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학과 예외상태

일시 : 2013년 11월 2() 15:00 ~ 17:00

장소 児島惟謙館第1会議室

 

http://www.kansai-u.ac.jp/ILS/publication/asset/nomos/34/nomos34-04.pdf




다케시타 겐(竹下賢)

주최는 예외상태와 법연구회, 법학연구소의 연구반에서 했습니다만, 그 연구원인 다케시타입니다. 법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먼저 개회사를 예외상태와 법연구반의 주간이신 이지마(飯島)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이지마 미츠루(飯島暢)

예외상태와 법 연구반의 주간을 맡고 있는 법학부의 이지마(飯島)입니다.

오늘은 매우 바쁜 와중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외상태와 법 연구반은 멤버이자 지금 사회를 보고 계신 다케시타 겐(竹下賢) 선생,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신 가와구치(川口) 선생, 마츠오 미츠마사(松生光正) 선생, 그리고 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한 명인 고난대학(甲南大学)의 모리나가 마사츠나(森永真綱) 선생이라는 분이 정식 멤버입니다. 멤버 중에 다케시타(竹下) 선생 이외에는 모두 형법이 전공이며, 예외상태와 법이라고 말해도, 아무래도 형법적인 문맥에서의 관심이라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예외상태라고 말하면, 칼 슈미트의 사상이라는 것을 떼어낼 수 없습니다. 최근 줄곧 이 연구반에서는 칼 슈미트에 흥미를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매우 고명한, 가나자와대학(金沢大学)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선생을 모시고 칼 슈미트에 관해 정치신학과 예외상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됐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카마사 마사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다케시타 겐

그러면, 맨 처음으로, 사회자로서 강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지마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이 연구반에서, 슈미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카마사 선생님이 최근 칼 슈미트의 입문 강의라는 두툼한 책을 작품사(作品社)라는 출판사에서 내셨습니다만, 나카마사 선생님은 상당히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시며, 다만 그 중에는 슈미트 연구라는 것에 상당히 공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카마사 선생님은 1963년 히로시마 태생이며, 이후 도쿄대학을 수료하고, 현재 가나자와 대학(金沢大学) 법학류(法学類)의 교수입니다. 우리의 교토의 법리학 연구회라는 법철학 전문 연구회가 있습니다만, 거기에 항상 출석하고 있거나, 기타 정치사상, 현대독일사상, 그리고 사회철학 같은 학문분야에서, 매우 학제적인 형태로, 폭넓게 연구하고 계시는 선생이십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정치신학과 예외상태라는 것을 말씀해 주실 겁니다. 나카마사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나카마사입니다. 90분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칼 슈미트는 대체 어떤 인물인지, 왜 주목해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것부터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칼 슈미트에 관한 연구서가 몇 권 출판됐습니다. 법학 분야에서도 예를 들어 도교대학의 헌법 연구자인 이시카와(石川) 선생이 슈미트의 제도체 보장론”(制度体保障論)에 관해 쓴 저작이 있습니다만, 굳이 말하면 법학보다는 정치사상의 사람들이 슈미트 재평가의 역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칼 슈미트 자신은 헌법학, 혹은 법철학이 전문입니다만, 정치철학이나 국제법에 관한 저작이 많고, 정치사상가로 간주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반드시 칼 슈미트에 관한 전문적 연구인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슈미트에 대해 점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대사상이 뭔지를 말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니까, 그런 지식의 영역이 성립한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합니다만, 현대사상 혹은 포스트모던 사상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칼 슈미트, 특히 예외상태에 주목하는 논고가 1990년 이후 늘고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슈미트를 연구하는 것의 현대적 의의를 제 나름대로 한 마디로 정리해 표현하면, 그를 통해 법의 다크 사이드, 어두운 측면이 드러난다는 것이 됩니다.

이라는 것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 의의를 의심하거나 하는 사상은 옛날부터 많이 있습니다. 아나키즘 계열의 사상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원래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긍정적인 면을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부정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슈미트는 법학자이기에, ‘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그 자신의 이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나 자유, 민주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근대법의 보통이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슈미트의 의 본질론을 뒤쫓아가면, ‘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슈미트 자신에게는 부정적인 것을 하고 있지는 아마도 않을 것이며, ‘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만, 근대법에서의 자유나 권리나 평등 등의 상식적으로 익숙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듯합니다.

현대사상에서 적극적으로 슈미트를 참조하고 있는 사람은 다분히 좌파적, 아나키스트적 입장의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왜 굳이 슈미트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요? 아마 그들은 어떤 사회에서도, 어떤 형태로 은 필요하며, ‘을 없애려 해도 불가능하다, 사회가 있는 한 반드시 이 생긴다는 것을 현실로서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게다가 왜 이 인간에게 엉켜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탐구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핵으로 하는 서양근대의 법과 정치의 이념을 보편주의적으로 철저하게 하려고 하면, 서구적인 인간모델에 맞지 않은 사람들이나 문화를 억압해 버린다는 역설에 관심을 돌립니다. 거기서 근대법 및 그것과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을 현대의 반-전지구화에도 통하는 듯한 방식으로 날카롭게 지적하고, ‘인간을 결부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것, 이성에 의해서는 석연치 않게 남아 있는 것을 묘사하려고 한 슈미트의 사유가 참조되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기본적으로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적인 사상가입니다만, 바로 그렇기에 포스트모던 좌파적인 인물들에게 반면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추상적방법론적 수준의 문제로서, 현대사상에서 문제가 되는,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 법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구체적인 법, 실증법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한 다음, 슈미트의 담론이 딱 알맞은 힌트를 제공한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상에서 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이 의식하느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따르고 있는 ’, 인간의 사유를 한계짓고, 규범적으로 방향짓고 있는 것으로서의 이라는 것입니다. 까다로워지기에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정신분석에서 초자아아버지의 이름=아니오nom(non) du père’이라 불리는 것에 상당하는 입니다.

그런 에 관한 논의에 대해 1980년대 말 무렵부터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것과 법학자나 법률가가 다루는 현실의 법의 해석이 어떤 접점이 있을까요?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들면 꽤 어렵습니다. 그런 탓에 양자 사이에 좀처럼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하기 어렵지만, 철학적인 존재론과 인식론의 수준까지 파고들어, ‘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전문인 헌법학과 국제법에 연결시킨 슈미트의 논의를 경유하면, 구체적인 접점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 기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접점인지 조금만 말씀드리면, ‘을 가능케 하고 있는 법외적인 것[법 바깥의 것]”에 관한 메타 법이론적 고찰이라는 것입니다. 슈미트의 경우 이 법외적인 것결단질서라는 형태로 논해집니다. ‘으로서 타당하려면 이것이 법이다라는 결단과 그 결단에 의해 규정된 의 내실에 대응하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근대의 법사상에서는 그런 법외적인 것의 작동에 대해서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규범이 정의와 권리로서 정식화되고, 이를 기점으로 법이 체계적으로 구축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합리주의적인 이미지를 품기 쉽지만, 슈미트나 포스트모던 좌파처럼 법외적인 힘에 주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법이다라는 공통 인식합의가 형성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그런 인식에 이르도록 강제하는 힘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그 합의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인지 의심할 여지가 없느냐는 것이겠죠.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자라나고 생활하는 가운데 이러저러한 규범을 새겨 넣습니다. 처음에는 주위에 맞추어 살아남고자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규범인데도, 어느새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공통의 이 없으면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어쩐지 모두가 품고 있을 만한 이해에 동조한다는 것도 있겠죠. 그런 법외적인 힘에 대한 관심이 현대사상 분야에서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법학자이면서도 법외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기에 주목받는 것입니다.

현대사상에서의 슈미트 수용의 중심인물로 프랑스의 데리다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200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데리다는 현재에도 아마 프랑스계의 현대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의 논의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한마디로 나타내면, ‘이항대립사고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물을 이해할 때,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 질서와 비질서라는 식으로 사물을 두 개의 극에 나누고, 그 양극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되는 것으로 대상을 이해합니다. 그 자체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인식을 위한 대립 구도가 고정화되고, 특정한 가치관과 결부된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이 경우, 한쪽 극에 긍정적인 가치가 부여되고 다른 한쪽은 열등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정신/물체, 남성/여성, 이성과 야만 등은 분명히 가치의 위계구조와 관계하고 있네요. 그렇게 이항대립적 질서 속에 우리는 주위의 사물을 위치짓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판단은 상당히 무자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에 의해 상이한 시각이나 삶의 방식이 억압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데리다는 그러한 이항대립에 의한 억압의 구도를 폭로하는 것에 집착했죠. 특히 천착한 것이 이성=내부 / 비이성=외부의 이항대립입니다.

이성적인 것과 그 밖의 것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음으로써 우리는 제대로 된 인간, 법학 용어에서 말하는 정상인=이성적인 사람 reasonable man”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구별하고, 사회의 바람직한 질서를 이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그 경우의 이성적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물으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비이성적행위나 인간이라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비이성적인 것을 정립함으로써, 그 대극으로서의 이성적인 것을 이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리하죠. 우선 부정적인 가치를 지닌 것을 묘사하고, 그것과의 대비에서 포지티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묘사하내려 하는 것은 이항대립 사고의 특징입니다.

비이성적인 것의 단적인 현상은 광기입니다. ‘광기가 있다는 것에 의해, ‘이성이 두드러집니다. 데리다보다 조금 나이가 든 푸코라는 역시 프랑스 철학자는 근대에서의 이성/광기의 선긋기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라는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이것은 근대법, 특히 형법의 성립에 있어서 극히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형법에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책임 능력이 있는 인간, 즉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의 잘잘못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려고 하면 어렵지만, 책임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이런 녀석이라고 하는 것은 지정하기가 쉽네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형법 39조의 규정이 있는 것에 의해, 그것에 맞지 않은, 책임 능력이 있는 이성적 인간의 이미지가 윤곽이 잡히는 것입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광기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게 의학의 담론에 의해 설정되는 것입니다만, 그러면, 초기의 형법이론이 제휴(tie up)하고, 정상적인 인간인 우리의 사회를 비정상적인 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틀을 형성했습니다. 그 모습을 푸코는 다양한 사료를 구사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부/외부의 경계선이 그어지고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이성과 광기뿐 아니라, 우리의 세계는 정상=규범적(normal) 것과 그것에서 제외된 것을, 다양한 이항 대립의 경계선에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선긋기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선천적으로, 어떤 보편적인 법칙에 의거하여 정해진다기보다는 어떤 우연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때그때의 권력이나 경제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한 이항대립의 문제를 가장 근원적으로 파고들어 논한다고 간주되는 것이 데리다입니다.

데리다는 서구에서의 이항대립적 발상의 원점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의 담론을 자주 인용합니다. 데리다의 논문집 산종에 포함된 플라톤의 파르마케이아논문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에크리튀르라는 관점에서 독파해낸 저작입니다. ‘에크리튀르, ‘써진 것혹은 쓰는 행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입니다. 데리다는 얼핏 보기에, 우리의 사고에 더 밀착해 있는 듯한 파롤(parole)’이 아니라, 에크리튀르에 의해,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이 규정되고, 다양한 이항대립 도식이 산출됐다고 지적합니다. 에크리튀르에는 모두가 따라야 할 로고스(논리)를 정형화하여 전파해가는 작용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파르마케이아에서는 에크리튀르에 의해 폴리스의 핵이 되는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폴리스의 바깥으로 배제해야 할 것의 경계선이 그어진다는 것을 플라톤의 이성중심주의적 담론에 입각해 밝히고 있습니다. 덧붙이면, ‘파르마케이아란 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입니다만, 약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독이 됩니다.

에크리튀르에 의해 그어진 폴리스의 안(이성)/바깥(비이성)의 경계선이야말로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자연법이라는 관념도 있었지만, 처음에 누군가가 이것이 자연법이다!”라고 선언한 뒤에 에크리튀르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일이 없습니다. ‘자체에는 형태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을 에크리튀르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입함으로써, 폴리스의 안/바깥의 경계선이 강화되고, 정치적 공동체적 질서가 안정됩니다. ‘의 에크리튀르에 의해, 폴리스에 속해서는 안 되는 자=야만인을 일단 배제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데리다가 이런 의미에서의 이항대립의 문제와 씨름했다고 한다면, 그의 사고방식은 근대법의 대전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슈미트를 어느 정도 아시는 분이라면, 그의 친구/과도 강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데리다의 후기 저작 우정의 정치에서, 슈미트에 대한 상당한 쪽수를 할애해 논하고 있습니다. 우정이라고 한 것은 프랑스어로 <amitié>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프렌드십, 친구성입니다. 슈미트의 친구/구별에서 말하는 친구라는 것의 본질입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저작 속에서 슈미트는 정치적 행동이나 동기의 기본원인으로 생각되는, 특수 정치적인 구별은 친구와 적이라는 구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적을 구별한다는 것은 바로 안과 밖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들에게 인지 확실히 함으로써, 내부=친구를 결집시키고 외부와 대립에 대비하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폴리스, 정치적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는 것이 정해집니다. 그 경계선을 긋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라고 슈미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관과 정반대 극에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은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갖추고 있으며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공통의 가치를 요구하며, 최종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대가 아니라 합의에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근대법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동의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에 성립됩니다. 법은 사람들의 합의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으며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법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는 것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그 내용에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자신이 처벌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 사람 자신이 이전에 ○○의 행위를 한 사람은 ▽▽의 벌을 받는다라는 규범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했다면, 일방적으로 처벌받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 않더라도, 인간인 이상,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합의했던 것이라고 사회계약론적인 법이론은 주장합니다. 칸트는 그런 입장을 취합니다.

슈미트는 그런 보편적 합의는 픽션이라고 공격합니다. 그에게 말하라 하면, ‘합의가 성립하는 것은 과의 대립관계에서 친구가 결속하기 때문입니다. 인민의 동일성은 선긋기에 의해 창출되는 것입니다. 선의 맞은 편 사람과의 동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의회제 민주주의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슈미트는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계속 얘기를 할 뿐,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만약 합의가 성립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사이에서 친구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슈미트적 모티프를 앞세운 데리다의 우정의 정치가 출판된 것은 1994년입니다. 냉전이 끝난 지 4년 후입니다. 동서 냉전 구조가 종결되고, 근원적 대립을 없어지고, 보편적인 세계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한편, 걸프전쟁이나 유고슬라비아 분쟁 등 지역 분쟁이 발발하기 시작하고, 미국의 일극지배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던 시기입니다.

외견상, 적이 없어진 세계에서 미국은 인류의 이름으로 보편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서 유지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활동의 단속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미국의 참견은 기만으로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원래 인류보편적 인간성같은 것이 실재하는가? 그런 것이 실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새로운 국제 정치의 논리야말로 폭력적이지 않은가? 이 세계에서 적대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슈미트의 주제입니다. 아까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1932년에 출판됐습니다만, 당시의 독일을 억압하던 베르사유 체제와 국제연맹에 대한 분노가 표명되고 있습니다. 1차 대전 후에 만들어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국가들은 인류의 이름 아래 국제적 정의를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따르지 않는 것에는 제재를 가하려고 합니다. 제재가 가해지는 상대는 인류이 됩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이것은 매우 모순된 이야기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의 인류에는 모든 인간이 포함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없기 때문이죠. 1차 대전 후의 세계에서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는 친구/의 구별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근원적으로 대립하는 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정치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정치가 있는 한 이 없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데리다는 어느 쪽인가 하면 좌파의 인물이지만, 슈미트가 양차 대전 사이인 전간기, 국제주의가 찬양되던 시기에, ‘적대성과 불가분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음에 주목하고, 상이한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생길 적대성과 어떻게 사귀어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데, 반면교사처럼 참조하는 것입니다.

데리다나 다른 포스트모던 좌파 사람들은 친구/의 경계선 긋기와 불가분하게 결부되고 있는 결단에도 주목합니다. ‘결단혹은 결정을 뜻하는 독일어 <Entscheidung>분리를 뜻하는 <Scheidung>따돌리다란 뜻의 접두사 <ent->를 합친 말입니다. 그런 결단에 의해 친구/이 나뉘고, ‘이 타당하는 범위가 확정되는 것인데, 그것이 노출되는 것이 예외상태입니다. 슈미트의 법이론에서는 예외상태주권이 밀접하게 결부되고 있습니다. ‘친구/’, ‘결단’, ‘예외상태’, ‘주권’, ‘정치적인 것등이, 슈미트의 사상을 특징짓는 키워드입니다.

데리다에게 영향을 준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 사상가로 발터 벤야민이 있습니다. 그는 슈미트와 동시대인으로, 혁명의 폭력에 관해 폭력 비판을 위하여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의 그의 논의는 슈미트의 예외상태=주권론과 깊은 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간주되죠. 그리고 데리다와 마찬가지로 슈미트와 벤야민 두 사람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현대 이탈리아의 사상가로 아감벤이 있습니다. 아감벤은 제가 아는 한, 현재 포스트모던계의 현대사상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감벤은 주요 저작인 호모 사케르에서 슈미트의 예외상태를 독자적으로 궁리하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케르 homo sacer’성스러운[신성한] 인간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그 공동체 안에서 생기는 더러움을 정화하기 위해 희생에 바쳐지는 사람입니다. ‘호모 사케르자신은 공동체의 의 바깥쪽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 법 밖의 존재인 덕분에 공동체가, 그리고 공동체의 이 유지됩니다. ‘의 바깥에 있으면서 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적 결단과 비슷하네요. ‘이 효력을 정지하는 상황에서 행해지는 결단이 을 지탱하는 것이니까요.

아감벤은 현대의 호모 사케르적인 존재로서 무국적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법에 의해서도 보호되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을 돌립니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이기도 한데요, 그때 사람들은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서 등록되고 법의 보호 아래에 놓이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되었습니다. /밖의 경계선이 그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권리 주체로서 계약을 맺거나, 법을 위반하면 벌을 받는 것은 어떤 국가에 속하는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실상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나치 정권 시대의 유대인처럼, 시민으로서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경계선 밖에 놓이게 된 사람은 법과는 관계없는 상태, ‘인간으로서 취급될 자격을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 놓입니다. 그렇게 법의 바깥에 놓이게 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의해, 그 국가를 외부와 간극을 두고 있는 경계선이 분명해지고, 공동체적 질서가 강화됩니다. 사실 나치는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비아리아계의 사람들을 표시하고 배제함으로써 독일인다움이 다시 정의되며, 독일적인 법과 정치가 탐구되었습니다. 그런 법 밖의 존재가 있음으로써, 법의 형태가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호모 사케르적인 존재인 셈이죠.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결단에 의해, /밖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것인데요, 이런 (통상적인) 법을 넘어서는 주권적 권력과, ‘의 바깥으로 밀려남으로써 안/밖의 경계선을 노출시키는 호모 사케르의 존재는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감벤적으로 이해하면, 슈미트가 말한 주권자는 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에서 무엇이 으로 타당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을 넘는 곳에 없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주권자로서의 지위는 에 의해 미리 주어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법과 관계없는 사람이 마음대로 선언하고 폭력을 발휘해도, ‘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외상태에 대해서도 에 의해 미리 규정되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감벤은 예외상태에 대해 어원학적 해석을 가하고 있어요. 영어로 예외<except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어원인 라틴어의 동사 <excapere>밖으로라는 뜻의 접두사 <ex->포착하다/붙잡다라는 뜻의 동사 <capere>로 만들어졌습니다. , ‘예외밖에서 포착된=붙잡힌 상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 있으면서, ‘과 관계없는 것이 아닌 상태, ‘과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아감벤은 이어서 2003년에 나온 예외상태라는 저작에서 슈미트의 주권론과 벤야민의 신적 폭력론을 함께 고찰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좌파의 슈미트 수용의 예로서, 벨기에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샹탈 무페라는 정치철학자를 얘기합시다. 무페는 급진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급진민주주의론이라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비판하고, 민중의 의지가 정치에 직접 반영되는 방식을 실현해야 한다는 논의입니다만, 무페는 그 중에서도 경합적 민주주의라는 매우 급진적인 논의를 전개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논의를 하기만 하면 보편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정은 기만이라고 하며, 상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불가피하게 생기며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적대성을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논의입니다.

다민족 국가나 다종교 국가를 염두에 두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대화에 의해 타협에 이르더라도, 그것은 결국 다수파에 유리하므로, 다수파와 소수 사이의 적대성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강해집니다. 현대의 숙의적 민주주의론의 대표적 논객인 하바마스와 롤스는 보편적인 이성에 근거한 숙의를 계속 쌓아나감으로써 정의에 관한 합의를 형성할 수 있음을 논증하려고 하지만, 무페는 그들을 비판하고 정치에는 대화로 해소할 수 없는 적대성이 뒤따른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문맥에서 무페는 슈미트의 저작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을 참조합니다. 이 저작에서 슈미트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다스리는 자다스려지는 자동일성또는 동질성이라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다스려지는 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누가 다스리는 자가 되더라도 차이가 없습니다. 대화나 타협의 필요는 기본적으로 없습니다. 민족적 동질성을 보증하고 있는 경우가 그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슈미트는 통치자()치자의 동일성에 근거한 민주주의는 각자가 다른 사고방식, 다른 삶의 방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대의제를 권장하는 자유주의와는 원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하나가 되는 듯한, ‘자유민주주의라는 환상을 언제까지나 붙드는 것이 아니라, 친구/적의 대립을 정치의 기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슈미트의 입장입니다.

무페도 데리다나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좌파적인 사람이어서 적대성을 절멸전쟁이나 민족청소로까지 상승시켜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지만, ‘적대성이 대화로 해소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사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기만이 되어버리기에, ‘적대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합의가 가능하다는 형식적인 논의를 하는 롤스 등의 진보좌파보다는 근원적인 친구와 적의 대립에야말로 정치의 본질이 있다고 하는 슈미트가 참고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페더러 말하게 하면, 아무리 교묘하고 세련된 토의 포럼을 설정하더라도, 거기에서 반드시 배제되는 사람이 나옵니다. 보편주의적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면, 그런 배제가 보이기 어렵게 됩니다. 오히려 적대성을 해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대립이 표면화될 때마다 논의를 위한 포럼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이 영원히 계속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근원적 적대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고방식이, 미국이 하고 있는 보편적 정의의 강요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슈미트가 현대의 포스트모던 좌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러한 반-보편주의의 사고방식이 현대에 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슈미트의 초기 저작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슈미트의 초기 법학적 저작으로, 1912년에 출판된 법률과 판결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듯이, 이미 결단론의 싹이 보입니다. ‘판결을 뜻하는 독일어 <Urteil>은 단어가 만들어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근원적 분할(Ur-Teilung)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결을 할 때, 법관은 실정법의 규범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라 이 사례에는 이 규범이 들어맞는다라는 결단을 불가피하게 수반하고 있습니다. 결단에 의해 비로소 법에 구체적인 모양이 주어집니다. ‘결단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입니다. 이런 생각이 그 후의 저작 속에서 점차 구체화되어 결단주의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슈미트의 정치철학적 독자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첫 번째 저작은 정치적 낭만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출판된 1919년은 제1차 대전이 끝난 해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제목을 보면, 슈미트가 낭만주의에 동질감(sympathy)을 느끼고 있고 그 정치적 응용을 제창하는 듯한 인상을 받지만, 사실 그렇진 않고,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슈미트 자신이 의거하는 가톨릭 보수주의와 낭만주의의 차이를 밝히는 것을 시도한 저작입니다.

독일의 기독교에는 루터교와 칼뱅파인 개신교와 가톨릭이 있는데요, 개신교가 소수입니다. 독일제국의 중심이 된 프로이센은 개신교국가로, 비스마르크가 가톨릭의 영향을 봉쇄하기 위한 문화투쟁을 벌인 것은 유명하죠. 슈미트는 가톨릭계의 사람으로, 가톨릭적인 보수주의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치가 정권 장악하기 전후부터 나치에 바싹 다가선 느낌이 되며, 전후에는 국제법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만, 항상 가톨릭 보수주의가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인데요, 그의 질서관의 모델은 가톨릭교회에서의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 안의 위계 질서였다고 간주됩니다. 그것은 그에게 법학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권에서의 법학, 특히 법교리학은 기독교의 신학을 모델로 만들어졌고, 신학적 개념을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법학의 사고방법에 잘 적합한, 가톨릭적인 질서관의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는 태도를 계속 갖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에, 법학적 질서론의 모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를 왜 비판하는가? 낭만주의의 문학예술사에 관한 기본적 지식이 없으면,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필요 최소한의 설명만 하고 싶습니다. 독일에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고전주의의 이성중심주의·규범적인 예술에 저항하고,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 무한한 것을 예술적 창조의 원천으로 삼으려 하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정치에도 응용하려던 인물들이 정치적 낭만주의자라고 불립니다. 그 대표적 논객들은 가톨릭으로의 개종자입니다. 가톨릭에서 새로운 이상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낭만주의가톨릭 보수주의가 동일시되기 십상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양자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낭만주의자란 누구인가? 이성에 의해 파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무한한 반성을 계속하는 것을 찬양하는 낭만주의의 예술 이론을 이해한 다음에, 정치이론에 응용한 사람을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낭만주의자로 간주한다고 한다면, 그만큼 많은 논객은 없습니다. 빈 회의를 주재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를 섬기면서, 낭만주의적 정치이론을 전개한 아담 뮐러가 전형이라고 합니다. 뮐러는 독일어권의 유기체적 국가론의 창시자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독일 관념론의 자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해, 초기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고 뮐러에게 예술이론의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 프리드리히 슐레겔도 정치적 낭만주의의 대표 논객으로 간주됩니다. 둘 다 메테르니히를 섬긴 인연으로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로 활동 거점을 옮깁니다.

슈미트가 그들의 정치적 낭만주의에 관해 문제시한 것은 이들의 <Volk>‘입니다. 원래는 민중이라는 뜻의 말입니다만, 19세기의 민족주의의 맥락에서 민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의 맥락에서는 인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Volk>를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은 무한한 반성의 대상으로 농락할 뿐이고, 실재하는 것으로서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슈미트의 비판의 포인트입니다. 무한한 반성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Volk>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이미지를 문학적 취향을 보태서 계승해가는, 그런 다면성을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Volk>에 대해서 생각하는 의 관점을 차례차례 바꾸어가기에 하나의 실체적 이미지로 귀착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그러고 있습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그것은 실없는 태도입니다.

반면 가톨릭계 보수주의자로서 그가 주목하는 것이 드 메스트르, 보날, 그리고 본인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영국 성공회와 영국의 국가체제의 역사적 유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가톨릭적인 생각을 한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입니다. 드 메스트르와 보날은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고 가톨릭적 질서 하에서의 안정된 국가와 인민의 존재방식을 설파한 정치사상가입니다. 그들은 가톨릭적 세계관 아래에서, 국가와 교회, 정치와 종교적 세계관이 융합하고 인민이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야말로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보날은 신에 관한 신학적철학적 견해와 정치적사회적 질서 사이의 유비관계를 논구하고 있습니다. 우선 인격신에 관한 일신론적 관점에는 군주제의 원리가 대응합니다. 일신론은 신의 섭리에 대응하는, 인격적 군주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 외적인 신에 관한 이신론(理神論)적인 가정에는 군주제 민주주의의 헌제(憲制)가 적합합니다. 세계에서의 이신론의 신과 마찬가지로, 1791년의 프랑스 공화국의 입헌군주제의 헌법에서는 국왕은 무기력하다고 간주됐습니다. 이 헌법은 보날의 말을 빌리면, 이신론이 숨겨진 무신론인 것과 마찬가지로, 숨겨진 반-군주제주의였습니다. 그리고 1893년의 자코뱅파의 헌법은 데마고기적이고 아나키하며 공공연한 무신론이며, 신도 없고 국왕도 없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보날에 따르면, ‘지속을 근거로 삼는 것이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논의입니다. 전통적인 존립만이 모든 사태를 정당화합니다. 장기성(longum tempus)이 그대로 궁극적인 정당성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종교의 국가에 있어서의 의미는 그것이 국가에 지속성을, 그것에 의해 실재성을 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버크도 세대를 넘어서 지속되는 연속적 공동체로서의 국민의 성격을 재차 논의하고, 분할 불가능한 세습 농지의 정당화의 근거를 그것이 존속의 기초라는 것 속에서 보고, 수도원의 토지소유의 그것을 장기간의 전망을 요구하는 원대한 계획을 가능하게 하는 것 속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장기적인 관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시 종교, 더구나 국가체제와 결부되고 안정된 종교에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 세계관과 국가가 대응하고 있고, 그 중심에 인격적 신=군주가 있다는 것에 의해, 장기적인 안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슈미트가 법학자로서 활약한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는 군주가 없으며, 가톨릭교회의 영향도 한정적이었습니다. 가톨릭의 군주가 등장하여 독일을 다시 안정시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정치적 낭만주의2년 후에, 슈미트는 독재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또 다시 3년 후인 1924년에 독일 법학자 대회에서 대통령의 독재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독재라는 책은 독재란 원래 어떤 것인가를 논한 저작입니다. ‘독재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그 쓰임새가 어정쩡한 것은 당연하지만, 독일어에서도 전제적 지배와 권위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거나, 단순히 지도자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형용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만, 슈미트는 독재의 본래 의미를 고대 로마의 독재라는 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공화제인 로마의 행정의 수장은 집정관(콘술)입니다. 보통은 콘술이 입법기관의 역할을 맡는 원로원과 민회의 승인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근거하여 통치했습니다. ‘법의 지배가 행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공화국의 존속이 의심되는 비상사태에서는 일일이 법적 절차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공화국 자체가 망하면 말짱 황이니까요.

그래서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했는가 하면, 콘술이 독재관 dictator’으로 불리는 직책의 사람을 임명하고, 반년 동안, 원로원의 승인 없이 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명령을 내릴 권한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효력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명된 기간뿐입니다. 게다가 로마의 시민권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해서는 역시 건드려서는 안 된다든가, 여러 가지 제약이 붙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법적 제약을 붙인 다음에, 통상적인 법적 절차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독재관입니다.

독재제도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일본어로 정략론이나 로마사론으로 번역되어 있는 디스코르시라는 저작에서 긍정적으로 참조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도 독재라는 구조가 공화제를 지키는 데 효과적이며, 법을 지키기 위해서 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독재의 의의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사상가가 언급했을 뿐 아니라 근대의 현실의 정치법제도에서도 독재가 도입되어 있음을 논증합니다. 프랑스의 절대왕정기에 주권의 의미를 정식화한 것으로 알려진 보댕이라는 사상가가 국왕에 의해 특별한 임무를 위탁받은 특명위원 Kommissar’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슈미트는 그 특명위원이 독재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국왕은 보통은 법의 지배를 실행합니다. ‘과는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신민을 다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특정한 사항에 관해서는 특명위원을 임명하고, 국왕과 신민 사이의 통상적인 법적 관계를 넘어 행위할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보댕은 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왕의 주권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Kommissar>를 소박하게 위원이라고 번역하면, 위원회적인 것으로 되어 버려 마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들리지만, <Kommissar>는 특별한 위임(commisssion)을 부여받은 임원이었던 것입니다. 또 교황과 황제가, 어려운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방면에서 일정 기간, 통상적인 법적 행동 규범을 넘어 행동하는 권한을 가지는 특명위원=독재관을 임명했다는 예도 있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것을 여러 사료에 기초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근대국가의 틀 안에서 점차 정비되고, ‘위임독재 die kommissarische Diktatur’로 발전했습니다. 슈미트는 독재를 위임독재주권독재의 두 형태로 구분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위임독재란 쉽게 말하자면, 주권자에 의해 임명된 <Kommissar>에 의한 한정적인 독재입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때, ‘인민<pouvoir constituant>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프랑스어 <pouvoir constituant>은 헌법학에서는 헌법제정권력이라고 번역되지만, 현대사상에서는 구성적 권력이라고 번역합니다.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헌법=국가체제(constitution)에 의해 제약을 받지만, ‘인민은 기존 헌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수도 있습니다. 헌법의 안과 동시에 밖에 있는 것입니다. 인민이 헌법을 넘어서는 힘을 행사할 때, 그 힘은 헌법제정권력이라고 불립니다. 주권독재는 헌법제정권력 행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민은 보통은 기존의 헌법 규범에 따릅니다. 그러나 혁명적인 국면, 즉 인민이 헌법제정권력을 행사하고 낡은 헌법을 폐지하고 새롭게 헌법을 창출하려고 할 때, 인민이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상태가 순간적으로 생깁니다. 그런 비상상태에서 인민 자신이 하는 독재가 주권독재입니다. 인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해도, 현실의 인민은 하나로 뭉치는 실체가 아니며, 인민의 의사로서의 일반의지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공안위원회가 인민의 의사를 대리하는 형태로 독재를 실시했습니다. ‘위임독재라면 헌법의 규정에 의해 독재의 임기, 권한이 결정되겠지만, ‘주권독재의 경우에는 그런 헌법 자체가 없는 상태이기에, 주권자인 인민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독재권한을 주어도 좋은 것입니다. 공안위원회는 그런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 독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바이마르 헌법 48조에 독재라는 말은 없습니다만, 대통령이 비상사태에 특수한 권한을 통상적인 법을 넘어서 행사할 수 있음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헌법의 114, 115, 117, 118, 123, 124, 153조 등에서 규정된 기본권을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헌법에서 독재권한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는 본래 위임독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48조의 5항에는 <Das Nähere bestimmt ein Reichsgesetz>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법률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Reich>란 원래 제국을 뜻하지만, 바이마르 시대에는 연방국가인 독일 전역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이 세부내용이 실제로 법률에 의해 정해져야 비로소 위임독재가 제도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부사항에 관한 법률은 계속 제정되지 않고 넘어갔어요. 세부사항에 관한 법률이 없는 채,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은 실제로 몇 차례나 비상시의 대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완전히 헌법에 의해 제약당하지 않은 독재권의 행사라는 것이 됩니다.

슈미트는 그것을 주권독재적인 상태의 흔적으로 간주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바이마르 헌법은, 2제정이 갑자기 붕괴된 후의 혼란 속에서 인민의 헌법제정권력을 대표한다고 칭하는 인물들에 의해 초안이 마련되고, 제헌의회에 의해서 제정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국이 붕괴된 후부터 제헌의회가 신헌법을 제정한 그 사이 동안에는 주권독재가 행해지는 게 됩니다. 헌법은 그 주권독재로 시종일관되고 있으며, 향후의 독재는 헌법에 의해 제약되는 위임독재로 한정할 것이었습니다. 그 이행을 완결하려면 세부사항은 불가결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세부사항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위임독재는 본래 행해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48조에 기초하여 다양한 개입을 행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권독재적인 상태가 일부 남아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의를 하는 것입니다.

이 논의가 정치신학에서의 주권자, 예외상태, 결단 등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기반이 됩니다. 정치신학독재의 이듬해인 1922년에 출판됩니다. 서두에 나오는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대해서 결정하는 자이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합니다. “예외상태 속에서 im Ausnahmezustand”가 아니라 예외상태에 대해서 über den Ausnahmezustand”라고 말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속에서라고 했다면, 헌법이나 법의 절차를 따라 정의되는 예외상태이 틀 안에서 독재권적인 권력을 발휘한다는 뉘앙스가 되지만, “에 대해서라고 하면, 원래 예외상태란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뉘앙스도 생겨납니다. “에 대해서라는 의미의 독일어 전치사 <über>에는 “~을 넘어서라는 뜻도 있으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말장난이나 속임수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된 트릭입니다. 어떻게 되면 예외상태인가를 법률에 의해 미리 정할 수 있을까요? 잘 생각해 보면,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외상태는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다면, 통상적인 국방안보 조치로 대처할 겁니다. 무엇인가 통상적인 법적 질서 하에서의 예상을 벗어나고[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인 것인데요, 어떤 식으로 벗어날[초과할] 것인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무엇이 예외인가의 의견은 다를 겁니다. 그래서 주권자의 결단이 중요해집니다.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도 보댕의 논의 등에 의거하면서 주권을 행사하는 자로서의 왕은 보통은 법에 적합한 형태로 통치하지만, 비상사태에서는 법을 넘어 결정할 수 있는 자로 여겨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국가의 본질은 주권이며, 주권자에 의한 결정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을 넘어서는, 그것은 예외상태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이 저작에서 슈미트의 논의의 골자입니다.

그는 예외상태에서는 질서의 이질성이 돋보인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질서라고 표현을 하면 어쩐지 알 것 같은 듯한 생각이 들겠지만, ‘질서중 어느 하나가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걸까요? ‘이 먼저 있고 그 토대 위에서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질서가 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이 있다는 것일까요? 둘 다 가능한 말입니다만, 대부분의 법학자는 먼저 ’, 즉 사람들이 따라야 할 법규범의 체계가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며, 그것에 의해 질서가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법규범의 체계만을 법질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슈미트는 사람이나 사물의 관계를 통제하는 질서가 먼저 있고, 거기에 맞춰서 이 창출된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의 전통 같은 것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인데, 전통이나 권위가 해체되고, 바람직하거나 있어야 할 질서를 모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주권자의 결정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주권자는 질서의 바람직한 형태를 상정하고 이것에 맞게 법을 재편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 장면에서 추상적인 법이론을 끄집어내서 ○○법에는 △△의 원칙이 있고라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결정에 의해 법규범이 규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슈미트 자신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예외에는 법률학적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것은 사회학에 속한다는 그런 주장은 사회학과 법률학 사이의 기계적 분리의 조잡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예외는 추정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 파악의 틀 바깥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결정이라는 순수 법률학적 형태 요소를 절대의 순수성에서 명시하는 것이다. 예외의 사례가 그 절대적인 모습으로 출현하는 것은 법규가 유효할(gelten) 수 있는 상황이 창출된 뒤이다. 그 어떤 일반적 규범(jede generelle Norm)도 생활관계의 정상적인 형성(eine normale Gestaltung)을 요구하는 것이며, 일반적 규범은 사실상 그것에 적용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규범적 규제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규범은 동질적 매체(homogenes Medium)를 필요로 한다. 이 사실상의 정상성은 다만 외적 전제로서, 법률학자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규범의 내재적 유효성(immanente Geltung)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Politische Theologie, 9. Aufl. S.19/田中浩原田武雄 訳, 政治神学, 20).

* 원문대조를 하지 않았음에 유의해 주십시오.

이 글의 전반부는 예외결정과 결부되어 있으며, 법학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얘기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만, 후반부가 추상적이어서 알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법규범을 포함해 규범Norm’, 순수하게 이념적허구적인 존재로,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관계의 정상적normal’인 상태에 대응하는 형태로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이 정상=보통이라고 느끼고 생활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 규범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의 사회와 유리된 이념을 갖고 있어도 안 되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는 것에 잘 적합하는 규범일 필요가 있습니다. “타당하다라는 법학·윤리학 용어는 독일어로 <gelten>이라고 합니다만, 이 말에는 통용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실제로 통용되고 있는 것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하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입니다. 덧붙여서, ‘규범정상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푸코가 꽤 파고들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권자는 규범=정상성에 관해서 무엇을 하는가 하면, 해당되는 법적 공동체에 어울리는 법규범, 혹은 그 체계로서의 법질서는 무엇인가를 결정합니다. 그것에 의해 무엇이 정상인지가 분명해지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의 법규범이 기능하지 않는 예외상태에서 주권자는 그런 결정을 하는 셈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무엇이 규범인지를 어쩐지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면 범죄가 되거나 불법행위가 되는지는 법률 지식이 없어도 대강 짐작합니다. 안 그러면 정상적인 생활을 보내지 못하죠.

예외상태란 그때까지 정상적이라고 간주된 것이 통용되지 않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것이 규범이라고 정하고, 모두 그것을 따르게 하고, ‘질서를 재건하는 것이 주권자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해서 질서결정(결단)’을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이 슈미트의 법철학의 핵입니다.

슈미트는 이렇게 통상적인 법규범을 넘어서는 주권적 권력과 질서를 상정함으로써 의 본질을 밝히려고 한 것인데, 그것과 대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슈미트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순수법학의 켈젠입니다. 순수법학이란 법실증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법은 법 그 자체만 도출될 뿐이며, 도덕, 정치, 종교 등 다른 요소는 관계없다는 입장입니다. 법은 수학의 공리계처럼 최초의 근본적인 규범으로부터 모두 도출되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켈젠의 초기 저작에 사회학적 국가 개념과 법학적 국가 개념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회학적 국가개념과 법학적 국가개념의 구별을 논한 것입니다. 켈젠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국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기 자신은 그것과는 분리된, 순수 법학적 존재로서의 국가를 분석한다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반면 슈미트는 국가가 법규범의 체계로 환원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추상적인 법규범의 체계로서 국가를 기술하는 것에 집착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그런 켈젠의 이론에 덧붙여, 국가를 조합이나 교회 등과 나란히 단체의 일종으로 보는 단체국가론이나, 법이 국가주권자라고 하는 법주권설, 국가와 법질서를 동일시하는 설 등을, 모두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며 물리칩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국가는 법과 불가분하게 결부된 통일체입니다만, 이 경우의 은 추상적 관념의 체계가 아니라 주권자의 결정(결단)을 기점으로 하여 통일되고, 사람들의 생활형태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질서에 속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법률학적 결정에는 모두, 내용과 관련되지 않은 하나의 요소가 포함된다. 왜냐하면 법률학적 결론은 그 전제로부터 완전히 남김없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상황이 어디까지나 독립의 결정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결정의 인과적이고 심리학적 성립이 아니라 추상적 결정 자체는 이 경우에도 중요하지만 법적 가치의 결정인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의 사례별로 변형(Umformung)이 생기는 것이다. 법이념 자체로서는 변형할 수 없는 것은, 누가 그것을 적용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법이념이 무엇 하나 말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모든 변형에는 권위의 개입이 있다.”(Ebd., S.36-37/前掲邦訳, 四二四三頁).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법학자는 추상적인 형식의 이라는 관념이 어딘가에 실재하는 것처럼 이미지하기 쉽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 그 추상적인 적용하는 데 있어서 누군가가 그것을 현실에 적합하는 구체적인 형태로 변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자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슈미트의 편에서 보면, 켈젠과 법주권론자들은 마치 이 자동적으로 수립되어 적용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미치고 팔짝 뛰게 되는 것입니다. 결정(결단)하는 주체가 필요해집니다. 물론 누가 결정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를 가진 주체가 아니면 안 됩니다. 국가 전체에 관해서, 변형 때문에 개입하는 주체가 주권자입니다.

슈미트는 켈젠이 을 추상적 개념의 체계로서 파악하려 하는 것이 자연과학에서 받은 이상한 영향 탓이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자연과학이라면, 물리나 화학의 법칙은 인간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작용합니다. 법실증주의에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법학을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라고 슈미트는 생각합니다. 수학이나 물리와 똑같이 사회과학을 체계화정밀화하려는 사고방식을 일반적으로 실증주의라고 합니다. 보통은 사회과학 일반의 실증주의와 법실증주의는 다른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슈미트의 말에 의하면, 법학의 법실증주의도 법의 작용을 물리나 수학의 법칙처럼 자동적으로 작용하는 양 파악하려 하며, 그것이 현실적과학적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실증주의와 같습니다. 그는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는 홉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권위를 가진 인격적 주체의 질서 형성을 향한 결정이 법의 근원임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법의 원점이 되는 권위 있는 주체는 기독교의 유일신을 연상시키네요. 정치신학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슈미트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신학에 의거하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는 현대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개념이라고 단언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현실에는 의미 없는 추상적인 법이론으로 추락해버린다는 입장을 선명하게 합니다.

이런 전제에서, ‘예외상황은 법학에 있어서 신학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신은 우주의 운동법칙을 정하지만, 보통은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면에 직접 개입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자연의 법칙으로부터의 일탈이 생깁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주권자란 그런 의미에서 신 같은 존재입니다. 법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그 힘을 봉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성의 질서가 파탄나고, ‘예외상태가 생기면 자신의 주권적 힘을 보여줍니다. 마치 법칙이 한 순간 정지하고, 신이 기적을 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유사 관계를 의식하고야 비로소 처음으로, 지난 수백년 동안의 국가이론에서의 여러 이념의 발전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법치국가 이념은 이신론, 즉 기적을 세계로부터 추방하고 기적 개념에 포함된 자연법칙의 중단을 부정하는 이것은 현대의 법학이 현행의 법질서에 대한 주권의 직접 개입을 거부하는 것과 평행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신학 및 형이상학에 대응하는 형태로 확립되었습니다. 계몽사상의 합리주의는 그 어떤 형태의 예외상태도 부인했습니다. 반면 드 메스트르, 보날처럼 반혁명의 보수적 저술가들은 유신론적 신학의 유추에 의해 군주의 인격적 주권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려 시도한 것입니다.

법실증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의 법학은 주권이 직접 행사되는 상태를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따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면, 그런 것이 생길 리 없다는 전제에서 논리가 조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학자들은 신에 상응하는, 인격을 갖추고 결단하는 주권자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켈젠 얘기로 조금 돌아갑니다만, 슈미트의 편에서 보면 켈젠은 신학과 법학이라는 게 원래 방법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사고를 끊어버리려 합니다. 그것이 지나치게 이루어진 탓에, 예외의 결단이라는 중요한 것을 국가론에서 배제하고, 법이 결단에 의한 변형 없이 작용한다는 식으로 묘한 논의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슈미트는 법실증주의적인 법이해와 대결합니다.

그러한 법실증주의자들과의 대비에서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을 재평가하는데요, 정치신학에서는 드 메스트르, 보날에 덧붙여, 도노소 코르테스라는, 2월혁명 때의 스페인의 정치 사상가를 높이 평가합니다. 코르테스는 인간은 그 본성부터 원죄를 띠고 있으며, 본성이 악하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신을 대리하고, ‘독재에 의해 통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독재에는 민중을 납득시키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는 시민혁명의 시대 이후의 정치의 주인공이 된 부르주아지라는 것은 토론하는 계급이며, 오로지 토론만 하고 있어서 좀처럼 결단할 수 없다고 비난합니다. 인간은 모두 마찬가지이며[평등하며], 이성적이기 때문에, 논의를 계속하면 뭔가 타당한 결론으로 귀착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결단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죠.

이런 코르데스와 대비하여, 슈미트는 코르테스와 동시대인의 프루동이라는 프랑스의 아나키스트를 언급하고, 프루동도 높이 평가합니다. 왜 가톨릭 보수주의자인 슈미트가 아나키스트를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그것은 프루동처럼 급진적인 좌파가 자유민주주의자나 낭만주의자보다는 정치와 법이 신학적 구조를 갖고 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 신학적 구조를 최종적으로 해체하려고, 아마겟돈의 싸움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겟돈의 싸움을 벌이는, 뚜렷한 이 있기에, 정치신학의 구도가 두드러집니다.

정치신학10년 후인 1932년에, 서두에서 얘기한 친구/이론을 전개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출판됩니다.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하는 게 좀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이것이 정치적을 뜻하는 독일어의 형용사 <politisch>의 의미를 분석하는 저작이기 때문입니다. 법학적인 텍스트에서 어떤 장면에서 정치적이 사용되었고,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그 본질을 파고들어간 결과, 특수 정치적인 구별은 친구의 구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경우의 친구/이란 종교윤리적 선악이나 미적인 미추와 상관없고, 경제적 이해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서로의 존재가 이질적이고 단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슈미트는 공적(公敵)’사적(私敵)’의 차이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는 너의 적을 사랑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정치철학에서 친구의 대립을 절대시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슈미트에 따르면, 성경에는 적을 의미하는 두 가지의 말이 있고,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성서학의 입장에서는 슈미트의 이해가 지닌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것이 공적 polemios’사적 echthros’입니다. 라틴어로 하면 각각 <hostis><inimicus>입니다.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얘기이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공적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슈미트의 입장입니다. 개인적 호불호나 그 상대의 구체적인 행위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공동체=‘친구와 존재론적으로 대립하는, ‘공적이라는 집합체에 속하는지 여부가 문제인 셈이죠.

이 저작에서 슈미트는 이 없는 세계, ‘인류가 하나 된 세계에는 원리적으로 정치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한 동시대적인 비판을 전개합니다. ‘인류에는 이 없으니 전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겁니다. 그렇지만 베르사유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자신들이 일궈내고 있는 세계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자에 대해 인류의 이름으로 최종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다는 것은 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에게 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을까요?

슈미트의 말을 빌리면, ‘인류라는 개념을 정치에 들여옴으로써 모순이 생기는 것이며, ‘정치가 있는 한, ‘은 존재합니다. 중대한 사태를 앞에 둔 결속이야말로 정치적이라는 형용사가 뜻하는 바에 적합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인간의 결속이며, ‘정치적 단위는 대체로 그것이 존재하는 한, 항상 결정적 단위입니다. 게다가 예외상태도 포함해 결정적 사태에 대한 결정권을 개념상 필연적으로 항상 쥐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주권을 가진 단위입니다. , 자신들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단위입니다. 여기서 정치신학에서의 주권자의 결단친구/이론이 연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슈미트는 독일의 국가=단체론과 함께, 당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영국의 노동당 좌파 계열의 논객인 콜이나 러스키의 다원적 국가이론 등을 비판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단위로서의 형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심급으로서의 주권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국가론은 난센스입니다.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친구·의 구별이 없어지면 정치적 생활이 없어집니다. ‘정치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인민에게 있어서, 이 숙명적인 구별을 서약적 선언, 즉 프랑스혁명 당시의 인간 및 시민의 권리선언이나 인민의 이름에 의한 헌법제정에 의해 면제되는 자유 따위 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라는 것이 정말 없는 상태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친구/의 구별도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정치적인 것을 전제로 하면서, ‘인류의 이름 아래서 적대성 없는 세계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기만이라는 것이 됩니다.

당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됐던 전쟁 거부 및 포기 조약인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은 있을 수 없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자에게, 국제연맹이 인류의 이름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슈미트의 말을 빌리면, 전쟁을 없애자, 인류는 하나다, 잘 지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에게 적대하는 자에 대해서 신경질적이고 불관용이 되며, 전쟁의 가능성을 전 세계 규모로 확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결론부에서도 슈미트는 정치신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문제계로까지 되돌아갑니다. 원죄로부터 구원되는 자와 구원되지 못하는 자 사이에 선을 긋는 것, 무엇이 양자의 간극을 벌이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신학의 역할이었습니다. 인간은 그 본성이 하기에, 그런 경계선이 없으면 자율적으로 갈 수 없어요. 그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물려받은 정치신학은 친구/의 선을 긋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합니다.

근대의 자유주의라 불리는 사상은 중립성을 가장하면서 19세기 이후 급속히 세력을 떨치고, 모든 정치적 표상으로부터 표면상 적대성이라는 요소를 지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라 할지라도, 정치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슈미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 어떤 나라의 자유주의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자유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 자유-보수주의자, 자유-가톨릭주의자 등등으로, 각양각색의 비-자유주의적 요소이념과 결합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자유주의는 두 가지 이질적인 영역, 즉 윤리와 경제, 정신과 장사, 교양과 재산을 발판으로 삼고 있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흔들리고 있느냐 하면, 어떤 장면에서는 경제 활동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본질인 것처럼 주장했는가 하면, 다른 장면에서는 각자가 타자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정신적문화적으로 자기 형성을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의 핵심인 것처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교양이라는 것은 정신적 자기형성을 가리킵니다. ‘교양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 독일어 <Bildung>의 본래 의미는 형성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모두 중시하는 것을 그다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슈미트의 말을 빌리면, ‘자유라는 가치 실체를 확정할 수 없기에, 양극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그런 외관상의 허울뿐인 중립성을 타파하고, 아까 말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적 동질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동질성을 산출하는 데 있어서도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결단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법학자가 주목하는, 슈미트의 법학적 주요 저서인 헌법론에서도 동질성, 주권, 독재, 민주주의 등의 키워드를 연결하는 형태로 자유민주주의+법실증주의적인 그것과는 상이한 헌법관을 제시하는 것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헌법학 교과서로 읽으면 난해한 느낌이 들지만, 이런 특유한 슈미트적인 문제관심 아래서 적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나름의 일관성이 있는 기술이기에, 꽤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슈미트는 국제법과 본격적으로 씨름하게 됩니다. 거듭 말씀 드린 것처럼, 적대성을 포함하지 않는 인류라는 보편적 통일체에 있어서의 정의를 생각하면, 그것을 위반하는 자를 제재한다는 발상이 나옵니다. 십자군처럼 성전의 양상을 띠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거짓된 보편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국가 간 질서의 구상을 암시하는 것으로는 전후 간행된 대지의 노모스라는 대작이 있습니다. 이 저작에서는 친구와 적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한 뒤, 이것에 틀을 부여하고 대립을 무한하게 상승증폭시키지 않는 구조로서의 유럽 공법이 대항해시대부터 30년전쟁 시기까지 서방국가들 사이에서 성립됐다는 가정 아래에서, 전쟁억제의 메커니즘이 논해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정당한[올바른] 으로 인정하는, 즉 주권국가임을 인정한 뒤, 올바른 규칙을 따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기사도의 규칙에 기초한 결투와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유럽의 국가들이 지역적 질서를 전제로 하고 서로 받아치고 있기에, 그런 틀의 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비서구 지역에는 같은 규칙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구조에 의해 유럽에서의 전쟁은 억제되고 있었지만, 1차 대전 전후부터, 자유주의와 결탁한 보편주의가 대두되고, 세계를 일원적으로 관리하려 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전쟁이 증폭되어 가고, 섬멸전의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영역[영토]적으로 한정된 구체적인 질서가 국가 간에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후 그의 기본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시간이 다 되어서 일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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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타 겐 : 대단히 감사합니다. 꽤 질서 정연하게 1시간 반 정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조금 쉴까요? 5분 정도 휴식한 다음 질의응답을 하겠습니다.

 

(휴식)

다케시타 겐 : 그러면 후반부는 질의를 하시는 것으로 재개하겠습니다. 우선 토론자로서 마츠오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마츠오 미츠마사

큐슈대학(九州大学)의 마츠오입니다. 전공은 형법입니다. 오늘은 매우 난해한 논의를 알기 쉽게 해설해 주셔서 배운 바가 매우 많았습니다. 연구소의 이 프로젝트도 예외상태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20세기의 초반에 칼 슈미트가 예외상태라는 말을 꺼내고, 이것이 아주 유명해졌다는 사정도 있습니다. 현대 슈미트 르네상스라고도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어떤 맥락에서인가 하면, 역시 테러의 문제이거나, 혹은 독일에서도 그랬는데, 예를 들어 수사기관이 범인을 잡아 고문하는 장면이나, 이런 매우, 현재에 있어서의 위기적 상태의 경우에 예외상태라는 말도 자주 쓰이고, 그런 관계로 슈미트도 자주 인용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슈미트에게 찬성하는 의견보다도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슈미트의 시대의 예외상태라는 것은 선생님의 발표문에도 있듯이, 옛날의 바이마르 헌법의 시대의 그런 위기적 상황이 당연히 염두에 있을 텐데요, 현대에서는 예를 들어 예외상태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강의를 들으신 분들도 모두 구체적인 이미지로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상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 예외상태론이란 우선 무엇이 예외상태인지를 모르면, 논자마다 당연히 파악 방식, 이론적 구성도 달라지며, 어떤 사람은 다른 현상을, 다른 사람은 다른 현상을 염두에 두게 되기에, 어떤 상태가 특히 현대에 있어서 예외상태로서 설정할 수 있는가 혹은 그렇게 할 수 없는가, 그것에 관해 뭔가 생각하시는 게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매우 법률의 입장에서의 의문인데, 칼 슈미트의 이 정치신학 속의 유명한 문구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 것입니다만, 예외상태라는 것은 법이 없는 상태이지만, 그러나 법률학적으로는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재의 법률의,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렇습니다만, 법률이 없는 예외상태를 법의 편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는 매우 어려운 난문이랄까, 오히려 비판적인 의견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주권의 문제에 관해서도, 예외상태라고는 말하고 있지만, 법률이 없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불문의 법률이 있다거나, 불문의 헌법이 있다거나, 혹은 주권에 관해서도, 이것은 날것의 사실상의 권력이 아니라, 예를 들어 그것은 어떤 규범에 의해 제도화되는 주권이라거나 하는 형태로, 어떤 규범과 연결되고, 예외상태도 규범 속에 집어넣는다고 할까, 그런 논의 등도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없는 상태를 법의 편에서 보고, 어떤 법률이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라고. 슈미트는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에 관해 뭔가 생각하신 바가 있으면 알려주십사 하는 것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나카마사 마사키

예외상태라는 말은 현대에서 인플레이션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가 정치신학등에서 말하는 뜻을 기준으로 삼으면, 상당히 부풀려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테러리스트 등에 대하여 형법의 예외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은 슈미트의 의미에서의 예외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법 자체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상태 아래에서, 테러리스트에게 예외를 적용했다고 해서 그 순간 형법이 붕괴했다고 진심으로 믿고 행동 방식을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슈미트가 상정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주권이 다시 한 번은 그 배후에 있는 헌법제정권력이 직접적으로 발동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정상인지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단에 의해 질서의 형태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대의 서방 선진국들에서 그것에 가까운 상황을 체험한 것은 911 직후의 미국 정도가 아닐까요?

다만 911조차도, 정말로 슈미트가 상정한 예외상태의 전형적인 예인지 의문입니다. 911 직후에 부시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언을 내리고, 모든 국경을 폐쇄하고 항공기의 이착륙을 일시적으로 금지시키고, 주의 병력도 추가 테러에 대비해 동원했으니 독재적인 권력이 발휘됐다고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에 의해 슈미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주권’, 인격적 주권의 소재가 밝혀졌는가라고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악명 높은 애국자법은 의회에 의해 제정됐습니다. 그 후의 이라크전쟁[침공]을 향한 미국 내의 움직임은 부시 대통령 주도로 진행된 것처럼 보입니다만, 미국 헌법과 대통령의 관계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의미에서 강한 정치적인 이니셔티브를 취한다는 것만으로는 슈미트의 예외상태와는 관계가 없잖아요. 주권자로서의 결단이 법규범의 기본적인 위상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포인트입니다.

헌법=국가체제가 안정되지 않은 국가들이라고, 주권적 권력의 행사는 꽤 알기 쉬운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경우, ‘통상적인 상태’=‘예외상태라는 기묘한 것이 되기에, 슈미트는 굳이 예외상태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서구의 주권국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비서구 국가들의 것은 시야에 넣지 않습니다.

슈미트의 예외상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단체의 존망과 관련된 상황이며, 단체의 존망과 관련되지 않은 경우는 예외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죠.

그리고 예외상태에서도 어떤 형태로 법규범이 작용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하셨지만, 이것은 아마 슈미트도 인정하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슈미트가 문제 삼는 것은 주권적 권력의 소재가 명확한지 여부인데, 그것에 종속되어야 할 규범들이 예외상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모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사람들의 역사적 생활양식과 법질서가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에, 예외상태에서도 규범이 제로(zero)가 된다고 보지 않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주권적 권력의 소재가 확실히 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산산조각 나서, 통일된 법질서를 형성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여러 규범(norm)이 난립하고, 무엇이 정상(norm)인지 모를 때에는, 규범의 서열을 정하는자가 있지 않는 한, 결말이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슈미트가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정하는자는 통상적인(normal) 의미에서의 법규범을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초월한 곳에 없으면 무엇이 정상=규범적인 것으로 돼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없습니다. 법에 의해 특수한 권능을 부여받고 있는 동시에 법을 넘어선 곳에 있는 주권자가 법질서의 존재방식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스스로의 타당성의 원천을 둘러싼 역설적 상황을 법학은 인식해야 합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주권에 대한 집착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인 버크와는 다른 것 같아요. 버크는 관습에 의해 정의나 법제도가 형성된다는 것,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안정된다는 것을 중시하지만, ‘주권의 소재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습니다. 영국처럼 왕조가 바뀌더라도 헌법=국가체제가 안정된 곳에서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의 소재에 대해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법실증주의의 원조로 여겨지는 홉스나 공리주의의 원조인 벤담처럼 탈전통적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이론가가 주권에 대해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이 불안정하고 언제 해체될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슈미트가 주권을 고집한 배경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통상적인 법률학, 즉 정상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법률학은 영국처럼 주권의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하지 않아도, 법규범이 통용되고, 판례를 축적할 수 있는 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예외상태와 주권에 초점을 맞추는 슈미트의 이론과는 잘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케시타 겐 : 그러면 플로어에 계신 분들의 질문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질문자 A :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코뮤니즘의 민주집중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말하는 것은, 칼 슈미트가 말하는 예외상태에서의 민주주의에 상당하는 것일까요? 칼 슈미트는 공산주의, 코뮤니즘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긍정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나카마사 마사키 : ‘긍정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 의한 것이냐인데, 슈미트는 적어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형태로 독재의 필요성을 논하는 맑스주의자가 자유민주주의자보다 정치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다만 슈미트 자신의 정치적 입장은 가톨릭 보수주의이기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해서는 적대했습니다. 통찰은 높이 평가해도 입장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에 있다고 하는 슈미트의 사고방식도, 민주집중제에 통하는 듯 생각합니다만, 슈미트는 신학적인 혹은 민족적 동일시 밖에는 안정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노동자로서의 동일성에 기초한 민주집중제에 의한 안정은 인정하지 않죠. 그보다는 모든 인민이 노동자로서 동일/동질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자 A : 본질로서는 인정하나 실천형태로서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나카마사 마사키 : 실천으로서 성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맑스주의는 무신론이라, 신에 해당되는 최종심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말을 사용해도, ‘프롤레타리아트에는 인격으로서의 실체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결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애매한 개념으로부터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가 특정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애매함을 싫어한다다고 생각해요.

질문자 A : 역사적 사실, historical fact로 해서는 19911226일에 소련은 붕괴했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 하의 바이마르 체제도 히틀러의 의회 봉쇄에 의해 거꾸러졌습니다. 그것도 historical fact,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 모두 역사적 사실로서 붕괴한 셈입니다만, 이 역사적 사실에 관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카마사 마사키 : 여러 가지 평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만, 슈미트의 바이마르 공화제 평가에 입각해 말하면, 주권독재를 위임독재로 이행시키고, 법질서를 안정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도한 정치가들이 정치의 본질인 친구/관계나, 민주주의가 동일성에 기초한 통치임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에 붕괴의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히틀러 정권을 한 시기에는 높이 평가했습니다만, 그것은 집권 당시의 히틀러가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점차 슈미트 자신의 질서관과 나치의 질서관의 괴리가 차츰 가시화표면화되고, 친위대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있어서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소련에 관해 말하면, 슈미트는 소련의 해체를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막연한 것을 주체로 삼는 통치의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하나의 보편주의적 이상 아래서 세계 내전을 일으키려고 하는 맑스주의의 보편주의적 발상에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슈미트 자신은, 역시 가톨릭적인 위계질서 같은 것이 아니면 진정한 안정은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자 A : 정치적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고 하기보다는, 소련의 붕괴는 소련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장경제에 비해, 공산주의 체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제도가 부패했고, 시장경제,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스스로 붕괴했다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나카마사 마사키 : 하나의 국가가 거쳐 온 역사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기에, 유일한 올바른 견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케시타 겐 : 지금 말씀하신 분의 의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 문제도 있고 해서, 다른 분들의 질문도 듣고 싶습니다.

질문자 B : 세츠난대학(摂南大学)에서 법철학을 담당하고 있는 마츠시마 유이치(松島裕一)라고 합니다.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흔해빠진 질문을, 법철학의 관계 때문에 질문하고 싶습니다만, 슈미트의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정의라는 것은 예외상태에 있어서 결단을 내리는 자가 주권자이라고 하는 얘기이죠. 그런데 일반 중학생, 일본의 중학생에게 물어보면, 주권자는 국민주권이라는 대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헌법에서의 주권의 의미와 슈미트에게서의 주권자의 의미의 차이에 관해 해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우선 첫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카마사 선생님의 말씀은 이른바 초기라고 할까, 20년대 무렵까지의 슈미트의 이론에 중점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20년대 정도까지는 법을 넘어서는 결단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결단주의에 슈미트는 속해 있다고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만, 30년대 이후, 결단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구체적 질서가 법에는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선생도 레주메에 쓰셨지만, 슈미트는 30년대 이후, 구체적 질서로 기울어져 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슈미트 이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과 예외상태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느냐가 또 다른 질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슈미트의 법실증주의 비판의 요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카마사 마사키 : ‘주권자 Souverän’란 원래 군주통치자의 의미에서 주권 Souveränität’은 그것을 추상화한 말입니다만, 슈미트의 주권자는 그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격적인 궁극적 결단 주체를 주권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법적 질서의 존재방식에 관해서, 궁극적으로 결단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결단하는 능력이 없다고 한 것은 주권자라고는 말할 수 없죠.

국민주권이라는 것은 통치의 기본방침을 최종적으로 정하는 권한을 갖는 것은 우리’=‘국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입법·행정·사법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지만, 직접적으로 법률을 제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예외상태에서 국가 질서의 재편에 관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예외상태에서 일일이 선거를 하고 방침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통상=정상상태라고 해도 재판에 있어서 어떤 법규범을, 어떤 해석 아래에 적용하는지,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없습니다. 결정하는 것은 재판관입니다. 당연하다고 말하면 당연하죠. ‘국민이라는 다수의 인간의 집합체가 각각의 법규범의 효력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고, 신속하게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통해 정부에 자신의 의사를 위임한다고 하는 의제(fiction)를 사용하는 셈이지만, 슈미트가 집착하는 결정하는 주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외상태에 국민주권이 실체를 결여한 허구임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국민주권이라는 픽션에 어느 정도의 실체를 주는 것이 주권독재라는 제도입니다. ‘독재는 본래 혼자 또는 극소수의 인간에게 권한이 집중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요, ‘주권독재에 있어서는 독재권을 가진 인간의 결단이 주권자인 국민의 결단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동일성으로 보는, 슈미트식 민주주의가 이 논리를 보완합니다. 피치자와 통치자가 동일하다면, 독재관의 의사=국민 의사로 간주해도 좋은 것입니다.

아마 슈미트에게 형식적 의미에서의 주권자가 누구이냐는 그만큼 중요한 게 아니라,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누구이냐가 훨씬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외상태에서의 독재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면, 그 국민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권자가 아니라는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 질서 사고에 대해서입니다만, 저는 이런 사고방식이 30년대 이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원래 슈미트의 법 사고의 베이스에 있었던 것이지만, 전면에 나오지 않았고, 뚜렷한 형태로 표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슈미트는 법질서가 신학적 세계관과 그 아래에서의 사람들의 생활관계와 대응하고 있다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구체적 질서입니다. 주권자는 그러한 구체적 질서를 가정하면서 법규범을 서열화하고 각각의 규범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도록 결단하는 것입니다. 제로(0)에서 나오는 결단이 전혀 아닙니다.

1920년대의 슈미트에게서는, 독일에 고유한 구체적 질서와, 실제의 바이마르 공화제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정시키기 위해서, 누가 예외 상태에서 독재자로 결단해야 할 위치에 있는지, 바이마르 헌법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자유민주주의적 중립성을 가장하지 않고 확실히 할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바이마르 헌법=국가체제에 결단이 결여됐기 때문에, 슈미트가 결단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나치 정권의 성립 이후가 되면, ‘예외상태를 강조하는 것이 나치 입맛에 맞지 않게 되는 셈입니다[뭔가 개운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지도하는 나치가 독일 민족의 삶의 방식에 적합한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전제를 입장상 받아들였기에, 그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을 시사하는 예외상태에 관해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결단은 이미 히틀러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나치의 민족 운동이 독일에 고유한 구체적 질서에 맞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갑자기 말을 꺼내면,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느낌이 되므로, 34년의 논문 법학적 사유의 세 유형에서는 법적 사고는 규범주의, 결단주의, 구체적 질서 사고의 세 가지 유형이 있음을 역사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질서에 대한 사고는 독일의 법학에서도 점차 영향력을 갖게 되지만, 아직 불충분하다고 지적한 뒤, 국가운동민족의 삼위일체의 관계 속에서 여러 과제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국가에서 구체적 질서에 관한 문제를 적절히 다루는, 새로운 법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법학자로서의 슈미트가 프랑스의 공법학자 오리우의 제도적 보장론을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법이론에 집어넣었다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법사상사적, 메타이론적으로 의의를 부여한 후에, 구체적 질서 사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유익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우의 논의와 슈미트가 이미지하는 구체적 질서가 정말 관계가 있는지 의문입니다만, 슈미트에게는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 구체적 질서 사고의 부상에는 정치신학에 내재하는 질서론의 가시화[현재화], 나치에 대한 배려, 제도적 보장론의 법사상사·메타 법이론적 위치부여, 이 세 가지의 배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학자들은 제도적 보장론 혹은 제도체 보장론을 정식화한 이론가로서의 슈미트에 관심이 있어서 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법학적 사유의 세 유형을 읽는 한, 나치의 지도자 원리와 구체적 질서를 무리하게 결부시킨 느낌이 없지 않지만, 완전히 자의적인 변절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지의 노모스로 대표되는 후기 슈미트의, 국가 간 질서론은 구체적 질서론의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케시타 겐 : 예정된 시간을 조금 넘겼습니다만, 아직 질문하실 게 있는 분은 하십시오.

질문자 C : 예외상태라는 것을 들었을 때, 제가 이미지했던 것은 10년 정도 전에 고이즈미의 구조개혁 같은 것입니다. 우정민영화가 옳으냐 그르냐 같은 느낌으로, 주권자가 옳은가 그른가를 선택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저는 이미지했습니다. 과거로부터의 가치관으로 말하면, 우정사업은 국유화한 채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식의 흐름이 있었던 가운데,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민영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제창하고, 그 결과 국민이 선거에서 민영화한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것이 예외상태에 있어서, 국민, 주권자가 선거에 의해 선택했다는 것이 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나카마사 마사키 : 앞에서도 마츠오 선생의 질문에 관해 말씀드렸듯이, 통상적인 법규범이 통용되고 있는 상태는 슈미트가 말하는 예외상태가 아닙니다. 우정선거(郵政選挙)는 법을 따라 행해지고, 우정민영화도 통상적인 입법절차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따라서 결단한 것이 고이즈미인지 국민인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예외상태에 특유한 결단이 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고이즈미 씨의 수법을 통해 정치의 본질을 반드시 합의 형성이 아니라, 오히려 결단일지도 모른다는 것, 특히 친구/을 나누는 결단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되게 됐다는 의미에서, 슈미트적인 상황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슈미트가 말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친구/관계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유사-‘친구/의 관계가 생긴 것에 불과합니다. 우정민영화 문제에 관해서는, 야당의 견해가 일괴암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민당 안에도 여러 가지 입장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고이즈미 씨는 저항세력이라는 표현을 계속 함으로써 모든 정치가를 의사적(疑似的)친구/으로 나눠버린 것입니다.

다소 정치평론 같은 것을 말씀드리자만, 자민당이라는 것은 반사회주의라는 의미에서의 보수세력을 결집해서 만들어진 정당으로, 일본을 구미(欧米)형의 자유주의 사회에 가깝게 하고 싶은 친미파, 일본다움을 회복하고 싶은 진정한 보수파’, 공동체를 기반으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회당 우파 같은 사람들 등, 여러 가지 입장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유민주당이라는 당명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집단적 자기통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이에서 타협을 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슈미트가 강하게 비판했어요. 겉이나 뒤의 여러 가지 협상으로, 막연한 타협을 만드는 것을 잘 한다고 내세우는 정당입니다. 이것도 슈미트가 현대 의회주의의 문제로서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극단적으로 훼손하지 않은 듯한 타협을 형성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자민당식의 방식이 수년 동안 많은 일본인에게 정치의 일반적 이미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급진적 좌파 사람들은 자본주의 대 반자본주의의 적대관계를 항상 의식했는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였겠죠.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일본적인 정당의 우두머리가 친구/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음으로써 정치가 움직이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려 한 것은 그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숙의냐 투쟁이냐, 정치가에게서 요구되는 것은 합의 형성을 향해 의사소통하고 조절하는 능력인가, 아니면 결단하고, 지도하는 능력인가 같은, 슈미트뿐 아니라 현대의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문제가 우정선거를 계기로 제기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케시타 겐 : 그러면 한 분 정도, 만약 계시다면 질문을 해주십시오.

질문자 D :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법의 외부, 적이라는 것의 내용에 관해 질문하고 싶지만, 인류 자체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류 속에서, 외부/내부의 경계선이 정해진다는 얘기였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외부는 자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까요? 인간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나무의 권리를 생각한다는 사상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외부에 있었던 것을 안에 도입하려 하는 것입니다. 다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노력을 해도, ‘자연은 외부이길 계속합니다.

법의 외부로서, 동물이라든가 자연을 상정한다면, 인류 자체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명제는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신지요?

나카마사 마사키 : ‘인류자체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실제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적 주체로서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적들뿐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인류전체가 모여 있고 외부에 속하는 인간은 없는 상태가 실현됐다고 하더라도, 동물이 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 질문의 취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슈미트의 의미에서는 이 아닙니다. 동물이 모여 있고, 주권을 갖춘 단위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모여 있고 인류의 주권을 침해하는 사태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SF에 그런 설정도 있습니다만, 현재의 우리의 과학 수준에서는 그런 설정이 현실감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아무리 개체로서 위험하더라도, 법질서를 에워싼 환경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슈미트 자신의 사유의 틀을 아감벤적인 방향으로 확장해 인간=이성적인 것 / 비인간=비이성적인 것의 경계선을 긋는 것에 내재하는 정치성을 문제로 삼는 것이라면, 동물을 법외적인것으로서 배제하려는 힘이 거기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을 이해하지 않는 동물을 외부로 밀어냄으로써, 우리는 자신들을 법적 존재로서 위치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은 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동물은 우리가 경계선을 긋고, 그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얘기니까요.

다만 동물의 권리라든가, 환경의 권리가 문제가 될 때, 그것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기존의 정치나 법을 변혁하고, 새로운 법권리의 체계를 수립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 기존의 인간관에 기초하여 법권리의 체계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대성이 생깁니다. 슈미트라면 거기에 주목할 것입니다. 그런 대립이 커졌을 때, ‘정치적인 것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질문자 D : 감사합니다.

 

다케시타 겐 : 그러면 예정 시간을 넘겼지만, 이것으로 이번 연구회를 마치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나카마사 선생께 박수를 쳐드리면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두 번째 부분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 번째 부분에 이어서)



(계속)



낭만파 사상의 철학적 배경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읽은 곳에서 약간 뒤의 대목을 봅시다. 슈미트는 모든 것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실재’를 해체하는 낭만파의 사고를 상당히 끈질기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96쪽을 살펴봅시다. 



개념의 전면적인 교체와 혼합, 터무니없는 말의 난혼 속에서는, 모든 것은 설명 가능하게도 되고 설명 불가능하게도 되며, 동일한 것도 반대되는 것도 되며, 모든 것이 모든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정치적 현실에 관한 문제와 논쟁에 “모든 것을 조피[Sophie]로 변화시키고 또한 그 반대를 행하는” 기교(kunst)가 적용되기에 이른다. 이 보편적인 “또한 그 반대”und umgekehrt는, 모든 썩은 흙[糞土]을 돈으로 바꾸는 위대한 말의 연금술에 있어서, 현자의 돌이 된다. 모든 개념은 하나의 나이며, 또한 거꾸로 모든 나는 하나의 개념, 모든 체계는 개체, 모든 개체는 체계, 국가는 인간, 인간은 국가가 된다. 혹은 뮐러의 대립 이념에서 말해지듯이, 만일 긍정과 부정이 객관과 주관처럼 대립물이라고 한다면, 긍정과 부정은 객관과 주관에 다름 아니며, 뿐만 아니라 또한, 공간과 시간, 자연과 예술, 과학과 종교,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과 부르주아, 남성적과 여성적, 화자와 청자도 마찬가지다. 

[* 개념들의 일반적 교체와 혼합(confusion), 말들의 엄청난 뒤범벅(promiscuity) 속에서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설명할 수 없고, 동일한 동시에 동일하지 않게 되며,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기예(art)는 “모든 것을 너무도 사랑하는 조피(Sophie)로 변형하고 또한 그 반대로 하기 위해” 정치적 현실의 문제와 토론에 적용됐다. 이런 일반적인 “또한 그 반대로”는 모든 배설물을 금으로 바꾸고 모든 금을 배설물로 바꿀 수 있는 말들의 위대한 연금술에 있어서 철학자의 돌덩이이다. 모든 개념은 자아(ego)이며 또한 그 반대이다. 모든 자아는 개념이며, 모든 체계는 개인이며, 개인은 체계이다. 국가는 사랑하는 연인이며 인간(person)이 된다. 인간(person)은 국가가 된다. 혹은 뮐러의 『대립론(Lehre vom Gegensatz)』에서처럼, 긍정과 부정이 객관과 주관 같은 대립물(antitheses)이라면, 긍정과 부정은 객관과 주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또한 공간과 시간, 자연과 예술, 과학과 종교,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과 부르주아지, 남편과 아내, 화자와 청자이기도 하다(p.77).]



‘조피’란 구체적으로는 15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노발리스의 약혼자 조피 폰 퀸(Sophie von Kühn, 1782-97)을 가리킵니다. 노발리스는 작품 속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신비화·이상화된 형태로 묘사합니다. ‘여성’의 이상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지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sophia〉에서 유래하니까, 우주의 궁극적 신비로 이끄는 여신이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90년대에 일본에서도 붐이 일었던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 1952~)의 『조피의 세계(Sofies verden)』(1991)의 주인공 ‘조피’라는 이름도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었죠.


* 옮긴이 : 독일어이기 때문에 ‘조피’로 읽어야 하지만, ‘소피’라고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요스타인 가아더는 요스테인 고르데르로 읽히기도 하며, 『조피의 세계(Sofies verden)』도 『소피의 세계』(장연은 옮김, 현암사, 1996)으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노발리스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조피’로 연결되며, ‘조피’에 의해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래서 ‘조피’를 경유함으로써,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상호 변환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조피’가 연금술의 ‘현자의 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물론 ‘조피’나 ‘현자의 돌’이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나’ 안에서, ‘나’의 상상력에 의해 그런 양 극단의 맞교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 전체가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며, “세계는 완벽하게 그것을 따라 순서지어지며”, “우주는 그것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은 세계나 우주가 아니라, 자그마한 인공적 도상(figure*)에 불과하다. 실재에의 의지는 외양Schein에의 의지로 끝난다. 그들은 세계의 현실을, 단번에 세계의 모든 것을, 우주의 전체를 파악하려 했다. 그 대신 그들이 얻은 것은, 투사와 흡수, 확장과 수축, 점, 원, 타원, 구(球), 영혼 있는, 즉 주관화된 거대한 공놀이 ludus globi였다. 그들은 사물의 실재성을 헤집고 나가는 데 성공했으나, 그 대신에 다름 아닌 사물도 그들을 헤집고 나갔으며, 그들이 그 저술이나 서신이나 일기에서 우주를 우롱하는 데 급급한 것을 보면, 스웨덴보르크가 묘사한 너무도 교활한 자들의 지옥에서 빠져 있는 저주 받은 사람들을 자주 상기시켜준다. 

[* 그것은 공식이다. 즉, “세계 전체가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다. 이 공식에 입각해 “세계가 모조리 배열되며”, 이 공식과 더불어 “우주는 증명된다.” 물론 그렇다. 다만 이것은 세계와 우주가 아니며, 오히려 예술의 작은 형상(figure)이다. 실재(reality)에의 의지는 외양에의 의지로 끝났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의 실재를, 세계 전체를, 우주의 총체성을 단숨에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것] 대신에 그들은 투사(projections)와 재흡수, 연장(elongations)과 축약을 얻었을 뿐이다. 점, 원, 타원, 아라베스크(arabesques), 혼이 불어넣어진(ensouled) ― 즉, 주관화된(subjectified) ― 우주적 게임. 낭만주의자들은 사물의 실재성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러나] 이어서 사물들이 그들을 탈출해 버렸다. 우리가 이들의 저술, 편지, 일기에서 우주의 조작에 이들이 열심인 것을 보았을 때, 이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스웨덴보르크의 지옥에서 너무도 교활한 자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떠올리게 한다(p.78).]



요란한 수사가 계속됩니다만, 아까의 [조피 → 현자의 돌 → 나]의 이야기의 계속으로, 포인트는 알 수 있네요. 낭만파 사람들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파악할 작정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말로 만들어낸 ‘외양’에 우롱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들은 사물들의 《실재성》을 넘어서, 궁극의 ‘실재성’을 추구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물들이 그들의 눈앞을 지나쳤을 뿐, 우주를 우롱할 것이고, 그 반대로 우주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 


“실재에의 의지는 외양 Schein에 대한 의지로 끝난다”는 원문에서는 〈Der Wille zur Realität ender im Willen zum Schein〉입니다. 독일어 〈Schein〉에는 ‘외양[외관]’, ‘가상’ 외에도 ‘빛’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의 동사형인 〈scheinen〉에 ‘바깥으로’라는 의미를 지니는 철자, 접두사 〈er-〉을 붙여서 〈erscheinen〉이라고 하면, ‘나타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물의 본질이 ‘빛을 내다’와 같은 포지티브한 뉘앙스와, 실체가 없는 단순한 ‘외양[외관]’이라는 네거티브한 뉘앙스 둘 다를 띠고 있는 말입니다. 낭만파는 ‘빛나는’ 본질을 포착한 셈이었지만, 슈미트가 보기에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낸 ‘외양[외관]’과 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주관화된 거대한 공놀이”라는 비유는 조금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球]으로 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사물이 난무하고 중심점인 ‘소피[조피]’를 통과할 때 한쪽 극성에서 다른 쪽의 극성으로 변환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구체(球体)로서의 우주를 궁극적으로 파악할 작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주관으로 구체(球体)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자기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웨덴보르크(Emanuel Swedenborg, 1688-1771)는 스웨덴의 과학자·신비주의자로, 결정학(結晶學)의 영역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만,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하고,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견문록을 썼습니다. 낭만파 사람들이 자신들이 ‘우주’라고 숭배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필사적으로 여러 가지 글을 쓴 것을 보면, 스웨덴보르크의 지옥에서, 너무 교활한 자들이 받고 있는 죄를 상기시킨다는 것이죠. 


그러면 낭만파의 사상의 철학적 배경에 관해 논한 2장 (2) 「낭만주의의 우인론적 구조(The Occasionalist Structure of Romanticism)」로 들어가죠. 



그 힘을 날마다 사실에 있어서 증명하고 있는 실재는 비합리이자 거대한 것으로서 암흑 속에 숨어 있다. 더 이상 존재론적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적 정신의 영향을 받은 그 세기의 모든 것은 특유한 기분으로 채워져 있었다. 체계적이든 감정적이든, 전제와 결과와 방법은 다종다양하더라도, 낙천[주의]과 비관[주의]의 차별[차이]을 초월하여 개별 개체의 고뇌가 들리게 되며, 기만을 당했다는 이들의 감정도 들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우롱하는 저 힘의 손아귀 속에 놓여 있다. 

[* 그 힘이 실제로 날마다 증명되고 있는 실재는 비합리적 양으로서 모호하게[암흑 속에] 남겨져 있다. 존재론적 사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낭만주의적 정신의 영향을 받았던 세기 전체에는 특유의 기분(characteristic mood)이 [곳곳에] 침투해 있었다. 전제, 결과, 방법이 얼마나 다양하고 체계적이고 감정적인가와는 무관하게,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의 차이를 넘어서서, 한 개인의 불안과 속임을 당한다는 그의 감각도 귓가에 들려올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힘의 손아귀에서 속수무책이다(p.78).]



낭만파에게 ‘실재’의 본체는 어둠 속, 즉 이성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세계, 파악하기 힘든 무의식의 세계에 있다고 상정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피히테처럼 체계적인 ‘존재론’을 전개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감춰진 ‘실재’가 우리의 의식을 배후에서부터 움직인다, 혹은 뭔가의 계기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뭔지 모르지만, 우리는 미지의 비합리적인 힘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낭만주의뿐 아니라, 19세기는 특유의 기분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 뒤에 이어진 논의에 비춰 보면, 셸링의 ‘신화’라든가, 쇼펜하우어(1788-1860)의 “그저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라든가 니체(1844-1900)의 “힘에의 의지”, 프로이트(1856-1939)의 ‘무의식’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자신의 의식의 진정한 주인인가? 뭔가 다른 것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은 현대사상의 주요 테마인데요, 낭만주의 시대에 이미 그런 사고방식의 원형이 나오는 겁니다. 진보주의적인 합리주의의 진영에서 보면, 가톨릭 보수주의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신봉한 점에서, 낭만주의와 한패거리가 아니냐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뚜렷한 ‘존재론’을 지녔다는 점에서, 가톨릭 보수주의는 낭만주의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 인간과 세계에서 놀 수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폭풍우』 속의 프로스페로처럼 인간이 극의 ‘조종 장치’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로맨티카는 자유로운 주관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이런 상상을, 좋아하고 사랑해버렸다. 

[* 우리는 인간 존재 및 세계와 아이러니하게 노는 것을 즐긴다.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처럼 인간이 자신의 수중에 드라마의 ‘조종 장치(mechanical play)’를 쥐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주체성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그런 관념을 상상하길 아주 좋아한다(pp.78-79).]



“프로스페로 Prospero”란 셰익스피어의 희극 『폭풍우 The Tempest』의 주인공으로, 원래 밀라노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동생에게 배신당해 딸과 함께 섬으로 유배됩니다. 마술을 배운 그는 마술을 통해 섬의 요정과 괴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게 되며, 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어느 날 새로운 왕이 된 동생과 나폴리 국왕, 그 아들이 탄 배가 (프로스페로의 하수인이 된 요정이 일으킨)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섬으로 흘러듭니다. 프로스페로는 마술을 사용해 그들을 위협하고 복수하려 하지만, 자신의 딸과 나폴리 왕자가 사랑에 빠졌기에, 그의 진심을 시험한 후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로스페로는 얼핏 보면 마술이라는 ‘조종 장치 Maschinenspiel’에 의해 이야기의 진행을 조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원래 그가 동생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인 셈이니까, 프로스페로 자신도 운명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마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마술의 바탕이 되는 초자연적인 힘은 그가 산출한 것이 아닙니다. 한발 더 물러선 관점에서 보면, 프로스페로는 극중 인물이기 때문에, 작자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자도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것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낭만주의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힘 eine unsichtbare Macht”을 이용하는 것, 혹은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을 “자유로운 주관성 freie Subjektivität”의 행사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무의식에서 부상하게 되는 ‘상상력’이 낭만주의적인 창조의 원천입니다. 문학·예술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낭만주의 이전의 고전주의 시대, 괴테나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시대라면, 그런 비합리적 힘에서 생겨나는 정념을 이성에 의해 통제하고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예술의 본래 존재방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 : 비밀결사geheime Bünde와 음모론 


이후 다소 뜻밖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독일 문학사·문화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일본에서도 요즘 음모론이 붐을 이루고 있죠. 음모론이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어둠의 세력이 정치나 경제를 움직이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죠. 현대세계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어서,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가 9·11을 자작극으로 꾸몄다거나, 알카에다를 그림자로서 조종해서 군사개입의 구실을 꾸며냈다는 등의 얘기가 많습니다만, 그런 수준에 머물지 않고, CIA의 더 깊은 배후에 건국 당초부터 미국을 조종하고 있는 특정한 ‘비밀결사’가 있고, 그것이 진정한 흑막이라는 깊은 음모론이 있죠. 


‘프리메이슨’ 얘기는 꽤 옛날부터 있었죠. 미국의 대통령이나 민주, 공화 양당의 간부의 대다수가 프리메이슨이라든가, 러시아나 중국의 수뇌부에도 멤버가 꽤 있고, 세계의 정치를 그림자로서 움직이고 있다든가, 역사상의 거대 사건의 대부분은 모두 프리메이슨의 계획을 따라 이뤄졌다든가. ‘일루미나티’도 최근 듣게 됐습니다. 일단 다른 조직인 것 같아요. 


슈미트가 말하듯이,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등의 비밀결사는 18세기 말경부터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유럽의 많은 도시에 지부를 결성합니다. 그런 ‘비밀결사 geheime Bünde’가 서유럽국가들의 문학 테마가 됐습니다. 독일문학에서 특히 도드라집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그 속편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에는 프리메이슨을 모델로 했다고 생각되는 ‘탑의 결사 Turmgesellschaft’가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유령을 보는 자[환시자, 강신술사] Der Geisterseher』(1787-89)에서는 칼리오스트로(Cagliostro) 백작(1743-95)을 모티프로 삼은 듯한 수수께끼의 아르메니아인이나 영능력자, 비밀결사 부센타우루(Bucentauro) 등이 등장합니다. 호프만의 환상소설은 수상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만, 특히 『모래 사나이(Der Sandmann)』(1816)는 영적인 이야기와 음모론, 무의식론이 조합되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1강에서도 조금 소개한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는 슐레겔 등과 거의 동세대의 낭만파의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주로 베를린에서 활약했습니다.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의 『장화 신은 고양이』를 프랑스혁명의 패러디로 보이도록 번안한 희극 「장화 신은 고양이」(1797)이나 기사의 세계를 무대로 한 낭만주의적 소설 『충실한 에카르트 또는 탄호이저Der getreue Eckart oder Tannhäuser』(1799)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만 Roman’이란 장편소설을 가리킵니다. 독일문학에서는 그 길이를 이용해서 회상이라든가 서한이라든가 극중극 등을 집어넣어 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별개의 장르로 간주됩니다. 원문에서는 〈Romane〉라고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로벨 씨의 이야기Die Geschichte des Herrn William Lovell』(1795-96) 주변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98쪽에 로벨(Lovell)이라는 이름이 나오네요. 이 소설에서는 자신이 사랑한 여성이 월터 로벨이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외아들인 윌리엄을 출산할 때 사망해버린 것을 원망하는 워털루라는 노인이 이들 부모자식에 대해 복수하는 음모 이야기로서 구성되어 있고, 여러 등장인물이 그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며, 이들 부자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것을 워털루 자신이 이야기한다는 구성입니다. 98쪽에 로벨이 안드레아(Andrea)의 아이러니의 꼭두각시(Werkzeug)라는 얘기가 나옵니다만. 안드레아는 워털루가 이탈리아에서 쓴 가명입니다. 워털루=안드레아는 로벨을 우롱합니다만, 자기 자신도 ‘아이러니’에 의해 우롱당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밀결사’적인 문학이 테마로 자리 잡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독일문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만, 우리가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무의식의 영역에 도사리고 있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강해진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18세기 말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있고, 계몽적 이성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 듯 보였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성의 이름 아래서의 진보의 마이너스 작용 ―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 당시의 테러라든가, 공동체의 파괴라든가 ― 도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역시 이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인간을 광기로 몰아가는 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식도 싹텄습니다. 계몽의 반동입니다. 그 반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호프만의 소설에서, 당시 유행했던 자기최면(磁氣催眠, mesmerism)을 주제로 한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의 알기 쉬운 상징으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결사’의 음모 같은 이미지가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낭만파는 ‘아이러니’라는 형태로, 무의식의 차원에서 떠오르는 상상력을 포지티브하게 평가했던 것입니다만, 그것과 정반대로, 우리의 자아의식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들 수도 있는 무의식에 대한 불안도 있고, 그것이 ‘비밀결사’의 암약을 둘러싼 표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서도 나타납니다. 슈미트는 무의식적인 것을 원동력으로서 역사가 전개되는 모양을 탐구하는 ‘역사철학’의 동향에도 주의를 돌리고 있습니다. 99쪽에 몇 명인가 대표적인 사상가가 거론됩니다. 셸링은 개인의 의식된 의지를 초월하는 역사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루덴(Heinrich Luden, 1778-1847)은 인간, 민족, 세대 등을 매개로 하여 “삶의 정신 Geist des Lebens”이 자기를 현현한다는 견해를 보여줬습니다. 루덴은 예나대학의 교수를 역임한 역사학자로, 역사연구를 통해 독일의 국민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정치체제로서는 인민주권을 이상으로 했습니다. 헤겔은 개인들을 우롱하는 ‘이성의 간지 List der Vernunft’를 시사했습니다. 맑스는 생산관계에 의해 역사가 움직인다는 유물사관을 정식화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를 이 세계의 본질로 간주하고, 역사상의 희비극은 그 의지에 의해 일어난다고 봤던 셈입니다. 


100쪽에서는 “무의식의 과정 unbewußte psychische Vorgänge”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하는 시도로서, ‘성욕’에 주목하는 프로이트의 이론, ‘권력에의 의지’에 주목하는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0) ― 독일어 이름(Alfred Alder)이니까 ‘알프레트 아들러’라고 표기하는 편이 좋겠죠 ― 의 이론 등이 언급되어 있네요. 아들러는 정신분석의 초기에 프로이트와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만, 나중에 ‘개인심리학’이라는 다른 그룹을 만든 인물로, 니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기관열등성에 기초한 열등감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우월성 추구의 메커니즘을 이론화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맑스주의나 정신분석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매혹되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나 쇼펜하우어로 통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첫 번째 부분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정치적 낭만주의』




슈미트와 수사학 


1강에서는 도입으로서 칼 슈미트가 어떤 사상가이고 어떤 식으로 평가받았는가라는 얘기와, 『정치적 낭만주의』의 전반부, 즉 낭만주의를 소개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 텍스트는 낭만주의론이기 때문에 법학자나 정치철학자보다 문학연구자의 주목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제 자신도 석사 시절에 낭만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슈미트와 문학의 관계에 관해 조금만 보충하겠습니다. 슈미트는 헌법학자이며, 법철학적·법제사적으로 법이나 정치의 본질을 독특한(unique) 형태로 논한 인물입니다. 그의 문체는 우리가 법학논문이라고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잘 모르는 추상적인 말을 늘어놓은,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느낌이 아닙니다. 상식을 뒤흔드는, 이상한 수사학이 효과를 발휘하는 문체를 구사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극단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도 그렇지만, 법학의 틀 안에 들지 않는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슈미트는 젊은 시절 법학자로서 배우면서도, 문예평론과 풍자문 같은 것을 썼습니다. 표현주의 계열의 시인인 도이블러(Theodor Däubler, 1876-1934)의 시집 『북극광(Nordlicht)』(1910)에 관해 자세하게 논평한 「테오도르 도이블러의 『북극광』에 관하여(Theodor Däublers ‘Nordlicht’: Drei Studien über die Elemente, den Geist und die Aktualität des Werkes)」(1916)나, 동시대 지식인의 생태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브리분켄(Die Buribunken)』(1917-18)이 알려져 있습니다. 전후에도 햄릿론인 『햄릿 혹은 헤쿠바(Hamlet oder Hekuba. Der Einbruch der Zeit in das Spiel)』(1956) 등을 썼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문예비평과 정치철학의 중간적 저작으로, 초기 낭만파의 비평이론에 관해 꽤 깊이 파고들어 논평하고 있기에 슈미트의 문학가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납니다만, 다음 번 강의 이후에 읽는 『정치신학』이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에서도 수사학이 상당히 효력을 발휘하는 문장으로 쓰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자신이 말하려 하는 책의 본질을 직관에 호소하며, 유무를 말하게 하지 않고 납득하게 만드는 강렬한 말로 표현하며, 이를 개념적으로 엄밀화해 가는 것이 훌륭합니다. 수사와 논리의 조합이 절묘하다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의 논문 대부분이 법학 자체라기보다는 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또는 법의 근저에 있는 신화적·신학적 차원을 문제 삼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논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사는 최대한 쓰지 않고, ‘법규범’ 상호의 논리적인 관계만으로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하려는 법실증주의의 입장인 한스 켈젠과는 대조적인 느낌이 듭니다. 두 사람은 쾰른 대학에서 한때 동료였기도 했고, 바이마르 시기 독일 법철학의 양대 거두로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켈젠의 ‘순수법학’은 도덕이나 정치, 종교, 예술 등에서 분리된 순수한 ‘법’의 논리를 추구합니다. 다만 켈젠도 법학 이외의 영역, 예를 들면, 신화나 종교 등에 대해 글도 썼으며, 그런 방면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슈미트 이상으로 문학적 수사를 구사하고 있으며,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トンデル感じさえします. 그것을 법학의 틀 속에 들여오지 않는 것이 켈젠입니다. 



‘예외상태’ 〈Ausnahmezustand〉


『정치신학』의 서두에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자극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서두에 갖고 오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오늘날의 일본에서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감이 오지 않지만, [슈미트가] 이 문장을 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예외상태’의 원어는 〈Ausnahmezustand〉로, 헌법이나 정치체제와 관련된 맥락에서는 ‘비상사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통상적인 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계엄령 등에 의해 치안유지를 꾀하려 하는 그 ‘비상사태’입니다.


제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에서는 제정(帝政)이 붕괴하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간주된 바이마르 공화제가 발족했습니다만,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짊어졌고, 극우와 극좌에 의한 체제 전복 시도가 번번이 있었으며, 많은 정당이 난립했고 정권이 자주 교체됐습니다. 국가가 여전히 매우 불안정했으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줄곧 ‘예외상황’이었습니다. 혹은 ‘예외상태’와 ‘보통상태’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에는 헌법=국가체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즉 ‘비상사태’에 처했을 때 헌법의 일부 규정을 중지하고, 특별한 명령을 냄으로써 혼란을 수습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주어졌습니다. 슈미트는 대통령이 대권을 발동할 수 있는 ‘비상사태’를 둘러싼 현실적인(actual) 문제를 국가의 존립이 걸린 ‘예외상태’, 다시 말하면 ‘법’의 ‘예외상태’, ‘인간존재’에게 있어서의 예외상태처럼 더 추상적·철학적인 차원의 문제로 파고들어 가는 형태로 논의를 전개한 것인데요, 그것을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셈입니다. 단순히 대통령이 비상사태 대권으로 혼란을 수습한다는 얘기에서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죠.


현실적인(actual) 헌법 해석의 문제를 논하면서 어느 샌가 법률적 개념의 근저에 있는 신학 혹은 신화적인 심층으로 논의 수준을 깊이 있게 해 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독자를 끌고 갔던 《깊은 차원》에 비춰서 당초의 문제를 재고하라고 촉구합니다. 법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나 문학가의 방식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  


그러면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특징을 슈미트 자신의 관점에서 매우 정확하고(pinpoint) 아이러니하게 묘사한 다음, 이것과 그가 인정하는 본래의 ‘보수주의’, 특히 가톨릭 보수주의와의 차이를 밝히고, 상대적으로 후자를 높이 평가하려는 노림수를 지닌 저작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의 대표로 드 메스트르와 보날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혁명 시대의 정치사상가로, 가톨릭의 교의와 결부된 국가관·민족관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도 신학자도 아니고, 중세의 신학을 그대로 부활시키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반드시 가톨릭 교리에서 나오는 얘기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가톨릭이 길러낸 계층구조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을 이론화한 인물들로, 슈미트는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드 메스트르는 일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 근대의 정치사상사에서는 꽤 중요 인물로 취급되고 있으며, 보수주의 계열의 사상사에서는 대개 이름이 나옵니다. 「두 개의 자유」론으로 유명한 이사야 벌린(1909-97)도 드 메스트르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도노소 코르테스



슈미트가 자주 이름을 들먹이는 가톨릭 보수주의의 사상가로는 다른 한 명, 다음 번 강의 이후에도 나오는, 19세기의 스페인 정치이론가이자 외교관인 도노소 코르테스(Juan Donoso Cortes, 1809-93)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2월 혁명 시기의 스페인에서 반혁명의 사상을 전개한 인물입니다. 슈미트가 이 세 명에게서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코가 케이타 씨(古賀敬太, 1952~)가 저서 『칼 슈미트와 가톨리시즘 : 정치적 종말론의 비극(カール・シュミットとカトリシズム──政治的終末論の悲劇)』(1999)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서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나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버크는 전통을 비합리적인 것이라며 파괴하고 영(zero)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영국국교회와 국가의 결부가 영국의 ‘국가=헌법체제constitution’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다른 개신교와 달리, 영국국교회는 신앙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가톨릭에서 이탈한 것이라서, 교리와 의례에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게다가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기에 국가와의 융합도가 가톨릭보다 높습니다.


낭만주의자 중에는 과거에 대한 동경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복고주의적 정치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그들은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무한한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민족’이나 ‘역사’를 말했을 뿐이며, 가톨릭 보수주의자처럼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를 튼실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자는 자신들이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 한정성 위에 자신들의 삶이 성립된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안정된 ‘질서’ 지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그런 ‘한정’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미화한 ‘민족’과 ‘역사’의 《이미지》와 무한하게 계속 놀려고 합니다. 그 《이미지》는 ‘실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기에, 계속 변용되며 안정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불성실한 불안정성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낭만파의 사고 


여기서 슈미트가 집요하리만치 계속 비난하고 있는 낭만파의 사고방식에 관해 조금만 긍정적인(positive) 관점에서 소개하겠습니다.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계열의 독일사상에서 낭만파를 재평가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의 ‘비평’ 개념을 ‘무한한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파악한 벤야민의 논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발터 벤야민,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3 ; Walter Benjamin, Der Begriff der Kunstkritik in der Deutschen Romantik, 1920]입니다. 벤야민이 이를 박사논문으로 쓴 것은 『정치적 낭만주의』가 간행된 것과 같은 해인 1919년입니다. 제 석사논문을 책으로 낸 『근대의 갈등(モデルネの葛藤)』에서도 벤야민의 이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은 합리적인 주체로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상정되는 [데카르트-칸트-피히테]적인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데카르트(1596-1650)는 방법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내’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반면, 슈레겔 등은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합니다.


“생각하고 있는 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다”에서 “내가 존재한다”를 도출시킨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낭만파에 강한 영향을 미친 피히테는 이것을 “나의 존재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나 자신에 의해 단적으로 정립(setzen)되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판단의 최종 근거는 나 자신이며, 이것 이상으로 소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낭만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관해 계속 생각하려 합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나’는…? 이렇게 계속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고 무한히 계속됩니다.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한다”는 반성의 구조가 무한하게 반복되는 셈입니다. 이 연쇄가 어디까지나 계속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의 진정한 근거가 결국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존재’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라는 무한한 연쇄의 단축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 - 칸트 - 피히테]적 자아

합리적인 입체로서의 실재한다고 상정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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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

방법론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를 전제로 하여 ‘나’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사고했다.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고 있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사고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


더구나 나 자신 속에서만 자기반성이 무한하게 연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의 ‘바깥’에까지 반성의 연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에 관해 ‘언어’에 의해 생각할 때, 언어를 통해서, 외부에서 다양한 관념이 《나》의 안으로 유입됩니다. 다른 《나》들이 사고한 것, 시적으로 창작·상상한 것이 언어를 매개로 ‘나’ 속에 수시로 들어오고, ‘나’라는 장 속에서 오토포이에시스(자기산출)를 계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종횡으로 연결된 반성의 연쇄를 통해, “우리의 세계”가 ― 항상 생성변화하면서 ― 구성됩니다. 그리고 ‘세계’ 속에 《있는(有る)》 다양한 《사물[物]》은 반성 운동 속에서의 ‘나’의 관점의 변화에 의해 다양하고 상이한 양상을 띱니다. 예술적 오브제가 보는 각도나 상황에 따라, 보는 주체의 관심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주듯이, 예술가는 그런 모든 것을 끌어넣으면서 오토포이에시스를 계속하는 ‘초월론적 포에지(Transzendentalpoesie)’의 운동에, 눈에 띄는 형태로 공헌한 인물입니다만, 우리들 개개인도 얼마간의 형태로 그것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비평Kritik’이란 당사자,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저자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 아래에서 진행되는 그런 반성의 연쇄를 여실히 드러내고, 다시금 창작으로 나설 자극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발상은 포스트 문제계의 현대사상에서 에크리튀르(=쓰인 것 + 쓰는 행위), 혹은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를 둘러싼 문제로서 논해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텍스트’ ― 어딘가에 적힌 문장뿐 아니라 예술작품, 건물, 상징적 기호 등, 의미의 체계를 이루는 것 일반이 포함됩니다 ― 를 매개로, 불특정 다수의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각종 텍스트화된 담론의 다발로서 《주체》로서의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이미 텍스트화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대상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대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는 사람들이 쓰는 행위(에크리튀르)에 의해 점점 증식되고, 또 그것에 뒤따라 새로운 의미의 연관을 산출하기 때문에, 텍스트 속에서 일어나는[벌어지는]  우리의 《주체성》도 계속 변용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에크리튀르의 무한한 놀이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체》를 텍스트의 연쇄=에크리튀르의 작용으로 보는 발상은 독일 낭만파와 포스트모던 사상에 공통적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정면》비판 


『정치적 낭만주의』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슈미트는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이런 발상을 하고 있음을 어떤 의미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다음에 그것을 ‘정치’에 응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러니’의 문제입니다. 아이러니는 ‘나’ 자신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재파악하고, ‘나’ 자신이나 주위의 타자, 여러 대상들에 관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을 발견하고, 《주체》와 《객체》 둘 다를 변용시키는 행위입니다. 아이러니는 모든 개념을 메타적 관점에서 상대화합니다. ‘민족’과 ‘역사’조차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A씨가 “민족의 본질은 ○○○이다”라고 파악했다고 합시다. 반면 B씨가 “A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A씨가 ▽▽▽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에서 입장이 다른 것으로 바뀌면 민족에 관해, 예를 들어 □□□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A씨와 B씨가 동일 인물인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C씨가 “B씨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라는 식으로 계속하려고 하면, ‘민족’의 《본질》은 무한한 반성의 연쇄 속에서 점점 변모합니다.


안정된 질서를 찾아내고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 보면, 이런 느낌으로 메타 사고를 계속하고, ‘실재’에 다다르지 않는 사고는 쓸모없으며 불성실합니다. 낭만파 입장에서 보면, 성실하게, 하나의 관점을 고집한 나머지, 사물의 다른 측면에 눈을 닫아버리는 《성실한 사상가》들보다는 반성=비평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점점 아이러니컬하게 변화시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불성실한》 자기네가 결과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는 성실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면, 곧바로 《성실한 사람들》은 더욱 더 화를 내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얘기네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비판이 진보적 합리주의자, 보수주의자, 맑스주의자 등에게서 낭만파에 대해 던져졌습니다. 이런 뜻에서 ‘성실/불성실’ 얘기만 나오면, 우와 좌의 공동투쟁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은 구도인지도 모릅니다. 슈미트는 그런 낭만주의에 대한 《성실한》 비판을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철저히 행하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아담 뮐러의 ‘정치적 낭만주의’도, 슐레겔의 아이러니의 응용편일 뿐이라고 봅니다. 일반적 이미지로서는, 뮐러는 메테르니히 아래서 정치적으로 활약하고, 국가유기체설을 내놓고, 애덤 스미스적인 자유주의 경제를 공동체적·전통적 관계성에 의해 보정하는 독자적인 국민경제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비평가·문헌학자일 뿐인 슐레겔과는 다르다고 생각되기 십상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할 겁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게, ‘정치적 낭만주의’를 가톨릭 보수주의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슈미트 자신의 사상적 결단이 겹쳐져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슈미트가 이렇게나 낭만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슈미트 자신 속에 낭만주의적인 체질, 사물을 메타적 관점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현실로부터 추상화된 관념에서부터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아이러니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슈미트 자신 속에 있는 낭만주의적인 부분을 떼어내, 실재하는 질서를 지향하는 보수주의를 철저히 하기 위한 선언문으로 『정치적 낭만주의』를 쓴 것은 아닐까요? 



포스트모던 보수주의 


최근에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만, 90년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포스트모던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사상 경향이 조금이나마 주목을 받았습니다. 본인이 그렇다고 인정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만, 프랑스의 파시즘 문학 연구에서 문예비평으로 들어간 후쿠다 가즈야 씨(福田和也, 1960~)가 그 대표로 여겼습니다. 포스트모던 보수의 사상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굳게 믿을 수 있는 게 없지만, 일단 사회를 통합하고 안정시키도록 기능하는 상징이 있는 쪽이 편리하다. 그 ‘상징’의 진정한 유래라든가 배후에 있는 전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천황제나 신도를 그다지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만, 옛 것이 상징으로서 기능하기 쉬우니까 옛 것, 혹은 옛날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용해서 하면 좋다. 자신은 별로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지만, 집착하고 있는 척 하는 편이 진심으로 집착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과 말을 통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뭔가에 헌신하는 것도, 아무것에도 헌신하지 않는 것도, 모두 결국에는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같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헌신하는 척하고, 임시의 ‘상징’ 아래서 안정해도 좋지 않은가…. 이런 느낌의 사고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칸트학파의 철학자 루돌프 파이힝거(Rudolf Vaihinger, 1852-1933)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인 듯이 Als-Ob”의 철학입니다. 


물론 그런 비뚤어진, 무늬(pose)만 보수주의와 진정한 보수주의를 정말로 구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드 메스트르와 보날은 프랑스혁명에 의해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을 일단 경험하고, 그 과정을 견디면서 실재하는 것으로서 ‘민족’과 ‘역사’에 의거하려 든 것인데요, 이것들이 그들이 바라는 바를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때까지 가톨릭의 정통파 신학에는 없었던 개념을 가톨릭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니까, 꽤 수상쩍습니다. 그들도 가톨릭교회의 이미지를 자기네 사상에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접한 보수의 대표적인 전형으로서의 정치적 낭만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가톨릭 보수주의를 구출해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좌파 혹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과 ‘역사’의 초월적 실재성을 실체적으로 믿는 것도, 놀이에 이용하는 것도, 근대화에 저항하려는 반동적 사고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니냐고 보이지만, 슈미트는 정말로 질서를 회복하려면 불순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기에 설령 ‘적’의 입장에 있을 법한 맑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정치’의 본질 ― 다음 번 강의와 그 다음 번 강의에서 읽는 『정치신학』에서는 그가 ‘정치’와 ‘신학’의 구조적 유사성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면, 즉 ‘정치’를 지배하는 신학적 논리야말로 자신들이 분쇄해야 할 최종 표적(target)이라고 짐작했다면, 그것은 제대로 평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프루동(1809-65), 바쿠닌(1814-76), 소렐을 뜻밖일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등장을 사상사적으로 중시합니다.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질의 응답 부분













질의응답 73




Q : ‘구체적 질서’란 어떤 이미지인가요? 


A : ‘구체적 질서’라는 것치고는 그다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전체 인류라든가 전체 세계에 똑같이 통용되는, 보편적 질서가 아니라, 그 민족이라든가 지역에 고유한 ‘질서’로, 법적인 제도들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종종 ‘질서’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이것은 매우 추상적인 의미밖에는 갖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거기에 대항해 ‘구체성’을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켈젠(1881-1973)이라면, 수학에서 최초로 공리가 설정·규정되고, 이로부터의 연역에서, 체계가 전개되는 것과 똑같이, 처음에 설정된 ‘근본규범 Grundnorm’으로부터 법질서가 논리적·단계적으로 도출된다는 식으로 상정합니다만, 슈미트는 그런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켈젠은 근본규범의 내용은 묻지 않는 셈인데, 슈미트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정치적 공동체를 만드는 ‘구체적 질서’에 맞지 않는 것은, ‘근본규범’이 될 수 없으며, 수학처럼 추상적 논리만으로 법이 체계화되고 안정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슈미트 연구자로부터 ‘구체적 질서’론은 경관법(景観法)의 문제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이나 강 등의 자연 경관에 어울린 시가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과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파괴하는 건물을 거기에 만드는 것은, 설령 민법상의 권리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허용되는가를 생각할 때, ‘구체적 질서’론이 살아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Q : 켈젠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모두가 사회계약적으로 합의해서 영(0)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군요. 


A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합의에 의해, 어떤 질서에서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논의의 대전제입니다. 


 아까 얘기한 낭만파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을 다시 뒤집은 것이, 슈미트 자신의 ‘질서’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낭만파는 ‘민족’과 ‘역사’를 버추얼화하고, 자신들의 시작(詩作)의 도구로서 자의적으로 이용합니다. 그에 반해 그 자신은 버크, 드 메스트르, 보날에 의거해, ‘실재하는 민족’, ‘실재의 역사’에 입각해 사고하려고 합니다. 그런 발상이 ‘구체적 질서’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일반적으로 ‘결단주의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단주의’라고 말하면, 영(0)에서 어떤 것에서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결단’한다는 듯이 다뤄지기에, 켈젠의 ‘근본규범’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말로 무(無) 속에서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질서’를 지향하는 결단인 것 같습니다. 



Q : 그런 흐름에서 듣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구체적 질서론과 결단주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상반되는 듯합니다. 구체적 질서론은 주체가 선택한다는 이미지가 아니죠. 


A : 슈미트 속에서도 ‘결단’과 ‘질서’의 관계는 꽤 변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만, 아마도 구체적 질서는 ‘있다’지만, 확실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있었다’지만, 무너져버렸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것을 재발견하고, “이것이 질서다!”라고 ‘결단’하고 ‘질서’를 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이데거와 같은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존재 자체로부터의 요청에 의해, 본래적 존재방식으로 [나아가려고] “각오하게 만드는 entschlossen” 상태에 있지만, 보통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기투 entwerfen’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입니다. 슈미트에게도 그와 같은, 스스로가 본래 속해 있는 ‘질서’를,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발상이 있으며, 그것을 몇 가지 상이한 수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하고 있기에, 신비적인 분위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슈미트가 좌파계열의 ‘결단주의’의 화신이라고 말해야 할 조르주 소렐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소렐은 기성의 부패한 질서를 파괴하는, ‘신화’에 이끌려진 ‘폭력’을 찬양한 것인데요, 슈미트는 신학적 차원으로까지 파고든 ‘결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렐처럼 좌파의 혁명론도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 메스트르, 보날은 가톨릭적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결단’한 반면, 그것을 일단 파괴하고 새로운 신화적 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결단’하고자 했습니다.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적이지만 ‘앗, 들켜버렸네’라는 것입니다. 



Q : ‘구체적 질서’도 낭만주의의 세계관처럼 있지도 않은 이상이라는 건가요? 


A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슈미트 자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죠. 그는 가톨릭적 질서에 상당하는 것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인식했으며, 스스로가 의거하는 ‘질서’를, 적어도 가톨릭 → 독일민족 → 유럽공법공동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말로는, 구체적 질서 따위는 더 이상 없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억지를 부리는 사유의 경로를 밟았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텍스트가 재미있는 것은, 슈미트의 낭만주의에 대한 거센 비판을 보면, 같은 비판이 버크, 드 메스트르, 그리고 슈미트 자신에게도 되돌아오지 않느냐라는 의문이 솟구치는 대목입니다. 슈미트는 열심히, 보수주의자들의 ‘민족’이나 ‘역사’에는 실재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가톨릭 신자도, 낭만주의자도 아닌, 제3자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의 말도 수상쩍다고 생각되죠. 자신들도 한 패거리 아닌가라는 불안이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헐뜯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슈미트의 ‘결단’에도, 더 이상 의거해야 할 것이 정말로는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Q : 하이데거와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데거도 대상이, 신에서 민족 같은 것으로 옮겨간 것 아니냐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질서란, 하이데거의 ‘민족’과 가깝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지역적 한정성 같은 것인가요?


A : 30년대 중반 이후의 하이데거는 민족의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조국 Vaterland’에 매달리게 됩니다. 수립된 ‘조국’에 의해, 구체적으로는, 시인에 의해 발견된 본래의 ‘언어’에 의해, 사람들의 존재와의 관계맺음 방식이 규정되게 됩니다. 그의 발상은 확실히 ‘구체적 질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하이데거는 철학자이기에, 그가 의거한 기반으로서의 ‘조국’을, 횔덜린(1770-1834)의 이 또한 추상적인 시에 기대어 꽤 추상적으로밖에는 얘기하지 않았고, 현실의 독일과는 다른 것이라는 변명이 되지만, 법학자인 슈미트는 현실에 존재하는 법제도에 입각해 논의를 전개하기에, 그 나름의 구체성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 앞서 말씀드렸듯이, 슈미트의 ‘질서’의 기본단위는 시기에 따라 변동합니다. 



Q : 슈미트는 바이마르 시기에, 구체적인 법과 정치적으로 관련된 작업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은 지역적으로 문화의 변주(variation)가 크죠. 특히 북부와 남부에서. 이것을 묶은 총결산의 시기가 바이마르 시기라고 한다면, 슈미트도 너무 고생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 ‘구체적 질서’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A : 독일은 통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독일제국이 되어서도 복잡한 연방제를 채택했죠. 가톨릭은 전체 인구의 1/3 정도로, 2/3은 개신교 계열입니다. 가톨릭의 대부분은 남부에 살고 있습니다만, 슈미트 자신은 독일 북서쪽의 베스트팔렌 주의 외진 가톨릭 지역[플레텐베르크] 출신입니다. 가톨릭 계열의 정치신학자를 전체 독일적인 질서의 기반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산출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았으나, 처음부터 혼란의 연속으로, 불안정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로, 의회 내의 군소정당 난립과, 극좌 및 극우에 의한 공화국 전복의 시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대립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힌덴부르크(Paul Ludwig von Beneckendorf und von Hindenburg, 1847-1934) 아래에서 프란츠 폰 파펜(Franz von Papen, 1879-1969)이 총리를 지내던 1932년 7월, 중앙정부와 사민당 계열의 프로이센 주정부가 대립하고, 중앙정부가 군사력을 배경으로 삼아 프로이센 정부를 해체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일찍부터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대통령’의 (한정적인 의미에서의) ‘독재’를 기대하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 헌법상 그런 역할이 부여됐던 ‘대통령’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에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치도 지지했습니다. 전후에는 유럽 전체에 있어서의 ‘대지의 노모스(법)’을 상정하고, 그것을 지키려 했습니다.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에 버금가는, 종교와 결탁된 법·정치적 질서가 있으면 수월했겠지만, 그것이 없었기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1강 끝)

Posted by 상겔스 상겔스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다섯 번째 부분









<네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Volk〉의 버추얼(virtual)성, 유동성 


슈미트는 뮐러의 ‘민족’관은 그런 슐레겔의 아이러니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83쪽에서, 1819년에 쓴 뮐러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사계절의 변화와 신의 축복을 매일 받고 있는 단순한 마을사람이나, 공동체 생활의 수수한 일원인 차분한 장인이야말로 우리의 신분과 자유를 간직하며, 유럽을 위대하게 만든 지조를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귀족을 논하고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 정치적 이유로 그는 민중(Volk*)라는 말을 피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10년 전에 그가 『국가술 원리』에서 민중 대신에 국가라 부르고, 이를 모든 가능성의 근원이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낭만주의적 기능은 명백하다. [『원리』에서는] 민중의 의지는 그저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바로 진리에 있어서 법이며, 진리의 목소리라고 한다. … 그러나 새로운 실재로서의 ‘민족(Volk*)’과 낭만주의적 대상인 ‘민중(Volk*)’을 혼동하고, 낭만주의자를 새로운 민족 혹은 국민감정의 발견자로 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실재를 너무도 빨리 낭만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예의 뮐러의 말에서 민중(Volk*)이라는 단어가 기피되고 있는 것은 특징적이나, 여기에 이미 본질적인 차이가 포함되어 있다. 즉, 낭만주의적 대상[으로서의 민중]으로부터는 혁명적 신경이 끊겨있다. 그것은 그칠 줄 모르는 가능성의 원천이 된다는 사명을 지시하는 낭만주의적 주관을 섬기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그것은 사실상 계몽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것을 의무부여 한다. 왜냐하면 읽는 것과 쓰는 것, 또한 모든 근대적인 교양의 유혹은, 위대한 무의식이라는 것을 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 ‘사계절[의 변화]과 신의 축복을 매일 받고 있는 단순한 마을사람, 평화로운 장인, 공동체의 미미한 구성원, 바로 이들이 우리의 신분과 자유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럽을 위대하게 만든 감정을 보존하고 있다.’ 여기서 귀족은 심지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는 인민people이라는 말을 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낭만주의적 기능은 일찍이 10년 전에 그가 『국가술의 기초(Elemente der Staatskunst)』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명백하다. 이 책에서 그는 불가피하게도 인민 대신 국가라고 칭하고, 국가를 모든 가능성들의 궁극적 기반으로 격상시켰다. 인민의 의지는 단순히 법률적으로가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 법이며 진리의 목소리이다. … 그러나 ‘인민’이라는 새로운 실재를 낭만적 대상으로서의 ‘인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낭만주의자들은 새로운 인민적 혹은 국민적 감정의 발견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이 실재를 낭만화하려고 재빨리 시도했기 때문이다. 뮐러의 언급에서 인민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게도 기피되고 있다는 점에 본질적인 차이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즉, 혁명적 신경은 낭만적 대상으로부터 끊어져 있다. 이 대상은 지칠 줄 모르는 가능성들의 원천이라는 임무를 이 대상에 배정하는 낭만적 주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천적으로, 이것은 계몽주의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무를 갖는다. 읽기와 쓰기, 그리고 [근대적] 교양의 모든 사기술은 무의식의 방대한 영역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p.68).]



여기서 ‘국가’로 번역된 것은 〈Staat〉입니다. 1809년의 『국가술 원리 Die Elemente der Staatskunst』에서 본래 〈Volk〉라고 말해야 할 곳에서 〈Staat〉라는 말을 사용하고 그 〈Staat≒Volk〉를 아까의 의미에서의 ‘가능성’의 ‘근원 Urgrund’이라고 다뤘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것 같네요. 


〈Volk〉를 ‘가능성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간단하게 말하면, 〈Volk〉의 실제적 존재방식과 관계없이, 낭만주의적 이상을 내포한 집합체로 보는 것입니다. 〈Volk〉를 매체로 삼아 ≪커다란 연관≫이 무한하게 변용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합니다. 맨 처음의 인용 부분은 제법, 근대문명에 오염되지 않고, 농촌 공동체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는, 순수하고 소박한 〈Volk〉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그런 소박한 〈Volk〉가 내는 목소리 속에는 근대에 감염된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 Wahrheit’가 있다는 것입니다. 슐레겔도 이런 소박하고, 진리를 체감적으로 알고 있는 〈Volk〉를, 낭만주의적인 예술의 진정한 담지자라고 묘사합니다. 이런 식의 얘기는 현대일본의 문화보수적인 논의에서도 자주 나오죠. 


당연히 “그런 소박한 민중이 어디에 있어? 실제의 민중은 교활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매일의 생활에 급급하잖아!”라고 제동을 거는 사람이 나올 만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민중’은 어떤 특정한 시대, 지역에 속하는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무한하게 생성하는 ‘민중’이라는 이념이야”라고 슐레겔 식으로 응수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슈미트는, 뮐러의 〈Volk〉가 그런 버추얼(virtual)성, 유동성을 함의하고 있다고 보는 셈입니다. 


“새로운 실재로서의 ‘민족 Volk’”과 “낭만주의적인 대상인 ‘민중 Volk’”의 구별이라는 것도 좀 이해하기 힘들지만, 전자의 〈Volk〉는 보날이나 드 메스트르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민족’, 종교에 의해 뒷받침되어 몇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재하고 일정한 국민성과 공공도덕을 갖춘 ‘민족’이고, 후자의 〈Volk〉는 앞서 말했던, 낭만주의적이고 버추얼화된 ‘민중’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네요. 낭만주의적인 ‘민중’은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일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정치적 혁명으로 이어지는 짜릿짜릿한 긴장감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당연히 전자를 지지하고 후자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낭만주의적, 예술적인 동경의 대상으로서 〈Volk〉와 대비시킴으로써 (슈미트의) 진정한 보수주의 계열의 “실재하는 것으로서의 〈Volk〉”관이 특징지어지는 셈이죠. 



국가 〈Staat ≒ Volk〉

‘가능성의 근원’으로서 본다

실재의 존재방식이 아니라, 낭만주의적인 이상을 내포한 집합체


“새로운 실재로서의 ‘민족 Volk’”

 보날이나 드 메스트르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민족’, 종교에 의해 뒷받침되어 몇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실재하고 일정한 민족성이나 공공도덕을 갖춘 ‘민족’


“낭만주의적 대상인 ‘민중 Volk’”

  낭만주의적으로 버추얼화된 ‘민중’, 문학적인 상상력의 원천일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정치적 혁명으로 이어지는 짜릿한 긴장감은 갖춰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