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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과 "마치며"를 본론들보다 먼저 공개한다. 본론의 공개는 나중에 한다. <결론>을 보다 꼼꼼하게 읽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결론>과 <마치며>도 윤문을 더 해야만 한다. 부족한 일본어 능력을 절감하고 있다.
* 한편, 본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글들은 아직 프랑스어 등의 원래의 언어들과 대조되지 않았다. 


혁명론

이치다 요시히코(市田良彦) 

 

결론. 발견된 자유 : 푸코와 ()가능한 혁명

전에 없었던 반-사목 혁명 /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 푸코와 ()자유주의 /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전에 없던 반-사목 혁명

우리가 추적하려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정치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일단 사라진 듯 보이는 주체라는 존재가 다시 한 번 이 논의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일부는 확실히 실제의 역사와도 겹쳐 보인다. 알튀세르가 1965년에 구성적 주체라는 개념을 배척하고, 이듬해인 66년에는 푸코가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말과 사물, 526)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81, 네그리가 역사의 주체로서 다중을 정치의 무대로 되돌아가게 한다(야생의 별종). 84년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푸코도 일종의 자기비판을 행한다.

 

말과 사물에서 저는 인간의 죽음을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인 양 말함으로써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인간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 , 자신들의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고, 상이한 주체성의 무한하고 다양한 연결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 거기에 끝은 없으며, 우리를 인간 자체와 같은 무엇인가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없을 겁니다. 인간의 죽음을 혼란되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말함으로써,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입니다. (도덕의 회귀, p.75). 

http://1libertaire.free.fr/MFoucault209.html

 

그러나 이 과정은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적이지 않다. 우리가 확인했듯이 네그리는 70년대 초반부터 자각적으로 주체주의자였으며, 들뢰즈가 야생의 별종근본적 사상이라고 지적했던, 주체적 힘들의 구성에 원리적으로 매개는 필요 없다”, 즉 주체는 스스로를 자연적=자발적으로 직접 무매개적으로 만든다는 사고방식도(이 책의 1), 사실은 이미 맑스를 넘어선 맑스(78년 강의)에서 명확하게 말해지고 있다. 게다가 네그리가 자신의 스피노자 이해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다고 일컫는 들뢰즈는 이미 68년에는 준원인개념을 통해, ‘도덕적 도착이라는 주체의 행동거지[품행]가  세계 자체를 정도는 어쨌든 결정’한다고 했고, 구조적 인과성에 의해 구성적 주체를 물리친 알튀세르는, 이보다 앞선 62년에 이미 들뢰즈적 준원인과 동질적인 결정력을 들뢰즈보다 크게 무대의 소매의 변증법에 부여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이론적 노력은 처음부터 정치 실천의 주체에게 이 특이한 변증법을 연출하는 힘을 되찾아주는 것을 향했다고 말해도 좋다.

, 우리의 관심 범위 안에서 주체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라진 것은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둘러싼,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관계(대상의 주체가 아닌 주체는 단어의 정의상 없다)를 둘러싼 무엇인가일 뿐이었다. 그 무엇인가를 우리는 중간항주체와 대상 사이에 있으며 양자를 매개하는 것 이라고 규정identification해 왔던 셈이다. 중간항을 떼어내어 성립되는 관계에 우리는 정치라고 익숙하게 불리는 인간적 활동의 실질이 있음을 인정하고자 하며, 그러려면 대상 쪽에도 그 의미를 바꾸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발견한 주체는 혁명이라는 사건, 사건으로서의 혁명을 대상으로 할 때에만 나타나며, 우리가 재정의하는 정치는 인간의 활동으로서는 혁명 속에만 존재한다. 이 주체관과 정치관은 이른바 정치를 모든 혁명의 정치로부터의 일그러진 파생으로 간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푸코는 어떻게 했을까? 앞서 인용한 말과 사물의 너무도 유명한 맺음말 때문에, 알튀세르나 레비스트로스와 나란히 인간을 주체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던 푸코는 삶의 막바지에 잘못을 자기 입에 담기까지의 약 20년 동안에, ‘인간혹은 주체를 어떻게 했을까? 그것은 혁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을까? 후자의 질문에 관해서는 그랬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있는 혁명은 주체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혁명이었다.

 

반봉건주의의 혁명은 존재했지만, 반사목혁명은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사목체제는,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사와 작별을 고하는 깊은 혁명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습니다(『안전, 영토, 인구』,)

 

반사목 혁명은 어떤 혁명인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한 강의가 푸코 사후에 점차 간행됨에 따라 우리는 알게 되었다. 70년대 말부터 푸코는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탐구 전체를 총괄하고자 하며, ‘권력앎[지식]을 둘러싼 그때까지의 작업도 이것의 내부로 재통합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근대적 인구개념(‘주민population이라는 같은 단어이다)에서 발견된 통치성문제는, 최종적으로, ‘자기와 타자의 통치라는 더 포괄적이고 역사관통적인 문제형식을 얻었다. 반사목 혁명이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사목 체제, 통치성이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존재방식이다. 고대 오리엔트에 그 기원을 지닌, 한 마리의 양과 양의 무리 전체에 골고루 배려의 눈길을 보내는 양치기가, 푸코가 정의하는 통치를 시작한 것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리 전체를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 리스크를 마다하지 않고, 거꾸로 무리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주저 없이 희생할 양을 들이민다는 모순된 태도를 양립시키는 것이 ‘목자이다. 한 마리의 양과 양의 무리에 대한 모순된 배려를 양립시키기 위해 양자의 다양한 품행[행동거지]conduites을 동시에 인도하는conduire, 통제하는 통치가, 권력이자 앎으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한 마리의 양은 이윽고 주체의 자기, 양의 무리는 주민이 될 것이다. 아무튼 푸코는 통치의 기원에서, 원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양립을 실천적으로 나름대로 실현한다는 문제를 보고 있다. 나름대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는 다양한 변주가 생겨나고, 그 나름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하나의 동일한 근본 문제로서 지속하기(해법이 없는 , 자동적으로 종점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것이 출현한 이래의 역사는, 사목 체제로서의 통치의 역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근본문제는 원리적으로 해법이 없기 때문에, 통치에는 늘 무리(無理)가 따라다니며, 그 무리의 발현이 푸코의 정치 개념을 거의 정의하게 된다.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최초의 봉기, 최초의 격돌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즉 최초의 봉기, 최초의 대립과 함께 탄생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220)”(, p.221).

반사목혁명은 우리들이 상정해 왔던 혁명 국가적 공동성을 해체·재구성하는 혁명 보다 훨씬 깊은 혁명인 것처럼 생각된다. 다중[멀티튜드]의 절대민주주의조차, 한 명과 만인 사이의 등가성을 배려하는 통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계약에 기초하려는 것과 기초하려고 하지 않는 것, 나의 이해와 만인의 이해의 일치를 전제로, 혹은 그 일치를 목표로 우리는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imperium를 구성하고, 또한 그것에 참여한다. 물론, 스피노자에게 분노에서 유래하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악이었기 때문에, 일치에 법적 형식을 부여하는 국가를 폐지하고자 하는 혁명은, 반사목 혁명의 질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갖지 않는 멀티튜드는 하나 즉 여럿의 통치에 작별 인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사목 혁명은 국가를 소멸시키는 것과 일치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물음은 통치성의 관점과 현저하게 간극되어 있다. 왜냐하면 브루노 카상티라는 연구자도 지적하듯이, 이 관점에서는 원래 국가의 실재성 자체가 상대화되기, 즉 의뭉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통치성개념이 도입되었던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는 광기의 역사이후 끊임없이 권력과 앎[지식]의 교차점에서 그가 주시했던 광기에 관해, “아마 광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122)고 말하고 있다. “주어진 대상(광기)의 척도와 규범에 비추어서 제도, 실천, 앎을 측정하기를 거부하는”(ibid.), 그것이 광기를 다루는 자신의 수법이며, 그것에 따르면 광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말해도 되지만, 이는 광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ibid.). 같은 수법에 의해 국가의 제도, 실천, 을 분석하는 것을 푸코는 강의의 목적으로서 부과하고, 그것을 따라 인구에 관해 말하는데 이어서, 하나의 말이 끊임없이 오가게 되었다. 그것이 통치성이라는 말이다”(p.77). 그렇다면 국가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말해도 되지만, 그것은 국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가는 통치성으로서 있다”, 혹은 실재하는 것은 국가보다도 통치성이다아마도가 아니라 [틀림없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푸코의 국가는 우리에게서의 국가만큼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실재성이 부족한 것을 소멸시키는 것에, 혁명으로서의 의미는 있을 수도 없다.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통치성을 관심의 중심에 둔 푸코는, 권력을 다시 가능한 행위에 작용하는 행위의 집합으로 재정의하고(주체와 권력, 1982, p.237), ‘통치성권력관계의 전략적 영역으로 정의한다(주체의 해석학, 1981-82년 강의, p.241). 그러나 그런 한에서는, ‘통치성개념 자체에는 종래의 푸코적 권력개념과 특별히 바뀐 것은 없으리라. 권력은 감시와 처벌에서, 앎의 의지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전략적 관계가 아니었는가? 바뀐 것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가능한 행위의 함의이다. ‘통치성아래서, 이제 인간 행위의 가능성을 그 작용[기능]에 의해 만들어내는 권력이 지닌, 자주 받아들여지고, 또한 분명히 그렇게 말해진 기능이다 것이 아니다. “권력이 도처에 있다면 자유가 없지 않는가라고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회관계 전체를 관통하여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도처에 있기 때문입니다”(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자기에의 배려, 1984, p.720). “권력관계의 한복판에는, 끊임없이 그것을 유발=도발하는, 의지의 다루기 힘듦과 자유의 비추이성(자동사성)intransitivité이 있다”(주체와 권력, p.238). 주체는 타자(의 권력)에 의해 작동되기 전에, 자기에서 자기에 직접 이르는 비추이적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사적이고 자발적인 관계에 의해 이른바 자기’를 자유로운 주체로서 구성하고 있다. 자유가 권력에 선행하거나, 아니면 자유는 권력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다. 설령 주체 자신에 의해 자유라고 인식되지 않고 있더라도, 주체의 비추이적 자유에 권력은 손대지 못한다. 자기에 관련되려면 자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치성아래에 있는 권력에 있어서, 주체의 가능한 행위, 예측 불가능하고 다루기 힘든 자유로운 행위 무엇을 하는지 예측하기 힘든 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권력은 작동에 전략을 필요로 한다. 원래 권력이 생겨나기 전부터, ‘에게 타자는 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주체이기 때문에, ‘는 타자에 전략을 갖고 임하며, 타자의 가능한 행위에 포함된 개연성을 ‘정돈해야aménager’(또는 구조화해야’) 하며, 타자의 행위에 작동을 건다(주체와 권력, p.237). 그 작동이 권력이 된다. 권력은 이제 자유로운 주체 상호 간에서, 그 자유롭게 유발=도발되고 양극의 주체로부터 동시에 생겨난다. ‘통치성이란 이 주체 간 파워게임의 전략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기와 타자의 통치를 문제로 한다.

 

통치성이라는 관념을 둘러싼 성찰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서 정의되는 자기라는 요소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경유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권력의 분석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서 정의되는 주체의 윤리를 참조해야 합니다. 권력관계통치성자기와 타자의 통치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는 일련의 행, 일련의 열을 구성합니다.

 

자유로운 주체를 참조하지 않으면, ‘통치성존재방식은 결정되지 않으며, 분석의 도마 위에 올려지지 않는다. ‘통치성은 국가보다도 실재성을 갖고 있지만, 자유로운 주체는 그 통치성보다도, 혹은 그 통치성과 같은 정도로 별개의 실재성을 갖는다. ‘통치성의 원형 내지 모델이 사목인 이유나 의미도 이로부터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목, 권력이 그 발생의 전제로 삼고 또한 직접 손댈 수 없는 주체의 비추이성[자동사성],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타자(의 권력)를 향해 보루를 이루는 내부 자기에서 비롯되어 자기로 회귀하는 루프[loop]가 그것을 형성한다 를 갖지 않은 한 마리의 양으로, 주체를 그 외부로부터 축소 내지 환원하고자 한다. 주체을 그런 양의 무리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 한 마리와 무리 전체의 긴장관계가 도움이 된다. 무리 전체를 위기에 노출시킬 가치가 있는 의 생명은, 무리 전체를 향해 의 내부를 개방하고 있다. ‘는 그 생명의 위기에 무리의 운명을 말려들게 함으로써, ‘의 루프를 풀고 있다. 거꾸로, 무리의 희생물이 될지도 모르는 , ‘의 띠[루프] 속이 아니라 무리 속에서 거처를 부여받는다. ‘는 마치 한 마리의 양으로 축소·환원되고 있다. 희생물이 될 개연성에 대해서만이라면, 거기에 틀어박혀서 몸을 지키는 것도 가능한 내부가, 무리의 생명을 끌어들이는 등가성의 조작에 의해 억지로 열리게 되며, 그 결과 이 된 를 무리의 압력(“, 희생자가 될 지어이다”)으로 하는 것이다. 순서는 거꾸로여도 괜찮을 것이다. ‘의 띠[루프]를 무리라는 커다란 의 압력에 의해 극소의 으로 만들고, 그것을 와 무리의 등가성에 의해 열어서 으로 만든다. 말하자면, 협박과 구원 각각의 가능성을 번갈아가며 자기에 관련되는 자기에게 주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자기에 관련되는 자기의 그 관련’, 비추이성, 루프를 타겟으로 협박과 구원이 이루어진다. 왜 거기에 무리(無理)가 있는가? 협박과 구원은 동시에는 행해지지 않고, ‘를 동시에 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무리(無理)가 있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그것을 금하는 수법[방법]이 타자(의 권력)에게는 없고, 언제든 형성 가능하다. 비추이성에서 생겨난 주체의 본원적 자유를 앞에 두고서는, 그것을 조종하려고 하는 권력의 작동은, 언제 어느 때든 헛수고로 끝나더라도 불가사의하지 않다. 주체가 자기에 관계하기 위해서는, 푸코에 따르면, 플라톤이 권장하듯이 네가 몸을 돌아봐라만으로도 좋고,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처럼, 외부세계와 관련된 자기를 단련해도 좋다. 심지어 기독교의 금욕주의처럼, 자기를 포기하려고 애쓰는 것도 상관없다. 자기를 목표로 한 주체의 윤리는 모두, 주체를 한 마리의 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서는 본질적 장애로서 기능할 수 없다. 물론 주체의 윤리는 자기의 통치이며, ‘에게 있어서는 타자를 통치하는 기법의 개발 장소이다. 주체의 윤리는 언제든지 통치성으로, 따라서 권력으로 전용 가능하다. 타자를 얼마나 잘 통치할 수 있는가, 자기를 얼마나 잘 통치할 수 있는가의 척도를 추구하는 윤리도 있을 것이다. 주체의 윤리는, 혹은 주체의 윤리야말로 권력의 모태이다. 결국 통치성이 작동하는 주체 간 게임에서는, 권력과 자유로운 주체는, 서로 반발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밀월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과 주체의 존재론적 차이는 관계와 그 요소의 차이이지만, 이 요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관계이며, 요소 간의 관계를 포함한 보다 큰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 상호 포함의 질 위상적 을 지닌 관계들을 하나여럿=전체의 관계로 정비하는’ = ‘구조화하는대수적으로 것이, “전체적이고 개별적으로omnes et singulatim라는 논리로 작동하는 사목권력이다.

그렇다면 사목권력을 타도하는 혁명이란, 혹은 통치성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정치란, ‘하나여럿=전체에 반발과 밀월의 관계를 되돌려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사목권력의 하나 곧 여럿에 별종의 하나 곧 여럿을 대립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런 별종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사목권력이 하려는 것은, “타자의 가능적 행위의 영역을 구조화하기위해, 다름 아닌 가 날마다 주체간 파워게임에서 실패하면서 시도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타자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는 끊임없이 자기와 타자의 사목이 되지 않는가? 주체의 윤리란 자기에 대한 자기의 사목화라고 바꿔 말해도 좋은 것이다. 반사목혁명은 그러면 하나의 사목혁명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순전한 혁명으로서는 허용될 수 없는 혁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반사목혁명은 없다”, 그것이 사목체제는,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사로부터 결별하게 만드는 깊은 혁명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이유일 것이다. 사목이 아닌 혁명 지도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지 않았던가.

그래도 사목체제와, 어떤 의미에서는 흔해 빠진 주체 간 파워게임 사이에는 하나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게임에서 권력과 주체, ‘와 타자, 관계와 요소 등등,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와 타자의 통치는 풀기 힘들게 뒤얽혀서 반발과 밀월을 번갈아 할 수 있게 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으로서는 아주 흔해 빠졌다. 거의 푸코에게서의 자연상태라고 특징지어도 좋을 정도로, 그것은 편재적, 역사관통적, 존재론적이다. 그것에 대해 체제 내지 권력으로서의 사목은, 이 흔해 빠진 게임을, 존재하는 것은 한 마리의 양과 그 무리라고 이야기함으로써,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양인 존재는 자기를 갖지 않고 사목에 의해 인도되며, ‘자기를 거점으로 파워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리인 주민이란, 상호 간에 권력관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다. 목자의 협박은, 주민 간에서 타자의 통치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에게 하는 협박이며, 그 구원은, 통치 없이 가 생존 가능하다고 약속하는 구원이다. 사목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들은, 통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살 것이다. 그들은 협박과 구원의 반복 속에서 사목에 의해 살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면, 무엇을 해도 허용될 것이다. 주민은, 타자에 대한 권력 행사를 포기하는 것과 맞바꿔서, 자기에 관해서는 행동의 자유를 얻는다. 그런 자유에 어떤 가능한 것이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가는 별개로 하고, 사목체제에서의 통치는, 편재하는 통치를 통치하여 무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무화는 물론 하나의 전략에 지나지 않으며, 목적 자기에의 관련을 주체가 포기하도록 만드는 의 완전한 수행에는 본질적인 무리가 있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통치이며, 하나의 통치로서 통치의 통치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이다.

 

푸코와 ()자유주의

 

바로 그 순간,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임이 제게는 명백해진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통치한다는 것은, 바라는 결과와는 반대의 결과를 이끈다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사회라는 관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18세기 말의 정치사상이 발견했던 것 가운데 가장 커다란 발견 중 하나입니다.

 

그 순간이란 문맥에서 볼 수 있듯이, 18세기 말의 언제인데, 그것 자체로서는 하나의 질문의 형태를 갖고 있다. “어떻게 통치는 가능한가라고 물어진 순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물이 최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사물이 통치의 합리성에 적합해져서 개입의 필요가 없게 되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활동에 어떤 제한을 설정하면 좋은가”(ibid.)라고 자유주의자들이 묻는 순간이다. ‘통치성을 주제로 삼고, 그것을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주체의 윤리와 동시에 탐구하고자 한 말년의 푸코가, 근대에 관해서는 자유주의(liberalism)에 강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안전, 영토, 인구의 이듬해(1978-79)에 한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 아담 스미스와 중농학파 같은 18세기의 경제적 자유주의부터, 20세기의 신자유주의(하이에크,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강의 속에서 프랑스에서 진행된 지스카르 데스탱의 개혁)에 이르는, 자유주의의 역사에 온통 바쳐지고 있다고 말해도 된다. 추적되는 것은 어떻게 통치를 최소화할 것인가라는 문제계이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근대국가의 기층 국가 자체보다 더 실재성을 지닌 차원 ― 에서 발견된 통치성, 이듬해에는 갑자기 그 최소화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통치하다는 것은 거꾸로 통치의 붕괴를 초래하며, ‘통치하지 않는다와 같아진다는 배리에 관해, 자유주의를 건드린 푸코는 깨달았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논문이나 인터뷰에서는 자유, 자유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같은 말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그 무렵 그는 강의에서는 고대의 주체의 윤리를 주로 논했기 때문에, 그러한 두 개의 점을 겹쳐놓고, 말년의 푸코는 윤리에서 통치성에 대한 제동을 찾고, 그것은 정치사상으로서는 자유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그 무렵, 칸트의 계몽론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대의 윤리에서 근대의 자유주의에 이르는 통치에 맞서고, 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고의 계보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앞 절에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통치의 과잉이 그 부재로 반전되는 근거를, ‘자기와 타자의 통치에 포함된 자유주의적 배리에서 찾았던 것이다. “권력관계의 전략적 영역인 통치가 정묘하고 복잡해질수록, 그것은 주체 사이의 자유로운 파워게임 권력통치성도 그 속에 있다 에 있어서, 타자로부터의 권력행사에 맞서는 자기에게 가능한 행위또한 증대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하는 배리이다. 이때 자기와 타자의 통치인 통치의 그 과잉이란, 권력과 자유로운 주체 사이의 반발과 밀월 각각이, 양자의 병존이 불가능해지는 점으로까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권력에 대한 의존의 증표인 주체의 반발도, 도를 넘어서면 의존관계를 풀어버리려고 할 것이다(멀티튜드의 공포분노로 높아지도록). 주체가 반발함으로써 주체의 총애를 받는 데 성공한 권력도, 너무도 총애를 받으면, 주체에게 의표를 찌르는 술을 제공할 것이다. 전략이라는 질을 갖고 있는 한, 관계는 그런 딜레마를 품지 않을 수 없다. 통치의 강화나 증대에 발맞춰, 거기에 내재하는 딜레마가 극점에 도달하면, 통치 자체가 기능 부전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18세기 말의 자유주의는 경험적으로 그것을 깨달았으며, 딜레마를 억누르면서 양의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과제에, 자유주의는 통치의 최소화=최적화인 문제형식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사실상, 그 자유주의적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사목자체제라고 읽었다. 통치의 최소화란, 통치를 비통치의 방향을 향해 노쇠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통치하는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이 기술은 주체들에게, 따라서 권력에도, 파워게임을 그만두게 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비통치와 같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이고 개별적으로라는 고유의 논리와, 협박과 구원의 병용이라는 독자적인 수법을 갖추고 있는 진정한 통치기술이며, 광기의 역사이후의 푸코가 분석했던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주체의 저항을 겪고 좌절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좌절하더라도 주체에게 게임을 그만두게 하려고 하지 않는 사목자체제는, 통치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에는 절호의 선례를 제공한다. 아니 오히려 사목자체제가 역사적으로 최초의 통치였던 것이다. 권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는 안정되고 제어하기 힘든 자기와 타자의 통치, 그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동기와 방법 또한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그것이 자유주의로 전경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는 사목적 통치성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적어도 말년의 푸코에게, 고대적 윤리에 의해 뒷받침된 근대적 자유주의로의, 통치성으로부터의 전회를 인정할 필연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통치의 최소화야말로 반사목 혁명의 가능적 내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푸코와 극히 가까운 곳에서 출현했다.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그의 조수를 맡았던 프랑수아 에발드이다. 그의 대작 복지국가(1986),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사회라는 관념의 발견 내지 발명에는, 통치를 최소화한다는 문제의식에 그치지 않는,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책이 포함되었다고 역사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보험기술이다. 해양보험에서 시작된 보험이, 생명보험, 실업보험, 연금 등의 사회적리스크 회피 방법으로 확장되는 역사과정을, 에발드는 세밀하게 추적하며(특히 제2리스크에 관하여), 자유주의가 이미 일종의 복지국가였다고 주장한다. ‘큰 정부만이 복지국가인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이 책의 중심 테제이다. ‘작은 정부큰 정부의 복지국가로서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리스크 개념은 발견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역사책이며, 이런 그의 논의도, 자유주의가 하나의 사회관리사상이며, 따라서 통치성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에발드는 90년대 말이 되면, 원래 마오쩌둥파의 활동가이자 국경 없는 의사회의 창설에도 관여했던 드니 케슬레와 함께 프랑스 경단련(MEDEF)의 이데올로그로서 우리 앞에 등장한다. 경단련의 사회보장제도 개혁 플랜인 사회재정초refondation sociale”의 입안에 참여한 것이다. 그들의 공동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스크, 우리가 어떤 리스크관을 갖고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리스크는, 더 이상 18, 19, 20세기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상 모든 개인적, 집단적 사건을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새로움을 이루는 것이다”(리스크와 정치의 결혼, p.61). 왜 이 새로움이 생겨났는가는, “사회재정초플랜이 제안된 이유이기도 하다. ‘큰 정부노선으로 정비되었던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가 파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리스크인 경제상황의 악화를 회피하기 위한 통치기술이었던 큰 정부’ = 복지국가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가주도주의dirigisme’에서 해방되라, 국가를 소생시키려는 것을 그만두라고 에발드, 케슬레, 경단련은 복지국가의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인들에게 호소했다. 그들의 플랜은 구체적으로는, 오늘날까지 법과 관료기구에 의해 지탱되었던 연금제도를, 경영자와 노동조합의 계약에 기초한 관리 아래로 이행시키고, 금용공학을 도입함으로써 민간보험처럼 운용한다는 것이었다. 정치를 국가의 손아귀에서 탈취하여 리스크와 결혼시키자, 이것이 그들의 슬로건이다. 2012년의 오늘날 아주 흔해빠진 신자유주의적 플랜이지만, 작업을 할 때에는 푸코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일찍이 좌익푸코주의자라고 불렸던 에발드가, 전향한 마오쩌둥주의자나 대기업 경영자와 협력하여 그것을 책정한 것이다. 프랑스적 사목국가’(국가주도주의)로부터의 탈출을 찾아서.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이야말로 사회혁명이라고 주장하면서. 플랜의 이름은 사회재정초이다. 에발드는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푸코가 자유주의자의 입을 통해 말했던 배리의 원인을, 사목자로서의 국가에서 찾고 있다. 자유주의가 국가주도주의를 대신해 사목이 되고자 하고 있을 때, 국가를 후퇴시키면 사목이 후퇴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푸코에 관해서는, 우리와 에발드 등의 대립은 스피노자를 둘러싼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같은 탁상공론으로 끝날 것이다. 아마도 푸코 본인이 그렇게 장치해 둔 것일 터다. 그는 극좌활동가와 국가관료 둘 다의 얼굴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푸코가 이름을 부여한 혁명에 관해서는, 우리가 지금 비관주의자이며, 에발드 등은 분명히 낙관주의자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푸코를 우리의 비관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여도 좋을 확실한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최초의 봉기, 최초의 대결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안전·영토·인구, 편집자 주, p.221). 이렇게 강의 준비 노트에 쓴 푸코는, 그것을 강의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가 있다. 이 정치, 이 저항, 봉기, 대결로부터, 푸코가 말했던 통치성이 생겨난다. 우리가 묘사한 것은, 그가 통치성을 이 정치, 이 저항, 봉기, 격돌[대결]에 정초짓는 모양새이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권력은 생겨나지 않으며, 자유가 권력을 도발하고 자유를 제어하려고 하여 통치성은 개발되었다. 그리고 자유는 그것에도 저항하여 스스로를 통치성으로 주조했다. 주체의 윤리란 주체를 자기 권력으로 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이다고 완전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정치가 요청하는 저항의 방식 또한 통치성이 아닌가! 정치가 마치 통치성과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환상을, 그는 공공연하게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읽어낸 푸코는 시사하고 있다. 이런 푸코는 우리의 귓가에 자유란 권력을 낳을 자유이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그것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는 자유주의의 자유가 양의 자유일 뿐인 것으로만 생각된다. 양치기에게 인도되어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양의 자유로만.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하는 사회혁명은 어디가 반사목혁명인가라고만 생각될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 책의 서두에서 봤듯이, 이 자유는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진 뒤, 정치철학을 사목자의 윤리로 삼아버리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유롭게 되었다고는 해도,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재난의 사후 처리를 곳곳에서 떠맡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의 눈에는 오늘의 보편윤리야말로 사목체제의 완성형처럼 보인다. 도처에서의 선도교화. 양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고 해도 쫓겨나지 않는 사목자. 사목자조차 권력을 낳을 자유를 행사하면 추방될(카다피를 보라) 정도로, 이 체제는 완성되고 있다.

이것이 자유를 둘러싼 대립이라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둘 다를 낳는 푸코의 자유는, 예기치 않게 스피노자의 분노처럼, 혹은 그 아래에 숨은 신 즉 자연처럼, 존재론적인 의미를 사건 세계에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낳을 자유 그것에 저항할 자유 사이의 같음[마찬가지임].’ 국가를 만드는 것과 파괴하는 것을 같게’ 분노와 똑같은 자유.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자유의 양의성(통치에 참여할 적극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받지 않은 소극적 자유), 푸코는 역사를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라는 당연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스피노자가 국가의 을 재차 부정하기 위해, ’으로 국가를 만들게 했던 것처럼.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있다. ‘분노는 그 자체의 해소를 목표로 해야 할 슬픔의 정념이며, 스피노자적 공산주의 혁명의 최종 근거이다. 푸코에게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유는, 정의나 가치로 취급되기 전에 그 흔해 빠진 사실성에 계속 정위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분노의 추처럼, 폭주하여 자동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없다. 국가건설과 혁명은 양방향 동시에 목표가 되며, 인간이 늘 이것들 중 어느 하나로 우세적으로 향했던 두 개의 극이었지만, 즉 어느 쪽이든 모두 과도적 상태를 출현시켰지만, 자유의 두 개의 극은 동시에 극으로서, 분리된 곳에서 출현한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자유는 부동이며, 그 혁명은 있을 수 없다. ‘분노는 양극을 끊임없이 불분명하게 하고, 자유는 끊임없이 그 자체로 분열하고자 한다. 히스테리와 분열증. 정념의 폭풍과 인류라는 자기의 고독한 대화. 그래서 푸코도 이렇게 적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복잡한 권력 관계의 효과에 도구이며, 다양한 감금장치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이자 힘이며, 그것 자체가 이 전략의 요소인 담론에 있어서의 대상인, 이 중심적이고 중심화된 인류 속에, 투쟁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감시와 처벌, p.315).

하지만 이 자유는 어떻게 해도 길들일 수 없다. 그것을 규율훈련에 의해서 하든, 협박과 구원이라는 세치 혀에 의해서 하든, 아무튼 부숴뜨리려고 한다면, 권력도 통치의 가능성도 망가져버려 이 자유가 승리한다. 이 자유의 다루기 어려움, 완고함 때문에, “지나치게 통치한다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가 혁명 아닐까? “나는 과거에 있으며, 지금도 있으며, 언제든 있다!”라고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외쳤던 것은 혁명이었다. 비관주의? 그런 것은 없다. 이 자유는 가치적이지 않은 기술적 존재이며, 멀티튜드가 기성 질서에 대한 분노와 질서의 적에 대한 분노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게 하는 방법=윤리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사는 것이 가능한 것은 자기 이외의 사목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뿐인데, 그것을 사회적으로는 혁명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처방전 없이 경험에만 의거하여 역사에 절단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이 자유는 정치라는 기술에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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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이 책이 기획된 것은 같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졸저 알튀세르 : 어떤 연결의 철학(20109)이 출판되었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집필된 것은 지난해, 2011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이다. 그 동안에 우리는 ‘3.11’을 경험했다. 알튀세르에게 하나의 현대적 단서가 인정되는 문제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를 어떻게 철학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가 의 깊이와 넓이를, 전자보다 큰 사상사적 풍경 속에서 선명하게 부상시키겠다는 본래의 기획은, 지진이나 원전사고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내게는 십수년 간의 작업의 무대 뒤를 보여주는 재고 정리 작업 같은 것이다. 그래도 ‘3.11’은 이 책에 큰 영향을 드리우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의, 그것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철학에 있어서라고 하는 이중의 한정이 붙기는 하지만, 문제가 정치였기 때문이다. 정치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정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설정된 씨름판 속에서, 끊임없이 지금이 날아 들어올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그 결과, 둥근 씨름판에 각이 생긴 것 같은 곳이 이 책에는 있다. 각의 이름이, 최종적으로 제목에 남은 혁명이다.

정치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우리는 매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쓰레기는 끝도 없고, 방사능은 더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국가가 파산할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머리 한 켠에서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빈곤의 물결이 서서히 일본을 침식하고 있다는 감각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에게는, 즉 작금의 정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보는 정치의 현황에 대해 조바심을 내게 됐다. 정치가도 자신의 무기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오로지 저자세로 처신하려고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된 상황일 것이다.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제로에서 재질문을 강요하는 사고를 철학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정치를 앞에 두고, 혹은 유권자나 시민으로서 그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고, 정치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을 아무런 전제 없이 재포착하고, 사고의 리셋 지점으로 돌아가라고 사람들에게 닥쳐오는 상황은, 이른바 정치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따라다니고, 왜 이 정도의 세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욕을 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이미 철학자의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있다. 키르케고르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불안은 철학적인 한 걸음이다. 불안에 답은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에 빠져 욕설을 퍼붓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길, 이 막다른 곳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데카르트적 회의가 아닌가. 거기에 내몰린 정치의 모습, 즉 이 책(의 주인공들)이 문제 삼고자 했던 것을, 현실은, 문장과 같은 답답한 것을 거치지 않고서 사람들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 감각보다 뒤쳐져 있다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뒤쳐져 있음을 만회하려고 과격으로 달려나가고, ‘혁명등이라고 말해 버린 것일까? 일종의 초조함이 이 책을 충동질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틀렸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혁명이란, 정치가 인간의 사고와 함께 리셋되는 지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했을 뿐이다. 초조해하면서 처방전을 내려고 하거나, 미래를 알고 있는 척 하는 짓거리를 하지 않고, 리셋 지점이 어떤 곳인가를, 내게 다양한 것을 가르쳐주었던 선인(先人)들에게 다시 한 번 따져 묻고 싶었을 뿐이다. 리셋 지점에서, 가까운 과거와 오늘의 정치의 광경을 되짚어보기 위해.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말은, 질문을 순화하기 위해 방법적으로 짊어진 과제 내지, 필자의 각오에 다름없다. 혹은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오히려 뭔가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다고 하는 혁명론이며, 독자가 보기에도 그러하길 바란다.

그렇지만 이 리셋 지점은 사회문화혹은 문명등이라는 망막한 지대에 도달하여, 그 속에서 사라지는 애매모호한 제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로 정치라고 불리는 영역,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불려왔던 인간적 활동의 임계점이다. 경제나 기술문명으로 이동해 버려서 고유한 성격이 거꾸로 보이지 않게 된 경계영역이다. 거기에는 쑥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멍이 있으며, 그 구멍에서 사람들이 자주 철학이라고 부르는 괴물이 얼굴을 들이댄다 요는 그것만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장소에서 괴물은 속삭인다. 지금 문명을 끄집어내는 등, 쟁점을 멀리 내쫓아버려 사람들에게 의욕을 잃게 만드는 음모일지도 모르겠다. 사물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역설하고, 화를 낼 의욕을 줄여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경제나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며, 리셋 지점에서 보이는 고유한 현실, 환상이 아니라 이해가 걸린 현실을 지시하고자 할 뿐이다. 이 광학 아래서는, 일본이라면 부흥이나 피해변제 때문에, 세계에서는 파산한 금융기관(국가라는 이름의 그것도 포함한)의 뒤치다꺼리 때문에, ‘자금 융통을 위해 서둘러 다니는 사람들이 정치가의 이름을 참칭하고 있다. 게다가, ‘자금 융통조차 사실은 이름뿐이고, 그 실태는 손실의 대체(유행하는 말로는 주식 전매[날림]’, 언젠가 누군가가 지불해줄 것이라는 정책이다. 바로 케인즈가 말한 것 대로다. 장기(長期)란 모두가 이미 죽어 있는 시간이라는 것.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야유가 쏟아질 것 같다. 당연하다. 나도 사회주의 혁명에 넌더리가 난다. 그러나 처방전을 생각하기 전에 분노하다가 선결일 것이라는 게 야유에 대해 부랴부랴 할 수 있는 응답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만으로는 이 책이 서두에서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정의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처방전도 윤리적 가치도 차원을 달리하는 곳에서 움직이는 정치인 게 아닌가라는 물음을, 저자로서는 지금을 따라잡기 위해, 하나의 과거를 이 책에 아로새기려고 했다. 질문만 해도 상관없다. 그것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책으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혁명에 넌더리 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나간 것이 아닌 믿음을 내게 심어준 것도 혁명과 혁명사상의 역사이다. 사회를 둘러싼 처방전, ‘감정의 집단적 표현, 그리고 윤리 내지 도덕이라는 이 세 가지 차원은 그 순서에 따라 처방전에 나오는 메뉴를 바꿔버리지 않을까? 실제로 바꾸지 않았는가? 물론, 이 책에도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작은 책만으로 지금을 따라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음을, 나도 통감하고 있다. 그래서 부제에는 서설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처방전의 강박적 요구가, ‘손실없는 문제의 교체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이 국난(国難)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만큼, 메뉴의 빈약함을 나라’(혹은 현재의 민주주의제도)라는 가치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감추려고 하고, 보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업 축소를 해도, 공무원을 줄여도, ‘작은 정부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음에 불과하며(신자유주의의 20년 역사가 그것을 폭로했다), 거꾸로 큰 정부에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도, ‘그린 뉴딜의 실패가 증명해버렸다. 재정지출을 10년 전의 두 배로 해도, ‘월가를 점거하라!’라는 결과가 된 것이다. 메뉴를 둘러싼 허심탄회한 논의는 점점 공허한 축제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아쉬운 점, 이 책이 서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과 관련된다. 대체 메뉴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축제의 무대에서 현재 메뉴라고 생각하는 것의 중심기둥을 싹둑 잘라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들갑스럽게 말하면, 맑스에게 철학경제학비판으로까지 나아가야만 했는데, 철학경제학비판속에서 다른 삶을 다시 부여받아야 했는데,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을 완전히 금욕했다. 심지어 정치철학에 관해서도 금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점들이 많다. 오로지, 일단 내게 가능한 리셋 지점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더 말하면, 오늘의 경제학비판에는 무엇보다도 전제적인 철학’(이데올로기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이 결여되어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위기의 시대에 대학 지식인이라는 것에 대한 초조감에 사로잡혀서 메뉴를 생각하거나, 정치가처럼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 명의 인간이 이런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 원점 회귀를 해도 괜찮을 정도로, ‘분노하는사람들은 강하다고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조사 작업과 출고는 남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는데,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도덕 때문이라기보다는 작업의 어려움 자체에서 기인한다. 책을 읽으신 분은 곧 알겠지만, 나는 선인들의 여러 설들을, 꽤나 무리를 해서 순서를 뒤섞었다. 난폭하게 요약을 하고, 각각의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는 논점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큰 논점을 상당히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의 저작을 읽은 적이 없더라도, 내가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거의 결점과도 같은 비판도 했다. 누구든, 자기 나름의 얼마간의 아웃풋output을 내기 위해 그런 작업을 남몰래 할 것이다. 남들 앞에 내세우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웃풋이 긴요하고,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조감도 작성 작업은, 결과로서의 아웃풋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의 올바름만이, 그것을 얻는 여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왜곡을 상쇄시켜준다. 이번에, 그 왜곡도 포함해 무대 뒤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것이 분노하는사람들에 대한 바로 올바른동조의 방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탓이다. 내일을 밝히는 빛일 수 있는 동시에, 시선을 다양하게 왜곡시키는 것도 확실한 분노가 세상에서 고조되고 있을 때, 자기만 왜곡을 폭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어떡하지? 말하자면 그 점에 관해서만은, 나는 이 책에서 적대시한 윤리에 무릎을 꿇었다.

또 하나, 작은 사정이 있다. 이 책에는 첫 번째 독자로 상정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금, “유럽현대사상과 정치라는 공동연구(교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반장이라는 위치에 있다. 거기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 언제나 지껄이고 있는 것의 배경을, 동료들에게 숨김없이, 또한 계통을 세워서 보여줄 필요를, 공동연구가 미끄러졌던 이 1년 동안 통감했다. 각국마다 주요 발표자가 있는 연구회의 한정된 논의에서는, 아무래도 답답한곳이 있다. 거기서 동료들에게, 내 발언의 배후에 있는 포괄적인 조감도를 정리하여 제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즉, 일종의 동료 사이의 담론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연구회 자체를 사회를 향해 듣는(즉 중간보고를 하는), 연구회에도 사회라는 외부를 도입하는(즉 긴장감을 증대시키는) 궁리工夫의 일환이다. 동료들이 연구회의 안과 밖에서 이 책에 응답해주기를 무엇보다 바라고 있다. 물론, 이런 중간보고를 공개했다고 여러분께 알리고, 반장으로서 엉덩이를 터는것이다. 모두 기합을 넣어주세요.

마지막으로, 편집을 해주신 平凡社의 히로마 켄(昼間賢) 씨와, 신서 편집자인 마츠이 준(松井純) (내게 기획을 해줬다)에게는 아무리 감사의 말을 해도 부족하다. 듣고서 감상을 들려준 에게, 이렇게 잘 읽어줬다고 기쁨을 느끼면서, 막판 스퍼트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

 

201214

이치다 요시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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