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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Rancière, “The Thinking of Dissensus: Politics and Aesthetics”, Reading Rancière, eds., Paul Bowman and Richard Stamp, Continuum, 2011, pp.1-17.

 

* 아래의 글은 <말과 활> 9호에 수록된 것으로, 각주 등 잡지에서 삭제되거나 축약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원래 <이미지의 운명> 후속 작업으로 예정됐던 것이다. http://multitude.co.kr/363 빨간 색은 위의 영어판 쪽수이다. 

주요 번역어에 대해 미리 알려둔다. dissensus(불어도 dissensus)disagreement(불어로는 mésentente)는 각각 불일치와 불화로 옮긴다.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는 옮긴이의 말을 참조. sensesensory, sensible, sensibility 등에 대해 : 하나의 글에서 sensesensation이 같이 쓰일 경우, 전자는 대체로 의미, 후자는 감각(작용)으로 옮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랑시에르가 사용하는 sense는 대체로 의미와 감각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가지면서도 의미를 포괄하는 감각이라는 뜻이 강하다. 따라서 sense를 일관되게 감각으로 옮긴다. 그리고 다소 편의적으로, sensory는 감각적, sensible는 감성적, sensibility는 감성능력(감수성) 등으로 옮긴다. sensory는 감관적, sensible는 감각적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distributionpartition : distributionpartage의 영어 번역어인데, partage는 공유와 분할이라는 뜻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distribution은 대체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는 나눔으로 일관되게 옮긴다. 반면 partition분할로만 옮긴다. 그리고 영어의 divisionseperation과 마찬가지로 분리로 옮긴다. (re)framing‘(다시) 틀을 짜다라는 의미에 준하여 다양하게 번역했다. (re)configure, (re)configuration()배열하다, ()배열형태, 배열을 다시 하다, 배열을 다시 짜다 등으로 옮겼다. place(s)는 일관성 때문에 자리로 옮겼지만, 때로는 장소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 있다. 읽을 때 참고하기 바란다

* 주요 번역어 중 incorporation은 '체내화'로 옮긴다(2017년 4월 14일 추가).

 


 

불일치를 사고하기 : 정치와 미학[주1]

자크 랑시에르

[303]

정치와 미학을 불일치라는 개념 아래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분명히 불일치는 정치와 미학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에 관한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불일치 개념은 정치와 미학 자체를 사유할 수 있는 이론적 무대를 설치하는 동시에, 정치의 대상과 미학의 대상들을 한데 묶는 관계의 종류도 설치한다.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 불일치란 감각과 감각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 , 동일자 안에서의 차이를, 대립자의 같음을 뜻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정치를 불일치의 한 형태라고 간주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불일치를 공동체의 어떤 본질에서도 연역해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이 이 본질을 의사소통적 언어와 같은 공통적 특성의 성취[발휘]에 입각해 긍정적[304]으로 연역하든(아리스토텔레스), 아니면 만인에 대해 만인이 설정하는 파괴적 본능에 대한 응답에 입각해 부정적으로 연역하든(홉스) 말이다. 공통적인 것이 분리[분할]됐기 때문에, 정치가 있다. 이제 이 분리[분할]는 수준의 차이가 아니다. 감각과 감각 사이의 대립은 감성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 사이의 대립이 아니다. 정치적 불일치는 기저에 깔린 사회적·경제적 과정을 현시하는 외양이나 형태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개념규정을 참조한다면, 계급전쟁은 정치의 현행적 실재(actual reality)인 것이지 그 감춰진 원인이 아니다.

[주1] 이 텍스트는 2003916-17일 런던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영국정치학회의 포스트구조주의 및 급진정치와 마르크스주의전문가 집단이 조직한 컨퍼런스인 불화에 충실하기 : 자크 랑시에르와 정치적인 것(Fidelity to the Disagreement: Jacques Rancière and the Political)에 발표된 글을 약간 수정하여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이 컨퍼런스를 조직한 Benjamin Arditi, Alan Finalyson, James Martin에게 감사드린다

첫 번째 점에서 시작하자. 나는 불화에서 정치적 동물이란 말하는 동물이라는 저 오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재검토했다. 어떤 비판가들은 이를 고전으로의 복귀라고 봤다. 그들에게 이것은 데리다의 탈구축이나 리오타르의 쟁론(differend)’을 무시하고 낡은 언어관과 낡은 주체 이론으로 회귀했음을 뜻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우리를 오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하는 동물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들이 정치적 삶에 대한 기질을 갖고 있다는 인간학적 정의로 회귀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는 말하고 토론하는 인간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관념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능력을 쾌락과 고통을 표현하는 목소리라는 단순히 동물적인 능력에 대립시켰다. 아무튼 이와 반대로 나는 이 공통의능력이 아주 처음부터 균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노예는 언어를 이해하고 있으나 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불일치가 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말하는 것이 말하는 것과 똑같지 않기 때문에, 한 감각이 뜻하는 바에 관한 합의조차도 없기 때문에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적 불일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놓고 대결하는 말하는 인간 사이의 토론이 아니다. 정치적 불일치는 말하는 자와 말하지 못하는 자에 관한 갈등이며, 고통의 목소리로서 들려야 하는 자와 정의에 관한 논증으로서 들려야 하는 자에 관한 갈등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계급전쟁이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대립된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가에 관한 갈등, 스스로를 사회적 이해관계를 경영[관리]할 수 있는 자로서 수립하는 자들과 그들의 생명을 재생산할 수 있을 뿐이라고 추정된 자들 사이의 투쟁인 것이다.

[305]나는 정치란 공동체를 향한 인간의 소질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철학자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식으로 연역해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공통의 감각적 성질이 이미 불일치의 단계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방법론적 언급을 하도록 이끈다. , 불화는 내 이론화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방법이기도 하다. 내게 어떤 저자나 어떤 개념을 제시한다는 것은 우선 불화를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는 것을, 차이의 조작자[연산자]를 검증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 이것은 나의 이론적 조작이 항상 어떤 문제의 배열형태(configuration)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고전으로 복귀한다고 의심하는 똑같은 비평가들은 내가 불화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전면개정판)]에서 정치와 치안을 구별한 것이 정치의 순수성에 대한 탐구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치와 치안의 구별을 조직화 대 자발성이라는 포퓰리즘적대립의 잔여물로 간주하고, 해체론자들은 이 구별을 동일성의 낡은 형이상학으로의 무비판적 복귀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나 해체론자들은 모두 내 논증이 갖고 있는 논쟁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 분석은 그런 순수성 관념에 도전하고 이것을 전복하는 것을 전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 내가 한 분석은 1980년대의 프랑스에서 우리를 거의 압도했던 이른바 정치적인 것의 복귀나 정치로의 복귀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당시 우리는 도처에서 다음과 같은 모토를 들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이제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에, 사회적 이해관계에, 사회적 갈등과 사회적 유토피아들에 종속되는 것으로부터 잘 빠져나왔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의 진정한 의미란 공적 무대에서의 행위이다, ‘함께 있음의 현시이다, 공동선에 대한 탐구이다 등등으로 보는 견해로 복귀했다. 이런 복귀의 철학적 기반은 주로 두 명의 철학자들, 즉 레오 스트라우스와 한나 아렌트에게서 나왔다. 이 두 사람은 모종의 방식으로 그리스 철학의 유산을 근대의 통치적 실천에 끌어들였다. 두 이론가들은 공적 행동과 공적 말하기의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사회적 필연성[필요]의 영역 사이의 대립을 강조했다. 이들의 논점은 강력하게 부활했다. 심지어 이들은 경제주의자생주의라는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대립을 진정한 혁명적 실천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런 결합은 프랑스의 1995년 파업 동안에 명백해졌다.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비난과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혼동에 대한 아렌트적 비난이 한데 합쳐졌고, [이런 결합은] 파업가담자들이 옹호했던 낡은 특권에 맞서 공동선과 공동체의 미래를 담당하는 정부의 정치적 용기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지지의 담론이 되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것의 순수성으로의 복귀는 사실상 정치적인 것을 국가 제도와 정부[통치]적 실천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복귀를 뜻한다는 게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내가 정치의 특정성[종별성]을 정의하려고 시도한 것은, 무엇보다 우선, 순수 정치로의 복귀라는 주류의 관념에 도전하려는 시도였다.

순수정치란 없다. 나는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이하 열 가지 테제)를 주로 특정한 정치적 영역과 정치적 삶의 방식이라는 아렌트적 관념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 열 가지 테제는 정치에 관한 그녀의 정의가 악순환을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이것은 그네들의 삶의 방식이 그네들을 정치로 이끌 운명에 처해 있던 자들의 삶의 방식을 정치와 동일시한다는 것을 뜻한다[옮긴이: 이 문장은 랑시에르가 곧바로 얘기하듯이 순환논법이다]. 그것은 아르케의 순환이며, ‘시작의 권력에 있어서, 권력을 행사할 소질이나 자격에 있어서 권력의 행사의 예상이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소질이나 목적지라는 관념에 놓여 있다. 정치적 삶과 비-정치적 삶 혹은 벌거벗은 생명사이의 대립이라는 관념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내가 치안이라고 부른 것의 전제가 바로 이런 나눔[분배]이다. , 집단과 개인에게 특정한 능력에 따라 할당된 자리와 기능들을 갖고서 집단적 신체로서의 정치공동체를 배열(configuration)하는 것이다. 권력은 지배할 자격이라고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들에게 속해 있다고 단언함으로써 이런 전제가 깨질 때, 거기에 정치가 있다. 이것은 권력의 행사를 위한 기반이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치를 위해 태어난 자들과 경제적·사회적 필연성의 벌거벗은생명을 위해 태어난 자들을 분리하는 경계선이 의문에 부쳐질 때, 거기에 정치가 있다.

이것은 정치적 삶이란 없으며 정치적 무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적 행동은 사회적’, ‘경제적혹은 가정적이라고 간주되었던 것이 정치적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정치적 행동은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데 있다. ‘가정적행위자들(가령 노동자나 여성)이 자신들의 다툼(quarrel)을 공통적인 것과 관련된 다툼으로 재배열할(reconfigure) 때마다, 즉 어떤 자리가 그것에 속하[307]는지 속하지 않는지에 관련된 다툼으로, 그리고 누가 공통적인 것에 관해 언표행위를 하고 시위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관련된 다툼으로 재배열할 때마다, 정치적 행동은 일어난다. 그러므로 분명해져야 하는 것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불화가 있을 때, 정치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에서 분리하거나 공적인 것을 가정적인 것에서 분리하는 경계선이 의문시될 때, 정치가 있다. 정치는 정치적인 것을 비-정치적인 것으로부터 재-분할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치는 일반적으로 자리를 벗어나서”, 정치적이라고 간주되지 않았을 터였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분석에서 몇 가지 귀결들을 끌어내보자. 첫째, 이것은 나의 정치관이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주2]. 확실히, 이것은 정치를 공통적인 것의 윤리적 관념 위에 정초하기를 거부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행동 일반의 가치나 원리를 선언하는 심급으로 간주된 윤리가 일련의 실천들로서의 정치를 규제해야 한다는 관념을 의문에 부친다. 이런 관념에 따르면, 정치를 윤리 속에 정초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재앙과 공포가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말하고 싶다. 조지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의 시대에는 윤리적 갈등이 정치적 갈등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훨씬 더 과격하게 일어났다. 그러므로 정치는 윤리적 갈등의 폭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적대(antagonism)의 특정한 실천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주2] 이 점에 관해서는 Thomson, 2003을 참조

하지만 나는 정치를 단순한 경합적 도식(agonistic schema)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이 도식에서는 내용이 뭔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적대에 관한 슈미트적 정식화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정치는 자신의 보편을, 자신의 고유한 척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평등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척도는 결코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wrong)의 상연·연출을 통해서만 적용된다. 하지만 모든 잘못이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건 아니다. 내가 제시한 테제에 맞서서, 피압제자들 사이에는 종교적 광신이나 민족적 동일성주의(ethnic identitarianism)와 불관용에 의해 형성된 반-민주적인 시위 형태들도 있다고 주장된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이것이 불일치에 관한 나의 개념규정이 갖고 있는 맹점이라고 지적했다(Laclau, 2005, p.246~). 하지만 내 견해에 따르면, 잘못이 정치적 행동의 토대를 상연·연출[주3]할 때, 잘못이 정치적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때의 정치적 행동이란 평등의 단순한 우연성이며, 이것은 분명히 [308]피의 순수성이나 종교의 권력 등등을 요구하는 포퓰리즘적(popular)’ 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형태의 시위에 대해서도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이름의 낙인을 찍으려는 널리 퍼진 경향을 거부한다.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은 구-마르크스주의자들과 젊은 자유주의자들이 복지[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과 인종적 혹은 종교적 폭동을 한 바구니 안에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꿀꿀이단지이다.

[주3] 이하 enactment는 상연·연출, enact는 상연·연출하다로 옮긴다. 이 영어 단어는 불어의 acte(r)에 해당된다. 따라서 법적 인정이나 법의 제정 등을 뜻한다. 그러나 랑시에르가 이 단어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는 특히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영역본에 자주 등장하는데, 대체로 상연, 공연이라는 뜻에 가깝다

인민은 두 개의 대립된 것들, 즉 데모스(demos) 혹은 에트노스(ethnos)에 대한 이름이다. 에트노스는 똑같은 기원을 갖고 똑같은 땅에서 태어나거나 똑같은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신체와 동일시된 인민이다. 다른 신체들에 대립된 신체로서의 인민이다. 데모스는 공동체의 부분들(parts)에 대한 보충(supplement)으로 이해된 인민이다. , 내가 셈해지지 않은 것의 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데모스는 여기나 저기에서 태어났다는 단순한 우연성의 기입이다. 이 기입은 지배하기 위한 그 어떤 자격부여와도 대립된다. 또 데모스는 그런 평등의 입증(verification) 과정을 통해, 불일치의 형태들의 구축을 통해 출현한다. 이제 분명한 것은, 차이가 단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데모스의 삶은 에트노스로부터의 그 점증적인 분화(differentiation)의 과정이다.

둘째, 이것은 내가 정치를 봉기라는 예외적이고 사라지는 순간들로 환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 원칙의 단순한 상연·연출은 (순수성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 순수성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는 많은 혼동된문제와 갈등 속에 존재하며, 정치는 기억, 역사 쪽으로 향해간다. 정치의 역사적 동학이라는 것이 있다. , 시간의 정상적과정을 깨뜨리는 사건들의 역사, 주체화의 기입과 형태들의 역사, 약속의 역사, 기억의 역사, 반복의 역사, 예견과 시대착오의 역사가 있다[주4]. 예외를 과정에 대립시키는 지점은 하나도 없다. 과거를 어떻게 개념규정할 것인가가 논란거리이다. 내가 그렇게 보듯이, 정치의 역사는 경제적·사회적 발전과 더불어 진행되는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다. 정치의 역사는 그 어떤 운명적인[이정표적인]’ 플롯이든, 이런 플롯들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주4] 열 가지의 테제에 관한 논의에서 내가 믹 딜런(Mick Dillon)에게 한 응답을 보라(Rancière 2003a).

셋째, 정치와 치안의 대립은 정치가 그 어떤 고유한대상도 갖고 있지 않으며, 정치의 모든 대상은 치안의 대상과 뒤섞인다는 진술에 딱 들어맞는[309]. 예전에 쓴 어떤 텍스트에서 나는 정치의 과정과 치안의 과정의 마주침(혼동’)의 장에 정치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Rancière 1995를 보라). 내가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황의 틀을 다시 짜는 정치적 개입의 가능성은 그런 식으로 이해된 정치적인 것의 일정한 설정으로부터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는 것에 맞서서, 민주적 과정이 기입되어 있는 모든 것들, 즉 헌법전들에, 국가의 제도들에, 여론 기구들에, 언표행위의 주류 형태들 등등에 기입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이 행하는 몫[부분]을 강조했다. 이것이 나를 몇몇 급진적인 정치사상가들과 명확하게 변별시켜주는 한 가지 점이다. 이들은 [정치를] 국가제도의 운용과 혼동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정치의 근본성을 따로 떼어내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를 우리네 서구 사회의 국가 형태와 삶의 방식으로 간주할 뿐인 알랭 바디우는 내가 그런 합의적 견해를 고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급진적인 정치적 행위의 리스크를 다수파의 민주적 법에 의해 제공된 초월론적 보증인의 법률주의적 논리에 대립시킨다[주5]. 하지만 나는 민주적 과정을 우리 국가들의 기능과 결코 동일시하지도, 혹은 다수파의 법에 의해 제공된 기회주의적인 보험’(지젝)과 동일시하지도 않았다. 나는 민주적 과정을 정치적 보충과 동일시했는데, 이 보충은 이런 기능을 아무나(anyone)의 권력과 대결시킨다. 국가의 기능을 와해시키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가의 기능을 정초하는 아무나의 권력과 말이다. 불평등한 질서는 그 평등주의적 전제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거꾸로 평등주의적 투쟁 자체는 종종 공통적인 것에 관한 치안의 서술을 무기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적 투쟁에서 성적 상호보완성(complementarity)이라는 의학적·도덕적·교육적 표준이 맡았던 역할을 생각해보자. 혹은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노동의 소유에 대한 참조가 했던 역할을 생각해보자. 평등은 자신의 고유한 어휘나 문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저 시학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주5] 알랭 바디우는 메타정치(Metapolitics, 2005)에서 나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민주주의적 덫이라는 지젝의 비판은 정치에서 생명정치로 그리고 되돌아가기(From Politics to Biopolitics . . . and Back)(2004)라는 글에서 가장 명료하게 이뤄졌다

정치는 치안의 바깥에 있는 자리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나에 대한 몇몇 반론가들과 견해를 같이 한다(Thomson 2003 참조). 치안의 바깥에는 [정치가 들어설] 그 어떤 자리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할당하는 자리들을 가지고 뭔가를 행하는 갈등적인 방식이 있다. 자리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재형성[310]하거나 강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내가 열 가지 테제에서 상기시켰듯이,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공간은 이런 자리 옮김(displacement)에 의해 열려지게 됐다. 처음에는 구역을 의미했던 데모스가 정치의 주체의 이름이 되었을 때 말이다.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세 개의 데모스들을 클레이스테네스가 하나로 합쳐서 아테네 부족들을 재형성했을 때, 그렇게 됐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조치이다. , 그것은 정치적 공간의 자율성을 구성했던 동시에 귀족계급에게서 지역 기반의 권력을 빼앗았다.

여러 논평가들이 강조했듯이, 이것은 내가 공간적 범주들이나 은유들을 사용한 것에 관해 더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주6]. 민주주의의 공간에 관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데모스의 경계획정은 물질적인 문제인 동시에 상징적인 문제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물질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의 (분리)접속의 새로운 형태이다. 민주주의의 설립이란 새로운 위상학의 발명을 의미한다. 토지소유자의 물질적 특권을 전통의 상징적 권력과 접속시켰던 귀족제적 공간에 맞서서, 분리접속된 자리들로 이루어진 공간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런 분리접속이 정치와 치안의 대립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쟁점은 나눔[분배]에 입각해 사유되어야 한다. 자리들의 나눔, 안에 있는 것이나 바깥에 있는 것의 경계선의 나눔, 중심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의 경계선의 나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것의 경계선의 나눔이 그것이다. 이것은 내가 감성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된다(Rancière 2004b를 보라). 이 말은 내게 위계의 상징화의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형태들이 지각적인 소여로서 구현되는 방식을, 사회적 목적지가 지각적 우주, 존재방식, 말하기와 보기의 명증성에 의해 예견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런 나눔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어떤 틀짜기이다.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자리에 있기를 원한 플라톤의 국가공간적폐쇄는 시간적인 분할 자체이다. , 장인은 애초부터 그들의 자리와는 다른 곳에 있을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자들로 형상화되었다. 나는 해방의 핵심이 사회적 종속을 떠받치는 시간의 분할 자체로부터 이탈하려는 시도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노동자의 해방에 관해 내가 쓴 책을 프롤레타리아의 밤이라고 불렀다. 노동자들은 낮 동안에는 노동을 하고 밤 동안에는 잠을 잔다는 명백한 분할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밤을 정복하는 것은 사회적 해방의 첫 단계였으며, 사물의 주어진 상태를 [311]재배열하기 위한 최초의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기초였다. 노동자들 자신이 공통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고 그런 공통의 세계의 대상이자 참여자를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생활을 재배열해야 했다. 모든 개인들에게 공통적인 것을 돌보도록 예정된 사람과 예정되지 못한 사람 사이의 분할을 예견했던 낮과 밤의 분할을 재배열해야 했다. 그것은 역사가들이 주장하듯이 재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경험의 문제였으며, 지각 가능한 것의 분할의 한 형태였다.

[주6] 2003년에 열린 골드스미스 컨퍼런스에서 Mustafa DikecMichael Shapiro의 기고문을 참조.

달리 말해서, 내가 공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내가 미학에 관심을 가진 것과 똑같다. 나는 이미 역사와 정치에 관한 내 작업과 미학에 관한 내 작업 사이에서 일어났던 이동, 몇몇 논평가들이 지각했던 이동이 하나의 장에서 다른 장으로의 이동이 아님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정치에 관해 작업한 것은 정치를 미학적 사태로서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이 말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벤야민이 예술의 정치화에 대립시켰던 정치의 미학화[심미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권력의 행사나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정치가 특정한 세계, 특정한 경험 형태의 배열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특정한 것들 속에서 몇 가지는 정치적 대상으로 보일 수 있고, 몇 가지 질문은 정치적 쟁점이나 논점으로 보일 수 있으며, 몇몇 행위자는 정치적 주체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정치를 특정한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갈등적 세계로 설정함으로써 정치의 이런 미학적본성을 재정의하려 노력했다. , 경쟁하는 이해관계나 가치의 세계가 아니라 경쟁하는 세계들의 세계로서 재정의하려 한 것이다.

만일 내가 [먼저] 했던 작업의 그런 부분이 정치의 미학을 다뤘다면, 내가 나중에 한 작업은 미학의 정치를 다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미학의 정치라는 말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 가능한 것의 정치적 나눔에 있어서 어떤 특정 영역(미학의 영역)의 배열형태가 지닌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한다. 내가 한 정치적작업에서 이미 나는, 정치적인 것의 실존과 미학적인 것의 실존이 어떻게 강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공적인 무대로부터 데모스의 배제와 연극적 형태의 배제가 엄격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자주 말해지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플라톤이 정치에 이[312]익이 되도록 예술을 배제했다는 뜻이 아니다. 플라톤은 정치 예술을 배제했다. 플라톤은 장인들이 그네들의 고유한작업장과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관념과 시인이나 배우들이 그네들의 고유한정체성과는 다른 정체성을 수행할(play) 수 있는 가능성, 이 둘 다를 배제했던 것이다.

또 나는 근대 민주주의와 근대 혁명이 어떻게 감성적인 것의 이 새로운 나눔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 새로운 나눔은 예술에 특정한 자리를, 미학적 감정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감정을 묘사한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에 미술관을 출현하게 만들었던 것과 단순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특정한 미학적 상태라는 실러의 관념에서 새로운 감각혁명이라는 횔덜린의 관념으로,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적인 생산자들의 혁명으로 나아가게 했던 단순한 현사실적 영향도 아니다. 근대 민주주의는 미학적인 것의 출현과 동시대적이다. 내가 미학적이라고 부른 것은, 다른 경험 영역들을 통치하는 지배의 형태들을 중지시키는 어떤 특정한 경험 영역을 가리킨다. , 그들의 감각경험의 구성 자체로부터 변별되는, 지배의 근거를 두 인류의 대립에 두는 형상과 질료, 이해와 감성(sensibility)의 위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경험 영역들의 이런 재-분할은 자리들과 몫들 일반의 물음을 재형상화하는(refiguring) 가능성들의 부분(part)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애매한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 인과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미학의 예외성 때문에 정치의 역설적 예외성을 복제했던 것이다.

정치의 예외성은 그 어떤 특정한 자리도 갖고 있지 않다. 정치는 사회적 쟁점, 치안 문제 등등을 고쳐 말하고 무대에 다시 올림으로써 치안의 공간에서 발생한다.’ 반대로 미학적 자율성은 특정한 자리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특정한 자리가 무엇인가에 관한 정의는 예술의 어떤 형태와 삶의 어떤 형태를 등치시키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학적 경험의 고독은 예술이나 정치가 더 이상 분리된 경험 영역들이지 않을 미래의 공동체의 약속과 처음부터 묶여 있었다. 이것은 미학이 처음부터 자신의 정치를, 내 용어로 말하면 메타정치를, 정치가 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치를 하는방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미학은 정치적 불일치의 실천과 국가권력의 변혁을 감각공동체의 메타정치적 기획과 대립시킨다. [메타정치로서의] 미학은 단순한 정치적혁명에 의해서는 항상 놓쳐지게 될 것, 즉 사유와 감각적 세계 사[313]이의, 신체들과 그 환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 속에, 살아 있는 태도 속에 체내화된(incorporated) 자유와 평등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기획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띠었으며, 결국에는 그 역전으로 이어졌던 많은 변형들을 겪었다. 이런 변형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실러의 미학교육, 헤겔과 셸링과 횔덜린이 꿈꿨던 새로운 신화, 청년 마르크스의 인간혁명, 소비에트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의 구성주의적 기획,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전복, 아도르노의 근대작품의 변증법, 685월이 수동혁명이라는 블랑쇼의 관념, 드보르의 표류’, 혹은 리오타르의 숭고한 것의 미학 등.

여기서 나는 내가 리오타르의 후기 저작을 논할 때 무엇이 관건인지를 분명히 밝혀야겠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불화에서는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그래서 후속 글들에서 이를 좀 더 개진하려고 했다(Rancière 2003b, 2004a, 2004d를 참조). 관건은 불일치에 관한 이해이다. 리오타르는 숭고한 것의 범주를 통해 불일치를 절대적 잘못의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켰다. 쟁론(Le différend)[주7]에서는 그런 절대화가 드러나지 않지만, 그 다음에 발표된 책들에서는 이것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리오타르를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통해 수용한 영미권에서는 이런 전회가 모호해졌다. 분쟁과 잘못에 관한 리오타르의 사고는 포스트구조주의적 주체 비판은 물론이고, 거대서사의 종언이라는 포스트모던적 지각과 너무도 쉽게 결합되었기에, 결국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지각은 리오타르의 이론에서, 그리고 불일치를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서 무엇이 관건인지를 감춰버린다. 리오타르의 후기 책들이 이런 점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데도 말이다. 물론 그의 후기 책들은 내가 미학과 정치의 윤리적 전회라고 부른 것을 훨씬 더 폭넓게 특징짓고 있다[주8].

[주7] [옮긴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쟁론, 진태원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15. 

[주8] 2003년 골드스미스 컨퍼런스에서 한 발표문에서 Sam Chambers는 리오타르적 분쟁에 맞서서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언어관을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언어관을 취했기 때문에 나는 리오타르를 이해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정치를 재사유하려는 나 자신의 기획도 완성할 수 없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한 것은 인간/말하는 동물/정치적 동물이라는 고전적 등식의 핵심부에 놓여 있는 간극 혹은 잘못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전체 문제는 우리가 이 잘못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이다. Chambers, 2005를 참조

잘못의 절대화는 프롤레타리아가 보편적 희생자, 거대서사의 주체였던 근대 시대와 미시서사 혹은 국지적 서사라는 포스트모던적 시대 사이의 단[314]절이라는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긍정과 더불어 사실상 시작됐다. [그러나] 이 단절에는 역사적 증거가 결코 없다. 나의 모든 역사적 탐구가 목표로 삼은 것은 이런 전제를 파괴하고, 사회적 해방의 역사란 항상 작은 서사들, 특수한 발화행위 등으로부터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대서사와 보편적 희생자의 시대로부터 단절해야 한다는 논점은 내가 보기에 요점을 벗어난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이 사실상 절대적 잘못의 또 다른 서사 속에 내장되지 않는 한, 요점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추정하기에 이렇게 내장시키는 것이 [리오타르의] 요점이었다. 리오타르가 했던 것은 희생자의 거대 서사로부터 단절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생자의 거대 서사를 새롭게 활용하기 위해 회고적인 방식으로 희생자의 거대 서사의 틀을 다시 짜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리오타르의] 하이데거와 유대인들(Heidegger and “the jews”, 1990)은 어쩌면 거기에 없었을 수 있고 확실히 시작에서는 명백하지 않았던 어떤 의미, 즉 서사의 대체라는 의미와 희생자의 대체라는 의미를 이른바 포스트모던적 논증에 제공하는 전환점으로 사고될 수 있다. 이 텍스트에서 <유대인들>은 근대성의 새로운 서사의 주체, 서구 세계의 새로운 서사의 주체가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해방의 서사가 아니었으며, 약속의 완수라는 일방통행식의 플롯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일방통행식의 플롯이었다. , 절대적 범죄의 서사인데, 이 서사는 서구 사유의 변증법 전체의 진리로서, <타자>, <길들여질 수 없는 것> 혹은 <갚을 길이 없는 것>[주9]과 관련된 사유의 근원적 부채를 잊으려고 하는 거대한 시대의 최종 결과로서 나타난다.

[주9] [옮긴이] ‘길들여질 수 없는 것‘the Untameable’의 번역어이다. 한편, ‘the Unredeemable’은 속죄할 수 없는 것,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 따라서 어떤 부채나 빚에 대해 갚을 길이 없는 것, 그리하여 구원될 수도 없는 것 등등을 의미한다. 이미지의 운명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갚을 길이 없는 것으로 일관되게 옮긴다

갚을 길이 없는 부채라는 관념은, 우리도 알다시피, 미학적 상태의 예외성의 변형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이다. 리오타르는 미학적 예외성을 칸트적 숭고의 격자를 통해 해석한다. , 무능의 경험으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미학적 상태의 예외성은 감각과 사유의 근본적 불화를 뜻한다. <이성>의 관념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이 무능하다는 칸트의 견해는 사고의 힘을 탈피하고 원초적 재앙을 증언하는 감각(aistheton)의 힘으로 뒤집힌다. 타자성의 법칙에 대한 정신의 먼 옛날부터의 의존, 정신의 노예화.’ <타자성>의 처음 이름은 ‘<사물>’, 즉 프로이트-라캉적 의미의 <사물Das Ding>이다. 그 두 번[315]째 이름은 <>이다.

이런 식으로 <>에 대한 유대인의 복종은 정신의 재앙이나 무기력화의 원초적 경험에 대한 복종과 똑같다. 그러므로 나치가 유럽의 유대인들을 절멸시키려 한 것은 원초적 재앙을 부인하는 데서 귀결되는 재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물Das Ding> 혹은 <>을 제거하려는, 타자성에 대한 먼 옛날부터의 의존을 제거하려는 기획의 최종적인 달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적합하게 말하면 이것은 미학적 경험을 윤리적 경험으로 해석한다는, 해방의 모든 과정을 금한다는 뜻이다. 이런 플롯에서는, 해방의 모든 과정은 정신을 타자성에 예속시키는 재앙을 부인하려는 재앙적인 시도라고 지각된다. 새로운 종류의 근본악에 관한 이런 사고는 오늘날 (적어도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와 관련된 두 종류의 태도로 이어진다. 하나는 기권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의 다른 종류의 절대화를 지지하는 것, <>의 군대가 <>의 축에 맞서 벌이고 있는 현재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에 관한 내 연구에서 관건이고 또 이 관건을 미학에 관한 연구와 묶어주는 것은 불화로서의 정치의 특정성을 사고하려는 시도이며, 불일치를 잘못이나 재앙으로 절대화하려는 것에서 벗어나는 미학적 이질성의 특정성을 사고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그런 예외성을 순수성의 플롯 바깥에서 사고하려는 시도이다. 리오타르의 마지막 작업에서 관건은 분명히 미학적 분리성에 관한 아도르노의 해석의 변형이다. 아도르노에게서 미학적 경험은 미학적 약속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분리되어야만 했다. 리오타르에게서 작품의 미학적 순수성의 본질은 <길들여질 수 없는 것>의 순전한 증언이라는 지위에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삶과 벌거벗은 생명의 분리라는 아렌트적 관념은 예외상태에 관한 아감벤의 이론화에서 거꾸로 뒤집혔다. 예외상태는 정치적 삶을 벌거벗은 생명아래로 포섭하는 <근대성>의 거대서사가 된다. 이 포섭은 홉스의 이론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들>에 대해서도, 프랑스 혁명의 인민의 주권이나 인종청소도 설명한다. 정치의 순수성이라는 관념은 그 반대로, 즉 그 애매한 행위자들을 일소함으로써 정치적 개입의 무대를 텅 비게 만드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 정치는 압도적인 역사적-존재론적 운명으로서 등장하는 권력의 행위와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 우리 모두는 처[316]음부터, 수용소의 동질적이고 편재하는 공간 속에 있는 난민들이며, 벌거벗은 생명과 예외의 상호보완성 속에 사로잡혀 있다(Agamben 1998; Rancière 2004c를 참조).

만일 1990년대 초에 내가 정치적인 것의 복귀라는 표준적인 이론들을 제기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나는 예외의 논리의 이런 무한화에, 정치적인 예외성과 미학적 예외성의 이런 이중적인 역전(reversal)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예외성의 결합이 윤리적추세를 구성한다. 나는 이런 윤리적 추세에 대해, 순수성 관념과는 별개로 미학적·정치적 불일치성을 사고하는 하나의 방식을 대립시키려고 한다. 정치의 예외성이란 [정치가] 자신의 고유한 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치안의 장에서 자신의 무대를 건설하는 실천의 예외성을 뜻한다. 그리고 미학적 체제에서 예술의 자율성은 그만큼 타율성이다. , 예술은 특정한 경험에 귀속되는 특정한 영역으로 설정되지만, 그 대상과 절차를 다른 경험 영역에 속하는 대상과 절차로부터 분리시키는 경계선은 전혀 없다.

내 작업의 전반적 논리는 순수 정치와 순수 미학이 무한한 잘못이나 무한한 악의 급진화 속에서 함께 전복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나는 불화를 해소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도 처리될 수 있는 잘못이라고 사고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내가 예외, 잘못 혹은 초과에 관한 개념규정을 그 어떤 종류의 존재론과도 별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의 원리를 존재론적 원리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한, 정치를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이런 것이 하이데거적인 차이, 네그리가 개념규정한 스피노자적인 <존재>의 무한성, 바디우의 사유에 있어서 존재와 사건의 극성(polarity), 아감벤의 이론에 있어서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의 관계의 재분절 등등이다. 내가 취하는 가정은, 이런 요구사항들이 어떤 역사적-존재론적인 운명적 과정을 위해서 정치의 해소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이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정치는 존재의 법칙에서 해소될 수도 있다. 마치 형식이 그 내용의 현시에 의해 찢겨져버리듯이 말이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서 <다중>은 제국을 폭파하게 될 제국의 진짜 내용이다.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존재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존재><공산주의>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정치적 잘못은 기원적 잘못의 결과로서 등장할 것이며, 그리하여 <>만이, 혹은 어떤 [317]존재론적 혁명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처음부터 내가 가진 첫 번째 관심사는 형이상학적 목적지[이정표]에 입각해 정치적 문제들을 분석하는 모든 분석들을 옆으로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 나는 그 어떤 시간적 목적론도, 차이·초과 혹은 불일치의 그 어떤 기원적 결정도 일축해버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초과, 차이, 혹은 불일치의 특정하고 제한된 형태를 정의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셈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존재>의 초과에 정치적 불일치를 정초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적 불일치를 특정한 계산착오와 연결한다. 데모스는 <존재>의 초과를 구현하지 않는다. 데모스는 무엇보다 우선 텅 빈 이름이다. 한편으로, 데모스는 어떤 필연성도 갖고 있지 않은 보충적 셈에 대한 이름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 자의적인셈은 불평등의 정당화 자체에 고유한 평등주의적조건을 상연·연출한다. 그 어떤 존재론적 간극도 없고, 평등의 우연성과 불평등의 우연성을 하나로 묶는 교착(twist)이 있다. 데모스의 역량은 존재의 그 어떤 원초적 초과도 상연·연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어떤 명명의 과정에도 고유하게 있는 초과를 상연·연출한다. , 이름들과 신체들을 한데 묶는 관계의 자의성을 상연·연출한다. 이름을 부여받고 공통적인 것에 관해 말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은 자들이 이름과 신체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름들의 초과를 상연·연출하는 것이다. 내게 차이란 항상 특정한 관계성, 통약 불가능한 것의 특정한 척도를 뜻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분명히 데리다가 씨름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쟁점과 씨름해야만 했지만, 데리다의 유령성(spectrality)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예를 들어 유령들과 유령성이라는 데리다식의 문제틀은 두 개의 쟁점을 함께 묶는데, 이렇게 묶여진 매듭은 내게도 중요하다. 두 개의 쟁점이란 탈정체화와 시대착오의 지위이다. 그것은 내가 직면한 것과 똑같은 문제를 다룬다. , 우리는 비실존자(the inexistent)의 실존을 어떻게 사고하는가, 우리는 초감성적인 것-감성적인 것을 어떻게 사고하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데리다는 비실존자에 너무 많은 현존을 부여하고 너무 많은 육신(flesh)을 부여한다. 정체성[동일성]을 탈구축하면서도 그는 항상 이타성(異他性)의 동일성이나 부재의 현전을 과장함으로서 동일성을 복귀시키려고 하기 직전에 있다. 그가 [318]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유령의 실재성(reality)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유령이 우리를 쳐다본다는 것, 유령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에게 말을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유령의 정체성은 모르지만, 유령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유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나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타자성의 무게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 내가 거부하는 것은 타자성에 어떤 시선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 목소리에 어떤 윤리적 명령의 힘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이타성의 형태들의 다양체를 <타자성>의 인격화를 통해 실체로 전환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초월의 한 형태를 복귀시킨다. 똑같은 것이 시간적인 분리-접속(dis-junction)이라는 쟁점에도 해당된다. 또 나는 시대착오, 반복 등등의 쟁점도 다루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쟁점들을 이음매에 어긋난 시간이라는 관념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나는 이것들을 시간성의 형태들 및 선()들의 다양체들에 입각해 사고한다. 내가 그렇게 보고 있듯이, 불화의 논리에서 여러분은 분리-접속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대신에 분리-접속을 접속(junction)의 특정한 형태로서 사고한다(그리고 접속을 분리-접속의 한 형태로서 사고한다).

나는 이 논점의 이면(裏面)을 잘 알고 있다. 만일 시간적 분리접속의 원초적 구조가 없다면, 어떤 해방적 완수의 지평을 생각하기란 어렵다. 달리 말하면, 만일 유령이 없다면, 메시아도 없다. 내가 메시아적 명제를 세속적(prosaic) 용어로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 정치를 그 고유한 논리 위에 정초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특정한 시간성의 틀을, ‘비실존적인 것의 실존의 시간성의 틀을 짜야 하지 않는가?

나는 어떤 미래의 틀을 짜는 것이 미래의 가능성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개입에 뒤이어 일어난다고 말함으로써 논점을 뒤집고 싶다. 혁명가들은 인민의 미래를 발명하기 전에 인민을 발명했다. 게다가 우리의 논의 맥락인 정치적인 것의 윤리화라는 맥락에서 우리는 우선 미학의 정치의 특정성에, 정치적 개입의 특정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유령들을 효과성이념성의 이항대립과 대립시키면서 유령들에 관해 말했을 때, 나는 픽션[허구]에 관해 말하기를 더 좋아[319]한다. 내가 보기에 픽션이라는 이 용어는 똑같은 역할을 하지만 비실존자의 부분[]을 실체화하는 것을 막는다. 내게 비실존자는 무엇보다도 말들, 텍스트들, 픽션들, 서사들, 등장인물들이다. , 유령들의 삶이나 정신Geist의 삶이 아니라 종이의 삶(paper life)이다. 그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the unapparent)의 현상학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외양의 시적인 틀짜기이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존재론(ontology)보다 더 넓고 더 강력할 수 있는 유령론(hauntology)’의 틀을 짜자고 제안할 때, 나는 시학에 입각해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존재론 혹은 유령론은 어떤 정치적 개입이나 한 편의 시(poem)만큼이나 픽션적이다. 존재론은 정치, 미학, 윤리 등등에 어떤 기반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령론은 이런 포부(pretension)를 탈-구축한다고 칭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유령론은 근본주의적 기획을 무너뜨리는 타자성을 실체화하는 것을 대가로 그렇게 한다. 이제 <타자성>의 실체화는 윤리적기획(enterprise)의 핵심에 있다. 나는 주류의 윤리적 추세와 이것의 명백히 반동적인 정치로부터 데리다를 분리시키는 거리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추세에서 [진정으로] 탈출하길 원한다면, 나는 타자성이 탈-실체화, -존재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덕분에 나는 내 작업의 의미나 내 담론의 지위를 둘러싼 몇몇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됐다. 정초하거나 탈구축하는 대신에 내가 언제나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담론의 장르와 수준들을 분리시키는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이름들(1992)[주11]에서 지식의 시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지식의 시학이 기성의 지식(역사, 정치학, 사회학 등등)을 시적인 조작(묘사, 내레이션, 은유화, 상징화 등등)으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여 이런 조작의 대상을 나타나게 하고 이런 조작의 명제에 의미와 적실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한에서, 지식의 시학은 일종의 탈구축적 실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과학적 담론을 시적인 계기로 이렇게 환원한다는 것은 과학적 담론을 말하는 존재들의 평등으로 환원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내가 자코토에게서 빌려온 지능의 평등이 지닌 의미가 이것이다. 그것은 지능의 모든 현시가 다른 무엇인가(any other)와 평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똑같은 지능이 시적 픽션을, 정치적 개입을, 혹은 역사적 설명을 행한다는 것을 뜻한다. 똑같은 지능이 문장들 일반을 만들[320]고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사상, 역사, 사회학 등등은 그들의 대상을 가시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대상들 사이의 연결을 창출하기 위해 언어적 혁신이라는 공통적인 힘을 사용한다. 철학도 그렇게 한다.

[주11] Jacques Rancière, Les noms de I'histoire: Essai de poetique du savoir, Paris: Seuil, 1992. [The Names of History: On the Poetics of Knowledge, H. White & H. Melehy (trans.). Minneapolis, M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4. ; 역사의 이름들, 안준범 옮김, 울력, 2011.]

내게 이것은 철학이란 담론의 다른 형태나 합리성의 다른 영역을 정초하는 담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모든 분과학문들은 경계선 내부에서 자신들의 객관성의 장의 특정성에 걸맞은 특정한 방법론이라는 가정 위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진술하는데, [내게] 철학은 이런 경계선들을 해체하는 담론이다. 나의 철학 실천은 정치에 관한 내 생각과 나란히 이루어진다. 그것은 분과학문들과 담론적 능력의 특정성을 언어적 능력과 시적 발명의 평등주의적수준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아르케적이다. 이런 실천은 내가 철학을 특정한 전쟁터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함축한다. 아르케아르케를 탈은폐하려는 힘겨운 노력이 단순히 그 반대로 이어지는 장, 다시 말해 모든 아르케의 우연성이나 시적 성격을 탈은폐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그런 장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내포한다. 만일 내가 한 작업의 상당수가 플라톤에 대한 재독해로서 정교화됐다면, 그것은 플라톤의 작업이 이 전쟁터의 가장 정교화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목적지의 불평등이 고귀한 거짓말이라고 말하며, 장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막는 시간의 부족다른 곳 자체의 금지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파이드로스는 기록의 금지와 민주주의의 금지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매미-철학자들의 공간-시간과 노동자들의 공간-시간을 분리하는 근본적인 선을 그으며, 우리에게 <진리>에 관한 진리를 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진리>에 관한 진리는 신화로서 말해질 수 있을 뿐이다. 우화의 평등이 담론들과 입장들의 위계 전체를 뒷받침한다. 만일 철학의 특권이라는 게 있다면, 그 특권은 <진리>에 관한 진리가 허구임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또한 철학이 세우는 바로 그 위계를 해소하는 그런 솔직함에 놓여 있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철학의 평등주의적 실천이란 아르케아르케, 권위의 권위를 구성할 수 있는 시적 행위의 필연성인 정초의 아포리아를 상연·연출하는 실천이다. 나는 내가 이 과제에 헌신한 유일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 입장의 종별성[특정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아포리아의 원리를 존재론화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상가들은 [321]초월이라는 유령을 떠올리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차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상가들은 그것을 <존재>의 무한성이나 <존재>의 다양체와 동일시한다. 나는 지금 하트와 네그리의 다중이나, <존재>란 순수 다양체라고 하는 바디우의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네그리와 바디우 둘 다 권위의 해체(unbinding)[주12]를 해체(unbinding)로서의 <존재>의 법칙에 정초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지점에서, 내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권위의 원리를 회복하는 몇 가지 교묘한 속임수를 대가로 해서야 실천의 특정한 영역들에서 해체하는(unbinding) 권력의 상연·연출을 완수할 수 있다. 나는 아포리아의 원리를 수립하거나 <평등>아르케로 삼고 싶은 것이 아니라, <평등>을 계속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전제로 삼고 싶다. , 평등의 특정한 무대를 여는 입증이나 상연·연출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 무대는 경계선들을 가로지름으로써, 그리고 담론의 형태 및 수준과 경험의 영역들을 상호 연결함으로써 세워진다.

[주12] [옮긴이] 이 글에서 의미가 석연치 않은 단어 중 하나가 이것이다. 영어를 최대한 불어와 가깝게 연결한다면 탈연결이나 탈유대(déliason)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불일치를 사고하는 논리를 재구축하려 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고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왜 그런 길을 걸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나의 철학 실천이 내 작업에 대한 독해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나를 받아준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마무리 할 겸, 요점은 내가 무엇을 썼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요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합의적 사고와 잘못의 윤리적 절대화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엮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토론의 여지가 훨씬 더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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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존재론화로서의 랑시에르의 정치철학

 

이 글은 2003년에 발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의성을 잃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이론 지형을 감안하면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제목을 보면 미학과 정치에 대해 다루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사유에 대해 가해진 비판에 대해 응답하고 아렌트, 아감벤, 리오타르, 데리다, 네그리, 바디우 등을 비판하면서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글이다. 그리고 이 비판에서 핵심적인 것이 존재론이라는 쟁점이다. 이 중에서 아렌트, 아감벤, 리오타르에 대한 비판은 다른 여느 글보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전개되고 있고, 또 아감벤에 대한 비판의 적실성은 다른 글에서 이미 검토한 바가 있기에 여기서는 이 존재론과 관련시켜 네그리(와 라차라토)의 랑시에르 비판의 적실성과 데리다에 대한 랑시에르의 비판적 논의를 검토해보려 한다.

네그리에 대한 랑시에르의 비판은 여러 곳에서 이뤄졌다. 2008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강연인 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 형태들도 그렇고, 인권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글, 인민이냐 다중이냐라는 글 등도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네그리 등의 역비판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하자. 네그리 등의 주장은 표현은 달라도 대체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자신들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세한 노동형태가 인지노동이며, 주된 생산수단은 일반지성이며, 랑시에르에게 지능(지적 능력)의 해방을 뜻하는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은 자본의 명령 아래에 있는 노동으로서 현대자본주의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에서 정치를 발견하고 만족해버린다. 따라서 랑시에르에게는 자본주의나 노동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이를 네그리는 랑시에르에게는 마르크스가 없다고 표현한다.

이런 네그리 등의 비판은 몇 가지 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먼저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tout parle de tout)’는 것에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 랑시에르는 자신의 작업이 고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하는 동물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들이 정치적 삶에 대한 기질을 갖고 있다는 인간학적 정의로 회귀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는 말하고 토론하는 인간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관념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네그리 등은 여기서 불일치불화의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랑시에르가 하려는 바와는 정반대의 것을 읽어낸다.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전제를 랑시에르가 갖추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랑시에르의 기획의 근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의 결여라는 지적에 대해서 재고해야 한다. 이는 두 개로 쪼개지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나 노동에 대한 분석의 결여와 관련된 사회적인 것의 지위에 대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존재론적 분석의 문제이이다.

전자와 관련해, 라차라토는 부채인간 등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랑시에르와 바디우에게 정치는 경제에 대해 독립적이다. 이는 그들이 경제및 자본주의 일반으로부터 만들어낸 이미지가 경제학자들 스스로가 고안해 낸 희화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혁명·정치 이론이나 단순한 경제 이론이 언급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자본주의의 힘은 경제’(및 커뮤니케이션, 소비, 복지국가 등)를 다양한 측면에서 주체성의 생산과 결합시키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처럼 “‘정치적 주체화를 경제로부터 연역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순수정치의 환상을 보여준다.” “어떤 것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주체화는 자신의 존재를 위한 필연적 정합성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는 달리 정치적 주체화와 경제 사이의 역설적 접합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정치적 구성 및 실험을 위한 다양한 장을 열어주며”, “이는 주체화의 지속 및 이에 필요한 일관성의 획득을 위해서는 경제, 사회, 정치를 다시금 횡단하고 재배치하는 작업을 통한 일정한 단절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랑시에르는 거듭 “‘순수정치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라차라토는 랑시에르가 거꾸로 순수 정치의 환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랑시에르가 순수정치란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이 겨냥하는 표적은 아렌트이다.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절연된 정치 자체의 고유성을 찬양하는 것, 국가제도와 통치적 실천이 정치(적인 것)의 전부라고 보는 견해이다. 그런데 라차라토는 랑시에르가 아렌트와 동일한 문제점, 순수정치의 덫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바디우와 랑시에르에게는 정치적인 것은 있으나 자본주의가 없습니다. 정치적인 것은 있으나, 그건 전-자본주의적입니다. 마르크스 대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습니다. 생산이 없는 거죠. 공장이 없는 겁니다. 여기서 공장은 인간, 기계, 기호의 배치물(assemblage)의 현동화(actualisation)를 뜻합니다. 이것들은 오늘날 생산과 마주칠 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복지국가에도 있고 이것의 다양한 현시형태에도 있습니다. 저는 바디우와 랑시에르에게는 기계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항상 지적했습니다. 단어만 없는 게 아니라, 기술이나 과학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사회적 기계와 기술적 기계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기계는 다른 비판적 이론들에서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계가 오늘날 도처에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몸짓, 표현, 행동을 수반하는 데도 말입니다. 저는 언어 개념, 그리고 분석 철학에서의 언어적 전회 개념이 큰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것들은 제가 보기에는 유물론적이지 않은 주체화의 과정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주체화는 항상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기계 때문에, 또 이것들과 더불어 일어납니다. 자본은 사회적 관계이며, 권력관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술적 기계들에 의해 조력을 받는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의 특정성입니다. 자본은 인간들사이의 단순한 관계가 아닙니다. 아렌트에게서처럼 (혹은 랑시에르에게서처럼) 상호주체적인 관계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계에서 행동은 물질의 어떤 요소도 결여합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기계에 관한 단장충실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바디우와 랑시에르에게서 발견되는 정치적 주체화가 관념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디우에게 계급투쟁은 추상적인 용어로 사유됩니다. 수학이 그의 작품집(anthology)입니다. 바디우와 랑시에르는 경제가 마치 정치의 다른 것인 양 말하는 반면, 정치적인 것은 항상 경제에 의해 재정의됩니다. 자본주의는 오직 이것뿐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경제이다.’ , 권력관계인 것이고, 권력을 관리하는 자들과 권력에 종속된 자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며, 종속된 자들이 상황을 전복하고 뒤집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그런 관계인 것입니다. 주체화는 주어진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적이 되는 착취와 지배의 기계적 과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 혹은 비판은 다음의 모습으로도 변주된다. 가령 랑시에르에게 영화와 회화의 차이는 무엇에 있는가, 과연 이런 차이를 랑시에르의 틀을 통해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모습은 달리하지만, 옮긴이도 대체로 공감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이 논의는 랑시에르가 이 글에서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존재론의 문제와 연결된다. 존재론()에 대한 랑시에르의 불편한 심기와 반대편에 놓여 있는 비판은 랑시에르가 이른바 치안과 정치를, 혹은 적대를 역사 속에 존재론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없다는 비판과 관련된다. 네그리는 이렇게 말한다. 랑시에르에게 해방적 행위는 모든 역사적 규정(determinazione)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는 것, 구체적인 시간성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는 역설적인 행위이다. , 정치는 주체를 역사·사회·제도들로부터 분리시키는 행위이지만, 실제로 역사·사회·제도들에 대한 참여 없이는 정치적 주체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적이다).” , 랑시에르는 적대를 초역사적인 차원에서 상정하기 때문에 정치를 구성하는 역량을 존재론적으로 조건 짓지 못하며, 바로 이 때문에 이런 역량을 그 집단성(공통적인 것the common)에서 포착할 수도 없다는 비판이다. “랑시에르의 연구에서 노동의 해방에 대한 전망은 실제로 의식의 본래성의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따라서 주체성은 어디까지나 개인[주의]적 차원에 있는 것으로 위치지어지기에, 여기에는 주체성의 생산을 공통적인 것으로서 포착할 가능성이 애초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네그리가 보기에 해방의 담론은 존재론에 입각하지 않으면 한낱 유토피아에, 개인의 꿈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네그리는 여기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네그리에게 존재론은 칼 마르크스를 가리키지만, 랑시에르에게 존재론이란 실체화를 가리킨다. 데모스, 인민, 민중, 노동계급, 프롤레타리아트 등등을 모두 실체화하여 다루는 것이 랑시에르에게는 문제이다. 랑시에르에게 이것들은 모두 텅 빈 이름들이다. 이것들을 실체화하지 않고 이렇게 다룰 때에야, 계산착오의 문제, 그것도 구체적이고 특정한 계산착오들을 드러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불일치를 논의할 장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이는 결국 부르디외 식의 사회계급론이 되어버리며, 치안과 정치를 내재성의 평면에서 논의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랑시에르는 네그리의 비판과 달리 적대를 초역사적인 차원에서 상정하지 않는다. 네그리가 내세우는 다중이 랑시에르에게 불편한 이유는, 이 다중이 인민이나 노동계급과는 또 다른 실체로서 자리매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그리가 다중을 모던-포스트모던이라는 직선적 시간축을 그대로 받아들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랑시에르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랑시에르에게 데리다는 네그리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두 가지 때문이다. 먼저 네그리는 시간론을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분석에서 이런 시간론은 실종되고 (라차라토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단선적 시간관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데리다는 시대착오’, 즉 시간의 뒤얽힘이라는 측면을 중시한다. 알다시피 랑시에르의 예술의 세 가지 체제는 이런 직선적 시간론의 탈구축이다. 그렇지만 랑시에르는 데리다가 시대착오, 반복 등등의 쟁점을 여전히 “‘이음매에 어긋난 시간이라는 관념으로 통일시킨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한 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랑시에르의 시간관은 (말과 사물에서의) 푸코의 시간관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의 논거는 아마도 푸코의 시간관과 데리다의 시간관의 연결-차이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그 실마리가 상당히 부족하다. 따라서 이것은 향후 더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남을 것이다.

높이 평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존재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론 대신 유령론을 내세우면서 실체화의 위험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타자성의 문제와 불가분하다. “나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타자성의 무게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 여기서의 타자성은 비실존자(the inexistent)’, 정체성[동일성]을 탈구축하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외부의 타자성, 우리라는 동일성을 깨뜨리고 위협하는 타자성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 타자가 정치의 외부, 민주주의의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인가 아닌가에 있다. 데리다가 보기에 민주주의에 부족한 것은 타자성이며, 이는 외부에서 올 수밖에 없다. 내가 제기하는 이의는 간단하다. 타자성이 외부로부터 정치 안으로 도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고유한 타자성, 즉 자신의 고유한 이질성의 원칙을 지니고 있다.” 랑시에르가 정치와 치안은 둘 다 외부가 없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그에게 모든 것은 내재성의 평면 안에서 작동된다. “내게 민주주의적 실천이란 아무런 몫도 없는 자들(이는 배제된 자들이 아니라 아무나 혹은 누구나를 뜻한다)의 몫을 기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입은 신참자들에 해당되는 주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참자들은 새로운 대상들이 나타나 공공의 관심사가 되고 새로운 목소리가 출현하고 들리는 것을 허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타자성을 다루는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반면 환대를 논하는 데리다에게 타자(유령이든 아브라함의 신이든)란 무엇보다 책임·응답 가능성(responsibility)과 관련된다. 이것은 “‘타자성에 어떤 시선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 목소리에 어떤 윤리적 명령의 힘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유령론 역시 타자성을 실체화하는 데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이 타자성(레비나스 식의 것과는 다르지만) 윤리적 기획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유령의 실재성(reality)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유령이 우리를 쳐다본다는 것, 유령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에게 말을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유령의 정체성은 모르지만, 유령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고 유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줄구장창 “‘타자성이 탈-실체화, -존재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내 입장의 종별성[특정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아포리아의 원리를 존재론화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상가들은 초월이라는 유령을 떠올리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차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상가들은 그것을 <존재>의 무한성이나 <존재>의 다양체와 동일시한다.” 앞의 것이 데리다를 겨냥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각각 바디우와 네그리를 겨냥한다. 그러면서 다시 자신의 원칙을 피력한다. “나는 아포리아의 원리를 수립하거나 <평등>아르케로 삼고 싶은 것이 아니라, <평등>을 계속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전제로 삼고 싶다. , 평등의 특정한 무대를 여는 입증이나 상연·연출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 무대는 경계선들을 가로지름으로써, 그리고 담론의 형태 및 수준과 경험의 영역들을 상호 연결함으로써 세워진다.”

 

랑시에르는 이렇게 글을 마친다. “요점은 내가 무엇을 썼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요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합의적 사고와 잘못의 윤리적 절대화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엮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토론의 여지가 훨씬 더 많이 있다.” 그러나 랑시에르가 원하는 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이해하는것이 중요할 것이다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현대예술과 미학의 정치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pp.31-50.


저는 감각의 공동체라는 문구를 몇몇 공통의 감정에 의해 형성된 집단성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구를 사물이나 실천을 똑같은 의미 아래에서 묶어내는 가시성과 이해 가능성의 틀[프레임]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어떤 감각을 형성하는 것 말입니다. 감각의 공동체는 가시성의 실천들, 형태들과 이해 가능성의 패턴들을 함께 묶는 공간과 시간을 오려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오려내기와 이런 연결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고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무수한 기술의 산물들이 가시성의 특정한[종별적] 형태로 파악되는 한에서(이 형태는 이런 기술들을 공통에 집어넣으며, 이런 연결로부터 공동체의 특정한[종별적] 의미를 틀짓습니다), 예술이 존재합니다. 인류는 수천년 동안 조각가, 댄서, 음악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단수이자 대문자 예술자체를 알게 된 것은 고작 2세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공간의 어떤 분할로 알려졌습니다. 먼저 예술은 회화, , 멜로디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극장, 기념물, 혹은 박물관 같은 어떤 공간적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예술에 관한 논의는 노동의 비교가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논의들은 모두 공간화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 그림을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뿌려진 아이템들의 잡동사니나 조각을 대신해 비디오 모니터들을 설치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 논의는 그림의 프레임이 전달하는 현전의 의미에 관한 것이자 그 자리를 대신하는 스크린이 전달하는 부재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그 논의는 벽이나 바닥, 프레임이나 스크린에서의 사물들의 분배를 다룹니다. 그것은 하나의 공간설정과 다른 공간설정, 혹은 현전과 부재 사이의 그런 변동에서 관건인 공통적인 것의 의미를 다룹니다.

물질적인 분할은 언제나 동시에 상징적인 분할이기도 합니다. 극장이나 미술관[박물관]은 주어진 어떤 것과 주어지지 않은 어떤 것 사이의 공존과 양립 가능성의 형태들을 형성합니다. 이것들은 가시적인 것과 이해 가능한 것 사이의, 혹은 공동체의 형태들이기도 한 현전과 부재 사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또한 그 공간에서 세워진 공동체의 의미와 다른 경험 영역들에서 틀지어진 공동체의 다른 의미 사이의 공동체의 형태들을 형성합니다. 예술과 정치공동체들(polities) 사이의 관계는 의미의 두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예술과 정치가,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관해 우리가 논의해야만 하는 두 개의 영구적인 리얼리티들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예술과 정치는 둘 중 어떤 것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공통적인 것의 우발적인 배치입니다. [대문자] 예술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듯이(비록 항상 음악, 조각, 춤 등등이 있겠지만), 정치공동체들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비록 항상 권력과 합의의 형태들이 있겠지만). 정치는 의미의 특정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그것은 인간 군집의 다른 형태들에 대한 불화적 대체보충으로서, 대상과 주체의, 자리와 정체성들의, 공간과 시간의, 가시성과 의미의 논쟁적 재분배로서 존재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미적[감성적] 활동(aesthetic activity)’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때의 미적 활동은 국가 권력이 집합적 예술작품에 체내화incorporation되는 것, 발터 벤야민이 정치의 심미화(aestheticization)라고 불렀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감각적인 것의 두 가지 나눔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두 용어가 그 자체로 동일시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예술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술은 가시성의 실천, 형태와 이해 가능성의 패턴들을 함께 묶는 특정한 식별 체제 내에서 식별되어야만 합니다. 예술이 그 체제 아래에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이 식별 체제는 하나의 이름을 갖습니다. 2세기 동안 그것은 미학이라고 불렸습니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더 정확하게는 정치의 미학과 미학의 정치 사이의 관계입니다. 미학의 정치라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앞의 질문에 의존합니다. ,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는가?

미학이라는 이 용어는 어떤 종류의 의미의 공동체를 정의할까요? 이 화두에 관해서는 저명한 주인 서사(master narrative)가 있습니다. 그 주인 서사에 따르면,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으로 알려진 미학은 자율성의 영역의 구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술작품들이 다른 경험 영역들에는 이질적인 제 나름의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계에서 예술작품들은 형식, , 혹은 진리에서 매체에 이르기까지 타당성(validity)의 내적 규범에 의해 가치 평가됩니다. 이로부터 예술의 정치성에 관해 다양한 결론들이 끌려나올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술작품들은 순수 미의 세계를 형성하며, 이것은 아무런 정치적 관련성(relevance)도 갖고 있지 않다. 둘째, 예술작품들은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설정된 의미의 공동체들이라는 공상적인 꿈을 키우면서 일종의 이상적 공동체를 틀짓는다. 셋째, 예술작품들은 제 나름의 영역에서 근대적 기획의 핵심에 있는 것이자 민주적 혹은 혁명적 정치들에서 추구되는 것과 똑같은 자율성을 성취한다.

이런 서사에 따르면, 예술, 자율성, 근대성 사이의 식별(identification)20세기의 지난 몇 십년 동안 붕괴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삶과 상품문화의 새로운 형태들이, 제작·재생산·의사소통의 새로운 테크닉들과 더불어, 예술적 제작과 테크놀로지적 복제, 자율적 예술작품과 상품문화의 형태,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경계선을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붕괴했습니다. 경계선을 이렇게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미학의 종언에 해당되어야만 합니다. 그 종언은 예를 들어 80년대에 핼 포스터(Hal Foster)가 편집한 반미학(현대미학사, 2002)이라는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중요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쓴 미술관의 폐허에 관하여(On the Museum’s Ruins)라는 논문도 있습니다. 여기서 폐허가 된 미술관은 앙드레 말로의 벽 없는 미술관(museum without walls)’을 가리킵니다. 크림프는 말로의 미술관에서 사진이 이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분석에 의존해 논증을 펼칩니다. 한편으로, ‘벽 없는 미술관은 사진 복제에 의해서만 가능해졌습니다. 사진만이 카메오[바탕색과 다른 색깔로 보통 사람의 얼굴을 양각한 장신구]가 원형 그림과 돋을새김 무늬의 다음 페이지에 자리를 잡게 해줍니다Photography alone allowed a cameo to take up residence on the page next to a painted tondo and a sculpted relief[사진술에 의한 재생에 의해서 카메오’[보석이나 조가비 등에 새기는 양각]는 색칠한 톤도’[원형 그림]와 조각한 부조의 다음 페이지에 자리잡게 된다, 92]. 혹은 사진만이 말로가 앤트워프에 있는 루벤스의 디테일을 로마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디테일과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진은 예술의 정신을 현전시킴으로써 작품의 경험성을 대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불행하게도 크림프는 말로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로는 책의 끝부분에서 사진이 더 이상 예술작품의 복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로는 미술관의 동질성을 구성했던 동질화하는 장치를 그 이질성으로 다시 던져버렸습니다. 미술관의 핵심부에서 이질성이 재수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감춰진 비밀은 열림 속에서 전시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몇 년 후에 했던 것입니다. 라우센버그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Rokeby Venus를 모기와 트럭 그림을 담은 캔버스의 표면에다, 혹은 헬리콥터 무리나 물기둥에다, 혹은 심지어 조지 워싱턴의 동상의 꼭대기와 자동차 열쇠에다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라우센버그의 모든 작품의 표면 위로 미술관이 퍼져나갔습니다. 말로의 꿈은 라우센버그의 농담이 되었습니다. 약간 충격적인[골치 아픈] 것은 라우센버그 자신이 분명히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으며 «인간»의 의식이라는 보고(寶庫, treasury)에 대한 말로의 케케묵은 구식 믿음을 도리어 긍정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Just a bit disturbing was the fact that Rauschenberg himself apparently did not get the joke and affirmed, in turn, Malraux's old-fashioned faith in the treasury of the conscience of Man.

 

<벨라스케스, Rokeby Venus>


<Robert Rauschenberg: Persimmon, 1964.

크림프의 글에 수록된 도판>


<Robert Rauschenberg: Break-Through, 1964.

크림프의 글에 수록된 도판>



저는 우리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방해[교란, 골치 아픔disturbance]에 대해 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논증이 증명한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만일 말로의 꿈이 라우센버그의 농담이 될 수 있다면, 왜 그 반대는 안 될까요? , 라우센버그의 농담은 말로의 꿈이 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런 역전turnaround은 몇 년 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 80년대 말에, 저명한 우상파괴자이자 영화감독인 장-뤽 고다르는 포스트모던적 실천의 원형을 격찬했으며, 모든 것을 아무거나와 혼합했습니다. 그가 영화의 역사()에서 했던 것은 말로의 종이 미술관의 정확한 등가물이었습니다.

요점을 말하겠습니다. , ‘상상의 미술관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미술관이 동질성(homogeneity)과 등가를 이루는 것이라고, 미술관이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함에 바쳐진 사원이라고 여러분이 우선 가정할 때에만 그 모순은 포스트모던적 단절에 대한 증언입니다. 둘째, 이와 반대로 사진은 이질성(heterogeneity)을 뜻한다고, 사진은 무한한 복제의 사소함triviality[무한한 복제가 사소한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 모순은 포스트모던적 단절에 대한 증언입니다. 셋째, 사진만이 우리가 카메오를, 스키타이식 명판(Scythian plaques), 미켈란젤로를 똑같은 페이지에 집어넣고 Rokeby Venus를 자동차 열쇠나 급수탑(water tower)과 더불어 캔버스에 놓을 수 있게 해준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렇습니다. 만일 이 세 진술이 참이라고 입증된다면, 여러분은 사진술을 통한 상상의 미술관의 실현이 미술관 자체의 붕괴를 뜻한다고, 이런 실현이란 미학적 동질성을 산산조각 내는 이질성의 승리를 표시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점들이 모두 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우선 미술관이 동질성을 뜻한다는 것을, 미술관이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함과 아우라적 고독에 바쳐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이 아우라적 고독이 19세기와 20세기에 예술관을 길러냈다는 것을 어찌 알까요? 이 문제를 고급 [대문자] ‘예술에 대한 최고의 찬양의 시대인 대략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 봅시다. 그 당시에 헤겔의 제자들은 그의 미학강의를 출판했습니다. 동시에 프랑스에서는 <마가쟁 피토레스크> 같은 대중잡지들이 세계 예술의 보물들을 더 넓은 독자층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석판인쇄술에 의한 복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동시에 오노레 드 발자크는 그의 이름을 알린 첫 번째 소설 야생 나귀 가죽(The Wild Ass’s Skin)을 출판했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인 라파엘은 골동품 상점의 전시실에 들어가는데, 그가 본 것은 이런 것입니다.


악어, 원숭이, 배가 잔뜩 부른 보아뱀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것들은 조각된 반신상에 막 달려들고 옻칠한 제품을 쫓아다니거나 샹들리에로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Jaquetot 부인이 나폴레옹을 그려 넣은 세브르의 꽃병은 세소스트리스[Sesostris, 그리스 전설에서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이집트 제12왕조의 왕]에게 바친 스핑크스 옆에 세워져 있었다. 라투르는 드 바리 부인을 머리 위에 별이 있고 벌거벗은 채 구름에 감싸여 있는 것으로 그렸는데, 인디언의 긴 담뱃대를 욕정에 휩싸여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같았다. 위풍당당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눈앞에 공기 기계가 쑥 내밀어졌다. 평생 동안 무감각한 잉글랜드 부시장과 네덜란드 시장의 몇몇 초상화들은 이토록 엄청나게 많은 골동품들에 굴하지 않고, 이것들을 냉담하고 탐탁찮게 쳐다봤다.

Crocodiles, apes and stuffed boas grinned at stained glass-windows, seemed to be about to snap at carved busts, to be running after lacquer-ware or to be clambering up chandeliers. A Sevres vase on which Madame Jaquetot had painted Napoleon was standing next to a sphinx dedicated to Sesostris.... Madame du Barry painted by Latour, with a star on her head, nude and enveloped in cloud, seemed to be concupiscently contemplating an Indian chibouk. . . . A pneumatic machine was poking out the eye of the Emperor Augustus, who remained majestic and unmoved. Several portraits of aldermen and Dutch burgomasters, insensible now as during their life-time, rose above this chaos of antiques and cast a cold and disapproving glance at them.'1


이 서술은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s을 완벽하게 예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서술은 상점과 미술관, 민속학적 박물관과 예술적 미술관, 예술작품과 일상적 소재들 사이의 비구별의 공간을 틀짓습니다. 그 모든 경계선들을 흐릿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어떤 포스트모던적 단절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에 의해 산산조각 나기는커녕, 미학은 정확하게 이런 흐릿함을 의미합니다. 만일 사진이 문학으로 하여금 상상의 미술관을 성취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면, 그것은 문학이 이미 그 페이지 위에서 사진이 나중에 캔버스 위에서 섞었던 것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의 이 문자적 과거야말로 사진과 회화의 결합이 캔버스를 인쇄로 전환시켰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요점입니다. , 사진이 이질성, 무한한 복제 가능성, 아우라의 상실과 등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크림프가 논문을 발표했던 같은 해에는 사진에 관한 중요한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이 그것입니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주류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뒤집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유일무이함에 대한 증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사진은 포스트모던 콜라주에 가장 적합한 인공물로 받아들여진 후에, 일종의 성 베로니카의 상징으로, 순수하고 유일무이한 현전의 아이콘으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논점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술관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사진은 복제 가능성과 유일무이함을 모두 의미합니다. 사진적 복제 가능성은 제 나름의 힘에 의해 의미의 새로운 공동체로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넓은 가시성의 형태 안에서, 더 넓은 이해 가능성의 플롯 안에서 파악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 가능성을 현전의 한 형태나 의미의 한 절차의 증강이나 가치 저하에 적합하게 해야 합니다. 라우센버그의 사진 활용은 예술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평평함을 자율적 예술과 동일시하는 모더니즘적 동일시에 맞서는, 회화의 자족성에 맞서는 부가적인 증거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것은 스테판 말라르메의 순수시의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 평평함은 매체의 종별성[특정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은 교환의 표면을, 시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선긋기 사이의, 행위와 형식 사이의, 텍스트와 드로잉이나 춤 사이의, 순수 예술과 장식 예술 사이의, 예술 작품과 오브제 사이의, 혹은 개인적 삶이나 집단적 삶에 속하는 퍼포먼스 사이의 교환을 뜻합니다.

 그린버그 식의 평평함의 패러다임에 맞선 새로운 증거의 산출이 한 시대의 종결로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또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런 형식적패러다임 속에서 미학의 명확한[한정된] 정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치는 미학의 또 다른 정치에 의해 타협된 정치적 자유의 평등의 약속을 자율적인 작동에 맡겼습니다. 미학의 또 다른 정치는 집단적 삶의 새로운 형태의 창조에 있어서 스스로를 억누르라는 과제를 예술에 주었습니다.

 요점은 예술적 자율성의 급진성이 미학적 자율성을 공동체의 모종의 정치적, 아니 오히려 메타정치적 실행implementation과 연결하려는 더 넓은 플롯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미학이라는 말은 제게 [대문자] ‘예술의 미학적 식별 체제를 의미하는 것인데요, 아무튼 미학은 제 나름의 정치를 수반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스스로를 두 개의 경쟁하는 가능성들로 분할한다는 것, 미학의 두 개의 정치로 분할한다는 것은 또한 의미의 두 공동체들을 뜻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학은 프랑스혁명의 시대에 태어났으며, 처음부터 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점은 미학이 평등의 두 개의 경쟁하는 형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의 재현적 체제를 구성했던 구속과 위계의 시스템의 붕괴를 뜻합니다. 미학은 예술의 영역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오브제나 그럴 가치가 없는 오브제를 분리시키는, 고급 장르와 천한 장르를 분리시키는 주제, 장르, 표현형식의 위계가 와해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술 분야의 무한한 개방을 함축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비-예술, 예술적 창조와 익명적 삶 사이의 경계선의 삭제를 뜻했습니다.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 많은 이론가들이 여전히 주장하는 것처럼  ― 유일무이한 예술작품을 산출하는 유일무이한 천재의 찬양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18세기에, 원형적 시인인 호메로스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고 그의 시는 예술작품이 아니며, 예술적 경전의 실현도 아니며, 여전히 유치한 인민의 느낌과 사고방식을 표현한 덕지덕지 깁어놓은 우화 모음집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미학은 프랑스 왕의 머리 자르기와 인민의 주권에 동조하는 그런 종류의 평등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런 종류의 평등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삶의 식별 불가능성을 뜻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작품이 그 자체로 경험의 특정한 영역에서 포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칸트의 용어로 하면, 이 영역에서 예술작품은 지식의 대상이든 아니면 욕망의 대상이든 간에 이것들에 고유한 감각적sensory 연결의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예술작품은 그저 지적인 능력과 감각적sensory 능력 사이의 비위계적 관계를 뜻하고 무제한의 활동에 응답하는 자유로운 등장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그런 탈위계화의 정치적 귀결을 끌어냈습니다. ‘미학적 국가는 감각적 평등의 영역을 정의했는데, 여기서 수동적인 감각 가능성[감수성sensibility]보다 능동적인 이해[지성]가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두 인류를 분리함으로써 지배에 그 정당성을 전통으로 부여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이것이 와해시켰다는 것입니다. 고위 계급들의 권력은 수동성에 대한 능동성의 권력, 감각sensation에 대한 지성understanding의 권력, 날것의 의미에 대한 교양 있는 의미의 권력 등등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권력을 폐기함relinquishing으로써 미학적 경험은 지배의 역전일 수 있는 평등을 틀지었습니다. 실러는 프랑스 혁명에서 실행되었던 정치적 혁명에 그런 감각적 혁명을 대립시켰습니다. 정치적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바로 혁명권력이 (대중들을 의미하는) 감각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법을 부과하는 (국가를 의미하는) 지성의 전통적인 몫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진정한 혁명은 수동적 감각 가능성[감수성sensibility]에 대한 능동적인 지성의 힘을, 수동성과 미완성inchoateness의 계급에 대한 지능intelligence과 능동성의 계급의 힘을 전복시키는 혁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학은 예술의 경계선들의 진압suppression을 뜻하기 때문에, 미학은 평등을 뜻합니다. 그리고 미학은 인간 경험의 별개의 분리된 형태separate form로서의 [대문자] 예술의 구성을 뜻하기 때문에, 미학은 평등을 뜻합니다. 이 두 개의 평등은 대립되지만, 또한 함께 묶여 있습니다. 실러의 편지에서 그리스 여신의 조각상은 해방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여신은 게으르고’ ‘자족적이기 때문입니다. 조각상은 바로 이 분리성과 이용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욕망에 이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각상은 그 자유’, 혹은 무관심이 다른 자유나 무관심을, 즉 그것을 창조했던 그리스 인민의 자유를 구현하기 때문에 이것을 약속합니다. 이제 이 자유는 첫 번째 자유의 대립물을 뜻합니다. 실러에 따르면, 한 삶의 자유는 스스로를 실존의 별개의, 미분화된 형태로 찢어발기지 않으며, 한 인민의 자유를 뜻합니다. 이들에게 예술은 종교와 똑같은 것이고, 정치와 똑같은 것이며, 윤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즉 함께 있기의 방식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술작품의 분리성separateness은 대립물을 약속합니다. , 예술을 경험의 별개의 분리된 실천과 영역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미학의 정치는 이런 원초적인 역설에 의존합니다. 두 개의 대립된 평등들의 역설적 연결은 정치의 두 가지 주요 형태들로 향하며 또한 역사적으로도 이것으로 향했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두 개의 평등들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므로 의미의 공동체는 미학적 경험에서 경험된 평등과 자유의 종류가 공동체의 실존 형태 자체로 전환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집단적 실존의 형태는 형태와 외양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닐 것이고, 오히려 살아 있는 태도, 일상적인 감각적 경험의 물질성 속에 구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공통적인 것은 산 세계의 구조로 엮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학적 평등과 자유의 분리성이 이것의 자기-억제에 의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예술과 정치, 노동과 여가, 공적 삶과 사적 삶이 똑같은 것인 공통적 삶의 미분리된 형태 속에서 성취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 불화와 미학적 향유가 외양 속에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실생활에서 성취하는, 미학적 혁명의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2세기 전에 독일관념론의 가장 오래된 체계 프로그램(The Oldest System Programme of German Idealism)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국가권력의 죽은 메커니즘을 신화학으로 전환된 철학에 의해 생기가 불어넣어진 인민의 산 신체로 대체하자는 제안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억압을 뜻하는 '인간 혁명으로서 인식된 혁명과 스스로를 분리된 실천으로 억누르고 스스로를 새로운 삶의 형태의 정립과 동일시하는 예술 모두의 기획에 있어서 계속 부활되었습니다. 그것은 19세기 영국에서 아츠 앤 크래프츠의 고딕적 꿈만이 아니라 20세기 독일에서 공작연맹이나 바우하우스의 테크놀로지적 성취물에도, ‘미래의 축제를 준비하는시라는 말라르메의 꿈만이 아니라 소비에트 혁명에 초현실주의적, 미래주의적, 구성주의적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참여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것은 상황주의적 건축물의 기획만이 아니라 기 드보르의 표류dériveJoseph Beuys‘social plastic’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국의 경계선들을 폭파하는 전지구적 네트워크의 거스를 수 없는 역량을 통해 시행된 다중의 프란체스코적 꼬뮤니즘이라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현대적 비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정치와 예술은 비분리적 삶의 새로운 형태에 도움이 되도록 그들의 자기-억제를 성취해야만 합니다.

 이와 반대로 두 번째 형태는 두 개의 평등들을 분리접속시킵니다. 이것은 미학적 경험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을 예술과 삶의 무한한 등가성의 장으로부터 분리접속시킵니다. 이것은 의미의 공통성들이라는 쟁점을 의미의 두 공통성들 사이의 환원 불가능한 대립으로서 무대에 올립니다. , 접속의 공통성들인 동시에 분리접속의 공통성들을 말입니다. 한편으로, 산 경험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외된 삶의 공통성을 뜻합니다. 이 공통성은 의미(감각)와 의미()의 원초적 분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서사에서, 이것은 세이렌의 노래와 항해 노동 둘 다로부터의 율리시스의 이성의 분리입니다. 소외된 삶의 그런 공통성은 그 대립물의 기만적인 외양appearance속에서 성취됩니다. 그것은 미학화된 삶과 상품 문화의 동질적인 외양 속에서 성취됩니다가짜 평등과 가짜 의미 공통성은 미학적 경험의 자율성에 의해, 경험의 모든 다른 형태들에 대한 그 이질성에 의해 틀지어진 공통성과 대조를 이룹니다. 표준적인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은 그런 공통성에 관한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그 정치적 내용을 망각한 채로 말입니다. 예술의 정치적 행위는 예술의 자율성과 그 해방의 역량의 핵심인 이질적인 감각적인 것을 구해내는 것입니다. 미학의 그런 정치에서 작동하는 의미 공통성은 의미와 의미의 접속과 탈접속 둘 다에 기초한 공통성입니다. 그 분리성은, 그것이 순수 형태의 거부가 아닌 한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감각할 수 있습니다makes sense.’ 오히려 그것은 분리성과 비분리성의 관계 자체를 무대에 올립니다. 작품의 자율적 완전성은 자신의 고유한 모순을 탈은폐해야만 합니다. 소외의 표식이 화해의 외양 속에 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율리시스의 이성을 세이렌의 노래와 화해시키고, 그것들을 동시에 화해 불가능한 채로 유지합니다.

 이 정치에서 관건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혹은 대중예술 사이의 경계선을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의미자체의 두 세계들의 이질성을 보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적 논박가들은, 라우센버그가 벨라스케스의 모사물과 자동차 열쇠를 똑같은 캔버스에 담자, 모더니즘적 정치성패러다임이 붕괴했다고 이들이 생각했을 때, 그 목표물을 잃어버립니다. 패러다임은 의미의 두 세계들을 분리시키는 경계선이 붕괴할 때에만 위협받습니다. 아도르노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놀라운tremendous 주장을 했습니다. , 우리는 19세기 살롱 음악의 몇 가지 화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사기가 아닌 한에서, 라고 말입니다. -프랑수와 리오타르는 당신이 하나의 캔버스 안에 조형적인 모티프와 추상적인 모티프를 섞을 수 없다고, 이런 혼합을 느끼고 가치 평가하는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듯이, 때때로 그런 화음이 여전히 들릴 수 있고, 여러분이 똑같은 캔버스 위에 혼합된 조형적인 모티프와 추상적인 모티프를 여전히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공예품artifacts을 빌려와 이것들을 재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성에서 포스트근대성으로의 어떠한 급진적 이행도 표시하지 않습니다. 패러다임은 그런 계시revelation에 의해 산산조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황급한 도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모든 의미 공통성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의 자율성을 억누르고 예술을 순진한 윤리적 증거로 변형시키는 것을 대가로 하여 감각 경험의 근본적 이질성을 재천명해야 합니다. 이런 변동은 80년대의 프랑스 미학 사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롤랑 바르트는 죽은 어머니의 사진의 유일무이함을 기호학자의 해석적 실천만이 아니라 사진술 자체의 예술적 치장pretension에도 대립시킵니다. 고다르는 낡은 서사적 플롯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자율성 자체를 와해시키는 것을 대가로 이미지의 아이콘적 힘이나 문장/구절의 리듬을 강조합니다. 리오타르에게 붓질이나 음색은 타자의 힘에 의한 정신의 노예화enslavement에 대한 순전한 증거가 됩니다. 타자의 첫 번째 이름은 아이스테톤aistheton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법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치와 미학은 둘 다 윤리 속으로 사라집니다. 예술의 정치성이라는 이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이 같은 역전은 정치적 불화성을 예외와 테러의 아르케정치 속으로 해소하는 사유의 전체 조류와 조화를 이룹니다. 오직 하이데거적 신만이 우리를 이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의미 공통성들을 아주 빨리 개괄했습니다. , 정치화하는 예술이라는[예술을 정치화하는, politicizing art] 기획(가령, 비판적 예술의 형태로)은 언제나 예술을 그 자체로 식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가시성과 가지성의 형태로 수반된 정치성의 형태에 의해 예견됩니다. 우리는 그 분리성과 그 비분리성에 부착된 두 형태의 평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예술을 식별합니다. 우리는 예술을 그 자율성과 그 타율성의 변증법을 통해 식별합니다. 그런 뒤에 정치적 예술이나 비판적 예술을 한다는 것은, 혹은 정치적 예술관을 취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것은 그 힘을 평등의 두 가지 미학적 형태들 사이의 관계의 특정한 협상 속에 위치짓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비판적 예술은 미학의 두 정치 사이의 일종의 제3의 길입니다.

 이 협상은 미학적 경험을 집단적 삶의 재배치로 향하게 떠미는 어떤 긴장을, 다른 경험 영역으로부터 미학적 감각 가능성sensoriality의 힘을 빼내는 어떤 긴장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예술과 삶의 비구별의 지대로부터 그것은 정치적 이해 가능성[가지성]을 유발하는 접속을 빌려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예술작품의 분리성으로부터 그것은 정치적 에너지들을 증대시키는 감각적 외래성foreignness의 의미를 빌려와야만 합니다. 정치적 예술은 이런 대립물들의 일종의 콜라주여야만 합니다. 이 말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콜라주는 비판적 예술의 주요 절차입니다. 미학의 두 정치들 사이에서 그 길을 내야만 하는 3의 정치의 주요 절차인 것입니다. 벨라스케스와 자동차 열쇠를 뒤섞기 전에, 콜라주는 미학의 대안적 정치를 뒤섞으며, 그 협상의 산물을 이해 가능성의 흔들리는 형태들에 부여합니다. 정치성의 흔들리는 형태들을 길러내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이질적 영역에서 빌려왔던 요소들의 공통성을, 의미의 공통성들을 거의 틀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이한 경험 영역으로부터 요소를 취함으로써, 상이한 예술들이나 테크닉들에서 몽타주의 형태들을 취함으로써 특정한 이질성의 형태들을 수립합니다. 만일 브레히트가 20세기의 정치적 예술의 일종의 원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공산주의에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정치적 교육의 스콜라적 형태를 음악적인 것이나 무도회적인 것의 향락과 섞으면서, 혹은 꽃양배추에 관한 운문에서 나치 권력의 알레고리들을 논의하면서, 이 대립들 사이의 관계를 항해/협상한 방식 때문에 말입니다. 정치적 혹은 비판적 예술의 주요 절차는 이질적 요소들의 마주침을 설정하고 가능한 충돌을 설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이질적 요소들의 충돌은 우리의 지각에 단절을 초래하고, 일상적 리얼리트 뒤에 숨겨진 사물들의 모종의 비밀스런 접속을 탈은폐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감추어진 리얼리티는 부르주아적 삶의 산문에 의해 은폐된 꿈과 욕망의 절대적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적 시학에서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이상 뒤에 은폐된 자본주적 권력과 계급 전쟁의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 하트필드의 사진몽타주의 전투적 실천에서처럼, 예를 들어 우리에게 아돌프 히틀러의 식도에 있는 자본주의적 황금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예술은 이질적 요소들만이 아니라 감각 가능성의 두 정치를 함께 두는 변증법적 충돌이나 불화의 형태들을 창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질적 요소들은 하나의 충돌을 도발하기 위해서 함께 놓입니다. 이제 충돌은 동시에 두 가지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람들을] 깨우치는enlightens 섬광입니다. 이질적 요소들의 접속은 그 가독성에 대해 토로합니다. 그것은 권력과 폭력의 어떤 비밀을 가리킵니다. 브레히트의 Arturo Ui에서 채소와 미사여구high rhetorics의 접속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충돌은 요소들의 이질성이 의미의 동질성에 저항하는 한에서 산출됩니다. 꽃양배추는 미사여구와 병치된 꽃양배추로 남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싣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불투명함opaqueness 자체로부터 정치적 에너지를 증강시킬 터입니다. 궁극적으로, 불규칙하게 변화하는heteroclite 요소들의 단순한 병치는 정치권력을 타고 납니다. 고다르의 영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월트 디즈니 영화에서, 그러니까 정치적 영화에서 큰 인상을 받았어.” 불규칙적 요소들의 단순한 관계는 그러므로 갈등의 정치적 리얼리티를 증언하는 변증법적 충돌로서 나타납니다.

 정치적 예술은 정치와 예술 사이가 아니라 미학의 두 개의 정치 사이의 일종의 협상입니다. 이 제3의 길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 및 경계선의 부재 위에서 계속해서 놂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알레고리와 알레고리의 폭로의 브레히트적 동일성은 당신이 예술과 꽃양배추, 정치와 꽃양배추 사이의 접속과 분리접속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런 놀이는 채소 자체가 이중의 실존을 갖는다는 것을 추정합니다. 하나는 이것들이 예술 및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들이 이미 정치와 예술 둘 다와 강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 예술, 채소의 관계는 브레히트 전부터 실존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전통을 부활시키면서 인상주의적 정물화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문학에서도 말입니다. 에밀 졸라의 소설 파리의 배는 이것들을 정치적 상징인 동시에 예술적 상징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소설은 두 등장인물들의 양극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국외추방을 당했다가 파리의 새로운 중앙시장으로 돌아온 가난하고 늙은 혁명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소비의 범람을 의미하는 양배추의 범람에 압도당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양배추의 서사시를, 모더니티의 서사시를, 중앙시장의 유리와 철로 된 건물을, 채소 더미들을 노래하는 인상파 화가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근처에 있는 고딕식 교회가 상징하는 낡은/옛날의 애처로운 미와 대조되는 근대적 미를 우화화했습니다. 꽃양배추의 정치적 알레고리는 예술, 정치, 채소의 접속이(다시 말해서 정치, 예술, 소비의 접속이) 이미 일군의 움직이고 있는 경계선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것들은 예술가가 경계를 가로지르게 하며, 이질적 요소들의 접속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그 타율성의 감각적 힘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의 혼합, 혹은 예술과 상품의 혼합이 60년대, 즉 근대예술과 그 정치적 역량을 실현한 동시에 무너뜨렸던 60년대의 발견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정치적 예술은 이미 그런 혼합에 의해,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예술과 상품 사이의 경계선 가로지르기의 연속적 과정에 의해서 이미 가능해졌습니다. 이 과정은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과거로 돌아가게 합니다당신은 고급 예술을 찬양하던 시대를 고급 예술이 진부해지거나 패러디되는 시대와 대립시킬 수 없습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예술이 특정한 존재영역으로 구성되자마자, 그 산물들은 재생산, 교역, 상품의 진부함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산물들이 그렇게 하자마자, 상품들 자체는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역량은 졸라의 양배추 서사시에서 일어났듯이, 근대적 삶의 압도적인 역량과 미와 직접적으로 동일시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소비에 대해 한물간 것이자 소비에 이용될 수 없게 됨으로써 예술의 영역에 빠져들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미학적(이해관심이 없는disinterested) 오브제를 쾌나 친숙한 낯섦의 유희excitement로 전환시켰습니다thereby turned into objects of aesthetic-disinterested-pleasure or uncanny excitement. 벤야민의 알레고리 이론이나 브레히트의 서사극만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의 시학도 이러한 경계선 가로지르기를 잘 해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현대 설치미술과 곧바로 연결되는 예술과 교역의 애매한 관계를 이용했던 비판적 예술의 모든 형태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들은 고급예술이나 정치가 자본주의적 지배와 맺는 접속을 드러내기[탈은폐하기] 위해서 예술적 전통, 정치적 수사학, 상업 문화, 상업 광고 등등에서 빌려온 이질적 재료들을 섞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이 경계선들을 지웠던 점증적인 과정들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비판적 예술은 이런 연속적인 경계선 가로지르기를, 시적인 것의 산문화와 산문적인 것의 시화(詩化)라는 이 이중적 과정을 잘 해냈습니다.

 만일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좀 더 확고한 뿌리 위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에 연루된 정치적 쟁점들을 다시 틀짓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현대예술에서 관건은 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운명이 아닙니다. 그 타당성은 전보다 더 약하지도 더 강하지도 않습니다. 제 견해로는, 그것은 항상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변증법에 대한 아주 제한적인 해석이었습니다. 관건은 미학의 제3의 정치의 운명입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여전히 모던하고 이미 포스트모던하고, 혹은 심지어 포스트-포스트모던한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 변증법적 충돌에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비판적 예술의 공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저는 불과 몇 년 전에 60년대 혹은 70년대의 예술과의 비교점을 제공했던 전시회들을 참조하면서 가능한 답변을 위한 몇몇 요소들을, 따라서 변동의 중대한 몇몇 표시자들을 제공했습니다.

 첫 번째 예. 3년 전[2000년]에 파리 국립사진센터는 배경음/잡음Bruit de fond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는 최근 작품들과 60년대의 작품들을 병치시켰습니다. 60년대의 작품들에는 마사 로슬러의 <Bringing the War Home> 시리즈가 있었는데요, 이 작품은 미국 가정의 행복을 담은 광고 이미지들과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합친 사진몽타주들입니다. 이 작품 부근에는 미국의 정치와 관련된 또 다른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요소들의 대면/대결이라는 똑같은 형태를 취했습니다. 왕 뒤가 만든 세계의 시간(Les temps du monde)이라는 작품은 두 개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왼쪽에는 밀랍 인형관의 한 쌍의 형상들처럼 팝아트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클린턴 부부가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쿠르베(Courbet)의 세계의 기원(Origine du monde)이라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었는데요, 잘 알다시피 이것은 여성의 성을 재현합니다. 그래서 두 사례 모두에서 미국식 행복의 이미지는 그 감추어진 비밀과 병치됩니다. , 마사 로슬러의 경우에는 전쟁과 경제적 폭력이, 왕 뒤의 경우에는 성과 신성모독profanity이 말입니다. 하지만 왕 뒤의 사례에서는 정치적 갈등성과 낯섦의 의미가 모두 사라집니다. 남았던 것은 탈정당화의 자동기계적 효과였습니다. , 성적인 신성모독은 정치를 탈정당화하고, 왁스의 형상은 고급 예술을 탈정당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 탈정당화해야 할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메커니즘은 자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확 돌아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이중의 놀이를 작동시켰습니다. 탈정당화하는 효과의 자동기계성과 자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휙 돌아서는 것을 깨닫는 것.

Bringing the War Home 200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Bringing the War Home 2000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Wang Du, Les Temps du Monde (1998)


 두 번째 예. 여기 : 머릿속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3년 전(2000년)에 파리에서 열린 또 다른 전시회가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상이한 설치작품들을 통해서 한 세기를 기록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작품들 중에는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설치작품인 Les abonnés du telephone가 있었습니다. 이 설치작품의 원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 화랑의 양 편에 있는 두 개의 선반에는 세계 각지의 전화번호부가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는 두 개의 탁자가 있는데, 여기에 앉아서 당신이 좋아하는 그 어떤 전화번호부든 정독할 수 있습니다. 이 설치작품은 90년대의 또 다른 정치적 작품인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의 작품 The Other Vietnam Memorial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 기념비란 물론 무명씨인[익명의] 베트남인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입니다. 크리스 버든은 전화번호부에서 베트남식 이름을 무작위적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기념비에 쓰여진 이름들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율성은 논쟁적인 플롯에 더 나아가 탑재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승리자들이 무명인 채로 남겨두었던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명씨들[익명인 자]의 이름들은 볼탄스키가 말하듯이, ‘인류의 견본이 됩니다.

   

Christian Boltanski, <Les abonnes du telephone>

Chris Burden, <The Other Vietnam Memorial>




 세 번째 예. 2003년에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동영상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목적은 현대예술에서 재생산 가능한 미디어의 광범위한 사용이 어떻게 60년대와 70년대의 비판적 예술 실천에 뿌리를 두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류의 사회적 혹은 성적 스테레오타입들과 예술적 자율성 둘 다를 의문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형 홀rotunda을 둘러싸고 전시된 작품들은 그런 직선으로부터의 중대한 변동을 조명했습니다. 가령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의 비디오는 미술관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벌거벗은 여성들을 보여주는데요, 이 작품은 예술에 있어서 여성적 스테레오타입들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 벌거벗고 무언의 신체들은 또 다른 방향을 따랐습니다. 모든 의미 작용으로부터 도주하는, 혹은 의미작용의 갈등으로부터 도주하는 것입니다. 또 이 작품은 그 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적 비판보다 훨씬 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형이상학적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겐하임의 둥그런 경사면을 올라가 보면, 많은 비디오, 사진, 설치작품, 그리고 비디오 설치물들이 일상생활의 진부한 재현에 수반된 새로운 종류의 낯섦을, 신비의 의미를 비판하기보다는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애매한 10대들을 찍은 리네케 데익스트라Rineke Dijkstra의 사진들은 물론이고, 일상적 사건들의 낯섦을 영화처럼 재현한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의 작품들, 혹은 거기에 포함된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작품들에서 이것을 감지했습니다. 볼탄스키의 작품은 사진들, 전기조명, 전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작품에 따르면 아마도 홀로코스트의 죽은 자들이나 유년기의 덧없음[손쌀 같이 지나가는 유년기]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전시회의 꼭대기에는 충돌의 변증법적 예술에서 신비의 상징주의적 예술로의 일종의 되돌아가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빌 비올라가 만든 비디오 설치물인 <매일 앞으로 나아가기Going Forth by Day>에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비올라의 작품은 탄생과 삶과 죽음과 부활의 순환만이 아니라 불과 공기와 흙과 물의 순환을 포괄하는 프레스코화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Giorgio de Chiric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Giorgio de Chiric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들

관련 이미지

리네케 데익스트라Rineke Dijkstra의 사진들 [구글에서 더 보기]

Gregory Crewds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의 작품들 [구글에서 더 보기]



Bill Viola, <Going Forth by Day>


 많은 가능한 다른 것들 중에서 선택된 이 세 가지 예들로부터, 우리는 오늘날 미학의 정치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설명[소묘]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예술의 불화적 형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라는 물음 말입니다. 저는 미학적 불화의 변증법적 형태가 네 가지 주요 형태로 쪼개졌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형태는 농담일 것입니다. 농담에서, 이질적 요소들의 통합접속conjunction은 여전히 긴장이나 양극성으로서 상연됩니다. 이것은 몇몇 비밀을 지적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비밀은 없습니다. 변증법적 긴장이 한편으로는 권력의 비밀을 벗겨내는 절차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 상업적 오락이나 광고에 의해 권력 그 자체에 의해 산출된 탈정당화의 절차들 사이의 식별 불가능성 자체를 이용하는 게임으로서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왕 뒤의 작품의 사례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전시회가 똑같은 결정 불가능성을 이용합니다. 가령, 파리에서 상황주의적 제목인 <스펙터클을 넘어서>로 재활용되기 전에 팝아트식popesque의 제목인 <즐기자>라는 제목으로 어떤 전시회가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는 세 가지 수준들을 이용합니다. 고급예술에 대한 팝아트적 조롱, 자본주의적 오락에 대한 비판적 비난, 그리고 스펙터클의 대립물로서의 놀이라는 드보르 식의 관념을 말입니다.

 두 번째 형태는 콜렉션일 것입니다. 콜렉션에서 이질적 요소들은 여전히 똑같이 취급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비판적 충돌을 촉발[도발]하기 위해서나, 심지어 그 비판적 힘의 미결정성을 이용하기 위해서 모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어떤 공통의 세계와 공통의 역사의 흔적과 증거를 콜렉션하는[수집하는] 긍정적인 시도가 됩니다. 콜렉션은 또한 리콜렉션이기도 합니다. 모든 아이템(예술작품, 사적인 사진, 사용된 오브제, 광고, 상업 비디오)의 평등은 그러니까 한 공동체의 삶의 문서고적 흔적들의 평등으로 바뀝니다. 저는 여기 : 머리 속의 세계라는 전시회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한 세기를 재수집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신이 볼탄스키의 방을 떠나면, 예를 들어 Hans-Peter Feldmann이 찍은 백여장의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한 살에서 100살까지 각각의 나이별로 한 명씩을 재현합니다. 그와 같은 많은 다른 설치작품들은 공통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런 조류의 많은 다른 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오늘날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는 어떤 모토와 장단이 잘 맞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사회적 유대는 깨졌으며, 예술가들은 공유된 인간성을 증언하고 있는 모든 흔적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회적 유대나 사회적 구조를 수선하려는 투쟁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형태는 초대invitation일 것입니다. 저는 Les abonnés du telephone가 어떻게 방문자들더러 선반 위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집어들어서 그것을 무작위적으로 열어보게끔 초대했는지를 언급했습니다. 이 전시회의 다른 곳에서도 관람자들은 책더미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카펫 위에 앉도록 초대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들의 동화 속 섬을 재현합니다. 다른 전시회에서 관람자들은 수프를 먹고 다른 이들과 접촉하도록, 새로운 형태의 관계에 참여하도록 초대됩니다. 그런 시도는 전에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적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체계화되었습니다. , 예술은 더 이상 작품이나 오브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재촉하는 다소 단명하는 상황을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듯이, 어떤 소소한 서비스를 함으로써 예술가는 사회적 유대의 간극을 메우는 임무에 기여합니다.

 네 번째 형태는 신비일 것입니다. 신비는 수수께끼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신비로움mysticness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라르메 시대 이래, 신비는 이질적 요소들을 함께 두는 특정한 방식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말라르메의 경우, 시인의 사유, 댄서의 스텝, 부채의 펼침, 혹은 담배 연기 등. 적대에 의해 틀지어진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 요소들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충돌과는 대립되게, 신비는 유비를 산출합니다. 기묘한 것의 친숙함을, 공통의 세계에 대한 증언을 말입니다. 여기서 이질적인 리얼리티들은 똑같은 구조로 엮이며, 은유의 우애에 의해 서로 항상 관련될 수 있습니다.

 ‘신비은유의 우애는 장-뤽 고다르가 <영화사()>에서 사용한 두 용어입니다. 이 작품은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고다르가 이질적 요소들의 콜라주를 자신이 항상 해 왔던 것처럼 사용하기 때문이지만, 그는 그것들이 20년 전에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산출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사>의 어떤 놀라운 구절에서 고다르는 세 개의 이미지들을 하나로 융합합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태양 아래>에 나오는 샷입니다. 이 영화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분한 젊고 부유한 연인의 행복을 보여줍니다. 일광욕을 하고 있는 그녀 옆에는 연인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바로 이 조지 스티븐스가 몇 년 전에 찍은 영화인, 라벤스브리크에서 죽은 자들의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미지는 파두아에 있는 지오토의 프레스코화에서 따온 마리아 막달렌입니다. 만일 20년 전에 만들어졌다면, 이 콜라주는 고급 예술과 미국인의 행복의 뒤에 감추어진 죽음의 비밀을 비난하는 변증법적 충돌로만 이해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사>에서 비난의 이미지는 구원의 이미지로 전환됩니다. 나치의 절멸, 미국인의 행복, 지오토의 비역사적인'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의 결합conjunction은 이미지들의 구원의 역량을 증거합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세계 속의 자리'를 부여하는 그런 구원의 역량 말입니다. 변증법적 충돌은 공현존의 신비가 됩니다. 신비는 상징주의의 핵심 개념입니다. 상징주의의 회귀는 분명히 의제에서 드러납니다. 제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저는 상징주의적 신화의 부활이라는 스펙터클한 형태를, 매튜 버니의 작품에서처럼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의 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비올라의 작품과 같은 상징주의의 효과적인 사용만을 지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좀 더 겸손하고 거의 지각 불가능한 방식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에서 우리의 미술관과 화랑에 모이게 된 오브제, 이미지, 기호의 콜렉션은 점점 더 불화의 논리에서 신비의 논리로, -현전의 증거로 변동하고 있습니다.

 변증법에서 상징주의로의 변동은 분명히 제가 정치의 미학이라고 불렀던 것에서의 현대적 변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치의 미학이란 정치가 공통의 무대를 틀짓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변동은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합의입니다. 합의는 단순히 공동체의 공통적 이해관계에 관한 정치정당들의 동의나 사회적 파트너들의 동의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재배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집단적 상황의 소여들이 더 이상 논박에, 주어진 세계 안에서의 논쟁적 세계의 논전(論戰)적 프레이밍에 스스로를 적합하게 할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객관화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방식에서 합의는 정치의 미학을 내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무대와 불화의 정치적 개입의 그런 삭제 혹은 약화는 미학의 정치에 대해 모순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실천에 새로운 가시성을 줍니다.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실천이란, 공간과 시간,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형태, 사물들과 이미지들과 의미들 사이의 접속의 형태의 재분배의 실천들을 뜻합니다. 예술적 퍼포먼스는 불화적 무대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의 대체물로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합의는 정치적 장소를 빈 채로 단순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 대상의 영역을 틀짓습니다. 또한 그것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적 실천의 공간과 임무를 형성합니다. 가령, 계급갈등의 문제를 포함과 배제의 문제로 대체함으로써, 그것은 '사회적 유대의 상실'을 걱정하게 만들며, ‘벌거벗은 인류에 관해 고심하게 만들며, 혹은 정치적 관심의 자리에서 위협받은 정체성들의 힘을 키우는 것에 열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술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틀짓고 사회적 유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 정치적 역량이 작동할 수 있게 소환됩니다. 제 견해로는, 비판적 패러다임에서 농담, 콜렉션, 초대, 신비의 형태로의 변동은 정치적인 것이 윤리적인 것의 형태로 재배치된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술에 있어서 정치를 이렇게 윤리로 대체하는 것에 맞서서, 오늘날 어떤 기획들은 예술에서 정치적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이것들은 공간의 분배라는 문제를, 상황의 재서술이라는 쟁점을 제기합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정치에 속했던 문제에 관한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은 예술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만들려는 새도운 시도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미지들을 생산하거나 재순환하기보다는 리얼한 오브제를 만드는, 혹은 단순한 '예술적' 설치작품보다는 실생활에서 실제 행동에 착수하는 예술의 기획을 부활시키는 데 착수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참여[헌신]은 실재적인 것에 대한 탐구와 등치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은 예술이 도달해야만 할 '실재''외부'가 아닙니다. '바깥'은 항상 ''의 다른 면입니다. 그 차이를 산출하는 것은 유형론입니다. 그 유형론에서 안과 바깥을 틀짓는 것이 협상됩니다. 실재적인 것 자체는 단순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리얼리티의 틀짓기나 허구[픽션]입니다. 예술은 실재계에 도달함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재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의 현존하는 분배에 도전하는 허구를 발명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허구[픽션]를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를 한다[꾸며낸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리얼리티의 현존적 의미를 틀짓는 기호와 이미지, 이미지와 시간, 혹은 기호와 시간 사이의 접속을 해제하고 재분절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허구는 의미의 새로운 공통성들을 발명합니다. 달리 말해서, 보여질 수 있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새로운 궤적들을 발명합니다. 그것은 자리와 능력의 배분을 흐릿하게 만들며, 이것은 또한 그것이 그 고유한 활동을 정의하는 경계선 자체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에술을 한다는 것은 예술의 경계선을 자리바꿈한다는 것을 뜻하며, 마찬가지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영역으로서 인정되는 것의 경계선들을 자리바꿈한다[이동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몇몇 예술작품들이 영토들과 경계선들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미학의 정치가 지닌 궁극적 역설일 수 있는 것은 미학적 거리나 무관심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명함으로써 오늘날 예술이 합의에 맞서서 의미의 새로운 정치적 공통성들을 틀짓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은 단순히 정치적 갈등의 약화로 인해 남겨진 공간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자신의 고유한 정치의 한계를 검증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재형성해야만 합니다.


Notes

1. Balzac, The Wild Ass's Skin,15.

2. Schiller,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109.

3. Horkheimer and Adorno, Dialectic of Enlightenment.

4. Bourriaud, Relational Aesthetics.


아래는 랑시에르의 미학과 정치를 고민할 때 중요한 글과 인터뷰, 그리고 2차 문헌이다. 목록과 내용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 2014년 5월 23일 현재, 우선 목록만 올려둠. 2-3일 안에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번역본을 업로드할 예정.


1. 논문 


1) Jacques Rancière, “From Politics to Aesthetics?”, Paragraph, 2005 : 28(1) 


2)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3) Jacques Rancière, “The Thinking of Dissensus: Politics and Aesthetics”, Reading Rancière, eds., Paul Bowman and Richard Stamp, Continuum, 2011, pp.1-17. 


4) Jacques Rancière, Aisthesis: Scènes du régime esthétique de l’art, Galilée, 2011. 



2. 인터뷰 


1) Gavin Arnall, Laura Gandolfi, Enea Zaramella, “Aesthetics and Politics Revisited: An Interview with Jacques Rancière”, Critical Inquiry, Vol. 38, No. 2 (Winter 2012). 


2) Jacques Rancière, “A Politics of Aesthetic Indetermination: An Interview with Frank Ruda & Jan Voelker”, eds., Jason E. Smith and Annette Weisser, Everything Is in Everything: Jacques Rancière between Intellectual Emancipation and Aesthetic Education, 2011.


3) Jacques Rancière, “Against an Ebbing Tide: An Interview with Jacques Rancière”, Reading Rancière, Edited by Paul Bowman and Richard Stamp, Continuum, 2011.


4) Sudeep Dasgupta, “Art is going elsewhere. And politics has to catch it : An Interview with Jacques Rancière”, Krisis, 2008, Issue 1.


5) Jacques Rancière interviewed by Fulvia Carnevale and John Kelsey ‘Art Of The Possible’ Artforum March 2007.

Jacques Rancière, “The Emancipated Spectator,” Artforum, XLV: 7 (March 2007).


6) McNamara, A. & Ross, T., “An interview with Jacques Rancière on medium specificity and discipline crossovers in modern art”, Australian and New Zealand Journal of Art, 2007 : 8(1). 












1. <이미지의 운명> ‘1강’에서 랑시에르의 논의는 롤랑 바르트를 여러 면에서 활용하고 비판하고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다. 즉, ‘스투디움’과 ‘푼크툼’만이 아니라 ‘디테일(세부)’*, (이미지나 사진의) ‘지표적 성질’이나 ‘그건 그랬지’ 등도 모두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롤랑 바르트의 논의를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밝은 방> 전후의 롤랑 바르트를 보는 견해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책이 기존의 그의 작업과 단절적이라고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연속적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당연히 두 가지의 절충도 있다. 즉, 단절과 연속을 모두 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랑시에르는 단절적이라고 보는 견해에 가깝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랑시에르의 견해와는 다르게 다소 연속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미지의 운명> 곳곳에서 등장하는 용어들 속에 얼마나 바르트가 숨쉬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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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tails을 '세부'가 아니라 '디테일'로 옮길 때 유의해야 할 사항에 관해서는 <이미지의 운명> 34쪽, 각주 27을 참조. 


2. 바르트는 이미 <신화론>(1957년)부터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 전에도 바르트는 자신의 저작에서 사진을 언급하거나 사진 도판을 인용하곤 했다(가령 1954년에 출판한 <미슐레Michelet>). 가령 할리우드 영화배우인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의 얼굴 사진이나 영화에 나오는 로마인 사진 등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의 바르트의 관심은 시각 이미지에서의 상징·기호체계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당시의 바르트에게 사진은 언어로 쓰인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서의 위상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바르트에게 사진은 언어로 쓰인 텍스트와는 달리 독자와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연결되는 특수한 매체로 간주되기도 한다. 바르트는 「사진의 메시지Le message photographique」(1961년)에서 사진을 자신의 탐구 주제로 다룬다. 이 제목이 드러내듯이, 바르트는 여기서 메시지로서의 사진이라는 매체론적인 사진의 특성에 관해 논의하며, 이때 사진의 특징은 다음처럼 정의된다. ① 사진은 현실의 기계적인 유사물, 사르트르가 <상상력의 문제>에서 말했던 아날로곤analogon의 개념과 등가적이다. ② 그 때문에 사진은 ‘코드 없는 메시지’le message sans code이기에, 이를 읽고자 할 때 본질적으로는 문화적 코드가 필요하지 않은 메시지이다. 즉, 현실에 관해 어떤 표현적인 해석의 필터를 통한 매체(가령 데생, 그림, 영화)가 필연적으로 해석의 코드를 갖고 있는 반면에, 사진의 경우는 그것이 현실 그 자체의 평면적인 코드이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읽기 위해 특히 미리 독해의 코드를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그 제작의 다양한 수준에서, 가령 화면구성이나 피사체의 선택 등에 의해서 문화적 코드를 부여받은 메시지, 즉 공시적 의미(connotation)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바르트는 이런 특징을 들면서 이 「사진의 메시지」에서 사진의 기호적·상징적 기능의 분석, 코드의 분석을 중시한다. “공시적 의미(connotation)의 코드 덕분에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항상 역사적인 것이다. 그 독해는 독자의 지식에 의존한다”(O.C., t.I, p.1130. 주1).


3. 그리고 「이미지의 수사학」(Rhétorique de l’image, 1964년)에서도 바르트는 어떤 광고회사의 광고사진을 무엇보다 우선 공시적 의미(connotation)로서 분석한다. 이 분석은 전보다 훨씬 더 분류적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사진에는 세 개의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① denotation과 connotation을 모두 포함하는 언어적 메시지, ② 코드화된 도상적 메시지, ③ 코드화되지 않은 도상적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바르트는 앞의 「사진의 메시지」에서 더 나아가, 사진의 ‘본질’이라고 그가 나중에 부르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이 「이미지의 수사학」에서는 ③ ‘코드화 없는 메시지’로서의 사진의 특성이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바르트에 따르면, 이 ‘코드 없는 메시지’로서의 사진을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지각이 필요하다. “이미지에서 모든 기호를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정보의 소재가 아직 남아 있다. 모든 지식이 결여되어 있더라도 나는 이미지를 계속 ‘읽는다.’ … 이미지의 이 마지막 (혹은 최초의) 수준을 ‘읽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지각에 결부된 지식 이외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O.C., t.II, p.576). 그리고 이 점에서 사진은 역사를 벗어난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이것은 곧, 이 시점에서 바르트가 사진에 대해, 그것이 단순한 기호의 매체와는 다른 측면을 갖고 있는 존재론적 매체라는 특권적 위치를 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확립하는 것은 ‘거기에 있었다’l’avoir-été-là라는 의식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한다. “실제로, 사진은 사물이 ‘거기에 있다’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 있었다’는 의식을 설립한다. … ‘그건 그랬지’는 ‘그것은 나다’에 상처를 입힌다”(O.C., t.II, p.583). 여기서 이미 바르트가 <밝은 방>(1980년)의 2부에서 문제 삼았던 “그건 그랬지”Ça a été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4. 한편, 바르트의 유작인 <밝은 방>은 발터 벤야민, 수잔 손택의 사진론과 더불어 사진론의 고전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는 사진의 존재론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기존의 사진론이 지닌 환원론적 체계에 이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독자적인 사진론을 전개한다. 이때 그는 기존의 현상학을 답습하는 대신 ‘대범한 현상학’을 전개한다. 즉, 사진경험에서의 ‘감정’, ‘파토스적인 것’의 요소를 가장 중요시하고, ‘마음의 상처’ 같은 것으로서 사진을 파고들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본다,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깨달으며 보며 생각한다.” 바르트의 현상학은,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소박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1부(1장~24장)에서는 ‘쾌락’의 관점에서, 2부(25장~48장)에서는 ‘사랑’과 ‘죽음’의 관점에서 사진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바르트는 독자적인 현상학적 방법에 입각해 특히 ‘본다’라는 사진경험을 다루었으며, 사진경험의 시간성에 대해 심도 깊게 검토한다. 이 사진의 현상학을 본격적으로 밀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도입되는 것이 라틴어에서 채용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라는 사진경험을 둘러싼 대립적 개념이다.


5. ‘스투디움’이란 사진경험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요소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진에 ‘관심’을 품고, 그것들을 어떤 정치적 표현으로서, 역사적 장면으로서, 혹은 민적 의식을 채우는 것으로서 수용한다. 그 지향대상(인물이나 사물)에 공감이나 반감을 품는 것은 일반적, 문화적 관심에 기반을 둔다. 때로 그것들로부터 강한 감동으로 채워진 관심을 낳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코드를 매개로 하며, 훈련이나 교육에 의해 익숙해진 것이다. 이 차원에 끌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영어의 like의 차원에 속한다. 다른 한편, love의 차원에 속하는 ‘푼크툼’은 코드화되지 않는 요소이며, 그것 자체는 명명/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사진이 원래 정보로서 전달되고 공유되고 해독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은 거기에 스투디움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지만, 우리에게 사진을 보는 경험이란 그것만이 아니다. 보는 자를 콕콕 찌르고, 가슴을 죄여오는 우발적인 경험, 즉 스투디움적 수용에 한 순간 균열을 내버리는 사진경험도 있다. 그 요소가 푼크툼이다. 바르트는 punctum이라는 라틴어에 포함된 ‘찔린 상처’,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금’과 같은 의미가 이 경험에 적합하다고 한다. 바르트는 불만을 품은 기존의 사진의 논의가 거의 스투디움에 해당되며, 따라서 당연히 그의 가장 말년의 사진론은 푼크툼에 무게를 두고 기술된다. 왜냐하면 바르트 식의 사진 현상학에서는 푼크툼이라는 경험에 의해서 보는 자가 ‘자극을 받는 것’에 ‘사진’의 존재의의가 있기 떄문이다.


6.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밝은 방>에 등장하는 세 번째 사진을 예로 들자. 니카라과의 반란을 찍은 사진인데, 폐허가 된 도로, 헬멧을 쓴 두 명의 병사가 순찰을 돌고 있고, 그 뒤를 두 명의 수녀들이 지나가고 있다. 바르트는 이 사진이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북돋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존재’했다고 말한다. “그 존재(그 모험, 즉 불의의 도래)는 두 가지 요소, 즉 병사와 수녀가 공존한다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곧바로 이해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같은 세계에 속해지 않다는 의미에서는 불연속적이며 이질적이다. (두 요소가 완벽하게 대조될 정도로 다를 필요는 없다.) 나는 (자신의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구조적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서둘러 그 규칙을 확인하기 위해서 똑같은 보도사진작가(네덜란드의 콘 베싱)의 다른 사진을 검토해 보았다. 다른 사진들도 방금 확인했던 이중성을 포함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내 주목을 끌었다.” 여기서 말한 다른 사진들 중에서 한 장, 하얀 천으로 덮인 아이의 주검, 부모와 그 친구가 그것을 에워싸고 비탄에 잠겨 있는 사진이다. 바르트는 이 사진에 관해서도 그 이중성을 지적한다. 구두가 벗겨진 시체의 한쪽 발, 어머니가 울면서 손에 쥐고 있는 천, 멀리서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 코에 손수건을 대고 있는, 부모의 친구로 보이는 또 한 명의 여자. 이것들 외에도 이 보도사진들에 관해 바르트는 살펴보지만, 다른 사진들은 이 사진만큼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화면에서의 균질성이 문화적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차이를 낳는 두 종류의 요소에 관해 붙인 이름이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다.


7. 다시 말하지만, 첫 번째 요소인 스투디움은 지식이나 교양, 어떤 전형적인 정보와 관련된다. 가령 니카라과와 반란에 관한 모든 기호, 즉 가난한 사복의 전투원들, 폐허가 된 거리, 사망자들, 태양, 둔탁한 눈의 인디오들 등. 확실히 그런 사진에 대해 일종의 일반적 관심, 때로는 감동으로 가득 찬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도덕적·정치적 교양(문화)라는 합리적인 중개물을 거친 평균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의범절에 의해 생기는 종류의 것이다. “이 말은 곧바로 ‘공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해 마음을 쓰는 것, 어떤 사람에 대한 선호, 어떤 종류의 일반적인 숙고를 의미한다. 그 숙고는 확실히 열의가 담겨 있지만, 그러나 특별한 격렬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많은 사진에 관심을 품고 그것들을 정치적 증언으로서 받아들이거나 훌륭한 역사적 이미지로서 음미하는 것은 그런 스투디움(일반적 관심)에 따른다. 왜냐하면 내가 주인공에게, 표정에, 몸짓에, 배경에, 행위에 공감하는 것은 교양문화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스투디움 속에는 그것이 문화적인 것이라는 공시적인 의미connotation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 어떤 사람에 대한 선호, 어떤 종류의 일반적인 감정이입을 의미한다. 그 감정이입에는 확실히 열의가 담겨 있지만, 그러나 특별한 격렬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많은 사진에 관심을 품고, 그것들을 정치적 증언으로서 받아들이거나, 훌륭한 역사적 화면으로 맛보는 것은, 그리하여 스투디움(일반적 관심)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인공에게, 표정에, 몸짓에, 배경에, 행위에 공감하는 것은 교양문화를 통하기 때문이다.”


8. 교양을 통해 얽어낼 수 있는 요소인 스투디움과는 달리, 두 번째 요소인 푼크툼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요소는 스투디움을 파괴(혹은 분해)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나의 지고의 의식을 스투디움의 장에서 충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의 장면에서 화살처럼 나타나 나를 꿰뚫고 나가는 것은 저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스투디움을 파괴하는 것, 앞에서 언급한 사진을 가지고 말하자면, 병사의 뒤를 지나가는 수녀들, 소년의 유해의 벗겨진 한쪽 구두, 코에 손수건을 대고 있는 여자 등. 그것은 문화적 문맥에서의 니카라과의 반란이라는 사진의 독해를 휘젓고 상처를 입히고 느끼기 쉬운 고통 같은 것을 아로새긴다. 바로 이 때문에 바르트는 라틴어로 ‘찔린 상처, 날카롭고 뾰족한 도구로 새겨진 표식’을 나타내는 ‘푼크툼’이라는 말을 배정한 것이다. 푼크툼은 ‘찔린 상처,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금’이며, “어떤 사진의 푼크툼이란 나를 콕콕 찌르고, 내 가슴을 죄여온다.”


9. 푼크툼의 경험을 일으키는 사진의 특성으로서, 바르트는 이 책을 통해 ‘세부’와 ‘시간’의 두 가지를 꼽는다. 1부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푼크툼은 ‘세부’이다”(CC: 58)라고 하며, 사진의 ‘세부’에서 우발성[‘모험’]의 매력을 찾아내며, 푼크툼에 등록한다. 이 ‘세부’성은 사진의 그 정확함에 의해 유지된다. 촬영자는 지향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완전히 입각해 통제 하에 둘 수 없다. 이에 따라 사진이 촬영자가 의도한 사회-문화적 코드, 즉 스투디움적 요소에 어긋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이 담아내게 되며, 보는 자는 그 코드를 빠져나간 요소에서 우발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중요한 미디어 특성은 벤야민의 “무의식이 기입된 공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다양하게 표현을 바꾸면서 수많은 사진론에서 거듭 말해져 왔다.


10. 이 특성에 의해 사진은 작성자의 의식이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회화나 담론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앙드레 바쟁(Bazin 1958)이 일찍이 강조했듯이, 이 특성은 복수의 기계[기술성]의 교차라는 객관적 중개물에 의해 담보된다. 렌즈에 의해 포착되고, 셔터가 눌러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은 화학반응으로서 빛이 필름이 직접 인화된다. 따라서 지향대상이란 빛을 통해서 물질적으로 ‘직접’적으로 연결을 갖는(‘빛photo’을 ‘기록하다graph’) 것이지만, 이 ‘직접’적 관계는 퍼스Charles Sanders Pierce,의 기호학에 따르면 ‘인덱스’가 된다. 이리하여 인덱스성은 일반적으로 사진의 미디어 특성의 중요한 요소로서 확고하고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바르트에게서도 이 인덱스성은 ‘모험’을 초래하는 사진의 우발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진 속의 친화할 수 없는 엉뚱하고 부정합적인 요소가 보는 자의 눈이나 관심을 끌어들여 정동을 자극한다. 이것이 ‘세부’적 푼크툼이기 때문이다. 


* 바르트의 사진론에 관해서는 몇 가지 특기할 것이 더 있으나, 올린Olin의 논의가 자못 흥미롭다는 것을 지적하고 분량상 여기서 마무리한다.

 

민주주의, 비합의, 소통

Démocratie, dissensus, communication


* 이 글은 2004년 1월 24일, 오사카대학교 待兼山 회관에서 이뤄진 강연회의 원고의 완역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문부과학성 과학기술진흥조정비 정책제언 「임상 커뮤니케이션 모델의 개발과 실천」의 초대로 일본을 방문했다. 소제목은 일본어판 옮긴이의 것이다.

* 이 글은 다음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번역을 할 때 <합리적 추론>에 근거하여 많이 수정했다. http://scfdb.tokyo.jst.go.jp/pdf/20021730/2003/200217302003rr.pdf

* 옮긴이 : 중간에 번역하지 않은 구절이 있는데, 이는 원문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합의란

이 강연 제목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정식화함으로써 저는 ‘민주주의’, ‘소통’, ‘합의(consesnsus)’라는 세 용어를 동일시하는 오늘날 지배적인 경향을 다시 묻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명사입니다. 관념이나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보다도 현행의 국가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다양한 꼴의 시민참여를 보증하고 권력의 한계를 정하는 법적 구조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국가는 점점 더 공동체에 공통하는 것의 상징적 구조화 ― 합의라는 말은 이것을 나타냅니다 ― 에 의해 특징지어지고 있습니다. 합의라는 말은 얼핏 보면, 우리의 사회가 더 이상 구조화를 초래하는 분할이라는 양태로는 나타낼 수 없으며, 내전이나 사회전쟁과 같은 대립을 넘어서는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다양한 집단의 집합으로 나타납니다. 이 집단의 이해는 객관화될 수 있는 공통이해의 요구와의 관계에서 서로 대립하는 동시에 교섭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국가와 사회 사이의 어떤 종류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 관계에 있어서 국가는 무엇보다도 우선 사회에 관한 앎의 처리를 행하는 하나의 심급입니다. 국가는 공동체의 이해나, 그 공동체가 놓여 있는 세계의 상태, 또한 그 세계의 상태와 공통이해가 대립하는 이해들 사이의 교섭에 부여할 여지, 그 교섭이 보증해야 할 균형에 지식을 전념시키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합의 국가는 전문가의 앎을 사회에 집중시키고 사회의 대표자들과의 교섭을 조직합니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이 앎의 명증성이, 즉 논의 가능하고 교섭 가능한 것을 정하는 경계의 명증성이 분유되도록, 끈덕지게 의사소통의 작업에 종사해야만 합니다. 합의국가는 점점 더 학교의 교사로서, 전문가의 앎을 일반에 보급시키고, 국가가 제시하는 해결만이 현실의 데이터에 기초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된다고 설명하는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전문가에 의한 사정(査定), 협의, 의사소통, 교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이러한 합의 국가의 슬로건입니다.

이러한 슬로건은, 언어는 객관화하는 기능을 가지며 공동체의 근거에는 언어가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에 크게 준거하고 있습니다. 계급들의 분리와 그 사이의 투쟁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공동체관이 여럿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합의의 철학이 대립시키는 것은, 정치적 공동체를 언어의 일련의 절차에 정초시키는 견해입니다. 이 언어의 절차 자체, 정치적 공동체의 원리와 언어의 의사소통 원리 사이에 근본적 적합성이 있다는 사고방식에 준거하고 있습니다. 합의의 철학은 정치적 공동체의 근거를 어떤 특정한 존재방식의 언어의 합리성에, 또는 인간의 본질에 의해 인간성이나 언어능력과 정치적 능력을 동일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둡니다. 합의의 철학이란 다양한 종류의 활동영역과 결부된 이해들을 매개하고 각각의 이해에 특유한 합리성의 형식들을 보편화하는 데에 적합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고 하는, 하버마스적 사고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존 롤즈의 절차이론에 의한 사회계약모델의 재론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주 단순히, 설명하고 논의한다고 하는 언어능력을 부여받은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서 간주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의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 목표는 민주주의, 합의, 의사소통 언어 사이의 이런 지배적인 관계를 다시 묻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국가의 호칭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논리의 대리보충(supplément)이라는 것, 이 대리보충에 의해 정치는 정치로서 제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정치는 언어라는 [인간에게] 공통의 본질로부터 연역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언어의 실천 한복판에서 생기는 분할로부터만 연역된다는 것을 우선 보여주고자 합니다. 제가 비/불-합의(dissensus) 또는 불화(mésentente)라고 명명하는 것은 이 분할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합의는 정치의 논리 그 자체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 결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본질로서 오늘날 찬양되고 있는 합의는 사실상 정치적 민주주의의 상실이라는 사태라는 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 감성적인 것의 분유

그런데 저는 언어, 정치성, 민주주의의 관계를 검토해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계약에 관한 근대의 다양한 이론들, 혹은 의사소통에 관한 현대의 여러 이론들 이전의 정식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습니다. 그것은 인간성, 언어능력, 정치적 능력의 관계를 둘러싸고 그 핵심을 찌르는 이론적 정식화입니다. 그 정식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가지 유명한 정식 속에 요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정식은 <정치학> 1편에서 발견되는데, 인간이라는 동물의 정치적 본성의 근거의 보유에서 찾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 덕분에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따라서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에 관한 감정을 공통의 것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와 부정의를 분명히 하고 그것에 관해 논의하는 것을 가능케 한 언어와, 쾌락과 고통의 감정을 표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에 불과한 동물의 소리를 대립시킵니다. 두 번째 정식은, <정치학> 제4편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만, 정치적 주체, 즉 시민을 명령하는 것과 명령받는 것으로 관여하는(avoir part, 몫을 갖는) 주체로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정식은 정치적 관계의 수수께끼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관여하다’란 사실상 어떤 사태를 가리킬까요? 또한 어떻게 명령하는 사람의 입장과 명령받는 사람의 입장에 대등하게 관여할 수 있을까요? 보통 생각한다면, 논리적으로는 동작주(agent)의 입장이거나 피동작주(patient)의 입장이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관여하다’란 이러저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입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통치되는 자에게는 통치자의 입장에 서는 능력을, 통치자에게는 언제나 통치되는 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이 정반대의 입장을 대등하게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활동을 행할 소질과 그 영향을 겪는 소질이라는, 정반대이자 상호보완적인 두 개의 소질로부터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이 귀결한다고 보통 생각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능력은 아무래도 그런 사고방식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즉, 정치적 상호보완성을 그 자체 위에서 정초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여기서 언어교환이라는 모델이 도움을 줍니다. 언어교환에서는 말의 수신자가 발신자와 대칭적인 입장을 차지합니다. 언어행위는 수신자에게서도 대칭적인 능력을 상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상태를 표명할 뿐인 소리가 아니라 교환의 상호성 속에서만 행사되는 분유된 능력을 함의하는 언어를 가진 인간이야말로 당연히 상반되는 두 입장에 관여하는 시민의 원칙이 됩니다. 이리하여 정치적 동물이라는 정의로부터 통치하면서 통치되는 시민이라는 정의가 쉽게 귀결합니다. 말하는 힘은 만인이 평등하게 보유하는 속성이며, 각자는 이 속성 덕분에 타인의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타인의 입장에 서는[타인을 대신한다는] 것은 첫 번째 뜻으로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타인의 언표행위와 입론이 의미를 줄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하여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뜻으로는 타인과 입장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 주권자의 역할과 주권이 행사되는 자의 역할 둘 다를 대등하게 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언표의 의미를 이해하고, 평등한 발화자의 공동체에 참여하며, 정치적 공동체에 참여한다고 하는 세 가지 사태 사이에서, 연역은 직선적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이성의 이론도, 이렇게 연역은 직선적으로 이뤄진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해 있습니다. 즉, 언어교환을 한다는 것은 상호 이해(대화)라는 목적/텔로스가 지배하는 역학에 자신의 언표를 따르게 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타인의 말을 듣는(entendre) 감각기관의 능력과 타인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comprendre) 지적 능력,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 서는 능력 ― 자기 자신의 언표를, 타인의 입장에서, 마치 타인의 언표인 것처럼 판단하는 능력 ― 은 직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즉, 언어를 듣는 능력은 그것 자체, 언어능력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entente)라는 목적을 갖는 것이게 됩니다. 언어를 듣는 능력은 행위수행적 모순에 빠져서 자기 자신의 담론이 정초되어야 할 언어장치(dispositif langagier)를 파괴하지 않는 한, 발화자 각자가 순응해야만 하는 보편화라는 원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은 제시되자마자 붕괴되어 버립니다. 직선[으로 생각된 연역]은 직선이 아닙니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적성을 평등하게 갖고 있더라도, 그것에 의해서 평등한 발화자로 이루어진 어떠한 공동체도 산출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현대인보다도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공동체에 근거를 부여하는 것은 입장의 상호성이 아니라 분유된 어떤 것, 즉 정의와 부정의를 전하는 능력입니다. 언어를 통한/매개로 한 공동체란 [동물이 지닌] 단순한 쾌락·고통의 감각으로부터 구별되는, 이런 감정의 공동체입니다. 단순히 발화자와 수신자의 입장을 교환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발화자가 평등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노예제사회에서 사는 사람에게 사태는 명백합니다. 노예는 주인이 명령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령 그 자체가 행사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 [언어능력에서의] 평등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노예가 정치적 공동체에 참여하는 존재라고 하는 것으로는 물론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는커녕 노예는 언어능력을 가진 자의 공동체에 참여할 수조차도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노예가 언어에 관여한다는 것은 이해의 양태에서이며, 보유의 양태에서가 아닙니다. 노예는 언어를 이해하더라도, 언어를 보유하고 있진 않습니다. 따라서 말한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과 같은 게 아니며, 듣는다(이해한다)는 것은 듣는다는 것과 같은 게 아닙니다.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는 것으로는 공동체에 ‘관여한다는 것’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는 것은 공동체에 ‘관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정의, 부정의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말한다’란 단어나 메시지와 동시에, 일종의 감성적 정의를, 일종의 입장의 배분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감성적인 차이를 사용하여 공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능력이나 무능력을 등록하는 이 입장의 배분을 ‘감성적인 것의 분할/공유(감성적인 것의 나눔, partage du sensible)’로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프랑스어의 ‘분유(partage)’는 양의적인 말이며, 공동성(communaité)과 동시에 분할(séparation)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공동성이란] 만인이 동일한 것의 몫에 관여하는 것이며, [분할이란] 각자가 몫의 배분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 고정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감성적인 것의 분유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그 사람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또한 그 사람이 무엇인가를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따라서 순환적으로 정의하는,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공통세계의 구분입니다. 감성적인 것의 분유란 단순히 주인과 노예, 영주와 자유평민,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당연한 입장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감성적인 것의 분유에 의해서, 무엇보다 우선 감성적인 세계의 형식들 그 자체가 당연한 장소에 배치되는 것이며, 그 형식을 통해서 입장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되며, 담론이 들려지는 것으로 되며, 능력이나 무능력이 명백한 것으로 됩니다. 감성적인 것의 분유에 의해서 공통의 대상으로서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규정되며, 합당한 말로서 들려지게 되는 것과 고통스런 신음소리로만 들려지게 되는 것이 규정됩니다. 그 규정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분유, 말과 단순한 목소리의 분유를 규정하는 것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발랑슈의 우화

즉, 한편으로 몫은 능력으로부터 직선적으로 연역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능력 그 자체가 늘 계쟁적(litigieux)인 것이며, 늘 어떤 ‘정의’, ‘부정의’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말과 동물의 소리의 구별도 그것 자체로 늘 계쟁적인 것입니다. 구별의 기준이 되는 물리적인 명증을 특정하는 것은 일종의 감성적인 것의 분유입니다. 우선 물어야 할 것은 타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이해해야 하는 말로서 이해하는가 여부입니다. <불화>에서 저는 이 논점을 프랑스 작가인 발랑슈로부터 빌려온 우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이 우화는 로마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삽화 중 하나, ‘평민[군대]의 아벤티누스 언덕으로의 철수/이탈’를 발랑슈가 고쳐 쓴 것입니다. 발랑슈의 이야기에서는, 대립 전체가 하나의 문제, 즉 평민들은 말을 하는가 아닌가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조약을 요구했습니다. 혈통귀족들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말을 부여하는[언질을 부여하는, engager sa parole)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갖고 있는 것밖에는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평민들은 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귀족 중에서 평민이 말하는 것을 확실히 들었다고 보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귀족들의 대꾸는, 그가 착각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평민에게는 말할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민은 말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말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평민의 입에 붙어서 나오는 것은 “알 수 없는 소리 같은 것”으로, 욕구의 징표이며, 지성의 출현이 아니다. 평민은 이름도 없는 존재이며, 단순히 생식에 운명지어진 존재이다[라는 대꾸입니다]. 귀족 중 한 사람이 평민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불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을 하는 존재만이 본래적 의미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을 하는 존재 중에서도 어떤 이름, 어떤 전통을 전하는 자만이 존재한다. [이렇게 말했던 겁니다.] 이 일화는 단순히 혈통귀족의 견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성적인 것의 분유 그 자체를, 사람들의 상호 입장을 고정하는 감취(感取) 가능한 ‘정의’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평민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시키기(entendre, 들려주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들이 말을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말을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감성적 세계를 형성해야만 합니다. 그들도 또한 말을 하는 존재임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자신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맹세의 말을 하고, 신탁을 내려야만 합니다. 평민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 상징체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 이 사실은 말을 하는 존재라는 것, 즉 공유하고 있는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상징적 장면을, 위반에 의해서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발랑슈의 우화는 극단적인 허구입니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허구에 의해서 정치가 입각한 대화(interlocution)의 구조가 분명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언어능력으로부터 귀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능력은 공통의 것이지만, 어떤 꼴의 공동체도 이로부터 직접 도출되지 않습니다. 언어적 평등이 작동하는 것은, 말을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 말과 단순한 소리[의 다름]를 분명히 하는 감성적인 것의 분유, 바로 이것의 한복판에서입니다. 실제로 문제는 혈통귀족이 평민이 말하는 것을 듣기를[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게 아닙니다. 혈통귀족이 평민을 말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귀족들의 지각이 그 속에서 작동하는 감성적인 것의 분유에 의해서는, 이름도 없는 존재를 말하는 존재라고 지각할 수 있는 어떤 여지도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의사소통적 이성의 도식은 기능할 수 없습니다. 혈통귀족의 입장에는 ‘행위수행적’ 모순이 없습니다. 행위수행적 모순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대화의 장면이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경우뿐이며, 토론하는 쌍방이 이미 적어도 말하는 존재로서 공통의 것을 토론한다고 서로 인정하는 경우뿐입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평민들에게 이런 종류의 어떠한 공통성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토의의 무대도, 그 대상도, 그 주체도 보지 않습니다. 이러한 거부는 행위수행적 모순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의 감성적인 이질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평민들 쪽은, 자신들의 대의를 입론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자신들의 입론이 입론으로 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그런 무대 위에서, 귀족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대상을 보도록 하며, 귀족들이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주제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공통성[공동체]을 창설하고 그러한 공통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조차도 거기에 포함되어야만 합니다. 바꿔 말하면, 평민이야말로 말과 단순한 소리 사이에, 현행 질서의 정의와 고통스런 불만을 내뱉는 동물들의 반란 사이에 순수하게 외재적 관계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분유된 말과 정의의 무대를 둔다고 하는, 행위수행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불화 또는 비/불-합의

제가 불화 또는 비/불-합의의 상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상태입니다. 프랑스어에서 ‘불화(mésentente)’라는 말은 서로 이해하지 않고서도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이런 상황을 나타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화’는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분열을 나타냅니다. 즉, 어떤 감성적인 것의 분유를 통해서만, 감각기관에 의한 이해/청취(entente)와 언어능력에 의한 지적 이해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불화는 다양한 형식을 취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형식의 동의도 없는 채, 타인의 담론을 듣는다는 상황입니다. 타인이 소리를 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그 소리를 말이라고는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거꾸로 말을 주고받고 있는 관계를 만들었지만 상대가 당신의 말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모든 상황에서, 말한다는 것이 이중화됩니다. 이것이 비/불-합의의 상황입니다. 비/불-합의는 이해관계나 관념, 가치 사이에 생기는 대립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성적인 것 속에 반입된/들여온 이중화를, 감성적인 것들의 분유 사이에 생기는 대립을 의미합니다.

제 명제는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은 비/불-합의라고 하는 형식에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비/불-합의가 정치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비/불-합의의 형식은, 다소나마 난폭한, 혹은 세련된 형식을 취합니다. 말을 한다고는 생각되지 못한 평민들의 사례는, 극단적인 허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허구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며, 아주 오랜 역사를 정리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인류의 대다수에게, 즉 노동자나 여성들에게 정치적 존재로서의 자질을 거부하기 위해서, 그들이 가정이나 직장이라고 하는 어두운 세계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삶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세계이며, 공유하고 있는 것에 관한 어떠한 지각도, 어떤 담론도 생길 수 없는 세계, 배고픔이나 고통, 히스테리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밖에는 생기지 않는 세계입니다. 노동자운동이나 여성해방운동이라고 불렸던 것은 공공세계와 사적·가정적 세계, 생산과 재생산에 운명지어진 세계와 공공적 활동과 언동(言動)에 운명지어진 세계 사이의 분할=공유를 다시금 문제로 삼았습니다. 이런 운동들은 무엇보다 우선 감성적 세계를 고쳐 쓰는 것에 있었습니다. 사적인 것과 목소리의 세계에 갇혀진 존재는 자신들도 또한 말하는 존재자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사적 세계도 또한 하나의 공공세계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의 무대를 만들어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공장이나 노동계약에 관한 사적인 문제를 공공의 토의에 속하는 문제로서 재배치하고, 여성은 자신들도 공공의 문제에 관한 말을 지닌 사람이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공통의 대상을 보려 하지 않고, 그들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토의의 당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고용주와 남성, 통치자들을 대화의 장치(dispositif)의 상대로서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 비대칭성에 의해서, 정치적 대화가 모든 단순한 [말의] 주고받기의 상황으로부터 구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장면에서 말의 주고받음이 이뤄진다는 것은, 거기에 어떤 정의가 형성될 때뿐이며, 바꿔 말하면 대칭성과 비대칭성, 정의와 부정의 사이의 관계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 감성적인 것의 분유가 형성될 때뿐입니다.

오늘날 시대착오적이 된 공공생활의 영웅들의 시대에서의 이러한 비/불-합의의 장면 중 상당수는 기쁘게 버립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들은,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능력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평등성 그 자체는 끊임없는 계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행정의 근거가 되는 자명한 사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시위대가 거리로 나올 때, 문제가 되는 정부나 그 전문가들이 시위대의 말을 일반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는 잘 알고 계신대로입니다. 이성적인 분석이나 토의의 대극에 있는, 불만에 찬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나 말장난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지각의 간극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구조적인 것입니다. 비/불-합의에 특유한 방식으로, 말하는 존재의 평등이 효과를 갖는 한에서, 정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는 존재의 평등이, 비/불-합의가 조직될 가능성 그 자체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말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평등한 관계와 불평등한 관계의 균형을 취하는 비/불-합의라는 형식에서만 이 평등은 효과를 갖습니다. 정치는 공동체의 어떠한 언어적 본질도 실현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공동체 속의 또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체에 대한 또 하나의 공동체로서 존재합니다. 정치는 보충대리라는 꼴로 산출됩니다. 즉,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을 정하는 감성적 소여에 분열을 생기게 하는, 과잉적 주체가 있는 한에서, 정치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출발하여 정치적 주체 그 자체를 규정하는 상호성의 수수께끼 같은 정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즉, 정치적 주체란 통치하는 것과 통치되는 것에 관여하는 것입니다[관여한다는 정식입니다]. 이 정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의 교환에 있어서의 상호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꾸로, 비대칭성입니다. 정치적 주체란 교환에 있어서 두 입장을 번갈아서 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칭성의 안에 있는 비대칭성을 문제로 삼는 사람, 평등과 불평등의 관계를 문제로 삼는 사람입니다.


민주주의

이 문제화에는 고전적인 명칭이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인민의 권력을 나타내는 이 개념은 합의에 의한 거짓의 명백함으로부터 분리되며, 그 수수께끼에 싸인 빈축을 사는 것의 성격으로 되돌려지지 않습니다その謎めいた顰蹙ものの性格に引き戻されねばなりません. 민주주의는 수많은 통치의 형태 중 하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분류의 논리 그 자체를 파괴하게 되는 특이성, 또는 예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권위의 원리에 기초한 통치에서 이용되는 정치의 개념 그 자체를 파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듯이, 데모스 및 민주주의라는 말은 애초에 공공적 존재가 될 조건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이 공공의 사항에 대해 입밖에 내는 것을 비난하는 모욕적인 호칭이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오뒤세이아는 데모스에 속하는 주제에 말하려고 하는 ‘평민’ 테르시테스를 지팡이로 칩니다. [데모스에 속한다는 것은] 즉 그가 말하듯이, 정원 외의 사람들로 이뤄진 미분화의 오합지졸에 소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역이 아니라 규정입니다. 데모스 출신자란 계산 밖의 사람, 말하는 존재라고 계산되지 않은 데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최하층민에 의한 통치, 즉 통치를 정초하는 어떠한 자격도 갖지 못한 사람들, 즉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재산도 사회적 위신도 없이, 특별한 학식도 없는 사람들의 역설적인 통치, 빈축을 사는 것의 통치를 의미하는, 아테네의 귀족이 제출했던 비웃는 말입니다. 데모스에 의한 통치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데도 말을 하는 사람들에 의한 통치, 통치할 자격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데도 통치하는 사람들의 통치입니다. 이것은 <법률> 3권에서 플라톤이 분명하게 했던 사태입니다. 3권에서 플라톤은 통치하기 위한 모든 자격을 상세하게 검증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그러한 자격 중 6개를 거론하며, 통치해야 할 소실과 통치되어야 할 소질 사이의 상보성을 보여주는 동일한 고유성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통치는 아이들에게, 노인의 통치는 젊은이에게, 주인의 통치는 노예에게, 귀족의 통치는 일반인들에게, 강자의 통치는 약자에게, 그리고 학자의 통치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초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치의 일람표는 끝날 터입니다. 하지만 일곱 번째의, 플라톤이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신의 몫’이라고 부른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우연의 통치, 제비뽑기/추첨에 기초한 통치, 즉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통치의 셈에 들어가지 않는 통치, 통치하는 자와 통치되는 자의 입장이 그 지위를 차지하는 능력에 의해 정해지는 사물의 통상적인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는 통치입니다. 민주주의는 통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빈축을 사는 것의 통치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치의 원리 그 자체를, 즉 통치된다고 하는 추가적 소질을 정하는 통치할 자격의 존재를 파괴하는 통치인 것입니다. 그것은 무질서/무원리(아나키)의 역설적인 통치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무질서의 통치가 통치하는 것과 통치되는 것 둘 다에 관여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치적 주체의 정의에 의해 생겨난 의문에 대한 대답을 가져다줍니다. 이 대립하는 것들의 동일시는 자연적인 입장의 상호성으로부터 생기는 게 아닙니다. 거꾸로 이 동일시는 통치하는 자와 통치되는 자의 입장 사이의 모든 상보성의 단절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통치하거나 통치된다는 사실을, 통치하거나 통치된다고 하는 소질에 의해 정당화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의 단절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정치는 [통치하는 것과 통치되는 것이라고 하는] 반대의 입장에 관여함으로써 정치로서 규정되는 것입니다만, 이 참여는 계산 밖의 사람들, 통치하기 위한 모든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통치로서의 데모스를 제외하는 것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란 통치의 한 형식이 아닌 겁니다. 민주주의란 바로 정치의 상징적 창설인 것입니다. 정치란 본질에 있어서는 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란 이 통치하는 것의 자명성을 중단시키는 것이며, 어떤 집단이 자신들에게 고유한 소질을 명목으로 삼아 통치를 행할 능력을 실추시키는 것입니다. 정치란 엄밀하게 이해한다면, 통치하는 것의 모든 정당성의 해체를 그것 자체 속에 포함하는 통치형식인 것입니다. 정치란 말하는 존재가 평등하다는 것이 명령의 불평등한 기능의 방식에 필요한 것처럼, 모든 불평등의 기능 방식에 필요한 평등의 실현인 것입니다. 말하는 존재가 평등하다고 하는 것은 특정한 공동체라는 꼴로 직접적으로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이 평등은 불평등을 형성하는 조건들 속에서 행사됩니다. 평등이 무조건적인 평등으로서 스스로를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물의 통상적인 질서를 위반함으로써일 뿐입니다. 평등이 평등으로서 스스로를 분명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추가라는 형식, 비/불-합의라는 형식, 위반이라는 형식에서일 뿐입니다. ‘데모스의 통치’란 이런 위반의 총칭적 명칭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치적 인민이란 주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의 공동체의 전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민 중에서 불리한 처지에 있는 당사자[=부분, partie]도 아닙니다. 정치적 인민은 실제의 주민의 집단으로서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민의 당사자들, 이 당사자들이 공동체에 참여할 자격, 이 자격에 따라서 되돌아올 공통의 것의 몫, 이러한 모든 것을 셈에 넣는 계산에 대한 보충대리인 것입니다. ‘인민’은 보충대리적 존재이며, 셈에 넣어지지 못한 사람들의 계산을, 혹은 몫 없는 자의 몫을, 요컨대 그것 없이는 불평등조차도 생각할 수 없는 말하는 존재의 평등을 편입합니다/엮어 넣습니다. ‘몫 없는 자들’이라는 개념은 포퓰리스트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의미에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노동에 시달리고 괴로워하고 허덕거리는 주민이 아닙니다. 오늘날 제외된 자라고 불리고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목 없는 자’란 일반적으로 통치할 자격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잠재적인 전체를 가리킵니다. 민주주의에 의해서 공동체 전체와 동일시되는 것은 보충대리적인 공허한 당사자[즉 데모스]입니다. 이 당사자에 의해서 공동체는 사회체의 당사자의 합계로부터 구별되며, 통치는 통치할 특정한 자격의 구체화로부터 구별됩니다. 이 첫 번째 구별에 의해서 정치는 사회의 당사자의 총계에 대한 잉여로서 엮여지는/편입되는 보충대리적 주체의 활동으로서 정초되는 것입니다.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인민이 인구나 인종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주민 중의 불우한 당사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산업노동자의 집단이 아니라, 사회의 당사자의 총계에 대한 보충대리로서, 셈에 넣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계산 또는 목 없는 자들의 몫의 특정한 형상을 엮어넣는/편입하는 주체인 한에서입니다. 이러한 몫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치의 쟁점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 계쟁의 대상입니다. 정치적 대립은 상이한 이해를 지닌 집단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당사자나 몫을 상이한 방식으로 계산하는 논리를 대립시키는 것입니다. 정치적 계쟁은 목 없는 자들의 몫의 존재에 관련됩니다. 공동체의 당사자를 셈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우선 모든 보충대리를 제외하고 실재하는 당사자만, 출생이나 노동, 사회체를 구성하는 지위나 이해라는 점에서의 차이에 의해 규정되는 실재의 집단만을 셈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방식은 ‘나아가’ 목 없는 자들의 몫도 셈에 넣습니다. 저는 첫 번째의 것을 ‘폴리스’라 부르고, ‘정치’라는 호칭을 두 번째의 것으로 간직해두자고 제안했습니다.


폴리스와 정치

제가 폴리스라고 부른 것은 관리나 억압처럼 사회의 특정한 기능이 아닙니다. 폴리스는 국가기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푸코가 말하는 삶/생명의 관리의 형식도 아닙니다. 폴리스란 공동체의 상징적 구성, 감성적인 것의 분유의 형식입니다. 폴리스의 특성은 모든 공허나 보충대리를 배제하고 공동체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서의 공동체는 특정한 행동양식을 취하도록 정해진 집단, 그 작업이 행해지는 장소, 그리고 그 작업이나 장소에 어울리는 존재양식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기능과 장소, 존재양식이 적합하다면, 어떠한 공허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는 것이 국가의 실천을 지배하는 폴리스의 원리입니다. 정치의 본질은 몫 없는 자의 몫을 더하여 계산함으로써 이러한 배치/장치를 교란하는 것입니다. 이 보충대리적 계산은 제가 정의했던 의미에서의 비/불-합의, 즉 감성적 소여의 분할에 의해 출현합니다. 정치는 폴리스의 세계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 말을 할 수 있는 것, 셈해질 수 있는 것의 변경으로서 출현합니다.

‘폴리스’나 ‘정치’라는 말이 통상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보면, 지금 말했던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정치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이 투입될 때, 무엇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우선 ‘공공의’ 장소, 즉 도로의 소유와 사용에 관한 계쟁입니다. 폴리스에 있어서 도로는 사람이나 재화가 순환하도록 정해진 공간입니다. 정치는 이러한 용도를 교란합니다. 도로는 정치에 의해서, 그러므로 공통의 문제를 다루라고 주장하는 정원 외의 주체(‘민중’, ‘시민’, ‘노동자’ 등)가 시위를 하는 공간으로 됩니다. 폴리스에 있어서 공동체에 관한 문제가 다뤄지는 공간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즉, 그 용도가 정해진 공공시설에서, 그 직무를 맡도록 정해진 사람들에 의해서 다뤄지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정치는 감성적 세계에 혼란을 도입하고, 거기서 해야 할 것, 봐야 할 것, 계산해야 할 것의 공간을 고쳐 씀으로써, 몫이나 당사자의 배분을 틀어지게 합니다. 정치는 계급이나 당사자 사이의 대립이기 전에, 감성적 세계의 배치를 둘러싼 대립입니다. 이런 대립의 행위자(actor)나 대상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 배치에서입니다.

[감성적 세계의 배치를 둘러싼] 이 대립에서 바로 언어의 ‘정치성’이 출현합니다. 정치가 우선 발표나 슬로건, 주체의 이름에 의해 특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치적 주체의 이름에는] 고전적인 이름도 있다면, ‘공장노동자’나 ‘프롤레타리아’와 같이 한 시대를 긋는 이름도 있으며, ‘인민’이나 ‘시민’처럼 시대를 넘어선 이름도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 때문에 발안되었던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68년 5월의 파리 시위대의 “우리는 모두 독일계 유대인이다”라든지, 인종차별이나 외국인 배척 운동에 대한 최근의 시위대의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자식이다”가 그렇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처럼 고전적 슬로건도 있으며, 그 밖에도 특수한 요구나 항의에 있어서 살포되는 슬로건적 기호표현은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름이나 슬로건은 모두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계쟁적인 언표나 이름이며, 현행의 감성적인 것의 분유를 다시 묻는 보충대리적 언표나 명사입니다. 68년 파리의 시위 참여자들은 시위 차가자 중 한 명에게 부여된 “독일인 아나키스트”라는 모욕적인 호칭을 다시 채택하여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꼴로, 비한정적인 집합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변형했는데요, 그들[의 이런 방식]은 데모스라는 모욕적인 호칭을 목 없는 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자격이 없는 자들의 공동체로서의, 정치적 공동체의 이름으로 바꿨던, 저 최초의 논리를 요약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 주체의 이름은 늘, 특수한 말이나 집단행동 속에, 몫 없는 자들의 비한정적인 집합체를 포함하는 하나의 양식입니다. 즉, 정치적 주체의 호칭은 늘 특정한 감성적인 것의 분유에 의해 정해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말과 소음의 관계를 재차 문제로 삼기 위한 하나의 양식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정치적 주체의 이름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름이 행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이것은 거대 산업의 노동자 집단이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한정된 사회집단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우선, “아이를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라틴어 명사로, 법률에서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즉, 이름도 말도 갖지 못하고, 이름을 전하지도 못하고 재생산되는 존재인 겁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19세기의 노동자 투쟁이라는 특이성과, 이름을 갖지 못한 존재의 정치적 공동체로의 잠재적 포섭을 연결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노동과 재생산의 세계를 공공적 말과 활동의 세계로부터 구별하는 폴리스의 논리를 철폐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하나의 사회적 범주의 요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말과 소음의 배치 그 자체를 고쳐 쓰고, 다양한 형식의 언표를 지시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대화는 원리상 비/불-합의적이며, 비/불-합의적인 한에서 포괄적입니다. 정치적 대화에 의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게 되며, 시끄러운 동물로서만 들려졌던 사람들이 말하는 주체로서 들려지게 되며, 봐야 할 것도 토의해야 할 것도 없다고 선언되었던 사람들조차 대화의 상대로서 계산되게 됩니다. 그것에 의해서 정치적 대화는 계산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포섭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치에 고유한 주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주체란 늘 ‘데모스의 권력’의 특수한 현실화이며, 정치적 공동체를 폴리스적 공동체로부터 구별하는 몫 없는 자의 몫의 출현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주체에는 청년 맑스가 프롤레타리아에 관해 내렸던 정의, 즉 ‘사회의 한 계급이지만 사회의 한 계급이 아니다’라는 정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주체는 현세적인 주체화 장치로서만, 폴리스적 질서를 해체하는 논쟁적이고 역설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한정된 능력으로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주체는 늘 불안정하고 자신들의 몫의 최대화를 꾀하고자 하는 사회체의 당사자와 혼동되기 쉽습니다. 정치가 지배의 ‘정상적인’ 흐름의 특이한 일탈이라면, 늘 소멸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의 상실의 가장 근본적인 꼴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정반대의 것인 폴리스와의 혼동입니다. 정치적 주체에게서의 위협은 사회체를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당사자, 또는 이 사회체 그 자체와 혼동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자를 새로운 사람의 ‘영광의 신체’와 동일시했던 소비에트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다른 방식으로 현대의 합의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서 우리의 국가나 사회를 조정하는 합의는 엄밀하게 이해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합의란 단순히 다양한 꼴의 적대관계보다도 토의나 교섭에 특권이 부여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단순히 세계의 현상황에 관한, 또한 합의에 의해 권위가 부여되는 부와 권력의 국지적인 재배분의 가능성에 관한, 정부 여당과 야당의 포괄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합의란 감성적인 것의 데이터가 유일하고 일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합의의 관점에서, 경합하는 이해나 가치에 관해 토론할 수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수단의 효과에 관해서 토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의 데이터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상황의 데이터는 전문가의 앎에 의해 완전히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황의 데이터는 그것 자체가 다양한 절차에 의해 완전히 객관화될 수 있는 주민에게, 애매함을 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절차의 예로서, 주민의 각 당사자, 경제적 각 집단, 이데올로기상의 각 집단, 각 연령층이 각각의 문제나 제안된 해결책에 관해 지닌 생각을 고정화할 수 있는 여론조사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문제에 의해 정해진 집단이나 이해관계의 대표자들 사이의 교섭을 들 수도 있죠. 본질적인 것은 토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데이터와 동시에, 토의의 상대를 맡을 수 있는 주체를 객관화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합의란 원리상 몫 없는 자의 목은 제외하는 감성적인 것의 분유라는 것입니다. 합의는 공통의 상황의 데이터 그 자체에 관련된 비/불-합의를 도입함으로써, 몫 없는 자의 몫을 포섭하는 보충대리적 주체의 활동을 제외해버립니다. 확실히 합의도 제외자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는 그 사람들을, 이중화되고 정치적 주체화에 포함된 사람들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합의는 그들을, 사회가 사회의료나 교육에 의해 사회에 재통합하고자 노력해야만 하는 외부, 사회의 최하층에서 허덕거리는 사람들, 환자나 정신박약자로서만 인정합니다.

이것은 합의가, 말하는 존재의 능력과 공동체로의 귀속 사이의 단순하고 비/불-합의적이지 않은 관계를 전제로 하여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합의는 언어능력이란 공통경험의 감성적 데이터를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이나 설명 가능케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것들을 평등한 화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여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능력과 정치적 능력 사이에 단순한 관계는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언어의 투명성과 감성적 데이터의 투명성 사이에 단순한 관계는 없습니다. 합의는 말이 공통의 유용성에 관련된 메시지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말은 늘 메시지와 동시에 어떤 정의나 부정의를 전합니다. 말은 이해를 위해 필요한 평등과, 말을 문제로 삼는 불평등 사이의 특정한 관계를 전합니다. 말은 입장과 권한의 특정한 분배 방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학교로서의 합의 국가

정치적 비/불-합의는 평등과 불평등의 특정한 관계수립입니다. 비/불-합의가 지워진 곳에서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명백한 대상과 관련된 순수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거기서 나타나는 것은 다른 형식의 평등과 불평등의 연결입니다. 이 형식은 고전적 형식, 학교의 형식입니다. 이 강연의 초반에 지적했습니다만, 합의 국가는 점점 더 국가-학교(État-École)로 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실제로 평등과 불평등의 관계의 기능의 원형입니다. 학교는 말하는 존재의 평등을 기능시킵니다. 이 평등 없이는 교사의 말은 공허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평등이 기능하는 것은 일정한 불평등한 제도/레짐에서, 즉 지식의 불평등에서입니다. 이처럼 말하는 존재의 평등이 불평등하게 기능하는 것 자체가, 학생이 교사의 권위를 손에 넣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평등이라고 하는, 새로운 평등을 위한 준비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이 구조에 의해서 학교는 현대사회와 현대국가의 진보주의적 사회질서의 상징적 장소로 되었습니다. 즉, 불평등은 자기 소멸로, 도래할 평등의 지배에 가까워진다는 이미지입니다. 문제는 물론, 불평등이 좀처럼 자기소멸하지 않고, 평등이 그로부터 생긴다고 간주되는 불평등의 상황을 다시 만들어내 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교는 불평등의 자기소멸이라고 하는 공화국 정부가 부여한 프로그램을 한 번도 완수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했던 것은 거꾸로, 합의 정부라는 새로운 통치형식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합의 정부란 세계의 상황을 이해하는 수단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또한 따라서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것과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수단을, 제한 없이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학교 정부(gouvernement-École)입니다. 정보를 제공하고 전달하고 설명하는 것은 학교 정부의 슬로건이며, 그것은 우리를, 우리의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의 좁은 한계에 관해서, 또한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훨씬 더 좁은 한계에 관해서, 모조리 알고 있는 계몽된 시민이고자 할 기획의 슬로건인 것입니다. 합의 국가란 학교의 논리와 일체화한 국가, 즉 신민에게 그들의 무력감을 주입하고 신민에게 학식을 가져다주면 가져다줄수록 그 무력감을 주조해내는 국가인 것입니다.

1830년대에 조제프 자코토라는 프랑스인 교육학자, 혹은 반-교육학자가 진보주의적인 교육에 의한 평등이라는 논리 전체를 뒤쪽에서부터 공격하여 대학의 세계에 폭탄을 던졌습니다/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학생에게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만일 설명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게 되고, 점점 더 학생의 지적 무능력이 증명되게 된다고 자코토는 말했습니다. 불평등을 줄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불평등을 강화시켜 버립니다. 평등에 도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평등의 전제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즉, 자코토는 인민의 교육에, 지적 해방을 대립시켰던 것입니다. 이 지적 해방은 평등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의 역전에 기초하고 있으며, 식자(識者)와 무지한 자 사이에 거리가 있다고 하는 전제에서가 아니라, 지성은 평등하며 대등하게 말하는 존재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흥미를 갖는 것은, 이 관점의 역전을 어떻게 교육에 적용하는가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흥미를 갖는 것은 인민교육과 지적 해방의 대립에 의해 우리가 집단생활에서의 언어의 기능의 문제를 어떻게 고쳐 물을 수 있는가입니다. 집단생활에 관한 유용한 데이터만을 전달하는 중립적인 언어형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존재의 평등과 불평등의 관계의 전달이 늘 행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평등이 지닌 유효한 특성의 의미입니다. 이 유효한 특성은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동시에 이 유효한 특성은 비/불-합의를 통해서만, 두 개의 논리의 대결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야 비로소 말하는 존재의 평등한 능력에 의해 정치의 길이 열립니다. 합의가 지배적인 때에 우리의 말의 활동에 이러한 분리가 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1. 2013.09.09 16:21

    비밀댓글입니다

  2. 2014.02.15 02:19

    비밀댓글입니다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다니엘 벤사이드, 웬디 브라운,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크리스틴 로스,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김상운, 양창렬, 홍철기 옮김 

(978-89-961268-8-1 03100 | 릴리즈: 2010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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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거대 자본의 정치 개입과 미디어 장악, 국가‘이성’을 대체해버린 신자유주의적 ‘합리성’, 민의를 대표하기는커녕 사적인 이익 추구에 매진하는 정치권 등. 다른 한쪽에서는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항의꾼들이 국민을 볼모로 잡은 채 자신들의 소수의견을 관철시키려고 다수를 억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양측은 민주주의가 죽거나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강변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이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부고 소식에 ‘조서’(弔書) 한 장을 띄우려 한다. 과연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라고.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죽었다고 선언된 민주주의가 사실 무엇인지, 민주주의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민주주의는 어떤 주체를 만들고 있으며 또 어떤 주체를 기다리는지 등의 물음과 대면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공통되게 ‘민주주의’의 본뜻인 ‘인민(dēmos)의 통치(kratos)’를 환기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민주주의=인민의 자기통치’라는 어원분석에서 출발한 이론적 논의는 과연 “인민은 자기 통치를 원하는가? 민주주의적 자유를 원하는가? (근대) 민주주의는 ‘인민이 주인’(民主)도 ‘인민이 근본’(民本)도 아닌 ‘인민의 생’(民生)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가? 인민은 어느 때에 봉기했고, 봉기하며, 봉기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대면하지 않는 한 탁상공론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우리 독자들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답해주지 않을 그런 것이다.

 

 

판   형: 신국판 변형(140×210)

분   류: 인문・정치・철학

쪽   수: 216쪽

예정가: 11,800원

발간일: 2010년 4월 26일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재발명을 요구한다!” 현대 사상가들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모순과 역설, 그리고 가능성

 

이 책의 원제는 “민주주의, 어떤 상태에?”이다. 여기서 ‘상태’라는 말은 프랑스어 표현인 ‘차가 현상서’(état des lieux. 집을 임대해 들어가고 나올 때 집의 상태를 점검하는 보고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이 책은 라파브리크출판사의 대표인 에릭 아장이 민주주의라는 ‘장소’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여덟 명의 사상가가 이 요청에 나름의 ‘조서’(調書)를 제출한 결과물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가 과두제나 생명정치적 통치를 가리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했고, 또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를 정치와 동일시하거나, 계속되어야 할 혁명 또는 코뮤니즘의 이념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의 제목을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로 바꿨다.

거 

  1. Favicon of https://multitude.co.kr BlogIcon 상겔스 상겔스 2010.05.04 00:26 신고

    한겨레신문 서평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88.html
    경향신문 서평 :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4301757295&code=900308

드디어 구했다. 원하시는 분은 메일을 보내시라. sanggels@gmail.com 학교에 계신 분들은 도서관을 통해서 보시라...


Parallax, Volume 15 Issue 3 2009

TOC

Jacques Rancière: in Disagreement
Paul Bowman; Richard Stamp

Conjunctive Times, Disjointed Time: Philosophy between Enigma and Disagreement
Sudeep Dasgupta

Politics without Politics
Jodi Dean

Politics after Aesthetics: Disagreeing with Rancière
David Ferris

Heteroreductives – Rancière’s disagreement with ontology
Bram Ieven

Which Equality? Badiou and Rancière in Light of Ludwig Feuerbach
Nina Power

JR cinéphile, or the philosopher who loved things
Adrian Rifkin

‘A literary animal’: Rancière, Derrida, and the Literature of Democracy
Mark Robson

When Does Politics Happen?
Paulina Tambakaki

A few remarks on the method of Jacques Rancière
Jacques Ranciè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