. 그것이 유토피아인가 아닌가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거기서는 극히 현실적인 투쟁의 과정이 있다.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생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관리하고자 기획한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전시키는 것이다. 권리보다도 훨씬 생명 쪽이 그때, 정치적 투쟁의 관건=목적이 되었으며, 그것은 이 투쟁이 권리의 확립을 통해서 주장되었다고 해도 다를 바 없다.” 푸코에게서는 적어도 이 생명정치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새로운 정치와 저항이 구성되고 있고 구성되어야 하며, 거기서도 또한 하나의 구성적 차원이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용기를 갖고 진리에 관해 말하는 것”(파르레시아)을 통해서, 혹은 자기에의 배려로서 푸코가 추구했던 것은, 아렌트나 슈미트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정치 이전의,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 차원을 어떻게 사고하는가라는 과제였다. 그저 자기를 배려하는 것, 자기와 어떻게 관계하는가는 것조차, 그것은 결코 제도나 도덕을 자명한 소여로서 간주하지 않고, 이것들의 외부에서, 자립적으로, 어떠한 자기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다. ‘생명정치학이라는 질문에, 푸코 자신은 그다지 정밀한 대답을 주지 않은 채 그저 이 질문을 겸손하게, 그러나 도발적으로 제기했다. 그 질문은 충분히 도발적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푸코는 짧은 말년에, 그리스-로마의 문헌에 파고들어가, 먼 시공에서부터,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답을 계속 보냈다. 마치 생명정치학이라는 문제 등, 이제 잊어버렸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하여 푸코는 끈질기게 계속했다고 생각한다.

 

4. 생명정치의 냉소주의, 일본의 호모 사케르

또 하나, 여기서 오늘날의 생명정치학적 상황에 관해서, 상당히 단정적으로, 절망적 선언처럼 쓰인 말이 있다. “우리의 정치는 오늘날, 생명 이외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1995). 생명정치는 더 이상 정치의 일부를 이루는 것도, 미래의 징후도 아니며, 더구나 정치에 있어서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면화했다는 지적이다. 아감벤은 확실히 푸코로부터 생명정치라는 문제를 받아들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사고의 모티프는 오히려 칼 슈미트에 친화적인 것 같다. ‘예외상태에 대한 이론적 열정과 같은 것이, 아감벤의 사고를 견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예외는 그저 규칙의 외부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면서도 내부에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게 불분명한영역에 있는 인간은 호모 사케르’(성스러운 인간)라고 불린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예를 얼마 내놓지 못한다. 고대 로마에서 경계석을 무너뜨린 것,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식, 손님을 부정하게 대우한 주인처럼 죄를 저지른 것은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불리며, 이런 인물은 살해 가능하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 없다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졌다. 그는 예외상태에 놓이며,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이런 불분명한 상황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아감벤은 벌거벗은 인간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예외상황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가? 그것이야말로 주권이라 불려야 하며, ‘주권은 바로 이러한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능력이며, 또한 예외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

 분명히 주권은 헌법을 제정하고 정체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는, 그 헌법이나 정체의 외부에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규정된다는 의미에서는 내부에 있다. 아감벤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권과 호모 사케르는 동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성적 권력인 주권과,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은, 동일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더라도, 동일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호모 사케르는 또 다른 형태로도 존재한다. 그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영웅을 닮았지만, “싸우기 전에 자신을 죽은 자의 신들에게 장엄하게 바쳤으나 전사하지 않은 자이다(그들은 데보투스devotus라고 불린다). 출전하기 전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이 인간은 이제 살아 돌아오더라도 세속에 속할 수 없다. “그의 생명은 세속적인 삶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종교적 생명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이중의 배제에 있어서 분리되며, 이제 죽음과의 깊은 공생에 들어선다는 것에 의해서만 정의되며, 그렇지만 아직 죽은 자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생명이다.”

 이리하여 호모 사케르와 데보투스, 그리고 주권에 있어서, 동형적인 것, 마찬가지로 배제적 포함의 논리를 보고, 마침내 아감벤은 단숨에 묵시록적 결론을 부여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 생명 그 자체가 전례없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호모 사케르라는 모습으로 미리 규정할 수 있는 형상이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 예외상태의 정치학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생명이 어떻게 정치에 포함되 고 방어되며 어떻게 배제되고 유기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생명을 에워싼 정치가 어디에서 왔는가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 깊게 검토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구는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하며, 또한 사례의 분석에도 그다지 들어서지 않으며, 아주 도식적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아감벤의 관심은, 미리 추상화된 도식 쪽에 있으며, 그가 다루는 예외상태자체에 결코 예외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잔혹한 전쟁을 겪고 귀환한 인간은 적어도 예외적이고 불분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에서조차 많은 호모 사케르들이 실재했다. 이가라시 요시쿠니(五十嵐恵邦), 패전과 전후 사이에서 : 늦게 돌아온 자들(敗戦戦後のあいだで れてりしたち(2012)은 바로 일본의 전후에 겪었던 예외상태를 통해서, 전쟁에서 전후로 굴절된 역사적 시간을 비추고 있는 책이다. 이가라시생명정치학호모 사케르도 언급하지 않지만, 이 책은 분명히 생명정치의 거대한 사례로서 일본의 전쟁과 전후를 재고한다는 과제를 시사하며,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五十嵐恵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시에 적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길고 가혹한 생활을 한 뒤에 돌아온 자는 이른바 살아 있는 영령(英霊)’이며, 바로 희생물로 바쳐진 뒤에 살아남았다. 혹은 전투 중에 군의 지휘를 벗어나 고립상태에 있었던 병사는, 패전을 알지 못한 채, 또는 알게 되었더라도 전혀 믿지 않은 채, 밀림에 틀어박혀 가상의 적과 계속 싸운다(요코이 쇼이치横井庄一,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郎의 예). 일본의 전후에 나타난 호모 사케르는 전후에 억압되고 중화되어 버린 내셔널리즘을 새롭게 소생시키기 위한 절호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오노다보다 조금 늦게 귀환한 마지막 일본군나카무라 데루오(中村輝夫)는 대만인이며,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일본국적이 아니라 대만에 속해 있었다. 나카무라는 이리하여 예외적 전후를 살아남고, 또한 귀환하더라도 구식민지 출신자로서 예외상태에 놓이며, 대만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화제가 되지 않고 3년 반 후에 병사했다. 나카무라는 더욱이 대만에서도 고사족(高砂族)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대만어를 말하지 않았다.

 이가라시는 소련·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된 뒤에 귀환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썼다. 특히 시인 이시하라 요시로(石原吉郎)의 억류와 귀국 후의 생애에 여러 쪽을 할애했다. 억류자도 또한 겹겹이 예외상태를 살게 되었다. 우선 예외적으로 가혹한 억류와 강제노동이며, 10만이라는 엄청난 사망자 사이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예외적 체험이며, 일본으로 돌아오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결코 그들은 환대받지 못했다. 원래 <전범>으로 구속된 <예외자>이며, 소련에 억류된 동안에 <공산주의에 고취됐을> 수도 있으며, 거꾸로 소련의 수용소의 비인간성을 탄핵한다면, 이번에는 소련에 대한 비판을 듣고 싶지 않은 좌익으로부터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극한 상태에서 많은 사망자를 목격했던 억류자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죄책감으로서 무겁게 품게 된다. 이리하여 몇 겹이나 겹치는 예외상태는 그저 귀환자를 불분명한 중지상태에 둘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을 꿰뚫어 황폐하게 해 버릴 수도 있다. 돌아온 이시하라 요시로는 시를 씀으로써 그러한 예외상태를 살아남고, 황폐를 견디며, 황폐에 저항하고자 했음에 틀림없다.

 분명히 예외상태를 둘러싼 냉소주의라는 문제가 있다. 예외자는 예외상태를 초래하는 권력의 객체가 되며, 억류자는 소련으로부터, 일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그리고 어쩌면 몸 안에서부터 압력을 받고 협공을 당하며 혹은 유기되며, 더욱이 그러한 압력을 스스로 자기의 심신을 들볶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외자를 어떤 시스템의 객체(대상)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냉소주의적 입장에 서는 것이다. 아감벤은 때로 섬세한 본질적 비평을 전개하는 필자이기도 하지만, 생명정치와 예외상태에 관해 생각할 때의 그의 입장은, 이런 의미에서 어디까지나 냉소적이다.

 예외자가 된 주체가 황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거부하는가, 이가라시의 책은 바로 이 점을 건드리고 있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위치로부터 고발하지 않는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의 주체를, 정치적 또는 역사적 힘으로 해소하지 않겠다는 결의이기도 하다. , 피해자로서 규정된 자기는 보다 큰 역학에 의해 산출된, 양의적인, 이른바 그림자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이시하라는 이것에 맞서서, 자신의 체험을 정치 그리고 역사로부터 분리하고, 자기를 행위자로서 재생시키고자 한다. , 자신의 체험을 수동적, 반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입장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외자(호모 사케르) 속에는 생명정치의 냉소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며, 대항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속하는 냉소주의마저도 관통하여, 또 다른 냉소주의가 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일본어가 아니라, 외국어도, 우리말도 아닌 언어가, 절단하면서 비약하는 언어가, 시로서, 의미의 극한으로 결정화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Lager] 후에도, 그 체험을 둘러싸고 아직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라는 게 있었다. 더 이상 시는 불가능하며, 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언어 자체에 숨어 있는 힘의 기구를 찢어버리고 의식의 냉소주의를 금가게 하는 말을 찾아내야만 했다.

 생명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의 예외성, 호모 사케르라고 불리는 인간의 상황은, 호모 사케르가 객체라고 간주되는 동안에는, 마치 논리적으로 동형적으로 보이지만, 살다가 죽는 주체로서 그것을 본다면 동형적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엿볼 수 있는 <생명권력의 외부의 삶>에 관해 말하는 말과 논리를 추적해야 한다. 더 이상 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삶의 상황에 의해 찢겨지고 또한 호흡하는 말이 쓰여졌던 것이다.

 애당초 정치 제도와 법적 언어는 생명의 외부에 있으며, 생명은 원래 정치 속으로도, 법 속으로도 포섭되지 않는다. 이 완전히 자명한 사태에서 출발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몇 가지 예외 상태(의 정치학)를 살펴봤는데, 이러한 예외상태에 대해 말하려면, 정치와 법이 예외 없이 생명의 세계를 모조리 덮어버린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와 법이 오히려 예외이며, 예외적인 창조였다는 것을 슈미트도 아감벤도 결코 전제로 하지 않는다.

 아감벤은 법과 언어의 본질적인 가까움에 대해 썼다. “어떤 단어가 현실성에 있고 실제로 내뱉어진 담론의 심급에 있어서 현실의 한 절편을 외시할 수 있다는 힘을 획득하는 것은, 그 단어가 비-외시(, 언어로부터 확실하게 구별된 언어. 담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사용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어휘로서의 순수한 정합성으로서의 단어)에 있어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적) 규범이 개별 사정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규범이, 주권에 의한 예외화에 있어서 순수한 잠재력으로서, 현실성에 있는 실제의 참조가 모두 중지되어 버린 곳에서 효력을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언어의 외부에, 언어가 촉지할 수 없는 삶의·차원이 퍼져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아감벤에게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외부에 (예외로서) 있는 것은 오히려 언어가 (파롤로서) 개별적으로 사용되고 지시를 하기 이전에 체계(랑그)로서 언어를 성립시키고 있는 잠재력이며, 그것이 법규범에 있어서 역시 예외적인 주권의 잠재력과 대비되고 있다. 확실히 언어는, 그 자체는 무의미한 형식(체계)에 의해 의미작용을 가지며, 법 또한 개별 사례에 적용되기 이전에 이른바 <명법>의 형식이라는 것에 의해서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언어와 법은 똑같은 형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볼 때, 형식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작위이며 선택이다.

 이렇게 동형적으로 파악된 법-언어에 있어서, 외부란 어디까지나 내부에 포섭되는 <예외>이며, 아감벤의 사색은 이런 토폴로지에 대해 면면히 이야기는 해도, 그의 정치학은, 결코 삶에 대해, 살아 있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호모 사케르가 단순히 그렇게 닫힌 시스템의 대상이며 효과일 뿐만 아니라, 그런 냉소적인 토폴로지 속에 있더라도, 또 그것을 더욱 변형하는 토폴로지를 만들어낸다면, 삶과 정치 사이에, 다른 맥락이 발견되지 않을까?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관리하려고 시도했던 시스템을 거슬러 역전시킨다고 푸코가 암시할 뿐인 것에 머문, 그런 역전은 도처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종인 신체는,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된 신체를 둘러싼 생명정치에 대해 푸코가 썼던 것으로 돌아가자. 살아 있는 주체 쪽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생명정치를 앞에 둔 생명이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보지 못하고, 그저 생명정치가 산출하는 예외상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생명정치는 결코 법과 더불어 있는 사회에 면면히 존재한 예외상태의 한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감벤은 생명정치를 단숨에 보편화하려고 하며 이렇게 쓴다. “현대의 문화에 있어서, 모든 다른 투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정치투쟁이야말로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투쟁이다. , 서양의 정치학은 기원에서부터 동시에, 생명정치인 것이다”(열림, 2002).

 사실은 생명, 생물, “살아 있는 종으로서 파악되게 된 인간을 둘러싼 정치에 대해, 그런 정치에 포위된 삶에 대해 아감벤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외상태에 다름 아닌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 강제수용소의 빈사(瀕死)의 삶과 포개서 동물상태라고 형언하고 있으나, 동물은 항상 가스실에 내몰린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 생물로서, 생물학적으로, 혹은 임상의학이나 해부학이나 유전학에 의해 파악되게 된 인간은, 확실히 정치에 있어서,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대상으로서 나타나며, 그것에 대해 정치도 권력도 변질되어 갔음에 틀림없다. 아마 인간의 살아가는 힘, 의지, 욕망도, 그것에 대해 변질되었다. 또한 동시에, 삶과, 살아 있는 신체가, 새로운 힘관계 속에 개입하게 되었다. 동물이기도 한 인간이, 새로운 빛에 비춰지게 된 것이다. 생명정치의 세기가 오기도 전에, 스피노자 윤리학은 이미,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인간의 의식보다 훨씬 정교하게 다양한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동물의 생명을 긍정하는 윤리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예외 없이 생명을 배려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정치가, 더욱이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생명정치의 사상가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슈미트가 말하는 신학적 기적처럼 말해진 것이 아닐까? 사실은 푸코의 말투조차도 이 기적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기적을 예외상태의 정치학으로서 초역사적으로 논리화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전혀 기적이 아니니까), 생명을 둘러싼 정치에 있어서, 생명과 정치 둘 다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압력과 힘관계에 포위되면서 변용된 생명은, 이 힘의 시스템의 표적이 되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를 어떤 힘으로서 재구성하고, 지속하고 어떤 생명의 주체이고자 했는가?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을 결코 배제해온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것을 새롭게 억누르려고 했는가?

 확실히 아감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으며, 오히려 정치의 구성적 차원이기도 한 예외상태가 어떤 부조리한 폭력을 산출하는가에 특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강제수용소라는 예외상태에 관해서도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 독일의 사상가들이 상이한 입장에서 주의를 촉구한 구성적, 발생적 차원에서의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 비추어 생명정치를 파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정치를 그저 예외상태(동물상태, 불분명 상태)의 정치(오히려 논리학이라고 해야 할까)로 환원함으로써, 바로 생명정치에 노출된 생명이라는 주체를 둘러싼 사고는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것이다.

 

 

5. 두 개의 계보, 항쟁

여기서 바로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에서, 생명 그 자체에, 그리고 생명의 조건과 생명의 표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범위에서는, 분자생물학이나 유전자학에 대한 정밀한 방향에 분화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진화론이나 우생학처럼, 때로는 과학적 엄밀성을 넘어선 도그마로까지 생물학적 사고는 확장됐다.

 임상의학, 해부학, 생물학 같은 지식이 연동되고, 생물, 생체로서의 인간의 파악이 진화되어 가는 동시에, 그런 지식은 당연히 통치 속에 편입되고,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과제를 가져다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문맥에서 푸코는 살게 하는정치에 주목했으나, 확실히 이 생명의 지식은, 생명에 깊이 침투하여 생명을 조작하는 지식이기도 하며, 생명이 어떻게 영위되는가를 세밀하게 알고 통치하는 것은, 거꾸로 어떤 조건에서 생명이 죽음이 될 수 있는가, 생명을 살해할 수 있는가를 알면서 통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의 차원이란 생식의 영역이기도 하며, 즉 성적 활동이기도 하며, 성을 둘러싼 지식도 이런 생명정치적 전환에 편입되며, 이윽고 성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정신분석도 그것에 합류하게 된다.

 푸코가 생명정치를 단숨에 강제수용소나 핵무기로까지 관계시켰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성급하게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조작하려는 지식의 체계는 분명히 평행하여 물질에도, 또한 이윽고 무수한 생명을 순식간에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을 산출하는 게 됐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물학과 진화론이 초래한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는 표상을, 정치적 표상으로서는 재구성하는 과정이 진행되어 간 것이다. 나치즘에는 이렇게 상이한 출신을 지닌 경향이 쏟아부어져 합류됐음에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로 뒤덮어버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동일한 경향을 공유하면서 공진했다는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은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과 신체,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형이상학이나 종교적 세계관이 점점 더 의심을 받게 되고 신체, 동물의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에 새로운 빛이 비춰지게 됐다. 17세기의 서양에서는 확실히 신체와 동물의 생명이 재발견되고, 더욱이 상이한 빛 속에서 재발견됐다.

 데카르트는 당시의 의학이나 해부학에 통달하고, 신체를 정념의 자리로 정의하며, 어디까지나 관리하고 조작하고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서, 바로 신체의 생명을 정신과 이성으로부터 분할했다. 이미 데카르트 속에, 생명과 신체를 대상화하는 생명정치적 지성이 엿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한 스피노자는, 신체를 조작할 수 있는 의식도 자유의지도 부정하고,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신체, 생명, 심지어 자연의 <능산성> 위에 이성을 정초하려고 했다. 이것도 또 다른 생명정치적 윤리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윤리에서, 생명은 관리되고 조작되어야 할 권력의 객체가 아니다. 스피노자에게서는 이 생명이야말로 주체이며, 그 요구의 연장선상에 하나의 정치가 구상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명을 둘러싼 철학과 정치에 관해서, 여기서 적어도, 서로 뒤얽힌 두 개의 계보가 부상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2000)에서, 서양근대의 중심에 있는 갈등으로 지적한 것은, 아마 이것과 관련된다. “근대성의 중심에는 하나의 갈등이 있다. 즉 한편에는 사람들의 욕망과 연합으로 이루어진 내재적 힘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다른 편에는 사회적 영역에 질서를 강제하고 강요하는, 전체적 지배력을 지닌 권위에 의한 강력한 관리가 있으며, 이것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갈등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사이의 철학적 대립으로서 출현된 갈등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내재성으로서 생명의 힘을 긍정하는 공동체와, 그 생명 위에 군림하면서 정밀한 관리의 그물망을 펼쳐가는 생명정치 사이의 뒤얽힘에도 연쇄했다.

 스피노자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니체가 이 한쪽의 계보 위에 부상하게 됐다.

 니체의 철학은 확실히 생명을 새로운 빛 속에서 바라보는 생태주의로서, 서양의 형이상학, 종교, 과학을 바로 생명의 적으로서 단죄한 것이다. 아마 생명정치적 지식과 실천은 다양한 반응이나 저항을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생명정치라고 불리는 것도, 인간의 삶을 샅샅이 포위하는 새로운 체제로서 의식되는 것도 없는 채, 다양한 반응, 반향, 반항을 초래했으며, 거꾸로 그런 반발에 더욱 더 대답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철학이 담고 있는 생물학주의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 있어서 유력한 특정한 생물관이, 식물계와 동물계로부터 다른 존재자의 영역으로, 예를 들어 역사의 영역으로 전용되고자 한다면, 이것을 생물학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생물학주의라는 이 명칭은 이미 말한, 생물학적 사고가 생물학에 고유한 영역을 넘어서 확장되고, 아마 과장된다고 하는, 앞에서도 언급한 경계 침범을 표시하게 된다.” 그러나 니체가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존재으로서 생각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하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하는 것이다. 사실 생물이 무엇인가라는 것,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결코 생물학은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철학만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존재감보다도 생생한 존재관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도 그는 적고 있다. 요컨대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의 본체는, 어디까지나 존재의 철학 쪽에 있는데도,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주장 쪽에 정신이 팔려 니체의 존재론적 핵심에 이르지 못하는 피상적인 독해방식을 하는 세간의 경향을 하이데거는 비판한 것이다.

 도대체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른바 <사이비 진화론>으로 읽혀지고, 위험한 우생학적 발상을 자극하고, 마침내 나치즘의 <생명정치>에 거둬들여지는 사태도 분명히 일어났다. 그런 니체 속에, 사실은 어떤 생명정치가, 혹은 내재적, 능산적인 삶의 철학(스피노자의 계보)이 잠재했는가? 어디까지나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근거에 있는 존재의 형이상학의 깊이를 읽으려고 한 하이데거의 사색은, 어떤 계보를 짊어질까? 아니면 그는 모든 계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독창적인 사상가였을까? 그 하이데거는 생명정치의 가속화된 실례였을지도 모르는 나치즘에 접근했으나, 니체는 생물학에 접근하면서 생명정치의 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어디까지나 그 외부에 다른 <삶의 철학>을 세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각각이 때로는 물구나무 세우기를 포함한 입장에 서면서, 생명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VI. 니체, 그리고 아르토의 응답

니체는 어떻게 생물학을 이해하고 어떻게 주체를 생물학화하고, 오히려 주체를 생물로서 해체하고, 생물이라는 별개의 주체를 발견했던 것일까? 바르바라 스티글러의 소책자 니체와 생물학(2001)은 이 문제를 면밀하게 뒤쫓고 있다. 예를 들어 루돌프 루드비히 칼 비르효(1821-1902)의 세포에 관한 고찰을 이어받아, 니체는 생물의 근원적 과정을, 자기에 있어서 미지의 타자가 <자극>으로서 나타나는 장면에서 보고 있다. 그 자극(의 인상)이 고통을 안길 때, 생물은 자극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동화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체는 환경으로부터 고립된 동일한 것(동일성)이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향에 반응하고 타자의 이타성을 동화하는 주체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의식도 주체도 동일성도 아니고, 그저 그것 자체성(ipséité)이라고도 불러야 할 뭔가이다.

 니체는 생명과 생물 속에, 의식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를 본다. 결코 생물에 목적론이나 초월적 이념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생물학(특히 발생학의 창시자 빌헬름 루, 1850-1924)을 따라서, 생물의 자기형성 과정을, <자기 조정>이며 <내적 투쟁>이기도 한 과정으로서 고찰한 것이다. 다만 환경에 의한 도태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 생명의 진화를 생각한 다윈은, 이런 발생에 비하면, 결코 생물의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니체는 빌헬름 루에게서 배우고, 생물의 내부의 미세한 단위에서까지 차이, 부등성, 복수성, 서열, 투쟁, 조정작업을 발견하려고 한 것이다. 생명체에 있어서의 조화와 안정과 동일성은, 이런 과정에서, 그 효과로서 사후적으로 출현할 뿐, 결코 과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생명에 있어서의 차이는 지속하고 영속하는 것이지, 결코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권력에의 의지, 이런 차이의 의지로서 생물을 관통하고, 인간도 관통하는 것이다.

빌헬름 루


 그러한 니체의 사고는 생물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외부세계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수동적으로 행동한다고 봤던 에른스트 헥켈(1834-1919)에도 대립하며, 오히려 단절이나 비연속의 힘으로서 생물의 <의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스티글러에 따르면, 니체는 이렇게 동시대의 생물학이나 생물학적 사고에 크게 촉발되고, 또한 그것을 비판하면서 생물에 대한 사고를 중요한 모티프로서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제련해냈던 것이다.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예정조화적으로, 균형이나 통합(이른바 도덕적 이상)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허버트 스펜서(1820-1903)에게도 니체는 비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화><균형>은 사후적으로 그러한 상태를 드러낼 뿐이며, 어디까지나 차이의 항쟁 그 자체가 생명과 그 진화의 과정을 인솔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수없이 겹쳐지며, 도태가 거듭되는 가운데 진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생물계에서의 도태도 항쟁도, 매우 온화하게 점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생물은 끊임없이 이상(異常)이나 예외를 산출하는 것이며, 변화나 항쟁이야말로 정상常態인 것이다.

에른스트 헤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에른스트 헥켈

 다윈도 스펜서도 개체로서의 생물의 짧은 시간 스케일에서는, 동일적으로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개체와 개체성을 전제로 하여 생물계를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에게 있어서 개체는 결코 자기에 일치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차이화하는 것이며, 생물의 자기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형성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어 온 우생학적 사고도, 사실은 똑같은 경향으로 관통되고 있다. 그는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책을 읽고 공감했다고 한다. 스티글러의 독해에 따르면, 골턴의 우생학은 나치즘이 채용한 듯한 사이비 다윈주의와는 한 선을 긋는[다른] 것이었다. 골턴의 시각에서는, 자연도태는 오히려 새로운 것의 출현을 막고, 집단적 본능에 이끌리는 사회를 신장시킨다. 유전은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평균화하고, 차이를 말소하도록 작동하기에, 인공적인 조작에 의해 차이나 다양성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골턴은 생각했다. 유전()의 인공적 조작은 거꾸로, ‘순화등질화等質化의 방향에서도 행해질 수 있으며, 우생학적 발상은 오히려 그런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하며, 현재에도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도 니체는 동시대의 우생학에서조차도 그의 차이(그리고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초인의 사상에도 관련된 것이다. ‘초인의 사상이란 단순히 우생학적인 제안의 변종(variation)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바깥으로 나가서, 차이나 다양성으로서의 거친 삶을 맞이하려고 하는 발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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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골턴

 아마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되는 신체”(푸코)는 생명정치를 훨씬 뛰어넘어 인간의 주체적 의식의 앞에 출현하고, 주체와 의식을 흔들며 서서히 찢어버리게 됐다. 삶이 인간의 외부로서 발견되는 동시에, 똑같은 삶이, 금방 인간의 차원에 수용되고 관리되어야 했다. 삶을 재발견하는 사고와, 재발견된 삶을 면밀하게 알고 통제하려고 하는 권력의 실천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인간을 살게 하는 면밀한 배려란, 기묘하게도 인간의 삶을 마비시키고 때로는 무참한 죽음으로 유기하게 됐다. 생명정치()이란 삶을 둘러싼 의식과 실천에 있어서의 큰 전환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며,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려고 하는 권력의 재편성의 과정이기도 했다. 생명정치에 있어서 인간의 삶은, 인식하고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인간은 일찍이 그 삶의 주체이며, 이윽고 역사적 주체의 위치로부터 탈락하고 오히려 삶이야말로 진정한 주체가 된다는 전환조차도 넘어선 것이다. 삶이라는 주체는 더 이상 서양의 철학이 정의하고 문제화했던 주체일 수 없었다. 니체는 그것을 의식이 아니라 삶의 의지로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차이의 무리로서 생각했다.

 생명정치와 밀접하게 연계하는 체제, 인식, 과학, 기술은 확실히 나치즘의 경우, 예외상태의 정치와 결합되어 무서운 살인기계를 산출했다. 아감벤은 그런 실제 사례를 특히 법적 차원의 예외상태로서, 고대 로마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 시스템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생각했다. 그 문제제기는 본질적으로 귀중했지만, 그래도 생명정치라는 거대한 문제의 단 한 가지 측면밖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치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비점령지역의 정신병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앙토냉 아르토는 도대체 왜 기관 없는 신체라는, 저 기묘한 말을 거듭 반복하여 노트에 적어두면서, 인류에 대해, 역사에 대해, 완전히 고독한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의 심신에, 특히 신체의 심층에 미치는 거대한 적의 힘에 대해, 돈키호테처럼 헛쇤 싸움을 그는 계속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기묘한 싸움은, 신체 기관에, 아니 오히려 기관으로서 파악되는 생명에, 그리고 생명을 탄생, 생식, 노동력, 수명으로서, 여러 가지 기능으로서, 이윽고 이식 가능한 기관으로서 파악하는 정치, 의학, 기타 여러 가지 지식과 실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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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토냉 아르토 

 생명정치는 사용되고 분해되고 조작되고 소진되는 기관의 모임으로서, 산 신체를 관리하고 통치한다는 의미에서는 전혀 인정사정없는 체제이다. 아르토가 기관 없는 신체의 선전포고가 되는 라디오 드라마(신의 심판과 결별하기 위해, 1948)를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인공수정 기술을 지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에는 명백할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가, 생명에 개입하는 새로운 기술에 항의한 것보다도, 기관으로서 생명을 분리하고, 대상화하고, 조작하는 삶의 이식과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도 근본적으로 민감하게 저항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죽음의 표출이기도 하며, 죽음과 이웃한 신체이며, 실제로 아르토에게는 죽음이 가까이에 임박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생명정치학이 기관으로서의 신체에 초래할 수 있는 죽음과는 별개의 죽음이었음에 틀림없다. , 그것은 생명정치학이 초래하는,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고 하는, 저 기묘한 삶과 죽음의 결탁의 바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 이 글은 졸저 <なる>哲学──思想のゆくえ(平凡社, 2005)을 보강하는 것이며, 그것의 자기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 데리다의 책 등의 원본 및 국역본을 대조하지 않았다. 일역본의 번역이다. 

이것은 사상적인 귀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문제라면, 대답은 어떤 의미에서 처음부터 데리다 자신이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새로운 인터내셔널]은 반시대적이고 신분규정이 없는 유대이며, 제목도 이름도 없는 유대이며, 설령 비합법은 아니라고 해도 힘겹게 공적인 유대이며, 계약도 없이, «out of joint»이며, 공동투쟁 조직도, 당파도, 조국도, 국민적 공동체도 (그것은 어떤 국민적 한정에도 선행하고, 그것을 통해서, 또한 넘어선 인터내셔널이다), 공통의 시민권도, 어떤 계급에 대한 공통의 소속도 없는 유대이다. 여기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자처하는 것은, 제도 없는 동맹의 우정으로 다시 불러들이는[소환하는] 무엇인가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에는, 조직도 규약도 프로그램(‘강령이라고 번역해야 할까)도 없이, ‘우정의 유대만 있다. 거기에 어떤 정치성이 있단 말인가라며 어이가 없어하고, 혹은 이 나이브함에 감동하여 책을 덮는 것은 쉽지만, 철학자 자신의 의도나 의식을 넘어선 곳으로, 여기에는 하나의 명확한 정치의식이 있다. , ‘간주권적’(인터내셔널 혹은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해야 할까) 지평에는, 정치가 아니라 윤리가 있다. 그곳은 탈구축 불가능한정의의 관념의 장소이며, 맑스주의의 정신을 결코 포기할 작정이 없는데리다에게 있어서는, 동시에 또한 해방을 목표로 하는 메시아적 긍정으로 임해야 할 장소인 것이다. 주권과 불가분한 한에서 자기면역적 과정으로 탈구축 가능했던 민주주의도, 주권과 주권 사이로 나오자 갑자기 도래할것으로 바뀌어 버리고, 탈구축을 옆으로 치워버린다. ‘우정의 윤리가 아니라 친구-’(칼 슈미트)리얼 폴리틱스이며, 윤리도 또한 정치일 것이라고 하는 이의는 이 깊은 구별 앞에서는 이의제기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친구-의 구별은 무엇을 정의라고 하는가의 논의의 틀 안에 수납 가능하며, 윤리나 정치의 관념은, 여기서는 탈구축 가능한가 여부의 구분에 적극적으로 환원 가능한 것이 정치, 불가능한 것이 윤리 된다. 윤리도 정치도, 이 환원에 종속한다. 우리가 정치가 아니라 윤리가 있다고 말할 때에도, 이 근본적인 구분을 존중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덧붙이자. 탈구축 가능한가 여부를 구별하는 것이 탈구축의 정치이며, 그 구별은 주권과 주권 사이,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의 구별과 겹친다. 이것은 국제정치에 관해서는 강한 정치적 함의를 가진 구분일 것이다. 그곳은, 혹은 그곳 도래할 민주주의의 장소로서 메시아[그 장소를] 내주는[비워주는] 것이다. “모든 교양체계나 모든 형이상학적-종교적 규정으로부터, 게다가 모든 메시아주의로부터도 자유롭게 되는 것이 시도되는 한에서의(강조는 원문) “메시아적인 긍정이다. ‘메시아타자로 바꿔 말하면, “타자를 그 타자성에 있어서 상호 존중하는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랑시에르의 다음 지적이 합당하다. “탈구축은 궁극적으로 신의 병사에 의한 군사 작전을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타율의 법을 주장하거나, <타자>의 모든 -취적인 규정(identification)을 말소한다는 무한한 임무를 강조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사상적으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양자택일에, 국제정치를 옴짝달싹 못하게 못 박아 둔다. 대항 국제정치는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지하듯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맞설 수 있도록 제창됐다. 이념으로서는 이제 자유민주주의만 있으면 되며, 나머지는 경험적으로 처리 가능하다고 하는 후쿠야마에 의한 진단과는 달리, “의회제 형식을 갖춘 자유민주주의가 전례 없이 전 세계에서 소수파이고 고립되어 있다고 하는 민주주의의 위기의 인식을, 데리다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현시점의 일반성을 그러한 위기로서 규정한 후, 그는 마모의 너머의 마모의 묘사를 더욱 거무칙칙하게 하고”, 10개의 신세계 질서의 상처를 꺼낸다. 이것들을 인류 공통의 과제로서 담당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제창됐다. 이런 10개의 상처야말로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필요한, 메시아적이지 않은 세속적인 근거이다. 열거해보자.

실업. 그렇지만 전통적인 유형의 실업은 아니다. ‘새로운 시장이나 규제 완화가 초래하는 새로운 실업이며, “그 경험과 그 계산의 형태 그 자체에 있어서, 너무나 실업을 닮지 않았다.” 일본의 경험에 비춰보면, 비정규고용의 증대라고 바꿔 말하면 이해하기 쉽다. 간헐성의 고용 형태까지 거기에 집어넣어 세어야 할 실업이다.

노숙인. 거기에는 엄청난 숫자의 망명자, 무국적자, 이민도 또한 포함되며, 대체로 국경이나 국민적 혹은 시민적 정체성[동일성]의 새로운 경험을 고하고 있다.”

국가 간의 경제전쟁.’ 이 전쟁은 다른 전쟁을 필두로 하는 모두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자유시장모순을 제어할 수 없는 무능력.” “여러 가지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라고 칭하면서, 세계시장에서의 자신의 이익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임금수준과 사회보장을 둘러싼 기득권과, 대외시장에서의 자국제품의 경쟁력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라는 문제일 것이다.

대외채무. 본서에 있어서는 일부러 여기에서 많은 말을 요구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데리다는 특히, 채무 문제가 인류의 상당 부분을 배제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기산업과 무기무역, 게다가 마약거래.

핵 확산.

공동체, 국민국가, 주권, 국경, 땅과 피에 관한 고답적인archaïque 개념과 환상.” 이것들에 의해 인도되는 에스닉 사이의 항쟁.” 전지구화 현상에 수반되는 장소 해체의 과정에 대한 반동이다. 그러나 이 과정 자체는, ‘차연’, ‘-정위치화 déplacement’의 하나이며, 오히려 안정화의 적극적인 조건이라고 여겨진다.

거의 유령국가로 변하고 있는 마피아와 마약 카르텔. 이것들은 사회적-경제적 조직, 자본의 일반적 유통에 침입할 뿐 아니라, 국가적 제도들 및 국가간 제도들에도 침입하고 있다.”

국제법 및 그것에 관련된 국제제도의 한계. “보편성을 자칭하는 이 법은, 실행에 옮겨지는 경우, 특정한 몇 가지 국민국가에 의해 계속 지배되고 있다.”

이것들이 역사는 끝나지 않는 증거이며, ‘신세계 질서의 상처이다. 민주주의의 마모 너머의 마모를 나타내는 문제들이며, 현실의 사회주의가 끝나도 여전히, 맑스주의의 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요청되는 근거이다.

이 중에서 무기에 대해서는, 2006년에, 117개국의 공동제안에 의해, ‘무기거래조약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유엔총회에 제출되고(미국은 반대), 유엔에서의 논의가 시작되며, 20134월에, 조약안은 정식으로 채택됐다(미국도 찬성). ‘마약’()에 대해서는 이미 1990년에, “마약 및 향정신선 의약품의 부정거래 방지에 관한 국제연합조약이 발효되었다. 핵확산에 대해서는 1970년 이후, “핵확산금지조약이 발효되었으며, 조약 회원국과 유엔 산하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 체제가, 이 지적하는 한계에 직면하면서도, 유일한 실효성 있는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국민적 또는 시민적 정체성[동일성]의 문제라고 총괄되는 에 대해서는,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실(UNHCR)의 역할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대처한다는 합의가 상당 정도로 완성됐다고 한다. UNHCR인간의 안전보장생활정체성의 안전이라고 덧붙이면 좋을 것이다 구상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도 무엇보다 인터폴을 필두로 하는 국제기관이 관할-대처해야 할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인 , , , EU, IMF, 세계은행, G20 등등의 경제를 둘러싼 국제기관(EU를 거기에 포함시켜 세어도 나쁜 이유는 없다), 이것도 이 지적하는 한계에 직면하면서 실제로 씨름하고 있는 문제들이며, 또한 그것들에 대한 간주권적인대처법은, 현실적으로는 그런 국제기관을 경유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갖지 않는다. 일본에 관련해서는, TPP가 이 국제체제에 추가되려고 한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근거라면, 새롭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와는 별개로, ‘인터내셔널은 충분히 실재하지 않았는가? 국제기관들의 전체는, 세부적인 신분규정계약얼마나 서로 정합성이 있는가와는 별개로 갖춘, 실재하는 공동투쟁조직이 아닐까?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이런 기존의 인터내셔널을 대신하기는커녕, 근거의 부터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장기적인 전망에 섰을 때, 국제법, 국제법의 개념들, 국제법의 적용의 장소가 경험할 수 있는 깊은 변화를 가리키고 있다고 간주된다. ‘지시의 대상은 우선, 실제로 인터내셔널활약일 것이다. ~이 세계정치의 문제라면, ‘맑스주의의 정신,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전부터, 이후에는 훨씬, 대항노선은커녕 세계정치의 주류파 노선이 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데리다의 기준에 비춰보면, 우리는 모두, 상당히 이전부터, 사회주의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범죄를 둘러싼 국제협력()맑스주의의 정신은 필요할까? 아니면 여기서는 스탈린의 비밀경찰이 참고되어야 할까?

게다가 원래, “자유민주주의가 전례 없이 전 세계에서 소수파이고 고립되어 있다라는 사실 인식은, 낮게 추산해도, “다수파이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도로 고쳐져야 할 것이다. 특히 아랍의 봄이후의 현재는. 1993년의 시점에서도, “소수파이며 고립됐다고 한다면, 후쿠야마설이 그 정도의 반향을 부를 수는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데리다의 사실인식은, 거꾸로 선 역사의 종언설처럼 보인다. “마모 너머의 마모검붉게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유토피아를 반전시키려고 하는데, 묘사되는 세계는, 후쿠야마라면, 역시 역사는 끝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이후의 역사가 다시금 그것을 증명했다, 이제 경험적으로만 맞으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는 정도에 희망의 거처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것은 , , , 라는 경제문제이다. 데리다에게서는 이것도 정의의 문제이겠지만, 이미 봤듯이, 공화주의는 그것을 단순히 문제로서 지목하는 단계를 넘어서, ‘해결법을 제시했다. 공화주의의 자기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결법이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실업경제전쟁사회적 기득권과 대외시장에서의 자국 이익의 조정, 그리고 채무, ‘확장=성장에 의해서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없으면 부담의 배분을 공공화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공화주의는 경제학을 동원해서 주장했다. 탈구축의 정치가 그것들을 정의의 영역에 위치시키고, 언제든 정치적으로 탈구축되어 정당성 문제(‘주권’)로부터 구별하려고 하는 반면에, 공화주의는 정의와 정당성 둘 다를, ‘확장=성장부담의 연속선(그 이름이 이다)이 경계를 이루는 공공공간에 포섭하려고 한다. 악과 관련된 범죄뿐 아니라, ‘정체성에 관련된 까지도, 이른바 ‘2급시민의 자격문제로서 그 속에 흡수하려고 한다. 는 단적으로, 공화국의 바깥, 야만인들이 거주하는 세계의 문제일 것이다. 공화국은 그것을 정복해야 한다. , 공화주의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공공공간의 구성-유지-확대 문제이며, 데리다가 인터내셔널의 본질적 임무로 삼은 국제문제는, 탈구축 불가능한 절대적 원리인 정의메시아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속적인 공화주의의 경험에 의해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데리다는 이 세속주의를 참을 수 없는 것일까? 10개의 상처의 열거는, 국제문제를 경험의 영역으로부터 정의의 영역으로 이관시키라, ‘경제문제를 더 이상 경제문제로 보지 말라는 호소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res publica, 즉 공공공간과 여론의 토폴로지적 구조를 격변시켜온 기술적, 과학적, 경제적인 수많은 변화를 되짚어보자. 이것들의 변화는, 단순히 이 토폴로지적 구조에 작용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토포그래픽한 것이 존재한다는 추정 그 자체, 그리고 발언, 공적인 사태 혹은 대의에 대해 하나의 장소가 있으며, 즉 규정(identification)할 수 있고 안정화할 수 있는 하나의 신체가 있다는 추정을 문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자유주의적인, 의회제의, 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를, 흔히 말해지듯이, 위기에 빠뜨리고, 그 후 무수한 형태로 동맹하고 서로 싸우고 조합된 세 가지 전체주의로의 길을 연 것이다.

 

한나 아렌트를 방불케 하는, 공공공간의 흔들림, 변질, 소멸이 파시즘을 도래시켰다고 하는 인식이다. 하버마스도 완전히 동의할 것인, 공공공간의 불안정화=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도식이다. 이런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자의 하나 됨을 토대로, ‘간주권적영역만을 정의에 배정하는 것, 그 영역을 경험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은 가능할까? 허용될까? 정의와 경험이 위기라는 토대를 공유할 때, 정의는 왜 자기면역성을 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데리다에게 있어서도 위기에 있어서 연결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는 공동문서에 서명하게 됐다) 구제의 방식은 각각 다르다고 주장하는 걸까? 무엇의 위기이든, ‘위기에는 어디까지나 메시아적인 긍정에 의해 임하고, 신의 약속의 실행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면, 랑시에르의 진단 신의 병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신의 대리인인 새로운 타자를 무한하게 찾아 나설 것인가 이 옳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데리다는 정의경험, ‘도래할 민주주의의 자리를 어디선가 공화주의에 넘겨주고 있는 셈이다. 둘 중 무엇이 됐든, 혹은 둘 중 어떤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는 한에 있어서, 단적으로 편의주의[기회주의]일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실천은, 세계공화국 엘리트들의 기관들을 응원하는 것, 공화국 시민의 자격을 위태롭게 한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닿게 하는 것이었는가? 오늘날의 공화국 새 시민들에게는, ‘부담을 나눈다고 하는 정의’-‘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우정의 유대가 되려고 욕구하고, 기나긴 공화주의의 경험을 일부러 유령으로 지어낸 것이다. 그러나 2011년의 하버마스를 필두로 한 현대의 낭만파는, 오늘날 이미,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깨달았을 터이다. 현존하는 인터내셔널을 어떻게든 강화하면 되는 걸까? ‘상처의 치료에는 대학 속에 새로운 강좌를 만들 듯이, 유엔 산하의 특별조직을 만들면 좋을 것이다. ‘새로운 인터내셔널NPO로서, 그것에 협력하면 좋을 것이다. 유령은 속제로 회귀함으로써 유령이지만, 완전히 소생했을 때에는 새로운 신체corps를 손에 넣는다. 이것도 유령의 숙명일 것이다. ‘공공공간의 신체가 의문에 부쳐지더라도, 국제기관은 틀림없이 단체corps이다.

2011년의 그리스 위기가 폭로한 것은 이런 부담의 분담, ‘채무의 상환 문제가 되자, ‘간주권적이든 주권 내적이든 민주주의적 토의의 의제에 올려질 수 없다는 사태였다. 토의 과정에 올려지게 되면 위기의 폭발에 때늦지 않기 때문에, 공화주의의 차례가 됐다. 사태는 고전적이다. 전쟁의 결단을 민주주의에 맡길 수 있을까? “메시아적인 긍정은 결코 토론 과정에 올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국민투표의 회피는 정의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것이 아니었을까? 현대에서는 이렇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경합을 피하면서 서로 공존하고 있다. ‘채무에 의해, 그렇게 분절되어 있다. 데리다는 채무인류의 상당 부분을 배제하는정의 문제, ‘노숙인현상과 똑같은 시민의 자격 문제로 번역함으로써, 이 분절의 견본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서는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지만, 그는 이미 1980년대 말, 우정의 정치에서 정의을 구별 없이 논했다. 그래서 그 역자는, 책을 도래할 민주주의에서의 덕의 물음”(강조는 인용자)이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세속의 동년배사이에 작용해야 할 과 메시아이든 이데아이든, 천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이 [받들어] 모셔야 정의, 데리다에게 있어서는 처음부터 번역되었던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1. 일본어 서평 

* 아래의 링크는 아래의 서평 원문이고, 밑의 글은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가 삭제된 것이다. 논의를 위한 자료 차원에서 블로그에 복제해둔다. 

* http://d.hatena.ne.jp/whomoro/touch/20130217/1361065937?hc_location=ufi

* http://d.hatena.ne.jp/whomoro/touch/20130222/1361537378?hc_location=ufi


기발하거나 조잡하거나 새창으로 보기
siruall ㅣ 2015-04-08 ㅣ 공감(5) ㅣ 댓글 (0)
1. 가라타니의 매너리즘 또는 아집
철학의 시작을 서술한 서적은 허다하지만 철학의 기원을 탐구한 서적은 적다. 그 탐구를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라타니는 행하겠다고 한다. 철학에 대한 희구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의 기원』은 사람들의 관심 저 밑에 있는 것을 다루려고 하는 저작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가라타니의 탐구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무지배)’가 역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논증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논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아사회와 이소노미아가 단순하게 등호(等號)로 연결되고, 그것을 전제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史實)의 오인이다. 이소노미아라는 말도 정확하게 분석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무지배’라는 번역어에 대한 상세한 고찰과 비판 없이 자명한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이오니아=이소노미아=무지배’는 유토피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가라타니의 처음부터의 목적이었는지 궁금하다. 그것이 유토피아인 이상, 역사상의 아테네가 단죄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지향한 것은 통치 그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가라타니가 지향한 것은 ‘통치 그 자체의 폐기’라고 추측할 수 있으며, 그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 사술(詐術)적인 논리이며, 소크라테스를 강인하게 자신과 동일한 사상을 갖는 주체로 설정한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를 등장시켰다. 이 이소노미아가 허구인 것은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의해 언제나 ‘이소노미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환기하는 효과를 갖는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라타니는 자신의 투쟁을 이소노미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2. 통설과의 접목
서장에서는 기원전 6~기원전 5세기에 관한 통설적인 윤리사상사(가령 야스퍼스의 ‘세계사의 기축시대’가 떠오른다)가 소개되며 거기에 가라타니의 교환양식설이 접목되고 있다. 윤리사상사 자체는 다소 고풍스럽고 평범하여 새로운 시점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 풍부한 참고자료를 자랑하던 가라타니의 저작을 생각해 보면 일본 내의 동 시기에 대한 많은 저작들을 참고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은 점이 의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곳부터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해서는 ‘유대교-기독교’라는 유럽 중심의 발상범위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선악이원론이나 최후의 심판으로 유대교에 큰 영향을 준 조로아스터교는 가라타니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가라타니가 조로아스터교의 강한 윤리성을 주목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의 철학적 사고의 탄생은 중요하지만, 화폐의 등장(역사상 최초의 주조화폐는 기원전 7세기에 소아시아의 리디아에서 만들어졌다)과 화폐의 일정한 보급은 인간의 사고와 경제생활 진전에 깊이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화폐의 상징기능이 사회에 침투해 가는 가운데 처음으로 철학적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엄청난 시간 속에서 배양된 신화적 사고가 있다. 철학의 기원이라는 문제는 신화적 사고(유토피아)와 철학적 사고(로고스)와의 관계/단절이라는 문제이다. 거기에는 문학의 발생이라는 문제도 포함될 것이다. 신화적 사고 속에서 철학적 사고는 어떻게 석출(析出)되었는가. 그러나 가라타니에게는 그러한 발상을 볼 수 없다. 덧붙이면 가라타니는 “주술은 정주 이후의 씨족사회에서 발달했다”고 논하고 있지만, 유목민에게도 수렵민에게도 주술전통은 존재하고 있었다.

3. 이오니아와 이소노미아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의 도시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나타내는 사료는 거의 없다”고 서술하면서도, 이오니아와 이소노미아를 스스럼없이 등호로 연결해 버렸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역사를 상세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설을 전개하고 있다.

가라타니는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폴리스와 이오니아의 폴리스를 구별해 ‘씨족적인 여러 제도가 농후한 사회’ vs ‘씨족적 전통이 없는 식민사회’로 대치시키는 것에 치중한다. 그러나 보통 밀레토스 등은 식민도시로 분류하지 않으며, 모시(母市)와 식민도시(그 성격은 일률적이지 않다)를 전혀 별개로 논의할 수는 없다. 일본의 그리스 역사가 사쿠라이 마리코(?井万里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인의 식민활동의 전제로서 폴리스의 성립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민활동을 포함한 거대한 시대의 너울 속의 여러 요인이 상호 작용해 결정화한 결과가 폴리스의 성립이었다고 간주된다.” 더욱이 “다양한 공동체로부터 나온 식민지인들로 이루어진 이오니아에서는 처음부터 ‘개인’이 존재했다. 이오니아의 폴리스는 그러한 개인의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근대의 개인이나 사회계약의 개념을 고대 이오니아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도 종종 인용되고 있다. 가라타니는 아렌트의 『혁명론』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오니아=이소노미아’설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말을 어디까지나 도시국가의 평등을 논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오니아라고 하는 말은 전혀 쓰지 않았다. ‘이오니아=이소노미아’를 아렌트로부터 끌어와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이소노미아’를 역사적으로 논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아=이소노미아’는 『철학의 기원』을 관통하는 개념이 되고 말았다. ‘이소노미아로서의 이오니아’는 말하자면 유토피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소노미아로서의 이오니아’ 인 것이다.

원래 이소노미아는 무엇인가. ‘무지배’라는 번역어는 적절한 것인가.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말은 ‘이소(iso, 같다는 의미)’와 ‘노모스(nomos, 법, 넓게는 인위적인 것)’로 나뉜다(노모스는 physis(자연)과 대비되는 언어다). 따라서 아렌트의 이소노미아라는 말의 사용법은 옳다. 이소노미아의 원뜻은 도시국가의 ‘인위적 공공공간에서의 평등’=법적 평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무지배’라는 번역어는 이것을 등한시한 편협한 기능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라타니가 인용한 부분의 바로 뒤에서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소노미아는 평등을 보장했으나,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고 평등하게 자라나서가 아니라, 반대로 사람은 자연에서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인위적인 제도인 법 즉 법률에 따라 사람들을 평등하게 하는 도시국가를 필요로 한 것이다. 평등은 사람들이 서로 사인(私人)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만나는 이 특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존재했다.”

또한 아렌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로도토스가 자유를 무지배와 동일시했을 때, 그 논점은 지배자 자신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지배하는 것에 의해 지배자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본래라면 자유로웠을 타인들을 스스로 떠났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정치적 공간 그 자체를 파괴한 것이며, 그 결과 그 자신에게도, 그가 지배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자유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자유는 시민들의 법적 평등과 동의라고 이해된다.

이상으로부터 고대 그리스에서의 이소노미아는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 노력’ 자체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노력은 폴리스라는 인위적 공공공간(‘사람들이 서로 사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만나는 특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민은 정치와 군사를 공동으로 담당하고 폴리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했다.”

이소노미아는 도시국가의 통치방식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통치의 폐기’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소노미아와 노예제는 병존하게 된다.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에서는 노예제 생산에 의존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오니아를 이상화했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오니아의 반란에서 큰 역할을 한 폴리스인 키오스는 ‘섬의 강 건너 소아시아에 가지고 있던 페라이아(Per?a, 해외 영토)에서 노예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를 행하여’ 번영했다. 원래 ‘식민 시절에 원주민을 종속민의 지위에 빠뜨리는 일도 있었고, 주변의 이민족으로부터 노예를 조달하는 것도 차츰 잦아진’다고 사쿠라이 마리코는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가 실현된 예로서 아이슬란드와 18세기 미국의 타운쉽을 거론하지만, 이것은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 대한 놀라운 사실(史實) 오인이다. 가라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식민지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하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왔다. 한편 영국 식민지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시민혁명(1648년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정도의 사람이 이런 오류를 태연하게 기술한다는 것은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담배 플랜테이션 노동력으로서 흑인노예의 도입이 시작된 것은 1619년의 일이었다. 시민혁명과 노예제의 부정을 연결하는 논술은 논외라고 할 수밖에 없다.

4. 자연철학, 플라톤
이른바 자연철학에 대한 가라타니의 기술은 ‘이오니아=이소노미아’에 집착하고 있는 것 외에는 그다지 통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는 통설과 다른 위상(반 피타고라스=반 플라톤)을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타당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교적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지만 독해 자체가 치밀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오니아의 유물론적 사상’이라는 표현이 보이나 자연철학자들에게서 물질과 영혼은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리스의 철학의 기원을 논하면서 로고스에 별로 언급이 없는 것도 의문이다. ‘이소노미아’에 집착한 나머지 왜 이오니아에서 로고스가 생겼는지를 가라타니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뮈토스((muthos, 이야기 또는 신화)와 로고스의 관계야말로 철학탄생의 비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가 ‘있다’의 사색을 시의 형태로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을 상기해 보자. “영혼의 끝을 당신은 걸어가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깊은 로고스를 그것은 갖고 있다.”

가라타니의 단조로운 플라톤 비판(이데아론 비판, 철인정치 비판)은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플라톤 철학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력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 거기에 오히려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관념론으로 간단하게 치부하지 않는 것은 관념의 강렬한 자기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을 표방하는 가라타니의 표면적인 플라톤 비판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온다. 가라타니의 ‘이소노미아’론은 대부분 플라톤적인 이데아론으로 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애타게 연정을 보이는 가라타니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5. 소크라테스
가라타니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사회에 대하여 아테네를 ‘정치적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열’이라는 근대적인(헤겔-맑스적인) 개념으로 분석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크라테스까지도 이소노미아와 연결하고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속의 “사인(私人)으로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 공인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소크라테스가 가져온 것은 공인인 것과 사인인 것의 가치 전도다”라 하고, “소크라테스가 목표로 한 것은 통치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비판을 예상했는지 소크라테스는 ‘자신도 모르고’ ‘그렇게 의식함이 없이’ 이오니아적 사상을 부활시켰다는 논리를 편다. 이 정도면 견강부회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통치 자체의 폐기’를 지향하고 ‘사인으로서’ 죽은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 및 사상과 폴리스라는 공공공간은 분리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사회적인 규약(노모스)’에 따라 정의를 존중하는 신념이 각인의 삶의 방식에 관련된 신념군 중 최고 중핵을 구성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활동은 곤란에 처한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는 펠로폰네소스전쟁과 그 패전 후의, 노모스의 혼란기였기 때문이다. 노모스의 동요 속에서 왜 소크라테스는 아고라라는 공공적인 장으로 나가 집요한 대화를 행했는가. 거기에는 폴리스라고 하는 인위적 공공공간의 소생을 ‘영혼에 대한 배려’로부터 행하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고투가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란 그 고투에 다름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그 싸움을 최후까지 이끈 것을 그의 죽음이 나타낸다.

30인 정권의 전제정치와 그것의 붕괴, 혼란기에 소크라테스의 ‘공인과 사인’의 문제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은 법과 일체가 됨으로써 자유롭다고 하는 그리스적 법사상을 소크라테스도 신봉했다. 그것이 어떤 정의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지던, 국법에 대해 개개 시민의 저항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국법 자체의 파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테나이의 국법이 시민에게 다른 폴리스로의 이주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근원적인 구속이 거기에서 생겨 시민과 국법 사이에 실제 존재한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 다만, 국법과 시민의 일체성을 강조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는 진정한 정치술(즉 영혼의 정화)은 폴리스의 공적인 일에 종사하기보다, 오히려 개개 시민과의 사적인 대화에 의해 달성된다고 하는 현실정치와 덕(탁월성)의 함양과의 사이의 긴장관계를 파악하려는 사고였지 않나 싶다.

더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공과 사’를 근대사고의 틀에서 보면 안 된다는 점이다. 사쿠라이 마리코는 공적(데모시오스)인 영역과 사적(이디오스)인 영역 외에 ‘코이노스’의 영역이 있음을 지적하고, ‘공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데모시오스와 코이노스의 두 종류가 있었다는 것’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한 ‘사적인 대화’의 장은 바로 ‘코이노스’의 영역이었다. “코이노스의 영역은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집합활동을 하는 그룹이 공유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민뿐만 아니라 재류 외국인과 노예, 여성 등 아테나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생활의 장, 즉 주민 사이의 다양한 교류,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폴리스적) 공간도, 오이코스(집)에 해당하는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한 것은 이러한 코이노스의 영역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는 아고라에서 열렸지만, 아고라는 ‘코이노스’라는 ‘공’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라타니는 소크라테스를 ‘이소노미아’와 결부시켜 허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철학의 기원’에 대해 무엇을 밝혔는가. 유감스럽게도 ‘이소노미아’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설적으로 『철학의 기원』은 ‘이소노미아’나 ‘통치 자체의 폐기’을 애타게 사모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새삼 가르쳐 주었다. 우리의 현실은 비참한 사건으로 넘쳐나지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이소노미아’로 일탈하는 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어려움 그 속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 아래의 링크에 <자신이 쓴 글인 양> 누군가가 올려 놨다가 최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삭제됐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06916

출처를 밝히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왜 삭제했는지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출처를 안 밝히는 것이 삭제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 무페의 인터뷰를 읽고 있다. 인터뷰를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한 대목....

샹탈 무페의 주장은 아렌트의 주장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페는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시민권이란 각자가 자신의 '선'에 대한 정의를 형성하고 수정하고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이며,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공동체 역시 '도구적인' 공동체, 즉 이익이든 정체성이든 이미 정의되어 있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촉진하기 위해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반면, 공화주의가 주장하는 공동체는 개인적 욕구나 이해관계에 선행하여 존재하며, 더욱이 그러한 욕구나 이해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공적인 선 관념을 강조하는 공동체이다. 무페는 모든 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에 기초를 부여할 수 있었던 보편적 시민권 개념을 정식화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를 평가하는 한편, 개인이 국가에 대항하여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중시함으로써 시민권을 단순한 법적 권리에 불과한 것으로 삼아 버렸다고 비판한다. 동시에 오로지 생산력을 향상시켜 각자 개인적 성공을 돕는 것으로 사회적 협동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를 비판한다. 더욱이 무페는 참가를 중시하는 시민권 관념의 강조는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도 비판한다. '개인'은 시민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즉, 무페는 시민권의 내실을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훼손시켰다는 점을 비판하고, 고전적 공화주의의 전통 속에 지켜져 왔던 참가를 중시하는 시민권 관념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근대의 다원주의를 무화하는 형태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무페가 주장하는 다원주의는, 분명 아렌트가 강조하는 '복수성'에 다름 아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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