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럽
이민, 난민, 계급구성, 후-식민지적 자본주의
** <말과 활> 11호(2016 가을 혁신호)에 수록된 대담의 <전문>을 공개한다.
이 글의 원제는 「危機のヨーロッパ : 移民・難民, 階級構成, ポストコロニアル資本主義」로, 산드로 메차드라(Sandro Mezzadra)와 기타가와 신야(北川眞也)의 2016년 2월 15일자 인터뷰이다. 일본의 『진분쇼잉(人文書院)』 등의 허락을 받아 번역 게재한다. 산드로 메차드라는 볼로냐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웨스턴시드니대학교 문화사회학연구소의 연구원(adjunct fellow)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는 특히 전지구화, 이민, 시민권, 후-식민이론, 비평 등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인 작업을 해 왔다. 그는 ‘포스트오페라이스모’ 논쟁의 적극적 참여자이며 «유로노마드프로젝트(Euronomade project)»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주요 저서로는 다음이 있다. 『도주의 권리(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ombre corte, 2006) ; 『후-식민지적 조건 : 전지구적 현재에 있어서 역사와 정치(La condizione postcoloniale. Storia e politica nel presente globale)』(ombre corte, 2008) ; 『맑스적 작업장에서 : 주체와 그 생산(Nei cantieri marxiani. Il soggetto e la sua produzione)』(Manifestolibri, 2014). 브렛 넬슨(Brett Neilson)과 『방법으로서의 경계선, 혹은 노동의 증식(Border as Method, or, the Multiplication of Labor)』(Duke University Press, 2013)을 공저했다. 기타가와 신야는 1979년 오사카부에서 태어났다. 간사이가쿠잉대학대학원(関西学院大学大学院)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지리학 박사이다. 현재 미에대학(三重大学) 인문학부 조교수. 번역서로는 프랑코 베라르디(비포)의 『NO FUTURE :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 운동사(ノー・フューチャー イタリア・アウトノミア運動史)』(廣瀬純과 공역, 洛北出版, 2010년). 논문으로 「이동=운동=존재로서의 이민 유럽의 ‘입구’로서의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의 수용소(移動=運動=存在としての移民ヨーロッパの「入口」としてのイタリア・ランペドゥーザ島の収容所)」(『VOL』 제4호, 2010년), 「유럽∙지중해를 흔들고 있는 후-식민지적 경계 :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서의 이민의 ‘감금’의 형태들(ヨーロッパ・地中海を揺れ動くポストコロニアルな境界 イタリア・ランペドゥーザ島における移民の「閉じ込め」の諸形態)」(『境界研究』 3호, 2012년), 「대도시를 지금 여기서 멈춰세워라 : 밀라노 교외에서의 사회적 장소에 대한 욕구(大都市をいまここでスクウォットせよ : ミラノ郊外における社会的場所への欲求)」(『社会文化研究』 제17호, 2015년), 「이민의 무덤이 된 지중해 유럽에 요구되는 응답책임(移民の墓場と化す地中海ヨーロッパに求められる応答責任)」(竹中克行 編, 『전지구화 시대의 문화의 경계 : 다양성을 관리하는 유럽의 도전(グローバル化時代の文化の境界 多様性をマネジメントするヨーロッパの挑戦)』(昭和堂, 2015년) 등이 있다. |
기타가와 신야(北川眞也, 이하 ‘기타가와’) : 오늘은 이민자들의 이동이나 운동을 통해, 나아가 ‘후-식민(postcolonial)’이라는 관점에 입각하면서, 유럽의 현황에 관해 듣겠습니다. 이때 당신의 연구 내용이나 입장을 언급하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맨 먼저 시민권(citizenship)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유럽에 관해 생각할 때, 이 패러다임이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지, 제게는 다소 의문스럽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유럽의 경계지대든, 대도시든, 거기서 이민자들에게 다양하게 행사되는 폭력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사태를 고려한다면, 국민국가의 시민권, 나아가 과거에 자주 논의된 유럽 시민권에 관해 여전히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시민권 개념을 아주 중시하면서 이론적∙정치적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96년에 상파피에들의 투쟁이 일어났습니다.[주1] 이후 이민 관련 운동에서는 ‘운동으로서의 시민권’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수많은 논의나 연구,[주2]그리고 수많은 실천이 전개됐습니다(합법화∙정규화에 관한 투쟁, 이민자 구금 센터에 반대하는 투쟁, 이민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이 구금 공간 내부에서의 투쟁을 의미했습니다. 나아가 이민자들의 파업. 또한 교외[방리유]의 폭동, 매일매일 이민자들의 국경ㅡ넘기 운동도 그렇죠).
[주1] 상파피에(sans papier)란 체류허가증이 없는 이민자들을 가리킨다. 시민에게 부여된 권리를 갖지 못한 채 항상 강제 송환의 가능성에 노출된 이민자들. 이들은 1996년 파리에서 체류의 정규화를 요구하면서 처음에는 상탕브로와교회, 마지막에는 상베르나르교회를 점거했다. 크게 주목 받은 이 사건은 상파피에라는 존재를 명시하여 프랑스사회에 인지시켰다.
[주2] Sandro Mezzadra, Diritto di fuga. Migrazioni, cittadinanza, globalizzazione, Ombre Corte, 2002, 특히 3장, 8장.
거기에서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은, 대충 말하면, 이런 운동이 기존의 ‘제도로서의 시민권’에 도전하고 긴장을 부과하며, 이를 더 평등주의적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도식이었습니다. 특히 국적으로부터 시민권을 떼어낼 가능성이 바로 ‘유럽 시민권’이라는 틀 아래에서 최소한 다양하게 기대되고 검토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민 운동의 결과, ‘유럽 시민권’에서는 제도적 수준에서도 이민자들이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운동으로서의 시민권에 관해 생각하는 가운데, 유럽 시민권의 가능성이 나름대로 느껴졌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최근 일인데, 당신은 2013년의 정세에 준거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시민권 개념에 관해 이뤄진 작업은 유럽에서 비판적 사고와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을 여전히 구성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시민권의 제도적 틀 자체의 심대한 변형을 배경으로 삼아 이 작업이 시험에 부쳐질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주3]
[주3] Sandro Mezzadra, Seizing Europe. Crisis management, constitutional transformations, constituent movements, 2013, http://www.euronomade.info/?p=462
지금도 수많은 난민들, 이민자들이 ‘도주의 권리’를 행사해 유럽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고 들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운동으로서의 시민권(구성하는 권력, 제헌권력)과 제도로서의 시민권(구성된 권력, 제정권력)의 관계가 전혀 기능하지 않는 듯 보이는 현재,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삶과 투쟁에 관해 여전히 시민권 개념에 의거하여 사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유럽 시민권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드로 메차드라 : 글쎄요, 너무 단순하지만 상당히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죠. 그것은 약 3년 전에 쓴, [당신이 방금 언급한] 텍스트 「유럽을 붙잡다[장악하다]」에서 어떤 식으로든 논의되고 있습니다. 유럽 시민권이 오늘날 심각한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90년대 전반기의 상황과 매우 다릅니다. 당시에는 역사적 계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즉, 거기에서는 유럽에서 후-국민적(post-national) 시민권의 구성이 그 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기준점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몇몇 중요한 사회운동, 특히 이민자들의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확실히 이민자들은 법학자가 말하는 두 급(級)의 시민권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한 유럽 시민권과 마주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시민권에 가입하려면 EU회원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시민권이 전개되는 후-국민적 지평의 존재란 바로 이민자들의 운동에 어떤 긍정적인 것에 상당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민자들은 국가 수준에서는 엄격한 배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니까요. 분명히 계속되는 세월 동안, 연방주의자들이 말하는 유럽 시민권이라는 개념의 내부에 암암리에 내포된 잠재성(virtualità)은 새로운 전개를 보이지 못했어요. 그러나 몇 년 동안 이민자들의 운동, 적어도 몇몇 이민자들의 운동은 유럽 시민권이라는 차원을 긍정적인 기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00대 중반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유럽헌법조약 국민투표[주4]와 함께 이미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죠. 이것들은 EU의 형식적 구성의 형성(costituzionalizzazione formale) 과정을 동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전지구적 경제 위기가 채무 위기라는 형태로 유럽에 도착했을 때 특히 근원적으로 변화했다고 봅니다. 즉, 2010년 무렵의 일입니다. 이때 유럽 통합 과정의 모종의 방향전환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분명히 “금융에 기초를 둔” 명령의 몇 가지 계기가 유럽통합과정에 대해 결정화(結晶化)되고 고정화되는 상황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분명해진 것이 점차 판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유럽통합과정의 위기가 유럽 시민권의 위기에도 상당한다는 것입니다.
[주4] 2005년 5월 29일 프랑스에서, 같은 해 6월 네덜란드에서 유럽헌법조약의 비준에 관한 국민투표가 이루어졌는데, 두 나라에서 모두 부결됐다.
현재 우리는 이 위기가 훨씬 더 심각해진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는데요, 2015년에 대해 고찰해 봅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다수의 위기들 사이에 연쇄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특히 그리스 위기와 ‘이민 위기’로 정의된 그것과의 사이에서입니다.
간단하게 분석해봅시다. 그리스 위기는 다시 한 번 긴축정책을 계속한다는 위로부터의 권위적인 강요를 초래했습니다. 그 경향에 있어서 이들 정책은 사회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민권과 그 내용을 텅 비게 하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위기가 유럽의 성립(establishment)에 있어서 ‘해결’된 바로 그 방식을 통해, 바로 긴축정책이라는 규범, 금융∙재정의 엄정함에 기초하여, 유럽통합과정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창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일어난 것은 이른바 ‘이민 위기’입니다. 즉 대량의 이민운동, 전쟁이 전개되는 지역으로부터의 대량의 도망운동, 시리아만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시리아로부터의 도망운동이 유럽공간을 전체적으로 격렬하게 급습했습니다. 그들은 20년 전부터 “EU의 역외 경계의 통제 체제(regime)”로 정의되고 있는 것을 위기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리하면, 우리는 긴축정책의 지속에 의해 규정된 조건들로부터는 통합 과정을 정치적으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 곧바로 실증된 상황에 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의 앙겔라 메르켈의 역할을 생각해보세요. 아주 분명한데요, 이 상황에서 메르켈은 독일이 유럽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위기에 대한 독일의 입장을 특징짓는 그것과는 부분적으로 다른 몸짓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민자, 특히 시리아로부터의 대량의 도망에 대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주5]에 기초하여, 유럽에서 독일의 지도적 역할을 일정하게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5] 2015년 9월 3일, 시리아에서 벗어나는 도중에 사망한, 터키의 해안가에 누워 있는 세 살짜리 유아의 시신 사진이 크게 보도됐다. 다음날 메르켈은 국경을 개방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메르켈, 또 독일정부의 일부 인물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다음의 것을 확실하게 강조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위기, 경제위기가 출현하면서 경계[국경선]를 통제하는 유럽의 여러 정책, 이민통제가 근래에는 더욱 제한적이고 훨씬 닫힌 특징을 띠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는 심각한 사항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이민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메르켈은 한편으로는 유럽에서 독일의 지도적 역할을 주장하고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는 다른 기반에 토대를 두고 독일의 이민정책, 더 일반적으로는 유럽의 이민정책을 제출하는 시도를 결합시키기 위한 기회를 포착하려 한 것은 아닐까요?
다만 그리스 위기가 한창일 때 독일이 주장한 입장에 근거하여 이뤄진 이 모든 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메르켈의 이니셔티브는 유럽 수준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매우 간단하고 신속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긴축정책, 금융∙재정의 엄정함을 기반으로 해서는, 또한 기본적으로는 유로라는 통화를 기반으로 해서는 유럽 공간을 정치공간으로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15년 여름 이후, 우리는 유럽통합과정 자체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지리적인 수준에서도 언표되고 있습니다. 유럽통합은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 이후 25년 동안 독특한 방식을 하고 항상 가변적인 지리(地理)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다양한 공간적 좌표 사이의 교차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로의 유럽은 솅겐(Schengen)의 유럽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물류의 유럽 통합 공간도 존재합니다. 아직도 다른 지리가 존재할 것이고, 아마 이 지리에 대한 언급은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25년 동안 유럽 통합의 특수성이란, 엘리트들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만, 이런 다양한 유럽‘들’ 사이의 접합부, 교차점에서 교묘하고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일종의 역량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그것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 위기의 주변에서는 유럽의 북과 남의 골이 극적인 형태로 깊어졌습니다. 이른바 ‘이민위기’에 관해서는 유럽의 동과 서의 골이 비극적인 형태, 새로운 형태로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유럽과 영국의 관계가 지닌 역사적 곤란,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이 곤란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유럽 통합 과정의 전체 위기, 무엇보다 ‘마비’를 일으킬 것입니다. 이 마비, 위기는 상당수 유럽 엘리트들에게도 성가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 위기, 마비의 표시 아래에서 유럽에서 생기는 것은 정치의 ‘재국민국가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죠. 국민국가가 EU의 물질적 구성(costituzione materiale)[주6]의 내부에서, 난폭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국가가 재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신구의 우익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의 ‘온건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성장은 크게 불안을 야기합니다.
[주6] ‘물질적 구성(costituzione materiale)’이란 법이나 규범에 기초한 ‘형식적 구성(costituzione formale)’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혹은 간접적으로만 승인되는, 사회적 계급들의 갈등이 갖는 헌법-구성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사이의 균형을 확립한다. 그것은 법권리와 운동의 관계가 우연적인 것이라는 점도 나타낸다.
그래서 다음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의 재국민국가화가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것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기획, 즉 EU라는 기획을 위기에 빠뜨리고 바로 국가 수준에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간을 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연결의 등장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국가가 중심적 역할을 맡으려고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구성체의 기본적 요소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저는 국민국가가 주역으로서 재차 등장한다면, 그것은 그저 신구의 우익을 위한 공간을 여는 것일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세계의 이 장소, 즉 유럽의 새로운 좌파에게 급진적이고 저항력 있는 변혁을 위한 정치 전략은 아직도 유럽이라는 전략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공간을 움켜쥔다(장악한다, seize)는 전략입니다.
기타가와 : 한편으로는 유럽에 도착하더라도,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처음 발을 내디딘 유럽 국가에 보호신청을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는 더블린조약에 항거하는 이민자들, 난민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 도착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이민자들, 난민들은 재국민국가화의 현황을 감안하면, 그것에 항거하고, 유럽공간을 움켜쥐려고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으로 설령 유럽에서 재국민국가화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국민과 시민이 통합되어야 할 공간이 충분하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 재국민국가화가 과거의 국민국가, 이른바 국민사회국가로 이끌려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수한 투쟁을 통해, 또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를 통해 갈등을 매개하고 그것을 국민사회국가로 포섭하는 물질적인 구조는 분쇄됐습니다. 당신이 논하고 있습니다만, 유럽에서 국민사회국가는 ‘자유로운’ 임노동자-남성-백인을 시민의 ‘중심적’ 형상으로 삼아 왔습니다.[주7]국민사회국가는 생산의 ‘중심적’ 형상이기도 한 그들을 어떤 형태로 정치적 대표제의 제도적 회로에 포섭함으로써 갈등, 계급투쟁을 중성화하고, 복지의 확대를 통해 자본축적을 유지해온 것입니다.
[주7]Sandro Mezzadra, S.2002. Soggettività e modelli di cittadinanza. In N.Montagna, a cura di, Controimpero:per un lessico dei movimenti globali, Roma:Manifestolibri, pp.81-100.
그러나 이런 주체 위치는 다양한 운동을 통해 거부되었으며, 현대의 전지구적 자본에 있어서도 더 이상 [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이렇다면, 사회통합의 공간, 이른바 시민권의 공간 자체가 기능 장애에 빠집니다. 이민자들을 ‘통합’하는 것은 물론, 원래 국민이나 시민을 통합하고 이들을 나름대로 보호하는 동시에 관리해온 공간 자체가 물질적으로 극복 혹은 크게 개편되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통합’되는 공간 자체의 이러한 과정을 감안하면, 현재 유럽의 물질적 구성의 한복판에서 이런 재국민국가화는 대체로 어려우며, 새로운 반동적 폭력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됩니다.
메차드라 :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유럽에서 정치의 재국민국가화는 시민권의 재국민국가화를 이끌 것입니다. 현재의 조건들, 당신이 지금 언급한 과정들에 의해 특징지어진 조건에 있어서는, 그것은 그저 사회의 위계화의 과정들, 노동의 불안정화(프레카리아트화)의 과정들, 사회적 분단의 과정들, 결국에는 유럽에서의 여러 국민사회의 인종주의를 토대로 한 위계화의 과정들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민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유럽에서 정치의 재국민국가화라는 관점은 확실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큰 불안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관점이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프랑스의 국민전선,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독일의 독일을 위한 선택 같은 정치세력(다른 것도 여기에 보탤 수 있겠죠)의 말본새[레토릭]를 본다면, 적어도 항상 이런 정치세력들의 목적은 이들이 활동하는 나라에서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태가 이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린 르펜, 살비니 같은 정치인들[주8]도 우리네 도시의 이민자들의 존재감이 구조 수준의 요소라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시의 내부에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으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의 이른바 후-식민지적 특징이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구조 수준의 요소를 체현하는 것입니다.
[주8] 마리 르펜은 프랑스 국민전선의 당수. 마테오 살비니는 이탈리아 북부동맹의 서기장.
사태가 이렇다면, 그러면 전망은 어떨까요? 전망은 이른바 시민권의 편성 전체의 한복판에서 이민자들을 종속시키는 여러 가지 과정의 여러 가지 요소가 더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망은 이민자들의 대량추방이 아닙니다. 전망은 오히려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시민권,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유럽 시민권의 내부로 그들이 포섭될 때, 가혹하고 폭력적인 종속이라는 특징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기타가와 : 이것과 관련됩니다만, 당신은 유럽과 이민노동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차적 포섭(inclusione differenziale[차이적 포함])이라는 개념[주9]을 이용했습니다. 그것은 ‘통합’이 더 이상 우선시되지 않는 현재의 유럽의 이민, 난민에 대한 통치성을 생각할 때, 당신이 매우 중시했던 개념이라고 이해합니다. 유럽은 이민을 모두 추방하고 싶지는 않아 합니다. 다양한 차이를 시간적∙공간적 경계에 구겨 넣으면서 이민자들의 노동만을 포섭[포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9] 예를 들어,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302頁.
그러나 당신은 2015년 6월 히로세 준(廣瀬純)과 한 인터뷰[주10]에서, 바로 현재의 유럽에서는 이 시차적 포섭조차 기능 장애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요? 이것은 유럽의 정치적 구성에 대해 아주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민자들, 난민들이 계속하고 있는 대량 운동을 눈앞에서 보노라면, 인상적입니다만, 비정규적이면서 일시적인 형태라고 해도,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 포섭되는 것 같다고는 좀체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유럽 시민권의 틀은 물론이고, 심지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산업예비군만도 못하는, 과거의 제3세계에서 현저한 ‘과잉인류’[주11]가 유럽 내부에서 급습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주10] 히로세 준 편저, 廣瀬純 編著, 『資本の専制, 奴隷の叛乱 : 「南欧」先鋭思想家8人に訊くヨーロッパ情勢徹底分析』, 航思社, 2015, 18-19頁.
[주11] “풍요로운 국가로의 대규모 이주를 막는 첨단 국경선의 강제가 문자 그대로 ‘거대한 벽’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슬럼만이 금세기의 과잉 인류를 수용한다는 문제 해결을 도맡아 왔다. … 안전하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토지의 최전선의 도처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도시의 틈새로 신참자는 ‘주변 중의 주변’ …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존재조건에 직면하고 있다.” Mike Davis, Planets of Slums, Verso, 2006.
메차드라 : 글쎄요. 시차적 포섭이라는 개념은 최근 제가 가다듬어온 개념입니다. 특히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한 오스트리아의 브렛 넬슨과 함께 한 작업에서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개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나 넬슨은 이 개념에 대해 어떤 종류의 저작권도 요구하지 않습니다(웃음). 이 개념은 널리 유통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또한 유럽뿐 아니라 이민이나 경계에 관한 작업에 씨름하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퍼졌습니다. 게다가 이 개념의 계보는 페미니즘, 인종주의의 비판적 연구에 속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길게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만.
그건 그렇고, 유럽에서 이 개념의 사용은 이른바 EU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regime)의 변형에 관한 논의의 내부에서 특히 중요했습니다. 최근 20년, 25년 사이에, 많은 성공을 거둔 표현,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새 유럽(Fortezza Europa)”이라는 겁니다. 모종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가 초래하는 여러 가지 효과와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저도, 우리도 이것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만,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류언론에도 널리 보급된 이 개념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지 않을까? 혹은 이 개념은 필연적으로 유럽의 경계들을 통제하는 이민정책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겁니다만, 그것은 이민자들을 유럽공간의 완전한 외부에 담아 두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유럽에서 이민자들의 위상이 커지고 있는 모양과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유럽은 이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우리의 확신도 있고, EU의 역외경계의 통제체제가 기능하는 방식을 기술하려면 시차적 포섭 같은 개념이 더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시차적 포섭이라는 개념은, 이미지라는 점에 있어서도 벽이나 요새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댐과 필터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언급합니다. 우리가 경계와 이민을 통제하는 유럽의 정책들의 이런 선별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 것입니다.
또 이와 동시에 우리에게는 이런 정책들이 한편으로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인 효과들, 그것은 바로 “요새 유럽”의 이미지에 의해 부각되었던 효과들입니다만, EU의 역외경계에서 무수한 사망자를 산출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다른 한편, 이것은 새로운 측면입니다만, 시차적 포섭에 대해 논하는 것은 경계라는 장치가 그 총체에 있어서는 어떻게 EU의 개별 가맹국의 내부에서도 작동하는지, 시민권의 공간을 계층화하는 위계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몇 달 전에, 시차적 포섭이라는 이 범주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 같지 않다고 제가 말했다면, 저는 다름 아닌 앙겔라 메르켈의 태도에 대해 아까 말한 의미에서 그것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4-5년 새, 경계 통제의 정책들에 근원적 경직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히 최근 몇 달 사이에 보여졌듯이, 모든 선별적 통제의 가능성에 비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민자들의 이동에 직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유럽의 무슬림 이민자들의 일부에 급진화의 과정들이 엄습해 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련의 [테러] 공격이 있고, 그 후 이것들은 EU의 역외경계의 관리 운영에 있어서 안전에 대한 불안을 현저하게 부각시키게 됐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주 밝혔던 것은 유럽에서 경계 통제 체제가 최근의 이른바 다양한 우려, 다양한 논리를 조합시켜왔다는 것입니다. 경계 통제가 어떻게 기능해 왔는지를 고찰한다면, 우리는 이 안전에 대한 우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민의 경제적 유용성에 대한 우려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이른바 이민관리의 이론과 실천으로 번역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논리, 예를 들어 인권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논리가 단순히 이데올로기와 수사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지만, 물질적 수준에서 유럽의 경계 통제 체제의 하나의 구성적인 요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다양한 논리들 사이의 이른바 균형, 이런 다양한 논리들의 효과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최근 몇 개월, 아니 몇 년일까요, 이 안전의 물음이 경계에서 활동하는 제반 행위자들과 발맞춰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것과 동시에, 많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 아래서는 훨씬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민정책을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향하게끔 하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덧붙일 수 있는데, 이런 요인들 사이의 조합이 시차적 포섭의 이런 장치들의 동결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엘리트, 유럽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전에는, 시차적 포섭은 아무튼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관점이 아닙니다. 저는 이 시차적 포섭의 장치들에 대해 근원적인 비판을 전개하려 해왔으며, 시차적 포섭의 장치들에 맞서는 이민자들의 운동과 투쟁을 분명히 하려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장치들의 효력, 이것은 기술적인 의미에 있어서입니다만, 이 효력이 기능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에는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많은 정부들, 경제, 특히 노동, 복지에 씨름하는 정부부처 중에는 이 위기에 대한 확실한 의식, 이것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는 모종의 의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 말합니다만, 유럽은 이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타가와 : 그렇군요. ‘테러’와 안전화(securitization)의 나선운동이 강화되고, 솅겐 공간의 재검토가 논의되고, 이민자들의 이동에 대한 벽의 이미지가 훨씬 강조되는 가운데에서도, 유럽의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이민 운동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은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민자들의 이동이나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유럽의 운동에서는 당신도 깊이 관여했던 것인데,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 이민의 자율성(autonomia delle migrazioni)이라는 아이디어가 가다듬어지게 됐습니다.[주12] 이민자들의 이동은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나, 경계 통제 체제의 합리성으로는 절대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과잉적 요소가 있으며, 그것에 의해 모종의 예상 밖의 이동, ‘난류’로서의 이동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자율적인 이동을 가능케 하는 이민자들의 욕망과 기대, 국경 넘기의 전략과 전술, 결국 주체 형성 과정을 주시하는 시각이었습니다.
[주12]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8장.
이민의 자율성은 이민자들의 이동을, 현실을 바꾸는 사회적 힘들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이민자들의 이동이 자율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면, 이런 경계 통제 체제는 오히려 이 자율적인 이동을 추종하는 형태로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이동이 유럽의 경계 통제 체제를 어떤 의미에서는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의 이동을 더 역사적∙지리적으로 맥락화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주의 권리』 4장에도 썼습니다만,[주13] 당신은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이동을 제3세계의 반식민지투쟁과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양자가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현대세계의 정치적 배치의 전지구적 변동, 심지어 운동이라는 것의 이미지를 부풀리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테제인 것 같습니다.
[주13] 메차드라, 『도주의 권리』, 115-116쪽.
그것은 첫째, 이민자들의 이동 자체의 정치성을 금세 환기시키고, 그것에 대해 사고하라고 강제합니다. 또한 유럽의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 통제 체제의 식민지성, 혹은 유럽 공간 자체의 불가피한 식민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 유럽의 식민지성이라는 것은 유럽 내부에서, 프란츠 파농의 이런 폭력, 또한 폭력의 물음이 지닌 현대성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주14]
[주14] 北川眞也, 「후-식민지 유럽에 시민은 한 명도 없다(ポストコロニアル・ヨーロッパに市民はひとりもいない)」, 『現代思想』, 43-20, 2015, 70-80頁.
이것은 현대의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의 이동을 생각하면, 더 중요해지고 있는 테제라고 봅니다만, 어느 정도 과감한 내용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테제에 대해 조금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메차드라 : 그렇군요. 당연히 이런 종류의 주장에는 어떤 도발적인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고찰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열겠다는 의도죠. 새로운 고찰을 위한 공간을 열 때는 일방적으로 소정의 주장을 강조하는 것도 역시 필요합니다.
전체적으로 유럽에서 우리가 이제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이민자들의 이동은 후-식민지적인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 그 장(章) 혹은 다른 곳에서 제가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종주국과 식민지 사이의 일종의 “메타 경계”의 존재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이 이동이 역사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 질서의 파괴는 무엇보다 먼저 수많은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야기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의 이민자들의 이동은 반식민지 운동의 여러 행위와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지리를 묘사하고 있다고 말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민자들의 이동이 그것 자체로,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봐서, 주체성의 수준에서 반식민지 운동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몇몇 기본적인 차이점, 이민자들의 이동과 반식민지 운동 사이의 근본적인 비연속성을 뭔가 밝힐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결론과도 같은 유명한 텍스트에 관해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20세기 후반의 반식민지 운동의 훌륭한 선언문입니다. 거기서 파농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지여, 형제여, 이 유럽을 뒤로 합시다. 이슬람, 세계의 거리에서 인간을 살육하면서 인간에 관해 말하는 이 유럽을 등등.[주15] 이 텍스트는 꽤 강력합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 반식민지 투쟁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그 당시까지 유럽을 특징짓던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형태들을 구축한다는 반식민지 투쟁의 결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주15] 해당 대목은 다음이다. “유럽의 모든 거리에서, 세계 도처에서, 인간을 만날 때마다 유럽은 인간을 살육하면서, 더욱이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유럽과 결별하자.” フランツ・ファノン(鈴木道彦、浦野衣子訳)『地に呪われたる者』みすず書房、1969、181頁.
반식민지 투쟁에서 탄생한 정치체제의 역사가 프란츠 파농 같은 사상가∙활동가에 의해 이미지화된 것에서 보면, 약간 다른 방향성을 가진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력한 계기, 반식민지주의의 정치적 상상력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이 상상력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파기함으로써 그때까지 유럽에서 계승되어 온 것과 비교해서, 근원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경험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유럽을 떠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식민지 지배하에 놓인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무수한 약탈당한 인간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유럽을 뒤로 한 채 떠난다기보다는 오히려 유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말의 일인데요, 난민들, 이민자들에 의해 조직된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멋진 행진을 담은 영상을 보셨습니까? 행진의 선두에는 아마도 시리아에서 온 듯한 이민자 남자가 있는데, 그는 EU의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주16]
[주16] 이 행진은 아마 2015년 9월 4일에 일어난 것 같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부터 오스트리아의 국경, 심지어 빈을 목표로 이민자들, 난민들이 고속도로를 걸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즉 파농 같은 매우 중요한 반식민지주의의 이론가에 의해 적어도 상상되고 기술된 그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민자들의 이동에 매우 견고한 후-식민지적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유럽에 관해 말하면, 그들의 후-식민지적 규정을 통해 유럽과 그 밖의 공간들,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준비할 긴급성이 끊임없이 다시 제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특히 제2차 대전 후의 다양한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강력하게 던져진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이민자들의 이동은 특히 역시 시리아의 상황, 그러나 또한 더 일반적으로는, 예를 들어 마리 같은 아프리카의 여러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략 노골적이고 심플한 힘으로, 이 문제를 다시 던지는 운동에 다름없습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이것은 반식민지 운동에 의해 유럽 속에, 유럽으로 던져진 본질적인 문제였어요.
기타가와 : 이로부터 많은 것을 재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식민지 운동이 비록 국가 공간의 주권으로 회수되어 버렸다고 해도, 이 투쟁을 가능케 한 해방의 욕구, 그리고 이민자들의 이동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평등에 대한 욕구는 역시 재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차드라 : 그렇죠. 물론 거기에는 직선적인 연속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들, 역사적 운동, 시대의 전환의 이른바 배치는 있습니다. 그 안쪽에서는 다양한 요소의 연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타가와 : 말씀하고 계신 것은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운동이, 설령 어떻게 형언되더라도, 유럽과 그 외부의 지역들을 무매개적으로 접속하고, EU와 그 외부의 국가들(예를 들어 터키) 사이의 관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유럽은 ‘확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민자, 난민들의 이동이 EU를 인구학적 의미에서도 ‘확대’시켰고, 그것이 EU회원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최근의 글[주17]이 생각났습니다.
[주17] Étienne Balibar, Europe and the refugees:a demographic enlargement, 2015, https://www.opendemocracy.net/can-europe-make-it/etienne-balibar/europe-and-refugees-demographic-enlargement
그런데 이제 당신이 말하는 지구 규모의 역사적∙지리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경계를 넘어서는 이민자들의 이동은 그들의 주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또한, 현대라는 맥락에서 역시 얼마간의 정치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저는 자크 랑시에르의 어떤 인터뷰[주18]를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이른바 ‘환승’ 이민자, 예를 들어 칼레(Calais), 또한 아마 벤티밀리아(Ventimiglia), 람페두사 섬(Isola di Lampedusa), 레스보스(Lesvos) 섬[주19]에 있는 유형의 주체는 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정치를 출현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의 여러 도시들에서 생활∙노동하고 있으나 체류 허가증이 없는 ‘불법이민’ 혹은 비정규 이민, 이른바 ‘상파피에’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이민자들에게는 ‘몫 없는 자의 몫’을 요구하는 정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18] “정글[프랑스 카레에 있다. 영국으로 가고자 하는 이민자들이 일시적으로 집단 거주하는 야외 점거 공간]의 사람들은 통과하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과의 관계만 해도 앞길을 막고 있는 철조망을 앞에 두고도, 전체 상황 속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주체로서 거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체류 허가증을 취득할 수 없는 채 5년이나 10년 정도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과는 다른 셈이죠. 이쪽은 바로 정치적 상황입니다.” ジャック・ランシエール(市田良彦、上尾正道、信友建志、箱田徹訳)『平等の方法』航思社、2014、295-296頁。
[주19] 벤티밀리아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에 있는 이탈리아의 도시이다. 2015년 6월, 프랑스가 이탈리아 사이의 국경 심사를 부활시킴으로써 경계를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벤티밀리아 해안의 바위섬에 캠프를 차리게 됐다. 람페두사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튀니지에 가까운 지중해의 작은 섬이다. 최근 2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탄 배가 도착하는 장소로 자리잡았다. 레스보스는 터키의 코앞에 있는 그리스의 섬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오는 이민자, 난민들의 배가 도착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신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이민자들의 정치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민자들, 방금 화제가 된 EU의 깃발을 흔드는 이민자들, 벤티밀리아 등의 유럽의 다양한 경계에 있는 이민자들은 바로 ‘환승’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죠.
당신은 정치에 관한 랑시에르의 사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부족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가령 「자본주의, 이민, 사회투쟁 : 이민의 자율성 이론을 위한 메모」[주20]라는 2004년의 텍스트에서 당신은 ‘코뮤니즘’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코뮤니즘은 랑시에르의 논의, 이렇게 말해도 좋으면, 급진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네요.
[주20] Sandro Mezzadra, Capitalismo, migrazione e lotte sociali:appunti per una teoria dell’autonomia delle migrazioni. In S.Mezzadra, a cura di, I confini della libertà : per un’analisi politica delle migrazioni contemporanee, Roma: DeriveApprodi, pp.7-19[サンドロ・メッツァードラ(北川眞也訳)「社会運動として移民をイメージせよ? : 移民の自律性を思考するための理論ノート」, 『空間・社会・地理思想』 12号, 2008, 73-85頁].
저는 일전에 교토에서 『도주의 권리』에 대해 발표했을 때,[주21] 히로세 준 등과 이 점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이 정치의 사고, 특히 히로세 준이 거듭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랑시에르, 라클라우와 무페, 바디우는 1968년 이후 기본적으로 계속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동시대를 살아온 이탈리아 오페라이스타들은 계급구성(composizione di classe),[주22] 또한 자본주의의 변형을 고찰하면서, 논의와 투쟁을 반복하면서, 항상 아이디어나 이론을 변경했습니다. 오페라이스타들은 역사적 정세 하에서, 역사 하에서 사고하고 조사합니다. 그런 연유에서, 정치를 사고하는 데 있어서 새삼스레 계급구성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 이민자들의 정치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주21] 2016년 1월 29일, 「계급 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히로세 준(廣瀬純), 하코다 테츠(箱田徹), 우에오 마사미치(上尾真道)와 했다. 행사는 히로세 준의 편저한 『자본의 전제, 노예의 반란(資本の専制, 奴隷の叛乱)』과 『도주의 권리(逃走の権利)』의 출판을 기념해 열렸다. 『자본의 전제, 노예의 반란』에는 메차드라의 인터뷰와 텍스트 「브뤼셀의 ‘일방적 명령’과 시리자의 딜레마」(에티엔 발리바르, 프리다 오트 볼프와 공저)가 수록되어 있다.
[주22] 계급구성(composizione di classe)은 오페라이스모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 그것은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의 노동자계급이 내재화하는 행동이나 규범의 조직체이다. 계급구성은 노동의 기술적 구조, 계급의 욕구나 욕망의 패턴, 정치적∙사회적 활동이 생길 때의 제도 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자의 효과적인 조직화와 활동을 산출하려면 계급구성을 경험적 연구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다. 이 개념은 계급의 기술적 구성(composizione tecnica di classe)과 정치적 구성(composizione politica di classe)으로 구별되어 왔다. 기술적 구성은 노동력으로 이해된 노동자 계급. 자본주의의 분업, 생산의 기술적 조직, 기술과 산 노동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정해진다. 정치적 구성은 노동자 계급의 주체 형성의 차원. 문화, 사고 양식, 욕구, 욕망 등에 관련되며, 의식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그것은 무엇보다 투쟁으로 향하는 주체 형성 과정에 관계한다.
메차드라 : 커다란 질문입니다. 꽤 복잡한 질문이네요. 일단 환승의 주체에 대한 질문부터 대답하는 것이 쉬울 것 같아요. 그래요, 우리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장소인 독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합시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독일에는 많은 수의 난민들, 이민자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환승하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도래는, 정치적 논의와 대립의 조건들을 완전히 변용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소간 급진적인 우익 세력이 성장해 온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특히 독일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열은 단지 우익이 새로 형성됐을 뿐 아니라, 수십 만 명의 독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개된, 난민들, 이민자들에 대한 남다른 연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서도 야기됐습니다. 단순한 실용적∙물질적 연대는 난민들, 이민자들에 대해서라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니셔티브는 이러한 연대를 훌쩍 뛰어넘는 질문을 곧바로 제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베를린 같은 도시에서 오늘날 그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단순한 일격 이상의 것입니다. 난민들, 이민자들의 대량운동, 당연히 독자적인 규정성을 가진 조건에 있는 것인데, 매우 일반적인 얘기를 한다면 이 운동이 경향에 있어서는 소정의 사회 내부에서 권력관계가 조직되는 방식에 의문을 던졌기 때문에, 긴장을 주었기 때문에 다름 아닙니다. 이 운동은 랑시에르에 의해 정의된, 치안이라는 독자적인 체제 내부에서의 몫의 고려/계산의 배분에 의문을 던지는 것 아닌가요.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운동의 전통적인 정의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운동에 대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야말로 그 근저에서는 사회운동으로서, 하나의 구체적인 사회, 이 경우라면, 독일사회처럼 매우 중요하고, 얼핏 보면 매우 안정되게 보이는 사회의 한복판에서, 권력관계들이 조직되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제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점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독자적인 사항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본질적으로 정치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복잡하게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정치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의 경계들을 의문에 부치도록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나 다름 아닙니다.
제게는 이것이 매우 인상 깊으며, 몇 개월에 걸쳐 논문이나 책, 또 다른 사람과 공개한 논문에서 누차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언급한 바디우, 라클라우와 무페, 또한 랑시에르의 입장의 배후에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순수성(purezza della politica)이라는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지금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슬라보예 지젝이 이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이 정치의 순수성이라는 사고방식은 결국 그 자체로 정치운동으로서 분명히 특징지어지는 운동의 형성으로 통하는 “조건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입니다. 반복해서 말합시다. 이런 입장에 의해 사고 가능한 지평의 외부에 위치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적인 것으로서 모습을 보이는 운동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관한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다양한 실천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관계들의 물질성의 한복판에 정치운동이 뿌리를 내렸고, 정치의 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정치적 본성의 내부에서는 대체로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푸코식 표현을 쓰고 싶다면, 그것은 주체성의 생산에 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죠. 제게 이것은 기본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주23]
[주23] 이 정치의 순수성 비판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이하의 논문을 참조. Sandro Chignola e Sandro Mezzadra, Fuori dalla pura politica.Laboratori globali della soggettività, 2012, http://www.uninomade.org/fuori-dalla-pura-politica
또한 방금 당신이 언급했듯이 코뮤니즘의 물음, 제게 계속해서 매우 중요한 공산주의의 물음이 있습니다. 코뮤니즘은 바디우가 말한 의미에서의 관념으로 감축되어 버릴 수는 없으며, 그저 사건의 시간적 지평에 있어서만 생각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중국의 문화혁명, 1968년 5월, 파리코뮌에 관한 바디우의 저작의 풍부한 시사가 담긴 테마가 있습니다만.
코뮤니즘의 문제란 착취당하고 지배당한 주체성의 운동들의 근원적인 과잉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제도 수준에서의 정치의 주어진 틀과 비교한 과잉성이나 다름없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말해봅시다. 이 틀의 내부에서 장소를 갖지 않는 것, 그것은 운동으로서의 코뮤니즘의 사고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이것은 이민에 대해서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이민은 “변증법”, 승인과 과잉성 사이의 “변증법”을 필수작인 정치문제로서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습니다. 즉, 일련의 다양한 운동이나 주체적 행동의 한복판에서 표현되는 온갖 요구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제도적 시스템 내부에서 승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법권리의 관점에서도, 시민권 개념의 변형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승인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 아니며, 이 승인 요구의 주변에서 표현되는 “민주주의” 운동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거꾸로입니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민은 이 승인의 “변증법”에 비해 항상 과잉인 채로 머물러 있는 요소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승인의 “변증법”, 그리고 과잉성의 다양한 요소에 내기를 거는 것을 통해 코뮤니즘의 물음을, 이민자가 우리에게 제출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코뮤니즘의 물음은 아마 각각의 이민자들이 품고 있는 기대의 지평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민자들의 요구들에 대해, 이 물음을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물론 거의 의미 없습니다. 다만 그 한편으로, 이민자들의 요구들, 일상의 대립에서 동떨어진 이론적 성찰의 관점에서 보면, 이민자들의 운동은 코뮤니즘의 물음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재검토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타가와 : 과잉성, 그리고 코뮤니즘의 물음은 역시 너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물음인 동시에 이민, 정확하게는 이민노동, 이민노동의 정치, 즉 계급투쟁이라는 테마에 관해 사고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당신도 주장하듯이 이제 계급구성 속의 얼마간의 주체에서 정치적 중심성을 찾아내는 것은 유용한 작업이 아니며, 아마 그것은 불가능하겠죠. 『도주의 권리』에서도 그런 논의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당신이 이민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도, 계급구성에 있어서의 중심성이라기보다는 오늘날 노동의 모범성으로서의 이민노동, 혹은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은 그 주역 속에 이민자들을 넣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네요.
그러나 다분히 낡은 얘기라 미안합니다만, 잡지 『데리베 아프로디(Derive Approdi)』에 2002년에 발표된 마리오 피치니니와 함께 쓴 짧은 논문에서 당신은 “이민노동의 정치적 중심성”을 언급했었죠? 다만 지금은 이런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도, 당신의 최근 작업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역시 이민노동이 흥미롭습니다. 도발적으로 말하면, 경향으로서는 유럽 시민도 또핱 이민자처럼 되어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까요? 결국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람들은 다양하게 이동하고 있으며, 다시 이민자가 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 등은 이제 EU의 식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전지구적 공간뿐 아니라, 유럽 공간의 한복판에서 “후-식민지적 자본주의(capitalismo postcoloniale)”의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경우는 물론이고, 이민노동이 놓인 위치, 계급적 위치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메차드라 : 브렛 넬슨과 공저한 책에서 후-식민지적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에 관해 약간 기술했습니다. 아무튼 질문은 복잡하고, 다양한 영역에 관한 사고를 요하네요.
예를 들어 당신은 피치니니와 함께 쓴 글을 언급했습니다. 지금부터 대략 15년 전에 쓴 글 같네요. 당시는 한편으로 이민노동의 운동, 투쟁, 요구에 대해 정치적으로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 제게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 내부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가 지닌 중요한 특징은 여전히 계급구성 내부에서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1990년대에 ‘비물질적’ 노동, 인지노동, 일반지성과 관련해 부각되었습니다.
당시 저도 거기에 참여했습니다만, 이 논의는 물론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에 의해 노동구성, 계급구성의 내부에서 생겨난 중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니까. 그것은 자본주의가 기능하는 양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포드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탈리아, 또한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이탈리아인 망명자들이 있던 프랑스에서 전개되었습니다. 90년대 초까지 저도 관여한 『상투어(Luogo Comune)』, 프랑스의 『전미래(Futur Antérieur)』 같은 잡지에서 말이죠.
이민이라는 물음에 관해서, 제가 90년대 초부터 하고 있는 정치적 작업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논의의 내부에서 모종의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즉,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한다는 것이 문제 아니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짧게 설명한다면, 제가 후-식민지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후-식민지 연구자에 의해 이 역사적 시간의 직선성이라는 관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의 직선성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가장 진보된 주체를 탐구한다는 오페라이스모의 자세의 배후에 존재합니다.
아무튼 이민은 90년대 초 이탈리아의 도시들의 생활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킨 운동들의 중요성에 저를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민에 관한 제 작업은 다분히 이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아시다시피, 이탈리아는 이민으로의 이행을 80년대, 90년대에 매우 빠른 속도로 겪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를 이민을 떠나는 나라에서 이민이 들어오는 나라로 이르게 한 이행입니다. 저는 제노바에서 자랐는데, 80년대에는 ‘흰’ 도시였습니다. 90년대 들어 어느 시점에 ‘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관점은 ‘시골 근성’이 팽배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우리의 논의,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에서는, 이 측면이 완전히 외부에 위치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덧붙여서, 이 오페라이스모, 포스트-오페라이스모의 논의는 80년대 말에야 되찾아졌습니다. 즉, 많은 동료가 감옥에 있거나 망명해 있었기 때문에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겨웠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되살아난 뒤에야 이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민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아니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전체의 경험이기도 한데요, 저도 관여되어 있는 이런 담론 속에서는 이에 대해 그 어떤 종류의 고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말을 하거나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토록 중대한 사항에 대해 고찰하기 위한 공간이 [이론이나 입장, 노선 안에] 없다면, 그것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거죠.
이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만일 계급구성, 노동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민을 고찰한다면, 이민은 바로 인지노동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노동형태를 우리더러 고찰하게 만드는 것임이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지노동에 종사하는 이민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며, 이민자의 인지노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이민은 인지노동, 비물질적 노동 등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일련의 노동형태들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의 물음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노동은 바로 ‘인지’적 능력을 꽤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름 아닌 비물질적 노동이라고 정의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돌봄노동, 이민자들의 돌봄노동은 다양한 행위주체성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긴장에 처하게 하고, 의문에 처하게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 사항에 대해 우리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논의는, 이미 90년대 말에 크리스티나 모리니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 논의에 대해 중요한 것을 썼습니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말하면, 이민은 저를 다음의 것에 대치하게끔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민의 자율성, 이로부터 꽤 지난 후에, 특히 브렛 닐슨과의 작업에서 제가 정의하려고 한 몇 가지는 정식화된 것인데, ‘노동의 이질화와 다양체화’(eterogeneizzazione e moltiplicazione del lavoro)에 대해서입니다. 제게 이것은 이민의 한복판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자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동관계들의 전체를 표준형(standard)의 주위에서, 표준형에 기초한 관계의 주위에서 조직된 것으로 표상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 이것은 이제 그다지 규범이 아닙니다. 포드주의의 노동자, 포드주의의 공장노동자, 그리고 포드주의의 남성. 이것은 계약법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동관계를 조직하기 위한 표준형의 틀입니다. 이것의 주위에서 그 다양한 제도, 규칙 등과 더불어 제반 노동시장의 총체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표준형에 관해 전혀 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분석적 관점에서도, 정치적 관점에서도, 노동세계의 한복판에서 차이의 증식에 대해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른바 노동구성의 주체성의 규정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렇고, 계약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노동관계들의 조직화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근대자본주의의 역사를 검토한다면, 그 시작부터 유럽뿐 아니라 전지구적 역사로서 그것을 검토한다면, 이 상황은 식민지 세계, 식민지 자본주의(capitalismo coloniale)를 오랫동안 특징지었던 그것에 다름 아닙니다. 제게는 오늘날 어느 정도는 세계 도처에서, 식민지 자본주의의 이런 경험의 모종의 ‘뒤통수 때리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관계들의 이런 이질성을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파농도 인용했죠. 주식, 금융은 강제노동 등의 조건들과 공존한다. 산업임금노동은 비공식적 노동 등의 다수의 형태와 공존한다. 거듭 말합니다만, 물론 오늘날에는 이것은 다른 조건들 아래서 생기고 있습니다. 후-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해 논함으로써 이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정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후-식민지 자본주의에서, 제게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요소로서 금융이 작동하는 장소, 금융자본의 장소가 있습니다. 많은 동료들, 특히 친애하는 크리스티안 마라찌가 이 점에 대해 작업을 했습니다. 이들은 제게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작업은 이 금융화 과정의 새로운 성질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바로 문제는 이것들의 이노베이션의 관점에서, 즉 오늘날의 사회적 협동, 생산적 협동이 조직되고 명령을 받고 착취되는 방식의 관점에서, 금융화의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거듭 말합니다만, 이 요소가 이질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덧붙이겠습니다. 이민은 기본이 되는 렌즈입니다. 이민은 계급구성을 변형시키는, 또한 착취의 조건들을 변형시키는 데 있어서의 기본적 힘일 뿐만이 아닙니다. 이민은 당신이 앞서 잘 설명해준 것처럼 이민자들에게 독자적인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행동, 동태, 경험, 새로운 이동성의 경험을 미리 독해한다는 것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노동의 프레카리아화의 형태를, ‘토착’의 노동에 대해 뭔가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언급했듯이, 유럽 내부의 이민 문제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무시하기 아주 어려운 현실입니다. 베를린에서 어딘가로 먹으러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타가와 : 후-식민지 자본주의의 이런 특징은 이른바 ‘본원적 축적’의 현대성과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논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자본주의의 비판적 분석에서는 본원적 축적의 현대성이 꽤 주장됐습니다. 예컨대 이에 관해서는 “약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개념을 이용해 데이비드 하비도 매우 중요한 논의를 했습니다.
당신도 언급했듯이, 하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표준형’, 즉 한쪽의 ‘확대재생산’과 다른 쪽의 ‘약탈에 의한 축적’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시작될 때부터의 식민지성이라는 앞의 논의를 감안하면, 이 둘의 구별은 전자의 중심성을 적어도 이론적 전제로서 보존한 다음에 이뤄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약탈은 식민지 또는 구식민지에서는 ‘항상’ 계속해서 자본주의의 주요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요즘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더라도, 거기에서는 본원적 축적의 폭력에 의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더라도, ‘표준형’의 세계로 나아갈 문이 닫힌 채 약탈당하는 사람들, 생존유지를 위해 온갖 종류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 이동하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경우에 따라서는 유럽으로)이 대거 있는 것입니다.
하비가 말하는 ‘확대재생산’과 ‘약탈에 의한 축적’의 ‘유기적 연결’, 또는 변증법적 관계라는 틀에서는 당신이 논하는 ‘표준형’을 무표화하는 생산양식의 이질화와 다수화라는 추세, 심지어 ‘중심성’ 없는 노동의 이질화와 다수화라는 추세를 충분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계급투쟁의 이질화와 다수화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메차드라 : 생각건대, 데이비드 하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약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명명한 형태가 오늘날 갖고 있는 중요성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공적이나 활동을 의문시할 필요는 없죠.
그러나 최근 들어, 하비의 입장이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남미의 맥락에서 제가 작업을 하면서 항상 논의해온 것은 약탈과 착취 사이의 구별이 대립, 이항대립으로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것에는 착취의 새로운 성질을 우리가 놓쳐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자본의 축적과 가치증식의 체제(regime)를 규정할 때, 착취와 약탈이 조합되는 방식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채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남미, 또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채굴활동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두고 오늘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는 원주민의 공동체에 대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초래합니다.
남미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채굴활동의 이런 강화가 이 지역에서의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암호, 상징으로서 채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테제에 관한 경험적 논증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채굴활동의 강화에 맞서는 수많은 매우 중요한 사회투쟁이 부족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투쟁들에는 그저 광물의 채굴활동뿐 아니라, 예를 들어 콩의 재배처럼 농업을 급습해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채굴활동에 저항하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특히 친구이자 동지인 아르헨티나 사람인 베로니카 가고와 함께 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려 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이론적 입장은, 간략하게 말한다면, 신채굴주의(新採掘主義, neo-estrattivismo)라는 정식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지나치게 치우친 방식으로, 글자 그대로 채굴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한 비판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결과가 되며, 시골과 도시 사이의 대립을 재생산하는 것 아닌가. 이런 대립은 이론적으로도 이견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정치적으로는 그저 불안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채굴의 범주는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문자 그대로 채굴활동과는 관계없는 형태로도,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한 뭔가를 밝혀주는 것인가 아닌가. 저는 특히 베로니카와의 작업에서 그것을 탐구하려고 해 왔습니다. 브렛과 지속하고 있는 작업도 그렇습니다. 그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만 채굴이라는 범주를 독해하는 것이 아니라, 특히 금융이 사회적 협동과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해보려 한 것입니다.
기타가와 : 그것이 채굴주의라기보다 당신이 말하는 신채굴주의라는 것이죠?
메차드라 : 그렇습니다. 채굴주의라는 정식은 남미로부터 널리 보급된 것이죠. 이제는 신채굴주의에 대해 더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채굴주의는 16세기 이후, 항상 남미의 식민지 자본주의의 특징이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신채굴주의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금융에 관해 다뤄 봅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 큰 질문이네요(웃음). 여기서 충분한 말, 해답을 줄 수는 없겠죠. 그러나 맑스의 『자본』 3권에서 매우 시사적인 지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맑스 시대의 금융은 오늘날의 금융과는 거의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그의 이론을 금융파생상품, 신용파산스왑, 극초단타매매(high frequency trading) 등에 적용하기 위해 끄집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맑스는 매우 일반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금융자본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 미래에서 생산되어야만 하는 부에 대한 막대한 유가증권, 청구권의 축적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날 유가증권을 갖고 있다면, 제 이윤은 어디서 파생될까요? 그것은 여전히 생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에서 파생됩니다. 그것은 곧 나의 유가증권을 통해서, 나는 미래에서 전개되어야만 하는 생산과정을 저당잡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유가증권을 통해 위대한 자본가, 주주로서의 저는 지금, 미래에 대한 일종의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생산과정에 대한 명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빚을 안고 있는 빈곤한 노동자, 빚을 갚을 의무를 지고 있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빚은 미래의 생산에 대해 제가 보유하고 있는 권리와의 상호 거래의 재료가 되는 겁니다. 결국 이 채무, 의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갚기 위해서 미래에 일해야만 한다는 의무에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저를 거대한 금융자본가라고 합시다. 당신은 주택계약 때문에 빚을 진, 제게 채무가 있는 가난뱅이라고 칩시다. 내일 당신이 무엇을 할지, 저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스스로 일하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든, 운동복 매장에서 일하든, 길거리에서 헤로인을 팔든 광고대리점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든, 제게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은 확실히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회적 협동의 편성에 진입하게 됩니다. 모레가 되면, 저는 바로 그로부터 가치를 추출합니다. 당신의 노동을 조직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산업자본가와 맺은 관계와의 근본적 차이이죠. 산업자본가는 노동을 조직했고, 이로부터 가치를 추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노동의 협동은 산업자본가가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금융자본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가 그로부터 가치를 끌어내는 사회적 협동의 외부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금융자본가는 이 사회적 협동으로부터 가치를 ‘채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은유를 사용한다면, 이것은 광산에서 대지로부터 귀중한 광물을 채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인 거죠.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보면, 조금 멈춰 서서 고찰해야 할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제가 얘기한, 이렇게 단순하고 단순화되고 대체로 진부한 예로부터, 다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현대자본주의의 모든 편성의 한복판에 있는 금융자본의 우위성에 노동의 이질화의 과정들이 얼마나 호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당신은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고, 다른 사람은 광고대리점에서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빈민굴에서 마약 밀매업을 하는 … 등등의 상황이 있기 때문이죠. 동질화, 즉 이런 종류의 관계에 건설적인 방식으로 계속 대응하는 동질화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말한다면, 저도 그렇습니다만, 다음의 사항을 재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이고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간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노동과 자본의 관계의 정치적 주체화에 관한 조건들을 재고하는 것, 더 단순한 용어로 말한다면 오늘날의 계급투쟁의 장소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공장에 일하러 간다면, 거기에는 독자적인 적대성의 원천이 되는 공장 고용주와의 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와의 관계, 금융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른 유형의 적대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금융자본에 적대하는 조직의 정치적 가능성을 사고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시다시피, 이민자들 안에도 이런 유형의 논리가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입니다. 이것들은 종종 사전계약의 조건들, 즉 이민자들이 빚을 갚아야 할 조건들을 제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논리는 이민자에 의한 송금의 유통을 통해서도 침투하고 있죠. 그것은 이민 경험의 금융화와 대응하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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