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 멀티튜드

푸코와 오이디푸스 :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 권력-지식의 이론에 대해

by 상겔스 2024. 2. 9.

https://kguopac.kanto-gakuin.ac.jp/webopac/bdyview.do?bodyid=NI30003909&elmid=Body&fname=004.pdf

야하타 케이이치(八幡恵一)

* PDF와 아래의 문서는 국역본 출처의 표기를 비롯해 중요한 내용이 다르다. 가급적 PDF를 참조하기 바란다. 

월간 멀티튜드 2024년 2월호 - 푸코와 오이디푸스 -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 권력-지식 이론에 대해.pdf
0.94MB

 

* 옮긴이는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푸코의 6번의 강의가 콜레주드프랑스 취임 직후부터 마지막 강의까지 (미국과 벨기에를 포함해서)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다. 이 시기에는 푸코의 사유 체계에서 여러 소소한 변주들이 모두 있기도 했던 만큼, 이 강의들을 비교함으로써 푸코의 이론적 변천이나 모색이 어떤 모양을 취했는지, 혹은 취하지 않았는지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비록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와 관련한 선행 연구가 있어서 소개한다. / 한편, 푸코의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의 중요성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202428.

 

<요지>

이 글은 20세기 프랑스 사상가인 미셸 푸코의 권력-지식의 이론에 관한 연구이다. 잘 알려진 대로 푸코는 1970년대에 들어서 권력의 이론을 벼려냈는데, 그에게 권력은 항상 지식이나 진리와 함께 있으며, 그것들과 상호적으로 작용(강화)하면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 글은 푸코의 이러한 권력-지식의 이론에 대해 그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1970년에 행한 강의 기록인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특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고찰한다. 오이디푸스는 푸코에게 권력-지식의 최초의 주요 형상이며, 푸코가 오이디푸스에 대해, 혹은 그가 이야기 속에서 실추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아는 것은 푸코의 권력과 지식의 이론을 이해할 때 극히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푸코의 오이디푸스가 지닌 의의를 분명히 한다.

 

 

들어가며 

이 글은 미셸 푸코의 이른바 '권력-지식(pouvoir-savoir)의 이론을, 특히 그의 오이디푸스에 관한 분석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말할 것도 없이, 권력과 지식의 결합 및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것은 푸코의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데, 이 글에서는 이 결합을 재차 거론하면서, 그 이른바 원류가 되는 것을 그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대해 논한 몇 가지 텍스트 속에서 탐구한다. 이를 통해 1970년대의 권력-지식의 이론의 사정거리 및 그 의미가 한층 더 명확하고 복잡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위와 같은 점을 논하는 데 있어서, 이 글에서 주된 문헌으로 참조하는 것은 『지식의 의지 강의』 및 「진리와 법적 형태들」이다. 전자는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 교수로 취임한 후인 1970년에 그곳에서 처음으로 행한 강의 (개강 기념 강연인 『담론의 경계』를 제외하고)의 기록이며, 후자는 전자로부터 몇 년 뒤인 1973년에 브라질에서 행한 강연의 기록이다. 이 시기에, 말자하면 즉 『지식의 고고학』(1969년)부터 『감시와 처벌』(1975년) 까지 푸코는 저작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지식의 이론에 관해서 말하면, 『지식의 고고학』 이후 권력의 문제계가 발견되는 (그리고 과거의 연구에서도 회고적으로 발견되는) 이 시기는, 단순히 저작의 유무로는 측정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시기의 푸코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자료인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 그 최초의 것인 『지식의 의지 강의』, 그리고 이 강의를 포함하는 콜레주드프랑스의 처음 3회의 강의를 부여한 강연 「진리와 법적 형태들」을 단서로 삼아 거기서 극히 많은 주제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이 중요성이 더욱 명백한 것이며, 이미 말한 '권력-지식'의 이론을 선택하고,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려고 시도한다. 

 오이디푸스에 대해서는 푸코에게 이 비극의 왕이, 적어도 권력-지식의 이론과의 관계에서 등장하는 것은 『지식의 의지 강의』의 마지막 회에서다.[주1] 그런데 『지식의 의지 강의』는 다른 많은 강의와 달리 푸코의 실제 발언을 녹음한 테이프를 이용하지 못한 채 강의 준비를 위한 초고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아마도 그런 탓에, 때로 전후관계의 이해가 어렵다거나 맥락이 없어 보이는 대목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1절에서 이 강의 내용을 다시 자세하게 확인하고, 오이디푸스가 등장하는 무대가 마련되는 경로를 추적하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글의 전반부는 『지식의 의지 강의』의 일반적인 독해라는 형태를 우선 취하게 되는데, 이 텍스트에 관해서는 내용의 난해함과 중요성에서 그렇게 할 만한 의의가 있다. 

       [주1] 푸코에게서 오이디푸스의 역할에 대해 논한 연구는 정신분석이나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것이 많은 반면, 오이디푸스와 권력의 관계를 주제적으로 다룬 것은 많지 않다. 예를 들면, 바로 '푸코의 오이디푸스'를 문제로 삼은 다음의 연구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한 푸코의 이해 혹은 프로이트에 대한 참조가 불충분한 것이 특히 지적된다. Victor Mendonça Nobre Martins, L’Œdipe selon Foucault : Foucault lecteur et non-lecteur de Freud à travers le « complexe d’Œdipe », thèse de doctorat, soutenue le 5 avril 2019 à l’Université Sorbonne Paris Cité. 또한 최근 일본에서 간행된 두 권의 두툼한 푸코 연구(小泉義之・立木康介編『フー コー研究』岩波書店、2021年、佐藤嘉幸・立木康介編『ミシェル・フー コー『コレージュ・ド・フランス講義』を読む』水声社、2021年)에서도 부분적으로 『지식의 의지 강의』나 오이디푸스에 대해 언급한 논고는 있지만, 그것을 권력-지식의 이론과의 관계에서 주제화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푸코는 약 10여 년 후 『생명체의 통치』에서 다시 오이디푸스에 대해 논하며(Michel Foucault, Du gouvernement des vivant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9-1980, Paris, EHESS-GallimardSeuil, coll. « Hautes Etudes », 2012), 『오이디푸스 왕』의 독해에 관해서 『지식의 의지 강의』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는 이 강의에서는, 이번에는 권력과 (지식이 아니라) 진리의 관계가 문제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이미 그의 권력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 글은 오히려 그 직전에 머물러서, 푸코의 권력-지식의 이론이 형성되는 시기에 오이디푸스가 한 역할을 먼저 밝히고 싶다.

 이후에는 이어지는 2절에서 푸코의 오이디푸스론을 검토하는데, 여기서 푸코가 오이디푸스에게서 발견하는 의미는 반드시 일의적이고 명확한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따라서 세부사항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 글에서는 그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고, 오이디푸스와 권력-지식의 이론의 관계에 분석을 집중시킨다. 오이디푸스야말로, 혹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권력과 지식의 존재방식을 결정짓고 있다고, 적어도 이 시기의 푸코는 생각한다. 

 

1. 『지식의 의지 강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선은 『지식의 의지 강의』에서 오이디푸스가 등장하는 경위에 대해 확인하자. 이것도 이미 말했지만, 『지식의 의지 강의』는 녹음이 남아 있지 않고, 다른 강의록처럼 완전한 텍스트가 아니다. 단편적인 서술이 계속되는 대목이나, 원래 페이지가 누락된 대목도 있다. 그 때문에, 내용을 연속적인 것으로서 재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어쨌든 서두부터 읽는다면, 푸코는 첫 강의에서, 자신이 앞으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역사적 분석에, '지식의 의지'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 그리고 그 분석 속에서 '지식의 의지의 형태학을 위한 단편'이 발견될 것이라고 말한다.[주2] 이 테마가 향후, 수년에 걸쳐서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예고하고 있지만, 그 계획에 대해서는 일단 제쳐두고, 『지식의 의지 강의』의 내용에 관해서 말하면, 거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에]의 의지가 담론에 대해서 배제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가 검토되는 것이다.[주3] 이미 푸코는, 1주일 전에 열린 개강 기념 강연 『담론의 영역』에서, 담론의 힘에 부과되는 다양한 제약, 제한에 대해 논했는데, 『지식의 의지 강의』 는 우선은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 밖에도, 첫 회 강의에서는, 예를 들면 지식과 진리, 그리고 인식과의 관계, 창설적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의심, 참인 것 뿐만이 아니라 거짓인 것에 대한 의지, 혹은 참과 거짓이 연동하는 시스템 등, 강의의 여러가지 방법론적 전제가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들에 이어서 등장하는 것이 총12회의 이 강의에서 가장 먼저 중요한 주제로 논의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 강의의 첫 번째 주제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소피스트의 배제이며, 그 배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서양 철학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이다.

2 M. Foucault,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voir.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0-1971[이하 LVS로 약기], Paris, Gallimard-Seuil, coll. « Hautes Etudes », 2011, p. 3. ミシェル・フーコー『〈への意志講義慎改康之藤山真 訳筑摩書房20143 以下邦訳はいずれも本稿文脈じて 訳語適宜変更している

3 LVS, p. 4. 『〈への意志講義』、 4

 

1-1. 아리스토텔레스와 소피스트의 배제   

푸코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형이상학에서 인식쾌락을 연결했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아는 것을 욕망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식에 대한 욕망이 갖추어져 있으며, 그러나 그 욕망은 바로 인식을 위한 욕망이며, 이른바 인식 속에 갇혀 있다. , 그 욕망에는 폭력이나 투쟁의 요소가 전혀 없으며, 따라서 그로부터는 위반적이고 금지된 지식이라는 주제가 배제되어 있다. 금지된 지식’, ‘무서운 지식이 바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그 위협을 보여주는 것인데,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의 욕망과 인식(혹은 지식)의 문제를 끝까지 추적해 보자. 그런데 푸코는 첫 번째 강의의 마지막에 어휘를 정착시키기위한 것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욕망과 지식에 대해 사전적인 통일성, 상호적 귀속, 공통의 자연적 본성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을 인식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의지의 대상, 욕망의 목적, 지배의 도구, 투쟁의 쟁점을 찾아내기 위해 인식의 내재성에서 분리해야 할 것을 지식이라고 부르자.[주4]

 

이 정의가 푸코에게서 마지막까지 엄밀하게 유지된다고는 아마 말할 수 없겠지만(사실, 지식이나 진리, 인식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적어도 지식의 의지 강의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 욕망과 지식을 서로 감싸는 관계로 하는 시스템, 그것이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의) 인식이며, 인식에 있어서 욕망과 지식은 하나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폐쇄적인 시스템으로부터, 본래의 욕망, 지배, 투쟁, 폭력 등의 작용=작동에 의해, 지식이 말하자면 빼앗긴다. 지식은, 진리는 그 자체로서는 인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푸코는 진리와 인식 사이의 포함관계로부터의 탈피, 혹은 그로부터의 지식의 해방을, 주로 니체에 의해 분석하려는 것이다.[주5]

4 LVS, p. 18. 『〈への意志講義』、24

5 LVS, p. 27. 『〈への意志講義』、37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검토하고 싶은 것은 니체가 아니라 오히려 소피스트의 역할이다. 지식의 의지 강의는 소피스트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 소피스트(사실 그 배후에 오이디푸스가 있다)가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플라톤에 의해서 배제되는 것이, 서양의 지식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푸코는 말한다. 하지만 애초에 소피스트는 어떤 인물인가? 푸코에게 소피스트는 무엇보다 궤변(sophisme)’을 농락하는 자이며, 그리고 이 (말의 본래적 의미에서의) 궤변이야말로 인식의 전통적 형상을 전도시키는,[6]철학의 외부를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푸코도 말했듯이, 궤변에 대해서는, 나아가 그것을 조종하는 소피스트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가 끝나 버렸고, 더 이상 추상적인 위험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고 있다.[주7]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의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궤변은 소피스트와 함께 매장되어 버렸다, 혹은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6 LVS, pp. 31-32. 『〈への意志講義』、44

7 LVS, p. 39. 『〈への意志講義』、54

 

이에 대해 푸코는 궤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묻기 위해 궤변의 형태학을 행하려 하지만,[주8] 거기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다. ,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궤변이 지닌 힘을 봉쇄하고 이를 통해 서양 지식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8 LVS, p. 66. 『〈知への意志〉講義』、91頁。

아리스토텔레스는, 궤변을 이른바 겉으로 보이는 추론, 즉 추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추론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된 추론조차도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궤변은 지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다.[주9]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의 영역 밖으로 궤변을 쫓아버린다=몰아낸다. 다른 한편으로 푸코는 여러가지 궤변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특징을, 단어의 물질성, 혹은 정확하게는 단어의 희소성속에서 찾아내며, 궤변은 대화자들이 같은 전제를 떠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말로부터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을 그 물질적 동일성에 있어서 채용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주10] 궤변은 참 혹은 거짓을 이끌어내는 명제의 논리적인 구조가 아니라, 그것이 얘기되었다는 사실에 의거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무언가를 의미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 “하나의 사건으로서 산출된것이며,[주11] 따라서 궤변이란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라기보다는 말의, 혹은 담론의 물질성 속에서 상대를 사로잡는=포획하는 기술, 혹은 그것을 이용한 전략이다.

9 LVS, p. 41. 『〈への意志講義』、58

10 LVS, p. 44. 『〈知への意志〉講義』、61頁。

11 LVS, p. 59. 『〈知への意志〉講義』、81頁。

 

  푸코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표적으로 삼고, 철학의 외부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이, 설득이 아니라 전략으로서 사용된 궤변에 있어서의, 이 담론의 물질성 또는 사건성이다. 궤변은 말의 (논리나 의미가 아니라) 물질성에 의해 상대를 속이는 함정[덫]이며, 애초에 '잘못된 추론'조차 아니다. 이 '궤변의 진정한 배제'가, 즉 말의 물질성, 사건성의 배제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발생한다는 것,[주12] 푸코는 이것을,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서의 중대한 사건으로 삼는다.[주13]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명제학이 소피스트적인 궤변적 조작을 봉쇄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과학이나 철학이 생겨난 것이다.

12 LVS, p. 50. 『〈への意志講義』、69

13 진술의 물질성의 배제, 하나의 명제가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부여하는 명제학의 출현. 기표의미하는 것-기의의미되는 것 관계의 지배지고성, 진리의 출현 장소로서의 사유에 허락된 특권, 이 네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현상들은 서양 과학과 철학이 역사적으로 발전하기 데 초석이 됐다”(LVS, p. 66.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105-106).

 

1-2. 측정과 질서 

 지금까지 『지식의 의지 강의』에서 맨 처음 논의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소피스트 및 궤변의 배제에 대해 다소 상세하게 확인했다. 궤변의 담론은 말이나 표현이라기보다 물질 혹은 사건이며, 거기에는 (진리나 인식의 이름으로) 여러 구속이 부과되는, 그 역사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밝히는 것이, 푸코가 1970년의 강의에서 우선은 행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어받아 강의는 다음 주제로 나아간다. 1971년 1월 27일 강의의 첫머리에서 푸코는 소피스트의 궤변술에서 시대를 다소 거슬러 올라가 "진리와 제도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담론의 여러 유형을 분석하려는 것", 역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진리의 기능과 형식을 밝히는 것을 시도한다. 문제는 무엇이 진리였는지, 진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진리가 어떤 형식을 따르고 어떤 기능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며, 그리고 이 진리의 기능에 관해 중요한 것이 사법적 담론, 즉 재판에서의 담론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재판은 진리를 둘러싼 모종의 투쟁이며,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는 문자 그대로 '투쟁'이었다는 것, 거기서 진리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 자신을 드러내는 힘, 그것 자신에 의해서 위협하는 힘"이며, 담론은 "사람이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 '선서나 저주'로서 나타나는 것이었다고 푸코는 말한다(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일리아스』 에 등장하는 메넬라오스와 안틸로코스의 전차 경주의 일화이다). 진리는 숨겨져 있고 밝혀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투쟁 속에서 따라야 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시스템의 변환'이 일어나고, 진리는 '확인되는 것'이 되며, 그 기능의 장소가 법정으로 옮겨지고, 무엇보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으로서 재판관이 개입한다. 진리를 둘러싼 새로운 담론의 시스템이 구성되게 된다.

 여기서 푸코는 '디카제인(δικάζειν)'과 '크레네인(κρίνειν)'이라는 두 단어, 혹은 두 개의 상이한 사법의 제도를 각각 특징지음으로써, 진리의 사법적 담론에 관한 고찰을 더욱 심화시킨다. 거기서 참조되는 것은 주로 헤시오도스나 고르탱=고르텐 법전이라고 불리는 고대의 비문인데, 우선 디카제인은 서로 싸우는 두 명의 개인이 재판의 장소에서 서로 선서를 하고, 만약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경우는, "신들에 의한 보복에 노출"되는,[주14] 그런 사법의 제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과거와 같은 일대일의 대결, 결투가 더 이상 아니고, 증인을 모으고 왕이 재판관으로서 개입하는, 모종의 재판이지만, 그러나 선서를 하고 그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이다. 

14 LVS, p. 87. 『〈への意志講義』、118

  다른 한편으로 크리네인은 때로 매수되어 공정성이 결여된 왕이 아닌 순수한 제3자로서의 재판관이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로서 등장한다. 재판관은 그들 자신이 선서를 하고, 즉 신들의 보복에 스스로를 내맡기다. 진리는 크리네인에 있어서 이 제3자의 위치로 이동하여, "담론과 사법적 실천의 새로운 배치"가 출현한다.[주15] 이 새로운 배치의 의미에 대해 푸코는 재판의 당사자들이 진리의 소지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더 이상 진리의 힘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재판관이 그들의 말에 대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재판관이 이른바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계속한다, 그런 판결은 무엇에 근거하여 내려지는가? 여기서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디케(δίκη)' 혹은 '디카이온(δίκαιον)'이다. 둘 다 법이나 정의 혹은 '옳은 것'을 의미하는 말인데, 디케에 적합한 디카이온을 드러내는 판결이 바로 올바른 판견이며, 재판관은 이 디카이온으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우리에게서, 즉 오이디푸스가 등장하는 경위를 추적하는 것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디카이온이 "세계의 질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주16] 즉, 디카이온을 말하는 자, 법을 만드는 자는 "세계의 질서를 말하는 자"이며, "인간 및 도시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지, 가장 올바른 것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혹은 도시의 질서와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으로, 그러나 조심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측정(mesure)' 개념이다. 디카이온, 즉 정의는 "급부, 부채, 변제를 둘러싼 측정의 시스템 속에서 형태를 취한다".[주17] 사물들의 균형을 유지하고 과잉을 막는 측정, 시간, 사물의 양, 가치 등을 결정하는 측정, 디카이온으로부터 이러한 측정의 시스템이 생겨남으로써, 진리의 모습이 크게 바뀐다.

  결정적 선서를 측정과 결부된 재판이 대체하게 되었다(혹은 적어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도전과 결부된 진리, 즉 시죄법적試罪法的 전리를, 지식과 결부된 진리가 대체하게 된다. (천둥을 떨어뜨리거나 비호하는 진리로부터, 알려진 진리로.[주18]

15 LVS, p. 88. 『〈への意志講義』、120

16 LVS, p. 92. 『〈への意志講義』、126

17 LVS, p. 101. 『〈への意志講義』、141

18 LVS, p. 103. 『〈知への意志〉講義』、144頁。

측정을 할 수 있는 자, “마땅히 해야 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자”, 이것이 올바른 인간[사람]이며 가장 이상적인 재판관이다. 일찍이 그 기원인 앗시리아에서 권력(국가)과 연결되어 있던 다양한 측정의 지식은 여기 그리스에서 그리스적 변환에 의해 정의=재판=판단(justice)의 관리와 연결되어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비전(秘傳)의 지식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이용되는 세계의 질서가 된다.[주19] 측정이라는 새로운 지식의 형태가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측정의 지식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푸코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정의와 진리의 연결 및 지식과 권력의 절단"이 있으며, 진리가 질서로서의 정의와 연접하는 한편, 그것은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며 적어도 국가의 권력으로부터는 분리된다. 지식과 진리의 분명한 이동이 인정되는, 또는 정의의 담론과 지식의 담론의 관계, 올바른 것, 측정, 질서, 참된=참인 것 사이의 관계가 그리스 사회 속에서 재분배된다는 것이다.[주20] 지식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고 진리와 결부된다.

 그런데 이 노동이나 교환 때 모든 인간이 작동시키는 일상적 정의와 결부된 측정의 지식을 대표하는 것이 화폐. 1971224일 강의에서는 이 화폐에 대해 고대에서 그 탄생부터 발전까지가 전통적인 해석을 의문에 붙이는 방식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 상세한 내용을 뒤따라갈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거기서, 측정(=절도)으로서의 화폐”, 과잉을 배제하고 질서나 균형을 유지하는 화폐가, “새로운 유형의 권력의 구성에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이다.[주21] , 권력을 보유하는 자는 도시를, 그리고 인간을 측정하는 자이며, 여러 가지 측정의 지식에 의해 특권적 계급의 유지와 국가의 제정이 가능해진다. 낡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된 측정의 지식이 화폐에 의해 새롭게 권력과 연결된다. 아마도 여기서 나중에 조사(enquête)’, ‘검사(examen)’라고 나열되는 권력-지식의 형태로서의 측정이 나온다.

19 LVS, p. 114. 『〈への意志講義』、159

20 LVS, p. 123. 『〈への意志講義』、171

21 LVS, p. 132. 『〈への意志講義』、182

 게다가 측정=화폐와 진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이 서술되어 있다. 현대와 달리 과거에 화폐는 진리에서의 사물의 가치가 아니라 도시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것으로서의 디카이온, 즉 정의와 연결되어 있었다. 증여나 교환에 있어서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유지하는 것이 화폐의 제도로서의 본질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윽고 상품의 교환에 있어서 화폐가 표상하는 것”, 즉 화폐가 나타내는 사물(상품)의 가치에 대해 묻게 되고, 그 결과, 기호로서의 화폐, “화폐에 있어서의 의미하는 것의 문제계가 생겨나고, “화폐의 진리기능이 문제시되기에 이른다. 여기서도 역시, 푸코는 지식과 진리의 관계의 새로운 전개를 화폐 속에서 찾아내고 있다. 그러나 푸코 자신은 이 전개를 더 이상 추적하지는 않으며, 우리도 오이디푸스의 등장을 향해서 서둘러 나아가고 싶다.

 

1-3. 오점과 진리

  33일 및 10일 강의에서는 역시 고대에서의 진리의 존재방식을 찾는다=탐구한다는 목적 속에 있으며, 그러나 얼핏 보면 주제가 갑작스레 변경된 것처럼 보인다. , 전자에서는 법, 특히 노모스에 대해, 후자에서는 오점(souillure)’정화의 의례(rite de purifcation)’에 대해 각각 기술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지난 회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마지막 회(317일 강의)의 오이디푸스론의 포석, 혹은 오히려 오이디푸스의 실추의 장소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그리고 다음 절에서 분명히 밝히듯이, 푸코에게서,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 오이디푸스의 실추이다.

 아무튼 순서대로 확인하자. 33일 강의는 초고 제목이 노모스(νόμος)’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고대의 을 논한다. 여러 가지가 언급되지만, 특히 강조해야 할 것은 성문법의 노모스의 전신인 비성문의 규칙’, 테스모스에서 노모스로 이행함으로써 무엇이 생겼는가 하는 것이다. 유명한 솔론의 개혁을 포함해 고대 그리스에서 노모스를 둘러싸고 일어난 것에 대해 푸코는 그 결과의 적어도 한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바로 여기에 다음과 같은 것이 표시된다. 중립적으로 인식하는 주체의 장소. 파헤쳐진[드러난] 진리라는 형태. 더 이상 하나의 사건의 반복에 마술적인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의 발견 및 그 유지에 연결된 것으로서의 지식의 내용.
  바로 그 지대에 다음과 같은 인물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 인간들의 법, 동시에 무지하기도 한 그들의 법에 대해, 힘과 효력을 주기 위해, 하나의 진리 하에서, 부도 권력도 없이 사물의 법을 드러내는 자라는 인물상이다.[22]

22 LVS, p. 157. 『〈知への意志〉講義』、215頁。

푸코에 따르면, 솔론의 개혁에서는 권력의 ()분배가 이루어졌다. 그것에 의해 평민은 권력을 갖지 못한 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권력의 몫을 가진 자가 된 것이다. 노모스는 권력 분배의 규칙에 부여된 명칭이며 그것은 귀족들만, 혹은 평민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서는 말할 수 없는 하나의 담론”, 그것이 노모스이며, 더 이상 진리와 같아진 노모스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로부터 말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 노모스를 말하는 사람이 위의 인용문에서 서술되는 새로운 인물상이며, 이는 권력을 비판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칭하면서, 실은 권력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인물상이 이윽고 오이디푸스론에서 등장하는 현자와 겹쳐진다는 것, 더 나아가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만, 그 검토는 다음 절로 미루고, 우선은 이어지는 310일 강의에서 논의되는, 오점과 정화의 의례를 살펴보고 싶다. 이것도 역시 오이디푸스라는 하나의 사건의 장을 준비하는 분석이다.

  310일 강의의 초고는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제목이 보여주듯이, 여기서는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혹은 정확히는 오점과 정화의 의례의 역사적인 변화, 그 역할의 전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푸코에 의하면, 일찍이, 특히 호메로스에서는 목욕 등의 정화 의례는, 그것에 의해서 죄나 잘못을 비롯한 오점=더러움을 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간 및 시간의 불연속성을 표시하기위한 것이었다.[주23] 일찍이 오점=더러움이란 서로 이질적인 두 영역 사이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접촉이 일어날 때생기는 것이며, 그러한 오점=더러움커뮤니케이션을 막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 정화의 의례였다. 그러나 오점과 정화의 이런 모습이 전도되고, 지금 우리가 친숙하게 여기는 도식으로 바뀐다. , 정화의 의례가 그로 인해 더러움=오점을 씻어내는 것이 된다. 푸코는 여기서, 이 전도가 모종의 지식의[에 대한] 의지의 구성에 있어서도 역시 중요하다라고 담담하게 언급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우선은 푸코의 분석을 끝까지 따라가 보자.

23 LVS, p. 162. 『〈知への意志〉講義』、223頁。

 더러움[오점]과 정화의 의례의 의미의 '전도',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의 새로운 분배"에 의해 생기는 변화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살인과 관련된 사법제도"다. 이제 살인은 "그것을 저지른 자에게 질적인 불순함을 야기한다", 즉 살인에 의해 개인에게 "더럽다=오점이 있다=부정하다"는 성질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재판은 소송 절차가 정해진 규칙에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권력이 개입하는 것도 그 점에 관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재판은 그 자체로 정화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며, 개인적인 성질로서 부여된 더러움=오점을 씻어내는 것이 된다. 정화의 의례 끝에 더러움[오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오점]이 있어서 정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권력은 그 더러움[오점]을 부여하고 동시에 씻어낼 수 있는 것이 된다.

 더욱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그 더러움=오점은 사회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린다. 더러움=오점을 없애는 것은 도시 그 자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그 때문에 더러움=오점을 가진 개인이 도시에서 배제되는 일이 이뤄진다. 더럽고=오점이 있고 불순한 것은 도시에 위험하며, 권력은 그것을 도시에서, 혹은 노모스에서 몰아낼 필요가 있다. 더렵혀진=부정을 탄=오점이 묻은 불순한 것은 권력의 최소의 몫을 평민에게 가능하게 했던 노모스로부터도 배제되고, 따라서 노모스야말로 진리였던 (혹은 진리가 노모스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이 시대에 불순한 것은 진리에 접근할 수 없게된다. 이어서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불순함이 위험한 접촉의 원리이고, 거기서 출발하여 해악이 노모스의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는 근원이라면, 죄가 저질러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졌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주24]

24 LVS, p. 173. 『〈知への意志〉講義』、238頁。

일찍이, 예를 들면 호메로스가 노래한 시대에서는, 심판 그 자체가 신에게 맡겨져 있었고, 투쟁 혹은 재판, 그것들이 규칙에 알맞은 방식으로 이뤄졌는지가 중요한 요소였지만, 지금은 죄가 오점=부정을 산출하고, 오점=부정이 도시에 해를 끼치게 된 이후, 실제로 죄가 저질러졌는지 여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주25] 더러움=오점과 정화의 의례의 도식의 전도가 지식의[에의] 의지의 구성에서도 중요해진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으며,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에서, 또한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다음 절에서는, 드디어 푸코의 오이디푸스론을 검토한다.

25 LVS, p. 174. 『〈知への意志〉講義』、239頁。

 

2. 지식의 의지 강의와 오이디푸스

 진리의 기능, 혹은 그것을 요구하는 의지를 둘러싼 이 지식의 의지 강의에서 오이디푸스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0129일의 첫 번째 강의인데, 그러나 그 후, 그의 이름과 그 지식의 이론과의 관계는 강의의 후경으로 물러났다가 드디어 마지막 회인 1971317일의 강의에서야 우리는 다시 오이디푸스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지식의 의지 강의에 덧붙여, 진리와 법적 형태들이라는 제목이 달린 다른 강연 기록도 참조한다. 1973년의 이 텍스트는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한 처음 세 번의 강의(지식의 의지 강의, 형벌의 이론과 제도, 처벌 사회)를 간결하게 요약한 것과도 같으며, 오이디푸스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강의보다 더 명확한 기술이 거기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는 1970년 강의와 1973년 강연의 차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고 양자로부터 종합적으로 도출되는 오이디푸스와 지식의 이론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2-1. 오이디푸스와 지식의 게임

애당초 지식의 의지 강의에서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등장하는 것일까? 우선은 앞 절의 마지막에서 말한 오점과 정화의 의례의 도식의 변화에 있어서, 즉 일찍이 재판이 사실이 아니라 절차와 관련되어있고, 사실의 입증과 심판은 신들에게 맡겨져 있던 것에 대해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누가 죄를 저질렀는지, 오점=부정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아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요구된다고 하는, ‘전도속에서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이 전도는 테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과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실이 밝혀지는, 혹은 밝혀지려고 하는 장면을 가리키고 있다. 이 무의식의 죄가 테바이를 위기에 빠뜨리는 오점=부정이 되며,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오점=부정을 씻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더러운 짓을 했느냐는 질문, 그러나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것은 죄를 씻는 정화의 의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짓을 도시에서 배제하기 위해 행해진다. 일찍이 절차와 관련되어 있던 심판의 진리가 이제는 사실과 관련되며, 게다가 그것이 무엇인가를 배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 진리의 이 배제의 기능이야말로, 우선은 오이디푸스가 드러내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강의의 첫머리에 예고되어 있던 것, 강의의 여러가지 주제를 통해서 분석되어 온 것과 정확히 합치한다. , 진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구속하거나 배제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여주는 것, 이것이 강의의 목적 중 하나였다. 오이디푸스가 (언뜻 보기에 갑작스레) 이 강의에서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여기서 분명해진다. 오이디푸스에서 진리는 정화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배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주26]

26 LVS, p. 180. 『〈知への意志〉講義』、246頁。

 진리에 의해 오이디푸스는 불순한 자”, 사물이나 세계의 질서를, 노모스를 인식하지 못하는 불순한 자가 되어 그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권력을 잃게 되는데,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권력의 연결고리가 풀려버리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지식 이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이 지식과 권력의 분리 현상인데, 그 문제에 대해 논하기 전에 참조하는 텍스트를 바꿔서, 오이디푸스와 지식의 관계에 관해 푸코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두고 싶다.

  오이디푸스는 일반적으로 무지한 자’, 자신의 출생이나 운명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비극을 초래한 자로 여겨진다. 정신분석에 의해 무의식의 이야기라는 지위를 부여받기도 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왕은 오히려 다양한 지식의 이야기이며 거기서 펼쳐지는 것은 복수의 지식의 대결, 투쟁, 게임이다. 이 오이디푸스의 지식의 게임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 지식의 의지 강의에 부록으로 수록된, 바로 오이디푸스의 지식이라는 제목을 지닌 텍스트와, 이미 언급한 진리와 법적 형태들이다. 이 두 텍스트에서 푸코는 오이디푸스 왕이 무의식이 아니라 지식을 둘러싼 이야기라는 것을, 우선 거기에서 절반의 법칙’ ‘절반의 게임이라는 것을 찾아내면서 말한다. , 푸코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여러가지 지식의 요소가 처음에는 절반만 주어지고, 그것이 나머지 절반과 조합되어 진리가 발견된다는 순서로 되어 있다. 절반의 법칙은 푸코의 오이디푸스론에 특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이 법칙은 오이디푸스를 논한 그 후의 강의에서 종종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거기서 어떤 지식이 대치, 대결하고 어떤 게임이 펼쳐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 그 결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푸코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세 가지 지식이 기능하고 있다. , 신 혹은 현자의 지식, 인간 혹은 민중의 지식, 그리고 참주의 지식(savoir du tyran)’이다. 이 중 오이디푸스는 말할 것도 없이 최후의 참주의 지식을 지닌 자이다. ‘현자의 지식은 신들과 통하며, 오이디푸스를 진실로 이끄는 테이레시아스가, ‘민중의 지식은 평범한 존재이면서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증언을 하는 목자나 종들이 각각 상징한다. 이 지식들의 대결이야말로 푸코에게 오이디푸스 왕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각 지식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참주의 지식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오이디푸스의 것인 이 지식의 특징은 무엇보다 그것이 권력과 연결돼 있다는 데 있다. 당시 참주란 지식과 권력을 동시에 가진 자이며, 오이디푸스는 바로 자신의 지식에 의해 (스핑크스로부터 테바이를 해방시켜) 왕이 된, 대표적인 참주였다.[27] 참주의 지식, 그것은 우선 권력과 일체가 된 것, 권력-지식의 극치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다른 모든 지식과 달리,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려고 하는 지식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이 된 이후 테바이를 엄습한 재앙의 원인을, 신탁(현자의 지식)을 받으면서도, 스스로의 조사에 의해 찾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오이디푸스의 조사는, 이른바 너무 지나쳐서, 자신이 원치 않는 사실을 밝혀 버린다. , 그의 참주의 지식은 그 성질 때문에 과잉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푸코가 오이디푸스의 지식진리의 재판 형태=법적 형태둘 다에서 강조하는 것, 그것은 오이디푸스의 참주의 지식이 항상 과잉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잉된 지식이 현자의 지식과 민중의 지식을 적합하게 한다=일치시킨다. 현자와 민중의 두 지식 사이에 있고, 각각과 대치하고 있던 참주의 (권력-) 지식은, 바로 지식으로서 (혹은 조사를 명하는 권력으로서) 과잉이 되며, 본래 다른 것이었던 두 지식을 일치시키고, 진리가 된 그것에 굴복한다기보다는 거기에서 배제되고 만다. 오이디푸스는 무지하기 때문에 왕위를 잃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알게 된 탓에, 지식이 과잉이 된 탓에 지식과 결부된 권력을 잃어버린 자인 것이다.

 여기서 (푸코에게 그 첫 번째 상징이었던) 오이디푸스의 권력-지식은 상실되거나 혹은 해체된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푸코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 해체가 갖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오이디푸스의 지식-권력이 해체되는 것, 그것에 푸코가 주고 있는 의미를 밝힌다.

27 "참주란 다른 지식보다 효과가 뛰어난 모종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혹은 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살릴 수 있는, 그것을 위해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이디푸스 같은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M. Foucault, «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 Dits et écrits I. 1954-1975[이하 DE I으로 약기], Paris, Gallimard, coll. « Quarto », 2001, pp. 1406-1514, p. 1434. ミシェル・フーコー真理裁判形態西谷修訳、『ミシェル・ フーコー思考集成V筑摩書房200094-216127)。

 

2-2.오이디푸스의 소실과 권력-지식의 해체

 오이디푸스의 지식진리와 법적 형태들에서 오이디푸스가 논의되는 대목의 어느 곳에서도, 푸코는 마지막으로, 오이디푸스라고 하는 권력-지식의 형상이 소실되는=사라지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실추와 함께 사라지는 것, 그것은 알고 있는 왕이라는 형태, 즉 자신의 지식으로 도시를 장악하고 통치하고 인도하고 재건하고, 도시에서 재해나 전염병을 몰아내는 왕이라는, 오래된 오리엔트적 형태이다.[주28]

28 LVS, p. 250. 『〈知への意志〉講義』、340頁。

푸코에 따르면, 고대 앗시리아, 혹은 동지중해에서 권력은 항상 지식과 결부되어 있으며, “지식과 권력은 정확하게 대응하는, 연관되고, 겹쳐지는 것이며, “권력이 없는 지식은 있을 수 없었다.”[주29] 그러나 시대가 흘러, 기원전 5세기 무렵의 그리스에 이르면, 이 권력과 지식의 일체성이 붕괴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소포클레스가 그려내는 그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푸코가 말하기를, “이때부터, 권력자는 무지한 자가 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아는 자=지자였던 왕의 권력이 우연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권력과 지식의 일체성이 필연적으로 해체되었다는 것이며, 혹은 정확히 말하면, 권력과 지식이 양립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29 «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 DE I, p. 1437. 『思考集成V』、130頁。

이후 서양은 진리는 결코 정치권력에 속하지 않으며, 정치권력은 눈이 멀고=맹목적이고, 참된 지식은 신들과 접촉할 때나 사물을 상기할 때, 위대한 영원한 태양을 바라볼 때, 혹은 일어난 것에 대해 눈을 뜰 때 비로소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라는 위대한 신화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플라톤과 함께 서양의 위대한 신화가 시작됩니다. 지식과 권력은 양립할 수 없다는 신화입니다. 지식이 있으면 권력은 포기해야 합니다. 지식과 학식이 순수한 진리로서 존재하는 곳에서는 정치권력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주30]

30 «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 DE I, p. 1438. 思考集成V』、131

오이디푸스 이후, 지식과 권력이 이와 같이 분리되는 것, 나아가 대립하는 것, 그 귀결로서 또 하나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참주를 대신하는 새로운 아는 자=지자의 모델, 현자(sage)’의 등장이다. 다시금 지식의 의지 강의의 마지막 회로 돌아간다면, 푸코는 거기서, 오이디푸스에 의해서 불순한 자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장소가 만들어진 것, 그러나 그것은 허구의 장소인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신의 청렴하고 절제 있는 지식을 대표하는 테이레시아스이며, 그는 현자로서 그 어떤 죄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로서, 그러나 바로 그는 정치권력을 창설하는 자로서 군림한다. 허구의 형상”, “발명된 장소에 대해서는 현자 외에도 신학자’, ‘학자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자가 그곳으로 귀속된다. 순수하기 때문에 지식을 갖고, 권력이나 욕망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권력을 정초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그 모든 것이 오이디푸스의 참주의 지식소실, 권력-지식의 해체에 의해 그 허구의 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자는 오이디푸스로부터 그 왕위를 빼앗아 자신의 지위를 얻었다.

   오이디푸스의 권력-지식의 소실로부터 산출되고, 이윽고 서양에서 널리 지배적이 되는 이 허구의 형상은 현대의 우리에게 권력을 지식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의 사고 체계에서 지식을, 권력의 관점에서, 따라서 과잉이나 위반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주31] 우리는 예를 들면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의 시스템 속에서 양성되어 전달되는 (혹은 은닉되는) 지식은, 무릇 권력이나 욕망과는 무관하고, 또 항상 무관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그것은 환상, 신화이며, 일찍이 권력과 연동되어 작동하던 지식이 있을 때 해체되고 순수한 지식으로 가상[가구상]된 그 효과에 불과하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이 가상[가구상]된 것이라는 점, 아무리 순수하고 청렴해 보이더라도 지식의 배후에는 항상 권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며, 이 신화를 파헤치는 것이 다름 아닌 니체다. 니체가 모든 지식의 배후, 모든 인식의 배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권력 투쟁이라는 것을 나타내면서,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은 이 신화입니다.”[주32] 권력과 지식을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삼는 포스트-오이디푸스의 세계, 플라톤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소피스트는 참주의 후예이다)에 대해, “권력은 지식과 함께 짜여져 있다라는 것, 권력-지식은 여러 장소에서 항상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강의로부터 푸코가 시작하려는 것이며, 오이디푸스는 그 출발점이며, 니체가 (이미 보았던) 그 목적지였던 것이다.

31 LVS, p. 251. 『〈への意志講義』、341

32 «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 DE I, p. 1438. 『思考集成V』、131頁。

 

마치며 

이 글에서는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행한 강의인 『지식의 의지 강의』를 요약하고, 이와 동시에 강의의 마지막 회에 드디어 등장하는 오이디푸스가 이 시기의 푸코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그러나 그것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갖는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푸코에게 권력의 문제는 항상 그 지식과의 관계의 문제이며, 사실 그는 오이디푸스라는,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받았다고는 할 수 없는 형상에 그 대부분을 이른바 맡기고 있다. 권력-지식은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형태로서 상정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오이디푸스와 함께 한 번은 사라지지만, 그러나 그 소실=사라짐이 권력-지식의 새로운 단계를,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이디푸스는 이후 그의 권력론의 원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소피스트의 배제로부터 시작된 강의는 진리의 부정적 기능을 축으로서 진행되었고, 오이디푸스에 이르러서는 권력-지의식 이론이 그 소실=사라짐과 함께 개시된다.

   마지막으로, 이 오이디푸스론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문제, 혹은 또 하나의 권력-지식의 형태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바로 '조사(enquête)'다. 푸코는 『지식의 의지 강의』에 이은 『형벌의 이론과 제도』에서, 권력-지식의 세 가지 형태의 하나로 '조사'를 들고 있다.[주33] 이 '조사'는 이 글에서 논한 '측정'이 『지식의 의지 강의』에서 밝혀진 후, 『형벌의 이론과 제도』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미 1970년의 강의에서 '오이디푸스의 조사'로서 등장하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그 과잉된 지식의 작용에 의해, 사실을 요구해 조사를 명하고, 그 조사에 의해서, 현자의 지식과 민중의 지식의 적합, 그리고 자신의 참주의 지식의 실추를 초래한다. 과거에는 재판에서, 즉 진리의 탐구에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은 시련이나 선서, 투쟁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이제는 진리를 얻기 위한 기법으로서, 시련이 아닌 조사가 이뤄지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권력-지식의 붕괴에 의해 "권력을 가지지 않는 진리를 진리를 가지지 않는 권력에 대치할 권리"가 "조사에 의한 지식"을 산출한 것이다.[주34] 이 새로운 지식의 형태, 정확히는 권력-지식의 형태 역시 오이디푸스 안에서 그 싹을 찾을 수 있다.

33 M. Foucault,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Paris, EHESS-Gallimard-Seuil, coll. « Hautes Etudes », 2015, p. 232.

34 «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 DE I, p. 1439. 『思考集成V』、133頁。

   그런데 푸코는 약 10여 년 후의 강의인 『생명체의 통치』에서 다시 오이디푸스를 논하는데, 그러나 거기서 오이디푸스는 권력-지식의 상징이기보다는 권력(혹은 '통치')과 진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존재로서 등장한다. 강의의 첫머리에서는 권력-지식의 이론에서 탈피하는 것, 지식의 개념에서 진리의 개념으로 이행하는 것이 선언되는데( 『지식의 의지 강의』에서 진리는 지식과 거의 같은 수준에 놓였다),[주35] 이 전환의 증인이 되는 것이 또 다시 오이디푸스인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푸코에 있어서 오이디푸스는, 우선 서양의 지식의 모습을 결정짓는 사람으로서, 그러나 다음에는 권력과 (지식과 구별되는) 진리의 관계를 드러내는 사람으로서 이중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는 계속되는 연구에서, 지식으로부터 진리로 이행하는 가운데 오이디푸스가 맡는 두 번째 역할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다.

35 M. Foucault, Du gouvernement des vivants, p. 13. 生者たちの統治』、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