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학과 예외상태
일시 : 2013년 11월 2일(토) 15:00 ~ 17:00
장소 : 児島惟謙館第1会議室
http://www.kansai-u.ac.jp/ILS/publication/asset/nomos/34/nomos34-04.pdf
○ 다케시타 겐(竹下賢)
주최는 「예외상태와 법」 연구회, 법학연구소의 연구반에서 했습니다만, 그 연구원인 다케시타입니다. 법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먼저 개회사를 「예외상태와 법」 연구반의 주간이신 이지마(飯島)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 이지마 미츠루(飯島暢)
예외상태와 법 연구반의 주간을 맡고 있는 법학부의 이지마(飯島)입니다.
오늘은 매우 바쁜 와중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외상태와 법 연구반은 멤버이자 지금 사회를 보고 계신 다케시타 겐(竹下賢) 선생, 그리고 여기 앉아 계신 가와구치(川口) 선생, 마츠오 미츠마사(松生光正) 선생, 그리고 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한 명인 고난대학(甲南大学)의 모리나가 마사츠나(森永真綱) 선생이라는 분이 정식 멤버입니다. 멤버 중에 다케시타(竹下) 선생 이외에는 모두 형법이 전공이며, 예외상태와 법이라고 말해도, 아무래도 형법적인 문맥에서의 관심이라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 예외상태라고 말하면, 칼 슈미트의 사상이라는 것을 떼어낼 수 없습니다. 최근 줄곧 이 연구반에서는 칼 슈미트에 흥미를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매우 고명한, 가나자와대학(金沢大学)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선생을 모시고 칼 슈미트에 관해 “정치신학과 예외상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됐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카마사 마사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 다케시타 겐
그러면, 맨 처음으로, 사회자로서 강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지마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이 연구반에서, 슈미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카마사 선생님이 최근 『칼 슈미트의 입문 강의』라는 두툼한 책을 작품사(作品社)라는 출판사에서 내셨습니다만, 나카마사 선생님은 상당히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시며, 다만 그 중에는 슈미트 연구라는 것에 상당히 공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카마사 선생님은 1963년 히로시마 태생이며, 이후 도쿄대학을 수료하고, 현재 가나자와 대학(金沢大学) 법학류(法学類)의 교수입니다. 우리의 교토의 법리학 연구회라는 법철학 전문 연구회가 있습니다만, 거기에 항상 출석하고 있거나, 기타 정치사상, 현대독일사상, 그리고 사회철학 같은 학문분야에서, 매우 학제적인 형태로, 폭넓게 연구하고 계시는 선생이십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정치신학과 예외상태”라는 것을 말씀해 주실 겁니다. 나카마사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나카마사입니다. 90분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칼 슈미트는 대체 어떤 인물인지, 왜 주목해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것부터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칼 슈미트에 관한 연구서가 몇 권 출판됐습니다. 법학 분야에서도 예를 들어 도교대학의 헌법 연구자인 이시카와(石川) 선생이 슈미트의 “제도체 보장론”(制度体保障論)에 관해 쓴 저작이 있습니다만, 굳이 말하면 법학보다는 정치사상의 사람들이 슈미트 재평가의 역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칼 슈미트 자신은 헌법학, 혹은 법철학이 전문입니다만, 정치철학이나 국제법에 관한 저작이 많고, 정치사상가로 간주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반드시 칼 슈미트에 관한 전문적 연구인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슈미트에 대해 점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대사상”이 뭔지를 말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니까, 그런 지식의 영역이 성립한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합니다만, 현대사상 혹은 포스트모던 사상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칼 슈미트, 특히 예외상태에 주목하는 논고가 1990년 이후 늘고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슈미트를 연구하는 것의 현대적 의의를 제 나름대로 한 마디로 정리해 표현하면, 그를 통해 법의 다크 사이드, 어두운 측면이 드러난다는 것이 됩니다.
‘법’이라는 것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법’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 의의를 의심하거나 하는 사상은 옛날부터 많이 있습니다. 아나키즘 계열의 사상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원래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긍정적인 면을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부정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슈미트는 법학자이기에, ‘법’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그 자신의 이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나 자유, 민주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근대법의 보통이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슈미트의 ‘법’의 본질론을 뒤쫓아가면, ‘법’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슈미트 자신에게는 부정적인 것을 하고 있지는 아마도 않을 것이며, ‘법’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만, 근대법에서의 자유나 권리나 평등 등의 상식적으로 익숙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듯합니다.
‘현대사상’에서 적극적으로 슈미트를 참조하고 있는 사람은 다분히 좌파적, 아나키스트적 입장의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왜 굳이 슈미트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요? 아마 그들은 어떤 사회에서도, 어떤 형태로 ‘법’은 필요하며, ‘법’을 없애려 해도 불가능하다, 사회가 있는 한 반드시 ‘법’이 생긴다는 것을 현실로서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게다가 왜 ‘법’이 인간에게 엉켜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탐구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핵으로 하는 서양근대의 법과 정치의 이념을 보편주의적으로 철저하게 하려고 하면, 서구적인 ‘인간’ 모델에 맞지 않은 사람들이나 문화를 억압해 버린다는 역설에 관심을 돌립니다. 거기서 근대법 및 그것과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내재하는 모순을 ― 현대의 반-전지구화에도 통하는 듯한 방식으로 ― 날카롭게 지적하고, ‘법’과 ‘인간’을 결부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것, 이성에 의해서는 석연치 않게 남아 있는 것을 묘사하려고 한 슈미트의 사유가 참조되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기본적으로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적인 사상가입니다만, 바로 그렇기에 포스트모던 좌파적인 인물들에게 반면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추상적・방법론적 수준의 문제로서, 현대사상에서 문제가 되는,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법’과, 법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구체적인 법, 실증법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한 다음, 슈미트의 담론이 딱 알맞은 힌트를 제공한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상에서 ‘법’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이 의식하느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따르고 있는 ‘법’, 인간의 사유를 한계짓고, 규범적으로 방향짓고 있는 것으로서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까다로워지기에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정신분석에서 ‘초자아’나 ‘아버지의 이름=아니오nom(non) du père’이라 불리는 것에 상당하는 ‘법’입니다.
그런 ‘법’에 관한 논의에 대해 1980년대 말 무렵부터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것과 법학자나 법률가가 다루는 현실의 법의 해석이 어떤 접점이 있을까요?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들면 꽤 어렵습니다. 그런 탓에 양자 사이에 좀처럼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하기 어렵지만, 철학적인 존재론과 인식론의 수준까지 파고들어, ‘법’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전문인 헌법학과 국제법에 연결시킨 슈미트의 논의를 경유하면, 구체적인 접점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 기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접점인지 조금만 말씀드리면, ‘법’을 가능케 하고 있는 “법외적인 것[법 바깥의 것]”에 관한 메타 법이론적 고찰이라는 것입니다. 슈미트의 경우 이 “법외적인 것”은 ‘결단’과 ‘질서’라는 형태로 논해집니다. ‘법’이 ‘법’으로서 타당하려면 “이것이 법이다”라는 ‘결단’과 그 결단에 의해 규정된 ‘법’의 내실에 대응하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근대의 법사상에서는 그런 ‘법외적인 것’의 작동에 대해서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규범이 정의와 권리로서 정식화되고, 이를 기점으로 법이 체계적으로 구축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합리주의적인 이미지를 품기 쉽지만, 슈미트나 포스트모던 좌파처럼 “법외”적인 힘에 주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법이다”라는 공통 인식・합의가 형성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그런 인식에 이르도록 강제하는 힘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그 합의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것인지 의심할 여지가 없느냐는 것이겠죠.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자라나고 생활하는 가운데 이러저러한 규범을 새겨 넣습니다. 처음에는 주위에 맞추어 살아남고자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규범인데도, 어느새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공통의 ‘법’이 없으면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어쩐지 ‘모두’가 품고 있을 만한 ‘법’ 이해에 동조한다는 것도 있겠죠. 그런 법외적인 힘에 대한 관심이 현대사상 분야에서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법학자이면서도 “법외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기에 주목받는 것입니다.
현대사상에서의 슈미트 수용의 중심인물로 프랑스의 데리다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200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데리다는 현재에도 아마 프랑스계의 현대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의 논의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한마디로 나타내면, ‘이항대립’ 사고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물을 이해할 때,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 질서와 비질서라는 식으로 사물을 두 개의 극에 나누고, 그 양극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되는 것으로 대상을 이해합니다. 그 자체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인식을 위한 대립 구도가 고정화되고, 특정한 가치관과 결부된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이 경우, 한쪽 극에 긍정적인 가치가 부여되고 다른 한쪽은 열등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정신/물체, 남성/여성, 이성과 야만 등은 분명히 가치의 위계구조와 관계하고 있네요. 그렇게 이항대립적 질서 속에 우리는 주위의 사물을 위치짓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판단은 상당히 무자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에 의해 상이한 시각이나 삶의 방식이 억압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데리다는 그러한 이항대립에 의한 억압의 구도를 폭로하는 것에 집착했죠. 특히 천착한 것이 “이성=내부 / 비이성=외부”의 이항대립입니다.
‘이성적인 것’과 그 밖의 것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음으로써 우리는 제대로 된 인간, 법학 용어에서 말하는 “정상인=이성적인 사람 reasonable man”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구별하고, 사회의 바람직한 질서를 이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그 경우의 “이성적”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물으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비이성적’ 행위나 인간이라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비이성적인 것”을 정립함으로써, 그 대극으로서의 ‘이성적인 것’을 이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리하죠. 우선 부정적인 가치를 지닌 것을 묘사하고, 그것과의 대비에서 포지티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묘사하내려 하는 것은 이항대립 사고의 특징입니다.
‘비이성적인 것’의 단적인 현상은 ‘광기’입니다. ‘광기’가 있다는 것에 의해, ‘이성’이 두드러집니다. 데리다보다 조금 나이가 든 푸코라는 역시 프랑스 철학자는 근대에서의 이성/광기의 선긋기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라는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이것은 근대법, 특히 형법의 성립에 있어서 극히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형법에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책임 능력이 있는 인간, 즉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의 잘잘못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려고 하면 어렵지만, 책임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이런 녀석이라고 하는 것은 지정하기가 쉽네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형법 39조의 규정이 있는 것에 의해, 그것에 맞지 않은, 책임 능력이 있는 이성적 인간의 이미지가 윤곽이 잡히는 것입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광기”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는 게 의학의 담론에 의해 설정되는 것입니다만, 그러면, 초기의 형법이론이 제휴(tie up)하고, 정상적인 인간인 우리의 사회를 비정상적인 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틀을 형성했습니다. 그 모습을 푸코는 다양한 사료를 구사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부/외부”의 경계선이 그어지고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이성과 광기뿐 아니라, 우리의 세계는 정상=규범적(normal) 것과 그것에서 제외된 것을, 다양한 이항 대립의 경계선에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선긋기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선천적으로, 어떤 보편적인 법칙에 의거하여 정해진다기보다는 어떤 우연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때그때의 권력이나 경제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한 이항대립의 문제를 가장 근원적으로 파고들어 논한다고 간주되는 것이 데리다입니다.
데리다는 서구에서의 이항대립적 발상의 원점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의 담론을 자주 인용합니다. 데리다의 논문집 『산종』에 포함된 「플라톤의 파르마케이아」 논문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에크리튀르라는 관점에서 독파해낸 저작입니다. ‘에크리튀르’란, ‘써진 것’ 혹은 ‘쓰는 행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입니다. 데리다는 얼핏 보기에, 우리의 사고에 더 밀착해 있는 듯한 ‘파롤(parole)’이 아니라, 에크리튀르에 의해,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이 규정되고, 다양한 이항대립 도식이 산출됐다고 지적합니다. 에크리튀르에는 모두가 따라야 할 로고스(논리)를 정형화하여 전파해가는 작용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파르마케이아」에서는 에크리튀르에 의해 폴리스의 핵이 되는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폴리스의 바깥으로 배제해야 할 것의 경계선이 그어진다는 것을 플라톤의 이성중심주의적 담론에 입각해 밝히고 있습니다. 덧붙이면, ‘파르마케이아’란 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입니다만, 약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독이 됩니다.
에크리튀르에 의해 그어진 폴리스의 안(이성)/바깥(비이성)의 경계선이야말로 ‘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자연법이라는 관념도 있었지만, 처음에 누군가가 “이것이 자연법이다!”라고 선언한 뒤에 에크리튀르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일이 없습니다. ‘법’ 자체에는 형태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법’을 에크리튀르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입함으로써, 폴리스의 안/바깥의 경계선이 강화되고, 정치적 공동체적 질서가 안정됩니다. ‘법’의 에크리튀르에 의해, 폴리스에 속해서는 안 되는 자=야만인을 일단 배제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데리다가 이런 의미에서의 ‘이항대립’의 문제와 씨름했다고 한다면, 그의 사고방식은 근대법의 대전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슈미트를 어느 정도 아시는 분이라면, 그의 ‘친구/적’과도 강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데리다의 후기 저작 『우정의 정치』에서, 슈미트에 대한 상당한 쪽수를 할애해 논하고 있습니다. 우정이라고 한 것은 프랑스어로 <amitié>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프렌드십, 즉 ‘친구성’입니다. 슈미트의 “친구/적” 구별에서 말하는 ‘친구’라는 것의 본질입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저작 속에서 슈미트는 “정치적 행동이나 동기의 기본원인으로 생각되는, 특수 정치적인 구별은 친구와 적이라는 구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적을 구별한다는 것은 바로 안과 밖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들에게 ‘적’인지 확실히 함으로써, 내부=친구를 결집시키고 외부와 대립에 대비하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폴리스, 정치적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는 것이 정해집니다. 그 경계선을 긋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라고 슈미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는 근대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관과 정반대 극에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은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갖추고 있으며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공통의 가치를 요구하며, 최종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대가 아니라 합의에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근대법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동의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에 성립됩니다. 법은 사람들의 합의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으며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법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는 것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그 내용에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자신이 처벌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 사람 자신이 이전에 “○○의 행위를 한 사람은 ▽▽의 벌을 받는다”라는 규범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했다면, 일방적으로 처벌받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 않더라도, 인간인 이상,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합의했던 것이라고 사회계약론적인 법이론은 주장합니다. 칸트는 그런 입장을 취합니다.
슈미트는 그런 보편적 합의는 픽션이라고 공격합니다. 그에게 말하라 하면, ‘합의’가 성립하는 것은 ‘적’과의 대립관계에서 ‘친구’가 결속하기 때문입니다. 인민의 동일성은 선긋기에 의해 창출되는 것입니다. 선의 맞은 편 사람과의 동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의회제 민주주의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슈미트는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계속 얘기를 할 뿐,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만약 합의가 성립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사이에서 ‘친구’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슈미트적 모티프를 앞세운 데리다의 『우정의 정치』가 출판된 것은 1994년입니다. 냉전이 끝난 지 4년 후입니다. 동서 냉전 구조가 종결되고, 근원적 대립을 없어지고, 보편적인 세계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한편, 걸프전쟁이나 유고슬라비아 분쟁 등 지역 분쟁이 발발하기 시작하고, 미국의 일극지배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던 시기입니다.
외견상, 적이 없어진 세계에서 미국은 ‘인류’의 이름으로 ‘보편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질서 유지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활동의 단속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미국의 참견은 기만으로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원래 ‘인류’나 ‘보편적 인간성’ 같은 것이 실재하는가? 그런 것이 실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새로운 국제 정치의 논리야말로 폭력적이지 않은가? 이 세계에서 적대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슈미트의 주제입니다. 아까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1932년에 출판됐습니다만, 당시의 독일을 억압하던 베르사유 체제와 국제연맹에 대한 분노가 표명되고 있습니다. 제1차 대전 후에 만들어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국가들은 ‘인류’의 이름 아래 국제적 정의를 휘두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따르지 않는 것에는 제재를 가하려고 합니다. 제재가 가해지는 상대는 ‘인류’의 ‘적’이 됩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이것은 매우 모순된 이야기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의 ‘인류’에는 모든 인간이 포함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적’이 없기 때문이죠. 제1차 대전 후의 세계에서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는 ‘친구/적’의 구별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근원적으로 대립하는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정치’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정치’가 있는 한 ‘적’이 없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데리다는 어느 쪽인가 하면 좌파의 인물이지만, 슈미트가 양차 대전 사이인 전간기, 국제주의가 찬양되던 시기에, ‘적대성’과 불가분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음에 주목하고, 상이한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생길 ‘적대성’과 어떻게 사귀어 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데, 반면교사처럼 참조하는 것입니다.
데리다나 다른 포스트모던 좌파 사람들은 ‘친구/적’의 경계선 긋기와 불가분하게 결부되고 있는 ‘결단’에도 주목합니다. ‘결단’ 혹은 ‘결정’을 뜻하는 독일어 <Entscheidung>은 ‘분리’를 뜻하는 <Scheidung>과 ‘따돌리다’란 뜻의 접두사 <ent->를 합친 말입니다. 그런 ‘결단’에 의해 ‘친구/적’이 나뉘고, ‘법’이 타당하는 범위가 확정되는 것인데, 그것이 노출되는 것이 ‘예외상태’입니다. 슈미트의 법이론에서는 ‘예외상태’와 ‘주권’이 밀접하게 결부되고 있습니다. ‘친구/적’, ‘결단’, ‘예외상태’, ‘주권’, ‘정치적인 것’ 등이, 슈미트의 사상을 특징짓는 키워드입니다.
데리다에게 영향을 준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 사상가로 발터 벤야민이 있습니다. 그는 슈미트와 동시대인으로, 혁명의 폭력에 관해 「폭력 비판을 위하여」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의 그의 논의는 슈미트의 “예외상태=주권”론과 깊은 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간주되죠. 그리고 데리다와 마찬가지로 슈미트와 벤야민 두 사람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현대 이탈리아의 사상가로 아감벤이 있습니다. 아감벤은 제가 아는 한, 현재 포스트모던계의 현대사상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감벤은 주요 저작인 『호모 사케르』에서 슈미트의 ‘예외상태’를 독자적으로 궁리하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케르 homo sacer’는 ‘성스러운[신성한] 인간’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그 공동체 안에서 생기는 더러움을 정화하기 위해 희생에 바쳐지는 사람입니다. ‘호모 사케르’ 자신은 공동체의 ‘법’의 바깥쪽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 법 밖의 존재인 덕분에 공동체가, 그리고 공동체의 ‘법’이 유지됩니다. ‘법’의 바깥에 있으면서 ‘법’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적 결단과 비슷하네요. ‘법’이 효력을 정지하는 상황에서 행해지는 결단이 ‘법’을 지탱하는 것이니까요.
아감벤은 현대의 ‘호모 사케르’적인 존재로서 무국적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법에 의해서도 보호되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을 돌립니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이기도 한데요, 그때 사람들은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서 등록되고 법의 보호 아래에 놓이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되었습니다. 안/밖의 경계선이 그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권리 주체로서 계약을 맺거나, 법을 위반하면 벌을 받는 것은 어떤 국가에 속하는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실상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나치 정권 시대의 유대인처럼, 시민으로서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경계선 밖에 놓이게 된 사람은 법과는 관계없는 상태, ‘인간’으로서 취급될 자격을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 놓입니다. 그렇게 법의 바깥에 놓이게 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의해, 그 국가를 ‘외부’와 간극을 두고 있는 경계선이 분명해지고, 공동체적 질서가 강화됩니다. 사실 나치는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비아리아계의 사람들을 표시하고 배제함으로써 독일인다움이 다시 정의되며, 독일적인 법과 정치가 탐구되었습니다. 그런 법 밖의 존재가 있음으로써, 법의 형태가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호모 사케르’적인 존재인 셈이죠.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결단’에 의해, 안/밖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것인데요, 이런 (통상적인) 법을 넘어서는 주권적 권력과, ‘법’의 바깥으로 밀려남으로써 안/밖의 경계선을 노출시키는 ‘호모 사케르’의 존재는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감벤적으로 이해하면, 슈미트가 말한 주권자는 ‘법’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에서 무엇이 ‘법’으로 타당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법’을 넘는 곳에 없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주권자로서의 지위는 ‘법’에 의해 미리 주어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법과 관계없는 사람이 마음대로 선언하고 폭력을 발휘해도, ‘법’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외상태’에 대해서도 ‘법’에 의해 미리 규정되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감벤은 ‘예외상태’에 대해 어원학적 해석을 가하고 있어요. 영어로 ‘예외’를 <except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어원인 라틴어의 동사 <excapere>는 “밖으로”라는 뜻의 접두사 <ex->와 ‘포착하다/붙잡다’라는 뜻의 동사 <capere>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예외’란 ‘밖에서 포착된=붙잡힌 상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밖’에 있으면서, ‘안’과 관계없는 것이 아닌 상태, ‘안’과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아감벤은 이어서 2003년에 나온 『예외상태』라는 저작에서 슈미트의 주권론과 벤야민의 ‘신적 폭력론’을 함께 고찰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좌파의 슈미트 수용의 예로서, 벨기에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샹탈 무페라는 정치철학자를 얘기합시다. 무페는 급진민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급진민주주의론이라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비판하고, 민중의 의지가 정치에 직접 반영되는 방식을 실현해야 한다는 논의입니다만, 무페는 그 중에서도 경합적 민주주의라는 매우 급진적인 논의를 전개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논의를 하기만 하면 보편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정은 기만이라고 하며, 상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불가피하게 생기며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적대성’을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논의입니다.
다민족 국가나 다종교 국가를 염두에 두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대화에 의해 타협에 이르더라도, 그것은 결국 다수파에 유리하므로, 다수파와 소수 사이의 적대성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강해집니다. 현대의 숙의적 민주주의론의 대표적 논객인 하바마스와 롤스는 보편적인 이성에 근거한 숙의를 계속 쌓아나감으로써 정의에 관한 ‘합의’를 형성할 수 있음을 논증하려고 하지만, 무페는 그들을 비판하고 ‘정치’에는 대화로 해소할 수 없는 ‘적대성’이 뒤따른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문맥에서 무페는 슈미트의 저작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을 참조합니다. 이 저작에서 슈미트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다스리는 자’와 ‘다스려지는 자’의 ‘동일성’ 또는 ‘동질성’이라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려지는 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누가 ‘다스리는 자’가 되더라도 차이가 없습니다. 대화나 타협의 필요는 기본적으로 없습니다. 민족적 동질성을 보증하고 있는 경우가 그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슈미트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동일성에 근거한 민주주의는 각자가 다른 사고방식, 다른 삶의 방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대의제를 권장하는 자유주의와는 원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하나가 되는 듯한, ‘자유민주주의’라는 환상을 언제까지나 붙드는 것이 아니라, 친구/적의 대립을 ‘정치’의 기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슈미트의 입장입니다.
무페도 데리다나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좌파적인 사람이어서 ‘적대성’을 절멸전쟁이나 민족청소로까지 상승시켜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지만, ‘적대성’이 대화로 해소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사물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기만이 되어버리기에, ‘적대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합의가 가능하다는 형식적인 논의를 하는 롤스 등의 진보좌파보다는 근원적인 친구와 적의 대립에야말로 정치의 본질이 있다고 하는 슈미트가 참고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페더러 말하게 하면, 아무리 교묘하고 세련된 토의 포럼을 설정하더라도, 거기에서 반드시 배제되는 사람이 나옵니다. 보편주의적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면, 그런 배제가 보이기 어렵게 됩니다. 오히려 적대성을 해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대립이 표면화될 때마다 논의를 위한 포럼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이 영원히 계속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근원적 적대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고방식이, 미국이 하고 있는 보편적 정의의 강요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슈미트가 현대의 포스트모던 좌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러한 반-보편주의의 사고방식이 현대에 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슈미트의 초기 저작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슈미트의 초기 법학적 저작으로, 1912년에 출판된 『법률과 판결』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듯이, 이미 ‘결단’론의 싹이 보입니다. ‘판결’을 뜻하는 독일어 <Urteil>은 단어가 만들어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근원적 분할(Ur-Teilung)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결을 할 때, 법관은 실정법의 규범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라 “이 사례에는 이 규범이 들어맞는다”라는 결단을 불가피하게 수반하고 있습니다. 결단에 의해 비로소 법에 구체적인 모양이 주어집니다. ‘결단’은 ‘법’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입니다. 이런 생각이 그 후의 저작 속에서 점차 구체화되어 ‘결단주의’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슈미트의 정치철학적 독자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첫 번째 저작은 『정치적 낭만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출판된 1919년은 제1차 대전이 끝난 해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제목을 보면, 슈미트가 낭만주의에 동질감(sympathy)을 느끼고 있고 그 정치적 응용을 제창하는 듯한 인상을 받지만, 사실 그렇진 않고,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슈미트 자신이 의거하는 가톨릭 보수주의와 낭만주의의 차이를 밝히는 것을 시도한 저작입니다.
독일의 기독교에는 루터교와 칼뱅파인 개신교와 가톨릭이 있는데요, 개신교가 소수입니다. 독일제국의 중심이 된 프로이센은 개신교국가로, 비스마르크가 가톨릭의 영향을 봉쇄하기 위한 문화투쟁을 벌인 것은 유명하죠. 슈미트는 가톨릭계의 사람으로, 가톨릭적인 보수주의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치가 정권 장악하기 전후부터 나치에 바싹 다가선 느낌이 되며, 전후에는 국제법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만, 항상 가톨릭 보수주의가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인데요, 그의 질서관의 모델은 가톨릭교회에서의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 안의 위계 질서였다고 간주됩니다. 그것은 그에게 법학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권에서의 법학, 특히 법교리학은 기독교의 신학을 모델로 만들어졌고, 신학적 개념을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법학의 사고방법에 잘 적합한, 가톨릭적인 질서관의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는 태도를 계속 갖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에, 법학적 질서론의 모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를 왜 비판하는가? 낭만주의의 문학・예술사에 관한 기본적 지식이 없으면,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필요 최소한의 설명만 하고 싶습니다. 독일에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고전주의의 이성중심주의·규범적인 예술에 저항하고,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 무한한 것을 예술적 창조의 원천으로 삼으려 하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정치에도 응용하려던 인물들이 정치적 낭만주의자라고 불립니다. 그 대표적 논객들은 가톨릭으로의 개종자입니다. 가톨릭에서 새로운 이상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낭만주의’와 ‘가톨릭 보수주의’가 동일시되기 십상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양자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낭만주의자란 누구인가? 이성에 의해 파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무한한 반성을 계속하는 것을 찬양하는 낭만주의의 예술 이론을 이해한 다음에, 정치이론에 응용한 사람을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낭만주의자’로 간주한다고 한다면, 그만큼 많은 논객은 없습니다. 빈 회의를 주재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를 섬기면서, 낭만주의적 정치이론을 전개한 아담 뮐러가 전형이라고 합니다. 뮐러는 독일어권의 유기체적 국가론의 창시자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독일 관념론의 자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해, 초기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고 뮐러에게 예술이론의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 프리드리히 슐레겔도 정치적 낭만주의의 대표 논객으로 간주됩니다. 둘 다 메테르니히를 섬긴 인연으로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로 활동 거점을 옮깁니다.
슈미트가 그들의 정치적 낭만주의에 관해 문제시한 것은 이들의 <Volk>‘관’입니다. 원래는 ‘민중’이라는 뜻의 말입니다만, 19세기의 민족주의의 맥락에서 ‘민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의 맥락에서는 ‘인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Volk>를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은 무한한 반성의 대상으로 농락할 뿐이고, 실재하는 것으로서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슈미트의 비판의 포인트입니다. 무한한 반성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Volk>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이미지를 문학적 취향을 보태서 계승해가는, 그런 다면성을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Volk>에 대해서 생각하는 “나”의 관점을 차례차례 바꾸어가기에 하나의 실체적 이미지로 귀착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그러고 있습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그것은 실없는 태도입니다.
반면 가톨릭계 보수주의자로서 그가 주목하는 것이 드 메스트르, 보날, 그리고 본인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영국 성공회와 영국의 국가체제의 역사적 유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가톨릭적인 생각을 한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입니다. 드 메스트르와 보날은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고 가톨릭적 질서 하에서의 안정된 국가와 인민의 존재방식을 설파한 정치사상가입니다. 그들은 가톨릭적 세계관 아래에서, 국가와 교회, 정치와 종교적 세계관이 융합하고 ‘인민’이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야말로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보날은 신에 관한 신학적・철학적 견해와 정치적・사회적 질서 사이의 유비관계를 논구하고 있습니다. 우선 인격신에 관한 일신론적 관점에는 군주제의 원리가 대응합니다. 일신론은 신의 섭리에 대응하는, 인격적 군주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 외적인 신에 관한 이신론(理神論)적인 가정에는 군주제 민주주의의 헌제(憲制)가 적합합니다. 세계에서의 이신론의 신과 마찬가지로, 1791년의 프랑스 공화국의 입헌군주제의 헌법에서는 국왕은 무기력하다고 간주됐습니다. 이 헌법은 보날의 말을 빌리면, 이신론이 숨겨진 무신론인 것과 마찬가지로, 숨겨진 반-군주제주의였습니다. 그리고 1893년의 자코뱅파의 헌법은 데마고기적이고 아나키하며 공공연한 무신론이며, 신도 없고 국왕도 없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보날에 따르면, ‘지속’을 근거로 삼는 것이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논의입니다. 전통적인 존립만이 모든 사태를 정당화합니다. 장기성(longum tempus)이 그대로 궁극적인 정당성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종교의 국가에 있어서의 의미는 그것이 국가에 지속성을, 그것에 의해 실재성을 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버크도 세대를 넘어서 지속되는 연속적 공동체로서의 국민의 성격을 재차 논의하고, 분할 불가능한 세습 농지의 정당화의 근거를 그것이 존속의 기초라는 것 속에서 보고, 수도원의 토지소유의 그것을 장기간의 전망을 요구하는 원대한 계획을 가능하게 하는 것 속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장기적인 관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시 종교, 더구나 국가체제와 결부되고 안정된 종교에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 세계관과 국가가 대응하고 있고, 그 중심에 인격적 신=군주가 있다는 것에 의해, 장기적인 안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슈미트가 법학자로서 활약한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는 군주가 없으며, 가톨릭교회의 영향도 한정적이었습니다. 가톨릭의 군주가 등장하여 독일을 다시 안정시킨다는 것은 아무래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정치적 낭만주의』의 2년 후에, 슈미트는 『독재』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또 다시 3년 후인 1924년에 독일 법학자 대회에서 「대통령의 독재」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독재』라는 책은 ‘독재’란 원래 어떤 것인가를 논한 저작입니다. ‘독재’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그 쓰임새가 어정쩡한 것은 당연하지만, 독일어에서도 전제적 지배와 권위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거나, 단순히 지도자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형용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만, 슈미트는 ‘독재’의 본래 의미를 고대 로마의 ‘독재’라는 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공화제인 로마의 행정의 수장은 집정관(콘술)입니다. 보통은 콘술이 입법기관의 역할을 맡는 원로원과 민회의 승인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근거하여 통치했습니다. ‘법의 지배’가 행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공화국의 존속이 의심되는 비상사태에서는 일일이 법적 절차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공화국 자체가 망하면 말짱 황이니까요.
그래서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했는가 하면, 콘술이 ‘독재관 dictator’으로 불리는 직책의 사람을 임명하고, 반년 동안, 원로원의 승인 없이 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명령을 내릴 권한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효력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명된 기간뿐입니다. 게다가 로마의 시민권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해서는 역시 건드려서는 안 된다든가, 여러 가지 제약이 붙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법적 제약을 붙인 다음에, 통상적인 법적 절차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독재관’입니다.
이 ‘독재’ 제도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일본어로 『정략론』이나 『로마사론』으로 번역되어 있는 『디스코르시』라는 저작에서 긍정적으로 참조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도 ‘독재’라는 구조가 공화제를 지키는 데 효과적이며, 법을 지키기 위해서 법을 넘어설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독재’의 의의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사상가가 언급했을 뿐 아니라 근대의 현실의 정치・법제도에서도 ‘독재’가 도입되어 있음을 논증합니다. 프랑스의 절대왕정기에 ‘주권’의 의미를 정식화한 것으로 알려진 보댕이라는 사상가가 국왕에 의해 특별한 임무를 위탁받은 ‘특명위원 Kommissar’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슈미트는 그 ‘특명위원’이 독재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국왕은 보통은 ‘법의 지배’를 실행합니다. ‘법’과는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신민을 다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특정한 사항에 관해서는 ‘특명위원’을 임명하고, 국왕과 신민 사이의 통상적인 법적 관계를 넘어 행위할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보댕은 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왕의 ‘주권’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Kommissar>를 소박하게 ‘위원’이라고 번역하면, 위원회적인 것으로 되어 버려 마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들리지만, <Kommissar>는 특별한 위임(commisssion)을 부여받은 ‘임원’이었던 것입니다. 또 교황과 황제가, 어려운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방면에서 일정 기간, 통상적인 법적 행동 규범을 넘어 행동하는 권한을 가지는 ‘특명위원=독재관’을 임명했다는 예도 있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것을 여러 사료에 기초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근대국가의 틀 안에서 점차 정비되고, ‘위임독재 die kommissarische Diktatur’로 발전했습니다. 슈미트는 독재를 ‘위임독재’와 ‘주권독재’의 두 형태로 구분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위임독재’란 쉽게 말하자면, 주권자에 의해 임명된 <Kommissar>에 의한 한정적인 독재입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때, ‘인민’이 <pouvoir constituant>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프랑스어 <pouvoir constituant>은 헌법학에서는 ‘헌법제정권력’이라고 번역되지만, 현대사상에서는 ‘구성적 권력’이라고 번역합니다.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헌법=국가체제(constitution)에 의해 제약을 받지만, ‘인민’은 기존 헌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수도 있습니다. 헌법의 안과 동시에 밖에 있는 것입니다. 인민이 헌법을 넘어서는 힘을 행사할 때, 그 힘은 헌법제정권력이라고 불립니다. 주권독재는 헌법제정권력 행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민은 보통은 기존의 헌법 규범에 따릅니다. 그러나 혁명적인 국면, 즉 인민이 헌법제정권력을 행사하고 낡은 헌법을 폐지하고 새롭게 헌법을 창출하려고 할 때, 인민이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상태가 순간적으로 생깁니다. 그런 비상상태에서 인민 자신이 하는 독재가 ‘주권독재’입니다. 인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해도, 현실의 ‘인민’은 하나로 뭉치는 실체가 아니며, 인민의 의사로서의 ‘일반의지’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공안위원회가 인민의 의사를 대리하는 형태로 ‘독재’를 실시했습니다. ‘위임독재’라면 헌법의 규정에 의해 ‘독재’의 임기, 권한이 결정되겠지만, ‘주권독재’의 경우에는 그런 헌법 자체가 없는 상태이기에, 주권자인 ‘인민’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독재권한을 주어도 좋은 것입니다. 공안위원회는 그런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 ‘독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바이마르 헌법 48조에 독재라는 말은 없습니다만, 대통령이 비상사태에 특수한 권한을 통상적인 법을 넘어서 행사할 수 있음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헌법의 114조, 115조, 117조, 118조, 123조, 124조, 153조 등에서 규정된 기본권을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무효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헌법에서 독재권한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는 본래 ‘위임독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48조의 5항에는 <Das Nähere bestimmt ein Reichsgesetz>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법률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Reich>란 원래 ‘제국’을 뜻하지만, 바이마르 시대에는 연방국가인 독일 전역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이 세부내용이 실제로 법률에 의해 정해져야 비로소 ‘위임독재’가 제도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부사항에 관한 법률은 계속 제정되지 않고 넘어갔어요. 세부사항에 관한 법률이 없는 채,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은 실제로 몇 차례나 비상시의 대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완전히 헌법에 의해 제약당하지 않은 ‘독재’권의 행사라는 것이 됩니다.
슈미트는 그것을 주권독재적인 상태의 흔적으로 간주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바이마르 헌법은, 제2제정이 갑자기 붕괴된 후의 혼란 속에서 ‘인민’의 헌법제정권력을 대표한다고 칭하는 인물들에 의해 초안이 마련되고, 제헌의회에 의해서 제정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국이 붕괴된 후부터 제헌의회가 신헌법을 제정한 그 사이 동안에는 주권독재가 행해지는 게 됩니다. 헌법은 그 ‘주권독재’로 시종일관되고 있으며, 향후의 독재는 헌법에 의해 제약되는 ‘위임독재’로 한정할 것이었습니다. 그 이행을 완결하려면 ‘세부사항’은 불가결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세부사항’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위임독재’는 본래 행해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48조에 기초하여 다양한 개입을 행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권독재적인 상태가 일부 남아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의를 하는 것입니다.
이 논의가 『정치신학』에서의 주권자, 예외상태, 결단 등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기반이 됩니다. 『정치신학』은 『독재』의 이듬해인 1922년에 출판됩니다. 서두에 나오는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대해서 결정하는 자이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합니다. “예외상태 속에서 im Ausnahmezustand”가 아니라 “예외상태에 대해서 über den Ausnahmezustand”라고 말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속에서”라고 했다면, 헌법이나 법의 절차를 따라 정의되는 “예외상태”이 틀 안에서 독재권적인 권력을 발휘한다는 뉘앙스가 되지만, “에 대해서”라고 하면, 원래 “예외상태란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뉘앙스도 생겨납니다. “에 대해서”라는 의미의 독일어 전치사 <über>에는 “~을 넘어서”라는 뜻도 있으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말장난이나 속임수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된 트릭입니다. 어떻게 되면 ‘예외상태’인가를 법률에 의해 미리 정할 수 있을까요? 잘 생각해 보면,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외상태는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다면, 통상적인 국방・안보 조치로 대처할 겁니다. 무엇인가 통상적인 법적 질서 하에서의 예상을 벗어나고[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인 것인데요, 어떤 식으로 벗어날[초과할] 것인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무엇이 ‘예외’인가의 의견은 다를 겁니다. 그래서 ‘주권자’의 결단이 중요해집니다.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도 보댕의 논의 등에 의거하면서 주권을 행사하는 자로서의 왕은 보통은 법에 적합한 형태로 통치하지만, 비상사태에서는 법을 넘어 결정할 수 있는 자로 여겨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국가의 본질은 ‘주권’이며, 주권자에 의한 결정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법’을 넘어서는, 그것은 예외상태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이 저작에서 슈미트의 논의의 골자입니다.
그는 ‘예외상태’에서는 ‘법’과 ‘질서’의 이질성이 돋보인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질서’라고 표현을 하면 어쩐지 알 것 같은 듯한 생각이 들겠지만, ‘법’과 ‘질서’ 중 어느 하나가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걸까요? ‘법’이 먼저 있고 그 토대 위에서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질서’가 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법’이 있다는 것일까요? 둘 다 가능한 말입니다만, 대부분의 법학자는 먼저 ‘법’, 즉 사람들이 따라야 할 법규범의 체계가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며, 그것에 의해 ‘질서’가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법규범의 체계만을 법질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슈미트는 사람이나 사물의 관계를 통제하는 ‘질서’가 먼저 있고, 거기에 맞춰서 ‘법’이 창출된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의 전통 같은 것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것인데, 전통이나 권위가 해체되고, 바람직하거나 있어야 할 질서를 모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주권자의 결정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주권자는 질서의 바람직한 형태를 상정하고 이것에 맞게 법을 재편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 장면에서 추상적인 법이론을 끄집어내서 “○○법에는 △△의 원칙이 있고”라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결정’에 의해 법규범이 규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슈미트 자신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예외에는 법률학적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것은 ‘사회학’에 속한다는 그런 주장은 사회학과 법률학 사이의 기계적 분리의 조잡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예외는 추정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 파악의 틀 바깥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결정이라는 순수 법률학적 형태 요소를 절대의 순수성에서 명시하는 것이다. 예외의 사례가 그 절대적인 모습으로 출현하는 것은 법규가 유효할(gelten) 수 있는 상황이 창출된 뒤이다. 그 어떤 일반적 규범(jede generelle Norm)도 생활관계의 정상적인 형성(eine normale Gestaltung)을 요구하는 것이며, 일반적 규범은 사실상 그것에 적용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규범적 규제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규범은 동질적 매체(homogenes Medium)를 필요로 한다. 이 사실상의 정상성은 다만 ‘외적 전제’로서, 법률학자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규범의 내재적 유효성(immanente Geltung)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Politische Theologie, 9. Aufl. S.19/田中浩・原田武雄 訳, 『政治神学』, 20頁).
* 원문대조를 하지 않았음에 유의해 주십시오.
이 글의 전반부는 ‘예외’가 ‘결정’과 결부되어 있으며, 법학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얘기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만, 후반부가 추상적이어서 알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법규범을 포함해 ‘규범Norm’는, 순수하게 이념적・허구적인 존재로,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관계의 ‘정상적normal’인 상태에 대응하는 형태로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이 정상=보통이라고 느끼고 생활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 규범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의 사회와 유리된 이념을 갖고 있어도 안 되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는 것에 잘 적합하는 규범일 필요가 있습니다. “타당하다”라는 법학·윤리학 용어는 독일어로 <gelten>이라고 합니다만, 이 말에는 “통용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실제로 통용되고 있는 것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하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입니다. 덧붙여서, ‘규범’과 ‘정상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푸코가 꽤 파고들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권자는 규범=정상성에 관해서 무엇을 하는가 하면, 해당되는 법적 공동체에 어울리는 법규범, 혹은 그 체계로서의 법질서는 무엇인가를 결정합니다. 그것에 의해 무엇이 정상인지가 분명해지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의 법규범이 기능하지 않는 예외상태에서 주권자는 그런 결정을 하는 셈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무엇이 규범인지를 ‘어쩐지’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면 범죄가 되거나 불법행위가 되는지는 법률 지식이 없어도 대강 짐작합니다. 안 그러면 정상적인 생활을 보내지 못하죠.
‘예외상태’란 그때까지 정상적이라고 간주된 것이 통용되지 않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것이 ‘규범’이라고 정하고, 모두 그것을 따르게 하고, ‘질서’를 재건하는 것이 주권자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해서 ‘질서’와 ‘결정(결단)’을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이 슈미트의 법철학의 핵입니다.
슈미트는 이렇게 통상적인 법규범을 넘어서는 주권적 권력과 질서를 상정함으로써 ‘법’의 본질을 밝히려고 한 것인데, 그것과 대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슈미트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순수법학의 켈젠입니다. 순수법학이란 법실증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법은 법 그 자체만 도출될 뿐이며, 도덕, 정치, 종교 등 다른 요소는 관계없다는 입장입니다. 법은 수학의 공리계처럼 최초의 근본적인 규범으로부터 모두 도출되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켈젠의 초기 저작에 『사회학적 국가 개념과 법학적 국가 개념』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회학적 ‘국가’ 개념과 법학적 ‘국가’ 개념의 구별을 논한 것입니다. 켈젠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국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기 자신은 그것과는 분리된, 순수 법학적 존재로서의 ‘국가’를 분석한다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반면 슈미트는 국가가 법규범의 체계로 환원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추상적인 법규범의 체계로서 국가를 기술하는 것에 집착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그런 켈젠의 이론에 덧붙여, 국가를 조합이나 교회 등과 나란히 단체의 일종으로 보는 단체국가론이나, 법이 국가주권자라고 하는 법주권설, 국가와 법질서를 동일시하는 설 등을, 모두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며 물리칩니다.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국가는 법과 불가분하게 결부된 통일체입니다만, 이 경우의 ‘법’은 추상적 관념의 체계가 아니라 주권자의 결정(결단)을 기점으로 하여 통일되고, 사람들의 생활형태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질서에 속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법률학적 결정에는 모두, 내용과 관련되지 않은 하나의 요소가 포함된다. 왜냐하면 법률학적 결론은 그 전제로부터 완전히 남김없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상황이 어디까지나 독립의 결정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결정의 인과적이고 심리학적 성립이 아니라 ― 추상적 결정 자체는 이 경우에도 중요하지만 ― 법적 가치의 결정인 것이다. … 이리하여 하나의 사례별로 변형(Umformung)이 생기는 것이다. 법이념 자체로서는 변형할 수 없는 것은, 누가 그것을 적용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법이념이 무엇 하나 말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모든 변형에는 권위의 개입이 있다.”(Ebd., S.36-37/前掲邦訳, 四二―四三頁).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법학자는 추상적인 형식의 ‘법’이라는 관념이 어딘가에 실재하는 것처럼 이미지하기 쉽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 그 추상적인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누군가가 그것을 현실에 적합하는 구체적인 형태로 ‘변형’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자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슈미트의 편에서 보면, 켈젠과 법주권론자들은 마치 ‘법’이 자동적으로 수립되어 적용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미치고 팔짝 뛰게 되는 것입니다. 결정(결단)하는 주체가 필요해집니다. 물론 누가 결정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를 가진 주체가 아니면 안 됩니다. 국가 전체에 관해서, 변형 때문에 개입하는 주체가 ‘주권자’입니다.
슈미트는 켈젠이 ‘법’을 추상적 개념의 체계로서 파악하려 하는 것이 자연과학에서 받은 이상한 영향 탓이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자연과학이라면, 물리나 화학의 법칙은 인간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작용합니다. 법실증주의에는, 이것과 마찬가지로 법학을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라고 슈미트는 생각합니다. 수학이나 물리와 똑같이 사회과학을 체계화・정밀화하려는 사고방식을 일반적으로 ‘실증주의’라고 합니다. 보통은 사회과학 일반의 실증주의와 법실증주의는 다른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슈미트의 말에 의하면, 법학의 법실증주의도 법의 작용을 물리나 수학의 법칙처럼 자동적으로 작용하는 양 파악하려 하며, 그것이 현실적・과학적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실증주의와 같습니다. 그는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는 홉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권위를 가진 인격적 주체의 질서 형성을 향한 ’결정‘이 법의 근원임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법의 원점이 되는 권위 있는 주체는 기독교의 유일신을 연상시키네요. 『정치신학』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슈미트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신학에 의거하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는 현대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개념이라고 단언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현실에는 의미 없는 추상적인 법이론으로 추락해버린다는 입장을 선명하게 합니다.
이런 전제에서, ‘예외상황’은 법학에 있어서 신학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신은 우주의 운동법칙을 정하지만, 보통은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면에 직접 개입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자연의 법칙으로부터의 일탈이 생깁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주권자’란 그런 의미에서 신 같은 존재입니다. 법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그 힘을 봉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성의 질서가 파탄나고, ‘예외상태’가 생기면 자신의 주권적 힘을 보여줍니다. 마치 법칙이 한 순간 정지하고, 신이 기적을 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유사 관계를 의식하고야 비로소 처음으로, 지난 수백년 동안의 국가이론에서의 여러 이념의 발전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법치국가 이념은 이신론, 즉 기적을 세계로부터 추방하고 기적 개념에 포함된 자연법칙의 중단을 부정하는 ― 이것은 현대의 법학이 현행의 법질서에 대한 주권의 직접 개입을 거부하는 것과 평행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 신학 및 형이상학에 대응하는 형태로 확립되었습니다. 계몽사상의 합리주의는 그 어떤 형태의 예외상태도 부인했습니다. 반면 드 메스트르, 보날처럼 반혁명의 보수적 저술가들은 유신론적 신학의 유추에 의해 군주의 인격적 주권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려 시도한 것입니다.
법실증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의 법학은 주권이 직접 행사되는 상태를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법을 따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면, 그런 것이 생길 리 없다는 전제에서 논리가 조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학자들은 신에 상응하는, 인격을 갖추고 결단하는 주권자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켈젠 얘기로 조금 돌아갑니다만, 슈미트의 편에서 보면 켈젠은 신학과 법학이라는 게 원래 방법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적 사고를 끊어버리려 합니다. 그것이 지나치게 이루어진 탓에, 예외의 결단이라는 중요한 것을 국가론에서 배제하고, 법이 결단에 의한 변형 없이 작용한다는 식으로 묘한 논의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슈미트는 법실증주의적인 법이해와 대결합니다.
그러한 법실증주의자들과의 대비에서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을 재평가하는데요, 『정치신학』에서는 드 메스트르, 보날에 덧붙여, 도노소 코르테스라는, 2월혁명 때의 스페인의 정치 사상가를 높이 평가합니다. 코르테스는 인간은 그 본성부터 원죄를 띠고 있으며, 본성이 악하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신을 대리하고, ‘독재’에 의해 통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독재’에는 민중을 납득시키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는 시민혁명의 시대 이후의 정치의 주인공이 된 부르주아지라는 것은 토론하는 계급이며, 오로지 토론만 하고 있어서 좀처럼 결단할 수 없다고 비난합니다. 인간은 모두 마찬가지이며[평등하며], 이성적이기 때문에, 논의를 계속하면 뭔가 타당한 결론으로 귀착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결단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죠.
이런 코르데스와 대비하여, 슈미트는 코르테스와 동시대인의 프루동이라는 프랑스의 아나키스트를 언급하고, 프루동도 높이 평가합니다. 왜 가톨릭 보수주의자인 슈미트가 아나키스트를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그것은 프루동처럼 급진적인 좌파가 자유민주주의자나 낭만주의자보다는 정치와 법이 신학적 구조를 갖고 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 신학적 구조를 최종적으로 해체하려고, 아마겟돈의 싸움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겟돈의 싸움을 벌이는, 뚜렷한 ‘적’이 있기에, 정치신학의 구도가 두드러집니다.
『정치신학』의 10년 후인 1932년에, 서두에서 얘기한 ‘친구/적’ 이론을 전개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출판됩니다.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는 표현을 하는 게 좀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이것이 ‘정치적’을 뜻하는 독일어의 형용사 <politisch>의 의미를 분석하는 저작이기 때문입니다. 법학적인 텍스트에서 어떤 장면에서 ‘정치적’이 사용되었고,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그 본질을 파고들어간 결과, 특수 ‘정치적’인 구별은 ‘친구’와 ‘적’의 구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경우의 ‘친구/적’이란 종교・윤리적 선악이나 미적인 미추와 상관없고, 경제적 이해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서로의 존재가 이질적이고 단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적’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슈미트는 ‘공적(公敵)’과 ‘사적(私敵)’의 차이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는 너의 적을 사랑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정치’철학에서 ‘적’과 ‘친구’의 대립을 절대시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슈미트에 따르면, 성경에는 적을 의미하는 두 가지의 말이 있고,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 전문적인 성서학의 입장에서는 슈미트의 이해가 지닌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것이 ‘공적 polemios’과 ‘사적 echthros’입니다. 라틴어로 하면 각각 <hostis>와 <inimicus>입니다.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적’ 얘기이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공적’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슈미트의 입장입니다. 개인적 호불호나 그 상대의 구체적인 행위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공동체=‘친구’와 존재론적으로 대립하는, ‘공적’이라는 집합체에 속하는지 여부가 문제인 셈이죠.
이 저작에서 슈미트는 ‘적’이 없는 세계, ‘인류’가 하나 된 세계에는 원리적으로 ‘정치’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한 동시대적인 비판을 전개합니다. ‘인류’에는 ‘적’이 없으니 전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겁니다. 그렇지만 베르사유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자신들이 일궈내고 있는 세계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자에 대해 인류의 이름으로 최종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다는 것은 ‘적’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에게 ‘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을까요?
슈미트의 말을 빌리면, ‘인류’라는 개념을 ‘정치’에 들여옴으로써 모순이 생기는 것이며, ‘정치’가 있는 한, ‘적’은 존재합니다. 중대한 사태를 앞에 둔 결속이야말로 ‘정치적’이라는 형용사가 뜻하는 바에 적합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인간의 결속이며, ‘정치적 단위’는 대체로 그것이 존재하는 한, 항상 ‘결정적 단위’입니다. 게다가 ‘예외상태’도 포함해 ‘결정적 사태’에 대한 결정권을 개념상 필연적으로 항상 쥐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주권’을 가진 단위입니다. 즉, 자신들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단위입니다. 여기서 『정치신학』에서의 ‘주권자의 결단’과 ‘친구/적’ 이론이 연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슈미트는 독일의 국가=단체론과 함께, 당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영국의 노동당 좌파 계열의 논객인 콜이나 러스키의 다원적 국가이론 등을 비판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단위로서의 형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심급으로서의 주권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국가론은 난센스입니다.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친구·적’의 구별이 없어지면 정치적 생활이 없어집니다. ‘정치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인민’에게 있어서, 이 숙명적인 구별을 서약적 선언, 즉 프랑스혁명 당시의 「인간 및 시민의 권리선언」이나 인민의 이름에 의한 헌법제정에 의해 면제되는 자유 따위 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라는 것이 정말 없는 상태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친구/적’의 구별도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정치적인 것’을 전제로 하면서, ‘인류’의 이름 아래서 적대성 없는 세계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기만이라는 것이 됩니다.
당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됐던 전쟁 거부 및 포기 조약인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은 있을 수 없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자에게, 국제연맹이 ‘인류’의 이름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슈미트의 말을 빌리면, 전쟁을 없애자, 인류는 하나다, 잘 지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에게 ‘적대’하는 자에 대해서 신경질적이고 불관용이 되며, 전쟁의 가능성을 전 세계 규모로 확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결론부에서도 슈미트는 『정치신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문제계로까지 되돌아갑니다. 원죄로부터 구원되는 자와 구원되지 못하는 자 사이에 선을 긋는 것, 무엇이 양자의 간극을 벌이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신학의 역할이었습니다. 인간은 그 본성이 ‘악’하기에, 그런 경계선이 없으면 자율적으로 갈 수 없어요. 그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물려받은 정치신학은 ‘친구/적’의 선을 긋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합니다.
근대의 ‘자유주의’라 불리는 사상은 중립성을 가장하면서 19세기 이후 급속히 세력을 떨치고, 모든 정치적 표상으로부터 표면상 적대성이라는 요소를 지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라 할지라도, 정치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슈미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 어떤 나라의 자유주의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자유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 자유-보수주의자, 자유-가톨릭주의자 등등으로, 각양각색의 비-자유주의적 요소・이념과 결합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자유주의’는 두 가지 이질적인 영역, 즉 윤리와 경제, 정신과 장사, 교양과 재산을 발판으로 삼고 있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흔들리고 있느냐 하면, 어떤 장면에서는 경제 활동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본질인 것처럼 주장했는가 하면, 다른 장면에서는 각자가 타자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정신적・문화적으로 자기 형성을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의 핵심인 것처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교양’이라는 것은 정신적 자기형성을 가리킵니다. ‘교양’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 독일어 <Bildung>의 본래 의미는 ‘형성’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모두 중시하는 것을 그다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슈미트의 말을 빌리면, ‘자유’라는 가치 실체를 확정할 수 없기에, 양극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그런 외관상의 허울뿐인 중립성을 타파하고, 아까 말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적 동질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동질성을 산출하는 데 있어서도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결단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법학자가 주목하는, 슈미트의 법학적 주요 저서인 『헌법론』에서도 동질성, 주권, 독재, 민주주의 등의 키워드를 연결하는 형태로 자유민주주의+법실증주의적인 그것과는 상이한 헌법관을 제시하는 것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헌법학 교과서로 읽으면 난해한 느낌이 들지만, 이런 특유한 슈미트적인 문제관심 아래서 적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나름의 일관성이 있는 기술이기에, 꽤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슈미트는 국제법과 본격적으로 씨름하게 됩니다. 거듭 말씀 드린 것처럼, 적대성을 포함하지 않는 ‘인류’라는 보편적 통일체에 있어서의 ‘정의’를 생각하면, 그것을 위반하는 자를 제재한다는 발상이 나옵니다. 십자군처럼 성전의 양상을 띠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거짓된 보편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국가 간 질서의 구상을 암시하는 것으로는 전후 간행된 『대지의 노모스』라는 대작이 있습니다. 이 저작에서는 친구와 적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한 뒤, 이것에 틀을 부여하고 대립을 무한하게 상승․증폭시키지 않는 구조로서의 ‘유럽 공법’이 대항해시대부터 30년전쟁 시기까지 서방국가들 사이에서 성립됐다는 가정 아래에서, 전쟁억제의 메커니즘이 논해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정당한[올바른] 적’으로 인정하는, 즉 주권국가임을 인정한 뒤, 올바른 규칙을 따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기사도의 규칙에 기초한 결투와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유럽의 국가들이 지역적 질서를 전제로 하고 서로 받아치고 있기에, 그런 틀의 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당연히 비서구 지역에는 같은 규칙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구조에 의해 유럽에서의 전쟁은 억제되고 있었지만, 제1차 대전 전후부터, 자유주의와 결탁한 보편주의가 대두되고, 세계를 일원적으로 관리하려 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전쟁이 증폭되어 가고, 섬멸전의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영역[영토]적으로 한정된 구체적인 질서가 국가 간에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후 그의 기본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시간이 다 되어서 일단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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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케시타 겐 : 대단히 감사합니다. 꽤 질서 정연하게 1시간 반 정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조금 쉴까요? 5분 정도 휴식한 다음 질의응답을 하겠습니다.
(휴식)
○ 다케시타 겐 : 그러면 후반부는 질의를 하시는 것으로 재개하겠습니다. 우선 토론자로서 마츠오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 마츠오 미츠마사
큐슈대학(九州大学)의 마츠오입니다. 전공은 형법입니다. 오늘은 매우 난해한 논의를 알기 쉽게 해설해 주셔서 배운 바가 매우 많았습니다. 연구소의 이 프로젝트도 예외상태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20세기의 초반에 칼 슈미트가 예외상태라는 말을 꺼내고, 이것이 아주 유명해졌다는 사정도 있습니다. 현대 슈미트 르네상스라고도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어떤 맥락에서인가 하면, 역시 테러의 문제이거나, 혹은 독일에서도 그랬는데, 예를 들어 수사기관이 범인을 잡아 고문하는 장면이나, 이런 매우, 현재에 있어서의 위기적 상태의 경우에 예외상태라는 말도 자주 쓰이고, 그런 관계로 슈미트도 자주 인용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슈미트에게 찬성하는 의견보다도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슈미트의 시대의 예외상태라는 것은 선생님의 발표문에도 있듯이, 옛날의 바이마르 헌법의 시대의 그런 위기적 상황이 당연히 염두에 있을 텐데요, 현대에서는 예를 들어 예외상태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강의를 들으신 분들도 모두 구체적인 이미지로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상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 예외상태론이란 우선 무엇이 예외상태인지를 모르면, 논자마다 당연히 파악 방식, 이론적 구성도 달라지며, 어떤 사람은 다른 현상을, 다른 사람은 다른 현상을 염두에 두게 되기에, 어떤 상태가 특히 현대에 있어서 예외상태로서 설정할 수 있는가 혹은 그렇게 할 수 없는가, 그것에 관해 뭔가 생각하시는 게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매우 법률의 입장에서의 의문인데, 칼 슈미트의 이 정치신학 속의 유명한 문구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 것입니다만, 예외상태라는 것은 법이 없는 상태이지만, 그러나 법률학적으로는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재의 법률의,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렇습니다만, 법률이 없는 예외상태를 법의 편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는 매우 어려운 난문이랄까, 오히려 비판적인 의견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주권의 문제에 관해서도, 예외상태라고는 말하고 있지만, 법률이 없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불문의 법률이 있다거나, 불문의 헌법이 있다거나, 혹은 주권에 관해서도, 이것은 날것의 사실상의 권력이 아니라, 예를 들어 그것은 어떤 규범에 의해 제도화되는 주권이라거나 하는 형태로, 어떤 규범과 연결되고, 예외상태도 규범 속에 집어넣는다고 할까, 그런 논의 등도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없는 상태를 법의 편에서 보고, 어떤 법률이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라고. 슈미트는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에 관해 뭔가 생각하신 바가 있으면 알려주십사 하는 것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 나카마사 마사키
‘예외상태’라는 말은 현대에서 인플레이션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가 『정치신학』 등에서 말하는 뜻을 기준으로 삼으면, 상당히 부풀려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테러리스트 등에 대하여 형법의 예외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은 슈미트의 의미에서의 ‘예외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법 자체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상태 아래에서, 테러리스트에게 예외를 적용했다고 해서 그 순간 형법이 붕괴했다고 진심으로 믿고 행동 방식을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슈미트가 상정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주권이 다시 한 번은 그 배후에 있는 헌법제정권력이 직접적으로 발동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정상’인지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단’에 의해 질서의 형태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대의 서방 선진국들에서 그것에 가까운 상황을 체험한 것은 9・11 직후의 미국 정도가 아닐까요?
다만 9・11조차도, 정말로 슈미트가 상정한 ‘예외상태’의 전형적인 예인지 의문입니다. 9・11 직후에 부시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언’을 내리고, 모든 국경을 폐쇄하고 항공기의 이착륙을 일시적으로 금지시키고, 주의 병력도 추가 테러에 대비해 동원했으니 ‘독재’적인 권력이 발휘됐다고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에 의해 슈미트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주권’, 인격적 주권의 소재가 밝혀졌는가라고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악명 높은 「애국자법」은 의회에 의해 제정됐습니다. 그 후의 이라크전쟁[침공]을 향한 미국 내의 움직임은 부시 대통령 주도로 진행된 것처럼 보입니다만, 미국 헌법과 대통령의 관계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의미에서 강한 ‘정치’적인 이니셔티브를 취한다는 것만으로는 슈미트의 ‘예외상태’와는 관계가 없잖아요. 주권자로서의 결단이 법규범의 기본적인 위상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포인트입니다.
헌법=국가체제가 안정되지 않은 국가들이라고, 주권적 권력의 행사는 꽤 알기 쉬운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경우, ‘통상적인 상태’=‘예외상태’라는 기묘한 것이 되기에, 슈미트는 굳이 ‘예외상태’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신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서구의 주권국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비서구 국가들의 것은 시야에 넣지 않습니다.
슈미트의 ‘예외상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단체의 존망과 관련된 상황이며, 단체의 존망과 관련되지 않은 경우는 ‘예외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죠.
그리고 ‘예외상태’에서도 어떤 형태로 법규범이 작용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하셨지만, 이것은 아마 슈미트도 인정하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슈미트가 문제 삼는 것은 주권적 권력의 소재가 명확한지 여부인데, 그것에 종속되어야 할 규범들이 예외상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모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사람들의 역사적 생활양식과 법질서가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에, 예외상태에서도 규범이 제로(zero)가 된다고 보지 않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주권적 권력의 소재가 확실히 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산산조각 나서, 통일된 ‘법질서’를 형성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요. 여러 규범(norm)이 난립하고, 무엇이 정상(norm)인지 모를 때에는, 규범의 서열을 ‘정하는’ 자가 있지 않는 한, 결말이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슈미트가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정하는’ 자는 통상적인(normal) 의미에서의 법규범을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초월한 곳에 없으면 무엇이 정상=규범적인 것으로 돼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없습니다. 법에 의해 특수한 권능을 부여받고 있는 동시에 법을 넘어선 곳에 있는 주권자가 ‘법질서’의 존재방식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스스로의 타당성의 원천을 둘러싼 역설적 상황을 법학은 인식해야 합니다. 슈미트는 그렇게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주권에 대한 집착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인 버크와는 다른 것 같아요. 버크는 관습에 의해 정의나 법제도가 형성된다는 것,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안정된다는 것을 중시하지만, ‘주권’의 소재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습니다. 영국처럼 왕조가 바뀌더라도 헌법=국가체제가 안정된 곳에서는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의 소재에 대해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영국에서는 오히려 법실증주의의 원조로 여겨지는 홉스나 공리주의의 원조인 벤담처럼 탈전통적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이론가가 주권에 대해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이 불안정하고 언제 해체될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슈미트가 ‘주권’을 고집한 배경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통상적인 법률학, 즉 정상적인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법률학은 영국처럼 주권의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하지 않아도, 법규범이 통용되고, 판례를 축적할 수 있는 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예외상태와 주권에 초점을 맞추는 슈미트의 이론과는 잘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다케시타 겐 : 그러면 플로어에 계신 분들의 질문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 질문자 A :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공산주의, 코뮤니즘의 민주집중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말하는 것은, 칼 슈미트가 말하는 예외상태에서의 민주주의에 상당하는 것일까요? 칼 슈미트는 공산주의, 코뮤니즘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긍정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 나카마사 마사키 : ‘긍정’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 의한 것이냐인데, 슈미트는 적어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형태로 ‘독재’의 필요성을 논하는 맑스주의자가 자유민주주의자보다 ‘정치’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다만 슈미트 자신의 정치적 입장은 가톨릭 보수주의이기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해서는 적대했습니다. 통찰은 높이 평가해도 입장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에 있다고 하는 슈미트의 사고방식도, 민주집중제에 통하는 듯 생각합니다만, 슈미트는 신학적인 혹은 민족적 동일시 밖에는 안정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노동자로서의 동일성에 기초한 민주집중제에 의한 안정은 인정하지 않죠. 그보다는 모든 인민이 노동자로서 동일/동질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질문자 A : 본질로서는 인정하나 실천형태로서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 나카마사 마사키 : 실천으로서 성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맑스주의는 무신론이라, 신에 해당되는 최종심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말을 사용해도, ‘프롤레타리아트’에는 인격으로서의 실체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결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애매한 개념으로부터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가 특정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애매함을 싫어한다다고 생각해요.
○ 질문자 A : 역사적 사실, historical fact로 해서는 1991년 12월 26일에 소련은 붕괴했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 하의 바이마르 체제도 히틀러의 의회 봉쇄에 의해 거꾸러졌습니다. 그것도 historical fact,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 모두 역사적 사실로서 붕괴한 셈입니다만, 이 역사적 사실에 관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나카마사 마사키 : 여러 가지 평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만, 슈미트의 바이마르 공화제 평가에 입각해 말하면, 주권독재를 위임독재로 이행시키고, 법질서를 안정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도한 정치가들이 정치의 본질인 ‘친구/적’ 관계나, 민주주의가 동일성에 기초한 통치임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에 붕괴의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히틀러 정권을 한 시기에는 높이 평가했습니다만, 그것은 집권 당시의 히틀러가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점차 슈미트 자신의 질서관과 나치의 질서관의 괴리가 차츰 가시화・표면화되고, 친위대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도 있어서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소련에 관해 말하면, 슈미트는 소련의 해체를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막연한 것을 주체로 삼는 통치의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하나의 보편주의적 이상 아래서 세계 내전을 일으키려고 하는 맑스주의의 보편주의적 발상에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슈미트 자신은, 역시 가톨릭적인 위계질서 같은 것이 아니면 진정한 안정은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질문자 A : 정치적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고 하기보다는, 소련의 붕괴는 소련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장경제에 비해, 공산주의 체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제도가 부패했고, 시장경제,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스스로 붕괴했다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 나카마사 마사키 : 하나의 국가가 거쳐 온 역사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기에, 유일한 올바른 견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다케시타 겐 : 지금 말씀하신 분의 의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 문제도 있고 해서, 다른 분들의 질문도 듣고 싶습니다.
○ 질문자 B : 세츠난대학(摂南大学)에서 법철학을 담당하고 있는 마츠시마 유이치(松島裕一)라고 합니다.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흔해빠진 질문을, 법철학의 관계 때문에 질문하고 싶습니다만, 슈미트의 예외상태에서의 주권자의 정의라는 것은 예외상태에 있어서 결단을 내리는 자가 주권자이라고 하는 얘기이죠. 그런데 일반 중학생, 일본의 중학생에게 물어보면, 주권자는 국민주권이라는 대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헌법에서의 ‘주권’의 의미와 슈미트에게서의 주권자의 의미의 차이에 관해 해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우선 첫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카마사 선생님의 말씀은 이른바 초기라고 할까, 20년대 무렵까지의 슈미트의 이론에 중점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20년대 정도까지는 법을 넘어서는 결단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결단주의’에 슈미트는 속해 있다고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만, 30년대 이후, 결단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구체적 질서가 법에는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선생도 레주메에 쓰셨지만, 슈미트는 30년대 이후, 구체적 질서로 기울어져 간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슈미트 이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과 예외상태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느냐가 또 다른 질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슈미트의 법실증주의 비판의 요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나카마사 마사키 : ‘주권자 Souverän’란 원래 ‘군주’나 ‘통치자’의 의미에서 ‘주권 Souveränität’은 그것을 추상화한 말입니다만, 슈미트의 ‘주권자’는 그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격적인 궁극적 결단 주체를 ‘주권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법적 질서의 존재방식에 관해서, 궁극적으로 ‘결단’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결단하는 능력이 없다고 한 것은 ‘주권자’라고는 말할 수 없죠.
‘국민주권’이라는 것은 통치의 기본방침을 최종적으로 정하는 권한을 갖는 것은 ‘우리’=‘국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입법·행정·사법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지만, 직접적으로 법률을 제정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예외상태’에서 국가 질서의 재편에 관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예외상태’에서 일일이 선거를 하고 방침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통상=정상상태’라고 해도 재판에 있어서 어떤 법규범을, 어떤 해석 아래에 적용하는지,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없습니다. 결정하는 것은 재판관입니다. 당연하다고 말하면 당연하죠. ‘국민’이라는 다수의 인간의 집합체가 각각의 법규범의 효력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고, 신속하게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통해 정부에 자신의 의사를 위임한다고 하는 의제(fiction)를 사용하는 셈이지만, 슈미트가 집착하는 결정하는 주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외상태’에 국민주권이 실체를 결여한 허구임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국민주권’이라는 픽션에 어느 정도의 실체를 주는 것이 ‘주권독재’라는 제도입니다. ‘독재’는 본래 혼자 또는 극소수의 인간에게 권한이 집중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요, ‘주권독재’에 있어서는 독재권을 가진 인간의 결단이 주권자인 국민의 결단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동일성으로 보는, 슈미트식 ‘민주주의’가 이 논리를 보완합니다. 피치자와 통치자가 동일하다면, 독재관의 의사=국민 의사로 간주해도 좋은 것입니다.
아마 슈미트에게 형식적 의미에서의 주권자가 누구이냐는 그만큼 중요한 게 아니라,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누구이냐가 훨씬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외상태에서의 ‘독재’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면, 그 국민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권자가 아니라는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 질서 사고에 대해서입니다만, 저는 이런 사고방식이 30년대 이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원래 슈미트의 법 사고의 베이스에 있었던 것이지만, 전면에 나오지 않았고, 뚜렷한 형태로 표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슈미트는 법질서가 신학적 세계관과 그 아래에서의 사람들의 생활관계와 대응하고 있다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구체적 질서입니다. 주권자는 그러한 구체적 질서를 가정하면서 법규범을 서열화하고 각각의 규범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도록 ‘결단’하는 것입니다. 제로(0)에서 나오는 결단이 전혀 아닙니다.
1920년대의 슈미트에게서는, 독일에 고유한 구체적 질서와, 실제의 바이마르 공화제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정시키기 위해서, 누가 예외 상태에서 독재자로 결단해야 할 위치에 있는지, 바이마르 헌법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자유민주주의적 중립성을 가장하지 않고 확실히 할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바이마르 헌법=국가체제에 ‘결단’이 결여됐기 때문에, 슈미트가 결단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나치 정권의 성립 이후가 되면, ‘예외상태’를 강조하는 것이 나치 입맛에 맞지 않게 되는 셈입니다[뭔가 개운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지도하는 나치가 독일 민족의 삶의 방식에 적합한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전제를 입장상 받아들였기에, 그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을 시사하는 ‘예외상태’에 관해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결단’은 이미 히틀러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나치의 민족 운동이 독일에 고유한 ‘구체적 질서’에 맞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갑자기 말을 꺼내면,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느낌이 되므로, 34년의 논문 「법학적 사유의 세 유형」에서는 법적 사고는 규범주의, 결단주의, 구체적 질서 사고의 세 가지 유형이 있음을 역사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질서에 대한 사고는 독일의 법학에서도 점차 영향력을 갖게 되지만, 아직 불충분하다고 지적한 뒤, 국가・운동・민족의 삼위일체의 관계 속에서 여러 과제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국가에서 구체적 질서에 관한 문제를 적절히 다루는, 새로운 법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법학자로서의 슈미트가 프랑스의 공법학자 오리우의 제도적 보장론을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법이론에 집어넣었다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법사상사적, 메타이론적으로 의의를 부여한 후에, 구체적 질서 사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유익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우의 논의와 슈미트가 이미지하는 ‘구체적 질서’가 정말 관계가 있는지 의문입니다만, 슈미트에게는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즉, 구체적 질서 사고의 부상에는 ① 정치신학에 내재하는 질서론의 가시화[현재화], ② 나치에 대한 배려, ③ 제도적 보장론의 법사상사·메타 법이론적 위치부여, 이 세 가지의 배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학자들은 제도적 보장론 혹은 제도체 보장론을 정식화한 이론가로서의 슈미트에 관심이 있어서 ③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법학적 사유의 세 유형」을 읽는 한, 나치의 지도자 원리와 구체적 질서를 무리하게 결부시킨 느낌이 없지 않지만, 완전히 자의적인 변절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지의 노모스』로 대표되는 후기 슈미트의, 국가 간 질서론은 구체적 질서론의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다케시타 겐 : 예정된 시간을 조금 넘겼습니다만, 아직 질문하실 게 있는 분은 하십시오.
○ 질문자 C : 예외상태라는 것을 들었을 때, 제가 이미지했던 것은 10년 정도 전에 고이즈미의 구조개혁 같은 것입니다. 우정민영화가 옳으냐 그르냐 같은 느낌으로, 주권자가 옳은가 그른가를 선택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저는 이미지했습니다. 과거로부터의 가치관으로 말하면, 우정사업은 국유화한 채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식의 흐름이 있었던 가운데,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민영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제창하고, 그 결과 국민이 선거에서 민영화한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것이 예외상태에 있어서, 국민, 주권자가 선거에 의해 선택했다는 것이 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나카마사 마사키 : 앞에서도 마츠오 선생의 질문에 관해 말씀드렸듯이, 통상적인 법규범이 통용되고 있는 상태는 슈미트가 말하는 ‘예외상태’가 아닙니다. 우정선거(郵政選挙)는 법을 따라 행해지고, 우정민영화도 통상적인 입법절차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따라서 결단한 것이 고이즈미인지 국민인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예외상태에 특유한 ‘결단’이 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고이즈미 씨의 수법을 통해 정치의 본질을 반드시 합의 형성이 아니라, 오히려 ‘결단’일지도 모른다는 것, 특히 ‘친구/적’을 나누는 결단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식되게 됐다는 의미에서, 슈미트적인 상황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슈미트가 말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친구/적’ 관계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유사-‘친구/적’의 관계가 생긴 것에 불과합니다. 우정민영화 문제에 관해서는, 야당의 견해가 일괴암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민당 안에도 여러 가지 입장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고이즈미 씨는 ‘저항세력’이라는 표현을 계속 함으로써 모든 정치가를 의사적(疑似的)인 ‘친구/적’으로 나눠버린 것입니다.
다소 정치평론 같은 것을 말씀드리자만, 자민당이라는 것은 반사회주의라는 의미에서의 ‘보수’세력을 결집해서 만들어진 정당으로, 일본을 구미(欧米)형의 자유주의 사회에 가깝게 하고 싶은 친미파, 일본다움을 회복하고 싶은 ‘진정한 보수파’, 공동체를 기반으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회당 우파 같은 사람들 등, 여러 가지 입장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유민주당이라는 당명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집단적 자기통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이에서 타협을 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슈미트가 강하게 비판했어요. 겉이나 뒤의 여러 가지 협상으로, 막연한 타협을 만드는 것을 잘 한다고 내세우는 정당입니다. 이것도 슈미트가 현대 의회주의의 문제로서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극단적으로 훼손하지 않은 듯한 타협을 형성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자민당식의 방식이 수년 동안 많은 일본인에게 ‘정치’의 일반적 이미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급진적 좌파 사람들은 자본주의 대 반자본주의의 적대관계를 항상 의식했는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였겠죠.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일본적인 정당의 우두머리가 ‘친구/적’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음으로써 정치가 움직이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하려 한 것은 그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숙의냐 투쟁이냐, 정치가에게서 요구되는 것은 합의 형성을 향해 의사소통하고 조절하는 능력인가, 아니면 결단하고, 지도하는 능력인가 같은, 슈미트뿐 아니라 현대의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문제가 우정선거를 계기로 제기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다케시타 겐 : 그러면 한 분 정도, 만약 계시다면 질문을 해주십시오.
○ 질문자 D :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법의 외부, 적이라는 것의 내용에 관해 질문하고 싶지만, 인류 자체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류 속에서, 외부/내부의 경계선이 정해진다는 얘기였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외부는 ‘자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까요? 인간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나무의 권리를 생각한다는 사상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외부’에 있었던 것을 안에 도입하려 하는 것입니다. 다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노력을 해도, ‘자연’은 외부이길 계속합니다.
‘법의 외부’로서, 동물이라든가 자연을 상정한다면, 인류 자체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명제는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신지요?
○ 나카마사 마사키 : ‘인류’ 자체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실제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적 주체로서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적들뿐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인류’ 전체가 모여 있고 외부에 속하는 인간은 없는 상태가 실현됐다고 하더라도, 동물이 ‘적’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 질문의 취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슈미트의 의미에서는 ‘적’이 아닙니다. 동물이 모여 있고, 주권을 갖춘 단위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모여 있고 ‘인류’의 주권을 침해하는 사태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SF에 그런 설정도 있습니다만, 현재의 우리의 과학 수준에서는 그런 설정이 현실감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아무리 개체로서 위험하더라도, 법질서를 에워싼 환경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슈미트 자신의 사유의 틀을 아감벤적인 방향으로 확장해 “인간=이성적인 것 / 비인간=비이성적인 것”의 경계선을 긋는 것에 내재하는 ‘정치성’을 문제로 삼는 것이라면, 동물을 ‘법외적인’ 것으로서 배제하려는 힘이 거기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을 이해하지 않는 동물을 외부로 밀어냄으로써, 우리는 자신들을 법적 존재로서 위치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은 ‘적’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동물은 우리가 경계선을 긋고, 그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얘기니까요.
다만 동물의 권리라든가, 환경의 권리가 문제가 될 때, 그것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기존의 정치나 법을 변혁하고, 새로운 법권리의 체계를 수립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 기존의 ‘인간’관에 기초하여 법권리의 체계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대성이 생깁니다. 슈미트라면 거기에 주목할 것입니다. 그런 대립이 커졌을 때, ‘정치적인 것’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 질문자 D : 감사합니다.
○ 다케시타 겐 : 그러면 예정 시간을 넘겼지만, 이것으로 이번 연구회를 마치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나카마사 선생께 박수를 쳐드리면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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