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1부 1장. 

생명정치학적 고찰

우노 쿠니이치(字野邦一)

 å­—野邦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각주는 모두 뺐으며, 프랑스 및 영어 원본 등과의 대조를 통한 번역 수정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에서 어떻게 번역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1. 묵시록적인 한 구절

지식의 의지(1976)에서 미셸 푸코가 쓴 한 구절(‘죽게 만들 것인가 살게 내버려 둘 것인가라는 고대의 권리를 대신하여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이 초래한 기묘한 충격을 돌이켜봐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on pourrait dire ~)”고 가설처럼 말했던 것은, 이 발언이 품고 있는 매우 중대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내용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것은 불길한 죽음의 고지를 충분히 포함했다. 그저 죽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이중으로 가혹하게 죽음을 하게 만드는 권력은 더 이상 결코 우연도 예외도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규칙[常態]이며 원리이기도 하다고 지적된다.

Histoire de la sexualité, tome 1 : La Volonté de savoir

 푸코는 권리(droit)’권력(pouvoir)’이라는 말을,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엄밀하게 나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죽게 만드는 권리란 군주의 권리였지만, 살게 만드는 권력이란 더 이상 특정한 인격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행정 등의 기관들에 의해서 분절되고 오히려 익명의 권력으로서 분산되고 국민의 생명에 대한 관리, 통제, 조절을 면밀하게 실천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군주는 눈에 보이는 노골적인 힘을 행사하여 사람을 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명백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근대의 사회가 원리적으로 보다 잔혹하게, 음험하게 생명을 말살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말살해 왔다는 것을 푸코는 지적했던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 결코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중추적 원리로서 작동하는 아포리아를 똑바로 가리켰던 것이다.

 “대량학살은 사활의 문제가 된다.” 전쟁의 결정은 살아남는가 아닌가라는 노골적인 물음을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핵무기 하의 상황은 이런 과정의 도달점에 서 있다.”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인 인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 푸코는 몇 쪽에 걸쳐, 이렇게 암흑의 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묵시록적 기술을 재빠르고 민첩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나치즘의 우생학적 재편성에 관해서, 또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의 학살에 관해서도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생명정치’, ‘생명권력이라고 부른 것은 엄밀하게 서양의 18세기 중엽에 출현했던 것으로 간주되고,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을 뒷받침하는 신체가 그 초점이 되었다. 또한 생물학적 과정이란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이며,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조건이라고 푸코는 설명한다. 생명정치는 이전에 그가 감시와 처벌(1975)에서 정밀하게 묘사했던 신체를 둘러싼 훈육[調敎], 규율의 시스템과 연동하여, 더 이상 군주의 권리로서도, 모든 주권이나 법권리의 형태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권력의 그물망을 세계로 뻗쳐나간다.

 그리고 지식의 의지성의 역사1권으로 썼기 때문에, 바로 생명/의 정치는 의 정치로서, 신체의 훈육·규율이라는 측면과 생식을 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제·관리라는 또 다른 측면을 연동시킨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과 더불어 분절되는 을 여전히 법에 의한 단속이나 검열이나 금기, 그리고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은, 새로운 생명권력 그 자체에도 깊이 침투되어, 이것에 편입[기입]됐던 생명과 성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푸코는 바로 이것에 역점을 두고 지식의 의지를 마무리했지만, 오히려 이 책을 둘러싼 논의도 자주, 성은 과연 억압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욕망이나 성적 억압은 오랫동안 정치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에서도 쟁점이었기 때문에, 푸코는 여기서도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성을 둘러싼 권력은 강대한, 눈에 보이는 중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도처에 분산되어 있는, 무수한 점을 통해서, 내재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이 권력은 일정한 중심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분할할 수 없다. 이 전제에 관해서도, 만일 권력이 그렇게 비집권적이고, 거의 실체를 결여한 것이라면, 반권력의 투쟁은 더 이상 불가능한가라는 의문도 항의도 나왔다(“권력은 도처에 있다. 모든 것을 아우르기 때문이 아니라 도처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푸코가 조금 묵시록적인 어조로 재빨리 말했던 생명정치학, 지식의 의지가 간행되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논의를 야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게 만들거나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이라는 무서운 지적은 내 머리 속에도 내려앉아 사악하게 맴돌면서 불길한 인상을 계속 내뿜었다. 푸코는 극히 엄밀한 저자인데, 누구나 아는 인간의 종언이라는 도발을 포함한 주요 저서도 있으니, 결코 묵시록적인 발언을 스스로에게 금지해 왔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종언은 엄밀하게 서양의 담론형성체가 어떻게 인간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내고 변경해 왔는가라는 고찰의 한 결론이며, 그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한정된 문제계 속에서 엄밀하게 말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관한 그 담론의 종언이란, 그대로 인간의 종언이라는 묵시록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푸코는 충분히 진지하고 노골적이며 도발적이기도 하며, [실제로] 훌륭하게 도발에 성공했다. 담론 형성체[편성]에 관한 엄밀한 분석과 더불어 인간의 종언에 관해 말했기 때문에, 그것은 사상사적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또한 인간의 종언에 못지않게 묵시록적인 시사였다. 이것도 또한 서양 근대의 어떤 시점에 위치지어질 수 있는 역사적, 제도적인 권력기구의 엄밀한 고찰에서 나온 제안이긴 했지만, 푸코는 순식간에, 몇 쪽에서, 20세기의 강제수용소나 핵무기의 위기까지 생명정치의 정의를 확장하고 있다. 미증유의 규모로 냉혹한 죽음을 초래하는 생명정치론은 또 다른 인간의 종언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가능성이 바로 폭발하듯이 현실화하는 것이 20세기의 전쟁과 수용소였다고 한다면, 푸코는 그 조짐을 이미 수세기 전의 서양에서 발견하고, 이 세계의 체제가 점점 더 생명정치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다.

 환경파괴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아직 지구적 규모의 위협이 되기도 전에 인간은 이미 생명정치에 의해서 위기적 상황을 척척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환경과 인구에 대해서조차 이미 생명정치는 다양한 작용을 끼쳐왔음에 틀림없다. 생명과 죽음의 권력을 둘러싼 푸코의 도식은 극히 간략하며 간단할 뿐으로, 충격적이지만, 면밀한 논증을 결여하고 있으며, 반드시 진실을 알리는 언표로서 독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튼 밑도 끝도 없는 규모에 걸친 심각한 문제제기였다.

 

2. 정치의 과제는 생명이 아닌가?

푸코는 한나 아렌트의 책을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내 머리 속에서 생명정치학은 아렌트가 물었던 정치와 생명이라는 문제에 직결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렌트의 정치학은 공공성개념과 한 몸을 이루며, ‘공공성이란 어디까지나 복수성을 존중하고, 상이한 의견을 격렬하게 주고받으며 겨루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공공성과 이것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행동이 그녀에게 그대로 정치의 내용이 됐다.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이상을 외골수로 계속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의 비판적 사색은 공공성을 단순한 이념으로 폄하하는 현실의 정치적 과정을 겨누었다. 그리고 공공성의 창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는 역사의 다양한 과정에서 실현되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 정치의 앞에, 바로 커다란 위험으로서 가로막고 있는 것은 생명의 위기라는 사태였다. 아렌트는 단적으로 이렇게 쓴다.

 “만일 정치가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생존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정말이라면, 실제로는 정치는 스스로를 말소해 왔던 것이 된다.” 아렌트에게서 현대세계가 손에 넣은 절멸전쟁의 가능성을 앞에 둔 정치란, 더 이상 정치의 기본적 요건(공공성, 자유)을 결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이기도 하며, 인간이나 어쩌면 이 세상의 생명체 전체가 더 생존할 수 있는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문제는 모든 정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며, 현대의 조건 아래에서는, 정치와 생명의 유지가 서로 조화한다는 것이 의심스럽게 보이게 된다.”

政治とは何か

 이런 사고에 있어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이라는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원래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생명의 유지(살게 만드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활동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아직 생명정치학적 문제가 출현하기 전의 고전적 정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곧 통치가 아니며, 생명유지를 도모하는 체제도 아니라고 계속 말하면서, 아렌트는 한결같이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계속 주목했다. 이 정치에 있어서 궁극적인 적(반대물)으로 전체주의를 상세하게 연구하는 책을 썼다. 또한 공공성의 사고를 칸트의 세 번째 비판서(판단력비판)의 미학적 판단에 비춰서 더욱 심화시키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생명정치학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과 비춰봄으로써,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명정치는 생명을 배려하고 통제하는 정치로서 출현하지만, 이때 생명정치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며, 이 둘 사이에도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는 것임은 틀림없다. 아렌트는 생명을 목표로 하는 정치그 자체에 강한 부정을 피력하고, 그리스의 폴리스나 미국의 독립혁명을 재평가하며, 거기서 실현된 공공성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저 회고적으로가 아니라, 새롭게 실현하고 구성해야 할 정치로서도 그것을 말했다.

푸코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다시금, 오늘의 세계에서 정치가 생명과 어떻게 마주대하고, 생명을 어떻게 다루고, 조작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정치는 무엇을 하는가를 재차 묻게 된다. 정치가 생명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인 듯 싶지만, 그것은 꼭 자명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치가 아닌데도 그래도 똑같이 정치라는 말이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시대부터, 특히 생명을 배려하게 됐다고 얘기되는 정치는 도대체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표현하며 무엇을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없었는가? 아렌트의 비판은 단순히 정치는 무엇을 잃었다가 아니라, 생명정치 이전의, 혹은 생명정치 이상의 정치를 눈여겨보면서, 생명정치에 에워싸이게 된 정치를 재고하기 위한 시사로서 독해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의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라는 정식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8세기 중엽에 출현하여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등을 치밀하게 배려하게 되는 살게 만드는 권력이 왜, 어떻게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일 수 있었는가, 삶의 권력이 어떻게 죽음의 권력으로 변형할 수 있었는가, 그것에 관해서도 사실은 푸코는 그렇게 설득력 있게 쓰지 않았다.

 절멸전쟁의 가능성과 더불어 있고, 절멸인가 아닌가라는 선택에 몰입하는 정치에 관해 아렌트뿐만 아니라 푸코도 절멸수용소와 핵무기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문제 삼았다. 그리고 환경파괴나 인구폭발은 또 다른 생사에 관련되는 정치의 과제를, 명백하게 들이댔다. 이것들은 어느 정도 생명정치학적 문제이며, 또한 적지 않게 생명정치적인 변화가 산출했던 결과이기도 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들을 그저 묵시록적인 비전으로 용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다른 차원, 다른 수준의 문제로서 재고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정치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각각으로 풀어 헤쳐져 고유한 수준에서 생각해야 할 상이한 물음이, 모두 빠짐없이 거기에 한꺼번에 밀어닥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묵시록은 도처에서, 영화 속에서도, 철학 속에서도, 특히 미디어 속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3. 생명정치인가, 구성적 정치인가

그리고 생명과 정치의 맥락에, 설령 절멸전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요인이 개입함으로써 질문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아무튼 전쟁은 생명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를 전제로 한다. 적의 생명은 말살해도 상관없는 최저의 가치밖에 갖고 있지 않다. 위협 받고 있는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쟁의 이유라 해도, 이를 위해 자국민(의 일부)도 희생시키는 것 전쟁의 전제이며, 어디까지나 국민보다 국가가 소중한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폭력비판론(1921)에서 정치적 폭력을 둘러싼 아포리아에 관해 쓰고 있다. ‘인간이란 인간의 생명과도, 인격과도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도그마는 결코 자명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깊이 있게 이 도그마의 유래를 추구하기보다도, 벤야민의 관심은, 법과 더불어 있는 폭력의 양의성으로 향했다. 법을 유지하기 위해, 법에 의해 한정되고 규제되는 폭력(예를 들어 경찰), 법의 바깥에 있어서 법의 규제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정립하는 폭력(예를 들어 혁명)과 자주 구별되기 어렵다. 그러한 불분명한 폭력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생명도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즉 법적 질서의 주변에 놓이게 된다. 문학, 언어, 이데아를 예리하게 비평하는 새로운 유물론을 전개한 벤야민의 사고의 근저에는 구성적인 정치 또는 정치의 구성적 차원에 관해 그토록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는 것은 잊기 힘들다.

 나치즘이 출현한 시대에 구성적 권력을 둘러싸고 이토록 눈부신 사유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명정치()’라는 말을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말이 가리키는 정치의 급변은, 생산과 금융과 기술을 통해 가속화된 자본주의와 연동하여 세계를 크게 뒤흔들고, 그러한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게 되었다. 벤야민의 폭력론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도, 그리고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의 정치학도, 그런 역사적 동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론마저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존재자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외는 통상의[정상적인] 사례보다 흥미롭다.” “법률학에서 예외상태는 신학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도발적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슈미트는, 역시 정치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고, 때로는 바로 도착적인 신학과 닮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생활의 철학은 바로 예외나 극단적인 사례에 대해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최고도로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 생활의 철학에 있어서는, 통상[정상]보다 예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역설을 좋아하는 낭만주의적 아이러니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되풀이되는 사례의 명백한 일반화 이상으로 핵심부로 파고드는 통찰이 지닌, 철저하고 고지식함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이렇게 쓴 그는 확실히 아주 진지하게 법적 사고의 극한에서 사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통례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통례는 원래 예외에 의해서만 살아간다. 예외에 있어서야 현실생활의 힘이, 반복으로서 경직된 관습적인 것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라고까지 결론을 내리는 법학자는, 한 개인의 자질을 넘어서, “예외적인시대의 예외적인 정치적 압력에 실로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아마 슈미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사고 형태가 나치즘의 추진력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구성적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물음은 슈미트의 경우처럼 예외상태에 대한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는 아렌트가 계속했던 공공성의 창출에 초점을 맞춘 사고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마도 공통의 배경을 가지면서도 또한 정반대의 사상을 형성했던 것이다.

 얼핏 보면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학은 그러한 구성적 차원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푸코는 특히 정치적 실천에 관해서는, ‘대표대의[재현, 표상]’에 이끌리는 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정당정치와도 맑스주의와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 정신병원이나 감옥의 탄생에 관해 정밀한 역사학적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다른 정치를 제안한 것이며, 지식의 의지에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에 대해 저항하는 힘에 관해, 약간이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서술을 남기고 있다. “요구되고, 목표의 역할을 하는 것은, 근원적인 욕구이자 인간의 구체적인 본질로서, 그의 잠재적인 힘의 성취이며, 가능한 것의 충만으로서 이해된 생명이다. 그것이 유토피아인가 아닌가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거기서는 극히 현실적인 투쟁의 과정이 있다.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생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관리하고자 기획한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전시키는 것이다. 권리보다도 훨씬 생명 쪽이 그때, 정치적 투쟁의 관건=목적이 되었으며, 그것은 이 투쟁이 권리의 확립을 통해서 주장되었다고 해도 다를 바 없다.” 푸코에게서는 적어도 이 생명정치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새로운 정치와 저항이 구성되고 있고 구성되어야 하며, 거기서도 또한 하나의 구성적 차원이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용기를 갖고 진리에 관해 말하는 것”(파르레시아)을 통해서, 혹은 자기에의 배려로서 푸코가 추구했던 것은, 아렌트나 슈미트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정치 이전의,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 차원을 어떻게 사고하는가라는 과제였다. 그저 자기를 배려하는 것, 자기와 어떻게 관계하는가는 것조차, 그것은 결코 제도나 도덕을 자명한 소여로서 간주하지 않고, 이것들의 외부에서, 자립적으로, 어떠한 자기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다. ‘생명정치학이라는 질문에, 푸코 자신은 그다지 정밀한 대답을 주지 않은 채 그저 이 질문을 겸손하게, 그러나 도발적으로 제기했다. 그 질문은 충분히 도발적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푸코는 짧은 말년에, 그리스-로마의 문헌에 파고들어가, 먼 시공에서부터,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답을 계속 보냈다. 마치 생명정치학이라는 문제 등, 이제 잊어버렸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하여 푸코는 끈질기게 계속했다고 생각한다.

 

4. 생명정치의 냉소주의, 일본의 호모 사케르

또 하나, 여기서 오늘날의 생명정치학적 상황에 관해서, 상당히 단정적으로, 절망적 선언처럼 쓰인 말이 있다. “우리의 정치는 오늘날, 생명 이외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1995). 생명정치는 더 이상 정치의 일부를 이루는 것도, 미래의 징후도 아니며, 더구나 정치에 있어서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면화했다는 지적이다. 아감벤은 확실히 푸코로부터 생명정치라는 문제를 받아들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사고의 모티프는 오히려 칼 슈미트에 친화적인 것 같다. ‘예외상태에 대한 이론적 열정과 같은 것이, 아감벤의 사고를 견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예외는 그저 규칙의 외부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면서도 내부에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게 불분명한영역에 있는 인간은 호모 사케르’(성스러운 인간)라고 불린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예를 얼마 내놓지 못한다. 고대 로마에서 경계석을 무너뜨린 것,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식, 손님을 부정하게 대우한 주인처럼 죄를 저지른 것은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불리며, 이런 인물은 살해 가능하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 없다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졌다. 그는 예외상태에 놓이며,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이런 불분명한 상황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아감벤은 벌거벗은 인간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예외상황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가? 그것이야말로 주권이라 불려야 하며, ‘주권은 바로 이러한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능력이며, 또한 예외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

 분명히 주권은 헌법을 제정하고 정체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는, 그 헌법이나 정체의 외부에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규정된다는 의미에서는 내부에 있다. 아감벤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권과 호모 사케르는 동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성적 권력인 주권과,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은, 동일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더라도, 동일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호모 사케르는 또 다른 형태로도 존재한다. 그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영웅을 닮았지만, “싸우기 전에 자신을 죽은 자의 신들에게 장엄하게 바쳤으나 전사하지 않은 자이다(그들은 데보투스devotus라고 불린다). 출전하기 전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이 인간은 이제 살아 돌아오더라도 세속에 속할 수 없다. “그의 생명은 세속적인 삶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종교적 생명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이중의 배제에 있어서 분리되며, 이제 죽음과의 깊은 공생에 들어선다는 것에 의해서만 정의되며, 그렇지만 아직 죽은 자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생명이다.”

 이리하여 호모 사케르와 데보투스, 그리고 주권에 있어서, 동형적인 것, 마찬가지로 배제적 포함의 논리를 보고, 마침내 아감벤은 단숨에 묵시록적 결론을 부여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 생명 그 자체가 전례없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호모 사케르라는 모습으로 미리 규정할 수 있는 형상이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 예외상태의 정치학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생명이 어떻게 정치에 포함되 고 방어되며 어떻게 배제되고 유기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생명을 에워싼 정치가 어디에서 왔는가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 깊게 검토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구는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하며, 또한 사례의 분석에도 그다지 들어서지 않으며, 아주 도식적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아감벤의 관심은, 미리 추상화된 도식 쪽에 있으며, 그가 다루는 예외상태자체에 결코 예외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잔혹한 전쟁을 겪고 귀환한 인간은 적어도 예외적이고 불분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에서조차 많은 호모 사케르들이 실재했다. 이가라시 요시쿠니(五十嵐恵邦), 패전과 전후 사이에서 : 늦게 돌아온 자들(敗戦戦後のあいだで れてりしたち(2012)은 바로 일본의 전후에 겪었던 예외상태를 통해서, 전쟁에서 전후로 굴절된 역사적 시간을 비추고 있는 책이다. 이가라시생명정치학호모 사케르도 언급하지 않지만, 이 책은 분명히 생명정치의 거대한 사례로서 일본의 전쟁과 전후를 재고한다는 과제를 시사하며,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五十嵐恵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시에 적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길고 가혹한 생활을 한 뒤에 돌아온 자는 이른바 살아 있는 영령(英霊)’이며, 바로 희생물로 바쳐진 뒤에 살아남았다. 혹은 전투 중에 군의 지휘를 벗어나 고립상태에 있었던 병사는, 패전을 알지 못한 채, 또는 알게 되었더라도 전혀 믿지 않은 채, 밀림에 틀어박혀 가상의 적과 계속 싸운다(요코이 쇼이치横井庄一,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郎의 예). 일본의 전후에 나타난 호모 사케르는 전후에 억압되고 중화되어 버린 내셔널리즘을 새롭게 소생시키기 위한 절호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오노다보다 조금 늦게 귀환한 마지막 일본군나카무라 데루오(中村輝夫)는 대만인이며,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일본국적이 아니라 대만에 속해 있었다. 나카무라는 이리하여 예외적 전후를 살아남고, 또한 귀환하더라도 구식민지 출신자로서 예외상태에 놓이며, 대만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화제가 되지 않고 3년 반 후에 병사했다. 나카무라는 더욱이 대만에서도 고사족(高砂族)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대만어를 말하지 않았다.

 이가라시는 소련·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된 뒤에 귀환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썼다. 특히 시인 이시하라 요시로(石原吉郎)의 억류와 귀국 후의 생애에 여러 쪽을 할애했다. 억류자도 또한 겹겹이 예외상태를 살게 되었다. 우선 예외적으로 가혹한 억류와 강제노동이며, 10만이라는 엄청난 사망자 사이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예외적 체험이며, 일본으로 돌아오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결코 그들은 환대받지 못했다. 원래 <전범>으로 구속된 <예외자>이며, 소련에 억류된 동안에 <공산주의에 고취됐을> 수도 있으며, 거꾸로 소련의 수용소의 비인간성을 탄핵한다면, 이번에는 소련에 대한 비판을 듣고 싶지 않은 좌익으로부터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극한 상태에서 많은 사망자를 목격했던 억류자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죄책감으로서 무겁게 품게 된다. 이리하여 몇 겹이나 겹치는 예외상태는 그저 귀환자를 불분명한 중지상태에 둘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을 꿰뚫어 황폐하게 해 버릴 수도 있다. 돌아온 이시하라 요시로는 시를 씀으로써 그러한 예외상태를 살아남고, 황폐를 견디며, 황폐에 저항하고자 했음에 틀림없다.

 분명히 예외상태를 둘러싼 냉소주의라는 문제가 있다. 예외자는 예외상태를 초래하는 권력의 객체가 되며, 억류자는 소련으로부터, 일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그리고 어쩌면 몸 안에서부터 압력을 받고 협공을 당하며 혹은 유기되며, 더욱이 그러한 압력을 스스로 자기의 심신을 들볶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외자를 어떤 시스템의 객체(대상)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냉소주의적 입장에 서는 것이다. 아감벤은 때로 섬세한 본질적 비평을 전개하는 필자이기도 하지만, 생명정치와 예외상태에 관해 생각할 때의 그의 입장은, 이런 의미에서 어디까지나 냉소적이다.

 예외자가 된 주체가 황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거부하는가, 이가라시의 책은 바로 이 점을 건드리고 있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위치로부터 고발하지 않는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의 주체를, 정치적 또는 역사적 힘으로 해소하지 않겠다는 결의이기도 하다. , 피해자로서 규정된 자기는 보다 큰 역학에 의해 산출된, 양의적인, 이른바 그림자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이시하라는 이것에 맞서서, 자신의 체험을 정치 그리고 역사로부터 분리하고, 자기를 행위자로서 재생시키고자 한다. , 자신의 체험을 수동적, 반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입장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외자(호모 사케르) 속에는 생명정치의 냉소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며, 대항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속하는 냉소주의마저도 관통하여, 또 다른 냉소주의가 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일본어가 아니라, 외국어도, 우리말도 아닌 언어가, 절단하면서 비약하는 언어가, 시로서, 의미의 극한으로 결정화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Lager] 후에도, 그 체험을 둘러싸고 아직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라는 게 있었다. 더 이상 시는 불가능하며, 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언어 자체에 숨어 있는 힘의 기구를 찢어버리고 의식의 냉소주의를 금가게 하는 말을 찾아내야만 했다.

 생명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의 예외성, 호모 사케르라고 불리는 인간의 상황은, 호모 사케르가 객체라고 간주되는 동안에는, 마치 논리적으로 동형적으로 보이지만, 살다가 죽는 주체로서 그것을 본다면 동형적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엿볼 수 있는 <생명권력의 외부의 삶>에 관해 말하는 말과 논리를 추적해야 한다. 더 이상 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삶의 상황에 의해 찢겨지고 또한 호흡하는 말이 쓰여졌던 것이다.

 애당초 정치 제도와 법적 언어는 생명의 외부에 있으며, 생명은 원래 정치 속으로도, 법 속으로도 포섭되지 않는다. 이 완전히 자명한 사태에서 출발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몇 가지 예외 상태(의 정치학)를 살펴봤는데, 이러한 예외상태에 대해 말하려면, 정치와 법이 예외 없이 생명의 세계를 모조리 덮어버린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와 법이 오히려 예외이며, 예외적인 창조였다는 것을 슈미트도 아감벤도 결코 전제로 하지 않는다.

 아감벤은 법과 언어의 본질적인 가까움에 대해 썼다. “어떤 단어가 현실성에 있고 실제로 내뱉어진 담론의 심급에 있어서 현실의 한 절편을 외시할 수 있다는 힘을 획득하는 것은, 그 단어가 비-외시(, 언어로부터 확실하게 구별된 언어. 담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사용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어휘로서의 순수한 정합성으로서의 단어)에 있어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적) 규범이 개별 사정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규범이, 주권에 의한 예외화에 있어서 순수한 잠재력으로서, 현실성에 있는 실제의 참조가 모두 중지되어 버린 곳에서 효력을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언어의 외부에, 언어가 촉지할 수 없는 삶의·차원이 퍼져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아감벤에게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외부에 (예외로서) 있는 것은 오히려 언어가 (파롤로서) 개별적으로 사용되고 지시를 하기 이전에 체계(랑그)로서 언어를 성립시키고 있는 잠재력이며, 그것이 법규범에 있어서 역시 예외적인 주권의 잠재력과 대비되고 있다. 확실히 언어는, 그 자체는 무의미한 형식(체계)에 의해 의미작용을 가지며, 법 또한 개별 사례에 적용되기 이전에 이른바 <명법>의 형식이라는 것에 의해서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언어와 법은 똑같은 형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볼 때, 형식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작위이며 선택이다.

 이렇게 동형적으로 파악된 법-언어에 있어서, 외부란 어디까지나 내부에 포섭되는 <예외>이며, 아감벤의 사색은 이런 토폴로지에 대해 면면히 이야기는 해도, 그의 정치학은, 결코 삶에 대해, 살아 있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호모 사케르가 단순히 그렇게 닫힌 시스템의 대상이며 효과일 뿐만 아니라, 그런 냉소적인 토폴로지 속에 있더라도, 또 그것을 더욱 변형하는 토폴로지를 만들어낸다면, 삶과 정치 사이에, 다른 맥락이 발견되지 않을까?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관리하려고 시도했던 시스템을 거슬러 역전시킨다고 푸코가 암시할 뿐인 것에 머문, 그런 역전은 도처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종인 신체는,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된 신체를 둘러싼 생명정치에 대해 푸코가 썼던 것으로 돌아가자. 살아 있는 주체 쪽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생명정치를 앞에 둔 생명이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보지 못하고, 그저 생명정치가 산출하는 예외상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생명정치는 결코 법과 더불어 있는 사회에 면면히 존재한 예외상태의 한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감벤은 생명정치를 단숨에 보편화하려고 하며 이렇게 쓴다. “현대의 문화에 있어서, 모든 다른 투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정치투쟁이야말로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투쟁이다. , 서양의 정치학은 기원에서부터 동시에, 생명정치인 것이다”(열림, 2002).

 사실은 생명, 생물, “살아 있는 종으로서 파악되게 된 인간을 둘러싼 정치에 대해, 그런 정치에 포위된 삶에 대해 아감벤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외상태에 다름 아닌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 강제수용소의 빈사(瀕死)의 삶과 포개서 동물상태라고 형언하고 있으나, 동물은 항상 가스실에 내몰린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 생물로서, 생물학적으로, 혹은 임상의학이나 해부학이나 유전학에 의해 파악되게 된 인간은, 확실히 정치에 있어서,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대상으로서 나타나며, 그것에 대해 정치도 권력도 변질되어 갔음에 틀림없다. 아마 인간의 살아가는 힘, 의지, 욕망도, 그것에 대해 변질되었다. 또한 동시에, 삶과, 살아 있는 신체가, 새로운 힘관계 속에 개입하게 되었다. 동물이기도 한 인간이, 새로운 빛에 비춰지게 된 것이다. 생명정치의 세기가 오기도 전에, 스피노자 윤리학은 이미,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인간의 의식보다 훨씬 정교하게 다양한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동물의 생명을 긍정하는 윤리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예외 없이 생명을 배려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정치가, 더욱이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생명정치의 사상가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슈미트가 말하는 신학적 기적처럼 말해진 것이 아닐까? 사실은 푸코의 말투조차도 이 기적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기적을 예외상태의 정치학으로서 초역사적으로 논리화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전혀 기적이 아니니까), 생명을 둘러싼 정치에 있어서, 생명과 정치 둘 다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압력과 힘관계에 포위되면서 변용된 생명은, 이 힘의 시스템의 표적이 되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를 어떤 힘으로서 재구성하고, 지속하고 어떤 생명의 주체이고자 했는가?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을 결코 배제해온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것을 새롭게 억누르려고 했는가?

 확실히 아감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으며, 오히려 정치의 구성적 차원이기도 한 예외상태가 어떤 부조리한 폭력을 산출하는가에 특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강제수용소라는 예외상태에 관해서도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 독일의 사상가들이 상이한 입장에서 주의를 촉구한 구성적, 발생적 차원에서의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 비추어 생명정치를 파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정치를 그저 예외상태(동물상태, 불분명 상태)의 정치(오히려 논리학이라고 해야 할까)로 환원함으로써, 바로 생명정치에 노출된 생명이라는 주체를 둘러싼 사고는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것이다.

 

 

5. 두 개의 계보, 항쟁

여기서 바로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에서, 생명 그 자체에, 그리고 생명의 조건과 생명의 표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범위에서는, 분자생물학이나 유전자학에 대한 정밀한 방향에 분화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진화론이나 우생학처럼, 때로는 과학적 엄밀성을 넘어선 도그마로까지 생물학적 사고는 확장됐다.

 임상의학, 해부학, 생물학 같은 지식이 연동되고, 생물, 생체로서의 인간의 파악이 진화되어 가는 동시에, 그런 지식은 당연히 통치 속에 편입되고,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과제를 가져다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문맥에서 푸코는 살게 하는정치에 주목했으나, 확실히 이 생명의 지식은, 생명에 깊이 침투하여 생명을 조작하는 지식이기도 하며, 생명이 어떻게 영위되는가를 세밀하게 알고 통치하는 것은, 거꾸로 어떤 조건에서 생명이 죽음이 될 수 있는가, 생명을 살해할 수 있는가를 알면서 통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의 차원이란 생식의 영역이기도 하며, 즉 성적 활동이기도 하며, 성을 둘러싼 지식도 이런 생명정치적 전환에 편입되며, 이윽고 성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정신분석도 그것에 합류하게 된다.

 푸코가 생명정치를 단숨에 강제수용소나 핵무기로까지 관계시켰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성급하게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조작하려는 지식의 체계는 분명히 평행하여 물질에도, 또한 이윽고 무수한 생명을 순식간에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을 산출하는 게 됐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물학과 진화론이 초래한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는 표상을, 정치적 표상으로서는 재구성하는 과정이 진행되어 간 것이다. 나치즘에는 이렇게 상이한 출신을 지닌 경향이 쏟아부어져 합류됐음에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로 뒤덮어버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동일한 경향을 공유하면서 공진했다는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은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과 신체,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형이상학이나 종교적 세계관이 점점 더 의심을 받게 되고 신체, 동물의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에 새로운 빛이 비춰지게 됐다. 17세기의 서양에서는 확실히 신체와 동물의 생명이 재발견되고, 더욱이 상이한 빛 속에서 재발견됐다.

 데카르트는 당시의 의학이나 해부학에 통달하고, 신체를 정념의 자리로 정의하며, 어디까지나 관리하고 조작하고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서, 바로 신체의 생명을 정신과 이성으로부터 분할했다. 이미 데카르트 속에, 생명과 신체를 대상화하는 생명정치적 지성이 엿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한 스피노자는, 신체를 조작할 수 있는 의식도 자유의지도 부정하고,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신체, 생명, 심지어 자연의 <능산성> 위에 이성을 정초하려고 했다. 이것도 또 다른 생명정치적 윤리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윤리에서, 생명은 관리되고 조작되어야 할 권력의 객체가 아니다. 스피노자에게서는 이 생명이야말로 주체이며, 그 요구의 연장선상에 하나의 정치가 구상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명을 둘러싼 철학과 정치에 관해서, 여기서 적어도, 서로 뒤얽힌 두 개의 계보가 부상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2000)에서, 서양근대의 중심에 있는 갈등으로 지적한 것은, 아마 이것과 관련된다. “근대성의 중심에는 하나의 갈등이 있다. 즉 한편에는 사람들의 욕망과 연합으로 이루어진 내재적 힘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다른 편에는 사회적 영역에 질서를 강제하고 강요하는, 전체적 지배력을 지닌 권위에 의한 강력한 관리가 있으며, 이것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갈등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사이의 철학적 대립으로서 출현된 갈등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내재성으로서 생명의 힘을 긍정하는 공동체와, 그 생명 위에 군림하면서 정밀한 관리의 그물망을 펼쳐가는 생명정치 사이의 뒤얽힘에도 연쇄했다.

 스피노자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니체가 이 한쪽의 계보 위에 부상하게 됐다.

 니체의 철학은 확실히 생명을 새로운 빛 속에서 바라보는 생태주의로서, 서양의 형이상학, 종교, 과학을 바로 생명의 적으로서 단죄한 것이다. 아마 생명정치적 지식과 실천은 다양한 반응이나 저항을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생명정치라고 불리는 것도, 인간의 삶을 샅샅이 포위하는 새로운 체제로서 의식되는 것도 없는 채, 다양한 반응, 반향, 반항을 초래했으며, 거꾸로 그런 반발에 더욱 더 대답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철학이 담고 있는 생물학주의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 있어서 유력한 특정한 생물관이, 식물계와 동물계로부터 다른 존재자의 영역으로, 예를 들어 역사의 영역으로 전용되고자 한다면, 이것을 생물학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생물학주의라는 이 명칭은 이미 말한, 생물학적 사고가 생물학에 고유한 영역을 넘어서 확장되고, 아마 과장된다고 하는, 앞에서도 언급한 경계 침범을 표시하게 된다.” 그러나 니체가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존재으로서 생각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하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하는 것이다. 사실 생물이 무엇인가라는 것,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결코 생물학은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철학만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존재감보다도 생생한 존재관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도 그는 적고 있다. 요컨대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의 본체는, 어디까지나 존재의 철학 쪽에 있는데도,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주장 쪽에 정신이 팔려 니체의 존재론적 핵심에 이르지 못하는 피상적인 독해방식을 하는 세간의 경향을 하이데거는 비판한 것이다.

 도대체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른바 <사이비 진화론>으로 읽혀지고, 위험한 우생학적 발상을 자극하고, 마침내 나치즘의 <생명정치>에 거둬들여지는 사태도 분명히 일어났다. 그런 니체 속에, 사실은 어떤 생명정치가, 혹은 내재적, 능산적인 삶의 철학(스피노자의 계보)이 잠재했는가? 어디까지나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근거에 있는 존재의 형이상학의 깊이를 읽으려고 한 하이데거의 사색은, 어떤 계보를 짊어질까? 아니면 그는 모든 계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독창적인 사상가였을까? 그 하이데거는 생명정치의 가속화된 실례였을지도 모르는 나치즘에 접근했으나, 니체는 생물학에 접근하면서 생명정치의 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어디까지나 그 외부에 다른 <삶의 철학>을 세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각각이 때로는 물구나무 세우기를 포함한 입장에 서면서, 생명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VI. 니체, 그리고 아르토의 응답

니체는 어떻게 생물학을 이해하고 어떻게 주체를 생물학화하고, 오히려 주체를 생물로서 해체하고, 생물이라는 별개의 주체를 발견했던 것일까? 바르바라 스티글러의 소책자 니체와 생물학(2001)은 이 문제를 면밀하게 뒤쫓고 있다. 예를 들어 루돌프 루드비히 칼 비르효(1821-1902)의 세포에 관한 고찰을 이어받아, 니체는 생물의 근원적 과정을, 자기에 있어서 미지의 타자가 <자극>으로서 나타나는 장면에서 보고 있다. 그 자극(의 인상)이 고통을 안길 때, 생물은 자극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동화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체는 환경으로부터 고립된 동일한 것(동일성)이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향에 반응하고 타자의 이타성을 동화하는 주체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의식도 주체도 동일성도 아니고, 그저 그것 자체성(ipséité)이라고도 불러야 할 뭔가이다.

 니체는 생명과 생물 속에, 의식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를 본다. 결코 생물에 목적론이나 초월적 이념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생물학(특히 발생학의 창시자 빌헬름 루, 1850-1924)을 따라서, 생물의 자기형성 과정을, <자기 조정>이며 <내적 투쟁>이기도 한 과정으로서 고찰한 것이다. 다만 환경에 의한 도태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 생명의 진화를 생각한 다윈은, 이런 발생에 비하면, 결코 생물의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니체는 빌헬름 루에게서 배우고, 생물의 내부의 미세한 단위에서까지 차이, 부등성, 복수성, 서열, 투쟁, 조정작업을 발견하려고 한 것이다. 생명체에 있어서의 조화와 안정과 동일성은, 이런 과정에서, 그 효과로서 사후적으로 출현할 뿐, 결코 과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생명에 있어서의 차이는 지속하고 영속하는 것이지, 결코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권력에의 의지, 이런 차이의 의지로서 생물을 관통하고, 인간도 관통하는 것이다.

빌헬름 루


 그러한 니체의 사고는 생물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외부세계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수동적으로 행동한다고 봤던 에른스트 헥켈(1834-1919)에도 대립하며, 오히려 단절이나 비연속의 힘으로서 생물의 <의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스티글러에 따르면, 니체는 이렇게 동시대의 생물학이나 생물학적 사고에 크게 촉발되고, 또한 그것을 비판하면서 생물에 대한 사고를 중요한 모티프로서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제련해냈던 것이다.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예정조화적으로, 균형이나 통합(이른바 도덕적 이상)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허버트 스펜서(1820-1903)에게도 니체는 비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화><균형>은 사후적으로 그러한 상태를 드러낼 뿐이며, 어디까지나 차이의 항쟁 그 자체가 생명과 그 진화의 과정을 인솔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수없이 겹쳐지며, 도태가 거듭되는 가운데 진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생물계에서의 도태도 항쟁도, 매우 온화하게 점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생물은 끊임없이 이상(異常)이나 예외를 산출하는 것이며, 변화나 항쟁이야말로 정상常態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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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헥켈

 다윈도 스펜서도 개체로서의 생물의 짧은 시간 스케일에서는, 동일적으로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개체와 개체성을 전제로 하여 생물계를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에게 있어서 개체는 결코 자기에 일치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차이화하는 것이며, 생물의 자기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형성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어 온 우생학적 사고도, 사실은 똑같은 경향으로 관통되고 있다. 그는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책을 읽고 공감했다고 한다. 스티글러의 독해에 따르면, 골턴의 우생학은 나치즘이 채용한 듯한 사이비 다윈주의와는 한 선을 긋는[다른] 것이었다. 골턴의 시각에서는, 자연도태는 오히려 새로운 것의 출현을 막고, 집단적 본능에 이끌리는 사회를 신장시킨다. 유전은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평균화하고, 차이를 말소하도록 작동하기에, 인공적인 조작에 의해 차이나 다양성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골턴은 생각했다. 유전()의 인공적 조작은 거꾸로, ‘순화등질화等質化의 방향에서도 행해질 수 있으며, 우생학적 발상은 오히려 그런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하며, 현재에도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도 니체는 동시대의 우생학에서조차도 그의 차이(그리고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초인의 사상에도 관련된 것이다. ‘초인의 사상이란 단순히 우생학적인 제안의 변종(variation)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바깥으로 나가서, 차이나 다양성으로서의 거친 삶을 맞이하려고 하는 발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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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골턴

 아마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되는 신체”(푸코)는 생명정치를 훨씬 뛰어넘어 인간의 주체적 의식의 앞에 출현하고, 주체와 의식을 흔들며 서서히 찢어버리게 됐다. 삶이 인간의 외부로서 발견되는 동시에, 똑같은 삶이, 금방 인간의 차원에 수용되고 관리되어야 했다. 삶을 재발견하는 사고와, 재발견된 삶을 면밀하게 알고 통제하려고 하는 권력의 실천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인간을 살게 하는 면밀한 배려란, 기묘하게도 인간의 삶을 마비시키고 때로는 무참한 죽음으로 유기하게 됐다. 생명정치()이란 삶을 둘러싼 의식과 실천에 있어서의 큰 전환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며,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려고 하는 권력의 재편성의 과정이기도 했다. 생명정치에 있어서 인간의 삶은, 인식하고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인간은 일찍이 그 삶의 주체이며, 이윽고 역사적 주체의 위치로부터 탈락하고 오히려 삶이야말로 진정한 주체가 된다는 전환조차도 넘어선 것이다. 삶이라는 주체는 더 이상 서양의 철학이 정의하고 문제화했던 주체일 수 없었다. 니체는 그것을 의식이 아니라 삶의 의지로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차이의 무리로서 생각했다.

 생명정치와 밀접하게 연계하는 체제, 인식, 과학, 기술은 확실히 나치즘의 경우, 예외상태의 정치와 결합되어 무서운 살인기계를 산출했다. 아감벤은 그런 실제 사례를 특히 법적 차원의 예외상태로서, 고대 로마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 시스템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생각했다. 그 문제제기는 본질적으로 귀중했지만, 그래도 생명정치라는 거대한 문제의 단 한 가지 측면밖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치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비점령지역의 정신병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앙토냉 아르토는 도대체 왜 기관 없는 신체라는, 저 기묘한 말을 거듭 반복하여 노트에 적어두면서, 인류에 대해, 역사에 대해, 완전히 고독한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의 심신에, 특히 신체의 심층에 미치는 거대한 적의 힘에 대해, 돈키호테처럼 헛쇤 싸움을 그는 계속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기묘한 싸움은, 신체 기관에, 아니 오히려 기관으로서 파악되는 생명에, 그리고 생명을 탄생, 생식, 노동력, 수명으로서, 여러 가지 기능으로서, 이윽고 이식 가능한 기관으로서 파악하는 정치, 의학, 기타 여러 가지 지식과 실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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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토냉 아르토 

 생명정치는 사용되고 분해되고 조작되고 소진되는 기관의 모임으로서, 산 신체를 관리하고 통치한다는 의미에서는 전혀 인정사정없는 체제이다. 아르토가 기관 없는 신체의 선전포고가 되는 라디오 드라마(신의 심판과 결별하기 위해, 1948)를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인공수정 기술을 지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에는 명백할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가, 생명에 개입하는 새로운 기술에 항의한 것보다도, 기관으로서 생명을 분리하고, 대상화하고, 조작하는 삶의 이식과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도 근본적으로 민감하게 저항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죽음의 표출이기도 하며, 죽음과 이웃한 신체이며, 실제로 아르토에게는 죽음이 가까이에 임박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생명정치학이 기관으로서의 신체에 초래할 수 있는 죽음과는 별개의 죽음이었음에 틀림없다. , 그것은 생명정치학이 초래하는,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고 하는, 저 기묘한 삶과 죽음의 결탁의 바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 이 글은 졸저 <なる>哲学──思想のゆくえ(平凡社, 2005)을 보강하는 것이며, 그것의 자기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라 굳이 번역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지만, 일련의 작업을 위한 참고 문헌 목록에 들어 있어서 입문용을 겸해서 번역, 공유한다. (2018년 3월 27일)


대중의 정념의 향방

안토니오 네그리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

 

오오타 유스케(太田悠介)

현대사상, 20137월호. <大衆情念のゆくえ: アンネグリとエティエンヌバリバルのスピノザ,>



서론

제국, 다중에 이어 공통체가 간행됨으로써 안토니오 네그리(1933-)와 마이클 하트(1960-)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전개한 논의의 전모가 드러났다. 현대세계 분석과 도발적 예언이 교착하는 이 3부작은, 많은 시사와 논점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논의가 집중된 것이 다중(multitude)’ 개념임에 틀림없다[주1]. 네그리/하트의 뜻을 받들어서 군중=다수성으로 때로 번역된다는 것이 드러내듯이, 이 개념은 동일성에 의거하지 않는 집단의 존재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주1]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Daniel Bensaïd. Résistances. Essai de taupologie générale, Paris, Fayard, 2001, pp.191-212 ; Ernesto Laclau, La Raison populiste, traduit de l’anglais par Jean-Pierre Ricard, Paris, Seuil, 2005, pp.278-283.

네그리/하트에 따르면, 다중은 스피노자에게서 유래한다고 한다. 네그리/하트에게 <제국>이란 지배적인 주권국가군, 그 주권국가의 정당성을 우회하는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등의 초국가적인 정치적·경제적 제도, 나아가 이것들을 보완하는 메가뱅크나 국제인도주의조직이 한 몸이 되어 구성하는, 특정한 극을 갖지 않는 네트워크적 권력이다. 반면 다중은 <제국>과 마찬가지의 유동성을 갖고서 이것에 대항하는 주체로서, 극히 긍정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저작군에 이 개념들을 다시 놓는다면, 이 긍정성이 반드시 자명한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어휘의 차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 점이 밝혀진다. 다중이라는 단어는 [스피노자의] 미완의 정치론(1677)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이것보다 2배 이상의 분량인 신학정치론(1670)에서는 불과 세 번, 주저인 윤리학(1677)에 이르러서는 많은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로서 한 번 등장할 뿐이다[주2]. 이 간단명료한 사실이 나타내는 것은, 다중을 축으로 <제국> 3부작을 쓴다는 네그리/하트의 수법 그 자체에, 이미 두 사람에 의한 스피노자 해석, 다중 해석의 일정한 방향성이 기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네그리/하트가 사용하는 다중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의 위험성이 있다.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신학정치론의 다중이라는 단어가, 어느 대목에서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다중은 미신에 사로잡히기 쉽고[주3],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질은 감정에 좌우되며[주4], 때로는 흉폭해져서 국가를 위협한다고 간주됐다[주5]. 이런 서술을 감안한다면, 네그리/하트의 해석에 반하여, 다중의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스피노자로 돌아간다면, 다중의 부정성이 확실해진다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중의 양의성이라는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주2] Emilia Gancotti Boscherini, Lexicon spinozanum, t.2, La Haye, Martinus Nijhoff, 1970, pp.728-729.

[주3] Baruch de Spinoza, Traité théologico-politique, traduit et annoté par Charles Appuhn, Paris, Flammarion, 1965, p.21(畠中尚志 訳, 神学政治論───聖書批判言論自由, 岩波書店, 1944, 上巻, 43).

[주4]  Ibid., p.279(同書, 下巻, 194).

[주5]  Ibid., p.307(同書, 下巻, 241). 

이런 전제를 토대로, 본고에서는 네그리의 단독 저서 야생의 아노말리(1981)를 소재로 하여, 그 다중론을 검토한다. 야생의 아노말리는 동시기에 간행된 맑스를 넘어선 맑스(1979)와 나란히 네그리의 주저이며, 나중의 하트와의 공동작업에 대해, 이른바 이론적인 뼈대에 해당한다. 야생의 아노말리에서는 네그리/하트의 다중론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을 듯하며, 그래서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다중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오늘날의 네그리/하트의 논의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네그리의 다중론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 본고에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1942-)대중(masses)”론과의 비교를 시도한다. 발리바르는 네그리의 단독저서 구성적 권력(1997)의 불역자를 맡는 등, 프랑스에서 네그리의 소개자 중 한 명이다. 또한 네그리와 발리바르 둘 다 맑스주의를 사상적인 배경으로 갖고 있으면서, 1980년대에 스피노자 독해에 착수했다는 공통적인 문제관심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발리바르와 네그리 사이에는 사실상 스피노자 해석을 둘러싼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상적인 차이가 두 사람 각각의 여정에 깊은 영향을 주면서, 현대세계를 둘러싼 두 개의 상이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고는 이렇게 네그리와 발리바르에 의한 스피노자의 사상의 수용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이 점의 해명에 있어서는 두 사람을 1980년대에 스피노자로 향하게 했던 유럽의 사회상황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사상과 역사의 두 측면으로부터 문제를 개시하도록 힘쓰고 싶다.

 

1. 네그리의 다중론

1)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례성과 스피노자의 이례성

야생의 아노말리1982년에 간행된 불역본에 수록된 질 들뢰즈, 피에르 마슈레, 알렉상드르 마트롱, 이렇게 세 명이 각각 쓴 서문과 더불어, 196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졌던 스피노자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스피노자 재독해의 기운을 대표하는 한 권으로 오늘날 알려져 있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해석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많은 난점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이 여전히 독자를 매료시킨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우선, 17세기의 스피노자가 그 시대로 환원되지 않는 이례성(anomalie)”을 갖추고 있었다는 테제가 내뿜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주6]

[주6]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浅野俊哉上野修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浅野俊哉, スピノザ───共同性のポリティクス, 洛北出版, 2006. 浅野俊哉, 「「絶対民主主義Civitas条件───ネグリのスピノザ解釈をめぐって, 思想, 1024, 20098월호, 117-142. 上野修, アントニオ・ネグリのスピノザ, 現代思想, 263, 1998년 3월호, 166-174. 上野修, 精神論証そのもの───デカルト, ホッブズ, スピノザ, 学樹書院, 1999. 본고는 이처럼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에 관한 선행연구에 옥상옥을 놓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주안점은 이런 선행연구의 축적을 토대로 하면서,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차이를 밝히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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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례성은 첫째, 17세기 네덜란드가 차지했던 특이한 위치에서 유래한다. 스피노자가 평생을 보낸 당시의 네덜란드는 절대왕정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후, 생산·무역·금융의 중심으로서 세계사적인 패권국가의 지위를 손에 넣었던 시기에 해당된다. 세계시장을 수중에 거둔 해운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상인층이 힘을 쥐고, 정부의 개입은 자유경쟁의 방해가 된다는 그들의 의향이, 암스테르담을 중핵으로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분권화된 무역시장 사이의 완만한 결합으로 구체화됐다[주7]. 그리고 이런 상인층들 사이에서 공유됐던 관용적인 분위기가 철학하기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토양을 형성했던 것이다[주8].

[주7]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II. Mercantilism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European World-Economy, 1600-1750, New York. Academic Press Inc. 1980, pp.36-71(川北稔 訳近代世界システム 1600-1750───重商主義ヨーロッパ世界経済凝集名古屋大学出版会, 1993, 43-89).

[주8] Pierre-François Moreau, Spinoza et spinozisme, Paris, PUF, 2003. pp.12-19(松田克進樋口義郎 訳スピノザ入門白水社, 2008, 19-27).

네그리는 당시의 네덜란드에서는 정치권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고, 경제관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평가한다[주9]. 이 점은, 네그리에 의한 영유화領有化[전유, appropriation]’라는 개념의 독특한 이해에서 유래한다(AS: 59). 사실 네그리는 이 영유화[전유]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혹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이전의 위상을 문제 삼았다(AS: 304-305). 그것은 들뢰즈가 지적했듯이, 구체적인 개개의 힘의 집합을 그것 이외의 것으로 대체하거나, 그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힘들의 성질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역학적인 합성”(AS: 10)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이 힘들의 수와 양이 증대할수록, 그 총합은 더욱 커진다.

[주9]  Antonio Negri, L’Anomalie sauvage. Puissance et pouvoir chez Spinoza, traduit de l’italien par François Matheron et préfacé par Gille Deleuze, Pierre Macherey et Alexandre Matheron, Paris, PUF. 1982 (édition italienne, Milano, Feltrineili, 1981). p.76(杉村昌昭信友健志 訳野生のアノマリー ───スピノザにおける力能権力作品社, 2008이하이 책에서 인용할 때에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AS라는 약호와 함께 원서의 쪽수만 본문 속에 표기한다

그러나 이런 힘들의 자연적 총합의 증대라는 스피노자의 비전(vision)이야말로, 홉스-루소-헤겔이라는, 네그리가 부르는 부르주아적 질서의 계보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AS: 226-227). 우선 정치에 있어서는 각자가 지닌 자연권이 포기되고, 사회상태로 이행함으로써, 권력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 힘들은 상호 결합함으로써 산술적으로 자기 성장하는 길을 차단하고, 권력이라는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제약에 의한 매개를 거쳐야 한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사회에 있어서는 힘들의 발전은 각자의 자기중심적인 이익의 추구로 환원되고, 이익의 추구를 둘러싼 충돌이 생긴 경우에는, 국가가 그 외부로부터 개입하여 이것을 시정한다고 간주된다(AS: 224). 그리고 네그리가 가장 문제시하는 것은, 힘들의 증대를 이 국가와 시민사회로 분리하여 조직화한다는 전제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생산력생산관계의 질서에 의해 영유화[전유]하는 짓거리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생산관계에 대한 생산력의 우위를 원리로 삼았다고 네그리는 생각한다(AS: 225). 네그리가 말하기를, 스피노자에게 시민사회와 정치국가는 완전히 서로 뒤얽혀 있다”(AS: 305). 이처럼 네그리는 스피노자를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이전의 상태를 상정하는 사상가로서 파악함으로써,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직접 대치하는 일원적인 세계를 묘사해낸다[주10]. 이리하여 힘들의 자생적인 자기 성장에 의거하는 스피노자는, 힘들의 영유화[전유]에 의해 이 가능성을 닫아버린 이후의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항상 이형(異形)의 존재로 비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이 네그리에 의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이례성, 그리고 그 시대가 길러온 스피노자의 이례성이다.

[주10]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여전히 헤겔적인 변증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서 다음을 참조. Pierre Macherey, Avec Spinoza, Études sur la doctrine et l’histoire du spinozisme, Paris, PUF, 1992, pp.24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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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의 이 스피노자 해석에서 핵심은 스피노자의 죽음에 의해 미완으로 남겨진 정치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민주제 개념의 독해이다. 네그리가 정식화한 생산양식의 영유화[전유]에 대한 생산력의 자기 성장이라는 관념은 정치론에서 사회계약론의 포기와 분명히 일치한다(AS: 298). 사회계약에 의한 자연상태로부터 사회상태로의 이행과 국가의 설립은 한 번 체결되면 다시 물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취소할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다[주11]. 그래서 통치자의 권리란 다중의 집합적인 힘 그 자체일 뿐이다. 그 결과, 통치자가 한 명의 군주제, 약간의 통치자로 구성되는 귀족제, 모두가 통치자인 민주제라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고 생각된 범주도,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각각 상이한 종류의 통치형태를 가진 정치사회에서 다중이 스스로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공통의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네그리는 이렇게 정치론을 독해해간다.

[주11] 홉스와의 쟁점에 관한 스피노자의 다음 설명을 참조. “국가론에 관해서 저와 홉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그 차이는 다음의 점에 있습니다. , 저는 자연권을 항상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어떤 도시의 정부도 힘에 있어서 시민보다 나은 정도에 상당할 뿐인 권리밖에 시민에 대해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이것이 상도常道이기 때문입니다.” Baruch de Spinoza, «Lettre L. Spinoza à Jarig Jelles (2 juin 1674)», dans Traité politique. Lettres, traduit et annoté par Charles Appuhn, Paris, Flammarion, 1966. pp.283-284(畠中尚志 訳, 書簡五(一六七四年六月二日忖のイエレス宛書簡), スピノザ往復書簡集, 岩波書店, 1958, 237-238). 

정치론은 이 책의 편집자가 스피노자 사후에 덧붙인 이하 누락(Reliqua desiderantur)”이라는 말로 중단된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이 책의 전반부에서 국가의 원리를 제시한 후,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라는 정치사회의 구체적인 검토로 옮김으로써 현실의 장애에 부닥쳤다는 해석을 촉구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것을 정치론의 실패라고는 판단하지 않고, 다중의 힘들을 영유화[전유]하는 것 없이, 이것을 합성한다는 스피노자의 비전이 남겨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주12]. 야생의 아노말리의 거의 결론부에 해당되는 구절에서 네그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12] Antonio Negri, «Reliqua desiderantur. Congruetta per una definizione del concetto di democrazia nell’ultimo Spinoza», Studia Spinozana, vol.1, pp.143-182(小林満丹生谷貴志 訳, 以下───スピノザ最晩年民主制政体概念定義推察する, 現代思想1510, 1987, 124-150). 

 

정치론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 정치적 실패가 곧 세계의 승리, ‘다중의 승리, 인간의 승리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지금 구축의 기획은 정체되어 있으나, 그것은 그 기획에 의해 전개된 역능에 정확하게 호응한다. 정치철학은 마키아벨리의 경험에 의해 예고되고 이후 처음으로 대중의 이론이 된 것이다. 그것은 르네상스에 출현한 위기가 갖고 있던, 비종교적-민주주의적 의의를 계승한다. 여기서 대중이라는 차원이, 혁명이라는 역사적 문제로 된다. 기획은 거기에 현전하며, 긴장감을 멈추고, 사명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AS: 317-318)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으로부터 민주제라는 제도가 안고 있는 논리적 불가능성을 연역한다. 민주제는 제도로서 구성된 시점에서, 다중의 목소리와는 간극을 낳는다. 그래서 이 제도를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 그 결과, 민주제는 제도조차도 아닌 운동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네그리는 스피노자를 통해서 이 민주제의 이론화 불가능성을 포착함으로써, 이것을 현실의 운동체의 가능성으로서 되파악한다. 네그리는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남긴 기획을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네그리가 어떤 구체적인 국면에서 이 스피노자의 기획을 받아들이는가를 아는 것이다.

 

2) 다중의 생명정치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친 네그리의 발자취는 노동자주의(operaismo)’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맑스주의의 특이한 흐름 속에 있었다. 네그리는 1961년에 라니에로 판치에리가 창간한 잡지 붉은 노트(Quaderni rossi), 이 잡지의 분열을 거쳐 마리오 트론티, 마시모 차카리 등이 새롭게 1964년에 창간한 노동자계급(Classe operaia)에 참여한 후, 1970년대에는 특정한 조직에 수렴되지 않는 더 유연한 운동형태인 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엔리코 베를링게르가 이끄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현실노선을 내건 유로 코뮤니즘하에서 여당인 기독교 민주당과 1973년에 역사적 타협에 이르고, 세력을 잃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산당의 외부에 발판을 둔 노동자주의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는 독자적인 실험적 장을 형성했다.

노동자주의는 토리노에 피아트사가 건설한 대규모 미라피오리 공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근대화가 이탈리아에 도래했다는 것을 중시하고, 이것을 이론의 기반으로 삼는다. 북부 이탈리아에 남부로부터 대량의 노동자가 유입되고, 장인의 숙련을 요하던 일이 공장노동자로 대체되는 산업구조의 변화이다. 트론티가 자서전적 작품에서 되돌아보듯이, 그것은 노동과정에 있어서의 테일러주의,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포드주의[주13]의 개시를 의미하며, ‘노동자주의는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 대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대중노동자가 사회에서 중심성을 갖는다고 주장하게 된다[주14].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해 공장의 논리가 사회 전체를 포섭하고 있으며, 그 결과 거꾸로 공장의 자주관리노동의 거부가 사회 전체에 파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13] Mario Tronti, Nous opéraistes. Le ‘roman de formation’ des années soixante en Italie, traduit de l’italien pjar Michel Valensi, Paris/Lausanne Éditions de l’éclat et Éditions d’en bas, 2013, p.53.

[주14] Maria Turchetto, «De “l’ouvrier masses” à l’entrepreneurialité commune. La trajectoire déconcertante de l’opéraisme italien», traduit de l’italien par Michel Buée, dans Jacques Bidet et Eustache Kouvélakis (dir.)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Paris, PUF, 2001, pp.296-301.

tronti-nous Dictionnaire Marx contemporain

대규모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의사결정이 사회 전체의 추세를 결정한다는 이 주장을 1970년대의 네그리는 3차산업의 확대로 연결시킨다. 1973년의 오일쇼크 이후, 표면화되는 자본의 논리 하에서의 산업구조의 재편을 시야에 넣으면서, 네그리는 생산 및 노동자의 정의를 단숨에 확대한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공장처럼 부를 가져오는 것이며, 공장노동자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주체가 그 부의 생산자라고 간주된다[주15]. 다양한 주체의 힘들이 결합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증대시킨다는 이 네그리의 전략은 야생의 아노말리에서의 스피노자론과 확실히 잘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스피노자로부터 도출한 생산력 개념을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시켜가는 네그리가 이탈리아 외에서도 독자를 획득했다는 것은, 그 후의 네그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15] Ibid., pp.301-304. 

그러나 사회 전체를 생산의 장이라고 보는 네그리의 입장은 생산이나 노동자의 저변을 크게 확대한 반면, 네그리가 생각하는 생산력이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가는 불투명하다. 이 점은 예를 들어 피에르 마슈레에 의해 지적된다.

 

어떻게 해서 다중의 육체는, 분명히 구체적인 것이 되는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정치적 결정 심급의 개입이 필요하다. 다중의 리좀 구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것 자체, 집단적이며, 또한 수평적인 동일 평면 위에 전개하도록 명령하는 내적인 사명을 지키고, 모든 수직적인 배치형태를 거부하는 심급의 개입이 필요하다[주16].

[주16] ピエールマシュレ(桑田光平 ), マルチチュードの未来, 現代思想, 3312, 2005, 82. [* 이 텍스트는 2004년 11월 19일에 릴에서 개최된 심포지엄 <시테필로>에서 발표된 것이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의 불역본은 La Decouverte사에서 같은 해 9월에 판단됐으며, 마슈레의 이 텍스트는 불역판의 간행에 즈음해 이 저작에 대해 평론으로 발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네그리의 답변이 Réponse à Pierre Macherey로 발표된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아직 추정이다.]

이 질문에 대한 네그리의 응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공통체에서 네그리/하트는 이 물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대답은 생명정치가 심화함으로써 다중의 생명 그 자체가 이미 정치라는 것이었다[주17]. 농촌적인 이탈리아로부터, 자본에 의해 생명이 완전히 포섭되는 단계로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이 포섭에 대해 생명을 탈환하는 것[주18]이 정치 그 자체였던 1970년대 이후의 네그리 자신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생명이 정치라는 이 언명은 확실한 절실함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하지만 다중의 정치가, 때로 네그리가 상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다음 절 이하에서 검토의 대상이 되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이다.

[주17] Michael Hardt et Antonio Negri, Commonwealth, traduit de l’anglais par Elsa Boyer, Paris, Stock. 2012. pp.236-242(幾島幸子古賀祥子 訳, 水嶋一憲 監訳, コモンウェルス───<帝国>える革命論, NHKブックス, 2012, 上巻, 276-283). 

[주18] Antonio Negri, Du retour. Abécédaire biopolitique. Entretiens avec Anne Dufournantelle, Paris, Calmann-Lévy, pp.35-36. 

 

 

2. 발리바르의 대중론

발리바르는 주저 대중의/에 대한 공포(1997)에서 네그리의 야생의 아노말리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스피노자론의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그것에 따르면,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다중에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다중이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가가 고찰의 주제라고 한다. 발리바르는 다중이라는 단어의 일의성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대신해 대중(masse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주19]. 이 대중이라는 단어에 있어서는, 수량적인 크기에 덧붙여, 대중이 지닌 감정적인 측면에 빛이 내리 쪼인다.

[주19] Étienne Balibar, «Spinoza, l’anti-rwell», dans La Cra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s avant et après Marx, Paris, Galilée, 1997, p.58-60(水嶋一憲 訳, スビノザ大衆恐怖, 現代思想, 1510, 1987, 152-153).


 


1) 대중의 공포의 향배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에서도 정치론의 민주제 독해에 초점이 맞춰진다. 네그리는 생산관계에 의한 생산력의 영유화에 대해, 생산력의 자생적인 발전에 의한 개화를 거기서 읽어 들였다. 그러나 이 도식에서 경시되는 것은 스피노자가 정념[정서]’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사상가라는 점이다[주20].

[주20]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I, §5, p.13(畠中尚志 訳, 国家論. 岩波書店, 1940, 15, 14-15). 

자연권을 보유한 채로 사회상태로 이행하는 대중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정치체제의 구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본성에 정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중의 집합적 힘이 해체되어 버리면, 통치자의 권력도 즉각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치자는 규범에 인간을 맞추어서는 안 되며, 이것과는 반대로, 연민, 질투, 명예욕, 지배욕 같은 인간의 정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설계해야 한다. 이 정념의 공유를 확대하고, 이것을 국가의 강화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마트롱이 지적하듯이, 대중에 의해 공유된 정념은 이미 국가의 싹[주21]이다. 문제는 그 정념을 어떤 방향으로 회로화하느냐는 점이다. 발리바르의 정치론독해도 이런 스피노자의 정념을 둘러싼 논의 속에 있다.

[주21] Alexandre Matheron, Études sur Spinoza et les philosophies de l’age classique, Lyon, ENS Êditions, 2011. p.233.

발리바르가 그 중에서도 주목하는 것은 공포(crainte)’, 특히 대중의 공포(crainte des masses)’의 존재이다. 발리바르는 정치론을 이 공포라는 관점에서 독해해간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의 세 정체 중에서, 군주제와 귀족제는 대중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주권자인 대중의 의향을 수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군주제는 고문관을 둠으로써[주22], 또한 귀족제는 의회를 설치함으로써[주23], 비주권자인 대중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 발리바르는 여기에 체제로서는 민주제를 채용할 수 없는 군주와 귀족이 각각의 방식으로 거듭하는, ‘민주화의 노력을 알아차린다[주24].

[주22]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6, §15, p.45(邦訳, 615, 71). 

[주23] Ibid., chap. 8. §11, pp.76-77(邦訳, 811, 127). 

[주24] Étienne Balibar, Spinoza et la politique, Paris, PUF, 1985, p.90(水嶋一憲 訳, スビノザと政治, 水声社, 2011, 133). 

군주제에서도 귀족제에서도, 대중은 국가를 파괴하는 힘을 항상 유지하면서, 주권자인 군주나 귀족한테 압력을 가한다. 발리바르는 이로부터, 대중이 주권자에게 불어넣는 공포가 군주제와 귀족제의 존망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달리 말하면, 주권자가 대중한테 느끼는 공포가 두 체제의 결정적인 구동인이다. 이 대중의 공포에 주목한 결과, 발리바르의 민주제 정의는 네그리와 저절로 달라진다.

스피노자는 귀족제의 안정을 위한 요건으로서, 대중의 절대수에 비례하여 귀족의 절대수를 늘리는 것을 권장했다[주25]. 그래서 귀족의 절대수를 더욱 늘려서 모두를 주권자(귀족)로 삼는다면, 정체는 민주제로 이행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확대된 귀족제로서의 민주제의 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에 따르면, 거기서 새로운 문제가 일어난다.

[주25] Baruch de Spinoza, Traité politique. Lettres, op. cit., chap, 8 §13, p.78(813, 129-130). 

 

대중은 본성적으로 권력의 보유자에게서 무서운’(정치론84)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권력은 실제로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근거로 한계(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대중이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을까?[주26]

[주26] Étienne Balibar, «Spinoza, l’anti-Orwell», op. cit., p.80(邦訳, 161). 

대중이 주권자에게 불어넣는 공포는 대중 스스로가 주권자가 될 때, 스스로에게 되튀어오는 것 아닐까? 군주제와 귀족제에서는 대중의 공포가 민주화를 추진함으로써 긍정적으로 작용한 반면, 민주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중과 주권자가 일치함으로써, 대중 사이에서 공포가 상호적으로 증폭하며 만연한다. 이처럼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독해를 추적하면, 스피노자의 미완의 민주제로부터, 대중의 공포라는 논점이 도출된다.

모든 외적인 심급이나 억제가 없는 상태에서, 대중의 내재적인 의사결정이 절대적인 운동체로서의 민주제는, 이론상으로는 한없이 전체주의 운동에 접근한다. 발리바르가 대중과의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것은 이 점에서이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을 뒤따라가는 한, 스피노자는 대중의 힘이 향하는 방향, 즉 대중의 정념의 향배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발리바르는 정치론독해로부터, 대중의 양의성을 도출한다. 스피노자의 미완의 민주제를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이것을 연장해감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이 대중의 양의성을 독파했다는 것, 이것이 발리바르의 정치론독해의 요체이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주장하는 대중의 양의성은 대중의 운동이 항상 전체주의 운동으로 귀착한다는 결정론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이 대중의 정념의 향방이라는 문제를 열린 채로 남겨둔 이상, 이 물음을 더욱 더 검토하기 위해서는, 발리바르가 이 물음을 어떻게 떠맡았는가를, 그 도정에 비추어 이해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서구맑스주의에서 대중의 초점화로

발리바르에게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주제가 부상하게 된 배경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는, 대중의 개념과 프롤레타리아트(prolétariat)’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모리스 메를로 퐁티(1908-1961)변증법의 모험(1955)에서 사용한 서구맑스주의라는 인식틀을 실마리로 삼아 이 관계성을 검토한다.

메를로 퐁티는 죄르쥐 루카치(1885-1971)역사와 계급의식(1923)을 서구맑스주의의 시발점에 둔다. 역사와 계급의식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자신의 선으로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원한 힘으로서 인간 앞에 출현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체객체로 분열된 상태로서 묘사된다. 이에 반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여 인간의 소외상태를 폐기함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 종합을 이룬다고 여겨졌다. 메를로 퐁티는 이런 루카치의 변증법을 주체가 개입하는 변증법이라고 하며,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으로 대표되는 형이상학화한 유물론에 대항하는 시도로 평가한 것이다[주27]. 그래서 서구맑스주의란 서구와 소비에트의 지리적인 거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주체를 둘러싼 분기라는 의미론적 쟁점을 포함했다.

[주27] Maurice Merleau-Ponty, 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Paris, Gallimard, 1955. p.49(滝浦静雄木田元田島節夫市川浩 訳, 弁証法冒険, みすず書房, 1972, 47). 

그러나 그 후의 서구맑스주의는, 메를로 퐁티가 아마 예상했던 것 이상의 속도로 다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주체일 터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중이 분리한다는 사태이다. 역사와 계급의식의 루카치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허위의식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의식을 획득함으로써 이것을 지양한다는 것이 상정됐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는 오히려 그런 계급의식의 획득에 이르지 못한 대중이야말로 상태(常態)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이 사태는 소비사회에 매몰된 얼굴을 보이지 않는 대중이나, 공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사적 권리의 유지에 전념하는 소리 없는 대중으로서 묘사되는 경향이 있었다[주28]. 달리 말하면, 그것은 메를로 퐁티가 전제했던 주체의 윤곽이 점차 불분명해지는 과정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주28] Jean Baudrillard, À l’ombre des majorités silencieuses ou la fin du social, Fontenay-Sous-Bois, Cahiers d’Utopie, 1978 ; Marc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1965년의 초기작 『『자본을 읽자이후, 발리바르의 작업은, 이 주체의 불분명화의 흐름 속에서, 주체를 어떻게 재정의하느냐를 관건으로 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리바르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프랑스 공산당을 주된 활동의 장소로 삼았다. “유로코뮤니즘의 조류는 이탈리아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도 찾아왔고, 프랑스 공산당은 1976년에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한다. 하지만 이 노선은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산당의 독자적인 색깔의 상실과 기성 정당이 되는 것으로 이어지며, 그 후의 장기적 하락의 한 가지 원인이 됐다. 발리바르는 1981년에 공산당에서 제명 처분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된 것은, 프랑스 공산당의 이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주29]. 발리바르의 1980년대의 작업을 떠받쳤던 공산당의 후퇴에 의해, 적대적인 힘을 표현하는 회로가 계급투쟁으로부터 인종을 둘러싼 투쟁으로 이행한 것 아니냐라는 위기감이다[주30]. 여기에 발리바르가 스피노자론으로부터 끌어낸 대중의 양의성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주29] Étienne Balibar,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Paris, La Découverte, 1992, pp.19-95. 

[주30] Étienne Balibar et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 les identités ambiguës, Paris. La Découverte. 1988, pp.207-246((新装版) 人種国民階級───らぐアイデンティティ, 若森彰孝 他 訳大村書店, 1997, 27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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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발리바르는 이민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대중의 실상으로 파악한다. 이민노동자의 운동을 국경 횡단적인 시민권의 기초에 놓을 때, 대중은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주31]. 이것은 메를로 퐁티가 생각한 주체의 자명성의 해체의 적극적인 측면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을 이민노동자로서 읽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자(majority)로서의 프랑스인으로 파악할 때에는, 대중은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이 후자의 의미의 대중에 있어서는, 그 정념은 다수자의 이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로 표면화된다. 발리바르는 그 스피노자론에 있어서 대중의 힘과 정념이 결정화하는 양태를 문제로 삼았는데, 1980년대에 현실로 나타난 이 대중의 양의성은 그 스피노자론의 표적과 정학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주31] Étienne Balibar, Droit de cité, Paris. PUF, 2002(松葉祥一 訳, 市民権哲学───民主主義における文化政治, 靑土社, 2000).


 

3. ‘신권정치의 대두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정치론이라는 네그리와 똑같은 대상을 다루고,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네그리에게는 부재한 논점을 연역했다. 네그리에게 이 논점이 부재하다는 것은, 생산관계와 생산력, 권력과 반권력, 혹은 군주제/귀족제와 민주제 같은 대립축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는 네그리의 수법에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발리바르의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관점을 연장해가면, 네그리에 있어서는 비가시적인 어떤 문제계가 부상하게 된다. 이번 절에서는, 프랑스에서 스카프 문제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현상에 대한 발리바르의 개입을 고찰함으로써 이 문제계의 소재를 시사하고 싶다.

스카프 문제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9년에 파리근교 클레이유의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시작됐다. 이슬람교도인 세 명의 여학생이 교실에서 스카프를 벗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은 사건이다. 공화주의자, 자유주의자, 인권단체, 종교적 공동체의 대표자, 페미니스트 등이 각각의 입장에서 이 사건에 관해 발언하고, 자주 논의는 소녀들을 젖혀두고 이루어졌다[주32]. 그 후, 2004년에 여봐란 듯한종교적 표장(標章)을 공립학교 내에서 몸에 부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고, 사건은 일단 결말을 봤다.

[주32] 스카프를 착용한 소녀의 다양한 배경과 동기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작에 자세하다. 宮島喬, 移民社会フランスの危機, 岩波書店, 2006

발리바르는 세기(2012)에서 스카프 문제를 언급하고, 여태까지의 스피노자를 둘러싼 사색을 바탕으로 세속화된 세속주의(sécularisme sécularisé)”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주33]. 본고의 관심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개념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모범을 취하는 것이다. “스카프 문제에서 공화주의자, 나아가 자유주의자가 원용하는 것은 라이시테라고 불리는 세속주의 또는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공립학교를 포함한 공적 공간에 종교를 들여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그것은 개인의 속내에 담아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원칙의 근본에 있다. 이 지배적인 입장에서 보면, 스카프를 착용하는 여학생은 종교적 신조를 공적 공간에 들여오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권위로부터 오랜 역사를 걸쳐 쟁취한 라이시테의 성과를 위협하는,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신권정치의 재래로 간주되기도 한다.

[주33] Étienne Balibar,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Paris, Galilée, 2012, pp.91-104. 

그러나 발리바르가 세속화된 세속주의의 개념에 의해 시사하는 것은, 스카프의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국가야말로, 사실은 숨어 있는 신권정치의 실천자라는 것이다[주34]. 공적 공간으로부터 각종 종교를 철퇴시키는 국가는, 복수의 종교를 병렬적으로 취급하며, 심지어 사적인 선택의 문제로 변환하는 것을 통해서, 이것들을 최종적으로 총괄하는 수호자로서 나타난다. 공적 공간에서의 다원성의 확보의 권한을 국가가 계속 장악하기 위해서, 국가는 라이시테로 대표되는 무신론적 시민종교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라이시테란 그 때문에 종교로부터의 이탈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국가에 의한 정치와 종교 혹은 공과 사의 분할의 요체이다. 스카프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그 행위 자체에 의해, 뜻하지 않게 국가를 지탱하는 이 시민종교의 존재를 폭로해 보여준다. 발리바르가 더욱 더 세속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 국가의 시민종교이다.

[주34] 이번 절 이하의 서술에 관해서는 아래의 저서로부터 시사점을 얻었다. 柴田奇子, リベラル-デモクラシーと神権政治───スピノザからレオ・シュトラゥスまで, 東京大学出版会, 2009. 특히 8ポスト形而上学における政治的無神論」───マルクス宗教一般再檢討를 참조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철학(이성)과 종교(계시)의 영역의 분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의 정교분리의 양식과는 다른 방식에서였다. 스피노자는, 대중이 믿고 있는 각각의 종교를, 이성이 진리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게다가 라이시테같은 무신론적 종교의 대체물을 강제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바르에 의한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주장이 살아 있는 것은, 여기에 있어서이다. ‘스카프의 금지를 다수자로서의 프랑스인이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국가의 시민종교에 대한 더 많은 의존을 가져다준다. 여기에서 대중을 좌우하는 정념의 불확실성의 한 가지 표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국가의 시민종교에 억압됨으로써, 무슬림은 더욱 더 정체성=동일성에 대한 집착의 경향을 강화한다[주35]. 발리바르는 이 순환을 피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이름을 들면서 세속주의의 세속화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35] 일부 무슬림이 본질화하는 이 정체성이, 해당 주체를 압도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은, 페티 벤슬라마이다. 그의 작업은 이슬람이라는 상이한 대상을 다루면서, 바로 스피노자를 상기시키는 이단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Fethi Benslama, Déclaration d’insoumission, À l’usage des musulmans et de ceux qui ne le sont pas, Paris, Flammarion, 2005. 

 

매개(혹은 매개자) 역할을 여기서 맡을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 혹은 일종의 담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똑같은 성질을 가진 다른 선택지로서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환언하면, 그것은 새로운 종교로서조차도 종교의 시스템 속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며, 아마 유일한 예외는, 일종의 전면적인 이단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현재까지의 사상사(예를 들어 스피노자)에 있어서 때때로 얼굴을 내미는 어떤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에 따르면, 상이한 종교의 담론의 마주침을 간접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 혹은 공적 공간에 있어서 자유로운 대화를 함께 발전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 똑같은 공간에, -종교적인a-religieux(그러나 반드시 -종교적anti-religieux는 아닌) 추가적인 어떤 요소를 도입 혹은 개입시키는 것이다[주36].

 [주36] Étienne Balibar, Saeculum. Culture, religion, idéologie, op. cit., p.100. 

발리바르는 여기서, 상이한 종교를 믿는 자들의 마주침을 성립시키는 장을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이 장은 국가라는 무신론적 시민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대중 사이에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대중의 정념을 투자[備給]하는 국가의 세속주의를 포함한 종교 일반에 대해, 거리를 취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장의 탐구이다. 발리바르는 이처럼 정치론에 내재하고 대중의 양의성을 이끈 결과로서, 오늘날에는 신학정치론신권정치비판으로 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네그리의 다중으로 돌아가, 그 문제점을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독해는 정치론에서 스피노자의 핵으로서의 다중을 찾아내고, 이것을 전면적으로 전개하는 점에 그 강점이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인데, 스피노자는 정치론의 저자인 동시에, 신학정치론의 저자이기도 했다. 발리바르가 시사하듯이 정치론의 대중(=다중)론과 신학정치론의 신권정치 비판은, 상이한 의도 하에서 작성되고, 두 저작의 한쪽을 다른 쪽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차이는, 특히 신학정치론에 있어서, 종교에 의해 충동질된 대중의 정념에 대한 스피노자의 거리로서 나타났다. 네그리의 다중에는 확실히 종교의 문제는 표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그리가 이 다중의 다양성을 묶는 공통점을 끄집어내려고 했을 때, 그것이 의사적인 시민종교가 되지 않는 보증은 어디에 있을까? 이 가능성은 오늘날의 네그리/하트의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사색에 있어서도, 지워지지 않고 의연하게 뒤따르고 있는 그림자인 것이다.

 

결어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대비는, 사상의 형성 및 이것과 깊게 결부된 사회상황을 동시에 고찰함으로써 처음으로 그 의의가 분명히 밝혀진다는 의미에서, 뛰어나게 사상사적인 과제였다.

우선, 두 사람 사이에는 스피노자의 요구 정치론을 둘러싼 해석상의 쟁점이 존재했다. 네그리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극이라는 관점에 서서, 이 저작의 미완성 부분을 추측함으로써, 다중에 의한 힘의 합성이 열어젖힌 미래라는 이야기를 거기서 읽어냈다. 반면 발리바르에 있어서는, 네그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른바 생산력의 성질이 문제인 것이며, 혹은 또한, 네그리가 선험적으로 선하다고 간주하고 있는 듯한 대중(=다중)을 충동시키는 정념이 문제였다.

다음으로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이런 사상적 차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두 사람의 여정을 검토했다. 1970년대의 유로코뮤니즘의 흐름 속에서, 공산당이 영향력을 잃어가는 똑같은 시대 배경에서 출발하고, 두 사람은 각각의 길로 분기했다. 네그리는 생명정치 개념을 부연함으로써 3차산업의 확대에 역점을 두고, 오늘날의 비물질적 노동의 전개를 시야에 넣었다. 발리바르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중의 정념의 결정화가 자의성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과정은, 네그리에 있어서는 다중의 전면적 긍정, 발리바르에 있어서는 대중의 양의성이라는 각각의 스피노자론에 대응한다.

역사를 풀어헤친다, 대중의 양의성에 주목하는 발리바르는 파시즘 시기에서의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중(빌헬름 라이히)이나, 19세기의 길거리를 떠돌면서 소란을 일으켰다고 간주되는 위험한군집(귀스타프 르 봉) 같은 대중론의 계보와 부분적으로 관심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중을 이렇게 결정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대중의 정념의 향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로화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대조로부터, 하나의 방향성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네그리는 정치론신학정치론을 종속시키기 위해, 신학정치론고유의 신권정치의 비판이라는 물음을 비가시화하고 있다. 이 점은 네그리가 하트와의 공동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서, 발리바르는 정치론에서 대중의 양의성을 이끌어냄으로써, 근래에는 정치론신학정치론의 논의의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재차 중시하고 있다. 이 점을 본고의 끝에서 국가의 라이시테를 포함한 종교 일반의 비판으로서 검토했다. 그리고 네그리/하트의 공통적인 것이 사이비적인 시민종교와 어떻게 차이화되는가라는 논점이, 네그리/하트에 있어서의 향휴의 과제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사했다.

네그리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으며, 각각 정치론신학정치론이라는 스피노자의 두 개의 측면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이 네그리의 스피노자론의 부족을 지적하고, 이것을 결과적으로 보완한다는 의미에서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은 최종적으로는, 네그리/하트가 오늘날 전개하는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논의에 비판적으로 합류해가는 것이다.

 

* 본고는 일본학술진흥회 신진연구자 인터내셔널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의한 연구 성과의 일부이다. 여기에 적어서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또한 프랑스에서의 재외 연구 중에 본고를 집필했다는 경위 때문에, 번역서가 있는 문헌에 관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번역서의 저본이 아닌 불역본을 참조해 새롭게 번역한 것이 있었다는 것도 모두 일러둔다. 번역자에게 자비를 구하는 바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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