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 처 : http://www.generation-online.org/p/fpagamben3.htm
* 원래 <자율평론>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지금 자율평론의 경우 웹상에서 이 글을 확인할 수 없고 다운로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시 수록한다. 원래 교정을 거쳐야 하지만, 나중으로 미룬다. 중요한 글이라서 올리는 것이다.
운동
나의 성찰은 불편한 마음malaise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내가 얼마 전에 베니스에서 또니 네그리, 카사리니 등과 만나는 동안에 내게 제기되었던 일련의 질문들을 따르고 있다. 이 모임에서 제기되었던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 단어는 우리 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니 네그리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책에서도 이 단어는 다중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때마다 매번 전략적으로 노출된다. 가령 다중 개념이 주권과 아나키라는 그릇된 선택지와는 분리되어야 할 때 그렇다. 내가 가진 불편한 마음은 이 단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이 단어를 결코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가 처음으로 깨달았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생겨났다. 나 자신도 이에 관해 정의할 수 없었다. 과거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내 사고 관행의 암묵적인 규칙rule으로 사용했었다. 즉 ‘운동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없으며, 운동이 거기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운동은 거기에 있다’는 공식을 말이다. 하지만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운동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이지만 그 누구도 정의하지 않았던 단어이다. 가령, 이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왜 정치적이고 결정적인 심급instance이 운동이라고 불리는가? 내 물음은 이 개념을 정의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이 개념이 우리의 비사유이기 때문에 운동에 관해 사고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두게 되면 이는 우리의 선택과 전략들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이것은 그저 용어가 사유의 시적이고 따라서 생산적인 계기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문헌학적인 양심의 가책scruple만도 아니고, 또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내 일이고 습관이기 때문에 이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정말로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많은 패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단어를 정의하려는 연구를 시작하자고 제안하며, 따라서 나도 미래의 연구에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서 몇 가지 기초적인 고려사항을 가지고 이를 시작하고자 할 것이다.
우선 몇 가지 진부한 역사적 자료들. 과학과 철학에서 운동 개념은 오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정치학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전문적으로technically 적절한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가 처음 출현했던 날짜 중 하나는 1830년의 프랑스 6월 혁명으로 소급되는데, 이 당시 변화의 행위자들은 스스로를 운동의 편partie du mouvement이라고 부른 반면 상대방을 질서의 편partie du l'ordre이라고 불렀다. 맑스와 슈미트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던 저자인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과 더불어서만 이 개념은 보다 정확하게 정의되었으며, 이 개념의 전략적인 적용 영역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회운동사』The History of Social Movement in France(1850)에서 그는 운동 개념을 국가 개념에 대한 변증법적인 대척점contrapposition으로 설정한다. 국가는 정적이고 법적인 요소인 반면, 운동은 사회의 역동적 힘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항상 사회적이며, 국가에 대해 반목하며, 또 법적-국가적 제도보다는 사회의 역동적 선차성을 표현한다. 하지만 폰 슈타인은 운동에 관해 정의하지 않는다. 즉 그는 운동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그것의 기능을 가리킬 뿐, 정의를 제시하지도 않고 이를 위한 자리topos도 제공하지 않는다.
운동의 역사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역사적 지적indication은 전체주의에 관한 아렌트의 책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녀는 운동에 관해 정의하지 않았지만, 1차 대전 무렵, 그 직전과 그 직후에, 유럽의 운동이 정당들과 전략적인 대척점 속에서 예외적인 발전을 겪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당이 위기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 말이다. 이 시기에는 운동 개념 및 운동 현상의 폭발이 있었으며, 이 용어는 우파와 좌파 모두가 사용했다. 즉 파시즘과 나치즘은 항상 자신들을 무엇보다 먼저 운동으로 정의했고 그 다음에서야 자신들을 정당들로 정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정치의 영역을 초과한다. 프로이트가 1914년에, 그 자신이 그것의 일부이기도 한 것을 서술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 했을 때, 그는 이를 정신분석적 운동이라고 불렀다. 여기에도 여전히 정의는 없지만, 분명히 어떤 역사적 순간들에서, 어떤 암호명들이 그들 자신에게 거스를 수 없이 부과되며,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않은 채 이를 채택하게 되었다. 내 연구의 당황스러운 지점은, 개념에 대한 맹목이 가시적으로 되는 곳에서, 이 용어를 정의하고자 했던 유일한 사람이 어떤 나치 법학자였다는 점을 내가 깨달았을 때이다. 그가 바로 칼 슈미트이다.
1933년, 『정치적 통일성의 삼분할』The Tripartition of Political Unity이라는 부제가 붙은 『국가, 운동, 인민』State, Movement, People이라는 어떤 논문에서 그는 운동 개념의 정치적이고 헌법적인constitutional 기능을 정의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당황스러운 까닭은 이 글에서 슈미트가 나치 제국의 헌법 구조를 정의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나치즘의 사상가와 이렇게 불장난promiscuity을 치는 것은 명료함을 요구한다고 전제하면서, 그의 테제를 요약해 보겠다. 슈미트에 따르면 나치 제국의 정치적 통일성은 세 가지 요소나 성분member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 운동, 그리고 인민이다. 제국의 헌법적 분절articulation은 이 세 가지 요소들의 분절과 구별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 요소는 국가인데, 이는 정적인 정치적 측면이다. 즉 관공서의 장치들이다. 다른 한편 인민은, 잘 들어두길 바라는데, 운동의 그림자와 보호 하에서 자라나는 비정치적인 요소이다. 실제적인 정치적 요소이자 역동적인 정치적 요소는 운동인데, [슈미트에게] 운동의 특정한 형태는 국가사회주의당 및 이 당이 지닌 방향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슈미트에게 총통Fuhrer은 운동의 인격화일 뿐이다. 슈미트는 이러한 삼분할이 소비에트 국가의 헌법적 장치에서도 현전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첫 번째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운동 개념의 선차성이 인민의 비정치적이-되기라는 기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인민이 운동의 그림자와 보호 하에서 자라나는 비정치적인 요소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운동은 정치체로서의 인민에 관한 민주주의적 개념이 쇠퇴하고 있을 때 결정적인 정치적 개념이 된다. 민주주의는 운동이 출현할 때 끝난다.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운동들이란 없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말로, 인민을 전통적으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체로 간주했다는 것을 가리키고자 했다면 말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좌파의 혁명적 전통은 나치즘 및 파시즘과 일치한다. 새로운 정치체를 사고하고자 하는 현대 사상가들, 가령 또니 네그리 같은 사람들이 인민과 거리를 두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주변에는 결코 (인민에 대한 전문적인technical 용어인) 라오스laos나 데모스demos가 없었으며, 오로지 오클로스oclos(대중, 트루바truba, 다중)만 있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운동 개념은 구성적인constitutive 정치체로서의 인민 개념의 몰락을 전제한다.
이러한 슈미트적 운동 개념이 지닌 두 번째 함의는 인민이 비정치적인 요소라는 것으로, 운동은 이들의 성장을 보호해야만 하며 지속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wachsen이라는 용어, 즉 생물학적인 성장을 뜻하는 용어를 쓴다.) 이러한 비정치적 인민에 일치하는 것은 행정의 비정치적 영역이며, 그는 또한 파시즘의 코포라티즘적 상태state를 주창했다. 오늘날 이를 살펴보면, 우리는―인민을 비정치적이라고 이렇게 결정화하는 것에―슈미트가 감히 분절하지 못했던 것, 즉 이것이 지닌 삶정치적인 성격에 관한 암묵적인 인식을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민은 구성적인 정치체에서 주민[인구]으로 바뀌었다. 즉 비정치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인구학적인 생물학적 실체entity로 바뀐 것이다. 보호하기 위한 실체, 양육하기 위한 실체. 19세기 동안 인민이 더 이상 정치적인 실체가 아니게 되었을 때, 또 인민이 인구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주민[인구]로 바뀌었을 때, 운동은 필연성이 되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는 인민이 주민[인구]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확고한 사실로 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인민은 푸코의 의미에서는 삶정치적 실체이며, 그리하여 이것은 운동 개념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또니 네그리가 그렇게 하고 있듯이, 우리가 삶정치 개념을 다르게 사고하길 원한다면, 또 우리가 이미 철저하게 정치적이고 따라서 운동을 통해서 정치화될 필요가 없는 삶정치적인 것의 고유한intrinsic 정치화에 관해 사고한다면, 우리는 운동 개념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정의를 내리는 이러한 작업은 필수적인데, 이는 우리가 슈미트를 읽고 있을 때에도 위협적인 아포리아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즉 결정적인 정치적 요소, 자율적 요소는 운동이고 인민은 비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운동은 인민의 비정치적 신체에 인민의 정치화를 허용하는 내적인 유예[중지]caesura를 부여함으로써만 자신의 정치적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슈미트에게 이러한 유예는 그가 종의 동일성이라고 불렀던 것, 즉 인종주의이다. 여기에서 슈미트는 인종주의와의 최고도의 동일화에, 나치즘과의 가장 거대한 일치에 도달한다. 이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선택, 즉 인민이라는 비정치적 신체에서 유예를 명확하게 해야만 했던 이러한 선택이 그의 운동 기능 개념이 지닌 즉각적인 결과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운동이 자율적 실체로서의 정치적 요소라고 한다면, 운동의 정치적 형태는 어디에서 끌어올 수 있을까? 그 정치학은 인민 내부에서 적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능력에만 정초하고 있을 뿐인데, 이는 슈미트의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extraneous 요소이다. 운동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인민을 자르고 분할하는 유예가 있다. 이 경우에는 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우리가 운동 개념을, 또 이 개념이 인민 및 다중과 맺는 관계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고 본다. 슈미트에게서 우리는 결정되어야만 하는 것, 즉 정치적인 것이 비정치적인 것을 결정하듯이, 운동에서 배제된 요소들이 회귀한다는 점을 보게 된다. 운동은 정치적으로는 비정치적인 것을 결정한다. 그것은 인종적일 수 있으며, 또한 오늘날에는 인구[주민]에 대한 정부의 관리일 수도 있다.
내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우리가 운동 개념을 계속 사용해야만 할까? 만일 운동이 가리키는 바가, 비정치적인 것이 정치화되는 문턱이라고 한다면, 내전과는 다른 운동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 우리는 운동 개념 및 이것이 삶정치와 맺고 있는 관계를 어떤 방향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나는 어떠한 대답도 내놓고 싶지 않으며, 그것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연구 프로젝트일 것이지만, 하여간 그럼에도 다음과 같이,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운동 개념은, 가능태potenza와 현실태act의 관계에서 운동성kinesis이 그러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핵심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현실태act로의 이행이라기보다는 가능태potenza로서의 가능태potenza의 현실태라고 정의한다. 둘째, 그는 운동을 alteles, 불완전한 현실태, 목적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나는 그의 견해에 변경을 가하고 싶고, 어쩌면 또니 네그리도 이 점에 관해서는 나와 의견이 같을 것이다. 즉 운동은 가능태potenza로서의 가능태potenza의 구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운동을 다중과의 관계에 외부적이거나 자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결정이나 조직화의 주체일 수 없고, 인민이 나아갈 방향일 수 없으며, 다중이나 인민의 정치화의 요소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또 다른 흥미로운 측면은 운동이 미완의 현실태라는 것, 즉 텔로스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운동이 텔로스의 결핍privation이나 부재와 본질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운동은 항상 목적이나 에르곤ergon, 또는 텔로스와 오페라opera의 결핍, 부재와의 구축적인 관계이다. 내가 항상 또니 네그리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가 생산성을 강조한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심으로서의 오페라opera의 부재를 제창해야만 한다. 이것은 정치학에서는 텔로스와 에르곤의 불가능성을 표현한다. 운동은 모든 정치학의 불명확함indefiniteness이자 불완전함이다. 그것은 항상 찌꺼기를 남겨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내 자신을 위한 하나의 규칙으로서 인용했던 모토는 다음과 같이 존재론적으로 재정식화되어야 한다. 즉 운동은 이것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치 그것이 없다는 듯이 있는 것이자 스스로를 결여(manca a se stesso)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없는데도 마치 그것이 있었다는 듯이 있는 것이며, 그것은 스스로를 초과한다. 그것은 이것이 지닌 구성적 불완전함 속에서 모든 정치학의 구성적 한계를 표식하는 초과와 결핍 사이에 있는 결정불가능성의 문턱이다.
* 영역자 : 아리안나 보브Arianna Bove (http://www.globalproject.info/IMG/mp3/03_agamben.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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