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뱅주의와 시민사회

: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원제 :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十九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研究の現状と課題

저자 : 다나카 다쿠지(田中拓道)

출처 : 社会思想史学会, 『社会思想史研究』, 31권, 2007, 108-117.






1. 들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사의 고전을 쓴 막심 르루아(Maxime Leroy, 1873-1957)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89년 이후의 모든 역사는 …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립으로 귀결된다.”[각주:1] 르루아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1789년의 원리, 즉 개인적 자유와 소유에 입각한 새로운 권력 구성의 원리이며, “사회적인 것”이란 평등과 관련된 것이면서 개인의 불행을 집합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노동이나 분배와 관련된 1793년의 원리이다.[각주:2]

르루아가 지적하듯이, 19세기의 프랑스 역사는 1789년에 선언된 원리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대혁명 시기에 제창됐던 ‘정치적’원리는 개개인의 구체적 생활조건에 입각한 ‘사회적’인 질서 원리에 의해 항상 비판되며 수정을 겪었다. 양자의 상극과 조정이 반복되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기 이후의 사상사를 구성한다.

다만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사실상 논자마다 매우 다양하다. 크게 말해서, 1960년대까지 19세기 사상사를 해석하는 틀은 경제구조에 기인하는 계급대립에 의해 주어졌다. 생디칼리즘을 대표하는 이론가 르루아가 양자의 대립을 자유주의적 권력구성원리와 노동자의 사상·운동과의 대립으로 파악했던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런 해석 도식은 크게 변경된다. 역사학·정치사상사·철학 등의 분야들에서 지적인 쇄신이 일어나고, 오히려 일원적 통합원리(정치적인 것)와 다원성 원리(사회적인 것)의 긴장관계가 논자의 주된 관심 대상이 된다(다만, 나중에 다루는 르포르와 고셰는 양자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한다).

본고는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서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 혹은 일원적 통합원리와 다원성 원리의 긴장관계를 축으로 최근까지의 연구사를 재정리하고, 그 현황과 과제에 관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2. 일원적 통합원리에 대한 비판

1) 자코뱅주의의 유산

1960년대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인문·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타난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간주한 정통사학을 비판했던 프랑수아 퓌레(François Furet, 1927-1997) 등이 혁명기의 정치적 담론에 주목한 새로운 방법론을 수립했다.[각주:3] 퓌레에 따르면, 단일한 ‘인민’이라는 허구의 집합을 통치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간주하는 문학자, 철학가의 담론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획득함으로써, 혁명의 급진화와 자코뱅 지배가 초래됐다. 19세기 이후의 사상적 과제는 ‘자코뱅주의’를 극복하고 ‘혁명을 끝내게 하는’것에 있었다고 간주된다.[각주:4]

퓌레의 연구는 정치사상사 분야에서 ‘정치문화’론이라 불려야 할 새로운 연구사조를 산출했다.[각주:5] 그것은 경제구조로부터의 정치적 담론의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되며, 동시대의 정치적 담론의 배치, 그 내재적 논리를 탐구하는 역사연구로의 길을 개척했다.[각주:6] 여기서는 퓌레의 문제관심을 계승하는 한 명으로서 뤼시앙 좀(Lucian Jaume, 1946~)의 연구를 다뤄보고 싶다.

좀은 퓌레의 담론분석 방법에 의거하면서, 대혁명에서 비롯되는 프랑스의 ‘정치문화’의 특징을 탐구한다. 『자코뱅파의 담론과 민주주의』(1989)에서는 혁명기의 클럽과 의회에서의 자코뱅파의 담론을 검토하고, 당(parti)에 의한 도덕적 혁명운동이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의 일체성을 산출하며, 주권을 구성한다는 독특한 정치관의 성립을 지적했다.[각주:7] 이런 정치관은 나폴레옹 제정기의 집권론,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의 이성주권론으로 계승된다. 그는 이어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의 사조들을 검토하고, 거기서 일관된 특징을 ‘삭제된 개인’(individu effacé)라고 평했다.[각주:8] 대혁명 이후의 자유주의는 세 개의 사조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에 대항하고 개인의 내면적 자유의 불가침성과 입헌주의에 의한 권력억제를 주창한 스탈 부인, 콩스탕, 프레보스트-파라돌(Prevost-Paradol) 등의 사조이다. 둘째는 개인보다 ‘사회’를 권력의 정당성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사회’의 의지[의사]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으로의 집권화에 의해 더 고차적인 자유가 실현된다고 파악한 르와이에-코라르, 레뮈제, 기조 등 독트리네르의 사조이다. 셋째는 개인적 자유에 대해 종교적 ‘진리’를 우위에 두고 신적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라므네, 몽타랑베르, 세기말의 자유주의 가톨릭 등의 사조이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사조가 프랑스 자유주의의 주류를 두고 다투며, 두 번째 사조가 1875년 이후에 체제원리가 되며, 자유주의와 양립하는 공화체제를 이끌게 됐다고 한다.[각주:9]

2)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

퓌레나 좀의 연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을 ‘자코뱅주의’적인 일원적 통합원리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1970년 이후의 정치철학에서는, 이런 사상적 전통을 근대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의 출현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조가 있다. 이하에서는 클로드 르포르, 마르셀 고셰를 중심으로 그런 19세기론을 다뤄보고 싶다.[각주:10]

르포르(Claude Lefort, 1924~)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다. 1949년부터 60년까지 카스토리아디스 등과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Socialisme ou barbarie)를 간행한 그는, 6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결별하고, 토크빌과 아렌트의 사유에 의해 촉발되고, 근대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정치인식의 문제성을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는 ‘인권’의 역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개념의 분석이라는 두 가지 점에 집중해서 그의 연구를 일별한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회가 ‘외부’에서 질서의 일체성을 보장하는 참조점(신, 자연, 왕의 신체)을 갖고 있었던 반면, 근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런 참조점들을 거부하고(가령 프랑스혁명에 의한 왕의 신체의 폐절), ‘내부’에서만 질서의 입각점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각주:11] 그 입각점은 ‘인간’(homme)이라 칭해지며, ‘인간의 권리’의 실현이 근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된다. ‘인간’이란 개개인의 공통성을 추상화한 집합을 가리키는데, 외부의 지표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언급[참조, 지시]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불확정성을 갖는다. 르포르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인권’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로서 확대를 거듭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권력도 ‘복지국가’(État-providence)로서 비대화를 계속했다.[각주:12]

여기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다루고 싶다. 르포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특히 자코뱅주의와 20세기의 전체주의에 공통적인 것은 모든 다원성이나 차이를 배제한 ‘일자-인민(Peuple-Un)’이라는 표상이 통치의 기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자-인민’은 개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며, 개인을 초월한 집합으로서 관념되며, ‘사회적 권력’이라고도 일컬어진다. 19세기의 사상가 중에서 콩스탕이나 기조가 아니라 토크빌이야말로 이런 단일한 ‘사회적 권력’에 대한 개인의 종속, 모든 차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전제(專制)’의 위험성을 인식했다.[각주:13] ‘인권’은 이 ‘사회적 권력’에 의한 ‘새로운 전제’를 억지할 수 없다. 오히려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인간’관념은 개별 인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내재시킨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전체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는 구별될 수 없다.[각주:14]

르포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국가권력의 행사)를 일상생활의 곳곳에 침투시키는 논리를 내재시킨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를 나누는 것은 권리·정치제도 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차원’, 즉 자유로운 언론에 의해 통치권력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제약하는 ‘공적 영역’의 존재뿐이다.[각주:15] 이 공적 영역을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권리·정치제도나 공/사의 구분을 다시 묻는 (아렌트적 의미에서의) ‘운동’뿐이라고 한다.

르포르가 탐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셰(Marcel Gauchet, 1946~)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적 조건’아래에서 더욱 탐구됐다.[각주:16] 고셰는 프랑스에서의 민주주의의 곤란의 출발점을 대혁명에 둔다. 기독교의 성립과 세속화는 개인이 세계의 의미를 자기 해석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는 것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혁명은 탈종교화와 왕의 부정에 의해, 한편으로는 자율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을 초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연대가 모든 외부성이나 내적 다원성을 갖지 않는 단일한 집합(‘사회’)으로 관념됨으로써, 개개인을 초월하는 ‘사회’에 의한 새로운 전제(專制)나 억압을 초래할 가능성도 일어났다.[각주:17] 고셰는 프랑스혁명에서의 입법부로의 중앙집권화, 자코뱅주의에서의 ‘단일한 집합체’관념의 성립에서 개인의 자율과 양립할 질서의 형성 실패의 요인을 찾아낸다. 혁명기의 시에예스에 의한 의회감시의 ‘제3의 권력’도입론, 콩스탕의 중립적 권력론, 대의제론 등은 ‘사회’의 관념에 기초한 일원적 통치상을 비판하고 다원성을 도입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로 독해된다.[각주:18]

고셰에 의한 19세기 이후의 역사상을 일별해두자.[각주:19] 19세기 전반기에는 좌우 당파의 대립, 국왕·정부·의회의 분리, 대표제 등, 일정한 ‘다원성’원리의 도입이 꾀해진다. 제3공화정 시기의 양원제의 도입은 체제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1880년대부터 1914년 사이에 분업의 진전이나 계급대립에 의해 간과된 ‘사회’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희구가 현재화하고, ‘단일한 인류(Une humanité)’라는 종교적 관념이 부상한다.[각주:20] 이것은 민족·국민 등으로 모습을 바꿔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치를 석권한다. 고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정당이나 결사의 다원성, 대의제는 행정기구에 의한 리스크의 예측이나 불확실성의 제거·통제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의 ‘지배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해지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문화적 획일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의 매몰·함몰에 의해 단일한 ‘사회’의 논리에 기초한 일원적 지배로 전화될 가능성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고셰는 근대 민주주의에서의 ‘외부’의 삭제라는 문제로 되돌아가, 탈종교화의 역사를 정치사상의 문제로서 연구하게 됐다.[각주:21]

3) 생명정치의 확산

1970년대의 지적 쇄신 속에서 생겨난 두 번째 사조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이후의 19세기 연구를 들 수 있다. 이 사조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에서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각주:22] 푸코는 1977-78년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에서 18세기 이후의 통치권력의 성질변화를 주제로 삼는다.[각주:23] 그에 따르면, 상업과 도시의 발전은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국가(내치)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통치의 효율화(économie)라는 문제를 부각시켰다. 정치경제학(économie politique)의 내실은 18세기 후반기에 치안유지에서 ‘인구’의 학(學)으로 변화한다. 푸코는 사람들의 생물학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권력의 존재방식을 ‘생명정치’(biopolitique)라고 칭하고, 이런 권력실천이 공중위생·인구정책·의료·식량정책으로서 전개됐다는 것, 그 담지자가 국가관료뿐 아니라 ‘사회적’영역에서의 병원·공장·교육기관·경제학자·위생학자 등으로 학산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푸코에게 ‘시민사회’란 이런 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정치적 영역에 다름 아니며, ‘자유주의’란 새로운 통치의 방식을 정당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다.[각주:24] 푸코의 ‘생명정치’, ‘사회적인 것’, ‘자유주의’등의 개념은 이후 19세기 연구에서 비교·대조되는 틀이 되며, 빈곤문제나 감옥, 공중위생, 가족, 의료 등과 관련된 많은 역사연구를 산출했다.[각주:25]

위에서 다뤘던 두 개의 사조는 각각 상이한 관심에서,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의 일원적 통치원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퓌레와 좀은 자코뱅주의의 유산이 19세기 이후에도 잔존하며, 영국식 자유주의나 입헌주의가 정착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르포르나 고셰는 ‘인간’이라는 자기언급적 개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가 단일한 집합체(‘사회’)에 대한 개인의 종속, 그리고 국가권력의 무제약적 확대를 이끌 위험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논했다. 푸코주의자는 18세기 이후의 개개인이 단일한 생물학적 집합(‘인구’)로 파악됨으로써 집합적 생명의 효율적 유지·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사회적’영역으로 확산되고 개개인의 생명의 관리·규율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각자는 이런 일원적 통치원리에 대항하는 다원적 질서구성원리의 추구 ― 퓌레와 좀에게서의 대의제와 경쟁적 정당제, 르포르와 고셰에게서의 운동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외부’의 탐구, 말년의 푸코에게서의 ‘자기에의 배려’에 기초한 고대 그리스의 주체상과 자기-타자관계 ― 를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이런 연구사조들과 교착되면서도, 근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거기서 긍정적인 발전사를 독해해내려는 것이 다음에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다.

3. 일원적 통치원리로의 회귀 : 로장발롱의 19세기론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1948~)은 중도노조인 CFDT의 고문이라는 사상사 연구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말에 푸코의 세미나에 출석했으며, 최초의 사상사 연구서인 『유토피아적 자본주의』를 출판했다. 80년대에는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 소속되어 퓌레, 르포르, 고셰, 마넹 등과 교류하면서 역사연구·현대정치연구를 행했다.[각주:26] 90년대에 들어서자 19세기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3부작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정치사상사 연구의 제일인자가 된다.[각주:27] 2002년부터는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로장발롱의 19세기 연구상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기에 성립된 ‘자코뱅주의’적 정치인식이 거듭 비판에 처해지면서도 수정되어 회귀한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 발전사로서 읽을 수 있다.

첫째,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인식(‘일반성의 정치문화’라고 일컬어진다)에 관해서는 기존의 연구를 거의 답습하고 있다.[각주:28] 혁명기에는 전통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끄집어내어 동질적·추상적 개인으로 구성된 단일한 집합체(‘개인으로 구성된 사회sociétéd’individus’)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랑스의 특징은 헤겔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변증법이 상정되지 않고, 양자 사이의 단절이 강조된 것이다. 개별 이익을 추상화하는 ‘대표’라는 메커니즘이 중시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에는 ‘특수이익’에서 ‘일반이익의 창출’이라는 비약이 상정된다. 양자를 매개하는 정치적 결사는 부정되고, 직업단체, 지역성, 남녀의 성차 등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 일반성을 체현하는 것은 ‘법’뿐이며, 대표자에 의한 입법행위가 신성시된다.

둘째로, 프랑스 혁명 직후부터, 이런 정치인식은 거듭 비판에 처해졌다.[각주:29] 르 샤플리에법에서 볼 수 있는 중간단체의 부정은 개인의 원자화, 국가의 비대화, 사회적 질서의 해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19세기 초반의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7월 왕정기에 재생한다. 기조, 티에르 등의 자유주의자는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구별을 도입한다.[각주:30]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 집권화에 의해 전통적인 특권들(libertés)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liberté)가 실현된다. 자코뱅주의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의 확대와 자유의 실현은 상보적이라고 파악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으로는 언론·집회활동의 자유나 행정적 분권화가 허용된다. 오히려 사회적 다원성은 사회에 분산된 엘리트의 의견을 통치기구로 집약하고, 일원화하기 위한 매개적 수단으로 간주된다. 정치적/사회적 영역의 구분과 상호보완으로 구성된 그들의 질서관은 제2제정기의 정치적 결사 금지와 직업적 결사 승인(1864년법)으로 계승되며, 제3공화정기의 ‘수정 자코뱅주의’를 준비하게 된다.

셋째로, 제3공화정기에 자코뱅주의의 쇄신이 완수된다.[각주:31] 여기서 로장발롱이 중시하는 것은 유기체적 질서관을 따라 자코뱅주의적인 국가-개인의 이원적 질서관을 비판하고 중간단체 재건을 제창한 사회학자(Fouillée, Durkheim, Ferneuil, Duguit 등)의 사상이 아니라, ‘정치적’영역과 ‘사회적’영역의 ‘양극화(polarisation)’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공화파 정치가(Waldeck-Rousseau, Léon Bourgeois, Paul-Boncour 등)의 질서관이다. 후자는 1884년법(직업조합 자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적 결사가 질서 유지에 유용하다는 점을 승인한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의회를 통한 의사집약과 일반이익의 일원적 ‘대표’라는 시각을 유지한다. 정치적 결사는 1901년법까지 자유화되지 않으며, 이 법에서도 결사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제도적 제약이 남아 있었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가 제창한 직능대표론이나 생디칼리스트가 주창한 생산자의 공화국론(M. Leroy), 코포라티즘론은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을 재정의하는 시도였다. 다른 한편, 공화파 정치가의 질서관에 따르면, ‘사회적’다원성은 ‘정치적’집권성과 명료하게 구별되며, 그 통제 아래서 허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자야말로 20세기의 프랑스 정치 모델을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위와 같이 로장발롱에 따르면, 혁명기의 자코뱅주의는 몇 번이나 수정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오늘날의 정치사상적 과제는 이제 자코뱅주의의 극복이나 토크빌적인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의 옹호가 아니다. ‘사회적’영역에서 중간단체가 다양한 발전을 거쳐왔다는 사실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즉 ‘일반이익’이나 통합의 공통가치를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라고 한다.[각주:32]

4. 마치며

지금까지 달음박질치듯이 30년 동안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뒤쫓았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연구 과제를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는 연구 대상에 대해서이다. 퓌레 이후의 19세기 사상사 연구는 담론사, 사회사, 심성사 등의 연구 축적을 바탕으로 고전적 사상가의 텍스트를 넘어선 폭넓은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게 됐다. 기존의 일본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사상가의 주요 텍스트를 ‘점’과 ‘점’으로 묶음으로써 사상사가 구성된 것이 적지 않았다. 향후에는 프랑스에서의 역사 연구의 진전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담론 상황을 ‘면’으로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대상의 확장이 요구된다.

둘째는 분석 틀에 관해서이다. 본고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대항이라는 도식을 사용해서 본 것처럼, 19세기에 정치사상의 대상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자코뱅 주의의 영향, 국가권력의 비대화, 사회로의 권력의 확산, 사회 문제의 출현 등에 의해 분석 틀도 국가와 시민사회, 계급대립이라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일원성과 다원성, 정치적 질서의 내부와 외부, 규율과 자율, 중간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역할 등, 논자에 따라서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로 ‘정치적인 것’자체가 논쟁적 개념이 되며, 그 개념 규정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사상적 과제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이런 문맥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재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깊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 연구를 주도하는 로장발롱의 틀에 내포된 일정한 편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로장발롱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있던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전환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고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런 관심의 전환의 배후에는 현대 프랑스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논의 상황이 있다. 즉, 한편으로는 전지구화, 유럽화에 의한 프랑스 국가의 자율성의 흔들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회적 분단(이민자·청년·배제문제 등)의 심각화와 대의제의 기능장애이며, 이런 것들로부터 귀결되는 ‘프랑스 모델’의 전환이라는 논의이다.[각주:33] 이런 문맥 속에서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과 대의제를 옹호하고 국민(naion)의 재구축을 호소하는 등, 현대정치에 대해 활발한 제언을 계속하고 있다.[각주:34]

그러나 위와 같은 실천적 관심을 배후에 지닌 19세기 연구는 대상에 본래 내포된 다양성이나 역동성을 훼손하고 이것들을 정태적인 역사관으로 회수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하고 ‘정치적인 것’(일원적 통합원리)의 일관된 우위를 상정한다는 틀로는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Constant, Madame de Stäel, C. Dunoyer), 중반기의 사회주의자,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등 ‘사회적인 것’에 입각해 ‘정치적인 것’을 다시 묻고자 한 사상가들의 상당수가 곁가지에 자리매김 된다.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상이 ‘자코뱅주의’와 대립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재구축을 모색하고, 사회주의에서 보수주의까지 폭넓은 사상 투쟁을 벌였다는 역사를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의 지속성을 축으로 삼은 그의 역사관에 대해 복수(複數)의 ‘사회적인 것’의 경합 속에 새로운 질서 구성 원리를 찾아내려는 사상사 관점을 대립시키는 것은 향후의 연구에 남겨진 과제이다.


* 본고는 제31회 사회사상사학회(2006년 10월 22일)의 섹션 「프랑스형 『시민사회』 모델의 가능성 : 피에르 로장발롱을 둘러싸고(フランス型『市民社会』モデルの可能性──P. ロザンヴアロンをめぐって」를 조직한 北垣徹(西南学院大学), 高村学人(立命館大学) 두 사람과의 공동토의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집필에 있어서는 아래의 연구조성의 일부를 활용했다. 平成十七─十八年度文部科学省科学研究費補助金(若手研究B), 平成十八年度新潟大学プロジェクト推進経費(若手研究者奨励研究費).


  1.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1, Paris, Gallimard, 1946, p.13. [본문으로]
  2. Maxime Leroy, Histoire des idées sociales en France, t. 2, Paris, Gallimard, 1950, pp.11-13 ; t. 3, 1954, pp.27-38. [본문으로]
  3.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1978. [본문으로]
  4. François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au 19 siècle,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5.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reation of modern political culture, 4 vol., New York, Pergamon Press, 1987-1994. [본문으로]
  6. 주목할 가치가 있는 연구로서는 다음의 것이 있다. Claude Nicolet, L’idée républicaine en France, 1789-1924, Paris, Gallimard, 1995는 ‘과학’, ‘사회’ 등 19세기의 주요 사상 개념의 배치 속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의 생성과정을 상술하고, 정치사적 서술에 머무는 다른 연구(가령 Pamela Pilbeam, Republicanism in Nineteenth-Century France, 1814-1871, Basingstoke, Macmillan, 1995)와 비교해서 출중하다. Sudhir Hazareesingh, From Subject to Citizen : the Second Empire and the emergence of modern French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은 제2제정기의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 가톨릭의 담론을 망라하여 검토하고, 그 연방·분권론에 자코뱅주의적 ‘정치문화’를 극복할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생성을 찾아낸다. Laurent Mucchielli, La découverte du social : naissance de la sociologie en France (1870-1914), Paris, Découverte, 1998은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과 다양한 분과학문의 교착에서부터 당시의 담론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7. 그 특징은 다음으로 정리된다. 첫째, 제도로서의 대표가 부정되는 한편, 혁명운동에 의한 ‘인민’의 대표라는 관념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도덕적 일체성에 기반한다고 간주된다. 둘째, ‘인민’이 대표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에 의해 ‘인민’이 창출된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이 운동에서 당이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Lucien Jaume, Le discours jacobin et la démocratie, Paris, Fayard, 1989, pp.387-403). [본문으로]
  8. Lucien Jaume, L’individu effacé, ou le paradoxe du liberalisme français, Paris, Fayard, 1997. 또한 좀의 관심을 간결하게 요약한 저작으로 Lucien Jaume, Echec au liberalisme : les jacobins et l’État, Paris, Kimé, 1990이 있다. [본문으로]
  9. Jaume, L’individu effacé, op.cit., pp.19-21, pp.59-117, pp.124-148, p.340 et s. 독트리네르의 사상이 제3공화정의 체제원리가 됐다는 이해는 후술하는 로장발롱의 기조론에서도 볼 수 있다. Pierre Rosanvallon,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p.358 et s. [본문으로]
  10. 그들을 포함해 최근의 프랑스 논의 상황을 정리한 문헌으로 宇野重規, 『フランス政治哲学』, 東京大学出版会, 2004가 있다. [본문으로]
  11.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94, pp.63-66. [본문으로]
  12.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p.32. [본문으로]
  13. Ibid., p.38. 르포르의 논의는 피에르 마넹(Pierre Manent, 1949~)의 다음의 논의에도 빚지고 있다. Pierre Manent, «Démocratie et totalitarisme : à propos de Claude Lefort», Commentaire, t. 16, 1981-1982, pp.574-583. [본문으로]
  14. Claude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op.cit., pp.171 et s. [본문으로]
  15. Claude Lefort, Essai sur le politique, op.cit., p.55. [본문으로]
  16. 고셰의 지적 배경은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인류학, 정신분석 등 다양하다. 르포르와의 관계에 관해 고셰는 1966-67년에 그의 강의에 참여하여 ‘선열한 충격을 받고’ 르포르와의 대화로부터 연구 테마를 찾아냈다고 회고했다(Marcel Gauchet, La condition historique, Paris, Gallimard, 2003, p.29). 또한 난해한 고셰의 사상의 도입으로 다음이 편리하다. Marc-Olivier Padis, Marcel Gauchet : la genèse de la démocratie, Paris, Michalon, 1996. [본문으로]
  17. Marchel Gauchet, La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pp.1-26. [본문으로]
  18. M.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Paris, Gallimard, 1995. ; «Benjamin Constant : l’illusion lucide du libéralisme», dans Benjamin Constant, Ecrits politiques, Paris, Gallimard, 1997, pp.1-110. [본문으로]
  19. Gauchet, La révolution des pouvoirs, op.cit., pp.27-35. [본문으로]
  20. M. Gauchet, La condition politique, Paris, Gallimard, 2005, p.371. [본문으로]
  21. M. Gauchet, La religion dans la démocratie, Paris, Gallimard, 1998. [본문으로]
  22. 田中拓道『貧困と共和国』人文書院、二〇〇六年、第四章 ; 同「フランス福祉国家論の思想的考察──『連帯』のアクチュアリテイ」『社会思想史研究』二人巻、二〇〇四年、53-68頁. [본문으로]
  23. Michel Foucault, Se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Paris, Gallimard/Seuil, 2004. [본문으로]
  24. Ibid., p.357. ;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Paris, Seuil/Gallimard, 2004. [본문으로]
  25. 대표적인 예로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Paris, Fayard, 1984 ; François Ewald, L’État-providence, Paris, Grasset, 1986 ; Giovanna Procacci, Gouverner la misère, Paris, Gallimard, 1995 ; Andrew R. Aisenberg, Contagion : Disease, Government, and the ‘Social Question’ in Nineteenth-Century Franc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푸코의 도식과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의 사상사를 독자적으로 전개한 중요한 연구로는 Robert Castel, Les métamorphoses de la question sociale, Paris, Fayard, 1995. [본문으로]
  26. Pierre Rosanvallon, Le libéralisme économique, Paris, Seuil, 1979. 그 내용은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론과 근본적으로 겹친다. 18세기의 ‘시장의 발견’을 효율적인 통치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원리로서 위치짓고자 하는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세미나의 요약에서 이 연구를 ‘중요한 저작’으로 소개한다(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op.cit., p.326). [본문으로]
  27. P. Rosanvallon,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2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1998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2000. [본문으로]
  28. P. Rosanvallon,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2004, pp.25-105. [본문으로]
  29. Ibid., pp.131-195. [본문으로]
  30. Ibid., pp.218-227. [본문으로]
  31. Ibid., pp.343-360. [본문으로]
  32. Ibid., p.434.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로장발롱이 편집한 La République des Idées 시리즈의 한 권인 La nouvelle critique sociale, Paris, Seuil, 2006. 혹은 P. Culpepper et al. dir., La France en mutation, 1980-2005, Paris, Presses de la Fo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2006. [본문으로]
  34. 로장발롱은 최근 저작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모순을 강조함으로써 그 불신을 조장하고 키워왔던 기존의 정치사상 연구를 비판한다. P. Rosanvallon,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2006, pp.24 et s. 국민의 재구축에 관해 로장발롱의 「일본어판 서문」, 『연대의 새로운 철학』, 北垣徹訳)「日本ヒ語への序文」『連帯の新たなる哲学』勁草書房, 2006, v頁. [본문으로]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5국가에 의한 통치 독일의 내치[폴리차이] 모델

2. 독일의 모델 : 중상주의 유형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외교와 내치[폴리차이]의 관계

국가이성의 시대는 유럽의 균형의 시대이며, 항상적인 외교와 상설 군대에 의해 다양한 국가들이 대립하고 경합하는 시대였다. 이는 대외적 경합을 목표로 하는 기술이다. 이에 대해서 국내에서의 국력을 증강하는 기술이 있으며, 이미 말했듯이 이것이 프랑스에서는 폴리스, 독일에서는 내치[폴리차이]로 불린 것이었다. 이 기술이 가장 커진 것은 독일에서였다. 5장부터 7장까지 군주권력의 국가이성의 시대부터, 규율권력의 시대, 그리고 생명권력의 시대로 이르는 유럽의 정치적 이성에 대해서, 독일, 영국, 프랑스의 세 가지 모델을 검토하면서 각각의 방식을 비교하고 싶다.

독일에서 내치의 학은 관방학으로서 치밀하게 구축됐다. 푸코는 독일에서 이 학이 발달한 이유로,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많은 작은 영방국가가 탄생하고 각국이 독립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봉건적 구조와도 거대 국가와도 다른 국가적 실험에 있어서 특권적인 공간이 됐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는 프랑스와는 달리 국가행정의 스태프[인력]가 부재하며, 이 때문에 대학에서 인력[스태프]을 조달하게 되어, 대학에서 관방학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경제면에서는 그다지 활동할 수 없던 부르주아지가 끊임없이 [이웃 국가와의] 항쟁에 직면했던 군주의 편에 서서, 국가의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인재, 능력, 부 등을 제공했다.” 이 관방학은 독일의 특산품으로서 유럽의 각지에 전해졌다.

내치는 좋은 통치의 기술이며, 신민의 복지를 개선하는 기술로서, 사목의 기술과 공통된 곳이 있다. 작동되는 대상이 영토로서의 국토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 그리고 목적으로 하는 바가 국민의 복지라는 것은, 사목의 기술과 내치의 기술에 공통된 바임은 이미 확인했던 대로이다. 독일의 관방학의 이론적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폰 유스티는 국가의 자산은 영방 내에 존재하고, 가신에 속하든, 국가가 직접 소유하든, 모든 종류의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질 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에 속하는 사람의 모든 능력과 숙달로부터도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 자체도 시각에 따라서는 국가의 자산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내치는 국내 질서와 국력 증강 사이에 동적인,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계산과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내치가 신민의 복지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고 외치면서, 실은 국가의 장려함을 목적으로 하는 학이라는 것이다. 당시부터 내치에 대해 국가 전체의 장려함과 전체 시민의 행복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의 총체라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유럽의 세력균형에서의 외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국의 장려함을 과시하는 것은 해부학에 열중하는 관찰자들에게 자국의 힘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푸코는 내치와 세력균형의 관계를 국력, 타국을 주시하는 권리, 통계학, 통상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우선 세력균형은 발전하고 있는 국가의 힘의 균형을 취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에서 내치와 깊은 관계에 있다. 내치는 좋은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시키고 더욱이 유럽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세력균형의 상태 아래서, 영구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한 칸트는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칸트는 유럽의 현상황이 사회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인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며,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법의 이념은 서로 독립된 국가가 인접하면서도 분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이미 전쟁상태이다.”

그러나 이 전쟁상태는 전쟁의 폐절로 향하는 싹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두 개의 경향에 있어서이다. 하나는 어떤 국가도 타국을 정복하고 스스로 제국 아래로 통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타민족을 미워하는 경향을 낳는데, 한편으로는 자국의 문화를 향상시키고, 타국을 이해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 이 평화는 자유의 무덤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힘을 서로 경합하게 하고, 그 균형을 취함으로써 생겨나고 확보되는 것이다.” 칸트는 좋은 국가체제야말로 민족의 좋은 도덕성을 기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양한 문화와 언어의 차이 속에 서로 동떨어져 있는 국가가 국내에서 좋은 국가체제를 구축하고, 서로 힘을 균형시킴으로써, 평화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세력균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국가들에 패하지 않을 정도의 외교능력과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국가가 국력을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의 국가가 타국보다 국력의 증강에서 뒤떨어지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의 국력의 증강을 주시하는 권리를 소유하는 것처럼 된다. 그리고 타국의 국력을 주시[감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 것은, 하나의 국가의 인구군대천연자연생산통상통화유통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통계학이 성립된 것이다.

칸트는 이 타국을 주시[감시]하는 권리에 대해 국력의 증강이라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법적인 체제의 확립과 자국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지적한다. 만약 국내에 법률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서로 이웃해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민족에 해를 끼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민족도,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이웃 국가가 국제적인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것, “거기서 스스로의 권리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을 다른 민족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요구해야 한다.”

또한 통상관계에 대해서는, 이 시대는 중상주의의 시대, 즉 통상의 시대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푸코의 간략한 요약에 따르면, 중상주의는 각국에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첫째로 각국이 되도록 많은 인구를 가지려고 할 것, 둘째로 그 인구 전체가 노동에 대해 있을 것, 셋째로 그 인구에 주어지는 임금이 최대한 낮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품의 원가가 최대한 낮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으며, 군주가 소유할 수 있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이처럼 통화의 수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만큼 국내의 국력의 충실이라는 내치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칸트는 이 시대에 각국이 밀접한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전쟁을 방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지적한다. 각국은 서로의 이기심을 통해서민족들과 결합한다. 이것이 상업의 정신이며, “세계의 어디에서도,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다가오면, 국가들은 마치 영속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양 중재에 의해 전쟁을 방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치의 실무

그렇다면 이 내치라는 학과 기술은 어떻게 적용될까? 푸코는 들라마르의 『내치』으로부터, 내치가 국가의 내부에서 관리해야 할 것을 11개 항목을 꼽고 있다. 종교, 도덕성, 건강, 물품의 공급, 도로토목공공건축물, 공안(公安), 자유학예, 상업, 작업장, 하인과 육체노동자, 빈민이다.

이것으로는 국가의 내정의 거의 모든 분야를 꿰찬다. 내치가 종교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진리로서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내치는 사목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신민의 혼의 건강을 배려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건강과 식량의 공급에 신경을 씀으로써, 내치삶을 보호한다.” 내치는 생명을 배려하는 것이다. 도로토목공공건축물, 상업, 작업장, 육체노동자, 빈민, 공안[치안]을 배려함으로써내치생활의 쾌적함, 정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학예를 배려함으로써 인생의 기쁨 그 자체”에 신경을 쓴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고, 더 한층 잘 사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내치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다내치가 현재의 경찰처럼, 사회의 복지와 행복의 촉진의 배려가 아니라, 장래의 악의 방지의 배려를 목표로 하게 된 것은, 1770년대 이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푸코는 튀르케 드 마이엘느귀족민주주의적 군주제라는 내치론을 인용하면서, 내치의 활동 분야를 크게 넷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분야는 아이와 젊은이의 교육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은 경건한 신앙을 갖고, 무기 취급에 익숙해지며, 직업을 습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은 25세가 되면 내치 사무국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려고 하는지를 보고하도록 요구된다. 보고를 거부하는 자는 “건달로, 명예를 결여한 인민의 쓰레기로 간주된다.

두 번째 분야는 빈민을 대상으로 한다. 건강한 빈민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병자나 장애자에게는 수당을 준다. 더욱이 공중위생을 배려하고, 일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대준다. 세 번째 분야는 상인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을 규제하고 조성한다. 네 번째 분야는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고, 상속을 기록하고, 도로하천공공건축물삼림을 주시[감시]한다.

이 네 가지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국력의 구성요소로서의 인간의 활동이다. 우선 인간의 수를 대상으로 한다. 17세기에 국력은 주민의 수와 비례한다고 여겨지게 됐지만내치학에서는 단순히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주민의 수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은 영토에서도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어서 생활필수품을 규제한다. 주민의 수가 많더라도, 먹일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것은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농업정책이며, 생산된 곡물의 질을 유지하고 비축하고 공급하는 곡물 내정(內政)이다. 더욱이 건강을 배려한다. 역병의 방지는 물론이고, “만인의 일상적인 건강이 중시된다. 도시에서는 공기, 환기, 통풍이 중시된다. 도시공간에 대한 일대 정책이 전개되는 것이다. 더 건강한 인간들의 활동을 감시[주시]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활동에서 생겨나는 상품이나 생산물의 유통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든 것을 배려하는 내치의 학이 사목적 시선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근대국가의 거의 가부장적인 배려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점도 확실할 것이다. “내치의 목적은 시민이 전체적으로도 개별적으로도 행복해지는 것에 관련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저 살아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라, “더 잘 사는 것, 공존하는 것, 교류하는 것이 실제로 국력의 증대로서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전쟁과 함께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이 도입되기 때문에 이런 내치의 학은 이윽고 생명령을 잃어가지만, 제국이 존속한 오스트리아에서는 1840년대까지 이 학에 의한 국가과학의 강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적어도 18세기 전체를 통해 내치의 학은 독일인의 <신성로마제국>에서의 유일한 지배적 재정론(財政論)이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국가의 의학

내치학은 유럽의 국가들에 전파됐으나, 독일에서 집대성되고, 실제로 활용됐다. 내치학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는지를 18세기 독일의 의학의 방식과 프랑스나 영국의 의학의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검토해보자. 독일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로 의료가 전개됐다. 1764년에는 프로이센에서 의료행정(메디치니셰 폴리차이)”이라고 불리는 것이 탄생했다. 이것은 대학에서 배운 의사에게만 의료면허증을 수여함으로써 국내의 의료 상담자의 실천과 지식을 규범화하고, 각지의 의사나 의료기관으로부터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스템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출산율과 사망률의 단순한 통계표가 이미 작성되고 있었으나, 전염병이나 풍토병의 관찰 등에 의한 훨씬 완전힌 발병률의 관찰 시스템”은 독일에서 확립됐다.

또한 중앙에는 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관공서가 설립되고, 그 아래에 계층구조적으로 지역의 의사를 배속했다. 이리하여 모든 의사는 국가에 의해 면허를 수여받고, 행정적 지도 아래서 의료에 종사하고, 의학적 정보를 중앙에 집중시키는 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극한까지 국가화된 의학의 시스템이 됐다.

이 의학이 중시한 것은 국력의 토대가 되는 국민의 신체와 생명이었다. “공적인 위생 행정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자의 신체가 아니라 개인 그 자체의 신체이며, 이런 개인들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했다는 것이며, 프로이센은 중상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근 국가와 경합하기 위해서도, 국내의 주민의 건강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뒤에 평화가 회복되자, 이 국가의 의학의 이념은 공동화된다. 독일에서도 공업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이 가부장적인 시스템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절대주의와 중상주의를 엄호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전환되어 갔다. 공업화의 시대에는 새로운 의학이 요구됐던 것이며, 프랑스와 영국이 그 임무를 맡게 된다

카트린 말라부와의 대담

A CONVERSATION WITH CATHERINE MALABOU


CATHERINE MALABOU(University of Paris X-Nanterre)

NOËLLE VAHANIAN(Lebanon Valley College)


* 인터뷰 원문 PDF 파일(영어)

The questions of the following interview are aimed at introducing Catherine Malabou’s work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 to an audience who may have never heard of her, or who knows only that she was a student of Derrida. What I hope that this interview reveals, however, is that Malabou “follows” deconstruction in a timely, and also useful way. For one of the common charges levied against deconstruction, at least by American critics, is that by opening texts to infinite interpretations, deconstruction unfortunately does away with more than the master narratives; it mires political agency in identity politics and offers no way out the socio-historical and political constructs of textuality other than the hope anchored in faith at best, but otherwise simply in the will to believe that the stance of openness to the other will let the other become part of the major discourses without thereby marginalizing or homogenizing them.

아래에 수록한 인터뷰의 질문은 카트린 말라부의 작업과 철학적 관점을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거나 그녀가 데리다의 학생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인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인터뷰로 드러내고 싶은 것은 말라부가 탈구축을 어떻게 시의적절하게, 또한 유용한 방식으로 "따라가는가[추종하는가]"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은 어찌됐든] 적어도 미국의 비평가들이 탈구축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부과하는 혐의 중 하나는 탈구축이 텍스트를 무한한 해석에 열어버림으로써 안타깝게도 주인 서사들을 없애는 것 이상의 짓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즉, 탈구축은 정치적 행위[political agency]를 정체성 정치의 진창에 빠뜨렸으며, 텍스트성의 사회-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축물에서[사회, 역사, 정치가 텍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구축물이라고 보는 길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잘해 봤자 믿음에 닻을 내린 희망 말고는[믿음 말고는 아무 것에도 기댈 수 없는 희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타자에 대한 개방성의 자세가 주요[다수자적] 담론들을 주변화하거나 동종화하지 않고서 타자를 이런 담론들의 일부가 되게 할 것이라고 믿으려는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How does Malabou “follow” deconstruction? Indeed, she does not disavow her affiliation with Derrida; she, too, readily acknowledges that there is nothing outside the text. But, by the same token, she also affirms Hegel’s deep influence on her philosophy. From Hegel, she borrows the central concept of her philosophy, namely, the concept of plasticity; the subject is plastic—not elastic, it never springs back into its original form—it is malleable, but it can explode and create itself anew. In this way, there is nothing outside the text, but the text is no less natural than it is cultural, it is no less biological than it is spiritual (or mental), it is no less material than it is historical. That is, the subject is not merely and ineluctably the social-historical-economic construct of an age (at the peak of modernity, a rational autonomous subject; in a post-industrial and global world, a highly adaptable, flexible, and disciplined subject). Instead, the subject can resist hopeless determinism by virtue of a dialectic inscribed at the heart of her own origination. So Malabou is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in that she affirms inventionalism, and in so doing, she is able to transcend the limit of deconstruction –différance—with “plasticity.”

말라부는 어떻게 탈구축을 '따라가고' 있을까요? 실제로 그녀는 데리다와의 연계[affiliation]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그녀 또한 텍스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텍스트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흔쾌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징표에 의해, 그녀는 자신의 철학에 헤겔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긍정[확언]합니다. 그녀는 헤겔에게서 자신의 철학의 중심이 되는 개념인 가소성[plasticity, 可塑性] 개념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즉, 주체는 가소적인 것이며(신축자재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원래 형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주체는 주변으로 떠내려가기 쉬운 것이기는 하지만, 주체로부터 바깥으로 뛰쳐나오거나, 스스로를 새로 만들고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텍스트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텍스트는 자연의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의 것, 생물학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것(혹은 심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라기보다 역사적인 것이게 됩니다. 즉, 주체는, 피할 수 없게, 어떤 시대의 사회-역사-경제적인 구축물(모더니티의 절정에서는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주체, 포스트산업화・전지구적 세계화에서는 고도로 순응적이고, 유순하고 규율 잡힌 주체)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체는 꼼짝할 수 없는 결정론에 대해, 그녀의 독창성의 중심에 명기銘記된 어떤 변증법 덕분에 저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부가 탈구축의 "추종자"인 것은, 그녀가 ≪창발주의[주]를 긍정하고, 그 위에서 그 긍정에 의해 탈구축(≪차연)의 한계를 '가소성'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입니다. 

[창발주의] inventionism인데, 영어에서는 emergentism으로 통용된다. 창발은 복잡계의 용어인데, 여기서는 구조의 구성요소로 구조가 환원된다는 것이(환원주의) 아니라, 구성요소가 구조의 형태를 바꿔간다는 정도의 이해로 아래 인터뷰를 읽으면 될 것이다



But even this oxymoronic characterization of Malabou as a “follower” of Derrida and Hegel is improper; to be fair, one could add that she is also a “follower” of neurobiology and neuroscience. She will claim that the subject is a neuronal subject, and, in agreement with recent neuroscientific research, that such a subject is plastic; she will claim that capitalistic society mirrors the neuronal organization of the brain, and that the brain mirrors capitalistic society in that both are de-centralized and highly adaptable and flexible; she will anchor the origin of the self in a biologically determined brain. At the same time, however, she will also be aware of the reductionistic tendencies of scientific discourse to deny its own ideological paradigm and to bracket out the genius of plasticity: the neuronal subject is docile, pliable, and adaptable, but, she emphasizes, it is also capable of resistance and rebellion. And so the program of Malabou’s philosophy, unlike that of much of typical philosophy of mind and neuroscience, is not about promoting a capitalistic ideological paradigm by seeking ways to enhance the docile and disciplined neuronal subject; instead, it is about inciting us to take charge of our own brain, of our own subjectivity, and thereby, of our society. We can do this, not by denying that there is continuity between our brain and our thoughts, between the neuronal and the mental, between the natural and the cultural, but by recognizing that this continuity is not without contradiction, by recognizing that the passage from the neuronal to the mental is the site of contestation whereby freedom is established precisely because the brain is naturally plastic.

 그러나 말라부를 데리다와 헤겔의 '추종자'라고 보는 이런 모순어법[자가당착]적인 규정도 부적합합니다. 공평을 기한다면, 그녀가 신경생물학과 신경과학의 '추종자'이기도 하다고 덧붙일 수 있을 테죠. 그녀는 주체가 뉴런적 주체라고, 그리고 최근의 신경과학연구에 보조를 맞추면서 그런 주체가 가소적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또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가 뇌의 뉴런적 조직화를 [거울처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뇌와 자본주의 사회 둘 다 탈-중심화되어 있고 고도로 적응적이며 유연(flexible)하다는 점에서 뇌가 자본주의 사회를 베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녀는 자기(the self)의 기원을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뇌에 정박시킬 겁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는 과학적 담론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하는, 그리고 가소성의 진수(genius)를 괄호치려고 하는 과학적 담론의 환원주의적 경향들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즉, 뉴런적 주체는 유순하고 고분고분하고 적응적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뉴런적 주체가 또한 저항과 반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말라부 철학의 프로그램은, 마음과 신경과학의 전형적인[틀에 박힌] 철학의 대다수의 프로그램과는 달리, 유순하고 규율 잡힌 뉴런적 주체를 증강시키는 길을 찾아냄으로써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을 홍보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말라부 철학의 프로그램은 우리 자신의 뇌를, 우리 자신의 주체성을, 그에 따라 우리 사회를 떠맡아 책임지도록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와 사고, 뉴런적인 것과 심적인(mental) 것,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이런 연속성이 모순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뉴런적인 것에서 심적인 것으로의 이행이 논박의 장소라는 것을, 따라서 뇌가 본디 가소적이기 때문에 자유가 수립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이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The interview was conducted at Professor Malabou’s apartment in Paris in July 2007.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Professor Malabou for her hospitality and to Carissa Devine for her assistance with the transcription.

 이 인터뷰는 2007년 7월, 파리에 있는 말라부 교수의 아파트에서 이뤄졌습니다. 말라부 교수의 환대에 대해, 그리고 대담을 글로 옮기는 것을 거들어준 카리사 데빈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Noëlle Vahanian : You are a philosopher, professor of philosophy, author of the Future of Hegel, Counterpath, Le Change Heidegger, Que faire de notre cerveau?. You were a close student of the late Jacques Derrida. But you’re not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for that, of course, would go against deconstruction itself. How did you come to be a philosopher, and how did you come to work with Derrida?

노엘 바하니안 : 당신은 철학자이며 철학교수이고, 『헤겔의 미래』, 『샛길』, 『하이데거 변화(Le Change Heidegger)』『우리의 뇌를 어찌할까(Que faire de notre cerveau?)』의 저서도 있죠? 당신은 후기 자크 데리다의 가까운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탈구축의 추종자가 아닙니다. 그 때문에 물론 탈구축 자체에 반대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철학자가 됐고 어떻게 데리다와 작업하게 됐습니까?

   

Catherine Malabou : I think the way I became a philosopher and the way I happened to work with Derrida are about the same thing. I would say that I wasn’t a philosopher before I met him. I used to be just a student in philosophy, and things really started when I met him. At the same time, you’re right, I wouldn’t define myself as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unless we define the word to follow, what “to follow” means. The issue of “following” constitutes one of the leading threads of Derrida’s book The Post Card. 1 In this book, Derrida undermines the classical order of filiation: first comes the father, then the son or the daughter. He undermines this order and shows that “to follow” may sometimes (or perhaps always) means “to precede.” Let us think of this extraordinary postcard showing Socrates writing under Plato’s dictation: “I have not yet recovered from this revelatory catastrophe: Plato behind Socrates. Me, I always knew it, and they did too, those two I mean. What a couple. Socrates turns his back to Plato, who has made him write whatever he wanted while pretending to receive it from him” (12).

카트린 말라부 : 저는 제가 철학자가 된 방식도, 데리다와 우연히 작업을 하게 된 방식도 똑같은 것에 관해서[똑같은 것]라고 생각합니다. 데리다와 만나기 전에 저는 철학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저 철학을 하는 한 명의 학생일 뿐이었고, 제가 그와 만났을 때 모든 것이 실제로 시작됐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제 자신을 탈구축의 추종자라고 정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신 말이 옳습니다. 우리가 추종하다라는 단어를, '따라간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정의하지 않는 한에서는 말입니다. '따라가기[추종하기]'라는 쟁점은 데리다의 책인 『우편엽서 : 소크라테스에서 프로이트와 그 너머로(The Post Card: From Socrates to Freud and Beyond)』의 안내실 중 하나를 구성합니다. 이 책에서 데리다는 부자관계[filiation]라는 고전적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오고, 그 다음에는 아들이나 딸이 오죠. 그는 이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따라간다[추종하기]'가 때로 (혹은 아마 항상) '앞선다'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구술하고 있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받아 적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비범한 우편엽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나는 아직 소크라테스의 뒤에 플라톤이 있다는 계시적인 파국으로부터 회복되지 못했다. 나는 말하자면, 그것을 항상 알았고, 그들도 알았습니다, 네, 두 사람 모두가 말이죠. 커플인거죠.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에게 ≪등≫을 돌리고[플라톤의 배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자신이 원한 것은 무엇이든 소크라테스더러 적게 만들면서도 마치 소크라테스에게서 받아 적고 있는 척하고 있는 겁니다."(12)

Then if to follow does not always mean to come after, or to imitate or to copy, if following implies a certain dimension of anticipation, then in this case, I would accept to define myself as a follower of deconstruction.

 그렇다면 따라간다[추종한다]라는 것이 반드시 뒤에서 따라간다는 것, 모방하거나 복제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따라간다는 것이 뭔지 모르게 선취[anticipation]의 차원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조건이라면, 제 자신을 탈구축의 추종자라고 정의하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겁니다.[주]

[주] 앞에서도 나온 용어와 관련된 것인데, filiation이 아니라 affiliation이라면 수용한다는 뜻이다. 이 두 개념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등에서 비평 용어로 사용했다. 

      derrida socrates plat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NV: Derrida once said in a film interview something to the effect that no philosopher could be his mother. I am paraphrasing here. He hoped that deconstruction would change or disrupt the patriarchal alignment of philosophy, reason, and thought. And this being the case, a philosopher could, if I am remembering correctly, perhaps be his daughter. So what would the philosopher look like, think like, write like who could be your mother as opposed to you father?

NV : 데리다는 언젠가 영화 인터뷰에서 그 어떤 철학자도 자신의 어머니일 수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데리다의 말을 쉽고 고쳐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탈구축이 철학, 이성, 그리고 사유의 부권적인 동맹관계를 바꾸기를, 혹은 파열시키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이기에,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한 철학자는 아마 철학자의 딸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철학자는 어떤 인물일까요? 어떤 것을 생각할까요? 어떤 것을 쓸까요? 그 철학자는 당신의 아버지와 대립하는 어머니일 수 있을까요?[주]

[주] 데리다와 말라부의 관계를 은근히 물어보고 있는 것 같다. 


CM: A mother-like philosopher would of course be a figure of exclusion. As you know, I’ve always worked on major philosophers, who occupy a central position in history of metaphysics (as well as in its deconstruction). A mother philosopher would on the contrary come from a secluded site, a repressed locus. Such a maternity, if there is one, implies that exists a mode of transmission, of inheritance, of genealogy which exceeds the traditional definitions of these terms within the history of philosophy. Which exceeds also, by the same token,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the mother. The woman philosopher who says the most accurate things on this point is no doubt Luce Irigaray when she shows that the mother is traditionally seen as “matter” or “materiality” as opposed to “form”. 

CM : 물론 어머니 같은 철학자는 배제의 한 형상[a figure]일 테죠. 아시다시피 저는 항상 중요한 철학자들에 관해 작업했습니다. 그들은 형이상학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그 탈구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어머니인 철학자는 차단된[남들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은] 장소, 억압된 현장[locus]에서 유래했을 겁니다. 그런 모성은, 만일 이런 게 있다면 하는 얘깁니다만, 전달[전승]의 양식, 상속의 양식, 계보[유전]의 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런 양식은 철학사 내부에서 [이뤄진] 이런 용어들에 관한 전통적 정의를 초과합니다. 또한, 똑같은 징표에 의해, 어머니에 대한 전통적 이해도 초과합니다. 이 점에 관해 가장 날카로운 것을 말한 여성 철학자는 틀림없이 뤼스 이리가레입니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어머니가 '형상'과 대립되는 '질료', 혹은 '물질성'으로 간주된다고 보여주니까요. 

She in fact thinks the feminine as what is excluded by this binary opposition itself, as what also exceeds such an opposition. In Bodies that Matter, Judith Butler writes: “Irigaray’s task is to reconcile neither the form/matter distinction nor the distinctions between bodies and souls (…). Rather, her effort is to show that these binary oppositions are formulated through the exclusion of a field of disruptive possibilities. (…) Irigaray’s intervention in the history of the form/matter distinction underscores ‘matter’ as the site at which the feminine is excluded from philosophical binaries” (35). 2

 사실 그녀는 여성적인 것이 이런 이항대립 그 자체에 의해 배제된다고, 또한 이런 대립관계를 초과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질료인 신체』(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 (Routledge Classics))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이렇게 씁니다. "이리가레의 과제는 형상/질료의 구별을 화해시키는 것도, 신체와 혼의 구별을 화해시키는 것도 아니다. ... 오히려 그녀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이런 이항대립이 파열적 가능성들의 장의 배제를[방해가 될 가능성들이 있는 분야를 배제하는 것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형상/질료의 구별의 역사에 대한 이리가레의 개입은, 여성적인 것이 철학적 이항성으로부터 배제되는 장소로서의 '질료'를 강조한다"(35). 

My mother philosopher would then certainly belong to this “constitutive outside” or to this excessive materiality.

 그래서 저의 어머니 철학자는 이런 "구성적 외부", 혹은 초과적 물질성에 확실히 속할 겁니다.  



NV: With that in mind, does your philosophy envision a kind of subjectivity that allows a legitimate philosophical voice to a woman?

NV: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당신의 철학은 여성에게 정당한 철학적 목소리를 허용하는 일종의 주체성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인가요?


CM: The problem is that there is no “essence” of feminity. This statement is something on which most women philosophers or writers agree (Beauvoir, Kristeva, Wittig, Butler…). The excessive materiality I just mentioned cannot be said to be something, otherwise it wouldn’t be able to transgress the limits of ontology. It is then somehow impossible to create or imagine what a “femininephilosophical” subjectivity might be…

 CM:문제는 여성성의 '본질'이라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진술은 대부분의 여성 철학자나 저술가들(보봐르, 크리스테바, 위티그, 버틀러 ...)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가 방금 언급한 초과적 물질성은 어떤 것이라고[무엇인가로서 ≪존재한다≫고] 말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존재론의 한계를 위반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튼 "여성적-철학적" 주체성일 수도 있을 것을 창조하거나 상상하는 것은 다소 불가능합니다.  


NV: Why not? 

NV : 왜 불가능할까요?


CM: Again, an ontology of the feminine would no doubt bear all the symptoms of the traditional ontology — that is, an exclusion of the feminine itself. As we know, the discourse of and on property, propriety or subjectivity is precisely the discourse which has excluded women from the domain of Being (and perhaps even of beings). I will refer to Irigaray again on this point : “Woman neither is nor has an essence.”

CM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성적인 것의 존재론은 전통적인 존재론의 모든 징후를 틀림없이 담지할 것입니다. 즉, 여성적인 것 그 자체의 배제입니다. 알다시피, 재산, 예절, 주체성의 담론 및 이것들에 대한 담론은, <존재>의 (아마 심지어 존재자들의) 영역으로부터 여성들을 배제한 담론 바로 그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또 다시 이리가레를 언급할 것입니다. "여성은 본질도 아니고 본질을 가진 것도 아니다."

At the same time, Heidegger’s definition of the subject as Da-sein, that is, an instance which is neither man nor woman, but Da-sein, or Es, as in the German neutral gender, is not quite satisfactory either. It would still be too ontologically rigid to characterize the feminine. Woman has no essence, but that doesn’t mean that woman is neutral either. I refer to Derrida’s decisive analysis concerning the motif of gender in Heidegger (Geschlecht, in Psyché).3

 이와 동시에, 주체를 ≪현-존재[거기-있음]≫라고 한 하이데거의 정의, 즉 여성도 남성도 아닌 심급이 있는데요, 독일어의 중성어인 ≪현-존재≫든 ≪에스[이드]≫이든, 꽤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현존재≫는 여전히 존재론적으로 너무 경직된 것이기에, 여성적인 것을 특징지을 수 없습니다. 여성에게는 본질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중성적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하이데거에게서의 젠더의 모티프에 관한 데리다의 결정적인 분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주]

[주] Jacques Derrida, “Geschlecht: Sexual Différence, Ontological Différence,” trans. Ruben Berezdivin, Research in Phenomenology, vol. 13, 1983, pp.65-83.


NV : When you write philosophically though, especially about what it means to be a subject or an individual, do you think that this is representative of what you understand is a feminine voice, or a feminine philosophical voice? Or is it representative of what some men might say is a feminine philosophical voice?

NV:당신이 철학적으로 글을 쓸 때, 특히 주체나 개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쓸 때, 당신은 당신이 이해한 것이 여성의 목소리, 혹은 철학적인[철학에 있어서의]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몇몇 남자들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 철학적인[철학에 있어서의]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시나요?    


CM: I wish to say a word about my own conception of the matter/form problem in relation to the feminine. If we consider, as I do too, that the feminine is a kind of materiality which is produced as the outside of the matter/form opposition, then a feminine philosophical voice may be heard either from within this opposition (as what has always been repressed in it), or from a total exteriority. As we know, Irigaray made up her mind to mime the philosophical tone as well as the philosophical rationality in her writings. This mimicry was supposed to be a way of subverting the metaphysical discourse. I myself chose to settle my thinking at the very heart of this discourse, to dwell within it. This a very classical way of doing, and there is nothing original in this gesture.

CM : 여성적인 것과 관련된 질료/형상 문제에 관한 제 자신의 개념화[이해]에 관해 조금 말하고 싶네요. 만일 우리가, 아니 저도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여성적인 것이 질료/형상이라는 [이항] 대립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산출되는 일종의 물질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철학적인[철학에 있어서의] 여성의 목소리는 이런 대립 내부로부터 (이런 대립 안에서 항상 억압되어 있던 것으로서) 들리거나, 아니면 전적인 외부성[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성]으로부터 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알다시피, 이리가레는 철학의 어조[기저]를, 철학적 합리성을 자신의 저술에서 ≪몸짓으로 흉내 내기로≫(mime) 마음을 먹었습니다[굳게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런 흉내 내기[의태, 擬態]는 형이상학적 담론을 전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꼽히는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은 제 사고를 바로 이 담론의 핵심부 자체에 정착시키자고, 그 내부에 거주하자[자리 잡고 살자]고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고전적인 행동 방식으로, 이런 몸짓에는 독창적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That said, I am investing the concept of plasticity which, in Hegel, means less the interplay between matter and form than the interplay between form and itself, t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form and form. In the Phenomenology of SpiritHegel show that the subject is plastic in the sense that she or he is able to receive form (passivity) and to give form (activity). I certainly do not intend to show that these modes of being of the subject represent the masculine/feminine relationship. I am interested in showing that this relationship between form and itself is not founded on a difference. The two modes of being of the subject are not different from one another, but each of them transforms itself into the other. With plasticity, we are not facing a pre-given difference, but a process of metamorphosis. In other words, the Hegelian subjects trans-subjects itself constantly. Its form is its matter.

 제가 가소성 개념에 내기를 걸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 그것은 헤겔에 있어서는 질료와 형상의 상호작용이라기보다도 형상과 형상 그 자체의 상호작용, 즉 형상과 형상의 관계입니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증명한 것은, 주체는 가소적이라는 것입니다만, 그것이 가소적인 것은 그/녀가 형상을 받아들일(수동성) 수 있고 또한 형상을 줄(능동성) 수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이런 주체의 존재양식이 남성/여성 사이의 관계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흥미를 갖고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이 형상과 형상 자체 사이의 관계가 어떤 ≪차이≫에 정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두 개의 주체의 존재양식은 서로 상이한 것이 아닙니다만, 한 쪽은 자신의 형상을 다른 쪽의 형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가소성에 의해, 우리는 주어진 차이에 마주대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 변성의 과정에 마주대하는 것입니다. 즉, 헤겔의 주체는 끊임없이 그 자체로 관-주체들≫입니다. 주체의 형상은 그 질료입니다. 

We know that Deleuze’s very strong critique of Hegel lays a foundation on the fact that dialectics is a logic which supersedes difference. According to Deleuze, the sublation of difference by contradiction amounts to an erasure of nondialectical differential relationships. Working on plasticity allows me to present an other version of the superseding of difference. To give up difference may mean that “difference” is not the right word to characteriz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modes of being of the subject.

 아시다시피, 헤겔에 대한 들뢰즈의 통렬한 비판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변증법이 차이를 없애는 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들뢰즈가 생각한 바에 따르면, 모순에 의해 차이가 없어지게 되면, 변증법과는 무관한 차이에 의한 관계를 말소해버리게 됩니다. 가소성에 매달리고 있는 저라면, 차이를 대신하는 다른 안을 제시할 겁니다. 차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두 개의 주체의 존재양식 사이의 관계를 특징짓는 데 '차이'는 적절한 말이 아니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If we relate this inadequacy of difference to the gender binary problem, then we may state that the concept of “sexual difference” is not accurate. I would like to turn towards Foucault on this point. In The Hermeneutics of the subject,4 he insists upon what he calls the process of transsubjectivation (214), which consists in a trajectory within the self. This transsubjectivation doesn’t mean that you become different from what you used to be, nor that you are able to absorb the other’s difference, but that you open a space within yourself between two forms of yourself. That you oppose two forms of yourself within yourself.

 이런 차이의 부적절함을 젠더를 둘러싼 이원론적 문제로 끌어들인다면, '성적 차이'의 개념은 엄밀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여기서는 푸코로 화제를 바꾸고 싶습니다. 『주체의 해석학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81-1982』[주]에서, 푸코는 이른바 '관주체화[초월론적 주체화, transsubjectivation]'의 과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14). 그것은 자기의 ≪내부에 있는≫ [주체화의] 궤적에 그 본질이 있습니다. 이 관주체화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차이≫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관주체화란 자기의 내부에서 두 개의 자기의 형태 사이에 [차이가 아니라] 여백(a space)을 여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내부에서 당신의[당신이 취하는] 두 가지 형태입니다. 

[주] Michel Foucault, The Hermeneutics of the Subject, New York: Picador, 2004.

Foucault writes: “Clear a space around the self and do not let yourself be carried away and distracted by all the sounds, faces, and people around you. (…) All your attention should be concentrated on this trajectory from self to self. Presence of self to self, precisely on account of the distance still remaining between self and self (…)” (222-223). This transsubjectivation, conceived as a journey within oneself, is the product of a transformation. Foucault underscores the Greek word ethopoiein: “Ethopoiein means making ethos, producing ethos, changing, transforming ethos, the individual’s way of being, his mode of existence” (237).

 푸코는 이렇게 씁니다. "자기의 주위에 여백을 열고주위를 둘러싼 모든 소리들, 얼굴들, 당신을 에워싼 사람들에 휩쓸려가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라. 자기에게서 자기에 이르는 이러한 궤적에 온통 집중해야 한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현전(presence)에. 다름 아닌 자기와 자기 사이에 아직 남아 있을 거리에 기인하는 현전에."(222-23) 자기 내부에서의 여행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관주체화변형의 산물입니다. 푸코는 그리스어 에토포이에인(ethopoiein)을 강조합니다. "Ethopoien은 에토스를 만들기, 에토스를 생산하기, 에토스를 바꾸기, 변형하기, 개인의 존재 방식, 개인의 실존 양식을 바꾸고 변형하는 것이다."(237)

There would then be a kind of transformation which would sublate the difference between the self and itself, which would create, produce a new self as a result of the opposition between two forms at work in the self.

 그렇다면 자기와 자기 사이에 있는 [심적] 차이를 지양할지도 모르는 일종의 변형, 즉 자기의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두 가지 형식들 사이의 대립의 결과로서 새로운 자기를 창출하거나 생산하는 일종의 변형도 있을 수 있죠. 

Plasticity might be the name of this transsubjectivation. We would find in Hegel the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dialectics as a process of “ethopoiein.” A plastic subject would be able to transform its way of being. This plastic ontology implies of course a plasticity of gender itself.

 가소성이란 이 관주체화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헤겔에게서 변증법을 'ethopoiein'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소적인 주체는 그 존재방식을 변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가소적인 존재론은 당연히 젠더 자체의 가소성을 내포합니다. 

Such is my interpretation of the relationship matter/form in Hegel.

이런 게 헤겔에게서 질료/형상 관계에 대한 제 해석입니다. 


NV: Did you ever run into prejudice?

 NV : 지금까지 편견에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까?

CM: Yes. It started very early when I was a student in what we call in France “les classes préparatoires,” and I was preparing for the Ecole Normale Supérieure. My teacher said, you will never succeed because you’re a woman. I have been told that philosophy was a masculine domain or field. And, ever since, I am always introduced in reference to deconstruction, even today, even if it is at a distance with deconstruction or by the question of my being a student of Derrida. People associate my name to a man’s name all the time, I am thought of as a specialist of Hegel or as a specialist of Derrida; I’m never myself.

CM : 있습니다. 아주 일찍이 시작됐는데요, 제가 프랑스에서 말하는 '입시준비반' 학생이었을 때입니다. 저는 고등사범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 담임교사가 얘기하더군요, 너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야, 네가 여자니까. 저는 철학이 남성의 영역이나 장이라는 얘기를 계속 들었죠. 그 이후에도 저는 탈구축을 참조할 때 항상 소개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설령 제가 얘기하는 것이 탈구축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혹은 제가 데리다의 학생이었다는 것에 대해 질문받을 때도 그래요. 사람들은 제 이름을 언제나 한 남자의 이름에 연결시켜 버립니다. 저는 헤겔 전문가나 데리다 전문가로 생각되는 거예요. 저는 결코 제 자신이 아닌 거죠. 

I would like to add that I suffer greatly from social exclusion. I am still a Maître de conférences in Paris (and not a full professor even if I have written much more than all my colleagues). I do not find any support in the United States either and I discovered that the so called “feminine” or “feminist community” was a myth.

덧붙이고 싶은데요, 저는 사회적 배제 때문에 몹시 괴롭습니다. 저는 파리에서 아직도 조교수를 하고 있어요(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썼을 썼다고 해도 정교수가 아닌 겁니다). 저는 미국에서 전혀 지지를 찾지[도움을 얻지] 못했고, 이른바 '여성적' 혹은 '여성주의적 공동체'는 신화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NV: Let’s move on to that concept of plasticity, if you will, because it does have a prominent place in your work. Can you explain what it entails, what is its origin?

NV : 괜찮으시다면 가소성[plasticity] 개념으로 옮겨갈까요? 이 개념이 당신의 작업에서 두드러진 장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그 기원은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CM: I found it for the first time in Hegel. He uses it when he defines subjectivity in the preface to the Phenomenology of Spirit. The subject is not supple and soft, and it is not rigid either; it is something in between. The subject is “plastic.” Plastic, if you look in the dictionary, means the quality of a matter, which is at the same time fluid but also resisting. Once formed, it cannot go back to its previous state. For example, when the sculptor is working on the marble, the marble, once sculpted, cannot be brought back to its original state. So, plasticity is a very interesting concept because it means, at once, both openness to all kinds of influences, and resistance.

CM : 저는 이 개념을 헤겔에게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는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주체성을 정의할 때 이 개념을 사용합니다. 주체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것도 아니고, 딱딱한 것도 아니다, 주체는 이것들 사이에 있는 무엇인가이다. 주체는 '가소적'입니다. 가소적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질(matter)의 질을 뜻합니다만, 어떤 질이냐면, 유동적(fluid)인 동시에 저항하는(resisting) 질입니다. 일단 형태를 얻으면[형성되면], 물질은 이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조각가가 대리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칩시다. 일단 조각되면 대리석은 원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소성이 아주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이 개념이 모든 종류의 영향에 열려 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저항을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NV : The notion of plasticity has its origin in Hegel, but it is also a corruption of Hegel. And you achieve this corruption through the incorporation of neurobiology into your philosophy. Could you tell me why this interest in neurobiology, what does it offer?

NV : 가소성이라는 통념은 헤겔에게서 기원합니다만, 그것은 헤겔의 변형곡해(corruption)이기도 하죠. 그리고 당신은 신경생물학을 당신의 철학에 체내화함으로써 이 변형곡해를 얻습니다. 신경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이유,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제공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CM: “Plasticity” is not a corruption of Hegel. It may be the locus for a thought of transsubjectivation, as I said previously, but it is not a corruption. Neurobiology and Hegelian philosophy may seem very remote at first sight. In fact, the concept of “plasticity,” which plays a major role within both of them, has the same meaning: it characterizes a certain kind of organization, the system’s one. Between the system of absolute knowledge or of absolute subjectivity in Hegel and the nervous system in neurobiology, the difference is not so dramatic. It is the same mode of being, the same functioning, the same economy. I allow myself to refer on that point to my book What Should We Do With Our Brains? (translation of Que faire de notre cerveau? (Paris: Bayard, 2004), by Sebastian Rand - Forthcoming from Fordham). In this book, I am insisting upon the community between different kinds of systematic plastic organizations.

CM: "가소성"은 헤겔의 변형곡해가 아닙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가소성은 관주체화를 사고하기 위한 자리일 수도 있지만, 이 개념은 곡해가 아닙니다. 신경생물학과 헤겔 철학은 언뜻 보기에 멀리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가소성" 개념은 이 두 연구 영역에서 주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똑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가소성 개념은 어떤 종류의 조직화를 특징짓습니다. ≪시스템의≫ 가소성인 것입니다. 헤겔에게서의 절대지나 절대적 주체성의 시스템과 신경생물학에서의 신경 시스템 사이의 차이는 그리 극적인[요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똑같은 존재양식, 똑같은 기능, 똑같은 에코노미인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제 책인 『우리의 뇌를 어떻게 할까』를 참조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 책에서 상이한 종류의 시스템적인 가소적인 조직화들 사이에 공동성(community)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It is also clear that neurobiology today offers a new perspective on subjectivity. Continental philosophers have always despised this field. They say: “No. It doesn’t concern us. It’s for analytical philosophers. It’s for Anglo-American philosophers.” Even Derrida has very harsh words against it. He says that the concept of “promise” is alien to neurobiology, which can only be concerned by the notion of “program.” This opposition between promise and program has to be deconstructed, because it marks the limits of deconstruction itself.

그리고 이것도 분명한데요, 오늘날의 신경생물학은 주체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전망]을 제공합니다. 대륙 철학자들은 항상 이 영역을 경멸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죠. "아니. 그것은 우리와 상관없다. 그것은 분석철학자들의 관심사이다. 앵글로-미국의 철학자들의 관심사이다." 데리다조차 이 영역에 대해 매우 가혹한 말을 쏟아 냈어요. 그가 말하기를 "약속" 개념[주]은 신경생물학에 생소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은 "프로그램"이라는 통념에만 관심을 둘 뿐이라고요. 약속과 프로그램의 이런 대립은 탈구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탈구축 자체의 한계점을 표시하는(mark) 것이니까.

[주] 가장 유명한 것은 데리다와 썰의 논쟁일 것이다. '사실 확인적'(constative)과 '행위 수행적'(performative)을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썰에 반박하면서 데리다가 일례로 꼽고 있는 것이 '약속'이다. '맹세합니다'의 언명에는, 맹세하고 있는 사실을 단순히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입밖에 냄으로써 맹세하는 행위도 동거하고 있다. 


NV: So you think that deconstruction would be resistant or closed to neurobiology or neuroscience?

NV : 그럼 탈구축은 신경생물학이나 신경과학에 저항하거나 닫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CM: There was a time when continental philosophers or psychoanalysts were right to fight against a hard reductionist tendency which at work in neurosciences in general. Neurobiology was a field that was completely unto itself and refractory to continental theory, structuralism, and post-structuralism. But about fifty years ago, things totally changed. I would like to refer here to scientists like Mark Solms, Oliver Sacks, Antonio Damasio, Eric Kandel… In his preface to Mark Solms’ and Oliver Turnbull’s The Brain and the Inner World, An Introduction to the Neuroscience of Subjective Experience, Oliver Sacks reminds us that according to Solms, psychoanalysis would have been for Freud a “moment of transition” (Solms’s first book, coedited with Michael Saling, was entitledMoment of Transition : Two Neuroscientific Articles by Sigmund Freud): “The reason for this was the very inadequate state of neurological (and physiological) at the time, not any turning against neurological explanation in principle. Freud knew that any attempt to bring together psychoanalysis and neurology would be premature (…). Neurology itself had to evolve, from a mechanical science that thought in terms of fixed ‘functions’ and centers, a sort of successor of phrenology, through much more sophisticated clinical approaches and deeper understandings, to a more dynamic analysis of neurological difficulties in terms of functional systems, often distributed widely through the brain and in constant interaction with each other.” (viii). Further, Neurology has now “entered the age of subtility.” Sacks adds that “Solm’s approach, then, is a double one: to make the most detailed neuropsychological examination of patients with brain damage and then to submit them to a model psychoanalysis, and, in so doing, hopefully, (…) to bring the mechanisms of the brain and the inner world of the patient together” (ix).

CM : 대륙 철학자들이나 정신분석가들이 신경과학 일반에 작동하는 견고한 환원주의적 경향과 싸우는 것이 옳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신경생물학은 완전히 자폐적이었으며, 대륙철학의 이론,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로도 다루기 힘든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50년 정도 전에 사태는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기서 Mark Solms, Oliver Sacks, Antonio Damasio, Eric Kandel 같은 과학자들을 언급하고 싶네요. Mark Solms과 Oliver Sacks의 『뇌와 내부 세계 : 주관적 경험의 신경과학 입문(The Brain and the Inner World, An Introduction to the Neuroscience of Subjective Experience)』의 서문에서 Oliver Sacks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상기시킵니다. 즉, Solms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에게 "이행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Solms의 첫 번째 책이자 Michael Saling과 공동 편집한 책의 제목은 『이행의 순간 :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쓴 두 개의 신경과학 논문(A Moment of Transition:Two Neuroscientific Articles by Sigmund Freud)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신경학적(그리고 생리학적) [설명에는] 매우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신경생물학적 설명에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과 신경학을 한데 묶으려는 여하한 시도도 시기상조임을 알았던 것이다. ... 신경학은 자력으로 기계론적 과학에서 벗어나고 진보해야 한다. '기능'과 중심 같은 틀에 박힌 말을 사용한 사상, 골상학의 후계 학문 같은 것에서 벗어나, 임상적 접근법을 더욱 더 세련되게 하고, 논리적 사고력을 더욱 깊게 하고, 종종 뇌에 널리 분포하며 항상 서로 작용을 가하는 기능들의 시스템에 비추어 보았을 경우에 신경학적인 아포리아가 되는 것을 더 역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viii) 게다가 신경학은 이제 "미시(微視, subtility)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Sacks는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Solms의 접근법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는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즉,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를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신경 정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그래서 그 성과를 모델이 되는 정신분석에 맡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 뇌의 메커니즘들과 환자의 내면 세계를 통합할 수 있다."(ix)

   A Moment of Transition: Two Neuroscientific Articles by Sigmund Freud by [Freud, Sigmund]

It is then very difficult to criticize such an open definition of neurology. Besides, many of the advocates of the “neuro-psychoanalytical” trend acknowledge a philosophical tradition in order to do what they’re doing. For example, Damasio’s famous books like Descartes’ Error or Looking For Spinoza very explicitly claim to belong somehow to the continental philosophical tradition. I think that Derrida didn’t have time to become really conscious of that.

그렇다면 신경학에 관한 이런 열린 정의를 비판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신경-정신분석적" 조류의 주창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철학적 전통을 승인합니다[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다마지오의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스피노자의 뇌(Looking For Spinoza) 같은 유명한 책들은, 아무튼 대륙철학의 전통에 얼마간 속해 있다고 아주 명확하게 주장합니다. 저는 데리다가 그런 것을 실제로 의식할 수 있게 될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Once again, the difference Derrida used to make between the program and the promise is a distinction in which we can’t believe anymore. A machine—and I think that Pascal was the first to say this—can also promise. You remember this passage in Pascal’s Pensées when somebody says, “Yes, but what if I don’t believe in God?” And Pascal answers “You just have to kneel down and mechanically repeat your prayer, and God will come:” that’s the promise inside the machine. You can’t really draw a line between the mechanical and the messianic. This is also what is very interesting in the brain, and in the computer: somebody like Daniel Dennett now shows that a computer may be said to be plastic.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데리다가 프로그램과 약속 사이에서 만든 차이는 우리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구별입니다. 기계 ―― 이렇게 말한 것은 파스칼이 처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는 약속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팡세』의 이 구절을 기억하실 겁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죠. "그래요, 하지만 제가 신을 믿지 않는다면요?" 파스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저 무릎을 꿇고 기계적으로 기도의 말을 반복하라. 그러면 신이 찾아올 것이다." 이것이 기계 안에 있는[기계에 내장된] 약속입니다. 기계적인 것과 메시아적인 것 사이에 실제로 선을 그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또한 뇌에서의, 그리고 컴퓨터에서의 아주 흥미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같은 이들은 컴퓨터가 가소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NV: For the sake of those who are not familiar with your recent work on the brain, when you distinguish the blind brain from the Freudian unconscious, why is this important? Doesn’t the notion of a biologically determined unconscious—the blind brain— as opposed to a Freudian, imaginary unconscious, threaten the subject’s freedom by foreshadowing a certain natural determinism?

NV : 뇌에 관한 당신의 최근 작업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여쭙는데요], 맹목적인 뇌(the blind brain)를 프로이트적 무의식으로부터 구별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프로이트적인, 상상적인 무의식에 대립된 것으로서의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무의식이라는 통념 ―― 맹목적인 뇌 ―― 은 어떤 자연적[본성적] 결정론을 예고함으로써[전조가 됨으로써] 주체의 자유를 위협하는 게 아닐까요? 


CM: This was a very important discovery that the brain wasn’t entirely determined. Some anatomic structures of the brain are, of course, genetically programmed, but a significant part of the neural organization is open to outside influences and develop itself consequently to these influences or interactions. It means an important part in the structure of your brain depends on the way you’re living and on your experience. History is inscribed within the biological. That is what “plastic” means when applied to the brain.

CM : 뇌가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뇌의 해부학적 구조들 중 몇몇은 물론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으나, 신경 조직[화]의 중요한 부분은 외부의 영향에 열려 있으며 이런 영향이나 상호작용으로 결과적으로 발전됩니다. 이것은 뇌의 구조에서 중요한 부분이 살아가는 방식에, 경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역사는 생물학적인 것의 내부에 기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뇌에 응용됐을 때 '가소적'이 뜻하는 바입니다. 


NV: Please describe your latest work on Freud?

NV : 프로이트에 관한 당신의 최근 작업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CM: The French title of my latest work is Les nouveaux blessés. I think it would need a little bit of translation. Perhaps “the new injuries,” or “new wounds” (rather than “the new wounded” or the Newly Wounded?). So let’s call it The New Wounds. It’s about the kind of injuries or wounds or brain damage that psychoanalysis never took into account. It’s a reflection on brain lesion or pathology (Alzheimer’s or Parkinson’s disease) but also on trauma in general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all kinds of what I call “social-political” traumas). To what extent neurology today helps us to enlarge the Freudian conception of the trauma and of the psychic suffering: such is the issue. It seems that in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Freud fails to define what might exceed the pleasure principle, what this “beyond” may exactly mean. Neurological traumas go beyond this principle, and discover something that has nothing to do with pleasure, but with every kind of serious trauma. This book is a reflection on those wounds that love and hatred or internal conflict simply cannot explain.

CM : 최근작의 프랑스어 제목은 Les nouveaux blessés입니다. 약간 번역을 해야겠네요. ("새로운 상처입은 자들"이나 "새로운 부상을 입은 자들"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상처들", "새롭게 부상들"이랄까요? 그래서 『새로운 부상을 입은 자들』(The New Wounded : From Neurosis to Brain Damage(Forms of Living)이라고 부릅시다. 정신분석이 결코 설명하지 못한 것이 상처들이나 부상들, 뇌 손상 같은 것입니다. 그것[제 책]은 뇌 병변이나 뇌 병리학(알츠하이머 병이나 파킨슨 병)에 관한 성찰일 뿐 아니라 트라우마 일반(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제가 "사회-정치적" 트라우마라고 제가 부르는 모든 종류의 것)에 관한 성찰입니다. 어떤 한도에서 오늘날 신경학은 트라우마와 심적 고통에 관한 프로이트적 개념화를 우리가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까요? 『쾌락원리를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쾌락원리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 이 '너머'가 정확하게 의미할 것을 정의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경학적 트라우마는 이 원리를 넘어서며, 쾌락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나 중증 트라우마의 모든 종류와 관계가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합니다. 이 책은 사랑과 증오, 혹은 내적 갈등이 설명할 수 없는 상처입은 것에 관한 성찰입니다. 


NV: So, the wounds of trauma are material wounds rather than merely psychic?

NV : 그려면 트라우마의 상처는 단순히 심적인 상처라기보다는 물질적인 상처인가요?

CM: If we are able to admit that the difference between “material” and “psychic” is very thin and even perhaps non-existing, if we agree on the absurdity of regarding the brain and the psyche as too separate and distinct instances, then we will have moved forward a great deal…

CM : "물질적"과 "심적"의 차이가 매우 얕고 심지어 실존하지 않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즉 뇌와 심적인 것을 너무 동떨어지고 너무 판명하게 나눠진 심급으로 보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면, 진전된 것이 될까요, 대단히....

We know today that every kind of serious shock--it may be a wound on the battlefield, a shell shock, but it also can be domestic trauma or moral abuse without any physical injury--we know that every kind of serious trauma causes destruction in what is now called the ‘emotional brain,’ which is located in the frontal cortex. This material destruction obviously and undoubtedly implies psychic alterations or modifications. It’s the end of the frontier, the borderline between psychic diseases as such and neurological diseases.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종류의 중증 충격, 음,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 전쟁 신경증(shell shock)도 그렇지만, 신체적인 부상이 전혀 없는 가정 내의 트라우마나도덕적 학대[예의범절을 가르친다면 행해지는 학대, moral abuse]일 수도 있는데요, 그러한 모든 종류의 중증 트라우마는 전두엽에 위치한 "감정적인 뇌"라고 요새 부르는 것의 내부에 파괴를 야기하지요. 이 물질적인 파괴에 의해, 누가 봐도 분명할 정도로, 마음의 일부가 바뀌거나 혹은 마음이 돌변하게 됩니다. 마음의 병과 신경학적인 병 사이의 프런티어, 경계선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NV: Fascinating.

NV: 재미있네요. 

CM: Fascinating, true. I’ve read many interesting books on military psychiatry. It’s very interesting that what happens with Vietnam vets or people who go in Iraq today, or what happens on the battlefield, but also, when you’re a hostage, or you’re caught in a bomb attack, or when you’re quietly at home and suddenly there is a gas explosion, for example, that what happens in all kinds of apparently different situations has a common point, which is the shock as such, and the way it alters your psyche.

CM : 재미 있어요, 정말. 저는 군대의 정신요법에 관한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매우 재미 있는데요, 베트남의 퇴역 군인에게 일어나는 것이나, 지금 이라크에 간 군인들, 즉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인질이 됐을 때, 폭격을 받았을 때, 예를 들어 집에 있다가 갑자기 가스 폭발이 일어났을 때, 뭐 그런 모든 외관상 상이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에도 공통점이 있어요. 이것들은 다르게 보여도 똑같은 충격이며, 똑같이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NV: Perhaps going back or linking this to the concept of plasticity again, or even going back to what you said about finding hope or promise in the program; how does neuroscience or this concept of plasticity, how do they help you to rethink the dynamics of subjectivity such that the singular individual isn’t always already under erasure, but is produced and affirmed instead; is made public without contradiction, without alienation, without being lost to the public realm. Or are this loss and conflict inevitable?

NV : 어쩌면 가소성 개념으로 얘기를 되돌리는 게 될지도 모르고, 그것은 뇌 손상 얘기와 연결될지도 모르고, 프로그램 속에 희망 또는 약속이 있다는 같은 이야기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경과학, 가소성의 개념, 그런 일은 어떻게 주체성의 역학을 재고하는 데 기여할까요? 즉, 특이한[단독적인] 개인(the singular indivisual)은 항상 이미 말소 아래에[말소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고 확인되고 있는, 즉 모순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공적 영역에 운산 무소하지 않고 단독적 개인이 공적인 개인이 된다는 얘기죠. 그렇지 않다면 단독의 개인의 상실, 또는 그것과 공적인 개인의 갈등은 불가피할까요?

CM: Reading neurological or neurobiological books helped me to become aware of a certain change in the philosophical thought of death. A transformation of the Heideggerian notion of “being-toward-death” in particular. Heidegger says that death is at every moment possible. Neurobiologists make us conscious of the fact that my own metamorphosis after brain damage is at every moment possible; there is something like a break of the subject which is not death, which is another kind of possibility. To be destroyed as a subject when you suffer from a concussion, for example, means that you become someone else. The possibility of becoming someone else at every moment and for everybody equally--for even if we know that certain people are more likely to be the victims of such damage, we also know that everybody may undergo this kind of destruction at any moment--this possibility alters how we conceive of the subject. The fact of being mortal is one thing, and the fact of being plastic means being able to be totally transformed and become somebody else. For example, Damasio will say of one of his patients: “Elliot was no longer Elliot.” So, subjectivity must be confronted to the risk of the loss of itself at every moment, and this loss is not death; it is something different.

CM : 신경학, 신경생물학 책을 읽은 덕분에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에 약간 변화가 있음을 자각하게 됐습니다. 특히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을-향한-존재"(being-toward-death)의 관념의 모양이 변했습니다(A transformation). 하이데거가 말하기를, 죽음은 모든 계기에 가능한(possible) 것입니다. 신경생물학이 우리에게 의식시키는 것은 뇌에 손상을 입고 나 자신의 형태변성(metamorphosis)이 모든 계기에 일어날 수 있다(possible)는 사실입니다. 즉 주체의 파손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른 식의 ≪가능성≫(possibility)입니다. 예를 들면 뇌에 충격을 입고 하나의 주체로서 손상을 겪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딴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계기에 있어서 딴사람이 될 가능성, 그것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그렇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만약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이러한 손상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어떤 계기에서도 이러한 손상을 남에게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기도 하죠. 그러면 이 가능성에 의해 우리의 주체의 사고방식도 달라집니다. 죽어야 할 존재라는 사실과 별도로, 가소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한 존재가 되어 딴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마지오라면, 자신의 환자 중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엘리엇은 더 이상 엘리엇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주체성이 모든 계기에 스스로를 상실할 리스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 상실은 죽음이 아닙니다. 뭔가가 다릅니다. 


NV: Frightening.

NV : 끔찍하네요. 

CM: It is very frightening, yes. But at the same time, because we don’t want to get prepared for it, we’re always disarmed when someone we know suffers from Alzheimer’s or any kind of disease. We don’t know what to do, yet this is a constant existential possibility: Kafka’s Metamorphosis, it’s something like that when you become, when you wake up as somebody different. This, then, is according to me the great metaphysical teaching of neurobiology today: not to consider brain damage as an isolated possibility, rare things that happen in hospitals, but to consider them as a constant possibility.

CM : 네, 너무 끔찍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에 대비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알츠하이머 등의 병을 앓을 것이라고 알 경우에도, 우리는 언제나 무방비한 거예요. 음,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이것은 부단한 실존적 가능성입니다. 카프카의 『변신』 등이 좋은 예입니다. 딴사람이 되는 것, 다른 누군가로서 아침에 깨어나는 거죠. 제가 보기에, 이것은 으늘날 신경생물학의 중대한 형이상학적 교훈입니다. 뇌 손상을 [자신과는 무관한] 고립된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일어나는 드문 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a constant possibility)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NV: Since you broached the subject of this constant existential possibility, let me ask what is the self?

NV : 이 부단한 실존적 가능성을 지닌 주체 얘기가 나왔으니까, 자기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CM: The self? This is a very interesting question because there is a total redefinition of the self. Damasio, for example, says that the self is at the same time everything and nothing. It is the elementary process of self-dialogue: “How are you doing?” “I’m alright.” “How are you doing?” “I’m alright”--like the beating of the heart. It is the self-information of the vital processes, life itself, the very elementary dialogue between the body and the soul. And this very fragile instance may at every moment be modified or wounded. And while this is a selfdialogue, at the same time, as I said to start with, this self-dialogue doesn’t reflect itself. It is not a speculative instance, because there is no mirroring of it. You can’t see it really. It cannot see itself.

CM : 자기요?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완전히 재정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다마지오는 자기는 모든 것인 동시에 무라고 말합니다. 자기와 대화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 "잘 있었나?" "잘 지냈어" "잘 있었나?" "잘 지냈어" 같은, 심장 박동 같은 거죠. 그런 것이 삶의 다양한 과정을, 자기의 형태를 통해서 아는 것(self-information), 즉 신체와 영혼의 사이의 극히 초보적인 대화입니다. 모든 계기에, 이 덧없는 대화의 심급은 변용하거나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대화인 한편으로, 동시에 이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말씀드렸듯이, 자기-대화는 자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변적 심급이 아닙니다[주: 실존적 심급이라는 의미]. 자기를 거울상으로서 비출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는 자기를 볼 수는 없습니다. 자기는 자기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NV: And what do you make of this reading of the self offered by Damasio--is this a good thing?

NV : 그러면 다마지오가 제공한 이런 식의 자아 독해에서 무엇을 끌어냅니까? 이것은 좋은 건가요?

CM: Well, it’s deconstruction inscribed within us. It is the biological deconstruction of subjectivity. In this sense, it is what you call “a good thing”.

CM : 네, 즉 우리의 내부에 기입된 탈구축입니다. 주체성의 생물학적 탈구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당신 말대로 "좋은 것"입니다.


NV: Say it again in other words maybe. What then constitutes the self? Is there a true singular identity or subjectivity? Or, is the self always a public phenomenon?

NV : 아마 달리 말하는 게 되겠지만, [다시 한번 부탁 드립니다.] 그럼 무엇이 자기를 구성하고 있나요? 참된 특이한 정체성이나 주체성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란 언제든지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CM: Of course the general process of self-information is common to everybody, so in this sense it is a universal structure. But, if we take for granted that at the same time the way your brain builds itself it departs from this structure, on the ground of this structure, then auto-affection, the way we keep ourselves informed about ourselves, is always individual. It’s impossible to draw a line between universal and singular here, you know. There is a common structure, but at the same time the way it takes place in you and the way it takes place in me is not the same. The self is clearly not a substance.

CM : 물론 자기의 형태에 의해 자기를 아는(self-information) 일반적인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자기는 보편적인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뇌는 자기를 창조하면서 이 보편적인 구조를 빠져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렇다면 보편적인 구조를 기초로 한 자기-변용(auto-affection), 즉 우리가 자기의 형태를 자기에 대해서 알리는(informed) 방식은 언제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보편과 단독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이곳에서는 무리죠. 공통의 구조는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구조가 발생하는 방법은 저와 당신에게 똑같지 않습니다. 자기는 실체가 전혀 없습니다.


NV: Can you say something about the relationship of the individual to the public realm? 

NV :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영역과의 관계에 대해서 뭔가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CM: The most recent and current research in neurobiology reveals a new kind of brain organization that may work as a model to understand all kinds of organization today: society, for example. On this point, I’m very close to what Žizek tries to think when he says that he’s looking for a new materialism, which implies this concept of society as a whole, as a closed totality without any kind of transcendence. That is also something he develops in The Parallax View in particular.

CM : 신경생물학에서의 최신이자 주류의 연구가 드러내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뇌 구조인데요, 그것은 모든 오늘의 유기적 조직체, 음, 예를 들어 사회인데요, 그런 것을 이해하는 데 모델로서 작동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지젝이 생각하려고 하는 것에 매우 가깝네요. 그는 새로운 유물론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유물론은 그 한 가지로, 어떤 초월도 아니며 폐쇄적인 전체성으로서의 사회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에서 그가 전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네요.

I don’t believe in transcendence at all. I don’t believe in something like the absolute Other, or in any kind of transcendence or openness to the other. So in this sense, as a Hegelian, I am quite convinced with Žizek that we’re living in some kind of closed organizational structure, and that society is the main closed structure. But at the same time, this structure is plastic. So it means that inside of it, we have all kinds of possibilities to wiggle and escape from the rigidity of the structure. What happens in the brain is the paradigm to figure out what happens in society as such. We are living in a neuronic social organization. And I’m not the only one to say it. The neuronic has become the paradigm to think what the social is, to think society and social relationships. So it is clearly a closed organization; if by closed we understand without transcendence, without any exit to the absolute Other. But, at the same time, this closed structure is not contrary to freedom or any kind of personal achievements or resistance. So I think that in such a structure, all individuals have their part to play.

나는 초월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적인 타자 같은 것, 어떤 초월, 타자에게 털어놓기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즉, 헤겔주의자로서의 제가 지젝과 함께 확신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모종의, 폐쇄적인 유기조직체적 구조 속에 살고 있고, 사회는 주요한 폐쇄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구조는 가소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구조의 내부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 구조가 지닌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온갖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뇌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런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범형입니다. 우리는 뉴런처럼 조성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만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뉴런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회와 사회적 관계를 생각하는 범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문의 여지없이, 사회라는 것은 닫힌 유기체입니다. 이 때, "닫힌"을 초월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에 이르는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닫힌 구조가 자유, 모든 개인의 하는 것, 저항 같은 것에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구조 속에 있는 개개인 모두에게는 각각의 배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NV: You speak of this neuronal structure; what if I said there is no hors-texte?

NV : 뉴런적 구조 얘기인데요, ≪텍스트의 외부≫(hors-texte)는 없다고 해도 괜찮나요?

CM: Yes and no. In Derrida, there is no hors-texte, and at the same time, there is something, in this very thought, like an outside. A totally open space. That of the “utterly other”, or of the “arrivant absolu”.

CM : 없는 동시에 있습니다. 데리다의 경우 ≪텍스트의 외부≫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데리다의 사상에는 외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전체로서 열린 공간이. 전적인 타자(utterly other), 혹은 "절대적인 도래자"(arrivant absolu)의 공간이.


NV: With this in mind, both this notion for you of neuronal structure and there is no hors-texte, how would you respond to those critics who see in deconstruction the end of political agency? Some people might ask how this sort of totality does not lead to quietism or relativism? Or what would you say to those for whom this closed structure must be opened up by way of a soteriological gesture of love and desire for a radical, unforseeable other? Or, how would you address those who might view this closed, albeit plastic, structure as a new kind of fundamentalism?

NV : 그러면 즉, 당신이 말하는 뉴런적 구조의 관념과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둔 경우, 탈구축에 정치적인 행위[자유](political agency)의 종언을 보는 비평가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답변합니까? 이런 종류의 전체성['텍스트의 외부는 없다', 뉴런적 폐쇄 구조를 가리킴]이 수수 방관의 태도, 혹은 상대주의로는 이어지지 않을까, 의문을 품은 사람도 있겠죠? 근원적이고 예견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나 욕망 같은 구원론적인 몸짓(a soteriological gesture)이 이러한 폐쇄 구조를 틀림없이 열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합니까? 혹은, 비록 가소적이긴 해도 닫힌 구조를 새로운 종류의 원리주의로 보는 듯한 사람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얘기하나요?

CM: Well, we have to admit that there is no alternative to capitalism; this is something that is, I think, inescapable today. So we clearly live in the absence of an alternative if we compare our situation with the one of our fathers fifty or sixty years ago. It’s very different because we can’t work out a different social or economical model. So it’s very likely that we have to stay inside capitalism. Does it imply fundamentalism? I don’t think so because although the general structure is given and unchangeable as such in that it cannot be transformed into another model, although we take for granted that the form is given, that the structure is given, once and for all--which seems to be true with capitalism--at the same time, all moves within this form are allowed. For example, if you consider today, capitalism in the USA and in Europe, and capitalism in the Far East, like in China, if you take into account that the most achieved form of capitalism occurs in a Marxist country, then you discover that capitalism is multiple. And I think that when people say that they’re afraid of China, what they’re afraid of is to see that a Marxist country is able to demonstrate what capitalism is to us. But this may help us to think how a single form is able to differentiate itself almost infinitely. I think that we can use the little gaps within the form--the way in which the same form is not always the same--to build resistance. I am very influenced by structuralism, here. What I mean is akin to what Lévi-Strauss says with respect to the various ways in which gods are represented; from country to country, you always find the same pattern, but inside of this general frame, you also find many little differences which forbid us to consider the structure as the same. So the sameness is the difference. I know this is very abstract, but from this general pattern we can evolve toward much more concrete social determinations.

CM : 글쎄요, 자본주의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제 생각에 오늘날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분명히 대안의 부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50-60년 전 아버지들의 세대가 처한 상황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지금과 그 때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가 상이한 사회적 혹은 경제적 모델을 산출할[가다듬어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자본주의 내부에 머물러야 있어야만 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근본주의를 내포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일반적 구조[자본주의]를 다른 모델로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 구조는 주어져 있고 바꿀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형태가 주어진 것, 이 구조가 주어진 것임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음, 그것은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정말이겠죠, 그래도,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형태 내부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현대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미국의 자본주의, 유럽의 자본주의, 극동의 자본주의, 글쎄요, 중국이 좋을까요, 맑스주의 국가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자본주의는 여럿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게다가 중국이 무섭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하는 힘이 맑스주의 국가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단일한 형태가 그 자체를 무한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차이화하는 방법을 사고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동일한 형태가 줄곧 동일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에서 판단하면요, 우리는 형태의 내부에 있는 작은 간극을 이용해서 저항을 조립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프랑스에서 구조주의로부터 상당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제 얘기는 신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상되는 것에 대해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국가는 달라도, 같은 패턴에 언제나 만나겠지만, 일반적인 수준에 있는 틀 내부에서는 구조와 구조가 동일하다고는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와도 만날 꺼에요. 그래서 동일성은 차이이기도 합니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패턴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더욱 더 구체적인 사회를 결정하는 사물로 향해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NV: Can we establish a hierarchy of values? What does this do for ethics?

NV : 가치의 위계를 수립할 수 있을까요? 이 얘기는 윤리와 어떻게 관련될까요?

CM: Well, it’s true that it clearly opposes Lévinas’ vision of ethics as defined by some radical other. It seems that a genuine ethical vision of the social implies a kind of openness to change, and if we understand by change the way in which the other is susceptible to come at any moment. On the contrary, my definition of structure might seem very violent. And it’s true that it is very close to the Hegelian one, and we know that it implies fight and struggle and everything.

CM : 글쎄요, 제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모종의 근본적 타자에 의해 정의된 레비나스의 윤리관과 대립하는 것은 틀림없겠죠. 사회적인 것의 진정으로 윤리적 비전은 변화에 대한 일종의 개방성을 내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변화를 타자가 어떤 순간에든 도래하기 쉬울 수 있는[도래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구조에 대한 제 정의는 매우 폭력적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정의가 헤겔적 정의와 매우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며, 우리는 이것이 싸움, 투쟁, 그리고 모든 것을 내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But, at the same time, it also implies that in this kind of structure, everybody is equal to everybody; and to be responsible for the other allows you to do something for him. If you read Lévinas closely, sometimes he seems to say, and Derrida says the same thing, that the other is so remote that it is impossible to act in his or her place. You can’t decide for him or her. For example if you have a child, or it is his or her decision, there’s nothing I can do for him and for her. This is the way in which this ethical vision is not so pure. The other is so remote that it creates a sort of loneliness of the other as such. My vision of things is much more based on reciprocal and mutual relationships. I think that you can do something for the other, and sometimes I’m not bothered to know that I can act in your place if you’re not able to do so yourself. You know, I don’t feel guilty because sometimes I’ll say my son will do this. So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conceptions relies on a sort of horizontal schema. Lévinas was very much against the Heideggerian notion of Mitsein, the fact of being with the other. He says that’s not ethical. I’m not so sure. I like this idea of being with the other.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것은 이런 종류의 구조에서 만인은 만인과 평등하다는 것도 내포합니다. 그리고 타자에 대해 책임을 가진다는 것은 여러분이 타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신이 레비나스를 매우 꼼꼼하게 읽으면, 때때로 그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데리다가 말하는 것이 똑같게 보이겠지만, 타자가 너무도 멀어져 있기에 타자[그 혹은 그녀]의 장소에서 행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타자[그 혹은 그녀]를 위해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면, 혹은 그것이 그 혹은 그녀의 결단이고, 제가 그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업습니다[당신이 아이를 갖고 있다면, 아니 [아이를 갖겠다는 것이] 그 혹은 그녀의 결단이라면, 제가 그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런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윤리적 비판은 그렇게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타자는 너무 멀어져 있기에 그것은 일종의 타자의 외로움 자체를 창출합니다. 사물에 대한 제 비전은 호혜적이고 상호적인 관계에 훨씬 더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타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당신이 당신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제가 당신의 자리에서 [대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때때로 제 아들이 이것을 할 것이라고 제가 말할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두 개의 [윤리] 개념화는 일종의 수평적인 도식(horizontal schema[수평적 관계를 규정하는 도식])에 달려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Mitsein이라는 통념, 타자와 함께 있음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타자와 함께 있음이라는 관념을 좋아합니다. 


NV: There’s a notion of reciprocity there.

NV : 거기에는 호혜성의 통념이 있죠. 

CM: Yes, and also of course the old problem of recognition and of reciprocity in recognition. And I think that if there should be an ethical value, the notion of recognition would be the one for me, and, of course, this notion implies fight and struggle.

CM :  그렇습니다. 게다가 물론 인정과 인정에 있어서의 호혜성이라는 오래된 문제도 있죠. 그리고 생각건대, 윤리적 가치가 있어야만 한다면, 인정이라는 통념이 제게 윤리적인 것이 되겠죠. 물론 이 통념은 싸움과 투쟁을 포함합니다.


NV: Very good. So no radical Other?

NV : 그렇군요. 그러면 근원적인 <타자>는 없다?

CM: No, unless you admit that you can be readily other to yourself. As when I was talking about brain damage.

CM : 없어요.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쉽사리 타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에서라면 별개이지만. 제가 뇌 손상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처럼 말이죠.


NV: So this is frightening.

NV : 그래서 뇌의 손상은 무서운 것이죠.

CM: This is monstrous.

CM : 터무니 없는 거죠.


NV: This is monstrous, yes. Well, incidentally, in the United States, there are some theological moves toward claiming a radical other who’s not omnipotent but weak. I am thinking of Gianni Vattimo, John Caputo, Catherine Keller. This notion of the weakening of being or something like that could be frightening as well. Weak because the claim to power leads to visions of this world that are apocalyptic, for instance, or violent visions. Weak because, people say, this is the only world, and so, if this is the kingdom, we have here a realization of God, of the weakness of God. So, I think that in that notion you have an attempt to say that this is it; this world is it. It’s a notion that does away with transcendence. This is it. And yet that notion for some might hold a kind of promise, however impossible or unforeseeable.

NV : 네, 터무니 없죠. 그럼 얘기를 대충 바꿔서, 미국 얘기인데요, 전능이 아니라 약한 근원적 타자를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신학적 동향이 몇 가지 있죠. 잔니 바티모, 존 카푸토, 캐서린 켈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관념, 존재가 약해져가고 있다는 것도 무서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약하다는 것은, 힘(power)을 추구한다는 것이, 예를 들어 묵시록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되는 현세의 비전(visions)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죠. 약하다는 것은 듣기에는, 이것이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것이 유일한 왕국이라면, 현세에서 신을, 신의 약함을 깨달았으니까(have a realization)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관념을 믿는 사람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세상에서 충분하다, 라고 어떻게든 타이르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초월을 멀리하는 관념입니다. 바로 이제 충분하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 덕분에 아무리 불가능한 혹은 예측할 수 없더라도, 모종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도 있겠지요.

CM: And here we have messianism?

CM : 여기에 메시아주의가 있다는 겁니까?


NV: Yes, well something like that. So you’re more of a pragmatist.

NV : 네 그렇습니다,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좀 더 실용주의적(pragmatist)예요.

CM: I think so, yes.

CM : 네, 실용주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NV: Which brings us back to the earlier discussion about determinism and materialism.

NV : 이것은 우리를 결정론과 [지젝이 제창하고 있는 새로운] 유물론의 논의로 되돌아가게 하는군요.

CM: I believe in determinism to a certain extent because I believe that the structure is given once and for all. And when you read Marx you know that determinism is inescapable. But, I believe in dialectics, and it’s true to me that Hegel was right to say that freedom was always a struggle between determinism and its opposite. There’s no pure freedom and no pure determinism; they’re always sort of a negative transformation of both of their mutual relations. And that’s what plasticity’s about.

CM : 나는 어떤 한도에서는[적당하게] 결정론을 믿어요 왜냐하면, 구조는 한번 주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게다가 맑스를 읽으면 결정론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증법을 믿고 있으며, 자유는 줄곧 결정론과 그 대립물의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한 헤겔은 옳았다는 것이 제 본심입니다. 순수한 자유도 순수한 결정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도 결정론도 언제든지 양자의 상호 관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형태를 바꾸어 갈 수밖에 없는 운동(a negative transformation) 같은 것입니다.그리고 가소성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것입니다.


NV: To conclude our discussion then, tell me a bit about what you anticipate for the future.

NV : 그러면 논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당신이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있는 것을 조금 말씀해 주세요. 

CM: I’m very curious to know what will happen in China. I’m very fascinated by this conjunction of Marxism and capitalism. So I’m sure that one day or the other we’ll know more about the kind of achievement of social freedom-- well, so called social freedom and individual achievement--in liberalism. This is the first organization in my vision of the future. What will happen? Second, I am very curious about what will happen in the neurological field. I’m sure that there will be many more discoveries that will change the vision we have of ourselves. And third, I think that philosophy will be totally transformed by these two: economical and political promise on the one hand, and on the other, this new way of defining subjectivity. So I’m not really optimistic, but at the same time I’m very excited by what happens today.

CM : 저는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무지무지 알고 싶습니다. 맑스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합에 매우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속에서, 사회적 의미에서의 자유의 달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글쎄요, 사회적 의미에서의 자유와 개인적 성취 같은 것일까요, 자유주의의 맥락에서 말한다면 말이죠. 이것은 미래에 대한 제 비전에 있는 첫번째 조직화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둘째로, 신경생물학의 장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 많은 발견이 있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품고 있는 [미래의] 비전도 바꿀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저는 철학이 앞의 두 가지에 의해 전적으로 변형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약속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주체성을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실제로는 낙관주의적이지 않으나, 동시에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매우 설레고 있습니다. 


CATHERINE MALABOU is Maître de conférences at the University of Paris X-Nanterre. Her publications in English include The Future of Hegel (Routledge, 2004), Counterpath (with Jacques Derrid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4), What Should We Do With Our Brains? (forthcoming from Fordham University Press in 2008) and Plasticity at the Eve of Writing (forthcoming from Columbia University Press). Her latest book in French is Les nouveaux blessés: De Freud à la neurologie: penser les traumatismes contemporains (Bayard, 2007).

NOËLLE VAHANIAN is Assistant Professor of Religion and Philosophy at Lebanon Valley College. She is the author of Language, Desire, and Theology: A Geneology of the Will to Speak (Routledge,2003). She has been contributing to the JCRT since April 2000.




나가야마 겐, 『푸코 : 생명권력과 통치성』

中山元フーコー 生権力統治性

5. 국가에 의한 통치 : 독일의 내치[폴리차이] 모델

1. 국가이성 개념


*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로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했다. '폴리차이'는 '내치'라는 번역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conduite는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품행'으로 옮기지 않고, '인도, 인도하다' 등으로 적는다. 

* 그러나 국내의 적합한 번역어로 바꾸지 못한 부분도 있다. 눈이 밝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널리 혜량을 구한다.  

 

국가의 이념

그런데 이렇게 해서 인간의 신체, 생명, 정신의 통치가 사목의 원리의 연장과 수정 아래서 진행된 결과, 근대의 다양한 국가의 이념들이 등장한다. 우선 종교개혁에서 나타난 대항품행 개념은 근대의 초기에 영방국가[領邦国家, 13세기에 독일 황제권이 약화되자 봉건 제후들이 세운 지방 국가]가 성립되기 위한 커다란 실마리가 됐다. 사목의 위기와 폭발과 사방으로 흩어짐四散 때문에 몇 개의 새로운 정치적 개념이 탄생했다. 예를 들어 국가이성, 폴리차이, 세력균형과 외교 등의 개념이다. 그 배경에는 16세기에, 스콜라철학에서 믿었던 정치적 이성 개념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초래한 것은 그 나라의 종교는 그 나라의 영주가 정한다는 영방국가領邦国家의 성립과 신성로마제국 권위의 붕괴였다. 황제 칼 5세가 제국에서 루터를 추방하라고 명했는데도, 나라들의 지배자가 이것에 응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점점 더 통치권력이 주도하는 유형의 양상을 띠게 됐다. 나라들의 지배자는 종교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제국으로부터 독립된 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은 개신교 국가들과 가톨릭 국가들로 분열되면서, 각각이 자국 안에서 지배자의 종교를 강제할 수 있다고 확정된 것이다. 이 체제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최종적으로 확립되지만, 1555년의 아우구스부르크의 화의(和議)에서 이미 현실화됐다. 이리하여 새로운 정치 단위를 통치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의 이념이 요구됐던 것이다.

국가이성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국가통치의 이념이며, 레종 데타라는 프랑스어에 남아 있으며, 국가의 생존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취해야 할 원칙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때로 국가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어떤 행위를 취하더라도, 초법규적으로 허용된다는 국가 이기주의적 맥락에서 말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보테로(1544-1617)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국가가 일상적인 기능에 있어서 (매일의 관리에 있어서) 기초지어졌을 때부터 나라를 유지보수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종류의 합리성이라고 말했으며, 국가의 자존을 지향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치[폴리차이]는 독일에서 생겨난 내정적인 이념이며(푸코는 폴리스라고 프랑스어로 표기하지만, 경찰과 헷갈리기 쉽기에 독일어로 표기한다[이 번역본 등에서는 모두 이하 '내치'로 옮긴다]),국내 질서와 국력 증강 사이의 동적인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계산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가이성도 내치도 국가가 자존하고 강화되기 위한 이념이지만, 세력균형이나 외교개념은 자존하고 있는 국가 사이에서 세력의 유지와 균형을 목표로 하는 이념이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더 자세하게 검토하지만, 사목권력이 붕괴했을 때, “정확하게 말해서 1580년과 1650년 사이에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의 창설이 이뤄졌을 때”, 그 사목권력이 붕괴된 후의 장소에 새로운 국가의 이념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런 이념에 대해 고찰하는데, 그 전에 중세 이후 국가의 통치 역사를 돌이켜보자.

 

중세의 통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번역되지 않았던 중세에서 정치학의 이념은 키케로를 통해서 전해졌다. 특히 마크로비우스의 스키피오의 꿈의 주석을 통해서다. 마크로비우스는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키케로의 정치철학을 소개했다(‘스키피오의 꿈은 키케로의 국가의 말미를 장식한 부분이다). 그리스의 전통에서 정치학에 종사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명상과 철학이라는 행위보다 낮은 차원의 활동으로 여겨졌다. 마크비우스가 비판하는 플로티누스는 정치적인 덕이 인간을 신에 가까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신과 똑같이 되려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세속적인 삶의 방식과 사물로부터 도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키케로에게서 배운 마크로비우스는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자는 철학에 전념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천국에서 환영 받고, 영원한 행복을 향유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정치가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에 근거하고 정의에 맞는 것만 이루는 사려(프루덴티아에), 정념을 이성에 따르게 하는 절제(템페라티아에),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굳건함(포르티투데니스), 배분적 정의(유스티티아에)의 네 가지 덕이 필요하다.

이렇게 덕을 갖춘 정치가는 자신을 배려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인 동시에, 키케로적인 의미에서의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선한 지배자이며, 국가의 창립자인 자는 거의 신과 동등한 지위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정치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공적인 빛 속에서 덕의 높이를 나타내는 인간이며, 보통 사람보다도 신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게 됐다.

다만 13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자, 정치적 활동의 제약의 크기가 주목받게 된다. 정치학은 인간의 실천적 행위에 관련된 학문이며, 신의 명상 같은 높은 지위를 인정받지 않는 것이다. 아퀴나스에서 단테에 이르기까지 중세의 정치철학은 인간 삶의 영위에 있어서의 정치학의 탁월성과, 신의 명상으로 대표되는 철학의 탁월성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어쨌든 정치가(폴리티코스)라는 개념은 타자와 함께 사는 지상의 공화국에서 공통선을 찾는/요구하는 중요한 행위를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의 통치이성은, 이 공통의 공공선을 중심적인 이념으로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왕을 사목자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목자는 양떼에 있어서의 선을 찾지만/요구하지만, 모든 지배자는 복종하는 집단의 선을 찾는다/요구한다는 것이다. 아퀴나스에게 왕은 하나의 도시 또는 영지領国의 사람들을 그 공통선을 위해 지배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왕은 어떻게 사람들을 통치해야 할까? 아퀴나스는 이를 위해 몇 가지 종류의 모델을 제기한다. 푸코는 이를 신과의 유비, 자연과의 유비, 사목자나 아버지와의 유비라는 세 개의 모델로 설명한다. 우선 신과의 유비는,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비로 행해진다. 자연의 사물의 통치에는 보편적인 통치와 개별적인 통치가 있고, 보편적인 통치를 행하는 것은 창조주인 신이다. “신의 통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신의 섭리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별적인 것의 지배는 미시적 인간의 자기 통치이다. 인간은 이성에 의해 스스로를 지배하는 것이며, 이것은 거시적 신의 지배를 모방한다. “인간과 이성의 관계는 세계와 신의 관계와 같다.”

또 신과의 유비는 이성에 의한 인간의 통치뿐 아니라, 도시와 영지의 통치자인 왕의 임무에도 해당된다. 신은 세계를 창조했으나 왕은 지배하는 인간과 국가를 창조할 수는 없다.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에 왕은 우선 국가에 적당한 장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국가에 있어서의 교회나 법원이나 시장의 장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사람들의 직업에 따라 장소를 지정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국가의 설립에서 보이는 세계 창조와의 유비이다. 다음으로 도시와 영지의 설립을 세계가 창조된 방법으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이를 지배하는 방법도 세계에 대한 신의 성스러운 지배 방법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국가의 창조와 지배의 양쪽에서 왕은 신을 흉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유비는 생명체의 생명력과의 유비이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신체나 다른 동물의 신체 속에, “모든 지체肢體(모든 구성원)의 공통선을 지켜보는[보살피는] 지배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해버릴 것이다고 했다. 이것은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선으로 향하며, 따라서 공통선을 간과하려고 한다.” 그래서 국가에도 이 지배적인 힘에 상당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국가에 있어서는 각각의 개인의 특별한 선을 넘어, 다수자의 공통의 선을 향해 사람들을 강제하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이것이 지배하는 권력이다.

세 번째의 유비는 사목자와의 유비이며, 이것은 처음에 제시했던 것 그대로이다. 왕은 사목자로서, 아버지로서 통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감으로써 혼자서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은 선한 생활이다. “선한 생활이란 덕이 높은 삶이며, 덕이 높은 삶이야말로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목적인 것이다.” 덕이 높은 삶을 보냄으로써, 혼이 구제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며, 왕의 임무는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왕은 개인의 영원한 구제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처할 뿐 아니라, 그 구제가 가능해지도록 조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푸코가 이런 세 가지 유비를 통해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 가정, 국가, 그리고 자연의 전체에 대한 우주론적인 일대 연속체의 이름으로, 왕이 통치하는 것을 인가받고, 이 연속체가 주권자가 따라야 할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다. “왕이 통치할 수 있고 또한 통치해야만 하는 것은 왕이 신으로부터 자연이나 사목자를 통해 한 집안의 아버지에 이르는 이 거대한 연속체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며, 그리고 16세기에 붕괴한 것은 이 연속체이다.

신이 자연을 사목적으로 통치했다고 한다면, 구원, 복종, 진리의 세 가지 축에 있어서 지배했을 것이다. 구원의 축에 있어서는, 세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되며,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인간중심주의이면서, 인간은 이 세계를 위해서 살아 있지 않는 것이 된다.

이것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비의 사고방식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은, 거대한 우주로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며, 큰 인간이다. 동시에 소우주인 인간은 가장 높은 천구의 가시적인 질서를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대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이지만, 소우주의 극에는 하나의 특권적인 피조물인 인간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한정된 규모에서, 천공, 성신星辰, 산악, 하천, 폭풍우의 광대한 질서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복종의 축에서 생각한다면, 신은 인간들에 대해 구원의 표시를 주고, 신의 의지를 제시한 것이라고 푸코는 생각한다. “사목적으로 통치되는 자연은 곧 기적, 위협, 표시로 가득 찬 자연이 된다. 그때 세계의 양상은, 문장, 문자, 암호, 어두컴컴한 말, 터너에 따르면 상형문자에 의해 뒤덮이는 것이다. 이 표시는 각각에 벌의 위협과 구원의 약속과 선택의 표시로서 해독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는 해독되어야 할 기호로 뒤덮여 있기때문에, “인식하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 된다.

세 번째인 진리의 축으로 생각하면, 기호로 가득 찬 세계는, 그 진리가 해독되기를 기다리는 세계라는 것이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며, 그 열려 있는 책 속에서 사람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유비와 유사의 관계 속으로부터, 세계의 진리를 해독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연과 말은 무한하게 서로 교차하며, 읽는 유령을 터득한 자에 대해서, 이른바 유일하고 방대한 텍스트를 형성하는 것이다


군주권력의 시대의 통치

이런 중세적 세계의 이미지는 이미 지적했듯이 “1580년부터 1650년 사이에, 고전주의의 에피스테메의 창설 자체가 이뤄졌을 때에 소멸하게 된다. 그 절단을 중세의 사목적 우주론을 떠받치던 세 개의 축으로 고찰해보자. 첫 번째인 신과의 유비의 축을 절단한 것은 갈릴레오의 천문학이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발명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성신신학星辰神学을 타파했다. 달 위의 세계와 달 아래의 세계의 구별이 소멸된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은 무지개처럼 무산霧散됐다. 이제 진리는 자연의 신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학의 말에 의해 작성되게 됐다.

그리고 이제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계층구조가 아니다. 이 우주를 해독하려면 유비적인 계층구조가 아니라, 데카르트가 『정신지도의 규칙』에서 제시한 분석방법이 필요해진다. 분석에서도 비교는 행해진다. 그러나 이 비교라는 작업은 세계가 어떻게 질서 잡혀져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맡는 게 아니다. 그것은 사고의 질서를 따라서 행해지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자연과의 유비의 축을 절단한 것은 포르 루아얄의 『일반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신의 표시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기호나 암호라는 것은 인간이 분석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다. 중세의 점술’(디비나티오)신에 의해 세계 속에 미리 배분된 언어를 주워 담는것이며, “신적인 사물을 꿰뚫어보는 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호가 기호로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인식의 내부에서이다.” 이리하여 미지의 기호나 무언의 표식은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사목자와의 유비의 축을 절단한 것은 말브랑슈에서 콩디약에 이르기까지의 기호의 철학일 것이다. 분석의 방법에 의해 기호가 작성되지만, “정신이 분석을 향하기 때문에 기호가 나타나며, 정신이 기호를 손에 넣고 있기 때문에 분석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 기호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표상작용의 내부, 관념의 간극, 관념이 스스로를 분해하고, 재합성하고 스스로와 시시덕거리며 노는 투명한 표상의 타블로의 두께가 없는 공간이며, 도덕성을 따질 수 없는 공간이다.

이리하여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 의한 17세기의 과학혁명에 의해 코스모스의 붕괴와 우주의 무한화가 일어났는데, 푸코는 이 시대에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조작 개념이 등장했음을 지적한다. 그것이 통치술이라는 개념이다. 주권자는 주권의 행사에 있어서, “신이 자연에 대해서, 사목자가 양에 대해서, 가장이 아이들에 대해서 행하는 것과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의 과학적인 원칙이 지배한다. 인간의 세계는 통치의 이성이 지배한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조응이 붕괴하는 동시에, 우주와 국가를 각각 지배하는 이성(raison)이 탐구되는 것이다. “자연의 원칙(프린키피아 나투라)과 국가이성(레종 데타), 자연과 국가, 이것이야말로 근대서양의 인간에게 주어진 다양한 지식이나 기술의 양대 좌표로서 마침내 구성되며, 마침내 분리된 것이었다.”

 

국가이성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종교개혁으로 독일에 다수의 영방국가가 설립되고, 그것이 지역적인 국가의 성립 모델이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권력 행사에 대한 전통적인 속박을 풀고, 루터가 지배하는 자가 종교를 정한다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수세기의 유럽에서의 군주국의 성립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의 힘은 크지만, 특히 루터의 의도치 않은 기여가 컸다. 피기스(J. N. Figgis)가 지적하듯이, 리슐리외는 개혁운동의 산물이며, “루터가 없었다면 루이 14세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교회의 종교에서 국가의 종교로 바뀐 것이다. 그 최초의 형태가 왕의 신성한 권리이다.”

제국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의 국가는 종교적 권위를 부정했기에 그 정통성을 이론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세속적인 국가는 그때까지 종교적 권위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것은 기독교의 권위와 함께 토마스 아퀴나스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국가의 이론도 부정되었기 때문에, 국가의 개념을 일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치가라는 개념으로는 실제의 정치활동을 잘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마키아벨리(1469-1527)이다.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정치학은 키케로의 공화주의적 정치학에 의거했다. 정치학(폴리틱스)은 폴리스의 학문이었다. 그리고 국가의 통치에 대해 쓴 많은 책이 군주를 위한 귀감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키케로의 이념과 사목의 이념을 따라, 국가의 통치자는 양들의 행복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정치란 정의와 이성을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술이며, 통치의 기술은 기술 중의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보여준 것은 이런 폴리티코스의 개념과는 이질적인 국가(state) 개념이었다. 프랑스어의 국가(état)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상태나 상황을 의미하는 state라는 단어에는 국가외에 세력자의 세력”, ‘공권력’, ‘지배자등의 의미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폴리티코스라는 단어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가 전개하려고 한 주제는, “군주가 소유하는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고,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으며, 대등한 시민에 의한 통치라는 공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폴리티코스의 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폴리스는 시민이 이성을 따라서, 정의와 공통의 선을 목표로 하여 공동으로 통치하는 장인데, 나라[국가]는 군주가 그 국가의 국민의 이익을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목적으로서 소유하고, 유지하는 장이다. 이 책은, 피렌체라는 과거의 공화국을 자신의 나라로서 소유하는 메디치가에 바친 것이었다. 게다가 시민들의 적대감 속에서, 정복자로서 추방의 신분에서 돌아온 젊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바쳐야 할 것이었다(다만 줄리아노는 요절했기 때문에, 조카이자 피렌체의 최고 지휘관에 막 임명된 로렌초에게 바쳐졌다).

이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던 줄리아노에게는 당시의 역사가인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1483-1540)를 비롯하여 다양한 의견서가 제출됐다. 피렌체의 국민[인민]에게는 아직 자유를 원하는 공화주의적인 정신이 강했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을 바라는 사람들도, 군주의 지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의견서에는 주로, 신분이 높은 유력자에게는 지위와 권력을 부여할 것, 신분이 높으나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위와 명예를 부여할 것, 평민들에게는 안심하고 일에 종사하도록 국내의 평화를 확보할 것을 권고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공화국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에게 권력, 명예, 치안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부터, 공화국보다 군주국이 바람직하다는 것, 자신들이 통치하기보다는 메디치가의 통치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강조되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정했을 때에는, 이런 권고서보다 뛰어난 정치술과 정치관을 갖추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그 적임자라고 확신했다. “[]이 정한 바에 의해 견직물업도 모직물업도 이해타산도 전혀 모르는 제게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 [본]성에 해당됩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직면한 것은 전통적인 공공선 이론이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모든 인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형태를 산출하는 재료가, 과연 이 나라에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때 마키아벨리가 중시한 것이 국가(stato)의 생명력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군주 또는 공화국이, 스스로의 stato를 어떻게 확립하고 국가(stato)를 보전할 수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었다군주론』은 군주제의 stato를 분석하고『전술론』이나 『로마사 논고에서는 공화제의 stato의 가능성을 고찰한다. 이 모든 것은, 현실의 이탈리아라는 상황(stato)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세력(stato)을 확립하고, 국민 전체의 행복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stato)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국가이성(라티오네 데 stato) 개념의 싹이 탄생한 것이다.

푸코는 이 국가이성 개념은 마키아벨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키아벨리를 반박하는 진영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이네케가 지적하듯이, 마키아벨리 이전부터, 이미 국가의 힘 그 자체에 주목하는 이론이 발생했다. 프랑스의 신학자 장 젤송1404년에, 다양한 법률이 국가의 목적인 평화의 유지에 도움이 안 될 때, 법은 이 목적을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요는 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국가이성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11세기부터 12세기 무렵까지, “결실이 풍부한 배후지로 혜택을 입은 롬바르디와 토스카나 지방 등,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는 다수의 도시국가가 성립되고, 독일 황제의 지배를 거부하며, 자치를 확립했다. 피사에서는 1085년에 콘술에 통치를 맡기는 도시국가(코무네)가 성립했으며, 1097년에는 밀라노에서, 1125년에는 볼로냐와 시에나에서 이런 코무네가 성립했다.

그 후, 이런 도시는 급속히 발전한다. 피렌체는 14세기에는 인구가 10만 명으로 확대되고,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바 등의 이탈리아 도시와 파리가 유럽의 5대 도시가 될 정도로까지 성장한다. 주변의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된 농민이 도시의 공예산업, 무역, 환전업의 성장을 촉진했다.

이윽고 이런 도시는 통치를 외부로부터 온 통치자(포데스타)에게 맡기게 된다. 권한이 지정되고, 정해진 임기 후에는 그 작업의 내용이 점검된다. 12세기 말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전체가 이런 코무네에서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법 아래서는, 도시의 자치와 독립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35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가 피아첸차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제국의 통일로 복귀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로마 황제도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고, 치열한 전투로 도시는 황폐해진다. 결국 이 긴 전쟁 속에서, 도시의 법률가들은 황제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찾게 된다. 로마법학자들이 모두 황제의 주장을 지지하는 가운데, 삭소페라토의 바르톨루스Bartolus de Saxoferrato(1314-57)가 새로운 논리를 구축했다. 이것은 로마법의 혁명을 초래한 것이며, 법과 사실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법에 맞게 사실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맞게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피렌체 같은 도시가 실제로 제국에서 독립해 자치를 할 경우, 그것을 사실로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나라를 바치는める 자는, 통치자로서, 자국에서는 황제와 똑같은 권한을 소유한다는 원칙(lex in regno suo est imperator)을 제시한 것이다.

이 전통적인 국가 개념의 혁신은, 국가의 통치라는 사실을 통해 그때까지의 황제의 전통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탈리아에서의 상태(stato)에서 모든 권리의 원천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 또한 유럽에서의 현황을 전제 삼아 고찰한다. “나폴리, 교회국가,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의 다섯 개 국가의 체계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 균형을 유지한 상태에 의거하여, stato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군주들에게, 피렌체를 새롭게 통치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보여준 것이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들이댄다. “인간은 사악하며, 당신에게 신의를 충실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군주는 신의를 지켜서는 안 된다. 또한 사람의 원한은 선행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선한 행위에 매달리면, “선행이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사리사욕을 추구한다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깊은 신념이었다. 군주는 조언자들이 사리사욕을 생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조언자가 사리사욕으로 내달리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선한 자가 되는 셈이어서, 그렇지 않으면 모두 당신에게 사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민들이 공통의 선을 위해 국가를 형성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이후의 전통적인 국가 개념을 파괴하는 사고방식이었다. 종교도 도덕도, 국가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군주는 이것을 도구로서 파괴하는 사용해야 한다. 국가를 떠받칠 수 있는 것은 군주의 덕(비르투)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은 마이네케가 지적하듯이, 국가이성의 원리로 이어지는 사고방식이며, “그것을 표시하는 말은 마키아벨리에게는 결여되어 있으나, 사실과 stato를 중시하는 새로운 사상적 흐름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이성과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테로와 국가이성

이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정의한 것은 1589년에 󰡔국가이성에 대해󰡕라는 책을 쓴 조반니 보테로였다. 이 시대에는 국가이성은 마키아벨리의 이름으로 말해졌으나, 보테로는 마키아벨리 같은 경건하지 못한 인물과 이 개념을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국가(stato)는 인민의 확고한 통치이며, 국가이성은 이런 통치를 확립하고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걸맞은 지식이다.

보테로는 마키아벨리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주의 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생각한 <기세>, 간사함도 아니다. 보테로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정의와 관대함이다. 정의는 평화와 화합의 토대이다. 신하를 공평하게 대우하고, 아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관대한 마음을 갖고, 빈자를 돕고, 덕이 높은 행위를 칭찬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 전통적인 군주의 귀감이라는 말에 가깝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정의와 관대함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이게 하는것의 가치를 인정한 반면, 보테로는 군주가 실제로 정의를 중시하고 관대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군주에게 공통선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테로의 이 책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때까지 없었던 시민들의 공동의 과제였던 공통선의 실현을 명확하게 군주의 과제로 삼음으로써, stato의 기술을 공통선 실현의 목적과 결부시키고, 전통적인 정치학의 언어와 국가의 통치의 언어를 통합한 것에 있다. “그때까지 정치학은 시민의 철학(정의, 우정, 화합)과 결부되었으나, 이를 분리하고, (군주의) 평판을 유지하고 높이는 방법으로 제시함으로써, 보테로는 실제로는 정치학을 국가의 기술의 지침에 따라 해석할 것을 주창했던 것이다.

보테로는 예수회의 콜레주 출신이며, 이 시대의 예수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계승하면서, 국가의 통치의 이론을 전개했다. 보테로는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통찰을, 토마스가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공화주의적인 공통선의 가르침과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며, 이것에 의해 국가이성의 이론은 유럽의 다양한 궁중들에 퍼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 책은 스페인의 궁정에서 읽혀지고 통치의 참고가 됐으며, 파이엘른의 막시밀안 2세도 보테로의 국가통치술의 원칙을 채용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프레데릭 2세도 이 책을 읽었다.

이런 국가이성의 이론은 국가의 통치 기술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면서,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의 힘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국가를 유럽의 공간 안에서 병존시키면서 모든 것이 자국의 힘과 세력을 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stato로 간주하고, 그 목적을 통치자의 덕과 합리적인 배려에 의해 수행하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과 자연에 입각해서 인간의 내세에서의 구원을 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요구됐다. 그것이 이제는 국력을 따라서 통치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국력을 확장적이고 경쟁적인 틀 속에서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통치 형태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유럽의 세력균형의 상태에 걸맞은 학문임이 드러날 것이다. 이 당시는 매일 무수한 사람들이 국가이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이며, 이는 곧바로 하나의 발명으로 인식된 것이었다.

이런 국가이성이란 결국 선한 통치의 기술이다. 이 기술의 특징은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군주의 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보존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과 같은 국가 이외의 목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행복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국가이성에 의한 통치에는 몇 개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선 이 통치가 필요해지는 것은 인간 본성의 약함이나 인간들의 악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이성 없이는 국가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이 기술은 항상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있는 것은 무제한한 시간, 항상적이고 보수적인 통치의 시간이다.

두 번째 특징은 지금 존속하고 있는 국가의 힘 자체가 중요하며, 국가가 어떻게 설립됐느냐는 기원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계승했더라도, 찬탈한 것으로 통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국가이성의 통치에 있어서는 기원이나 정초나 정통성이나 왕조에 관한 문제조차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국가의 보존만이 목적이며, 국가가 맡아야 할 종국적 목적 등이 모습을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혼의 구원 등은 배려할 필요도 없고, 종말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다. 통치의 시간은 현재만을 지향하지만, 이 현재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으로 상정되는 것이며, 종말은 없다. “열린 역사성 속에 있는 것이다.

 

국가이성과 사목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국가이성의 기술이, 사목의 기술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사목의 기술이 어떻게 국가이성의 기술로 전개되고 있느냐에 있다. 국가이성은 사목과는 명확하게 다른 특징을 갖추면서, 어떤 의미에서 사목의 기술을 채용하고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이 두 이론의 관계를 사목의 기술에서 고찰의 축으로 삼은 구원, 복종, 진리의 세 가지 축으로 검토한다.

 

── 구원의 축

먼저 구원에 대해 푸코가 의거하는 것은 국가이성의 가장 현저한 표현인 쿠데타 개념이다. 오늘날 쿠데타는 정통성 있는 권력자가 아닌 자가 폭력적 수단으로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원래는 국가(état)에 의한 일격(coup)이며, 국가가 예외적인 조치로서, 비상수단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쿠데타란 법과 합법성을 중지시키고, 정지시키는 것이다.

국가이성은 통상적이라면 법을 지키지만, 그것은 스스로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이며, “법을 따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해 명령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국가가 법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가의 현황에 대해 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6세기의 이탈리아의 법률가가 코무네에는 황제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이성은 국가의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초법규적인 수단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구원의 필요성이라는 명분 아래서, “그때까지 인정되고 작동되었던 시민적, 도덕적, 자연적인 법을 일소하도록 국가이성을 들볶는 것이 요구된다. 그것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양(羊)의 혼의 구원을 첫 번째의 목적으로 한 사목자의 역설이 뒤집혀진 채 남아 있다.

이런 쿠데타는 필요성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폭력적이며, 이것이 쿠데타의 두 번째의 중요한 특징이다. 보통 국가이성은 법을 틀로서, 형식으로서, 스스로의 의지로 행사하지, 쿠데타의 순간에는, 폭력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 국가 이외의 모든 것은 희생된다. 구원되는 것은 국가뿐이다. 그래서 국가이성의 구원은 사목의 구원을 물구나무 세운 것이다. 사목의 구원은 겉으로는 만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국가이성은 선택적인 사목제, 배제하는 사목제, 전체를 위해 몇몇을 희생시키고 국가를 위해 몇몇을 희생시키는 사목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선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이다. 전체의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오염된 양을 배제하는 사목자의 역설이다.

쿠데타의 세 번째 특징은 연극적이라는 데 있다. 국가이성은 쿠데타에 있어서 연극적으로 실천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극적인 형식에 있어서 국민의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그 정통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목은 모든 비참을 참아내는 인내의 술을 가르쳤는데, 국가이성은 필요하다면 국민을 희생시키는 연극적이고 비극적인 가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목에서 신도들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만, 국가이성에서는 국가의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민이 스스로를 희생할 것이 강요되는 것이다.

 

복종의 축

두 번째 축은 복종이다. 푸코가 고찰하고 있는 텍스트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모반과 동란에 대한 시론이라는 글인데, 여기서는 국가이성의 최초의 이론가인 보테로의 『국가이성에 대해』를 실마리 삼아 생각해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내의 통치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대귀족의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귀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고등법원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생각했다. 프랑스에서는 민중이 대귀족의 횡포를 미워하며, 왕은 민중을 보호하기 위해 대귀족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왕이 직접 귀족들을 억누르면 민중을 편들게 되며, 귀족의 원성을 살 위험성이 있었다. 이를 위해 고등법원을 설치하여 3자의 중재자로 삼아 큰 세력을 억누르고자 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민중에게서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성벽(城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국내의 유력자로부터도, 외국의 적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민중은 방패와 같은 것이며,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푸코가 지적하듯이, 그에게 인민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고 순박한 것이며, 군주에게 도구로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다만 그럴 뿐이다.

반면, 보테로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보테로에게 민중은 능동적 주체이며, 국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다. 군주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자금과 주민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한 두 개의 힘이 남는다. 그것은 인민과 자금이다.” 보테로는 군주가 국내의 상거래와 수출입에 어느 정도의 세금을 거둬들여서 국고를 살찌울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검토한다.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들이면, 인민은 가난해지고, 반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리고 결국 국가는 파멸에 이른다. 세금이 너무 적으면 군주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외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적절한 세금을 걷는 것, 그것이 군주의 중요한 과제이다. 보테로가 보여준 것은, 국가의 수입과 지출의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다. 보테로는 통계학의 이른바 선구자이다.

 

인민을 해치지 않고, 지배자가 수중에 남겨둔 금액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국내에 반입되는 상품의 지불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금액이 나라에서 나올 것인지, 국외로 수출되는 상품의 지불로 어느 정도의 금액이 나라에 들어오는가를 확인하고, 수중에 남겨둘 금액이 국가의 수입으로부터 지출을 뺀 금액보다 많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상주의의 견해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민은 스스로의 부를 향유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며, 세금을 내게 된다고 간주된다. 반란을 방지한다는 이런 관점은 국가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인 주민의 생산성에 대한 시선과 교차한다. 군주는 스스로 국가의 수입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민이다. 이를 위해서 군주는 신하가 농업, 산업, 상업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보테로는 인민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적 이익[私利]뿐이라고 생각한다. 인민이 풍족해지지 않으면, 국가는 부유할 수 없다. 사적 이익의 추구는 국가의 이익을 높이는 것이다.

이처럼 군주는 두 개의 기술, 즉 통계학과 중상주의에 의한 경제적 계산에 의해 국가를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동시에 인민을 복종시킬 수 있다. 인민을 복종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민이 풍요로워져 반란을 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귀족은 반란을 일으키면 처벌하면 된다. 반면 인민은 현실적으로 곤란하며, 현실적으로 위험하다. 통치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민을 통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의 계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 부의 유통, 세금 , 인민의 활동 그 자체이다.

사목의 기술에서는 복종 그 자체가 선이었다. 신도는 복종함으로써, 스스로의 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국가이성에서는 복종 그 자체는 선이 아니다. 인민은 풍요로워짐으로써 자연에 복종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피안에서의 인민의 혼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다. 차안(此岸)에서의 인민의 경제적 행복에 의해 뒷받침된 국가의 구원이 목적이다. 그러나 인민을 복종시킨다는 목적을, 사목의 기술과 국가이성은 공유하는 것이다.

 

── 진리의 축

푸코가 사목과 국가이성을 비교하는 세 번째 축은 진리에 관한 관점이며, 이는 통계학이라는 학문에 관련된 것이다. 사목에서는, 사목의 기술의 전제가 되는 기독교의 교의가 우선 진리로서 가르쳐질 필요가 있었다. 다음으로 사목자는 담당하는 양떼들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양들은, 스스로의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고백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신-사목자-양이라는 사이클이 사목의 진리의 사이클이라고 한다면, 국가이성에서는 진리의 대상이 되는 영역 그 자체가 바뀌게 된다.

국가이성이 등장하기 전에 지배자에게 요구된 진리와 지식은 교회법이며 자연법이었다. 더욱이 역사상의 다양한 예나 미덕의 모델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리고 지배자에게는 법을 신중하고 공평하게 적용할 것이 요구됐다. 그러나 17세기가 되자 지식의 내용 자체가 바뀌게 된다. 법이 아니라 국가의 현실 자체인 사물이 지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배자에게는 국가의 세력에 관련된 모든 요소를 정확하게 인식할 것이 요구됐다. “인구의 계량, 사망률과 출생률의 계량, 국내의 다양한 범주의 개인들의 산정(算定), 그들의 부의 산정 , 조사해야 할 요소는 무수히 많다. 이것이 통계학(statistique)이다. 통계학이란 국가(state)의 학인 것이다. 그것만으로 통계 데이터가 국가의 비밀이며 제권帝権의 비밀(아르카나 임페리이[지고의 비밀])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이렇게 국가이성에 있어서 중요한 지식은 단순한 영토가 아니며, 개별 국민도 아니고, 주민이며, 인구이며, 국가의 부의 총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무리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 양떼의 시선은, 사목의 기술과 국가이성에 공통되는 것이며, 국가이성은 바로 사목으로부터 이것을 배운 것이다.

 

세력균형과 영구평화

이 국가이성의 개념은 유럽에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이윽고 독일에서는 내치[폴리차이, 관방학]로 불리는 국가학을 만들어내게 된다. 다만 이 국가학에 대해 검토하기 전에, 국가이성의 이론을 채용한 유럽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다양한 힘이 경합하는 장에 있어서의 새로운 통치술에 특징적인 기술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내치[폴리차이]라는 학이 생겨나기 위한 하나의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테로는 이상적인 국가의 규모로 중간 정도의 국가를 상정했다. 너무 작은 국가는 타국의 침략을 받기도 쉽고 멸망하기도 쉬우며, 국가가 커지면 부가 증대하고, 부가 증대하면 악덕이 증대한다. 특히 사치와 오만과 방탕과 탐욕, 모든 악의 원천이 증대하기 때문에, 내적 원인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작고 멸망한 국가의 예로 보테로는 15세기에 중세 도시의 특권을 잃은 시칠리아의 라구사와, 14세기까지 피렌체와 함께 영화를 누렸던 토스카나의 도시 루카를 들고 있다. 또한 너무 큰 국가의 예로 보테로는 스페인 제국과 터키 제국을 들고 있다. 중간 규모로 바람직한 국가의 실례로서는 베네치아, 밀라노, 플랑드르, 보헤미아를 들고 있다.

문제는 중간 규모의 이상적인 국가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인데, 보테로는 국가가 끊임없이 인구를 증대시키고 세력을 확대해가는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세력을 확대함으로써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국이 되면, 멸망이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보테로는 국가의 인구를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하려 한다. 국가의 번영의 문제를 고찰한 『도시의 위대함에 대해』에서 보테로는 도시에는 생성적인 virture()의 요소와 영양적인 virture()의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생성적인 덕의 비율은 도시 인구의 증가율이며, 이것은 시간과 더불어 변동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과 모세의 시대에도, 현대에도, 인간은 똑같이 생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양적 덕은 도시나 국가가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인데, 여기에는 어떤 종점이 존재한다. 다양한 도시의 발전 단계에서 생성적인 덕의 비율이 영양적인 덕의 비율을 넘어선 시점에 인구는 정점에 이르며, 그 뒤는 쇠퇴가 기다리고 있다. 국가는 항상 이런 탄생, 증강, 완성, 쇠퇴라는 사이클을 경험하는 것이다(이것이 당시는 ‘revolution’이라는 용어로 불렸던 것이다. 혁명의 원뜻은 여기에 있다). 보테로는 이런 완성의 단계가 찾아온 국가는, 식민이라는 수단으로, 너무 증가한 인구를 방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통치의 술은, 이 정점을 되도록 멀리하는 것이며, 국가이성은 국가를 본질적으로 그런 혁명에 맞서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이 국가는 다양한 국가들 속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유지해야만 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국가의 경우에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방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나라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게 됐을 때 어느 한쪽을 도우면, 다른 나라를 분노케 할 것이다. 둘 다를 돕는다면, 쓸데없이 자금을 낭비하고, 어느 쪽도 감사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도 돕지 않는다면, 어느 쪽에 의해서도 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 국가이성의 외교정책은 유럽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것이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럽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단테 무렵까지는 아직 기독교적 제국의 힘으로, 유럽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됐으나, 종교개혁과 그 후의 종교전쟁이 그 환상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버렸다. 가톨릭과 개신교 국가들로 분열된 이 시대에는, 더 이상 기독교적 제국이 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게 됐다. 단테의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기독교 공동체)의 환상이 붕괴한 후에 생겨난 것이 세력의 균형이라는 이상이었다. 이 이상이 목표로 한 것은 기독교의 국가와 군주 사이에 힘의 평형관계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국가이성이 찾아낸 것은, 자국이 타국들과의 공존 속에 있다는 것이며, 유럽의 현실은 국가들이 경합 공간에 나란히 있고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은 단순히 지리적 명칭일 뿐이게 되고, 다양한 국가가 모여 하나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정치적 단위가 됐다. 각각의 국가에는 주권자가 있고, 독립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국가의 종교는 그 국가의 주권자가 결정한다는 독일의 영방국가의 원칙이 유럽의 전체 원칙이 됐다. 이 시대의 유럽은 두 강대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재상 올리바레스Olivares가 이끄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스페인과 재상 리슐리외가 이끄는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이다. 이 대립에서, 둘 다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개신교의 네덜란드에 원조의 손을 내밀고, 독일의 -합스부르크의 개신교 제후를 극력 지원하는 게 리슐리외의 기본적인 외교 전략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정책이며, 앙리 4세 이후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뿐이었다. 전쟁에 있어서는 가톨릭의 국가가 개신교 국가와 동맹하고, “가톨릭 국가들이 개신교의 군대를 이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국가들에 세력의 차이는 있으나, 주권자라는 것에서 서로 대등하며, 이른바 절대적인 단위이다. 각각의 단위에 있어서, 국가는 자기를 주장하고 보존하려고 하며, 다른 국가와 경합하려고 한다. 국가에 있어서는 자기 보존이 자기 목적이 되며, 이를 위해 국가이성이라는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이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유럽 안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다. 우선 스페인은 유럽의 국가들 중 하나이며, 다른 국가들과의 경합관계에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해외에 거대한 식민지를 획득했으며, 세계 제국(帝國)에 가까운 세력을 뽐냈다. 남아메리카에서 유입되는 금과 은은 거대한 부를 스페인에게 가져다주었는데, 그 식민지에서 생겨난 부 때문에 스페인은 급속하게 쇠퇴했던 것이다. 그 부 때문에 더욱 눈부시고 더욱 빠른 방식으로 빈곤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페인 문제라고도 해야 할 것이 유럽 사람들의 머리를 괴롭혔다. 이 문제는 삼중의 의미를 가졌다. 첫째는 스페인이 식민지를 건설할 때, 원주민들을 노새처럼 다룬 것이 법적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인간인지 아닌지, 동물처럼 학대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대하는 것은 허용되는가. 현지의 제국과의 사이에서 싸운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자연법과 만민법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둘째는 식민지의 운영의 문제이다. 스페인은 금과 은의 입수만을 위해 식민지를 운영하고, 이를 위해 현지의 사람들을 학대했다. 이런 식민지 경영은 적절한 것일까? 식민지는 모국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이윽고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스페인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며,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에,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다. 모국은 이런 식민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셋째는 스페인이 획득한 대단히 많은 재신이 모국을 몰락시킨 것은 왜인가라는 수수께끼였다. 부를 획득하는 것이 국력을 증강시킨다는 것은 당시의 중상주의의 신념이었다. 그런데도 스페인은 왜 몰락한 것일까? 이 부가 문제였던 것은, 스페인이 신대륙에서 가져온 부의 대부분이 전쟁이라는 암을 위해 소비됐기 때문이었다. 이 부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교란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며, 다른 국가들에 있어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외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 번째 문제가 단순히 스페인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각 국가의 국부의 문제로 이해됐다는 것이다. 국가의 부의 문제를 어디까지나 주권자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보댕에게 주권자로서의 국왕이 얻은 부는 국왕의 행동방식의 문제로서 제기됐다. “과세의 인기가 낮은 것은, 지배자가 신하에게서 얻은 부를, 일반적으로 전 국민의 이익이 되는 용도로 사용함으로써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테로가 보기에 전통적인 기독교의 관점에서, 국왕의 부가 신하의 부에 의존하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 군주의 부가 아니라, 각 국가의 국력의 총체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스페인의 네거티브 모델에 대항하는 형태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항하는 부의 모델이 제기된다. “국가이성에 관한 이런 분석, 자기 정의하고 있었던 새로운 정치의 영역에 관한 이런 분석은 모두, 스페인의 적국이나 대항국에 있어서 특권적인 방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대항의 축은 더 이상 군주의 부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부이며,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국가에 내속하는 부, 국가가 손에 넣고 있는 자원, 천연자원, 통상력, 교환 균형 등이며, 군주 사이의 대항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경합관계이다. 반대의 의미에서는, 이 시대에는 광대한 영토를 지닌 스페인이 아니라 어째서 소국인 네덜란드가 풍요로운 국가인가가 문제로서 제기된 것이다. 어떤 중상주의의 이론가는 소국인 네덜란드가 자연적인 부도 식량도 목재도 또한 전시평상시의 그 밖의 자원도 거의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욕망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함선무기삭구綱具곡물화약탄환 기타 등등을 근면한 무역에 의해 세계의 구석구석으로부터 모집하고, 이것을 타국의 왕후에게 공급하고 매각할 수 있는 것을 세계의 한 가지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네덜란드 문제스페인 문제의 뒤쪽에 들러붙은 수수께끼인 것이다.

이런 역학관계의 물음으로부터 유럽 국가들의 외교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 이윽고 산 피에르와 루소에 의해 영구평화라는 희망이 얘기되게 된다. 그리고 이 영구평화는 유럽의 국가들 사이의 외교적 수단에 의해 구축되게 되어 있었다. 유럽의 국가들의 힘관계가 완전히 균형을 이루었다면, 타국을 정복하려고 하는 강대국의 시도에는, 반드시 주위의 국가들로부터 견제가 가해지고, 실패로 끝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유럽의 내부에서는 평화가 실현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기대된 것이다.

그 본보기가 된 것은 프랑스의 앙리 4세의 시도이다. 이것은 아직 30년 전쟁이 종결되기 전, 즉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시도된 것이었다. 앙리 4세는 유럽을 통일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유럽들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그물망을 만들어내고, 단테의 기독교 공동체와는 다른 기독교의 공화국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 그 계획의 중심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를 포위하여 제국의 유럽 지배의 야망을 종식시키는 데 있었다.

왕은 우선 영국에 작동을 건다. 이어서 스웨덴에, 사부아에, 로마 황제에게. 영국은 스페인이 국내의 가톨릭 교도에 작용하여 음모를 꾀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그동안 원조했던 네덜란드를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으면, 더 이상 원조를 위해 높은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스웨덴 왕은 포메라니아(Pomerania)를 손에 넣어 독일에 지반을 굳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부아공은 밀라노령과 롬바르디아의 왕관을 노렸다. 로마교황도 스페인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나폴리를 중개로 이 계획에 참가하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 전역을 지배하려고 하는 합스부르크가를 포위하여 타도함으로써, 유럽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계획된 것이었다.

새로운 체제 아래서는, 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열다섯 개의 지배력으로 분할하고, 이런 강국들 사이의 경계는 제대로 조정調整될 수 있도록, 더 이상 그 사이에서 언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리나 주장의 다양성을 공평하게 조정調整한 것이어야 한다.” 이리하여 유럽의 마지막 전쟁이 될 터인 전쟁이, 불멸의 평화를 준비하고 있던 그때에 왕이 암살당하고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난 것이었다.

이는 합스부르크가가 목표로 삼은 단일한 유럽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복수로 이루어진 유럽에 조화와 평화를 가져오려고 하는 계획이었다. 다만 이 계획이 목표로 하는 평화는 유럽 내부의 평화에 불과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계획에서는 동시에, 합스부르크가의 스페인이 영토를 잃은 것을 보상하듯이, 스페인에 대외 식민지에서의 활동을 우선적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독점적으로 타국을 착취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영토 상실을 눈감게 하는 동시에, 그 제국주의적 야망을 구역의 바깥으로 돌리게 할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 평화로운 유럽은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의 차이에 이용식민지화지배라는 관계를 갖는, 지리적 지역으로서의 유럽이며, 이 유럽의 사고와 역사적 현실로부터 우리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력균형을 목표로 하는 유럽에서, 외교를 틀로 삼은 국가이성은 세 개의 도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첫째는 전쟁이다. 역설적인데,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할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서 전통적인 전쟁과는 다른 근대적인 전쟁 개념이 등장한다. 중세에서 전쟁은 법이 침범당했을 때 행해지는 것이었다. “전쟁은 법적인 틀에 있어서 전개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이성의 시대에는 전쟁이 전혀 다른 틀에서 전개된다. 우선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가 완전히 외교적이게 됐다. 균형이 위협 받고 있는 것만으로 전쟁이 행해지게 된 것이다. 그 실례로 유명한 것이, 북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에 인접한 만토바공국(Ducato di Mantova)의 계승을 둘러싼 만토바전쟁이다. 1627년 말에 만토바공이 사망하자, 근친자는 조카인 마리아뿐이며, 여성이 계승할 수 없기 때문에, 프랑스 왕의 신하인 느베르(Nevers) 공이 나섰다. 그리고 만토바공국이 프랑스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 스페인의 밀라노 총독이 만토바와 몽페라트를 보장 점령하고, 이것이 곧바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더 이상 전쟁은 사법과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와 국외의 정치와 결부되게 된다. 동맹국과의 결부라는 외교의 이유만으로 전쟁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200년 후에는 전쟁이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이다라는 정식화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도구는 외교이다. 이 시대에는 다양한 조약이 체결되고, 유럽의 균형이 유지된다. 이 조약들은 지금처럼 계승에 관한 법권리나 승리자의 법권리와 같은 낡은 법권리를 따라서가 아니라, 물리적 원칙을 따라서 이뤄진다. “영토, 도시, 교구, 항구, 수도원, 식민지가 교환되고 값이 깎이고, 옮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사이의 균형을 최대한 안정된 것으로 하기 위해 행해진 것이다.

이를 위한 교섭을 행하는 목적으로, 상설 조직이 검토됐다. 앙리 4세의 계획에서는, 분쟁 처리를 위한 중앙 평의회가 설치되고, 열다섯 개의 강국의 각국으로부터 4명씩 선출된 대표 60명이 모여서 평등한 형태로 다수결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했다. 산 피에르의 영구평화론에서는 열아홉 개의 강국이 유럽 연방의 연합의회를 설립하고, “전권 위원을 임명하고, 일정한 장소에서, 연합의회 또는 상설 회의를 전개할 예정으로, 이 회의에서 체결 당사자 사이의 분쟁은 모두 중재 또는 심판이라는 방법에 의해 조정되며, 해결되는 것이 된다. 이는 곧 국제연맹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빈회의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화려한 외교의 시대가 된다. “다양한 절차가 성문화되고, 외교 특권이 정의됐다.” 이리하여 외교관이 장군의 대를 잇게 된 것이다.

세 번째의 도구로서 푸코가 들고 있는 것이 항상적인 군사장치이다. “평화 시스템의 내부 자체에, 항상적인, 비용이 드는 중요한, 지식을 갖춘 군사장치가 존재한다는 역설이, 이 유럽의 균형을 떠받쳤던 것이다. 상비군에 의해 뒷받침된 정치와 군사의 복합체는, 안전 메커니즘으로서의 유럽의 균형의 구성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국가이성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리슐리외와 스페인의 올리바레스는 각각에 자국을 축으로 한 유럽의 세력균형 계획을 세웠다. 올리바레스가 목표로 한 기독교 세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서의 평화(팍스 아우스트리아나)이며, 로마교황청과 밀접하게 협력한 빈(Wien)의 신성로마 제국과 마드리드의 스페인 왕국이 유럽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리슐리외가 목표로 한 기독교 세계는 프랑스가 첫째 가는 군주국으로서 유럽에 집단 안전 보장을 실현한다는 앙리 4세의 꿈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불가결한 수단이 전쟁이며, 프랑스와 스페인은 패권을 놓고 30년 전쟁을 전개한 것이다. 유럽의 평화란 끊임없는 전쟁상태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모든 것은 국가이성 안에서, 자국의 국력과 타국의 국력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시선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대의 정치이론가들은 군주가 이웃 나라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자명한 것이라고 했다. 1628년에 간행된 어떤 정치 팜플렛은 이웃 나라가 강대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누구든 그 시선을 열어두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국가이성의 이론은 관찰자 속에 완전히 새로운 정신을 심어준 것이며, 유럽의 해부학이 정치이론의 바탕이 된 것이다.

다만 유럽의 힘의 균형의 구상은 단명했다. 나폴레옹 전쟁 뒤에 그 꿈이 약간 되살아난다. 그러나 1815년의 빈조약에서 만들어진 유럽의 균형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약으로 유지할 수 있던 상황은 항상 그 내부로부터 위협받는다. 1848년에 유럽을 뒤흔든 혁명은 1870년대의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종식된다. “1870년대 초반에는 빈회의에서 구상된 서유럽은, 이제 거의 대부분 남아 잇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도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균형의 이념이 외부에 배제했던 세계의 다양한 지역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사토 요시유키의 <신자유주의와 권력> 2쇄가 나왔습니다. 2쇄에서는 타인의 글에 대한 복사를 사과했고, 오타를 수정했으며, 번역어를 바꾸고(가령 '배제forelcosure' -> 폐제), 참고 문헌의 국역본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이미 1쇄를 구입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수정사항을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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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각주 4 : 芹沢一也・高桑和巳 編, 『フーコーの後で: 統治性・セキュリティ・戰爭』, 慶應義塾大學出版会, 2007[세리자와 가즈야・다카쿠와 가즈미 편, 『푸코 이후 : 통치성・안전・전쟁』,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20쪽 각주 3 : 酒井隆史, 『自由論: 現在性の系譜学』, 靑土社, 2001[사카이 다카시, 『통치성과 ‘자유’ :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오하나 옮김, 그린비, 2011]

24쪽 각주 4 : Colin Gordon, “Governmental Rationality: An Introduction”, Graham Burchell et al., ed.,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Harvester Wheatsheaf, 1991, p. 6[콜린 고든, “통치합리성에 관한 소개”, 콜린 고든·그래엄 버첼 외, 『푸코 효과 : 통치성에 관한 연구』, 이승철 외 옮김, 난장, 2014, 13쪽]

40쪽 각주 22 :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pp. 143-144. [『생명 관리 정치의 탄생』, 207쪽]. ->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pp. 143-144[『생명 관리 정치의 탄생』, 207쪽].

55쪽부터 : 호모 이코노미쿠스 ⇒ 호모 에코노미쿠스

56쪽 각주 43 : Michel Foucault,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6, Gallimard/Seuil, 1997, p. 227[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305쪽]

89쪽 : 이 장은 이런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짝짓기를 이루는 ⇒ 이 장은 이런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루는

96쪽 : 벤야민이 말하듯이, 법 정립적 폭력은 법 보존적 폭력에서 ‘대표된다’ ⇒ 벤야민이 말하듯이, 법 정립적 폭력은 법 보존적 폭력에 의해 ‘대표된다’

97쪽 : (또는 지양되기aufgehoben’ ⇒ (또는 지양되기aufgehoben)’

109쪽 각주 27 : État d’exception, p. 64[『예외 상태』, 75쪽].

110쪽 각주 28 : Die Dikatur, S. 134[『독재론』, 172쪽].

126쪽 : 집단적 배치(‘내재적 권력’pouvoir immanent9)을 형성하고 ⇒ 집단적 배치(‘내재적 권력’pouvoir immanent9)를 형성하고

131쪽 : 욕망의 배치(예를 들어 규율화로의 욕망, 자기-경영으로의 욕망의 형성)이다. ⇒ 욕망의 배치(예를 들어 규율화에 대한 욕망, 자기-경영에 대한 욕망의 형성)이다.

139쪽 2줄 : ‘죽음 본능’으로 정의한다 ⇒ ‘죽음 본능’이라고 정의한다

148쪽 2줄 : 정적 발생이란 이른바, 의미라는 ⇒ 정적 발생이란 이른바 의미라는

155쪽 인용2줄 : 형성되는 막 위에 국지화된다localisé고 말할 때 ⇒ 형성되는 막 위에 국지화된다고 말할 때

156쪽 인용1줄 : 구멍orifice의 주위에서 ⇒ 구멍의 주위에서

157-163쪽 인용부분의 프랑스어 대체로 삭제.

177쪽 : 랑시에르에게서 ‘정치’란 ‘폴리스’(신체나 감성적인 것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 의한 복종화의 결과로서 ⇒ 여기서 폴리스를 치안으로 바꿈.

184쪽 각주4 : Louis Althusser, “Idéologie et 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1970), in Sur la reproduction, p. 305[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2007, 397-398쪽].

197쪽부터 : ‘배제’(따옴표가 반드시 있는 것만) ⇒ ‘폐제’ (* 따옴표 없이 배제라고 되어 있는 것은 그대로 둠.)

202쪽 : 타카쿠와 카즈미 ⇒ 다카쿠와 가즈미

203쪽 : 생명 정치와 저항: 푸코 이론의 현자와 가능성을 전망한다 ⇒ 생명 정치와 저항: 푸
코 이론의 현재와 가능성을 전망한다」
『들뢰즈・가타리의 현재』, 코이즈미 요시유키 ⇒ 고이즈미 요시유키

208쪽 각주 3 : 김상운 옮김, 난장, 근간 ⇒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215쪽 : 파스콸리 파스퀴노 ⇒ 파스콸레 파스퀴노
각주 7 : Jacques Donzelot, L’invention du social: Essai sur le declin des passions politiques, Fayard, 1984[『사회보장의 발명』, 주형일 옮김, 동문선, 2005]; Daniel Defert, “’Popular Life’ and Insurance Technology,” in Graham Burchell, Colin Gordin, and Peter Miller(eds.), The Foucault Effect: Studies in Governmentality, Harvester Wheatsheaf, 1991[『푸코 효과: 통치성 연구』, 이승철 외 옮김, 난장, 근간⇒2014]

216쪽 이하 : 미셸 스넬라르 ⇒ 미셸 세넬라르

216쪽 각주 8 : 악상 빠진 것 체크. Christian Lazzeri and Dominique Reynie(eds.), La raison d’état: Politique et rationalité, PUF, 1992; Dominique Seglard, “Foucault et le problème du gouvernement,” in ibid; Michel Senellart, “Michel Foucault: ‘Gouvernementalité’ et raison d’État,” Pensée Politique 1, 1993, pp. 276-303; Yves-Charles Zarka(ed.), Raison et deraison d’État, PUF, 1994.

217쪽 : 악상 빠진 것. 
Effect in the English- Speaking World,” Foucault Studies 5, 2008, p. 50에서 인용.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편집자나 푸코를 제외하면 여기에 글을 실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Sylvain Meyet, “Les trajectoires d’un texte: ‘La gouvernementalité’ de Michel Foucault,” in Sylvain Meyet, Marie-Cecile Naves, and Thomas Ribemont(eds.), Travailler avec Foucault: Retours sur le politique, Paris: L’Harmattan, 2005.

217-218쪽 각주 10 : 악상 빠진 것.
Jonathan Xavier Inda, Targeting immigrants: government, technology, and ethics, Blackwell, 2006를 참조. 또한 다음을 참조. Andrew Barry, Thomas Osborne, and Nikolas Rose(eds.), Foucault and Political Reason: Liberalism, Neo-liberalism and Rationalities of Government, UCL Press, 1996; Mitchell Dean and Barry Hindess (eds.), Governing Australia: Studies in Contemporary Rationalities of Govern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Mitchell Dean and Paul Henman, “Governing Society Today: Editors’ Introduction,” Alternatives 29, 2004, pp. 483-494; Ulrich Brockling, Susanne Krasmann, and Thomas Lemke(eds.), Gouvernementalität der Gegenwart: Studien zur Okonomisierung des Sozialen, Suhrkamp, 2000 and Glossar der Gegenwart, Suhrkamp, 2004; Lene Koch, “The Government of Genetic Knowledge,” in Susanne Lundin and Lynn Akesson(eds.), Gene Technology and Economy, Nordic Academic Publishers, 2002; Sylvain Meyet et al., Travailler avec Foucault, Paris: L’Harmattan, 2005.
한편, 통치성 학파에 관한 개괄과 평가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Mitchell Dean, Governmentality: Power and Rule in Modern Society, Sage, 1999; Thomas Lemke, “Neoliberalismus, Staat und Selbsttechnologien: Ein kritischer Überblick über die governmentality studies,” Politische Vierteljahresschrift 41(1), 2000, pp. 31-37; Jack Z. Bratich, Jeremy Packer, and Cameron McCarthy(eds.), Foucault, Cultural Studies, and Governmentality, SUNY Press, 2003; Sylvain Meyet, “Les trajectoires d’un texte,” op. cit. ; Nikolas Rose, Pat O’Malley, and Mariana Valverde, “Governmentality,” in Annual Review of Law and Social Science 2, 2006, pp. 83-104.
각주 11에서도 악상 빠진 것 있음. Artières, Philippe, Laurent Quéro et Michelle Zancarini-Founel (éds.), Le Groupe d’information sur les prisons: archives d’une lutte, 1970-1972, Editions de l’IMEC, 2003.

221쪽 : ‘품행의 통솔’conduire de conduires ⇒ ‘품행의 통솔’conduire de conduites (*참고로 『신자유주의와 권력』 이후에 나온 책들에서는 ‘행위의 인도’로 옮기고 있음)

229쪽 마지막 줄 : 이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아쉬움과 ⇒ 이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아쉬움과 ~ (*사실 세 가지 아쉬움이 맞는데, 세 번째는 매우 나중에 나오기 때문에 표현을 수정함.)

231쪽 각주30 :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tome IV: 1980-1988, Editions Gallimard, 1994, p. 89). ⇒ (Michel Foucault, Dits et écrits, tome IV: 1980-1988, Editions Gallimard, 1994, p. 89. 이하 Dits et écrits는 DE로 약칭한다).

234쪽 
1) 본문 : 아감벤은 최근 이 순수 폭력에 대해 ‘탈정립적 권력’potenza destituente이라고 명명했지
만 ⇒ 탈정립적 권력 ⇒ 비정립적 역량
2) 각주31 : Giorgio Agamben, “What is a destituent power?”,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no.32, 2014를 참조. ⇒ Giorgio Agamben, “Elementi per una teoria della potenza destituente”, Neri Pozza, 2014[「비정립적 역량 이론을 위한 개요」, 『문화/과학』, 80호, 2014년 겨울호, 274-296쪽].

248쪽 : 각주 40의 “이하 Dits et écrits는 DE 로 약칭한다.” 삭제.

250쪽 : 프레데리크 켁 ⇒ 프레데릭 켁

251쪽 각주 44에서 Alessandro Fontana, Frédéric Gros를 삭제.

252쪽의 “주지하듯이, 푸코가 1970년대 중반에 정식화했던 권력 분석은”에서 “주지하듯이, ~”부터 이 단락에 대해 : 각주 추가 “이 문단은 하코다 테츠의 “エロスの技法を再読する : フーコー統治論の形成過程”『社会思想史研究』, No.31, 2007, 91-92쪽에서 가져왔다.“

256쪽 :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권력과 저항이라는 이원론적 시각에서 통치라는 일원론적 시각으로의 이행이다.”부터 258쪽의 “이렇게 보면, 푸코의 칸트에 관해서도, 통치에 입각해 ‘계몽’의 모티프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각주 추가 : 옮긴이 후기 256쪽부터 여기까지의 내용은 하코다 테츠의 “エロスの技法を再読する :フーコー統治論の形成過程” 『社会思想史研究』, No.31, 2007, 91-92쪽에서 가져왔다.

256쪽 : 푸코에게 통치는 “자기와 타자의 통치(통솔)” ⇒ 통솔을 ‘인도’로 바꿈. 
각주 49 역시 <오히려 ‘지도’나 ‘통솔’ 중 하나를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인도’ 중 하나를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로 수정.

260쪽 각주 54 : 서지사항 변경
일본의 논의를 잠깐 소개하면 생명 권력과 생명 정치를 구분하면서 생명 권력을 안전장치와 연계해 푸코의 작업 전반을 재독해하는 작업이 있다. 檜垣立哉, 『ヴィ-タ・テクニカ: 生命と技術の哲學』, 靑土社, 2012; 檜垣立哉, 『生権力論の現在: フ-コ-から現代を読む』, 勁草書房, 2011; 檜垣立哉, 『生と権力の哲学』, 筑摩書房, 2006; 金森修, 『<生政治>の哲学』, ミネルヴァ書房, 2010 등을 참조. 이중 『비타 테크니카(ヴィ-タ・テクニカ)』는 생명 권력을 고백, 사목 권력, 파레시아 등과 관련지으면서도 현대 생물학이나 인지과학 등의 논의와 접목시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생정치’의 철학(<生政治>の哲学)』은 아감벤이나 네그리보다는 아렌트나 현대의 생명 윤리와 관련해 깊은 고찰을 하고 있는데, 특히 사목 권력의 역할에 관해 회의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에 일종의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한편, 통치성과 관련한 연구도 흥미로운데, 사토 요시유키와 이론적으로 연결된 작업으로는 다음이 있다. 箱田徹, 「市民社会は抵抗しない: フーコー自由主義論に浮上する政治」, 『情況』, 2011; 芹沢一也・高桑和巳 編, 『フーコーの後で─統治性・セキュリティ・闘争』, 慶應義塾大学出版会, 2007[세리자와 가즈야・다카쿠와 가즈미 편, 『푸코 이후 : 통치성・안전・투쟁』,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中山元, 『フーコー 生権力と統治性』, 河出書房新社, 2010; 廣瀬浩司, 『後期フーコー 権力から主体へ』, 青土社, 2011.

263쪽 : 맨 마지막에 다음 구절 추가
<● 이 책의 2쇄에서는 하코다 테츠 글의 일부를 무단 복제한 점을 밝혔고, 일부 외래어의 악센트 표기 누락, 잘못된 번역어를 수정했다. 내용상 미진한 부분은 후일 출판될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2015년 5월 5일>



** 양창렬씨가 메신저로 정리해 보낸 것을 기초로 이재원씨가 이쁘게, 일목요연하게 재정리한 것을 (이미지는 빼고)그대로 가져온다. http://blog.naver.com/virilio73/80096351868


지난 2008년 4월 5~6일 영국의 켄트대학교에서 국제회의가 열린 적이 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그 주제는 이름하여
“오늘날의 이탈리아 사상: 생명정치, 니힐리즘, 제국”(Italian Thought Today: Biopolitics, Nihilism, Empire)이었다. 요컨대 조르조 아감벤(생명정치), 지아니 바티모(니힐리즘), 안토니오 네그(제국) 등 영미국에서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이탈리아 출신 사상가들에 대한 국제회의였다. 첫 번째 날에 6명, 두 번째 날에 6명, 총 12명이 발표를 했는데 이 중 비이탈리아권 학자는 쉐인 웰러(영국 켄트대학교)와 티모시 머피(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 둘뿐이었다. 요컨대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학자들이 이 국제회의의 실질적인 토론을 이끈 것. 토론회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징적으로는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침략’(Italian Invasion)이라고 할 만했다. 

이 국제회의의 결과물이 얼마 전 호주의 출판사 re.press에서 <이탈리아적 특이성: 니힐리즘과 생명정치 사이에서>(The Italian Difference: Between Nihilism and Biopolitics)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국제회의의 발표자 목록과 이 단행본의 필자 목록이 다르다는 점(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책이 나온 뒤, 얼마 전인 11월 30일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이탈리아와 생명정치”(Italie et biopolitique)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일전의 국제회의-단행본 ‘동지들’이 주도한 이날의 토론회 선수들은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로렌조 키에자, 알베르토 토스카노였다. 뉴페이스인 브루노 베사노 역시 이탈리아인으로서 베를린에서 활동 중이다. 에스포지토와 키에자는 도서출판 난장의 필자들이기도 한데다, 일전 국제회의-단행본의 한국어판 출간을 국제회의 준비기간 중인 2008년 2월부터 논의 중이었던지라(논의가 막바지 단계에 왔다) 기록 차원에서 최근의 토론회 내용을 기록해둔다. 아래 내용은 (역시 도서출판 난장의 필자이자 기획위원이기도 한) 파리1대학 박사과정 중의 양창렬 씨가 현장에서 정리한 내용이다(양 특파원, 수고했어요~! ㅎㅎㅎ). 그리고 중간중간 대괄호([  ]) 안의 내용은 창렬씨의 코멘트(혹은 내 나름대로의 추임새) 내용이다. 

[기조발제]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 1950~  )

오늘날 이탈리아 사상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상의 모든 개념이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건 아니다. 생명정치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미셸 푸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리드리히 니체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와 생명정치인가?] 독일의 해석학,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보라.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 프랑스 철학은 훌륭하지만, 자기-지시적이고, 외부로 열려 있지 않다. 1930년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등의 언어적 전회가 독일, 영국, 프랑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탈리아 사상은 이 영향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이탈리아에서 생명정치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었던 토대 중 하나였을 것이다.]

프레데릭 봄즈는 최근 저서에서 프랑스 철학의 두 경향, 즉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축(앙리 베르그송, 질 들뢰즈 등)과 수학·단절을 중심으로 하는 축(장 카바예스, 알랭 바디우 등)을 나눴다. 그러나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암비스타 비코, 토마소 캄파넬라 등, 이탈리아 사상은 예전부터 ‘삶/생명’과 ‘정치/역사’의 관계, 다시 말해서 삶/생명과 역사/정치의 긴장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거기서 삶/생명의 우위를 고민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기원 때문에 오늘날 생명정치로의 발전이 쉬웠을 것이다.

 들뢰즈는 영토화 대 탈영토화를 말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는 달리 오랫동안 국민국가가 성립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처음부터 이탈리아 사상은 ‘구성적 탈중심화,’ ‘구성적 탈영토화’를 견지했는지 모른다. 이 점에서 다른 국가들의 사상과는 다르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철학과 정치가 처음부터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다. 16~18세기, 최근의 경우 베네데토 크로체, 안토니오 그람시 등 모든 철학자들이 ‘정치’와 맞닥뜨려야 했고, 권력에 대한 저항을 보여줬다.

 

[기조발표 뒤 <이탈리아적 특이성>에 수록된 몇몇 글들 요약]

 

네그리의 존재론은 선형적이고, 지나치게 도발적이다(“이탈리아적 특이성”). 토스카노는 적대의 문제를 다뤘고(“봉기의 연대기: 트론티, 네그리, 그리고 적대의 주체”), 키에자는 바티모, 아감벤, 네그리에게서 나타나는 신학적인 영향을 다뤘다(“조르조 아감벤의 프란체스코파적 존재론”). 예를 들어 아감벤은 최근 오이코노미아의 섭리적 패러다임을 말하고 있고, 심지어 그가 대안으로 말한 ‘세속화’도 결국 신학 용어 아닌가(비록 그것이 신학에서 가치절하됐던 것이라 하더라도)? 파올로 비르노는 인간의 본성에 주목하면서 인격적/인칭적이지 않은 주체성을 탐구하고 있다(“자연-역사적 도식: ‘새로운 글로벌’ 운동과 생물학적 불변항”).

 

 

[발언 1] 로렌조 키에자(Lorenzo Chiesa)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오늘날 이탈리아 사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파졸리니는 일찍기 ‘성스러운 삶/생명’을 개념화했다. [이 성스러운 삶/생명과 인구 증가,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경제 문제를 가지고 키에사가 파졸리니의 생명정치론을 분석했음. 파졸리니 얘기는 에스포지토도 책에서 하는 모양임. 아감벤과 파솔리니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고, 아무튼 파솔리니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아감벤은 생명정치의 계보학을 그리지만 지나치게 회의주의적이다. 반면 에스포지토는 <비오스>에서 파솔리니의 교훈을 따르며 해방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즉, 긍정적인 생명정치가 가능한가의 문제. 에스포지토가 그 책 후반부에서 니체의 ‘권력의지’를 분석하는 것도 주목해봐야 한다. 
 

 

[발언 2] 알베르토 토스카노(Alberto Toscano)

 
생명정치라는 단어가 오늘날 여러 영역에서 너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수용소, 안락사, 출생, 나치, 생명/유전공학 등 도처에 생명정치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의 “아메리카니즘”이라는 글에서 노동의 재생산, 노동의 규율 문제를 다뤘다. 이것은 생명정치론으로 확대해서 독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마시모 카치아리는 <아우트아우트>(Aut Aut)에 수록된 글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이탈리아 수용 또는 영향력을 비판했다. 들뢰즈-가타리의 ‘생산의 생기론’을 비판한 것이다. 여기에 카치아리는 ‘부정성의 사유’를 맞세웠다. 하지만 카치아리는 푸코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 또는 생명정치론의 다양한 양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날 생명정치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고전적인 입장: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네그리와 하트는 스피노자적인 다중 개념을 쓰고, 프랑스 철학에서 차용한 개념, 테마를 사용한다. 이들의 논의는 맑스주의와 상대적으로 쉽게 양립 가능하다. 예를 들어 네그리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그륀트리세) 독해를 통해 산노동 대 죽은 노동의 적대를 얘기한다던가, 자본에의 실질적 포섭을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한다. 이 입장은 "구성 권력의 생명정치"로 요약될 수 있다.

(2) 자연주의적 입장: 파올로 비르노. 비르노는 인간 본성, 능력 개념을 통해 정치를 다시 사유하려 한다. 맑스 이전의 유물론, 특히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등에서 개념을 끌어온다. 이 입장은 ‘인간의 인지적-언어적 능력의 생명정치’로 요약될 수 있다.


(3) 미분적 영성주의: 마우리지오 라자라토. 라자라토는 네그리와는 다소 다르다. 라자라토는 가브리엘 타르드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입장은 ‘잠재성의 생명정치’라고 할 수 있다.

생명정치 개념이 여러 나라에서 굉장히 상이한 맥락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분과학문을 넘어서는 횡단성’을 말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런 사용의 ‘모호함/중의성’도 주목해야 한다.
 

 

[발언 3] 브루노 베사나(Bruno Besana)

 

[이 친구 발표는 뭔가 내용은 있는 것 같은데, 말이 너무 빠르고 체계적이지 않아서 알아듣기 어려웠음. 이 친구 역시 초반에 철학과 정치의 ‘이접’(disjonction)이 중요하다, <이탈리아적 특이성> 서문에서 이탈리아의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탈리아는 국가의 현전을 숨김없이 전시하면서 규범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등등 애기하면서 카치아리를 비판함. 주요 요지는 카치아리는 바깥에 위치하면서 부정성의 현전만을 주장하므로 어떤 저항도 행위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집단토론] 에스포지토, 키에자, 토스카노, 베사나, 그리고 청중들

 

에스포지토: 철학에서는 아나크로니즘이 중요하다. 기원과 동시대성, 동시대성과 기원을 함께 놓고 사유하기. 나는 이점에서 아감벤의 주장에 동의한다.

청중 1: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생명정치는 사회학이나 구체적 역사 분석에 집중하는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생명정치는 철학의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일종의 기여가 아닐까?

키에자: 부정적인 생명정치론, 즉 아감벤의 타나토폴리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긍정적 생명정치론, 즉 네그리의 것이 있다. 이 둘 사이에 에스포지토가 위치한다.

토스카노: 네그리의 다중, 아감벤의 난민 등 각 사상가의 ‘사유 스타일’도 그런 차이에 한 몫 하는 듯.

베사나: 네그리에게 사회는 이미 어느 정도 동질적이다. 레닌과 달리 네그리가 보기에 사회 안에는 ‘약한 고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네그리에게는 ‘카이로스’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결국 사건적 사유나 메시아주의로 흐르지 않겠는가?

에스포지토한나 아렌트에게 ‘출생’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반면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생물학적 현상인 동시에 공동체가 면역화(immunisation)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출생은 바로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봄즈: 생명정치와 생명권력, 또는 긍정적 생명정치와 부정적 생명정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정치 대 생명의 대립으로 그것을 풀 수 있겠는가? 생명정치는 완전히 긍정적이지도, 완전히 부정적이지도 않은 길을 찾아내야 한다. 자크 데리다의 세미나가 최근 <짐승과 주권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여기서 데리다는 푸코와 아감벤을 비판한다. 내 생각에는 정의(justice)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하나의 기준이 될 것 같다.

에스포지토: 생명에 대한 정치(생명권력)과 생명의 정치(생명정치)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법률’과 ‘규범’이다. 법률(jus)은 주체에게 초월적으로 부과되는 것이다. 규범(나는 이 개념을 조르주 캉길렘에게서 끌어오는데)은 주체에 내재적이다. 즉, 부과되는-초월적인 법률과 삶의 내재적 규범이 대립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콜로키엄에서 데리다 대 아감벤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거기에는 사실 데리다와 푸코 사이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장-뤽 낭시, 아감벤, 나는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어느 저녁 식사자리에서 그 얘기를 했다. 낭시의 말에 따르면 데리다는 푸코가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다”라고 했다고 한다. 데리다는 말년에 푸코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 같다.

봄즈: 법률/규범을 각각 초월적/내재적으로 구별하는 것의 기준이 또 필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규범(화)의 경우에도 정치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규범화가 있고, 생명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규범화가 있지 않겠는가? 여전히 그 질문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키에자: 긍정적 생명정치를 판별하는 내재적 기준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 기준은 내 생각에 “법률에 대한 삶의 우위”가 아닐까 한다. 아감벤은 삶-의-형태가 ‘법률-의-형태’를 완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기에는 생기론적 위험이 있다. 더욱이 아감벤이 말하는 삶-의-형태는 비트겐슈타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명공학의 [누구? 잘 들리지 않았음]에게 있어서 삶-의-형태라는 단어는 일종의 주인기표 노릇을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끝)


 

※ 기조발제에서 에스포지토도 언급했고, 집단토론에서도 출몰하는 봄즈(Frédéric Worms, 1964~)는 릴3대학의 교수이자 이번 파리 토론회의 주최단체인 국제현대프랑스철학연구소(Centre international d'étude de la philosophie française contemporaine, CIEPFC)의 책임자이기도 하다(CIEPFC는 바디우가 설립한 단체이다. 공식 블로그에 가면 재미 있는 논문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봄즈의 ‘최근 저서’란 <20세기 프랑스 철학>(La philosophie en France au XXe siecle, Paris: Gallimard, 2008)을 말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인데 무려 643쪽이나 된다(도서출판 길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 봄즈가 언급한 데리다의 세미나 <짐승과 주권자>(La bête et le souverain: Séminaire, vol.1. 2001-2002, Paris: Galilée, 2008) 역시 만만찮은 분량이다. 467쪽. 진작에 영역본도 나왔는데 제목 자체에서 이탈리아 발(發) 생명정치론에 대한 도전의식이 보인다(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의 한 장을 “추방령과 늑대”에 할애한 것을 상기해보라). 표지는 영역본이 맘에 든다.

 마치 주권자에 대한 ‘짐승의 은유’를 계보학적으로 따져보는 듯한 이 책은 라 퐁텐느의 우화 속 짐승들(특히 “늑대와 양”), 토머스 홉스의 논의에 나오는 성서 속의 바다괴물 리바이어던,  D. H. 로렌스의 시에 나오는 뱀, 장-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환기시키는 늑대[이리]인간, 그리고 무엇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 유명한 은유인 ‘여우-군주’의 형상을 통해서 주권자와 짐승의 연관관계를 파헤친다(이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요컨대 군주나 짐승이나 ‘법’에 종속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군주는 법 위에 군림하며, 짐승은 법 외부에 위치한다). 이런 기본 전제를 통해서 데리다가 푸코와 아감벤을 어떻게 공략하는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의 경우 데리다의 세미나는 시리즈로 계속 나올 계획이라고 하는데(몇 권이 될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워낙 많은 세미나를 한 양반이라), 국역본 데리다 세미나를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짐승과 주권자>는 많은 출판사들이 관심을 보일 것 같지만 말이다.

 

※※※ <이탈리아적 특이성>에 글이 실리지 않은 런던 국제회의의 참석자들은 앞서 말한 웰러와 머피 말고도 5명이다. 오즈렌 푸포박(얀반에이크아카데미), 마르게리타 파스쿠치(런던대학교/뉴욕대학교), 세르지오 벤베누토(이탈리아과학연구위원회), 안드레아 푸마갈리(파비아대학교), 젤리카 수믹 리하(루블라냐대학교) 등이다. 그러니까 국제회의 참석자 12명 중 7명이 빠지고, 5명(네그리, 피에르 알도 로바티, 루이자 무라로, 마리오 트론티, 파울로 비르노)이 새로 들어와 <이탈리아적 특이성>의 필자는 총 10명이 됐다. 국제회의의 5명이 빠진 이유는 대충 발표논문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다.

1. Ozren Pupovac, “Machiavelli, Negri, Althusser: Encounters and Detours”

2. Margherita Pascucci, “The Real Richness: Politics and the Subject”

3. Sergio Benvenuto, “The Drive Towards the Real: Philosophy in the Epoch of Bio-techno-logies and Bio-politics”

4. Andrea Fumagalli, “Bioeconomy and the Valorisation Process”

5. Jelica Sumic Riha, “Giorgio Agamben's Politics of the Remnant”

 

6. Shane Weller, “The Art and Ethics of Distortion: Heidegger, Derrida, Vattimo”

7. Timothy Murphy, “Pedagogy of the Moltitude: Negri on Stage”

요컨대 빠진 사람들의 발표논문은 ‘이탈리아적 특이성’보다는 그 응용에 좀더 초점이 맞춰진 그런 내용이었던 셈. <이탈리아적 특이성>은 그보다는 오히려 그 특이성의 스펙트럼을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글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그러니 어떤 점에서 그 국제회의와 <이탈리아적 특이성>은 그야말로 ‘특이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대로는 아니지만 무관하지도 않은 연결의 끈이 있다고나 할까? 이런 국제회의가 심심찮게 개최되는 현지(!?)가 부러우면서도 배아프다. (끝)


20세기를 해석하기 : 전체주의인가 생명정치인가?

Interpreting the 20th century: totalitarianism or biopolitics?

Text Roberto Esposito Philospher

20th C 3

© Prisma

02th C 2

© Prisma

인간의 생명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신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뒤얽어버리며, 다수성의 어떠한 결정도 끄를 수 없는 방식으로 이것들을 칭칭 동여맨다. 권력 메커니즘에서 생명의 반란은 민주주의의 쇠퇴의 신호탄이며, 적어도 우리가 지금껏 상상했던 민주주의의 그런 형태의 쇠퇴의 신호탄이다.
Human life interweaves the public with the private, the natural with the artificial, the theological with the political, binding them together in such a way that no decision of the majority can undo. The insurrection of life in the mechanisms of power signals the eclipse of democracy, at least of that form of democracy we had imagined up until now.

1. 20세기에 관한 정치적 해석을 향하여. '해석하다'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 말에 어떤 유의미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두 개의 상이한 방식,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대립된 방식으로 답변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고전적 해법이다. 즉 이것은 철학 자체가 제공한 해석적 열쇠와 일치하여 역사적 사실을 독해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이것이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실천이었다. 가장 기념비적인 사람들만 이름을 꼽아도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이 있다. 이것은 역사의 본질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간주되어 왔다. 즉, 이것을 후설은 유럽 학문의 위기와 동일시했고, 하이데거는 니힐리즘의 전개와 동일시했으며, 사르트르는 억압된 인민의 해방과 동일시했다.
1. Towards a political interpretation of the 20th century. What does ‘interpret' mean? What significance should we give it? It is possible to respond in two different, and in some sense opposed ways. The first is the classical solution: this consists of reading historical facts in accordance with an interpretative key provided by philosophy itself. Such was the practice of the great philosophers of the 20th century, Husserl, Heidegger, Sartre, to name only the most celebrated. This was considered to be the only way to understand the essence of history: that which Husserl identified with the crisis of European science, Heidegger with the development of Nihilism and Sartre with the liberation of the oppressed peoples.

어떤 경우든 20세기는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사건들이 단 하나의 방향으로 전개한 그러한 방식으로 사건들의 순서를 나열하기 위해서 이미 결정된 어떤 철학의 내적 요구에 따라 해석되었다. 그러므로 철학과 역사 사이에 외적인,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부과적인 관계가 수립되었다. 철학이 없었더라면 무의미하게 보였을 수도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오로지 철학만이 전반적인 유의미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능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In any case, the 20th century was interpreted according to the internal demands of a philosophy that was determined to confer on it a sense, and to order events in such a way that they advanced in a single direction. Thus, between philosophy and history an external, and in some sense impositional, relationship was established. Only philosophy was deemed competent to attribute an overall significance to a series of events that would otherwise appear meaningless.

획기적인 분석을 산출했던 이 첫 번째 반응은 이 논리를 억누르거나 무효로 만든 또 다른 반응에 의해서 의문시되거나 논박된다. 이 두번째 반응은 철학과 역사 사이에 상이한 기능적 관계를 수립한다. 이것은 더 이상 역사적 동학을 사유의 이성에 종속시키는 걸 목표로 삼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건들에서 그 자체로 철학적인 요소나 특징들을 발견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그러므로 사건들의 의미는 더 이상 관찰자의 세계관에 따라서, 또는 이들의 철학적 관점에 일치하여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의미는 사건들 자체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거나 사건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수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 사건들의 새로움, 범위, 또는 효과 때문에. 어쩌면 관점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화는 또한 하이데거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위대한 20세기 촐학자들이, 코제브의 말을 빌리면 한편으로는 '철학의 종언'이라고 서술한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종언'이라고 서술한 것에 상응한다. 진정으로 종언에 이르렀던 것은 역사를 철학적 실행의 대상으로서 관찰/고찰하는 방식이었다.
      This first response, which produced epoch-making analyses, is questioned or contested by another which suppresses or revokes its logic. This second response establishes a different functional relationship between philosophy and history, no longer one that aims to subordinate the historical dynamic to the reason of thought, but rather to discover in certain events, elements or characteristics which are in themselves philosophical. Thus, the sense of events is no longer imposed from the outside, according to the point of view, or in accordance with the philosophical perspective of the observer, but rather that this sense appears to flow from the events themselves, or establish itself through them - because of their novelty, scope, or effect. Perhaps this change in viewpoint also corresponds with what the great 20th century philosophers, from Heidegger to Wittgenstein, but taking in Kojève, described as the "end of philosophy", on the one hand, and the "end of history" on the other. What truly did come to an end was a way of observing history as an object of philosophical exercise. One might say that from then on history has no longer been the object of philosophy but rather its subject. In the same way that philosophy ceased to determine the form of history and became instead its content. If we accept that the events of our present are in themselves charged with a certain philosophical weight, then the objective of reflection will no longer consist of attributing to history a sense that matches hypotheses and historical developments, but rather in confronting the significance that was present in the events from the very moment of their inception. But this, be careful, should not be taken to mean that history is provided with a single pre-existing meaning, for this was precisely the pretension of all philosophies of history, no matter whether they were progressive or regressive, ascendant or descendant. Rather, just the opposite, this meaning is that which results from the confrontation and conflict between numerous high density vectors that are in competition with each other. The events with the greatest significance, for example the attack on the Twin Towers, are precisely those that suddenly demolish prior significance, and in an unforeseen way open up a new source of signification. In this radical way the expression that postulates that contemporary history is eminently philosophical becomes comprehensible. I do not mean that history can only be understood in its essence from a philosophical viewpoint and not from other more reductionist ones, such as economics, sociology or political sciences, as Augusto Del Noce sustained  in a precocious and neglected work (A. Del Noce, 1982), but rather that the decisive events, world wars, technological advances, globalisation, terrorism..., are philosophical powers that are struggling to take and dominate the world; that are competing to become the dominant interpretation, that is, the definitive significance. Thus, even more than oil, weapons, or democracy, what is at stake in the present conflict is the metaphysical desire to define the sense of contemporary history.

 
Two interpretative models
2. I shall try to relate these two styles of understanding contemporary history - that which corresponds to the more traditional philosophy of history and that of history as philosophy - with two hermeneutic paradigms which are quite confused and overlapping, and yet end up being radically alternative, in opposition to each other in terms both of their hypotheses and their effects. The two paradigms are totalitarianism and biopolitics. Despite the attempts to bring them together in a framework that makes each the continuation or confirmation of the other, whether it be in the form of a biopolitical totalitarianism or totalitarian biopolitics, they are in fact interpretative models that diverge in terms of logic, and furthermore, are destined to be mutually exclusive, because at heart, even more so than in terms of particular contents, they oppose each other in terms of their postulates regarding the relation between philosophy and history, and in the way in which they conceive the history of and in terms of philosophy.

      In a totalitarian category graphic representation (axis of coordinates), history is inscribed throughout the chronological cycle, though the latter is fractured by a fundamental division between two options, the democratic and the totalitarian. These two succeed or replace each other, alternating over time. The long period of liberal democratic development, during the middle of the last century, was succeeded by another which was totalitarian, in both the west and the east. These were then overcome in two continuations, in 1945 and in 1989 respectively, leading to the victory of the liberal democratic model, which currently holds sway throughout the west. The result is a double historico-philosophical configuration. Modern history, then, is laid out along a single vertical line, at first, ascendant and progressive, and then, from the 1920s onwards, regressive and declining, and finally, in the second half of the century, once more reverting to, or being redirected in, the right direction. This despite the fact that risks of involution are currently appearing, above all in the Islamic world. Yet while the vertical axis is fractured, on the horizontal there appears a profound homogeneity of forms, contents, languages, that seem very different not only from Nazism and Communism, overlapping in a single conceptual block, but also from those of liberalism and democracy, meeting, without too many problems, the demands of a philosophy of history more inclined to assimilation than to differentiation. In fact, in order for the totalitarian paradigm to be attributed to a fairly traditional philosophy of history, constant and contradictory recourse is taken to the category of ‘origin'. It is no coincidence that this word appears in the titles of two of the most important texts: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by Arendt (H. Arendt, 1951) and The Origins of Totalitarian Democracy by Talmon (J. L. Talmon, 1952). Note the evident sign of the inherence of this category, ‘totalitarianism', which is claimed to be new, in a highly classical philosophical framework. In all the philosophical essays on totalitarianism, the gaze of the observer searches for the origin, and ends up absorbed in his or her investigation: Where does it come from? What engendered it? What is the seed of all that 20th century totalitarianism has brought to the world?

      In this interrogation about its origins appears the first antinomy of the paradigm as a whole: how to discover the genesis of the totalitarian phenomenon, declared unassimilable to all other forms of government, as Hannah Arendt does, and thus, as a consequence, alien to any genetic sequence of a causal nature? Why search for the origin of something that appears to have no origin? How is it possible to reconcile the discontinuity in principle - the absolute novelty of the totalitarian event - and the continuity in fact, its provenance from an origin?

       There are two possible strategies for responding, and both are typical of the historicist model. The first is that adopted by H. Arendt, which traces the entire western political tradition back to an original loss, that of the Greek polis. In Arendt's theory, this loss produces, in the following period, a depoliticisation that converges into the anti-political deviation of totalitarian domination. The totalitarianism of the 20th century, understood as a dynamic and as a logic that in itself was unitary, ends up appearing to be a result that although not a priori inexorable, did in fact become inevitable when certain conditions or circumstances concurred, in a logic similar to that which leads to modernity as a whole. It is true that for H. Arendt, between the two segments involved there is always an unforeseen acceleration that differentiates those who are connoted, situated on a single line of development, to be hurled in the end into the abysm of Auschwitz and Kolyma. She also sustains, clumsily, that it was Hobbes who "provided political thought with the hypotheses underlying all racial theories" (H. Arendt, 1951).

      On the other hand the path trod by Talmon, and later, though in another way, by François Furet (F. Furet, 1997), is that of searching for the origin of totalitarianism within the democratic tradition itself, which it must oppose. Here totalitarianism is characterised as an illness whose origins lie not in Hobbes or Rousseau, but in the decisive event connoting modernity: the French Revolution. In this way, the paradigm in question ends up locked in a second antinomy, no less important than the first: while the reference to the French Revolution, that is, the most radical experiment in political democratisation, might be valid in terms of explaining communism, how can it also explain Nazism?

      A difficulty, a logical flaw, which not even H. Arendt's great essay can avoid.  This work is divided into two parts: the first, a masterly genealogical reconstruction of Nazi anti-Semitism that goes back to the war years, and the second where she compares Nazism with Stalinist communism, a poorer part, and doubtless influenced by the atmosphere of the incipient Cold War. The reason for this deformity, perhaps related with the closed nature of the Soviet archives, concerns the critical point of the interpretative model as a whole: the difficulty of finding the roots of Soviet communism in the same deviation of a degenerate critical process that transformed the nation-state into colonial imperialism, to the point of the explosion of biological racism that led to Nazism. How to include in one framework, in a single horizon of categories, a hyper-natural conception, like that of the Nazis, with the historicist paroxysm of communism?

      What is the connection, from a philosophical point of view, between a theory of absolute equality - which communism is, at least in principle - and a theory, and even more, a practice of absolute difference, like Nazism?

      A monochrome vision seems to prevail of a single vertical opposition between the period of democracy and the period of totalitarianism regarding the great caesurae, logical categorical and linguistic, that fractured modern history, in which the paradigm of totalitarianism is portrayed as a difficult period of inscrutable complexity. It is not by chance, but precisely because of this logical and historical difficulty, that Arendt's work continues to be a great book about Nazism, just as those of Aron, Talmon and Furet are only books about communism. The reason for the choice - in reality, the necessity - that excludes from the discourse the other pole of the paradigm, as identified by Aron in his essay Democracy and Totalitarianism, is the fact that the interpreter is only interested in those regimes that declare themselves democratic when, on the contrary, they tend to end up being perverse deviations from democracy (R. Aron, 1969). Both Talmon and Furet, though also Gauchet (M. Gauchet, 1976) and Lefort (C. Lefort, 1981), validate this thesis of Aron's: the totalitarianism of the left grows out of a diseased rib of democracy, and not from anything external to it. Further, the totalitarian regime does not come out of a deficit but rather from its opposite, from an excess, from an overabundance of democracy -from a democracy that is so radical, extreme, and absolute, so full of egalitarian substance, that it breaks its own formal limits and implodes, transmuting into its own opposite. Communism, suggests Gauchet, is instituted through a perverse inversion of the democratic model, whose traits it deforms in a ghostly way, but always from the inside, from within the assumptions of the democratic model. There the utopian dream meets the demon of a possessed democracy and they blend in a confused mishmash. At this point, the chain of aporiae of the paradigm of totalitarianism is evident. If communism is not only located within the conceptual horizon of democracy inherited from the French Revolution, but in addition, in some sense takes this to its extreme and only in this way to its dissolution; if it is connected to this revolution in its genesis and in its egalitarian excess, how can the distinction between totalitarianism and democracy, on which the whole of the discourse is built, be sustained? It is possible in the same way that totalitarianism has proved itself capable of transforming itself into the opposite of that which gave birth to it. Secondly, if such an antinomic relation with democracy might be valid for communism, it is not, of course, valid for Nazism, which in a coherent way has been excluded from the analytical schema by all these authors. But in this case, it sits less easily with the very logical consistency of the category of totalitarianism. Already shaky in a historical sense, it also collapses in terms of the philosophical hypotheses from which it appeared to draw its final guarantee.

 
Starting from concrete events
3. Unlike that of totalitarianism, the biopolitical paradigm does not take as its starting point a philosophical hypothesis, of whatever kind of philosophy of history, but rather the concrete events themselves, and not only the facts, but also the effective languages that make them comprehensible. Even more than the analysis of Foucault (cf. M. Foucault, 2008) and the genealogy of Nietzsche, and in particular the latter's deconstruction of the concept of origin - that origin which the theoreticians of totalitarianism were still searching for - it is necessary to change the point of view in order to find a perspective that suits this new way of looking. If there is no unequivocal origin of the historical process, if the latter is not unique, because it duplicates or multiplies itself into many, in such a way that these can no longer be defined as such, as Nietzsche explains in radical contrast with all the forms of philosophical historicism, in such a case, then the historical events of the west will clearly not be reducible to the linearity of the single perspective. The entire interpretation of modernity is then profoundly altered. And as a consequence, all possibilities of a unified reading, of whatever kind, vanish to be replaced by an image divided by horizontal and vertical fault lines that break all postulated continuums. In addition, that reading which in the preceding paradigm was configured as a simple fact - like acquired knowledge - of the singular language of politics, now becomes dilated into a much broader relationship, the result of the meeting, the failure to meet, or the mere juxtaposition, with the lexicons of other disciplines that interact and contaminate each other creating novel effects. The bursting of biological life onto the scene, rather than predisposing modern philosophy as a whole to a single depoliticising deviation - as in Arendt's model - decomposes the scene, reordering it in accordance with different vectors of sense that accumulate or affect each other but without becoming confused or unified into a single direction of flow. The strength of the biopolitical perspective resides, in fact, in its capacity to read this trap and this conflict, this deviation and this implication; the powerfully antinomic result of the cross-fertilisation of languages, such as the political and the biological, which are heterogeneous in their origins. What happens when an ‘outsider', life, bursts into the political sphere shattering its supposed autonomy, displacing the discourse to a terrain that refuses to yield to the traditional terms - democracy, power, ideology - of modern political philosophy?

      The phenomenon of Nazism is situated in this framework, where its radical heterogeneity can also be studied. Without drawing on more recent interpretations, Ernst Nolte, whom no-one can suspect of having leftist sympathies, characterised the theoretical fallacy of situating on the same lexical plane an ideology like communism - in truth, catastrophic in terms of its political consequences - and something like Nazism, which of course cannot in any way be placed in the same category (E. Nolte, 1987). In contrast to what H. Arendt thought, Nazism is not an ‘ideology', because it belongs to a lower dimension and one that is different from those which contain ‘ideas', whence, on the other hand, Marxist communism sprang. Nazism is not a different species within one family, that of the totalitarian, because it lies outside the western tradition, which does however include, like an outlying spur, the philosophy of communism. In contrast to these traditions, unified despite their internal differences by a shared reference to a transcendent universal idea, Nazism elaborates a radically different conception that has no need of legitimating itself with an idea, whatever that idea might be, because its intrinsic foundation is in mere material force. This in its turn is not the product - contingent or necessary - of a history that defines relations between men on the basis of their freely taken decisions or, as the communist doctrine considers, of their social conditions, but rather as a fact that is absolutely natural which corresponds solely to the biological realm. Recognising in Nazism the attempt, the only one of its kind, to liberate the natural features of existence from their historical peculiarity, means overturning Arendt's thesis of the totalitarian juxtaposition of the philosophy of nature with that of history. And, even more so, it means identifying the notion of its unassimilable character as a dead end, and therefore, the philosophical impracticability of the notion of totalitarianism.

      The 20th century, examined from a biopolitical point of view, offers a vision of the complete course of modernity, not determined nor decided by the superficial and contradictory antithesis between totalitarianism and democracy, but rather by that which is much more profound - in that it concerns the conservation of life - between history and nature, between the historicisation of nature and the naturalisation of history. Much more profound, I say, because it cannot refer to a symmetrical bipolarity, for the fact that this nature - understood, as Nazism did, in a biological sense - is not an anti-history, a philosophy or ideology that is opposed to that of history, but rather a non-philosophy and a non-ideology. Not a political philosophy but a political biology, a politics of life and about life, inverted into its opposite, and thus a producer of death. As Levinas wrote in the 1930s, in Nazism "the biological, with all the facility which that involves, becomes much more than an object of spiritual life, it is transformed into its very heart" (E. Levinas, 1996). And this element which is immediately bio, that is, Nazism's politics of death - and not the number of victims, which is smaller than that produced by Stalinist communism - is what makes the category of totalitarianism historically and theoretically unusable.

 
Intensification of the conflict
4. The implosion of the communist system, which brought the Cold War to an end, and the subsequent explosion of terrorism have given rise to the illusion of returning to the old political lexicon that existed prior to the so-called totalitarianisms. However, at present the biopolitical conflict appears to be growing even more intense. From this perspective, the end of World War II does not indicate, either in terms of language or in material practice, the victory of the alliance between democracy and communism, but rather that of a liberalism that forms part of the same biopolitical regime that, falling into its opposite, had given rise to Nazism. I mean that Nazism, in this sense much younger than communism, emerges from the war having been definitively defeated militarily and politically, but not completely in cultural and linguistic terms, since the centrality of the bios as object and subject of politics was reinforced, though metamorphosed into a liberal form, which means that appropriations and possible modifications of the body may be performed not only by the state but also by the individual who is the owner of him/herself. If for Nazism man is merely a body, and nothing more, for liberalism, from Locke onwards, man has his own body, which he possesses and may, therefore, use, transform, or sell as an inner slave. In this sense, liberalism - here I am referring to its conceptual categories - inverts the Nazi perspective, transferring ownership of the body from the state to the individual, but remains within the same biopolitical lexicon. The biopolitical nature of liberalism is precisely what differentiates it from democracy. With an exaggeration that is not wholly unjustified, we might say that the reason why after the so-called totalitarianisms it is not possible to return to democratic liberalism, resides in the fact that the latter has never existed as such. In the same way that we have deconstructed the assimilation of Nazism and communism into the category of totalitarianism, so with the same clarity we might question the notion of democratic liberalism. The ideology of liberalism, in its logic, hypothesis and conceptual language - particular, counter-egalitarian, and on occasions also naturalist - while not the negation of democracy, which tends to universality and egalitarianism, is very different from it, as Carl Schmitt pointed out in a great essay in the 1920s on parliamentarianism and democracy (C. Schmitt, 1923). If we adopt a representation of modernity that is not historicist, in other words, if we reject the idea of a chronological succession between demo-liberal and totalitarian regimes, in favour of a different representation, let's say, genealogic or topological, we see that the true fault line, the conceptually significant discrimination, is not the vertical between totalitarianism and demo-liberalism, but rather the horizontal and transversal, between democracy and communism on the one side - communism as the paroxysmic consummation of democratic egalitarianism - and biopolitics on the other. The latter is divided into two antithetical, though not unconnected, forms, Nazism and liberalism: biopolitics of the state and individual biopolitics.

      In addition, Foucault himself noted the biopolitical nature of liberalism (M. Foucault, 2008), situating it on the plane of governing life, and as such, opposed, or at least a stranger to the universalist procedures of democracy. Democracy, at least that form which proclaimed itself as such, founded on the primacy of abstract laws and the equality of rights of individuals equipped with the powers of reason and free will, came to an end in the 1920s and ‘30s and can no longer be reconstructed, much less exported. If the democratic regime is reduced to merely the presence of more than one party in formal competition and the use of elections to form governing majorities, then such a system can always sustain itself, as has happened recently, with the steady increase in the number of formal democracies in the world. But in this way we lose sight of the radical transformation that has been wrought on democracy, dragging it into a semantic orbit that is proof against all that the concept of democracy itself presupposes. Note: in sustaining this thesis I am not referring to the dysfunctions, defects, limits, or contradictions that are implicit in all political forms of government, necessarily imperfect and incomplete. Rather I am alluding to a profound upheaval within the democratic horizon itself. This can be seen immediately when we shift from the formal to the material plane of the current political regimes. It is true that democracy as such has no ‘contents': it is a technique, a series of norms that set out to distribute power in a way that is proportional to the wishes of the electorate. But it is precisely for this reason that it explodes or implodes when filled with a substance that it cannot contain without transforming itself into a radically different thing.

      It is biological life, both individual and of the population at large, that occupies centre-stage in all significant political decisions. This does not mean that in the confrontation between political forces other options are not being debated regarding international relations, internal order, the model of economic development, definitions of civil rights... However, the explosive element in terms of the traditional democratic framework, consists of the fact that all these options refer, with no mediation whatsoever, to the body of the citizens.

      If we consider that in our own country the proposals that have generated most interest amongst the public are those related to the prohibition of smoking, drug use, road safety, immigration, or artificial insemination, we can appreciate the extent and also the direction of this change of paradigm: the health care model has become not only the privileged object of politics but even the very form of political life; and in addition, of a type of politics whose sole possible source of legitimisation is life. And the only things that move citizens to intervene, or that at least interest them, are matters relating to conservation, the limits or the exclusion of the body itself. Yet here is the decisive point: at the moment in which the living, or dying, body becomes the symbolic and material epicentre of political dynamics and conflicts, we enter a dimension that is not ‘post-‘ or ‘beyond' democracy, as it is often described, but rather decidedly outside it; not only in its procedures but also in its language and conceptual structure. It is always a question of rebelling against a group of equalised subjects precisely for the fact of their being separated from the body itself, that is, considered as pure atoms of logic equipped with rational will. This element of abstraction or stripping bare of the body is echoed in the proposals that aim to set the person at the centre of democratic practice. In these proposals, the word ‘person', in accordance with its original scope, means a disembodied subjectivity, something that is different from the series of impulses, needs and desires brought together in the corporeal dimension (cf. R. Esposito, 2007). When, with the biopolitical change of direction highlighted here, even this corporeal dimension is transformed into a real interlocutor of the government, subject and object at the same time, the principle of equality is called into question, inapplicable as it is to something like bodies, where each is necessarily different from all others, according to criteria that are redefined and modified from time to time. But apart from the principle of equality, a whole series of differences or oppositions are also questioned which are even more fundamental to democracy, the entire political conception of modernity, as well as everything this generates in terms of the public, the private, the cultural and the natural, the juridical, the theological...

      At the moment that the body substitutes or "fills" the abstract subjectivity of the legal recognised person, it becomes difficult, if not impossible, to differentiate what is of the public realm and what is private. And more generally, what belongs to the natural order and what depends on technical intervention, with all the ethical and religious implications the latter brings in its train.

      The reason for this imprecision, and the incorrigible nuisances it occasions, is that human life interweaves the public with the private, the natural with the artificial, the theological with the political, binding them together in such a way that no majority decision can undo. Hence, its centrality is not compatible with the conceptual lexicon of democracy. Contrary to what we might imagine, the insurrection of life into the mechanisms of power signals the eclipse of democracy, at least of that type of democracy we have been able to imagine to date. This does not mean that it is impossible to imagine another type, compatible with the irreversible emergence of biopolitics now underway. But where to look, and how to conceive what a biopolitical democracy or democratic biopolitics might mean today, one capable of working, if not through bodies, at least in favour of them? It is difficult to recommend a defined model. For the moment it is only possible to glimpse it. What is true is that to activate a current of thought in such a direction, it is necessary to divest ourselves of all the old philosophies of history and of all the conceptual paradigms that constantly drag us back to them.


Works cited

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 Pub. Schocken.

R. Aron, Democracy and Totalitarianism: A Theory of Political Regimes; 1969, Pub. Praeger

A. Del Noce, L'interpretazione transpolitica della storia contemporanea; 1982, Naples, Pub. Guida.

R. Esposito, Terza persona. Politica della vita e filosofia dell'impersonale; 2007, Pub. Einaudi

M. Foucault, Security, Territory and Population; 2007, Pub. Palgrave Macmillan

M. Foucault, The Birth of Biopolitics; 2008, Pub. Palgrave Macmillan

F. Furet, The History of an Illusion; 1997 Pub. The Free Press

M. Gauchet, L'experiénce totalitaire et la pensée de la politique; 1976, in the Journal  "Esprit", Nºs 7 and 8.

C. Lefort, L'invention démocratique. Les limites de la domination totalitaire; 1981,  Paris, Pub.  Fayard.

E. Levinas, Reflections on the Philosophy of Hitlerism; 1990 Critical Inquiry, Vol. 17. Chicago, IL: Chicago University Press

E. Nolte, The European Civil War, 1917-1945: National Socialism and Bolshevism; 1987

C. Schmitt, Die geistesgeschichtliche Lage des heutigen Parlamentarismus; 1923, Munich-Leipzig, Pub. Duncker & Humblot.

J. Talmon, The Origins of Totalitarian Democracy; 1952, Pub. Secker and Warburg.


이 글은 우연히 발견했다. http://globalization.mcmaster.ca/wps.htm
맥마스터 대학교에 <세계화와 인간의 조건>이라는 학회가 있나 보다. 2008년 3월에 발표된 것이니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울 듯...
다른 글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번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다운로드 받아 번역 또는 발췌본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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