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 아렌트, <칼 맑스와 서구정치사상의 전통>이라는 제목의 이 번역문은 매일 약간씩 진행되며, 그때마다 이미 번역된 부분도 변경될 것이다.
* 미의회 도서관에서 사본을 볼 수 있다. 링크는 다음을 참조.
https://www.loc.gov/item/mss1105601242/
* 두 개의 초고가 있다. 하나를 First Drafts라고 하고 다른 하나를 Second Drafts라고 한다.
* 아래는 First Drafts 중에서 1/4를 번역한 것이다. 이 1은 다음에 활자화되어 있다. Hanna Arendt, “Karl Marx and the tradition of Western political thought”, Social Research, Summer, 2002.
칼 맑스와 정치사상의 전통
(p.1) 1.* 전통의 붕괴된 명맥
IT has never been easy to think and write about Karl Marx. His impact on the already existing parties of the workers, who had only recently won full legal equality and political franchise in the nation states, was immediate and far-reaching. His neglect, moreover, by the academic, scholarly world hardly lasted more than two decades after his death, and since then his influence has risen, spreading from strict Marxism, which already by the 1920s had become somewhat outmoded, to the entire field of social and historical sciences. More recently, his influence has been frequently denied. That is not, however, because Marx's thought and the methods he introduced have been abandoned, but rather because they have become so axiomatic that their origin is no longer remembered. The difficulties that previously prevailed in dealing with Marx, however, were of an academic nature compared with the difficulties that confront us now. To a certain extent they were similar to those that arose in the treatment of Nietzsche and, to a lesser extent, Kierkegaard: struggles pro and contra were so fierce, the misunderstandings that developed within them so tremendous, that it was difficult to say exactly what or who one was thinking and talking about. In the case of Marx, the difficulties were obviously even greater because they concerned politics: from the very beginning positions pro and contra fell into the conventional lines of party politics, so that to his partisans, whoever spoke for Marx was deemed "progressive," and whoever spoke against him "reactionary."
칼 맑스에 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최근에서야 국민국가들에서 완전한 법적 평등과 정치적 참정권(franchise)을 쟁취한 기성 노동자 정당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직접적이고 막강하다. 게다가 맑스에 대한 학계의 무시는 그의 사후에 20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으며, 그때 이후로 그의 영향력은 상승했다. 또 이미 20년대에는 다소간 시대의 흐름에 뒤쳐졌던 엄격한 맑스주의로부터 사회과학과 역사과학의 전 분야로 퍼져나갔다. 더 최근에는 맑스의 영향력은 빈번하게 부정되고 있다. [삽입 : 더욱이 근래에는 맑스에 대한 부정도 현저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맑스의 사유와 그가 도입했던 방법이 폐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들이 너무 공리적이게 되어서 이것들의 기원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에 맑스를 다룰 때 만연했던 난점들은 우리가 지금 직면한 난점들과 비교하면 다분히 학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어떤 한도에서는, 그것은 니체를 다룰 때 일어나는 난점, 그리고 니체 정도는 아니더라도 키르케고르를 다룰 때 생기는 난점과 유사했다. 즉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투쟁이 너무도 가열찼고, 또 이 투쟁 속에서 생긴 오해가 너무도 막대했기에,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또는 누구에 관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맑스의 경우 이 난점은 명백히 정치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컸다. 즉 애초부터 찬성과 반대 입장은 정치정당의 기성 〔대립〕 노선으로 귀착되었기 때문에 맑스 지지자들, 즉 맑스를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나 ‘진보적’으로 간주되었고, 맑스를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반동적’으로 간주되었다.
This situation changed for the worse when, with the rise of one Marxian party, Marxism became (or appeared to become) the ruling ideology of a great power. It now seemed that the discussion of Marx was bound up not only with party but also with power politics, and not only with domestic but also with world political concerns. And while the figure of Marx himself, now even more so than before, was dragged into the arena of politics, his influence on modern intellectuals rose to new heights: the chief fact for them, and not wrongly so, was that for the first time a thinker, rather than a practical statesman or politician, had inspired the policies of a great nation, thereby making the weight of thought felt in the entire realm of political activity. Since Marx's idea of right government, outlined first as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which was to be followed by a classless and stateless society, had become the official aim of one country and of political movements throughout the world, then, certainly, Plato's dream of subjecting political action to the strict tenets of philosophic thought had become a reality. Marx attained, albeit posthumously, what Plato in vain had attempted at the court of Dionysios in Sicily. (각주1) Marxism and its influence in the modern world became what it is today because of this twofold influence and representation, first by the political parties of the working classes, and, second, by the admiration of the intellectuals, (p.2) not of Soviet Russia per se, but for the fact that Bolshevism is, or pretends to be, Marxist.
이런 상황은 하나의 맑스적 정당이 대두하면서 맑스주의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 (또는 된 것처럼 보였을 때)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 맑스에 관한 논의는 정당만이 아니라 권력 정치와도, 또 국내 정치만이 아니라 세계정치와도 결부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맑스라는 인물 자체가 전에 없을 정도로 정치의 무대arena로 끌려나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근대 지식인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도 새로운 높이로까지 치솟았다. 즉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사실은, 그리고 그렇게 나쁘지 않다면, 최초로 실무적 정치가나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사상가가 하나의 거대한 국가nation의 정책들에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것, 그래서 정치적 활동의 전체 영역에 느껴지는 사유의 비중을 높였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있었고, 이로부터 계급 없고 국가 없는 사회가 뒤따른다고 소묘된 올바른 통치에 관한 맑스의 관념이 한 나라의 공식 목표이자 세계 전역의 정치적 운동의 공식 목표가 된 이후, 확실히 정치적 행동을 철학적 사유 엄밀한 교설들tenets에 종속시키려는 플라톤의 꿈이 현실화되었다. 시칠리아의 디오니소스왕의 왕궁에서 플라톤이 달성하고자 했으나 헛수고로 끝난 것을 맑스는 비록 사후이기는 하지만 달성했던 것이다.(주1) 근대 세계에서 맑스주의와 이것의 영향력은 첫째로 노동계급들의 정치정당들에 의해서, 둘째로는 (2) 소비에트 러시아 자체가 아니라 러시아의 볼셰비즘이 맑스주의적이라는, 또는 그렇게 참칭했다는 사실 때문에 지식인이 찬성했다는 이중의 영향력과 표상[이미지] 때문이었다.
To be sure, Marxism in this sense has done as much to hide and obliterate the actual teachings of Marx as it has to propagate them. If we want to find out who Marx was, what he thought, and how he stands in the tradition of political thought, Marxism all too easily appears mainly as a nuisance--more so than, but not essentially different from, Hegelianism or any other "ism" based on the writings of a single author. Through Marxism Marx himself has been praised or blamed for many things of which he was entirely innocent; for instance, for decades he was highly esteemed, or deeply resented, as the "inventor of class struggle," of which he was not only not the "inventor" (facts are not invented) but not even the discoverer. More recently, attempting to distance themselves from the name (though hardly the influence) of Marx, others have been busy proving how much he found in his avowed predecessors. This searching for influences (for instance, in the case of class struggle) even becomes a bit comical when one remembers that neither the economists of the nineteenth or eighteenth centuries nor the political philosophers of the seventeenth century were needed for a discovery of what was already present in Aristotle. Aristotle defined the substance of democratic government as rule by the poor and of oligarchic government as rule by the rich, and stressed this to the extent that he discarded the content of those already traditional terms, namely, rule by the many and rule by the few. He insisted that a government of the poor be called a democracy, and that a government of the rich be called an oligarchy, even if the rich should outnumber the poor. (2) The political relevance of class struggle could hardly be more emphatically stated than by basing two distinct forms of government on it. Nor can Marx be credited with having elevated this political and economic fact into the realm of history. For such elevation had been current ever since Hegel encountered Napoleon Bonaparte, seeing in him the "world spirit on horse back."
확실히 이런 의미에서 맑스주의는 맑스의 현실적 가르침을 전파propagate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추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했다. 실제로 맑스가 누구였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정치사상의 전통에서 그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우리가 알고 싶어 한다면, 맑스주의는 너무도 골칫거리로 보일 것이다. 다만 그것은 헤겔주의나 한 명의 저자의 저술에 기반한 일체의 다른 ‘주의ism’ 이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를 통해 볼 때 맑스는 그 자신이 완전히 무관한innocent 많은 것을 말했다는 이유로 찬양되거나 매도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수십 년 동안 “계급투쟁의 발명가”라고 높은 평가를 받거나 깊은 원한을 샀지만, 그는 “발명가”가 아니라 (사실은 발명되지 않는다) 발견자였을 뿐이다. 좀 더 최근에는 맑스의 이름(비록 그의 영향력으로부터는 아니지만)과 거리를 두고자 노력하면서, 몇몇 다른 이들은 맑스가 자인한 선조들에서 맑스가 얼마나 발견했는지를 입증하느라 바쁘기도 한다. 영향에 대한 이러한 탐구는 (가령 계급투쟁의 경우)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이미 현존했던 것의 발견을 위해 19세기나 18세기의 경제학자도 17세기의 정치철학자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했을 때 더욱 희극적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의 실체를 빈자들의 지배로, 과두정을 부자들의 지배로 정의했으며, 더욱이 이 점을 강조하면서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용어로 하면 다수에 의한 지배로서의 민주정, 소수에 의한 지배로서의 과두정이라는 내용을 버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부자가 빈자보다 수가 더 많을지라도 빈자의 정부는 민주주의라고 불리고, 부자의 정부는 과두정으로 불린다고 주장했다.(각주2) 이처럼 두 개의 변별적인 정부 형태들을 계급투쟁에 기반을 두고 말하는 것보다 계급투쟁의 정치적 타당성relevance을 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맑스의 공적은 이러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실을 역사의 영역으로까지 고양시켰다는 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헤겔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만났을 때 그에게서 “말을 타고 있는 세계정신”을 보았다고 한 이후, 이미 역사의 영역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But the challenge with which Marx confronts us today is much more serious than these academic quarrels over influences and priorities. The fact that one form of totalitarian domination uses, and apparently developed directly from, Marxism, is of course the most formidable charge ever raised against Marx. And that charge cannot be brushed off as easily as can charges of a similar nature--against Nietzsche, Hegel, Luther, or Plato, all of whom, and many more, have at one time or another been accused of being the ancestors of Nazism. Although (3) today it is so conveniently overlooked, the fact that the Nazi version of totalitarianism could develop along lines similar to that of the Soviet, yet nevertheless use an entirely different ideology, shows at least that Marx cannot very well stand accused of having brought forth the specifically totalitarian aspects of Bolshevik domination. It is also true that the interpretations to which his teachings were subjected, through Marxism as well as through Leninism, and the decisive transformation by Stalin of both Marxism and Leninism into a totalitarian ideology, can easily be demonstrated. Nevertheless it also remains a fact that there is a more direct connection between Marx and Bolshevism, as well as Marxist totalitarian movements in nontotalitarian countries, than between Nazism and any of its so-called predecessors.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맑스에 대한 도전은 이러한 영향과 우월성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보다 훨씬 심각하다. 전체주의적 지배의 한 형태가 맑스주의를 이용한다는 사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이 맑스주의로부터 직접 발전되었다는 사실은 당연히 맑스에 대해 제기되었던 혐의〔고발〕 중에서도 가장 가공할만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혐의〔고발〕는 니체, 헤겔, 루터나 플라톤, 이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나치즘의 선구자였다고 어느 한 때 또는 다른 때에 고발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털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3) 오늘날에는 관례적으로 간과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주의의 나치적 판본이 소비에트적 판본과 유사한 선을 따라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그리고 완전히 상이한 이데올로기까지도 이용했다는 사실은 볼셰비키 지배의 특히 전체주의적인 측면을 초래한 것에 맑스만이 오롯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님을 적어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맑스의 가르침이 맑스주의뿐 아니라 레닌주의를 통해 해석되고, 심지어 맑스주의와 레닌주의를 스탈린이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로 결정적으로 변형시켰다는 것도 확실히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와 볼셰비즘은 물론이고 비전체주의적 나라들에서의 맑스주의적인 전체주의적 운동 사이의 연결이 나치즘과 이른바 그 선행자들 사이의 연결 이상으로 직접적이라는 사실은 남는다.
It has become fashionable during the last few years to assume an unbroken line between Marx, Lenin, and Stalin, thereby accusing Marx of being the father of totalitarian domination. Very few of those who yield to this line of argument seem to be aware that to accuse Marx of totalitarianism amounts to accusing the Western tradition itself of necessarily ending in the monstrosity of this novel form of government. Whoever touches Marx touches the tradition of Western thought; thus the conservativism on which many of our new critics of Marx pride themselves is usually as great a self-misunderstanding as the revolutionary zeal of the ordinary Marxist. The few critics of Marx who are aware of the roots of Marx's thought therefore have attempted to construe a special trend in the tradition, an occidental heresy that nowadays is sometimes called Gnosticism, in recollection of the oldest heresies of Catholic Christianity. Yet this attempt to limit the destructiveness of totalitarianism by the consequent interpretation that it has grown directly from such a trend in the Western tradition is doomed to failure. Marx's thought cannot be limited to "immanentism," as if everything could be set right again if only we would leave utopia to the next world and not assume that everything on earth can be measured and judged by earthly yardsticks. For Marx's roots go far deeper in the tradition than even he himself knew. I think it can be shown that the line from Aristotle to Marx shows both fewer and far less decisive breaks than the line from Marx to Stalin.
최근 몇 년 사이에 맑스, 레닌, 스탈린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고, 그럼으로써 맑스를 전체주의 지배의 아버지로 간주하려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한 논의를 하는 사람도, 맑스에게 전체주의의 혐의를 씌우는 것은 서구의 전통 그 자체가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새로운 통치형태의 괴물성으로 필연적으로 귀결된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다. 맑스를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나 서구사상의 전통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으며, 맑스 비판을 새롭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랑으로 여기는 보수주의 자체가 평범한 맑스주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혁명적 열의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기 오해에 빠져 있다. 그래서 맑스의 사상의 뿌리를 알고 있는 소수의 맑스 비판자들은 맑스를 전통의 특수한 조류로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즉, 가톨릭의 가장 오래된 이단파를 회상하며, 오늘날 때로는 그노시스주의라고 불리는 서구 이단파의 전통의 조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처럼 전체주의를 서구의 전통에서 직접 싹튼 것으로 일관되게 해석하는 데에서 생기는 파괴를 제한하려고 시도하더라도,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는 다음 세계에 맡겨버리고, 지상의 모든 것은 지상의 잣대로 측정되고 판단될 수 있다고 가정할 때에만 마치 모든 것이 다시 잘 풀릴 수 있는 것처럼, 맑스의 사유는 ‘내재주의’로 제한될 수 없다. 전통에서 맑스의 뿌리는 그 자신이 알았던 것보다 더 깊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맑스에 이르는 선이 맑스에서 스탈린에 이르는 선보다 결정적인 단절이 훨씬 더 적고 거의 없다는 점을 나는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The serious aspect of this situation, therefore, does not lie in the ease with which Marx can be slandered and his teachings, as well as his problems, misrepresented. The latter is of course bad enough, since, as we shall see, Marx was the first to discern certain problems arising from the Industrial Revolution, the distortion of which means at once the loss of an important source, and possibly help, in dealing with real predicaments that ever more urgently continue to confront us. But more serious than any of this is the fact that Marx, as distinguished from the true and not the imagined sources of the Nazi ideology of racism, clearly does belong to the tradition of Western political thought. As an ideology Marxism is doubtless the only link that binds the totalitarian form of government directly to that tradition; apart from it any attempt to deduce totalitarianism directly from a strand of occidental thought would lack even the semblance of plausibility.
따라서 이 상황의 심각한 면모는 맑스가 손쉽게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도, 맑스가 제기한 문제는 물론이고 그의 가르침이 잘못 표상되고 있다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후자는 충분히 나쁜 일이다. 왜냐하면 곧 보겠지만, 맑스는 산업혁명에서 생겨나는 몇몇 문제들을 최초로 알아챈 사람이며, 따라서 맑스가 제기한 문제를 왜곡하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 더욱 더 긴급하게 계속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곤경을 다루는 데 있어서의 중요한 원천과 가능한 도움을 잃는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치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가 상상으로 꾸며낸 원천이 아니라 진정한 원천인 것과는 구별되게, 맑스는 분명히 서구정치사상의 전통에 속해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맑스주의는 전체주의적 통치 형태를 전통과 직접 연결하는 유일한 연결고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맑스주의를 떠나서는, 전체주의를 서양 사상의 조류로부터 직접 연역해내려는 그 어떤 시도도 개연성의 외관semblance of plausibility조차 잃어버렸을 것이다[숱한 시도는 겉모습의 설득력조차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A serious examination of Marx himself, as opposed to the cursory dismissal of his name and the often unconscious retention of the consequences of his teaching, is therefore somehow dangerous in two respects: it cannot but question certain trends in the social sciences that are Marxist in all but name and the depth of Marx's own thought; and it must necessarily examine the real questions and perplexities of our own tradition with which Marx himself dealt and struggled. The examination of Marx, in other words, cannot but be an examination of traditional thought insofar as it is applicable to the modern world, a world whose presence can be traced back to the Industrial Revolution on the one hand, and to the political revolutions of the eighteenth century on the other. The modern age presented modern man with two main problems, independent of all political events in the narrow sense of the word: the problems of labor and history. The significance of Marx's thought lies neither in his economic theories nor in its revolutionary content, but in the stubbornness (4) with which he clung to these two chief new perplexities.
맑스의 이름을 겉으로는 함부로 내팽개치면서도 그의 가르침이 초래한 결과들을 종종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맑스 자신을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것은 따라서 두 가지 면모에서 다소 위험한 일이다. 하나는 맑스 자신의 사유의 이름과 깊이를 떠나 맑스주의적 사회과학의 몇 가지 조류를 의문에 부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맑스 자신이 다루고 격투를 벌인 우리 자신의 전통이 지닌 진정한 문제들과 난제들perplexities을 필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맑스를 검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산업혁명과, 다른 한편으로 18세기의 정치혁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될 수 있는 존재감을 지닌 세계, 즉 근대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한에서 그 전통적 사상을 검토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어[세계의 오식인 듯]의 좁은 의미에서의 모든 정치적 사건들과는 독립적으로, 근대 시대는 근대인들에게 두 개의 주요 문제들을 제시했다. 노동의 문제와 역사의 문제이다. 맑스의 사유가 지닌 유의미성은 그 경제이론에 있는 것도, (4) 혁명적 내용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새로운 두 가지 주요한 난제에 그가 고집스럽게 매달렸다는 데 있다.
One might argue that the thread of our tradition was broken, in the sense that our traditional political categories were never meant for such a situation, when, for the first time in our history, political equality was extended to the laboring classes. That Marx at least grasped this fact and felt that an emancipation of the laboring class was possible only in a radically changed world distinguishes his thought from that of utopian socialism, the chief defect of which was not (as Marx himself believed) that it was unscientific, but its assumption that the laboring class was an underprivileged group and that the fight for its liberation was a fight for social justice. That the older convictions of Christian charity should develop into fierce passions of social justice is understandable enough at a time when the means to put an end to certain forms of misery were so evidently present. Yet such passions were and are "outdated" in the sense that they had ceased to be applicable to any social group but rather only to individuals. What Marx understood was that labor itself had undergone a decisive change in the modern world: that it had not only become the source of all wealth, and consequently the origin of all social values, but that all men, independent of class origin, were sooner or later destined to become laborers, and that those who could not be adjusted into this process of labor would be seen and judged by society as mere parasites. To put it another way: while others were concerned with this or that right of the laboring class, Marx already foresaw the time when, not this class, but the consciousness that corresponded to it, and to its importance for society as a whole, would decree that no one would have any rights, not even the right to stay alive, who was not a laborer. The result of this process of course has not been the elimination of all other occupations, but the reinterpretation of all human activities as laboring activities.
[우선 노동에 대해 보면,]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정치적 평등이 노동 계급으로 확대되었을 때, 전통적인 정치 범주는 그런 상황을 결코 상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전통의 명맥은 끊어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맑스가 이 사실을 포착했다는 점, 그리고 노동계급의 해방은 세계의 급진적 변화에서만 가능할 뿐이라고 느꼈다는 점은 그의 사유를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의 사상과 구별해준다.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의 주요 결점은 (맑스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비과학적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계급을 혜택을 못 받은underprivileged 집단으로 보고 이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이 사회적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고 가정한 데 있었다. 기독교적인 이웃애charity라는 오랜 신념이 사회적 정의의 맹렬한 정념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점은 비참의 몇몇 형태들을 종식시킬 만한 수단을 그토록 명백하게 갖춘 시대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정념은 모든 사회집단에 적용 가능한 것이기를 그치고, 오히려 개인들에게만 적용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예전에도 오늘날에도 ‘시대착오’이다. 맑스가 이해한 것은 근대 세계에서 노동 자체가 결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 노동이 모든 부의 원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사회적 가치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계급적 출신과는 독립적으로 조만간 노동자가 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노동 과정에 적응할 수 없는 자들은 사회에 의해 단순히 기생충으로 간주되고 판단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다른 이들이 아직도 노동 계급의 이런저런 권리에 관여하고 있을 때, 이미 맑스는 이 계급이 아니라 그것에 상응한 [계급] 의식과 이것이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의해 노동자가 아닌 인간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없고 심지어 살아갈 권리조차 없다고 선언될 시대를[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의 결과는 다른 모든 직업이 폐절된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 활동들을 노동 활동들로 재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From the viewpoint of the history of ideas, one might argue with almost equal right that the thread of tradition was also broken the moment that History not only entered human thought but became its absolute. Indeed, this had happened not with Marx but with Hegel, whose entire philosophy is a philosophy of history, or rather, one that dissolved all previous philosophic as well as all other thought into history. After Hegel had historicized even logic, and after Darwin, through the idea of evolution, had historicized even nature, there seemed nothing left that could withstand the mighty onslaught of historical categories. The conclusion that Marx quite properly drew from this spiritual (geistliche) situation was his attempt to eliminate history altogether. For (5) Hegel, thinking historically, the meaning of a story can emerge only when it has come to an end. End and truth have become identical; truth appears when everything is at its end, which is to say when and only when the end is near can we learn the truth. In other words, we pay for truth with the living impulse that imbues an era, although of course not necessarily with our own lives. The manifold modern versions of an antagonism between life and spirit, especially in their Nietzschean form, have their source in this historicization of all our spiritual categories, that is, in an antagonism between life and truth.
[다음으로] 관념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역사〉가 인간의 사유의 영역에 파고들 뿐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 되었을 때. 역시 전통의 명맥은 끊어졌다고 거의 동등한 권리를 갖고서[비슷하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맑스가 아니라 헤겔과 더불어서 일어났다. 헤겔의 철학 전체는 역사 철학이다. 아니 오히려 그는 기존의 모든 철학적 사유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사유들도 역사 속으로 해소해버렸다. 헤겔이 논리마저도 역사화한 후에는, 그리고 다윈이 진화의 관념을 통해 자연마저도 역사화한 후에는 역사적 범주들에 대한 거센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정신적(geistliche) 상황에서 맑스가 꽤 적절하게 끌어낸 결론은 역사를 통째로 폐기하려는 시도였다. (5) 역사적으로 생각하면 헤겔에게 이야기의 의미는 그것이 끝났을 때만 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헤겔에게] 종언과 진리는 동일한 것이 되었다. 거기에서 진리는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나타난다. 즉, 끝이 가까워졌을 때, 그리고 끝이 가까워졌을 때에만 우리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 달리 말하면, 우리는 한 시대에 스며들어 있는 살아있는 충동으로 진리에 대해 대가를 지불한다[인생을 대가로 진리를 얻는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우리 자신의 인생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삶과 정신의 적대에 관한 다양한 근대적 판본은, 특히 그 니체적 형태에 있어서는, 우리의 모든 정신적 범주들의 이런 역사화에서, 즉 삶과 진리의 적대에서 그 원천을 갖고 있다.
[*] 이 대목에는 맥락상 다음 단락, 즉 "헤겔이 철학 일반에 대해 말한 것 ~"이 삽입될 수 있다. 헤겔에 대한 추가적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추가적인 고민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What Hegel states about philosophy in general, that "the owl of Minerva spreads her wings only with the falling of the dusk," (3) holds only for a philosophy of history, that is, it is true of history and corresponds to the view of historians. Hegel of course was encouraged to take this view because he thought that philosophy had really begun in Greece with Plato and Aristotle, who wrote when the polis and the glory of Greek history were at their end. Today we know that Plato and Aristotle were the culmination rather than the beginning of Greek philosophic thought, which had begun its flight when Greece had reached or nearly reached its climax. What remains true, however, is that Plato as well as Aristotle became the beginning of the occidental philosophic tradition, and that this beginning, as distinguished from the beginning of Greek philosophic thought, occurred when Greek political life was indeed approaching its end. The problem then arose of how man, if he is to live in a polis, can live outside of politics; this problem, in what sometimes seems a strange resemblance to our own times, quickly became the question of how it is possible to live without belonging to any polity, that is, in the state of apolity, or what we today would call statelessness.
헤겔이 철학 일반에 대해 말한 것, [즉]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질 때에만 날개를 편다”[철학은 황혼에만 날아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은 역사 철학에만 들어맞을 뿐이다. 즉, 이것은 역사에 대해 들어맞으며, 역사가의 시각과 일치한다. 물론 헤겔이 이런 시각을 굳이 피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철학은 실제로 그리스에서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폴리스와 그리스 역사의 영광이 종언을 맞이했을 때라고 그는 쓴 것이다[그리스 철학이 도시국가의 종언과 그리스 역사의 영광의 종언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의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혹은 최고조에 가까이 간 것 같았을 때 그리스의 철학적 사유는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의 철학적 전통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리고 이 시작은 그리스의 철학적 사유의 시작과는 달리, 그리스의 정치적 삶이 실제로 그 종언에 접근했을 때 일어났다는 것도 확실하다[정치적인 모든 것이 종언하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가 떠올랐을 때 이뤄졌다는 것도 또한 확실하다]. 그 문제란 폴리스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정치의 외부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때때로 우리 자신의 시대와 기묘하게 부합되는 것 같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재빨리 되어버린다. 그것은 어떤 폴리티에도 속하지 않고, 즉 무폴리티의 상황에서, 즉 오늘날 우리가 국가 없음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다[어떤 도시국가에도 속하지 않고, 폴리티-없음apolity의 상태에서, 혹은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국가 없음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다].
One could say that the problem of labor indicates the political side, and the problem of history the spiritual side, of the perplexities that arose at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and emerged fully in the middle of the nineteenth. Insofar as we still live with and in these perplexities, which meanwhile have become much sharper in fact while much less articulate in theoretical formulation, we are still Marx's contemporaries. The enormous influence that Marx still exerts in almost all parts of the world seems to confirm this. Yet this is true only to the extent that we choose not to consider certain ev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that is, those events that ultimately led to the entirely novel form of government we know as totalitarian domination. The thread of our tradition, in the sense of a continuous history, broke only with the emergence of totalitarian institutions and policies that no longer could be comprehended through the categories of traditional thought. These unprecedented institutions and policies issued in crimes that cannot be judged by traditional moral standards, or punished within the existing legal framework of a civilization whose juridical cornerstone had been the command Thou shalt not kill.
18세기 말에 등장하여 19세기 중반에 완전하게 제기된 난제들 중에서 노동의 문제는 그 정치적 측면을, 역사의 문제는 그 정신적 측면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난제들은 그 후 점점 날카로워져 이론적 정식화로 분절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러한 난제들 속에서, 난제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에서, 우리는 여전히 맑스의 동시대인이다. 지금도 맑스가 세계의 거의 모든 부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를 확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20세기의 몇몇 사건들을 고려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한에서만 들어맞는 말이다. 즉, 그 사건들은 우리가 전체주의적 지배라고 알고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통치 형태로 궁극적으로 이어진 것이다[20세기의 사건들은 전체주의적 지배라고 불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정부 형태를 결과한 것이다]. 연속적인 역사라는 의미에서 우리 전통의 명맥은, 전통적 사유의 범주들을 통해서는 더 이상 파악될 수 없는 전체주의적 제도 및 정책의 출현과 더불어 붕괴되었을 뿐이다[사실 연속적인 역사라는 의미에서 우리 전통의 명맥은 전통적 사유의 범주들을 통해서는 더 이상 파악될 수 없는 전례 없는 제도와 정책의 출현과 더불어 붕괴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례 없는 제도와 정책이 초래한 ‘범죄’는 전통적인 도덕적 기준에 의해서 판단될 수도 없고, ‘살인하지 마라’는 명령을 그 법적 시금석으로 갖고 있는 문명의 현존하는 법률적 틀 내부에서 처벌될 수도 없다.
(6) The distinction between what can and what cannot be comprehended in terms of the tradition may appear unduly academic. Among the conspicuous reflections of the crisis of the present century--and one of the outstanding indications that it indeed involved nothing less than a breakdown of the tradition--has been the learned attempts by many scholars to date the origin of the crisis. With almost equal plausibility that origin has been seen in historical moments ranging between the fourth century before and the nineteenth century after Christ. Against all such theories, I propose to accept the rise of totalitarianism as a demonstrably new form of government, as an event that, at least politically, palpably concerns the lives of all of us, not only the thoughts of a relatively few individuals or the destinies of certain specific national or social groups. Only this event, with its concomitant change of all political conditions and relationships that previously existed on the earth, rendered irreparable and unhealable the various "breaks" that have been seen retrospectively in its wake. Totalitarianism as an event has made the break in our tradition an accomplished fact, and as an event it could never have been foreseen or forethought, much less predicted or "caused," by any single man. So far are we from being able to deduce what actually happened from past spiritual or material "causes" that all such factors appear to be causes only in the light cast by the event, illuminating both itself and its past.
전통에 입각해 이해될 수 있는 것과 이해될 수 없는 것 사이의 구별은 지나칠 정도로 학문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이러한 구별은 단지 학문상의 구별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세기의 위기에 관한 주목을 받은 성찰들 중에서 ─ 그리고 이 위기가 전통의 몰락에 다름 아닌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저명한 견해들 중에서 ─ 많은 학자들은 위기의 기원의 날짜를 특정하려는 시도를 익혔다[분명 우리의 위기에 대해 주목을 받은 성찰과, 그런 위기가 우리의 전통 전체의 붕괴를 동반한다는 저명한 견해 속에는 적지 않은 학자들에 의해 거의 마찬가지로 그 위기의 기원을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19세기 사이의 어딘가에서 그럴듯하게 찾아내려고 시도한 것이 있다]. 이 모든 이론에 맞서, 나는 전체주의의 대두를 명백히 새로운 통치 형태로서, 즉 상대적으로 소수의 개인들의 사유나 몇몇 특정한 민족적 혹은 사회적 집단의 운명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과 적어도 정치적으로, 또렷하게 관련된 사건으로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그러나 그러한 이론에 대해 내가 여기서 제기하는 것은 전체주의 통치의 대두를 소수자의 사상이나 특정한 민족, 사회집단의 운명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을 적어도 정치적으로 실제로 끌어들인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완전히 새로운 통치로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기존에 지구상에 실존한 모든 정치적 조건과 관계의 변화를 동반하는 사건들만이 그 여파 속에서 회고적으로 보여진 다양한 ‘단절들’을 회복할 수 없고 치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이렇게 지구상의 온갖 정치적 조건과 정치적 관계를 변화시킨 사건에 의해서 비로소 다른 모든 ‘단절’이 복원 불가능해졌으며, 그 이후 우리의 전통의 붕괴는 기정사실화되었다]. 사건으로서의 전체주의는 우리 전통에 있어서의 단절을 하나의 성취된 사실로 만들었으며, 사건으로서의 그것은 단 한 사람에 의해서는 예견되거나 미리 생각될 수 없으며, 예측되거나 ‘야기될’ 수도 없다[그것은 사건으로서는 단 한 사람에 의해서는 미리 보거나 미리 생각될 수 없고, 예견할 수도 미리 야기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제로 일어났던 것을 과거의 정신적이거나 물질적 ‘원인들’에서 연역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요인은 자신과 자신의 과거를 밝게 비추는 사건 에 의해 투사된 빛 속에서만 원인들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In this sense, then, we are no longer the contemporaries of Marx. And it is from this viewpoint that Marx acquires a new significance for us. He is the one great man of the past who not only was already concerned with predicaments that are still with us, but whose thought could also be used and misused by one of the forms of totalitarianism. Thus Marx seems to provide a reliable link for us back into the tradition, because he himself was more firmly rooted in it (even when he thought he was rebelling against it, turning it upside down, or escaping from the priority of theoretical-interpretative analysis into historical-political action) than we can ever be again. For us totalitarianism necessarily has become the central event of our times and, consequently, the break in tradition a fait accompli. Because Marx concerned himself with the few new elementary facts for which the tradition itself did not provide a categorical framework, his success or failure therefore enables us to judge the success or failure of the tradition itself in regard to these facts, even before its moral, legal, theoretical, and practical standards, together with its political institutions and forms of organization, broke down spectacularly. That Marx still looms so large in our present world is indeed the measure of his greatness. That he could prove of use to totalitarianism (though certainly he can never be said to have been its "cause") is a sign of the actual relevance of his thought, even though at the same time it is also the measure of his ultimate failure. Marx lived in a changing world and his greatness was the precision with which he grasped the center of this change. We live in a world whose main feature is change, a world in which change itself has become a matter of course to such an extent that we are in danger of forgetting that which has changed altogether.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이상 맑스의 동시대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야 맑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유의미성을 획득한다. 맑스는 우리가 여전히 겪고 있는 고충이 이미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사유가 전체주의의 형태들 중 하나에 의해 이용되고 오용될 수 있었던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 중 한 명이다[맑스는 과거의 대사상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우리가 여전히 겪고 있는 고충에 이미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전체주의라는 새로운 통치형태에 이용되고 오용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맑스는 우리가 전통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믿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맑스 자신은 (설령 그가 전통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이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며, 혹은 이론적-해석적 분석을 우위에 두는 것에서 벗어나 역사적-정치적 행동으로 들어서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또 다시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전통에 확고하게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전체주의는 필연적으로 우리 시대의 중심적 사건이 되었고, 결국 전통의 붕괴가 기정사실이었다. [이와 달리] 맑스 자신은 전통 자체가 범주적 틀을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들의 몇 안 되는 요소들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므로 맑스의 성공이나 실패는 우리가 이 사실들과 관련해서 전통 자체의 성공이나 실패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설령 그것이 전통의 도덕적, 법적, 이론적, 그리고 실천적 기준이, 이것의 정치적 제도들 및 조직 형태들과 더불어 볼거리가 풍성한 방식으로 붕괴하기 전이었다고 해도[우리에게 전체주의는 필연적으로 세기의 중심적인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고, 또 전통의 붕괴는 기정사실이라서 되풀이 될 수 없었던 반면, 맑스 자신은 전통 그 자체가 범주적 틀을 제공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기초적인 새로운 사실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맑스의 성공이나 실패는 이 전통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비록 그것이 전통의 도덕적, 법적, 이론적이고 실천적 기준이 그 정치적 제도들과 조직 형태들과 더불어 붕괴되기 전이었다고 해도]. 맑스가 우리의 현재 세계에서 여전히 그토록 큰 존재로 보인다는 것은 심지어 그의 위대함의[위대함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비록 분명히 그가 결코 전체주의의 ‘원인’이 되었다고는 결코 말해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전체주의에 이용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사유가 지닌 현행적 적실성의 표시임을 증명할 것이다[또한 비록 그가 확실히 전체주의의 원인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그가 전체주의에 이용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사유의 현재성actuality을 나타내는 표시sign이다]. 비록 그것이 또한 동시에 그의 사유의 궁극적 실패의 척도이기는 하지만. 맑스는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살았고, 그의 위대함은 이 변화의 핵심을 그가 정확성을 갖춰서 포착했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그 주요 특징이 변화인 세계에, 변화 자체가 당연한 것인 나머지 모조리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우리는 변화 자체가 당연한 사실이 되고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그리하여 무엇이 변화되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심지어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변화를 주요한 성격으로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 위의 두 구절은 다른 곳에 붙어야 하므로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는다.
In order to understand the political importance of the emancipation of Labor and Marx’s corresponding dignification of Labor as the most central of all human activities, it may be well to state at the beginning a distinction between Labor and Work which is, though inarticulately, decisive for the who the tradition and has only recently, partly because of Marx’s teaching, become blurred.
* 위의 구절 역시 내용상 다른 곳에 붙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여기에 번역본을 올리고, Social Research에서 그 위치를 변경한 대목에서 이 부분을 다시 적어두겠다.
〈노동〉의 해방과 이것에 대응하여 맑스가 모든 인간 활동들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으로서의 〈노동〉을 고귀하게 여기는 시각이 지닌 정치적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과 〈작업〉의 구별을 고려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구별은 충분히 명확하게 분절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전통 전체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것이었고, 최근에서야 부분적으로는 맑스의 가르침 때문에 흐릿해졌을 뿐이다.
(7) The first great challenge to tradition came when Hegel interpreted the world as subject to change in the sense of historical movement. Marx's own challenge to tradition--"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4)--was one among many possible conclusions that might be derived from Hegel's system. To us it sounds as though Marx were saying: The world the philosophers of the past have interpreted, and that the last of them understood in terms of a continuous, self-developing history, is in fact changing beyond recognition. Let us try to take control of this process and change the world in accordance with our tradition. By "tradition" Marx always understood the tradition of philosophy, to which the one surviving class, representing humanity as a whole, would ultimately become the heir. Marx himself meant that the irresistible motion of history one day would stop, that further change would be ruled out when the world had undergone its last and decisive change. This side of Marx's teaching is usually dismissed as its utopian element: the end in view of a classless society when history itself would come to a halt once its motor--class struggle--would have ceased. In fact it indicates that in some fundamental aspects Marx was more closely bound to the tradition than Hegel was. The revolutionary element in Marx's teachings, therefore, is only superficially contained in his vision of an end brought about by actual revolution, the outcome of which, according to him, would have coincided rather curiously with the ideal of life associated with the Greek city-states. The really anti-traditional and unprecedented side of his thought is his glorification of labor, and his reinterpretation of the class--the working class--that philosophy since its beginning had always despised. Labor, the human activity of this class, was deemed so irrelevant that philosophy had not even bothered to interpret and understand it. In order to grasp the political importance of the emancipation of labor, and Marx's corresponding dignification of labor as the most fundamental of all human activities, it may be well just to mention, at the beginning of these reflections, the distinction between labor and work that, although largely unarticulated, has been decisive for the whole tradition, and that, only recently, and partly because of Marx's teachings, has become blurred.
Marx is the only thinker of the nineteenth century who took its central event, the emancipation of the working class, seriously in philosophic terms. Marx's great influence today is still due to this one fact, which also, to a large extent, explains how his thought could become so useful for purposes of totalitarian domination. The Soviet Union, which from the moment of its foundation called itself a republic of workers and peasants, may have deprived its workers of all the rights they enjoy in the free world. Yet its ideology is primarily an ideology designed for laborers, and labor, as distinguished from all other human activities, has remained its highest "value," the only distinction it recognizes. In this respect it is, moreover, only the most radical version of our own society, which more and more tends also to become a society of laborers. On the other hand, the Soviet Union's means of domination, unprecedented as they are in political history and unknown to political thought, have frequently (and not altogether wrongly) been called the means of a slave society. Although this term does not do justice to the nonutilitarian character of total domination, it does indicate the total character of the subjection itself. That such subjection is worsened when the utilitarian motive, which had been the chief guarantee of a slave's life, no longer exists, is obvious. But then slavery, at least in Western society, never has been a form of government and therefore never, strictly speaking, has belonged in the political realm. Only those who were not slaves were able to take part in political life under normal, nontyrannical government. But even under tyranny the sphere of private life was left intact, which is to say that there was left a sort of freedom that no slave might enjoy.
(8) But whether Marx, whose influence on politics was tremendous, was ever genuinely interested in politics as such may justly be doubted. The fact is that his interpretation, or rather, glorification of labor, while only following the course of events, in itself could not fail to introduce a complete reversal of all traditional political values. It was not the political emancipation of the working class, the equality for all that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included menial workers, that was decisive, but rather the consequence that from now on labor as a human activity no longer belonged to the strictly private realm of life: it became a public political fact of the first order. By this I do not refer to the economic sphere of life; this sphere as a whole always was a matter of public concern. But this sphere is only to a very small extent the sphere of labor.
Labor is necessarily prior to any economy, which is to say that the organized attempt of men living together, handling and securing both the needs and the luxuries of life, starts with and requires labor even when its economy has been developed to the highest degree. As the elementary activity necessary for the mere conservation of life, labor had always been thought of as a curse, in the sense that it made life hard, preventing it from ever becoming easy and thereby distinguishing it from the lives of the Olympian gods. (5) That human life is not easy is only another way of saying that in its most elementary aspect it is subject to necessity, that it is not and never can become free from coercion, for coercion is first felt in the peculiarly all-overwhelming urges of our bodies. People who do nothing but cater to these elementary coercive needs were traditionally deemed unfree by definition--that is, they were considered unready to exercise the functions of free citizens. Therefore those who did this work for others in order to free them from fulfilling the necessities of life themselves were known as slaves.
In every civilization labor is the activity that enables the public realm to put at our disposal what we consume. Labor as the metabolism with nature is not primarily productive but consumptive, and its necessity would remain so even if no productivity, no addition to the common world, were ever associated with it. It is because of the connection of all laboring activity to the strictly biological needs of our bodies that it traditionally was deemed to belong to the lower, almost animal-like functions of human life, and as such considered a strictly private matter. Public political life began where this realm of the private ended, or in other words whenever those needs could be transcended into a common world, a world in-between men transcending the metabolism with nature of each of its individuals. Politics in the original Greek sense of the word began with the liberation from labor, and in spite of many variations remained the same in this respect for nearly 3,000 years; and this, as we know, was first made possible through the institution of slavery. Slavery therefore was not a part of Greek political life but the condition of politeuein, of all those activities that for the Greeks fulfilled the life of the citizen. As such it was based on rule over slaves, but was itself not divided into ruling and being ruled; for the early Greeks ruling over slaves was a pre-political condition of politeuein, of being political.
This original form of politics underwent a decisive change in the period of decay of the Greek polis, a decay that coincided with that culmination of Greek philosophy, which was to become authoritative for all times up to our own. The suspicion and contempt of the philosophers concerned the activity of politeuein itself but not the basis on which it rested. In the stead of politeuein, which had been made possible by liberation from the necessities of biological life, came the ideal of philosophein, the activity of philosophizing. From then on the distinction between ruling and being ruled invaded the realm of politics directly; and the rule over the necessities of life became the precondition, not of politics, but of philosophy, that is, ruling over whatever was materially needed to enable man to lead the higher, philosophic life took the place of politeuein. In both cases the earlier experience of an activity fulfilling the life of the citizen was all but lost to the tradition. The emancipation of labor, both as the glorification of the laboring activity and as the political equality of the working class, would not have been possible if the original meaning of politics--in which a political realm centered around labor would have been a contradiction in terms--had not been lost.
When Marx made labor the most important activity of man, he was saying, in terms of the tradition, that not freedom but compulsion is what makes man human. When he added that nobody could be free who rules over others (9) he was saying, again in terms of the tradition, what Hegel, in the famous master-servant dialectic, had only less forcefully said before him: that no one can be free, neither those enslaved by necessity nor those enslaved by the necessity to rule. In this Marx not only appeared to contradict himself, insofar as he promised freedom for all at the same moment he denied it to all, but to reverse the very meaning of freedom, based as it had been on the freedom from that compulsion we naturally and originally suffer under the human condition.
Equality for workers and the dignification of the laboring activity were of such tremendous and revolutionary importance because the occidental attitude to labor had been so closely connected with its attitude to life in the purely biological sense. And this sense was stressed even more forcefully than before in Marx's own definition of labor as man's metabolism with nature. The laborers were not only those who were ruled by the free in order not to be enslaved to the sheer necessities of life; they were, psychologically speaking, also those who stood accused of philopsychia, of love of life for life's own sake. Philopsychia in fact is what distinguished the slave from the free man. In ancient times the free man found his hero in Achilles, who exchanged a short life for the eternal fame of greatness; after the fourth century before Christ the free man became the philosopher who devoted his life to the6rein, to the "contemplation" of eternal truths, or, in the Middle Ages, to the salvation of his eternal soul. Insofar as the political realm was constituted by free men, labor was eliminated from it; and in all these instances, even those in which the value of political action was most limited, labor was viewed as an activity without any dignity in itself whatso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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