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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간과 동물

L’aperto

L’uomo e l’animale

 

 

조르조 아감벤

김상운 옮김

영어판으로 1.

인용은 금함


11. 진드기

 

동물은 기억을 갖고 있으나 기록은 갖고 있지 않다.

하이만 슈타인탈

The animal has memory, but no memories.

Heymann Steinthal

 

 

윅스퀼의 책들은 때때로 도판들illustrations을 담고 있는데, 이것들은 고슴도치, 꿀벌, 파리, 개의 관점에서 인간 세계의 절편segment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려고 한다. 비인간[인간이 아닌 것]의 눈으로 가장 친숙한 장소들을 갑작스럽게 보도록 강제되면, 이것은 독자에게 편치 않은disorienting[방향상실의] 효과를 산출할 것인데, 실험은 이런 효과를 거두기에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편치 않음disorientation[방향 상실]은 윅스퀼이 진드기라는 이름으로 좀 더 널리 알려진 진드기류(Ixodes ricinus)의 환경을 묘사할 때 부여할 수 있었던 조형적인 힘figurative force[표현력]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윅스퀼의 서술은 확실히 위뷔 왕(Ubu roi)테스트 씨(Monsieur Teste)와 나란히 읽혀져야 할, 근대적 반인간주의의 극치를 이룬다.

서두는 목가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길들여진] 개를 데리고 자주 숲과 덤불을 돌아다니는 시골주민이라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한 마리의 작은 동물과 친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동물은 작은 가지에 매달려 인간인지 동물인지를 묻지 않고 먹잇감을 기다리며, 머리 위로 뛰어내려 그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알에서 막 부화한 시점에서는 이 작은 동물은 아직 완전히 성충이 되지 않는다. , 다리 한 쌍과 생식기가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이 단계에서 이 놈은 풀잎 끝에서 매복해 있으며, 도마뱀 같은 냉혈동물을 습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탈피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부족했던 기관을 얻게 되면, 오로지 온혈동물을 사냥감으로 삼아 사냥에 나서게 된다. 암컷은 산란기에 들어가면, 알맞은 높이에서 재빠르게 아주 작은 포유동물 위에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더 큰 대형 동물에 의해 부딪치게 되는 것, 여덟 개의 다리를 사용해 잔가지의 끝에까지 기어오르는 것이다(Uexküll, 85-86).

 

윅스퀼의 지시를 따르면서, 여름의 어떤 갠 오후에 덤불에 매달린 진드기를 상상해보자. 사방팔방이 형형색색의 들꽃이 내뿜는 향기, 꿀벌과 다른 곤충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에 둘러싸이면서 햇볕을 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목가(牧歌)는 이미 끝났다. 진드기는 이런 모든 것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없는 이 동물은 빛에 대한 껍질의 일반적인 감각만의 도움을 빌려 매복하는 방법을 찾아낸다[이 동물에는 눈이 없다. 그래서 매복하는 장소는 밝음에 대한 몸 껍질의 감각만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이 눈멀고 귀먹은 강도는 후각을 통해서만 사냥감이 접근하는 것을 알아챈다. 모든 포유류의 피지모낭sebaceous follicles에서 발산되는 낙산(酪酸)butyric acid 냄새가 진드기에게는 신호로서 작용하며, 그리하여 매복한 장소를 뒤로 한 채 먹잇감을 향해 운에 맡긴 채blindly 낙하하게끔 야기한다. 만일 (정확한 온도를 감각할 수 있는 기관에 입각해 진드기가 지각하는) 따뜻한 뭔가에 낙하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운이 좋다면, 진드기는 먹잇감인 온혈동물에 착지했다는 것이며, 이후에는 촉각에만 의지하여 가급적 몸에 털이 없는 지점을 찾아내고 먹잇감의 피하조직에 머리부터 깊숙이 파고들어갈 수 있다. 이제 진드기는 따뜻한 피의 흐름을 천천히 빨아들일 수 있다(ibid., 86-87).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드기가 피 맛을 좋아한다고, 혹은 적어도 피 맛을 지각할 수 있는 감각을 소유한다고 당연하게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윅스퀼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연구실에서 모든 종류의 체액으로 채워진 인공적인 막membranes을 사용해 실험한 결과는 진드기가 모든 미각을 절대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드기는 적절한 온도를 갖고 있다면, 즉 포유류의 혈액 온도에 대응하는 섭씨 37도를 갖고 있다면, 어떤 체액이든 열심히 빨아들인다. 아무튼 진드기가 벌이는 피의 잔치는 장례의 만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제 진드기에게는 땅바닥에 내려와서 산란하고 죽는 것 말고는 해야 할 것이라고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드기의 예는 모든 동물들에게 고유한 환경이 지닌 일반적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이 경우 환세계는 세 가지 의미[작용]의 담지자 혹은 표식(Merkmalträger)’의 담지자로 환원될 뿐이다. (1) 모든 포유류의 땀에 포함된 낙산(酪酸)butyric acid 냄새. (2) 포유류의 혈액과 똑같은 섭씨 37도의 온도. (3) 일반적으로 체모를 갖추고 있고 모세혈관으로 뒤덮여 있는 포유류에 특징적인 껍질의 유형. 하지만 진드기는 이 세 가지 요소들과 강렬하고 열정적인passionate 관계로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불가분한 관계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세계가 외견상 아무리 풍요롭게 보이더라도, 그 세계와 인간을 묶는 관계는 아마도 이와 비슷하게 강렬한 관계일 수는 없을 것이다the likes of which we might never find in the relations that bind man to his apparently much richer world. 진드기는 이런 관계이다. 그리고 진드기는 이런 관계 속에서만, 이를 관계를 통해서만 살아갈 뿐이다she lives only in it and for it.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윅스퀼은 우리에게 다음의 얘기를 알려준다. 로스톡Rostock[발트해 연안의 독일의 한자도시]의 실험실에서는 18년 동안 먹이도 없이, 즉 환경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 조건에서 진드기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다고 한다. 윅스퀼은 이 특이한 사실에 대해 전혀 설명을 제시하지 않으며, 진드기는 기다리는 기간 동안우리가 매일 체험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수면 비슷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윅스퀼은 살아 있는 주체 없이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without a living subject, time cannot exist는 유일한 결론을 끌어낸다(ibid, 98). 하지만 18년 동안 지속된 이런 중지상태에서 진드기와 그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세계에는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는가]? 환경과의 관계에만 전적으로 놓여 있는 생물a living being that consists entirely in its relationship with the environment이 그런 환경의 절대적인 결핍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시간도 없고 세계도 없이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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