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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politique2

[임시번역] 하코다 테츠, <생정치에서 통치와 계몽으로>(현대사상 2008.5) * 용어도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초벌을 올린다. 삶정치/생정치에 관한 작업 노트의 일환으로 꾸준한 읽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고민의 가닥을 잡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무난할 듯... 조만간 기회를 내서 다시 수정할 것이다. 생정치에서 통치와 계몽으로 ― 네그리와 푸코의 생정치 개념에 관한 노트 * 글쓴이 : 하코다 테츠(箱田徹) * 출 처 : ≪현대사상≫ 2008년 5월호, (173~179쪽) 네그리의 푸코 독해는 비판적이며 도발적이다. 현재적 푸코 수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이론적 틀에서 푸코와 대화한다. 확실히 푸코는 근래 들어 다양하게 독해되고 있다. 생권력론을 묵시록적인 주권론과 결합시키는 철학자라든지, 통치성론보다는 감시사회론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도 있고, .. 2008. 12. 17.
[생정치/삶정치] 아렌트와 낭시를 생각하며...(짧은 낙서) 근 몇 년 동안 생/삶-정치bio-politique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잘 알겠지만 이것은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생기는 문제들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류의 해석은, 푸코를 활용하여 논하기에는 그다지 정합적이지 않다. 장-뤽 낭시를 따라 말하자면, “생에 의해 포괄적으로 결정되고 그 통제에 전념하는 정치질서”가 이 말의 본래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너무 막연하다. 따라서 푸코를 다양한 선분들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 푸코와 들뢰즈, 푸코와 네그리, 푸코와 아감벤, 푸코와 낭시, 푸코와 아렌트 등등. 앞의 세 쌍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 간략하게 서술할 것이기 때문에 푸코와 낭시, 특히 아렌트를 매개로 한 이 둘의.. 2008.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