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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읽기 -- 오다케 고지, <이소노미아의 이름, 민주주의의 이름>

by 상겔스 상겔스 2017. 3. 27.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 읽기


atプラス 15, 2013년 2

 

 

 

 *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은 도서출판b에서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2년인가 3년 전에 관련 세미나와 토론을 준비하기 위해 번역했고, 회람을 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여기에 공개합니다. 아래 글에서 등장하는 쪽수는 모두 일본어판 쪽수이며, 국역본과 대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역본을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017년 3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하겠습니다.]  

 

 


<목차>


1. <대담> : 데모크라시에서 이소노미아로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철학 [1]  [2]  [3]  

가라타니 고진 고쿠분 고이치로

 


2. 중국에서의 철학의 기원 억압된 호적(胡適)의 노자기원설 ⇒ 미번역

나카지마 다카히로(中島隆博)

 


3. 이소노미아와 다원주의 엠페도클레스의 회귀 

사이토 다마키(斎藤環)

 


4. 이소노미아의 이름민주주의의 이름

오타케 고지(大竹弘二)

 


5.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으로 이소노미아의 관점에서

야기 유우지(八木雄二)

 


6. 고대그리스와 마주 보기 최신의 역사·철학사 연구의 성과로부터

노부토미 노부루(納富信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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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소노미아의 이름민주주의의 이름

오다케 고지(大竹弘二)




이소노미아로의 회귀

민주주의가 그 역사적 역할을 끝마치는 것은 있을 수 있을까? ‘평등의 이념을 체현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이제 자유의 이념의 방해에 불과한 하나의 오명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유경쟁과 이노베이션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오늘날의 슘페터의 시대에서는, 평등이나 사회적 공정의 이념 따위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정상[定常,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여 변함이 없다는 뜻]균형을 의미할 뿐인 단순한 질곡에 지나지 않을까? 이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 의해 식민지화된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까?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에서 모색되고 있는 것은 이렇게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대안이다. 다만 거기서 시도되는 것은 오늘날의 의회제 민주주의와도 자유민주주의와도 다른 듯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개념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라타니는 민주주의보다 오래된 하나의 그리스어, 이소노미아를 불러낸다. 이소노미아라는 말의 정확한 기원은 확정할 수 없으나,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 말의 아테네에서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 실현된 국제[国制, 국가제도, 혹은 주로 정치제도] 이념이며, 이윽고 기원전 5세기 전반기의 페르시아 전쟁 후에 정착된 고대 그리스어의 민주주의의 선구가 된 것이라고 알려졌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이소노미아 아래서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은 결코 상반되지 않는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번역어를 빌린다면, 그것은 단적으로 ‘egaliberté(평등자유)’라고 표현할 수 있다.[주1] 현대에서 다시 불려내진 이 낡은 이름은, 이제 오욕에 시달리는[악명 높은] 것처럼 보이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대신해,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함께 구할 수 있을까?

[주1] 발리바르가 이소노미아를 언급하는 것은 Étienne Balibar, “(De)Constructing the Human as Human Institution : A Reflection on the Coherence of Hannah Arendt’s Practical Philosophy,” in Social Research, vol.73(3) (2007), p.731, 734-5. ; “Historical Dilemmas of Democracy and their Contemporary Relevance for Citizenship,” in Rethinking Marxism, vol.20(4) (2008), p.525-6. 

사실상, 민주주의보다 오래된 이 이소노미아라는 이념이 다시 불려들여진 것은, 그 자체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가라타니가 본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나 아렌트나 칼 포퍼 등, 특히 20세기의 보수사상가들의 저작에서는 자주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도 말년의 문화비판적 저서에서 이소노미아라는 말에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본래, 그리스 고대의 기초 위에 세워진 문화들이, 데모크라시라는 말을 대신해, 또 다른 말, 이소노미아’(Isonomia, 법의 평등)이라는 말을 이어받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이 말은, 역사적 유래 때문에 아테네에 특별한 존경을 환기시켰을 뿐 아니라, 좋은 정체라고 하는, 이 고찰에 있어서 본질적인 사상을 각별히 순수하게 표현했다. 이소노미아라는 말로부터는 데모크라티아보다 훨씬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자유의 연상이 말해지고 있으며, 이소노미아라는 표현에 포함된 명제는 데모크라티아의 경우와 달리, 실현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법치국가의 본질적인 원리는 이 말 속에 명료하고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다.[주2]

[주2] Johan Huizinga, Schriften zur Zeitkritik : im Schatten von morgen, Pantheon, Bruxelles 1948 / Occident-Verlag, Zürich 1948. [ヨハン・ホイジンガ, された世界, 磯見昭太郎訳, 河出書房新社, 1971, 97.]

 

하위징아가 이렇게 적었던 때는 조국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의 점령 아래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이다. ‘데모크라티아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듯한 이 발언 안에는 파시즘의 대두를 허용한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비관주의가 울려 퍼지고 있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이소노미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도 유명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의 아테네의 장군] 니키아스(Nicias)는 아테네를 자유로운 나라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불렀는데, 거기서의 자유의 주요한 특징은 무엇이었던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사람들이 그리스로부터 빌려왔던, 어떤 말에 의해 시사되고 있다. 다만 그 말은, 그 이후 사용되지 않게 됐다. ‘이소노미아’(Isonomia)가 바로 그것이다.[주3]

[주3] フリードリヒ・ハイエク, 自由条件II 自由, 気賀健三/ 古賀勝次郎訳, 春秋社, 1987, 47-48. [Friedrich A. Hayek, The Constitution of Liber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0.]

 

하이에크에게 이소노미아는 자유의 이념을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말할 것도 없이 파시즘과 사회주의의 공통의 뿌리인 설계주의에 맞서 자유의 이념을 지키는 것이며, 이소노미아라는 오래된 이름은 그를 위한 의지처[근거]로 간주된다. 아무튼, 20세기에서의 전체주의의 참화를 경험한 이들 사상가들의 발언에서 간파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적 평등이라는 것에 대한 보수주의 특유의 불신감이다. 그들에게, 오늘날에는 잊혀져버렸던 태고의 이소노미아의 이념은, 민주주의의 대안의 가능성을 지시하는 것인 양 여겨졌던 것이다.

이런 시대 배경 아래서 다시 불러들여진 이소노미아의 이념에서는, 저절로 평등보다 자유의 실현 쪽에 큰 가치가 놓이게 된다. 하이에크에 의한 해석이 그 전형이다. 이소노미아는 정통적인 이해에서는, 전통적으로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파악돼왔다. ,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참주제 아래에 있었던 민주주의의 확립 이전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참주에 의한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항하는 이념으로서 탄생했다고 간주된다. 하이에크는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가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한 법의 지배라는 이소노미아의 이런 의의를 특히 강조한다. 바로 여기에 그가 생각하는 이소노미아의 현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이미 17세기 영국에서 이소노미아 이념의 부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그 구체적인 예를 별로 들고 있지 않지만). 당시는 바로 일련의 시민혁명을 통해 국왕의 권력에 대한 만민법common law의 우위가 완전히 확립된 시기인 동시에, 영국의 해외식민지 무역이 본격화된 초기 자본주의의 형성기이다. , 하이에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 시대에 부활한 이소노미아의 이념이 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방지하는 법의 지배에 의해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곧 그는 이소노미아 안에서 근대 영국의 경제적 자유주의의 한 원천을 간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된 이소노미아에서는, 자유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법의 지배에 비해, 민주주의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깎여 내려진다. 그것은 법치국가적이지만,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법치국가 원리와 민주주의가 자주 대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이에크는 민주주의에 앞서 탄생한 법 앞의 평등의 이념 쪽에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주4]

[주4] 같은 책, 48-49.

하이에크의 이소노미아는 가라타니가 비판하는 포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해도 좋다. 거기서는 분명히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양립하고 있다. 그러나 평등은 그 자체로 지향되어야 할 목적이라기보다는 자유를 위한 단순한 전제조건에 불과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를 위한 평등이며, 양자는 결코 등가치가 아니다. 평등이 법의 지배에 의해 보장된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케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이런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에서의 프라이부르크학파의 질서자유주의에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거론되는 학파이지만, 결코 시장 외부적인 정책 개입에 의한 질서형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장은 만능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를 확보하는 조건으로서, 사회적 공정을 위한 일정한 질서 정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공정에의 배려는 어디까지나 자유경쟁을 위한 조건으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목표가 되는 것은 이른바 경쟁질서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 서로 대등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정비가 중요한 것이며, 평등이나 공정의 이념은 역시 자유를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깎아 내려지고 있다. 이런 사상의 연장선상에 정부의 역할을 개인의 단순한 생존보장으로 축소하고, 그것 이외의 모든 것을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는 기본소득의 신자유주의적 판본도 나온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두 개의 이소노미아 :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적

평등이 자유를 위한 형식적 조건으로 감축된[축소된] 하이에크의 이소노미아는, 가라타니가 구해내고자 하는 이소노미아 이념에 비춰보면, 그저 어정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라타니가 아테네 민주정의 성립에 앞서 이미 이오니아 식민도시에 존재했다고 상정하고 있는 이소노미아는, 유물론적 수준에서의 평등까지도 포함한 이념이다. 이렇게 보면, 하이에크의 이소노미아는 가라타니가 힐난하는 포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이름값을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이소노미아가 참된그것이 아니라고 정말로 잘라 말할 수 있을까? 하이에크나 포퍼의 이해는, 이소노미아 이념을 단순히 왜곡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까? ‘법 앞의 평등내지 법의 지배로서 자유민주주의적으로 해석된 이소노미아는 본래의 이소노미아로부터의 일탈이며, 그것은 (이오니아 기원이든 무엇이든) 원래의 근거로 되돌려보내 올바르게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렇지만 이소노미아의 어원적 유래도,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도 명확하게는 확정할 수 없는 이상, 그런 원뜻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아렌트가 이소노미아를 언급할 때 자주 참조하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빅토리아 에렌베르크는 이소노미아에 관한 두 개의 해석을 지적한다. ‘이소노미아(isonomia)’라는 단어는 평등을 의미하는 접두사 ‘iso-’‘-nomia’로 분해된다. 그리고 ‘-nomia’에 관해 이것을 ‘nomos()’이라는 말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경우에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의미가 생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을 ‘nemein(분배)’이라는 말과 관련시켜서 이해하는 경우에는 평등한 분배’, 즉 시민들에게의 물질적 재화나 정치적 권리의 평등한 분배라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주5] 하이에크, 포퍼, 하위징아의 경우는 전자의 해석을 따르는 반면, 아렌트의 이소노미아는 후자의 의미에서 해석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만인이 대등하게 정치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라는 의미에서이다. 시대착오를 범할 각오로 굳이 오늘날의 정치사상의 패러다임을 사용한다면, 한쪽은 자유주의적이소노미아(사적 자율로서의 ‘~로부터의 자유’), 다른 쪽은 공화주의적이소노미아(공적 자율로서의 ‘~로의 자유’)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에렌베르크가 이렇게 나누기 쉬운 분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소노미아를 둘러싼 해석의 싸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도 이 구별은 어느 정도 유용하다.

[주5] Victor Ehrenberg, »Isonomia«, in : Paulys Realencyclopädie der classichen Altertumswissenschaft, Supplementband VII, Stuttgart 1950, S.293. 

자유로운 시민의 평등한 정치참여를 중시하는 아렌트에게서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이소노미아 이해는 현대의 우리의 눈에서 본 편견과 관련된 오해이다.[주6] 그러나 아렌트가 의지처로 삼고 있는 바로 그 에렌베르크에 따르면, 오히려 클레이스테네스에 앞서 기원전 7/6세기의 아테네에서 개혁을 실시했던 솔론 이후의 법 앞의 평등이라는 사상 쪽이 기원으로서는 더 오래됐다. 참주의 자의적인 권력의 배제는 이미 솔론의 개혁 속에서 추구되었지만, 그가 수립했던 질서는 반참주적이긴 해도, 반귀족주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귀족이 지배하는 과두제는 결코 부정되지 않았으며, 이런 소여의 국제国制, 유지돼야 할 좋은 질서로서 에우노미아(Eunomia)’라고 불리고, 그 자체를 변혁하는 것은 생각되지 않았다. 언제 탄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것 이후에야 사용되기 시작한 이소노미아 개념은, 초기에는 이런 귀족주의적 에우노미아의 함의를 남겼다.

[주6] ハンナ・アーレント, 政治とは, 佐藤和夫訳, 岩波書店, 2004, 30-31.

이처럼 법 앞의 평등은 보장되어 있었으나, 기존의 불평등한 법질서 자체는 의심하지 않았던 에우노미아의 사상은, 마침내 모든 시민의 정치적 동권(同權)이라는 의미를 띠게 되며 이소노미아 개념에 의해 기각되게 된다.[주7] 이런 새로운 민주적 의미에서의 이소노미아가, 참주 히피아스를 추방했을 뿐 아니라, 그것에 이어 귀족주의자 이세고라스와의 투쟁에서도 승리한 클레이스테네스 시대의 아테네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반참주제에서 반귀족제로 발전 이런 계급투쟁을 통해, 자유로운 시민의 정치적 평등의 이념이 정착하고, 그것은 기원전 5세기의 페리클레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아테네 민주정으로 계승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에는 이소노미아라는 말이 민주주의(데모크라티아*)라는 말에 밀려나 점차 사라지게 된다.

[주7] Vgl. Ehrenberg, a.a.O., S.295f.; Christian Meier, Die Entstehung des Politichen bei den Grieche, Frankfurt a.M. 1980, S.119, 283f.

에렌베르크의 해석을 좇아, 이소노미아 이념의 이런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해석은 결코 왜곡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으며, 오히려 시기적으로는 선행하여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하이에크처럼 자유주의적이소노미아 이해를 비본래적이라고 간주하고 부정하고 떠나버릴 수도 없다. 오래된 에우노미아의 의미를 다시 인용하고 있는 당초의 이소노미아는, ‘법의 지배에 의해 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받지 않 자유는 보장하면서도, 기존의 정치적·사회적 불평등은 손대지 않은 채로 남겨둔다. , 그것은 평등을 실질적인 수준까지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소노미아 아래서는, 시민들의 물질적·경제적인 면에서의 평등은 물론, 법권리의 면에서의 정치적 평등조차도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번에는 이소노미아를 아렌트처럼 공화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유로운 시민의 정치적 동권(同権)이라는 (클레이스테네스 시기에 정착했다고 한다) 의미에서 이해했다고 해도, 사태는 기껏해야 일보전진한 정도에 머물 것이다. 만일 가라타니처럼 이소노미아를 자유와 평등의 완전한 양립을 가리키는 유토피아적인 규제적 이념으로 이해한다면, ‘공화주의적인 이소노미아는 여전히 그것에 합치하는 것이 아니다. 가라타니가 아렌트에 대해 한 평가와는 조금 달리, 그녀 자신은 무지배(no rule*)’로서의 이소노미아를, 어디까지나 정치적인권리의 문제로서 파악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를 테면 발리바르는 아렌트의 이소노미아를,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언급되는 권리들을 지닐 권리”, 즉 사람들이 법률상의 구체적인 권리들을 부여받을 것을 요구하는 근원적인 권리를 언표한 것이라고 간주한다.[주8] 그것은 (난민이든 외국인 이민노동자든) 원래 기존의 그 어떤 법질서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승인하도록 요구하는 권리이다. 그것은 이른바 정치적 포함을 가능케 하기 위한 원-권리에 다름 아니다.

[주8] Balibar, “(De)Constructing the Human as Human Institution,” p.734. 

그러나 만일 배제된 사람들이 그 권리를 승인받고,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 동권의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얻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실질적인 평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법권리의 평등한 유지가 반드시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까지도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이것과 마찬가지의 것을 다른 측면에서 말한다면, 법권리를 평등하게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정치적 권리의 이용 기회가 아무리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고 해도,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그것이 사실상 침해되는, 즉 특정한 사람들은 실제로는 그것을 충분히 이용할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법권리의 형식적 평등은 사실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그대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권 개념은 필연적으로 각자의 행위 자유를 형식적으로 보장할 정도의 자유권에서부터, 보다 실질적인 사회관계로의 정책 개입을 요구하는 사회권으로 역사적으로 발달했던 것이다. 1960년대 이후의 페미니즘의 투쟁은 형식적 평등과 사실적 불평등 사이의 이런 괴리[어긋남]를 메우려는 시도의 구체적인 예를 제공한다. 거기서는 남녀간 평등이 법적으로는 실현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사실상의 다양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기존의 사회관계(가정이나 직장 등)로까지 파고 들어간 보다 적극적인 평등 정책이 요구됐다. 사실상의 평등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권리 개념이 이렇게 실질화된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과 더불어, 이것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 조치도 점점 더 세분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 한에서, 복지국가적 간섭주의(paternalism)의 번잡성에 짜증이 나서[분노하고], 통치 시스템의 재단순화를 목표로 하는 기본소득의 시도는, 아마도 사회적 권리의 이런 비가역적인 복잡화를 앞에 두고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잠시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포퍼나 하이에크처럼 법의 지배로 해석하든, 아렌트처럼 정치적 동권(同権)’으로 해석하든, 아무튼 이소노미아는 평등의 이념을 불충분하게만 채워왔다. 하물며 가라타니가 이소노미아 안에서 읽어들이고자 하는 물질적·경제적 평등은, 이런 경우들에는 전혀 함의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단순한 법 앞의 평등이든, 정치적 권리의 평등이든, 이런 의미에서의 이소노미아는 아무튼, 이오니아에 기원을 둔 본래의 이소노미아를 되찾으려고 해도 결국은 도중에서 좌절한 시도에 지나지 않으며, 이소노미아의 이름값을 못하게되는 것 아닐?

하지만 원래 이소노미아라는 말이 가라타니가 기대하는 듯한 유토피아적 내실을 담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앞서 서술했듯이, 역사적으로 볼 때, 이소노미아라는 말은 문헌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에서는, 우선은 (하이에크나 포퍼로 이어지듯) ‘자유주의적인 의미 사용되고, 이로부터 (아렌트가 주장하듯이) ‘공화주의적인 의미를 지닌 이념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의미도 비본래적이라고 간주하고 물리칠 수 있는 더 근원적인 이오니아적인의미에서의 이소노미아의 어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소노미아의 이상적인 실현으로 간주된 클레이스테네스의 국제国制가 이오니아 식민도시로부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른다.[주9] 그러나 만일 과거의 이오니아에 자유와 평등의 완전한 양립이 실현된 사회상태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이소노미아라고 명명하는 것은 이미 잘못된 이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소노미아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자유주의적공화주의적용법밖에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하면, 이것을 어디까지나 시민의 정치적인동권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정통적이며, 나아가 그 자유민주주의적인 해석조차도 부당하다고는 대체로는 잘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소노미아는 (이오니아든 무엇이든) 기원으로 회귀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이름이며, 그것을 놓고 해석이 충돌하는 계쟁 중인 이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주9]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에 대한 이오니아 식민 운동의 ‘back influence’를 지적한 문헌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合阪學, ギリノシア・ポリスの国家理念, 第二章 テュラニスとイソノミアの──植民運動‘back influence’中心, 創文社, 1986, 91-124참조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종언?

전체주의의 경험에 의해 민주주의에 대한 비관주의가 확산됐던 20세기 중반에 낡은 이소노미아라는 말이 재차 주목받았을 때, 그것은 반드시 평등의 이념에 공정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특히 그 자유주의적해석에서는, 이소노미아의 이름 아래서 평등이 이른바 자유의 희생물이 됐다. 과연 이소노미아는 자유와 평등의 완전한 양립이라는 사명을 담당할 수 있는 이름일까? 가라타니는 이런 양립의 실현 가능성이 일찍이 실제로 개시됐던 역사 경험을, 보편종교 이외의 곳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하지만, 만일 아테네 민주정에 앞선 이오니아라는 식민지 공간에 유토피아성을 인정했다손 치더라도, 그 발생 시기가 고작 클레이스테네스 시기, 가장 오래됐어도 솔론 시기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이소노미아의 말은, 그것을 명명하기에 적절한 고유명일까?

이소노미아는 가라타니가 말하는 교환양식 D’에 잠정적으로 주어진 명칭에 불과하며, ‘어소시에이션이나 평의회라고 달리 말해도 지장이 없는 것이며, 그 실제적 문헌학상의 어법이 어땠는지는 당분간은 부차적인 문제인 것일까? 그러나 만일 이소노미아를 이렇게 단순하게 구조론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오로지 그 이론적 위치값만을 중시한다면, 구태여 이소노미아라는 이름에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특권적인 역할을 맡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소시에이션이나 평의회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만일 어소시에이션이나 평의회라는 말에는 과거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오는 일정한 역사적 편견이 걸려 있으며, 나아가 진부해진 민주주의의 말도 이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힘을 상실했다는 이유 때문에, 이소노미아라는 고유명이 지닌 새로운 소구력(訴求力)에 기대를 건다면, 그 이름이 수반하는 역사적 짐[부하負荷]도 고려되어야 한다. , 이소노미아라는 말은, 그 유래에서 봐도 자유주의적인 해석을 (결코 부당하지 않 방식으로) 허용하고, 또한 20세기의 보수사상가에 의해 실제로 그렇게 해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고유명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어떤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탄생하고 해석되어 왔던 경험적 명칭이다. 어떤 고유명에 호소하는 자는, 그것에 부수되어 있는 이런 역사성에 대해서도 책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 이소노미아에 본서처럼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그 이름은 자유주의적으로 해석된 경우에는 그 이름값을 못하며’, 과거의 이오니아의 경험으로 돌려보내질 경우에만 본래의 의미를 회복한다는 것이, 뭔가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고유명은 고유명인 한에서, 단순히 교환 가능한 것으로 평준화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이소노미아는 이론적으로는 평의회어소시에이션으로 바꿔 쓸 수 있는 이름으로 선택됐다고 해도, 동시에 그것은 역사적으로 특이한 하나의 사건의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다룰 때에는 그 보편성과 더불어 그 단독성에 대해서도 공정해야만 한다.

이소노미아라는 고유명에는, 이미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대신할 정도의 강력한 소구력이 있을까? 혹은 아니면, 이제 그런 새로운 이름에 의해 쇄신되어야 할 정도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그 힘을 잃어버렸을까? 민주주의는 이제 현행의 의회제민주주의를 나타낼 뿐인 제도적 개념으로 경직화됨으로써, 이미 그 어떤 유토피아적인 소구력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일까?

그렇지만 오늘날 아무리 그 이름을 불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민주주의는 아직도 계속 중인 기획이다. 설령 자유와 평등 사이에 상반적인 관계가 있다고 해도, 자유주의가 오로지 자유의 이념을 체현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평등이라는 또 한쪽의 이념밖에는 체현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서 자유와 평등의 양립을 목표로 하는 시도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항상 존재했다. 최근의 예로 말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대립한다는 칼 슈미트의 테제를 비판하고, 양자의 절차주의적 통합을 꾀했던 하버마스의 토의민주주의, 혹은 절대적 단독성(자유)과 절대적 보편성(평등)이라는 아포리아적 관계에 있는 두 가지 요청을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한 데리다의 도래할 민주주의. 이것들에 대한 찬반은 제쳐두더라도, 이것들은 모두 가라타니와 마찬가지로 칸트의 규제적 이념을 변주하면서, ‘자유민주주의등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민주주의에 포함된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동시에 공정하고자 하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이 계속 모색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역사적 잠재력은, 여전히 다 소진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넓은 의미에서는 보편종교에 의해 개시된 역사적 지평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다는 의문은 제기돼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소노미아라는 이름도, 그런 지평을 벗어난 이오니아적 유토피아를 정말로 적절하게 명명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오래된 이름에 대한 동경이 배반당하고, 그것은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이름에 불과했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언젠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소노미아라는 다른 이름을 필요로 할 정도로 그 가능성이 소진됐는가는 의심스럽다. 민주주의라는 미완의 이름 아래서의 실험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오다케 고지(오오다케 코우지, 大竹弘二)

1974년 생. 南山大学外国語学部准教授. 저서로 정전과 내전 : 칼 슈미트의 국제질서사상(正戦内戦──カール・シュミットの国際秩序思想)(以文社), 번역서로 사유의 기억 : 하이데거와 아도르노에 관한 시론(思惟記様──ハイデガーとアドルノについての試論)(月曜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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