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과 "마치며"를 본론들보다 먼저 공개한다. 본론의 공개는 나중에 한다. <결론>을 보다 꼼꼼하게 읽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결론>과 <마치며>도 윤문을 더 해야만 한다. 부족한 일본어 능력을 절감하고 있다.
* 한편, 본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글들은 아직 프랑스어 등의 원래의 언어들과 대조되지 않았다. 


혁명론

이치다 요시히코(市田良彦) 

 

결론. 발견된 자유 : 푸코와 ()가능한 혁명

전에 없었던 반-사목 혁명 /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 푸코와 ()자유주의 /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전에 없던 반-사목 혁명

우리가 추적하려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정치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일단 사라진 듯 보이는 주체라는 존재가 다시 한 번 이 논의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일부는 확실히 실제의 역사와도 겹쳐 보인다. 알튀세르가 1965년에 구성적 주체라는 개념을 배척하고, 이듬해인 66년에는 푸코가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말과 사물, 526)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81, 네그리가 역사의 주체로서 다중을 정치의 무대로 되돌아가게 한다(야생의 별종). 84년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푸코도 일종의 자기비판을 행한다.

 

말과 사물에서 저는 인간의 죽음을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인 양 말함으로써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인간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 , 자신들의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고, 상이한 주체성의 무한하고 다양한 연결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 거기에 끝은 없으며, 우리를 인간 자체와 같은 무엇인가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없을 겁니다. 인간의 죽음을 혼란되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말함으로써,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입니다. (도덕의 회귀, p.75). 

http://1libertaire.free.fr/MFoucault209.html

 

그러나 이 과정은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적이지 않다. 우리가 확인했듯이 네그리는 70년대 초반부터 자각적으로 주체주의자였으며, 들뢰즈가 야생의 별종근본적 사상이라고 지적했던, 주체적 힘들의 구성에 원리적으로 매개는 필요 없다”, 즉 주체는 스스로를 자연적=자발적으로 직접 무매개적으로 만든다는 사고방식도(이 책의 1), 사실은 이미 맑스를 넘어선 맑스(78년 강의)에서 명확하게 말해지고 있다. 게다가 네그리가 자신의 스피노자 이해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다고 일컫는 들뢰즈는 이미 68년에는 준원인개념을 통해, ‘도덕적 도착이라는 주체의 행동거지[품행]가  세계 자체를 정도는 어쨌든 결정’한다고 했고, 구조적 인과성에 의해 구성적 주체를 물리친 알튀세르는, 이보다 앞선 62년에 이미 들뢰즈적 준원인과 동질적인 결정력을 들뢰즈보다 크게 무대의 소매의 변증법에 부여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이론적 노력은 처음부터 정치 실천의 주체에게 이 특이한 변증법을 연출하는 힘을 되찾아주는 것을 향했다고 말해도 좋다.

, 우리의 관심 범위 안에서 주체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라진 것은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둘러싼,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관계(대상의 주체가 아닌 주체는 단어의 정의상 없다)를 둘러싼 무엇인가일 뿐이었다. 그 무엇인가를 우리는 중간항주체와 대상 사이에 있으며 양자를 매개하는 것 이라고 규정identification해 왔던 셈이다. 중간항을 떼어내어 성립되는 관계에 우리는 정치라고 익숙하게 불리는 인간적 활동의 실질이 있음을 인정하고자 하며, 그러려면 대상 쪽에도 그 의미를 바꾸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발견한 주체는 혁명이라는 사건, 사건으로서의 혁명을 대상으로 할 때에만 나타나며, 우리가 재정의하는 정치는 인간의 활동으로서는 혁명 속에만 존재한다. 이 주체관과 정치관은 이른바 정치를 모든 혁명의 정치로부터의 일그러진 파생으로 간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푸코는 어떻게 했을까? 앞서 인용한 말과 사물의 너무도 유명한 맺음말 때문에, 알튀세르나 레비스트로스와 나란히 인간을 주체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던 푸코는 삶의 막바지에 잘못을 자기 입에 담기까지의 약 20년 동안에, ‘인간혹은 주체를 어떻게 했을까? 그것은 혁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을까? 후자의 질문에 관해서는 그랬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있는 혁명은 주체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혁명이었다.

 

반봉건주의의 혁명은 존재했지만, 반사목혁명은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사목체제는,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사와 작별을 고하는 깊은 혁명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습니다(『안전, 영토, 인구』,)

 

반사목 혁명은 어떤 혁명인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한 강의가 푸코 사후에 점차 간행됨에 따라 우리는 알게 되었다. 70년대 말부터 푸코는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탐구 전체를 총괄하고자 하며, ‘권력앎[지식]을 둘러싼 그때까지의 작업도 이것의 내부로 재통합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근대적 인구개념(‘주민population이라는 같은 단어이다)에서 발견된 통치성문제는, 최종적으로, ‘자기와 타자의 통치라는 더 포괄적이고 역사관통적인 문제형식을 얻었다. 반사목 혁명이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사목 체제, 통치성이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존재방식이다. 고대 오리엔트에 그 기원을 지닌, 한 마리의 양과 양의 무리 전체에 골고루 배려의 눈길을 보내는 양치기가, 푸코가 정의하는 통치를 시작한 것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리 전체를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 리스크를 마다하지 않고, 거꾸로 무리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주저 없이 희생할 양을 들이민다는 모순된 태도를 양립시키는 것이 ‘목자이다. 한 마리의 양과 양의 무리에 대한 모순된 배려를 양립시키기 위해 양자의 다양한 품행[행동거지]conduites을 동시에 인도하는conduire, 통제하는 통치가, 권력이자 앎으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한 마리의 양은 이윽고 주체의 자기, 양의 무리는 주민이 될 것이다. 아무튼 푸코는 통치의 기원에서, 원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양립을 실천적으로 나름대로 실현한다는 문제를 보고 있다. 나름대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는 다양한 변주가 생겨나고, 그 나름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하나의 동일한 근본 문제로서 지속하기(해법이 없는 , 자동적으로 종점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것이 출현한 이래의 역사는, 사목 체제로서의 통치의 역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근본문제는 원리적으로 해법이 없기 때문에, 통치에는 늘 무리(無理)가 따라다니며, 그 무리의 발현이 푸코의 정치 개념을 거의 정의하게 된다.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최초의 봉기, 최초의 격돌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즉 최초의 봉기, 최초의 대립과 함께 탄생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220)”(, p.221).

반사목혁명은 우리들이 상정해 왔던 혁명 국가적 공동성을 해체·재구성하는 혁명 보다 훨씬 깊은 혁명인 것처럼 생각된다. 다중[멀티튜드]의 절대민주주의조차, 한 명과 만인 사이의 등가성을 배려하는 통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계약에 기초하려는 것과 기초하려고 하지 않는 것, 나의 이해와 만인의 이해의 일치를 전제로, 혹은 그 일치를 목표로 우리는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imperium를 구성하고, 또한 그것에 참여한다. 물론, 스피노자에게 분노에서 유래하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악이었기 때문에, 일치에 법적 형식을 부여하는 국가를 폐지하고자 하는 혁명은, 반사목 혁명의 질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갖지 않는 멀티튜드는 하나 즉 여럿의 통치에 작별 인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사목 혁명은 국가를 소멸시키는 것과 일치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물음은 통치성의 관점과 현저하게 간극되어 있다. 왜냐하면 브루노 카상티라는 연구자도 지적하듯이, 이 관점에서는 원래 국가의 실재성 자체가 상대화되기, 즉 의뭉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통치성개념이 도입되었던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는 광기의 역사이후 끊임없이 권력과 앎[지식]의 교차점에서 그가 주시했던 광기에 관해, “아마 광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122)고 말하고 있다. “주어진 대상(광기)의 척도와 규범에 비추어서 제도, 실천, 앎을 측정하기를 거부하는”(ibid.), 그것이 광기를 다루는 자신의 수법이며, 그것에 따르면 광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말해도 되지만, 이는 광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ibid.). 같은 수법에 의해 국가의 제도, 실천, 을 분석하는 것을 푸코는 강의의 목적으로서 부과하고, 그것을 따라 인구에 관해 말하는데 이어서, 하나의 말이 끊임없이 오가게 되었다. 그것이 통치성이라는 말이다”(p.77). 그렇다면 국가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말해도 되지만, 그것은 국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가는 통치성으로서 있다”, 혹은 실재하는 것은 국가보다도 통치성이다아마도가 아니라 [틀림없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푸코의 국가는 우리에게서의 국가만큼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실재성이 부족한 것을 소멸시키는 것에, 혁명으로서의 의미는 있을 수도 없다.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통치성을 관심의 중심에 둔 푸코는, 권력을 다시 가능한 행위에 작용하는 행위의 집합으로 재정의하고(주체와 권력, 1982, p.237), ‘통치성권력관계의 전략적 영역으로 정의한다(주체의 해석학, 1981-82년 강의, p.241). 그러나 그런 한에서는, ‘통치성개념 자체에는 종래의 푸코적 권력개념과 특별히 바뀐 것은 없으리라. 권력은 감시와 처벌에서, 앎의 의지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전략적 관계가 아니었는가? 바뀐 것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가능한 행위의 함의이다. ‘통치성아래서, 이제 인간 행위의 가능성을 그 작용[기능]에 의해 만들어내는 권력이 지닌, 자주 받아들여지고, 또한 분명히 그렇게 말해진 기능이다 것이 아니다. “권력이 도처에 있다면 자유가 없지 않는가라고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회관계 전체를 관통하여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도처에 있기 때문입니다”(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자기에의 배려, 1984, p.720). “권력관계의 한복판에는, 끊임없이 그것을 유발=도발하는, 의지의 다루기 힘듦과 자유의 비추이성(자동사성)intransitivité이 있다”(주체와 권력, p.238). 주체는 타자(의 권력)에 의해 작동되기 전에, 자기에서 자기에 직접 이르는 비추이적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사적이고 자발적인 관계에 의해 이른바 자기’를 자유로운 주체로서 구성하고 있다. 자유가 권력에 선행하거나, 아니면 자유는 권력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다. 설령 주체 자신에 의해 자유라고 인식되지 않고 있더라도, 주체의 비추이적 자유에 권력은 손대지 못한다. 자기에 관련되려면 자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치성아래에 있는 권력에 있어서, 주체의 가능한 행위, 예측 불가능하고 다루기 힘든 자유로운 행위 무엇을 하는지 예측하기 힘든 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권력은 작동에 전략을 필요로 한다. 원래 권력이 생겨나기 전부터, ‘에게 타자는 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주체이기 때문에, ‘는 타자에 전략을 갖고 임하며, 타자의 가능한 행위에 포함된 개연성을 ‘정돈해야aménager’(또는 구조화해야’) 하며, 타자의 행위에 작동을 건다(주체와 권력, p.237). 그 작동이 권력이 된다. 권력은 이제 자유로운 주체 상호 간에서, 그 자유롭게 유발=도발되고 양극의 주체로부터 동시에 생겨난다. ‘통치성이란 이 주체 간 파워게임의 전략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기와 타자의 통치를 문제로 한다.

 

통치성이라는 관념을 둘러싼 성찰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서 정의되는 자기라는 요소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경유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권력의 분석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서 정의되는 주체의 윤리를 참조해야 합니다. 권력관계통치성자기와 타자의 통치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는 일련의 행, 일련의 열을 구성합니다.

 

자유로운 주체를 참조하지 않으면, ‘통치성존재방식은 결정되지 않으며, 분석의 도마 위에 올려지지 않는다. ‘통치성은 국가보다도 실재성을 갖고 있지만, 자유로운 주체는 그 통치성보다도, 혹은 그 통치성과 같은 정도로 별개의 실재성을 갖는다. ‘통치성의 원형 내지 모델이 사목인 이유나 의미도 이로부터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목, 권력이 그 발생의 전제로 삼고 또한 직접 손댈 수 없는 주체의 비추이성[자동사성],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타자(의 권력)를 향해 보루를 이루는 내부 자기에서 비롯되어 자기로 회귀하는 루프[loop]가 그것을 형성한다 를 갖지 않은 한 마리의 양으로, 주체를 그 외부로부터 축소 내지 환원하고자 한다. 주체을 그런 양의 무리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 한 마리와 무리 전체의 긴장관계가 도움이 된다. 무리 전체를 위기에 노출시킬 가치가 있는 의 생명은, 무리 전체를 향해 의 내부를 개방하고 있다. ‘는 그 생명의 위기에 무리의 운명을 말려들게 함으로써, ‘의 루프를 풀고 있다. 거꾸로, 무리의 희생물이 될지도 모르는 , ‘의 띠[루프] 속이 아니라 무리 속에서 거처를 부여받는다. ‘는 마치 한 마리의 양으로 축소·환원되고 있다. 희생물이 될 개연성에 대해서만이라면, 거기에 틀어박혀서 몸을 지키는 것도 가능한 내부가, 무리의 생명을 끌어들이는 등가성의 조작에 의해 억지로 열리게 되며, 그 결과 이 된 를 무리의 압력(“, 희생자가 될 지어이다”)으로 하는 것이다. 순서는 거꾸로여도 괜찮을 것이다. ‘의 띠[루프]를 무리라는 커다란 의 압력에 의해 극소의 으로 만들고, 그것을 와 무리의 등가성에 의해 열어서 으로 만든다. 말하자면, 협박과 구원 각각의 가능성을 번갈아가며 자기에 관련되는 자기에게 주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자기에 관련되는 자기의 그 관련’, 비추이성, 루프를 타겟으로 협박과 구원이 이루어진다. 왜 거기에 무리(無理)가 있는가? 협박과 구원은 동시에는 행해지지 않고, ‘를 동시에 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무리(無理)가 있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그것을 금하는 수법[방법]이 타자(의 권력)에게는 없고, 언제든 형성 가능하다. 비추이성에서 생겨난 주체의 본원적 자유를 앞에 두고서는, 그것을 조종하려고 하는 권력의 작동은, 언제 어느 때든 헛수고로 끝나더라도 불가사의하지 않다. 주체가 자기에 관계하기 위해서는, 푸코에 따르면, 플라톤이 권장하듯이 네가 몸을 돌아봐라만으로도 좋고,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처럼, 외부세계와 관련된 자기를 단련해도 좋다. 심지어 기독교의 금욕주의처럼, 자기를 포기하려고 애쓰는 것도 상관없다. 자기를 목표로 한 주체의 윤리는 모두, 주체를 한 마리의 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서는 본질적 장애로서 기능할 수 없다. 물론 주체의 윤리는 자기의 통치이며, ‘에게 있어서는 타자를 통치하는 기법의 개발 장소이다. 주체의 윤리는 언제든지 통치성으로, 따라서 권력으로 전용 가능하다. 타자를 얼마나 잘 통치할 수 있는가, 자기를 얼마나 잘 통치할 수 있는가의 척도를 추구하는 윤리도 있을 것이다. 주체의 윤리는, 혹은 주체의 윤리야말로 권력의 모태이다. 결국 통치성이 작동하는 주체 간 게임에서는, 권력과 자유로운 주체는, 서로 반발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밀월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과 주체의 존재론적 차이는 관계와 그 요소의 차이이지만, 이 요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관계이며, 요소 간의 관계를 포함한 보다 큰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 상호 포함의 질 위상적 을 지닌 관계들을 하나여럿=전체의 관계로 정비하는’ = ‘구조화하는대수적으로 것이, “전체적이고 개별적으로omnes et singulatim라는 논리로 작동하는 사목권력이다.

그렇다면 사목권력을 타도하는 혁명이란, 혹은 통치성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정치란, ‘하나여럿=전체에 반발과 밀월의 관계를 되돌려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사목권력의 하나 곧 여럿에 별종의 하나 곧 여럿을 대립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런 별종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사목권력이 하려는 것은, “타자의 가능적 행위의 영역을 구조화하기위해, 다름 아닌 가 날마다 주체간 파워게임에서 실패하면서 시도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타자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는 끊임없이 자기와 타자의 사목이 되지 않는가? 주체의 윤리란 자기에 대한 자기의 사목화라고 바꿔 말해도 좋은 것이다. 반사목혁명은 그러면 하나의 사목혁명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순전한 혁명으로서는 허용될 수 없는 혁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반사목혁명은 없다”, 그것이 사목체제는,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사로부터 결별하게 만드는 깊은 혁명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이유일 것이다. 사목이 아닌 혁명 지도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지 않았던가.

그래도 사목체제와, 어떤 의미에서는 흔해 빠진 주체 간 파워게임 사이에는 하나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게임에서 권력과 주체, ‘와 타자, 관계와 요소 등등,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와 타자의 통치는 풀기 힘들게 뒤얽혀서 반발과 밀월을 번갈아 할 수 있게 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으로서는 아주 흔해 빠졌다. 거의 푸코에게서의 자연상태라고 특징지어도 좋을 정도로, 그것은 편재적, 역사관통적, 존재론적이다. 그것에 대해 체제 내지 권력으로서의 사목은, 이 흔해 빠진 게임을, 존재하는 것은 한 마리의 양과 그 무리라고 이야기함으로써,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양인 존재는 자기를 갖지 않고 사목에 의해 인도되며, ‘자기를 거점으로 파워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리인 주민이란, 상호 간에 권력관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다. 목자의 협박은, 주민 간에서 타자의 통치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에게 하는 협박이며, 그 구원은, 통치 없이 가 생존 가능하다고 약속하는 구원이다. 사목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들은, 통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살 것이다. 그들은 협박과 구원의 반복 속에서 사목에 의해 살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면, 무엇을 해도 허용될 것이다. 주민은, 타자에 대한 권력 행사를 포기하는 것과 맞바꿔서, 자기에 관해서는 행동의 자유를 얻는다. 그런 자유에 어떤 가능한 것이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가는 별개로 하고, 사목체제에서의 통치는, 편재하는 통치를 통치하여 무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무화는 물론 하나의 전략에 지나지 않으며, 목적 자기에의 관련을 주체가 포기하도록 만드는 의 완전한 수행에는 본질적인 무리가 있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통치이며, 하나의 통치로서 통치의 통치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이다.

 

푸코와 ()자유주의

 

바로 그 순간,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임이 제게는 명백해진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통치한다는 것은, 바라는 결과와는 반대의 결과를 이끈다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사회라는 관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18세기 말의 정치사상이 발견했던 것 가운데 가장 커다란 발견 중 하나입니다.

 

그 순간이란 문맥에서 볼 수 있듯이, 18세기 말의 언제인데, 그것 자체로서는 하나의 질문의 형태를 갖고 있다. “어떻게 통치는 가능한가라고 물어진 순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물이 최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사물이 통치의 합리성에 적합해져서 개입의 필요가 없게 되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활동에 어떤 제한을 설정하면 좋은가”(ibid.)라고 자유주의자들이 묻는 순간이다. ‘통치성을 주제로 삼고, 그것을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주체의 윤리와 동시에 탐구하고자 한 말년의 푸코가, 근대에 관해서는 자유주의(liberalism)에 강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안전, 영토, 인구의 이듬해(1978-79)에 한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 아담 스미스와 중농학파 같은 18세기의 경제적 자유주의부터, 20세기의 신자유주의(하이에크,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강의 속에서 프랑스에서 진행된 지스카르 데스탱의 개혁)에 이르는, 자유주의의 역사에 온통 바쳐지고 있다고 말해도 된다. 추적되는 것은 어떻게 통치를 최소화할 것인가라는 문제계이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근대국가의 기층 국가 자체보다 더 실재성을 지닌 차원 ― 에서 발견된 통치성, 이듬해에는 갑자기 그 최소화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통치하다는 것은 거꾸로 통치의 붕괴를 초래하며, ‘통치하지 않는다와 같아진다는 배리에 관해, 자유주의를 건드린 푸코는 깨달았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논문이나 인터뷰에서는 자유, 자유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같은 말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그 무렵 그는 강의에서는 고대의 주체의 윤리를 주로 논했기 때문에, 그러한 두 개의 점을 겹쳐놓고, 말년의 푸코는 윤리에서 통치성에 대한 제동을 찾고, 그것은 정치사상으로서는 자유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그 무렵, 칸트의 계몽론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대의 윤리에서 근대의 자유주의에 이르는 통치에 맞서고, 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고의 계보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앞 절에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통치의 과잉이 그 부재로 반전되는 근거를, ‘자기와 타자의 통치에 포함된 자유주의적 배리에서 찾았던 것이다. “권력관계의 전략적 영역인 통치가 정묘하고 복잡해질수록, 그것은 주체 사이의 자유로운 파워게임 권력통치성도 그 속에 있다 에 있어서, 타자로부터의 권력행사에 맞서는 자기에게 가능한 행위또한 증대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하는 배리이다. 이때 자기와 타자의 통치인 통치의 그 과잉이란, 권력과 자유로운 주체 사이의 반발과 밀월 각각이, 양자의 병존이 불가능해지는 점으로까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권력에 대한 의존의 증표인 주체의 반발도, 도를 넘어서면 의존관계를 풀어버리려고 할 것이다(멀티튜드의 공포분노로 높아지도록). 주체가 반발함으로써 주체의 총애를 받는 데 성공한 권력도, 너무도 총애를 받으면, 주체에게 의표를 찌르는 술을 제공할 것이다. 전략이라는 질을 갖고 있는 한, 관계는 그런 딜레마를 품지 않을 수 없다. 통치의 강화나 증대에 발맞춰, 거기에 내재하는 딜레마가 극점에 도달하면, 통치 자체가 기능 부전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18세기 말의 자유주의는 경험적으로 그것을 깨달았으며, 딜레마를 억누르면서 양의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과제에, 자유주의는 통치의 최소화=최적화인 문제형식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사실상, 그 자유주의적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사목자체제라고 읽었다. 통치의 최소화란, 통치를 비통치의 방향을 향해 노쇠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통치하는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이 기술은 주체들에게, 따라서 권력에도, 파워게임을 그만두게 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비통치와 같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이고 개별적으로라는 고유의 논리와, 협박과 구원의 병용이라는 독자적인 수법을 갖추고 있는 진정한 통치기술이며, 광기의 역사이후의 푸코가 분석했던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주체의 저항을 겪고 좌절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좌절하더라도 주체에게 게임을 그만두게 하려고 하지 않는 사목자체제는, 통치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에는 절호의 선례를 제공한다. 아니 오히려 사목자체제가 역사적으로 최초의 통치였던 것이다. 권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는 안정되고 제어하기 힘든 자기와 타자의 통치, 그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동기와 방법 또한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그것이 자유주의로 전경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는 사목적 통치성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적어도 말년의 푸코에게, 고대적 윤리에 의해 뒷받침된 근대적 자유주의로의, 통치성으로부터의 전회를 인정할 필연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통치의 최소화야말로 반사목 혁명의 가능적 내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푸코와 극히 가까운 곳에서 출현했다.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그의 조수를 맡았던 프랑수아 에발드이다. 그의 대작 복지국가(1986),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사회라는 관념의 발견 내지 발명에는, 통치를 최소화한다는 문제의식에 그치지 않는,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책이 포함되었다고 역사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보험기술이다. 해양보험에서 시작된 보험이, 생명보험, 실업보험, 연금 등의 사회적리스크 회피 방법으로 확장되는 역사과정을, 에발드는 세밀하게 추적하며(특히 제2리스크에 관하여), 자유주의가 이미 일종의 복지국가였다고 주장한다. ‘큰 정부만이 복지국가인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이 책의 중심 테제이다. ‘작은 정부큰 정부의 복지국가로서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리스크 개념은 발견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역사책이며, 이런 그의 논의도, 자유주의가 하나의 사회관리사상이며, 따라서 통치성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에발드는 90년대 말이 되면, 원래 마오쩌둥파의 활동가이자 국경 없는 의사회의 창설에도 관여했던 드니 케슬레와 함께 프랑스 경단련(MEDEF)의 이데올로그로서 우리 앞에 등장한다. 경단련의 사회보장제도 개혁 플랜인 사회재정초refondation sociale”의 입안에 참여한 것이다. 그들의 공동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스크, 우리가 어떤 리스크관을 갖고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리스크는, 더 이상 18, 19, 20세기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상 모든 개인적, 집단적 사건을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새로움을 이루는 것이다”(리스크와 정치의 결혼, p.61). 왜 이 새로움이 생겨났는가는, “사회재정초플랜이 제안된 이유이기도 하다. ‘큰 정부노선으로 정비되었던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가 파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리스크인 경제상황의 악화를 회피하기 위한 통치기술이었던 큰 정부’ = 복지국가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가주도주의dirigisme’에서 해방되라, 국가를 소생시키려는 것을 그만두라고 에발드, 케슬레, 경단련은 복지국가의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인들에게 호소했다. 그들의 플랜은 구체적으로는, 오늘날까지 법과 관료기구에 의해 지탱되었던 연금제도를, 경영자와 노동조합의 계약에 기초한 관리 아래로 이행시키고, 금용공학을 도입함으로써 민간보험처럼 운용한다는 것이었다. 정치를 국가의 손아귀에서 탈취하여 리스크와 결혼시키자, 이것이 그들의 슬로건이다. 2012년의 오늘날 아주 흔해빠진 신자유주의적 플랜이지만, 작업을 할 때에는 푸코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일찍이 좌익푸코주의자라고 불렸던 에발드가, 전향한 마오쩌둥주의자나 대기업 경영자와 협력하여 그것을 책정한 것이다. 프랑스적 사목국가’(국가주도주의)로부터의 탈출을 찾아서.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이야말로 사회혁명이라고 주장하면서. 플랜의 이름은 사회재정초이다. 에발드는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푸코가 자유주의자의 입을 통해 말했던 배리의 원인을, 사목자로서의 국가에서 찾고 있다. 자유주의가 국가주도주의를 대신해 사목이 되고자 하고 있을 때, 국가를 후퇴시키면 사목이 후퇴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푸코에 관해서는, 우리와 에발드 등의 대립은 스피노자를 둘러싼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같은 탁상공론으로 끝날 것이다. 아마도 푸코 본인이 그렇게 장치해 둔 것일 터다. 그는 극좌활동가와 국가관료 둘 다의 얼굴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푸코가 이름을 부여한 혁명에 관해서는, 우리가 지금 비관주의자이며, 에발드 등은 분명히 낙관주의자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푸코를 우리의 비관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여도 좋을 확실한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최초의 봉기, 최초의 대결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안전·영토·인구, 편집자 주, p.221). 이렇게 강의 준비 노트에 쓴 푸코는, 그것을 강의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가 있다. 이 정치, 이 저항, 봉기, 대결로부터, 푸코가 말했던 통치성이 생겨난다. 우리가 묘사한 것은, 그가 통치성을 이 정치, 이 저항, 봉기, 격돌[대결]에 정초짓는 모양새이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권력은 생겨나지 않으며, 자유가 권력을 도발하고 자유를 제어하려고 하여 통치성은 개발되었다. 그리고 자유는 그것에도 저항하여 스스로를 통치성으로 주조했다. 주체의 윤리란 주체를 자기 권력으로 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이다고 완전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정치가 요청하는 저항의 방식 또한 통치성이 아닌가! 정치가 마치 통치성과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환상을, 그는 공공연하게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읽어낸 푸코는 시사하고 있다. 이런 푸코는 우리의 귓가에 자유란 권력을 낳을 자유이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그것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는 자유주의의 자유가 양의 자유일 뿐인 것으로만 생각된다. 양치기에게 인도되어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양의 자유로만.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하는 사회혁명은 어디가 반사목혁명인가라고만 생각될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 책의 서두에서 봤듯이, 이 자유는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진 뒤, 정치철학을 사목자의 윤리로 삼아버리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유롭게 되었다고는 해도,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재난의 사후 처리를 곳곳에서 떠맡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의 눈에는 오늘의 보편윤리야말로 사목체제의 완성형처럼 보인다. 도처에서의 선도교화. 양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고 해도 쫓겨나지 않는 사목자. 사목자조차 권력을 낳을 자유를 행사하면 추방될(카다피를 보라) 정도로, 이 체제는 완성되고 있다.

이것이 자유를 둘러싼 대립이라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둘 다를 낳는 푸코의 자유는, 예기치 않게 스피노자의 분노처럼, 혹은 그 아래에 숨은 신 즉 자연처럼, 존재론적인 의미를 사건 세계에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낳을 자유 그것에 저항할 자유 사이의 같음[마찬가지임].’ 국가를 만드는 것과 파괴하는 것을 같게’ 분노와 똑같은 자유.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자유의 양의성(통치에 참여할 적극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받지 않은 소극적 자유), 푸코는 역사를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라는 당연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스피노자가 국가의 을 재차 부정하기 위해, ’으로 국가를 만들게 했던 것처럼.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있다. ‘분노는 그 자체의 해소를 목표로 해야 할 슬픔의 정념이며, 스피노자적 공산주의 혁명의 최종 근거이다. 푸코에게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유는, 정의나 가치로 취급되기 전에 그 흔해 빠진 사실성에 계속 정위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분노의 추처럼, 폭주하여 자동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없다. 국가건설과 혁명은 양방향 동시에 목표가 되며, 인간이 늘 이것들 중 어느 하나로 우세적으로 향했던 두 개의 극이었지만, 즉 어느 쪽이든 모두 과도적 상태를 출현시켰지만, 자유의 두 개의 극은 동시에 극으로서, 분리된 곳에서 출현한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자유는 부동이며, 그 혁명은 있을 수 없다. ‘분노는 양극을 끊임없이 불분명하게 하고, 자유는 끊임없이 그 자체로 분열하고자 한다. 히스테리와 분열증. 정념의 폭풍과 인류라는 자기의 고독한 대화. 그래서 푸코도 이렇게 적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복잡한 권력 관계의 효과에 도구이며, 다양한 감금장치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이자 힘이며, 그것 자체가 이 전략의 요소인 담론에 있어서의 대상인, 이 중심적이고 중심화된 인류 속에, 투쟁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감시와 처벌, p.315).

하지만 이 자유는 어떻게 해도 길들일 수 없다. 그것을 규율훈련에 의해서 하든, 협박과 구원이라는 세치 혀에 의해서 하든, 아무튼 부숴뜨리려고 한다면, 권력도 통치의 가능성도 망가져버려 이 자유가 승리한다. 이 자유의 다루기 어려움, 완고함 때문에, “지나치게 통치한다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가 혁명 아닐까? “나는 과거에 있으며, 지금도 있으며, 언제든 있다!”라고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외쳤던 것은 혁명이었다. 비관주의? 그런 것은 없다. 이 자유는 가치적이지 않은 기술적 존재이며, 멀티튜드가 기성 질서에 대한 분노와 질서의 적에 대한 분노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게 하는 방법=윤리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사는 것이 가능한 것은 자기 이외의 사목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뿐인데, 그것을 사회적으로는 혁명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처방전 없이 경험에만 의거하여 역사에 절단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이 자유는 정치라는 기술에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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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이 책이 기획된 것은 같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졸저 알튀세르 : 어떤 연결의 철학(20109)이 출판되었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집필된 것은 지난해, 2011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이다. 그 동안에 우리는 ‘3.11’을 경험했다. 알튀세르에게 하나의 현대적 단서가 인정되는 문제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를 어떻게 철학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가 의 깊이와 넓이를, 전자보다 큰 사상사적 풍경 속에서 선명하게 부상시키겠다는 본래의 기획은, 지진이나 원전사고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내게는 십수년 간의 작업의 무대 뒤를 보여주는 재고 정리 작업 같은 것이다. 그래도 ‘3.11’은 이 책에 큰 영향을 드리우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의, 그것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철학에 있어서라고 하는 이중의 한정이 붙기는 하지만, 문제가 정치였기 때문이다. 정치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정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설정된 씨름판 속에서, 끊임없이 지금이 날아 들어올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그 결과, 둥근 씨름판에 각이 생긴 것 같은 곳이 이 책에는 있다. 각의 이름이, 최종적으로 제목에 남은 혁명이다.

정치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우리는 매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쓰레기는 끝도 없고, 방사능은 더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국가가 파산할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머리 한 켠에서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빈곤의 물결이 서서히 일본을 침식하고 있다는 감각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에게는, 즉 작금의 정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보는 정치의 현황에 대해 조바심을 내게 됐다. 정치가도 자신의 무기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오로지 저자세로 처신하려고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된 상황일 것이다.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제로에서 재질문을 강요하는 사고를 철학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정치를 앞에 두고, 혹은 유권자나 시민으로서 그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고, 정치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을 아무런 전제 없이 재포착하고, 사고의 리셋 지점으로 돌아가라고 사람들에게 닥쳐오는 상황은, 이른바 정치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따라다니고, 왜 이 정도의 세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욕을 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이미 철학자의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있다. 키르케고르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불안은 철학적인 한 걸음이다. 불안에 답은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에 빠져 욕설을 퍼붓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길, 이 막다른 곳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데카르트적 회의가 아닌가. 거기에 내몰린 정치의 모습, 즉 이 책(의 주인공들)이 문제 삼고자 했던 것을, 현실은, 문장과 같은 답답한 것을 거치지 않고서 사람들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 감각보다 뒤쳐져 있다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뒤쳐져 있음을 만회하려고 과격으로 달려나가고, ‘혁명등이라고 말해 버린 것일까? 일종의 초조함이 이 책을 충동질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틀렸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혁명이란, 정치가 인간의 사고와 함께 리셋되는 지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했을 뿐이다. 초조해하면서 처방전을 내려고 하거나, 미래를 알고 있는 척 하는 짓거리를 하지 않고, 리셋 지점이 어떤 곳인가를, 내게 다양한 것을 가르쳐주었던 선인(先人)들에게 다시 한 번 따져 묻고 싶었을 뿐이다. 리셋 지점에서, 가까운 과거와 오늘의 정치의 광경을 되짚어보기 위해.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말은, 질문을 순화하기 위해 방법적으로 짊어진 과제 내지, 필자의 각오에 다름없다. 혹은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오히려 뭔가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다고 하는 혁명론이며, 독자가 보기에도 그러하길 바란다.

그렇지만 이 리셋 지점은 사회문화혹은 문명등이라는 망막한 지대에 도달하여, 그 속에서 사라지는 애매모호한 제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로 정치라고 불리는 영역,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불려왔던 인간적 활동의 임계점이다. 경제나 기술문명으로 이동해 버려서 고유한 성격이 거꾸로 보이지 않게 된 경계영역이다. 거기에는 쑥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멍이 있으며, 그 구멍에서 사람들이 자주 철학이라고 부르는 괴물이 얼굴을 들이댄다 요는 그것만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장소에서 괴물은 속삭인다. 지금 문명을 끄집어내는 등, 쟁점을 멀리 내쫓아버려 사람들에게 의욕을 잃게 만드는 음모일지도 모르겠다. 사물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역설하고, 화를 낼 의욕을 줄여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경제나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며, 리셋 지점에서 보이는 고유한 현실, 환상이 아니라 이해가 걸린 현실을 지시하고자 할 뿐이다. 이 광학 아래서는, 일본이라면 부흥이나 피해변제 때문에, 세계에서는 파산한 금융기관(국가라는 이름의 그것도 포함한)의 뒤치다꺼리 때문에, ‘자금 융통을 위해 서둘러 다니는 사람들이 정치가의 이름을 참칭하고 있다. 게다가, ‘자금 융통조차 사실은 이름뿐이고, 그 실태는 손실의 대체(유행하는 말로는 주식 전매[날림]’, 언젠가 누군가가 지불해줄 것이라는 정책이다. 바로 케인즈가 말한 것 대로다. 장기(長期)란 모두가 이미 죽어 있는 시간이라는 것.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야유가 쏟아질 것 같다. 당연하다. 나도 사회주의 혁명에 넌더리가 난다. 그러나 처방전을 생각하기 전에 분노하다가 선결일 것이라는 게 야유에 대해 부랴부랴 할 수 있는 응답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만으로는 이 책이 서두에서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정의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처방전도 윤리적 가치도 차원을 달리하는 곳에서 움직이는 정치인 게 아닌가라는 물음을, 저자로서는 지금을 따라잡기 위해, 하나의 과거를 이 책에 아로새기려고 했다. 질문만 해도 상관없다. 그것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책으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혁명에 넌더리 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나간 것이 아닌 믿음을 내게 심어준 것도 혁명과 혁명사상의 역사이다. 사회를 둘러싼 처방전, ‘감정의 집단적 표현, 그리고 윤리 내지 도덕이라는 이 세 가지 차원은 그 순서에 따라 처방전에 나오는 메뉴를 바꿔버리지 않을까? 실제로 바꾸지 않았는가? 물론, 이 책에도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작은 책만으로 지금을 따라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음을, 나도 통감하고 있다. 그래서 부제에는 서설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처방전의 강박적 요구가, ‘손실없는 문제의 교체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이 국난(国難)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만큼, 메뉴의 빈약함을 나라’(혹은 현재의 민주주의제도)라는 가치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감추려고 하고, 보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업 축소를 해도, 공무원을 줄여도, ‘작은 정부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음에 불과하며(신자유주의의 20년 역사가 그것을 폭로했다), 거꾸로 큰 정부에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도, ‘그린 뉴딜의 실패가 증명해버렸다. 재정지출을 10년 전의 두 배로 해도, ‘월가를 점거하라!’라는 결과가 된 것이다. 메뉴를 둘러싼 허심탄회한 논의는 점점 공허한 축제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아쉬운 점, 이 책이 서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과 관련된다. 대체 메뉴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축제의 무대에서 현재 메뉴라고 생각하는 것의 중심기둥을 싹둑 잘라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들갑스럽게 말하면, 맑스에게 철학경제학비판으로까지 나아가야만 했는데, 철학경제학비판속에서 다른 삶을 다시 부여받아야 했는데,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을 완전히 금욕했다. 심지어 정치철학에 관해서도 금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점들이 많다. 오로지, 일단 내게 가능한 리셋 지점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더 말하면, 오늘의 경제학비판에는 무엇보다도 전제적인 철학’(이데올로기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이 결여되어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위기의 시대에 대학 지식인이라는 것에 대한 초조감에 사로잡혀서 메뉴를 생각하거나, 정치가처럼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 명의 인간이 이런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 원점 회귀를 해도 괜찮을 정도로, ‘분노하는사람들은 강하다고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조사 작업과 출고는 남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는데,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도덕 때문이라기보다는 작업의 어려움 자체에서 기인한다. 책을 읽으신 분은 곧 알겠지만, 나는 선인들의 여러 설들을, 꽤나 무리를 해서 순서를 뒤섞었다. 난폭하게 요약을 하고, 각각의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는 논점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큰 논점을 상당히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의 저작을 읽은 적이 없더라도, 내가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거의 결점과도 같은 비판도 했다. 누구든, 자기 나름의 얼마간의 아웃풋output을 내기 위해 그런 작업을 남몰래 할 것이다. 남들 앞에 내세우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웃풋이 긴요하고,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조감도 작성 작업은, 결과로서의 아웃풋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의 올바름만이, 그것을 얻는 여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왜곡을 상쇄시켜준다. 이번에, 그 왜곡도 포함해 무대 뒤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것이 분노하는사람들에 대한 바로 올바른동조의 방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탓이다. 내일을 밝히는 빛일 수 있는 동시에, 시선을 다양하게 왜곡시키는 것도 확실한 분노가 세상에서 고조되고 있을 때, 자기만 왜곡을 폭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어떡하지? 말하자면 그 점에 관해서만은, 나는 이 책에서 적대시한 윤리에 무릎을 꿇었다.

또 하나, 작은 사정이 있다. 이 책에는 첫 번째 독자로 상정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금, “유럽현대사상과 정치라는 공동연구(교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반장이라는 위치에 있다. 거기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 언제나 지껄이고 있는 것의 배경을, 동료들에게 숨김없이, 또한 계통을 세워서 보여줄 필요를, 공동연구가 미끄러졌던 이 1년 동안 통감했다. 각국마다 주요 발표자가 있는 연구회의 한정된 논의에서는, 아무래도 답답한곳이 있다. 거기서 동료들에게, 내 발언의 배후에 있는 포괄적인 조감도를 정리하여 제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즉, 일종의 동료 사이의 담론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연구회 자체를 사회를 향해 듣는(즉 중간보고를 하는), 연구회에도 사회라는 외부를 도입하는(즉 긴장감을 증대시키는) 궁리工夫의 일환이다. 동료들이 연구회의 안과 밖에서 이 책에 응답해주기를 무엇보다 바라고 있다. 물론, 이런 중간보고를 공개했다고 여러분께 알리고, 반장으로서 엉덩이를 터는것이다. 모두 기합을 넣어주세요.

마지막으로, 편집을 해주신 平凡社의 히로마 켄(昼間賢) 씨와, 신서 편집자인 마츠이 준(松井純) (내게 기획을 해줬다)에게는 아무리 감사의 말을 해도 부족하다. 듣고서 감상을 들려준 에게, 이렇게 잘 읽어줬다고 기쁨을 느끼면서, 막판 스퍼트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

 

201214

이치다 요시히코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혁명론

이치다 요시히코(市田良彦)


목차

 

서장. 오늘날의 시점時點 : 윤리적 정치

무차별이 된 거처’ / 악을 제거하는 정의의 정치 / 합의의 정치에 의한 시장공산주의

 

1. 대상으로서의 예외, 주체화하는 예외 : 아감벤, 알튀세르, 네그리

혁명아우슈비츠로 뒤바뀌다 / 철학과 정치의 묻지 못한 관계 / 우연성 유물론의 윤리와 수용소 / 매개의 존재자/ 구성적 권력의 정치 / 주체에 귀착하는 혁명론 / 주체의 구조’ / 특이하고 예외적인 주체 / 좌익 슈미트주의 / 이탈리아 특유의 상황 / 두 명의 한나 아렌트 / 변화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 / 주체의 연속성 / 정치를 소멸시키는 혁명 / 주체 속에 있는 결단’ / 스피노자

 

2. 사라지는 정치, 드문(예외적인) 정치 : 데리다파(), 알튀세르, 바디우

정치적인 것의 후퇴 / 주권공동체를 추구[요구]하는 철학 / 밝힐 수 없는 정치적인 것’ / 유일사상에 저항하기 / 겨울의 시대에서 반-전 지구화로 / 좌도 우도 공화국 / 탈구축의 공동체 / 모습을 지우는 본질’ / 늘 예외와 더불어 있는 알튀세르의 주체 / 객체의 예외성에서 혁명 주체의 생성으로 / 반란과 분열하는 인민 대중 / 분기점으로서의 주체 문제 / ‘정치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 절단이 초래하는 전체성 / 존재의 시 말라르메처럼

 

3. 다중의 살아 있는 정치 : 스피노자를 둘러싼 항쟁

들뢰즈의 혁명 혐오 / ‘명랑한 비관주의’ / 스피노자의 물리학적보수주의 / 기억을 잃은 알튀세르 / 인과성에서 자유인 국가 형성 / 국가 형성과 혁명을 같게하는 정치 / 정치에 작용하는 스피노자적 인과성을 찾아서 / 국가는 비이성적 존재이다 / 그러나 계약 개념의 부재는? / 유일한 원인으로서의 분노’ / 민주주의란 린치이다 / 결과를 인과에 내재시키는 스피노자주의 / 표현과 인과성 의미가 초래하는 지복과 곤혹 / 알튀세르의 장치’ / 결과이고 원인인 나 / 도덕과 착종하다 / ‘가 거울을 깬다 : 희망

 

결론. 발견된 자유 : 푸코와 ()가능한 혁명

전에 없었던 반-사목 혁명 /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 푸코와 ()자유주의 /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마치며

 

 


 

서장. 오늘날의 시점 : 윤리적 정치

 

 

무차별이 된 거처

정치철학이 유행하고 있다. 케케묵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던 철학이 테러나 금융위기나 경제격차에 관해, 심지어 원자력발전소 재해에 관해 아직 뭔가 말할 게 있음을 이 정치철학은 실증하고 있다. 이 정치철학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현실적인 어떤 문제에도 비집고 들어가 말하려 하는 진지한 자세와 능력 때문이다. 이것이 다루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현상들에 내포된 윤리문제 가치로서의 자유정의이다. 이 때문에 이것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도처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려 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정치철학에 대한 위화감, 따라서 현대인의 윤리지향에 대한 깊은 위화감이다. 정치철학이란 그런 것이었는가? 윤리란 이런 정치철학이 문제 삼고 있는 문제였단 말인가?

[거처]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가 みか이다. 이것은 체재(séjour), 혹은 우리말로는 <살 곳>에 상응하는 단어일 수 있다. 주지하듯이, 체재는 에토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에토스(고대 희랍어 : ἦθος, ἔθος; ethos, 복수형 : ἤθη θεα; ethe, ethea)여느 때와 같은 곳’(ἤθεα ππων)을 의미하며, 이것이 관습특성 등을 의미하는 뜻으로 바뀌었다. 이것 외에도 출발점출현또는 특징을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도덕이나 도덕관의 발로등을 의미하는 θικός (ethikos)라는 말이 생겨났고, 라틴어로는 ethicus로 활용됐다. 또한 그 여성형인 θική φιλοσοφία (ethica)는 옛 프랑스의 ethique, 중세 영어의 ethik를 통해, 현대 영어의 ethics으로 변화했다. 아무튼 みか소굴이라는 통상적인 의미보다는, 잠정적으로 거처, 居場所거주지로 옮긴다.  그러나 '거처'라는 용어보다는 차라리 '터전'이나 '에토스'로 이해하는 편이 낫겠다고 강조해둔다. 

윤리(영어의 ethics)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그리스어 에토스ethos는 사람의 거처와 거기서의 그나 그녀의 존재방식둘 다를 가리켰다. , 에토스에는 사람이 지내는 집이나 토지나 정치적 공동체가 어떤 것인가라는 사실 문제와, 거기서 그/그녀가 어떻게 행동[처신]해야 하는가라는 규범 문제 사이의 구별이 없다. 예를 들어 중용에 의해 스스로를 관습습관이 되게 하라고 역설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관습은 사람이 살아가는 객체적 환경이자 또한 주체적으로 통제해야 할 행위이다. 이 윤리에는 인식의 대상인 사실과 도덕적 가치에서 유래하는 당위라는 근대적 구별이 없다. 오늘날 유행하는 정치철학=윤리학은 그리스적 윤리에서의 이 비구별을 일면에서는 분명히 계승하고 있다. 오늘날의 윤리는 단 하나이자 도처에 있는 거처에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생식기술이나 장기이식부터 국제 분쟁에 이르기까지, 가족 간의 말썽(trouble)부터 지역사회나 국가의 존재방식까지, 심지어 마약부터 자연환경까지, ‘거처가 무엇이든 또 어디에 있든, 오늘날의 윤리학은 거기서의 인간의 보편적인 있는 방식[존재방식]’을 문제 삼아 개입하려 든다. 기술이나 마약이 거처일까? 현대인에게는 인터넷이 바로 그럴 것이며, 중독자에게는 리스크 자체 외에는 자신의 거주지가 없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말참견을 할 마음이 있는 것이 오늘날의 윤리학자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도덕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적용 범위의 보편성에 관한 한, 오늘날의 윤리와 그리스도교나 근대의 도덕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는 않는다. 좌우당간, 이것들이 설파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처럼, 시대나 환경, 심지어 거처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의 형태를 취한다. 다만 도덕의 보편성은 지상의 거처가 아니라 천상에서 유래한다. 신이 직접 내리거나, 동물 이하의 존재(필연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해 천상에 위치하는 인간의 자유에 기초하여, 도덕적 명령은 내려진다. 도덕의 존립 근거에 사실의 세계는 필요 없으며, 사실의 인식에 도덕은 필요 없다. 데카르트는 그것을 악인도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덕은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인간을 선도교화善導教化하려 한다. 이에 반해 오늘날의 윤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한정되어 있을 거처를 자꾸 무차별적으로 거처로 간주하는 것, ‘거처인 것, ‘거처로서 등질적인 것의 범위를 자꾸 확대함으로써, 그 보편성을 주장한다. 생명윤리에서 환경윤리로, 심지어 기업이나 대학의 compliance, 어디까지든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능력에 오늘날의 윤리는 학으로서의 보편성을 판돈[내깃돈]으로 걸고 있다. , 오늘날의 윤리는 지상을 등질화함으로써, 천상에서 유래한 도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보다 더 먼저 지상의 선도교화를 맡으려[이루려] 한다.

[compliance일본어 사전을 보면, 복종, 승낙이라는 뜻 외에도, «외력을 받았을 때 물체의 변형되기 쉬움을 나타내는 양. 로봇 기술 개발 등에 쓰임다른 한편 영어 사전에서 compliance(명령 등의) 준수; (명령 등에) 따름.

오늘날의 윤리에서는 도덕과 똑같은 보편성을 갖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전제이다. 지상의 균질화는 이제 머릿속에서 노력하고 또 이렇게 여기게 되기도 전에, 세계시장의 단일성으로서 사람들의 시야에 불가항력적으로 들어왔다(모두 맥도널드를 먹어!). ‘거처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보편성, 도덕의 경우에는 천상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가졌던 보편성이, 오늘날의 윤리에서는 거처자체의 무한정성에 의거한다. 여기와 지구의 반대편은 인간의 거주지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양자의 경제격차는 윤리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의존관계에서 오늘날의 윤리는 거처존재방식의 고대부터 불가분했던 관계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리라. 현대인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 여기로 되돌아오는 하나의 거처인 지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고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처존재방식의 중립적인 지지대로서, 명령을 기다리는 존재로서, 비슷비슷하게 되어 버리면, 윤리는 더 이상 도덕과의 차이를 주장할 수 없다. 내용이 다양했던 중용, 그 내용이 일의적으로 정해지며(미국과 아시아에서는 예를 들어 사법적 공정함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거처와 관계없이 선험적으로 내려지는 명령과 분간될 수 없게 된다.

[지지대] 일본어로는 皿라고 되어 있다. 는 받침 접시라는 의미가 있으나 비유적으로는 받아들이는 곳’, (사물을) ‘받아들이거나 수용하거나 인수하는 자세나 태세를 가리킨다.  이것을 '지지대'라고 옮긴 것은 support의 번역어가 아닐까 생각해서이다. 참고로 support에는 무엇인가를 실현하는 매개체라는 의미도 있다. 

개개의 거처는 이제 모두 윤리적으로 평등하다. 마찬가지로 거처인 한에서, ‘거처각각의 존재방식은 본질적인 관심의 바깥에 놓인다. 어디서든 거처’라는 면에서는 똑같기 때문에, 특별히 나쁜 거처는 없으며,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윤리학이 말할 수 있는 거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다. 윤리학은 팔레스타인 국가와 이스라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는 안 되며, 윤리학을 신봉하는 인간에게는 과거에 강제수용소가 실재했던 이 세계가 그 자체로서 이미 비윤리성을 띠고 있으며, 윤리=도덕의 개입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하늘의 소리를 대기하고 있는 존재로서 모든 거처는 평등하다. 윤리학거처’, 즉 인간의 공동체나 공동성을 선택하는 , 거기에 우열을 도입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인간의 도덕적인 존재방식거처습관으로 사실화할 것만을 오늘날의 윤리는 도처에서 요구한다.

정치철학을 오늘날 거의 혼자서 대표하고 있다고 간주되기도 하는 마이클 샌델은 거기에 잠복해 있는 난점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가 많이 거주하는 커뮤니티 안을 행진하는 네오나치와 남부의 분리주의자들의 커뮤니티 안을 행진하는 마틴 루터 킹 각각에게 행진을 금지시킬 윤리적 근거는 있을까 없을까? “두 개의 사례를 식별하는 원리적 방식이 있을까? 언론의 내용에 관해 중립적인 것을 취지로 하는 자유주의자에게서도, 또 문제가 되는 커뮤니티에서의 우세한 가치를 따라 권리를 정의하는 공동체주의자에게서도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2판 서문. 강조는 인용자). 네오나치가 신봉하는 공동성과 킹 목사가 지향하는 그것과의 사이에서, 정치철학은 선택할 수 없다. 자신보다 상위의 가치, 따라서 이미 학문적으로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믿는 것일 수밖에 없는 차원의 <(The)> 정의를 도입하는 것이 아닌 한, 정치철학=윤리학에서는 한 인종 내의 평등과 인종 간 평등 사이에서 우열이 가려질 수 없다. 우열을 가리지 않는 것이 윤리=도덕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런 불가능을 한다고 해봤자, 무슨 유익한 것이 될까? 어려운 문제라고 학자가 지적을 할 때 이득을 보는 것은, 이 경우에는 분명 네오나치 아닐까? ‘거처의 무차이는 거처’[] 사이의 역사적으로 성립된 관계를, 모두 문자 그대로 무시하게 해준다. 일본도 한국도 중국도 마찬가지로 거처이기 때문에, ‘혐한반일반중도 윤리의 논리 위에서는 피차일반일 뿐이며, 즉 어느 하나에만 퇴장하라고 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대의 거처에 있어서 올바른 존재방식을 요구하는 무한한 정의앞에서는, 기독교 원리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는 계속 등가의 것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어떤 공동성도 일단 있으니까 좋다고 승인되며, ‘좋은공동체와 나쁜공동체의 싸움은 믿음취미의 문제가 된다. 이래서는 윤리문제가 과거의 것이라고 치부할 이데올로기 대립과 도대체 뭐가 다를까? ‘믿음취미만으로 정치의 무대 위에서 춤출[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고생해서 체계로 가다듬었던 이데올로기가 우세였던 시대에 비해 너무 간편한 일이 아닐까? 그런 정치는 단순히 덜떨어진 이데올로기 대립일 뿐이지 않을까? 이 점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면, 국내정치가 인터넷 게시판의 논쟁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드시 폭력적 논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낡은 정치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을 새롭지 않은 제안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믿음취미는 간편한 것을 본성으로 삼기 때문에 전향은 손쉽고, 멋대로 전향하는 대결의 정치에 안정된 타개책이 찾아오리라고 바랄 수도 없다.

정치철학의 융성에는 냉전의 종결이라는 계기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및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세계정치의 기본 틀이 붕괴되고, 국가를 넘어선 정치에는 정의나 윤리 정도를 빼면 적용 가능한 범용성이 높은 원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정치철학이 무대 위에 등장한 것이다. 윤리학으로서의 정치철학에는 처음부터, 세계의 도처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처거처로 간주하는 것이 내발적 요청으로 들러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처음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구-유고슬라비아 내전에 대한 인도적 개입에 즈음해서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두는 것은 헛되지 않다. 사회가 붕괴되고 사람들이 이동을 강제당하고, 그 결과 지구를 무차별적으로 인류의 거처로 간주했던 인도적으로 무장한 버드아이뷰(bird’s eye-view)가 오늘날의 정치철학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일찍이 1980년대에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영국 수상은 매우 선구적으로 윤리적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회든 거처로서 무차별하다면[아무 차이도 없다면], 그것은 실제로 특정한 현실적인 것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영국사회와 거기서의 이민사회의 구별을 원리적으로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원래 두 개의 통합 방식의 실재성 자체가, 따라서 사회라는 공동성의 관념 자체가 괴이하다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버드아이뷰에서 볼 때 지구는 그저 푸를 뿐이다. 죽임을 당하는 인간과 죽이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버드아이뷰(bird’s eye-view)원문에는 目線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bird’s eye-view’를 일본어로 직역한 것이다조감도(鳥瞰圖).  

사회가 해체되고 사람들은 안전한 거처를 찾아 도망치려고 우왕좌왕한다. 현대의 윤리정치적 주체가 우선 방황하는 유대인인 것이다. 토지를 갖고 있지 않은 주민population, 그것이 윤리적으로 한정된 정치주체의 존재방식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현실정치에 참견하지 않고서도 유대인적 윤리에서 보편을 탐구하는 엠마누엘 레비나스가 최고의 정치철학자로 참조 가능해진다. 마이클 샌델처럼 뭐든지 정치철학의 예제로 삼는 것과 레비나스처럼 세속을 벗어나 율법 교전의 주해에 틀어박히는 것 사이에서 정치윤리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토지를 갖고 있지 않은 주민의 정치란 어떤 것일까? 보루에 에워싸인 도시의 방어는 정치의 범주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관리도 정치의 작업[]은 아니다. 하물며 누가 주민의 자격을 갖고 있느냐는 주민 관리상의 소여일 뿐이다. 무리[]의 이동과 관련된 집단 내의 합의만이 실질적인 정치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 전체가, 즉 가능적인 모든 거처’가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을 때에는, 그로부터 심지어 이동할 곳의 선택이 누락된다. 그래도 무리의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이므로, 그것들의 처리는 필요하며, 결과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이 선험적으로 부과되지 않는 집단적 결정만이 정치에는 남겨진다.

 

악을 제거하는 정의의 정치

, 결정사항에서 결정하는 것이 분리된다. 무엇을 결정해도 그 무엇what’은 정치와는 본질적으로 관계가 없어지며, 자기 목적적으로 합의(consensus)를 얻는 것만이 정치의 내용으로서 추출된다. 과정이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아무거나 좋은 아무거나를 결정하는 것만이 정치로서 자립한다. 정치를 주권자에 의한 결정으로 환원시켜 보여준 칼 슈미트가 다시 읽혀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정의를 향한 정치철학은 어떤 냉소적인 정치관,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집단의 범위, 공동성의 실질은 기회원인론적으로 우연하게만 주어질 뿐이라는 것을 전제로, 사람들을 윤리적이라고 간주되는 어딘가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어디로 인도해도 세계는 마찬가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정치가 이루는 것에는 하나의 공통의 이름이 있다. 악의 제거다. 이 정치에서 통치의 대상은 거처의 유지나 개량이 아니기 때문에, 본질적인 임무는 악의 척결밖에 없을 것이다. 지상의 선도교화란 구체적으로는 악인의 제거를 의미할 것이다. 악인을 제거하면서 주민집단으로서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 그 공동체를 선인(善人)의 그것에 근접시키는 것이 정치의 작업이 된다. 실제로, 오늘날의 정치의 대부분은 나쁜정치인을 교체하는 것에 있지 않는가. 선거의 쟁점은 그것으로 기울어지기 쉽고, 스캔들(‘나쁜 짓’)의 폭로야말로 가장 유효한 정치수단이 되고 있지 않은가. 어떤 공동성인가가 아니라, 아무튼 실제로 존재하는 공동체를 어떤 악인의 제거에 의해 지키느냐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공동체는 부단하게 악마 푸닥거리를 필요로 한다. 악마 푸닥거리에 의해 공동체는 존속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그 악이 거꾸로,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라는 악 경우는? 인도적 개입이나 사회안전망(safety-net)을 논하면서 윤리적 정치가 문제 삼는 것은, 공동체로부터 문자 그대로 말살되거나 경제적으로 추방되기도 하는 희생자들의 존재이며, 배제야말로 윤리적으로는 최대의 악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늘날의 윤리에서 발단을 이루는 상징적 악이었다(유고 내전에서의 인종청소’). 뒤집어보면, 희생자야말로 윤리적 정치에 있어서의 정의를 체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근대적 정치의 패러다임이라고 말하는 조르조 아감벤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생자가 될 수 있는, 혹은 희생자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정의의 정치란? 윤리적 정치에서는 악인의 제거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뭐랄까, ‘거처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그것밖에 할 것이 없다. 썩은 사과를 제거하라. 이런 제약 아래서는, 희생자에게 정의의 정치란 자신을 배제한 주민공동체 자체의 말소가 된다. 배제의 희생자에게 악인이란 자신을 배제한 주민 전체나 다름없으며, 전지구적 보편윤리에 있어서 악인의 집단인 공동체는 지상에서 소멸시켜야 할 것이다. 그 구성원이 개인으로 돌아가 선()의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한, 그는 공동체와 함께 사라져야 할 수밖에 없다. 이 판단을 정당화할 수 없는 보편윤리는 없을 것이다. 학살을 정의라고 말하는 도착된 비참한 결론에, 윤리적 정치는 제동을 걸 수 없는 것이다. 테러를 통한 집단학살을 서슴지 않는 원리주의는 윤리적 정치의 적자이다.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얘기 아닌가. 윤리=도덕적인 선도교화가 임무라면, 정치는 모든 사람이 악인일 수도 있고 선인일 수도 있는 동시에 둘 모두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선별이나 집단의 분리 살해를 배제하지 않는 를 행하고, 그 후에 스님처럼 참회하면 된다. 그리고 확인하면 된다. 여기서도 또한 아우슈비츠가 있었습니다 .

보편의 시선에서 보면, 공동체는 중간집단처럼 보인다. 실제로 정치철학은 지금까지 자주, 보편화할 수 없는 개별성이나 예외성을 문화친밀권이라는 이름으로 중간적인 거처에 억지로 밀어 넣고, 윤리가 담당하는 보편적 공공성과 공존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공존의 실태는 어떠했을까? 예를 들어 문화적 예외성은 자국 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프랑스 공화국의 논리 자체였다. 그리고 똑같은 공화국이 이슬람이나 아프리카의 문화에 관해서는 자주 그 예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로부터 엿볼 수 있듯이, 중간집단은 상대적으로 중간적일 뿐이며, 어떤 중간성도 그 자체로서 전체성을 가질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전체도, 무한한 존재를 승인하는 한, 자신의 중간성을 주장할 수 있다. 더 큰 전체가 있다 .” 오늘날, 중간과 전체는 정치적으로는 거처와 마찬가지로 무한정하다. 그리고 레비나스가 가르쳐주듯이, 무한(여기서는 보편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무한정전체성저항한다. , 양자는 이질적인 논리이며, 통합이 불가능하며, 보편에 예외는 있어도 부분이나 중간은 없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윤리는 전체성/중간성의 논리와 분리되어 공존이 가능해진다. 그것을 유대인과 이스라엘 국가의 역사는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한 국가에 불과한 미국이 내뱉은 무한한 정의도 전체주의와 보편주의의 편의주의[기회주의]적인 공존을 증명하고 있을 것이다. 무한에서 보면, 공동체는 전체성이라는 진영에 미리 알아서 설설 기고 있으며, 보편윤리와 논리적으로 대립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대립하지 않는다. 보편윤리는 공동체의 전체성에 저항하면서도 그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즉, 잘 관찰해보면, 전체와 보편의 양쪽에 대해 특유의 존재 성격도 중간성도 주장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정치적 중간성에 실체는 없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전체성과 무한’(레비나스의 책 제목인) 사이에서 공동체는 붕 떠 있다. 서로 대립하는 전체성과 무한은 공동체를 위치지을 수 없다. 존재하고 있는 공동체는 윤리정치적으로 규제도 승인도 받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는 공공세계에 참여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무한의 윤리가 지배해야 할 정치세계에 있어서도, 세계는 다양하고 각각 전체적인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을 것인데, ‘거처인 공동체를 추구하고 만드는 , 존재방식을 바꾸기 위해 파괴하는 , 그리고 그 두 개방식how’에 관해서는, 문제 자체가 문자 그대로 장소를 갖지 않는 것이다. 공동체를 존재시키는 것, 이와 정반대로 체하는 것은 정치 이전의 사적 투쟁의 영역에 처박아진다. 국가건설도 혁명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인 셈이다. 존재하게 되었던 전체적 공동체를, 악의 제거라는 목적에 맞춰서 합의라는 수법에 의해 유지하는 것만이 윤리적 정치에 허용된 관심이다. 공동체의 존재가 판돈[내깃돈]이 되고 있는 건설과 해체는 정치의 예외 없는 범주 바깥으로 쫓겨나고 만다.

전쟁도 또한 정치의 이지 않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전쟁에, 윤리적 정치는 끼어들 수 없다. 전쟁 당사자는 정치에 대해서,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하면 되며(아직 합의의 시기가 아니다), 전쟁을 비난하는 자는 당사자를 악인이라고 지명하고 말소하는 다른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한, 그 비난을 정치의 무대에 올릴 수 없다. 양심에서든 위선에서든, 사적으로 제멋대로 비난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전쟁은 시작하기로 결단되는 순간, 윤리적 정치이 아닌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적은 악이며, 악의 제거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것이 정치였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안과 밖에서 하는 것이 다른 정치는, 윤리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합의의 정치에 의한 시장공산주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이런 결말을 정말로 요청했을까? 확실히 맑스주의는 국가와 혁명에 의해 농락당했다. 혁명이란 국가를 사멸시키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역설을 실천적으로 풀 수 없었고, 그 이름을 딴 국가를 소련에서는 소멸시키고 중국에서는 자본의 유능한 관리자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이 를 생각하는 것을 단적으로 그만둔 윤리적 정치는, 세숫대야의 구정물과 함께 갓난아기까지 버려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도 혁명도 주민의 합의에 맡긴 것은 좋지만, 자신이 악인의 제거에 매진하는 동안에, 국가는 원래 주민을 먹여 살릴 힘을 잃고, 공동체로서의 정당성을 쪼그라들게 했다. 어디서나 온통 거처가 되는 대신에, 어떤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면 되는가[에 관해] 정치는 합의말고는 다른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 충분히 먹을 수 없게 된 주민이 늘고 있을 때에. 어떤 공동체가 정치적 공동체인지, 그것을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도 다시 생각해야만 할 때에. 그렇다고 한다면, 순수하게 혁명을 생각함으로써도 누구보다 국가를 날카롭게 따지고 든 자들의 사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게 되새길 값어치가 있을 터이다. 윤리적 정치에서 보면, 혁명은 국가공동체에 있어서 예외적인 사태에 지나지 않으며, 2차적 이하의 과도적 상태, 공론장 없는 사적 투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예외이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예외로 하고 있는 일반성 즉 국가를 생각한다는 것에 일치한다. 국가만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국가의 존립 근거에 바싹 다가설 수 있다. 맑스도 공산주의자가 된 후에야 비로소 자본주의를 영속 운동하는 자동기계처럼 분석할 수 있지 않았던가.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정치철학은 그러나 이런 초보적인 변증법조차도 잊어버린 단조로운 세계관으로 영락했다. 혁명을 필연이라고 구슬리고, 혁명의 결과로서 성립한 국가가 그대로 필연적으로 전인민의 국가가 되며, ‘전인민의 국가는 이제 국가가 아니라고 믿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그 국가의 모습은 사실상 윤리적 정치를 선취했다는 것을. 노동이 정의가 되고, 계급의 적은 최종적으로 말살되는 프롤레타리아 주민의 거처.’ 지도기관의 의지가 곧 합의라고, 어쩐지 보증된 공동체. 그 속의 어떤 중간 공동체(원래 몇 개의 민족 공동체가 있었을 것이다)에도 정치적 실체가 없는 보편국가. ‘현실 사회주의는 붕괴함으로써 승리한 것이다. 윤리주의자는 사회주의자이며, 미국과 소련이 없는 전체성과 무한의 평화공존현실 사회주의로부터 물려받았다. 게다가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유물론자의 역할도 맡게 되며, ‘필요에 따른 분배를 사회정의라고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에 따른 분배(사회주의)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분배(공산주의)야말로 오늘의 윤리이다. 세계의 어디에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최적의 배분을 실현시켜주는 것이 시장메커니즘market mechanism이다. 미국과 소련은 도대체 뭐가 다르냐고 물어본 하이데거나 코제브의 혜안이 요즘 들어 더 생각난다. 정말이지, 세계는 이미 공산주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정치는 필요가 없으며, 윤리=도덕만으로 족한 것일까? 윤리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지금 있는 국가를 절반 이상은 하늘로 올라간 국가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 국가에 선도교화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정치는 종교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면, 혁명을 그 예외성에 충실하게 생각하려 한 철학을 복권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1. 일본어 서평 

* 아래의 링크는 아래의 서평 원문이고, 밑의 글은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가 삭제된 것이다. 논의를 위한 자료 차원에서 블로그에 복제해둔다. 

* http://d.hatena.ne.jp/whomoro/touch/20130217/1361065937?hc_location=ufi

* http://d.hatena.ne.jp/whomoro/touch/20130222/1361537378?hc_location=u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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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uall ㅣ 2015-04-08 ㅣ 공감(5) ㅣ 댓글 (0)
1. 가라타니의 매너리즘 또는 아집
철학의 시작을 서술한 서적은 허다하지만 철학의 기원을 탐구한 서적은 적다. 그 탐구를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라타니는 행하겠다고 한다. 철학에 대한 희구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의 기원』은 사람들의 관심 저 밑에 있는 것을 다루려고 하는 저작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가라타니의 탐구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무지배)’가 역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논증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논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아사회와 이소노미아가 단순하게 등호(等號)로 연결되고, 그것을 전제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史實)의 오인이다. 이소노미아라는 말도 정확하게 분석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무지배’라는 번역어에 대한 상세한 고찰과 비판 없이 자명한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이오니아=이소노미아=무지배’는 유토피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가라타니의 처음부터의 목적이었는지 궁금하다. 그것이 유토피아인 이상, 역사상의 아테네가 단죄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지향한 것은 통치 그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가라타니가 지향한 것은 ‘통치 그 자체의 폐기’라고 추측할 수 있으며, 그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 사술(詐術)적인 논리이며, 소크라테스를 강인하게 자신과 동일한 사상을 갖는 주체로 설정한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를 등장시켰다. 이 이소노미아가 허구인 것은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의해 언제나 ‘이소노미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환기하는 효과를 갖는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라타니는 자신의 투쟁을 이소노미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2. 통설과의 접목
서장에서는 기원전 6~기원전 5세기에 관한 통설적인 윤리사상사(가령 야스퍼스의 ‘세계사의 기축시대’가 떠오른다)가 소개되며 거기에 가라타니의 교환양식설이 접목되고 있다. 윤리사상사 자체는 다소 고풍스럽고 평범하여 새로운 시점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 풍부한 참고자료를 자랑하던 가라타니의 저작을 생각해 보면 일본 내의 동 시기에 대한 많은 저작들을 참고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은 점이 의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곳부터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해서는 ‘유대교-기독교’라는 유럽 중심의 발상범위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선악이원론이나 최후의 심판으로 유대교에 큰 영향을 준 조로아스터교는 가라타니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가라타니가 조로아스터교의 강한 윤리성을 주목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의 철학적 사고의 탄생은 중요하지만, 화폐의 등장(역사상 최초의 주조화폐는 기원전 7세기에 소아시아의 리디아에서 만들어졌다)과 화폐의 일정한 보급은 인간의 사고와 경제생활 진전에 깊이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화폐의 상징기능이 사회에 침투해 가는 가운데 처음으로 철학적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엄청난 시간 속에서 배양된 신화적 사고가 있다. 철학의 기원이라는 문제는 신화적 사고(유토피아)와 철학적 사고(로고스)와의 관계/단절이라는 문제이다. 거기에는 문학의 발생이라는 문제도 포함될 것이다. 신화적 사고 속에서 철학적 사고는 어떻게 석출(析出)되었는가. 그러나 가라타니에게는 그러한 발상을 볼 수 없다. 덧붙이면 가라타니는 “주술은 정주 이후의 씨족사회에서 발달했다”고 논하고 있지만, 유목민에게도 수렵민에게도 주술전통은 존재하고 있었다.

3. 이오니아와 이소노미아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의 도시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나타내는 사료는 거의 없다”고 서술하면서도, 이오니아와 이소노미아를 스스럼없이 등호로 연결해 버렸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역사를 상세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설을 전개하고 있다.

가라타니는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폴리스와 이오니아의 폴리스를 구별해 ‘씨족적인 여러 제도가 농후한 사회’ vs ‘씨족적 전통이 없는 식민사회’로 대치시키는 것에 치중한다. 그러나 보통 밀레토스 등은 식민도시로 분류하지 않으며, 모시(母市)와 식민도시(그 성격은 일률적이지 않다)를 전혀 별개로 논의할 수는 없다. 일본의 그리스 역사가 사쿠라이 마리코(?井万里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인의 식민활동의 전제로서 폴리스의 성립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민활동을 포함한 거대한 시대의 너울 속의 여러 요인이 상호 작용해 결정화한 결과가 폴리스의 성립이었다고 간주된다.” 더욱이 “다양한 공동체로부터 나온 식민지인들로 이루어진 이오니아에서는 처음부터 ‘개인’이 존재했다. 이오니아의 폴리스는 그러한 개인의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근대의 개인이나 사회계약의 개념을 고대 이오니아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도 종종 인용되고 있다. 가라타니는 아렌트의 『혁명론』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오니아=이소노미아’설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말을 어디까지나 도시국가의 평등을 논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오니아라고 하는 말은 전혀 쓰지 않았다. ‘이오니아=이소노미아’를 아렌트로부터 끌어와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이소노미아’를 역사적으로 논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니아=이소노미아’는 『철학의 기원』을 관통하는 개념이 되고 말았다. ‘이소노미아로서의 이오니아’는 말하자면 유토피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소노미아로서의 이오니아’ 인 것이다.

원래 이소노미아는 무엇인가. ‘무지배’라는 번역어는 적절한 것인가.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말은 ‘이소(iso, 같다는 의미)’와 ‘노모스(nomos, 법, 넓게는 인위적인 것)’로 나뉜다(노모스는 physis(자연)과 대비되는 언어다). 따라서 아렌트의 이소노미아라는 말의 사용법은 옳다. 이소노미아의 원뜻은 도시국가의 ‘인위적 공공공간에서의 평등’=법적 평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무지배’라는 번역어는 이것을 등한시한 편협한 기능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라타니가 인용한 부분의 바로 뒤에서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소노미아는 평등을 보장했으나,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고 평등하게 자라나서가 아니라, 반대로 사람은 자연에서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인위적인 제도인 법 즉 법률에 따라 사람들을 평등하게 하는 도시국가를 필요로 한 것이다. 평등은 사람들이 서로 사인(私人)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만나는 이 특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존재했다.”

또한 아렌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로도토스가 자유를 무지배와 동일시했을 때, 그 논점은 지배자 자신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지배하는 것에 의해 지배자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본래라면 자유로웠을 타인들을 스스로 떠났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정치적 공간 그 자체를 파괴한 것이며, 그 결과 그 자신에게도, 그가 지배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자유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자유는 시민들의 법적 평등과 동의라고 이해된다.

이상으로부터 고대 그리스에서의 이소노미아는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 노력’ 자체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노력은 폴리스라는 인위적 공공공간(‘사람들이 서로 사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만나는 특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민은 정치와 군사를 공동으로 담당하고 폴리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했다.”

이소노미아는 도시국가의 통치방식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통치의 폐기’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소노미아와 노예제는 병존하게 된다. 가라타니는 “이오니아에서는 노예제 생산에 의존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오니아를 이상화했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오니아의 반란에서 큰 역할을 한 폴리스인 키오스는 ‘섬의 강 건너 소아시아에 가지고 있던 페라이아(Per?a, 해외 영토)에서 노예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를 행하여’ 번영했다. 원래 ‘식민 시절에 원주민을 종속민의 지위에 빠뜨리는 일도 있었고, 주변의 이민족으로부터 노예를 조달하는 것도 차츰 잦아진’다고 사쿠라이 마리코는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이소노미아가 실현된 예로서 아이슬란드와 18세기 미국의 타운쉽을 거론하지만, 이것은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 대한 놀라운 사실(史實) 오인이다. 가라타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식민지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하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왔다. 한편 영국 식민지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시민혁명(1648년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정도의 사람이 이런 오류를 태연하게 기술한다는 것은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담배 플랜테이션 노동력으로서 흑인노예의 도입이 시작된 것은 1619년의 일이었다. 시민혁명과 노예제의 부정을 연결하는 논술은 논외라고 할 수밖에 없다.

4. 자연철학, 플라톤
이른바 자연철학에 대한 가라타니의 기술은 ‘이오니아=이소노미아’에 집착하고 있는 것 외에는 그다지 통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는 통설과 다른 위상(반 피타고라스=반 플라톤)을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타당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교적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지만 독해 자체가 치밀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오니아의 유물론적 사상’이라는 표현이 보이나 자연철학자들에게서 물질과 영혼은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리스의 철학의 기원을 논하면서 로고스에 별로 언급이 없는 것도 의문이다. ‘이소노미아’에 집착한 나머지 왜 이오니아에서 로고스가 생겼는지를 가라타니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뮈토스((muthos, 이야기 또는 신화)와 로고스의 관계야말로 철학탄생의 비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가 ‘있다’의 사색을 시의 형태로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을 상기해 보자. “영혼의 끝을 당신은 걸어가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깊은 로고스를 그것은 갖고 있다.”

가라타니의 단조로운 플라톤 비판(이데아론 비판, 철인정치 비판)은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플라톤 철학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력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것, 거기에 오히려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관념론으로 간단하게 치부하지 않는 것은 관념의 강렬한 자기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을 표방하는 가라타니의 표면적인 플라톤 비판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온다. 가라타니의 ‘이소노미아’론은 대부분 플라톤적인 이데아론으로 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소노미아’라고 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애타게 연정을 보이는 가라타니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5. 소크라테스
가라타니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사회에 대하여 아테네를 ‘정치적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열’이라는 근대적인(헤겔-맑스적인) 개념으로 분석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크라테스까지도 이소노미아와 연결하고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속의 “사인(私人)으로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 공인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소크라테스가 가져온 것은 공인인 것과 사인인 것의 가치 전도다”라 하고, “소크라테스가 목표로 한 것은 통치 자체의 폐기이며, 이소노미아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비판을 예상했는지 소크라테스는 ‘자신도 모르고’ ‘그렇게 의식함이 없이’ 이오니아적 사상을 부활시켰다는 논리를 편다. 이 정도면 견강부회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통치 자체의 폐기’를 지향하고 ‘사인으로서’ 죽은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 및 사상과 폴리스라는 공공공간은 분리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사회적인 규약(노모스)’에 따라 정의를 존중하는 신념이 각인의 삶의 방식에 관련된 신념군 중 최고 중핵을 구성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활동은 곤란에 처한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는 펠로폰네소스전쟁과 그 패전 후의, 노모스의 혼란기였기 때문이다. 노모스의 동요 속에서 왜 소크라테스는 아고라라는 공공적인 장으로 나가 집요한 대화를 행했는가. 거기에는 폴리스라고 하는 인위적 공공공간의 소생을 ‘영혼에 대한 배려’로부터 행하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고투가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란 그 고투에 다름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그 싸움을 최후까지 이끈 것을 그의 죽음이 나타낸다.

30인 정권의 전제정치와 그것의 붕괴, 혼란기에 소크라테스의 ‘공인과 사인’의 문제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은 법과 일체가 됨으로써 자유롭다고 하는 그리스적 법사상을 소크라테스도 신봉했다. 그것이 어떤 정의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지던, 국법에 대해 개개 시민의 저항이 허락된다면 그것은 국법 자체의 파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테나이의 국법이 시민에게 다른 폴리스로의 이주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근원적인 구속이 거기에서 생겨 시민과 국법 사이에 실제 존재한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 다만, 국법과 시민의 일체성을 강조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는 진정한 정치술(즉 영혼의 정화)은 폴리스의 공적인 일에 종사하기보다, 오히려 개개 시민과의 사적인 대화에 의해 달성된다고 하는 현실정치와 덕(탁월성)의 함양과의 사이의 긴장관계를 파악하려는 사고였지 않나 싶다.

더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공과 사’를 근대사고의 틀에서 보면 안 된다는 점이다. 사쿠라이 마리코는 공적(데모시오스)인 영역과 사적(이디오스)인 영역 외에 ‘코이노스’의 영역이 있음을 지적하고, ‘공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데모시오스와 코이노스의 두 종류가 있었다는 것’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한 ‘사적인 대화’의 장은 바로 ‘코이노스’의 영역이었다. “코이노스의 영역은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집합활동을 하는 그룹이 공유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민뿐만 아니라 재류 외국인과 노예, 여성 등 아테나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구성하는 생활의 장, 즉 주민 사이의 다양한 교류,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폴리스적) 공간도, 오이코스(집)에 해당하는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한 것은 이러한 코이노스의 영역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는 아고라에서 열렸지만, 아고라는 ‘코이노스’라는 ‘공’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가라타니는 소크라테스를 ‘이소노미아’와 결부시켜 허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철학의 기원’에 대해 무엇을 밝혔는가. 유감스럽게도 ‘이소노미아’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역설적으로 『철학의 기원』은 ‘이소노미아’나 ‘통치 자체의 폐기’을 애타게 사모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새삼 가르쳐 주었다. 우리의 현실은 비참한 사건으로 넘쳐나지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이소노미아’로 일탈하는 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어려움 그 속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 아래의 링크에 <자신이 쓴 글인 양> 누군가가 올려 놨다가 최근 문제가 불거지면서 삭제됐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06916

출처를 밝히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왜 삭제했는지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출처를 안 밝히는 것이 삭제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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