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 피에르 로장발롱의 프랑스 민주주의론
* 로장발롱의 책 번역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를 식힐 겸 로장발롱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미리 포스팅한다. 관련된 문서나 책들도 연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 일본에서는 '통일성' 대신 '일체성'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이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약호
* 이 글에서 빈번하게 인용·참조하는 로장발롱의 문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약호, 쪽수의 순서로 표기한다.
∙ MG : Le moment Guizot, Paris, Gallimard, 1985.
∙ SC : Le sacre du citoyen : histoire du suffrage universel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1.
∙ PI : Le peuple introuvable : histoire de la représentation démocratiqu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2.
∙ DI : La démocratie inachevée : histoire de la souveraineté du peuple en France, Paris, Gallimard, coll. « Folio Histoire », 2003.
∙ MPF : Le modèle politique français : la société civile contre le jacobinism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coll. «Points Histoire », 2006.
∙ CD : La contre-démocratie : La politique à l'âge de la défiance,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08.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현대 프랑스의 민주주의론을 대표하는 피에르 로장발롱(현재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에 의한 일련의 19세기 연구를 재구성하고, “프랑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을 추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로장발롱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통선거, 대표정, 인민주권을 각각 주제로 하는 3부작(이하 SC ; PI ; DI로 약칭)에서 주로 검토했다. 이 세 개의 역사상을 통합한 것이 2004년의 『프랑스형 정치모델』이다. 이런 전체상을 밝힌 일본어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1
로장발롱의 연구는 다음의 두 가지 계보를 잇고 있다. 2 첫째, 프랑스 혁명 및 현대사 연구의 조류이다. F. 퓌레로 대표되는 수정학파는, 정통사학과는 달리, 3 1793년의 자코뱅지배를 혁명의 ‘탈선[삐그덕댐]’으로 파악하고, 19세기를 자코뱅주의의 초극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해석을 전개했다. 4 로장발롱은 퓌레의 관심을 계승하고, 정치사를 경제구조가 아니라 “정치문화”에 의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cf. MG:26 ; MPF:13).
둘째, 1970년 이후의 프랑스 정치철학의 조류이다. C. 르포르나 M. 고셰로 대표되는 이 시기 이후의 논자들은, ‘정치(la politique)’와 구별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을 다시 물었다. 5 로장발롱은 그들의 연구를 계승하면서도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긴장이라는 시각을 도입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두 세기에 걸쳐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정초해온 ‘자코뱅주의’를 검토한다(2절). 다음으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인 것’의 개념에 대해 검토한다(3절). 이 두 개념의 긴장관계가 ‘민주주의’의 사상사를 구성한다고 간주된다. 이상의 틀을 사용해, 대혁명 이래의 ‘민주주의’의 전체상을 제출한다(4절). 마지막으로 그의 연구에 내재하는 사상적 특징을 지적한다(결론).
2. 근대정치적 사고양식으로서의 자코뱅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적인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을 ‘자코뱅주의’라고 명명하고, 그것을 “일반성의 정치문화(culture politique de la généralité)”이라고도 바꿔 부른다(MPF:13). 그 특징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1) 사회적 일체성
첫째, 프랑스 정치문화의 특징은 “사회 형태(forme sociale)”로부터 이해될 필요가 있다. 대혁명에서는 직업기능에서 유래하는 “단체(corps)로 구성되는 사회”에 매몰되어 온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해방하고, “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것이 희구되었다(MPF:13 ; PI:22).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는 개인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결정론”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개인” = “시민(citoyen)”으로 정립된다(SC:113 ; PI:17).
이런 추상성은 “대표=표상(représentation)”이라는 작용과 불가분하다. 각종 축제나 시에예스의 논의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듯이, “인민”이나 “국민”이라는 집합은 대표=표상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PI:47 et s.). 오히려 상징이나 픽션을 통해 표상됨으로써, 다양한 개인들은 “유일한 집합”으로 “추상화”된다(MPF:28). 대표정은 “개인의 해방과 집합적 권력[=국민 주권] 사이의 모순을 송두리째 해소하는” “기술”로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관통한다(DI:29, 189-190). 자코뱅주의의 전통에서 “단일성(Un[일자])”, “일체성(unité[통일성])”, “전체성(totalité)”, “불가분성(indivisibilité)” 등의 추상적 어휘는, 프랑스 시민들이 “국민”이라는 “집합”으로서 대표=표상되기 위해 사용됐다(MPF:26-28).
이러한 프랑스적 정치관에서는, 특수이익과 동떨어진 곳에 일반이익이 설정되고, 그것을 “추상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정치체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MPF:118). “추상화”에 의해 개개인의 특수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하고, 개인 일반이 공화국의 “불편부당한(impartial)” 주권의 연원으로 간주됨으로써 “평등”이 담보된다(MPF:118-124). 따라서 “투표권 보유자”로서의 “평등한” 시민은 국민적 일체성을 구성하는 간단한 “수”로 환원되고, 사회의 실체는 이 배후로 숨었다(MPF:122 et s.). “수로서의 일반성이 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일반성의 가장 명백한 형태를 취한다”(CD:115).
2) 민주적 직접성
두 번째 특징은 무매개적 의사표시에 대한 희구이다. “중간단체(corps intermédiaires)”의 법적 부정이 의미하는 사정거리는, 종교단체나 직업단체의 해체에 한정되지 않고, 일체성을 가로막는 모든 매개적 제도나 상징의 부정도 포함한다. 1791년 9월 30일의 포고령에서는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은 “어떤 형태를 갖고 있든 정치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표명됐다. 왜냐하면 매개적 제도를 통해서는, 시민들은 “집합적인 이름 하에서” 자기 자신을 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MPF:59). 그러므로 피대표자의 다양성은 대표자에 의해 일반이익을 가진 집합으로서 직접 표상된다(MPF:72). 클럽이나 어소시에이션이 부정되는 것은, 그것이 영속하는 “제도(institution)”로서 고정화되고, 대표정에 “이중성(dualité)”을 도입하는 것(민주적 직접성의 훼손)으로 간주되는 한에서였다(PI:16 et s ; MPF:76-79).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차이나 다양성 등의 특수이익은 사적 영역에 갇힌다(cf. SC:135-147, 155-169 ; DI:219 et s.). 한편, 르 샤플리에가 주장했듯이, “공적인 것(le public)”은 국회의원의 활동으로 집약되며, 공적 영역은 “통치제도”로 환원된다(DI:232 et s ; MPF:71 ; cf. CD:113). 로베스피에르나 보나파르트는 통치제도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대항권력(contre-pouvoirs)”(e.g. 연설활동, 청원운동, 시위 등)을 “간접적 권력” = 민주주의의 울타리 바깥이라며 배제하고, 민주적 직접성을 촉진시켰다(CD:87, 100-103, 114 ; MPF:71). 이러한 “불가분성을 통한 정당성”이 일반성을 형성하는 한 측면이 된다(CD:115).
중요한 것은 구체제 하의 전통적 구분(지연, 종파, 직군 등)은 “일반성의 정신”과 상반되는 “특수성의 정신”으로서 “분극화(polarisation)”된다는 것이다(MPF:35-37). 헤겔이 체계화한 변증법적 관계와는 달리, 프랑스적 정치관에서 특수성과 일반성(보편성)의 관계는 서로 긴장하는 “양극”으로 구별되고, 일반성만이 “단일하고 불가분한 공화국”을 형성한다. 로장발롱은 혁명 이래 이용됐던 이런 구별을 “분극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cf. MPF:37-54, 117-121).
3) 법의 신성시
세 번째 특징으로서, 법의 신성시를 꼽을 수 있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두 가지 유토피아를 따르는 정치문화의 형성에 기여한다. 우선 사법 엘리트는 법의 제정자라는 것 이상으로, “단일한 인민을 제정하는” 자로서 생각된다. 그에 따르면, 사법 엘리트는 “정치적 일반화를 추진하는 자”인 동시에 “교사”였다. 법에 대한 교육관은 많은 논자(e.g. Fénelon, Condorcet)들의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으며, 국민적 일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교육(instruction publique)의 이론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MPF:93 et s.).
다음으로 법은 정당성 있는 규범(norme légitime)인 동시에 “정치적인 작동자(opérateur politique)”로 간주된다. 법을 개입시킴으로써, 모든 사람 및 행위는 개개의 특수성이라는 “현실”에서 분리된다. 일반성은 “탈현실화(déréalisation)”라는 작업을 통해 구축된다(MPF:94-96). 이러한 법이나 권리에 내재하는 픽션으로서의 성질이 일반성의 형성에 관여한다(CD:115).
단적으로 정리하면, 구체제의 사회적 유대를 해체한 프랑스에서 픽션이 “시민적 평등(égalité civile)”을 빚어내는 “공민적 유대(lien civique)”로서 요구됐다(SC:88 et s.). 혁명 이후의 정치문화와 민주주의는 “추상화”나 “일반화”, 그리고 “픽션”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주의(formalisme)” = “정치적 유토피아”로서 우선 묘사된다(SC:385).
3. 민주주의의 이중성 :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위와 같은 자코뱅주의적 사고양식이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에 의해 “공적인 것”을 독점하는, “공적 영역”에 대한 “환원적인 시각”이다(DI:333 et s.). “정치적인 것”이란 구체적 제도나 당파 간 경쟁 등에 관련된다기보다는 일반이익·국민적 일체성의 표상과 창출 등 “직접적인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련된 개념으로 여겨진다. 6
그러나 “사회적인 것(le social)”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현실에 적합한 질서를 구축할 수 없었다고 하며, 항상 비판에 노출된다(MPF:47). “사회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에 의해 배제·억압된 특수이익의 총칭을 의미하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실망의 역사, 또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도의 역사” 속에서 개시된다. 7 그러므로 혁명 이래의 정치문화는 “정치적인 것”의 찬양과, “사회적인 것”에 의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나 실망이라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cf. MPF:158 et s.). 아래에서는 그 비판의 논점을 세 가지 점으로 요약한다.
1) ‘새로운 사회’의 사상
첫째, 자코뱅주의적 수사가 “사회의 해체(dissolution sociale)”를 이끈다고 하는 비판이다. 자유주의자(e.g. M. Staël, Constant), 보수주의자(e.g. Ballanche, Bonald), 사회학자(e.g. Saint-Simon, Comte), 사회가톨릭(e.g. Lamennais), 독트리네르(e.g. Royer-Collard, Guizot) 등은 각각의 방법으로 “사회의 해체”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MG:75). 중간단체를 배제한 “자코뱅국가”에서의 “사회”는 유대(lien) 없는 “원자화된 사회”에 불과하고, 공화국의 일체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우려”를 공유한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결합의 결여(déficit de sociabilité)”를 보전하는 사상운동이 전개됐다(cf. MPF:160, 213-218).
질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중간단체의 재건이 필요해진다. 동업자조합의 재건은 이미 1800년 이후의 개별법령에 의해 모색됐다(MPF:132). 그리고 1820년대부터 “어소시에이션”의 설립과 분권론이 많은 논자(e.g. Rémusat, de Laborde, Leroux, Tocqueville)에 의해서 주장됐다(MPF:164 et s.). 로장발롱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의 키워드가 일체성이라면, “사회적인 것”의 키워드는 “어소시에이션”이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과 국가를 중개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로서 갈망됐다(MPF:164, 236).
2) 대표정의 역설
둘째, 이 견해는 “사회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에 내재하는 모순, 즉 대표자(représentant)와 피대표자(représenté)와의 괴리를 메우는 것으로 얘기됐다. “대표”란 구체적 환경 속에 매몰된 다양한 개인들을, 단일한 추상적 집합체로서 다시 얘기하고, 정치적 일체성을 “창출”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복수성을 단일성으로 환원하는 이 조작에는, 본질적으로 곤란이 내재해 있다(PI:53).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은 일정한 수의 개인 사이에 집합적 속성을 규정함으로써, 그 곤란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정치적인 것”에서 “배제”된 대중을 “계급”이나 “사회집단”으로 포섭하고, 일반이익과는 상이한 이익을 대표=표상한다(SC:343, 369).
예컨대 시에예스에 의한 능동적 시민/수동적 시민의 기능적 구별은 7월 왕정기의 독트리네르에 의해, 제한선거제론으로서 계승됐다(PI:68 et s;SC:325). 1860년대에는 노동자에 의한 계급대표론(PI:100 et s.), 제3공화정 중기에는 뒤르켐 등에 의한 (보통선거제를 대신한) 직능대표제가 주장됐다(PI:140, 175). 그것은 20세기 이후 산업민주주의론으로 계승된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인 것”이 집합적 속성을 수반해 다시 얘기됐다는 것이다(cf. SC:383). 8
3) 이데올로기와 사실
셋째는, 이데올로기와 사실의 이분법에 기초한 비판이다. 19세기 전반기부터 되풀이되는 “실증”, “관찰”, “예견”이라는, “사실”을 객관화하는 “과학”관에 의해, 혁명기의 추상적 원리는 “형이상학”이라며 비판된다(SC:453 et s.). 제3공화정기의 사회학자(e.g. Fouillée, Durkheim, Ferneuil)나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정치가(e.g. Gambetta, Ferry)도, 개인의 대표=표상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일원론(“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을 비판한다(PI:140 ; MPF:263-274.). 왜냐하면 “사실”의 관찰에 기초하면, 질서의 “조화(harmonie)”는 중간단체의 유기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되풀이되어 비판을 받음으로써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일체[한 몸]”(MPF:71)인 공화국을 목표로 삼았지만,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비판이 “정치적인 것”의 해체가 아니라 그 수정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유토피아”와, 사회적 “현실” 사이의 상호 긴장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그 자체로 “달성되지 않는(inachevée)” 이념이기 때문이다(cf. DI:37). “사회적인 것”에 의한 비판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항상 수정되고 재생·존속된다는 운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구성한다. “프랑스의 정치모델”은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극, 즉 “분극화”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MPF:231).
4.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
이하에서는 자코뱅주의의 “수정”이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상을 검토한다.
1) 19세기 전반기와 자유주의
로장발롱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는 자코뱅주의가 “수정(amendement)”되는 최초의 시기이다. 즉, 1789년에서 비롯된 정치문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일반성이 “재구성”되는 시기이다(MPF:199 et s.). 그는 그것을 19세기 전반기의 자유주의자 속에서 찾아낸다.
흔히 자유주의자는 국가권력의 확대를 경계하고, 그 외부에서 개인의 자유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상가를 가리킨다(e.g. Constant, Daunou, Tocqueville, Prévost-Paradol, Leroy-Beaulieu). 그러나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런 논자들은 “통치의 문화”를 구축할 수 없고, 프랑스에서는 이차적인 것에 그쳤다(MPF:223).
다른 한편, 기조, 티에르, 비탈-루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는, 사회의 다원성과 정치적 집권화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cf. MG:63 ; MPF:223). “정치적 자유는, 개인들의 독립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 [통치] 능력에서 비롯된다”(MPF:226). 로장발롱에 따르면, 공화국에서의 개인의 자율은 집합체의 자율에 종속된다. 기조 등은 정치적 집권화에 의한 자유의 확보를 주장했다(MPF:203-212). 그들은 국가의 관리운영(administration)에 의해 정치적 집권화를 보완하는 기제를 시민사회에서 찾아내는 한편, 전근대적 특권의 재생을 기피하고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을 부정했다. 어소시에이션은 기조가 말했듯이 “일반적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만 허용된다(MPF:248 et s.).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분극화하는 이 조류에 의해 자코뱅주의를 수정하는 최초의 길이 열리게 된다(MPF:218, 225-231).
2) 제2공화정과 제2제정
2월 혁명기 및 제2공화정기는 자코뱅주의적 전통이 명시적으로 부흥되는 시기로 여겨진다. 보통선거법의 도입은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을 반영했다. 그들은 정치에서 배제된 “비시민(non-citoyen)”이라는 공화국의 일체성에 있어서의 위협으로서 당시 묘사됐다(SC:335-342). 그들을 “시민”으로서 포섭하는 것, “정치적인 것”을 통해 국민적 일체성을 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가 된다(SC:381 et s.).
예를 들어 2월혁명기에는, 공화주의자 논자(e.g. Ledru-Rollin, Leroux, Blanc)에 의해 보통선거를 통한 인민의 일체성의 창출이나, 국가와 개인의 무매개적 결합이라는 관념이 부활한다(cf. SC:Ch.3). 개인들은 “시민”으로서,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사회로 “결집(associer)”해야 한다(SC:381 et s.). 중간단체에 대한 의구심이 잔존하는 가운데, 1848년의 어소시에이션은 자코뱅주의적 유토피아를 계승하고, 국민의 일체성이나 전체성(에 대한 어소시에/어소시에이션)을 스스로 표상하려고 했다.(SC:383-386 ; MPF:239). 제2공화정 하에서는, 블랑키주의자에 의한 소요론, 급진적 공화주의자에 의한 직접 통치론이 제창되지만, 모두 자코뱅주의의 한 변형으로 간주된다(DI:139-167, 169-195).
다른 한편, 제2제정기는 “정치적인 것”의 집권화와 “사회적” 차원에서의 결사의 다양성이 구별되고, “분극화”라는 특징이 다시 등장한다. 우선 나폴레옹 3세는 국민투표를 자신의 정치 모델에 있어서의 중심적인 “제도”로 삼고, “인민의 일체성/단일성”을 찬양한다(DI:201-217). 50년대까지의 그는 일반의지의 직접적 표상을 교란하는 정치적 자유(출판, 정치결사, 집회, 신앙 등)을 부정한다(“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그런데 60년대에 직업적 결사의 허용, 공제조합의 장려, 실업기금의 정비, 단결권과 집회권의 허가 등, 사회적 다원성이 일정 정도 인정된다. 자코뱅주의적인 후견국가상은 자유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받는다. 노동자의 결사나 집회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움직임은 후견국가상의 대안의 모색이며(MPF:249-254), “프랑스 사회사에 있어서의 대전환”(DI:221)으로 위치지어진다. 의회 내에서는 중간단체 부정론이 “혁명의 잘못”으로서, 계파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서(e.g. Gambetta, de Mun, Brousse, Jaurés) 규탄됐다. 그러나 정치적 제도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의 승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회적 영역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은 정치적 영역의 “격리”에 의한 보전을 의도했다(DI:218 et s;MPF:260).
3) 제3공화정
로장발롱에 따르면, 이 시기의 사상적 “대전환(grand tournant)”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주의는 존속했다. 제3공화정의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 강화를 도모하는 엘리트 의회 “정치”와 민중의 정치 개입을 목표로 하는 “사회”(의회의 “외부”)의 이원론적 도식으로 파악되는, “한정된 민주주의(démocratie limitée)”이다(DI:249, 259). 프랑스형 정치모델에서는 이런 테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사회학자와 공화파 정치가 사이의 사상적 구별이며, 특히 후자에 의한 직업적 결사(생디카)와 정치적 결사(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의회 토론이다.
로장발롱에 중요한 것은 급진공화파의 정치가/엘리트(e.g. Waldeck-Rousseau, Bourgeois, Clemenceau, Paul-Boncour)의 사상이다(cf. SC:507 et s.). 애초에 특수이익의 표상에 의해 “일반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기피되던 직업적 결사는, 그 조직률과 가입률의 상승도 있고, 서서히 “노동자[전반]의 일반이익”으로서, 그 유용성이 인정받게 됐다(MPF:283-293). 다만 급진공화파 주도로 성립된 1884년 3월 21일의 직업조합법은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질서의 “조절(régulation)” 양식을 의도했을 뿐이다. 그것은 A. 밀랑이 그러했듯이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얘기됐다(MPF:297-299).
어소시에이션 일반은, 약 20년 후의 1901년법에서 승인된다. 로장발롱은 이 기간의 의회 토론에 프랑스 모델의 핵심이 표현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즉, 의회를 통해 일반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와 중간단체(직업조합, 대학, 상공회의소, 각종 협회·위원회 등)를 통해 다원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와의 구별이 되풀이되어 얘기됐다(MPF:351). 발덱-루소가 전형적이었듯이, 종교단체나 재정기반에 대한 법적 제약을 겪은 어소시에이션은, 출판이나 언론과 똑같은 시민이 지닌 “행위(acte)”의 “자유”로서 인정받은 것에 불과하다(MPF:323, 334-337, 343 et s.). 급진공화파에 의해 “정치적인 것”이 의회를 통해 강조되는 한편, L. 뒤기가 역설한 직능대표제는 공화국이 “무수한 작은 거점”으로 해체하는 것을 우려되고, 강한 반대를 받았다(MPF:352-354). G. 클레망소가 주장했듯이 “사회적인 것”을 전제로 한 “탈중앙집권화”는 “프랑스의 일체성과 합치하는 한”에서만 인정받았다(MPF:375). 로장발롱에 의하면 위의 두 가지 영역의 “분극화”가 프랑스 모델의 본질인 “분극화 민주주의(démocratie polarisée)”를 구성한다(MPF:359, 376 et s.). “사회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상(像)을 모색한 사회학자는 “주변(périphérique)”에 머물렀다고 한다(cf. SC:498 et s.).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서 어소시에이션을 둘러싼 논의에 의해 “사회”의 자율성이 승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적인 특권화는 “수정”을 겪을 뿐이었다. “분극화”를 통한 “일반성의 정치문화의 구원”이 항상 이뤄졌다(MPF:356-359).
4) 20세기의 전개
“분극화 민주주의”의 틀은 20ㅅ기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계승됐다. 의회를 통한 정치적 집권화가 유지된 한편, 엘리트 관료주도의 행정권력이 강화됐다. 후자는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서”, 사회의 다원성을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고 “민주적 일반성”을 보완하기 위한 존재라고 진단된다(cf. PI:238, 257, 262). 9
이런 정치모델은 전후 성장 속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지속됐다(cf. DI:42;PI:13 et s.). 다만 1970년대 이래, 제3부문 등의 어소시에이션과 다양한 커뮤니티 등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중간단체의 흥성·융성은 전지구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존의 프랑스 방식을 다시 묻도록 강제하고 있다(MPF:425-428). 그러나 로장발롱은 자코뱅주의가 과거의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기의 자코뱅주의적인 ‘조직(organisation)’은 훨씬 수정되기는 했으나, 일반성의 ‘정치문화’는 [주권이나 일반이익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의] 사고양식으로서 계속 머물러 있다(MPF:432)
5. 결론
로장발롱은 “분극화”를 핵심 개념으로 함으로써, 민주주의 역사에 내재하는 아포리아의 해결을 시도했다. “사회적인 것” 쪽에서의 저항도 있으면서도,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은, 소여를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통합을 “형식적으로” 가능케 했다. “정치적인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SC:112).
우선 그의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의 특징은, 약 2세기 동안의 사상사에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극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풀이한 것에 있다. 양자의 대항·긴장관계가 내재함으로써, “미완”이기를 계속하는 이념이 프랑스적 민주주의로서 설정[정립]됐다. 르포르나 고셰가 자코뱅주의적 전통을 “전체주의”, “종교(성)”, “권력” 등에 이어진 것이라며 비판적으로 논한 것에 비해, “분극화”에 기초를 둔 새로운 시각에 입각해 그 전통을 재평가한 것에 로장발롱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일반성”의 구축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을 우위로 하는 해석 도식을 제시했으나,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과제를 “국민(nation)”의 재통합/재창조라는 수준에 있어서 파악하는 그 자신의 현대 정치에 대한 관여(commitment)가 반영되어 있다(PI:416-432 ; DI:Conclusion).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단순히 통치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시스템”, “문구”일 뿐만 아니라, “일반의지”의 체현자인 “국민”=“단일한 사회”를 창출하는 “레짐”이다(cf.DI:435 et s ; PI:469).
민주주의는 일반의지의 레짐이며, 일반의지는 오랜 시간 속에서 구축된다. 10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그에 따르면, 현대의 정치적 위기의 근본에는 사회가 “일반의지”에 근거한 “단일한 것”으로서 인식/표상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DI:390 et s.).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이래, “일반의지”, “일반성”의 형성은 “수정”을 동반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사고양식에 기초해 왔지만, “사회적인 것” 쪽은 그런 지속성·단일성은 없기 때문에 거부됐다. 따라서 “일반성의 정치문화”라는 프랑스적 근대를 관통하는 전통의 재평가야말로 오늘날의 프랑스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역시 중요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로장발롱은, 오늘날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는 배후에는 “일반성”의 (재)정의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MPF:434). 그리고 2006년에 간행된 『대항민주주의』 이래, 그는 프랑스 민주주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 현대 민주주의론을 주축으로 유럽국가들과의 비교 정치사 속에서 현재 탐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연구 동향과 아울러 향후의 검토 과제로 하고 싶다.
[査読を含む審査を経て、2015年2月23日掲載決定]
(一橋大学大学院社会学研究科修士課程)
- 2003년까지의 로장발롱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서 다음에 언급되는 문헌이 있다. 只野雅人, 「代表の概念に関する覚書(1)~(4・完)」, 『一橋法学』(1권 1호, 107-124頁, 2002년 3월 ; 1권 3호, 669-686頁, 2002년 11월 ; 2권 3호, 891-924頁, 2003년 11월 ; 3권 1호, 83-109쪽, 2004년 3월). [본문으로]
- 田中拓道, 「ジャコバン主義と市民社会―19世紀フランス政治思想史研究の現状と課題」, 『社会思想史研究』, 31호, 108-117頁(2007년 9월) 참조. [본문으로]
- Mathiez, Albert, La Révolution française(Tome 1-3), Paris, Denoël, 1985(réédition) (ねずまさし, 市原豊太 訳, 『フランス大革命』 총3권, 岩波書店, 1958-1960年) ; Albert, Soboul,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 coll. « Tel », 1984. [본문으로]
- Furet, François, Penser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is, Gallimard(大津真作 訳, 『フランス革命を考える』, 岩波書店, 1989年) ; Furet, La gauche et la Révolution Française au milieu du 19e siècle : Edgar Quinet et la question du Jacobinisme, 1865-1870, Paris, Hachette, 1986. [본문으로]
- Lefort, Claude, L’invention démocratique, Paris, Fayard, 1981 ; Lefort, Essais sur le politique: 19e-20e siècle, Paris, Seuil, 1986 ; Gauchet, Marcel, Le désenchantement du monde : une histoire politique de la religion, Paris, Gallimard, 1985 ; Gauchet, Démocratie contre elle-même, Paris, Gallimard, 2002. 다음의 문헌도 참조. 宇野重規, 『政治哲学へ―現代フランスとの対話―』, 東京大学出版会, 2004年. Artous, Antoine, Démocratie, citoyenneté, emancipation : Marx, Lefort, Balibar, Rancière, Rosanvallon, Negri, Paris, Syllepse, 2010. [본문으로]
- Rosanvallon, P., Pour une histoire conceptuelle du politique, Paris, Seuil, 2003, p.14(富永茂樹 訳, 「政治的なものの近代・現代史―コレージュ・ド・フランス開講講義(上)」, 『みすず』, 499号, 2002年, 4頁). [본문으로]
- Ibid., p.43(邦訳(下), 500号, 2002年, 19頁). [본문으로]
- Cf. Rosanvallon, P., L’Etat en France de 1789 à nos jours, Paris, Seuil, 1990, Ch.2-3ème partie et Ch.3-2ème partie. [본문으로]
- Cf. Rosanvallon, P., La légitimité démocratique : Impartialité, réflexivité, proximité, Paris, Seuil, coll. « Points Essais », 2010, pp.12-14, 67-78, 85. [본문으로]
- Rosanvallon, P., « Penser le populisme », in Le Monde du 21 juillet 2011. 르몽드에는 요약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문은 다음의 URL을 참조(2014年 9月 27日閲覧)。 http://www.laviedesidees.fr/Penser-le-populisme.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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