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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읽기 -- 가라타니 고진 & 고쿠분 고이치로, <대담> :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3/3)

by 상겔스 201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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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플러스 15 - 2013년 2월 - 철학의 기원 읽기 - 20211128 - 번역.pdf
2.19MB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읽기

 

atプラス 15, 2013년 2

 

 

 

 *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은 도서출판b에서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2년인가 3년 전에 관련 세미나와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번역했고, 회람을 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여기에 공개합니다. 아래 글에서 등장하는 쪽수는 모두 일본어판 쪽수이며, 국역본과 대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역본을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017년 3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하겠습니다.]  

 

 

 

<목차>

 

1. <대담> :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가라타니 고진 고쿠분 고이치로

 

 

2. 중국에서의 철학의 기원 억압된 호적(胡適)의 노자기원설 ⇒ 미번역

나카지마 다카히로(中島隆博)

 

 

3. 이소노미아와 다원주의 엠페도클레스의 회귀 

사이토 다마키(斎藤環)

 

 

4. 이소노미아의 이름민주주의의 이름

오타케 고지(大竹弘二)

 

 

5.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으로 이소노미아의 관점에서

야기 유우지(八木雄二)

 

 

6. 고대그리스와 마주 보기 최신의 역사·철학사 연구의 성과로부터

노부토미 노부루(納富信留)

 

 

 *********************************

 

 

 

1.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3/3)

      デモクラシーからイソノミアへ―自由―民主主義を乗り越える哲学

가라타니 고진 고쿠분 고이치로

(2012년 12월 6太田出版会議案にて)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의 이소노미아

고쿠분 : 가라타니 씨는 이 책에서 이소노미아=타운십의 존립은 내적 및 외적 조건에 의해 존립한다. 따라서 그런 조건이 없어지면, 소멸 내지 변질되어 버린다”(같은 책, 47)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동 가능한 프론티어가 있고, 상공업이 발달하고 주위에 이소노미아=타운십을 위협하는 국가가 없는 것 등이죠(같은 책 47).

   이소노미아라는 것이 이처럼 매우 한정된 역사적 조건에서만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목표로 한다고는 할 수 없는 셈이죠. 그러면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만 남아 있다는 것인가요?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가라타니 : 이소노미아가 매우 한정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빌론 유수 시기의 유대인 사회에도 해당됩니다. 그때에는 제사장·율법학자의 지배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소노미아적 사회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수로부터 해방되자마자, 곧바로 제사장·율법학자가 지배하는 집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소노미아 같은 상태는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며, 향후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원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 아니라, 훨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계사의 구조에서 교환양식 D를 교환양식 A의 고차원에서의 회귀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의 회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경우 몇 가지 주의할 게 있습니다. 첫째, 교환양식 A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호혜성 원리는 정주하여 부의 격차가 생겼을 때, “그것은 좋지 않아, 모두와 나누자라고 상담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맞은 편에서 왔습니다. 증여의 명령은 정령과 같은 힘에 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환양식 D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하다, 훌륭하기 때문에, 해보자고 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역시, 맞은 편으로부터 강박적으로 옵니다. 말하자면, 신의 힘입니다. 교환양식 D를 보편종교라는 관점에서 생각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물론 교환양식 D, 즉 종교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증거로, 철학의 기원에서는 그것을 철학에 있어서 생각하려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D가 이쪽의 소망과 의지에 의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D의 도래를 저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맑스도 공산주의에 관해 그렇게 생각했다고 봅니다. 맑스는 미래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오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설계한 것과 같은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쿠분 : 확실히 이소노미아라는 것은 이것이 이소노미아이다라고 지목할 수는 없으며, 만일 향후 이소노미아가 있다고 해도, “혹시 저게 이소노미아였는지도 모른다라는 식으로, 사후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가라타니 씨는 철학의 기원에서도 소크라테스 자신이 이오니아라는 억압된 것의 회귀였다고 쓰고 있죠.

 

가라타니 :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이몬(정령)으로부터의 신호를 따른 결과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배후에 있는 이중 세계, 공인과 사인을 나눈 계급대립을 부정하며, “사인(=자유)이면서도 공적(=평등)이다라는 이소노미아의 원리를 들여왔습니다. 그것에 의해 그는 재판을 받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지만,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사실은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웃음).

 

고쿠분 : 철학의 기원의 마지막 주(5장 주38)에서 데리다의 탈구축을 소크라테스적인 실천이라고 쓰셨잖아요? 저는 2000~05년까지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고, 2004년에 데리다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수업을 받았는데요, 그때 느낀 것은 역시 그는 매우 소크라테스적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가라타니 : 그렇군요. 또 한 가지, 제가 거기서 언급했던 것은 푸코의 최후의 강의(진실의 용기)입니다. 거기서 푸코는 소크라테스를 파르레시아(진실을 말하기)에 대한 용기를 지닌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각각의 동기가 다르지만, 데리다나 푸코가 소크라테스로 향했다는 것은 제게 아주 든든한 일입니다(웃음).

 

고쿠분 : 가령 이오니아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철학의 역사 속에서 소수자적인 것으로서 있으면서도, 그러나 단속적으로 끈질기게 출현하는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르다노 브루노나 스피노자는 그렇고, 아마 한 시기의 셀링도 그렇죠. 나중에는 들뢰즈. 데리다와 푸코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것은, 철학사 속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망각할 수도 없으며, 왠지 어금니에 계속 걸려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제 전문인 스피노자가 바로 그렇습니다. 스피노자의 사유는 몇 번이나 살펴보더라도, 아무래도 철학은 스피노자의 일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근대 철학 속에다 그를 잘 자리매김 할 장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스피노자에 대해 강의를 자주 하는데, 스피노자의 사고방식을 들으면 모두 놀랍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 사유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질문을 받습니다만, 저도 언제나 어디서 왔는지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것을 이오니아적인 것의 회귀로서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라타니 : 이 책에다 썼는데, 스피노자는 신인동형론을 비판하고 만약 삼각형이 입을 연다면, 신은 뛰어난 의미에서 삼각형적일 것이다라고 비아냥댑니다. 이것은 이오니아의 크세노파네스가 말했던 만일 소나 말이나 사자가 손을 갖고 있다면, 혹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들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면, 말들은 말들과 비슷한 신의 모습을, 소들은 소와 비슷한 신의 모습을 그리고, 각자가 자신들이 지닌 모습과 같은 몸을 만들 것이다라고 야유한 것과 거의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오니아 사람들은 신들을 단순히 부정했다고 일컬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오니아의 자연 철학자는 유일신이라는 것을 근저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말했다고 해도, 신의 부정의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곳이 스피노자와 평행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쿠분 : 역시 신을 갖지 않고 있지 않으면 신을 부정할 수 없다는 역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탐구 2무렵의 가라타니 씨는 스피노자의 무한의 이야기를 강조했습니다만, 이것을 이오니아의 이야기로 연결하면, ‘무한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사고방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단장에서도 그런 생각이 발견됩니다만,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자연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죠.

 

가라타니 : 이오니아 자연 철학에 관해서는 모두 그런 견해를 갖고 있더군요. 단순한 자연학이라고 생각되고 있고, 윤리나 자기의 문제와도 관련된 사회철학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더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이오니아 자연 철학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단순히 이오니아 자연철학은 신들을 부정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인식에서 신들을 부정했느냐는 문제는 생각하고 있지 않더군요.

 

 

철학과 정치

고쿠분 : 얘기를 바꾸겠습니다만, 철학의 기원에서 제시된 소피스트 상()도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소피스트라고 하면 모두, 단순히 심술궂고 싫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라타니 씨는 전혀 다른 소피스트 상을 내놨습니다. 아테네에 의해 이오니아의 도시들이 정복된 후에, 시민권을 갖지 못한 외국인들이 소피스트가 됐습니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정치적인 변론기술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정치와 거리를 두는 형태로만 폴리스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해서도 그런데, 그는 자주 대중을 멸시하는 귀족주의자라고 여겨집니다. 실은 저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한 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플라톤이 국가동굴의 비유에서 말하는, 지상으로 나와 다시금 동굴(민중의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철학자들의 전형이 헤라클레이토스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나 가라타니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았던 당시의 에페소스의 정치사회 상황을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헤라클레이토스 상이 나타납니다. 그 당시 다른 이오니아 도시들이 페르시아 정복에 대해 이오니아 반란을 일으켰는데도, 에페소스의 민중은 정복을 감수했고 예종 속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민중을 매도한 맥락에는 그런 사회배경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며, 모든 것의 왕이다”(단장 53)라는 그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라타니 : 나는 소피스트의 기분을 조금 알겠더군요(웃음). 저는 미국에서 오래 가르쳤는데요, 미국에 있는 외국의 지식인은 소피스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간 것은 1975년으로, 그 때 폴 드 만과 서로 알게 됐습니다. 또 드 만을 통해 데리다 등과도 알게 됐습니다. 이른바 예일학파는 이후 미국 전체의 지적 세계를 석권했는데요, 드 만의 사후, 곧바로 그가 스캔들에 의해 매장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절감한 적이 있습니다. 드 만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지만, 어차피 외국인입니다. 미국인에게는 없는 지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애지중지되지만, 그것이 어떤 선을 넘으면, 크게 혼쭐이 납니다. 아테네에 있던 소피스트도 그랬습니다. 그럼, 왜 그들은 아테네로 왔을까요? 그것은 아테네가 헤게모니 국가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던 폴리스에서는 충분한 활동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드 만이든, 데리다든, 그들이 미국에 온 것은 미국이 다양한 의미에서 중심적이게 됐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도 그렇습니다. 맑스가 런던에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일테죠. 그는 귀국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맑스도 영국에서의 정치활동은 신중하게 했습니다. 외국에서 온 지식인들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테네로 온 소피스트도 그와 똑같은 것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정치적(political)이라는 것을 폴리스적이라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견유파나 스토아 학파의 단계에서 철학은 폴리스에서 벗어나고, 개인주의적인 것이 됩니다. 현재도 철학이라고 하면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적·자의식적으로 묻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폴리스들이 무화되고 있는 상황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것(폴리스적인 것)에 집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 마지막으로 시사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철학의 기원에서 소크라테스가 아고라(광장)에서 사람들과 문답하는 모습은 이오니아의 사상과 정치를 아테네(광장)에서 회복하려 한 실천이었다고 쓰셨습니다. 이 모습은 현재 탈핵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위나 광장에서의 집회를 방불케 하는데요, 이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가라타니 : 저는 처음에 말했듯이, 20111월에 인도로 가서 철학의 기원에 대해 구상을 다졌는데요, 얼마 후 311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4월부터 탈원전 시위에 나가게 됐습니다. 이 책의 토대가 되는 잡지 연재 논문은 시위하러 가면서 쓴 거예요. 하지만 논문과 시위가 직접 결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20121월에 오사와 마사치(大澤真幸)문학계소크라테스가 광장에 나가듯이 가라타니 고진은 시위를 하러 가다라는 에세이를 썼습니다.

   이것을 읽고 정말로 생각했는데요, 제 자신이 진정으로 그것을 실감했던 것은 오히려 20126, 총리관저국회 앞에서의 집회가 시작됐을 때부터입니다. 의회도 시위집회도 영어로 말하면 어셈블리이죠. 그래서 국회 앞에서의 집회라는 것은 거기에서 두 개의 어셈블리가 대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에도 어셈블리가 있겠지만 이쪽에도 어셈블리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정한 어셈블리인지는 명백하죠. 실제로 국회 측에서 이쪽의 어셈블리에 인사하러 왔습니다(웃음).

   아테네의 경우 민회라는 어셈블리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노예, 여성, 외국인은 민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페리클레스가 외국인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기입니다. 이 민회에 의한 지배가 민주주의(다수자 지배)입니다. 그에 반해, 아고라(광장)에는 누구든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이소노미아(무지배)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일을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다 쓰고 난 후에, 아니 오히려, 이듬해의 국회 앞의 집회에서 그것을 실감했습니다. 이런 어셈블리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일어났어요. 원래 지진원전사고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말해도, 이것뿐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맞은 편에서 강박적으로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까지 시위에 관해 몇 번인가 썼습니다만, 이론에서 시위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아무리 설득해도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시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래했다면, 제대로 그것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쿠분 : 저는 국회 앞의 모임을 봤을 때, “, 21세기의 일본은 어떻게 될까라고 지금까지 모두가 다양하게 상상했지만, 지금 여기에 실제의 21세기의 일본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 시위는 과거 일본의 질서 중에서 좋아하는 곳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꽤 품행이 단정하면서도, 할 말을 제대로 말한다는 자세가 관철되어 있습니다. 그것에 저는 강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의 일본 사회와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비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철학의 기원의 연재를 읽고 줄곧 마음에 간직했던 것은 헤라클레이토스였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예종 속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냈던 에페소스의 민중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가라타니 씨가 강하게 강조하셨듯이(같은 책 141), 헤라클레이토스는 결코 에페소스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이었고 이소노미아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폴리스에서, 이 에페소스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헤라클레이토스 상은 제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습니다.

   저는 지금 고향인 도쿄도 코다이라 시에서 도로건설(지방도로 3.2.8호선) 반대운동을 응원하고 있는데요, 항상 헤라클레이토스를 생각합니다. 여기, 제가 살고 있는 코다이라 시에서 운동을 할 수 없으면 도대체 어디서 할 수 있단 말인가. 제게 코다이라 시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라타니 씨가 말씀하신 이소노미아같은 것입니다(웃음). 저도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한에서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년 생. 평론가. 저작으로 정본 가라타니 고진집(定本 柄谷行人集)(5, 岩波書店),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맑스에 관해(Transcritique : On Kant and Marx)(The MIT Press), 세계공화국으로 :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世界共和国資本=ネーション=国家えて)(岩波新書), 세계사의 구조(世界史構造)(岩波書店) 등 다수.

 

고쿠분 코이치로(國分功一郎)

1974년 생. 高崎経済大学経済学部准教授. 전공은 철학. 저서로 스피노자의 방법(スピノザの方法)(みすず書房),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退屈倫理学)(朝日出版社), 번역서로 자크 데리다, 맑스와 아들들(岩波書店), 질 들뢰즈, 칸트의 비판철학(ちくま学芸文庫)

 

            * 국역본 :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원제 : 들뢰즈의 철학원리]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했을까 :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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