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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7. 생명권력 : 영국의 자유주의 모델

3. 영국의 노동력의 의학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한편, 제목에서는 '生権力'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6장의 제목과 1절의 제목의 생명권력은 権力이다. 아래에서는 이것을 모두 생명권력으로 옮긴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노동력의 의학의 새로움

18세기 영국에서 발달한 사회의학이, 주민의 노동력에 타겟을 맞춘 의학이다. 독일에서는 국가의 차원에서 의학이 전개되고, 프랑스에서는 도시의 차원에서 의학이 전개됐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의학이 전개된 것이다.

프랑스 도시의 의학에서는 빈곤자를 특별 취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빈곤자는 우편을 배달하거나 쓰레기를 모으거나, 가구와 헌 옷이나 누더기를 모아 그것을 유통시키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맡았던 것이다. 빈자는 주택에 번지수가 붙어 있지 않은 도시의 파수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후부터 빈민은 도시에서 하나의 위협이 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우편 등 빈민이 그동안 해왔던 기능 대신에 근대적인 제도가 확립된 것, 도시의 폭동에 빈민이 참여한다는 정치적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역병[페스트]의 전염이라는 위생학적 공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이런 새로운 위험이 된 빈민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의학이 등장한다. 구빈법의 목적은 빈곤자에게 일자리를 줘서 일하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워크하우스가 건설되고, 빈민이 거기에 모였다. 최초의 워크하우스는 1696년에 브리스틀에서 개설됐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기능하지 않았다. 빈민은 거주하는 교구에서 나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장소에서 노동할 수 없는 것이 그 가장 큰 원인이었다.

1834년의 구빈법의 개혁에 의해 이 제한이 해제되고, 도시의 주민의 건강 문제가 중시됐다. 그리고 이 법률에서는, 곤궁자를 의학적으로 관리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빈민은 공적인 원조 시스템의 혜택을 입게 됐을 때부터, 다양한 의학 검사를 받도록 의무지어졌던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진전과 더불어, 도시는 더욱 과밀해지고, 빈곤자는 도심의 너저분한 지구에 거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부유한 자들은 교외나 전원지대로 옮겨가게 된다. 철도가 부설됐기 때문에, 도시로 다니기가 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이 나쁜 자들은, 도심에서 계속 살았다. 그 대다수는 비참한 슬럼지구에 거주했던 것이며, 도심부는 빈자의 식민지처럼 된 것이다. 이리하여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역병의 선이 그어지게 된다.

183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콜레라의 대유행이 구빈법에 있어서 빈자의 건강에 주목하게 만드는 큰 계기가 됐다. 빈자의 생활환경과 노동조건이 역병의 유행의 큰 원인임을 인식한 공중위생 전문가들은 세계 최초로 공중위생법을 제정한 에드윈 차드빅경(1800-90)을 중심으로 빈자의 건강의 유지와 질병의 방지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것임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토목공학의 힘으로, 비위생적인 환경을 없애는 것이 요구된 것이다. “물의 공급에 의한 도랑, 도로, 주택의 청소, 하수의 개선, 마을에서부터 모든 유해한 폐기물을 제거하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의 채용이 요구된 것이다.

 

사회의학의 탄생

1870년대가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국의 사회의학이 탄생하게 된다. 이 개혁에서는 구빈법의 시스템과 공중위생의 시스템을 통합하여 지방마다 의료를 담당하는 관청을 설치하게 된다. 이것이 1875년의 공중위생법이며, 이 법률 아래서 각지에서 보건소가 설치된다. 이리하여 지역의 공동체의 건강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지방 당국의 적절한 시스템,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시스템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이다.

이 의료시설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1) 다양한 주민 집단에 면역을 강제하기 위해, 예방접종을 관리한다. (2) 전염병이나 전염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질병의 기록 시스템을 조직하고, 위험한 질병의 신고를 의무화한다. (3) 건강을 망가뜨리는 장소를 특정하고, 가능하면 이런 이것의 온상지를 파괴한다.”

이렇게 확립된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도시의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의학 시스템, 빈곤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 부조 시스템, 부유자를 대상으로 하는 민간 의학 시스템이란느 세 가지 의학 시스템이 서로 보충하는 것이었다. 우선 콜레라 등의 전염병의 방지라는 도시의 주민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학의 시스템이 있다. 이것은 삶[생명]의 의학의 특권적 질병인 종두의 사례에서 밝혀졌듯이, 전체 주민의 예방 접종의 강제적인 실행을 포함하는 것이며, 생명권력의 의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박테리아학이 확립되자 의료 서비스는 그때까지처럼 도시의 불결한 환경을 개선한다는 수동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주민에게 예방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 그리고 특정한 박테리아를 매개하는 동물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더욱 합리적이고 정확하고 구체적인 기초에 기반하여 전염병을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좋은 예는 모기가 매개하는 황열병이며, 이런 조치에 의해 이 질병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재발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구빈법의 흐름을 이어받아, 곤궁자만을 대상으로 공적 부조를 주는 의학이다. 이것은 동시에, 빈곤자의 질병을 연구재료로 하는 의학이며, 빈곤자의 신체를 이용하여 의학적 실험을 행한다는 측면을 갖고 있다. 이런 의학적 연구의 성과는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을 것이며, 공적 부조를 위한 세금은 이 측면으로부터 회수할 수 있었다. 셋째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민간 의학 시스템이며, 사립병원 등의 비용이 높은 병원은 부자들의 전용이었다.

이처럼 영국에서 탄생한 노동력의 의학은 빈곤자에 대한 의료 부조, 노동력의 건강관리, 공중의생에 관련된 전반적인 [신체의] 검사를 축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을 매우 큰 위험에서 지키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었던 것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강제적인 검사에 강한 반감을 품게 됐다. “가난한 주민에게 큰 부담이 되는 건강 진단에 대한 정치적 싸움은 현대에 있어서 하나의 대항-품행의 활동으로서 살아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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