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시작’ 개념 : 『혁명론』을 중심으로 (1)
ハンナ・アーレントにおける「はじまり」の概念
― 著書『革命について』を中心に―
마츠모토 토모하루(松本 智治, 日本大学大学院総合社会情報研究科)
http://atlantic2.gssc.nihon-u.ac.jp/kiyou/pdf13/13-103-108-Matsumoto.pdf
Ⅰ. 서론
1. 문제의 소재(所在)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주1] ―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주2]등의 저서로 알려지고, 그의 사후 “금세기의 여성(A WOMAN OF THIS CENTURY)”[주3]이라고 호칭되는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로서 평가받는 철학자다. 그녀의 사상에서는 고대 그리스적 공공공간과 고대 로마적 공화정체의 복권을 제창하는 전통 이념 옹호의 보수주의자적 측면과 정치참여의 자유와 다원성·복수성plurality의 확보를 호소하는 급진적인 변혁지향의 자세, 이 둘 다를 찾아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 없으며, 벡터가 다른 두 지향성이 그녀의 내면에서는 충분하게 혼융되어 있으며,[주4]고전고대의 교양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면서 전개하는 그녀의 입론은 기존의 정치 개념을 ‘탈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징적 사상은 1990년대 이후, 냉전 구조의 종결과 전지구화의 진전 속에서 한층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저작의 번역, 편지, 유고집, 연구서, 평전 등 많은 서적이 최근 미국이나 일본에서 간행되고 있다.[주5]
[주1]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일본어 표기는 역자·연구자마다 다르다. 志水速雄 등은 ‘ハンナ・アレント’라고 표기하고, 大久保和郎 등은 『전체주의의 기원 1·2·3 <신장판>』(みすず書房、1981년)에서 ‘ハナ・アーレント’라고 표기한다. 이 글에서는 矢野久美子 등이 사용하는 표기인 ‘ハンナ・アーレント’로 통일했는데, 인용부분이나 번역서의 인용에 있어서는 해당역자의 표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OR도 『혁명론』이라고 호칭되는 경우도 있지만(森分大輔 등), 필자는 志水速雄의 번역서 이름인 『혁명에 관하여(革命について)』라는 표기를 통일적으로 사용했다.
[주2] 연구자에 따르면, 독일어 번역본의 책 이름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를 취해 ‘활동적 삶’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出雲春明, 「시작의 조건. H. 아렌트, 『활동적 삶』 제27절을 둘러싸고(始まりの条件 H. アレント『活動的生』第二七節をめぐって)」(『윤리학』, 筑波大学倫理学原論研究会, 제24호, 2008년) ; 森一郎, 「시작의 경험. 『활동적 삶』 제24절에 대한 한 주해(始まりの経験 『活動的生』 第二四節への一注解」(『현상학 연보』, 日本現象学会, 제22호, 2006년); 상동, 『죽음과 탄생(死と誕生)』, 東京大学出版会, 2008년 등.
[주3] 1982년 4월 20일자 The New York Times, Peter L. Berger에 의한 Elisabeth Young-Bruehl, HANNAH ARENDT For Love of the World,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1982. (일본어 번역본은 荒川幾男・原一子・本間直子・宮内寿子 옮김, 『ハンナ・アーレント伝』, 晶文社、1999年)에 대한 서평 제목으로부터. 필자는 이 카피를 川崎修의 소개와 해설(川崎修, 『ハンナ・アレントの政治理論 アレント論集Ⅰ』, 岩波書店, 2010年, 237-243쪽)에서 알았다.
[주4] 오타 테츠오(太田哲男)는 아렌트의 정치사상이 자리한 위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아렌트의) 정치적 입장은 보수적인 외관을 가지면서도 급진주의적(래디컬)이었다”(太田哲男『ハンナ=アーレント』清水書院, 2001年, 227쪽).
또한 마찬가지의 취지에 관해서, 『혁명에 관하여(革命について)』의 번역자인 시미즈 하야오(志水速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수인가 반동인가 진보인가 … 이런 개념(이것 자체는 근대의 산물이지만) 자체가 애매해졌으며, 때로는 완전히 거꾸로 사용되기조차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었다고 본다면, 맑스주의자가 스스로를 그렇게 칭한다고 해서 그 자신이 ‘진보적’으로 될 것이라는 보증은 그 어디에도 없다. … 오늘날,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급진적으로 되는 것이다. 더 말한다면, 급진주의에 의해 뒷받침된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러한 리얼리스트의 한 명일 것이다.”(志水速雄, 「역자 후기」, 合同出版版, 『革命について』, 425-426쪽).
[주5] 야먀모토 케이(山本圭)는 최근 아렌트 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히 동서냉전이 종결된 90년대에는 ‘아렌트 르네상스’라고 불릴 현상이 일어나, 서구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굉장히 많은 수의 아렌트 연구가 세상에 나왔다.” “‘아렌트 철도’, ‘아렌트 티켓’, 그리고 ‘아렌트 거리’ 등을 만들어내는 데 이르렀으며, 월터 라클은 이 현상을 ‘아렌트 컬트(Arendt Cult)’이라고 명명할 정도다”(이상은 山本圭「古典評釈・著作批評 森分大輔『ハンナ・アレント研究─〈始まり〉と社会契約』」〈『Autres』《名古屋大学》, 第1号, 2008 年〉, 101쪽).
* http://webcatplus.nii.ac.jp/webcatplus/details/book/ncid/BA84456145.html
이 글은 아렌트의 주저 중 하나인 『혁명론』(On Revolution, 1963)을 다룬다. 나치즘의 구조를 명확히 한 『인간의 조건』이 자주 ‘나치의 전체주의와 대결했다’거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정체를 이상으로 삼았다’ 등의 일정한 수식어와 함께 그녀의 대표작으로서 말해지는 반면에, 『혁명론』 자체는 기존에 비교적 언급되는 경우가 적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대표적 아렌트 연구자인 마가렛 캐노번(Margaret Canovan)은 『아렌트 정치사상의 재해석』(Hannah Arendt: A reinterpretation of her political thought, 1992)에서 『혁명론』이 그만큼 언급되지 않았던 이유로 이 책의 내성적·암시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아렌트의 저작 중에서는 가장 이해되는 게 적은, 또한 가장 평가받는 것이 적은 이 책의 지적 무게/중량감은 확실히 다른 두 저작과 동등하게 취급해야 마땅할 가치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그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주6]
[주6] Margaret Canovan, Hannah Arendt: A reinterpretation of her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1992, rep. 1995. p.155[일본어판 : 寺島俊穂·伊藤洋典 옮김, 『アレント政治思想の再解釈』, 未來社, 2004년, 203쪽]. 이어서 캐노번은 “그렇지만 『혁명론』이 지금까지 무시되고 거의 이해되지 못했던 하나의 이유는 아렌트의 표준적인 저작에 비해서도, 그 저작이 극히 암시적이고 내성적(内省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른 대목(Canovan, Hannah Arendt, p.249. 일본어판 319쪽)에서는 “즉, 『혁명론』이 그녀의 가장 공화주의적인 저작her most republican book이다”, “(『혁명론』은) 또한 (그녀의 예정되었던 ‘정치입문’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조건』에서의 정치의 인간적 문맥에 관한 고찰과 달리, 그녀의 정치 그 자체에 관한 사고방식의 포괄적인 서술에도 가장 가까운 것이리라”고 말한다. 나아가 “『혁명론』에 특징적인 테마는 돌이켜보면, 아렌트의 정치적 저작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Canovan, Hannah Arendt, p.249. 일본어판 320쪽)고, 아렌트 정치사상에서 『혁명론』을 특히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지적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이 『혁명론』은 흔히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말해졌다. ― 『혁명론』에서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및 그것에 이어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미국혁명을 높이 평가했다. 다수성·복수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조건』에서 말해지는 ‘활동/행위(action)’의 공간으로서의 공적 영역의 재구축을 추구하며, 참여형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말했다. “자유의 창설(Constitutio Libertatis)로서의 혁명을 말하고, 미국에서의 수평적 권력으로서의 연방제의 의의 등, ‘권력’, ‘권위’의 기초부여/정초에 관한 정치사상의 논의를 전개했다. 요컨대 고전고대의 그리스 폴리스정(政), 로마의 공화정의 존재방식을 이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주7] 이런 이미지는 그대로 프랑스 혁명보다도 미국혁명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이고 전통 중시의 사상가라는 아렌트의 이미지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이상으로 한 복고주의적·이상주의적이고 직접민주정이나 참여형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사상가로서의 아렌트 상을 형성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났던 동구의 시민혁명과 아렌트적 혁명 패러다임 사이의 관계도 여기저기서 논의되었다.[주8]
[주7]『革命について』, ちくま学芸文庫版에 수록된 일본어 역자인 시미즈 하야오(志水速雄)의 「역자 후기」(459-465쪽) ; 카와사키 오사무(川崎修)의 「해설」(467-478쪽) ; 카와하라 아키라(川原彰), 『현대시민사회론의 신지평 ‘아렌트적 모멘트’의 재발견(現代市民社会論の新地平 <アレント的モメント>の再発見)』, 有信堂高文社, 2006年, 95-123쪽 ; 太田, 『한나 아렌트(ハンナ=アーレント)』, 194-202쪽 ; 카와사키 오사무(川崎修), 『아렌트 : 공공성의 복권(アレント 公共性の復権)』, 講談社, 2005년 ; 치바 신(千葉眞),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 岩波書店, 1996년, 123쪽 등을 참조할 것. 또한 치바(千葉),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 125쪽에서는 “혁명론은 형식적으로는 이 자유의 틀 안으로 귀결된다”고까지 말해지고 있다. 이처럼 『혁명론』은 역사상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소재題材에 있어서 현대의 정치적인 스탠스를 나타낸 정치사상적인 책으로 인식되어 왔다.
[주8] 예를 들어 치바(千葉),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 제4장 「아렌트와 현대(アーレントと現代)」(특히 147-158쪽)이나 카와하라(川原), 『현대시민사회론의 신지평(現代市民社会論の新地平)』(특히 116-121쪽, 243-255쪽) 등.
그렇지만 『혁명론』 서장의 마지막 단락에 “혁명의 현상에 시작beginning의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명백하다”[주9]라고 있듯이, 또한 제1장의 서두에서 “혁명은 직접적이고 필연적으로 우리를 시작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유일한 정치적 사건”[주10]이라고 말해지고 있듯이, 『혁명론』에서는 일관되게 이 “시작의 문제”를 분명히 하고, 또한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테마가 되었다. “시작”이라고 하는 이 특징적인 개념을 분명히 하지 않고 『혁명론』을 단순한 정치사상사로 쉽게 정리해 버리게 되면 아렌트의 진의, 그리고 사상의 전체 상을 파악할 수 없다.
[주9] OR, p.10. 일본어판 24쪽. 또한 일본어 번역본에서는 ‘시작’의 독해 오류(“~는, 시작~”과 같은 소위 ‘부주의한 독해’가 되는 것)를 막기 위해 ‘시작’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원문에는 beginning에 대해 특별한 강조표시는 없다. 그 때문에 일본어 번역판을 인용할 때 방점은 생략했다.
[주10] OR, p.11. 일본어판 27쪽.
그리고 또한 이 ‘시작’의 논점은 아렌트의 주저인 『인간의 조건』에서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세 범주인 ‘노동, 작업, 활동/행위labor, work, action’ 중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행위’를 의미짓는 아주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주11] 나아가 『혁명론』의 말미에서는 혁명의 ‘잃어버린 보물’로서의 공적 자유(공적 행복)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작’을 상기시킬 수 있는 ‘기억memory’과 ‘회상recollection’이라는 취지가 서술되어 있다.[주12] 이 문제의식은 그대로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확대판은 1968)의 서두인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의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주13]
[주11] 예를 들어 『인간의 조건』에는 “각자가 태어남으로써 갖게 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세계의 무대 속에 들여오는 활동 없이는, ‘하늘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HC, p.204. 일본어판 328쪽). 그밖에 「제5장. 활동」에서는 곳곳에서 ‘시작’과 ‘출생’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주12] OR, p.272. 일본어판 441-442쪽.
[주13]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서문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裂け目」에서는 현대의 위기란 ‘전통’이라는 과거로부터의 시간적인 연속성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기억’과 ‘회상’이 상이한 말이지만, 이 위기를 구해내는 것이 ‘상기remembrance, remember’하는 정신이라는 것이 말해진다. 나아가 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의 첫 구절은 『혁명론』 6장 끝부분의 몹인 프랑스의 시인 르네 샤르(René Char)의 말 “우리의 유산은 유언 하나 없이 남겨졌다(Notre héritage n’est précédé d’aucun testament)”의 인용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혁명론』에서의 아렌트의 문제의식은 (결코 『인간의 조건』 외의 정치사상적 저작과의 관련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말해지는 역사성의 회복의 문제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BPF, p.3, 5-6. 일본어판 1, 4-5쪽.
이상의 점을 감안한다면, 『혁명론』을 단순히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의 내용을 비교하고, 정치체제의 자유를 창설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하는, 정치체제론·정치사상론의 관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렌트의 역사철학, 시간론이라는 관점, 즉 ‘시작’이 역사의 동적 과정·정도 속에서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또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나 야스퍼스(Karl Jaspers)[주14]로부터 배운/사사師事한 독일 실존주의 철학의 학생으로서의 아렌트의 철학적 측면과 나치 전체주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사회의 병리현상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계속했던 평론가·정치사상가로서의 아렌트가 교차하는 책으로서 이 『혁명론』을 집어든다는 필자의 문제의식에도 기초를 두고 있다.[주15]
[주14] 이 책 『혁명론』은 게르하르트, 칼의 야스퍼스 부부에게 “존경과 우정과 사랑In reverence –in friendship –in love”을 담아 헌사된 것이다. 또한 아렌트는 1961년 12월 30일자의 야스퍼스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혁명론』을 거의 다 썼다”, “성과가 좋다고 생각한다” 등을 알리고, 야스퍼스 부부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는 취지로 타진한다. OR, 속표지 및 太田『ハンナ=アーレント』194쪽.
[주15] 또한 2011년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이른바 ‘재스민 혁명’(튀지니아의 혁명을 가리키는 호칭)이 발발하고, 동구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1989년 전후 이후 및 20년에 걸친 ‘혁명의 해’가 됐다. 필자는 이런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혁명의 현실을 분명히 하는 관점을 얻는 의미에서도, 전체주의와의 대결로부터 시오니즘 및 유대인 문제에 대한 대응, 그리고 미국사회에서의 정치적 발언 등 다양하게 현실적인 언론을 전개했던 아렌트의, 혁명과 그 ‘시작’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분명히 하고 싶다는 바람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2. ‘시작’ : 논자의 제반 논의들과 그 위상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 간, 아렌트의 ‘시작’ 개념이 주목을 끌고 있으며, 아렌트 연구의 한 가지 트렌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야마구치 케이(山口充)는 “『인간의 조건』이 갖고 있는 가장 정열적인 메시지는 인간의 출생human natality과 시작의 기적the miracle of beginning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캐노번이 『인간의 조건』 2판 서문에 붙인 한 절을 소개하면서 ‘출생’과 ‘시작’ 개념은 “아렌트의 전체 사상을 떠받치는 근저를 이루는 것처럼 생각된다”고, 시작을 둘러싼 연구의 의의를 서술하고 있다.[주16] 또한 교육사상의 단면으로부터 아렌트를 연구하는 코다마 시게오(小玉重夫)는 『인간의 조건』에서의 아렌트의 ‘출생’의 사상에 주목하고, “그리스의 폴리적 공공성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말해지는 기존의 아렌트 이미지가 아니라, “유대인, 히브리적 계보”로 이어지는 관점에서 그녀의 사상의 근간을 해명할 필요성을 말한다.[주17] 그런데 이런 아렌트의 ‘시작’ 개념을 둘러싼 연구자들의 논의에는 세 개의 위상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주16] 山口充「H. アーレントにおける「出生」の存在論的意味」(『愛媛大学教育学部紀要』第53 巻第1号, 2006年) 9쪽. 캐노번의 서문은 HC, p.xvii.를 보라.
[주17] 코다마 시게오(小玉重夫), 「시작의 상실과 근대(始まりの喪失と近代)」(情況出版編集部 편, 『한나 아렌트를 읽다(ハンナ・アーレントを読む)』, 情況出版, 2001년), 153쪽.
첫째는 인간의 ‘출생natality’이라고 하는, 개개인의 실존으로서의 ‘시작’에 관련된 연구이다. 이것은 모리카와 테루카주(森川輝一), 『‘시작’으로서의 아렌트(<始まり>のアーレント)』(岩波書店, 2010년)가 대표적이다. 모리카와(森川)는 이 책에서 아렌트의 ‘출생’ 개념을 “아렌트의 활동 개념을 해명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주18]고 하며, “이 세계 속에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난다고 하는 아주 평범한 사건Ereignis 속에 무수한 새로운 ‘시작initium’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아우구스티누스”[주19]의 사상과 아렌트에게서 사랑 개념의 관계를 ‘출생의 사상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주18] 모리카와(森川), 『<始まり>のアーレント』, vi쪽.
* http://repository.kulib.kyoto-u.ac.jp/dspace/bitstream/2433/152489/1/yhogr00173.pdf에 초록이 있다.
[주19] 모리카와(森川),『〈始まり〉のアーレント』283쪽.
둘째로는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현저하게 말해지는 공적 영역에 대한 참여(즉, 활동적 삶, vita activa)를 ‘제2의 출생’으로서의 ‘시작’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이 관점에서의 연구는 모리와케 다이스케(森分大輔), 『한나 아렌트 연구 : ‘시작’과 사회계약(ハンナ・アレント研究─〈始まり〉と社会契約)』(風行社、2007년)이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리와케(森分)는 “말할 것도 없이 ‘시작’은 아렌트에게서 중요한 개념이었다”[주20]라며 시작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인간의 ‘시작’이라는 능력의 의의, 그리고 자유나 ‘시작’의 개념을 둘러싸고 공적 공간에 참여하는 인간의 ‘사회계약’의 개시라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논한다. 위와 같은 두 연구의 관점은 ‘시작’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의사’라는 것, 즉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공적 영역에 참여한다는 ‘자유’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시작’ 및 ‘시작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로, 주로 『혁명론』이나 『정신의 삶』(The Life of Mind, 1978. 일본어판 제목은 『정신의 생활(精神の生活)』) 「제2부 4장 결론 16 자유의 심연과 ‘시대의 새로운 질서’(novus ordo seclorum)」, 『과거와 미래 사이』 등의 논의를 중심으로 하면서 아렌트가 평가하는 미국 혁명과 그 시작의 문제(이른바 ‘시작의 아포리아’, 이 글의 3장에서 상술), 혁명에서의 ‘권위’의 생성, 역사(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로서의 ‘혁명’, 이런 논점을 논하는 것, 즉 아렌트의 혁명론과 시작을 둘러싼 논의와의 접합을 논하는 것이 있다.
[주20] 모리와케 다이스케(森分大輔), 『한나 아렌트 연구 : ‘시작’과 사회계약(ハンナ・アレント研究─〈始まり〉と社会契約)』, 風行社, 2007년, 42쪽.
이것의 대표로는 이시다 마사키(石田雅樹), 『공공성에의 모험 : 한나 아렌트와 ‘축제’의 정치학(公共性への冒険 ハンナ・アーレントと《祝祭》の政治学)』(勁草書房, 2009년. 특히 5장 「‘세계’의 변혁은 가능한가 : ‘혁명’론에서 본 ‘법’과 ‘권력’)을 맨 먼저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石田은 “시작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시작의 아포리아”의 테마를 “혁명의 아포리아”라고 표현하고, 그 어려움을 논하면서 아렌트가 말한 “자유의 창설”을 ‘축제’라는 관점에서 재파악하고자 한다. 그밖에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아렌트와 미국혁명(アーレントとアメリカ革命)」(情況出版編集部編, 『ハンナ・アーレントを読む』, 情況出版, 2001년, 85-105쪽)이나 카와사키 오사무(川崎修),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 : 아렌트 논집 I(ハンナ・アレントの政治理論 アレント論集Ⅰ)』(岩波書店、2010년. 특히 3장 4절 「권위와 전통」. 이 장의 초판은 1986년)에서도 혁명에서의 ‘시작의 아포리아’를 둘러싼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시작과 『혁명론』을 둘러싸고는 관련된 논점의 연구는 몇 가지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과 시작” 그 자체를 둘러싼 포괄적인 연구는 좁은 식견이기는 하지만 충분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캐노번이 말하듯이 『혁명론』은 『인간의 조건』에 필적하는 내성적(内省的)·암시적 깊이를 지닌 아렌트의 주요저서이며, 또한 모리와케 다이스케(森分大輔)가 말하듯이 ‘시작’은 아렌트에게서 중요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둘을 둘러싸고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시작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고 있는 지금, “혁명과 시작”이라는 중요한 두 개념에 관해서 다시금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덧붙이면 아렌트의 시작을 둘러싼 논의는 최초의 저서[처녀작]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의 사랑 개념』(Der Liebesbegriff bei Augustin, 1929. 영어판은 Love and Saint Augustine, 1996. 일본어 번역서 이름은 『アウグスティヌスの愛の概念』)부터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과거와 미래 사이』,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혁명론』, 나아가 말년의 『정신의 삶』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관통해 아주 많은 문제영역에 미치고 있으며, 이런 모든 저작에 걸쳐 있는 ‘시작’의 개념을 정리하고 명확히 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 ‘시작’을 둘러싼 논의에는 그녀의 “출생과 사멸성(natality and mortality)”, “자유(freedom / liberty)”, “의지(will)”, “과거와 미래(past and future)”와 같은 철학적 사고,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고전고대의 교양과 독일철학의 전통이 있으며, 한편으로 나치즘을 산출한 대중사회의 문제, 전후 미국사회의 병리, 그리고 아이히만 재판을 둘러싼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을 필두로 한 유대인들과의 논쟁과 갈등 등의 현실의 정치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그리고 그 쌍방이 마치 ‘과거’와 ‘미래’로부터의 ‘힘(force)’이 되어 강요해오는, 그 ‘간극(gap)’이라고도 말해야 할 ‘현재’에 서서 이러한 것들로부터의 힘에 대항하는 것처럼 직조되고 있는 아렌트의 사고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주로 이 세 번째 위상에 있어서의 연구성과를 활용하면서 우선은 『혁명론』에서 말해지고 있는 논점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시작’과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역사의 간극’의 개념에도 널리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지만, 아무튼 우선은 『혁명론』에서의 ‘시작’의 의미를 철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당히 선행연구자들의 논점을 참조하면서, 또한 그것들을 검증도 하면서, 보다 포괄적으로, 아렌트가 ‘혁명’과 ‘시작’을 어떻게 파악했는가를 검토하는 관점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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