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클로드 르포르의 낡음과 새로움

解説 クロード・ルフォールのさとしさ

토나키 요테츠(渡名喜庸哲)

 

* 아래에 번역한 것은 클로드 르포르의 책 <민주주의의 발명>의 일역자 토나키 요테츠가 이 번역서에 붙인 해설이다. 평이한 내용도 있고 정보도 있기에 번역해둔다. 이 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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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번역한 것은 한 권의 낡은 책이다.

낡았다고 한 것은 단순히 이미 최초로 출판된 때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책 전체에서 금세 읽을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직 소련이 세계에 대해 패권 중 하나를 쥐고, 동유럽의 민주화의 다양한 운동들을 억압했던 시대의 사건이다. 냉전 붕괴 이후, 이런 틀 자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 오늘날에서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낡고, 게다가 읽기 쉽다고 얘기할 수 없는 문체로 써진 책을 굳이 번역한 까닭은, 르포르가 지닌 뻣뻣하고 느릿한 충격을 전하는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이라는 시대에도 명확하게 손에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술하듯이, 이 책은 이후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한 가지 조류를 창시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런 영향관계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한쪽의 전체주의라는 말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학문적 검토를 받지 못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체제라면 어느 체제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제멋대로 사용하기 좋은 형용사나 비판을 위한 욕설로 격하되고, 다른 한편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마치 다수결이나 숫자 세기의 표대결 게임과 동의어인 양 회자되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 과정(르포르라면 권력자본지식이 융합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민주주의전체주의에 대해 지금도 색이 바래지지 않은 근원적인 고찰이 르포르에게는 있을 터이다.

얼핏 보면, 소련형 혹은 프랑스형 공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옹호하려고 하는 르포르의 손놀림은 자유주의’, 더 나아가 보수주의에 의한 공산주의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을 비판하는 형태로, 르포르 나름의 전체주의 비판을 제시하려고 했기 때문에, 르포르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보이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반공서’로 읽는 것은 완전한 오독이다. 맑스를 공부하면서도 이른바 맑스주의와는 선을 긋는 르포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이나 지배양식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창설됐을 공산주의를 자칭하는 사회에서조차도 왜 똑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조직화된 지배양식이 발견되는가, 그리고 좌파를 자칭해온 지식인들은 왜 이것을 현실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일관되게 쫓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르포르가 문제 삼는 것은 공산주의자유주의라는 구도 자체가 더 이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 포스트공산주의’(iv)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쩌면 전체주의공산주의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체주의민주주의의 둘 다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불가분의 것이라고 한다면, ‘전체주의의 모습을 한계까지 추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그 자체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당분간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로 그렇게 부르기에 알맞은가? 원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런 물음을 계속 제기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르포르의 딱딱하고 둔탁한 충격은 확실히 전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과 경력

클로드 르포르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La Brèche, avec Edgar Morin et Jean-Marc Coudray, Paris, Fayard, 1968/2008〔『学生コミューン西川一郎訳合同出版一九六九年

Éléments d’une critique de la bureaucratique, Genève, Droz, 1971/Paris, Gallimard, 1979〔『官僚制批判諸要素未邦訳

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Paris, Gallimard, 1972〔『マキァヴェッリ作品研究未邦訳

Un homme en trop. Essai sur « L’Archipel du Goulag », Paris, Seuil, 1975〔『余分人間──『収容所群島をめぐる考察宇京頼三訳未来社一九九一年

Sur une colonne absente. Écrits autour de Merleau-Ponty, Paris, Gallimard, 1978.〔『不在──メルロ= ポンティをめぐって未邦訳

Les Formes de l’histoire, Paris, Gallimard, 1978〔『歴史諸形象未邦訳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Paris, Fayard, 1981/1994.本書

Essais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le), Paris, Seuil, 1986.〔『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世紀)』未邦訳〕 ->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Écrire à l’épreuve du politique, Paris, Calmann-Lévy, 1992/Paris, Pocket, 1995〔『エクリール──政治的なるものにえて宇京頼三訳法政大学出版局一九九五年

La Complication ── retour sur le communisme, Paris, Fayard, 1999.〔『錯綜──共産主義への回帰未邦訳

Le Temps présent. Écrits 1945-2005, Paris, Belin, 2007.〔『現在── 一九四五年〇〇五年未邦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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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많은 논문을 집필했다.[각주:1] 또한 서문가序文家로서의 모습도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의 프랑스어 번역(Flammarion, 1985), 에드가르 키네의 『혁명(Belin, 1987), 단테의 『제정론(帝政論)의 프랑스어 번역(Belin, 1993)이나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필두로 하는 많은 저작에 서문을 붙였다.

 

클로드 르포드는 1924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파리의 카르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철학자 메를로-퐁티와 만난다. 메를로-퐁티의 영향으로 맑스에 눈을 뜬 르포르이지만, 서서히 트로츠키주의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정통적인 교설에 포함된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생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기부터 거부감을 깨닫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해 위화감을 품는다. 전후 유네스코에서 근무한 후, 194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전후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한 르포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라는 그룹을 설립하고,[각주:2] 동명의 잡지에서 이미 동구권의 관료주의적 지배양식에 대해 호된 비판을 던졌다. 50년대에 작성된 논문 중 주요한 것은, 이후 관료제 비판의 요소들역사의 형상들에 수록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에서도 훨씬 더 지배억압의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스토리아스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주류파가 자치또는 자율을 지향한 하나의 혁명정당으로서의 활동의 방향성을 탐색한 반면, 르포르는 그 어떤 조직화도 경직화하고 억압장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도저히 감추지 못했고, 1958년에 갈라선다. 맑스주의적인 문제계를 르포르 자신이 어떻게 빠져나갔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의 5장에서의 회고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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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Merleau-Po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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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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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르포르는 두 개의 중요한 논쟁을 했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논집 인류학과 사회학(1950)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서문을 붙였는데, 이것에 대해 르포르는 51년에 『레 탕 모데른느(Les Temps Modernes)에 발표한 논문 교환과 인간 사이의 투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특히 상징의 지위를 둘러싸고) 반론을 가했다.[각주:3] 다른 한편, 르포르는 실존주의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사르트르의 52년의 논고 공산주의자와 평화에 대해 『레 탕 모데른느195389호에 맑스와 사르트르를 발표하고, 사르트르가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을 동일시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고, 이 때문에 『레 탕 모데른느』와도 멀어지게 된다.[각주:4]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의 이별은 르포르에게 정치활동보다 대학에서 연구자·교육자로서 집필을 통한 정치철학의 이론화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65년부터 71년에는 칸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다. 거기서의 제자들로는 알랭 카이예, 마르셀 고셰, -피에르 르고프 등이 있다.

이른바 <685> 때에는, 옛 친구 에드가 모랭 및 카스토리아디스와 함께 곧바로 반응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공저 685: 균열(일역본 제목은 학생코뮌)을 같은 해에 저술했다(이 책의 장-마르크 크드레이는 카스토리아디스의 가명이다). 혁명의 주체를 학생운동에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계급에만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제쳐놓고, 르포르는 학생반란에, 단지 대학 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 대학으로 구현된 근대 산업사회 전반에 대한 재물음을 보고 있다. 동유럽의 민주화에 대해 논한 이 책에도 밑바탕에 깔린 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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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박사논문을 레이몽 아롱에게 제출하고, 국가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을 거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는 애드가 모랭과 함께 사회학·인류학·정치학의 영역횡단적 연구소”(현재의 에드가 모랭 연구소)를 지휘하고, 나중에 피에르 로장발롱과 함께 레이몽 아롱 정치학 연구소를 세운다. 1989년에 이 연구원을 퇴직한 후에도 정력적으로 집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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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의 르포르의 과제는, 1950년대부터의 관료제 비판의 작업에 의거하여, 후술하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출판을 필두로 하는 동시대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여분의 인간을 참조) 마키아벨리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 등의 정치철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전체주의개념을 정밀화하고, 거꾸로 그것과 대쌍이 되는 형태로 민주주의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 민주주의의 발명은 그런 일련의 작업의 성과에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조직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르포르에게 그때마다의 친구들과 더불어 발간하고, 열띤 논고를 모은 몇 호의 잡지를 간행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잡지로 이행하고 또 다시 새로운 친구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 과 새로운 잡지를 세운다는 단속적인 학술잡지를 통한 논의의 장이야말로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레 탕 모데른느이후에도, 68년에는, 현재는 현상학자로서 알려진 마르크 리실(이 책의 7장 참조) 등 브뤼셀자유대학의 학생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잡지 텍스처에 마르셀 고셰와 함께 참여하여 이 잡지의 편집에도 종사한다. 게다가 77년부터는 고셰와 더불어, ‘유토피아개념에 대한 사회사상사로 나중에 유명해진 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등과 리브르를 창간한다(이 책의 1, 9장의 초출은 이 잡지이다). 이 잡지는 80년대까지 계속되지만, 부언하면, 리브르의 면면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함께 시도한 것이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재독해이다. 현재도 프랑스에서 읽히는 자발적 복종론의 파이요 사의 문고판에는 당시에 쓴 고셰와 아방수르가 연명한 서문과 클라스트르의 라 보에티론에 덧붙여, 르포르의 <일자>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도 보이는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는 사상의 실마리를 라 보에티한테서 찾고 있는 것이다.[각주:5] 그 후 80년대에는 아방수르, 피에르 파셰, 니콜 로로 등과 새로운 잡지 과거/현재(Passé/Présent)를 창간하고, ‘개인이나 테러등을 테마로 특집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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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드 라 보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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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 아방수르(Miguel Abensour)

80년대에는 민주주의론, 혁명론에 덧붙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논고 등을 보탠 논집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19세기-20세기)을 저술했다. 이것은 본서와 나란히 르포르 정치철학의 이론적 고찰이 정리되어 있는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본서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면서 시사되고 있는 것에만 머물고 있는 중세적인 신학적 정치관의 현대적 잔존을 문제 삼는 중요 논문 신학-정치적인 것의 영속성?은 특필할 만하다.

이 시기의 르포르의 활동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이론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1988년의 이른바 라쉬디[루시디] 사건을 겪으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만 라쉬디[루시디] 옹호위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 라쉬디[루시디]론은 1992년 간행된 에크리르에 수록되어 일본어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론이나 다른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사드, 토크빌, 기조 등에 관한 논고도 수록되어 있고, 르포르의 사상적 영향관계나 동시대적 관심을 두루 살필 수 있다.

1999년 간행된 착종은 부제로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강조했지만, 물론 그때까지의 신랄한 공산주의 비판을 거친 말년의 변절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붕괴 이후 다시금 공산주의의 문제를 재검토한다는 계획 하에서 이와 관련된 논고가 정리되어 있다. 2007년의 현재 : 1945-2005은 그때까지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논문을 중심으로 모은 선집(anthology)이다.

최후의 르포르는 췌장암을 앓았다. 파리 좌안 7구의 벡(Beck)가에 있는 5층짜리 자택에서, 엘리베이터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르내리기를 하고, 뤽상브르 공원에 나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전부터 친한 벗인 에드가 모랭이 뻔질나게 병문안을 한 보람도 없이, 201010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의 장례식 때, 모랭은 르포르의 죽음을 앞에 둔 스토아학파 같은 고귀함을 증언하고, 그를 “그 어떤 진보주의적 환상에도 양보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사상가, 그리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사상가를 그리워했다.[각주:6]

 

클로드 르포르를 어떻게 위치시킬까?

우노 시게키(宇野重規)는 현대 프랑스의 정치철학의 조류들을 개괄하는 저서 정치철학으로에서, 거기에는 세 가지 원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레이몽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또는 반-맑스주의적 흐름이다. 둘째는 알튀세르 이후의 맑스주의적 사상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장치비판이나 주체론이다. 그리고 셋째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및 클로드 르포르 등처럼 맑스주의를 출발점으로 하면서도 맑스주의 비판을 거쳐 전체주의 비판에 이르는 조류라고 한다. 우노의 정리에 따르면, 그 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은 알튀세르의 흐름에 속하는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뤽 낭시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포함한 그룹, ‘68년 사상을 비판하는 소르본 계열의 알랭 르노나 뤽-페리 등의 그룹, 그리고 아롱 및 르포르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을 중심으로 한 그룹 등 세 가지로 대별된다고 한다.[각주:7]

이처럼 르포르는 80년대 이후 복권이 외쳐지는 프랑스 정치철학의 하나의 원류를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르포르에 대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절친인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해서는 주요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한 에구치 칸(江口幹) 씨가 쓴 평전이 있으나,[각주:8] 르포르에 대한 연구 논문은 매우 적다.[각주:9] 르포르가 경원시됐던 것은 그의 난해한 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른바 정통파 맑스주의 사상은 물론, 실존주의에도, 구조주의에도 과감하게 논쟁을 걸고, 유행하고 있는 학파로의 귀속을 항상 거부했다는 독자적인 입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방금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치철학복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갖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돌이켜보면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1981년, 프랑스의 사상계는 꽤 커다란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미 50년대부터 스탈린비판과 폴란드의 폭동(이 책의 10) 및 헝가리 봉기(이 책의 8, 9) 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68),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79) 등의 사건, 게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그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 50년대 말부터 집필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73년의 프랑스어 번역이 처음이었다 에 의해 소련 및 공산당을 근거의 하나로 삼았던 정당 및 사상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뚜렷한 조짐은 이 책의 11장에서 논하는 폴란드의 민주화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프랑스 정치의 겉 무대에서는 70년대부터 이미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의 구호와 더불어 소련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프랑스 사회당과 공동강령을 맺은 좌파연합을 실현시켰다(이 책의 4장 참조).

좌파연합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국 81년의 미테랑 사회당 정권을 실현시켰지만, 아무튼 그것이 다양한 모순이나 균열을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미테랑 정권이 사회주의적 기업 국유화 노선으로부터 현대화를 기치로 내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대전환을 보였던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상 면에서는 알튀세르의 맑스주의의 주축 중 하나였던 구조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다양한 사상 조류가 생겨난다. 대체로 <685> 이후, <>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혁명이론에 무게를 둔 사상으로부터, <좌익 급진주의>라고 불리는 극좌파조직이나, 3세계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이 활짝 꽃피게 된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얘기되는 앙드레 글뤽스만, 베르나르-앙리 레비 등 신철학(누벨 필로조피)”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에 의한, 미디어용 전체주의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더욱 광범위한 사상의 변동이 프랑스를 덮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치의 이름으로 경시됐던 종교윤리가 복권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예를 들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일반적으로 인지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며, 유대사상뿐 아니라 기독교 쪽에서도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가 회자됐다. 그리고 정치철학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논해진 것도 역설적으로 이 시기이다. 그때까지 정치철학이라고 하면, 생산관계를 도외시한 부르주아 이론이라고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나 구조주의의 퇴조에 의해, 한나 아렌트,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영어권의 정치철학에 본격적인 주목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런 시기에, 공산주의는 물론 실존주의로도 구조주의로도, 더 나아가 자유주의로도 공화주의로도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바로 난간[그 무엇에도 기댈 곳] 없는 사고를 실천한 르포르는, 1983년의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에서 정치철학의 부흥을 부르짖고,[각주:10]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이 부흥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각주:11] 르포르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는 많다. 맑스를 근본으로, 박사논문의 주제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보에티, 미슐레, 토크빌 등 과거의 사상가, 게다가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레이몽 아롱,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같은 동시대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르포르의 정치철학은 흔한 정치철학사또는 정치사상사로는 귀착하지 않는다. 제도로서의 정치(la politique)’와 그 배후에서 그 구체적인 현상형태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구별하고, 후자의 모습을 철학적 관점에서 밝히려고 하는 스승 메를로-퐁티에게서 물려받은 정치적인 것의 현상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자세를 바탕으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통저(通底)하는 현대의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특히 관료제와 전체주의라는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도려내는 것,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를 자명시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이른바 이런 비판적 사회철학이야말로 르포르가 시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자세 때문에 르포르는 그 어떤 유파도 구성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은 폭넓다.

앞서 인용한 우노(宇野)가 서술하는 것처럼, 르포르 자신이 소속했던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레이몽 아롱 연구소의 정치철학자에 대한 영향은 물론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특히 칸대학 시절의 제자인 마르셀 고셰에 의한, “근대의 탄생을 정치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관계로 파악하는 최초의 주저 세계의 탈마술화세[네] 권짜리 대작민주주의의 도래는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신학정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르포르의 관점을 확대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각주:12]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피에르 마냉이나 필립 레노 등에 의한, 특히 토크빌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재평가나, 피에르 로장발롱의 대표제개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사의 시도도 크게 말하면 똑같은 조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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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르포르의 영향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상사나 사상가 연구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종교 등등 다양한 사회과학의 영역을 횡단하는 비판적 사회철학이라는 관점이야말로 르포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고셰와 마찬가지로 칸대학에서 르포르에게 배운 알랭 카이예와 장-피에르 르고프의 사회학적 경향을 지닌 정치철학의 시도를 언급해야 한다. 특히 르포르로부터의 영향을 자인하는 카이예는 모스의 증여개념을 기축으로 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등의 사회과학 전체를 내다보는 영역 횡단적인 관점 하에서 연구 그룹 “MAUSS(사회과학에서의 반공리주의 운동)”을 수립하고, 동명의 잡지를 무대로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경제주의나 의회제 민주주의에 통저하는 것으로서 공리주의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독파한 카이예의 자세는 바로 르포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13] 또한 르고프는 <685>의 사상의 비판적 총괄에서 출발하고, 르포르가 논하는 시대보다도 나중인 미테랑의 현대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프랑스의 정치적·사상적 변동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르포르 및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이론적 전거로 삼고, 매니지먼트적 사상이 기업이나 교육에 침투하는 온화한 야만이나 포스트전체주의시대에서의 전체주의그 자체의 변용된 모습을 그러내는 르고프의 작업 또한 르포르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각주:14]

위와 같은 직접적인 영향관계와는 별개로, 80년대 이후 프랑스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사상적 고찰과 르포르 사이의 공명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동시대부터, 특히 권력론이나 근대의 파악방식을 놓고 푸코와의 관계가 논해졌으며, 혹은 르포르가 말하는 근원적인 분열내지 항쟁, 리오타르에 있어서의 쟁론(le différand)’ 개념과의 가까움에 대해 주목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리오타르도 또한 과거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멤버였다. 혹은 정신분석과의 관계도 없지 않다. 이 책의 5장은 정신분석가 르네 마조르를 중심으로 한 잡지 Constellations의 연구회에 초청됐을 때 발표된 것이다. 혹은 르포르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것이라는 생각의 원류로서, 메를로-퐁티뿐 아니라 라캉을 찾아내며, 르포르가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인 것실재적인 것을 정치사상에 응용했다고 파악하고, 게다가 이로부터 최근의 급진민주주의에 이르는 논리를 보는 해석도 제시되고 있다.[각주:15] 정신분석가이기도 했던 카스토리아디스의 상상적인 것과의 관계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참고로 세포국가를 주제로 하는 Constellations의 같은 호에는 장-뤽 낭시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적 패닉도 게재되어 있다.[각주:16] 또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논문 민주주의라는 문제, 원래는 이 두 사람이 주최한 81년부터 82년에 걸친 정치적인 것의 후퇴를 주제로 한 연구회에서의 발표가 바탕이 됐다.[각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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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retrait du poli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nancy the retreat of the politica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다가 나중에 보듯이, 르포르의 정치철학의 근본에는 정치적인 것의 장소를 인민이나 군중같은 얼마간의 주체내지 실체에 의해 차지될 리가 없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소”, “공허의 장소로서 파악하고, 거기에서의 사회/권력의 분할, 혹은 실재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근원적인 항쟁을 통해서 사회라는 것이 구현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점에서 현대의 프랑스 사상에 공통되는 포스트정초주의의 흐름에 르포르를 위치시키고, 낭시, 알랭 바디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과 관련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각주:18] 다만 민주주의의 주체장소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예를 들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바디우 등의 프랑스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사상가들과는 가까울 뿐만 아니라 거리도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가령 랑시에르는 주저 불화에서 이런 르포르에 있어서의 이런 미규정적인 장소로서의 인민내지 데모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을 쟁점으로 했던 것이다.[각주:19]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실상형상화작품화’(, 제도화)로 회수되지 않는, ‘무한프락시스를 보고 있는 낭시의 생각은 오히려 르포르와의 가까움을 보여줄 것이다.[각주:20]

르포르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어권은 물론이고,[각주:21] 영어권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번역 소개나 독해가 진행되고 있다. 1인자로는 르포르 저작의 영어번역에 붙인 해설 등으로 그 사상의 보급에 진력한 딕 하워드가 있다. 또한 버나드 플린의 클로드 르포르의 철학은 프랑스어로 번역될 정도로 빼어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각주:22] 뉴스쿨포소셜리서치는 르포르의 사후 곧바로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공적을 칭송하고 있다.[각주:23] 프랑스에서는 20123월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20166월에는 과거 르포르가 가르친 칸 근교의 현대출판자료연구소(IMEC)에서 르포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expérience démocratiqu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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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발명에 대해

이 책에는 원래 독립적 형태로 각종 매체에서 공표된 11장이 2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초출은 원주를 참조). 그래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초판에 대한 서문말미에서 말하듯이, 전체는 하나의 논의로 관통되고 있다.” 그것은 곧,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논의이다. 거기에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발명은 동쪽에서 온 온갖 이의제기, 온갖 반항이라고 간주되고,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369). 1부와 제2부의 표제를 각각 따오면, 전자가 전체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전체주의 개념의 이론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이론편이며, 후자는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반소련적·반전체주의적 봉기를 이런 민주주의의 발명새로운 조짐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각 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첫머리에서 옮긴이의 요약을 붙여두었기에 자세한 것은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주 간단하게 전체의 흐름만 확인해두면, 1장과 2장이 가장 이론적인 장으로, 전자에서는 인권개념을 축으로 근대의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고, 후자에서는 바로 전체주의의 논리가 정면에서 논해지고 있다. 3장은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스탈린주의와의 관계, 4장은 70년대의 프랑스 공산당·사회당의 좌파연합, 5장에서는 르포르 자신이 과거 맑스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빼져나갔는가라는 구체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각 장의 후반부에서 전체주의의 개념 그 자체의 이론화가 시도되고 있으며, 서로 공명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6장에서 (주로 소비에트에서의) 반체제파의 문제, 7장에서 혁명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가 간결하게 논의된 후, 7장부터 9장에 걸쳐서 1956년의 헝가리 봉기(동란), 10장에서는 같은 해의 폴란드의 이른바 포즈난 폭동이라는, 스탈린 비판 이후의 반소련의 민중봉기가 다뤄진다. 11장은 같은 폴란드에서 80년대부터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전체주의 국가는 민주주의에 비춰서만, 그리고 민주주의의 양의성에 기초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르포르의 기본 테제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가, 그 개략을 확인해두자.

르포르는 다양한 표현으로 전체주의를 특징짓고자 하는데, 가장 열쇠가 되는 것은 <하나인 인민(Peuple-Un)>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첫째로, 르포르가 논적으로 삼은 기존의 공산주의 사상과의 관계에서도, 둘째로 르포르의 또 다른 열쇠 개념인 분할의 철폐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선 곳곳에서 이뤄지는 르포르에 의한 기존 공산주의 비판의 요점은, 공산당부터 트로츠키주의자, 좌익급진주의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전체주의라는 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분명히 파시즘과 나치즘에는 비판을 향했지만, 싸워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이라고 하며, 소련에 대해 전체주의를 보려고 하는 비판은 자본주의에 이로울 뿐이라고 기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포르에 따르면, 그들의 전체주의에 대한 맹목은 사실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가를 인민의 의지와 권력에 종속하는 하나의 국가로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 아래에서 국가가 사회와 일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바로 이 발상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상이한 차원의 구별을 철폐했지만, ‘권력의 특이성을 깨닫지 못하고, 관료제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그 특질을 분명히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르포르에 따르면, 바로 이 점이야말로 전체주의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민사회의 분할이 철폐되고, 하나의 신체를 이루듯이, 인민=프롤레타리아트로 융합한다는 생각이다. 5장의 제목이 적절하게 말하듯이, “신체의 일체성이야말로 문제이다(143). 이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2장 및 3장에서 인용되는 스탈린에 대한 트로츠키의 말이다(52, 99). 거기에서는 짐은 국가이다라고 말하는 루이 14세에게 나는 사회이다라고 말한 스탈린이 대치되어 있는데, 루이 14세의 시대는 아무리 절대왕정이었다고 해도, ‘사회의 부분이 그 외부에 남겨져 있었던 반면에, 스탈린의 전체주의에서는 <>을 매개로 하여 국가도 사회도 인민도 모든 것이 하나의 신체혹은 조직을 이루게 해서, <일자>로 환원된다.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반체제파는 이런 사회의 외부에 추방해야 할 <타자>, 신체의 건전한 일체성을 위협하는 기생자라고 지목된다. <하나인 인민>인 전체주의에 있어서는 내부에 분할이나 항쟁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다양한 분할이 철폐된 <하나인 인민>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추상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에서의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할의 철폐란, 구체적으로는, 정치권력이 생산, 교육, 과학연구, 사법, 문화 등 본래 독립적이어야 할 시민사회의 각 영역에 침입한다는 사태를 동반하고 있다. 이런 영역들은, 비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독립된 가치를 지니며, 그 나름대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에서는, 정치적 차원, 경제적 차원, 법적 차원, 문화적 차원, 미적 차원, 과학적 차원, 교육적 차원 등의 분할까지도 철폐되고(르포르가 곳곳에서 말하는 <권력>, <>, <지식>이라는 것은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심급을 가리킨다), 법적으로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가, 학문적으로 무엇이 참인가, 교육기관에서 무엇이 가르쳐져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무엇이 옳다고 판단되는가 등등이 <하나인 인민>의 논리에 기초하여 결정되어 버린다 각각의 영역에 더 이상 독립된 판단을 내리는 심급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르포르는 이런 융합을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관료조직의 작동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기업적 논리가 침투하고, 관료 조직이 금융계나 산업계로부터의 압력에 종속한다는 구조도 물론 시야에 넣고 있다는 것도 부언해두자. <권력>, <>, <지식>에는 물론 <자본>도 보태진다.

이처럼 르포르는 전체주의에서의 표상이나 상징의 작용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소비에트적인 지배양식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거기로부터 이론적인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상징의 차원과 현실/실재의 차원을 구별한 뒤, 그 양자를 오가는 형태로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려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얘기되듯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실/실재에 사회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것을 악마화해 버리는 그 전능함을 천진난만하게 상정하는 것의 단적인 물구나무 세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르포르에게 전체주의에 의한 상징적인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실재에 있어서는 다양한 분열이나 항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균열’(221, 319)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균열을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민주주의의 발명조짐을 읽어내는 작업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대중봉기를 논하는 2부의 주제이다.

이런 현실[실재]적인 균열에 기초하여, 르포르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가? 르포르에 있어서,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까지 봤던 전체주의 사회의 물구나무 세우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와 사회, 사회 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권력>, <>, <지식> 등등의 각 차원도 분리해야 하는 사회이다. ,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민에게 <권력>의 원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외재적인 <>에 제약되어야 하며, <지식>도 독립된 장소를 갖고 이어야 한다고 간주된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인민(peuple)’ 그 자체가 <하나인 인민>에 대항하고 일체화를 거부하고, 내부에 균열이나 항쟁을 들여온다고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르포르가 이따금 이의제기권리요구를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각각의 인민은 스스로의 권리에 기초하여, 혹은 현실/실재로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을 향해, ‘인민그 자체가 쥐고 있다고 하는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 보면, ‘인민은 항상 완전한 일체를 달성하는 것이 없으며, 말하자면, “인민의 동일성은 끊임없이 물음에 부쳐진다”(150). 민주주의 사회가 내부인 이타성의 시련을 겪는다고 얘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129).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사회와 사회 그 자체의 분리로부터 새로운 사회가 끊임없이 산출되는 것이다.

참고로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조짐이 헝가리나 폴란드의 민중봉기에서 찾아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그런 예외적인 사태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르포르가 보통선거의 상징적 의미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 보통선거는 인민의 의지의 발현이며 새로운 사회조직의 정초인 동시에, 일체적인 것이라고 상정된 인민이 개별적인 수로 세어질 수 있는 단위로 변환되고”, 사회의 해체가 모방되는 계기라는 것이다(122-123). “수가 일체성을 해체하고, 동일성을 무화한다고도 얘기된다(149). 여기에 있는 것은 보통선거를 통한 이의제기라는 현실주의적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보통선거를 통해 바로 사회라는 장소가 결코 일체화할 수 없는 항쟁의 장소로서 드러난다는 그 상징적인 작용이 문제인 것이다. 르포르가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를 굳이 원용한다면,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속표지에 그려진 괴수 리바이어던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군중이, 개개의 다수의 군중으로서 가시화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각주:24]

헌데, 그렇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인민에 존재한다고 간주되는 권력이란 어떤 장소를 갖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그것은 인민이 스스로를 물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산출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의 것도 아니다”(57).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은 공허한 장소(lieu vide)”, “정의상 점유할 수 없는 상징적인 장소이다(91). 참고로 르포르는 권력, 인민이 자율 혹은 자주관리를 위해 기피해야 할 것으로도, 똑같은 목적을 위해 탈취해야 할 것으로도 파악하지 않는다. 르포르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곳곳에서 얘기되듯이, 사회 공간을 질서화하고, 그것에 형태를 주고, ‘형상화또는 제도화하는 차원이다. ‘권력이 어떤 방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형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나인 인민>에 있어서의 <권력>, <>, <지식>의 융합으로서의 전체주의에 대해, “공허한 장소에 있어서의 다수의 인민의 내적 항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대치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단순한 이항대립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다. ,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항쟁적 민주주의의 실천으로의 유혹이 르포르의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니며, 20세기의 정치경험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에 기초한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권력의 장소를 둘러싼, 정치사상사적인 이해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적해둔다.

문제는 1장이 다루고 있듯이, 근대 민주주의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점에 있다. 르포르는 이것을 중세 봉건제로부터의 해방으로서 파악하는 것도,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주체화의 전단계로서의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의 신학정치적인 정치체로부터의 모종의 연장선상에서 근대민주주의의 도래를 파악하고, 그 위에서 양자의 차이를 봄으로써, 더욱이 이로부터의 전체주의로의 변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5장에서 상술되듯이, 이 논의는,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가지 신체론에 근거하고 있다.[각주:25] 근대 이전까지는, 주권자로서의 왕은,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구체저인 신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징적 차원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mysticum)로 이어지는 초월적 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인 신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 구상화된 외재적·초월적 질서야말로, 하나의 국가의 일체성을 떠받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의의가, 왕의 신체가 파괴된다, 혹은 지금까지 초월적인 질서와 세속적인 질서를 연결했던 머리가 잘려짐으로써, 그때까지 하나의 신체를 이루었던 국가가 탈신체화(désincorporation)’한 점에서 본다(24, 149). 이런 외재적·초월적 질서 간단하게 말하면 <>의 질서 야말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원천이며, <권력>, <>, <지식> 등 다양한 심급을 묶었지만, 이 연결이 해소되고, 각각의 심급이 독립해가는 과정이 탈착종화(désintrication)”이다(25). 근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이런 탈신체화·탈착종화야말로, 앞에서 본 권력공허한 장소를 낳게 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권력>의 원천 내지 근거를 지금까지처럼 외재적·초월적인 질서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란 권력, , 지식이 근본적인 미규정성에 노출된 사회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자신 속에 양의성또는 모순을 본질적으로 품고 있다. 권력의 장소는 이제 외재적 원천을 갖지 않고, “누구의 것도 아닌”, “공허한 장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은 인민자신 속에서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공허한 장소에, 현실적인 실체라고 상정된 대문자 <인민>삽입되고, 바로 그것이 권력의 주체라고 간주되자마자, 그 사회는 <하나인 인민>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이를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내부인 타자를 대문자의 <타자>화하고, 이것을 외부의 혹은 기생자로서 배제할 것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의 이유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는 동시에, 그 이행을 방해하기 위한 이의제기, 권리요구 등 내적 항쟁의 실천의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정당성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동시에, <하나인 신체>로서 응고되고, 전체주의로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항상 내적 항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수화시키고, 스스로를 재창출=재발명(réinventer)필요가 있는 것이다(369).

 

위와 같이, 약간은 고풍스러운 대상을 다루고, 복잡한 논리에 입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시도가 어떤 것인지, 그 현실[실재]적 및 상징적 작용을 철저하게 캐묻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 민주주의라는 것의 윤곽을 밝히려고 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초판 간행 당시부터 3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도, 전제하고 있는 지적 틀도, 현재에서 보면 오래됐음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우 30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망각하기에는 충분히 길지만, 잊힌 것이 되살아나기에는 적당한 세월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눈앞에 있던 것은 과연 민주주의였는가? 만일 민주주의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면, ‘전체주의는 형태를 바꿔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을 생각하기 위해 약간 관점을 과거로 물리는 것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결코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1. 일본어로 번역된 주된 논문으로는 다음이 있다. 「民主主義という問題」(本郷均 訳, 『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政治的なものについての試論(一九世紀―二〇世紀)』 수록), 「人権と政治」(松浦寿夫 訳, 『現代思想』, 17巻 12号, 1989年 ; 18巻 4号, 1990年(이 책에 수록), 「デモクラシーの社会学のために」(竹本研史 訳, 『アナール 一九二九―二〇一〇』, 第3巻, 藤原書店, 2013年). [본문으로]
  2. 그 중 카스토리아디스의 논문을 모은 것은 이미 일본어 번역이 있다. 『社会主義か野蛮か』(江口幹 訳, 法政大学出版局, 1990年). [본문으로]
  3. C. Lefort, « L’échange et la lutte des hommes », Les Temps modernes, nº64, 1951.(『歴史の諸形象』 수록). [본문으로]
  4. 일련의 논쟁은 다음의 일본어 번역에서 읽을 수 있다. サルトル, ルフォール, 『マルクス主義論争』, 白井健三郎 訳, ダヴィッド社, 1955年. [본문으로]
  5. E. de la Boétie, Le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Paris, Payot, 1976. [본문으로]
  6. E. Morin, « Claude Lefort(1924 -2010). Avec Lefort », Hermès, La revue, no. 59, 2011. [본문으로]
  7.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48頁 이하. [본문으로]
  8. 江口幹, 『疎外から自治へ──評伝カストリアディス』, 筑摩書房, 1988年. [본문으로]
  9.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르포르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으나, 특히 エンツォ・トラヴェルソ의 훌륭한 책인 『全体主義』(平凡社新書, 2010年)의 관련된 부분은 유익하다. 또한 佐々木允臣 씨가 법학(특히 인권론) 분야로부터 일관되게 르포르를 논하는 것은 특필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佐々木允臣, 『自律的社会と人権』, 文理閣, 1998年을 참조. 이 밖에도 松葉祥一, 「民主主義の両義性──クロード・ルフォールと「政治哲学」の可能性」(『現代思想』, 23巻 12号, 1995年) 및 宇野重規, 「メルロ=ポンティ/ルフォール 身体論から政治哲学へ」(『現代思想』, 36巻 16号, 2008年)도 참조. [본문으로]
  10. 「民主主義という問題」, 일역본 앞의 논문, 40頁. [본문으로]
  11. 프랑스의 학술지 『정치와 사회』의 2003년의 “프랑스에서의 정치철학의 회귀”를 주제로 한 특집호에서 편집자들은 르포르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G. Labelle et D. Tanguay(eds), « Le retour de la philosophie politique en France », Politique et société vol. 22, no. 3, 2003. [본문으로]
  12. M. Gauchet,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Gallimard, Paris, 1985 ; L’avènement de la démocratie, Gallimard, t. 1 , t. 2, 2007, t. 3, 2010. 이하도 참조. マルセル・ゴーシェ, 『民主主義と宗教』, 伊達聖伸・藤田尚志 訳, トランスビュー, 2010年. [본문으로]
  13. アラン・カイエ, 『功利的理性批判──民主主義・贈与・共同体』(藤岡俊博 訳, 以文社, 2011年)을 참조. [본문으로]
  14. ジャン=ピエール・ルゴフ, 『ポスト全体主義の民主主義』(渡名喜庸哲・中村督 訳, 青灯社, 2011年)을 참조. 또 최근에는 남프랑스의 한 마을로부터의 정점 관측에 의해, 20세기의 프랑스 사회 전체의 변형을 묘사하고 있다. 『プロヴァンスの村の終焉』(伊藤直 訳, 青灯社, 2015年)을 참조. [본문으로]
  15. W. Breckman, Adventures of the symbolic : post-Marxism and radical democrac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본문으로]
  16.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フィリップ・ラクー=ラバルト, 「政治的パニック」, 柿並良佑 訳, 『思想』, 岩波書店, 1065号, 2013年. [본문으로]
  17. P. Lacoue-Labarthe, J.-L. Nancy(dir.), Le retrait du politique, Galilée, 1983. [본문으로]
  18. O. Marchart, Political Difference in Nancy, Lefort, Badiou and Laclau,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7. [본문으로]
  19.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 『不和あるいは了解なき了解──政治の哲学は可能か』, 松葉祥一 dhl 訳, インスクリプト, 2005年, 167頁. [본문으로]
  20. 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 「民主主義の実相」, 『フクシマの後で』, 渡名喜庸哲 訳, 以文社, 2012年. [본문으로]
  21. 특히 다음이 중요하다. C. Habib et C. Mouchard, La démocratie à l’œuvre. Autour de Claude Lefort, Éditions Esprit, 1993 ; H. Poltier, Passion du politique. La pensée de Claude Lefort, Genève, Labors et Fides, 1998 ; N. Poirier(éd.), Cornelius Castoriadis et Claude Lefort: l’éxpérience démocratique, Le Bord de l’eau, 2015. [본문으로]
  22. B. Flynn, The Philosophy of Claude Lefort,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5. [본문으로]
  23. 그 기록은 우선 정치철학계의 학술지에 게재되고(Constellations, vol. 19, no. 1, 2012), 더 나아가 다음의 증보판으로 출간됐다. M. Plot(ed.), Claude Lefort. Thinker of the Political, Palgrave Macmillan, 2013. [본문으로]
  24.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ジョルジョ・アガンベン, 『スタシス──政治的パラダイムとしての内戦』(高桑和巳 訳, 青土社, 2016年)을 참조. [본문으로]
  25. エルンスト・カントーロヴィチ, 『王の二つの身体』, 小林公 訳, ちくま学芸文庫, 2003年. [본문으로]

Strass de la philosophie: Heidegger et nous / Jean-Luc Nancy

Heidegger et nous / Jean-Luc Nancy


* 아직 번역하지 않았다. 짧기에 곧 옮기겠다. 이 글은 장-클레 마탱의 2014년 6월 21일자 블로그 Strass de la philosophie: Heidegger et nous / Jean-Luc Nancy에 게재되어 있다. 독일어본은 다음과 같다. Nancy: Heidegger und wir - Faust Kultur.

Martin Heidegger (1889-1976)    Jean-Luc Nancy. Foto: Corinna Hackel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장-뤽 낭시


Nul depuis cinquante ans ne pouvait douter que Heidegger ait partagé l'antisémitisme dominant l'Europe des années 30, même si on ne trouvait dans ses  textes aucune déclaration de cette nature.
A cet égard nous n'apprenons rien dans les Carnets noirs. Les exclamations et imprécations qu’ils suscitent témoignent plutôt d'une candeur difficile à comprendre. N’avait-on pas de longtemps analysé la mise à l'écart voire la forclusion de la source juive ou judéo-chrétienne par la pensée d'une Grèce archi- originaire ? Lyotard, Derrida, Lacoue-Labarthe,  au premier chef, et bien d'autres (Levinas, Granel, Haas, Courtine, Zarader, Janicaud, Marion, Badiou, pour ne nommer que quelques Français) peuvent être convoqués pour témoigner à des titres divers de la circonspection lucide avec laquelle Heidegger a été considéré.  Encore faut-il lire, cela va de soi, puis se remettre au travail au lieu de gesticuler. (Lire, par exemple, dans Psyché II de Derrida, p. 46, le témoignage très clair d’une parfaite conscience de l’antisémitisme de Heidegger. Il parle, à propos du Discours de rectorat, de ce qui « ouvre à une réaction archaïsante vers l’artisanat rustique et dénonce le négoce et le capital dont on sait bien à qui ces notions étaient alors associées. » On ne saurait être plus clair.)

De même, on n’a pas omis de dénoncer le silence obstiné, farouche et insupportable de Heidegger sur les camps d’extermination. Peut-être d’ailleurs ce silence a-t-il à voir avec ce que contiennent les Carnets.

La publication de ces carnets  pose-t-elle de nouvelles questions ? Oui,  mais lesquelles au juste ?

On doit se demander pourquoi Heidegger avait exclu de tous ses textes publiés les mentions faites dans ses carnets privés de ce que Peter Trawny, leur éditeur, nomme très justement "antisémitisme historial" ?

Une seconde question s'adresse à nous, quel que soit notre rapport à Heidegger. Elle ne surgit pas de ces seuls carnets, mais ils la réactivent : sommes-nous vraiment au clair avec ce qui est en jeu dans l'antisémitisme ? Savons-nous donc vraiment de quelle faute Heidegger est coupable ? Car il l'est, comme beaucoup d’autres, mais de quoi au juste ? De quoi s'agit-il dans l'antisémitisme ? Question jamais assez ni jamais bien posée, et qui s'adresse à tous, non au seul Heidegger (ni aux seuls antisémites visibles ou déclarés).

A la première question on peut esquisser une réponse provisoire. Heidegger a exclu toute mention d'antisémitisme (et d'anti-judéochristianisme) de ses écrits car il a su qu'une telle mention l’engagerait dans une de ces deux voies : ou bien rejoindre le biologisme nazi qu'il méprisait (voir les Beiträge), ou bien établir que l'antisémitisme doit jouer un rôle structurel dans la pensée d'un destin de l'Occident, ce qui pourrait mettre cette pensée dans l’embarras. En évitant cette seconde entreprise, Heidegger montre qu’il ne pouvait ou qu’il n’osait pas s’y risquer : fût-ce malgré lui il en devinait l’inconsistance.  Il touchait donc à une limite de sa pensée.

La seconde question s’enclenche ici : cette limite n’est-elle pas encore la nôtre, si nous pensons peu ou mal la constitution fondamentale – « spirituelle » disait Lacoue-Labarthe - de l'antisémitisme dans l'Occident ?

Hegel avait donné une indication en parlant du peuple juif comme "témoin du malheur de la conscience". Mais on n’a pas voulu savoir quel était ce malheur propre à l’Occident et on s’est caché la douleur qui s'aggravait. Même la vigueur et la vertu dreyfusardes sont passées à côté du problème de fond (témoin Blanchot, qui tout en reprenant la leçon de l'"affaire" veut dépasser l'éthique de la Loi)[1]

Freud voit dans le christianisme un reproche adressé à un oubli juif du meurtre du père. Mais ce reproche est la conversion d’un malaise : qu’a-t-on fait en humanisant le Dieu imprésentable ?  Ainsi le  judaïsme de la diaspora aura représenté ce que les chrétiens trahissaient : la séparation des deux royaumes. Et l’interdiction de  posséder  la terre aura conduit les juifs à prendre sur eux la souillure du prêt à intérêt.

Ces repères suffisent pour indiquer l'essentiel d'un antisémitisme en effet « historial »: le peuple juif a été identifié comme le mal dont l'Occident sentait, à son corps défendant, devoir payer la croissance illimitée de son savoir et de son  pouvoir. Pour Heidegger cette croissance (la technique, le capital, la raison normative) devait se comprendre comme un oubli par l'Occident de sa propre origine et destination. De cet oubli - pourtant  commencé avec Platon…-  les Juifs,  Rome et le judéochristianisme devaient être à la fois, par substitution fantasmatique, les témoins et les agents.

Cela même permet de discerner comment Heidegger a pu penser sur deux versants hétérogènes.  D'un côté il ouvrait la question dite "de l'être" : il remaniait de fond en comble ce qui jusque chez Husserl s'était nommé "transcendance". Nous n’en avons pas fini avec ce remaniement, qui n’a nul besoin d’être antisémite. D'un autre côté Heidegger voulait, de manière au fond très conformiste et mythologisante, que ce geste relance un "destin" de l'Occident à partir d'une provenance unique, exclusive, excluante voire exterminatrice. L'histoire réappropriait ce que l'existence aurait dû disséminer. Aussi est-ce très exactement au revers de Heidegger que Derrida (qui dès 1964 étudiait l'histoire chez Heidegger) écrivit le mot "destinerrance". On peut  l’interpréter de deux façons : 1) l'idée d'un  destin fut l'errance de Heidegger –  2) à nous maintenant de dérouter voire d'égarer le destin occidental. Et d'en finir ainsi avec l'antisémitisme.

Bien entendu, ce qui précède ne forme qu’une indication sommaire et provisoire. Même le motif du destin reste à décomposer chez Heidegger. Werner Hamacher me suggère par exemple que « destinerrance » peut être considérée comme issu de Heidegger. Peut-être y a-t-il en effet chez lui deux registres ou deux portées du « destin ». Nul doute qu’il y ait là des ressources de pensée, et telles qu’elles nous permettront d’aller plus avant dans ce qu’il nous incombe toujours de penser sur notre provenance et donc sur notre avenir.

Jean-Luc Nancy




[1] Sans assimiler du  tout Blanchot à Heidegger, et même en les opposant, je crois nécessaire l'analyse de la pensée de  Blanchot  que j’engage dans La Communauté Désavouée,  Galilée, 2014.


 

 

죽음, 동물, 그리고 촉각

: 데리다에 의한 하이데거의 동물의 탈구축

20012-512(15)-008 - 파트릭 롤레드 - 죽음 동물 그리고 촉각 - 번역.pdf

20012-512(15)-008 - 파트릭 롤레드 - 죽음 동물 그리고 촉각 - 일본어.pdf

 

動物そして触覚

デリダによるハイデガーの動物脱構築

Patrick Llored, La mort, l’animal et le toucher

Une déconstruction de l’animal heideggerien par Derrida.

파트릭 롤레드 (프랑스 리옹3대학)

(일역 : 桐谷慧)

 

* 프랑스어 원본을 구할 수 없어서 일본어판을 옮겼으나, 맥락에 따라 한국에서 통용되는 단어들로 바꾸었다. 다만, 데리다의 원문 등은 수정했다. [2017321.]

 

데리다의 철학이 동물 윤리라는 분야에 속한다며 논해지는 일은 드물다. 그 동물윤리가 촉각의 윤리[éthique du toucher]로 논해지는 일은 더욱 드물다[주1]. 그렇지만 본고에서 변호되는 것은 이런 명제이다. 하지만 자크 데리다의 사상에서 촉각의 철학이라는 말로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하기 전에, 데리다의 사상은 그 핵심에 있어서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것vivant non humain에 대한 최신의 위대한 철학 중 하나라는 것을 말해두어야만 한다. 우리는 데리다의 탈구축이 물론 동물을 위해 작업[작동]하는 철학이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그것은 동물에 의해 반영되는 철학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동물의 물음이라고 몇 번이나 지목한 것은, 데리다의 철학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데리다의 윤리라고 불려야만 할 것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다음처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동물들의 형상이 거기서는 큰 존재감을 갖고 있기에, 동물의 물음은 데리다의 철학의 핵을 이루고 있으며, 그 동물들의 형상이 차연, 흔적, 대리보충, 그리고 촉각이라는 그의 주요 개념에 본래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즉 이런 개념들은 동물성의 물음의 빛 아래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마찬가지로, 용서, 환대, 약속 그리고 정의 등의 개념 이것들은 무조건성이라는 관념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에 의해 묘사되는 데리다의 윤리의 전체야말로, 이렇게 새로운 종류의 동물윤리가 되기에 이른다. 데리다의 동물윤리는, 거기서 쟁점이 되는 사항 때문에, 앵글로색슨국가들에서 발전된 동물윤리와는 매우 다르다. 촉각의 물음은, 의심할 바 없이, 윤리의 물음과 관련된 데리다의 작업의 잘 알려진 말년의 방향성의 하나이며, 그리고 촉각의 물음 덕분에 탈구축은, 동물에 대한 배려에 큰 관심을 품는 다수의 연구영역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철학이 된 것이다.


[주1] 일역자toucher라는 단어는 닿다, 건드리다’, ‘접촉하다’, ‘관계하다등을 가리키는 동사이며, 또한 촉각혹은 접촉/닿기라는 의미의 명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촉각이라는 의미를 가진 tact, ‘촉각을 가리키는 contact, ‘촉각의라는 형용사인 haptique라는 단어도 본론에서 사용되고 있다


 왜 촉각이 인간과 동물의 만남에 있어서 이렇게나 중요성을 띠는 것일까? 촉각은 다른 감각과 똑같은 하나의 감각인 것일까? 오히려 촉각은 다른 모든 감각의 존재 조건이 아닐까? 사실상 촉각은 삶[생명]의 유지에 필요 불가결한 감각, 즉 살아 있는 것의 삶[생명],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삶[생명]의 의미=감각sens이 아닐까? 촉각이 엄밀하게는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는 것,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촉각이 다른 모든 감각의 의미=감각le sens de tous les autre sens이라는 것, 사실은 이러한 것은 많이 있을 수 있다. 촉각이라는 단어에 의해 표면과 외부 사이의 접촉contact, 즉 외재성과의 접촉을 상정한 감각이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한, 모든 감각의 의미=감각le sens de tout sens이라는 표현은 역설을 담고 있는데, 이 표현에 깊이를 주려고 한다[주2]. 그런데 우리는 안과 밖이라는 고전적 대립의 적절함이 상실된는 것을 데리다와 함께 보게 될 것이다. 데리다에 의해 이뤄진 동물의 촉각에 대한 질문의 혁명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을 덧붙여두자. 촉각의 철학은 서구철학 전체를 통해 전개된 아주 길고 풍부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 전통은 어떤 중대한 문제를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촉각중심주의haptocentrisme이다. 촉각중심주의란 촉각에 있어서 인간의 손에 주어진 특권이며, 이 특권의 가장 폭력적인 귀결은, 살아 있는 것들의 공동체에 대한 바람직한 공-속으로부터 동물을 몰아내는 것이다. 데리다의 작업 전체는, 동물을 이 공동체의 대등한 구성원으로 하기 위해, 그리고 촉각을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인간도, 인간이 아닌 것도 을 삶[생명]으로 연결시키는 감각이라고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촉각중심주의를 탈구축하는 데 있다. 촉각중심주의의 질문은, 하이데거의 존재론 전체의 탈구축이라는, 탈구축의 가능한 한 가지 해석의 안내선이 될 수 있다. 이 촉각의 물음에서 출발함으로써만, 그리고 또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포함된 촉각중심주의로 향하는 촉각의 질문의 지배적인 동향에서 출발함으로써만, 심지어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탈구축은 완전한 의의를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2] 일역자sens라는 단어는 감각’, ‘감관외에, ‘의미의의’, ‘존재이유등의 의미도 갖고 있다. «le sens de tous les autres sens»란 이런 다의성을 이용한 표현이며, 촉각이 하나의 감각sens이면서 동시에 다른 감각들의 의미 혹은 존재이유sens이기도 하다는 사태를 나타내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한 동물의 존재론은, 무엇에 의해 구성되어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촉각을 세계에 있어서 가난한 촉각toucher pauvre en monde이라고 하는, 어떤 촉각의 존재론으로부터 구성되어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동물은 접촉하지만, 동물의 세계의 가난함 때문에, 실은 동물은 스스로가 접촉하고 있다れる는 것을 모른다. 촉각이 세계에 있어서 가난하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이상의 주장이야말로 데리다가 몇 개의 저작에서, 그리고 실제로는 그의 전체 저작을 통해 탈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것은, 데리다가 하이데거에 맞서 쓰고 있는 텍스트인데, 그것은 어떤 살아 있는 것에 있어서 지각하는 것percevoir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느냐는 것, 그리고 그 살아 있는 것과 그것에 고유한 죽음 사이의 관계, 이런 것들이야말로 문제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이데거가 동물의 Benommenheit이라고 부르는 것에 있어서(우리는 이 단어를 망연자실hébétude〕 혹은 방심accaparement이라고 번역하지만이 번역이 어렵고 독해의 모든 무게를 다 떠맡고 있다는 것을 안다), 동물의 Benommenheit에 있어서이 Benommenheit에 의해 정의되는 동물들은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제거되고 빼앗기고 뺄셈되어 있다[열림]과 현시된 존재에 있어서현시 혹은 현시성에 있어서동물에 대해 현시된 것의 엶[열림]에 있어서존재자 그 자체étant comme tel와 관련될 가능성스스로가 지각한 것을 그 자체로서 지각할 가능성혹은 존재자나 세계 그 자체en tant que tel와 관련될 가능성이다[주3].

Dans ce que Heidegger appelle la Benommenheit de l’animal (qu’on traduit, mais nous verrons que la traduction est difficile et porte toute la charge de la lecture, par hébétude ou accaparement), dans sa Benommenheit, eh bien, a l’animal defini par cette Benommenheit est alors retirée, prise, soustraite la possibilite de se rapporter a l’etant comme tel, la possibilite de percevoir comme tel ce qu il percoit ou de se rapporter a l’etant et au monde, en tant que tels, dans l’ouverture et l’etre manifeste, dans la manifestation ou la manifesteté, dans l’ouverture de ce qui se manifeste a lui.


[주3] 일역자Jacques Derrida, La bête et le souverain : Volume II (2002-2003), Galilée, 2010, p.104.

             [옮긴이] accaparement를 일역자는 전유(專有)’라고 옮기고 있는데, 이것은 appropriation(자기 것으로 삼기)와는 달리 매점매석이나, ‘독점을 비롯해 독차지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 말로 Benommenheit얼빠져 있음’, ‘방심’, ‘사로잡혀 있음’, (세계에 대한 몰입이 심화된 양상인) ‘함몰등으로 옮겨진다. 아무튼 여기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독차지로 바꿔 옮긴다. manifestation manifeste, manifesteté 등을 일역자는 개명(開明)’이라고 옮기는데, 이것은 풀어보면 밝게 엶’, ‘밝게 열다이다. 한국어로는 표명’, ‘계시’[드러내 보임], 현시(Erscheinung), ‘현현(顯現, manifestation·epiphany)’ 등으로 옮겨진다. 여기서는 현시를 활용한다

 

하이데거에게 동물의 세계에 대한 관계, 그리고 즉 동물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맺는 관계는 망연자실이라는 관계이다. 망연자실은 스스로가 지각하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는 것을 동물에게 금지하고, 동물의 그것에 고유한 죽음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러한 능력 없음[不能力],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동물의 정의 그 자체로 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스스로가 지각한다는 것을 지각하는 것에 관련된 동물의 능력 없음[不能力], 더 나아가 폭력적인 것에도, 동물에 대해 세계로서의 세계라는 존재자와 관련되는 것을 금지한다. 이것은 동물이 그 자체로서의 자기 자신과는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일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동물 자신에 의한 이 세계의 지각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동물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이것은 죽음의 문제에 중대한 귀결을 가져다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동물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가난함, 그리고 동물의 스스로가 살고 있는 세계와의 관계의 가난함 때문에, 동물은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도 그 자체로서는 지각할 수 없다. , 살아 있는 것들이 이 똑같은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관계의 하나, 그 관계는 존재할 수 있으며, 지나갈 수 있으며, 현실에서는 끝에 의해서, 즉 내게 고유한 소멸에 의해서, 내게 고유한 죽음에 의해서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하이데거의 논의는마치 죽음이 투명한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나와 죽음 사이에 있는 지식이라는 관계, 마치 죽음이 그런 관계를 경유할 수 있다는, 마치 삶[생명]과 죽음이라는 대립하는 상이한 두 개의 실체가 있다는 것 같다. 이 이중적 실체에 대해, 동물은 스스로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 그 자체에, 즉 삶[생명] 그 자체에 접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동물은 더군다나 실제로는, 정말로 이런 이중적 실체의 또 다른 측면, 즉 죽음에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동물은, 설령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으로서의 삶[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이와 똑같이, 내가 내게 고유한 죽음이라는 관념에 적어도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생명] 그 자체에서 출발하는 경우뿐이기 때문에, 동물은 스스로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 자신과의, 그리고 세계 그 자체와의 모든 관계를 동물에 대해 금지하는 망연자실 혹은 독차지라는 상황, 동물이 정말로 그런 상태 속에 있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동물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세계에 대한, 즉 그것에 고유한 죽음에 대한 비관계를 명시하기 위해, 하이데거의 세 개의 열쇠가 되는 생각이 도출된다.

 

생각 1 : (동물의) [생명]의 근본적 구조로서의 독차지(Benommenheit), 죽음의, 죽음에 도달하는 것의 극히 정확한 가능성들을 묘사한다.

생각 2 : 동물의 죽음, 그것은 죽는다mourir일까, 혹은 끝난다finir일까?

생각 3 : 그래서 우리가 인간은 죽는다고 보는 한에서, 동물은 죽을 수 없으며, 그저 끝에 도달할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생명]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그 어떤 자체로서의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서의 동물, 그런 동물의 비-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거대한 주장이다. 동물은 삶[생명]에 대한 그 자체로서의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물은 죽음에 대한 그 자체로서의 관계없이 죽는다, 왜냐하면 동물에게는 자기 자신으로, 세계로, 즉 그것에 고유한 죽음으로 접근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 주장의 폭력에 반대하기보다도, 오히려 다음을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 모든 살아 있는 것을 그 자신에 있어서, 세계에 있어서, 그것에 고유한 죽음에 있어서 정의하는 것은 이성적인 지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적인 관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데리다에게 감성적인 관계란 촉각의 질문을 경유하는 것이며, 이 촉각의 질문은 인간들과 인간이지 않은 것들, 사유와 감성의 잘못된 대립을 넘어설 윤리적 가능성으로서이다. 촉각의 질문은, 하이데거에게서의 동물의 존재론의 탈구축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촉각에의 권리를 동물에게 인정한 철학자는 드물다. 그 적은 수의 철학자들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는데, 이 문제에 있어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요성은 자세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이 논의에 있어서 데리다의 공헌을 완전히 이해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살아 있는 것의 철학은, 촉각을 생리학적이고 원초적인 한 기능으로 환원하는 생물학적 자연주의와 불가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각은 살아 있는 것 그 자체의 존재에 필요 불가결한 유일한 감각이라는 이유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동물철학에 있어서 촉각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역시 중요하다. “촉각이라는 감각은, 그 박탈이 동물들의 죽음을 초래하는 필연적이고 유일한 감각이다. 왜냐하면 동물이 아닌 존재가 이 감각을 갖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동물이기 위해서는 촉각과는 다른 감각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촉각이 없이는 다른 {감각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촉각기관은 흙으로도, 그리고 원소들 가운데 다른 어떤 것으로도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감각만을 결여해도 동물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동물이 아니고는 그 감각을 갖지 않으며, 또한 동물은 이것 없이는 다른 {감각}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에 관하여(435b 4-7)[주4]에서 쓰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촉각을 살아 있는 것의 존재에 불가결한 유일한 감각이라고 하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이 촉각이라는 감각의 존재를 동물의 존재조건으로서 고려하지 않는다면, 촉각이 거기에 속해 있는 동물 존재는 사고될 수 없다. 그래서 동물에게 촉각은, 그것 없이는 동물의 삶[생명] 그 자체가 질문에 부쳐지게 되는, [생명]의 유지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촉각과 동물의 삶[생명]과의 사이뿐만 아니라, 촉각과 동물의 죽음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도출된다. 만일 촉각이 살아 있는 것의 삶[생명]을 낳는 것이고, 데리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열쇠인 표현을 거론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생명]과 촉각 사이의 공외연성coextensivité이 있다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한 발견이란, 촉각을 죽음의 시련épreuve de la mort에 걸었다는 것, 촉각을 바로 삶[생명]과 죽음의 물음으로 삼았다는 것이리라. 데리다는 촉각, -뤽 낭시를 건드리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동물적 생명과 촉각 사이의 이 본질적인 공외연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측정mesurer한 것이다. 그는 또한 이 공외연성을 죽음의 시련에 의해 설명한다. 시각, 청각 혹은 미각을 박탈당하더라도, 동물이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촉각이 결여되기에 이른다면 동물은 지체 없이 죽는다. 반대로 (그렇지만 이것은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인데), 촉각의 과잉[초과]적 강도intensité excessive가 건드릴[촉각할] 때에도 동물은 죽는다. 감각적인 것의 과장법hyperbole[주5]은 그때,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삶[생명]을 정의했던이 촉각의 기관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촉각의 이 중용=측정mesure, 이 절제modération, 바로, 어떤 유보réserve가 그것을 과잉(exagération)의 일보직전에서 붙들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 [생명]에 도움이 되기를 계속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Cette coextensivité essentielle de la vie animale et du toucher, Aristote la mesure. il l’explique aussi à l’épreuve de la mort. Privéde la vue, de l’ouïe ou du goût, l’animal ne meurt pas nécessairement. Or il meurt sans retard si le toucher vient à lui manquer. Inversement (mais c’est l’autre face du même phénomène), l’animal meurt aussi lorsque l’intensité excessive du toucher le touche. L’« hyperbole » du tangible en vient alors à détruire l’organe de ce toucher « par lequel nous avons défini la vie » (435 b 10-16). Cette mesure, cette modération du toucher, ne peut-on dire quelle reste au service de la vie dans la seule mesure, justement, où quelque réserve la retient au bord de l’exagération?”[주6]


[주4] 일역자〕 『について, 中畑正志訳, 京都大学学術出版会, 2001, 184. [아리스토텔레스, 영혼에 관하여, 유원기 역주, 궁리, 2001, 252.]

[주5] 일역자저자는 감각적인 것의 과장법hyperbole du sensible이라고 쓰고 있으나, 인용된 촉각의 데리다의 원문에서는 촉지 가능한 것의 과장법hyperbole du tangible이라고 되어 있다

[주6] J. Derrida, Le toucher, Jean-Luc Nancy, Galilée, 2000, p.61.〔『触覚ジャン=リュック・ナンシーにれる松葉祥一榊原達哉加國尚志訳青土社200695-96


데리다에게 촉각의 중요성은 촉각이 끊임없이 따르고 있는 아포리아와 관계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동물의 삶[생명]이 필연적으로 촉각에 의존하고 있다면, 같은 때에 같은 장소에서, 촉각이 과잉[초과]적 강도라는 형태를 취해 나타날 경우에는, 죽음 그 자체가 촉각으로부터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것의 과장법[주7]은 이 과잉[초과]적 강도에 의해, 동물 자신에 대해 휙 돌아서서 덤벼드는 자기-면역의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삶[생명]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자살을 언급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촉각은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데리다의 윤리의 중심적 개념인 파르마콘의 논리logique du pharmakon를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파르마콘의 논리에 의해, 촉각이라는 이 특이한 감각은, 살아 있는 것의 핵심에 동물의 -la-vie-la-mort[주8]를 세우는 것이 되며, 또한 유보개념에 입각한 윤리와 분리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윤리는, 유보 개념에 의해, 그것에 외재적인 형식적이고 규범적인 규칙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파르마콘적 해석에 의해 이해된 동물의 신체 그 자체에 기초한 것이 된다.


[주7] 〔일역자감각적인 것의 과장법hyperbole du sensible촉각으로부터의 직전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는 표현인데, 앞의 옮긴이 주에서도 지적했듯이, 데리다의 원문에서는 촉지 가능한 것의 과장법hyperbole du tangible이다

[주8]  일역자-la-vie-la-mort는 데리다가 자주 사용한 표기. “생사la vie la mort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생명]과 죽음을 이어 적음으로써, 양자의 분리 불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데리다는 1974년부터 75년까지 생사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다

 

데리다에 의한 동물의 촉각

촉각자기비자기사이의 다양한 경계가 창출되는 공간에 살아 있는 것들의 각각이 예외없이 기입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그래서 살아 있는 것들 사이에서의 만남[마주침]의 감각이다. ‘자기비자기사이의 다양한 경계에 기초함으로써, 접촉과 사건으로서의 만남이 가능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그리고 그를 넘어서, 촉각은 다른 감각들과는 달리, 살아 있는 신체에 공외연적이라고 가정하자. 또한 마찬가지로, 또 다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먹는 것은 촉각에 속한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 애도에 따른 체내화(incorporation)는 어떻게 되고,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여전히 삶[생명]의 살아 있는 한 계기일까? 물론이다, 그것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그것은 여전히 죽음을 삶[생명]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생명]의 살아 있는 이 계기, 이것은 내화intériorisation일까 아니면 배출expulsion일까? 그것은 건드릴 수 없는 것의 촉지-가능하게-되기devenir-tangible일까, 혹은 반대로, 촉각적tactile육체, 촉각하는 것과 촉각되는 것의 촉지-불가능하게-되기devenir intangible를 산출하는 이념화idéalisation, 정신화, 혼화魂化, animation인 것일까? // 질문들의 이 모체는 어떻게 세계의 질문을 탄생시키는 것일까? 그리고 유한성의 질문을. 왜냐하면 촉각이 다른 감각들 중의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면, 이 점으로 나중에 돌아가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촉각이 모든 유한한 실존에 도래하는 것을, 이 실존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떠한 것이든, 그 어떤 존재자이든, 유한한 실존에 도래하는 것을그 실존에 대해 현전화시키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그때, 촉각은이 현전화의 증여에 의해, 그것에 있어서, 혹은 그것으로부터 현전화가 고지되는 바의 한계를 표식한다Supposons, selon Aristote et au-delà, que l’haptique, à la différence des autres sens, soit coextensif au corps vivant. Supposons aussi que manger, comme le dit encore Aristote, relève du toucher. Que devient alors et que signifie l’incorporation selon le deuil ? Encore un moment vivant de la vie ? Bien sûr, comment pourrait-il en être autrement ? Encore faut-il inclure la mort dans la vie. Ce moment vivant de la vie, serait-ce une intériorisation ou une expulsion ? Un devenir-tangible de l’intouchable ou au contraire une idéalisation, une spiritualisation, une animation produisant alors un devenir intangible du corps tactile, du touchant et touché ? // En quoi cette matrice de questions donnerait-elle naissance à la question du monde ? Et à la question de la finitude ? Car si l’haptique n’est pas un sens parmi d’autres, si d’une certaine façon, nous y reviendrons, il n’est même pas un sens, stricto sensu, c’est qu’il rappelle à toute existence finie ce qui vient à elle : pour lui présenter quoi que ce soit, quelque étant que ce soit, mais en marquant, par le don de cette présentation, la limite à laquelle ou depuis laquelle une présentation s’annonce.”[주9]


[주9]  J. Derrida, Le toucher, op. cit., p.67.〔『触覚前掲104-105


따라서 만약 동물의 살아 있는 신체와 촉각 사이의 공외연성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양자의 촉각적 공동체의 승인이라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면, 역시, 이 공외연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지닌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진적인 논의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 된다. 공외연성은, 우리의 동물들에 대한 관계를 철저하게 재고시키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윤리적 관심이야말로 공외연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가장 급진적인 의의를 주도록 데리다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음으로부터 삶[생명]을 분리하는 반면, 데리다는 공외연성이라는 이 개념을 통해, 동물이라는 살아 있는 것을, 촉각에 의해 죽음과 삶[생명]에 동시에 연결된 존재로 본다. 동물은 그래서, 촉각에 의해 자신의 삶[생명]-죽음에 대한 관계의 한계들을 끊임없이 세우는 존재인 것이다. 동물의 삶[생명]-죽음에 대한 관계는, []화와 배출로 이루어진 이중적 운동에 의해 해석될 수 있다. 촉각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내[]화는, 여기서는, 모든 살아 있는 것에 있어서 촉각은 자기 접촉un se toucher이 된다는 사태를 의미한다. 촉각이란, 우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접촉하는[자기 자신을 건드리는] 것이다. 데리다가 모든 동물에서 발견된 내[]화의 현상에 의해, 동물이라는 살아 있는 것에 있어서, [생명]은 스스로를 접촉하는 것이다. 어떤 살아 있는 것에 있어서, 살아 있는 것이란 스스로를 접촉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접촉하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의 자기 자신에 대한 타동성他動性transitivité이라는 이 작동에 의해, 살아 있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접촉하는 것의 사활을 건 필연성 없이는 모든 존재는 불가능하며, 무와 관련될 것이다. 동시에 이 스스로 자신을 접촉하는 것은 아포리아라는 형태를 취해 나타난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신을 접촉하는 것이란 타자를 접촉하는[타자를 건드리는] 과 동시적인 것으로서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데리다가 배출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촉각이 열리게 된다.

촉각이 그러한 배출이라는 이 삶[생명]의 계기에 의해, 무엇이 의미되고 있을까? 살아 있는 것의 핵심에 있는 배출이 의미하는 것, 그것은 동물이 존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촉각을 외재화[외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동시에, 자기 자신의 바깥으로 나간다는 이 작동에 연결된 위험들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려고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바깥으로 나간다는 이 작동은 촉지 가능하게 되기를 불러일으키고, “촉지 가능하게 되기는 데리다의 동물 윤리가 직면하는 문제에 신호를 보낸다. 그 문제란 접촉할 수 없는 것l’intouchable의 질문이다. 촉각의 질문이 따르고 있는 아포리아를 가리키는 것은, 접촉할 수 없는 것이라는 단어이다. 이하가 아포리아의 매우 복잡한 전모이다. 만약 촉각에 의해서만, 그리고 촉각에 있어서만 동물의 삶[생명]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설령 그것이 자신을 접촉하는 것이더라도, 타자를 접촉하는 것이더라도 타자로의 이 엶은, 즉 타인이 항상 그렇게 접촉하는 것touchant으로의 이 엶은, 감각으로서의 촉각의 핵심 그 자체에 숨어 있는 항구적인 위협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위험이야말로 데리다가 동물의 삶[생명]정신화spiritualisation라는 강한 용어로 부르는 바의 조건이다. 정신화는 접촉하기와 접촉되기touché사이에서, “촉각적 신체의 촉지-불가능해지기를 가능케 한다.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동물이 스스로에게 고유한 신체를 창출하는 것은 촉각에 의해서이며, 그 고유한 신체는, 타자의 촉각에 의해, 즉 촉각의 타자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는 것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먼저 생각해두어야 하는 것은, 촉각을 구성하는 이 아포리아이다. 이 아포리아 때문에, 동물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살아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안과 밖의 경계를 스스로 창출하는 살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를 정신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한계에 의해 동물은 스스로의 유한한 실존 앞에 놓이는 것이며, 타자의 유한성 앞에 놓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에게 고유한 유한성 앞에 놓이는 것이다. 타자의 실존이 그러한 것과 똑같이, 동물의 유한한 실존은, 촉각에 의해 그 동물 자신에 도래한다. 그래서 촉각의 유한성에 의해, 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촉각이란 동물이라는 살아 있는 것의 내부에, 그리고 인간이라는 살아 있는 것과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것의 관계의 내부에 한계들을 창출하는 감각인데, 그런 촉각에 의해 만남은 실현된다. 달리 말한다면, 촉각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한계를 그려내는 것이며, 이 자아가 동물이라고 불리든 인간이라고 불리든, 이 동물 윤리에 있어서는, 그런 동물과 인간 사이의구별의 모든 존재론적 가치는 상실된다. 동물의 삶[생명]을 묘사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촉발auto-affection에 대해 논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촉발이야말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자신의 안에 타자를 맞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촉각의, 촉각에 의한 한계

이 한계는 촉각의 내부 그 자체에 있어서의 간격화espacement의 가능성이다. 촉각은 다른 감각들에 대해, 그리고 한계를 간격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산종된다. 사실, 촉각에 의해 수립된 한계는, 간격화에 의해, 그리고 간격화 때문에 성립되는 것이며, 그 한계를 확대하여 도래하는 모든 것을 열고, 그것에 대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항상 공외연적인 법 아래에서이다. “그러나 이 한계는, 접촉tact, 사실을 말하면, 간격화의 준-초월론적 특권을 이렇게 확인하면서, 촉각과 다른 감각을 서로 접촉하게 한다. 그리고 간격화란, 테크네와 보철적 대체물에 자리를 주는 것이다Mais cette limite-ci fait se toucher le toucher et les autres sens, confirmant ainsi le privilege quasi transcendantal du tact, en vérité de l’espacement. Et de l’espacement comme ce qui donne lieu à la tekhnè et au substitut prothétique.”[주10]


[주10] Ibid., p. 137.同前230


간격화란 한계를 창출하는 것으로서의 촉각이라는 이 특수한 감각의 다른 이름이며, 그 한계에 기초함으로써 만남은 생길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 접촉한다는 것은 융합이나 동일화가 되지 않는 것으로서의 만남, 양자 사이에서의 그런 만남의 조건이다. 융합이나 동일화는 데리다가 무매개적인 인접contiguïté immédiate이라고 명명한 무매개성의 환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무매개성으로부터 촉각을 떼어놓는 것[주11]이 문제이다. 바로 이 말은, 우리가 촉각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데리다의 동물철학을 선도하고, 우리에게 상식과도 철학적 양식과도 관계를 끊으라고 명하는 것, 탈구축의 표어이다. 촉각중심주의란 촉각에 있어서 인간의 손에 특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 촉각중심주의의 두 가지 주요한 형식융합과 동일화, 촉각이 무매개적인 감각 능력의 경험적 표현[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에 의해 도출되고 있다. 그런데 촉각이라는 감각 능력sensibilité haptique에는 그 어떤 무매개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매개적인 것으로서의촉각sensibilité tactile이라는 개념을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주12] 현상으로서의 촉각은, 경험적 촉각에 의해서는 접촉되지 않는다. 이렇게 데리다는 촉각에무매개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촉각을 단순한 하나의 감각으로 만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동물의 촉각의 철학을 창설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해온 다양한 구별을 뛰어넘기 위해, 촉각의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런 구별들은, 현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세계를 분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에 의해 설명된다. 이 두 개의 세계 중 한 쪽은 동물성을 자연에 가둬둠으로써 자연결정론을 따르며, 다른 한쪽은 인간의 특성으로 간주되는 문화적 문맥주의를 따르고 있다.


[주11] 일역자〕 Cf. Ibid.同前230-231

[주12]  일역자이 대목에서는 둘 다 촉각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sensibilité haptiquesensibilité tactile라는 두 개의 표현이 나눠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어에 기원을 두고, 주로 학술용어로 사용되는 haptique라는 단어가, キネステーゼ 등도 포함한 촉각에 관련된 것 전반을 가리키는 반면, 라틴어에서 유래하는 tactile라는 단어는, 더 직접적인 접촉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고 간주된다

 

동물의 촉각의 법

동물의 물음에 대한 우리의 대부분의 반성은 여전히 인간성과 동물성 사이의 구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데, 데리다의 탈구축은 이 구별을 뛰어넘겠다는 욕망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다고 하겠다. 탈구축에 있어서의 이런 극복은, 촉각의 법의 존재에 의해 이뤄진다. 사실, 살아 있는 것들 사이에 있어서의 접촉을 완전히 단념해버리지 않고, 그것을 바로 중단하는 촉각의 법이 있다고 한다면, 이른바 서양에 고유한 것인 인간과 동물 사이의 형이상학적 분리 이전에 그 법은 항상 생기고 있다. 사실, 너무도 자주 동물의 촉각의 물음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무매개성은 촉각을, 생리학적이고 동물학적 기능에 대한 법칙을 따르는 자연적신체를 전제로 한 행위로 삼아버린다. 그런 경우, 촉각이란 동물의 물리적 신체에 관련될 것이다. 그러나 촉각은, 몇 가지 과학법칙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물질의 질문이 아니다. 만일 촉각이 자연현상으로 환원되어버린다면 자연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는 것은 촉각인데 과학적 유형의 객관적 지식이 신속하게 촉각의 질문으로 처리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식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촉각에 있어서 촉각으로 환원 불가능한 것, 촉각에 있어서 그 단순한 물리적 출현[표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즉 모든 촉각의 중심 그 자체에 비-촉각이, 접촉될[건드려질] 수 없는 것에 속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촉각은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을 과학적 유형의 객관적 지식은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촉각은 끊임없이 타자에 대해 스스로를 열고 또한 스스로를 닫는다는 역설적 감각이며, 타자를 접촉하지 않는다는 가능성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감각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촉각의 근본적 법으로서의 자기-촉발이야말로 촉각에 고유한 삶[생명]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자기-촉발 덕분에, 촉각의 법이란, 객관적으로 생각되는 자연에는 결코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만약 자연이라는 단어가 알몸의 삶[생명]의 영역을 의미한다면, 동물의 촉각을 이끄는 법이란, 자연에는 결코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우리에게 인간성과 동물성 사이의 형이상학적 구별을 재고하도록 명하는 것은, 바야흐로,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이 촉각의 법이다. 촉각이란 인간들과 동물들에 공통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법은 촉각을 더 이상 자연에는 속하지 않는 하나의 사건이 되기 때문에, 인간성과 동물성이라는이 범주들을 질문에 부친다. 이것은 데리다의 논의의 급진적인 결론이다. 만나게 되는 것은 두 개의 알몸의 신체가 아니라, 오히려 촉각을 매개로 한 관계를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그려내는 두 개의 방법이다. 다양한 이원론이 인간들과 동물들의 평화로운 관계를 방해하고, 폭력을 가져오는 것인데, 만남이 의미를 갖는 것은, 이것이 이원론을 산출하는 대립들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탈구축이 발명하려고 추구해 왔던 것은, 인간들과 동물들의 평화로운 관계이다. 여기서는 자연이라는 단어를 결정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동물이 그런 자연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촉각에 있어서, 촉각에 의해서라고 하는 한에서, 그 어떤 자연도 그 법을 동물의 촉각에 떠넘기는 일은 없다. 촉각의 선행성은, ‘주체객체의 범주도, 누가qui무엇을quoi이라는 범주도 물음에 부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동시에 촉지 가능한 것이기도 촉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동시에 주체이기도 객체이기도 하며, 누구이기도 하고 무엇을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촉각의 목적이란 탈구축이라는 것이, 즉 현전하는 개체성의 탈동일화라는 것이 드러난다. 달리 말하면, 촉각의 경험에 있어서는, 접촉하기와 접촉되기는 더 이상 분리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누구와 무엇을은 거기에 있어서는 더 이상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접촉하는 것celui qui touche, 마찬가지로 접촉하기도 접촉되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유의 범주로서의 촉각이 동물성 그 자체에 의해 탈구축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보면, ‘누가혹은 무엇을, 접촉하는 것le touchant이나 접촉되는 것le touché을 결정하기 전에는 여기서 우리는 성급하게도 이것들을 행위의 주체 혹은 객체라고 부르지 않겠지만 촉각 일반에 관한 질문을, 촉각의 몇몇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더 이상 제기할 수 없다. 우선 접촉le toucher이 있고, 그 다음에 주어 혹은 보어에 의해 동사를 보충할 수 있게 해주는 이차적인 변양이 있는 게 아니다(무엇이 누구를 혹은 무엇을 접촉하다[건드리다], 누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접촉하다[건드리다])Or, a cet égard, il n’est plus possible de poser la question du toucher en general, de quelque essence du toucher en general avant de determiner le «qui» ou le «quoi», le touchant ou le touché que nous ne nous hâterons pas d’appeler sujet ou objet d’un acte. Il n’y a pas d’abord le toucher, et ensuite des modifications secondaires permettant de compléter le verbe d’un sujet ou d’un complément (quoi touche qui ou quoi, qui touche qui ou quoi).”[주13] 접촉le toucher은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사실상 이 사건에는 얼마간의 특이성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마주대한 접촉이라는 행위의행위자들의 예견을 동요시키는 것이며, 그 행위자들은 더 이상 주체와 객체라는 고전적 범주에 의해서는 사고될 수 없다. 인간은 주체의 범주라는 주권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는데, 이렇게 탈구축된 촉각은 인간의 모든 주권적 지위를 잃게 한다. 촉각의 물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를 객체 혹은 무엇을의 위치에 놓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물이 접촉하기가 될 때, 마침내 동물에 대한 모든 주권성을 우리로부터 잃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동물과 인간의 만남이 생기기를 바란다면, 사건이라는 그 특이성에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데리다의 동물윤리를 정초하는 것은 이 불가능성이다. 동물의 삶[생명]에도, 혹은 신의[생명]에도 똑같이 관련되는 것인 촉각에 의한 주권성의 탈구축을, 그 어떤 인간학적 한계도 중단하지 않는다. 데리다의 동물윤리에 있어서는 접촉contact으로서의 촉각, 즉 촉, tact으로서의 촉각이라는 이 사건만이, 현전하는 동일성의 탈구축을, 그리고 모든 공동체적 동일성의 해체를 행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확립되는 촉각에는 다음과 같은 전복의 힘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촉각은 근원으로서의 살아 있는 자기와, [] 박힌 혹은 접촉된 자기와의 사이에서의 항상적인 차연을 표식하는 대목이며, 접촉된 자기는 이 기원이라고 생각된 것을 끊임없이 차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현재가 열어젖혀지게 것은 촉각 덕분에 의해서이며, 이 열어젖힘은 접촉하는 것이기도 하고 접촉되는 것이기도 하며,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발견시킨다. 자기에의 현전은 그것은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것에도, 인간이라는 살아 있는 것에도 관련되는 것인데 ― 〔촉각이라는사건에서 무탈하게 떠날 수는 없다. 이 사건은, 분할 불가능한 주권성에 있어서 살려지게 된다고 생각되는 근원적인 절대자의 무구한 비분할[주14]이라고 데리다가 부르는 것, 이것을 물음에 부침으로써 성립한다. 촉각이 물음에 부치는 것, 그것은 이 현전의 형이상학인 것이다.


[주13] J. Derrida, Le toucher, op. cit., p.84.〔『触覚前掲138〕 〔인용할 때 저자는 촉각의 원문에 있는 따옴표를 생각했으나, 일본어로서의 읽기 쉬움을 고려하고 옮긴이의 판단에 따라 이런 따옴표를 번역했다.

[주14] 일역자이 표현은 기하학의 기원의 서문에서 볼 수 있다. Edmund Husserl, L’Origine de la géométrie, introduit et traduit par Jacques Derrida, PUF, 1962, p. 171.〔『幾何学起源田島節夫矢島忠夫鈴木修一訳青土社2003250



그래서 촉각은 살아 있는 것들의 확대된 공동체로의 타자의 무조건적인 맞아들임에 대한 질문을 개시한다. 그때 이후 이 공동체는, 환대라는 개념의 윤리적 힘에 의해 완전히 탈중심화된다. 어떤 공동체를 창설하는 분리의 법, 항상 이 분리의 법 아래에서이긴 하지만, 촉각에 의해 동물이 나를 맞아들인다. 왜냐하면 동물들에 권리를 준다는 이견이 많은 문제 이전에, 촉각의 물음은 동물들과의 공동체를 만든다는 가능성 때문에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동물들의 권리라는 관념은, 인간인 살아 있는 것과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것을 연결시키는 촉각적 공동체의 바깥에서는 의미가 없다. 이 촉각적 공동체는 접촉contact의 공동체이며, 즉 자기와의, 그리고 타자와의 -촉각co-tact의 공동체이다. -촉각은동물이 그러한 전적인 타자(tout autre)와의 함께avec이기 때문에, 자기와의 함께이기도 하다. 그래서 데리다의 동물 윤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촉각에 의해 동물과의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분리의 법을 전제로 하는 특이한 동물 윤리를 잘 가다듬기 위해 필요한 것이리라. 이 분리의 법은, -속에 반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기는 것은 정반대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발명해야 할, 도래할 공동체는, 그것이 전적인 타자인 동물에 대해 열릴 수 있는 경우에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이 집단을 포함하고 모조리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을 어떤 자연적, 유기적, 혹은 법-제도적인 전체성으로 제한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촉각은, 존재에 있어서, 존재처럼, 존재자의 존재처럼, 함께l’avec(cum 혹은 co-)[주15]의 접촉이며 그것은 타자와의 함께처럼 자기와의 함께이기도 한 함께이다 접촉으로서의 함께이며, -촉각으로서의 공동체일 것이다Le toucher serait ainsi, dans l’être, comme être, comme l’être de l’étant, le contact de l’avec (du cum ou du co-) avec soi comme avec l’autre, l’avec comme contact, la communauté comme co-tact.”[주16] 동물의 촉각의 물음에 의해 모든 정치제도를 쇄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형식, 그런 정치의 형식에 있어서 우리가 발명해야만 하는 것은, -촉각의 공동체이다. 더 이상 상상적인 것도 인간중심주의적인 것도 아닌, 종차별적인 경계를 극복하려는 공동체를 발명함으로써, 민주주의 그 자체야말로 동물적이 되어야만 한다.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는 지금, 거기에-있는-동물의 민주주의(démocratie animale-là)에 의해 살아 있는 것이다!


[주15] 일역자cum함께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전치사이며, co-는 프랑스어에서 함께라는 뜻을 지닌 접두사이다.

[주16]  J. Derrida, Le toucher, op. cit., p.133.〔『触覚前掲225

 

Patrick Llored, «La mort, l’animal et le toucher : Une déconstruction de l’animal heideggerien par Derrida». Reprinted by permission of Patrick Llored

桐谷慧東京大学ストラスブール大学博士課程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새로운 논쟁을 위하여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다니엘 벤사이드, 웬디 브라운,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크리스틴 로스,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김상운, 양창렬, 홍철기 옮김 

(978-89-961268-8-1 03100 | 릴리즈: 2010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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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거대 자본의 정치 개입과 미디어 장악, 국가‘이성’을 대체해버린 신자유주의적 ‘합리성’, 민의를 대표하기는커녕 사적인 이익 추구에 매진하는 정치권 등. 다른 한쪽에서는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항의꾼들이 국민을 볼모로 잡은 채 자신들의 소수의견을 관철시키려고 다수를 억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양측은 민주주의가 죽거나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강변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이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부고 소식에 ‘조서’(弔書) 한 장을 띄우려 한다. 과연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라고.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죽었다고 선언된 민주주의가 사실 무엇인지, 민주주의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민주주의는 어떤 주체를 만들고 있으며 또 어떤 주체를 기다리는지 등의 물음과 대면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공통되게 ‘민주주의’의 본뜻인 ‘인민(dēmos)의 통치(kratos)’를 환기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민주주의=인민의 자기통치’라는 어원분석에서 출발한 이론적 논의는 과연 “인민은 자기 통치를 원하는가? 민주주의적 자유를 원하는가? (근대) 민주주의는 ‘인민이 주인’(民主)도 ‘인민이 근본’(民本)도 아닌 ‘인민의 생’(民生)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가? 인민은 어느 때에 봉기했고, 봉기하며, 봉기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대면하지 않는 한 탁상공론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우리 독자들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답해주지 않을 그런 것이다.

 

 

판   형: 신국판 변형(140×210)

분   류: 인문・정치・철학

쪽   수: 216쪽

예정가: 11,800원

발간일: 2010년 4월 26일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재발명을 요구한다!” 현대 사상가들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모순과 역설, 그리고 가능성

 

이 책의 원제는 “민주주의, 어떤 상태에?”이다. 여기서 ‘상태’라는 말은 프랑스어 표현인 ‘차가 현상서’(état des lieux. 집을 임대해 들어가고 나올 때 집의 상태를 점검하는 보고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이 책은 라파브리크출판사의 대표인 에릭 아장이 민주주의라는 ‘장소’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여덟 명의 사상가가 이 요청에 나름의 ‘조서’(調書)를 제출한 결과물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가 과두제나 생명정치적 통치를 가리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했고, 또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를 정치와 동일시하거나, 계속되어야 할 혁명 또는 코뮤니즘의 이념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의 제목을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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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ultitude.co.kr BlogIcon 상겔스 상겔스 2010.05.04 00:26 신고

    한겨레신문 서평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88.html
    경향신문 서평 :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4301757295&code=900308


1. Nancy, Jean Luc - Hegel, The Restlessness of the Negative.pdf
http://www.mediafire.com/?mxi2mgwpjjb

2. Nancy, Jean-Luc, The Experience Of Freedom.pdf
http://www.mediafire.com/?5cym1ntnoce

3. The Title Of The Letter - A Reading Of Lacan.pdf
http://www.mediafire.com/?ujwjx5iy3nu

Au fond des imagesイメージの奥底で

책의 서두에서 “이미지는 성스러운 것이다”라는 테제를 볼 수 있다. 낭시는 ‘성스러운 것’이라는 개념을 ‘종교적인 것’이라는 개념과 구별하고, 전자의 본질을 분리시키는 것,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지는 멀리 있는 것이다. 이 이미지의 존재방식의 기원을 낭시는 코스모고니에서 찾는다. 대지가 천공과 분리되고 세계가 생긴 바로 그 순간에 천공은 이미지로서 출현한다. “이미지란 늘 천공에서 도래한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이미지가 천공이라고 해도 대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출현할 수 없다. “멂”은 대지라는 “가까움”의 장으로 해소되기 힘들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낭시는 이미지의 물질성을 어머니=물질로부터 해석하려고 하지만, 이 물질성이 이미지의 출현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기체(基体)라면, 또한 여기에서 코스모스적인 관점을 유지한다면, 어머니=물질은 무엇보다 대지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낭시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가까이 할 수 없는 멂에 의해 규정하고, 천공(또는 별)을 이미지의 최고의 것으로 간주한 철학자 루드비히 크라게스는 천공과 대지를 떼어놓으면서도 결합시키는 힘을 ‘코스몰로지적 에로스(der kosmogonische Eros)’라고 부르며, 이러한 힘으로 채워질 때 이미지의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헤시오도스나 삿포(Sappho)는 에로스를 “사지(四肢)를 쇠약하게 만든다(lysimeles)”는 말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잠이나 연정, 병이나 죽음 등에 의해 이른바 개체성이나 자아가 상실되는 상태를 가리키기 위한 것이다. 즉, 에로스가 야기하는 것은 몰아/망아(忘我) 상태이며, 바로 거기에서 이미지는 체험된다. (크라게스는 에로스적 체험을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비교한다.)

크라게스는 이미지가 지닌 가까워짐을 아우라(나 님부스Nimbus)라는 말로 표현했다. 벤야민은 이 말을 사용하면서 근대에서의 지각양식에 관해 고찰했는데, 어떤 메모에서 아우라의 원초적 상은 우리를 응시하는 별들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선은 아무리 가까이에 있으려고 해도 가까워질 수 없는 멂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의 존재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벤야민은 정확히 간파했다.

낭시도 역시 하이데거의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데스마스크(death mask)의 모티프에 관해 주석을 달 때, 시선의 문제에 직면했다. 얼핏 보면 데스마스크와 시선의 관계는 기묘한 것처럼 보인다. 데스마스크가 지닌 시선은 우리를 응시하지 않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다만, 데스마스크는 몸에 붙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가면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 시선의 존재방식도 가면과는 크게 다르다. 가면은 눈구멍이 텅 비어 있으며 그 시선은 이른바 눈동자가 없는 시선이다. 그렇다면 데스마스크가 지닌 시선은 어떤 것일까?

데스마스크에 각인된 것은 어떤 자의 시선의 흔적 ― 눈을 뜬 모습이든 눈을 감은 모습이든 ― 이다. 이런 의미에서 낭시는 데스마스크란 시선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흔적 자체의 이미지야말로 이미지 중의 이미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때 나타나는 것은 이미지의 핵심으로서의 멂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시선의 흔적이란 이 멂이 확실히 절대적인 멂으로 끌려가는 것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데스마스크의 시선은 눈구멍처럼 텅 빈 시선도, 삶으로 흘러넘친 시선도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삶에서 죽음으로의 통로 그 자체, 이행 그 자체이다.

낭시는 죽은 자의 시선이 이미지의 범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핵심에는 반드시 죽음이 존재할 것이다. 에로스에서 체험되는 것은 죽음, 즉 타나토스일까? 낭시는 죽은 자의 시선과의 관계에 상상력의 근저를 ― 하이데거와 함께 ― 지켜보고자 하지만, “이미지의 밑바닥에” 닿으려는 이러한 고찰은 에로스(그리고 타나토스)와 상상력의 근원적 연관을 탐색한다는 다른 시도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할 것이다.


1. 박준상님이 쓴 글 : http://blog.naver.com/afx1979/80014958782
2. <숭고에 대하여>(낭시 외, 김예령 옮김, 문학과 지성사)에 대한 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8084&pt=nv
3. http://www.calitosway.net/4010
4. http://imjohnny.egloos.com/1625051 (박준상님의 글과 낭시 사진을 볼 수 있다.)
5. 로쟈님의 <장-뤽 낭시의 '뮤즈들'> http://blog.aladdin.co.kr/mramor/1039434

좀 더 찾아보면 유용한 자료가 나올 터이다...
낭시와 관련한 영문 자료들(인터뷰 등을 포함)은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Nancy, Jean-Luc, and Katherine Lydon. “Exscription.” Yale French Studies.78 (1990): 47-65. http://www.mediafire.com/?bjtykysjjyy

Nancy, Jean-Luc, and Michael Syrotinski. “Les Iris.” Yale French Studies.81 (1992): 46-63. http://www.mediafire.com/?m0vjhrzyzbu

Nancy, Jean-Luc, and Paula Moddel. “Menstruum Universale (Literary Dissolution).” SubStance 6.21 (1978): 21-35. http://www.mediafire.com/?nxhgzyh01ch

Nancy, Jean-Luc. “Mundus Est Fabula.” MLN 93.4 (1978): 635-53. http://www.mediafire.com/download.php?djnby2azpj0

Nancy, Jean-Luc, and Tracy B. Strong. “La Comparution /the Compearance: From the Existence Of “Communism” To the Community Of “Existence”.” Political Theory 20.3 (1992): 371-98. http://www.mediafire.com/download.php?jhwl3nvyena

Nancy, Jean-Luc, and Thomas C. Platt. “The Two Secrets of the Fetish.” Diacritics 31.2 (2001): 3-8. http://www.mediafire.com/?xzxcoyyjzjz

Nancy, Jean-Luc, and Richard Livingston. “The Unsacrificeable.” Yale French Studies.79 (1991): 20-38. http://www.mediafire.com/?d3djujmvwdo

Hall, Mirko M., and Jean-Luc Nancy. “The War of Monotheism: On the Inability of Civilization to Expand: The West Battles against Itself.” Cultural Critique.57 (2004): 104-07. http://www.mediafire.com/?mojc1tukim3

Nancy, Jean-Luc. “Wild Laughter in the Throat of Death.” MLN 102.4 (1987): 719-36. http://www.mediafire.com/?uvdnxzpy1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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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낭시의 책이 상당수 번역되어 있다. 그 중에는 <주체 뒤에 누가 오는가?>(Who Comes After the Subject?)라는 책도 있다. 이건 낭시가 쓴 것이라기보다는 ≪주체 뒤에 누가 오는가?≫는 장-뤽 낭시가 제기한 물음에 대해 프랑스 사상가들(장 프랑소와 쿠르틴, 에티엔 발리바르, 믹켈 보르흐-야콥센, 알랭 바디우, 모리스 블랑쇼 등)이 답변한 것을 모은 책이다. http://www.amazon.com/Comes-After-Subject-Eduardo-Cadava/dp/0415903602
그 책의 첫 대목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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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상에서 철저하게 비판받았다. 그 비판이 일단락된 현재, 도덕이나 이성의 복권을 내건 인간주의적 사상이 발흥하고 있다. 그러나 휴머니즘으로의 회귀는 철학의 망각에 속한다고 낭시는 비판한다. 서양의 주체․인간주의가 포스트모던에 의해 왜 비판되었는가, 그것에 대해 말하자면 푸코가 폭로했듯이 보편적 이상으로 간주되어야 할 인간성을 내건다는 것은 정상적인(이라고 간주된) 인간의 범주에는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소외하며 규탄하는 사태를 낳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적 동질성을 인종차별에 대치시키는 한, 차별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체의 단순한 무화(無化)는 주체의 형이상학의 완성 형태이다. (스스로를 그 자신의 차이의 해소로서, 또는 자신의 아이러니로서 인정하는 자기-현전이다.) 그렇지만 주체의 무화라는 이 니힐리즘에 대해 ‘주체로의 회귀’를 시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주체의 장소에 누가 대신 도래하는가를 제시해야만 한다. 즉, ‘주체의 뒤에는 누가 오는가?’를.
여기에서 철학적 주체에 대한 정의를 뒤돌아보자. 철학적 주체란 헤겔의 “자기 속에 자신의 모순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모순이 자기 고유의 것이라는 점, 그리고 주체성은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외재성, 소원함, 타자)를 목적론적이고 절대적으로 재전유한다. 그 때문에 모든 변증법의 시작에는 주체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재, 실존이란 주체가 모든 술어에 선행하는 한에서 주체의 본질이다. 그러나 실존은 본질(결정된 것, 분해불가능한 궁극적 요소)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현실적으로 경험적으로 실존하는 ‘실존자’이다. 즉, 인간의 본질인 주체란 지금까지의 철학이 생각해 왔듯이 절대적으로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그 장에서 그 때 그가 대면하는 것과의 관계에서만 본질을 지닐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일관성이라는 정체성/동일성 신화는 붕괴되어 버린다.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를 형성하게 되는 ‘타자’라고 낭시는 생각한다.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장소에는 사실 아무런 고정적인 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바로 이’ 곳에서 어떠한 ‘하나’가 도래한다. ‘하나’는 실체적 통일이 아니다. 자신으로의 도래 속에서 하나이자 유일할 수 있으나 ‘그것’ 자체에 있어서는 다수이며 반복되는 것이다. 현전이란 자기에게 무제한적으로 도래하며 도착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 것, 결코 자기 자신의 주체가 아닌 ‘주체’이다. 이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종래의 형이상학은 자기에게 도래하지 않는 타자를 항상 자신의 내부에 변증법적으로 편입하고 지배하려고 해 왔다. 이것은 자신이 모든 것에 선행하여 존재한다는 오해 때문이다. 자기는 타자와의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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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시의 ≪코르푸스≫Corpus라는 책. 일단 몸이나 신체 등으로 옮길 수 있지만, 내용을 감안하면 이때의 몸은 단독자로서의 몸이라기보다는 '공통'의 성격을 지닌 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네트워크적 주체관을 공동체로서 탐구하기 때문이다. 종래의 형이상학은 타자의 현전을 거부하고 자기완결적, 자기충족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신의 현전을, 이어서 재현전으로 자신을 고정화하려고 꾀했던 것이다. 이에 반하여 낭시는 자기, 즉 탈자존재(脱自存在)는 하나의 영혼이지만, 분절화되고 밖을 향해 열려 있는, 닫혀 있지 않는 신체라고 생각한다. 관련된 대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때마다 특이한, 자기에게 있어 이질적인 하나의 도래의 자유를 따라 나는 존재한다. 자유란 실존자의 성질도, 그 기능도 아니다. 그것은 실존하는 현전에의 자기 도래이다. 현전은 그때마다 공동에 있다. 현전에의 도래는 복수(複数)이다.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그 공동체에는 본질은 없으며, 공동 존재는 없다. 어떠한 주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분화된, 어머니 바다 속처럼 혼돈은 아니다. 개별적으로 분절화된 존재의 네트워크의 공동체, 교통/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공동체이다. 복수의 도래는 단수의, 결코 주체로 환원되지 않는 특이한 ‘하나’의 도래이다. 주체 없는 공동체에서 복수적인 것과 단수적인 것이 서로 해방과 분유(나눔, 공유)를 반복한다.
이것이 낭시가 제창한 새로운 주체, 즉 탈자존재(脱自存在) 개념이다. 신체는 끊임없이 외부에 각인되면서 열려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피부의 한계 위에서 확산, 수축하고 연장된다. 나의 신체는 나에게 항상 이질적인 것, 소유권이 박탈된 것으로 있다. 어떠한 본질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탈자성(脱自性)의 본질이다. 내재성도 아니다. 초월적 주체도 아니다. 외부도 내부도, 기능도 합목적성도 아니다. 있는 것은 “타자로서의” 신체뿐이다. 간극뿐이다. 신체는 공간과 행위 속에서, 애인들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탈자존재하는 신체와 서로 접촉하고, 자신들의 공동화(空洞化)를 무한하게 갱신하고 서로 틈을 벌리고 서로에게 돌려 보낸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서로 접촉하려고 하는가? 법칙으로서의 성, ‘접촉해’, ‘키스해’라는 명령은 종의 충동으로도, 리비도로도 설명-계산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명령이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떤 대상도 아니고 자기도, 아니도 아니라, 단순히 자기와 접촉한다는 것의 환희/고통이기 때문이다. (자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되는 것.) 자기에게서 당신을 만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체가 항상 보다 멀리라고 강제하는 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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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낭시와 공유·소통에 대한 물음

박준상 (연세대 철학과 강사)

1. 공유 내의 존재 etre-en-commun
여기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장-뤽 낭시Jean-Luc Nancy(1940- )에 대해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하는가? 그의 사상의 특성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을 밝혀봄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낭시의 사유의 핵심에 정치적인 것이 놓여 있으며, 그의 사상은 시종일관 정치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일반적인 관점으로만 이해되어져서는 안 된다.
많은 다른 정치사상가들의 경우에 그러하듯, 낭시는 물론 정치적 사건들(동구권의 해체, 걸프전), 정치적 변화들(세계화, 서양중심주의의 한계), 정체政體들·이데올로기들(민주주의, 공산주의, 나치주의)에 대해 구체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분석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개입일 뿐이고 구체적인 정치적 판단으로 이어질 뿐이며, 모든 경제·문화·사회현상들을 총체적으로 설명 가능하게 하는 어떤 초월적 원리를 배경에 깔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낭시의 정치철학은 이른바 '형이상학적'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매우 급진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정치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 또는 조건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치적인 것이란 이미 공동존재(함께 있음, etre-avec)에, 인간들 사이의 소통에 기입되어 있으며, 어떤 '우리'의 존재의 수행(실현, 표현)이다. '우리'의 존재, 다시 말해 '나'의 존재도 타자의 존재도 아닌, 모든 단일성, 동일성(정체성), 내재성 바깥의 존재, 고정된 개체의 속성에 따라 규정되는 존재가 아닌, '나'와 타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 내의 존재, 관계에만 정초될 수 있는 존재.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으로 귀결되는 자기의식의 반대편에 놓이는 존재, 또한 어떤 주제theme에 고정되어 동일화된, '내'가 구성한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존재. 정치적인 것으로써 '우리'의 존재의 수행이란 '우리'의 서로에게로 향함·나타남, 관계 내의 서로를 향한 실존들의 만남, 접촉touche이다. ('접촉'은 낭시의 용어이지만, 그 중요성을 부각시킨 사람은 그의 동료,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이다. 데리다의 낭시에 바쳐진 저서,『접촉, 장-뤽 낭시』 참조, J. Derrida, Le Toucher, Jean-Luc Nancy, Galilee, 2000.)

낭시는 보이지 않는 관계('나'와 타인은 보이지만 그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의 존재, 공유 내의 존재를 조명하며, 거기에 그의 사유, 정치적 사유의 핵심이 있다. 그러나 '나'와 타인―또는 타인들―의 관계를 정치에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이거나 과장이 아닌가? 분명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의 존재, 공유 내의 존재 그 자체는 정치가 아니다. 그러나 공유 내의 존재는 '나'와 타인 사이의 모든 종류의 만남의 근거에 있는 나눔partage, 어떤 '무엇'을 나눔이 아닌, '우리'의 실존('우리'의 있음 자체)의 나눔의 양태, 나눔의 전근원적 양태를 지정한다. 공유 내의 존재는 인간들 사이의 모든 종류의 소통과 공동체 구성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나아가 현실의 정치적 결정·행동에 있어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유 내의 존재는 '정치적'이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정치의 근원이다.

아마 낭시는 공유 내의 존재가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사유된 적이 없이 망각 가운데 묻혀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까지 나눔과 공동체라는 정치적 문제에 있어, '무엇'을 나눔과 '무엇'에 기초한, '무엇'을 위한 공동체만이 부각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세기에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세계 전역에 걸쳐 진행된 마르크스주의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하나의 '무엇', 즉 재산의 공유共有였다.
나치는 열광적인 정치공동체를 이루었지만, 그것은 공동의 이념적 '무엇'(반유대주의와 게르만 민족의 우월주의)의 기초를 바탕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공동체가 가시적 '무엇'(재산, 국적, 인종, 종교, 이데올로기)의 공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을 때, 그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왜곡, 말하자면 보이는, 쥘 수 있는―전유專有할 수 있는―동일성의 지배, 공유 내의 존재의 망각. 그 '무엇'에 따라 전개될 수 없는, 그 '무엇'이 목적일 수 없는, 실존의 나눔의 망각, 함께 있음 자체의 망각. 하이데거는 우리가 존재자에 대한 이해와 소유라는 관심에 사로잡혀 존재망각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낭시는 우리가 보이는 '무엇'에 대한 공유 바깥의 나눔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관계에 기입되는 공유 내의 존재를 망각했다고 말할 것이다.

거기에 결국 낭시의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정치적 물음이 있다. '우리'가 함께 있는,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무엇' 때문이 아니며, '무엇'을 나누기 위해서도 아니다(우리는 재산을 공유하기 위해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이 말은 재산을 나눈다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있는 이유와 목적은 다만 함께 있다는 데에 있다. 함께 있음의 이유와 목적은 함께 있음 그 자체이다. 다만 함께 있기 위해 함께 있음, 즉 공유 내의 존재를 위한 함께 있음, '무엇'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 자체를 나눔, 다시 말해 '나'와 타인의 실존 자체가 서로에게 부름과 응답이 됨, '우리'의 실존들의 접촉.

2. 유한성의 경험
공유 내의 존재,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시적 어떤 것의 공유가 아니라, 타인이 '나'를 향해 다가옴, '내'가 그 다가옴에 응답함, 즉 '내'가 타인을 향해 건너감, 타인을 향한 외존外存ex-position, 관계 내에 존재함, 어떠한 경우라도 비가시적, 동사적 움직임들의 부딪힘, 접촉이다. 유한有限한 자들의 만남. 낭시는 현대철학에서 많이 언급되고, 그 중요성이 강조된 '유한성finitude'이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사상가이다.
인간의, 인간들의, '우리'의 유한성, 여기서 유한성은 첫째로 완전한 내재성內在性의 불가능성이다. 완벽히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을 수 있는, 그 스스로에 정초된―그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결정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개인이란 없다. 인간은 항상 자기 아닌 자에게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에게로 향함, 그에게 노출되어 있음, 그를 향한 외존, 관계 내에 존재함, 그것이 '나'의 존재의 조건이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가 아니라, 그가 향해 있는 타인에 의해 제약된 존재, 하지만 그 제약으로 인해 비로소 의미sens에 이를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다. 유한성 가운데에서의 존재란 먼저 외존 가운데에서, 관계 내에서의 존재, 폐쇄성과 내재성 바깥의 존재를 의미한다.
두 번째로 유한성은 만남의 유한성을 가리킨다. '우리'의 실존들의 접촉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접촉은 불규칙적, 단속적 시간에, 즉 시간성 내에서 전개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을 통해 확인하고, 표상할 수 있는 '무엇'에 정초되어 있지 않고, '무엇' 바깥의 타인의 나타남에 응답하는 순간의 정념情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접촉, '무엇'에 의하지 않는, '무엇' 때문이 아닌 급진적인 만남, 그것에 정념만이, 극단의 단수성(singularite, 타인의 나타남의 단수성)을 긍정하면서, 답할 수 있다. 정념, 만져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무엇'에 따라 고정될 수 없는 관계 자체에 대한 감지.
그러나 만남의 유한성은 인간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나아가 지속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유한성은 관계를 '내'가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즉 타인을 '나'에게 필요한 그 '무엇'의 요구에 따라 어떤 동일성 내에로 동일화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에 따라 그것은, 만일 '무엇'이 관계를 지배할 때, 그러한 지배(예를 들어 재산의 지배, 정치적 이념의 지배, 인종과 국적의 동일성의 지배―지금 이 땅의 경우 학벌과 지역적 동일성의 지배)에 지속적으로 저항할 수 있게 하는, 근거·이유·목적도 없는 만남, 또는 그 자체가 이유와 목적인 만남, 즉 실존들의 접촉과 그 순수성을 정당화한다.
세 번째로 낭시가 말하는 유한성은, 그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 한계상황(죽음, 병, 고독)에 놓여 있는 인간의 존재양태를 표현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낭시에게 유한성은 공유 내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하이데거는 죽음에로의 접근이 '나'로 하여금 일상적이고 평균적인 존재양태, '그 누구Man'의 지배에서 벗어나 본래적 실존에로 눈을 돌리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반해 낭시는 죽음에로의 접근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본래적 실존에로 돌아가게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외존(타인을 향해 존재함, 타인과의 관계 내에 존재함)을 통한 급진적인 공유 내의 존재를 부르게 한다고 본다. 죽음에로의 접근의 경험은 '나'와 자신의 본래적 관계의 회복을 요청한다기 보다는, 죽음이라는 절대타자 앞에서 '나'의 동일성이, 그것이 무엇이든,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모리스 블랑쇼(1907-2003)
그것은 '나'와 자신의 관계의 파기의 경험이며, 본래성Eigenlichkeit에로 향해 가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어느 누구의, 아무의 경험(이 점에 대해 낭시와 사상적으로 가까운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죽음에 대한 분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품과 죽음의 공간',『문학의 공간』, 박혜영 역)이며, 공유 내의 존재로 열리는 경험이다. 다시 말해 죽음에로의 접근의 경험은 '나'의 규정일 수 있는 모든 것이 무효화되고 익명적 실존에로 되돌아가는 경험이며, 그 익명적 실존을 감당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 타인이라고 본다면, 타인을 향해 가는, 타인을 부르는 외존의 경험이다. "죽음은 공동체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공동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그 역도 마찬가지이다."(낭시,『무위無爲의 공동체』) (죽음과 외존, 공유 내의 존재, 공동체―공동체는 낭시에게 원칙적으로 어떤 가시적 공동체, 기반과 조직을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어떤 급진적인 소통의 체험이다―의 연관성, 그에 대한 낭시의 사유는 자신의 특별한 체험에 의해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산소부족증 때문에 폐이식수술을 받았으며, 더구나 완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환자'이다. 왜냐하면 산소부족증은 재발할 위험이 있으며, 재발의 경우 생명을 건 재이식수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낭시 개인의 경험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 가운데 죽음과 병이라는 '침입자intrus'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어는 누구의 것일 수도 있는 유한성의 경험이다. 그 경험에 대해 낭시는, 자신의 투병생활을 기술하면서, 성찰해보고 있다. 낭시,『침입자』 참조.)

3. 문학과 공유 내의 존재
낭시에게 문학과 문학작품의 경험이란 문제는 그의 사유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낭시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문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술, 영화에까지 이르지만, 여기서는 그의 문학에 대한 성찰만을 살펴볼 것이다). 그의 문학에 대한 사유 방식과 경향은 낭만주의 이후에 속한다. 그 사실을 낭시는 사상적으로 그와 매우 가까운 동료, 필립 라쿠-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와 독일낭만주의자들의 동인지『아테네움Athenaum』에 실린 텍스트들을 공동편역(필립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문학적 절대』, 그들이 쓴 서문이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낭만주의란 무엇인가',『세계의 문학』, 박성창 역, 2002 가을 106호)하면서 명백히 드러냈다. 낭시의 사유가, 문학의 여러 문제와 결부될 때, 독일낭만주의에 가까이 닿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사실은 하지만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독일낭만주의에서 최고의 형이상학적 절대(주객 합일의 절대, 주체와 세계의 합일의 절대)의 표현에 이르는 통로는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시예술Dichtkunst이 드러내는 어떤 감각적 현현顯現, 즉 인간주체의 제시(Darstellung, 형상화)이다. 또한 낭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말하는 더할 나위 없는, 전유할 수 없는 외재성으로써 '의미의 의미sens du sens'란 개념에 포착되는 의미가 아니라,―낭만주의에서 강조된 제시에 유비될 수 있는―개념 이전 또는 바깥의 의미, 개념을 초과하는 의미, 감각적 의미, 즉 이미지의 제시presentation이다. 그러나 낭시는 문학이 인간의 세계와의 어떤 절대적 합일을 보여준다는 독일낭만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의문시하며, 나아가 그 절대적 합일이 주체의 감각적 제시를 통해 표현된다는, 그들에게 남아 있는 독일관념론(피히테)의 잔재를 거부한다. 독일낭만주의에 근대의 산물인, 주체의 위치에 대한 과장된 강조가 있을 것이다. 낭시가 말하는 '의미의 의미'로서의 의미는, 낭만주의적 주체의 제시가 아니라, 문학작품에서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유한성의, 어느 누구의 것일 수도 있는 유한성의 형상화이다. 익명적 유한성의 형상화, 다시 말해 유한성의 이미지를 통한 제시.
문학작품이, 독일낭만주의들이 강조되듯, 철학적 개념의 전개라기보다는 인간성의 형상화라고 본다면, 그 인간성은,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세계와의 합일에 이른 '절대적' 주체에 육화되어 표현되지 않는다. 낭시에 의하면, 문학이 그려내는 인간성은 특정한 주체의 것이 아니며, 유한성에 한계 지워진 무명씨의 것이다. (무명씨의 인간성이 무엇인가는 낭시가 그의『사유의 무게』에 끼워 넣은, 조르쥬Georges라 불리는 남루한 부랑자의 사진에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 사진에 낭시는 그 조르쥬라는 무명씨를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 사진은 필사적으로 현실과, 그 불안정함, 은총, 덧없음을 보여준다. 어떤 곳에서, 한 순간, 어떤 것 또는 어느 누구가 나타났다. 사진은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심, 우리의 망각, 우리의 해석에 맞서 대립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사진은 그러한 명백성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유한성이 말하게 하기. 내재성·폐쇄성의 불가능성으로서의 유한성(타인에게로 외존할 수 밖에 없다는 유한성), 만남의 유한성(순간에 극단의 단수성에 기입되는 타인의 현전이 갖는 유한성), 한계상황과 죽음이 요구하는 유한성(사라짐의 필연성), 그러한 유한성이 긍정되게 하기, 거기에 문학의 과제가 있다. 문학은 그러한 유한성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에 따라 문학은 공유 내의 존재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한성의 제시 가운데 독자가 읽을 수―볼 수―있는 것은, 그 '무엇' 바깥의―또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지배당하지 않는―한계에서의 인간존재 자체 그리고 개인의 모든 특수한 속성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현전이기 때문이다. 이상적·본질적 인간(성)의 모델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거부해야, 그것에 저항해야 하며, 거기에 공유 내의 존재, 즉 정치적인 것을 향한 첫 걸음이 있다. 독일낭만주의는 문학이 철학적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인간성의 현시라고 보았다. 그러나 독일낭만주의가 어떤 형태의 '고귀한'―절대와 함께 하는―낭만적·예술가적 주체를 고양시킨 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하나의 오류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하나의 인간의 모델을 세웠기 때문이다―그 모델로부터 바그너에서 니체까지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열정 속에서 세계와의 합일을 꿈꾸며, 자신의 파멸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비극적 영웅, 하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영웅. 그러나 '우리'의 '열정'과 '비극'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의 열정은 힘의 고양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며, 한계에, 유한성에 처한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열정, 소통에의 열정이다.
'우리'의 비극은, 단순히, '우리'가 사라져갈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 '비극'은 허무주의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사라져감, 죽음을 통해서만 소통의 무한성을, 공유 내의 존재의 무한성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공동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이다"). 문학은 공유 내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그에 따라 문학은 정치적인 것과 마주한다. 그러한 사실은 그러나 문학이 정치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문학 가운데 정치적인 것의 전형이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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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낭시는 주로 독일철학, 예를 들어 독일낭만주의,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자신의 사유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이후에 가능한 공동체주의(communisme, 이 역어를 '공산주의' 대신에 택했다)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낭시는 또한 그 보다 한 세대 전 사상가,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를 이어가면서 '무엇'의 동일성의 지배에 저항하는 일종의 유한성의 정치철학을 대변하고 있다(그러한 정치철학은 바타이유, 블랑쇼, 낭시의 사상을 바탕으로 현재 프랑스에서『선線Lignes』이라는 잡지의 정치적 입장의 배경이 된다). 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필립 라쿠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등과 함께 가장 주목받고있는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 중 한사람이다. 이 사실을 낭시의 또 다른 측근, 데리다는 2000년『접촉, 장뤽 낭시』를 상자해 확인시켰다. 흔히 낭시를―라쿠라바르트도 마찬가지이지만―데리다의 후계자, 또는 제자로 여기서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해라고 말할 수 있다. 낭시가 데리다의 해체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소통, 공동체, 접촉등의 정치적 주제들을 독자적(독창적)인 관점에서 전개해 나아갔다. 낭시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대학 철학과에서 오랜 동안 교수생활을 하다 얼마 전 은퇴했다. 중요 저서로는, 바타이유에 대한 해석을 거쳐 동일성의 지배 바깥의 공동체, 조직·기관·이데올로기 바깥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명확히 제시한『무위無爲의 공동체La Communaute desoeuvree』, 실존이 어떻게 타인과 함께 하는 실존, 공-실존co-existence인가를 밝힌『복수적 단수의 존재L'Etre singulier pluriel』, 개념·명제 너머의 의미, 개념·명제의 성립조건으로서의 의미, '의미의 의미'에 대한 정식화,『세계의 의미Le Sens du monde』, 현전presence에 대한 새로운 해석,『사유의 무게Le poids d'une pensee』등이 있다. 낭시의 사상은, 그의 저서들의 번역과 더불어,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상태에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서 거의 소개 되어있지 않고, 단 한 권의 번역서도 찾을 수 없다. 블랑쇼는 그의『무위의 공동체』에서 영감을 얻어, 저자는 다르지만, 그 책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밝힐 수 없는 공동체La Communaute inavouable』라는 책을 썼다. 낭시는 2001년에 블랑쇼의『밝힐 수 없는 공동체』에 대한 응답으로 다시『마주한 공동체La Communaute affrontee』라는 저서를 발표했는데, 그 책이『밝힐 수 없는 공동체』의 번역에 함께 묶여 우리나라에 소개될 것 같다(모리스 블랑쇼,『밝힐 수 없는 공동체』/장-뤽 낭시,『마주한 공동체』, 이학사). (박준상)


[출처] 장-뤽 낭시(1940-).|작성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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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73) 우리 평범한 삶, 그 어디에도 숭고는 없다

2008 08/05   뉴스메이커 786호

숭고에 대하여
장-뤽 낭시 외, 김예령 옮김·문학과지성사·2005
우리는 숭고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있다. 높이에 대한 꿈은 사라진 지 오래고, 우리는 끝없이 실패하며 지리멸렬한 일상의 밑바닥에서 어기적거리며 살아간다. 잡담과 업무 사이에, 밥 먹는 일과 거기에 쓴 그릇들을 씻는 일 사이에, 계약과 계약 사이에 어떤 숭고도 깃들 여지가 없다. 잘 다림질한 바지를 망가뜨리는 저 지하철 출근길에, 허망한 소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치르는 예식장의 판박이 결혼식과 진부한 장례식에, 돌연한 병사(病死) 혹은 노화의 결과인 자연사, 저 아파트에서 이루어지는 장삼이사의 평범한 삶 그 어디에도 숭고는 없다.

늘 지체되는 약속, 치솟는 세금과 물가, 불공정한 경쟁, 사소한 다툼, 어이 없는 배신, 타인의 무신경함, 터무니없는 험담과 비난, 오해, 과민반응, 짜증과 신경질…. 내가 이런 것들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사는 게 진절머리가 날 때, 나는 비 오는 날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린다. 비와 땀방울에 젖은 머리칼들이 이마에 달라붙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마침내 심장이 파열하기 직전까지. 나는 달리고 또 달린다. 때로는 비틀스의 노래를 듣는다. 내겐 언젠가 외국 여행 중에 발견하고 사들인 비틀스의 전곡을 담은 열한 장의 시디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비틀스의 노래를 들을 때면 나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비틀스의 노래를 들으며 화가 가라앉고 봉두난발로 허공을 떠다니는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나는 벤야민을 사랑한다. 그래서 벤야민의 책을 읽는다. 하루 종일 차를 잔뜩 끓여놓고 그것을 천천히 마시며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으며 아주 신중하게 마음이 행복해질 때까지 자제한다.

변함없이 지속되는 월화수목금토, 오감의 즐거움과 상관없이 배 고파서 먹는 끼니, 보람 없이 의무로만 채워지는 수고, 봉급이 나오는 날짜만 꼽아가며 출근하는 직장, 해마다 나이를 하나씩 더 먹는 것… 이것들에는 범속함의 지루함에 대한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묵묵히 치러야 하는 할당된 책임,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지나야 끝나는 견딤만 있을 뿐이다. 미지근한 맥주 몇 병, 혹은 소주 몇 병과 입에 집어넣는 죽은 동물의 근육 몇 점, 노래방에서 악쓰며 부르는 유행가 몇 곡, 그리고 피로에 절어 기절한 듯 자는 잠이 고작해야 그 책임과 견딤에서 풀려난 우리가 받는 보상이다. 거기 어디에도 숭고는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숭고는 솟구침이며 황홀경, 진실의 위대한 측면이며 미적 고양(高揚)이다. 시, 바흐의 음악, 모네가 그린 수련, 눈이 번쩍 뜨이는 승경(勝景), 이타적 희생, 임종하는 이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마지막 말들 속에 찰나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

그렇다면 숭고는 어디에 있는가? 숭고는 감성과 오성, 혹은 미(美)와 진리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도덕에서 숭고는 희생과 포기에서 생기는 잉여들, 즉 능동적 가난과 가난이 표상하는 금욕주의에서 발견되는 그 무엇이다. 예술에서 숭고는 미적 실재로 현현된 것, 그 너머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자유의 고양, 감각적 직관을 꿰뚫으며 일어나는 윤리적 황홀경 따위다. 대개의 예술은 사용, 이득, 수익, 손실과 무관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기쁨이며 보상이다.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볼 때 나는 숭고의 한 측면을 감지한다. 푸른 두건을 쓴 소녀의 순진무구한 표정 속에서 크게 뜬 눈동자는 그 아래 짙은 명암 속에서 빛나는 진주 귀고리와 같이 빛난다. 그 습기를 머금은 채 말갛게 빛나는 눈빛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현실 저 너머의 어떤 세계를 암시한다. 뛰어난 예술은 가능성의 극한에 가 닿지만 그것은 가냘프고 찰나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나는 내 그림이 그것들의 외관이 아니라 그 아래에, 저 스스로의 난폭함과 항구적인 힘 겨루기 밑에 있다는 것을 안다. 선(善)이나 숭고라는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부서지기 쉬운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그런 것처럼, 취약하다.”(니콜라 드 스탈) 장-뤽 낭시는 숭고를 문제삼을 때 그것은 ‘제시의 문제’라고 말한다. 제시의 다양한 양태, 이를테면 언술·출현·봉헌·진실·경계·소통·감정·세계·벼락 등은 하나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숭고는 자주 미학의 차원에서 다루어지지만, 미학 너머에 있는 그 무엇, 예술 속에서 예술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언제나 한계의 예술이니만큼, 예술의 너머란 존재하지 않는다.”(장-뤽 낭시) 예술은 그 한계에 닿을 때 봉헌의 제스처를 취한다. 봉헌에는 순진성과 단순성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감정들의 생동감은 나타나지만 요란한 과도성 혹은 숭고한 열광은 없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숭고와 같이 드높거나 깊디 깊은 곳에 깃들지 않는다.” 그 표면은 그저 과잉이 없는 평온을 지향할 따름이다. 장-뤽 낭시는 숭고가 예술에 대한 사유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칸트에서 찾는다. 낭시는 “예술에 대한 사유의 핵은 숭고이며, 미는 단지 그것의 규칙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예술이 추구하는 바 미와 따로 존재하는 숭고란 없다. 왜냐하면 “숭고, 그것은 그를 통해 미가 우리를 건드리는 계기지 미가 우리를 즐겁게 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숭고는 작품과 접촉함으로써 존재하지 그 형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접촉은 작품의 바깥, 작품의 경계선에서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접촉은 예술의 바깥에 있다. 그러나 예술이 없다면 그 접촉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예술이 드러나고, 예술이 주어진다. 이 사실이 바로 숭고다.”

왜 숭고를 문제삼는가. 미학이 숭고를 문제삼는 것은 미학의 월경(越境)이며 진화의 증거다. 프랑스의 68세대 철학자들이 싹을 틔우고 푸코, 리오타르, 라캉, 들뢰즈, 레비나스 들에 의해 그 논의가 확장된 숭고에 대한 사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구조주의 사유의 압력 아래에 있던 68세대 철학자들이 그 전 세대가 제시한 사유의 틀을 깨고자 하는 욕망이 숭고로 이끈 촉매제가 되었다. 전 세대가 제시한 낡은 틀이 아니라 저희들이 만든 새로운 사유의 틀로 자신의 세대를 규정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들로 하여금 숭고를 사유의 영역 안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틀을 깨고자 하는 것, 경계 바깥으로 튕겨 나가려 함은 다시 그 틀과 경계에 대한 사유로 재귀하도록 이끈다. “숭고에 대한 사유에 의하면, 윤곽이나 틀, 자취는 그것들 자신으로 귀착한다. 그것들은 귀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것은 바로 그 제시 자체의 중지, 다시 말해 윤곽과 틀, 자취들이다.”(장-뤽 낭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숭고에 대한 사유는 경계의 미학 혹은 미학의 경계에 대한 사유로 귀착한다. 다시 한 번 묻자. 숭고란 무엇인가? “찰나적으로 획득한 불멸성의 지점,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항하여 죽음으로부터 낚아챈 말은 숭고하다. 그 안에서 생성-소멸의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그 지점은 죽음의 곡선에 속하되 그와 동시에 그 곡선을 거슬러오르고, 곡선과 접촉하는 순간 역력한 방향의 전환을 일으키며 위로 솟아오르는 첨점이자 육체와 영혼이 합쳐진 채로 정지하는 절정이다. 또한 불안정한 산꼭대기에서 최대한 높이 뛰어내리는 순간에 그런 것처럼, 극미한 무중력의 유토피아다.”(미셸 드기) 숭고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과 세계의 접점, 안과 바깥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숭고는 예술과 자연의 결합 안에서 파생하고 그 파생하는 힘으로 끝없이 움직여 나간다. 숭고는 틀과 경계 안에 가둬놓을 수 없는, 넘치고 흘러나가는, 유동하는 움직임 속에서만 나타나는 그 무엇이다.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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