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뱅주의와 시민사회

: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제 :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十九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研究の現状と課題

저자 :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

출처 : 社会思想史学会, 『社会思想史研究』, 31권, 2007, 108-117.

http://dspace.lib.niigata-u.ac.jp/dspace/bitstream/10191/6613/1/31_108-117.pdf






1. 들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사의 고전을 쓴 막심 르루아(Maxime Leroy, 1873-1957)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89년 이후의 모든 역사는 …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립으로 귀결된다.”[각주:1] 르루아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1789년의 원리, 즉 개인적 자유와 소유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 구성의 원리이며, “사회적인 것”이란 평등과 관련된 것이면서 개인의 불행을 집합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노동이나 분배와 관련된 1793년의 원리이다.[각주:2]

르루아가 지적하듯이, 19세기의 프랑스 역사는 1789년에 선언된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대혁명 시기에 제창됐던 ‘정치적’원리는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조건에 입각한 ‘사회적’인 질서 원리에 의해 항상 비판되며 수정을 겪었다. 양자의 상극과 조정이 반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기 이후의 사상사를 구성한다.

다만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논자마다 매우 다양하다. 크게 말해서, 1960년대까지 19세기 사상사를 해석하는 틀은 경제구조에 기인하는 계급대립에 의해 주어졌다. 생디칼리즘을 대표하는 이론가 르루아가 양자의 대립을 자유주의적 권력구성원리와 노동자의 사상·운동과의 대립으로 파악했던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런 해석 도식은 크게 변경된다. 역사학·정치사상사·철학 등의 분야들에서 지적인 쇄신이 일어나고, 오히려 일원적 통합원리(정치적인 것)와 다원성 원리(사회적인 것)의 긴장관계가 논자의 주된 관심 대상이 된다(다만, 나중에 다루는 르포르와 고셰는 양자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 혹은 일원적 통합원리와 다원성 원리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최근까지의 연구사를 재정리하고, 그 현황과 과제에 관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2. 일원적 통합원리에 대한 비판

1) 자코뱅주의의 유산

196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타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간주한 정통사학을 비판했던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 등이 혁명기의 정치적 담론에 주목한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했다.[각주:3] 퓌레에 따르면, 단일한 ‘인민’이라는 허구의 집합을 통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하는 문학자, 철학가의 담론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혁명의 급진화와 자코뱅 지배가 초래됐다. 19세기 이후의 사상적 과제는 ‘자코뱅주의’를 극복하고 ‘혁명을 끝내게 하는’것에 있었다고 간주된다.[각주:4]

퓌레의 연구는 정치사상사 분야에서 ‘정치문화’론이라 불려야 할 새로운 연구사조를 산출했다.[각주:5] 그것은 경제구조로부터의 정치적 담론의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동시대의 정치적 담론의 배치, 그 내재적 논리를 탐구하는 역사연구로의 길을 개척했다.[각주:6] 여기서는 퓌레의 문제관심을 계승하는 한 명으로서 뤼시앙 좀(Lucian Jaume, 1946~)의 연구를 다뤄보고 싶다.

좀은 퓌레의 담론분석 방법에 의거하면서, 대혁명에서 비롯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의 특징을 탐구한다. 『자코뱅파의 담론과 민주주의』(1989)에서는 혁명기의 클럽과 의회에서의 자코뱅파의 담론을 검토하고, 당(parti)에 의한 도덕적 혁명운동이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의 일체성을 산출하며, 주권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정치관의 성립을 지적했다.[각주:7] 이런 정치관은 나폴레옹 제정기의 집권론,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의 이성주권론으로 계승된다. 그는 이어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의 사조들을 검토하고, 거기서 일관된 특징을 ‘삭제된 개인’(individu effacé)라고 평했다.[각주:8] 대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는 세 개의 사조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항하고 개인의 내면적 자유의 불가침성과 입헌주의에 의한 권력억제를 주창한 스탈 부인, 콩스탕, 프레보스트-파라돌(Prevost-Paradol) 등의 사조이다. 둘째는 개인보다 ‘사회’를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의지[의사]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으로의 집권화에 의해 더 고차적인 자유가 실현된다고 파악한 르와이에-코라르, 레뮈제, 기조 등 독트리네르의 사조이다. 셋째는 개인적 자유에 대해 종교적 ‘진리’를 우위에 두고 신적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라므네, 몽타랑베르, 세기말의 자유주의 가톨릭 등의 사조이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사조가 프랑스 자유주의의 주류를 두고 다투며, 두 번째 사조가 1875년 이후에 체제원리가 되며, 자유주의와 양립하는 공화체제를 이끌게 됐다고 한다.[각주:9]

2)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

퓌레나 좀의 연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을 ‘자코뱅주의’적인 일원적 통합원리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1970년 이후의 정치철학에서는, 이런 사상적 전통을 근대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조가 있다. 이하에서는 클로드 르포르, 마르셀 고셰를 중심으로 그런 19세기론을 다뤄보고 싶다.[각주:10]

르포르(Claude Lefort, 1924~)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다. 1949년부터 60년까지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를 간행한 그는, 6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토크빌과 아렌트의 사유에 의해 촉발되고, 근대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정치인식의 문제성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권’의 역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개념의 분석이라는 두 가지 점에 집중해서 그의 연구를 일별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회가 ‘외부’에서 질서의 일체성을 보장하는 참조점(신, 자연, 왕의 신체)을 갖고 있었던 반면, 근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런 참조점들을 거부하고(가령 프랑스혁명에 의한 왕의 신체의 폐절), ‘내부’에서만 질서의 입각점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각주:11] 그 입각점은 ‘인간’(homme)이라 칭해지며, ‘인간의 권리’의 실현이 근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된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공통성을 추상화한 집합을 가리키는데, 외부의 지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언급[참조, 지시]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확정성을 갖는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권’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로서 확대를 거듭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권력도 ‘복지국가’(État-providence)로서 비대화를 계속했다.[각주:12]

여기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루고 싶다. 르포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특히 자코뱅주의와 20세기의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것은 모든 다원성이나 차이를 배제한 ‘일자-인민(Peuple-Un)’이라는 표상이 통치의 기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인민’은 개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며, 개인을 초월한 집합으로서 관념되며, ‘사회적 권력’이라고도 일컬어진다. 19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콩스탕이나 기조가 아니라 토크빌이야말로 이런 단일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제(專制)’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각주:13] ‘인권’은 이 ‘사회적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전제’를 억지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인간’관념은 개별 인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재시킨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전체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는 구별될 수 없다.[각주:14]

르포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국가권력의 행사)를 일상생활의 곳곳에 침투시키는 논리를 내재시킨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나누는 것은 권리·정치제도 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차원’, 즉 자유로운 언론에 의해 통치권력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제약하는 ‘공적 영역’의 존재뿐이다.[각주:15] 이 공적 영역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권리·정치제도나 공/사의 구분을 다시 묻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운동’뿐이라고 한다.

르포르가 탐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셰(Marcel Gauchet, 1946~)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적 조건’아래에서 더욱 탐구됐다.[각주:16] 고셰는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의 곤란의 출발점을 대혁명에 둔다. 기독교의 성립과 세속화는 개인이 세계의 의미를 자기 해석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는 것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혁명은 탈종교화와 왕의 부정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을 초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연대가 모든 외부성이나 내적 다원성을 갖지 않는 단일한 집합(‘사회’)으로 관념됨으로써, 개개인을 초월하는 ‘사회’에 의한 새로운 전제(專制)나 억압을 초래할 가능성도 일어났다.[각주:17] 고셰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입법부로의 중앙집권화, 자코뱅주의에서의 ‘단일한 집합체’관념의 성립에서 개인의 자율과 양립할 질서의 형성 실패의 요인을 찾아낸다. 혁명기의 시에예스에 의한 의회감시의 ‘제3의 권력’도입론, 콩스탕의 중립적 권력론, 대의제론 등은 ‘사회’의 관념에 기초한 일원적 통치상을 비판하고 다원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로 독해된다.[각주:18]

고셰에 의한 19세기 이후의 역사상을 일별해두자.[각주:19] 19세기 전반기에는 좌우 당파의 대립, 국왕·정부·의회의 분리, 대표제 등, 일정한 ‘다원성’원리의 도입이 꾀해진다. 제3공화정 시기의 양원제의 도입은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분업의 진전이나 계급대립에 의해 간과된 ‘사회’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희구가 현재화하고, ‘단일한 인류(Une humanité)’라는 종교적 관념이 부상한다.[각주:20] 이것은 민족·국민 등으로 모습을 바꿔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치를 석권한다. 고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정당이나 결사의 다원성, 대의제는 행정기구에 의한 리스크의 예측이나 불확실성의 제거·통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의 ‘지배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해지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문화적 획일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매몰·함몰에 의해 단일한 ‘사회’의 논리에 기초한 일원적 지배로 전화될 가능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고셰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외부’의 삭제라는 문제로 되돌아가, 탈종교화의 역사를 정치사상의 문제로서 연구하게 됐다.[각주:21]

3) 생명정치의 확산

1970년대의 지적 쇄신 속에서 생겨난 두 번째 사조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이후의 19세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조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각주:22] 푸코는 1977-78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18세기 이후의 통치권력의 성질변화를 주제로 삼는다.[각주:23] 그에 따르면, 상업과 도시의 발전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국가(내치)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통치의 효율화(économie)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치경제학(économie politique)의 내실은 18세기 후반기에 치안유지에서 ‘인구’의 학(學)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사람들의 생물학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을 ‘생명정치’(biopolitique)라고 칭하고, 이런 권력실천이 공중위생·인구정책·의료·식량정책으로서 전개됐다는 것, 그 담지자가 국가관료뿐 아니라 ‘사회적’영역에서의 병원·공장·교육기관·경제학자·위생학자 등으로 학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푸코에게 ‘시민사회’란 이런 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영역에 다름 아니며, ‘자유주의’란 새로운 통치의 방식을 정당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다.[각주:24] 푸코의 ‘생명정치’, ‘사회적인 것’, ‘자유주의’등의 개념은 이후 19세기 연구에서 비교·대조되는 틀이 되며, 빈곤문제나 감옥, 공중위생, 가족, 의료 등과 관련된 많은 역사연구를 산출했다.[각주:25]

위에서 다뤘던 두 개의 사조는 각각 상이한 관심에서,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의 일원적 통치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퓌레와 좀은 자코뱅주의의 유산이 19세기 이후에도 잔존하며, 영국식 자유주의나 입헌주의가 정착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르포르나 고셰는 ‘인간’이라는 자기언급적 개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단일한 집합체(‘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그리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이끌 위험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논했다. 푸코주의자는 18세기 이후의 개개인이 단일한 생물학적 집합(‘인구’)로 파악됨으로써 집합적 생명의 효율적 유지·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사회적’영역으로 확산되고 개개인의 생명의 관리·규율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각자는 이런 일원적 통치원리에 대항하는 다원적 질서구성원리의 추구 ― 퓌레와 좀에게서의 대의제와 경쟁적 정당제, 르포르와 고셰에게서의 운동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외부’의 탐구, 말년의 푸코에게서의 ‘자기에의 배려’에 기초한 고대 그리스의 주체상과 자기-타자관계 ― 를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이런 연구사조들과 교착되면서도,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거기서 긍정적인 발전사를 독해해내려는 것이 다음에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다.

3. 일원적 통치원리로의 회귀 : 로장발롱의 19세기론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1948~)은 중도노조인 CFDT의 고문이라는 사상사 연구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말에 푸코의 세미나에 출석했으며, 최초의 사상사 연구서인 『유토피아적 자본주의』를 출판했다. 80년대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소속되어 퓌레, 르포르, 고셰, 마넹 등과 교류하면서 역사연구·현대정치연구를 행했다.[각주:26] 90년대에 들어서자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3부작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정치사상사 연구의 제일인자가 된다.[각주:27] 2002년부터는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로장발롱의 19세기 연구상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기에 성립된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이 거듭 비판에 처해지면서도 수정되어 회귀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 발전사로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인식(‘일반성의 정치문화’라고 일컬어진다)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를 거의 답습하고 있다.[각주:28] 혁명기에는 전통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끄집어내어 동질적·추상적 개인으로 구성된 단일한 집합체(‘개인으로 구성된 사회sociétéd’individus’)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랑스의 특징은 헤겔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변증법이 상정되지 않고,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강조된 것이다. 개별 이익을 추상화하는 ‘대표’라는 메커니즘이 중시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에는 ‘특수이익’에서 ‘일반이익의 창출’이라는 비약이 상정된다. 양자를 매개하는 정치적 결사는 부정되고, 직업단체, 지역성, 남녀의 성차 등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 일반성을 체현하는 것은 ‘법’뿐이며, 대표자에 의한 입법행위가 신성시된다.

둘째로,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이런 정치인식은 거듭 비판에 처해졌다.[각주:29] 르 샤플리에법에서 볼 수 있는 중간단체의 부정은 개인의 원자화, 국가의 비대화,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19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7월 왕정기에 재생한다. 기조, 티에르 등의 자유주의자는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구별을 도입한다.[각주:30]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 집권화에 의해 전통적인 특권들(libertés)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liberté)가 실현된다. 자코뱅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확대와 자유의 실현은 상보적이라고 파악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으로는 언론·집회활동의 자유나 행정적 분권화가 허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다원성은 사회에 분산된 엘리트의 의견을 통치기구로 집약하고, 일원화하기 위한 매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적/사회적 영역의 구분과 상호보완으로 구성된 그들의 질서관은 제2제정기의 정치적 결사 금지와 직업적 결사 승인(1864년법)으로 계승되며, 제3공화정기의 ‘수정 자코뱅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셋째로, 제3공화정기에 자코뱅주의의 쇄신이 완수된다.[각주:31] 여기서 로장발롱이 중시하는 것은 유기체적 질서관을 따라 자코뱅주의적인 국가-개인의 이원적 질서관을 비판하고 중간단체 재건을 제창한 사회학자(Fouillée, Durkheim, Ferneuil, Duguit 등)의 사상이 아니라,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양극화(polarisation)’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화파 정치가(Waldeck-Rousseau, Léon Bourgeois, Paul-Boncour 등)의 질서관이다. 후자는 1884년법(직업조합 자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결사가 질서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승인한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통한 의사집약과 일반이익의 일원적 ‘대표’라는 시각을 유지한다. 정치적 결사는 1901년법까지 자유화되지 않으며, 이 법에서도 결사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제도적 제약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가 제창한 직능대표론이나 생디칼리스트가 주창한 생산자의 공화국론(M. Leroy), 코포라티즘론은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는 시도였다. 다른 한편, 공화파 정치가의 질서관에 따르면, ‘사회적’다원성은 ‘정치적’집권성과 명료하게 구별되며, 그 통제 아래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야말로 20세기의 프랑스 정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위와 같이 로장발롱에 따르면, 혁명기의 자코뱅주의는 몇 번이나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오늘날의 정치사상적 과제는 이제 자코뱅주의의 극복이나 토크빌적인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의 옹호가 아니다. ‘사회적’영역에서 중간단체가 다양한 발전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즉 ‘일반이익’이나 통합의 공통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라고 한다.[각주:32]

4. 마치며

지금까지 달음박질치듯이 30년 동안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뒤쫓았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과제를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서이다. 퓌레 이후의 19세기 사상사 연구는 담론사, 사회사, 심성사 등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고전적 사상가의 텍스트를 넘어선 폭넓은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 기존의 일본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사상가의 주요 텍스트를 ‘점’과 ‘점’으로 묶음으로써 사상사가 구성된 것이 적지 않았다. 향후에는 프랑스에서의 역사 연구의 진전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담론 상황을 ‘면’으로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대상의 확장이 요구된다.

둘째는 분석 틀에 관해서이다. 본고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이라는 도식을 사용해서 본 것처럼, 19세기에 정치사상의 대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자코뱅 주의의 영향,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회로의 권력의 확산, 사회 문제의 출현 등에 의해 분석 틀도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대립이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일원성과 다원성, 정치적 질서의 내부와 외부, 규율과 자율, 중간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역할 등, 논자에 따라서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로 ‘정치적인 것’자체가 논쟁적 개념이 되며, 그 개념 규정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과제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이런 문맥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깊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주도하는 로장발롱의 틀에 내포된 일정한 편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로장발롱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있던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고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런 관심의 전환의 배후에는 현대 프랑스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논의 상황이 있다. 즉, 한편으로는 전지구화, 유럽화에 의한 프랑스 국가의 자율성의 흔들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회적 분단(이민자·청년·배제문제 등)의 심각화와 대의제의 기능장애이며, 이런 것들로부터 귀결되는 ‘프랑스 모델’의 전환이라는 논의이다.[각주:33] 이런 문맥 속에서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과 대의제를 옹호하고 국민(naion)의 재구축을 호소하는 등, 현대정치에 대해 활발한 제언을 계속하고 있다.[각주:34]

그러나 위와 같은 실천적 관심을 배후에 지닌 19세기 연구는 대상에 본래 내포된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훼손하고 이것들을 정태적인 역사관으로 회수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하고 ‘정치적인 것’(일원적 통합원리)의 일관된 우위를 상정한다는 틀로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Constant, Madame de Stäel, C. Dunoyer), 중반기의 사회주의자,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등 ‘사회적인 것’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묻고자 한 사상가들의 상당수가 곁가지에 자리매김 된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상이 ‘자코뱅주의’와 대립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재구축을 모색하고, 사회주의에서 보수주의까지 폭넓은 사상 투쟁을 벌였다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의 지속성을 축으로 삼은 그의 역사관에 대해 복수(複數)의 ‘사회적인 것’의 경합 속에 새로운 질서 구성 원리를 찾아내려는 사상사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은 향후의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 본고는 제31회 사회사상사학회(2006년 10월 22일)의 섹션 「프랑스형 『시민사회』 모델의 가능성 : 피에르 로장발롱을 둘러싸고(フランス型『市民社会』モデルの可能性──P. ロザンヴアロンをめぐって」를 조직한 北垣徹(西南学院大学), 高村学人(立命館大学) 두 사람과의 공동토의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집필에 있어서는 아래의 연구조성의 일부를 활용했다. 平成十七─十八年度文部科学省科学研究費補助金(若手研究B), 平成十八年度新潟大学プロジェクト推進経費(若手研究者奨励研究費).


  1.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1, Paris, Gallimard, 1946, p.13. [본문으로]
  2.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2, Paris, Gallimard, 1950, pp.11-13 ; t. 3, 1954, pp.27-38. [본문으로]
  3.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1978. [본문으로]
  4.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au 19 siècle,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reation of modern political culture, 4 vol., New York, Pergamon Press, 1987-1994. [본문으로]
  6.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서는 다음의 것이 있다. Claude Nicolet, L’idée républicaine en France, 1789-1924, Paris, Gallimard, 1995는 ‘과학’, ‘사회’ 등 19세기의 주요 사상 개념의 배치 속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의 생성과정을 상술하고, 정치사적 서술에 머무는 다른 연구(가령 Pamela Pilbeam, Republicanis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1814-1871, Basingstoke, Macmillan, 1995)와 비교해서 출중하다. Sudhir Hazareesingh, From Subject to Citizen : the Second Empir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French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은 제2제정기의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가톨릭의 담론을 망라하여 검토하고, 그 연방·분권론에 자코뱅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할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생성을 찾아낸다. Laurent Mucchielli, La découverte du social : naissance de la sociologie en France (1870-1914), Paris, Découverte, 1998은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과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착에서부터 당시의 담론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7. 그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첫째, 제도로서의 대표가 부정되는 한편, 혁명운동에 의한 ‘인민’의 대표라는 관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도덕적 일체성에 기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인민’이 대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에 의해 ‘인민’이 창출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이 운동에서 당이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Lucien Jaume, Le discours jacobin et la démocratie, Paris, Fayard, 1989, pp.387-403). [본문으로]
  8. Lucien Jaume, L’individu effacé, ou le paradoxe du liberalisme français, Paris, Fayard, 1997. 또한 좀의 관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저작으로 Lucien Jaume, Echec au liberalisme : les jacobins et l’État, Paris, Kimé, 1990이 있다. [본문으로]
  9. Jaume, L’individu effacé, op.cit., pp.19-21, pp.59-117, pp.124-148, p.340 et s. 독트리네르의 사상이 제3공화정의 체제원리가 됐다는 이해는 후술하는 로장발롱의 기조론에서도 볼 수 있다. Pierre Rosanvallon,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p.358 et s. [본문으로]
  10. 그들을 포함해 최근의 프랑스 논의 상황을 정리한 문헌으로 宇野重規, 『フランス政治哲学』, 東京大学出版会, 2004가 있다. [본문으로]
  11.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94, pp.63-66. [본문으로]
  12.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p.32. [본문으로]
  13. Ibid., p.38. 르포르의 논의는 피에르 마넹(Pierre Manent, 1949~)의 다음의 논의에도 빚지고 있다. Pierre Manent, «Démocratie et totalitarisme : à propos de Claude Lefort», Commentaire, t. 16, 1981-1982, pp.574-583. [본문으로]
  14.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op.cit., pp.171 et s. [본문으로]
  15.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op.cit., p.55. [본문으로]
  16. 고셰의 지적 배경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인류학, 정신분석 등 다양하다. 르포르와의 관계에 관해 고셰는 1966-67년에 그의 강의에 참여하여 ‘선열한 충격을 받고’ 르포르와의 대화로부터 연구 테마를 찾아냈다고 회고했다(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Paris, Gallimard, 2003, p.29). 또한 난해한 고셰의 사상의 도입으로 다음이 편리하다. Marc-Olivier Padis, Marcel Gauchet : la genèse de la démocratie, Paris, Michalon, 1996. [본문으로]
  17. March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pp.1-26. [본문으로]
  18. M.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Paris, Gallimard, 1995. ; «Benjamin Constant : l’illusion lucide du libéralisme», dans Benjamin Constant, Ecrits politiques, Paris, Gallimard, 1997, pp.1-110. [본문으로]
  19.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op.cit., pp.27-35. [본문으로]
  20. M. Gauchet, La condition politique, Paris, Gallimard, 2005, p.371. [본문으로]
  21. M. Gauchet, La religion dans la démocratie, Paris, Gallimard, 1998. [본문으로]
  22. 田中拓道『貧困と共和国』人文書院、二〇〇六年、第四章 ; 同「フランス福祉国家論の思想的考察──『連帯』のアクチュアリテイ」『社会思想史研究』二人巻、二〇〇四年、53-68頁. [본문으로]
  23. Michel Foucault, Se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Paris, Gallimard/Seuil, 2004. [본문으로]
  24. Ibid., p.357. ;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Paris, Seuil/Gallimard, 2004. [본문으로]
  25. 대표적인 예로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Paris, Fayard, 1984 ; François Ewald, L’État-providence, Paris, Grasset, 1986 ; Giovanna Procacci, Gouverner la misère, Paris, Gallimard, 1995 ; Andrew R. Aisenberg, Contagion : Disease, Government, and the ‘Social Question’ in Nineteenth-Century Fra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푸코의 도식과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의 사상사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중요한 연구로는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26. Pierre Rosanvallon, Le libéralisme économique, Paris, Seuil, 1979. 그 내용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론과 근본적으로 겹친다. 18세기의 ‘시장의 발견’을 효율적인 통치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원리로서 위치짓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세미나의 요약에서 이 연구를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op.cit., p.326). [본문으로]
  27. P. Rosanvallon,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2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8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2000. [본문으로]
  28. P. Rosanvallon,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2004, pp.25-105. [본문으로]
  29. Ibid., pp.131-195. [본문으로]
  30. Ibid., pp.218-227. [본문으로]
  31. Ibid., pp.343-360. [본문으로]
  32. Ibid., p.434.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로장발롱이 편집한 La République des Idées 시리즈의 한 권인 La nouvelle critique sociale, Paris, Seuil, 2006. 혹은 P. Culpepper et al. dir., La France en mutation, 1980-2005, Paris, Presses de la Fo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2006. [본문으로]
  34. 로장발롱은 최근 저작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그 불신을 조장하고 키워왔던 기존의 정치사상 연구를 비판한다. P. Rosanvallon,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2006, pp.24 et s. 국민의 재구축에 관해 로장발롱의 「일본어판 서문」, 『연대의 새로운 철학』, 北垣徹訳)「日本ヒ語への序文」『連帯の新たなる哲学』勁草書房, 2006, v頁. [본문으로]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프랑스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 피에르 로장발롱의 프랑스 민주주의론

フランスの政治文化とデモクラシー

: P.ロザンヴァロンのフランス・デモクラシー

野末, 和夢

Citation 一橋社会科学, 7: 33-41

Issue Date 2015-05-21

 

* 로장발롱의 책 번역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를 식힐 겸 로장발롱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미리 포스팅한다. 관련된 문서나 책들도 연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 일본에서는 '통일성' 대신 '일체성'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이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약호

* 이 글에서 빈번하게 인용·참조하는 로장발롱의 문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약호, 쪽수의 순서로 표기한다.

∙ MG :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SC :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1.

PI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2.

∙ DI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3.

MPF :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coll. «Points Histoire », 2006.

CD :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08.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론을 대표하는 피에르 로장발롱(현재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에 의한 일련의 19세기 연구를 재구성하고, “프랑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을 추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통선거, 대표정, 인민주권을 각각 주제로 하는 3부작(이하 SC ; PI ; DI로 약칭)에서 주로 검토했다. 이 세 개의 역사상을 통합한 것이 2004년의 프랑스형 정치모델』이다. 이런 전체상을 밝힌 일본어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각주:1]

로장발롱의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계보를 잇고 있다.[각주:2] 첫째, 프랑스 혁명 및 현대사 연구의 조류이다. F. 퓌레로 대표되는 수정학파는, 정통사학과는 달리,[각주:3] 1793년의 자코뱅지배를 혁명의 ‘탈선[삐그덕댐]으로 파악하고, 19세기를 자코뱅주의의 초극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해석을 전개했다.[각주:4] 로장발롱은 퓌레의 관심을 계승하고, 정치사를 경제구조가 아니라 정치문화에 의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cf. MG:26 ; MPF:13).

둘째, 1970년 이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의 조류이다. C. 르포르나 M. 고셰로 대표되는 이 시기 이후의 논자들은, ‘정치(la politique)’와 구별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다시 물었다.[각주:5] 로장발롱은 그들의 연구를 계승하면서도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긴장이라는 시각을 도입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두 세기에 걸쳐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정초해온 자코뱅주의를 검토한다(2). 다음으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검토한다(3). 이 두 개념의 긴장관계가 민주주의의 사상사를 구성한다고 간주된다. 이상의 틀을 사용해, 대혁명 이래의 민주주의의 전체상을 제출한다(4). 마지막으로 그의 연구에 내재하는 사상적 특징을 지적한다(결론).

 

2. 근대정치적 사고양식으로서의 자코뱅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적인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자코뱅주의라고 명명하고, 그것을 일반성의 정치문화(culture politique de la généralité)”이라고도 바꿔 부른다(MPF:13). 그 특징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1) 사회적 일체성

첫째,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은 사회 형태(forme sociale)”로부터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혁명에서는 직업기능에서 유래하는 단체(corps)로 구성되는 사회에 매몰되어 온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해방하고, “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것이 희구되었다(MPF:13 ; PI:22).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는 개인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결정론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개인” = “시민(citoyen)”으로 정립된다(SC:113 ; PI:17).

이런 추상성은 대표=표상(représentation)”이라는 작용과 불가분하다. 각종 축제나 시에예스의 논의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듯이, “인민이나 국민이라는 집합은 대표=표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PI:47 et s.). 오히려 상징이나 픽션을 통해 표상됨으로써, 다양한 개인들은 유일한 집합으로 추상화된다(MPF:28). 대표정은 개인의 해방과 집합적 권력[=국민 주권] 사이의 모순을 송두리째 해소하는” “기술로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관통한다(DI:29, 189-190). 자코뱅주의의 전통에서 단일성(Un[일자])”, “일체성(unité[통일성])”, “전체성(totalité)”, “불가분성(indivisibilité)” 등의 추상적 어휘는, 프랑스 시민들이 국민이라는 집합으로서 대표=표상되기 위해 사용됐다(MPF:26-28).

이러한 프랑스적 정치관에서는, 특수이익과 동떨어진 곳에 일반이익이 설정되고, 그것을 추상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정치체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MPF:118). “추상화에 의해 개개인의 특수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고, 개인 일반이 공화국의 불편부당한(impartial)” 주권의 연원으로 간주됨으로써 평등이 담보된다(MPF:118-124). 따라서 투표권 보유자로서의 평등한시민은 국민적 일체성을 구성하는 간단한 로 환원되고, 사회의 실체는 이 배후로 숨었다(MPF:122 et s.). “수로서의 일반성이 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일반성의 가장 명백한 형태를 취한다”(CD:115).

 

2) 민주적 직접성

두 번째 특징은 무매개적 의사표시에 대한 희구이다. “중간단체(corps intermédiaires)”의 법적 부정이 의미하는 사정거리는, 종교단체나 직업단체의 해체에 한정되지 않고, 일체성을 가로막는 모든 매개적 제도나 상징의 부정도 포함한다. 1791930일의 포고령에서는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든 정치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표명됐다. 왜냐하면 매개적 제도를 통해서는, 시민들은 집합적인 이름 하에서자기 자신을 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MPF:59). 그러므로 피대표자의 다양성은 대표자에 의해 일반이익을 가진 집합으로서 직접 표상된다(MPF:72).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이 부정되는 것은, 그것이 영속하는 제도(institution)”로서 고정화되고, 대표정에 이중성(dualité)”을 도입하는 것(민주적 직접성의 훼손)으로 간주되는 한에서였다(PI:16 et s ; MPF:76-79).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나 다양성 등의 특수이익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cf. SC:135-147, 155-169 ; DI:219 et s.). 한편, 르 샤플리에가 주장했듯이, “공적인 것(le public)”은 국회의원의 활동으로 집약되며, 공적 영역은 통치제도로 환원된다(DI:232 et s ; MPF:71 ; cf. CD:113). 로베스피에르나 보나파르트는 통치제도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대항권력(contre-pouvoirs)”(e.g. 연설활동, 청원운동, 시위 등)간접적 권력” = 민주주의의 울타리 바깥이라며 배제하고, 민주적 직접성을 촉진시켰다(CD:87, 100-103, 114 ; MPF:71). 이러한 불가분성을 통한 정당성이 일반성을 형성하는 한 측면이 된다(CD:115).

중요한 것은 구체제 하의 전통적 구분(지연, 종파, 직군 등)일반성의 정신과 상반되는 특수성의 정신으로서 분극화(polarisation)”된다는 것이다(MPF:35-37). 헤겔이 체계화한 변증법적 관계와는 달리, 프랑스적 정치관에서 특수성과 일반성(보편성)의 관계는 서로 긴장하는 양극으로 구별되고, 일반성만이 단일하고 불가분한 공화국을 형성한다. 로장발롱은 혁명 이래 이용됐던 이런 구별을 분극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cf. MPF:37-54, 117-121).

 

3) 법의 신성시

세 번째 특징으로서, 법의 신성시를 꼽을 수 있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두 가지 유토피아를 따르는 정치문화의 형성에 기여한다. 우선 사법 엘리트는 법의 제정자라는 것 이상으로, “단일한 인민을 제정하는자로서 생각된다. 그에 따르면, 사법 엘리트는 정치적 일반화를 추진하는 자인 동시에 교사였다. 법에 대한 교육관은 많은 논자(e.g. Fénelon, Condorcet)들의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으며, 국민적 일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교육(instruction publique)의 이론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MPF:93 et s.).

다음으로 법은 정당성 있는 규범(norme légitime)인 동시에 정치적인 작동자(opérateur politique)”로 간주된다. 법을 개입시킴으로써, 모든 사람 및 행위는 개개의 특수성이라는 현실에서 분리된다. 일반성은 탈현실화(déréalisation)”라는 작업을 통해 구축된다(MPF:94-96). 이러한 법이나 권리에 내재하는 픽션으로서의 성질이 일반성의 형성에 관여한다(CD:115).

단적으로 정리하면, 구체제의 사회적 유대를 해체한 프랑스에서 픽션이 시민적 평등(égalité civile)”을 빚어내는 공민적 유대(lien civique)”로서 요구됐다(SC:88 et s.). 혁명 이후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는 추상화일반화”, 그리고 픽션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주의(formalisme)” = “정치적 유토피아로서 우선 묘사된다(SC:385).

 

 

3. 민주주의의 이중성 :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위와 같은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이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에 의해 공적인 것을 독점하는, “공적 영역에 대한 환원적인 시각이다(DI:333 et s.). “정치적인 것이란 구체적 제도나 당파 간 경쟁 등에 관련된다기보다는 일반이익·국민적 일체성의 표상과 창출 등 직접적인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련된 개념으로 여겨진다.[각주:6]

그러나 사회적인 것(le social)”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현실에 적합한 질서를 구축할 수 없었다고 하며, 항상 비판에 노출된다(MPF:47).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의해 배제·억압된 특수이익의 총칭을 의미하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실망의 역사, 또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의 역사속에서 개시된다.[각주:7] 그러므로 혁명 이래의 정치문화는 정치적인 것의 찬양과, “사회적인 것에 의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나 실망이라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cf. MPF:158 et s.). 아래에서는 그 비판의 논점을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한다.

 

1) ‘새로운 사회의 사상

첫째, 자코뱅주의적 수사가 사회의 해체(dissolution sociale)”를 이끈다고 하는 비판이다. 자유주의자(e.g. M. Staël, Constant), 보수주의자(e.g. Ballanche, Bonald), 사회학자(e.g. Saint-Simon, Comte), 사회가톨릭(e.g. Lamennais), 독트리네르(e.g. Royer-Collard, Guizot) 등은 각각의 방법으로 사회의 해체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MG:75). 중간단체를 배제한 자코뱅국가에서의 사회는 유대(lien) 없는 원자화된 사회에 불과하고, 공화국의 일체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공유한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결합의 결여(déficit de sociabilité)”를 보전하는 사상운동이 전개됐다(cf. MPF:160, 213-218).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중간단체의 재건이 필요해진다. 동업자조합의 재건은 이미 1800년 이후의 개별법령에 의해 모색됐다(MPF:132). 그리고 1820년대부터 어소시에이션의 설립과 분권론이 많은 논자(e.g. Rémusat, de Laborde, Leroux, Tocqueville)에 의해서 주장됐다(MPF:164 et s.). 로장발롱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의 키워드가 일체성이라면, “사회적인 것의 키워드는 어소시에이션이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과 국가를 중개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로서 갈망됐다(MPF:164, 236).

 

2) 대표정의 역설

둘째, 이 견해는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에 내재하는 모순, 즉 대표자(représentant)와 피대표자(représenté)와의 괴리를 메우는 것으로 얘기됐다. “대표란 구체적 환경 속에 매몰된 다양한 개인들을, 단일한 추상적 집합체로서 다시 얘기하고, 정치적 일체성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복수성을 단일성으로 환원하는 이 조작에는, 본질적으로 곤란이 내재해 있다(PI:53).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일정한 수의 개인 사이에 집합적 속성을 규정함으로써, 그 곤란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 “정치적인 것에서 배제된 대중을 계급이나 사회집단으로 포섭하고, 일반이익과는 상이한 이익을 대표=표상한다(SC:343, 369).

예컨대 시에예스에 의한 능동적 시민/수동적 시민의 기능적 구별은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에 의해, 제한선거제론으로서 계승됐다(PI:68 et s;SC:325). 1860년대에는 노동자에 의한 계급대표론(PI:100 et s.), 3공화정 중기에는 뒤르켐 등에 의한 (보통선거제를 대신한) 직능대표제가 주장됐다(PI:140, 175). 그것은 20세기 이후 산업민주주의론으로 계승된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인 것이 집합적 속성을 수반해 다시 얘기됐다는 것이다(cf. SC:383).[각주:8]

 

3) 이데올로기와 사실

셋째는, 이데올로기와 사실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다. 19세기 전반기부터 되풀이되는 실증”, “관찰”, “예견이라는, “사실을 객관화하는 과학관에 의해, 혁명기의 추상적 원리는 형이상학이라며 비판된다(SC:453 et s.). 3공화정기의 사회학자(e.g. Fouillée, Durkheim, Ferneuil)나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정치가(e.g. Gambetta, Ferry), 개인의 대표=표상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일원론(“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을 비판한다(PI:140 ; MPF:263-274.). 왜냐하면 사실의 관찰에 기초하면, 질서의 조화(harmonie)”는 중간단체의 유기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되풀이되어 비판을 받음으로써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일체[한 몸]”(MPF:71)인 공화국을 목표로 삼았지만,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이 정치적인 것해체가 아니라 그 수정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유토피아, 사회적 현실사이의 상호 긴장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그 자체로 달성되지 않는(inachevée)” 이념이기 때문이다(cf. DI:37). “사회적인 것에 의한 비판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항상 수정되고 재생·존속된다는 운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구성한다. “프랑스의 정치모델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극, 분극화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MPF:231).

 

4.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

이하에서는 자코뱅주의의 수정이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상을 검토한다.

 

1) 19세기 전반기와 자유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는 자코뱅주의가 수정(amendement)”되는 최초의 시기이다. , 1789년에서 비롯된 정치문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일반성이 재구성되는 시기이다(MPF:199 et s.). 그는 그것을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 속에서 찾아낸다.

흔히 자유주의자는 국가권력의 확대를 경계하고, 그 외부에서 개인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가를 가리킨다(e.g. Constant, Daunou, Tocqueville, Prévost-Paradol, Leroy-Beaulieu).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논자들은 통치의 문화를 구축할 수 없고, 프랑스에서는 이차적인 것에 그쳤다(MPF:223).

다른 한편, 기조, 티에르, 비탈-루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는, 사회의 다원성과 정치적 집권화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cf. MG:63 ; MPF:223). “정치적 자유는, 개인들의 독립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 능력에서 비롯된다”(MPF:226). 로장발롱에 따르면, 공화국에서의 개인의 자율은 집합체의 자율에 종속된다. 기조 등은 정치적 집권화에 의한 자유의 확보를 주장했다(MPF:203-212). 그들은 국가의 관리운영(administration)에 의해 정치적 집권화를 보완하는 기제를 시민사회에서 찾아내는 한편, 전근대적 특권의 재생을 기피하고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을 부정했다. 어소시에이션은 기조가 말했듯이 일반적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한에서만 허용된다(MPF:248 et s.).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것정치적인 것을 분극화하는 이 조류에 의해 자코뱅주의를 수정하는 최초의 길이 열리게 된다(MPF:218, 225-231).

 

2) 2공화정과 제2제정

2월 혁명기 및 제2공화정기는 자코뱅주의적 전통이 명시적으로 부흥되는 시기로 여겨진다. 보통선거법의 도입은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을 반영했다. 그들은 정치에서 배제된 비시민(non-citoyen)”이라는 공화국의 일체성에 있어서의 위협으로서 당시 묘사됐다(SC:335-342). 그들을 시민으로서 포섭하는 것, “정치적인 것을 통해 국민적 일체성을 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가 된다(SC:381 et s.).

예를 들어 2월혁명기에는, 공화주의자 논자(e.g. Ledru-Rollin, Leroux, Blanc)에 의해 보통선거를 통한 인민의 일체성의 창출이나, 국가와 개인의 무매개적 결합이라는 관념이 부활한다(cf. SC:Ch.3). 개인들은 시민으로서,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사회로 결집(associer)”해야 한다(SC:381 et s.). 중간단체에 대한 의구심이 잔존하는 가운데, 1848년의 어소시에이션은 자코뱅주의적 유토피아를 계승하고, 국민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에 대한 어소시에/어소시에이션)을 스스로 표상하려고 했다.(SC:383-386 ; MPF:239). 2공화정 하에서는, 블랑키주의자에 의한 소요론, 급진적 공화주의자에 의한 직접 통치론이 제창되지만, 모두 자코뱅주의의 한 변형으로 간주된다(DI:139-167, 169-195).

다른 한편, 2제정기는 정치적인 것의 집권화와 사회적차원에서의 결사의 다양성이 구별되고, “분극화라는 특징이 다시 등장한다. 우선 나폴레옹 3세는 국민투표를 자신의 정치 모델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제도로 삼고, “인민의 일체성/단일성을 찬양한다(DI:201-217). 50년대까지의 그는 일반의지의 직접적 표상을 교란하는 정치적 자유(출판, 정치결사, 집회, 신앙 등)을 부정한다(“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그런데 60년대에 직업적 결사의 허용, 공제조합의 장려, 실업기금의 정비, 단결권과 집회권의 허가 등, 사회적 다원성이 일정 정도 인정된다. 자코뱅주의적인 후견국가상은 자유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받는다. 노동자의 결사나 집회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움직임은 후견국가상의 대안의 모색이며(MPF:249-254), “프랑스 사회사에 있어서의 대전환”(DI:221)으로 위치지어진다. 의회 내에서는 중간단체 부정론이 혁명의 잘못으로서, 계파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서(e.g. Gambetta, de Mun, Brousse, Jaurés) 규탄됐다. 그러나 정치적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의 승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회적 영역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은 정치적 영역의 격리에 의한 보전을 의도했다(DI:218 et s;MPF:260).

 

3) 3공화정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 시기의 사상적 대전환(grand tournant)”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존속했다. 3공화정의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 강화를 도모하는 엘리트 의회 정치와 민중의 정치 개입을 목표로 하는 사회”(의회의 외부”)의 이원론적 도식으로 파악되는, “한정된 민주주의(démocratie limitée)”이다(DI:249, 259). 󰡔프랑스형 정치모델󰡕에서는 이런 테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사회학자와 공화파 정치가 사이의 사상적 구별이며, 특히 후자에 의한 직업적 결사(생디카)와 정치적 결사(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의회 토론이다.

로장발롱에 중요한 것은 급진공화파의 정치가/엘리트(e.g. Waldeck-Rousseau, Bourgeois, Clemenceau, Paul-Boncour)의 사상이다(cf. SC:507 et s.). 애초에 특수이익의 표상에 의해 일반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기피되던 직업적 결사는, 그 조직률과 가입률의 상승도 있고, 서서히 노동자[전반]의 일반이익으로서, 그 유용성이 인정받게 됐다(MPF:283-293). 다만 급진공화파 주도로 성립된 1884321일의 직업조합법은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질서의 조절(régulation)” 양식을 의도했을 뿐이다. 그것은 A. 밀랑이 그러했듯이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얘기됐다(MPF:297-299).

어소시에이션 일반은, 20년 후의 1901년법에서 승인된다. 로장발롱은 이 기간의 의회 토론에 프랑스 모델의 핵심이 표현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 의회를 통해 일반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와 중간단체(직업조합, 대학, 상공회의소, 각종 협회·위원회 등)를 통해 다원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와의 구별이 되풀이되어 얘기됐다(MPF:351). 발덱-루소가 전형적이었듯이, 종교단체나 재정기반에 대한 법적 제약을 겪은 어소시에이션은, 출판이나 언론과 똑같은 시민이 지닌 행위(acte)”자유로서 인정받은 것에 불과하다(MPF:323, 334-337, 343 et s.). 급진공화파에 의해 정치적인 것이 의회를 통해 강조되는 한편, L. 뒤기가 역설한 직능대표제는 공화국이 무수한 작은 거점으로 해체하는 것을 우려되고, 강한 반대를 받았다(MPF:352-354). G. 클레망소가 주장했듯이 사회적인 것을 전제로 한 탈중앙집권화프랑스의 일체성과 합치하는 한에서만 인정받았다(MPF:375). 로장발롱에 의하면 위의 두 가지 영역의 분극화가 프랑스 모델의 본질인 분극화 민주주의(démocratie polarisée)”를 구성한다(MPF:359, 376 et s.). “사회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상()을 모색한 사회학자는 주변(périphérique)”에 머물렀다고 한다(cf. SC:498 et s.).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서 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논의에 의해 사회의 자율성이 승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적인 특권화는 수정을 겪을 뿐이었다. “분극화를 통한 일반성의 정치문화의 구원이 항상 이뤄졌다(MPF:356-359).

 

4) 20세기의 전개

분극화 민주주의의 틀은 20기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계승됐다. 의회를 통한 정치적 집권화가 유지된 한편, 엘리트 관료주도의 행정권력이 강화됐다. 후자는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서”, 사회의 다원성을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고 민주적 일반성을 보완하기 위한 존재라고 진단된다(cf. PI:238, 257, 262).[각주:9]

이런 정치모델은 전후 성장 속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지속됐다(cf. DI:42;PI:13 et s.). 다만 1970년대 이래, 3부문 등의 어소시에이션과 다양한 커뮤니티 등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중간단체의 흥성·융성은 전지구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의 프랑스 방식을 다시 묻도록 강제하고 있다(MPF:425-428). 그러나 로장발롱은 자코뱅주의가 과거의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기의 자코뱅주의적인 조직(organisation)’은 훨씬 수정되기는 했으나, 일반성의 정치문화[주권이나 일반이익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의] 사고양식으로서 계속 머물러 있다(MPF:432)

 

5. 결론

로장발롱은 분극화를 핵심 개념으로 함으로써, 민주주의 역사에 내재하는 아포리아의 해결을 시도했다. “사회적인 것쪽에서의 저항도 있으면서도,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소여를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통합을 형식적으로가능케 했다. “정치적인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SC:112).

우선 그의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의 특징은, 2세기 동안의 사상사에서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의 상극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풀이한 것에 있다. 양자의 대항·긴장관계가 내재함으로써, “미완이기를 계속하는 이념이 프랑스적 민주주의로서 설정[정립]됐다. 르포르나 고셰가 자코뱅주의적 전통을 전체주의”, “종교()”, “권력등에 이어진 것이라며 비판적으로 논한 것에 비해, “분극화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시각에 입각해 그 전통을 재평가한 것에 로장발롱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일반성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을 우위로 하는 해석 도식을 제시했으나,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과제를 국민(nation)”의 재통합/재창조라는 수준에 있어서 파악하는 그 자신의 현대 정치에 대한 관여(commitment)가 반영되어 있다(PI:416-432 ; DI:Conclusion).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시스템”, “문구일 뿐만 아니라, “일반의지의 체현자인 국민”=“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레짐이다(cf.DI:435 et s ; PI:469).

 

민주주의는 일반의지의 레짐이며, 일반의지는 오랜 시간 속에서 구축된다.[각주:10]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근본에는 사회가 일반의지에 근거한 단일한 것으로서 인식/표상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DI:390 et s.).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래, “일반의지”, “일반성의 형성은 수정을 동반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에 기초해 왔지만, “사회적인 것쪽은 그런 지속성·단일성은 없기 때문에 거부됐다. 따라서 일반성의 정치문화라는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전통의 재평가야말로 오늘날의 프랑스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역시 중요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로장발롱은, 오늘날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 배후에는 일반성()정의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MPF:434).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대항민주주의』 이래, 그는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 현대 민주주의론을 주축으로 유럽국가들과의 비교 정치사 속에서 현재 탐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연구 동향과 아울러 향후의 검토 과제로 하고 싶다.

査読審査201523日掲載決定

一橋大学大学院社会学研究科修士課程

  1. 2003년까지의 로장발롱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서 다음에 언급되는 문헌이 있다. 只野雅人, 「代表の概念に関する覚書(1)~(4・完)」, 『一橋法学』(1권 1호, 107-124頁, 2002년 3월 ; 1권 3호, 669-686頁, 2002년 11월 ; 2권 3호, 891-924頁, 2003년 11월 ; 3권 1호, 83-109쪽, 2004년 3월). [본문으로]
  2. 田中拓道,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19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史研究の現状と課題」, 『社会思想史研究』, 31호, 108-117頁(2007년 9월) 참조. [본문으로]
  3. Mathiez, Albert, La Révolution française(Tome 1-3), Paris, Denoël, 1985(réédition) (ねずまさし, 市原豊太 訳, 『フランス大革命』 총3권, 岩波書店, 1958-1960年) ; Albert, Soboul,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coll. « Tel », 1984. [본문으로]
  4. Furet, François, Penser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大津真作 訳, 『フランス革命を考える』, 岩波書店, 1989年) ;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au milieu du 19e siècle : Edgar Quinet et la question du Jacobinisme, 1865-1870,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Lefort, Claude,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81 ; Lefort, Essais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 Gauchet, Marcel,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Paris, Gallimard, 1985 ; Gauchet,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다음의 문헌도 참조.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Artous, Antoine, Démocratie, citoyenneté, emancipation : Marx, Lefort, Balibar, Rancière, Rosanvallon, Negri, Paris, Syllepse, 2010. [본문으로]
  6. Rosanvallon, P., Pour une histoire conceptuelle du politique, Paris, Seuil, 2003, p.14(富永茂樹 訳, 「政治的なものの近代・現代史―コレージュ・ド・フランス開講講義(上)」, 『みすず』, 499号, 2002年, 4頁). [본문으로]
  7. Ibid., p.43(邦訳(下), 500号, 2002年, 19頁). [본문으로]
  8. Cf. Rosanvallon, P., L’Etat en Franc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1990, Ch.2-3ème partie et Ch.3-2ème partie. [본문으로]
  9. Cf. Rosanvallon, P., La légitimité démocratique : Impartialité, réflexivité, proximité,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10, pp.12-14, 67-78, 85. [본문으로]
  10. Rosanvallon, P., « Penser le populisme », in Le Monde du 21 juillet 2011. 󰡔르몽드󰡕에는 요약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문은 다음의 URL을 참조(2014年 9月 27日閲覧)。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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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 민주주의의 위기와 예외상태

: 데리다, 아감벤, 벤야민, 슈미트와 유령의 회귀

사토 요시유키(佐藤嘉幸)

 

* 원문 : http://www.jimbunshoin.co.jp/files/satoyoshiyuki_democracy.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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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리는 바야흐로 벤야민이 말하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각주:1] 속에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후 일본의 통치 시스템의 문제점(전원電源3법에 기초한 막대한 보조금과 맞바꿔서 원전을 지방에 떠넘기는 희생의 시스템’,[각주:2] 그리고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열도에 54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운영해온 핵에너지 정책의 취약성)을 노정시켰는데, 그 약점은 지진 후에 선전된 유대라는 이름의 내셔널리즘과, 중국한국러시아와의 영토문제라는 이름의 국경분쟁, 북한의 핵무장이 야기한 배외주의적 내셔널리즘에 의해 덮어 감춰지고, 외부의 적과 전쟁을 할 실재적 가능성으로 변환됐다. 그런 변환을 배경으로 하여, 20147, 2차 아베정권은 헌법해석을 변경함으로써 집단적 자위권, 나아가 집단안전보장의 행사도 가능케 하는 해석개헌을 실현했다. 해석 개헌에 의해, 평화헌법을 기초로 하는 입헌민주주의의 체제는 파괴되고, 대외전쟁을 가능케 하는 2의 구조물을 헌법의 곁에 둔다고 하는 예외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예외상태의 형성은 의회에서의 논의를 거친 입법 행위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는 게 아니라, 내각의 각의결정이라는 행정적 수단에 의해, 기존 헌법의 옆에 그것과는 다른 2의 구조물을 두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극히 위험한 행위이다. 그런 행위는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키는 위험을 품고 있다.

정치를 전쟁으로부터, 예외상태로부터 정의함으로써, 평화헌법을 기초로 삼은 입헌민주주의의 체제를 정지시키고, 거기에 완전히 다른 체제, 즉 대외전쟁을 가능케 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입헌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은 관동대지진이나 세계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 후에 식민지주의와 전시체제의 구축으로 치닫고, 15년 전쟁의 수렁에 빠진 전전(戰前)의 일본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의 상황은 마치 관동대지진 이후의 상황의 유령이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황 인식에서 출발해 본고에서 우리는 데리다와 아감벤의 슈미트 및 벤야민 해석을 독해하고, ‘예외상태에 관한 이들의 이론에 입각해 우리가 놓여 있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의 현황을 조사하려 시도한다.

 

1.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로서의 전쟁

데리다는 주권권력을 비판할 때 반드시 슈미트의 주권이론을 참조한다. 예를 들어 2004년 그가 사망한 탓에 마지막 강의가 되어 버린 짐승과 주권자2(2002-2003)에서 데리다는 주권자란 슈미트가 말하듯이 예외에 관해 결정하고 법권리를 중지하는, 예외적 권리를 지닌 예외적 존재이다[각주:3]라고 말한다. 그가 슈미트 이론을 가장 자세하게 분석한 저작은 우정의 정치(1994년 출판. 또 이 책은 1988-1989년 강의에 바탕을 뒀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우정의 정치를 자세하게 독해하고, 데리다의 슈미트 해석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과 전쟁의 관계에 관해 고찰하자.

정치신학(1922)의 슈미트에게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자[각주:4]이다. 이런 예외상태는 이 책보다 10년 뒤에 쓰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1932)[각주:5]에서는 친구와 적의 구별”, 전쟁으로서 나타난다. 데리다는 슈미트를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적 행위나 동기의 기본원인으로 생각되는 특종(特種) 정치적 구별(die spenzifisch politische Unterscheidung)이란 친구이라는 구별(die Unterscheidung von Freund und Feind)이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26/15).

만일 차이적 구별 혹은 각인(刻印, Unterscheidung), 정치적인 것의 규정이, ‘정치적 차이자체(die politische Unterscheidung)가 친구와 적 사이의 차별(Unterscheidung)로 귀착된다면, 그런 분리는 하나의 단순한 차이로는 환원되지 않는다. 이것은 한정된 대립, 대립 자체이다. 이 규정이 전제하는 것, 그것은 바로 대립이다. 이 대립이, 그것과 더불어 전쟁이 말소되면, ‘정치적이라 불리는 경계는, 그 경계 혹은 종차성을 잃어버린다.[각주:6]

 

친구와 적이라는 구별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의 정의인데, 이는 달리 말하면, 친구와 적의 대립이다. 그리고 이 대립이 함의하는 것은 다음에서 인용된 슈미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잠재성혹은 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 자체이다.

 

그 기대나 교육적 노력에 공명하든 하지 않든, 국민들은 친구-적의 대립을 따라 결속하는 것이며, 이 대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며, 또한 정치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실재적인 가능성으로서(als reale Möglichkeit) 주어져 있다는 것은 이치상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적이란 경쟁상대나 상대방 일반이 아니다. 또한 반감을 품고 증오하고 있는 사적인 상대방도 아니다. 적이란 다만 적어도 잠재적으로,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쟁하고 있는 인간의 총체 다른 마찬가지의 총체와 대결하고 있다 이다(Feind ist nur eine wenigstens eventuell, d. h. der realen Möglichkeit nach kämpfende Gesamtheit von Menschen. die einer ebensolchen Gesamtheit gegenübersteht)[정치적인 것의 개념, 29/18-19][각주:7]

 

데리다는 슈미트의 이 말을 해석하면서 적이란 다만 적어도 잠재적으로,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쟁하고 있는 인간의 총체이다라는 대목에 주목한다. “그것은 가능성에서 우발성(여기서는 최소한의 우발성으로서 종차화되어 있다)으로의, 그리고 우발성에서 현실성(여기서는 실재적 가능성, «reale Möglichkeit»이라고 불린다)으로의 이행이다[각주:8]고 데리다가 말하듯이, 여기서 슈미트는 적과의 항쟁, 즉 전쟁을, 적어도 잠재성, ‘실재적 가능성’, 나아가 현실성으로서 파악한다. , 정치적인 것은 슈미트에게서 잠재적 혹은 현실적 전쟁의 가능성에 있어서 파악되는 것이다.

이때 친구와 적의 대립이란 공적(公的)’이며, 국민을 단위로 하는 것이며, 적이란 사적인 적이 아니다. “적은 공적인 적일 수밖에 없다(nur der öffentliche Feind). 왜냐하면 이런 인간의 총체, 특히 전 국민에 관계하는 것은 모두 공적(公的)이게 되기 때문이다. 적이란 호스티스hostis[공적公敵]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이니미쿠스inimicus[사적私敵]가 아니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29/19).[각주:9] 그런 적과의 대립은 적이 내적(内敵)이라면 내란, 외적(外敵)이라면 전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뭐가 됐든, 이런 공적인 대립은, 잠재성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 무력에 의한 전투를 의미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슈미트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현실성의 영역에서의, 어떤 전투의 우발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im Bereich des Realen ligende Eventualität eines Kampfes). 역사적 변화에 의존하는 무기와 전쟁의 기술의 일정하지 않는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이 말을 검토해야 한다. 전쟁은 조직화된 정치적 통일체 사이에서의 무력에 의한 전투이다. 내전이란 하나의 (하지만 이것에 의해 위태롭게 되는) 정치적 통일체의 한복판에서의 무력에 의한 전투이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3/25).

어떤 경우든 이 전투는 무력에 의한 것이다. 치사(致死)를 목표로 하는 것 말이다. ‘무기는 여기서 그 본질적인 개념에 있어서, 인간의 치사로서의, ‘신체적=물리적치사를 목표로 하는 수단(ein Mittel physischer Tötung von Menschen)이다. 인간의 죽음은 이 적의 개념에 의해 이렇게 함의[내포]되며, 즉 대외전쟁이든 내전이든 일체의 전쟁에 함의[내포]된다.[각주:10]

 

, 전쟁은 슈미트가 다음에서 말하듯이, 적의 신체적=물리적 치사를 목표로 한 무력에 의한 전투이다. “친구, , 전투 같은 개념은, 그 실재적인 의미를(ihren realen Sinn) 신체적 치사의 실재적 가능성에 대한(auf die reale Möglichkeit der physischen Tötung) 항상적인 관계로부터 끌어낸다. 전쟁은 적대로부터 생겨난다. 왜냐하면 적대는 다른 존재의 존재론적 부정(seinsmäßige Negierung eines anderen Seins)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은 적대의 극한적 실재화(die äußerste Realisierung der Feindschaft)일 뿐이다. 전쟁은 평범한 일상이나 정상적인 것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이상처럼, 혹은 원할 값어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필요가 없으나, 적의 개념이 그 의미를 보존하는 한,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현전하기를 계속하지(als reale Möglichkeit vorhanden bleiben) 않으면 안 된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3/25).[각주:11] 따라서 친구와 적의 대립, 즉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전쟁이라는, 적의 신체적 치사의 실재적 가능성에 대한 관계로부터, 그 실재적 의미를 끌어낸다. 그렇다면 슈미트는 단순한 사고 대상으로서의 전쟁으로부터가 아니라, 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쟁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게 된다. 슈미트에 따르면, 전쟁이 그런 구체성을 결여한 경우, 그 개념은 유령적인 추상이 된다.” “정치적 관계들의 본질이 주어지는 것은, 바로 이 구체적 대항(konkrete Gegensätzlichkeit)이 환기되는 경우이다. 모든 정치적 개념, 표상 및 말에는 어떤 항쟁적 의미가 있다. 이것들은 어떤 구체적인 항쟁(eine konkrete Gegensätzlichkeit)을 조준하고 있으며, 그 궁극적인 논리가 친구-적의 배치(그것은 전쟁 혹은 혁명이라는 형태 아래서 바깥에서 나타난다)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an eine konkrete Situation gebunden), 이런 상황이 부재하면, 그런 개념들, 표상 및 말들은 공허하고 유령적인 추상이 된다(werde zu leeren und gespenstischen Abstraktion)”(정치적인 것의 개념, 31/22).[각주:12] 그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쟁상태를 예외상태라고 명명할 수 있다. 실제로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라는 사태는 긴급사태(Ernstfall)’이다. 이 경우에도 다른 경우에도, 예외적 사태(Ausnahmefall)야말로 특별히 규정적인, 사물의 핵심을 분명히 하는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친구와 적의 정치적 배치의 극한적 귀결이 두드러지는 것은 현실적 전투에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극한적 가능성에서 출발해서 인간들의 삶은 특수 정치적인 긴장을 획득한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5/30).[각주:13] 데리다는 슈미트의 이 구절을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리라.

 

예외가 규칙이다, 이것이 아마도, 실재적 가능성의 이런 사유가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예외가 일어나는 것의 규칙이다, 사건의 법이다, 그 실재적 가능성의 실재적 가능성이다. 사태 혹은 우발성에 관한 결단을 정초하는 것은 예외이다. 이 사태, 이 상황(diesser Fall)은 예외적인 방식으로만(nur aisnahmsweise) 도래한다. 그것은 그 결단적 성격을 중단시키지도 않고 지양시키지도 않고 무효화하지도 않는다(hebt nicht auf). 이 예외성이 반대로, 사건의 우발성을 정초짓는다(begründet). 어떤 사건이 사건이며,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예외적인 경우뿐이다. 그 자체로서의 사건은 예외적이다.[각주:14]

 

전쟁의 실재적 가능성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곧 예외상태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정치가 전쟁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규정할 때, 우리는 바야흐로 벤야민이 말한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속에 놓이게 된다. 이로부터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슈미트를 염두에 두면서, 전쟁이란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이다고 말할 것이다. “가장 극한적인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모든 정치적 개념의 기초에, 이 친구와 적의 구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이 구별이 윤리 사이에 실재적으로 현전하고 있는 한, 혹은 적어도 실재적으로 가능한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6/31).

 

세 가지 기준(실재성, 가능성, 현전)이 여기서는 같은 우발성의 핵심에서 얽히고설킨다. 사건의, 하나이자 동일한 사건성의 핵심에서. 친구/적의 배치는 어떻게 개시되는가? 어떻게 현전하는가? 이런 실재적 가능성은 현전하는가, 아니면 실현하는가, 가능적인 것으로서, 혹은 실재적인 것으로서. 이 실재성은 어떻게, 어떤 경우에는 현전을, 어떤 경우에는 가능성 자체를 강조하는가. 전쟁에 있어서이다. 극한으로서의, 전쟁상태의 극한적 경계로서의, ‘극한적 우발성’(als extreme Eventualität)으로서의 전쟁에 있어서다. 전쟁이 개시적인 것은 이 자격에 있어서다. 그것은 그 위에서 하나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을 구성한다. 정말로 그러하지만, 그 본질은 우선 비통상적인, 비경험적인, 어떤 목적론적인(téléologique)(극한적 경계로서의 텔로스[목적=귀결]) 의미에서 범례적이고 모범적인, 하나의 사실에서 곧바로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개시되는 실재적 가능성의 현전’(Vorhandenheit), 실재적 혹은 가능적인 이 현전은, 사실이나 사례의 현전이 아니다. 그것은 텔로스의 현전이다. 정치적 텔로스의, 이러저러한 정치적 목적의, 이러저러한 정책의 현전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 의 현전이다. ‘가장 극한적인(extremste)’ 정치적 수단으로서, 일체의 정치적 표상을 정초짓는전쟁은, 친구/적의 이 차별의 가능성을 현현한다(offenbart). 그리고 이 표상에 의미가 있는 것은, «sinnvoll»인 것은, 이 차별이 실재적으로 현전하고 있는’(real vorhanden) 한에서이며, 혹은 적어도 현실[실재]적으로 가능한(oder wenigstens real möglich) 한에서이다.[각주:15]

 

따라서 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이란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목적)이다. 정치적인 것의 텔로스란 친구/적의 구별, 친구-적의 항쟁이며, 그것은 전쟁이다. “전쟁에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어떤 정치도, 정치적인 유대로서의 어떤 사회적 유대도, 전쟁 없이는, 그 실재적 가능성 없이는 의미가 없다.”[각주:16] 달리 말하면, ‘예외상태에서는 어떤 정치이든, 어떤 정치적 유대이든, 전쟁의 실재적 가능성에 의해 정초지어진 것이다. 다음의 슈미트의 말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전쟁은 결코 정치의 목표, 목적, 내용이 아니며, 전쟁은 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사고하는 것을 특수한 방식으로 규정하며,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특수 정치적 행태를 산출하는,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상 현전하고 있는 저 전제(die als reale Möglichkeit immer vorhandene Voraissentzung)이다”(정치적인 것의 개념, 34-35/27).[각주:17] 여기서 슈미트는 전쟁은 정치적인 것의 전제라고 말하며, ‘목적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예외상태에서 전쟁은 바로 정치적인 것의 전제인 동시에 그 목적이며, 귀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 첫째, 친구/적 관계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은 절대적 적대로서의 전쟁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둘째, 적이란 적어도 잠재적으로, 즉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항쟁하고 있는 인간의 총체인데, 그것은 정치 시스템으로 통합 불가능한 내부의 적이기도 할 것이며(즉 내전), 다른 국민국가라는 외부의 적이기도 할 것이다(즉 대외전쟁).

셋째, 친구/적 관계, 즉 전쟁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이 정치의 전제’(슈미트), 정치의 텔로스’(목적)(데리다)가 되는 경우, 우리는 예외상태혹은 더 정확하게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상태화, 일상화]’ 속에 있게 된다. 우리는 제2차 아베정권의 해석개헌이 제시한 일련의 안전보장(‘실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에 관한 논의를 계기로 하여, 바로 이런 예외상태의 규칙화[상태화, 일상화]’ 속에 놓여 있다.

 

2. ‘예외상태의 규칙화[상태화, 일상화]’법률의 힘

이제 다음으로 해석개헌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점에 관해 데리다와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관한 분석에 입각해 생각해보자.[각주:18]해석개헌이란 피구성적 권력(헌법에 의해 구성된 권력[pouvoir constitué])인 내각이 구성적 권력=헌법제정권력(헌법을 구성하는 권력[pouvoir constituant])임을 선언하지 않고, 즉 입법적 수단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각의결정[국무회의결정]이라는 행정적 수단에 의해 헌법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구성적 권력이란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내는 권력이며, 기존의 헌법 혹은 법체계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무한정한 권력이다. 반대로 피구성적 권력이란 기존의 헌법에 의해 구성된 권력이며, 이것에 의해 구속되는 한정된 권력이다. 이로부터 예외상태란 바로 헌법을 중지하고 그 곁에 헌법과는 다른 2의 구조물을 구축한다는 상태를 가리키게 된다.

달리 말하면, 예외상태란 피구성적 권력과 구성적 권력이 구별할 수 없게 된 상태를 지시한다. 이런 예외상태에 관해 해석하기 위해 데리다의 =법률의 힘(1994)[각주:19]을 참조하자. 우정의 정치에 관한 강의(1988-1989)와 같은 시기인 198910월에 카도조 로스쿨(뉴욕)에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되고 역시 우정의 정치와 같은 시기인 1994년에 출판된 =법률의 힘(따라서 우정의 정치=법률의 힘은 내용적으로도 극히 긴밀하게 연결되며,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있다)에서 데리다는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1921)를 매우 밀도 높게 독해하고 있다. 벤야민이 이 논문에서 법정립적 폭력[Rechtsetzende Gewalt]”(새로운 법체계를 정립하는 폭력=권력[Gewalt])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구성적 권력에 상당하며, “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Rechtserhaltende Gewalt]”(기존의 법체계에 의해 구속되고 그것을 유지하는 폭력=권력[Gewalt])라 부르는 것은 피구성적 권력에 상당한다.[각주:20] 데리다는 =법률의 힘에서 구성적 권력은 피구성적 권력에 의해 반복되고, 때로는 (예외상태에서는) 그것에 의해 대리된다고 말한다.

 

두 개의 폭력, 즉 법정립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을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하면서 벤야민은 어떤 때 다음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한 쪽의 폭력은 다른 쪽의 폭력과 그다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른바 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 폭력에 의해 때로 대리되고반드시 반복되는 이 말의 강한 의미에서 것이기 때문이다.[각주:21]

 

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 폭력에 의해 반복되고 대리된다. 실제로 벤야민은 폭력 비판을 위하여의 결론 부분에서 법정립적 폭력은 법유지적 폭력에 있어서 대리된다(repräsentiert)’고 명확하게 말한다.[각주:22] 달리 말하면, 구성적 권력은 피구성적 권력에 의해 반복되고 대리된다. 이 단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벤야민이 제시하듯이, 그 폭력[법정립적 폭력]은 확실히 독해 가능하며, 더욱이 이해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폭력은 법권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폴레모스와 엘리스가 디케가 취하는 모든 형식이나 의미작용과 무관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폭력은 법권리 속에 있으며, 법권리를 중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법권리를 중단하고 다른 법권리를 창설한다. 법권리를 중지하는 이 순간, 이 에포케, 법권리를 창설하는 이 순간, 혹은 혁명적 순간은, 법권리 속에 있으며[있으면서도] 법권리가 아닌 심급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법권리의 전체 역사이기도 하다. 이 순간은 항상 생겨나고 있지만, 어떤 현전이라는 형태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법권리의 창설이, 공허 속에서, 혹은 심연 위에서 중지되어 있는 순간이며, 누구에게도, 그리고 누구 앞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수행적 행위(acte performatif)로 중지되어 있는 순간이다.[각주:23]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은 법권리 속에 있으며 법권리를 중단하고 중지하는 것, 달리 말하면 예외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법권리=입헌적 시스템을 정립한 후에도,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은 법유지적 폭력 혹은 피구성적 권력에 있어서 비현전적인 방식으로 (“이 순간은 항상 생겨나고 있으나 어떤 현전이라는 형태로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반복되고 대리된다.’ 이로부터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벤야민의 명시적인 의도를 넘어서 내가 제출하려는 해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 법권리를 창설하는, 혹은 정립하는 폭력(Rechtsetzende Gewalt[법정립적 폭력])은 그것 자체, 법권리를 유지하는 폭력(Rechtserhaltende Gewalt[법유지적 폭력])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법정립적 폭력은 자기의 반복(répétition)을 요구하고 유지해야 할 것, 유지할 수 있는 것, 유산이나 전통이 될 것을 약속받고, 분유되는 것을 약속받는 것을 창설한다는 것, 이것은 법정립적 폭력의 구조에 속해 있는 것이다. 창설이란 약속이다. 모든 정립(Setzung)은 용인하고 앞에 둔다. 모든 정립은 놓고, 약속함으로써 정립한다. 그리고 설령 어떤 약속이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더라도, 반복 가능성(itérabilité), 창설의 가장 침입적인 순간에, 보호의 약속을 기입한다. 이처럼 반복 가능성은 원초적인 것의 중심에 반복의 가능성을 기입하는 것이다. 더 잘 말하면, 혹은 더 나쁘게 말하면, 반복 가능성은 이 반복 가능성의 법칙 속에 기입되며, 그 법칙 아래서, 혹은 그 법칙 앞에,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권리를 순수하게 창설하는, 혹은 정립할 정도의 작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순수한 법정립적 폭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순수한 법유지적 폭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립 작용이란 이미 반복 가능성이며, 자기를 유지하는 반복을 요구한다. 유지 작용도, 그것이 창설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또한 다시 창설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립 작용과 유지 작용 사이에는 엄밀한 대립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둘 사이의 차연적 오염이라고 내가 부르는 것(그리고 벤야민은 그렇게 명명하지 않는다)만이, 이것이 이끌 수 있는 모든 역설을 수반하여 존재한다.[각주:24]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은, 그것이 어떤 법체계를 정립하는 순간에, 따라서 어떤 입헌적 시스템을 창설하는 순간에, 스스로의 반복 가능성을 법권리의 구조 속에 기입한다. , 어떤 입헌적 시스템이 창설된 후에 그것을 유지하는, 법유지적 폭력 혹은 피구성적 권력에 있어서, 법정립적 폭력 혹은 구성적 권력이 비현전적인 방식으로 반복되고 대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외상태에서 구성적 권력은, 피구성적 권력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행사한다. 그것은 법률이 아니지만 법률의 힘을 지닌 행정적 수단(예를 들어 정부명령, 행정명령 등)에 의해, 입헌적 수단을 매개하지 않고 법체계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법정립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 사이의, 구성적 권력과 피구성적 권력 사이의 이 양의성, 혹은 양자 사이의 차연적 오염, 데리다는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유령적(gespenstisch) 혼합체라고 부르고, “비열하고 천시해야 할 것이며,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한다.[각주:25] 데리다가 구성적 권력과 피구성적 권력의 양의성을 유령적이라고 부른 것은, 피구성적 권력에 있어서 구성적 권력이 반복되고 대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리성이 결코 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령성이란 어떤 신체가 그것 자체에 대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결코 현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래한다. 그 신체는 사라짐으로써 나타나며, 혹은 그것이 대리하고 있음에도 사라짐으로써 나타난다. , 그 신체는 자신과는 다른 것을 위해 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이처럼 두 개의 폭력 사이에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창설 작용과 유지 작용이 서로 오염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비열한 것이다.”[각주:26] 따라서 피구성적 권력이 구성적 권력을 반복하고 대리하면서도 구성적 권력임을 분명히 선언하지 않고 있는 사태는, 구성적 권력의 비현전성에 있어서 유령적이며, 그 때문에 극히 비열한 사태이다. 이런 사태가 제2차 아베정권이 행한 해석 개헌헌법 개정을 행하는 구성적 권력임을 선언하지 않고 각의결정이라는 행정적 조치에 의해 헌법을 실질적으로 개정해버리는 것 에 고스란히 들어맞는다는 것은 더 이상 덧붙일 필요도 없다.

이런 예외상태에 관해 더 나아가 고찰하기 위해 아감벤의 예외상태를 참조하자. 아감벤은 이 책에서 데리다의 =법률의 힘을 언급하면서, 이 텍스트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법률의 힘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관해 논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정적인 것은 기술적인 의미에서 법률의 힘(force-de-loi)’이라는 어구는 근대의 학설에서도 고대의 학설에서도 법률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권력이 몇 가지 경우에, 특히 예외상태에서 포고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듯한, 바로, 이른바 법률의 힘을 지닌 정부명령(décrets)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 법의 전문 용어로서의 법률의 힘이라는 개념은, 규범의 구속력(vis obligandi) 혹은 적용 가능성을 그 형식적 본질로부터 분리하고, 형식적으로는 법률이 아닌 정부명령이나 조치나 방책이 그대로 여전히 법률의 을 획득한다는 것을 정의하고 있다.[각주:27]

 

아감벤에 따르면, 법학에서 법률의 힘(force de loi)’이라는 개념은 법률 자체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예외상태에서 집행권력이 포고하는 정부명령, 행정명령 등의 행정적 수단을 의미한다. , ‘법률의 힘이란, 집행권력이 법률의 힘을 지닌 법률 이외의 수단(행정적 수단)에 의해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로 데리다가 =법률의 힘에서 말했던, 피구성적 권력이 구성적 권력을 대리한다는 것, 혹은 양자의 유령적 혼합체에 상당한다. 이로부터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외상태에 관해 논의하고 연구해 온 가운데, 우리는 집행 권력에 의한 법적 결정들과 입법권력에 의한 법적 결정들 사이의 이런 혼동의 수많은 예와 마주쳤다. 이런 혼동이야말로 이미 봤듯이, 예외상태의 본질적 성격의 하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예외상태에 고유한 능력은, 지금까지 너무도 강조되었던 권력들의 혼동에 있다기보다는 법률의 힘을 법률로부터 분리하는 데 있다. 그 고유한 능력은 한편으로 규범이 효력을 지니나 적용되지 못하고(‘을 지니지 못하고) 다른 한편으로 법률의 가치를 갖지 않는 행위들이 법률의 을 획득하는, ‘법률의 상태를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상시의 경우에 법률의 힘은 무규정의 요소로서 부유하는 것이며, 그것은 (위임독재로서 처신하는) 국가 당국에 의해서도, (주권독재로서 처신하는) 혁명조직에 의해서도 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예외상태란 법률 없는 법률의 힘(따라서 이것은 법률의 힘(force-de-loi)이라고 써야 할 것이다)이 관건이 되고 있는 아노미적 공간이다.[각주:28]

 

, ‘예외상태법률의 힘을 법률로부터 분리하고 법률의 가치를 갖지 않는 행위들(행정적 수단)법률의 힘을 획득하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통치권력이 기존의 법체계를 무화하고, 법률 없는 법률의 힘’(아감벤은 이것을 법률의 힘(force-de-loi)’이라고 고쳐 말한다)이 통치하는 무질서한 통치를 의미한다.

이로부터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독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법권리의 중지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외상태는 독재의 모델을 따라 권력의 완전함, 법이 충만한 상태[자주 예외상태를 특징짓는 말로서 사용되는 전권[pleins pouvoirs]’이라는 표현을 참조]로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법권리가 공허한 상태, 법권리의 공백과 중지로서 정의된다.”[각주:29] 예를 들어 슈미트는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와 같은 1921년에 출판된 독재론에서 예외상태를 위임독재주권독재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려 했다. ‘위임독재란 헌법 혹은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 혹은 법질서를 중지하는 것, 즉 피구성적 권력이 법권리를 중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주권독재란 기존의 헌법에 구속되지 않고, 새로운 헌법을 구성하는 권력, 즉 구성적 권력을 가리킨다.[각주:30] 이런 개념들은 예외상태에서의 통치의 두 가지 양상을 거의 정확하게 기술한다. 그렇지만 예외상태를 독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가령 독재자로 간주되는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법률적으로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총리였음을 간과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예외상태를 슈미트처럼 독재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합법적 헌법의 중지라는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 점에 관해 아감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공법학에서는 제1차 대전 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위기에서 생겨난 전체주의적 국가들을 독재라고 정의하는 것이 관습으로 정착됐다. 이리하여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프랑코도 스탈린도, 모두 한결같이 독재자로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무솔리니든 히틀러든 법기술적으로는 그들을 독재자라고 정의할 수 없다. 무솔리니는 국왕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임명된 총리였으며, 마찬가지로 히틀러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당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라이히의 재상이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든, 독일의 나치즘 체제든, 이것들을 특징짓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이것들이 현행의 헌법(각각 알베르토 헌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존속시킨 채로, 날카롭게도 이중국가라고 정의된 하나의 패러다임에 근거하며, 자주 법적으로는 정식화되지 않았으나 예외상태 덕분에 합법적 헌법과 나란히 존재할 수 있었던 두 번째의 구조물을 합법적인 헌법의 곁에 두었다는 것이다. 법학적 관점에서 이런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는 독재라는 용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게다가 오늘날 지배적이 되고 있는 통치 패러다임의 분석에 있어서도,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앙상한 대립도식은 길을 잘못 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각주:31]

 

현대적인 통치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에 관해 분석할 때, 예외상태를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버리면 오히려 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의 본질을 놓쳐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예외상태를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도식으로부터 분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합법적 헌법의 중지, 그리고 이것과는 다른 두 번째 구조물을 합법적 헌법의 옆에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예외상태에 의해 합법적 헌법을 중지하고 집행권력이 행정적 수단에 의해 입법권력을 대리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의한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 상태를 파괴하고,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붕괴를 귀결시킬 것이다. 예를 들어 전간기[양차대전 사이의] 독일에서의 바이마르 체제를 생각해보자. 당시의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헌법이라고 여겨진 바이마르 헌법은 그 48조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중지한다고도 형용해야 할 예외상태의 규정을 뒀다. 그 조문은 다음과 같다. “독일 제국 안에서 안전과 공공의 질서가 중대한 정도로 교란되거나 위협받은 경우에는, 라이히 대통령은 군대의 힘을 빌려서라도 안전과 공공의 질서의 재건에 필요한 수단을 취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해 라이히 대통령은 헌법 114, 115, 117, 123, 124, 153조에서 정해진 기본적 권리들을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중지할 수 있다.” 이 조항에 의거하여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대 내각은 250회 이상에 걸쳐 예외상태를 선언하고 긴급정부명령을 발포했다. 헌법 48는 수천 명의 공산당 활동가를 투옥하고 그들에게 극형을 내리기 위한 특별 법정을 설립하기 위해 이용된 동시에, 또한 많은 경우에는 독일 마르크의 하락에 대처하고 경제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도 이용됐다. 이런 예외상태의 사용은 정치적-군사적 긴급사태와 경제적 위기를 합치시키려 하는 현대의 경향에도 합치한다고 아감벤은 말한다(예를 들어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일본에서, 경제적-군사적 위기를 정치적 예외상태로 변환하는 통치수법 에너지=경제에서의 위기와 군사적 위기해석 개헌으로 변환하는 통치수법 을 참조하라).[각주:32] 더욱이 1930년대 이후, 독일은 항상적으로, 48조를 발동한 대통령 독재의 상태에 있으며, 최종적으로 1933, 나치 체제가 의회에서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키자, 바이마르 헌법은 그것이 존재한 채로 완전히 중지된다.[각주:33] 이처럼 바이마르 헌법 48조의 예외상태의 규정은, 바이마르 헌법이라는 당시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붕괴시키고, 전간기 독일의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일본으로 시점(視點)을 옮기고, 자민당의 헌법개정초안에 있는 긴급사태조항이 바이마르 헌법 48조와 완전히 같은 성질의 규정이라는 것에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조항을 아래에서 인용한다.

 

98(긴급사태의 선언) : 내각총리대신은 우리나라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의 자연재해, 기타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서,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를 통해 긴급사태를 선언할 수 있다.

99(긴급사태의 선언의 효과) : 긴급사태가 선언됐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내각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정부명령을 제정할 수 있는 것 외에, 내각총리대신은 재정상 필요한 지출, 기타 처분을 행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

3 : 긴급사태가 선언됐을 경우에는, 누구라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선언과 관련된 사태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조치에 관해서 발포되는 지역, 기타 공공기관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제14, 18, 19, 21, 기타 기본적 인권에 관한 규정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조항들이 긴급사태’(=예외상태)에 있어서 내각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정부명령을 제정할 수 있다”(‘법률의 힘혹은 법률의 힘에 의한 통치를 가능케 할 수 있는)고 한 다음, “긴급사태가 선언됐을 경우에는, 누구라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선언과 관련된 사태에 있어서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는 조치에 관해서 발포되는 지역, 기타 공공기관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우리는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조문에서는, 그 후에 기본적 인권에 관한 규정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자민당 헌법초안을 보충하는 Q&A에는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이라는 커다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이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보다 작은 인권이 어쩔 수 없이 제한될 수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긴급사태에서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이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이라는 커다란 인권을 지키기 위해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각주:34]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예외상태규정을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헌법을 무화하는 헌법개정(현행 헌법에 대한 긴급사태 조항의 부가도 포함한)을 절대로 거부해야 한다.

그렇지만 법률의 힘에 의한 기존 헌법의 중지라는 통치 수법은 이런 긴급사태조항에 의하지 않더라도, 이미 해석 개헌이라는 수법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외상태는 더는 예외적 조치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통치기술로서 항상 등장하게 됐을 뿐 아니라, 법질서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이라는 그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다.”[각주:35] 아감벤이 벤야민을 참조하면서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라고 형언하는 것은 예외상태”(법체계를 중단, 정지시키고 그것과는 다른 구축물을 그 곁에 두는 것)시큐리티(security)’(넓은 의미에서의 안전뿐 아니라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안전보장도 의미하는)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고, 일반적인 통치에서의 통치기술로서 받아들여지고 행사되는 것이다. ‘예외상태의 유령은 전전(戰前)과 같은 형태로는 회귀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번째에는 모습을 바꾸며, 시큐리티 확보라는 미명 아래서의 법체계의 중지 혹은 법률의 힘으로서, 일반적인 통치기술로서 회귀한다. ‘해석 개헌[각주:36]이 출현시키는 예외상태의 규칙화[일상화, 상태화]는 기존 헌법의 곁에 그것과는 다른 구축물을 두고, 행정적 수단에 의해 헌법을 공백으로 만듦으로써[헌법에 공백을 창출함으로써] 입헌 민주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붕괴를 귀결시킬 뿐인, 극히 위험한 통치기술인 것이다.

 

 

  1. Walter Benjamin,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in Gesammelte Schriften, Bd. I-2, Suhrkamp, 1999, S.697. “비억압자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규칙[常態]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Die Tradition der Unterdrückten belehrt uns darüber, daß der »Ausnahmezustand«, im dem wir leben, die Regel ist].” [옮긴이] 일본어로는 예외상태의 ‘상태화’로 표기되었으나 사전적 의미에는 ‘규칙화’가 가장 충실하지만, 일상적인 의미를 담아내려면 이를 ‘일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법과의 관계라는 측면이 지워져버릴 위험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규칙화[일상화, 상태화]’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2. 다음을 참조. 高橋哲哉, 『犠牲のシステム──福島・沖縄』, 集英社新書, 2012년. [본문으로]
  3. Jacques Derrida, Séminaire La bête et le souverain. Volume II (2003-2004), Galilée 2010, p.30. [본문으로]
  4.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Duncker & Humblot, 1922, 8. Auflage, 2004, S.13. [본문으로]
  5.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Duncker & Humblot, 1932, 3. Auflage, 1963. 본서에서 인용할 때에는, 데리다의 슈미트 해석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독일어 원서를 참조하면서도 주로 『우정의 정치』에서 데리다가 한 프랑스어 번역본에서 인용했다. 출전은 본문 속에 독일어 원서를 표기한다. [본문으로]
  6. Jacques Derrida, Politiques de l’amitié, Galilée, 1994, p.104. [본문으로]
  7. 다음에서 인용. Ibid., p.105. [본문으로]
  8. Ibid., p.105. [본문으로]
  9. 다음에서 인용. Ibid., p.108. [옮긴이] 공적과 사적의 희랍어는 각각 ‘polemios’과 ‘echthros’이다. [본문으로]
  10. Ibid., pp.142-143. [본문으로]
  11. 다음에서 인용. Ibid., p.147. [본문으로]
  12. 다음에서 인용. Ibid., pp.138-139. [본문으로]
  13. 다음에서 부분적으로 인용. Ibid., p.152. [본문으로]
  14. Ibid., p.156. [본문으로]
  15. Ibid., p.155. [본문으로]
  16. Ibid., p.156. [본문으로]
  17. Ibid., p.149. [본문으로]
  18. 우리는 데리다와 아감벤의 ‘예외상태’ 개념에 관해, 상이한 관점에서 논한 적이 있다. 『新自由主義と権力──ブーコーから現在性の哲学へ』人文書院, 2009년, 第三章 「主権権力の強化と例外状態の常態化」[사토 요시유키, 3장. 「주권권력의 강화와 예외상태의 일상화」, 『신자유주의와 권력』, 김상운 옮김, 후마니타스, 2014]를 참조. [본문으로]
  19. Jacques Derrida, Force de loi, Galilée, 1994. 본서의 제목은 『법의 힘』으로 정착되어 있으나, 본고에서는 «force de loi»라는 법학적 개념을 “법률의 힘”으로 번역할 필요 때문에, 본서의 제목을 『법의 힘=법률의 힘』으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20. 우리는 다음의 데리다의 지적에 의거하면서, Gewalt라는 단어를 폭력=권력으로 번역하고, 법정립적 폭력을 구성적 권력과, 법유지적 폭력을 피구성적 권력과 거의 동등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Gewalt란 ‘폭력’이지만, 또한 ‘정당한 힘(force légitime)’, 즉 권위지어진=인가된 폭력(violence autorisée), 합법적 권력(pouvoir légal)이기도 하다. Staatsgewalt, 즉 국가권력이라는 표현할 때가 이것에 해당된다”(Ibid., p.74). [본문으로]
  21. Ibid., pp.69-70. [본문으로]
  22.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Gesammelte Schriften, Bd. II-1, Suhrkamp, 1999, S.129. “법유지적[법보존적] 폭력은 반드시 그 지속의 과정에서, 제반 적대하는 대항폭력을 억압하는 것을 통해, 자신에게 있어서 대리되는(repräsentiert) 법정립적 폭력도, 자신으로부터 간접적인 방식으로 약화시켜 버린다.” [본문으로]
  23. Jacques Derrida, Force de loi, p.89. [본문으로]
  24. Ibid., pp.93-94. [본문으로]
  25. 데리다가 들고 있는 것은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좇아 근대 경찰의 예이다. “한계의 부재라는 성격을 근대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감시와 단속의 테크놀로지 ― 그것은 이미 1921년에는, 섬뜩한 방식으로 공사(公私)의 생활 전체와 서로 포개지고, 그것에 신들리게 됐다(오늘날 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관해 우리는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 뿐이 아니다. 이 성격을 근대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또한 경찰이란 국가라는 것, 경찰이란 국가의 유령이며, 경찰을 강력하게 비난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의 질서에 선전포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찰은 오늘날에는 법률을 힘에 의해 적용하는(enforce) 것만으로는, 따라서 법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법률을 발명하고, 행정 명령(ordonnance)을 공표하고 법적 상황이 명백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 개입하고 시큐리티를 보증하려 하기 때문이다. 법적 상황이 확실하지 않을 때란, 오늘날에는 거의 항상 있는 것이다. 경찰은 법률의 힘(force de loi)이며, 법률의 힘을 지닌다. 경찰이 비열한 것은, 그 권위에 있어서, ‘법정립적 폭력과 법유지적 폭력 사이의 분리가 중지되기(혹은 지양되기[aufgehoben])’ 때문이다. 이 지양(Aufhebung)이라는, 경찰 자체가 의미하는 것에 있어서, 경찰은 법을 발명하고 스스로를 «rechtsetzende»인 것, 즉 입법하는 것으로 만든다. 경찰은 법권리에 미확정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법권리를 부당하게 찬탈한다. 설령 경찰이 법률을 발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대에서의 입법자의 하나로서 ― 현대의 [유일한] 입법자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 행동한다. 경찰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즉 어디서나, 그리고 바로 여기서도, 이제 두 개의 폭력, 즉 법유지적 폭력과 법정립적 폭력을 구별지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양의성이 비열하고 천시해야 할 것이며, 언어도단인 것이다”(Ibid., pp.102-103). 다음도 참조.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Gesammelte Schriften, Bd, II-1, S.189. [본문으로]
  26. Jacques Derrida, Force de loi, p.102. [본문으로]
  27.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Seuil, 2003, pp.66-67. [본문으로]
  28. Ibid., pp.67-68. [옮긴이] 원래 ‘법률’에 X표를 해야 하나, 프로그램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 표기했다. [본문으로]
  29. Ibid., p.82. [본문으로]
  30. Carl Schmitt, Die Diktatur, Duncker & Humblot, 1921, 7, Auflage, 2006, S.133-134. [본문으로]
  31.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p.82. [본문으로]
  32. 이런 경제적-군사적 ‘위기’의 정치적 ‘예외상태’로의 변환을 배경으로 하여 제2차 아베정권은 경제계로부터의 요망에 부응해, 무기수출의 원칙적 금지를 정했던 “무기 수출의 3원칙”을 폐지하여 “방위 장비 이전 3원칙”(‘방위 장비’라는 익숙하게 들은 말은 ‘무기’를 바꿔 말한 것)을 각의에서 결정하고, 무기수출을 해금했다. 그것은 군사적 ‘위기’를, 군수산업의 수출 확대(그것은 원전의 수출 확대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같은 재벌계 기업이 그 주체이기 때문이다)에 의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극복으로 변환하는 시도이다. ‘해석 개헌’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시도에 이바지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수산업이 동원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집단적 자위권 집단적 안전보장이 해금된다는 군사-자본주의적 논리에는 특단의 유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 점에 관해서 히로세 준 씨의 트위터에서의 발언(http://twitter.com/flux_de_merde/status/496847829445259264)에서 시사를 얻었다. [본문으로]
  33.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pp.30-32. [본문으로]
  34. 현행 헌법과 자민당 헌법초안을 비교하고, 후자의 문제점을 자세하게 해설한 아래의 사이트의 서술은, 극히 유익하다. 「자민당 헌법초안의 조문 해설」 http://satlaws.web.fc2.com/92html. 또한 「일본국 헌법개정초안 Q&A」는 다음에서 관람 가능. http://www.jimin.jp/policy/pamphlet/pdf/kenpou_qa.pdf. [본문으로]
  35. Giorgio Agamben, État d’exeption, trad. fr., p.18. [본문으로]
  36. 마지막으로 ‘해석 개헌’의 헌법 해석(데리다적 의미에서의 ‘텍스트 해석’)의 문제에 관해 데리다의 사상에 의거하면서 부연하고 싶다. 진부해진 탈구축 개념의 설명으로서, 텍스트 해석은 원본의 문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따라서 반드시 역사적 문맥에 의해 규정될 필요는 없다고 하는 변종이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전혀 데리다적이지 않으며, 그런 극단적인 ‘텍스트주의’가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도 부담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설명은 데리다의 사상을 완전히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사실적인 헌법해석으로서, 1972년의 정부 견해(「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사이의 관계에 관한 정부 자료」)에 기반을 두고 “안전보장환경의 변화”를 따라 집단적 자위권과 집단적 안전보장의 행사를 인정한다는 제2차 아베정권이 행한 해석은, 1972년의 정부견해가 집단적 자위권의 보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행사는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결론짓고 있는 이상, 완전히 파탄 났다. 더욱이 철학적인 문맥에서는, 데리다 자신이 『법=법률의 힘』에서 “탈구축은 정의이다”라고 단언함으로써, 탈구축이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모종의 ‘정의’, 즉 급진민주주의(‘도래할 민주주의’)의 이념에 다가서는 것임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평화주의, 즉 전쟁의 기피는 바로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의 이념에 따른 것이다. 또한 이 점에 관해, 히로세 준과의 개인적인 대화로부터 시사를 얻었음을 밝히고 감사드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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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민주주의 추동력 ‘다원주의’
김학순 선임기자 hskim@kyunghyang.com경향신문
나치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자부하는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제전범재판소 심문과정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돌프 히틀러가 하나의 국가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당신 역시 하나의 민족사회주의를 갖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히틀러보다 내가 우월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신이 진정 그렇게 느꼈다는 말인가요? “정신적으로 무한히 우월합니다.”

이런 슈미트가 학문적으로, 그것도 전 세계에서 부활하고 있다면 일단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서구 정치사상 연구에서 슈미트의 지적 영향력은 가히 세계화 수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토양이었던 신보수주의자들을 비롯한 우파진영에 필수적인 참고 대상이었던 것은 물론 일부 좌파 진영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슈미트의 사상과 저작 자체가 갖는 ‘악마적 매력’ 때문이다.

슈미트 사상의 고갱이인 ‘정치적인 것’이란 개념의 활용도는 무진한 것 같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법문사) 등에서 정치적인 것의 판단 기준으로 유명한 ‘친구와 적의 구별’을 제시한다. 이때 적은 사사로운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이다. 적과 동지의 구별이 없게 되면 정치생활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갈등과 적대를 본질로 하면서 절대 길들여질 수 없는 인간 본성을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슈미트의 논리는 모든 것=정치적인 것=우적(友敵) 구분=논쟁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벨기에 출신의 진보적 정치철학자 상탈 무페는 슈미트가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개념인 ‘정치적인 것’을 적극 차용한다. 무페는 책의 제목까지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이라고 했을 정도다. 무페는 슈미트의 총론에는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각론으로서는 받아들여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 ‘정치적인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정치(politics)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구별된다. ‘정치’가 대의제라는 제도장치를 통해 작동하는 것이라면, ‘정치적인 것’은 일상의 다양한 이슈를 중심으로 작동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를테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정치’보다 ‘정치적인 것’을 통해 더 잘 구현된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가 정책 결정과 연관되는 반면 ‘정치적인 것’은 레짐이나 패러다임과 상관되기도 한다.

무페가 슈미트와 갈라서는 지점은 다원주의다. 무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더불어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수용하지만 다원주의를 끝까지 옹호하는 점에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무페는 적대와 갈등의 장(場)인 ‘정치적인 것’을 사고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의 맹점을 비판하는 한편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좌파의 공간을 찾는다.

무페의 ‘정치적인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정치의 과잉이 아니라 다양성 정치의 부족이라는 관점이다. 무페의 사상은 정치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여론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못마땅해 하거나 불편해 하는 이명박 정부가 수용하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다. 사회갈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애써 덮어놓으려는 게 자유주의 정치철학이다. ‘정치적 구호의 배제’를 선호하는 보수정치권은 여러 의견들이 공존하고 공론화되는 다원주의 사회가 아니라 모든 게 경제의 문제로 귀결되는 일원주의 사회를 원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체포나 여권이 일방적인 처리 의중을 버리지 않고 있는 언론 관련법에 대한 생각만 봐도 그렇다.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1987년 체제 이후 제도화만으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착각·오해하는 한국적 정치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에도 정치적인 것이 있다”는 명구가 이때 딱 어울리는 듯하다.

<김학순 선임기자 hskim@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1161734385&code=900308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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