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tude/Solitude

: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네그리, 포콕, 알튀세르

우지 켄다(王寺賢太, 사회사상사·프랑스문학)

현대사상, 20137월 특집호, 129-143頁(각주는 생략했다)



국가를 세우려면 혼자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

공산주의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알튀세르

 

시대착오적인 사상사가 : 구성적 권력vs 마키아벨리적 모멘트

구성적 권력 : 근대성의 대안들에 관한 논고(Le pouvoir constituant : Essai sur les alternatives de la modernité)(1992)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뿌리 깊게 시대착오적인 사상가이다. 소련 붕괴의 이듬해, 역사의 종언이 운운되는 포스트모던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마키아벨리에서 레닌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정치사상사를 다시 말하고, 그것을 결코 끝나지 않는 혁명 사상의 계보로 제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지하듯이, 네그리는 이 책에서 구성된 권력에 대해 구성하는 권력편에 서서, 근대사에는 구성하는 권력과 그 주체인 다중이 편재한다고 주장한다. 네그리가 혁명을 어쩔 수 없이 수렴収束시키는 인과의 계열에 역공을 가하면서, 되풀이하여 혁명의 사전(事前)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구성적 권력의 사상사가에게 특유한 시대착오가 있다. 종종 과감한 단정이나 무리가 추론에 의해 이뤄지는 이 시대착오를 파악하고, 네그리의 작업이 지닌 결점을 들춰내는 일은 쉽다. 다만 그 때에는 역사가가 사후로부터, 객관적으로 역사를 말하려고 할수록 역사, 혹은 시간의 어떤 차원이 간과된다는 것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그리의 시대착오는 바로 그런 차원, 인간 주체가 그 안에서 존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역사시간의 창조적인 차원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이다. 1990년대, 어디까지나 시대착오적이었던 구성적 권력의 사상사가가, 2000년대에 반-전지구화 운동의 사상가로 일약 시대의 인물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구성적 권력맑스를 넘어선 맑스(1978)와 스피노자론인 야생의 아노말리(1981)를 이어받아 네그리 개인의 작업의 집대성을 이루며, 2000년대에 연달아 간행된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 제국3부작의 현대정치경제론을 예고하는 전회점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 중심에 놓인 구성적 권력이나 다중이라는 개념이 스피노자에 관한 정치적 독해로부터 도출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구성적 권력에서 제국이후의 연결을 나타내는 것은 네그리/하트의 가장 논쟁적인 개념인 제국이며, 다중에서 <제국>의 정치적 재편성의 도식을 제공하는 일자소수자다수자로 구성된 폴리비오스적 혼합정체론이며, 공통체에서 제창되는 소유 없는 공화국공화국개념이다. 왜냐하면 구성적 권력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발단하고, 마키아벨리를 거쳐 근대 초기의 대서양 양안에 계승된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근대혁명사상의 계보로 고쳐 읽은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 네그리에게 최대의 참조항은 마키아벨리적 모멘트(1976)J. G. A. 포콕이다. 근대 초기의 유럽과 미국에서, 공공선의 실현에 헌신하는 시민의 멸사봉공의 군사적·정치적 에토스 에서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보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며, 공화국의 통일을 방어하는 시민의 ,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공화국의 통일을 위협하는 운명사이의 대립도식으로부터 역사주의의 생성을 묘사해낸 정치사상사가이다. 여기서 역사주의는 역사의 운동에 인간의 활동을 관여시키고, 역사 자체를 새로운 가치나 규범을 산출하는 것으로 그려내는 시도를 가리킨다.

실제로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에서, 포콕을 좇아, 16세기 피렌체의 마키아벨리로부터 청교도혁명기 잉글랜드의 해링턴을 거쳐, 미국독립혁명의 이데올로그들까지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보를 따라간 후, 그것에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관한 사상사적 분석을 접목하고 있다. 포콕에 의한 고전적 공화주의 재고가 자연법론과 계약론의 계보를 중시하는 서구정치사상사에서 법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이의제기인 한, 이미 스피노자론에서 -법제주의를 선명하게 했던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적 모멘트에서 큰 자극을 받은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원래 17세기 네덜란드의 공화주의자 스피노자의 정치적 구성 la constitution”의 논리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론에서 헌법제정권력 le pouvoir constituant”을 법학적인 틀로부터 뽑아내어, 정치체를 구성하는 다중의 힘으로서 위치시킨 후에, 네그리는 포콕에 의거하면서, 구성적 권력을 근대혁명사상의 계보에 부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히려 포콕과 네그리의 차이일 것이다. 그 차이는 미국독립선언혁명으로 책을 닫는 마키아벨리적 모멘트대서양적인 전망과 러시아 혁명을 시야에 넣은 구성적 권력대륙적인 전망을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분명해진다. 그 차이는 아렌트의 혁명론이 말하는 정치혁명사회혁명의 계보의 차이이기도 하다. 원래 운명에 대한 의 되풀이되는 패배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역사주의에 근거한 보수주의를 표방하게 되는 포콕과 의 에토스를 본성상 끝나지 않는 혁명의 잠재력에 결부시키는 네그리는 정치적 입장이 전적으로 다르다. 이하에서는 구성적 권력에서 전개되는 마키아벨리론에 초점을 맞추서 네그리가 얼마나 포콕을 뒤따르면서도 포콕과 갈라서는가를 밝히고 싶다. 이 두 사람에게 마키아벨리는 각각의 책 전체의 테마를 단숨에 제시하는 사상가이며, 그곳에서는 모두 시간과의 관계에서 의 정치학이 문제가 되는 이상, 네그리의 근대혁명 사상사의 특이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것보다 더 나은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우리는 또 한 명, 네그리의 시대착오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어떤 철학자를 언급하게 될 것이다. 1990, 네그리가 책임 편집자 중 한 명이던 잡지 전미래의 창간호에 게재된 마키아벨리의 고독 La solitude de Machiavel의 저자 루이 알튀세르이다. 아이러니한 공화주의의 역사가와, 고독 속에서 죽음의 침대에 있었던 맑스주의 철학자 사이에서, 바닥없이 낙관주의적으로도 비치는 다중 la multitude’의 사상가가 스스로 껴안으려고 한 고독을 분명히 밝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본고의 목표이다.

 

변동의 정치학 : 정치이론가의 탄생

덕과 운명 : 마키아벨리적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의 구성적 권력의 마키아벨리론의 중심에는 군주론로마사논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놓여 있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마키아벨리 해석사에서의 큰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했다. 한편으로, “이탈리아적 전통을 이어받은 자는 마키아벨리즘책으로 유명한 군주론을 특권시하고, 이 책에서 획득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개념이 마키아벨리의 전체 저작을 지배한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이탈리아적 전통에는 데 산크티스(Francesco de Sanctis)부터 그람시를 거쳐 트론티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그 끄트머리에는 그람시를 토대로 하면서 군주론의 저작을 국민국가시작의 사상가로 위치시킨 알튀세르도 연이어 있다. 다른 한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소재로 공화국론을 전개하는 로마사논고를 중시한 영미의 연구자들은 이 책의 공화주의를 마키아멜리의 중심적 사상으로 평가하면서, 군주론을 이론적으로 애매한 상황적 산물로 간주한다. 이런 연구자들 중 최대 거물이 포콕이다. 즉 네그리에게 군주론로마사 논고의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은 알튀세르와 포콕 사이에서 마키아벨리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에 다름없으며, 그 반대도 또한 참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네그리가 갑작스럽게 이 커다란 문제에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일단 군주론이전,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 시절까지로 소급해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이론적 경력을 하나하나 추적해간다는 점이다. 게다가 네그리는 로마사 논고이후, 피렌체사를 필두로 하는 후기의 저작에 대해서도 논급하기 때문에, 이 마키아벨리론은 마치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에 대한 응축된 이론적 전기(biography)의 양상을 띤다. 알튀세르에게서도 포콕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에 대한 이런 관심을 통해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처럼 우뚝 일어서고 부서지며, 재차 더욱 강고하게 일어서려고 하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다.

 

잰 걸음의 태양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표면을 이미 1494번이나 돌았네. / 그 이후, 서로 다투던 이탈리아는 프랑스인들에게 문을 열었고, 야만인들에게 짓밟히는 고통을 겪었다네.

 

마키아벨리의 10년사(1504)에서 인용한 이 문장을 네그리는 자신의 마키아벨리론의 첫머리에 둔다. 1494년 프랑스군 침공에 직면해 용병으로 맞선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맥없이 패배했다는 것을 전하는 구절이다. 그것을 계기로 시작된 11차에 걸친 이탈리아 전쟁은 유럽에 프랑스 왕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한 세력균형의 체계를 산출하고, 이탈리아의 공화국들로부터 알프스 북부에서 할거[거점을 두고 활동]한 군주정 국가로 결정적으로 패권을 이행시켰다. 이 사건이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과 신대륙발견(1492)과 더불어, 근대 유럽의 기점으로 지목된 것도 그 때문이다. 포콕은 이미,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가 일단 붕괴한 1494년부터 근대 공화주의 사상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그리에게 이 날짜는 단순히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정치상황의 변화의 지표가 아니라 근대의 가장 근원적인 소여가 개시된 날짜이다. 그 주어진 이름이 바로 변동[변전] mutatio’이다. 10년사의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 이후에 변동의 시작을 돌이켜봤듯이, 네그리는 근대의 끝에서부터 근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거기에서 변동을 찾아내고 있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결코 변동을 소여로서 찾아낸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미 외교관 시절의 제언에서, 그는 무력양식(良識)’의 종합에 정치적 변동을 관장하는 활동적 원리가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관찰의 대상이든 활동의 대상이든, 거기서는 변동이 주체에 대립하는 객체에 머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더 중요한 한 걸음은, 주객의 대립 이전의 차원에서 변동을 파악하고, 주체의 활동을 변동과 일치시키고, ‘변동그 자체를 통째로 주체화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네그리가 자연주의적 지평으로부터 역사적 구조로라고 부르는 이 이행과 더불어, “변동은 인간이 그 내부에서 활동하고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된 현실을 돌파해서는 새로운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박동에 의해 획기화된 역동적인 과정이 된다. 피렌체에서, 혹은 신성 로마 제국이나 프랑스 왕국의 궁정에서, 역사적 회고를 감안하면서 동시대의 정치적 현실을 분석하고, 그 장래를 점쳤을 때, 마키아벨리는 이미 변동그 자체, ‘시간그 자체에 구성하는 권력이 내재한다는 입장을 붙잡으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키아벨리가 이 역사의 역동성을 제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긴 과정을 경과해야 했으며, ‘생명의 철학같은 역사주의로 마키아벨리의 정치가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는 긴장의 누적이며, 폭발의 기대이며, 기성 질서와 균형의 파탄으로 향하는 잠재력을 품고 있는 중층적 결정의 힘이 존재자 하에서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그런 중층적 결정의 힘 = 위로부터의 결정의 힘 la surdétermination”을 체현하는 군주의 정치기술을, 1502년부터 1504년에 걸쳐 체류한 체사레 보르자의 궁정에서 목격했다. 시간 속에서 비롯되고 변동하는 상황 속에서 호기(好機)를 붙잡고, 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그 기술 , ‘운명에 맞서는 의 관찰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또한, 관습에 의한 것도 계약에 의한 것도 아니라 활동 그 자체에 입각하여 자기를 유지하는 새로운 주권의 개념을 품게 된다.

그러나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에게 한층 더 중요한 전기(轉機)라고 생각하는 것은 1503년의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이었다. 그의 아버지교황 알렉상드르 6세 사후, 우유부단을 드러내고, 순식간에 상황이 그를 앞질러간 자신의 영웅의 모습과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정치에 있어서의 의지주체적 기투의 중요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는 역사적 시간을 내면화하고, 인간적 시간에 통합하고, 공공연하게 드러난 잠재력을 특이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관찰자이기를 그만두고, 이탈리아의 종속상태를 타개하는 길을 물색한다. 정치이론가로서든, 스스로 활동의 주체로서, 체사레 보르자에게서 본 잠재력을 제 것으로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권력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구성적 주체로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탐구는 1512, 스페인군의 이탈리아 침공에 뒤이어 피렌체의 공화적 정부가 붕괴하고 메디치가가 권력에 복귀하는 것과 더불어 훨씬 절박해졌다. 마키아벨리 자신은 궁정에서 쫓겨나고, 투옥의 쓰라림과 조우한 이 위기적 상황 속에서 씨름했는데, 우선 공화국의 책』 ― 『로마사 논고』 ― 을 썼고, 이어서 투옥 이후, 공화국의 책을 중단하고 쓰게 된 군주론이었다, 이렇게 네그리는 단정한다. 이리하여 군주론객관적인 한계와 주관적인 절망의 특이성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지어진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이 우리의 시야에 부상하는 것이다.

 

구성적 원리의 고독 : 군주론

군주론을 논하는 데 있어서 네그리는 맨 처음에,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la principauté”가 폴리비오스 식의 정체 분류론에서 말하는 군주정귀족정도 아니고, 따라서 공화국의 책이 다루는 공화국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새로운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고찰은 변동을 위로부터 결정하는 역사적 주체”, 혹은 변동을 위로부터 결정하는 원리에 바쳐지고 있다. 네그리에게 군주론구성적 원리의 책이며, 정치체를 정치체로서 구성하는 기초조건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론적책인 것이다.

하기야 이 해석 자체가 반드시 네그리의 독자적인 것만은 아닐 터이다. ‘새로운 군주에 대한 논의를, 활동 그 자체에 의해 정당성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정치적 혁신자에 대한 고찰로 위치시키는 포콕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국민적 국가의 시작을 사고한 책으로 위치시키는 알튀세르도, 그다지 다른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렌트도 서양 근대에서 최초로 국가의 창설을 사고한 인물로 마키아벨리를 위치시켰다. 그러나 이 구성적 원리의 급진성을 평가하면서 네그리가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군주론에 내포된 아포리아이며, 실천적인 불능(不能)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능을 지적할 때에, 네그리가 참조를 요구하는 것이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다.

 

이 원리가 지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론적 깊이를 부정하려고 한다든가, 그 고독과 기투의 반전이 얼마나 강력한 삶의 원천을 나타내는가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주는 여기에 붙는다]. 그러나 존재론적인 혁신은 귀결의 공허 위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나 그 때문에 절망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실제,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원리는 여기에서 전복적이며, 전복적인 로 머문다. 그의 사고의 운동은 적대의 운동이지 경향의 운동이 아니며, 위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해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혹은 그 해결을 찾아내려고 해도 미리 그것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에게서 마키아벨리의 고독과 기투의 반전은, 혹은 (훗날 출판된 마키아벨리와 우리에 입각해 말한다면) 실천적·이론적인 불능역능의 교착은, 그가 자기 스스로는 해결 불가능한 물음을 제기한 점에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달성[성취]된 사실로서의 국가의 정당성을 묻는 근대의 모든 정치철학자들과 갈라서며, ‘고독속에서, “성취[달성]되어야 할 사실로서의 국가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조건을 사고했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의 시작의 불가능성과 더불어, 시작에 있어서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효(実効)적인 힘을 폭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말투는 충분히 알고 있기에, 네그리는 이렇게 매우 알튀세르적인 반전에 그치려고 하지 않는다. ‘역능 = 잠재력 la puissance’다중 la multitude’의 사상가 네그리에게 알튀세르의 불능 l’impuissance’고독 la solitude’은 너무도 관념적으로 비쳤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그때, 네그리의 유물론이 시간과의 관계에서 정의된다는 것이다. 군주론에는 전복의 운동만 있으며 경향의 운동이 결여되어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위기를 인식하면서 해결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구성적 원리가 시간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으며, 마키아벨리의 고독이 무엇보다도 역사적 과정으로부터의 고립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알튀세르와 네그리의 관계와 관련된 한, 사태는 조금 복잡하다. ‘역능불능, 혹은 고독다중, 구성적 권력에 있어서도 또한, 서로를 뒷받침하면서, 끊임없이 반전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네그리에게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그리는 마키아벨리론의 말미에서 다시 알튀세르를 호출하고, 마키아벨리의 고독에 성원을 보내게 되는데, 그 마지막 반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제 잠시 동안 네그리의 논의를 추적해야 한다.

일단 군주론의 한계를 시간으로부터의 고립, 역사적 과정으로부터의 고립에 견줘본 뒤에, 네그리는 이 책의 존재론적 깊이와 실천적인 불능의 교착을 더욱 파고들어 검토한다. 그때 네그리가 우선 주의하는 것은 구성적 원리와 군사력의 연결이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새로운 군주의 국가는 무엇보다도 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은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구성적 원리무장한 덕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마키아벨리에게서의 군사력 문제에 대해서 아렌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네그리는 그것을 기피해야 할 정치적 폭력의 행사 문제로 파악하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시민은 스스로 무기를 취해 공화국을 방어하는 전사여야 한다는 주장에 고전적 공화주의의 한 가지 핵심을 인정한 포콕의 고찰이 똬리를 틀고 있음이 틀림없다. 실제로 포콕을 따라 말하면, 유럽의 군주정 국가가 국왕 상비군을 정비했던 시대에 시민의 민병조직에서 공화국의 자유의 요체를 본 마키아벨리의 관점으로, 근대주권국가에 의한 정당성 있는 폭력 행사의 독점”(베버)에 근본적인 이의를 들이는 현대적인 사정거리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그리는 이 구성적 원리와 군사력의 연결에서 마키아벨리의 한계를 간파한다. 정말로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에게서도 군사력의 문제는 단순한 폭력행사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군사력은 정치체를 조직화하고, 그 구성원의 을 함양하므로 평상시에도 국가의 구성의 역동성을 체현하기 때문이다.새로운 군주에게 이 절대적인 원리인 이상, 군사력이 절대화된 것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의 점에 있다. 무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군주를 위한 것인가, 인민을 위한 것인가?”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는 이 가장 긴요한 물음에 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 네그리는 민주정의 선택 그 자체의 포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네그리는 더 나아가 군주론의 인식론적 한계도 지적한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무장하고 덕이 높은 군주에게 구성적 원리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그 군주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거기에서는 분명히, 힘이 인식을 낳고, 인식이 힘을 낳는다는 직관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새로운 군주는 단순히 국가의 저자일 뿐 아니라 논리와 언어의, 혹은 윤리와 법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다만, 체사레 보르자라고 생각되는 정치적 영웅을 모델로, 군주가 따라야 할 윤리적 규범을 역설하는 데 머문다. 그리고 이 윤리적 호소는 구성적 원리의 존재론적 차원 파고 들어갈수록 강조되고 공회전하게 되는 것이다.

강렬한 군사주의와 극단적인 주관주의 네그리가 군주론의 한계로 보고 있는 것은 네그리 자신도 포함한 70년대의 좌익운동의 조류들을 생각나게도 하는 그런 전복으로의 과격한 경도이다. 구성적 원리의 운동은, 흡사 체사레 보르자가 순식간에 몰락했듯이, 끊임없이 새로운 장애에 부딪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 장애의 유래를 물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의 사고의 운동,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려고 더 한층 군사력과 주관성에 박차를 걸고, “전방으로의 도주를 결행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 하에서 실행되는 작전의 절대성 외에 기초를 갖지 않는 이 [구성적] 원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구성적 권력이란 모든 한계의 돌파이며, 결코 편히 쉬지 않는 의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네그리는 이 구성적 원리전방으로의 도주에 불모의 과격주의의 귀결을 보고 그것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전방으로의 도주에서 군주론의 중심적인 주제를 간파한다. ‘구성적 원리의 비극이라고도, ‘덕의 비극이라고도, ‘정치적인 것의 비극이라고도 불리는 주제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비극은 필연적이다.”구성적 원리가 자신의 활동에 의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하는 이상, 그 활동 자체는 창조되어야 할 가치의 직전에, 진위와 선악의 저편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그 활동은 항상 사후의 관점에서 판가름될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성적 원리는 항상 우연적인 상황에서 사물의 실효적인 원리”(마키아벨리)에 직면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원리의 활동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활동 그 자체를 배반하고, 되풀이되는 활동에 대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그리더러 말하게 하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다양한 상황을 열거하고, 지칠 줄 모르게 권모술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고 시도하면서, 항상 뜻대로는 안 되는 결과의 배신에 우롱당할 수밖에 없는, 이런 구성적 원리의 비극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네그리의 비극에 대한 고찰은, 틀림없이 마키아벨리적 모멘트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포콕은 이미, 군주론의 주제가, 부단한 행위의 연속에 의해 자기 정통화를 꾀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정치적 혁신자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행위가 항상 결과의 타율 행위의 결과가 바로 그 행위의 의도를 배반한다는 것 에 의해 아이러니컬하게 배반당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님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포콕에게 있어서 거기에, ‘운명을 앞에 둔 의 불행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 불행의 인식이야말로 정치질서의 정통화는 단기적인 혁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지속 속에서 관용에 의해 도모되는 것에 다름없다고 하는, 포콕의 역사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입장의 배경에 똬리를 틀고 있다. 아무래도 위대한 역사가에 어울리는 사후의 사상이다.

포콕과 더불어 구성적 원리의 위기를 눈여겨보면서, 네그리는 이 역사가의 비관주의를 단호하게 물리치려고 한다. 정말이지, 군주론의 말미에서 이나 자유의지에 의한 운명의 지배의 가능성이 역설되고, 도래할 새로운 군주에 이탈리아 재건의 꿈이 맡겨져 있다는 것을 보고, 네그리는 거기에서 마키아벨리의 막다른 골목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 비판은 을 단념하고, ‘구성적 원리를 포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네그리에게 있어서, 군주론에서는 구성적 원리절대성이 철저하게 추구되지 않고 끝나는 것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군사력이나 주관의 절대화 등에는 전혀 없다. 그와 반대로, 절대화가 불철저했다는 것, 그리고 운명에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구성적 원리가 시간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야말로 문제이다. 이리하여 군주론에서 로마사 논고로의 행적이, ‘구성적 원리의 심화의 과정으로서 독해된다. 마키아벨리는 고독의 사상가로부터 다중의 사상가로, 그리고 스피노자보다 훨씬 선구적으로 절대적 통치로서의 민주정의 사상가로 변모하는 것이다.

 

다중의 분리로부터 민주정의 구성으로 : 로마사논고

다만 네그리의 군주론로마사논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직선적 도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네그리에게서 군주론의 사정거리는, 로마사논고와의 상호관계에 놓여서 처음으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로마사논고의 사정거리도, 군주론이 가져온 질적인 비약없이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콕은 로마사논고에서의 로마를 여러 공화국들 중의 새로운 군주에 빗댔다. 네그리는 그 비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1512년부터 1513년에 쓴 군주론공화국의 책, 군주론이전에 기획되고, 일단 중단된 후에 1515년부터 1517년에 완성한 로마사논고의 생성과정 속에 다시 놓는 것이다.

당장 네그리는 로마사에서 소재를 취하는 로마사논고의 정치적 고찰이 고대를 모델로 하는 온갖 사고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서론에서 얘기되는 고대인의 범례는 인간 본성이나 정념에 대한 보편적인 사정거리를 가진 고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며, 마키아벨리는 이 정념론을 매개로, 역사 속에 주체를 우뚝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마사논고에서는, 경험론적인 동시에 규범적인 군주론의 인식론적 한계가 처음부터 돌파되는 것이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로마사논고1편에서 제시되는 마키아벨리의 정체론이, 폴리비오스적인 도식으로부터 이탈한다는 지적이다. 정말이지, 거기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분류에 기초하여, 군주정에서 폭적, 폭정에서 귀족정과 과두정, 나아가 민주정과 무정부상태로의 순환이 얘기되고 있다. 또한 그 정체의 부패의 순환에 맞서는 최선의 정체로서, 로마공화국의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혼합정체의 우위조차 역설될 것이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렇게 계속한다.

 

그러나 [혼합정체의 분석에 있어서] 민주정 원리의 도입은 전적으로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바로 혁명이다. 왜냐하면 그 헌정은 혼합적인 한에서, 가장 완성된 공화국을 형성했다. 이 완성에 이른 것은 인민과 원로원의 분열 la désunion에 의해서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로부터 소요로 가득 찬 공화국이 생기고, 소요로부터 공화국에서의 자유를 방어하는 좋은 질서가 생긴다. 이리하여 로마사논고의 고명한 테제가 민주정의 원리의 도입과 결부되는 것이다. 다만 그때, 일반적으로는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균형에 기초한 헌정론의 틀을 돌파할 때까지 극화(劇化)시킨다. 그 결과, ‘la constitution’은 이제 헌정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구성의 문제로서 논해진다.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가 그 돌파를 수행하는 것이, 로마사논고117·18장이었다. “부패한 인민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는, 자유를 계속 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역설한 뒤, 또한 부패한 도시국가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정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가, 또한 자유로운 정체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에는 그것을 도입할 수 있는가라고 마키아벨리가 묻는 대목이다. 네그리는 거기에서, 폴리비오스적인 순환사관, 정체의 부패아 자유의 상실을 필연으로 보는 역사가의 비관주의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혐오를 읽어낸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공화국의 책을 중단하고, 군주론에 씨름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군주론은 이리하여 폴리비오스적인 비관주의를 토대로 하여 그것을 넘어서고, ‘부패와 자유의 상실을 필연적인 것으로 하는 순환사관을 거부하는 책으로서 재파악된다. 그때 동시에, ‘시간의 절단군주에 의한 위로부터의 결정이라는 군주론의 주제가, 역사 속의 주체의 활동의 계기를 강조하고, 그 주체의 구성 그 자체에 정치적 활동의 중심적 과제를 보는 입장과 결부되는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군주론구성적 원리는 인민과 원로원 사이에서 발견된 분열을 극화하고, ‘한 명·소수자·다수자의 균형론의 틀로부터 다수자=다중을 분리하여, ‘인민의 창설을 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몰랐던 구성적 원리가 인민이라는 신체를 획득하고, 민주정을 창조하기 위한 구성적 권력으로서 재정의된다. 그것과 더불어 구성적 권력의 주체는 인민 그 자체, 혹은 인민을 구성하려고 하는 다중그 자체가 된다. ‘군주는 이 구성의 원리=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사논고1편에 민주정으로의 지향을 확인한 후, 네그리는 2편의 을 둘러싼 고찰에 대해, 거기에서는 다중이야말로 의 집단적 주체로서 위치지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제 은 더 이상 단순히 운명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끊임없이 대치되는 장애를, ‘운명에 기대면서 극복하는 운동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덕은 산 노동이며, 생명에 대립하여 견고한 것으로 된 전통이나 권력을 조금씩 파괴할 수 있다.”, 혹은 구성적 권력다중이라는 집단적 주체와 더불어, 역사의 과정을 통해 현실화하는 경향의 운동, 혹은 자기 결정을 요구하는 투쟁이 된다. 여기에는 네그리에 의한 고전적 공화주의의 급진화가, 맑스를 넘어선 맑스의 도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혼합정체에 기초한 공화국의 통치체제가, 교환가치로 환원된 죽은 노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상품의 생산과 유통의 사이클에 비유되며, ‘다중이 영위하는 공동의 삶 그 자체가, 삶의 재생산을 자본의 재생산과정으로부터 점차 분리시키는 산 노동고유의 생산 사이클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구성적 권력, 민주정구성, 로마사논고3편의 과제로서 부상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이 과제는, “르네상스의 개혁을 목표로 하는, 어디까지나 근대적인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유를 가져다준 르네상스에 편승하면서, 특히 = 운명 la foritune’의 축적이 가져다준 나쁜 귀결에 맞서, ‘자유의 원리로 회귀하면서, ‘의 주체의 구성울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때, 네그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군사의 조직화를 통한 다중의 집단적 주체로서의 구성이다. 이제 무장한 덕은 공화국 내부의 조직화와 의 함양이라는 문제계에 명확하게 결부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네그리는 이미 민주정은 강하게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명제를 거론하면서, 이 민주정에서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을 갖고서 조국의 방어에 종사하는 인민 그 자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때, 인민의 구성 요건, 민주정적인 자유의 구성요건으로 간주되는 것이 평등이다. “다중이 부패하지 않는 도시국가에서는 모든 것을 기능시키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평등이 지배하는 도시국가에서는 군주국을 만들 수는 없으며, 평등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서는 공화국을 만들 수 없다.” 네그리에게 있어서는 이 고찰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민주정의 예언자로 위치시키는 것을 허용한 것이었다.

그 선행하는 논의를 계승하면서,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한 가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마사논고3편에서의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이후의 공화주의의 판에 박힌 정형화로부터 분리되고, ‘의 축적의 해악에 맞서 평등을 유지하고, 시민의 을 함양하고, 민주적인 공화국의 구성으로 향하는 정치=경제학의 효시로 위치지어진다. 네그리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가난의 정치=경제학이, 마키아벨리의 군사적 고찰을 정치적인 정념론에 접속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가난의 옹호는 공화국에서의 군사력 유지의 요구에 뿌리를 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가난이 가져다주는 은 자유를 요구하는 정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정념론에 정치적 구성에 대한 고찰의 요체를 간파했던 자신의 스피노자론과 평행하여, 정념의 정치에 대한 고찰에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권력론의 정점을 찾아낸다. 거기서 마키아벨리는 정념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념을 현실의 구축, 새로운 현실의 구축을 향해 해방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해방된 정념은 공화국 속에 소요를 산출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념은 욕망사랑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한, 끊임없이 새로운 현실을 구성할 수 있다. 정념적 주체인 다중, 그 자체 유동적이고 시간적인 존재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타성[관성]이나 객관성과는 무관하게, 공화국을 위협하는 부패와 자유의 상실에, 부단한 재창설, 부단한 개혁을 갖고 맞설 수도 있다. ‘의 주체를 집단적인 것으로 하고, 그 집단적 주체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념적인 양상에 있어서 파악함으로써, 마키아벨리는 시간의 주체화를, 즉 민주적인 자기 통치의 과정으로서의 역사적 과정의 절대화를 철저하게 추진해나간다. 네그리에 따르면, 거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로마사논고117~18장에서 환기된 질적 비약의 도달점인 것이다.

위와 같은 분석을, 또 다시 포콕과 맞댈 수 있을 것이다. 포콕도 로마사논고순환을 피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완전히 균형을 이룬 정체를 어떻게 수립하는가라는 폴리비오스적인 문제설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지적한 뒤, 마키아벨리가 새로운 군주를 포함한 일체의 초월적인 차원의 개입 없이, 단지 우연적인 과정을 통해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논했기 때문이다. 포콕에게서는, 그런 인식이야말로 군주론이상으로 파괴적인 로마사논고의 핵심에 있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포콕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제국적 확대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 자기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유를 상실하게 된 로마공화국의 역사의 변천을, 그 특이한 헌정의 ()균형에 기초한 것으로서 분석하는 데 있으며, 원로원과 인민 사이의 분열도 군사-경제-정념-정치를 잇는 론의 분석도 이 점, 포콕의 분석은 분명히 네그리를 선취하고 있는데 그 헌정론·역사론의 틀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포콕이 집단적인 역사과정에 정치질서를 창조하고, 정통화하는 힘을 인정하더라도, 그 힘은 최종적으로 과거의 역사적 순환의 설명원리를 제공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에 포콕은 로마사논고에 공화주의적인 현양을 간파하기는커녕 오히려 로마의 길에는 최종적인 쇠퇴에 대한 보증은 없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근미래에 있어서는, 로마의 길은 더 현명하며, 더 영광으로 가득 찬 길이다라는 아이러니한 인식을 간파하게 됐다.

로마사논고론에서도 또한, 네그리가, 최종적으로 운명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의 불행을 내다보는 포콕의 고전적 공화주의론을 전도하고, 그 틀을 돌파하고, ‘구성적 권력에까지 철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네그리에게서, 마키아벨리는 결단코 역사철학자가 아니며, 정치적인 이론가=활동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네그리의 포콕에 대한 이런 관계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폴리비오스적인 균형론으로부터의 다중의 분리에 로마사논고의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을 인정한 네그리는, 동시에 그 마키아벨리의 논의가, 그람시가 말하듯이 민주적 결정의 주체형성으로 향하는지, 포콕이 보듯이 간신히 균형론의 틀 안에서의 다수자의 역할의 강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는 애매하다고 일부러 주석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유일한 해결의 길은 이런 애매함을 불식하는 것이 아니라 극화시키는 것이다.” 애매함의 극화는 단순히 공화주의적인 다수자=다중의 역할의 강조를 자의적으로 민주정의 구성으로 고쳐 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마, 고전적인 공화주의의 틀로부터 다중분리하고, 그 정치적 주체화를 도모하려고 하는 네그리의 시도에 내재하는 애매함이 시사되고 있는 것이다. 네그리가 그 애매함의 이론적·실천적인 사정거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겨냥한 고찰이다. 그리고 포콕도 알튀세르도 논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 저작의 독해를 통해서, 네그리는 다시 이 두 명의 선행자와 교착하게 된다.

 

다중과 고독 : 피렌체사

네그리는 이 피렌체사(1525-1527 완성), 군주론로마사논고를 거쳐 완전한 표현을 얻은 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의 책으로 위치시킨다. 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의 근간에는, ‘사물의 질서구성적 권력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고 하는 인식이 있으며, 그 인식은, 이미 본 듯한 시간의 주체화, 역사의 주체화의 귀결에 다름 아니다. 마키아벨 리가 정치적인 이론가=활동가라고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가 실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하고, 그 인식에 의해 새로운 실천의 가능성을 열고, 인식과 실천의 일치를 체현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더 나아가, 이런 정치적인 것의 존재론역사유물론이라고 바꿔 말한다. 로마나 아테네 이상으로 다수의 분열을 품고 있었던 피렌체의 공화국이, 바로 이 분열 그 자체를 동력으로서 발전을 이룩해왔다는 것을 강조할 때, 마키아벨리는 계급투쟁에 역사의 동력을 보는, 맑스적인 인식을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피렌체사의 해석에 있어서, 네그리는 다시금, 이 책의 구성 그 자체에 들어 있는 균열에 눈길을 머문다. 그 서문도 증언하고 있듯이, 마키아벨리는 당초 이 역사서를 1434년의 코지모 디 메디치의 개선(凱旋)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에서의 메디치가 지배의 획기(劃期) 에서부터 얘기했는데, 그 당초의 예정을 변경하고, 1434년까지의 피렌체사 서술에 몰두하게 됐다는 것이다. 피렌체사는 그것이 구성된후의 모습에 거스르며, “구성하는마키아벨리의 사고의 운동을 좇아 재독해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네그리는 우선 피렌체사후반부의 독해에 착수한다. 처음에 다뤄지는 것은, 이 후반부의 첫머리, 51장의 첫 구절이다. 마키아벨리는 거기에서, 질서에서 무질서로,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국가의 끊임없는 요동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사물의 끊임없는 동요에 빗대고, 그것을 덕의 성쇠의 순환과도 결부시켰다. 거기에서 폴리비오스적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적냄새를 맡는 네그리는 이 자연주의비관주의피렌체사의 출발점이 있다고 단정한다. 로마사논고에서 폴리비오스적인 순환사관으로부터 벗어나 다중분리구성으로 향했듯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도 또한, 이 회귀하는 비관주의내다보면서 이로부터 몸을 떼어내고 역사유물론의 정교화로 향하는 것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피렌체사후반부의 서두에는 마키아벨리의 자연주의, 의뢰주이기도 한 메디치가에 대한 예찬이 현저하게 간파된다. 서술이 기본적으로 연대기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연주의와 메디치가 예찬은 뒤로 갈수록 사라지고, 정치분석은 보다 생동감을 띠게 된다. 7편의 로렌초 디 메디치의 시대의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균형의 분석에는, 마키아벨리의 중요한 전기(轉機)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8편에서의 파치(Pazzi)의 음모의 분석에서는, 이미 유물론적이고 근대적인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 뚜렷하게 간파된다고 말한다. 거기에서 마키아벨리의 서술의 대상이 된 것은, 메디치가에 맞선 귀족집단의 반란과 메디치가에 가담한 민중봉기의 대결이었다. 거기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 처음으로, “두 개의 구성적 권력이 격돌하는 것이며, 그 격돌을 배경으로서, “엄숙하고도 쾌락적이기도 하며, 두 명의 상반되는 인간이 있을 수 없는 결합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인간, 로렌초 디 메디치의 정치적 이 분석된다 네그리는 그렇게 단정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피렌체사후반부의 운동을 소묘하면서, 네그리는 전반부로 되돌아가며, 특히 코지모 디 메디치의 개선(凱旋)까지의 15세기의 피렌체 정치사의 분석에 입각해, 마키아벨리의 역사유물론의 주요한 논점을 지적한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15세기 중반까지, 확대된 교황권 하에서 이탈리아는 분열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군주들은 나태 속에서 비열한 무기사용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침체하는 이 중세적 시간을 끊어내고, 제도의 변동을 초래한 것이,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는 계급투쟁의 전개였다. 실제로 피렌체사3권의 치옴피의 난(Tumulto dei Ciompi)의 서술에는, 모직물업이 번창한 당시의 피렌체의 계급분석에 의거하여, 마키아벨리가 부유민영세민을 두 개의 정치적 주체로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네그리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이런 유물론적인 계급분석 이상으로,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마키아벨리의 정치-경제적 진단이다. , “피렌체는 혼합정체를 획득할 수 없다.” 근대적인 시장의 발전은, 계급투쟁의 심화가 혼합정체적인 균형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그저 부유자의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다줄 뿐이었다. 떨쳐 일어난 영세민은 무장 해제되어버린 한에서, 더 이상 급진적인 민주정도 실현의 가능성을 단념해버렸다. 바로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양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중간적인 길을 따라 좋은 법률과 좋은 질서를 대신해 유일자의 덕에 호소하고, 메디치가 지배의 현황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소수자인 귀족의 패배와, ‘다수자=다중인 인민의 주변화를 통해 메디치가의 발흥이 묘사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로렌체 디 메디치가 체현하는 있을 수 없는 결합이 전망된다. 네그리는 바로 여기에 마키아벨리의 사상의 핵심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리하여 마키아벨리의 사상의 중심적 모멘트에 도달했다. 이상이 현실화되기 위한 조건이 갖춰지고, 덕이 역사가 된 경우라도, 종합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발견에 말이다. 이상이 조금이라도 현실화되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결합으로서일 뿐이며, 예외적인 경우로서 시간과 더불어 곧바로 소진한다. 단절은 사실상 종합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인 것이다. 구성적 권력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쟁란, 봉기, 군주 등처럼 잠깐 동안의 일일 뿐이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마키아벨리의 역사유물론은 결코 역사적 변증법으로는 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종합과 지양의 모멘트를 결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단절이야말로 구성적인 것이다.

 

군주론에서 구성적 원리로서의 을 발견하고, 구성적 원리의 위기에 직면한 후, 로마사논고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절대적인 구성적 과정을 파악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는 이 구성적 과정의 원동력으로서 계급투쟁을 찾아냈다. 그러나 구성적 권력의 탐구에 바쳐진 이 행로는, 피렌체사에서 결국 실패에 직면한다. 마키아벨리에 있어서는, ‘계급투쟁이 종합되거나 지양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중이 담지하는 구성적 권력 = 구성하는 권력구성된 권력이 된 순간에, ‘구성적 권력으로부터 이반(離反)하기 때문이다. ‘덕의 비극이 회귀한다. 실제로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담론이 근대정치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저 그가 처음으로 의지와 미래에 대한 기획으로서 잠재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특히, 의지와 결과, 덕과 운명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문제적인 것으로서 삼았기 때문인 것이다.” ‘단절종합보다도 현실적인 한에서, 모든 종합은 모름지기 일시적인 것, 사이비 융화로만 있을 수 있다. 주체화를 요구하는 다중의 운동은, 최종적으로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그리에게서는, 이 미완성이야말로, 단절이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 지양이 있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복음이다. 그것은 계급투쟁이 끝날 수 없다는 것, 다중의 주체화의 과정이 열려 있는 것, 비판적인 과정으로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 여기에서 포콕에 대한 네그리의 애매한 가까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네그리는 포콕처럼 구성적 과정의 중핵에 있는 단절을 헌정론의 틀 속에 가두고, 단절에 의해 활기를 띠게 된 공화국의 성쇠를 관조하며, ‘덕의 비극을 비관주의적으로 확인하며 끝나지는 않는다. 네그리에게서 계급투쟁은 어디까지나 다중에 의해 담지되는 주체적인 투쟁이며, ‘계급투쟁이야말로 헌정을 포함한 모든 제도의 근간에 있다. 그렇지만 단절, ‘한 명·소수자·다수자사이의 균형론의 테두리 안에 집어넣은 포콕이, 네그리가 고전적 공화주의를 계급투쟁의 중심에 있어서 재해석할 때의 중요한 참조항이 된다는 것도 의심스럽지 않다. 포콕은 균형의 관념에 의거하기 때문에, 헌정의 중심에 파고든 단절그 자체를 소거하는 것이 아니며, 바로 그렇기에, 공화국의 질서가 항상 허약한 균형 위에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공화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시민이 항상 직접적으로 헌정의 유지를 담지하는 이 높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 그렇지만 그 의 활동은, 뜻대로 되지 않는 귀결에 농락당하고, ‘운명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런 인식 위에 서서 보수주의를 선택하는 포콕에게, 네그리는 단호하게 등을 돌린다 그러나 되풀이해서 회귀하는 비관주의, 마키아벨리의 구성적 권력의 탐구의 배후에 항상 들러붙어 있었던 만큼, 포콕은 네그리에게 있어서 친근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네그리는 계속해서 말한다. 단절치유하기 어려움, 어이없게도 구성적 권력의 비판적 권능의 끝이 없음을 보려고 하는 낙관주의를, 마키아벨리는 반드시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구성적인 잠재력의 닫혀 있음은, 그에게 있어서는 다중의 힘과 그 기획의 내재적인 본성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잠재력에 대립하는 장애로부터, 즉 지금 여기서 다중이 주체가 되는 것의 무능력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정치적 기투에 실패나 패배자였다. 다중의 주체화, 민주정의 구성을 향한 모든 탐구는, 결국 마키아벨리를 자신의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객관적 현실에 직면하게 했을 뿐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어디까지나 고독했던 것이다. , 네그리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그 고독 속에서도, 결코 구성적 권력의 사상을 손에서 떼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자기의 패배를 웃음과 더불어 받아들이고, 연애의 욕망의 놀이를 통해 개개의 주체에게 숨겨져 있는 힘을 응시하는 희극작품도, 주권을 법적인 정통화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전체 시민의 군사로의 참여에 의해 계속 구성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제시하는 전술론(Dell’arte della guerra), 혹은 또한 구성적 권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불가결한 적합적 주체의 신화적 이미지를 제출하는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La vita di Castruccio Castracani da Lucca), 마키아벨리의 불굴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그 사정은, 1527, 스페인군의 이탈리아 침공에 뒤이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개혁되지 못하고 종언한 것을 지켜본 뒤에도 변함이 없다. 말년의 사신(私信)모든 것은 멸할 것이다라는 예감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결코 쾌활함도 부드러움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마키아벨리의 삶을 그 종국까지 추적하면서, 네그리는 구성적 권력의 마키아벨리론의 말미에서, 다시금 마키아벨리의 고독의 알튀세르에게 인사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근대의 어떤 작가가 말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여느 때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근대 절대주의 국가의 사상가도, 구성을 요구하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도 아니었다. 마키아벨리는 원리와 민주정의 모든 조건의 부재의 이론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재, 이 공허로부터, 마키아벨리는 문자 그대로 주체의 욕망을 탈취하고, 그것을 프로그램으로서 구성한다. 마키아벨리에게서 구성적 권력은 그런 것이었다.

 

알튀세르가 말하듯이, 마키아벨리는 절대주의의 사상가도, 구성을 향하는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도 아니며, 원리와 민주정의, 달성[성취]되어야 할 사실로서의 새로운 국가를 실현하는 조건의 부재의 이론가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뛰어난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였던 것이다 단절치유하기 어려움이야말로 구성적 권력을 끝이 없는 운동을 향해 휘몰아댄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우리로서는 이 논의에 당황할 필요가 전혀 없다. 네그리에게서는, 알튀세르가 말하는 조건의 부재야말로, 주체의 욕망을 새로운 정치적 구성을 향해 활기를 북돋는다. 여기서 네그리는, 알튀세르에 대해, 포콕에 대해 행했던 것과 완전히 닮은 전도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 『구성적 권력집필 당시의 네그리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사후 간행된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의 독자는, 이것과 똑같은 전도를 알튀세르 자신이 수행했음을 알고 있다. 1960년대 이후의 일련의 마키아벨리론에서, 마키아벨리의 실천적인 불능과 이론적인 역능의 반전에 멈춰 섰던 알튀세르는, 그의 우연성의 유물론에 대한 논고에서는, “성취[달성]해야 할 사실로서의 새로운 국가건설의 조건의 부재를 인식한 마키아벨리야말로 성취[달성]된 사실로서의 기존의 국가의 근간에 있는 조건의 부재혹은 우연성을 폭로하는 것이며, 조건의 부재그 자체 없이 우연성의 필연성의 인식에 의해, 항상 머물러 있는/그치고 있는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객관적 조건의 부재로부터 주체의 욕망으로 향하는 네그리와, 그 동일한 조건의 부재를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우연성에서 찾아내는 알튀세르의 차이는 있더라도, 네그리에 의한 알튀세르의 마키아벨리의 고독의 전도는, 이 알지 못했던 알튀세르 자신에 의한 알튀세르의 전도에 정확하게 선행하며, 그것을 정확하게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의 구절에서 네그리의 관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더 이상 구성의 정치적 존재론도, 구성과정으로서의 역사도 아니다. 그런 다중구성적 권력이 전개되는 장소 바로 앞에서, ‘다중구성적 권력에 대한 사색을 가다듬은 마키아벨리 그 사람의 고독에야말로, 네그리는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정치적 기투에 실패하고, 그 기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의 부재에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거기에서 새로운 욕망의 주체를 찾아내려는 주체의 고독이다. 그런 고독 la solitude’한 주체야말로 다중 la multitude’의 주체화를 요구하는 모든 이론적=정치적 활동의 출발점에 있다. 그런 마키아벨리의 고독은 또한, 네그리 자신의 고독일 것이다. 사실 네그리는 다시금 알튀세르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마키아벨리를 읽을 때, 우리는 우리를 잊은 듯 그에게 사로잡힌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뭔가 억압된 것에 대한 친근감, 저 기묘한 친근감이다.” 마키아벨리가 억압된 사상가가 아니면 안 되었던 것은, 바로 그가 정치적인 것의 존재의 근간에, ‘조건의 부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포콕도, 알튀세르도, 그리고 네그리도 또한, 그 억압될 사상가의 인식에 주목한다. “마키아벨리, 모든 억압을 넘어서 정치를 사고하려고 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정치적 존재론의 지평의 이름인 것이며, 바로 그 지평에서, 네그리는 포콕이나 알튀세르와 함께, 정치의 비극과 동시에 그 가능성이, 혹은 정치의 가능성과 더불어 그 비극이 한꺼번에 개시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정치적 양가성을 둘러싼 교착과 반전에 이것 이상으로 계속 구애되는 것은,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을 것이다. 네그리는 마키아벨리의 뒤를 쫓아, ‘고독에서 다중으로의 길을 쾌활하게 밟고 나선다. 바닥없이 쾌활한 낙관주의 끝에, 끝도 없는 계급투쟁의 장소가 열려 있을 것이다.

 

** 양창렬씨가 메신저로 정리해 보낸 것을 기초로 이재원씨가 이쁘게, 일목요연하게 재정리한 것을 (이미지는 빼고)그대로 가져온다. http://blog.naver.com/virilio73/80096351868


지난 2008년 4월 5~6일 영국의 켄트대학교에서 국제회의가 열린 적이 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그 주제는 이름하여
“오늘날의 이탈리아 사상: 생명정치, 니힐리즘, 제국”(Italian Thought Today: Biopolitics, Nihilism, Empire)이었다. 요컨대 조르조 아감벤(생명정치), 지아니 바티모(니힐리즘), 안토니오 네그(제국) 등 영미국에서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이탈리아 출신 사상가들에 대한 국제회의였다. 첫 번째 날에 6명, 두 번째 날에 6명, 총 12명이 발표를 했는데 이 중 비이탈리아권 학자는 쉐인 웰러(영국 켄트대학교)와 티모시 머피(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 둘뿐이었다. 요컨대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학자들이 이 국제회의의 실질적인 토론을 이끈 것. 토론회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징적으로는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침략’(Italian Invasion)이라고 할 만했다. 

이 국제회의의 결과물이 얼마 전 호주의 출판사 re.press에서 <이탈리아적 특이성: 니힐리즘과 생명정치 사이에서>(The Italian Difference: Between Nihilism and Biopolitics)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국제회의의 발표자 목록과 이 단행본의 필자 목록이 다르다는 점(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책이 나온 뒤, 얼마 전인 11월 30일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이탈리아와 생명정치”(Italie et biopolitique)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일전의 국제회의-단행본 ‘동지들’이 주도한 이날의 토론회 선수들은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로렌조 키에자, 알베르토 토스카노였다. 뉴페이스인 브루노 베사노 역시 이탈리아인으로서 베를린에서 활동 중이다. 에스포지토와 키에자는 도서출판 난장의 필자들이기도 한데다, 일전 국제회의-단행본의 한국어판 출간을 국제회의 준비기간 중인 2008년 2월부터 논의 중이었던지라(논의가 막바지 단계에 왔다) 기록 차원에서 최근의 토론회 내용을 기록해둔다. 아래 내용은 (역시 도서출판 난장의 필자이자 기획위원이기도 한) 파리1대학 박사과정 중의 양창렬 씨가 현장에서 정리한 내용이다(양 특파원, 수고했어요~! ㅎㅎㅎ). 그리고 중간중간 대괄호([  ]) 안의 내용은 창렬씨의 코멘트(혹은 내 나름대로의 추임새) 내용이다. 

[기조발제]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 1950~  )

오늘날 이탈리아 사상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상의 모든 개념이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건 아니다. 생명정치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미셸 푸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리드리히 니체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와 생명정치인가?] 독일의 해석학,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보라.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 프랑스 철학은 훌륭하지만, 자기-지시적이고, 외부로 열려 있지 않다. 1930년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등의 언어적 전회가 독일, 영국, 프랑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탈리아 사상은 이 영향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이탈리아에서 생명정치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었던 토대 중 하나였을 것이다.]

프레데릭 봄즈는 최근 저서에서 프랑스 철학의 두 경향, 즉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축(앙리 베르그송, 질 들뢰즈 등)과 수학·단절을 중심으로 하는 축(장 카바예스, 알랭 바디우 등)을 나눴다. 그러나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암비스타 비코, 토마소 캄파넬라 등, 이탈리아 사상은 예전부터 ‘삶/생명’과 ‘정치/역사’의 관계, 다시 말해서 삶/생명과 역사/정치의 긴장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거기서 삶/생명의 우위를 고민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기원 때문에 오늘날 생명정치로의 발전이 쉬웠을 것이다.

 들뢰즈는 영토화 대 탈영토화를 말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는 달리 오랫동안 국민국가가 성립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처음부터 이탈리아 사상은 ‘구성적 탈중심화,’ ‘구성적 탈영토화’를 견지했는지 모른다. 이 점에서 다른 국가들의 사상과는 다르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철학과 정치가 처음부터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다. 16~18세기, 최근의 경우 베네데토 크로체, 안토니오 그람시 등 모든 철학자들이 ‘정치’와 맞닥뜨려야 했고, 권력에 대한 저항을 보여줬다.

 

[기조발표 뒤 <이탈리아적 특이성>에 수록된 몇몇 글들 요약]

 

네그리의 존재론은 선형적이고, 지나치게 도발적이다(“이탈리아적 특이성”). 토스카노는 적대의 문제를 다뤘고(“봉기의 연대기: 트론티, 네그리, 그리고 적대의 주체”), 키에자는 바티모, 아감벤, 네그리에게서 나타나는 신학적인 영향을 다뤘다(“조르조 아감벤의 프란체스코파적 존재론”). 예를 들어 아감벤은 최근 오이코노미아의 섭리적 패러다임을 말하고 있고, 심지어 그가 대안으로 말한 ‘세속화’도 결국 신학 용어 아닌가(비록 그것이 신학에서 가치절하됐던 것이라 하더라도)? 파올로 비르노는 인간의 본성에 주목하면서 인격적/인칭적이지 않은 주체성을 탐구하고 있다(“자연-역사적 도식: ‘새로운 글로벌’ 운동과 생물학적 불변항”).

 

 

[발언 1] 로렌조 키에자(Lorenzo Chiesa)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오늘날 이탈리아 사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파졸리니는 일찍기 ‘성스러운 삶/생명’을 개념화했다. [이 성스러운 삶/생명과 인구 증가,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경제 문제를 가지고 키에사가 파졸리니의 생명정치론을 분석했음. 파졸리니 얘기는 에스포지토도 책에서 하는 모양임. 아감벤과 파솔리니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고, 아무튼 파솔리니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아감벤은 생명정치의 계보학을 그리지만 지나치게 회의주의적이다. 반면 에스포지토는 <비오스>에서 파솔리니의 교훈을 따르며 해방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즉, 긍정적인 생명정치가 가능한가의 문제. 에스포지토가 그 책 후반부에서 니체의 ‘권력의지’를 분석하는 것도 주목해봐야 한다. 
 

 

[발언 2] 알베르토 토스카노(Alberto Toscano)

 
생명정치라는 단어가 오늘날 여러 영역에서 너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수용소, 안락사, 출생, 나치, 생명/유전공학 등 도처에 생명정치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의 “아메리카니즘”이라는 글에서 노동의 재생산, 노동의 규율 문제를 다뤘다. 이것은 생명정치론으로 확대해서 독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마시모 카치아리는 <아우트아우트>(Aut Aut)에 수록된 글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이탈리아 수용 또는 영향력을 비판했다. 들뢰즈-가타리의 ‘생산의 생기론’을 비판한 것이다. 여기에 카치아리는 ‘부정성의 사유’를 맞세웠다. 하지만 카치아리는 푸코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 또는 생명정치론의 다양한 양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날 생명정치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고전적인 입장: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네그리와 하트는 스피노자적인 다중 개념을 쓰고, 프랑스 철학에서 차용한 개념, 테마를 사용한다. 이들의 논의는 맑스주의와 상대적으로 쉽게 양립 가능하다. 예를 들어 네그리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그륀트리세) 독해를 통해 산노동 대 죽은 노동의 적대를 얘기한다던가, 자본에의 실질적 포섭을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한다. 이 입장은 "구성 권력의 생명정치"로 요약될 수 있다.

(2) 자연주의적 입장: 파올로 비르노. 비르노는 인간 본성, 능력 개념을 통해 정치를 다시 사유하려 한다. 맑스 이전의 유물론, 특히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등에서 개념을 끌어온다. 이 입장은 ‘인간의 인지적-언어적 능력의 생명정치’로 요약될 수 있다.


(3) 미분적 영성주의: 마우리지오 라자라토. 라자라토는 네그리와는 다소 다르다. 라자라토는 가브리엘 타르드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입장은 ‘잠재성의 생명정치’라고 할 수 있다.

생명정치 개념이 여러 나라에서 굉장히 상이한 맥락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분과학문을 넘어서는 횡단성’을 말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런 사용의 ‘모호함/중의성’도 주목해야 한다.
 

 

[발언 3] 브루노 베사나(Bruno Besana)

 

[이 친구 발표는 뭔가 내용은 있는 것 같은데, 말이 너무 빠르고 체계적이지 않아서 알아듣기 어려웠음. 이 친구 역시 초반에 철학과 정치의 ‘이접’(disjonction)이 중요하다, <이탈리아적 특이성> 서문에서 이탈리아의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탈리아는 국가의 현전을 숨김없이 전시하면서 규범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등등 애기하면서 카치아리를 비판함. 주요 요지는 카치아리는 바깥에 위치하면서 부정성의 현전만을 주장하므로 어떤 저항도 행위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

 

[집단토론] 에스포지토, 키에자, 토스카노, 베사나, 그리고 청중들

 

에스포지토: 철학에서는 아나크로니즘이 중요하다. 기원과 동시대성, 동시대성과 기원을 함께 놓고 사유하기. 나는 이점에서 아감벤의 주장에 동의한다.

청중 1: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생명정치는 사회학이나 구체적 역사 분석에 집중하는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생명정치는 철학의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일종의 기여가 아닐까?

키에자: 부정적인 생명정치론, 즉 아감벤의 타나토폴리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긍정적 생명정치론, 즉 네그리의 것이 있다. 이 둘 사이에 에스포지토가 위치한다.

토스카노: 네그리의 다중, 아감벤의 난민 등 각 사상가의 ‘사유 스타일’도 그런 차이에 한 몫 하는 듯.

베사나: 네그리에게 사회는 이미 어느 정도 동질적이다. 레닌과 달리 네그리가 보기에 사회 안에는 ‘약한 고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네그리에게는 ‘카이로스’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결국 사건적 사유나 메시아주의로 흐르지 않겠는가?

에스포지토한나 아렌트에게 ‘출생’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반면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생물학적 현상인 동시에 공동체가 면역화(immunisation)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출생은 바로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봄즈: 생명정치와 생명권력, 또는 긍정적 생명정치와 부정적 생명정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정치 대 생명의 대립으로 그것을 풀 수 있겠는가? 생명정치는 완전히 긍정적이지도, 완전히 부정적이지도 않은 길을 찾아내야 한다. 자크 데리다의 세미나가 최근 <짐승과 주권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여기서 데리다는 푸코와 아감벤을 비판한다. 내 생각에는 정의(justice)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하나의 기준이 될 것 같다.

에스포지토: 생명에 대한 정치(생명권력)과 생명의 정치(생명정치)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법률’과 ‘규범’이다. 법률(jus)은 주체에게 초월적으로 부과되는 것이다. 규범(나는 이 개념을 조르주 캉길렘에게서 끌어오는데)은 주체에 내재적이다. 즉, 부과되는-초월적인 법률과 삶의 내재적 규범이 대립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콜로키엄에서 데리다 대 아감벤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거기에는 사실 데리다와 푸코 사이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장-뤽 낭시, 아감벤, 나는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어느 저녁 식사자리에서 그 얘기를 했다. 낭시의 말에 따르면 데리다는 푸코가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다”라고 했다고 한다. 데리다는 말년에 푸코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 같다.

봄즈: 법률/규범을 각각 초월적/내재적으로 구별하는 것의 기준이 또 필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규범(화)의 경우에도 정치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규범화가 있고, 생명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규범화가 있지 않겠는가? 여전히 그 질문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키에자: 긍정적 생명정치를 판별하는 내재적 기준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 기준은 내 생각에 “법률에 대한 삶의 우위”가 아닐까 한다. 아감벤은 삶-의-형태가 ‘법률-의-형태’를 완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기에는 생기론적 위험이 있다. 더욱이 아감벤이 말하는 삶-의-형태는 비트겐슈타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명공학의 [누구? 잘 들리지 않았음]에게 있어서 삶-의-형태라는 단어는 일종의 주인기표 노릇을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끝)


 

※ 기조발제에서 에스포지토도 언급했고, 집단토론에서도 출몰하는 봄즈(Frédéric Worms, 1964~)는 릴3대학의 교수이자 이번 파리 토론회의 주최단체인 국제현대프랑스철학연구소(Centre international d'étude de la philosophie française contemporaine, CIEPFC)의 책임자이기도 하다(CIEPFC는 바디우가 설립한 단체이다. 공식 블로그에 가면 재미 있는 논문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봄즈의 ‘최근 저서’란 <20세기 프랑스 철학>(La philosophie en France au XXe siecle, Paris: Gallimard, 2008)을 말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인데 무려 643쪽이나 된다(도서출판 길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 봄즈가 언급한 데리다의 세미나 <짐승과 주권자>(La bête et le souverain: Séminaire, vol.1. 2001-2002, Paris: Galilée, 2008) 역시 만만찮은 분량이다. 467쪽. 진작에 영역본도 나왔는데 제목 자체에서 이탈리아 발(發) 생명정치론에 대한 도전의식이 보인다(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의 한 장을 “추방령과 늑대”에 할애한 것을 상기해보라). 표지는 영역본이 맘에 든다.

 마치 주권자에 대한 ‘짐승의 은유’를 계보학적으로 따져보는 듯한 이 책은 라 퐁텐느의 우화 속 짐승들(특히 “늑대와 양”), 토머스 홉스의 논의에 나오는 성서 속의 바다괴물 리바이어던,  D. H. 로렌스의 시에 나오는 뱀, 장-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환기시키는 늑대[이리]인간, 그리고 무엇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 유명한 은유인 ‘여우-군주’의 형상을 통해서 주권자와 짐승의 연관관계를 파헤친다(이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요컨대 군주나 짐승이나 ‘법’에 종속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군주는 법 위에 군림하며, 짐승은 법 외부에 위치한다). 이런 기본 전제를 통해서 데리다가 푸코와 아감벤을 어떻게 공략하는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의 경우 데리다의 세미나는 시리즈로 계속 나올 계획이라고 하는데(몇 권이 될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워낙 많은 세미나를 한 양반이라), 국역본 데리다 세미나를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짐승과 주권자>는 많은 출판사들이 관심을 보일 것 같지만 말이다.

 

※※※ <이탈리아적 특이성>에 글이 실리지 않은 런던 국제회의의 참석자들은 앞서 말한 웰러와 머피 말고도 5명이다. 오즈렌 푸포박(얀반에이크아카데미), 마르게리타 파스쿠치(런던대학교/뉴욕대학교), 세르지오 벤베누토(이탈리아과학연구위원회), 안드레아 푸마갈리(파비아대학교), 젤리카 수믹 리하(루블라냐대학교) 등이다. 그러니까 국제회의 참석자 12명 중 7명이 빠지고, 5명(네그리, 피에르 알도 로바티, 루이자 무라로, 마리오 트론티, 파울로 비르노)이 새로 들어와 <이탈리아적 특이성>의 필자는 총 10명이 됐다. 국제회의의 5명이 빠진 이유는 대충 발표논문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다.

1. Ozren Pupovac, “Machiavelli, Negri, Althusser: Encounters and Detours”

2. Margherita Pascucci, “The Real Richness: Politics and the Subject”

3. Sergio Benvenuto, “The Drive Towards the Real: Philosophy in the Epoch of Bio-techno-logies and Bio-politics”

4. Andrea Fumagalli, “Bioeconomy and the Valorisation Process”

5. Jelica Sumic Riha, “Giorgio Agamben's Politics of the Remnant”

 

6. Shane Weller, “The Art and Ethics of Distortion: Heidegger, Derrida, Vattimo”

7. Timothy Murphy, “Pedagogy of the Moltitude: Negri on Stage”

요컨대 빠진 사람들의 발표논문은 ‘이탈리아적 특이성’보다는 그 응용에 좀더 초점이 맞춰진 그런 내용이었던 셈. <이탈리아적 특이성>은 그보다는 오히려 그 특이성의 스펙트럼을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글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그러니 어떤 점에서 그 국제회의와 <이탈리아적 특이성>은 그야말로 ‘특이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대로는 아니지만 무관하지도 않은 연결의 끈이 있다고나 할까? 이런 국제회의가 심심찮게 개최되는 현지(!?)가 부러우면서도 배아프다. (끝)


[연재] 21세기의 사유들 / 대학신문  snupress@snu.ac.kr (20070901-20071013)

편집자 주: 사상과 현실이 유리되고 있는 시대에 그 관계를 다시 활발히 밀착시키고자 하는 사상가들이 있다. 대학신문은 그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시대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사유를 제시하고 있는지 연재기획을 통해 알아본다.

 

  

① 슬라보예 지젝 (2007-09-01)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 / 이현우 강사 (인문대ㆍ노어노문학과)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라캉주의 분석가이자 포스트모던 철학자이고 문화비평가다. 혹은 자신의 표현을 빌면, ‘정통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다. 그는 히치콕, 레닌, 오페라, 9ㆍ11 테러, 인권, 근본주의, 사이버공간, 포스트모더니즘, 다문화주의, 전체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들을 썼다. 그가 목표하는 바는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대중적 환상 혹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신분석적 폭로다. 그 자신의 겸손한 정의에 따르면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다룬 거의 모든 주제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재고의 대상이 된 건 이데올로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년 지젝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으로 영어권 지식계에 ‘정식’ 데뷔한 것은 우연의 일치이지만 상징적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던 그 시기에 그는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다고 주장하며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그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이름은 ‘냉소주의’다. 냉소주의는 더이상 “그들은 자기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마르크스식의 허위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을 한다”는 역설로 규정된다. 계몽된 허위의식의 역설이다. 가령, 우리는 지폐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돈에 대한 물신주의적 태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급진적’ 지식인들은 이민자의 온전한 권리와 국경 개방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지식인으로서의 특권적 지위가 계속 보장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무지’의 폭로는 더이상 아무런 파괴력도 갖지 못한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행위와 일상에 구조화돼 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많이 믿는다. 

지젝에 따르면, 우리는 지난 세기에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경험했다. 하나는 70여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로서의 현실 사회주의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10여년을 구가했던 ‘전지구적 자본주의’, 곧 자유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다. 전자의 종언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면, 후자의 종언을 보여준 ‘실재적’ 사건은 바로 2001년의 9ㆍ11이다. 이러한 종말 이후에,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실재적 역사로 회귀했다. 따라서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에 우리가 ‘역사의 종말’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바로 그 관념이야말로 유토피아적 환상이다. 사실 이념이라는 대타자(the Other)의 몰락 이후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고 관용적이며 쾌락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젝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부자유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자유롭다고 ‘느낄’ 따름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오늘날의 쾌락주의는 절제의 쾌락주의다. 카페인 없는 커피나 섹스 없는 섹스, 혁명(유혈) 없는 혁명에 대한 기대와 권장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의 부재는 아예 금지를 일반화한다. 가령 지젝이 자주 예로 드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관용적인 아버지의 경우를 대비해보자. 권위적인 아버지는 “너는 그것을 해라!”라고 명령한다. 반면에 관용적인 아버지는 “그것을 해라, 하지만 네가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배려는, 하지만 “너는 자발적으로 그것을 해라!”라는 보다 더 강한 요구를 숨기고 있다. 이것이 관용의 역설이며 자유주의의 역설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오늘날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손쉬워진 만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패러독스이며, 우리는 유토피아를 다시 발명해내야 한다. 유토피아는 가장 긴급한 요구의 문제다”라고 지젝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지젝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란 관념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에서는, 즉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지젝이 자주 드는 것은 1917년의 레닌이다.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즉 정치적 활동(activity)이 아닌 행위(act)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다. “난 인간이 아닙니다. 난 괴물입니다.”라고도 지젝은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정의다. 


 

② 주디스 버틀러 (2007-09-08)

섹스ㆍ젠더ㆍ섹슈얼리티, 제도담론의 권력 효과일 뿐  / 조현준 연구원 (한국여성문화이론연구소)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수사학과 및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레즈비언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페미니스트이자 소위 ‘퀴어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버틀러의 철학사적 공헌은 페미니즘 담론의 고정관념으로 여겨졌던 ‘억압자 남성’, ‘피억압자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양식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데 있다. 버틀러의 퀴어 이론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젠더 자체의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을 토대로,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제도담론의 권력 효과임을 폭로하고자 한다. ‘퀴어’는 원래 동성애자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호칭이었으나, 버틀러에 이르러 ‘퀴어 이론’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고정하는 모든 담론적 권력에 저항하는 전복의 표어가 된다.
 

버틀러의 주저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은 시몬 드 보부아르,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그리고 미셸 푸코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현대 철학자들을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망한 책이다. 이 책은 많은 논쟁을 일으키며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십만 권 이상 팔렸고(*) 인터넷 상에 ‘주디’라는 국제 팬진(fanzine)까지 탄생시키면서 버틀러를 영미 지성계의 떠오르는 아이콘, 학계의 주목받는 스타로 만들었다. 이후 버틀러는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격분하기 쉬운 말』, 『권력의 심리 양태』, 『젠더 허물기』, 『자신을 말하기』 등의 저작을 통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뿐 아니라 정치 철학과 윤리학까지 관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많은 사람들을 『젠더 트러블』에 열광하게 만든 것일까? 이는 크게 두 가지 논의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여성 없는 페미니즘’의 가능성 제기다. 다시 말해 본질적인 정치 주체가 없는 정치학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다. 예컨대,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며 이따금씩 화장과 여장을 즐기는 씨름신동 동구(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나 언제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성전환 수술비를 저금하는 여장남자 두눈박이(영화 「다세포소녀」)는 페미니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혹은 남자로 태어났지만 성전환 수술 후 소송을 통해 2002년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받은 하리수는 어떤가? 페미니즘이라는 성 정치학의 정치 주체가 여성이라면, 이 때 성을 지칭하는 것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가 될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이 섹스, 후천적으로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교육받은 성이 젠더라면,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섹스라는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인 특성도, 섹슈얼리티라는 원초적인 욕망도 사실은 애초부터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제도담론이 그렇게 명명하고 인식하도록 지식 체계를 동원한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모두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의미에서 젠더로 수렴되며 규범이 만든 허구이기 때문에 분명한 정의가 불가능해진다.  

두 번째는 욕망과 법 간에 발생하는 인과론의 전도다. 즉 근원적 욕망은 애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억압해야 할 어떤 대상을 가정하고 있던 규율권력과 지배담론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욕망이 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법이 욕망을 만들었다는 ‘인과론의 전도’는 당연하다고 생각돼 온 기존 담론이 어떤 권력의 역학 관계에 의해 구성되고 조작됐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계보학’의 관점을 부각시켰다. 결국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규범이 만든 허구이자 규제가 만든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어떤 본질적인 내적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닌, 다양하고 산포된 관점을 가진 제도, 실천, 담론의 효과가 된다.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의미에서 광의의 젠더로 수렴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젠더는 모방을 통해 원본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패러디’, 행위를 통해서만 의미를 발현하는 ‘수행성’, 재의미화의 가능성을 안고 반복되는 규범에의 ‘복종’, 자신 안에 타자를 품고 있는 ‘우울증’의 양식으로 발현된다. 이제 진정한 남성이나 여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기존 규범 속에서 원본의 권위를 허물면서 수행적 행위를 통해 언제나 재의미화된다. 그것은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해서 자신의 일부로 합체한 우울증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요점은, 근본적으로 결정된 ‘본질적인’ 여성은 없다는 것이다. 젠더의 표현물이라는 가면 뒤에 본질적인 젠더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젠더 정체성은 외관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수행을 통해서만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합이나 범주 없는 ‘여성 없는 페미니즘’의 가능성이고 자신 안에 타자의 가능성을 노정하는 ‘퀴어 이론’의 출발점이다. 타인과 나의 구분과 경계에서 모든 차이가 나오고, 그 차이가 차별을 낳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정치주체를 심문하는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이 현실의 문화정치학과 접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자와 여자가, 남성성과 여성성이, 이성애와 동성애가 분명한 자기 정의를 할 수 없다면, 그리고 언제나 규범 안의 패러디로서 수행적 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에 사실상 나와 타인의 경계조차 불분명한 것이라면, 남자가 여자를, 남성성이 여성성을, 이성애가 동성애를 억압하거나 천시할 근거가 없다. 그것이 인류의 절반인 여성뿐 아니라 인구의 십 퍼센트에도 못 미친다고 평가절하되는 소수자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평등한 공존을 모색하려는 ‘퀴어 이론’의 현실적 정치성이다.

(*) 독자주: 이 책의 불어판은 2005년에 처음 번역되었고, 2001년 이전에는 그녀의 어떠한 책도 불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③ 조르지오 아감벤 (2007-09-15)
우리는 호모 사케르, 그러나 저항의 가능성은 도처에 있다
  / 양창렬씨(파리 1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정치철학, 미학, 언어학, 문헌학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정치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이 논의되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주저 『호모 사케르』(1995)는 칼 슈미트, 벤야민, 아렌트, 푸코 등을 거쳐 주권권력과 삶/생명의 관계, 법과 폭력의 문제, 인권 개념 비판 등을 다루고 있으며, 9ㆍ11 이후 시행된 각종 예외조치들의 정치 패러다임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된다. 『호모 
사케르』에서 아감벤은 주권권력을 언제나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하며 예외적으로 작동하는, 다시 말해 그 벌거벗은 생명을 배제하면서 포함하는 생명정치적 주권권력이라고 본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 신성한 인간=벌거벗은 생명)란 무엇인가? 로마법에서 정의된 신성한 인간이란, 희생양(제물)으로 삼을 수 없지만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이미 신의 소유이므로 희생양(제물)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고, 인간 공동체의 법/권리의 보호 바깥에 위치하기에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영역에서도 배제된다. 혹은 이렇게 배제되는 조건 하에서만 공동체 안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9ㆍ11 이후 애국자법이 시행되면서 미국정부는 테러리스트 활동을 했다고 추정되는 비-시민들을 무한정하게 구금하고, 그들을 군사재판을 포함한 특별한 법절차에 종속시켰다. 더구나 이렇게 구금된 이들이 추방되거나 기소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지위 자체를 상실한 채 수용소에 유폐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마땅히 ‘신성한 인간’의 예라 하겠다. 

아감벤의 주장이 급진적인 까닭은 극단적으로 보이는 이 예외가 오늘날 정상적으로 되었다고 말한다는 데 있다. 이제 모든 시민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되고, 수용소는 전 시민을 대상으로, 전 영토로 확장된다. 수용소를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정치 공간의 패러다임으로 간주하면서, 도처가 정상적으로 되어버린 예외 상태이고, 도처에 신성한 인간들이 있다면 어떻게 저항을 사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정말 모두 수용소 안에 살고 있는가? 주권권력은 항상 ‘희생’을 통해 신성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아감벤은 이 희생을 『장치란 무엇인가?』(2006)에서 ‘장치’라는 말로 바꿔 부른다. 주권권력은 항상 ‘장치’를 통해 주체를 생산함으로써만 작동한다. 장치란 생명체들의 몸짓, 행동, 의견, 담론을 포획, 유도, 결정, 차단, 생산, 통제, 보장하는 능력을 가진 모든 것을 가리킨다. 비단 감옥, 수용소, 판옵티콘, 학교, 고백, 공장, 규율, 법적 조치들뿐 아니라, 펜, 글쓰기, 문학, 철학, 농업, 담배, 항해, 컴퓨터, 핸드폰, 언어도 장치다. 이 장치들을 통해 한 개체 내에서도 핸드폰 사용자, 인터넷 사용자, 시나리오 작가, 탱고 애호가 등의 무수한 주체화 과정이 공존한다. 질문은 반복된다. 과연 위 장치들로부터 벗어날 수나 있단 말인가? 

푸코가 도처에 권력이 있다고 말할 때 반드시 도처에 저항이 있음을 덧붙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감벤이 보기에 도처에 각종 장치들을 통해 주체가 자신의 잠재성을 포획당하는 주체화 과정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도처에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시민과 테러리스트를 구분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권권력은 사실상 어느 곳에서 돌출할지 모르는 이 테러리스트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아감벤은 저항 혹은 대항-장치를 ‘세속화(profanare)’라고 부른다. 그것은 희생(sacrare)에 의해 신적인 영역으로 빠져나갔던 제물에 손을 대어 더럽힘으로써 인간들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복원하는 것이다. 희생된 사물이 달리 사용될 수 있는 잠재성을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속화는 희생이라는 장치를 비활성화시키고 헛돌게 만듦으로써 이 박탈당한 잠재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치가 없으면 생명체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각종 장치들을 버리고 자연상태로 돌아가자거나 장치를 좋은 목적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장치를 단순히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을 주체화하되, 더 이상 장치에 배정되어 있는 목적-수단 관계를 따르지 않고 목적 없는 수단이라는 새로운 사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 열쇠다. 목적 없는 수단으로 아감벤이 드는 예는 법전을 더 이상 준수할 대상이 아니라 가지고 놀고 실험하는 것, 보는 자의 어떤 정서적 변용도 이끌어내지 않는, 관객에게 완전히 무감한 표정을 짓는 포르노 스타 등이다. 그도 인정하듯 이 대항-장치는 항상 일시적이다. 소변기가 예술작품이 되는 순간은 뒤샹의 시도에서일 뿐, 그 뒤 그것의 잠재성은 박물관에 포획된다. 그가 드는 예는 여전히 묵시록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듯하지만, 우리는 신성한 것들을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이리저리 굴리며 새로운 사용법을 발명할 수 있는 방식들을 발명하는 일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된다. 

 

 

④ 알랭 바디우 (2007-09-22)

해체주의 시대에 보편적 ‘진리’ 가능성 제시해  / 홍기숙 강사(숭실대ㆍ철학과)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며, 극작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1937년 모로코 태생으로, 파리 8대학과 파리사범고등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커다란 흐름을 ‘진리’와 ‘체계’의 붕괴로, 혹은 니체의 영향 이후 반(反)플라톤주의적 경향의 지배로 특징지을 수 있다면,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그 반대진영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진리’와 ‘보편성’을 주장하는 플라톤주의적 전통, 혹은 이성적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데카르트주의적 전통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디우는 자신의 주요 저서인 『존재와 사건(L'Etre et l'evenement)』(1988)에서 수학의 집합론에 근거를 둔 ‘순수다수(le multiple pur)’로서의 ‘존재(l'etre)’를 말한다. 사실상 ‘수학’을 통해 ‘존재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이 서양철학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수학의 역사’를 ‘존재 물음의 역사’와 동일시하면서 존재론을 펼치고 있는 바디우의 사유는 철학 내에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철학이 ‘존재’에 대한 물음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디우는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연장되거나 구별되는 지점으로서 ‘진리’의 영역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그가 프랑스 68년 혁명을 경험한 세대이며, 특히 마오주의자였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존재와 사건』 후반부에서 바디우는 ‘순수다수’인 ‘자연적 존재’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역사성을 특징으로 갖는 ‘일자를 넘어서는 것(l'ultra-Un)’으로서의 ‘사건적 진리’에 대해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디우는 ‘진리’를 주장하기를 꺼려하는 이 시대에 비록 지엽적이지만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서 ‘진리’를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인식되고 있던 ‘진리’, 즉 유한함에 대립되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영원성으로서의 ‘진리’가 이제는 바디우에 의해 국지적이며 복수적인 이름으로서의 ‘진리’로 다르게 그려진다. 이러한 바디우의 ‘진리’에 대한 일종의 당위적 책임감은, 이어서 ‘윤리’의 문제나 ‘주체’의 문제에서도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이전의 전통적 개념과는 단절된 모습으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이미 드러나 있었지만 비로소 개념화된 새로운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진리’나 ‘윤리’에 맞서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건적 진리’,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fidelite)’으로서의 ‘윤리’, ‘주체’란 무엇인가? 옳음에 대한 당위성을 말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그래도 지엽적이고 한시적이지만 보편성을 갖는 ‘진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어떤 철학적,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가? 모든 철학이 그 시대의 현실적 상황을 자신의 철학적 물음의 기본 출발로 삼았다는 점은 ‘지금(maintenant)’과 ‘여기(ici)’를 중시하는 실천적 철학자 바디우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모든 절대적 가치가 무너지고 ‘다양’과 ‘차이’만이 강조되는 현 상황에서, 바디우는 ‘진리’와 진리과정에 수반되는 것으로서의 ‘사건적 주체’를 주장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있음(존재일반)의 이름인 다름(차이)’이 아니라, 무엇인가 특별한 사건적 진리에 충실해 우리의 삶을 예기치 못하는 특별함으로 바뀌게 하는 ‘같음’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음’은 다름과 구별되며, 유일하게 ‘다름’에 무관심하며, 무엇인가에 충실하게 하는 ‘주체’를 형성하며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게 하는 ‘진리의 이름’인 것이다. 우리에게 ‘다름’이나 ‘차이’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의 모습이지, ‘같음’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녀 추구해야 하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디우의 ‘사건적 진리’에 대한 사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유가 팽배해 있는 현 시대에, 다시 말하자면 ‘진리’나 ‘주체’를 더 이상 주장하려하지 않는 현시대에, 그럼에도 소위 변화된 세계를 인정하면서 그 위에 자신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출하며 개입하고 있는 실천적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디우에게서 ‘진리’와의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서의 ‘주체’란 무엇인가? 우리가 ‘우연’의 이름 하에 맞이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에 충실할 때, 그 우연적 사건은 주체를 진리과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 다시 말하자면 바디우의 ‘주체(sujet)’란 ‘주체화의 과정(subjectivation)’과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주체는 진리를 수반하는 ‘사건’ 이전에 미리 존재할 수 없으며, 진리가 복수인 것처럼 주체 또한 ‘복수’의 형태로 생성된다. 말하자면, 어떠한 ‘진리’나 ‘윤리’, ‘주체’도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백과사전적 지식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서, 새로운 것의 완전한 출현으로 나타난다. 

그간 강한 정치적 저항의식을 가져왔던 우리의 역사적인 특수함을 고려해 볼 때, 또 그 반대급부로서 항시적인 안정추구를 위해 여러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작용돼 왔던 지난 시절 지배질서의 담론과 그 역학관계를 확인해볼 때, 알랭 바디우의 철학적 사유는 우리사회의 도덕담론이나 지배담론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해체론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형태의 대안이 아닌 변화와 미래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있음’의 이름이 ‘차이’와 ‘다양’이라는 그의 사유는 서양 고전적 철학의 맥을 잇는데, 이는 우리에게 ‘평등’에 대한 당위성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동시에, 비록 한시적이고 지엽적일지라도 보편적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추동의 힘을 사유할 수 있게 한다.  

 

 

⑤ 가라타니 고진 (2007-10-06)

‘이동’으로서의 비평  / 조영일(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평가로서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또는 사상가)로서의 얼굴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를 비평가로 여기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물론 얼마 전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를 제출해 한국문단을 한동안 긴장시킨 바 있지만, 그런 주장은 도리어 그가 문학을 완전히 떠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와 같은 판단에는 『트랜스크리틱』이나 『세계공화국으로』와 같은 사상서들이 그의 주저로 간주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사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흔히 아는 의미에서의 문학비평을 거의 쓰지 않고 있으며, 대신 철학이나 사회사상 쪽으로 관심대상을 넓혀왔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정작 가라타니 자신은 비평가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철학자이기보다 비평가이길 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개념을 좇기보다 문제를 좇기 때문이다
 

20세기는 ‘극단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철학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는 완전히 이질적인 두 상황이 각각 존재했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전자의 시대였기에 후자의 시대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지난 세기 수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그런데 들뢰즈의 말처럼 철학사가 개념창조의 역사라고 한다면, 철학이란 서로 다른 개념들 간에 이뤄지는 힘겨룸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개념들은 어떻게 생성되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까? 바로 개념들의 배치에 의해서다. 즉 ‘이항대립’을 통해 구축되기 마련인 개념들은 어느 쪽을 더 우위에 놓느냐에 따라 이전 개념군이 파괴되고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개념군이 자리잡는 방식으로 배치된다. 이런 이유로 알튀세르는 철학에는 무의미한 형식적인 전복운동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평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철학과 달리 개념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문제들에 집착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이 개념화되는 것을 끊임없이 회피한다. 그러므로 비평의 관심은 항상 개념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향한다. 다른 말로 비평을 한다는 것은 개념을 낳는 문제(조건)들과 씨름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오로지 이동을 통해 가능하다는 말이다. 가라타니가 비평을 ‘대립’이 아니라 ‘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비평은 이를 통해 ‘개념의 노동’(헤겔)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소개돼 왔다. 그러나 동시대 사상가 중에 가라타니만큼 널리 읽힌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그의 책을 그토록 탐독해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라타니의 책은 여느 철학서보다 쉽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슷한 한자어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에게는 중심개념이라고 할 만한, 다시 말해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할 개념(핵심용어)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대신에 기존 개념들의 의미를 조금씩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논의를 펼쳐가기에, 딱히 철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약간의 수고만 들인다면 그 흐름을 쫓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이들이 철학의 대중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그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혹 대중적으로 성공을 하더라도 기껏해야 지적 임팩트가 제거된 요약본을 내놓는 데 그쳤다. 그러므로 가라타니는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대중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저서들이 마냥 쉽게 이해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소화하기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세계공화국으로』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의 전환이나, 생산자 투쟁에서 소비자 투쟁으로의 이행,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리로 이야기하는 ‘제비뽑기’, 점진적으로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이룩해가는,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세계공화국’과 같은 것들은 개념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같이 우리가 자명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이동’시킨 결과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가라타니 철학’이라는 실체와 접하는 경험 따위는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가라타니의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라타니를 읽은 후 이제 더 이상 이전 같이 사고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비평의 철학이란 바로 이처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 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세기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상가들이 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우리와 함께 숨 쉬며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상가는 가라타니 한 사람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까닭은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한국 비평과 한국 철학의 빈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⑥ 페터 슬로터다이크 (2007-10-13)

‘새로운 인간’ 향해 계몽을 계몽하자  / 김석수 교수(경북대ㆍ철학과)  
 
현대 인문학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산 생명을 복제하는 유전공학이 출현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하면서 새롭게 구축되는 이 제국의 시대에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다. 이런 현실의 도래는 이미 전통적 인문학이 표방해온 휴머니즘에 위기를 안겨다 줬으며,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돌파구를 찾도록 다그치고 있다. 바로 이런 시대적 흐름의 중심부에, 기존의 휴머니즘의 종언을 고하고, 견유주의(犬儒主義)와 유전공학의 결합으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기도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주창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1947~)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99년 7월 16일 바이에른 엘마우 성에서 개최된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가해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유럽 지성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그 동안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해 온 기존의 휴머니즘적 인간관이 인간의 야생성을 길들이면서 은폐하고 있음을, 게다가 자기행복에 매몰되거나 냉소주의에 몰입하는 현대 사회의 폭력의 공범자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성과 문자에 기초해 인간성을 동물성과 구분해왔던 기존의 시도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없으며, 공산주의, 민족주의, 아메리카니즘도 모두 이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인은 ‘사유하는 동물’이 ‘사유하는 인간’으로 전환됨으로써 인간 그 스스로가 문화라는 우리에 갇혀 가축화되고, 그래서 식물처럼 생각하지만 육식동물처럼 살고, 착한 목자처럼 되기를 원하지만 나쁜 가축 떼처럼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문화에 저항하지 못하는 ‘낡은 인간’에 얽매여 ‘작은 사육자’로 살아가는 차원을 넘어, 이것을 깨뜨리고 위대한 정치, 위대한 예술, 위대한 사상을 감행해 ‘새로운 인간(위버멘쉬)’을 향해 나아가는 ‘큰 사육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의 이 ‘큰 사육자’의 길은, 하버마스를 비롯한 독일 좌파 지식인들이 비판했듯이, 단순히 인간개종을 위해 ‘차라투스트라 기획’을 감행하는 신종 나치스트의 길이 아니다. 그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의 근접성을 주장한 저 고대의 견유주의와 오늘날 유전공학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가 서로 보호되는 길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가 이와 같은 길을 택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권력지향적인 인간을, 자연이라는 실험장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거쳐 온 진화의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관념적으로만 접근하는 기존의 휴머니즘적 접근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위장된 휴머니스트들처럼 유전공학의 도래로 새롭게 시작된 삶의 놀이를 냉소적으로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해방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 것인가라는 대원칙 아래서, 그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로 바라봐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괴물이 되고 잡종의 형태가 될 위험은 유전공학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적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유아적인 사유방식에 있다. 사실 90년대 후반에 온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의 이 주장은 당시에 싹튼 것이 아니라, 그의 핵심 저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냉소적 이성 비판』(1983)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냉소주의를 분석하면서, 이 냉소주의 역시 계몽에 지친 무력한 인간의 모습임을 지적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현대의 기술문명이 우리의 환경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이 문명에 계속 동참하고 있듯이, 계몽 속에서 더불어 자라난 냉소주의는 우리를 끝없이 더 많은 압박과 고통에 더 잘 순응하도록 이끈다. 계몽은 이 허위의식을 제거하기보다는 이를 대중적 현상으로 일반화시키며, 마침내 스스로를 배반하고 비합리성으로 추락한다. 그는 이런 추락 현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육체와 영혼,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 주관이성과 객관이성을 가르는 기존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이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공존하는 ‘혼성적 실재’를 추구하며, 인간-동물-식물-기계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존재론적 구성’을 통해 포스트휴머니즘을 추구한다.  

그의 포스트휴머니즘은 『유럽의 도가주의』(1989)에서도 주장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입장은 여러 다양한 글들에서, 후쿠야마가 언급한 역사시대의 거대한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아메리카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있다. 그는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몸의 지혜’로 거대한 지배체제와 수정궁으로 상징되는 ‘역사시대’를 종식하고, ‘지역’들이 존중받으면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진정한 다원주의를 꿈꾸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마지막 인간’을 넘어, 역사 이후의 ‘새로운 인간(post-human)’을 유전공학과 견유주의의 연대를 통해 재창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시도에는 여전히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 양자의 연대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지식인들도 이제 그가 제시한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전망을 고뇌하지 않고 더 이상 미래의 인문학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석수 교수(경북대ㆍ철학과))

 

 

⑦ 안토니오 네그리 /‘제국’에 대항하는 대중,‘제국’을 넘어서는 대중 

윤수종 교수 (전북대 사회학과)  2007년 11월 03일 (토) 20:08:59 대학신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는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autonomia)1)운동 및 이론의 흐름 속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이탈리아의 특수성 속에서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다음 세기를 향한 진전방향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푸코 등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타리와는 공저를 내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프랑스로 망명해 가타리를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파리 8대학 정치학 교수로 활동했고, 『전미래(Futur Anterieur)』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확산시켰다. 1997년 중반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투옥됐다. 최근에는 자유의 몸이 되어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글도 쓰고 있다. 2000년과 2004년에는 각각 마이클 하트와 『제국(Empire)』과 『대중(Multitude)』2)이란 책을 써서 사회과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제국』은 미시논리에 함몰되고 파편화돼 있는 사유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사유의 거시적 종합화를 시도한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로부터 『구성권력』으로 이어지는 네그리의 사유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 세계가 휩쓸려 가고 있는 대변동(세계화)에 대해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들뢰즈, 가타리와 푸코에 근거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현대사의 주요한 이행을 해방의 도래로서, 그리고 혼성적이고 노마드적인 정치의 기회로 파악한다. 20세기의 이른바 고전적인 제국주의들과 구별해 이 새로운 초민족적ㆍ세계적ㆍ총체적 배치를 ‘제국’이라고 부른다. 제국은 미국적인 것이 아니고 유럽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며 전지구적인 것이다. 네그리는 국민국가에 기반한 근대적 주권이 네트워크 권력에 기반한 제국적인 주권으로 변형돼 간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이행에서 탈근대화의 생산적인 내용으로서의 생산의 정보화에 주목한다. 더욱이 네그리는 생산을 객관적인 경제적 영역의 생산으로 좁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의 생산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이러한 네그리의 사고의 밑바탕에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이 대중의 저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푸코, 들뢰즈, 가타리의 생각을 받아들여 생체 정치적인 생산으로의 이행을, 차이를 용인하면서 통합을 해나가려는 제국적인 권력의 새로운 (네트워크) 양상을, 그리고 기존의 훈육사회에서 통제(관리)사회로의 이행(*)을 강조한다.

『제국』이 지배에 대해 분석했다면 『대중』은 그 부제 ‘제국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 중에도 대중이 등장했고 그에 따라 사회운동 방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그의 대중 개념은 군중, 인민, 일반적인 ‘대중’, 국민 개념과 대비되며, 상이한 문화, 인종, 인종성, 젠더, 성적 지향, 노동형태, 생활방식, 세계관, 욕망 등등 수많은 내적 차이들로 이뤄져 있어 통일적인 혹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개념이 배제적인 개념인 데 반해 그의 대중 개념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즉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특히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다양한 주민층인 빈민을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대중은 서구에서는 68혁명 이후에,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ㆍ농민 대투쟁 이후 다양한 욕망을 담지한 채 나타났다. 노동자계급의 내적인 분화와 다양화 속에서 대중의 노동형상은 다양화되고 더욱 더 비물질적 노동의 특성을 띠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대중의 등장과 함께 사회운동의 투쟁방식과 방향이 변하고 있다고 네그리는 설명한다. 1960년대에 나타난 게릴라 투쟁모델은 집중적 투쟁모델의 단말마를 보여주며 네트워크 투쟁으로 나아가는 과도적 형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의 자율운동에서 나타난 네트워크 투쟁은 그 이후 사회운동의 방식으로 널리 확산되며 대안세계화운동에서 절정에 달한다. 또한 네트워크 투쟁으로의 변화과정 속에서 대중의 욕망투쟁과 주체성 생산투쟁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이해투쟁과 대비되는 욕망투쟁의 전개 속에서 대중은 자본이 부과한 자본주의적 주체성 생산에 대항해 각종 시설들 속에서 다양한 일상적 파업을 통해 자본의 훈육을 거부하면서 색다른 주체성 생산(특이화)을 시도한다고 한다.

네그리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쟁점과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기존의 좌파 운동에 대해 비판점을 형성하고 있다. 네그리의 이러한 입장은 당 형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네트워크 형식의 운동을 강조하고 대안세계화운동, 다양한 소수자운동, 대안운동을 비롯한 자율운동의 활성화에 희망을 걸고 있다.

편집자 주
1) 자율주의. 이탈리아 비의회 좌파운동의 커다란 흐름이자 동시에 기존 좌파(공산당)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노동자운동에서 나타난 ‘노동거부’를 통해 공산주의적 전통을 부정하고 현실사회주의 사회와 대립한다.
2) 흔히 ‘다중’으로 옮기나 필자는 ‘대중’으로 옮겼으므로 이를 따른다.

필자 윤수종 교수 / 전남대ㆍ사회학과 /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농업생산에서의 노동조직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 사상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자유의 공간을 찾아서』, 역서로 『제국』 등이 있다.

(* 독자주) Cf. 푸코의 <감시와처벌>의 사회에서 [<...des vivant>(79-80), <...de soi et ...>(1982-84)] 으로의 이행. 

 


⑧ 비토리오 회슬레 / 포스트모던에 맞서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꾀하다  
나종석 강사 (연세대ㆍ철학과) 2007년 11월 10일 (토) 22:47:54 대학신문

 
비토리오 회슬레(Vittorio Hosle)는 1960년에 태어난 젊은 철학자이지만,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는 플라톤 및 헤겔 철학의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대표적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헤겔의 체계』, 『도덕과 정치』,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그리고 『철학적 대화』 등을 비롯해 형이상학, 실천철학, 자연철학 그리고 철학사 등에 관련한 무수히 많은 저서와 논문들을 통해 현대 인류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의 근원을 성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성을 통해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회슬레는 이성의 억압성과 폭력성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흐름과는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한다. 그는 니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자들이나 이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 등과 같은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들이 내세우는 이성에 대한 총체적 비판의 토대가 튼튼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는 몇 가지 예외적 흐름을 제외한다면 현대의 다양한 철학적 사조들은 ‘이성과 도덕적인 가치 및 의무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고 파괴하는 경향 확산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들이 지속되면 인간의 비판적 정신이 완전히 마비되고, 시대가 제기하는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파괴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따라서 그는 총체적 이성 비판에 대해 강력히 반론을 펼치면서, 이성과 객관적 진리의 추구라는 전통적 서구 철학의 담론을 이어받고 있다.

회슬레의 철학은 민주주의, 환경위기, 시장 경제, 종교 등 21세기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가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민주적 합의보다 객관적 진리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이 다양한 견해들을 억압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철학과 민주주의의 독자성을 오해하는 데서 생긴 것이다. 회슬레가 보기에 철학과 민주주의는 서로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비판적 사유를 포기하지 않는 철학은 민주주의적 결정의 정당성을 되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전한 민주주의와 더불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다수가 어떤 규칙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것을 정의롭다고 보는 여론 독재로 흐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들 사이의 토론을 통해 더욱 건전하고 옳은 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는 민주주의를 철학적 사유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슬레는 21세기가 생태적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환경위기를 초래한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심층생태주의적인 사고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는 인간만이 내적 가치를 갖고 있고 다른 생명체는 인간의 목적 실현을 위한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이와는 달리 심층생태주의는 인간뿐 아니라 여러 생명체들 또한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이 관점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적절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모든 자연적 존재들이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면,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층생태주의는 자연과 생명의 위대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왜 지구에 인류가 존재해야 하며, 왜 우리는 미래 세대뿐 아니라 여타 생명체를 존중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회슬레는 세계화가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보편주의자인 그는 세계의 여러 지역들이 서로 만나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화가 초래하는 부와 빈곤의 양극화 및 환경파괴의 심화 현상을 크게 염려한다. 따라서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완결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국가의 개입을 금하는 것은 허구적이라는 점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가치관을 전제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시장경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회슬레는 이성의 과잉이 아니라 정의와 도덕의 보편적 원칙에 대한 사유를 추구하는 이성에 대한 믿음의 상실현대 사회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면서,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이성적 사유의 복권을 역설한다. 이성의 본질을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만 보고 이와 전면적 결별을 선언하는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급진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과 동일시하는 이성에 대한 편견의 표현이 아닌가? 또한 편협한 시야에서 이성에 접근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우리들에게서 건전한 비판적 사유의 싹 자체를 앗아가 우리를 현존 질서에 순응케 할 독버섯은 아닌가?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토론하고 논증하고 반박하는 이성적 사유와의 작별이 우리가 취해야 할 사유의 길인가? 회슬레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나종석 강사 (연세대ㆍ철학과)/ 독일 에센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차이와 연대』, 역서로 『비토리오 회슬레, 21세기의 객관적 관념론』이 있다.

(* 독자주) Cf. Habermas, (1962, 학위논문) [부르조아계급의 소위 '여론' 형성의 주도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점을 살리기위해, 불어로는 상징적이게도 <공적공간, L'espace public>이라는 제목으로 78년에 번역되었다]. 


 
⑨ 장­뤽 낭시 / 무위(無爲)의 공동체 
박준상 / 2007년 11월 17일 (토) 21:47:10 대학신문
 
 
장-뤽 낭시(Jean-Luc Nancy, 1940~)는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80년대 말 과도한 심장 이상 수축으로 심장 이식수술을 받게 되면서 매우 어려운 시기를 거쳤으나 지금까지도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낭시는 개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매우 가까웠던 동료 필립 라쿠-라바르트(라쿠-라바르트 역시 반드시 주목해봐야 할 사상가인데, 안타깝게도 최근 타계했다)와 함께 초기 독일낭만주의(슐레겔 형제, 노발리스)의 기관지 『아테네움』에 실렸던 중요한 논문들을 편역한 책 『문학적 절대』를 내놓음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초기 독일낭만주의와 더불어 하이데거, 셸링, 칸트, 니체와 같은 사상가들에 대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사유의 출발점을 마련했으며, 근대 정치 철학과 여러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을 검토함으로써 매우 독창적이고 특이한 정치 철학을 구축해냈다. 우리는 현재 아쉽게도 다만 그 정치 철학의 단면을 모리스 블랑쇼와의 논쟁 결과물인 『마주한 공동체』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모리스 블랑쇼/장-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 2005). 그러나 정확히 하자면 블랑쇼가 『밝힐 수 없는 공동체』에서 보여준 공동체에 대한 사유의 원류에는 낭시가 있다.

낭시는 동구권의 몰락과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패퇴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공산주의의 문제와 공동체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알랭 바디우가 그에게 ‘최후의 공산주의자’라는 명칭을 부여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낭시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공동 존재와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취소될 수 없다고 본다. 낭시의 정치 철학의 독창성은 공동체가 어떠한 종류의 사회(국가를 비롯해서 크든 작든 모든 동일성의 집단)와도 일치될 수 없다는 주장 가운데에서 발견된다.

플라톤에서부터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자주 이상적(理想的) 공동체는 구축해야 할 사회로서 추구됐다. 낭시가 반대하는 것은 ‘공동체’를 ‘사회’와 일치시키려는 이상주의적ㆍ전체주의적 시도이고, 그가 우리의 주목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 내로 환원되지 않는 관계 또는 사회 내에서 고착되지 않는 ‘관계’ 자체다. 그 ‘관계’는 단순히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정한 조건이자 근거인 우리의 ‘자연적인’ 평등의 장소이며 소통의 장소다. 낭시는 그 장소를 ‘무위(無爲, desœuvrement)’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는 그 무위의 장소가 결코 어떤 구도, 목적, 기획, 프로그램에 따라 규정되거나 고정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정치적 투쟁이나 제도에 대한 개혁의 시도나 기존 사회 구조에 대한 변혁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윤리적, 총체적, 사회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개념적, 관념적 구도에도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낭시의 메시지는 사회가 동일성의 가치 기준에 따라 스스로 구조화되고 폐쇄적으로 될 때, 즉 사회 바깥에서의 지정될 수 없는 무위와의 관계를 망각할 때, 필연적으로 파탄의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다. 또한 그 무위의 관계가, 즉 궁극적으로 어떠한 존재 이유도 존재 목적도 어떠한 명확한 동일성의 근거도 갖고 있지 않은 유토피아적(또는 불가능한) 장소가 모든 사회의 중심에, 즉 현실의 모든 정치적ㆍ경제적ㆍ 이념적 관계의 중심에 보이지 않게(또는 블랑쇼의 표현을 따르면, “밝힐 수 없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낭시는 현재 프랑스에서 알랭 바디우, 앙리 말디네, 자크 랑시에르, 필립 라쿠-라바르트 등과 함께 가장 부각된 철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낭시의 가까운 동반자였던 자크 데리다는 2000년 『접촉, 장-뤽 낭시』를 출간해 이 점을 확인시켰다(낭시는―라쿠-라바르트도 마찬가지이지만―한국에서 흔히 데리다의 제자로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해다. 낭시가 데리다의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소통ㆍ공동ㆍ접촉 등의 정치적 주제들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전개해 나갔다).

중요 저서로는, 바타유에 대한 해석을 거쳐 동일성의 지배 바깥의 공동체, 조직ㆍ기관ㆍ이데올로기 바깥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명확히 제시한 『무위의 공동체』, 실존이 어떻게 타인과 함께 하는  공(共)실존인가를 밝힌 『복수적 단수의 존재』, 개념ㆍ명제 너머의 의미, 개념ㆍ명제의 성립조건으로서의 의미, ‘의미의 의미’에 대한 정식화인 『세계의 의미』, 현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개한 『사유의 무게』 등이 있다. 그의 저서들이 널리 번역되면서 그의 사상도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졌지만(최근 것들까지 포함해서 그의 저서들은 거의 영역되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주저들 가운데 하나인 『무위의 공동체』(박준상 옮김)가 출간됐고 이안 제임스가 쓴 연구서 『장-뤽 낭시 철학 입문』(민승기 옮김)이 번역 중에 있으니 다행이다.

박준상 강사 / 전남대ㆍ철학과 / 프랑스 파리 8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바깥에서』, 역서로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가 있다.

 

 

⑩ 자크 랑시에르 / 평등의 원리에 대한 옹호  
진태원 / 2007년 11월 24일 (토) 22:44:46 대학신문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는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더불어 21세기 벽두 프랑스 철학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알튀세르의 후예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불화』(1995),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8),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2005) 같은 혁신적인 정치철학 저서들뿐 아니라, 지적 평등을 교육의 기초로 제시하는 『알지 못하는 선생』(1987)에서부터 아날학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역사의 이름들』(1992)을 비롯해 문학, 영화 및 미학에 관한 독창적인 작업으로 세계 학계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이처럼 그가 광범위한 주제에 관해 많은 책들을 출간하고 있지만, 그의 저술 전체는 단일한 주제, 곧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에 대한 다양한 변주로 이해될 수 있다.

‘평등의 원리에 대한 옹호’라는 문구는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 사실이다. 평등을 반대하든 찬성하든 간에, 철학자 또는 사상가치고 평등에 관해 한두 마디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랑시에르가 옹호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나 조건의 평등, 심지어 결과의 평등도 아니다. 그것은 원리로서, 공리(axiom)로서의 평등이다. 곧 평등은 달성해야 할 (또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나 과제가 아니라, 항상 이미 모든 인간의 행위 속에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이해하는 정치 역시 이러한 평등 원리의 옹호와 다르지 않으며, 이는 또한 올바른 의미의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은 실제로 평등할까? 가령 지적 능력의 차이는 어떨까? 우리가 알다시피 천재와 바보, 수재와 둔재, 세계적인 석학과 범인(凡人)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능력의 차이, 괴리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이 교육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아닐까?

놀랍게도 랑시에르는 이러한 차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알지 못하는 선생』은 19세기 네덜란드로 이주한 장 조제프 자코토(Jean-Joseph Jacotot)라는 프랑스 교사의 경험을 들려준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 불어 선생은 불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네덜란드 학생들이 불어-네덜란드어 대역본 책 한 권을 교사의 가르침 없이 그들 스스로 읽으면서 불어로 말하고 글을 써나간다는 놀라운 사실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의 교훈은 무엇일까? 랑시에르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교육이란 지식을 소유한 스승이 무지한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은 학생들(또는 무언가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 일반)이 이미 지니고 있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발휘하고 연마해가는 과정이지, 지적으로 우월한 누군가가 지적으로 열등한 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이는 곧 지식의 위계, 지적 능력의 격차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교육의 행위 자체는 항상 이미 지적 능력의 평등을 전제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미 알지 못한다면, 이미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교육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 평등의 원리는 정치에 관해, 민주주의에 관해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랑시에르는 서양 정치사상의 역사 전체는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논증의 역사라고 간주한다. 왜 민주주의란 불가능한 정치일까? 또는 적어도 최악의 정치일까? 그것은 민주주의가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두지 않는, 다시 말해 어떤 특별한 통치의 능력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통치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피통치자가 될 수 있는 정치,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자체이며, 여기에는 모든 사람의 평등에 대한 공리가 깔려 있다. 통치에 특별한 자격을 가정하는 것은 사회적 분업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는 또한 능력의 차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추첨이야말로 민주주의에 걸맞은 제도이며 선거는 본질상 귀족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과 같은 비판들이 제기된다. 과연 전문적인 지식과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현대 사회와 같이 복잡한 사회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을까? 더욱이 현대 사회의 대중은 공적인 문제에는 무관심하고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평등한 소비 주체들일 뿐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등만을 구현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파와 좌파의 구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랑시에르의 주장은 황당한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기존 제도권 정치 안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들이 통치하거나 사회적인 몫의 분배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 계속 되풀이돼 왔다. 고대 그리스의 빈민들의 반란이나 파리 코뮌, 68 운동 등은 그에 대한 증거들이다. 따라서 이는 적어도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사건의 분출은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번득임이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랑시에르는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좀 더 대결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왜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늘 예외적인 사건, 봉기로만 존재하는가? 지속적인 제도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은 불가능한가? 평등의 원리를 지속적인 과정 속에서 구현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아니, 그 이전에 대중이 스스로 행위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태원 강사 서울대ㆍ철학과 /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서양근대철학』, 역서로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있다.


* 다음 글은 <자율평론 15호>에 수록한 것으로, 이번에 난장 출판사의 이재원님이 주신 In Praise of the Common에 수록된 글 "Vicissitudes of Constituent Thought"의 Part I에 해당한다. 약간의 용어만 고친 것 외에는 그다지 손 본 것이 없다. 번역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01년 여름 로마에서 행한 조금 긴 대담의 요약본이다. 대담은 애초 이탈리아어로 진행되었고 이후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글의 편집에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도움을 준 Brynnar Swenson에 감사드리고 싶다.

* 체사레 카사리노Cesare Casarino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문화연구 및 비교문학 조교수이며 Modernity at Sea: Melville, Marx, Conrad in Crisis의 저자이다. 문학, 영화, 철학에 관한 그의 글들은 boundary 2, October, Raritan, Strategies, Paragraph, Social Text와 Arizona Quarterly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안토니오 네그리는 철학과 정치이론에 관한 무수한 책들의 저자이다. 영어로 나온 그의 가장 최근 신간은

* 용어도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초벌을 올린다. 삶정치/생정치에 관한 작업 노트의 일환으로 꾸준한 읽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고민의 가닥을 잡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무난할 듯... 조만간 기회를 내서 다시 수정할 것이다.

생정치에서 통치와 계몽으로

― 네그리와 푸코의 생정치 개념에 관한 노트

* 글쓴이 : 하코다 테츠(箱田徹)

* 출 처 : ≪현대사상≫ 2008년 5월호, (173~179쪽)

네그리의 푸코 독해는 비판적이며 도발적이다. 현재적 푸코 수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이론적 틀에서 푸코와 대화한다. 확실히 푸코는 근래 들어 다양하게 독해되고 있다. 생권력론을 묵시록적인 주권론과 결합시키는 철학자라든지, 통치성론보다는 감시사회론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도 있고, 말년의 계몽론을 자유주의 부흥의 큰 흐름 속에 위치시키는 정치철학자도 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통치성론으로부터 큰 정부에 대한 비판과 자기책임론을 이끌어내고, 신자유주의의 옹호로 재빨리 변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러한 모든 경향과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나아가 푸코를 현대의 사상상황에 관한 논쟁의 무대 위로 다시 올려놓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서 푸코란 ‘현실의 새로운 물질적 규정들이나 생산적 및 혁명적 컨텍스트의 변용과 결합된 이론적인 가능성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냈던’ 철학자이다.[안토니오 네그리, <제국적 포스트근대의 정치철학>, 上村忠男 감수, 提康德, 中村勝己 옮김, 東京: 築摩書房, 2007년, 146쪽.] 네그리는 생권력과 생정치라는 푸코에서 유래한 개념을 개정하고, 나아가 후기 푸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통해 현대적 푸코 독해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1. 생정치와 생권력 ― 푸코, 네그리, 아감벤

네그리는 ‘생권력’과 ‘생정치’라는 근래의 핵심 개념을 푸코에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넘어서는 것에, 이러한 두 개념의 의미가 네그리와 푸코 사이에 크게 달라진다는 것은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다. 푸코가 ‘생권력’을 정리된 형태로 논했던 것은 ≪앎에의 의지≫(1976)의 마지막 장인 <죽음에 대한 권리와 생에 대한 권력>이었다. 푸코는 여기에서 유럽에서는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주권자인 군주가 개인으로서의 신민의 생살여탈의 권리를 장악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권력 쪽에, 개인들을 주민(=인구)로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권력의 새로운 형태가 대두하게 되었다고 논하며, 이것을 생에 대한 권력, 즉 생권력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보다 앞서서 76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마지막 회(3월 17일)에서는 우생학이나 국가에 의한 인종차별(인종주의)이 권력장치의 질적인 이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언급되며, 나치에 의한 통치가 생권력의 일반화된 사회의 존재방식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푸코가 나중에 말하듯이, 주민이란 국가의 고유한 이해에 토대를 두고 돌봐주는 것에 다름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필요가 있다면 주민을 학살할 수도 있다. 죽음의 정치tanato politique는 생정치biopolitique와 표리일체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특히 2000년대 초반에 생권력과 생정치라는 말이 일거에 확산된 계기를 만들었던 것은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 네그리&하트의 ≪제국≫이었다. 아감벤에 따르면 ‘생정치’란 주권의 현대적 형태이며, 사람들은 여기에서 생물학적 존재, 벌거벗은 생이라는 극한상태로 환원되고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우생학이나 나치에 의한 강제수용소와 유대인 학살이다.[Foucault, Michel, Dits et écrits: 1954-1988, 4 tomes,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1994, IV, p. 826.] 다른 한편, 네그리는 현대는 포스트규율훈육형 사회로서의 ‘감시관리(control)형 사회’라고 말한 들뢰즈를 토대로 하여, ‘생권력’이란 규율훈육 권력이 전면화하여 생에 대한 감시관리의 양상을 점점 강화하는 권력의 현대적 존재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국’이란 생권력적인 전지구적 주권이다.

그러나 이들의 용어법은 사실과 개념 규정이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푸코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선 사실의 수준에서 말하자면, 푸코에게는 ‘생권력’과 ‘생정치’의 구별이 없다. 원래 ‘생권력’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던 시기는 1976년에 한정되며, ≪말해진 것과 쓰여진 것≫ 전체에서는 76년의 강연 <권력의 네트워크>에서 한번 등장했을 뿐이다.[Foucault, Dits, III, pp. 198~199.] 70년대 말의 통치성 강의에서도, 78년 강의 ≪안전, 영토, 인구≫에 한번 등장할 뿐이며, 이듬해인 79년의 강의 ≪생정치의 탄생≫에서는 한 번도 이 말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Foucault, Michel, Securitiè, territoire et population,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2004, p. 23.] 푸코의 이론적 틀에는 ‘생권력’은 고유한 개념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생정치’와 ‘안전’(securité)에 포섭되고 있다.

푸코에 따르면 ‘생정치’란 어떤 영역(베스트팔렌 체제 이후의 주권국가와 거의 같은 뜻)의 내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주민’(=인구)로서 집합적으로 파악한 위에서, 거기에서 생기는 건강, 위생, 출생율, 수명, 인종 등 생물학적 ․ 병리학적 현상을 문제화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국가의 통치 이성의 존재방식을 가리킨다.[Foucault, Michel,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2004, p. 323 & Foucault, Securitiè, p. 377.] 물론 섹슈얼리티의 병리학적인 문제화라는 주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안전’이란 생정치적 관리를 떠받치는 이념형 또는 장치이다. 범죄나 역병(疫病)을 사회에 부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 발생을 일정한 틀 안에서 통제하고자 하는 공중위생적인 발상을 일례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의 생정치에는 네그리가 논하는, 포스트-포드주의 체제 하에서의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의 구별의 상실, 경향으로서의 비물질노동의 대두 등과 같은 사태는 포함되지 않는다. 푸코의 생정치란 어디까지나 폴리스, 즉 행정관리에 관련된 것이며, 정치 개념이 아니다.

2. 생정치, 생권력과 주권 : 관계적 주관개념으로

이 사실을 토대로 한 위에서 푸코와 네그리의 개념 규정에 관한 차이를, 즉 생정치와 ‘주권’의 관계에 관한 차이를 검토하고 싶다. 푸코에게 있어서 생정치, 안전, 인구 등의 개념군은 무엇보다도 우선, 법을 축으로 한 주권형 권력으로부터 규범(norm)을 축으로 한 규율훈련. 안전형 권력으로의 이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푸코에게 있어서 자유주의의 결정적 새로움이란 죽음을 담보로 하여 명령하는 절대적인 주권형 권력으로부터 신체의 길들이기에 의한 규범의 내면화를 축으로 한 규율형 권력으로, 그리고 이로부터 나아가 집단에 관해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의 일탈이나 비정상을 허용한 위에서, 그것을 관리하는 안전형 권력으로 이행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로부터 간파할 수 있듯이, 푸코에게 있어서 ‘주권’이란 무엇보다도 우선 주권자로서의 군주를 통해서 작동하는 권력장치이며, 군주․신민 간의 지배․피지배의 관계이다. 물론 ‘주권-규율훈련-안전’이라는 권력장치의 세 가지 유형은 시대관통적으로 병존하는 것이며, 시대 구분을 위한 틀이 아니다. 다만 그것과 주권개념이 푸코의 권력론 속에 존재론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나아가 말하자면, 주권개념을 역사 한정적인 것으로 하는 푸코의 입장은 권력론의 주춧돌인 관계론적 권력 개념의 존재방식으로부터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란 국가와 개인들이 소유․행사․양도․탈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권개념이 권력 개념의 기초로 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네그리에게 있어서 주권은 생권력의 측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그런 위에서 생권력과 생정치의 본질적인 비대칭성이 파악되고 있다. 즉 생권력이란 전지구적 형태로 행사되는 주권의 ‘제국’적 형태이며, 생정치란 거기에서 영위되는 다중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생산활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틀 아래에서 네그리는 ‘제국’과 다중 사이의, 또는 자본과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현대적 적대성의 쟁점이, 생 그 자체라는 것을 서술한다. 그리고 ‘일자의 통치’를 섬기며, 주권에 관한 투쟁을 정치적인 범주의 사태에 한정하는 주권이론이 ‘만인의 만인에 의한 통치’라는 절대민주주의의 이념과, 다수이자 종별적인 다중의 구성적 권력을 항상 가두어 왔다고 지적한다.[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다중≫ 제3부 제3장 <다중의 민주주의>를 참조.] 물론 ‘제국’에는 중심이 없으며, 생권력도 무엇인가가 독점하여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푸코가 탈중심화한 권력 개념을 얻기 위해 상대화한 주권개념을 분석의 중심에 놓고, 생권력을 통해 현재의 세계를 고찰한다는 것은 이 개념을 아감벤이 묘사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1976년의 푸코에게 극히 충실한) 생정치와 근접하게 되며, 종말론적인 어조를 띠게 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네그리, ≪다중≫, 제1부 <전쟁>을 참조.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다음 대담 속의 이치다의 논의를 참조. (특히 71~73쪽) 이치다 요시히코 외, <다중이란 무엇인가>, ≪현대사상≫ 제33권, 제12호, 2005년, 56~75쪽.]

그러나 동시에 네그리에게 있어서는 주권의 생권력화라는 사태는, 생권력의 저항의 가능성을 조금도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견 비틀어진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중≫ 제3부 제3장 <다중의 민주주의>에서, 네그리가 강조하는 주권의 ‘관계’적 성격이다. 즉, 주권이란 일자의 통치를 집행하는 권력이면서 동시에 자본과 노동, 통치자와 피치자, ‘제국’과 다중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네그리는 여기에서 생정치와 생권력의 본질적 비대칭성을 확인함으로써 ‘제국’의 주권이 지구 전체를 포함해가기 때문에, 양자의 적대성은 더욱 첨예화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권이 양면성’이라는 표현을 통해 주권이 품고 있는 본래적인 모순을 노출시켜 보여준다. 확실히 현대의 주권은 생권력이라는 형태로, 신민에 대한 생살여탈의 절대적 권리를 손에 넣고 있다. 다만 그 권리를 전면적으로 행사하는, 즉 신민을 섬멸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며, 생에 대한 지배를 거절하는 다중의 저항을 억누를 수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이 자기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노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며, 노동과의 타협을 반드시 강요받게 되듯이, 제국의 주권도 다중의 생산성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즉, 주권이란 외부가 없다는 의미에서 절대적이지만, 피치자로부터 자율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제국’은 다중의 동의를 취득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존속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네그리가 관계라는 표현으로 주권을 재파악하고, 그것을 항쟁이 전개되는 장으로서 제시하는 것은 후기의 푸코가 ‘통치’를 권력과 저항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물음의 틀로 파악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3. 자기와 타자를 이끄는 운동으로서의 통치

통치 개념은 1978년에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의 이론적 틀 속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이듬해 ≪생정치의 탄생≫을 포함한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에 관한 고찰로부터, 82년 강의 ≪주체의 해석학≫이나 ≪쾌락의 활용≫과 ≪자기에의 배려≫(모두 84년)에서 논해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 학파들과 자기에의 배려의 실천, 또한 동시기에 전개된 파레시아론에 이르기까지, 후기 푸코의 사색 전체를 인솔한다. 푸코는 이 개념을 도입했을 때부터 이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파악하고 있다. 원래 ‘통치’라는 말이 ‘국가의 통치’라는 현대적 의미를 얻었던 것은 16세기 이래의 것으로, 그 이전의 기독교 세계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이끈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나아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통치하다’에 해당하는 라틴어나 그리스어 단어는 관리나 운영, 배의 조타(操舵)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위를 토대로 하면 ‘통치’gouverner란 무엇인가를 ‘이끄는’conduire 운동이다.

확실히 현대의 ‘통치’라고 말하면,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서양 근대의 통치이성의 존재방식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푸코가 70년대 말에 다루었던 대상은 베스트팔렌 체제에 의한 주권국가 체제의 성립에서부터 절대왕정 말기에 성립된 자유주의의 맹아적 형태로서의 중농주의의 경제이론, 그리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쳐 성립한 수정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석유위기 이후의 서방 세계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던 시장원리주의적인 신자유주의의 통치이성이었다. 이러한 ‘사람의 통치’의 원형에 있는 것은 기독교의 사목, 신도 관계를 원형으로 이념화된 ‘전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목권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 이해를 뛰어넘은 통치성 강의의 흥미로운 점은 통치 개념의 계보학적 분석이 당초의 목적이었던 국가론 영역을 처음부터 보기 시작하여 사목의 구조도 포함한 ‘통치’와 ‘이끎’의, 초역사적이라고 말해도 좋은 틀을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틀에서 보면, 자유주의도 또한 ‘자기의 자기에 대한 통치’이며, 국가의 자신에 대한 관계를 문제화하여, 항상 자신이 ‘지나치게 통치하는’ 것에 대한 불안에 빠져드는 통치이성의 한 가지 유형으로서 파악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목의 구조와 주권국가 체제가 결합된 근대적 통치성이란 중요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보면 통치의 한 형태에 불과한 ‘통치의 사고accident’인 것이다.[Carsenti, Bruno, “La politique de dehors,” in Multitudes, vol. 22. 2005, pp. 42~3. 이 전후의 논의에 관해서는 다음의 졸고를 참조. 箱田徹, <에로스의 기법을 재독하다 ― 푸코 통치론의 형성과정>, ≪사회사상사연구≫, 제31호, 2007년, 91~107쪽.]

‘통치’의 문구(問口)가 이렇게 넓게 설정되었다는 것의 의의는, 이 개념이 권력론과 저항론의 두 측면을 나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흥미롭게도 푸코는 통치성이 변용하는 원인을 학문이나 통치구조에 의한 실천의 ‘자율적인’ 전개에서가 아니라 기존의 통치성에 대한 도전(또는 저항)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아가, 기존의 ‘이끎’과 ‘대항 이끎’[≪안전, 영토, 인구≫]의 역동성에 의해서, 종교개혁이나 자유주의의 탄생을 이해하고자 했다고도 할 수 있다.[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Foucault, Michel, “Qu'est-ce que la critique?”[Critique et Auflärung], Bulletin de la Société française de Philosophie, vol. 84, no. 2, 1990.] 그리고 여기에서는 통치의 양의적인 성격이 확실히 의식되고 있다. 예를 들어 푸코는 중세의 개혁적 수도원에서의 성직자의 육성방법을 사목권력의 모형으로서 논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도원의 설립 자체를 부패한 카톨릭교회의 이끎에 대한, 신자의 대항이끎으로써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란 혁명을 대항 이끎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그 도식을 염두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箱田徹, <이슬람적 통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 푸코의 이란혁명론과 대항이끎>] 양자에 공통적인 것은 개혁이나 저항이라는 대항이끎이 제도화라는 이끎에 항상 선행한다는 점이다. 즉 푸코는 1970년대 말에 통치를 자신의 어휘에 덧붙인 단계에서 이미, 권력과 저항의 물음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개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생정치와 계몽의 현행성

이렇게 보면 네그리에 의한 관계로서의 주권개념과 푸코에 의한 이끎으로써의 통치 개념은 모두 권력관계의 내부에서 투쟁하는 주체의 운동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역사적 배경을 돌이켜 보면 의외의 것을 알 수 있다. 네그리가 ‘제국’ 개념을 신자유주의의 전지구화의 맥락에서 구상했듯이, 푸코는 ‘통치’ 개념을 석유위기 이후의 프랑스 경제의 지속적 저하와 지스칼 데스탕 정권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도입의 맥락 속에서 구상했다. 푸코는 규율훈육형 권력의 시대가 결정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안정형 권력이 전경화되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다른 한편, 훈육규율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감시와 처벌≫ 제4부의 후반에 등장하여 규범의 체현자로서의 재판관의 교설을 가볍게 받아넘기는 경범죄자(비행자)에 의한 비규율indiscipline의 실천이며, 수용과 교정을 목표로 한 체제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울려퍼졌던 ‘투쟁의 울림’이었을 것이다. 다만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비규율은 이미 저항으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하고, 개별적 투쟁은 급격히 쇠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푸코는 ‘계몽’과 마주쳤던 것이다.

푸코가 계몽의 사상가로 간주한 것은 칸트와 보들레르이다.[다음을 참조. Foucault, “Qu'est-ce que les Lumières,” Dits, IV, pp. 562~578; Foucault, Michel, Le Gouveranement de soi et des autres, Paris: Editions Gallimard/Le Seuil, 2008, pp. 3~39.] 칸트에게 있어서의 ‘계몽’이란 이성에 관한 미완성 상태로부터 벗어나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즉 타인의 이끎이 없이, 자신을 이끄는 것, 이성을 공적으로 사요할 수 있는 입장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람은 역사적인 과정의 한 요소로서 계몽을 집단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행위자로서 계몽에 참가하는 것에 된다. 이 세상이 이미 계몽의 시대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현재란 어떠한 시대인가를 자신에게 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들레르도 역시 예술을 통해 현재를 살고자 한다. 그의 태도는 시대의 유행을 뒤따라가기만 하는 댄디적인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현재와의 관련 속에서 자신을 당사자로서 ‘미적으로’ 구성해 가는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끊임없이 실천한다는 고유한 생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계몽적이고 모던한 댄디즘을 발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기에서이다. 칸트와 보들레르,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현재란 과거와 마래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위치지어지는 역사상의 한 시대가 아니다. 현재성(현행성)이라고 푸코가 부른, 종별적인 지금 여기의 것이다. 두 사람이 계몽을 살았던 것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살고, 또한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문제화하는 것을 통해 통치의 물음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네그리는 이러한 계보학적 시간의식의 존재방식을 푸코의 방법에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과거의 마래 사이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현재 속에서, 물음의 장소가 설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 그의 관점은 사건의 지각, 싸우는 것의 지각에 걸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지각되고 있는 모든 필연성이나 모든 목적론으로부터 빠져 나와 위험을 부르짖는 기쁨을 지각하는 것에 걸맞는 것입니다.”[네그리, <‘제국’적 포스트근대의 정치철학>] 이것은 ≪제국≫에서 발견되는 푸코의 계몽론에 대한 비판, 즉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머문다는 그의 입장은 일반적인 계몽론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제국≫, 윤수종 옮김, 이학사]로부터 한걸음 내딛은 것이다. ≪다중≫에서는 또한 이렇게 쓴다. 생정치적인 이의제기의 존재론적 조건은 “미셸 푸코가 현재성과 우리들 자신에 관한 비판적 물음이라고 부른 것에 가깝다. … 이러한 이의지게의 하나하나 속에 민주주의의 기획이 내포되어 있으며, 많은 투쟁은 다중의 ‘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네그리, ≪다중≫, 조정환 외 옮김, 세종서적.]

물론 푸코의 이론적 틀에서 보면 주권의 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가 욕망이라는 말에 포함시킨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어조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열지 않았듯이, 주권도 또한 법적 권력관의 뉘앙스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양대세력이 형성하는 적대성도 선택지에 들어가지 않는다. 푸코가 통치나 이끎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은 개인으로부터 국가에 이르는 모든 주체의 이끎을 동일한 구도에 의해 설명하고, 권력론과 저항론을 접속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통치란 자기를 이끌고, 타자로부터 이끌어진, 타자를 이끈다는 삼중의 운동이며, ‘자기’란 재귀대명사인 이상, 어떠한 것도 통치의 주체로 될 수 있다. 말하자면 푸코는 집합적인 주권성의 조직화를 상세하게 말하는 것도, ‘좋은’ 이끎의 조건들을 논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푸코에게 있어서 계몽이란 “의지와 권위, 이성의 사용과의 사이의 종래의 관계의 변천”이며, 방기나 부정이 아니다. 이 변천이라는 실천의 형태는 자기와 타자가 이끎과 대항이끎을 통해 관계하는 모든 장면에 공통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신을 이끈다는 운동을 거절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푸코에게 있어서 통치의 장에는 항상 이미 이끎이 있으며, 투쟁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통치의 실천으로서의 다중의 미래에 관해서 푸코가 무엇인가를 말할 수 없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네그리가 생정치 개념을 ‘정치적인’ 것으로서 재독해하는 것을 통해, 이끎과 대항이끎이 서로 다투는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무대 위에서 이 개념을 꺼내었다는 것은 후기 푸코의 개념군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해 논쟁적으로 독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1. Favicon of https://www.file-pick.com/ BlogIcon 무료 영화 2019.01.22 11:55

    잘보고 가욤 ~

이 글은 우연히 발견했다. http://globalization.mcmaster.ca/wps.htm
맥마스터 대학교에 <세계화와 인간의 조건>이라는 학회가 있나 보다. 2008년 3월에 발표된 것이니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울 듯...
다른 글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번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다운로드 받아 번역 또는 발췌본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 아래의 글은 안토니오 네그리의 "Logic and Theory of Inquiry: militant praxis as subject and as episteme "을 번역한 것이다. 원래 이 글은 http://www.generation-online.org/p/fpnegri20.htm 및 http://eipcp.net/transversal/0406/negri/en 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네이트 홀드런과 아리안느 보브가 영어로 옮긴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이탈리아어판과 일본어판으로만 출판된 <제국에 관한 다섯 개의 강의>의 제5강 1장이기도 하다. 애초에 일본어판만 출판되었기에 그것을 토대로 번역했다가 이제서야 영어판을 참고하여 수정, 공개한다. 2004년도에 처음 접한 것이니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또 이러저러한 일에 쫓기다보니 제대로 교정교열을 보지 못했다. 일단 업로드한 후에 나중에 가독성 등을 고려하여 다시 한번 수정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한글에서 작업한 것이라 복사해서 그대로 옮길 경우 겹낫표 등이 있을 경우 업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급적 옆에 첨부한 PDF 파일을 다운로드 받기 바란다.

 

제5강의

5-1. 연구의 논리와 이론

―주체와 에피스테메로서의 전투적 실천

역사적 인과성과 ‘제국’ 개념의 존재론적 계보학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는 거대한 사회운동, 통치 기법의 변형과 주권의 구조적 장치들dispositifs의 변형을 (헤겔, 맑스의 용어를 따라) ‘개념 속에 포섭’시키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학을 실천했지만, 그것만 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유형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기능적 이행을 철저하게 조사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건의 펼침 속에 현존하는 잘못된 기반(wrong-footedness)과 모순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아온 경로는 우리에게 일련의 방법론적인 물음들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 우리가 반드시 검토해야만 하는 그런 물음들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검토해야만 하는, 논의 속에서 떠오른 첫 번째 쟁점은 존재론적 운동 요소와 제도적 운동 요소(각각 운동과 정치인)의 결합conjugation에 의해 결정된 이행과 관련된다. 사회운동과 제도적 변화 사이의 관계는 운동의 본성 자체의 변형과 병행하여/나란히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행은 근본적으로 물질적 노동의 헤게모니에서 비물질적 노동의 헤게모니로의 이행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 실존, 표현 형태들을 변형시켰던 노동력의 내부 과정에 대한 분석이 근본적인 것이다. 역사적 진화에 대한 설명은 노동의 이러한 존재론적 차원 내부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들이 이처럼 노동의 심대한 변형으로 채워지고, 이 변형과 연결되고, 이 변형에 의해 산출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효과적인 투쟁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투쟁은 단순히 임금 할당allocation의 문제나 임금과 이윤 사이의 관계의 정량화quantification, 배분, 적대를 둘러싸고 전개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투쟁은 항상 노동을 해방하려는 의도를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오늘날] 노동의 이러한 해방은 비물질적 노동의 헤게모니로 이끄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노동의 거부’라는 60년대와 70년대의 슬로건(keywords)은 테일러주의적이고 포드주의적 노동 패러다임의 거부와 이것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일체화한 적극적positive 기호이다. 이러한 의지는 대중 노동자의 노동을 특징지었던 신체의 피로, 궁핍, 파괴로부터의 해방의 더 나은 조건이자 실질적 가능성들을 결정한 동시에, 인간 노동의 보다 진일보한 생산성 형태의 발견을 산출한다. 이러한 분석을 더 진척시키면, 우리는 삶 전체에 파고드는invest 노동의 새로운 차원과 마주친다. 방법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변동은 이러한 과정에 내부적인 해석적 틀을 우리에게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경제적 활동으로서의) 생산적 활동이라는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정서적, 의사소통적, 생적vital 이성을, 다시 말해서 존재론적 요소들을 통합하는 틀 속에서 노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측면들은 삶과 생산적 활동을 하나이자 서로 얽힌, 그리고 하나의 유효한 실재성으로 바꾼다. (이러한 ― 노동에서 생정치로의 ― 해석적 견지/열쇠를 받아들이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재생산과 같은 일련의 중심 문제들, 그리고 페미니즘에 의해 제기된 물음들에 직면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담론적 구조fabric 내부로 이것들을 포함시키고 다루게 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방법론적 관점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두 번째 쟁점은 다중의 정의이다. 우리는 다중을 ― 노동의 경험 및 변형과 연계된 ― 하나의 계급 개념으로, 그리고 ― 시민적 특이성들 속에서 새로운 관계들의 구축을 지향하는 민주적 제안으로서의 ― 하나의 정치적 개념으로 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로서의 삶으로 확장하며 공통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역량(potenza)의 장치dispositif로도, 즉 역량의 증대 및 삶, 생산, 자유의 새로운-의미부여re-qualification로도 정의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자주 주장했던 바를, 즉 우리는 지금 장기적으로 복합적인 이행 국면을 거치고 있으며, 그것의 모든 면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립한 다중 개념은 우리를 승화sublimation와 종합이라는 (지양이라는 헤겔적 방법의) 모든 변증법으로부터 점차 자유롭게 해 주면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헤겔과는] 반대로, 우리의 방법은 다중을 존재론적 문턱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중간이] 생략되고 차단되고 열려 있으며 비시대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다중과 마찬가지로, 방법은 사건으로 주름져 있으며, 이것이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생산을 따라갈 수 있는 또 다른 쟁점이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여기에서 주체성의 생산은 노동 활동의 가능한 수렴과 ‘공통적인 것’의 구축을 측면 지원하며 이를 발전시킨다.[여기에서 주체성의 생산은 노동 활동과 ‘공통적인 것’의 구축의 수렴 가능성을 도우며 이것을 발전시킨다.] 우리의 방법은 여기에서 아래로부터 출발하지만, 아래로부터 구축할 때 우리는 엄청난 장애물과 부딪치게 된다. 제4강에서 ― 자본주의적 통제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전쟁에 관한 논의에서 ― 저자와 독자 모두는 이러한 쟁점들과 직면해서 현재의 역사적 국면에 대해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쟁점들과 마찬가지로 이 쟁점에 관해서도 위험은 불가피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몰입immersion의 논리에 따라, 즉 우리 자신을 현재적인 것 내부에 위치시키고, 항상 아래로부터 출발하는 것, 더 이상 외부가 없는 곳에서 출발하는 것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를 굳게 다지기 위해서는 협력을 정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언어적 협력이 탈근대적 생산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는 물질적으로 말하는 기계가 언어를 수단으로 하여 기능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개인들 사이의 협력의 새로운 형태들이 언어를 통해서 계속하여 출현하는 한에서 그러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개인들이라기보다는 협력하는 특이성들이다. 하지만, 만일 언어적 협력이 생산적 협력이라면, 모든 것이 이러한 협력 내부에 있다면, 그리고 그 내부에서는 다중이 구성권력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흐름들 안에서 잡다함diversity과 명령의 분절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 이들의 각각의 활동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명확한 방법론적 용어로 보면 문제는 이러하다. 즉, 이러한 전개/발전을 내부에서부터 어떻게 평가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내부에서부터 이러한 전개/발전을 어떻게 절단할 수 있을까? 협력의 형태 자체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기에 충분치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통적인 것을 몇 가지 혼동을 제거하고 차이화differentiation의 다의적인equivocal 결여[오류에 의한 식별 곤란]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차원으로 정의하는 (맑스적) 실타래를 따라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통적인 것은 구별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경영자를 노동자로부터 분리할 수 있게 해 준다. 사실상 ‘공통적인 것’의 긍정만이 내부로부터 생산의 흐름을 이끌게 해주며,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적 흐름들로부터 인식과 자유를 재합성하는 것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면] 문제는 공통적인 것의 실천의 중심성을 재확인/재긍정할 수 있는 실천적 단절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우리 연구 전체에 있어서 유일하게 가능한 방향은 공통적인 것의 구축 과정에서 인식과 행위의 전투성 및 수렴의 새로운 형상들을 통해 해석되어야만 하는 적대의 과거fore 형태들로 돌아가는 것이다. 방법에 관한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는 실천적, 물질적 결정이다. 즉 순수하게 비판적인 틀을 파괴하는 실천인 것이다. 언어와 협력은 이러한 과정 내부에서 인식과 행위의 구체적 통일인 실천적인 단절에 의해서, 공통적인 실천의 중심성의 수립에 의해서 횡단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이 쟁점을 다룰 수 있으며, 그러한 방법의 모범적 형태로서 ‘공동 현황조사’joint-research에 관한 오뻬라이스모의 오랜 전통의 논의로 이를 요약할 수 있다. 공동 현황조사의 실시는 노동자를 생산적 주체로서 편입시킨 과정에 대한 자각과 의식 수준을 현장탐문inquiry을 통해 아는 것의 가능성에 다름 아니었다. 만일 내가 어떤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과 접촉하여 노동자들과 함께 그들의 노동조건에 관한 조사를 수행한다면, 공동 현황조사는 명백히 생산 주기에 대한 서술이자 그러한 주기 내부에서 각 개인의 기능에 대한 규정idenfitication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노동자 개개인과 노동자 전체가 겪고 있는 착취의 수준에 관한 일반적인/전면적인general 평가이기도 하며, 노동자들이 기계 시스템 속에서, 그리고 명령 구조 앞에서 자신들의 착취 의식에 관해 반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공동 현황조사는 공장 내부에서는 투쟁의 전망을 창출하고 공장 외부에서는 협력의 맥락thread이나 장치들devices을 정의한다. 분명히 현황조사에 있어서 실천 헤게모니와 중심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실천은 생산과 착취의 주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움이 되며, 이러한 실천이 저항과 선동을 결정할 때, 다시 말해서 투쟁을 발전시킬 때 고양될 것이다. 그러므로 적대적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 실천적으로 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논증은 모두 이것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뻬라이스모의 오랜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즉, 포스트-모더니티에 있어서, 그리고 노동과 사회적 조직화 무대의 총체적 변형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공동 현황조사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분명 어려운 질문이며, 나 역시 여기에서 대답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굳이 대답한다면,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에 관해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if anything, it is a case of moving forward and working around it.)

사실 우리가 오늘날 모든 실천적 유의미성을 지니는 연구에 관해 생각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의 생정치적 전제와 셋팅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연구의 중심 요소들은 신체들이 되어야만 마땅하다. 우리가 어떤 배치상태constellation나 합성composition을 구성하고 재현하고 싶다면, 또 이것들을 정의하기 시작한다면, 신체와 육체적 삶과 관련된 쟁점들의 대열이 있는 바, 이것들은 반드시 작동되어야만 한다. 나는 이 쟁점이 극히 중요하며, 우리가 실천하기 시작하고 있는 생정치적 방법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은 사회학에 의해 시도되었던 너무도 엄격한 분석적 방법론들과는 단절한다. 나는 그러한 방법을 살라미(salami, 마늘로 양념을 한 이탈리아식 소시지) 이론들이라고, 즉 사회적 신체에 대한 분석적인 잘게 썰기 이론들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 우리는 육체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와 대결하기 시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는 신체의 역량에 대한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루어야만 하는 또 다른 쟁점은 단순히 대상의 동일성이나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공통적인 것’을 향한 대상의 특이성과 노력thrust을 상정하면서assume대상을 구축하려는 ― 항상 그리고 각각의 심급에서 부정적으로 출발하려는 ― 시도이다. 이러한 방법론적 열쇠는 정말로 새롭고 독창적이다. 과거에 우리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s, 심미적aesthetic 인간, 심리적 인간 등등을 선별하고 이것들을 분석적으로 따로 떼어낸 다음 이것들을 가리키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다룰 수 있다. 과거에 우리는 결정의 과정과 현상의 특정성이라는 견지로부터 항상 동일성과 차이 사이로 귀결되곤 했던 것으로 나아갔던 반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결정 노력에 있어서 우리를 종종 막아서곤 하는 이러한 이분법적 대칭쌍을 뛰어넘어 다중을 ‘공통적인 것’으로서, 차이를 특이성으로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낡은 이분법을 말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차이들의 내용은 특이성들로 풍성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특이성들이 활동의 새로운 틀에서처럼 함께 움직이는 ‘공통적인 것’으로 풍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핵심 요소는 ‘공통적인 것’, 즉 신체들이며, 특이성이라는 논리적 범주이며, 신체들이 공통적인 것을 가리키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존재론적 전제조건으로서의 ‘공통적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학적 현황조사는 특이성이 그 내부에서 수립되는 ‘공통성’의 조건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배치상태는 계급 ‘합성’의 요소들이라는 낡은 배치disposition과 다소 상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신체적 공통의 풍부함 내부에서 새롭게 구성된 것에 상응한다.

(다음을 잘 생각해 보자. 생정치적인 것이 우리 연구의 전망으로 고안된 이후, 우리는 결코 신체들과의 접촉을 경유하여 전진하지 못했다. 각각의 특이성은 신체성으로서 정의되지만, 생정치적 신체성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신체성이 아니라 사회적인 신체성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노동의 불안정화와 같은 쟁점을 다룰 때, 우리는 확실히 실제로는 불안정 노동자의 조건 ― 노동의 이동성과 유연성 ― 이 지닌 피로한 육체적 성격physicality을 파악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노동-역량의 역량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덧붙여야만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한편으로는 불안정 노동을 강요하는 끔찍한 조건들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의 새로운 성질들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동일성과 차이 사이를 오가면서, 공통적인 것을 착취의 토대로 간주하면서도 동시에 저항의 활동으로 간주하면서 불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우리는 실천과 실천적 선택지option으로의 변동 ― 즉 적대의 재발견 ― 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행은 정확히 어디에 있으며, 적대의 선택지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 지금까지 말했던 것에서 보면, 이론적 제안은 명령에서의 착취를 협력의 수탈expropriation과 동일시할 것이다. 즉, 다중의 활동을 차단하는 가능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착취는 바로 공통적인 것의 풍부함 위에, 다중의 생산성 위에서 수립되며, 다중의 표현을 방해하고 그 표현을 침묵하게 만들며 탈신체화하고 제거하며 다중의 고유성properties을 제거하려는 시도 위에서 수립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체의 모든 측면과 관련된 강력한 물질성을 양도해야만 한다/소외에 부여해야만 한다. 이것은 특이성 및 ‘공통적인 것’과 맞부딛치는, ‘공통적인 것’의 표현과 그 구축 과정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실천과 명백하게 충돌하는 수탈이자 탈신체화이다. 나는 우리 연구를 보다 강하게 강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생산주체들의 특이하고 공통적인 배치/형성configuration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또한 포스트-모더니티에서 우리 눈앞에서 춤추고 움직이는 사태로부터 전개되고 있는 착취 ― 그러한 주체에 대해 깊이 있게 진행되고 있는 착취 ― 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물음을 아주 공개적으로 제기하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분명 민주주의를, 전지구적 규모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를, 즉 만인에 대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우리는 이것 외의 다른 용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매번, 다음과 같은 물음이 던져지기 때문에 우리가 덫에 걸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즉, 그렇지만 정확히 당신은 원하는 게 뭐야? 이러한 토대platform에서 당신이 주장하고 싶어 하는 민주주의적 요구의 목록을 제시해 보라고! 나는 목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굳이 말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말했던 것에 기초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욕망, 아니 어쩌면 ‘공통적인 것’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의 도식을 계속 발생하고 있는 대안적 제안들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준으로 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가끔, 최근까지도 극히 유토피아적인 것처럼 보였던 일련의 제안들 전체가 오늘날에는 점점 더 실재적으로 보이게 되는 인상을, 마치 우리가 이제 새로운 시대epoch로 접어들었다는 의식이 성숙했다는 듯이, 받곤 한다. 왠지 우리 또한 프랑스 혁명의 발발 전에 공표되었던 진정서나 탄원서cahiers de doleances에 비견될만한 것을 작성해야만 할 것 같다. 이 문서들은 제3신분의 불평이 제시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항의 이상의 것이었다. 즉, 이 문서들은 부정의에 대한 고발일 뿐만 아니라 그 해결방법의 제안이기도 했다. 아래로부터 작동하는 방법은 실천적 응답을 제공하기 위해 비판을 뚫고 나간다.

오늘날의 쟁점은 전지구적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하 겹낫표 문제로 생략. 전문은 첨부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길...)

http://www.bookforum.com/inprint/015_04/2973

제목 "Empire Burlesque"만 봐서는 제국을 패러디한 것인지, 제국이 희화화되었다는 것인지 모호한, 그런 글. 발문만 봐아도 여전히 모호한 내용의 글... 좀 분명한 어투로 쓰면 좋을텐디..
하여간 최근 네그리의 책이나 작업으로 무엇이 있나 살펴보다가 잡힌 글이다. 참고로 <정치적 데카르트>도 있는데, 아래 글에서는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없는 듯... 아, 그리고 <굿바이 미스터 소셜리즘>은 그린비 출판사에 판권을 샀다는 후문... 누가 번역할지 모르겠지만, 얼른 나왔으면 하는 소망. <제국에 관한 성찰>은 금시 처음보는 책이라 나도 살펴 봐야 할 듯. 내가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카사리노와의 대담이다. 이 책에는 내가 이미 입수한 글 두 개가 수록되어 있다(각각 <제국>, <다중>에 관한 중요한 인터뷰이다.) 오히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책에 수록된 다른 글들이다. 조만간 구입해서 (환율이 떨어진다거나 해야 할텐데...ㅠㅠ)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The Porcelain Workshop - For a New Grammar of Politics>은 2004년과 2005년에 네그리가 파리의 국제철학학교에서 열었던 10개의 워크숍을 담고 있다. "Biopolitics, biopowers, control, the multitude, people, war, borders, dependency and interdependency, state, nation, the common, difference, resistance, subjective rights, revolution, freedom, democracy" 등이 네그리고 이 실험실에서 다룬 내용들이다. 참, 제목으로 사용된 porcelain은 자기 제품을 나타낸다. 왜 이걸 제목으로 사용했냐고? 네그리고 포스트모더니티를 '도자기 공장'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이라나 뭐래나... 조금만 서툴게 다루기만 해도 깨져버릴 수 있는 섬세하고 연약한 구축물로서의 포스트모더니티. 자세한 것은 나도 봐야만 안다...


The master theorist of the resurgent global left may have been outsmarted by the current economic meltdown. But his all-too-perfect system may never have to acknowledge such real-world inconsistencies.

By SCOTT MCLE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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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ble went, roughly, like this: Protesters in the streets of Seattle and elsewhere were challenging the effects of the worldwide expansion of the free market, and some even identified themselves as anticapitalist; yet the movement itself was for the most part uninfluenced by any doctrine handed down from earlier generations. The age was not just postcommunist but postideological. And so was its radicalism, however contradictory that might seem. The movement was opposed to a system it was not especially interested in analyzing. Spontaneity, authenticity, and passion mattered more than theory. Indeed, the movement had no theory.

Until, that is, it suddenly did, in the form of a book by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called (starkly and simply) Empire, published by Harvard University Press in 2000. By the summer of 2001, the New York Times was assuring its readers that Empire was not just the definitive radical critique of globalization but the locus of “the Next Big Idea” that leftist intellectuals everywhere had been yearning for—so “hot” that it was “sending frissons of excitement through campuses from São Paulo to Tokyo.” One felt the need to get jiggy with it.

The spectacle of the Gray Lady in fashionista mode was hardly an improvement on the fallback position of most other critics of the reemergent global left, who continued to dismiss any leftish political formation as an idea-free zone for self-expression. Indeed, these perspectives were, if anything, two sides of the same coin. Each reflected a complete disengagement from the actual efforts at thinking and theorizing then under way. After all, in normal circumstances, journalists and pundits have no incentive to follow the debates in subterranean intellectual provinces—and the latter, for their part, tend not to send out press releases. So the claim that Hardt and Negri had synthesized the most profound of neo-Marxist analyses of the new-world order fast took hold in media circles, in no small part because several aspects of their theory—a free-floating vision of an unmobilized “Multitude” aligning, however inchoately, against a receding, Borg-like “Empire”—seemed, in its broad outlines, at least, to fit the received wisdom about where globalization was headed.

The system Hardt and Negri called Empire, in other words, seemed to have the solvent-grade ability to efface old-style political conflict that globalist cheerleaders like Thomas Friedman had been attributing to the spread of free trade. Empire, in this reading of things, would bring an end to war between nation-states and extend democracy across the globe. Old forms of political sovereignty were giving way to a decentralized but increasingly powerful structure of global financial institutions, transnational corporations, an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And the economy of Empire was driven by the productivity of “immaterial labor” (ideas, creativity, symbolic manipulations, postindustrial services) rather than ruthless exploitation of the sweated variety.

This analysis did not so much resemble Lenin’s strategy of supporting colonial struggles—the traditional neo-Marxian touchstone for reckoning with the spread of empire—as it played off the hope voiced by German democratic socialist Karl Kautsky that a regime of “ultra-imperialism” would emerge from the first World War, knitting the industrialized countries of Europe and America into an irenic alliance that could bring progress to the less favored sectors of the planet. But such doctrinal Old Left positions did not, perhaps, furnish the most salient possible comparisons. There were moments when Hardt and Negri sounded not only like Friedman but like Alvin Toffler on a speculative binge. Still, the elements of an earlier Marxian template were present. As Empire spread across the world, so did the other major player in this grand narrative: the Multitude.

This category (delineated in Empire, then revisited by Hardt and Negri in a sequel, Multitude, in 2004) somewhat resembled an older one, the proletariat in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But its locus of activity was no longer the old-fashioned factory—for now all aspects of human existence were integrated into global capitalism, so that nearly everyone was engaged in some form of social production, however indirectly. A student, for example, was doing the labor of acquiring skills that could be used on entering the job market.

Hence, the scope of the Multitude was vast, and its composition heterogeneous. It embraced both the pierced and tattoed computer programmer in Boston and the refugee in Rwanda who wore the T-shirt that the programmer had donated to an international relief agency. Each struggled for some margin of control, in life and work alike. And so globalization was uniting them in the struggle for democracy within the emerging order of Empire—albeit in the long run.

In the very, very long run.

Four new works by Negri appeared in English in 2008—the year we all found ourselves well downstream from that era when debate over 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 took the form of extrapolating long-term trends. The problem now is to find a way through the ruins. I have been studying the books in a state of heightened (indeed, strained) attention—with powers of concentration periodically stimulated and shattered by arteriosclerotic convulsions in the world’s financial markets—but also through tears in my eyes.

They are tears of perplexity and frustration. It is not that Negri’s most recent books pose difficulties, both conceptual and programmatic, that his earlier ones did not. The ambiguities have been there all along, as have the opacities. Still, they seemed poetic—not just in that terms like Empire and Multitude possessed a certain evocative, science-fictional luminosity, but also in something like the root sense of poesis. They did not simply name possibilities; they seemed to create a new thing in the world, if only by inciting the political imagination to new efforts. But the latest books do not have that quality. Negri’s analysis of the emerging system is itself a system—if not a world unto itself—and the movement of his thought is now largely centripetal.

Two of the titles, Reflections on Empire and The Porcelain Workshop, have an explicit pedagogical intent, consisting of “lecture” and “workshop” presentations (respectively) on the conceptual infrastructure of the Negrian system. The other two, In Praise of the Common and Goodbye Mr. Socialism, consist of transcripts of discussions between Negri and an acolyte. With In Praise, the editor and interlocutor is Cesare Casarino, a cultural theorist who teaches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clearly an advanced initiate, making for a volume that is something like a colloquy on the Negrian synthesis. By contrast, Goodbye is a set of topical interviews, with Raf Valvola Scelsi (the editor of an Italian anthology on cyberpunk) posing questions covering political developments from the fall of the Berlin Wall through the World Economic Forum’s series of meetings in the Swiss town of Davos in the mid-2000s.

The ensemble does not break new ground, but rather drives the plow once again through old furrows, digging them deeper. And in time, it scrapes against what seems to be Negri’s bedrock: an almost mystical sensibility. This outlook takes the form of deference to the ethical authority of poverty and to the seldom-grasped political radicalism of love, and there are invocations of the transformational and redemptive role of “the flesh.”

Some of this is moving, when it is not baffling—and the question of the revolutionary left’s relationship with religious belief is certainly more complex than Marx’s oft-quoted but usually misunderstood reference to the “opium of the people” would suggest (one hears little, for instance, of that phrase’s preceding sentence, which describes religion as “the sigh of the oppressed creature” and the “heart of a heartless world”). Negri mentions to Casarino that his initial experience of political activism, in the early 1950s, was as a member of Catholic Action: “We brought the question of class struggle to bear on theology in ways that already anticipated 1960s liberation theology.” But such epiphanies flicker only briefly, amid much longer periods of an almost neoscholastic mode of philosophizing. Revolutionary theory becomes revolutionary practice through the path of contemplation.

This seems an ironic complaint. Thirty years ago, Negri was a leader of the most confrontational wing of the Italian left (if not, as state prosecutors charged, the mastermind of the Red Brigades), and much of his work published since the late 1990s was done in prison, after he returned from exile in France to serve out the balance of a judicial sentence. Arguably, the man has earned the right to his armchair. Perhaps he should even be encouraged to stay in it from now on, lest anyone get shot.

And to be sure, the most recent iteration of his politics is built up around the themes of that earlier radicalism. Negri reconfigures the classic Marxist antagonism between labor and capital by developing a complex social metaphysics erected from distinctions borrowed from other philosophical registers. It takes the shape of an interlocking network of oppositions drawn from Spinoza (the “constituent power” of society versus the “constituted” state), Foucault (the “biopolitical” productivity of human populations versus governmental “biopower”), and Deleuze (the transition from “disciplinary” society, with its panoptic institutions, to the regime of open-ended and insatiable “control”). The result is a somewhat paradoxical fusion of Marxist class-struggle politics with a rather old-fashioned postmodernism (the sort rarely seen, in its pure form, after the late 1980s), which sought to establish an epochal division to separate itself from the social and cultural order of modernity. For Negri, that breach corresponds to a major transformation within capitalism itself, coming somewhere between the upheavals of 1968 and the oil crisis of 1973.

In this schema, laid out and elaborated to varying degrees in all four of the newest Negri translations, the characteristic form of modern capitalism is the factory, and its assembly line is the locus that embodies the pace of work and the division of labor. Class struggle focuses on the desperate need of the capitalist to extract the most labor possible from each moment spent by the worker on the premises, while paying as low a wage for it as can be managed. By contrast, Negri argues that the postmodern mode of capitalism is driven not only by the imperative to exploit its labor pool as efficiently as possible but also by the need to innovate constantly. The factory is no longer its prototypical site—for it ceaselessly reinvents the processes and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obliges workers to retrain and relocate themselves, just to keep up.

Much of this is familiar from the literature of postindustrialism. And the postmodern vision of capitalist production tracks to a whole series of social and cultural transformations, including the weakening of labor unions and the fragmentation of working-class communities. It is not a story that people on the left usually tell with enthusiasm. But in Negri’s analysis, the transformations over the past four decades or so of capitalist development came about as efforts to contain and subordinate the capacities of a workforce that grew only bigger and more mobile and more creative all the time. In Goodbye Mr. Socialism, he says that the swarm of the Multitude—i.e., the “subaltern classes”—have “a fixed capital richer than that of the bosses, a spiritual patrimony more important than what the others boast, and an absolute weapon: the knowledge essential for the reproduction of the world.”

That’s all nice to hear—but we’d still like more money. Health insurance would be good, too. As much of Negri’s work at least tacitly acknowledges, the union movement—which has supplied the traditional means for workers to extract an increased wage from those who command the economy—has been kicked in the face repeatedly over the same period of rampantly globalized capitalism. So in the world beyond the reach of Negrian certitude, much of the difference has been made up through credit cards and multiple jobs. Well, not anymore it won’t be. But what will fill the gap? What, as old question goes, is to be done?

The great perplexity involved in reading Negri comes from the sense that surely his concepts must, sooner or later, enter sublunary orbit, and hover over the terrain of politics, and provide something resembling an actual plan of action. But this is not quite what happens. The problem is not that the framework is abstract. Rather, it is that the system is just too beautiful. When actualities run counter to the theory, they are absorbed, and the theory instantly corrects itself by making flaws into features.

The peaceful nature of Empire being the most important example. With sovereign power no longer held by nations—but rather by the decentralized, delocalized, yet panoptically efficient global institutions of Empire—the age of conquest and colonial subjugation came to an end. Mind you, this shift did not imply that the days of military force had passed—but that henceforth all wars would be, in essence, civil wars within the common space of the world order.

Clearly, someone at the Pentagon did not get the memo. But that is not, it seems, a problem with the schema: “Iraq was the American attempt to get its hands on Empire,” Negri tells Scelsi, “an attempt at a coup d’état by means of permanent war, now a constitutive element of imperial development.” In response, “the global order is configured more and more against American hegemony.” The resistance is manifesting itself through “powers diffused and consolidated around four or five continental poles.”

Which sounds rather like the argument that the world has returned to its condition circa early 1914—a set of great powers, a system in which a handful of supersovereignties divide up the geopolitical map. But the devil is in the details. For Negri, the model of the universal, homogenous Empire is still in force. “From the monetary point of view,” he contends in Reflections on Empire, “the United States is increasingly exposed and weakened on the financial markets: and this is also excellent news. In short, in all probability the United States will soon be forced to stop being imperialist and recognize itself as being within Empire.”

Any resemblance to mainline thinkers, such as Fareed Zakaria, who likewise foresee a multipolar— or “nonpolar”—world order of fast-diminishing US influence is quite beside the point. After all, the implications of Negri’s logic are far more wonderful than anything bourgeois punditry would permit itself. For by subordinating the American imperialists to Empire, global depression would actually reduce international tensions. A look back at the geopolitical fallout from the last great global depression in the 1930s does not exactly lend credence to this somewhat sunny view. But the point, in Negri’s view, is that the world has changed.

Of course, it is also possible that the outcome might be a little more dystopian: decades of resource wars, perhaps, with the scarce commodities in question being not just oil but food and drinking water. In that case, expect more attempted coups d’état against the command structure of Empire.

What makes all of this nearly unbearable for the garden-variety leftist reader—and Negri’s work cannot have much of an audience elsewhere on the continuum of political opinion—is that everything grows exponentially woollier the closer it gets to questions of agency. Who, in the system of Empire, has the means and the motive to change things? And why? And how? (Who in particular, that is, for a category so boundlessly capacious as the Multitude embodies the worst features of utopian, counterculturalist, and populist thought, all at once.)

We learn that it is necessary to preserve “the common” from exploitative incursions, with “the common” in Negri’s idiom meaning not, say, public lands, but rather the culture, information, and forms of life created outside capitalist production. This is, even, the definitive axis of struggle for the Multitude: the point around which a new communist politics for the twenty-first century becomes possible.

Here, readerly perplexity begins to compound itself. Negri is not totally wrong. Questions regarding the control of intellectual property are tremendously important. Preserving and expanding the possibility of noncommodified forms of human creativity is sometimes a matter of life and death—as the revolutionaries in Chiapas and during the Prague Spring found in the course of very divergent ideological battles. But so is defense of “the common” in the pre-Negrian sense: the world of shared material resources and human needs. We all have to breathe, for example. The ability to do so for free may not last forever. At the present rate, good air will be a commodity one day, like the gasoline now destroying it.

So is it really the case that—as Negri would have it—struggle over immaterial production is the definitive zone of engagement for the left? Assuming it is still a worthwhile thing to be able to exercise control over certain tangible aspects of the economy—wages, benefits, and working conditions, for example—just where and how is the Multitude to do so? Not through state power, evidently, given that actual sovereignty rests in the disembodied Empire. But where does that leave us? What instruments do we have? Other than free software, that is?

“I want a Left that knows how to swim in the sea that we have in front of us and in which each of us is immersed,” says Negri in Goodbye Mr. Socialism, “a Left that knows how to reinvent itself.” Yes—and wanting it is a first step. But the sea level is rising, and a few weeks spent reading Negri feel like an advanced course in drowning.

Scott McLemee contributes the Intellectual Affairs column to http://www.insidehigher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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