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할 생명권력론을 위해


사상, 2013년 2

 

1부 1장. 

생명정치학적 고찰

우노 쿠니이치(字野邦一)

 å­—野邦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각주는 모두 뺐으며, 프랑스 및 영어 원본 등과의 대조를 통한 번역 수정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에서 어떻게 번역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1. 묵시록적인 한 구절

지식의 의지(1976)에서 미셸 푸코가 쓴 한 구절(‘죽게 만들 것인가 살게 내버려 둘 것인가라는 고대의 권리를 대신하여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이 초래한 기묘한 충격을 돌이켜봐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on pourrait dire ~)”고 가설처럼 말했던 것은, 이 발언이 품고 있는 매우 중대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내용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그것은 불길한 죽음의 고지를 충분히 포함했다. 그저 죽게 만드는것이 아니라, ‘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이중으로 가혹하게 죽음을 하게 만드는 권력은 더 이상 결코 우연도 예외도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규칙[常態]이며 원리이기도 하다고 지적된다.

Histoire de la sexualité, tome 1 : La Volonté de savoir

 푸코는 권리(droit)’권력(pouvoir)’이라는 말을,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엄밀하게 나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죽게 만드는 권리란 군주의 권리였지만, 살게 만드는 권력이란 더 이상 특정한 인격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행정 등의 기관들에 의해서 분절되고 오히려 익명의 권력으로서 분산되고 국민의 생명에 대한 관리, 통제, 조절을 면밀하게 실천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군주는 눈에 보이는 노골적인 힘을 행사하여 사람을 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명백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근대의 사회가 원리적으로 보다 잔혹하게, 음험하게 생명을 말살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말살해 왔다는 것을 푸코는 지적했던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 결코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중추적 원리로서 작동하는 아포리아를 똑바로 가리켰던 것이다.

 “대량학살은 사활의 문제가 된다.” 전쟁의 결정은 살아남는가 아닌가라는 노골적인 물음을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핵무기 하의 상황은 이런 과정의 도달점에 서 있다.”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인 인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살해할 수 있다.” 푸코는 몇 쪽에 걸쳐, 이렇게 암흑의 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묵시록적 기술을 재빠르고 민첩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나치즘의 우생학적 재편성에 관해서, 또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의 학살에 관해서도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생명정치’, ‘생명권력이라고 부른 것은 엄밀하게 서양의 18세기 중엽에 출현했던 것으로 간주되고,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을 뒷받침하는 신체가 그 초점이 되었다. 또한 생물학적 과정이란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이며,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조건이라고 푸코는 설명한다. 생명정치는 이전에 그가 감시와 처벌(1975)에서 정밀하게 묘사했던 신체를 둘러싼 훈육[調敎], 규율의 시스템과 연동하여, 더 이상 군주의 권리로서도, 모든 주권이나 법권리의 형태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권력의 그물망을 세계로 뻗쳐나간다.

 그리고 지식의 의지성의 역사1권으로 썼기 때문에, 바로 생명/의 정치는 의 정치로서, 신체의 훈육·규율이라는 측면과 생식을 하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통제·관리라는 또 다른 측면을 연동시킨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과 더불어 분절되는 을 여전히 법에 의한 단속이나 검열이나 금기, 그리고 억압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됐던 것은, 새로운 생명권력 그 자체에도 깊이 침투되어, 이것에 편입[기입]됐던 생명과 성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푸코는 바로 이것에 역점을 두고 지식의 의지를 마무리했지만, 오히려 이 책을 둘러싼 논의도 자주, 성은 과연 억압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이뤄지게 됐다. 욕망이나 성적 억압은 오랫동안 정치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에서도 쟁점이었기 때문에, 푸코는 여기서도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성을 둘러싼 권력은 강대한, 눈에 보이는 중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도처에 분산되어 있는, 무수한 점을 통해서, 내재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이 권력은 일정한 중심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분할할 수 없다. 이 전제에 관해서도, 만일 권력이 그렇게 비집권적이고, 거의 실체를 결여한 것이라면, 반권력의 투쟁은 더 이상 불가능한가라는 의문도 항의도 나왔다(“권력은 도처에 있다. 모든 것을 아우르기 때문이 아니라 도처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푸코가 조금 묵시록적인 어조로 재빨리 말했던 생명정치학, 지식의 의지가 간행되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논의를 야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게 만들거나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이라는 무서운 지적은 내 머리 속에도 내려앉아 사악하게 맴돌면서 불길한 인상을 계속 내뿜었다. 푸코는 극히 엄밀한 저자인데, 누구나 아는 인간의 종언이라는 도발을 포함한 주요 저서도 있으니, 결코 묵시록적인 발언을 스스로에게 금지해 왔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종언은 엄밀하게 서양의 담론형성체가 어떻게 인간이라는 표상을 만들어내고 변경해 왔는가라는 고찰의 한 결론이며, 그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한정된 문제계 속에서 엄밀하게 말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관한 그 담론의 종언이란, 그대로 인간의 종언이라는 묵시록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푸코는 충분히 진지하고 노골적이며 도발적이기도 하며, [실제로] 훌륭하게 도발에 성공했다. 담론 형성체[편성]에 관한 엄밀한 분석과 더불어 인간의 종언에 관해 말했기 때문에, 그것은 사상사적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또한 인간의 종언에 못지않게 묵시록적인 시사였다. 이것도 또한 서양 근대의 어떤 시점에 위치지어질 수 있는 역사적, 제도적인 권력기구의 엄밀한 고찰에서 나온 제안이긴 했지만, 푸코는 순식간에, 몇 쪽에서, 20세기의 강제수용소나 핵무기의 위기까지 생명정치의 정의를 확장하고 있다. 미증유의 규모로 냉혹한 죽음을 초래하는 생명정치론은 또 다른 인간의 종언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명정치학죽음 속으로 내던진다는 가능성이 바로 폭발하듯이 현실화하는 것이 20세기의 전쟁과 수용소였다고 한다면, 푸코는 그 조짐을 이미 수세기 전의 서양에서 발견하고, 이 세계의 체제가 점점 더 생명정치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다.

 환경파괴나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아직 지구적 규모의 위협이 되기도 전에 인간은 이미 생명정치에 의해서 위기적 상황을 척척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환경과 인구에 대해서조차 이미 생명정치는 다양한 작용을 끼쳐왔음에 틀림없다. 생명과 죽음의 권력을 둘러싼 푸코의 도식은 극히 간략하며 간단할 뿐으로, 충격적이지만, 면밀한 논증을 결여하고 있으며, 반드시 진실을 알리는 언표로서 독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튼 밑도 끝도 없는 규모에 걸친 심각한 문제제기였다.

 

2. 정치의 과제는 생명이 아닌가?

푸코는 한나 아렌트의 책을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내 머리 속에서 생명정치학은 아렌트가 물었던 정치와 생명이라는 문제에 직결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렌트의 정치학은 공공성개념과 한 몸을 이루며, ‘공공성이란 어디까지나 복수성을 존중하고, 상이한 의견을 격렬하게 주고받으며 겨루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공공성과 이것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행동이 그녀에게 그대로 정치의 내용이 됐다.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이상을 외골수로 계속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의 비판적 사색은 공공성을 단순한 이념으로 폄하하는 현실의 정치적 과정을 겨누었다. 그리고 공공성의 창출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는 역사의 다양한 과정에서 실현되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 정치의 앞에, 바로 커다란 위험으로서 가로막고 있는 것은 생명의 위기라는 사태였다. 아렌트는 단적으로 이렇게 쓴다.

 “만일 정치가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생존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정말이라면, 실제로는 정치는 스스로를 말소해 왔던 것이 된다.” 아렌트에게서 현대세계가 손에 넣은 절멸전쟁의 가능성을 앞에 둔 정치란, 더 이상 정치의 기본적 요건(공공성, 자유)을 결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이기도 하며, 인간이나 어쩌면 이 세상의 생명체 전체가 더 생존할 수 있는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문제는 모든 정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이며, 현대의 조건 아래에서는, 정치와 생명의 유지가 서로 조화한다는 것이 의심스럽게 보이게 된다.”

政治とは何か

 이런 사고에 있어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이라는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생각이며, 원래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생명의 유지(살게 만드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활동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아직 생명정치학적 문제가 출현하기 전의 고전적 정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곧 통치가 아니며, 생명유지를 도모하는 체제도 아니라고 계속 말하면서, 아렌트는 한결같이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계속 주목했다. 이 정치에 있어서 궁극적인 적(반대물)으로 전체주의를 상세하게 연구하는 책을 썼다. 또한 공공성의 사고를 칸트의 세 번째 비판서(판단력비판)의 미학적 판단에 비춰서 더욱 심화시키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생명정치학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과 비춰봄으로써,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명정치는 생명을 배려하고 통제하는 정치로서 출현하지만, 이때 생명정치도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며, 이 둘 사이에도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는 것임은 틀림없다. 아렌트는 생명을 목표로 하는 정치그 자체에 강한 부정을 피력하고, 그리스의 폴리스나 미국의 독립혁명을 재평가하며, 거기서 실현된 공공성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저 회고적으로가 아니라, 새롭게 실현하고 구성해야 할 정치로서도 그것을 말했다.

푸코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리는 다시금, 오늘의 세계에서 정치가 생명과 어떻게 마주대하고, 생명을 어떻게 다루고, 조작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정치는 무엇을 하는가를 재차 묻게 된다. 정치가 생명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인 듯 싶지만, 그것은 꼭 자명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정치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치가 아닌데도 그래도 똑같이 정치라는 말이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시대부터, 특히 생명을 배려하게 됐다고 얘기되는 정치는 도대체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표현하며 무엇을 실현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없었는가? 아렌트의 비판은 단순히 정치는 무엇을 잃었다가 아니라, 생명정치 이전의, 혹은 생명정치 이상의 정치를 눈여겨보면서, 생명정치에 에워싸이게 된 정치를 재고하기 위한 시사로서 독해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의 살게 만들 것인가 죽음 속으로 내던질 것인가라는 권력이라는 정식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8세기 중엽에 출현하여 번식과 탄생, 사망률, 건강 수준, 수명, 장수등을 치밀하게 배려하게 되는 살게 만드는 권력이 왜, 어떻게 죽음 속으로 내던지는 권력일 수 있었는가, 삶의 권력이 어떻게 죽음의 권력으로 변형할 수 있었는가, 그것에 관해서도 사실은 푸코는 그렇게 설득력 있게 쓰지 않았다.

 절멸전쟁의 가능성과 더불어 있고, 절멸인가 아닌가라는 선택에 몰입하는 정치에 관해 아렌트뿐만 아니라 푸코도 절멸수용소와 핵무기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문제 삼았다. 그리고 환경파괴나 인구폭발은 또 다른 생사에 관련되는 정치의 과제를, 명백하게 들이댔다. 이것들은 어느 정도 생명정치학적 문제이며, 또한 적지 않게 생명정치적인 변화가 산출했던 결과이기도 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들을 그저 묵시록적인 비전으로 용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다른 차원, 다른 수준의 문제로서 재고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정치라는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각각으로 풀어 헤쳐져 고유한 수준에서 생각해야 할 상이한 물음이, 모두 빠짐없이 거기에 한꺼번에 밀어닥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묵시록은 도처에서, 영화 속에서도, 철학 속에서도, 특히 미디어 속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3. 생명정치인가, 구성적 정치인가

그리고 생명과 정치의 맥락에, 설령 절멸전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요인이 개입함으로써 질문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아무튼 전쟁은 생명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를 전제로 한다. 적의 생명은 말살해도 상관없는 최저의 가치밖에 갖고 있지 않다. 위협 받고 있는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전쟁의 이유라 해도, 이를 위해 자국민(의 일부)도 희생시키는 것 전쟁의 전제이며, 어디까지나 국민보다 국가가 소중한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폭력비판론(1921)에서 정치적 폭력을 둘러싼 아포리아에 관해 쓰고 있다. ‘인간이란 인간의 생명과도, 인격과도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도그마는 결코 자명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깊이 있게 이 도그마의 유래를 추구하기보다도, 벤야민의 관심은, 법과 더불어 있는 폭력의 양의성으로 향했다. 법을 유지하기 위해, 법에 의해 한정되고 규제되는 폭력(예를 들어 경찰), 법의 바깥에 있어서 법의 규제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정립하는 폭력(예를 들어 혁명)과 자주 구별되기 어렵다. 그러한 불분명한 폭력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생명도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즉 법적 질서의 주변에 놓이게 된다. 문학, 언어, 이데아를 예리하게 비평하는 새로운 유물론을 전개한 벤야민의 사고의 근저에는 구성적인 정치 또는 정치의 구성적 차원에 관해 그토록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는 것은 잊기 힘들다.

 나치즘이 출현한 시대에 구성적 권력을 둘러싸고 이토록 눈부신 사유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명정치()’라는 말을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말이 가리키는 정치의 급변은, 생산과 금융과 기술을 통해 가속화된 자본주의와 연동하여 세계를 크게 뒤흔들고, 그러한 구성적 차원의 정치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게 되었다. 벤야민의 폭력론도, 아렌트의 공공성의 정치학도, 그리고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의 정치학도, 그런 역사적 동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론마저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존재자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외는 통상의[정상적인] 사례보다 흥미롭다.” “법률학에서 예외상태는 신학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도발적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슈미트는, 역시 정치의 구성적 차원으로 깊이 하강하고, 때로는 바로 도착적인 신학과 닮은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생활의 철학은 바로 예외나 극단적인 사례에 대해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최고도로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 생활의 철학에 있어서는, 통상[정상]보다 예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역설을 좋아하는 낭만주의적 아이러니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되풀이되는 사례의 명백한 일반화 이상으로 핵심부로 파고드는 통찰이 지닌, 철저하고 고지식함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이렇게 쓴 그는 확실히 아주 진지하게 법적 사고의 극한에서 사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통례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통례는 원래 예외에 의해서만 살아간다. 예외에 있어서야 현실생활의 힘이, 반복으로서 경직된 관습적인 것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라고까지 결론을 내리는 법학자는, 한 개인의 자질을 넘어서, “예외적인시대의 예외적인 정치적 압력에 실로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아마 슈미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사고 형태가 나치즘의 추진력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구성적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물음은 슈미트의 경우처럼 예외상태에 대한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는 아렌트가 계속했던 공공성의 창출에 초점을 맞춘 사고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마도 공통의 배경을 가지면서도 또한 정반대의 사상을 형성했던 것이다.

 얼핏 보면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학은 그러한 구성적 차원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푸코는 특히 정치적 실천에 관해서는, ‘대표대의[재현, 표상]’에 이끌리는 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정당정치와도 맑스주의와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 정신병원이나 감옥의 탄생에 관해 정밀한 역사학적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적어도 다른 정치를 제안한 것이며, 지식의 의지에서는 바로 생명정치학에 대해 저항하는 힘에 관해, 약간이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서술을 남기고 있다. “요구되고, 목표의 역할을 하는 것은, 근원적인 욕구이자 인간의 구체적인 본질로서, 그의 잠재적인 힘의 성취이며, 가능한 것의 충만으로서 이해된 생명이다. 그것이 유토피아인가 아닌가는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거기서는 극히 현실적인 투쟁의 과정이 있다.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생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관리하고자 기획한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전시키는 것이다. 권리보다도 훨씬 생명 쪽이 그때, 정치적 투쟁의 관건=목적이 되었으며, 그것은 이 투쟁이 권리의 확립을 통해서 주장되었다고 해도 다를 바 없다.” 푸코에게서는 적어도 이 생명정치학적 쟁점을 둘러싸고 새로운 정치와 저항이 구성되고 있고 구성되어야 하며, 거기서도 또한 하나의 구성적 차원이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용기를 갖고 진리에 관해 말하는 것”(파르레시아)을 통해서, 혹은 자기에의 배려로서 푸코가 추구했던 것은, 아렌트나 슈미트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정치 이전의, 정치를 구성할 수 있는 차원을 어떻게 사고하는가라는 과제였다. 그저 자기를 배려하는 것, 자기와 어떻게 관계하는가는 것조차, 그것은 결코 제도나 도덕을 자명한 소여로서 간주하지 않고, 이것들의 외부에서, 자립적으로, 어떠한 자기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다. ‘생명정치학이라는 질문에, 푸코 자신은 그다지 정밀한 대답을 주지 않은 채 그저 이 질문을 겸손하게, 그러나 도발적으로 제기했다. 그 질문은 충분히 도발적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푸코는 짧은 말년에, 그리스-로마의 문헌에 파고들어가, 먼 시공에서부터,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답을 계속 보냈다. 마치 생명정치학이라는 문제 등, 이제 잊어버렸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하여 푸코는 끈질기게 계속했다고 생각한다.

 

4. 생명정치의 냉소주의, 일본의 호모 사케르

또 하나, 여기서 오늘날의 생명정치학적 상황에 관해서, 상당히 단정적으로, 절망적 선언처럼 쓰인 말이 있다. “우리의 정치는 오늘날, 생명 이외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1995). 생명정치는 더 이상 정치의 일부를 이루는 것도, 미래의 징후도 아니며, 더구나 정치에 있어서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며, 오히려 전면화했다는 지적이다. 아감벤은 확실히 푸코로부터 생명정치라는 문제를 받아들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사고의 모티프는 오히려 칼 슈미트에 친화적인 것 같다. ‘예외상태에 대한 이론적 열정과 같은 것이, 아감벤의 사고를 견인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예외는 그저 규칙의 외부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면서도 내부에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게 불분명한영역에 있는 인간은 호모 사케르’(성스러운 인간)라고 불린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예를 얼마 내놓지 못한다. 고대 로마에서 경계석을 무너뜨린 것,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식, 손님을 부정하게 대우한 주인처럼 죄를 저지른 것은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불리며, 이런 인물은 살해 가능하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 없다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졌다. 그는 예외상태에 놓이며,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 이런 불분명한 상황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아감벤은 벌거벗은 인간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예외상황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가? 그것이야말로 주권이라 불려야 하며, ‘주권은 바로 이러한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능력이며, 또한 예외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

 분명히 주권은 헌법을 제정하고 정체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는, 그 헌법이나 정체의 외부에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규정된다는 의미에서는 내부에 있다. 아감벤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권과 호모 사케르는 동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성적 권력인 주권과,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은, 동일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더라도, 동일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일한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호모 사케르는 또 다른 형태로도 존재한다. 그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영웅을 닮았지만, “싸우기 전에 자신을 죽은 자의 신들에게 장엄하게 바쳤으나 전사하지 않은 자이다(그들은 데보투스devotus라고 불린다). 출전하기 전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이 인간은 이제 살아 돌아오더라도 세속에 속할 수 없다. “그의 생명은 세속적인 삶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종교적 생명의 형식이 지닌 현실의 맥락에서도 이중의 배제에 있어서 분리되며, 이제 죽음과의 깊은 공생에 들어선다는 것에 의해서만 정의되며, 그렇지만 아직 죽은 자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생명이다.”

 이리하여 호모 사케르와 데보투스, 그리고 주권에 있어서, 동형적인 것, 마찬가지로 배제적 포함의 논리를 보고, 마침내 아감벤은 단숨에 묵시록적 결론을 부여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 생명 그 자체가 전례없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호모 사케르라는 모습으로 미리 규정할 수 있는 형상이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 예외상태의 정치학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생명이 어떻게 정치에 포함되 고 방어되며 어떻게 배제되고 유기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생명을 에워싼 정치가 어디에서 왔는가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주의 깊게 검토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구는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하며, 또한 사례의 분석에도 그다지 들어서지 않으며, 아주 도식적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아감벤의 관심은, 미리 추상화된 도식 쪽에 있으며, 그가 다루는 예외상태자체에 결코 예외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잔혹한 전쟁을 겪고 귀환한 인간은 적어도 예외적이고 불분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에서조차 많은 호모 사케르들이 실재했다. 이가라시 요시쿠니(五十嵐恵邦), 패전과 전후 사이에서 : 늦게 돌아온 자들(敗戦戦後のあいだで れてりしたち(2012)은 바로 일본의 전후에 겪었던 예외상태를 통해서, 전쟁에서 전후로 굴절된 역사적 시간을 비추고 있는 책이다. 이가라시생명정치학호모 사케르도 언급하지 않지만, 이 책은 분명히 생명정치의 거대한 사례로서 일본의 전쟁과 전후를 재고한다는 과제를 시사하며,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五十嵐恵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전시에 적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길고 가혹한 생활을 한 뒤에 돌아온 자는 이른바 살아 있는 영령(英霊)’이며, 바로 희생물로 바쳐진 뒤에 살아남았다. 혹은 전투 중에 군의 지휘를 벗어나 고립상태에 있었던 병사는, 패전을 알지 못한 채, 또는 알게 되었더라도 전혀 믿지 않은 채, 밀림에 틀어박혀 가상의 적과 계속 싸운다(요코이 쇼이치横井庄一,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郎의 예). 일본의 전후에 나타난 호모 사케르는 전후에 억압되고 중화되어 버린 내셔널리즘을 새롭게 소생시키기 위한 절호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오노다보다 조금 늦게 귀환한 마지막 일본군나카무라 데루오(中村輝夫)는 대만인이며,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일본국적이 아니라 대만에 속해 있었다. 나카무라는 이리하여 예외적 전후를 살아남고, 또한 귀환하더라도 구식민지 출신자로서 예외상태에 놓이며, 대만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화제가 되지 않고 3년 반 후에 병사했다. 나카무라는 더욱이 대만에서도 고사족(高砂族)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대만어를 말하지 않았다.

 이가라시는 소련·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된 뒤에 귀환한 사람들에 관해서도 썼다. 특히 시인 이시하라 요시로(石原吉郎)의 억류와 귀국 후의 생애에 여러 쪽을 할애했다. 억류자도 또한 겹겹이 예외상태를 살게 되었다. 우선 예외적으로 가혹한 억류와 강제노동이며, 10만이라는 엄청난 사망자 사이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예외적 체험이며, 일본으로 돌아오더라도, 일반적으로는 결코 그들은 환대받지 못했다. 원래 <전범>으로 구속된 <예외자>이며, 소련에 억류된 동안에 <공산주의에 고취됐을> 수도 있으며, 거꾸로 소련의 수용소의 비인간성을 탄핵한다면, 이번에는 소련에 대한 비판을 듣고 싶지 않은 좌익으로부터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극한 상태에서 많은 사망자를 목격했던 억류자는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죄책감으로서 무겁게 품게 된다. 이리하여 몇 겹이나 겹치는 예외상태는 그저 귀환자를 불분명한 중지상태에 둘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을 꿰뚫어 황폐하게 해 버릴 수도 있다. 돌아온 이시하라 요시로는 시를 씀으로써 그러한 예외상태를 살아남고, 황폐를 견디며, 황폐에 저항하고자 했음에 틀림없다.

 분명히 예외상태를 둘러싼 냉소주의라는 문제가 있다. 예외자는 예외상태를 초래하는 권력의 객체가 되며, 억류자는 소련으로부터, 일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그리고 어쩌면 몸 안에서부터 압력을 받고 협공을 당하며 혹은 유기되며, 더욱이 그러한 압력을 스스로 자기의 심신을 들볶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외자를 어떤 시스템의 객체(대상)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냉소주의적 입장에 서는 것이다. 아감벤은 때로 섬세한 본질적 비평을 전개하는 필자이기도 하지만, 생명정치와 예외상태에 관해 생각할 때의 그의 입장은, 이런 의미에서 어디까지나 냉소적이다.

 예외자가 된 주체가 황폐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거부하는가, 이가라시의 책은 바로 이 점을 건드리고 있다. “피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위치로부터 고발하지 않는다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의 주체를, 정치적 또는 역사적 힘으로 해소하지 않겠다는 결의이기도 하다. , 피해자로서 규정된 자기는 보다 큰 역학에 의해 산출된, 양의적인, 이른바 그림자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이시하라는 이것에 맞서서, 자신의 체험을 정치 그리고 역사로부터 분리하고, 자기를 행위자로서 재생시키고자 한다. , 자신의 체험을 수동적, 반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는 입장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외자(호모 사케르) 속에는 생명정치의 냉소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며, 대항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속하는 냉소주의마저도 관통하여, 또 다른 냉소주의가 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일본어가 아니라, 외국어도, 우리말도 아닌 언어가, 절단하면서 비약하는 언어가, 시로서, 의미의 극한으로 결정화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Lager] 후에도, 그 체험을 둘러싸고 아직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라는 게 있었다. 더 이상 시는 불가능하며, 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언어 자체에 숨어 있는 힘의 기구를 찢어버리고 의식의 냉소주의를 금가게 하는 말을 찾아내야만 했다.

 생명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의 예외성, 호모 사케르라고 불리는 인간의 상황은, 호모 사케르가 객체라고 간주되는 동안에는, 마치 논리적으로 동형적으로 보이지만, 살다가 죽는 주체로서 그것을 본다면 동형적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엿볼 수 있는 <생명권력의 외부의 삶>에 관해 말하는 말과 논리를 추적해야 한다. 더 이상 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삶의 상황에 의해 찢겨지고 또한 호흡하는 말이 쓰여졌던 것이다.

 애당초 정치 제도와 법적 언어는 생명의 외부에 있으며, 생명은 원래 정치 속으로도, 법 속으로도 포섭되지 않는다. 이 완전히 자명한 사태에서 출발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몇 가지 예외 상태(의 정치학)를 살펴봤는데, 이러한 예외상태에 대해 말하려면, 정치와 법이 예외 없이 생명의 세계를 모조리 덮어버린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와 법이 오히려 예외이며, 예외적인 창조였다는 것을 슈미트도 아감벤도 결코 전제로 하지 않는다.

 아감벤은 법과 언어의 본질적인 가까움에 대해 썼다. “어떤 단어가 현실성에 있고 실제로 내뱉어진 담론의 심급에 있어서 현실의 한 절편을 외시할 수 있다는 힘을 획득하는 것은, 그 단어가 비-외시(, 언어로부터 확실하게 구별된 언어. 담론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사용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어휘로서의 순수한 정합성으로서의 단어)에 있어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적) 규범이 개별 사정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규범이, 주권에 의한 예외화에 있어서 순수한 잠재력으로서, 현실성에 있는 실제의 참조가 모두 중지되어 버린 곳에서 효력을 갖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언어의 외부에, 언어가 촉지할 수 없는 삶의·차원이 퍼져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아감벤에게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외부에 (예외로서) 있는 것은 오히려 언어가 (파롤로서) 개별적으로 사용되고 지시를 하기 이전에 체계(랑그)로서 언어를 성립시키고 있는 잠재력이며, 그것이 법규범에 있어서 역시 예외적인 주권의 잠재력과 대비되고 있다. 확실히 언어는, 그 자체는 무의미한 형식(체계)에 의해 의미작용을 가지며, 법 또한 개별 사례에 적용되기 이전에 이른바 <명법>의 형식이라는 것에 의해서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언어와 법은 똑같은 형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볼 때, 형식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작위이며 선택이다.

 이렇게 동형적으로 파악된 법-언어에 있어서, 외부란 어디까지나 내부에 포섭되는 <예외>이며, 아감벤의 사색은 이런 토폴로지에 대해 면면히 이야기는 해도, 그의 정치학은, 결코 삶에 대해, 살아 있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호모 사케르가 단순히 그렇게 닫힌 시스템의 대상이며 효과일 뿐만 아니라, 그런 냉소적인 토폴로지 속에 있더라도, 또 그것을 더욱 변형하는 토폴로지를 만들어낸다면, 삶과 정치 사이에, 다른 맥락이 발견되지 않을까?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관리하려고 시도했던 시스템을 거슬러 역전시킨다고 푸코가 암시할 뿐인 것에 머문, 그런 역전은 도처에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종인 신체는, 생물의 역학에 의해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된 신체를 둘러싼 생명정치에 대해 푸코가 썼던 것으로 돌아가자. 살아 있는 주체 쪽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생명정치를 앞에 둔 생명이 무엇을 경험했는가를 보지 못하고, 그저 생명정치가 산출하는 예외상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생명정치는 결코 법과 더불어 있는 사회에 면면히 존재한 예외상태의 한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감벤은 생명정치를 단숨에 보편화하려고 하며 이렇게 쓴다. “현대의 문화에 있어서, 모든 다른 투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정치투쟁이야말로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투쟁이다. , 서양의 정치학은 기원에서부터 동시에, 생명정치인 것이다”(열림, 2002).

 사실은 생명, 생물, “살아 있는 종으로서 파악되게 된 인간을 둘러싼 정치에 대해, 그런 정치에 포위된 삶에 대해 아감벤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외상태에 다름 아닌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 강제수용소의 빈사(瀕死)의 삶과 포개서 동물상태라고 형언하고 있으나, 동물은 항상 가스실에 내몰린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 생물로서, 생물학적으로, 혹은 임상의학이나 해부학이나 유전학에 의해 파악되게 된 인간은, 확실히 정치에 있어서,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대상으로서 나타나며, 그것에 대해 정치도 권력도 변질되어 갔음에 틀림없다. 아마 인간의 살아가는 힘, 의지, 욕망도, 그것에 대해 변질되었다. 또한 동시에, 삶과, 살아 있는 신체가, 새로운 힘관계 속에 개입하게 되었다. 동물이기도 한 인간이, 새로운 빛에 비춰지게 된 것이다. 생명정치의 세기가 오기도 전에, 스피노자 윤리학은 이미,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인간의 의식보다 훨씬 정교하게 다양한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동물의 생명을 긍정하는 윤리를 생각한 것이 아닐까?

 예외 없이 생명을 배려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정치가, 더욱이 예외상태를 산출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생명정치의 사상가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슈미트가 말하는 신학적 기적처럼 말해진 것이 아닐까? 사실은 푸코의 말투조차도 이 기적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기적을 예외상태의 정치학으로서 초역사적으로 논리화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전혀 기적이 아니니까), 생명을 둘러싼 정치에 있어서, 생명과 정치 둘 다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압력과 힘관계에 포위되면서 변용된 생명은, 이 힘의 시스템의 표적이 되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를 어떤 힘으로서 재구성하고, 지속하고 어떤 생명의 주체이고자 했는가? 인간의 생명이, 동물의 생명을 결코 배제해온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것을 새롭게 억누르려고 했는가?

 확실히 아감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으며, 오히려 정치의 구성적 차원이기도 한 예외상태가 어떤 부조리한 폭력을 산출하는가에 특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강제수용소라는 예외상태에 관해서도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 독일의 사상가들이 상이한 입장에서 주의를 촉구한 구성적, 발생적 차원에서의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 비추어 생명정치를 파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정치를 그저 예외상태(동물상태, 불분명 상태)의 정치(오히려 논리학이라고 해야 할까)로 환원함으로써, 바로 생명정치에 노출된 생명이라는 주체를 둘러싼 사고는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것이다.

 

 

5. 두 개의 계보, 항쟁

여기서 바로 생명정치학적인 상황에서, 생명 그 자체에, 그리고 생명의 조건과 생명의 표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범위에서는, 분자생물학이나 유전자학에 대한 정밀한 방향에 분화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진화론이나 우생학처럼, 때로는 과학적 엄밀성을 넘어선 도그마로까지 생물학적 사고는 확장됐다.

 임상의학, 해부학, 생물학 같은 지식이 연동되고, 생물, 생체로서의 인간의 파악이 진화되어 가는 동시에, 그런 지식은 당연히 통치 속에 편입되고, 권력에 있어서 새로운 과제를 가져다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문맥에서 푸코는 살게 하는정치에 주목했으나, 확실히 이 생명의 지식은, 생명에 깊이 침투하여 생명을 조작하는 지식이기도 하며, 생명이 어떻게 영위되는가를 세밀하게 알고 통치하는 것은, 거꾸로 어떤 조건에서 생명이 죽음이 될 수 있는가, 생명을 살해할 수 있는가를 알면서 통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의 차원이란 생식의 영역이기도 하며, 즉 성적 활동이기도 하며, 성을 둘러싼 지식도 이런 생명정치적 전환에 편입되며, 이윽고 성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정신분석도 그것에 합류하게 된다.

 푸코가 생명정치를 단숨에 강제수용소나 핵무기로까지 관계시켰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성급하게 보인다. 그러나 생명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조작하려는 지식의 체계는 분명히 평행하여 물질에도, 또한 이윽고 무수한 생명을 순식간에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을 산출하는 게 됐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생물학과 진화론이 초래한 생물로서의 인간이라는 표상을, 정치적 표상으로서는 재구성하는 과정이 진행되어 간 것이다. 나치즘에는 이렇게 상이한 출신을 지닌 경향이 쏟아부어져 합류됐음에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로 뒤덮어버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동일한 경향을 공유하면서 공진했다는 것을 생명정치라는 말은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과 신체,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형이상학이나 종교적 세계관이 점점 더 의심을 받게 되고 신체, 동물의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에 새로운 빛이 비춰지게 됐다. 17세기의 서양에서는 확실히 신체와 동물의 생명이 재발견되고, 더욱이 상이한 빛 속에서 재발견됐다.

 데카르트는 당시의 의학이나 해부학에 통달하고, 신체를 정념의 자리로 정의하며, 어디까지나 관리하고 조작하고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서, 바로 신체의 생명을 정신과 이성으로부터 분할했다. 이미 데카르트 속에, 생명과 신체를 대상화하는 생명정치적 지성이 엿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한 스피노자는, 신체를 조작할 수 있는 의식도 자유의지도 부정하고,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신체, 생명, 심지어 자연의 <능산성> 위에 이성을 정초하려고 했다. 이것도 또 다른 생명정치적 윤리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윤리에서, 생명은 관리되고 조작되어야 할 권력의 객체가 아니다. 스피노자에게서는 이 생명이야말로 주체이며, 그 요구의 연장선상에 하나의 정치가 구상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명을 둘러싼 철학과 정치에 관해서, 여기서 적어도, 서로 뒤얽힌 두 개의 계보가 부상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2000)에서, 서양근대의 중심에 있는 갈등으로 지적한 것은, 아마 이것과 관련된다. “근대성의 중심에는 하나의 갈등이 있다. 즉 한편에는 사람들의 욕망과 연합으로 이루어진 내재적 힘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다른 편에는 사회적 영역에 질서를 강제하고 강요하는, 전체적 지배력을 지닌 권위에 의한 강력한 관리가 있으며, 이것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갈등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사이의 철학적 대립으로서 출현된 갈등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내재성으로서 생명의 힘을 긍정하는 공동체와, 그 생명 위에 군림하면서 정밀한 관리의 그물망을 펼쳐가는 생명정치 사이의 뒤얽힘에도 연쇄했다.

 스피노자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니체가 이 한쪽의 계보 위에 부상하게 됐다.

 니체의 철학은 확실히 생명을 새로운 빛 속에서 바라보는 생태주의로서, 서양의 형이상학, 종교, 과학을 바로 생명의 적으로서 단죄한 것이다. 아마 생명정치적 지식과 실천은 다양한 반응이나 저항을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생명정치라고 불리는 것도, 인간의 삶을 샅샅이 포위하는 새로운 체제로서 의식되는 것도 없는 채, 다양한 반응, 반향, 반항을 초래했으며, 거꾸로 그런 반발에 더욱 더 대답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니체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철학이 담고 있는 생물학주의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 있어서 유력한 특정한 생물관이, 식물계와 동물계로부터 다른 존재자의 영역으로, 예를 들어 역사의 영역으로 전용되고자 한다면, 이것을 생물학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생물학주의라는 이 명칭은 이미 말한, 생물학적 사고가 생물학에 고유한 영역을 넘어서 확장되고, 아마 과장된다고 하는, 앞에서도 언급한 경계 침범을 표시하게 된다.” 그러나 니체가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는 존재으로서 생각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이 세계상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하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하는 것이다. 사실 생물이 무엇인가라는 것,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결코 생물학은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철학만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존재감보다도 생생한 존재관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도 그는 적고 있다. 요컨대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의 본체는, 어디까지나 존재의 철학 쪽에 있는데도, 생물학적으로 보이는 주장 쪽에 정신이 팔려 니체의 존재론적 핵심에 이르지 못하는 피상적인 독해방식을 하는 세간의 경향을 하이데거는 비판한 것이다.

 도대체 니체의 생물학(적 사고)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른바 <사이비 진화론>으로 읽혀지고, 위험한 우생학적 발상을 자극하고, 마침내 나치즘의 <생명정치>에 거둬들여지는 사태도 분명히 일어났다. 그런 니체 속에, 사실은 어떤 생명정치가, 혹은 내재적, 능산적인 삶의 철학(스피노자의 계보)이 잠재했는가? 어디까지나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근거에 있는 존재의 형이상학의 깊이를 읽으려고 한 하이데거의 사색은, 어떤 계보를 짊어질까? 아니면 그는 모든 계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독창적인 사상가였을까? 그 하이데거는 생명정치의 가속화된 실례였을지도 모르는 나치즘에 접근했으나, 니체는 생물학에 접근하면서 생명정치의 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어디까지나 그 외부에 다른 <삶의 철학>을 세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각각이 때로는 물구나무 세우기를 포함한 입장에 서면서, 생명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VI. 니체, 그리고 아르토의 응답

니체는 어떻게 생물학을 이해하고 어떻게 주체를 생물학화하고, 오히려 주체를 생물로서 해체하고, 생물이라는 별개의 주체를 발견했던 것일까? 바르바라 스티글러의 소책자 니체와 생물학(2001)은 이 문제를 면밀하게 뒤쫓고 있다. 예를 들어 루돌프 루드비히 칼 비르효(1821-1902)의 세포에 관한 고찰을 이어받아, 니체는 생물의 근원적 과정을, 자기에 있어서 미지의 타자가 <자극>으로서 나타나는 장면에서 보고 있다. 그 자극(의 인상)이 고통을 안길 때, 생물은 자극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동화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체는 환경으로부터 고립된 동일한 것(동일성)이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타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영향에 반응하고 타자의 이타성을 동화하는 주체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의식도 주체도 동일성도 아니고, 그저 그것 자체성(ipséité)이라고도 불러야 할 뭔가이다.

 니체는 생명과 생물 속에, 의식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를 본다. 결코 생물에 목적론이나 초월적 이념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생물학(특히 발생학의 창시자 빌헬름 루, 1850-1924)을 따라서, 생물의 자기형성 과정을, <자기 조정>이며 <내적 투쟁>이기도 한 과정으로서 고찰한 것이다. 다만 환경에 의한 도태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서 생명의 진화를 생각한 다윈은, 이런 발생에 비하면, 결코 생물의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 니체는 빌헬름 루에게서 배우고, 생물의 내부의 미세한 단위에서까지 차이, 부등성, 복수성, 서열, 투쟁, 조정작업을 발견하려고 한 것이다. 생명체에 있어서의 조화와 안정과 동일성은, 이런 과정에서, 그 효과로서 사후적으로 출현할 뿐, 결코 과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생명에 있어서의 차이는 지속하고 영속하는 것이지, 결코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권력에의 의지, 이런 차이의 의지로서 생물을 관통하고, 인간도 관통하는 것이다.

빌헬름 루


 그러한 니체의 사고는 생물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외부세계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수동적으로 행동한다고 봤던 에른스트 헥켈(1834-1919)에도 대립하며, 오히려 단절이나 비연속의 힘으로서 생물의 <의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스티글러에 따르면, 니체는 이렇게 동시대의 생물학이나 생물학적 사고에 크게 촉발되고, 또한 그것을 비판하면서 생물에 대한 사고를 중요한 모티프로서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제련해냈던 것이다.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예정조화적으로, 균형이나 통합(이른바 도덕적 이상)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허버트 스펜서(1820-1903)에게도 니체는 비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화><균형>은 사후적으로 그러한 상태를 드러낼 뿐이며, 어디까지나 차이의 항쟁 그 자체가 생명과 그 진화의 과정을 인솔하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수없이 겹쳐지며, 도태가 거듭되는 가운데 진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생물계에서의 도태도 항쟁도, 매우 온화하게 점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생물은 끊임없이 이상(異常)이나 예외를 산출하는 것이며, 변화나 항쟁이야말로 정상常態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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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헥켈

 다윈도 스펜서도 개체로서의 생물의 짧은 시간 스케일에서는, 동일적으로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개체와 개체성을 전제로 하여 생물계를 생각한다. 그러나 니체에게 있어서 개체는 결코 자기에 일치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차이화하는 것이며, 생물의 자기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형성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니체의 생물학주의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어 온 우생학적 사고도, 사실은 똑같은 경향으로 관통되고 있다. 그는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의 책을 읽고 공감했다고 한다. 스티글러의 독해에 따르면, 골턴의 우생학은 나치즘이 채용한 듯한 사이비 다윈주의와는 한 선을 긋는[다른] 것이었다. 골턴의 시각에서는, 자연도태는 오히려 새로운 것의 출현을 막고, 집단적 본능에 이끌리는 사회를 신장시킨다. 유전은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평균화하고, 차이를 말소하도록 작동하기에, 인공적인 조작에 의해 차이나 다양성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골턴은 생각했다. 유전()의 인공적 조작은 거꾸로, ‘순화등질화等質化의 방향에서도 행해질 수 있으며, 우생학적 발상은 오히려 그런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하며, 현재에도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도 니체는 동시대의 우생학에서조차도 그의 차이(그리고 권력에의 의지’)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초인의 사상에도 관련된 것이다. ‘초인의 사상이란 단순히 우생학적인 제안의 변종(variation)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동일성의 바깥으로 나가서, 차이나 다양성으로서의 거친 삶을 맞이하려고 하는 발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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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골턴

 아마 종인 신체, 생물의 역학에 관통되고, 생물학적 과정의 버팀목이 되는 신체”(푸코)는 생명정치를 훨씬 뛰어넘어 인간의 주체적 의식의 앞에 출현하고, 주체와 의식을 흔들며 서서히 찢어버리게 됐다. 삶이 인간의 외부로서 발견되는 동시에, 똑같은 삶이, 금방 인간의 차원에 수용되고 관리되어야 했다. 삶을 재발견하는 사고와, 재발견된 삶을 면밀하게 알고 통제하려고 하는 권력의 실천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인간을 살게 하는 면밀한 배려란, 기묘하게도 인간의 삶을 마비시키고 때로는 무참한 죽음으로 유기하게 됐다. 생명정치()이란 삶을 둘러싼 의식과 실천에 있어서의 큰 전환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며,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려고 하는 권력의 재편성의 과정이기도 했다. 생명정치에 있어서 인간의 삶은, 인식하고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인간은 일찍이 그 삶의 주체이며, 이윽고 역사적 주체의 위치로부터 탈락하고 오히려 삶이야말로 진정한 주체가 된다는 전환조차도 넘어선 것이다. 삶이라는 주체는 더 이상 서양의 철학이 정의하고 문제화했던 주체일 수 없었다. 니체는 그것을 의식이 아니라 삶의 의지로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차이의 무리로서 생각했다.

 생명정치와 밀접하게 연계하는 체제, 인식, 과학, 기술은 확실히 나치즘의 경우, 예외상태의 정치와 결합되어 무서운 살인기계를 산출했다. 아감벤은 그런 실제 사례를 특히 법적 차원의 예외상태로서, 고대 로마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 시스템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생각했다. 그 문제제기는 본질적으로 귀중했지만, 그래도 생명정치라는 거대한 문제의 단 한 가지 측면밖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치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비점령지역의 정신병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앙토냉 아르토는 도대체 왜 기관 없는 신체라는, 저 기묘한 말을 거듭 반복하여 노트에 적어두면서, 인류에 대해, 역사에 대해, 완전히 고독한 선전포고를 한 것일까? 그의 심신에, 특히 신체의 심층에 미치는 거대한 적의 힘에 대해, 돈키호테처럼 헛쇤 싸움을 그는 계속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기묘한 싸움은, 신체 기관에, 아니 오히려 기관으로서 파악되는 생명에, 그리고 생명을 탄생, 생식, 노동력, 수명으로서, 여러 가지 기능으로서, 이윽고 이식 가능한 기관으로서 파악하는 정치, 의학, 기타 여러 가지 지식과 실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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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토냉 아르토 

 생명정치는 사용되고 분해되고 조작되고 소진되는 기관의 모임으로서, 산 신체를 관리하고 통치한다는 의미에서는 전혀 인정사정없는 체제이다. 아르토가 기관 없는 신체의 선전포고가 되는 라디오 드라마(신의 심판과 결별하기 위해, 1948)를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인공수정 기술을 지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에는 명백할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가, 생명에 개입하는 새로운 기술에 항의한 것보다도, 기관으로서 생명을 분리하고, 대상화하고, 조작하는 삶의 이식과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도 근본적으로 민감하게 저항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죽음의 표출이기도 하며, 죽음과 이웃한 신체이며, 실제로 아르토에게는 죽음이 가까이에 임박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생명정치학이 기관으로서의 신체에 초래할 수 있는 죽음과는 별개의 죽음이었음에 틀림없다. , 그것은 생명정치학이 초래하는, “살게 하거나 죽음 속으로 폐기한다고 하는, 저 기묘한 삶과 죽음의 결탁의 바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 이 글은 졸저 <なる>哲学──思想のゆくえ(平凡社, 2005)을 보강하는 것이며, 그것의 자기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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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물론 하버마스는 이 공화국의 위기를 알고 있다. 그리스 위기 때에, 그가 201111월에 보수계 신문에 발표한 에세이의 제목은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자!”였다. 유럽연합(EU)이 합의한 그리스 지원책을 받아들일지 여부의 국민투표 계획이 독일과 프랑스 총리의 공갈에 의해 철회되고, 파판드레우 총리가 퇴진으로 내몰린 사건을, 하버마스는 게재된 신문의 보수적 사주와 함께 민주주의의 투매(sacrifice sale)”로 간주한다. 지원 방안은 페스트와 콜레라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견딜 수 없는 선택지였으나, 바로 그렇기에 그리스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의 존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리스 국민은, 최소한 사후적으로라도, 개헌과 똑같은 주권의 상실을 허용할지 말지에 대해 투표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EU, IMF,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으로 이루어진 트로이카의 지시를 따름으로써, 아일랜드에서도, 포르투갈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튼 이 주권 상실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이것을 쓴 시점의 하버마스에게는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으나, 2012년의 6,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행했다. 페스트냐 콜레라냐(재정긴축이냐 EU이탈이냐)를 선택해야 했다(전자를 선택했다). 아일랜드는 그리스와는 달리 민주주의의 존엄을 지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버마스도 확인하고 있듯이, 국민투표 이전에 진작에 이 주권 상실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미 주권은 상실되었기 때문에, 투표의 실질적 의미는 주권의 상실을 허용할지 여부가 아니었다. 바로 하버마스가 말하듯이 사후적으로 주권 상실을 아일랜드의 주권자가 인증한 것일 뿐이다. “페스트냐 콜레라냐의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의 존엄의 방법을 둘러싼 선택이었던 셈이다. 민주주의자 하버마스가 민주주의에 자신의 의지를 갖고 죽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그는 죽는 것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정치가 신뢰를 얻으려면, 단계화된 통합을 향한 신빙성 있는 제도 설계에 의한 것뿐이다.” , 유럽 헌법의 창설이다. “(‘민주주의 유럽)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효용에 대한, 널리 공공의 장소에서의 논쟁이 이미 시작되고 있어야 한다.” 국민국가 단위의 민주주의에는 스스로 존엄사를 선택하게 하고, EU라는 규모에서 똑같은 민주주의를 재생시키는, 그것이 하버마스에게서의 사실상의 정치노선에 다름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부터 이탈리아 전역을 조망하면서 그것을 꿈꿨듯이, 한나 아렌트가 미국 건국 혁명에서 그것을 찾아냈듯이, 하버마스도 자유의 창설 Constitutio Libertatis”을 유럽에 호소하려고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럽공화국, 사회민주주의의 차기 노선인 것처럼. 그러나 위기의 정체는, “진즉에 주권 상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아닐까? “페스트냐 콜레라냐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존엄은 이미 상실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바꿔 말한다면, “유럽공화국세계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이미 실재하고 있다(각 국민의 민주적 주권을 죽이고 있다)고 메르켈과 사르코지와 파판드레우가 연기한 그리스 비극은 알려주지 않았던가.

 

오늘날 중대한 갈등은 유로권 국가들과 은행 로비 사이의, 외부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이면협상의 장소로 이행하고 있다. 그것을 민주주의의 빛에 비춰진 아레나(arena)에로, 즉 피해자가 논의의 당사자로서 결정에 참가할 수 있는 장소에 다시 한 번 되돌아가게 했던 것, 설령 모두가 공포에 떨던 순간일 뿐이든, 되돌아가게 했던 것, 이 점이야말로 파판드레우 총리의 치적이다.

 

중대한 갈등을 억누르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공화국의 본성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유럽에서 이미 실재하고 있다. 그리스 위기 때에는, “민주주의의 빛에 비춰진 아레나에서 고전적으로 공화주의적인 정치가 거행[집행]된 것이다. “파판드레우의 방향전환, 즉 비극 제3막의 전환이 있으며, 이 비극의 진정한 냉소적인 의미가 드러났다.” 하버마스는 그 냉소적인 의미시장(market)한테는 민주주의의 정도가 적을수록 사정이 좋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성상의 차이가 또 다시 노정됐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 헌법이 창설됐더라도, 그리스 국민에게 해결책이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는 이렇게 시사하고 있다. 한순간의 카타르시스와 맞바꿔서, 비극은 잊히고 공화국이 지속하는 것이다. 이미 죽은 자의 사후적존엄사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비극이라기보다는 부조리극일 것이다. 하버마스보다 훨씬 더 자각적인 공화주의자는 이미 수년 전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좌익은 유럽 통합을 하나의 대체 신화로 했다(레지스 드브레). 그러나 드브레도 몰랐던 것은, 좌익이 그것을 신화라고 깨닫고, 하버마스가 미테랑에 이어서 그것을 다시 한 번 신화로서 활성화하려고 할 때, 공화국은 이미 비밀의 이면협상의 장소라는 모체 내에서 성장을 이룩해왔다는 것이다. 신화라고 생각했던 공화국이 천천히 무대에 등장하여 민주주의의 죽음을 드라마로 만든다. 이 드라마에 의해 공화국이 민주주의의-죽음의-아래에서 탄생한다. 이 공화국에는 헌법이 아직 없나? 그러나 드브레에 따르면 법치는 공화주의의 본질을 구성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사회적인 조정도 행했던 공화국에서는 공무원이 매우 중요해진 반면, 규칙이 지역적이고, 사적인 상인과 프로테스탄트로 이루어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법률가의 역할이 매우 크다. 공화국을 만드는 것은 우선 무엇보다도 공화주의자이며, 그들의 의지이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무관심해도, 형식주의적으로, 즉 법적 문서의 차가운 객관성을 따라서 기능한다.” 이 정의를 따라 말하면, 막대한 EU 관료군이 존재하고, 민주주의에 정지를 요구할 정도로 공통 통화를 존속시키려고 하는 의지를 가진 정치가도 존재하는 유럽은 이미 충분히 공화국이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하버마스의 에세이를 게재한 신문사의 사주이자 독일 민족주의의 대사제로 꼽히는 인물은 금융위기를 지켜보면서 어쩐지 좌익이 옳은 것 같다고 점점 생각하게 됐다고 이 신문에 썼다고 한다. 리먼 쇼크 이후에는 뉴스위크지가 그 표지에서 우리는 오늘날 모두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선언했다. 재정긴축(=우익)이냐, 아니면 정부채무에 의한 복지국가의 견지(=좌익)냐라는 분기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채무에 관해서는 빌린 사람이 갚으면 된다는 불개입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시장주의를 우익으로, 재분배 기능을 가진 국가에 채무 부담에 대해서도 재분배시키려고 하는 입장을 좌익혹은 사회주의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자유주의의 관할지역이라고 하고 드브레가 민주주의의 지배 지역이라고 한 사적 개인의 세계가 오늘날에는 우익의 영역이며, ‘공공은 민주주의적(하버마스)이든 공화주의적(드브레)이든, ‘() 좌익이 점령했다. 채무가 중대 문제인 한에서, ‘우익나설 차례는 없으며, “모든 관여자를 공공공간 속에 참여시키려고 하는 좌익만이 이 일을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채무가 생산을 상회하며, 금융적 보험, 보험적 금융이 그 차액을 지탱하는 오늘날, 채무는 다른 누구보다도 금융기관의 중대사이며(파생상품에 의해 보험을 걸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좌익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상정원본(notional amount, 이론상의 금액)’이 아니라 현실의 원본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을 관여자로서 공공공간 속에 불러들이고, 그들에게 최종적인 부담을 합의하게 함으로써였다. 국민투표를 거치든 거치지 않든 (그것은 토의 절차의 How에 불과하다), 토의의 의제는 미리 정해져 있으며, 나머지는 합의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합의 내용의 절반은 이미 결정됐다. 새로운 공공공간 속에서 관여자로서 자격을 부여받은 자가 2급의 신()시민으로서 1급의 구()시민의 부담의 일부를 대신 떠맡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남겨진 의결 내용은 그것뿐이다. 그리스 위기에서, 아일랜드 국민투표에 있어서, 유럽 공화국이 정치의 무대에 올린 것은 비극의 오래 계속될 뿐인 이 후반부분일 것이다. 4막의 시작이다.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리스 비극에 제4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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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시작개념 : 혁명론을 중심으로 (1) 

ハンナ・アーレントにおけるはじまり概念

著書革命について中心

마츠모토 토모하루(松本 智治, 日本大学大学院総合社会情報研究科)


http://atlantic2.gssc.nihon-u.ac.jp/kiyou/pdf13/13-103-108-Matsumoto.pdf



. 서론

1. 문제의 소재(所在)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주1] ―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주2]등의 저서로 알려지고, 그의 사후 금세기의 여성(A WOMAN OF THIS CENTURY)”[주3]이라고 호칭되는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로서 평가받는 철학자다. 그녀의 사상에서는 고대 그리스적 공공공간과 고대 로마적 공화정체의 복권을 제창하는 전통 이념 옹호의 보수주의자적 측면과 정치참여의 자유와 다원성·복수성plurality의 확보를 호소하는 급진적인 변혁지향의 자세, 이 둘 다를 찾아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 없으며, 벡터가 다른 두 지향성이 그녀의 내면에서는 충분하게 혼융되어 있으며,[주4]고전고대의 교양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면서 전개하는 그녀의 입론은 기존의 정치 개념을 탈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징적 사상은 1990년대 이후, 냉전 구조의 종결과 전지구화의 진전 속에서 한층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저작의 번역, 편지, 유고집, 연구서, 평전 등 많은 서적이 최근 미국이나 일본에서 간행되고 있다.[주5]

[주1]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일본어 표기는 역자·연구자마다 다르다. 志水速雄 등은 ハンナ・アレント라고 표기하고, 大久保和郎 등은 전체주의의 기원 1·2·3 <신장판>(みすず書房1981)에서 ハナ・アーレント라고 표기한다. 이 글에서는 矢野久美子 등이 사용하는 표기인 ハンナ・アーレント로 통일했는데, 인용부분이나 번역서의 인용에 있어서는 해당역자의 표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OR혁명론이라고 호칭되는 경우도 있지만(森分大輔 ), 필자는 志水速雄의 번역서 이름인 혁명에 관하여(革命について)라는 표기를 통일적으로 사용했다.

[주2]  연구자에 따르면, 독일어 번역본의 책 이름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를 취해 활동적 삶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出雲春明, 시작의 조건. H. 아렌트, 활동적 삶27절을 둘러싸고(まりの条件 H. アレント活動的生第二七節をめぐって)(윤리학, 筑波大学倫理学原論研究会, 24, 2008) ; 森一郎, 시작의 경험. 활동적 삶24절에 대한 한 주해(まりの経験 活動的生第二四節への一注解(현상학 연보, 日本現象学会, 22, 2006); 상동, 죽음과 탄생(誕生), 東京大学出版会, 2008년 등

[주3] 1982420일자 The New York Times, Peter L. Berger에 의한 Elisabeth Young-Bruehl, HANNAH ARENDT For Love of the World,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1982. (일본어 번역본은 荒川幾男原一子本間直子宮内寿子 옮김, ハンナ・アーレント, 晶文社1999)에 대한 서평 제목으로부터. 필자는 이 카피를 川崎修의 소개와 해설(川崎修, ハンナ・アレントの政治理論 アレント論集Ⅰ』, 岩波書店, 2010, 237-243)에서 알았다

[주4] 오타 테츠오(太田哲男)는 아렌트의 정치사상이 자리한 위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아렌트의) 정치적 입장은 보수적인 외관을 가지면서도 급진주의적(래디컬)이었다”(太田哲男ハンナアーレント清水書院, 2001, 227).

또한 마찬가지의 취지에 관해서, 혁명에 관하여(革命について)의 번역자인 시미즈 하야오(志水速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수인가 반동인가 진보인가 이런 개념(이것 자체는 근대의 산물이지만) 자체가 애매해졌으며, 때로는 완전히 거꾸로 사용되기조차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었다고 본다면, 맑스주의자가 스스로를 그렇게 칭한다고 해서 그 자신이 진보적으로 될 것이라는 보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급진적으로 되는 것이다. 더 말한다면, 급진주의에 의해 뒷받침된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러한 리얼리스트의 한 명일 것이다.”(志水速雄, 역자 후기, 合同出版版, 革命について, 425-426). 

[주5]  야먀모토 케이(山本圭)는 최근 아렌트 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히 동서냉전이 종결된 90년대에는 아렌트 르네상스라고 불릴 현상이 일어나, 서구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굉장히 많은 수의 아렌트 연구가 세상에 나왔다.” “‘아렌트 철도’, ‘아렌트 티켓’, 그리고 아렌트 거리등을 만들어내는 데 이르렀으며, 월터 라클은 이 현상을 아렌트 컬트(Arendt Cult)’이라고 명명할 정도다”(이상은 山本圭古典評釈著作批評 森分大輔ハンナ・アレント研究─〈まり社会契約』」〈『Autres』《名古屋大学, , 2008 , 101). 

* http://webcatplus.nii.ac.jp/webcatplus/details/book/ncid/BA84456145.html

이 글은 아렌트의 주저 중 하나인 혁명론(On Revolution, 1963)을 다룬다. 나치즘의 구조를 명확히 한 인간의 조건이 자주 나치의 전체주의와 대결했다거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정체를 이상으로 삼았다등의 일정한 수식어와 함께 그녀의 대표작으로서 말해지는 반면에, 혁명론자체는 기존에 비교적 언급되는 경우가 적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대표적 아렌트 연구자인 마가렛 캐노번(Margaret Canovan)아렌트 정치사상의 재해석(Hannah Arendt: A reinterpretation of her political thought, 1992)에서 혁명론이 그만큼 언급되지 않았던 이유로 이 책의 내성적·암시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아렌트의 저작 중에서는 가장 이해되는 게 적은, 또한 가장 평가받는 것이 적은 이 책의 지적 무게/중량감은 확실히 다른 두 저작과 동등하게 취급해야 마땅할 가치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그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주6]

[주6] Margaret Canovan, Hannah Arendt: A reinterpretation of her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1992, rep. 1995. p.155[일본어판 : 寺島俊穂·伊藤洋典 옮김, アレント政治思想再解釈, 未來社, 2004, 203]. 이어서 캐노번은 그렇지만 혁명론이 지금까지 무시되고 거의 이해되지 못했던 하나의 이유는 아렌트의 표준적인 저작에 비해서도, 그 저작이 극히 암시적이고 내성적(内省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른 대목(Canovan, Hannah Arendt, p.249. 일본어판 319)에서는 , 혁명론이 그녀의 가장 공화주의적인 저작her most republican book이다”, “(혁명론) 또한 (그녀의 예정되었던 정치입문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조건에서의 정치의 인간적 문맥에 관한 고찰과 달리, 그녀의 정치 그 자체에 관한 사고방식의 포괄적인 서술에도 가장 가까운 것이리라고 말한다. 나아가 혁명론에 특징적인 테마는 돌이켜보면, 아렌트의 정치적 저작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Canovan, Hannah Arendt, p.249. 일본어판 320), 아렌트 정치사상에서 혁명론을 특히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지적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이 혁명론은 흔히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말해졌다. ― 『혁명론에서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및 그것에 이어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미국혁명을 높이 평가했다. 다수성·복수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조건에서 말해지는 활동/행위(action)’의 공간으로서의 공적 영역의 재구축을 추구하며, 참여형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말했다. “자유의 창설(Constitutio Libertatis)로서의 혁명을 말하고, 미국에서의 수평적 권력으로서의 연방제의 의의 등, ‘권력’, ‘권위의 기초부여/정초에 관한 정치사상의 논의를 전개했다. 요컨대 고전고대의 그리스 폴리스정(), 로마의 공화정의 존재방식을 이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주7이런 이미지는 그대로 프랑스 혁명보다도 미국혁명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이고 전통 중시의 사상가라는 아렌트의 이미지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이상으로 한 복고주의적·이상주의적이고 직접민주정이나 참여형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사상가로서의 아렌트 상을 형성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났던 동구의 시민혁명과 아렌트적 혁명 패러다임 사이의 관계도 여기저기서 논의되었다.[주8]

[주7]革命について, ちくま学芸文庫版에 수록된 일본어 역자인 시미즈 하야오(志水速雄)역자 후기(459-465) ; 카와사키 오사무(川崎修)해설(467-478) ; 카와하라 아키라(川原彰), 현대시민사회론의 신지평 아렌트적 모멘트의 재발견(現代市民社会論新地平 <アレントモメント>再発見), 有信堂高文社, 2006, 95-123; 太田, 한나 아렌트(ハンナアーレント), 194-202; 카와사키 오사무(川崎修), 아렌트 : 공공성의 복권(アレント 公共性復権), 講談社, 2005; 치바 신(千葉眞),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 岩波書店, 1996, 123쪽 등을 참조할 것. 또한 치바(千葉),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 125쪽에서는 혁명론은 형식적으로는 이 자유의 틀 안으로 귀결된다고까지 말해지고 있다. 이처럼 혁명론은 역사상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소재題材에 있어서 현대의 정치적인 스탠스를 나타낸 정치사상적인 책으로 인식되어 왔다

[주8예를 들어 치바(千葉),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 4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특히 147-158)이나 카와하라(川原), 현대시민사회론의 신지평(現代市民社会論新地平)(특히 116-121, 243-255)

그렇지만 혁명론서장의 마지막 단락에 혁명의 현상에 시작beginning의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명백하다[주9]라고 있듯이, 또한 제1장의 서두에서 혁명은 직접적이고 필연적으로 우리를 시작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유일한 정치적 사건[주10]이라고 말해지고 있듯이, 혁명론에서는 일관되게 이 시작의 문제를 분명히 하고, 또한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테마가 되었다. “시작이라고 하는 이 특징적인 개념을 분명히 하지 않고 혁명론을 단순한 정치사상사로 쉽게 정리해 버리게 되면 아렌트의 진의, 그리고 사상의 전체 상을 파악할 수 없다.

[주9]  OR, p.10. 일본어판 24. 또한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시작의 독해 오류(“~, 시작~”과 같은 소위 부주의한 독해가 되는 것)를 막기 위해 시작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원문에는 beginning에 대해 특별한 강조표시는 없다. 그 때문에 일본어 번역판을 인용할 때 방점은 생략했다

[주10]  OR, p.11. 일본어판 27

그리고 또한 이 시작의 논점은 아렌트의 주저인 인간의 조건에서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세 범주인 노동, 작업, 활동/행위labor, work, action’ 중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행위를 의미짓는 아주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주11]  나아가 혁명론의 말미에서는 혁명의 잃어버린 보물로서의 공적 자유(공적 행복)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작을 상기시킬 수 있는 기억memory’회상recollection’이라는 취지가 서술되어 있다.[주12]  이 문제의식은 그대로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확대판은 1968)의 서두인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의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주13]  

[주11]  예를 들어 인간의 조건에는 각자가 태어남으로써 갖게 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세계의 무대 속에 들여오는 활동 없이는, ‘하늘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HC, p.204. 일본어판 328). 그밖에 5. 활동에서는 곳곳에서 시작출생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주12] OR, p.272. 일본어판 441-442

[주13]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서문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에서는 현대의 위기란 전통이라는 과거로부터의 시간적인 연속성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기억회상이 상이한 말이지만, 이 위기를 구해내는 것이 상기remembrance, remember’하는 정신이라는 것이 말해진다. 나아가 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의 첫 구절은 혁명론6장 끝부분의 인 프랑스의 시인 르네 샤르(René Char)의 말 우리의 유산은 유언 하나 없이 남겨졌다(Notre héritage n’est précédé d’aucun testament)”의 인용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혁명론에서의 아렌트의 문제의식은 (결코 인간의 조건외의 정치사상적 저작과의 관련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말해지는 역사성의 회복의 문제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BPF, p.3, 5-6. 일본어판 1, 4-5

이상의 점을 감안한다면, 혁명론을 단순히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의 내용을 비교하고, 정치체제의 자유를 창설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하는, 정치체제론·정치사상론의 관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렌트의 역사철학, 시간론이라는 관점, 시작이 역사의 동적 과정·정도 속에서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또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나 야스퍼스(Karl Jaspers)[주14]로부터 배운/사사師事한 독일 실존주의 철학의 학생으로서의 아렌트의 철학적 측면과 나치 전체주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사회의 병리현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계속했던 평론가·정치사상가로서의 아렌트가 교차하는 책으로서 이 혁명론을 집어든다는 필자의 문제의식에도 기초를 두고 있다.[주15]  

[주14]  이 책 혁명론은 게르하르트, 칼의 야스퍼스 부부에게 존경과 우정과 사랑In reverence in friendship in love”을 담아 헌사된 것이다. 또한 아렌트는 19611230일자의 야스퍼스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혁명론을 거의 다 썼다”, “성과가 좋다고 생각한다등을 알리고, 야스퍼스 부부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는 취지로 타진한다. OR, 속표지 및 太田ハンナアーレント194

[주15]  또한 2011년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이른바 재스민 혁명’(튀지니아의 혁명을 가리키는 호칭)이 발발하고, 동구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1989년 전후 이후 및 20년에 걸친 혁명의 해가 됐다. 필자는 이런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혁명의 현실을 분명히 하는 관점을 얻는 의미에서도, 전체주의와의 대결로부터 시오니즘 및 유대인 문제에 대한 대응, 그리고 미국사회에서의 정치적 발언 등 다양하게 현실적인 언론을 전개했던 아렌트의, 혁명과 그 시작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분명히 하고 싶다는 바람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2. ‘시작’ : 논자의 제반 논의들과 그 위상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 간, 아렌트의 시작개념이 주목을 끌고 있으며, 아렌트 연구의 한 가지 트렌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야마구치 케이(山口充)인간의 조건이 갖고 있는 가장 정열적인 메시지는 인간의 출생human natality과 시작의 기적the miracle of beginning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캐노번이 인간의 조건2판 서문에 붙인 한 절을 소개하면서 출생시작개념은 아렌트의 전체 사상을 떠받치는 근저를 이루는 것처럼 생각된다, 시작을 둘러싼 연구의 의의를 서술하고 있다.[주16]  또한 교육사상의 단면으로부터 아렌트를 연구하는 코다마 시게오(小玉重夫)인간의 조건에서의 아렌트의 출생의 사상에 주목하고, “그리스의 폴리적 공공성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말해지는 기존의 아렌트 이미지가 아니라, “유대인, 히브리적 계보로 이어지는 관점에서 그녀의 사상의 근간을 해명할 필요성을 말한다.[주17]  그런데 이런 아렌트의 시작개념을 둘러싼 연구자들의 논의에는 세 개의 위상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주16]  山口充H. アーレントにおける出生存在論的意味(愛媛大学教育学部紀要53 巻第1, 2006) 9. 캐노번의 서문은 HC, p.xvii.를 보라

[주17]  코다마 시게오(小玉重夫), 시작의 상실과 근대(まりの喪失近代)(情況出版編集部 , 한나 아렌트를 읽다(ハンナ・アーレントを), 情況出版, 2001), 153

첫째는 인간의 출생natality’이라고 하는, 개개인의 실존으로서의 시작에 관련된 연구이다. 이것은 모리카와 테루카주(森川輝一), 시작으로서의 아렌트(<まり>のアーレント)(岩波書店, 2010)가 대표적이다. 모리카와(森川)는 이 책에서 아렌트의 출생개념을 아렌트의 활동 개념을 해명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주18]고 하며, “이 세계 속에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난다고 하는 아주 평범한 사건Ereignis 속에 무수한 새로운 시작initium’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아우구스티누스[주19]의 사상과 아렌트에게서 사랑 개념의 관계를 출생의 사상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주18]  모리카와(森川), <まり>のアーレント, vi.

* http://repository.kulib.kyoto-u.ac.jp/dspace/bitstream/2433/152489/1/yhogr00173.pdf에 초록이 있다.

[주19]  모리카와(森川),『〈まりのアーレント283

둘째로는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현저하게 말해지는 공적 영역에 대한 참여(, 활동적 삶, vita activa)2의 출생으로서의 시작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이 관점에서의 연구는 모리와케 다이스케(森分大輔), 한나 아렌트 연구 : ‘시작과 사회계약(ハンナ・アレント研究─〈まり社会契約)(風行社2007)이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리와케(森分)말할 것도 없이 시작은 아렌트에게서 중요한 개념이었다[주20]라며 시작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인간의 시작이라는 능력의 의의, 그리고 자유나 시작의 개념을 둘러싸고 공적 공간에 참여하는 인간의 사회계약의 개시라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논한다. 위와 같은 두 연구의 관점은 시작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의사라는 것, 즉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공적 영역에 참여한다는 자유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시작시작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로, 주로 혁명론이나 정신의 삶(The Life of Mind, 1978. 일본어판 제목은 정신의 생활(精神生活)) 24장 결론 16 자유의 심연과 시대의 새로운 질서’(novus ordo seclorum), 과거와 미래 사이등의 논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아렌트가 평가하는 미국 혁명과 그 시작의 문제(이른바 시작의 아포리아’, 이 글의 3장에서 상술), 혁명에서의 권위의 생성, 역사(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로서의 혁명’, 이런 논점을 논하는 것, 즉 아렌트의 혁명론과 시작을 둘러싼 논의와의 접합을 논하는 것이 있다.

[주20]  모리와케 다이스케(森分大輔), 한나 아렌트 연구 : ‘시작과 사회계약(ハンナ・アレント研究─〈まり社会契約), 風行社, 2007, 42

이것의 대표로는 이시다 마사키(石田雅樹), 공공성에의 모험 : 한나 아렌트와 축제의 정치학(公共性への冒険 ハンナ・アーレントと祝祭政治学)(勁草書房, 2009. 특히 5세계의 변혁은 가능한가 : ‘혁명론에서 본 권력’)을 맨 먼저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石田시작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시작의 아포리아의 테마를 혁명의 아포리아라고 표현하고, 그 어려움을 논하면서 아렌트가 말한 자유의 창설축제라는 관점에서 재파악하고자 한다. 그밖에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아렌트와 미국혁명(アーレントとアメリカ革命)(情況出版編集部編, ハンナ・アーレントを, 情況出版, 2001, 85-105)이나 카와사키 오사무(川崎修),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 : 아렌트 논집 I(ハンナ・アレントの政治理論 アレント論集)(岩波書店2010. 특히 34권위와 전통. 이 장의 초판은 1986)에서도 혁명에서의 시작의 아포리아를 둘러싼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시작과 혁명론을 둘러싸고는 관련된 논점의 연구는 몇 가지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과 시작그 자체를 둘러싼 포괄적인 연구는 좁은 식견이기는 하지만 충분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캐노번이 말하듯이 혁명론인간의 조건에 필적하는 내성적(内省的암시적 깊이를 지닌 아렌트의 주요저서이며, 또한 모리와케 다이스케(森分大輔)가 말하듯이 시작은 아렌트에게서 중요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둘을 둘러싸고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시작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고 있는 지금, “혁명과 시작이라는 중요한 두 개념에 관해서 다시금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덧붙이면 아렌트의 시작을 둘러싼 논의는 최초의 저서[처녀작]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의 사랑 개념(Der Liebesbegriff bei Augustin, 1929. 영어판은 Love and Saint Augustine, 1996. 일본어 번역서 이름은 アウグスティヌスの概念)부터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과거와 미래 사이,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혁명론, 나아가 말년의 정신의 삶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관통해 아주 많은 문제영역에 미치고 있으며, 이런 모든 저작에 걸쳐 있는 시작의 개념을 정리하고 명확히 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시작을 둘러싼 논의에는 그녀의 출생과 사멸성(natality and mortality)”, “자유(freedom / liberty)”, “의지(will)”, “과거와 미래(past and future)”와 같은 철학적 사고,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고전고대의 교양과 독일철학의 전통이 있으며, 한편으로 나치즘을 산출한 대중사회의 문제, 전후 미국사회의 병리, 그리고 아이히만 재판을 둘러싼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을 필두로 한 유대인들과의 논쟁과 갈등 등의 현실의 정치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그리고 그 쌍방이 마치 과거미래로부터의 (force)’이 되어 강요해오는, 간극(gap)’이라고도 말해야 할 현재에 서서 이러한 것들로부터의 힘에 대항하는 것처럼 직조되고 있는 아렌트의 사고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주로 이 세 번째 위상에 있어서의 연구성과를 활용하면서 우선은 혁명론에서 말해지고 있는 논점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시작과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역사의 간극의 개념에도 널리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지만, 아무튼 우선은 혁명론에서의 시작의 의미를 철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당히 선행연구자들의 논점을 참조하면서, 또한 그것들을 검증도 하면서, 보다 포괄적으로, 아렌트가 혁명시작을 어떻게 파악했는가를 검토하는 관점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노동의 종말
세계 경제는 노동의 본질이 급진적으로 변하는 한가운데에 놓여 있으며, 이는 미래 사회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다. 산업화시기에 대규모의 인간 노동력은 기계와 더불어 기본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였다. 접속의 시대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로봇, 나노 테크놀로지, 생명 공학 등과 같은 형태의 지능적 기계들이 농업,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에서 사람의 노동력을 점차 대신하고 있다. 농장, 공장 및 다수의 화이트칼라 서비스 산업 부문은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어 가고 있다. 21세기에는 반복적인 단순 업무에서부터 고도로 개념적인 전문 업무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값싸고 보다 효율적인 기계에 의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값싼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이들을 대체하는 온라인 기술만큼 저렴하지는 않을 것이다. 21세기 중반까지 상거래 부문에서는 현재 고용된 인력의 일부만을 운용하여 제품과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과 가용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마도 2050년쯤이면 전통적인 산업 부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전체 성인 인구의 5퍼센트 정도밖에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가 거의 필요치 않는 농장, 공장 및 사무실이 일반화될 것이다.
물론 다가올 시기에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제품과 서비스가 나타날 것이며, 새로운 직업적 능력, 특히 보다 정교화된 지식 분야의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노동 부문은 엘리트 지향적이고 그 수에 있어서도 제한적이다. 우리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회사 정문과 서비스센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20세기의 일상적인 장면을 결코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직업들 역시 기술적 대체 앞에서는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 정교한 진단 기술은 이전까지만 해도 의사, 간호사, 기술자들이 실험실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대체하고 있다. CAD(Computer Aided Design)는 많은 제도사와 기술자들을 없애버렸다. 예전에는 회계사들이 했던 전형적인 업무의 대부분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 이루어진다. 매우 유능한 전문가들이 아직까지는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전문가들은 지적 기술이 보다 적합하고, 빠르고, 저렴한 대안으로 판명됨에 따라 도태될 것이다. 미래의 노동력은 점차 소규모 대행업자처럼 될 것이다.
산업화 사회는 노예 노동의 종말을 이끌었다. 접속의 시대는 대량 임금 노동을 끝낼 것이다. 이는 지적 기술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어감에 따라 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다음 세대가 고생스러운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인류는 두 번째 르네상스 시대로 진입하게 되거나 또는 엄청난 사회적 분열과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점진적으로 자동화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쓰임이 적거나 아니면 전혀 쓸모가 없는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용의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 선택안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각각의 대안은 사람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노동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거나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역할과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안을 탐색해야 한다.

블루칼라의 종말
미국 최초의 위대한 노동운동가인 곰퍼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노동자를 위한 그의 평생의 노력을 형성하는 데 있어 심대한 영향을 미친 어린 시절의 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나의 어린 시절에 있어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기계가 발명되어 견직물 직공의 기술을 대체해 버리고 그들의 일자리마저 빼앗아 갔을 때 그들에게 닥친 커다란 어려움이었다. 자신의 일을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불행과 공포가 마을을 온통 죽음의 무거운 공기로 감싸 안았다. 좁은 거리엔 일자리 없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산업혁명의 시작부터, 기계 및 무생명의 에너지가 생산을 촉진하고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기계들은 인간의 손길이 필요 없었고 많은 상품을 거의 자동적으로 만들어냈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재료를 기계에 넣고 기계가 제품을 만들고 포장하게 하는 것이었다.
1881년 제임스 본색은 인간의 노동 없이 담배를 자동으로 마는 담배 기계를 특허냈다. 그 담배 기계는 순환식 테이프 위에 있는 담배를 잡아내어, 둥근 모양으로 압축시키고 테이프와 종이로 감아 담배 모양을 만들고 종이에 풀칠을 한 다음 긴 담배 막대를 적절한 담대 길이로 자르는 덮개 튜브로 옮겨 놓는다. 1880년대 말 경, 연속 공정의 기계가 매일 12만 개의 담배를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숙련공은 하루 기껏해야 3000개의 담배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기계는 너무나 생산적이어서 30대도 안 되는 기계가 소수의 노동자만을 이용해 1885년 전국의 담배 수요를 충당할 수 있었다.
연속 공정 기술로 제조업은 새롭고 급진적인 접근법을 도입하게 되었다. 인력 요소를 거의 투입하지 않고 또는 전혀 투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동화에 의한 기계적 생산 방식은 더 이상 이상주의적인 꿈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정보와 통신 기술로 훨씬 더 정교한 연속 공정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실상 모든 주요 제조 활동에서 인간의 노동력은 기계에 의해 서서히 대체되어 왔다.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은 경제적 격변기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기술의 도입으로 점점 밀려나버린다. 다가오는 21세기 중엽쯤이면 블루칼라는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는, 제3차 산업혁명과 보다 높은 기술 능률을 향한 끊임없는 행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최후의 서비스 노동자
40년 이상이나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의 일자리 손실을 흡수해왔다.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경제학자와 기업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추세가 계속되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의 희망은, 새로운 정보 기술이 서비스 산업 자체에 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서비스 관련 전 산업에 걸쳐 인력을 대체함에 따라 희미해지고 있다.
AT&T는 6000명 이상의 장거리 교환수를 컴퓨터화된 음성 식별 기술로 대체 중이라고 발표했다. 장거리 교환수의 1/3을 없애는 것 이외에도 이 회사는 11개 주의 31개 사무소를 폐쇄하고 400명의 관리직을 줄였다고 발표했다. 뉴저지에 있는 AT&T의 벨 연구소에 의해 새로이 개발된 신형 로봇 기술은 핵심 단어를 구별하여 통화자의 요청에 답변할 수 있다.
새로운 실리콘 교환수는 AT&T가 최근 들어 40퍼센트나 적은 인력으로 50퍼센트 이상이 증가한 통화를 처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1950년 과 1980년대 초 사이에 AT&T는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을 도입하여 서비스 산업을 주도해왔다. 이 기간 중에 회사는 전국적으로 14만 명 이상의 교환수를 없애버렸다. 남아 있는 교환수의 상당 수도 1990년대 말경이면 해고 통지서를 받을 운명이다.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 디지털 교환 시스템, 디지털 전송, 위성 통신 및 사무 자동화를 포함한 최근의 기술 혁신은 연간 약 5.9퍼센트의 생산성 향상을 유지해 통신 산업이 새로운 첨단 기술 경제의 중요한 속도 조절자 중 하나가 되게끔 하였다. 생산성의 극적인 향상으로 전화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1981년과 1988년 사이에 고용이 17만 9800명이 줄어들었다.
실업자 중의 많은 사람들이 최근의 기술 혁신의 결과로 해고된 설치공 및 수리공이었다. 이미 조립된 모듈식 장비의 도입으로 수리가 한결 편해졌고 유지 관리도 덜 필요하게 되었다. 플러그 내장형 전화기는 설치를 위해 항시 방문해야 하는 필요성을 없앴다. 신속한 접속 기능을 가진 매설된 전화선은 수리의 필요성을 줄이고 신속한 수리가 가능하게 했다. 첨단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디지털 교환 시스템은 전화의 서비스 양을 대폭 늘리는 한편 단위당 소요 노동력을 현격히 줄였다. 이는 중앙 사무실에 보다 적은 수의 설치공 및 수리공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미한다. 중앙의 수리 사무실에 있는 근로자 수는 2000년 경이면 20퍼센트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기 형성 단계이기는 하지만 제3차 산업혁명은 농업, 제조업 및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밀쳐 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 세계적 노동력 감소와 함께 첨단 기술을 따라 세계 경제 시스템을 혁신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아직까지, 현재의 리엔지니어링과 자동화의 물결은 다가올 시대에 있어 생산성을 가속화하는 한편 더욱 더 많은 수의 노동자가 세계 경제에 있어 불필요하고 관련이 없게끔 만드는 기술 혁신의 바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미래에 있어 첨단의 계산기와 로봇 공학, 지구를 감싸안은 통합 전자 네트워크가 더욱 더 많은 경제적 과정에 적용되어 만들고, 움직이고, 팔고, 서비스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인간이 참여할 여지를 더욱 더 적게 만들고 있다.

첨단 기술의 승자와 패자
사실상 모든 기업의 지도자와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제3차 산업혁명의 극적인 기술 진보가 확산효과(Trickle-down Effect)를 지녀 제품의 원가를 싸게 하고 소비자의 수요 증대를 촉진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냄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보수를 주는 새로운 하이테크 직업 및 산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찾기가 힘든 많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기술의 확산 개념이란 어떠한 위안도 주지 못한다.
주주들은 신기술과 생산성 향상으로 커다란 이익을 보았지만 그 혜택이 보통의 노동자들에게 흘러들어 가지 못했다. 1980년대에 제조업 부문의 시간당 임금액은 7.78달러에서 7.69달러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 말에는 미국 노동력의 거의 10퍼센트가 풀타임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 반실업 상태에 있거나 시간제 노동을 하고 있었다.
1989년과 1993년 사이에 18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제조 부문에서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동화의 희생물로, 미국의 고용주 및 외국 회사에 의해 해고되었다. 외국 기업의 고도로 자동화된 공장과 보다 값싼 운영비로 인해 미국의 기업은 업무를 축소하고 노동자를 해고해야만 했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가운데 1/3만이 서비스 부문에서 그것도 20퍼센트나 삭감된 임금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더욱 더 많은 통계가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노동력이 감퇴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노동력과 경쟁해야 하는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깝게 경제적 생존의 한계 지대로 밀려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1979년 미국의 주당 평균 임금은 387달러였다. 1989년에는 그 임금이 335달러로 떨어졌다. 1973년과 1993년간의 20년 동안 미국의 블루칼라 종업원은 15퍼센트의 구매력을 상실했다.
많은 노동자에게 있어 린 생산은 비참한 환경으로 몰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4년의 보고서에서 조사 통계국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비 수준인 연간 1만 3000달러를 벌지 못하는 사람이 1979년과 1992년 사이에 50퍼센트가 증가했다고 한다. 조사 통계국이 놀라운 것으로 부른 이 보고서는 미국 노동력의 몰락에 대한 또 다른 극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경제학자들은 그와 같은 몰락을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와 세계 경제의 국제화에 그 탓을 돌린다. 미국 노동자로부터 빼앗은 부를 기업의 경영자나 주주들에게 강제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보수적 경제학자인 번스와 같은 이는 “1980년대에는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강압된 복종심을 주입시키기 위해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이용되는 한편 미국의 기업 엘리트들은 호화롭게 살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가기만 했던” 살찐 고양이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수백만의 도시 및 농촌의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생하고 점점 더 많은 교외의 중산층 임금 소득자들의 리엔지니어링의 상처와 기술 대체의 충격을 느끼고 있을 때, 소수의 엘리트 미국 지식 노동자와 기업가 및 회사의 경영자들은 첨단의 새로운 국제 경쟁의 혜택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그들은 그들 주위의 사회적 혼란에서 멀리 떨어져서 풍족한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이 발견한 놀랄만한 새로운 환경은 라이시 노동부 장관으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똑같은 경제생활을 영위하지 않는 동일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새로운 사회계약
고정된 지형과 공간적 근거를 갖고 있는 민족국가는 너무 둔해서 세계 시장의 재빠른 속도를 주도하거나 그에 대응할 수 없다. 반면에 세계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공간적이라기보다는 시간적인 제도이다. 세계 기업들은 특정 사회나 특정 공간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세계 기업들은 새로운 준정치적 제도로서 정보와 통신의 통제에 입각하여 사람들과 공간에 대해서 거대한 권력을 행사한다. 유연성과 이동성을 자랑하는 세계 기업은 모든 나라의 통상기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생산 거점과 시장을 재빠르고 손쉽게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전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간의 변화하는 관계는 새로운 국제 무역 협정들을 보면 점점 더 명확해진다. 이 협정들은 점점 더 많은 권력들을 민족국가로부터 세계 기업들로 이전시키고 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마스트리트 협정(Maastricht Accord)은 지구촌에 있어서 권력 패턴의 변화 지표들이다. 이러한 무역 협정 하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자유로운 무역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민족국가의 통치권과 관련된 수백 개의 법률들이 무효화된다. 따라서 10여 개의 국가에서 유권자들의 격렬한 공식적인 항의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역 협정으로 인해서 애써 획득해 놓은 노동, 환경, 건강 등과 관련된 법률들이 일거에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민족국가의 지역 정치적 역할이 감소되는 것과 동시에 고용주로서의 국가의 역할도 감소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기 부채의 누적과 증대하는 재정 적자로 인하여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구매력을 촉진시키기 위한 야심적인 공공 지출에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세계의 모든 산업 국가에서 중앙 정부는 ‘시장의 보증자’라는 전통적인 과업 수행을 점점 꺼려하고 있다. 동시에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으며 자국 시민들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감소하고 있다.
노동자 대중과 중앙 정부의 시장에서의 역할 감소는 사회 계약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강요할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산업 시대를 통틀어 시장 관계가 전통적 관계를 대체했고 인간의 가치는 거의 전적으로 상업적 관점에서 측정되었다. 그러나 ‘시간 판매’의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확립된 상업적 관계의 총체적 연결망도 위협받게 된다. 시장 보증자로서 중앙 정부의 역할이 감소하기 때문에 정부 제도들도 시민 생활에 의미 있게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사명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구촌 모든 국가들의 긴급한 과제는 정치 기구들을 엄격한 시장 중심적 지향으로부터 탈피시키는 것이다.
일상사에 있어서 시장 부문과 정부가 아주 작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를 상상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혹스러운 것이다. 두 제도는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100년 전만 해도 사회생활에 있어서 그 역할은 몹시 제한되어 있었다. 결국 기업과 민족국가는 산업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금세기를 통틀어 기업과 민족국가는 이전에 수천 개의 지역 공동체가 협력해서 수행해오던 기능과 역할을 대체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를 보장해 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시민들은 세계 시장의 물리력과 미약하고 무능한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항할 활기 있는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향후 수십 년 이내에 시장과 정부의 역할 축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취업자들은 노동 시간 단축과 함께 보다 많은 레저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이를 대중오락과 소비 생활에 투자할 것이다. 반면에 증가하는 실업자들과 잠재적 실업자들은 하층 계급 속으로 마주비하게 내던져지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 비공식 경제에 의존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임시직에 종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둑질과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사회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지만 건강한 육체를 지닌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서 마약과 매춘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묵살할 것이다. 정부의 투자 우선순위는 북지와 일자리 창조가 아니라 경찰력 강화와 감옥 건설이 될 것이다.
많은 산업 국가들이 처해 있는 이 경로가 불가피한 것일 수는 없다. 제3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적 희생의 충격을 완충시키는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취업자들의 노동 시간이 단축되고 실업자들의 유휴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서 사적 부문 및 공적 부문 바깥에서 수백만 명의 미사용 노동력을 건설적으로 이용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들의 재능과 에너지는 수천 개의 지역 공동체의 재건과 시장 및 공공 부문과는 독립적으로 번창하는 제3의 힘을 창출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제 3부문
미국 정치에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제3의 힘의 토대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에만 협소하게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미국인의 생활에는 제3부문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형성기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으며 지금은 21세기의 사회 계약 재형성에 도움을 줄 명백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제3부문은 독립적 또는 자원적 부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부문은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서비스를 타인에게 판매하는 데 근거한 인위적인 시장 관계를 대체하는 영역이다. 한때는 국가 수립에 핵심적이었던 이 부문은 최근에는 시장과 정부의 지배에 의해서 계속 침식당해 왔고 공공 생활의 주변부로 전락해 왔다. 최소한 이용 가능한 노동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두 부문의 중요성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제3부문의 부흥 및 변형 가능성과 이것을 활기찬 탈시장 시대의 창조를 위한 견인차로 이용할 가능성을 신중하게 탐색해야 한다.
제3부문은 이미 사회에 널리 침투해있다. 공동체 활동은 사회 서비스, 건강, 교육과 연구, 예술, 종교, 변호 활동 등 전 범위에서 수행되고 있다. 공동체 서비스 조직은 고령자, 장애자, 정신병자, 불우 아동, 무주택자와 빈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자원 봉사자들이 낡은 아파트를 보수하고 저소득층용 새 주택을 세우고 있다. 수만 명의 미국인 자원 봉사자들이 공공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를 포함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수천 명이 양부모로 봉사하거나 혹은 고아원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 가출 소년 또는 고민이 있는 소년들에 대한 카운슬링의 제공이나 문맹 퇴치 운동을 위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주간 혹은 방과 후 탁아 센터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급식도 제공한다. 점점 많은 미국인들이 위기 센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강도 및 강간 피해자와 부인 및 아동 학대의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공공 보호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필요한 의류품을 제공하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알코올 혹은 약물 중독자의 갱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 의사, 경영자 등 전문가들이 자발적 조직에 지원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의 자원 재생 활동, 에너지 절약 활동, 반공해 운동, 동물 보호 등 환경 보호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불만 처리와 대중의 인식과 법률 개선을 위한 조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경제 활동 행위의 구성을 GNP 구성으로 보면 기업 부문이 80퍼센트, 정부 부문이 14퍼센트임에 비하여 제3부문이 6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제3부문은 총 고용의 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부문의 피고용자는 건설, 전기, 수송 또는 섬유나 의류 산업보다 더 많다. 제3부문의 자산은 현재 연방 정부의 약 1/2에 해당된다. 1980년대 초반 예일 대학교의 경제학자 루드니에 의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자발적 조직들의 지출이 7개국만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GNP보다 더 많다고 한다. 비록 제3부문이 총고용과 총수익 면에서 정부 부문의 절반밖에 안되지만 최근에 정부나 사적 부문보다 2배나 더 급속하게 성장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공동체 서비스는 전통적 형태의 노동에 대한 혁명적인 대안이다. 노예, 농노, 임금 노동자와 달리 강제성도 없고 금전적인 관계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도움 행위이자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로서 스스로 원해서 하는 행위이며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 경제에서의 선물 주기와 유사하다. 공동체 서비스는 세상만사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오며 개인의 부채 의식에 의해서 동기화된다. 이것이 종종 수혜자와 후원자 간의 경제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교환이다. 이 점이 공동체 서비스와 물질적 내지 금전적 교환이자 경제적 손익이 사회적 결과보다 우선시되는 시장 행위와의 차이이다.
자발적 조직들은 다른 나라들에도 존재하고 있고 중대한 사회적 힘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만큼 잘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미국인들은 자발적 조직들을 개인적 관계가 풍요롭게 되고 지위가 성취될 수 있는 피난처로 생각해왔고 따라서 공동체 의식이 창출될 수 있었다. 제 3부문은 다양한 이해를 지닌 미국인들을 응집력 있는 사회적 일체감으로 결집시켜 주는 결속력이자 사회적 접착제이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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