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클로드 르포르의 낡음과 새로움

解説 クロード・ルフォールのさとしさ

토나키 요테츠(渡名喜庸哲)

 

* 아래에 번역한 것은 클로드 르포르의 책 <민주주의의 발명>의 일역자 토나키 요테츠가 이 번역서에 붙인 해설이다. 평이한 내용도 있고 정보도 있기에 번역해둔다. 이 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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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번역한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다.

낡았다고 한 것은 단순히 이미 최초로 출판된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금세 읽을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직 소련이 세계에 대해 패권 중 하나를 쥐고, 동유럽의 민주화의 다양한 운동들을 억압했던 시대의 사건이다. 냉전 붕괴 이후, 이런 틀 자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낡고, 게다가 읽기 쉽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문체로 써진 책을 굳이 번역한 까닭은, 르포르가 지닌 뻣뻣하고 느릿한 충격을 전하는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이라는 시대에도 명확하게 손에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이, 이 책은 이후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한 가지 조류를 창시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런 영향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한쪽의 전체주의라는 말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학문적 검토를 받지 못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체제라면 어느 체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제멋대로 사용하기 좋은 형용사나 비판을 위한 욕설로 격하되고, 다른 한편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다수결이나 숫자 세기의 표대결 게임과 동의어인 양 회자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 과정(르포르라면 권력자본지식이 융합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민주주의전체주의에 대해 지금도 색이 바래지지 않은 근원적인 고찰이 르포르에게는 있을 터이다.

얼핏 보면, 소련형 혹은 프랑스형 공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는 르포르의 손놀림은 자유주의’, 더 나아가 보수주의에 의한 공산주의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을 비판하는 형태로, 르포르 나름의 전체주의 비판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르포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보이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반공서’로 읽는 것은 완전한 오독이다. 맑스를 공부하면서도 이른바 맑스주의와는 선을 긋는 르포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이나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됐을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사회에서조차도 왜 똑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조직화된 지배양식이 발견되는가, 그리고 좌파를 자칭해온 지식인들은 왜 이것을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쫓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르포르가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자유주의라는 구도 자체가 더 이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 포스트공산주의’(iv)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전체주의공산주의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체주의민주주의의 둘 다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의 모습을 한계까지 추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그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당분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로 그렇게 부르기에 알맞은가? 원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을 계속 제기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르포르의 딱딱하고 둔탁한 충격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과 경력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La Brèche, avec Edgar Morin et Jean-Marc Coudray, Paris, Fayard, 1968/2008〔『学生コミューン西川一郎訳合同出版一九六九年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 Genève, Droz, 1971/Paris, Gallimard, 1979〔『官僚制批判諸要素未邦訳

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Paris, Gallimard, 1972〔『マキァヴェッリ作品研究未邦訳

Un homme en trop. Essai sur « L’Archipel du Goulag », Paris, Seuil, 1975〔『余分人間──『収容所群島をめぐる考察宇京頼三訳未来社一九九一年

Sur une colonne absente. Écrits autour de Merleau-Ponty, Paris, Gallimard, 1978.〔『不在──メルロ= ポンティをめぐって未邦訳

Les Formes de l’histoire, Paris, Gallimard, 1978〔『歴史諸形象未邦訳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Paris, Fayard, 1981/1994.本書

Essais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le), Paris, Seuil, 1986.〔『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世紀)』未邦訳〕 ->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Écrire à l’épreuve du politique, Paris, Calmann-Lévy, 1992/Paris, Pocket, 1995〔『エクリール──政治的なるものにえて宇京頼三訳法政大学出版局一九九五年

La Complication ── retour sur le communisme, Paris, Fayard, 1999.〔『錯綜──共産主義への回帰未邦訳

Le Temps présent. Écrits 1945-2005, Paris, Belin, 2007.〔『現在── 一九四五年〇〇五年未邦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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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많은 논문을 집필했다.[각주:1] 또한 서문가序文家로서의 모습도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의 프랑스어 번역(Flammarion, 1985), 에드가르 키네의 『혁명(Belin, 1987), 단테의 『제정론(帝政論)의 프랑스어 번역(Belin, 1993)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필두로 하는 많은 저작에 서문을 붙였다.

 

클로드 르포드는 192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파리의 카르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만난다. 메를로-퐁티의 영향으로 맑스에 눈을 뜬 르포르이지만, 서서히 트로츠키주의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설에 포함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부감을 깨닫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해 위화감을 품는다. 전후 유네스코에서 근무한 후, 194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전후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한 르포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라는 그룹을 설립하고,[각주:2] 동명의 잡지에서 이미 동구권의 관료주의적 지배양식에 대해 호된 비판을 던졌다. 50년대에 작성된 논문 중 주요한 것은, 이후 관료제 비판의 요소들역사의 형상들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에서도 훨씬 더 지배억압의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스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주류파가 자치또는 자율을 지향한 하나의 혁명정당으로서의 활동의 방향성을 탐색한 반면, 르포르는 그 어떤 조직화도 경직화하고 억압장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도저히 감추지 못했고, 1958년에 갈라선다. 맑스주의적인 문제계를 르포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의 5장에서의 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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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Merleau-Po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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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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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르포르는 두 개의 중요한 논쟁을 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논집 인류학과 사회학(1950)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붙였는데, 이것에 대해 르포르는 51년에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논문 교환과 인간 사이의 투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특히 상징의 지위를 둘러싸고) 반론을 가했다.[각주:3] 다른 한편, 르포르는 실존주의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사르트르의 52년의 논고 공산주의자와 평화에 대해 『레 탕 모데른느195389호에 맑스와 사르트르를 발표하고, 사르트르가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을 동일시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고, 이 때문에 『레 탕 모데른느』와도 멀어지게 된다.[각주:4]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의 이별은 르포르에게 정치활동보다 대학에서 연구자·교육자로서 집필을 통한 정치철학의 이론화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5년부터 71년에는 칸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다. 거기서의 제자들로는 알랭 카이예, 마르셀 고셰, -피에르 르고프 등이 있다.

이른바 <685> 때에는, 옛 친구 에드가 모랭 및 카스토리아디스와 함께 곧바로 반응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공저 685: 균열(일역본 제목은 학생코뮌)을 같은 해에 저술했다(이 책의 장-마르크 크드레이는 카스토리아디스의 가명이다). 혁명의 주체를 학생운동에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급에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쳐놓고, 르포르는 학생반란에, 단지 대학 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대학으로 구현된 근대 산업사회 전반에 대한 재물음을 보고 있다. 동유럽의 민주화에 대해 논한 이 책에도 밑바탕에 깔린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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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논문을 레이몽 아롱에게 제출하고,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을 거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애드가 모랭과 함께 사회학·인류학·정치학의 영역횡단적 연구소”(현재의 에드가 모랭 연구소)를 지휘하고, 나중에 피에르 로장발롱과 함께 레이몽 아롱 정치학 연구소를 세운다. 1989년에 이 연구원을 퇴직한 후에도 정력적으로 집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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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의 르포르의 과제는, 1950년대부터의 관료제 비판의 작업에 의거하여, 후술하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출판을 필두로 하는 동시대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여분의 인간을 참조) 마키아벨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철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전체주의개념을 정밀화하고, 거꾸로 그것과 대쌍이 되는 형태로 민주주의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민주주의의 발명은 그런 일련의 작업의 성과에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조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르포르에게 그때마다의 친구들과 더불어 발간하고, 열띤 논고를 모은 몇 호의 잡지를 간행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잡지로 이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친구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과 새로운 잡지를 세운다는 단속적인 학술잡지를 통한 논의의 장이야말로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레 탕 모데른느이후에도, 68년에는, 현재는 현상학자로서 알려진 마르크 리실(이 책의 7장 참조) 등 브뤼셀자유대학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잡지 텍스처에 마르셀 고셰와 함께 참여하여 이 잡지의 편집에도 종사한다. 게다가 77년부터는 고셰와 더불어, ‘유토피아개념에 대한 사회사상사로 나중에 유명해진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등과 리브르를 창간한다(이 책의 1, 9장의 초출은 이 잡지이다). 이 잡지는 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부언하면, 리브르의 면면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함께 시도한 것이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재독해이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읽히는 자발적 복종론의 파이요 사의 문고판에는 당시에 쓴 고셰와 아방수르가 연명한 서문과 클라스트르의 라 보에티론에 덧붙여, 르포르의 <일자>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도 보이는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는 사상의 실마리를 라 보에티한테서 찾고 있는 것이다.[각주:5] 그 후 80년대에는 아방수르, 피에르 파셰, 니콜 로로 등과 새로운 잡지 과거/현재(Passé/Présent)를 창간하고, ‘개인이나 테러등을 테마로 특집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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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드 라 보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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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80년대에는 민주주의론, 혁명론에 덧붙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논고 등을 보탠 논집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19세기-20세기)을 저술했다. 이것은 본서와 나란히 르포르 정치철학의 이론적 고찰이 정리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서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면서 시사되고 있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중세적인 신학적 정치관의 현대적 잔존을 문제 삼는 중요 논문 신학-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은 특필할 만하다.

이 시기의 르포르의 활동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이론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1988년의 이른바 라쉬디[루시디]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만 라쉬디[루시디] 옹호위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 라쉬디[루시디]론은 1992년 간행된 에크리르에 수록되어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론이나 다른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사드, 토크빌, 기조 등에 관한 논고도 수록되어 있고, 르포르의 사상적 영향관계나 동시대적 관심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999년 간행된 착종은 부제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했지만, 물론 그때까지의 신랄한 공산주의 비판을 거친 말년의 변절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다시금 공산주의의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계획 하에서 이와 관련된 논고가 정리되어 있다. 2007년의 현재 : 1945-2005은 그때까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을 중심으로 모은 선집(anthology)이다.

최후의 르포르는 췌장암을 앓았다. 파리 좌안 7구의 벡(Beck)가에 있는 5층짜리 자택에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르내리기를 하고, 뤽상브르 공원에 나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전부터 친한 벗인 에드가 모랭이 뻔질나게 병문안을 한 보람도 없이, 201010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의 장례식 때, 모랭은 르포르의 죽음을 앞에 둔 스토아학파 같은 고귀함을 증언하고, 그를 “그 어떤 진보주의적 환상에도 양보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사상가, 그리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사상가를 그리워했다.[각주:6]

 

클로드 르포르를 어떻게 위치시킬까?

우노 시게키(宇野重規)는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조류들을 개괄하는 저서 정치철학으로에서, 거기에는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레이몽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또는 반-맑스주의적 흐름이다. 둘째는 알튀세르 이후의 맑스주의적 사상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비판이나 주체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및 클로드 르포르 등처럼 맑스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맑스주의 비판을 거쳐 전체주의 비판에 이르는 조류라고 한다. 우노의 정리에 따르면, 그 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은 알튀세르의 흐름에 속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뤽 낭시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포함한 그룹, ‘68년 사상을 비판하는 소르본 계열의 알랭 르노나 뤽-페리 등의 그룹, 그리고 아롱 및 르포르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을 중심으로 한 그룹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각주:7]

이처럼 르포르는 80년대 이후 복권이 외쳐지는 프랑스 정치철학의 하나의 원류를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르포르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절친인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서는 주요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한 에구치 칸(江口幹) 씨가 쓴 평전이 있으나,[각주:8] 르포르에 대한 연구 논문은 매우 적다.[각주:9] 르포르가 경원시됐던 것은 그의 난해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른바 정통파 맑스주의 사상은 물론, 실존주의에도, 구조주의에도 과감하게 논쟁을 걸고, 유행하고 있는 학파로의 귀속을 항상 거부했다는 독자적인 입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금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치철학복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돌이켜보면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1981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꽤 커다란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미 50년대부터 스탈린비판과 폴란드의 폭동(이 책의 10) 및 헝가리 봉기(이 책의 8, 9) 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68),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 등의 사건, 게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 50년대 말부터 집필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73년의 프랑스어 번역이 처음이었다 에 의해 소련 및 공산당을 근거의 하나로 삼았던 정당 및 사상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뚜렷한 조짐은 이 책의 11장에서 논하는 폴란드의 민주화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치의 겉 무대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의 구호와 더불어 소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프랑스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은 좌파연합을 실현시켰다(이 책의 4장 참조).

좌파연합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81년의 미테랑 사회당 정권을 실현시켰지만, 아무튼 그것이 다양한 모순이나 균열을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미테랑 정권이 사회주의적 기업 국유화 노선으로부터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대전환을 보였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상 면에서는 알튀세르의 맑스주의의 주축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다양한 사상 조류가 생겨난다. 대체로 <685> 이후, <>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혁명이론에 무게를 둔 사상으로부터, <좌익 급진주의>라고 불리는 극좌파조직이나, 3세계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이 활짝 꽃피게 된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얘기되는 앙드레 글뤽스만, 베르나르-앙리 레비 등 신철학(누벨 필로조피)”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에 의한, 미디어용 전체주의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더욱 광범위한 사상의 변동이 프랑스를 덮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치의 이름으로 경시됐던 종교윤리가 복권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일반적으로 인지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며, 유대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쪽에서도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가 회자됐다. 그리고 정치철학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해진 것도 역설적으로 이 시기이다. 그때까지 정치철학이라고 하면, 생산관계를 도외시한 부르주아 이론이라고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퇴조에 의해,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정치철학에 본격적인 주목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기에, 공산주의는 물론 실존주의로도 구조주의로도, 더 나아가 자유주의로도 공화주의로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바로 난간[그 무엇에도 기댈 곳] 없는 사고를 실천한 르포르는, 1983년의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정치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고,[각주:10]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이 부흥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각주:11] 르포르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많다. 맑스를 근본으로, 박사논문의 주제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보에티, 미슐레, 토크빌 등 과거의 사상가, 게다가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레이몽 아롱,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같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흔한 정치철학사또는 정치사상사로는 귀착하지 않는다. 제도로서의 정치(la politique)’와 그 배후에서 그 구체적인 현상형태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구별하고, 후자의 모습을 철학적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는 스승 메를로-퐁티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인 것의 현상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자세를 바탕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통저(通底)하는 현대의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특히 관료제와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도려내는 것,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자명시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이른바 이런 비판적 사회철학이야말로 르포르가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자세 때문에 르포르는 그 어떤 유파도 구성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은 폭넓다.

앞서 인용한 우노(宇野)가 서술하는 것처럼, 르포르 자신이 소속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레이몽 아롱 연구소의 정치철학자에 대한 영향은 물론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칸대학 시절의 제자인 마르셀 고셰에 의한, “근대의 탄생을 정치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관계로 파악하는 최초의 주저 세계의 탈마술화세[네] 권짜리 대작민주주의의 도래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신학정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르포르의 관점을 확대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각주:12]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피에르 마냉이나 필립 레노 등에 의한, 특히 토크빌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재평가나, 피에르 로장발롱의 대표제개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사의 시도도 크게 말하면 똑같은 조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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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르포르의 영향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상사나 사상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종교 등등 다양한 사회과학의 영역을 횡단하는 비판적 사회철학이라는 관점이야말로 르포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고셰와 마찬가지로 칸대학에서 르포르에게 배운 알랭 카이예와 장-피에르 르고프의 사회학적 경향을 지닌 정치철학의 시도를 언급해야 한다. 특히 르포르로부터의 영향을 자인하는 카이예는 모스의 증여개념을 기축으로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등의 사회과학 전체를 내다보는 영역 횡단적인 관점 하에서 연구 그룹 “MAUSS(사회과학에서의 반공리주의 운동)”을 수립하고, 동명의 잡지를 무대로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경제주의나 의회제 민주주의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공리주의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독파한 카이예의 자세는 바로 르포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3] 또한 르고프는 <685>의 사상의 비판적 총괄에서 출발하고, 르포르가 논하는 시대보다도 나중인 미테랑의 현대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프랑스의 정치적·사상적 변동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르포르 및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이론적 전거로 삼고, 매니지먼트적 사상이 기업이나 교육에 침투하는 온화한 야만이나 포스트전체주의시대에서의 전체주의그 자체의 변용된 모습을 그러내는 르고프의 작업 또한 르포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각주:14]

위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관계와는 별개로, 80년대 이후 프랑스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사상적 고찰과 르포르 사이의 공명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동시대부터, 특히 권력론이나 근대의 파악방식을 놓고 푸코와의 관계가 논해졌으며, 혹은 르포르가 말하는 근원적인 분열내지 항쟁, 리오타르에 있어서의 쟁론(le différand)’ 개념과의 가까움에 대해 주목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리오타르도 또한 과거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멤버였다. 혹은 정신분석과의 관계도 없지 않다. 이 책의 5장은 정신분석가 르네 마조르를 중심으로 한 잡지 Constellations의 연구회에 초청됐을 때 발표된 것이다. 혹은 르포르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이라는 생각의 원류로서,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라캉을 찾아내며, 르포르가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인 것실재적인 것을 정치사상에 응용했다고 파악하고, 게다가 이로부터 최근의 급진민주주의에 이르는 논리를 보는 해석도 제시되고 있다.[각주:15] 정신분석가이기도 했던 카스토리아디스의 상상적인 것과의 관계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참고로 세포국가를 주제로 하는 Constellations의 같은 호에는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적 패닉도 게재되어 있다.[각주:16] 또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 원래는 이 두 사람이 주최한 81년부터 82년에 걸친 정치적인 것의 후퇴를 주제로 한 연구회에서의 발표가 바탕이 됐다.[각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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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retrait du poli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nancy the retreat of the politica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다가 나중에 보듯이, 르포르의 정치철학의 근본에는 정치적인 것의 장소를 인민이나 군중같은 얼마간의 주체내지 실체에 의해 차지될 리가 없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소”, “공허의 장소로서 파악하고, 거기에서의 사회/권력의 분할, 혹은 실재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근원적인 항쟁을 통해서 사회라는 것이 구현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점에서 현대의 프랑스 사상에 공통되는 포스트정초주의의 흐름에 르포르를 위치시키고, 낭시, 알랭 바디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과 관련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각주:18] 다만 민주주의의 주체장소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예를 들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프랑스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사상가들과는 가까울 뿐만 아니라 거리도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가령 랑시에르는 주저 불화에서 이런 르포르에 있어서의 이런 미규정적인 장소로서의 인민내지 데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을 쟁점으로 했던 것이다.[각주:19]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실상형상화작품화’(, 제도화)로 회수되지 않는, ‘무한프락시스를 보고 있는 낭시의 생각은 오히려 르포르와의 가까움을 보여줄 것이다.[각주:20]

르포르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어권은 물론이고,[각주:21] 영어권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번역 소개나 독해가 진행되고 있다. 1인자로는 르포르 저작의 영어번역에 붙인 해설 등으로 그 사상의 보급에 진력한 딕 하워드가 있다. 또한 버나드 플린의 클로드 르포르의 철학은 프랑스어로 번역될 정도로 빼어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각주:22] 뉴스쿨포소셜리서치는 르포르의 사후 곧바로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공적을 칭송하고 있다.[각주:23] 프랑스에서는 20123월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166월에는 과거 르포르가 가르친 칸 근교의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에서 르포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expérience démocra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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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명에 대해

이 책에는 원래 독립적 형태로 각종 매체에서 공표된 11장이 2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초출은 원주를 참조). 그래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초판에 대한 서문말미에서 말하듯이, 전체는 하나의 논의로 관통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논의이다. 거기에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발명은 동쪽에서 온 온갖 이의제기, 온갖 반항이라고 간주되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369). 1부와 제2부의 표제를 각각 따오면, 전자가 전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전체주의 개념의 이론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이론편이며, 후자는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반소련적·반전체주의적 봉기를 이런 민주주의의 발명새로운 조짐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각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첫머리에서 옮긴이의 요약을 붙여두었기에 자세한 것은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주 간단하게 전체의 흐름만 확인해두면, 1장과 2장이 가장 이론적인 장으로, 전자에서는 인권개념을 축으로 근대의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고, 후자에서는 바로 전체주의의 논리가 정면에서 논해지고 있다. 3장은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스탈린주의와의 관계, 4장은 70년대의 프랑스 공산당·사회당의 좌파연합, 5장에서는 르포르 자신이 과거 맑스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빼져나갔는가라는 구체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각 장의 후반부에서 전체주의의 개념 그 자체의 이론화가 시도되고 있으며, 서로 공명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6장에서 (주로 소비에트에서의) 반체제파의 문제, 7장에서 혁명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결하게 논의된 후, 7장부터 9장에 걸쳐서 1956년의 헝가리 봉기(동란), 10장에서는 같은 해의 폴란드의 이른바 포즈난 폭동이라는, 스탈린 비판 이후의 반소련의 민중봉기가 다뤄진다. 11장은 같은 폴란드에서 80년대부터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르포르의 기본 테제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가, 그 개략을 확인해두자.

르포르는 다양한 표현으로 전체주의를 특징짓고자 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은 <하나인 인민(Peuple-Un)>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첫째로, 르포르가 논적으로 삼은 기존의 공산주의 사상과의 관계에서도, 둘째로 르포르의 또 다른 열쇠 개념인 분할의 철폐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선 곳곳에서 이뤄지는 르포르에 의한 기존 공산주의 비판의 요점은, 공산당부터 트로츠키주의자, 좌익급진주의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전체주의라는 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히 파시즘과 나치즘에는 비판을 향했지만, 싸워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이라고 하며,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를 보려고 하는 비판은 자본주의에 이로울 뿐이라고 기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포르에 따르면, 그들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은 사실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가를 인민의 의지와 권력에 종속하는 하나의 국가로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 아래에서 국가가 사회와 일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바로 이 발상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상이한 차원의 구별을 철폐했지만, ‘권력의 특이성을 깨닫지 못하고, 관료제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그 특질을 분명히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르포르에 따르면, 바로 이 점이야말로 전체주의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민사회의 분할이 철폐되고, 하나의 신체를 이루듯이, 인민=프롤레타리아트로 융합한다는 생각이다. 5장의 제목이 적절하게 말하듯이, “신체의 일체성이야말로 문제이다(143). 이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2장 및 3장에서 인용되는 스탈린에 대한 트로츠키의 말이다(52, 99). 거기에서는 짐은 국가이다라고 말하는 루이 14세에게 나는 사회이다라고 말한 스탈린이 대치되어 있는데, 루이 14세의 시대는 아무리 절대왕정이었다고 해도, ‘사회의 부분이 그 외부에 남겨져 있었던 반면에, 스탈린의 전체주의에서는 <>을 매개로 하여 국가도 사회도 인민도 모든 것이 하나의 신체혹은 조직을 이루게 해서, <일자>로 환원된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파는 이런 사회의 외부에 추방해야 할 <타자>, 신체의 건전한 일체성을 위협하는 기생자라고 지목된다. <하나인 인민>인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내부에 분할이나 항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다양한 분할이 철폐된 <하나인 인민>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추상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에서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할의 철폐란, 구체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생산, 교육, 과학연구, 사법, 문화 등 본래 독립적이어야 할 시민사회의 각 영역에 침입한다는 사태를 동반하고 있다. 이런 영역들은, 비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독립된 가치를 지니며, 그 나름대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에서는,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법적 차원, 문화적 차원, 미적 차원, 과학적 차원, 교육적 차원 등의 분할까지도 철폐되고(르포르가 곳곳에서 말하는 <권력>, <>, <지식>이라는 것은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심급을 가리킨다), 법적으로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가, 학문적으로 무엇이 참인가, 교육기관에서 무엇이 가르쳐져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판단되는가 등등이 <하나인 인민>의 논리에 기초하여 결정되어 버린다 각각의 영역에 더 이상 독립된 판단을 내리는 심급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르포르는 이런 융합을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관료조직의 작동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기업적 논리가 침투하고, 관료 조직이 금융계나 산업계로부터의 압력에 종속한다는 구조도 물론 시야에 넣고 있다는 것도 부언해두자. <권력>, <>, <지식>에는 물론 <자본>도 보태진다.

이처럼 르포르는 전체주의에서의 표상이나 상징의 작용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소비에트적인 지배양식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거기로부터 이론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상징의 차원과 현실/실재의 차원을 구별한 뒤, 그 양자를 오가는 형태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려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얘기되듯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실/실재에 사회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것을 악마화해 버리는 그 전능함을 천진난만하게 상정하는 것의 단적인 물구나무 세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르포르에게 전체주의에 의한 상징적인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실재에 있어서는 다양한 분열이나 항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균열’(221, 319)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균열을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민주주의의 발명조짐을 읽어내는 작업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대중봉기를 논하는 2부의 주제이다.

이런 현실[실재]적인 균열에 기초하여, 르포르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가? 르포르에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까지 봤던 전체주의 사회의 물구나무 세우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와 사회, 사회 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권력>, <>, <지식> 등등의 각 차원도 분리해야 하는 사회이다. ,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민에게 <권력>의 원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외재적인 <>에 제약되어야 하며, <지식>도 독립된 장소를 갖고 이어야 한다고 간주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인민(peuple)’ 그 자체가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고 일체화를 거부하고, 내부에 균열이나 항쟁을 들여온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르포르가 이따금 이의제기권리요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각의 인민은 스스로의 권리에 기초하여, 혹은 현실/실재로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을 향해, ‘인민그 자체가 쥐고 있다고 하는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 보면, ‘인민은 항상 완전한 일체를 달성하는 것이 없으며, 말하자면, “인민의 동일성은 끊임없이 물음에 부쳐진다”(150). 민주주의 사회가 내부인 이타성의 시련을 겪는다고 얘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129).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사회와 사회 그 자체의 분리로부터 새로운 사회가 끊임없이 산출되는 것이다.

참고로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조짐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민중봉기에서 찾아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그런 예외적인 사태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르포르가 보통선거의 상징적 의미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 보통선거는 인민의 의지의 발현이며 새로운 사회조직의 정초인 동시에, 일체적인 것이라고 상정된 인민이 개별적인 수로 세어질 수 있는 단위로 변환되고”, 사회의 해체가 모방되는 계기라는 것이다(122-123). “수가 일체성을 해체하고, 동일성을 무화한다고도 얘기된다(149). 여기에 있는 것은 보통선거를 통한 이의제기라는 현실주의적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통선거를 통해 바로 사회라는 장소가 결코 일체화할 수 없는 항쟁의 장소로서 드러난다는 그 상징적인 작용이 문제인 것이다. 르포르가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를 굳이 원용한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속표지에 그려진 괴수 리바이어던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군중이, 개개의 다수의 군중으로서 가시화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각주:24]

헌데, 그렇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인민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는 권력이란 어떤 장소를 갖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그것은 인민이 스스로를 물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산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다”(57).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은 공허한 장소(lieu vide)”, “정의상 점유할 수 없는 상징적인 장소이다(91). 참고로 르포르는 권력, 인민이 자율 혹은 자주관리를 위해 기피해야 할 것으로도, 똑같은 목적을 위해 탈취해야 할 것으로도 파악하지 않는다. 르포르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곳곳에서 얘기되듯이, 사회 공간을 질서화하고,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상화또는 제도화하는 차원이다. ‘권력이 어떤 방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형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나인 인민>에 있어서의 <권력>, <>, <지식>의 융합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해, “공허한 장소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민의 내적 항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대치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단순한 이항대립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항쟁적 민주주의의 실천으로의 유혹이 르포르의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니며, 20세기의 정치경험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에 기초한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권력의 장소를 둘러싼, 정치사상사적인 이해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적해둔다.

문제는 1장이 다루고 있듯이, 근대 민주주의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점에 있다. 르포르는 이것을 중세 봉건제로부터의 해방으로서 파악하는 것도,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주체화의 전단계로서의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의 신학정치적인 정치체로부터의 모종의 연장선상에서 근대민주주의의 도래를 파악하고, 그 위에서 양자의 차이를 봄으로써, 더욱이 이로부터의 전체주의로의 변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5장에서 상술되듯이, 이 논의는,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가지 신체론에 근거하고 있다.[각주:25] 근대 이전까지는, 주권자로서의 왕은,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구체저인 신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징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로 이어지는 초월적 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인 신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 구상화된 외재적·초월적 질서야말로, 하나의 국가의 일체성을 떠받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의의가, 왕의 신체가 파괴된다, 혹은 지금까지 초월적인 질서와 세속적인 질서를 연결했던 머리가 잘려짐으로써, 그때까지 하나의 신체를 이루었던 국가가 탈신체화(désincorporation)’한 점에서 본다(24, 149). 이런 외재적·초월적 질서 간단하게 말하면 <>의 질서 야말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이며, <권력>, <>, <지식> 등 다양한 심급을 묶었지만, 이 연결이 해소되고, 각각의 심급이 독립해가는 과정이 탈착종화(désintrication)”이다(25). 근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이런 탈신체화·탈착종화야말로, 앞에서 본 권력공허한 장소를 낳게 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권력>의 원천 내지 근거를 지금까지처럼 외재적·초월적인 질서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란 권력, , 지식이 근본적인 미규정성에 노출된 사회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자신 속에 양의성또는 모순을 본질적으로 품고 있다. 권력의 장소는 이제 외재적 원천을 갖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닌”, “공허한 장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은 인민자신 속에서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공허한 장소에, 현실적인 실체라고 상정된 대문자 <인민>삽입되고, 바로 그것이 권력의 주체라고 간주되자마자, 그 사회는 <하나인 인민>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를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내부인 타자를 대문자의 <타자>화하고, 이것을 외부의 혹은 기생자로서 배제할 것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의 이유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는 동시에, 그 이행을 방해하기 위한 이의제기, 권리요구 등 내적 항쟁의 실천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정당성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인 신체>로서 응고되고, 전체주의로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항상 내적 항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수화시키고, 스스로를 재창출=재발명(réinventer)필요가 있는 것이다(369).

 

위와 같이, 약간은 고풍스러운 대상을 다루고, 복잡한 논리에 입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시도가 어떤 것인지, 그 현실[실재]적 및 상징적 작용을 철저하게 캐묻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 민주주의라는 것의 윤곽을 밝히려고 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판 간행 당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도, 전제하고 있는 지적 틀도, 현재에서 보면 오래됐음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우 30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망각하기에는 충분히 길지만,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에는 적당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눈앞에 있던 것은 과연 민주주의였는가? 만일 민주주의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면, ‘전체주의는 형태를 바꿔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을 생각하기 위해 약간 관점을 과거로 물리는 것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결코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1. 일본어로 번역된 주된 논문으로는 다음이 있다. 「民主主義という問題」(本郷均 訳, 『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二〇世紀)』 수록), 「人権と政治」(松浦寿夫 訳, 『現代思想』, 17巻 12号, 1989年 ; 18巻 4号, 1990年(이 책에 수록), 「デモクラシーの社会学のために」(竹本研史 訳, 『アナール 一九二九―二〇一〇』, 第3巻, 藤原書店, 2013年). [본문으로]
  2. 그 중 카스토리아디스의 논문을 모은 것은 이미 일본어 번역이 있다. 『社会主義か野蛮か』(江口幹 訳, 法政大学出版局, 1990年). [본문으로]
  3. C. Lefort, « L’échange et la lutte des hommes », Les Temps modernes, nº64, 1951.(『歴史の諸形象』 수록). [본문으로]
  4. 일련의 논쟁은 다음의 일본어 번역에서 읽을 수 있다. サルトル, ルフォール, 『マルクス主義論争』, 白井健三郎 訳, ダヴィッド社, 1955年. [본문으로]
  5. E. de la Boétie, Le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Paris, Payot, 1976. [본문으로]
  6. E. Morin, « Claude Lefort(1924 -2010). Avec Lefort », Hermès, La revue, no. 59, 2011. [본문으로]
  7.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48頁 이하. [본문으로]
  8. 江口幹, 『疎外から自治へ──評伝カストリアディス』, 筑摩書房, 1988年.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르포르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으나, 특히 エンツォ・トラヴェルソ의 훌륭한 책인 『全体主義』(平凡社新書, 2010年)의 관련된 부분은 유익하다. 또한 佐々木允臣 씨가 법학(특히 인권론) 분야로부터 일관되게 르포르를 논하는 것은 특필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佐々木允臣, 『自律的社会と人権』, 文理閣, 1998年을 참조. 이 밖에도 松葉祥一, 「民主主義の両義性──クロード・ルフォールと「政治哲学」の可能性」(『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 및 宇野重規, 「メルロ=ポンティ/ルフォール 身体論から政治哲学へ」(『現代思想』, 36巻 16号, 2008年)도 참조. [본문으로]
  10. 「民主主義という問題」, 일역본 앞의 논문, 40頁. [본문으로]
  11. 프랑스의 학술지 『정치와 사회』의 2003년의 “프랑스에서의 정치철학의 회귀”를 주제로 한 특집호에서 편집자들은 르포르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G. Labelle et D. Tanguay(eds), « Le retour de la philosophie politique en France », Politique et société vol. 22, no. 3, 2003. [본문으로]
  12. M. Gauchet,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Gallimard, Paris, 1985 ;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 Gallimard, t. 1 , t. 2, 2007, t. 3, 2010. 이하도 참조. マルセル・ゴーシェ, 『民主主義と宗教』, 伊達聖伸・藤田尚志 訳, トランスビュー, 2010年. [본문으로]
  13. アラン・カイエ, 『功利的理性批判──民主主義・贈与・共同体』(藤岡俊博 訳, 以文社, 2011年)을 참조. [본문으로]
  14. ジャン=ピエール・ルゴフ, 『ポスト全体主義の民主主義』(渡名喜庸哲・中村督 訳, 青灯社, 2011年)을 참조. 또 최근에는 남프랑스의 한 마을로부터의 정점 관측에 의해, 20세기의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형을 묘사하고 있다. 『プロヴァンスの村の終焉』(伊藤直 訳, 青灯社, 2015年)을 참조. [본문으로]
  15. W. Breckman, Adventures of the symbolic : post-Marxism and radical democrac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본문으로]
  16.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フィリップ・ラクー=ラバルト, 「政治的パニック」, 柿並良佑 訳, 『思想』, 岩波書店, 1065号, 2013年. [본문으로]
  17. P. Lacoue-Labarthe, J.-L. Nancy(dir.), Le retrait du politique, Galilée, 1983. [본문으로]
  18. O. Marchart, Political Difference in Nancy, Lefort, Badiou and Laclau,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7. [본문으로]
  19.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 『不和あるいは了解なき了解──政治の哲学は可能か』, 松葉祥一 dhl 訳, インスクリプト, 2005年, 167頁. [본문으로]
  20.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民主主義の実相」, 『フクシマの後で』, 渡名喜庸哲 訳, 以文社, 2012年. [본문으로]
  21. 특히 다음이 중요하다. C. Habib et C. Mouchard,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 Éditions Esprit, 1993 ; H. Poltier,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 Genève, Labors et Fides, 1998 ; N. Poirier(éd.), 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éxpérience démocratique, Le Bord de l’eau, 2015. [본문으로]
  22. B. Flynn, The Philosophy of Claude Lefort,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5. [본문으로]
  23. 그 기록은 우선 정치철학계의 학술지에 게재되고(Constellations, vol. 19, no. 1, 2012), 더 나아가 다음의 증보판으로 출간됐다. M. Plot(ed.), Claude Lefort. Thinker of the Political, Palgrave Macmillan, 2013. [본문으로]
  2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ジョルジョ・アガンベン, 『スタシス──政治的パラダイムとしての内戦』(高桑和巳 訳, 青土社, 2016年)을 참조. [본문으로]
  25. エルンスト・カントーロヴィチ, 『王の二つの身体』, 小林公 訳, ちくま学芸文庫, 2003年.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Jacques Rancière, “The Thinking of Dissensus: Politics and Aesthetics”, Reading Rancière, eds., Paul Bowman and Richard Stamp, Continuum, 2011, pp.1-17.


* 아래의 글은 <말과 활> 9호에 수록된 것으로, 각주 등 잡지에서 삭제되거나 축약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원래 <이미지의 운명> 후속 작업으로 예정됐던 것이다. http://multitude.co.kr/363 빨간 색은 위의 영어판 쪽수이다. 

주요 번역어에 대해 미리 알려둔다. dissensus(불어도 dissensus)disagreement(불어로는 mésentente)는 각각 불일치와 불화로 옮긴다.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는 옮긴이의 말을 참조. sensesensory, sensible, sensibility 등에 대해 : 하나의 글에서 sensesensation이 같이 쓰일 경우, 전자는 대체로 의미, 후자는 감각(작용)으로 옮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랑시에르가 사용하는 sense는 대체로 의미와 감각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가지면서도 의미를 포괄하는 감각이라는 뜻이 강하다. 따라서 sense를 일관되게 감각으로 옮긴다. 그리고 다소 편의적으로, sensory는 감각적, sensible는 감성적, sensibility는 감성능력(감수성) 등으로 옮긴다. sensory는 감관적, sensible는 감각적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distributionpartition : distributionpartage의 영어 번역어인데, partage는 공유와 분할이라는 뜻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distribution은 대체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는 나눔으로 일관되게 옮긴다. 반면 partition분할로만 옮긴다. 그리고 영어의 divisionseperation과 마찬가지로 분리로 옮긴다. (re)framing‘(다시) 틀을 짜다라는 의미에 준하여 다양하게 번역했다. (re)configure, (re)configuration()배열하다, ()배열형태, 배열을 다시 하다, 배열을 다시 짜다 등으로 옮겼다. place(s)는 일관성 때문에 자리로 옮겼지만, 때로는 장소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 있다. 읽을 때 참고하기 바란다

* 주요 번역어 중 incorporation은 '체내화'로 옮긴다(2017년 4월 14일 추가).




불일치를 사고하기 : 정치와 미학[주1]

자크 랑시에르

[303]

정치와 미학을 불일치라는 개념 아래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분명히 불일치는 정치와 미학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에 관한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불일치 개념은 정치와 미학 자체를 사유할 수 있는 이론적 무대를 설치하는 동시에, 정치의 대상과 미학의 대상들을 한데 묶는 관계의 종류도 설치한다.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불일치란 감각과 감각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 , 동일자 안에서의 차이를, 대립자의 같음을 뜻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정치를 불일치의 한 형태라고 간주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불일치를 공동체의 어떤 본질에서도 연역해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이 이 본질을 의사소통적 언어와 같은 공통적 특성의 성취[발휘]에 입각해 긍정적[304]으로 연역하든(아리스토텔레스), 아니면 만인에 대해 만인이 설정하는 파괴적 본능에 대한 응답에 입각해 부정적으로 연역하든(홉스) 말이다. 공통적인 것이 분리[분할]됐기 때문에, 정치가 있다. 이제 이 분리[분할]는 수준의 차이가 아니다. 감각과 감각 사이의 대립은 감성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 사이의 대립이 아니다. 정치적 불일치는 기저에 깔린 사회적·경제적 과정을 현시하는 외양이나 형태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개념규정을 참조한다면, 계급전쟁은 정치의 현행적 실재(actual reality)인 것이지 그 감춰진 원인이 아니다.

[주1] 이 텍스트는 2003916-17일 런던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영국정치학회의 포스트구조주의 및 급진정치와 마르크스주의전문가 집단이 조직한 컨퍼런스인 불화에 충실하기 : 자크 랑시에르와 정치적인 것(Fidelity to the Disagreement: Jacques Rancière and the Political)에 발표된 글을 약간 수정하여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이 컨퍼런스를 조직한 Benjamin Arditi, Alan Finalyson, James Martin에게 감사드린다

첫 번째 점에서 시작하자. 나는 불화에서 정치적 동물이란 말하는 동물이라는 저 오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재검토했다. 어떤 비판가들은 이를 고전으로의 복귀라고 봤다. 그들에게 이것은 데리다의 탈구축이나 리오타르의 쟁론(differend)’을 무시하고 낡은 언어관과 낡은 주체 이론으로 회귀했음을 뜻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우리를 오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하는 동물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들이 정치적 삶에 대한 기질을 갖고 있다는 인간학적 정의로 회귀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는 말하고 토론하는 인간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관념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능력을 쾌락과 고통을 표현하는 목소리라는 단순히 동물적인 능력에 대립시켰다. 아무튼 이와 반대로 나는 이 공통의능력이 아주 처음부터 균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노예는 언어를 이해하고 있으나 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불일치가 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말하는 것이 말하는 것과 똑같지 않기 때문에, 한 감각이 뜻하는 바에 관한 합의조차도 없기 때문에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적 불일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놓고 대결하는 말하는 인간 사이의 토론이 아니다. 정치적 불일치는 말하는 자와 말하지 못하는 자에 관한 갈등이며, 고통의 목소리로서 들려야 하는 자와 정의에 관한 논증으로서 들려야 하는 자에 관한 갈등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계급전쟁이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대립된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가에 관한 갈등, 스스로를 사회적 이해관계를 경영[관리]할 수 있는 자로서 수립하는 자들과 그들의 생명을 재생산할 수 있을 뿐이라고 추정된 자들 사이의 투쟁인 것이다.

[305]나는 정치란 공동체를 향한 인간의 소질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철학자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식으로 연역해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공통의 감각적 성질이 이미 불일치의 단계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방법론적 언급을 하도록 이끈다. , 불화는 내 이론화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방법이기도 하다. 내게 어떤 저자나 어떤 개념을 제시한다는 것은 우선 불화를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는 것을, 차이의 조작자[연산자]를 검증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 이것은 나의 이론적 조작이 항상 어떤 문제의 배열형태(configuration)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고전으로 복귀한다고 의심하는 똑같은 비평가들은 내가 불화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전면개정판)]에서 정치와 치안을 구별한 것이 정치의 순수성에 대한 탐구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치와 치안의 구별을 조직화 대 자발성이라는 포퓰리즘적대립의 잔여물로 간주하고, 해체론자들은 이 구별을 동일성의 낡은 형이상학으로의 무비판적 복귀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나 해체론자들은 모두 내 논증이 갖고 있는 논쟁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 분석은 그런 순수성 관념에 도전하고 이것을 전복하는 것을 전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 내가 한 분석은 1980년대의 프랑스에서 우리를 거의 압도했던 이른바 정치적인 것의 복귀나 정치로의 복귀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당시 우리는 도처에서 다음과 같은 모토를 들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이제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에, 사회적 이해관계에, 사회적 갈등과 사회적 유토피아들에 종속되는 것으로부터 잘 빠져나왔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의 진정한 의미란 공적 무대에서의 행위이다, ‘함께 있음의 현시이다, 공동선에 대한 탐구이다 등등으로 보는 견해로 복귀했다. 이런 복귀의 철학적 기반은 주로 두 명의 철학자들, 즉 레오 스트라우스와 한나 아렌트에게서 나왔다. 이 두 사람은 모종의 방식으로 그리스 철학의 유산을 근대의 통치적 실천에 끌어들였다. 두 이론가들은 공적 행동과 공적 말하기의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사회적 필연성[필요]의 영역 사이의 대립을 강조했다. 이들의 논점은 강력하게 부활했다. 심지어 이들은 경제주의자생주의라는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대립을 진정한 혁명적 실천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런 결합은 프랑스의 1995년 파업 동안에 명백해졌다.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비난과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혼동에 대한 아렌트적 비난이 한데 합쳐졌고, [이런 결합은] 파업가담자들이 옹호했던 낡은 특권에 맞서 공동선과 공동체의 미래를 담당하는 정부의 정치적 용기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지지의 담론이 되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것의 순수성으로의 복귀는 사실상 정치적인 것을 국가 제도와 정부[통치]적 실천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복귀를 뜻한다는 게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내가 정치의 특정성[종별성]을 정의하려고 시도한 것은, 무엇보다 우선, 순수 정치로의 복귀라는 주류의 관념에 도전하려는 시도였다.

순수정치란 없다. 나는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이하 열 가지 테제)를 주로 특정한 정치적 영역과 정치적 삶의 방식이라는 아렌트적 관념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 열 가지 테제는 정치에 관한 그녀의 정의가 악순환을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이것은 그네들의 삶의 방식이 그네들을 정치로 이끌 운명에 처해 있던 자들의 삶의 방식을 정치와 동일시한다는 것을 뜻한다[옮긴이: 이 문장은 랑시에르가 곧바로 얘기하듯이 순환논법이다]. 그것은 아르케의 순환이며, ‘시작의 권력에 있어서, 권력을 행사할 소질이나 자격에 있어서 권력의 행사의 예상이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소질이나 목적지라는 관념에 놓여 있다. 정치적 삶과 비-정치적 삶 혹은 벌거벗은 생명사이의 대립이라는 관념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내가 치안이라고 부른 것의 전제가 바로 이런 나눔[분배]이다. , 집단과 개인에게 특정한 능력에 따라 할당된 자리와 기능들을 갖고서 집단적 신체로서의 정치공동체를 배열(configuration)하는 것이다. 권력은 지배할 자격이라고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속해 있다고 단언함으로써 이런 전제가 깨질 때, 거기에 정치가 있다. 이것은 권력의 행사를 위한 기반이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치를 위해 태어난 자들과 경제적·사회적 필연성의 벌거벗은생명을 위해 태어난 자들을 분리하는 경계선이 의문에 부쳐질 때, 거기에 정치가 있다.

이것은 정치적 삶이란 없으며 정치적 무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적 행동은 사회적’, ‘경제적혹은 가정적이라고 간주되었던 것이 정치적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정치적 행동은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데 있다. ‘가정적행위자들(가령 노동자나 여성)이 자신들의 다툼(quarrel)을 공통적인 것과 관련된 다툼으로 재배열할(reconfigure) 때마다, 즉 어떤 자리가 그것에 속하[307]는지 속하지 않는지에 관련된 다툼으로, 그리고 누가 공통적인 것에 관해 언표행위를 하고 시위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관련된 다툼으로 재배열할 때마다, 정치적 행동은 일어난다. 그러므로 분명해져야 하는 것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불화가 있을 때, 정치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에서 분리하거나 공적인 것을 가정적인 것에서 분리하는 경계선이 의문시될 때, 정치가 있다. 정치는 정치적인 것을 비-정치적인 것으로부터 재-분할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치는 일반적으로 자리를 벗어나서”, 정치적이라고 간주되지 않았을 터였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분석에서 몇 가지 귀결들을 끌어내보자. 첫째, 이것은 나의 정치관이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주2]. 확실히, 이것은 정치를 공통적인 것의 윤리적 관념 위에 정초하기를 거부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행동 일반의 가치나 원리를 선언하는 심급으로 간주된 윤리가 일련의 실천들로서의 정치를 규제해야 한다는 관념을 의문에 부친다. 이런 관념에 따르면, 정치를 윤리 속에 정초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재앙과 공포가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말하고 싶다. 조지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의 시대에는 윤리적 갈등이 정치적 갈등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훨씬 더 과격하게 일어났다. 그러므로 정치는 윤리적 갈등의 폭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적대(antagonism)의 특정한 실천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주2] 이 점에 관해서는 Thomson, 2003을 참조

하지만 나는 정치를 단순한 경합적 도식(agonistic schema)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이 도식에서는 내용이 뭔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적대에 관한 슈미트적 정식화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정치는 자신의 보편을, 자신의 고유한 척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평등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척도는 결코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wrong)의 상연·연출을 통해서만 적용된다. 하지만 모든 잘못이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건 아니다. 내가 제시한 테제에 맞서서, 피압제자들 사이에는 종교적 광신이나 민족적 동일성주의(ethnic identitarianism)와 불관용에 의해 형성된 반-민주적인 시위 형태들도 있다고 주장된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이것이 불일치에 관한 나의 개념규정이 갖고 있는 맹점이라고 지적했다(Laclau, 2005, p.246~). 하지만 내 견해에 따르면, 잘못이 정치적 행동의 토대를 상연·연출[주3]할 때, 잘못이 정치적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때의 정치적 행동이란 평등의 단순한 우연성이며, 이것은 분명히 [308]피의 순수성이나 종교의 권력 등등을 요구하는 포퓰리즘적(popular)’ 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형태의 시위에 대해서도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이름의 낙인을 찍으려는 널리 퍼진 경향을 거부한다.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은 구-마르크스주의자들과 젊은 자유주의자들이 복지[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과 인종적 혹은 종교적 폭동을 한 바구니 안에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꿀꿀이단지이다.

[주3] 이하 enactment는 상연·연출, enact는 상연·연출하다로 옮긴다. 이 영어 단어는 불어의 acte(r)에 해당된다. 따라서 법적 인정이나 법의 제정 등을 뜻한다. 그러나 랑시에르가 이 단어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는 특히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영역본에 자주 등장하는데, 대체로 상연, 공연이라는 뜻에 가깝다

인민은 두 개의 대립된 것들, 즉 데모스(demos) 혹은 에트노스(ethnos)에 대한 이름이다. 에트노스는 똑같은 기원을 갖고 똑같은 땅에서 태어나거나 똑같은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신체와 동일시된 인민이다. 다른 신체들에 대립된 신체로서의 인민이다. 데모스는 공동체의 부분들(parts)에 대한 보충(supplement)으로 이해된 인민이다. , 내가 셈해지지 않은 것의 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데모스는 여기나 저기에서 태어났다는 단순한 우연성의 기입이다. 이 기입은 지배하기 위한 그 어떤 자격부여와도 대립된다. 또 데모스는 그런 평등의 입증(verification) 과정을 통해, 불일치의 형태들의 구축을 통해 출현한다. 이제 분명한 것은, 차이가 단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데모스의 삶은 에트노스로부터의 그 점증적인 분화(differentiation)의 과정이다.

둘째, 이것은 내가 정치를 봉기라는 예외적이고 사라지는 순간들로 환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 원칙의 단순한 상연·연출은 (순수성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 순수성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는 많은 혼동된문제와 갈등 속에 존재하며, 정치는 기억, 역사 쪽으로 향해간다. 정치의 역사적 동학이라는 것이 있다. , 시간의 정상적과정을 깨뜨리는 사건들의 역사, 주체화의 기입과 형태들의 역사, 약속의 역사, 기억의 역사, 반복의 역사, 예견과 시대착오의 역사가 있다[주4]. 예외를 과정에 대립시키는 지점은 하나도 없다. 과거를 어떻게 개념규정할 것인가가 논란거리이다. 내가 그렇게 보듯이, 정치의 역사는 경제적·사회적 발전과 더불어 진행되는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다. 정치의 역사는 그 어떤 운명적인[이정표적인]’ 플롯이든, 이런 플롯들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주4] 열 가지의 테제에 관한 논의에서 내가 믹 딜런(Mick Dillon)에게 한 응답을 보라(Rancière 2003a).

셋째, 정치와 치안의 대립은 정치가 그 어떤 고유한대상도 갖고 있지 않으며, 정치의 모든 대상은 치안의 대상과 뒤섞인다는 진술에 딱 들어맞는[309]. 예전에 쓴 어떤 텍스트에서 나는 정치의 과정과 치안의 과정의 마주침(혼동’)의 장에 정치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Rancière 1995를 보라). 내가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황의 틀을 다시 짜는 정치적 개입의 가능성은 그런 식으로 이해된 정치적인 것의 일정한 설정으로부터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는 것에 맞서서, 민주적 과정이 기입되어 있는 모든 것들, 즉 헌법전들에, 국가의 제도들에, 여론 기구들에, 언표행위의 주류 형태들 등등에 기입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이 행하는 몫[부분]을 강조했다. 이것이 나를 몇몇 급진적인 정치사상가들과 명확하게 변별시켜주는 한 가지 점이다. 이들은 [정치를] 국가제도의 운용과 혼동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정치의 근본성을 따로 떼어내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를 우리네 서구 사회의 국가 형태와 삶의 방식으로 간주할 뿐인 알랭 바디우는 내가 그런 합의적 견해를 고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급진적인 정치적 행위의 리스크를 다수파의 민주적 법에 의해 제공된 초월론적 보증인의 법률주의적 논리에 대립시킨다[주5]. 하지만 나는 민주적 과정을 우리 국가들의 기능과 결코 동일시하지도, 혹은 다수파의 법에 의해 제공된 기회주의적인 보험’(지젝)과 동일시하지도 않았다. 나는 민주적 과정을 정치적 보충과 동일시했는데, 이 보충은 이런 기능을 아무나(anyone)의 권력과 대결시킨다. 국가의 기능을 와해시키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가의 기능을 정초하는 아무나의 권력과 말이다. 불평등한 질서는 그 평등주의적 전제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거꾸로 평등주의적 투쟁 자체는 종종 공통적인 것에 관한 치안의 서술을 무기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적 투쟁에서 성적 상호보완성(complementarity)이라는 의학적·도덕적·교육적 표준이 맡았던 역할을 생각해보자. 혹은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노동의 소유에 대한 참조가 했던 역할을 생각해보자. 평등은 자신의 고유한 어휘나 문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저 시학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주5] 알랭 바디우는 메타정치(Metapolitics, 2005)에서 나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민주주의적 덫이라는 지젝의 비판은 정치에서 생명정치로 그리고 되돌아가기(From Politics to Biopolitics . . . and Back)(2004)라는 글에서 가장 명료하게 이뤄졌다

정치는 치안의 바깥에 있는 자리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나에 대한 몇몇 반론가들과 견해를 같이 한다(Thomson 2003 참조). 치안의 바깥에는 [정치가 들어설] 그 어떤 자리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할당하는 자리들을 가지고 뭔가를 행하는 갈등적인 방식이 있다. 자리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재형성[310]하거나 강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내가 열 가지 테제에서 상기시켰듯이,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공간은 이런 자리 옮김(displacement)에 의해 열려지게 됐다. 처음에는 구역을 의미했던 데모스가 정치의 주체의 이름이 되었을 때 말이다.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세 개의 데모스들을 클레이스테네스가 하나로 합쳐서 아테네 부족들을 재형성했을 때, 그렇게 됐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조치이다. , 그것은 정치적 공간의 자율성을 구성했던 동시에 귀족계급에게서 지역 기반의 권력을 빼앗았다.

여러 논평가들이 강조했듯이, 이것은 내가 공간적 범주들이나 은유들을 사용한 것에 관해 더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주6]. 민주주의의 공간에 관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데모스의 경계획정은 물질적인 문제인 동시에 상징적인 문제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물질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의 (분리)접속의 새로운 형태이다. 민주주의의 설립이란 새로운 위상학의 발명을 의미한다. 토지소유자의 물질적 특권을 전통의 상징적 권력과 접속시켰던 귀족제적 공간에 맞서서, 분리접속된 자리들로 이루어진 공간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런 분리접속이 정치와 치안의 대립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쟁점은 나눔[분배]에 입각해 사유되어야 한다. 자리들의 나눔, 안에 있는 것이나 바깥에 있는 것의 경계선의 나눔, 중심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의 경계선의 나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선의 나눔이 그것이다. 이것은 내가 감성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된다(Rancière 2004b를 보라). 이 말은 내게 위계의 상징화의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형태들이 지각적인 소여로서 구현되는 방식을, 사회적 목적지가 지각적 우주, 존재방식, 말하기와 보기의 명증성에 의해 예견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런 나눔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어떤 틀짜기이다.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자리에 있기를 원한 플라톤의 국가공간적폐쇄는 시간적인 분할 자체이다. , 장인은 애초부터 그들의 자리와는 다른 곳에 있을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자들로 형상화되었다. 나는 해방의 핵심이 사회적 종속을 떠받치는 시간의 분할 자체로부터 이탈하려는 시도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노동자의 해방에 관해 내가 쓴 책을 프롤레타리아의 밤이라고 불렀다. 노동자들은 낮 동안에는 노동을 하고 밤 동안에는 잠을 잔다는 명백한 분할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밤을 정복하는 것은 사회적 해방의 첫 단계였으며, 사물의 주어진 상태를 [311]재배열하기 위한 최초의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기초였다. 노동자들 자신이 공통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고 그런 공통의 세계의 대상이자 참여자를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생활을 재배열해야 했다. 모든 개인들에게 공통적인 것을 돌보도록 예정된 사람과 예정되지 못한 사람 사이의 분할을 예견했던 낮과 밤의 분할을 재배열해야 했다. 그것은 역사가들이 주장하듯이 재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경험의 문제였으며, 지각 가능한 것의 분할의 한 형태였다.

[주6] 2003년에 열린 골드스미스 컨퍼런스에서 Mustafa DikecMichael Shapiro의 기고문을 참조.

달리 말해서, 내가 공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내가 미학에 관심을 가진 것과 똑같다. 나는 이미 역사와 정치에 관한 내 작업과 미학에 관한 내 작업 사이에서 일어났던 이동, 몇몇 논평가들이 지각했던 이동이 하나의 장에서 다른 장으로의 이동이 아님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정치에 관해 작업한 것은 정치를 미학적 사태로서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이 말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벤야민이 예술의 정치화에 대립시켰던 정치의 미학화[심미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권력의 행사나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정치가 특정한 세계, 특정한 경험 형태의 배열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특정한 것들 속에서 몇 가지는 정치적 대상으로 보일 수 있고, 몇 가지 질문은 정치적 쟁점이나 논점으로 보일 수 있으며, 몇몇 행위자는 정치적 주체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정치를 특정한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갈등적 세계로 설정함으로써 정치의 이런 미학적본성을 재정의하려 노력했다. , 경쟁하는 이해관계나 가치의 세계가 아니라 경쟁하는 세계들의 세계로서 재정의하려 한 것이다.

만일 내가 [먼저] 했던 작업의 그런 부분이 정치의 미학을 다뤘다면, 내가 나중에 한 작업은 미학의 정치를 다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미학의 정치라는 말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 가능한 것의 정치적 나눔에 있어서 어떤 특정 영역(미학의 영역)의 배열형태가 지닌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한다. 내가 한 정치적작업에서 이미 나는, 정치적인 것의 실존과 미학적인 것의 실존이 어떻게 강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공적인 무대로부터 데모스의 배제와 연극적 형태의 배제가 엄격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자주 말해지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플라톤이 정치에 이[312]익이 되도록 예술을 배제했다는 뜻이 아니다. 플라톤은 정치 예술을 배제했다. 플라톤은 장인들이 그네들의 고유한작업장과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관념과 시인이나 배우들이 그네들의 고유한정체성과는 다른 정체성을 수행할(play) 수 있는 가능성, 이 둘 다를 배제했던 것이다.

또 나는 근대 민주주의와 근대 혁명이 어떻게 감성적인 것의 이 새로운 나눔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 새로운 나눔은 예술에 특정한 자리를, 미학적 감정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감정을 묘사한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에 미술관을 출현하게 만들었던 것과 단순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특정한 미학적 상태라는 실러의 관념에서 새로운 감각혁명이라는 횔덜린의 관념으로,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적인 생산자들의 혁명으로 나아가게 했던 단순한 현사실적 영향도 아니다. 근대 민주주의는 미학적인 것의 출현과 동시대적이다. 내가 미학적이라고 부른 것은, 다른 경험 영역들을 통치하는 지배의 형태들을 중지시키는 어떤 특정한 경험 영역을 가리킨다. , 그들의 감각경험의 구성 자체로부터 변별되는, 지배의 근거를 두 인류의 대립에 두는 형상과 질료, 이해와 감성(sensibility)의 위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경험 영역들의 이런 재-분할은 자리들과 몫들 일반의 물음을 재형상화하는(refiguring) 가능성들의 부분(part)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애매한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 인과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미학의 예외성 때문에 정치의 역설적 예외성을 복제했던 것이다.

정치의 예외성은 그 어떤 특정한 자리도 갖고 있지 않다. 정치는 사회적 쟁점, 치안 문제 등등을 고쳐 말하고 무대에 다시 올림으로써 치안의 공간에서 발생한다.’ 반대로 미학적 자율성은 특정한 자리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특정한 자리가 무엇인가에 관한 정의는 예술의 어떤 형태와 삶의 어떤 형태를 등치시키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학적 경험의 고독은 예술이나 정치가 더 이상 분리된 경험 영역들이지 않을 미래의 공동체의 약속과 처음부터 묶여 있었다. 이것은 미학이 처음부터 자신의 정치를, 내 용어로 말하면 메타정치를, 정치가 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치를 하는방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학은 정치적 불일치의 실천과 국가권력의 변혁을 감각공동체의 메타정치적 기획과 대립시킨다. [메타정치로서의] 미학은 단순한 정치적혁명에 의해서는 항상 놓쳐지게 될 것, 즉 사유와 감각적 세계 사[313]이의, 신체들과 그 환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 속에, 살아 있는 태도 속에 체내화된(incorporated) 자유와 평등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기획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띠었으며, 결국에는 그 역전으로 이어졌던 많은 변형들을 겪었다. 이런 변형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실러의 미학교육, 헤겔과 셸링과 횔덜린이 꿈꿨던 새로운 신화, 청년 마르크스의 인간혁명, 소비에트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의 구성주의적 기획,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전복, 아도르노의 근대작품의 변증법, 685월이 수동혁명이라는 블랑쇼의 관념, 드보르의 표류’, 혹은 리오타르의 숭고한 것의 미학 등.

여기서 나는 내가 리오타르의 후기 저작을 논할 때 무엇이 관건인지를 분명히 밝혀야겠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불화에서는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그래서 후속 글들에서 이를 좀 더 개진하려고 했다(Rancière 2003b, 2004a, 2004d를 참조). 관건은 불일치에 관한 이해이다. 리오타르는 숭고한 것의 범주를 통해 불일치를 절대적 잘못의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켰다. 쟁론(Le différend)[주7]에서는 그런 절대화가 드러나지 않지만, 그 다음에 발표된 책들에서는 이것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리오타르를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통해 수용한 영미권에서는 이런 전회가 모호해졌다. 분쟁과 잘못에 관한 리오타르의 사고는 포스트구조주의적 주체 비판은 물론이고, 거대서사의 종언이라는 포스트모던적 지각과 너무도 쉽게 결합되었기에, 결국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지각은 리오타르의 이론에서, 그리고 불일치를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서 무엇이 관건인지를 감춰버린다. 리오타르의 후기 책들이 이런 점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데도 말이다. 물론 그의 후기 책들은 내가 미학과 정치의 윤리적 전회라고 부른 것을 훨씬 더 폭넓게 특징짓고 있다[주8].

[주7] [옮긴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쟁론, 진태원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15. 

[주8] 2003년 골드스미스 컨퍼런스에서 한 발표문에서 Sam Chambers는 리오타르적 분쟁에 맞서서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언어관을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언어관을 취했기 때문에 나는 리오타르를 이해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정치를 재사유하려는 나 자신의 기획도 완성할 수 없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한 것은 인간/말하는 동물/정치적 동물이라는 고전적 등식의 핵심부에 놓여 있는 간극 혹은 잘못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전체 문제는 우리가 이 잘못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이다. Chambers, 2005를 참조

잘못의 절대화는 프롤레타리아가 보편적 희생자, 거대서사의 주체였던 근대 시대와 미시서사 혹은 국지적 서사라는 포스트모던적 시대 사이의 단[314]절이라는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긍정과 더불어 사실상 시작됐다. [그러나] 이 단절에는 역사적 증거가 결코 없다. 나의 모든 역사적 탐구가 목표로 삼은 것은 이런 전제를 파괴하고, 사회적 해방의 역사란 항상 작은 서사들, 특수한 발화행위 등으로부터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대서사와 보편적 희생자의 시대로부터 단절해야 한다는 논점은 내가 보기에 요점을 벗어난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이 사실상 절대적 잘못의 또 다른 서사 속에 내장되지 않는 한, 요점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추정하기에 이렇게 내장시키는 것이 [리오타르의] 요점이었다. 리오타르가 했던 것은 희생자의 거대 서사로부터 단절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생자의 거대 서사를 새롭게 활용하기 위해 회고적인 방식으로 희생자의 거대 서사의 틀을 다시 짜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리오타르의] 하이데거와 유대인들(Heidegger and “the jews”, 1990)은 어쩌면 거기에 없었을 수 있고 확실히 시작에서는 명백하지 않았던 어떤 의미, 즉 서사의 대체라는 의미와 희생자의 대체라는 의미를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논증에 제공하는 전환점으로 사고될 수 있다. 이 텍스트에서 <유대인들>은 근대성의 새로운 서사의 주체, 서구 세계의 새로운 서사의 주체가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해방의 서사가 아니었으며, 약속의 완수라는 일방통행식의 플롯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일방통행식의 플롯이었다. , 절대적 범죄의 서사인데, 이 서사는 서구 사유의 변증법 전체의 진리로서, <타자>, <길들여질 수 없는 것> 혹은 <갚을 길이 없는 것>[주9]과 관련된 사유의 근원적 부채를 잊으려고 하는 거대한 시대의 최종 결과로서 나타난다.

[주9] [옮긴이] ‘길들여질 수 없는 것‘the Untameable’의 번역어이다. 한편, ‘the Unredeemable’은 속죄할 수 없는 것,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 따라서 어떤 부채나 빚에 대해 갚을 길이 없는 것, 그리하여 구원될 수도 없는 것 등등을 의미한다. 이미지의 운명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갚을 길이 없는 것으로 일관되게 옮긴다

갚을 길이 없는 부채라는 관념은, 우리도 알다시피, 미학적 상태의 예외성의 변형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이다. 리오타르는 미학적 예외성을 칸트적 숭고의 격자를 통해 해석한다. , 무능의 경험으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미학적 상태의 예외성은 감각과 사유의 근본적 불화를 뜻한다. <이성>의 관념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이 무능하다는 칸트의 견해는 사고의 힘을 탈피하고 원초적 재앙을 증언하는 감각(aistheton)의 힘으로 뒤집힌다. 타자성의 법칙에 대한 정신의 먼 옛날부터의 의존, 정신의 노예화.’ <타자성>의 처음 이름은 ‘<사물>’, 즉 프로이트-라캉적 의미의 <사물Das Ding>이다. 그 두 번[315]째 이름은 <>이다.

이런 식으로 <>에 대한 유대인의 복종은 정신의 재앙이나 무기력화의 원초적 경험에 대한 복종과 똑같다. 그러므로 나치가 유럽의 유대인들을 절멸시키려 한 것은 원초적 재앙을 부인하는 데서 귀결되는 재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물Das Ding> 혹은 <>을 제거하려는, 타자성에 대한 먼 옛날부터의 의존을 제거하려는 기획의 최종적인 달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적합하게 말하면 이것은 미학적 경험을 윤리적 경험으로 해석한다는, 해방의 모든 과정을 금한다는 뜻이다. 이런 플롯에서는, 해방의 모든 과정은 정신을 타자성에 예속시키는 재앙을 부인하려는 재앙적인 시도라고 지각된다. 새로운 종류의 근본악에 관한 이런 사고는 오늘날 (적어도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두 종류의 태도로 이어진다. 하나는 기권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의 다른 종류의 절대화를 지지하는 것, <>의 군대가 <>의 축에 맞서 벌이고 있는 현재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에 관한 내 연구에서 관건이고 또 이 관건을 미학에 관한 연구와 묶어주는 것은 불화로서의 정치의 특정성을 사고하려는 시도이며, 불일치를 잘못이나 재앙으로 절대화하려는 것에서 벗어나는 미학적 이질성의 특정성을 사고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그런 예외성을 순수성의 플롯 바깥에서 사고하려는 시도이다. 리오타르의 마지막 작업에서 관건은 분명히 미학적 분리성에 관한 아도르노의 해석의 변형이다. 아도르노에게서 미학적 경험은 미학적 약속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분리되어야만 했다. 리오타르에게서 작품의 미학적 순수성의 본질은 <길들여질 수 없는 것>의 순전한 증언이라는 지위에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삶과 벌거벗은 생명의 분리라는 아렌트적 관념은 예외상태에 관한 아감벤의 이론화에서 거꾸로 뒤집혔다. 예외상태는 정치적 삶을 벌거벗은 생명아래로 포섭하는 <근대성>의 거대서사가 된다. 이 포섭은 홉스의 이론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들>에 대해서도, 프랑스 혁명의 인민의 주권이나 인종청소도 설명한다. 정치의 순수성이라는 관념은 그 반대로, 즉 그 애매한 행위자들을 일소함으로써 정치적 개입의 무대를 텅 비게 만드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 정치는 압도적인 역사적-존재론적 운명으로서 등장하는 권력의 행위와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 우리 모두는 처[316]음부터, 수용소의 동질적이고 편재하는 공간 속에 있는 난민들이며, 벌거벗은 생명과 예외의 상호보완성 속에 사로잡혀 있다(Agamben 1998; Rancière 2004c를 참조).

만일 1990년대 초에 내가 정치적인 것의 복귀라는 표준적인 이론들을 제기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나는 예외의 논리의 이런 무한화에, 정치적인 예외성과 미학적 예외성의 이런 이중적인 역전(reversal)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예외성의 결합이 윤리적추세를 구성한다. 나는 이런 윤리적 추세에 대해, 순수성 관념과는 별개로 미학적·정치적 불일치성을 사고하는 하나의 방식을 대립시키려고 한다. 정치의 예외성이란 [정치가] 자신의 고유한 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치안의 장에서 자신의 무대를 건설하는 실천의 예외성을 뜻한다. 그리고 미학적 체제에서 예술의 자율성은 그만큼 타율성이다. , 예술은 특정한 경험에 귀속되는 특정한 영역으로 설정되지만, 그 대상과 절차를 다른 경험 영역에 속하는 대상과 절차로부터 분리시키는 경계선은 전혀 없다.

내 작업의 전반적 논리는 순수 정치와 순수 미학이 무한한 잘못이나 무한한 악의 급진화 속에서 함께 전복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나는 불화를 해소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도 처리될 수 있는 잘못이라고 사고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내가 예외, 잘못 혹은 초과에 관한 개념규정을 그 어떤 종류의 존재론과도 별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의 원리를 존재론적 원리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한, 정치를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이런 것이 하이데거적인 차이, 네그리가 개념규정한 스피노자적인 <존재>의 무한성, 바디우의 사유에 있어서 존재와 사건의 극성(polarity), 아감벤의 이론에 있어서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의 관계의 재분절 등등이다. 내가 취하는 가정은, 이런 요구사항들이 어떤 역사적-존재론적인 운명적 과정을 위해서 정치의 해소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이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정치는 존재의 법칙에서 해소될 수도 있다. 마치 형식이 그 내용의 현시에 의해 찢겨져버리듯이 말이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서 <다중>은 제국을 폭파하게 될 제국의 진짜 내용이다.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존재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존재><공산주의>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정치적 잘못은 기원적 잘못의 결과로서 등장할 것이며, 그리하여 <>만이, 혹은 어떤 [317]존재론적 혁명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처음부터 내가 가진 첫 번째 관심사는 형이상학적 목적지[이정표]에 입각해 정치적 문제들을 분석하는 모든 분석들을 옆으로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 나는 그 어떤 시간적 목적론도, 차이·초과 혹은 불일치의 그 어떤 기원적 결정도 일축해버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초과, 차이, 혹은 불일치의 특정하고 제한된 형태를 정의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셈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존재>의 초과에 정치적 불일치를 정초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적 불일치를 특정한 계산착오와 연결한다. 데모스는 <존재>의 초과를 구현하지 않는다. 데모스는 무엇보다 우선 텅 빈 이름이다. 한편으로, 데모스는 어떤 필연성도 갖고 있지 않은 보충적 셈에 대한 이름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 자의적인셈은 불평등의 정당화 자체에 고유한 평등주의적조건을 상연·연출한다. 그 어떤 존재론적 간극도 없고, 평등의 우연성과 불평등의 우연성을 하나로 묶는 교착(twist)이 있다. 데모스의 역량은 존재의 그 어떤 원초적 초과도 상연·연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어떤 명명의 과정에도 고유하게 있는 초과를 상연·연출한다. , 이름들과 신체들을 한데 묶는 관계의 자의성을 상연·연출한다. 이름을 부여받고 공통적인 것에 관해 말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은 자들이 이름과 신체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름들의 초과를 상연·연출하는 것이다. 내게 차이란 항상 특정한 관계성, 통약 불가능한 것의 특정한 척도를 뜻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분명히 데리다가 씨름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쟁점과 씨름해야만 했지만, 데리다의 유령성(spectrality)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예를 들어 유령들과 유령성이라는 데리다식의 문제틀은 두 개의 쟁점을 함께 묶는데, 이렇게 묶여진 매듭은 내게도 중요하다. 두 개의 쟁점이란 탈정체화와 시대착오의 지위이다. 그것은 내가 직면한 것과 똑같은 문제를 다룬다. , 우리는 비실존자(the inexistent)의 실존을 어떻게 사고하는가, 우리는 초감성적인 것-감성적인 것을 어떻게 사고하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데리다는 비실존자에 너무 많은 현존을 부여하고 너무 많은 육신(flesh)을 부여한다. 정체성[동일성]을 탈구축하면서도 그는 항상 이타성(異他性)의 동일성이나 부재의 현전을 과장함으로서 동일성을 복귀시키려고 하기 직전에 있다. 그가 [318]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유령의 실재성(reality)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유령이 우리를 쳐다본다는 것, 유령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에게 말을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유령의 정체성은 모르지만, 유령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유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나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타자성의 무게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 내가 거부하는 것은 타자성에 어떤 시선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 목소리에 어떤 윤리적 명령의 힘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이타성의 형태들의 다양체를 <타자성>의 인격화를 통해 실체로 전환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초월의 한 형태를 복귀시킨다. 똑같은 것이 시간적인 분리-접속(dis-junction)이라는 쟁점에도 해당된다. 또 나는 시대착오, 반복 등등의 쟁점도 다루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쟁점들을 이음매에 어긋난 시간이라는 관념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나는 이것들을 시간성의 형태들 및 선()들의 다양체들에 입각해 사고한다. 내가 그렇게 보고 있듯이, 불화의 논리에서 여러분은 분리-접속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대신에 분리-접속을 접속(junction)의 특정한 형태로서 사고한다(그리고 접속을 분리-접속의 한 형태로서 사고한다).

나는 이 논점의 이면(裏面)을 잘 알고 있다. 만일 시간적 분리접속의 원초적 구조가 없다면, 어떤 해방적 완수의 지평을 생각하기란 어렵다. 달리 말하면, 만일 유령이 없다면, 메시아도 없다. 내가 메시아적 명제를 세속적(prosaic) 용어로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 정치를 그 고유한 논리 위에 정초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특정한 시간성의 틀을, ‘비실존적인 것의 실존의 시간성의 틀을 짜야 하지 않는가?

나는 어떤 미래의 틀을 짜는 것이 미래의 가능성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개입에 뒤이어 일어난다고 말함으로써 논점을 뒤집고 싶다. 혁명가들은 인민의 미래를 발명하기 전에 인민을 발명했다. 게다가 우리의 논의 맥락인 정치적인 것의 윤리화라는 맥락에서 우리는 우선 미학의 정치의 특정성에, 정치적 개입의 특정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유령들을 효과성이념성의 이항대립과 대립시키면서 유령들에 관해 말했을 때, 나는 픽션[허구]에 관해 말하기를 더 좋아[319]한다. 내가 보기에 픽션이라는 이 용어는 똑같은 역할을 하지만 비실존자의 부분[]을 실체화하는 것을 막는다. 내게 비실존자는 무엇보다도 말들, 텍스트들, 픽션들, 서사들, 등장인물들이다. , 유령들의 삶이나 정신Geist의 삶이 아니라 종이의 삶(paper life)이다. 그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the unapparent)의 현상학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외양의 시적인 틀짜기이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존재론(ontology)보다 더 넓고 더 강력할 수 있는 유령론(hauntology)’의 틀을 짜자고 제안할 때, 나는 시학에 입각해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존재론 혹은 유령론은 어떤 정치적 개입이나 한 편의 시(poem)만큼이나 픽션적이다. 존재론은 정치, 미학, 윤리 등등에 어떤 기반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령론은 이런 포부(pretension)를 탈-구축한다고 칭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유령론은 근본주의적 기획을 무너뜨리는 타자성을 실체화하는 것을 대가로 그렇게 한다. 이제 <타자성>의 실체화는 윤리적기획(enterprise)의 핵심에 있다. 나는 주류의 윤리적 추세와 이것의 명백히 반동적인 정치로부터 데리다를 분리시키는 거리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추세에서 [진정으로] 탈출하길 원한다면, 나는 타자성이 탈-실체화, -존재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덕분에 나는 내 작업의 의미나 내 담론의 지위를 둘러싼 몇몇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됐다. 정초하거나 탈구축하는 대신에 내가 언제나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담론의 장르와 수준들을 분리시키는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이름들(1992)[주11]에서 지식의 시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지식의 시학이 기성의 지식(역사, 정치학, 사회학 등등)을 시적인 조작(묘사, 내레이션, 은유화, 상징화 등등)으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여 이런 조작의 대상을 나타나게 하고 이런 조작의 명제에 의미와 적실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한에서, 지식의 시학은 일종의 탈구축적 실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과학적 담론을 시적인 계기로 이렇게 환원한다는 것은 과학적 담론을 말하는 존재들의 평등으로 환원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내가 자코토에게서 빌려온 지능의 평등이 지닌 의미가 이것이다. 그것은 지능의 모든 현시가 다른 무엇인가(any other)와 평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똑같은 지능이 시적 픽션을, 정치적 개입을, 혹은 역사적 설명을 행한다는 것을 뜻한다. 똑같은 지능이 문장들 일반을 만들[320]고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사상, 역사, 사회학 등등은 그들의 대상을 가시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대상들 사이의 연결을 창출하기 위해 언어적 혁신이라는 공통적인 힘을 사용한다. 철학도 그렇게 한다.

[주11] Jacques Rancière, Les noms de I'histoire: Essai de poetique du savoir, Paris: Seuil, 1992. [The Names of History: On the Poetics of Knowledge, H. White & H. Melehy (trans.). Minneapolis, M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4. ; 역사의 이름들, 안준범 옮김, 울력, 2011.]

내게 이것은 철학이란 담론의 다른 형태나 합리성의 다른 영역을 정초하는 담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모든 분과학문들은 경계선 내부에서 자신들의 객관성의 장의 특정성에 걸맞은 특정한 방법론이라는 가정 위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진술하는데, [내게] 철학은 이런 경계선들을 해체하는 담론이다. 나의 철학 실천은 정치에 관한 내 생각과 나란히 이루어진다. 그것은 분과학문들과 담론적 능력의 특정성을 언어적 능력과 시적 발명의 평등주의적수준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아르케적이다. 이런 실천은 내가 철학을 특정한 전쟁터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함축한다. 아르케아르케를 탈은폐하려는 힘겨운 노력이 단순히 그 반대로 이어지는 장, 다시 말해 모든 아르케의 우연성이나 시적 성격을 탈은폐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그런 장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내포한다. 만일 내가 한 작업의 상당수가 플라톤에 대한 재독해로서 정교화됐다면, 그것은 플라톤의 작업이 이 전쟁터의 가장 정교화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목적지의 불평등이 고귀한 거짓말이라고 말하며, 장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막는 시간의 부족다른 곳 자체의 금지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파이드로스는 기록의 금지와 민주주의의 금지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매미-철학자들의 공간-시간과 노동자들의 공간-시간을 분리하는 근본적인 선을 그으며, 우리에게 <진리>에 관한 진리를 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진리>에 관한 진리는 신화로서 말해질 수 있을 뿐이다. 우화의 평등이 담론들과 입장들의 위계 전체를 뒷받침한다. 만일 철학의 특권이라는 게 있다면, 그 특권은 <진리>에 관한 진리가 허구임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또한 철학이 세우는 바로 그 위계를 해소하는 그런 솔직함에 놓여 있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철학의 평등주의적 실천이란 아르케아르케, 권위의 권위를 구성할 수 있는 시적 행위의 필연성인 정초의 아포리아를 상연·연출하는 실천이다. 나는 내가 이 과제에 헌신한 유일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 입장의 종별성[특정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아포리아의 원리를 존재론화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상가들은 [321]초월이라는 유령을 떠올리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차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상가들은 그것을 <존재>의 무한성이나 <존재>의 다양체와 동일시한다. 나는 지금 하트와 네그리의 다중이나, <존재>란 순수 다양체라고 하는 바디우의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네그리와 바디우 둘 다 권위의 해체(unbinding)[주12]를 해체(unbinding)로서의 <존재>의 법칙에 정초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지점에서, 내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권위의 원리를 회복하는 몇 가지 교묘한 속임수를 대가로 해서야 실천의 특정한 영역들에서 해체하는(unbinding) 권력의 상연·연출을 완수할 수 있다. 나는 아포리아의 원리를 수립하거나 <평등>아르케로 삼고 싶은 것이 아니라, <평등>을 계속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전제로 삼고 싶다. , 평등의 특정한 무대를 여는 입증이나 상연·연출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 무대는 경계선들을 가로지름으로써, 그리고 담론의 형태 및 수준과 경험의 영역들을 상호 연결함으로써 세워진다.

[주12] [옮긴이] 이 글에서 의미가 석연치 않은 단어 중 하나가 이것이다. 영어를 최대한 불어와 가깝게 연결한다면 탈연결이나 탈유대(déliason)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불일치를 사고하는 논리를 재구축하려 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고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왜 그런 길을 걸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나의 철학 실천이 내 작업에 대한 독해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나를 받아준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마무리 할 겸, 요점은 내가 무엇을 썼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요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합의적 사고와 잘못의 윤리적 절대화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엮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토론의 여지가 훨씬 더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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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존재론화로서의 랑시에르의 정치철학

 

이 글은 2003년에 발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의성을 잃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이론 지형을 감안하면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제목을 보면 미학과 정치에 대해 다루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사유에 대해 가해진 비판에 대해 응답하고 아렌트, 아감벤, 리오타르, 데리다, 네그리, 바디우 등을 비판하면서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글이다. 그리고 이 비판에서 핵심적인 것이 존재론이라는 쟁점이다. 이 중에서 아렌트, 아감벤, 리오타르에 대한 비판은 다른 여느 글보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전개되고 있고, 또 아감벤에 대한 비판의 적실성은 다른 글에서 이미 검토한 바가 있기에 여기서는 이 존재론과 관련시켜 네그리(와 라차라토)의 랑시에르 비판의 적실성과 데리다에 대한 랑시에르의 비판적 논의를 검토해보려 한다.

네그리에 대한 랑시에르의 비판은 여러 곳에서 이뤄졌다. 2008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강연인 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 형태들도 그렇고, 인권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글, 인민이냐 다중이냐라는 글 등도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네그리 등의 역비판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하자. 네그리 등의 주장은 표현은 달라도 대체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자신들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세한 노동형태가 인지노동이며, 주된 생산수단은 일반지성이며, 랑시에르에게 지능(지적 능력)의 해방을 뜻하는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은 자본의 명령 아래에 있는 노동으로서 현대자본주의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에서 정치를 발견하고 만족해버린다. 따라서 랑시에르에게는 자본주의나 노동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이를 네그리는 랑시에르에게는 마르크스가 없다고 표현한다.

이런 네그리 등의 비판은 몇 가지 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먼저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tout parle de tout)’는 것에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 랑시에르는 자신의 작업이 고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하는 동물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들이 정치적 삶에 대한 기질을 갖고 있다는 인간학적 정의로 회귀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는 말하고 토론하는 인간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관념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네그리 등은 여기서 불일치불화의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랑시에르가 하려는 바와는 정반대의 것을 읽어낸다.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전제를 랑시에르가 갖추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랑시에르의 기획의 근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의 결여라는 지적에 대해서 재고해야 한다. 이는 두 개로 쪼개지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나 노동에 대한 분석의 결여와 관련된 사회적인 것의 지위에 대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존재론적 분석의 문제이이다.

전자와 관련해, 라차라토는 부채인간 등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랑시에르와 바디우에게 정치는 경제에 대해 독립적이다. 이는 그들이 경제및 자본주의 일반으로부터 만들어낸 이미지가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고안해 낸 희화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혁명·정치 이론이나 단순한 경제 이론이 언급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자본주의의 힘은 경제’(및 커뮤니케이션, 소비, 복지국가 등)를 다양한 측면에서 주체성의 생산과 결합시키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처럼 “‘정치적 주체화를 경제로부터 연역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순수정치의 환상을 보여준다.” “어떤 것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주체화는 자신의 존재를 위한 필연적 정합성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는 달리 정치적 주체화와 경제 사이의 역설적 접합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정치적 구성 및 실험을 위한 다양한 장을 열어주며”, “이는 주체화의 지속 및 이에 필요한 일관성의 획득을 위해서는 경제, 사회, 정치를 다시금 횡단하고 재배치하는 작업을 통한 일정한 단절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랑시에르는 거듭 “‘순수정치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라차라토는 랑시에르가 거꾸로 순수 정치의 환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랑시에르가 순수정치란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이 겨냥하는 표적은 아렌트이다.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절연된 정치 자체의 고유성을 찬양하는 것, 국가제도와 통치적 실천이 정치(적인 것)의 전부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런데 라차라토는 랑시에르가 아렌트와 동일한 문제점, 순수정치의 덫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바디우와 랑시에르에게는 정치적인 것은 있으나 자본주의가 없습니다. 정치적인 것은 있으나, 그건 전-자본주의적입니다. 마르크스 대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습니다. 생산이 없는 거죠. 공장이 없는 겁니다. 여기서 공장은 인간, 기계, 기호의 배치물(assemblage)의 현동화(actualisation)를 뜻합니다. 이것들은 오늘날 생산과 마주칠 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복지국가에도 있고 이것의 다양한 현시형태에도 있습니다. 저는 바디우와 랑시에르에게는 기계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항상 지적했습니다. 단어만 없는 게 아니라, 기술이나 과학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사회적 기계와 기술적 기계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기계는 다른 비판적 이론들에서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계가 오늘날 도처에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몸짓, 표현, 행동을 수반하는 데도 말입니다. 저는 언어 개념, 그리고 분석 철학에서의 언어적 전회 개념이 큰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것들은 제가 보기에는 유물론적이지 않은 주체화의 과정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주체화는 항상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기계 때문에, 또 이것들과 더불어 일어납니다. 자본은 사회적 관계이며, 권력관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술적 기계들에 의해 조력을 받는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의 특정성입니다. 자본은 인간들사이의 단순한 관계가 아닙니다. 아렌트에게서처럼 (혹은 랑시에르에게서처럼) 상호주체적인 관계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계에서 행동은 물질의 어떤 요소도 결여합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기계에 관한 단장충실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바디우와 랑시에르에게서 발견되는 정치적 주체화가 관념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디우에게 계급투쟁은 추상적인 용어로 사유됩니다. 수학이 그의 작품집(anthology)입니다. 바디우와 랑시에르는 경제가 마치 정치의 다른 것인 양 말하는 반면, 정치적인 것은 항상 경제에 의해 재정의됩니다. 자본주의는 오직 이것뿐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경제이다.’ , 권력관계인 것이고, 권력을 관리하는 자들과 권력에 종속된 자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며, 종속된 자들이 상황을 전복하고 뒤집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그런 관계인 것입니다. 주체화는 주어진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적이 되는 착취와 지배의 기계적 과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 혹은 비판은 다음의 모습으로도 변주된다. 가령 랑시에르에게 영화와 회화의 차이는 무엇에 있는가, 과연 이런 차이를 랑시에르의 틀을 통해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모습은 달리하지만, 옮긴이도 대체로 공감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이 논의는 랑시에르가 이 글에서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존재론의 문제와 연결된다. 존재론()에 대한 랑시에르의 불편한 심기와 반대편에 놓여 있는 비판은 랑시에르가 이른바 치안과 정치를, 혹은 적대를 역사 속에 존재론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없다는 비판과 관련된다. 네그리는 이렇게 말한다. 랑시에르에게 해방적 행위는 모든 역사적 규정(determinazione)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는 것, 구체적인 시간성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는 역설적인 행위이다. , 정치는 주체를 역사·사회·제도들로부터 분리시키는 행위이지만, 실제로 역사·사회·제도들에 대한 참여 없이는 정치적 주체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적이다).” , 랑시에르는 적대를 초역사적인 차원에서 상정하기 때문에 정치를 구성하는 역량을 존재론적으로 조건 짓지 못하며, 바로 이 때문에 이런 역량을 그 집단성(공통적인 것the common)에서 포착할 수도 없다는 비판이다. “랑시에르의 연구에서 노동의 해방에 대한 전망은 실제로 의식의 본래성의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따라서 주체성은 어디까지나 개인[주의]적 차원에 있는 것으로 위치지어지기에, 여기에는 주체성의 생산을 공통적인 것으로서 포착할 가능성이 애초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네그리가 보기에 해방의 담론은 존재론에 입각하지 않으면 한낱 유토피아에, 개인의 꿈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네그리는 여기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네그리에게 존재론은 칼 마르크스를 가리키지만, 랑시에르에게 존재론이란 실체화를 가리킨다. 데모스, 인민, 민중,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트 등등을 모두 실체화하여 다루는 것이 랑시에르에게는 문제이다. 랑시에르에게 이것들은 모두 텅 빈 이름들이다. 이것들을 실체화하지 않고 이렇게 다룰 때에야, 계산착오의 문제, 그것도 구체적이고 특정한 계산착오들을 드러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불일치를 논의할 장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이는 결국 부르디외 식의 사회계급론이 되어버리며, 치안과 정치를 내재성의 평면에서 논의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랑시에르는 네그리의 비판과 달리 적대를 초역사적인 차원에서 상정하지 않는다. 네그리가 내세우는 다중이 랑시에르에게 불편한 이유는, 이 다중이 인민이나 노동계급과는 또 다른 실체로서 자리매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그리가 다중을 모던-포스트모던이라는 직선적 시간축을 그대로 받아들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랑시에르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랑시에르에게 데리다는 네그리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두 가지 때문이다. 먼저 네그리는 시간론을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분석에서 이런 시간론은 실종되고 (라차라토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단선적 시간관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데리다는 시대착오’, 즉 시간의 뒤얽힘이라는 측면을 중시한다. 알다시피 랑시에르의 예술의 세 가지 체제는 이런 직선적 시간론의 탈구축이다. 그렇지만 랑시에르는 데리다가 시대착오, 반복 등등의 쟁점을 여전히 “‘이음매에 어긋난 시간이라는 관념으로 통일시킨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한 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랑시에르의 시간관은 (말과 사물에서의) 푸코의 시간관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의 논거는 아마도 푸코의 시간관과 데리다의 시간관의 연결-차이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그 실마리가 상당히 부족하다. 따라서 이것은 향후 더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남을 것이다.

높이 평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존재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론 대신 유령론을 내세우면서 실체화의 위험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타자성의 문제와 불가분하다. “나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타자성의 무게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 여기서의 타자성은 비실존자(the inexistent)’, 정체성[동일성]을 탈구축하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외부의 타자성, 우리라는 동일성을 깨뜨리고 위협하는 타자성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 타자가 정치의 외부, 민주주의의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데리다가 보기에 민주주의에 부족한 것은 타자성이며, 이는 외부에서 올 수밖에 없다. 내가 제기하는 이의는 간단하다. 타자성이 외부로부터 정치 안으로 도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고유한 타자성, 즉 자신의 고유한 이질성의 원칙을 지니고 있다.” 랑시에르가 정치와 치안은 둘 다 외부가 없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그에게 모든 것은 내재성의 평면 안에서 작동된다. “내게 민주주의적 실천이란 아무런 몫도 없는 자들(이는 배제된 자들이 아니라 아무나 혹은 누구나를 뜻한다)의 몫을 기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입은 신참자들에 해당되는 주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참자들은 새로운 대상들이 나타나 공공의 관심사가 되고 새로운 목소리가 출현하고 들리는 것을 허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타자성을 다루는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반면 환대를 논하는 데리다에게 타자(유령이든 아브라함의 신이든)란 무엇보다 책임·응답 가능성(responsibility)과 관련된다. 이것은 “‘타자성에 어떤 시선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 목소리에 어떤 윤리적 명령의 힘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유령론 역시 타자성을 실체화하는 데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이 타자성(레비나스 식의 것과는 다르지만) 윤리적 기획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유령의 실재성(reality)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유령이 우리를 쳐다본다는 것, 유령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에게 말을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유령의 정체성은 모르지만, 유령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유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줄구장창 “‘타자성이 탈-실체화, -존재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내 입장의 종별성[특정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아포리아의 원리를 존재론화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상가들은 초월이라는 유령을 떠올리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차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상가들은 그것을 <존재>의 무한성이나 <존재>의 다양체와 동일시한다.” 앞의 것이 데리다를 겨냥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각각 바디우와 네그리를 겨냥한다. 그러면서 다시 자신의 원칙을 피력한다. “나는 아포리아의 원리를 수립하거나 <평등>아르케로 삼고 싶은 것이 아니라, <평등>을 계속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전제로 삼고 싶다. , 평등의 특정한 무대를 여는 입증이나 상연·연출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 무대는 경계선들을 가로지름으로써, 그리고 담론의 형태 및 수준과 경험의 영역들을 상호 연결함으로써 세워진다.”

랑시에르는 이렇게 글을 마친다. “요점은 내가 무엇을 썼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요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합의적 사고와 잘못의 윤리적 절대화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엮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토론의 여지가 훨씬 더 많이 있다.” 그러나 랑시에르가 원하는 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해하는것이 중요할 것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