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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정치와 통치성’ 총서를 소개합니다! 도서출판 난장이 김상운 님의 기획 아래 야심차게 준비한 ‘생명정치와 통치성’ 총서를 소개합니다. ‘생명정치와 통치성’ 총서는 ‘생명정치’와 ‘통치성’ 개념에 근거해 오늘날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현상과 변동을 분석한 국내외의 주목할 만한 연구들을 소개하는 총서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두 개념은 푸코가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정의와 쟁점을 제기한 이래로 동시대 인문사회학계의 핵심 용어로 떠올랐습니다. ‘생명정치와 통치성’ 총서는 이 두 개념의 현실 적합성과 설명력을 확장한 최근의 연구들을 소개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총서에 들어갈 책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발간 순서는 변동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등은 여기를 콕! 01. .. 2014. 10. 15.
랑시에르의 미학과 정치 관련 주요 공개 예정자료 목록 아래는 랑시에르의 미학과 정치를 고민할 때 중요한 글과 인터뷰, 그리고 2차 문헌이다. 목록과 내용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 2014년 5월 23일 현재, 우선 목록만 올려둠. 2-3일 안에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번역본을 업로드할 예정. 1. 논문 1) Jacques Rancière, “From Politics to Aesthetics?”, Paragraph, 2005 : 28(1) 2) Jacques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Communities of Senses :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09. 3) Jacques Ranc.. 2014. 5. 23.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푼크툼, 그리고 랑시에르 1. ‘1강’에서 랑시에르의 논의는 롤랑 바르트를 여러 면에서 활용하고 비판하고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다. 즉, ‘스투디움’과 ‘푼크툼’만이 아니라 ‘디테일(세부)’*, (이미지나 사진의) ‘지표적 성질’이나 ‘그건 그랬지’ 등도 모두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롤랑 바르트의 논의를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후의 롤랑 바르트를 보는 견해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책이 기존의 그의 작업과 단절적이라고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연속적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당연히 두 가지의 절충도 있다. 즉, 단절과 연속을 모두 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랑시에르는 단절적이라고 보는 견해에 가깝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랑시에르의 견해와는 다르게 다소 연속적인 측면을 부각.. 2014. 5. 23.
데리다와 사형 문제 02 데리다와 사형 문제1) * 글쓴이 : 고우하라 카이(郷原佳以) * 출 처 : ≪현대사상≫, 2008년 10월호, 162~179쪽. * 옮긴이 : sanggels@gmail.com / 2009. 02. 01. / 거친 초역본이라 향후 수정 예정. 들어가며 ― 데리다와 사형 문제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어떤 철학을 근거로 한 사형폐지운동이 과연 존재할까?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가 사형폐지운동이 의존할 수 있는 철학자를 찾아보려고 하면, 사형존치론은 발견되나 사형 폐지론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어찌 보면 사형폐지운동은 철학과 그다지 상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자’란 사형의 필연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이론은 갖고 있으면서도 사형의 부당성을 보여주기 위한 이론은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만일 .. 2014. 4. 13.
랑시에르의 <이미지의 운명>에 나오는 그림 및 동영상 (추가 업데이트 예정) 제1강. 1) 당나귀 발타자르 (1) 크레디트 타이틀 샷과 새끼 당나귀가 등장하는 처음 샷과 당나귀를 끌고 언덕을 내려가는 샷 : 여기를 클릭 (2) 크레디트 타이틀을 제외하고 위의 동영상에 이어지는 당나귀의 세례 샷 등 : 여기를 클릭 2) 롤랑 바르트의 스투디움과 푼크툼 : 여기를 참조 (2014년 5월 23일 업데이트) 3) 프랑수아 트뤼포의 마지막 시퀀스 : 여기를 참조 4) (1)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의 “미술관의 독수리Aigles du Musée” : 여기를 클릭 (2)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설치미술 : 여기를 참조. (3)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가족 앨범 : 여기를 참조 (4) 레이몽 앵스Raymond Hains의 벗겨진 포스터 : 여기를 참조 (.. 2014. 4. 3.
랑시에르, 민주주의, 비합의, 소통(Démocratie, dissensus, communication) 민주주의, 비합의, 소통Démocratie, dissensus, communication * 이 글은 2004년 1월 24일, 오사카대학교 待兼山 회관에서 이뤄진 강연회의 원고의 완역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문부과학성 과학기술진흥조정비 정책제언 「임상 커뮤니케이션 모델의 개발과 실천」의 초대로 일본을 방문했다. 소제목은 일본어판 옮긴이의 것이다.* 이 글은 다음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번역을 할 때 에 근거하여 많이 수정했다. http://scfdb.tokyo.jst.go.jp/pdf/20021730/2003/200217302003rr.pdf* 옮긴이 : 중간에 번역하지 않은 구절이 있는데, 이는 원문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합의란이 강연 제목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실제로,.. 2012. 12. 24.
알랭 바디우 & 에릭 아장, 「누가 테러리스트들인가, 누가 누구를 테러하는가」(2008년 12월 24일) Qui sont les terroristes, qui terrorise qui ? / Alain Badiou & Eric Hazan에릭 아장, 알랭 바디우, 「누가 테러리스트들인가, 누가 누구를 테러하는가」 http://lesilencequiparle.unblog.fr/2009/01/05/qui-sont-les-terroristes-qui-terrorise-qui-alain-badiou-eric-hazan/ « Entreprise individuelle ou collective ayant pour but de troubler gravement l’ordre public par l’intimidation ou la terreur ».“협박 또는 테러/공포에 의해 공공질서를 현저하게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 2012. 4. 13.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발췌 가라타니 고진의 발췌 1. “오늘날 ‘68년’이라고 하면, 전세계 어디서든 공통된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동일시를 할 수 있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그 내용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구좌익 운동은 1950년대에 매카시즘으로 괴멸당했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 공민권운동(흑인해방)과 베트남반전운동을 계기로 하여 좌익운동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구좌익과 관계가 없는 신좌익이었습니다.”(p. 12) 2. “그런데 일본의 ‘68년’에는 이런 다의성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동시성이랄까, 서양과 공통된 문제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60년의 안보투쟁은 1955년부터 시작된 고도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생긴 것입니다. 64년에.. 2011. 11. 27.
조르조 아감벤, <운동> * 출 처 : http://www.generation-online.org/p/fpagamben3.htm * 원래 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지금 자율평론의 경우 웹상에서 이 글을 확인할 수 없고 다운로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시 수록한다. 원래 교정을 거쳐야 하지만, 나중으로 미룬다. 중요한 글이라서 올리는 것이다. 운동 나의 성찰은 불편한 마음malaise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내가 얼마 전에 베니스에서 또니 네그리, 카사리니 등과 만나는 동안에 내게 제기되었던 일련의 질문들을 따르고 있다. 이 모임에서 제기되었던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운동이다. 이 단어는 우리 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니 네그리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책에서도 이 단어는 다중에 대.. 2011. 11. 22.
13세기에 그려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데리다가 옥스포드에 체재할 때 도서관에 봤던 13세기의 그림. 소크라테스가 쓰고 플라톤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Bodleian Library, University of Oxford, ms, Ashmole 304). 만일 플라톤의 책이 없었다면, 그것에 대한 '주석의 역사'로 간주된 서양철학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플라톤주의(니체)로 간주된 서양정신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플라톤의 책이, 텍스트가, 에크리튀르가 쓰여지지 않았다면? 아감벤도 에서 인용하고 있는 플라톤의 '7번째 편지'와 데리다가 이것 외에도 인용한 '2번째 편지'. 플라톤에 의한 에크리튀르(문자, 그리고 글쓰기)의 배제는 라는 부정에서 극에 달한다. 플라톤의 책은 존재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해서는 안 된.. 2011.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