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자 질 들뢰즈
도래할 민중을 위한 에티카
自然主義者 ジル・ドゥルーズ
来るべき民衆のためのエチカ
우노 쿠니이치(宇野邦一)
〔청자〕 안도 레이지(安藤礼二)
『정황(情況)』 2003년 12월호(제3기 제4권 11호), 72-89頁.
── 이번에는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중심으로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 전제로, 가타리와의 공동작업에 들어가기 전의 들뢰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에서부터 생각하고 싶습니다.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천 개의 고원』이라는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도착하기 전의 들뢰즈는 단적으로 말해서 “자연주의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것은 “자연”이라는 것의 극한을 철저하게 추구한, 아직 아무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자연”을 묘사하는 데 성공한 “자연주의자”입니다. 1953년의 처녀작인 흄론(『경험주의와 주체성』)은 바로 정통으로 “인간적 자연”의 탐구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사색이 정점을 맞이한 68년의 『차이와 반복』과 스피노자론(『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들뢰즈의 자연주의는 완성됩니다. 들뢰즈의 “자연”은 구체적이면서도 극도로 추상적인 형이상학, 굳이 말하자면 “신학”의 대상이기도 하며, 더욱이 이로부터 “본능들과 제도들”이 동시에 생겨나는 장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69년의 『의미의 논리』부터 전체적인 어조가 상당히 변화하며 방향이 전환된다. 그것이 72년의 『안티 오이디푸스』, 80년의 『천 개의 고원』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68년으로부터 불과 몇 년 사이에, 들뢰즈 안에서 뭔가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며,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그 사태란 어떤 것이었나? 거기에는 처녀작 이후에도 여전히 생산성으로 가득 찬 “자연”이 추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탐구의 “방법”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공동성”의 탐구가 됐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공동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사고의 대상으로서 “집단”이라는 것이 전면에 나옵니다(68년 5월 혁명은 이것의 둘도 없는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런 탐구가 문자 그대로 누군가와 “함께” 행하는 작업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가타리와의 공동작업에 의한 책의 집필입니다만, 또 한 사람인 푸코와의 관계가 매우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가타리와 푸코와 “함께” 사고한다는 것이야말로 그 믿기 힘든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천 개의 고원』에 이르는 커다란 힘과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들뢰즈의 사고는 매우 체계적입니다. 그것은 『천 개의 고원』에서도 바뀌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결론”에 놓인 「구체적 규칙과 추상적 기계」라는 장에서는 여섯 개의 개념이 제출되며, 그것이 사고의 “토대”로부터 “초월”까지 빼어나게 조합되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지층∙지층화”, “어레인지먼트”, “리좀”, “존립평면∙기관없는 신체”, “탈영토화”, “추상기계”입니다. 지층은 대지로부터 어레인지먼트들이 변형을 가함으로써 기관 없는 신체를 산출하고, 더욱이 그 기관 없는 신체는 내재성의 평면으로 초월한다. 단, 이 개념의 형성과정, 사고의 시스템은, 사실상 이미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약술된 것입니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으로부터 무한한 “속성”이 산출되며, 그것이 더욱 무한한 변용을 지닌 “양태”로 표현된다. 그것을 거꾸로 말했던 거죠. 그러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와 『천 개의 고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선 무엇보다도 『천 개의 고원』에서는 하나하나의 개념이 더 풍부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념을 풍부하게, 그리고 표현적이게 하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아마 푸코 및 가타리와의 공동성 속에서 생겨난 것일 테죠.
들뢰즈가 푸코에게서 얻은 것. 그것은 바로 “어레인지먼트”라는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도 사회도, 그 형태도 의미도 모두 자연의 “어레인지”(구성)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에 있어서 들뢰즈의 “자연”은 푸코의 “바깥” 개념과 서로 포개진다. 즉, 스피노자 속에서 발견된 “신=자연”은 더 추상적이고 잔혹한 푸코적인 “바깥”으로 완전히 치환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가타리에게서 무엇을 얻었는가? 그것은 “무의식”의 적극적인 의미부여라고 생각합니다. 『차이와 반복』까지는 “죽음본능”이 매우 중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티 오이디푸스』나 『천 개의 고원』에서는 그것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더욱이 그 적극적인 “무의식”을 발동하는 조건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진 “무리”라는 개념. 아마 이것들이 가타리에게서 얻은 것이 아닐까? 장황하게 얘기했는데, 이런 한 가지 독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노 씨 당신은 『안티 오이디푸스』나 『천 개의 고원』과 그 이전의 들뢰즈의 사상 사이의 차이를 뭐라고 느꼈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거미와 거미줄 : 들뢰즈의 변화 과정
宇野 : 들뢰즈 사상의 변화 과정 자체에 독특한(unique), 생각해야 할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변화가 무엇이었는지가 물론 문제입니다만, 들뢰즈의 독자적인 변화 방식은 『광인의 두 가지 체제』라는, 『무인도』에 이어 사후 편집된 텍스트 모음집 2권에 실린, 프루스트에 관해 당시의 롤랑 바르트 등과 한 대화 속에 아주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학자보다 오히려 장 피에르 리샤르라든가 장 리카르도라든가 장 주네트 등, 당시의 문학이론의 새로운 흐름을 맡은 사람들이 프루스트에 대해 말한 자리에서 한 것입니다만, 들뢰즈는 자신의 문제를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말한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만, 거기서 프루스트의 문제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에서의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포개면서 논하고 있습니다. 이 프루스트론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다양한 단편적 요소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가 하나의 테마였다고 생각하는데요, 거기서 들뢰즈가 프루스트의 작품의 변주variation를 보고, 기본적으로 프루스트에게는 전체성의 비전이 있을 수 없다, 있다면 매우 특이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들뢰즈 자신의 변화 방식, 들뢰즈 자신의 일관성, 변화나 단편성이, 거기서 프루스트와 서로 비추고 있는 듯이 표현되고 있다. “거미줄”이라는 비유에는 “기관 없는 신체”라는 개념의 모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미줄은 일종의 리좀이기도 하죠. 거미줄과 거미 자신이 일종의 신체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곳에 지각이 퍼져 있으며, 거미줄 속에는 전혀 중심이 없다. 거미는 시각에 의해 자신이 사는 세계를 조망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부분의 연속 속에서부터 시각을 만들어낸다. 거미는 그런 신체로서의 거미줄과 함께 있다. 프루스트의 화자는 바로 그런 것이라는 겁니다. 들뢰즈의 변화 과정이 바로 그런 것이었으며, 방금 말씀하신 것은 거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이야기를 듣고 그런 곳으로부터, 거미와 거미줄이 일체가 되어 있는 자연, 그런 퍼짐[넓어짐] 속에 있는 전체와 부분 같은 곳에서부터 들뢰즈의 변화를 사고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냐 생각했습니다.
들뢰즈의 자연주의는 가타리와의 공저에서 매우 급진적인 변화를 이뤄갑니다만, 이 변화의 방식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 ‘항쟁’의 역사를 위해
宇野 : 들뢰즈에게서는 스피노자와 베르그손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더욱이 거기에 니체도 보태지며, 자연과 인간을 어디까지나 연속된 것으로 파악하고, 자연의 능산성의 연장선상에서 세계를 파악하고 인간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근본적인 자연주의가 있다. 그런 한에서는 물질과 기억은 주관의 감축과 이완의 정도일 뿐이므로, 연속적인 지평에 있다. 그러나 자연주의의 관념뿐만 아니라, 여기서 네그리와 하트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 개의 고원』이라는 책을 본격적으로 계승하여, 70년대, 80년대의 사고의 책, 즉 지금에서는 돌아볼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책을, 사실은 거기에 나오는 개념들은 현대에서도 살아 있으며, 더욱이 모든 곳으로 열려 있으며, 지금 여기서 현실화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읽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에는 “항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들뢰즈 안에도 있는 개념입니다만, 그러나 네그리는 들뢰즈로부터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네그리에게는 맑스도 스피노자도 마키아벨리도 있기 때문에, 들뢰즈와 또 다른 형태에서의 어레인지먼트를 형성하고 있다. 네그리도 스피노자로부터 능산적 자연이라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자연주의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자연주의가 있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서양 근대는 그 자연주의를 어떻게 살았는가, 스피노자는 단순한 마이너리티에 불과했는가? 그런 개념이, 그런 자연이 명확해지려면 ‘항쟁’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는가? 들뢰즈로부터는 그런 역사적 비전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네그리의 근대 파악에서는, 근대는 단순히 이성이나 과학이나 자본주의의 세기가 아니라 하나의 “항쟁”의 세계였다. 아니 그 이전에도, 이성과 자연의 능산성 사이에는 끊임없이 “항쟁”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난 인간 존재의 자각은 자연의 능산성의 새로운 자각이기도 했다. 그것이 정치학적 비전으로서 마키아벨리에게서 나타난다. 그런 능산적 자연의 연장선상에 있는 창조력, 즉 삶이 넘치는 힘, 이것은 스피노자나 마키아벨리로부터 온 개념입니다만, 능산적 자연을 신의 초월성의 바깥에서 파악하려고 하는 근대인의 자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에 대항하여, 그것을 통제하거나 질서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며, 거기서 형이상학적 이성이나 조정적인 정치조직, 혹은 권력, 통치의 질서 등이 그것에 대항하는 질서로서 재구성된다. 그런 항쟁, 경합의 역사야말로 근대라는 것입니다.
이 “항쟁”이라는 개념을 들뢰즈는 그렇게 전면에 내세워 사고한 적이 없지만, 그러나 전쟁기계와 국가장치라는 이항대립에 그것을 포개어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항 사이에서 발생하는 리좀이라는 개념. 이것은 단순한 이항대립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이 두 항은 항상 침투하고 있는 관계라고 보고 있으며, 이 관계를 풀기 위해 일부러 두 항으로서 다루는 것입니다만, 각각이 독자성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게 골치 아프다고 말합니다만, 각각이 그런 양의성을 지닌 장치로서 나타납니다. 리좀이라는 관념 자체가 양의성을 포함한 개념이며, 나무와 같은 작동을 하는 리좀이거나, 리좀과 같은 작동을 하는 나무이거나, 그런 리좀적인 텍스트가 이번에는 “텍스트”라는 차원을 둘러싸고 중심화, 수목화되며, 보르헤스라든가 조이스에 있어서 기묘한 양의성을 드러낸다는 거네요. 네그리만큼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런 “항쟁”의 관념이 들뢰즈 안에서도 뿌리 깊게 있습니다. 니체주의자로서 “항쟁” 개념이 없을 수는 없으며, 그러니까 자연주의를 둘러싼 “항쟁”이 그대로 들뢰즈의 철학의 모티프였다. 다만 그것이 네그리와 같은 역사적 사고라는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다.
네그리의 스피노자, 들뢰즈의 스피노자
宇野 : 앞에서 들뢰즈 안에는 스피노자와 베르그손이 전혀 모순 없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베르그손의 그림자가 일단 사라졌나 싶으면, 나중에 영화론 속에서 부활합니다. 그렇게 끊임없는 개념의 변천이 들뢰즈의 사상의 다원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들뢰즈에게서의 스피노자와 베르그손의 동시 존재라는 의문에 관해 네그리는 자서전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스피노자주의자로서의 네그리는 절대로 베르그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르그손에는 능산적 자연 개념, 즉 창조적 진화라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만, 밋밋하게 일원적으로 퍼져나가는 자연 개념 속에서, 물질과 기억이 똑같은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말하자면 거기에는 “항쟁”의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 베르그손 자신은 도덕과 종교의 원천을 묻는다는 형태로 역사를 문제 삼자고 한 것입니다만, 네그리에게서는 역시 그리하면 아무래도 “항쟁”이라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다. 베르그손은 동시대의 현실 사회의 알력 속에서 살면서, 베르그손 나름의 “항쟁”의 비전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만. 하지만 베르그손의 개념 형성의 근본적 움직임 속에 그것이 없다는 게 네그리의 비위를 몹시 거스르게 되죠. 네그리의 발언을 읽으면, 들뢰즈의 베그르손주의의 굴절이 또한 흥미롭게 생각됩니다.
물론 그것은 흄론 안에도 있었다. 들뢰즈의 흄론의 비전은 스피노자에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기본적으로는, 스피노자 안에 매우 확실한 형태를 취하는 자연의 능산성이라는 움직임, 흄이라면 정서의 움직임에 따라 이성을 재구축하려고 하는 모종의 이성 비판이 있으며, 경험론은 그런 모티프와 더불어 읽히고 있습니다. 그런 들뢰즈의 자연주의 속에는 구축과 항쟁의 개념이 처음부터 있었으며, 가타리나 푸코와 마주치는 것, 역사적인 변화∙사건과 마주침으로써 그 ‘흔들림’이 확대됐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네그리의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스피노자에 대한 차이입니다만, 거기에 있는 가장 큰 차이는 들뢰즈의 스피노자에 관한 글들에서 각각 강조되고 있습니다만, 자연 속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스피노자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고, 있는 것은 그저 자연의 조합(어렌지)에 의해 뭔가가 산출되는 과정과, 그것이 해체되는 과정뿐. 어떤 것인가가 무한한 조합에 의해 무한하게 생성되는, 그것이야말로 기쁨의 감정이며, 또한 동시에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을 형성한다. 들뢰즈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 “구성되는 힘에 의해 생성하는 자연”이라는 비전을 결코 놓지 않았다. 『천 개의 고원』이 간행된 직후에 증보된 스피노자론(『스피노자 : 실천의 철학』에서는 윤리학)은 생태학과 결부되어 진정한 “생태의 윤리”가 된다고 말합니다만, 이런 자연관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들뢰즈의 자연주의가, 맨 처음에 정리된 형태로 겉으로 나온 것은, 물론 흄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만, 『니체와 철학』이 출판되기 직전의 1961년입니다. 이때 마조히즘론(나중에 『마조히즘』에 수록)과 「루크레티우스와 자연주의」(나중에 개정되어 『의미의 논리』에 수록)가 거의 동시에 발표됐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자연주의”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것과 더불어, 그 “자연주의”를 구성하는 주체와 객체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도착자”와 “원자”입니다. “도착자”는 자연을 찾아내는 시선을 무한한 다양성에 열리고, “원자”는 그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하나가 그것만으로 “다양체”라는 것을 밝힙니다. 도착자는 철저하게 자연을 변혁하고, 그 자연의 근저에는 보통의 지각에서는 파악될 수 없는 최소의 시간단위, 무한소의 편위(클리나멘)를 지닌 아톰atom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독특한 자연관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들뢰즈에게서 “항쟁”은 그 의미를 바꾸고. 목적을 갖지 않는,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싸움이 되겠죠. 들뢰즈 안에도서 “항쟁”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출의 기초가 되는 조합으로서의 싸움이며, 그런 싸움이 전개되는 지평인 “자연”이야말로 항상 들뢰즈가 계속해서 보고 있던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독자적인 “항쟁”이야말로, 타자에 열려 있는 것이 된다. 싸우면서 우애롭게 되는 것. 그것이 어렌지먼트라는 개념으로도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선악의 피안, 반역사로서의 『천 개의 고원』
宇野 : 네그리는 자연주의라는 문제를 근대의 항쟁의 최초 속에 위치시키려고 했다. 즉, 역사적 독해를 하고 있는 것인데, 들뢰즈는 그런 독해를 거부하고 오히려 반역사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천 개의 고원』의 주제군은 연속된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리좀에서 시작되며, 지질학적인 이미지에 포개진 진화론의 문제에 연쇄되어 있으며, 이윽고 그리스도의 얼굴과 주체화라는 문제, 칭기스칸과 유목민의 문제, 그리고 일체의 전쟁기계의 문제라는 식으로, 역사의 스케일을 당돌하게 뛰어넘어 버린다. 이렇게 움직이는 방식을 하고 있는 것 자체, 들뢰즈∙가타리가 만들어낸 반역사적 시간성이 있으며, 그것이 들뢰즈의 자연주의의 문제와 연결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확실히 들뢰즈∙가타리는 자연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에티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만, 그 기초가 되는 들뢰즈의 스피노자 『윤리학』의 독해 속에서,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되는 것은 바로 지금 나온 선악의 문제이며, 선악의 피안이라는 문제가 이미 거기서 읽어내어지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 있는 게 아니라, 즉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표상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다”, “나쁘다”밖에 없다. “좋다”, “나쁘다”의 기준은, 이것은 신체의 문제가 됩니다만, 신체를 형성하는 다양한 힘을 맞이하는, 결합하는, 더욱이 새로운 차이를 맞이하고 새로운 삶의 미립자를 산출하는 데 있다. “정서를 결합한다”라는 표현이 될 텐데요, 즉 그것은 “삶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며, 완전히 자연의 연장선상에 있는 윤리이다.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인간의 사회 속에, 혹은 자연 속에도 죽음이나 부패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정서의 결합을 저해하는 결합의 움직임이 있고, 이는 인간의 사회의 기본적인 움직임의 하나이며, 권력의 작용이기도 하다. 만일 악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정서나 미립자의 결합이나 활동을 방해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악입니다.
그런 결합을 방해하는 체제와, 그것에 저항하는 힘의 형성, 스피노자는 그것을 반드시 “힘”이라는 식으로 정식화한 것이 아니라, “힘”을 사고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오히려 니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사회의 새로운 질서, 생산형태, 자본주의의 진전, 혹은 자연과학적인 비전 속에서의 “힘” 개념의 변천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에 매우 가까운 곳에서, 힘의 뉘앙스를 식별하는 니체의 분류학적 사고를, 그런 니체의 새로운 탐구를 이어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와 철학』 속에서, 권력이나 폭력은 나쁜 힘일 수 있으나, 힘 그 자체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만일 나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동적인 힘”입니다. 스피노자론에서는 힘의 결합을 저해하는 것이 “악”이라고 말합니다만, 니체에게서 “나쁜 것”은 “반동성”이며, 힘에 대해 반동하는 힘이며, 그것이 르상티망(re-ssemtiment)입니다. “다시 한 번”에 있어서, 감정은 감정의 감정이 되며, 거기에 반동으로서의 힘이 형성되고, 그 형성이 새로운 힘의 형성을 방해한다. 윤리가 아니라 도덕이 거기서 나타난다.
── 즉, 윤리는 선악의 피안에 생성된다.
宇野 :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에티카는 반도덕적인 관념이라고.
자연주의를 둘러싸고, 자연의 능산성이라고 해도, 물론 자연과학적인 성과도 있으며, 19세기의 역사적∙사회적∙자본주의적 전개의 문제도 있습니다만, 졸라의 자연주의는 스피노자의 능산성과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예를 들어 졸라의 “수인(獸人)”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동물의 문제가 관련됩니다. 들뢰즈에게서 “동물”이라는 범주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있었습니다.
들뢰즈는 자연주의라는 문제를, 베르그손, 스피노자, 니체의 각각에서 발견하고 계승하지만, 그 의미는 각각에 의해 다르다. “자연”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에티카”는 자연의 연장선상에서, 능산적 힘에 대한 반동적 힘을 분간하기 위해서 있다. 이것이 권력 비판이라는 문제계로 이어지며, 그것이 니체를 경유하여 푸코로 흘러든다. 들뢰즈는 그것에 평행하면서도, 거기에 예를 들어 성도착의 문제가 있습니다. 자연에 인공이 가미되며, 인공적이 된 성이 도착인가 하면, 반드시 그런 비전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묘사된 동물과 식물 사이에 맺어지는 성관계. 말벌이 잘못해서 난과 섹스를 하는 것은, 단순한 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이종교배입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도착적, 반자연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프루스트 자신의 비전이기도 하며, 거기서 동성애자나 성도착자를, 특히 식물의 차원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들뢰즈는 도착도 자연주의 속에 넣고, 그렇게 자연을 여러 가지 선으로 식별해 보인다는 문제계를 안고 있었다. 들뢰즈 자신 속의 자연주의의, 여러 가지 선분을 식별해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이념’으로서의 추상기계, ‘언어존재’로서의 인간
── 들뢰즈는 자신의 자연주의를 철저하게 규명한 다음,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으로 향합니다만, 거기서 이번에는 자연이 묘사하는 구체적∙구상적인 선분을 철저하게 어레인지하면서, 더욱이 그 저편에 있는 아주 추상적인 지평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니체의 힘”과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종합하여, 양자를 함께 탈영토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새로운 지평에서의 “항쟁” 개념, 싸움의 개념이 나온다. 그것이 아마 “전쟁기계”라는 개념에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서는 “선악을 넘는” 싸움이 발생한다. 그것은 최악의 반동, 즉 파멸적이고 전면적인 붕괴로도 되며, 또한 동시에 뭔가 새로운 존재(바로 ‘초인’)를 산출하는 계기도 된다. 『천 개의 고원』에서는, 미래는 항상 장밋빛으로는 그려지지 않으며, 최선의 것으로도 최악의 것으로도 어느 쪽으로도 될 가능성이 있다. 자연의 선분을 어떻게 어레인지하고 어떻게 싸울까라는 것이 80년대의 이 단계에서 말해진 것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도래할 투쟁이 개념의 모형雛形이 될 것입니다.
宇野 : 방금 말씀하신 것에는 두세 가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들뢰즈∙가타리는 “추상기계”라는 말에 집착하여 이를 사용한다는 것. 더욱이 『안티 오이디푸스』나 『천 개의 고원』에서, 그때까지는 없었던 것으로서 나중에 나오는 프래그머티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게 생각하면, 그때 시작된 것이 아니며, 이미 멀리 흄론 속에서 말해진 경험론으로서 있었던 것입니다만, 그러나 들뢰즈의 경험론은 단순한 경험론, 단순한 프래그머티즘이 아니다(물론 단순한 경험론이나 단순한 프래그머티즘이 있느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들뢰즈는 퍼스와 같은 사상가를 평가하고 있으며, 화이트헤드 안에도 있는 프래그머티즘을 매우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프래그머티즘의 선분이 있으면서도, 『차이와 반복』 안에는 “이념”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이것은 플라톤과 관련된 것입니다만, 그러나 플라톤의 발상에서 “이데아”를 떼어내고 아주 기묘한 개념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이, 틀림없이 『차이와 반복』의 한 가지 주제였다. 그리고 『의미의 논리』 안에서는 “표층”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표층의 차원, 의미의 차원, 사건의 차원이 거의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신체 차원의 작용/반작용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의 “죽음의 본능”이라는 것조차도, 들뢰즈는 거기에 이념적인 차원, 사건적 차원을 보고 있다. 문제는 자연 속에 이념이 있느냐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차이와 반복』에서 그것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념은 예를 들어 개체가 발생할 때에도 작동할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강도를 배분하는 것이라는 범주로서 나타난다. 또한 말년에 들뢰즈는 푸코를 읽으면서 “언어존재”라는 새로운 존재가, 지금 이 현대에 미래를 향해서 출현하고, 그 언어 존재로서의 인간이야말로 새로운 인간의 이미지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이념, 추상 언어라는 주제는 상당히 어려운 독해를 강요하는 것이며, 자연 속에도 있는 차이의 작동이며, 그런 이념은 신체와는 다른 차원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자연의 능산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새로운 상이한 채원의 창조에 속한다, 혹은 새로운 존재론의 하나의 골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줄곧 말해졌으며, 이 『천 개의 고원』 속에서도 말해집니다.
예를 들어 네그리∙하트는 『제국』에서 정보사회에 대해 말합니다만, 그것은 언어-기호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기호를 둘러싸고 노동하며 협업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태가 <제국>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작동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런 것은 들뢰즈의 인식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신체, 비프래그머티즘, 비생명,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의 본능”이라는 차원을 가지는 언어나 이념의 차원이, 그러나 자연의 능산성과 결코 분리하기 어려운 형태로, 현대사회에서의 능산성의 하나의 잠재적인 중심을 만든다는 비전이 들뢰즈에게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를 매우 현혹시킵니다. 들뢰즈는 신체의 철학자라고 말해집니다만, 그러나 신체라고 해도, “기관 없는 신체”의 철학자이며, 여기서 우선 까다로워진다. 그리고 『의미의 논리』를 읽으면, 의미는 신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차원이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사고마저 나온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신체와 비신체가 다양한 형태로 교차하는 세계의 비전이 『천 개의 고원』에 나오고 있으며, 다양한 변주를 통해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거기서는 기계-신체-물질이라는 계열이 하나에 있고, 기호-비신체-추상의 계열이 또 하나 있으며, 거대한 스케일을 갖고 다양하게 교차한다는 비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더 신체적 차원에 기울고 있으며, 흐름의 교차를 제어하고 증강하며 혹은 가둔다는 자본주의의 운동을 나타내고 있다. 거기서도 기호의 갤럭시라는 맥루언적인 비전이 분명히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에 반해 『천 개의 고원』은 훨씬 복잡한 형태로 두 개의 차원을 교차시키고 있습니다.
도래할 민중은 “무리” 속에서 태어난다.
── 그 두 가지 차원의 교착을, 구체적인 기계와 추상적인 기계의 끊임없는 상호 전환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천 개의 고원』의 아주 독창적인 대목이 아닙니까? 그리고 거기서는 자연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전개하는 거대하고 정교∙치밀한 <기계권>이 됩니다. 게다가 푸코론에서는, 그 추상적인 <기계권>의 끝에, 현대적인 사회와 생명의 어레인지먼트를 관통해서 나오는 존재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초원” 자체라고 합니다. 인간을, 다양하게 조합된 기계로서 사고했을 때, 거기서 출현하는 강도의 추상을 자신 안에 분유한 새로운 존재야말로 “언어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닐까요. 아마 들뢰즈는 그런 존재에 “도래할 민중”이라는 개념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상과 구상, 그리고 선악에 고정되지 않은 윤리와 권력(힘)을 가진 “도래할 인간”을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그런 것을 반복하고 반복해서 『천 개의 고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분히 네그리∙하트의 “다중”이라는 개념은 들뢰즈의 그런 “민중” 개념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무너져야 할 “인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추상에 있어서도 구체에 있어서도 초월하는 것이 아니며, 기쁨과 함께, 내재적인 구성의 힘에 있어서, 조합(어레인지)에 의해 새로운 것을 낳는다고 하는 것. 거기서 생성되는 민중은, 끊임없이 모든 곳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쟁” 상태에 있는 민중, 선악의 피안을 견디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중. 그것은 항상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서의 “이념”이기도 하죠. 여기서 발견된 “도래할 민중”은 또한 『천 개의 고원』에서 인상적으로 묘사된 “무리”라는 개념에 서로 포개지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宇野 :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무리”meute란 “늑대의 무리”라든가 “패거리”에 가까운 말이며, 또 하나는 ‘masse’이며, 이것은 “군집”으로 번역됩니다만, 일종의 코드성, 계급성을 가지고,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꼭 동반한 것입니다. “무리”는 네그리가 “다중”에 관해 말하듯이 유연성과 이동성을 특징으로 갖고, 바로 노마드이기도 하며, 우두머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가적인 고정된 질서를 만들어내려고 하면 반드시 저항이 작동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갱들이 낮에 함께 움직이더라도, 잠잘 때 같이 자는지 자지 않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 있는가 아니면 떠나는가. 이런 사소한 것이 집단의 성격을 결정한다. 이런 예를 제시함으로써 들뢰즈·네그리는 “무리”에 구치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네그리·하트는 일관되게 도식적이고 친근한 이미지가 솟아나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역할과 위치관계, 거리가 그 장마다 바뀌어가는 “무리”의 집단은, 기본적으로는 코드에 의해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것은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쟁기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무리”라는 개념을 바로 들뢰즈는 무수한 고원으로부터 추출했습니다.
예전에 『예정부조화』라는 책에서도 썼습니다만, 그런 “무리”는 또한 셀린느(Louis‐Ferdinand Céline)의 파시즘의 문제와도 관련됩니다. 예를 들어 『Mort à crédit』에 나오는 “무리”의 이미지. 모종의 갱, 사기꾼 등, “무리”라는 것에서 보자면 셀린느는 읽어낸 것 아니냐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무리”가 한발을 잘못 디디면, 나치즘으로 자빠진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이 과격한 불평분자들, 즉 군중들(mobs)로부터 형성되는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환원할 수 없으며, 아렌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군중들(mobs)은 “무리”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리”이기 때문에 좋다든가 “무리”는 혁명적이라든가 등과는 전혀 말하고 싶지 않다. …
ーー 매우 양의적이네요.
宇野 : 집단성의 양상을 두 가지 각도에서 말하고 있다. “무리”는 리좀적 집단으로, “군집”은 트리적 집단이 됩니다. 인간의 개체를 미립자의 결합으로서, 그리고 속도의 양태로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양자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쉽게 상호 전환된다. “무리”의 메커니즘은 사회학적으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문제죠.
ーー “무리”의 문제계에 대해서입니다만, 들뢰즈 안에는 항상 다양체라는 개념이 있다고는 하나, “무리”라는 존재가 리얼하게 다시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은 역시 가타리와의 만남이 큰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가타리는 라보르도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라는 수직성의 관계를 최대한 배제하고, 그리고 또한 환자들에게도 다양한 역할을 맡게 하고 병원 전체를 하나의 “무리”로서, 그것을 하나의 다양체로 변신시킨다는 실험을 했습니다. “광기”를 앓는 사람들이 그대로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해간다는 가타리의 실천으로부터, 들뢰즈는 매우 큰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宇野 : 글쎄요. 모종의 어레인지먼트를 산출한다는 거군요. 『천 개의 고원』의 첫 대목에서, 두 사람이서 책을 쓸 때, 우리 두 사람은 이미 몇몇이며, 각각이 “무리”이며, “무리”와 “무리”가 교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들뢰즈·가타리의 책은 어떤 식으로 생겨났는가라고 생각했는데요, 장(章)을 분담해서 썼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모종의 개념에 관해 두 사람 중 누가 말했느냐는, 세밀하게 조사하면 뭐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분담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텍스트를 “무리”로서 썼으며, “무리”로서의 텍스트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죠. 『안티 오이디푸스』가 나온 뒤에는, 여러 사람들이 들뢰즈·가타리의 여러 다양한 텍스트들을 갖고 와서 이것들이 인용됐다. 출처가 불분명한 텍스트나, 테크놀로지의 역할 등과 관련된 미완성 논문이나, 공개되지 않은 문서가 인용되고 있다. 이렇게 텍스트 자체가 “무리”라는 양상을 만들어낸다. 어레인지먼트라는 개념이 책을 쓰는 방식이 되기도 하며, 사고의 방식 자체를 형성한다. “내가 없다”는 것이 『천 개의 고원』에 현실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며, 그것은 단순히 사상을 집단성에 열어 간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혼자서 했던 것을 몇 사람이 한다는 것이 아니며, 그것보다 훨씬 이상의 일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까 들뢰즈·가타리는 장밋빛 미래를 절대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만, 그것과 동시에 잠재성의 차원에서는 다양한 것이 온갖 차원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어레인지먼트의 철학이란, 실천과 이론 사이의 어레인지먼트라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수반합니다. 그것은 이론을 따라 실천한다는 교과서적인 어레인지먼트일 수 없죠.
언표행위의 어레인지먼트, 기호의 “생산”
ーー 예를 들어 푸코와 가타리에 대해서는 푸코의 바로 옆에는 무수한 “죄수들”이 있으며, 가타리의 바로 옆에도 또한 무수한 “광인들”이 있는 상황이 있었다. 들뢰즈가 구체적으로 공동 작업을 하고, 실제로 함께 쓴 것은 가타리인데요, 70년대의 들뢰즈의 주위에는 그 자신도 포함해서 익명이고 무수한 “무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집단적인 존재방식 자체가 어레인지먼트이며, 특히 『안티 오이디푸스』부터 『천 개의 고원』에 걸쳐, 그 “무리”야말로 다양한 텍스트를 담당하고 또한 다양한 텍스트 자체가 되며, 다양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宇野 : 그 당시는 구조주의의 자극에 의해 언어-기호에 관한 새로운 사색이 자꾸 전개되고 있었습니다만, 언어를 구조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것 자체가 이론의 능산성을 갖고 있었다. 라캉은 68년에 대해 “구조가 길거리로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만, 러시아 형식주의 등도 있고, 은유나 환유를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독해를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자본』에서 받아들여, 그것들을 기표와 기의의 문제에 접속하고, 유물론화된 문학이론을 구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들뢰즈·가타리의 “언표행위의 어레인지먼트”라는 작업이 가져온 단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물론 푸코의 작업에 하나의 기원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간접화법”과도, 폴리포니(polyphony)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의미에 관해 묻습니다만, 구조주의에서는 의미가 아니라 차이가, 혹은 관계가 문제라고 얘기됩니다. 들뢰즈는 구조주의와 유물론 사이에 이것들을 가교하는 사고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언어를 행위로서, 더욱이 어레인지먼트라고 파악하고, 한 명이서 발화하고 있는 것도 집단적 어레인지먼트 속에 있다고 한다. 이런 시각은 당시의 제게는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이런 견해는 “민중”이라는 것과도, 프래그머티즘의 문제와도 관계가 있으며, 어레인지먼트의 문제는 언어뿐만 아니라 기계, 신체와도 관계가 있다. 기계와 어레인지먼트는 모종의 동의어라고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캉은 가족의 표상을, 부재 대상이라는 탁월한 기호를 도입하여 기호의 복잡한 대수적(代數的) 조작으로서 설명한다. 들뢰즈·가타리는 그것조차도 어레인지먼트로서, 어레인지먼트 속에서 말한다. “욕망이 기계이다”라는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보드리야르는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기계”는 “생산”일 것이지만, 지금은 소비사회니까 이제 와서 생산이라니 라며 비판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생산”은 기호의 “생산”이며, 주체의 “생산”에 관여하며, 자연의 능산성에 관한 것이며, 보드리야르처럼 20세기 말의 몇 십년 동안의 스케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더욱 긴 스케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을 “기계”로서 재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주 이론은 “화상에는 물이 있는가”라든가, 어딘가의 “천체에 생명이 있는가”라는 식으로, 단체 수준에서 사고하고 있는 지평에서부터, 우주의 확대 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된 하나의 기계로서 우주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우주 자체가 살아 있고, 그 광대한 삶 속에 생명이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 같아요. 들뢰즈∙가타리의 기계 개념은 그런 의미의 자연론과 무관하지 않을까요.
“잠재성” 속에서 끝까지 싸우기
── 매우 구체적∙상황적인 70년대에 고유한 문제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로 결실을 맺은 메타피지크(metaphysics)의 극치가 여기서 직접 접합되어 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은 표현이며, 동사이다”라고 합니다. 구체적 상황과 추상적 개념이 “표현”의 차원에서 만나고 합치한다. 지금 “신”이나 “자연” 등을 끄집어내어 형이상학을 재건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들뢰즈는 거기에 매달리고 철저하게 사고했다. 그래서 때가 현대에 있어서도, 그 구체적인 상황을 견뎌내는 강인한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에는 “자연주의”라는 단일의 확실한 선이 통했다. 맑스가 그 백년 전에 『자본』 속에 써서 남긴 “자연과정” 속에서 생산을 사고한다는 사태에 직결되는 것을, 한쪽은 메타피지크 속에서, 다른 쪽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행하며, 더욱이 양자를 결합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宇野 : 들뢰즈∙가타리의 사고는 매우 추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때 추상이란 무엇이냐라는 문제가 우선 있습니다. 들뢰즈는 회화에 있어서의 추상과 구상이라는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추상도 구상도 아닌 곳에, “figure”(‘도상’)이라는 개념을 끄집어냈습니다. ‘도상’은 추상도 구상도 아닙니다. 추상회화든 구상회화든 “figure”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뢰즈는 “잠재성”이라는 것을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베르그손으로부터, 아주 본질적인 형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잠재성은 일종의 추상성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잠재성은 리얼하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알의 잠재성을 생각해보면, 알에서 점점 발생이 진행되면, 장기나 손이나 발이나 머리가 보인다. 형태발생에 있어서 잠재성은 리얼이지만, 그러나 여기서 현실화되는 것은 잠재성의 복제copy가 아니다. 복제copy로서 현실화하는 것은 “가능성”이며, “잠재성”과 “가능성”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이 구별은 상당히 중요하고, 아마 “잠재성”의 차원은 추상성의 차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들뢰즈∙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에서 현대의 자본주의나 분열증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만, 그것에 영향을 받은 네그리∙하트는 분석에 있어서는 현실과 상당히 다른 접촉의 방식을 갖고 있다. 들뢰즈∙가타리는 개념으로서 살아가는 사고, 개념의 잠재성이 그대로 리얼하다는 글쓰기를 목표로 현실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그로부터 결코 복제copy가 아닌 무엇인가를 산출하면 좋다는 사고방법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네그리∙하트는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에서부터 자본주의의 탈영토화라는 개념을 이어받고, 20세기 말부터 21세기에 걸친 전개에 응용하고, 단순히 응용만 할 뿐 아니라 큰 스케일을 가진 사고실험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때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은 “가능성”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의 분석에 있어서 적용될 때에도, “가능성”으로서 파악되고 있다. 네그리∙하트는 어떤 곳에서 “다중은 일종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중이라는 말을, 현실의 노동자나 저항하는 사람들이나 마이너리티에 그대로 적응하면, 어딘가 조잡한 게 아니냐는 배려가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의 분석은 “가능성”의 분석이 되며, 그만큼 추상적이게 된다. 그리고 리얼로 향하면 향할수록 그만큼 추상성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중요한 문제제기를 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천 개의 고원』 이후, 이 책의 개념에 비춰보더라도, 사실은 아직 생각되지 않고 있으며, 그리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도 좋은 것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천 개의 고원』을 철저하게 하면, 생산은 “표현”이 되며, 그 “표현”은 또한 싸움이기도 하며, 그 생산과 투쟁을 동시에 “표현”으로서 포함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이라는 테제에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연” 속에서는, 모든 것은 다양체로서 동등하지만, 차이화의 정도에 의해 거기에 배분되는 것, 산출되는 것은 “무한”해집니다. 그런 “이념”을, 지금의 눈앞의 상황에서 시작해, 그 상황 속에 모든 것을 모조리 표현하는 것. 아마 그런 시도가 1980년이라는 해에 행해진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일 겁니다. 이후 『천 개의 고원』은 생산이며 표현이며 투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싸우고, 그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얻고자 하는 “도래할 민중”을 위한 지침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에서 푸코로의 “통저기(通底器)”
宇野 : 오늘은 푸코와의 관계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을 하게 되면 한이 없지만, 들뢰즈의 푸코론은 매우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레인지먼트를 궁극까지 밀고 나가면 뭐가 나오느냐는 것은, 푸코론에서만 그려져 있죠.
宇野 : 어떤 의미에서 푸코는 어레인지먼트의 분석을 실현했다. 푸코는 역사를 연구했다고 말해지지만, 확실히 그렇고, “역사의 문제”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몇 가지 책에서 확실히 제기하고, 고문서에 비추어 파내려갔습니다. 그것은 들뢰즈의 사고의 타대와는 다른 것입니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푸코는 분명히 철학과 거리를 취하면서, 여전히 철학적으로 사고한 급진적인 사고자였다. “광기”를 생각하려 한 철학에, 현상학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타자성이나 장소성이나 신체성이나 공간∙시간 등 속에서 생각하고, 그런 총체가 고장날 때 “광기”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푸코는 그런 인식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가둬져 있다”는 제도성, 구체적인 장소와 과정, 갇혀 있음을 가능케 하는 담론, 이런 연쇄를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놀랄 만큼 기본적인, 인식의 태도의 변경이 있다. 그것은 이성 자체를 어레인지먼트로서 보는 듯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푸코는 철학을 거부하고, 철학의 배후로부터 “남색질을 한” 것이네요. 그런 전환을 들뢰즈는 매우 존경했으며, 자신은 할 수 없다고 본 것이 아닐까. 들뢰즈는 완전히 다른 어레인지먼트에 대해서 사색했다. 푸코 자신은 “어레인지먼트”라는 말에 구애되어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 『말과 사물』의 출판은 들뢰즈에게 결정적이었던 게 아닐까요? 이 책이 없다면 들뢰즈 안에는 어레인지먼트라는 말, 그리고 그 개념 규정은 떠오르기조차도 못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宇野 : 『말과 사물』의 어레인지먼트이기도 하며, 그 밖에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도 중요합니다.
── 거대한 원천이 푸코에 있고, 그것이 들뢰즈에게 영향을 계속 미쳤던 게 아니냐는 것이죠.
宇野 : “시도됐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공동 작업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일종의 공동작업이 성립됐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 들뢰즈∙푸코의 공동작업의 보이지 않는 통저기(通底器)를 파고들어간다는 과제가 있으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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