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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근대의 시간을 생각할 경우, 비교의 대상으로써 근대 이전의 시간 의식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시대든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자 하는 한, 반드시 시간의식이 있다. 그 시간의식의 표현방법은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차이난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근대 이전에는 농업중심의 생활영태가 영위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태양의 운행과 계절의 순환을 기반으로 한 시간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유럽이든 아시아든 거의 똑같다.
자연의 순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간의식은 간단하게 ‘순환 시간’이라고 일컬어진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순환 시간, 즉 닫힌 순환의 반복이라는 이미지를 근대의 직전까지도 볼 수 있었다. 순환의 표현 방식은 예를 들어 중국에서의 달력의 표현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순환’의 표현 스타일이든 결국 닫혀진 우주와 동일한 것의 무한한 반복이라는 형태를 띤다.
이러한 순환 시간, 즉 자연의 운동에 의거한 시간의식이 파괴되고, 새로운 시간의식, 즉 직접적 시간, 바꿔 말해서 과거로도 미래로도 무한하게 열려진 시간의식이 생겨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시간의식의 근대가 도래한다.
순환의 시간은 과거 중심적이다. 동일한 것의 반복이라는 순환의 이미지는 전통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가치규범으로 삼는 생활양식을 표현한다. 전통적이라는 것은 항상 동일한 채로 보존되고 지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설령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고 하더라도, 원래 그대로 재건되어야만 한다는 사회적 규범의식이 있다. 원래대로 한다는 복원력이 전통을 지탱하는 가치의식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사회적 에토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원래대로 한다, 원상태로 복귀한다는 이념의 시간 표상(表象)이 사실상 순환시간이었다.
따라서 순환시간은 전통주의와 정반대로, 사회적 수준에서 그 시간의식이 나타나게 되면, 보수적인 행동양식으로 된다. 선조가 만든 가치체계를 흠집이 나지 않게 보존함으로써 공동체는 지속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할 필요가 고대부터 중세까지 연면히 길게 이어져 내려왔다. 따라서 순환시간에 미래의 의식이 들어갈 여지는 전혀 없다. 적어도 살아 있는 인간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사자(死者)의 세계인데, 사실 이것은 미래가 아니라 다른 세계이며, 이 다른 세계는 영원의 세계이다. 영원이라는 것은 정의상 시간적 세계가 아니다.
전통적인 순환시간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밖에 없다. 미래는 원리상 폐쇄되어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설령 미래 의식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반사회적이며, 미래 즉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것은 전부 배제된다. 그것이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순환시간이 붕괴하는 것과 미래의식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 동일한 것이다. 미래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사실상 순환시간을 붕괴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미래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는 근대를 생각해 볼 때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정의상, 미래는 ‘아직 아닌 것’이다. 아직 아닌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아직 아닌 것을 선취하고자 하는 의식이다. 이 선취 또는 예측이라는 사고방식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보기 위해서는 서양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취하는 의식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구 중세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서구 중세에서는 상업의 폐해에 대한 고발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업이란 구체적으로는 고리대금업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고리대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고리대 비판이라고 하면 대개 상식에 의존하여 이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사실 왜 중세에서 고리대가 비판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원금에 이자를 붙여 돈벌이를 하는 것이 고리대라며 비판했지만, 기독교 교회가 비난한 고리대의 이자율은 현재의 은행이자율과 거의 비슷했다. 물론 위험도가 높을 때에는 이자율이 올라갔지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
이 상업 또는 상인을 고발하게 된 배경의 하나에는 신학적,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그들의 말로 하자면, ‘신의 시간’이라는 의식이 아주 강했다. 시간이란 신의 것이라는 견해인 것이다. 기독교 교회가 상정한 신의 시간이란 팽창도 감소도 하지 않고 영원히 같은 것으로서 반복하는 자연의 시간으로서의 순환시간이며, 인간이 그것을 사용코자 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 신성한 것이었다.
그런데 중세에서의 상업, 즉 환전상이나 고리대는 궁극적으로 시간차를 이용하여 화폐를 증대시키고, 돈벌이를 하는 행위이다. 교회나 전통보수적인 쪽에서 보면, 신의 시간을 유한한 인간이 돈벌이에 사용하고, 시간을 이용하여 이윤을 낳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유럽 중세에서 시간에 관한 논쟁은 우선 신학논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의 시간과 상인의 시간 사이의 상호충돌이었다. 농업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교회의 시간은 신의 시간, 즉 자연시간, 순환시간을 당연히 토대로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 상인의 시간은 계산 가능한 추상적 시간으로, 이 두 가지는 원리상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시간관념이다. 처음에는 종교계가 강했기에 상인은 철저하게 패배한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즉 근대로 나아감에 따라 상인의 시간의식이 서서히 힘을 받게 되며, 지성에 의해 계산할 수 있는 비자연적이고 극히 인공적인 대상으로서의 시간의식이 대립하여 성장하게 되고, 이 둘은 병행하여 전개된다.
상인들은 판매를 하기 위해 지역의 작물이나 생산물의 동향, 가격의 동향을 조사하고, 특히 전쟁은 돈벌이의 기회이기 때문에 정치상황까지도 조사했다. 특히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상인들은 통신정보망을 발달시켜 런던은 어떤 상황인지, 베네치아는 어떤 상황인지 등의 정보 수집 및 조사 연구라고도 해야만 할 지적인 조작을 행했다.
기후변동에 의한 작물의 변동이나 정치상황을 조사한다는 것은 다른 형태로 말하면, 불확정한 요소를 조사하는 것이다. 즉 상인이 실제로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는 단순히 물건의 유통이 아니라 (1) 물건이 놓인 맥락의 불확정 요소의 선취적인 계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선취적 의식이 없다면 상인의 시간은 원리상 있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위험을 선취하기도 하고, 상품 가격이나 대부의 이윤을 계산하는 경험을 반복하는 가운데, 서서히 시간이라는 것을 양적인 대상으로서 추상화하여 계산하는 시간의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시간이 양적인 대상으로 된다는 것은 실제로 세분 가능한 시간으로 된다는 것이다. 순환시간은 간략하게 말하면, 하루를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세 가지 정도로만 분할하는 것이었는데, 상인은 이것을 1분, 1초라는 단위까지 분할하여 조작했다. 그러한 (2) 세분할 수 있는 양적 대상으로서의 시간, 계산가능한 추상적 시간, 간략하게 말하면 직선시간은 상인의 행동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상인의 행동이란 선취하는 의식에 의해 선도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선취하는 의식이 후에 근대에 받아들여지게 된 추상적이고 직선적인 계산 가능한 시간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시간의식이 그리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에서도 시계와 같은 것이 발명되었으나, 주류를 이루지는 못했다.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나중에 근대 시간이라고 말해지게 되는 것을 낳게 되었던 것은, 유럽에서는 12세기 이래의 상인들이었다. 12세기는 상업의 부활의 시대라고 칭해진다. 이것은 벨기에의 앙리 피렌느의 경제사 연구 이래 통설이 되었다. 상업의 부활은 중세 도시의 발흥(勃興)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상업은 원초적으로는 공동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졌으나, 도시라는 교역 공간이 독립하여 거기에서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도시는 12세기 이래 특히 크게 발전하여 13세기, 14세기에는 가장 융성하게 되었고, 주로 상인의 시간이 발생하는 장소가 되었다.
유럽에서 12세기 이래 활약했던 상인들에게는 도시 내부의 상인,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원격지 상인 등 두 종류의 상인이 있었는데, 상인이라는 관점에서는 특히 원격지 상인의 행동이 중요했다. 왜 그런가 하면, 선취하는 의식을 자각하는 것은 원격지 상인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좁은 파리나 런던 속에서라면 위험도 적으며, 선취 의식을 그렇게 급진화할 필요는 없었는데, 런던과 베네치아의 교역 등 해외 무역을 행하는 유대인 상인을 중심으로 한 원격지 상인은 불확정 요소의 계산에 상당한 힘을 쏟지 않으면 몰락하게 된다. 상인의 시간의 형성에 있어서 원격지 상인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데, 어쨌든 12세기 이래, 유럽에서는 상인의 경험이 축적됨과 더불어 추상적인 시간 계산이 발전하게 된다.
14세기 무렵 (3) 교회의 종과 도시의 시계 사이의 싸움이 발발한다. 13세기가 되면 시계의 원리가 거의 알려지게 되어, 14세기 무렵이 되면 그 원리를 이용하여 많은 시계가 만들어지며, 도시의 시청사에는 대형 시계가 설치된다. 당시의 전형적인 사례로는 플랑드르의 시계가 가장 유명하다.
교회의 종은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자연의 리듬을 표현하는 반면, 도시의 시계는 수공업과 상업의 시간을 체현한다. 상인이 선취하는 계산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기 매뉴팩처 역시 생산리듬, 노동 리듬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확함이 요구되었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계가 가장 적당했다.
14세기 이래의 서양 도시에서는 대형 시계가 만들어지고 도시의 중심부에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산업 리듬의 계산의 선구자였다. 따라서 종과 시계의 싸움은 원환시간과 추상적 시간의 싸움이며, 마침내 종의 시간이 패배하고 시계의 시간이 승리하게 된다. 이것은 농촌에 대한 도시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인이나 직인은 그들 자신의 머릿속이나 에토스가 필연적으로 근대인으로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시간의 의식을 순환시간에서 직선시간으로 전환해 가는 역할을 맡았다는 의미에서 시간의식에 있어서의 근대의 선구자로서 위치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최전성기에서 말기에 걸쳐 활약한 상인이나 수공업자들은 19세기적 부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의 부르주아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시민이 만든 추상적이고 계산 가능한 직선시간은 부르주아적 시간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낸 이 시간의식이 결국은 근대의 시간의식의 틀로서 계승되기에 이르렀다.

문제 1. 밑줄 친 (1)을 알기 쉽게 설명하시오.

문제 2. 밑줄 친 (2)에는 “세분할 수 있는 양적 대상으로서의 시간, 계산 가능한 추상적 시간, 간략하게 말하면 직선시간”이라고 되어 있는데, 직선시간은 왜 ‘추상적’인가를 설명하시오.

문제 3. 밑줄 친 (3)의 “교회의 종과 도시의 시계 사이의 싸움”은 어떤 연유에서 생겨난 것인가, 각각의 배경에 있는 시간 의식의 기본적 성격을 토대로 설명하시오.

문제 4. 이 제시문 뒤에서 저자는 밑줄 친 (3)의 “싸움”이 시간의식에만 머물지 않고 서양 ‘근대정신’의 성립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에게 ‘근대정신’이란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를 간략하게 설명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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