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푸코가 70년대 말의 강의(생명정치의 탄생, 1978-1979년 강의)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을 자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인적 자본론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데올로기가 생명정치의 한 가지 표현 형태임을 보여주는 절호의 예 신자유주의란 생명을 자본주의에 기입하기 위한 울트라 관리주의이다 로 말이다. 그러나 인적 자본 개념을 '관리하는 정치'로서의 생명정치아래로 포괄해버리면, 등한시되는 논점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인적 자본론은 주로 성공을 거둔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적 자본 개념은 1930년대 이후 서구경제와 일본경제의 성장이 결국 케인스주의적인 정부의 재량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발명됐다. 그 대표적인 논자인 세오도어 슐츠(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 1971)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3분할(토지, 노동, 자본)근대적 부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없다.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 등으로 구성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을 성공리에 이룩한 나라들에서는 현저하게 관찰되며, 성장의 근본 원인은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적 자본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적 자본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것이 인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인간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이라는 것은, 그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 또는 그 둘 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하물며 자동적으로 수익의 원천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려면 우선 인간의 활동들을 스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강조했는데, 푸코도 깨달았듯이, 이 정의 자체는 인적 자본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20세기 초반, 소득에 대한 어빙 피셔의 고전적 정의를 원용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소득이란 자본에 의한 생산물 또는 수익일 뿐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소득의 원천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본’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는 이른바, 이런 무전제적 자본파악에 대해서 자본의 출신[지]이 어디에 있으며, ‘자본은 어떻게 소득을 낳는가라고 질문하고(쓸데없는 참견’?), 출신은 스톡이며, ‘스톡은 재화나 서비스를 렌트로서 빼앗는 경제적 수법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이 질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피셔와 슐츠의 정의는 옳다.’ 사실을 올바르게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이자를 낳는 자본이 실제로 메타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모양 소득이 있는 곳에 자본이 있다 올바르게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을 제기한 순간 이 정의는, 우리가 머니터리즘의 항등식(MV=PT)에 대해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바뀐다. 이 항등식이든 메타자본이든, 국가에 의한 화폐 스톡의 형성과 유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는 것은, ‘사실을 그 성립 이전의, 아직 필연성을 결여한 상태로 되돌려 보내는 조작이다.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그러나 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아무튼 간에 임금은 자본소득이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자본이라는 것에 머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또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제학에 대한 라이오넬 로빈스의 정의를 자신의 것으로 한다. “경제학은 목적들과, 서로 배타적인 용도를 가진 희소 수단 사이의 관계로서의 인간의 행동양식에 관한 과학이다.” , 신자유주의에서의 인간은 희소한 수단을 무기로 삼고 그 희소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성장을 목적으로 싸우는 동물이다. 바꿔 말한다면, 희소성에 찌든 환경 속에서 그 희소성과 투쟁하고, 그것을 극복제거하려고 하는 동물이다. 희소성은 수단이며, 그 목표는 희소성의 부재인 것이다. 일종의 자기 언급성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이 실제로 실현되는 동안에는, 그 점은 아무런 문제도 빚지 않는다. 노동자(인적 자본의 소유자)와 자본가(화폐자본의 소유자)는 희소성이라는 공통의 적과 싸우는 동맹자이며, 성장으로부터 똑같이 자본 수익으로서 소득을 끄집어낼 수 있다. 똑같은 ‘비율’밖에는 인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양자에게 하나의 동일한 합리성 아래에 포섭되고 있다.

그러나 원인은 고사하고, 성장이 정지하면 어찌될까? 성장의 사실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것을 설명한 논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본 것은, 수단과 목적이 같다는 자기 언급성이 행복한 순환을 형성하기를 멈추고, 배리로 전환한다는 사태이다. 193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성장을 설명하는 이론이었을 인적 자본론은 희소성 그 자체로부터 수익을 끄집어내는 방법론으로 전화했다. 희소성과 싸우는, 즉 희소성을 감소시키는 것 없이,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미래의 만족 또는 미래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됐다.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희소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경제학이 그것들의 합리적인 사용방식, 대처 방식을 가르치는 제약 조건이었던 것, 즉 경제학이 그것들과 목적 사이의 합리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던 것이, 그대로 직접적으로 수단이 된 것이다. 행동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메워야 할 틈새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경제학에는 더 이상 목적=수단을 논증 없이 주장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희소한 것에는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자. 가치 있는 것의 생산이 성장이다. 이것이 배리라고 한 까닭은 사실상 희소해질수록 풍부해진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차이를 찬양하는 문화좌익은 이와는 다른 것을 말했던 것일까?). 설명해야 할 현상이 사라졌을 때, 대상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논리는 공회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혹은 폭력으로 반전할 수밖에 없다. 출신과 어떻게를 묻지 않음으로써 그 신분을 유지했던 사실, 여전히 그것을 묻지 않은 채, 벌거벗은 규범으로 바뀌는 것이다. 원래 신자유주의의 시장관은, 양차 대전의 질서 자유주의의 시대부터, 시장이 최적의 자원배분을 실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이룩하는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공간인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의 성장은 시장이 잘, 또는 올바르게 기능하는 지표이며, 시장에 탑재[내장]되어 있는 자연적경향 그 자체인데, 그 결실을 둘러싼 부정의부패자연적으로는 억제할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시장은 하게객관적으로 가치를 정해주지만, 그 메커니즘은 전통사회가족의 정서적이고 한 가치관에 포위되어 있으며, 항상 이상적으로 작동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시장의 안쪽으로부터는, 끊임없이 독점으로 향하는 위험이 자라난다. 이 취약한 시장 메커니즘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자유주의의 대답은 주지하듯이, 사회 전체를 시장 원리를 따라서 조직하는 것이었다. 시장을 포위하는 시장에 대한 저해요인을, 시장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위협과 함께 제거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을 막는 과 싸우고, 더 나아가 의 신장을 불허하라, 끊임없이 선행적으로 을 확대시키라. 성장이라는 지표가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면, 시장은 더 이상, 혹은 이미, 각자가 에고를 추구해도 좋은 장소, ‘사악(私悪) 즉 공익근대자유주의를 준비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의 부제 을 보증하는 메커니즘이 아닌 것이다.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가르고, 신자유주의에 특유한 개입주의가 이로부터 귀결된다. 시장 게임에는 엄격한 규칙과 그 적용을 감시하는 심판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행위자(player)는 인적 자본, 푸코의 말투를 차용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기업으로 끊임없이 육성되어야 한다. 자기 투자를 권하고, 자본 가치를 늘리려고 하는 존재로 훈육되어야 한다. ‘전통이나 가족은 인적 자본의 가치를 높여주는(프로테스탄티즘처럼) 반면, 안정에 만족해서 이노베이션[혁신]을 게을리 하는 저해요인도 된다. 시장에 독점 경향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동안 소규모 가족 경영을 건전하게 유지시켰던 문화가 가족회사에 의한 독점을 향한 욕망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싹을 제도질서(ordo)’를 구사하여 먹어치워야 한다. 게다가 비용 대비 효과라는 시장의 잣대를 사회생활이나 행정의 모든 국면에 적용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재량적(=비시장 메커니즘적)인 개입과 규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도태되어야 할 것을 도태시키지 않고 껴안은 부패를 시장에 들여올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불평등하며, 실업자는 고용에서 고용으로 이동 중인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고 간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즉, ‘경제학이 아닌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들은 이미 해명되었으며, 이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시장은 인적물적 자원 배분에 관해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신자유주의자들은 알고 있다. 즉 자신들의 연구는 포스트경제학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장속도가 시들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성장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제의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딘가에 악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그것 자체가 정의의 전쟁으로서 수행된다. 사회의 개입적 시장화가 을 위해 실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강제에 덧붙여, ‘을 향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구사한 것이어야 한다. ‘경제정책인 한에서는 말이다. 희소재를 사회 속에 투입하면 좋다. 사회 속에서 희소성을 산출하면 좋다. 교육도 희소해져서 효과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공교육을 그만두면 좋다 , 무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존의 공공재를 파괴하면 좋다. 세금조차 들지 않는 경제특구를 공공의 토지에 끼어들게 하면 좋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을 본받아라. 아무튼, 신자유주의자의 임무는 전쟁과 동질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넘어선 곳에서부터 그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일종의 혁명이 된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평등의 실현 다만 공공재가 누구에게나 희소해진다고 하는 평등 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본서가 주제로 삼은 현대의 채무는 이 폭력혁명의 결말이다. 사회주의의 실패 다음에 찾아온 신자유주의의 실패의 결말이다. 그것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의 저명 저널에서조차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선언하게 됐다. 공공성의 사회민주주의가 실패를 복원하는 데 최적의 사고방식으로 호출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인 인적 자본론은, 스탈린이 이를 선구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앞 절)을 차치하더라도, 문화좌익을 집어삼킨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사고방식과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희소성과 싸우는 인간의 힘을 학교교육과 대학교육, 직장 내 훈련On the Job Training, 이주, 건강, 경제정보에 의해 높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유행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론을 완전히 선취하고 있지 않은가? 함께, “열심히 하면 보답을 받을 것이라는 것 이상의 것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개발의 노력과 빚 상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동일시하고 있을 것이다. ‘정의의 프런티어의 확장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좌파 철학자(마사 너스바움)세계개발경제연구소의 조언자를 맡아, 아마티아 센과 함께 제3세계민중의 가능력可能力 capability’ 채무 상환의 가능력은 포함시키지 않는가? 증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이 현대이다. 역사적으로 잊어서 안 되는 것은, 푸코는 지적하지 않았으나, 인적 자본이라는 개념이, 스탈린주의보다 오래됐기 때문에 스탈린 이후에도 소프트-스탈린주의로 살아남은 생산협동조합의 사회주의에서도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출연 자본액에 의해 투표권을 배정하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노동자본인적 자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라고 간주하는 11표제의 생산협동조합에서,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생산의 존재방식을 탐색해온 사회주의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실상 가입시키고 있는 것은, 누구나 평등하게 생산이 아닌 채무를 짊어지는 인적 자본의 협동조합이다. ‘평등에서 기인하는 불공평감이 생산협동조합을 실패하게끔 해온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소프트-스탈린주의는 소프트(=‘금전의 평등과 친화적)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사실상의 채무 노예에게 여전히 열심히 해라고 역설하는 사회-임파워먼드empowerment/정의-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하드hard) 스탈린주의의 역습인 걸까?

생명권력’(푸코)의 작용형태가 변했다고 봐야 할 수도 있다. 과거의 질서자유주의는,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는, 취약한 이상적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을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키우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촉구했다고 했다. 그것은 자본 일반의 생산력, 성장을 초래하는 [] 힘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시장적 관계를 확장하고, 시장 규모를 성장시키고, 자본의 힘을 인간 속에 내장[탑재]시키려고 했다.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70년대 푸코의 기본 테제로부터 봐도,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상정하는 양의 힘에 그가 주목한 것은 틀림없을 테다. 하지만 오늘날의 생명권력은 채무라는 음의 힘에 의해 생산이 아닌 수탈(수입의 무상이동)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희소성의 생산은 결여의 생산 즉 문자 그대로 음의 생산이며, 그것을 산출하는, 사적 소유권에의 공공재의 증여, 하나의 렌트로부터 다른 렌트로 (인적 자본으로부터 화폐 자본으로) 수입을 이동시키는 권력 장치로서 기능한다. ‘생명권력이 단순히 사회적담론적추상적인 권력이기를 멈추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 속에 내장[탑재]됐다고 말해도 좋다. ‘추상기계’(푸코)로서의 권력이 하나의 신체를 가진 것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 권력은 억압하지 않지만,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가치를 끌어당기는 진공지대이다. 그것은 가치를 우선 희소한 것, 결여된 것, 마이너스의 것으로서 사회의 중심에 두고,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의 근대가 행복의 원천으로 바꾼 노동labor, 다시 한 번 죄에 대한 보답’, 고역으로서의 labor로 바꾸는 것이다. 빚을 진 죄, 채무를 방치한 죄.

 

*

우리는 제안해야 할 대안이 공공재의 탈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긴축에 반대하고, ‘성장을 위한 투자라면서 채무를 옹호하는 네오(?) 케인지안 노선이 아니다. 채무의 옹호란, 얼마나 개인들에게 평등하게 부담을 배정하느냐라는 문제일 뿐이며, 바로 인적 자본의 논리일 뿐이다. 긴축이란,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 개인이 부채를 짊어진다는 정책일 뿐이다. 우리가 본 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와 케인스주의적인 큰 정부의 차이가 사실상 소멸했다는 사태이다. 경제성장이 멈췄을 때, 양자의 차이는 채권채무관계를 청산하는 타이밍의 차이일 뿐이다. 방금이거나, 조금 뒤이거나. 반면 긴축과 채무 둘 다로부터 공공재를 탈환한다는 것은, “위기의 타겟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라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관리된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다. 신용공간의 강제적 축소, 희소성의 인위적인 자연사이다. 국내적으로는, 채권을 순차적으로 종잇조각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주택의 압류 같은 채권회수를 금지할 시장가치 제로로 공공재산화할 뿐이며, 렌트의 횡령은 억제될 것이다. 그것에 의한 은행의 도산에는, 예금보호만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IMF를 대신해 채무국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자본 수지에 의한 환율을 중지하고, 채무국을 버리지 않는 보증이 필요할 것이다. 어차피 현재 문제가 되는 채무총액은 IMF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액수를 훌쩍 뛰어넘으며, 적자국의 책임과 흑자국의 책임을 균형 있게 만드는 케인스의 플랜(국제청산동맹)을 재차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필요가 있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지불되지 못한 채무를, 우선 순위를 매겨서 지불하는 것이지 않아도 되는 계획권력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민간보험으로부터 국영으로 역행하는 사회주의? 그렇다. 시장가치 제로로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 국영이라면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다. 누군가를 부담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사회주의이다. 국영화에 의해 이윤 인센티브를 잃은 기술혁신은 급속히 후퇴한다? 환상일 것이다. 인센티브를 가진 주체를 자본에서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뿐이다.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일한 보수를 렌트로 받는 것을 막는 사회주의이다. 어떤 불로소득도 부정의하다고 간주하는 사회주의이다. 도대체 어떤? 계획책정하기 시작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다. ‘계획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권력이다. 권력의 구성이 없으면, 어떤 공공의 것=공화국도 위기를 질질 끌 뿐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황인식이다. 이것은 민영화보다 공영을 옹호하고, 사적 소유권을 공적으로 제한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와 확실히 비슷하다. 공립학교는 분명히 지켜져야 할 공공재이다. 그러나 공적으로 소유되어야 할 것은 더 이상 스톡이 아니다. 미래의 부의 원천, ‘성장의 모태로서의 자산이 아니다. 그런 것의 실체는 이미 상실되고 있으며, 파산관리의 소비에트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채무의 원천으로 반전되는 스톡에 대한 렌트 청구권을 정지시키는 권력만이, ‘소유하는 것에 값한다. ‘스톡을 국가에 의해서조차 소유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소임을 이 권력은 담당한다.

사적 소유권의 대표자로서의 또는 주권권력으로 이것이 가능할까? 사유재산을 지키고, 더 나아가 준다 타국으로부터 빼앗아 는 것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공권력으로 스톡의 해체를 할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일찍이 이 해체를 행할 것이었다. ‘자본으로부터 ()’성을 우선 빼앗고, 그 이후 자본그 자체의 해체로 향하는 것을 이 노선은 표방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본 것 그대로, 노동의 전반적 스톡화, ‘국가노예제의 오늘과 내일을 일그러지게[비뚤어지게] 예시했을 뿐이었다. 생산이 아닌 스톡, 그것이 낳는 채무를 해소하기 위한 소비에트는 아직 생각된 적도, 따라서 시도된 적도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99퍼센트의 반란이나 EU 내의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긴축반대의 소요가 이런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시도를 일정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가를 문제 삼은 것이다. 리먼 쇼크의 파도가 빈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금융조치로는 빈부의 차이를 축소하기는커녕 확대시킬 뿐이며, 가맹국들 모두에게 성장을 가져올 것인 공통 통화로는 채무의 짓누르기를 가속화할 뿐이라는 막다른 골목의 단적인 표현이,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란이었다. 원래 정치의 루틴(routine)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반란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란은 발생한다. 문제의 심각성 이상으로, 해결의 부재가 반란을 발생시킨다. 반란은 항상 정치에 맞서는 정치이다. 물론 정치 과제를 제출할 수 없는 한, 반란을 기다리는 것은 패배이다. 그러나 월가 점거에, ‘정치 일정에 올릴 수 있는 과제나 승패의 지표 따위는 있을 리 없고, 시위에 의한 정치가의 퇴진요구가 과제를 둘러싼 가능한 옵션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오늘날의 반란은, ‘정치에 대한 구체적 요구가 될 수 없는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다. 어떤 내용을 갖고 있든, ‘정치가 그 욕망의 실현에 길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에, 반란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정치이다. 거기에서는 해결의 부재가 해결에 대한 욕망을 증대시킨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일어난 반란의 연속도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반란이 정치화의 여정에 오르자마자, 다음번 반란의 싹이 자라는 것이다. 이 반란을 지탱하는 욕망에 있어서, ‘정치튀김을 온통 가리고 있는 토핑에 다름 아니다. 혹은 오히려, 이 반란은 자신의 패배를 통해서, 문제를 논의의 도마 위에 올릴 수조차 없는 정치의 패배 라는 현재의 상황 를 무의식적으로 연출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원래 정치적 승리를 바라지 않음으로써, ‘정치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보이도록 한다고 말이다.

아무튼 긴축이냐 성장이냐, 성장을 위한 긴축이냐 성장에 의한 긴축의 회피이냐 같은 논의가 계속될수록, 이런 반란은 일종의 사고(事故)’로서 되풀이될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 그것은, 요구가 불명료하거나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들을 귀 따위는 갖고 있을 리가 없는 사고에 지나지 않으며, ‘사고로서 처리될수록, 반란에 대한 문턱은 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는 일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보험적 발상으로 대비하는 것을, 금융자본주의는 권장하지 않았는가. 리먼 쇼크는 사고조차 벌이가 된다[이문이 남는다]고 실증한 게 아닌가. ‘사고로서의 처리도 또한 파산관리의 수법임에는 틀림없고,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누구에게 그것을 맡길 것인가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화주의의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라고 하는 답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사상은, 바깥의 누군가에게 부나 재원을 요구함으로써, 내부에서의 이해대립을 균형시키고, 계급투쟁을 억제하려고 했다. 오늘날에도 또한, ‘바깥이란 아시아이다, 아프리카이다 등이라고 선전하고 있다(‘성장력을 수중에 넣어라!). 바깥도 또한 금융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에 불과하다(그들에게 투자하라, 돈을 빌려주라)고 하는 것의 반면(半面)에는 더 파고들지 말고. ‘바깥에 대한 기대에 관한 한, 여기서도 선구는, 신자유주의와의 차이를 스스로 소멸시킨 중국의 스탈린주의이다. 아프리카 진출이다. 그러나 그 중국에서조차도, ‘바깥으로의 확장은 에서의 반란의 발생과 보조를 맞출 때에만 가능해진다. 아무튼 채무를 끝나게 하는 과정의 대항 모델로서는, 아직 사고(事故)’만 존재할 뿐이다. 보험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곳까지 사고를 확대하려고 하는 무의식의 노선만을 대항정치는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그것이 계속되는가, 바꿔 말하면, 지속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는 공화국이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는가는, ‘참을성 겨루기의 영역에 있는 문제일까? 비록 사실로서는 그렇더라도, 무의식의 의식화를 시도해도 나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채무공화국은 끝나가고 있다. 어떻게 살 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정말로, 또한 현실적으로 끝나게 할 것인가를 논의의 일정에 올려야 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1부 2장. 

정신과 심리의 통치

고이즈미 요시유키(小泉義之)


* 푸코의 원문과 일역본을 대조하여 교정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대신 프랑스어 원문을 아래에 병기해뒀다. 나중에 천천히 대조하여 수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몇몇 대목은  이미 대조를 통해 수정한 대목이 있으나, 별도로 밝히지 않았다. 또한 프랑스어 원문은 클릭하면 관련된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다. 

* 내용이 달린 각주만 표기해뒀다.  


1. 평화로운 나라의 내전상태

미셸 푸코는 1950년대에 젊은 심리학자로서 정신병원에서 일했다. 푸코는 그때의 경험에 관해 1982년에 이렇게 말한다.

 

철학을 연구한 후 저는 광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성을 연구하기에는 너무도 미쳐 있었으며, 광기를 연구하기에는 너무도 이성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병원에서 저는 환자들한테서 간호사들에게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명확한 직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신경외과가 활짝 꽃을 피웠으며, 정신약리학이 시작됐으며, 전통적인 제도가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것들이 필수적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석 달 정도가 지났을 때(저는 느려터진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라고. 3년 후에, 저는 이 일을 그만두고, 개인적으로 커다란 불안감을 품은 채 스웨덴으로 갔습니다. 저는 스웨덴에서 이런 실천들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362] 1598/310)

Après avoir étudié la philosophie, j'ai voulu voir ce qu'était la folie : j'avais été assez fou pour étudier la raison, j'ai été assez raisonnable pour étudier la folie. Dans cet hôpital, j'étais libre d'aller des patients au personnel soignant, car je n'avais pas de fonction précise. C'était l'époque de la floraison de la neurochirurgie, le début de la psychopharmacologie, le règne de l'institution traditionnelle. Dans un premier temps, j'ai accepté ces choses comme nécessaires, mais au bout de trois mois (j'ai un esprit lent !), j'ai commencé à m'interroger : « Mais en quoi ces choses sont-elles nécessaires ? » Au bout de trois ans, j'ai quitté cet emploi et je suis allé en Suède, avec un sentiment de grand malaise personnel ; là j'ai commencé à écrire une histoire de ces pratiques.

 

이리하여 광기와 비이성을 쓰기 시작했지만, 미리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이 병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후 푸코는 신경외과수술이나 향정신성의약이나 병원수용에 비판적이기를 계속했지만, 이런 병원 내부에서의 치료 실천이나 병원을 핵심으로 하는 실천을 폐기하면 결말이 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경험을 통해 심리학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게 되었지만, 심리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계속 유지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푸코의 입장은 단순한 반정신의학도 반의학도 반심리학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때로 지적되었지만, 본고에서는 조금 더 그 내실에 들어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각주:1] 이 점에서 또 하나의 회상이 중요하다. 1983년의 인터뷰이다. “생트안느(Sainte-Anne) 병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나요? 생트안느는 그 직원의 한 명에게, 정신의학에 대해 특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나요L'hôpital Sainte-Anne avait-il quelque chose de particulier ? Aurait-il pu donner, à l'un de ses employés, une image particulièrement négative de la psychiatrie?”라고 S. 리긴스(Stephen Riggins)가 물은 것에 대해 푸코는 이렇게 답한다.

 

아니오. 생트안느는 상상한 대로 큰 병원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생트안느는 제가 나중에 찾아간 지방의 큰 병원의 대부분보다도 오히려 좋은 것이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파리의 최고 병원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아니, 심한 것은 무엇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제가 지방의 중소병원에서 똑같은 작업을 했더라면, 아마 그 병원의 실패를 지리적 상황이나 지방 작은 병원의 고유한 결함 탓으로 돌리려고 했을 겁니다. ([336] 1347/428)

Oh non. C'était l'un de ces grands hôpitaux comme vous pouvez en imaginer, et je dois dire qu'il était plutôt mieux que la plupart des grands hôpitaux de province que j'ai visités par la suite. C'était l'un des meilleurs hôpitaux de Paris. Non, il n'avait rien d'épouvantable. Et c'est précisément cela, la chose importante. Si j'avais fait le même travail dans un petit hôpital de province, j'aurais peut-être été tenté d'imputer ses échecs à sa situation géographique ou à ses insuffisances propres.

 

생트안느가 최고 좋은 병원이었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최근 들어 정신의학의 진보사관과 그것을 계승한 반정신의학의 진보사관의 영향으로, 예전의 병원·시설의 실정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퍼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탈병원화 이후의 수치와 비교해도, 치유되는 환자나 사회로 복귀하는 환자의 비율은 높았다. 또한 놀랍게도 탈병원화 이후, 20세기 중반 이전의 병원 수용자 수는 매우 적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쁜 역사로 간주하는 편견이 오히려 강해졌지만, 소수를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도 그 범위 밖에서도 나름대로 잘 행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데, 푸코는 바로 그것에 큰 불안감을 품었다고 받아들여보자. 이후의 푸코가 연구하게 된 권력의 다양한 형태, 병원 수용시설 수용, 규율훈련, 생명권력생명정치, 통치성은 대체로는 잘 행해진다. 대체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대체로는, 치안도 통치도 잘 행해진다. 평화로운 것이다. 그래서 문제라고 푸코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말하자. 정의상 비정상異常은 소수에 그친다. 그렇다면 그 소수의 비정상을 둘러싸고 이렇게 저렇게 번민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압도적 대다수가 정상이라는 그것에 문제를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권력·생명정치에 대해서는 신체가 표적으로 간주되고, 마치 정신-심리는 표적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는 것처럼 논술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오히려 생명권력·생명정치는 개인적인 신체나 집단적인 단체에 작용됨으로써 간접적으로 정신-심리에 작용된다고 논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기 푸코에게서의 심리학 연구 혹은 심리학 비판은 푸코 말년에는 두절되어 있는 것처럼 막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1976년의 대담 비합법성과 처벌의 기교([175])에서 G. 타라브(Tarrab)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하고 있듯이 감옥 같은 환경을 분석하면, 심리적 차원을 사상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당신 자신은 신체의 구속에 대해 말하지만, 신체의 기초에는 심적인 것(psyché)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Peut-on faire l'économie de la dimension psychologique, quand on analyse le milieu carcéral, comme vous le faites ? Vous parlez vous-même de «prise de corps», or le corps est sous-tendu par une psyché. Qu'en faites-vous?” 이것에 대해 푸코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나는 심리적 차원을 사상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구금자의 인격에 관심이 없다.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항상 비판되는 동시에 항상 재생하는 감옥이라는, 이 역설적인 시설의 기초에 있는 권력의 전술과 전략이다. 이 방식에 있어서는, 심리적 차원이 직접 분석에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의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감옥의 기구에 있어서는 실제로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법이 말하는 단순한 자유의 박탈이 아니라 그것 이상의 것이다. 사람들의 신체 병사의 신체, 아이의 신체, 노동자의 신체 에 관심을 갖는 정치권력의 전술이 있으며, 신체는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심리(psychologie)는 그것에 말려들어 있다. 그러나 심리는 권력분석에서 시작되는 분석의 최종단계로 이른바 추방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사회학에 대해 심리학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권력의 문제설정이다. 권력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심리학의 개념이냐 사회학의 개념이냐라는 것이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힘관계이다. 따라서 사용되어야 할 도식을 심리학이나 사회학으로부터 빌려서는 안 된다. 전략으로부터, 그리고 전쟁의 기교(art)로부터 빌려야 한다.([175] 87/109-110)

Je ne dis pas qu'il faut en faire l'économie. En fait, je ne m'intéresse pas au détenu comme personne. Je m'intéresse aux tactiques et aux stratégies de pouvoir qui sous-tendent cette institution paradoxale, à la fois toujours critiquée et toujours renaissante, qu'est la prison. Dans cette mesure-là, je ne crois pas que la dimension psychologique doive être mise immédiatement au service de l'analyse. Prenez le problème du corps: il est en effet très important dans la mécanique de la prison. Or ce n'est pas, comme dit le droit, une simple privation de la liberté, c'est plus: il y a une tactique du pouvoir politique qui s'intéresse au corps des gens : corps des soldats, des enfants, des ouvriers qu'il faut maintenir en bonne condition. Bien sûr, la psychologie s'y trouve impliquée, mais elle se trouve en quelque sorte reléguée au dernier échelon d'une analyse qui commence par le pouvoir. Le problème n'est pas de mettre la psychologie en face de la sociologie ; le problème, c'est la problématique du pouvoir. Est-ce que oui ou non le pouvoir peut être analysé avec les concepts de la psychologie ou de la sociologie, la question n'est pas là, me semble-t-il. Le pouvoir est essentiellement un rapport de force, donc, jusqu'à un certain point, un rapport de guerre, et, par conséquent, les schémas qu'on doit utiliser ne doivent pas être empruntés à la psychologie ou à la sociologie, mais à la stratégie. Et à l'art de la guerre.

 

재차 확인해둘 것은 전쟁이라고 얘기할 때의 전쟁은 비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도소는 어떤 점까지는전쟁상태에 있다. 마찬가지로 군대·학교·공장도 어떤 점까지는전쟁상태에 있다. 거기서의 권력관계는 전쟁관계이다. 전쟁이기 때문에, 전술·전략·전쟁기교가 실제로 구사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의 표적은 신체이다. 심리학의 개념도 사회학의 개념도 쓸모가 없다. 권력의 분석은 신체의 심리학이나 신체의 사회학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역시 심리의 분석은 최종단계로 보류될 뿐인가? 타라브는 이렇게 질문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 전쟁관계는 대체로 구금자의 육체와 신체에, 그리고 또한 구금자의 심적인 것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지만Mais ces rapports de guerre laissent généralement une marque profonde dans la chair et dans le corps des détenus, ainsi que dans leur psyché...이라고. 푸코의 대답은 이렇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내게 문제는 권력이 신체와 심인(心因, psychisme)에 각인이 남긴다는 사실이며, 신체와 심인이 분석으로의 안내 실이나 모델로서 도움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분석으로의 안내 실로서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은 전략의 관계일 것이다. 전쟁이 전투원의 신체에 상처를 남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전략이나 전술이 개인의 신체에 각인을 남길 것이라는 것은 물론 이해되었다. 그러나 상처로부터 시작해도 전략의 실에 도착할 수는 없다. ([175] 87/110)

Mais le problème n'est pas là. Mon problème est de savoir si, du fait que le pouvoir laisse des marques dans le corps et le psychisme, ceux-ci doivent servir de fil directeur et de modèle à l'analyse. Il me semble que ce qui doit servir de fil directeur à l'analyse, ce sont des rapports de stratégie, étant bien entendu que la stratégie ou la tactique du pouvoir va laisser des marques sur le corps des individus, tout comme une guerre laisse des cicatrices sur le corps des combattants. Mais ce n'est pas la cicatrice qui vous permettra de remonter le fil de la stratégie.

 

푸코의 이 대답은 그대로 마음[]에 해당된다. 교도소·군대·학교·공장은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물론 마음도 상처 입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에서 출발해 전쟁상태의 분석 등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마음의 상처에서 출발해 전쟁상태를 고발한들 별 것일 수가 없다. 문제는 전쟁상태가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것에도, 마음의 상처가 개인적·인격적으로는 중대한 것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그런 관계를 전쟁상태로서 분석하는 것이다. 대체로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그런 전략·전술·기교를 분석하는 것이다. 강조해야 하는데, 마찬가지의 것은 단순히 네거티브가 아니라 포지티브한 효과이기도 한 마음의 각인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권력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긍정하는 각인을 마음에 남기는 그런 관계를 전쟁상태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감옥에서 교정되고 노동윤리를 익히고, 군대에서 성장하고 유덕해지며, 학교에서 발달하고 사회화되며, 공장에서 노동의 기쁨을 느끼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시설에서 성공리에 변용하는 것이다. 푸코는 거기에서 전쟁상태를 감지한다. 그런 성공 사례는 누구의 승리인지 분명치 않으나, 승리한 전쟁이 마음에 가져오는 각인이다. 그래서 권력분석에 있어서도, 심리적 차원은 결코 사상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서 시작해 전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시작해 마음에 도달한다고 전망된다. 이 관점에서 심리학자 푸코의 생애를 반추해보자.

 

2. 심리학자 푸코

본고에 관련된 한에서 초기 푸코에 의한 심리학 관련 문서를 읽어두자. 1957년의 1850년부터 1950년의 심리학[2]에서 푸코는 심리학이 실천실용실무와 새로운 관계를 창설한 것에 유의하고 있다.

 

심리학이 교육·정신의학·집단조직 등의 실천과 새로운 관계를 창설한 것도 100년 동안의 일이다. 심리학은 이런 실천들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초로서 등장했다. , 발생심리학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교육학의 틀로서 구성됐으며, 정신병리학은 정신의학의 실천에 대한 반성으로서 제시됐다. 거꾸로 심리학은 그런 실천들이 불러일으킨 문제, 즉 학교의 성공과 실패의 문제, 환자의 사회 편입의 문제, 직업에 대한 인간의 적응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서 물어왔다. [각주:2]([2] 149/151)

C’est également au cours de ces cent dernières années que la psychologie a instauré des rapports nouveaux avec la pratique : éducation, médecine mentale, organisation des groupes. Elle s’est présentée comme leur fondement rationnel et scientifique; la psychologie génétique s’est constituée comme le cadre de toute pédagogie possible, et la psychopathologie s’est offerte comme réflexion sur la pratique psychiatrique. Inversement, la psychologie s’est posé comme questions les problèmes que soulevaient ces pratiques : problème de la réussite et de l’échec scolaire, problème de l’insertion du malade dans la société problème de l’adaptation de l’homme à son métier.

« La psychologie de 1850 à 1950 », in Huisman (D.) et Weber (A.), Histoire de la philosophie européenne, t.II : Tableau de la philosophie contemporaine, Paris, Librairie Fischbacher, 1957, 33, rue de Seine, pp. 591-606.

 

심리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하물며 단순한 마음의 학문도 아니다. 심리학은 교육심리학·정신병리학·산업심리학으로서, 학교 교육의 성패, 정신병자의 사회 복귀, 노동자의 직업적응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 심리학은 이런 문제들에 유효한 해결책을 주는 것을 곧바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의 각 부문은 실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고 해도, 심리학 그 자체가 목표로 하는 것은 성공하거나 실패하기도 하는 그 실천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초를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발달 장애아의 교육을 성공으로 이끄는 해결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교육심리학이지만, 심리학은 발달 장애아의 교육의 성패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조건, 혹은 오히려 발달 장애아의 교육 그 자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정신의 영향도 있어서, 심리학은 정상을 가능케 하는 조건의 탐구로서는 성립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심리학은 비정상異常에 관련되어 성립했다.

 

심리학은 인간의 실천이 그것에 고유한 모순과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 발달 심리학은 발달의 정체에 대한 반성에서 태어나며, 적응 심리학은 부적응의 현상의 분석으로서 태어나며, 기억심리학·의식심리학·감정심리학은 처음에는 망각·무의식·정서교란의 심리학으로서 나타났다. 현대 심리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 비정상성·병리·갈등의 분석이며 인간 자신에 대한 인간의 모순에 대한 반성이라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2] 149-150/151)

La psychologie, en revanche, naît en ce point où la pratique de l’homme rencontre sa propre contradiction ; la psychologie du développement est née comme une réflexion sur les arrêts du développement; la psychologie de l’adaptation comme une analyse des phénomènes d’inadaptation ; celle de la mémoire, de la conscience, du sentiment est apparue d’abord comme une psychologie de l’oubli, de l’inconscient et des perturbations affectives. Sans forcer l’exactitude, on peut dire que la psychologie contemporaine est, à son origine, une analyse de l’anormal, du pathologique, du conflictuel, une réflexion sur les contradictions de l’homme avec lui-même.

 

기원에 있어서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심리학은 젊은 푸코 같은 사람들을 매료시켜온 셈인데, 여기서 푸코는 심리학을 비정상성·병리·갈등을 직접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학교에서 비정상아동을 교육하고 병원으로부터 사회로 정신병자를 이행시키며, 직장에서 부적응자의 갈등을 성숙으로 이끄는 실천을 대상으로 하며, 그런 실천의 기초·조건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재파악했다. 심리학은 정신이나 마음의 학문, 그 좀 어두운 의 학문이었다고 해도, 얼핏 보기에 수수하고 평범한 실천과 떼어낼 수 없는 것으로서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에 대해서도, 심리학에 대한 이런 관점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 시기의 푸코는 프로이트가 생존할 때 고전정신분석에 대해 내놓았던 수정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심리학적 수정을 용인하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본능의 이론(삶 혹은 확장의 본능, 죽음과 반복의 본능)은 생물학적 신화의 잔영에 불과하며, 질병을 발달 단계의 초기로의 퇴행으로 파악하는 시각은 스펜서 식의 사회생물학이나 진화론적 몽상에 불과하다. 프로이트에게는 19세기의 잔재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푸코에 의하면, 정신분석은 심리학을 대대적으로 갱신하며, 의미·역사·문화 등의 범주를 도입했다. , 푸코는 당시의 시대정신에 따라, 정신분석의 언어·역사·문화에의 응용에 의의를 찾아낸 것이다.

이런 한에서는 흔해 빠진 얘기이지만, 주의할 것은, 푸코가 이 논의 맥락에서 그 참고문헌으로 F. 알렉산더(Franz Alexander)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 its Principles and Applications)(1950), A. 카디너(Abram Kardiner) , 사회의 심리적 경계(Psychological frontiers of Society)(1945)에 덧붙여, J. L. 모레노(Jacob Levy Moreno)누가 살아남을까? 소시오메트리의 기초(Who Shall Survive? Foundation of Sociometry)(1934)를 꼽고 있다는 점이다. , 정신분석이 응용되어 심리학의 실천과 연결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푸코는 모레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레노는 집단에 특징적인 배치布置에 있어서, 개인들을 결합시키고 대립시키는 양의 값이나 음의 값을 결정하기 위한 집단분석의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소시오드라마라는 이름의 집단요법을 확립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 집단요법은 개인의 정신분석과 마찬가지로, 잠재하는 정서의 주제, 표면적顕在的인 관계가 잿더미가 되는 갈등과 양가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실현하며, 그 방도를 갖고서 상호 재적응과 집단의 정서적 재건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2] 162-163/165)

Moreno a mis au point des méthodes d’analyse du groupe, par lesquelles on détermine les valences positives ou négatives qui unissent et opposent les individus dans une constellation caractéristique du groupe. Il a mêe tenté d’établir sous le nom de sociodrame une thérapeutique de groupes, qui permettrait, comme dans la psychanalyse individuelle, une mise au jour et une actualisation des thèmes affectifs latents, des conflits ou des ambivalences dont les rapports manifestes sont sous-tendus, et qui rendrait possible par cette voie une readaptation mutuelle, et comme une restructuration affective du groupe.

 

푸코에게 심리학의 실천이란 개인에 대한 정신분석의 요법에 덧붙여, 모레노가 개발한 집단분석에 의한 집단요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후년의 전개를 내다보고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예를 들어 소시오드라마 같은 기법이야말로 권력분석에는 전술·전쟁 기교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학교에서의 교육심리학의 기법, 지역에서의 정신병리학의 기법, 직장에서의 산업심리학의 기법이야말로 학교·지역·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행사되는 전술·전쟁 기교에 상당하는 것이다.

다른 텍스트에서도 확인해두자. 1957년의 과학연구와 심리학([3])의 노동심리학에 대한 논의를, 그 과학성·기법·실정성의 관련에 주의하면서 살펴보자.

 

노동심리학은 본질적으로, 한편으로는 직업의 지두와 선택의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지위··노동집단·직장에의 개인적 적응의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고찰 전체가 중요성을 갖고, 그 물음이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경제적 조건 덕분이다. 직업의 지도와 선택의 리얼리티는 실업률과 노동지위의 분화 수준에 따라서 달라진다. 산업기술(technique)에 결합된 완전고용의 체제만이 노동자의 고도의 분화를 요청하기 때문에 이 완전고용의 체제만이 과학적 연구에 직접 연결된 심리학의 실천에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신화에 불과한 이런 조건이 없으면, 지도와 선택에는 차별의 의미밖에 있을 수 없다. 노동지위에 대한 개인의 적응의 연구는, 생산·과잉생산·노동시간가치·차액 이익금 조정이라는 경제적 문제에 결부되어 있다. ([3] 178-179/183)

Prenons l’exemple de la psychologie du travail. Elle est feite essentiellement des problèmes d’orientation et de sélection professionnelle d’une part, et, d’autre part, des problèmes de l’adaptation individuelle au poste, au métier, au groupe de travail et à l’atelier. Mais il est bien évident que cet ensemble de considérations ne peut avoir d’importance, ces questions ne peuvent avoir, au sens strict du terme, d'existence qu’à la feveur et par la grâce de certaines conditions économiques. Orientation et sélection professionnelle n’ont de réalité qu’en fonction du taux de chômage et du niveau de spécialisation dans les postes de travail. Seul un régime de plein emploi, lié à une te chnique industrielle exigeant une haute spécialisation ouvriére seul ce régime pourrait donner place à une pratique psychologique liée directement à la recherche scientifique. En dehors de cette condition, pour nous mythique, l’orientation et la sélection ne peuvent avoir que le sens d’une discrimination. Quant aux recherches concernant l’adaptation de l’individu aux postes de travail, elles sont liées, de leur côté, aux problèmes économiques de la production, de la surproduction, de la valeur du temps de travail et de l’aménagement des marges bénéficiaires.

« La recherche scientifique et la psychologie », in Morere (E.), ed., Des chercheurs français s’interrogent. Orientation et organisation du travail scientifique en France, Toulouse, Privat, coll. « Nouvelle Recherche », n° 13, 1957, pp.173-201.

 

노동심리학이 과학성을 표방할 수 있는 것은 완전고용체제 하에서일 뿐이다. 혹은 완전고용체제를 목표로 하는 한에서일 뿐이다. 그런데 완전고용은 신화이다. 그런 것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때 노동심리학의 실천은 지도하고 선별하는 차별의 의미밖에 없다. 그것은 대체로 과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적응의 연구가 과학성을 표방할 수 있는 것도, 생산의 조건들이 그것에 유리한 상황에서일 뿐이다. 그러나 아마 그런 호조건의 상황도 또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 개인 적응의 실천은 그저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푸코는 노동심리학을 그 비과학성과 차별성과 기만성으로 고발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째서 그러한가? 노동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 차별과 기만의 실천이라는 것 등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심리학이 그것으로서 성립되어 기능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그것에 심리학이 반드시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라고 푸코는 계속한다.

 

다행스럽게도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경제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부재한 시기에는, 과학의 응용이나 발전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경제나 전쟁상태와 관계없이, 물체는 계속 낙하하고 전자(electron)는 계속 회전한다. 심리학에 있어서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실천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는, 과학성 그 자체가 심리학의 실정성에 말려든다. , 실업과 과잉생산의 시기에는, 선택은 통합의 기법이 아니라 배제와 차별의 기법이 된다. 경제불황이나 노동가격상승의 시기에는 인간의 직장에의 적응은 기업의 수익률을 올리고, 인간노동을 단순한 생산요인으로서 합리화하려고 하는 기법이 된다. 요컨대 심리학적 기법이 아니게 되며 경제적 기법이 된다. ([3] 179/184)

Par bonheur, le probleme est un peu plus complexe. Il se peut que l’absence de conditions economiques favorables rende inutile a un moment donne l’application ou le developpement d’une science. Mais, apres tout, même en dehors d’une economie ou d’une situation de guerre, les corps continuent a tomber et les electrons a tourner. En psychologie, lorsque les conditions d’une pratique rationnelle et scientifique ne sont pas reunies, c’est la science elle-même qui est compromise dans sa positivite ; en periode de chomage et de surproduction, la selection cesse d’etre une technique d’integration pour devenir une technique d’exclusion et de discrimination ; en periode de crise economique ou d’augmentation du prix du travail, l’adaptation de l’homme a son metier devient une technique qui vise a augmenter la rentabilite de l’entreprise et a rationaliser le travail humain comme pur et simple facteur de production ; bref, elle cesse d’etre une technique psychologique pour devenir une te chnique economique.

 

심리기법은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경제적인 기능을 바꾼다. 실정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심리학이라고 재파악된다.

 

심리학이 경제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거나, 경제적 관점에 의해 동기 부여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응용과학에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예를 들어, 산업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적성 개념은, 그것을 정의하는 것을 요구받는 경제적 맥락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를 바꾼다는 것이다. 적성 개념은 양성의 문화 규범을 의미하거나, 생산성 기준에서 유래하는 차별의 원리를 의미하거나, 수습기간의 예보를 의미하거나, 교육 가능성의 평가를 의미하거나, 실제로 받은 교육의 성적을 의미하거나 하는 것이다. 심리학의 실천은 경제의 도구가 될 뿐 아니라, 심리학 그 자체가 인간적 척도(échelle)에 따른 경제의 신화가 되는 것이다. ([3] 179/184)

Ce qui ne veut pas dire seulement qu’e lle est utilisee a des fins economiques ou motivee par des propos economiques, c’est le destin de toutes les sciences appliquees. Nous voulons dire, par exemple, que la notion d’aptitude, telle qu’elle est utilisee en psychologie industrielle, change de contenu et de sens selon le contexte economique dans lequel on est amene a la definir : elle peut signifier aussi bien une norme culturelle de formation, un principe de discrimination emprunte a l’echelle du rendement, une prevision du temps d’apprentissage, une estimation de l’educabilite ou finalement le profil d’une education effectivement recue. Non seulement la pratique de la psychologie devient l’instrument de l’economie, mais la psychologie elle-meme en devient la mythologie a l’echelle humaine.

 

개념뿐 아니라 기법에 대해서도 똑같은 것이 성립할 것이다. 심리학의 기법은, 경제적 맥락에 따라서는 심리학의 손을 떠나, 예를 들어 경영기법으로서 여러 가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심리학의 기법은 심리학의 응용으로서는 사라지고, 그 기법에 이름을 따온 심리학은, 기법의 진리의 신화가 된다.” , 경영 기법으로서 사용되는 기법도 또한, 심리학의 기법의 전용으로 간주되는 한, 그 경영기법을 가능케 하는 조건과 기초는, 심리학으로 계속 되돌려보내지는 것이다. 경영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사이코드라마를 노무관리에서도 사용해볼까? 사이코드라마의 효과야 뻔한 것이겠지만, 맥락에 따라서, 며칠 동안의 연수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도, 아무튼 성실하게만 하면 집단적으로든 경영적으로든 아무리 사소해도 어떤 의미를 가질까?”라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영자도 근로자도 임상심리사도, 아무리 사소한 효과로도 어떤 변화를 인간에게 미칠 것이라는 것의 이론적인 기초가, 그 심리학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심리학이 기법의 진리의 신화로서 통용되고 있는 한, 그 기법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미친다고 믿어진다. 푸코는 오늘날에는 자명시되고 있는 심리학의 이 모습, 즉 과학성을 표방하는 학문과 경제적으로 그 의미와 기능을 끊임없이 변용시키는 실정성과의 필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연결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래서 1961년의 광기와 비이성』 「서문([4] 194/202)[각주:3]에 있듯이, “심리학의 가능성의 조건들의 역사를 쓰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3. 정신의학과 정신분석 사이의 심리 요법 

1965년 알랭 바디우와의 대담 철학과 심리학([30]을 봐도, 심리학 교육 플랜을 개진해 보여주는 등, 그것이 최후에는 심리학 비판을 생각나게 하는 교육 플랜이라고 하더라도, 학문은 자신에게 반성적·비판적으로 되는 것을 통해 완결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셈이기 때문에, 심리학자로서의 푸코의 태도에 변함이 없다. 오히려 푸코는 젊은 바디우에게 심리학 전체주의라고 야유받더라도, 심리학이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학문이라고까지 말했다. 그 위에서, 미리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푸코는 심리학과 응용심리학의 실천이나 기법이 불가분하다고 파악했듯이, 심리학과 심리요법을 불가분하다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푸코는, 대면하는 양자관계나 소수의 집단 내부에서 선한 것으로서 계속 행사되고 있는 각종 요법에 대해서도, 이것들을 노동심리학에 있어서의 직업의 선택이나 지도의 기법, 차별과 선별의 기법, 산업적이고 경제적인 기법과 동등한 것으로 재파악하게 될 것이다.

 

심리학은 구조의 인식이 되며, 심리학에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 따른 요법(thérapeutique), 개인이라는 텍스트의 인식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을 일정한 정규 수업계획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심리학은 철학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아마, 아니 확실히, 의료이며 요법이다. 심리학의 모든 것은 교육학이며, 독해의 모든 것은 요법이다. 거기서는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 없이는 상대를 알 수 없다. ([30] 472/232)

La psychologie sera la connaissance des structures, et l'éventuelle thérapeutique qui ne peut pas ne pas être liée à la psychologie sera la connaissance du texte individuel, c'est-à-dire que je ne pense pas que la psychologie puisse jamais se dissocier d'un certain programme normatif. La psychologie, c'est peut-être bien, comme la philosophie elle-même, une médecine et une thérapeutique, c'est même certainement une médecine et une thérapeutique, Toute psychologie est une pédagogie, tout déchiffrement est une thérapeutique, vous ne pouvez pas savoir sans transformer.

 

이 관점은 1974년의 광기, 권력의 물음([141])에서도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의학과 반정신의학의 관계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심리요법의 위치가 부상하게 된다.

 

확실히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의 실천에 대해 일련의 비판을 행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역사가로서는 또한 일정한 거리를 취한다면,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으로부터의 전면적·기본적인 절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9세기의 정신의학은 정신분석의 대부분의 요소를 이미 포함하거나 준비하는 요법의 기법에 도달했다. 정신의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신병자에 대한 주요한 개입의 형식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수용되어 있고 신경이완제의 치료를 받고 있다. 다른 한편, 정신분석을 받는 사람은, 교양인이나 지식인의 아주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 이렇게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의 장소를 취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양자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양자를 떼어놓은 사이에는, 직권의 분할, 상담, 상호지원이 자아내는 시스템이 있다. 순수한 정신의학과 순수한 정신분석을 떼어놓는 사이에는, 심리치료(psychothérapie)나 지역정신의료 같은 일련의 요법의 형식이 있다. 이런 관리(contrôle)의 제도, 정신의 성형외과(orthopédie mentale)의 제도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141] 1530/240)

Il est certain que la psychanalyse a permis de faire une série de critiques à la pratique psychiatrique. Elle a permis de voir que l'internement n'était pas la meilleure forme thérapeutique. En tant qu'historien, et en prenant une certaine distance, il me semble que la psychanalyse n'est pas une coupure totale et radicale par rapport à la psychiatrie la psychiatrie du XIXe siècle a atteint une technique thérapeutique qui contient déjà ou prépare beaucoup d'éléments de la psychanalyse. On ne peut pas oublier que la psychiatrie est, encore aujourd'hui, la principale forme d'intervention sur les malades mentaux. Des millions de personnes sont encore soumises à l'internement, au traitement par neuroleptiques, alors que les psychanalysés se trouvent dans une sphère très restreinte de personnes cultivées ou intellectualisées. Ainsi, la psychanalyse n'est pas arrivée à prendre l'espace de la psychiatrie, mais les deux coexistent dans la société d'aujourd'hui et il y a entre elles tout un système de division d'attributions et de consultations, et d'appui mutuel. En outre, il y a entre la psychiatrie et la psychanalyse pures une série de formes thérapeutiques, comme la psychothérapie, la psychiatrie communautaire ; je pense qu'il serait important de faire une étude détaillée de toutes ces institutions de contrôle, d'orthopédie mentale.

 

푸코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이라기보다는 양자 사이에 퍼져 있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현재에서는, 각종 전문직(사회복지사, 정신보건복지사, 간병복지사, 방문간호사, 보건사, 임상심리사), 각종 상담(육아상담, 취학상담, 취업상담, 학생상담, 심리상담, 유전 관련 상담, 결혼상담), 각종 상호지원(자립지원, self-help group, 환자회, 운동단체)이 구성하는 시스템이며, 그리고 각종 치료요법(정신분석적 요법, 담화요법, 인지행동요법, 인간주의적 요법, 가족요법, 집단요법, 정신요법), 각종 정신의료(지역센터, 복약관리, 클리닉, 진료소)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며, 게다가 그것들에 의한 관리와 정신 성형의 제도·시설(학교, 대학, 직장, 교도소, 복지시설, 노인시설, 교정시설, 중간시설, 이행시설)이다. 그 시스템은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얘기된 것이지만, 근년에 이르러서 강조되고 누구나 입에 올리게 된 연계이다. 푸코는 바로 거기에 전쟁상태를 감지하고, 권력의 분석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날뛰는 땅을 영토화하고 평화 공존하는 정신의학과 정신분석 사이에 펼쳐진 전장터에서의 실정성의 진리이자 신화라고 꼽히는 학문이, 심리학으로서 재파악되는 것이다.

푸코가 1975년의 수용소, , 감옥([160])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말한 유명한 말이 있다. “나의 신조로서, 지식인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참칭했던 도덕적 심사관의 역할, 즉 모든 영역에서 선악을 규정하는 역할을 이제 와서 다시 수행해야 할 것 같지 않다je crois que les intellectuels ne doivent pas recommencer à jouer le rôle qu'ils s'attribuaient pendant longtemps, et qui est celui de législateur moral, celui d'être la bonne et la mauvaise conscience dans tous les domaines”([160] 1644/405)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일반적으로 심리 치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Que pensez-vous de la psychothérapie, d'une manière générale?”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서 얘기되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것에 대답하기란 어렵다. 심리치료에는 다양한 실천이 포함되어 있다. 한쪽에는 사기[위조품]에 불과한 것에서부터, 다른 한쪽에는 환자 개인에 대해서는 옛날 이상의 정신의학 권력을 적용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 범위는 광대하다. 아주 흥미로운 것도 존재한다. 나는 둘 중 하나를 골라잡을 수 없다. 게다가 내가 믿기로는, 지식인이 오랫동안 자신에게 귀속시켜온 역할, 도덕적 입법자의 역할, 어떤 영역에서도 꺼림칙하지 않은 양심이기도 하며 꺼림칙한 양심이기도 하다/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도 하고 느끼기도 한다는 역할을 또한 맡아서는 안 된다. 지식인의 역할은,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맺지 않은 영역에 대해 입장을 취하거나 일반적인 의견을 내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몇 년 동안 매일매일 정신병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또한 몇 달 동안 감옥에 들어간 적도 있다. 또한 수년 동안, 전-죄수나 죄수의 가족 집단에 참가했다. 심리 치료에 대해서는 나는 제대로 접촉한 적이 없다. ([160] 1644/405)[각주:4]

Il est difficile d'y répondre pour deux raisons. La psychothérapie embrasse un nombre tel de pratiques différentes, dont les unes ne sont que du charlatanisme, d'autres, l'application du pouvoir psychiatrique plus traditionnel au niveau de la clientèle privée. La gamme est énorme. Il existe même des choses très intéressantes. Je ne peux pas prendre parti sur cette question. En outre, je crois que les intellectuels ne doivent pas recommencer à jouer le rôle qu'ils s'attribuaient pendant longtemps, et qui est celui de législateur moral, celui d'être la bonne et la mauvaise conscience dans tous les domaines. Le rôle de l'intellectuel est celui de se lier aux personnes qui sont concernées par le sujet qui l'intéresse. Donc, je me refuse à prendre position ou à émettre des idées générales sur des domaines auxquels je ne suis pas lié. J'ai passé des jours et des jours, pendant plusieurs années, dans des hôpitaux psychiatriques. J'ai été dans une prison pendant quelques mois * et, pendant quelques années, j'ai participé à des groupes d'ex-prisonniers ou de familles de prisonniers. Avec la psychothérapie, je n'ai pas de contacts précis.

 

푸코가 말하는 것은 심리 치료에 대해 도덕적 판정을 내릴 작정은 아니라는 것, 심리 치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심리 치료에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한에서, 심리 치료에 대해 일반론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봤듯이, 푸코는 사기[위조품]로부터 옛날부터의 정신요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법의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좋고 나쁨을 판정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권력·생명정치론에서도 통치성론에서도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이하의 과제가 된다.

 

4. 생명권력의 양극을 매개하는 것

1976년의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에서의 생명권력·생명정치의 규정은 신체를 표적으로 하고 있으며, 대체로 정신이나 심리에 관련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물론 삶은 정신생활이나 심적 생활을 포함한다고 해석하면 간단하지만, 조금 더 사태는 복잡하다. 생명권력·생명정치의 규정은 이랬다.

 

삶에 대한 이 권력은, 17세기 이후, 두 가지 주요 형태로 발전(발생)했다. 양자는 서로 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자는 발전의 두 가지 축을 구성하며, 양자 사이에는 양자를 묶는 관계들의 다발(faisceau intermédiare de relations)이 있다. 극의 하나는, 먼저 형성됐다고 생각되는데, 기계로서의 신체를 중심으로서 형성됐다. 신체의 조련[훈육], 신체의 적성의 가격 상승, 신체의 힘의 찬탈, 신체의 효용과 신체의 고분고분함의 평행적 증가, 관리의 실효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으로의 신체의 통합, 이 모든 것은 규율훈련, 인간 신체의 해부-정치의 특징인 권력의 수순에 의해 확보되었다. 조금 늦게 18세기 중반에 형성된 두 번째 극은 신체-종을 중심으로서, 생물의 기구가 され 생물학적 과정의 매체로서 도움이 될 신체를 중심으로서 형성됐다. 이 생물학적 과정이란 번식, 출생수와 사망률, 건강수준, 삶의 지속, 수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조건인데, 그것을 청부를 맡아 행해지는 것이 일련의 개입과 일련의 조정관리, 인구(주민)의 생명정치이다. 신체의 규율훈련과 인구의 조정은 두 개의 극을 이루며, 그 주위에서, 삶에 대한 권력이 발전했다[주].

 [주] Michel Foucault, Histoire de la sexualité, I: La volonté de savoir (Gallimard, 1976), pp.182-183. 여기의 의 용법에 관련하여, 1965년의 프랑스정신의학백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병원은 여전히 주요한 극이다. 그리고 정신위생센터의 수준에서 본다면, 시스템에는, 병원과 병원 밖의 두 가지 극성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 두 개의 극성의 주위에 병원 밖의 다기능의 다양한 장치가 조직될 것이다. 낮 진료소, 야간 진료소, 치료 후의 홈, 보건작업소 등등. 특별 호스피스 노인 홈”(Michel Audisio, “La réorganization de l’assistance psychiatrique et des organismes de soins,” in Eduard Private (éd), Livre blanc de la psychiatrie française, Tome I(1965), p.82). 

읽을 수 있듯이, 삶에 대한 권력, 생명권력은 그 두 개의 극에 있어서는 신체를 표적으로 한다. 정신이나 심리는 자취도 없다. 다만 두 극 사이에는 관계들의 다발이 있다고 하며, 두 극의 주위에 생명권력이 발전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에, 그 관계들의 다발이야말로 생명권력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권력이란 권력관계이기 때문에, 생명권력은 생명권력관계이다. 따라서 생명권력관계는 극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주위와 사이에 존재한다. 생명권력관계는 신체규율훈련과 인구조정의 주위와 사이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직장과 보건서의 주위와 사이에 퍼져 있는 관계, 산업의사·위생관리자·위생추진자·안전위생추진자·보건사·간호사·산업상담사·임상심리사·인사노무관리스탭·종업원지원상담사 등이 온통 둘러치는 관계인 것이다.

다른 한편, 이 구절이 발생생물학의 용어로 작성되어 있다는 것에도 주의하고 싶다. 미분화된 배아세포는 힘들의 장을 이루고 있으나, 거기에 극성(極性)이 형성됨으로써 그것이 조직자로서 작동하며, 배아세포는 발생·분화를 수행한다. 그때 극의 주위와 두 극 사이에서의 힘들의 장이야말로 생명력의 장으로서 작동하며, 거기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조직이나 기관이 발생한다. 이로부터 유비를 이끌어낸다면, 기계로서의 신체와 생물로서의 신체를 양극으로서, 그 주위와 사이에서의 권력관계의 장이 생명권력·생명력·바이오파워이게 된다. 물어야 할 것은, 혹은 물어도 좋은 것은 그 권력관계의 장에서 발생·분화하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말할 것도 없는데 조직이나 기관에 해당하는 장치들, 학교·교도소·공장·병원 등의 시설이다. 그리고 신체라는 단어가 일관되게 단수형으로 적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계신체와 생물신체 사이의 권력관계의 장에서 발생·분화하는 것은, 정신과 심리, 축약하면 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규율훈련·해부-정치이며, 생물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조정관리·생명-정치인데, 생명권력관계가 양쪽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 관계를 가능케 하거나 실효적으로 하는 매개가 필요하다. 혹은 똑같은 신체의 두 가지 측면을 매개하는 것이며 생명권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푸코가 실제로 뒤따라간 발상의 방향에 대해서는 애매한 대목이 남아 있다지만, 생명권력론의 이론구성에서 보면, 양극을 매개로 하는 것이 그것으로서 지목될 필요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성의 역사 1에서는 그것이 성기(sexe)’라고 지목되는 것이다.

 

삶의 정치기술의 모든 것은 두 개의 축을 따라 발전해 왔는데, 그것들의 교점(charnière)에 있는 것이 성기이다. 한편으로 성기는 신체는 규율훈련의 관할에 속한다. 다른 한편으로 성기는 인구의 조정의 관할에 속한다. 성기는 동시에 두 개의 등록기에 삽입되는 것이다. 성기는 미분(微分)적인 감시, 순간적인 관리, 극도로 용의주도한 공간설비, 제한 없는 의학적·심리학적 검사, 신체에 대한 미시권력에 대해 장을 주고 그 이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성기는, 대량의 조치, 통계적 예측, 사회체의 전체나 집단의 전체 집합을 노리는 개입에 대해 자리를 주고 이유를 주는 것이다. 성기는 신체의 삶에의 접근인 동시에 종의 삶에의 접근이다. 성기는 규율훈련의 모체로서도 조정의 원리로서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읽을 수 있는 그대로, 동시에 두 가지의 모태가 되며, 동시에 두 가지의 원리가 되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한쪽의 미시적 권력 거기에 심리학의 기법이 포함된다 과 다른 쪽의 거시적 개입 그것에는 사회심리학이나 산업심리학의 기법이 포함된다 을 매개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지금은 그것이 성기와 원한다면 이라고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푸코는 그 성기·성을 둘러싼 지식, 학문지식과도 실천지식과도 연결되지 않는 지식, 특정한 학문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지식을 추구하는 의지가, 미시적 권력이나 거시적 개입과 뒤얽히는 모습을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원래 성의 역사우리가 아는 성(적인 것)을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권력관계와 얽혀 있는 지식의 의지가 원하는 것을 분석하려고 한다. 따라서 지식의 의지가 원하는 것에는, 성기·성 이외의 것도 있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장애, 질병이 즉각 머릿속에 떠오른다. 신체의 각 부위, 특히 뇌는 중요하다. 신체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예를 들어본다면, 물론 정신, 마음, 혼일 것이다. 이때 권력과 뒤얽히는 지식은 더 이상 심리학이라고는 불리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정신·마음·혼의 지식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다만, 호칭이 바뀌더라도, 초기의 심리학자 푸코의 문제설정은 기본적으로는 바뀌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권력의 한 가지 극에 매몰되는[파묻혀 있는] 한에서의 정신과 심리의 기법이 푸코에게서는 어떻게 되는가를 추적해보자. T. 사즈의 작업에 대해 논평을 가하는 1976년의 규범의 사회적 확대([173]) 읽어보자. 푸코는 사즈의 책의 서평의 형태를 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주].

[주] 또한 “Szasz”의 발음은 그 출신지인 헝가리어에 의하면 싸즈가 될 것이다. Cf. Jeffrey A. Schaler (ed), Szasz Under Fire: The Psychiatrie Abolitionist Faces His Critics (Open Court, 2004), p.xiii. 

푸코도 사즈도 권력의 기법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즈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탐지, 진단, 질문의 기법techniques de repérage, de diagnostic, d'interrogatoire인데, 사즈는 전문가가 직접 개인에게 행사하는 기법에 체현되어 있는 권력의 기법을 문제시하고, 마치 그것을 그만둔다면, 좋은 전문가-클라이언트 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반면 푸코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회적-경찰적 분할=분배(partage)의 기법techniques de partages socio-policiers이다. 그 기법은 끊임없는 가시성, 개인의 항상적 분류, 계층화, 자격의 한정, 경계의 설정, 진단의 실시Une visibilité incessante, une classification permanente des individus, une hiérarchisation, une qualification, l'établissement de limites, une mise en diagnostic등이다. 푸코는 전문가가 개별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의 기법을 문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일반적인 분할=분배의 기법의 예로서 문제화하는 것이다. 정신과 심리의 전문직이 행사하는 기법은, 말할 것도 없이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인 권력관계이다. 그러나 그 기법을 대등한 당사자끼리의 관계에 전용한 곳에서, 집단적 관계에 매몰된[파묻힌] 곳에서, 그것이 사회적-경찰적 분할=분배의 기법의 하위 기법에 거둬지는[수렴되는] 사태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대등관계 같은 환상에 의해 사태는 점점 더 은폐되고 있다. 때로 폭력적이게 되는 알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개별적인 양자관계 내지 그 종합에 있어서 생기는 일상적이고 국소적인 트러블로 간주함으로써, ‘연계를 통해 작동하는 분할=분배는 완전히 묵인된다. 푸코가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인데, 푸코는 이것 자체에 대해 선악의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재범 가능성이 있는 자로 분류하는 것은 학계에서는 나쁜 것으로 간주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나쁘다고는 반드시 말할 수 없다. 공해병을 인정받은 환자로 분류되는 것은 세상에 선한 것으로 간주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선하다고 반드시 말할 수는 없다. 푸코가 보고 있는 것은, 양자가 동시에 권력의 기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에 의한 분할=분배의 기준은 규범(norm)이며, 현대사회는 규범화의 사회(normalisation의 사회)라고 규정되며, 푸코는 이 권력의 중심에 의료권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사즈처럼 의료권력을 비판한다면, 권력을 비판할 수 있게 될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만약 광기가 진단 분류 도표에 견줄 수 있는 정신병이 아니라고 한다면, 만일 광기에는 병리화하는 것도 의료화하는 것도 미치지 않는 특수한 리얼리티가 있다고 한다면, 그때 광기란 무엇일까? 반정신의학은, 바로 그 무엇인가에 직면해야 한다. 정신병의 용어로 코드화해서는 안 되는 무엇인가, 사회적 규범성의 용어로 코드화해서는 안 되는 무엇인가, 그러나 문제를 만들어내는 무엇인가에 직면해야 한다. 반정신의학은 시설의 내부와 의사의 의식의 내부에서는, 광기의 의료화를 해체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의료와 정신의학에 의한 오랜 식민지화를 거쳐, 광기의 물음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73] 76-77/94)

Si la folie n'est pas la maladie mentale se déployant dans un tableau nosographique, si la folie a une réalité spécifique qu'il ne s'agit pas de pathologiser ni de médicaliser, alors, qu'est-ce que c'est, la folie ? L'antipsychiatrie a justement à se confronter à ce quelque chose qu'il ne faut pas coder en termes de maladie mentale ni en termes de normativité sociale, mais qui cependant fait problème. L'antipsychiatrie démolit, à l'intérieur de l'institution et de la conscience des médecins, la médicalisation de la folie. Mais, de ce fait même, la question de la folie nous revient après cette longue colonisation par la médecine et la psychiatrie. Qu'en faire ?

 

분명히 반정신의학은 광기의 식민지화를 끝나게 했다. 탈병원화와 지역정신의료화는 의사에 있어서도 상식화했다. 그런데 포스트식민지주의의 시기가 되어, 이번에는 광기는 다른 문제로서 출현했다. 지역에서의 사회문제로서, 학급운영의 문제, 취업의 문제, 범죄예방의 문제, 노숙생활의 문제로서 출현한다. 이 사회적-경찰적인 분할=분배의 체제, 정상화(normalization) 사회에서는 광기는 절대적인 외부로서 출현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어디까지나 문제화되어야 할 무엇인가, 문제화되어야 하고 특수한 리얼리티로서 등장한다. 그렇게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산 너머 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을 넘은 후에 올 것을 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산을 넘어 다른 산이 올 때까지의 협간에서 언뜻 엿보이는 무엇인가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 논의 맥락에서 푸코는 사즈(Szasz)의 정신분석적 요법에 비평을 가한다.

 

정신분석은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대중적으로는 의료실천처럼 기능하고 있다. 설령 정신분석을 실천하는 것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정신분석은 요법으로서, 의료적인 개입으로서 기능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정신분석은, 도처에서 확립하고 있는 의료적 관리의 네트워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173] 77/95)

Cela dit, la psychanalyse, non seulement aux États-Unis mais en France, fonctionne d'une façon massive comme une pratique médicale : même si elle n'est pas toujours pratiquée par les médecins, c'est bien comme thérapeutique qu'elle fonctionne, comme intervention de type médical. De ce point de vue, elle fait bien partie de ce réseau de «contrôle» médical qui est en train de s'établir partout.

 

푸코는 이렇게 계속한다. “정신의학자는 그 클라이언트에게 환자의 신분을 고액으로 강매한Les psychiatres vendaient cher le statut de malades qu'ils donnaient à leurs clients것인데, 반정신의학 운동 이후의 사즈를 필두로 하는 정신분석적 요법가나 심리요법가는 자신을 환자라고 보는 사람에게 비-질병을 판매한다Szasz vend de la non-maladie à des gens qui se prennent pour malades.” , 의료적 관리 하에 놓인 연계 네트워크 하에서, -질병을 판매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일이 장애, 비행, 부적응 등에서도 일어났다. 변함없이, 권력의 네트워크, 사회적-경찰적 분할=분배의 기법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하지만, 푸코는 그것을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푸코가 내다보고 있는 것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무엇인가”, 절대로 직면을 회피하는 무엇인가이기 때문이다.

 

5. 혼과 행동의 통치로

생명권력생명정치론에서 통치성론으로의 이행에 대해, 원래 생명권력론생명정치론은 일시적인 정식에 불과하다고 이해된 적이 있다. 확실히 더 나중에는 “생명권력생명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지만, 그러나 문제구성 그 자체에 큰 변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한에서, 심리학 비판의 과제, 정신과 심리의 문제설정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이행에 대해서는, 그것이 전선의 축소나 후퇴가 아니었다는 것도 포함해,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본고에서는 권력의 기법이 개인화의 기법으로서 파악되기 때문에, 자기의 기법을 주제화하는 데에 이르는 그 이행에 대해서만 검토하고 싶다. 1978년의 통치성([239])에서는 어떻게 해서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가라는 물음은 혼의 통치의 문제와 행동의 통치의 문제로서 제기되며, 명확하게 정신적·심리적 차원의 문제설정을 계승하는 것인데([239] 636/247), 거기로의 이행의 논리를 따라가보자.

우선 생명권력의 극 중 하나인 규율권력은 개인화[개별화]하는 권력으로 재파악된다. 그 전쟁터에서는 개인화의 기법이 행사된다. 1981년의 강연 권력의 그물망([297])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권력의 개인화의 기법. 어떻게 누군가를 감시하는가, 어떻게 그 품행·행동·적성을 관리[통제]하는가, 어떻게 그 수행performance을 강화하고 그 능력capability을 증가시키는가, 어떻게 그 누군가를 가장 유용한 장소에 놓아둘까? 이것이야말로 나의 의미에서의 규율훈련이다. ([297] 1010/411)

Techniques de l'individualisation du pouvoir. Comment surveiller quelqu'un, comment contrôler sa conduite, son comportement, ses aptitudes, comment intensifier sa performance, multiplier ses capacités, comment le mettre à la place où il sera plus utile : voilà ce qu'est, à mon sens, la discipline.

 

당연히 (rehabilitation)의 기법, capability approach 등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강연 권력의 그물망에서는 이제 권력의 도구법정, , 사법장치가 아니라 의료, 사회관리, 정신의학, 심리학이라고도 얘기되며([297] 1018/420)[주], 심리학은 특권적인 지위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졌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새삼 권력의 도구로서, 전쟁상태의 무기로서 재위치되고 있다. 그리고 1982년의 주체와 권력([306])은 이 개인화하는 권력에서 통치성론으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것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거기서 푸코는 권력분석의 출발점을 새로운 사회운동에서 엿볼 수 있었던 전쟁상태에 놓고 있다.

[주] 정신분석은 통치성의 지식 중 하나이다. 푸코가 말하는 정신분석은 각종 정신분석, 심리요법과 혼재하는 정신분석이다. 1984년의 미셸 푸코의 인터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니다. 정신분석은 증언(aveu)을 기초로서, 자기가 자기에 대해 노동작업하는 기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그것이 성적 욕망의 주위에 자기를 구조화하는 인물을 창조한다는 사정으로부터도, 관리의 기법이기도 하다.”(([349] 1484-1485/150). 

 

출발점으로서 요 몇 년 동안 전개되어 온 일련의 이의제기를 다룰 것을 제안하고 싶다. , 여자에 대한 남자의 권력에 대해, 아이에 대한 부모의 권력에 대해, 정신병자에 대한 정신의학의 권력에 대해, 거주자에 대한 의학의 권력에 대해,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행정관리(administration)의 권력에 대해 이의제기하는 것이다.([306] 1045/14)

Je proposerai, comme point de départ, de prendre une série d'oppositions qui se sont développées ces quelques dernières années : l'opposition au pouvoir des hommes sur les femmes, des parents sur leurs enfants, de la psychiatrie sur les malades mentaux, de la médecine sur la population, de l'administration sur la manière dont les gens vivent.

 

그리고 푸코는 이런 이의제기를 권위에 대한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이것들에 공통되는 것을 정확하게 살펴야 한다면서 여섯 가지 점 정도를 열거한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관한 관리를 염두에 두고, 공통되는 것의 열거로부터 뽑아내본다면, 이의제기에 있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권력의 심급, 즉 개인에게 행사되는 권력의 심급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1의 적을 찾는 것이 아니고, 직면하는 적을 찾아내는 것이다”([306] 1045/14). , 그런 삶의 방식을 직접 관리하는 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의 전쟁은 개인의 지위=신분을 묻는 투쟁이다.

 

한편으로 그 투쟁에서는 차이의 권리가 긍정되고 개인을 진정으로 개인적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강조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 투쟁에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분리하고, 공동생활을 세분화하고,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틀어박히도록 개인에게 강제하고, 개인을 그 정체성에 비끄러매는 모든 것이 공격된다.

이 투쟁은 개인을 위한 것도 개인에 대항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화의 통치라고도 해야 할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306] 1045-1046/15)

d'un côté, elles affirment le droit à la différence et soulignent tout ce qui peut rendre les individus véritablement individuels. De l'autre, elles s'attaquent à tout ce qui peut isoler l'individu, le couper des autres, scinder la vie communautaire, contraindre l'individu à se replier sur lui-même et l'attacher à son identité propre.

Ces luttes ne sont pas exactement pour ou contre l' «individu», mais elles s'opposent à ce qu'on pourrait appeler le «gouvernement par l'individualisation».

 

의 무기는 개인화의 기법이다. 예를 제시해 보면, 개인을 분리하는 기법(시설로부터 지역이나 재택으로 이행시키는 기법, 유닛 케어[주]를 판매하고 살게 하는 기법), 공동생활을 세분화하는 기법(파티션의 기법, 건축에서의 동선의 기법, 개인실을 권장하고 운영하는 기법, 방문의 기법), 개인을 반성적으로 만드는 기법(개인 면담, 상담, 오피스타임オフィスタイム, 입사지원서, 질문표) 등등. ‘은 그것들을 무기로서 전쟁과 통치를 행한다. 그리고 지금 국가개인화의 모태가 되며, 그 권력은 사적 기업, 상호부조단체, 자선가, 인도가에 의해서도 행사된다([306] 1049/18). , 새로운 사회운동의 후예인 자선가나 인도가는 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개인화의 모태인 국가로부터 생겨나고 개인화의 기법을 행사하는 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만이 은 아니다. ‘아군, 아니 아군이야말로 이다.

[주] 자택에 가까운 환경의 간병시설에서 다른 입주자나 간병 인력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입주자 개개인의 개성이나 생활리듬에 따라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간병수법을 가리킨다.

 

결론으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윤리적·사회적·철학적 문제는 국가와 국가의 시설=제도로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에 묶는 개인화의 유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몇 세기에 걸쳐 강제된 개인성의 유형을 거부하면서, 주체성의 새로운 형태를 촉진해야 한다. ([306] 1051/20)

On pourrait dire, pour conclure, que le problème à la fois politique, éthique, social et philosophique qui se pose à nous aujourd'hui n'est pas d'essayer de libérer l'individu de l'État et de ses institutions, mais de nous libérer nous de l'État et du type d'individualisation qui s'y rattache. Il nous faut promouvoir de nouvelles formes de subjectivité en refusant le type d'individualité qu'on nous a imposé pendant plusieurs siècles.

 

그래서 문제는 아군과 제휴하거나 공동하거나 협동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아군이 초래할 개인화의 유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도 약간 놀라운 것이지만, 개인화에 대해 주체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뿐 아니라, 그 주체성의 탐구에 있어서 기법이 사용된다는 전망을 푸코는 제시한 것이다. “자기의 배려(souci)”에 대해,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세운 1981년의 주체성과 진리([304])를 다시 읽어보자.

 

자기의 배려의 역사와 자기의 기법의 역사는 주체성의 역사를 만드는 하나의 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광인과 비-광인, 병자와 비-병자, 범죄자와 비-범죄자의 분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살고 말하고 노동하는 주체에 장소를 주면서 과학적 대상성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에서의 자기 자신에의 관계의 성립과 변용 및 그 기법적 뼈대와 그 지식의 효과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다른 측면에서, ‘통치성에 대해 질문을 다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 타자에의 관계와 연접하는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교육학, 행동상담, 영적 지도, 인생모델의 처방 등에서 보인다).[주] ([304] 1033/445)

L'histoire du « souci » et des « techniques » de soi serait donc une manière de faire l'histoire de la subjectivité : non plus, cependant, à travers les partages entre fous et non-fous, malades et non-malades, délinquants et non-délinquants, non plus à travers la constitution de champs d'objectivité scientifique donnant place au sujet vivant, parlant, travaillant ; mais à travers la mise en place et les transformations dans notre culture des « rapports à soi-même », avec leur armature technique et leurs effets de savoir. Et on pourrait ainsi reprendre sous un autre aspect la question de la « gouvernementalité » : le gouvernement de soi par soi dans son articulation avec les rapports à autrui (comme on le trouve dans la pédagogie, les conseils de conduite, la direction spirituelle, la prescription des modèles de vie, etc.).

[주] 푸코는 권력, 통치성, 자기와 타자의 통치,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이렇게 네 가지의 연쇄의 분석을 과제로 하는데, 특히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자기에의 배려는 심리학 등의 역사적 선구에 해당된다고 파악한다. Cf. Michel Foucault, L’hermeneutique du sujet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1-1982) (Seuil/Gallimard, 2001), Cours du 17 février 1982.

 

푸코가 관심을 기울이는 통치성은 분할하고 분배하고 통치하는 권력이 아니다. 관점은 변화한다. 푸코가 관심을 기울이는 통치성은, 자기가 자기를 통치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에 의해 타자에 대한 관계가 연절화連節化되는 통치이다. 그리고 그런 통치성은, 바로 각종 기법에서 발견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통치성에 있어서는, 예를 들어 광인 자신이 자기를 통치하고, 바로 그것에 의해 비-광인과의 관계를 연절화連節化한다. 다른 한편, -광인 자신도 자기를 통치하고, 바로 그것에 의해 광인과의 관계를 연절화連節化한다. 사람들을 분할하고 분리했던 시설은 해체되고 연계가 강조됐기 때문에, 개인화의 기법은 각자가 자기를 통치하고 그것에 의해 타자관계를 구축하는 통치성에 편입[기입]된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해서 각자는 포섭되고 통치된다. 이것이 현재의 권력이다.

아군도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다. 개인화의 기법으로 치안하고 보안하고 관리하고 통치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무기를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을까? 정신과 심리의 기법을 제 것으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때 주체성의 역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체성의 새로운 형태를 촉진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 푸코의 전망의 귀추는 완전히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심리학자 푸코가 달려온 길은 현재에서도 그 귀추는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1954-1988, 2 vol., édition établie sous la direction de Daniel Defert et François Ewald avec la collaboration de Jaques Lagrange (Gallimard, 2001)(蓮資重彦渡辺守家監修ミシェル・フーコー思考集成全一O, 筑摩書房, 一九九八-OO二年)으로부터의 인용에 대해서는 문서 번호 후에, 그것이 수록된 원서의 권수에 해당되는 쪽수, 그것에 대응하는 일역본 권수의 쪽수를 표기한다. 예를 들어 “[30] 472/23230번 문서, 원서(1) p.472, 그것에 대응하는 일역본(2) 232이라는 것이다. 문서번호에 의해 권수는 정해져 있어서 권수는 생략했다.

 

  1. 또한 푸코가 젊은 시절에 니체 독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서두에 인용한 인터뷰에서이다. 푸코는 니체 덕분에, 병원 내의 모든 실천에 대해 étranger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글은 anti-나 contre-가 됨으로써 étranger가 되는 것의 권력이라고도 해야 할 것을 탐구한다. [본문으로]
  2.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ie)이 심리학의 일부분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3. 1984년의 인터뷰 「미셸 푸코에게 듣다」에서는 심리화의 동향에 관심을 보낸다. 이것은 심리학자 푸코의 함수이다. “한편으로, 형벌을 가능한 한 전면적으로 심리화하는(psychologiser) 가능성이 있다. 바꿔 말하면, 형벌을 ‘교정’, ‘개선’ 쪽으로 한꺼번에 쏠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심리요법이나 집단의 요법이다.” ([353] 1513/194頁). [본문으로]
  4. 심리치료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이 유익하다. Harry Specht and Mark E. Courtney Unfaithful Angels : How Social Work Has Abandoned Its Mission (Free Press, 1994).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1부 1장. 

생명정치학적 고찰

우노 쿠니이치(字野邦一)

 å­—野邦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각주는 모두 뺐으며, 프랑스 및 영어 원본 등과의 대조를 통한 번역 수정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에서 어떻게 번역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1. 묵시록적인 한 구절

지식의 의지(1976)에서 미셸 푸코가 쓴 한 구절(‘죽게 만들 것인가 살게 내버려 둘 것인가라는 고대의 권리를 대신하여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이 초래한 기묘한 충격을 돌이켜봐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on pourrait dire ~)”고 가설처럼 말했던 것은, 이 발언이 품고 있는 매우 중대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내용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것은 불길한 죽음의 고지를 충분히 포함했다. 그저 죽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이중으로 가혹하게 죽음을 하게 만드는 권력은 더 이상 결코 우연도 예외도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규칙[常態]이며 원리이기도 하다고 지적된다.

Histoire de la sexualité, tome 1 : La Volonté de savoir

 푸코는 권리(droit)’권력(pouvoir)’이라는 말을,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엄밀하게 나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죽게 만드는 권리란 군주의 권리였지만, 살게 만드는 권력이란 더 이상 특정한 인격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행정 등의 기관들에 의해서 분절되고 오히려 익명의 권력으로서 분산되고 국민의 생명에 대한 관리, 통제, 조절을 면밀하게 실천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군주는 눈에 보이는 노골적인 힘을 행사하여 사람을 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명백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근대의 사회가 원리적으로 보다 잔혹하게, 음험하게 생명을 말살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말살해 왔다는 것을 푸코는 지적했던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 결코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중추적 원리로서 작동하는 아포리아를 똑바로 가리켰던 것이다.

 “대량학살은 사활의 문제가 된다.” 전쟁의 결정은 살아남는가 아닌가라는 노골적인 물음을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핵무기 하의 상황은 이런 과정의 도달점에 서 있다.”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인 인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 푸코는 몇 쪽에 걸쳐, 이렇게 암흑의 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묵시록적 기술을 재빠르고 민첩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나치즘의 우생학적 재편성에 관해서, 또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의 학살에 관해서도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생명정치’, ‘생명권력이라고 부른 것은 엄밀하게 서양의 18세기 중엽에 출현했던 것으로 간주되고,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을 뒷받침하는 신체가 그 초점이 되었다. 또한 생물학적 과정이란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이며,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조건이라고 푸코는 설명한다. 생명정치는 이전에 그가 감시와 처벌(1975)에서 정밀하게 묘사했던 신체를 둘러싼 훈육[調敎], 규율의 시스템과 연동하여, 더 이상 군주의 권리로서도, 모든 주권이나 법권리의 형태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권력의 그물망을 세계로 뻗쳐나간다.

 그리고 지식의 의지성의 역사1권으로 썼기 때문에, 바로 생명/의 정치는 의 정치로서, 신체의 훈육·규율이라는 측면과 생식을 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제·관리라는 또 다른 측면을 연동시킨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과 더불어 분절되는 을 여전히 법에 의한 단속이나 검열이나 금기, 그리고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은, 새로운 생명권력 그 자체에도 깊이 침투되어, 이것에 편입[기입]됐던 생명과 성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푸코는 바로 이것에 역점을 두고 지식의 의지를 마무리했지만, 오히려 이 책을 둘러싼 논의도 자주, 성은 과연 억압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욕망이나 성적 억압은 오랫동안 정치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에서도 쟁점이었기 때문에, 푸코는 여기서도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성을 둘러싼 권력은 강대한, 눈에 보이는 중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도처에 분산되어 있는, 무수한 점을 통해서, 내재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이 권력은 일정한 중심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분할할 수 없다. 이 전제에 관해서도, 만일 권력이 그렇게 비집권적이고, 거의 실체를 결여한 것이라면, 반권력의 투쟁은 더 이상 불가능한가라는 의문도 항의도 나왔다(“권력은 도처에 있다. 모든 것을 아우르기 때문이 아니라 도처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푸코가 조금 묵시록적인 어조로 재빨리 말했던 생명정치학, 지식의 의지가 간행되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논의를 야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게 만들거나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이라는 무서운 지적은 내 머리 속에도 내려앉아 사악하게 맴돌면서 불길한 인상을 계속 내뿜었다. 푸코는 극히 엄밀한 저자인데, 누구나 아는 인간의 종언이라는 도발을 포함한 주요 저서도 있으니, 결코 묵시록적인 발언을 스스로에게 금지해 왔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종언은 엄밀하게 서양의 담론형성체가 어떻게 인간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내고 변경해 왔는가라는 고찰의 한 결론이며, 그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한정된 문제계 속에서 엄밀하게 말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관한 그 담론의 종언이란, 그대로 인간의 종언이라는 묵시록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푸코는 충분히 진지하고 노골적이며 도발적이기도 하며, [실제로] 훌륭하게 도발에 성공했다. 담론 형성체[편성]에 관한 엄밀한 분석과 더불어 인간의 종언에 관해 말했기 때문에, 그것은 사상사적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또한 인간의 종언에 못지않게 묵시록적인 시사였다. 이것도 또한 서양 근대의 어떤 시점에 위치지어질 수 있는 역사적, 제도적인 권력기구의 엄밀한 고찰에서 나온 제안이긴 했지만, 푸코는 순식간에, 몇 쪽에서, 20세기의 강제수용소나 핵무기의 위기까지 생명정치의 정의를 확장하고 있다. 미증유의 규모로 냉혹한 죽음을 초래하는 생명정치론은 또 다른 인간의 종언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가능성이 바로 폭발하듯이 현실화하는 것이 20세기의 전쟁과 수용소였다고 한다면, 푸코는 그 조짐을 이미 수세기 전의 서양에서 발견하고, 이 세계의 체제가 점점 더 생명정치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다.

 환경파괴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아직 지구적 규모의 위협이 되기도 전에 인간은 이미 생명정치에 의해서 위기적 상황을 척척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환경과 인구에 대해서조차 이미 생명정치는 다양한 작용을 끼쳐왔음에 틀림없다. 생명과 죽음의 권력을 둘러싼 푸코의 도식은 극히 간략하며 간단할 뿐으로, 충격적이지만, 면밀한 논증을 결여하고 있으며, 반드시 진실을 알리는 언표로서 독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튼 밑도 끝도 없는 규모에 걸친 심각한 문제제기였다.

 

2. 정치의 과제는 생명이 아닌가?

푸코는 한나 아렌트의 책을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내 머리 속에서 생명정치학은 아렌트가 물었던 정치와 생명이라는 문제에 직결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렌트의 정치학은 공공성개념과 한 몸을 이루며, ‘공공성이란 어디까지나 복수성을 존중하고, 상이한 의견을 격렬하게 주고받으며 겨루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공공성과 이것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행동이 그녀에게 그대로 정치의 내용이 됐다.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이상을 외골수로 계속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의 비판적 사색은 공공성을 단순한 이념으로 폄하하는 현실의 정치적 과정을 겨누었다. 그리고 공공성의 창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는 역사의 다양한 과정에서 실현되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 정치의 앞에, 바로 커다란 위험으로서 가로막고 있는 것은 생명의 위기라는 사태였다. 아렌트는 단적으로 이렇게 쓴다.

 “만일 정치가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생존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정말이라면, 실제로는 정치는 스스로를 말소해 왔던 것이 된다.” 아렌트에게서 현대세계가 손에 넣은 절멸전쟁의 가능성을 앞에 둔 정치란, 더 이상 정치의 기본적 요건(공공성, 자유)을 결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이기도 하며, 인간이나 어쩌면 이 세상의 생명체 전체가 더 생존할 수 있는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문제는 모든 정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며, 현대의 조건 아래에서는, 정치와 생명의 유지가 서로 조화한다는 것이 의심스럽게 보이게 된다.”

政治とは何か

 이런 사고에 있어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이라는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원래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생명의 유지(살게 만드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활동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아직 생명정치학적 문제가 출현하기 전의 고전적 정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곧 통치가 아니며, 생명유지를 도모하는 체제도 아니라고 계속 말하면서, 아렌트는 한결같이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계속 주목했다. 이 정치에 있어서 궁극적인 적(반대물)으로 전체주의를 상세하게 연구하는 책을 썼다. 또한 공공성의 사고를 칸트의 세 번째 비판서(판단력비판)의 미학적 판단에 비춰서 더욱 심화시키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생명정치학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과 비춰봄으로써,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명정치는 생명을 배려하고 통제하는 정치로서 출현하지만, 이때 생명정치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며, 이 둘 사이에도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는 것임은 틀림없다. 아렌트는 생명을 목표로 하는 정치그 자체에 강한 부정을 피력하고, 그리스의 폴리스나 미국의 독립혁명을 재평가하며, 거기서 실현된 공공성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저 회고적으로가 아니라, 새롭게 실현하고 구성해야 할 정치로서도 그것을 말했다.

푸코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다시금, 오늘의 세계에서 정치가 생명과 어떻게 마주대하고, 생명을 어떻게 다루고, 조작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정치는 무엇을 하는가를 재차 묻게 된다. 정치가 생명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인 듯 싶지만, 그것은 꼭 자명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치가 아닌데도 그래도 똑같이 정치라는 말이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시대부터, 특히 생명을 배려하게 됐다고 얘기되는 정치는 도대체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표현하며 무엇을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없었는가? 아렌트의 비판은 단순히 정치는 무엇을 잃었다가 아니라, 생명정치 이전의, 혹은 생명정치 이상의 정치를 눈여겨보면서, 생명정치에 에워싸이게 된 정치를 재고하기 위한 시사로서 독해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의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라는 정식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8세기 중엽에 출현하여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등을 치밀하게 배려하게 되는 살게 만드는 권력이 왜, 어떻게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일 수 있었는가, 삶의 권력이 어떻게 죽음의 권력으로 변형할 수 있었는가, 그것에 관해서도 사실은 푸코는 그렇게 설득력 있게 쓰지 않았다.

 절멸전쟁의 가능성과 더불어 있고, 절멸인가 아닌가라는 선택에 몰입하는 정치에 관해 아렌트뿐만 아니라 푸코도 절멸수용소와 핵무기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문제 삼았다. 그리고 환경파괴나 인구폭발은 또 다른 생사에 관련되는 정치의 과제를, 명백하게 들이댔다. 이것들은 어느 정도 생명정치학적 문제이며, 또한 적지 않게 생명정치적인 변화가 산출했던 결과이기도 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들을 그저 묵시록적인 비전으로 용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다른 차원, 다른 수준의 문제로서 재고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정치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각각으로 풀어 헤쳐져 고유한 수준에서 생각해야 할 상이한 물음이, 모두 빠짐없이 거기에 한꺼번에 밀어닥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묵시록은 도처에서, 영화 속에서도, 철학 속에서도, 특히 미디어 속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3. 생명정치인가, 구성적 정치인가

그리고 생명과 정치의 맥락에, 설령 절멸전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요인이 개입함으로써 질문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아무튼 전쟁은 생명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를 전제로 한다. 적의 생명은 말살해도 상관없는 최저의 가치밖에 갖고 있지 않다. 위협 받고 있는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쟁의 이유라 해도, 이를 위해 자국민(의 일부)도 희생시키는 것 전쟁의 전제이며, 어디까지나 국민보다 국가가 소중한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폭력비판론(1921)에서 정치적 폭력을 둘러싼 아포리아에 관해 쓰고 있다. ‘인간이란 인간의 생명과도, 인격과도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도그마는 결코 자명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깊이 있게 이 도그마의 유래를 추구하기보다도, 벤야민의 관심은, 법과 더불어 있는 폭력의 양의성으로 향했다. 법을 유지하기 위해, 법에 의해 한정되고 규제되는 폭력(예를 들어 경찰), 법의 바깥에 있어서 법의 규제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정립하는 폭력(예를 들어 혁명)과 자주 구별되기 어렵다. 그러한 불분명한 폭력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생명도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즉 법적 질서의 주변에 놓이게 된다. 문학, 언어, 이데아를 예리하게 비평하는 새로운 유물론을 전개한 벤야민의 사고의 근저에는 구성적인 정치 또는 정치의 구성적 차원에 관해 그토록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는 것은 잊기 힘들다.

 나치즘이 출현한 시대에 구성적 권력을 둘러싸고 이토록 눈부신 사유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명정치()’라는 말을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말이 가리키는 정치의 급변은, 생산과 금융과 기술을 통해 가속화된 자본주의와 연동하여 세계를 크게 뒤흔들고, 그러한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게 되었다. 벤야민의 폭력론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도, 그리고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의 정치학도, 그런 역사적 동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론마저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존재자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외는 통상의[정상적인] 사례보다 흥미롭다.” “법률학에서 예외상태는 신학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도발적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슈미트는, 역시 정치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고, 때로는 바로 도착적인 신학과 닮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생활의 철학은 바로 예외나 극단적인 사례에 대해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최고도로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 생활의 철학에 있어서는, 통상[정상]보다 예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역설을 좋아하는 낭만주의적 아이러니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되풀이되는 사례의 명백한 일반화 이상으로 핵심부로 파고드는 통찰이 지닌, 철저하고 고지식함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이렇게 쓴 그는 확실히 아주 진지하게 법적 사고의 극한에서 사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통례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통례는 원래 예외에 의해서만 살아간다. 예외에 있어서야 현실생활의 힘이, 반복으로서 경직된 관습적인 것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라고까지 결론을 내리는 법학자는, 한 개인의 자질을 넘어서, “예외적인시대의 예외적인 정치적 압력에 실로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아마 슈미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사고 형태가 나치즘의 추진력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구성적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물음은 슈미트의 경우처럼 예외상태에 대한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는 아렌트가 계속했던 공공성의 창출에 초점을 맞춘 사고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마도 공통의 배경을 가지면서도 또한 정반대의 사상을 형성했던 것이다.

 얼핏 보면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학은 그러한 구성적 차원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푸코는 특히 정치적 실천에 관해서는, ‘대표대의[재현, 표상]’에 이끌리는 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정당정치와도 맑스주의와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 정신병원이나 감옥의 탄생에 관해 정밀한 역사학적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다른 정치를 제안한 것이며, 지식의 의지에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에 대해 저항하는 힘에 관해, 약간이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서술을 남기고 있다. “요구되고, 목표의 역할을 하는 것은, 근원적인 욕구이자 인간의 구체적인 본질로서, 그의 잠재적인 힘의 성취이며, 가능한 것의 충만으로서 이해된 생명이다. 그것이 유토피아인가 아닌가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거기서는 극히 현실적인 투쟁의 과정이 있다.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생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관리하고자 기획한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전시키는 것이다. 권리보다도 훨씬 생명 쪽이 그때, 정치적 투쟁의 관건=목적이 되었으며, 그것은 이 투쟁이 권리의 확립을 통해서 주장되었다고 해도 다를 바 없다.” 푸코에게서는 적어도 이 생명정치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새로운 정치와 저항이 구성되고 있고 구성되어야 하며, 거기서도 또한 하나의 구성적 차원이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용기를 갖고 진리에 관해 말하는 것”(파르레시아)을 통해서, 혹은 자기에의 배려로서 푸코가 추구했던 것은, 아렌트나 슈미트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정치 이전의,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 차원을 어떻게 사고하는가라는 과제였다. 그저 자기를 배려하는 것, 자기와 어떻게 관계하는가는 것조차, 그것은 결코 제도나 도덕을 자명한 소여로서 간주하지 않고, 이것들의 외부에서, 자립적으로, 어떠한 자기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다. ‘생명정치학이라는 질문에, 푸코 자신은 그다지 정밀한 대답을 주지 않은 채 그저 이 질문을 겸손하게, 그러나 도발적으로 제기했다. 그 질문은 충분히 도발적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푸코는 짧은 말년에, 그리스-로마의 문헌에 파고들어가, 먼 시공에서부터,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답을 계속 보냈다. 마치 생명정치학이라는 문제 등, 이제 잊어버렸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하여 푸코는 끈질기게 계속했다고 생각한다.

 

4. 생명정치의 냉소주의, 일본의 호모 사케르

또 하나, 여기서 오늘날의 생명정치학적 상황에 관해서, 상당히 단정적으로, 절망적 선언처럼 쓰인 말이 있다. “우리의 정치는 오늘날, 생명 이외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1995). 생명정치는 더 이상 정치의 일부를 이루는 것도, 미래의 징후도 아니며, 더구나 정치에 있어서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면화했다는 지적이다. 아감벤은 확실히 푸코로부터 생명정치라는 문제를 받아들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사고의 모티프는 오히려 칼 슈미트에 친화적인 것 같다. ‘예외상태에 대한 이론적 열정과 같은 것이, 아감벤의 사고를 견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예외는 그저 규칙의 외부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면서도 내부에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게 불분명한영역에 있는 인간은 호모 사케르’(성스러운 인간)라고 불린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예를 얼마 내놓지 못한다. 고대 로마에서 경계석을 무너뜨린 것,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식, 손님을 부정하게 대우한 주인처럼 죄를 저지른 것은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불리며, 이런 인물은 살해 가능하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 없다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졌다. 그는 예외상태에 놓이며,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이런 불분명한 상황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아감벤은 벌거벗은 인간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예외상황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가? 그것이야말로 주권이라 불려야 하며, ‘주권은 바로 이러한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능력이며, 또한 예외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

 분명히 주권은 헌법을 제정하고 정체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는, 그 헌법이나 정체의 외부에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규정된다는 의미에서는 내부에 있다. 아감벤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권과 호모 사케르는 동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성적 권력인 주권과,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은, 동일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더라도, 동일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호모 사케르는 또 다른 형태로도 존재한다. 그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영웅을 닮았지만, “싸우기 전에 자신을 죽은 자의 신들에게 장엄하게 바쳤으나 전사하지 않은 자이다(그들은 데보투스devotus라고 불린다). 출전하기 전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이 인간은 이제 살아 돌아오더라도 세속에 속할 수 없다. “그의 생명은 세속적인 삶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종교적 생명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이중의 배제에 있어서 분리되며, 이제 죽음과의 깊은 공생에 들어선다는 것에 의해서만 정의되며, 그렇지만 아직 죽은 자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생명이다.”

 이리하여 호모 사케르와 데보투스, 그리고 주권에 있어서, 동형적인 것, 마찬가지로 배제적 포함의 논리를 보고, 마침내 아감벤은 단숨에 묵시록적 결론을 부여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 생명 그 자체가 전례없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호모 사케르라는 모습으로 미리 규정할 수 있는 형상이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 예외상태의 정치학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생명이 어떻게 정치에 포함되 고 방어되며 어떻게 배제되고 유기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생명을 에워싼 정치가 어디에서 왔는가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 깊게 검토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구는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하며, 또한 사례의 분석에도 그다지 들어서지 않으며, 아주 도식적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아감벤의 관심은, 미리 추상화된 도식 쪽에 있으며, 그가 다루는 예외상태자체에 결코 예외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잔혹한 전쟁을 겪고 귀환한 인간은 적어도 예외적이고 불분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에서조차 많은 호모 사케르들이 실재했다. 이가라시 요시쿠니(五十嵐恵邦), 패전과 전후 사이에서 : 늦게 돌아온 자들(敗戦戦後のあいだで れてりしたち(2012)은 바로 일본의 전후에 겪었던 예외상태를 통해서, 전쟁에서 전후로 굴절된 역사적 시간을 비추고 있는 책이다. 이가라시생명정치학호모 사케르도 언급하지 않지만, 이 책은 분명히 생명정치의 거대한 사례로서 일본의 전쟁과 전후를 재고한다는 과제를 시사하며,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五十嵐恵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시에 적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길고 가혹한 생활을 한 뒤에 돌아온 자는 이른바 살아 있는 영령(英霊)’이며, 바로 희생물로 바쳐진 뒤에 살아남았다. 혹은 전투 중에 군의 지휘를 벗어나 고립상태에 있었던 병사는, 패전을 알지 못한 채, 또는 알게 되었더라도 전혀 믿지 않은 채, 밀림에 틀어박혀 가상의 적과 계속 싸운다(요코이 쇼이치横井庄一,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郎의 예). 일본의 전후에 나타난 호모 사케르는 전후에 억압되고 중화되어 버린 내셔널리즘을 새롭게 소생시키기 위한 절호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오노다보다 조금 늦게 귀환한 마지막 일본군나카무라 데루오(中村輝夫)는 대만인이며,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일본국적이 아니라 대만에 속해 있었다. 나카무라는 이리하여 예외적 전후를 살아남고, 또한 귀환하더라도 구식민지 출신자로서 예외상태에 놓이며, 대만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화제가 되지 않고 3년 반 후에 병사했다. 나카무라는 더욱이 대만에서도 고사족(高砂族)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대만어를 말하지 않았다.

 이가라시는 소련·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된 뒤에 귀환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썼다. 특히 시인 이시하라 요시로(石原吉郎)의 억류와 귀국 후의 생애에 여러 쪽을 할애했다. 억류자도 또한 겹겹이 예외상태를 살게 되었다. 우선 예외적으로 가혹한 억류와 강제노동이며, 10만이라는 엄청난 사망자 사이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예외적 체험이며, 일본으로 돌아오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결코 그들은 환대받지 못했다. 원래 <전범>으로 구속된 <예외자>이며, 소련에 억류된 동안에 <공산주의에 고취됐을> 수도 있으며, 거꾸로 소련의 수용소의 비인간성을 탄핵한다면, 이번에는 소련에 대한 비판을 듣고 싶지 않은 좌익으로부터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극한 상태에서 많은 사망자를 목격했던 억류자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죄책감으로서 무겁게 품게 된다. 이리하여 몇 겹이나 겹치는 예외상태는 그저 귀환자를 불분명한 중지상태에 둘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을 꿰뚫어 황폐하게 해 버릴 수도 있다. 돌아온 이시하라 요시로는 시를 씀으로써 그러한 예외상태를 살아남고, 황폐를 견디며, 황폐에 저항하고자 했음에 틀림없다.

 분명히 예외상태를 둘러싼 냉소주의라는 문제가 있다. 예외자는 예외상태를 초래하는 권력의 객체가 되며, 억류자는 소련으로부터, 일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그리고 어쩌면 몸 안에서부터 압력을 받고 협공을 당하며 혹은 유기되며, 더욱이 그러한 압력을 스스로 자기의 심신을 들볶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외자를 어떤 시스템의 객체(대상)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냉소주의적 입장에 서는 것이다. 아감벤은 때로 섬세한 본질적 비평을 전개하는 필자이기도 하지만, 생명정치와 예외상태에 관해 생각할 때의 그의 입장은, 이런 의미에서 어디까지나 냉소적이다.

 예외자가 된 주체가 황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거부하는가, 이가라시의 책은 바로 이 점을 건드리고 있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위치로부터 고발하지 않는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의 주체를, 정치적 또는 역사적 힘으로 해소하지 않겠다는 결의이기도 하다. , 피해자로서 규정된 자기는 보다 큰 역학에 의해 산출된, 양의적인, 이른바 그림자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이시하라는 이것에 맞서서, 자신의 체험을 정치 그리고 역사로부터 분리하고, 자기를 행위자로서 재생시키고자 한다. , 자신의 체험을 수동적, 반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입장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외자(호모 사케르) 속에는 생명정치의 냉소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며, 대항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속하는 냉소주의마저도 관통하여, 또 다른 냉소주의가 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일본어가 아니라, 외국어도, 우리말도 아닌 언어가, 절단하면서 비약하는 언어가, 시로서, 의미의 극한으로 결정화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Lager] 후에도, 그 체험을 둘러싸고 아직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라는 게 있었다. 더 이상 시는 불가능하며, 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언어 자체에 숨어 있는 힘의 기구를 찢어버리고 의식의 냉소주의를 금가게 하는 말을 찾아내야만 했다.

 생명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의 예외성, 호모 사케르라고 불리는 인간의 상황은, 호모 사케르가 객체라고 간주되는 동안에는, 마치 논리적으로 동형적으로 보이지만, 살다가 죽는 주체로서 그것을 본다면 동형적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엿볼 수 있는 <생명권력의 외부의 삶>에 관해 말하는 말과 논리를 추적해야 한다. 더 이상 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삶의 상황에 의해 찢겨지고 또한 호흡하는 말이 쓰여졌던 것이다.

 애당초 정치 제도와 법적 언어는 생명의 외부에 있으며, 생명은 원래 정치 속으로도, 법 속으로도 포섭되지 않는다. 이 완전히 자명한 사태에서 출발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몇 가지 예외 상태(의 정치학)를 살펴봤는데, 이러한 예외상태에 대해 말하려면, 정치와 법이 예외 없이 생명의 세계를 모조리 덮어버린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와 법이 오히려 예외이며, 예외적인 창조였다는 것을 슈미트도 아감벤도 결코 전제로 하지 않는다.

 아감벤은 법과 언어의 본질적인 가까움에 대해 썼다. “어떤 단어가 현실성에 있고 실제로 내뱉어진 담론의 심급에 있어서 현실의 한 절편을 외시할 수 있다는 힘을 획득하는 것은, 그 단어가 비-외시(, 언어로부터 확실하게 구별된 언어. 담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사용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어휘로서의 순수한 정합성으로서의 단어)에 있어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적) 규범이 개별 사정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규범이, 주권에 의한 예외화에 있어서 순수한 잠재력으로서, 현실성에 있는 실제의 참조가 모두 중지되어 버린 곳에서 효력을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언어의 외부에, 언어가 촉지할 수 없는 삶의·차원이 퍼져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아감벤에게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외부에 (예외로서) 있는 것은 오히려 언어가 (파롤로서) 개별적으로 사용되고 지시를 하기 이전에 체계(랑그)로서 언어를 성립시키고 있는 잠재력이며, 그것이 법규범에 있어서 역시 예외적인 주권의 잠재력과 대비되고 있다. 확실히 언어는, 그 자체는 무의미한 형식(체계)에 의해 의미작용을 가지며, 법 또한 개별 사례에 적용되기 이전에 이른바 <명법>의 형식이라는 것에 의해서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언어와 법은 똑같은 형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볼 때, 형식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작위이며 선택이다.

 이렇게 동형적으로 파악된 법-언어에 있어서, 외부란 어디까지나 내부에 포섭되는 <예외>이며, 아감벤의 사색은 이런 토폴로지에 대해 면면히 이야기는 해도, 그의 정치학은, 결코 삶에 대해, 살아 있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호모 사케르가 단순히 그렇게 닫힌 시스템의 대상이며 효과일 뿐만 아니라, 그런 냉소적인 토폴로지 속에 있더라도, 또 그것을 더욱 변형하는 토폴로지를 만들어낸다면, 삶과 정치 사이에, 다른 맥락이 발견되지 않을까?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관리하려고 시도했던 시스템을 거슬러 역전시킨다고 푸코가 암시할 뿐인 것에 머문, 그런 역전은 도처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종인 신체는,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된 신체를 둘러싼 생명정치에 대해 푸코가 썼던 것으로 돌아가자. 살아 있는 주체 쪽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생명정치를 앞에 둔 생명이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보지 못하고, 그저 생명정치가 산출하는 예외상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생명정치는 결코 법과 더불어 있는 사회에 면면히 존재한 예외상태의 한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감벤은 생명정치를 단숨에 보편화하려고 하며 이렇게 쓴다. “현대의 문화에 있어서, 모든 다른 투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정치투쟁이야말로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투쟁이다. , 서양의 정치학은 기원에서부터 동시에, 생명정치인 것이다”(열림, 2002).

 사실은 생명, 생물, “살아 있는 종으로서 파악되게 된 인간을 둘러싼 정치에 대해, 그런 정치에 포위된 삶에 대해 아감벤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외상태에 다름 아닌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 강제수용소의 빈사(瀕死)의 삶과 포개서 동물상태라고 형언하고 있으나, 동물은 항상 가스실에 내몰린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 생물로서, 생물학적으로, 혹은 임상의학이나 해부학이나 유전학에 의해 파악되게 된 인간은, 확실히 정치에 있어서,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대상으로서 나타나며, 그것에 대해 정치도 권력도 변질되어 갔음에 틀림없다. 아마 인간의 살아가는 힘, 의지, 욕망도, 그것에 대해 변질되었다. 또한 동시에, 삶과, 살아 있는 신체가, 새로운 힘관계 속에 개입하게 되었다. 동물이기도 한 인간이, 새로운 빛에 비춰지게 된 것이다. 생명정치의 세기가 오기도 전에, 스피노자 윤리학은 이미,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인간의 의식보다 훨씬 정교하게 다양한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동물의 생명을 긍정하는 윤리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예외 없이 생명을 배려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정치가, 더욱이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생명정치의 사상가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슈미트가 말하는 신학적 기적처럼 말해진 것이 아닐까? 사실은 푸코의 말투조차도 이 기적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기적을 예외상태의 정치학으로서 초역사적으로 논리화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전혀 기적이 아니니까), 생명을 둘러싼 정치에 있어서, 생명과 정치 둘 다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압력과 힘관계에 포위되면서 변용된 생명은, 이 힘의 시스템의 표적이 되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를 어떤 힘으로서 재구성하고, 지속하고 어떤 생명의 주체이고자 했는가?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을 결코 배제해온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것을 새롭게 억누르려고 했는가?

 확실히 아감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으며, 오히려 정치의 구성적 차원이기도 한 예외상태가 어떤 부조리한 폭력을 산출하는가에 특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강제수용소라는 예외상태에 관해서도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 독일의 사상가들이 상이한 입장에서 주의를 촉구한 구성적, 발생적 차원에서의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 비추어 생명정치를 파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정치를 그저 예외상태(동물상태, 불분명 상태)의 정치(오히려 논리학이라고 해야 할까)로 환원함으로써, 바로 생명정치에 노출된 생명이라는 주체를 둘러싼 사고는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것이다.

 

 

5. 두 개의 계보, 항쟁

여기서 바로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에서, 생명 그 자체에, 그리고 생명의 조건과 생명의 표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범위에서는, 분자생물학이나 유전자학에 대한 정밀한 방향에 분화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진화론이나 우생학처럼, 때로는 과학적 엄밀성을 넘어선 도그마로까지 생물학적 사고는 확장됐다.

 임상의학, 해부학, 생물학 같은 지식이 연동되고, 생물, 생체로서의 인간의 파악이 진화되어 가는 동시에, 그런 지식은 당연히 통치 속에 편입되고,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과제를 가져다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문맥에서 푸코는 살게 하는정치에 주목했으나, 확실히 이 생명의 지식은, 생명에 깊이 침투하여 생명을 조작하는 지식이기도 하며, 생명이 어떻게 영위되는가를 세밀하게 알고 통치하는 것은, 거꾸로 어떤 조건에서 생명이 죽음이 될 수 있는가, 생명을 살해할 수 있는가를 알면서 통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의 차원이란 생식의 영역이기도 하며, 즉 성적 활동이기도 하며, 성을 둘러싼 지식도 이런 생명정치적 전환에 편입되며, 이윽고 성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정신분석도 그것에 합류하게 된다.

 푸코가 생명정치를 단숨에 강제수용소나 핵무기로까지 관계시켰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성급하게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조작하려는 지식의 체계는 분명히 평행하여 물질에도, 또한 이윽고 무수한 생명을 순식간에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을 산출하는 게 됐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물학과 진화론이 초래한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는 표상을, 정치적 표상으로서는 재구성하는 과정이 진행되어 간 것이다. 나치즘에는 이렇게 상이한 출신을 지닌 경향이 쏟아부어져 합류됐음에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로 뒤덮어버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동일한 경향을 공유하면서 공진했다는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은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과 신체,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형이상학이나 종교적 세계관이 점점 더 의심을 받게 되고 신체, 동물의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에 새로운 빛이 비춰지게 됐다. 17세기의 서양에서는 확실히 신체와 동물의 생명이 재발견되고, 더욱이 상이한 빛 속에서 재발견됐다.

 데카르트는 당시의 의학이나 해부학에 통달하고, 신체를 정념의 자리로 정의하며, 어디까지나 관리하고 조작하고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서, 바로 신체의 생명을 정신과 이성으로부터 분할했다. 이미 데카르트 속에, 생명과 신체를 대상화하는 생명정치적 지성이 엿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한 스피노자는, 신체를 조작할 수 있는 의식도 자유의지도 부정하고,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신체, 생명, 심지어 자연의 <능산성> 위에 이성을 정초하려고 했다. 이것도 또 다른 생명정치적 윤리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윤리에서, 생명은 관리되고 조작되어야 할 권력의 객체가 아니다. 스피노자에게서는 이 생명이야말로 주체이며, 그 요구의 연장선상에 하나의 정치가 구상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명을 둘러싼 철학과 정치에 관해서, 여기서 적어도, 서로 뒤얽힌 두 개의 계보가 부상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2000)에서, 서양근대의 중심에 있는 갈등으로 지적한 것은, 아마 이것과 관련된다. “근대성의 중심에는 하나의 갈등이 있다. 즉 한편에는 사람들의 욕망과 연합으로 이루어진 내재적 힘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다른 편에는 사회적 영역에 질서를 강제하고 강요하는, 전체적 지배력을 지닌 권위에 의한 강력한 관리가 있으며, 이것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갈등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사이의 철학적 대립으로서 출현된 갈등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내재성으로서 생명의 힘을 긍정하는 공동체와, 그 생명 위에 군림하면서 정밀한 관리의 그물망을 펼쳐가는 생명정치 사이의 뒤얽힘에도 연쇄했다.

 스피노자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니체가 이 한쪽의 계보 위에 부상하게 됐다.

 니체의 철학은 확실히 생명을 새로운 빛 속에서 바라보는 생태주의로서, 서양의 형이상학, 종교, 과학을 바로 생명의 적으로서 단죄한 것이다. 아마 생명정치적 지식과 실천은 다양한 반응이나 저항을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생명정치라고 불리는 것도, 인간의 삶을 샅샅이 포위하는 새로운 체제로서 의식되는 것도 없는 채, 다양한 반응, 반향, 반항을 초래했으며, 거꾸로 그런 반발에 더욱 더 대답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철학이 담고 있는 생물학주의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 있어서 유력한 특정한 생물관이, 식물계와 동물계로부터 다른 존재자의 영역으로, 예를 들어 역사의 영역으로 전용되고자 한다면, 이것을 생물학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생물학주의라는 이 명칭은 이미 말한, 생물학적 사고가 생물학에 고유한 영역을 넘어서 확장되고, 아마 과장된다고 하는, 앞에서도 언급한 경계 침범을 표시하게 된다.” 그러나 니체가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존재으로서 생각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하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하는 것이다. 사실 생물이 무엇인가라는 것,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결코 생물학은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철학만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존재감보다도 생생한 존재관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도 그는 적고 있다. 요컨대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의 본체는, 어디까지나 존재의 철학 쪽에 있는데도,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주장 쪽에 정신이 팔려 니체의 존재론적 핵심에 이르지 못하는 피상적인 독해방식을 하는 세간의 경향을 하이데거는 비판한 것이다.

 도대체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른바 <사이비 진화론>으로 읽혀지고, 위험한 우생학적 발상을 자극하고, 마침내 나치즘의 <생명정치>에 거둬들여지는 사태도 분명히 일어났다. 그런 니체 속에, 사실은 어떤 생명정치가, 혹은 내재적, 능산적인 삶의 철학(스피노자의 계보)이 잠재했는가? 어디까지나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근거에 있는 존재의 형이상학의 깊이를 읽으려고 한 하이데거의 사색은, 어떤 계보를 짊어질까? 아니면 그는 모든 계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독창적인 사상가였을까? 그 하이데거는 생명정치의 가속화된 실례였을지도 모르는 나치즘에 접근했으나, 니체는 생물학에 접근하면서 생명정치의 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어디까지나 그 외부에 다른 <삶의 철학>을 세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각각이 때로는 물구나무 세우기를 포함한 입장에 서면서, 생명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VI. 니체, 그리고 아르토의 응답

니체는 어떻게 생물학을 이해하고 어떻게 주체를 생물학화하고, 오히려 주체를 생물로서 해체하고, 생물이라는 별개의 주체를 발견했던 것일까? 바르바라 스티글러의 소책자 니체와 생물학(2001)은 이 문제를 면밀하게 뒤쫓고 있다. 예를 들어 루돌프 루드비히 칼 비르효(1821-1902)의 세포에 관한 고찰을 이어받아, 니체는 생물의 근원적 과정을, 자기에 있어서 미지의 타자가 <자극>으로서 나타나는 장면에서 보고 있다. 그 자극(의 인상)이 고통을 안길 때, 생물은 자극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동화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체는 환경으로부터 고립된 동일한 것(동일성)이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향에 반응하고 타자의 이타성을 동화하는 주체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의식도 주체도 동일성도 아니고, 그저 그것 자체성(ipséité)이라고도 불러야 할 뭔가이다.

 니체는 생명과 생물 속에, 의식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를 본다. 결코 생물에 목적론이나 초월적 이념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생물학(특히 발생학의 창시자 빌헬름 루, 1850-1924)을 따라서, 생물의 자기형성 과정을, <자기 조정>이며 <내적 투쟁>이기도 한 과정으로서 고찰한 것이다. 다만 환경에 의한 도태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 생명의 진화를 생각한 다윈은, 이런 발생에 비하면, 결코 생물의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니체는 빌헬름 루에게서 배우고, 생물의 내부의 미세한 단위에서까지 차이, 부등성, 복수성, 서열, 투쟁, 조정작업을 발견하려고 한 것이다. 생명체에 있어서의 조화와 안정과 동일성은, 이런 과정에서, 그 효과로서 사후적으로 출현할 뿐, 결코 과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생명에 있어서의 차이는 지속하고 영속하는 것이지, 결코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권력에의 의지, 이런 차이의 의지로서 생물을 관통하고, 인간도 관통하는 것이다.

빌헬름 루


 그러한 니체의 사고는 생물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외부세계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수동적으로 행동한다고 봤던 에른스트 헥켈(1834-1919)에도 대립하며, 오히려 단절이나 비연속의 힘으로서 생물의 <의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스티글러에 따르면, 니체는 이렇게 동시대의 생물학이나 생물학적 사고에 크게 촉발되고, 또한 그것을 비판하면서 생물에 대한 사고를 중요한 모티프로서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제련해냈던 것이다.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예정조화적으로, 균형이나 통합(이른바 도덕적 이상)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허버트 스펜서(1820-1903)에게도 니체는 비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화><균형>은 사후적으로 그러한 상태를 드러낼 뿐이며, 어디까지나 차이의 항쟁 그 자체가 생명과 그 진화의 과정을 인솔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수없이 겹쳐지며, 도태가 거듭되는 가운데 진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생물계에서의 도태도 항쟁도, 매우 온화하게 점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생물은 끊임없이 이상(異常)이나 예외를 산출하는 것이며, 변화나 항쟁이야말로 정상常態인 것이다.

에른스트 헤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에른스트 헥켈

 다윈도 스펜서도 개체로서의 생물의 짧은 시간 스케일에서는, 동일적으로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개체와 개체성을 전제로 하여 생물계를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에게 있어서 개체는 결코 자기에 일치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차이화하는 것이며, 생물의 자기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형성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어 온 우생학적 사고도, 사실은 똑같은 경향으로 관통되고 있다. 그는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책을 읽고 공감했다고 한다. 스티글러의 독해에 따르면, 골턴의 우생학은 나치즘이 채용한 듯한 사이비 다윈주의와는 한 선을 긋는[다른] 것이었다. 골턴의 시각에서는, 자연도태는 오히려 새로운 것의 출현을 막고, 집단적 본능에 이끌리는 사회를 신장시킨다. 유전은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평균화하고, 차이를 말소하도록 작동하기에, 인공적인 조작에 의해 차이나 다양성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골턴은 생각했다. 유전()의 인공적 조작은 거꾸로, ‘순화등질화等質化의 방향에서도 행해질 수 있으며, 우생학적 발상은 오히려 그런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하며, 현재에도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도 니체는 동시대의 우생학에서조차도 그의 차이(그리고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초인의 사상에도 관련된 것이다. ‘초인의 사상이란 단순히 우생학적인 제안의 변종(variation)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바깥으로 나가서, 차이나 다양성으로서의 거친 삶을 맞이하려고 하는 발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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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골턴

 아마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되는 신체”(푸코)는 생명정치를 훨씬 뛰어넘어 인간의 주체적 의식의 앞에 출현하고, 주체와 의식을 흔들며 서서히 찢어버리게 됐다. 삶이 인간의 외부로서 발견되는 동시에, 똑같은 삶이, 금방 인간의 차원에 수용되고 관리되어야 했다. 삶을 재발견하는 사고와, 재발견된 삶을 면밀하게 알고 통제하려고 하는 권력의 실천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인간을 살게 하는 면밀한 배려란, 기묘하게도 인간의 삶을 마비시키고 때로는 무참한 죽음으로 유기하게 됐다. 생명정치()이란 삶을 둘러싼 의식과 실천에 있어서의 큰 전환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며,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려고 하는 권력의 재편성의 과정이기도 했다. 생명정치에 있어서 인간의 삶은, 인식하고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인간은 일찍이 그 삶의 주체이며, 이윽고 역사적 주체의 위치로부터 탈락하고 오히려 삶이야말로 진정한 주체가 된다는 전환조차도 넘어선 것이다. 삶이라는 주체는 더 이상 서양의 철학이 정의하고 문제화했던 주체일 수 없었다. 니체는 그것을 의식이 아니라 삶의 의지로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차이의 무리로서 생각했다.

 생명정치와 밀접하게 연계하는 체제, 인식, 과학, 기술은 확실히 나치즘의 경우, 예외상태의 정치와 결합되어 무서운 살인기계를 산출했다. 아감벤은 그런 실제 사례를 특히 법적 차원의 예외상태로서, 고대 로마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 시스템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생각했다. 그 문제제기는 본질적으로 귀중했지만, 그래도 생명정치라는 거대한 문제의 단 한 가지 측면밖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치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비점령지역의 정신병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앙토냉 아르토는 도대체 왜 기관 없는 신체라는, 저 기묘한 말을 거듭 반복하여 노트에 적어두면서, 인류에 대해, 역사에 대해, 완전히 고독한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의 심신에, 특히 신체의 심층에 미치는 거대한 적의 힘에 대해, 돈키호테처럼 헛쇤 싸움을 그는 계속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기묘한 싸움은, 신체 기관에, 아니 오히려 기관으로서 파악되는 생명에, 그리고 생명을 탄생, 생식, 노동력, 수명으로서, 여러 가지 기능으로서, 이윽고 이식 가능한 기관으로서 파악하는 정치, 의학, 기타 여러 가지 지식과 실천으로 향했다.

Pour en finir avec le jugement de dieu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ì•™í† ëƒ‰ 아르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앙토냉 아르토 

 생명정치는 사용되고 분해되고 조작되고 소진되는 기관의 모임으로서, 산 신체를 관리하고 통치한다는 의미에서는 전혀 인정사정없는 체제이다. 아르토가 기관 없는 신체의 선전포고가 되는 라디오 드라마(신의 심판과 결별하기 위해, 1948)를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인공수정 기술을 지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에는 명백할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가, 생명에 개입하는 새로운 기술에 항의한 것보다도, 기관으로서 생명을 분리하고, 대상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