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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front populaire du risque”, Multitudes, no8, mars-avril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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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인민전선 http://www.multitudes.net/Le-front-populaire-du-risq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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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다 요시히코, 김상운 옮김(2015년 4월 7일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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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여기 상자 안의 글은 이치다 요시히코가 『존재론적 정치 : 반란·주체화·계급투쟁』에 이 글을 스스로 번역하여 수록하면서 덧붙인 글이다. * * * 『멀티튜드』 8호(2002년 3-4월호)에 게재된 논문이다. 오늘날의 일본 독자들에게는 배경 설명이 필요한 텍스트일 것이다. 2000년에 창간된 이 잡지는 “푸코 사후의 푸코”를 묻는 것을 하나의 기둥으로 삼고 있으며(창간호 첫 번째 특집이 “생명정치와 생명권력”이었다), 창간과 거의 비슷한 무렵에 프랑수아 에발드와 드니 케슬레가 『논쟁』에 발표한 공동 논문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은 『멀티튜드』의 편집위원회(나도 편집위원이었다)에 일종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에발드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푸코의 조수였을 뿐 아니라, 푸코 사후에는 유언집행자의 한 명으로 유고의 관리를 담당하며, 단행본에 미수록된 텍스트나 대담의 수록과 출판에(일본어 번역, 『ミシェル・フーコー思考集成』, 총10권, 筑摩書房, 1998-2002년),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일본어 번역, 『ミシェル・フーコー講義集成』, 총13권, 기간행 8권, 筑摩書房, 2002년부터 간행 중)의 편찬에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케렌스, 다니엘 드페르(푸코의 사생활의 파트너로, 마찬가지로 유언집행인)와 마찬가지로, 그도 원래는 마오쩌뚱파의 활동가였다.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나 푸코가 주관한 세미나에는 피에르 로장발롱(노동운동사, 경제사상사)이나 로베르 바당테르(변호사)처럼 머잖아 [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푸코 우파’로 불리게 되는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에발드는 그의 정치적 출신 때문에 이런 ‘우파’와의 거리를 뒀고, 그 때문에 자타가 공인하는 ‘푸코 좌파’에 위치했다. 특히 1986년에 출판된 그의 대작 『복지국가』는 만년의 푸코의 ‘생명정치’와 ‘통치성’의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둘 다를 ‘좌파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해 케슬레는 좌파운동에서부터 노동운동을 거쳐, 1998년에 창설된 프랑스 경단련(정식명칭은 ‘프랑스기업운동 MEDEF’ : ‘프랑스경제인연합회’의 후계 조직)의 이데올로그로 ‘전향’하고, 90년대 후반에 파탄의 기미를 강화했던 연금제도에 관한, 재계의 입장에서 제시된 개혁 플랜인 「사회재정초Refondation Sociale」의 실질적 작성자가 된다. 문제의 논문인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은 그 ‘전향 마오주의자’ 케슬레에게 ‘푸코 좌파’여야 할 에발드가 합류하고, 둘이서 ‘푸코 우파’보다 더 ‘오른쪽’으로 ‘푸코 사후의 푸코’의 방향타를 꺾었다고 『멀티튜드』의 편집위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 때문에 급하게 ‘에발드-케슬레 문제’를 다루는 특집이 기획됐는데, 이것은 4호(2001년 3월)에 「경영자들의 푸코」라는 두 번째 특집으로 실현됐다(마우리치오 라차라토 외 5명의 논문과 인터뷰를 수록). 그러나 당시 내 역량으로는 4호에 맞게 원고를 준비할 수 없었고, 만년의 푸코 ― 특히 거기에서의 자유주의의 애매함이라고도 볼 수 있는 취급방식 ― 에 관해서는 지면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뤄지게 됐기 때문에, 뒤늦게야 완성된 졸고는 독자적인 논고로, 이른바 4호의 연속으로서 8호에 게재됐다. 내 눈에는 당시 프랑스, 특히 좌파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경제학’이 너무도 등한시되어 왔다고 비춰졌다. 4호 특집도 ‘(신)푸코 우파’에 대한 ‘철학’을 경유한 ‘정치적’ 비판에 머물렀다고 생각하고, 그 중에서는 유일하게 ‘경제학’적이었던 앙토넬라 코르사니의 논문도 푸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임노동의 변용을 다뤘다. [프랑스처럼] ‘철학’에 경도된 ‘정치’와 실용주의적 정책논쟁으로 양극 분해되기 쉬운 지적 풍토 속에서 에발드 등은 ‘경제학’에 면역이 없기 때문에 ‘최신의 금융공학’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라고, 좌파사상이 ‘경제학’에서 시작된 나라에서 온 내게는 생각됐다. 나아가 ‘사회학’이라고 할 때, 부르디외라는 프랑스인의 ‘상식’에도 의문을 느꼈다. 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떤 ‘사상적’ 태도를 갖고 임할 것인가와는 다른 차원에서, 독일이나 영국에서 이 학문이 갖고 있는 현실적 영향력에 관해 프랑스인 좌파는 관심을 갖고 살피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경제학’과 ‘사회학’에 대해 내가 어설프게 안다는 점을 승인하면서도, 이것들과 푸코, 나아가 들뢰즈-가타리를 링크시키는 소재로서도 ‘에발드-케슬레 문제’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리스크’론이나 ‘금융공학’은 모두, 이 원고가 집필된 후의 세상에서는 거의 상식이 되어버렸다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 독자들 중에는 ‘뭘 쫑알대며 새삼 해설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이 글을 번역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아직 ‘신경제(new economy)’의 가면이 벗겨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제’는 불황을 최종적으로 극복한 것이 아니냐고 그럴싸하게 속삭여지곤 했다. 일본에서 나카타니 이와오가 신자유주의 옹호자에서 비판자로 ‘전회’한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 2008년이다. 신자유주의의 영광을 체현하는 듯했던 ‘신경제’라는 말은 오늘날 경제논단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를 지탱했던 ‘금융공학’은 몇 가지 파탄극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원고를 집필하던 시점에서는 여전히 ‘혁신’의 빛깔을 내뿜고 있었다. 조지 소로스가 꾸몄다고 말해지기도 했던 1997년의 아시아외환위기 등은 오히려 이 신기술의 힘을 과시하는 결과가 됐을 정도다. 에발드와 케슬레의 리스크론을 통한 ‘사회재정초’의 시도는 틀림없이 ‘신경제’와 ‘금융공학’이 좌파에까지 침투했다는 것의 역사적 증언이다.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혹여 이것은 ‘좌파의 입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그들은 (적어도 에발드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보면, 이 글은 2008년 말에 내가 『멀티튜드』 편집위원직을 사임하게끔 운명지었다. 위원회 자체가 분열했기 때문에 사임한 것이기도 했지만, 여기서 쓴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나는 편집위원회의 주류파 노선을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그린 뉴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류파는 “금융기술의 멀티튜드적 사용”이 가능하다고 봤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것을 추구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기 시작했는데(자세한 것은 이 책에 수록된 2013년의 논문 「우리는 모두 네그리주의자이다」를 참조 바란다), 내게 이들의 입장은 ‘에발드-케슬레’를 약간 수선한 것에 지나지 않는 듯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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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에발드는 드니 케슬레와 함께, 복지국가의 ‘찌르는 듯한 위기lancinante crise’를 재차 확인한다.1) 에발드에게 이 위기의 시대를 특징짓는 근본적인 새로움이란 무엇일까? 그가 보기에 복지국가는 왜, 그리고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통제하는(control) ― 그 ‘주체’를 생명정치적으로 생산하면서 ― 능력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을 잃은 것일까? ‘사회재정초’ 프로그램은 법과 국가적 보호를, 경영자와 조합의 계약으로, 그리고 이윤의 원리로 대체하려고 한다.2) 도대체 사회의 어떤 근본적 변화가 예전에는 ‘푸코 좌파로 여겨졌던’3) 프랑수아 에발드가 경영자들과 맺는 동맹을 정당화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리스크이다. 우리 시대의 역사적 새로움을 표지하는 것은 리스크의 질과 양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리스크, 리스크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리스크는 더 이상 18-19세기, 나아가 20세기의 것과도 같지 않다.”4) 이런 객관적 변화 이상으로 주체적 요인의 진화도 간파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모든 개인적·집단적 사건들을 실제로 리스크로 사고한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새로움을 구성한다.”5) 요컨대, “사람들은 리스크가 늘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것은 새로운 리스크가 (객관적으로) 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든 사건을 리스크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데서도 유래한다.”6)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정치는 리스크라는 기호 아래에 놓여 있다.”7)
그러나 『복지국가』에서 에발드가 한 분석은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줬기에 도저히 잊을 수 없다. 그는 이미 1986년이라는 시점에서 복지국가를 리스크라는 똑같은 개념에 의해 정의했다.8) 그 논의에 따르면, 19세기의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은 최종 심급에서는 리스크관리의 분과학문으로서 구상됐으며,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을 이루는 앎[지식]으로 간주됐다. 이것의 근거는, 『복지국가』의 2장 제목이 「리크스에 관해」였다는 점이다. 복지국가는 정치의 목표로서의 리스크로부터 생겨난 것이자, 이를 관리하는 고유한 방식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까 리스크 자체는 복지국가에 완전히 미지의 것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복지국가에 외적인 것으로서의 리스크가 침투되는 사태로 파악할 수는 없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위기는 복지국가 내부에서, 복지국가 자체에 의해 산출된다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리스크를 문제화하는 것은 복지국가이며, 그렇기에 리스크를 증식시켰던 것도 복지국가이다.
따라서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에서 프랑수아 에발드와 드니 케슬레가 다음과 같이 적으면서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실일 것이다.
프랑수아 에발드와 드니 케슬레가 다음과 같이 적음으로써 말하고 있는 것도 이 사실일 것이다. “복지국가의 야심은 개인들의 모든 리스크를 기업활동(entreprises)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리스크의 적절한 거버넌스를 스스로 포기하게 됐다. 이것이 복지국가의 모순이다.”9) 하지만 이 경우에 우리는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즉,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새로움의 탄생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종언이며, 그것도 처음부터 짜여지고 계획된 종언이다. 리스크라는 문제설정에 의존해서는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리스크와 정치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은 헛수고다.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은 둘의 결혼생활이다.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이 결혼을 축하하더라도, 이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프랑수아 에발드에게 온갖 애매함이 고유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문제화하는 동시대적이고 범유럽적인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에서 『복지국가』가 처음 출판됐던 1986년과 같은 해에 독일에서는 울리히 벡이 『리스크사회』를 발표했다.10) 오늘날 이 책은 독일과 영국 등에서 생태론자들의 기본서가 됐다. 이 두 권의 책은 서로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로부터 7년 후 벡은 『복지국가』의 독일어 번역본11)에 서문을 썼다. 1991년에는 니콜라스 루만이 『리스크사회학』12)을 냈고, 94년에는 토니 블레어의 브레인 중 한 명인 앤서니 기든스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 급진정치의 미래』13)를 출판한다. 에발드와 케슬레는 기든스의 책에 대해 이렇게 짚는다. 이 책에서 리스크 개념은 “포괄적인 정치철학을 구성하며, 오늘날의 후기근대 혹은 포스트근대 시대에서 …정치를 재고하는 방법을 구성한다.”14) 아무튼 또 같은 해에 울리히 벡과 앤서니 기든스는 스콧 래쉬와 함께 『성찰적 근대화』15)를 공저했다. 이런 이론-정치적 정세 안에서 약 15년에 걸쳐 일종의 리스크인민전선(front populaire du risque)이 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각자의 이론적-정치적 입장 차이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벌이기 위해 리스크 개념으로 무장을 하는 인민전선 말이다. ‘포스트모더니티’를 제창하지 않은 채 현재의 상황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명명·소묘하는 인민전선. 에발드와 케슬레에 따르면,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새로운 중도’나 ‘제3의 길’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거나 이를 위한 길을 낼 수 있는 인민전선 말이다.16)
이 인민전선은 아직 공통의 정치프로그램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했으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3명의 주역(벡, 루만, 에발드)은 공통 프로그램의 실제적 정식화를 저해할 수 있는 이론적 차이를 보여줬다. 울리히 벡에게 리스크는 거의 언제나 객관적인 것이다. 즉, 어떤 사건이 리스크가 되는 것은 리스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며, 설령 손해가 실현되기 전이라 해도, 그 누구도 잠재적 손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17) 따라서 손해의 실현을 막아야 할 시스템의 약점도 마찬가지로 객관적이며, 체르노빌 이후에는 특히 그렇다.
그런데 리스크의 객관성이라는 이 테제가 지닌 겉보기의 자명함은 리스크에 대한 루만식의 개념파악과 대결시키면 사라져버리고 의심스럽게 보인다. 물론 루만의 것도 벡의 눈에는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비친다.18) 루만은 리스크를 자신이 말하는 ‘오토포이에시스적(autopoiétique)’, 즉 ‘자기조직화하는’ 과정 안에 삽입시킨다. 루만에게 리스크는 보편적 과정에 내재하는 것이다. 리스크는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경제적, 심지어 물리적인) 결정들의 불가피한 우발성에 의해 근본적으로 생산되며, 이어서 이차적으로는 ‘불투명’한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생산된다.19)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하고 있는 한, 루만 식의 리스크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주체적 불확실성과 분리 불가능하다. 설령 이 불확실성 자체가 양자역학이 가정하듯이 ‘객관적’ 불확실성에 기초하고 있다 해도 말이다. 루만은 언제나 자신의 구성주의적(constructiviste) 입장을 견지한다. 즉, 리스크는 사회나 집단적 주체에 의해 그리고 이것들 속에서 ‘객체’로서 구성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프랑스의 리스크 이론가인 에발드는 독일의 사회학자인 루만에게 가까워진다. 리스크를 현대의 에피스테메(épistémè)라고 부르는 에발드20)도 리스크를 객관성과 주관성(주체성)의 구별 바로 직전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실제로 에발드의 논증은 리스크의 두 측면(객체적이고 주체적)을 강조한다.21)
그러나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에발드와 루만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분기(bifurcation)도 시작된다. 루만이 리스크에 고유한 불확실성 안에서 계산 불가능성의 한 형태를 보고, 그 결과 현대적 리스크의 본질을 경제적 계산의 장소인 시장과 법적 계산의 장소인 규범이라는 이 두 가지의 바깥에 위치시키는 반면,22) 에발드는 똑같은 불확실성을 수학적 확률의 객관성에 관한 역사적 논쟁을 상기시키는 항들에 입각해 분석한다. 즉, 리스크/확률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가, 아니면 불완전한 정보 내지 인간적 인식의 본질적 결함(incompétence)을 가리키는가? 『복지국가』 이래, 에발드에게 리스크는 확률과 마찬가지로 리스크에 대한 계산과 한 쌍을 이룬다. 리스크에 대한 계산은 객체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을 넘어선 곳에서 실행된다. 다양한 리스크는 계산 기법들에 의해 감지되고 발견되고 파악된다. 나아가 리스크를 에피스테메로 간주하거나 만드는 것은 확률의 계산을 전제하는 동시에 이를 촉진한다.23) 반면, 리스크에 대한 루만의 파악에서는 사고에 따른 지출(마이너스 이윤)은 미리 계산될 수 없는 것이며, 그 법적 책임도 때로는 명확하게 규명하기 힘들며, 그 때문에 NPO나 시민들의 사회운동을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전략이 무엇보다 요청된다. 이것에 따르면, 리스크 부담은 ‘경제적’이지도 ‘법적’이지도 않은 ‘사회적’ 논리에 의해 분담되어야 한다. 리스크 개념은 이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고/창출하거나 확장하는 데 복무할 것이다.24) 이와 반대로 ‘사회재정초’ 프로그램은 리스크가 어디까지나 리스크 계산과 한 쌍을 이룬다고 가정한다. 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리스크를 계산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계산 기술이 있기만 하다면,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국가를 특권시하거나 특별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한다.
불확실성을 앞에 두고 결정을 내리고 선택해야만 할 때, 나아가 각자가 증권들의 가치에 대해 각각의 사례별로 태도를 표시해야 할 때, 하나의 분과학문이 특별한 지위를 뽐낸다. 경제학이다. … 경제학의 야망은 리스크 세계의 한복판에서, 가치의 일반이론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정의 이론에서 출발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 불확실성이 있는 곳에, 증권 가격[증권들의 가치]은 리스크에 의존한다.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리스크의 에피스테메이라고 하는 사실은 경제학을 인문과학들 중 지배적인 분과학문이 되도록 이끈다.25)
에발드와 케슬레가 여기서 말하는 경제학은 무엇을 가리킬까? 리스크의 시대에 ‘지배적’인 앎인 이 경제학은 무엇을 하는 앎일까? 여하튼 독자는 한 가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 대해 얘기하지만, 현대에 대해 얘기하지만, 나아가 복지국가가 쇠퇴로 향하고 있는 20세기 중반에 대해 얘기하지만, 에발드에게 경제학은 에피스테메 전체에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앎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결코 잃지 않는다. 『복지국가』에서 그는 자유주의자의 경제학, 특히 보험(리스크 계산)에 관한 이들의 논의가 복지국가 에피스테메의 형성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는 J. 핼퍼린(J. Halpérin)을 인용하면서, 보험의 탄생을 자본주의 자체의 탄생과 연결시켰다.
“보험의 첫 번째 형태가 해상보험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봉건제의 엄격한 뼈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영역이 바다였던 것이다. 봉건적 세계의 기초는 본질적으로 토지였다. [그러나] 바다는 사회적·정치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났다. 바다는 그 어떤 국가나 정부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바다보다 봉건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26)
그러니까 에발드는 “보험은 자본의 딸이다”27)라고 여긴다. “정치가 리스크라는 기호 아래에 놓여 있는” 한, 다시 말해 ‘리스크의 테크놀로지’가 요청되고 개발되는 한, 에발드에게 경제학은 항상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특권화된 앎인 채로 머문다. 설령 복지국가가 후퇴하고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형성하는 힘을 리스크 자체에 넘겨줬다고 해도 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어떤 경제학인가?’라는 물음을 더욱 더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복지국가』에서는 19세기의 경제학이 면밀하고 상세하게 분석되고 있는 반면, 케슬레와 공저한 논문에서는 경제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복지국가의 한복판에 도입된 경제학은, 복지국가의 위기를 넘어서 살아남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경단련의 2인자인 케슬레와의 공저 논문에서가 아니라, 미셸 비슈의 『생명의 옵션 : 보험의 기초이론』28)에 에발드가 붙인 서문에서 이미 주어져 있다. 에발드에게 비슈는 “파스칼, 프라이스, 모건 이후, 커다란 혁신이 뒤따른 영역인 생명보험의 혁신자이다.”29) 그 이유는 결국, 비슈가 “금융리스크 커버에 관한 가장 최근의 기법들로부터 ‘옵션’ 개념을 빌려온 것”에 있다. “이런 기법들을 보험계약에 도입함으로써 그는 보험계약을 매우 유연하게 만든 동시에 멋지게 세련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맞춤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30) “금융리스크의 커버에 관한 가장 최근의 기법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잘 알 것이다. 그것은 1997년에 두 명의 미국인인 M. 숄즈와 R. 머튼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줬던 ‘기법들(les techniques)’이다. 에발드에게 현대의 ‘지배적 학문’의 자격, 리스크의 에피스테메에 있어서 패러다임적 앎의 자격을 지닌 경제학이란 바로 금융 ‘파생’ 상품의 적정 가격 이론에 다름 아니었다. 미셸 비슈가 ‘혁신자(inventeur)’인 까닭은 금융 ‘옵션’(특히 파생상품)을 보험수리적(actuariel) 개념 ― ‘삶의 옵션’ ― 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옵션거래의 경제학이 있게 되면, 복지국가는 머지않아 실효성을 잃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주체들을 생명정치적으로 생산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보험이 맞춤형이게 된다면 주체들을 생산하는 심급은 불필요해지며, 현대의 주체는 스스로 구성적이게 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옵션거래(즉 보험수리적 기법들)의 규칙들이 “항상 특이한 삶의 기획에 도움을 주는 정교한 도구”31)가 되기 때문이다. 옵션거래의 경제학이라는 무기로 치장한 생명보험은 과연 푸코 말년의 꿈, 푸코의 그리스적 혹은 로마적 유토피아를 실현시켜 줄까?
그렇지 않다. 1998년에 일어난 LTCM(Long Term Capital Management)의 파탄이라는 사건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LTCM은 이 두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자기네 이론을 실천에 옮겨서 투자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제공한 헤지펀드이다.32) LTCM의 운명은 옵션거래의 경제학이 지닌 극단적인 양의성이나 역설을 보여줬다. 그것은 “금융리스크를 커버하는 기술”이 리스크를 줄이기는커녕 늘인다는 것, 가장 세련된 보험기계가 자신의 작동조차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울트라모던한(ultra-modernes) 리스크와 보험이 ‘신경제(New Economy)’의 여전히 불안정한(précaire) 성격을 그대로 구현한다는 것을 실증한 것이다. 신경제를 둘러싼 담론들의 유토피아적 낙관주의를 단숨에 날려버린 이 파탄극을 보면, 에발드가 한 가지 점에서만은 단연코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험은 자본의 딸이다. 현대에서도 변함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에서.
실제로 숄즈, 머튼, 블랙이 증명했던 것은 파생상품(‘풋put’옵션과 ‘콜call’옵션)이 증권시장의 가격변동에 대한(contre) 보험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증권시장에서의 상품이면서 말이다. 완전시장에서는 모든 증권리스크와 금융리스크를 상쇄해주는 ‘파생상품’과 ‘오리지널 상품’의 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수학 공식은 시장의 상태가 어떻게 바뀌든 (파생상품과 오리지널 상품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의 가격valeur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파생상품의 적정가격prix을 가르쳐준다.33) 바꿔 말하면, 시장이 완전하다면, 거기서는 그 어떤 리스크도 없으며(곧, 모든 리스크에 대해 모종의 보험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리스크 없이는 그 누구도 이자율을 초과하는 이득profit을 얻을 수 없다. ‘가장 최근의 기법들’이 매우 고전적인 경제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즉, 완전시장에는 재정(裁定, arbitrage)의 기회 ― 공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 ― 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투기게임은 결국 앞의 판에서 잃은 판돈의 갑절을 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딸 경우 손해는 보지 않겠지만, 그러나 이때 딴 돈의 총액은 처음부터 내기에 걸었던 것과 같은 액수일 뿐이다.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이다(on ne récolte que ce qu’on a semé).”34)
그렇지만 주지하듯이, 이로부터 이 ‘기법들’에 특유한 역설이 생겨난다. 숄즈, 블랙, 머튼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 기법을, 이들의 공식이 문자 그대로 말하고 있는 바를 시장에서 관찰하거나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현실의 시장이 완전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정보가 부분적이고 비대칭적인 한, ‘적정’ 가격과 현실의 가격 사이에는 괴리(décalage)가 있으며, 이 괴리가 재정(arbitrage)의 기회를 낳을 수 있다. 모든 투자가들은 공식에서 이런 메시지를 읽어냈다. 그리고 실제로 괴리(déviation, 편차)를 발견하기 위해 공식을 사용하고, 괴리(편차)를 돈 낳는 기계로 바꾸려고 했다. ‘가장 최근의 기법들’은 리스크 없는 이득(편익), 실물 ‘자산’이 없는 가운데에도 이득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라고 간주됐다. 엄밀하게 생각하면, 괴리(편차)는 리스크를 구성한다. 리스크 없는 상태는 괴리(편차)가 없다는 것에서만 비로소 보증된다. 그러나 이 기법들은 이와 동시에 이 리스크를 커버할 수단도 제공한다. ‘지렛대 원리(effet de levier)’를 실현하는 응용법을 통해서 말이다.35) 이런 응용 덕분에, 자기 지갑에 갖고 있는 것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내기에 걸 수 있게 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가르친 것은 ‘빌린다’는 것이 반드시 위험(danger)의 증대와 합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리하여 ‘적정’ 가격(valeur)의 이론은 ‘상대’ 가격(valeur)의 이론으로서 기능하게 됐다. LTCM은 리스크도 없고 재정(裁定) 기회도 없는 상태로부터 괴리된 가격을 그렇게 불렀다.
“새로운 정보 커뮤니케이션 기술(NTIC)”에 힘입어, 이 이론은 ‘리얼’하게 전지구적 금융시장을 만들어냈다. 시장의 실체는 거의 실시간으로 그 어떤 국경도 넘어서는 거대 자본의 이동이지만, 자본의 상당한 비율은 ‘가상적인(virtual)’ 가치 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이 이론은 보험이나 리스크 관리의 기법의 이론이면서도, 현실에서는 보험의 ‘지양(Aufhebung)’ ― 자기부정이자 모순들의 공존이라는 의미에서 ― 초래했다. 1998년의 러시아 국채폭락과 LTCM 왕국의 붕괴는 바로 이것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 당시 미국 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리스펀과 뉴욕에 소재한 미국연방은행에 의한 국가적 개입이라는 ‘지양’ 말이다. 지나치게 세련된 보험기법들은 마침내 현실의 가치를 파괴하는 기술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프랑수아 에발드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리스크는 가치들의 가치[증권가격]를 측정하는 방식이다.”36) 즉, 리스크는 그 자체로서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개물들(entités) 사이에 화폐적 척도를 들여오는 것으로서 등장한다. “그것[리스크]은 오늘날의 문화에서 도덕과 인식과 정치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위를 이룬다. 리스크는 이런 상이한 영역에서 생기면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서로 결부짓는다.”37) “실존의 리스크(risque de l’existence)”라는 에발드의 개념은 상이한 유형의 리스크 ― 생태적 리스크, 기술적 리스크, 윤리적 리스크 등등 ― 을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캘리포니아 주에는 ‘리스크 비교 프로젝트’라는 주정부의 사업이 있는데, 여기서는 ‘전문가’가 아니라 시민들이 건강, 생태, 안전과 관련된 상이한 유형의 리스크를 평가하고, ‘시민’의 관점에서 등급을 매긴다.38) 그러나 에발드는 상이한 장들을 ‘측정하고’ ‘분절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경제학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리스크에 기초를 둔 새로운 통치성이 현시되는 최초의 영역, 주요한 영역은 물론 경제학이다.”39) 금융 테크놀로지를 리스크를 다루는 테크놀로지로 여길 때, 사실 에발드에게는 잘못이 없다. 투자를 욕망하는 우리가 증권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 사야 할 종목valeurs을 찾고 있을 때, 각 증권의 ‘절대가치’(가격을 가리키는 LTCM 용어법)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IBM의 주식이 10프랑이고 ELF의 주식이 50프랑이라고 해도, 이런 ‘가치들’은 어떤 종목을 사야 할지에 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가치들’은 가치로서 비교 불가능하다. 색채의 파장(valeur)과 온도의 값(valeur)을 비교하는 것과도 같다. 두 개의 값이 장차 어떻게 변화할지는 불확실한 것이다. 모든 예측은 다소간 기대를 저버릴 수 있고, 그리하여 리스크는 항상 같다. 각각의 ‘가치’는 어떤 일정 시점에서 기업의 상태, 산업의 상태, 시장 전체의 상태를 그 나름대로 표현하며, 모든 가격 변동은 이런 상태들의 질적인 변화를 포함한다. 이런 변화의 총체가 시장의 미래를 구성한다. 각각의 변화는 환원 불가능하고 비교 불가능하며, 각 증권의 미래 가치로 표현되는 변화의 전체는 현 시점에서는 훨씬 더 불확실하다. 증권을 사려고 할 때에는 각자가 이런 상황에 있다. 엄청난 불확실성, 척도가 부재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의 노벨 경제학상이 두 사람에게 수여됐던 것은, 이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절대가치’의 ‘상대가치’를 결정하는 방식 말이다. 그렇게 이들의 정리(théorème)는 이용됐다. 이들의 정리 자체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유토피아 ― 누구에게도 재정(arbitrage)의 기회가 없으며, 공짜 이득은 존재하지 않는다 ― 를 재현할 뿐이다. 이들의 이론은 각각의 증권 가격을 마치 사용가치처럼 다루는, 가격의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천재성은 예측 자체를 포기한 결과 시장의 불확실성이나 질적 변화를 수학적 의미에서의 우발성으로 받아들인 것에 있다.40) 이 이론에 의해 양자역학적 기법을, 따라서 확률론을 투자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절대)가치들의 (상대)가치는 시장이 분자의 우발적 운동을 위한 공간으로 간주된다는 조건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조건은 질적 변화와 그 불확실성을 양자역학적 운동으로 전환(convert)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현재와 미래의 질적 차이가 ‘평균값(chiffre moyen)’과 ‘편차값(valeur de déviation)’(변화의 격렬함을 표시하는 ‘급변동성volatilité’)에 의해 근사치로 측정할 수 있는 차이로 환원된다. 그러니까 상대가치란 시장에서 스톡되는(stocké) 시간을 재현할 뿐이다. 상대가치는 가격 변동의 스톡화(stockage)이며, 불확실성 자체를 스톡하는 테크놀로지이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그것은 리스크의 가치화이다. 상대가치는 현실의 가격이 얼마나 잠재적으로 ‘적정’ 수준을 빗나가 있는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증권이 상대적으로 가치를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은 더 많은 리스크를 포함한다. 여기서 또 다시 매우 고전적인 원리를 재확인하게 된다. 즉,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그러나 이미 봤듯이, 가치들의 가치에 관한 새로운 이론은 리스크를 커버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다양한 옵션, “옵션과 그 복제(파생상품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오리지널 증권)”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를 합성하는 방식이다. 이 이론은 바로 리스크와 보험의 이론이다. 그러나 리스크와 보험이라는 이 쌍은 현실에서는 안전장치라기보다는 포획장치, 즉 시간의 스톡화를 통해 자본에 초과이윤을 가져다주는 포획장치로서 작동한다.41) 질적이고 불확실한 차이를 스톡으로 변형하여 포획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이론을 이용하는 실천적 동기이다. 그리고 투자의 안전성이 아니라 초과이윤의 기회가 자본의 전지구화를 가속화했다. 세계금융시장은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동질적인 매끈한 공간 ― 좁은 지식에 의한 성장의 여지가 없는 공간 ― 이 아니라 시간적 차이나 불확실성이 여기저기에 스톡되는 홈 패인 공간(espace troué)이다. 가치들의 가치는 시장이라는 공간에 홈을 파는 데 불가결한 장치이다. 시장에 홈을 파는 한에서, 가치들의 가치는 ‘신경제’에 기여한다.42) 비교 불가능한 가치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치들의 가치는 자본에 의한 시간 ― 질적 변화나 불확실성으로서의 시간 ― 의 독점을 실현한다. 자본은 새로운 착취 장치를 획득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새롭다. 보험의 역사에서도 새롭다. 항해의 리스크와 최종적으로는 토지에 기초한 보험의 관계를 보면 분명하듯이, 고전적 혹은 ‘규범적(normal)’ 보험은 리스크와 보험 사이에 외부적 관계를 가정한다. 그런데 금융 리스크를 금융적 수단에 의해 커버하려는 금융적 보험은 리스크와 보험을 같은 평면 위에 둔다. 일반적으로 리스크와 보험은 서로의 크기를 증대시키는 순환적 관계를 맺는다. 리스크가 늘면 보험금이 오르고, 보험은 ‘리스크를 떠맡을’ 능력을 키우며, 때로는 ‘모험’을 시도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정신으로서의 자본주의의 정신은 보험을 이용하여 발달했으며 보험은 자본주의적 축적에 불가결했다. 에발드가 『복지 국가』에서 멋들어지게 서술했던 것과 똑같이 말이다.43) 리스크와 보험 사이의 외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한, 즉 보상금이 리스크가 생겨나는 장의 외부에서 들여오는 한, 손해는 최종적으로 보험업자의 회계에 기재된다. 보상금이 늘 손해를 만회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보험업자의 파산이 연쇄적 파산을 일으키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보험 덕택에 손실(damage)의 전파가 차단된다면, 그리고 손해가 보험업자와 보험가입자의 관계 속에 봉쇄된다면, 손해는 사회에서 잘게 쪼개져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그때도 외부적 관계에 의해 보호된 보험은 붕괴 현상의 확대에 제한을 가할 것이다. 거기서 외부성은 이 제한의 장치로서 존재한다. 이와 반대로 금융적 보험에서는 보험이 보험에 의해 커버되는 리스크에 내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자는 똑같은 장 안에서 똑같은 재료로 이루어진 똑같은 수단을 통해 작용한다. 리스크와 보험 사이에는 그 어떤 물질적 구별도 없다. 모든 ‘가치=증권’은 정도가 높고 낮을 뿐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보험 때문에 선택되는 ‘가치=증권’은 그 자체로, 자신이 커버할 리스크와 똑같은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보험이란 그저 다른 리스크보다 작은 리스크를 뜻할 뿐이다. 현대의 은행가들은 사실상 자기네가 파는 것은 ‘돈’이 아니라 리스크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렛대의 원리’는 모든 리스크를 증대시킬 수 있으며, 이때에도 리스크와 보험은 ‘제로섬’ 게임을 구성한다. 또 금융 이론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증권투자의 수법이란 요컨대 앞 판에서 잃은 판돈의 갑절을 거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뿌린 만큼 거두기’ 위해서도, 이를 확실하게 하려면 주머니에 무한한 ‘종자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네치아의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즐기던 카사노바는 파산했다. 요컨대, 모든 것이 정도차가 있는 리스크라고 정의되는 금융시장에서 리스크의 전체(totalité)는 금융기법에 의해 결코 커버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손해가 발생했을 때는 이를 만회해야 한다. 무엇에 의해? 금융 리스크에 대한 최종적 보험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우리를 즉각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나아가게 한다. 단기자본 시장에서는 모든 종류의 부채에 대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가장 유효한 담보는 결국 미국 국채이다. 미국 국채는 달러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 화폐인 달러는 이자를 전혀 낳지 않지만(따라서 좁은 의미의 투자 리스크는 없다), 그래도 환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 반면, 국채는 일정한 이자를 보증하며, 이 보증의 확실함은 모든 동산이나 부동산보다 높다. LTCM의 파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오로지 국가만이 어떤 임계점(seuil critique)을 넘어서는 금융 리스크를 떠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투자 거품이 붕괴하자마자, 회수 불가능한 막대한 채권이 국가에 의해 청산됐다. 시장은 리스크 평가만 할 뿐이며, 바로 이 평가가 시장에 내적인 보험을 부분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시장 전체는 국가를 욕망하고 있다. 국가에 의한 신용, 담보, 개입을 말이다. 맹렬한 속도로 이동하는 자본에게 최고의 유동성은 국가의 힘에 있다. 이 힘은 화폐보다 유동성이 높다. 자본의 현재적 탈영토화는 다양한 ‘가치들’이 그 닻을 내리는 장소로서의 국가를 재영토화하고 있다. 한 국가가 리스크를 커버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면, 그 규모를 바꿔야 하는데, 이것이 유로의 시도였던 게 아닐까?
국가에 대항하는 경영자와 노동자의 인민전선으로서의 ‘리스크 인민전선’은 마침내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자기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때 의존하게 될 국가는 더 이상 복지국가가 아니다.
1) François Ewald et Denis Kessler, «Les noces du risque et de la politique», Le Débat, mars-avril, 2000, p.55.
4) Ewald et Kessler, op. cit., p.61.
8) François Ewald, L’État providence, Grasser, 1986.
9) Ewald et Kessler, op. cit., p.69.
11) François Ewald, Vorsorgestaat, traduit par Wolfram Bayer et Hermann Kocyba, Suhrkamp, 1993.
12) Nikolas Luhman, Soziologie des Risikos, Walter de Gruyter, 1991.
13) Anthony Giddens, Beyond Left and Right, The Future of Radical Politics, Polity Press, 1994.
14) Ewald et Kessler, op. cit., p.56.
16) Ewald et Kessler, op. cit., p.69.
17) 특히 벡의 다음 책을 참조. Ulrich Beck, Gegengift : Die organisierte Unverantivotlichkeit, Surhkamp, 1988.
19) Luhman, op. cit., pp.77, 153.
20) Ewald et Kessler, op. cit., p.68.
22) Niklas Luhman, «Risiko und Gefahr», Soziologische Aufklärung, Bd 5, Westdeutscher Verlag, 1990.
28) Michel Bisch, Les options de vie : les fondamentaux de l’assurance, Economica, 1999.
32) LTCM의 역사에 관해서는 Nicholas Dunbar, Inventing Money, Wiley, 2000를 보라.
36) Ewald et Kessler, op. cit., p.67.
38)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The Third Way)』(Polity Press, 1998)에서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제3의 길’의 모델로 다루고 있다.
39) Ewald et Kessler, op. cit., p.70.
40) 정확하게는 ‘브라운 운동’ 혹은 ‘랜덤 워크(random walk)’로서.
43) 나아가 에발드에 따르면, 보험은 인간을 자본으로 간주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점에 관해 에발드는 1986년에 출판된 『인간은 자본이다』라는 책을 인용한다. “아주 단순하다. 한 가족의 아버지가 행정이나 상업이나 산업에서 고용되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직업이 그에게 연간 1만 프랑을 가져다준다고 하자. 연 5%로 계산하면, 1만 프랑이란 20만 프랑도 가져올 수입이다. 때문에 이 아버지는 20만 프랑의 자본을 대표하는 것이다.”(L’Etat providence,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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