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3부 1장. 

오늘날의 생명정치학 : 푸코와 레비스트로스 

La biopolitique aujourd’hui : Foucault et Lévi-Strauss

프레데릭 켁(Frédéric Keck)

Frédéric Keck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일역자 해제]

프레데릭 켁은 1974년에 태어난 프랑스 인류학자이다. 켁의 경력과 작업에 대해서는 사상(思想)의 레비스트로스 특집(200812월호)에 게재된 논고 레비스트로스에 있어서의 주체의 해체와 생태적 카타스트로피(レヴィ=ストロースにおける主体解体生態的カタストロフィー)에 붙어 있는 와타나베 고조(渡辺公三)의 자세한 해설이 있으니까, 그것도 참조.

켁은 프랑스의 고등사범학교와 파리3대학에서 철학을, 미국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교에서 인류학을 배웠다. 현재는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것은 2008년에 프랑스대학출판국(PUF)에서 간행된 베르크손의 종교와 도덕의 두 가지 원천의 교정판과, 같은 해 2008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된 레비스트로스의 플레이야드판 저작집의 편집자로서의 작업일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뒤르켐,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레비스트로스에 관한 저작을 많이 간행했으며, 현대의 인류학 연구를 이끄는 신진기예의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는 주로, BSESARS 등 동물의 질병과 인간사회의 위생위기 사이의 관계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로부터, 인간과 동물을 둘러싼 현대의 생명정치의 형식을 탐구하고 있다. 그 성과는 최근의 저작 Des hommes malades des animaux(L’Herne, 2012)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것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와타나베 씨의 번역해설에 의한 논고 외에, 레비스트로스와 조류인플루엔자 : 잠재적 카타스트로피의 구조인류학(レヴィ=ストロースとインフルエンザ──潜在的カタストロフィの機造人類学)(山崎吾郎 訳, 現代思想, 20101月号, 靑土社) 등이 있다.

現代思想 201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20081205_Keck_02.jpg

[프레데릭 켁의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강연 보고는 두 개가 있다. 1) <조류인플루엔자의 인류학>이라는 제목은 여기를 참조. 2) 도쿄대학에서 열린 <레비스트로스와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제목의 강연은 여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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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 오늘날의 생명정치학 : 푸코와 레비스트로스2012328오사카대학 최첨단 두근두근 연구소 추진사업(大阪大学最先端ときめき研究推進事業) 바이오사이언스 시대에서의 인간의 미래(バイオサイエンスの時代における人間未来)의 일환으로 행한 강연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본인의 허가를 얻어 여기에 번역수록했다. 이 글은 최신작인 Des hommes malades des animaux와 똑같은 문제의식에서, 푸코와 레비스트로스의 교차적 독해, 그리고 조류인플루엔자나 그 세계적 유행(pandemic)이라는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둘러싼 경험적 사태를 통해, 현대세계의 생명정치적 국면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Des hommes malades des animaux

본고는 생명정치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도 커다란 의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푸코에서 유래하는 생명정치학 개념은 적용의 폭이 매우 좁은 것이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생명정치학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대적으로는 18세기부터 19세기의 어떤 한 시기, 그것도 지역적으로는 서양사회의 어떤 일부에 대상을 한정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푸코에게서는 결함도 무엇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푸코는 최만년最晩年에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세계로 회귀하는 장면을 빼면, 거의 유럽 근대라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인간의 소멸이라는 테제만 해도, 거기서 소멸을 다시금 논해지는 인간이란, 서양사회에서의 근대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푸코가 행한 분석이란 바로 서양사회에 한정된 것인가, 그리고 푸코가 살던 당시와는 완전히 상이한 규모로 전지구화와 포스트콜로니얼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개념이 자주 사용되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급박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켁이 굳이, 아시아에서의 현대의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을 현장 연구하는 것에는 푸코의 자세에 대한 모종의 비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질문은 푸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리라. 인문과학이나 의학의 고고학을 논한 국면과는 달리, 계보학을 논하는 1970년대 이후의 푸코는, 니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으로부터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모종의 광역적인 역사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방법론적인 사태가 영향을 줬기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푸코 자신은 생명정치학을 제기하고 인구의 생명성을 정치의 초점으로 삼은 후에, 그 시도를 직선적으로 밀고 나가지는 않았다. 거기에서는 그 개념의 적용범위나 영역 등에 많은 동요를 간파할 수 있다. 켁이 다루는 사목권력으로의 확장 등은 그 전형적인 예로, 푸코가 그 테마를 논한 것은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했지만, 기독교에서의 권력 시스템 전반과 유럽의 권력론의 존재방식을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는, 푸코로서는 이례적인 전개가 거기서는 기획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한편, 레비스트로스 등의 인류학과의 관련도, 푸코 자신의 시계에는 들어있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자로서 화려하게 지적 세계에 등장했을 때, 세대는 다르더라도, 레비스트로스와의 관계나 그 사고와의 평행성은 커다란 테마였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 자신이 전형적인 구조주의적 논의를 넘어서, 신화론(1964-7)에서 볼 수 있듯이 리좀적인 분석으로 나아갔을 때에(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 이번 호에 수록된 논고 등을 참조), 역시 자연적인 생명과 정치의 논의가 관련되는 생명정치학이 거기에서 어떻게 묶여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이른바 불가피하게, 들뢰즈-가타리에 의한 레비스트로스 해석의 문제도(안티 오이디푸스천개의 고원사이의 자세의 차이도 포함해) 부상하게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나 들뢰즈-가타리가 논한, 이른바 세계창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인류의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논의와, 생명정치학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레비-브륄부터 베르크손, 그리고 레비스트로스라고 하는, 프랑스에서의 자연과 사회를 둘러싼 사고그 자체를 문헌적으로 연구해온 켁이, 특히 중국(홍콩)이나 대만을 필드로서, 조류인플루엔자나 모종의 역병의 전지구화와, 그 관리 시스템의 존재방식에 표적을 겨눈 독창적인 연구를 행하는 것은, 위와 같은 레비스트로스와 푸코의 교착(아니 오히려 인류학과 생명정치학의 교착), 이른바 학문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행보의 기반으로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의 증거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인류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하나의 전개일 것이다.

이러한 켁의 자세는, 프랑스의 파트리스 마니글리에(Patrice Maniglier)나 혹은 브라질의 비베이로스 데 카스트로에 의한 새로운 인류학 연구의 조류 중 하나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브루노 라투르 등의 과학인류학과의 연관 등과 더불어, 거기에는 푸코나 들뢰즈-가타리의 논의가, 자연과 문화를 둘러싼 논의의 기초로서 깊숙히 파고들어와 있다. 푸코의 생명정치학이 한편으로는 이탈리아계의 아감벤이나 네그리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영미권의 니콜라스 로스 등에게서의 바이오사이언스와 사회의 문제로 향하는 가운데, 프랑스의 인류학을 담당하는 젊은 브라질의 인류학자가, 이런 다른 계통의 전개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것이,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환경, 인간과 우주 등, 매우 소박하면서도 중요하며, 예전부터 질문되었으나,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계속 질문해야 할 문제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히가키 타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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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폴 래비노우니콜라스 로즈바이오 소사이어티지에 오늘날의 생명권력[각주:1]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미국의 인류학자와 영국의 사회학자는 거기서 생명권력과 생명정치를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에 착수하고, 현대의 분석에서 이것들이 지닌 유효성을 옹호하는것을 제안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사실 과거 20년 동안, 도덕의 형식들에 관련된 그들의 일련의 탐구를 이끌었던 장비중 일부를 이루었다. 그런 도덕의 형식들이란, 정신적인 장애 및 사회적인 장애의 관리에 있어서,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제약산업에 의해 산출된 것이다. 거기서 래비노우와 로즈는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이, 현대사회에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들의 진단을 가능케 하는 이종혼교적인 개념임을 제시하기 위해, ‘도구상자라는 푸코적인 은유를 매우 자연스럽게 다루게 된다.

은유에 은유를 거듭하면,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은 외과용 존데(Sonde)가 아니라, 오히려 농경에서 사용하는 콤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광대한 밭에서 막대한 양의 작물을 수확하고, 솜씨 좋게 정리된 꾸러미를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생명다양성을 찌부러뜨리고 토양을 소모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사회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더 간결하게 소박한 도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도구상자라는 푸코적인 은유보다도, 브리콜라주라는 레비스트로스적인 분석을 선택하고 싶다. 브리콜라주는 어떤 환경에서 적당한 방식으로 의미를 낳는, 감각 가능한 질의 총체를 가리킨다.

ゾンデ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외과용 존데

이 글의 제목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저작 오늘날의 토테미즘에서 차용한 것이다. 1962년에 출판된 이 저작은, 구조인류학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책 야생의 사고[각주:2]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우고 싶다. ,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지난 세기에서의 토테미즘 개념의 성쇠와 마찬가지로, 인간과학에 있어서 성쇠를 뒤따르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사회의 현상들을 동질적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죽어버린 생명정치 개념의 잠재력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 개념을 탈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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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설을 설득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우선 토테미즘과 생명정치라는 두 개념의 계보를 대비해보자. 토테미즘 개념은 이미 1869년에 영국의 사회학자 맥레넌(John Ferguson McLennan)이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한 사람들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지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은, 프레이저와 뒤르켐의 정리된 저작으로부터였다(프레이저, 토테미즘과 족외혼(1910), 뒤르켐,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1912)). 그것에 의해 토테미즘 개념은, 학문적 공동체를 넘어선 논의의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통과의례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아놀드 반 게넵(Arnold van Gennep, ‘제네프라고도 함)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인류학자들의 떠들썩한 교류의 장이었던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지에 이 개념에 대해 한참이나 논의하고, 그것을 자신의 저작 토테미즘 개념의 현황(1920)에서 소개했다. 레비스트로스는 1962년에, 반 게넵의 이 저작을 토테미즘에 대한 사색에 관한 백조의 노래라고도 말해야 할 걸작[각주:3]이라고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생명정치 개념은, 푸코가 1976년에 성의 역사 1및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다루기 전에, 국가에 의한 국민의 인구의 생명에 대한 개입에 대한 논의 속에서, 루돌프 첼렌(Rudolf Kyellen)에 의해 191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생활형태로서의 국가(1916)). 알다시피, 푸코는 1978년의 강의에 생명정치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이 개념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에 이 개념은 다중(Multitudes)지에서 채택됐다. 이 잡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지식인들의 교류의 장으로, 2000년에 이 개념을 다룬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이 비교를 따른다면, 프레이저와 뒤르켐이 토테미즘 개념의 계보 속에서 맡았던 것과 똑같은 역할을 푸코가 생명정치 개념의 계보 속에서 맡고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 그는 당시에는 아직 국지적인 사정거리를 가졌을 뿐인 이 개념을 일반화한 것이다. 로베르토 에스포지토가 보여주듯이, 푸코는, 그때까지는 불변의 소여로서 파악됐던 것을 역사적인 문제로 제시한다. 그는 당시에는 아직 사회의 쇄신에 대한 정치적 계획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삶과 권력의 연결을, 주체와 역사에 대한 철학적 반성으로서 묘사한 것이다.[각주:4] 그 뿐만 아니라, 이 비교는, 인류와 그 환경 사이의 관계를 기술할 때, 토테미즘 개념이 공백인 채로 있었던 장소를, 생명권력 개념이 떠맡고 있다는 것도 나타내고 있다. 토테미즘은, 인간과 생명 사이의 근접성을, 미개사회의 애매한 기원에 위치시킨 것인데, 생명정치는 그 근접성을, 진보와 묵시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묘사해내는 것이다.

이 비교에 의해서, 각각의 계보에 누락되어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프레이저와 뒤르켐은, 그 당시 토테미즘의 행위가 보고된 오스트레일리아나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며, 그래서 그들은, 아메리카에서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의 주변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던 것인 신화에 있어서의 자연 종의 분류에 대한 연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1910, 프레이저가 토테미즘에 관한 4권의 책을 썼을 때, 알렉산더 골덴와이저(Alexander Goldenweiser)아메리칸 앤트로폴로지스트(American Anthropologist)지에 발표한 논문은 이 문제를 언어학적으로 다루는 수법을 도입함으로써, 토테미즘 개념을 탈구축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오늘날의 토테미즘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프레이저가, 당시 알려진 사실을 모두 주워 모아서 발표하고, 토테미즘을 체계로서 만들어내고, 그 기원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과 똑같은 때, 골덴와이저는 다음의 세 가지 현상을 서로 포개는 것이 허용되는가라고 항의했다. , 씨족조직, 동식물의 이름 또는 표식의 각 씨족에의 배부, 씨족과 그 토테미즘 사이의 친족관계에 대한 신앙 등 세 가지 현상이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이것들의 윤곽이 합치하는 것은 매우 드물며, 그 중의 한 가지 현상이 인정되더라도, 다른 현상이 인정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다.”[각주:5]

이와 똑같이 푸코는, 새로이 출현한 감염증을 놓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형성되고 있던 사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메리카에 있어서의 신자유주의 국가의 변용에, 즉 개인에 대해 자기 자신의 건강의 행위자actor가 되도록 요구하는 사회보장시스템의 역설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1976, 푸코가 권력의 테크놀로지 속으로의 생명의 편입[기입]을 기술한 그 해에, 윌리엄 맥네일(William Hardy McNeill)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의 질병의 역할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각주:6] 이 책은 새로이 출현한 감염증이라는 개념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됐다. 같은 해, 대니얼 칼턴 가이듀섹(Daniel Carleton Gajdusek)은 뉴기니아의 카니발리즘 실천에 의한 프리온(prion)[각주:7]의 전파에 관한 연구로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하고,[각주:8] 또한 같은 무렵, 환경 변화가 그 원인이 된 아프리카 삼림의 원숭이에게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했다(에볼라열병이나 HIV).[각주:9] 또한 같은 해에 덩샤오핑은, 특히 소비를 목적으로 동물의 수를 늘림으로써 중국을 자본주의에 개방하며, 또한 인간의 인구를 줄이려고 했다. 이렇게 덩샤오핑은, 지난 세기의 더욱 더 커다란 생명정치적 혁명의 하나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각주:10] 이때 이미 아메리카에 대한 고찰로부터 푸코가 만들어낸 생명정치 개념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성립되고 있던 생명과 테크놀로지와 권력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기술하는 데에는 불충분한 것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계보의 비교는, 세 번째 계획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그것은 계보의 기원의 변화나, 계보가 눈을 감아온 누락에 관한 계획이 더 이상 아니며, 그 변용의 애매함이나, 계보가 열어둔 채로 하는 문제에 관한 계획이다. 푸코에 의해 제시된 생명정치 개념은, 곧바로 신체의 해부정치(규율훈육)와 인구의 생명정치(감시)로 양분된다. 푸코가 이런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그가 관심을 가졌던 영역, 즉 섹슈얼리티와 진리의 관계의 영역을 기술하기 위해서, 이것이 유효했기 때문이다(섹슈얼리티는, 신체 사이의 관계인 동시에 인구의 변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과가 많은 긴장관계는, 생명정치에 관한 두 개의 해석 사이의, 양립할 수 없는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그 하나는 조르조 아감벤의 해석이며, 그것에 따르면, 주권권력이야말로 항상 벌거벗은 생명을 희생제의하는 생명정치의 대상이었다(즉 생명정치란 본질적으로 신체를 구속하는 권력이었다). 다른 하나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해석이며, 그것에 따르면, 생명정치란, <제국>과 다중 사이의 기생적인 관계를 엶으로써, 주권국가를 종언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생명정치란 본질적으로 가변적인 공동체에 대한 지식의 관계인 것이다).[각주:11]

토테미즘 개념도 또한, 항상 두 개의 해석 사이에서 흔들려왔다. 그 하나는, 살아 있는 것 사이의 관계를 다중화함으로써 토템 향연의 준비를 가능케 하는, 지적인 조작을 중시하는 것이다(뒤르켐, 모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들을 고정하기 위한 토템의 희생제의가 가진 신체적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것이다(로버트슨 스미스William Robertson Smith, 프레이저).[각주:12] 그래서 금세기 초반의 인류학자에게 있어서, 토테미즘의 문제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동일시를 대상으로 하는 신앙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수행하는 듯한 의례적인 실천을, 어떻게 연관시키느냐에 있었다.

아감벤과 네그리에 의한 생명정치 해석의 대립이 1세기 전의 프랑스 사회학파와 영국 인류학파 사이의 대립의 재연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명의 이탈리아 철학자는, 이러한 전통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섬세하고 엄밀한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두 가지 해석의 대립은, 토테미즘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이미 알려진 어떤 다른 문제의 재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희생제의 즉 신체에 대한 작동걸기와, 감시 즉 인구의 이해[포착]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오늘날 새로이 출현한 감염증에 의해 야기되는 공중위생의 대규모 위기 때에, 이 관계가 재차 연결되는 것이 목격되는데, 그때 우리는, 토테미즘 개념이 미해결인 채 방치한 여러 문제들을 실마리로 하면서, 생명정치 개념을 채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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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위생의 위기 그 자체나, 그것을 기술하기 위한 생명정치 개념의 타당성에 대해 논하기 전에, 푸코나 레비니스트로스 자신이, 희생제의와 감시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봐두어야 한다. 여태까지 내가 한 분석은 두 계보 사이에서 유비를 간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의 시선을 푸코의 개념에 적용한다는 방법을 취했다. 이제, 어떻게 푸코의 저작과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을 똑같은 문제가 관통하고 있는가를, 서로의 저작을 교차시킴으로써 검토해야 한다.

푸코는 항상, 레비스트로스에게 양의적인 관계를 표명했다.[각주:13] 푸코는 1960년대에 레비스트로스를, 초현실주의자들에 이어 인간의 형상을 언어활동의 게임으로 해체하는 구조주의적 혁명을 인간과학에 도입한 인물로 그렸다.[각주:14] 그러나 1970년대에 신체의 규율훈육과 저항의 전략을 향해 전회하는 장면에서, 레비스트로스가 형식주의적이라는 이유에 의해, 푸코는 그에게서 떠나간다. 아마 이 전회는, 1974년에 브라질 레비스트로스의 땅 에서 행한 진리와 법적 형태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분명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그로츠부터 주르네뒤메질을 통해 베르낭(Jean-Pierre Vernant)에 이르는 법권리에 대한 사회학의 전통을 증거로 삼는다. 그는 담론을 의례적인 것으로서, 실천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실천의 내부의 전략으로서연구하는 것을 제안하고, 그리고 도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구조주의는 언표의 총체 사이의 이행이나 변화나 동형성의 규칙을 탐구하면서, 담론의 총체를 다루며, 그것들을 언표로서만 다루는 것이다.”[각주:15]

푸코는 1970년의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를, 오이디푸스 신화를 재판의 이야기로 분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도전은 물론이고, 코드화를 다양화함으로써 이 신화를 다시 채택했던 레비스트로스 인류학에 대한 도전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각주:16] 1976년에 출판된 지식의 의지에서는, 혼인의 장치가 생명권력의 장치에 대립되고 있다. 혼인의 장치는 혈연 및 근친상간 금지를 둘러싼 것이며, 생명권력의 장치는 성 및 살아 있는 것의 규범을 둘러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묘사되는 것이다.[각주:17] 1975년의 강의에서, 이 대립의 의미가 명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것에 의하면, 인류학은 항상 괴물의 형상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인류학이 토테미즘의 관점, 즉 인육 먹기의 관점[각주:18]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은, 레비-브륄처럼 괴물을 더 멀리, 미개의 심성속으로 억지로 처넣거나, 혹은 레비스트로스처럼 괴물을 더 가까이, 친족의 기본구조에 기입하거나 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인류학은 근친상간에 대한, 즉 원초적인 희생제의에 대한 프로이트적 형상을 갖고서 장난질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푸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생명권력을 19세기 말의 범죄학자들에 대한 미시정치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치, 콜레주드프랑스의 교실에 있는 푸코가 다른 교실에 있는 레비스트로스에게 도전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도전 속에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1972)에서 라캉과 레비스트로스에게 한 비판의 반향을 들을 수 있다. 푸코의 1976년 강의는 불랭빌리에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레비스트로스가 불랭빌리에를 역사의 구조 변화에 대한 사상가로 파악했던 반면,[각주:19] 푸코는 그를 [레비스트로스의] 인종과 역사에서 기술된 제반 제휴의 반()이야기라고 해석되는 인종 간 전쟁(guerre des races)에 대해 사고하는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한다.[각주:20] 레비스트로스가 변환의 상호적 관계에서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구조를 사고하는 곳에서, 푸코는 도주선을 따라서 역사의 다양한 계열을 사고하는 것이다.[각주:21]

레비스트로스는, 푸코에 대해 항상 어떤 조바심을 드러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을 푸코, 라캉, 바르트와 함께, 똑같은 이국적인 묶음에 편입하려고 하는 구조주의적인 풍조에 관련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방브니스트나 뒤메질이나 베르낭의 지적 계보에 관련시킨다. “푸코가 그런 동일시를 거절한 것은 지당하다[각주:22]고 그는 잘라 말한다. 그는 또한, 디디에 에리봉에게 주의하라, 사물은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라고 신물이 날 정도로 거듭거듭 말한 푸코의 방식은 탐탁치 않다”, 그리고 푸코가 시대의 전후관계를 무시하고 있다고 느끼기에 견디기 어렵다[각주:23]고 털어 놨다. 요컨대, 구조인류학은 푸코의 실천적인 역사의 비판철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1970년대의 레비스트로스의 작업 속에서,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의 다른 교실로부터 그를 향한 비판에 대한 응답을 간파할 수 있다. 신화론의 마지막 권인 벌거벗은 사람에서, 레비스트로는 어떤 결론에 이른다. 그것에 따르면, 다양한 신화는 그것 자신의 실현의 조건을 주해(注解)하는 것이며, 따라서 거기서 인류학자가 제시하는 이론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신화라고 하는 것이다.[각주:24] 레비스트로스가 교환 속에서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인식하기 위한 모종의 시금석을 찾아내는 철학에서 보면, 다양한 모양의 고양이과 동물이 경제적 관계를 영위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각주:25]라고 쓸 때, 우리는 이따금, 레비스트로스를 구조주의의 구조적 역사 속에 위치시키려고 하는 푸코를 읽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혹은 레비스트로스가 각 신화는, 각각의 방식으로, 다양한 존재양식의 한복판에서부터, 하나의 존재양식에 대한 이론을 형성한다[각주:26]고 쓸 때, 우리는 푸코적인 윤리의 소묘를 간파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가 1974년부터 76년까지 행한 콜레주드프랑스의 강의는 카니발리즘과 의례적 이성식異性装(Cannibalisme et travestissement rituel)(상징계의 창설에 있어서의 폭력적인 전도의 역할에 대해), 구두 전승의 질서와 무질서(Ordre et désordre dans la tradition orale), 이라는 개념(La Notion de maison)(유력한 귀족계급이 그들의 지배를 인정받기 위한 친족전략에 대해) 등을 다루었는데,[각주:27] 이것들도 마찬가지로, 푸코의 비판에 대한 응답인 것 같다. 

아득한[아주 멀리서 보는] 시선에 의해, 이 두 명의 사상가의 일화적인 교차의 건너편에서, 야생의 사고지식의 의지라는 두 권의 위대한 책의 유사성이 보인다. 콜레주드프랑스에 취임하자마자 레비스트로스와 푸코는, 첫 번째 강의에서 자신들의 작업의 방향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이 두 권의 책에서, 각각 자신들이 어떤 지적인 시도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를 작성한다. 친족 구조를 다루려고 생각했던 레비스트로스는, 다양한 신화의 변환을 탐구하고, 규율의 기법의 연구를 제안했던 푸코는 그것을 살아 있는 것의 통치로 확장한다. 두 사람 모두 대단치 않은 사건(혁명이나 투쟁)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서 그런 사건이, 그것들에 선행하는 권력 구조에 있어서 재구성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그들은, 역사의 필연성과 사건의 우연성 사이의 새로운 관계성을 찾아낸다. 그래서 그들은, 작동하고 있는 메커니즘의 다양성이나, 의미가 산출되는 수준을 놓쳐버리는 의식의 철학에 대립한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사르트르의 변증법은, 인간의 역사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함으로써, 자연 종(혹은 신화소)을 잘못 파악해버린다. 그리고 푸코에 따르면, 비판이론은, 억압적 권력이라는 가설에 의해, 성에 관한 담론의 수준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토테미즘 및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관계들의 새로운 영역을 해방하기 위해 문제화되어야 하는 이론적 장애물이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을, 종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교차하는 수평축과 수직축으로 분리한다. 푸코는 인구의 생명정치와 신체의 해부정치를, 성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교차하는 두 개의 축으로 구분한다.[각주:28]

이렇게 지식의 의지를 이중적 방식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우선 혈통의 장치에 통합된 것이 성의 장치로부터 분리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미개의 토테미즘/근친상간/카니발리즘의 관계로부터 현대의 생명정치/인구/신체의 관계로 이행할 수 있다. 이 가설에 의해 푸코는 레비스트로스에게 통합되어 있던 것을 복수로 나누는 것이다. 이어서 성에서 분리되는 것은 항상 조직에서 분리되는 것인데, 그것은 인종을 동질화하는 담론에 의해 덮어 감춰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가설에 의해 푸코는, 레비스트로스가 미개사회에 적용한 것과 똑같은 분석 격자를 현대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푸코는 신체와 인구에 대한 지배를 확실한 것으로 하는 주권권력이라는 커다란 이야기에 숨어 있는, 살아 있는 것의 통치에 관한 하나의 담론으로서의 사목주의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행하듯이 주권권력에서 생명정치로 이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좌표계를 가진 온갖 사회에서, 동일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주권자 사이의 연결[묶임]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신체를 통제하는가, 그리고 인구의 건강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형을 정당화하는가라는 문제이다.

 

*

여기에서 레비스트로스와 푸코의 교차적 독해는 현대사회의 인류학과 결부된다. 그런 인류학은, 푸코가 주권권력으로부터 생명권력으로의 이행을 기술할 때의 유명한 말을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둔다는 낡은 권리를 대신해,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는 권력이 나타났다고 말해도 좋다. 주권권력을 상징한 낡은 죽음의 역능은, 이제 신체의 행정관리와 삶의 경영관리에 의해 주의 깊게 덮이고 말았다. 이리하여 생명권력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각주:29] 이 정식은 그 대칭성에 있어서, 레비스트로스가 어떤 신화에서 다른 신화로의 변환을 기술할 때의 표현을 상기시킨다. , 말미의 한 마디 가벼운 변경에 의해 어떤 체계가 다른 체계로 전환하도록 요소들이 체계적으로 전도된다는 표현이다.[각주:30]죽게 한다 / 살게 내버려둔다 살게 한다 /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 “~ 내버려둔다가 더 이상 아닌 이 폐기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삶과 죽음 사이의 관계들 속의 진정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이 폐기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것이 문제의 전부이다.

홍콩의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민족지적 조사에 의해, 이 수수께끼 같은 표현을, 필드에 기초한 연구의 관점에서 음미할 수 있다. 1997, 홍콩의 조류에서 “H5N1”이라고 불리는 신형 독감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감염된 18명 중 7명이 사망하고, 150만 마리의 가금류가 도살 처분됐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영국의 구식민지가 중국의 통치권에 반환된다고 하는 문맥에서이다. 그 스펙터클적인 성격은, 이런 정치적 틀에 있어서의 홍콩 사람들의 장래의 불안과, 질병의 동물을 근절함으로써 인간의 인구를 보호하려고 하는 새로운 주권권력의 의지를, 동시에 두드러지게 했다. 이 사건에 이어서, 조류로부터 인간에게로 H5N1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그리고 홍콩에서 유행(pandemic)이 시작될 가능성에 사람들을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 “바이오시큐리티의 조치가 홍콩 전역에 적용됐다.

이 사건을 주권권력에서 생명권력으로의 이행을 명시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가금류의 살처분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양계의 경제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희생 제의로 기술할 수 있다. 그리고 농가나 시장이나 세관에 부과된 바이오시큐리티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인간 사이에서 H5N1 바이러스의 전파가 임박했다는 것, 그리고 온갖 훈련에 의해 이 카타스트로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병원과 연구소의 관계자들에게 납득시켰다.[각주:31] 그러나 주권적인 살처분의 횡포로부터 시뮬레이션 훈련의 모나지 않음으로의 이행은, 폭력의 형식의 모든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H5N1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가금류에 확산되고, 홍콩에 적용된 바이오시큐리티의 규범이 국제위생기관에 의해 반복됐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 이런 바이러스 대책의 전지구적인 장치는 남반구의 말라리아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정부가 안티바이러스나 백신의 국제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국가의 사람들을 죽음 속으로 폐기하는것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각주:32]

내가 진행한 조사는, 이러한 이행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홍콩의 사례에서는, 그 어떤 점에 있어서 이 초근대적인 바이오 시큐리티의 조치가 위생상 및 미각상의 질을 보증하는 목적으로 영계를 산 채로 매매한다는 전통적인 실천이 증명하고 있듯이 대부분이 시대착오적인 가금류의 양계와 관련된 채로 있을 수 있었느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H5N1 바이러스가 농가나 시장에 들어가 이후 거급되는 가금류의 살처분은, 우리에게, 1997년의 대규모 살처분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침범되자마자 재현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내가 목격한 것은, 주권권력에서 생명권력으로의 이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특별행정구역에서 만들어진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들을 횡단하는 두 가지 권력의 끊임없는 교착이다.

그래서 나는, 내 연구에 있어서, 푸코의 표현 속에서 종종 그다지 주해되지 않은 어떤 점을 강조했다. 그것은 주권권력에 있어서 살게 한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이다. 홍콩에서의 동물에 결부된 다양한 실천들은, 이런 표현에 대한 놀라운 예증을 주었다. 중국의 불교도들은, 동물을 자연스럽게 풀어두고 공덕’(gongde)을 쌓기 위해서, 실제로 시장에서 동물을 산다. 이러한 실천은, 문자 그대로 삶을 해방한다혹은 살게 한다”(방생 fangsheng)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환경문제의 전문가 집단에 의해 비판받고 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해서 해방된 새들의 대다수는 죽는다. 왜냐하면 새들은 새장 속에서 바이러스를 교환하기 때문이며, 또한 친숙한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이동당하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의 전문가 집단은, 그것을 대신해서 과학적으로 해방하는”(과학방생 kaxuefangsheng) 것을 실천하라고 제안했다. 이것은, 해방된 이 동물들에게, 그 이동이나 건강 수준을 추적하는 가락지脚環GPS를 장착하자는, 미국의 동물보호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천을 모델로 한 것이다.[각주:33]

살게 한다”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벌어지는 이런 논의로부터는 배울 것이 많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푸코가 생명권력이라고 부르는 것과 사목권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새로운 교착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의 야생동물 길들이기 이후, 사목권력은 동물을 무리로 간주하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감시되어야 한다고 파악했다. 사목권력은 정신적 권력이며, 그 감시 능력에 의해 뛰어난 효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그것은 동물에 감시하는 권력을 둘러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동물과의 심적 연속성을 갖게 됐다.[각주:34] 이러한 심적 연속성이나 감시의 효력이, 전생(轉生)의 우주론이나 선긋기의 기술에 의해 행사된다는 것은, 사목권력 안에서의 문제 제기 방식에 비하면 이차적이다. H5N1 바이러스는, 인간, 동물, 그리고 감염인자인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기생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와의 항상 불안한 균형에 있어서, 야생동물의 길들이기라는 기원을 상기시킴으로써, 이런 구조를 전복시킨다. 사목권력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야생의 것과 길들여진 것 사이의 경계를 회복하는 몸짓으로서, 즉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몸짓으로서, 희생제의가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동물의 무리와 인간의 인구의 감시를 보증하는 통치자들은, 미생물학자들과,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의 변이의 지도 작성을 행하고, 이것들의 카타스트로피적 출현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바이러스 헌터들과 결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목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을, 진정한 탐구 영역을 여는 어떤 문제의 소묘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정신적인 권력이, 병에 걸린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새로운 병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구를 왕래하는 동물의 무리에도 관련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의 통치에 있어서 어떻게 기능할까? 이 권력은 어떤 형태의 진리를 산출하며, 그리고 이 진리는 현대사회에서 삶이 취하는 새로운 형상에 대해 무엇을 명시할까? 이런 물음에 비춰보면, 생명권력의 가설은, 좋은 경우에는 삶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나쁜 경우에는 가차 없이 뭉개버리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푸코 자신은, 그리스인 및 그들이 고안해낸 주체성으로 회귀했을 때, 현대사회를 순환하는 모든 흐름을 한데 모으는 생명정치라는 가설로부터 거리를 뒀다.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다네라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한 뒤메질의 주해를 다루면서 푸코는, 소크라테스가 여기에서 전통에 대한 자신의 애착과 삶에 대한 혐오를 표명하고 있다는 니체의 해석을 물리친다. 푸코가 말하기를,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윤리적 자세를 발명하고 있다. 그것은, 희생제의를 자기의 감시로의 끊임없는 관계맺음으로 변용시키는 윤리적 자세이다. “소크라테스는 피타고라스파의 격언을 인용한다. 그것에 따르면, ‘우리는 프로라(phroura) 속에 있다고 한다. 프로라는, 때로는 감시로 번역되고, 또한 울타리로 둘러싼 땅’이감시구역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면, ‘감시초소’(우리는 보초를 서고 있다’)라고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들의 배려[마음씀] 속에 있으며, 그리고 플라톤이 말하기를, 그래서 우리는 자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감시로부터가 아니라 이러한 신들의 동정심이나 배려[마음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각주:35] 이리하여 전문가가 다가올 전염병 대유행(pandemic)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공중위생의 보초 속에서, 푸코가 분석한 사목권력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난다 그러나 사목권력이 어떻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편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비스트로스의 도움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각주:36]

  1. Cf. Paul Rabinow et Nikolas Rose, «Biopower Today», BioSocieties, 1, 2006, pp.195-217; trad., fr, «La bio-pouvoir aujourd’hui», traduit par Frédéric Keck, Raison publique (à paraître). [본문으로]
  2. Cf. Claude Lévi-Strauss, Le totémisme aujourd’hui; La pensée sauvage, in Œuvres, Paris: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2008, pp.447-872(Notice et notes de Frédéric Keck, pp.1774-1848). [본문으로]
  3. Cf. ibid., p.452; Frederico Rosa, L’Àge d’or du totémisme. Histoire d’un débat anthropologique(1887-1929), Paris: CNRS Éditions, 2003. [본문으로]
  4. Cf. Robert Esposito, Bios. Biopolitica e filosofia, Turin: Einnaudi, 2004; Marie Gaille-Nikodimov, «Les deux voies de la “biopolitique”», Critique, no 703, 2005. [본문으로]
  5. Cf. Lévi-Strauss, op. cit., pp.452-453. [본문으로]
  6. Wiliam MacNeill, Plagues and Peoples, 1976, Garden City, N. Y.; Anchor Press / Doubleday; trad, fr.; Le temps de la peste. Essai sur les épidémies dans l’histoire, traduit par Claude Yelnick, Paris: Hachette, 1978. [본문으로]
  7. * 프리온은 단백질성 감염성 입자로 단백질을 뜻하는 ‘protein’에서 pr을, 감염성을 뜻하는 ‘infectious’에서 i를, 입자를 뜻하는 접미사-on을 붙여 만들었다. 아직까지 많이 알려진 것이 없는 이론상의 감염원으로, ‘protein only’ 가설에 따르면 단백질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프리온은 포유류에서 몇 종의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질환 중에는 흔히 광우병(mad cow disease)이라 부르는 소해면상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과 사람에 발생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등이 있다. [본문으로]
  8. Cf. Warwick Anderson, The Collectors of Lost Souls. Turning Kuru Scientists into Whilemen,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8. [본문으로]
  9. Cf. Maxime Schwartz et François Rodhain, Des microbes ou des hommes, qui va l’emporter?, Paris: Odile Jacob, 2008; Frédéric Keck, «Les hommes malades des animaux», Critique, no 747-748, 2009, pp.796-808. [본문으로]
  10. Cf. Susan Greenhalgh (avec Edwin Winckler), Governing China’s Population. From Leninist to Neoliberal Biopolitics,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id., Just One Child. Scoence and Policy in Deng’s Chin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 id., «The Chinese and Biopolitical Facing the Twenty-First Century», New Genetics and Society, Vol. 28, No. 3. 2009, pp.205-222. Cf. aussi Frank Dikötter, Imperfect conceptions. Medical Knowledge, Birth Defects, and Eugenics in China, 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본문으로]
  11. Cf. Giorgio Agamben, Homo Sacer, Le pouvoir souverain et la vie nue, traduit par Marilènè Raiola Paris, Seuil, 1997. ; Michael Hardt et Antonio Negri, Empire, traduit par Denis-Armand Canal, Paris: Exils, 2000. ; Frédéric Keck, «Les usages du biopolitique», L’Homme, Revue français d’anthropologie, no 187-188, 2008, pp.295-314. [본문으로]
  12. Cf. Frédéric Keck, «La participation au sacrifice comme moment originaire de la vie sociale, Robertson Smith, Durkheim, Lévy-Bruhl», Alter, Revue de Phénoménologie, 17, 2009, pp.137-152. [본문으로]
  13. Cf. Jean Zoungrana, Michel Foucault, un parcours croisé, Lévi-Strauss, Heidegger, Paris: L’Harmattan, 1998. [본문으로]
  14. Cf.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I. 1954-1969, Paris: Gallimard, 1994, pp.514-516 et 541-542. 일본어판, 367-369頁. ; Philippe Sabot, «Granger et et Foucault lecteurs de Lévi-Strauss. L’anthropologie structurale, entre épistémologie et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in Patrice Maniglier (dir.), Le moment philosophique des années 1960 en France, Paris: PUF, 2011. [본문으로]
  15.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II. 1970-1975, Paris: Gallimard, 1994, p.636. 일본어판, 204頁. [본문으로]
  16. Cf. Michel Foucault,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oir.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0-1971, Paris: Gallimard/Seuil (Hautes Etuds), 2011. [본문으로]
  17. Cf. Michel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I, La volonté de savoir, Paris, Gallimard, 1976, pp.140-141. 일본어판, 154-155頁. [본문으로]
  18. Cf. Michel Foucault, Les anormaux.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4-1975, Paris: Gallimard/Seuil/Hautes Etudes, 1999, p.96. 일본어판 113頁. [본문으로]
  19. Cf. Claude Lévi-Strauss, op. cit., p.840. [본문으로]
  20. Cf. Michel Foucault, «II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5-1976, Paris: Gallimard/Seuil (Hautes Etudes), 1997, p.112 sq. 일본어판 129頁 이하. [본문으로]
  21.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변환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해 레비스트로스를 다시 읽는데, 푸코가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한 재독해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의 독해에서 제시된 부정적 이미지를 수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Cf. Eduardo Viveiros de Castro, Métaphysiques cannibales, Lignes d’anthropologie post-structurale, traduit par Oiara Bonilla, Paris: PUF, 2009. [본문으로]
  22. Cf. Claude Lévi-Strauss et Didier Eribon, De près et de loin, Paris: Odile Jacob, 1990, p.105. [본문으로]
  23. Ibid. [본문으로]
  24. Cf. Frédéric Keck, «L’esprit humain chez Lévi-Strauss. De la parenté aux mythes. de la théorie à la pratique», Archives de philosophies, no 66, 2003, pp.9-32; id., Claude Lévi-Strauss, une introduction, Paris: Pocket (2005), 2011. [본문으로]
  25. Claude Lévi-Strauss, L’Homme nu, Paris: Plon, 1971. p265. [본문으로]
  26. Ibid., p.287. [본문으로]
  27. Cf. Claude Lévi-Strauss, Paroles données, Paris: Plon, 1984, pp.141-156 et 189-191. [본문으로]
  28. Cf. Frédéric Keck, Lévi-Strauss et la pensée sauvage, Paris: PUF. 2004. [본문으로]
  29.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I, op. cit., pp.181-184. 일역본 175-177頁. [본문으로]
  30. Cf. Lucien Scubla. Lire Lévi-Strauss. Le déploiement d’une intuition, Paris: Odile Jacob, 1998. [본문으로]
  31. Cf. Andrew Lakoff (avec Stephen Collier) (dir.), Biosecurity Interventions, New York: SSRC-Columbia University Press; id., «Preparing for the Next Emergency», Public Culture, 19, 2007; trad. fr., «Pour qu’un désastre ne tourne pas à la catastrophe, Jusqu’où sommes-nous prêts?», traudit par Nathalie Cunnington, Esprit, mars/avril 2008, pp.104-111. [본문으로]
  32. Cf. Didier Fassin, Quand les corps se souviennent. Experience et politiques du sida en Afrique du sud, Paris: La Découverte, 2006. [본문으로]
  33. Cf. Etienne Benson, Wired Wilderness. Technologies of Tracking and the Making of Modern Wildlif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0. [본문으로]
  34. Cf. André-Georges Haudricourt, «Domestication des animaux. culture des plantes et traitement d’autrui», L’Homme 2 (1), 1962, pp.40-50; Philippe Descola, Par-delà nature et culture, Paris: Gallimard, 2005, p.448. [본문으로]
  35. Michel Foucault, Le courage de la véri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3-1984. Paris: Gallimard/Seuil (Hautes Etudes), 2009, pp.91-92. 일본어판 123-124頁. [본문으로]
  36. Cf. Frédéric Keck, «Une sentinelle sanitaire aux frontières du vivant. Les experts de la grippe aviaire à Hong Kong», Terrain, no54, 2010, pp.26-41; id., Un monde grippé, Paris: Falmmarion, 2010.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그리스 이후의 사상사를 되돌아보면, 현재 진행 중인 혁명세계공화국의 출현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제창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 칸트적 규제이념(뒤따라가지 않을 이상이라고 바꿔 말해도 된다)이 아니라, 위기에서 출발해 발명되는 특수한 정체이념으로서의 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이념은, 민주정도 귀족정도 군주정도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세 정체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방식을 둘러싼 분류였다. 민중(데모스), 다중(멀티튜드)이 권력을 쥐는가, 귀족, 특권계급, 엘리트가 과두제 지배를 행하는가, 아니면 왕, 절대군주에 통치를 맡기는가. 자세한 것은 생략하지만, 폴리비오스 이후의 세 가지 정체론은 주권을 둘러싼 유형론인 동시에 순환론이기도 했다. 어떤 통치유형에도 고유한 결함이 있으며, 그 결함 때문에 장기간 지속되면 반드시 부패하여 스러지기에 세 정체는 순환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은 그 본원적 불안정성 내지 중우정치에 의해, 군주를 구세주로서 도래시킨다(최초의 군주정은 민주적 독재였다). 데모스나 멀티튜드[다중]의 비호자로 처신하는 군주의 정치는 특권적 소수자의 반발과 저항에 의해 실질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귀족정으로 이행한다. 그리고 정치에 귀족층의 등장은 그들과 피지배층 사이에 계급투쟁을 초래하며, 이 투쟁은 국가의 하부를 떠받치는 인민의 승리로 끝난다. 이리하여 사이클이 닫히며, 재개될 것이다. 세 정체론은 곧 정체에 고유한 부패를 둘러싼 이론, 이런 의미에서 정체위기론이며, 부패에 의한 위기의 영구순환을 결과로서 주장하는 것이었다. ‘부패가 반드시 도덕적 부패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일개 생명체로서의 정체가 품고 있는 구조적 한계나 결함을 정체론은 부패의 이름으로 가리켰다. 공화주의는 이 부패에 맞서는 지속 가능한 정체를 구상하는 곳에서 이론적으로 연원한다. 권력을 둘러싼 누구라는 물음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쥐더라도 국가를 무너뜨리지 않고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는 물음이 공화주의를 형성한다. 물론 그 대답에는 다양한 변이variation, 위상, 역사적 변화가 있지만, 공화주의를 공화주의답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체의 전권을 넘기는 주권을 주권자로서 출현시키는 대신에 그 누구에게도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는다는, 그리고 정치의 영역 전체에 외부로부터 선험적인 목적 그것으로 향함으로써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발상은 혼합정체론에서 이윽고 삼권분립론으로 계승되는 권력분산의 이론으로 성장하며, 후자의 발상은 정치에 이나 인간의 완성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지속적인 목적을 내장시켰다built-in. 목적론적 정치란, 정체지속 문제 혹은 그 욕망의 철학적 표현이다. 공화주의자는 권력의 누구가 아니라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는 국가주권론자이며, 세속에서 살아가는 형이상학자이다. 정체의 부패를 끊임없이 억누르고, 정체를 일개의 생명체로서 지속시키는 사상이 공화주의의 알파이다. 부패에 대한 저항, 지속에 대한 갈망이 공화주의를 키운 것이다.

오늘날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durabilité은 유행 이상의 공공적 문제로서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채무가 커져도 상환방법이 확립되어 있으면 괜찮다는 케인스주의적 사상의 슬로건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긴축 재정에 의해서도 시장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하는 신자유주의적 기대의 별명이며, “지속 가능한 복지사회란 어디까지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하는가(그러나 누가?)를 둘러싼 싸움판의 이름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일반이란 생태계와 에너지 문제이며, 지속 가능성이 공공의 것 res publica”의 핵심부에서 발견되고 있다. 세계 공화국 res publica”이 세계의 지속 문제 속에 실재하고 있다. 공화주의의 역사와 앞에서 본 오늘날의 혁명의 실태가 가르쳐주는 것은, 지속 가능성이란 어떤 정치를 배제하는, 숨은 사회계약이며, 그런 것으로서 다른 정치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배제되는 것은 물론 부패이며, 이로부터 생겨나는 정체의 죽음과 재생, 즉 일반적 의미에서의 혁명이며, 이 배제와 동시에, 구성원 사이의 계급투쟁은 공동체 내에서 사회문제라는 이름을 다시 부여받는다. 이 배제와 전환은 어디까지나 노력해야 할 목표일 뿐이다. 만약 그것이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면, 인간이 완성되는 완전한 정체가 있다는 얘기가 되며, 지속을 문제로서 제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공화국은 순환론으로서의 세 정체론이 가리키는, 약자가 패배하고 손해를 보는 순수한 힘관계의 영역을, 자신의 존속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으로서, 적극적으로 내부에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절대적 강자(그 자에게 이기면 정체가 안정되는 인간 또는 세력)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행방에 우연성이 따라다니는 권력투쟁의 영역을 공화국은 스스로를 부패시키는 요인이라며 계속 배제하며, 그것을 자신의 정당성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부패란 공화주의가 권력을 문제 삼는 정치에 부여하는 호칭에 다름 아니며, 공화주의적인 정치는 국내적으로는 이 부패와의 싸움으로서 수행될 것이다. 공공성 개념을 정치의 요체에 놓으려고 하는 정치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자는 계급투쟁그 자체를 적으로 삼는 것이다. 분쟁 없는 사회가 항상 공공의 것 = 공화국의 이상이면서, 그것이 달성되지 않는 것도 또한, 현실적인 일종의 이상을 구성한다. 공화국에 있어서 계급투쟁은 적이자 친구, 친구이자 적이다.

이때 진정한 공화주의자, 근대에서는 가령 마키아벨리는, 어떤 정책이 공화국의 이런 내재적 목표에 적합한가에 대해 충분히 자각적이었다. 공화국 내부로부터 분쟁을 없애고 공화국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영토 확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침략의 을 계속 주는 것으로써만 내부의 분배 문제가 계급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공화국의 지속은 공화국의 팽창, 성장에 달려 있다. ‘이나 인간의 완성이라는 정치의 궁극 목표, 정치의 형이상학적 사명은, 세속적으로는 공화국의 확대라는 전략 목표로 변환될 것이다. 대외적 긴장이야말로, 내부에서 부패를 키우는 정치적 우연성을 없애준다. 외부에서 유래하는 우연성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며, 공화국의 본질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마키아벨리가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탐지해낸 교훈이었다.

그렇게 하면, 오늘날의 혁명이 공화주의에 들이대는 난점도 동시에 불거진다. 오늘날의 지속 가능성은, 세계공화국에는 더 이상 침략 가능한 외부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 곳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등장 이후 1970년대까지는, 계속 늘어나는 공적 채무가 그 외부였을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이 외부를,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채무의 증대로 대체하려고 했다. 채무로부터 부를 끌어내는 전략을, 전후 세계는 공화주의의 요체로 삼아온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물리적인 영토가 국가의 진정한 영토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근대에서 처음으로 깨달은 프리드리히 2세 이후의 전략 전환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외부의 영토로부터 부를 끌어내는 전략의 유효성이 상실되고, 지속 가능성 문제가 순수하게, 즉 그 어떤 해결책도 동반하지 않고 부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공공성 문제인 것이다. 혹은 우리 눈앞에서 출현하고 있는 세계공화국이란 죽음의 문턱에 있는 공화주의의 모습이다. 구성원에 대한 을 그것으로부터 취해야 할 외부를 상실한 공화국은, 어떻게 지속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 ‘기대에 의해 채무의 영토적 외부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현실의 부로 전환하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상적 자본주의 노선조차도 효력을 잃을 때, 공화국은 구성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문제가 지속인 한에서, 실행 가능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대답은 분명하다. 공화국의 축소이다. ‘탈성장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그러나 이것은 공화국에 있어서 부패요인의 성장 이외일 수 있을까? 정치를 다시 한 번, 정체론이 발견한 힘관계와 우연성의 영역에 맡기는 게 되지 않을까? 외부에 존재할 터인 영토채무의 최종 부담자나 상정 원본의 현실적 홀더holder나 보험금의 지급자 등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공화주의에는 계급투쟁이라는 부패원인을 제거하는 수단이 없을 것이다. 부담을 누군가에게 요구해야만 하며, 누군가라는 문제의 삭제에 공화국의 존립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성립시키는 사회계약에는 그것을 삭제하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대외 전쟁 때에는, 공화국은 모든 것을 갹출하라고 시민에게 요구할 수 있지만, 내전에 관한 규칙을 이 사회계약은 정할 수 없다. 내전을 정지하라, 이것이 계약의 본뜻이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 굳이 번역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지만, 일련의 작업을 위한 참고 문헌 목록에 들어 있어서 입문용을 겸해서 번역, 공유한다. (2018년 3월 27일)


대중의 정념의 향방

안토니오 네그리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

 

오오타 유스케(太田悠介)

현대사상, 20137월호. <大衆情念のゆくえ: アンネグリとエティエンヌバリバルのスピノザ,>



서론

제국, 다중에 이어 공통체가 간행됨으로써 안토니오 네그리(1933-)와 마이클 하트(1960-)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전개한 논의의 전모가 드러났다. 현대세계 분석과 도발적 예언이 교착하는 이 3부작은, 많은 시사와 논점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논의가 집중된 것이 다중(multitude)’ 개념임에 틀림없다[주1]. 네그리/하트의 뜻을 받들어서 군중=다수성으로 때로 번역된다는 것이 드러내듯이, 이 개념은 동일성에 의거하지 않는 집단의 존재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주1]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Daniel Bensaïd. Résistances. Essai de taupologie générale, Paris, Fayard, 2001, pp.191-212 ; Ernesto Laclau, La Raison populiste, traduit de l’anglais par Jean-Pierre Ricard, Paris, Seuil, 2005, pp.278-283.

네그리/하트에 따르면, 다중은 스피노자에게서 유래한다고 한다. 네그리/하트에게 <제국>이란 지배적인 주권국가군, 그 주권국가의 정당성을 우회하는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등의 초국가적인 정치적·경제적 제도, 나아가 이것들을 보완하는 메가뱅크나 국제인도주의조직이 한 몸이 되어 구성하는, 특정한 극을 갖지 않는 네트워크적 권력이다. 반면 다중은 <제국>과 마찬가지의 유동성을 갖고서 이것에 대항하는 주체로서, 극히 긍정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저작군에 이 개념들을 다시 놓는다면, 이 긍정성이 반드시 자명한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어휘의 차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 점이 밝혀진다. 다중이라는 단어는 [스피노자의] 미완의 정치론(1677)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이것보다 2배 이상의 분량인 신학정치론(1670)에서는 불과 세 번, 주저인 윤리학(1677)에 이르러서는 많은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로서 한 번 등장할 뿐이다[주2]. 이 간단명료한 사실이 나타내는 것은, 다중을 축으로 <제국> 3부작을 쓴다는 네그리/하트의 수법 그 자체에, 이미 두 사람에 의한 스피노자 해석, 다중 해석의 일정한 방향성이 기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네그리/하트가 사용하는 다중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의 위험성이 있다.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신학정치론의 다중이라는 단어가, 어느 대목에서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다중은 미신에 사로잡히기 쉽고[주3],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질은 감정에 좌우되며[주4], 때로는 흉폭해져서 국가를 위협한다고 간주됐다[주5]. 이런 서술을 감안한다면, 네그리/하트의 해석에 반하여, 다중의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스피노자로 돌아간다면, 다중의 부정성이 확실해진다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중의 양의성이라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주2] Emilia Gancotti Boscherini, Lexicon spinozanum, t.2, La Haye, Martinus Nijhoff, 1970, pp.728-729.

[주3] Baruch de Spinoza, Traité théologico-politique, traduit et annoté par Charles Appuhn, Paris, Flammarion, 1965, p.21(畠中尚志 訳, 神学政治論───聖書批判言論自由, 岩波書店, 1944, 上巻, 43).

[주4]  Ibid., p.279(同書, 下巻, 194).

[주5]  Ibid., p.307(同書, 下巻, 241). 

이런 전제를 토대로, 본고에서는 네그리의 단독 저서 야생의 아노말리(1981)를 소재로 하여, 그 다중론을 검토한다. 야생의 아노말리는 동시기에 간행된 맑스를 넘어선 맑스(1979)와 나란히 네그리의 주저이며, 나중의 하트와의 공동작업에 대해, 이른바 이론적인 뼈대에 해당한다. 야생의 아노말리에서는 네그리/하트의 다중론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을 듯하며, 그래서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다중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오늘날의 네그리/하트의 논의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네그리의 다중론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 본고에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1942-)대중(masses)”론과의 비교를 시도한다. 발리바르는 네그리의 단독저서 구성적 권력(1997)의 불역자를 맡는 등, 프랑스에서 네그리의 소개자 중 한 명이다. 또한 네그리와 발리바르 둘 다 맑스주의를 사상적인 배경으로 갖고 있으면서, 1980년대에 스피노자 독해에 착수했다는 공통적인 문제관심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발리바르와 네그리 사이에는 사실상 스피노자 해석을 둘러싼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상적인 차이가 두 사람 각각의 여정에 깊은 영향을 주면서, 현대세계를 둘러싼 두 개의 상이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고는 이렇게 네그리와 발리바르에 의한 스피노자의 사상의 수용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이 점의 해명에 있어서는 두 사람을 1980년대에 스피노자로 향하게 했던 유럽의 사회상황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사상과 역사의 두 측면으로부터 문제를 개시하도록 힘쓰고 싶다.

 

1. 네그리의 다중론

1)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례성과 스피노자의 이례성

야생의 아노말리1982년에 간행된 불역본에 수록된 질 들뢰즈, 피에르 마슈레, 알렉상드르 마트롱, 이렇게 세 명이 각각 쓴 서문과 더불어, 196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졌던 스피노자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스피노자 재독해의 기운을 대표하는 한 권으로 오늘날 알려져 있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해석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많은 난점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이 여전히 독자를 매료시킨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우선, 17세기의 스피노자가 그 시대로 환원되지 않는 이례성(anomalie)”을 갖추고 있었다는 테제가 내뿜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주6]

[주6]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浅野俊哉上野修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浅野俊哉, スピノザ───共同性のポリティクス, 洛北出版, 2006. 浅野俊哉, 「「絶対民主主義Civitas条件───ネグリのスピノザ解釈をめぐって, 思想, 1024, 20098월호, 117-142. 上野修, アントニオ・ネグリのスピノザ, 現代思想, 263, 1998년 3월호, 166-174. 上野修, 精神論証そのもの───デカルト, ホッブズ, スピノザ, 学樹書院, 1999. 본고는 이처럼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에 관한 선행연구에 옥상옥을 놓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주안점은 이런 선행연구의 축적을 토대로 하면서,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차이를 밝히는 데 있다

야만적 별종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 이례성은 첫째, 17세기 네덜란드가 차지했던 특이한 위치에서 유래한다. 스피노자가 평생을 보낸 당시의 네덜란드는 절대왕정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후, 생산·무역·금융의 중심으로서 세계사적인 패권국가의 지위를 손에 넣었던 시기에 해당된다. 세계시장을 수중에 거둔 해운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상인층이 힘을 쥐고, 정부의 개입은 자유경쟁의 방해가 된다는 그들의 의향이, 암스테르담을 중핵으로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분권화된 무역시장 사이의 완만한 결합으로 구체화됐다[주7]. 그리고 이런 상인층들 사이에서 공유됐던 관용적인 분위기가 철학하기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토양을 형성했던 것이다[주8].

[주7]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II. Mercantilism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European World-Economy, 1600-1750, New York. Academic Press Inc. 1980, pp.36-71(川北稔 訳近代世界システム 1600-1750───重商主義ヨーロッパ世界経済凝集名古屋大学出版会, 1993, 43-89).

[주8] Pierre-François Moreau, Spinoza et spinozisme, Paris, PUF, 2003. pp.12-19(松田克進樋口義郎 訳スピノザ入門白水社, 2008, 19-27).

네그리는 당시의 네덜란드에서는 정치권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고, 경제관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가한다[주9]. 이 점은, 네그리에 의한 영유화領有化[전유, appropriation]’라는 개념의 독특한 이해에서 유래한다(AS: 59). 사실 네그리는 이 영유화[전유]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혹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이전의 위상을 문제 삼았다(AS: 304-305). 그것은 들뢰즈가 지적했듯이, 구체적인 개개의 힘의 집합을 그것 이외의 것으로 대체하거나, 그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힘들의 성질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역학적인 합성”(AS: 10)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이 힘들의 수와 양이 증대할수록, 그 총합은 더욱 커진다.

[주9]  Antonio Negri, L’Anomalie sauvage. Puissance et pouvoir chez Spinoza, traduit de l’italien par François Matheron et préfacé par Gille Deleuze, Pierre Macherey et Alexandre Matheron, Paris, PUF. 1982 (édition italienne, Milano, Feltrineili, 1981). p.76(杉村昌昭信友健志 訳野生のアノマリー ───スピノザにおける力能権力作品社, 2008이하이 책에서 인용할 때에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AS라는 약호와 함께 원서의 쪽수만 본문 속에 표기한다

그러나 이런 힘들의 자연적 총합의 증대라는 스피노자의 비전(vision)이야말로, 홉스-루소-헤겔이라는, 네그리가 부르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계보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AS: 226-227). 우선 정치에 있어서는 각자가 지닌 자연권이 포기되고, 사회상태로 이행함으로써, 권력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 힘들은 상호 결합함으로써 산술적으로 자기 성장하는 길을 차단하고, 권력이라는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제약에 의한 매개를 거쳐야 한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사회에 있어서는 힘들의 발전은 각자의 자기중심적인 이익의 추구로 환원되고, 이익의 추구를 둘러싼 충돌이 생긴 경우에는, 국가가 그 외부로부터 개입하여 이것을 시정한다고 간주된다(AS: 224). 그리고 네그리가 가장 문제시하는 것은, 힘들의 증대를 이 국가와 시민사회로 분리하여 조직화한다는 전제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생산력생산관계의 질서에 의해 영유화[전유]하는 짓거리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생산관계에 대한 생산력의 우위를 원리로 삼았다고 네그리는 생각한다(AS: 225). 네그리가 말하기를, 스피노자에게 시민사회와 정치국가는 완전히 서로 뒤얽혀 있다”(AS: 305). 이처럼 네그리는 스피노자를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정하는 사상가로서 파악함으로써,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직접 대치하는 일원적인 세계를 묘사해낸다[주10]. 이리하여 힘들의 자생적인 자기 성장에 의거하는 스피노자는, 힘들의 영유화[전유]에 의해 이 가능성을 닫아버린 이후의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항상 이형(異形)의 존재로 비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이 네그리에 의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례성, 그리고 그 시대가 길러온 스피노자의 이례성이다.

[주10]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여전히 헤겔적인 변증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서 다음을 참조. Pierre Macherey, Avec Spinoza, Études sur la doctrine et l’histoire du spinozisme, Paris, PUF, 1992, pp.24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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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의 이 스피노자 해석에서 핵심은 스피노자의 죽음에 의해 미완으로 남겨진 정치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민주제 개념의 독해이다. 네그리가 정식화한 생산양식의 영유화[전유]에 대한 생산력의 자기 성장이라는 관념은 정치론에서 사회계약론의 포기와 분명히 일치한다(AS: 298). 사회계약에 의한 자연상태로부터 사회상태로의 이행과 국가의 설립은 한 번 체결되면 다시 물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취소할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다[주11]. 그래서 통치자의 권리란 다중의 집합적인 힘 그 자체일 뿐이다. 그 결과, 통치자가 한 명의 군주제, 약간의 통치자로 구성되는 귀족제, 모두가 통치자인 민주제라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고 생각된 범주도,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각각 상이한 종류의 통치형태를 가진 정치사회에서 다중이 스스로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공통의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네그리는 이렇게 정치론을 독해해간다.

[주11] 홉스와의 쟁점에 관한 스피노자의 다음 설명을 참조. “국가론에 관해서 저와 홉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그 차이는 다음의 점에 있습니다. , 저는 자연권을 항상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어떤 도시의 정부도 힘에 있어서 시민보다 나은 정도에 상당할 뿐인 권리밖에 시민에 대해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이것이 상도常道이기 때문입니다.” Baruch de Spinoza, «Lettre L. Spinoza à Jarig Jelles (2 juin 1674)», dans Traité politique. Lettres, traduit et annoté par Charles Appuhn, Paris, Flammarion, 1966. pp.283-284(畠中尚志 訳, 書簡五(一六七四年六月二日忖のイエレス宛書簡), スピノザ往復書簡集, 岩波書店, 1958, 237-238). 

정치론은 이 책의 편집자가 스피노자 사후에 덧붙인 이하 누락(Reliqua desiderantur)”이라는 말로 중단된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이 책의 전반부에서 국가의 원리를 제시한 후,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라는 정치사회의 구체적인 검토로 옮김으로써 현실의 장애에 부닥쳤다는 해석을 촉구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것을 정치론의 실패라고는 판단하지 않고, 다중의 힘들을 영유화[전유]하는 것 없이, 이것을 합성한다는 스피노자의 비전이 남겨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주12]. 야생의 아노말리의 거의 결론부에 해당되는 구절에서 네그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12] Antonio Negri, «Reliqua desiderantur. Congruetta per una definizione del concetto di democrazia nell’ultimo Spinoza», Studia Spinozana, vol.1, pp.143-182(小林満丹生谷貴志 訳, 以下───スピノザ最晩年民主制政体概念定義推察する, 現代思想1510, 1987, 124-150). 

 

정치론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 정치적 실패가 곧 세계의 승리, ‘다중의 승리, 인간의 승리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지금 구축의 기획은 정체되어 있으나, 그것은 그 기획에 의해 전개된 역능에 정확하게 호응한다. 정치철학은 마키아벨리의 경험에 의해 예고되고 이후 처음으로 대중의 이론이 된 것이다. 그것은 르네상스에 출현한 위기가 갖고 있던, 비종교적-민주주의적 의의를 계승한다. 여기서 대중이라는 차원이, 혁명이라는 역사적 문제로 된다. 기획은 거기에 현전하며, 긴장감을 멈추고, 사명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AS: 317-318)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으로부터 민주제라는 제도가 안고 있는 논리적 불가능성을 연역한다. 민주제는 제도로서 구성된 시점에서, 다중의 목소리와는 간극을 낳는다. 그래서 이 제도를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 그 결과, 민주제는 제도조차도 아닌 운동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네그리는 스피노자를 통해서 이 민주제의 이론화 불가능성을 포착함으로써, 이것을 현실의 운동체의 가능성으로서 되파악한다. 네그리는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남긴 기획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네그리가 어떤 구체적인 국면에서 이 스피노자의 기획을 받아들이는가를 아는 것이다.

 

2) 다중의 생명정치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친 네그리의 발자취는 노동자주의(operaismo)’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맑스주의의 특이한 흐름 속에 있었다. 네그리는 1961년에 라니에로 판치에리가 창간한 잡지 붉은 노트(Quaderni rossi), 이 잡지의 분열을 거쳐 마리오 트론티, 마시모 차카리 등이 새롭게 1964년에 창간한 노동자계급(Classe operaia)에 참여한 후, 1970년대에는 특정한 조직에 수렴되지 않는 더 유연한 운동형태인 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엔리코 베를링게르가 이끄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현실노선을 내건 유로 코뮤니즘하에서 여당인 기독교 민주당과 1973년에 역사적 타협에 이르고, 세력을 잃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산당의 외부에 발판을 둔 노동자주의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는 독자적인 실험적 장을 형성했다.

노동자주의는 토리노에 피아트사가 건설한 대규모 미라피오리 공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근대화가 이탈리아에 도래했다는 것을 중시하고, 이것을 이론의 기반으로 삼는다. 북부 이탈리아에 남부로부터 대량의 노동자가 유입되고, 장인의 숙련을 요하던 일이 공장노동자로 대체되는 산업구조의 변화이다. 트론티가 자서전적 작품에서 되돌아보듯이, 그것은 노동과정에 있어서의 테일러주의,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포드주의[주13]의 개시를 의미하며, ‘노동자주의는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 대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대중노동자가 사회에서 중심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게 된다[주14].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해 공장의 논리가 사회 전체를 포섭하고 있으며, 그 결과 거꾸로 공장의 자주관리노동의 거부가 사회 전체에 파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13] Mario Tronti, Nous opéraistes. Le ‘roman de formation’ des années soixante en Italie, traduit de l’italien pjar Michel Valensi, Paris/Lausanne Éditions de l’éclat et Éditions d’en bas, 2013, p.53.

[주14] Maria Turchetto, «De “l’ouvrier masses” à l’entrepreneurialité commune. La trajectoire déconcertante de l’opéraisme italien», traduit de l’italien par Michel Buée, dans Jacques Bidet et Eustache Kouvélakis (dir.)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Paris, PUF, 2001, pp.296-301.

tronti-nous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대규모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의사결정이 사회 전체의 추세를 결정한다는 이 주장을 1970년대의 네그리는 3차산업의 확대로 연결시킨다. 1973년의 오일쇼크 이후, 표면화되는 자본의 논리 하에서의 산업구조의 재편을 시야에 넣으면서, 네그리는 생산 및 노동자의 정의를 단숨에 확대한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공장처럼 부를 가져오는 것이며, 공장노동자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주체가 그 부의 생산자라고 간주된다[주15]. 다양한 주체의 힘들이 결합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증대시킨다는 이 네그리의 전략은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스피노자론과 확실히 잘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스피노자로부터 도출한 생산력 개념을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시켜가는 네그리가 이탈리아 외에서도 독자를 획득했다는 것은, 그 후의 네그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15] Ibid., pp.301-304. 

그러나 사회 전체를 생산의 장이라고 보는 네그리의 입장은 생산이나 노동자의 저변을 크게 확대한 반면, 네그리가 생각하는 생산력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는 불투명하다. 이 점은 예를 들어 피에르 마슈레에 의해 지적된다.

 

어떻게 해서 다중의 육체는, 분명히 구체적인 것이 되는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 결정 심급의 개입이 필요하다. 다중의 리좀 구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것 자체, 집단적이며, 또한 수평적인 동일 평면 위에 전개하도록 명령하는 내적인 사명을 지키고, 모든 수직적인 배치형태를 거부하는 심급의 개입이 필요하다[주16].

[주16] ピエールマシュレ(桑田光平 ), マルチチュードの未来, 現代思想, 3312, 2005, 82. [* 이 텍스트는 2004년 11월 19일에 릴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시테필로>에서 발표된 것이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의 불역본은 La Decouverte사에서 같은 해 9월에 판단됐으며, 마슈레의 이 텍스트는 불역판의 간행에 즈음해 이 저작에 대해 평론으로 발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네그리의 답변이 Réponse à Pierre Macherey로 발표된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아직 추정이다.]

이 질문에 대한 네그리의 응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공통체에서 네그리/하트는 이 물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대답은 생명정치가 심화함으로써 다중의 생명 그 자체가 이미 정치라는 것이었다[주17]. 농촌적인 이탈리아로부터, 자본에 의해 생명이 완전히 포섭되는 단계로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이 포섭에 대해 생명을 탈환하는 것[주18]이 정치 그 자체였던 1970년대 이후의 네그리 자신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생명이 정치라는 이 언명은 확실한 절실함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하지만 다중의 정치가, 때로 네그리가 상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다음 절 이하에서 검토의 대상이 되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이다.

[주17] Michael Hardt et Antonio Negri, Commonwealth, traduit de l’anglais par Elsa Boyer, Paris, Stock. 2012. pp.236-242(幾島幸子古賀祥子 訳, 水嶋一憲 監訳, コモンウェルス───<帝国>える革命論, NHKブックス, 2012, 上巻, 276-283). 

[주18] Antonio Negri, Du retour. Abécédaire biopolitique. Entretiens avec Anne Dufournantelle, Paris, Calmann-Lévy, pp.35-36. 

 

 

2. 발리바르의 대중론

발리바르는 주저 대중의/에 대한 공포(1997)에서 네그리의 야생의 아노말리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스피노자론의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다중에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다중이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가가 고찰의 주제라고 한다. 발리바르는 다중이라는 단어의 일의성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대신해 대중(masse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주19]. 이 대중이라는 단어에 있어서는, 수량적인 크기에 덧붙여, 대중이 지닌 감정적인 측면에 빛이 내리 쪼인다.

[주19] Étienne Balibar, «Spinoza, l’anti-rwell», dans La Cra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s avant et après Marx, Paris, Galilée, 1997, p.58-60(水嶋一憲 訳, スビノザ大衆恐怖, 現代思想, 1510, 1987, 152-153).


 


1) 대중의 공포의 향배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에서도 정치론의 민주제 독해에 초점이 맞춰진다. 네그리는 생산관계에 의한 생산력의 영유화에 대해, 생산력의 자생적인 발전에 의한 개화를 거기서 읽어 들였다. 그러나 이 도식에서 경시되는 것은 스피노자가 정념[정서]’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사상가라는 점이다[주20].

[주20]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I, §5, p.13(畠中尚志 訳, 国家論. 岩波書店, 1940, 15, 14-15). 

자연권을 보유한 채로 사회상태로 이행하는 대중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정치체제의 구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본성에 정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중의 집합적 힘이 해체되어 버리면, 통치자의 권력도 즉각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치자는 규범에 인간을 맞추어서는 안 되며, 이것과는 반대로, 연민, 질투, 명예욕, 지배욕 같은 인간의 정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설계해야 한다. 이 정념의 공유를 확대하고, 이것을 국가의 강화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마트롱이 지적하듯이, 대중에 의해 공유된 정념은 이미 국가의 싹[주21]이다. 문제는 그 정념을 어떤 방향으로 회로화하느냐는 점이다. 발리바르의 정치론독해도 이런 스피노자의 정념을 둘러싼 논의 속에 있다.

[주21] Alexandre Matheron, Études sur Spinoza et les philosophies de l’age classique, Lyon, ENS Êditions, 2011. p.233.

발리바르가 그 중에서도 주목하는 것은 공포(crainte)’, 특히 대중의 공포(crainte des masses)’의 존재이다. 발리바르는 정치론을 이 공포라는 관점에서 독해해간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의 세 정체 중에서, 군주제와 귀족제는 대중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주권자인 대중의 의향을 수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군주제는 고문관을 둠으로써[주22], 또한 귀족제는 의회를 설치함으로써[주23], 비주권자인 대중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 발리바르는 여기에 체제로서는 민주제를 채용할 수 없는 군주와 귀족이 각각의 방식으로 거듭하는, ‘민주화의 노력을 알아차린다[주24].

[주22]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6, §15, p.45(邦訳, 615, 71). 

[주23] Ibid., chap. 8. §11, pp.76-77(邦訳, 811, 127). 

[주24] Étienne Balibar, Spinoza et la politique, Paris, PUF, 1985, p.90(水嶋一憲 訳, スビノザと政治, 水声社, 2011, 133). 

군주제에서도 귀족제에서도, 대중은 국가를 파괴하는 힘을 항상 유지하면서, 주권자인 군주나 귀족한테 압력을 가한다. 발리바르는 이로부터, 대중이 주권자에게 불어넣는 공포가 군주제와 귀족제의 존망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달리 말하면, 주권자가 대중한테 느끼는 공포가 두 체제의 결정적인 구동인이다. 이 대중의 공포에 주목한 결과, 발리바르의 민주제 정의는 네그리와 저절로 달라진다.

스피노자는 귀족제의 안정을 위한 요건으로서, 대중의 절대수에 비례하여 귀족의 절대수를 늘리는 것을 권장했다[주25]. 그래서 귀족의 절대수를 더욱 늘려서 모두를 주권자(귀족)로 삼는다면, 정체는 민주제로 이행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확대된 귀족제로서의 민주제의 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에 따르면, 거기서 새로운 문제가 일어난다.

[주25]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8 §13, p.78(813, 129-130). 

 

대중은 본성적으로 권력의 보유자에게서 무서운’(정치론84)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권력은 실제로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근거로 한계(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대중이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을까?[주26]

[주26] Étienne Balibar, «Spinoza, l’anti-Orwell», op. cit., p.80(邦訳, 161). 

대중이 주권자에게 불어넣는 공포는 대중 스스로가 주권자가 될 때, 스스로에게 되튀어오는 것 아닐까? 군주제와 귀족제에서는 대중의 공포가 민주화를 추진함으로써 긍정적으로 작용한 반면, 민주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중과 주권자가 일치함으로써, 대중 사이에서 공포가 상호적으로 증폭하며 만연한다. 이처럼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독해를 추적하면, 스피노자의 미완의 민주제로부터, 대중의 공포라는 논점이 도출된다.

모든 외적인 심급이나 억제가 없는 상태에서, 대중의 내재적인 의사결정이 절대적인 운동체로서의 민주제는, 이론상으로는 한없이 전체주의 운동에 접근한다. 발리바르가 대중과의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것은 이 점에서이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뒤따라가는 한, 스피노자는 대중의 힘이 향하는 방향, 즉 대중의 정념의 향배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발리바르는 정치론독해로부터, 대중의 양의성을 도출한다. 스피노자의 미완의 민주제를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연장해감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이 대중의 양의성을 독파했다는 것, 이것이 발리바르의 정치론독해의 요체이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주장하는 대중의 양의성은 대중의 운동이 항상 전체주의 운동으로 귀착한다는 결정론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이 대중의 정념의 향방이라는 문제를 열린 채로 남겨둔 이상, 이 물음을 더욱 더 검토하기 위해서는, 발리바르가 이 물음을 어떻게 떠맡았는가를, 그 도정에 비추어 이해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서구맑스주의에서 대중의 초점화로

발리바르에게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주제가 부상하게 된 배경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는, 대중의 개념과 프롤레타리아트(prolétariat)’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모리스 메를로 퐁티(1908-1961)변증법의 모험(1955)에서 사용한 서구맑스주의라는 인식틀을 실마리로 삼아 이 관계성을 검토한다.

메를로 퐁티는 죄르쥐 루카치(1885-1971)역사와 계급의식(1923)을 서구맑스주의의 시발점에 둔다.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자신의 선으로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원한 힘으로서 인간 앞에 출현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체객체로 분열된 상태로서 묘사된다. 이에 반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여 인간의 소외상태를 폐기함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 종합을 이룬다고 여겨졌다. 메를로 퐁티는 이런 루카치의 변증법을 주체가 개입하는 변증법이라고 하며,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화한 유물론에 대항하는 시도로 평가한 것이다[주27]. 그래서 서구맑스주의란 서구와 소비에트의 지리적인 거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주체를 둘러싼 분기라는 의미론적 쟁점을 포함했다.

[주27] Maurice Merleau-Ponty, 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Paris, Gallimard, 1955. p.49(滝浦静雄木田元田島節夫市川浩 訳, 弁証法冒険, みすず書房, 1972, 47). 

그러나 그 후의 서구맑스주의는, 메를로 퐁티가 아마 예상했던 것 이상의 속도로 다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주체일 터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중이 분리한다는 사태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의 루카치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허위의식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의식을 획득함으로써 이것을 지양한다는 것이 상정됐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는 오히려 그런 계급의식의 획득에 이르지 못한 대중이야말로 상태(常態)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이 사태는 소비사회에 매몰된 얼굴을 보이지 않는 대중이나, 공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사적 권리의 유지에 전념하는 소리 없는 대중으로서 묘사되는 경향이 있었다[주28]. 달리 말하면, 그것은 메를로 퐁티가 전제했던 주체의 윤곽이 점차 불분명해지는 과정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주28] Jean Baudrillard, À l’ombre des majorités silencieuses ou la fin du social, Fontenay-Sous-Bois, Cahiers d’Utopie, 1978 ; Marc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1965년의 초기작 『『자본을 읽자이후, 발리바르의 작업은, 이 주체의 불분명화의 흐름 속에서, 주체를 어떻게 재정의하느냐를 관건으로 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리바르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프랑스 공산당을 주된 활동의 장소로 삼았다. “유로코뮤니즘의 조류는 이탈리아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도 찾아왔고, 프랑스 공산당은 1976년에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한다. 하지만 이 노선은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산당의 독자적인 색깔의 상실과 기성 정당이 되는 것으로 이어지며, 그 후의 장기적 하락의 한 가지 원인이 됐다. 발리바르는 1981년에 공산당에서 제명 처분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된 것은, 프랑스 공산당의 이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주29]. 발리바르의 1980년대의 작업을 떠받쳤던 공산당의 후퇴에 의해, 적대적인 힘을 표현하는 회로가 계급투쟁으로부터 인종을 둘러싼 투쟁으로 이행한 것 아니냐라는 위기감이다[주30]. 여기에 발리바르가 스피노자론으로부터 끌어낸 대중의 양의성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주29] Étienne Balibar,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Paris, La Découverte, 1992, pp.19-95. 

[주30] Étienne Balibar et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 les identités ambiguës, Paris. La Découverte. 1988, pp.207-246((新装版) 人種国民階級───らぐアイデンティティ, 若森彰孝 他 訳大村書店, 1997, 27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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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발리바르는 이민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대중의 실상으로 파악한다. 이민노동자의 운동을 국경 횡단적인 시민권의 기초에 놓을 때, 대중은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주31]. 이것은 메를로 퐁티가 생각한 주체의 자명성의 해체의 적극적인 측면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을 이민노동자로서 읽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자(majority)로서의 프랑스인으로 파악할 때에는, 대중은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이 후자의 의미의 대중에 있어서는, 그 정념은 다수자의 이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로 표면화된다. 발리바르는 그 스피노자론에 있어서 대중의 힘과 정념이 결정화하는 양태를 문제로 삼았는데, 1980년대에 현실로 나타난 이 대중의 양의성은 그 스피노자론의 표적과 정학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주31] Étienne Balibar, Droit de cité, Paris. PUF, 2002(松葉祥一 訳, 市民権哲学───民主主義における文化政治, 靑土社, 2000).


 

3. ‘신권정치의 대두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이라는 네그리와 똑같은 대상을 다루고,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네그리에게는 부재한 논점을 연역했다. 네그리에게 이 논점이 부재하다는 것은, 생산관계와 생산력, 권력과 반권력, 혹은 군주제/귀족제와 민주제 같은 대립축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는 네그리의 수법에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발리바르의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관점을 연장해가면, 네그리에 있어서는 비가시적인 어떤 문제계가 부상하게 된다. 이번 절에서는, 프랑스에서 스카프 문제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현상에 대한 발리바르의 개입을 고찰함으로써 이 문제계의 소재를 시사하고 싶다.

스카프 문제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9년에 파리근교 클레이유의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시작됐다. 이슬람교도인 세 명의 여학생이 교실에서 스카프를 벗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은 사건이다. 공화주의자, 자유주의자, 인권단체, 종교적 공동체의 대표자, 페미니스트 등이 각각의 입장에서 이 사건에 관해 발언하고, 자주 논의는 소녀들을 젖혀두고 이루어졌다[주32]. 그 후, 2004년에 여봐란 듯한종교적 표장(標章)을 공립학교 내에서 몸에 부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사건은 일단 결말을 봤다.

[주32] 스카프를 착용한 소녀의 다양한 배경과 동기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작에 자세하다. 宮島喬, 移民社会フランスの危機, 岩波書店, 2006

발리바르는 세기(2012)에서 스카프 문제를 언급하고, 여태까지의 스피노자를 둘러싼 사색을 바탕으로 세속화된 세속주의(sécularisme sécularisé)”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주33]. 본고의 관심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개념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모범을 취하는 것이다. “스카프 문제에서 공화주의자, 나아가 자유주의자가 원용하는 것은 라이시테라고 불리는 세속주의 또는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공립학교를 포함한 공적 공간에 종교를 들여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그것은 개인의 속내에 담아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원칙의 근본에 있다. 이 지배적인 입장에서 보면, 스카프를 착용하는 여학생은 종교적 신조를 공적 공간에 들여오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권위로부터 오랜 역사를 걸쳐 쟁취한 라이시테의 성과를 위협하는,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신권정치의 재래로 간주되기도 한다.

[주33] Étienne Balibar,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Paris, Galilée, 2012, pp.91-104. 

그러나 발리바르가 세속화된 세속주의의 개념에 의해 시사하는 것은, 스카프의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국가야말로, 사실은 숨어 있는 신권정치의 실천자라는 것이다[주34]. 공적 공간으로부터 각종 종교를 철퇴시키는 국가는, 복수의 종교를 병렬적으로 취급하며, 심지어 사적인 선택의 문제로 변환하는 것을 통해서, 이것들을 최종적으로 총괄하는 수호자로서 나타난다. 공적 공간에서의 다원성의 확보의 권한을 국가가 계속 장악하기 위해서, 국가는 라이시테로 대표되는 무신론적 시민종교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라이시테란 그 때문에 종교로부터의 이탈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국가에 의한 정치와 종교 혹은 공과 사의 분할의 요체이다. 스카프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그 행위 자체에 의해, 뜻하지 않게 국가를 지탱하는 이 시민종교의 존재를 폭로해 보여준다. 발리바르가 더욱 더 세속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국가의 시민종교이다.

[주34] 이번 절 이하의 서술에 관해서는 아래의 저서로부터 시사점을 얻었다. 柴田奇子, リベラル-デモクラシーと神権政治───スピノザからレオ・シュトラゥスまで, 東京大学出版会, 2009. 특히 8ポスト形而上学における政治的無神論」───マルクス宗教一般再檢討를 참조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철학(이성)과 종교(계시)의 영역의 분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의 정교분리의 양식과는 다른 방식에서였다. 스피노자는, 대중이 믿고 있는 각각의 종교를, 이성이 진리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게다가 라이시테같은 무신론적 종교의 대체물을 강제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바르에 의한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주장이 살아 있는 것은, 여기에 있어서이다. ‘스카프의 금지를 다수자로서의 프랑스인이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국가의 시민종교에 대한 더 많은 의존을 가져다준다. 여기에서 대중을 좌우하는 정념의 불확실성의 한 가지 표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국가의 시민종교에 억압됨으로써, 무슬림은 더욱 더 정체성=동일성에 대한 집착의 경향을 강화한다[주35]. 발리바르는 이 순환을 피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이름을 들면서 세속주의의 세속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35] 일부 무슬림이 본질화하는 이 정체성이, 해당 주체를 압도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은, 페티 벤슬라마이다. 그의 작업은 이슬람이라는 상이한 대상을 다루면서, 바로 스피노자를 상기시키는 이단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Fethi Benslama, Déclaration d’insoumission, À l’usage des musulmans et de ceux qui ne le sont pas, Paris, Flammarion, 2005. 

 

매개(혹은 매개자) 역할을 여기서 맡을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 혹은 일종의 담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똑같은 성질을 가진 다른 선택지로서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환언하면, 그것은 새로운 종교로서조차도 종교의 시스템 속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며, 아마 유일한 예외는, 일종의 전면적인 이단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현재까지의 사상사(예를 들어 스피노자)에 있어서 때때로 얼굴을 내미는 어떤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에 따르면, 상이한 종교의 담론의 마주침을 간접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 혹은 공적 공간에 있어서 자유로운 대화를 함께 발전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 똑같은 공간에, -종교적인a-religieux(그러나 반드시 -종교적anti-religieux는 아닌) 추가적인 어떤 요소를 도입 혹은 개입시키는 것이다[주36].

 [주36] Étienne Balibar,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op. cit., p.100. 

발리바르는 여기서, 상이한 종교를 믿는 자들의 마주침을 성립시키는 장을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이 장은 국가라는 무신론적 시민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 사이에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대중의 정념을 투자[備給]하는 국가의 세속주의를 포함한 종교 일반에 대해, 거리를 취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장의 탐구이다. 발리바르는 이처럼 정치론에 내재하고 대중의 양의성을 이끈 결과로서, 오늘날에는 신학정치론신권정치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네그리의 다중으로 돌아가, 그 문제점을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독해는 정치론에서 스피노자의 핵으로서의 다중을 찾아내고, 이것을 전면적으로 전개하는 점에 그 강점이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인데, 스피노자는 정치론의 저자인 동시에, 신학정치론의 저자이기도 했다. 발리바르가 시사하듯이 정치론의 대중(=다중)론과 신학정치론의 신권정치 비판은, 상이한 의도 하에서 작성되고, 두 저작의 한쪽을 다른 쪽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차이는, 특히 신학정치론에 있어서, 종교에 의해 충동질된 대중의 정념에 대한 스피노자의 거리로서 나타났다. 네그리의 다중에는 확실히 종교의 문제는 표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그리가 이 다중의 다양성을 묶는 공통점을 끄집어내려고 했을 때, 그것이 의사적인 시민종교가 되지 않는 보증은 어디에 있을까? 이 가능성은 오늘날의 네그리/하트의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사색에 있어서도, 지워지지 않고 의연하게 뒤따르고 있는 그림자인 것이다.

 

결어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대비는, 사상의 형성 및 이것과 깊게 결부된 사회상황을 동시에 고찰함으로써 처음으로 그 의의가 분명히 밝혀진다는 의미에서, 뛰어나게 사상사적인 과제였다.

우선, 두 사람 사이에는 스피노자의 요구 정치론을 둘러싼 해석상의 쟁점이 존재했다. 네그리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극이라는 관점에 서서, 이 저작의 미완성 부분을 추측함으로써, 다중에 의한 힘의 합성이 열어젖힌 미래라는 이야기를 거기서 읽어냈다. 반면 발리바르에 있어서는, 네그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른바 생산력의 성질이 문제인 것이며, 혹은 또한, 네그리가 선험적으로 선하다고 간주하고 있는 듯한 대중(=다중)을 충동시키는 정념이 문제였다.

다음으로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이런 사상적 차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두 사람의 여정을 검토했다. 1970년대의 유로코뮤니즘의 흐름 속에서, 공산당이 영향력을 잃어가는 똑같은 시대 배경에서 출발하고, 두 사람은 각각의 길로 분기했다. 네그리는 생명정치 개념을 부연함으로써 3차산업의 확대에 역점을 두고, 오늘날의 비물질적 노동의 전개를 시야에 넣었다. 발리바르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중의 정념의 결정화가 자의성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과정은, 네그리에 있어서는 다중의 전면적 긍정, 발리바르에 있어서는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각각의 스피노자론에 대응한다.

역사를 풀어헤친다, 대중의 양의성에 주목하는 발리바르는 파시즘 시기에서의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중(빌헬름 라이히)이나, 19세기의 길거리를 떠돌면서 소란을 일으켰다고 간주되는 위험한군집(귀스타프 르 봉) 같은 대중론의 계보와 부분적으로 관심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중을 이렇게 결정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대중의 정념의 향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로화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대조로부터, 하나의 방향성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네그리는 정치론신학정치론을 종속시키기 위해, 신학정치론고유의 신권정치의 비판이라는 물음을 비가시화하고 있다. 이 점은 네그리가 하트와의 공동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서, 발리바르는 정치론에서 대중의 양의성을 이끌어냄으로써, 근래에는 정치론신학정치론의 논의의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재차 중시하고 있다. 이 점을 본고의 끝에서 국가의 라이시테를 포함한 종교 일반의 비판으로서 검토했다. 그리고 네그리/하트의 공통적인 것이 사이비적인 시민종교와 어떻게 차이화되는가라는 논점이, 네그리/하트에 있어서의 향휴의 과제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사했다.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으며, 각각 정치론신학정치론이라는 스피노자의 두 개의 측면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이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의 부족을 지적하고, 이것을 결과적으로 보완한다는 의미에서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최종적으로는, 네그리/하트가 오늘날 전개하는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논의에 비판적으로 합류해가는 것이다.

 

* 본고는 일본학술진흥회 신진연구자 인터내셔널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의한 연구 성과의 일부이다. 여기에 적어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또한 프랑스에서의 재외 연구 중에 본고를 집필했다는 경위 때문에, 번역서가 있는 문헌에 관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번역서의 저본이 아닌 불역본을 참조해 새롭게 번역한 것이 있었다는 것도 모두 일러둔다. 번역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바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이 글은 우연히 발견했다. http://globalization.mcmaster.ca/wps.htm
맥마스터 대학교에 <세계화와 인간의 조건>이라는 학회가 있나 보다. 2008년 3월에 발표된 것이니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울 듯...
다른 글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번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다운로드 받아 번역 또는 발췌본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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