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공화국의 종언


우리는 언제부터 노예가 됐나

 

 

債務共和国の終焉 

 

 

이치다 요시히코오우지 겐타,

고이즈미 요시유키나가하라 유타카


2013년 9월 30일 초판발행



목차

1경제를 둘러싼 현재

1. 심리 전쟁이 된 경제

2. 경제적인 것의 <신체>

3. 금융-채무혁명

 

2. 세계공화국

1. 지속을 요구하는 공화국

2. 문화 좌파에서 공공성 좌파로

3. 유럽 공화국의 출현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5.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

 

3렌트 자본주의

1. 렌트에 의한 생산의 침식

2. 렌트/스톡 원리론

(1) <()>, 렌트스톡

(2) 화폐순환

(3) 이윤의 재정의

3. 렌트에 의한 채무의 확대혹은 투자의 행방

4. 희소성을 둘러싼 역전과 파산관리의 소비에트

 

후기 이치다 요시히코

 

본문 속의 외국어 문헌 중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 문헌에 관해서는 번역서의 쪽수를 주에 붙였으나 번역문은 적절하게 변경했다.


2. 세계공화국

4. 민주주의의 병과 공화주의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라!보다 약 8년 전에, 하버마스는 유럽을 둘러싼 또 다른 인상 깊은 정치문서를 발표했다. 인상 깊음의 절반은 그가 초고를 쓴 그 우리의 전후 부흥 : 유럽의 재생(20035)에서, 그와 오랜 논적이었던 자크 데리다가 공저자로서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 있지만(데리다가 초안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로 건강문제에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의 눈에서 볼 때, 이 문서는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라!와의 거리에 있어서야말로 인상 깊다. 정치 문서의 안목으로서의 상황적 주장을 비교했을 때, 정반대의 것을 호소하고 있다. 2011년의 문서에 관해서는 이미 봤던 대로이다. 국민투표가 타국의 정치가의 압력에 의해 중지됐고, 그리스인은 주권을 행사할 기회를 빼앗겼다. , EU의 상황은 주권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다.

이에 대해 2003년의 문서는 주권이 EU를 재생이 필요할 정도로 빈사瀕死의 상태에 사로잡혔다는 진단을 기조로 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스페인의 총리가 독주하여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와 가담을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내심 전쟁에 흥미를 가지고 기웃거리던정부들의 등을 떠밀고, ‘불량배불량배의 전쟁에 EU 전체를 끌어들인 데에 있다. 그 표명은 유럽의 공동 외교를 좌절에 몰아넣고, 매파 미국과 비둘기기파 유럽, 신적인 칼과 인도주의의 윤리적으로 허용하기 힘든 일련의 분업체제를 완성시켰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했을 거라던) 주권, 미국의 (전쟁 개시 결단을 내린) 주권, 스페인의 (누구에게 정의가 있는가, 누구를 퇴장시켜야 하는가를 선택하고 그것을 표명하는) 주권을 앞두고, “차이들을 승인하는 것, 타자를 그 타자성에 있어서 서로 승인하는 것정체성/동일성이라고 해야 하며, “유럽적 공공성은 패배했다. “국가폭력의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수준에서도, 주권의 행동 범위를 상호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EU의 간주권적 통치원리는 일국의 총리의 배반 이것도 주권의 행사일 것이다 때문에 좌절한 것이다. 그래서 전후에 기대를 걸었던 재생의 호소이다.

데리다가 좀 더 살았더라면(2004년 사망), 이 대조contrast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가 서명한 2003년의 공동문서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거의 무게를 갖지 않았으나, 차이나 타자성을 승인하는 것, 그리고 간주권적 통치를 이 문서의 민주주의개념으로 간주한다고 본다면(그렇게 봐도 나쁜 이유가 데리다에게 있을까), 그 대답은 생전의 저작에서 충분하게 추측하여 헤아릴 수 있다. 2002년의 불량배들이다. 거기서는 민주주의가 깊은 자기면역성의 병을 앓고 있다고 간주됐다(앞의 책, 3. 민주제의 타자, 대신하다 : 대체와 교체). 이를 테면,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기 파괴적, 자살적이다 등등. 예를 들어,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의 승리를 눈앞에 둔 선거과정을 군부가 정지시킨 알제리. 정지시키지 않으면, 알제리의 민주주의는 확실하게 하나의 끝을 맞이했을 것이다. 정지는 실제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선거과정의 정지는 민주주의의 정지이다. 게다가 이라크. 불량국가를 쫓아내지 않으면 중동에 민주주의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력 공격을 받지도 않은 국가들이 하나의 주권국가에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주권국가 간의 민주주의에 반한다.

EU를 둘러싼 두 개의 정치문서를 염두에 두면서,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을 패러프레이즈해보자. 주권자를 실정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그 주권자가 누구든 민주주의이며, 데모스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는 지고적인 지배권으로서의 주권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만 하나의 통치 이념일 수 있다. , 주권이란 민주주의의 자기일 것이다. 그 주권이 민주주의의 타자가 되어 버린 사태를 두 개의 문서가 보여주는 대조contrast는 부각시키고 있다. 맨 먼저, 주권과의 일체성으로부터 우리를 주권적 공공성으로 조금 떼어낸 민주주의는 주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2003). 그 다음으로,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그 민주주의가, 바로 간주권적 공공성의 이름으로, 주권의 공격에 착수하는 것이다(2011). 하버마스적 어휘인 간주권적 통치나 그것에 일치하는 개념으로서 사용되는 공공성불량배들의 데리다는 이렇게 표현한다. “보편적인, 심지어 국민국가적 구조로부터 독립한 민주주의의 이런 세계정치적(=코스모폴리탄적인) 차원”(강조는 인용자). 두 사람의 어휘가 이렇게 상통한다고 상정해야만 2003년 문서에 데리다가 서명한 것을 납득할 수 있다(이 상통으로부터 무엇을 독해할 수 있는가는 나중에 보자). 아무튼 주권과 민주주의의 분리는 아무리 민주주의 개념을 주권 개념에 구속되지 않는 차이나 타자의 승인으로 확장하더라도 이는 자기자기의 분리에 다름 아니며, 그 확장 자체에 의해서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을 높여버릴 것이다. ‘민주주의의 타자란 우선 민주주의의 자기라는 것을 주권으로부터의 민주주의의 해방은 깨닫게 해줄 것이다. 시민사회의 수세기 동안의 역사적 성숙과, 홀로코스트를 정점으로 하는 그 비참한 이면(裏面)이 가능케 하고 또 요구하기도 한 민주주의 개념의 확장, 주권을 넘어선 지평으로의 그 이동이, 민주주의에, 스스로 뿌리치고 달아났을 터인 과거의 제약, 이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했을 터인 뿌리를 썩게 하고, 스스로를 공동화(空洞化)시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2011년의 문서는 비통한 외침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자!” 에 의해 증언하고 있다. 불량배들의 논리는 이런 진단을 이 문서에 내린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도마에 올린 베니 레비(목자의 살해)나 장-클로드 밀네르(민주주의적 유럽의 범죄적 경향), 혹은 앞 절에서 우리가 거론한 레지스 드브레 등의 논자들의 프랑스적 공화주의(주권주의적 공화주의)는 이런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에 대한 바로 면역 반응일 수도 있다. ‘자기면역성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그 자체를 타자화해버리는 것이다. ‘공화국의 타자로 말이다. 그들은 전체주의자나 신권정치의 옹호자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본질적인 민주주의자로서, 공공정신을 시들게 하고 사적 개인의 사회생활의 양식으로 전락한 민주주의의 현재를 증오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본질적인 민주주의에 공화주의의 이름을 준다는 공통성에 의해 하나의 사상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토크빌 이후의 민주주의 비판을 프랑스 혁명의 옹호 요체는 프랑스의 과거와 현재의 옹호 와 공존시키는 특수한 프랑스적 이데올로기이다. 데리다에게 자기면역성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결함 본성적 역설paradox 에 불과하지만, ‘불량배이라크를 처벌하고 쫓아내려고 하는 미국도 불량배라고 간주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한에서, 역설은 자기파괴 경향뿐 아니라 재생의 계기도 포함했다. 두 사람의 불량배는 모두 민주주의의 자기라고 하는, 견딜 수 없는 현황 인식의 그 견딜 수 없음은 자기의 내부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전쟁은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허용하기 힘든 분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도 또한 자기면역적 반응이며(타인의 전쟁이라면 방치해두면 된다, 어처구니없다고 한탄할 뿐이어도 된다), 바로 그것이 정의의 계기이라고 데리다는 자기를 완전히 타자화하여 문제를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하는 공화주의자들을 나무랐을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 우리가 이용했던 공화주의 개념의 특성을 세 가지 차이를 통해 더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우선 프랑스 이데올로기로서의 공화주의는 국가주권과 민주주의의 괴리에 대한 거부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는데, 우리의 공화주의 개념에는 원래 공화국의 주권이 필요 없다. 그것은 이미 봤듯이, 군주에게도 귀족에게도 민중에게도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체제의 개념이며, 주권이 아닌 현실권력 (real power) 사이의 차이, 경합, 모순을 집합체의 권력의 확장으로 변환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헌법에 주권 규정을 포함하지 않고서도, 원리적으로 얼마든지 State(=국가)를 연방에 환영하며 맞아들일 수 있는 미국은,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의 한 가지 모델일 것이다. United States를 하나의 주권국가로 만드는 것은 국제관계’(하버마스의 간주권적지평)일 뿐이다. 공화국의 내적 구성에 주권은 필요 없으며, “자유의 구성 Constitutio Libertatis”으로서의 공화국 헌법은 사회계약이 아닌 개인 간 동맹이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국가 간 조약과 마찬가지로 간주권적인 맹약이며, 맹약에 의해 성립된 사회에 개인이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특히 주권은 넘겨주지 않는 특수한 사회계약 경제인(호모 에코노미쿠스)들의 사회설립계약 같은 이다. 아무튼 주권과는 다른 지평에 서서, 혹은 그 지평으로 나가려고 하는 정치적 의지에 있어서,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는 데리다-하버마스가 말하는 민주주의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이 공통성을 좀 더 뒤쫓아보자. 데리다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이란, 정체로서의 민주주의(의회제)를 특징짓는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정체의 밑바탕에 있으며, 특정한 현재의 정체(군주정, 귀족적, 민주정), 그것에 대한 면역 반응으로서/에 의해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이다. 게다가 정체의 창설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적 과정의 일부를 이룰 것이다. 어떤 새로운 정체도, 민주주의의 자기인 주권자(국가 그 자체여도 신이어도 상관없다)의 이름에 의해, 현재의 정체에 의한 이 자기에 대한 공격에 맞선 방어=대항공격으로서 수립된다. 쿠데타조차도 근본적으로 정확하게는 근본에 있어서만 민주주의적이다. 이런 자기면역성이란, 우리의 용어법으로는, 세 정체 모두가 품고 있는 부패로의 경향이며, 또한 그 부패에 맞서는 이며, 정체의 순환을 출현시키는 정체 일반의, 혹은 정치라는 것의 본성적 위기에 다름없다. 자기면역성은 우리가 말하는 공화정체의 특성이기도 하다[주].

[주] 우정의 정치(1988-89년도의 데리다 세미나 기록을 정리한 저작. 鵜飼哲大西雅一郎松葉祥一 訳, みすず書房, 2003)에는 민주주의와 정체들의 관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약간 뉘앙스가 다른 서술이 있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은 각각 부친적 관계, 남자와 아내의 관계, 형제 사이의 관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그런 한에서는, 세 개의 관계 사이에는, 파생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적으로 정치적’(이것은 많은 경우 민주제적이라고 번역된다)은 형제 사이의 관계이며, “정치적인 것 그 자체, 형제애, 민주주의, 이것들 사이에 있는 상호적 포함 관계, -속적 관계는, 거의 동어반복적=동일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2, 九頁)라고 말한다. , ‘정치적인 것 그 자체는 민주주의적이며, 세 정체의 구별은 (근원적?) 민주주의에 선행한다고도 읽을 수 있다. 데리다에게서, 이윽고 형제 간의 관계에, ‘자기면역성이 발견될 수 있을까? 형제들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혈육 간의 싸움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일까

그러나 데리다에게 자기면역성은 결코 그 자체의 정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자기면역적 과정차연의 운동의 하나로 여겨지며, ‘도래할 민주주의가 결코 미래의 현재의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신체 corps’를 갖는 것이 아니다. ‘자기면역성은 항상 도래할것에 머무는 민주주의()바닥 그 자체이며, 정치에 있어서의 시간(‘시대’)과 공간(각 정체)의 차이를 산출하면서, 그 차이 속에 ()장소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본질주의는, 근대에 있어서는 특히 마키아벨리가 정치 노선화한 현실의 공화주의를 무시하지 않을까? 또한 삼권분립의 사상조차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닐까? 마키아벨리는 데리다 식으로 바꿔 말한다면, 세 정체 각각의 부패경향을 상호적으로 공격시키는 자기면역시스템으로 공화국을 구상한 것이다. 그것은 로마에서조차 자기파괴했듯이, ‘자기면역성의 병인 부패로부터 쾌유할 수는 없으나, 민주주의의 자기면역성이 재생의 계기를 간직하고 있었듯이, ‘부패에 맞서는 도 또한 갖추고 있으며(‘부패 부패에 다름 아니다), 그 혼합정체는 부패의 상호공격을 의 생산시스템으로 변환하려고 한다. 공화국의 확장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민주주의의 자기 면역 과정에 끝이 없듯이, 공화국은 지속한다. ‘도래할 민주주의가 결코 현실화되지 않듯이, 공화국의 확장에는 목적goal이 없으며, 확장의 지속 속에서만 부패를 능가한다. 목표goal가 없는 것은, 반드시 언젠가 우연의 앞을 가로막으며, 확장 과정을 어디선가 자기파괴 과정으로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마키아벨리적 공화국은,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것을 받아들인, 뒤집어보면 도래할 민주주의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기파괴’-‘부패재생’-‘의 균형 시스템이다. 근대의 삼권분립은 그 후계였을 것이다.

즉 우리의 공화주의는 데리다의 민주주의도래할 민주주의자기면역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둘 다 와 달리, 정체로서 실재한다. 뭐랄까, 우리는 어디까지나 실재하는 시스템을 공화주의의 이름에 의해 규정(identification)했다. 이것이 두 번째 차이이다. 이 공화주의는 그러므로, 그 점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데리다와 프랑스적 공화주의 둘 다에 대해 거리를 취하려고 하는 랑시에르의 제비뽑기노선과도 다르다. “아무나=누구든 좋은 누군가 le n’importe qui”가 정치를 담당하는, 이 플라톤에서 유래한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와도 다르다. 세 번째 차이이다. 플라톤은 그런 체제가 실현되면 자유와 존엄을 깨달은 말[]이나 당나귀가 길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닥치게 된다고 하는 이유로 그것을 배척했다. 즉 플라톤에게 제비뽑기민주주의는 단적으로 정치 질서 랑시에르는 그것을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라고 부르는데 의 부재이며, 랑시에르는 이 아나르시アナルシ=무질서를 하나의 긍정성으로 뒤집어버리고,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와 비슷한, 결코 미래의 현재의 민주주의가 되지 않는 체제로 위치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는 어디까지나, 역사상 거의 어디에서도 있으며 그리고 언제든 있는 n’importe où et n’importe quand 체제의 호칭이다. 랑시에르의 제비뽑기민주주의는 주권의 거처를 둘러싼 고찰 끝에 주권을 삭제하지도 않고 특정한 어딘가에 존속시키지도 않는, 더 정확하게는 주권의 존재와 부재를 균형 혹은 일치시키는 체제이며, 그 있을 수 없는 도래 가능성에 의해 도래할 민주주의의 일종이며, 또한 그 부정적 보편성, 보편적 부정성에 의해, 민주주의와 주권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프랑스적 공화주의의 일종 또는 극한(limit)를 형성한다. 프랑스적 공화주의가 일치의 순수한 긍정성=실정성을 추구하는 반면, 랑시에르의 공화주의는 똑같은 일치를, 데리다의 자기면역성과 마찬가지로, 바닥 없는 바닥에 두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 이른바 그 평범함, 흔해빠진 착상에 있어서 강력한 사상이며, 주권 개념이 데리다-랑시에르-프랑스적 공화주의를 하나의 에피스테메로 결합시키고 있다고 한다면, 있는지 없는지를 포함해, 주권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온 또 다른 에피스테메를 이룬다. 그것은 주권을 아무래도 좋은것으로 한다는 문제 관심에 의해서 정체의 제도를 실제로 설계해온 에피스테메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정치적으로 봐서, 어디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일까? 어디까지나 주권을 자기로 하는 민주주의의 추구와, 주권의 보류에 의해 성립하는 공화주의를 가상의 적으로 하는 노선은 어디에서 갈라지는 것일까? 그것은 자명하지 않다. 그런 공화주의에 대해서, ‘도래할 민주주의노선에 더 저항한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콕이 꼼꼼하게 계보를 추적하고, 네그리가 그것을 전제로 그의 구성적 권력의 개념사를 그려낸, 근대의 공화주의는 마키아벨리적 계기로서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게다가 미국으로 계승되며, 지정학적으로는 오늘날 세계정치에 있어서 앵글로색슨 동맹의 확장을 요구하는 커먼웰스에 사상적 주형[거푸집]을 계속 제공하고 있으며, 전지구적 자본주의노선에 대해,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우고, EU에 기대를 걸면서 저항하는 자세는 현대의 양식을 거의 대표하고 있다는 감이 있다. 그것은, 얼마간의 효과를 낳는다고 하는 의미에서는 분명히 객관적인 대항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진행 중인 투쟁의 귀추를 전망하기에는 너무 빠른 감도 있다. 예를 들어 아랍의 봄에는 민주주의파의 승리라고 정리해버릴 수 없는 요인이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그것은 반란의 전지구화라고도 불러야 할 과정 속에 있으며, 과정을 가속시키고, ‘주권원리의 세계적 후퇴를 우리에게 고한 것이다. 그래도 이라크 전쟁과 그리스 위기 후에도 아직, 하버마스를 필두로 하여 EU간주권적 통치를 체념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이라크로부터의 철수를 단적인 특징으로 하는, 공화국의 군사적 확장노선의 분명한 후퇴 경향에 동반된 이 대립축은 점점 더 많은 기대를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물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민주주의공화주의에 대한 유효한 맞수(counter)가 될까? 대립축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효과들은 당사자가 기대하는 그대로일까? 우리가 민주주의의 존엄을 구하자!”라는 정치 문서에서 간파한 것은, 채무 문제가 양자의 차이를 실질적으로 소거하고 있다는, 기대와는 거꾸로 나아가는 경향에 다름 아니다. 본서가 무엇보다도 경제를 문제 삼는 까닭도, 똑같은 질문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경제로 한걸음 더 내딛기 전에, 1993년에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도래할 민주주의노선이 어떻게 되어 왔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 선수로 하는 민주주의’ vs 영미가 인솔하는 공화주의라는 도식이 형태를 이루는 데에는 맑스의 유령들이 적잖은 역할을 해 왔을 터이다. “우리는 오늘날 모두 사회주의자이다라고 주류 언론이 말할 정도로. ‘도래할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주권국가를 광신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공화주의와 확장을 요구하는 커먼웰스”(전지구적 자본주의) 양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입장을 사상적으로 지목했을 것이다. ‘경제라는 바닥을 참조하여 그 파탄을 주장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유하게 정치적인 수준에서, 혹은 간주권적이고 세계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미 20년의 역사를 지닌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현재가 어떤지는 확인해 두어야 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Multitude/Solitude

: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네그리, 포콕, 알튀세르

우지 켄다(王寺賢太, 사회사상사·프랑스문학)

현대사상, 20137월 특집호, 129-143頁(각주는 생략했다)



국가를 세우려면 혼자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

공산주의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알튀세르

 

시대착오적인 사상사가 : 구성적 권력vs 마키아벨리적 모멘트

구성적 권력 : 근대성의 대안들에 관한 논고(Le pouvoir constituant : Essai sur les alternatives de la modernité)(1992)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뿌리 깊게 시대착오적인 사상가이다. 소련 붕괴의 이듬해, 역사의 종언이 운운되는 포스트모던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마키아벨리에서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정치사상사를 다시 말하고, 그것을 결코 끝나지 않는 혁명 사상의 계보로 제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지하듯이, 네그리는 이 책에서 구성된 권력에 대해 구성하는 권력편에 서서, 근대사에는 구성하는 권력과 그 주체인 다중이 편재한다고 주장한다. 네그리가 혁명을 어쩔 수 없이 수렴収束시키는 인과의 계열에 역공을 가하면서, 되풀이하여 혁명의 사전(事前)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구성적 권력의 사상사가에게 특유한 시대착오가 있다. 종종 과감한 단정이나 무리가 추론에 의해 이뤄지는 이 시대착오를 파악하고, 네그리의 작업이 지닌 결점을 들춰내는 일은 쉽다. 다만 그 때에는 역사가가 사후로부터, 객관적으로 역사를 말하려고 할수록 역사, 혹은 시간의 어떤 차원이 간과된다는 것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그리의 시대착오는 바로 그런 차원, 인간 주체가 그 안에서 존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역사시간의 창조적인 차원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이다. 1990년대, 어디까지나 시대착오적이었던 구성적 권력의 사상사가가, 2000년대에 반-전지구화 운동의 사상가로 일약 시대의 인물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구성적 권력맑스를 넘어선 맑스(1978)와 스피노자론인 야생의 아노말리(1981)를 이어받아 네그리 개인의 작업의 집대성을 이루며, 2000년대에 연달아 간행된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 제국3부작의 현대정치경제론을 예고하는 전회점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 중심에 놓인 구성적 권력이나 다중이라는 개념이 스피노자에 관한 정치적 독해로부터 도출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구성적 권력에서 제국이후의 연결을 나타내는 것은 네그리/하트의 가장 논쟁적인 개념인 제국이며, 다중에서 <제국>의 정치적 재편성의 도식을 제공하는 일자소수자다수자로 구성된 폴리비오스적 혼합정체론이며, 공통체에서 제창되는 소유 없는 공화국공화국개념이다. 왜냐하면 구성적 권력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발단하고, 마키아벨리를 거쳐 근대 초기의 대서양 양안에 계승된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근대혁명사상의 계보로 고쳐 읽은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 네그리에게 최대의 참조항은 마키아벨리적 모멘트(1976)J. G. A. 포콕이다. 근대 초기의 유럽과 미국에서, 공공선의 실현에 헌신하는 시민의 멸사봉공의 군사적·정치적 에토스 에서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보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며, 공화국의 통일을 방어하는 시민의 ,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공화국의 통일을 위협하는 운명사이의 대립도식으로부터 역사주의의 생성을 묘사해낸 정치사상사가이다. 여기서 역사주의는 역사의 운동에 인간의 활동을 관여시키고, 역사 자체를 새로운 가치나 규범을 산출하는 것으로 그려내는 시도를 가리킨다.

실제로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에서, 포콕을 좇아, 16세기 피렌체의 마키아벨리로부터 청교도혁명기 잉글랜드의 해링턴을 거쳐, 미국독립혁명의 이데올로그들까지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따라간 후, 그것에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관한 사상사적 분석을 접목하고 있다. 포콕에 의한 고전적 공화주의 재고가 자연법론과 계약론의 계보를 중시하는 서구정치사상사에서 법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이의제기인 한, 이미 스피노자론에서 -법제주의를 선명하게 했던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적 모멘트에서 큰 자극을 받은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원래 17세기 네덜란드의 공화주의자 스피노자의 정치적 구성 la constitution”의 논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론에서 헌법제정권력 le pouvoir constituant”을 법학적인 틀로부터 뽑아내어, 정치체를 구성하는 다중의 힘으로서 위치시킨 후에, 네그리는 포콕에 의거하면서, 구성적 권력을 근대혁명사상의 계보에 부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히려 포콕과 네그리의 차이일 것이다. 그 차이는 미국독립선언혁명으로 책을 닫는 마키아벨리적 모멘트대서양적인 전망과 러시아 혁명을 시야에 넣은 구성적 권력대륙적인 전망을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분명해진다. 그 차이는 아렌트의 혁명론이 말하는 정치혁명사회혁명의 계보의 차이이기도 하다. 원래 운명에 대한 의 되풀이되는 패배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역사주의에 근거한 보수주의를 표방하게 되는 포콕과 의 에토스를 본성상 끝나지 않는 혁명의 잠재력에 결부시키는 네그리는 정치적 입장이 전적으로 다르다. 이하에서는 구성적 권력에서 전개되는 마키아벨리론에 초점을 맞추서 네그리가 얼마나 포콕을 뒤따르면서도 포콕과 갈라서는가를 밝히고 싶다. 이 두 사람에게 마키아벨리는 각각의 책 전체의 테마를 단숨에 제시하는 사상가이며, 그곳에서는 모두 시간과의 관계에서 의 정치학이 문제가 되는 이상, 네그리의 근대혁명 사상사의 특이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것보다 더 나은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우리는 또 한 명, 네그리의 시대착오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어떤 철학자를 언급하게 될 것이다. 1990, 네그리가 책임 편집자 중 한 명이던 잡지 전미래의 창간호에 게재된 마키아벨리의 고독 La solitude de Machiavel의 저자 루이 알튀세르이다. 아이러니한 공화주의의 역사가와, 고독 속에서 죽음의 침대에 있었던 맑스주의 철학자 사이에서, 바닥없이 낙관주의적으로도 비치는 다중 la multitude’의 사상가가 스스로 껴안으려고 한 고독을 분명히 밝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본고의 목표이다.

 

변동의 정치학 : 정치이론가의 탄생

덕과 운명 : 마키아벨리적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의 구성적 권력의 마키아벨리론의 중심에는 군주론로마사논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놓여 있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마키아벨리 해석사에서의 큰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했다. 한편으로, “이탈리아적 전통을 이어받은 자는 마키아벨리즘책으로 유명한 군주론을 특권시하고, 이 책에서 획득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개념이 마키아벨리의 전체 저작을 지배한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이탈리아적 전통에는 데 산크티스(Francesco de Sanctis)부터 그람시를 거쳐 트론티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그 끄트머리에는 그람시를 토대로 하면서 군주론의 저작을 국민국가시작의 사상가로 위치시킨 알튀세르도 연이어 있다. 다른 한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소재로 공화국론을 전개하는 로마사논고를 중시한 영미의 연구자들은 이 책의 공화주의를 마키아멜리의 중심적 사상으로 평가하면서, 군주론을 이론적으로 애매한 상황적 산물로 간주한다. 이런 연구자들 중 최대 거물이 포콕이다. 즉 네그리에게 군주론로마사 논고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알튀세르와 포콕 사이에서 마키아벨리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에 다름없으며, 그 반대도 또한 참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네그리가 갑작스럽게 이 커다란 문제에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일단 군주론이전,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 시절까지로 소급해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이론적 경력을 하나하나 추적해간다는 점이다. 게다가 네그리는 로마사 논고이후, 피렌체사를 필두로 하는 후기의 저작에 대해서도 논급하기 때문에, 이 마키아벨리론은 마치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에 대한 응축된 이론적 전기(biography)의 양상을 띤다. 알튀세르에게서도 포콕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에 대한 이런 관심을 통해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처럼 우뚝 일어서고 부서지며, 재차 더욱 강고하게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다.

 

잰 걸음의 태양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표면을 이미 1494번이나 돌았네. / 그 이후, 서로 다투던 이탈리아는 프랑스인들에게 문을 열었고, 야만인들에게 짓밟히는 고통을 겪었다네.

 

마키아벨리의 10년사(1504)에서 인용한 이 문장을 네그리는 자신의 마키아벨리론의 첫머리에 둔다. 1494년 프랑스군 침공에 직면해 용병으로 맞선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맥없이 패배했다는 것을 전하는 구절이다. 그것을 계기로 시작된 11차에 걸친 이탈리아 전쟁은 유럽에 프랑스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한 세력균형의 체계를 산출하고, 이탈리아의 공화국들로부터 알프스 북부에서 할거[거점을 두고 활동]한 군주정 국가로 결정적으로 패권을 이행시켰다. 이 사건이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과 신대륙발견(1492)과 더불어, 근대 유럽의 기점으로 지목된 것도 그 때문이다. 포콕은 이미,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가 일단 붕괴한 1494년부터 근대 공화주의 사상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그리에게 이 날짜는 단순히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정치상황의 변화의 지표가 아니라 근대의 가장 근원적인 소여가 개시된 날짜이다. 그 주어진 이름이 바로 변동[변전] mutatio’이다. 10년사의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 이후에 변동의 시작을 돌이켜봤듯이, 네그리는 근대의 끝에서부터 근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거기에서 변동을 찾아내고 있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결코 변동을 소여로서 찾아낸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미 외교관 시절의 제언에서, 그는 무력양식(良識)’의 종합에 정치적 변동을 관장하는 활동적 원리가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관찰의 대상이든 활동의 대상이든, 거기서는 변동이 주체에 대립하는 객체에 머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더 중요한 한 걸음은, 주객의 대립 이전의 차원에서 변동을 파악하고, 주체의 활동을 변동과 일치시키고, ‘변동그 자체를 통째로 주체화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네그리가 자연주의적 지평으로부터 역사적 구조로라고 부르는 이 이행과 더불어, “변동은 인간이 그 내부에서 활동하고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된 현실을 돌파해서는 새로운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박동에 의해 획기화된 역동적인 과정이 된다. 피렌체에서, 혹은 신성 로마 제국이나 프랑스 왕국의 궁정에서, 역사적 회고를 감안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현실을 분석하고, 그 장래를 점쳤을 때, 마키아벨리는 이미 변동그 자체, ‘시간그 자체에 구성하는 권력이 내재한다는 입장을 붙잡으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키아벨리가 이 역사의 역동성을 제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긴 과정을 경과해야 했으며, ‘생명의 철학같은 역사주의로 마키아벨리의 정치가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긴장의 누적이며, 폭발의 기대이며, 기성 질서와 균형의 파탄으로 향하는 잠재력을 품고 있는 중층적 결정의 힘이 존재자 하에서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그런 중층적 결정의 힘 = 위로부터의 결정의 힘 la surdétermination”을 체현하는 군주의 정치기술을, 1502년부터 1504년에 걸쳐 체류한 체사레 보르자의 궁정에서 목격했다. 시간 속에서 비롯되고 변동하는 상황 속에서 호기(好機)를 붙잡고, 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그 기술 , ‘운명에 맞서는 의 관찰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또한, 관습에 의한 것도 계약에 의한 것도 아니라 활동 그 자체에 입각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새로운 주권의 개념을 품게 된다.

그러나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에게 한층 더 중요한 전기(轉機)라고 생각하는 것은 1503년의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이었다. 그의 아버지교황 알렉상드르 6세 사후, 우유부단을 드러내고, 순식간에 상황이 그를 앞질러간 자신의 영웅의 모습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있어서의 의지주체적 기투의 중요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는 역사적 시간을 내면화하고, 인간적 시간에 통합하고, 공공연하게 드러난 잠재력을 특이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관찰자이기를 그만두고, 이탈리아의 종속상태를 타개하는 길을 물색한다. 정치이론가로서든, 스스로 활동의 주체로서,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본 잠재력을 제 것으로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권력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구성적 주체로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탐구는 1512, 스페인군의 이탈리아 침공에 뒤이어 피렌체의 공화적 정부가 붕괴하고 메디치가가 권력에 복귀하는 것과 더불어 훨씬 절박해졌다. 마키아벨리 자신은 궁정에서 쫓겨나고, 투옥의 쓰라림과 조우한 이 위기적 상황 속에서 씨름했는데, 우선 공화국의 책』 ― 『로마사 논고』 ― 을 썼고, 이어서 투옥 이후, 공화국의 책을 중단하고 쓰게 된 군주론이었다, 이렇게 네그리는 단정한다. 이리하여 군주론객관적인 한계와 주관적인 절망의 특이성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지어진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이 우리의 시야에 부상하는 것이다.

 

구성적 원리의 고독 : 군주론

군주론을 논하는 데 있어서 네그리는 맨 처음에,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la principauté”가 폴리비오스 식의 정체 분류론에서 말하는 군주정귀족정도 아니고, 따라서 공화국의 책이 다루는 공화국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새로운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고찰은 변동을 위로부터 결정하는 역사적 주체”, 혹은 변동을 위로부터 결정하는 원리에 바쳐지고 있다. 네그리에게 군주론구성적 원리의 책이며, 정치체를 정치체로서 구성하는 기초조건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론적책인 것이다.

하기야 이 해석 자체가 반드시 네그리의 독자적인 것만은 아닐 터이다. ‘새로운 군주에 대한 논의를, 활동 그 자체에 의해 정당성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정치적 혁신자에 대한 고찰로 위치시키는 포콕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국민적 국가의 시작을 사고한 책으로 위치시키는 알튀세르도, 그다지 다른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렌트도 서양 근대에서 최초로 국가의 창설을 사고한 인물로 마키아벨리를 위치시켰다. 그러나 이 구성적 원리의 급진성을 평가하면서 네그리가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군주론에 내포된 아포리아이며, 실천적인 불능(不能)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능을 지적할 때에, 네그리가 참조를 요구하는 것이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다.

 

이 원리가 지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론적 깊이를 부정하려고 한다든가, 그 고독과 기투의 반전이 얼마나 강력한 삶의 원천을 나타내는가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주는 여기에 붙는다]. 그러나 존재론적인 혁신은 귀결의 공허 위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나 그 때문에 절망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실제,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원리는 여기에서 전복적이며, 전복적인 로 머문다. 그의 사고의 운동은 적대의 운동이지 경향의 운동이 아니며, 위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해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혹은 그 해결을 찾아내려고 해도 미리 그것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에게서 마키아벨리의 고독과 기투의 반전은, 혹은 (훗날 출판된 마키아벨리와 우리에 입각해 말한다면) 실천적·이론적인 불능역능의 교착은, 그가 자기 스스로는 해결 불가능한 물음을 제기한 점에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달성[성취]된 사실로서의 국가의 정당성을 묻는 근대의 모든 정치철학자들과 갈라서며, ‘고독속에서, “성취[달성]되어야 할 사실로서의 국가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조건을 사고했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의 시작의 불가능성과 더불어, 시작에 있어서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효(実効)적인 힘을 폭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말투는 충분히 알고 있기에, 네그리는 이렇게 매우 알튀세르적인 반전에 그치려고 하지 않는다. ‘역능 = 잠재력 la puissance’다중 la multitude’의 사상가 네그리에게 알튀세르의 불능 l’impuissance’고독 la solitude’은 너무도 관념적으로 비쳤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그때, 네그리의 유물론이 시간과의 관계에서 정의된다는 것이다. 군주론에는 전복의 운동만 있으며 경향의 운동이 결여되어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위기를 인식하면서 해결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구성적 원리가 시간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으며, 마키아벨리의 고독이 무엇보다도 역사적 과정으로부터의 고립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알튀세르와 네그리의 관계와 관련된 한, 사태는 조금 복잡하다. ‘역능불능, 혹은 고독다중, 구성적 권력에 있어서도 또한,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끊임없이 반전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네그리에게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그리는 마키아벨리론의 말미에서 다시 알튀세르를 호출하고, 마키아벨리의 고독에 성원을 보내게 되는데, 그 마지막 반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제 잠시 동안 네그리의 논의를 추적해야 한다.

일단 군주론의 한계를 시간으로부터의 고립, 역사적 과정으로부터의 고립에 견줘본 뒤에, 네그리는 이 책의 존재론적 깊이와 실천적인 불능의 교착을 더욱 파고들어 검토한다. 그때 네그리가 우선 주의하는 것은 구성적 원리와 군사력의 연결이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새로운 군주의 국가는 무엇보다도 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은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구성적 원리무장한 덕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마키아벨리에게서의 군사력 문제에 대해서 아렌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네그리는 그것을 기피해야 할 정치적 폭력의 행사 문제로 파악하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시민은 스스로 무기를 취해 공화국을 방어하는 전사여야 한다는 주장에 고전적 공화주의의 한 가지 핵심을 인정한 포콕의 고찰이 똬리를 틀고 있음이 틀림없다. 실제로 포콕을 따라 말하면, 유럽의 군주정 국가가 국왕 상비군을 정비했던 시대에 시민의 민병조직에서 공화국의 자유의 요체를 본 마키아벨리의 관점으로, 근대주권국가에 의한 정당성 있는 폭력 행사의 독점”(베버)에 근본적인 이의를 들이는 현대적인 사정거리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그리는 이 구성적 원리와 군사력의 연결에서 마키아벨리의 한계를 간파한다. 정말로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에게서도 군사력의 문제는 단순한 폭력행사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군사력은 정치체를 조직화하고, 그 구성원의 을 함양하므로 평상시에도 국가의 구성의 역동성을 체현하기 때문이다.새로운 군주에게 이 절대적인 원리인 이상, 군사력이 절대화된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의 점에 있다. 무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군주를 위한 것인가, 인민을 위한 것인가?”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는 이 가장 긴요한 물음에 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 네그리는 민주정의 선택 그 자체의 포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네그리는 더 나아가 군주론의 인식론적 한계도 지적한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하고 덕이 높은 군주에게 구성적 원리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그 군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거기에서는 분명히, 힘이 인식을 낳고, 인식이 힘을 낳는다는 직관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새로운 군주는 단순히 국가의 저자일 뿐 아니라 논리와 언어의, 혹은 윤리와 법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다만, 체사레 보르자라고 생각되는 정치적 영웅을 모델로, 군주가 따라야 할 윤리적 규범을 역설하는 데 머문다. 그리고 이 윤리적 호소는 구성적 원리의 존재론적 차원 파고 들어갈수록 강조되고 공회전하게 되는 것이다.

강렬한 군사주의와 극단적인 주관주의 네그리가 군주론의 한계로 보고 있는 것은 네그리 자신도 포함한 70년대의 좌익운동의 조류들을 생각나게도 하는 그런 전복으로의 과격한 경도이다. 구성적 원리의 운동은, 흡사 체사레 보르자가 순식간에 몰락했듯이, 끊임없이 새로운 장애에 부딪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장애의 유래를 물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의 사고의 운동,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려고 더 한층 군사력과 주관성에 박차를 걸고, “전방으로의 도주를 결행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 하에서 실행되는 작전의 절대성 외에 기초를 갖지 않는 이 [구성적] 원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구성적 권력이란 모든 한계의 돌파이며, 결코 편히 쉬지 않는 의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네그리는 이 구성적 원리전방으로의 도주에 불모의 과격주의의 귀결을 보고 그것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전방으로의 도주에서 군주론의 중심적인 주제를 간파한다. ‘구성적 원리의 비극이라고도, ‘덕의 비극이라고도, ‘정치적인 것의 비극이라고도 불리는 주제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비극은 필연적이다.”구성적 원리가 자신의 활동에 의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하는 이상, 그 활동 자체는 창조되어야 할 가치의 직전에, 진위와 선악의 저편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그 활동은 항상 사후의 관점에서 판가름될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성적 원리는 항상 우연적인 상황에서 사물의 실효적인 원리”(마키아벨리)에 직면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원리의 활동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활동 그 자체를 배반하고, 되풀이되는 활동에 대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그리더러 말하게 하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다양한 상황을 열거하고, 지칠 줄 모르게 권모술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시도하면서, 항상 뜻대로는 안 되는 결과의 배신에 우롱당할 수밖에 없는, 이런 구성적 원리의 비극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네그리의 비극에 대한 고찰은, 틀림없이 마키아벨리적 모멘트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포콕은 이미, 군주론의 주제가, 부단한 행위의 연속에 의해 자기 정통화를 꾀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정치적 혁신자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행위가 항상 결과의 타율 행위의 결과가 바로 그 행위의 의도를 배반한다는 것 에 의해 아이러니컬하게 배반당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님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포콕에게 있어서 거기에, ‘운명을 앞에 둔 의 불행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 불행의 인식이야말로 정치질서의 정통화는 단기적인 혁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지속 속에서 관용에 의해 도모되는 것에 다름없다고 하는, 포콕의 역사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입장의 배경에 똬리를 틀고 있다. 아무래도 위대한 역사가에 어울리는 사후의 사상이다.

포콕과 더불어 구성적 원리의 위기를 눈여겨보면서, 네그리는 이 역사가의 비관주의를 단호하게 물리치려고 한다. 정말이지, 군주론의 말미에서 이나 자유의지에 의한 운명의 지배의 가능성이 역설되고, 도래할 새로운 군주에 이탈리아 재건의 꿈이 맡겨져 있다는 것을 보고, 네그리는 거기에서 마키아벨리의 막다른 골목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 비판은 을 단념하고, ‘구성적 원리를 포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네그리에게 있어서, 군주론에서는 구성적 원리절대성이 철저하게 추구되지 않고 끝나는 것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군사력이나 주관의 절대화 등에는 전혀 없다. 그와 반대로, 절대화가 불철저했다는 것, 그리고 운명에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구성적 원리가 시간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야말로 문제이다. 이리하여 군주론에서 로마사 논고로의 행적이, ‘구성적 원리의 심화의 과정으로서 독해된다. 마키아벨리는 고독의 사상가로부터 다중의 사상가로, 그리고 스피노자보다 훨씬 선구적으로 절대적 통치로서의 민주정의 사상가로 변모하는 것이다.

 

다중의 분리로부터 민주정의 구성으로 : 로마사논고

다만 네그리의 군주론로마사논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직선적 도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네그리에게서 군주론의 사정거리는, 로마사논고와의 상호관계에 놓여서 처음으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로마사논고의 사정거리도, 군주론이 가져온 질적인 비약없이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콕은 로마사논고에서의 로마를 여러 공화국들 중의 새로운 군주에 빗댔다. 네그리는 그 비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1512년부터 1513년에 쓴 군주론공화국의 책, 군주론이전에 기획되고, 일단 중단된 후에 1515년부터 1517년에 완성한 로마사논고의 생성과정 속에 다시 놓는 것이다.

당장 네그리는 로마사에서 소재를 취하는 로마사논고의 정치적 고찰이 고대를 모델로 하는 온갖 사고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서론에서 얘기되는 고대인의 범례는 인간 본성이나 정념에 대한 보편적인 사정거리를 가진 고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며, 마키아벨리는 이 정념론을 매개로, 역사 속에 주체를 우뚝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마사논고에서는, 경험론적인 동시에 규범적인 군주론의 인식론적 한계가 처음부터 돌파되는 것이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로마사논고1편에서 제시되는 마키아벨리의 정체론이, 폴리비오스적인 도식으로부터 이탈한다는 지적이다. 정말이지, 거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분류에 기초하여, 군주정에서 폭적, 폭정에서 귀족정과 과두정, 나아가 민주정과 무정부상태로의 순환이 얘기되고 있다. 또한 그 정체의 부패의 순환에 맞서는 최선의 정체로서, 로마공화국의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혼합정체의 우위조차 역설될 것이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렇게 계속한다.

 

그러나 [혼합정체의 분석에 있어서] 민주정 원리의 도입은 전적으로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바로 혁명이다. 왜냐하면 그 헌정은 혼합적인 한에서, 가장 완성된 공화국을 형성했다. 이 완성에 이른 것은 인민과 원로원의 분열 la désunion에 의해서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로부터 소요로 가득 찬 공화국이 생기고, 소요로부터 공화국에서의 자유를 방어하는 좋은 질서가 생긴다. 이리하여 로마사논고의 고명한 테제가 민주정의 원리의 도입과 결부되는 것이다. 다만 그때, 일반적으로는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균형에 기초한 헌정론의 틀을 돌파할 때까지 극화(劇化)시킨다. 그 결과, ‘la constitution’은 이제 헌정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구성의 문제로서 논해진다.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가 그 돌파를 수행하는 것이, 로마사논고117·18장이었다. “부패한 인민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는, 자유를 계속 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역설한 뒤, 또한 부패한 도시국가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정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가, 또한 자유로운 정체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에는 그것을 도입할 수 있는가라고 마키아벨리가 묻는 대목이다. 네그리는 거기에서, 폴리비오스적인 순환사관, 정체의 부패아 자유의 상실을 필연으로 보는 역사가의 비관주의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혐오를 읽어낸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공화국의 책을 중단하고, 군주론에 씨름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군주론은 이리하여 폴리비오스적인 비관주의를 토대로 하여 그것을 넘어서고, ‘부패와 자유의 상실을 필연적인 것으로 하는 순환사관을 거부하는 책으로서 재파악된다. 그때 동시에, ‘시간의 절단군주에 의한 위로부터의 결정이라는 군주론의 주제가, 역사 속의 주체의 활동의 계기를 강조하고, 그 주체의 구성 그 자체에 정치적 활동의 중심적 과제를 보는 입장과 결부되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군주론구성적 원리는 인민과 원로원 사이에서 발견된 분열을 극화하고,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균형론의 틀로부터 다수자=다중을 분리하여, ‘인민의 창설을 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몰랐던 구성적 원리가 인민이라는 신체를 획득하고, 민주정을 창조하기 위한 구성적 권력으로서 재정의된다. 그것과 더불어 구성적 권력의 주체는 인민 그 자체, 혹은 인민을 구성하려고 하는 다중그 자체가 된다. ‘군주는 이 구성의 원리=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사논고1편에 민주정으로의 지향을 확인한 후, 네그리는 2편의 을 둘러싼 고찰에 대해, 거기에서는 다중이야말로 의 집단적 주체로서 위치지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제 은 더 이상 단순히 운명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끊임없이 대치되는 장애를, ‘운명에 기대면서 극복하는 운동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덕은 산 노동이며, 생명에 대립하여 견고한 것으로 된 전통이나 권력을 조금씩 파괴할 수 있다.”, 혹은 구성적 권력다중이라는 집단적 주체와 더불어, 역사의 과정을 통해 현실화하는 경향의 운동, 혹은 자기 결정을 요구하는 투쟁이 된다. 여기에는 네그리에 의한 고전적 공화주의의 급진화가, 맑스를 넘어선 맑스의 도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혼합정체에 기초한 공화국의 통치체제가, 교환가치로 환원된 죽은 노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상품의 생산과 유통의 사이클에 비유되며, ‘다중이 영위하는 공동의 삶 그 자체가, 삶의 재생산을 자본의 재생산과정으로부터 점차 분리시키는 산 노동고유의 생산 사이클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구성적 권력, 민주정구성, 로마사논고3편의 과제로서 부상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과제는, “르네상스의 개혁을 목표로 하는, 어디까지나 근대적인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유를 가져다준 르네상스에 편승하면서, 특히 = 운명 la foritune’의 축적이 가져다준 나쁜 귀결에 맞서, ‘자유의 원리로 회귀하면서, ‘의 주체의 구성울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때, 네그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군사의 조직화를 통한 다중의 집단적 주체로서의 구성이다. 이제 무장한 덕은 공화국 내부의 조직화와 의 함양이라는 문제계에 명확하게 결부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네그리는 이미 민주정은 강하게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명제를 거론하면서, 이 민주정에서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을 갖고서 조국의 방어에 종사하는 인민 그 자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때, 인민의 구성 요건, 민주정적인 자유의 구성요건으로 간주되는 것이 평등이다. “다중이 부패하지 않는 도시국가에서는 모든 것을 기능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평등이 지배하는 도시국가에서는 군주국을 만들 수는 없으며, 평등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서는 공화국을 만들 수 없다.” 네그리에게 있어서는 이 고찰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민주정의 예언자로 위치시키는 것을 허용한 것이었다.

그 선행하는 논의를 계승하면서,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한 가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마사논고3편에서의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이후의 공화주의의 판에 박힌 정형화로부터 분리되고, ‘의 축적의 해악에 맞서 평등을 유지하고, 시민의 을 함양하고, 민주적인 공화국의 구성으로 향하는 정치=경제학의 효시로 위치지어진다. 네그리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가난의 정치=경제학이, 마키아벨리의 군사적 고찰을 정치적인 정념론에 접속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가난의 옹호는 공화국에서의 군사력 유지의 요구에 뿌리를 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가난이 가져다주는 은 자유를 요구하는 정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정념론에 정치적 구성에 대한 고찰의 요체를 간파했던 자신의 스피노자론과 평행하여, 정념의 정치에 대한 고찰에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권력론의 정점을 찾아낸다. 거기서 마키아벨리는 정념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념을 현실의 구축, 새로운 현실의 구축을 향해 해방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해방된 정념은 공화국 속에 소요를 산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념은 욕망사랑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 끊임없이 새로운 현실을 구성할 수 있다. 정념적 주체인 다중, 그 자체 유동적이고 시간적인 존재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타성[관성]이나 객관성과는 무관하게, 공화국을 위협하는 부패와 자유의 상실에, 부단한 재창설, 부단한 개혁을 갖고 맞설 수도 있다. ‘의 주체를 집단적인 것으로 하고, 그 집단적 주체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념적인 양상에 있어서 파악함으로써, 마키아벨리는 시간의 주체화를, 즉 민주적인 자기 통치의 과정으로서의 역사적 과정의 절대화를 철저하게 추진해나간다. 네그리에 따르면, 거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로마사논고117~18장에서 환기된 질적 비약의 도달점인 것이다.

위와 같은 분석을, 또 다시 포콕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포콕도 로마사논고순환을 피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완전히 균형을 이룬 정체를 어떻게 수립하는가라는 폴리비오스적인 문제설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지적한 뒤,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군주를 포함한 일체의 초월적인 차원의 개입 없이, 단지 우연적인 과정을 통해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논했기 때문이다. 포콕에게서는, 그런 인식이야말로 군주론이상으로 파괴적인 로마사논고의 핵심에 있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포콕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제국적 확대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 자기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유를 상실하게 된 로마공화국의 역사의 변천을, 그 특이한 헌정의 ()균형에 기초한 것으로서 분석하는 데 있으며, 원로원과 인민 사이의 분열도 군사-경제-정념-정치를 잇는 론의 분석도 이 점, 포콕의 분석은 분명히 네그리를 선취하고 있는데 그 헌정론·역사론의 틀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포콕이 집단적인 역사과정에 정치질서를 창조하고, 정통화하는 힘을 인정하더라도, 그 힘은 최종적으로 과거의 역사적 순환의 설명원리를 제공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포콕은 로마사논고에 공화주의적인 현양을 간파하기는커녕 오히려 로마의 길에는 최종적인 쇠퇴에 대한 보증은 없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근미래에 있어서는, 로마의 길은 더 현명하며, 더 영광으로 가득 찬 길이다라는 아이러니한 인식을 간파하게 됐다.

로마사논고론에서도 또한, 네그리가, 최종적으로 운명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의 불행을 내다보는 포콕의 고전적 공화주의론을 전도하고, 그 틀을 돌파하고, ‘구성적 권력에까지 철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네그리에게서, 마키아벨리는 결단코 역사철학자가 아니며, 정치적인 이론가=활동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네그리의 포콕에 대한 이런 관계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폴리비오스적인 균형론으로부터의 다중의 분리에 로마사논고의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을 인정한 네그리는, 동시에 그 마키아벨리의 논의가, 그람시가 말하듯이 민주적 결정의 주체형성으로 향하는지, 포콕이 보듯이 간신히 균형론의 틀 안에서의 다수자의 역할의 강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는 애매하다고 일부러 주석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유일한 해결의 길은 이런 애매함을 불식하는 것이 아니라 극화시키는 것이다.” 애매함의 극화는 단순히 공화주의적인 다수자=다중의 역할의 강조를 자의적으로 민주정의 구성으로 고쳐 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마, 고전적인 공화주의의 틀로부터 다중분리하고, 그 정치적 주체화를 도모하려고 하는 네그리의 시도에 내재하는 애매함이 시사되고 있는 것이다. 네그리가 그 애매함의 이론적·실천적인 사정거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겨냥한 고찰이다. 그리고 포콕도 알튀세르도 논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 저작의 독해를 통해서, 네그리는 다시 이 두 명의 선행자와 교착하게 된다.

 

다중과 고독 : 피렌체사

네그리는 이 피렌체사(1525-1527 완성), 군주론로마사논고를 거쳐 완전한 표현을 얻은 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의 책으로 위치시킨다. 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의 근간에는, ‘사물의 질서구성적 권력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고 하는 인식이 있으며, 그 인식은, 이미 본 듯한 시간의 주체화, 역사의 주체화의 귀결에 다름 아니다. 마키아벨 리가 정치적인 이론가=활동가라고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가 실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하고, 그 인식에 의해 새로운 실천의 가능성을 열고, 인식과 실천의 일치를 체현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더 나아가, 이런 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역사유물론이라고 바꿔 말한다. 로마나 아테네 이상으로 다수의 분열을 품고 있었던 피렌체의 공화국이, 바로 이 분열 그 자체를 동력으로서 발전을 이룩해왔다는 것을 강조할 때, 마키아벨리는 계급투쟁에 역사의 동력을 보는, 맑스적인 인식을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피렌체사의 해석에 있어서, 네그리는 다시금, 이 책의 구성 그 자체에 들어 있는 균열에 눈길을 머문다. 그 서문도 증언하고 있듯이, 마키아벨리는 당초 이 역사서를 1434년의 코지모 디 메디치의 개선(凱旋)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에서의 메디치가 지배의 획기(劃期) 에서부터 얘기했는데, 그 당초의 예정을 변경하고, 1434년까지의 피렌체사 서술에 몰두하게 됐다는 것이다. 피렌체사는 그것이 구성된후의 모습에 거스르며, “구성하는마키아벨리의 사고의 운동을 좇아 재독해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네그리는 우선 피렌체사후반부의 독해에 착수한다. 처음에 다뤄지는 것은, 이 후반부의 첫머리, 51장의 첫 구절이다. 마키아벨리는 거기에서, 질서에서 무질서로,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국가의 끊임없는 요동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사물의 끊임없는 동요에 빗대고, 그것을 덕의 성쇠의 순환과도 결부시켰다. 거기에서 폴리비오스적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적냄새를 맡는 네그리는 이 자연주의비관주의피렌체사의 출발점이 있다고 단정한다. 로마사논고에서 폴리비오스적인 순환사관으로부터 벗어나 다중분리구성으로 향했듯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도 또한, 이 회귀하는 비관주의내다보면서 이로부터 몸을 떼어내고 역사유물론의 정교화로 향하는 것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피렌체사후반부의 서두에는 마키아벨리의 자연주의, 의뢰주이기도 한 메디치가에 대한 예찬이 현저하게 간파된다. 서술이 기본적으로 연대기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연주의와 메디치가 예찬은 뒤로 갈수록 사라지고, 정치분석은 보다 생동감을 띠게 된다. 7편의 로렌초 디 메디치의 시대의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균형의 분석에는, 마키아벨리의 중요한 전기(轉機)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8편에서의 파치(Pazzi)의 음모의 분석에서는, 이미 유물론적이고 근대적인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 뚜렷하게 간파된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마키아벨리의 서술의 대상이 된 것은, 메디치가에 맞선 귀족집단의 반란과 메디치가에 가담한 민중봉기의 대결이었다. 거기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 처음으로, “두 개의 구성적 권력이 격돌하는 것이며, 그 격돌을 배경으로서, “엄숙하고도 쾌락적이기도 하며, 두 명의 상반되는 인간이 있을 수 없는 결합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인간, 로렌초 디 메디치의 정치적 이 분석된다 네그리는 그렇게 단정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피렌체사후반부의 운동을 소묘하면서, 네그리는 전반부로 되돌아가며, 특히 코지모 디 메디치의 개선(凱旋)까지의 15세기의 피렌체 정치사의 분석에 입각해, 마키아벨리의 역사유물론의 주요한 논점을 지적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15세기 중반까지, 확대된 교황권 하에서 이탈리아는 분열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군주들은 나태 속에서 비열한 무기사용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침체하는 이 중세적 시간을 끊어내고, 제도의 변동을 초래한 것이,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는 계급투쟁의 전개였다. 실제로 피렌체사3권의 치옴피의 난(Tumulto dei Ciompi)의 서술에는, 모직물업이 번창한 당시의 피렌체의 계급분석에 의거하여, 마키아벨리가 부유민영세민을 두 개의 정치적 주체로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네그리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이런 유물론적인 계급분석 이상으로,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마키아벨리의 정치-경제적 진단이다. , “피렌체는 혼합정체를 획득할 수 없다.” 근대적인 시장의 발전은, 계급투쟁의 심화가 혼합정체적인 균형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그저 부유자의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뿐이었다. 떨쳐 일어난 영세민은 무장 해제되어버린 한에서, 더 이상 급진적인 민주정도 실현의 가능성을 단념해버렸다. 바로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양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중간적인 길을 따라 좋은 법률과 좋은 질서를 대신해 유일자의 덕에 호소하고, 메디치가 지배의 현황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소수자인 귀족의 패배와, ‘다수자=다중인 인민의 주변화를 통해 메디치가의 발흥이 묘사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로렌체 디 메디치가 체현하는 있을 수 없는 결합이 전망된다. 네그리는 바로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사상의 핵심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리하여 마키아벨리의 사상의 중심적 모멘트에 도달했다. 이상이 현실화되기 위한 조건이 갖춰지고, 덕이 역사가 된 경우라도, 종합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발견에 말이다. 이상이 조금이라도 현실화되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결합으로서일 뿐이며, 예외적인 경우로서 시간과 더불어 곧바로 소진한다. 단절은 사실상 종합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인 것이다. 구성적 권력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쟁란, 봉기, 군주 등처럼 잠깐 동안의 일일 뿐이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마키아벨리의 역사유물론은 결코 역사적 변증법으로는 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종합과 지양의 모멘트를 결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단절이야말로 구성적인 것이다.

 

군주론에서 구성적 원리로서의 을 발견하고, 구성적 원리의 위기에 직면한 후, 로마사논고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절대적인 구성적 과정을 파악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는 이 구성적 과정의 원동력으로서 계급투쟁을 찾아냈다. 그러나 구성적 권력의 탐구에 바쳐진 이 행로는, 피렌체사에서 결국 실패에 직면한다. 마키아벨리에 있어서는, ‘계급투쟁이 종합되거나 지양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중이 담지하는 구성적 권력 = 구성하는 권력구성된 권력이 된 순간에, ‘구성적 권력으로부터 이반(離反)하기 때문이다. ‘덕의 비극이 회귀한다. 실제로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담론이 근대정치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저 그가 처음으로 의지와 미래에 대한 기획으로서 잠재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특히, 의지와 결과, 덕과 운명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문제적인 것으로서 삼았기 때문인 것이다.” ‘단절종합보다도 현실적인 한에서, 모든 종합은 모름지기 일시적인 것, 사이비 융화로만 있을 수 있다. 주체화를 요구하는 다중의 운동은, 최종적으로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그리에게서는, 이 미완성이야말로, 단절이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 지양이 있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복음이다. 그것은 계급투쟁이 끝날 수 없다는 것, 다중의 주체화의 과정이 열려 있는 것, 비판적인 과정으로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 여기에서 포콕에 대한 네그리의 애매한 가까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네그리는 포콕처럼 구성적 과정의 중핵에 있는 단절을 헌정론의 틀 속에 가두고, 단절에 의해 활기를 띠게 된 공화국의 성쇠를 관조하며, ‘덕의 비극을 비관주의적으로 확인하며 끝나지는 않는다. 네그리에게서 계급투쟁은 어디까지나 다중에 의해 담지되는 주체적인 투쟁이며, ‘계급투쟁이야말로 헌정을 포함한 모든 제도의 근간에 있다. 그렇지만 단절, ‘한 명·소수자·다수자사이의 균형론의 테두리 안에 집어넣은 포콕이, 네그리가 고전적 공화주의를 계급투쟁의 중심에 있어서 재해석할 때의 중요한 참조항이 된다는 것도 의심스럽지 않다. 포콕은 균형의 관념에 의거하기 때문에, 헌정의 중심에 파고든 단절그 자체를 소거하는 것이 아니며, 바로 그렇기에, 공화국의 질서가 항상 허약한 균형 위에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공화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시민이 항상 직접적으로 헌정의 유지를 담지하는 이 높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 그렇지만 그 의 활동은, 뜻대로 되지 않는 귀결에 농락당하고, ‘운명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런 인식 위에 서서 보수주의를 선택하는 포콕에게, 네그리는 단호하게 등을 돌린다 그러나 되풀이해서 회귀하는 비관주의,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권력의 탐구의 배후에 항상 들러붙어 있었던 만큼, 포콕은 네그리에게 있어서 친근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네그리는 계속해서 말한다. 단절치유하기 어려움, 어이없게도 구성적 권력의 비판적 권능의 끝이 없음을 보려고 하는 낙관주의를, 마키아벨리는 반드시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구성적인 잠재력의 닫혀 있음은, 그에게 있어서는 다중의 힘과 그 기획의 내재적인 본성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잠재력에 대립하는 장애로부터, 즉 지금 여기서 다중이 주체가 되는 것의 무능력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정치적 기투에 실패나 패배자였다. 다중의 주체화, 민주정의 구성을 향한 모든 탐구는, 결국 마키아벨리를 자신의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객관적 현실에 직면하게 했을 뿐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어디까지나 고독했던 것이다. ,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그 고독 속에서도, 결코 구성적 권력의 사상을 손에서 떼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자기의 패배를 웃음과 더불어 받아들이고, 연애의 욕망의 놀이를 통해 개개의 주체에게 숨겨져 있는 힘을 응시하는 희극작품도, 주권을 법적인 정통화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전체 시민의 군사로의 참여에 의해 계속 구성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제시하는 전술론(Dell’arte della guerra), 혹은 또한 구성적 권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불가결한 적합적 주체의 신화적 이미지를 제출하는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La vita di Castruccio Castracani da Lucca), 마키아벨리의 불굴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그 사정은, 1527, 스페인군의 이탈리아 침공에 뒤이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개혁되지 못하고 종언한 것을 지켜본 뒤에도 변함이 없다. 말년의 사신(私信)모든 것은 멸할 것이다라는 예감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결코 쾌활함도 부드러움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마키아벨리의 삶을 그 종국까지 추적하면서,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의 마키아벨리론의 말미에서, 다시금 마키아벨리의 고독의 알튀세르에게 인사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근대의 어떤 작가가 말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여느 때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근대 절대주의 국가의 사상가도, 구성을 요구하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도 아니었다. 마키아벨리는 원리와 민주정의 모든 조건의 부재의 이론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재, 이 공허로부터, 마키아벨리는 문자 그대로 주체의 욕망을 탈취하고, 그것을 프로그램으로서 구성한다. 마키아벨리에게서 구성적 권력은 그런 것이었다.

 

알튀세르가 말하듯이, 마키아벨리는 절대주의의 사상가도, 구성을 향하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도 아니며, 원리와 민주정의, 달성[성취]되어야 할 사실로서의 새로운 국가를 실현하는 조건의 부재의 이론가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뛰어난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였던 것이다 단절치유하기 어려움이야말로 구성적 권력을 끝이 없는 운동을 향해 휘몰아댄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우리로서는 이 논의에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네그리에게서는, 알튀세르가 말하는 조건의 부재야말로, 주체의 욕망을 새로운 정치적 구성을 향해 활기를 북돋는다. 여기서 네그리는, 알튀세르에 대해, 포콕에 대해 행했던 것과 완전히 닮은 전도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 『구성적 권력집필 당시의 네그리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사후 간행된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의 독자는, 이것과 똑같은 전도를 알튀세르 자신이 수행했음을 알고 있다. 1960년대 이후의 일련의 마키아벨리론에서, 마키아벨리의 실천적인 불능과 이론적인 역능의 반전에 멈춰 섰던 알튀세르는, 그의 우연성의 유물론에 대한 논고에서는, “성취[달성]해야 할 사실로서의 새로운 국가건설의 조건의 부재를 인식한 마키아벨리야말로 성취[달성]된 사실로서의 기존의 국가의 근간에 있는 조건의 부재혹은 우연성을 폭로하는 것이며, 조건의 부재그 자체 없이 우연성의 필연성의 인식에 의해, 항상 머물러 있는/그치고 있는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객관적 조건의 부재로부터 주체의 욕망으로 향하는 네그리와, 그 동일한 조건의 부재를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우연성에서 찾아내는 알튀세르의 차이는 있더라도, 네그리에 의한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의 고독의 전도는, 이 알지 못했던 알튀세르 자신에 의한 알튀세르의 전도에 정확하게 선행하며, 그것을 정확하게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의 구절에서 네그리의 관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더 이상 구성의 정치적 존재론도, 구성과정으로서의 역사도 아니다. 그런 다중구성적 권력이 전개되는 장소 바로 앞에서, ‘다중구성적 권력에 대한 사색을 가다듬은 마키아벨리 그 사람의 고독에야말로, 네그리는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정치적 기투에 실패하고, 그 기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의 부재에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거기에서 새로운 욕망의 주체를 찾아내려는 주체의 고독이다. 그런 고독 la solitude’한 주체야말로 다중 la multitude’의 주체화를 요구하는 모든 이론적=정치적 활동의 출발점에 있다. 그런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또한, 네그리 자신의 고독일 것이다. 사실 네그리는 다시금 알튀세르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마키아벨리를 읽을 때, 우리는 우리를 잊은 듯 그에게 사로잡힌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뭔가 억압된 것에 대한 친근감, 저 기묘한 친근감이다.” 마키아벨리가 억압된 사상가가 아니면 안 되었던 것은, 바로 그가 정치적인 것의 존재의 근간에, ‘조건의 부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포콕도, 알튀세르도, 그리고 네그리도 또한, 그 억압될 사상가의 인식에 주목한다. “마키아벨리, 모든 억압을 넘어서 정치를 사고하려고 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정치적 존재론의 지평의 이름인 것이며, 바로 그 지평에서, 네그리는 포콕이나 알튀세르와 함께, 정치의 비극과 동시에 그 가능성이, 혹은 정치의 가능성과 더불어 그 비극이 한꺼번에 개시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정치적 양가성을 둘러싼 교착과 반전에 이것 이상으로 계속 구애되는 것은,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을 것이다. 네그리는 마키아벨리의 뒤를 쫓아, ‘고독에서 다중으로의 길을 쾌활하게 밟고 나선다. 바닥없이 쾌활한 낙관주의 끝에, 끝도 없는 계급투쟁의 장소가 열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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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애국심의 공화주의론 : 모리치오 비롤리의 『공화주의』 읽기

*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김경희·김동규 옮김, 인간사랑

  Maurizio Viroli 2002 Republicanism Hill and Wang (New York)


1. 들어가며

이 글은 근래 들어 자유주의를 대신할 공공철학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공화주의의 사상을 비롤리의 『공화주의』에 입각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시민혁명의 시대,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의 시대 등 서구 역사의 곳곳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최근에는 존 포콕(John Pocock)과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를 중심으로 한 캠브리지학파의 연구에 의해 그 의의가 재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지닌 특색은 사상을 역사적 맥락(context)에서 읽는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스키너는 이런 기법을 통해 영국의 시민혁명 시대를 검토하면서, 이 시대에는 현재의 자유주의와는 상이한 이론(신로마이론)1)이 있었다고 지적했다(Skinner 1998). 또한 이들이 공화주의를 ‘자유’라는 관점에서 논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2) 스키너 등의 역사연구에 정치철학적 관점을 덧붙여 이것의 현대적 적용을 모색하는 논자로는 필립 페팃(Philip Pettit)을 거론할 수 있는데, 이때 그는 이른바 분석철학의 기법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적 자유’를 대신할 ‘공화주의적 자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Pettit 1997).3) 이처럼 스키너의 흐름은 ‘자유’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도 이 스키너의 흐름과 연관된 이론가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철학 학위를, 피렌체에 있는 유럽대학에서 사회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는 프린스턴대학의 정치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의 주요 연구는 마키아벨리와 루소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 연구다. 이 책에는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공화주의의 논점들이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의 논의는 ‘공화주의적 자유’를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스키너나 페팃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이들과는 다른 점으로는 이탈리아의 역사(특히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사상이나 제도를 분절한다는 점, 그리고 ‘정념’(passion)에 관한 테마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래에서는 그의 논의를 각 장별로 소개할 것이다.


2. 공화주의의 역사

이 책의 목적은 「영어판 저자 서문」에 잘 서술되어 있다. 그 목적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라는 더 큰 이론의 부록과도 같은 민주주의 이론으로 치부되곤 하는 것을 바꾸는 것, 즉 오히려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보다 시대상 앞설 뿐만 아니라 가치 면에서도 우월한 이론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이탈리아 공화주의의 역사부터 설명해 나간다. 1장에서 비롤리는 14세기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이탈리아의 자유 공화국들에서 구축된 공화주의의 정치이론에 관해 서술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가 일찍이 근대성에 주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공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당시 이탈리아 공화국들은 부유하고 힘센 가문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많은 인민들은 정부 및 주권적 권한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공화국들은 대공회(consiglio grande)에 기초한 대의제 정부이며, 그 전체로서 인민 또는 도시를 대표했다. 특히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특색 중 하나인 혼합정(mixed government) 이론이 이 시대에 세련되게 가다듬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혼합정이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다. 당시 이론가들(여기에는 마키아벨리, 프란체스코 귀챠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 도나토 지아노티Donato Giannoti의 이름이 거론된다)은 이러한 혼합정의 다양한 기관들에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줘야 할 것인지(즉 혼합정부를 어떻게 제도화하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그러나 일인(전제자) 하에서든, 다수자(민중) 하에서든 한 곳에서 무제한의 자의적 권력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분할이 필요하다는 점에 관해 동의했다고 말한다.

16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이 서서히 외국세력 등의 지배를 받게 됨에 따라 공화주의 이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정신은 이후 유럽 속에 널리 퍼진 계몽주의의 한 가지 원천이 되며, 영국시민혁명이나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19세기의 이탈리아 독립의 이론적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비롤리는 이탈리아에서 공화주의가 실제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서술한다.


3. 공화주의의 자유

그렇다면 공화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비롤리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그 핵심은 ‘자유’라고 파악한다. 이런 공화주의의 자유 개념을 설명한 것이 2장이다. 비롤리는 우선 정치적 자유를 간섭(interference)의 결여로서의 자유와 지배(domination)의 결여로서의 자유로 구별한다. 여기서의 ‘간섭’이란 어떤 사람의 행위를 방해하는 다른 누군가의 행위를 가리키는 반면에, ‘지배’란 자신이 타인의 자의적 의지(arbitrary will)에 의존하는(depend on)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의 자유를 ‘간섭’의 결여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는 간섭과 지배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간섭 없는 지배’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그는 폭군에 의한 시민의 지배, 남편에 의한 아내의 지배, 고용주에 의한 노동자의 지배 등을 거론한다. 여기서는 ‘간섭이 행해지는가 여부’가 아니라 ‘설령 지금 간섭이 행해지지 않더라도 간섭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나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는 상태인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다른 한편, ‘지배 없는 간섭’도 존재한다. 그것은 ‘법에 의한 제약’이다. 이 제약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개인의 자의적 이익을 위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또는 공공선public good을 지향한다는) 점으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다.4) 따라서 지배의 결여로서의 공화주의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지지하는 논리를 도출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장은 공화주의의 자유와 법이 맺는 관계를 더욱 자세히 논한다. 그는 과거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공화주의자가 법의 지배를 자유의 조건으로 생각한다는 점,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제약을 개인의 자의적인 의지로부터의 유일하게 타당한 방어로 간주되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 논점에 관해서는 벤담처럼 “모든 법은 자유의 침해이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른바 자유주의)에서 나오는 반론이 있다. 홉스와 공화주의자 해링턴(James Harrington)의 논쟁은 이 점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홉스는 법에 복종하는 이상, 루카(Lucca) 같은 공화국의 시민들도 법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같은 술탄의 신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해링턴은 루카의 경우 통치자와 시민이 공히 동일한 법률과 헌법에 복종하는 데 반해, 콘스탄티노플의 경우 술탄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제 맘대로, 즉 자의적으로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처분하기 때문에 루카의 시민이 더 자유롭다는 반론을 펼쳤다.

해링턴 같은 논의는 초기 자유주의의 이론가인 존 로크에게서도 발견된다. 로크의 책에는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논의를 토대로 비롤리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과하는 속박(제약)과 개인에게 자의적으로 가해지는 속박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자를 후자의 상위에 두는 것이 자유의 조건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이처럼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에 관해 간섭과 지배의 구별이나 자유와 법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 논한다. 이것들은 페팃의 저작에서도 볼 수 있는 논점이며, 비롤리와 페팃은 모두 현대 공화주의 연구의 선구자인 스키너로부터 이러한 논점을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비롤리는 ‘논쟁’과 ‘수사학’이라는 관점을 덧붙인다. 말하자면 자유를 지배의 결여로 이해한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무엇이 자의적인 행위를 구성하는지, 개인의 자의적 의사에 예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가 소득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시민들에게는 완전한 자의적 간섭으로 간주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정당한 간섭의 사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비롤리는 여기서 당파적 논쟁의 발생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을 과학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고전적 의미에서의 수사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그는 어떠한 사실도 논쟁을 결정적이고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용될 수는 없으며, 또한 논쟁에 참여한 모든 당파가 만족할만한 방식으로 그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사실이 수립할 수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공선이나 법이 항상 만장일치로 결정된다는 예정조화적인 비전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지적이며, 바로 여기서 역사연구에 뿌리를 둔 그의 현실적인real 인식이 빛난다.


4.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

4장에서는 다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가 논의되고,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역사적 우선성이 주장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스키너의 주장(‘자유주의에 선행하는 자유’)을 따른 것인데, 여기서 비롤리가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은 그의 논의가 지닌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공화주의에서 파생된 원리가 보다 타당한 원리이고,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비롤리는 이러한 원리의 사례로 정치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개별 구성원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데 둔다는 점, 획일성에 대한 비판과 다양성에 대한 찬미, 권력분할의 권고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원리들은 J.S. 밀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미 마키아벨리 등의 저작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자유주의 특유의 원리가 지닌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는 ‘자연적 권리’라는 학설이 ‘권리는 관습이나 법에 의해 인정될 때에만 권리가 된다’는 사실과 충돌한다는 문제를 품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현대의 민주사회에서는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공공봉사(공익에의 헌신)를 자유의 자연적 반려자로 파악하지만, 자유주의는 그것을 자유의 제한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롤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공화주의의 가치적 우위성을 강조한다.5)

또 4장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뿐만 아니라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일반적으로 공화주의를 공동체주의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논의도 있지만, 비롤리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는 공화주의의 공동체가 민족적·문화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 공동체라는 점, 어떠한 도덕적 선보다도 ‘정의’를 기초로 한다는 점(가장 중요한 공통선/공공선은 정의라고 한다)을 거론한다. 이처럼 그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를 완전히 상이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전자의 차이는 구별의 축이 ‘자연-인위’에 있으며, 루소 연구를 배경으로 한 비롤리의 입장이 여기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6)


5. ‘시민의 덕’과 ‘애국심’

다음으로 그는 스키너나 페팃이 그다지 충분하게 논하지 않은 ‘정념’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5장은 자유주의의 경우 비판적인 어조로 말하고 공화주의의 경우에는 중심테마의 하나로 간주된 ‘시민의 덕’(civic virtue)을 고찰한다. 그리고 6장은 시민의 덕(또는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서의 ‘애국심’(patriotism)을 논한다. 이런 점들을 비중있게 다룬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색이고, 사실 이것들에 대해 논하는 두 개의 장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시민의 덕’에 관한 비롤리의 논의를 살펴보자. 우선 그에 따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공화국은 시민의 덕, 즉 공동선에 봉사하길 마다하지 않는 ‘정서/기분’과 능력에 기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이론가들(특히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덕이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덕이 불가능한 이유로는 민주사회의 시민들이 집단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선에 봉사하는 동기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또한 시민의 덕이 위험한 이유로는 만일 우리의 다문화사회 속에서 시민이 보다 덕스럽게 된다면, 시민은 보다 불관용하고 보다 광신적으로 될 것이며, 결국 덕의 지배가 시민의 자유를 보다 제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 놓여 있는 것은 시민의 덕을 욕망의 단념과 희생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에 반하여 비롤리는 사적인 삶을 단념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형태의 시민의 덕이 존재한다는 것을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이론가들의 논의를 인용해 설명한다. 거기서 시민의 덕은 사적인 삶의 기초로서 파악되며, 부와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시민의 덕은 이성에 의한 정념의 압박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정념(시민적 자선)이 다른 정념을 지배하는 걸 허용하고, 시민의 덕이나 공화국에 대한 봉사가 사적인 삶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성질의 시민의 덕은 18세기의 프랑스 시민생활 속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가령 여기서는 시민들이 불법적인 이익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타자의 필요성이나 약함 때문에 이익을 얻지도 않으며,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 부정의한 법의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서, 또한 공통의 이익에 관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지도자를 추천하기 위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다양한 종류의 조직에 들어가 활동한다는 것.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를 바라는 것. 국가의 역사에 관해서 알고 논의하고 반성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들이 시민의 덕의 내용이며, 이것을 행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로는 도덕감정(환대, 차별, 추락, 방만, 야만에 대한 보상)이나 양질의 상품과 의례에 대한 미적인 욕구, 특정한 것에 관한 고려(안전한 도로, 쾌적한 공원, 잘 정비된 광장, 존경할 수 있는 기념비, 좋은 학교와 병원 등), 명성(공적인 명예를 얻고, 의장의 자리에 앉고, 연설을 하며, 예식에서 맨앞에 서는 것)이 거론된다. 그리고 비롤리는 이런 형태를 취한 시민의 덕은 불가능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롤리에 따르면 이러한 시민의 덕, 즉 공공선에 대한 시민의 관심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한다. 6장에서는 다른 현대공화주의의 이론가들이 그다지 다루지 않았던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논의된다. 우선 비롤리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의 대상이 ‘조국-자유로운 공화국’임을 강조한다. 여기서의 조국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났던 장소가 아니라 시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관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루소의 말을 인용한다. “조국을 만드는 것은 장벽도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법, 관습, 습관, 정부,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삶의 존재방식이다”. 또한 그는 “18세기의 정치학의 저술가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은 자연적인 심정이 아니라 법에 의해서, 또한 한층 더 좋은 경우에는 좋은 정부와 공공의 생명에의 참여에 의해 육성되는, 인공적인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의 ‘자연-인위’의 축이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이처럼 그가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인위’라고 파악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민족주의와 대비하여 이해되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즉, 민족주의의 ‘나라사랑’은 ‘자연적인 정서’이며 사람들의 문화적·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공화주의적 애국심은 ‘인위적 감정’이고 이것의 중심 가치는 정치적 가치에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비롤리도 기본적으로는 이것에 기초하여(이런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적 애국심과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구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화주의적 애국심에 의해서 국내의 통합은 문화·민족·종교의 동질성을 요구하지 않고서도 행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애국심이 있으면 종교적 정신이 없더라도 시민의 덕을 육성할 수 있다는 주장에 호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롤리는 종교적 신앙에서 불관용을 발견하고, 그것보다도 오히려 균형의 감각이나 회의의 감각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는 현대에서의 시민의 덕의 육성, 나아가 애국심의 재생과 보급을 위해 조국의 역사에서 의의를 찾아내는 것(기억과 기념축제의 중시)이나 정의와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것(이런 관점에서 복수·용서의 금지, 후견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다)을 강조한다. 또한 시민이 자치에 참여하는 것 역시 이런 관점에서 장려된다.


6.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

이상으로 ‘시민의 덕’이나 ‘애국심’에 관한 그의 논의를 따라가 봤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것들은 자유주의의 주요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예상된 비판의 칼날을, 시민의 덕을 희생이라고 파악하는 입장이나, 문화적·민족적 동질성을 파악하는 종류의 내셔널리즘으로 향하게 하고, ‘시민의 덕’ 및 ‘애국심’의 적극적이고 온건한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정의를 기저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 한 가지 모습인데,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다. 그는 조국은 ‘공통의 집’인데, 그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다른 집과 나란히 서 있는 집’이라고 말하고, 조국의 바깥 세계를 암시한 후에, “인간성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우리의 조국에 대한 의미보다 선행한다. 어떤 특정한 조국의 시민이기 전에, 우리는 인간이다. 이것은 민족이라는 장벽이 도덕적으로 귀를 막는 구실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술한다. 이처럼 그는 인간성이라는 심급을 고려하면서 개인, 조국, 인간성의 다층구조를 사고한다. 그렇다면, 개인과 인간성 사이에 조국이라는 심급을 집어넣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우리 민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서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과 인간성 일반의 중개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개 역할을 맡은 것이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이다. 이처럼 ‘조국, 즉 자유로운 공화국’은 그 외부로부터도 적극적인 의미부여가 이뤄지고 있다. 이 점에서도 그의 논의가 편협한 배외주의와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주의에 관한 그의 이해나 자치에 대한 참가의 위상에 관해서는 논의가 갈라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가 자치에 참여함으로써 시민이 공공선에 애착(attachment)을 느낀다는 점을 거론하고, 또한 토크빌에 의거하면서 “시민들이 참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서로의 차이를 말할 기회를 갖고 있는 경우나, 논의하는 문제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권한을 도시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그의 의도를 넘어서서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개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이른바 문제를 자각하는) 데에 있어서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말할 경우에는 이러한 기초에 토대를 두고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공화주의의 논점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들을 숨겨놓은 논의가 포함되어 있기에 일독을 할 경우 큰 도움이 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Maurizio Viroli(2002)Republicanism, New York: Hill and Wang

Quentin Skinner(1998)Liberty Before Liber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Michael Sandel (1996) Democracy’s Discontent,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Philip Pettit (1997) Republican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hilip Pettit (1998) “Reworking Sandel’s Republicanism” Anita L. Allen & Milton

C. Regan Jr. (ed.) Debating Democracy’s Discontent, New York: Oxford University


1) 스키너는 흔히 ‘공화주의’라고 불리는 이 이론을, 이 이론가들이 반드시 왕정의 폐절을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마키아벨리를 통해 고대 로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 때문에 ‘신로마이론’이라고 부른다.


2) 공화주의에 관해서는 제도(혼합정체론), 덕(시민의 덕)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파악하여 논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스키너나 페팃,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는 비롤리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공화주의론의 핵심은 ‘자유’에 있다.


3) 그밖에 공화주의에 주목한 정치철학자로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있다. 그는 미국 공화주의의 전통을 파헤쳐 이것을 현대에 부활시키고자 한다(Sandel 1996). 페팃은 한편으로는 샌델의 논의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공화주의 이론과는 다르다고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비-지배로서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적’ 공화주의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시민참여가 공화주의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Pettit 1998). 이런 관점은 스키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페팃의 논의는 이 글에서 소개하는 비롤리의 논의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4) 또한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유의 차이에 관해서도 말한다. 민주주의의 자유는 자율, 자유의지, 강제에 대한 반대 등을 주장한다(벌린이 말한 ‘적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자유는 자율보다는 강제에 예속될 항구적인 위험(constant danger)으로부터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법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시민의 욕구에 들어맞는가가 아니라 법이 자의적이지 않는가, 공공선을 지향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쓴다. 여기서 자기결정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성을 인정받는다. 그는 스키너나 페팃과 마찬가지로 공화주의의 자유를 벌린이 말한 ‘소극적 자유’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5) 이 점은 오히려 「서장」에서 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롤리는 공화주의의 요소로서 법의 지배와 인민주권을 거론하고,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에만,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에만 특화된 빈약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6) 또한 6장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구별도 같은 축에서 이뤄지며, 이런 점에서 비롤리의 관점의 일관성을 볼 수 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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