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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7월호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지금도 공개되어 있는 글이지만, 한국어판이 별도의 저작권 계약을 맺고 재출간되고 있는 형국인지라, 요청이 들어오면 삭제해야 할 수도 있다. 원래 학생들에게 수업자료로 제공하기 위해 옮긴 것인만큼 직역이 아니라 의역을 서슴치 않았다. 따라서 꼼꼼한 독해를 원한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서 원문과 대조해 읽어보면 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지만..ㅎㅎ

* http://www.monde-diplomatique.fr/2006/07/SAPIR/13645
* 글쓴이 : 자끄 사피에르(Jacques Sapir)

“경쟁은 판매를 촉진하며 기업이 판로를 개척하게끔 하며, 바로 이것에 의해 고용이 촉진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에도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덕목들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신앙에, 이해관계에 가까운 원리처럼 보인다. 경쟁은 좋은 말이라는 도그마 아래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의 논의에 의문을 품을 수 없으며, 기업의 선택을 강제하게 된다.
권위의 논증처럼 활용되는 경제학의 그럴싸한 ‘공리’는 정치적 토론을 오염시켜 왔다. 예를 들면 보호주의, 공공 기업이 완수하는 적극적인 역할, 국가에 의한 개입 정책 등, 어떤 종류의 테마는 논의의 대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적인 ‘공리’는 ‘객관적’인 특징을 갖기에 정치적 대립을 초월해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러한 경제적 ‘공리’가 정말로 사회과학적인 기반에 입각해 있다면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도 자연계의 법칙에 회의를 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 있는 지반이 의심스럽다면 그때까지의 논의에서 점하고 있던 지위는 사기일 뿐만 아니라 반민주주의적인 약탈 행위라고 말해야 할 터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적 책임을 질 리가 없는 ‘전문가’라는 일부 소수파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경제학이 과학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경제 연구는 규칙에 복종하여 논증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Bruce J. Caldwell, “Economic methodology : Rationale, foundations, prospects,” in Uskali Maki, Bo Gustafsson and Christian Knudsen, Rationality, Institutions & Economic Methodology,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1993.]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학 사상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는 것에 성공하기에 이르렀다.[Daniel M. Hausman, The Inexact and Separate Science of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UK), 1994, 특히 제13장의 “On dogmatism in ectoproctes : The case of preference reversals”를 참조.]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말할 때의 가장 중요한 공리는 경쟁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명제이며[Frederic Lordon, “Et les lendemains n'ont pas chante...,”, Le Monde diplomatique, mai 2005.], 그것은 거시경제에서는 자유무역, 미시경제에서는 유연성을 중시해야 할 근거로 간주된다. 유럽 헌법 초안의 작성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경쟁을 최대의 원칙으로 내세웠던 것도 그러한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경쟁이라는 테마는 근대 경제 사상에서 오래된 쟁점이다. 하지만 이들 경제학자들은 일정한 상황에서 특정 결과를 실현할 때 경쟁이 개개인의 행위를 조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라면 경쟁이라는 테마는 현실에 입각한 쟁점일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경우 경쟁이 하는 역할은 하나의 도그마로 되어 버렸다. 즉, 경쟁이 절대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것의 구체적인 실행 조건을 초월해 버린 것으로 정립된 것이다.
이러한 도그마의 기원은 18세기에 고전파 경제학을 만든 데이비드·흄, 베르나르 드 멘드빌(Bernard de Mandeville)과 아담 스미스의 저작에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극히 이기적인 목적에 자극을 받은 개인들 간의 경쟁이 자동적으로 집단에게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자유무역에 관한 흄의 최초의 일반이론, 멘드빌의 ‘벌의 우화’, 스미스의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러한 생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세 사람의 입론은 검증되지 않았다.
국제 무역은 자동적으로 균형에 이른다는 흄의 이론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옹호자에 의해서 거의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어떤 비현실적인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로 경제 주체는 즉각적으로, 또한 완전한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둘째로, 공급과 수요의 사이, 또 공급․수요 각각의 내부 조정은 일체의 비용이 들지 않는 순간에 실현된다. 흄의 이론에서는, 다양한 재화와 용역은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 양 쪽에서 보았을 때 완전히 대체가능하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다.
벌이 알지 못한 채 둥지를 만들듯이, 개인적 욕심(에고나 야심)은 때로 의도치 않게 ‘공익’으로 전환된다는 멘드빌의 설도 순전히 문학적 공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담 스미스에 이르면 ‘보이지 않는 손’의 메커니즘(시장은 그때가지 생각할 수 있었던 시스템보다도 적합하게 생산과 소비를 자연스럽게 배분한다고 한다)을 논증했던 적도 없으며, 역사가 장-클로드 페로가 말했듯이, 과학적 담론을 구축하기 위해 종교적인 난문(아포리아)를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Jean-Claude Perrot, Une histoire intellectuelle de l'economie politique (XVIIe-XVIIIe siecle), 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s (EHESS), Paris, 1992].
이 세 사람은 의사-자연적인 ‘법칙’을 주장함으로써 실제로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다. 흄은 자유 무역에 의해서 만인의 행복을 달성할 수 있게 되면 국가 간의 분쟁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David Hume, Political Discourses, Edinburgh, 1952. 또, Jean-Claude Perrot, Une histoire intellectuelle de l'economie politique, op. cit 의 흄과 튀르고에 대한 논고도 참조.]. 멘드빌과 스미스는 사회가 경쟁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편성되면 계몽 전제군주와 그 전제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흄의 평화주의, 멘드빌과 스미스의 전제군주제에 대한 저항에는 찬성할 할 수밖에 없지만, 의도적으로 수단으로 이용한 의사-과학적인 담론을 논증으로 잘못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경쟁에 대한 이론은 다양하게 나타나, 세 개의 학파가 생겨났다. 지금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첫 번째 학파는, 경쟁의 메커니즘이 개개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에 이르게 한다는 레옹 왈라스(1834~1910)에게서 시작된다. 이어서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는 경쟁에 의한 경제적 균형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균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즉, 현실의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 절대적인 처방적인 존재하며, 경쟁이 경제와 사회 모두에서 최적화를 실현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의를 제기할 길은 닫혀져 버렸다[Jacques Sapir, Les Trous noirs de la science economique, Albin Michel, Paris, 2000를 보라].
두 번째 사상의 조류는 왈라스-파레토 이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것이 루드비히 폰 미제스(1881~1973)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 학파로 불리는 것이다. 이들은 경쟁이 자생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효율이 좋지 않은 수단을 제거하는 신다윈주의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학파는 경쟁이 무엇보다도 새로운 혁신(innovation)의 동학이며, 새롭고 보다 적절한 것의 출현에 의해 과거의 해결책의 파괴를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는 균형 따위는 아무런 문제로 되지 않았으며, 경쟁은 ‘창조적 파괴’라고 불리는 경제활동의 항상적인 혁명으로 간주된다. 이 이론의 최대 공헌자인 요제프 슘페터(1883~1950)는 18세기의 사상가와 동일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경제를 비정치화하고, 개인들의 의식적이면서 협동적인 행동 대신에 전적으로 내재적인 ‘법칙’에 의해 설명 가능하다고 보았다[Jacques Genereux, Les Vraies Lois de l'economie, Seuil, Paris, 2002를 보라].
그러나 이 세 학파는 양립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틀을 가지고 있다. 사실 1940~50년대에 현대의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한 케네스 애로우와 제라르 드브루, 이 두 사람에 의한 왈라스-파레토 이론에 근거한 가설을 인정한다면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쟁 이론도, 슘페터의 경쟁 이론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하이에크의 주장에 서게 되면, 균형에 관한 이론들을 포함할 수 없다. 이처럼 세 학파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쇄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난제는 각 학파의 출발 전제이다. 일반 균형 이론은 경제 주체가 완전무결한 정보를 지닌다고 하지만, 전지전능하지 않는 한 성립할 수 없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이들의 경쟁 이론의 근저에 놓여져 있다. 경제 주체가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만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시장은 효율적인 것이 아니게 되며, 경쟁은 불안정을 낳고, 또 공적인 직접 개입이 요청되게 된다. 이것은 오랫동안 이론가들이 인정해 온 바이다[Sandford J. Grossman and Joseph Stiglitz, “On the impossibility of informationally efficient markets”, in American Economic Review, Pittsburgh, vol.44, no 2, 1980].
각 학파의 이론이 필요로 하는 그 밖의 전제에도 문제가 있다. 애로우와 드브루의 모델은 개인의 선호 순서가 개인적인 배경이나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우리가 재화 A를 재화 B보다, 재화 B를 재화 C보다 좋아한다면, 그 순서는 어떤 경우에도 동일하며 동일한 선택지에 대응하는 선호는 항상 불변이라고 한다. 하이에크가 상정한 선별 과정에서도 우리의 선호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유사하며, 따라서 어떤 경험에서의 선호가 다른 경험에서 바뀌지 않는다. 시간적으로 멀고 가까움을 불문하고 우리는 모든 경험에 대해 동일한 기억을 보존한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반응은 과거 경험의 평균치에 입각한 것이며, 어떤 개별적인 돌출치를 취하지 않는다.
슘페터의 모델 역시 우리의 선호 구조가 혁신(innovation)의 충격에 의해 변화하지는 않는다고 가정한다. 안전보다 이득을 우선하든가 아니면 그 반대이든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혁신(innovation)에 의해 초래된 재화가 과거의 재화로는 제공할 수 없었던 용역을 확대했기 때문에 만족의 정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개인의 행동에 대한 이러한 가설군은 크게 의심을 받게 되며[Daniel Kahneman, “New challenges to the rationality assumption,” and Amos Tversky, “Rational theory and constructive choice,” in Kenneth J. Arrow, Enrico Colombatto, Mark Perlman and Christian Schmidt (eds.), The Rational Foundations of Economic Behaviour, Saint Martin’s Press, New York, 1996.], 엄밀한 순서와 반복 가능성이라고 하는 과학 실험의 조건을 올바르게 충족한 검증에 의해 유효성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두 종류의 치료에 대한 우리의 선호는 각각의 조치에 의해 목숨이 늘어나는가, 죽을 위험이 있는가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 어떤 재화에 대해 우리가 지불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금액은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 총액 자체는 아니다. 이득에 대한 선호이냐 안전에 대한 선호이냐는 실제로는 크게 흔들린다. 혹은 제비뽑기를 할 때 항상 같은 태도를 나타낸다고 가정되는 피실험자는 얻을 수 있는 금전이나 현물 등에 의해서 실제로는 전략을 자주 바꾸게 된다. 의료에서는 둔하고 길게 지속되는 통증보다는 날카로워도 짧은 통증이 기억에 남기 힘들다. 이러한 일련의 견해들은 신고전파 모델의 가정(선호와 전략의 고정성) 뿐만이 아니라, 하이에크와 슘페터의 모델이 지닌 가정까지도 뒤집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선호는 선택을 할 때의 상황(프레이밍 효과)이나, 소유한 재화(소유 효과)에 의해 규정된다. 우리의 인지 체계는 점진적인 변화보다 돌출적인 개별 상황에 반응한다. 새로운 요소가 출현하면 선택의 모델은 항상 재편되는 것이다.

부정의 전략
어떤 상황에서도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행위자 모델’, 즉 세 학파의 이론의 근저에 있는 가정은 광범위하고도 반박할 수 없는 형태로 부정되었다. 이것은 과거 30년간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룩된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였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는 자기의 모델을 근저에서 뒤흔드는 결론을 부정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이들은 과학자이기를 그쳐 버렸다.[Daniel M. Hausman, The Inexact and Separate Science of Economics, op. cit., Chapter 13. 또, Hazel Henderson, “Prix Nobel d'economie, l'imposture,” Le Monde diplomatique, fevrier 2005도 참조.] 경제활동을 편성할 때 경쟁이 근본적인 역할을 하다는 것은 가설이 아니라 종교에 가까운 신앙임이 밝혀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21세기에 들어서, 18세기 후반과도 닮은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인간 사회의 생산, 교환, 소비의 양식을 연구한다는 정당한 학문적 기획이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왜곡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민영화[Nina Bachkatov, “Le Kremlin contre les oligarques,” Le Monde diplomatique, decembre 2003.],나 엔론 사건[Tom Frank, “Enron aux mille et une escroqueries,” Le Monde diplomatique, fevrier 2002.], 월드컴과 파르마랫트 등의 스캔들에 얼마나 많은 ‘전문가’가 관여하고 있었는가를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흄이나 멘드빌, 스미스에 비해서 이들의 계속적 목적은 고귀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금괴, 혹은 문자 그대로 금괴를 위해서 자신의 학문을 더럽히고, 이처럼 경제학을 매도하고 있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중의 큰 죄를 저질렀다. 하나는 사회에 심대한 손해를 끼치는 신화를 마치 과학적 진리인 양, 즉 ‘공리’인 양 가장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죄이다. 게다가 경제활동의 진정한 학술적인 연구의 정당한 근거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게 함으로써 연구라는 이념 자체에 대해 범한 죄이다.

* 논술 관련 문제 : 2006 서울대학교 정시 논술 http://admission.snu.ac.kr/filedata/2006jnonsul.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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