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시작’ 개념 : 『혁명론』을 중심으로 (3)
ハンナ・アーレントにおける「はじまり」の概念
― 著書『革命について』を中心に―
마츠모토 토모하루(松本 智治, 日本大学大学院総合社会情報研究科)
http://atlantic2.gssc.nihon-u.ac.jp/kiyou/pdf13/13-299-310-MatsumotoT.pdf
III. ‘시작의 아포리아’ : 그 어려움과 해결의 방향
1) ‘시작의 아포리아’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자유’와 나란히 혁명이 함유하는 또 다른 커다란 의미인 ‘시작’에 관해 아렌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렌트는 『혁명론』의 서두에서 “지금까지 전쟁과 혁명이 20세기의 양상을 형성해 왔다”고 하는 한 문장을 내걸고 있다. 이 서술로부터도 전쟁과 혁명의 ‘일종의 공통분모(a kind of common denominator)’인 ‘폭력(violence)’의 문제가 항상 이 책의 수면 아래를 흐르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녀에 따르면, 전쟁과 혁명은 폭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정치의 영역 바깥’, 즉 인간의 ‘자연상태’에서 일어나는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쟁’이 반드시 어떤 새로운 다른 정치체제를 희구하여 발생하는 사건은 아닌 반면에, ‘혁명’은 분명히 현체제와는 상이한 새로운 다른 정치적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혁명은 직접적이고 필연적으로 우리를 시작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유일한 정치적 사건이다”라고 하는, 아렌트의 규정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아렌트는 혁명이 지닌 일종의 숙명적인 과제, 즉 그 새로운 정치체제의 시작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시작의 당혹스러움(the perplexities of beginning)”이 존재함을 분명히 밝히며, 혁명 개념의 원류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즉, “최초로 혁명에 관해 생각했던” 정치사상가이자 “근대의 혁명들의 아버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대한 언급이다.
아렌트는 마키아벨리 속에서 “혁명의 정신적 아버지(the spiritual father of revolution)”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정치의 영역에 폭력의 역할을 계속 주장했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즉, “폭력은 시작이었다. 폭력을 저지르지 않으면 시작은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으며, 폭력은 자연상태로부터 질서를 형성하는 영점(zero point), 시작의 아포리아/당혹스러움을 푸는 힘을 (적어도 수단으로서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시작과 폭력 사이의 관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키아벨리가 폭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그 자신이 이론상 말려들었던 난문이며, 나중에는 혁명가들을 괴롭했던 실천적인 난문이기도 했다는 의미에서, 이중의 난문(the twofold perplexity)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그 난문은 창설이라는 과제, 즉 새로운 시작을 놓는다는 과제 속에 있었다. 이 과제 자체가 폭력과 폭행(violence and violation)을 필요로 하며, 이른바 모든 역사의 시작에 있는 오랜 전설적인 범죄(로물루스는 레무스를 살해하고, 카인은 아벨을 살해했다)의 재현을 요구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폭력과 폭행”이 있다면 모든 시작 또는 모든 혁명이 가능해진다고 할 리가 없다. 여기서 ‘폭력’과는 다른, 더 중요한 요소로서, ‘권위’의 필요성이, 그리고 그 권위를 뒷받침하는/증명하는 ‘절대자’의 개념이 부상하게 된다. 이어서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창설의 과제는 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권위를 도출하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제한다는 과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더욱이 이 권위는 신의 권위에 근거를 두었던 오랜 절대자의 뒤를 잇게 되며, 이리하여 그 최종적인 인증은 전능한 신의 명령이며, 정통성의 최후의 원천은 지상에서의 신의 수육(受肉)의 관념과 같은 세속의 질서에 의해 알 수 있듯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혁명의 과제의 이 후반 부분, 즉 새로운 절대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신권의 절대자(the absolute of divine power)로 바꾼다고 하는 과제는 해결 불가능(insoluble)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다면적인 능력을 총계해 보더라도 전능하게 되지 않으며, 인간의 힘에 의거하는 법은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혁명 이전의 절대 왕정 아래서는 왕권신수설에 의해 담보되었던 “정통성”은 사람들이 모이고 폭력에 의해 혁명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에서의 바스티유감옥 습격이나 미국혁명에스의 보스턴 차회사 사건 등, 혁명의 폭력적 측면이나 사건에 눈을 빼앗기게 되며, 또한 그런 폭력적 사건 그 자체를 혁명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근대의 혁명에 있어서는 이로부터 창출된 역사의 터전이 되는 새로운 절대자, 또는 권위를 어떻게 창설하고, ‘시작’을 초래하는가라는 과제 ― 그것은 결코 폭력과 폭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 즉 ‘시작의 아포리아’가 가로놓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는, 혁명 현상으로서의 이른바 ‘해방’은 확실히 새로운 자유의 창설의 조건이며, 시작을 초래하는 조건의 하나라고 생각되지만, 결코 시작 그 자체일 수는 없다. 또한 ‘모반(rebellion)’이나 ‘반항(revolt)’에 이르는 것은 폭력의 요청이 포함되어 있을 뿐으로, ‘해방’의 의미조차 포함하지 않는다. 즉, ‘어떤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폭력이 완전히 상이한 통치형태를 수립하고, 새로운 정치체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되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적어도 자유의 구성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만, 우리는 혁명에 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렌트는 ‘시작’은 어떻게 성립했다고 생각하는가? 주지하듯이, 아렌트는 가장 성공한 혁명을 미국혁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이 ‘시작의 아포리아’는 해결되었을까? 아렌트는 그것을 단적으로 사람들의 ‘창설의 행위 그 자체’라고 한다. 이하, 아렌트의 서술을 살펴보자.
“새로운 시작이 정치현상일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사람들이 행했던 것의 결과이며,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던 것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 ―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은 겨우 18세기의 혁명의 과정에서였다.”
“새로움은 더는 소수자만의 높은 자긍심, 동시에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유물이 아니었다. 새로움이 시장으로 넘어갔을 때やってきとき, 그것은 무의식 속에는 있지만, 활동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the beginning of a new story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자손들에 의해 더욱 수행되었고, 논의되고 계승되었다.”
“미국 혁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창설자founders’라고 생각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새로운 정치체의 권위의 원천은 결국, 불멸의 입법자라든가 자명한 진리라든가 그 밖의 초월적이고 현세초월적인 원천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창설의 행위 그 자체라는 것the act of foundation itself을 그들이 얼마나 잘 알았는가를 보여준다. 이로부터 모든 시작이 불가피하게 말려들게 되는 악순환the vicious circle을 돌파하기 위한 절대자absolute의 탐구는 무의미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절대자’는 원래 시작의 행위 그 자체(the very act of beginning itself)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아렌트는 ‘시작’이란 창설의 행위 그 자체이며, 사람들이 행하는 것 그 자체라고 한다. 물론 이 ‘창설의 행위’란 ‘자유의 창설’, 즉 앞에서 말한 바의 ‘공적 영역’, ‘공적 공간’의 창설에 참가하는 것이다. 혁명에 있어서 ‘창설의 행위’란 공화정을 창설하는 것, 헌법을 제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아렌트는 이 창설의 행위, 시작의 행위 그 자체가 ‘절대자’인 것이며, 또한 ‘원리principle’라고 한다(원리에 관해서는 후술). 이 ‘시작의 행위 그 자체가 절대자이다’라는 개념에 관해서,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의 서술이 참고가 되기에 이를 살펴보자.
2) 혁명운동의 본질과 ‘오토포이에시스’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는 『혁명론』에서의 이 ‘절대자’와 시작의 아포리아(仲正昌樹의 말로는 ‘논점선취petitio principii에 항상 내재하는 악순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미국혁명에서는) ‘자유(freedom)’의 영역을 새롭게 ‘창설’하고자 하는 혁명운동의 오토포이에시스가 ‘법’의 원천이 되었으며, ‘보다 높은 법’은 항상 생성도상에 있다. 실체화되지 않고 항상적으로 자기생성하길 계속하는 ‘법’이 ‘인민에 의한 통치’를 구속하고, ‘전-정치적인 폭력’을 가둬버리는 메커니즘이 산출됨으로써, 미국혁명은 ‘절대자’를 둘러싼 세속화된 형이상학의 덫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끝났다.”
“아렌트는 미국의 ‘건국자들’이 ‘절대자’를 최종적으로 현전화하고자 하는 유럽적인 사변철학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항상적인 실천을 통해서 ‘자유(freedom)’을 ‘창설’하고자 계속 시도했다는 것에 미국혁명의 성공의 비결을 봤다. ‘자유(freedom)’은 에크리튀르 속에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서 정형화되는 게 아니라, 매일의 정치의 실천에 의해 끊임없이 쇄신된다. 미국의 ‘자유’는 … 복수적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창설’되는 것이다.”
“아렌트에게서 역사 속에 단절을 초래하는 ‘시작’은 어떤 역사를 넘어선 초월적인 ‘절대자’에 의해 초래되는 게 아니라, ‘창설’하는 ‘행위’ 그 자체 안에 있다. ‘행위’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며, 그 행위의 ‘주체’가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仲正의 서술은 굉장히 명료하며, 특히 ‘시작’을 초래하는 ‘자유(freedom)’의 ‘창설’ ‘행위’ ‘혁명운동’을 정형화된 에크리튀르, 즉 정지된 형태로 표현된 ‘절대자’가 아니라, ‘매일의 정치의 실천’, ‘창설하는 행위’라는 동적인 행위 속에 현전하는 점을 강조하는 점에서,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혁명의 운동에 대해서 ‘오토포이에시스’, ‘자기생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은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미국혁명의 사람들이 헌법의 제정을 필두로 한 공화정의 실천을 통해서, 공적 공간이 형성되고, ‘법’ 그리고 ‘보다 높은 법’이 제정되고, 그것이 ‘시작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을 표현하는 표적狙い이 있으며, 仲正는 ‘오토포시에시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원래 유기생명체의 자율적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의 말을 사용하는 것은, 거꾸로 이것은 아렌트가 네거티브하게 평가했던 것인 프랑스 혁명에서의 혁명의 이미지, 즉 ‘생물학적인’, ‘우리의 육체를 관통하는 생명과정’과도 닮은 ‘자동적이고 불가항력적’이며, ‘인간의 생명이 모두 종속해 있는 순환적 필연성’이라는 ‘생물학적 이미지’, ‘군중 ― 국민, 인민, 사회의 사실상의 다수 ― 을 하나의 초인간적인 저항하기 힘든 <일반의지>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突き動かされる 초자연적인 육체의 이미지’를 야기시키지 않을까?
아렌트는 “혁명이 (미국)합중국을 산출했던 것이며, 공화정은 ‘역사적 필연historical necessity’이나 유기적 발전organic development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각적이고 숙려된 행위a deliberate act, 즉 자유의 창설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혁명운동의 오토포이에시스’ 따위와 같은 무자각적인 존재가 유기적으로 관련하는 자동운동 따위가 아니라, 인격을 지닌 자각적인 개인들(그것은 복수성multitude을 지닌 개인들이다)이 공적 공간에 자유를 창설하는, 극히 ‘예언 불가능성unpredictability’으로 가득 찬 ‘활동’의 범주의 사건인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불연속적인’ 국면을 초래하는 ‘시작’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더 말한다면, 아렌트가 생각하는 ‘시작의 행위’가, 지금까지 논의되었듯이 공적 영역에의 참가이며, 공적 공간의 창설이라면, 이것은 『인간의 조건』에서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세 분류로서의 ‘노동, 작업, 활동’ 중에서 ‘활동’에 상당하는 것이라는 점은 이미 앞에서 말했던 대로다. 그렇다면, 아렌트가 말한 활동action은 고대 그리스의 ‘프락시스(praxis, πρãξις, 실천)’에 상당하는 것이며, ‘포이에시스(poiesis, ποιησις, 제작·생산)’에 기초한 용어인 ‘오토포이에시스’를 사용한 의미에서도 오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나카마사(仲正)는 앞에서 인용한 대목의 마지막 부분에서 “<행위>는 그것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며, 그 행위의 ‘주체’가 절대적이라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래도 좋을까? 행위의 ‘주체’가 절대적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에서 ‘일반의지’(루소)를 로베스피에르가 체현하고, 그후 ‘세계사적 개인’(헤겔)을 나폴레옹이 체현하고, 러시아혁명에서 전위적 정당의 지도자를 레닌이 체현했다고 하듯이, 일반의지를 어떤 일자(또는 하나의 조직)가 진리로서 체현한다, 그런 것은 미국혁명에서는 없었다는 의미에서는 적절하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들이라는 행위의 주체가 멸각(滅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혁명론』의 「2장. 사회문제」에서 아렌트는 “그 존엄이 바로 그 복수성plurality에 있는, 한없이 변화로 풍부한 복수자multitude”를 미국혁명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한편 프랑스혁명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혁명이 비참한 어둠에서 끌어냈던 불행한 사람들malheureux은, 단순히 수적인 의미에서의 복수자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의 의사에 의해 작동되는, ‘하나의 육체로 통일된 … 복수자’라는 루소의 이미지는 그들의 현실의 모습의 정확한 기술이었다(松本試訳)”, “다수성manyness이 사실상 단일성oneness으로 치장한다.” 이처럼 아렌트는 한없이 변화로 풍부한 인격persona(그것은 극장에서 행해지는 공적 측면을 지닌 법적 인격이다)을 지닌 복수자multitude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실상 단일성oneness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하나의 인격을 지닌 인간이 공적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시작의 중요성은 아렌트의 다른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는 1964년, 저널리스트인 귄터 가우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Zur Person’에서 대담을 나눴다(이듬해에 ‘무엇이 남았는가? 모어母語가 남았다Was bleibt? Es bleibt die Muttersprache’란 제목으로 출판). 그녀는 이 대담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모국어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
“(야스퍼스가 말한) 공공적 영역으로의 모험이 의미하는 바는 제게는 확실합니다. 하나의 인격을 지닌 존재자로서, 공적인 영역의 빛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두 번째 모험은 우리가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Wir fangen etwas an. 관계성의 그물망 속에, 우리가 자기 자신의 실을 뽑고 있다糸を紡いでいく는 것입니다.”
이 공공적 영역에의 모험과 시작, 그리고 ‘관계성의 그물망’에 스스로 자신의 실을 뽑아낸다고 하는 논점은 『인간의 조건』 「5장. 활동」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근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등자 사이에 있고 차이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혁명론』에서 말해졌던 말을 끌어들인다면, “인간은 그 자신 새로운 시작이며, 따라서 시작하는 자beginner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만든다는 논리적으로 역설적인 과제를 짊어진다는 관념, 즉 시작을 위한 능력 그 자체는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는, “출생natality’ ― 인간은 탄생의 힘virtue of birth에 의해 세계에 등장한다는 사실(松本試訳)”이야말로 인간이 시작하는 능력, 창설의 행위를 이루는 힘을 갖고 있는 근거인 것이다. 이 ‘탄생의 힘’에 기초한 “하나의 인격을 지닌 존재자”가 무엇인가를 시작하는anfangen 행위야말로 혁명정신의 기초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행위의 주체자는 절대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시작’과 ‘원리’ : ‘기억’과 ‘회상’
이상으로, “시작의 ‘절대자’란 원래 시작의 행위 그 자체이다”, “시작의 행위를 담당하는 사람은 복수성 multitude에 의해 조건지어지며, 차이성의 어떤 유일한 존재이자 평등한 존재로서의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치적 자유의 공간으로서의 공적 영역에 대해 모험함으로써, 새로운 공화정을 구성해가는 것이 ‘혁명’이며, 시작이다”라는 취지, 아렌트의 논의를 확인했다.
나아가 아렌트는 “시작이란 ‘원리’이다”라고 하는, 시원론의 근본에 관계되는 관점에서도, 시작의 절대성을 논한다.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작의 행위가 그 자의성으로부터 구해지는 것은, 그 행위가 그 자체 속에서, 그 자체의 원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 principium[시작]과 원리princip는 서로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적coeval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독일어 번역본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 in dem Anfang und Prinzip sich ungeschieden miteinander vermählen. hlen.”(시작과 원리는 서로 나누기 힘들게 결혼하고 있다, 松本試訳>.
“시작은 자기의 타당성의 근거가 되며, 이른바 그것에 내재하는 자의성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내는 절대자를 필요로 하지만, 그런 절대자란 시작과 더불어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원리에 다름 아니다.”
“시작하는 자가 그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개시했던 그 방식way이 그 기획을 함께 완성시키기 위해 그에게 가해진 사람들의 활동의 법을 정한다. 그런 것으로서 원리는 그 후에 이어진 행위를 고무하고, 그리고 활동이 이어지는 한, 명백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principle[원리]라는 말을 라틴어의 principium이라는 말에서 빼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상 상대적인 인간 사상事象의 영역에서, 다르게는 이해될 수 없는 절대자라는 문제에 이런 해결을 암시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우리의 말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어도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것을 말했던 것이다. 시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는 아르케ἀρχή, arkhē arkhē이며, 이 아르케는 시작과 원리 둘 다를 의미한다/두 방향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의 사회가 그 특성을 설명하고, 그리하여 그 미래가 내포하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그 기원을 보도록 했던 것도, 시작principium과 원리의 동일성에 대한 동일한 통찰 때문이다.”
여기서 아렌트는 “시작principium이란 원리principle이다”라고, 그리스어 ἀρχή와 더불어 라틴어 principium의 의미도 끌어내어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지면상의 말장난으로 시종하는 게 아니다. 아렌트가 “아르케는 시작과 원리라는 두 방향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듯이, “만물의 아르케(근원)”의 탐구는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 학파 이후의 테마이며, 이것은 또한 철학의 시작이기도 했다. 또한 아렌트는 특별히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신약성서』 「요한복음서」(1:1)의 유명한 첫구절인 “처음에 말이 있었다”의 그리스어 표기 Ἐν ἀρχ ῇ ἦν ὁ Λόγος”, 그리고 라틴어 불가타(Vulgata)에서의 표기 “In principio erat Verbum”에서 발견되듯이, 시작-원리로서의 ἀρχή , principium에 대한 물음은 그리스도교 사상(특히 중세 스토아학파)에서도 저류를 이뤄왔다. 더 말한다면, 헤겔의 『대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 1812-16)에서도 “시원론der Anfang”의 서두는, “여하한 철학의 원리das Prinzip도 역시 시원Anfang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하듯이, 시원은 원리이며, 원리는 시원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상과 같은 “시작과 원리”에 관한 사색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아렌트는 시작이 그 자의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해내는 것은 (즉, 시원의 직접성의 근거를 부여하게 되는 것은) 그것에 내재하는 ‘원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시작과 원리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아렌트가 이 책 『혁명론』에서 왜 길게 로마의 건국의 의의와 로마가 ‘전통’, ‘권위’, ‘종교’의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렌트는 로마의 창설(시작)가ㅗ 그 원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적 관점에 서면, 어떤 정치체이든, 그 안정과 권위를, 그 시작에서 찾았던 것은 옳았다. 위험한 것은 그 시작을 어떤 먼 과거에 일어났던 적이 없었던 것으로서 바깥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의 도시국가의 창설자들은 로마 원로원 의원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과 더불어 창설의 정신, 즉 창설 이후의 로마인의 역사를 형성하게 됐던 위업res gestae의 시작principium과 원리는 현전했던 것이다. 증대하는 것,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augere를 어원으로 삼는 권위auctoritas는 창설정신의 생명력에 관계되었다. … 권위는 그저 전통에 의해서만, 즉 후계자의 끊임없는 흐름에 의해서 시작으로 수립되었던 원리가 계승되어감으로써만 초래된 것이었다. 이 후계자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 선다는 것은 로마에서는 권위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건한 회상pious remembrance 속에, 선조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묶는다고 하는 것은, 로마적인 신에 대한 공경심敬神の心을 지닌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종교적religious’이라는 것이며, 그것 자체의 시작으로 ‘뒤돌아가 묶는다bound back’는 것이었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하는 ‘위업의 시작’이란 구체적인 로마 건국의 시작, 즉 로물루스가 고대 로마를 건국했다고 간주되는 기원전 753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로마 공화정이 전진하는 와중에, 즉 후세의 로마시민에게 있어서 로마 창설의 행위, 즉 시작의 행위가, ‘원로원’이라는 모습을 취하여 ‘기억’이 되며, 시작이 ‘회상’된다. 그 회상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시작은 항상 모방되며, 하나의 범례성을 띠게 된다. 여기서 시작과 묶여지는 것이 ‘원리’가 되며, 종교와 전통이 생성되고 권위가 증대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으로 간주되는 역사적 사상事象 그 자체는 과거의 것이지만, 그것은 한없이 미래를 향해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며, 또한 연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또한 로마의 건국이 트로이의 재흥/부흥이라는 측면을 갖고, 미국의 건국이 로마를 새롭게 건국한다는 의미를 가졌듯이, 과거의 범례성을 의식하면서 공적 공간이 형성되었던 것에 하나의 이상상으로서의 ‘시작-원리’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에서, 과거로부터의 연속성도 보존된다.
기실, 미국혁명이라는 ‘시작’은 더는 식민지 체제가 아닌no longer 것, 즉 연방제라는 모습에서의 공화정을 창설했다는 의미에서, 과거로부터 매달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로마 건국이라는 기억을 하나의 범례로서 공적 영역을 창설했다는 의미에서는 보수적, 전통을 중시하는 면에 있는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복수성에 의거하고 공적 공간을 형성한다는 ‘시작’의 공간을 창설했다는 의미에서는 철저하게 급진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왜 어떤 행위가 ‘시작’이 되고, 어떤 행위가 시작으로 되지 않는 것인가”라는, 시작이 지닌 문제도 해결되게 된다. 즉, 시작은 미래에 ‘기억’과 ‘회상’에 의해 ‘원리’로 되고 범례로 되는, 보편성을 요구받는다. 그 보편성이란 아렌트가 희구해마지 않는 공적 영역, 공적 행복, 공적 자유의 창설이며, 그것은 복수성을 지닌 인간의 출생natality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의해 규정되며, 또한 요청되는 것이다.
4) ‘역사의 균열’ : ‘회상’의 대상
이리하여 기억과 회상의 대상인 ‘시작-원리’가 생겨난다는 것은 역사적인 관점에 서면, 그것은 인류사에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gap”의 창출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기억에 있어서 아렌트는 혁명이란 ‘역사의 균열’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아래에서는 아렌트의 서술을 인용해보자.
“(이런 전설의) 역사적 의의는 어떤 식으로 인간 정신이 시작의 문제, 즉 역사적 시간의 연속적인 연쇄the continuous sequence of historical time 속에 끼어들었던 비연속적인unconnected 새로운 사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가라는 점에 있다.”
“이 두 개의 이야기(출애굽기와 로마건국)가 모두, 옛 질서의 종언과 새로운 시작 사이에 있는 균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설이 어찌되었든 무엇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는 해방의 자동적인 결과도 아니라면, 새로운 시작은 종언의 자동적인 귀결도 아니라는 것이다. 혁명은, 종언과 시작,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no longer과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not yet의 전설적인 균열에 다름 아니었다.”
“이 균열이 시간을 연속적인 흐름으로서 생각하는 식의 시간관념으로부터 일탈하는 전대미문의 사변 속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이 균열은 상상력과 사변imagination and speculation이 어찌됐든 시작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한, 인간의 상상력과 사변에 있어서 [문제의 본질에서 말해서] 인간 본성에 뿌리내린 자연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은 대상이었다an almost natural object of imagination and speculation(松本試訳). … 그때까지 사변적 사고와 전설 이야기 속에서 알려졌지만, 이제야 비로소 현실의 리얼리티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생각되었다. 혁명의 날짜를 정한다는 것은 마치 불가능한 것을 끝까지 해낸다やりとげる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시간의 균열의 날짜를 연대기의 방식으로in terms of chronology, 즉 역사적 시간의 관점에서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정도의 완전한 자의성a measure of complete arbitrariness은, 시작의 본질 그 자체에 부수한다. 시작은 원인과 결과의 확실한 연쇄에 구속되지 않는다. 즉, 각각의 결과가 이미 장래의 발전의 원인으로 전환하는 연쇄에 얽매여있지 않다. … 그렇기는커녕, 시작은 이른바 그것이 매달려야しがみつく 할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시간에 있어서도, 공간에 있어서도, 마치 출발점을 갖지 않는 것과 같다.”
“혁명의 시대가 오기까지는, 시작 그 자체가, 언제나 신비 속에 담겨진 사변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개념적인 사고 속에서는 완전히 명확화되지 못했다. 그때야말로 비로소, 창설의 행위는 넓은 햇빛広い日の光 속에서 일어나며, 거기에 마침 있었던 사람들 전원이 목격했던 것이었는데, 그때까지 수천년 동안에, 창설은 창설 전설의 대상에 지나지 않으며, 상상력만이 과거와 기억이 닿지 못하는 사건을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렌트는 혁명을 ‘종언과 시작’의 사이에 있는 ‘균열’이며, 연속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끼어들었던 ‘불연속적인 것’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혁명이란 이 시작을 ‘연대기의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며, 인류의 시작이 전설상의 것일 수밖에 없었던 곳에서, 실제의 역사적 사건으로서 ‘시작’의 날짜를 새긴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렌트는 “시작은 매달리는 것을 갖고 있지 않다”고, 시작이 시간의 연쇄, 원인·결과의 연쇄 바깥에 있다는 듯이 설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원론은 “학의 시원der Anfang이란 매개된 것ein Vermitteltes과 직접적인 것ein Unmittel 둘 다의 측면을 포함한 원환Kreis”이라고 하는 헤겔의 시원론과의 관계에서 말한다면, “시원의 직접성”을 강조했던 논의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렌트는 이 시작-시원으로서의 혁명에 관해서, “창설의 행위는 넓은 햇빛広い日の光 속에서 일어나며, 거기에 마침 있었던 사람들 전원이 목격했던” 것이라고도 말한다. 즉, 앞 절에서 상세히 언급했듯이, 시작이 ‘시작’으로 될 수 있고, 혁명이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열로서의 ‘혁명’이 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올 사람들의 ‘기억’과 ‘회상’에 의해서 ‘전통’이 형성되고 바로 그 모방과 범례성에 의해서 시작이 ‘원리’로 됨으로써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원으로서의 시작은 ‘원리’라는 본질을 경유하여 과거나 미래로 이어지는, 일종의 매개성을 갖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역사의 균열’인 ‘시작’은 사람들의 기억과 회상에 의해서 ‘묶여’지게 됨으로써 ‘원리’로서의 ‘시작’으로 될 수 있다는 게 된다. 이런 역사철학이라고도 말해야 할 시간론은 아렌트와 동시기에 하이데거에게 사사를 받았던 일본의 사상가 三木清(1897-1945년)의 『역사철학(歴史哲学)』(1932년)과도 공통하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란 헤겔이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1837)에서 말했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통일”된 것, 즉 “이뤄진 것das Geschehene, res gestae(사건)” 그 자체와 “이뤄진 것의 이야기die Gechichtserzählung, historia rerum gestarum(사건의 기술)”의 둘 다를 의미한다. 三木은 이것을 토대로, 전자의 사건 그 자체를 ‘존재로서의 역사’, 후자가 서술한 것을 ‘로고스로서의 역사’라고 부르면서, 세 번째의 ‘역사’로서 ‘사실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三木은 이 ‘사실로서의 역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그것을 반복한다/되풀이한다繰り返す는 것이다. 전해진 것은 역사가 아니다. 전해진 것을 이제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에 역사가 있다. … 반복한다는 것은 본래 끌어당긴다/되살린다手繰り寄せる는 것이다. 반복한다는 것이 끌어당긴다/되살린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있는 것이다. 전해진다고 할 때, 단초는 과거에 있다. 하지만 끌어당긴다/되살린다고 할 때, 단서는 자신의 곁에手元に, 따라서 현재에 있다.”
즉, 三木은 역사, 특히 ‘사실로서의 역사’란 과거로부터의 사건의 끄러모음積み重ね으로서의 전승이 아니라, 바로 ‘현재’(이것은 ‘고대·중세·근대·현대’로 이어지는 ‘현대’와는 상이한 차원의 개념이다)의 관점에서 ‘과거’를 ‘끌어당긴다/되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三木은 ‘사실로서의 역사는 행위인 것’이며, 그 행위란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즉, ‘사실로서의 역사’란 전체성을 갖고 역사를 인식하며 쓰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실로서의 역사’는 그 행위를 가능케 하는 ‘전체’와 그것을 형성하기 위한 ‘단절’이 필요하다고 한다. 三木은 다음과 같이도 말한다.
“역사적 인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체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러한 전체는 끊임없이 이행하는 역사의 과정을 단절하는 것Ent-scheidung에 의해서 비로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결심하는 것Entscheidung이 필요하다. … 모든凡て 행위가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여하한 자유도 없는 곳에는 본래 행위라고 해야 할 것도 없다. 그런 한에서 사실로서의 역사는 바로 자유이다.”
역시 内田弘은 이 三木의 역사철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三木은) 무릇 역사적 인식이 성립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시간의 흐름을 의식 위에 ‘단절’하는 때라고 보고 있습니다. … 자연의 때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것은 과제가 미래로부터 현재에 진입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로부터의 과제(Aufgabe)에 대답해야 할 ‘현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거슬러가 ‘현재’의 ‘시작’을 화정합니다. ‘미래’로부터 과제에 대답해야 할, ‘과거’로부터 주어진 여건(Gabe)을 철저하게 곱씹고, ‘미래’에 사는生きる 에센스를 추출하는 작업이 행해지는 장이 ‘현재’입니다. ‘미래’와 ‘과거’가 격렬하게 싸우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장이 ‘현재’입니다.”
이 内田에 의한 三木의 시간인식의 해설은 놀라울 정도로 아렌트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의 시간론, 그리고 그것과 공통하는 앞에서 거론한 ‘역사의 균열’의 인식과 공통하고 있지 않는가. 예를 들어 아렌트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과거로 되밀어내는 것은 미래이다. 늘 과거와 미래의 간극はざま/틈새interval에서 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연속체, 즉 두절되지 않고 연속하는 흐름이 아니다. 시간은 중간middle, 즉 ‘그’가 선 지점에서 찢어져裂けている 있다. 그리고 ‘그’가 선 지점은 우리가 통상 이해했던 현재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의 균열gap이다. … 인간이 시간 속에 출현함/등장함立ち現われる으로써만, 또한 인간이 자신의 장을 차지하는 한에서만, 무차별한 시간의 흐름은 끊어지며,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된다. 이 인간의 등장/출현이야말로 시간의 연속체를 과거와 미래의 힘으로 분열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사용한다면 하나의 시작의 시작the beginning of a beginning이다.”
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말해졌던 ‘시간의 균열’이란 『혁명론』의 문맥에서 말한다면, 합중국 헌법의 제정에 의해 공적 영역과 공화제의 창설에 성공했던 미국혁명의 시대이기도 한데, 이것은 또한 그러한 ‘시작’을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시작’의 힘을 과거와 미래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현재’의 것을 의미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간이 등장하는 것 ―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 사회에서, 혹은 자신이 속한 유대인 사회나 조국 독일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인간으로 되는 것을 염원했음에 틀림없다 ― 그 자체가 ‘현재’에서의 새로운 ‘시작의 시작’이 된다.
IV. 결론
이상에서 『혁명론』의 전체를 개괄하면서 이 책에 나타난 ‘시작’의 개념을 논했다. 아렌트가 생각하는 혁명이란 ‘해방’이 아니라 ‘자유의 창설’이라는 것, 그것은 『인간의 조건』에서 역설된 공적 자유(이것은 바로 혁명의 잃어버린 ‘보물’이기도 하다)가 실현되는 장이라고 하는 정치사상적 면과 동시에, 혁명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의 균열로서의 ‘시작’이며, 그것이 사람들의 ‘기억’과 ‘회상’에 의해서 ‘전통의 실’이 됨으로써, 또한 원리로서의 ‘시작’을 인류사에 새기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우리네 인간은 항상 이상적인 ‘미래’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미래’를 목표로 하면 목표로 할수록, 거꾸로 ‘미래로부터의 힘’에 의해 우리는 과거로 되돌려진다引き戻される. 여기서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기억’의 대상으로 삼고, 또한 어디까지를 ‘회상’의 대상으로 삼는가에 의해서, 이 ‘시작’이 어떠한 ‘과거로부터의 힘’을 얻고, 어떠한 ‘시작’을 초래할 수 있는가가 바뀌게 된다고 한다.
아렌트 자신은 개별적인 전문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의 연구에 종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의 사랑 개념』,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 The Life of Ra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ess , 1958), 『전체주의의 기원』,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 1968), 그리고 이 『혁명론』 등, ‘인간’ 그리고 ‘역사’라는 것이 전체로서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과거’를 말하는 것을 통해서, 인류의 ‘현재’가 품고 있는 문제를 보여준 저작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아렌트는 三木이 말한 ‘사실로서의 역사’, 역사를 말한다는 행위를 생애 내내 계속 직조해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란 무엇인가’를 깊이 통찰한 그녀의 저작의 출판 그 자체가 과거로부터의 힘을 얻으면서 동시에 미래로부터의 과제에 대답하면서 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현재’로서의 ‘시작’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트가 역설하는, 시작에 대한 ‘기억과 회상’은 전체성을 갖고 역사를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시대를 넘어서 우리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녀가 제기한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전개해가는가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커다란 과제이다.
<범례>
아렌트의 저작에 관해서는 원서를 아래의 약호로 표기하고 참조대목을 기록한 후, 번역서가 있는 것은 해당하는 대목을 병기했다.
BPF :Between Past and Future, (introduction by Jerome Kohn), Penguin Books, New York, 2006. (1st pub., 1961; expanded vol., 1968). (引田隆也・齋藤純一訳『過去と未来の間』みすず書房, 1994年)
EU :Essays in Understanding 1930-1954 : Formation, Exile, and Totalitarianism, edited by Jerome Kohn, Schocken Books, New York, 2005 . (1st pub., 1994).(齋藤純一 · 山田正行 · 矢野久美子共訳『アーレント政治思想集成 1 組織的な罪と普遍責任』みすず書房, 2002年).
HC :The Human Condition, 2nd ed., (introduction by Margaret Canova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98. (1st ed., 1958). (志水速雄訳『人間の条件』ちくま学芸文庫, 1994年).
LM :The Life of the Mind, Harcourt, Inc., New York, 1978. (1st pub., 1971). (佐藤和夫訳『精神の生活 上 第一部 思考』岩波書店, 1994 年;『精神の生活 下 第二部 意思』同).
OR :On Revolution, (introduction by Jonathan Schell), Penguin Books, New York, 2006.(1st pub., 1963; revised pub., 1965). (志水速雄訳『革命について』合同出版、 1968年;ちくま学芸文庫, 1995年. 이 글에서는 주로 ちくま学芸文庫版을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合同出版도 참조했다.)
ÜR :Über die Revolution, Piper Verlag GmbH, München, 1965. (OR의 독일어판)
'현대사상의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나 아렌트의 ‘시작’ 개념 : 『혁명론』을 중심으로 (2) (0) | 2017.05.13 |
---|---|
한나 아렌트의 ‘시작’ 개념 : 『혁명론』을 중심으로 (1) (0) | 2017.05.12 |
나카마사 마사키, <정치신학과 예외상태> (0) | 2017.05.11 |
Graham Harman, <On Vicarious Causation>[미번역] (0) | 2017.04.14 |
Graham Harman, <ON INTERFACE : Nancy's Weights and Masses>[미번역] (0) | 2017.04.14 |
댓글