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5국가에 의한 통치 독일의 내치[폴리차이] 모델

2. 독일의 모델 : 중상주의 유형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외교와 내치[폴리차이]의 관계

국가이성의 시대는 유럽의 균형의 시대이며, 항상적인 외교와 상설 군대에 의해 다양한 국가들이 대립하고 경합하는 시대였다. 이는 대외적 경합을 목표로 하는 기술이다. 이에 대해서 국내에서의 국력을 증강하는 기술이 있으며, 이미 말했듯이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폴리스, 독일에서는 내치[폴리차이]로 불린 것이었다. 이 기술이 가장 커진 것은 독일에서였다. 5장부터 7장까지 군주권력의 국가이성의 시대부터, 규율권력의 시대, 그리고 생명권력의 시대로 이르는 유럽의 정치적 이성에 대해서, 독일, 영국, 프랑스의 세 가지 모델을 검토하면서 각각의 방식을 비교하고 싶다.

독일에서 내치의 학은 관방학으로서 치밀하게 구축됐다. 푸코는 독일에서 이 학이 발달한 이유로,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많은 작은 영방국가가 탄생하고 각국이 독립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봉건적 구조와도 거대 국가와도 다른 국가적 실험에 있어서 특권적인 공간이 됐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는 프랑스와는 달리 국가행정의 스태프[인력]가 부재하며, 이 때문에 대학에서 인력[스태프]을 조달하게 되어, 대학에서 관방학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경제면에서는 그다지 활동할 수 없던 부르주아지가 끊임없이 [이웃 국가와의] 항쟁에 직면했던 군주의 편에 서서, 국가의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인재, 능력, 부 등을 제공했다.” 이 관방학은 독일의 특산품으로서 유럽의 각지에 전해졌다.

내치는 좋은 통치의 기술이며, 신민의 복지를 개선하는 기술로서, 사목의 기술과 공통된 곳이 있다. 작동되는 대상이 영토로서의 국토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 그리고 목적으로 하는 바가 국민의 복지라는 것은, 사목의 기술과 내치의 기술에 공통된 바임은 이미 확인했던 대로이다. 독일의 관방학의 이론적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폰 유스티는 국가의 자산은 영방 내에 존재하고, 가신에 속하든, 국가가 직접 소유하든, 모든 종류의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질 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에 속하는 사람의 모든 능력과 숙달로부터도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 자체도 시각에 따라서는 국가의 자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내치는 국내 질서와 국력 증강 사이에 동적인,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계산과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내치가 신민의 복지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고 외치면서, 실은 국가의 장려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이라는 것이다. 당시부터 내치에 대해 국가 전체의 장려함과 전체 시민의 행복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의 총체라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유럽의 세력균형에서의 외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국의 장려함을 과시하는 것은 해부학에 열중하는 관찰자들에게 자국의 힘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푸코는 내치와 세력균형의 관계를 국력, 타국을 주시하는 권리, 통계학, 통상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우선 세력균형은 발전하고 있는 국가의 힘의 균형을 취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에서 내치와 깊은 관계에 있다. 내치는 좋은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시키고 더욱이 유럽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세력균형의 상태 아래서, 영구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한 칸트는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칸트는 유럽의 현상황이 사회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인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며,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법의 이념은 서로 독립된 국가가 인접하면서도 분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이미 전쟁상태이다.”

그러나 이 전쟁상태는 전쟁의 폐절로 향하는 싹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두 개의 경향에 있어서이다. 하나는 어떤 국가도 타국을 정복하고 스스로 제국 아래로 통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타민족을 미워하는 경향을 낳는데, 한편으로는 자국의 문화를 향상시키고, 타국을 이해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 이 평화는 자유의 무덤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힘을 서로 경합하게 하고, 그 균형을 취함으로써 생겨나고 확보되는 것이다.” 칸트는 좋은 국가체제야말로 민족의 좋은 도덕성을 기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차이 속에 서로 동떨어져 있는 국가가 국내에서 좋은 국가체제를 구축하고, 서로 힘을 균형시킴으로써, 평화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력균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국가들에 패하지 않을 정도의 외교능력과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국가가 국력을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의 국가가 타국보다 국력의 증강에서 뒤떨어지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의 국력의 증강을 주시하는 권리를 소유하는 것처럼 된다. 그리고 타국의 국력을 주시[감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 것은, 하나의 국가의 인구군대천연자연생산통상통화유통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통계학이 성립된 것이다.

칸트는 이 타국을 주시[감시]하는 권리에 대해 국력의 증강이라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법적인 체제의 확립과 자국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지적한다. 만약 국내에 법률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서로 이웃해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민족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민족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이웃 국가가 국제적인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것, “거기서 스스로의 권리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을 다른 민족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요구해야 한다.”

또한 통상관계에 대해서는, 이 시대는 중상주의의 시대, 즉 통상의 시대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푸코의 간략한 요약에 따르면, 중상주의는 각국에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첫째로 각국이 되도록 많은 인구를 가지려고 할 것, 둘째로 그 인구 전체가 노동에 대해 있을 것, 셋째로 그 인구에 주어지는 임금이 최대한 낮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품의 원가가 최대한 낮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으며, 군주가 소유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이처럼 통화의 수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만큼 국내의 국력의 충실이라는 내치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칸트는 이 시대에 각국이 밀접한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전쟁을 방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지적한다. 각국은 서로의 이기심을 통해서민족들과 결합한다. 이것이 상업의 정신이며, “세계의 어디에서도,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다가오면, 국가들은 마치 영속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양 중재에 의해 전쟁을 방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치의 실무

그렇다면 이 내치라는 학과 기술은 어떻게 적용될까? 푸코는 들라마르의 『내치』으로부터, 내치가 국가의 내부에서 관리해야 할 것을 11개 항목을 꼽고 있다. 종교, 도덕성, 건강, 물품의 공급, 도로토목공공건축물, 공안(公安), 자유학예, 상업, 작업장, 하인과 육체노동자, 빈민이다.

이것으로는 국가의 내정의 거의 모든 분야를 꿰찬다. 내치가 종교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진리로서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내치는 사목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신민의 혼의 건강을 배려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건강과 식량의 공급에 신경을 씀으로써, 내치삶을 보호한다.” 내치는 생명을 배려하는 것이다. 도로토목공공건축물, 상업, 작업장, 육체노동자, 빈민, 공안[치안]을 배려함으로써내치생활의 쾌적함, 정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학예를 배려함으로써 인생의 기쁨 그 자체”에 신경을 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고, 더 한층 잘 사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내치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다내치가 현재의 경찰처럼, 사회의 복지와 행복의 촉진의 배려가 아니라, 장래의 악의 방지의 배려를 목표로 하게 된 것은, 1770년대 이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푸코는 튀르케 드 마이엘느귀족민주주의적 군주제라는 내치론을 인용하면서, 내치의 활동 분야를 크게 넷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분야는 아이와 젊은이의 교육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은 경건한 신앙을 갖고, 무기 취급에 익숙해지며, 직업을 습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은 25세가 되면 내치 사무국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는지를 보고하도록 요구된다. 보고를 거부하는 자는 “건달로, 명예를 결여한 인민의 쓰레기로 간주된다.

두 번째 분야는 빈민을 대상으로 한다. 건강한 빈민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병자나 장애자에게는 수당을 준다. 더욱이 공중위생을 배려하고, 일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대준다. 세 번째 분야는 상인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을 규제하고 조성한다. 네 번째 분야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고, 상속을 기록하고, 도로하천공공건축물삼림을 주시[감시]한다.

이 네 가지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국력의 구성요소로서의 인간의 활동이다. 우선 인간의 수를 대상으로 한다. 17세기에 국력은 주민의 수와 비례한다고 여겨지게 됐지만내치학에서는 단순히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은 영토에서도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어서 생활필수품을 규제한다. 주민의 수가 많더라도, 먹일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것은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농업정책이며, 생산된 곡물의 질을 유지하고 비축하고 공급하는 곡물 내정(內政)이다. 더욱이 건강을 배려한다. 역병의 방지는 물론이고, “만인의 일상적인 건강이 중시된다. 도시에서는 공기, 환기, 통풍이 중시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일대 정책이 전개되는 것이다. 더 건강한 인간들의 활동을 감시[주시]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활동에서 생겨나는 상품이나 생산물의 유통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든 것을 배려하는 내치의 학이 사목적 시선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근대국가의 거의 가부장적인 배려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도 확실할 것이다. “내치의 목적은 시민이 전체적으로도 개별적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에 관련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저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라, “더 잘 사는 것, 공존하는 것, 교류하는 것이 실제로 국력의 증대로서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이 도입되기 때문에 이런 내치의 학은 이윽고 생명령을 잃어가지만, 제국이 존속한 오스트리아에서는 1840년대까지 이 학에 의한 국가과학의 강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적어도 18세기 전체를 통해 내치의 학은 독일인의 <신성로마제국>에서의 유일한 지배적 재정론(財政論)이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국가의 의학

내치학은 유럽의 국가들에 전파됐으나, 독일에서 집대성되고, 실제로 활용됐다. 내치학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는지를 18세기 독일의 의학의 방식과 프랑스나 영국의 의학의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검토해보자. 독일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로 의료가 전개됐다. 1764년에는 프로이센에서 의료행정(메디치니셰 폴리차이)”이라고 불리는 것이 탄생했다. 이것은 대학에서 배운 의사에게만 의료면허증을 수여함으로써 국내의 의료 상담자의 실천과 지식을 규범화하고, 각지의 의사나 의료기관으로부터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출산율과 사망률의 단순한 통계표가 이미 작성되고 있었으나, 전염병이나 풍토병의 관찰 등에 의한 훨씬 완전힌 발병률의 관찰 시스템”은 독일에서 확립됐다.

또한 중앙에는 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관공서가 설립되고, 그 아래에 계층구조적으로 지역의 의사를 배속했다. 이리하여 모든 의사는 국가에 의해 면허를 수여받고, 행정적 지도 아래서 의료에 종사하고, 의학적 정보를 중앙에 집중시키는 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극한까지 국가화된 의학의 시스템이 됐다.

이 의학이 중시한 것은 국력의 토대가 되는 국민의 신체와 생명이었다. “공적인 위생 행정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자의 신체가 아니라 개인 그 자체의 신체이며, 이런 개인들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했다는 것이며, 프로이센은 중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근 국가와 경합하기 위해서도, 국내의 주민의 건강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뒤에 평화가 회복되자, 이 국가의 의학의 이념은 공동화된다. 독일에서도 공업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이 가부장적인 시스템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절대주의와 중상주의를 엄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전환되어 갔다. 공업화의 시대에는 새로운 의학이 요구됐던 것이며, 프랑스와 영국이 그 임무를 맡게 된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 <결론>과 "마치며"를 본론들보다 먼저 공개한다. 본론의 공개는 나중에 한다. <결론>을 보다 꼼꼼하게 읽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결론>과 <마치며>도 윤문을 더 해야만 한다. 부족한 일본어 능력을 절감하고 있다.
* 한편, 본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글들은 아직 프랑스어 등의 원래의 언어들과 대조되지 않았다. 


혁명론

이치다 요시히코(市田良彦) 

 

결론. 발견된 자유 : 푸코와 ()가능한 혁명

전에 없었던 반-사목 혁명 /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 푸코와 ()자유주의 /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전에 없던 반-사목 혁명

우리가 추적하려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정치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일단 사라진 듯 보이는 주체라는 존재가 다시 한 번 이 논의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일부는 확실히 실제의 역사와도 겹쳐 보인다. 알튀세르가 1965년에 구성적 주체라는 개념을 배척하고, 이듬해인 66년에는 푸코가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말과 사물, 526)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81, 네그리가 역사의 주체로서 다중을 정치의 무대로 되돌아가게 한다(야생의 별종). 84년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푸코도 일종의 자기비판을 행한다.

 

말과 사물에서 저는 인간의 죽음을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인 양 말함으로써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 인간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 , 자신들의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고, 상이한 주체성의 무한하고 다양한 연결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 거기에 끝은 없으며, 우리를 인간 자체와 같은 무엇인가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없을 겁니다. 인간의 죽음을 혼란되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말함으로써,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입니다. (도덕의 회귀, p.75). 

http://1libertaire.free.fr/MFoucault209.html

 

그러나 이 과정은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적이지 않다. 우리가 확인했듯이 네그리는 70년대 초반부터 자각적으로 주체주의자였으며, 들뢰즈가 야생의 별종근본적 사상이라고 지적했던, 주체적 힘들의 구성에 원리적으로 매개는 필요 없다”, 즉 주체는 스스로를 자연적=자발적으로 직접 무매개적으로 만든다는 사고방식도(이 책의 1), 사실은 이미 맑스를 넘어선 맑스(78년 강의)에서 명확하게 말해지고 있다. 게다가 네그리가 자신의 스피노자 이해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다고 일컫는 들뢰즈는 이미 68년에는 준원인개념을 통해, ‘도덕적 도착이라는 주체의 행동거지[품행]가  세계 자체를 정도는 어쨌든 결정’한다고 했고, 구조적 인과성에 의해 구성적 주체를 물리친 알튀세르는, 이보다 앞선 62년에 이미 들뢰즈적 준원인과 동질적인 결정력을 들뢰즈보다 크게 무대의 소매의 변증법에 부여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이론적 노력은 처음부터 정치 실천의 주체에게 이 특이한 변증법을 연출하는 힘을 되찾아주는 것을 향했다고 말해도 좋다.

, 우리의 관심 범위 안에서 주체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라진 것은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둘러싼,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관계(대상의 주체가 아닌 주체는 단어의 정의상 없다)를 둘러싼 무엇인가일 뿐이었다. 그 무엇인가를 우리는 중간항주체와 대상 사이에 있으며 양자를 매개하는 것 이라고 규정identification해 왔던 셈이다. 중간항을 떼어내어 성립되는 관계에 우리는 정치라고 익숙하게 불리는 인간적 활동의 실질이 있음을 인정하고자 하며, 그러려면 대상 쪽에도 그 의미를 바꾸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발견한 주체는 혁명이라는 사건, 사건으로서의 혁명을 대상으로 할 때에만 나타나며, 우리가 재정의하는 정치는 인간의 활동으로서는 혁명 속에만 존재한다. 이 주체관과 정치관은 이른바 정치를 모든 혁명의 정치로부터의 일그러진 파생으로 간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푸코는 어떻게 했을까? 앞서 인용한 말과 사물의 너무도 유명한 맺음말 때문에, 알튀세르나 레비스트로스와 나란히 인간을 주체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던 푸코는 삶의 막바지에 잘못을 자기 입에 담기까지의 약 20년 동안에, ‘인간혹은 주체를 어떻게 했을까? 그것은 혁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을까? 후자의 질문에 관해서는 그랬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있는 혁명은 주체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혁명이었다.

 

반봉건주의의 혁명은 존재했지만, 반사목혁명은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사목체제는,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사와 작별을 고하는 깊은 혁명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습니다(『안전, 영토, 인구』,)

 

반사목 혁명은 어떤 혁명인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한 강의가 푸코 사후에 점차 간행됨에 따라 우리는 알게 되었다. 70년대 말부터 푸코는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탐구 전체를 총괄하고자 하며, ‘권력앎[지식]을 둘러싼 그때까지의 작업도 이것의 내부로 재통합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근대적 인구개념(‘주민population이라는 같은 단어이다)에서 발견된 통치성문제는, 최종적으로, ‘자기와 타자의 통치라는 더 포괄적이고 역사관통적인 문제형식을 얻었다. 반사목 혁명이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사목 체제, 통치성이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존재방식이다. 고대 오리엔트에 그 기원을 지닌, 한 마리의 양과 양의 무리 전체에 골고루 배려의 눈길을 보내는 양치기가, 푸코가 정의하는 통치를 시작한 것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리 전체를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 리스크를 마다하지 않고, 거꾸로 무리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주저 없이 희생할 양을 들이민다는 모순된 태도를 양립시키는 것이 ‘목자이다. 한 마리의 양과 양의 무리에 대한 모순된 배려를 양립시키기 위해 양자의 다양한 품행[행동거지]conduites을 동시에 인도하는conduire, 통제하는 통치가, 권력이자 앎으로서 역사에 등장했다. 한 마리의 양은 이윽고 주체의 자기, 양의 무리는 주민이 될 것이다. 아무튼 푸코는 통치의 기원에서, 원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양립을 실천적으로 나름대로 실현한다는 문제를 보고 있다. 나름대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통치에는 다양한 변주가 생겨나고, 그 나름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하나의 동일한 근본 문제로서 지속하기(해법이 없는 , 자동적으로 종점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것이 출현한 이래의 역사는, 사목 체제로서의 통치의 역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근본문제는 원리적으로 해법이 없기 때문에, 통치에는 늘 무리(無理)가 따라다니며, 그 무리의 발현이 푸코의 정치 개념을 거의 정의하게 된다.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최초의 봉기, 최초의 격돌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즉 최초의 봉기, 최초의 대립과 함께 탄생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220)”(, p.221).

반사목혁명은 우리들이 상정해 왔던 혁명 국가적 공동성을 해체·재구성하는 혁명 보다 훨씬 깊은 혁명인 것처럼 생각된다. 다중[멀티튜드]의 절대민주주의조차, 한 명과 만인 사이의 등가성을 배려하는 통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계약에 기초하려는 것과 기초하려고 하지 않는 것, 나의 이해와 만인의 이해의 일치를 전제로, 혹은 그 일치를 목표로 우리는 정치적 공동체인 국가imperium를 구성하고, 또한 그것에 참여한다. 물론, 스피노자에게 분노에서 유래하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악이었기 때문에, 일치에 법적 형식을 부여하는 국가를 폐지하고자 하는 혁명은, 반사목 혁명의 질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갖지 않는 멀티튜드는 하나 즉 여럿의 통치에 작별 인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사목 혁명은 국가를 소멸시키는 것과 일치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물음은 통치성의 관점과 현저하게 간극되어 있다. 왜냐하면 브루노 카상티라는 연구자도 지적하듯이, 이 관점에서는 원래 국가의 실재성 자체가 상대화되기, 즉 의뭉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통치성개념이 도입되었던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는 광기의 역사이후 끊임없이 권력과 앎[지식]의 교차점에서 그가 주시했던 광기에 관해, “아마 광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122)고 말하고 있다. “주어진 대상(광기)의 척도와 규범에 비추어서 제도, 실천, 앎을 측정하기를 거부하는”(ibid.), 그것이 광기를 다루는 자신의 수법이며, 그것에 따르면 광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말해도 되지만, 이는 광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ibid.). 같은 수법에 의해 국가의 제도, 실천, 을 분석하는 것을 푸코는 강의의 목적으로서 부과하고, 그것을 따라 인구에 관해 말하는데 이어서, 하나의 말이 끊임없이 오가게 되었다. 그것이 통치성이라는 말이다”(p.77). 그렇다면 국가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말해도 되지만, 그것은 국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가는 통치성으로서 있다”, 혹은 실재하는 것은 국가보다도 통치성이다아마도가 아니라 [틀림없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푸코의 국가는 우리에게서의 국가만큼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실재성이 부족한 것을 소멸시키는 것에, 혁명으로서의 의미는 있을 수도 없다.

 

통치성과 주체적 자유 : 최후의 수수께끼와 가능성

통치성을 관심의 중심에 둔 푸코는, 권력을 다시 가능한 행위에 작용하는 행위의 집합으로 재정의하고(주체와 권력, 1982, p.237), ‘통치성권력관계의 전략적 영역으로 정의한다(주체의 해석학, 1981-82년 강의, p.241). 그러나 그런 한에서는, ‘통치성개념 자체에는 종래의 푸코적 권력개념과 특별히 바뀐 것은 없으리라. 권력은 감시와 처벌에서, 앎의 의지에서 인간에게 작용하는 전략적 관계가 아니었는가? 바뀐 것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가능한 행위의 함의이다. ‘통치성아래서, 이제 인간 행위의 가능성을 그 작용[기능]에 의해 만들어내는 권력이 지닌, 자주 받아들여지고, 또한 분명히 그렇게 말해진 기능이다 것이 아니다. “권력이 도처에 있다면 자유가 없지 않는가라고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회관계 전체를 관통하여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도처에 있기 때문입니다”(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자기에의 배려, 1984, p.720). “권력관계의 한복판에는, 끊임없이 그것을 유발=도발하는, 의지의 다루기 힘듦과 자유의 비추이성(자동사성)intransitivité이 있다”(주체와 권력, p.238). 주체는 타자(의 권력)에 의해 작동되기 전에, 자기에서 자기에 직접 이르는 비추이적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사적이고 자발적인 관계에 의해 이른바 자기’를 자유로운 주체로서 구성하고 있다. 자유가 권력에 선행하거나, 아니면 자유는 권력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다. 설령 주체 자신에 의해 자유라고 인식되지 않고 있더라도, 주체의 비추이적 자유에 권력은 손대지 못한다. 자기에 관련되려면 자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치성아래에 있는 권력에 있어서, 주체의 가능한 행위, 예측 불가능하고 다루기 힘든 자유로운 행위 무엇을 하는지 예측하기 힘든 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권력은 작동에 전략을 필요로 한다. 원래 권력이 생겨나기 전부터, ‘에게 타자는 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주체이기 때문에, ‘는 타자에 전략을 갖고 임하며, 타자의 가능한 행위에 포함된 개연성을 ‘정돈해야aménager’(또는 구조화해야’) 하며, 타자의 행위에 작동을 건다(주체와 권력, p.237). 그 작동이 권력이 된다. 권력은 이제 자유로운 주체 상호 간에서, 그 자유롭게 유발=도발되고 양극의 주체로부터 동시에 생겨난다. ‘통치성이란 이 주체 간 파워게임의 전략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기와 타자의 통치를 문제로 한다.

 

통치성이라는 관념을 둘러싼 성찰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서 정의되는 자기라는 요소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경유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권력의 분석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서 정의되는 주체의 윤리를 참조해야 합니다. 권력관계통치성자기와 타자의 통치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는 일련의 행, 일련의 열을 구성합니다.

 

자유로운 주체를 참조하지 않으면, ‘통치성존재방식은 결정되지 않으며, 분석의 도마 위에 올려지지 않는다. ‘통치성은 국가보다도 실재성을 갖고 있지만, 자유로운 주체는 그 통치성보다도, 혹은 그 통치성과 같은 정도로 별개의 실재성을 갖는다. ‘통치성의 원형 내지 모델이 사목인 이유나 의미도 이로부터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목, 권력이 그 발생의 전제로 삼고 또한 직접 손댈 수 없는 주체의 비추이성[자동사성],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를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타자(의 권력)를 향해 보루를 이루는 내부 자기에서 비롯되어 자기로 회귀하는 루프[loop]가 그것을 형성한다 를 갖지 않은 한 마리의 양으로, 주체를 그 외부로부터 축소 내지 환원하고자 한다. 주체을 그런 양의 무리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 한 마리와 무리 전체의 긴장관계가 도움이 된다. 무리 전체를 위기에 노출시킬 가치가 있는 의 생명은, 무리 전체를 향해 의 내부를 개방하고 있다. ‘는 그 생명의 위기에 무리의 운명을 말려들게 함으로써, ‘의 루프를 풀고 있다. 거꾸로, 무리의 희생물이 될지도 모르는 , ‘의 띠[루프] 속이 아니라 무리 속에서 거처를 부여받는다. ‘는 마치 한 마리의 양으로 축소·환원되고 있다. 희생물이 될 개연성에 대해서만이라면, 거기에 틀어박혀서 몸을 지키는 것도 가능한 내부가, 무리의 생명을 끌어들이는 등가성의 조작에 의해 억지로 열리게 되며, 그 결과 이 된 를 무리의 압력(“, 희생자가 될 지어이다”)으로 하는 것이다. 순서는 거꾸로여도 괜찮을 것이다. ‘의 띠[루프]를 무리라는 커다란 의 압력에 의해 극소의 으로 만들고, 그것을 와 무리의 등가성에 의해 열어서 으로 만든다. 말하자면, 협박과 구원 각각의 가능성을 번갈아가며 자기에 관련되는 자기에게 주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자기에 관련되는 자기의 그 관련’, 비추이성, 루프를 타겟으로 협박과 구원이 이루어진다. 왜 거기에 무리(無理)가 있는가? 협박과 구원은 동시에는 행해지지 않고, ‘를 동시에 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무리(無理)가 있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그것을 금하는 수법[방법]이 타자(의 권력)에게는 없고, 언제든 형성 가능하다. 비추이성에서 생겨난 주체의 본원적 자유를 앞에 두고서는, 그것을 조종하려고 하는 권력의 작동은, 언제 어느 때든 헛수고로 끝나더라도 불가사의하지 않다. 주체가 자기에 관계하기 위해서는, 푸코에 따르면, 플라톤이 권장하듯이 네가 몸을 돌아봐라만으로도 좋고,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처럼, 외부세계와 관련된 자기를 단련해도 좋다. 심지어 기독교의 금욕주의처럼, 자기를 포기하려고 애쓰는 것도 상관없다. 자기를 목표로 한 주체의 윤리는 모두, 주체를 한 마리의 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서는 본질적 장애로서 기능할 수 없다. 물론 주체의 윤리는 자기의 통치이며, ‘에게 있어서는 타자를 통치하는 기법의 개발 장소이다. 주체의 윤리는 언제든지 통치성으로, 따라서 권력으로 전용 가능하다. 타자를 얼마나 잘 통치할 수 있는가, 자기를 얼마나 잘 통치할 수 있는가의 척도를 추구하는 윤리도 있을 것이다. 주체의 윤리는, 혹은 주체의 윤리야말로 권력의 모태이다. 결국 통치성이 작동하는 주체 간 게임에서는, 권력과 자유로운 주체는, 서로 반발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밀월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과 주체의 존재론적 차이는 관계와 그 요소의 차이이지만, 이 요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관계이며, 요소 간의 관계를 포함한 보다 큰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 상호 포함의 질 위상적 을 지닌 관계들을 하나여럿=전체의 관계로 정비하는’ = ‘구조화하는대수적으로 것이, “전체적이고 개별적으로omnes et singulatim라는 논리로 작동하는 사목권력이다.

그렇다면 사목권력을 타도하는 혁명이란, 혹은 통치성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정치란, ‘하나여럿=전체에 반발과 밀월의 관계를 되돌려주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사목권력의 하나 곧 여럿에 별종의 하나 곧 여럿을 대립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그런 별종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사목권력이 하려는 것은, “타자의 가능적 행위의 영역을 구조화하기위해, 다름 아닌 가 날마다 주체간 파워게임에서 실패하면서 시도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타자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는 끊임없이 자기와 타자의 사목이 되지 않는가? 주체의 윤리란 자기에 대한 자기의 사목화라고 바꿔 말해도 좋은 것이다. 반사목혁명은 그러면 하나의 사목혁명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순전한 혁명으로서는 허용될 수 없는 혁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반사목혁명은 없다”, 그것이 사목체제는,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사로부터 결별하게 만드는 깊은 혁명과정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이유일 것이다. 사목이 아닌 혁명 지도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지 않았던가.

그래도 사목체제와, 어떤 의미에서는 흔해 빠진 주체 간 파워게임 사이에는 하나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게임에서 권력과 주체, ‘와 타자, 관계와 요소 등등,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와 타자의 통치는 풀기 힘들게 뒤얽혀서 반발과 밀월을 번갈아 할 수 있게 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으로서는 아주 흔해 빠졌다. 거의 푸코에게서의 자연상태라고 특징지어도 좋을 정도로, 그것은 편재적, 역사관통적, 존재론적이다. 그것에 대해 체제 내지 권력으로서의 사목은, 이 흔해 빠진 게임을, 존재하는 것은 한 마리의 양과 그 무리라고 이야기함으로써,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양인 존재는 자기를 갖지 않고 사목에 의해 인도되며, ‘자기를 거점으로 파워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리인 주민이란, 상호 간에 권력관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다. 목자의 협박은, 주민 간에서 타자의 통치를 시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에게 하는 협박이며, 그 구원은, 통치 없이 가 생존 가능하다고 약속하는 구원이다. 사목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들은, 통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살 것이다. 그들은 협박과 구원의 반복 속에서 사목에 의해 살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면, 무엇을 해도 허용될 것이다. 주민은, 타자에 대한 권력 행사를 포기하는 것과 맞바꿔서, 자기에 관해서는 행동의 자유를 얻는다. 그런 자유에 어떤 가능한 것이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가는 별개로 하고, 사목체제에서의 통치는, 편재하는 통치를 통치하여 무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무화는 물론 하나의 전략에 지나지 않으며, 목적 자기에의 관련을 주체가 포기하도록 만드는 의 완전한 수행에는 본질적인 무리가 있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통치이며, 하나의 통치로서 통치의 통치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이다.

 

푸코와 ()자유주의

 

바로 그 순간,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임이 제게는 명백해진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통치한다는 것은, 바라는 결과와는 반대의 결과를 이끈다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사회라는 관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18세기 말의 정치사상이 발견했던 것 가운데 가장 커다란 발견 중 하나입니다.

 

그 순간이란 문맥에서 볼 수 있듯이, 18세기 말의 언제인데, 그것 자체로서는 하나의 질문의 형태를 갖고 있다. “어떻게 통치는 가능한가라고 물어진 순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물이 최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사물이 통치의 합리성에 적합해져서 개입의 필요가 없게 되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활동에 어떤 제한을 설정하면 좋은가”(ibid.)라고 자유주의자들이 묻는 순간이다. ‘통치성을 주제로 삼고, 그것을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주체의 윤리와 동시에 탐구하고자 한 말년의 푸코가, 근대에 관해서는 자유주의(liberalism)에 강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안전, 영토, 인구의 이듬해(1978-79)에 한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 아담 스미스와 중농학파 같은 18세기의 경제적 자유주의부터, 20세기의 신자유주의(하이에크,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강의 속에서 프랑스에서 진행된 지스카르 데스탱의 개혁)에 이르는, 자유주의의 역사에 온통 바쳐지고 있다고 말해도 된다. 추적되는 것은 어떻게 통치를 최소화할 것인가라는 문제계이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근대국가의 기층 국가 자체보다 더 실재성을 지닌 차원 ― 에서 발견된 통치성, 이듬해에는 갑자기 그 최소화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통치하다는 것은 거꾸로 통치의 붕괴를 초래하며, ‘통치하지 않는다와 같아진다는 배리에 관해, 자유주의를 건드린 푸코는 깨달았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논문이나 인터뷰에서는 자유, 자유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같은 말이 곳곳에서 발견되며, 그 무렵 그는 강의에서는 고대의 주체의 윤리를 주로 논했기 때문에, 그러한 두 개의 점을 겹쳐놓고, 말년의 푸코는 윤리에서 통치성에 대한 제동을 찾고, 그것은 정치사상으로서는 자유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는 그 무렵, 칸트의 계몽론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대의 윤리에서 근대의 자유주의에 이르는 통치에 맞서고, 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고의 계보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앞 절에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통치의 과잉이 그 부재로 반전되는 근거를, ‘자기와 타자의 통치에 포함된 자유주의적 배리에서 찾았던 것이다. “권력관계의 전략적 영역인 통치가 정묘하고 복잡해질수록, 그것은 주체 사이의 자유로운 파워게임 권력통치성도 그 속에 있다 에 있어서, 타자로부터의 권력행사에 맞서는 자기에게 가능한 행위또한 증대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하는 배리이다. 이때 자기와 타자의 통치인 통치의 그 과잉이란, 권력과 자유로운 주체 사이의 반발과 밀월 각각이, 양자의 병존이 불가능해지는 점으로까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권력에 대한 의존의 증표인 주체의 반발도, 도를 넘어서면 의존관계를 풀어버리려고 할 것이다(멀티튜드의 공포분노로 높아지도록). 주체가 반발함으로써 주체의 총애를 받는 데 성공한 권력도, 너무도 총애를 받으면, 주체에게 의표를 찌르는 술을 제공할 것이다. 전략이라는 질을 갖고 있는 한, 관계는 그런 딜레마를 품지 않을 수 없다. 통치의 강화나 증대에 발맞춰, 거기에 내재하는 딜레마가 극점에 도달하면, 통치 자체가 기능 부전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18세기 말의 자유주의는 경험적으로 그것을 깨달았으며, 딜레마를 억누르면서 양의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과제에, 자유주의는 통치의 최소화=최적화인 문제형식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사실상, 그 자유주의적으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사목자체제라고 읽었다. 통치의 최소화란, 통치를 비통치의 방향을 향해 노쇠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통치하는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이 기술은 주체들에게, 따라서 권력에도, 파워게임을 그만두게 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비통치와 같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이고 개별적으로라는 고유의 논리와, 협박과 구원의 병용이라는 독자적인 수법을 갖추고 있는 진정한 통치기술이며, 광기의 역사이후의 푸코가 분석했던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주체의 저항을 겪고 좌절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좌절하더라도 주체에게 게임을 그만두게 하려고 하지 않는 사목자체제는, 통치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에는 절호의 선례를 제공한다. 아니 오히려 사목자체제가 역사적으로 최초의 통치였던 것이다. 권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는 안정되고 제어하기 힘든 자기와 타자의 통치, 그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동기와 방법 또한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그것이 자유주의로 전경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는 사목적 통치성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적어도 말년의 푸코에게, 고대적 윤리에 의해 뒷받침된 근대적 자유주의로의, 통치성으로부터의 전회를 인정할 필연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통치의 최소화야말로 반사목 혁명의 가능적 내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푸코와 극히 가까운 곳에서 출현했다. 콜레주드프랑스에서 그의 조수를 맡았던 프랑수아 에발드이다. 그의 대작 복지국가(1986),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사회라는 관념의 발견 내지 발명에는, 통치를 최소화한다는 문제의식에 그치지 않는,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책이 포함되었다고 역사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보험기술이다. 해양보험에서 시작된 보험이, 생명보험, 실업보험, 연금 등의 사회적리스크 회피 방법으로 확장되는 역사과정을, 에발드는 세밀하게 추적하며(특히 제2리스크에 관하여), 자유주의가 이미 일종의 복지국가였다고 주장한다. ‘큰 정부만이 복지국가인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이 책의 중심 테제이다. ‘작은 정부큰 정부의 복지국가로서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리스크 개념은 발견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역사책이며, 이런 그의 논의도, 자유주의가 하나의 사회관리사상이며, 따라서 통치성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에발드는 90년대 말이 되면, 원래 마오쩌둥파의 활동가이자 국경 없는 의사회의 창설에도 관여했던 드니 케슬레와 함께 프랑스 경단련(MEDEF)의 이데올로그로서 우리 앞에 등장한다. 경단련의 사회보장제도 개혁 플랜인 사회재정초refondation sociale”의 입안에 참여한 것이다. 그들의 공동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스크, 우리가 어떤 리스크관을 갖고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리스크는, 더 이상 18, 19, 20세기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상 모든 개인적, 집단적 사건을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새로움을 이루는 것이다”(리스크와 정치의 결혼, p.61). 왜 이 새로움이 생겨났는가는, “사회재정초플랜이 제안된 이유이기도 하다. ‘큰 정부노선으로 정비되었던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가 파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리스크인 경제상황의 악화를 회피하기 위한 통치기술이었던 큰 정부’ = 복지국가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국가주도주의dirigisme’에서 해방되라, 국가를 소생시키려는 것을 그만두라고 에발드, 케슬레, 경단련은 복지국가의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인들에게 호소했다. 그들의 플랜은 구체적으로는, 오늘날까지 법과 관료기구에 의해 지탱되었던 연금제도를, 경영자와 노동조합의 계약에 기초한 관리 아래로 이행시키고, 금용공학을 도입함으로써 민간보험처럼 운용한다는 것이었다. 정치를 국가의 손아귀에서 탈취하여 리스크와 결혼시키자, 이것이 그들의 슬로건이다. 2012년의 오늘날 아주 흔해빠진 신자유주의적 플랜이지만, 작업을 할 때에는 푸코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일찍이 좌익푸코주의자라고 불렸던 에발드가, 전향한 마오쩌둥주의자나 대기업 경영자와 협력하여 그것을 책정한 것이다. 프랑스적 사목국가’(국가주도주의)로부터의 탈출을 찾아서.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이야말로 사회혁명이라고 주장하면서. 플랜의 이름은 사회재정초이다. 에발드는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푸코가 자유주의자의 입을 통해 말했던 배리의 원인을, 사목자로서의 국가에서 찾고 있다. 자유주의가 국가주도주의를 대신해 사목이 되고자 하고 있을 때, 국가를 후퇴시키면 사목이 후퇴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인가?

푸코에 관해서는, 우리와 에발드 등의 대립은 스피노자를 둘러싼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같은 탁상공론으로 끝날 것이다. 아마도 푸코 본인이 그렇게 장치해 둔 것일 터다. 그는 극좌활동가와 국가관료 둘 다의 얼굴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푸코가 이름을 부여한 혁명에 관해서는, 우리가 지금 비관주의자이며, 에발드 등은 분명히 낙관주의자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푸코를 우리의 비관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여도 좋을 확실한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최초의 봉기, 최초의 대결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안전·영토·인구, 편집자 주, p.221). 이렇게 강의 준비 노트에 쓴 푸코는, 그것을 강의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가 있다. 이 정치, 이 저항, 봉기, 대결로부터, 푸코가 말했던 통치성이 생겨난다. 우리가 묘사한 것은, 그가 통치성을 이 정치, 이 저항, 봉기, 격돌[대결]에 정초짓는 모양새이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권력은 생겨나지 않으며, 자유가 권력을 도발하고 자유를 제어하려고 하여 통치성은 개발되었다. 그리고 자유는 그것에도 저항하여 스스로를 통치성으로 주조했다. 주체의 윤리란 주체를 자기 권력으로 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이다고 완전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정치가 요청하는 저항의 방식 또한 통치성이 아닌가! 정치가 마치 통치성과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환상을, 그는 공공연하게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읽어낸 푸코는 시사하고 있다. 이런 푸코는 우리의 귓가에 자유란 권력을 낳을 자유이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그것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는 자유주의의 자유가 양의 자유일 뿐인 것으로만 생각된다. 양치기에게 인도되어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양의 자유로만.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하는 사회혁명은 어디가 반사목혁명인가라고만 생각될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 책의 서두에서 봤듯이, 이 자유는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진 뒤, 정치철학을 사목자의 윤리로 삼아버리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유롭게 되었다고는 해도,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재난의 사후 처리를 곳곳에서 떠맡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의 눈에는 오늘의 보편윤리야말로 사목체제의 완성형처럼 보인다. 도처에서의 선도교화. 양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고 해도 쫓겨나지 않는 사목자. 사목자조차 권력을 낳을 자유를 행사하면 추방될(카다피를 보라) 정도로, 이 체제는 완성되고 있다.

이것이 자유를 둘러싼 대립이라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둘 다를 낳는 푸코의 자유는, 예기치 않게 스피노자의 분노처럼, 혹은 그 아래에 숨은 신 즉 자연처럼, 존재론적인 의미를 사건 세계에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낳을 자유 그것에 저항할 자유 사이의 같음[마찬가지임].’ 국가를 만드는 것과 파괴하는 것을 같게’ 분노와 똑같은 자유.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자유의 양의성(통치에 참여할 적극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받지 않은 소극적 자유), 푸코는 역사를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 왔습니다라는 당연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스피노자가 국가의 을 재차 부정하기 위해, ’으로 국가를 만들게 했던 것처럼.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있다. ‘분노는 그 자체의 해소를 목표로 해야 할 슬픔의 정념이며, 스피노자적 공산주의 혁명의 최종 근거이다. 푸코에게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유는, 정의나 가치로 취급되기 전에 그 흔해 빠진 사실성에 계속 정위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분노의 추처럼, 폭주하여 자동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없다. 국가건설과 혁명은 양방향 동시에 목표가 되며, 인간이 늘 이것들 중 어느 하나로 우세적으로 향했던 두 개의 극이었지만, 즉 어느 쪽이든 모두 과도적 상태를 출현시켰지만, 자유의 두 개의 극은 동시에 극으로서, 분리된 곳에서 출현한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자유는 부동이며, 그 혁명은 있을 수 없다. ‘분노는 양극을 끊임없이 불분명하게 하고, 자유는 끊임없이 그 자체로 분열하고자 한다. 히스테리와 분열증. 정념의 폭풍과 인류라는 자기의 고독한 대화. 그래서 푸코도 이렇게 적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복잡한 권력 관계의 효과에 도구이며, 다양한 감금장치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이자 힘이며, 그것 자체가 이 전략의 요소인 담론에 있어서의 대상인, 이 중심적이고 중심화된 인류 속에, 투쟁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감시와 처벌, p.315).

하지만 이 자유는 어떻게 해도 길들일 수 없다. 그것을 규율훈련에 의해서 하든, 협박과 구원이라는 세치 혀에 의해서 하든, 아무튼 부숴뜨리려고 한다면, 권력도 통치의 가능성도 망가져버려 이 자유가 승리한다. 이 자유의 다루기 어려움, 완고함 때문에, “지나치게 통치한다는 것은 전혀 통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유가 혁명 아닐까? “나는 과거에 있으며, 지금도 있으며, 언제든 있다!”라고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외쳤던 것은 혁명이었다. 비관주의? 그런 것은 없다. 이 자유는 가치적이지 않은 기술적 존재이며, 멀티튜드가 기성 질서에 대한 분노와 질서의 적에 대한 분노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게 하는 방법=윤리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사는 것이 가능한 것은 자기 이외의 사목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뿐인데, 그것을 사회적으로는 혁명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처방전 없이 경험에만 의거하여 역사에 절단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이 자유는 정치라는 기술에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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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이 책이 기획된 것은 같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졸저 알튀세르 : 어떤 연결의 철학(20109)이 출판되었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집필된 것은 지난해, 2011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이다. 그 동안에 우리는 ‘3.11’을 경험했다. 알튀세르에게 하나의 현대적 단서가 인정되는 문제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를 어떻게 철학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가 의 깊이와 넓이를, 전자보다 큰 사상사적 풍경 속에서 선명하게 부상시키겠다는 본래의 기획은, 지진이나 원전사고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내게는 십수년 간의 작업의 무대 뒤를 보여주는 재고 정리 작업 같은 것이다. 그래도 ‘3.11’은 이 책에 큰 영향을 드리우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의, 그것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철학에 있어서라고 하는 이중의 한정이 붙기는 하지만, 문제가 정치였기 때문이다. 정치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정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나는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설정된 씨름판 속에서, 끊임없이 지금이 날아 들어올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그 결과, 둥근 씨름판에 각이 생긴 것 같은 곳이 이 책에는 있다. 각의 이름이, 최종적으로 제목에 남은 혁명이다.

정치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고, 우리는 매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쓰레기는 끝도 없고, 방사능은 더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국가가 파산할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머리 한 켠에서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고, ‘빈곤의 물결이 서서히 일본을 침식하고 있다는 감각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에게는, 즉 작금의 정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보는 정치의 현황에 대해 조바심을 내게 됐다. 정치가도 자신의 무기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오로지 저자세로 처신하려고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된 상황일 것이다.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제로에서 재질문을 강요하는 사고를 철학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정치를 앞에 두고, 혹은 유권자나 시민으로서 그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고, 정치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을 아무런 전제 없이 재포착하고, 사고의 리셋 지점으로 돌아가라고 사람들에게 닥쳐오는 상황은, 이른바 정치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따라다니고, 왜 이 정도의 세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욕을 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이미 철학자의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있다. 키르케고르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불안은 철학적인 한 걸음이다. 불안에 답은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에 빠져 욕설을 퍼붓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길, 이 막다른 곳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데카르트적 회의가 아닌가. 거기에 내몰린 정치의 모습, 즉 이 책(의 주인공들)이 문제 삼고자 했던 것을, 현실은, 문장과 같은 답답한 것을 거치지 않고서 사람들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 감각보다 뒤쳐져 있다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뒤쳐져 있음을 만회하려고 과격으로 달려나가고, ‘혁명등이라고 말해 버린 것일까? 일종의 초조함이 이 책을 충동질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틀렸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혁명이란, 정치가 인간의 사고와 함께 리셋되는 지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그저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했을 뿐이다. 초조해하면서 처방전을 내려고 하거나, 미래를 알고 있는 척 하는 짓거리를 하지 않고, 리셋 지점이 어떤 곳인가를, 내게 다양한 것을 가르쳐주었던 선인(先人)들에게 다시 한 번 따져 묻고 싶었을 뿐이다. 리셋 지점에서, 가까운 과거와 오늘의 정치의 광경을 되짚어보기 위해.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말은, 질문을 순화하기 위해 방법적으로 짊어진 과제 내지, 필자의 각오에 다름없다. 혹은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오히려 뭔가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다고 하는 혁명론이며, 독자가 보기에도 그러하길 바란다.

그렇지만 이 리셋 지점은 사회문화혹은 문명등이라는 망막한 지대에 도달하여, 그 속에서 사라지는 애매모호한 제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로 정치라고 불리는 영역,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불려왔던 인간적 활동의 임계점이다. 경제나 기술문명으로 이동해 버려서 고유한 성격이 거꾸로 보이지 않게 된 경계영역이다. 거기에는 쑥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멍이 있으며, 그 구멍에서 사람들이 자주 철학이라고 부르는 괴물이 얼굴을 들이댄다 요는 그것만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장소에서 괴물은 속삭인다. 지금 문명을 끄집어내는 등, 쟁점을 멀리 내쫓아버려 사람들에게 의욕을 잃게 만드는 음모일지도 모르겠다. 사물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역설하고, 화를 낼 의욕을 줄여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경제나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며, 리셋 지점에서 보이는 고유한 현실, 환상이 아니라 이해가 걸린 현실을 지시하고자 할 뿐이다. 이 광학 아래서는, 일본이라면 부흥이나 피해변제 때문에, 세계에서는 파산한 금융기관(국가라는 이름의 그것도 포함한)의 뒤치다꺼리 때문에, ‘자금 융통을 위해 서둘러 다니는 사람들이 정치가의 이름을 참칭하고 있다. 게다가, ‘자금 융통조차 사실은 이름뿐이고, 그 실태는 손실의 대체(유행하는 말로는 주식 전매[날림]’, 언젠가 누군가가 지불해줄 것이라는 정책이다. 바로 케인즈가 말한 것 대로다. 장기(長期)란 모두가 이미 죽어 있는 시간이라는 것.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야유가 쏟아질 것 같다. 당연하다. 나도 사회주의 혁명에 넌더리가 난다. 그러나 처방전을 생각하기 전에 분노하다가 선결일 것이라는 게 야유에 대해 부랴부랴 할 수 있는 응답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만으로는 이 책이 서두에서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정의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처방전도 윤리적 가치도 차원을 달리하는 곳에서 움직이는 정치인 게 아닌가라는 물음을, 저자로서는 지금을 따라잡기 위해, 하나의 과거를 이 책에 아로새기려고 했다. 질문만 해도 상관없다. 그것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책으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혁명에 넌더리 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나간 것이 아닌 믿음을 내게 심어준 것도 혁명과 혁명사상의 역사이다. 사회를 둘러싼 처방전, ‘감정의 집단적 표현, 그리고 윤리 내지 도덕이라는 이 세 가지 차원은 그 순서에 따라 처방전에 나오는 메뉴를 바꿔버리지 않을까? 실제로 바꾸지 않았는가? 물론, 이 책에도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작은 책만으로 지금을 따라갔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음을, 나도 통감하고 있다. 그래서 부제에는 서설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처방전의 강박적 요구가, ‘손실없는 문제의 교체 요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이 국난(国難)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만큼, 메뉴의 빈약함을 나라’(혹은 현재의 민주주의제도)라는 가치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감추려고 하고, 보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업 축소를 해도, 공무원을 줄여도, ‘작은 정부로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믿음에 불과하며(신자유주의의 20년 역사가 그것을 폭로했다), 거꾸로 큰 정부에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도, ‘그린 뉴딜의 실패가 증명해버렸다. 재정지출을 10년 전의 두 배로 해도, ‘월가를 점거하라!’라는 결과가 된 것이다. 메뉴를 둘러싼 허심탄회한 논의는 점점 공허한 축제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아쉬운 점, 이 책이 서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과 관련된다. 대체 메뉴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축제의 무대에서 현재 메뉴라고 생각하는 것의 중심기둥을 싹둑 잘라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들갑스럽게 말하면, 맑스에게 철학경제학비판으로까지 나아가야만 했는데, 철학경제학비판속에서 다른 삶을 다시 부여받아야 했는데,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을 완전히 금욕했다. 심지어 정치철학에 관해서도 금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점들이 많다. 오로지, 일단 내게 가능한 리셋 지점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더 말하면, 오늘의 경제학비판에는 무엇보다도 전제적인 철학’(이데올로기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이 결여되어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위기의 시대에 대학 지식인이라는 것에 대한 초조감에 사로잡혀서 메뉴를 생각하거나, 정치가처럼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 명의 인간이 이런 느긋하고 서두르지 않는 원점 회귀를 해도 괜찮을 정도로, ‘분노하는사람들은 강하다고 안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조사 작업과 출고는 남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는데,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도덕 때문이라기보다는 작업의 어려움 자체에서 기인한다. 책을 읽으신 분은 곧 알겠지만, 나는 선인들의 여러 설들을, 꽤나 무리를 해서 순서를 뒤섞었다. 난폭하게 요약을 하고, 각각의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는 논점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큰 논점을 상당히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의 저작을 읽은 적이 없더라도, 내가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거의 결점과도 같은 비판도 했다. 누구든, 자기 나름의 얼마간의 아웃풋output을 내기 위해 그런 작업을 남몰래 할 것이다. 남들 앞에 내세우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웃풋이 긴요하고,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조감도 작성 작업은, 결과로서의 아웃풋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의 올바름만이, 그것을 얻는 여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왜곡을 상쇄시켜준다. 이번에, 그 왜곡도 포함해 무대 뒤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것이 분노하는사람들에 대한 바로 올바른동조의 방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탓이다. 내일을 밝히는 빛일 수 있는 동시에, 시선을 다양하게 왜곡시키는 것도 확실한 분노가 세상에서 고조되고 있을 때, 자기만 왜곡을 폭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어떡하지? 말하자면 그 점에 관해서만은, 나는 이 책에서 적대시한 윤리에 무릎을 꿇었다.

또 하나, 작은 사정이 있다. 이 책에는 첫 번째 독자로 상정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금, “유럽현대사상과 정치라는 공동연구(교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반장이라는 위치에 있다. 거기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 언제나 지껄이고 있는 것의 배경을, 동료들에게 숨김없이, 또한 계통을 세워서 보여줄 필요를, 공동연구가 미끄러졌던 이 1년 동안 통감했다. 각국마다 주요 발표자가 있는 연구회의 한정된 논의에서는, 아무래도 답답한곳이 있다. 거기서 동료들에게, 내 발언의 배후에 있는 포괄적인 조감도를 정리하여 제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즉, 일종의 동료 사이의 담론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연구회 자체를 사회를 향해 듣는(즉 중간보고를 하는), 연구회에도 사회라는 외부를 도입하는(즉 긴장감을 증대시키는) 궁리工夫의 일환이다. 동료들이 연구회의 안과 밖에서 이 책에 응답해주기를 무엇보다 바라고 있다. 물론, 이런 중간보고를 공개했다고 여러분께 알리고, 반장으로서 엉덩이를 터는것이다. 모두 기합을 넣어주세요.

마지막으로, 편집을 해주신 平凡社의 히로마 켄(昼間賢) 씨와, 신서 편집자인 마츠이 준(松井純) (내게 기획을 해줬다)에게는 아무리 감사의 말을 해도 부족하다. 듣고서 감상을 들려준 에게, 이렇게 잘 읽어줬다고 기쁨을 느끼면서, 막판 스퍼트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

 

201214

이치다 요시히코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5. 국가에 의한 통치 : 독일의 내치[폴리차이] 모델

1. 국가이성 개념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국가의 이념

그런데 이렇게 해서 인간의 신체, 생명, 정신의 통치가 사목의 원리의 연장과 수정 아래서 진행된 결과, 근대의 다양한 국가의 이념들이 등장한다. 우선 종교개혁에서 나타난 대항품행 개념은 근대의 초기에 영방국가[領邦国家, 13세기에 독일 황제권이 약화되자 봉건 제후들이 세운 지방 국가]가 성립되기 위한 커다란 실마리가 됐다. 사목의 위기와 폭발과 사방으로 흩어짐四散 때문에 몇 개의 새로운 정치적 개념이 탄생했다. 예를 들어 국가이성, 폴리차이, 세력균형과 외교 등의 개념이다. 그 배경에는 16세기에, 스콜라철학에서 믿었던 정치적 이성 개념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초래한 것은 그 나라의 종교는 그 나라의 영주가 정한다는 영방국가領邦国家의 성립과 신성로마제국 권위의 붕괴였다. 황제 칼 5세가 제국에서 루터를 추방하라고 명했는데도, 나라들의 지배자가 이것에 응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점점 더 통치권력이 주도하는 유형의 양상을 띠게 됐다. 나라들의 지배자는 종교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제국으로부터 독립된 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은 개신교 국가들과 가톨릭 국가들로 분열되면서, 각각이 자국 안에서 지배자의 종교를 강제할 수 있다고 확정된 것이다. 이 체제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최종적으로 확립되지만, 1555년의 아우구스부르크의 화의(和議)에서 이미 현실화됐다. 이리하여 새로운 정치 단위를 통치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의 이념이 요구됐던 것이다.

국가이성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국가통치의 이념이며, 레종 데타라는 프랑스어에 남아 있으며, 국가의 생존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취해야 할 원칙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때로 국가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어떤 행위를 취하더라도, 초법규적으로 허용된다는 국가 이기주의적 맥락에서 말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보테로(1544-1617)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국가가 일상적인 기능에 있어서 (매일의 관리에 있어서) 기초지어졌을 때부터 나라를 유지보수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종류의 합리성이라고 말했으며, 국가의 자존을 지향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치[폴리차이]는 독일에서 생겨난 내정적인 이념이며(푸코는 폴리스라고 프랑스어로 표기하지만, 경찰과 헷갈리기 쉽기에 독일어로 표기한다[이 번역본 등에서는 모두 이하 '내치'로 옮긴다]),국내 질서와 국력 증강 사이의 동적인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계산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가이성도 내치도 국가가 자존하고 강화되기 위한 이념이지만, 세력균형이나 외교개념은 자존하고 있는 국가 사이에서 세력의 유지와 균형을 목표로 하는 이념이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더 자세하게 검토하지만, 사목권력이 붕괴했을 때, “정확하게 말해서 1580년과 1650년 사이에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의 창설이 이뤄졌을 때”, 그 사목권력이 붕괴된 후의 장소에 새로운 국가의 이념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런 이념에 대해 고찰하는데, 그 전에 중세 이후 국가의 통치 역사를 돌이켜보자.

 

중세의 통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번역되지 않았던 중세에서 정치학의 이념은 키케로를 통해서 전해졌다. 특히 마크로비우스의 스키피오의 꿈의 주석을 통해서다. 마크로비우스는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키케로의 정치철학을 소개했다(‘스키피오의 꿈은 키케로의 국가의 말미를 장식한 부분이다). 그리스의 전통에서 정치학에 종사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명상과 철학이라는 행위보다 낮은 차원의 활동으로 여겨졌다. 마크비우스가 비판하는 플로티누스는 정치적인 덕이 인간을 신에 가까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신과 똑같이 되려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세속적인 삶의 방식과 사물로부터 도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키케로에게서 배운 마크로비우스는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자는 철학에 전념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천국에서 환영 받고, 영원한 행복을 향유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정치가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에 근거하고 정의에 맞는 것만 이루는 사려(프루덴티아에), 정념을 이성에 따르게 하는 절제(템페라티아에),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굳건함(포르티투데니스), 배분적 정의(유스티티아에)의 네 가지 덕이 필요하다.

이렇게 덕을 갖춘 정치가는 자신을 배려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인 동시에, 키케로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선한 지배자이며, 국가의 창립자인 자는 거의 신과 동등한 지위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정치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공적인 빛 속에서 덕의 높이를 나타내는 인간이며, 보통 사람보다도 신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게 됐다.

다만 13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자, 정치적 활동의 제약의 크기가 주목받게 된다. 정치학은 인간의 실천적 행위에 관련된 학문이며, 신의 명상 같은 높은 지위를 인정받지 않는 것이다. 아퀴나스에서 단테에 이르기까지 중세의 정치철학은 인간 삶의 영위에 있어서의 정치학의 탁월성과, 신의 명상으로 대표되는 철학의 탁월성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어쨌든 정치가(폴리티코스)라는 개념은 타자와 함께 사는 지상의 공화국에서 공통선을 찾는/요구하는 중요한 행위를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의 통치이성은, 이 공통의 공공선을 중심적인 이념으로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왕을 사목자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목자는 양떼에 있어서의 선을 찾지만/요구하지만, 모든 지배자는 복종하는 집단의 선을 찾는다/요구한다는 것이다. 아퀴나스에게 왕은 하나의 도시 또는 영지領国의 사람들을 그 공통선을 위해 지배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왕은 어떻게 사람들을 통치해야 할까? 아퀴나스는 이를 위해 몇 가지 종류의 모델을 제기한다. 푸코는 이를 신과의 유비, 자연과의 유비, 사목자나 아버지와의 유비라는 세 개의 모델로 설명한다. 우선 신과의 유비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비로 행해진다. 자연의 사물의 통치에는 보편적인 통치와 개별적인 통치가 있고, 보편적인 통치를 행하는 것은 창조주인 신이다. “신의 통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신의 섭리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별적인 것의 지배는 미시적 인간의 자기 통치이다. 인간은 이성에 의해 스스로를 지배하는 것이며, 이것은 거시적 신의 지배를 모방한다. “인간과 이성의 관계는 세계와 신의 관계와 같다.”

또 신과의 유비는 이성에 의한 인간의 통치뿐 아니라, 도시와 영지의 통치자인 왕의 임무에도 해당된다. 신은 세계를 창조했으나 왕은 지배하는 인간과 국가를 창조할 수는 없다.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에 왕은 우선 국가에 적당한 장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국가에 있어서의 교회나 법원이나 시장의 장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사람들의 직업에 따라 장소를 지정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국가의 설립에서 보이는 세계 창조와의 유비이다. 다음으로 도시와 영지의 설립을 세계가 창조된 방법으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이를 지배하는 방법도 세계에 대한 신의 성스러운 지배 방법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국가의 창조와 지배의 양쪽에서 왕은 신을 흉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유비는 생명체의 생명력과의 유비이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신체나 다른 동물의 신체 속에, “모든 지체肢體(모든 구성원)의 공통선을 지켜보는[보살피는] 지배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해버릴 것이다고 했다. 이것은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선으로 향하며, 따라서 공통선을 간과하려고 한다.” 그래서 국가에도 이 지배적인 힘에 상당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국가에 있어서는 각각의 개인의 특별한 선을 넘어, 다수자의 공통의 선을 향해 사람들을 강제하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이것이 지배하는 권력이다.

세 번째의 유비는 사목자와의 유비이며, 이것은 처음에 제시했던 것 그대로이다. 왕은 사목자로서, 아버지로서 통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감으로써 혼자서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은 선한 생활이다. “선한 생활이란 덕이 높은 삶이며, 덕이 높은 삶이야말로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목적인 것이다.” 덕이 높은 삶을 보냄으로써, 혼이 구제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며, 왕의 임무는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왕은 개인의 영원한 구제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처할 뿐 아니라, 그 구제가 가능해지도록 조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푸코가 이런 세 가지 유비를 통해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 가정, 국가, 그리고 자연의 전체에 대한 우주론적인 일대 연속체의 이름으로, 왕이 통치하는 것을 인가받고, 이 연속체가 주권자가 따라야 할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다. “왕이 통치할 수 있고 또한 통치해야만 하는 것은 왕이 신으로부터 자연이나 사목자를 통해 한 집안의 아버지에 이르는 이 거대한 연속체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며, 그리고 16세기에 붕괴한 것은 이 연속체이다.

신이 자연을 사목적으로 통치했다고 한다면, 구원, 복종, 진리의 세 가지 축에 있어서 지배했을 것이다. 구원의 축에 있어서는, 세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되며,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인간중심주의이면서, 인간은 이 세계를 위해서 살아 있지 않는 것이 된다.

이것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비의 사고방식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은, 거대한 우주로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며, 큰 인간이다. 동시에 소우주인 인간은 가장 높은 천구의 가시적인 질서를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대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이지만, 소우주의 극에는 하나의 특권적인 피조물인 인간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한정된 규모에서, 천공, 성신星辰, 산악, 하천, 폭풍우의 광대한 질서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복종의 축에서 생각한다면, 신은 인간들에 대해 구원의 표시를 주고, 신의 의지를 제시한 것이라고 푸코는 생각한다. “사목적으로 통치되는 자연은 곧 기적, 위협, 표시로 가득 찬 자연이 된다. 그때 세계의 양상은, 문장, 문자, 암호, 어두컴컴한 말, 터너에 따르면 상형문자에 의해 뒤덮이는 것이다. 이 표시는 각각에 벌의 위협과 구원의 약속과 선택의 표시로서 해독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는 해독되어야 할 기호로 뒤덮여 있기때문에, “인식하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 된다.

세 번째인 진리의 축으로 생각하면, 기호로 가득 찬 세계는, 그 진리가 해독되기를 기다리는 세계라는 것이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며, 그 열려 있는 책 속에서 사람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유비와 유사의 관계 속으로부터, 세계의 진리를 해독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연과 말은 무한하게 서로 교차하며, 읽는 유령을 터득한 자에 대해서, 이른바 유일하고 방대한 텍스트를 형성하는 것이다


군주권력의 시대의 통치

이런 중세적 세계의 이미지는 이미 지적했듯이 “1580년부터 1650년 사이에, 고전주의의 에피스테메의 창설 자체가 이뤄졌을 때에 소멸하게 된다. 그 절단을 중세의 사목적 우주론을 떠받치던 세 개의 축으로 고찰해보자. 첫 번째인 신과의 유비의 축을 절단한 것은 갈릴레오의 천문학이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발명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성신신학星辰神学을 타파했다. 달 위의 세계와 달 아래의 세계의 구별이 소멸된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은 무지개처럼 무산霧散됐다. 이제 진리는 자연의 신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학의 말에 의해 작성되게 됐다.

그리고 이제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계층구조가 아니다. 이 우주를 해독하려면 유비적인 계층구조가 아니라, 데카르트가 『정신지도의 규칙』에서 제시한 분석방법이 필요해진다. 분석에서도 비교는 행해진다. 그러나 이 비교라는 작업은 세계가 어떻게 질서 잡혀져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맡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사고의 질서를 따라서 행해지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자연과의 유비의 축을 절단한 것은 포르 루아얄의 『일반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신의 표시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기호나 암호라는 것은 인간이 분석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다. 중세의 점술’(디비나티오)신에 의해 세계 속에 미리 배분된 언어를 주워 담는것이며, “신적인 사물을 꿰뚫어보는 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호가 기호로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인식의 내부에서이다.” 이리하여 미지의 기호나 무언의 표식은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사목자와의 유비의 축을 절단한 것은 말브랑슈에서 콩디약에 이르기까지의 기호의 철학일 것이다. 분석의 방법에 의해 기호가 작성되지만, “정신이 분석을 향하기 때문에 기호가 나타나며, 정신이 기호를 손에 넣고 있기 때문에 분석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 기호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표상작용의 내부, 관념의 간극, 관념이 스스로를 분해하고, 재합성하고 스스로와 시시덕거리며 노는 투명한 표상의 타블로의 두께가 없는 공간이며, 도덕성을 따질 수 없는 공간이다.

이리하여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 의한 17세기의 과학혁명에 의해 코스모스의 붕괴와 우주의 무한화가 일어났는데, 푸코는 이 시대에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조작 개념이 등장했음을 지적한다. 그것이 통치술이라는 개념이다. 주권자는 주권의 행사에 있어서, “신이 자연에 대해서, 사목자가 양에 대해서, 가장이 아이들에 대해서 행하는 것과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의 과학적인 원칙이 지배한다. 인간의 세계는 통치의 이성이 지배한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이 붕괴하는 동시에, 우주와 국가를 각각 지배하는 이성(raison)이 탐구되는 것이다. “자연의 원칙(프린키피아 나투라)과 국가이성(레종 데타), 자연과 국가, 이것이야말로 근대서양의 인간에게 주어진 다양한 지식이나 기술의 양대 좌표로서 마침내 구성되며, 마침내 분리된 것이었다.”

 

국가이성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종교개혁으로 독일에 다수의 영방국가가 설립되고, 그것이 지역적인 국가의 성립 모델이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권력 행사에 대한 전통적인 속박을 풀고, 루터가 지배하는 자가 종교를 정한다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수세기의 유럽에서의 군주국의 성립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의 힘은 크지만, 특히 루터의 의도치 않은 기여가 컸다. 피기스(J. N. Figgis)가 지적하듯이, 리슐리외는 개혁운동의 산물이며, “루터가 없었다면 루이 14세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교회의 종교에서 국가의 종교로 바뀐 것이다. 그 최초의 형태가 왕의 신성한 권리이다.”

제국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의 국가는 종교적 권위를 부정했기에 그 정통성을 이론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세속적인 국가는 그때까지 종교적 권위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것은 기독교의 권위와 함께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국가의 이론도 부정되었기 때문에, 국가의 개념을 일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치가라는 개념으로는 실제의 정치활동을 잘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마키아벨리(1469-1527)이다.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정치학은 키케로의 공화주의적 정치학에 의거했다. 정치학(폴리틱스)은 폴리스의 학문이었다. 그리고 국가의 통치에 대해 쓴 많은 책이 군주를 위한 귀감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키케로의 이념과 사목의 이념을 따라, 국가의 통치자는 양들의 행복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정치란 정의와 이성을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술이며, 통치의 기술은 기술 중의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보여준 것은 이런 폴리티코스의 개념과는 이질적인 국가(state) 개념이었다. 프랑스어의 국가(état)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상태나 상황을 의미하는 state라는 단어에는 국가외에 세력자의 세력”, ‘공권력’, ‘지배자등의 의미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폴리티코스라는 단어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가 전개하려고 한 주제는, “군주가 소유하는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고,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으며, 대등한 시민에 의한 통치라는 공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폴리티코스의 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폴리스는 시민이 이성을 따라서, 정의와 공통의 선을 목표로 하여 공동으로 통치하는 장인데, 나라[국가]는 군주가 그 국가의 국민의 이익을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목적으로서 소유하고, 유지하는 장이다. 이 책은, 피렌체라는 과거의 공화국을 자신의 나라로서 소유하는 메디치가에 바친 것이었다. 게다가 시민들의 적대감 속에서, 정복자로서 추방의 신분에서 돌아온 젊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바쳐야 할 것이었다(다만 줄리아노는 요절했기 때문에, 조카이자 피렌체의 최고 지휘관에 막 임명된 로렌초에게 바쳐졌다).

이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던 줄리아노에게는 당시의 역사가인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1483-1540)를 비롯하여 다양한 의견서가 제출됐다. 피렌체의 국민[인민]에게는 아직 자유를 원하는 공화주의적인 정신이 강했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을 바라는 사람들도, 군주의 지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의견서에는 주로, 신분이 높은 유력자에게는 지위와 권력을 부여할 것, 신분이 높으나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위와 명예를 부여할 것, 평민들에게는 안심하고 일에 종사하도록 국내의 평화를 확보할 것을 권고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공화국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에게 권력, 명예, 치안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부터, 공화국보다 군주국이 바람직하다는 것, 자신들이 통치하기보다는 메디치가의 통치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강조되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정했을 때에는, 이런 권고서보다 뛰어난 정치술과 정치관을 갖추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그 적임자라고 확신했다. “[]이 정한 바에 의해 견직물업도 모직물업도 이해타산도 전혀 모르는 제게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 [본]성에 해당됩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직면한 것은 전통적인 공공선 이론이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모든 인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형태를 산출하는 재료가, 과연 이 나라에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때 마키아벨리가 중시한 것이 국가(stato)의 생명력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군주 또는 공화국이, 스스로의 stato를 어떻게 확립하고 국가(stato)를 보전할 수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었다군주론』은 군주제의 stato를 분석하고『전술론』이나 『로마사 논고에서는 공화제의 stato의 가능성을 고찰한다. 이 모든 것은, 현실의 이탈리아라는 상황(stato)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세력(stato)을 확립하고, 국민 전체의 행복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stato)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국가이성(라티오네 데 stato) 개념의 싹이 탄생한 것이다.

푸코는 이 국가이성 개념은 마키아벨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키아벨리를 반박하는 진영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이네케가 지적하듯이, 마키아벨리 이전부터, 이미 국가의 힘 그 자체에 주목하는 이론이 발생했다. 프랑스의 신학자 장 젤송1404년에, 다양한 법률이 국가의 목적인 평화의 유지에 도움이 안 될 때, 법은 이 목적을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요는 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국가이성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11세기부터 12세기 무렵까지, “결실이 풍부한 배후지로 혜택을 입은 롬바르디와 토스카나 지방 등,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는 다수의 도시국가가 성립되고, 독일 황제의 지배를 거부하며, 자치를 확립했다. 피사에서는 1085년에 콘술에 통치를 맡기는 도시국가(코무네)가 성립했으며, 1097년에는 밀라노에서, 1125년에는 볼로냐와 시에나에서 이런 코무네가 성립했다.

그 후, 이런 도시는 급속히 발전한다. 피렌체는 14세기에는 인구가 10만 명으로 확대되고,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바 등의 이탈리아 도시와 파리가 유럽의 5대 도시가 될 정도로까지 성장한다. 주변의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된 농민이 도시의 공예산업, 무역, 환전업의 성장을 촉진했다.

이윽고 이런 도시는 통치를 외부로부터 온 통치자(포데스타)에게 맡기게 된다. 권한이 지정되고, 정해진 임기 후에는 그 작업의 내용이 점검된다. 12세기 말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전체가 이런 코무네에서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법 아래서는, 도시의 자치와 독립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35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가 피아첸차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제국의 통일로 복귀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로마 황제도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고, 치열한 전투로 도시는 황폐해진다. 결국 이 긴 전쟁 속에서, 도시의 법률가들은 황제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찾게 된다. 로마법학자들이 모두 황제의 주장을 지지하는 가운데, 삭소페라토의 바르톨루스Bartolus de Saxoferrato(1314-57)가 새로운 논리를 구축했다. 이것은 로마법의 혁명을 초래한 것이며, 법과 사실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법에 맞게 사실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맞게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피렌체 같은 도시가 실제로 제국에서 독립해 자치를 할 경우, 그것을 사실로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나라를 바치는める 자는, 통치자로서, 자국에서는 황제와 똑같은 권한을 소유한다는 원칙(lex in regno suo est imperator)을 제시한 것이다.

이 전통적인 국가 개념의 혁신은, 국가의 통치라는 사실을 통해 그때까지의 황제의 전통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탈리아에서의 상태(stato)에서 모든 권리의 원천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 또한 유럽에서의 현황을 전제 삼아 고찰한다. “나폴리, 교회국가,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의 다섯 개 국가의 체계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 균형을 유지한 상태에 의거하여, stato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군주들에게, 피렌체를 새롭게 통치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보여준 것이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들이댄다. “인간은 사악하며, 당신에게 신의를 충실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군주는 신의를 지켜서는 안 된다. 또한 사람의 원한은 선행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선한 행위에 매달리면, “선행이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사리사욕을 추구한다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깊은 신념이었다. 군주는 조언자들이 사리사욕을 생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조언자가 사리사욕으로 내달리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선한 자가 되는 셈이어서, 그렇지 않으면 모두 당신에게 사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민들이 공통의 선을 위해 국가를 형성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이후의 전통적인 국가 개념을 파괴하는 사고방식이었다. 종교도 도덕도, 국가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군주는 이것을 도구로서 파괴하는 사용해야 한다. 국가를 떠받칠 수 있는 것은 군주의 덕(비르투)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은 마이네케가 지적하듯이, 국가이성의 원리로 이어지는 사고방식이며, “그것을 표시하는 말은 마키아벨리에게는 결여되어 있으나, 사실과 stato를 중시하는 새로운 사상적 흐름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이성과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테로와 국가이성

이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정의한 것은 1589년에 󰡔국가이성에 대해󰡕라는 책을 쓴 조반니 보테로였다. 이 시대에는 국가이성은 마키아벨리의 이름으로 말해졌으나, 보테로는 마키아벨리 같은 경건하지 못한 인물과 이 개념을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국가(stato)는 인민의 확고한 통치이며, 국가이성은 이런 통치를 확립하고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걸맞은 지식이다.

보테로는 마키아벨리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주의 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생각한 <기세>, 간사함도 아니다. 보테로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정의와 관대함이다. 정의는 평화와 화합의 토대이다. 신하를 공평하게 대우하고, 아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관대한 마음을 갖고, 빈자를 돕고, 덕이 높은 행위를 칭찬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 전통적인 군주의 귀감이라는 말에 가깝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정의와 관대함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이게 하는것의 가치를 인정한 반면, 보테로는 군주가 실제로 정의를 중시하고 관대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군주에게 공통선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테로의 이 책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때까지 없었던 시민들의 공동의 과제였던 공통선의 실현을 명확하게 군주의 과제로 삼음으로써, stato의 기술을 공통선 실현의 목적과 결부시키고, 전통적인 정치학의 언어와 국가의 통치의 언어를 통합한 것에 있다. “그때까지 정치학은 시민의 철학(정의, 우정, 화합)과 결부되었으나, 이를 분리하고, (군주의) 평판을 유지하고 높이는 방법으로 제시함으로써, 보테로는 실제로는 정치학을 국가의 기술의 지침에 따라 해석할 것을 주창했던 것이다.

보테로는 예수회의 콜레주 출신이며, 이 시대의 예수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계승하면서, 국가의 통치의 이론을 전개했다. 보테로는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통찰을, 토마스가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공화주의적인 공통선의 가르침과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며, 이것에 의해 국가이성의 이론은 유럽의 다양한 궁중들에 퍼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 책은 스페인의 궁정에서 읽혀지고 통치의 참고가 됐으며, 파이엘른의 막시밀안 2세도 보테로의 국가통치술의 원칙을 채용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프레데릭 2세도 이 책을 읽었다.

이런 국가이성의 이론은 국가의 통치 기술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면서,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의 힘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국가를 유럽의 공간 안에서 병존시키면서 모든 것이 자국의 힘과 세력을 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stato로 간주하고, 그 목적을 통치자의 덕과 합리적인 배려에 의해 수행하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과 자연에 입각해서 인간의 내세에서의 구원을 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요구됐다. 그것이 이제는 국력을 따라서 통치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국력을 확장적이고 경쟁적인 틀 속에서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통치 형태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유럽의 세력균형의 상태에 걸맞은 학문임이 드러날 것이다. 이 당시는 매일 무수한 사람들이 국가이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이며, 이는 곧바로 하나의 발명으로 인식된 것이었다.

이런 국가이성이란 결국 선한 통치의 기술이다. 이 기술의 특징은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군주의 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보존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과 같은 국가 이외의 목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행복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국가이성에 의한 통치에는 몇 개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선 이 통치가 필요해지는 것은 인간 본성의 약함이나 인간들의 악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이성 없이는 국가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기술은 항상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무제한한 시간, 항상적이고 보수적인 통치의 시간이다.

두 번째 특징은 지금 존속하고 있는 국가의 힘 자체가 중요하며, 국가가 어떻게 설립됐느냐는 기원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계승했더라도, 찬탈한 것으로 통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국가이성의 통치에 있어서는 기원이나 정초나 정통성이나 왕조에 관한 문제조차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국가의 보존만이 목적이며, 국가가 맡아야 할 종국적 목적 등이 모습을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혼의 구원 등은 배려할 필요도 없고, 종말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다. 통치의 시간은 현재만을 지향하지만, 이 현재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으로 상정되는 것이며, 종말은 없다. “열린 역사성 속에 있는 것이다.

 

국가이성과 사목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국가이성의 기술이, 사목의 기술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사목의 기술이 어떻게 국가이성의 기술로 전개되고 있느냐에 있다. 국가이성은 사목과는 명확하게 다른 특징을 갖추면서, 어떤 의미에서 사목의 기술을 채용하고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이 두 이론의 관계를 사목의 기술에서 고찰의 축으로 삼은 구원, 복종, 진리의 세 가지 축으로 검토한다.

 

── 구원의 축

먼저 구원에 대해 푸코가 의거하는 것은 국가이성의 가장 현저한 표현인 쿠데타 개념이다. 오늘날 쿠데타는 정통성 있는 권력자가 아닌 자가 폭력적 수단으로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원래는 국가(état)에 의한 일격(coup)이며, 국가가 예외적인 조치로서, 비상수단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쿠데타란 법과 합법성을 중지시키고, 정지시키는 것이다.

국가이성은 통상적이라면 법을 지키지만, 그것은 스스로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이며, “법을 따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해 명령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국가가 법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가의 현황에 대해 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6세기의 이탈리아의 법률가가 코무네에는 황제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이성은 국가의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초법규적인 수단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구원의 필요성이라는 명분 아래서, “그때까지 인정되고 작동되었던 시민적, 도덕적, 자연적인 법을 일소하도록 국가이성을 들볶는 것이 요구된다. 그것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양(羊)의 혼의 구원을 첫 번째의 목적으로 한 사목자의 역설이 뒤집혀진 채 남아 있다.

이런 쿠데타는 필요성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폭력적이며, 이것이 쿠데타의 두 번째의 중요한 특징이다. 보통 국가이성은 법을 틀로서, 형식으로서, 스스로의 의지로 행사하지, 쿠데타의 순간에는, 폭력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 국가 이외의 모든 것은 희생된다. 구원되는 것은 국가뿐이다. 그래서 국가이성의 구원은 사목의 구원을 물구나무 세운 것이다. 사목의 구원은 겉으로는 만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국가이성은 선택적인 사목제, 배제하는 사목제, 전체를 위해 몇몇을 희생시키고 국가를 위해 몇몇을 희생시키는 사목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선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이다. 전체의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오염된 양을 배제하는 사목자의 역설이다.

쿠데타의 세 번째 특징은 연극적이라는 데 있다. 국가이성은 쿠데타에 있어서 연극적으로 실천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극적인 형식에 있어서 국민의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그 정통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목은 모든 비참을 참아내는 인내의 술을 가르쳤는데, 국가이성은 필요하다면 국민을 희생시키는 연극적이고 비극적인 가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목에서 신도들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만, 국가이성에서는 국가의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민이 스스로를 희생할 것이 강요되는 것이다.

 

복종의 축

두 번째 축은 복종이다. 푸코가 고찰하고 있는 텍스트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모반과 동란에 대한 시론이라는 글인데, 여기서는 국가이성의 최초의 이론가인 보테로의 『국가이성에 대해』를 실마리 삼아 생각해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내의 통치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대귀족의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귀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고등법원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생각했다. 프랑스에서는 민중이 대귀족의 횡포를 미워하며, 왕은 민중을 보호하기 위해 대귀족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왕이 직접 귀족들을 억누르면 민중을 편들게 되며, 귀족의 원성을 살 위험성이 있었다. 이를 위해 고등법원을 설치하여 3자의 중재자로 삼아 큰 세력을 억누르고자 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민중에게서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성벽(城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국내의 유력자로부터도, 외국의 적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민중은 방패와 같은 것이며,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푸코가 지적하듯이, 그에게 인민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고 순박한 것이며, 군주에게 도구로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다만 그럴 뿐이다.

반면, 보테로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보테로에게 민중은 능동적 주체이며, 국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군주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자금과 주민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한 두 개의 힘이 남는다. 그것은 인민과 자금이다.” 보테로는 군주가 국내의 상거래와 수출입에 어느 정도의 세금을 거둬들여서 국고를 살찌울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검토한다.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들이면, 인민은 가난해지고, 반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리고 결국 국가는 파멸에 이른다. 세금이 너무 적으면 군주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외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적절한 세금을 걷는 것, 그것이 군주의 중요한 과제이다. 보테로가 보여준 것은, 국가의 수입과 지출의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다. 보테로는 통계학의 이른바 선구자이다.

 

인민을 해치지 않고, 지배자가 수중에 남겨둔 금액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국내에 반입되는 상품의 지불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금액이 나라에서 나올 것인지, 국외로 수출되는 상품의 지불로 어느 정도의 금액이 나라에 들어오는가를 확인하고, 수중에 남겨둘 금액이 국가의 수입으로부터 지출을 뺀 금액보다 많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상주의의 견해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민은 스스로의 부를 향유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며, 세금을 내게 된다고 간주된다. 반란을 방지한다는 이런 관점은 국가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인 주민의 생산성에 대한 시선과 교차한다. 군주는 스스로 국가의 수입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민이다. 이를 위해서 군주는 신하가 농업, 산업, 상업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보테로는 인민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적 이익[私利]뿐이라고 생각한다. 인민이 풍족해지지 않으면, 국가는 부유할 수 없다. 사적 이익의 추구는 국가의 이익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군주는 두 개의 기술, 즉 통계학과 중상주의에 의한 경제적 계산에 의해 국가를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동시에 인민을 복종시킬 수 있다. 인민을 복종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민이 풍요로워져 반란을 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귀족은 반란을 일으키면 처벌하면 된다. 반면 인민은 현실적으로 곤란하며, 현실적으로 위험하다. 통치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민을 통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의 계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 부의 유통, 세금 , 인민의 활동 그 자체이다.

사목의 기술에서는 복종 그 자체가 선이었다. 신도는 복종함으로써, 스스로의 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국가이성에서는 복종 그 자체는 선이 아니다. 인민은 풍요로워짐으로써 자연에 복종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피안에서의 인민의 혼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다. 차안(此岸)에서의 인민의 경제적 행복에 의해 뒷받침된 국가의 구원이 목적이다. 그러나 인민을 복종시킨다는 목적을, 사목의 기술과 국가이성은 공유하는 것이다.

 

── 진리의 축

푸코가 사목과 국가이성을 비교하는 세 번째 축은 진리에 관한 관점이며, 이는 통계학이라는 학문에 관련된 것이다. 사목에서는, 사목의 기술의 전제가 되는 기독교의 교의가 우선 진리로서 가르쳐질 필요가 있었다. 다음으로 사목자는 담당하는 양떼들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양들은, 스스로의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고백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신-사목자-양이라는 사이클이 사목의 진리의 사이클이라고 한다면, 국가이성에서는 진리의 대상이 되는 영역 그 자체가 바뀌게 된다.

국가이성이 등장하기 전에 지배자에게 요구된 진리와 지식은 교회법이며 자연법이었다. 더욱이 역사상의 다양한 예나 미덕의 모델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리고 지배자에게는 법을 신중하고 공평하게 적용할 것이 요구됐다. 그러나 17세기가 되자 지식의 내용 자체가 바뀌게 된다. 법이 아니라 국가의 현실 자체인 사물이 지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배자에게는 국가의 세력에 관련된 모든 요소를 정확하게 인식할 것이 요구됐다. “인구의 계량, 사망률과 출생률의 계량, 국내의 다양한 범주의 개인들의 산정(算定), 그들의 부의 산정 , 조사해야 할 요소는 무수히 많다. 이것이 통계학(statistique)이다. 통계학이란 국가(state)의 학인 것이다. 그것만으로 통계 데이터가 국가의 비밀이며 제권帝権의 비밀(아르카나 임페리이[지고의 비밀])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이렇게 국가이성에 있어서 중요한 지식은 단순한 영토가 아니며, 개별 국민도 아니고, 주민이며, 인구이며, 국가의 부의 총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무리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 양떼의 시선은, 사목의 기술과 국가이성에 공통되는 것이며, 국가이성은 바로 사목으로부터 이것을 배운 것이다.

 

세력균형과 영구평화

이 국가이성의 개념은 유럽에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이윽고 독일에서는 내치[폴리차이, 관방학]로 불리는 국가학을 만들어내게 된다. 다만 이 국가학에 대해 검토하기 전에, 국가이성의 이론을 채용한 유럽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다양한 힘이 경합하는 장에 있어서의 새로운 통치술에 특징적인 기술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내치[폴리차이]라는 학이 생겨나기 위한 하나의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테로는 이상적인 국가의 규모로 중간 정도의 국가를 상정했다. 너무 작은 국가는 타국의 침략을 받기도 쉽고 멸망하기도 쉬우며, 국가가 커지면 부가 증대하고, 부가 증대하면 악덕이 증대한다. 특히 사치와 오만과 방탕과 탐욕, 모든 악의 원천이 증대하기 때문에, 내적 원인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작고 멸망한 국가의 예로 보테로는 15세기에 중세 도시의 특권을 잃은 시칠리아의 라구사와, 14세기까지 피렌체와 함께 영화를 누렸던 토스카나의 도시 루카를 들고 있다. 또한 너무 큰 국가의 예로 보테로는 스페인 제국과 터키 제국을 들고 있다. 중간 규모로 바람직한 국가의 실례로서는 베네치아, 밀라노, 플랑드르, 보헤미아를 들고 있다.

문제는 중간 규모의 이상적인 국가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인데, 보테로는 국가가 끊임없이 인구를 증대시키고 세력을 확대해가는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세력을 확대함으로써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국이 되면, 멸망이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보테로는 국가의 인구를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하려 한다. 국가의 번영의 문제를 고찰한 『도시의 위대함에 대해』에서 보테로는 도시에는 생성적인 virture()의 요소와 영양적인 virture()의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생성적인 덕의 비율은 도시 인구의 증가율이며, 이것은 시간과 더불어 변동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과 모세의 시대에도, 현대에도, 인간은 똑같이 생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양적 덕은 도시나 국가가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인데, 여기에는 어떤 종점이 존재한다. 다양한 도시의 발전 단계에서 생성적인 덕의 비율이 영양적인 덕의 비율을 넘어선 시점에 인구는 정점에 이르며, 그 뒤는 쇠퇴가 기다리고 있다. 국가는 항상 이런 탄생, 증강, 완성, 쇠퇴라는 사이클을 경험하는 것이다(이것이 당시는 ‘revolution’이라는 용어로 불렸던 것이다. 혁명의 원뜻은 여기에 있다). 보테로는 이런 완성의 단계가 찾아온 국가는, 식민이라는 수단으로, 너무 증가한 인구를 방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통치의 술은, 이 정점을 되도록 멀리하는 것이며, 국가이성은 국가를 본질적으로 그런 혁명에 맞서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이 국가는 다양한 국가들 속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유지해야만 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국가의 경우에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방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나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게 됐을 때 어느 한쪽을 도우면, 다른 나라를 분노케 할 것이다. 둘 다를 돕는다면, 쓸데없이 자금을 낭비하고, 어느 쪽도 감사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도 돕지 않는다면, 어느 쪽에 의해서도 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 국가이성의 외교정책은 유럽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것이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럽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단테 무렵까지는 아직 기독교적 제국의 힘으로, 유럽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됐으나, 종교개혁과 그 후의 종교전쟁이 그 환상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버렸다. 가톨릭과 개신교 국가들로 분열된 이 시대에는, 더 이상 기독교적 제국이 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게 됐다. 단테의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기독교 공동체)의 환상이 붕괴한 후에 생겨난 것이 세력의 균형이라는 이상이었다. 이 이상이 목표로 한 것은 기독교의 국가와 군주 사이에 힘의 평형관계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국가이성이 찾아낸 것은, 자국이 타국들과의 공존 속에 있다는 것이며, 유럽의 현실은 국가들이 경합 공간에 나란히 있고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은 단순히 지리적 명칭일 뿐이게 되고, 다양한 국가가 모여 하나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정치적 단위가 됐다. 각각의 국가에는 주권자가 있고, 독립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국가의 종교는 그 국가의 주권자가 결정한다는 독일의 영방국가의 원칙이 유럽의 전체 원칙이 됐다. 이 시대의 유럽은 두 강대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재상 올리바레스Olivares가 이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스페인과 재상 리슐리외가 이끄는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이다. 이 대립에서, 둘 다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개신교의 네덜란드에 원조의 손을 내밀고, 독일의 -합스부르크의 개신교 제후를 극력 지원하는 게 리슐리외의 기본적인 외교 전략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정책이며, 앙리 4세 이후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뿐이었다. 전쟁에 있어서는 가톨릭의 국가가 개신교 국가와 동맹하고, “가톨릭 국가들이 개신교의 군대를 이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국가들에 세력의 차이는 있으나, 주권자라는 것에서 서로 대등하며, 이른바 절대적인 단위이다. 각각의 단위에 있어서, 국가는 자기를 주장하고 보존하려고 하며, 다른 국가와 경합하려고 한다. 국가에 있어서는 자기 보존이 자기 목적이 되며, 이를 위해 국가이성이라는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이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유럽 안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우선 스페인은 유럽의 국가들 중 하나이며, 다른 국가들과의 경합관계에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해외에 거대한 식민지를 획득했으며, 세계 제국(帝國)에 가까운 세력을 뽐냈다. 남아메리카에서 유입되는 금과 은은 거대한 부를 스페인에게 가져다주었는데, 그 식민지에서 생겨난 부 때문에 스페인은 급속하게 쇠퇴했던 것이다. 그 부 때문에 더욱 눈부시고 더욱 빠른 방식으로 빈곤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페인 문제라고도 해야 할 것이 유럽 사람들의 머리를 괴롭혔다. 이 문제는 삼중의 의미를 가졌다. 첫째는 스페인이 식민지를 건설할 때, 원주민들을 노새처럼 다룬 것이 법적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인간인지 아닌지, 동물처럼 학대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대하는 것은 허용되는가. 현지의 제국과의 사이에서 싸운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자연법과 만민법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둘째는 식민지의 운영의 문제이다. 스페인은 금과 은의 입수만을 위해 식민지를 운영하고, 이를 위해 현지의 사람들을 학대했다. 이런 식민지 경영은 적절한 것일까? 식민지는 모국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이윽고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스페인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며,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에,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다. 모국은 이런 식민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셋째는 스페인이 획득한 대단히 많은 재신이 모국을 몰락시킨 것은 왜인가라는 수수께끼였다. 부를 획득하는 것이 국력을 증강시킨다는 것은 당시의 중상주의의 신념이었다. 그런데도 스페인은 왜 몰락한 것일까? 이 부가 문제였던 것은,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가져온 부의 대부분이 전쟁이라는 암을 위해 소비됐기 때문이었다. 이 부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교란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며, 다른 국가들에 있어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외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 번째 문제가 단순히 스페인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각 국가의 국부의 문제로 이해됐다는 것이다. 국가의 부의 문제를 어디까지나 주권자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보댕에게 주권자로서의 국왕이 얻은 부는 국왕의 행동방식의 문제로서 제기됐다. “과세의 인기가 낮은 것은, 지배자가 신하에게서 얻은 부를, 일반적으로 전 국민의 이익이 되는 용도로 사용함으로써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테로가 보기에 전통적인 기독교의 관점에서, 국왕의 부가 신하의 부에 의존하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 군주의 부가 아니라, 각 국가의 국력의 총체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스페인의 네거티브 모델에 대항하는 형태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항하는 부의 모델이 제기된다. “국가이성에 관한 이런 분석, 자기 정의하고 있었던 새로운 정치의 영역에 관한 이런 분석은 모두, 스페인의 적국이나 대항국에 있어서 특권적인 방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대항의 축은 더 이상 군주의 부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부이며,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국가에 내속하는 부, 국가가 손에 넣고 있는 자원, 천연자원, 통상력, 교환 균형 등이며, 군주 사이의 대항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경합관계이다. 반대의 의미에서는, 이 시대에는 광대한 영토를 지닌 스페인이 아니라 어째서 소국인 네덜란드가 풍요로운 국가인가가 문제로서 제기된 것이다. 어떤 중상주의의 이론가는 소국인 네덜란드가 자연적인 부도 식량도 목재도 또한 전시평상시의 그 밖의 자원도 거의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욕망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함선무기삭구綱具곡물화약탄환 기타 등등을 근면한 무역에 의해 세계의 구석구석으로부터 모집하고, 이것을 타국의 왕후에게 공급하고 매각할 수 있는 것을 세계의 한 가지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네덜란드 문제스페인 문제의 뒤쪽에 들러붙은 수수께끼인 것이다.

이런 역학관계의 물음으로부터 유럽 국가들의 외교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 이윽고 산 피에르와 루소에 의해 영구평화라는 희망이 얘기되게 된다. 그리고 이 영구평화는 유럽의 국가들 사이의 외교적 수단에 의해 구축되게 되어 있었다. 유럽의 국가들의 힘관계가 완전히 균형을 이루었다면, 타국을 정복하려고 하는 강대국의 시도에는, 반드시 주위의 국가들로부터 견제가 가해지고, 실패로 끝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유럽의 내부에서는 평화가 실현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기대된 것이다.

그 본보기가 된 것은 프랑스의 앙리 4세의 시도이다. 이것은 아직 30년 전쟁이 종결되기 전, 즉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시도된 것이었다. 앙리 4세는 유럽을 통일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유럽들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그물망을 만들어내고, 단테의 기독교 공동체와는 다른 기독교의 공화국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 그 계획의 중심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를 포위하여 제국의 유럽 지배의 야망을 종식시키는 데 있었다.

왕은 우선 영국에 작동을 건다. 이어서 스웨덴에, 사부아에, 로마 황제에게. 영국은 스페인이 국내의 가톨릭 교도에 작용하여 음모를 꾀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그동안 원조했던 네덜란드를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으면, 더 이상 원조를 위해 높은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스웨덴 왕은 포메라니아(Pomerania)를 손에 넣어 독일에 지반을 굳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부아공은 밀라노령과 롬바르디아의 왕관을 노렸다. 로마교황도 스페인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나폴리를 중개로 이 계획에 참가하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 전역을 지배하려고 하는 합스부르크가를 포위하여 타도함으로써, 유럽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계획된 것이었다.

새로운 체제 아래서는, 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열다섯 개의 지배력으로 분할하고, 이런 강국들 사이의 경계는 제대로 조정調整될 수 있도록, 더 이상 그 사이에서 언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리나 주장의 다양성을 공평하게 조정調整한 것이어야 한다.” 이리하여 유럽의 마지막 전쟁이 될 터인 전쟁이, 불멸의 평화를 준비하고 있던 그때에 왕이 암살당하고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난 것이었다.

이는 합스부르크가가 목표로 삼은 단일한 유럽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복수로 이루어진 유럽에 조화와 평화를 가져오려고 하는 계획이었다. 다만 이 계획이 목표로 하는 평화는 유럽 내부의 평화에 불과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계획에서는 동시에, 합스부르크가의 스페인이 영토를 잃은 것을 보상하듯이, 스페인에 대외 식민지에서의 활동을 우선적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독점적으로 타국을 착취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영토 상실을 눈감게 하는 동시에, 그 제국주의적 야망을 구역의 바깥으로 돌리게 할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 평화로운 유럽은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의 차이에 이용식민지화지배라는 관계를 갖는, 지리적 지역으로서의 유럽이며, 이 유럽의 사고와 역사적 현실로부터 우리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력균형을 목표로 하는 유럽에서, 외교를 틀로 삼은 국가이성은 세 개의 도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첫째는 전쟁이다. 역설적인데,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할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서 전통적인 전쟁과는 다른 근대적인 전쟁 개념이 등장한다. 중세에서 전쟁은 법이 침범당했을 때 행해지는 것이었다. “전쟁은 법적인 틀에 있어서 전개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이성의 시대에는 전쟁이 전혀 다른 틀에서 전개된다. 우선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가 완전히 외교적이게 됐다. 균형이 위협 받고 있는 것만으로 전쟁이 행해지게 된 것이다. 그 실례로 유명한 것이, 북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에 인접한 만토바공국(Ducato di Mantova)의 계승을 둘러싼 만토바전쟁이다. 1627년 말에 만토바공이 사망하자, 근친자는 조카인 마리아뿐이며, 여성이 계승할 수 없기 때문에, 프랑스 왕의 신하인 느베르(Nevers) 공이 나섰다. 그리고 만토바공국이 프랑스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 스페인의 밀라노 총독이 만토바와 몽페라트를 보장 점령하고, 이것이 곧바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더 이상 전쟁은 사법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와 국외의 정치와 결부되게 된다. 동맹국과의 결부라는 외교의 이유만으로 전쟁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200년 후에는 전쟁이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이다라는 정식화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도구는 외교이다. 이 시대에는 다양한 조약이 체결되고, 유럽의 균형이 유지된다. 이 조약들은 지금처럼 계승에 관한 법권리나 승리자의 법권리와 같은 낡은 법권리를 따라서가 아니라, 물리적 원칙을 따라서 이뤄진다. “영토, 도시, 교구, 항구, 수도원, 식민지가 교환되고 값이 깎이고, 옮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사이의 균형을 최대한 안정된 것으로 하기 위해 행해진 것이다.

이를 위한 교섭을 행하는 목적으로, 상설 조직이 검토됐다. 앙리 4세의 계획에서는, 분쟁 처리를 위한 중앙 평의회가 설치되고, 열다섯 개의 강국의 각국으로부터 4명씩 선출된 대표 60명이 모여서 평등한 형태로 다수결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했다. 산 피에르의 영구평화론에서는 열아홉 개의 강국이 유럽 연방의 연합의회를 설립하고, “전권 위원을 임명하고, 일정한 장소에서, 연합의회 또는 상설 회의를 전개할 예정으로, 이 회의에서 체결 당사자 사이의 분쟁은 모두 중재 또는 심판이라는 방법에 의해 조정되며, 해결되는 것이 된다. 이는 곧 국제연맹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빈회의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화려한 외교의 시대가 된다. “다양한 절차가 성문화되고, 외교 특권이 정의됐다.” 이리하여 외교관이 장군의 대를 잇게 된 것이다.

세 번째의 도구로서 푸코가 들고 있는 것이 항상적인 군사장치이다. “평화 시스템의 내부 자체에, 항상적인, 비용이 드는 중요한, 지식을 갖춘 군사장치가 존재한다는 역설이, 이 유럽의 균형을 떠받쳤던 것이다. 상비군에 의해 뒷받침된 정치와 군사의 복합체는, 안전 메커니즘으로서의 유럽의 균형의 구성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국가이성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리슐리외와 스페인의 올리바레스는 각각에 자국을 축으로 한 유럽의 세력균형 계획을 세웠다. 올리바레스가 목표로 한 기독교 세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서의 평화(팍스 아우스트리아나)이며, 로마교황청과 밀접하게 협력한 빈(Wien)의 신성로마 제국과 마드리드의 스페인 왕국이 유럽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리슐리외가 목표로 한 기독교 세계는 프랑스가 첫째 가는 군주국으로서 유럽에 집단 안전 보장을 실현한다는 앙리 4세의 꿈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불가결한 수단이 전쟁이며, 프랑스와 스페인은 패권을 놓고 30년 전쟁을 전개한 것이다. 유럽의 평화란 끊임없는 전쟁상태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모든 것은 국가이성 안에서, 자국의 국력과 타국의 국력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시선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대의 정치이론가들은 군주가 이웃 나라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자명한 것이라고 했다. 1628년에 간행된 어떤 정치 팜플렛은 이웃 나라가 강대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누구든 그 시선을 열어두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국가이성의 이론은 관찰자 속에 완전히 새로운 정신을 심어준 것이며, 유럽의 해부학이 정치이론의 바탕이 된 것이다.

다만 유럽의 힘의 균형의 구상은 단명했다. 나폴레옹 전쟁 뒤에 그 꿈이 약간 되살아난다. 그러나 1815년의 빈조약에서 만들어진 유럽의 균형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약으로 유지할 수 있던 상황은 항상 그 내부로부터 위협받는다. 1848년에 유럽을 뒤흔든 혁명은 1870년대의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종식된다. “1870년대 초반에는 빈회의에서 구상된 서유럽은, 이제 거의 대부분 남아 잇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도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균형의 이념이 외부에 배제했던 세계의 다양한 지역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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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요시유키의 <신자유주의와 권력> 2쇄가 나왔습니다. 2쇄에서는 타인의 글에 대한 복사를 사과했고, 오타를 수정했으며, 번역어를 바꾸고(가령 '배제forelcosure' -> 폐제), 참고 문헌의 국역본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이미 1쇄를 구입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수정사항을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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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각주 4 : 芹沢一也・高桑和巳 編, 『フーコーの後で: 統治性・セキュリティ・戰爭』, 慶應義塾大學出版会, 2007[세리자와 가즈야・다카쿠와 가즈미 편, 『푸코 이후 : 통치성・안전・전쟁』,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20쪽 각주 3 : 酒井隆史, 『自由論: 現在性の系譜学』, 靑土社, 2001[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오하나 옮김, 그린비, 2011]

24쪽 각주 4 : Colin Gordon, “Governmental Rationality: An Introduction”, Graham Burchell et al., ed.,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Harvester Wheatsheaf, 1991, p. 6[콜린 고든, “통치합리성에 관한 소개”, 콜린 고든·그래엄 버첼 외, 『푸코 효과 : 통치성에 관한 연구』, 이승철 외 옮김, 난장, 2014, 13쪽]

40쪽 각주 22 :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pp. 143-144. [『생명 관리 정치의 탄생』, 207쪽]. ->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pp. 143-144[『생명 관리 정치의 탄생』, 207쪽].

55쪽부터 : 호모 이코노미쿠스 ⇒ 호모 에코노미쿠스

56쪽 각주 43 : Michel Foucault,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6, Gallimard/Seuil, 1997, p. 227[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305쪽]

89쪽 : 이 장은 이런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짝짓기를 이루는 ⇒ 이 장은 이런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루는

96쪽 : 벤야민이 말하듯이, 법 정립적 폭력은 법 보존적 폭력에서 ‘대표된다’ ⇒ 벤야민이 말하듯이, 법 정립적 폭력은 법 보존적 폭력에 의해 ‘대표된다’

97쪽 : (또는 지양되기aufgehoben’ ⇒ (또는 지양되기aufgehoben)’

109쪽 각주 27 : État d’exception, p. 64[『예외 상태』, 75쪽].

110쪽 각주 28 : Die Dikatur, S. 134[『독재론』, 172쪽].

126쪽 : 집단적 배치(‘내재적 권력’pouvoir immanent9)을 형성하고 ⇒ 집단적 배치(‘내재적 권력’pouvoir immanent9)를 형성하고

131쪽 : 욕망의 배치(예를 들어 규율화로의 욕망, 자기-경영으로의 욕망의 형성)이다. ⇒ 욕망의 배치(예를 들어 규율화에 대한 욕망, 자기-경영에 대한 욕망의 형성)이다.

139쪽 2줄 : ‘죽음 본능’으로 정의한다 ⇒ ‘죽음 본능’이라고 정의한다

148쪽 2줄 : 정적 발생이란 이른바, 의미라는 ⇒ 정적 발생이란 이른바 의미라는

155쪽 인용2줄 : 형성되는 막 위에 국지화된다localisé고 말할 때 ⇒ 형성되는 막 위에 국지화된다고 말할 때

156쪽 인용1줄 : 구멍orifice의 주위에서 ⇒ 구멍의 주위에서

157-163쪽 인용부분의 프랑스어 대체로 삭제.

177쪽 : 랑시에르에게서 ‘정치’란 ‘폴리스’(신체나 감성적인 것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 의한 복종화의 결과로서 ⇒ 여기서 폴리스를 치안으로 바꿈.

184쪽 각주4 : Louis Althusser, “Idéologie et 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1970), in Sur la reproduction, p. 305[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2007, 397-398쪽].

197쪽부터 : ‘배제’(따옴표가 반드시 있는 것만) ⇒ ‘폐제’ (* 따옴표 없이 배제라고 되어 있는 것은 그대로 둠.)

202쪽 : 타카쿠와 카즈미 ⇒ 다카쿠와 가즈미

203쪽 : 생명 정치와 저항: 푸코 이론의 현자와 가능성을 전망한다 ⇒ 생명 정치와 저항: 푸
코 이론의 현재와 가능성을 전망한다」
『들뢰즈・가타리의 현재』, 코이즈미 요시유키 ⇒ 고이즈미 요시유키

208쪽 각주 3 : 김상운 옮김, 난장, 근간 ⇒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215쪽 : 파스콸리 파스퀴노 ⇒ 파스콸레 파스퀴노
각주 7 :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Essai sur le declin des passions politiques, Fayard, 1984[『사회보장의 발명』, 주형일 옮김, 동문선, 2005]; Daniel Defert, “’Popular Life’ and Insurance Technology,” in Graham Burchell, Colin Gordin, and Peter Miller(eds.),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Harvester Wheatsheaf, 1991[『푸코 효과: 통치성 연구』, 이승철 외 옮김, 난장, 근간⇒2014]

216쪽 이하 : 미셸 스넬라르 ⇒ 미셸 세넬라르

216쪽 각주 8 : 악상 빠진 것 체크. Christian Lazzeri and Dominique Reynie(eds.), La raison d’état: Politique et rationalité, PUF, 1992; Dominique Seglard, “Foucault et le problème du gouvernement,” in ibid; Michel Senellart, “Michel Foucault: ‘Gouvernementalité’ et raison d’État,” Pensée Politique 1, 1993, pp. 276-303; Yves-Charles Zarka(ed.), Raison et deraison d’État, PUF, 1994.

217쪽 : 악상 빠진 것. 
Effect in the English- Speaking World,” Foucault Studies 5, 2008, p. 50에서 인용.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편집자나 푸코를 제외하면 여기에 글을 실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Sylvain Meyet, “Les trajectoires d’un texte: ‘La gouvernementalité’ de Michel Foucault,” in Sylvain Meyet, Marie-Cecile Naves, and Thomas Ribemont(eds.), Travailler avec Foucault: Retours sur le politique, Paris: L’Harmattan, 2005.

217-218쪽 각주 10 : 악상 빠진 것.
Jonathan Xavier Inda, Targeting immigrants: government, technology, and ethics, Blackwell, 2006를 참조. 또한 다음을 참조. Andrew Barry, Thomas Osborne, and Nikolas Rose(eds.),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Liberalism, Neo-liberalism and Rationalities of Government, UCL Press, 1996; Mitchell Dean and Barry Hindess (eds.), Governing Australia: Studies in Contemporary Rationalities of Govern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Mitchell Dean and Paul Henman, “Governing Society Today: Editors’ Introduction,” Alternatives 29, 2004, pp. 483-494; Ulrich Brockling, Susanne Krasmann, and Thomas Lemke(eds.), Gouvernementalität der Gegenwart: Studien zur Okonomisierung des Sozialen, Suhrkamp, 2000 and Glossar der Gegenwart, Suhrkamp, 2004; Lene Koch, “The Government of Genetic Knowledge,” in Susanne Lundin and Lynn Akesson(eds.), Gene Technology and Economy, Nordic Academic Publishers, 2002; Sylvain Meyet et al., Travailler avec Foucault, Paris: L’Harmattan, 2005.
한편, 통치성 학파에 관한 개괄과 평가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Mitchell Dean, Governmentality: Power and Rule in Modern Society, Sage, 1999; Thomas Lemke, “Neoliberalismus, Staat und Selbsttechnologien: Ein kritischer Überblick über die governmentality studies,” Politische Vierteljahresschrift 41(1), 2000, pp. 31-37; Jack Z. Bratich, Jeremy Packer, and Cameron McCarthy(eds.), Foucault, Cultural Studies, and Governmentality, SUNY Press, 2003; Sylvain Meyet, “Les trajectoires d’un texte,” op. cit. ; Nikolas Rose, Pat O’Malley, and Mariana Valverde, “Governmentality,” in Annual Review of Law and Social Science 2, 2006, pp. 83-104.
각주 11에서도 악상 빠진 것 있음. Artières, Philippe, Laurent Quéro et Michelle Zancarini-Founel (éds.), Le Groupe d’information sur les prisons: archives d’une lutte, 1970-1972, Editions de l’IMEC, 2003.

221쪽 : ‘품행의 통솔’conduire de conduires ⇒ ‘품행의 통솔’conduire de conduites (*참고로 『신자유주의와 권력』 이후에 나온 책들에서는 ‘행위의 인도’로 옮기고 있음)

229쪽 마지막 줄 : 이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아쉬움과 ⇒ 이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아쉬움과 ~ (*사실 세 가지 아쉬움이 맞는데, 세 번째는 매우 나중에 나오기 때문에 표현을 수정함.)

231쪽 각주30 :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tome IV: 1980-1988, Editions Gallimard, 1994, p. 89). ⇒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tome IV: 1980-1988, Editions Gallimard, 1994, p. 89. 이하 Dits et écrits는 DE로 약칭한다).

234쪽 
1) 본문 : 아감벤은 최근 이 순수 폭력에 대해 ‘탈정립적 권력’potenza destituente이라고 명명했지
만 ⇒ 탈정립적 권력 ⇒ 비정립적 역량
2) 각주31 : Giorgio Agamben, “What is a destituent power?”,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no.32, 2014를 참조. ⇒ Giorgio Agamben, “Elementi per una teoria della potenza destituente”, Neri Pozza, 2014[「비정립적 역량 이론을 위한 개요」, 『문화/과학』, 80호, 2014년 겨울호, 274-296쪽].

248쪽 : 각주 40의 “이하 Dits et écrits는 DE 로 약칭한다.” 삭제.

250쪽 : 프레데리크 켁 ⇒ 프레데릭 켁

251쪽 각주 44에서 Alessandro Fontana, Frédéric Gros를 삭제.

252쪽의 “주지하듯이, 푸코가 1970년대 중반에 정식화했던 권력 분석은”에서 “주지하듯이, ~”부터 이 단락에 대해 : 각주 추가 “이 문단은 하코다 테츠의 “エロスの技法を再読する : フーコー統治論の形成過程”『社会思想史研究』, No.31, 2007, 91-92쪽에서 가져왔다.“

256쪽 :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권력과 저항이라는 이원론적 시각에서 통치라는 일원론적 시각으로의 이행이다.”부터 258쪽의 “이렇게 보면, 푸코의 칸트에 관해서도, 통치에 입각해 ‘계몽’의 모티프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각주 추가 : 옮긴이 후기 256쪽부터 여기까지의 내용은 하코다 테츠의 “エロスの技法を再読する :フーコー統治論の形成過程” 『社会思想史研究』, No.31, 2007, 91-92쪽에서 가져왔다.

256쪽 : 푸코에게 통치는 “자기와 타자의 통치(통솔)” ⇒ 통솔을 ‘인도’로 바꿈. 
각주 49 역시 <오히려 ‘지도’나 ‘통솔’ 중 하나를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인도’ 중 하나를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로 수정.

260쪽 각주 54 : 서지사항 변경
일본의 논의를 잠깐 소개하면 생명 권력과 생명 정치를 구분하면서 생명 권력을 안전장치와 연계해 푸코의 작업 전반을 재독해하는 작업이 있다. 檜垣立哉, 『ヴィ-タ・テクニカ: 生命と技術の哲學』, 靑土社, 2012; 檜垣立哉, 『生権力論の現在: フ-コ-から現代を読む』, 勁草書房, 2011; 檜垣立哉, 『生と権力の哲学』, 筑摩書房, 2006; 金森修, 『<生政治>の哲学』, ミネルヴァ書房, 2010 등을 참조. 이중 『비타 테크니카(ヴィ-タ・テクニカ)』는 생명 권력을 고백, 사목 권력, 파레시아 등과 관련지으면서도 현대 생물학이나 인지과학 등의 논의와 접목시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생정치’의 철학(<生政治>の哲学)』은 아감벤이나 네그리보다는 아렌트나 현대의 생명 윤리와 관련해 깊은 고찰을 하고 있는데, 특히 사목 권력의 역할에 관해 회의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에 일종의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한편, 통치성과 관련한 연구도 흥미로운데, 사토 요시유키와 이론적으로 연결된 작업으로는 다음이 있다. 箱田徹, 「市民社会は抵抗しない: フーコー自由主義論に浮上する政治」, 『情況』, 2011; 芹沢一也・高桑和巳 編, 『フーコーの後で─統治性・セキュリティ・闘争』, 慶應義塾大学出版会, 2007[세리자와 가즈야・다카쿠와 가즈미 편, 『푸코 이후 : 통치성・안전・투쟁』,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中山元, 『フーコー 生権力と統治性』, 河出書房新社, 2010; 廣瀬浩司, 『後期フーコー 権力から主体へ』, 青土社, 2011.

263쪽 : 맨 마지막에 다음 구절 추가
<● 이 책의 2쇄에서는 하코다 테츠 글의 일부를 무단 복제한 점을 밝혔고, 일부 외래어의 악센트 표기 누락, 잘못된 번역어를 수정했다. 내용상 미진한 부분은 후일 출판될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2015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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